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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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1 - 숨쉬는 것은 썩지 않는다 새로운 시각에서 본 칭의론 김명호 1998 삼육대학교 부설 신학연구소

2 - 2 - RIGHTEOUSNESS IS LIFE A New Look at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Myung Ho Kim 1998 Institute for Theological Research Sahmyook University Chongnyang P. O. Box 118 Seoul, Korea Tel: Fax: [email protected]

3 - 3 - 목 차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5 제 1 장 기독교의 맹점 10 제 2 장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존재 양식( ) 의 기념 창조주로서의 기념 심판주로서의 기념 생명과 구주로서의 기념 30 제 3 장 사람을 창조하심 남자를 창조하심 여자를 창조하심 결혼식과 주례사 51 제 4 장 선악과( ) 와 죽음과 죄 57 제 5 장 죄( ) 원죄( ) 도덕적인 죄들 81 제 6 장 여자의 후손 예수께서 탄생하신 방법 여자-마리아- 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닌가? 마지막 아담 99

4 - 4 - 제 7 장 중생( ) 과 예수님 103 제 8 장 선재( ) 와 탄생 107 제 9 장 창조와 의( ) 114 제 1. 창조와 의 욥기와 의 죽음과 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만물 의 곧 거듭남. 재창조. 새로운 피조물 장 제기된 질문 제기된 질문 성경이 말하는 두 생명 171 제 11 장 세 천사의 기별 영원한 복음 복음과 의( ) 의( ) 와 안식일 191 제 12 장 성화( ) 성화의 표본-성소와 성전 예수님의 생애가 보여주는 성화 성화와 죄를 짓는다는 것 214 제 13 장 어떻게 중생( ) 하는가? 왜 중생이 필요한가? 중생의 방법 중생의 결과 247

5 - 5 -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 글을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때로부터 3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겨우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금년 안으로 이 글을 탈고하는 일을 최우선 목표로 잡 았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은 채 시간은 또 흘러갔습니다. 이렇게 세월에 밀리 다가는 금년에도 이 일을 이룰 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밀려와서,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강박감과 함께 이 글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기독교는 가장 큰 종교입니다. 세계의 3대 종교가 기 독교, 불교, 이슬람교( 마호멧교) 라고 하지만, 그 교세( 敎 勢 ) 를 논할 때 기독교 가 가장 큰 것은 이론( 異 論 ) 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불교 인구도 많은 것이 사실이겠으나, 온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골고루 전파되어 교세를 확장한 기독교와는 비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이런 고등 종교를 믿고 있는데도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기독교 국가들의 도덕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도록 어지럽고 부패해 있습니다. 기독교 국가의 대표 격인 미국의 도덕성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땅에 떨어졌으며, 심지어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현대 문화의 한 형태라고 해석하면서 개혁의 의지를 보 이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적 형태에 편승하고 동조하려고 하는 인상을 줍니 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서울의 밤거리를 나다니면, 붉은 불을 켠 십자가가 왜 그렇게 많은지요! 그것이 거의 모두 교회당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약국 십자가 까지 보태어 서울의 야경은 십자가 경치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사 람이 많다는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의 도덕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중생( 重 生 ) 과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많은데 사회는 왜 이런

6 - 6 - 모습일까요?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세상의 모습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언하셨지만, 예언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 니라, 이렇게 될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에 예언한 것이지요. 우리가 예언에 대 하여 바른 이해를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예정 ( 豫 定 ) 하시기보다는 예언( 豫 言 ) 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종말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 상 역사의 진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보시고 그것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 사 46:10), 사람들이 그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찾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요 13:19, 14:29)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언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 말은 인생이 이런 결국으로 치닫는 것을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예언을 깨달아서 때에 합당하게 대처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 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 ( 딤전 1:18) 고 권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혼란한 것은 예언을 따 라 선한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인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두가 이기심으 로 신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믿지 아니하면 이기심이 지배하는 신앙을 하게 되며, 그렇게 신앙하면 소위 신앙의 이름으로 가장 이기적인 잔 인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기독교가 이 이기심을 부축이고 있지 않습니까? 말로는 사랑과 희 생을 나타내면서도 실제적인 사건을 직면할 때는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발상 으로 대처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찍부터 썩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의 역사를 보십시오. 종교로 인한 전쟁이 가장 잔혹하지 않습니까? 이 전쟁에는 기독교 의 몫이 아주 큽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이런 종교의 배리( 背 理 ) 를 지적하셨습 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치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 이 너희를 출회 ( 黜 會 ) 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 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 요 16:1, 2) 이 예언의 말씀

7 - 7 - 이 정확한 것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예언이 적용 되고 있으니 인간의 무지가 하나님의 진리를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습니 다. 이기심! 이기심이 없어져야 진짜 신앙인이 됩니다. 이기심이 없어지도록 예수의 복음이 설교되어야 하고 깨달아져야 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진정으 로 예수의 복음을 깨달으면 이기심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기심은 자기 본 위로 예수를 믿을 때,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을 때보다 더 강하게 발동되는 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계시하는 예수 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한 예수를 믿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불법을 행하는 자로 판결될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선지자 노릇 한 사람과, 권능을 행한 사람과, 귀신을 쫓아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 7:21-23). 이 모두가 P 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이지요. 이적을 좇아 이리저 리 몰리는 예수쟁이들은, 죄송합니다만, 아마도 거의 전부가 이기심을 좇는 신 앙인들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이적은 이기심에서 해방되는 신앙을 하는 것 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예수를 바르게 믿는 그리스 도인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내[ 自 我 ] 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내가 죽 고 없는데 살아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계시한 너무나 확실 한 사실인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자기가 살아 있어 서 예수를 믿고 선을 행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여 자기가 생각한 예수를 믿으며, 또 강단에서 그런 예수를 양산 ( 量 産 )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다 른 예수 요, 다른 복음 이며, 다른 영 입니다고후 ( 11:4). 이렇게 자신이 생 각한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이런 우상 숭배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것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 ( 계 18:2) 고,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자 ( 계 14:8) 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8 - 8 - 예수의 이름으로 이기심이라는 귀신을 섬기고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 까? 나는 사람들이 바른 복음을 깨닫도록 도와야 되겠다는 소리를 마음으로부 터 들으면서, 이 글을 써야 되겠다는 마음의 눌림을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독 자들 중에서는 또 하나의 다른 예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 아니냐고 염려하시 는 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전체를 샅샅이 대조하여서 그 잘못된 점을 밝히시는 공부를 스스로 하시면 그 또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엘리후의 마음처럼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 같고 새 가죽 부 대가 터지게 됨 같 습니다욥 ( 32:19). 이런 부담을 안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 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 바른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쓸 수 있도록 하늘의 지혜를 구하여 기도하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보니 심히 건방진 것 같아 스스로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나 나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은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거부감이 생겼다면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일을 중단하시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분명 온 세상을 환하게 할 영원한 복음의 내용계 ( 18:1, 14:6) 을 독자들 에게 설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도록 기도하시면서 읽으 시고, 전정으로 생명의 복음을 깨달아 이기심 없는 생명의 봉사자가 되시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이르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1995년에 이미 나는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3년이 지났다고 말 했습니다. 이것을 탈고하고 필자의 교정을 끝낸 것이 1996 년 4 월이었는데, 지 금은 1997년 6 월입니다. 글을 써도 출판하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삼육대학교 신학과 남대극 교수의 도움으로 신학연구소의 이름으로 출판 할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신학연구소와 삼육대학교 당국에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이 글이 읽는 분들에게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분명히 밝히는 길잡이가 되고, 죄와 의의 성경적 의미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역할을

9 - 9 - 감당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자주 듣는 말인 믿음으로 말미 암는 의 와 성화 등에 관한 바른 개념이 정립되어서 남은 자손으로서의 신앙 이 확실해지고 돈독해지며,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영원한 복음 기별을 바 르게 증거하는 능력 있는 도구들이 되어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세상을 준비시 키는 역군들이 되는 기쁨을 함께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이 책의 출판을 도와주신 분들과 글을 쓰는 데 협력해 주신 여러분들과 하나님께 감사 를 드립니다. 저 자 김 명 호

10 제 1 장 기독교의 맹점 오늘날 기독교는 도덕적 종교이면서도 도덕적이지 못한 모순 속에 존재하 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이 선교 보고를 하시면서, 모슬렘들 은 기독교를 가장 부도덕한 종교로 여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란 적이 있 습니다. 그 목사님이 말하는바 모슬렘이 기독교를 부도덕한 종교로 치부하는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첫째, 기독교인들은 술을 마신다. 둘째, 기독교인들은 돼지고기를 먹는다. 셋째, 기독교인들은 가음을 한다. 이것은 물론 그들의 표준에 의한 것이지만, 이런 표준에 의해서 생각해도 기독교인들은 절제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 특히 개신교가 도덕성을 너무 많 이 상실한 것같이 느껴질 때, 그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머리 말을 대신하여 드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에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기독교 국가들의 도덕적 실상은 모슬렘들이 기독교를 그렇게 평가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슬람교 국가들은 기독교 국가들보다 훨씬 도덕적 인 것 같은 인상을 가지게 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비하 심리일까요? 우리 시대의 기독교는 이것을 고정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얼마 전에 우리는 참으로 경악할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대

11 학 교수인 박사와 그의 부친 사이에 있는 종교적 갈등, 즉 불교와 기독교의 갈등이 그 교수로 하여금 부친을 죽이게 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원수라도 사랑 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교훈은 실천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 자기 아버 지를 살해하는 일에 종교적 갈등이 개입되어 있다니, 정말 기절할 노릇이 아 닐 수 없습니다. 각설( 却 說 ) 하고 모슬렘들이 말한 것은 그들이 도덕적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세계적 종교들은 다 도덕적인 종교입 니다. 불교나 이슬람교나 유교나 힌두교, 그리고 비록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라 도 각 나라의 큰 종교들은 다 그러할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 마땅하지요. 그래 서 기독교도 이런 도덕적 종교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 다. 그러나 성경의 계시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가 도덕적 종교의 고급 종교로 여겨지는 것으로 만족하다면, 이것은 분명 기독교의 타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도덕적 종교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이론 적으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론이라는 것이 계시 종교임을 강조하는 데서 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종교의 경전들은 절대자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 탐구의 결과로 경전이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 른 종교는 그들 나름대로 경전의 권위를 말하는 논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슬 람도 코란을 마호멧이 받은 계시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불경이나 힌두 교의 경전들의 출처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으므로 감히 용훼( 容 喙 ) 할 처지 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에 의하 여 주어진 것을 믿는 계시 종교라는 것만으로는 기독교의 차별성을 주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주가 있다는 것도 역시 다른 종교와의 차 별을 드러내는 내용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주라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의 독단적인 주장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

12 다. 우리는 계시의 책인 성경에서 기독교의 유일성을 분명히 찾아야 하며, 계 시는 또한 그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알고 기독교의 신 앙을 확고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특권에 속합니다. 사실 현대의 기독교 가 도덕적 종교이면서 도덕적이지 못한 이유는, 성경이 계시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면만을 강조한 데 연유된 것이 아 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현대주의 신학은 창세기 1-3 장을 하나의 설화 ( 說 話 ) 로 간주 ( 看 做 ) 합니다. 즉그것은, 사실이 아니라종교를, 설정( 設 定 ) 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만든 하나 의 신화 내지는 전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는 하나님은 더 이상 참으로 창조주( 創 造 主 ) 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자존자 ( 自 存 者 ) 도 아 닐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을 창조자요 자존자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를 설정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가설일 뿐일 것 입니다. 그런데 현대주의 기독교는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 경이 말하는 내세 ( 來 世 ) 는 현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제시도니 것이고, 기록된 내용들은 신화적( 神 話 的 ) 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비신화화 ( 非 神 話 化 ) 하여야 그 본래의 의미를 찾는다고 주장합 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도 신화적 표현일 뿐이며, 그것이 주는 진정한 메 시지는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표현을 빌어서 다른 교훈을 주려는 데 있다고 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은 사신론 ( 死 神 論 ) 을 거쳐서 해방신학( 解 放 神 學 ) 으로 발전하면 서, 하나님이 죽었으니 인간이 스스로 성숙하여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로 인격을 격상 (?) 시키고, 교회는 인간을 사회와 국가의 제도 에서 해방시켜야 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의 당연한 결과로 종교의 다원화( 多 元 化 ) 를 제창하는 신학이 대두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종교의 다원화를 단적으로 말하 면구원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동질( 同 質 ) 의 구원이 있

