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EP-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앙아시아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8집 (2015)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8집 (2015) 1.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7 경현정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2.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25 김민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3. 키르기스스탄 민주주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 41 김지은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4. 중앙아시아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특성에 대한 연구 55 서영은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5. 한국-우즈베키스탄 FTA 체결에 관한 연구 65 이주연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경현정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Ⅰ. 서론 : 문제제기 Ⅱ. 분석틀 : 지역주의의 기초이론 검토 Ⅲ.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내 지역주의 : 지역구분에 따른 지역 협력 비교 1) 범 CIS지역 2) 범 흑해 지역 3) 중앙아시아 지역 Ⅳ. 중앙아시아 지역협력 전망 1)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제약성 2) 신지역주의 발전 가능성 3)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 중국 Ⅴ. 결론 및 시사점 Ⅰ. 서론: 문제제기 오늘날 전 세계의 정치, 안보, 경제, 사회 등 삶의 모든 분야에서 주변 국가와의 상호의존성 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겨지고 있다. 각국 간의 상호의존성 측면에서, 지역화는 통합을 촉진하는 동인이자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및 전체주의 정권으로부터 시장경제 및 민주적 제도화로의 전환 을 위한 촉매로서 인식되었다. 또한 국지적인 신뢰형성 조치와 함께 지역적 그룹형성은 조직범 죄, 테러리즘, 불법마약 및 무기 밀매와 같은 지역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는 현존하는 문제점들 에 대처하려는 협조적 행동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지정학적인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 대된다. 1) 1) David A: Lake and Patrick M. Morgan, Regional Orders: Building Security in a New World,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7) :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여구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 pp.26에서 재인용.
8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지역화에 따른 일련의 과정들은 정치 경제 환경 분야의 이슈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분야의 비 군사적인 안보이슈도 다룸으로써 지역기구는 참가국들 간의 공통의 이해관계에 대한 공감대와 일정 정도의 공유가능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지역기구는 참가국들이 자발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유도하고, 국익 추구를 위한 비평화적인 수단을 모색하는 경향을 감소시킨다. 또한 지역기구는 참가국간의 대화 촉진을 통하여 상호간의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안보를 강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유라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환경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수 십년간의 러시아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14개의 공화국들은 소비에트 지역협력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분업 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연방 붕괴 후 에도 러시아는 유라시아지역주의 에 입각한 범CIS지역 차원의 새로운 지역협력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주도적인 세력이 되고자 하는 목적으로 독립 국가 연합(CIS), 유라시아경제연합 (EAEU) 등의 지역협력 기구 창설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흑해 지역에서의 지역협력의 움직임은 흑해경제협력기구(BSEC)에 대한 국제적 지역통합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성공적인 평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구암(GUAM),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등의 지역 기구의 형성은 양자 또는 다자적인 관계 구축을 통해 해당 지역의 통합과 협력을 이루려는 CIS 국가들의 시도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그 가운데에서도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역협력은 어떠한가? 중앙아시아의 지역주의 또한 타 지역의 그것과 동일한 요구와 필요에 따라 하부 차원에서 소지 역 차원의 지역협력을 지정학적, 경제적, 정치 안보적 필요성에 부합시켜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 러나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역협력은 타 지역에 비해 그 결속력이 느슨한 정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한 역외 국가들의 중앙아시아 지역 협력 과정에서의 주도권 싸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분석된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과거 소비에 트 시기의 잔재 때문인지 대러시아 의존성은 지금까지도 높게 보여 러시아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같은 소비에트 그늘아래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아 시아의 공화국 5개국이 발트3국이나, 흑해지역(카프카스 포함)에 비해 유독 지역적인 통합의 성 과를 이루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을 단지 소비에트 잔재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 까? 또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내 타 지역들의 지역통합과 중앙아시아의 지역통합은 왜 다른 양상을 보일까? 과연 중앙아시아 지역 통합이 가지는 제약성은 대체 무엇일까? 본 논문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으며, 연구의 목적은 타 포스트소비에트 지역과 다른 중앙아시아의 지역주의 특성은 무엇이며, 이것이 타 지역협력과 같은 신지역주의 로의 이 행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해당 지역 다자협력기구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진출 전략을 전망해보는데 있 다. Ⅱ장에서는 소비에트 연방 붕괴 후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진행되었던 지역주의 움직임을 지역기구에서의 주도국가 또는 지역별로 구분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의 통합과 비교 자료로 제시 할 것이다. Ⅲ장에서는 본 연구가 다루는 주 지역인 중앙아시아 지역주의가 가지는 지역 통합에 있어서의 제약성을 분석하여 타 지역과 같은 신지역주의로의 발전이 가능한지를 살펴볼 것이며, 중국이 현재까지 그리고 향후 내세울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전략을 분석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서 부상하는 중국 의 세력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지역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를 나름 의 전망을 통해 제시하겠다.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9 Ⅱ. 분석틀 : 지역주의의 기초이론 검토 지역(region)은 구성 국가들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일정한 공간을 의미한다. 지역주의 의 특징을 분류하는데 크게 두 가지 방식은 일반적으로 제1세대, 제2세대, 제3세대로 구분하는 세대적인 구분과 냉전의 전후를 기준으로 신 구 지역주의로의 구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 은 공히 단절적인 구분이 아니라 상호연속적인 연결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본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신 구 지역주의를 사용하는데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구지역주의 는 냉전의 양극체제 속에서 위로부터 발생하여 안보 협력과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중심적이라 면, 신지역주의는 지역의 하부에서부터 공동체 인식을 바탕으로 표출되어 정치, 안보, 경제 뿐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다차원적으로 협의와 협력을 지향하는 개방적인 지역주의를 나타낸다. 또 한 신 지역주의는 메가 지역주의로 선진국, 후진국 그리고 큰 국가,작은 국가를 모두 포함하 여, 개도국은 선진국으로부터의 투자와 선진국의 시장 접근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호의존 전략을 채택함에 의해 세계화에 반응한다는 것이다(Mahendra P. Lama). 지역주의 이론은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Globalization)의 출현으로 국제상황이 변화를 보이 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 헤트네(Björn Hettne)와 여러 학자들의 주장 2) 에 따라 등장하였다. 그 들은 구지역주의와 신지역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첫째, 구지역주의는 양극의 냉전체계 에서 형성된 것임에 반하여, 신지역주의는 다극의 세계질서에서 형성되었다. 둘째, 구지역주의는 외부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만들어진 데 반하여, 신지역주의는 내부로부터, 아래로부터 자연적 으로 만들어진다. 셋째, 구지역주의는 대상에 관심을 갖는데 반하여 신지역주의는 보다 광범위 하고 다차원적인 진행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3) 헤트네의 주장에 따라 다시 정리하자면, 구지역주의와 신지역주의의 두드러진 차이는 최근의 지역화 과정이 보다 더 아래로부터, 내부로부터 발생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강제력뿐만 아니 라 생태학적이고 안보의 강제력이 새로운 형태의 지역적 틀에서의 협력을 위해 국가와 공동체 를 압박하고 있는 것에 있다. 4) 2) Björn Hettne, András Inotai and Osvaldo Sunkel(eds.). Globalism and the New Regionalism (London:macmillan, 1999); idem. National Perspectives on the New Regionalism in the south (Basingstok: Palgrave Macmillan, 2000); idem. Comparing Regionalism: Implication for Global Development(Basingstok: Palgrave Macmillan, 2001) 3) Björn Hettne, The New Regionalism: Implication for Global Development and Imtermational Security, UNU/WIDER, Helsinki, (1994), pp.1-2: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 pp.27에서 재인용. 4) Björn Hettne, The New Regionalism: A Prologue., in Bjorn Hettne, Andras Inoai, and Osvald Sunkel(eds.), Globalism and the New Regionalism, London:macmillan, (1999), pp.18.
