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 청춘에 답하다 일 시 (목) 13:30~15:00 장 소 -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백남학술관 6층 국제회의실 진 행 - 박원순 서울시장, 교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 초대손님 - 강경루(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국어국문 09) 한세리(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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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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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새로운 사회봉사를 준비하는 한양인 이야기 운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면서 심적으로 부담도 있고,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온라인 교육이 계획 되어있고, 소집교육, 경기에 앞서 최종 리허설 등을 하게 됩니다. - 관중안내 자원봉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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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목차

Transcription:

의 서울이야기

주 제 -, 청춘에 답하다 일 시 - 2012.6.14(목) 13:30~15:00 장 소 -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백남학술관 6층 국제회의실 진 행 - 박원순 서울시장, 교수(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 초대손님 - 강경루(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국어국문 09) 한세리(한양대학교 국악 09) 아르쫌(한양대학교 국제경영 석사 전공) 한 동(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고전시가 석사 전공)

, 청춘에 답하다 안녕하세요. 의 서울이야기 시즌2 특별MC를 맡은 한양대학교 문화인 류학과 교수 입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많은 분께서 제가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는 걸 궁금해하실 텐데요. 대동제로 젊음의 열기가 뜨겁게 불타 오르고 있는 우리 한양캠퍼스에서 서울특별시 시장 박원순, 저의 친구를 모 신 게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우리들의 청춘에 관해 이 야기 나누고, 여러분의 청춘 이야기를 듣는 그런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인생 에서 가장 큰 꿈을 꾸는 시기, 도전과 실패가 두렵지 않은 희망으로 반짝거리 는 시기를 우리는 청춘이라고 부릅니다. 청춘 이란 말을 찾아보면요. 푸를 청 (靑) 자에 봄 춘(春) 자, 푸른 봄입니다. 사실 봄은 푸른색이고 여름은 붉은색 입니다. 한자 말로 주하(朱夏). 가을은 백추(白秋), 하얀 가을입니다. 그리고 겨 울은 현동(玄冬), 검은 겨울입니다. 지금 푸른 봄을 맞은 여러분께 푸른 봄과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이제 백추를 맞은 저와 제 친구가 함께 청춘 이야길 하는 그런 시간을 갖겠습니다.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울특별시 시장 박원순, 제 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아니 그런데 나는 지금도 청춘인데, 봄인데 가을이라고 자꾸 하니. 그렇습니다. 그 기분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사실 이 프로그램은 박원순 서 울특별시장께서 전체 프로그램을 리드해주시고, 아주 많은 분이 함께 이야기 를 나누는 그런 프로그램이라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한양대학교 글 3

로벌다문화연구원이 글로벌 리더십 포럼이란 제목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 다. 물론 학생회와 다른 여러 단체와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리더십과 관련해 우리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은 사실 미국의 여러 매체와도 얘기를 나누 고 있습니다마는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과 특별히 많은 꿈을 함께하실 것으로 생각하고요. 그래서 패널로도 외국인 유학생 친구들도 모시게 됐습니다. 우리 들의 청춘, 우리들의 인생의 봄 이야기를 먼저 박원순 시장과 나눠보도록 하 겠습니다. 우리들의 봄은 사실은 4 19와 5 18 사이에 있었습니다. 잔인한 4월 과 화려한 5월 사이에 있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지금부터 40년 전, 1972 년 10월 유신 이후에 잔혹한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시작됐습니다. 너무 진지하 죠? 여러분 세대하고 사실 그냥 맞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 았습니다. 역사책에만 나오는. 가깝게 있었어요. 저는 뜻하지 않게 아주 일찍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권력하 고 마주치는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가 감옥에 갔거든요. 굉장하죠? 너무 조숙했어요. 전혀 아닙니다. 저는 운동권 아닙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무슨 운동권 일을 하 겠습니까. 사실은 아주 반대였어요. 저는 보이스카우트였고, 게다가 좀 노는 보이스카우트였습니다. 그리고 잘 논다고 바로 그 전에, 72년 10월 유신이 있 기 바로 전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모범 표창을 받고 훈장을 받고 박 대통 령과 악수도 했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면서 효창운동장부터 광화문까지 행 진했던, 어떻게 보면 정신없는 애였습니다. 그런 철없는 서울 학생인 제가 10 월 유신이 딱 터진 다음에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작년에 악수했던 그 대통령 4

이 이런 이상한 짓을 하시다니 싶어서 유신헌법에 대해서 아주 순진한 의문, 질문을 고등학생의 시각에서, 고등학생의 말로 써서 유인물을 만들어서 학교 에다가 뿌렸습니다. 낮엔 못 뿌리고 밤에 몰래 뿌렸습니다. 물론 잡혔죠. 근데 잡히는 순간이 황당했어요. 고등학생이 유인물을 뿌렸는데, 그 시대가 어떤 시대냐면, 헌병들이 착검하고 총칼 들고 트럭 타고 조회하고 있는 우리 운동 장에 들어온 겁니다. 잡혀가서 내가 했던 단순한 행위로 수도 경비사령부 헌 병대로 가고 헌병대에서 다시 서대문형무소로 가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어요. 추웠습니다. 그런 엄청난 일을 겪는 거예요. 그때 같은 반의 박원순이라고 하 는 시골학생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써니 라는 영화 보고 제가 여러 가지 생 각이 났습니다. 써니 의 그 있잖아요, 걔. 시골에서 막 올라온. 그 써니 의 주 인공처럼 박원순이라고 하는 이 친구는 정말 공부만 하는 참한 아이였습니 다. 그런데 양말을 아마 석 달을 안 빨아 신었다죠. 머리 빡빡 깎고 공부만 열 심히 해서 별명이 박사 였습니다. 그 조용한 학생이 옆자리에 있는 친구가 잡 혀갔다고 구출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뭐 큰 활동은 아니었다고 그래요. 저 는 서대문형무소에 앉아 있어서 몰랐어요. 나와서 알았어요. 그러나 그 당시 에 학생회장이다 뭐다 그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마는 사실은 조용하게 공부 만 하던 박원순이 그 구출위원회 를 조직했고, 그런 구원활동을 했단 얘기를 듣고 참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인권 변호사로 성장하는 박원순의 첫 번째 인 권 케이스가 접니다. 그 박원순에 대한 고마움이, 우리들의 우정이, 사실 어떻 게 보면 성장이 굴절될 수 있었던 청춘의 시작, 너무 빨리 당겨진 청춘의 시작 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고생을 했으니까 공부를 제대로 했겠습 니까. 박원순 시장은 그때 시골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고학하느라고 애썼습 니다. 결핵도 걸리고 그랬어요. 저희도 입학시험 한 번 떨어지고 재수했습니다. 여기 명문 대성학원 나온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박 시장은 대성학원 등 록금이 비싸서 그리로 못 갔고. 그런 그 시절에 재수하고, 같이 시험을 봤 는데 박원순이라는 공부 잘하는 학생 뒤에 제가 앉았습니다. 박 시장은 붙고 저는 불합격. 어우, 너무 딱해. 합격하면 뭐합니까. 3월에 입학했는데 5월에 제 5