13 다는 외침이지요. 결국 이런 주장은 기독교와 여타의 종교가 동질이라는 것을 기독교 자체에서 외치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현대와 같은 복잡한 세계에서 공생할 수 있다는 발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고 그런 사상을 발전ㆍ전개시키다 보니 인간적 발상 이 하나님의 계시를 대신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와 생명의 종 교가 한낱 도덕적 종교로 격하되면서, 오히려 도덕적이지도 못하고 복음도 잃 어버린 기형아가 된 것이 현대 기독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도 열심히 권선징악( 勸 善 懲 惡 ) 을 강조하고 외치는 종교가 되 어서, 여타의 도덕적 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권선징악이 바탕이 된 교 리와 신조를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권선징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은혜 때문에 별로 힘이 없습니다. 그런 결과로 기독교가 도덕적 힘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잘못해도 십자가 앞에 나와서 회개하 면 그 잘못은 용서되고, 징악( 懲 惡 ) 이 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권선( 勸 善 ) 의 역할도 못하고 맙니다. 이런 모습을 예수의 사랑과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라고 도장( 塗 裝 ) 을 합니다. 그래서 죄와 악이 근절되기는커녕 조장되고, 기독교는 타락 ( 墮 落 ) 의 나락( 奈 落 ) 으로 곤두박질하여 오늘날과 같은 무도덕, 무윤리의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를 단단히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말 이 지나치다고 생각되시는 독자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 나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모든 도덕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전제( 前 提 ) 는 사람이 있 다 는 것입니다. 이 있다 는 전제가 없이는 도덕적 권선징악이 성립되지 않 습니다. 없는데 어떻게 선을 권장 ( 勸 ) 하고 악을 징치 ( 懲 治 ) 합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있다 는 전제는 당연합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 종교가 놓여 있기 때 문에 권선징악의 교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의와 선 을 행하는 사람은 행복한 중에 영원히 있고,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고통 중에 영원히 있다 는 교리와 신조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14 그래서 선을 권장하기 위하여 극락과 천당이 있어야 하고, 악을 징치하기 위하여 지옥의 영원하고 무섭고 혹독한 형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상을 준다는 것보다 형벌을 가한다는 쪽이 더 빠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지옥의 고통은 또한 선을 권장 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3대 종교에 똑같이 지옥과 천당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극락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똑같이 선을 행하는 사람은 천당이나 극락에 가서 행복한 중에 영원히 살고, 믿지 않고 죄 를 짓고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 영원무궁토록 고통 중에 산다고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은 하나같이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가르침은 언제든지 사람은 영원한 존재 라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는 이런 가르침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 원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계시의 책인 성경을 경전으로 가 지고 있는 기독교는 이런 종교의 범주 안에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타락입 니다. 그것은 또한 비진리요 커다란 오류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상태를 그렇게 계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생과 영 벌을 사람이 있다 는 전제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있는 데, 예수를 믿고 선을 행하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살아 있고, 예수를 믿지 않 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살아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는 말입니 다성경은. 처음부터 이런 사상의 냄새도 풍기지 않습니다. 성경의 계시는 존재 자체와 생명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존 재와 생명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계시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도덕성은 하나님 이 존재하게 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대로 존재하는 생명적 존재들에 게 나타나는 그 생명의 생태 ( ) 라고 계시할 뿐입니다. 그런데, 생명과 존재 보다 도덕성에 대한 것을 강조하며, 구원과 영생이 마치 도덕성을 회복하는 결과인 것처럼 가르치면, 창조와 부활의 종교가 인간 행위의 종교로 타락하고

15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죽게 된 후에 성경의 게시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성경의 기록 연대를 보면, 아담이 창조되고 도 죽게 된 후 2,500 여 년이 지나서 창세 기를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의 시작은 창조와 타락의 이야기 입니다. 그 내용은 존재와 무 입니다. 성경의 계시는 그 시작부터 존재와 무 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사실 우리는 정말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 리는 있는 것의 세계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게 되었을 때에는 우리 주변에 모든 것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부모도 있었고, 집도 있 었고, 먹을 것, 입을 것, 등등, 우리의 필요한 것들은 이미 다 있었습니다. 인 간의 시조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도 사정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만물이 다 만들어진 후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없는 것이 정말 어 떤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없다 는 것의 한정된 개념이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없는 것은 있는 것의 반대라고 이해하면, 평범하지만 옳은 이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인류와 우주와 만물에 한정하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성경의 하나님은 이미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존재 자체로 계 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분 외에는 어떤 것도 그분이 있도록 하기 전에는 없 었습니다. 성경인 이 사실을 처음부터 확실하고 엄격하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있는 자 라고 계시합니다. 그 있는 자 이신 하 나님에 의하여 우주가 있게 되었고, 지구가 있게 되었고, 사람이 있게 된 것입 니다. 이 있는 자 이신 하나님이 있게 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 다또한. 그분이 있게 하지 않은 것은 이 우주 안에 결코 없습니다. 창세기 1-3 장은 있는 것 과 없는 것, 있게 된 것 과 있다가 없게 된 것, 또한 있다가 없게 된 것이 다시 있게 되는 것 에 대하여 계시합니다. 그 런데 없었는데 있게 된 것 을 창조 라고 하고, 있다가 없게 되었는데 그것

16 을 다시 있게 하는 것 을 구원 혹은 구속 이라고 계시하고 있으며, 있다가 없게 된 것을 영원히 없게 하는 것 을 심판 이라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말이 꽤나 까다롭게 꼬여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단순한 진리입니다. 다시 정리하 면, 창조는 없는 것을 있게 한 것이고, 구원은 있게 되었다가 없게 된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인데, 그래서 구원을 재창조라고 하고, 구원받은 것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며, 심판은 이러한 재창조를 거절하는, 즉 있다가 없게 된 것들이 다시 있게 하는 것을 거절할 때, 그 거절한 대로 영원히 없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처음 기록들이 이것을 계시하고 있는데, 그것을 하나의 설화( 說 話 ) 로 보면, 이런 계시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결과로 하나 님의 계시 대신 인간의 도덕과 학설이 종교의 내용을 차지한 것은 당연한 결 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 가장 기초적이요 근본적인 성경의 계시 의 의미를 간과( ) 한 것이 바로 기독교의 치명적인 맹점입니다. 그래서 창 조와 생명의 종교가 도덕과 행위의 종교로 전락하였으며, 그러고도 도덕적이 지도 못하고 생명적이지도 못한 상태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생명적이지 못 한 것은 창조의 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요, 도덕적이지 못한 것 은 창조와 부활의 도리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십자가의 용서를 강조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정쩡한 상태에서 진정한 깨달음으로 말미암 는 자유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 라 ( 요 8:32) 창세기 처음부터 계시하는 없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나, 있다가 없게 된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이나, 이렇게 다시 있게 된 것을 영원히 있게 하는 것은 모두 있는 자라는 뜻인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특히 인류를 구 원하기 위하여 생명과 존재로 사람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

17 어집니다. 창조 와 구속 은 그 의미상으로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 하는 구원의 전제( 前 提 ) 는 있는데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 가 아니라, 하나 님이 있게 한 대로 있기를 거절하므로 있다가 없어져 버린 존재 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일관된 계시이며, 구원의 진상을 분명히 아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게시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는 아주 중요한 계시입니다. 이제 하나 님의 이름 여호와 에 대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에 보려고 합니다.

18 제 2 장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성경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름은 그 것을 지닌 자의 존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얻는 것은 존재 를 얻는 것이고, 이름을 잃는 것은 존재를 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잃어버린바 됨이라 ( 전 9:5) 이 말씀은 사람이 존재를 잃어버린 사실을 가리키는 말씀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름 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 다( 전 7:1) 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그 존재의 아름다움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 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시 8:1,9).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아 름다우신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사 35:2). 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이 여호와 라고 성경은 계 시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이름도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이름과 하나님 자신이 동일시되어 계시되고 있습니다. 보 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 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같으며 ( 사 30:27), 이 말씀에 하나님 자신과 그 이름이 온전히 동일시되어 있지 않 습니까? 원방에서부터 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인데, 곧 이어 그의 진노,

19 그 입술, 그 혀 등의 표현은 이름과 실체가 동일시된 표현임에 틀림없습 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를 아는 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 자체 를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 호 6:3).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 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 호 4:6). 이 지식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호세아는 4 장 6 절에서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 고 말하고, 6장 3 절에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고 권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기도에서 영생 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요 17:3) 라고 말씀하심으로 호세아 선지자의 이 기별을 뒷받침하셨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실 아무리 사람을 알지라도 이름을 모르면 그 사람을 모르는 것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그를 소개해 줄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 여 호와를 알지 못하면 우리 하나님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못할 것도 뻔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가 6,823 회나 사용되었는데, 하 나님 이라는 히브리말 엘로힘은 2,550 회만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서 당신의 이름에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할까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 יהוה, YHWH) 라는 글자가 나오면 그것을 그대로 읽는 대신에 주( 主 ) 라는 말인 아도나이 ( ד י ) 라고 읽었습니다. 그런 결과로 여호와 라는 히브리 글자 요드() י 헤( (ה 와우() ו 헤( (ה 는 글자만 있고 발음은 잃어버렸습니다. 그래 서 사람들은 이 네 글자에 아도나이라는 발음에 있는 모음점 ( 母 音 點 ) 을 붙여 서 발음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여호와 ( ה ) 라는 발음입니다. 이렇게 발음이 만 들어진 후에 교회에서는 이 발음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 나 최근에 신학계에서는 이 이름의 발음을 바로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원래

20 발음이 야훼( ה ) 라는 것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에는 야훼라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여호와라는 발음이 익숙하고 친근합니 다. 그 발음을 바르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 이름이 뜻하는 바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 이름을 모세에게 특별히 게시하시면서 그 의미를 밝혀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는 호렙산 기슭에서 양을 치다가 떨기나무 에 불이 붙어 타지만 나무는 타지 않고 불꽃만 보이는 것을 구경하기 위하여 접근하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일을 맡 아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합니다. 출 3:11-15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 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 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 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 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 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 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 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 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21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은 것은 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질문입니다. 왜 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이름은 존재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이 질문은 당신은 어떤 존재입니까? 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 님은 이름을 말하기 전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고 대답하시고, 그것이 당신의 이름의 뜻임을 밝히신 후에 여호와는 나의 영원한 이름 이라고 다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라는 말은 영원 지존자 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있는 자 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있는 자 입니다. 그러므로 여호 와 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는 모두가 근본적으로 없는 자 입니다. 그 없는 것 을 있는 자 이신 여호와 하나님 이 있게 하시므로 있게 된 것일 뿐입 니다. 성경은 창세기의 처음부터 이 사실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중요한 교훈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와 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억할 표호 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 호 12:5). 성 경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 ( 記 念 ) 이라고 한 곳은 여러 곳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대대에 이르리이다 ( 시 102:12). 여호 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기념이 대대에 이르리이 다 ( 시 135:13). 여호와여, 주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우리가 주를 기다렸다오 며, 주의 이름 곧 주의 기념 이름을 우리 영혼이 사모하나이다 ( 사 26:8). 구 약에서 특히 하나님의 이름 과 관련하여 기념 이라는 말이 사용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제케르 ( ר ) 라는 단어입니다. 호세아 12장 5절의 기념 칭호 와 이사야 26장 8 절의 기념 이름 은 제케르를 번역한 말입니다. 시편 34편 4 절에는 이 말이 이름 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5 절의 표호 라는 말도 제케르입니다. 이름 이라고 번역된 말은 솀( ם ) 인데, 이 말과 평행을 이루는 단어가 이 제케르입니다.

