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평동 광암 고인돌 2015 제 천 시 세종대학교 박물관
세종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보고서 제78책 제천 평동 광암 고인돌 발굴조사 보고서 하문식 황보 경 이상규 문창희 김재은 유가혜 2015 제 천 시 세종대학교 박물관
학술적 또는 공공의 목적을 위하여 발굴조사 보고서를 공개하는 데 동의함. 일러두기 1. 본 보고서는 제천시청과 계약을 체결하여 진행한 고인돌 발굴조사 용역에 대한 결과물이다. 2. 유적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ㆍ송학면 도화리(광암마을) 일원에 위치하고, 유적명 은 조사지역명에 따라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로 칭하였다. 3. 조사지역 및 주변 유적 위치도와 지형도는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1:25,000 지형도와 1:5,000 지형도를 사용하였다. 4. 지도에 표시된 방위는 도북( 圖 北 )이고, 도면에 표시된 방위는 자북( 磁 北 )을 가리킨다. 5. 유구와 유물 도면의 축소비율은 도면 하단부에 별도로 표기하였다. 6. 층위 및 유구의 입단면도에 표기된 수치는 해발고도를 나타낸다. 7. 유물번호는 총 출토유물의 순서대로 매겼으며, 도면과 사진의 유물번호는 유물설명의 유물번호와 일치 한다. 8. 유물의 기고는 중심축을 계측하였으며, 조각은 단면을 기준으로 하였다. 9. 유물의 기술에서 복원이 가능한 경우에는 복원 지름을 표기하되, 복원이 되지 않는 경우 남은 크기를 표기하였다. 10. 층위도면에 표시된 토층명은 MUNSELL SOIL COLOR CHART (2000)를 참고하였다.
차 례 CONTENT Ⅰ. 조사개요 1. 조사경위 및 경과 7 2. 조사단 구성 8 Ⅱ. 유적 주변의 환경 1. 자연ㆍ지리적 환경 13 2. 고고ㆍ역사적 배경 14 Ⅲ. 조사범위와 방법 1. 유적의 위치와 조사범위 18 2. 조사방법 37 3. 층위 43 Ⅳ. 조사내용 1. 평동 고인돌 50 2. 광암 고인돌 65 Ⅴ. 유적의 성격 1. 평동 고인돌 8 1 2. 광암 고인돌 84 3. 껴묻거리에 대한 고찰 85 부록Ⅰ - 제천 평동 고인돌과 광암 고인돌 암종 연구 90 부록Ⅱ - 제천고인돌 현황표 106 출토유물목록 1 12 초록 1 13
지도 차례 도면 차례
사진 차례
Ⅰ. 조사개요 l 8 Ⅰ. 조사개요 1. 조사경위 및 경과(지도 1~4) 본 보고서는 제천시( 堤 川 市 ) 백운면에 있는 평동 고인돌과 송학면에 위치한 광암 고인돌 2기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평동 고인돌 유적은 북쪽 백운산( 白 雲 山, 해발 1,087m)에서 발원하여 남쪽 박달재(해발 504m)쪽으로 흐르는 원서천( 院 西 川 )의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한 야산(해발 304m)의 남쪽 능선부분 에 위치한다. 이 산은 주론산( 舟 論 山, 해발 903m)의 남서쪽 끝자락이고, 산의 동남쪽엔 백운중학교 가있다. 평동 고인돌은 제천시청 공무원 학습동아리( 習 堤 會 )에서 2011년에 처음 발견하여 알려지게 되 었다. 1) 고인돌의 덮개돌은 발굴조사가 실시되기 이전에 이미 여러 곳에 균열이 있는 상태이고, 굄돌 이 지표상에 드러나 있어 무덤방이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광암 고인돌은 용두산( 頭 山, 해발 871m) 남동쪽 끝자락에 동-서 방향으로 나 있는 도화로( 桃 花 路 )에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은 도로 옆에 위치하여 상태가 좋지 못하고, 덮개돌이 깨져 있으며 밭경작으로 인해 훼손이 심한 편이었다. 광암 고인돌 유적은 2000년에 이루어진 의림지와 주변 지역에 대한 정밀기초조사에서 개석식 고인돌로 보고되었고, 2) 이후 문화유적 분포지도와 3) 시 지에도 서술되어 있다. 4) 위와 같이 2곳의 고인돌은 상태가 좋지 못하고, 유적의 주변 환경이 열악하므로 이를 정비하여 보존하고, 고인돌의 하부 유구 존재 여부와 구조, 부장유물의 파악을 위한 조사가 필요한 실정이었 다. 이에 따라 세종대 박물관에서는 문화재청의 허가(제2013-0208호)를 받아 제천시와 계약을 체 결한 뒤에 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번 발굴조사는 2013년 4월 3일부터 5월 1일까지(실조사일수 14일) 현장조사를 진행하였고, 측 량 및 항공촬영을 완료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조사결과, 평동 고인돌은 굄돌이 받치고 있는 구 조임이 확인되었지만 고인돌과 관련된 껴묻거리가 출토되지 않았다. 광암 고인돌은 바둑판식임이 밝혀졌고, 돌로 만들어진 무덤방이 일부 남아 있었으며, 돌검과 석제 검파두식, 돌화살촉 1점씩과 붉은간토기 몸통조각 2점이 출토되었다. 현장 조사를 마무리한 뒤에는 자문위원회를 개최하여 고 인돌과 유물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제시받아 조사와 보고서 작성에 참조하였다. 1)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1/09/14/0701000000akr20110914115700064.html 2)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2000, 義 林 池. 3)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2003, 文 化 遺 蹟 分 布 地 圖 - 堤 川 市 -. 4) 제천시지 편찬위원회, 2004, 堤 川 市 誌.
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 조사단 구성 우리 박물관에서는 제천 평동 광암 고인돌 유적을 발굴조사하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조사단 을 구성하였다. 조사단장 겸 책임조사원 조 사 원 준조사원 보 조 원 하 문 식(세종대학교 박물관장) 황보 경(세종대학교 박물관 학예사) 문 창 희(세종대학교 박물관 연구원) 김 재 은(세종대학교 박물관 연구원) 유 가 혜(세종대학교 박물관 연구원) *( )의 직책은 당시임. 이밖에도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상규(세종대학교 박물관 학예사)가 참여하였다. 현장조사는 하문식이 전체적인 진행을 총괄하였으며, 황보 경이 실무를 담당하였다. 고인돌 조사 와 도면 작성은 김재은 유가혜, 사진촬영은 문창희가 참여하여 진행하였다. 보고서 발간작업은 하문식이 전체적인 진행을 총괄하였으며, 유물의 정리는 유가혜가 담당하였 고, 유물의 도면실측은 김재은 유가혜가, 유물의 사진촬영과 편집은 문창희 이상규가 작업하였 다. 유구 및 유물 도면의 편집은 김재은 유가혜가 담당하였다. 보고서의 원고는 Ⅰ장 조사개요는 문창희, Ⅱ장 유적의 환경은 김재은, Ⅲ장 조사범위와 방법, Ⅳ장 조사내용은 문창희와 유가혜, Ⅴ 장 고찰은 황보 경이 작성하였다. 보고서의 전체적인 편집과 교열은 황보 경과 문창희가 맡아 한 후, 하문식이 최종 감수하였다. 마 지막으로 조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협조해 주신 제천시청 관계자분들과 현장종사자 그리고 자 문위원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Ⅰ. 조사개요 l 10 네이버 지도편집(2015.4.6)
1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네이버 지도편집(2015.4.6)
Ⅰ. 조사개요 l 12
1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Ⅱ. 유적 주변의 환경 l 14 Ⅱ. 유적 주변의 환경 1. 자연 지리적 환경 5) 제천시는 우리나라의 중앙에 위치하며, 충청북도의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에는 강원도 원 주시와 영월군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접하고 있다. 동쪽에는 단양군이 있 으며, 서쪽으로 충주시와 맞붙어 있다. 제천지역의 지형조건을 보면 북쪽에는 용두산(해발 870m), 송학산(해발 819m) 등이 자리하며, 동쪽은 솔미산(해발 389m), 왕박산(해발 597m)이 있고, 남쪽은 작성산(해발 771m), 동산(해발 896m) 등이 위치한다. 제천은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야는 분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제천천을 중심으로 봉양읍에 곡저평야가 발달해 있으며, 남한강이 가로지르는 중앙부에 학곡평야 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대부분의 지역이 수몰되었다. 조사지역인 평동 고인돌은 주론산과 오청산 사이에 있는 산의 남쪽 사면에 위치해 있다. 다른 조 사지역인 백운 고인돌은 용두산의 남동쪽 끝자락에 있는 계곡부에 자리잡고 있다. 제천지역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남한강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제천천이 가장 큰 물줄 기이다. 제천천은 치악산에서 발원하여 제천시 봉양읍 주포리( 周 浦 里 )에 이르러 서류하는 장평천과 합쳐져 주포천을 이루며, 충주시 산척면 석천리( 石 川 里 )에서 북서쪽에서 흘러드는 원서천이 제천천 으로 합류한다. 물길은 동쪽의 마미산과 서쪽의 천등산 사이의 산지를 곡류하여 충주시 동량면 명 오리( 鳴 梧 里 )에서 충주호로 흘러든다. 조사지역인 평동 고인돌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제천천의 지류인 원서천이 북서쪽에서 남동 쪽으로 조사지역을 감싸듯이 지나고 있다. 다른 조사지역인 송학면 도화리 광암에서는 무도천이 고 인돌에서 남쪽으로 약 100m 거리를 두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남한강의 지류인 평창강과 합류 한다. 유적 주변의 지질은 충청북도의 지질주종을 이루고 있는 옥천지향사대와 조선누층군의 분기점에 해당되는데, 변성대와 비변성대 또는 고지향사대와 신지향사대가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우리나 라의 지질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지역이다. 제천은 옥천지향사대의 영향으로 석회암이 발달하였으 며, 이들이 풍화한 영향으로 충식석회암이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석회암층 아래에는 규석과 세일 5) 환경부, 1997, 충주 제천의 자연환경.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2003, 앞의 책. 제천시지 편찬위원회, 2004, 앞의 책.
1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층이 자리잡고 있다. 제천지역의 최근 연평균 기온은 9.6 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381.3mm이다. 6) 2. 고고 역사적 배경 제천지역은 석회암지대가 폭넓게 형성된 덕분에 자연동굴이 많이 생겨났고, 이러한 자연동굴들 은 일찍부터 구석기인들의 생활공간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대표적인 유적은 제천 점말 동굴 유적 (도기념물 제116호)으로 7개의 층위가 조사되었고, 다양한 동물의 뼈 화석이 출토되어 학계의 각별 한 주목을 받았다. 7) 이밖에도 들판유적으로는 최근 두학동 중말에서 찍개,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몸돌, 격지 등이 발굴되었고, 8) 고명동 세거리에서 주먹도끼, 찌르개가 새로 확인되었다. 9) 제천에서는 아직까지 신석기 유적이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충주댐 건설에 앞서 1982 년부터 1984년까지 수몰지역을 발굴조사한 결과, 청풍면 양평리( 陽 坪 里 ) 진목리( 眞 木 里 ) 황석리 ( 黃 石 里 ) 등지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조각 등이 다수 수습되어, 이들 지역에 신석기 유적 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10) 그리고 신월동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움(집)이 조 사되기도 하였다. 11) 제천의 대표적인 청동기 유적으로는 청풍면 양평리와 계산리에서 조사된 집터 유적이 있고, 청풍 면의 황석리 양평리 진목리 계산리 방흥리와 광의리 그리고 한수면의 옛 함암리 등지에서 확 인된 고인돌 유적을 꼽을 수 있다. 12) 또한 중앙고속도로 건설 예정지역인 봉양읍 명도리 학산리에 서도 고인돌이 발굴되었다. 13) 이 중에서 계산리 양평리 고인돌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집터가 조사되어 당시의 무덤과 주거공간 문제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밝혀지기도 하였다. 특히 양평리 유적의 집터는 출토유물로 볼 때, 상당히 이른 시기로 해석되어 남한강 상류지역의 초기 청동기시 대 문화상( 文 化 相 )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황석리 고인돌 유적은 1962년 국립박물관에서 18기를 발굴하였는데, 13호에서 거의 완전한 사람 뼈가 찾아졌고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과정에서도 충6호와 충7호에서 사람 뼈와 무덤방의 특이 한 구조가 발굴되었다. 6) 제천시, 2014, 제천시 통계연보 2012(제33회). 7) 손보기, 1978, 한국 구석기문화의 연구-제천 점말동굴 발굴조사연구-, 한국사연구 19, 한국사연구회. 연세대학교 박물관, 1980, 점말 용굴 발굴보고. 연세대학교 박물관, 2009, 제천 점말동굴유적 종합보고서. 8) 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9, 堤 川 頭 鶴 洞 중말 舊 石 器 遺 蹟. 9) 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12, 堤 川 高 明 洞 세거리 舊 石 器 遺 蹟. 10)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1984, 충주댐수몰지구 문화유적발굴조사 종합보고서-고고ㆍ고분분야(Ⅰ Ⅱ)- 참조. 1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03, 제천 신월토지구획정리 사업지구 문화유적 시 발굴조사 보고서. 12)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1984, 위의 책 참조. 13) 충북대학교 박물관, 1990, 중앙고속도로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충북지역- 참조.
