한국민족문화 77, , 233~264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나목 과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를대상으로 1) 이경 * 1. 서론 2. 꿈으로의도피와잠을통한몫찾기 - 나목 1)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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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 77, 2020. 11., 233~264 http://doi.org/10.15299/jk.2020.11.77.233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나목 과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를대상으로 1) 이경 * 1. 서론 2. 꿈으로의도피와잠을통한몫찾기 - 나목 1) 불침번의표상과 인기척 2) 살아남은죄와불면 3) 엄마와딸의시차 4) 꿈으로의도피와잠을통한몫찾기 3. 잠을매개로한여성들의연대와가부장제의균열 -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1) 오빠의잠과여성의타자화 2) 미래라는특권에대한이의제기 3) 여성들의잠 : 몫찾기에서연대로 4) 연대적주체성과가부장제의균열 4. 결론 < 국문초록 > 이글은잠과젠더를중심으로 나목 과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를분석함으로써전쟁기를전후한여성의타자화와주체화과정을드러낸다. 잠과시간성에관한이론과여성주의적접근법에토대하여잠을매개로여성이동원되고배제되는양상과이에대응하여여성들이자신의몫을찾아가고연대를형성하는과정을추적한다. 먼저, 나목 을대상으로불침번이라는표상이함축하는전쟁기의통제 * 한국국제대학교사회복지학과 ( 교양 ) 교수 (tearsintequila@hanmail.net)

2 / 한국민족문화 77 와잠을통한인기척의반작용을분석하되, 아들 / 오빠를잃고살아남은모녀의잠에함축된죽음과삶의간극에주목한다. 악몽과불면, 의사죽음을통해아들 / 오빠의죽음이이들에게불침번의명령처럼작동한다는사실을천착하며, 죽음과삶을결과하는모녀의균열을배후하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의미래담론과이에대응하는잠의가능성을현재성의옹호를통해드러낸다. 나아가, 가부장적꿈으로의도피는죽음을결과하며잠의가시화는여성인물이자기몫의삶을찾는과정임을밝힌다. 다음으로,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를대상으로, 여성의잠을비가시화하거나악몽과불면으로잠식하는전쟁기의남성권력과잠을통한여성의몫찾기와연대를분석한다. 미래담론이여성을동원하는현재를은폐하고합리화한다는사실을천착하고잠과현재성의옹호를통해이에대한여성인물들의대응을밝혀낸다. 나아가, 자신의몫찾기를통해삶을수습하고연대를형성하는한편, 가부장제를균열하는여성인물들의궤적을추적한다. 불침번이라는전쟁기의명령에대하여잠을통해, 자신의몫을찾으며 ( 나목 ) 연대적주체성으로나아가가부장제를균열하는잠재력 (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 을드러내고자한다. 잠이라는접근법은이와같은여성들의타자화와주체화과정을드러내고수행하는매개역할을한다는것이다. * 주요어 : 박완서, 잠, 지나간미래, 여성주체화, 수행성 1. 서론 우리의삶에서차지하는비중에도불구하고잠은현대문학에서의미있 게재현되지않는다. 1) 행동이서사의중요요소로간주되는현대소설에서 1) 몽자류로장르화된고대의서사와달리, 발전과속도를골자로한근대세계에서잠이라는비노동, 비생산, 정지등은의미를갖기어려우며사건과행동을골자로한근대소설이라는장르역시잠과불화하는경향을갖는다.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3 잠은거의드러나지않으며드물게드러나는경우에도생리적현상이거나재생산을위한휴지기혹은성적은유정도로그의미가한정된다. 하지만, 박완서소설은본능혹은비수행으로간주되는잠을의미와수행의차원으로끌어올린다 2) 는점에서독특한위치를점한다. 소설에서잠은서사의단계를담당하거나변화를매개하는등다양한내포를갖는다. 특히전쟁기와서울수복을전후한시기를배경으로한소설에서반복되는잠은전쟁기의 남성-대주체 (Subject)-국가권력 3) 의통제를비틀어냄으로써이에대한저항을담보하는긴요한장치역할을한다. 그럼에도전쟁기를배경으로한박완서소설의연구사에서잠이라는모티프는잘드러나지않는다. 여성성과모성 4), 증언과기억 5), 글쓰기 6), 탈장소 7) 및생명정치 8) 에이르기까지다양한관점으로연구가축적되어있으나잠에주목한분석은찾아보기어렵다. 근대와잠의관계 9) 처럼, 연구사역시 2) 사회학적연구에서잠을사회성이없는부작위 (asocial inaction) 이아니라사회적상호작용이일어나는시간으로포착한다. R. Meadows, The neglected night : an emboided conceptual framework for the sociological study of sleep, The Sociologucal Review, vol. 53, Issue 2, 2005, pp. 240-254. 3) 김양선, 증언의양식, 생존ㆍ성장의서사 박완서의전쟁재현소설 그산은정말거기있었을까 를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비평 제 15 호,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02, 146 면. 4) 한경희, 전쟁모성이생산한여성의식 - 박완서의장편소설나목 (1970),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1995), 그남자네집 (2004) 을중심으로 -, 현대소설연구 제 67 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17, 447-488 면. 5) 김양선, 앞의논문 ; 이평전, 한국전쟁의기억과장소연구 - 박완서소설을중심으로 -, 한민족어문학 제 65 호, 2013, 869-895 면 ; 배상미, 박완서소설을통해본한국전쟁기여성들의갈망, 여 / 성이론 제 24 호, 2011, 117-128 면. 6) 이은하, 박완서소설에나타난전쟁체험과글쓰기에대한고찰, 한국문예비평연구 제 18 호, 한국문예비평학회, 2005, 225-258 면 ; 조미숙, 박완서소설의전쟁진술방식차이점연구 - 엄마의말뚝, 목마른계절, 나목, 그많던싱아는누가다먹었을까,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의오빠관련서술을중심으로 -, 한국문예비평연구 제 24 호, 한국문예비평학회, 2007, 221-256 면. 7) 유인혁, 박완서의 나목 에나타난여성의탈장소와이동성의주체, 여성문학연구 제 47 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 343-377 면. 8) 김재건, 박완서소설에나타난생명정치인식, 서울대학교석사학위청구논문, 2019; 조길란, 박완서의전쟁소설에나타나는생명정치연구 : 주권권력과호모사케르를중심으로, 명지대학교석사학위청구논문, 2020.