10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표 1] 신 구 지역주의의 특징 5) 구지역주의 냉전의 맥락에서 형성 외부로부터, 위로부터 형성 내부정향적, 보호주의적 성향의 경제통합 경제적 혹은 안보정향적 목표 구체적 설정 공식적인 주권국가들 사이의 관계에만 관심 신 현실주의, 자유주의 이론 6) 신지역주의 다극질서 맥락에서 형성 내부로부터, 아래로부터 형성 개방적이어서 독립적 세계경제와 양립 포괄적인 다차원 프로세스 (무역, 경제통합, 환경, 사회정책, 안보, 민주주의를 포함) 참여국가들의 광범위성 개방적 지역주의, 비판이론 신지역주의는 1990년대 중반 헤트네(Bjorn Hettne), 이노타이(Andras Inoa), 순켈(Sunkel Osvald)의 주도로 출현했으며, 이들은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지역 협력을 분석하기 위해 지역성 (Regionaness)에 초점을 두었다. 7)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지역을 전통적으로 정의된 전략적 지역 과 물리적 지역으로 분류하는 기존의 정의가 아닌 경제적, 환경적, 문화적 기능에 따라 구성된 지역이라고 정의한다. 8) 임의의 국가가 어떠한 지역주의를 보이고 있는지 규명하기 위해서는 타씨나리(Fabrizo Tassinari)의 분석틀이 매우 유용하게 적용된다. 이 분석틀은 지역형성접근 분석(Region Building Approach: RBA, by Iver B. Neumann)과 지역의 중심 행위자 분석(Björn Hettne)을 결합한 것으로 타씨나리는 지역주의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서 분석의 수준을 외부생성적 (Outside-in) 지역형성과 내부확대형(Inside-out) 지역형성으로 나누고, 지역의 중심 행위자는 국가가 중심이 되는 위로부터(Top-down) 지역형성과 아래로부터(Bottom-up) 지역형성으로 나 누었다. 전술한 바에 따르면, 지역주의는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론의 성격은 매우 다기적이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1)지역의 중심 행위자가 국가인지, 사회인지, 2)지역기구의 생 성방식이 외부로부터인지, 내부로부터 인지, 3)개방적인 형태의 지역주의를 갖추었는지를 통해 지역주의의 성격을 결정지을 수 있다. ([그림 1] 참조) 5) Mahendra P. Lama, Dynamics of Emerging New Regionalism., (2006), pp.4의 내용에 따라 표로 정리. 6) 구지역주의와 관련된 대표적인 이론은 신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이론이다. 각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 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에서 참고 요망. 7) Björn Hettne, András Inotai and Osvaldo Sunkel(eds.). Globalism and the New Regionalism (London:macmillan, 1999); idem. National Perspectives on the New Regionalism in the south (Basingstok: Palgrave Macmillan, 2000); idem. Comparing Regionalism: Implication for Global Development(Basingstok: Palgrave Macmillan, 2001) 8) Raimo Väyrynen. Regionalism Old and New,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Vol.5, (2003), pp. 26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11 [그림 1] 지역주의의 이론적 유형화 9) Ⅲ.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내 지역주의 : 지역구분에 따른 지역 협력 비교 현 시점에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 통합은 세계 다른 곳의 유사 한 발전과 나란히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규모의 신지역주의는 경제적 도전, 안보 딜레마, 글로벌 시대의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화 를 향한 새로운 방식이다. 국제정치경제학에서 신지역주의 관점의 학자들은 경제적 측면을 넘어 정치적, 안보적 측면에서 신지역주의는 지역 건설, 지역 결속력, 그리고 지역 정체성 확립이라는 전략적인 목 표 라는 정의에 집중한다. 10) 소비에트 연방 붕괴의 과정은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사상 첫 다자 지역협력체인 독립국가 연합(CIS) 이 출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CIS는 회원국간의 협력 정도에 대한 상이한 시각과 국내 외 정책 환경의 차이에 따라서 효율적이며 강력한 지역통합체로 성장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해 당 공간에서의 소지역주의(Sub-regionalism) 11) 가 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CIS 지 9) [그림1]은 타씨나리(Fabrizio Tassinari)의 분석틀을 이용한 행렬화 자료로, 이에 대한 자세한 설 명은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앙 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 pp.29에서 참고요망. 10) Molchanov, M., The Eurasian Union and the reconstitution of the regional order in Central Asia., A paper prepared for presentation at the FLASCO-ISA Joint Conference, Buenos Aires, Argentina, July 23, 2014: 김영진, 유라시아 지역주의와 지역통합: 유라시아경제 연합(EEU)를 중심으로, 2015 제1차 HK 국내학술대회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 개 기관), 2015년 5월 22일에 발제한 발표문 p.250에서 재인용함. 11) 또는 '지정학적 다원주의'(geopolitical pluralism)로 사용되며, 이 용어는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The Grand Chessboard (New York: Basic Books, 1997)에서 미국에 유리한 유 리시아의 지정학적 환경을 제시하면서 사용한 후 유라시아내 소지역주의의 확산 또는 CIS의 분 열 등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Paul Kubicek, End of the Line for 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Problems of Post-Communism, Vol. 46, No. 2 (March/April 1999), pp. 15-24; & Taras Kuzio, "Promoting Geopolitical Pluralism in the CIS: GUUAM and Western Foreign Policy," Problems of Post-Communism, Vol. 47, No. 3 (May/June 2000), pp. 25-35.
12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리적 공간에는 지역별(전 CIS, 중앙아시아, 남 코카서스와 서부지역 등), 협력 이슈 요인별(군 사 안보, 경제 무역, 정치 등), 그리고 대러태도(친러, 탈러 또는 반러)에 따라서 다양한 소지역 다자 협력기구가 창설되어 있으며, 일부 국가들은 독자적으로 인접국가들과도 다자 협력기구를 창설하거나 양자 협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은 세계 총 인구의 약 20분의 1, 세계 총 육지면적의 약 6분의 1을 차지하는 만큼이나 세계 어느 지역보다 많은 소지역 차원 의 다자 협력체를 가지고 있다. [그림 2]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질서의 역동적 재편성 [그림 3] 포스트소비에트 국가의 지역주의와 지역기구 가입 현황 12) [그림 3]은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의 지역기구 가입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하여 가입 국 가들이 CIS에 속하였는지, 지역 협력 기구 가입 국가들을 통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또는 12) 김영진, 유라시아 지역주의와 지역통합: 유라시아경제연합(EEU)를 중심으로, 2015 제1차 HK 국내학술대회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개 기관), 2015년 5월 22일, p.254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13 러시아에 대한 정책 성향이 어떠한지 등을 분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Ⅲ장에서는 지역협력 기구의 영향력이 집중된 지역과 활동 주도 국가에 초점을 두고 러시아 중심, 흑해지역 중심, 중 앙아시아 지역 중심으로 구분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주의가 가지는 특성을 비교하는데 근거자료 로 제시하고자 한다. 1. 범CIS 지역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내 다자 지역 협력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지니는 주체는 지역 협력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러시아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푸틴정부의 등장 이후 러시아는 포스트소비에트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차원의 새로운 지역협력체 형성을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가 추구하는 지역 통합은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의 통합을 달성 함으로써 다시 정상적인 강대국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공간에 대한 영향 력 확대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러시아는 잃어버린 국제사회에서의 주도권을 되 찾기 위해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지역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다자 협력 기구로는 유라시아 경제 연합(Eurasian Economic Union, 이하 EAEU), 집단안보조 약기구(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이하 CSTO) 등이 있다. 유라시아 경제 연합(EAEU) 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경제연합으 로 지난 2015년 1월 가입국 간 무관세 및 역외국 통합관세 적용, 서비스 및 자본의 역내 자유 로운 이동 허용, 동일한 거시경제정책 수립 등 2025년까지 완전한 경제 공동체로의 통합, 궁극 적으로는 EU와 같은 초국가적 기구를 목표로 주창하며 출범하였다. 13)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CIS 자유무역협정-과세동맹-공동시장의 일련의 경제통합의 과정을 거쳐 해당 기구의 창설이 성립되었다. EAEU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상임유라시아경제이사회(SEEC ; Supreme Eurasian Economic Council)를 중심으로 유라시아국가간경제이사회, 유라시아경제집행위원회, 유라시아 경제연합법원으로 구성된다. 14) 지난 2015년 8월 12일 카자흐스탄의 승인을 마지막으로 키르기 스스탄의 가입절차도 완료되어 현재 가입국은 5개국이며, 그 가운데 주도국은 단연 러시아라고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에 비해 많은 분야에서 러시아의 명백한 리더쉽이 발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러시아로서는 이웃국가에 대한 기부자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유지하기 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의 전망에 따르면 회원국간의 큰 경제적 격차가 있으 며 그에 따른 러시아의 헤게모니의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EAEU에서 러시아의 지분은 확 실한 근거로 전문가들의 전망을 뒷받침 해주며, 러시아는 해당 기구를 통하여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의 영향력 확대가 성공적인 결과를 맺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13) (검색일:2015.12.19.), 검색 유라시아 경제 연합(EAEU), http://www.i-eurasia.org/ea/main/eanaeu010m.html?dt_c_code=eeu 14)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연구원, 하나의 시장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주목하라!, Trade Brief, No. 32, (2015.08.19.), p.1-2
14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그림 4] 유라시아 경제 연합(EAEU) 가입국 현황과 구성 자료: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연구원, 하나의 시장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주목하라!, Trade Brief, No. 32 집단안보조약기구(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 이하 CSTO) 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바르샤바조약기구(WTO:Warsaw Treaty Organization)가 해체되면서, 러시아가 군 사 안보 분야에서의 지역통합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서 모색하였다. 1992년 러시아는 카자흐스 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와 함께 집단안보조약(Collective Security Treaty, 이후 CST) 을 체결하였고, 이후 CST에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벨라루스가 가입함으로써 가맹국이 총 9개국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CST 내에서 러시아의 헤게모니를 위 협으로 인식하여 러시아로부터의 자주를 주장하고 친 서방적 태도를 보인 일부 가맹국이 조약 유효기간 연장 시기에 탈퇴하였고 이후 벨라루스의 가입으로 현재 CSTO 가입국은 러시아, 벨 라루스,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총 6개국이다. CSTO의 주요 목 적은 평화보장, 가맹국의 영토보전, 테러, 마약 밀매, 국제적 조직범죄와의 싸움에서 공조, 가입 국이 군사위협 직면 시 즉각적인 군사지원 등이다. 15) 이와 같은 목적에 입각하여 2005년 6월 러시아에서 열린 집단안보조약기구 정상회담에서 회원국들은 분쟁지역에서의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집단신속대응군 창설에 최종합의 하였다. 이로써 러시아는 CSTO 틀 안에서 독립국가연합 지역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6) 2. 범흑해 지역 흑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의 성공적인 지역협력의 모델로 종종 제시되는 지역협력기구가 바로 흑해경제협력기구(Organization of the Black Sea Economic Cooperation: 이하 BSEC) 이다. 1989년부터 터키에 의해 창설이 주도 되었으나, 흑 해 지역에 위치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몰도바 등 옛 소연방 구성 국가들과 터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총 9개 국가가 참여하면서 창설 작업이 본격화되었 15) 고재남, 유라시아내 소지역주의와 우크라이나.,김연규 엮음, 유라시아의 지역주의적 재편성, 서울:경문사, (2009), p.140-141 16) 강삼구, 미국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카스피해지역 패권정책: 지역기구를 중심으로, 동서연 구 제 22권 제1호, (2010), P.196-197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15 다. 상기 9개국에 알바니아와 그리스가 참가하면서 11개국이 설립국 자격을 얻었으며 1992년 6 월 이스탄불에서 BSEC의 정식 출범이 이루어졌다. 옵저버 국가로는 미국, EU 등 17개국이, 부 문별 대화 동반자 자격은 헝가리, 이란, 한국 등 총 17개국이 소지하고 있다. BSEC은 가입국 간의 무역과 산업 협력을 포함한 경제, 과학과 기술 그리고 환경 분야에서 늘어나는 협력의 모 든 가능성과 기회를 최선의 상태에서 이용하고자 한다. 또한 공동선언은 회원국들의 협력 증진 을 위해 비즈니스 환경을 개선하고 양자협상을 통한 회원국 간 기업인들의 자유로운 왕래 촉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협력 촉진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BSEC의 목표는 흑해 지역이 다원적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자유 시장, 경제 번영과 같은 공통의 가치를 기초로 삼아, 흑해 지역의 안정화와 번영에 있다. 나아가 지역 국가들의 전반적인 관계 발전과 국제 및 유럽 기구와의 교류를 증진시킨다는 목표도 설정하고 있다. 17) 지역주의 이론적 틀에 따르면, BSEC은 신자유주의의 시각에서 정리될 수 있다. 그 이론 가운 데 개방적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성격을 지닌다. 