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메라와관타나모 97 관타나메라와관타나모 박병규 우리나라에 아리랑 이있듯이, 쿠바에는 관타나메라 가있다. 이노래는선율도아름답고, 가수들의가창력과호소력도뛰어나서쿠바사람들뿐만아니라전세계인이즐겨듣고부르는명곡으로꼽힌다. 먼저 1960년대중반대중적인인기를구가한샌드파이퍼즈 (The Sandpipers) 의노래를소개한다. 웹진트랜스라틴 http://translatin.snu.ac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 (SNUILAS)
98 트랜스라틴 6 호 (2009 년 3 월 ) Yo soy un hombre sincero 나는진실한사람 De donde crece la palma 야자수무성한고장출신 Y antes de morirme quiero 죽기전에 Echar mis versos del alma 이가슴에맺힌시를노래하리라 Mi verso es de un verde claro 내시는화창한초록색 Y de un carmín encendido 내시는불타는선홍색 Mi verso es un ciervo herido 내시는상처입은사슴 Que busca en el monte amparo 산속보금자리를찾는 Con los pobres de la tierra 이땅의가난한사람들과더불어 Quiero yo mi suerte echar 이한몸바치리라 El arroyo de la sierra 골짜기에서흐르는시냇물이 me complace maś que el mar 나는바다보다더좋아
관타나메라와관타나모 99 호세마르티 곡도곡이지만노랫말역시그에못지않게아름답다. 문장도단순하고의미도명쾌해서, 한번듣기만해도절로흙냄새나는고향의정취에물들게된다. 장독대에놓인질그릇처럼소박한데, 가만히음미해보면강고한의지가느껴진다. 마치저문강에삽을씻어어깨에메고돌아오는농부의카랑카랑한눈빛과굳건한발걸음소리가들리는듯하다. 겉으로드러난말은한없이소박하고단순하고부드러우나속살에는굳은심지가박혀있다. 이런외유내강의울림을껴안은글을가리켜우리는시 ( 詩 ) 라고부른다. 실제로관타나메라의노랫말은호세마르티 (Jose Martí) 의시이다. 호세마르티는 1853년쿠바의아바나 (Habana) 에서태어났다. 당시쿠바는스페인의식민지였기때문에젊은시절부터독립운동에관여하다가식민당국에체포되어 6년형을선고받았다. 출옥한뒤에는유럽과미국을전전하며기자로, 문필가로, 혁명가로일했다. 미국에머물때인 1882년에시집 이스마엘리요 Ismaelillo 를펴내고, 1891년에는 소박한노래 Versos sencillos 를출판했다. 앞에서소개한관타나메라의노랫말 ( 후렴제외 ) 은시집 소박한노래 에수록된여러편의시 (I, III, V) 에서한연씩따온것이다. 호세마르티의노랫말이가지는호소력은문학적아름다움이전부가아니다. 그누구도부인할수없는삶의진정성이담겨있다. 1895년 4월 11일, 마르티는 10명도안되는동지들과무장
100 트랜스라틴 6 호 (2009 년 3 월 ) 을하고바하마군도의이과나 (Iguana) 섬을출발하여관타나모부근의마리시곶 (Cabo Marisí) 에상륙했다. 그리고식민군대와싸우던중그해 5 월 19일도스리오스전투에서치명상을입고숨을거두었다. 말을행동으로, 글을실천으로옮긴것이다. 시에서썼듯이, 죽기전에노래를쏟아놓고, 조국을위해목숨을바쳤다. 이런호세마르티의시와일생을보고있으면, 영국낭만주의시인바이런이떠오른다. 두사람은넘쳐흐르는감성으로노래하고, 타국혹은 산타이피헤니아에있는호세마르티의무덤 자국의독립을위해온몸을내던졌으며, 바이런은그리스의독립지사로, 마르티는쿠바독립의아버지로추앙받는점에서너무나닮은꼴이다. 문학에서는낭만주의의특징이라고딱지를붙여버리고그냥넘어가지만, 누더기처럼변해버린일상을매섭게끊어내고숭고한대의로불타오른이런사람들의행적과시를되뇌는것만으로도우리들의가슴또한광야의찬바람을안을때처럼선연해진다. 이쯤에서호세마르티와관타나메라가무슨관계가있다고생각하는사람이있을지도모른다. 그러나결론부터얘기하면, 직접적인관계는없다.
