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제 6 호 2012 년 12 월 차례 目次 務安屯田舊石器遺蹟의性格 吳炳旭 / 6 全南地域高麗時代土壙墓一檢討 張成一 / 32 羅州地域瓦窯檢討 李景琳 / 54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大澤正己 金想民 / 84 터키연수후기 金在勇 / 112
務安屯田舊石器遺蹟의性格 吳炳旭 目次 Ⅰ. 머리말 Ⅱ. 유적의위치와환경 1. 유적의위치 2. 자연환경 Ⅲ. 조사방법과층위 1. 조사방법 2. 층위와문화층 Ⅳ. 석기분석 1. 유물의분포 2. 돌감의구성 3. 석기의구성 Ⅴ. 유적의성격및편년 Ⅵ. 맺음말
제 6 호 務安屯田舊石器遺蹟의性格 吳炳旭 *1) 국문초록 둔전구석기유적은무안군서쪽에위치한운남면에속하며, 내륙과도서를잇는교두보적인반도형지형의중간지점에자리한다. 유적의지층은기반암풍화토층위에 4매의색이다른찰흙층이퇴적되어있고, 문화층 (Ⅳ층: 적갈색모래질찰흙층 ) 의형성시기는약 30ka B.P. 경한랭건조해진기후하에서형성된사면붕적층이다. 유적에서는총 270 점의유물이출토되었고, C칸과 D칸은석기의출토량, 몸돌, 격지, 붙는유물등을볼때석기제작이가장활발하게이루진칸으로보인다. 특히다양한유형의붙는유물은석기제작기술과과정을보여주는좋은자료이다. 유적주변에는대규모하천이거의발달하지않아자갈돌을구하기어려운조건이나조사지역주변암질분포에서석영맥암이발달하고있어, 둔전유적구석기시대인들이석재를획득하고, 석기를제작하기원활하게해주는좋은조건을제시하였고, 이러한환경적인영향은석기의구성과제작기법에서도잘나타나고있다. 망운반도에조사된구석기유적의특징은내륙의유적들과달리넓은지역을자원획득의지리적영역으로활용함으로써유물의분포가집중되기보다는소량의유물군들이넓은지역에퍼져나타나는양상이다. 이러한자연환경적인영향으로이지역에거주하였던구석기인들이한지점에지속적으로거주하지않고단기간에걸쳐점유했던장소로활용한것으로생각된다. 주제어 : 망운반도사면붕적층, 문화층, 토양쐐기, 잔손질석기, 붙는유물. * 전남문화재연구원조사 1 팀장교신저자, 이메일 : obu-gamja@hanmail.net 6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Ⅰ. 머리말무안둔전구석기유적은 2006년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실시한 문화유적분포지도-전남무안군 - 를작성하는과정에서보고된이후, 무안운남-망운도로건설공사로무안하묘리옹기요지 1 개소와무안하묘리두곡유물산포지, 무안하묘리둔전유물산포지Ⅰ Ⅱ에대하여 (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 2009 년 6월부터 8월까지시굴조사를실시하였다. 시굴조사결과, 두곡유물산포지에서지석묘, 석곽묘, 분구묘등이확인되었고, 둔전유물산포지Ⅰ에서는삼국시대주거지와기와가마가확인되었고, 둔전유물산포지Ⅱ에서는구석기시대문화층과청동기시대주거지가확인되었다. 시굴조사결과에따라발굴조사는 2009 년 11월부터 2010 년 8월까지진행되었다 ( 송미진 전명훈 김민정 2012).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은행정구역상전라남도무안군운남면하묘리둔전마을일원에해당되며, 구석기시대문화층은둔전유물산포지Ⅱ의 1지점에서확인되었는데, 이글에서는둔전구석기유적으로부르고자한다. 본문에서는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위치와환경과지층과문화층의분석을통해유적의형성시기를파악하고자하였고, 퇴적층에대한분석과발굴된석기의형태와석기갖춤새에서나타나는특징등을통해유적의성격에대한접근을시도하였다. Ⅱ. 유적의위치와환경 1. 위치와자연환경무안둔전구석기유적이위치한무안군은전라남도서부중앙에자리하며, 동쪽은영산강을건너나주시와영암군, 남쪽은목포시, 북쪽은함평군과인접하고, 서쪽은신안군의여러섬들과마주한다. 무안지역은육지와도서를막론하고해발고도 400m 이하의낮은구릉과평지가대부분이다. 노령산맥의한지맥이비옥한나주평야를지나한반도남서쪽끝에망운반도를형성하고다시이곳에서해제반도와망운반도로나누어진다. 해안은침강해안으로굴곡이심하나간만의차가크고바다가얕기때문에남단의목포항을제외하면항만의발달이거의없다. 무안군은크게서해와인접한반도형지역과노령산맥의지맥을중심으로바다와강에인접한내륙지역으로나눌수있다. 내륙지역은다시노령산맥의지맥에의해동쪽과서쪽으로나누어진다. 내륙의서쪽은서해를사이에두고신안군의여러섬과청계면 삼향면일부가마주하고무안읍은함평군과접하고있다. 또한서쪽으로바다를접하고동쪽은남-북으로뻗어있는승달산 (317.7m) 의높은봉우리들을경계로몽탄면과접해있다. 이중청계면은승달산을경계로동쪽은산지이고서쪽은서해와접해있는평야지대이다. 반면삼향면은승달산지맥들이곳곳에뻗어있어평야보다는주로산으로이루어졌다. 내륙의동쪽은영산강을중심으로몽탄면 일로읍 삼향면일부가해당된다. 이중일로읍과몽탄면은영산강본류를따라몽탄면일대와경계를이루고있다 ( 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7
제 6 호 그림 1.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위치및주변환경 ( 유적위치 : ) 8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그림 2. 유적의위치및주변유적현황도 9
제 6 호 무안군의하천은대소 15개의하천이있기는하나특별히발달한하천은없고, 대신영산강이차지하는비중이상대적으로크다. 주요하천으로는남창천, 다래천, 청수천이있다. 해안선은총연장 198.3 km의거리로매우복잡하며, 해제 운남 망운 현경면의경우는조그마한반도형지형으로삼면이바다로둘러싸여있고, 크고작은다리를놓아육지와연결시키고있다. 이들반도형지형들은대부분이해발 10~20m 의낮은구릉지대로해안에펼쳐진갯펄과함께이지역주민들의생업을半農半漁의형태로만들고있다. 무안군의지질구조는대부분화강암그리고화강암질편마암을주로하는산성심성암류와화성기원의변성암류가널리분포하고있다. 선캄브리아기로추정되는화강암질편마암을기반암으로하여쥐라기흑운모화강암이관입하고있으며, 그위를중생대백악기의경상누층군의유천층군에대비되는화산쇄설성퇴적암류가부정합으로피복하고있다. 백악기의퇴적암류로는주로유문암, 응회암, 안산암, 사질암이있으며이시기에일부석영맥암이관입되어있다. 이들사이의저지대와낮은구릉사면에는신생대 4기의퇴적층이기반암을부정합으로덮고있는데퇴적층들은사면붕적퇴적, 하성퇴적, 하해혼성퇴적의기원을갖는다. 이러한지질환경은쥬라기흑운모화강암류의경우풍화와침식에의하여이지역의전체적인지형을저평한구릉지대를이루게하였고, 기반암위을덮고있는신생대 4기의점토층과충적층은이일대의황태지대를비옥한농지로만들었다. 또한백악기에쌓인화산쇄설성퇴적암과이시기에관입해들어온석영맥암은구석기시대에석기를만드는재료로이용되기도하였다. 둔전구석기유적은내륙과도서를잇는교두보적인위치에바다를통해들어오는외부문화와교류가활발했던곳으로선사시대이후여러시대동안다양한성격의유적이형성될수있는지리적조건을지니고있다. 2. 유적의입지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이위치한망운반도는동쪽에무안만이위치하고, 남서쪽에는압해도가위치하여동쪽과서쪽에좁은만입구를갖는반폐쇄적인해안지역에해당된다. 남쪽만입구에는장을도와늘도, 달리도등의섬이보호섬의형태로만입구를가로막고있고, 남서쪽으로는목포구를통해영산강과영암만, 해남만이연결되어있다. 조사지역은삼면이바다로둘러싸인반도형지역으로지형적으로내륙과도연결되어있어유리 10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한지리적입지를가지며, 해발고도 30m 미만의저구릉성산지가발달하였다. 해발고도가낮고, 산지규모가작아수계의발달은빈약하나조간대 1) 와연장되는곡저부를따라소하천이발달하여직접바다로유입된다. 이들하천을따라소규모충적평야가발달해있다. 조사지역에대한지질학적측면에서볼때남서방향으로경사지는정상부부근에위치하고있다. 지형분류에있어산정상부의평탄지인하간지 (interfluve) 에인접하여나타나는완만한경사의凸形사면인삼출 (seepage, 滲出 ) 경사지에해당한다. 하간지 ( 河間地 ) 와는달리이지형면은수직적인물의흐름이사면경사도의증가에따라수평적인흐름으로대체되며, 그에따라하간지에서집적된물이토양내부에서흐르는지표하수 (lateral subsurface water movement) 가중요한토양및지형형성작용이된다. 사면하부의凹形사면 (concave slope) 에비해토양의집적율은현저히떨어지나하간지에서형성된토양이지속적으로운반, 집적이일어나고전술한지표하수에의한토양화작용이진행되는지형면이다 ( 송미진 전명훈 김민정 2012). Ⅲ. 조사방법과층위 2) 1. 조사방법 발굴범위는국지도 77호선과나란한방향으로길이약 65m, 너비약 18m로그면적은약 1,170m2 ( 약 355평 ) 이다. 구획작업은시굴조사시넣어진트렌치방향과평행한방향즉북동-남서방향으로 5m씩나눠 A~L 의칸이름을주고, 이에수직방향으로 5m씩끊어서 1~3의번호를주었다. 그래서각칸의이름은 A1칸, B2칸, C3칸등으로붙여졌다. 그리고흙나르는길을마련하고, 지층흐름을고려해 1m 둑을남겼는데, 등고선방향으로긴둑을설치하여전체적인지층흐름을파악하였고, 각칸의경계에짧은둑을설치하여세부적인지층흐름과변화를파악하면서조사를실시하였다. 조사는 A2, 3칸부터 B칸, C칸 순으로해발이높은칸에서낮은칸방향으로작업을진행하였다. 1) 만조때의해안선과간조때의해안선사이에해당되는부분을말한다. 2) 무안둔전 두곡유적보고서내용을일부수정 발췌하였음을밝혀둔다. 11
12 제 6 호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그림 3. 발굴칸구획도및유물분포도
2. 지층과문화층 한국구석기유적에서석기가출토하는퇴적층은각유적의입지조건에따라몇가지유형으로나누어볼수있다 ( 한창균 2003). 그것을크게구분하면, 1 큰물줄기유역에분포하는단구위의퇴적층, 2 바닷가언저리에분포하는단구위의퇴적층, 3 기반암위에직접놓여있어, 하부에해상퇴적층이나하성퇴작층이존재하지않는구릉지대 ( 또는평지 ) 의퇴적층, 4 하부에유기물포함층과같은수성퇴적이존재하는지층위에발달된구릉지대, 5 한탄 ~ 임진강유역처럼용암대지위에형성된퇴적층등이다. 둔전구석기유적의지층은유적이형성된이후반복된침식과밭으로경작되면서상당한부분이사라진것으로짐작된다. 하지만유적에서형성된층위는기반암풍화토층위에 4매의색이다른찰흙층과표토층이퇴적되어있는양상이다. 무안둔전구석기유적에형성된퇴적층은바닷가언저리에분포하는단구위에형성된퇴적층으로볼수있으며, 4매의찰흙층은고토양층으로사면퇴적층에해당된다. 일반적으로해성혹은하성단구면위에분포하는충적퇴적층은최하부에사력층이분포하며, 이들은하천유수작용으로형성되었다. 이후침식기준면이하강함에따라사력층상부에구릉지대로부터다양한각력물질 ( 니류, 암쇄류등질량류 ) 의이동등에의해사면퇴적층이형성된다 ( 김주용 이기길 양동윤 홍세선 남욱현 이진형 2004). 이러한사면퇴적층은상부로갈수록더추운기후환경을의미하는토양쐐기와토양엽상구조등과같은결빙구조 (cryogenic structure) 를포함하는고토양층으로변화된다. 즉유적에형성된지층은표토층을포함하여 4매의고토양층과최하부화강암질편마암풍화대로형성되어있다. 퇴적된순서를보면표토층 (Ⅰ층) 암적갈색찰흙층 (Ⅱ층, 5YR 3/6) 갈색찰흙층 (Ⅲ층, 7.5YR 4/6) 적갈색모래질찰흙층 (Ⅳ층, 2.5YR 4/6) 적색모래질찰흙층 (Ⅴ층, 10R 4/8) 기반암풍화토층 (Ⅵ층) 순으로퇴적되었고, 지점에따라층의수와두께에서는약간의차이를보인다. 조사지역에형성된지층에대한토양분석과고환경연구를살펴보면아래와같다 ( 송미진 전명훈 김민정 2012). Ⅰ층은표토층으로현재경작이이루어져식물뿌리흔적이관찰되며, 유기물이다량함유된층이다. 13
제 6 호 Ⅱ층은간헐적인퇴적작용으로형성되었으나, Ⅱ층이형성된이후부터는퇴적작용으로조사지역의지형면이매우완경사의사면부로평탄화됨에따라더이상의토양집적은일어나지않고현재에이르게되었다. Ⅲ층상부는홀로세에접어들면서기후가온난해지고조사지역은광범위한토양침식이발생하고이에따라 3층의상부가제거되었고, 약 13ka B.P. 경에이르러쇄설류에의한퇴적작용이발생하여 Ⅲ층상부가형성되었다. Ⅲ층하부는산소동위원소 2기인최후빙기최성기에이르러서도쇄설류형태의풍화산물의유입이간헐적으로발생하였고, 층은약 18ka B.P. 경에형성되었다. 퇴적후주빙하작용에의한결빙구조가형성되었다. Ⅳ층은약 30ka B.P. 경에이르러서는더욱한랭건조해진기후하에서부분적으로물리적풍화작용도일어남에따라조립질의풍화산물이입자류의형태로공급, 퇴적되면서형성되었다. 이시기에구석기인의활동이조사지역을중심으로전개되었다. Ⅴ층은토양의생성과함께지속적인사면하부로토양이침식, 운반됨에따라조사지역은산정상부와인접한凸形사면인삼출경사지로변모하였다. 이시기는약 60ka B.P. 를넘지않는약 48ka B.P. 이전부터시작되었으며고도로풍화된토양층이쇄설류와같은중력류의퇴적기작으로집적되기시작하면서형성되었다. 이시기는산소동위원소 3기로서빙하기로접어들면서보다한랭건조한기후로변모하면서공급되는화학적풍화산물의양이점차감소하였다. Ⅵ층은최하부의선캠브리아기화강암질편마암풍화대로산소동위원소 5e~5a 에이르는간빙기 ~ 아간빙기동안고온다습한기후조건에서풍화작용을받아고령석을포함한풍화생성물을다량생성하였다. 이때조사지역은저구릉성산지의산정상부를형성하고있었다. 따라서조사지역에형성된제4기지층 ( 고토양층 ) 은구릉성지형에서형성된암반의풍화생성물이반복적인사태작용에의한쇄설류와부분적인입자류의퇴적기작으로완사면부에소규모로형성된붕적층이다. 14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그림 4. 무안둔전구석기유적기준층위단면도 절대연대측정의경우발굴조사시확인된대표단면 (E1칸동벽 ) 에서토양시료를채취하여 OSL연대를측정하였다. 유적의지층과연대값에대한결과는 < 표 1> 과같다. < 표 1>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지층과절대연대측정값 지층번호 지층이름 문화층 특징 연대값 Ⅰ 표토층 Ⅱ 암적갈색찰흙층 Ⅲ 갈색찰흙층 Ⅲ층하부 : 토양쐐기시작 상부 : 13ka±1 B.P. 하부 : 18ka±2 B.P. Ⅳ 적갈색모래질찰흙층 문화층 토양쐐기미약하게연결 62ka±4 B.P. Ⅴ 적색모래질찰흙층 토양쐐기끝남 상부 : 48Ka±5 B.P. Ⅵ 기반암풍화토층 15
제 6 호 절대연대측정값의결과를보면 Ⅳ층의연대값이하부인 Ⅴ층보다이른시기로절대연대값이도출되었다. 하지만토양분석과퇴적양상을볼때 Ⅳ층에서부터기반암에이르기까지이전시기에발달한뚜렷한결빙구조는관찰되지않고있어조사지역의퇴적층은두번째결빙구조의형성기인산소동위원소 4기 ( 약 75,000~60,000B.P.) 이후에형성된것으로해석된다 ( 이동영 김주용 양동윤 1998). 이러한결빙구조의발달시기를고려하면 4층에서얻어진 OSL 연대 62±4ka B.P. 의신뢰성은매우낮음을알수있다. 따라서둔전구석기유적의문화층인적갈색모래질찰흙층 (Ⅳ층) 은해발높이 12~13m 에약 30ka B.P. 경한랭건조해진기후하에서형성된사면붕적층으로판단된다. Ⅳ. 석기분석 1. 유물분포 유물의분포양상을파악하기에앞서유적의형성이후교란이나변형, 재퇴적의가능성을알아보기위하여각칸의경계에설치된짧은둑에서보이는세부적인지층흐름과변화를살펴보았고, 개별유물의출토상태를관찰하여특정한방향성이나기울기를나타내는가를살펴보았다. 결과를보면 A2칸에근대에조성되어최근이장된민묘가있었고, F2칸, G2칸, H2칸에서는경작과관련된구덩이형태로많은부분이교란된상태였지만, 문화층은 15~60cm 더아래쪽에형성되어있어직접적인영향은받지않았다. 따라서문화층은교란이나변형, 재퇴적등이이루어지지않은비교적안정된층이라판단된다. 유물의평면분포는북동-남서방향으로약 36.5m, 북서-남동방향으로약 7.5m 에걸쳐분포하며, 분포면적은 273.8 m2 ( 약 83평 ) 이다. 구획된칸으로보면 2행과 3행의 A칸에서 H칸까지에걸쳐분포하고있다. 1행과남서쪽사면은경작과도로건설로인하여문화층이확인되지않아유물이출토되지않았으며, I칸부터는문화층인적갈색모래질찰흙층은부분적으로확인되나유물이출토되지않았다. 이러한출토상황을고려하여평면분포를살펴보면 C칸과 D칸을중심으로그주변지역이가장집중되어분포하는양상이며, F칸이후로는출토량이적어지면서부분적으로밀집되어분포하는양상을보인다. 각발굴칸에서출토된석기의수량과종류에따른현황과분포양상을살펴보겠다. 칸별출토유물의수량을살펴보면, C칸과 D칸에서출토된유물이 123점 (45.6%) 으로높은밀집 16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도를보이며, 해발이높은칸에서는 2행이, 낮은칸에서는 3행이출토량이많은양상을보이는데, 이는조사된면적과관련이있을것으로생각된다 ( 그림 3. 참조 ). 몸돌은총 7점이출토되었고, 전체적으로고르게분포하는양상이나 2행에더집중되어분포하는양상이다. 하지만 C칸과 D칸은유물출토량과비례하게몸돌의출토량도 5점 (41.6%) 으로비교적높은밀집도를보인다. 격지는총 22점이출토되었고, 몸돌과비슷한양상으로분포하지만, C 칸과 D칸에서 12점 (54.5%) 이출토되어절반이넘는비율을차지하고있어밀집도가높다. 붙는유물의칸별분포양상을보면, A칸이 1set, B칸이 1set, C칸이 2set, D칸이 3set, H칸이 1set 로 E~F 칸을제외한모든칸에서확인된다. 이중 C칸과 D칸이 5set(62.5%) 로가장많다. 따라서 C칸과 D칸은석기의출토량, 몸돌, 격지, 붙는유물등을볼때석기제작이가장활발하게이루진칸으로보인다. 칸별완성된석기의종류를보면, A3칸에서는긁개 1점과부리날 1점, B2칸에서는홈날 1점, B3칸에서는긁개 1점, C2칸에서는긁개 1점과밀개 1점, C3칸에서는긁개 1점, D3칸에서는긁개 1점, E2칸에서는긁개 1점과밀개 2점, F3칸에서는긁개 1점, G3 밀개 1점이출토되었다. 잔손질된석기의분포는유적전체에고르게분포하는양상을보인다. 이처럼석기의종류와돌감의종류에따른분포양상도전체적으로고르게분포하는양상이며, 특정석기가한곳에집중되는등의특별한양상은보이지않고있다. < 표 2> 칸별출토유물현황표 칸종류 A2 A3 B2 B3 C2 C3 D2 D3 E2 E3 F2 F3 G3 H3 총계 몸돌 2 1 1 3 2 2 1 12 격지 1 2 2 2 3 6 1 3 1 21 조각돌 8 17 24 4 33 10 34 20 25 7 1 18 10 7 218 자갈돌 1 2 2 1 6 긁개 1 1 1 1 1 1 1 7 밀개 1 2 1 4 홈날 1 1 부리날 1 1 붙는유물 1set 1set 2set 3set 1set 유물수 11 22 28 6 42 14 44 23 33 7 1 19 13 7 270 17
18 제 6 호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그림 5. 유물평면도및단면도
수직분포양상을살펴보면지형적인영향으로비탈면을따라남서쪽방향으로갈수록유물의출토높이가점차낮아지고있다. 기울기가비교적완만한 A~C 칸까지는수직분포범위가넓은편이나, D~H 칸으로갈수록좁아지는양상이다. 물론수직분포의범위는출토유물의평면분포양상과출토된유물의수량에따라달라질수있다. 수직분포에서각석기들의해발높이를볼때최저 11.60m(H3 칸 ) 에서최고 13.97m(A2 칸 ) 로약 2.37m 의높이차이를보이는데, 이는조사지역이남서쪽방향으로갈수록완만하게기울어졌기때문에 A2칸출토유물과 H3칸출토유물의해발높이에서차이를보인것이다. 따라서수직분포양상은지형의기울기에따른변화를제외하고특별한양상은관찰되지않으며, 유물은해발이높은 A칸에서해발이낮은 H칸방향으로완만하게기울어진비탈면을따라분포하는양상이다. 2. 돌감의구성 우리나라구석기유적의경우는주변에서손쉽게구할수있는석영암류가돌감구성비율의대부분을차지한다. 이는우리나라뿐아니라동북아시아의구석기유적에서나타나는보편적인현상으로서문화유형의전통이라기보다는환경적인요인에적응한결과라고해야할것이다 ( 최승엽 1996). 석기의돌감분석은석기제작과정에서고인류의선택적행위와관련된것으로주변의환경요인과기술적인특성을파악하기위함이다. 돌감의분류는석영맥암과응회암, 기타암질등세종류로구분하였는데, 육안으로종류를파악하기힘든경우는기타암질로구분하였다. 석영맥암의경우는육안으로석기겉면에남아있는자연면이나켜면의특징을살펴맥암덩이돌과자갈돌인지구분하였는데, 둔전유적에출토된석기는맥암덩이돌로파악되었다. 하지만맥암덩이돌에보이는녹이낀켜면과자갈돌의자연면과육안으로구분하기가매우어려운실정이었다. 유물은총 270점이발굴되었다. 돌감을살펴보면응회암 1점 (0.4%), 석영맥암 266점 (98.5%) 으로대부분을차지하고있고, 기타암질이 3점 (1.1%) 이다. 석영맥암은자갈면이발달한것이거의없고, 그렇지않은것은많다. 또한암의내부에다른물질이섞여있어입자가고르지않는것과얼음이나유리처럼입자가고운것이있으나, 대부분입자가고르지않는 19
제 6 호 것이더많다. 둔전구석기유적에서사용된석기의돌감은석영맥암이높은비율로사용되었고, 응회암등기타암질이 4점있다. 석영맥암은돌감이가지는특성으로인해석기제작에어려움이많으나, 주변에서쉽게구할수있다는장점도가지고있다. 3. 석기의구성 구석기유적에서출토되는석기들은버려지는석재, 사용된석재, 도구, 운반된돌등크게네가지로구분되어진다. 네가지분류기준은다음과같다 ( 박영철 1983). 1 도구 (shaped tools) 는분명한제작의도가엿보이는것으로서그로인해반복적으로나타나는형태적특성이진단된다. 찍개나긁개, 밀개등이여기에해당된다. 2 사용된석재 (utilized materials) 는별다른변형이나가공없이사용하여그흔적이남아있는경우를말한다. 패인자국이남아있는돌망치나모룻돌이여기에해당된다. 3 버리는석재 (waste products) 는도구제작과정에서자연적으로생겨나는부산물이다. 가공이나사용흔적을찾아볼수없다. 4 운반된돌 (manuports) 은사람에의해인위적으로옮겨진돌을말한다. 변형되지않은채로남겨진자갈돌이여기에해당되는데이경우자연적인퇴적요인에의한것이아님을분명히보여줄수있어야한다. 이러한네가지기능적인구분과더불어돌감의획득이후석기를생산하기위한돌감의준비작업, 석기떼기작업과잔손질작업과정등석기제작공정도고려하여몸돌, 격지, 조각돌, 잔손질석기, 기타자갈돌로 1차석기분류를하였다. 2차분류는 1차분류된각종류별석기의제작기법, 기능및형태상의특징에따라구분하였다. 석기갖춤새를보면, 몸돌 12점 (4.4%), 격지 21점 (7.8%), 격지로만들어진긁개 1점 (0.4%), 조각돌로만들어진긁개 6점 (2.3%), 밀개 4점 (1.5%), 홈날 1점 (0.4%), 부리날 1점 (0.4%) 과일반조각돌이 218점 (80.8%) 로대부분을차지하고있다. 그밖에자갈돌이 6점 (2.2%) 이며, 돌감을보면석영맥암이 3점, 기타암질이 3점이다. 석영맥암자갈돌은깨진면이부분적으로확인되지만자연적인것인지인공적인것인지판단이어려우며, 기타암질은풍화가심해정확한분석이어렵지만다른석기들과함께확인되고있어어떠한용도를했을것으로추정된다. 20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그림 6. 석기갖춤새 그림 7. 잔손질석기갖춤새 석기갖춤새에서몸돌과격지의수량이조각돌에비해너무적은양을차지하고있다. 이는돌감으로사용된석영맥암이가지는특성때문이라고생각된다. 유적에서찾아진유물은몸돌과격지, 조각돌처럼버려지거나중간과정에속하는종류가 93% 로대부분을차지하고있고, 도구로사용된잔손질석기는 5.6% 로그비율이매우낮다. 그밖에유적밖에서반입되어들어온돌인자갈돌은 2.2% 이다. 망치돌이나모룻돌처럼사용된석재는확인되지않는다. 몸돌은 12점이며, 그종류는모두일반몸돌이다. 몸돌의분석은때림면과격지떼기면에서관찰되는특성을중심으로분석하였다. 때림면은면의수와성격, 뗀방향등을관찰하였고, 격지떼기면은격지를뗀양상과방향을관찰하였다. 때림면은 2~3 개가가장많았고, 성격은편평한켜면이나뗀면이대부분을차지하고있었다. 뗀방향도여러방향으로다양함이관찰되었다. 격지떼기면도일정한패턴이나방향이관찰되지않는다. 이러한특징은몸돌에서격지를생산할때구체적인계획이나복잡한과정을거치지않고, 몸체의특성과크기를고려하여직접때리기로격지를얻어낸것으로보인다. 격지는모두 22점으로돌감을보면거의가석영맥암이고, 1점만응회암이다. 모두일반격지로첫격지나옆격지, 돌날등은확인되지않았다. 격지중잔손질석기의몸체로활용된 1점이포함되어있다. 격지의길이는 2~5cm 로모두소형에속하는것이대부분을차지하고있으며, 격지각은 75 ~ 130 사이에속한다. 굽은면굽과선굽, 점굽등다양하지만, 면굽이대부분을차지하고있다. 굽의성격은켜면과뗀면이다수를차지한다. 등면의성격은사용된돌감의특성상자갈면은거의확인되지않으며, 뗀면과켜면이많이확인된다. 둔전구석기유적에서출토된석기종류로는긁개, 밀개, 홈날, 부리날등이있으며, 한몸체에두종류이상의도구가제작된석기는출토되지않았다. 또한몸돌석기도확인되지않았다. 이러한현상은유적주변에서자갈돌을구하기어려워석영맥암덩이돌을돌감으로활용한결과 21