22 제케르는 기념 이라는 것이 본뜻인 듯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곧 기념 입니다. 이 기념 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상식으로도 알지 만 성경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 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고 하신 말씀 안에 기념 의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즉 기억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무엇이 있는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기억한다 는 것을 바꾸어 말 하면, 잃어버리지 않는 것 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잃 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기를 원하실까요? 모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 까? 라고 물은 것은 자기를 애굽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실체에 대하여 물은 것 입니다. 이론 물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 라고 대답하신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계시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이름이 기념하는 것 이 무엇일까요? 이제 그것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존재 양식 ( ) 의 기념 여호와 라는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 곧 자존자 ( ) 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있는 자 라는 뜻이지요. 이 이름은 우주 가운데 오직 여호 와라 이름하신 분만이 있는 자요 그 외의 것은 없다가 여호와 라 이름하 신 하나님이 있게 했을 때 비로소 있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합니다. 여호 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그 존재의 원인과 존재 근거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 실을 선포하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이 거룩하신 자 ( 사 5:24; 잠 9:10, 등) 로 불리시는 첫째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에 있어서 우리와 전혀 다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다 는 말을 쉽게 말하면 다르다 는 말이 아닙 니까? 어떻게 다른지는 이미 아시지요? 우리는 우리의 존재 원인이 나 밖

23 [ 外 ] 에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내가 있고 싶어서 있어진 것이 아니요 스 스로 있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에 의하여 있게 된 자입니다. 우주의 삼라만상 ( 森 羅 萬 象 ) 도 그렇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 호와 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거룩 하다 는 찬미를 영원히 아름답게 들으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본질적인 면을 깨닫고 시인하는 존재들이 그분을 우리와 다르다고 고백하는 찬양이기 때문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라는 것을 알고 그 이름 을 부를 대 나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 이라는 진리를 고백하는 것이 됩 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원인을 알고 자신의 존 재를 확인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이것 을 알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근거를 모르는 사람이며, 근원을 밝히는 족 보가 없는 사람이고, 결국 자신은 없는 자 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를 알 때에 이런 사실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2. 창조주로서의 기념 여호와 라는 이름은, 이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 외에는 우주 만상이 여호 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창조된 자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으면 자신은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간 개개인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계시하 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후에 자세히 설명되어야 오해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근본

24 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사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 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 으며 땅을 베풀었고 사 45: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 창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 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창 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 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 시고 우리가 성경의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 이 창조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억은 우리로 여호와 라 이름 하신 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합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은 그 분이 경배 받아 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밝혀 줍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이유 는 그분은 창조주요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느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 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 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

25 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 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성경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경배 를 드리라고 말합 시 29: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 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 96:8,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 서 떨지어다. 이름에 합당하게 경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가 기념하는 뜻을 헤아려 알 때 이루어지는 경배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창조주를 경 배하라고 특별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 여호와 가 기념하는 뜻을 사람들이 바르게 기억하고 그 를 언제나 경배하였다면 무신론, 불가지론, 진화론 등이 나타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여러 가지 학설이 난무하는 것은 여 호와 를 알지 못한 일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사람의 창조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면서, 그 창조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를 확실히 기억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계시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 치입니다. 왜냐하면 이 지구상의 피조물 중에서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

26 의 이름을 기억하는 지혜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소위 여기저기 흩어져 떠돌던 문서들을 모아서 성경을 편집했다고 주장하는 학설은, 창세기 1 장에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가 없고, 2장부터 그것이 나타나기 때문에 1자오가 2장은 각각 다른 지방에 잇던 창조 설화였 고 훗날에 어떤 편집자가 그것을 모아서 성경을 편찬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도 여호와 라는 이름의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 데서 나온 인간의 학설임 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호와 라는 이름과 그 뜻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지혜의 책인 잠언은 하나님의 칭호를 93 회 사용하고 있는데, 87 회는 여 호와 를 썼고, 하나님엘로힘 ( ) 이라는 칭호는 6회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의 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여호와 를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우리의 시조 아담이 이 이름 여호와 와 그 의미를 기억하는 일에 실패하 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우리 시조는 지혜를 버렸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 의 모든 후손은 처음부터 지혜를 버리고 태어났고 그로 인하여 세상은 우상의 서식처 ( 棲 息 處 ) 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라는 이름은 그분이 바 로 창조주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기념 칭호인 것입니다. 3. 심판주로서의 기념 여호와 라 이름하신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최종적 근거입니다. 어떤 존재 이든지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때, 여호와라 이름

27 하신 하나님은 그런 주장을 하는 자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해준 존재를 반 납하라는 요구를 할 권리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주장하는 자에게 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존재를 반납하면 그런 주장을 한 자의 존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 자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니, 하나님이 준 존재를 반납해야 할 것 이며, 그렇게 하고 나면 그의 창조된 존재는 없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 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가 존재한다고 했으니, 하 나님이 창조해 준 존재를 반납하고도 정말 존재하면 그도 여호와가 되지 않겠 습니까? 왜냐하면 그도 스스로 있는 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은 있 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결코 자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그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 들은 의미상으로 없는 자들일 뿐입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존재 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처음부터 경고하셨습니다. 이 런 주장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불가불 그 존재를 반납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가 여호와가 준 존재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판이요, 그 결과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즉, 창조 이전 상태로 환원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흙으 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시조 아담에게 일어난 일로 분명 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창 3:4-7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 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

28 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어 라고 한 말은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 어도 너희는 존재할 수 있다고 속인 것입니다. 여자는 이 말에 속아서 선악과 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그도 먹으므로 그들이 함께 하나님과 상관없이 존재 하는 자가 되었다고 주장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존재와 생명을 반납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이때에 아담은 죽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죽 음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은 그들에게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당은 너로 인하여 저주 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은 네게 가 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 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죽는다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하십 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결 국 그것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까? 원래 없었는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므로 있게 된 것이 다시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존재하기를 거절한 자들에게서 그 존

29 재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존재를 반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이 하나님이 주신 존재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없어지는 것 은 필연적인 것이지요. 이런 사실은 모든 인격적인 피조물에게 동일하게 해당 됩니다. 천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유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사 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얼굴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여기서 계명성( 啓 明 星 ) 이라고 번역된 말은 라틴어 성경에 루치페르(Lucifer) 라고 번역되었고, 영어는 이 말을 고유명사로 받아서 루시퍼(Lucifer)라고 했습 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이것을 루스벨 또는 루시벨 이라고 번역합니 다. 루스벨은 최초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의 우두머 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단입니다. 창 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루스벨이나 아담이나 하나님이 있게 한 처소를 떠난 것이 동일합니다. 그 리고 그렇게 떠난 이유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도 동일합니다. 이것은 하 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기를 거절한 것인데, 곧 창조를 거절한 행동인 것입니

30 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게 한 그들의 존재와 생명의 반납을 요청하셨으며, 이 것이 심판이요 그 결과는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 다그러니까.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자세히, 더 많이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는 이른 진리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기념 칭호이다 라는 말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계시입니까? 4. 생명과 구주로서의 기념 우주 삼라만상은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여호와 라 이름하신 하나님을 의 존하여서만 있을 수 있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 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중에 우리 가 광명을 보리이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시편 36편 9절의 말씀과 요한복음 1장 4 절의 말씀은 같은 내용입니다. 우 주에 생명을 가진 것들, 곧 천사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간에 그 생명 의 원천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생명이요 존재이시 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영원히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생명이시고 빛이 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뜻하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처음부터 사람을 살리신 분은 예수님이셨습 니다.

31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언제나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첫 사람 아담이 창조할 때에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 곧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살려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을 지닌 존재로 있을 수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그는 언제든지 사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엡 1:1-6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 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 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 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 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신 것입 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로 창조하셨다 는 말입니다. 딤후 1:9,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 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

32 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딛 1:2,3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 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 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 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하게 된 그 사실을 사람이 외면하고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자라고 주장하는 행동을 했을 때에 사람은 영원한 사망 곧 존 재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 버리게 되었으나,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구원하 여 다시 존재할 수 있도록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의 구체적인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에게 분명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 사람뿐만 아니라 만상이 그렇습니다만) 언제든지 오직 예수님 안 에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때 전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계획 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 곧 여호와가 우리의 유일한 존재 근거라는 말 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실을 사람이 존재를 잃어버렸을 때 예수께서 오시므로 사람들에게 확인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누구든지 여호와 라 이름하신 하나님 없이는 존재도 생명도 없음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여호와가 생명과 그의 존재의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타락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 께로 돌아오면 생명의 존재로 구원되는 것이 이 여호와 라는 기념 이름에 이 미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라는 것은 영원토록 동일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주로 오신 분의 이름 예수 는 구원하시는 여호와 라는 뜻입니다.

33 사 43:10-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 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과연 태초부터 나는 그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내가 행 하리니 누가 막으리요? 요 8:23,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 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 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 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아리라. 요 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위에 인용한 요한복음의 말씀들은 이사야 43장 10-13절에 나타난 구원하 시는 여호와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구원하시는 여호와가 그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이 구원하시는 여호 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죄 가운데 있으며 그 죄 중에서 망할 것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비로소 존재하고 살아갑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셨으며, 인간이 무존재가 되었을지라도, 그가 구원하는 여호와로 오셔서

34 여호와 안에서만 살며 기동하며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고백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던 것은 그분의 실 체에 대하여 물은 것이며,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계시한 것은 이 모든 것을 계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라는 이름이 가진 기념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 여호와 는 창조와 구속의 모든 것을 포함한 이름이며, 하나님이 이 이름을 발표하셨 을 때에 이 모든 사실을 계시하신 것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얼마나 굉장한 이름입니까! 여호와 는 우리가 대대로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기념 칭 호요 표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며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 다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는 말씀의 진의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여호와라는 사실에 대하여 몇 마디 더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헬라어 이에수스 ( Ἰησους ) 를 우리말로 발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수스라는 말은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 ה( וּשׁוֹ 를 헬라 글자로 그 발 음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는 히브리 이름 여호수아 의 헬라 식 발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뜻은 동일합니다. 여호수아 라는 말은 여호 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수아 라는 이름은, 모세가 그 의 수종자 눈의 아들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 로 고쳐 주기 전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이름입니다. 호세아( (הוֹ 는 구원 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에 여호와 라는 이름의 단축형인 여 를 붙여서 여호수아 가 된 것입니다. 구 약에 나타난 많은 이름들 중에 그 첫머리나 끝에 여, 야 또는 요 가 붙 은 이름은 대부분 여호와 라는 뜻이 들어가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엘 이 붙 은 이름은 대부분 하나님 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이름입니다. 엘리야 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이고, 다니엘 은 하나님이 심판장이시다 라

35 는 뜻입니다. 하나냐 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는 뜻이고, 요엘 은 여호 와가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름 중에 이런 의미의 여 자가 붙은 이름으로는 여호수 아가 최초의 이름입니다. 그 이전에는 엘 이 붙은 이름은 있었어도 여호 와의 단축형으로서의 여 가 붙은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모 세의 후계자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여 들어갈 눈의 아들 호세 아에게 최초로 붙여 주었습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인 인류를, 영원한 하늘 가나안의 참된 안식으로 인도하실 구주 예수 그 리스도를 올바르게 표상하기 위하여 그렇게 이름을 고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구원자 가 아니라, 바로 구원하시는 여호와 시라는 사실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우리가 설펴 본 대로, 이 사실을 이사야 43장 절에 예언적으로 계시하시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친히 이 사 실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생명이시요 빛이시며 바로 그분 외 에 다른 이가 없는 구원하시는 여호와 바로 그( 분) 이십니다.

