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사진은 1883년 개항 당시 인천항 모습. (, 인천개항 25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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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역사문화총서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2 표지 사진은 1883년 개항 당시 인천항 모습. (, 인천개항 25년사 중에서)

3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고려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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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러두기 현재 개항기의 인천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일 제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인에 의해 기술된, 당시 인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 료 또한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여기 번역과 역주를 거쳐 발간하는 (, 1892)과 開 25 年 ( 加, 1908)는 비록 일본인에 의해 간 행된 것이기는 하지만, 개항기 인천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비교 검토할 근거로서의 자료적 의미는 지닌 책들이다. 그러나 인천 발전의 주체가 인천 거주의 일본인으로 왜곡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실로 역사왜곡의 폐해 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도 진행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 시혜론( ) 의 선구적 저서임에는 틀 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인천에서 전개되었던 실상을 좀 더 명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남긴 저서를 간과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의 저서가 인천 개 항 후의 발전상을 선전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역사학자들의 고증 ( 考 )과 역주( )를 첨가하여 인천의 여러 모습을 비교 분석하였으므로 그 나름의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원자료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의역보다는 직역을 하 였고, 문장 아래에 역주를 두어 해석상의 차이나 오류를 밝히는 방향으로 서술하였다. 2004년 12월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 5

6 역자해제 1876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조일수호조규가 체결되고 그로부터 7년이 지 난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었다. 인천이 개항되자 조선시대까지 바다를 통 한 대외교역의 중심지였던 부산항에 버금가는 새로운 무역의 요충지로 인 천항이 떠오르게 되었다. 개항과 동시에 1883년 4월 13일 처음으로 상업에 종사할 목적으로 아주 적은 수의 일본인이 들어왔고, 계속하여 6월경부터 본격적인 일본인 진출이 시작되었으며, 청일전쟁을 전후하여서는 많은 일 본인들의 활동무대가 형성되었다. 1892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조선신보사에 근무하던 아오야마 고헤이 ( )라는 일본지식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개항 초기 인천의 모습을 다룬 안내서로서 개항 이후 인천에서의 초기 10년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가 서문에서도 밝힌 것처럼 일본인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최초의 서적이며, 그 러한 의미에서 일본이 얼마나 식민지 조선, 특히 인천에 각별한 관심을 가 지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저자에 관하여는 확실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 지만, 1889년부터 인천에 들어와 3년 동안 생활하면서 인천의 상황을 기록 해 두었던 것을 출판한 것이다. 인천사정 은 그러한 측면에서 1894년 청일전쟁 이전 동아시아의 개항 장 인천에 관한 자료라는 점에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전문적인 연구 조사기관은 아니지만 인천에 거주하는 거주자의 손으로 정리된 자료라는 점에서 누구보다 인천의 실상에 상세하여 개항된 인천에 10년간 거주하는 400여 호의 일본인 2,700여 명에 관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 상황이 구 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만, 저자가 전체 목차를 설정하고 있지 않으며 6 역주 인천사정

7 서술상의 방법에서도 장( )과 절( )을 구분하고 있지 않고 그가 평소 기 록하고 정리해 둔 것을 나열식으로 전개하고 있는 점은 전체 맥락을 얼른 파악하기가 조금 쉽지 않아, 읽기에 다소 불편한 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세밀하게 내용을 살펴보면, 인천의 호구와 언어 물가에서부 터 각 기관에 대한 소개 및 심지어는 그곳의 근무자까지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청일전쟁전의 인천에서의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전문안내서임에 는 틀림없다. 본 자료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남긴 조선에 관한 기록이라 일 본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나타나고 있어 사료로 이용하는 연구자들의 조심 스런 검토가 요구된다. 또 표현 자체도 일본식의 표현이 많지만 사료의 해 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원문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통해 부족한 개항기 연구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인천에 관한 자료가 되기 를 기대한다. 7

8 아오야마 고우헤이( ) 내가 이번에 동아시아 지역의 이곳저곳을 돌아볼 생각으로 인천항에 들 어가니, 작은 배를 타고 아오야마( ) 군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가 있 는 기선으로 방문하여 나의 손을 잡고 담소하며 조선의 사정을 잘 아는 사 람으로서 여관으로 나를 안내하여 주었다. 나는 그에게 인천 지역 사정을 물으니 소매에서 책 한 권을 꺼내면서 이것은 일본에 있을 때 이곳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적어 놓은 것과 이곳에 와서 본 것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이 책을 지금 발간하여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고 하며 한 번 읽어보기를 청 하였다. 그것을 읽어보니 인천의 연혁, 인정, 풍속에서 상품 무역 상황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내가 아주 쉽게 인천의 실상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책의 덕택일 것이다. 인천은 경성( 京 ) 1) 의문호 로 조선 연해안 일대의 요충지이다. 1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잘 것이 없 었던 지역이 크게 변하고 개항장 2) 이 된 것이다. 흰 벽과 푸른 기와가 어우 러졌고, 조선내외의 화물이 부두에 쌓여 범선의 출입이 매우 잦은 것이 우 연만은 아닐 것이다. 조선은 일본과 바다를 사이에 두어 선박의 출입이 편 리한 것을 생각하면, 무역량의 발달이 계속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 런데 일본에서는 아직 바다를 건너오는 사람들이 적어 인천 상권을 중국인 1) 京 : 서울. 이 책이 간행될 시점의 명칭은 한성( )이다. 일제는 대한제국 강탈 후인 1910년 10월 1일 총독부령( ) 제2호에 의거하여 한성부( )를 개칭, 경성부( 京 )라고 하 였다. 8 역주 인천사정

9 손에 빼앗겨 버린 것은 왜일까? 이는 내가 인천의 토지, 기후, 풍속, 상업 등에 관해 알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까닭이니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널리 읽히면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 조선과의 무역에도 한층 영향을 마칠 것으로 생각된다. 나처럼 홀로 외롭게 유람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견문을 넓고자 하는 사람도 유익할 것이다. 서문에 이와 같이 느낀 바를 적으며 더불어 요즘에 지은 시 한 수를 덧붙이 고자 한다. 오가는 자취는 갈매기만 대답할 뿐 지난 10년간 세상사도 많이 변했구나! 구름 걷힌 월미도가 아련히 푸른 모습을 드러내고 조수가 빠진 강화에는 흰 비단 물결이 흐르는데 뱃 머리 용의 깃발이 힘차게 큰 배에 휘날리네 유리창과 흰벽으로 줄지은 누각에 일찍이 천자의 사신이 건너왔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사방에 쓸쓸한 가을 갈대만이 가득하구나! 鷗 年 幾 開 江 旗 메이지 25년(1892) 10월 3) 인천항의 일본인거류지로 산과 물이 푸르른 수월루( )에서 쓰다. 2) 개항장( 開 )은 1876년 조일수호조규( 規 :일명 병자수호조약 혹은 강화도조약이 라 한다. 이하 강화도조약으로 지칭한다) 제4관( 款 )에 의거, 조선정부가 일본정부에 개방한 지역 을 말한다. 1876년 부산을 필두로 1880년 원산이 개강되고, 일본이 처음부터 요구한 인천은 조선 과 일본의 3차에 걸친 회담 끝에 1883년 1월 1일 개항되었다. 일반적으로 개항장이라 함은 이 세 지역을 말한다. 특히 인천지역은 제물포( )가 주 항구로 개항되었는데, 국제적으로 제물포 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82년 조영수호통상조규( 規 ) 때였다. 이후 1910 년 경술국치( 庚 國 ) 까지 제물포는 인천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3) 연도의 표시는 메이지 25년으로 되어 있으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서기로 바꾸고 괄호를 병기하 였다.(이하 동일함) 9

10 내가 굳건한 뜻을 가지고 산해( ) 800리나 떨어진 고려( 高 ) 4) 에 들 어 온 지도 3년이나 되었다. 그간 고향의 부모님과 형제 그리고 친구들이 항상 내가 평안하게 있는 것을 바라며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조선 상황과 풍경이 어떠한지 말해주었으면 하였지만 내가 너무 바쁜 업무에 종사하다 보니 여태 그 뜻을 따르지 못하여 늘 유감스럽게 생각하곤 하였다. 올 봄부 터 하던 글 쓰는 일을 잠시 쉴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나는 한가한 시간을 빌 어 주위 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십여 부를 인쇄하여 이를 고향 가족 친 구에게 나누어 주어 기뻐하는 소리를 들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였다. 이후 틈이 날 때마다 붓을 들어 마음 가는 대로 썼고, 쓴 것을 묶어 기고하여 4개 월이 지나니 책으로 완성되어 인천사정 이라 제목을 붙였다. 우연히 온 손 님에게 염치 불구하고 원고 읽어 보길 청하니 다 살펴본 후 자네 저서는 내용이 자세하고 글 솜씨도 좋으며 조선 한 항구의 상황과 풍경을 그대로 그려내어 거의 실제에 가까우니 20세 소년인 자네 또래의 글이라 믿기 어 려울 것일세. 또한 대부분이 보기 힘든 글이니 어찌 이것을 겨우 가족과 친 구 십여 명에게만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내 주위 사정을 가족과 친구에게 알리려 하는 것은 조선에 있는 사람도 모두 같은 마음일 터일 것이다. 고향 의 가족 친구가 조선에 있는 가족 친구와 친우 주위의 사정을 알고자 하는 것은 단지 자네의 가족 친구만이 아닐 것일세. 그렇다고 하면 나아가 이 책 4) 본문에서 지은이는 고려, 조선, 혹은 한국으로 실제의 조선에 대한 명칭을 혼용하고 있는데 각 부 분에는 지은이가 함의하는 바의 조선의 이미지가 담겨져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그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0 역주 인천사정

11 을 정식으로 출판하여 많은 사람들과 그 편리함을 함께 하고 또 조선에서 처음으로 일본 서적 저술자가 되는 명예를 얻지 않을 것인가 하고 제의하 였다. 그 언변의 절절함과 그 말이 지나친 과찬임을 알고는 있으나 나에게 베푸는손님의호의를저버릴수없어, 이보잘것없는책한권을많은사 람들 앞에 내 놓게 되니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이미 앞에서 밝힌 바와 같으니, 18년 전부터 연약한 과부 몸으로 고 생하시며 5형제들을 키워주신 나의 어머니, 그리고 수십년동안고락을 함께한 내 형제들 및 나와 친분 있는 친구들이 내 주위의 사정을 다소 알 수 있다면 나의 바람은 충족되는 것이며, 또한 많은 이들의 고귀한 뜻에 누가 됨이 없음을 바랄 따름이다. 메이지 25년(1892, 조선 개국 501년 임진년) 여름, 윤6월 25일 조선 제물포 객사에서 客 11

12 저자의 일러두기 1. 이 책은 자서( )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당초 저자가 가족, 친구들에게 만 나누어 주려고 쓴 것인 까닭에 글 속에서 자주 저서로서의 면모를 잃 은 곳이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양해하여 주길 바란다. 2. 이 책은 올 봄 5월부터 새롭게 편집을 할 수 있도록 틈이 날 때마다 쓰고 이것이 완성되면 인쇄하여 덧붙인 것이다. 처음에 쓴 원고를 다시 고치지 않으면 다 완성된 후에는 인쇄된 부분과 이미 완전히 다른 사정도 많고, 또 문장에서도 가끔 잘못된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고칠 수 없어 모두 간행하게 되었으니, 책 중에 잘못된 곳과 지금의 사실과 상 이한 것이 있는 점 등은 내년 본서의 재판 때에 정정될 것을 기대한다. 3. 이 책을 쓰는 데는 류모토( ) 군이 여러 조사 작업을 옆에서 도 와주었고, 그 외의 선배, 지인들의 조언을 많이 받았으니, 이곳에나마 기록하여 그 호의에 감사드린다. 4. 책의 편집을 담당하였던 친구들과 부록인 인천 부근의 조선 시내 광경 및 조선의 형세는 생략을 권하는 친구도 있었고, 또 내가 곧 쓰려고 하는 조선정세( 國 ), 조선풍속지( ) 등과 중복을 우려하 여 생략하였다. 때문에 책이 인천사정 이라 하여도 단순히 인천항에서 의 일본 쪽 상황을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지만, 인천항 상황은 이 한 권으 로 족하다 할 만하다. 12 역주 인천사정

13 5. 일본 밖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 완전한 일본 서적의 간행은 이 책이 처음인 까닭에 인쇄 제본 등은 가장 좋은 것으로 하려하였으나 모 든 일이 해외에서의 작업이라 예상처럼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인천활판소 ( ) 직원들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주어 자유롭지 못한 불편한 상황 속에서 다소 만족할만한 책으로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이 해외에서 발행한 최초의 일본 서적인 인천사정( ) 의 간행에서 겪은 고심은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6. 지금 인천항의 발전은 하루, 한 달이 다르다. 올 해의 풍경과 상황은 내 년이 되면 또 다시 시대에 뒤처진 것이 되는 상황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는 가능하다면 적어도 매년 한 차례 개정 증보하여 신인천사정( ) 의 발행을 기원한다. 메이지 25년(1892) 8월 25일 조선 인천 조선신보사에서 저자 13

14 차 례 일러두기 3 역자해제 저자의 일러두기 10 인천사정 14 호수와 인구 16 물가 18 언어 19 풍속 19 기후 19 청국거류지 20 일본영사관 20 노세 부영사( 能 ) 21 인천우편국( 局 ) 24 일본경찰서 25 순사( ) 28 총대( )사무소 28 인천해관( 關 ) 28 조선해관규칙 33 제일국립은행지점( 國 ) 34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 36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39 제58국립은행 인천지점 39 일한무역상사 지점 40 인천일본거류지 의회 40 인천상법회의소 41 인천각국거류지의회 42 무역상조합 42