제 6 호 로보인다. 잔손질석기는모두 13점이며, 몸체로는격지와조각돌을이용하여만들었는데, 격지는 1점 (7.7%), 조각돌은 12점 (92.3%) 으로대부분조각돌을몸체로활용하였다. 완성된석기의수량 (13 점, 5.6%) 이발굴된유물수량에비해매우적은것으로조사범위한계와유적이가지는특성때문이라고생각된다. 잔손질된석기의종류는 4가지로비교적단순하며중기구석기시대나그이전에흔하게사용되던것들이다. 특히밀개는후기구석기시대에널리만들어진돌날이나조정된격지를손질한것이아니고, 조각돌을몸체로삼은것으로석재의활용과주변환경의영향으로생긴현상으로생각된다. 발굴된유물에대한짝맞추기작업은 1차와 2차로구분하여진행하였다. 1차작업은칸별로나누어육안관찰을통해암질별로분류한다음짝맞추기작업을진행하였다. 2차작업은유적에서출토된전체유물을암질별로모아서작업을진행하였다. 하지만발굴조사에서찾아진 270점의유물중 8무리 (set) 19점을확인하였다. 붙는유물의유형별구분은몸돌에조각돌이붙는것 3세트와몸돌조각끼리붙는것 1세트, 조각돌끼리붙는것 4 세트등크게세가지로구분된다. 붙는유물에대한분석은분포양상, 개별유물의분석, 떼어진과정, 제작기법등을파악하였다. 몸돌에조각돌 2점이붙는것세트1은 A2칸에서출토되었다. 출토양상은몸돌을중심으로조각돌 2점이반경 5cm 안에동쪽과서쪽으로각각떨어져분포하며, 깊이차이도 4~6cm 정도차이를보인다. 떼어진과정을살펴보면녹이낀윗면에서한차례의떼기를통해격지생산을시도하다원하는격지를만들지못하여때림면을인접한앞면으로옮겨떼기를하는과정에서조각돌 2 점이동시에떼어졌다. 2개의때림면에서두차례떼기를시도한후에폐기된몸돌과그제작과정에서떨어진조각돌로볼수있다. 몸돌과조각돌 1점은 D2칸둑에서출토되었다. 출토양상은몸돌에서남쪽으로약 22cm 떨어져조각돌이분포하며, 해발높이는 2cm 차이를보인다. 이붙는유물은때림면을옮겨가면서격지를생산하였고, 그과정에서몸돌의크기가작아지면서기능을잃어폐기되었고, 격지떼기과정에서떨어진조각돌로볼수있다. 몸돌조각끼리붙는것세트2는 C2칸에서출토되었다. 출토양상은약 1.57m 떨어져분포하며, 해발높이차이는 3cm 차이를보인다. 이붙는유물은하나의몸돌에서격지를생산하다가두조각으로깨진후에는각각의몸체에서격지를생산한후에돌감의특성때문에폐기된몸돌로볼수있다. 22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조각돌끼리붙는것세트3은 C2칸에서 2점, C3칸에서 1점이출토되었다. 출토범위는가로 1.30m, 세로 2.65m 쯤으로넓게분포하는양상이며, 해발높이는 2~10cm 차이를보인다. 떼어진과정을살펴보면뗀흔적이나뗀면이관찰되지않아선후관계를가리기가어렵다. 이붙는유물은켜가발달한석영맥암에강한떼기를하는과정에서깨져나온조각돌들로볼수있다. 다양한유형의붙는유물은둔전구석기인의석기제작기술과과정을보여주는좋은자료이며, 석기제작터로이용되었음을보여주는증거이다. 둔전구석기유적의석기구성은버려지는석재가대부분이고, 도구로사용된비율이상대적으로낮다. 몸돌과격지, 조각돌에서보이는발달된켜면은석기제작과정에서몸체의선택이환경의영향을많이받은결과로보여진다. Ⅴ. 유적의성격및편년 한국구석기유적의형성시기를연구하는데유적에서출토되는유물과유구를비롯하여, 지층과퇴적물에대한지질학적방법 ( 절대연대법, 화산재분석등 ) 이활용되고있다. 따라서유적이입지한자연환경이매우중요한요인으로작용하고있는실정이다. 특히퇴적층은구석기유적이형성된입지에따라다양하게나타나는양상이나, 대체로굳고단단한찰흙질 ( 점토 ) 또는모래질찰흙 ( 사질점토 ) 토양이발달하여있고, 그빛깔은갈색 ~ 적 ( 갈 ) 색계통이주를이루며, 토양쐐기가발달된현상등이공통적으로나타난다 ( 한창균 2003). 구석기유적의갱신세퇴적층에서확인되는토양쐐기는추운기후에형성된것으로보고있으며, 유적의입지조건과퇴적물의성격에따라다소차이가있지만대체적으로 1~2 차례에걸쳐나타나는것이일반적인현상으로본다. 하지만최근조사에따르면토양쐐기가일부유적에서 3~5 매까지확인되고있으며, 동일한지역내에서도퇴적양상에따라구조와양상이다르게나타나므로상부토양쐐기를제외한나머지는유적상호간의비교가어려운실정이다 ( 배기동 홍미영 이한용 김영연 2001; 이재경 2001). 따라서첫번째와두번째토양쐐기를중심으로한국구석기유적에서나타난퇴적상을층서적으로정리하면, 구석기시대후기는 3가지, 중기는적어도 2가지유형의지층으로구분하는것이가능하며, 그내용은아래와같다 ( 한창균 2003). 후기구석기시대는첫번째토양쐐기보다위에놓인지층으로약 16~15ka 이후에형성된 1기층 (A층) 과첫번째토양쐐기가발달한지층의윗부분으로약 23~16ka 에형성된 2기층 (B1층상 23
제 6 호 부 ), 2기층하부에놓인지층으로약 40~23ka 에형성된 3기층 (B1층하부 ) 으로구분된다. 중기구석기시대는두번째토양쐐기위에퇴적된지층으로약 65~40ka 에형성된 1기층 (B2층 ) 과두번째토양쐐기가발달한지층으로약 65ka 이전에형성된 2기층 (C층) 으로구분된다. 최근토양쐐기의형성배경에대해주빙하성기후의영향으로결빙과융해가반복되는과정을통해만들어진것으로보는경향이높아지고있다. 즉상부토양쐐기형성시점은마지막간빙기이후추위가가장극심했던약 1.5~1.8 만년전으로추정하고있으며 ( 이동영 1998), AT의검출과절대연대자료를근거로하인리히이벤트 2기인 2.2~2.5 만년전으로보는견해가있다 ( 성춘택 2004). 이러한토양쐐기구조의형성시기는전문가들마다약간의차이가있으나갱신세퇴적층의형성시기와구석기시대의편년을연구하는데많은도움을주고있다. 둔전구석기유적지층에서도 1매의토양쐐기가확인된다. 토양쐐기는 Ⅲ층하부에서시작되어 Ⅴ 층까지연결되며, 첫번째토양쐐기로판단된다. 문화층인 Ⅳ층은첫번째토양쐐기가관찰되는 Ⅲ층아래지층이다. Ⅲ층상부의절대연대값은 13ka±1 B.P. 이고, 토양쐐기가시작된 Ⅲ층하부의절대연대값은 18ka±2 B.P. 로위에서한창균이제시한첫번째토양쐐기의형성시기와비슷함을알수있다. 따라서둔적구석기유적의문화층의형성시기는첫번째토양쐐기가발달한지층아래층으로약 30ka B.P. 경한랭건조해진기후하에서형성된사면붕적층으로판단된다. 그림 8. 한국구석기유적퇴적층에대한시기구분 (2003, 한창균글인용 ) 24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전남지역에서발굴조사된구석기유적은지형과수계를고려하여살펴보면크게세지역으로나누어볼수있다. 첫번째는영산강본류와영산강으로유입되는지류하천을중심으로한영산강수계의유적군이고, 두번째는섬진강본류와섬진강으로유입되는지류하천을중심으로한섬진강수계의유적군이고, 서해와남해의해안가와바다로바로유입되는소하천주변에분포하는유적군이다. 해안가에위치하는유적으로는무안둔전구석기유적을비롯하여함평당하산유적, 무안피서리유적, 무안도원 농장유적, 완도달도유적이있으며, 바다로바로유입되는소하천주변에분포하는유적으로는영광마전 군동 수동유적이있다. 함평당하산유적 ( 최성락 이헌종 김영희 2001) 에서는중기구석기시대와후기구석기시대의문화층이확인되었다. 지층의구성에서토양쐐기구조가확인되지않았고, 2개의문화층이확인되고있어둔전구석기유적과상이한퇴적양상을보인다. 완도달도유적 ( 이헌종 이혜연 2006) 은남해안지역에해당되며, 첫번째토양쐐기가확인된다. 문화층은토양쐐기보다위층에서확인되며, 석기의돌감과구성에서둔전구석기유적과유사한양상이보인다. 해안가에위치하는유적중에망운반도지역에서조사된유적의지층과문화층을살펴보면첫번째토양쐐기아래층인적갈색계통의모래질찰흙층에서유물이확인되고있으며, 유물이출토되는해발높이도 11.0~14.0m 로비슷한양상을보이고있다. 출토된유물의수는 20여점내외로매우빈약한편이며, 종류로는몸돌, 격지, 찍개, 긁개, 홈날등으로비교적단조로운구성이다. 사용된암질은석영맥암류와석영제자갈이가장많고, 기타암질로안산암과사암극히일부사용되었다. 이러한문화층의특징과돌감의종류, 석기의구성이둔전구석기유적과비슷한양상을보이는데, 석재는원거리에서가져온석영제자갈과유적주변에산재한석영맥암을이용하여석기를만들었던것으로추정된다. 무안피서리유적은둔전구석기유적에서북동쪽방향의직선거리로약 3.8km 떨어져있고, 무안농장유적은남서쪽방향의직선거리로약 5.8km 떨어져있다. 두유적모두구릉성지형에형성된퇴적양상을보이고있다. 따라서망운반도지역에서조사된구석기유적은비슷한시기에형성되었고, 생활환경과석기제작기술도유사한것으로보인다. 따라서망운반도에조사된구석기유적의특징은내륙의유적과달리넓은지역을자원획득의지리적영역으로활용함으로써유물의분포가집중되기보다는소량의유물군들이넓은지 25
제 6 호 역에퍼져나타나는양상으로추정된다. 이러한자연환경적인영향으로이지역에거주하였던 구석기인들이한지점에지속적으로거주하지않고단기간에걸쳐점유했던장소로활용한것 으로생각된다. 그림 9. 전남지역구석기유적분포도 26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 표 3> 전남해안지역구석기유적의지층과문화층 무안둔전유적 무안피서리유적 무안도원유적 무안대박유적 함평당하산유적 표토층표토층표토층표토층표토층겉흙층겉흙층겉흙층표토층 영광마전유적 영광군동유적 영광원당유적 완도달도유적 암적갈색찰흙층갈색사질토층갈색점토층담황갈색찰흙층 명갈색찰흙층 ( 구석기 3 문화층 ) 해발 :34.0~38.5m 명갈색찰흙층명갈색찰흙층황색점토층 갈색찰흙층 ( 하부 : 토양쐐기시작층 ) 적갈색사질토층 ( 토양쐐기시작층 ) ( 하부 : 구석기문화층 ) 해발 :11.4~12.0m 암갈색점토층 ( 토양쐐기시작층 ) 견고하고치밀한찰흙층 ( 최상부 : 후기구석기문화층 ) 해발 :24.6~25.9m 암갈색찰흙층 ( 토양쐐기시작층 ) ( 구석기 2 문화층 ) 해발 :34.0~38.5m 암갈색찰흙층 ( 토양쐐기시작층 ) ( 구석기 2 문화층 ) 해발 :25.0~30.6m 암갈색찰흙층 ( 토양쐐기시작층 ) 황갈색점토층구석기문화층해발 :4.0~5.0m 적갈색모래질찰흙층 ( 구석기문화층 ) 해발 :11.6~14.0m 적갈색니질토층 적색모래질찰흙층담갈색니질토층 적갈색사질점토층 ( 구석기문화층 ) 해발 :11.0~13.5m AMS:15,080±80~3,230±70 yr B.P. 명갈색점토층왕모래와잔자갈이많은사면기원퇴적층 ( 중간부 : 중기구석기문화층 ) 적갈색사질점토층해발 :23.2~23.9m ( 구릉정상부퇴적 ) 해발 :8.0~13.0m 적갈색찰흙층적갈색모래질찰흙층 - 상부 - 적갈색모래질찰흙층 - 중부 - ( 토양쐐기시작층 ) ( 구석기문화층 ) 해발 :25.0~30.6m 황갈색모래질찰흙층 ( 구석기문화층 ) 해발 :25.0~30.5m 선홍색찰흙층 ( 토양쐐기시작층 ) 적갈색점토층 ( 토양쐐기시작층 ) 갈색점토층 조립질모래층 ( 토양쐐기시작층 ) 황갈색모래질찰흙층 ( 구석기 1 문화층 ) 해발 :34.0~38.5m 적갈색모래질찰흙층 - 하부 - 잔자갈모래층 기반암기반암기반암기반암기반암기반암기반암기반암기반암 27
제 6 호 Ⅵ. 맺음말 둔전구석기유적은무안군에서서쪽에위치한운남면에속하며, 내륙과도서를잇는교두보적인반도형지형의중간지점에자리한다. 높은산지가없고낮은구릉이연속적으로이어지는무안서부지역일대의지형적인조건은유적을점유하였던구석기시대인들이지속적으로이동하면서생활을영위하기에좋은조건에입지하고있다. 이러한입지조건은구석기시대인들의자원획득조건과도관계가깊은것으로생각되며, 높은산지가없고낮은구릉이연속적으로이어지는무안서부지역일대의지형적인조건은유적을점유하였던구석기시대인들이지속적으로이동하면서생활을영위하기에좋은조건을제시하였을것이다. 유적의지층은기반암풍화토층위에 4매의색이다른찰흙층이퇴적되어있다. 토양쐐기 1매가확인되는데, Ⅲ층하부에서시작되어 Ⅴ층까지연결되며, 첫번째토양쐐기로판단된다. 둔전구석기유적의문화층 (Ⅳ층: 적갈색모래질찰흙층 ) 의형성시기는첫번째토양쐐기가발달한지층아래층으로약 30ka B.P. 경한랭건조해진기후하에서형성된사면붕적층이다. 유적에서는총 270점의유물이출토되었고, 수평분포와수직분포양상을볼때후퇴적과정을거의받지않은안정적인층으로보인다. 특히 C칸과 D칸은석기의출토량, 몸돌, 격지, 붙는유물등을볼때석기제작이가장활발하게이루진칸으로보인다. 특히다양한유형의붙는유물은둔전구석기인의석기제작기술과과정을보여주는좋은자료이며, 석기제작터로이용되었음을보여주는증거이다. 돌감의선택과석기제작의활용에서볼때유적주변에는대규모하천이거의발달하지않아자갈돌을구하기어려운조건이나조사지역주변암질분포에서석영맥암이발달하고있다. 이러한환경적인조건은둔전구석기유적에서생활했던구석기시대인들이석재를획득하고, 석기를제작하기원활하게해주는좋은조건을갖추고있던것으로보인다. 이러한환경적인영향은석기의구성과제작기법에서도잘나타나고있다. 즉둔전구석기유적의석기구성은버려지는석재가대부분이고, 도구로사용된비율이상대적으로낮다. 또한몸돌과격지, 조각돌에서보이는발달된켜면은석기제작과정에서몸체의선택이환경의영향을많이받은결과로보여진다. 둔전구석기유적은일찍부터사람들이살기에좋은지리적환경을갖추고있었던것으로생각된다. 또한서해안일대에서확인된구석기유적은대체적으로비슷한환경적인요소를가지고있으나주변의미시적인환경에따라다른문화적양상을보이는것으로추정된다. 28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그림 10. 잔손질석기 (1~7: 긁개, 8~9: 밀개, 10: 부리날, 11: 홈날 ) 29
제 6 호 참고문헌 1. 목포대학교박물관 2006, 문화유적분포지도 -전남무안군-. 2. 송미진 전명훈 김민정 2012, 무안둔전 두곡유적, ( 재 ) 전남문화재연구원. 3. 목포대학교박물관 1986, 무안군의문화유적. 4. 정일 오병욱 김문국 이지영 2012, 무안연리 대곡유적, ( 재 ) 전남문화재연구원. 5. 송미진 전명훈 김민정 2012, 무안운남 ~ 망운간도로건설공사구간내유적의제4기지질환경연구 -부록 1-, 무안둔전 두곡유적, ( 재 ) 전남문화재연구원. 6. 한창균 2003, 한국구석기유적의연대문제에대한고찰 -절대연대측정결과와퇴적층의형성시기에대한검토를중심으로, 한국구석기학보 7, 한국구석기학회. 7. 김주용 이기길 양동윤 홍세선 남욱현 이진형 2004, 남한제4기퇴적층분포및형성과정고찰, 한국구석기학보 10, 한국구석기학회. 8. 이동영 김주용 양동윤 1998, 마지막빙하기사면붕적층에나타나는토양쐐기형성시기 대한지질학학회제53차학술발표회. 10. 최승엽 1996, 홍천하화계리 도둔 중서기시대유적의연구, 강원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11. 박영철 1983, 구석기시대타제석기분류에관하여 (Ⅰ), 人文學叢 8. 12. 배기동 홍미영 이한용 김영연 2001, 전곡구석기유적 2000-2001 전면시굴조사보고서, 경기도연천군 한양대학교문화재연구소. 13. 성춘택 2004, 한국후기구석기유적의시간층위재고, 한국상고사학보 46. 14. 최성락 이헌종 김영희 2001, 함평장년리당하산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한국토지공사. 10. 이헌종 이혜연 2006, 완도달도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11. 이재경 2001, 상주신상리구석기유적개보, 동북아시아의자갈돌석기문화, 한국구석기학회제2차학술대회발표집, 한국구석기학회. 12. 이헌종 노선호 호용수 2002, 무안피서리구석기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서울지방항공청. 13. 김경칠 정일 한미진 2007, 무안도원 농장유적, ( 재 ) 전남문화재연구원 익산지방국토관리청. 14. 이기길 김선주 최미노 2003, 영광마전 군동 원당 수동유적, 조선대학교박물관 한국도로공사. 30 무안둔전구석기유적의성격
全南地域高麗時代土壙墓一檢討 張成一 目次 Ⅰ. 머리말 Ⅱ. 유적현황 Ⅲ. 부장유물과토광묘의시기설정 1. 유물검토 2. 편년 Ⅳ. 토광묘의구조적특징과변천 1. 구조 2. 토광묘의시기별변천양상 Ⅴ. 맺음말
제 6 호 全南地域高麗時代土壙墓一檢討 張成一 *3) 국문초록 고려고분은여러종류의묘제가있지만, 흔히석곽묘와토광묘로말할수있다. 호남지역에서는고려시대석곽묘에대한연구가구체적으로진행되었음에도불구하고토광묘에대한연구는자료의부족으로인해타지역에비해미비한실정이다. 따라서이글의목적은현재까지조사된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자료를바탕으로구조적특징과변천양상에대해서간략하게검토해보고자하는것에있다. 유물을검토한결과토광묘는크게 3시기로구분이된다. 1기는외반구연청자대접과청자연판문반구병을통해서 11세기중 후반으로설정할수있다. 이시기의토광묘는 1단굴광식과 1단굴광을한후석재를보강한형식으로대별되며, 두형식간의부장유물, 규모등의차이는보이지않는다. 또한내부시설도관찰되지않는다. 2기는청자철화반구병과압출양각, 상감청자등을통해서 12세기에서 13세기중반으로설정할수있다. 이시기의토광묘축조방식은전시기와같이두형식이모두확인된다. 다만 1단굴광을한후석재를보강한형식은 12세기중반이후에는소멸된것으로파악된다. 규모는일정한크기로정형화되는데, 이는전시기의측면부장과달리족부측부장에따른것으로기인한다. 내부시설은요갱, 사우혈, 감실등이확인된다. 3기는 13세기후반에서 14세기대로설정할수있다. 이시기에는 1 단굴광식의토광묘만확인되며, 내부시설은 2기와비슷한양상을보인다. 유물의부장은대부분족부에위치한다. 주제어 : 전남지역, 고려시대, 토광묘, 구조, 변천 * 전남문화재연구원연구원교신저자, E-mail: hoacalco1490@naver.com 32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Ⅰ. 머리말 토광묘 1) 는지하에구덩이를파고시신을직접또는목관에안치한후매장하는방법으로선사시대부터오늘날까지오랜기간동안행해져온매장방식중의하나이다. 고려시대에도이러한토광묘는꾸준히채택되어조성되어져왔다. 최근다양한유적조사와중세고고학의관심이새롭게부상되면서고려시대토광묘에대한연구가진행되었다 2). 하지만이들연구성과는대부분서울 경기 영남 충청지역에편중되어있으며, 호남지역에서는석곽묘에한정되어연구가진행되었을뿐 3), 토광묘에대한연구는미비하다고할수있다. 그이유는아직까지호남지역에서토광묘유적의자료한계에기인한것으로판단된다. 최근전남지역에서는대규모는아니지만고려시대토광묘의자료가점점축적되어가고있어, 그동안자료의한계로인해살펴볼수없었던토광묘의구조적인특징을어느정도밝힐수있을것이라고판단된다. 따라서본고에서는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에서출토되는청자를중심으로편년을설정한후각시기에따른토광묘의구조와유물의부장방법등고려시대토광묘의변천과정을간략하게검토해보고자한다. Ⅱ. 유적현황 전남지역에서현재까지확인된고려시대분묘유적은 21개소이며, 그중에서토광묘가확인된유적은 14개소 46기로 < 표 1> 과같다. 이러한토광묘는그동안타지역과는달리유적내에서대개 1) 토광묘에는시신을바로안치하는직장토광묘와목관을안치하는목관토광묘로구분할수있다. 하지만본고에서는이를따로구분하지않고토광묘로통일해서정리하고자한다. 2) 고려시대토광묘에대한연구는다음과같다. 黃晸郁 2001, 高麗時代石槨墓硏究 - 중부지방을중심으로 -, 檀國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李羲仁 2003, 中部地方高麗時代古墳硏究 - 石槨墓와土壙墓를中心으로 -, 成均館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황순녀 2004, 경북북부지역고려분묘의형식과편년, 安東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朱榮民 2004, 高麗時代墳墓硏究 - 陶器編年을中心으로 -, 新羅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高賢守 2004, 南韓地域高麗古墳의副葬品埋葬方式硏究, 漢陽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梁美玉 2005, 충청지역의고려시대무덤연구, 韓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박미욱 2006, 고려토광묘연구 부장양상을중심으로 -, 부산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李相和 2007, 嶺南地域高麗初 ~ 朝鮮中期土壙墓硏究 - 基礎統計學을應用한土壙墓比較分析 -, 慶州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李修晶 2009, 忠北地域高麗古墳硏究, 崇實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朴海瑩 2011, 강원지역의고려시대고분연구, 江原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申勝澈 2011, 忠北地域高麗 ~ 朝鮮初期土壙墓考察, 公州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3) 고금님 2005, 湖南地域高麗石槨墓硏究, 全北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김병수 2007, 湖南地域의高麗墳墓出土靑瓷硏究, 목포대학교대학원碩士學位論文. 33