36 제 3 장 사람을 창조하심 1. 남자를 창조하심 창세기 1 장은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 役 事 ] 을 기록하고 있습 니다. 엿새 동안 지구에 관한 모든 것을 완성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창조가 하 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히 계시합니다. 시 33:8,9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 를 경외할지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 다. 시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믿음으로 알게 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히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 라.

37 이런 말씀들은 성경에 아주 많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할 필요 가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1 장에서는 이 사실을 그냥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 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라는 말은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래서 창세기 1 장에는 이 가라사대 라는 말이 11 번 나타납니다. 한 번은 우리말로 이르시되 ( 창 1:28) 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ר) 아마르 (אָ 인데 말하다 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다 고 말씀하였으며,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 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시편 33편 6 절에는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다 고 기록 합니다. 기운 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힘 입니다. 그러므로 만상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여기 기운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루아흐( רוּ ) 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서 대부분 영 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살리는 영이라는 뜻 의 말씀이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요 6:63)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생 명의 힘, 곧 살리는 힘이요, 일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면서 루아흐를 사용하였습니다. 신약의 언어 인 헬라어로는 프뉴마 ( πνε ῡμα ) 라고 합니다. 언젠가 아인슈타인 (Einstein) 의 상대성 원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으면 서 E=mc 2 이라는 공식의 설명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힘(E) 은 질량 ( 質 量, 물질 =m) 곱하기 광속도 ( 光 速 度 = c) 의 제곱이라는 공식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 질에다가 빛의 속도를 제곱한 것을 곱해 주면 그 물질 전부가 힘이 된다는 뜻 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m=e c 2 즉힘을, 빛의 속도의 제곱으로 나누면 그것 이 물질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물리 ( 物 理 ) 에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과연 그런지 어떤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리를 가르치는 교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 어떤 공식은 그 역( 逆 ) 이 성립

38 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 공식은 그 역이 성립됩니 다그러니까. 힘이 물질이 될 수 있지요연금술자들이. 다른 금속으로 금을 만 들려고 그렇게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지요. 여기서 발달한 것이 화학인데, 결국 화학적 방법으로는 어떤 금속으로 금을 만들지 못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 공식을 적용하면 다른 물질로 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즉, 돌로 금을 만 들 수도 있고, 나무로도 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 은 금광을 찾아 금을 캐는 것보다 엄청나게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 교수는 내가 묻지 않은 내용까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시편 33편 6 절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다" 고 말했을 때에 " 입 기운 " 은 " 힘" 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 기운= 힘" 이 물질을 이루었구나! 라고 생각하였거든요. 과 연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 천지와 만물이라는 물질이 된 것 입니다. 사람도 이 아인슈타인의 원리를 응용하여 힘을 물질로 바꿀 수 있는 방법 을 알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결코 수지맞는 일이 아 니므로 하지 않습니다만 아직도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힘을 물질로 바꾸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식물 ( 植 物 ) 을 통하여 이루시는 탄소동화( 炭 素 同 化 ) 작 용 곧 광합성 ( 光 合 成 ) 작용입니다. 식물( 植 物 ) 의 푸른 잎이 햇빛을 받아서 녹 말을 만드는 것은 힘을 물질로 바꾸는 일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 람과 동물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사랑을 베푸십니다. 엿새 동안의 창조 과정을 도표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천지창조 첫째 날 빛 넷째 날 광명, 빛을 완성하심 둘째 날 궁창, 물 다섯째 날 궁창과 물의 생물, 궁창과 물을 완성하심

39 셋째 날 땅, 바다, 식물 여섯째 날 땅의 생물, 사람, 완성하심 땅을 하나님은 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시고, 사람이 그들의 필요 를 위하여 무엇을 더 요구할 것이 없이,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을 누리기만 하 면 되는 그런 때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이 이렇게 힘을 물질로 바꾸어 주시는 일 때문에 우 리는 현재의 생명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은 "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고 말씀하신 것입니 다. 일곱째 날 지으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심 :, 안식일을 제정하심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완성하신 후에 사람을 맨 나중에 창조하셨습니다. 사 람의 필요를 먼저 완전히 준비하신 후에 그것을 관리하고 사용할 사람을 만드 심으로 사람이 만들어야 할 것이 없도록 모든 준비를 완전히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혹시 무엇을 만들지라도 그것은 이미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개조하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태어날 수 없 는 것처럼, 스스로 전혀 없는 데서 무엇을 창조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 님이 창조해 주신 것을 누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창조해 주신 그 상태를 계 속 유지하며 잘 관리하는 것이 그에게 부여된 특권이요 책임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만드신 일을 기록하게 하신 하 나님은 창세기 2장에서 사람을 창조하신 일을 자세히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1 장에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 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어떻게 그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 장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영원하신 이름 " 여호와" 를 사용하면서 계시를 기록하 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여호와의 이름 편에서 이미 잠깐 말씀

40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장과 2장의 창조 기록 내용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면서 이 것은 각각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지방에 있던 창조 설화를 편집자가 한 데 모아서 1장과 2 장으로 꾸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 전체를 통해 볼 때 분명합니다. 이제 2 장의 사람 창조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 한 설명입니다. 이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되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 려울 것이며, 구속의 섭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깊이 읽고 바르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 창 2:7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한글 성경에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번역했는데, 더 엄밀히 번역하면 " 땅의 티끌" 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해야 합니다. 히브리말로는 아파르 민 하아 다마 ( ה ן ר ) 인데 " 아파르 " 는 " 티끌 " 혹은 " 먼지 " 라는 뜻이며, " 민" 은 "~ 으로부터" 라는 뜻이요, " 하이다마 " 의 " 하" 는 관사 ( 冠 詞 ) 요, " 아다마 " 는 " 흙" 이라 는 명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의 티끌로 만드셨는 데, 어떤 사람들은 이 " 티끌을 " 원소( 元 素 ) 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흙에 있는 원소들로 사람을 구성했다고 해석하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해석이겠지만 성경 에 있는 대로 흙의 티끌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바른 이해 일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만드신 후, 그 코에 생기 (니쉬마트, ת ) 를 불어 넣었습니다. " 생기" 는 " 살리는 기운" 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말과 같은 뜻이겠지요. 이 생기를 불어넣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곧 마지막 아담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언제나 살려

41 주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 15;45 "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태초에나 지금이나 언제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살려 주는 영이십니 다예수께서. 첫 사람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아담은 생령 곧 살 아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 생령" 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 惹 起 ) 시키고 있는데, 이 말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 줄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혼론과 관련되 어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위 영혼불멸설과 아 무 관계가 없는 말인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 생령 " 이라는 말이 네페 쉬 하아 ( ה שׁ ) 인데, 이것은 " 살아 활동하는 존재" 를 뜻하는 말 외에 다른 말 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0, 21, 24 절에 나타나는 바다나 공중이나 육지에서 살도록 창조하신 동물들을 " 생물 " 이라고 했는데, 이 말도 똑 같은 네 페쉬 하야입니다. 만일 사람을 생령으로 번역한 것이 사람의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는 말이라면 바다나 육지나 공중에 사는 모든 살아 활동하는 것들도 네 페쉬 하야이니, 영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 살 아서 활동할 수 있는 존재" 로 만들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른 이 해입니다. 사람이 고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실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지혜가 있고, 인격이 있고, 하나님의 성품이 부여된 것입니다. 이렇게 지은 사 람에게 이 생기를 불어넣음으로 사람이 생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존재가 되었 으며 총명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욥 33:4 " 하나님의 신[루아흐 ] 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니

42 쉬마트 ] 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 32:8 " 사람의 속에는 심령 [루아흐 ] 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 [니쉬 마트] 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지음이 되고 생기로 말미암아 총명이 주어졌다고 말 합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사람은 이 지구에서 거룩하신 자를 아는 유일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은 동방의 에덴에 한 동상은 창설하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각종 나무를 나게 하셨습 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두셨습니다. 그리 고 그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 다. 창 2:16,17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에 기록된 차례대로는 이 명령을 여자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명령을 하실 때에 여자는 아직 지음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은 여자를 짓기 전에 남자인 아담에게 특별히 하신 명령입니다. 이렇게 하신 데 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롬 6:23). 그러나 구약의 기록을 보면, 아직 이 지구에 " 죄" 가 들어오기도 전에, 또 " 죄" 라는 말 이 나타나기도 전에 " 죽음" 이라는 말이 먼저 기록된 것을 봅니다. 이제 막 창 조된 세계에 아직 죽음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 죽음이라는 말을 하신 것은

43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 죽는다" 는 말의 실상을 아담이 알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막 창조되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첫 사람이 아마 " 죽으리라 " 는 말의 실 상을 몰랐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 글을 성경에 기록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는 아담이 죽은 후 2,500 년 이상 지난 후에,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하였습니 다이. 글을 기록한 모세는 죽음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 알고 기록하였음이 틀 림없겠지요. 그러나 아마 아담은 그 실상을 몰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은 죽음의 실상을 가장 잘 알고 계셨지요. 그러므로 이 것은 하나님이 아시는 그것을 " 나타내신" 것입니다. 계시해 주셨다는 말입니 다계시는. 계시를 받는 그 사람이 그 당장에는 모를지라도 어떤 계기( 契 機 ) 가 오면 그 뜻을 알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 죽으리 라는 " 말의 실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담이 죽는 것의 실상을 모르는 상태에 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담의 존재의 지대한 중요성을 아담에게 확인시키 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 후로 존재하게 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한 사람씩 개별적 으로 창조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창조될 것을 암시하 는 것이며, 그러므로 아담의 존재는 아담 안에서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의 총 화( 總 和 ) 라는 것을 강력히 인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계시인 것 입니다. 즉, 아담이 죽으면 아담 하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아담 안에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된다는 것을 계시하심으 로 아담이 자기 존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중 자애( 自 重 自 愛 ) 하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셔서 지혜와 총명이 있게 한 사람 에게 최소한 네 가지 기능 ( 機 能 ) 을 주셨습니다. 혹은 범주( 範 疇 ) 라고 표현해도