15 차 례 잡화상조합 44 인천항무역상 일람표 45 인천잡화상일람표 46 하역 도매업 일람표 47 선박운수업일람표 47 일본, 청국, 조선인의 거래형태 48 인천항 상관습 49 인천영어야학교 52 인천공립소학교 52 불교 54 기독교 54 병원 55 인천활자소 55 조선신보 56 제물구락부( 俱 ) 59 인천정미소 60 여관과 술집 60 인천공원 61 월미도( ) 63 소월미도( ) 63 한강의 낙조( 江 ) 63 강화도( 江 ) 64 영종도( ) 64 정족산성( ) 65 우편 69 전신( ) 70 한전( )시세 70 물가 72 개항기 인천연표 74

16 인천사정 조선국의 서해안 경기도 황해를 사이에 두고 바로 청나라의 산둥성( )으로 난 만( ) 5) 이 제물포이다. 만의 서북 끝 쪽 한강의 큰 줄 기가 흘러나오는 곳에 좋은 항구가 있으니, 이곳이 북위 37도 28분에서 동 경 122도 37분 사이에 걸쳐 있는 인천항이다. 인천항은 배들이 정박하기 좋은 곳으로 조선 세 항구 6) 중 가장 좋은 위치이다. 메이지 15년(1882) 4월 일본 정부가 인천항을 열 것을 조정에 요청하였 는데, 다행히 동의가 받아들여져 7) 그해 7월 하순 공사관원 쓰기무라( ) 등을 파견하여 이곳의 지형을 살피게 하였다. 소위 임오군란( 軍 )이 8) 일어나 지연되었기는 하였지만 1883년 1월에 인천이 열렸다. 당시 의 인천항은 겨우 인가 수 십 호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어촌으로 개항장의 면모는 조금도 갖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곧 일본인이 2,200여 명으로 늘어 번영하는 도시의 모습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 5) 만( )은 바다로 열려 있으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육지 안으로 들어가 있는 특정 지역을 말한다. 이 를테면 경기만 영일만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제물포를 만이라 한 것은 지금의 경기만( 京 畿 )을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현재 국제법상에서의 만은 한 나라의 영토에 속한 해안으로, 만 입구의 폭이 비교적 좁고 바다가 육지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부분 으로 정의하고 있다. 6)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의거 개항된 부산 원산 인천을 말한다. 7)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일본이 조선정부에 인천지역의 개항을 처음 요구한 것은, 1876 년 부산 개항이후 추가 개항장 설정을 위해 협상을 벌인 1879년 4월부터였다. 일본은 1878년 8 월부터 서해안을 본격적으로 측량하였고, 또한 용이한 한성( : 서울)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집 요하게 인천지역의 개항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조선과 일본 양측은 3차에 걸친 개항 교섭 결과 1881년 2월 1일을 기점으로 20개월 이후에 인천지역을 개항한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16 역주 인천사정

17 가! 만약 10여 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조선인을 다시 이곳에 데려와 보게 하면 매우 놀라워 할 것이다. 개항 당시 서울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오는 사람은 매 우 드물었고, 겨우 부산쪽으로 들어오는 소수의 쓰시마( ), 나가사키 ( 崎 ) 사람들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항 당시가 돈벌이가 크게 된 다는 이야기를 들은 자가 계속 들어와서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성황을 보기 에 이르렀으니 어찌 상전벽해( )에 비할 바이겠는가? 인천항은 일본거류지, 각국거류지, 중국거류지 9) 의 3지역으로 나뉜다. 일 본거류지는 10) 인천항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데 평탄한 지형에 운수가 편리 한 아주 좋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시가는 본정( ; 현 중앙동), 이정 ( ; 현 관동일대), 산수통( ; 현 송학동), 해안통( ; 현 해안 동)의 4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1) 본정( )은 실제 인천에서 가장 번화 하여 도쿄( 京 )의 긴자( )와 같은 거리다. 중국거류지에서 각국거류지 에 이르는 일직선이 일본 거류지를 가로지르고 있는데 그 폭은 조금 넓고 평탄하며 양쪽으로 나무들이 무성하였다. 인가( 家 )는 상가가 많고 웅장한 가옥도 많아 일본의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개항은 부산에 시간적으로 많이 8) 인천지역의 개항이 지연된 이유 중 하나는 1882년 6월 일어난 임오군란( 軍 )이었다. 표면 적으로 임오군란은 군료( 軍 ) 지급과 관련하여 벌어진 이른바 일본식 신식군대(이른바 별기군) 에 대한 정규군인 무위영( )과 장어영( ) 소속 군인들의 불만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 렇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개화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집권 개화파에 대한 대원군을 중심으 로 형성된 보수파의 반격이었다. 임오군란의 일차적 결과는 대원군을 중심으로 결집한 보수파의 집권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조선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형성하던 청( )과 일본의 정치 군사적 개입으로 보수파 정권은 붕괴되고, 조선 정계( 界 )는 오히려 친청( )과 친일( ) 세력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한 조선은 일본과 임오군란으로 치외법권적 손실을 입은 일본에 대한 공식 사과와 변상을 규정한 제물포조약 (1882년 8월)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조 선에 대해 정치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9) 조선 정부는 청( )과 1884년 4월 2일 인천구화상지계장정( 口 界 ) 을 체결하 여 지계( 界 )를 획정하였다. 청 조계 지역은 중구 선린동 일대 약 5,000평 정도이며, 이른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한때 인천의 상권을 주도한 적도 있었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10) 본문에서 거류지( 居 ) 라 함은 일본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고, 일반적으로는 조계( 界 ) 라 고 쓴다. 인천개항이후 조선은 일본과 1883년 9월 30일 조선국인천구조계약서( 國 口 界 ) 를 체결하여 지계( 界 )를 획정하였다. 처음 인천지역이 개항되었을 때, 일본의 조계지역은 지금의 중구 관동과 중앙동 일대 7,000평이었다. 17

18 뒤졌다고는 하더라도 시가의 정리와 가옥의 미려함은 부산보다 수려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각국거류지 12) 는 바로 일본거류지와 이어졌다. 이름은 각국의 거류지라고 해도 겨우 영국인 7명, 독일인 13명, 미국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 인 1명을 제하고는 모두 일본인이다. 때문에 비록 여러 개의 마을로 구성되 었지만, 거리는 일본거류지와 연결되어 있고 조금도 일본거류지와 다를 바 가 없다. 일반적으로 일본거류지라고 일컫는 것은 역시 각국거류지를 아울 러 칭하는 것이다. 호수와 인구 호수는 올해(1892) 9월 말 조사에 따르면, 일본거류지와 각국거류지는 모두 406호로 인구는 2,649명(남자:1,783 여자:866)이었다. 그리고 다 시 이를 일본 부현( )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지 역 남자 여자 도쿄( 京 ) 22 8 교토( 京 ) 11 1 오사카( ) 지 역 남자 여자 카나가와( 奈 ) 2 1 효고( 庫 ) 나가사키( 崎 ) ) 조계 획정 이후 인천으로 건너오는 일본인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일본 정부는 조선국인천구조 계약서( 國 口 界 ) 제1조에 의거하여 조계 확장을 시도하였다. 이 때 약 3,800 평이 늘어났지만, 계속해서 오는 일본인의 거주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일본정부는 일본조계 앞의 해수면을 매립하여 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지만,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 의 규정을 들어 미국과 영국 등이 반대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조계에 자리를 잡지 못한 일본인들은 각국조계와 조선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지속적으로 침투하게 되었다. 본 문에서 말하는 본정( )은 지금 옛 일본계 은행 건물들이 남아있는 중앙동 일대를 말한다. 12) 각국조계( 各 國 界 )는 1884년 11월에 체결된 조영수호통상조약( )에 의거, 조선과 미국 영국 청 일 5개국이 인천제물포각국조계장정( 各 國 界 ) 을 체결함으로써 획정되었다(나중에 독일 러시아 프랑스도 동참하였다). 각국 조계 지역은 일본 조계 서쪽을 따라 일본과 청 거류지의 배후 산록 일대에 걸쳐 에워싸고 있는 형국으로 면적은 140,000평이 넘었다. 18 역주 인천사정

19 지 역 남자 여자 니가타( ) 2 2 치바( ) 4 1 아바라키( ) 2 3 돗도리( ) 4 1 미에( ) 2 0 아이치( ) 5 2 시즈오카( 岡 ) 1 0 사가( ) 2 2 기후( 岐 ) 4 4 이바라키( 宮 ) 1 1 아오모리( ) 0 1 아키타( ) 2 0 이시가와( ) 7 1 시마네( 根 ) 6 0 오카야마( 岡 ) 14 2 총계( 計 ) 지 역 남자 여자 히로시마( 廣 ) 야마구치( 口 ) 와카야마( 歌 ) 6 3 토구시마( ) 고치( 高 ) 1 0 에히메( ) 후쿠오카( 岡 ) 오이타( ) 구마모토( ) 가고시마( ) 27 4 후쿠이( ) 5 5 사가( ) 26 6 카가와( )` 4 1 홋카이도( ) 명( 2643명으로 수치상 오류) 또한 개항 이래의 호수 및 인구의 증감을 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13) 13) 참고로 인천개항 100년사 에 제시된 호수와 인구수를 위 표의 연도와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연 도 호수 인구수 연 도 호수 인구수 1883년(고종20) 년(고종25) 156 1, 년(고종21) 년(고종26) 167 1, 년(고종22) 년(고종27) 255 1, 년(고종23) 년(고종28) 338 2, 년(고종24) 년(고종29) 388 2,540 13) 인천부사 에 의하면 일본인이 거주를 목적으로 인천에 들어온 시점은 1883년 4월 13일이었다 고 한다. 이들은 부산에 거주하다가 인천으로 들어왔는데, 상인과 직공( 工 )인부 15 16명 쯤 이었고, 나중 청국의 지계로 설정되는 선린동 구릉지대에 모여 살았다. 이후 인천으로 들어오는 일본인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였다. 그리고 1883년 9월 30일 인천구조계약서( 口 界 ) 가 체결되어 일본인의 전관조계가 설정되었고, 10월 23일에는 제1차 지소경대( 競 : 조계 안의 땅 공개입찰)가 시행되었다. 그리하여 12월 말쯤에는 일본인의 수가 명에 달하였다. 19

20 연 도 호수 인구 메이지 16년(1883) 메이지 17년(1884) 메이지 18년(1885) 메이지 19년(1886) 메이지 20년(1887) 연 도 호수 인구 메이지 21년(1888) 메이지 22년(1889) 메이지 23년(1890) 메이지 24년(1891) 이를 직업에 따라 분류해 보면 관리( 官 ), 세관원( 關 ), 은행원, 회 사원, 무역상, 중개인, 운수업, 하역업, 여관, 요리점, 목욕탕, 음식점, 양 주집, 일본주점, 약국, 의사, 사진사, 이발업, 재봉업, 활판인쇄업, 세탁소, 양조업, 대장간, 오락업, 과자점, 화물창고업, 고용직, 잡상, 잡업, 목수, 석공, 농업 등의 35여개에 이른다. 이들 각 업종 중 많은 직업은 3백 여 명 에 달하는 것도 있다. 14) 물가 물가는 필요 운임과 해관세에 의한 정규 요금 이외 대부분이 일본 물가의 3배 정도가 된다. 그 중 가격이 일본과 같은 것은 우편요금과 배 삯뿐이다. 14) 인천부사 에 의하면 1883년 9월 30일 인천구조계약서( 口 界 ) 가 체결되어 일본 인의 전관조계가 설정되었고, 10월 23일에는 제1차 지소경대( 競 : 조계 안의 땅 공개입 찰)가 시행되었다. 그리하여 12월 말쯤에는 일본인의 수가 명에 달하였다. 이 중 21명 쯤의 상인이 인천에서 영업을 시작하였다. 그 직종을 보면 무역업에 3명, 회조업( : 해운 운송업)에 6명, 미곡상에 2명, 정미업( )에 2명, 여관업에 2명 등이었으며, 주류 잡화 선구( 具 ) 재목 요리 대금업( : 금융)에 각 1명이 종사하였다고 한다. 20 역주 인천사정

21 언어 언어는 거류민들이 나가사키( 崎 )사람과 쓰시마( )사람들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쪽 방언은 어디서든지 들린다. 그 외에 인천어라 는 것이 있는데 이는 도쿄( 京 ), 오사카( ), 쓰시마( ) 등 여러 지 방 언어가 서로 섞인 것이다. 풍속 인천항에 처음 온 사람이 제일 먼저 놀라는 것은 매우 웅장한 반양반일식 ( )의 가옥이다. 두 번째로 놀라는 것은 의복의 화려함이다. 세 번째 로 놀라는 것은 음식의 사치스러움이다. 수입이 20원인 사람이 25원에 달하 는 생활을 하고, 수입이 100원인 사람은 150원에 이르는 생활을 하는 것에 서 일상적인 풍속에 매우 사치스러움을 잘알수있다. 그러나요즘들어이 러한 사치스런 풍조가 갑작스레 변하여 순박하고 근검한 풍조로 가는 경향 이 있으니 인천항으로서는 매우 좋은 일이다. 기후 날씨는 일본 홋카이도( )의 네무로( 根 )와 별 차이가 없다. 단지 여름에 불타는 듯한 더위가 30일 동안 계속된다. 겨울에도 한 달 동안은 매 서운 추위가 있어 견디기 힘들어 한겨울에는 계란과 간장 등도 얼어버린다. 평상시의 온도는 겨울은 영하 9도에 이르고 여름은 38도 이상에 달하는 때 도있다. 21