적당했으니. 이제 박원순의 대학 시절이 시작됩니다. 박 시장! 그때 3월 입학 5 월 제적, 얼마나 깜깜했습니까. 그 얘기 좀 들려주세요. 그땐 사실 구출위원회 이름만 만들었어요. 그 당시에 수도경비사령부는 하늘 을 찌르는 권력 기관이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구출을 하겠어요. 이렇게 여러분 친구들 간에는 우정이 있고, 의리가 있는 거죠? 지금 같으면 제가 수도방위협 의회 의장이에요. 우리 수도방위사령관하고도 저는 친해요. 금방 끄집어낼 텐 데 그때는 그 벽이 너무 컸죠. 이런 친구가 훌륭한 친구죠.(웃음) 너무 심각 하지 않고, 평소에 잘 놀았는데, 그래도 국가의 격랑기에 결코 그걸 외면하지 않고, (유인물을) 뿌린다는 거 그것도 큰 용기입니다. 그랬던 친구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평생의 둘도 없는 친구로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 는 친구로 남아 있으니 이번에도 무슨 행사에 오라는데 안 올 수 있습니까. 바 쁘지만 친구 구출하러도 갔었는데 그렇죠? 여러분, 우리 정교수님이 얘기해주 신 것처럼 저도 재수를, 사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갈 때 한 번, 또 고등학교 에서 대학교 갈 때 한 번, 두 번 했습니다. 몸이 무척 안 좋았죠. 시골에서 와 서는 독서실에서 지냈습니다. 요새 독서실은 보니까 사는 공간도 있더라고요. 근데 우리 때는 잘 수도 없어요. 그냥 책상머리에서 이렇게 잤거든요. 그러니 까 어디 가서 세수를 하고 발을 씻습니까? 그냥 양말 신고 그대로 있었죠. 석 달을 안 씻었더니 냄새도 안 나요. 왜냐면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어서요. 그렇 게 냄새가 안 나도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대학이라고 갔는데 두 달 만에 잘렸 죠. 그때 달리기를 잘했으면 더 멀리 도망갔을 텐데 경찰보다 늦어서요. 저는 긴 방랑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가난이라든지, 수감생활 이라든지, 학교의 제적이라든지 어찌 보면 정말 힘든 고난의 계절이었잖아 요. 근데 사실은 그게 훨씬 더 저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게 한 거 같아요. 저 는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전통 은 우리 청년 세대가 결코 국가의 위기나 나라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 고,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잠깐은 자기에게도 피해 6

가 오고 고통이 따르지만, 지내놓고 보면 그게 그 사람을 훨씬 더 큰 생각을 하게 하고 나라의 인재로 만드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저는 하게 됐습니다. 지금 여기 한양대생 중에도 가난 때문에, 가정형편 때문에 무척 힘든 친구들 이 있을 거예요. 요즘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도 여러분, 꺾이지 마시고요. 또 그 외에도 이런 사회적 문제에 깊이 가담하셔서. 여러분은 여러분 가족만 의 자식이고 아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미 대학생 이에요. (그것은) 이미 역사의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일이거든요. 제가 너무 심각한 말을 하고 있는데 아무튼 용기를 잃지 마세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며 도전하 는 것이 바로 청춘의 표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시죠? 강의하셨습니다.(웃음) 우리 세대는 무거울 수밖에 없어요. 우리 청춘은 이렇 게 무겁게 시작했어요. 저는 무겁지 않았는데 무겁지 않은 사람도 국가 권력 의 그런 엄혹한 존재가 갑자기 다가와서 우리를 심각하게 만들어 준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개인의 문제로 고민하기 이전에 갑자기 국가가 다가와서 국가 의 문제를 먼저 풀라고 얘기를 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어요. 그 건 우리 세대가 스스로 각성해서라기보다도 그 시대의 어떤 상황, 상황이 그 렇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아까 말씀했습니다만, 3월에 입학해서 5월에 제적, 그걸 제가 왜 말씀드리느냐면 박 시장이 학생 운동하다가 잡혀서 감옥 갔다. 이러면 지금의 개념으론 대단한 운동권이라 생각하고, 어떤 진영에 속해서 격 렬하게 데모한 사람으로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현장을 압니다. 단순히 달리기 를 못했을 뿐입니다. 이 경우는 명백하게 3월에 입학해서, 정말 결핵과 싸우면 서 공부해서 제 앞자리의 박 시장 답안지만 봤어도 제가 다른 자리에 있었 을 텐데 저는 행복합니다만, 그때 박 시장이 그렇게 들어간 학교에서 5월에 했던 데모가 서울대에서 캠퍼스를 관악산으로 이전한 다음에 했던 첫 번째 데모입니다. 그 데모에서 미팅 가는 길에, 미팅을 갔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텐 데 미팅 갈까 데모 갈까 그러다가. 7