4 / 한국민족문화 77 비가시화된잠의자장을벗어나기어려운듯하다. 이에이글은전쟁기의수면장애는거의여성에게만드러난다는사실에착안하여잠과젠더를중심으로박완서의 나목 과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10) 를분석한다. 이를위하여 J. 크레리 11) 를비롯한잠이론과코젤렉 12) 의 지나간미래 라는관점, 그리고여성주의적접근법에토대하였다. 전쟁기의불침번병사와자본주의적인간을연결시킨크레리의통찰처럼잠의통제는전쟁기와근대에공통되는특징이다. 생산성, 이윤을골자로한자본주의의본격화와함께잠은타자화의대상으로자리하며 13) 전쟁기는잠의타자화가생존및안전을빌미로노골화된시기라할수있다. 코젤렉의 지나간미래 또한현재의도구화에초점을맞춘다는점에서프레리의이론과접점을갖는다. 근대가발명한미래는진보와동의어 14) 로사람들을포획하는목표지점을의미하며이점에서미래는권력에가깝다. 권력또한목표를위해현재를도구화하는방향으로작동하기때문이다. 도구화되는잠과현재를통해근대를해부한다는점에서양자는공통점을지닌다. 9) Jonathan Crary, 24/7 Late Capitalism and the Ends of Sleep, 김성호옮김, 24/7 잠의종말, 문학동네, 2013, 26-27 면참조. 10) 박완서, 나목ㆍ도둑맞은가난, 오늘의작가총서 11, 민음사, 2014; 박완서, 최윤혁편,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세계사, 2017. 두소설은서울수복을전후한전쟁기를배경으로, 죽거나다친남성인물들을중심으로동원되고배제되는여성인물들이잠의가시화와함께주체화의궤적을드러낸다는점에서공통점을갖는다. 11) Crary, 앞의책. 12) Reinhard Koselleck, Vergangene zukunft-zur semantik geschichtlicher zeiten, 한철역, 지나간미래, 문학동네, 1998. 13) 지난 50 년동안미국성인들의수면시간은 1.5 내지 2 시간정도줄어들었으며, 그원인중의하나가사회경제적요인이라고한다. E. Bixler, Sleep and society: An epidemiological perspective, Sleep Medicine, No. 10, 2009, pp. 53-56. 이점은잠이전사회적인노동내지는일상생활관리의대상이되어있음을간취할수있게한다. 14) 그에의하면미래에대한기대가구체적인경험들로부터점점벌어지면서근대가새로운시대로파악된다고한다. Koselleck, 앞의책, 399 면. 이과정에서인간의의식과행위가계속하여이데올로기화되고정치화된다. 즉, 개별적인역사들이보편적인 진보 의체계하에질서지워지며이는곧 동시적인것들의비동시성 으로나타나게된다. 위의책, 140-141 면참조.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5 하지만, 잠은이와같은권력의통제에포획되지않는다. 잠은오히려이러한기획에이의를제기하는역할을함으로써저항의가능성을갖는다. 전쟁기에잠은첨예한모티프로작동한다. 생존을빌미로불침번을명령하는권력에대하여인간의본능은저항할수밖에없기때문이다. 잠은근대가끝내포획하지못한거의유일한 추문 이며, 자연의주기적필연성이라는바로이추문으로인해잠의저항성이보장된다할수있다. 잠은권력을우회하며반작용의역할을하는주체성의표상인동시에끝내포획될수없는상태의표상이다. 수동성이라는잠의외관속에는어떤다른곳으로우리를인도하는급진적단절과거부로서의계기가내장되어있는것이다 15). 이상의접근법에토대하여이글은전쟁기를배경으로한박완서소설에나타난여성의타자화와주체화과정을추적한다 16). 잠이라는매개를통해, 가부장제이데올로기가여성을타자화하는과정과이로부터일탈하여자기몫을찾고연대를형성하며가부장제를균열하는여성주의적가능성을모색한다. 저항을드러내고실천하는수행성의의미를잠에서찾고자하는것이다. 2. 꿈으로의도피와잠을통한몫찾기 나목 이장은한국전쟁기에아들 / 오빠를잃고살아남은모녀의슬픔과죄의식을다루되이들의상처가노정하는간극에주목한다. 불침번 은잠을통제하는전쟁기의표상이지만, 모녀의잠은이에대해균질하게반응하지않는다. 이하에서는모녀의잠이함의하는죽음과삶의간극을살펴본다. 1) 불침번의표상과 인기척 전쟁기의군인에게는불침번의표상이생존의기본값역할을하며잠은 15) Crary, 앞의책, 27 면, 47 면, 121 면, 197-200 면참조. 16) 세계대전과여성주체화는임옥희, 메트로폴리스의불온한신여성들, 여이연, 2020, 183 면참조.

6 / 한국민족문화 77 엄격하게통제된다. 나목 의남성인물들에게잠이자주재현되지않는것은이와유관하다. 중령계급인사촌오빠, 진 에관한묘사에는 빈틈없이잘생겼다는것, 차고단단한남자 ( 나목, 139면 ) 17) 금속성으로차게빛나는 (138면) 눈등차갑고긴장된이미지가유난히부각된다. 잠을자기는커녕아랫목에벌렁누워있을때조차그는각을허물지않는자세로제시된다. 그에관한묘사는서사의극히일부에지나지않지만, 일관되게꼿꼿한모습은불침번으로표상되는전쟁기의태세를확인하기에충분하다. 오빠인 혁 과 욱 의잠은비가시화를넘어죽음을의미한다. 잠을자다가폭격의희생물이되기때문이다. 그들의묘사에단한번재현되는잠은그들의죽음과동시에등장한다. 잠이죽음을초래한다는사실은불침번의당위성을강하게환기한다. 잠이남성인물의생사를통제하는유의미한표지가됨으로써, 군인이아닌그들또한불침번의기율에종속되는것이다. 진을수행한운전병, 김하사의잠은이와같은통제를균열한다. 오빠가화자와이야기를나누는동안대기하던김하사는졸기시작한다. 시간이흘러도여전히꼿꼿한상관과대조적으로, 자세가무너지며빠져든그의잠은전시의통제를일시적으로나마무력화한다. 김하사는맹렬히코를골고있었다. 꿇었던무릎은완전히펴져서커다란발바닥이거침없이그의오만한상관을향하고있었다. 업어가도모를듯한깊은숙면에빠져있는그가나에게는웬일인지이커다란집속의유일하게살아있는사람같이여겨졌다.(142면) 상사를수행하고있는상황에서맹렬히코를골며업어가도모를만큼빠져든김하사의잠은불침번이라는전시의기율을위반하고장교 / 운전병이라는서열을균열한다. 상관의 오만한얼굴 과이를향한운전병의 커다란발바닥 이라는대조는이를단적으로요약한다. 맹렬히 거침없이 방약무인하게 라는화자의수식은저항과불복종의의미를더욱부각시킨다. 17) 이하이절에서인용문뒤의숫자는 나목 의면수를의미한다.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7 주목해야할것은군기이탈이라할수있는이와같은잠에대하여화자는물론이고그의상사조차도긍정적이라는사실이다. 녀석피곤한가보군, 보기에도쾌적한깊은잠 이라는반응은이를잘설명한다. 그의잠은이들이기다리는 인기척 에값하며, 여기서인기척은전쟁이라는상황에대한인간다운대응을의미하기때문이다. 김하사의맹렬하게코고는소리는 우리 의침묵과대비됨으로써, 사람이살고있는것같지않은심지어산적도없는것같은그공허한정적 을깨는문제제기의몫을담당한다. 하지만, 인기척 에대한상사의허용은오래지속되지않는다. 김하사를깨우라는오빠의말은김하사의잠이환기하는저항의목소리를차단하며잠또한상사의 김하사 라는호명에의해즉각중단된다 18). 그의잠이수행한 인기척 의역할은아주잠깐의일탈에지나지않으며 불침번 의표상은여전히전시의강력한기율로자리한다. 2) 살아남은죄와불면서울이수복된후, 불침번의기율은사라졌지만, 여성인물들은잠을자지못한다. 지척에서아들 / 오빠를잃은충격에서벗어나지못하기때문이다. 엄마는현실부정, 화자는악몽에처단되며이를토대하는것은살아남은여성의죄의식이다. 어머니는변함없는부연혼미상태에있었다. 깨어있을때도의식이있는지없는지분간못할부연눈을뜨고있다뿐어떤감정을읽어낼수는없었다.(241-242면) 나는붉디붉은호청을꿈꿨다. 피묻은호청에휘감기는악몽은매일낮계속되고잠못이루는밤이뒤따랐다.(239면) 오빠들의죽음이후, 의식이있는지없는지분간못할부연눈 으로일 18) 비록한줌의일탈에그친인기척이지만, 맹렬히, 거침없이, 방약무인하게 그가코를고는소리는강렬한효과음으로자리하며, 권력의통제에대한이의제기라는점에서화자의잠과연속된다.