개방적 지역주의는 글로벌 경제하에서 심화되는 경쟁에 대한 반응으로 세계화 과정에서 국익 극대화를 위한 첫 번째 대응조치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BSEC을 평가하면 BSEC은 동적이고 개방적이며 외부지향적 수출정향적 접근 을 강화해나가고 있음으로 폐쇄적 지역주의에서 개방적 지역주의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지역주의적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BSEC은 정식 출범 이후 금융, 에너지, 환경, 무역, 운송 등 그 우선순위가 국제정세에 따라 매우 급변 재조정되는 모습을 보 여주었다. 또한 취약한 경제적 기반과 저소득, 통신 등 잔존하고 있는 많은 어려움으로 인하여 BSEC이 향후 EU와 같은 단일시장과 통합 이룩에 대해서는 아직 미흡하며 진행중인 과정일 뿐 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3. 중앙아시아 지역 중앙아시아 차원의 지역협력은 다양한 형태의 다자 지역 협력기구에 참여함으로써 추진되어 왔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의 지역통합이 어떠한 성격을 띠고 있는지 분석을 위한 지역협력기구로는 중앙아시아 협력기구(Central Asian Cooperation Organization, 이하 CACO) 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구는 기대와 달리 성공적인 지역협력 차원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EurAsEC을 거쳐 현재는 EAEU에 통합되었다. CACO는 1991년 중앙아시아 5개국이 참여한 중앙아시아 연합(Central Asian Commonwelth) 으로 출범하여 1994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이 참가한 중 앙아시아 경제동맹(Central Asian Economic Union, 이하 CAEU) 으로 변화되고, 1988년 타지 키스탄의 가입과 함께 중앙아시아 경제협력(Central Asian Economic Cooperation, 이하 CAEC) 개칭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후 CAEC은 2002년 CACO로 개칭과 함께 국제기구로서의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러시아가 2004년 5월 이 기구에 가입하였다. 18) 출범 시 CAEC은 국가 간 경제협력을 촉진하고 단일 경제공간을 확립하고자 하는 제한적인 목표를 주창하였으나, CACO로 개편되면서 역내 경제 통합의 발전은 물론, 정치 사회 과학기술 교육 문화 등의 영역에 17) 현승수, 흑해경제협력기구(BSEC)와 조지아, 우리나라와 흑해 지역 협력: 현재와 미래, 외교 통상부 한국동유럽학회 공동주관 국내학술대회, (2011.06.17.) 발표문, P.3 18) 고재남, 중앙아 지역협력의 역내외 환경과 실제, 중앙아시아 국가정체성과 세계화, 2010 중앙아시아 국내학술대회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개 기관), 2010년 5월 22일, 발표문 p.416-417
16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서의 협력 확대와 같은 포괄적인 협력까지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재설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4년 러시아의 CACO 가입은 2003년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역내 주요 이슈 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 확립이 필요함으로 CACO의 대체기구가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발언과 맞물려 이 기구의 성격변화를 야기하는 요인이 되었다. 결국 2005년 10월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EurAsEC으로의 통합이 결정되었다. 이 같은 과정은 러시아가 EurAsEC을 CIS의 경제통합체로 발전시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하에 적극 추진되었 다. 그렇다면, 범흑해지역의 BSEC과 지역주의 성격에서 어떠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어떠한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분석하기 위해서 다음의 3가지 질문이 적합하겠다. 1) CACO의 출현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 2) CACO를 움직이는 이익과 주 행위자는 누구인가, 3) CACO는 어떠 한 유형의 기구로 발전을 모색하였는가. CACO는 역내 경제 통합과 단일 시장마련 및 사회 전 분야에서의 협력과 심화와 같은 포괄적인 협력의 필요성 하에 중앙아시아에서 실질적인 지 역협력기구가 되고자 하는데 CACO 의 창설 필요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CACO를 움 직이는 동인은 경제적 협력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보적, 정치적 협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기구에서 주 행위자는 외부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요충지라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하여 주변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중앙아시아 다자협력기구에 가입 함으로써 해당지역에서의 패권을 장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CACO로 대표되는 중앙아 시아 지역주의는 신 지역주의와 달리 외부세력들이 이익을 실현해나감에 따라 생기는 공동의 경제적, 정치안보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질문에 대해서는, 전술하였듯이 CACO가 이미 EurAsEC을 거쳐 EAEU의 범주에 속하 여 있으므로 신지역주의적 시각의 지역안보공동체로의 발전 가능성을 EurAsEC을 통해 평가하 였다. EurAsEC은 지역안보 복합체(Regional Security Community)에 더 가까운 형태를 보여주 었다. 안보에 관하여 협력은 하지만 그것의 신뢰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하여 역내에는 아직도 안 보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주의는 범흑해지역의 그것과 달리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주변국들의 헤게모 니가 강하게 작용하는 지역이다. 지정학적인 시작에 따르면, 중앙아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 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안보 전략적 포인트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특 성은 중앙아시아가 동과 서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라는 점에 있다. CACO 이외에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참가하는 다자협력기구 가운데 최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이하 SCO) 이다. 그러나 이 기구는 중앙아시아 역내 국가들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패권다툼의 대표적인 산물이라고 평가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선행연구에서는 SCO를 러시아주도 지역협력기구로 정의한 연구가 지배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의 세력 강화 의 영향으로 SCO에서의 주도국가를 규정하는데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SCO는 이번 Ⅲ장의 분석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Ⅳ장에서 중앙아시아의 지역주의 동학과 함께 이 지역 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대중앙아시아 진출 전략에 대한 연구에서 SCO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17 Ⅳ. 중앙아시아 지역협력 전망 1.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제약성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20여년동안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지역협력의 성공적인 성과를 만 들지 못하였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역협력이 부진했던 이유는 큰 틀에서 보면 지리적, 경제적, 정치안보적인 분야들에서 너무나 다른 태도를 보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간의 상호보완 성을 찾아내 협력의 틀을 구축하지 못한 점에 있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 약적 요인들이 존재한다. 첫째,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소비에트연방체제의 유산이 상당부분 잔존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도 러시아 대상으로 각각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인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다. 러시아 의 존적인 수직적 지역협력 관계가 붕괴하자 중앙아시아 모든 국가들의 경제 생산성은 크게는 20-50퍼센트 감소하였다. 붕괴된 경제를 회복 노선에 올려놓는 유일한 방법은 지역 내 무역과 투자 장벽을 낮추고 역외 국가들과의 새로운 대외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지역 협력과 통합의 과정에 참여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경제 분야에서의 상 호보완성 부족이 지역협력의 가장 큰 한계로 제시되고 있다. 해당 역내 국가들의 경제구조는 러 시아와 수직적인 관계에 기인하여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상호보완성의 부족으로 귀결되어 역내의 상대국을 협력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역내 국가와 경제적 교역 관계를 확대하기보다는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역외국가와의 유대감 형성과 심화에 더 집중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한 결과는 역내의 어떠한 국가도 이익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으로 귀착되었다. 마지막으로 중앙아시아 지역 각국들의 각기 다른 경제모델도 지역협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 한다. 실제로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서방 경제 모델인 자유주의 개혁을 채택하고 있으 며,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정부 주도의 경제 개혁을, 타지키스탄은 내란 수습을 위 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국제적인 자금 공여국으로부터의 해외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19) 한편,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안보불안과 안보공동체 의 미비한 운용이 지역통합의 장애로 지적된다. 역내 주도적인 영향력 확보를 위한 카자흐스탄 과 우즈베키스탄 두 국가 간의 경쟁에 따른 긴장관계도 안보적인 불안감 생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쟁구도는 영향력 확보에 대한 야심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안보문제 에 대한 상이한 입장차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두 국가의 태도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와 긴밀한 군사적 전략적 협력 정책을 추구하 며 러시아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형성된 모든 안보체계의 필수일원으로 보고 있는 반면, 우즈 베키스탄은 이와 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8년 우즈베키스탄과 아프가니 스탄 국경위기 발생 당시 러시아는 우즈베키스탄에 어떠한 기술적인 지원도 없이 우즈베키스탄 정부를 떠났고, 이에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가 주도하는 군사안보체계의 무력함 에 대해 실망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와의 관계 유지보다 미국과 군사 적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서 협력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역내 국가 들간의 분쟁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이는 역내 지역 통합의 분열적인 요소로 존재 19)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앙아시 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 p.38
18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한다. 최근에는 수자원과 관련된 분쟁이 국경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중재하는 수단으로 서의 지역협력기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신지역주의 발전 가능성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와 최근 이슬람무장세력IS의 등장과 세력 확장은 전 세계에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국가들 간의 긴밀한 통합을 촉구하는 많은 주장이 제기되 는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두 사건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있어 지역협력에 대한 중요 한 영향을 줌과 동시에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다시한번 부각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중앙 아시아 지역에는 긴밀한 지역협력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발전 가능성들이 존재하고 역내 국가 모두의 참여가 필요한 공통의 대처해야 할 과제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지역이 범흑해지역의 지역협력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는 발전 가능성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첫째, 역내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및 안보에 대한 공통된 관점이 이들 국 가들을 더욱 긴밀한 협력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성공적인 협력이 이루어기 위해 서는 만일에 있을 위협에 대한 공통된 시각도 있어야 한다는 현실주의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지역의 안정은 경제적 정치적 안보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20) 둘째, 이들 국가는 지역 차원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별 국가의 일부 주권 희생이 불가피 하기에, 이들 국가들의 안보 우려는 다자적 지역 메커니즘이 없이는 제대로 다루어질 수 없다. 복잡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국가 간의 분쟁 사례가 증가하고 중아아시아 지역 전체의 안보를 손상 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이 지역에는 잠재적인 안보 우려가 존재하며,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 통합을 향한 접근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잠재적인 안보 우 려 21) 는 다음과 같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의 영향으로 인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저발전 문제는 이 지역 의 공통된 문제로 인식한다. 역내 종교적 극단주의와 테러주의의 부상에 대한 문제와 페르가나 계곡에서의 타지키스탄 과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의 충돌과 관련된 우려를 공유한다.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은 미해결 상태의 영토분쟁과 국경분쟁을 겪고 있는데, 이 들 국가의 모든 국경은 인위적인 것으로 혼재된 민족감정이 역내의 안보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중앙아시아 지역 일대는 상이한 문화와 종교가 만나는 교차점으로 지리적 위치와 이슬람 급진주의의 부상 지역이라는 문제가 공존한다. 자원, 최근에는 특히 수자원의 고갈과 이를 확보하기 위한 역내 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20) Timur Dadabaev, Toward Post-Soviet Central Asian Regional Integration, (Tokyo: Akashi Shoten Co. Ltd, 2004), p. 107. : 김영진, 중앙아시아의 지역통합: 기회, 제약성, 전망, 슬라브 학보 제 23권 3호, (2008), p.316에서 재인용. 21)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러한 분쟁의 원천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을 참조. Timur Dadabaev, Roots and Resolution of Social Conflicts in Central Asia: Theoretical Perspective, International Relations,Vol.4, no.10 (2002), pp. 41-51.