22 청국거류지 청국거류지는 일본거류지 서쪽 언덕에 벼랑 쪽을 바라보고 있다. 15) 총41 가구에 인구는 521명(여자 23명)직업 별로는 관리 27명, 상인 100명, 노동 자 371명, 농민 22명이다. 가옥은 대부분 서양식을 모방해 매우 볼만하다. 거류민의 풍속은 소박하며 분수를 지키고 있다. 그러한 청국인의 풍속과 일 본상인과를 비교하여 보면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으니, 요즘 들어 청나 라 사람들의 무역이 날로 커가는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16) 관청은 단지 이사부( ) 17) 와 전보국( 局 )의 두 개뿐으로 이사는 홍쯔빈( ), 전보국장은 페이윈칭( 卿 )이다. 그 외 이사부 서기 5명, 전보국 서 기 1명, 발보( ) 3명, 잡역( ) 16명이 있다. 청나라 상인들 중 덕흥호( ), 이태호( ), 동순태( ), 의생호( ) 등은 중요 상인들이다. 일본영사관 일본거류지 중앙인 산수가( 街 )의 한쪽 편 양식건물이 일본영사관이 다. 18) 일장기가 아주 높게 휘날리는 좋은 위치에서 장엄하고 수려하게 인천 15) 일본인 거류지와 청국인 거류지는 지금 인천 중구청 위쪽으로 길게 나있는 계단( 孔 이 있는) 을 경계로 하였다. 청국은 1883년 말쯤에 이내영( 乃 )이 영사업무를 관장하기 시작하였는 데, 이때부터 청국인들이 공식적으로 인천으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조선과 청국이 1884년 4월 2일 인천구화상지계장정( 口 界 ) 을 체결한 후에는 본격적인 청국 인의 이주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884년에는 청국인 5명이 옛 해관 건물(중구 항동 1가에 위 치) 뒤쪽에 거주하면서 식료품 잡화류 해산물 등의 수출과 수입에 종사하고 있었고, 외국선박 입항 때는 식료품과 청수( ) 등을 공급하기도 하였다. 16) 일본에 비해 뒤늦게 영사관을 개설하고 조계설정도 늦은 청국이 인천 상권에서 일본인에 우위를 보인 것은 1882년 10월 조선과 맺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이큰역 할을 하였다. 17) 일본의 영사관에 해당하는 청국의 관청이다. 22 역주 인천사정

23 항을 삼킬 듯이 바라보고 있다. 메이지 15년(1882) 봄에 처음 영사를 파견 한 이후 금년까지 파견된 영사의 교체는 다음 표와 같다. 기 간 직 위 성 명 출신지 메이지 15년(1882) 봄~ 공사관서기관( 公 館 곤도 미에현 메이지 16년(1883) 봄 記 官 )겸 영사( ) ( 近 ) ( ) 메이지 16년(1883) 봄~ 쓰기무라 아오모리현 부영사( ) 메이지 16년(1883) 여름 ( ) ( ) 메이지 16년(1883) 여름~ 고바야시 도쿄 영사( ) 메이지 18년(1885) 여름 ( ) ( 京 ) 메이지 18년(1885) 여름~ 영사( )대리 히사미즈 아오모리현 메이지 18년(1885) 겨울 서기생 ( 久 ) ( ) 메이지 18년(1885) 겨울~ 스즈키 미에현 영사( ) 메이지 21년(1888) 봄 ( ) ( ) 메이지 21년(1888) 봄~ 하야시 후쿠오카현 영사( ) 메이지 25년(1892) 봄 ( 權 ) ( 岡 ) 메이지 25년(1892) 봄~ 부영사( ) 노세 비쭈 ( 能 ) ( ) 노세 부영사( 能 ) 노세( 能 ) 부영사관은 안정 4년( 4년, 1857) 5월 비쭈 아시모리 ( ) 19) 영내의 향사 20) 인 노세다이스케( 能 )의 4남으로 도쿄 혼고 18) 1876년 조선 개항 이후 최초로 인천에 영사관을 개설한 나라는 일본이다. 1882년 4월 쯤, 일본 은 지금의 중앙동 1가에 있던 옛 조달청 인천사무소 자리에 임시영사관을 개설하고 영사업무를 개시하였다. 이후 1883년 11월에는 지금 중구청 자리에 2층으로 된 목조 양식건물을 완공하여 정식으로 영사관을 개설하였다. 이 영사관내에는 부속 경찰서와 감옥을 설치하여 독립된 경찰업 무를 관장하였다. 1906년 2월 일본은 영사관을 이사청으로 개편하였다가, 1910년 조선 강탈이 후에는 인천부청( )으로 확대하였다. 1883년의 목조건물은 1932년 철거되었고 같은 자 리에 새롭게 석조건물을 세웠는데, 지금까지도 중구청 건물로 이용하고 있다. 19) 현 오카야마현( 岡 )서부의 옛 지명이 비쭈였다. 에도시대에 이 지역은 작은 번( )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폐번지현( )의 일환으로 메이지 8년인 1875년에 오카야마현으로 되 었다. 아시모리는 지금의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岡 岡 )이다. 20) 에도시대 농촌에 거주하던 무사 혹은 무사의 대우를 받던 농촌의 유력자. 23

24 유미마찌( 江 弓 )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재산이 없이 가난하여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자 그의 조부인 사쿠스케( )가 오사카로 나갔다. 사쿠스케는 당시의 서예가 오하시( 橋 )에게 가서 수년간 수 업을 마친 후 비로소 일가를 이루게 되어 시게다카( )라 불리며 제자 수 십 명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그 일은 첫째 아들인 타이스케( )가 물 려받고, 모두 도쿄로 가서 서예를 가르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의 두 아 들은 모두 스승에게 나아가 문무를 학습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할 수는 없었다. 그는 부친으로부터 한학의 기초를 배운 것 이외에 홀로 배우 고 연구하여 배움에서는 늘 스승이 없이 지내었다. 메이지유신 21) 때에 부친과 형은 동분서주하였고, 그도 혼란스러운 가운 데 몇 년을 보냈지만, 메이지 5년(1872) 외무성에 외국어 학교( 校 ) 가 설치되어 5월에 영문학과 학생이 되었다. 다음 해인 메이지 6년(1873) 여름에 그는 다녔던 어학교가 문부성에 합병될 때 발탁되어, 외무성 번역 견습을 맡게 되었다. 이후 그는 외무성 공법국( 公 局 ) 소속으로 2년 동안 수학할 수 있었다. 메이지 8년(1875) 3월에는 외무성 15등급으로서 영국 측량함 실비아호의 탑승을 위해 외국에 출사( )하였다. 영국함대에 2년 간 머문 후 그는 메이지 10년(1877)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사관 부속 서 기 1등 견습에 파견되어 인천항과 그 밖의 지방에서 수학 중이던 메이지 12 년(1879) 12월에는 3등 서기생으로 임명받았다. 그리고 다시 메이지 14년 21) 1868년 일본의 개혁세력에 의해 주도된 이른바 일본만들기-국민국가 만들기 의 출발점이 되 는 사건으로, 이전 전통시대의 일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가 형태가 시작된 계기이다. 1867년 왕정이 복고된 뒤 천황은 민중과 호족의 지지를 얻기 위하여 막부( : 바쿠후) 체제에 비해 혁 신적인 개혁을 실시하였다. 통일국가의 건설, 중앙정부의 강화, 구미문화( 歐 ) 수용을 통 한 부국강병을 목적으로 학제( )를 발포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국민의 의무교육제도를 제정 하고, 국민개병제( 國 皆 : 국민징병제)를 실시하여 무사( )의 특권을 폐지하였으며, 농 지소유권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대개혁은 구미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를 모방하여 제정된 것으로 서 법령의 제도 내용 등의 형식면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개 혁조치들은 한동안 보수세력에 의해 저항받기도 하였으나 189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추 진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관료기구가 정비되어 대내적으로는 군국주의가 강화되고 대외적으로 제국주의가 실현되는 근본이 되었다. 24 역주 인천사정

25 (1881) 4월 귀국 명령을 받았다. 다시 외무성 소속으로 옮겨 회계국 근무를 하게 되었으나, 불과 반 년 만에 카나가와( 奈 )현령인 오키( 固 )에 게 발탁되어 카나가와현 소속으로 옮겨 외무과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이노 우에( ) 외무경( 卿 )의 조약개정론이 크게 일어났을 때, 오키 현령 은 특별히 그를 발탁하여 카나가와현 거류지 경찰 서장으로 삼아 경찰 사무 를 위임하였다. 메이지 19년(1886) 10월에는 다시 외무성으로 복귀하여 영 사관 서기생에 임명되어 부산에서 근무하였다. 2년 후인 메이지 21년(1888) 12월 청나라 치부( ) 22) 영사관으로 전근 되었다. 그는 전임 하야시( ) 영사를 대신하여 영사대리가 되어 3년 동안 청국에 머물며, 일본국의 상권이 해가 갈수록 청국 상인에 의해 독점 당해 상당량의 해산물 수입도 모두 장악되고 있는 것을 개탄하며 백방으로 이를 회복하고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가 외무성에 보고한 상황 의 정밀함과 확실함 그리고 민첩함은 재외 각 항의 일본 영사를 뛰어넘을 정도였음을 가히 알 수 있다. 메이지 25년(1892) 풍부한 경험과 심오한 학 식으로 거류민의 복리를 강구하였으니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인 천항 장래의 일본 무역 진보는 실로 우리 노세 영사의 경영에서 온 것임이 틀림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노세 부인의 이름은 킨고( 錦 )로 도쿄시회 의장( 京 )이며, 원로원부의장( )으로 종3위( 3 ), 공훈( 功 ) 서열 2등인 하시모토( 橋 )씨의 장녀이다. 올해 25세로 자태가 온아하며 말수도 적 고, 재능과 지식이 풍부하며 정숙하다. 부인은 가법을 지켜 자못 엄격하면 서도 근검절약을 하여 가사일에서 봉재에 이르기까지 몸소 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니 부친의 훈도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슬하에 딸이 둘 있다. 장녀는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고라이코( 高 )라 하고, 둘째는 기요코( )라 하는데 치부( )에서 태어났으니 각각 그 이름은 출생국에서 따서 기념으로 붙였다고 한다. 22) 지금의 산둥성 이엔타이( ). 25

26 노세영사의 아버지 타이스케( )와 어머니 이찌가와( )는 모두 칠 순이 지났지만 지금도 건강하다. 영사에게는 두 형이 있다. 큰 형 모토아키 ( 基 )는 메이지유신 이래로 공작 산죠가( 家 )를 섬기며 가업을 도왔 다. 둘째 사카에( )는 미국의 영문학 박사로 문부서기관( 記 官 ), 고 등여학교( 高 校 )의 간사를 지낸 교육학 저술가로 알려져 있다. 서기생( 記 ) 오오이 ( 敬, 니카타 출신)와 다카오 ( 高 謙, 쓰시마출신), 시오가와 (, 도쿄출신) 등이 있다. 인천우편국( 局 ) 메이지 16년(1883) 11월부터 일본영사관의 일부로 우편국을 시작하여, 메이지 23년(1890)에야 독립하여 새롭게 2등급이 되어 인천우편국으로 불 리게 되었다. 23) 작년(메이지 24년, 1891)에 다시 1등급으로 되었다. 지금은 영사관 관저를 고쳐 우편국 사무실로 쓰고 있다. 건물은 크지 않지만 우편 업무 처리의 완벽함은 일본의 많은 대도시 우편국에 뒤지지 않는다. 우편 23) 1883년 인천 개항이후 각국은 인천에 영사관을 개설하였다. 1882년 일본을 필두로 1884년 영 국, 청국, 러시아가 각각 영사관을 개설하였는데, 이 중 유일하게 영사관내에 우편시설을 설치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 영사관에 공식적으로 우편국이 설치된 것은 1884년이다. 하지만 일본은 개항이전인 1882년에 이미 인천주재영사에게 우편사무를 관장케 하였다. 개항 이후 인천에 들 어오는 일본인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1884년 4월 영사관원 히사미즈( 久 )를 우편국장으 로 임명하여 본격적으로 우편업무를 분장시켰다. 이후 1888년에는 서울 일본 공사관에 출장소 를 설치하여 서울 거주 일본인의 우편사무도 관장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조선은 우편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서울과 인천 거주 외국인들도 인천의 일본영사관 우편 국의 편의를 입었다고 한다. 한편 조선에서 근대적인 우편제도가 도입된 것은 1884년이었다. 이 때 조선은 우정국을 설치하여 신식우편사업을 추진하였으나, 그 해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무산되 었다. 이후 1895년 이른바 갑오-을미개혁 의 일환으로 농공상부( 農 工 )에 통신국을 설치 하고 전국 각 주요 지역에 우체사( )를 설치하였다. 인천에도이해8월경동에우체사가 개설되었고 1898년에는 내동으로 이전되었다. 26 역주 인천사정

27 국장인 요시다 ( 吉 )는 오카야마( 岡 )사람으로 이전에 경시청에 근 무하다가 메이지 24년(1891)년 5월에 국장으로 인천우편국에 새로 부임하 였다. 그 후 그는 제반 우편 업무의 개량에 힘을 쏟아 재류민의 편익을 크게 증 가시켰다. 그리고 서기 하마노(, 도쿄출신)를 비롯하여, 서기 후카오[, 아이쯔( )출신], 직원 다모리( ) 등이 모두 성심껏 우편사무에 종사하여 점차 업무가 정비되고 날로 우편업무가 증대 하여, 더욱 면목을 일신하니 외국인들도 항상 업무가 잘 처리되는 것을 칭 찬하였다. 이곳에 특별히 인천우편국 직원이 근면하게 정확한 우편운송을 도모하고 밤을 새워 가며 일하여 거류민과 상인들의 복리를 도모하고 있음 에 감사의 마음에 전하고 싶다. 우편국 개국 이래의 취급 우편물의 수량은 다음과 같다. 연 도 취급우편건수 메이지 17년(1884) 27,136 메이지 18년(1885) 68,261 메이지 19년(1886) 82,390 메이지 20년(1887) 84,856 연 도 취급우편건수 메이지 21년(1888) 140,673 메이지 22년(1889) 158,403 메이지 23년(1890) 208,541 메이지 24년(1891) 248,152 일본경찰서 일본경찰서는 일본영사관 관내에 있는 거류민의 복리와 거류지의 이익을 보호한다. 24) 경부( 警 )인 우찌우미( 內 男 )는 만연( ) 원년(1860) 1 월 후쿠오카( 岡 )의 번화가에서 태어났는데, 대대로 구로타( ) 집안을 섬겨왔다. 불과 9세의 나이로 가계를 잇고, 여러 가문과 교류하며 항상 국 가적 훈도를 받으며 강건한 뜻을 세워갔다. 메이지 6년(1873)에 사가( ) 에서 난이 일어났을 때, 정부에서는 오카야마의 옛 번사( )들이 진대병 ( )과 함께 진압토록 하였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5세에 번병 27