8 / 한국민족문화 77 관되는엄마의삶은의사죽음에가깝다. 부연눈, 부연혼미상태, 회색빛고집은 죽지못해살고있노라는 선언이며 한결같이시척지근한김칫국 으로재현되는밥상또한마찬가지이다. 엄마에게삶은부정의대상이자자기처벌의현장에다름아니다. 엄마의 부연눈 이잠과깨어있음의구분이무의미한의사죽음의상태라면, 화자의잠은불면과악몽사이에위치한다. 그녀는대낮에도백일몽에서빠져나오지못한다. 오빠의피로물든붉은호청의꿈은그녀의잠을잠식한다. 원래오빠의방에손님을묵게하고가장안전한행랑채에오빠들을재웠는데하필그방이폭격을맞음으로써그녀의죄의식은뿌리가더깊다. 유일하게그녀를일으키는것은 너까지어떻게돼봐라. 너의어머니신세가뭐가되나 라는큰어머니의말이다. 충격으로쓰러져있는엄마에게어떤의미가될수있다는것이살아남은자신을긍정하게하는유일한버팀목이다. 그러나모녀의관계는연대를형성하지못한다. 아들 / 오빠의죽음이라는충격을함께경험했지만, 이들의슬픔과죄의식은결을달리한다. 혼수상태에서잠시정신이든엄마의첫일성은이를잘설명한다. 어쩌면하늘도무심하시지. 아들들은몽땅잡아가시고계집애만남 겨놓으셨노. (243 면 ) 하늘에대한엄마의원망에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가깊게각인되어있다. 가부장제에포획된엄마는살아남은자신의삶을부정하고이부정은딸의소외를결과한다. 엄마의부연눈을보면스스로위축된다는화자의고백은이를잘설명한다. 모녀의슬픔과죄의식에는간극이자리한다. 함께살아남은엄마에게서도죄의식과소외를느낌으로써그녀는아무데도기대지못하는상태에처단되며고통은오직그녀의것으로남는다. 딸의낙에매달리지않겠다 (46) 는엄마의태도는자신과딸의삶을타자화하는결과를가져온것이다. 여성인물들의불면과악몽, 의사죽음이표상하듯, 죽은아들 / 오빠가살아남은여성들의삶을장악하고지배하는것은가부장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9 제이데올로기의효과이다. 가부장제이데올로기로인해살아서는가부장권력과거리가멀었던오빠들이죽어서실력을행사할수있는것이다. 이처럼, 모녀의불면은슬픔과죄의식이라는공통분모에도불구하고삶의수용과거부를드러내는균열지점으로자리한다. 이들의균열을토대하는시차를살펴본다. 3) 엄마와딸의시차 엄마와화자의균열은과거와현재의대립으로구체화된다. 오빠의기타 를사이에둔엄마와딸의대립은이를잘드러낸다. 우리모녀는기타를사이에놓고미친듯이방바닥을뒹굴고짐승처럼씨근대며자신의육신을돌보지않고처절한싸움을했다. ( 중략 ) 이긴쪽은어머니였다. 모처럼시도해본과거와의단절은이렇게해서수포로돌아갔다.(93면) 욱의기타를사이에두고이를부수려하는딸과사수하려는엄마는대립한다. 19) 짐승처럼씨근대며 벌이는이들의 처절한싸움 은그대로엄마와딸의시차를의미한다. 여기서기타에대한엄마의집착은그것이단순히오빠와의추억을상징하기때문이아니다. 기타소리의환청은엄마에게과거는지나가지않았고여전히현재를지배하고있는것을뜻한다. 이와같은과거의힘은그것이미래와결합되는데에기인한다. 엄마에게있어오빠는과거이기보다는미래를의미한다. 오빠들과함께했던삶은엄마가상상할수있는미래의자원이라는점에서이를지나간미래 20) 라부 19) 신정숙은이를 과거에속하는인물 인엄마와 과거와의단절 을원하는화자의대립으로설명한다. 신정숙, 문학적환상과정치성의구현 - 박완서초기소설 나목 (1970) 을중심으로, 동남어문논집 제 42 집, 동남어문학회, 2016, 178-183 면. 20) Koselleck 의지나간미래 (futures past) 는원래당대세대들의미래에서드러난측면을의미한다고한다. 황정아, 지나간미래와오지않은과거 코젤렉와개념사연구방법론 -, 개념과소통 제 13 호, 한림대학교한림과학원, 2014, 127 면. 하지만, 정희진은이를현재가 다가가면물러나는미래를위해희생되는현상으로설명한다. 정희진, 나를알기위해서쓴다, 교양인, 2020, 113 면. 이글은정희진의관점에따라서술된다.

10 / 한국민족문화 77 를수있다. 오빠의기타는엄마가감각할수있는미래의유일한형상이기에엄마는 힘찬맥박이뛰는건강하고뜨거운여인 으로변신하여이를사수하는것이다. 엄마에관한한, 과거로의퇴행은미래로의전진에등가되는셈이다. 문제는, 엄마의 부연눈 이표상하듯, 미래라는이름으로잔존하는이와같은과거가엄마의현재를잠식한다는데있다. 무슨복에죽을병이들겠니? (270면) 이라는말처럼삶은지연된죽음일뿐이기에, 기타를사수한엄마는결과적으로죽음에파먹힌삶을살아간다. 21) 오빠의기타가상징하는과거를절단하는데는실패했지만, 이대립을통해화자는자신들의삶을포획하는미래담론과이를배후하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를철하는통찰력을획득하며, 이는현재성에대한감각의확보로이어진다. 오늘도버거운전시상황에서 5년후를꿈꾸거나현재의사랑보다훗날의볼붉은사내아이를먼저떠올리는남성인물의몽상에대한거부반응은이를구체화한다. 오년뒤를꿈꾸기에는너무도다급한 (83면) 갈망과 꿈을꾸기도, 남의꿈이되기도싫다 (294면) 는선언은미래혹은목적에대한거부이자현재성의옹호이며이는잠으로수렴된다. 화자에게서가시화되기시작하는잠은지금여기서의삶을살아가는현재적존재의내용증명이라할수있다. 4) 꿈으로의도피와잠을통한몫찾기 22) 모녀는모두살아남은슬픔과죄의식, 그리고죽음에포획된삶을살지만, 이들의슬픔과죄의식에는간극이자리하며잠은이들의차이를극명하게드러낸다. 도피적꿈으로대체되는엄마의잠과달리, 화자인 나 의잠은죄의식에서부터삶의몫찾기에이르는보다복잡한의미의결을갖는다. 21) 이은하는이를 삶의거부 ( 이은하, 박완서소설의갈등발생요인연구, 명지대학교박사학위청구논문, 2004, 121 면 ) 로, 신샛별은이를 욕구만있는삶 ( 신샛별, 앞의논문, 27 면 ) 으로설명한다. 22) 꿈과잠은분리되기어렵지만, 소설에서양자는의사죽음과주체화로그백터가뚜렷이구분되기에여기서는, 양자를나누어분석하였음을밝힌다.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11 엄마에게있어현실과꿈은전도된다. 즐거운꿈이라도꾸는지얼굴에희미하게미소까지어렸다. ( 중략 ) 가끔여보라든가, 욱아, 혁아라든가하는낱말을골라들을수있었다. ( 중략 ) 나는문득어머니가회복돼가고있다는게두려웠다. 그녀는지금행복한데, 깨어날것이, 그녀의정신과육체가유명을달리할것이두려웠다.(274면) 엄마에게꿈은아들들의죽음이전으로의퇴행을선물한다. 부연눈 의현실과달리, 꿈속의세상에는말과즐거운미소가자리한다. 여보, 욱, 혁 의잠꼬대에서알수있듯, 꿈속에서엄마가웃을수있는것은아버지, 오빠들과함께하기때문이다. 엄마의미소와행복은오직꿈속에서만가능하다. 이점에서엄마의꿈은단순히도피이기보다는다른삶의선택에가깝다. 가부장적어머니는 딸 의어머니가아니라 아들 의어머니 23) 이기에 의식이있는지없는지분간못할부연눈 은결코분간못할회색지대가아니라딸만살아남은현실대신, 아들및아버지와함께하는꿈을선택한결과일뿐이다. 가부장제의영향권안에자리하는꿈속의엄마는안정과웃음을회복한다. 꿈을통해부계혈통의가정을완성함으로써그녀는지나간미래를상상적으로복원한것이다. 딸과함께상실을애도하는대신상실없는세계로퇴행해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엄마는가부장제안에온전히자신을위치시킨셈이다. 엄마의 부연눈 이나의악몽과불면보다위험한것은이때문이다. 엄마의꿈은삶을죽음쪽으로견인하며, 실제로엄마의잠은죽음으로귀결된다. 엄마의삶과죽음은 거북한딸네집에서마음편한아들네집으로홀홀히가버린것 (277면) 이라는묘사처럼그녀의의사죽음은실제의죽음으로이어진것이다. 엄마의꿈이죽음으로견인된다면, 화자의잠은악몽과불면을통과하여 23) 한경희, 앞의논문, 463 면각주 13) 참조.