44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 니다. 첫째, 욕망( ) 입니다. 즉,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정서( 情 緖 ) 입니다. 창 2:9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다고 한 표현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과 좋은 것을 먹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 나님은 사람에게 정서, 곧 욕망을 주셨다는 뜻이지요. 사실 사람이 존재하면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전혀 쓸모가 없는 존 재입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둘째, 능력 ( ) 입니다. 즉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 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 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할 마음은 태산 같은데 할 능력이 없는 것은 얼마나 답답하고 잔인한 일입 니까?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45 셋째, 자유 ( ) 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 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 任 意 ) 로 먹되 이 말씀에는 자유를 허락하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 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할 마음이 있고, 할 능력도 충분한데 할 자유가 없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래서 패트릭 핸리(Patrick Henry) 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고 외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 터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자유였습니다. 다. 넷째, 선택권 ( ) 입니다. 혹은 결정권( 決 定 權 ) 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 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에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한 그 사실을 부인할 자유 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전한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 조를 거절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곧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은 없어지고 마는 것 입니다. 즉, 창조하지 않은 것과 같이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욕 망도, 능력도, 자유도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강제로 속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자유를 잘 사 용함으로 영원히 존재하는 행복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46 만드시고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호 느니라. 6:7 저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 이 말씀은 아담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말 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담이 언약을 어겼다고 기록했습니다. 곧, 선악과를 먹은 사실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선아고가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이 언약을 맺으면서 하 나님이 주신 정서, 능력, 자유를 한껏 발전시키기를 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요청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악과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은 아직 아담 외에 다른 사람이 창조되기 전 아담이 맺은 언약입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아담의 존재가 이후에 지구에 태 어나게 될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언약인 것입니다. 즉이후로, 아담으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창조될 모든 생명 있는 존재는 전 적으로 아담에게 의탁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며, 아담의 존재와 생명은 전적으로 여호와라 이름하시는 하나님께 의탁되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인식시 키는 언약이었습니다. 사람의 존재는 자신에게 근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 에 달려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존재 자체와 그 존재 방법은 사람이 스스로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선악과의 언약은 이 사실을 가르치는 언약이 기도 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수용하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선택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의 피를 받은 것을 스스로 버릴 수 없습니다. 국적을 바꿀 수는 있어도 혈통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혈통을 감사함으로 수용하고 살아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47 이 혈통을 끊고 없어지든지, 이 두 길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존재와 생 명 자체에 대하여는 우리의 선택권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반복해서 말합니 다만, 선악과를 먹는 것은 창조를 거절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창 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곧, 흙이 되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아 주 없어져서 전혀 창조 안 된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론 욕망도, 능력도, 자유도 없어지지요.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함으로 수용하여 생명과 존재를 영원히 누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선악 과를 표로 하여 맺은 하나님과 아담 사이의 언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든 사실에 대하여 불평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 니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입니다. 선악과의 언약은 영원한 보존( 保 存 ) 의 언약입니다. 이것은 생명과와 함께 주어진 언약입니다. 그가 선약과를 먹지 않는 한 생명과를 자유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으면 생명과 먹기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존재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 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이와 같이 언약을 맺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나님은 창조의 6 일 동안 매일 하루의 창조를 끝내시고 좋다 는 말씀을 하셨다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둘째 날에는 하나님이 좋았더라 는 말씀을 하시지 않은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좋지 못하니 라는 말씀도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8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보니 돕는 배필이 없어서 좋지 못한 것을 비로소 아셨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좋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 왜 남자만을 지으시고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 아담의 생명과 존재의 중요성의 지대함을 아담 에게 인식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 때문입니다. 그만큼 아담의 존재는 이 지구 에 존재하게 될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아담에 게 돕는 배필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한 배려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짐승들을 아담 앞으로 지나가게 하시고 그 이름을 아담에게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 니다. 하나는 아담에게 배필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또 하나는 아담이 모든 생물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담과 또한 창조된 모든 생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이름을 주는 것은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의미가 없는 것은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다른 피 조물들은 아담 즉, 사람으로 인하여 의미와 존재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가르 치시는 하나님의 교육이었습니다. 창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 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 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이 이름을 지을 때에 모든 생물이 다 짝이 있으나, 자신은 혼자인 것 을 인식하고 짝의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대에 하나님이 그의 짝 곧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짝을 지으시는 방법은 아담을 지으신 것과는

49 전혀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창조하신 것은 결국 아담의 짝이 아담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아담으로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아담이 아담 이외의 모든 사람의 존재와 생명의 근거라는 사실과, 선악과에 대한 언약을 아담과 체결한 것으로 아담의 중요성의 지대함을 계시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를 이렇게 창조하심으로 또 한 번 아담의 지대한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여자를 창조하심 창 2:21-24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 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 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것이 여자를 창조한 기록입니다. 아담 곧 남자는 흙으로 빚어 만들었으 나, 여자는 아담 곧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여자를 만든 기록 에는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아마 불어넣었을는지는 모 르지만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여자를 이렇게 창조한 것은 이미 말한 대로 중요한 사실을 아담과 여자, 또한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가르치려는 하나님의 신령한 계획이 있는 것이 분 명합니다. 이렇게 창조된 여자에 대하여 신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고전 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50 났다 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부모에게서 났다 라고 말했을 대,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너무나 명백하여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는 말입니다. 그것은 나의 형체와 나의 생명 곧 나의 존재가 부모님으로부 터 나왔다 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이 안 계시면 나는 없다 는 뜻이 아닙니까? 그와 같이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다 는 말은 남자가 없었으면 여 자는 없다 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모든 것, 곧 그의 형체와 생명과 그 의 존재가 전적으로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두 사람을 만들었으나 두 생명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 다아담의. 한 생명에서 모든 생명이 태어나도록 만드셨다는 말입니다그러므. 로 생명은 오직 한 생명뿐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누어 내려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담은 이런 사실을 깨달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 셔서 자기에게로 이끌어 오는 사람을 가리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고 말한 것입니다. 여 자 또한 아담의 이 표현을 전적으로 동의하였을 것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 빗대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여자 라는 히브리말이 남자에 게서 나온 것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2장 23 절에 쓰인 남자 라는 말이 אּישׁ) 이쉬 ) 입니다. 그런데 여자 라는 말은 ה) 잇샤 (אּ 입니다. 이 말은 이 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다는 사실을 문자로 표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근원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미 본대로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중에 우리 가 광명을 보리이다.

51 이 말씀은 요한 복은에서 예수님께 적용되어 이렇게 반향( 反 響 ) 합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이 생명이요 빛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 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 고후 4:6) 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살려 주는 영 ( 고전 15:45) 이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에게서 아담에게 주어졌고, 그것은 아담 에게서 여자에게 나누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하나요 또한 한 줄기로 전달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생명의 일원성 ( 一 元 性 )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아담의 갈빗대로 창조하심으로 이 생명의 일원성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3. 결혼식과 주례사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은 아담의 허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 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의 결혼식을 묘사하는 말씀입니다. 이 모습은 현재의 결혼식 모습과 얼마나 똑같습니까! 물론 나라와 민족을 따 라 다른 풍습이 있겠지만, 지금도 아버지가 딸을 신랑에게로 이끌어 오지 않 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을 결혼시킵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52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 라고 하신 말씀은 결혼과 결혼 후의 생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그 아내와 더불 어 행복하게 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결혼 주례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1장 28절의 말씀입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 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 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것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주례사 안에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창조적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복을 주셨습니다. 복은 모든 좋은 것들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신 사실들을 표현하는 말일 것 입니다. 그러나 그 핵심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영생하는 것을 가리 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에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경은 복을 영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래 사람 이 영생하도록 복을 주셨고, 사람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런 복을 받은 이름입 니다.

53 창 5:1,2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 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 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사람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이름입니다. 얼마나 고귀한 이름 입니까? 그리고 이 복은 창조된 두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둘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아담 안에서 창조하셨습니다. 이미 말 한 대로 여자는 이미 아담 안에 있었습니다. 아담에게서 형체와 생명을 받았 습니다. 이렇게 있게 된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생명은 여자에게 주어지고, 여 자는 그 생명을 받아서 형체를 형성하여 새로운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렇게 계속함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런 생육의 법칙을 주시지 않았으면 인류는 태어날 수 없 습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의 주례사, 곧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 말씀의 주례 사 안에서 저와 여러분은 이미 창조된 것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 이미 창조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린다면 모든 인류는 이미 아담의 허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히 7:5,10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을 가졌으나...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 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창 35:11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

54 리라. 레위는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 곱, 야곱의 셋째 아들이 레위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레위가 아브라함의 허 리에 있었다 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야곱에게 축복하시면서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허리에서 생육한다는 것은 아담의 갈빗 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든 사실에 기인( 起 因 )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아담 의 허리에 이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이 지구의 모든 사람의 존재와 생명의 중계자, 다른 말로 중보( 中 保 ) 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통하여 당신의 생명을 모든 인류에게 주도 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없었으면 하나님의 생명이 인류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없었으면 세상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아 담 안에서 이 지구에 사람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계획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려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이 있고, 아담 안에 그의 모든 후손 이 있습니다. 엡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로부터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러므로 아담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다 는 것은 곧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순수하고 깨끗한 생명을 가진 영생하는 사람들로 땅을 가득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땅에 충만하라 는 말씀은 가장 쾌적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숫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포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 닙니다. 컵에 물이 넘칠 만큼 부어지면 불안합니다. 그런 상태는 충만이 아닙

55 니다. 가장 안정되고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 충만하라 는 말입 니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 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셋째,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창조된 지구를 상속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땅의 관리 권을 맡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에게 약속하신 것은 땅의 상속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상속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지요. 과연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 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마 5: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는 태초부터 사람 에게 상속되도록 예비 된 곳입니다. 그 대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 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 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 마 25:34) 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 로 결국 하나님이 태초에 아담에게 축복하신 말씀대로 이 지구는 하나님의 형 상을 온전히 지닌 하나님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 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 계 11:15). 예수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는 곳도 이 세상 곧 창세로부터 하나 님의 참 백성들에게 상속하도록 예비된 이 지구라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습니다. 첫 사람의 결혼식에서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축복으로 또한 약속으로 주셨 넷째,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담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창조된

56 지구의 왕이었습니다. 아직 결혼을 시키기 전, 여자를 만드시기 전에 이미 다 스리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이 통치권에 대하여는 시편에도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 8:5,6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 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명의 축복과 생육의 법칙과 땅의 관리권과 통치관을 결혼 주례사에서 축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런 축복을 잘 누 리기를 소망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 에 있기만 하면 오직 행복과 영생이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57 제 4 장 선악과 ( 善 惡 果 ) 와 죽음과 죄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약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 대한 설명은 이미 사람 창조에 대하여 말하면서 약간 설명을 했 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죽음과 죄와 관련하여 설명하려고 합니다. 위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 경에 죄 라는 말이 나타나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담은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를 부여받은 아담이라 그 의미를 알았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결코 체험적으로 그 실상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사 람들이 죽음의 실상을 영원히 모르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선 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실상을 체험으로 알게 되는 불행을 겪고 말 았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하나님은 죽음의 식상이 무엇인지 분 명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창 3:16-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58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 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 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 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라. 이 말씀으로 하나님은 죽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힙니다. 위의 말씀에 서 강조한 부분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내거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 과를 먹었은즉 이라는 말은 선악과를 먹었으니 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렇 게 한 결과로 아담은 흙으로 돌아가 야 합니다. 이 흙으로 돌아간다 는 말 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그는 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는 어떠한 상태에 있었습니까? 창조되기 전에 는 아담이 없었습니다. 흙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흙으로 돌 아가는 것, 곧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창조 안 된 것과 같이 된다는 마입니다. 뒤에도 반복할 것입니다만,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주의 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는 말씀을 하시기 전에, 너는 흙이니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담의 죽음이 유예된 세월이 끝나 면 그는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에라도 이미 그는 흙입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은 흙일뿐입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아담 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없어진다는 말은 아담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 고 그 영혼은 지옥이나 하늘나라에 간다는 말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아담이 창조되기 전에 아담의 영혼이 먼저 따로 창조된 일이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 람의 주장대로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은 아담이 창조될 때에 함께 창조된 것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과를

59 먹으면 죽으리라고 하시고, 그 죽는 것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죽으면 아담의 영혼도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 다창세기. 3장 절은 소위 영혼 불멸이라는 그릇된 견해를 분명히 바 로잡아 주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육 간에 창조되기 이전 상 태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즉, 그는 영육 간에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후일에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이 사실을 명백히 확인하십니다. 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 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 라. 죽는다는 뜻이 창조되기 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라는 뜻을 이해하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깨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죽음의 비극이 어떻게 이 새로 창조된 아름답고 깨끗한 지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창세기 3 장에는 명백히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창 3:1-4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 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라 동산 모 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 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을까 하노 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 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이 말씀 중에 여자가 대답한 말을 가지고, 여자가 거짓말을 했다고 설교하