28 ( )의 대오에 참가하여 출병하였다. 평정 후에는 약간의 상금도 받았다. 메이지 8년(1875)에는 후쿠오카의 옛 번사였던 타케베( ), 오치 ( ), 하코다( ) 등이 중심이 되어 교지사( 橋 ), 견지 사( 堅 ), 강인사( 强 )의 3단체를 조직하였다. 청년 자제의 기개를 양성하는 임무를 맡은 견지사에 들어간 후 선배들과 관계를 맺고, 메이지 9 년(1876) 봄에 가고시마( )의 사설학교에 가서 지사들과 폭넓게 교류 하였다. 또한 기리노( )집에 출입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 다. 메이지 10년(1877) 2월 니시난( 南 )전쟁 25) 이 일어나자 기리노( ) 24) 일본영사관 경찰서 설치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 規 ) 제10관( 款 )의 다음과 같은 규 정에 의거하였다.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 지정의 각 항( 各 )에 재류 중 만약 죄과( 科 )를 범하 고 조선국 인민에게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일본국 관헌이 심의( )할 것이다. 만약 조선국 인 민이 죄과를 범하고 일본국 인민에게 관계되는 사건은 모두 조선국 관원이 사판( )할 것이 다. 이를 보면, 개항지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범인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자국의 관리가 담 당하여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조일수호조규 의 해당 조항은 얼핏 조선과 일본이 공정하게 해당국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명백하게 불평등 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조선과 일본의 상황으로 보아 조선인 상인 혹은 일반인이 일본으로 건 너가서 무역 혹은 상업행위를 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일수호조규 제 10관은 조선 거주 일본인에 대한 규정으로 볼 수가 있다. 이에 따라 조선 정부는 자국 거주 일본 인들의 각종 범죄 행위에 대한 법적 통제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개항 이후 각 개항지 와 조선 각지에서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였던 일본 상인들의 일반적 활동 내용을 감안해보면, 이 조항으로 인해 조선이 입는 피해는 실로 막대한 것이었다. 25)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 )가 중심이 된 무사 집단이 일으킨 반란이다. 사이고 다카모 리는 서구열강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영토확장과 국민정신의 고조가 불가결하고 이를 위한 유력 한 전략이 대륙진출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이른바 정한론( ) 을관 철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와쿠라 도모미( 具 ) 등에게 밀려 정계에서 물러난 뒤, 향리 인 사츠마번( ) 가고시마( )에서 사학교( 校 : 일종의 군사학교)를 세우고 사족의 자제를 모아 교육에 힘썼다. 그러자 명치유신(1868년)의 핵심적 개혁조치였던 폐번치현( : 전통적 봉건체제의 지방분권 핵심인 을 폐지하고 중앙집권적 지방행정제도인 을설 치하는 조치) 등, 전통적 특권 세력인 사족( : 조선의 경우와는 달리 일본에서 사족은 무사집 단을 말한다)들은 명치정부의 급격한 근대화정책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특히 사족의 정치경제 적 기반인 영주제( ) 폐지는 봉건적 특권을 잃고 몰락일로에 있던 사족의 반정부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하였다. 사학교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1877년 이 학교 학생이 중심이 되어 사 이고를 앞세우고 거병, 1만 3000여 명이 구마모토진대( )를 포위하였으나 정부군에 의 해 진압되고 사이고 등 지도자는 대부분 자결하였다. 이 싸움은 메이지유신( ) 초기 사 족의 최대 최후의 반란이었는데, 정부는 이 반란을 제압함으로써 권력의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 으며, 이후의 반정부운동의 중심은 자유민권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28 역주 인천사정

29 의 엄밀한 뜻을 받고 귀향하여, 다케베( ), 오치( ) 등을 만나 그 뜻 을 전하고 거병을 도모하였다. 그 해 3월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간 후 큐슈( 九 )의 임시 재판소에서 징 역형을 언도받았다. 메이지 12년(1879) 봄 고향에 있는 동지들과 향양사( )를 세워 민권론( 權 )을 주창하였고 이후 이를 현양사( )로 26) 이름을 바꾸게 된다. 메이지 13년(1880) 2월에 쿄토( 京 )와 오사카( ) 로 가서 또한 오사카 애국사( 國 )의 회의에 참석하는 등 이후 여러 겅험 을 쌓아갔다. 같은 해 12월 아오모리현( )에 가게 되는데, 여기서 사 범 전문 두 학교의 감사직을 맡게 되었다. 메이지 16년(1883) 2월에는 간 수장( 看 )으로 옮겼으나, 그 해 11월 경부( 警 )로 옮기지 못하여 메이 지 18년(1885) 1월에 스스로 이 직책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해 4월에는 이바라키현( )간수장이 되었고, 1886년 8월에는 경부로 전임하여 카 미이치( ), 마카베( ), 에도키( 江 岐 ) 등 각지의 경찰서장직을 두 루 겸하였다. 메이지 25년(1892) 4월 외무성 경부로 옮겨 조선국 인천 일 본인 거류지 경찰서장직을 받게 되었다. 그는 특유의 위험과 경험으로 그 사무를 수행하여 인천의 경찰도 이에 따르게 되었다. 26) 토오야마 미쯔루 (, : )가 중심이 되어 1881년 후쿠오카( 岡 )에서 결성된 일 본의 극우적인 국가주의단체이다. 토오야마는 침략적 방법으로 대륙진출을 주창하면서 이른바 대동아주의(, 혹은 대아시아주의) 를 공언한 인물이다. 또한 토오야마는 중국의 손 문과 조선의 김옥균 등의 망명객을 뒤에서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 인물이다. 현 양사는 바로 이러한 성향의 토오야마가 메이지유신( )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불평불만의 실업사족( )을 인적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조직이다. 현양사의 행동대 원은 흔히 대륙낭인( )으로 불리는 집단인데 이들이 바로 조선과 대륙침략의 선발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양사가 내세우는 이른바 대동아주의 의 목표는 일차적으 로는 조선이었고, 현양사의 발전된 형태인 흑룡회( ) 단계에서는 만몽( )의 흑룡강 연 안, 곧 북중국과 만주 연해주를 포함한 지역이었으며, 마침내는 소위 대동아공영권( 共 圈 )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전 아시아를 침략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본문의 저자는 현양사 의 초기 모습과 형성을 전해주는 것이라 이해된다. 29

30 순사( ) 오이즈미, 미도( )출신, 오카와라, 구마 모토( )출신, 우에마쯔, 구마모토( )출신, 미야무라 宮, 이시가와( )출신, 고모리, 가고시마( )출신, 미 자, 오스미( )출신, 코무타, 후쿠시마( )출신, 코타 光, 가고시마( ) 출신 등이 근무하고 있다. 총대( )사무소 총대사무소는 조선의 한성부와 3개의 항구도시에 있는 특별한 사무소이 다. 거류지를 설치하는 일에 관계하므로 군청 구청과 같은 사무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거류민의 총대( )는 거류민이 선출로 권리와 의무가 집행된 다. 현재는 나가토메, 이마( )출신 가 직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천해관( 關 ) 인천해관은 조선정부가 수출입세를 징수하는 관청이다. 27) 메이지 15년 27) 지금의 세관( 關 ) 역할을 하는 행정기관이다. 조선정부가 최초로 해관( 關 )을 설치한 곳은 1878년 9월 3일 부산의 두모진( )이었다. 물론 두모진 해관은 일본과의 교역과정에서 발 생하는 관세를 징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때의 해관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이유는 조선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조일수호조규 의 부록( )과 무역규칙( 規 ) 제7 칙( ) 때문이다. 27) 이에 의하면, 일본정부에 속하는 모든 배들은 항세( : 조선 항구를 드나드는데 지불하는 세 금)를 납부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부산 해관에서는 독점적 위치에서 조선의 대외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으로부터 항세는 물론이고 막대한 수입상품에 대한 관세를 징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는 조선이 근대적 관세 업무 지식이 전무한 것을 일본 정부가 교활하게 이용 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 국가들이 근대화에 뒤늦은 국가들과 통상조약을 맺을 때, 비록 저세율( )의 관세를 강요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일본처럼 조선에게 아예 무관세 조항을 조 30 역주 인천사정

31 약 내용에 넣는 경우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 정부는 뒤늦게 청국과 일본 사이에 제 정된 관세제도 및 관세 징수가 일반적인 사례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조선정부는 일본인에게는 관세를 물리지 못하지만, 조선인으로부터 수입관세를 징수하기로 하고 그 기관으로 두모진 해관 을 설치하였던 것이다. 27) 그리하여 조선정부는 9월 28일부터 소정의 화물 통과세를 징수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이다. 일본 은 외무성이 나서 조선 정부의 조치에 대해 항의하였고 부산 거주 일본 상인 백 수십 명이 동래 부( )에 난입하는 등, 안하무인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또한 하나부사는 1878년 11월 29 일 군함을 이끌고 부산에 도착하여 12월 4일에 2개 소대 규모의 해병대를 상륙시켜 두모진 해관 주변에서 무력 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함포를 발사하는 등, 부산 일대를 전쟁 공포 분위기로 만 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두모진 관세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전쟁 분위기 조성으로 조선 은 결국 12월 26일, 두모진 해관과 내국인에 대한 수입관세 부과방침을 철회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리공사 하나부사와의 협상을 통해 관세권의 회복을 시도하였지만 일 본정부는 관세협상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27) 이러한 상황에서 1882년 청국 이홍장의 주선으로 미국과 통상협상이 진행되었고, 1882년 5월 22일에 전문 14개조로 구성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서 미국은 한국의 관 세권을 인정하는 조관을 규정하였다. 그에 따라 일반 상품에 대하여는 10%, 사치품에 대하여는 30% 수준의 관세율을 설정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본정부는 1883년부터 조일관세협상에 적극 성을 띠게 되었지만 조선측에 저율 관세를 강요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일 본정부는 주미일본공사 요시다( 吉 )에게 훈령하여, 저율의 조일관세협정을 미국정부가 돕 도록 교섭하였다. 그리고 종가( 價 ) 5% 수준의 관세율을 규정한 일본정부의 세칙초안( )을 휴대한 변리공사 다케조에( )를 조선에 급파하여 관세협상을 서둘렀다. 그렇지 만 이 때도 조선정부가 주도적인 위치에서 협상한 것은 아니었다. 27) 1882년 7월 일어난 임오군란의 처리 결과 청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정황에서, 청국의 이홍장 은 독일인 묄렌도르프( )을 대일( ) 협상의 창구로 추천하였다. 청국이 중국인이 아닌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추천한 이유는, 일본이 독일과 외교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고 또 개 인적으로 해관 업무에 밝은 묄렌도르프를 꺼리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일본과의 협상이 진행되자, 묄렌도르프는 이전 조선의 협상 담당자였던 김홍집 등과 전혀 상의없이 독단 적으로 협상을 진행하였고 결국 조선은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일본과 협상을 매듭짓게 되었 다. 그 결과 체결된 것이 1883년 7월 25일 조인된 조일통상장정( ) 과이에따른 해관세칙( 關 ) 이다. 27) 이리하여 개항 7년만에 조선은 관세권의 일부를 회복하고 합법적으로 해관을 창설할 수 있게 되 어, 1883년 6월 18일, 조선 최초로 근대적인 관세업무를 맡은 해관이 인천에 설치되었고 이어 10월 31일은 원산, 11월 3일에는 부산에 각각 해관이 설치되었다. 그렇지만 조선은 관세행정 및 해관 운영 등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외국인을 고용해 총세무사( )라는 직 책을 부여하고 해관 창설과 함께 운영 전권을 위임하였다. 한편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 약 에 의거 관세를 징수하게 된 조선정부는 해관을 창설하게 되었지만, 그 역할 역시 묄렌도르프 에 의해 전적으로 추진되었다. 묄렌도르프는 총세무사가 되어, 일본 측과 비밀교섭을 벌여, 인천 과 원산, 부산항의 관세업무를 자신의 명의로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을 담당하는 주임에게 위 탁형식으로 넘겨주었다. 이는 결국 조선정부에 들어올 관세를 일본인에게 맡긴 꼴이 되었던 것 이며, 관세 업무를 맡은 일본인이 거둔 관세를 조선 정부에 납부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게 된 것 이다. 31