미팅을 당연히 가려고 생각했죠. 데모야 잠깐하고, 저녁에 약속이 있었으니까. 그때 이대생하고 미팅 약속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잠깐 하고 가려고 했는데 경찰서로 가는 바람에. 그 미팅으로 잘 만났으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 르는데. 그래서 그 당시 유신시대의 독재정치, 군사 권력이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이 상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생각이 납니다. 단순 가담이거든요. 1학년 학 생이 미팅 가기 전에 잠깐 들렸던 데모에서 미처 결핵에서 덜 회복된 박원순 이 잡힌 거예요. 단순 가담자로 잡힌, 현장에서 체포된 1학년 학생 박원순이 바로 감옥살이하고 영구 제적당했는데, 서울대학교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 라 다른 대학으로의 입학이나 회사 취업도 안 되는 겁니다. 청춘이라고 우리 가 얘기하는데 박원순은 어떤 식의 꿈을 펼쳐볼 수 없는, 특히 집안은 가난하 고 시골에서 올라왔고, 저는 그때 다행히 그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에서 떨어져 2차 대학에 가서 방황하느라고 미처 제적을 안 당했어요. 그래서 낭만을 약간 즐겼습니다만, 박 시장! 그때 축제다 하면서 쌍쌍파티하고 낭만을 즐기고 있 을 때 어땠어요, 느낌이? 그런데 교수님이 제 상황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때 감옥에 가서 공부 되게 열심히 했습니다. 완벽하게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곳이잖아요. 거기는 도망갈 까 봐서 불도 안 꺼요. 그래서 허버트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이라든지 또 칼 메닝거의 <자살론> 이런 수많은 책을 다 읽었는데요. 그때 20대에 읽은 책은 잊히질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여러분 감옥은 꼭 가보실 필요가 있는 게, 지금 전 학교를 물론 나중에 다른 대학을 졸업은 했습니다만, 공부는 제대로 못 했죠. 그런데 감옥 대학에서 읽었던 책은 지금도 제 청춘에, 제 영혼에 많 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요. 저는 이렇게 뭔가 절실한 것, 절실한 독서를 20대 에 했다는 게 너무나 소중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20대에 해야 할 일이 참 많지만, 책을 또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한데요, 정 독서 분위기가 잘 안 8

되면 저처럼 가는 것도 괜찮다 (웃음) 당시 제적당한 학생, 제적생 박원순이 감옥이라고 하는 또 다른 대학에서 면 학하고 사실은 감옥에서 나와서 어려움이 있었단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문 득 정선의 등기소장이 되어 있다고 하는 편지가 옵니다. 다른 모든 길이 막혀 있을 때 어떤 틈새 길을 또 발견한 거예요. 어린 나이에 무슨 시험엔가, 하나 열려 있는 시험에 합격해서 시험은 잘 보니까 좌우간 가서 등기소장이 된 겁니다. 그리고 단국대학교 사학과로 입학했죠? 그렇죠. 학교 복학은 안 되고, 그러니까 법원 사무관 시험이라는 게 있었거든 요? 그래서 그 시험을 열심히 공부해서 라면만 먹고 그렇게 해서 됐죠. 갔더 니 그래도 그게 군 단위의 기관장이더라고요. 그때 제가 스물세 살인가 네 살 인가였는데 그것도 참 좋았습니다. 시골에서 기관장 노릇 하면서 참 또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무척 젊은 나이에 본의 아니게 인생 경험을 많이 해서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죠? 그때 저는 이미 군 단위 기관장들하고 같이 놀았으니까 요. 그래서 아무튼 인생이 자기가 꼭 계획했던 대로 안 되는 경우도 참 많습 니다. 어떻게 인생의 설계가 그대로 딱 되겠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엉뚱한 길 을 어찌할 수 없이 운명의 신이 그렇게 인도했을 때는, 또 그 길을 열심히 가 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막 생기고 열리고 그래요. 젊은 시절에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 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이든, 개인적 사정 이든 여러 가지 절망스런 상황이 덮치더라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그런 것들을 겪고 났을 때, 그다음에 오는 어려움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 러분, 고생 사서 하세요. 박원순 시장이 정선 등기소장으로 가 있었고, 저는 서울시 영등포 이런 곳에 서 야학하고 있었습니다. 야간 학교를 하고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유아원을 하는 것으로 저는 대학 시절의 마지막, 청춘의 마지막 시기를 마무리하고 있 9

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유신 독재가 마무리되고 마무리랄까 유신 독재 시 대에 잠시 독재 체제가 정지되면서 서울에도 봄 이라는 잠깐의 해빙기가 있습 니다. 1980년의 봄입니다. 이때 오랫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박원순 시 장에게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80년 봄에 유신시대에 제적당하고 퇴학당한 모 든 사람이 재입학할 길이 열립니다. 서울대 사회계열로 입학했던 박원순은 서 울대 법대로 재입학할 길이 열렸습니다. 거기로 가느냐? 아니면 남은 사법시험 을 마저 보느냐.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졸업할 것인가, 서울대학교 법대 학생 으로서 학벌을 선택할 것인가. 그런 선택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에겐 그런 고 민이 없었어요. 저는 그때 유학을 갔습니다, 마무리를 하고 문화이론을 공부 하기 시작했습니다만. 박원순이 서울의 봄에 선택한 것과 그 이후에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네요. 그렇죠. 그때 여러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저는 대학이 한 번 쫓아냈는데, 그 쫓아낸 대학을 다시 가는 게 마음으로 용납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일단 입학은 했으니 준동창회원이라고 연락은 오는 데 저는 안 갑니다. 사람 이 오기가 있죠. 그래서 복학 안 했고요. 그 대신 참 다행히도 아까 말씀하셨 던 잠깐 열린 그 시기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2년간의 연수원 생 활을 거치고 검사가 됐는데요. 그때 면접 보는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검사 돼 서 데모 안 할 거냐고. 그런 질문도 받았는데요. 근데 제가 한 1년 검사 생활 을 해보니까 권력, 권력이 있잖아요, 제가 스물일곱 살에 검사가 됐는데, 그런 데 과연 이게 인생에서 귀한 존재인가, 귀한 길인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떻 게 보면 권력인데요. 그거보다는 더 힘들고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 가 좋겠다는 생각에 한 6개월 만에 사표를 냈더니 위에 있는 분들이 저보고 조금만 더 견뎌봐라,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도저히 돌 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변호사가 됐는데요. 변 호사 하면서도 이른바 인권변호사가 되면서 참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여기 한 양대생 중에서도 저한테 변론 받은 사람이 많아요. 전부 변호사 비용도 안 내 10