12 / 한국민족문화 77 삶의지분을찾는계기역할을한다. 고가의망령 (68면) 에삶이잠식당할때마다화자가잠에빠져드는장면은반복된다. 살아있다는것은그자체로생기와변화를지향한다. 회색이아닌 빛깔에대한걷잡을수없는갈망 (99면) 과늘일관되는시큰한김칫국이아닌음식에대한갈망 24) 은바로현재적삶을감각하려는안간힘에다름아니다. 잠은이와같은갈망과연속되는동시에실천으로이어진다는점에서능동적의미를갖는다. 혁이나욱이오빠가있었더라면 ( 중략 ) 나는잠이들었다.(17면) 나는어머니의가래끓는소리와헐떡이는숨결과혼자라는생각에서도망치듯이건넌방으로오고말았다. 이불을썼다. 그러곤어린애처럼빨리깊은잠에빠지고말았다. 눈을떴을땐거짓말처럼환한아침이었다. ( 중략 ) 단잠을잤기때문인지맑은아침이기때문인지새로운용기가솟았다.(272면) 창밖에는날이밝아오는데꿈같은단잠이늪처럼나를빨아들였다.(275면) 그녀가잠에빠져드는장면은유난히자주반복되는데이는삶의의지와연동된다. 잠은그녀가스스로를보살피고지원하도록매개하는역할을한다. 오빠에대한죄의식, 엄마로인한소외의식등으로삶이흔들릴때마다잠에빠져드는장면은반복된다. 잠은 죽지못해사는시늉을해야하는형벌 (139면) 로부터자신을구출하는계기로서자기몫의삶에대한보호와승인의과정이라할수있다. 엄마의죽음을전후한불안속에서도그녀가단잠에기꺼이빠져드는것은이때문이다. 잠은 새로운용기 로 거짓말처럼환한아침 을대면하게한다. 잠은자신과자기몫의삶을용인하고수습하게하는동력이자또실천이다. 그녀에게가장강력한삶의동력은화가, 옥희도와의사랑인데사랑또한잠으로수렴된다는사실은주체적삶을추동하는잠의역할을잘드러낸다. 초상화부에서일하는화가, 옥희도에대한관심은그가 딴사람과다 24) 음식에대한갈망과관련해서는신샛별, 앞의논문, 333-359 면.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13 르다 (49 면 ) 는인식에서비롯한다. 새로운생활 (49 면 ) 을시작하는계기를 딴사람과다른 그에게서찾고자하는것이다. 다음날아침, 잠에서깨어눈도뜨기전에떠오른것은그요람같이완전한신뢰와휴식을나에게준옥희도씨의포옹이었다.(68면) 쉬고싶다, 집아닌곳에서. ( 중략 ) 나는목이긴여자를생각했다. 그긴목이어깨가되어흐르는그유려하고도따스한고장에내얼굴을묻을수있었으면.(249면) 나는그녀가내곁에눕기를간절히소망했다. 그녀의풍부한가슴언저리나따뜻한목덜미께에머리를대고혼곤히잠들고싶었다.(251-252면) 옥희도와의사랑은 요람 의환상에서시작되어잠으로수렴된다. 그와의사랑은 요람같이완전한신뢰와휴식 을통해삶으로나아가게하는역할을한다. 요람의환상은 쉬고싶다. 집아닌곳에서 라는욕망 25) 으로이어지고그의가족이살고있는집 26) 에서의잠으로실현된다. 그의아내에대한질투의격렬함이수렴되는지점또한잠이다. 옥희도에아내에대한사랑과질투가그녀의 풍부한가슴언저리나목덜미에머리를대고혼곤히잠들고싶었다. (251-252면) 로귀결된다는사실은, 이또한삶의편을향해자신을추스리려는안간힘의일종임을의미한다. 아픈엄마로인한불안과소외의양가감정으로흔들리는그녀는자신의삶에대한승인의근거를찾고싶었던것이며사랑과질투, 그리고이감정이수렴되는잠은이를가능하게한다. 단칸방에서그의가족과함께한 꿈같은단잠 이불안을녹여내고새로운시작으로나아가게하는것은이를뒷받침한다. 옥희도와의 25) 남성이여성의잠을타자화하는양상은 S. Arber 등의연구에서도읽을수있다. S. Arber, J. Hislep, M. Bote, and R. Meadows, Gender Roles and Wpmen s Sleep in Mid and Later Life: a Quantitative Approach, Sociological Research Online 12(5)3, http://www.socresonline.org.uk/12/5/3.html( 검색일 : 2020. 10. 20.), para. 5.9. 남성의수면습관이여성의잠을방해하여도여성이그를제지하지못하는것은그커플사이의권력의불균형때문이라고한다. ibid., para. 6.4. 참조. 이에비추어볼때화자가 집이아닌곳 에서의잠을욕망하는것은가부장의자장으로부터일탈하려는욕망으로해석가능하다. 26) 유인혁은옥희도의집을어머니와의관계를다르게정립하게하는 탈장소 로설명한다. 유인혁, 앞의논문, 352 면.

14 / 한국민족문화 77 관계는잠을매개로스스로가삶의주인으로자리하는몫찾기의과정과동궤를이루는것이다. 꿈으로도피한엄마와달리, 잠은죄의식으로부터의일탈을실현하는첨예한징후로서그녀의주체화과정을예비하고매개한다. 잠은현재를도구화하는가부장적근대의 상식적인완만한궤도 27) 에대한저항인동시에죽음이미만한전쟁기에자기몫의삶을수습하게만드는결정적인매개역할을하는것이다. 나목 에서제시되는잠의젠더화와이를배후하는시차는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에서보다본격화되어드러난다. 현재를도구화하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가구체화되어제시되며이에대한여성의대응은자신의몫찾기에그치지않고연대로이어진다. 3. 잠을매개로한여성들의연대와가부장제의균열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이장은잠에각인된젠더와시차를중심으로여성의타자화와주체화과정을다룬다. 총상을입어움직이지못하는오빠는서울수복이후의미래를꿈꾸고, 가족의생계를짊어진올케와 나 는오늘너머를보지못한다. 이와같은시계의차이는젠더권력을표상하며, 잠은양자의관계를읽어낼수있는유효한매개로작용한다. 남성권력은여성의잠을비가시화하지만, 여성인물의잠은이를균열할가능성을담보한다. 특히, 다른여성들과연관된잠은자신의몫찾기와연대에이르는주체적, 능동적삶의가능성을제시한다. 1) 오빠의잠과여성의타자화 서울에서서울로의위장 - 피난이주요사건을이루는 그산이정말거기 27) 여기서의 완만한 의의미는느리다는의미가아니라현재에대한유보라는의미로해석된다. 지금여기서의즐거움을탐색하려는욕망을완만하게유보시키는미래에대한지적인것이다.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15 있었을까 에서중심인물을특정하기는어렵다. 집안의중심이오빠인것은틀림없는사실이나, 총상으로인해그는스스로움직이지못하며집안을관리하지도못하기때문이다. 올케와화자가집안의생계를떠맡고엄마가오빠를비롯한식솔을관리하기에사실상집안을이끌어가는것은여성인물들이지만, 이들은오빠를기준으로모든것을결정한다. 움직이지못하는오빠가전가족을움직이는셈이어서가장으로서오빠의위치는변함이없다. 서울이수복되고몸이회복된이후를위해오빠가세우는수많은계획또한가장의역할과책임에관한것이대부분이다. 그의일과는미구에수행할가장으로서의역할을몽상하는데할애된다. 하지만, 그의잠은죽음에이르는취약함을노정한다. 더군다나오빠는진통제없이잠들지못했다. 그의잠든모습은살아있는사람같지가않았다. ( 중략 ) 그렇게잘나보이던오빠가너무보잘것없이누워있었다. 오빠는예전의그가아니었다. ( 중략 ) 오빠는살아돌아온게아니라그때무참히죽은것이다.(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25면 ) 28) 체온외에살아있을때와달라진건아무것도없었다. ( 중략 ) 그는죽은게아니라 8개월간서서히사라져간것이다.(188면) 잠은그가외면한자신의상태를적나라하게드러내는역할을한다. 잠이드러낸산죽음은결국실제의죽음으로드러난다. 체온외에달라진것이아무것도 없다고할정도로오빠의잠은죽음과연속되어있다. 오빠의잠은현재보다먼저와있는오빠의미래, 즉도래한죽음을정확하게현시한다. 주목을요하는점은, 산죽음의상태로현시됨에도불구하고그의잠이다른사람을불침번으로세우는위치에자리한다는사실이다. 그의취약성이잘드러나지않는것은이때문이다. 오빠는잠을약으로관리하는본능으로간주하며이는여성의타자화와연동된다. 29) 약없이잠들지못할정 28) 이하이절에서인용문뒤의숫자는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의면수를의미한다.