32 (1885)에 처음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 동안의 해관의 업무를 정리하여 보니 볼만한 것도 있다. 그런데 모든 해관의 업무는 서양인들이 맡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천해관장 인천 해관장은 영국인 F. A. 모건이다. 28) 그는 세무사로 청나라 해관에 근무하는 10여 년 동안 사무를 처리함이 공평, 신중하였다. 또 정밀함과 일 처리의 신속함이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메이지 25년(1892)에는 청나라의 상해에서 조선에 부임하였다. 현 50세로 존스턴씨의 후임으로 손색이 없다. 28) 1883년 6월 인천해관이 설치된 다음 역대 해관장은 다음과 같다. 성 명 국적 부임년월 1대 스트리플링(A.B. Stripling, ) 영국 1883년 6월 2대 쇠니케(J.F. Shoneicke, 納 機 ) 독일 1886년 6월 3대 존슨(J.C. Johnson, ) 영국 1889년 10월 4대 모간(F.A. Morgan, 根 ) 영국 1892년 4월 5대 오스본(W.M.C. Osborne, ) 영국 1892년 9월 6대 찰스머스(J.L. Charlsmurs) 영국 1897년 7대 라포르트(E. Laport, ) 프랑스 1901년 8대 맥코널(W. Mckonnel) 영국 1905년 9대 소가( ) 일본 1906년 5월 10대 미야기( 宮 ) 일본 1906년 12월 28) 이처럼 인천 해관장은 처음부터 모두 외국인인이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근대적 해관 업무의 미숙과 청국의 정치 외교적 입김에 의해 총세무사( )는 물론이고 인천해관장까지 조선 의 해관 업무는 모두 외국인이 맡아보았다. 위 표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전체 10명의 해관장 가 운데 6명이 영국인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영국이 청국과 일본에 모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제 정세와 관련이 있고 또한 조선과의 관계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영국은 일본이 국제적 기준 에 훨씬 못 미치는 낮은 관세율을 확보하자, 독일과 함께 조선 정부에 압력을 넣어 관세율를 낮 추게 되었다. 조선이 해관을 설치할 이전부터, 조선에 유입되는 면직물 제품의 원산지는 대부분 영국이었다. 다만 그러한 영국제품의 대부분은 일본 무역상인들을 통해 조선에 유입되었으므로, 같은 영국 제품일지라도 수입관세에 따라 일본 상인이 수입한 가격은 당연히 낮게 책정될 수 있 었다. 영국은 바로 이러한 일본과의 형평성을 조선정부에 강요한 것이다. 그 결과는 1883년 11 월 26에 조인된 조영수호통상조약( ) 의 부속 통상장정( ) 과 세 칙( ), 세칙장정( ) 그리고 선후속약( ) 등에 반영되게 되었다(독일과 도 같은 날짜에 영국과 거의 동일한 조약을 맺었다). 그리하여 영국은 대강 5 15%의 관세율을 적용받게 되었다. 32 역주 인천사정

33 해관임원 그란젤라(이탈리아), 우리탕(, 청국), 29) 홉킨(영국), 히라오(, 일본), 하라(, 일본) 등이 해관 임원이다. 항장( )은 마이 어(독일)이고 감정관( 鑑 官 )은 보리오니(이탈리아), 감리( 監 )로 브링크 마이어(독일) 등이 있다. 일본 미노( 濃 )는 산수가 수려하고 물이 맑아 옛부터 많은 위인을 배출 한 곳이다. 인천해관 방판( )인 히라오( )도 그 곳 사람이다. 그는 1866년 5월 도우노( 濃 ) 가노쪼( 加 納 )에서 태어났다. 원래의 성 29) 조선 해관이 정확하게 언제 설치되었고, 묄렌도르프가 언제 조선 정부로부터 총세무사로 임명되 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대략 목인덕은 5월초순에 조선해관 총세무사에 임명 된 직후부터 해관창설에 착수, 6월 초순에 조선해관을 창설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 인천 원 산 부산 3개 개항장에 해관개설을 서둘렀다. 그것은 1883년 5월 19일 최초로 관세문제를 규정 한 조미조약 비준문서가 교환됨으로써 조미조약이 발효되자, 한양(서울)에 주한미국공사관이 개 설되었기 때문에 일본과 미국 양국에 대한 해관업무의 개시가 필요하였으므로 조선해관창설을 서두른 것이다. 묄렌도르프는 먼저 1883년 6월 16일에 인천해관을 개설하여, 6월 16일부터 11 월 3일까지는 조미조약의 세칙에 따라 관세를 징수했고, 11월 3일 이후부터는 조일( )해관세 칙에 따라 수세했던 것이다. 29) 이전 이홍장의 추천을 받은 목인덕이 상해에서 확보한 해관요원을 대동하고 조선에 들어온 것은 4월 10일이었다. 이 때 목인덕이 거느리고온 해관요원은 다음과 같다. 하스(J. Haas,,, 오), 스트리프링(A. B. Stripling,, 영), 라이트(T. W. Wright,, 영), 로바트(W. N. Lovatt, 영), 라포르테(E. Laporte, 프), 막베트(Mackbet, 미), 뫼르셀 (Moersell, 독), 슐츠(Schultz, 독), 아르노우스(G. H. Arnous, 독), 사바틴(Sabatin, 독), 베 코프스키(Bekofsky, 러), 보리오니(Borioni, 이), (Woolitang, 중), (S. Y. Tong, 중), (Woo, 중), (Chow, 중), (Liang, 중), 웰히(Wwlch,?), 글 란필드(Glanfield,?), 로젠바움(Joseph Rosenbaum,, 미), 라데지(Ladage, 독), 놋 트(Knott,?), 던칸(Duncan, 영), 크로포드(Crawford, 덴), 크레브스(Krebbs, 미), (Nakabayashi, 일), 라우히트(Laucht, 독), 크니플러(Kniffler,?). 이들을 국적별로 분류해 보면 독일인 6명, 중국인 5명, 영국인 4명, 미국인 3명, 러시아인, 프랑스인, 오스트리아인, 이 탈리아인, 덴마크인, 일본인이 각 1명이고 기타 국적미상의 서양인이 4명이다. 묄렌도르프는 이 처럼 10개국의 국제적인물로 구성된 조선해관을 창설한 것이다. 이상 총 28명중 22명은 각 해 관에 배치되었으나, 일본인 중림( )과 중국인 양여호( ), 서양인 웰히 글란필드 놋 트 크니플러 등 6명은 각 해관에 배속되지 않은 채, 그후의 행적이 불분명하다. 중국인중 4명은 앞서 이홍장이 추천한 미국유학생이고, 오례당( )이 추가로 고빙되어 왔다. 오례당은 미 국유학생 출신으로 영어에 능통한 인물이다. 1883년 조선이 미국에 최초로 조선보빙사를 파미 할때 외교교섭상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는 인물이 절대로 필요해서 묄 렌도르프의 천거로 오례당이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33

34 은 타나카( )였지만 히라오( )씨 집에 양자로 들어가 대를 이었다. 어린 시절 에도( 江 )로 나가 외국어 학교에 들어가 러시아어로 보통학을 수료한 후 외국어 학교가 고등상업학교로 합병되자, 그도 이 학교로 전학하 여 수년간 힘들게 공부하여 마침내 그곳을 졸업하였다. 메이지 24년(1891) 조선 정부의 초빙에 응해 인천해관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학식이 높고 덕이 많으며 일을 맡으면 정밀하게 하고 사람을 사귀는데 성실하였으니, 그와 사귀는 자는 모두 그 덕을 흠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 다. 메이지 23년(1890)에서 메이지 24년(1891) 봄에 이르는 동안 인천항의 풍속이 실로 극도로 호화사치에 달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스스로 품행을 방정 성실히 하여 엄격하였으나 사람을 억압하지는 않았다. 인천항의 풍속 이 날로 순박하게 된 것은 대부분 그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나와 같이 그 의 은혜를 크게 입은 자가 그에 대한 칭찬의 말을 올리는 것은 자화자찬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기에 그에 대해서는 깊이 말을 하지 않겠다. 다만 그 또한 인천항의 역사에 한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해관 개관이래 매년의 수출입 금액은 다음과 같다. 연 도 수입 수출 메이지 17년(1884) 452, ,667 메이지 18년(1885) 987, ,898 메이지 19년(1886) 1,325, ,764 메이지 20년(1887) 1,466, ,673 메이지 21년(1888) 1,677, ,726 메이지 22년(1889) 1,823, ,570 메이지 23년(1890) 2,531,752 1,442,288 메이지 24년(1891) 2,958,784 1,446,357 그중 일본과 청국의 수출입액을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34 역주 인천사정

35 국가 연 도 수입량 수출량 메이지 21년(1888) 916, ,226 일본 메이지 22년(1889) 1,035, ,195 메이지 23년(1890) 1,320,716 1,565,979 메이지 24년(1891) 1,010,561 1,263,729 메이지 21년(1888) 609, ,010 청국 메이지 22년(1889) 494, ,386 메이지 23년(1890) 568, ,076 메이지 24년(1891) 1,755,804 97,931 조선해관규칙 조선 해관 규칙은 메이지 20년(1887) 9월 6일 총리아문에서 반포하였다. 여기에는 다만 무역에 필요한 두 세가지를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수 입면세품은 화폐, 금은지금( ), 여객용품, 신문지, 화물 견본, 서 적, 지도, 해도, 광고지 종류, 간판, 식물류, 수공업의 추형( )류, 농기 구, 의술용 기구, 도량형, 온도계, 기압계, 혈액검사계, 바늘, 기타 학술용 기구 겸 부속품, 활자, 소방기구, 선상용구, 포장용 노끈 등 19점, 수출 면 세품은 화폐, 금은지금 및 사금, 식물류, 각 화물의 모형, 여객용품 등 5점, 수입 금지품은 아편, 가짜약품, 위조화폐, 군사 물품류, 음란한 그림 등 5 점, 수출 금지품은 오직 홍삼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 일본 상인은 정부 특허 를 받아 홍삼의 수출도 가능하였다. 해관의 업무시간은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일출에서 일몰까지로 한다. 시 간 수수료 일몰 ~ 밤12시까지 5원 일몰~밤12시 이후 10원 일요일 혹은 공휴일의 일출~일몰 20원 일요일 혹은 공휴일의 일몰~밤12시 10원 일요일 혹은 공휴일의 일몰~밤12시 이후 20원 35

36 위의 시간이외에 개관은 임시개관으로 된다. 수수료는 각 시간별로 위의 표와 같다. 해관의 휴일은 양력 매주 일요일, 양력 12월 25일부터 다음해 1월 1일까 지음력정월1일, 2일, 3일과15일, 음력5월5일, 음력7월26일, 음력8 월 15일, 음력 12월 그믐날 등 일곱 종류이다. 제일국립은행지점( 國 ) 일본 도쿄의 제일은행은 메이지 21년(1888) 9월 1일 인천에 지점을 개설 하여 제반 은행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30) 이보다 앞서 제일국립은행에서 는 인천 개항과 동시에 부산포에 지점관할의 출장소를 개설하고, 임원 몇 명을 파견하여 은행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인천의 무역량이 많아지자 같 은 해에 지점으로 승격되었다. 제일은행지점은 인천이 개항된 후 유일한 금 30) 조선 최초로 근대식 은행이 등장한 것은 1876년 6월, 부산에 설치된 일본 제일은행 지점이었다. 조선의 개항을 결정한 조일수호조규( 規 ) 가 체결된 것이 2월 27일이니까, 불과 3 개월여만에 근대 은행이 상륙한 것이다. 부산에 진출한 제일은행은 이후 점차 지점과 출장소 등 을 증대시켰으며, 1883년에는 조선 유일의 해관은행( 關 )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894년 일본이 청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제일은행은 식민지 경영체제를 동원하여 조선에서 급격하 게 경제적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1902년에는 강제로 은행권을 발행하여, 1904~5년 러 일전쟁기에는 드디어 조선에서 중앙은행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일반적으로 조선에서 식민지 경 영의 두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철도와 금융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제일은행의 역할을 단순히 은행 업무 자체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특히 조선 정부의 안정적이고 주 수입원인 해관 세( 關 )를 독점적 지위에서 취급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일은행이 조선에서 해관세를 취급함으로써 얻는 특권은 실로 다양하였다. 첫째, 예금에 대한 이자부담은 거의 없었 던 반면 막대한 거래 수수료(2푼 3리)를 얻고 있었다. 둘째, 해관세는 조선 정부의 재정수입 중 에서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이었으므로 예금원으로서 극히 적합하였다. 셋째, 해관세 예금은 제 일은행의 예금구성서 중요한 양적지위( )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 일은행이 조선의 해관은행이었다는 사실은 첫째, 제일은행이 해관세로서 화폐를 수납하고 수세 자( )에게 예탁 증서를 발행하였는데, 이것은 비록 적은 금액이고 소규모 자산이라고 해도 은행권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이는 후일 제일은행권이 신용의 기초를 이 끌어 신용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둘째, 제일은행이 해관은행 주관은행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36 역주 인천사정

37 융기관으로서 인천무역발전을 위해 힘쓴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지 점이 개점한 후의 운전자금은 아래와 같다. 항목 액 수 입금액 18,139,033원80전7리 출금액 18,104,301원84전9리 총 계 36,243,335원65전6리 지점이 개설된 후 지점장은 한번 교체되었는데 순서에 따라 기록하면 다 음과 같다 연도 이름 족적( ) 출생지 메이지21년(1888) 9월~ 고난 홋카이도 사족 와카마츠 메이지24년(1891) 6월 ( 江 南 ) ( ) ( ) 메이지24년(1891) 7월~ 니시와키 에히메현 사족 우와지마 ( ) ( ) ( ) 지점장 니시와키 ( )는 긴큐( 久 ) 2년인 1862년 3월 19일 우와지마 ( )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2년(1869)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여 메 이지 6년(1873)부터 메이지 8년(1875)까지 오로지 한학( )과 번역서만 을 공부하였고, 메이지 9년(1876)에는 난예( 南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메이지 12년(1879)에는 후쿠요( )중학교로 옮겼고, 고향 친구들 가운데 서는 일찍이 영재로 소문나기도 하였다. 메이지 12년(1879) 9월 도쿄 부립 상법강수소( 講 )에 들어갔다. 메이지 15년(1882) 3월 그곳에 서 학과를 마치고 도쿄 제1국립은행에 들어가 장방( )으로 근무하였다. 그 해 11월 모리오카도쿄( 岡 ) 지점의 계산직으로 옮겼고, 메이지 21년 (1888) 5월 이시마키( 卷 ) 지점의 지점장 호감을 사서 옮기게 되었다. 메 이지 23년(1890) 1월에는 지점장으로 승격하여, 센다이( ) 지점에서 근 무하다가 9월 조선 부산포지점으로 다시 옮겼으나,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 37