고 지금도 가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있어요. 상당히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 다. 아직도 안 낸 사람 있어요. 그런데 아무튼 미래를 고민하고, 나라를 생각 하는 그런 청년들을 변론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큰 보람이잖아요. 비록 돈은 못 벌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의식이나 이런 것도 더 성장하게 됐 고. 사실은 변론해서 도와준 것도 있었지만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았답니 다. 자원봉사 제도를 학교 학점하고 연결한 최초의 대학이 한양대거든요. 저 는 그것참 위대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 이지만 실제로는 자기한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게 역설이거든요. 여 러분이 누구를 위해서 일한다면 자기 시간도 낭비하고, 자기 돈도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그게 남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거 든요. 그래서 여러분, 봉사 많이 가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에 서울의 봄 시기에 사법시험 합격이라는 게 정말 잠시의 틈새였습니 다. 그 유신 시대의 배경을 약간 설명해 드리는 건데요. 70년대에 시위나 뭐나 이런 걸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법시험 최종 시험에서 합격이 안 됐어요. 서울의 봄, 그 봄에 한 번만 열릴 뿐 그 이후에도 다시 5 18 이후 87 년에 민주화가 될 때까지 사법시험 최종 시험에서 아무도 합격이 안 되었습니 다. 한 번 잠시 열린 서울의 봄 시기에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유명해진 사람이 세 사람 있습니다. 박원순, 조영래 변호사라는 인권변호사, 그리고 문재인. 얼 마나 많은 가능성 있는 사람들을 막아놨는지도 드러나는 일이고요. 그때 서 울대 법대 복학하는 걸 택했다면 아마 미팅하고 뭐하고 나중에 검사나 변호 사 길을 못 갔을 거고 최대로 잘했으면 서울법대 교수, 한양대 법대 교수 정 도. 그것도 힘든 일이죠. 사실 문재인 실장님하고 저 연수원 동기입니다. 그분도 경희대학교 다니다가 데모하다가 감옥도 잠깐 갔다 오고, 아마 여러분은 그때 분위기를 잘 못 느끼실 거예요. 그때는 누구나 감옥 가는 시대였으니까. 또 설 11

사 감옥에 안 갔더라도 그 시절엔 여러분의 부모님께서 참 많은 고생을 하셨 죠. 사우디 가고, 건설회사도 가시고 참, 그래서 여러분은 부모님을 자랑스러 워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나서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 로 보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민주화를 이룬 건 그 시 대의 아픔이 만들어낸 거니까요. 저 이것도 강연하는 건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과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군사독재의 그 무거운 돌에 눌리면서, 아주 무거운 돌이었어요, 그 돌에 눌리면서 그 돌의 틈새에서 어떻게든지 살아내려고 했던, 그렇게 꽃 피우면서 어떤 가능성과 희망을 찾으 려고 했던 그런 청춘이었습니다. 저희들이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이 민주화의 공간 속에서 저희들의 청춘은 풍요의 시대를 사는 여러분의 청춘과 는 그 조건이 다르다고 전 생각하네요. 저희가 여러분과 함께 꼭 읽어보고 싶 은 시가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 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12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여러분과 함께 우리 시대의 청춘, 여러분 시대의 청춘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패널들 모시겠습니다. (자료화면 시작) 학생1 박원순 시장님, 강연 열심히 하세요. 파이팅! 학생2 대학생들이 말하는 안건들 귀 기울여주셔서 잘 반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학생3 좋은 말씀 많이많이 해주시고 가시길 기다릴게요. 학생4 앞으로도 서울시민을 위한 좋은 행정 부탁드리겠습니다. 파이팅! 학생5 시장님,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파이팅! 학생들 시장님 파이팅! (자료화면 끝) 시장님, 영상 보신 느낌이 어떠십니까? 네, 제가 케이팝 가수 정도 된 거 같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13

그래서 오늘 한양대를 대표해서 값진 청춘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 네 명을 이 자리에 초청해봤습니다. 반갑습니다. 각자 자기 소개해 주시죠. 강경루 안녕하십니까. 한양대학교 40대 총학생회장 인문대 국어국문학과 09학번 강 경루입니다. 우선 오늘 이렇게 축제의 현장에 직접 청춘을 즐기러 와주신 박 원순 시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오늘 주제가 청춘이라고 하는데요. 사 실 요새의 청춘들은 가장 빛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아픔도 겪는 것 같습 니다. 오늘 이 자리가 여기 계신 많은 분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동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국 사천성에서 온 중국 유학생 한동이라고 합니다. 반 갑습니다. 3년 전에 한국 고전시가를 배우면서 한양대 국문과로 진학했고요. 지금 석사 2학기에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시장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근데 생각보다 시장님께서 훨씬 더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한세리 안녕하세요. 국악과 09학번으로 거문고를 전공하고 있는 한세리입니다. 제가 이 패널에 뽑히게 된 이유가 아마 시장님뿐만 아니라 서울시에서도 문화에 관 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음대생으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르쫌 안녕하세요. 전 러시아에서 온 아르쫌이라고 합니다. 저는 러시아에서 한국어 를 부전공으로 배웠고, 2010년에 국비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 다. 현재 경영학과 국제경영 석사 2학기 과정에 있고요, 우리 학과 대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글로벌한 패널이 모였죠? 아마 전형적인 의미의 캠퍼스 학생 패널은 아 닐 겁니다. 오늘 이 포럼은 글로벌 리더십 포럼입니다. 그리고 오늘 한양대학교 14