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19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중앙아시아 역내 국가들 모두가 내부적 안정의 중요성을 위한 위의 안보우려사항들을 역내 국가들의 공동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역내 국가간의 공감대가 일정정도 형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지역 문제의 광범위한 다양성을 역내 이슈에 있 어 긴밀한 협력을 위한 국가 간 메커니즘이 이 지역 내에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셋째, 지역통합은 역내 국가들에게 외부세계와의 관계 성립에서 더욱 우월한 협상 지위를 제 공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중앙아시아의 모든 신생독립국은 아직 국제무대에서 강력 한 이해관계자로 등장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통합을 위해 일치된 상호노력을 기울이 지 않는다면, 이들 국가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나 지역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약한 행위자 로 남게 되거나 지속적으로 강대국의 패권다툼의 먹잇감이 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통합 움직임은 영토문제와 함께 중앙아시아의 지정학적 지전략적 과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 중국 상하이협력기구(이하 SCO)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지역기구는 아니지만 중앙아시아 5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또한 이들 국가들이 SCO의 주 활동영역 가운데 요충지 역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SCO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을 살펴보는데에도 의미가 있다 고 본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 지역의 주요 행위자로 부상하는 중국의 경제적, 정치안보적 전 략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SCO는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간의 관계를 다루는 기존 연구들은 에너지와 제조업의 상호보완성 을 바탕으로 한 경제협력의 확대가 주를 이루었던 반면, 최근에는 중국이 추진하는 서진정책(일 대일로 一 帶 一 路 )의 틀 내에서 중앙아시아 국가와의 신( 新 )실크로드경제벨트(New Silk Road Economic Belt) 건설 이라는 측면과 SCO 내 중국의 영향력과 역할에 따른 전략적 협력의 가능 성을 타진하는 연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 가운데 중국을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지 배자, 패권다툼의 승자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새로운 전략 파트너로서 바라보는 시각 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이 추진하는 대 중앙아시아 정책의 어떠한 측 면을 이용하여 이들 국가의 지역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를 중국의 전략적 중앙아시아 진출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는지 다자지역협력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틀에서의 안보협력과 경제적 지원 측면의 분석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사실 소연방 구성 공화국으로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을 당시 양측의 공식채널은 모스크바뿐이었다. 따라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관계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이들 국가가 개별적으로 중국과 교류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소연방의 붕괴로 중국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3국과 3,00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국경을 획정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교류를 진행하였다. 특히, 당시에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한 1988년 이후 로 불안정한 아프간 정세가 이슬람 근본주의의 형태를 띠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확산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 거주하는 위구르인들은 같은 투르크계 민족들이 거 주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 민족적, 심정적으로 연계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 로도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위구르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연대할 경우 중국의 변
20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방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22) 중국은 궁극적으로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국경획정을 매듭지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 나, 대외적으로 테러와 이슬람 근본주의 확산에 대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1996년 4월에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함께 상하이5(The Shanghai Five) 를 탄생시켰다. 이후 상하이5에 우즈베키스탄이 참가하면서 상하이협력기구(SCO)가 공식 출범을 한다. 중국은 SCO의 결성을 통해 자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신장위구르자치구 개발을 촉진하여 이 지역의 정치 경제적 안정을 담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즉, SCO의 결성은 중국의 중앙아시아 및 유라시아에 대한 적극적 다자 주의 외교를 강화하는데 결정적인 조건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미국의 영향력 퇴조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 조심스럽게 영향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의 안보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영향력도 확대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세히 설명하면, 중국은 중앙아 지역을 중국의 이익의 전략적 전 초지로 규정하지만 이 지역에서의 무력적 충돌 상황에 대해서는 가급적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 러시아와의 직접적인 갈등요인을 만들지 않으면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의 러시아의 위상을 인정하되 중국의 정치경제적 그리고 가능하다면 군사적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강화해 나가기를 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국가주도의 발전 노선을 지지하면 서 실용적인 접근법으로 SCO나 아시아신뢰구축회의(CICA) 를 통한 지역적 협력 강화와 역내 인프라 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 확대 등의 경제적인 효과 달성을 목표로 삼는다. 23) 중앙아시아 지역을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 두 국가간 패권다툼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은 바 로 SCO의 역할과 그 안의 주도세력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SCO에 대한 태도에 양국간 차이가 존재하는데, 러시아는 정치 안보적 측면에서의 SCO의 역할에 초점을 두는 반면 중국은 SCO를 통한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려는 전략을 보인다. 현재로서는 서진전략에 기초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중국 에게 SCO내의 역할의 무게 또한 기울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중국의 진출과 역내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장되 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중국과의 무역은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급속히 증대되고 있는데, 이는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의 대 중국 에너지자원 수출 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러시아 및 유럽연합에 대한 무역 총량에서는 큰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이미 가스 판매가 활발한 투르크 메니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중국이 제1의 무역상대국으로 떠오른지 오래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추세라면 러시아 및 유럽연합과의 무역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할지라도 중국와의 무역총량이 유럽연합과의 그것을 추월하여 역내 국가들 모두에게 중국이 가장 큰 무역 파트너 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2) 현승수, 중국의 세력 확대에 대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앙아시 아, 2014 중앙아시아연합학술회의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개 기관), 2014년 12월 12일, 발표문 p.199 23) 신범식,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슬라브학보 제 30권 2호, (2015), p.213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21 [그림 5]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유럽연합,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총량 비교 자료: 신범식,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슬라브학보 제 30권 2호, (2015), p.217 이렇듯 중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간의 무역 규모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대 중앙아시아 경제 협력 확대가 기본적으로 SCO의 틀 안에서 시작되어 추진되고 있 다. 2013년 SCO 정상회담장에서의 시진핑 주석의 신( 新 )실크로드경제벨트(New Silk Road Economic Belt: 一 帶 一 路 戰 略 ) 에 관한 협력 제안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신( 新 )실크로드경 제벨트 구상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에 바탕을 둔 국가계획으로 알마티-비슈케크-마쉬 하드-우루무치-시안-랴늉안을 주요 도시로 하는 협력네트워크 구축을 골자로 하는 구상이다. 24) 이 정책은 경제발전을 위하여 자국의 교통망을 유럽 및 아시아로 연결하기를 원하는, 특히 도로 와 철도의 연결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제안인 것이다. 도로와 철도를 통한 물류 가 이들 국가 물류량 전체의 90-95%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교역 이 급속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교통 인프라 개선은 경제개발에 있어 핵심적 과제인 것 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이 주도하는 교통망 구축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이 미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들의 물류 잠재력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이러한 물류망 구축은 해당 지역의 경제협력벨트 구축과 직결되는 핵심 사업으로서의 성격을 띠며, 이 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추진은 중국이 러시아와의 경쟁을 넘어 독자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 음을 보여준다. 25) 전술한 바에 따르면 중국은 SCO 회원국 상호간 다자관계의 틀 속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의 경제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SCO의 협력 아젠다는 창설 시점의 협력 목표였던 안보분야에서 현재는 경제분야로 확대되면서 동 기구는 단순한 안보포럼 이상의 다국 24) Stephen Blank, China s Silk Roads and Their Challenges, http://www.cacianalyst.org/ : 신범식,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슬라브학보 제 30권 2호, (2015), p.215 에서 재인용. 25) 신범식,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슬라브학보 제 30권 2호, (2015), p.214-215
22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간 경제 협력 기구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SCO가 확대되어 안보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나 사회문제도 함께 다루게 될 경우, 실제로 강력한 지역 행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 망한다. 중앙아시아 지역 협력 시각에서 보면, SCO를 통해 중앙아시아 5개국 모두가 공동의 목표 실 현을 위해 가입을 하였다는 점에서 해당 지역 내 지역협력기구로서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안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은 주변 강대국들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역시나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실패라고 평가되며 해당 기구를 중앙아시아 지역협력 기구라기보다는 중국의 다자 주의 외교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타 지역에 비해 미비한 지역 협력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낮은 성장과 안보적 불안이 항상 존재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기구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행위자가 누구인가 보다 그 행위자를 통해서 결 과적으로 어떠한 지역협력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Ⅴ. 결론 소비에트 붕괴 후 지난 20여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5개 국가는 2차 분화를 겪지 않고 중앙아 시아 지역의 통합적 모습(Form a coherent economic and security complex)을 어느 정도 보여 주었고 26), 최근 들어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내부적 안정의 중요성과 그것을 위한 조건이 모든 역내 국가들의 공동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역내 국가간 공감대가 형성되고, 역내 여러 가지 관심사들 또한 공유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의 지역협력의 근본적인 논리는 경제 발전, 정치적 안정, 무력충돌의 예방에 대한 필요성이다. 지역협력은 역내 국가들 간에 상호 이 해와 대화를 증진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하며 관련 당사국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성취 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살펴보면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은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내 타 지역의 그것들처럼 통합적이기보다는 개별적 생존 전략을 강조하는 방향 으로 움직여왔다. 지역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직까지도 각국은 서로 상이한 정치적, 경제 적, 문화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공통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제가 발생 할 경우, 자국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임으로서 지역협력적인 성과를 얻는데 늘 방해요소로 작용하 였다. 또한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이들 국가들의 태도는 결국에는 역내지역협력기구의 역 할에서도 공통의 목표를 결속함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되려 역외 강대국들이 지역협력의 틈 을 비집고 들어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유라시아 대륙에서 중국과 러시아로 대변되는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가시화 될 가능성이 크며, 그 무대는 중앙아시아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다. 미국을 제외 한 러시아와 중국의 패권다툼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SCO의 틀 안에서 두 국가의 중앙아시아 전략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SCO의 미래에 대한 구상에서도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명백한 견해의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편, 동 기구의 비전을 두고 중 국과 러시아 사이에 발생하는 균열은 중앙아시아 국가를 주변화(분산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외에도 강대국들의 역내 지역협력기구에서의 주도권 장악과 같은 문제 점들이 지적되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익 달성에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만 준다는 의 26) Ushakova Natalia, Central Asian Cooperation: Toward Transformation. Central Asia and Caucasus Vol.21, (2003.10), p.122: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 p.41에서 재인용