관타나메라와관타나모 101 관타나메라 관타나메라는스페인어로쿠바의 관타나모 (Guantańamo) 지방출신여자 라는뜻이다. 후렴에등장하는과히라는 여자농부 라는뜻과아울러쿠바농촌에서부르는노래를일컫는말이다. 그렇다면 과히라관타나메라 는 관타나모지방의여자농사꾼 정도로옮길수있을것인데, 호세마르티의시에과히라나관타나메라라는단어는얼굴조차내밀지않는다. 사실, 관타나메라, 과히라관타나메라 는 1940년대쿠바의유행어였다. 당시유명한대중가수호세이토페르난데스는세에메쿠 (CMQ) 라디오에서프로그램을하나맡아진행했는데, 그이름이 관타나메라 였다. 이프로그램은여러가수들이등장해서그날그날의사건사고를노래로전달하고, 한꼭지가끝날때마다
102 트랜스라틴 6 호 (2009 년 3 월 ) 합창으로 관타나메라, 과히라관타나메라 라고외쳤다. 이프로그램이얼마나인기가있었던지, 사람들은불행하고가슴아픈소식을들었을때는 관타나메라에게들었는데 (Me canto una Guantanamera) 라고말할정도였다. 이런사정때문에사람들은관타나메라노래를만든사람이호세이토페르난데스라고쉽게믿어버린다. 그러나 쿠바음악의기원 을쓴토니에보라에의하면, 호세마르티의시에곡을붙인사람은 1940년에서 1963년까지쿠바에서살다가미국으로건너간스페인출신의작곡가훌리안오르본이다. 적어도, 호세이토페르난데스는관타나메라노래와관계가없다는것이다. 관타나모 그럼에도불구하고관타나메라는쿠바인들에게아득하게나마역사적인소명같은것을환기하고있었다. 쿠바는호세마르티가죽은지 3년뒤인 1898년독립한다. 하지만이독립은아쉽게도지난한독립투쟁의결과가아니라미국의세계패권전략에서나온부산물이었다. 1898년미국의선전포고로발발한미서전쟁 (Spanish-American War) 은불과몇달만에미국의승리로막을내리고, 승전의대가로그때까지스페인이지배하고있던쿠바,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넘겨받는다. 쿠바독립군은처음에는미군과연합하여스페인군과싸우기도했으나, 미국에의한독립이실상은신식민지상태로전락한것임을알아차리고곧바로미국에저항하기시작했다. 이렇게쿠바인의저항이거세지자미국은 1901년부터쿠바를확실히지배할일련의조치를취하는데, 그최종결과물이 1903년미국의강
관타나메라와관타나모 103 압으로조인된이른바 플랫수정안 이었다. 이조약에따르면, 미국은어느때라도쿠바에군사적으로개입할수있으며, 쿠바는미국에게 급탄시설이나해군기지건설에필요한특정지역의땅을 임대하거나매각해야만한다. 이특정지역의땅가운데하나가바로관타나모이다. 1934년미국은 선린외교 를한다면서플랫수정안을폐기하고새로운협정을체결하지만, 여전히관타나모는연간 2000달러 (1903년도기준가격 ) 에임대하기로되어있었다. 이때까지쿠바에는바티스타같은친미정권이들어섰으므로문제삼지않았던것이다. 모든사람이피부색에따른인종차별을받지않고자유롭고평등한사회실현을위해호세마르티가독립운동에생명을바쳤음에도불구하고 1959년혁명이전쿠바는주권을온전히행사할수없는반 ( 半 ) 식민지였다. 그뿐아니라, 알파치노주연의영화 대부 2편에서압축적인장면으로보여주듯이, 미국인이주색잡기를즐기는놀이터로전락했다. 이환락의전성기, 그러나진정한독립을꿈꾸는쿠바인들을철권으로억누르던탄압의절정기에 찬찬 Chan Chan 같은야릇한노래로미국관광객들에게서비스하던음악그룹이, 좋던싫던, 당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의참모습이다. 아무튼관타나모는쿠바인들에게대미종속과신식민질서의상징이었고, 호세마르티는여전히독립의상징이었다. 관타나모를환수하는그날이바로호세마르티의피맺힌염원이완전하게이루어지는날이었다. 이리하여지금껏아무런관계도없던호세마르티와관타나메라는관타나모가매개되면서대미자주독립이라는키워드로함께묶어진것이다. 1959년쿠바혁명이후, 쿠바는지속적으로관타나모반환을요구하고있으며, 미국이매년수표로지불하는임대료는지금까
104 트랜스라틴 6 호 (2009 년 3 월 ) 지한번도환금하지않았다. 미국도서명한 1969년 조약법에관한비엔나협약 에 51조에따르면, 강박이나위협에의한조약은법적으로효력을가지지못한다고명시하고있으므로관타나모에관한미국과쿠바의조약은무효이다. 미국은관타나모를불법으로점유하고있는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유엔을비롯한국제사회는미국주도의냉전논리를앞세워쿠바의정당한주장을묵과했다. 이제관타나모는국제적인관심지역으로떠올랐다. 9ㆍ11 이후미국이 테러와의전쟁 이라는명분으로아프가니스탄포로들을관타나모기지에수용하고, 인권을유린하자그동안세상사람들의뇌리에서잊혀졌던관타나모가되살아난것이다. 덩달아 1960년대초반관타나메라를미국에소개한포크송가수피트시거 (Peter Seeger) 의관타나메라도새삼주목받을징후가보인다. 가수도, 노래도다훌륭하지만, 생각하기에따라서는지난역
관타나메라와관타나모 105 사가리바이벌되는것같아왠지마뜩찮다. 사실, 관타나모문제의해결은간단하다. 2005년 7월 24일나딘고디머, 살림람라니, 노엄촘스키, 리고베르타멘추, 아돌포페레스에스키벨이발표한성명서의제목처럼 미국은관타나모에서즉시떠나야한다. 그러면모든문제가해결되며, 관타나메라도그저쿠바의민요쯤으로, 백인의멜로디와흑인의리듬이혼합된쿠바특유의음악으로편안하게들을수있고, 호세마르티의시도정지용의 향수 에비견되는쿠바의서정시로음미할수있을것이다. 박병규 : 서울대학교라틴아메리카연구소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