38 은 메이지 24년(1891) 6월에 다시 인천지점의 지점장으로 임명받아 7월에 인천에 도착하였다. 12월에는 각국 거류지회회장이 되었고, 메이지 25년 (1892) 4월에 일본거류지회 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다시 부의장으로 추 대되었다. 그는 매우 성실하게 일하고 민첩하여 그가 부임한 지점은 날로 그 면목이 새롭게 변하였다고 한다. 이전 우와지마( )의 번주였던 이다치( ) 공은 그가 총명하고 영민한 자질로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소번주의 몸으로 안으로는 번내의 청년을 고무, 격려하였고 밖으로는 국가의 대사에 분주히 움직여 우와지마( )의 이름을 능히 천하에 떨쳐 그 결과 뛰어난 인재 들이 이 번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제일국립은행 인천지점 지배인 니 시와키 쪼타로와 같은 사람도 그러한 사람이다. 계산부 대부할인계 키무라(, 도쿄출신), 출납부에 토리이, 미토( )출신, 장부계한국통역 쇼마, 이시가와 ( ) 출신, 장부계 타카시마 高 橋 敬, 아키타( )출신, 출납계 카토 加 嘉, 오사카( )출신, 인천해관 출장계 무라우에, 나가사키( 崎 )출신 등은 모두 온화하고 성실하게 사무를 보는 사람들 이라고 한다.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 ) 빨간 색깔 기와의 큰 건물 몇 동이 인천항 해안의 정면에 우뚝 솟아서 제 물포 일대의 장관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일본우선회사의 인천지점이다. 메 이지 16년(1883) 4월 우편기선 미쯔비시 회사 부산 지점의 출장소로 이곳 에 처음 설치된 후, 메이지 18년(1885) 10월 공동운수회사와 합병을 결정 하고 이를 일본우선회사( )가 인계하였다. 메이지 19년(1886) 에는 일본 거류지 1호지에서 6호지에 이르는 점포, 창고와 사택 신축에 착 38 역주 인천사정

39 수하여 8월 2일에 완성하여 지금의 가옥이 만들어졌다. 메이지 23년(1890) 9월경까지 항해 횟수는 매월 겨우 두 차례였지만 인천항의 무역 발달이 현 저하자 2회로는 당해낼 수 없게 되어 결국 우선회사는 몇 차례 임시선을 왕 복 운행하는 등 항해 횟수를 늘렸다. 당시의 항로는 4개였는데 첫 번째는 고베( )에서 마자키( 關 ), 나가 사키( 崎 ), 고지마( ), 쓰시마( ), 부산을 거쳐 인천에 와서 다시 치 부( ), 뉴창( )에 이르는 노선(정기선 ), 두 번째는 고베( )에서 마자키( 關 ), 나가사키( 崎 ), 고지마( ), 쓰시마( ), 부산 을 거쳐 인천에 와서 다시 치부( )와 텐진( )에 이르는 노선(정기선 ), 셋째는 청국 상하이( )에서 치부와 텐진을 거쳐 인천에 와서 다시 나가사키( 崎 )와 부산 원산을 거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이르 는 노선(정기선 ), 넷째는 오사카( ), 고베( )에서 마자키( 關 )를 거쳐 인천항으로 직항하는 항로(임시선, )이다. 화물 승객의 운임표는 다음과 같다. 부산 쓰시마 나가사키 마자키 코베 오사카 요코하마 ( ) ( 崎 ) ( 關 ) ( ) ( ) ( ) 원산 곡물1석 30전 35전 45전 50전 55전 57전 90전 60전 우피 100근 40전 45전 50전 70전 75전 75전 85전 상 16원 19원 24원 32원 40원 40원 50원 29원 50전 선객 중 10원 12원 50전 16원 21원 26원 26원 32원 19원 하 40원50전 5원50전 7원 9원 11원 11원 13원50전 8원50전 인천, 마자키( 關 ), 고베( ), 오사카( )로 직항하는 임시선의 승 객요금은 다음과 같다. 마자키( 關 ) 고베( ) 오사카( ) 상 25원 29원50전 29원50전 중 16원 19원 19원 하 7원50전 9원 9원 39

40 메이지 21년(1895) 이후 승객 수는 다음과 같다. 화물 선객 메이지 21년(1888) 메이지 22년(1889) 메이지 23년(1890) 메이지 24년(1891) 출 187,467개 81,732개 516,315개 502,339개 입 99,991개 224,720개 407,372개 193,640개 출 1,243인 1,514인 1,913인 2,242인 입 1,672인 2,372인 2,433인 3,630인 인천 지점이 개설된 이래 교체된 지배인들의 임기를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연도 성명 출생지 메이지16년(1883) 4월~ 메이지18년(1885) 2월 아마타( 季 ) 돗도리( ) 메이지18년(1885) 2월~ 메이지19년(1886) 6월 오하시( 橋 ) 와카야마( 歌 ) 메이지19년(1886) 8월~ 메이지24년(1891) 5월 카미( ) 나가사키( 崎 ) 메이지24년(1891) 5월~ 오타니( 谷 ) 효고( 庫 ) 지배인 오타니( 谷 )는 히메지( )출신이다. 필자는 아직 그를 잘 알지 못하고 그와 만난 횟수도 매우 적었지만 평범한 모습의 회사원으로 친 절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선( )회사에 들어가 여러 곳의 지점에 수 년 동안 근무하여 사무도 매우 노련하였다. 외부에서 사람과 사귈 때에는 인정 이 두텁고 성실하며, 안으로는 분수를 지켜 청렴하고 절약하며 직원을 독려 하는 예를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그의 행동 하나하나와 말 한마디 한마디 는 모두 성심과 성의로 가득 찼다. 주위의 명성이 그에게 집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특히 공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거류지회 의 의장과 상법회의소 부의장직을 맡아 거류지의 공익을 위해 진력한 바가 적지 않으니 주위에서 하나같이 제2의 카미( )씨로서 보고 있다. 일본우선 회사( ) 인천지점의 명예가 나날이 높아지고 인천 지점원의 이 40 역주 인천사정

41 름이 날로 빛나고 있는 것은 카미( )씨의 여훈( )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공적 또한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점원으로 스즈키(, 도쿄출신), 쿄다케( 甲 男, 미에출신), 오 테라( 敬, 이시카와출신), 칸자키( 崎 嘉, 오사카 출신) 등이 있 다. 모두 온화하고 공손한 사람들로 인천항의 모든 뛰어난 사람들이 우선회 사에 다 모였다는 소문이 돌 지경이었다. 특히 우선회사의 점원에 대해 특 별히 한 마디 해두고 싶은 것은 이들이 품행이 단정하고 언행이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인천항의 세세한 풍습도 아주 익숙하였다는 점이다.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 일본 나가사키 제18국립은행은 메이지 23년(1890) 10월에 인천에 지점 을 열었다. 이로써 인천항에 제2의 금융기관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여기 에서 근무하는 이로는 지배인 아다치(, 나가사키출신), 계산부 에 구로이시(, 나가사키출신) 등이다. 인천항의 중앙 본정( ; 현 중앙동 거리)에 서양식 큰 빌딩이 있는데, 이것이 제18국립은행 인 천지점이다. 제58국립은행 인천지점 인천항 본정( ) 거리의 서양식 빌딩으로 제18은행지점과 나란히 위치 하고 있는 것이 오사카 제58국립은행 지점 31) 이다. 메이지 25년(1892) 7월 31) 현재 시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중구 중앙동 2가 19-1번지에 있다. 일본 오사카 ( )에 본점을 둔 58은행이 설립한 것으로 1892년 7월에 개점하였다. 1946년 4월 1일 조흥은 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1958년 7월 대한적십자 경기도지사가 들어섰다가 지금은 중구 요식업조합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41

42 교환국기관은행( 交 局 機 關 )으로 개점하였다. 인천항에 또 하나의 금 융기관이 생겼으니 축하할 일이다. 중역으로 지점장 가토( 加 ), 지 점지배인 토노이(, 전 고베지점의 지배인), 계산직 이토( 啓 ), 점원 카즈히토( ), 기타무라( ) 등이 일을 하고 있다. 제일은행지점에서는 동경 말을 들을 수 있고, 제18은행지점에서는 나가 사키 말이 들리며, 제58운행지점에서 오사카 말이 들려오니 굳이 묻지 않 아도 그 본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일한무역상사 지점 일한무역상사 지점은 하마타( ) 상점이 다른 주주와 합병하여 규모를 확장한 것이다. 본점은 오사카( )에 있었고 지점은 조선의 1부 3항에 있 다. 인천지점 지배인은 뉴타, 가고시마( )출신 였다. 조선에서의 1부 3항(경성, 부산, 원산)은 각각 하나의 독립된 작은 일본을 형성하고 있었고, 거류지의 크고 작은 정치문제 및 상업상의 이해관계 문제 등은 선출된 대의사( )의 평의를 거쳐 총대( )에 의해 처리된다. 거류지의 정치평의소를 거류지의회라 하고, 거류지 상업이해의 토의 장소 를 상법회의소라 한다. 조선의 1부 3항에서 자치제도는 일본의 여러 도부 ( )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이 갖추어져 있다. 인천일본거류지 의회 인천일본거류지 의회는 인천의 작은 국회의 하나로 거류지의 크고 작은 업무는 모두 이곳 의회 의결에 따라 시행된다. 조선 그리고 재류 제 외국인 에 대한 일본인의 권리와 의무( 權 )도 의회에 의해 대표된다. 의원은 거류 지내에 가옥, 토지를 갖거나 혹은 영업을 하고 있는 선거자 중에서 선출된 42 역주 인천사정

43 다. 의장과 부의장은 의원 중에서 호선한다. 현재의 의장은 오타니( 谷 ), 부의장은 니시와키( )이고, 의원은 오타니( 谷 ), 니 시와키( ), 사타케( ), 우에다( ), 뉴타( ), 아다치( ), 소노( 嘉 久 ), 타나카( ), 타나카 ( ), 시로야마( ) 등 10 명이다. 보결의원은 히구치( 口 ), 마츠모토( ), 무코야마( ), 미사와( 君 ), 카 네( 金 ) 등 5명이다. 인천상법회의소 인천상법회의소는 인천항의 모든 상업상의 문제와 이익을 연구, 검토하 는 곳이다. 설치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경 비가 있었지만 아직껏 그 계획이 인천항 상업에 이익을 주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굳이 업적을 지적하자면, 지난 메이지 22년(1889) 7월 평 안도 대동강에서 중국인의 밀무역 조사를 위한 위원의 파견 및 간혹 해관에 통관 가격의 동의 요구를 거절하는 등 몇 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미 상법회의소라 부르는 이 단체에 대해 여러 의원의 담화회와 동일시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고 우리들이 신문 지상에 이미 알린 바 있는데, 지금은 모든 거류지가 상법회의소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상업회의소 의 조례에 따라 새롭게 일어난다고 하면 상법회의소가 인천항의 장식물이 란 혹평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상법회의소의 의장은 사타케( )씨, 부의장은 오타니( 谷 )씨이고, 의원은 사타케( ), 오타니( 谷 ), 타나카( ), 미사와( ), 마츠모토( ), 무코야마( ), 가마가네( 谷 ), 미야타( 宮 近 ), 히사노 ( 久 ), 시로야마( ), 우에다( ), 카네( ), 히구 치( 口 ), 츠루타( 權 ), 토비( ), 신도( ), 쇼우노( 嘉 久 ), 뉴타( ), 토모이( 龜 )의 19명이다. 의 43

44 장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특별히 의원 이외의 특별의원을 지명하여 회의에 참석시킬 수 있다. 인천각국거류지의회 인천 각국거류지를 관할하는 의원은 3명의 지주의원과 조선정부 지방관 및 각국 영사로 이루어진다. 지주의원은 니시와키( ), 스트립 플 링그, 월다의 3명이다. 영사의원은 노세( 能, 일본부영사), 스콧트 (영국영사), 클렌(독일총영사), 하드(미국총영사), 홍쯔빈(, 청국영 사)의 5명으로 인천감사 성기운( 岐 )씨는 정부의 명령에 따라 의회에 참가한다. 각국 거류지의회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우선, 각국 거류지에 일본인 지주가 서양인의 2배가 됨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에 의해 여러 측면에서 제 어당하고 있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는 각국 거류지에 지주인 일본인 이 많아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것은 대부분 일본인이지만 의회의 일들은 영 어로 처리되고 있다. 셋째, 각국 거류지의 크고 작은 정치상의 문제는 대체 로 2명의 상임의원(월다, 스트립 플링그) 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독단 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각국 거류지 의회에 대한 우리의 불만이 어찌 이 두 세 가지에 그치겠는가? 무역상조합 무역상 조합은 인천항의 무역 상인들이 서로 화친하고 단결하며 인천항 에서 이루어지던 종래 상거래성의 폐습을 교정하여 무역 진흥을 꾀하려는 것이다. 아래에 무역상 조합 규약 제1장과 제2장을 발췌하여 적어두니 무 역상 조합의 성격과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를 바란다. 44 역주 인천사정