Ⅱ. 유적 주변의 환경 l 16 이제까지 제천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100여기 이상 되며, 광복 이전부터 청풍 일대를 중심으로 조 사가 이루어졌다. 그중 우리 박물관에서는 능강리와 14) 구룡리 유적을 15) 조사하였다. 능강리 유적에 서는 2기의 고인돌과 3채의 집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1호 고인돌은 남한강 유역에서 처음 발굴조 사된 바둑판식 고인돌로 주목되며, 덮개돌의 긴 방향이 고인돌이 위치한 곳의 구릉 방향과 나란한 것으로 보아 현재 충주댐 건설 이전의 강물과도 나란하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출토된 유물로는 화살촉과 갈돌, 갈판, 민무늬토기조각 등이 있다. 구룡리 유적에서는 고인돌 3기와 선돌 1기가 조사 되었다. 3기의 고인돌 중 모습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1호 고인돌 뿐이었다. 1호 고인돌 무덤 방의 긴 방향은 바로 옆에 위치한 산의 흐름과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주변 지세와 관련 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무덤방 안에서는 화살촉 12점을 비롯하여 민무늬토기와 붉은간토기조 각 반달돌칼 돌도끼 돌끌 덜된 석기 등이 출토되었는데, 출토위치는 묻힌 사람의 머리쪽과 다 리쪽에 흩어져 있었다. 삼국시대 제천지역의 유적은 대표적으로 의림지(명승 제20호)가 있는데 한국 고대에 이미 농업기 술면에서 수리시설 부문이 고도로 발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16) 삼국시대 처음 제천지역에 진출 한 것은 백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남한강변에 분포하고 있는 돌무지무덤들이 서울 석촌동 고분군과 문화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 다. 17) 백제에 이어서 제천에 진출한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장수왕 대에 이르러 대대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여 충주를 비롯한 남한강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였다. 三 國 史 記 지리 지를 보면, 지금의 충주 단양 제천 진천 음성 괴산을 영유하였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5세기 이후 제천지역은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고 고구려는 제천에 내토군( 奈 吐 郡 )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551년(진흥왕 12)에 이르러서 제천지역은 신라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676년(문무왕 16)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제천은 행정적으로 9주 중 삭주( 朔 州 )에 소속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군의 명칭을 내제군( 奈 堤 郡 )으로 고치고, 고구려의 사열이현( 沙 熱 伊 縣 )이었던 청풍현( 淸 風 縣 ) 과 적산현( 赤 山 縣 )을 관할 하에 다스렸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덕주산성( 德 周 山 城, 도기념물 제35 호), 18) 제천 월광사지( 月 光 寺 址, 도기념물 제154호)와 19) 장락사지( 長 寺 地 )가 20) 있다. 또한, 발굴조 사된 유적으로는 왕암 유적의 수혈유구 등이 있다. 21) 최근 우리 박물관에서 조사한 고암동 무덤실 고분군 정밀지표조사에서도 2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고분군의 축조시기는 고분에서 직접적으 14) 세종대학교 박물관, 2001, 堤 川 江 里. 15) 세종대학교 박물관, 2002, 堤 川 九 龍 里. 16) 충북대학교 박물관, 2000, 앞의 책. 17) 제천시지 편찬위원회, 2004, 앞의 책. 18) 中 原 文 化 財 硏 究 院, 2008, 提 川 德 周 山 城. 19) 충청전문대학 박물관, 1998, 堤 川 月 光 寺 址. 20) 충청대학 박물관, 2008, 堤 川 長 寺 址 1~3차 발굴조사 보고서. 21) 중앙문화재연구원, 2002, 제천지방산업단지조성부지내 제천 왕암 유적.
1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로 수습된 유물이 없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유물산포지와 고분 주위에서 수습된 유물 중 에서 적갈색을 띠는 연질 토기조각과 회청색 경질토기조각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만 들어진 토기들로 판단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보아 이 고분군은 삼국시대부터 줄곧 묘역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의림지 등의 주변 유적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22) 고려시대 들어서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인 940년(태조 23)에 전국 군현의 이름을 고치면서 내제군은 제주군( 堤 州 郡 )으로 바뀌었다. 995년(성종 14)에는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이에 따라 제천은 중원도( 中 原 道 )에 속하게 되었고, 외관 설치 규정에 따라 자사를 두었다. 이 시기의 유적으 로는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보물 제94호),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 호) 석조약사여래입상(도유형문화재 제196호), 제천 교리 방단적석유구(도유형문화재 제203호) 등이 있다. 발굴 조사된 유적으로는 왕암 유적에서는 건물지 1동이 조사되었고, 23) 하소동 유적에서 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석곽묘 3기가 발견되었다. 24) 하소동 안골 유적에서는 석곽묘 2 기, 25) 하소동 안담 유적에서는 기와가마가 조사되었으며, 26) 시곡리 유적에서는 석곽묘 3기가 확인되 었다. 27)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제주는 제천현( 堤 川 縣 )으로 개편되어 현감이 다스리게 되었 고, 청풍은 다시 청풍군( 淸 風 郡 )으로 독립되었으나 현종 때에 명성왕후의 관향( 貫 鄕 )인 관계로 청풍 도호부로 승격되어 부사를 두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제천 청풍 한벽루(보물 제528호), 제천 배론성지(도기념물 제118호), 덕주사 극락전지 28) 등이 있다. 발굴조사된 유적 중 왕암 유적에 서는 토광묘 30기가 확인되었고, 29) 하소동 유적에서는 16세기의 토광묘 142기가 조사되었으며, 또 한 추정사직단지도 발견되었다. 30) 하소동 안골 유적에서는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집터 1채, 소성유 구 1기 등 총 3기의 유구가 출토되었다. 31) 하소동 안담 유적에서는 집터 2채가 발견되었으며, 32) 강제 동 안산 유적에서는 회곽묘 1기와 토광묘 18기가 확인되었다. 33) 왕암동 유적에서는 생활유구와 분 묘유적이 혼합된 양상을 보이고 있고, 34) 시곡리 유적에서는 조선시대 토광묘 1기가 발견되었다. 35) 우리 박물관에서도 원뜰~시청간 도로개설부지에 대하여 조사를 실시한바 있다. 36) 22) 세종대학교 박물관, 2013, 제천 고암동 무덤실 고분군 정밀지표조사 보고서. 23) 중앙문화재연구원, 2002, 앞의 책. 24) 중앙문화재연구원, 2007a, 堤 川 下 所 洞 遺 蹟. 25) 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7b, 堤 川 下 所 洞 안골 遺 蹟. 26) 중원문화재연구원, 2011a, 堤 川 下 所 洞 안담 遺 蹟. 27) 중원문화재연구원, 2011c, 堤 川 柴 谷 里 遺 蹟. 28) 충청대학 박물관, 2006, 堤 川 德 周 寺 極 殿 址 發 掘 調 査 報 告 書. 29) 중앙문화재연구원, 2002, 앞의 책. 30) 중앙문화재 연구원, 2007a, 위의 책. 31) 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7b, 위의 책. 32) 중원문화재연구원, 2011a, 위의 책. 33) 한국선사문화연구원, 2007a, 위의 책. 34) 중원문화재연구원, 2011b, 堤 川 旺 岩 洞 遺 蹟. 35) 중원문화재연구원, 2011c, 위의 책. 36) 세종대학교 박물관, 2013, 제천 원뜰~시청간 도로개설공사부지 문화재 표본조사 약보고서.
Ⅱ. 유적 주변의 환경 l 18 조사지역인 평동리( 平 洞 里 )는 본래 제천군 원서면( 遠 西 面 )의 지역으로서, 평지에 위치하여 평동 리라 하였다. 1980년 제천시의 시 승격에 따라 제원군( 堤 原 郡 ) 백운면 평동리로 바뀌었다가, 1995 년 시군 통합에 따라 현재의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가 되었다. 37) 또 다른 조사지역인 도화리( 桃 花 里 ) 의 지명은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 제천시 승격으로 인하여 제원군 송학 면 도화리가 된 이후 1995년 시군통합으로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로 바뀌었다. 38) 37) 제천시지 편찬위원회, 2004, 앞의 책. 38) 제천시지 편찬위원회, 2004, 앞의 책.
1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Ⅲ. 조사범위와 방법 1. 유적의 위치와 조사범위(지도 5~18, 사진 1~6) 1) 평동 고인돌 유적(지도 5~11, 사진 1~3) 평동 고인돌은 행정적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로5길 46-39번지에 위치하고 있다(GPS 좌표 : N 37 08 28.2 S 127 00 50.8 ). 유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운면사무소 앞에 있는 평동삼 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원서천의 언저리에 있는 평동로를 따라 서쪽으로 1km 정도 진행한 뒤에 평동 리 마을로 들어가는 북쪽 오솔길을 따라 200m 정도 들어가면 된다. 평동 고인돌 주변 지역의 지형을 보면, 북쪽으로 약 12km 거리에 백운산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천등산( 天 登 山, 해발 807m)이 자리하며, 동쪽으로 3km 정도에 박달재(해발 504m)가 있다. 따라서 평동 일대는 여러 산에 둘러싸인 계곡형 분지로 계곡이나 하천을 따라 논밭 이 경작되고 있다. 고인돌이 자리한 곳은 주론산과 오청산 사이에 있는 야트막한 산(해발 304m)의 남쪽 사면이다. 그리고 이곳의 남쪽으로 백운산에서 발원하여 박달재쪽으로 흐르는 원서천이 흐르 고 있어 고인돌에서 조망이 가능하다. 고인돌 북서쪽으로는 신라 경순왕이 왕건에게 식읍을 받아 궁( 宮 )을 지었다고 전해내려오는 터- 제천 방학리 경순왕이궁지( 堤 川 放 鶴 里 敬 順 王 宮 址, 약 1.1km 이격)-가 있어 39) 경순왕과 연관된 유적지-제천 방학리 부수동 장기판(약 1.1km 이격)- 등이 있고, 남동쪽에 제천 평동리 민영복 기념 비(약 600m 이격) 제천 평동리 둔지원지(약 900m 이격) 등이 자리하고 있다. 평동 고인돌 주변으로는 북쪽을 제외하고 야트막한 능선을 개간하여 밭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고, 고인돌의 동쪽으로(약 250m 이격) 백운중학교가 들어서 있다. 고인돌은 현재 민가의 마당에 위치 하고 있다. 39) 중원문화재연구원, 2005, 제천 방학~가정간 도로확ㆍ포장공사구간내 문화유적 시굴조사 보고서.
Ⅲ. 조사범위와 방법 l 20
2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Ⅲ. 조사범위와 방법 l 22
2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Ⅲ. 조사범위와 방법 l 24
2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Ⅲ. 조사범위와 방법 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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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조사범위와 방법 l 28 2) 광암 고인돌 유적(지도 12~18, 사진 4~6) 광암 고인돌은 행정적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580-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GPS좌 표 : N 37 10 51.9 S 128 13 25.6 ). 고인돌은 의림지에서 북쪽으로 1km 정도 진행한 뒤에 세명대 입구 사거리에서 오른쪽(동쪽)으로 꺾어 도화로를 따라 1.6km 나아가면 왼쪽(북쪽)에 도화2리(광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는데, 이곳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광암 고인돌 주변으로는 북쪽으로 2.8km 정도 거리에 용두산( 頭 山, 해발 871m)이 있고, 남서쪽 으로 1.2km 떨어진 곳에 의림지가 위치하고 있다. 용두산 남동쪽 끝자락의 계곡부에 마을이 들어서 있고, 여러 계곡부를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도화로에 인접하여 고인돌이 자리해 있다. 고인돌 의 북쪽으로는 도화2리 광암마을이 있고, 남쪽 도화로 너머로는 무도천( 務 道 川 )이 길 따라 서쪽에 서 동쪽으로 흘러 평창강( 平 昌 江 )으로 합류된다. 광암 고인돌 북쪽으로는 제천 도화리 굼바위(약 100m 이격)가 있는데, 큰 소나무 아래에 화강암 바위 윗면에 수십여 개의 굼을 갈아서 새긴 바위 2기이다. 새겨진 양상은 다르지만 광암 고인돌에 도 굼이 있어 이 둘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인돌에서 북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구석기
2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시대 유적인 제천 점말동굴 유적이 있고, 서남쪽으로는 삼국시대 유적인 의림지(약 1.2km 이격)가 자리하고 있다. 이로 보아 광암 고인돌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 지 사람들이 꾸준히 살아온 지역이라는 것을알수있다. 광암 고인돌 주변으로는 계곡부를 개간하여 밭 경작지로 이용하고 있고, 고인돌의 북서쪽으로(약 400m 이격) 제천한과 가 들어서 있다. 고인돌은 현재 비닐하우스와 도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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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조사범위와 방법 l 38 2. 조사방법(지도 8~15, 사진 7~14) 1) 평동 고인돌(지도 8, 사진 7~10) 평동 고인돌은 해발 304m 정도인 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민가의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다. 민가 는 긴 방향이 북동-남서쪽이고, 동쪽으로 2~3m 정도 떨어진 곳에 고인돌이 있는데, 고인돌의 긴 방향이 남-북쪽이어서 민가의 방향과는 약간 틀어져 있다. 민가에서 담장을 축조하는 과정에 고인 돌을 담장의 일부로 활용하여 부분적으로 현상이 변경된 상태이다. 고인돌의 북쪽은 능선이 이어져 있어 아래쪽 구조가 흙으로 덮여 있는데, 고인돌의 북쪽면이 북서쪽으로 담장과 연결되어 할석들이 쌓여 있었다. 남쪽부분은 굄돌 5개의 윗부분이 드러나 있었다. 발굴조사는 고인돌 주변에 남아 있을 부재와 유물을 확인하기 위해 고인돌을 중심으로 11 6.5m 크기의 그리드를 설치한 뒤에 + 자 형태로 둑을 남기고 실시하였고, 서남쪽 그리드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1~4번 그리드로 명명하였다. 1번과 4번 그리드는 서쪽에 위치한 민가의 장대석까지 확장 하여 조사하였고, 2번 그리드에서는 석렬이 확인되어 동쪽으로 50cm를 확장하였다. 따라서 전체적 인 조사범위는 동-서 7.5m, 남-북 11m 정도이다. 무덤방을 확인하기 위해 덮개돌 하부에 동-서 방향으로 30cm 둑을 남기고 제토하여 조사하였다. 또한, 굄돌은 동쪽부터 1~5번 굄돌로 명명하고, 굄돌의 앞부분에 탐색구덩을 넣어 굄돌의 크기와 생김새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굄돌이 향한 방향에 맞춰 1~3번 굄돌 앞(남쪽)에 200 65cm 정도 크 기의 시굴구덩을 넣었고, 굄돌 앞쪽으로 할석들이 확인되어 그 성격을 확인하기 위해 동쪽의 석렬 까지 확장하여 조사하였다. 또한, 4~5번 굄돌 앞쪽(서쪽)으로는 110 50cm 정도 크기의 시굴구덩 을 넣었고, 5번 굄돌을 임시로 빼서 굄돌의 하부구조를 파악하였다. 조사진행은 고인돌을 중심으로 그리드를 설치하고 정리작업을 한 뒤에 실측조사와 사진촬영을 하였다. 다음으로 1~4번 그리드를 제토하여 주변을 확인한 뒤에 덮개돌 하부와 굄돌 앞의 탐색구 덩을 제토하였다. 층위는 3 4번 그리드의 북벽과 4번 그리드 동벽, 덮개돌 하부, 탐색구덩을 조사 하여 퇴적 양상을 확인하였다.