16 / 한국민족문화 77 도의심한불면에도불구하고그가잠에강박되지않는것은엄마와올케가그가내려놓은만큼의불안을짐지고있다는데기인한다. 잠을관리하는주체는그가아니라여성인물이지만, 그는이사실을은폐한다. 진통제를먹이는것부터그의숨결을지키고돌보는전과정을여성들이담당하기에그의잠은관리가능하지만, 진통제의효과만강조함으로써, 그는이들의역할을외면하고은폐한다. 오빠의잠은남성권력에토대한여성의타자화를드러내는중요한매개로서, 타인에게자신의고통과불안을위탁하는것이곧권력이라는사실을여실히드러낸다. 30) 이처럼오빠와관련된여성인물의잠은종속적이다. 살아있는오빠가이들의불침번서기를결과한다면, 오빠가죽은이후에는악몽에시달림으로써여전히오빠에게예속된다. 그여름이가고가을되고겨울될때까지도나는하루만에오빠를매장했다는죄의식에시달렸다. 오빠가무덤속에서난안죽었다고무서운얼굴로살아나오는꿈을꾸고또꾸었다.(192면) 오빠의죽음을전후한그그림자같은생존방식에, 우리식구는아직도확실하게묶여있었다.(194면) 오빠가무덤속에서무서운얼굴로다시살아나오는것이화자가꾸는 악몽의내용이다. 화자의악몽은 예를갖추지못한장례, 하루만에오빠 를매장했다는죄의식 에기인한다 31). 충분히애도되지못한장례에있다 29) 오빠는총상의통증과북한군에대한불안으로인해잠을못자지만, 그는잠을중요하게여기지않는다. 진통제를복용함으로써잠이해결된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화자가의아하게생각했듯이, 통증을잊게하는진통제가곧수면제로통하는것은그가잠을통증이멈추는휴지기혹은약으로관리가능한생리작용정도로간주한다는것을의미한다. 30) R. Meadows 에의하면잠은다른사람과의상호작용속에서타협하는방식으로이루어진다. 특히여성들의경우가족에대한돌봄의걱정과고민을잠보다우선하도록자신과타협 (a negotiation with self) 하면서자신의잠에대한태도 ( 문제적으로보거나, 정당화하거나수용하거나혹은합리화하는 ) 를정한다. R. Meadows, op. cit., 특히 p.252 의결론부분참조. 여성의잠은이런경로를거치면서타자화되는것이다. 31) 김양선에의하면이는박완서소설에서끊임없이되풀이되는원체험으로자리하고 ( 김양선, 앞의논문, 155 면 ) 한경희에의하면이는가족의죽음에대한상실보다는자기보전본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17 는것이다. 하지만, 이들의죄의식은예를안갖춘장례라는사실보다는오히려살아남았다는사실자체에빚지고있으며, 이는오빠가가진가부장제적위치와직결된다. 아들이자남편이며오빠라는중심대신, 감히 자신들이살아있다는사실에서오는죄의식인것이다. 집안의기둥인아들 / 남편 / 오빠를떠나보내고여성인자신들이살아남았다는것이보다근본적인원인이라할수있다. 오빠의죽음을전후한그그림자같은생존방식 이라는 증오보다더강한어떤약속 에 확실하게묶여있었다 는설명은이를증명한다. 죽지못해사는목숨으로자신을정체화하는여성인물들의인식은살아있음의부정과서로간의소외를결과한다. 각자는서로에게 오빠의죽음을감쪽같이집어삼키고썩이며 (193면) 살아가고있다는사실을거울반사하는존재에지나지않으며, 살아남은서로를 견딜수없는혐오감토악질 (193면) 의대상으로바라본다는언급은이를뒷받침한다. 자신들의생존에대한처벌이자심문을의미함으로써, 이들의악몽은가부장제라는현실이압박하는죄의식과공모의연장선에자리하는것이다. 여성을타자화하는오빠의잠은미래라는가부장적근대의이데올로기와연동되며현재성에기반하는여성의잠은이에대한대응을예비한다. 2) 미래라는특권에대한이의제기 허구한날오빠는다시는꿈꾸지않기를꿈꾸고 (43면) 라는화자의독백은오빠의꿈에대한거부를함축한다. 오빠의꿈은미래에고착되어있고화자는그가미래가아니라현재와대면하기를꿈꾼다. 지금당장의생존, 즉환부의소독에서부터먹고입고잠자는모든행위를여성인물에게전적으로의탁하고있는오빠가중심으로삼고있는시제는미래이다. 앞날을걱정하는건태평성대에나할짓이다. 전시에는그날안죽는게 능이앞선수치로해석된다 ( 한경희, 앞의논문, 459-460 면 ).