제 6 호 5기이내로확인되어구조및특징등을파악하기에는어려움이있었다. 하지만최근 10기이상의토광묘군을형성하는유적들이조사되고있어, 고려시대토광묘의시기별구조적인특징과부장방법등을파악할수있을것이라고판단된다. < 표 1>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유적현황표 유적명 함평반암유적 함평와촌유적 무안학례동유적 광주쌍촌동유적 나주송월동유적 나주도민동유적 나주상야유적 입지 ( 해발 ) 구릉사면부 (26m 내외 ) 구릉사면부 (36~37m) 구릉사면부 (6m) 구릉사면부 (45m 내외 ) 구릉사면부 (48m) 구릉말단부 (27m) 구릉사면부 (37m) 구릉사면부 (35m 내외 ) 평면장축유구형태방향등고선규모 ( cm ) 1호분주구내세장방형동-서 (N85 W) 동-서 2호장방형 (N60 W) 3호세장방형동-서 (N77 W) 5호 장방형 동-서 (N75 W) 6호장방형동-서 ( 상광하협 ) (N63 W) 7호 장방형 동-서 (N74 W) 10호 장방형 남-북 (N18 W) 1 호장방형 2 호장방형 3 호장방형 4 호장방형 1 호 세장타원형 2 호장방형 동-서 (N86 E) 동-서 (N84 W) 동-서 (N82 E) 남-북 (N23 E) 동-서 (N82 E) 남 - 북 (N21 E) 길이 너비 깊이 장단비면적 ( m2 ) 직교 269 76 26 3.53:1 2.04 내부시설 직교 260 80 30 3.25:1 2.08 녹유도기병 1 직교 230 50 30 4.60:1 1.15 출토유물 청자대접 2, 청자접시 1, 청자반구병 1 흑유광구유병 1, 청자반구병 1, 동곳 1 직교 192 55 40 3.49:1 1.05 청자대접1, 단지1 직교 169 60 14 2.81:1 1.01 청자잔1, 청자철화초문병1 직교 (140) 75 10 청자대접1, 분청대접1( 외부유입 ) 직교 (90) 65 10 청자대접1, 청자접시2, 청자반구병1 청자대접1, 청자병저부 직교 228 64 33 3.56:1 1.45 1, 청동시편1, 청동완 구연부편 2 직교 204 66 34 3.09:1 1.34 직교 196 64 50 3.06:1 1.25 직교 (136) 70 22 평행 170 56 25 3.03:1 0.95 동이 직교 (210) 92 60 말각 3호장방형 4호 ( 남-북 ) 직교 (187) () () 1-1 호말각장방형 1 호장방형 1 호 말각장방형 2 호장방형 청자접시1, 청동시1, 청동완1 청자대접2, 청자철화초문반구병1, 청자잔1, 관정10 청자대접1, 청자잔1, 청동완1 동곳1, 청동완, 청동시저 1, 철제가위1, 청자소병1, 청자접시1, 청자대접1, 토기병 1, 단지 1, 옥11, 관정10 남-북 직교 220 69 47 청동합1, 청동개1, 청동 3.18:1 1.51 사우혈시1, 토기병1, 관정5 동곳1, 청동완1, 청동시 1, 청자접시2 북 - 남 (N10 E) 동 - 서 (N66 W) 동-서 (N66 W) 남-북 (N4 W) 12호세장방형남-북 (N17 W) 15호 장방형 남-북 (N15 E) 28호 장방형 남-북 (N14 E) 직교 188 70 36 2.68:1 1.31 청자병 1 직교 160 68 18 2.35:1 1.08 청동시 1, 동전 3 청자유병1, 청동시1, 직교 220 70 8 3.14:1 1.54 관정7 직교 190 68 23 2.79:1 1.29 요갱, 청자병1, 관정9 사우혈직교 169 51 14 3.31:1 0.86 요갱청자유병1, 청동시1 직교 199 72 30 2.76:1 1.43 직교 177 65 21 2.72:1 1.15 동경1, 청동시1, 철제품 1, 관정7 청자대접1, 청동발1, 청동시1, 관정10 조사기관 호남문화재연구원 2007 전남대학교박물관 2007 전남문화재연구원 2008 전남대학교박물관 1999 동신대학교문화박물관 2010 전남문화재연구원 2010 전남문화재연구원 2012 34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유적명 나주상야유적 나주장산리유적 나주운곡동유적 강진월하리유적 해남분토리유적 장흥신월리유적 보성석평유적 Ⅱ 고흥장동유적 입지 ( 해발 ) 구릉사면부 (35m 내외 ) 구릉사면부 (30m) 구릉사면부 (28~32m) 구릉사면부 (139m) 구릉사면부 (12m) 구릉사면부 (65~82m) 구릉사면부 (140m) 구릉사면부 (45m) 유구 평면형태 31 호세장방형남 - 북 (N42 E) 33 호장방형동 - 서 (N96 E) 34 호장방형남 - 북 (N32 E) 37 호장방형남 - 북 (N4 E) 38 호세장방형남 - 북 (N5 W) 2 호장방형동 - 서 (N70 E) Ⅰ-1 호말각장방형 Ⅲ-2 호말각장방형 Ⅲ-4 호말각장방형 Ⅲ-5 호말각장방형 장축방향등고선규모 ( cm ) 길이 너비 깊이 장단비면적 ( m2 ) 직교 220 60 42 3.66:1 1.32 직교 230 76 31 3.02:1 1.74 내부시설 직교 224 82 35 2.73:1 1.83 요갱 직교 (120) 63 6 요갱 출토유물 직교 185 56 11 3.30:1 1.03 청자잔 1, 청동편 1 평행 136 84 12 1.61:1 1.14 벽감청자대접 1 조사기관 청자접시1, 청자병1, 청동발 1, 청동시1, 관정3 청자유병1, 청자대접1, 청자철화당초문병1, 청동시1, 동곳1 전남문화동전1, 청동편1, 미상철기1, 재연구원관정7 2012 청자대접1, 청자접시3, 청동시저1 북서-남동청자병1, 청자유병1, 청동대직교 (215) 90 28 (N17 W) 부발1, 청동시1, 관정4 동-서청자병1, 청자동이1, 청동시직교 232 69 26 3.36:1 1.60 (N89 W) 1, 동곳1 동-서직교 232 64 13 3.62:1 1.48 동전6 (N82 W) 청자대접1, 청자접시2, 청자북동-남서직교 250 66 28 3.78:1 1.65 병1, 동경1, 청동대부발1, 청 (N71 E) 동시저1, 철제가위1, 관정13 1호장방형북동-남서 ( 부정형 ) (N20 E) 1 호장방형남 - 북 (N8 E) 1 호장방형남 - 북 (N4 W) 4 호장방형남 - 북 (N33 W) 5 호장방형남 - 북 (N47 W) 6 호장방형동 - 서 (N47 W) 7호장방형동-서 (N78 E) 8호장방형동-서 (N35 W) 남-북 11호 ( 장방형 ) 12 호 ( 장방형 ) (N47 W) 동-서 (N87 W) 13 호장방형남 - 북 (N6 W) 14 호장방형남 - 북 (N87 W) 1 호장방형 북서 - 남동 (N53 E) 11 호세장방형남 - 북 (N29 E) 직교 220 64 10 3.43:1 1.40 청자발 1, 청자완 1 직교 136 52 30 2.61:1 0.70 청자병 1, 청자발 1, 청자접시 2 직교 231 58 13 3.98:1 1.33 직교 275 94 36 2.92:1 2.58 장벽석재 직교 270 65 45 4.15:1 1.75 직교 246 59 42 4.16:1 1.45 직교 208 74 59 2.81:1 1.53 장단벽석재 직교 307 101 40 3.03:1 3.10 장벽석재 평행 (68) (36) 주구단지1, 청자철화초화문병1, 청자유병1, 청자대접1, 청자접시1, 청자잔1, 청동시 1, 청동도장1 단지1, 청자유병1, 청자대접 2, 청자접시1, 청자잔1, 청동시1, 관정10 단지1, 청자주자1, 청자대접 3, 청자잔2, 청자잔탁1, 청동정병1, 청동시1, 관정12 청자병1, 청자유병1, 청자발 1, 청자접시1, 청동시1, 동곳 1, 관정9 청자철화초화문병1, 청자소병1, 청자접시1, 청자완2, 청동시1, 동곳1, 동전1, 옥2 도기병1, 흑갈유유병1, 청자대접2, 청동시1, 관정5 청자대접2, 청자접시1, 청동시1 직교 (120) 70 청자대접 1, 청동시 1 직교 246 90 44 2.73:1 2.21 장단벽석재청자발 1 직교 158 50 14 3.16:1 0.79 직교 159 63 16 2.52:1 1.00 직교 255 89 73 2.86:1 2.26 청자대접 1, 청자접시 1, 청동시 1 편병 1, 청자접시 1, 청동완 1, 청동시 1 대발 1, 병 1, 청자유병 1, 청동완 1, 청동시 1 마한문화연구원 2008 마한문화연구원 2011 호남문화재연구원 2009 전남문화재연구원 2009 목포대학교박물관 2007 마한문화연구원 2012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2011 35
제 6 호 그림 1.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유적현황도 토광묘입지는비교적유구의빈도수가높은함평반암유적과나주상야유적, 장흥신월리유적을중심으로살펴보고자한다. 함평반암유적은학교천주변에충적지와경계를이루면서형성된사면부에해당된다. 전체적으로구릉을이루고있으나동쪽과북쪽에형성된충적지와경계를이루면서넓게평탄부를형성하 36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고있는지역이다. 조사결과삼국시대주거지 27기, 분구묘 9기, 옹관묘 3기, 환호, 고려시대토광묘 11기등이조사되었다. 고려시대토광묘군은조사범위의서쪽구릉정상부에서남동쪽으로이어져내려오는경사면에군집을이루며분포하고있다. 나주상야유적은상야마을서쪽에형성된구릉지로해발고도 30.4 34.6m 에위치한다. 조사지역북쪽은조강천이동쪽에서서쪽으로흐르고남동쪽은배매산이위치한다. 상야유적에서는청동기시대수혈 1기, 고려 조선시대소성유구 2기, 수혈유구 5기, 구상유구 1기, 토광묘 43기가조사되었다. 장흥신월리유적은 초성골 이라부르는골짜기의서쪽을중심으로나지막하게형성된산의경사면에입지하고있다. 유적의남쪽에는옴천천이 S자형으로흐르며이를사이에두고북쪽 ( 국사봉 ) 과남쪽 ( 수인산 ) 에높은산이자리하고있으며, 옴천천주변으로는넓은선상지가펼쳐져있다. 조사결과삼국시대주거지 20기, 토광묘 2기, 옹관묘 2기, 석실분 31기, 고려시대토광묘 14기, 조선시대와요 4기, 목탄요 3기등이조사되었다. 그림 2. 함평반암 ( 左 ) 나주상야 ( 中 ) 장흥신월리 ( 右 ) 유적유구배치도 ( 축척부동 ) 토광묘는대체로해발고도 6 139m 정도의구릉사면부에조성되어져있다. 주변으로는소하천이흐르고있다. 함평반암유적은다른시대의유구들과달리별도의공간을가지고무덤군을형성하면서입지하고있다. 나주상야유적또한구릉정상부와구릉사면부로나눠진채로무덤군을형성하고있다. 장흥신월리유적은 2곳의유적과는달리 3 4기씩소규모군집을이루고있는것이특징이다. 또한신월리유적에서서쪽으로 600m 정도떨어진곳에고려시대건물지가조사되었는데, 이는 37
제 6 호 주거공간에서비교적가까운거리에분묘를조성하였을것으로추정해볼수있다. 또한이러한분묘조성의입지양상은문헌에서도살펴볼수있다 4). 이들유적에위치한토광묘의장축방향은대부분등고선방향과직교하게설정하였다. 장축방향은피장자의침향과관련이있는것으로, 토광묘조성과정에서방위보다는자연지형을감안해서분묘의위치를선정하는것은고려시대에유행한풍수지리설의영향으로보고있다 5). Ⅲ. 부장유물과토광묘의시기설정 전남지역에서확인된고려시대토광묘는평면형태및규모, 굴착방법등구조적인속성으로유구를분류하는데어려움이따른다. 따라서본장에서는부장유물중자기류를중심으로선행연구자료를통해서편년을설정한다음유구에대입시켜토광묘의조성시기를설정하고자한다. 1. 유물검토 토광묘에부장되는유물은재질에따라크게토기류, 자기류, 금속류등으로구분할수있다. 이장에서는토광묘에서부장점유율이가장높고시간성을반영할수있는자기류를중심으로기존형식분류를통해서검토해보고자한다. 1) 청자대접토광묘에서출토된청자대접은총 32점이다. 구연부의형태에따라크게 3가지로구분할수있다 6). 청자대접 Ⅰ류는외반된구연과비교적높은굽이특징이다. 전남지역에서는 8점이출토되었으며, 모두무문이다. 이러한기형은해남진산리 17호요지하층에서출토된대접류와강진용운리 10-Ⅱ 층에서출토된대접과유사한형태를띠고있다. 전남지역토광묘에서는 Ⅰ류의대접 4) 高麗史, 卷 85, 志 39, 刑法 2, 禁令條 今都城四門之外一國大小臣民先人之塚存焉, 대소민들의무덤들이성의네대문부근에있다. 5) 박미욱 2006, 전게서, p.21 6) 청자대접은구연의형태에따라외반구연을 Ⅰ 류, 내만구연을 Ⅱ 류, 직립구연을 Ⅲ 류로구분하였으며, Ⅲ 에서는구경과높이의비율에따라구경 : 기고의비가 2:1 정도를 A 류, 3:1 정도는 B 류로분류하면서, Ⅰ Ⅱ ⅢA ⅢB 식으로시간성이인정된다고하였다 ( 박미욱 2006, 전게서, pp.33~37). 38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이아직까지 10~11 세기를대표하는해무리굽청자완과공반되어출토된사례는확인되지않는다. 다만외반구연의청자대접과공반되어출토되는청자음각연판문반구병이진안수천리 42호석곽묘에서해무리굽청자완과공반되어출토되는것으로보아 Ⅰ류대접의중심시기를 11세기중 후반으로상정해볼수있다. Ⅱ류는함평와촌 3호토광묘에부장된 1점이유일하다. 3호토광묘에서는생산지가확실한청자철화반구병이공반되어출토되었는데, 해남진산리요지의경우그하한을 12세기중반으로보고있다. ⅢA류는측면선이완만하게호를그리며올라가서직립하는구연을형성하며, 굽은 Ⅰ Ⅱ류에비해상대적으로낮은편이다. 15점이출토되었으며, 문양은무문, 음각연판문, 압출양각문, 상감기법등그종류가다양하다. Ⅱ류와마찬가지로청자철화반구병과공반되어출토되는사례가많다. ⅢB류는 8점이출토되었으며, ⅢA류와비교하였을때높이는낮아지고기벽은두터워지는경향을보인다. 문양이시문된대접의경우도식화된양상을보이고있다. 또한반구형의청자병보다후행하는것으로여겨지는팔구형의청자병이공반되어출토되고있다. ⅢB류의청자대접은그상한을 13세기중반이후로상정할수있다. 그림 3. 토광묘출토청자대접 ( 축척동일 ) 2) 청자접시접시는총 24점이출토되었다. 접시또한구연과기측면의형태변화에따라서 4가지로분류하였다. Ⅰ류는청자대접과마찬가지로외반된구연과높은굽이특징이며, 7점이출토되었다. 모두무문이며, 청자대접 Ⅰ류와공반관계를보이면서출토되고있다. 또한진도용장산성에서조사된석곽묘에서는해무리굽청자완과공반되어 11세기대로그편년을설정하고있다. Ⅱ류의청자접시는 7점이출토되었으며굽은낮아지고측면선은곡선을이루며완만하게벌어져올라간다. 소형의경우측면선이사선을띠며, 구연은외반한다. 현문필의분석에따르면 Ⅱ류의청자접시는강진용운리 10-Ⅱ 층에서출토된접시의특징과유사한것으로보고있다 ( 현문필 2005). 39
제 6 호 그림 4. 토광묘출토청자접시 ( 축척동일 ) Ⅲ류는내면이편평하며, 측면선은사선이나거의수직에가깝게올라가면서구연부를형성한다. Ⅰ Ⅱ류접시에비해기벽이두터워지는것이큰특징이라고할수있다. 8점이출토되었으며, 일부유물에서는내 외면에도식화된문양이새겨져있다. Ⅳ류는외반된구연부에톱니모양으로깍아花形으로장식한것이특징이다. 광주쌍촌동 4호, 나주운곡동 Ⅲ-5호토광묘에서출토되었다. Ⅲ Ⅳ류접시는대부분청자대접 ⅢB류와공반되어있어시기적인차이는거의없을것으로보인다. 3) 청자병 7) 청자병은 17점이출토되었으며, 구연과동체의형태에따라 6가지로분류하였다 8). 반구형의구연부에편동형의동체를가진 ⅠA류의청자병은전남지역토광묘에서는아직까지출토사례가확인되지않는다. 하지만상주청리유적 A-나 -94 호토광묘에서출토된사례가있어, 앞으로전남지역에서도확인될가능성이있을것으로판단된다.ⅠBa류는 4점이출토되었다. 매장의례과정중진행되는일정한행위에의해서인지는알수없지만, 함평와촌 3호토광묘를제외한나머지는구연부가결실되어있어구연의정확한형태를파악할수없다. 하지만잔존하는형태로보아반구형의구연을가진것으로판단된다. 동체상단외면에는철화당초문이그려져있다. 굽은잔존하지않거나매우낮게형성되어져있다. 청자대접 Ⅱ ⅢA류, 청자접시 Ⅱ류와공반되어출토되고있다. ⅠBb1 류는반구형의구연부에동체어깨부분에각이없으면서동최대경이상부에있는형태로 6점이출토되었다. 문양은무문, 철화당초문도확인되지만주로음각연판문이새겨져 7) 토광묘에서흑유 녹유를포함한청자병류는 30 점이출토되었다. 하지만본고에서는 30 점전체를분류대상으로삼지않고, 비교적잔존상태가양호한대형의반구병 17 점을선정하여분류를시도하였다. 8) 청자병은구연의형태에따라반구형을 Ⅰ 류, 팔구형을 Ⅱ 류분류하였으며, Ⅰ 류는다시동체형태에따라편동형에가까운것을 A 류, 장동형에가까운것을 B 류로구분하고 B 류는견부에각의유무에따라 a, b 로나누고 b 는동최대경의위치에따라상부에있는것을 1, 중부에있는것을 2 로세분하였다. Ⅱ 류는동체부의최대경이가운데있는것을 A 류, 동체아래있는것을 B 류로분류하면서 ⅠA ⅠB Ⅱ 식으로시간성이인정된다고하였다 ( 박미욱 2006, 전게서, pp.40~42). 40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있다. 굽또한다른청자병보다높고잘남아있다. 음각연판문이시문된반구병은전술하였듯이진안수천리 28호 42호석곽묘에서해무리굽청자완과공반되어출토된사례가있어그중심시기를 11세기중 후반까지로설정해볼수있다. 그림 5. 토광묘출토청자병 ( 축척부동 ) ⅠBb2 류는나주운곡동 Ⅲ-5 호토광묘에서출토된것이유일하다. 동일유적인 Ⅰ-1 호, Ⅲ-2 호토광묘에서도동체중위에서최대경을가지는특성은비슷하지만구연부가유실되어정확한형태를파악할수없다. 운곡동 Ⅲ-5호출토품은반구형의구연부가뚜렷하지않고많이축약되어있으며, 청자대접 ⅢB류와청자접시 Ⅳ류, X자형철제가위, 쌍어문동경, 외반구연의청동대부발, 청동시저등이공반되어출토되었다. 팔구형의구연부를가진 Ⅱ류의청자병은 2점이다. 함평반암 6호출토품은동체상단부에철화당초문이그려져있고, 나주상야 2호출토품은무문이다. 공반유물이빈약하여정확한시기를설정할수는없지만선행연구에의하면반구형의청자병보다는후행하는것으로판단하고있다. 구연부가유실되어정확히판단할수없지만장흥신월리 6호출토품과고흥장동 11호출토품도잔존하는형태를보아팔구형으로추정할수있다. 4) 동전토광묘조성시기의상한을결정할수있는유용한자료중의하나로주조시기를명확하게알수있는동전이있다. 고려시대에동전이부장되기시작한것은동전이재보 ( 財寶 ) 로서인식되고당대 ( 唐代 ) 이후송대 ( 宋代 ) 의중국묘에서동전의부장이일반적이었던것과관련이있다 9). 전남 9) 李承一 2002, 高麗墓出土中國錢에대한硏究, 東亞大學校大學院碩士學位論文, p.75. 41
제 6 호 지역토광묘에서동전은총 17점이출토되었다. 장흥신월리 7호토광묘를제외한나머지는공반유물이없거나철제편등이출토되어유구의상대적인편년을보완해줄수있는증거자료가매우빈약하다. 토광묘에서출토된동전은크게북송전과고려전으로구분해서살펴볼수있다. 북송전은나주상야 34호와나주운곡동 Ⅲ-4 호토광묘에서출토되었으며, 토광묘의상한을 11세기말에서 12세기초로설정할수있다. 그림 6. 토광묘출토동전류일괄 고려전은나주상야 34호와장흥신월리 7호에서각각 1점씩출토되었다. 이승일의연구에의하면고려전이집중적으로출토하는시기는 11세기전반에서 12세기전반이며이는고려정부에서고려전통용에적극적이었던시기에해당한다. 고려전은 11세기후반중국전과동일한가치를가지고유통되었으나중국전이대량으로유통되면서고려전의유통책에실패하여부장유물로서는자취를감추게된다고하였다 ( 이승일 2002). 신월리 7호출토품은생산지가확실한청자철화반구병과공반되어있어이를뒷받침해주고있다. 2. 편년 전남지역에서확인되는토광묘는현재까지구조적인특징으로시기를구분하는데어려움이있어먼저, 유물의검토를통해서살펴보고자하였다. 그결과토광묘는크게 3시기로구분이가능하였다. 1기는높은굽에곡선을이루며올라가다외반구연을형성하는청자대접 청자접시 Ⅰ류와반 42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구형의구연부와동체상위에최대경을이루며굽이높고, 동체외면에는음양각연판문이시문된청자반구병 ⅠBb1 류가공반되어출토된다. 청자음각연판문반구병은 10 11세기대로편년되는해무리굽청자완과공반되어출토되고있다. 하지만외반구연의청자대접은전남지역토광묘에서아직까지해무리굽청자완과공반되어확인된사례가없기때문에해무리굽청자완이점차부장유물에서사라지면서그빈공간을청자대접이자리한것으로보이며, 그시기는 11세기중 후반으로판단된다. 1기에해당하는유구는함평반암 1호분주구내토광묘 2호 3호 7호 10호, 나주송월동 1-1 호, 해남분토리 1호, 장흥신월리 8호 13호, 보성석평유적 1호등 10기가이에해당된다. 그림 7. 시기별토광묘와부장유물 43
제 6 호 2기는청자대접 Ⅱ ⅢA와청자접시 Ⅱ, 청자병 ⅠBa ⅠBb2 ⅡA가공반되어출토되고있다. 청자대접은비교적낮은굽을가지며, 곡선을그리며완만하게올라가다내만또는직립하는구연을가진다. 내 외면에는음 양각, 압출, 상감기법등다양한기법이베풀어지고있다. 청자병은생산지가확실한철화반구병이주류를이루고있다. 2기는음각연판문대접과철화반구병을통해 12세기대로그상한을설정할수있으며, 그하한은상감청자가확인되는장흥신월리 5호출토품과나주상야 37호출토품을통해 13세기중반으로설정할수있다. 2기에해당하는유구는함평반암 6호, 와촌 1호 2호 3호 4호, 광주쌍촌동 3호, 나주송월동 1-1 호, 도민동 1호, 상야 12호 31호 33호 34호 37호, 장산리 2호, 운곡동 Ⅲ-4호, 장흥신월리 1호 4호 5호 6호 7호 12호 14호등 22기가이에해당된다. 3기는청자대접 ⅢB, 청자접시 Ⅲ Ⅳ, 청자병 ⅡB가공반되어출토되고있다. 3기에서출토되는청자대접과접시의공통점은전시기에비해기형이두터워지는경향을보이며, 문양이확인되는경우도식화되거나, 내저면구연상단부에 1 2줄의백상감흔적이관찰된다. 청자병은팔구형의구연부를가진청자병의출토가주류를이루며, 반구형의축약된형태도일부확인된다. 3기는함평반암 5호부장유물, 광주쌍촌동 2호부장유물, 나주상야 38호접시등을통해 13세후반에서 14세기대로설정할수있다. 3기에해당하는유구는함평반암 5호, 광주쌍촌동 4호, 나주상야 2호 11호 15호 28호 38호, 운곡동 Ⅰ-1호 Ⅲ-2호 Ⅲ-5호, 장흥신월리 11호, 고흥장동 11호등 12기가이에해당된다. Ⅳ. 토광묘의구조적특징과변천 본장에서는시기별토광묘의구조적특징을평면형태, 축조방법, 내부시설, 장법등으로나누어서검토하고토광묘시기별변천양상에대해서간략하게살펴보고자한다. 1. 구조 1) 규모평면형태는장방형, 말각장방형, 세장방형등다양한형태를보이고있다. 하지만시기별로살펴보았을때평면형태의변화양상은관찰되지않는다. 시기별규모를살펴보면 1기에는다양하게 44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나타나는것을확인할수있다. 반면에 2기로접어들면서점점묘광의규모가길이는 200 250cm, 너비는 60 80cm내외로정형화되어가고있는것을확인할수있다. 3기에도 2기와마찬가지로정형화되면서 2기의토광묘보다는규모가작아지는경향을보이고있다. 하지만최근강원지역고분을정리한박해영의분석에의하면묘광의장축길이의차이는피장자의신체조건이한이유가될것이라고언급하면서, 200 250 cm의장축길이가가장많은것은목관을놓고유물을그밖에매납하기때문인것으로파악하였다 ( 박해영 2011). < 표 2> 토광묘의시기별규모변화 < 표 3> 토광묘의축조방법에따른비율 2) 축조방법지금까지전남지역에서확인되는토광묘는크게토광을굴착한뒤목관이나시신을안치하는 1단굴광의토광묘 (Ⅰ) 와굴광을한후장 단벽일부에서석재가확인되는토광묘 (Ⅱ) 로구분할수있다. 토광묘는총 46기로이중 Ⅰ식의토광묘는 41기 (89.13%) 로대부분을차지하며, 나머지는 Ⅱ식토광묘로 5기 (10.8 7%) 가조사되었다. Ⅰ식토광묘는전시기에걸쳐확인되고있는반면에 Ⅱ식토광묘는 1기와 2 기에서만확인되고있다. 2기에서도 12 세기중반이후에는확인되지않고있어주목할만하다. 아직조사자료가충분하지않아 Ⅱ식토광묘축조에대한성격을정확히파악할수없지만, 3가지관점에서접근할수있을것으로판단된다. 첫째, 고려전기에조성된석곽묘전통이잔존하여발생한하나의형식으로볼수있다. 둘째, 석곽묘를사용할수없는계층이모방하여조성한것으로도추정할수있다. 셋째, 토광내목관또 45