3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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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 광암 고인돌(지도 15, 사진 11~14) 광암 고인돌은 용두산 남동쪽의 계곡 끝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고인돌 남쪽으로는 동-서 방향으 로 뻗어 있는 도로(도화로)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역시 동-서 방향의 비닐하우스와 근접해 있다. 고 인돌의 긴 방향은 동-서 방향인데, 덮개돌 가운데가 남-북 방향으로 깨져 2개로 나뉘어져 있고, 북 쪽으로 기울어 남쪽부분이 약간 들려 있는 상태였다. 발굴조사는 우선, 덮개돌의 평 단면도와 입면도 작성을 위해 실측조사를 하였다. 이후 고인돌의 무덤방 구조를 조사하기 위하여 덮개돌을 들어낸 뒤에 그 자리에 덮개돌의 방향에 맞춰 동-서 580 cm, 남-북 230cm 크기의 그리드를 설치하고, 그리드 가운데에 남-북 방향으로 너비 30cm 둑을 남 긴 뒤에 진행하였다. 이후 그리드 동쪽으로 50cm 정도 확장하여 최종적인 조사범위는 동-서 580 cm, 남-북 280cm 정도 크기의 공간이 되었다. 제토작업을 진행한 결과, 깊이 30cm 정도에서 무덤방 을 비롯하여 주변으로 여러 석렬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무덤방 서쪽에 드러난 석렬의 성격을 파악 하기 위해 석렬 사이에 동-서 방향으로 너비 30cm 정도의 시굴구덩을 설치하여 조사하였고, 확인 된 무덤방의 구조를 조사하기 위하여 무덤방 서쪽 바깥쪽으로 너비 30cm의 시굴구덩을 설치하여 무덤방을 이루는 석렬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조사진행은 덮개돌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그리드를 설치하고 둑을 남긴 채 5~10cm 정도씩 제토 하였고, 제토 중에 덮개돌의 아래쪽에서 떨어져 나온 돌부스러기 등도 제거하였다. 무덤방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 한 뒤에 실측조사와 사진촬영을 하였다. 층위는 그리드의 북벽을 실측하여 퇴적양상 을 확인하였다. 두 고인돌 모두 조사과정 단계마다 추가로 실측조사와 사진촬영을 진행하였고, 조사를 완료한 뒤 에 주변지형과 고인돌의 위치를 살펴보기 위해 항공촬영과 정밀측량도 실시하여 보고서에 수록하 였다. 모든 조사와 기록이 마무리된 뒤에는 고인돌의 변형과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인돌 하부 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흙을 복토하였으며, 광암 고인돌은 덮개돌을 원래 자리로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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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Ⅲ. 조사범위와 방법 l 44 3. 층위 층위는 평동 고인돌 하부와 주변의 전체적인 퇴적양상을 알 수 있게 그리드의 북벽과 덮개돌 북 쪽 둑, 덮개돌 아래쪽, 시굴구덩 내부 층위도 조사하였다. 그리드의 북벽 층위를 조사해 본 결과, 부분적으로 교란이 확인되었고 모두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층위의 왼쪽(서쪽)에서는 안정된 층위를 보이지만, 오른쪽(동쪽)에서는 교란되 어 두께도 일정치 않고 단절된 부분도 있다. Ⅰ층은 표토층으로 쓰레기가 섞여 있는 등 교란되었고, 두께도 25~70cm 이상되며 일정하지 않다. 층위의 왼쪽(서쪽)에서 오른쪽(동쪽)으로 갈수록 두꺼워져 Ⅱ층 이하의 층들이 교란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Ⅱ층은 진갈색(7.5YR 5/6)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할석들이 섞여 있고, 두께는 10~50cm 정도 이다. 층위의 왼쪽(서쪽)에서는 어느 정도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다 오른쪽(동쪽)으로 절반 이상오면 두께가 얇아지다 Ⅰ층의 교란 때문에 사라진다. Ⅱ-1층은 암황갈색(10YR 4/4)을 띠는 모래찰흙층 으로 두께는 5~30cm 정도이다. 이 층은 Ⅱ층과 Ⅲ층 사이에 끼여 있으며 층위의 오른쪽(동쪽)에서만 확인된다. Ⅲ층은 진갈색(7.5YR 5/8)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석비레가 섞여 단단한 편이다. 층위의 왼쪽(서쪽)에서는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다 오른쪽(동쪽)에서는 부분적으로 단절되어 있다. 둑의 동벽 층위는 고인돌 뒤쪽(북쪽)에서 고인돌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퇴적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였고, 조사결과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Ⅰ층은 표토층으로 고인돌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분이 제토되었다. Ⅱ층은 진갈색 (7.5YR 5/6)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두께는 20~60cm 정도이다. 층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능선 경사에 따라 층위의 왼쪽(북쪽)에서 오른쪽(남쪽)으로 갈수록 층위가 얇아진다. Ⅲ층은 진갈색 (7.5YR 3/3)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석비레가 섞여 단단한 편이고, 층위의 중간부터 오른쪽(남쪽) 으로만 드러난다. Ⅳ층은 암갈색(7.5YR 3/3)을 띠는 부토층으로 층위의 오른쪽(남쪽)에만 있다. 고 인돌과 맞닿은 부분으로 나중에 들어와 교란된 층으로 파악되었다. 층위를 조사해본 결과, 그리드 북벽 층위는 산의 경사면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낮아 지며, 층위 퇴적상태도 동쪽부분에서 심하게 교란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Ⅰ층은 근래에 와서 Ⅱ층 아래의 층들을 심하게 교란시킨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원토층인 Ⅲ층까지도 훼손한 것으로 조 사되었다. 그 이유는 민가가 건축된 이후 고인돌 주변에 밭을 개간하는 과정과 물구덩이를 조성하 면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고인돌 남쪽 바로 옆에서도 조선시대에 축조된 담장렬이 확 인되어 고인돌 주변이 오래전부터 현상이 변해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4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29.9m 229.9m 그리드 북벽 층위도 Ⅰ : 표토층 Ⅱ : 진갈색 모래찰흙층 Ⅱ-1 : 암황갈색 모래찰흙층 Ⅲ : 진갈색 모래찰흙층 둑 동벽 층위도 Ⅰ : 표토층 Ⅱ : 진갈색 모래찰흙층 Ⅲ : 진갈색 모래찰흙층 Ⅳ : 암갈색 모래찰흙층 Ⅰ Ⅱ Ⅰ Ⅱ Ⅲ Ⅲ Ⅱ-1 Ⅲ Ⅲ Ⅲ Ⅳ 229.4m 229.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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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둑의 층위는 크게 교란된 부분은 없었는데, 그리드 북벽의 Ⅱ층과 마찬가지로 진갈색 모래찰흙층 이 두껍게 퇴적되어 있었고, Ⅲ층도 원래의 퇴적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다만, 덮 개돌과 붙어 있는 부분인 Ⅳ층은 Ⅱ층과 Ⅲ층의 일부분을 훼손하고 삽입된 부토층인 것으로 확인되 었다. 따라서, 고인돌과 관련된 축조 당시의 층위는 Ⅲ층으로 볼 수 있고, 그 이후부터 Ⅱ층이 산의 경사면으로부터 내려온 토사가 오랜기간동안 퇴적되어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덮개돌 아래쪽 층위는 조사결과,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Ⅰ층은 부토층으로 담장에 사용되었던 할석들이 섞여 있어 교란된 층으로 보인다. Ⅱ층은 진갈색 (7.5YR 5/8)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두께는 25~45cm 정도이고, 층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Ⅲ층 은 진갈색(7.5YR 5/6)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석비레가 섞여 있다. 시굴구덩 내부 층위는 굄돌 하부의 퇴적양상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였고, 조사결과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Ⅰ층은 암황갈색(10YR 4/4)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두께는 30cm 정도이다. Ⅱ층은 황갈색(10YR 5/8)을 띠는 석비레층으로 두께는 10cm 내외이고, 풍화가 이루어져 단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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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 광암 고인돌 층위(도면 2, 사진 20~21) 층위는 고인돌 주변의 전체적인 퇴적 양상을알수있게그리드의 북벽을 실측하였고, 나머지 동 서 남벽의 경우 교란이 심하여 층위구별이 불가능하여 제외하였다. 그리드의 북벽 층위를 조사해 본 결과,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Ⅰ층은 진갈색(7.5YR 5/6)을 띠는 모래찰흙층이고, 두께는 10~30cm 정도로 불규칙적인데, 물의 영향과 벽 바로 옆에 위치한 비닐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Ⅱ층은 암황갈색(10YR 3/4)을 띠는 모래찰흙층으로 두께는 10~25cm 정도이고, 크고 작은 할석들이 포함되어 있다.
Ⅲ. 조사범위와 방법 l 50 Ⅰ 229.45m 229.45m Ⅱ 광암고인돌 북벽 층위도 Ⅰ : 진갈색 모래찰흙층 Ⅱ : 암황갈색 모래찰흙층
5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Ⅳ. 조사내용 1. 평동 고인돌(지도 8~11, 도면 3~9, 사진 22~33) 평동 고인돌의 북쪽으로는 해발 304m 정도의 야산이 자리해 있고, 남쪽으로는 원서천이 야산 을 감싸며 북서쪽에서 남쪽으로 흐른다. 고인돌은 산의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여 하천을 바라보고 있다. 고인돌은 민가의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는데, 덮개돌의 북서쪽 부분이 민가의 담장과 이어져 있어 고인돌을 담장의 일부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북고남저의 능선 끝부분에 자리해 덮개 돌 북쪽부분은 굄돌이 없이 땅에 닿아있고 남쪽부분은 굄돌을 받쳐 덮개돌의 수평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조사결과, 평동 고인돌은 굄돌이 있는 바둑판식 고인돌로 덮개돌 남쪽과 남서쪽 아래에 굄돌 5개 가 받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평동 고인돌은 무덤방이나 관련된 유물은 수습되지 않았지만, 덮개 돌 아래부분이 그을린 흔적이 있고, 불에 탄 돌 3개가 확인되었다. 덮개돌과 굄돌 모두 암질은 흑운 모 화강암이었다. 1) 덮개돌 덮개돌의 평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 長 方 形 에 가깝고, 긴 방향은 남-북쪽이며, 암질은 흑운모 화 강암이다. 크기는 남-북 길이가 380cm 정도이고, 동-서 너비는 가장 좁은 북쪽부분이 50cm, 가장 넓은 남쪽부분이 140cm 정도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너비가 줄어드는 모양이며, 두께가 105 cm 정도이다. 현재 덮개돌은 균열이 심하고,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 있으며, 덮개돌의 북서쪽 부분이 민가의 담장과 이어져 있다. 고인돌은 북고남저의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어 덮개돌 북쪽은 땅에 닿아 있고, 남쪽은 떠 있는데, 남쪽 아래에 굄돌 5개를 받쳐 덮개돌의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덮개돌의 윗면에서는 굼 2개가 확인되었다. 그중 지름 15cm 정도의 큰 굼은 윗면의 중간쯤에 자 리하고 있는데, 생김새는 반구형에 가깝다. 지름 5cm 정도의 작은 굼은 남서쪽 끝부분에 위치해 있 는데, 생김새가 일반적인 굼과는 다르게 원통형이고, 채석흔과 가까워 후대에 다른 목적으로 인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思 卦 (?), 신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채석흔으로 보이는 12 5 cm 정도 크기의 긴 네모꼴 홈도 파여져 있는데, 덮개돌을 쪼개 사용하기 위해 정을 박았던 흔적으로 보인다. 덮개돌의 남쪽 면은 네모꼴이고, 윗부분에 지름 5cm 내외의 굼 2개가 있다. 전체적으로 균열이 심
Ⅳ. 조사내용 l 52 하게 가 있으며, 좌우 가장자리에 돌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덮개돌의 서쪽 면은 가운데 에 위아래로 균열이 심하게 가 있고, 그 왼쪽(북쪽)으로 75 35cm정도 크기의 방곽 안에 龜 岩 (구 암)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왼쪽 아래쪽에 돌이 크게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덮 개돌의 동쪽 면은 비교적 원래 모양대로 남아 있으나, 역시 균열이 확인된다. 덮개돌의 북쪽 면은 남쪽면에 비해 면적이 좁고, 가로로 큰 균열이 있어서 위아래 2개의 돌이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덮개돌 아랫면에는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고, 지름 20cm 정도 크기의 불탄 돌 3개가 조사되었다. 불탄 돌들의 생김새는 원형이나 타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이고, 5번 굄돌 뒤쪽에서부터 북쪽으로 덮 개돌 아래의 경계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조사결과, 덮개돌 밑에서는 무덤방과 관련 있는 시설이 찾아지지 않았으며, 고인돌과 관련된 유물도 출토되지 않았다. 다만 고인돌 주변의 지 표층에서 자기 조각들이 수습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민간신앙과 관련된 유물로 추정된다.