중앙아시아 지역협력의 한계와 전망 23 견이 있다. 그러나 동일한 소비에트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국 경 관리, 한정된 수자원으로 인한 자원분쟁, 노동이민 규제나 테러 대책을 비롯한 안보문제 해 결 등 극복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다자지역협력기구 SCO 안에서 강대국 으로 대변되는 역외국가들의 중재를 통해서 이 문제들을 조정함으로서 대화를 통한 문제를 해 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2000년대에 들어 경험한 급격한 지정학적 변화, 강대국 간 패권 경쟁 속에서의 생존 본능 그리고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다변화 외교를 기본 정책으로 삼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들 국가들은 일방적으로 하나의 국가에 의존 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협력 파트너를 찾아왔다. 향후 중앙아시아 역내 국가 들이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국익을 확대하고 중국이 제시하는 지역 공통의 이익을 결합을 위한 중심축으로 삼는다면 완전한 지역적 통합은 어렵더라도 그것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24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참고문헌 강삼구, 미국과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카스피해지역 패권정책: 지역기구를 중심으로, 동서연구 제 22권 제1호, (2010) 고재남, 유라시아내 소지역주의와 우크라이나.,김연규 엮음, 유라시아의 지역주의적 재편성, 서울:경문사, (2009) 고재남, 중앙아 지역협력의 역내외 환경과 실제, 중앙아시아 국가정체성과 세계화, 2010 중앙아시아 국내학술대회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개 기관), (2015.05.22.) 김영진, 중앙아시아의 지역통합: 기회, 제약성, 전망, 슬라브학보 제 23권 3호, (2008) 김영진, 유라시아 지역주의와 지역통합: 유라시아경제연합(EEU)를 중심으로, 2015 제1 차 HK 국내학술대회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개 기관), (2015.05.22.) 신범식,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슬라브학보 제 30권 2호, (2015) 조윤희, 중앙아시아 지여구의 동학과 신지역주의: 흑해 지역주의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5집, (2012) 한국무역협회(KITA) 국제무역연구원, 하나의 시장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에 주목하 라!, Trade Brief, No. 32, (2015.08.19.) 현승수, 흑해경제협력기구(BSEC)와 조지아, 우리나라와 흑해 지역 협력: 현재와 미 래, 외교통상부 한국동유럽학회 공동주관 국내학술대회, (2011.06.17.) 현승수, 중국의 세력 확대에 대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앙아시아, 2014 중앙아시아연합학술회의 (주최,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외 4개 기관), (2014.12.12.) Björn Hettne, The New Regionalism: Implication for Global Development and Imtermational Security, UNU/WIDER, Helsinki, (1994) Björn Hettne, The New Regionalism: A Prologue., in Bjorn Hettne, Andras Inoai, and Osvald Sunkel(eds.), Globalism and the New Regionalism, London:macmillan, (1999) David A. Lake and Patrick M. Morgan, Regional Orders: Building Security in a New World,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997) Mahendra P. Lama, Dynamics of Emerging New Regionalism., (2006) Paul Kubicek, End of the Line for the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Problems of Post-Communism, Vol. 46, No. 2 (March/April 1999) Raimo Väyrynen. Regionalism Old and New, International Studies Review, Vol. 5, (2003) Taras Kuzio, "Promoting Geopolitical Pluralism in the CIS: GUAM and Western Foreign Policy," Problems of Post-Communism, Vol. 47, No. 3 (May/June 2000) Timur Dadabaev, Roots and Resolution of Social Conflicts in Central Asia: Theoretical Perspective, International Relations,Vol. 4, No. 10 (2002)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김민걸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Ⅰ. 연구의 서론 Ⅱ. 연구의 문제의식과 접근방법 제시 Ⅲ.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에 대한 선행연구 검토 Ⅳ.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고찰 Ⅴ. 연구의 결론 참고문헌 Ⅰ. 연구의 서론 현재 지구상에는 2백여 개의 국가 ( 國 家, state)가 있다. 오늘날의 국가는 정치사회의 보편적 인 현실이자 지배적인 형태일 뿐 아니라 국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드문 만큼 정치, 경제 등의 영역, 나아가서 다양한 사회집단들과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행위에 직접, 간접으로 개입하거나 그것을 규제하는 중요한 주체로 되어 있다. 이렇듯 우리에게 있어 국가가 상당한 영 향력을 갖는 무엇이라면 국가를 이해하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당연히 의미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국가를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국가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다. 국가라는 형태의 조직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어떠한 요구가 충족되는 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특히 부족사회, 도시국가, 고대왕국, 봉건사회 등과는 다른 근대국가 ( 近 代 國 家, modern state) 형성과정에 대한 기존의 문헌 연구들의 이론적 관점들을 검토 및 정리 한다면 이른바 국가론은 아래의 질문들에 답하려는 학문적 노력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1) 1) 국가론에 관련된 대표적인 연구로는 C.Tilly(ed)(1975) The Formation of National States in Western Europe,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G.Poggi(1978) The Development of the Modern State. Stanford Califonia, Stanford Univ.Press. D.Held et al
26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1 국가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으며 언제 형성되었는가? 2 국가의 형성과정에 작용한 주요 요인은 무엇인가? 어떤 조건 하에서 국가는 지배적인 조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가? 서유럽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처음으로 국가가 나타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3 왜 오늘날에 있어서 국가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서유럽과는 다른 전 세계에 있어서 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존재하는가? 국가를 일정한 영토와 주민을 가진 독립을 이루고 있는 실체로 정의한다면 국가는 이미 기원 전 로마의 도시국가 혹은 세계제국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국가들에는 작지 만 고도의 결속력을 가졌던 도시국가와 거대하지만 통합이 불완전 했던 제국, 봉건적 주종관계 가 그대로 국가의 질서와 조직이 되는 봉건국가, 동양에서 볼 수 있는 중앙집권적 국가 등이 있 다. 그러나 모두 비교적 유동적인 경계를 가지고 있었고 독자적인 국가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여 러 가지 점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라 할 수 없다. 도시국가는 인적인 단체에 지나지 않았고 제국은 세계사적 규모의 보편성 또는 통일성을 추구하고 있었고 봉건국가에서는 토지가 소유권 적인 영유( 領 有 )의 대상으로서 간주되어 아직 근대적인 통치의 대상으로서의 영토의 관념이 형 성되지 않았다. 2) 반면 근대국가는 외적으로는 하나의 국가단위로서 국가체계를 구성하고 내적으로는 배타적인 일정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앞의 국가들과 다르다. 이러한 근대국가의 정의와 성격에 대 해서는 학자들마다, 이론적 입장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근대국가 (이하 '국가 라고 칭함)라 함은 다른 설명이 없으면 근대국가를 의미한다)의 드러난 특징적 현상들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 다. 3) 1 국가는 봉건 제후의 영유의 대상인 토지의 관념에서 공권의 대상인 영토의 관념을 확 립하여 확실한 경계를 지닌 영토를 지속적으로 통제한다는 점이다. 영토는 법적, 형식면 에서는 국가가 최고의 지배권을 배타적, 독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공간(지상, 지하, 수 상, 수중, 공중)을 의미하나 정치적, 기능면에서는 그 구성원의 독립의 존재를 유지하는 생활기지를 말한다. 2 개인적, 비구조적 관념체계 등을 통해 기능하는 원시적, 일시적 집단들과는 달리 국가 는 사회속의 다른 조직들로부터 분화, 구분되어 공적으로 제도화, 구조화 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비개인적이고 비교적 항구적인 정치제도의 형성을 의미하며, 공적영역과 사적영 역의 분리를 의미한다. (eds)(1983) States and Societies, New York, The Open Univ,Press. K.H, Dyson(1980) The State Tradition On Western Europe, Martin Robertson, Oxford, 국내 연구로는 박상섭(1987), 근대국가형성과정연구,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논문집, 제 11호 11-21쪽. 정진상(1987), 국가 형성의 이론을 위하여 서울대 사회학 연구회 (엮음) 현대자본주의와 공동체이론, 한길사.207-227 쪽 등이 대표적이다. 2) 정치학대사전(1983), 박영사, 182쪽 3) 근대국가의 특징에 대해서는 C.Tilly(1975) "Reflections on the History of European State-making"을 참고할 수 있다.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27 3 국가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적이며 군대나 경찰 등과 같은 폭력수단을 배타적 으로 독점하고 전문관료를 통한 지배의 관료제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가 지배수단과 행정수단의 소유를 독점함을 의미한다. 4 권력독점권의 단순한 보유가 아니라 최종적 권위의 필요성, 다시 말하면 국가의 제도 적 구조 및 그것의 이론적 법적 우위를 지탱하여 줄 국가의 도덕적 권위가 필요하며 이 것이 한 국가 내에 있는 주민의 대부분에 의해 어느 정도 인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곧 국가의 정당성 문제가 제기됨을 의미한다. 5 국가는 그 지역적인 영역 내에서 다른 기구들로부터 독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역 외부의 다른 국가들로부터도 독립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권은 일정한 경계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한 최종적 권위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여하한 외부 권력으로부터 도 독립될 것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Ⅱ. 연구의 문제의식과 접근방법 제시 본 연구의 문제의식은 1차적으로 정치학의 핵심적인 일반 이론인 국가론이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과 관련하여 제기한 위와 같은 사항들에서 비롯되었으며, 2차적으로 유럽을 기준으로 상정 한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이 비유럽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되었 다.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근대국가가 '국민'( 國 民, nation)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국민주의 ( 國 民 主 義, nationalism)는 근대 민족국가의 통일의 원리로서 제기되었다. 민족이란 자연적인 혈연 적 공통성을 기초로 하면서도 일정한 복합적인 문화적 공통성(언어, 종교, 정치, 경제, 역사적 전통)을 중심으로 하여 자발적으로 형성되며 이에 대응한 일정한 공속적 감정 내지 의식을 갖 고 있는 비교적 넓은 범위의 기초 집단이다. 그러므로 민족은 생물학적 개념에 기초한 인종 ( 人 種, ethnicity)과는 구별되며 민족주의는 그러한 특징으로 인해 구성원들을 전체 공동체에 함께 소속해 있는 것으로 확인시켜주는 상징에 공유된 애착 감정이다. 4) 이처럼 국민주의는 지역적이 고 문화적인 공동체에 속하는 깊게 뿌리박은 소속감에 의해 지탱되며 이는 국민국가 ( 國 民 國 家, nation-state)가 놓일 수 있는 그 가능성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프랑스, 스페 인,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은 강력한 지역적인 왕조들에 의한 동질화 및 통합과정을 통하 여 지속적인 민족으로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또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 20세 기를 거쳐 식민지 민족들 사이에서 커다란 규모로 발전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들은 정치적 모형 으로서 민족국가 형태를 취하여야만 했고 민족주의를 강하게 주입시켜야만 했다. 5)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식 근대국가가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지 4)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국내외 연구로는 백낙청(엮음) (1981)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창 작과 비평사. 차기벽(편)(1983) 민족주의,종로서적. E. Gellner(1983) Nations and Nationalism, Connell Univ. Press, Ithaca & London 등이 있다. 5) John Breuilly는 근대국가 체제의 발전과 그 확산에 관련된 이데올로기로서 이러한 민족주의를 취 급하고 있다. J.Breuilly(1982) Nationalism and the State, Manchester : Manchester Univ. Press.