60 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2장 16,17 절의 말씀과 여자 가 대답한 말이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 는 말씀을 하신 일이 없는데, 여자가 이 말을 더하였고, 정녕 죽으리라 고 하셨는데, 죽을까 하노라 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감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 서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 加 減 ) 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말합니다. 듣기에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사실이 아닙니다. 창세기 2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에게 2장 16,17 절의 말씀을 명하셨습니다. 아담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여자는 아직 창 조되기 전입니다. 여자가 이 명령을 처음으로 전해들은 것은 아마도 아담으로 부터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자신이 이해한 대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만일 여자의 이 대답이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한 죄가 된다든지, 거짓말한 것 이라면, 죄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미 여자의 마음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선악과를 먹기 전에 이 지구 세상에 죄가 들어 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여자 에게도 선아고가를 먹지 않도록 경고하셨을 것입니다. 동산 한가운데 생명나 무 가까이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무가 당 신께 대한 그들의 순종과 믿음과 사랑의 담보물이 되도록 특별히 계획하였다. 이 나무를 두고 주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죽 을까 하노라고 말씀하셨다 ( 엘렌 G. 화잇, 살아남는 이들, 26). 하와는 찬탄 과 호기심을 가지고 금단의 나무 열매를 주목하고 있었다. 하와는 나무가 심 히 아름다운 것을 보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듯 단호하게 저 나무 열매를 먹 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금하셨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 상게서, 34). 하나님은 여자에게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자의 이 대답은 결코 거짓말한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은 여자의 말은 거짓말인 것처럼 말하고, 거짓 말한 뱀의 말은 참말인 것처럼 말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61 가 너무나 뱀 곧 사단의 속임수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뱀은 말 하기를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될 줄을 하나님 이 아심이라 ( 창 3:5)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여자는 눈이 밝아져서 지 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눈이 밝아졌으나 그것 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눈이 아니고, 선악을 아는 눈도 아니고, 자기가 벌거벗 은 것을 깨달은 눈이며,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을 수밖에 없는 자가 되었다는 눈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이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 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 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뱀 곧 사단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고 말했습니다. 즉 선악과를 먹으 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이 말, 곧 하나님과 같이 된다 는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된다 = 자존자 ( ) 가 된다 는 뜻이 아닙니까? 왜냐하 면 하나님은 자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얼마나 엄청난 거짓말 입니까? 아담은 자존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존재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벋었

62 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네가 선악과를 먹었느냐? 고 묻지 않으 시고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즉 그의 현 위치를 물으신 것입니 다이것은. 아담에게 네가 나 여호와가 있게 한 대로 있지 않구나 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지 않는 것은 결국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존재에 대한 질문인 것입니다. 너는 여호와 하나님이 존 재하게 한 대로 존재하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에 대한 아담의 대답은 그 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는 것이지요. 결국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지 않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대답은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는 말 이 아닙니까? 숨었다 는 말이 어떤 뜻입니까? 그것은 죽어 없어졌다는 뜻입 니다. 아담은 정년 죽으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 니다. 그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는 없어진 존재인 것입니다. 벗었다 는 말에 대한 성경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고후 5:3,4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 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 이라. 이 말씀을 잘 보면, 벗는 것 = 죽는 것; 덧입는 것 = 생명에게 삼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 10 절에 이 말씀을 대입 ( 代 入 ) 하면, 아담의 대답 은 내가 죽었으므로 없어졌나이다 가 됩니다. 아담은 뱀 곧 사단의 속임수에 걸려서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담을 이 렇게 속인 것은 사단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

63 의 이름에 심판의 기념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이미 말한 내용을 다시 반 복하게 됩니다만 선악과를 먹은 이야기에는 언제나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중복이 되지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유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가두셨으며. 사단은 자신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났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하 나님이 심으신 것을 거절하고 스스로 심어 존재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과 상관없이 스스로 존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는 사단의 이런 행동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 14:12-14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사단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나 하나님과 같이 되 려고 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한 것은 그 성품이 아니라 그 지 위를 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단( ן, 사탄이란 ) 말은 원래 보통 명사입니다. 그 뜻은 대적하는 자, 대항하는 자, 적 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에게 최초로 대적 한 자가 바로 이 아침의 아들 이라고 불린 계명성 이었기 때문에 그가 사단 이 되었고, 이 말이 그의 고유 명사 이름으로 쓰에게 된 것입니다.

64 그는 원래 지음을 받은 아름답고 지위 높은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 름은 계명성 이었습니다. 이 말은 헬렐( ל י ) 인데 밝게 비치는 것 이라는 뜻 입니다. 정말 그는 지음을 받았을 때 밝게 비치는 자였습니다. 이 헬렐이라는 말은 할랄( ל ) 에서 온 말인데, 자랑하다, 찬양하다, 오만이 행하다 는 뜻이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피조물이었을 것입 니다. 라틴어 성경 불가타 (Vulgate) 에서 이 헬렐을 루치페르 ( Lucifer) 라고 번역하여 고유명사처럼 썼습니다. 그래서 영어 제임스왕역 에서 이 말을 그대로 고유명사로 사용하였는데, 영어로는 루시퍼 (Lucifer) 입니다. 이것을 우 리는 그냥 루스벨 또는 루시벨 이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는 너무 자랑 스러워서 교만하여졌고, 마침내 자기 지위를 버리고 자기 처소를 떠나서 하나 님을 대적하는 사단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잘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결코 속을 필요가 없습니 다. 겔 28:11-17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 印 ) 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 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 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청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 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도다.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 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움

65 으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 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 였도다. 사단이 된 이 자랑스러운 천사는 하나님이 덮는 그룹(cherub, רוּב, ) 으 로 세운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동산에서 왕래하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천 사였습니다. 여기 두로 왕이라고 한 것은 비유된 언어입니다. 세상의 두로 왕 은 결코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왕래한 일이 없습니다. 마침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 루스벨을 당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두로 왕에게 비유하여 읊은 애가 ( 哀 歌 ) 인 것입니 다그는. 땅으로 쫓겨났는데이, 쫓겨나는 과정은 요한계시록에 계시되어 있습 니다. 계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 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 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사단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늘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구름에 올라 하나님과 비기는 것, 곧 하나님과 동등하려고 반역을 일으 켜 하나님께 대항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는 하늘에서 다시 는 있을 곳을 얻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그 쫓겨난 곳이 땅입니다. 왜 하필 땅으로 쫓겨났느냐고 물으시겠지만 그럴 이유가 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그 이유를 설명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이만큼 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이렇게 땅으로 내어 쫓겨서 이제 창조된 지 얼마 안 되는 지구에서 여자를

66 유혹하여, 자신이 반역한 것과 같은 정신, 곧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정신을 불 어넣고 사람을 자기편에 끌어넣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자기 지위를 지키 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지 않는 것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사단도 마침내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신 다히 ( 2:14) 고 성경은 분명히 계시합니다. 마 15: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사단도,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존재하기를 거절한 사람도, 때가 되면 다 없어져서 전혀 창조되지 않은 것 같이 될 것입니다. 욥 1:15,16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너희행한 대 로 너희도 받을 것인즉, 너희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너 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 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그러나 그 시기 ( 時 期 ) 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때와 기한은 아 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 ( 행 1:7) 이기 때문입니다. 각설하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게 되었 습니다. 즉, 창조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생육하고 번 성하여 땅에 충만할 그의 모든 후손을 자기 허리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여 자 외에는 아직 한 생명도 낳기 전에 그는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될 그의 모 든 후손도 아담과 함께 아담 안에서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모

67 든 후손은 아담 안에서 함께 창조되기 이전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된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모르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결코 바르게 깨닫지 못합니다. 성경의 종교를 도덕적 종교 차원에서만 이해하는 도 덕가들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존재와 생명의 성경적 진리에는 결코 접 근하지 못할 것입니다.

68 제 5 장 죄( 罪 ) 1. 원죄( ) 성경은 죄의 보편성에 대하여 단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범죄치 아니 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 왕상 8:46).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 나이다 ( 시 143:2). 내가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 잠 20:9).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 주 없느니라 ( 전 7:2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찾 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롬 3:10-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롬 3:23).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며 스스로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요일 1:8). 세상에, 인류에게 죄가 보편화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 다사람들에게. 당신이 죄인입니다라고 말하면 양심이 이미 그것을 시인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저항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그것은 도덕성과 관련된 양심 의 소리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죄를 도덕적인 성 품의 상태라고 단정하게 합니다. 그러나 정말 죄는 무엇입니까? 죄가 무엇이며 왜 생겨났습니까? 세상에 왜 이런 죄와 악이 편만합니까? 이런 의문들은 우주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의문들입니다.

69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면 죄에 대한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오늘날 모든 종교가 도덕적 종교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이런 종교들이 다루는 죄와 의, 악과 선이 모두 도덕 적 개념들이라는 말입니다. 기독교도 도덕적 종교로 타락한 마당에서 선과 악, 의와 죄에 대한 개념이 도덕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또 사기( 詐 欺 ) 나, 살인, 간음, 불효 등을 죄라고 하지요. 물론 이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이 면 대부분 인정하는 도덕적 죄들입니다. 유치하게 말해서, 성경이 죄라고 할 때만 죄가 아니라, 도덕적인 죄들은 누가 말해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들은 도덕적인 행위로 속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피 공로를 믿지 않으면 이런 죄도 결코 사유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너무 기독교인다운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도둑질하던 사람이 자기의 도둑질하는 것이 큰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일일이 찾아서 배상하고, 그 배상한 사람 들에게 용서받고, 또 필요하다면 법적 형벌도 달게 받은 후, 다시는 도둑질하 지 않고 오히려 구제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의 도둑질하던 죄가 용서된 것 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그는 더 이상 도둑이 아닙니다. 그는 구제하 는 선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도덕적인 죄들 중에도 살인이나 간음 이나 이런 종류는 보상할 길이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그에 합당한 형벌을 받 은 후에 다시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고 그런 행위를 반복하지 않으며, 선을 행하여 봉사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 전에 저지를 죄를 누가 기억하겠으며, 그 런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양심의 흔적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겠지요? 옳은 말입니다. 그 양심 이라는 것은 무엇입니 까? 왜 그 흔적이 지워지지 않을까요? 성경은 도덕이나 일반 종교가 가지고 있지 않는 죄에 대한 개념이 하나 있 는데, 그것은 원죄( 原 罪 ) 라는 개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70 태어난다는 사상인데, 그 죄는 조상 곧 아담 안에서 타락한 도덕적 본성을 유 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도덕적 본성 이 라는 말은 참 묘한 말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원죄에 대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설명도 꽤나 다양합니다. 교의학이나, 조직신학, 신학사전들을 찾아보면서 그 설명이 어지럽도록 복잡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헌대에 와서는 원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 있기도 합니다. 여하튼 원죄에 대한 설명은, 이미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사람은 있다. 그 런데 도덕적으로 타락한 성질을 유전으로 받은 상태로 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복잡하지만 몇 가지를 인용해 볼까요? 가톨릭교회는 그 교회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가 주장한 원죄에 대한 교리를 트렌트 (Trent) 공의회에서 인정했는데, 그것은 다 음과 같습니다. 첫째, 최초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 본래의 의( 義 ) 는 상실되었으며, 육신과 영혼은 감염되었고, 인간은 마귀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둘째, 그러한 최초의 타락에 의한 원죄는 모방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식( 生 殖 ) 에 의해서 전달된다. 셋째, 죄가 갖고 있는 본래의 모든 본성과 원죄로 인한 모든 죄 된 상태는 세례를 통해 제거된다. 넷째, 현세욕( 現 世 慾 ) 은 세례 뒤에도 계속 남아 있는데, 그러나 이때의 현 세욕은 비록 바울은 죄 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죄가 아니 라 단지 환유적( 換 喩 的 ) 의미에서 죄일 뿐이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 서울: 기독 교문사, 1984], 12:253). 환유적 이라는 말은 어려운 말입니다. 煥 ( 환) 은 고칠 환 자이고, 喩 ( 유) 는 깨달을 유 자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아서 고치도록 하는 의미의 죄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71 아우구스트누스 (Augustine) 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그의 학설의 주된 윤 곽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의 문헌만큼이나 일찍 발견되었는데, 루터 (Luther), 칼뱅(Calvin), 그리고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이 견해를 지지합 니다. 이 가르침은 아담 안에서 인류는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는데, 이 통일 성에 의하여 하나님이 아담의 죄를 직접적으로 그의 모든 후손에게 전가하셨 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자유 행위 속에서 인류의 의지는 하나님을 배반하였으 며, 인류의 성품은 그 자체가 부패하여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소유한 성품은 아담 안에서 부패된 동일한 바로 그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는 우리 에게 어떠한 생소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당연히 우리의 죄로서 우리에게 전가 된다는 것입니다헨리 ( 디아슨, 조직신학 강론, 권혁봉 역 [ 서울: 생명의 말씀 사, 1975], 421). 이 책의 저자가 말한 대로 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가 대부분의 개혁자들 이 받아들인 원죄에 대한 견해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한 아담 안에서 타락한 성품이 그의 모든 후손에게 유 전되는 것을 원죄라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루터가 생각한 원죄에 대하여 J. L. 니브(J. L. Neve) 는 그의 저서 基 督 敎 思 想 史 1 권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죄는 아담의 타락을 통해서 세상에 들어왔으며,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범죄하였다. 왜냐하면 부계 ( 父 系 ) 의 정자( 精 子 ) 가 대대로 부패 를 자손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루터는 육 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한 중세기의 개념을 떠나서 육 을 전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종교적 형벌로 본 바울의 개념을 따랐다. 영혼은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간에 항상 활동하는 것이며, 그러한 활 동의 배후에는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자기중심적인 부단한 욕망, 죄 된 의지가 작용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기만을 추구하고 자기를 가