5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Ⅳ. 조사내용 l 54
5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 굄돌 평동 고인돌의 굄돌은 덮개돌 남쪽과 서쪽 아래에서 5매가 확인되었다. 북고남저의 지형에 자리 하고 있어 덮개돌의 북쪽과 동쪽은 땅에 닿아 있는데, 이런 점에서 수평을 맞추기 위해 남쪽과 서쪽 에 돌을 괸 것으로 추정된다. 굄돌의 순서는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1~5번으로 명명하였다. 1번 굄돌은 덮개돌의 남동쪽 아래를 받치고 있고, 동쪽으로는 경사를 따라 근현대에 돌로 만들어 진 계단시설이 있다. 굄돌의 크기는 40(너비) 70(길이) 30(두께)cm 정도이고, 정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에 가깝다. 덮개돌과 닿는 부분에 할석이 끼워져 있어 실제로 덮개돌과 직접 닿지는 않고, 2 번 굄돌과의 사이에도 할석들이 채워져 있었다. 2번 굄돌은 덮개돌의 남쪽 가운데 아래를 받치고 있고, 크기는 50 75 30cm 정도이며, 정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에 가깝다. 덮개돌과 닿는 부분에 할석이 끼워져 있고, 굄돌 하부에 쐐기돌이 있으며, 1번 굄돌과의 사이에도 할석들이 채워져 있다. 3번 굄돌은 덮개돌의 남서쪽 아래를 받치고 있다. 굄돌의 크기는 50 75 43cm 정도이고, 정면 생 김새는 긴 네모꼴에 가깝다. 덮개돌 하부와 직접적으로 닿지는 않고 약간의 공간이 있으며, 굄돌 하 부에 쐐기돌이 여러 개의 할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4번 굄돌은 덮개돌의 서쪽 아래를 받치고 있고, 크 기는 50 80 30cm 정도이다. 정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에 가까운데, 땅에 박힌 끝부분이 뾰족하고, 쐐기돌이 뾰족한 부분 양쪽을 받치고 있다. 5번 굄돌은 덮개돌의 서쪽 아래를 받치고 있으며, 크기는 50 70 30cm 정도이다. 정면 생김새는 마름모꼴이고, 지름 7cm 정도의 굼 1개가 새겨져 있다.
Ⅳ. 조사내용 l 56
5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Ⅳ. 조사내용 l 58
5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Ⅳ. 조사내용 l 60 불탄 돌
6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29.16m 228.83m
Ⅳ. 조사내용 l 62 307.2m 228.0m
6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29.79m 229.18m
229.75m Ⅳ. 조사내용 l 64 229.22m
6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Ⅰ 228.9m Ⅱ Ⅲ 228.6m 228.6m Ⅱ 228.3m 228.3m 시굴구덩 내부 층위도 Ⅰ : 암황갈색 모래찰흙층 Ⅱ : 황갈색 석비레층 덮개돌 아래쪽 층위도 Ⅰ : 교란층 Ⅱ : 진갈색 모래찰흙층 Ⅲ : 진갈색 모래찰흙층 Ⅰ Ⅱ 228.9m 228.9m Ⅲ 228.9m Ⅰ
Ⅳ. 조사내용 l 66 2. 광암 고인돌(지도 15~18, 도면 10~15, 사진 34~45) 광암 고인돌은 용두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 사이에 남-북 방향으로 나 있는 계곡부의 남쪽 끝 부분에 위치한다. 고인돌은 도화로에서 광암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도로 변에 자리하고, 고인돌 남쪽 바로 앞으로 도화로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며, 도로 넘어 남쪽으로 무도천이 서쪽에서 동쪽으 로 흐른다. 고인돌의 긴 방향은 하천의 방향과 나란하다. 조사결과, 덮개돌 아래쪽에서 무덤방 石 槨 과 추정 굄돌 3개가 확인되었고, 주변에 할석들이 깔 려 있었으며, 껴묻거리로 돌검과 검자루끝장식 劍 把 頭 飾, 돌화살촉 각각 1점씩과 붉은간토기 몸통 조각 2점이 출토되었다. 덮개돌과 추정 굄돌의 암질은 편마암으로 밝혀졌다. 1) 덮개돌 덮개돌의 평면 생김새는 긴 타원형이고, 옆면은 긴 네모꼴에 가깝다. 긴 방향은 동-서 방향인데, 덮개돌 가운데가 남-북 방향으로 깨져 동 서 2개로 나누어져 있다. 전체적인 크기는 동-서 길이 490cm, 남-북 너비 250cm, 두께 95cm 정도이고, 무게는 15t 정도로 추정되었다. 덮개돌은 15 정도 기울어 북쪽 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고, 남쪽 부분이 들린 상태였다. 들린 남쪽 부분 아래에는 덮개돌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암석 조각들도 있으며, 덮개돌 윗면에는 지름 5~10 cm 정도 크기의 굼 5개가 새겨져 있다. 굼은 덮개돌의 서쪽 부분에만 있고, 지름 10cm 정도의 굼 1개 와 지름 5cm 정도의 굼 3개가 사다리꼴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지름 5cm 정도의 굼 1개는 따로 떨어 져 있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북두칠성에서 바가지 부분과 꼬리 끝만 남아 있는 형태에 가까워 보 이기도 하고, 굼이 새겨진 범위는 동-서 70cm, 남-북 135cm 정도이다. 처음 조사과정에서는 고인돌이 도화로에 인접해 있고, 북쪽으로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있어 덮 개돌이 이동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 덮개돌 하부에서 덮개돌 방향과 나란한 무덤방이 확인되어 제자리인 것으로 판단된다.
6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Ⅳ. 조사내용 l 68 2) 무덤방과 추정 굄돌 고인돌의 하부구조는 무덤방 石 槨 과 추정 굄돌 3개가 남아 있다. 무덤방의 외부 크기는 추정 길 이 동-서 130cm, 너비 남-북 50cm, 남은 깊이 30cm 정도이고, 내부 크기는 길이 약 100cm, 너비 약 28cm이며, 긴 방향은 동-서 방향이다. 무덤방은 10~30cm 정도 크기의 할석을 쌓아 축조하였는데, 1~3단 정도가 남아 있고, 남벽 일부와 동벽 전체가 이미 파괴된 상태였다. 서벽은 가장 잘 남아 있어서 무덤방 바깥쪽으로 시굴구덩을 설치하여 살펴보았는데, 3단이 남아 있고, 한 단은 2~3개의 돌로 만들어져 있다. 주로 납작한 돌이 쓰였으나, 위아래가 편평한 6면체의 돌도 일부 있다. 북벽은 조금 무너져 1단 정도가 남아 있고, 서쪽부분은 두꺼운 돌들이 사용되었으 나, 동쪽부분은 납작한 돌들을 한줄로 세워서 만들었다. 남벽은 동쪽부분이 파괴되었고, 서쪽부분 에 2단이 남아 있으나, 일정하게 쌓여있지 않고 형태가 조금 변형되어 있다. 무덤방의 주변으로 할석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일정한 규칙성을 갖고 있지는 않았고, 그중 무덤 방 남쪽에서 추정 굄돌 3개가 확인되었다. 1번 굄돌은 덮개돌의 남동쪽 아래에 위치해 있고, 크기는 동-서 너비 85cm, 남-북 길이 70cm,두
6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께 50cm 정도이며, 평면 생김새는 네모꼴에 가깝다. 굄돌의 겉면은 매끈한 편이고, 윗면은 비교적 편평하다. 2번 굄돌은 덮개돌의 동쪽 아래쪽에 자리해 있고, 크기는 동-서 너비 120cm, 남-북 길이 100cm,두께 50cm 정도이며, 평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에 가깝다. 굄돌의 겉면은 매끈하지 못하고, 윗면은 편평한 편에 속한다. 3번 굄돌은 덮개돌의 북동쪽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 그리드 내에 일부 만 드러나 있고, 나머지 부분은 북쪽 비닐하우스 아래에 묻혀 있다. 드러난 크기는 동-서 너비 85 cm, 남-북 길이 40cm,두께 40cm 정도이며, 평면 생김새는 긴 네모꼴에 가깝다. 굄돌의 겉면은 매끈 한 편이고, 윗면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편평하나 기울어져 있다. 추정 굄돌을 제외한 나머지 할석들은 크기가 10~50cm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덮개돌이 기운 것 과 물의 영향을 받아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다. 다만, 크기가 작은 할석들은 주로 무덤방 북쪽에 위 치하여 무덤방 石 槨 을 이루던 돌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크기가 큰 돌들은 추정 굄돌의 사이에 있 거나 무덤방을 중심으로 추정굄돌의 반대편인 서쪽에 자리하고 있어 굄돌이었거나 굄돌의 일부분 이었을 가능성이 있는 편이다.
Ⅳ. 조사내용 l 70
7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Ⅳ. 조사내용 l 72
7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28.95m 228.95m 228.73m 228.83m
228.81m Ⅳ. 조사내용 l 74 229.08m
7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a 228.25m a 228.19m a a 화살촉 228.49m b b 228.49m b b
Ⅳ. 조사내용 l 76 228.25m 228.25m 228.22m 228.22m 228.07m 228.07m
7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3) 껴묻거리 껴묻거리는 덮개돌의 남쪽 아래부분에서 돌검조각 1점이 출토되었고, 무덤방 동쪽 주변에서 검자 루끝장식 1점, 무덤방 안에서 돌화살촉 1점이 찾아졌다. 또한, 무덤방을 이루는 할석들의 동쪽 밖에 서 붉은간토기 몸통조각 2점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 석기류 흑청색을 띠는 검자루끝장식으로 무덤방 동쪽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평면은 십자형태이고, 단면은 반타원형이다. 뒷부분은 편평하고, 윗부분은 볼록하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이 간 흔적이나 찧은 흔적이 남아 있는데, 홈은 없는 것으로 보아 부러진 것을 갈거나 쪼 아서 모양을 새로 만들어 재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 : 8.3 7.0cm, 두께 : 3.2cm, 무게 : 250g
Ⅳ. 조사내용 l 78 회백색을 띠는 이암으로 만든 돌검조각이며 덮개돌 남쪽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손잡이부분 없이 날부분만 남아 있고, 검끝 단면은 마름모꼴, 검몸 단면은 긴 타원형이다. 등날은 전체 길이의 1/3 정도만 차지하고, 아래쪽에는 홈이 파여 있는데, 한쪽면은 흔적만 남아 있다. 손잡 이부분이 깨진 뒤에 남은 날부분만을 다시 다듬어서 껴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께는 등날분분이 가장 두꺼워졌다가 홈이 파인 부분에서 가장 얇아진다. 남은 크기 : 13.3 3.5cm, 두께 : 0.4~0.9cm, 무게 : 40.1g 회백색을 띠는 이암으로 만든 돌화살촉이며 무덤방 안에서 출토되었다. 평면은 버들잎모양 葉 形 이고, 가로단면은 마름모꼴이다. 슴베가 없고, 등날은 몸통의 1/2까지 만 있으며, 아래쪽으로 갈수록 얕은 홈이 파여 있다. 두께는 등날분분이 가장 두껍고, 홈이 파인 부 분이 가장 얇다. 크기 : 7.1 2.1cm, 두께 : 0.3~0.8cm, 무게 : 8.7g
7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나. 토기류 적갈색을 띠는 붉은간토기 몸통조각으로 추정 굄돌 동쪽에서 출토되었다. 겉면은 마연되어 매끈한 편이고, 안쪽면은 떨어져 나가 표면이 거칠다. 속심은 황갈색을 띠고, 바 탕흙은 석영과 장석, 운모가 섞인 모래질 찰흙을 사용하였다. 크기 : 2.1 1.9cm, 두께 : 0.4cm 연갈색을 띠는 붉은간토기 몸통조각으로 추정 굄돌 동쪽에서 출토되었다. 겉면은 떨어져 나가 색에 차이가 있고, 반대면은 마연되어 회흑색을 띠며, 표면이 매끄러운 편이 다. 바탕흙은 석영과 장석, 운모가 섞인 모래질 찰흙을 사용하였다. 크기 : 2.5 0.9cm, 두께 : 0.4cm
Ⅳ. 조사내용 l 80
8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Ⅴ. 유적의 성격 l 82 Ⅴ. 유적의 성격 제천지역에는 여러 시기의 선사시대( 先 史 時 代 ) 유적이 분포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고인돌은 120 여기 이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중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60여기 정도로 대부분 충주댐 수몰지구와 중앙고속도로 공사구간에 해당하는 곳에서 발굴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까 지 발굴된 고인돌이 많아서 제천지역 고인돌에 관한 형식이나 구조적 특징, 분포와 입지, 축조시기 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밝혀진 상태이다. 40) 여기에서는 이번에 조사된 평동 고인돌과 광암 고인돌에 대한 조사성과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평동 고인돌 고인돌이 위치한 평동리는 주론산과 시량산, 오청산으로 둘러싸인 계곡형 분지로 산 경사면과 계 곡, 원서천을 따라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평동 고인돌은 평동리의 가장 서쪽 끝지역에 위치해 있 는데, 원서천을 서쪽으로 끼고 남-북쪽으로 긴 야산(해발 300m)의 남쪽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고인돌은 민가 앞마당에 단독으로 놓여 있는데, 이 일대가 해발 228m로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이곳에서 주변 지역을 조망하기가 용이하고, 반대로 원서천 주위에서도 고인돌을 바라보기가 어렵 지 않다. 고인돌의 긴 방향은 남-북쪽을 향해 있는데, 이는 야산의 긴 방향 長 軸 과 일치하고 원서 천이 북쪽으로부터 동남쪽으로 흐르는 것과도 나란하다고 볼 수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이 긴 네모꼴에 가깝고, 크기는 길이 380cm, 너비 50~140cm, 두께 105cm 정도로 두툼한 편이다. 덮개돌은 경사면에 걸쳐 있어서 북쪽 부분은 땅에 닿아 있고, 남쪽 부분은 떠 있어서 굄돌 5개를 받쳐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덮개돌 윗면에는 굼 性 穴 이 2개 있는데, 큰 것 은 지름 15cm이고, 작은 것은 지름 5cm 정도이다. 특히 큰 굼의 생김새는 일반적인 굼과 다르게 원 통형이면서 깊어 후대( 後 代 )에 다른 목적과 용도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굄돌은 5개가 마치 위석형( 圍 石 形 )처럼 세워져 있는데, 41)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5번까지 번 호를 부여하여 조사하였다. 굄돌의 모양은 긴 네모꼴이나 마름모꼴이고, 크기는 너비가 40~50cm, 길이가 70~80cm, 두께 30~43cm로 비슷하여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굄돌은 덮개 돌 아래 평탄면을 20cm정도 파서 돌을 세운 것으로 파악되었고, 덮개돌과 닿는 부분이나 굄돌과 굄 40) 하문식, 2005, 남한강 상류지역의 고인돌 문화,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지식산업사. 41) 위석형은 덮개돌 아래에 자연석 굄돌이 둘러져 그 자체가 석실을 겸한 형태이나 외형적으로는 굄돌이 덮개돌 아래를 받치 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 하였다( 榮 文, 2002, 韓 國 支 石 墓 社 會 硏 究, 學 硏 文 化 社, 151쪽).