28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구적인 문명표준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비유럽 지역에서는 국가 라는 정치질서가 먼저 도입된 이후에 그러한 틀 안에서 민족형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이 다. 이는 제도적 국가건설(state building), 상징적 국가건설(nation building), 국민정체성 (national identity) 형성,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일련의 국가건설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쳤던 유럽 과는 달리, 애초에 공통의 민족의식이 희박하고 인종적인 정체성이 강한 비유럽 지역에서의 국 가건설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동학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특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포함한 중앙 아시아 5개 국가들의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가건설 및 민족의식 형성과정이 그러한 정치적 동학의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6) 소련의 해체 이후 새롭게 독립국가로 탄생한 중앙아시아 5개국이 과거 역사에서 현재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영토와 다양한 민족들을 자신의 국민으로 보유한 채 독립된 국가로서 존재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들은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 투아니아)이나 카프카스 3국(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처럼 소련에 편입되기 이전 독립 된 국민국가 개념의 왕정이나 공화국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의 모든 기초를 새롭게 창조해내야만 했다. 또한 자국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 민족들에게 새로 독립한 5개국이 바 로 자신들의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만 했다. 이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했는데 왜 공화국 내 소수민족들은 개별적으로 독립할 수 없느냐는 일부 분리주 의자들의 도전과 주류 및 비주류 민족 간의 민족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5개 국가의 정치체제와 권력 구조는 국가건설 및 민족의식 형성을 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씨족(clan) 혹은 부족(tribe) 수준에 머물러있었던 공통의 정체성을 결집시키기 위한 목적을 추구한 결과라고 파악했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personality cult)를 분석대상으로 삼아서 투르크멘 인(Turkmens)으로서의 인종정체성을 투르크메니스탄인(Turkmenistaniis)으로서의 국민정체성으 로 탈바꿈시키는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아래 <표 1>은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 숭배를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하기 위해 설정된 본 연구의 기본전제가 제시되어있다. [표 1] 본 연구의 기본 전제 1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국가로서의 기능적 국가건설 + 국민국가로서의 상징적 국가건설 + 민족의 다양성을 통합하는 국민정체성 형성 + 국민국가 형성의 4중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2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의 4중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은 핵심적인 정치적 행위자들(엘리트)에 의한 정치적 프로그램(정체성 정치)으로 달성될 수밖에 없었다. 3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를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는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파악하는 게 용이할 것이다. 6) 이재영, 김석환, 정세진, 박정호, 박병인(2011), 포스트소비에트 20년 중앙아시아의 미래: 통합 가 능성과 균열 요인 연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략지역심층연구 11-12.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29 이를 위해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에 대한 선행연구를 우선적 으로 검토하고, 개인숭배를 국가건설의 수단으로 활용한 사파무라트 니야조프(Sapamurat Niyazov) 초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의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의 정치적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할 것이다. 아래 <그림 1>에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 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기 위하여 니야조프의 리더십과 소비에트의 정치적 유산이라는 요인이 강 조된 배경이 제시되어있다. 그리고 본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향후 연구 방향에 대한 소고를 제시하면서 본 연구의 결론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림 1] 니야조프의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소비에트의 정치적 유산 Ⅲ.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에 대한 선행연구 검토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에 대한 기존의 선행연구는 기본적으 로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v) 현재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분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선 행연구는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의 상관관계에 대한 시각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 뉜다. 선행연구의 첫 번째 시각은 기본적으로 개인숭배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의 맥락으로부터 분리하는 시각으로서,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 간의 통치방식 변화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각은 기본적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 과정을 분석하면서 초대 대통 령인 니야조프 통치기(권위주의체제 성립과 공고화)와 후임자 베르디무하메도프 집권기(공고화 된 권위주의체제 유지와 강화)로 나누어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형성과정을 설명한다. 7) 아래 <표 2>에서 드러나듯이, 개인숭배는 니야조프의 권위주의체제 성립과 공고화의 수단으로 언급 되어있을 뿐, 개인숭배가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가지는 의미에 대한 분석은 실 시되지 않았다. 7) 이지은, 투르크메니스탄 권위주의체제 연구, 아시아문화연구 제22집, 2011.6, pp. 141-171.
30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표 2] 투르크메니스탄 권위주의체제의 형성과정 분류 출처: 이지은, p.145 (2011)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를 분리한 대부분의 기존 선행연구들은 소련 해체 이 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공고화된 권위주의체제의 주요 특징들을 분석하는데 집중하여 아래와 같 은 사실들을 파악하였다. 첫째, 비제도적, 비공식적 요소는 두 정권에서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투르크메니스탄 권위주의 체제의 주요 특징이다. 제도와 법에 기반 하기보다는 대통령과 특정 엘리트 파벌과의 사적 이 익, 비제도적, 비공식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후원주의 네트워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Horak(2009)은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에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로의 리더십 교체가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체제에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8) 저자는 다만 국정운영에 있어서 투르크멘 건국자에 대한 개인숭배(personality cult)에 치중한 니야조프 와 민족주의에 기초하여 투르크멘의 위대한 부흥(Great Renaissance)을 강조한 베르디무하메도 프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씨족(clan)의식에 기초한 소수의 엘리트 지배연합이 교육 과 언론 통제로 대중의 의식을 장악하는 전체주의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진 않았다는 것이 다. 아래의 이미지들에 나타난 것처럼 같이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에게 니야조프를 투르크메니 스탄 건국의 아버지 로 각인시키는 이미지와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내걸었던 위대한 투르크메니 스탄 민족의 부흥 의 슬로건은 교육과 언론 통제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유포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림 2] 니야조프의 황금동상 [그림 3] 민족의 부흥을 상징하는 일출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8) Horak, S. (2009). Dismantling Totalitarianism? Turkmenistan under Berdimuhamedow, Central Asia-Caucasus Institute Silk Road Studies Program, Silk Road Paper March.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31 둘째, 대통령에 의한 권력의 과도한 독점 현상이다.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유사한 통치 방식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국정 분야에서 패권적 통치권을 확립했다. Horak(2010)은 독립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권력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엘리트 집단의 변화 양상에 주목했다. 9) 저자는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의 통치체제 모두 본질적으로 법적 제도에 구속되지 않는 지도자의 인치(personalistic rule)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결국 포스트소비에트 투르크멘의 국내정치는 핵심적인 통치기반으로서의 전통적인 지 역 부족연합(regional/tribal affiliations), 국정운영에 있어서 지도자의 리더십 원칙 강조 (leadership principle), 이념 중심의 소비에트 정치문화의 유산(Soviet political culture)의 3대 요소를 공유하는 엘리트 집단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공적 영역인 국가 권력이 대통령과 측근 엘리트의 사유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독립 초기 씨족, 부족, 지역 등 비교적 광범위한 요소에 의해 형성된 투르크메니스탄 후원주의 네트 워크는 대통령과의 사적관계와 경제적 이해라는 두 가지 요소에 따라 재편성, 친위엘리트 집단 은 권력의 사유화를 심화시켰다. Kunysz(2010)은 투르크메니스탄 정치체제의 성격을 파악함에 있어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 각각의 통치방식이 지닌 차이점에 주목했다. 저자는 독립 이 후 투르크멘의 초대 대통령이라는 법적 지위를 현대 투르크멘의 건국자의 차원으로 승격한 개 인숭배에 치중한 니야조프의 통치방식을 술탄주의(Sultanism)로 파악하였다. 한편, 중앙정부와 지역 단위의 씨족연합과의 관계망을 활용하여 권위주의 거버넌스를 공고화한 베르디무하메도프 의 통치방식을 신( 新 )가산제(Neo-patrimonialism)로 파악하였다. Горак(2007)은 니야조프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체제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개 인숭배에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소수의 지배연합이 결집하는 가산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놓여있 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베르디무하메도프가 혈연관계로 이어진 씨족을 중심으로 정치동맹을 결 성하여(президент+им назначенные люди) 중앙집권 기반을 다지고, 토착세력(Землячество)과의 결속을 통해서 지방행정기관까지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는 통치전략을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주장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산제 모델은 아래 <그림 4>와 같다. 넷째, 여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투르크메니스탄 권위주의체제는 전제 군주적 요소가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우상화정책에 의해 대통령이 신격화되었고, 행정부 수장을 초월하는 군주적 위상을 가진 통치자에 의해 수직적, 가부장적 권력체계가 성립되었다. Кулиев(2001)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외무부 장관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전문가들이 접근하기 힘들 었던 투르크멘 엘리트 집단에 관련된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했다. 저자는 출신지역과 민족성분을 기준으로 투르크멘 엘리트 집단을 크게 6가지로 분류했으며, 베르디무하메도프의 2008년 헌법 개정으로 폐지되기 이전까지 투르크멘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던 인민평의회(Комитет национального спасения) 소속 인물들의 약력을 서술했다. 9) Horak, S. (2010). Changes in the Political Elite in Post-Soviet Turkmenistan, China and Eurasia Forum Quarterly, Volume 8, No. 3, pp.27-46.