45 제1장 총칙. 제1조 이 규약은 무역상으로 조직한다.. 제2조 이 규약에서 무역상이라 하는 것은 이하의 물건을 직접 조선인과 매매 또 는 교환을 목적으로 영업하는 사람을 말한다. 금은지류( ), 잡물류, 소가죽 및 소뼈류, 오배자( ), 포해대 ( ), 천초류( ), 금건양사류( 巾 ), 여양반물류( ), 동류( ), 아연, 절석( ), 납, 갑배견( 甲 絹 ) 등의 무역상품. 제3조 이 규약은 인천 제국( 國 ) 영사의 인가를 거쳐 메이지 24년(1891) 9월 1 일부터 실시한다. 제2장 목적. 제4조 당 조합은 덕의( )를 지키고 서로 친절히 거래함은 물론 조합 제반에 미치는 상거래의 안녕을 준수한다.. 제5조 당 조합은 수출품을 불문하고 품질을 엄선하여 항상 시가의 평균과 조합 원의 이익을 도모하여 영구히 일한무역의 융성을 꾀하기를 기대한다.. 제6조 당 조합은 인천항 종래의 상거래에 관계된 폐습을 교정할 것을 기대한다.. 제7조 조선상인 중 거래상의 불미스러운 자가 있을 때는 그 이유를 서면으로 임 원에게 제출하고, 임원은 신속히 조합원에게 그 뜻을 통지하여 한다. 다만, 사정에 따라서는 조합 의회를 열어 해당 상인에 관해 상거래상의 상담을 하 여야 하다. 45

46 무역상 조합원은 이하 18명으로, 조합원은 조합외의 무역상과 거래하지 않는다. 사타케( ), 뉴타( ), 우에다( ), 미자키( ), 쇼노( 嘉 久 ), 미키( ), 리키다께( ), 요시다( 慶 吉 ), 요시가와( 吉 ), 다나카( ), 무코야마( ), 토비( ), 고야마( ), 하야시( ), 아다치 ( ), 마쓰모도( ), 사이또( ), 고이데( ), 임원은 사타케( )씨, 회계위원 다나카( )씨이다. 잡화상조합 인천항에 있는 일본인 잡화상은 조선에서 일본 잡화의 신용을 유지해 나 날이 조선내에 그 판로를 확장하고, 조악한 제품의 수출을 막아 영업을 영 구히 보장하고 일본상인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요즘 인천항의 무역이 날로 번창하는 가운데 일시적으로는 조악한 물품이 수입되는 경우도 있다. 또 같은 잡화상 간에 서로 피해를 주어 인천항에서의 일본 상업발달을 방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 다. 잡화상 조합이 조합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효과와 이익은 아마 더 욱 커질 것이다. 이에 조합규약 제7조를 다음에 발취하여 적어두니 조합의 성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7조 당 조합은 제1조의 취지에 따라 각자 영업에서의 좋지 못한 습 속을 교정하는 데 힘쓰고 좋은 화물을 판매하여 조잡하고 좋지 못한 물품은 일체 취급하지 않는다. 만약에 이 주의를 위반하는 사람은 조합원 협의하에 판매를 금지시킨다. 덧붙여 그 화물을 매매한 자가 있다면 제33조에 따라 처분한다. 또 조합원도 아니면서 조잡한 물품을 매매하는 자로 인정되면 조 합원의 협의 하에 주의를 준다. 또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관청에 신고한 46 역주 인천사정

47 다. 다만, 내외인이 구입한 화물이 형편없다고 인정되면, 모든 거래를 취소 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되면 마땅히 거쳐야 되는 순서에 따라 해당 지방청 또는 상업회의소에 조회하여 그 물건의 잘못된 점을 고쳐야 한다. 잡화상 조합의 조합장은 히구치 口, 히젠( )출신 씨이며, 이 사는 시로야마(, 나가사키출신) 씨이다. 조합원은 잡화상 총 41명 이다. 인천항에 상인이 많다고 하나 우리가 보기에 상인이라 부를 만한 것 으로 무역상, 잡화상, 하역업, 도매상, 선박운송업의 다섯 종류이다. 32) 인천항무역상 일람표 상점명 주인성명 출생지 상점위치 본점소재지 하인( ) 일본거류지 吉 일본거류지 일본거류지 일본거류지 谷 嘉 久 일본거류지 庫 일본거류지 각국 거류지 12호 慶 慶 吉 일본거류지 吉 일본거류지 일본거류지 京 일본거류지 崎 일본거류지 일본거류지 崎 일본거류지 岐 關 일본거류지 關 일본거류지 일본거류지 口 崎 일본거류지 岐 吉 京 일본거류지 32) 이 표들에 나오는 일본상인의 이름은 이해에 무리가 없는 한 일일이 일본식으로 발음 하지 않고, 한자를 그대로 제시하였다. 또 당시 인천지명은 일본식 지명 이었을지라도 국내지명이므로 한자 로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하 동일) 47

48 인천잡화상일람표 성 명 출생지 상점위치 성 명 출생지 상점위치 崎 인천항 본정통( ) 吉 庫 인천항 각국거류지 久 崎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口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廣 崎 인천항 본정통( ) 吉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トク 崎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吉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口 인천항 본정통( ) タヵ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吉 인천항 본정통( ) 口 인천항 본정통( ) 吉 崎 인천항 본정통( ) 인천항 상정통( ) 堀 久 崎 인천항 본정통( ) 吉 崎 인천항 상정통( ) 吉 崎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崎 인천항 상정통( ) 吉 口 인천항 상정통( ) 인천항 각국거류지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古 崎 인천항 상정통( )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京 인천항 본정통( ) 인천항 본정통( ) 嘉 工 岐 인천항 각국거류지 口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상정통( ) 吉 口 인천항 본정통( ) 岡 인천항 본정통( ) 인천항 각국거류지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상정통( )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崎 인천항 상정통( ) 吉 인천항 각국거류지 口 인천항각국거류지 谷 吉 口 인천항 상정통( ) 橋 吉 33) 인천항 상정통( ) 岡 인천항 본정통( )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吉 口 인천항 본정통( ) 光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古 吉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崎 인천항 상정통( )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崎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今 崎 인천항 상정통( ) 崎 인천항 본정통( ) 吉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吉 崎 인천항 각국거류지 口 岡 인천항 상정통( ) 岐 인천항 상정통( ) 33) 본문에는 으로 되어 있음. 오사카( )의 오기. 48 역주 인천사정

49 하역 도매업 일람표 성 명 출생지 상점위치 성 명 출생지 상점위치 吉 인천항 본정통( ) 口 인천항 이정통( ) 宮 崎 인천항 본정통( ) 宮 近 崎 인천항 해안 久 根 工 인천항 본정통( ) 谷 寬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吉 京 인천항 본정통( )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谷 工 崎 인천항 본정통( ) 庫 인천항 각국거류지 인천항 상정통( )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口 인천항 상정통( ) 인천항 각국거류지 吉 인천항 상정통( ) 선박운수업일람표 상점명 주인성명 출생지 상점위치 寬 崎 인천항 본정( ) 崎 인천항 본정( ) 崎 인천항 본정( ) 慶 慶 吉 인천항 본정( ) 崎 인천항 해안 郡 郡 崎 인천항 해안 吉 崎 인천항 해안 口 인천항 각국거류지 인천에 있는 각종 상점을 이상과 같은데 이제부터는 한국, 청국과 일본의 상거래 현황을 살펴보자. 49

50 일본, 청국, 조선인의 거래형태 (1) 조선인과 청국인 혹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상거래는 두 가지 형 태가 있는데, 현금지불과 연불( )로 나뉜다. 현금지불은 물건 거래 시에 현금으로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연불은 일정한 기한을 정하여 두었다가 납 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의 기한은 대략 한달로 조선인에게 물건을 매도할 때에 약속되는 것이고 신용상의 금전대차는 양국상인이 거의 이용하지 않 는다. 이때 연장된 시간에 대한 계산은 물건을 대여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 로 한다. 다만 이 기간 동안 이자는 지불하지 않아도 되지만 매도 때는 시세 이상으로 가격으로 계산되는 일도 있다. (2) 어떤 경우는 일본 상인과 청국상인이 모두 조선인이 상품에 대해서 자금을 대여하는 주는 일도 있다. 청국인들은 홍삼밭을 저당잡고 자금과 물 건을 대여하여 주고 대신 이듬 해의 수확 가운데 대출금으로 홍삼을 가져간 다. 서로 필요한 경우에는 또 다시 다음 해의 수확을 기입해 두고 새로 대부 를 하기도 한다. 일본과 청나라 상인은 소가죽을 하루에 몇 장은 반드시 가 져오라는 약속을 하고 미리 빌려주기도 하고 또 콩과 그 밖의 물건 등 광범 한 지역에서 모아야 하는 것은 미리 얼마를 빌려주고 2부 내지는 3부의 이 자를 징수하기도 한다. (3) 조선인들끼리의 거래는 도매( ) 한다. 정부의 특허를 받은 지방특 산물 도매상 및 문옥( ) 이라 불리는 특허를 받은 상인들은 각 지방에서 물건을 미리 원가로 소매상인에게 팔아 넘긴다. 모든 것이 정하여 질 때까 지는 매월 이자를 내야 하는데 이를 문옥( )수수료라 한다. 문옥 수수료 는 아무리 거액이라도 조선 화폐로 내야 되며 간혹 아주 신용이 좋은 지주 와 부잣집에서는 예금어음(종이 중앙에 금액과 수령자의 성명을 적고 날인 한 후 두 조각으로 나누어 하나는 자기가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수표로 사 용함)을 발행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음표( )라고 한다. (4) 조선인과 청국인 및 일본인들이 화폐를 주고받는 것은 아주 편리하 다. 8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일본 은화와 지폐를 받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50 역주 인천사정

51 일본 은화와 지폐는 인천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 의해 상거래에 많이 이용되 어 조선의 유통화폐와 마찬가지 형편이다. 요즘 지방에 사는 한인( ) 가 운데 일본 은화와 지폐를 저축하는 자가 날로 많아져 그 액수도 10만을 넘 는다고 한다. 이 지방에서 세금을 납부할 때도 제국( 國 )의 화폐 혹은 은 화를 경성으로 가져가면 조선 화폐로 교환하여 준다. 조선과 청은 큰 액수 의 거래에는 또한 마제은( )을 사용하기도 한다. (5) 빌려준 돈을 반환받지 못할 때에는 대개 확실한 중개인을 내세워 일 처리 하게 하여 돈 빌려준 사람이 번거롭게 하는 대신에 중개인은 중개료로 서 통상 차용금액의 5%를 가져간다. 만약에 빌려 간 사람이 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저당 잡힌 것이 있으면 이를 몰수하고 저당이 없으면 그 친족에 게 변상토록 하는 것이 관습이다. 조선인끼리의 금리는 2부 5리부터 5부 이 내이다. 인천항 상관습 우리는 이미 인천항에서 일청한( )상인들의 상거래 상황을 살펴보 았는데 더불어 인천항의 상관습 중에서 특별히 몇 가지를 덧붙여 기록하고 자한다. 1 ) 화물하역수속 인천항에서는 모든 배에서 화물을 내릴 때 기선회사가 직접 하역하니 수 입업자 각자가 수속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해관에 의해 제공되고 있다. 수입자는 통관원서에 송장을 첨부하여 해관에 제출하면 해관감정관이 해당 화물의 가격을 감정하여, 수입원서에 기재한 가격이 맞는 경우는 그를 기준 으로 세금을 정한다. 세관에서는 신청인에게 납세표를 교부하고 그 표에 기 제 된 금액을 해관 출장 은행에 납부토록 한다. 은행이 납부영수증을 수입 자에게 주면, 비로소 화물을 인수할 수 있다. 51

52 그러나 화물을 감정할 때 만약 수입자가 신청한 가격에 대해 감정관이 부 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해관장이 수입자에게 감정관이 정한 가격에 따 라 납부토록 한다. 이에 대해 수입자가 세관 평가에 승복하지 못하면 24시 간 내에 그 사정을 해관장에게 이의 신청하고 자신이 평가인을 선정하여 화 물가격을 정한다. 이 경우 해관장은 수입자의 평가인으로부터 감정한 가격 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거나 또는 그 가격의 2%를 더 받기도 하는 등 자신의 주관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 일본 우선회사의 기선으로 수입되는 화물이 배에서 내려져 감정장에 도착할 때까지 드는 제경비는 운임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수입자는 단순히 감정장에서 그것을 자기 손에 인수하는 데 드는 비 용을 지불해야 한다. 기선에 실은 화물하역잡비(감정장에서 자기 손에 인수하는데 필요한 잡비) 금건( 巾 ) 34) 1개 50판 13전 도기 한상자 7전5리 한랭사( ) 35) 1개 200판 13전 도기 가마 2전 아연, 주석 100근 2전5리 칠기 한상자( ) 7전5리 석유 한상자 4전 칠기 3전5리 철기 상자 7전5리 구리 100근 1전5리 철기 가마( 藁 ) 3전5리 2) 화물보관료 인천항에는 두 세 개의 보관창고가 있는데 세관창고, 은행창고, 통신창고 가 그것이다. 창고료도 창고마다 달라 다음과 같이 셋으로 구분된다. 34) 옥양목의 일종. 35) 당포( )로 바구니, 모기장으로 만드는데 주로 사용함. 52 역주 인천사정