학우 여러분뿐만 아니라 오늘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여러분께 이제 대한민국 의 대학 캠퍼스는 이 시대를 선도하는 이 시대를 앞서 가는 그런 글로벌한 캠 퍼스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출연진) 구성에서부터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한번 마음껏 여러분이 가진 청춘의 이야기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시장님 어떠세요? 이런 패널들을 보니까, 어떤 구성에서. 아까 제가 총장님하고 이사장님 잠깐 뵈었는데, 한양대는 외국인 학생들이 10%가 넘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서울에도 백만 명 정도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가 된 거죠. 이제 여러분의 꿈도 단순히 서울이나 한국 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하더라도 전 세계적인 지구촌 사회를 함께 고민하는 그런 시대가 정말 된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 한세리 양의 경우에는 요 거문고, 국악이 전공이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세종 문화회관에는 국악연주단이 있는데요. 만약에 우리가 서울시향이라든지 서 양음악, 양악에 투자하는 절반의 돈이라도 국악에 투자한다면. 결국 우리 가 자랑할 수 있는 건 우리 것이잖아요. 그래서 국악을 많이 진흥해야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이 정도면 악수 한 번 해야 하는 거죠! 그렇게 중요한 것 같고 요. 또 여기 외국인 유학생 두 명이 와 있는데 이렇게 배워 가면 우리 한국하 고는 무척 깊은 고리로 연결되잖아요. 그러면 정말 한국이, 또 서울이 국제적 으로 함께 가는 그런 도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특히 외국에서 온 우 리 친구들 잘해주셔야 하겠죠? 우리 시장님은 학생들과 글로벌 시대에 대해서 저보다 의식이 있으신 것 같습 니다. 서울시 자체도 대단히 많은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는 곳이 되었고요. 우 리 캠퍼스가 소재하는 성동구에도 많은 외국인 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서울 서부지역과 구로구, 금천구 이런 데도 많은 이주민이 살고 있고, 또 성동구, 광 진구, 동대문구에도 많은 이주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제 서울은 외국인과 이주 민을 의식하지 않고는 시정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캠퍼 15

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캠퍼스도 이제 우리 안에 함께 와 있는 세계인 들과 함께 호흡하는 캠퍼스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시장님, 여기 벌써 2~300명이나 되는 많은 학생이 모여 있습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우리 박원순 시장님과 트친 (트위터 친구)이신 분들 있습니까? 트친 손들어 보세요. 제가 맞팔 해드렸나요? 오늘 참가하신 분들 전부 제가 맞팔 선물하겠습니다. 평소에 대학생들이 시장님께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합니까? 트위터를 통해서. 여러 가지 구체적인 요구도 있죠. 그렇지만 아까 저희들의 청춘을 얘기했습니 다마는 그때는 물리적인 어려움이었지만 지금 현재의 청춘들에게는 참 어떤 마음의 고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 하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무슨 당장 대학 다니면서부터 빚쟁이로 만 드는 이 현실, 취업이 너무나 어려워진 이런 현실, 그런 일들 때문에도 그렇지 만 어떤 제대로 된 꿈조차 꿀 수 없는 그런 세상! 이런 것 때문에 뭐랄까 위로 라고 할까, 함께 가는 동행이라고 할까 이런 힘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 서 저는 시장으로서 등록금을 내린다든지, 등록금을 내려고 은행 융자를 받 으면 이자를 지원하는 일이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새로운 창업을 할 수 있게 사회투자기금을 3천억 원 정도 조성하고 있거든요. 그런 일이라든지, 청년창업센터를 많이 만들고는 있습니다마는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여러분이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고, 여러분 옆에 시장과 서울시도 함께 있다는 믿음을 드리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이제부터 SNS가 아닌 오프라인에서 시장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명찰 저도 달았습니다. 시장님도 달았네요. 사회계열 75학번 박원순, 두 달짜리 75학번. 저는 한국외대 정외과 75학번입 16

니다. 여기 한동 씨도, 회장님도 명찰 달았네요. 명찰 보면 학번과 이름 적혀 있는데요. 시장님은 대학 시절을 회상하면서 질문에 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O, X 판을 들고 있는데요. 모두 앞에 놓인 O, X 판을 드시고 제가 낸 질 문에 즉각 O, X로 대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민할 시간은 안 드리겠습니다. 즉흥적으로 얘기해주세요. 나는 연애경험이 3회 이상이다. 요즘 학생들은 숙 련된 파트너를 찾는다는 그런 소문이 있습니다. 나는 상상했던 대학생활을 하 고 있다. 지금 하는 공부가 적성에 잘 맞는다. 나는 알바의 달인이다. 나는 4 월 11일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유학생들은 투표한 학생들이 부러웠다. 나는 솔직히 우리 학교에 불만이 있다. 어느 학굡니까? 나는 꿈이 있다. 네, 어 떤 꿈인지 곧 들어보겠습니다. 시장님과 학생들의 답변이 정말 흥미진진한데 요. 이젠 구체적인 얘기를 안 들어볼 수가 없습니다. 그 전에 무대 앞에 앞치 마를 한 학생이 앉아 있네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 대동제 축제 때 모든 학생 이 버무려 만든 비빔밥의 시식을 오늘 시장님께 의뢰하는 그런 순서를 마련했 답니다. 최아람 안녕하세요. 저는 한양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애국한양문학학생연합 최아람이 라고 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대한의 땅, 희망의 싹 이라는 걸 준비했는데 오늘 아까 점심시간에 한 행사였는데요. 5인분 기준으로 비벼서 4인분은 학생들이 먹고 나머지 1인분은 학교에서 저희를 위해 고생해주시는 청소해주시는 어머 니들이랑 경비해주시는 아버님들께 나눠드리는, 같이 나눠 먹는 행사를 진행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님께도 1인분 가져다 드린 거예요. 참 맛있습니다. 비빔밥이라는 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이잖아요. 여러 가지 를 섞어서 함께 만들어서 먹는 맛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서로 늘 비빔밥처럼 인생도 살잖아요. 여러분도 그러시죠? 이게 우리가 정말 어찌 보면 참 작은 나라인데도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잘 유지하면서 살아온 원인 인 것 같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사실 점심을 먹고 와서 다는 못 먹고요, 17