32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그림 4] 가산제(patrimonial leadership) 모델 출처: Kunysz, p.4 (2012) 이와 달리, 니야조프의 개인숭배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 간의 통치방식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며. 니야조프의 개인숭배와 정치체제 안정화는 베르디무하메도프의 위대한 부흥과 경제개혁 및 산업다각화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시각은 니야조프의 개인숭배가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체제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투르크멘의 인종정체성을 투르크메니 스탄의 국민정체성으로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Kuru(2002)는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의 통치방식에 대한 비교분석에 치중한 기존 연구 와는 다르게 국가건설(nation-building)의 맥락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정치체제의 성격을 파악했 다. 10) 저자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imagining community) 개념을 원용 하여 국가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원초적으로 배태(primoridally embedded)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socially constructed)된다는 관점에서 신생독립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 에서 국가와 지도자의 역할이 중대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또한 단일민족성을 강조하는 국가 (state)와 아래 <그림 5>에 나타난 것처럼 러시아-이슬람-투르크 문화가 교차하는 문화지대 10) Kuru, A. (2002). Between the state and cultural zones: Nation building in Turkmenistan. Central Asian Survey, 21(1), pp.71-90.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33 (cultural zone)의 사이에 존재하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취약한 정체성에 니야조프의 개인숭배가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림 5] 러시아-이슬람-투르크가 교차하는 문화지대로서의 투르크메니스탄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Федоров(2009)는 니야조프에서 베르디무하메도프로의 리더십 교체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발생 한 정치적 위기를 관찰하며 니야조프의 개인숭배라는 정치적 유산이 투르크메니스탄 정치체제 의 안정에 기여를 했다는 문제제기를 하였다. 11) 저자는 2000-2003년 8개 주요 씨족 간 정권다 툼이 심화되어 투르크멘의 정치적 안정성이 급락하는 위기 국면이 조성되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씨족 중심으로의 고위 권력층 교체, 니야조프의 개인숭배를 계승하 는 이데올로기 제시 등을 통하여 정치적 위기를 수습하고 정권의 안정성을 담보한 가운데 제한 적인 범위에서나마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Polese and Horak(2015) 12) 은 독립 이후 투르크메니스탄 정치체제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인 개인숭배와 국가건설을 기준으로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의 통치방식을 파 악했다. 저자들은 니야조프의 개인숭배, 베르디무하메도프의 씨족정치라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지양하고, 아래 <표 3>에 나타난 것처럼 개인숭배는 두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공통적으 로 발견되는 현상으로 간주했다. 니야조프의 개인숭배는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체 성이 탈인종화(de-ethnicized) 및 국민화(nationalized)되게끔 촉진하였으며, 베르디무하메도프는 개인숭배가 투르크메니스탄의 국민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측면을 선별적으로 이용하며 공식적 인 국가건설(official nation-building)을 추진하는 데 공헌했다고 주장했다. 11) Федоров, Ю. (2009). Туркмения: время перемен?, Индекс Безопасности 3-4 (90-91), том 15. 12) Polese, A. and Horak, S. (2015). A tale of two presidents: personality cult and symbolic nation-building in Turkmenistan. Nationalities Papers, 43(3), pp.457-478.
34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표 3] 개인숭배의 맥락에서 고찰한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 간의 연속성 출처: Polese and Horak (2015) Ⅳ.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치적 유산에 대한 고찰 두서에서 언급한 기존의 선행연구들이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와 국가건 설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분석의 초점을 맞추었다면, 니야조프가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 여 개인숭배로 정치체제 안정과 국가건설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역사적인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이 일정한 영토와 국민을 가진 주권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등장 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국가구성의 원형은 역설적이게도 소비에트 체제에서 형성되었기 때 문이다. 왜냐하면 민족 보다 계급 즉 개별 민족의 독립성보다는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강조했 던 소비에트 체제에서 민족을 단위로 한 연방구성 공화국의 성립이 1920년대 초부터 이루어졌 기 때문이다. 1924년에 우즈벡 공화국과 함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투르크멘 민족의 명칭이 들어간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Туркмен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현대 시기에 초점을 맞춘 기존 선행연구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시기에 어떤 요인과 과정으로 인하여 투르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35 크멘 민족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형태의 토대가 구축된 것인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이 비록 소비에트 체제 하에 있었지만 소련 해체 이전부터 이미 70년 가까 운 국가적 기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소비에트 시기의 투르크멘 공화국을 이끌었던 지역출신 지도자들의 역할을 규명할 수 있기 위함이다. 소비에트 공화국의 설립으로 부족들의 연합체 성격을 가지고 있던 투르크멘인들이 민족을 단 위로 하고, 일정한 지리적 구역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적 기틀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 다. 당시 소련이 광활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기획했던 분할과 지배 (divide and rule) 라는 전 통적인 제국주의적 방식이 소비에트 체제에서 오히려 '민족국가 (nation state)의 태동을 야기했 다는 역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련된 기존의 선행연구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전후해서 1924년 투르크멘 공화국의 성립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면서, 특히 1924년의 반 년간 진행되었던 러시아공 산당 중앙위원회,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경 재설정을 위해 설립된 중 앙아시아 뷰로(Среднеазиатское Бюро) 및 그 산하의 영토소위원회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논의과 정을 분석하였다. 13) 비록 사료의 접근성에 한계는 있지만, 과거 소비에트 시기부터 시작하여 투 르크멘 공화국의 성립이 결코 위로부터의 결정, 즉 최고위 정치국 결정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 라, 현지 지역사정이 감안된 기구를 통하고 동시에 투르크멘 정치지도자들의 강력한 의지가 반 영된 결과였던 사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러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Ⅴ. 연구의 결론도출 본 연구는 1차적으로 정치학의 핵심적인 일반 이론인 국가론이 근대국가의 형성과정과 관련 하여 제기한 위와 같은 사항들에서 비롯되었으며, 2차적으로 유럽을 기준으로 상정한 근대국가 의 형성과정이 비유럽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겠다는 문제의식 에서 실시되었다. 그리고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식 근대국가가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지구 적인 문명표준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비유럽 지역에서는 국가라 는 정치질서가 먼저 도입된 이후에 그러한 틀 안에서 민족형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에 주 목하였다. 이는 제도적 국가건설(state building), 상징적 국가건설(nation building), 국민정체성 (national identity) 형성,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일련의 국가건설 과정을 순차적으로 거쳤던 유럽 과는 달리, 애초에 공통의 민족의식이 희박하고 인종적인 정체성이 강한 비유럽 지역에서의 국 가건설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정치적 동학을 띨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포함한 중앙 아시아 5개 국가들의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가건설 및 민족의식 형성과정이 그러한 정치적 동학의 단적인 사례에 주목하였다. 소련의 해체 이후 새롭게 독립국가로 탄생한 중앙아시아 5개 국이 과거 역사에서 현재 그들이 점유하고 있는 영토와 다양한 민족들을 자신의 국민으로 보유 한 채 독립된 국가로서 존재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5개 국가의 정치체제와 권력 구조는 국가건설 및 민족의식 형성을 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씨족(clan) 혹은 부족(tribe) 13) 황영삼, 투르크메니스탄 민족국가 형성에 한 연구: 20세기 투르크멘 공화국 체제의 출범 배경과 쟁점 및 의의 (2011). 슬라학보 제 30권 1호 pp. 495~542
36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수준에 머물러있었던 공통의 정체성을 결집시키기 위한 목적을 추구한 결과라고 파악했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personality cult)를 분석대상으로 삼아서 투르크멘 인(Turkmens)으로서의 인종정체성을 투르크메니스탄인(Turkmenistaniis)으로서의 국민정체성으 로 탈바꿈시키는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하였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독립국가로서의 기능적 국가건설 + 국민국가로서의 상 징적 국가건설 + 민족의 다양성을 통합하는 국민정체성 형성 + 국민국가 형성의 4중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의 4중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앙아시아 국가들 의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은 핵심적인 정치적 행위자들(엘리트)에 의한 정치적 프로그램 (정체성 정치)으로 달성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를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 는 엘리트가 중심이 되는 구성주의적인 시각에서 파악하는 게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에 대한 선행연구를 우선적으로 검토 하고, 개인숭배를 국가건설의 수단으로 활용한 사파무라트 니야조프(Sapamurat Niyazov) 초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의 카리스마적 리더십(charismatic leadership)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투 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의 정치적 유산이라는 측 면에서 고찰하였다.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에 대한 기존의 선행연구는 기본적으 로 사파무라트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Gurbanguly Berdimuhamedov) 현재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분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선 행연구는 국가건설과 개인숭배의 상관관계에 대한 시각을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 뉜다. 