제 6 호 는시신을고정하기위한것으로도볼수있다. 3) 내부시설 10) 토광묘의내부시설로는요갱, 사우혈, 감실등이있다. 11세기중 후반으로편년되는 1기의토광묘에서는내부시설이확인되지않으며, 2기부터본격적으로확인되기시작하여 3기에서도지속적으로확인된다. 요갱은묘광바닥중앙부에원형또는타원형의구덩이로내부에서석영, 철제품, 도 토기류등이출토된다. 전남지역토광묘에서는장방형의철편만출토되고있다. 사우혈은묘광의네모서리바닥면에원형의구덩이를판것으로, 내부에서부장품이확인되지않고있어네모서리에나무기둥같은것을넣고목관을안치할때수평을맞추던시설이거나하관하기전의례적인행위 11) 의시설로판단하는견해도있다. 하지만최근나주상야유적에서는사우혈의기능을토광묘의바닥경사도, 굴광의평면형태나단면형태등의예시를제시하면서수평을맞추기위한시설보다는하관하기전의의례적인행위의결과물로보는것에더비중을두고있어주목할만하다 12). 감실은묘광벽면을굴착해서유물을부장하기위한별도의공간을마련한것으로전남지역토광묘에서는나주장산리 2호토광묘가유일하다. 4) 장법토광묘에서살펴볼수있는장법은부장유물의조합관계, 부장유물의위치등을언급할수있을것이다. 1기에는대접 + 접시 + 병이한세트를이루며출토되고있다. 또한청동기류의부장이극히드물게확인되는것도특징이라고할수있다. 유물의부장위치는아직자료의제한적인면이있지만족부에치우친경향보다는토광묘장벽의관측면이나관상면에부장하는경향을보이고있다는것이주목할만하다. 2기는시기의폭이넓은것처럼 1기에비해다종다양한유물이공반되어출토된다. 1기에서확인되었된대접 + 접시 + 병의조합관계에더하여유병, 잔, 주자, 잔탁등청자류의부장종류도다 10) 본고에서는고려시대청자가부장되는토광묘를중심으로분석대상을설정하였다. 즉, 철제편이나조성시기를파악할수없는토광묘의경우내부시설 ( 요갱, 사우혈, 감실 ) 이확인되었더라도분석대상에서제외시켰다. 따라서고려시대토광묘에서내부시설의점유율파악은아직섣부른분석이라고판단된다. 11) 정종수의논문에서는행상 ( 行喪 ) 의여러과정에대해서기술하고있는데이중방상시 ( 方相氏 ) 의대목이주목된다. 방상은방상시라고도하는데, 장례행렬의맨앞에서귀신을쫓고영구를인도하며묘지에이르면제일먼저광내 ( 壙內 ) 로들어가사방모퉁이를창으로쳐잡귀와액을쫓는것으로, ( 주자의 가례 권5, 상례치상조 ) 와 ( 高麗史 권 64, 志권18, 禮 6 季冬大儺儀 ) 에서비슷한내용을찾아볼수있다 ( 정종수 2000, 상여고 ( 喪輿考 ), 생활문물연구 창간호, 국립민속박물관, p.39). 12) 한미진외 2012, 羅州道民洞 上夜遺蹟, ( 財 ) 全南文化財硏究院, p.256. 46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양해진다. 또한전시기에는출토되지않았던동전의부장이등장하며, 청동발, 청동시저, 청동정병등청동기의부장량도증가한다. 청동발의경우토광묘에서청자대접이부장되지않은토광묘에서부장되어있는것으로보아청자대접에서청동발의재질의변화로추정된다. 유물의부장위치는전시기와유사한양상도보이지만, 족부에치우친곳에부장하는형태가등장하기시작한다. 장흥신월리 1호 4호의경우족부아래에따로부장공간을만들어유물을정치한채로부장하였다. 이러한것은지역적인특색일수도있지만, 토광묘굴광당시부터유물의부장공간을인지하고굴광한것으로묘광과목관사이의장벽에유물을부장한 1기와는다른장법의차이가있을것이라고추정된다. 3기는 2기에비하여부장유물의종류가다시줄어드는현상을보이며, 토기항또는자기항의부장이늘어난다. 또한철제가위및동경의부장도확인된다. 유물의부장위치는대부분족부에치우친곳에부장되어있다. 2. 토광묘의시기별변천양상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는크게 3시기로구분해서살펴볼수있다. 1기는외반구연의청자대접과청자음각연판문반구병이공반되어출토되는시기로 11세기중 후반으로설정할수있다. 전남지역토광묘에서 1기에해당하는유구는함평반암 1호분주구내토광묘 2호 3호 7호 10호, 나주송월동 1-1 호, 해남분토리 1호, 장흥신월리 8호 13호, 보성석평 1호등 10기이다. 이시기의부장유물은기벽이부드러운곡선을그리고있으며, 높은굽을가지고있다. 토광묘의평면형태는장방형, 세장방형, 말각장방형등다양한형태를띠고있다. 묘광의축조방식은 1단으로굴광한것과 1단으로굴광을한후석재를보강한형식등두형식이나타난다. 유물을부장하거나매장과관련된의례행위로추정되는내부시설은이시기에는확인되지않는다. 유물은대접 + 접시 + 병이한세트를이루면서출토되고, 청동기류의부장이빈약하다. 유물의부장위치는장벽의관측면이나관상면에부장하는경향을보이고있다. 전남지역토광묘에서는아직까지해무리굽청자완이 1기에해당하는유물과공반되어출토된사례가없으며, 고려시대전기토광묘또한확인이되지않고있다. 고려시대전기토광묘부재와 1기에서확인되는토광의축조방식과부장유물은밀접한관련이있을것이라고추정할수있다. 2기는생산지가확실한철화반구병, 음각연판문대접, 압출양각기법, 상감기법등유물에다양한문양기법이시문되는시기로 12세기에서 13세기중반으로설정할수있다. 이시기에해당하는유구는함평반암 6호, 와촌 1호 2호 3호 4호, 광주쌍촌동 3호, 나주송월동 1-1 호, 도민동 47
제 6 호 1호, 상야 12호 31호 33호 34호 37호, 장산리 2호, 운곡동 Ⅲ-4호, 장흥신월리 1호 4호 5호 6호 7호 12호 14호등 22기로시기폭이큰만큼가장높은점유율을보이고있다. 부장유물은다종다양하다. 청자류의경우주자, 잔, 잔탁등새로운기종이부장된다. 대접의굽은이전시기에비해낮아지는특징을보이며, 구연은직립하거나내만한다. 병은굽이매우낮거나거의보이지않는청자철화반구병이출토된다. 토광묘의평면형태는이전시기와마찬가지로다양한형태를보이고있으며, 장축길이가 200 250cm로규격화되는경향을보이고있다. 묘광의축조방식은 1기와마찬가지로 2형식모두확인되는석재를보강한형식으로, 12세기중반이후에는확인되지않은것으로판단된다. 내부시설은요갱, 사우혈, 감실등이나타나며, 그기능에대해서는다양하지만최근요갱은부장공간과벽사적의미로해석되고있다. 사우혈은목관을하관하기전의의례행위의결과물로파악하고있다. 유물은다종다양하며전시기에는출토되지않았던동전, 청동발, 청동시저, 청동정병등청동기의부장량도증가한다. 부장위치는전시기와유사한양상도보이지만, 족부에치우친곳에부장하는형태가등장하기시작한다. 묘광과목관사이의장벽에유물을부장한 1기와는다른장법의차이가있을것이라고추정된다. 3기는청자대접과청자접시에서도식화된문양이확인되는시기로 13세기후반에서 14세기대로설정할수있다. 이시기에해당하는유구는함평반암 5호, 광주쌍촌동 4호, 나주상야 2호 11 호 15호 28호 38호, 운곡동 Ⅰ-1호 Ⅲ-2호 Ⅲ-5호, 장흥신월리 11호, 고흥장동 11호등 12기이다. 부장유물은전시기에비해다시감소하는경향을보이며, 기벽이두터워지는것이특징이다. 토광묘평면형태는전시기들과마찬가지로다양하게나타난다. 규모는 2기에비해조금더축소되는경향을보이고있다. 묘광의축조방식은전시기의석재를이용한형식은확인되지않으며, 1단굴광식만존재한다. 내부시설은요갱, 사우혈등이확인되며, 2기와크게상이하지않다. 유물의부장위치는거의대부분족부에치우친곳에부장하고있다. Ⅴ. 맺음말 지금까지전남지역에서조사된고려시대토광묘에대한간략한검토를시도해보았다. 토광묘유적은 14개소로 46기가확인되었으며, 입지조건을보면대체로해발고도 6~139m 정도의구릉사면부에등고선방향과직교하게조성되어있다. 유적의주변으로는소하천이흐르거나, 넓은곡간부가형성되어져있다. 10기이상확인되는유적에서는유적군내에서도별도의공간을두고조성되어져있는경우가확인된다. 48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본고에서는유물을먼저검토한후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의구조적인특징과시기별변천을밝혀보고자하였다. 부장유물을통해서크게 3시기로구분해서토광묘의변화상을살펴볼수있었다. 1기는 11세기중 후반으로설정할수있으며, 이시기의토광묘는축조방식에서 1단굴광식과 1 단굴광을한후석재를보강한것으로나뉜다. 각형식에서출토되는유물은큰차이를보이지않는다. 토광의규모는소형에서대형까지다양하게나타난다. 내부시설은확인되지않으며, 부장유물을족부에부장하기보다는묘광과목관사이에장벽에비스듬하게부장하는양상을보인다. 2기는 12세기 ~13 세기중반까지로설정할수있다. 고려시대문화의발전기와절정기에해당하는시기로다종다양한유물들이부장된다. 축조방식은전시기와마찬가지 2가지형식이모두확인된다. 하지만 1단굴광을한후석재를보강한형식은늦어도 12세기중반이후에는소멸한것으로판단된다. 규모는장축길이가 200 250 cm로점점정형화되어가는데이는목관외부에유물을부장하는것과관련이있을것으로판단된다. 내부시설은전시기에보이지않던요갱, 사우혈, 감실등이확인된다. 유물의부장위치는전시기와유사한양상도보이지만, 족부에치우친곳에부장하는형태가등장하기시작한다. 묘광과목관사이의장벽에유물을부장한 1기와는다른장법의차이가있을것이라고추정된다. 3기는 13세기후반 ~14 세기로편년되는기간으로 1단굴광식의토광묘만확인된다. 규모는전시기에비해조금더축소되는경향을보인다. 내부시설은요갱, 사우혈이확인되며, 유물의부장위치는거의대부분족부에부장하는형태를취하고있다. 이상으로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구조적인특징과변천과정을간략하게검토해보았다. 하지만 10세기해당하는고려전기의토광묘는여전히공백기로남으며, 2기와 3기의세부적인토광묘의변화상은살펴볼수없었다. 또한역사시대의유적인만큼문헌자료를통해서면밀하게검토하여야하는데, 발굴조사된유구를중심으로검토하다보니문헌자료는거의검토하지못한점도아쉬움으로남는다. 앞으로전남지역에서고려시대묘제에대한많은조사가이루어진다면자료를수정 보완하여고려고분연구에도움이되도록하겠다. 49
제 6 호 참고문헌 사료 高麗史 宣和奉使高麗圖經 단행본김원룡 2001, 한국의고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보고서 ( 財 ) 馬韓文化硏究院 2012, 寶成道安里石坪遺蹟 Ⅱ -Ⅱ지구-. ( 財 ) 湖南文化財硏究院 2007, 咸平磻岩遺蹟. ( 財 ) 湖南文化財硏究院 2009, 康津月下里遺蹟. 金京七외 2005, 木浦- 光陽 ( 木浦 - 長興 ) 間高速道路建設區間內文化遺蹟調査報告 Ⅰ 試掘調査報告, ( 財 ) 全南文化財硏究院. 金珍英 張成一 朴永勳 2009, 海南黃山里分吐遺蹟 Ⅱ, ( 財 ) 全南文化財硏究院. 圓光大學校馬韓 百濟文化硏究所 2001, 鎭安龍潭댐水沒地區內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 Ⅴ 壽川里高麗古墳群外. 李暎澈외 2011, 高興掌德里獐洞遺蹟, ( 재 ) 대한문화유산연구센터. 이정호외 2010, 나주송월동유적 제3지구-, 동신대학교문화박물관. 李志映 2008, 나주장산리유적, ( 財 ) 馬韓文化硏究院. 林永珍외 2007, 咸平星泉里瓦村遺蹟, 全南大學校博物館. 林永珍 徐賢珠 1999, 光州雙村洞住居址, 全南大學校博物館. 정일 김문국 2010, 羅州松月洞遺蹟 -제1구역-, ( 財 ) 全南文化財硏究院. 曺根佑외 2011, 나주운곡동유적Ⅳ, ( 財 ) 馬韓文化硏究院. 최성락외 2007, 장흥신월리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 최성락외 2008, 장흥신월리건물지, 목포대학교박물관. 최성락 고용규 김병수 2006, 진도용장산성, 목포대학교박물관. 崔盛洛 李釩起 宋蕙英 2008, 務安學禮洞遺蹟, ( 財 ) 全南文化財硏究院. 崔盛洛 崔建 1992, 海南珍山里綠靑磁窯址, 木浦大學校博物館. 50 전남지역고려시대토광묘일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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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州地域瓦窯檢討 李景琳 目次 Ⅰ. 머리말 1. 목적및배경 2. 방법및범위 Ⅱ. 유적검토 1. 분포현황 2. 유적검토 Ⅲ. 가마구조검토 1. 용어정리 2. 구조검토 3. 속성분류 Ⅳ. 기와가마변천 1. 형식분류 2. 편년 3. 기와가마변천 Ⅴ. 맺음말
제 6 호 羅州地域瓦窯檢討 李景琳 *13) 국문초록 이글은전남지방기와가마연구의일환으로현재까지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기와가마 6개소 29기를중심대상으로구조적인변화상을검토한것이다. 절대연대자료인 AMS 와고고지자기를바탕으로편년을설정하고, 기와가마의구조를검토하면서확인된여러가지속성중화구에서연소실까지의종단면형태, 불턱의유무, 소성부의평면형태를분석하여시기에따른구조적특징과변화양상을살펴보았다. 나주지역기와가마는 4시기로구분되었다. 1기는중심연대가 8세기로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장방형을띤다. 2기는중심연대가 9세기부터 10세기로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다. 불턱은무단식과유단식이시기차가거의없이공존하고있으며유단식의경우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주형이다. 3기는중심연대가 11세기부터 13세기로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다.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제형을띠고, 길이는 400cm이하이다. 4 기는중심연대가 14세기부터 17세기로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외고내저형이다.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제형을띠고, 길이는 400cm이상이다. 주제어 : 나주, 기와가마, 가마 * 전남문화재연구원연구원교신저자, 이메일 : x-teen55@hanmail.net 54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Ⅰ. 머리말 1. 목적및배경 가마는각종토기, 자기, 도기, 기와등의점토소성물를넣고고온에서소성하였던구조물은물론목탄등을만드는시설물을포함하는것이다. 기와가마 ( 瓦窯 ) 는여러가지소성물중기와를제작하여공급하는시설물 (kiln) 을뜻한다 1). 가마에대한연구는생산과유통이라는측면에서사회상을연구하는데중요한가치를지닌다. 최근들어대규모개발사업으로인해궁궐 관아 사찰 성곽 생산유적등의건물지유적에대한조사가증가하고있다. 이에따라기와관련자료가계속축척되고있으며, 기와가마에대한조사도늘어남에따라학문적인관심또한고대이전의유적및유물에서벗어나고려 조선시대까지그범위가넓어지고있다. 그러나이러한시대별, 지역별자료들이증가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그성과는다소미진하다고볼수있다. 특히전남지방의기와가마연구는김경미 2) 에의해연구된내용을제외하면다른지역에비해거의전무한상태이다. 김경미의논고또한고려시대라는한정된시대를설정하고구조와유물을다루고있어전남지방의전반적인기와가마의변화양상은살펴보기에는한계가있다고할수있다. 이러한견지에서나주지역의기와가마에대한검토는반드시필요한것으로생각되며, 전남지방기와가마의연구에자료역할과더불어지역생산문화의일면을살펴볼수있는자료로서도작은가치가있다고판단된다. 2. 방법및범위 본연구는전남지방기와가마연구의일환으로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기와가마의시기에따른구조적변화양상을살펴보고자한것이다. 공간적인범위는현재까지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기와가마 6개소 29기를대상으로구조적인검토를시도하였다. 자료의범위를나주지역기와가마로정한이유는이지역은동쪽으로화순군, 서쪽으로무안군과함평군, 남쪽으로영암군, 북쪽으로광주광역시와경계를이루고있으며, 우리나라 4대하천중하나인영산강을끼고서해안과접하고있어일찍부터해양문화와내륙문 1) 김정선 2003, 조선시대자기가마구조연구, 동국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 김경미 2011, 전남지방고려시대기와가마연구, 목포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55
제 6 호 화를연결하는호남문화의중심지가되어왔던곳이다. 특히고려건국당시왕건이후백제의영토였던나주를장악하기위해여러번의격전을하였다는역사적인배경을보더라도나주는영산강을이용한고대교통로상에있어서도중요한거점지에해당한다고할수있기때문이다. 본연구는다음과같이진행되었다. 2장에서는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유적의분포현황과기와가마의특징을간략하게서술하여살펴보았다. 3장에서는기와가마의구조에따른용어정리와대표적인속성을살펴본후시간성이반영되는속성에따른분류안을작성하였다. 4장에서는속성분류안을토대로나주지역출토기와가마의형식분류와편년을설정하고자한다. Ⅱ. 유적검토 1. 분포현황 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기와가마는 6개소 29기 3) 이다. 지금까지전남지방에서발굴조사된기와가마는 25개소 74기로전체유적의 39% 가나주에분포하고있는데, 특히고려시대기와가마가 5개소 24기로 71% 를차지하여집중분포하고있음을알수있다. 그림 1. 지역별가마분포현황 그림 2. 시기별가마분포현황 3) 목포대학교박물관 2010, 나주송월동 Ⅱ- 통일신라 ~ 고려시대. 호남문화재연구원 2008, 나주덕림유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나주복암리 3 호분. 마한문화연구원 2008, 나주운곡동유적 Ⅰ- 지석묘 기와가마. 마한문화연구원 2011, 나주운곡동유적 Ⅳ. 마한문화연구원 2010, 나주송학리유적. 남도문화재연구원 2006, 나주신광리기와가마. 56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유적은나주신광리유적을제외하면대다수가강가에인접하여위치하고있는데이를수계별로살펴보면영산강본류를따라확인된유적은복암리 운곡동 송월동유적으로총 22기, 장성천을따라확인된유적은덕림유적으로총 2기, 송학천을따라확인된유적은송학리유적으로총 4기가위치한다. 이는기와제작원료와공급에필요한운송로의용도로이용하기위해물과가깝게자리한것으로해석할수있다. 특히이중 3개소 22기가영산강본류를따라위치하고있는데, 기와가마외에도나주오량동유적과같은대단위의토기생산유적이군집을이루고있어공급을위한운송로에큰비중을두고축조한것으로판단된다. 그림 3. 나주지역기와가마분포도 2. 유적검토 1) 羅州松月洞遺蹟 전남나주시송월동 524-6 번지일원의해발 25m 의저지성구릉사면부에유적이위치한다. 건 57
제 6 호 물지, 수혈등과함께통일신라시대기와가마 1기, 고려시대기와가마가 9기가확인되었다. 통일신라시대기와가마는해발 36~27m 의구릉사면남서쪽에치우쳐단독으로위치한다. 요전부의규모는길이약 250cm, 너비 378 cm, 최대깊이 88cm이다. 평면형태는타원형으로연소실에서부터점점높아지고뒤로갈수록좁아지는형태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장방형에가까우며높이 14cm정도의불턱으로인해소성실과구분되며대체적으로편평하나요전부하단으로갈수록점차높아진다. 너비는 106~110 cm이다. 소성실의평면형태는연도부로갈수록점차좁아드는제형을띠며경사도 18 정도이다. 규모는길이 388 cm, 너비 110~l14 cm, 높이 55~93 cm이다. 고려시대기와가마는해발 25~26m 의구릉사면말단부에중첩되어위치한다. 요전부는 3호, 5 호, 7호가마에서확인되는데평면형태는타원형에가까우며횡단면은아궁이까지대체로평탄하나 3호의경우경사도에차이를두어아궁이보다낮게구축하였다. 아궁이는 3~5 호, 7호에서확인되는데 3 4호는기와 + 점토를이용하여만든형태이고, 5 7호는양측벽에할석을세워축조하였다. 연소실은 5호와 7호에서확인되는데평면형태는반원형을띠고횡단면은요전부하단쪽으로갈수록경사가높아지는경향이있어외고내저형으로판단된다. 소성실은 5~7 호에서확인되는데평면형태는후미로갈수록너비가좁아드는주형 (7호) 과제형 (5 6호 ) 의형태를띤다. 경사각은 23~30 로 20 이상의급한경사도를보이고있다. 2) 羅州德林遺蹟전남나주시계림리덕림마을일원의해발 22~24m 의구릉하단부에유적이위치한다. 삼국시대주거지, 수혈등과함께고려시대기와가마 2기가확인되었다. 가마는후대경작으로인해대부분유실되었다. 1호가마는요전부, 연소실, 번조실 1개만남아있으며전체길이는 485 cm이다. 요전부의평면형태는타원형을띠고화구는석재를이용하여축조하였으며너비는 35cm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장방형을띠고횡단면은내외평탄형을띤다. 2호가마는요전부와연소부만확인되었다. 연소부는장방형의평면형태를가진다. 3) 羅州伏岩里遺蹟전남나주시다시면복암리 471 번지일원의분구위에유적이위치한다. 1호가마는분구의동북모서리에서노출된등요이다. 소성실, 연소실, 아궁이, 폐기물퇴적장이갖추어진것이나상부는파괴되었다. 남아있는전체길이는 470cm로소성실과연소실의경계부분이잘록한것이특징적이다. 아궁이폭은 40cm이며연소실은최고폭 160cm, 잔존고 10cm이다. 소성실은길이 330cm, 폭 150cm, 잔존고 35cm이다. 소성실의경사도는 30 이다. 2호가마는분구의서북모서리에서노출된아궁이, 연소실, 소성실이갖추어진등요이다. 소성 58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실은바닥만남아있는데형태는굴뚝쪽으로갈수록좁아지는타원형으로현재남아있는길이는 270 cm이며경사도는 30 이다. 연소실의상단은원형이고하단은타원형을이루어연소실에서소 성실로완만한경사를두었다. 4) 羅州雲谷洞遺蹟전남나주시운곡동 169-18 번지일원의가야산남서쪽지류인저평한구릉에유적이위치한다. 청동기시대주거지, 삼국시대석실묘등과함께고려시대기와가마 10기가확인되었다. Ⅰ-1~3 호가마의상면부는모두유실되었고측벽일부와바닥면만남아있는상태이다. 반지하식으로추정되며가마는요전부일부와연소부-소성부만확인된다. 가마의장축방향은 1호의경우동-서방향을띠고, 2호와 3호는북동-남서향을띠고있으며등고선과직교하고있다. Ⅰ-5호가마는지하식구조로가마의전체길이는 960 cm이며장축방향은북동-남서 (N62 E) 이다. 화구는기반토를굴착한후여러매의석재를이용하여축조하였다. 크기는길이 128cm, 너비 172 cm, 잔존높이 190cm내외이다. 연소실은평면형태가장방형이며크기는길이 132cm, 너비 178cm, 최대높이 164cm이다. 소성부는평면형태가주형을띠고있으며경사도는 27 로급경사를이루고있다. 크기는길이 230 cm, 너비 122~212 cm, 현높이 112~137 cm이다. Ⅰ-6호가마는지하식으로가마의전체길이는 848 cm이며장축방향은북동-남서 (N32 E) 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장방형을띠고있다. 화구에서연소실로연결되는종단면은불턱으로갈수록살짝경사를이루고있으며경사도는약 8 이다. 크기는길이 94cm, 너비 108cm, 최대높이 92cm이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주형을띠고있으며경사도는약 28 로급경사를이루고있다. 크기는길이 276 cm, 너비 204 cm, 현높이 43~110 cm이다. Ⅱ-1호가마는터널형태의지하식등요로가마의전체길이는 830cm이며장축방향은등고선과직교하는동-서이다. 화구는생토면을굴착하여축조하였다. 정면형태는장방형이었을것으로추정된다. 크기는너비 70cm, 높이 11cm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반원형을띠고있으며크기는길이 90cm, 너비 140cm, 높이 110cm이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제형을띠고있으며바닥면에는 2개의단이시설되어있다. 크기는현길이 310cm, 너비 110~130 cm, 높이 26~32 cm이다. Ⅱ-2호가마는해발 13~14m 의구릉서사면말단부에위치하고있다. 전체길이는 460cm이며장축방향은등고선과직교하는동-서이다. 화구는생토면을굴착하여축조하였다. 크기는너비 44 cm, 현높이 30cm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반원형을띠고있으며횡단면은불턱으로갈수록높아지며경사도는약 9 이다. 크기는길이 140cm, 너비 146cm, 높이 46cm이다. Ⅱ-3호가마는해발 13~14m 의구릉서사면말단부에위치한다. 장축방향은등고선과직교하는 59