그래도 절반은 먹고 갈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비빔밥은 우리 음식의, 우리 음식 문화의 본질, 에센스를 가진 음식이라고 합 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들었고요. 마이클 잭슨이 좋아했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우리 박원순 시장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고요.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 O, X에 대한 본격적인 얘기를 안들을 수 없습니다. 청춘을 즐기는 데 빠질 수 없는 연애인데요. 연애를 3회 이상 해봤다는 질문에 대해서 시장님이 뭐라고 대답하실지, 우리는 보지도 않 고 압니다. 저는 결혼한 몸이잖아요.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죠. 근데 사실은 제가 그렇게 많이는 못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연애라고 하는 것은 인 생을 성숙시키는 일인 것 같아요. 왜냐면 여러분 연애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 잖아요, 그렇죠? 완전히 빠지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그렇고, 나중에 실연을 당하건 어쨌든 헤어질 때도 그 때문에 많은 고통이 있잖아요. 그러고 나서 그 마음고생을 한번 하고 나면 그만큼 자신이 성숙해져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 계신 분들, 세 번은 좀 심했다 그래도.(웃음) 한 번은 확실히 하십시오. 요즘 기본이 세 번인가 봐요. 전원 다 세 번 이상이라고 얘기하셨는데 얘기 좀 들어봅시다. 강경루 예, 저는 많이 했다기보다는 꾸준하게 성실하게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 님께서 많이 연애해봐야 나중에 신붓감을 잘 고른다고 말씀하셔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했고요. 2학년 때 조금은 그런 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저희 과 1학 년으로 들어온 후배랑 연애를 시작해서 지금 2년째 열애 중입니다. 18

지금 하고 있는 사람하고는 안 헤어질 거죠? 강경루 예, 그래야죠. 그렇게 되게. 한동 저도 연애는 세 번 해봤고요. 작년 10월에 결혼해서 지금 중국에 아내랑 딸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여기 들어오기 전에 아르쫌 씨가 여기 한국 와서 예쁜 여 자친구 세 명 만났다고 하는데 저는 지금까지 아름다운 한국 여자친구 한 명 도 만나질 못해서 아쉽습니다. 아르쫌 저는 한국에 와서 한국 여자친구 세 명 사귀었어요. 그리고 알다시피 러시아 여자들 예쁘잖아요. 그런데 한국 여자도 마찬가지로 예뻐요. 사람마다 당연히 차이가 나지만 이렇게 한국 여자와 러시아 여자는 차이가 크게 안 나지만 한국 여자들이 좀 더 이야기를 많이 하면 좋겠어요. 이야기 잘 안 하면 서로 잘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한세리 저도 연애를 세 번 정도 해봤는데요. 연애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데이트 코스 가 물론 청계천같이 좋은 코스가 있지만, 영화관이나 맛집이라든지 카페라는 곳이 되게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말이 데이트 코스지 많은 서울시민들이 문화를 즐기고 재밌게 노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런 데이트 코스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지금 확실히 공약하겠습니다. 데이트 코스 많이 만들겠습니다. 오늘 공약 확실했습니다. 사실 우리 시대는 종점에서 종점까지 버스 타고 가 는 그런 삭막한 데이트였지만, 데이트는 다 좋은 거죠. 일단 서울시장께서 훌 륭한 데이트 코스를 많이 만들어주신다니까 오늘 기대합니다. 상상했던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질문에 아르쫌 학생만 엑스라고 답했는데요. 19

아르쫌 아니 어느 관점에서 보면 상상하는 것보다 저의 한국 학교생활은 더 좋아요.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왜냐면 저는 한국에 와서 재밌는 사람도 무척 많이 만나고, 오늘처럼 시장님도 만날 수 있고, 학교에서도 공부도 잘되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아까 말했듯이 우리 학과 대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관점 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과 문화 차이도 있고 친해지기 어려운 면도 있어요. 다른 학생은 어떻습니까? 상상했던 대학생활 하고 있습니까? 강경루 저는 사실 고등학교 때는 상상하는 대학생활이라는 게 노는 것에 많이 집중 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술도 많이 마시고 싶었고, 친구들이랑 많이 놀고 싶었고, 또 연애도 많이 하고 싶었는데 그런 건 다 이룬 것 같고요. 그리고 그 만큼 많은 책임감이 따른다는 걸 많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지금 자취를 하고 있는데요. 자취할 때 등록금도 제가 벌어서 내야 하고, 학자금 대출도 받 고 있는데 자취비도 마련해야 하고 생활비도 마련해야 하다 보니까 그런 자유 롭게 노는 이면에는 20대에게 주어진 책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역시 학생회장님다우시네. 대학생활이 상상한 만큼 즐겁기만 하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하는 데요. 그래도 다행히 전공이 적성에 맞는다는 데 전원 동그라미를 들었네요. 시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전공을 만족해하고 열심히 하는 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또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꼭 전공대로 살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바뀔 수도 있거든요. 그런 여지를 두고 다양한 인문 20