72 장 사랑하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행할 수 없으며, 인간에게는 그것이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선하고 유덕한 일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을 추구한다. 즉 인간은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고집은 우리 속에 있는 가장 길고 큰 악이며,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의지보다 더 소중한 것 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 고집 혹은 정욕은 우리의 영적 생활 전체에 침투되어 있는 원죄이다. 왜냐하면 자기 추 구의 의지는 우리의 모든 선한 결심, 특별히 종교적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결단을 방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각하지 도 못할 때가 많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사나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 혹은 우리의 구원과 영원한 축복 대문에, 혹은 지옥에 대한 두려 움에서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 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불순한 정욕의 사랑을 가지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즉, 다시 말하면, 원죄는 이기적인 사랑으로서 우리의 모든 순결한 사랑 가운데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적 행위의 배후에 서 있는 무의식적인 의지는 자기 고집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본성의 타락에 대항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J. L. 니브, 基 督 敎 思 想 史 徐 南 同 역 [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1:354, 355). 이 모든 견해들은 원죄를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덕적으로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은 근본적으로 타락한 성품을 아 담에게서 유전 받았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원죄다 라는 설명입니다. 아우구 스티누스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생겨난 인간의 본성은 너무도 철저한 것 이기 때문에 인간은 선행을 하려는 의지조차 가질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은총 에 대한 그의 가르침과 예정설은 주로 그러한 믿음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기

73 독교 대백과사전, 12:352)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때문에 기독교 교리사에 유명한 펠라기우 스(Pelagius) 와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도덕적 능력이 전 혀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인간은 의와 선을 행할 수 없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도덕적 능력이 있 다고 주장하면서도 인간도 선과 의를 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이미 말한 대로 도덕적 관점에서 말하는 주장입니다. 창조와 재창조의 관점에서 보면 이 논쟁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도덕적 관점에 서는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요즘도 우리 교회 안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다 죄의 문 제를 도덕성 일변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A.D ) 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힙포 (Hippo) 의 감독으로서 기독교 교리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사 람입니다. 펠라기우스(A.D. c.360-c.420) 는 영국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는 교 회의 도덕성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으로서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논쟁 에서 나타난 대로 원죄설을 부인하고 자유 의지로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주장 으로 인하여 마침내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도덕적 죄론에 치우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론의 맥락을 볼 수 있는 것은 죄의 본질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확실히 깨닫지 못한 결과가 성 경의 종교의 참된 기별을 얼마나 왜곡시키는가를 실감하게 합니다. 그들의 주 장을 대조하면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인간은 죄인이며, 선을 행할 수 있는 경향 이 있다. 자유 의지를 주어서 끊임없이 하 1.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펠라기우스의 주장 인간은 죄가 없다. 절대 자유 의지를 주었 고인간의, 본성은 도덕적이다.

74 나님께 복종함을 따라죄를 범치 않을 능력 이 있으나 인간의 본성은 부도덕하다. 2. 인간의 타락 정신적 육체적 죽음은 아담이 준 것이며, 전 인류는 그의유전에의하여 타락했다. 각 사람은 부정, 죄의 성질, 유전을 가지고 나왔고, 진정한 고결함은불가능하다. 타락 전 자유 의지는 타락과 함께 정의 고 결을 선택하는 자유 의지를 상실하고 죄의 종이 되었다. 죄는 유전이어서 나면서부터 본성 중에 죄 가 있게 되었고, 인간은 죄의 행위로 끝마 친다. 은혜는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의 활동이기 때문에 그것에 의하여 인간의 정신생활이 시작되고계속되어 완성된다. 이 은혜가 없 이는 인간에게 후회도 신뢰도 없다. 속죄의 은혜는 피하기 어려운예정의움직임이다. 하나님의 예정은 개인적이어서 영원하며 또 한 절대적이다. 3. 타락 후의 인류 4. 의지 5. 죄 6. 은혜 7. 하나님의예정 정신적인 죽음은 아담이 준 것이지만, 전 인류에게는 그것이 단일 예에 불과하다. 각 사람은 아담의 타락 전과 같이 죄가 없 다. 자유인으로 났으니아담의 예를 배워서 자기의 죄로 타락한 것뿐이다. 인간의 의지는 늘 자유이다. 선악간 어느 것이나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인간 개인의 성질에 유전한 고유한 죄는 없 다. 전 인류는 필연적으로 죄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죄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은혜는 의지, 지혜, 의 등에 의하여 각 개 인에게 자연스럽게 부여된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선발은 있을 수 없다. ( 宋 樂 元, 敎 誨 師 [ 서울: 이건사, 1981], 166, 167) 현대주의적 기독교나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원죄가 인류의 보편적 범죄적 성향과 혼동되어 왔으며, 죄의 보편성에 대한 가정적 원인이 죄의 의지가 발

75 현된 현상으로 오인되어 왔기 때문에 생겨났다. 하지만 원죄는 사실(fact) 이 아니라 추론이며 사실에 대한 가정적 설명이다. 하지만 오늘날 원죄는 관 찰된 사실의 본성으로는 인식되지 않으며 종종 억압적인 교리로 여겨지고 있 다. 원죄의 교리는 바울이 제시한 우연한 유추를 제외하고는 성서에 아무 런 근거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며 그리고 아담과 최초의 타락에 대 한 바울의 개념은 그가 유대 사상에서 끌어낸 것이라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12:355). 심리학과 생물학은 인간 본성이 죄의 행위에 의해 교란될 수 있다는 관념 혹은 그러한 교란이 육체적 유전에 의해 널리 퍼 질 수 있다고 하는 관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쉴라이에르마허의 시대부터 죄의 보편성과 전파를 개인이 도덕적 의식을 갖게 된 뒤 사회적 환경이 끼친 영향력의 견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시 도들이 있었다 ( 상게서, 12:356). 이러한 견해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원죄 사 상을 부인하는 견해들입니다. 그러면서 보편화되어 있는 죄의 문제를 환경적 영향력에서 찾으려는 비성경적 시도들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도 맹자 ( 孟 子 ) 의 성선설 ( 性 善 說 ) 과 순자 ( 荀 子 ) 의 성악설( 性 惡 說 ) 의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만약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면 왜 그렇 게 악하게 되었을까요? 만일 태어나면서부터 악하지 않다면 자라나면서 왜 악 한 경향에 쉽게 물들까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좋지 못한 성품을 가지고 나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말을 찾아야 했습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그런 이유를 설명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 냐하면 인류는 죄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복음을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만 일 인류가 원천적으로 죄인이 아니라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다는 예수님의 대속의 사업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그런 이유를 합당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원죄라는 공리 ( 公 理 ) 가 필요했습 니다. 성경에는 원죄 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5장 12절

76 에 설명한 말을 근거로 하여 원죄 라는 말을 창출해 낸 것 같습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 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죄가 무엇일까요? 앞에서 말한 대로 도덕 적 성품의 타락일까요? 물론 그것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시작하 면서 말한 것처럼, 성경은 도덕성을 문제 삼기 이전의 문제를 계시하고 있습 니다. 그것은 존재와 생명의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도덕성이 죄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선악과를 먹은 직후의 아 담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자마자, 그는 모든 도덕적 상태가 형편없는 인격이 되어 버렸을까요? 파렴치한( 破 廉 恥 漢 ) 이 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사기 치는 그런 사람으로 당장 전락했을까요? 모리긴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의 아담의 도덕 성은, 그 이후 이 세상에 가장 도덕적인 사람들의 모든 도덕성을 합한 것보다 더 훌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죄인입니다. 물론 선악과를 먹은 것이 하 나님께 부도덕하게 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그런 부도덕을 행하게 된 것이 원죄라고 말하겠지요. 이런 설명이 일리 있는 설명이지만 정곡 ( 正 鵠 ) 을 찌르는 설명은 아닙니다. 성경은 죄 라는 말을 한 마디도 사용하기 전에 죽는다 는 말을 먼저 사 용한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조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자유를 아담이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자유가 있다 해도, 그 자 유를 행사할 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도 기억하시지

77 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와 존재 방법을 결코 스스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나를 창조해 주세요 라고 요청할 수 없고, 나를 낳아 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에게 자 기가 태어나고 싶다고 요청하여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 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태어나게 되었고, 존재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나의 존재 와 생명을 선택하는 일은 나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스스로 목숨 을 끊는 선택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목숨을 끊는 것은 부모가 나를 선 택한 그것을 거절하는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바로 이런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죽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 안에서 그의 모든 후손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 죽은 상태 그것이 원죄입니다. 제4 장 끝에 쓴 말을 다시 옮겨서 읽어봅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말 씀대로 죽게 되었습니다. 즉, 창조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 담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그의 모든 후손을 자기 허리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여자 외에는 아직 한 생명도 낳기 전에 그는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될 그의 모든 후손도 아담과 함께 아담 안에서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담 안에서 함께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된 것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원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 든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갓난아기라도 죄인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도덕적으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났기 때문입 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를 단수 ( 單 數 ) 와 복수 ( 複 數 ) 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즉, 죄와 죄들로 표현합니다. 개역한글판 에서는 이것을 구별하여 번역하지 않

78 았습니다만, 신약에서 이것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죄는 바로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죄들은 이 죽은 결과로 생기는 일들을 가리 킵니다. 신약의 로마서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서 죄 라는 명사 하마르티아 ( ἁμαρτα ὶ ) 를 세어 보면 단수로 쓰인 것이 대략 72 번이고, 복수로 쓰인 것이 대략 43 번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사도행전까지에는 단수가 15번 정도 있고 복 수는 33 번 나타납니다. 하마르티아 외에도 죄 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세어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런 구별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아담 안에서 죽은 것을 가리킬 때도 복수를 사용한 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와 같 이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경의 이치를 따라 생각하면, 현재 이 세상에는 아담의 후손으로서 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세상을 사망의 골 짜기, 흑암의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 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 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 라. 세상은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는 엄청난 묘지인 셈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현세의 유기적인 존재들을 죽은 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세의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또 살아 있 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죽음이 집행되기까지의 기간을 뿐입니다. 하나님 은 아담이 사망이 되었을 때에, 이 지구에 행하신 하나님의 창조가 파괴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반역을 일으킨 사단의 행위인 것을 보셨습