제 6 호 동-서이고, 현길이는 1,350cm, 너비 130~285 cm, 깊이 20cm내외이다. 요전부의평면형태는타원형을띠고, 크기는길이 294 cm, 너비 320 cm, 현높이 95cm내외이다. 화구는생토면을굴착하여축조하였다. 크기는너비 80cm, 현높이 70cm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반원형을띠고있으며, 경사도는약 10 이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연도부로갈수록너비가좁아지는제형을띠고있으며바닥면경사도는 23 이다. 크기는길이 316cm, 너비 130cm, 높이 80~130 cm이다. 연도부는기반토를 ㄴ 자형으로굴착하였으며약한사선을띠고있다. 잔존높이는 24cm이다. 5) 羅州松鶴里遺蹟전남나주시다도면송학리일원의신각산남사면부에유적이위치한다. 청동기시대지석묘, 고려시대삼가마등과함께고려시대기와가마1기와조선시대기와가마 3기가확인되었다. 1호가마는연소부와소성부바닥일부이다. 규모는길이 268cm이며장축방향은남-북 (N15 W) 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반원형을띠고있으며소성부로연결되는곳에높이 48cm, 경사각 10 의불턱이형성되어있다. 크기는잔존길이 130cm, 너비 150cm, 잔존높이 60cm이다. 2호가마는지하식구조로요전부가유실되고연소부-소성부-연도부의구조만남아있다. 규모는길이 950cm이며장축방향은남-북 (N19 W) 이다. 연소실의평면형태는타원형을띠고, 양측벽에는측벽단이조성되었다. 연소부횡단면형태는외고내저형을띠고, 소성부의평면형태는제형을띠고있으며크기는길이 500 cm, 너비 96~200 cm, 잔존높이 60~100 cm이다. 가마의경사도는중앙부까지 23 이나연도부에가까울수록 20 를유지하고있다. 4호가마는지하식으로요전부-연소부-소성부-연도부가완전한형태를띠고있다. 규모는길이 14.6m 이며장축방향은남-북 (N6 W) 이다. 요전부는평면형태가장방형에가까우며크기는길이 460 cm, 너비 612cm, 높이 80cm이다. 화구는생토면을굴착한후전면에점토와폐기와를이용하여축조하였다. 연소실은평면형태가반원형을띠고있으며횡단면형태는외고내저형으로바닥면의경사도는약 10 이다. 소성부로연결되는부분에는높이 70cm정도의불턱이형성되어있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세장방형을띠고있으며크기는길이 680cm, 너비 150~190 cm, 잔존높이 70~140 cm이다. 바닥면의경사도는 20 이다. 연도부는소성부너비보다넓은타원형의연도를축조하였다. 크기는잔존길이 260 cm, 너비 130~160 cm, 잔존높이 20cm이다. 6) 羅州新光里遺蹟전남나주시다시면신광리 768-1 번지일대로해발 50~55m 의신걸산자락동편사면부에유 60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적이위치한다. 가마는해발 75~79m 에위치한다. 지하식등요로장축방향은등고선과직교하는동-서이다. 가마의규모는요전부를제외길이 1,270cm, 너비 150~240 cm, 높이 160cm이다. 바닥의경사도는 23 이고, 평면형태는일자형이다. 대부분훼손되어요전부-연소부-소성부일부구조만확인되었다. 요전부는생토면을전체적으로얕게파낸후편평한면을그대로이용하였다. 화구는자연경사면을파고생토면을그대로이용하였다. 연소부는화구쪽으로좁아드는역삼각형형태를띠고있으며, 소성부와는거의수직에가까운 100cm의단벽으로연결되어있다. 소성부는천장부가파괴되고측벽일부와바닥면만잘남아있다. 연소부쪽바닥에 12cm의단이형성되었다. Ⅲ. 가마구조검토 1. 용어정리 4) 가마는과거각가정의부엌에가마솥이라는시설물에서볼수있듯이우리나라재래어라는것을상기시킨다. 동시에이것은불을지피는시설인일종의아궁이를가리키는것으로도토제품 ( 陶土製品 ) 을생산하는곳으로서완전한제품을제조함에있어서결정적으로완성시키는최종적인시설을말한다 5). 기와가마의구조등을분류하는과정에사용되는용어는다른분야의연구보다더욱정립이되지않아연구자들이나보고서에여전히혼돈되어사용되고있다. 따라서기와가마의분류에앞서본고에서다룰가마의세부구조에대한용어를정의내리고자한다. 기와가마의기본구조를포함하는세부구조명칭은요전부, 연소부, 소성부, 연도부가있다. 이들은각기독립적인기능을가지고있기때문에 ~ 부 ( 部 ) 라는명칭을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자기가마에서는실이라는명칭을사용하는데이는연소실과소성실의경계가명확하고소성실자체도여러칸으로나누어져있어서 실 ( 室 ) 의개념을사용한것이다. 하지만기와가마는연소부와 4) 가마구조검토에서사용된용어는다음논문을참조하였다, 이훈 1996, 와요의구조형식변천, 공주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김성진 2005, 조선전기경남지역와요및평기와의전개양상, 동아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이지영 2008, 호남지방 3~6세기토기가마변화상연구, 전북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김경미 2011, 앞의논문. 5) 정명호 1998, 옹기와의대화, 옹기민속박물관. 61
제 6 호 소성부의경계가불명확한경우가많고소성실은한공간만존재한다. 따라서기능에따라범위를나누는개념으로 부 ( 部 ) 라는명칭을사용하였다 6). 그림 4. 기와가마모식도 ( 나주송학리 4 호가마인용 ) 2. 구조검토 1) 요전부 요전부는연소부전면의작업공간으로화구를통해연료를공급하거나소성된기와의반출입 6) 이지영 2008, 앞의논문. 62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또는적재등이이루어진다. 움푹패인수혈이나구상유구형태로남아있으며전정부, 요전회구부, 회구부등으로불리기도한다. 폐기의공간으로도활용되며많은양의재와숯, 폐기된기와등이두터운층으로쌓여있어가마의조업횟수나시기에관한자료를얻을수있다. 그러나가마의세부구조중요전부와연도부의유실이가장많아속성을파악하기어려운부분이다 7). 요전부의대표적인속성은평면형태와요전부에서화구까지의종단면형태등이있다. 나주지역 6개소 29기중요전부가확인되는기와가마는 14기이다. 요전부의평면형태는타원형, 원형, 구형, 부정형의 4가지유형이나타나는데, 타원형이송월동고려 3호가마를비롯하여 9기로전체비율의 57% 로가장높은빈도율을나타내고, 구형이 29% 로운곡동 Ⅰ-4를비롯하여 4기에서확인된다. 타원형장방형부정형 송월동고려 3 호가마송학리 4 호가마운곡동 Ⅱ-2 호가마 구형 운곡동 Ⅰ-6 호가마 그림 5. 요전부유형별평면형태 7) 김경미 2011, 앞의논문. 63
제 6 호 그림 6. 요전부평면형태유형별빈도율 그림 7. 요전부종단면형태 요전부에서화구까지의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 외고내저형, U 자형 3 가지유형이확인된다. 14 기중송학리 4 호를비롯한 9 기에서확인되고, 내외평탄형은덕림 1 호와운곡동 Ⅰ-2 호에서확 인되고, U 자형은송월동고려 3 호, 복암리 1 호, 운곡동 Ⅰ-4 호에서확인된다. 그림 8. 요전부평면형태에따른종단면형태 평면형태에따라종단면형태를살펴보면, 타원형의평면형태에서는 3 가지유형의형태가모두 보이고있으며가장많은형식을보이는외고내저형또한 4 가지평면형태에서모두확인된다. 64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2) 연소부연소부는기와를굽기위한소성부로이어지는불길이며땔감을쌓아불을지피는곳으로연료가타는공간이다. 연소부는화구-연소실-불턱으로나누어진다. 화구는가마의벽체나천정구조가실질적으로시작하는곳으로연료의공급및기물의출납이이루어지는입구이다. 대표적인속성은평면형태, 축조방법, 규모,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의종단면형태, 불턱의유무, 불턱의높이등이있다. 나주지역 6개소 29기중연소부가확인되는기와가마는 19기이다. 횡형 종형 운곡동 1-2 호가마 송월동 3 호가마 그림 9. 연소부유형별평면형태 연소부평면형태는모양에따라타원형, 반원형, 장방형등으로구분하거나길이와너비의비율을기준으로횡형과종형으로구분하기도한다 8). 전자의경우연소실모양이모호한경우가많고, 연구자에따라보는주관이다르기때문에연소부의길이와너비를이용한평면형태구분이적절하다고생각된다. 따라서길이와너비의비율에따라길이가너비보다긴것은종형, 너비가길이보다긴것은횡형으로구분한다 9). 평면형태가확인되는 19기의가마중종형은송월동통일신라가마를비롯하여 3기 (16%), 횡형은송월동고려 5호가마를비롯하여 16기 (84%) 에서확인되어횡형이높은비율을보인다. 8) 김성진 2005, 앞의논문. 9) 김경미 2011, 앞의논문. 65
제 6 호 그림 10. 연소부평면형태유형별빈도율 그림 11. 연소부축조방법유형별빈도율 축조방법은 16기의가마에서확인가능한속성으로할석이나기와를이용하는방법과생토면 을그대로이용하는방법 2가지로나눌수있다. 할석, 기와등의재료를이용하여축조한가마 는나주덕림 1호가마를비롯하여 10기 (62%), 생토면을그대로이용하여축조한가마는복암리 1호가마를비롯하여 5기 (32%) 에서확인되어할석등의재료를이용하여축조하는방법이높은 비율을보인다. 그러나생토면을그대로이용한것중보수단계를거쳐할석을이용하거나또는 할석등을이용해축조하였다가후대에유실된경우가있기때문에화구의축조방법구분이다 소모호하다.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 내외평탄 외고내저 르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 탄, 외고내저 2가지유형 이확인된다. 2가지의유 형은연소부의경사각에 따라분류하였다. 나주지 역기와가마의연소부는 복암리 1호가마 송학리 4호가마 0~13 의경사각을보인 그림 12.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르는종단면형태 다. 경사각은 < 그림15> 와같이 6 를중심으로 2개 의그룹으로밀집분포하는데, 6 이하는내외평탄형, 6 이상은외고내저형으로판단하였다. 화구 에서연소실까지평탄한상태를유지하는내외평탄형이복암리 1호가마를비롯한 14기로전체 비율중 82% 의높은빈도율을보인다. 66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그림 13. 유구별연소부경사각 외고내저형 내외평탄형 그림 14. 연소부경사각 67
제 6 호 연소부에서확인할수있는마지막속성은불턱에서확인되는속성이다. 불턱은연소부와소성 부를경계짓고소성품의적재를용이하게하고자하는편의성과열효율성을높이기위한시설이 다. 대표적인속성은존재여부, 경사도등이있다. 무단식 유단식 불턱의존재여부에따라무단식과유단식으로 운곡동 Ⅰ-4호가마 송학리 4호가마 나눌수있다. 무단식은운곡동 Ⅰ-4호, 송월동고려 3호가마에서확인되고, 유단식은운곡동 Ⅰ -4호, 송월동고려 3호가마를제외한모든가마에서확인된다. 불턱의경 그림 15. 불턱형식 사도는 22~90 정도이며, 평균값은 67.72 이다. 그림 16. 붙턱의경사도 68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나주지역에서확인되는가마중운곡동 Ⅰ-4 호가마는최저경사도인 22 를가지고, 신광리 1 호 가마는최대경사도인 90 를가진다. 3) 소성부소성부는기와가구워지는공간으로기와를이곳에적재한후소성작업이이루어진다. 열효율을높이기위해연소부보다경사도를높게하고바닥면에 1,2단의단벽을만든경우도존재한다. 소성부의대표적인속성은평면형태등이있다. 나주지역 6개소 29기중소성부가확인되는기와가마는 15기이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 15기에서확인가능한속성으로소성부에서연도부로이어지는형태와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 10) 에따라장방형, 주형, 제형 3가지유형으로나누었다. 장방형은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이 1:1~1:1.2 미만이고소성부에서일정한너비를유지하면서연도부로이어지는형태이고, 주형은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이 1:2.5 이상이고소성부에서연도부로갈수록좁아지는형태이며제형은주형과마찬가지로소성부에서연도부로갈수록좁아지는형태이나, 비교적일정한너비를유지하여연도부로이어지고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이 1:1.2 이상 ~1:2.5 미만인형태이다. 그림 17. 소성부최소 최대너비편차율 그림 18. 소성부평면형태유형별빈도수 이중제형이나주송월동고려시대 5 호가마를비롯한 9 기로전체비율중 60% 의가장높은 빈도율을나타낸고, 장방형은송월동통일신라가마 1 기 (7%), 주형은운곡동 Ⅰ-4 호가마를비롯 한 5 기 (33%) 에서확인된다. 10) 비율값 ( 최대너비 : 최소너비 ) 는개별유적에따라 1: 1.15, 1: 1.2, 1: 2.5, 1: 2.7, 1: 3 등으로구분하고있으나, 가장일반적이고평면형태를잘구분할수있는 1: 2 와 1: 2.5 를기준으로장방형, 주형, 제형을구분하였다. 69
제 6 호 장방형주형제형 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운곡동 Ⅰ-4 호가마송학리 2 호가마 그림 19. 소성부유형별평면형태 4) 연도부연도부는가마내부에서발생하는연기가빠져나가는공간으로배연부라하기도한다. 연도부는연소부나소성부와달리잔존해있는경우가드물다. 이는연도부는대부분지상에노출이되어있는공간으로자연적으로삭평되거나후대의행위로인해유실되는경우가높기때문이다. 연도부의대표적인속성은평면형태와방향, 축조방법등이있다. 나주지역 6개소 29기중연도부가확인되는기와가마는 9기이다. 연도부의평면형태는원형, 타원형, 구형의 3가지유형으로나타난다. 구형은운곡동 Ⅰ-4호가마 1기에서만확인되고원형과타원형은각각 4기로에서확인된다. 원형과타원형은연기가빠져나가는방향에서조금의차이를보인다. 연도부의방향은중앙에서위쪽으로나있는굴뚝형태, 좌측으로빠져나가는형태, 우측으로빠져나가는형태 3가지유형을보인다. 중앙에서위쪽으로나있는굴뚝형태는 5기로전체기수의 56% 를차지한다. 원형타원형구형 송월동 6호가마 송학리 2호가마 운곡동 Ⅰ-4호가마 그림 20. 연도부유형별평면형태 70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그림 21. 연도부평면형태유형별빈도율 그림 22. 연도부굴뚝방향유형별빈도율 4.5 4 3.5 3 2.5 2 1.5 중앙 / 좌측중앙 / 우측중앙 / 위 1 0.5 0 원형타원형구형 그림 23. 연도부평면형태에따른굴뚝방향 3. 속성분류 11) 기와가마의구조를검토하면서확인된여러가지속성중시간성을반영하는속성인화구에서 연소실까지의종단면형태, 불턱의유무, 소성부의평면형태에따라분류하였다. 11) 김경미 2011 년석사학위논문에기재된분류안을채택하여인용하였다. 71
제 6 호 1) 화구-연소실종단면형태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르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 외고내저 2가지유형이확인된다. 내외평탄형 (A) 은화구에서연소실까지수평하게연결되는형태이며, 외고내저형 (B) 은화구쪽이높고연소실쪽이낮은형태이다. 2) 불턱의유무불턱의존재여부에따라무단식과유단식으로나눌수있다. 무단식 (a) 은연소부와소성부가경계를이루는부분에각을이루는턱이없는형태이며, 유단식 (b) 은경계부가뚜렷하게나누어지는형태이다. 유단식의경우나주지역기와가마불턱경사도가그림 24. 불턱경사도-유단식 70 를기준으로두개의집단을이루고있어 70 이하 (i) 과 70 이상 (ii) 의 2그룹으로세분하였다. 3) 소성부평면형태평면형태는소성부에서연도부로이어지는형태와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에따라장방형, 주형, 제형 3가지유형으로나누었다. 장방형 (1) 은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이 1:1~1:1.2 미만이고소성부에서일정한너비를유지하면서연도부로이어지는형태이고, 주형 (2) 은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이 1:2.5이상이고소성부에서연도부로갈수록좁아지는형태이며제형 (3) 은주형과마찬가지로소성부에서연도부로갈수록좁아지는형태이나, 비교적일정한너비를유지하여연도부로이어지고최소너비와최대너비의비율값이 1:1.2이상 ~1:2.5 미만인형태이다. 제형의경우 ( 그림 26) 과같이나주지역기와가마소성부길이가 400 cm를기준으로두개의군집을이루고있어 400 cm이하 (i) 과 400 cm이상 (ii) 의 2그룹으로세분하였다. 72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그림 25. 소성부길이 그림 26. 소성부길이 - 제형 위의속성분류안을정리하면다음 < 표 1> 과같다. < 표 1> 기와가마속성분류안 화구 - 연소실종단면형태 불턱의존재유무 소성부평면형태 A( 내외평탄 ) B( 외고내저 ) a( 무단식 ) b( 유단식 ) 1( 장방형 ) 2( 주형 ) 3( 제형 ) i ( 경사도가 70 이하 ) ii ( 경사도가 70 이상 ) i ( 소성부길이 400 cm이하 ) ii ( 소성부길이 400 cm이상 ) Ⅳ. 기와가마변천 1. 형식분류 이장에서는 3 장에서정리한속성들중시간성을반영하는속성을중심으로분류되어진속성분 류안을토대로가마의형식분류를시도해보고자한다. 1 차적으로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모든 73
제 6 호 기와가마를속성분류안을토대로조합한후 2 차적으로시간성을가지는 3 가지의속성중 2 가지 이상의속성을파악할수있는가마로제한하여분류하였다. 1) Ⅰ형식 Ⅰ형식에해당하는속성들은 Abi1 이다.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경사도는 70 이하이며, 소성부의평면형태는장방형을띤다. Ⅰ형식에해당하는가마는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이다. 2) Ⅱ형식 Ⅱ형식에해당하는속성들은 Aa2이다.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무단식으로소성부의평면형태는주형을띤다. Ⅱ형식에해당하는가마는송월동 3 호가마와운곡동 Ⅰ-4호가마이다. 3) Ⅲ형식 Ⅲ형식에해당하는속성들은 Abi2이다.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경사도는 70 이하이며, 소성부의평면형태는주형을띤다. Ⅲ형식에해당하는가마는복암리 1 2호가마와운곡동 Ⅰ-5 6호가마이다. 4) Ⅳ형식 Ⅳ형식에해당하는속성들은 Abii3i 이다.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경사도는 70 이상이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제형으로길이는 400 cm이하이다. Ⅳ형식에해당하는가마는송월동 5 7호가마이다. 또한소성부가유실되어정확한평면형태는판단하기어려우나 Ⅳ형식에가까운유적으로덕림 1호가마와운곡동 Ⅰ-2 3호, II-1 2호가마가있다. 5) Ⅴ형식 Ⅴ형식에해당하는속성들은 Bbii3ii 이다. 화구에서연소실까지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외고내저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경사도는 70 이상이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제형으로길이는 400 cm이상이다. Ⅴ형식에해당하는가마는송학리 2 4호가마와신광리 1호가마이다. 74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 표 2> 기와가마형식분류 화구 - 연소실종단면형태불턱의존재유무소성부평면형태 유구 A ( 내외평탄 ) B ( 외고내저 ) a ( 무단식 ) i (70 이하 ) b( 유단식 ) ii (70 이상 ) 1 ( 장방형 ) 2 ( 주형 ) i (400 cm이하 ) 3( 제형 ) ii (400 cm이상 ) 송월동통일 -1 호 Ⅰ 송월동고려 -3 호 Ⅱ 운곡동 I-4 호 복암리 1 호 복암리 2 호 Ⅲ 운곡동 I-5 호 운곡동 I-6 호 운곡동 I-2 호 운곡동 I-3 호 운곡동 II-1 호 운곡동 II-2 호 Ⅳ 송월동고려 -5 호 송월동고려 -7 호 덕림 1 호 송학리 2 호 송학리 4 호 Ⅴ 신광리 1 호 형식 75