학적 공부라든지 독서라든지 이런 것들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좀 널리 여러 반찬 을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 연애도 여러 사람하고 하신다면 서요. 지금 한동 학생은 한국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고전 시가를 공부한다고 들었어 요? 한동 한동 예, 맞습니다. 혹시 좋아하는 고전 시가 한 소절 읊어주실 수 있어요?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도 중국처럼 아름다운 고전시가가 있는 것을 처 음 알았어요. 그래서 고전시가를 공부하면서 아름다운 고전시를 많이 배웠습 니다. 오늘 여기서는 향가 <안민가>를 시장님께 낭송하고 싶습니다. 향가 <안 민가>는 한국 고전시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은 아니지만, 정치 이념이 있 어서 제가 소개하겠습니다. 읊어보겠습니다.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린아이라고 하시면 백 성이 사랑을 알리이다. 꾸물거리며 사는 백성이 이들을 먹여 다스려주어 이 땅을 버리고 어딜 가려 한다면 나라 안이 유지될 줄 알지어다. 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며 나날이 태평하나이다. 이상입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안민가 의 뜻을 이렇게 적절한 시점에 적절하게 전달해주셨 습니다. 나는 알바의 달인이다 는 질문에도 대답이 엇갈리네요. 제가 아는 바 로는 제 친구 박원순 시장이 사실 알바의 달인입니다. 본인이 알바를 많이 한 21

게 아니라 무수한 사람을 무급 알바를 시킨, 자원봉사 시키기의 달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는데, 시장님! 시민 사회를 위해서 활동한 경험.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르바이트했거든요. 근데 바로 이 한양대 다리 건너서 성수동인가요? 거기 경마장 옆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한 1년 이상을 아 르바이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그 친구는 중학 교 3학년이었는데 제가 데리고 공부를 했거든요. 저는 그때 집 문제도 해결했 습니다. 입주 과외라는 걸 한 거죠. 월급을 받으면 제가 쓰기도 하고 시골에 있는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단했죠? 그리고 이제 제가 이런 시민사회 운 동을 하면서는 사실 시민사회 운동이란 건 어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처음부터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어떡하든 우리가 세상에 좋 은 일을 꿈꾸고 나면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람을 모아야 하고, 그다음에 돈을 모아서 사업을 벌이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람들 모셔다가 공짜로 일을 시키는 게 아주 제 전공이 되었어요. 그 래서 협찬 시장 이라는 말도 들었는데요. 사실은 여러분, 보시다시피 제가 아 름다운재단, 참여연대에서 일할 때 수만 명이 와서 회비를 내주시고 자원봉사 도 하시고 그중에서 일부는, 교수님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재능을 빌려주셨 거든요. 지금 경영대 학장을 하신 예종석 교수님이 아름다운재단 이사로 많이 도와주셨죠.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하면서 저는 이런 교훈을 얻게 됐어요. 세상 에 작은 것을 버리면 작게 얻고 큰 것을 버리면 큰 것을 얻고 다 버리면 온 세 상을 얻는다. 그래서 아까 우리 학생회장님하고 밖에서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마는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인생에서 어떤 방향을 정할 때 이런 기준을 가지 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 가장 높이 올라가고 싶으면요 가장 낮은 곳으 로 내려가서 여러분의 인생을 시작하면요 자기도 모르게 자기가 원하지 않 는데도 높이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제가 그렇잖아요. 제가 정말 서울시장 하 기 싫어서 도망을 얼마나 다녔는지 아세요? 이번 보궐선거 말고, 그 지난번 선 22

거에서도 많은 사람이 저 보고 서울시장 나오라고 하기에 제가 어딘가에 가 있었는데 쳐들어와서 그랬거든요. 그래도 안 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 니까 이렇게 돼 있더라고요. 대학생에서 대는 큰 대(大)자잖아요. 큰 대 자, 큰 학문을 여러분이 배우는 거죠. 그런데 출발을 삼성전자나 행정고시 공무원 이 런 것에서 시작하고 싶으시죠? 그것보다는요. 더 낮은 곳으로 마을의 이장 같은 거 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그렇게 10년만 봉사해 보세요. 여러분, 그러 면요. 제가 보기엔 시의원 저절로 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봉사하고 배려하는 데 안 해줄 리가 있습니까? 아니 오히려 하라고들 막 돌아다닐 거예요. 저는 우리나라에 그런 공공적 지식인들이 많이 나오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 방송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많은 분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이 자리에 와계신 분들이잖아요. 벌써 이삼백 분 이렇게 계시는데요. 여러분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시장님, 괜찮으시죠?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께서 박원순 시장님께 직접 질문도 드리 고, 여러분께 멘토링을 받을 기회도 드리겠습니다. 지원할 학생은 손들어 보실 래요? 지원하실 학생? 여러분, 첫 번째로 서울시가 정한 청년명예부시장님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분은 바로 김영경 부시장님입니다. 한양대학교 신방과 선배 이시기도 한데,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으로 최근에 선정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영경 안녕하세요. 제가 학생도 아닌데 먼저 손을 들게 돼서 죄송하고요. 저는 한양 대 안산캠퍼스의 신문방송학과 99학번 김영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사 실 저도 지금 박원순 시장님 말씀처럼 이런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다가 청 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족하지만 조금 활동을 한 게 공로를 인정받아 서 올해 2월에 청년명예부시장으로 위촉되었어요. 그래서 내년 2월까지 청년 들의 목소리를 열심히 듣고, 서울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방금 교수님 말씀처럼 저도 대표적인 무급 자원봉사자입니다. 저도 지 금 시장님에 의해서 무급으로 명예부시장을 하고 있지만, 돈을 떠나 많은 보 23