53 인천항 화물보관료 일람표 해관창고(기준 1개월) 은행창고(기준 1개월) 통상창고 동( ), 아연, 주석( ), 철조각, 100근 4전 구리, 아연, 강철 등 주석 100근 3전 수은 100근 8전 금건( 巾 ), 한랭사( ) 1개 10전 4전 납, 궤철( 塊 ), 고철 100근3전 석유 1통1전 2전 금건( 巾 ), 1반( )5리( )이상 한랭사( ) 15리( )이하 1개 9전 6전 당잔( ), 비금건( 巾 ) 100근 1전 骨 1개 9전 6전 오려( ) 능오려( ) 100근 3전 도기 1상자 평균 5전 상자 5전 모포(ブランケツト) 100근 1전 도기 1가마 평균 5전 2전 조모( ), 100근 2전 전조( ), 100근 2전 칠기 2전내외 내외 모포( )등 면모포( ) 100근3전 쌀, 콩 1섬5전 오두표 ( ) 2전 견포( 絹 ) 100근 3전 쌀, 콩 조선표 ( ) 4전 소면( ) 100근 50전 일본술 1통 6전 7전 비고 해관창고의 수수료 중 술통 혹은 상자로 별도의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 모든 제품은 치수에 따라 영국 1파운드에 5전이다. 푸대나 항아리로 다른 것과 금새 구별되는 제품으로 별도 항목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 은 무게에 따르며 이 경우는 100근에 8전으로 한다. 인천항은 아직 힘든 일이 많은데, 교육사업이 발달하지 못하여 학교가 많 지 않은 것이 그 중 하나다. 우리가 보기에도 적다고 느끼는 학교는 그 숫자 가 불과 2~3개에 지나지 않으니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53

54 인천영어야학교 4~5년 전 인천에 있는 청년들이 서로 의논하여 영국인 체스, 던컨씨를 초빙하여 영학사( )를 조직하였다. 영사관내에 임시 교사( 校 )를 열 어놓으니 배우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 후, 던컨씨가 돌아가게 되어 잠정 적으로 교사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메이지 24년(1891) 1월에는 다시 필요 성을 절감하여 미국인 의사 랜디스씨를 초청하고 다시 영학사를 세워 인천 영학사( )라 하였다. 배우러 오는 청년도 거의 40여 명에 달했 다. 그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 열심이었고, 학생들의 성적도 날로 높아져 학 교도 날로 융성하여 갔다. 그러나 그 해 9월이 되어 랜디스씨가 영국교회부 속으로 한 학사를 세우기에 이르러 잠정적으로 학업을 쉬게 되니 학생들 대 부분이 랜디스씨의 교사로 갔다. 그 뒤 사정이 있어 랜디스씨가 교사를 닫 게 되자 뜻있는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여 히라오( )에게 요청해 인천영학사를 다시 일으켰다. 지금의 영어야학교가 바로 이것이다. 히라오 ( )씨는 본래 고등상업의 학과에 정통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심일 뿐 아 니라 친절하기도 하니 배우러 온 학생들 모두가 좋은 선생을 얻을 것을 기 뻐하였다. 가르치는 사람이 생겼고 배우려는 사람도 열심이니 인천항에서 영학의 신기원을 이루는 것은 여기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인천항의 청년자제는 거의 100여 명이 되는데 인천항 장래와 영학 ( )과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지금부터 그 배움을 찾고 이는 자가 겨우 히 라오( )씨의 제자 20여 명에 정도에 지나지 않으니 인천의 장래를 생각 하면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인천공립소학교 메이지 21년(1888)에 처음으로 인천공립소학교가 세워졌다. 그 자금의 대부분은 거류지 의회와 뜻있는 사람들의 출자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한다. 54 역주 인천사정

55 오늘날 이 학교는 고다이( 高 ), 진죠우( )의 두 학교로 되었다. 학과 는 대체로 일본에 있는 여러 학교와 같았다. 교실의 정리 및 교육 방법 등이 조금 유감이지만 해외에서의 유일한 일본소학교로서 만족스럽게 생각된다. 나는 일본 소학교의 결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본다. 몇 명의 학생들을 붙잡고 시험삼아 자신의 조국 일본의 기후 풍토를 묻거나, 또 일본 역사를 묻거나, 그들에게 애국심과 큰 관계가 있는 일본의 후지산( )을 묻고 비파호수( )를 묻고, 그들에게 일본정신과 여기에 비교되는 벚꽃에 대해 물어본다면 책을 읽은 것 외에 능히 그 질문에 답하는 자가 과연 몇 명 이나 될까? 이처럼 어린이들에게 일본인이 되는데 필수적인 교과를 가르쳐 충분한 효과를 거두는 것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우리처럼 해외에 있으면서 초등학교 교육에 종사하는 일도 이처럼 어렵 다. 해외 땅에 교사와 교실의 비품도 뜻한 바대로 완전히 구비되어 있고 교 장과 교원도 훌륭한 사람이 갖추어져도 항상 교육상으로는 많은 유감스러 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와 교실의 비품도 매우 불완전한 우리의 형편은 거류국인이 자제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 본다. 다음의 표를 살펴보자. 고다이소학교 학생 (32명) 26명(남자) 6명(여자) 진죠우소학교 학생 (77명) 54명(남자) 23명(여자) 위에서 보면 재학 아동은 겨우 109명에 불과하여 학교에 가야 할 연령의 아동 중에서 취학하고 있지 않은 아동이 150명이나 있다. 이로 보건데, 거 류 일본인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 가? 거류 일본인의 교육사업을 위해 자금을 출자하는데 인색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몇 년 후에 조선인과 같은 일본인이 속출할 때는 거류민 다수가 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교장은 쓰미오 角, 이시가와( )출신, 교원은 야마타( 景, 아이치( )출신, 야마타 宮, 아이치( )출신, 가와구 치 口 光, 아이치( )출신, 나가토메, 나가사키( 岐 ) 55

56 출신 등이다. 인천에는 일정한 종교가 없다. 혹시 있다하더라도 이름 뿐이다. 불교 일본 교토의 본원사( )가 인천에 지원( )이 설치되었기는 하지 만 그 중요 역할이라고 한다면 일본을 대상으로 하여 선남선녀( 男 ) 를 가르치는 역할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찰의 종소리는 밤낮으로 들리 지만 조선인을 대상으로 포교하는 큰 사업은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기독교가 조선 내지로 흘러들어 날로 번성한다는 말이 들려오니 매우 유감 스러운 일이다. 본원사 지원의 여러 관계자들은 왜 멀리 바라보지 못하는 가? 기독교 기독교는 경성을 통해 조선 8도에 전교되고 있으나 인천과 같은 곳은 최 근에 들어서야 겨우 교회가 세워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영국성공 회파에 속한 선교사 제시요츠 코프 외에 여러 명이 있다. 전도의 첫 단계로 서 의사 랜디스씨가 자선병원을 열어 조선인과 중국인을 치료하면서 한편 으로 전도, 포교에 종사하였다. 그 세력이 매우 커져 새로운 흐름이 이는 것 같다. 분명히 이 땅에서 이후 큰 세력이 될 것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인천 항을 방문하는 자는 빨간 기와의 큰 교회당이 시가지 뒤쪽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가 영국신교회당이다. 프랑스 선교사가 전 도한 카톨릭은 그 세력이 매우 미미하다. 56 역주 인천사정

57 병원 인천항의 병원은 공립병원과 강제병원( 强 ) 두 개가 있다. 공립병 원장 고죠[ 古 管, 분고( )출신]과 강제병원장( 强 )인 이테 다(, 오사카출신)는 모두 학술경험이 풍부하여 거류민의 생명을 맡길 만하다. 그리하여 고죠( 古 )씨는 관리와 신사 환자가 많고 이테다( )씨는 상공업 환자가 많다. 이로 두 사람의 사람됨이 어떠한 지 알 수 있 을 것이다. 문명적인 도회라는 점에서 인천항은 조선의 1부 3항 중 제일이라 할 수 있다. 인천활자소, 조선신보, 제물구락부, 인천정미소 등이 인천의 문명적 인 도회 체면을 유지하는 데 힘쓴 바가 적지 않다. 인천활자소 메이지 22년(1889) 가을에 고난( 江 南 ) 등 몇 명이 의논하여 천 수백 여원으로 활자인쇄소 하나를 인천항의 각국거류지 제19호에 설립하여 널리 활판인쇄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인천활자소의 시작이며 조선에서의 활자소로 도 처음이었다. 인천항이 문명화된 도회로서 부끄럽지 않게 된 것은 이때부 터 시작된다고 하겠다. 대개 활자인쇄사업만큼 사회의 발달과 상업 성장에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없다. 인천활자소는 인천항의 상인들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인천활자소가 인 천항 상업발달로 인해 많은 이익을 남긴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인 천활자소는 더욱 발전하여 규모를 확장하고 업무를 넓혀 사회 필요에 응하 고자 한다. 이 활판소의 주주는 모두 9명으로 카미( ), 오타니( 谷 ), 쿠마모토( ), 헤이쯔( 九 ), 히라오( ), 시마우치( 內 ), 아소( ), 사노( ), 아오야마( 57

58 ) 등이다. 조선신보 메이지 23년(1890) 1월 28일은 인천에서 기념할 만한 날이라고 할 수 있 다. 인천항이 문명적 도회임을 세계에 표명한 유일한 기관인 조선순보 및 조선순보 의전신 인천경성격주보( 京 隔 ) 는 인천항에 거 류하는 상인의 필요에 따라 전도장대한 희망을 가지고 이날 인천에서 태어 나게 되었다. 아! 이러한 하나의 새 신문이야 말로 단지 조선 및 인천에 최 초의 신문 36) 일 뿐 아니라, 나아가 해외에서 일본문자로 된 신문 중의 선구 가 되었다. 당시 고난( 江 )씨의 발간 서언은 다음과 같다. 36) 여기서 조선 및 인천에 최초의 신문 이라는 부분은 주의를 요한다. 왜냐하면 조선 최초의 신문 은 한성순보( ) 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기 때문이다. 조선정부는 1883년 8월 17일 정부 내에 출판사업을 위해 통리아문(통리아문) 내에 박문국( 局 )을 설치하고 일본으로 부터 인쇄기계와 신문용지를 구입하여 1883년 10월 30일 순간( 刊 )으로 한성순보 를 간행하 였다. 비록 관보( 官 ) 형태이기는 하였지만, 근대적인 신문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 신문은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의 여파로 군중들의 습격을 받아 박문국 건물이 불타 창간 14개월 만 에 폐간되고 말았다. 33) 이후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이 간행됨으로써 조선도 본격적인 신문발행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인천경성격주상보( 京 隔 ) 의 발행은 일본인의 일본을 위한 신문이다. 처 음 이 신문은 월 2회씩 발행하다가, 1891년 9월 1일 제호를 조선순보( ) 로 바꾸면서 월 3회 발간하였다. 1892년 4월 15일부터는 다시 조선신보( ) 로 제호를 바꾸고 주간 으로 발행하였다. 이들 신문들은 주로 인천과 경성의 상업 소식이나 무역에 관련된 경제기사를 기사로 삼은 경제지 성격을 띠었다. 그리고 이들 신문들은 개인이 경영하는 형태로 운영되었지 만, 일본 정부(외무성)의 보조금을 받았던 것으로 보아, 일본 정부의 대조선 정책 혹은 일본 거류 민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무단 침 범하여 정변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 호외( )를 발행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때의 호외 발 행은 조선에서 간행된 신문들 중,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최초의 호외 발행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그 내용도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그와 같은 추측을 가능케 한다. 33) 참고로 인천에서 발간된 최초의 국한문 신문은 대한일보 이다. 1904년 3월 10일 창간된 대한 일보 는 지역주민을 겨냥한 최초의 상업적 목적을 가진 신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일본인 ( 谷 )에 의해 발행된 신문이므로 인천 지역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대한일보 는 발행 1년도 지나지 않아 1904년 12월 1일 최종호를 내고, 신 문사는 경성( 京 )으로 옮겨갔다. 58 역주 인천사정

59 상보발행에 대한 의견 우리 인천경성격주상보 의 견본호가 나왔을 때, 그 내용을 허가 받은 후 에 그 달부터 제1호를 발행하여 광고예약을 하기도 하였는데, 예정된 기일 을 어기지 않고 이번 호의 발행허가의 소식을 접하고 제1호를 발행하게 되 었다. 상보발행의 취지는 이미 개진한 바와 같이 어두운 조선무역에 한줄기 새로운 광명을 비추어 주려는 것이다. 만약 상보가 이러한 빛의 역할을 하 여 사람들에게 조선무역 및 조선의 정세에 광명을 주는 기관이 되고자 한다 면 기사가 무엇보다도 정확하고 진실되며 또 유용하고 필수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본지 제호( )와 같이 첫째는 인천과 경성의 상업 현황과 물가, 둘째 조선의 국세( 國 )와 백성들의 상황, 셋째 또 각 지방의 여러 소 식 중 상업에 관한 것 및 세상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스스로 수집하고 채택하여 기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안팎의 여러 신문들을 발취하여 종이를 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작은 사건을 부 풀려 기사화 하여 신문을 사려는 사람을 찾지 않을 것이며 그림을 삽입하고 소설을 게재하여 일반 사람들과 아녀자들을 위한 기쁨만을 추구하지는 않 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정치상, 외교상의 사건을 헛되게 변론, 서술하거나 또는 당파 기관지가 되거나 다른 단체 혹은 개인의 행사에 대한 시비 논평 도 하지 않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면이 적고 또 발행 횟수가 너무 적어 가격이 다소 비싸다. 이는 요즘 이곳 국세의 사정으로 인한 것으로 훗날 이 땅이 발달하면 상보는 매 선편 혹은 매주 발행하거나 격일 또는 매일 인쇄 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발행의 횟수를 늘이고 지 면을 확대함과 동시에 정가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 우리의 사업 은 상업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무역을 발달시키는 데 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국가의 공익을 증진시키고 사직( )에 널리 이익을 더하는 것에 있다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최근 중요한 일은 정 치이건 교육이건, 군사이건, 농공업이건 어느 하나로만 족할 수는 없다고 하여도 그 국가 부강성쇠와 관련하여 가장 큰 관계를 기지고 있는 것은 오 직 상업이며, 특히 외국무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격주상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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