제 6 호 2. 편년 편년은보고서에수록된절대연대자료인 AMS 와고고지자기를바탕으로설정하였다. 그림 27. 나주지역기와가마편년 1) Ⅰ기 Ⅰ기에해당하는가마의형식은 Ⅰ형식이다. 해당하는가마는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이다. 절대연대자료값에의해 8세기로중심연대가설정되었다. 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는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유일한통일신라시대가마로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장방형을띠며, 길이는 388cm이다. 76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2) Ⅱ기 Ⅱ기에해당하는가마의형식은 Ⅱ Ⅲ형식이다. 해당하는가마는송월동 3호가마, 복암리 1 2 호가마, 운곡동 Ⅰ-4~6 호가마이다. 절대연대자료값에의해 9세기부터 10세기로중심연대가설정되었다. Ⅱ기에해당되는가마의속성을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다. 불턱은무단식과유단식이시기차가거의없이공존하고있으며유단식의경우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진다. 무단식의불턱은송월동 3호가마와운곡동 Ⅰ-4호가마에서확인된다. 소성부는소성부후미에서급속하게좁아드는주형의평면형태를띄며, 길이는 200~350 cm내에분포하고있다. 3) Ⅲ기 Ⅲ기에해당하는가마의형식은 Ⅳ형식이다. 해당하는가마는송월동 5 7호가마이다. 또한소성부가유실되어정확한평면형태는판단하기어려우나 Ⅳ형식에가까운유적으로덕림 1호가마와운곡동 Ⅰ-2 3호, Ⅱ-1 2호가마가있다. 절대연대자료값에의해 11세기에서 13세기로중심연대가설정되었다. Ⅲ기에해당되는가마의속성을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다.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는최소너비와최대너비가 1 : 2.5 미만의비율을가지는제형의평면형태를띄며, 길이는 260~372 cm내에분포하고있다. 4) Ⅳ기 Ⅳ기에해당하는가마의형식은 Ⅴ형식이다. 해당하는가마는송학리 2 4호가마와신광리 1호가마이다. 절대연대자료값에의해 14세기에서 17세기로중심연대가설정되었다. Ⅳ기에해당되는가마의속성을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외고내저형이다.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는최소너비와최대너비가 1 : 2.5 이상의비율을가지는제형의평면형태를띄며, 길이는 500~870 cm내에분포하고있다. 3. 기와가마변천 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기와가마는 Ⅱ 기에서 Ⅳ 기로의변화과정을걸친다. 통일신라시대중 반으로설정된 Ⅰ 기는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 Ⅰ 기만조사되어 Ⅱ 기에서 Ⅳ 기로진행되는변 77
제 6 호 화과정의흐름에서벗어난양상을보인다. Ⅰ기에서보여지는특징과 Ⅱ기에서 Ⅳ기로연결되는공통된흐름을파악하기위해서는좀더많은자료가축척되어야가능할것으로판단된다. 이러한이유로나주지역기와가마는 Ⅱ기에서 Ⅳ기즉나말여초에서조선중기까지이어지는변화과정을걸친다. 그러한변화과정을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고려전기 ~ 중기까지내외평탄형을가지다가고려후기에외고내저형으로변화하여조선중기까지확인된다. 불턱의경우고려전기에는무단식과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지는유단식이공존하다가고려중기부터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지는유단식으로변화하는과정을보인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고려전기에는소성부의후미로갈수록급속하게좁아드는형태의주형이보이다가고려중기에들어서면서너비의폭이비교적일정해지는제형으로변화한다. 평면형태가제형으로변화하는 Ⅲ기와 Ⅳ기의가마의경우, 고려중기까지는소성부의길이가 400 cm이하에머물다가고려후기에서조선전기로넘어오면서 400 cm이상의길이를갖는가마가확인된다. 이는가마의구조적인특징이고려전기에서후기로갈수록대형화되어가고있다는것을의미한다. 가마의대형화가시급했던이유는당시사회상에서찾아볼수있다. 고려후기전국적으로대몽항쟁후불에탄건물의복구가시급하였고, 충선왕원년에 5 部민가를모두기와로덮고私窯를금하지말라 고하였듯이 12) 국가와백성들이기와의필요성을인식하면서기와의수요가급증해대량생산이불가피해졌기때문이다. 12) 이정신 2007, 고려시대기와생산체제와그변화, 한국사학보제 29 호. 78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 표 3> 나주지역기와가마시기별특징 Ⅰ 기 Ⅱ 기 Ⅲ 기 Ⅳ 기 편년 8 세기 9 세기 ~10 세기 11 세기 ~13 세기 14 세기 ~17 세기 화구 - 연소실종단면형태 내외평탄 내외평탄 내외평탄 외고내저 불턱 소성부평면형태 유단식 (70 이하 ) 무단식, 유단식 (70 이하 ) 장방형주형 유단식 (70 이상 ) 제형 (400 cm이하 ) 유단식 (70 이상 ) 제형 (400 cm이상 ) 대표유구 유적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 송월동 3 호, 복암리 1 2 호, 운곡동 Ⅰ-4~6 호 송월동 5 7 호, 덕림 1 호, 운곡동 Ⅰ-2 3 호, 운곡동 II-1 2 호 송학리 2 4 호, 신광리 1 호 79
제 6 호 Ⅴ. 맺음말 본연구는나주지역에확인된기와가마를대상으로하여속성분류후구조에서보이는변화를살펴본것이다. 그에따른결과를정리해보면다음과같다. 나주지역기와가마는가마구조, 절대연대자료값인고고지자기와 AMS 를통해 4기로시기구분이가능하다. Ⅰ기는 8세기를중심연대로설정하였다. 해당하는유적은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이다. 송월동통일신라시대가마는나주지역에서발굴조사된유일한통일신라시대가마로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고,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의평면형태는장방형을띠고, 길이는 388cm로나주지역에서조사된기와가마들의평균값에가깝다. Ⅱ기는 9세기부터 10세기를중심연대로설정하였다. 해당하는유적은송월동 3호가마, 복암리 1 2호가마, 운곡동 Ⅰ-4~6 호가마이다. 가마의구조를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다. 불턱은무단식과유단식이시기차가거의없이공존하고있으며유단식의경우 70 이하의경사도를가진다. 무단식의불턱이확인되는유적은송월동 3호가마와운곡동 Ⅰ-4호가마이다. 소성부는소성부후미에서급속하게좁아드는주형의평면형태를띄고, 길이는 200~350 cm내에분포하고있다. Ⅲ기는 11세기부터 13세기를중심연대로설정하였다. 해당하는유적은송월동 5 7호가마, 덕림 1호가마, 운곡동 Ⅰ-2 3호, Ⅱ-1 2호가마이다. 가마의구조를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내외평탄형이다.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는최소너비와최대너비가 1 : 2.5 미만의비율을가지는제형의평면형태를띄며, 길이는 260~372 cm내에분포하고있다. Ⅳ기는 14세기부터 17세기를중심연대로설정하였다. 해당하는유적은송학리 2 4호가마와신광리 1호가마이다. 가마의구조를살펴보면, 화구에서연소실로이어지는종단면형태는외고내저형이다. 불턱은유단식으로 70 이상의경사도를가진다. 소성부는최소너비와최대너비가 1 : 2.5 이상의비율을가지는제형의평면형태를띄며, 길이는 500~870 cm내에분포하고있다. 가마의구조적인변천과정중소성부의평면형태가제형으로변화하는 Ⅲ기와 Ⅳ기에해당하는가마의경우, 고려중기까지는소성부의길이가 400 cm이하에머물다가고려후기에서조선전기 80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로넘어오면서 400 cm이상의길이를갖는가마가확인된다. 이는고려전기에서후기로갈수록대형화되어가고있다는것을의미하는것으로가마의대형화가시급했던이유는당시사회상에서찾아볼수있다. 고려후기전국적으로대몽항쟁후불에탄건물의복구가시급하였고, 충선왕원년에 5 部민가를모두기와로덮고私窯를금하지말라 고하였듯이국가와백성들이기와의필요성을인식하면서기와의수요가급증해대량생산이불가피해졌기때문이다. 지금까지나주지역기와가마에서확인되는구조적속성분류를통해시기적인변화를살펴보았다. 분석을함에있어가마가대부분파괴되고, 출토유물등의검증이이루어지지않아시기적인차이를규명하기에는무리한부분이많았으나, 전남지방기와가마의연구에자료역할과더불어지역생산문화의일면을살펴볼수있는자료가되길바란다. 81
제 6 호 참고문헌 보고서목포대학교박물관 2010, 나주송월동Ⅱ-통일신라 ~ 고려시대. 호남문화재연구원 2008, 나주덕림유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나주복암리 3호분. 마한문화연구원 2008, 나주운곡동유적Ⅰ-지석묘 기와가마. 마한문화연구원 2011, 나주운곡동유적Ⅳ. 마한문화연구원 2010, 나주송학리유적. 남도문화재연구원 2006, 나주신광리기와가마. 논문이훈 1996, 와요의구조형식변천, 공주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김정선 2003, 조선시대자기가마구조연구, 동국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김성진 2005, 조선전기경남지역와요및평기와의전개양상, 동아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유용수 2005, 경기지역의조선시대기와가마연구-평택칠원동기와가마를중심으로-, 세종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이정신 2007, 고려시대기와생산체제와그변화, 한국사학보제 29호. 이지영 2008, 호남지방 3~6세기토기가마변화상연구, 전북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오준정 2008, 강원지역조선시대와요연구, 고려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김경미 2011, 전남지방고려시대기와가마연구, 목포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단행본정명호 1998, 옹기와의대화, 옹기민속박물관. 82 나주지역기와가마검토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大澤正己 金想民 目次 Ⅰ. 概要 Ⅱ. いきさつ Ⅲ. 調査方法 Ⅳ. 調査結果 Ⅴ. まとめ
제 6 호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大澤正己 * 金想民 **13) Ⅰ. 概要 朝鮮半島南部地域に位置し 5~6 世紀代が推定される三川里遺跡出土の製鉄関連遺物 4 点 ( 炉壁 3 炉壁塊 1) の分析調査を行った 製鉄は塊鉄鉱 ( 磁鉄鉱石 ) を原料とし 炉材は花崗岩系真砂土にスサを投入する 炉底塊の鉱物相はファヤライト (fayalite:2feo SiO2) 共伴する鉄粒は過共析域 (>0.77%C) レベル 炉壁溶融ガラス中には半還元磁鉄鉱石屑を留める 円形炉に大口径送風管を使用した操業が想定された Ⅱ. いきさつ 三川里遺跡は全羅南道和順郡に位置し 溝状遺構から廃棄物として炉壁や炉底塊が出土した この 製鉄関連遺物から 5~6 世紀代の韓半島南部での製鉄活動 ( 生産形態 産地同定 流通の問題 ) の実 態把握を目的として 金属学的調査の運びとなった Ⅲ. 調査方法 1. 供試材 Table1 に示す 4 点の供試材の調査となる * 九州テクノリサーチ TAC センター, ** 큐슈대학비교사회문화학부 84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2. 調査項目 (1) 肉眼観察 遺物の外観観察を行い それをもとに試料採取位置を決定する ( 金属鉄遺存個所優先 ) (2) マクロ組織 (Macro Structure) 顕微鏡埋込み試料の断面全体像を投影機の5 倍 10 倍 もしくは20 倍で撮影する 低倍率の観察は 組織の分布状態 形状 大きさなど顕微鏡検査によるよりも広範囲にわたっての情報が得られる利点がある (3) 顕微鏡組織 (Microscopic Structure) 供試材は 目的とする位置から切り出したものをベークライト樹脂に埋込み エメリー研磨紙の #150 #240 #320 #600 #1000と順を追って研磨し 最後は被研面をダイヤモンド粒子の3μと 1μで仕上げて光学顕微鏡観察を行う なお 金属鉄のパーライトとフェライト結晶粒は ナイタル (5% 硝酸アルコール溶液 ) で腐食 (Etching) している 不純物の有無 研磨面の組織観察等で 製品製造方法の推察 素材の類推などミクロ的な調査を行う (4) ビッカース断面硬度 (Vickers Hardness Test) 鉄滓の鉱物組成と 金属鉄の組織同定を目的として ビッカース断面硬度計 (Vickers Hardness Tester) を用いて硬さの測定を行う 試験は鏡面研磨した試料に136 の頂角をもったダイヤモンドを押し込み その時に生じた窪みの面積をもって その荷重を除した商を硬度値としている 硬度値から炭素量などの含有量 製造手法などを探る 試料は顕微鏡用を併用する (5) 粉末 X 線回折法 (X Ray diffractometer) 回折 X 線スペクトルを利用する示性分析法 X 線回折計 (diffractometer) を使って固体試料 ( 製錬滓 鍛冶滓 ) の回折 X 線をとり 物質の同定を行っている X 線回折を採用する場合に用いる 分析条件 : 粉末 X 線回折データは九州大学地球資源工学部門の理学 Ultime Ⅳ X 線回折装置で取得した X 線はCuKα1(40Kv 20mA) を使用し 全自動モノクロメータ 発散スリット2/3 散乱スリット2/3 受光スリット0.3mm データ取得幅 0.02 (2θ) 走査速度 2 /minの条件で2-85
제 6 호 65 2θ) を走査範囲とした (Fig.1~3) (6) 化学組成分析供試材の分析は 次の方法で実施する 全鉄分 (Total Fe) 全属鉄(Metallic Fe) 酸化第一鉄(FeO): 容量法 炭素 (C) 硫黄(S): 燃焼容量法 燃焼赤外吸収法 二酸化珪素 (SiO2) 酸化アルミニュウム(Al2O3) 酸化カルシウム(CaO) 酸化マグネシウム (MgO) 酸化カリウム(K2O) 酸化ナトリウム(Na2O) 酸化マンガン(MnO) 二酸化チタン (TiO2) 酸化クロム(Cr2O3) 五酸化燐(P2O5), バナジウム (V):ICP(Inductively Coupled Plasma Emision Spectrometer) 法 誘導結合プラズマ発光分光分析 (7) 資料観察表の見方資料観察表の見方は次のとおりである 遺物種類金属学的な分析を行う以前に 考古学的な観察によって判定した遺物の種類である 法量資料の残存する最大長 最大幅 最大厚 重量を計測したものである 磁着度鉄滓分類用の 標準磁石 を用いて資料との反応単位を1から順に数字で表現したもので 数値が大きいほど磁性が強い ( 歴博報告書第 58 59 集 日本 韓国の鉄製産技術 資料編国立歴史民俗博物館 1994に準じた ) 遺存度資料が破片の場合 破面がいくつあるかを記す メタル度特殊金属探知機によって判定された金属鉄の残留度を示すもので 最も金属鉄が依存しないものから遺存するものまで6 段階に分け なし 銹化 ( ) H( ) M( ) L( ) 特 L( ) と表示した 分析分析実施項目を 印で示す 所見分析前の外形や破面 断面の状況 木炭痕や気孔の有無 及び付着物やその他の状況について詳細に記す 分析個所資料をどのように調査 分析するか記す Ⅳ. 調査結果 HS 1 炉壁 86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1) 肉眼観察 : 破面 5 面に囲まれた35g 弱の炉壁破片である 表面が溶融ガラス化し その下に粘土がつく資料である ガラス化した表面は滑らかで 微細な気孔が発生し 一部は紫紅色を呈している 粘土はスサが混和されており ガラス化側が灰褐色に還元し その上に橙褐色をした酸化部分がみられる 破片の形状からは円形炉の炉体にあるような湾曲が観察されない 炉壁の中でも大口径送風管の挿入部分に接する位置の破片の可能性を指摘する意見もある (2) マクロ組織 :Photo.1 の1 段目右に示す 顕微鏡組織の観察用に埋め込んだ断面試料からの全体像である 上側半分が粘土の被熱溶融ガラス化部分で白色粒子の未溶解石英粒子が点在する また下側の灰黒色から赤色部分は未溶解胎土である (3) 顕微鏡組織 :Photo.1 の1 ~ 4に示す 12は溶融ガラス化部分の表層である ガラス素地は極く微量の樹状晶 (derdrites) マグネタイト (magnetite:fe3o4) が晶出する 34は胎土部分である 素地を構成する微細な鱗片状粘土鉱物のセリサイト (cerisite) は加熱変化を受けていない これに石英や長石類も未溶解組織で認められる 被熱粘土の典型的組織で 炉壁は花崗岩の風化土である (4)X 線回折 : 炉壁粘土 (furnace wall:clay) をFig.1 に示す 炉壁破片の主要鉱物相は石英 (quartz:sio2) より成り これに僅かなカリ長石 (potassium feldspar:k2o Al2O3 SiO2) ムライト(mullite:3Al2O3 2SiO2) クリストバライト(cristobalite:SiO2) ヘルシナイト (hercynite:feo Al2O3) 等とガラス (glass) より構成される 各鉱物相は20~30 度の回折帯で明瞭となる 炉体粘土は富化石英の風化土 ( 花崗岩系真砂土 ) を原料とする ムライトはカオリン系粘土が500~600 以上の温度で被熱して形成される ヘルシナイトは大きな格子定数 (a0=8.204a) でAlFe3+ に交代する ゲーサイト (goethite:α FeO(OH)) は天候に影響された銹化鉄 ( 水酸化鉄 ) となる Fig.2 に炉壁ガラス (furnace wall:glass) の回折結果を示す ガラス化した炉壁試料は粉砕されて暗灰色を呈する 主要鉱物相は石英とクリストバライトであり これに微量のムライト マグネタイト (magnetite:fe3o4) とガラスが伴う 顕微鏡組織との整合性はとれた 炉壁ガラスは約 1,00 0 以上に加熱されてクリストバライトは増加し カリ長石は消失する マグネタイトの小さな格子定数 (a0=8.367a) は マグへマイト (maghemite:fe2o3) とマグネタイト (Fe3O4) の中間組成のものである HS 2 炉壁 (1) 肉眼観察 : 円形炉が想定できる 1180g 弱の炉壁片である 全体に内湾する形状をもち 炉壁に 87
제 6 호 付着する滓が6cmと厚く 幅 2.5~3cm 程度の木炭痕が顕著に残る 3 点からみて製鉄炉の下半分相当の炉壁と考えられる 付着する滓はガラス質滓が主体で 一部に茶褐色に銹化した部分もみられるがメタル度は無い 粘土は灰褐色に還元され スサが混和されている (2) マクロ組織 :Photo.1 の4 段目の右に示す 表層側は溶融ガラス化するが 鉄粒の存在は認められない (3) 顕微鏡組織 :Photo.1の56に示す 鉱物相はガラス地に淡灰色長柱状結晶のファヤライト (fayalite:2feo SiO2) が晶出する 磁鉄鉱石原料の製錬滓で観察される組織である 胎土側は HS 1 炉壁でみた鱗片状粘土鉱物セリサイトに石英 カリ長石を中心とする同一組織だったので 掲載は割愛した 該品も花崗岩類の風化土である HS 3 炉壁 ( 炉内遊離 ) (1) 肉眼観察 : 平面が不整形で475gの塊状滓である 部分的に茶褐色に銹化部分もあるが ガラス質滓主体で僅かに紫紅色を帯びた部分も併せもつ 表面の凹凸が著しく 幅 3cm 程の木炭痕が観察でき 一部には灰褐色の炉壁粘土も付着している HS 2 に準じた特色があり 特異な滓である 炉壁付着で生じて 炉内に遊離した滓の可能性も考えられる なお 顕微鏡試料切出しで断面 2ヶ所に離れて金属鉄粒が確認されたので 2 分割した埋め込み顕微鏡試料を準備した (2)HS 3 1( 左側 ) マクロ組織 : 断面表層はガラス化素地でこれに金属鉄粒や微小マグネタイトが晶出した部分をもち 視野を変えると製鉄原料の半還元磁鉄鉱屑などが検出できる (3)HS 3 1( 左側 ) 顕微鏡組織 :Photo.2 の1 ~ 6に示す 12は炉壁粘土が溶融ガラス化した表面近くに晶出した白色多角形結晶のマグネタイト (Fe3O4) である 34は製鉄原料の磁鉄鉱石屑がやはり表層近くに半還元状態で残存する 4の拡大組織の右側では 鉱石原料が加熱還元過程からスラグ化する様相を捉えている 更に5 ~ 7には 約 0.5mm程の金属鉄粒を示す 5は研磨ままで腐食なし (no etch) の低倍率組織 6は腐食後 (5%HNO3 溶液 ) 組織で フェライト (Ferrite: 純鉄 α 鉄 ) 地にセメンタイト (Cementite:Fe3C) 析出の高炭素組織 7は6の拡大組織である 該品は製鉄炉壁を雄弁に語る資料と判る (4) ビッカース断面硬度 :Photo.2 の89に硬度測定の圧痕を示す 8の半還元磁鉄鉱石屑は硬度値が644Hv を呈した 磁鉄鉱石の文献硬度値は530~ 600Hv である ( 注 1) 上限を僅かに越えるが低荷重 ( 通常 200gf に対して対象結晶が小さく50gf での判定 ) からの誤差の可能性があり 鉄鉱石のマグネタイト粒子に同定できる 9は金属鉄粒の硬度圧痕である 2 点の値は492Hv 499Hv とバラツキは少なく硬質である 金属組織は高炭素含有で 析出物はセメンタイト (Cementite:Fe3 88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C) を証明する (3)HS 3 2( 右側 ) 顕微鏡組織 :Photo.3 の1~7に示す 12はガラス地に晶出した白色多角形結晶のマグネタイト 3~7は金属鉄粒組織である 3は研磨ままで腐食なしの金属鉄粒の低倍率組織を示す 0.4mm程の鉄粒は白色部分が金属鉄で 局部的な不定形褐色部分が銹化を受ける 4~7は腐食後の拡大組織である 該品は大部分が黒色層状組織で全面パーライト (Pearlite) 晶出の共析鋼 (0.77%C) であるが 上部の空気に接する部分は酸化を受け炭素 (C) が取り去られていわゆる脱炭組織の白色のフェライトに変化する 製錬操業で見かける高温部で時折発生する現象と推定できる (4) ビッカース断面硬度 :Photo.3 の8は白色結晶の硬度測定の圧痕を示す 値は122Hv と若干高め傾向にあるがフェライトに同定できる 9の黒色層状結晶の硬度値は314Hv と硬化する パーライトはフェライトとセメンタイトが交互に重なり合って構成された層状組織であって こちらもやや高めであるが妥当な傾向をもつ 以上先に述べたHS 3 1 と同一塊であり 製鉄関連遺物として両者は齟齬のない結果を呈した HS 4 炉底塊 (1) 肉眼観察 : 平面が不整三角形をした炉底塊の縁辺部に当る 481gの小片である 一部は現状を留めるが3 面は破面となる 厚さは5.2cm と薄く 流動滓を主体となす 下面には木炭痕と見られる凹凸がある 滓の表面は一見緻密であるが 細かい気孔が多数観察できる (2) マクロ組織 :Photo.4 の1 段目に示す 断面の表層から内部までほぼ均等な淡灰褐色スラグで形成される 気孔は散発するが比較的に緻密である そんななかに幾分表層寄りに約 4mm前後の金属鉄を留める (3) 顕微鏡組織 :Photo.4 の1 ~ 8に示す 12は炉底塊の鉱物相で黒色ガラス地に淡灰色不定形結晶のファヤライト (fayalite:2feo SiO2) を晶出する 塊鉄鉱の磁鉄鉱を原料とした製錬滓組織に認容できる 3 ~ 6は4mm金属鉄粒である 3は研磨ままで腐食なし (no etch) の素地を示す 白色部の金属鉄は点蝕を受けて局部的に灰色銹化鉄となる 4は腐食 (etch) 後の組織で 黒色層状パーライト (lameller pearlite) 地に初析セメンタイト (pro eutectoid cementite: Fe3C) を析出した過共析鋼 (>0.77%C) である 56は2 視野の拡大組織で 点状晶のP 偏析であるステダイト (steadite:fe Fe3C Fe3P) が存在する (4) ビッカース断面硬度 :Photo.4 の7は淡灰色不定形状結晶の硬度測定の圧痕を示す 硬度値は 616Hv であった ファヤライトの文献硬度値が600~ 700Hv を呈し この範囲に収まる ファヤライ 89