람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은 것 같고 어쨌든 임기가 끝날 때까지 권력을 남용해야겠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고요. 사실 오늘 저도 시장님은 자 주 뵙질 못해서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는데 옆에서 시장님이 살아오신 길이 나 걸어온 길을 들어보니 전 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장님이 제가 생각했 던 상상 이상으로 많이 좀 귀여우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보신 분들도 혹 시 그렇게 느끼시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오늘 저는 인간적인 면을 배울 수 있 어서 좋았던 것 같고요. 그럼에도 저는 서울시 명예부시장으로서 서울시의 입 장에서 얘기하기보다는 저와 같은 눈높이에 있는 저의 후배들, 청년들의 입 장에서 몇 가지 시장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장님께서는 아까 고생은 사 서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큰 걸 버리면 더 큰 걸 얻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요. 저도 그 말이 다 맞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은 지금의 청년들이 단순히 희망을 얘기할 수만은 없는 사회적 현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래서 제가 명예부시장으로까지 위촉된 거 같은데요. 제가 명예부시장으로 처 음에 위촉을 받고 나서 생각했던 건 서울시를 청년시로 만들겠다는 거였어 요. 그게 저 혼자 힘으로는 할 수는 없고, 여기 계시는 후배분들의 도움이 당 연히 필요하지만, 거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울에는 청년들 이 50%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그런 청년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서울시가 되 었으면 좋겠고, 청년들이 만끽하는 이 봄을 모든 시민이 같이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 청년시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옆에서 시정이나 이런 걸 좀 지켜볼 때 여전히 청년들이 희망을 얘기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물론 그건 단 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래서 저는 청년들이 희망을 말할 수 있게 하려면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시장님께서 시정을 펼쳐 나갈 때 그런 사회 구조와 틀을 함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아 까도 부분적으로 얘기해 주셨지만, 원대한 구상이나 계획을 좀 더 얘기해주시 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 계신 선배님 말씀도 있었고요. 여기 계신 재학생 중에서 누구 한 분만, 24

시간상 한 분만. 학생 저는 되게 많이 질문할 줄 알고, 질문하면 안 될 줄 알았는데 (손을) 들었습니 다. 빨리하겠습니다. 시장님, 혹시 아바타란 영화 보셨는지요. 아바타를 보면 인간과 외계인이 서로 싸우잖아요. 그런데 그 인간이 외계인 편을 들거든요. 외계인의 편을 들고 외계인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되는데 저는 이 지구 에서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동물의 관점에서 인 간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 세상을 쓰 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어쨌든 그런 관점에서 보면 환경 문제가 여러 가지 발생할 수 있잖아요. 근데 그것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도 서 로 대립해서 싸우고 그러는데 제가 질문할 건 뭐냐면요. 제가 뜬금없이 이 질문을 드리면 이해를 못 하실 거 같은데.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제가 말 못 하는 동물의 편을 들고 있는 거 아시죠? 돌고래인 제돌이를 본래 살고 있던 제주도 앞바다로 보낸다는 거 들 으셨잖아요. 그다음으로 청계천에서 힘들게 마차 끄는 말, 이거 좀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경찰에 건의해서 거의 실현될 단계에 있거든요? 대변하고 있잖아요, 제가. 학생 그러면 제가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 세상에 대해서 인간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게 하나가 있거든요. 그게 어떤 것이냐면요. 출산장려정책이에요. 출산장 려정책은 모든 인간이 장려해야 하다고 하는데 동물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들 이 출산을 장려하는 게 어떻게 보면 되게 자기 욕심이거든요. 그렇게 보는 것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간단히 답변 드릴까요. 어떤 자연과 동물을 그들의 관점에서 보는 건 무척 중 요합니다. 인간의 관점, 물론 그게 없을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그것은 조화를 25

이루어야 한다고 봐요. 자연의 파괴 라고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환경 문 제가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생겼잖아요. 이러한 점에서 아주 중요한 지적을 해 주셨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제가 굉장히 해설을 잘하죠? 그리고 우리 김영경 부시장님은 확실히 부시장님 노릇을 하고 계십니다. 왜냐면 저한테 굉장히 쓴 소리를 하신 거잖아요. 김영경 부시장님은 여러분의 자랑스러운 선배이시기 도 한데요. 이렇게 임명한 것은 이런 한 두 가지 구체적인 정책도 중요하지만, 여러분 세대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고민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 도 덜 수 있을지를 늘 대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고요. 저는 지금 늘 현장 을 강조하고, 또 말하자면 수요자라고 할까요? 이런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청년 문제는 청년 여러분이 꿈꾸는 것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여러 정책을 만들어야 해결되는데 그것 은 저희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장이나 시 공무원들한 테만 맡겨놓을 일은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이런 걸 만들어 전해주시면 얼마든 지 저희들이 실천하겠습니다. 아까 제가 여러분께 트위터에 맞팔 해드린다고 했 죠?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요. 맞팔을 하면 다이렉트 메일이 가능해져 저한테 직접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겁니다. 여러분과 함께하 겠습니다. 벌써 시간이 다됐습니다. 소통은 역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만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고, 소통의 물꼬를 튼 것만으로도 이 자리가 의미 있 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한번 청춘에 대해서 저희 시대의 청춘을 열어 보이는 데 그 시간을 좀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청춘을 갖다가 열어 보여 주 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청춘은 무엇이다. 그 앞에 있는 종이에다 빨리 쓰 셔서 한번 들어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청춘은 무엇이다. 사실 자유와 풍 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동체는 상실됐고 관계도 상실됐고, 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의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시대마다 과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청춘, 청춘은 그 나름대로 각각 26

그리는 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이 듭니다. 나에게 청춘은 무엇이다, 한 마디로 크게 써주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모두 쓰셨으면 크게 들어주시겠어요? 자, 들 어봅시다. 시장님도 들어주시죠. 나에게 청춘은 무엇이다? 꿈이다, 흔들림이 다, 과제다, 고뇌다, 도전이다, 아침밥이다, 터널의 빛이다, 카페인이다, 색연필 이다 많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다, 두통이다. 나에게 청춘은 두통이다. 아, 공감! 나에게 청춘은 노숙인이다, 잔상이다, 우리 시장님 열정이 다, 마라톤이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시장님, 어디 마지막으로 시장님이 정하 신 우리들의 청춘이야기를, 나에게 청춘은 열정 이라고 쓰신 시장님의 선창에 의해서 각각 자기가 쓴 얘기를 가장 크게 들리도록 소리 지르면서 오늘 이 자 리 끝내겠습니다. 자, 시장님, 선창하시죠. 나에게 청춘은 이렇게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다 얘기하세요. 나에게 청춘은! 학생들 (각자 크게 외침)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한양대 학생들이 시장님께 드리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거 시장실에 붙여놓고 매일 아침 읽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시장님께 과제, 숙제를 또 드리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시간 함께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