선행연구의 첫 번째 시각은 기본적으로 개인숭배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의 맥락으로부터 분리하는 시각으로서,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 간의 통치방식 변화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각은 기본적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 과정을 분석하면서 초대 대통 령인 니야조프 통치기(권위주의체제 성립과 공고화)와 후임자 베르디무하메도프 집권기(공고화 된 권위주의체제 유지와 강화)로 나누어 정치체제와 권력구조의 형성과정을 설명한다. 이와 달 리, 니야조프의 개인숭배를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건설과 국민정체성 형성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니야조프와 베르디무하메도프 간의 통치방식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며. 니 야조프의 개인숭배와 정치체제 안정화는 베르디무하메도프의 위대한 부흥과 경제개혁 및 산업 다각화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시각은 니야조프의 개인숭배가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체제 안정화에 기여함으로써, 투르크멘의 인종정체성을 투르크메니스탄의 국민정체성으로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기존의 선행연구들이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와 국가건설 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분석의 초점을 맞추었다는 시간적 한계를 넘어서서, 니야조프가 카리스마 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개인숭배로 정치체제 안정과 국가건설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 역 사적인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이 일정한 영토와 국민을 가진 주권국가로서 국제무대에 등장 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국가구성의 원형은 역설적이게도 소비에트 체제에서 형성되었기 때 문이다. 왜냐하면 민족 보다 계급 즉 개별 민족의 독립성보다는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강조했 던 소비에트 체제에서 민족을 단위로 한 연방구성 공화국의 성립이 1920년대 초부터 이루어졌 기 때문이다. 1924년에 우즈벡 공화국과 함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투르크멘 민족의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37 명칭이 들어간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Туркмен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Turkmen Soviet Socialist Republic)'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현대 시기에 초점을 맞춘 기존 선행연구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시기에 어떤 요인과 과정으로 인하여 투르 크멘 민족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형태의 토대가 구축된 것인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이 비록 소비에트 체제 하에 있었지만 소련 해체 이전부터 이미 70년 가까 운 국가적 기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소비에트 시기의 투르크멘 공화국을 이끌었던 지역출신 지도자들의 역할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함으로써, 소련 해체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정치체제와 권력구조 파악에 지니는 함의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38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참고문헌 박상섭(1987), 근대국가형성과정연구,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논문집, 제 11호 pp 11-21. 이재영, 김석환, 정세진, 박정호, 박병인(2011), 포스트소비에트 20년 중앙아시아의 미 래: 통합 가능성과 균열 요인 연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략지역심층연구 11-12. 이지은, 투르크메니스탄 권위주의체제 연구, 아시아문화연구 제22집, 2011.6, pp. 141-171. 정진상(1987), 국가형성의 이론을 위하여 서울대 사회학 연구회 (엮음) 현대자본주의와 공동체이론, 한길사.207-227쪽 황영삼, 투르크메니스탄 민족국가 형성에 한 연구: 20세기 투르크멘 공화국 체제의 출 범 배경과 쟁점 및 의의 (2011). 슬라학보 제 30권 1호 pp. 495~542 Anceschi, L. (2010). External Conditionality, Domestic Insulation and Energy Security: The International Politics of Post-Niyazov Turkmenistan, China and Eurasia Forum Quarterly, Volume 8, No. 3, pp.83-114. Dyson, K. H. (1980) The State Tradition On Western Europe, Martin Robertson, Oxford, Held, D. et al (eds) (1983) States and Societies, New York, The Open Univ,Press. Horak S. (2009). Dismantling Totalitarianism? Turkmenistan under Berdimuhamedow, Central Asia-Caucasus Institute Silk Road Studies Program, Silk Road Paper March. Horak, S. (2010). Changes in the Political Elite in Post-Soviet Turkmenistan, China and Eurasia Forum Quarterly, Volume 8, No. 3, pp.27-46. Kunysz, N. (2012). From sultanism to neopatrimonialism? Regionalism within Turkmenistan. Central Asian Survey, 31(1), pp.1-16. Kuru, A. (2002). Between the state and cultural zones: Nation building in Turkmenistan. Central Asian Survey, 21(1), pp.71-90. Poggia, G. (1978) The Development of the Modern State. Stanford Califonia, Stanford Univ.Press. Polese, A. and Horák, S. (2015). A tale of two presidents: personality cult and symbolic nation-building in Turkmenistan. Nationalities Papers, 43(3), pp.457-478. Sabol, S. (2010). Turkmenistan: Permanent Transition or Elusive Stability?, China and Eurasia Forum Quarterly, Volume 8, No. 3, pp.5-26. Tilly, C. (1975) The Formation of National States in Western Europe,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 Press. Горак, С. (2007). Туркменистан после Туркменбаши. К вопросу о трансформаци и режимов личной власти, Политэкс, 3, Кулиев, А. ИАЦ (2001). Туркменская элита -взгляд изнутри. Евразия, 20.03.2001.
국가건설의 맥락에서 고찰한 투르크메니스탄의 개인숭배 현상 39 Федоров, Ю. (2009). Туркмения: время перемен?, Индекс Безопасности 3-4 (90-91), том 15.
키르기스스탄 민주주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 김지은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러시아학과 석사과정) Ⅰ. 서론 : 문제인식 Ⅱ. 이론배경: 색채혁명 1) 그루지야 장미혁명 2)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Ⅲ. 키르기스스탄 레몬혁명 1) 1차혁명 2) 2차혁명 Ⅳ. 민주화로의 진입 1) 정치변동 2) 새헌법 개정에 대한 각국의 입장 3) 1차ㆍ2차혁명 및 현 정권 민주화 분석 Ⅴ. 결론 Ⅰ. 서론 구 소련 붕괴 후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은 CIS 국가 중 최초로 WTO에 가입하는 등 국제사회 로부터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지도자 들이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것과 달리 키르기스스탄은 세개의 정당 1) 으로구성된연립정부가세워지 면서의회가주요정책을결정하고대통령보다는총리에게더많은권한을부여하는의원내각제를도입해권 력의쏠리는현상을막고있다. 심지어 10명의 구성원만으로도 정당등록이 가능할 정도로 정치활동 의 자유를 보장한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섬이라고 불리기까지 키르기스스탄은 많은 사건사고 가 있었다. 초대대통령인 아카예프 전 정부의 부정부패, 친인척 비리 문제, 언론 탄압이 지속 1) 주요 정당은 사회민주당, 레스푸블리카(공화국)당, 아타 메켄(조국)당 등이다.
42 중앙아시아연구 원우논집 제 8 집 (2015) 되자 국민들의 원성은 커져갔고 2005년 제기된 아카예프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으로 인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마침내 대규모의 레몬 혁명이 발발하게 되었다. 격렬한 민주화 운동 끝에 아카예프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레몬 혁명을 주도했던 바키예프가 88.9%의 압도적 지지율로 키르기스스탄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2009년 부정선거 논란, 부정 부패, 언론 탄 압 등 바키예프 역시 전임자였던 아카예프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고 대통령의 권한이 더 강화 되어 민주주의는 역행하게 된다. 그 결과 2010년 4월, 키르기스스탄 국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 변화에 대한 염원을 표출했고 전 대통령은 실각하게 된다. 이후 두번의 정권교체를 하고 오툰바예바 과도 정부가 출범하면서 재민주화로 보여지는 의 원내각제, 새헌법 개정을 시행하게 된다. 로자 오툰바예바 임시 대통령은 부패ㆍ무법성ㆍ자의 적 사법권 행사 등 바키예프 정권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고, 이전의 씨족적ㆍ마피아적 권력 피라미드를 다시 복원할 수 있는 바키예프 헌법을 영원히 폐기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오툰바예바 정권부터 의회민주주의가 형성되고, 그 뒤를 이어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민주 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한 현 아탐바예프 대통령까지 유지되면서 강력한 통제에서 벗어 났다는 점에서 정치적 독점은 해소되었고, 민주화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 아탐 바예프 정권의 연립정당의 불안이 지속되며 민주주의 한계에 대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는 견해 도 많다. 본 글에서는 기존에 연구되어 있는 자료들을 정리 및 분석하여 이를 토대로 두 번의 혁명으 로 정권을 교체하고 새로운 헌법 개정에 성공한 키르기스스탄이 앞으로도 민주화로 잘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론배경인 색채혁명과 키르기스스탄 1차혁 명과 2차혁명 전개과정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Ⅳ장에서는 두 정권의 교체 이후 정치 변동, 즉 민주화로의 진입을 알리는 헌법개정 및 의원내각제 도입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재 민주화에 따른 각국에 대한 입장과 1차ㆍ2차혁명 및 현 정권 민주화 분석을 한 후 키르기스 스탄 민주화 가능성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Ⅱ. 이론배경: 색채혁명 1) 그루지야 장미혁명 첫번째 민주선거로 선출된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정치와 외교정치 실패로 하야 한 후 에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가 그루지야를 통치했다. 그는 러시아와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에 서 균형적인 외교정책과 민주주의를 국내정치의 중심틀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정부와 일가 는 부정부패와 연루되었고, 이러한 부패는 조지아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였고 일반 국민들의 생 활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에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2003년 11월2일 예정된 국 회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장기집권을 획책하기 위한 선거부정이 예상되자, 이에 저항하였고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장미혁명은 당시 시민들이 대통령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장미를 들고 대규모 시위를 벌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미혁명 결과 2003년 11월 23일 에두아르트 세바 르드나제가 하야하고, 당시 법무장관으로 있던 샤카슈빌리가 그루지야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 다. 한편, 장미혁명은 자국 내의 민주화혁명을 이끈 중요한 사건임과 동시에 소련 해체 이후 혼란 하던 주변국에도 큰 영향을 주어,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 2005년 키르기스스탄의 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