제 6 호 トに同定できる 8の左側圧痕は黒色層状部分で 値は208Hv が得られた パーライト組織の範疇に収まる 8の右側で621Hv と686Hv の2 点は点状晶である P 偏析のステダイトの値としては 若干低めであるが 硬度測定の対称面が狭小で荷重を10gまで下げている このため誤差が生じたと考えられる 200g 荷重で通常のステダイトは800Hv 前後になろう (5)X 線回折 :Fig.3に示す 主要鉱物相はファヤライト(fayalite: (Fe,Ca)2SiO4) で僅かにヘルシナイトとガラスを固溶する 他にヘルシナイト (hercynite:feal2o4 や石英 (quartz: SiO2) ゲーサイト(goethite:FeO(OH)) を含む 顕微鏡観察と大差ない結果である (6) 化学組成分析 :Table2に示す 鉄分低めで造滓成分が高めのスラグである 全鉄分 (Total Fe) は34.43% に対して 造滓成分 (SiO2+Al2O3+CaO+MgO+K2O+Na2O) は51.08 を含む 二酸化チタン (TiO2) は0.52% と微量検出される また 鉄に有害な硫黄 (S)0.02% 五酸化燐(P2O 5)0.68% のレベルは多くない 塊鉄鉱の磁鉄鉱起源で大過なかろう 炉底塊の縁辺部相当品からみて溶融粘土由来のガラスが多くて低鉄成分系をとる Ⅴ. まとめ 5~6 世紀が比定される三川里遺跡から出土した炉壁 3 点と炉底塊 1 点の分析調査を行った 炉壁には製鉄原料の半還元磁鉄鉱屑を残し 炉底塊の鉱物相はファヤライト (fayalite:2feo SiO2) を晶出する 更には炉壁と炉底塊には過共析鋼粒 (>0.77%C) を残留させる この僅かな情報ではあるが製錬操業が想定できる 以前より調査してきた韓半島出土の製鉄関連遺物の分析結果を繙くと 製錬技術は 中部地域の旗安里遺跡 (3c 前半 ) 石帳里遺跡(3c 末 ~ 5c) から東南地域の沙村遺跡 (6c 前 ~7c 前 ) へと南下する 此度の三川里遺跡は製鉄遺構は未検出ながら 西南部地域への展開の可能性をもつ 興味深い資料となった 展開模式図を Fig.4 に示す 蛇足ながら三川里遺跡は製鉄遺構が未検出で 大口径羽口や鉄鉱石の出土 ( 採取 ) がなく 遺物バリエーション (variation) が乏しい 正確な製鉄遺跡を認定するには 一抹の不安を覚える 遺跡の立地や周囲の資源供給条件 ( 鉱石賦存 木炭確保の樹木繁茂 ) を見極めて 更なる検討が必要と考える次第である 90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 付記 X 線回折は井澤英二先生のご高配を賜りました 又 観察表の作成は角田徳幸氏にお願いしまし た 記して感謝の意を表します - 注 (1) 日刊工業新聞社 焼結鉱組織写真および識別法 1968. ウスタイトは450~500Hv マグネタイトは500~600Hv ファイヤライトは600~700Hv の範囲が提示されている また ウルボスピネルの硬度値範囲の明記がないが マグネタイトにチタン (Ti) を固溶するので 600Hv 以上であればウルボスピネルと同定している それにアルミナ (Al) が加わり ウルボスピネルとヘーシナイトを端成分とする固溶体となると更に硬度値は上昇する このため700Hv を超える値では ウルボスピネルとヘーシナイトの固溶体の可能性が考えられる (2) 大澤正己 旗安里遺跡出土鍛冶関連遺物の調査 2009.6.5 金武重氏への提出原稿. (3) 大澤正己 鎮川石帳里遺跡製鉄関連遺物の分析的調査 国立青洲博物館年報 (2005 年度 ) 国立青洲博物館学芸研究室 2006. (4) 大澤正己 密陽沙村製鉄遺跡出土関連遺物の金属学的調査 密陽沙村製鉄遺跡 ( 国立金海博物館学術調査報告第 1 冊 ) 国立金海博物館 2001. 91
제 6 호 Table 1. 供試材の履歴と調査項目 計測値 調査項目 符号遺跡名出土位置遺物名称推定年代磁着度メタル度大きさ (mm) 重量 (g) マクロ組織 顕微鏡組織 ヒ ッカース X 線回折 EPMA 化学分析耐火度カロリー断面硬度 HS-1 三川里遺跡溝状遺構炉壁 5~6 世代 115 90 35 34.5 3 H( ) HS-2 炉壁 155 133 64 1176.7 3 なし HS-3 炉壁 ( 炉内遊離 114 78 77 474.5 3 H( ) HS-4 炉底塊 120 78 52 481.4 1 なし 92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備考
Table 2. 供試材の組成 * * * * * * Σ* 全鉄分 符号 遺跡名出土位置遺物名称推定年代 (Total Fe) 金属鉄 (Metallic Fe) 酸化第 1 鉄 (FeO) 酸化第 2 鉄 (Fe2O3) 二酸化珪素 (SiO2) 酸化アルミニウム (Al2O3) 酸化カルシウム (CaO) 酸化マク ネシウム (MgO) 酸化カリウム (K2O) 酸化ナトリウム (Na2O) 酸化マンカ ン (MnO) 二酸化チタン (TiO2) 酸化クロム (Cr2O3) 硫黄 (S) 五酸化燐 (P2O5) 炭素 (C) ハ ナシ ウム (V) 銅 (Cu) 二酸化ジルコニウム (ZrO2) 造滓成分 造滓成分 Total Fe TiO2 Total Fe HS-4 三川里遺跡溝状遺構炉底塊 5~6 世代 34.43 0.10 37.00 7.96 36.80 10.43 1.52 0.90 1.34 0.09 0.18 0.53 0.03 0.02 0.68 0.17 0.03 <0.01 0.02 51.08 1.484 0.015 注 93
제 6 호 Table 3. 出土遺物の調査結果のまとめ 化学組成 (%) 符号 遺跡名 出土位置 遺物名称推定年代 顕微鏡組織 Total Fe Fe2 O3 塩基性成分 TiO2 V MnO ガラス質成分 所見 Cu HS-1 炉壁 HS-2 三川里遺跡溝状遺構炉壁 内面 :glass 中に微小 mt - - - - - - - - 外面 :( 胎土 )q kf 内面 :glass 中に f 外面 : - - - - - - - - ( 胎土 )q kf 花崗岩起源粘土炉壁 製鉄炉の可能性花崗岩起源粘土炉壁 製鉄炉の可能性 5~6 世代炉壁 HS-3 ( 炉内遊離 ) glass 中に mf 半還元鉱石 屑 鉄粒 (Ce) 亜過共析 - - - - - - - - 鋼 炉壁溶融ガラス中に半還元磁鉄鉱石屑存在 製鉄炉の間接証明 HS-4 炉底塊滓 :f 鉄粒 :P Ce st 0 0 0 0 0 0 0 0 塊鉱石 ( 磁鉄鉱 ) 原料の製錬滓 mt: magnetite(fe3o4) q:quartz( 石英 ) kf:k-feldspar( カリ長石 ) f:fayalite(2feo SiO2) Ce:Cementite(Fe3C) P : Pearlite( フェライトとセメンタイトが交互に重なり合って構成された層状組織 ) st:steadite(fe-fe3c-fe3p 共晶中の点状相 ) 94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資料番号 1 遺跡名三川里遺跡遺物 No. 出土状況出土位置溝状遺構時期 : 根拠 5~6 世紀代 : 共伴土器 検鏡 : HS-1 表 : 黒褐色遺存度破片長さ 11.5 cm 試料記号化学 : HS-1 計色調 遺物種類 ( 名称 ) 幅 9.0 cm 放射化 : 測厚さ 3.5 cm 値 炉壁重量 34.5 g 地 : 灰褐色 破面数 5 磁着度 3 前含浸 メタル度 H( ) 断面樹脂 分析 項 目 滓 粘土 マクロ 検 鏡 硬 度 EPMA X 線回折 化 学 耐火度 カロリー 放射化 X 線透過 観察所見表面がガラス質滓化し その下に粘土つく資料である ガラス質滓の表面は滑らかで 微細な気孔があり 一部は紫紅色を呈している 粘土は スサが混和されて おり ガラス質滓側が灰褐色で還元し その上に橙褐色をした酸化部分が見られる 破片の形状には 円形炉の炉体にあるような湾曲が見られない 分析部分長軸端部 1/4 を切断し 炉壁として分析に用いる 残材返却 備 考 ガラス質化した部分の両端が外反し 炉壁の形状としてはやや不自然な点がある 大口径送風管自体ではないが 炉壁の中でも送風管の挿入部分に接する位置に貼 られた可能性も考えられる 95
제 6 호 資料番号 2 遺跡名三川里遺跡遺物 No. 出土状況出土位置溝状遺構時期 : 根拠 5~6 世紀代 : 共伴土器 検鏡 : HS-2 試料記号 化学 : HS-2 計 遺物種類 ( 名称 ) 長さ 15.5 cm 幅 13.3 cm 放射化 : 測厚さ 6.4 cm 値 色調 表 : 黒褐色遺存度破片分地 : 灰褐色破面数 5 析 磁着度 3 前含浸 炉壁重量 1176.7 g メタル度なし断面樹脂 項 目 滓 粘土 マクロ 検 鏡 硬 度 EPMA X 線回折 化 学 耐火度 カロリー 放射化 X 線透過 観察所見円形炉の炉体に当たるものと見られ 全体に内湾する形状をもつ 薄く残る炉壁粘土の内側に厚さ 6 cmほどの滓が付着しており 粘土は灰褐色に還元され スサが 混和されていることが分かる 付着する滓はガラス質滓が主体で 一部に茶褐色に銹化した部分も見られるが メタル度はない 表面は凹凸があり 幅 2.5~3 cmほ どの木炭が噛み込んだ痕跡が顕著である 分析部分長軸端部 1/4 を切断し 炉壁として分析に用いる 残材返却 備考炉壁に付着する滓が厚く 木炭痕が顕著であることから見て 炉の下半部に当たる炉壁と思われる 96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資料番号 3 遺跡名三川里遺跡遺物 No. 出土状況出土位置溝状遺構時期 : 根拠 5~6 世紀代 : 共伴土器 検鏡 : HS-3 表 : 黒褐色遺存度破片長さ 11.4 cm 試料記号化学 : HS-3 計色調幅 7.8 cm 地 : 黒褐色破面数 5 放射化 : 測厚さ 7.7 cm 遺物種類 ( 名称 ) 値磁着度 3 前含浸 炉内滓重量 474.5 g メタル度 H( ) 断面樹脂 分析 項 目 滓 メタル マクロ 検 鏡 硬 度 EPMA X 線回折 化 学 耐火度 カロリー 放射化 X 線透過 観察所見不整な形状をした塊状の滓である 部分的に茶褐色に銹化したところもあるが ガラス質滓を主体としたものと見られ 僅かに紫紅色を帯びた部分も観察できる 表面の凹凸が著しく 幅 3 cmほどの木炭痕が観察でき 一部には灰褐色をした炉壁粘土も付着している 分析部分長軸端部 1/4 を切断し 滓部と金属部を分析に用いる 残材返却 備考資料番号 2 に近い特色をもっており 炉壁付近で生じ 炉内に遊離した滓である可能性が考えられる 97
제 6 호 資料番号 4 出土状況試料記号遺物種類 ( 名称 ) 遺跡名三川里遺跡遺物 No. 項目滓メタル 出土位置溝状遺構時期 : 根拠 5~6 世紀代 : 共伴土器マクロ 検鏡 : HS-4 長さ 12.0 cm 化学 : HS-4 放射化 : 炉底塊 計測値 幅 7.8 cm 厚さ 5.2 cm 重量 481.4 g 表 : 灰褐色 遺存度 破片 分 色調 地 : 灰褐色 破面数 3 析 磁着度 1 前含浸 メタル度 なし 断面樹脂 検 鏡 硬 度 EPMA X 線回折 化 学 耐火度 カロリー 放射化 X 線透過 観察所見炉底塊の縁辺部に当たる小片で 一部は原状を留めるところもあるが 3 面は破面である 厚さは 5.2 cmと薄く 流動滓を主体としたものと見られる 下面には木炭 痕と見られる凹凸があり 滓の表面は一見緻密であるが 細かい気孔も多数観察できる 分析部分長軸端部 1/3 を切断し 滓部を分析に用いる 残材返却 備考 98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の分析調査
三川里遺蹟出土製鐵關連遺物의分析調査 大澤正己 ( 오오사와마사미 )* 金想民 ** 번역 : 金想民 - 목차 - Ⅰ. 개요 Ⅱ. 경위 Ⅲ. 조사방법 Ⅳ. 조사결과 Ⅴ. 정리 Ⅰ. 개요 한반도남부지역에위치하며, 5 6세기대로추정되는삼천리유적에대한분석조사를실시하였다. 그대상은제철관련유물 4점 ( 노벽3, 노벽괴1) 이다. 삼천리유적의제철은철광석 ( 자철광석 ) 을원료로하였으며, 노의재료로서는화강암계마사토를비짐 ( すさ ) 1) 으로혼입하였다. 노바닥철괴의광물상은페이알라이트 (fayalite:2fe O SiO2) 를공반하는철입자로서過共析 2) 범위 (>0.7 7%C) 에해당하는정도이며, 노벽의용융된유리질면에서는반환원된자철광석분말이확인되어주목된다. 원형로로대구경송풍관을사용한조업이상정된다. * 큐슈테크노리서치 TAC 센터, ** 큐슈대학비교사회문화학부 1) すさ는균열을막기위해벽토에섞는여물등의섬유질재료로서토기제작시점토에넣어주는비짐과동일한기능으로판단하여비짐으로번역하였다.( 역자 ) 2) 철은탄소함량에따라연철, 강철, 선철 ( 주철 ) 로구분하는데, 일본에서는금속학적분류로서강철과선철을또다시세분한다. 본고에서는亞共晶이나過共析鋼과같은용어가나오는데이는탄소량에따른강철과선철의세분된명칭이다. 이해를돕기위해아래의그림을첨부한다.( 역자 ) 99
제 6 호 Ⅱ. 경위 삼천리유적은전라남도화순군에위치하며, 구상유구에서폐기물로볼수있는노벽과노바닥철괴가출토되었다. 이와같은제철관련유물을통해 5 6 세기대의한반도남부지역의제철활동 ( 생산형태, 산지동정, 유통문제 ) 의실태파악하는것을목적으로금속학적조사를진행하였다. Ⅲ. 조사방법 1. 제공된시료 Table.1 에해당한다. 제철관련유물 4 점의조사를실시하였다. 2. 조사항목 (1) 육안관찰유물의외견관찰을실시하여그것을바탕으로시료채집위치를결정한다. ( 금속철이잔존하는부분을우선으로함 ) (2) 매크로조직 (Macro Structure) 현미경관찰을위한처리가완료된단면의전체상을투영기에 5배, 10배, 20배로촬영한다. 저배율의관찰은조직의분포상태, 형상, 크기등현미경조사에의해좀더광범위에걸친정보를얻을수있는이점이있다. 100 삼천리유적출토제철관련유물의분석조사
(3) 현미경조직 (Microscopic Structure) 제공된시료를목적으로하는위치에맞게잘라낸후벡라이트수지에넣어에메리연마지 #150, #240, #320, #600, #1000 의순서로연마한다. 마지막으로연마한면을다이아몬드입자 3μ와 1μ으로마무리하여광학현미경관찰을실시한다. 또한금속철의펄라이트와페라이트결정입자는나이탈 (5% 질산알코올용액 ) 로부식 (Etching) 시킨다. 불순물의유무, 연마면의조직관찰등을통해제품의제조방법, 소재의유추등세밀한조사를실시한다. (4) 빅커스단면경도철재의광물조성과금속철의조직동정을목적으로빅커스단면경도계 (Vickers Hardness Tester) 를사용하여경도를측정한다. 경도는경면 ( 鏡面 ) 마연한시료에 136 의꼭지각을가진다이아몬드를밀어넣어, 그때에생긴파인면적에서그하중을뺀몫을경도치로하고있다. 경도치로부터탄소량등의함유량, 제조수법등을확인한다. 시료는현미경용자료와병행한다. (5) 분말X선회절법 (X-Ray diffractometer) 회절X선스펙트로을이용하는시성 ( 示性 ) 분석법. X선회절계 (diffractometer) 를사용해고체시료 ( 제련재 단야재 ) 의회절X선을찍어물질의동정을실시한다. X선회절이채용되는경우에사용한다. 분석조건 : 분말X선회절데이터는큐슈대학지구자원공학부문 ( 九州大学地球資源工学部門 ) 의이학 Ultime Ⅳ X선회절장치에서얻은것이다. X선은 Cuκα1 (40Kv, 20mA) 을사용하여전자동모노크로메터, 발산슬리트2/3, 산란슬리트2/3, 수광슬리트0.3mm, 데이터취득폭0.02 (2θ), 주사속도2 /min 의수치를조건으로하여 2-65 (2θ) 의주사범위로하였다 (Fig.2). (6) 화학조성분석제공된시료의분석은다음과같은방법으로실시한다. 전체철분 (Total Fe), 금속철 (Metallic Fe), 산화제1철 (FeO): 용량법. 탄소 (C), 유황 (S): 연소용량법, 연소적외흡수법. 이산화규소 (SiO2), 산화알루미늄 (Al2O3), 산화칼슘 (CaO), 산화마그네슘 (MgO), 산화칼륨 (K2O), 산화나트륨 (Na2O), 산화망간 (MnO), 이산화티탄 (TiO2), 산화크롬 (Cr2O3), 오산화린 (P2O5), 바나듐 (V):ICP(Inductively Coupled Plasma Emision Spectrom eter) 법. 유도결합플라즈마발광분광분석. 101
제 6 호 (7) 자료관찰표를읽는방법자료관찰표를읽는방법은다음과같다. 유물종류 : 금속학적인분석을실시하기전에고고학적인관찰로판정한유물의종류이다. 법량 : 자료의잔존하는최대길이, 최대폭, 최대두께, 중량을계측한것이다. 자착도 : 철재분류용인 표준자석 을이용하여자료와의반응단위를 1부터순번으로숫자로표현한것으로수치가클수록자성이강하다. ( 역사박물관보고서제 58, 59집 일본, 한국의철생산기술 자료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1994년을기준으로하였다.) 유존도 : 자료가파편인경우파면이몇개인가를기록하였다. 메탈도 : 특수금속탐지기에의해판정된금속철의잔류도를나타내는것으로금속철이가장의존하지않는것부터유존하는것까지를 6단계로나누어 없음, 수화( ), H( ), M( ), L( ), 특L( ) 로표기하였다. 분석 : 분석실시항목을 표로나타내었다. 소견 : 분석전의외형이나파면 단면의상황, 목탄흔이나기공의유무및부착물이나기타상황에대해상세히기록하였다. 분석개소 : 자료를어떻게조사 분석할것인가를기록하였다. Ⅳ. 조사결과 HS-1 노벽 (1) 육안관찰 : 결실된 5면이돌아가는 35g 미만의노벽편이다. 표면은용융되어유리질화되었으며, 그아래로점토가부착된형태이다. 유리질화된표면은매끄럽게형성되었으며, 미세한기공이발생하였다. 색조는부분적으로자홍색을띠고있다. 점토는비짐이혼입되어있고, 유리질화된면은회갈색으로환원되었으며, 그위쪽으로등갈색을띠는산화부분이관찰된다. 노벽편의형태에서원형로의노벽과같은만곡된경향은관찰되지않는다. 다만노벽의관찰소견중에는대구경송풍관의삽입부분에접하는위치의파편의가능성을지적하는의견도있다 3). (2) 매크로조직 : Photo.1 의첫번째단의우측에해당한다. 미세현미경의관찰용으로제작한단면시료의전체상이다. 위쪽절반이점토가피열되어용융된유리질부분으로흰색의입자형태 3) 뒤쪽에유물에대한관찰소견표의자료번호 1 의비고란에기재되어있다.( 역자 ) 102 삼천리유적출토제철관련유물의분석조사
로반용융석영의입자가점재 ( 點在 ) 한다. 또한아래쪽의흑회색와적색부분은미용융된태토에해당한다. (3) 현미경조직 : Photo.1 의 1 4에해당한다. 1, 2는용융된유리질화부분의표면이다. 유리질화된바탕면은매우미량의樹状晶 (derdrites) 마그네트 (magnetite:fe3o4) 가정출 ( 晶出 ) 되었다. 3, 4는태토부분이다. 바탕면을구성하는미세한비늘형상의점토광물인세리사이트 (cerisite) 는거의변화되지않았다. 게다가석영이나장석류도미용융된조직으로볼수있다. 가열된점토의전형적인조직으로, 노벽은화강암풍화토를이용하였다. (4) X선회절 : 노벽의점토 (furnace wall:clay) 를 Fig.1로제시하였다. 노벽파편의주요광물상은석영 (quartz:sio2) 로서구성되었으며, 약간의칼륨장석 (potas sium feldspar:k2o Al2O3 SiO2), 뮬라이트 (mullite:3al2o3 2SiO2), 크리스토발라이트 (cristobalite:sio2), 헤르시나이트 (hercynite:feo Al2O3) 등의유리질 (glass) 도확인된다. 각광물상은 20 30도의회절대로명료해진다. 노체 ( 盧體 ) 점토는富化석영의풍화토 ( 화강암계진사토 ) 를원료로한다. 뮬라이트는가오린계점토가 500 600 이상의온도로가열하여형성된다. 헤르시나이트는큰격자정수 (a0=8.204a) 로서 Al Fe 3+ 로서교체된다. 침철석 (goethite:α FeO(O H)) 은기후의영향을받아수화철 ( 水酸化鉄 ) 이된다. Fig.2에노벽의유리질 (furnace wall:glass) 에대한회절결과를제시하였다. 유리질화된노벽시료를분쇄한색조는암회색이다. 주요광물상은석영과크리스토발라이트이고, 미량의뮬라이트, 마그네타이트 (magnetite:fe3o4) 유리질이포함된다. 이는현미경조직과의일치하는결과이다. 노벽의유리질은약 1000 이상에서가열하게되면, 크리스토발라이트가증가하며, 칼륨장석은소실한다. 마그네타이트의격자정수 (a0=8.367a) 는작은편인데, 마그헤마이트 (maghemite:fe2 O3) 와마그네타이트 (Fe3O4) 의중간조성에해당한다. HS-2 노벽 (1) 육안관찰 : 원형로로상정되는 1180g 미만의노벽편이다. 전체적으로내만하는형상을가지며, 노벽에부착된슬러그는 6cm로두꺼운편이다. 폭은 2.5 3cm 정도의목탄흔이현저하게남아있다. 이와같은세가지특징을통해제철로의하단부에해당하는노벽으로생각할수있다. 부착된슬러그는유리질재슬러그가주체를이루며, 일부차갈색으로녹슨부분도관찰되고있지만메탈도는측정되지않는다. 점토는회갈색으로환원되었으며, 비짐이혼입되어있다. (2) 매크로조직 : Photo.1 의네번째단의우측에해당한다. 표면은용융되어유리질화되었으나, 철입자의존재는확인되지않는다. 103
제 6 호 (3) 미세현미경조직 : Photo.1 의 56로서제시하였다. 광물상은유리질면에담회색의장주상 ( 長柱状 ) 결정의페이알라이트 (fayalite:2feo SiO2) 가정출되었다. 자철광석을원료로한제련재로판단되는조직이다. 태토는 HS-1 노벽에서관찰된비늘형의점토광물인세리사이트와석영, 칼슘장석을중심이되는 (HS-1 과 ) 동일한조직이므로기재를생략하였다. 이역시화강암류의풍화토이다. HS-3 노벽 ( 노내탈락 ) (1) 육안관찰 : 평명은부정형으로 475g 의괴상재 ( 塊狀滓 ) 이다. 부분적으로차갈색의녹슨부분도존재하지만, 유리질화된슬러그가주체가되며자홍색을띠는부분도공존한다. 거친표면이두드러지며, 폭 3cm정도의목탄흔이관찰되거나, 부분적으로회갈색의노벽점토가부착되기도한다. HS-2 과유사한특색이있는특이한슬러그이다. 노벽에부착된생성된것으로보이며, 내에서탈락된슬러그의가능성도생각할수있다. 또한현미경시료중에서절단된두시료에서모두금속철립이확인되고있어, 절단된양쪽의시료를현미경시료로서준비하였다. (2) HS-3-1( 우측 ) 매크로조직 : 단면의표면은유리질화된면으로금속철립이나미세한마크네타이트가정출되며, 제철원료인반환원된자철광분등도검출되었다. (3) HS-3-1( 우측 ) 현미경조직 : Photo.2 의 1 6에해당한다. 1, 2는노벽점토의용융된유리질면근처에서정출된백색다각형결정의마그네타이트 (Fe3 O4) 이다. 또한 3, 4를통해제련원료인자철광석분은표면근처에반환원상태로남아있는것을알수있다. 4의확대조직으로서우측은광석원료가가열되어환원되어가는과정에서슬러그화된상태를포함한다. 게다가 5 7에는약 0.5mm 정도의금속철립을나타내고있다. 5는연마한면에서부식이확인되지않는면 (no etch) 의저배율조직이며, 6은부식된 (5%HNO3 溶液 ) 조직으로페라이트 (Fe rrit e: 純鉄, α 鉄 ) 면에세멘타이트 (Cementite:Fe3C) 가검출되는고탄소조직이다. 7은 6의확대조직이다. 이들은제철노벽을제시하는자료로판단된다. (4) 빅커스단면경도 : Photo.2 의 8, 9에경도측정의압흔을제시하였다. 8의반환원자철광석분은경도치가 644Hv 이다. 자철광석의문헌상경도치는 530 600Hv 이다 4). 측정된경도치는문헌상의경도치상한을조금넘는수치이지만, 저하중 ( 일반적으로 200gf 의하중에대한대 4) 日刊工業新聞社 焼結鉱組織写真および識別法 1968. 우스타이트는 450~500Hv, 마그네타이트는 500~600Hv, 페야라이트는 600~700 Hv 의범위가제시되어있다. 또한, 우르보스피넬의경도치범위는명기되어있지않지만, 마그네타이트에티탄 (Ti) 을固溶하므로 600Hv 이상이라면우르보스피넬로보고있다. 여기에알루미늄 (Al) 이더해져우르보스피넬과헤시나이트를기초성분으로하는고용체가되면더욱더경도치는상승한다. 그러므로 700Hv 를넘는값은우르보스피넬과헤시나이트의固溶體일가능성이생각된다. 104 삼천리유적출토제철관련유물의분석조사