18 / 한국민족문화 77 가장중요한과제라는걸모르면그걸아는자의짐이되기십상이다. ( 중략 ) 올케와나는이미굶주리고있었다. 오빠는빈말로라도그런걱정한마디 없이언제닥칠지모르는앞날을예습하기에여념이없었다.(24 면 ) 서울수복후의세상예습 앞날의계획 딴사람이되어살아보겠노라는다음단계의계획 등에서처럼오빠의관심은서울이수복된이후의앞날에고착되어있다. 생계를비롯하여, 가족에게닥친당장의곤경이아니라, 언제닥칠지모르는 미래의꿈을전담할수있다는것은오빠의특권화된위치를의미한다. 앞날을걱정하는건태평성대에나할짓 이라는화자의말은이를뒷받침한다. 지금당장의곤경을우회하고미래를꿈꿀수있는것은권력자에게만주어진특권인것이다. 유의해야할점은오빠가꿈꾸는미래가과거와직결된다는사실이다. 허구한날오빠는다시는꿈꾸지않기를꿈꾸고, 엄마는오냐오냐맞장구를쳐대며즐거워했지만엄마의태도도서른살먹은아들의포부를듣는태도라기보다는세살먹은어린애의재롱을보는태도에가까웠다.(44면) 여기서의미래는아직오지않은미지의것이기보다는이미익숙해있는기지의것에가깝다. 미래는과거에기반하여상상되고예측되기때문이다. 오빠가말하는미래의유일한토대이자자원은 잘났던 과거이며이는그가누린가부장제적특권에기반한다. 오빠가시전하는미래의예습은엄마의 신앙 32) 이자집안의기둥으로서그가누려왔던과거의특권들에토대하며가부장제의충실한대리인인엄마가이에동조하는것은당연한반응이다. 오빠가제안하는미래의목록들이과거로의퇴영으로수렴되는것도유사한맥락을갖는다. 가장유치하고졸렬한응석 에등가되는오빠의계획에대한 엄마의맞장구 가 서른살아들의포부보다는세살어린 32) 김수진, 정상성과병리성의경계에선모성 박완서의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엄마의말뚝 2 와아니예츠카홀랜드의 올리비에, 올리비에 를중심으로, 여 / 성이론 제 1 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1999, 193 면참조.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19 애재롱보는태도 라는화자의언급은미래라는표상을입은퇴영적과거에대한지적에다름아니다. 오빠의계획은과거의특권을미래로연속시키려는퇴행적욕망에지나지않는것이다. 이와같은오빠의 어긋난시간 은현재자신의입장을합리화하는전략으로귀결된다. 미래를미리인출함으로써, 여성인물로인해지탱되는현재를효과적으로괄호치고우회하는것이다. 빈집털기라는올케와화자의호구지책을모른척하는엄마에대한, 시침떼는선수 (40면) 라는명명은오빠에게도유효하다. 전시에는그날안죽는게가장중요한과제임을모르는 것은권력형무지이며바로이권력에기반하여그는자신의현재를봉합하고합리화한다. 미래라는특권에대한화자의이와같은문제제기는현재의옹호로이어진다. 특권에다름아닌미래에대한거부는당면한현재에의충실로이어지며이는잠으로수렴된다. 잠은현재를볼모잡는미래에대응하는매개역할을담당한다. 주기적인패턴의세계내현존을보장하는잠 33) 은어떤목적도고갈시키지못하는삶의현재성과몸의물성을증명한다. 잠은현재의매순간이목적의심급을가진다는사실을드러냄으로써현재에대한도구화를중지시키고미래를빌미로삼는권력과이데올로기를균열하는 문화적저항 34) 을수행한다. 그결과, 잠은현재를도구화하는것이아니라미래를유예시키고변형할수있는매개로자리한다. 잠은비활동혹은정지태가아니라활동과실천의영역에속하는수행성의의미를가지는것이다. 이하에서는잠을통해자신의몫을찾고다른여성과의연대로나아가는여성인물의변화를살펴본다. 3) 여성들의잠 : 몫찾기에서연대로 가부장제에예속된잠에서부터자신의몫찾기와연대에이르기까지여 성인물의잠이갖는스펙트럼은넓다. 특히, 다른여성들과연관된잠은다 33) Crary, 앞의책, p.199. 34) Ariana Huffington, 정준희역, 수면혁명, 민음사, 2016, 3 장참조.

20 / 한국민족문화 77 른현실의가능성을함축함으로써전쟁의공포에서일탈하는주체적, 능동 적삶의가능성을제시한다. 화자가자신의입지를주장하는것은엄마의잠을깨우는데서시작된다. 마분지, 말뼈다귀인지한테딸을내주고도쿨쿨잠이와요?(70 면 ) 방에불을때야한다는이유로인민군인신씨가한밤중에올케를데리고나가려하자, 평소에그가올케에게보인호의가마음에걸린화자는자신이일을대신하고돌아온다. 야밤에딸을 내주구도 아랑곳없이잠든엄마의모습에화자는분노하며엄마를깨운다. 화자의분노는오빠를위한불침번역할과확연하게차별화되는엄마의잠과이를배후하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에대한이의제기인것이다. 화자자신이잠에서헤어나지못하는상황이반복되는것또한자신의몫찾기라는기반을갖는다. 여기서잠은누구를위한것이아닌, 오직자기몫의삶을확보한다는의미를갖는다. 한번은인민군에게, 또한번은정부에떠밀려피난을떠난다. 양측이데올로기에각각동원되고가족과분리되는불안한이동이지만, 잠은여성인물들이이러한불안을통제할수있음을드러낸다. 한방에서포개자다시피했는데도어찌나곤히들잤는지다음날한나절에나길을떠날수가있었다.(156면) 현이는밤에도기침을했고 ( 중략 ) 나는곤죽같은잠에서헤어나지못했다.(96면) 그런집에서우리는구들이뜨끈뜨끈하게불을때고, 삼시더운밥을지어먹고, 낮잠도자고, 현이기저귀도빨아말렸다.(91면) 속수무책으로잠에빠져들거나잠에서헤어나지못한다는언급이여러 번반복되는데, 여기서잠은기꺼이빠져드는자신만의영역을의미한다. 집을떠났을때그녀들의잠이비로소가시화된다는사실은이를뒷받침한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21 다. 잠은가부장제이데올로기에의한타자화의대상이지만, 동시에이로부터일탈하는해방의매개이기도한것이다. 이들이헤어나지못하는 곤죽같은잠 은가족과분리된불안과전쟁의공포를약화시키고자기몫의삶에대한의지를강화한다. 낮잠에대한언급은이와같은점을더욱부각시킨다. 잠이비가시화되었던과거와달리, 뜨끈뜨끈하게불을땐방에서누린피난길에서의낮잠은자신의삶에대한옹호가이미시작되었음을의미한다. 잠은, 우리식구들의죽지못해사는척은내가생각했던것보다훨허약하고보잘것없는것이었다. (227면) 라는화자의진단을예비하는징후역할을하는것이다. 잠은자신의몫을수습하게하는계기에그치지않고변화를매개하고또가능하게한다. 전선의이동을전후해서잠에빠지는장면이반복되는것은이를뒷받침한다. 우리는어디서밤잠을자든낮잠을자든이런소망이자는사이에이루어지기를빌면서잠들곤했다.(92면) 평화였다. 그러나현실일리는없었다. 나는행여나그달디단자욱함이샐까봐, 꿈에서깰가봐, 이불을꼭꼭여미고비몽사몽간의몽롱한시간을즐겼다.(120면) 화자와올케는밤사이에전선이바뀌기를기원하고잠이들고그며칠뒤, 고모깨워라 는말을듣고잠에서깬다. 이일상적인아침의풍경에서주목해야할점은세상이바뀌기를기도하는시간과바뀐세상사이에잠이자리한다는사실이다. 가족과의재회를확인하는순간또한비몽사몽간의몽롱한시간이다. 잠은스톱모션에걸린휴지기가아니라변화가실현되는생성의시간이라는의미를갖는다. 우리의필요를넘어서는어떤다른곳으로우리를인도하는시간의형태 35) 인잠은전선의이동만이아니라다른현실, 다른섹슈얼리티의가능성을경험하게하는통로로자리한다. 아주잠깐의비몽사몽속에서이루 35) 잠이환기하는신비와불가지성에대해서는 Crary, 앞의책, p.197.