8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돌 사이의 틈새마다 작은 할석을 끼워 넣어 고정되도록 했다. 굄돌 중에서 4번 굄돌은 아랫부분이 삼각형태로 뾰족하게 다듬어져 있고 양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크고 작은 쐐기돌을 박아서 고정시켜 놓은 점이 주목된다. 이렇게 쐐기돌을 이용하여 보다 견고하게 고정시킨 것은 수평을 유지하여야 안정감을 지니기 때문이다. 42) 고인돌에서 보면 덮개돌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굄돌에 작은 돌을 받치 는 예가 많이 찾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양평 앙덕리, 안악 노암리, 용강 석천산 12호 고 인돌을 비롯하여 요령지역의 무순 산용 1호, 길림지역의 유하 태평구 11호와 매하구 험수 10호 고인 돌이 있다. 43) 발굴조사는 덮개돌에 균열이 많아 옮기지 못한 상태로 하부구조를 파악하였는데, 특별하게 정형 성이 갖추어진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덮개돌 남서쪽면 아래 즉 4 5번 굄돌 안쪽에서 불 탄 돌 3개가 놓여 있고, 덮개돌에도 불에 의해 그을린 흔적이 확인되었다. 불탄 돌들은 원형이나 타 원형에 가까운 부정형으로 지름이 20cm 정도인데, 놓인 상태가 덮개돌의 긴 방향을 따라 일렬로 배 42) Moonsig Ha. et al, 2014,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table-type dolmens using numerical analysis Journal of Mechanical Science and Technology 28-5, 1789~1795. 43) 하문식, 1999, 古 朝 鮮 地 域 의 고인돌 硏 究, 백산자료원.
Ⅴ. 유적의 성격 l 84 치되어 있다. 돌이 출토된 층위는 Ⅲ층 진갈색 모래찰흙층으로 굄돌의 하단부에 해당되는 깊이다. 이렇게 돌을 놓고 불을 지폈다는 것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이 상징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력 정화력 파괴력 벽사력을 갖고 있으며, 불에 태우거나 불기 운을 쏘여서 사악한 것, 부정한 것 그리고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44) 한편 이러 한 자료가 창원 아득이 고인돌에서 찾아져 비교된다. 45) 아득이 고인돌에서는 무덤방의 축조과정에 바닥돌의 밑바닥에 불을 피운 흔적이 조사되었다. 평동 고인돌 자료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고인 돌 사회에 있었던 의식의 한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무덤방에서 확인된 불탄 돌과 그을린 흔적은 불을 사용하여 고인돌 의식과 관련된 제의행위를 했던 흔적으로 볼 수 있겠다. 다만, 남겨진 유물이 없는 상태이고 이러한 예가 흔하지 않으므로 앞으로도 관심 있는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평동 고인돌은 덮개돌과 굄돌의 모습을 보면, 마치 위석형처럼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구조를 보 44) 국립민속박물관, 1996, 불의 민속, 102쪽. 45) 이융조, 1979, 大 淸 댐 水 沒 地 區 遺 蹟 發 掘 報 告 書, 111쪽.
8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이고 있어 지역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하부구조에서는 불탄 돌만 나왔을 뿐 관련 유물이 없어서 고인돌의 축조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고인돌의 입지와 덮개돌의 형태로 보면 무덤고인돌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불탄 돌이 있는 것으 로 보아 의례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지고 제의와 관련된 기능을 지닌 고인돌로 판단된다. 그 러나, 후대에 와서 민가가 들어섰고 의례행위가 이루어지면서 지속적인 훼손이 가해진 것으로 보 인다. 2. 광암 고인돌 광암 고인돌은 도화리를 지나는 도화로변 북쪽 옆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 가까이로 무도천이 서 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고인돌이 자리한 곳은 해발 300m 정도 되는 평지로 북쪽과 남쪽이 산으 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망은 좋지 않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평면이 긴 타원형이고, 긴 방향이 동-서쪽인데, 가운데 부분이 깨져 있어서 두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덮개돌 크기는 길이 490cm, 너비 250cm, 두께 95cm(장단비 1.96:1)로 제 천 지역 고인돌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하고, 무게는 15t쯤으로 측정된다. 이제까지 알려진 이 지역의 고인돌 크기는 황석리 충16호가 450 203 50cm이고, 황석리 충17호가 380 130 45cm로 광암 고인돌보다 작다. 암질은 덮개돌이나 굄돌 모두 편마암이다. 덮개돌 서쪽 부분에 5개의 굼이 있는데 지름이 5~10cm이며, 전체적인 배치상태로 보아 북두칠성 ( 北 斗 七 星 )의 일부분을 연상케 한다. 무덤방은 돌덧널 石 槨 이 축조되어 있고, 굄돌로 추정되는 돌 3개가 받치고 있으며 주위에 크고 작은 많은 돌들이 있었다. 돌덧널은 서벽이 가장 잘 남아 있고, 북벽도 비교적 그 구조를 살필 수 있 지만 남벽이 절반 정도, 동벽은 완전히 유실되었다. 돌덧널 벽체는 주로 납작한 돌을 사용하여 3단 정도로 쌓았는데, 북벽 동쪽부분은 무너져 1단 정도만 남아 있다. 돌덧널 바닥은 특별히 돌을 깔지 않았고, 돌화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돌덧널의 크기는 바깥쪽 길이 동-서 130cm, 너비 남-북 50cm, 남은 깊이 30cm 정도이며, 안쪽 길이는 약 100cm, 너비 약 28cm이다. 굄돌은 덮개돌의 동쪽부분을 받치는 부분에 3개가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놓여 있는데, 생김새는 네모꼴이나 긴 네모꼴이고, 크기는 1번 굄돌이 85 70 50cm, 2번 굄돌 120 100 50cm, 3번 굄 돌 85 40 40cm이다. 그리고 굄돌 주위로도 적지 않은 돌들이 흩어져 있지만 어떠한 정형을 찾아 보기가 어려운 모습인데, 이는 덮개돌이 기운 것과 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하 지만, 무덤방 주변에 작은 돌들이 있어 돌덧널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 로 해석된다.
Ⅴ. 유적의 성격 l 86 3. 껴묻거리에 대한 고찰 껴묻거리는 광암 고인돌에서만 5점이 출토되었는데, 돌덧널 안에서 돌화살촉 1점을 비롯해서 돌 덧널 동쪽 주위에서 검자루끝장식 劍 把 頭 飾 1점, 덮개돌 남쪽 아래에서 돌검 1점, 돌덧널 동쪽 돌 들 사이에서 붉은간토기 몸통조각 2점이 수습되었다. 무덤방 안에서는 돌화살촉 1점만 출토되었고, 나머지 유물들은 그 주위에서 찾아졌다. 유물 종류는 크게 석기류 3점, 토기류 2점으로 나뉘며, 석기류는 모두가 무기류( 武 器 類 )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먼저 석기류부터 살펴보면, 돌화살촉은 편평형촉( 扁 平 形 鏃 ) 중에서 슴베가 없는 無 莖 式 것으로 평면이 버들잎모양이고, 가로자른면이 마름모꼴, 아래쪽은 장방형이다. 등날은 촉 끝부터 중간부분 까지만 있고 그 아래로 역 Y 자 모양으로 마연되어 있으며, 뿌리 부분은 슴베 없이 밋밋하게 처리 되었다. 이 화살촉의 겉면은 많이 닳아 있고, 긁힌 자국도 많아 적지 않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 며, 남은 크기는 길이 7.1cm, 너비 2.1cm, 두께 0.3~0.8cm, 무게 8.7g이다. 제천지역 고인돌에서 출 토된 화살촉은 계산리 1 2호, 황석리 2 4~7호, 능강리 1호, 구룡리 1호 등에서 조사되었다. 특히 구룡리 1호 고인돌에서는 12점이 한꺼번에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 11점이 완형에 가까운 것으로 주 목된다. 암질은 주로 이암과 사암을 사용하였고, 능형촉이 10점, 편평형촉이 2점이다. 46) 검자루끝장식은 제천지역 고인돌에서 처음 출토되었는데, 세형동검문화기의 이 지역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검자루끝장식은 동검의 손잡이 뒤쪽에 결박( 結 縛 )하여 검의 균형을 유지 하면서 찌를 때의 효과를 더하기 위한 검부속구의 일종이며, 47) 재질별로 석제품과 동제품으로 구분 된다. 이번에 출토된 검자루끝장식은 평면이 十 자형태이고, 48) 단면은 반타원형이며 크기 8.3 7.0 3.2cm, 무게 250g이다. 또한, 검자루끝장식은 가중기( 加 重 器 )로서의 기능을 하며, 49) 무게에 따른 청동검과의 상관관계 정 도가 다르다. 검자루끝장식이 석제품인 경우 세형동검 성립기에 주로 만들어지고, 발전기와 쇠퇴기 에는 청동제가 대부분이다. 50) 따라서 성립기에는 전( 傳 ) 전북, 부여 수목리, 보령 청라면에서 석제입 주부(십자)형이 출토되었는데, 무게는 135~357g사이로 검신의 무게와 비슷하거나 2배 정도에 달 한다. 그리고 성립기의 무거운 검자루끝장식은 동검의 무게중심을 검자루쪽으로 끌어내릴 정도로 생각되지만, 발전기에는 동검의 무게중심에 약간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쇠퇴기에는 별다른 영향 을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51) 46) 世 宗 大 學 校 博 物 館, 2002, 앞의 책. 47) 國 立 中 央 博 物 館, 1992, 韓 國 의 靑 銅 器 文 化, 汎 友 社, 69쪽. 48) 검자루끝장식의 형태는 과형( 瓜 形 ), 십자형( 十 字 形 ), 입주부십자형( 柱 附 十 字 形 )이 있으나, 이 중 입주부십자형은 비파형동 검문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한국 특유의 형식이다( 健 茂, 1992, 韓 國 의 靑 銅 器 文 化, 韓 國 의 靑 銅 器 文 化, 汎 友 社, 134쪽 ; 宮 里 修, 2010, 한반도 청동기의 기원과 전개, 사회평론, 108~124쪽). 49) 全 榮 來, 1993, 劍 把 頭 飾 型 式 變 遷 과 靑 銅 器 文 化 의 系, 馬 韓 百 濟 文 化 13,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9쪽. 50) 健 茂, 1992, 앞의 논문. 51) 趙 鎭 先, 2001, 細 形 銅 劍 의 製 作 과 機 能 變 遷, 湖 南 考 古 學 報 13, 湖 南 考 古 學 會, 57쪽.
8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한편, 광암동 고인돌 출토 검자루끝장식은 전체적으로 많이 갈아 표면이 매끄러운데, 표면 대부 분에 도구로 쪼은 흔적이 있다. 이 흔적은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규칙적으로 쪼는 과정에서 생 긴 것으로 보이고, 고인돌을 축조하는 과정 중에 치러진 의례 행위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무게면에서 부여 수목리( 水 木 里 )의 것과(243g) 비슷하다. 돌검은 길이 13.3cm로 손잡이부분 없이 날부분만 남아 있는 것으로 검끝 단면은 마름모꼴이지만, 검몸 단면은 긴 타원형이다. 그리고 등날은 검끝부터 1/3 정도까지만 있고, 위와 아래 모두 갈린 흔 적이 있다. 검의 표면은 화살촉과 마찬가지로 많이 닳거나 벗겨진 자국이 있고, 날부분도 이가 빠져 있다. 이 돌검은 손잡이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유형의 석검인지 알 수 없지만, 등날 일부가 갈린 것으로 보아 부러진 부분을 재가공하여 사용하던 것을 껴묻거리로 매납했다고 여겨진다. 참고 로 제천지역 고인돌에서는 돌검이 적지 않게 출토되었는데, 계산리 2호와 방흥리, 황석리 1 2 6 7 13 17호에서 모두 8점이 수습되었다. 돌검은 황석리 고인돌 6 7 17호의 것이 완전한 형 태로 손잡이가 달린 유병식( 有 柄 式 ) 중 1단병식에 속하는 것들이고, 계산리 2호와 방흥리, 황석리 1 호 출토품은 조각이라 전체적인 형태를 알기 어렵다. 따라서, 제천지역 고인돌 출토 돌검류는 가장 많은 출토량을 보이고 있는 1단병식만 확인되었으며, 광암 고인돌 출토품도 그 범위에 포함되는 유 물로 판단된다.