상결정의경도를측정하지만, 이시료는보다적은 50gf 의하중에의해판명된결과임 ) 으로서오차가있을가능성이있다. 따라서철광석의마그네타이트입자로동정할수있다. 9는금속철립의경도를나타내는압흔이다. 2점의수치는 492Hv, 499Hv 를띠는약한경질이다. 금속조직은고탄소를함유하고있어, 추출물은세멘타이트 (Cementite:Fe3C) 임을나타낸다. (3) HS-3-2( 우측 ) 현미경조직 : Photo.3 의 1 7로제시하였다. 1, 2는유리질면에정출된백색다각형결정의마그네타이트이고, 3 7은금속철립조직이다. 3은마연후부식이되지않은금속철립의저배율조직에해당한다. 0.4mm 정도의철립으로서백색부분이금속철이며, 국부적으로확인되는부정형한적색은녹슨부분이다. 4 7은부식된면의확대조직이다. 이는대부분이흑색층상조직으로서전면에펄라이트 (Pearlite) 가정출되는共析鋼 (0.77%C) 이다. 그러나상부의공기가접하는부분은산화되었으며, 탄소 (C) 가빠져나가서소위탈탄조직과같은백색의페라이트로변화하였다. 제련조업의고온부에서가끔발생하는현상으로추정된다. (4) 빅커스단면경도 : Photo.3 의 8은백색결정에대한압흔을나타낸다. 경도수치는 122Hv 으로약간높은경향을띠는페라이트로동정할수있다. 9의흑색층상결정의경도치는 314Hv 으로좀더경화되고있다. 펄라이트는페라이트와세멘타이트가함께겹쳐져서구성하는층상조직이므로, 경도수치는조금높지만타당한경향을가진다고볼수있다. 이는전술한 HS-3-1 과동일한철괴로서볼수있으며, 제철관련유물로서두시료는타당한결과를나타내고있다. HS-4 노바닥철괴 (1) 육안관찰 : 평면이부정삼각형인노바닥철괴의가장자리에해당하는 481g 의소편이다. 일부는원형을유지하고있으나 3면이결실되었다. 두께는 5.2cm 로얇으며, 유동재 ( 流動滓 ) 를주체로한다. 하단부면에는목탄흔으로볼수있는요철면이있다. 슬러그의표면은치밀하게보이지만, 세밀한기포가다수관찰된다. (2) 매크로조직 : Photo.4 의첫번째단에해당한다. 단면의표면부터내부까지거의균등한담회갈색슬러그를형성하고있다. 기공은산발하지만, 비교적치밀하다. 그중에서표면의일부에는돌출된형태의약 4mm 전후의금속철도확인된다. (3) 현미경조직 : Photo.4 의 1 8에해당한다. 1, 2는노바닥철괴의광물상으로흑색슬러그면에담회색부정형결정인페어라이트 (fayalite:2feo SiO2) 가정출된다. 괴상 ( 塊狀 ) 의자철광을원료로서한제철조직으로인용할수있다. 3 6은 4mm 의금속철립이다. 3은마연한후부식되지않은면 (no etch) 에해당한다. 백색부분의금속철이조금씩확대되어가면서일부회색의수화철이되었다. 4는부식 (etch) 된면의조직으로흑색층상펄라이트 (lameller pearlite) 105
제 6 호 면에初析 5) 세멘타이트 (pro-eutectoid cementite:fe3c) 이석출된過共析鋼 (>0. 77%C) 에해당한다. 56은두군데의확대조직으로点状晶의 P 偏析인스테타이트 (steadite:fe-fe3c-fe3p) 가존재한다. (4) 빅커스단면경도 : Photo.4 의 7은담회색부정형결정의경도를측정한압흔이다. 경도치는 616Hv 으로페이알라이트의문헌경도치인 600 700Hv 범위와일치하고있어페이알라이트로동정할수있다. 8의좌측압흔은흑색층상부분으로그수치는 208Hv 가얻어졌다. 펄라이트조직의범주에들어간다. 8의우측으로 621Hv 와 686Hv 의 2점은点状晶이다. P 偏析의스테타이트의수치로서는약간낮은편이다. 경도측정의대칭면이협소하여하중이 10g까지낮아지고있으므로이에따른오차로생각할수있다. 동일한 200g 하중으로실시하였다면스테타이트는 800Hv 전후가되었을것이다. (5) X선회절 : Fig.3 에해당한다. 주요광물상은페이알라이트 (fayalite: (Fe,Ca)2SiO4) 으로약간의헤르시나이트와슬러그가함께고착되었다. 그밖의헤르시나이트 (hercynite: FeAl2O4) 이나석영 (quartz:sio2), 침철석 (goethite:feo(o H)) 도포함하고있다. 현미경조직과큰차이가없는결과이다. (6) 화학조성분석 : Table2 에제시하였다. 철분은낮은편으로조재성분이높은슬러그이다. 전철분 (Total Fe) 은 34.43% 인것과비교하여, 조성성분 (SiO2+Al2O3 +CaO+MgO+K2O+Na2O) 은 51.08% 으로높은수치를띠고있다. 이산화티탄 (TiO2) 은 0.52% 로미량검출되었다. 또한철의생성에유해한유황 (S) 0.02%, 오산화인 (P2O5) 0.68% 정도로많지않다. 괴상의자철광에기원을두고있다고보아도문제되지는않을것이다. 노바닥철괴가가장자리에해당하는것을통해용융된점토에서유래된슬러그가많은저철성분계로볼수있다. Ⅴ. 정리 5 6세기로비정되는삼천리유적에서출토된노벽 3점과노바닥철괴 1점의분석조사를실시하였다. 노벽에는제철원료의반환원자철광분이잔존하며, 노바닥철괴의광물상에서페이알라이트 (fayalite:2feo SiO2) 가정출되었다. 더불어노벽과노바닥철괴는過共析鋼粒 (>0.77%C) 을함유하고있다. 이와같은결과를통해적은정보에불과하지만, 제련조업을상정할수있다. 5) 초석 (pro- eutectoid): 균일한고용체에서공석반응이전에석출한결정을나타내는말, 공석반응으로석출한결정은공석정이라한다. 106 삼천리유적출토제철관련유물의분석조사
기존에조사된한반도에서출토된제철관련유물의분석결과를살펴보면, 제련기술은중부지역의기안리유적 (3C전후), 석장리유적 (3C말 5C) 부터동남지역의사촌유적 (6C전 7C전 ) 으로남하한다. 이번삼천리유적에서는제철유구는발견되지않았지만, 서남부지역으로도전개되었을가능성을생각해볼수있는자료로서주목할수있다. 그전개에대한모식도를 Fig.4 와같이제시한다. 다만전술한것처럼삼천리유적에서는제철유구가미검출되었고, 대구경송풍구나철광석의출토 ( 채취 ) 가없으며, 유물의변화도심하다. 따라서정확한제철유적으로인정하기에는아직미비하고불안한것이사실이다. 유적의입지나주변의자원공급조건 ( 광석의유무, 목탄확보의산림조건 ) 등을함께검토할필요가있을것으로생각된다. Fig.4. 한반도제련재출토유적의위치 - 분석조사테이터를근거로 - - 부기 금속학적분석과정에서 X선회절은井澤英二선생님의도움을받았다. 그리고유물의관찰표작성은角田徳幸씨에의해작성되었다. 논고를통해감사의마음을전하고싶다. 이번금속학적조사는일본학술진흥재단의平成 23 年度科学研究費補助金 ( 特別研究費奨励費 ) 에의해진행되었다. 많지않은예산에도선뜻분석조사를맡아주신大澤正己선생님께감사드린다. 또한, 보고서가완료된상황인데도불구하고분석자료를제공해주신 ( 재 ) 전남문화재연구원의鄭一선생님께도깊은감사를드린다.( 역자 ) 107
제 6 호 三川里遺跡 HS-1 炉壁 ( 粘土 ) 三川里遺跡 HS-1 炉壁 ( ガラス質 ) 108 삼천리유적출토제철관련유물의분석조사
HS-4 炉底塊 109
터키연수후기 金在勇 目次 Ⅰ. 개요 Ⅱ. 내용 Ⅲ. 후기
제 6 호 터키연수후기 * 6) 金在勇 Ⅰ. 개요 1) 연수기간일시 : 2012년 05월, 07월, 09월 (9일간) 2) 연수기간장소 : 터키중서부지역 3) 연수기간참가자 : 전남문화재연구원임직원및연구원 4) 연수기간주제 : 터키문화유적답사 Ⅱ. 내용 1일 ) 약 12시간의비행으로 14일저녁 < 이스탄불 > 아타튀르크국제공항에도착하여가이드를만나버스를타고터키에서의첫번째밤을이름모를시골의한적한호텔에서자게되었다. 하지만 12시간의비행으로피곤해진몸도 +6시간의시차를극복하지못하고새벽 2시 ~ 3시에다들일어난것같았다. 2일 ) 아침버스에몸을실었는데버스기사분이두분이었다. 가이드말이두분께서번갈아가며운전을하신다고했다. 아무튼버스에올라마르마라해를끼고달려다르다넬스해협의유럽쪽관문 < 차낙칼레 > 에도착하여점심식사로터키의유명한고등어케밥을먹었는데이국적인음식인지몰라도다들반응은별로였다. 그리고카페리를타고해협을지나 < 트로이 > 로향했다. 그렇게유럽에서아시아로 30분만에이동했다. * 전남문화재연구원연구원 112 터키연수후기
그리고카페리에서만나터키인들은먼저우리에게인사하고사진을찍어달라고부탁했다. 좀 낯설긴하지만먼저다가와주니이곳터키가좀더친근하게우리의마음속으로다가오는걸느 낄수있었다. 사진 1. 트로이유적지에복원된트로이목마 선착장에도착하여다시조금달려트로이에도착하니다른나라관광객도많이있어이제부터터키여행이시작이구나라고느껴졌다. 트로이는우리가많은책과영화를통해알고있던에게해의상업도시이자파리스와헬레네의사랑과영웅아킬레스와헥토르왕자의결투그리고트로이목마까지우리모두가상상한것들이눈앞에펼쳐질것으로예상했지만이곳트로이도역사의무게앞에서한없이작아지는인간의모습처럼폐허의모습을하고있었다. 이곳이전설의트로이라고느낄수있는것은오직관광객을위해만들어놓은트로이목마뿐이었다. 이곳이정녕에게해를주름잡던상업도시트로이였단말인가! 세월의무게앞에트로이성벽앞까지들어왔다던바닷물은이제강물의범람으로토사가흘러나와저멀리물러나있었다. 113
제 6 호 사진 2. 남아있는트로이성벽 사진 3. 복원중인트로이성벽 하지만이곳트로이도하인리히슐리만의끈질긴노력이없었다면과연우리가볼수있었을까? 슐리만은아마추어고고학자였지만호메로스의일리아드를통해트로이를믿었고그를통해트로이를증명했다. 그런그였지만슐리만은오직트로이를찾겠다는일념으로트로이이후의유적과유물들무시하고발굴하면서훼손했다고한다. 그당시사람들은슐리만은고고학의아버지라했을지몰라도현재그는결과는좋았지만과정이잘못된사람으로종종평가된다. 그런슐리만의잘못된발굴을교훈삼아우리연구원들도발굴현장에서혹시잘못된습관이나관행들이있는지다시한번생각하고유념해야할것이다. 이제트로이를떠나아름다운해안도시 < 아이발릭 > 의바닷가리조트에서바닷가에서펼쳐지는석양을바라보며터키여행 2일째를정리했다. 3일 ) 일찍일어나아침밥을먹고 < 에페소 > 로출발했다. 에페소에도착하니분위기가심상치않다. 관광객들이몰려드는데초만원이다. 카메라만들이대면사람들이다걸린다. 가이드에따르면크루즈선이입항한것같다고했다. 에페소는고대그리스의아테네에의해기원전 6~7세기에세워진도시로예전부터유럽과아시아를잇는에게해의중심도시로번성했다. 에페소는주인이여러번바뀌기도했는데에페소가가장화려했던시기는바로로마시대였다. 아우구스투스황제때에페소는소아시아지역중가장중요한무역항이되었고아시아지역에서최고의도시로발달했다. 그러다 7세기강에서유입되는토사가바다를메우면서항구도시로서의기능을잃게되어점차쇠락하기시작했다. 하지만클레오 114 터키연수후기
사진 4. 에페소유적지의관광객 파트라가쇼핑을했다는고급상가, 공중목욕탕, 바실리카 ( 법정 ), 원형경기장, 도서관까지아직 까지정교하게남아있는엄청난유적앞에입을다물지못했다. 사진 5. 에페소의복원중인원형극장 115
제 6 호 점심식사이후에포도마을로유명한 < 쉬린제 > 로이동했다. 터키어로쉬린은아름답다예쁘다는뜻으로쉬린제는아름다운사람들이모여사는마을이란의미이다. 이마을은 15세기에형성되기시작했으며지금의마을은 19세기에만들어진것이다처음에는터키에서노예생활은하던그리스인들이노예의속박에서풀려난후에정착해살기시작했는데하얀벽에붉은지붕을한그리스풍의마을이다. 고향으로돌아가지못한그리스인들이고향을생각하며그렇게지은것이다그러니쉬린제는터키안에있는그리스마을인셈이다그리고제 1차세계대전이끝난후 1924 년터키와그리스가주민을서로교환할때그리스테살로니카에서이주해온터키사람들이사과와포도로와인을만들기시작한이후이지방의와인이유명해졌다. 그래서와인을시음할기회가있었는데잘모르겠다맛있는지 사진 6. 예전그리스인들의마을쉬린제그리고 < 파묵칼레 > 로이동했다. 1988 년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된파묵칼레는터키어로목화의성이라는뜻으로세계에서도손꼽힐정도의기이한장관을이루고있는도시다특히눈처럼하얀석회층이있어서유명한곳인데석회를포함하고있는구릉을따라흐르는온천수가하얀성을만들어여러겹의석회봉이놓여있는풍경은이곳이아니면어디에서도볼수없을것이다. 하지만이곳파묵칼레도세계적인기상이변그리고무분별한출입으로아쉽게도우리가알고있던모습과는달리메말라있었다. 오직한곳만이이곳을찾는관광객을위해인공적인모습으로물을흘려보내고있었다. 116 터키연수후기
저녁이되자호텔에짐을풀고이곳파묵칼레의명물이라는양갈비를맛보러나갔다. 처음먹는양고기였는데매우맛있었다. 사진 7. 메마른파묵칼레의석호 4일 ) 파묵칼레를뒤로하고 < 케코바 > 를향해고고! 케코바가는길은멋진해안길과완벽한지중해바다가보이는해안도로였다. 길이꼬불꼬불해서조금멀미하셨던분도계셨지만강력한지진으로인해케코바반도의도시가바다속으로가라앉아지금은바다위로약간의유적지들만남아그시대의영광과흔적을보여주고있다. 케코바는가라앉은도시로슬픔을간직한도시다. 사라진도시의흔적을찾아서가라앉은수중도시를만나기위하여유람선을타고바다로나간다. 사진 8. 지진으로가라앉은케코바유적 117
제 6 호 물은너무나아름다운에메랄드빛이었다. 물결이흔들릴때마다투명한물아래로고대도시의영화가일렁거린다. 성벽과, 돌담, 거리, 계단등이물위로흐릿하게번지고반쯤잠긴계단이물속에있다. 바닷가에서보여지는건축물들의흔적, 교회임을알수있는십자가가새겨진커다란바위, 그리고물속에잠겨진건물들의모습들, 수장되어져있는건축물들의모습이투명한바닷물아래로잘보인다. 가끔물위에솟은십자가를볼수있는데바다속에수장된돌무덤의모습들이다. 섬꼭대기에는성채가있으며동쪽으로는석관이있고아래쪽에는원형극장이있는등고대그리스사회의구성요소가다있었던섬이다. 여기저기보이는무너진돌석관모습이찬란했던비잔틴문명의영화를투영하고있을뿐이다. 케코바관람이끝나자터키지중해최대도시 < 안탈리아 > 로출발했다. 안탈리아는고대에팜필리아라고불리던곳에기원전 159년페르가몬의왕아타로스 2세가아타레이아를건설하면서처음자리를잡게된도시로비잔틴과셀주크를걸쳐오스만제국의영토가되었다. 사진 9. 해안가에서바라본안탈리아시내와성벽 안탈리아구시가지인칼레이치에서바다가보이는전망대까지버스가아닌도보로이동하였는데, 좁은골목에전통목조가옥들이다닥다닥붙어있는모습이인상적이었다도보의종착지카라알리오을루공원에서바라본지중해의풍경은일몰과어우러져아름다운풍경을연출하고있었 118 터키연수후기
다그리고가는길에길거리의개들이따라다녔다. 이곳터키의거리에는개와고양이가많은데사람을무서워하지않고잘따른다. 5일 ) 안탈리아의아침을뒤로하고스타워즈의촬영지로도유명한 < 카파도키아 > 로이동! 중간에 < 콘야 > 에서점심을먹었다. 이곳콘야는셀주크투르크시대에수도로번영한도시로훌륭한유적이많이남아있기도하다. 그리고특히이슬란신비주의종파인메블리나교단의발생지로도알려져있는곳인데그만큼종교색이강한도시로정치와종교가분리된터키에서도아직까지이슬람의교리가잘남아있는도시로얼마전까지만해도술을팔지않았다고한다. 터키는오스만제국에서터키공화국으로바뀌면서이슬람국가에서는보기드문정교분리에성공한케이스로국민의 97% 가이슬람이지만국교는정해져있지않다. 세속주의를표방해서정치에종교가개입못하게선을그은것이다. 그래서그런지이슬람국가에서는팔지않는술도쉽게구입해서자유롭게마실수있다. 카파도키아에도착해보니햇볕이매우강렬하다. 우선괴레메골짜기에들어가보니그리스도교박해를피해온그리스도교인들이만든 30여개의석굴교회가모여있는곳이다. 주로 5~12 세기에만들어진교회는버섯모양의기암괴석을이용해만들어졌는데내부는아름다운프레스코화로꾸며져있다. 당시에는 365여개의동굴교회가있었다고하지만현재는 30여개의교회가일반인에게개방되어있다. 그리고카파도키아호텔에서저녁식사를했는데지금까지의호텔식중에서최고로맛있다. 식사후터키민속공연을보러석굴을파서만든공연장에서유럽관광객들과민속춤과밸리댄스공연을관람했다. 사진 10. 열기구에서바라본카파도키아 119
제 6 호 6일 ) 카파도키아의아침역시맛있었다. 비둘기골짜기라는우치히사르성채와영화스타워즈촬영지로유명한으흘라라계곡은정말멋진곳이다. 우치히사르성채는커다란바위산을중심으로크고작은바위산이모여있는모습인데로마시대에는종교박해를피해온그리스도교인들이숨어살던곳이기도하다. 그리고성채주변에는비둘기를키우던구멍이있는데당시에는비둘기를키워서그배설물을모아포도밭의비료로사용했다고한다. 그리고이곳에서가이드의추천으로맛있는터키아이스크림도맛보았다. 지하도시데린구유는괴레메골짜기처럼로마시대기독교박해를피해기독교인들이석굴을파서도시를만든것으로지하 8층까지내려가는깊이 85m 의지하도시로수용인원은 2만명에달하는것으로알려져있다. 그 2만명의인원이그들만의규율로도시가유지된신비한곳이다. 매우좁은통로로도시가이어져있었다. 터키앙카라로출발! 많은사람들이터키의수도를이스탄불로아직까지알고있을거라생각하지만터키의수도이곳앙카라는 1923 년터키공화국의탄생과함께수도로지정되어지금까지수도의역할을하고있는도시다. 구릉지역에둘러싸인터키행정의중심앙카라에는한국전참전기념공원이있는데문을닫아들어가지는못하고밖에서바라볼수밖에없었다. 이공원은서울과앙카라의자매결연으로 1973 년 11월에조성된것으로한국전쟁참전터키기념탑에는당시전사자들의이름이기록되어있다. 그리고한국식탑이라고하지만이국땅에서본탑은조금낯설었다. 사진 11. 샤프란블루의전통가옥들 120 터키연수후기
7일 ) 호텔에서새벽 5시출발했다. 이유는샤프란불루를경유해서이스탄불로가야하기때문에샤프란불루는옛오스만제국의자취가잘남아있는도시로도시의이름이사프란이라는꽃이름이들어가있는것만으로도알수있듯워낙사프란이많아서유명해진곳이다. 하지만요즘은터키의옛날시가지의모습을거의그대로보존하고있는차르쉬때문인데세계전통문화유산으로지정된아름다운전통가옥들을만날수있다. 그래서그런지는몰라도터키의사극촬영지로도유명하다고한다. 하지만우리가도착했을때는아침이고일요일휴무라많은전통상점들이문을닫고있어아쉽기만했다. 그리고맛있는참깨빵을사려고빵집에들어가는데터키곳곳에서통용되던유로와달러가여기서는통하지않고오직터키화폐리라만받는다고했다. 그리고이스탄불로출발날씨는흐리고비가조금씩내리기시작했다. 예정된일정에서월요일에관람하기로했던돌마바흐체궁전과성소피아성당은일요일에휴관하는관계로블루모스크와톱카프궁전과바꾸어서관광하였다. 사진 12. 돌마흐체궁전의정문 121
제 6 호 돌마바흐체궁전은오스만투르크제국의제31대술탄압둘마지드가왕자시절프랑스에서본베르사유궁전을본떠만든궁전으로보스포러스해협이한눈에보이는아름다운궁전이다. 또한터키공화국건국의아버지인케말아타튀르크가 1938 년서거할때까지사용했던곳으로그의방에있는시계는그의사망시각인오전 9시 5분을가리키고있다. 현재는박물관, 그이전에는모스크로불렸던성소피아성당은이스탄불의또다른이름콘스탄티노플의상징비잔틴제국의건축술을보려주는성당으로콘스탄티누스 2세때만들어진대표적인사원이자현존하는가장오래된성당이기도하다. 하지만그후폭동으로완전히불에타버리게되는데 532년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다시재건축하게된다. 하지만 1453 년오스만제국의점령으로모스크로다시태어나기위해회반죽으로덧발라져오랜세월동안이슬람사원으로운영되다이제는박물관으로조금씩자기의원래모습을찾고있는아름답고성스럽기까지한성당이다. 사진 13. 외부에서바라본성소피아성당 8일 ) 아침에는보스포루스해협크루징을하기위해골든혼의선착장에갔다. 아시아와유럽을나누는가장중요한해협인보스포루스해협은흑해와지중해가만나는곳이다. 그리고세계에서 122 터키연수후기
가장아름다운해협의하나로도알려져있기때문에이스탄불여행중빼놓을수없는관광지이기도하다. 해협을따라과거와현재를뒤섞어놓은독특한아름다움을느낄수있으며부유층이사는별장가와아름다운해안가궁전가난한어촌마을까지다양하게어우러진모습을살펴볼수있다. 선착장에서배를타고갈라타교를지나보스포루스해협, 유럽과아시아를잇는다리여러사원과궁전등을구경했다. 사진 14. 보스포루스해협에서보이는갈라타교와예니자미사원 점심은카페거리에있는식당에서먹게되었는데거리가마치유럽의어느도시의거리처럼느껴진다. 그리고톱카프궁전으로이곳궁전은메흐메트 2세가완공한것으로톱카프는터키어로대포의문이라는뜻으로당시에보스포루스해협쪽에대포가놓여져있어서이런이름이붙었다고한다. 지금은박물관으로쓰이고있는데. 톱카프궁전의보석관, 무기관, 성물관등다양한유물전시실이존재하지만워낙많은관람객들로모두보지못해아쉬움이남는다. 그리고블루모스크로이동이곳은종교시설이라입구에서신발을벗고들어가며여자는스카프로머리카락이나다리를감추고들어간다. 123
제 6 호 사진 15. 톱카프궁전의정문 일반적으로이슬람사원에는미나레 ( 첨탑 ) 가 4개있지만블루모스크는 6개의미나레를가지고있다. 그이유가아흐메트 1세가황금 ( 알툰 ) 으로만들라고했지만건축가가발음이비슷한 6개 ( 알트 ) 로잘못알아들어서 6개의첨탑이되었다고한다. 하지만미나레의높이와개수는술탄의권력의상징이기도했기때문에정말로잘못알아들은것인지아니면당시이슬람의총본산이라고할수있는메카의미나레도 6개였기때문에이점이마음에걸렸던사람들이꾸며낸이야기인지는확인되지않았다. 이제우리나라의남대문시장이라는그랜드바자르는메흐메트 2세때인 1461 년비잔틴시대의마구간자리에만들어졌으며처음에는작은시장으로시작된것이증축을거듭하여현재는 5천개가넘는규모의상점들이들어서잇는이스탄불최대의시장으로성장했다. 옛실크로드의종착지로써엄청난규모의향신료시장을자랑했다지만이제는기념품가게나귀금속가게들로변해버렸다. 124 터키연수후기
사진 16. 블루모스크의천장 9 일 ) 약 9 시간 30 분의비행기에서의하룻밤지구자전과제트기류의영향으로한국에서터키갈 때보다비행시간이단축된다. 푹자고나니금새한국에도착했다. Ⅲ. 후기 터키는동서양의문화를한꺼번에만날수있는이색적인나라이다. 그리고형제의나라라며한국인들에게유독친절한터키인들을만날때마다언어는통하지않지만순수한마음이느껴졌고여행이더욱즐거워졌다. 언제어디서든기분좋은터키의인사말 메르하바 가아직도입가에맴돈다. 이곳은데린구유, 이스탄불, 에페소등유네스코에지정된곳이역사와문화의나라였다. 이슬람국가임에도기독교와관련된성당이나비밀도시등이공존하고있었으며, 지금은역사속으로사라졌지만돌마바흐체라는호화로운궁전을통해오스만제국의절대왕권을상징하고있었다. 다양한여러유적이나박물관외에도이동하는버스안에서보는터키의모습은항상달랐다. 풀밭위에양떼들이몰려다니기도하고, 한국의 50년대를상기시키는시골의모습이펼쳐지기도하고, 큰건물들이들어서있고차들로북적이는시가지의모습등다양한풍경들은눈을즐겁게했다. 125
제 6 호 1 차연수팀 (2012.05.14 ~ 05.22) 126 터키연수후기
2 차연수팀 (2012.07.02 ~ 07.10) 3 차연수팀 (2012.09.05 ~ 09.14)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