22 / 한국민족문화 77 어진명서와의조우는이를잘설명한다. 내오관이감지하는것만이이세상의전부는아닐거라는정도나마정신의여백을가지는것은그때의체험과무관하지않다.(112면) 근숙언니에게의존적, 안무섭다고떨어져자다가도어느새포근하게감싸고이는안심 ( 중략 ) 동성끼리피부접촉의쾌감-죄의예감인생추락느낌 (159면) 자신을유난히따르던사촌여동생의죽음과마주치게한것은잠이라는계기이다. 잠결에이루어진사촌과의조우가사촌이세상을떠난시점과거의맞아들어간다는데서이를알수있다. 화자가말하는 정신의여백 은오관으로확인할수있는경험을넘어서는다른현실의가능성에대한승인에다름아니다. 잠결에경험한순간은생사의경계를넘는 정의빛 을감각하게하는다른현실의차원으로자리한다. 다른섹슈얼리티의가능성또한이와같은잠의개방성과연결가능하다. 피난길에서함께향토방위군에소속되었던근숙언니와의잠은여성들간의관계를심층적으로들여다보게한다. 숙소가하필땅군의집이어서무서워서끌어안고잠이들면서안정감과함께 피부접촉의쾌감 을경험한다. 이는일회성으로지나가고두번다시되풀이되지않으며 죄의예감 이라는말에서처럼자기검열또한완강하게작동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포근한안정감과죄의예감이동시에자리할수있다는사실자체는중요한의미를지닌다. 가장낯선섹슈얼리티의경험과친밀함의경계는너무얇은것으로드러나기때문이다. 자기안의낯선타자와조우하게된경험은다른존재를타자화할수없게만듦으로써이들의관계를더깊은연대로개방해낸다. 잠을매개로 그애가씌워주고간정의빛을줄곧느끼고 (111면) 살게하는사촌동생과의조우처럼, 근숙과의관계또한심층적차원의연대로수렴된다. 서울집에등가되는시골집이라는명명은여성들간의우정이라는연대의범주를보다확장시킨다. 피난을떠난빈집에저장되어있는음식과장작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23 을생면부지의이들이전유하는데서축적과소유, 그리고이와연동된혈연가정에대한다른시각을읽을수있다. 빈집의쌀독에가득한쌀과독독이쌓여익어가는김치등에대한이들의향유는나와내가족에한정되는몫의개념을일정정도교란한다. 자신들의집을서울집으로, 피난길에묵은빈집을시골집으로명명하는것은이를단적으로증명한다. 잠을매개로여성인물들과연관된이와같은경험들은친밀감의연대에그치지않고연대적주체의가능성을예비한다. 임진강만은넘지마 라고한엄마의말은수용하되, 현실과섹슈얼리티그리고몫이라는선을가로지름으로써연대의잠재력을확보하는것이다. 4) 연대적주체성과가부장제의균열잠은전쟁기를배경으로성장하는여성인물들의잠재력을표상한다. 여성인물들의입지가뚜렷해짐과함께더이상잠을통한자기증명은표면화되지않으며대신, 여성들은주체화의열정을직접적으로드러낸다. 북한으로향하는길에서만난구렁재마님과올케는여성주체를표상한다. 이들은전쟁으로인한결여의한가운데서결여를극복한다. 먹이고치유함으로써다른사람을환대하고우물을찾고불을피워냄으로써, 오직생존이화두인전쟁기의삶을인간의삶으로견인한다. 이마을도마님덕많이봤다우, ( 중략 ) 우리덜끼리빨갱이다반동이다하여서로총질하다죽은이는하나도읎었으니까. 우리집마님이버티고있는이상그짓만은차마들못헙디다.(101면) 물과불은식량이상이었다. ( 중략 ) 수화상극이라는데올케의손을거치면물과불이열광적으로화합하는게그렇게감동스러울수가없었다.(21면) 이데올로기보다인간을우선시키는구렁재마님은온마을이의존하는 구심점으로자리한다. 민간요법에정통하며전선의흐름을읽을수있는 통찰력을가졌을뿐아니라이를다른사람을위해아낌없이사용한다. 잠

24 / 한국민족문화 77 자리와음식을제공하고귀한영사로젖먹이조카를치료할뿐아니라, 북한이아닌서울로의길을터줌으로써그녀는이데올로기를넘어서는환대의주체로자리한다. 올케또한피난생활내내식구들의구심점역할을한다. 올케는그녀의통제하에있어야살아남을것같은집안의대들보이자생존이상의의미를생산하는존재로재현된다. 그녀는피난촌의빈집에서우물물과석탄가루를찾아내불을피우고물을끓여아이들을씻기고따뜻한음식을제공한다. 식량이상 인물과불을통해동물적생존이아닌인간의삶을가능하게한다. 함께살아가는것을최우선으로두는그녀들의통제하에사람들은기꺼이머문다. 그녀들이가장역할을하는동시에가장을넘어서는것은이때문이다. 이들을구심점으로먹고사는일을함께함으로써여성인물들은 어떤친구에게도느끼지못한 우정보다훨씬더속싶은운명적연민 의관계를형성한다. 36) 생사를함께넘어온존경과우정, 그리고기쁨의연대는전쟁후, 생계의짐을나누어지려는주체화열정으로나아간다. 올케와조카들을내힘으로부양할수있게되었다는게기뻐서가슴이벅찼다.(242면) ( 전략 ) 작은아씨가벌어오는돈, 가만히앉아서먹기만하지않을게요 (243면) 우리는식구들이다돈도벌기전에돈독이정수리까지올라있었다.(251면) 근숙언니의도움으로화자는피엑스에서일을해가장역할을하고올케 는동대문시장옷가게주인이되며엄마또한집을팔고사는가운데이윤 을남김으로써열정을실천한다. 37) 돈독 이라는화자의명명과달리, 이는 36) 김은하또한이들의관계를 여성적연대의가능성 으로설명한다. 김은하, 완료된전쟁과끝나지않은이야기, 실천문학 2001 년 1 호, 실천문학사, 2001, 258-272, 2001, 270 면. 37) 가족을부양하는것에는경제적상황에종속되는측면도있지만 ( 한경희, 앞의논문, 475 면 ), 동시에가족을 내힘으로부양 하는주체화의기쁨과생계를함께책임지려는연대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25 생계를위한짐을나누어지려는연대적주체의열정이라할수있다. 소설의대단원을이루는화자의결혼또한연대적주체성의연속선상에서파악될수있다. 그좋은대학 에복학하는대신결혼을택하는그녀의선택은성공과발전이라는미래담론과이를배후하는가부장적근대에대한이반을겨냥하기때문이다. 나는우리엄마의보통부모하고는질이다른, 집요한공부욕심이싫었다. 차라리지금실망시키고놓여나는게서로좋을것이다.(316면) 엄마가그렇게억울해하는건당신의생살을찢어서남의가문에준다는생각때문인데두고보셔요. 나는어떤가문에도안속할테니. ( 중략 ) 양쪽집안의잘나고미천한족속들이온통달려들어눈을부릅뜨고살펴봐도그들과닮은유전자를발견할수없는전혀새로운돌연변이종이될테니두고보셔요.(321면) 팔루스의통제영역으로들어가는것 이라는해석 38) 처럼, 화자의결혼은서사가담지하는주체성의회로를굴절시키는듯하지만, 엄마의공부욕심에반하여이루어진선택이라는점에유의한다면, 다른해석이가능하다. 엄마의집요한공부욕심이화자에게 영원한악몽 에다름아니라는사실은그단초를제공한다. 엄마의꿈을깨야한다는서술또한이를뒷받침한다. 39) 엄마의 집요한공부욕심 은과거의오빠에게걸었던엄마의미래와통하며이는그토록경계하던가부장적근대의미래담론에의종속에다름아니기때문이다. 엄마의공부욕심에서 놓여나는 것은곧이와같은목적으로부터놓여나는길이며잠이라는매개를통해촉발된여성주체화의궤적은바로이목적과미래담론에대응하는주체화의과정이라해도과언이아닌것이다. 의식또한뚜렷하게제시된다. 생존을책임지면서타자화를벗어나는주체가되어간다는김양선의주장도같은맥락을갖는다. 김양선, 앞의논문, 146 면. 38) 최성실, 전쟁소설에나타난식민주체의이중성 - 박완서의 < 나목 > 을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제 10 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03, 131 면. 39) 그녀가 엄마의허영을잘라버리는그 [ 예비신랑 ] 의모습 에매혹되는것또한마찬가지맥락을갖는다. 김수진, 앞의논문, 201 면.