Ⅴ. 유적의 성격 l 88 붉은간토기 2점이 추정 굄돌 동쪽에서 출토되었는데, 모두 몸통조각이다. 겉과 안쪽면은 간 상태 로 매끄러운 편이고, 부분적으로 표면이 벗겨져 있다. 붉은간토기는 고인돌에서 적지 않게 확인되 는 유물로 알려져 있는데, 제천에서 발굴된 52기의 고인돌 중에서 6기 정도에서 출토되었다. 이제 까지 토기류가 출토된 사례를 보면, 조각은 1점에서 많게는 1개체분이 나오기도 했는데, 특히 황석 리 13호에서는 완형의 붉은간토기 1점이 출토되었으며, 황석리 충16호에서도 붉은간토기와 가지무 늬토기의 조각 1개체분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토기 등의 유물을 깨트려서 매납하는 행위는 당시 사 람들이 사자( 死 者 )에 대한 슬픔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살아남은 자의 의례이며, 사자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공인시키고자 했던 행위로 해석하기도 한다. 52) 또한 이렇게 고인돌에 매 납되는 유물이 대부분 깨진 상태로 출토되는 양상은 한반도의 고인돌뿐 아니라 중국 요령지방의 고 인돌에서도 확인되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러한 의례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53) 광암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모두가 무덤방이나 그 주위에서 출토되어 껴묻거리로 볼 수 있 으며, 석기와 토기류가 다양하게 확인된 계산리 2호와 구룡리 1호, 능강리 1호, 방흥리, 황석리 1 2 5호 고인돌과 비교해 볼 수 있다. 한편 평동과 광암고인돌의 연대문제는 절대연대측정된 자료가 없어 발굴조사된 자료를 가지고 해석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평동 고인돌은 출토유물이 없고 덮개돌 아래의 구조나 입지로 볼 때, 역사시대에 만들어진 제의 관련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해석된다. 광암 고인돌은 출토유물로 볼 때, 세형동검문화와 관련 있는 검자루끝장식이 찾아져 기원전 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연대는 제천 지역에서 조사된 황석리유적을 비롯한 구룡리유적, 능강리유적의 고인돌보다는 상당히 늦은 시기 에 해당되어 주목된다. 52) 相 吉, 1994, 支 石 墓 의 葬 送 儀 禮, 古 文 化 45, 韓 國 大 學 博 物 館 協 會, 113쪽. 53) 하문식, 1999, 앞의 책, 301쪽.
부록Ⅰ 제천 평동 고인돌과 광암 고인돌 암종 연구
제천 평동 고인돌과 광암 고인돌 암종 연구 김 주 용(한국지질자원 연구원) 1. 서언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로5길 46-39번지(37 8 27.44, 128 0 49.94, 평동 고인돌 지점) 와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580-1번지(광암마을, 37 10 53.34, 128 13 26.27, 광암 고인 돌 지점)에서 채취한 5개의 고인돌 관련 시료에 대하여 암석감정과 더불어 기존의 지질도를 참고하 여 고인돌의 모재로서 기원지를 해석코자 하였다(그림 1). 제천 고인돌 암석시료는 제천 평동 고인 돌은 3개로 덮개돌 남(PU-1), 1번 굄돌(PU-2), 5번 굄돌(PU-3)이며, 제천 광암 고인돌은 2개로 덮개돌(KA-1)과 3번 굄돌(KA-2)이다(표 1, 표 2).
부록 l 92 시편번호 사진 위치 암질 PU-1 제천 평동 고인돌 덮개돌 남측 흑운모화강암 PU-2 제천 평동 고인돌 1번 굄돌 흑운모화강암 PU-3 제천 평동 고인돌 5번 굄돌 흑운모화강암 시편번호 사진 위치 암질 KA-1 제천 광암 고인돌 덮개돌 편마암 KA-2 제천 광암 고인돌 3번 굄돌 편마암
9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 지질분포 1) 지질개요 제천분지 일대 산지는 편마암류가 우세하고, 상대적으로 완경사지는 화강암류가 널리 분포하며, 화강암체는 주로 흑운모가 많은 중조립질 흑운모 화강암이 우세하게 분포한다. 제천일대는 선캠브 리아기의 편마암류와 이를 관입한 저반(batholith) 형태로 분포하는 쥬라기화강암(제천화강암), 백 악기 불국사화강암류들이 널리 발달하여 있다(그림 2, 그림 3). 쥬라기의 화강암은 선캠브리아기의 편암 및 편마암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풍화에 약한 암체로서 저구릉성 산지와 충적분지를 형성한다. 화강암류는 기계적 풍화작용에 비교적 약한 암석으로서 풍화시 마사토를 많이 생산한다. 특히 집중 호우시 지형경사면을 따라 이동된 마사토는 하천수계를 따라 하방으로 이동하여 충적 퇴적층을 이 룬다. 제천 시가지는 화강암의 차별적 풍화에 의하여 형성된 제천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기반암풍 화대 산체의 능선사면에서 곡부를 향하여 운반된 쇄설성 퇴적물이 널리 발달하며, 특히 지형경사가 완만해지는 충적대지에는 사력층과 하천범람층이 형성되어 있다. 제천 고인돌 분포 일대의 기반암 지질은 다음과 같다. 2) 고인돌 주변의 기반암 지질 (1) 선캠브리아기(PRECAMBRIAN) 경기변성암복합체 제천일대의 고인돌 분포지역에 분포하는 선캠브리아기(PRECAMBRIAN) 경기변성암복합체는 미그마타이트질편마암(Pemgn)과 호상편마암(Pbgn)이 널리 분포한다. 이들 편마암은 비교적 높은 산지를 이루는데, 전자는 지질도상에서 북쪽 및 북서방향의 제천시와 원주시의 경계부에서 산지지 형을 이루며 분포하는 암류이고, 후자는 북서방향의 제천시와 원주시의 경계부에서 산지지형을 이 루며 소규모로 분포하는 암류이다. 미그마타이트질편마암(Pemgn)은 율리층군과는 공간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분포하는 데, 이러한 연관성으로 미루어 율리층군의 광역변성작용과 이에 수반된 화강암화작용의 산물로 생 각된다. 본 암석은 1.95~1.85 Ga 동안 분천화강편마암을 비롯한 화강편마암의 관입과 관련된 미그 마타이트화작용 및 화강암화작용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사료된다. 한편 호상편마암(Pbgn)은 주로 석영과 장석으로 구성된 우백질대와 흑운모로 구성된 우흑질대가 상호 교호하는 호상구조가 특징이다. 부분적으로 흑운모 외에 각섬석을 함유하는 고철질의 우흑질 대가 관찰되기도 한다. 우백질대는 전형적인 화강암 성분을 보이고, 우흑질대는 주로 흑운모로 구 성되나 석류석, 근청석 및 규선석이 부구성광물로 흔히 산출되며, 후퇴변성작용을 받은 일부 암석
부록 l 94 에서는 녹니석, 백운모 등의 2차 광물들이 흔히 관찰된다. 일부 호상편마암 내에서는 남정석이 잔 류물로 관찰되며, 쥬라기 화강암의 주변부에서는 부분적인 접촉변성작용의 영향으로 흔히 홍주석 이 산출된다. 본 암은 구성광물의 조합으로 볼 때, 다양한 시대를 나타내는 이질 내지 이질사암의 퇴적암 및 화강암질 성분의 관입암체가 심한 변성 및 변형작용을 받아 혼화된 일종의 편마암복합체 로 볼 수 있다. 호상편마암 생성연령에 관한 자료는 화천지역과 용두리 지역에서 2413±21 Ma, 2168±24 Ma의 U-Pb 저어콘 연대, 오대산 지역에서 1907 Ma~2213 Ma 의 207 Pb/ 206 Pb 저어콘 연대 등을 미루어 볼 때, 초기 원생대에 생성되거나 혹은 변성작용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 경기변성암복합체에 속하는 암류들은 편암류, 화강암질편마암(PeG), 반상변정질편마암 등이 분포한다. 이 중에서 편암류는 제천시와 원주시의 경계부에서 미그마타이트질편마암과 제천 화강암과의 사이에서 소규모로 분포하는 암류이다. 주로 운모편암, 석영-운모편암 및 석영-장석편 암으로 구성되며, 규암과 석회암이 협재된다. 대부분의 편암류는 퇴적암기원의 암석으로 미약한 변 성분화작용(metamorp hic segregation)을 받았지만, 일부 편암류는 화강암질 물질의 유입에 의한 부분적인 호상구조를 보이면서 주변의 호상편마암과 점이적인 관계를 보이기도 한다. 이 암석은 변 성도에 있어서는 편마암류와 별 차이가 없으나 상대적으로 화강암화작용 또는 미그마타이트화작용 을 덜 받은 특징을 보인다. 그리고 화강암질편마암류도 제천시와 원주시의 경계부에서 소규모로 분포하는 암류이며, 화강편 마암은 다른 편마암류를 암주상으로 관입형태로 산출하며, 안구상 조직을 보여주고 압쇄변형작용 을 받은 암석이다. 화강편마암의 207 Pb/ 206 Pb 저어콘 연대는 1554±117 Ma로 중기 원생대에 관입한 암체로 알려져 있다. 끝으로 반상변정질편마암은 제천시와 원주시의 경계부에서 소규모로 분포하는 암류이며, 반상변 정질편마암은 다른 고기의 화성암류와 마찬가지로 초기 원생대의 화성활동의 산물로 생각되며, 일 부는 주변의 편암류 및 편마암류들을 광범위하게 관입하여 이들 암석들을 우백질대를 포함하는 안 구상편마암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 암석은 잘 발달된 편마구조를 보여주고 편암 및 편마암류의 포획체를 포함하기도 한다. (2) 함자철석 편마암(Chg) 천둥산층으로도 불리는 본 암은 시대미상의 퇴적변성기원암류로 평동화강암류 주변에서 사질변 성암체로 나타나는데, 연갈색 내지 암갈색을 띄고, 견고치밀하여 엽리구조를 보이며, 자철석의 변 질반정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천중산 남부와 산정부에서 고변질도의 편마암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현미경하에서 주성분 광물은 석영, 사장석, 자철석이고, 부구성 광물은 백운모, 견운모, 미사장석이 며, 취반상구조(glomer opor phyritic texture)를 보인다. 석영은 0.01~0.03mm 내외의 모자익 조 직을 보이며, 기질은 견운모화 된 경우가 많다.
9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3) 캠브로-오도비스기 : 영월형 조선누층군(Os) 본 지질도에서는 제천시의 남쪽과 동쪽의 단양군 일대, 그리고 동북쪽 방향의 영월군 일대에서 북서쪽 일대의 편암 및 편마암류와 함께 제천화강암을 에워쌓은 형태로 넓게 분포하는 암류이다. 영월형 조선누층군을 하부로부터 삼방산층, 마차리층, 와곡층, 문곡층, 영흥층으로 구분된다. 삼방 산층은 영월형 조선누층군의 최하부층으로 영월군 북면, 주천, 어상천 일대에 분포한다. 삼방산층 은 적색, 녹회색, 담갈색 등 다양한 색의 사암, 실트암 및 셰일로 구성된다. 삼방산층의 두께는 400~750m로 보고되고 있지만, 층내에서 반복되는 트러스트 단층과 습곡으로 인해 정확한 두께를 알기는 어렵다. 삼방산층에는 삼엽충을 비롯한 다양한 무척추동물 화석과 코노돈트 화석이 산출되 며, 이들은 중기 캠브리아기를 지시한다. (4) 쥬라기 대보관입암류 : 화강암(Jbgr) 조사지점을 포함한 제천시 일대에서 약 10km 20km 규모의 저반형태로 분포하는 화강암은 편마 암에 비하여 풍화에 약한 암체로서 크고 작은 다수의 하천수계가 발달하는 암체이다. 따라서 이 암 체가 조사지점인 제천시 고명동 구석기유적의 토층을 구성하는 퇴적물의 대부분을 공급하였을 것 으로 판단된다. 대보화강암류는 옥천대 북서쪽 경계부를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분포하는 저반 형 화강암체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제천화강암은 흑운모화강섬록암 내지 흑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되며, 대체로 중립질 내지 조립질이 지만 송학산 일대에 분포하는 흑운모화강암은 세립질 내지 중립질이며 송악산화강암으로 따로 분 류되기도 한다. 제천화강암의 K-Ar 광물연대(흑운모 176.5±2.5 Ma, 186.6±5.4 Ma, 187.0± 9.2 Ma, 미사장석 102.9±4.6 Ma, 127.0±5.5 Ma)와 휘션트랙연대(스핀 142.8±8.2 Ma, 138.6 ±7.8 Ma, 인회석 44.2±2.6 Ma, 54.2±2.8 Ma, 저어콘 63.8±9.7 Ma), 전암과 흑운모 Rb-Sr 자료로부터 202.7±1.9 Ma의 절대연대가 제시되어 있다. (5) 백악기 불국사화강암류 흑운모 화강암류(Kgr)와 반상화강암류(SG) 평동 일대의 본 암류는 흑운모화강암(Kgr)으로서 중립내지 등립질 석리를 보이며, 부분적으로 석 영함량이 없어지면서 화강섬록암상을 보이기도 한다. 지표에 노출되어 풍화되면서 황갈색의 토양 층을 만들며, 현미경하에서 주성분 광물은 석영, 사장석, 미사장석, 백운모, 흑운모, 정장석으로 구 성되어 있다. 부성분 광물은 녹니석, 견운모, 자철석 등이며, 석영은 1mm 크기의 타형과 반자형으로 충식구조(myerkiti c texture)를 보이기도 한다. 정작석은 1~3mm의 크기를 보이며 견운모가 포함 되어 있다. 사장석은 알바이트-칼스바드 쌍정을 보이며, 백운모와 흑운모는 석영과 장석 사이에 거정으로 들어가 있는 양상을 보인다. 녹니석이 간혹 포함되기도 한다. 한편 반상화강암류(SG)는 석영 입자
부록 l 96 의 크기가 커지고, 반상조직을 보이며, 화강암체 내에서 반정은 중심부로 갈수록 크며, 주변부로 갈 수록 작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본 암은 중심부에서는 반정으로서 정장석 크기가 약 10cm 보다 더 큰 경우도 있으며, 봉양면, 두 무실 삼거리, 녹포 등지에서 거정이 잘 나타난다. 대개 반정의 크기는 약 4cm 내외이며, 반정의 색 깔은 담홍색을 띈다. 반정에는 흑운모와 각섬석이 형성되어 있기도 한다. 반상화강은 풍화에 상대 적으로 약하여 지형기복이 적은 낮은 지형을 이루는 수가 많고 절리의 빈도가 큰 편이다. 현미경하 에서 주성분 광물은 석영, 사장석, 전장석, 흑운모, 각섬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운모와 각섬석 은 부분적으로 녹니석화되어 있다. (6) 석영맥(Qv) 석영맥은 변상퇴적암류인 편마암류와 편암류 내에 관입되어 있으며, 고기의 흑운모화강편마암을 형성한 마그마의 잔류용액에 의한 것으로 사료된다. 지역에 따라서는 폭이 약 100m에 달하는 경우 도 있으나 흔히 세맥상으로 엽리를 따라 주입되어 있다. 본 암은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 여 대개 험한 절벽을 이룬다. (7) 제4기(QUATERNARY) 충적 퇴적층(Qa) 충북 제천 일대에는 동쪽 고지대의 산체로부터 발원하는 지류 하천들이 곡부를 따라 서쪽방향으 로 흐르다 세거리를 지나면서 두학천 본류에 합류하며, 이 일대는 충적퇴적층이 넓게 분포한다. 두 학천이 계속 서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흐르는 고암천과 만나 장평천을 이루며, 제천시 청전동 및 강제동 일대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충적층이 발달하고 있다. 한편, 송학면 도화리 일대는 주천강의 지류인 무도천의 최상류부로서 비교적 낮은 구릉지를 이루 고, 서쪽의 낮은 언덕을 넘어가면 의림지 곡부에 이른다. 주천강 지류인 무도천 최상류부에서 서쪽 으로 낮은 구릉지를 지나가면 의림지가 나타나며, 의림지는 용두산 아래 세명대학교 일대에서 발원 한 하소천 하도에 연결되어 있고 호소와 하도퇴적층이 분포한다. 의림지의 양안에는 선상지성 하안단구 역층이 발달하며 하도와 하도 측방에는 암괴들이 분포하 여 있다. 이들은 최종 빙기동안 동결과 융해가 반복되면서 대형의 암괴(block)들이 형성되었으며, 특히 최종 빙기 최말기와 홀로세에 이르러 구릉사면을 따라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의림지일 대의 하도천은 계속 남류하다가 제천시청 부근에서 동쪽에서 서쪽방향으로 흐르는 장평천에 합류 한 후, 장평천은 다시 제천천에 합류하면서 비교적 좁은 충적대지를 형성한 뒤에 제천천은 최종적 으로 충주호로 유입된다. 의림지로부터 장평천이 흐르는 제천시청 사이에는 마치 바둑판 모양의 비 교적 넓은 충적층이 발달하고 있고, 이들은 청동기~철기시대 이후 선사인 생활근거지로 사료된다.
9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3) 고인돌 지점의 지질분포 (1) 제천 평동 고인돌 지점 평동 고인돌 분포지점은 백악기 화강암이 분포하며(1:25,000축척의 제천도폭), 행정구역상으로 제천시 백운면 평동로5길 46-39번지 일대이다(평동고인돌 취지 : 37 8 27.44, 128 0 49.94 ). 본 지점은 제천천의 지류인 원서천과 원박천이 합류하는 북편의 낮은 구릉지 위에 분포한다. 본 지 점은 주론산에서 남서쪽으로 흘러내린 급사면의 최말단부가 삭평되고 남은 잔구성 독립 산지 (280m)에서 남측으로 내려 와서 고도 약 230m 구릉지 남사면에 위치하며, 기반암은 백악기화강암 이 분포하고 있다(그림 2). 본 지점의 고인돌은 화강암의 핵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남쪽 사면부의 세립질 마사토는 지표의 강수작용으로 유실되고 핵석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잔류석 (relict stone)으로 남게 되는 환경이다.
부록 l 98 (2) 광암 고인돌 지점 지질분포 광암 고인돌 지점은 용두산(871m) 남동사면 경사전환부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580-1번지 광암마을 위치한다(위도 : N37 10 53.34, 경도 : E128 13 26.27 ). 본 지점의 해발고도는 약 305m이며, 정북방향으로 용두산(871m), 용두산 서쪽방향에 감 악산(984m), 그리고 용두산의 동쪽방향의 송학산(819m)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북쪽방향으로 높은 산지지형을 형성한다. 용두산의 기반암을 이루는 암석은 호상편마암 혹은 미그마타이트질 편마암으로 구성되며, 이들 의 풍화생성물은 비교적 세립물질로서 의림지의 곡부를 따라 흘러내리면서 의림지에 세립 퇴적물 을 공급하고 있다(그림 3). 또한 의림지 부근에서는 제천화강암이 널리 분포하며, 곡부를 따라 화강 편마암류와 화강암의 차별침식과 풍화물인 마사토가 의림지 내로 유입되고 있다.
9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3. 고인돌 박편 감정 1) 제천 평동 고인돌 (1) 제천 평동 고인돌(덮개돌 남측) : PU-1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일대 평동 고인돌 중 덮개돌 남측부의 암편(PU-1)에 대한 박편관찰 결과, 본 고인돌 암질은 조립질화강암으로 분류되었다. 주요 조암광물들로서는 0.5~2mm 크기의 석영, 사 장석, 흑운모, 녹니석 등으로 구성되며, 퍼어싸이트 조직(perthitic texture)을 보이고 있다. 사장석 은 일바이트 쌍정(albite twin)을 보이며, 견운모(sericitization)가 약간 포함되고 흑운모의 녹니석 화(chloritization)가 약간 진행되어 있으며, 본 고인돌은 미약하게 풍화된 흑운모 화강암 기원의 암 괴(block)로 해석된다. 본 암종의 기원지는 1:25,000 제천도폭의 중생대 백악기 불국사화강암류인 것으로 해석된다(사 진자료 1-1, 1-2 참고). <제천 평동 고인돌(덮개돌 남측 : PU-1) 사진자료> 사진자료 1-1 : 덮개돌 남측(PU-1) 현미경 사진 (close nicole, x25) 사진자료 1-2 : 덮개돌 남측(PU-1) 현미경 사진 (open nicole, x25)
부록 l 100 (2) 제천 평동 고인돌(1번 굄돌) : PU-2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일대 평동 고인돌 중 1번 굄돌의 암편(PU-2)에 대한 박편관찰 결과, 본 고 인돌 암질은 중립질화강암으로 분류되었다. 주요 조암광물은 석영, 정장석과 사장석, 흑운모, 녹니 석 등으로 구성되며, 석영은 벌레구조(vermicular, mymerkite texture)를 보이고 있다. 장석은 견 운모화(sericitization)가 진행되고 있으며, 흑운모의 녹니석화(chloritization)가 많이 진행되어 있 다. 본 고인돌은 보통 정도의(moderately) 풍화작용이 진행된 흑운모 화강암 기원 암괴로 해석된다. 본 암종 기원지는 1:25,000 제천도폭에 나타나는 중생대 백악기 불국사화강암류로 해석된다(사진 자료 2-1, 2-2 참고). <제천 평동 고인돌(1번 굄돌 : PU-2) 사진자료> 사진자료 2-1 : 1번 굄돌(PU-2) 현미경 사진 (close nicole, x25) 사진자료 2-2 : 1번 굄돌(PU-2) 현미경 사진 (open nicole, x25)
10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3) 제천 평동 고인돌(5번 굄돌) : PU-3 제천시 백운면 평동리 일대 평동 고인돌 중 5번 굄돌 암편(PU-3)에 대한 박편관찰 결과, 본 고인 돌 암질은 조립질화강암으로 분류되었다. 주요 조암광물들로서는 0.5~2mm 크기의 석영, 사장석, 흑운모, 녹니석 등으로 구성되며, 퍼어싸이트 조직(perthitic texture)을 보이고 있다. 사장석은 알 바이트 쌍정(albite twin)을 보이며, 일부 사장석은 견운모화(sericitization)되고 있으며 운모의 녹 니석화(chloritization)가 진행되어 있다. 본 고인돌은 약하게 풍화가 진행된 흑운모 화강암 기원의 암괴(block)로 해석된다. 본 암종의 기원지는 1:25,000 제천도폭의 중생대 백악기 불국사화강암류로 해석된다(사진자료 3-1, 3-2 참고). <제천 평동 고인돌(5번 굄돌 : PU-3) 사진자료> 사진자료 3-1 : 5번 굄돌(PU-3) 현미경 사진 (close nicole, x25) 사진자료 3-2 : 5번 굄돌(PU-3) 현미경 사진 (open nicole, x25)
부록 l 102 2) 제천광암고인돌 (1) 제천 광암 고인돌(덮개돌) : KA-1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광암부락 일대에 나타난 광암 고인돌 중 덮개돌의 암편(KA-1)에 대한 박 편관찰 결과, 본 고인돌 암질은 조립질 편마암으로 분류되었다. 주요 조암광물은 0.5~1mm 크기의 석영, 정장석과 사장석, 흑운모, 각섬석, 녹니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석은 부분적으로 견운모 화(sericitization)가 진행되고 있으며, 흑운모는 초기 단계의 녹니석화(chloritization)가 진행되어 있다. 본 고인돌은 미약하게(slightly) 풍화된 편마암 기원 암괴로 해석된다. 본 암종 기원지는 1:25,000 신림도폭에 나타나는 선캠브리아기의 경기변성암복합체에 속하는 미 그마타이트질 편마암류인 것으로 해석된다(사진자료 4-1, 4-2 참고). <제천 광암 고인돌(덮개돌 : KA-1) 사진자료> 사진자료 4-1 : 덮개돌(KA-1) 현미경 사진 (close nicole, x25) 사진자료 4-2 : 덮개돌(KA-1) 현미경 사진 (open nicole, x25)
10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2) 제천 광암 고인돌(3번 굄돌) : KA-2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광암부락 일대에 나타난 광암 고인돌 중 3번 굄돌 암편(KA-2)에 대한 박 편관찰 결과, 본 고인돌 암질은 편마암류로 분류되었다. 주요 조암광물은 전반적으로 0.5~1.5mm 크 기의 사장석, 휘석, 녹니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장석은 석기부(groundmass)를 이루고 있다. 직경 0.1mm 크기의 광물들이 기질부(matrix)를 이루고 있으며, 녹니석화(chlorit ization)가 많이 진 행되어 있다. 본 고인돌은 중등의(moderately) 풍화정도를 보이며, 풍화도가 심하여 암종 감정이 상당히 곤란한 편이나, 암편의 육안관찰 결과 편리구조가 보이며, 또한 고인돌 주변의 지질과 지형 을 고려해 볼 때, 편마암의 암괴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해석된다. 본 암종 기원지는 1:25,000 심림도폭에 나타나는 선캠브리아기의 경기변성암복합체에 속하는 미 그마타이트질 편마암류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사진자료 5-1, 5-2 참고). <제천 광암 고인돌(3번 굄돌 : KA-2) 사진자료> 사진자료 5-1 : 3번 굄돌(KA-2) 현미경 사진 (close nicole, x25) 사진자료 5-2 : 3번 굄돌(KA-2) 현미경 사진 (open nicole, x25)
부록 l 104 4. 논의 및 결론 제천은 북쪽에 용두산이나 주론산 등과 같이 높은 산지가 분포하며 산지의 남쪽사면 말단부를 따 라 암괴(blocks)들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암괴들의 발달은 특히 남한에서는 높은 산지 하단 부 북쪽보다는 남쪽사면을 따라 지표에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다. 암괴들은 기반암의 풍화잔류물로 흔히 나타난다. 현재 제천천 유역 최상류부인 의림지 일대에서도 잔류석으로서 화강암류와 편마암 류 암괴들이 널리 분포한다. 이러한 암괴는 제2의림지 곡부를 따라 널리 볼 수 있으며, 특히 구릉지 말단부의 경사가 완만한 지점에 분포하는 암괴들은 2차적으로 하곡침식을 받아서 일정한 거리로 이동한 암괴들도 볼 수 있다. 1) 평동 고인돌은 원천적으로 화강암 핵석에서 유래한다. 높은 주론산보다는 독립 소산지지의 남 쪽 사면을 따라 세립질 마사토 등이 강수와 지표수에 의하여 널리 유실되고 최종적으로 사면말단부 를 따라 핵석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분포한다. 이러한 잔류석(relict stone)으로 남은 암괴(block)들 은 선사인들이 고인돌 모재로 사용하기에 좋은 자원을 제공했다. 평동 고인돌 분포지역 주변 산지 말단부는 경사가 상당히 완만해지는데, 이러한 지형경사 완만 현상은 최종 빙기와 그 이후의 차별 침식작용으로 사료된다. 고인돌을 사용했던 선사인들은 고인돌 모재로서 주변의 화강암 잔류성 암 괴(block)들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것은 선사인들이 상대적으로 가장 근거리에서 이동 시키면 바로 고인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광암 고인돌은 용두산체를 이루는 편마암 기원의 모재를 이용한 것으로 본다. 광암 고인돌 분 포지점 일대의 지질은 광암부락보다 약 2km 북쪽의 산지방향으로 선캄브리아기 편마암이 분포하 며, 이를 관입한 쥬라기 흑운모화강암(제천화강암; 1:25,000축척의 신림도폭)은 광암부락의 주변에 분포한다. 본 지역에서 고인돌로 활용한 암괴(block)는 박편관찰에서 편마암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이들 편마암은 미그마타이트질 편마암으로 본다. 본 편마암 암괴들은 최종 빙기 이후 기온이 온난 해 지면서 일부 암괴는 세립물질이 지표 침식작용으로 유실되면서 일부는 하방으로 약간 이동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들 편마암 암괴들은 전반적으로 잔류석(relict stone)으로 존속했던 것으로 간 주된다. 특히 광암부락은 상대적으로 지형기복과 경사가 적은데, 이는 용두산 남쪽에 위치하여 상 대적으로 집중호우의 기회가 많고, 미그마이트질 편마암은 지표 침식으로 인해 세립물질이 차별적 으로 유실되는 기회가 많았던 지점이다. 특히 최종 빙기 최말기에서 홀로세에 이르는 동안에 암괴 들은 강수량의 증가로 인해 지표 노출이 더 많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광암부락 일대에서 세립질 풍화물은 최종적으로 제천천 수계가 아닌 주천강 수계유역으로 흘러갔다. 실제로 광암 고인돌 분포지점은 산지의 말단부에서 경사가 상당히 완만해지는 위치에 분포하며,
105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이러한 지형경사가 완만해지는 현상은 차별침식작용으로 사료된다. 선사인들이 사용한 고인돌은 일차적으로 잔류성 암괴(relict blocks)들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것은 선사인들이 상대적으로 근 거리로 이동시킨 후에 고인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선사인들은 지표에 산재해 있던 암괴들을 평동 고인돌 지점이나 광암 고인돌 지점 에서 구릉지 말단부까지 근거리 이동시켜 고인돌 모재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고인돌 모재 는 북측의 산지에서 남쪽의 구릉지 말단부까지 약 1~2km 이내 거리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4).