26 / 한국민족문화 77 결혼이라는선택과스스로삶의주체가되려는열정이충돌하지않는것은이런맥락에서이다. 그녀는결혼을가부장제로의입사가아니라그로부터일탈하는새로운가능성으로의미화된다. 엄마의반대에도결혼을감행한것과달리, 혼인의례에대한엄마의비례 ( 非禮 ) 를화자가충실히수용하는데서이를확인할수있다. 엄마가주도한예물의거부와 그런것을못갖춰서봐야하는눈치 를 엄마의신성한선물 로수용하는화자로인해예물에대한지극히사적인엄마의대응은공적차원을획득한다. 예물의거부로드러난, 눈에안차는남에게딸을보내는엄마의억울함을 바꿔치기하거나희석시키기 로우회하는대신, 있는그대로 직면하는것은엄마에대한전폭적인지지와연대에다름아니다. 이와같은지지와연대는가부장제의균열을겨냥하며 전혀새로운돌연변이종 이되겠다는화자의선언은가부장제에대한그녀의대응이결혼제도안에서이미시작되었음을증명한다. 어떤가문에도속하지않는 새로운혈통 을바로지금여기서의결혼안에서형성해나가겠다는결단인것이다. 이처럼, 잠모티프에서시작된여성주체화의궤적은가부장제를정조준하는것으로귀결된다. 가부장적근대의미래담론을절단하는잠모티프로인해, 그들과닮은유전자를발견할수없는새로운돌연변이종 의결단이견인될수있는것이다. 4. 결론이글은잠의젠더화라는관점에서전쟁기를배경으로한 나목 과 그산이정말거기있을까 를분석하였다. 잠과시간성에관한코젤렉, 프레리등의이론과여성주의적접근에기대어전쟁기의남성권력과이에대한여성인물들의대응을드러내고자하였고그결과잠을통한여성의주체화과정과연대를발견할수있었다. 나목 의경우, 불침번의명령과이에대응하는모녀의잠을천착하되, 모녀의잠이함의하는죽음과삶의간극에주목하였다. 먼저, 불침번이라는표상에종속되는남성인물들의잠을살펴보고다음으로, 모녀의악몽과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27 불면, 의사죽음을통해아들 / 오빠의죽음이이들에게불침번의명령처럼작동한다는사실을천착하는한편, 과거와현재, 삶의거부와수용으로드러나는모녀의균열지점에주목하였다. 모녀의균열을토대하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와이에대응하는잠의가능성을현재시제의옹호를통해확인할수있었으며, 그결과엄마의잠은모녀만살아남은현실을인정하지않는도피적꿈으로대체되며, 나의잠은죄의식에서나의몫찾기에이른복다복잡한의미의결을갖는다는사실을밝힐수있었다. 그산이정말거기있을까 의경우, 미래를초점화하는남성인물과현재도버거운여성인물들의시계차이가젠더권력을표상한다는사실에착안하여잠을매개로한양자의길항관계에주목하였다. 먼저, 여성인물의잠을비가시화하거나악몽과불면으로잠식함으로써남성권력이여성을타자화하는과정을살펴보았다. 다음으로미래담론으로드러나는가부장제이데올로기의특권과이에대한현재성의이의제기를살펴보았다. 나아가, 잠을통해자기몫의삶을수습하고타자와의연대를형성하는동시에이를넘어, 가부장제에대한균열을겨냥하는여성인물들의잠재력을밝혀내었다. 요컨대, 잠은죄의식으로부터의일탈을실현하는첨예한징후로서, 현재를도구화하는가부장적근대에대한저항인동시에죽음이미만한전쟁기에자기몫의삶을수습하고연대를형성하게하는긴요한매개역할을한다. 잠을통해 나목 은자신의몫찾기를초점화하며, 그산이정말거기있을까 는여기서나아가, 연대적주체성으로가부장제를균열하는잠재력을드러낸다. 이와같은여성들의주체화와연대를이끌어냄으로써잠은비활동혹은정지태가아니라활동과실천의영역에속하는수행성의의미를가지는것이다.

28 / 한국민족문화 77 참고문헌 1. 자료 박완서, 나목ㆍ도둑맞은가난, 오늘의작가총서 11, 민음사, 2014. 박완서, 최윤혁편,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세계사, 2017. 2. 논저김수진, 정상성과병리성의경계에선모성 박완서의 그산이정말거기있었을까, 엄마의말뚝2 와아니예츠카홀랜드의 올리비에, 올리비에 를중심으로, 여 / 성이론, 제1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1999. 김양선, 증언의양식, 생존ㆍ성장의서사 박완서의전쟁재현소설 그산은정말거기있었을까 를중심으로, 한국문학이론과비평 15,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02. 김은하, 완료된전쟁과끝나지않은이야기, 실천문학 2001년 1호, 실천문학사, 2001, 258-272면. 김재건, 박완서소설에나타난생명정치인식, 서울대학교석사학위청구논문, 2019. 배상미, 박완서소설을통해본한국전쟁기여성들의갈망, 여 / 성이론 제 24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1. 신샛별, 박완서소설에나타난 먹는인간 의의미, 상허학보 제45호, 상허학회, 2015. 신정숙, 문학적환상과정치성의구현-박완서초기소설 나목 (1970) 을중심으로, 동남어문논집 제42집, 동남어문학회, 2016. 유인혁, 박완서의 나목 에나타난여성의탈장소와이동성의주체, 여성문학연구 제47호, 한국여성문학학회, 2019. 이경, 잠의척력을중심으로 도시의흉년 읽기, 코기토 제89호, 부산대학교인문학연구소, 2019. 이은하, 박완서소설에나타난전쟁체험과글쓰기에대한고찰, 한국문예비평연구 제18호, 한국문예비평학회, 2005. 이은하, 박완서소설의갈등발생요인연구, 명지대학교박사학위청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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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한국민족문화 77 Meadows, R., The neglected night : an emboided conceptual framework for the sociological study of sleep, The Sociologucal Review, vol.53, Issue 2, 2005.

박완서소설과잠의젠더화 / 31 <Abstract> Park, Wan-Seo s Novels and Genderization of Sleep : Focusing on Namok and Was the Mountain Really There Lee, Kyung This essay analyzes Park, Wan-Seo s Namok and Was the Mountain Really There with Focus on sleep and gender, and tries to reveal the process of otherizing and subjecting women in Korean society before and after the Korean War(1950-1953). Based on theories on time and sleep, it analyses episodes of sleep in the novels and tries to explain how women are mobilized and excluded from their own lives through sleep during war-time, and what roles sleep playes in the process of women s deviating from this otherization power to find their portions of life. First, it deals with Namok and analyzes aspects of oppression from the command of the war period and sleep s reaction caused by the sense of somebody s presense. The women who survive the death of their brother/son suffer nightmares, insomnia, and psudo-death from the sense of guilty. They accept the death of their brother/son as the command of night watch in war time. Focusing on such story, this essay tries to reveal the ideology of patriarchy which is perceived as futures past. In addition, this essay shows that the narrator s visualization of sleep helps her to get her own portion of life back while their escape to patriarchal dreams results in death. Next, it studies Was the Mountain Really There and analyzes the narrator s reaction to the patriarchal power which calls women as night watchers. Her sleep results in finding her portion of lives and getting to solidarity with other women. This article uncovers the patriarchal ideology related with futures past. It reveals the functions of sleep by showing the fact that the power of futures past conceals its presence and rationalizes

32 / 한국민족문화 77 the mobilization of women, and that sleep can unveil the power relations hidden under the ideology. To sum up. approach based on sleep can be a significantly important tool to reveal the power of otherization of women and to secure their subjectification and solidarity by cracking the patriarchal system. * Key Words: Park, Wan-Seo, Futures Past(Vergangene Zukunkt), Sleep, Insomnia, Subjectification of Women 논문투고일 : 2020 년 10 월 19 일 심사완료일 : 2020 년 11 월 12 일 게재결정일 : 2020 년 11 월 1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