부록Ⅱ 제천 고인돌 현황표
107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제천 고인돌 현황표 번호 유적명 위치 형식 긴방향 암질 덮개돌 무덤방 크기(cm ) 생김새 크기(cm ) 출토 유물 현재상태 비고 1 제천 계산리 고인돌 1호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 개석식 남-북 점판암 112 108 35 120 65 화살촉 발굴 2 제천 계산리 고인돌 2호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 210 100 화살촉, 간돌검, 민무늬토기 덮개돌 파괴 됨 발굴 3 제천 계산리 고인돌 3호 제천시 청풍면 계산리 170 80 덮개돌은 확인되지 않음 발굴 4 제천 광의리 고인돌 제천시 청풍면 광의리 덮개돌이 없어진 탁자식 남-북 150 175 굄돌은 남쪽과 북쪽에 있는데 그 크기는 각각 남쪽 160 75 55cm, 북쪽 150 54 35cm, 수몰 발굴 5 제천 구룡리 고인돌 1호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294 남-북 화강암질 편마암 262 54 ~184 45 삼각형 190 40 50 화살촉,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조각, 간돌검 조각, 반달돌칼, 돌도끼 발굴 6 제천 구룡리 고인돌 2호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294 남-북 화강암질 편마암 277 170 50 장방형 석기, 숫돌 발굴 7 제천 구룡리 고인돌 3호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294 남-북 화강암질 편마암 180 139 42 장방형 발굴 8 제천 능강리 고인돌 1호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산25-27 번지 일원 바둑판식 북동- 남서 흑운모 화강암 350 200 ~220 62~66 방형 252 126 화살촉, 갈판, 갈돌, 민무늬토기 조각 청풍문화재 단지로 이전됨 발굴 9 제천 능강리 고인돌 2호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산25-27 번지 일원 남-북 흑운모 화강암 232~160 230 46~76 방형 덮개돌 가운데와 동쪽 가장자리 굼이 있음, 청풍문화재 단지로 이전됨 발굴 10 제천 명도리 고인돌 제천시 봉양읍 명도리 124-2 북서- 남동 164 106 화강편마암 60~54 170 50 42 덮개돌 윗면에 3cm 되는 원통모양 2개의 굼이 있음. 긴방향이 냇물과 나란함. 발굴 11 제천 방흥리 고인돌 제천시 청풍면 방흥리 155-1 개석식 편마암 265 260 25 방형 330 150 붉은간토기, 민무늬 토기 조각, 갈돌, 간돌검 등 덮개돌 가운데에 2~18cm되는굼이있음, 충북대학교박물관이전 발굴
부록 l 108 번호 유적명 위치 형식 긴방향 12 제천 성암리 고인돌 1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3 제천 성암리 고인돌 2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4 제천 성암리 고인돌 3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5 제천 성암리 고인돌 4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6 제천 성암리 고인돌 5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7 제천 성암리 고인돌 6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8 제천 성암리 고인돌 7호 제천시 한수면 성암리 19 제천 송계리 고인돌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20 제천 양평리 고인돌 1호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 북동- 남서 21 제천 양평리 고인돌 2호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 북동- 남서 22 제천 왕암동 고인돌 1호 제천시 왕암동 165 북동- 남서 23 제천 왕암동 고인돌 2호 제천시 왕암동 165 암질 흑운모 화강암 석회규산 염암 화강암질 편마암 덮개돌 무덤방 크기(cm ) 생김새 크기(cm ) 출토 유물 현재상태 비고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긴 방향이 강물과 나란함, 수몰 지표 235 153 60 장방형 서쪽 가장자리에는 채석을 할 때 생긴 쐐기 자국, 덮개돌의 남쪽과 북동쪽에는 지름 5~13cm, 깊이 1~4.5cm 되는 굼 7개가 있음, 수몰 지표 330 200 장방형 200 100 대팻날 자연적 파괴로 인하여 3분됨 발굴 148 144 방형 붉은간토기 조각 발굴 342 233 113 장방형 덮개돌의 윗면에 25개, 옆면 에2개굼. 크기는지름 3.0~3.5cm, 깊이 0.5~3.0cm 이고 갈아서 만든 것들이 많음 지표 덮개돌에 굼4개가 있음 지표
109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번호 유적명 위치 형식 긴방향 암질 덮개돌 무덤방 크기(cm ) 생김새 크기(cm ) 출토 유물 현재상태 비고 24 제천 장곡리 고인돌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개석식 남-북 화강암 170 150 47 지표 25 제천 진목리 고인돌 1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남-북 편마암 한변의길이 60~100 방형 북동쪽에 돌덧널의 딸린방이 있음, 수몰 발굴 26 제천 진목리 고인돌 2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남-북 편마암 275 218 75 장방형 130 40 17 수몰 발굴 27 제천 진목리 고인돌 3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남-북 회색 석영반암 180 136 35 장방형 170 70 수몰 발굴 28 제천 진목리 고인돌 4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바둑판식 남-북 편마암 210 200 45 장방형 수몰 발굴 29 제천 진목리 고인돌 5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남-북 편마암 202 190 35 장방형 수몰 발굴 30 제천 진목리 고인돌 6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남-북 편마암 160 130 31 장방형 수몰 발굴 31 제천 진목리 고인돌 7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145 52 수몰 발굴 32 제천 진목리 고인돌 8호 제천시 청풍면 진목리 화강암 150 130 33 수몰 발굴 33 제천 학산리 고인돌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 산17-1 개석식 화강암질 편마암 240 170 64 발굴 34 제천 함암리 고인돌 1호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 서북- 동남 편마암 205 162 80 70 수몰 발굴 35 제천 함암리 고인돌 2호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 편마암 150 115 33 44개의 굼이 있음, 수몰 발굴 36 제천 함암리 고인돌 4호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 남-북 115 70 65 90 45 굽혀묻기, 수몰 발굴 37 제천 함암리 고인돌 5호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 275 100 75 205 85 무덤방이 강자갈로 이루어짐. 많은 토기와 석기 조각 발견됨, 수몰 발굴
부록 l 110 번호 유적명 위치 형식 긴방향 38 제천 함암리 고인돌 6호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 39 제천 함암리 고인돌 8호 제천시 한수면 함암리 40 제천 호운리 고인돌 제천시 한수면 호운리 남-북 41 제천 황석리 고인돌 1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42 제천 황석리 고인돌 2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동-서 43 제천 황석리 고인돌 3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44 제천 황석리 고인돌 4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45 제천 황석리 고인돌 5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46 제천 황석리 고인돌 6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개석식 동-서 47 제천 황석리 고인돌 7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개석식 동-서 48 제천 황석리 고인돌 8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49 제천 황석리 고인돌 9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50 제천 황석리 고인돌 10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개석식 동-서 암질 덮개돌 무덤방 크기(cm ) 생김새 크기(cm ) 출토 유물 현재상태 비고 편마암 210 115 50 160 40 수몰 발굴 190 120 62 점판암제의 판자돌로 이루어진 돌 널, 140 55 긴 방향은 강물과 나란하지만 덮개돌과는 직교, 수몰 발굴 200 146 63 지표 260 180 30 방형 115 90 50 민무늬토기, 간돌검 조각 수몰 발굴 180 160 30 방형 120 50 간돌검 조각, 불에 탄 화살촉, 대사리 조개 동쪽에서 바닥돌과 뚜껑돌이 없는 작은 딸린 돌널이 조사됨 발굴 150 160 20 100 90 수몰 발굴 210 170 20 석촉 수몰 발굴 240 200 60 석촉 수몰 발굴 280 200 40 장방형 180 60 50 간돌검, 석촉 수몰 발굴 (북) 125 50 23 (남) 140 55 50 장방형 간돌검, 석촉 개석이 훼손되어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져 있음. 수몰 발굴 300 190 수몰 발굴 260 180 수몰 발굴 210 50 25 방형 수몰 발굴
111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번호 유적명 위치 형식 긴방향 51 제천 황석리 고인돌 11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암질 덮개돌 무덤방 크기(cm ) 생김새 크기(cm ) 215 120 40 52 제천 황석리 고인돌 12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380 220 45 53 제천 황석리 고인돌 13호 제천시 청풍면 황 석리 동-서 130 80 12 장방형 180 60 30 54 제천 황석리 고인돌 A호 동-서 280 160 40 55 제천 황석리 고인돌 B호 동-서 210 170 50 56 제천 황석리 고인돌 C호 동-서 180 100 30 135 50 40 57 제천 황석리 고인돌 D호 동-서 190 150 35 58 제천 황석리 고인돌 E호 개석식 동-서 170 130 20 59 제천 황석리 고인돌충6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동-서 탄질편암 260 160 25 장방형 195 60 30 60 제천 황석리 고인돌 충7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석회질 셰일 120 120 20 방형 165 45 25 61 제천 황석리 고인돌 충13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석회질 편암 134 109 10 104 28 25 62 제천 황석리 고인돌 충14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석회질 편암 120 100 10 방형 63 제천 황석리 고인돌 충16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운모편암 450 203 50 365 100 출토 유물 현재상태 비고 수몰 발굴 수몰 발굴 간돌검 인골 출토됨. 수몰 발굴 발굴 반달돌칼 발굴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발굴 발굴 발굴 사슴 뼈 북쪽 가장자리에 12개의 굼이 있음, 수몰 발굴 곱은옥, 대롱옥, 소과( 科 ) 동물의 뼈 충북대학교박물관이전 됨 발굴 붉은간토기 조각 수몰 발굴 붉은간토기 조각, 민무늬토기 수몰 발굴 붉은간토기, 가지무늬토기 조각 덮개돌을 채석할 때 생긴 굼이 3개있음, 무덤방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세운 칸막이 돌이 있음, 수몰 발굴
부록 l 112 번호 유적명 위치 형식 긴방향 암질 덮개돌 무덤방 크기(cm ) 생김새 크기(cm ) 출토 유물 현재상태 비고 64 제천 황석리 고인돌 충17호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 동-서 석회질 편암 380 130 45 장방형 181 45 25 간돌검, 돼지이빨, 민무늬토기 조각 수몰 발굴 지표조사만 이루어진 고인돌 12 기 조사현황 발굴조사까지 이루어진 고인돌 52 기 합계 64 기 현재상태 수몰된 고인돌 41 기 번호 유적명 위치 보고서 비고 1 제천 사기리 고인돌 1호 2 제천 사기리 고인돌 2-1호 3 제천 사기리 고인돌 2-2호 4 제천 사기리 고인돌 3호 5 제천 사기리 고인돌 4-1호 제천시 한수면 사기리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1984, 堤 原 沙 器 里 A 地 區 遺 蹟 發 掘 調 査 報 告, 忠 州 댐 水 沒 地 區 文 化 遺 蹟 發 掘 調 査 綜 合 報 告 書. 본 조사지역에서 고인돌로 보이는 대상이 확인되어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유 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았고 또한 큰 돌 밑의 구조가 유구의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크고 작은 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기리 A지구의 발굴 대상이 되었던 것은 고인돌로 보기 힘든 것으로 사료된다. 6 제천 사기리 고인돌 4-2호 참고자료 김재원 윤무병, 國 立 博 物 館, 1967, 韓 國 支 石 墓 硏 究.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1980, 忠 州 댐 水 沒 地 域 文 化 財 地 表 調 査 報 告 書.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1984, 忠 州 댐 水 沒 地 區 文 化 遺 蹟 發 掘 調 査 綜 合 報 告 書. 忠 北 大 學 校 博 物 館, 1985, 忠 州 댐 水 沒 地 區 文 化 遺 蹟 延 長 發 掘 調 査 報 告 書. 이융조 이윤석, 충북대학교 박물관, 1991, 제원 학산리 고인돌 발굴조사 보고, 중앙고속도로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이융조 권학수 강경숙 임동철, 충북대학교 박물관, 1996, 제천 왕암지방산업단지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최근영 이호영 최몽룡 지병목, 한국사학회, 1997, 제천 한수면 송계리 선사유적 조사보고, 사학연구 54. 세종대학교 박물관, 2001, 堤 川 江 里. 세종대학교 박물관, 2002, 堤 川 九 龍 里. 충북대학교 박물관, 2003,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천시. 하문식, 지식산업사, 2005, 남한강 상류지역의 고인돌 문화,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113 l 제천 평동ㆍ광암 고인돌 출토 유물 목록 연번 유물명 도면 사진 연번 유물명 도면 사진 1 검자루끝장식 15 42 2 돌검조각 16 43 3 돌화살촉 17 44 4 붉은간토기 18-1 45-1 5 붉은간토기 18-2 45-2
조사보고서 초록 보 고 서 명 제천 평동 광암 고인돌 발간일 2015년 4월 명칭 세종대학교 박물관 발 굴 기 관 주소 (143-747)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09 전화 (02)3408-3413 팩스 (02)3408-3413 집필ㆍ편집자 조 사 연 유 발굴조사자 유적소재지번 조 사 면 적 하문식 황보경 이상규 문창희 김재은 유가혜 학술조사 하문식 황보경 문창희 김재은 유가혜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평동로5길 46-39번지 일원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580-1번지 일원 300m2 유적종별 시 대 유형및기수 중요유물 특기사항 고인돌 청동기 2기 검자루끝장식, 돌검조각, 돌화살촉, 붉은간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