79 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우상이 차지하도록 두실 수 없으시며, 다른 존 재에게 넘겨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요, 그분만이 존재이시며, 그분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남이요 그 자신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 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사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 48:11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리라.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지키셔야만 합니다. 그것은 당신 의 창조를 온전히 보전하는 것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 은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셔서 아담과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를 속죄하셔서 하 나님의 창조를 복원 ( 復 元 ) 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구속( 救 贖 ) 의 약속에 의하여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그 당연히 당해야 할 사망이 유예 ( ) 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집행이 유예된 상태일 뿐입니다. 우리는 다시 성경에 죄 라는 말보다 죽음 이라는 말이 먼저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런데 죄라는 말은 창세기 4장 7 절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죄는 죽음이 선고된 사람이 여자의 후손의 약속 때문에 죽음이 집행되지 않고 유예되어 살아 있는 것같이 보이는 사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일 뿐입니

80 다. 그래서 히브리어 핫타트 ( את ) 헬라어 하마르티아 ( ἁμαρτα ὶ ) 라는 말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은 화살이 과녁을 빗나갔다 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 존재하도록 창조된 것이 과녁( 목표) 인데, 선악과를 먹는 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가 버렸기 때문에 살도록 되어 있는 목표가 빗 나가서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죄라고 이름 지은 것입니다.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 날의 심판 때까지 유예된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으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죽은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망이 유예된 상태란, 여자의 후손에게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죽음을 대 신 당하게 할 것을 전제 ( 前 提 ) 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 고 살아 있도록 일정한 기간 곧 수명( 壽 命 ) 을 허락하셨으나 실질적으로는 죽 은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본질상으로는 죽은 것과 같다 는 것입니다. 이 유예된 기간에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회복되는 생명을 거절하면 실제로 무( 無 ) 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살아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죽은 자로 여김을 받고 있는데, 이 상태를 죄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영생한 것으로 여김을 받는 것 입니다. 여김을 받는다 는 말의 중요성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 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성경은 세상의 사람들을 죽은 자로 여기는 말씀은 성 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엡 요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 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 라. 마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

81 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딤전 계 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3:1 사대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 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 는 이름은 가졌으니 죽은 자로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의 생명과 존재를 확정 하지 아니한 유예된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그 날에 다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시 103:15,16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 니와. 시 37: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 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 37:20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 이 날이 이르기 전에 사망 집행이 유예된 생명을 가진 우리는 여자의 후손 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다시 주신 생명을 얻어서 자신의 생명과 존재를 확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도덕적인 죄들 위에서 성경은 죄에 대하여 죄와 죄들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 다. 그런데 죄는 아담 안에서 죽은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만, 그러면 죄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살았다가 죽은 것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

82 입니다. 죽은 것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썩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사망의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 면 모두 죽어서 썩고 있다는 말입니다.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 와 버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죽은 자에게 나타나는 이런 썩는 현상이 도덕적 죄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에서도 도덕적 부패 ( ) 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부패 라는 말은 썩는 다는 말이 아닙니까? 오늘날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도덕의 파괴는 그 썩어짐 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표일 뿐입니다. 종교가들과 도덕가들과 교육가들은 이 썩는 것을 막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도로( 徒 勞 ) 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이런 노력들은 다만 방부제 ( 防 腐 劑 ) 와 방취제 ( 防 臭 劑 ) 를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부패로 치닫고 있습니다. 워낙 죽은 것들만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처리 는 그것을 완전히 불태워 없애든지 아니면 다 살려서 싱싱한 생명을 주는 길

83 밖에 없습니다. 썩는 것이 생명을 얻지 못하면 마침내 없어지고 맙니다. 썩는 것을 무리학적인 말로 표현하면 산화 ( 酸 化 ) 이지요. 산화한다는 것은 타고[ 燃 燒 ]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결국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복의 길에서만 산화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즉, 썩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방법은 생명을 주는 것, 곧 죽은 것을 살리는 방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또 거절하면 그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다가 그 산화가 끝나는 날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지옥 불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산화의 절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혀 창조되지 않았던 것 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 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생명의 길을 확실히 해주심으로 누구든지 이 길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대로 존재할 수 있는 복원 ( 復 元 ) 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 습니다. 성경의 게시는 이와 같이 존재와 생명, 곧 하나님의 창조와 재창조를 믿을 때에 영생에 이르는 길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소유했을 때 자연히 썩 는 일은 멈추게 됩니다. 그리스도교가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생명의 원리 때문이지 도덕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최고의 도 덕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에게 당연히 따르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경의 도리를 깨닫고 성경의 진리를 믿는 사람은 고도로 거룩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도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추구하고 하 나님의 창조의 진정한 뜻을 깨달으면 구원 곧 중생과 아울러 기독교는 빼어난 도덕적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이제 여자의 후손이 무 슨 뜻인지 연구할 차례가 된 것 같습니다.

84 제 6 장 여자의 후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하나님은 아담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 고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가 제4 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아담은 내가 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 라고 대 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정녕 죽으리라 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 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대답인 것을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에게 죽음을 선고하시기 전에 그에게 선악과를 먹은 사실에 대하여 물었습니 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라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 창 3:11) 이 때 아담은 그렇게 했다고 직고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대답을 합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 다. ( 창 3:12) 그는 하나님과 그분이 자기를 위하여 창조해 주신 여자를 탓하 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꾀임의 장본인인 뱀에게 말씀하십니 다뱀. 곧 사단에게 하신 이 말씀은 사단에게는 멸망의 선포요 사람에게는 구 원의 선포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 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85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의 선포에는 세 가지 사건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리고 이 말씀 후의 모든 성경 말씀은 이 말씀의 주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 닙니다. 세 가지 사건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주의 탄생 - 여자의 후손( 갈 4:4) (2) 구주의 고난 - (3) 구주의 승리 -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할 것임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할 것임 이 말씀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였는데도 그렇게 유혹한 뱀 곧 사단과 원수가 되는 것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즉, 사단이 구주와 원수가 되 는 것입니다. 결국 구주께서 사단을 멸하실 때 사람은 사단에게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주는 사망이 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시혜자 ( 施 惠 者 ) 요사람은, 구주로부터 은혜를 받는 수혜자( 受 惠 者 ) 가 되는 것입니다그러. 나 이런 은혜를 거절할 자유가 아직도 사람에게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절하면 사람은 다시는 생명으로 존재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날에 완전한 무로 돌아갈 것입니다. 불에 타서 재가 될 것입니다. 이미 말했습니다만 이것이 영원한 지옥불이요, 최후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사망이 된 사람을 다시 생명을 주어 존재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 이 죽는 고통을 하나님이 당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가 생명을 잃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생명을 잃는 고통이 따릅니다. 이것은 생명의 법칙입 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잃는 고통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이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실을 이미 우리 시조에 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가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86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신 저주의 말씀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죄의 저주의 말씀이라고 강론합니 다. 창세기 3장을 자세히 읽어도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했다는 말씀이 없습니 다. 뱀이 저주를 받았고창 ( 3:14), 땅이 저주를 받았으나창 ( 3:17), 사람을 저 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주 대신 오히려 구주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여자의 후손으로 약속된 구주께서 세상에 오셔서 당하실 고통을, 여자 가 산 자녀를 낳는 고통으로 비유하신 말씀입니다. 구주께서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을 산 자로 다시 창조하시기 위하여 당신이 죽는 고통을 겪어야 합 니다.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기 위하여 당하시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사망이 된 사람을 다시 산 자가 되게 하기 위 하여 하나님이 당하시는 고통을 사람에게 맛보게 하신 것인데 를 먹어 사망이 된 여자에게 체험케 하시는 것인데 - 먼저 선악과 - 이렇게 하여 낳은 자녀, 사망이 유예된 상태로 태어난 자녀를,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산 자가 되도록 양육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입니다. 모진 고통을 통하여 얻은 것은 그만큼 귀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들은 참으로 영생의 생명을 얻도록 양육되어야 합니다. 이런 뜻을 깨닫고 자녀를 양육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자세는 훨씬 진지해 질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고통이라는 이해는 요한 복음에 의하여 확인됩니다. 요 16:20-2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 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

87 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 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 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 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 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 받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게 하셨을 때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이 당하시는 고난을 여자가 해산하 는 고통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하실 것을 여자가 아이를 낳은 후의 기쁨에 비유했습니다.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이들의 죽음을 자신이 대신 당하셨습 니다. 이 고통이 해산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모든 죽은 자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시는 것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 은 여자에게 이 고통의 실상을 체험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고통을 이해해 보 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는 산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여야 할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이 아이를 바르게 생명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남 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주관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언제나 가정 의 제사장으로서 자녀를 거룩하게 양육하여 영생을 소유하도록 해야 하였습니 다비록. 범죄하여 사망이 되었을지라도 여자의 후손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다시 생명을 얻도록 길을 열어 주셨으므로 부모는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입니다. 11:2), 그리고 여자는 또한 교회를 상징하는데엡 ( 5:22-32; 벧전 5:13; 고후 교회는 남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해야 하고 예수께서 교회를 주관해야 한다는 것을 계시한 말씀이기도 합니다엡 ( 1:22, 23; 골 1:18 참고 ). 이렇게 구원을 약속하신 다음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창세기 2장 16, 17절 에서 말씀하신 대로 죽음을 선고하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죽음의 선고라

88 도 다시 살 수 있는 소망이 있는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그 자체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십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 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 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 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라. 죽는다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담은 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창조되기 이전 상태, 곧 창조 안 된 것과 같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너 는 흙이니 라고 한 말씀입니다. 선아고가를 먹은 후 곧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 하고, 그 창조를 거절하는 선택을 한 아담은 흙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흙입니다. 아담은 이 선고의 말씀으 로 자신이 사망이 되고 흙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의 약속 이 있습니다. 아담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모든 믿음에는 행위가 따릅니다. 여자의 후손의 약속 곧 구원, 다시 말하면 복원될 생명에 대하여 믿는 아담의 믿음에 따르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창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아담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배필을 지어서 이끌어 왔을 때에 그에게

89 여자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제 아담은 자기가 사망의 된 것을 깨달았을 때에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을 허락하시고 그가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라는 선 언을 하셨을 때, 여자를 통하여 생명이 회복될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이 여자 라는 이름을 지었던 아내에게 다시 하와 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하 와 는 생명 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이 자기 아내를 하와 곧 생명 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다음과 같 은 사실을 뚜렷하게 대조해 놓은 것입니다. 아담 ( 남자) 의 후손 = 사망 여자의 후손= 생명 이제 아담은 사망일뿐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여자를 통하여 올 것이기 때 문에 여자를 생명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언제 지었는지 물으면 대개가 창조하여 아담에게 데리고 왔을 때 지었 다고 대답합니다.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은 때가 언제이며, 누가 왜 지었 는지 모르는 것은 구원의 복음의 기초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가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와 같이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받으 셨고, 그 믿음이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곧 여자의 후손이, 사 망이 된 아담과 그의 후손을 어떻게 생명으로 회복시킬 것인지를 보여주셨는 데그것이,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무고. ( 無 辜 ) 한 짐승이 희생되 는 것처럼, 여자의 후손이 아담의 사망을 대신 당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 다짐승이. 대신 죽으면서 그 가죽을 아담과 하와의 옷이 되게 하였습니다이. 것은 예수께서 아담과 그의 후손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아담과 그의 모든 후 손이 예수님의 생명을 옷 입게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 암아 입는 예수의 의의 옷, 곧 하나님의 의의 옷이지요. 이때 죽임을 당한 짐승은 양입니다. 어떻게 짐승이 죽었다고 단정할 수 있

90 느냐고 물으십니까? 하나님이 가죽만 따로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어 떤 가죽이라도 짐승이 죽으므로 얻지 않습니까? 물론 인조 가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지요.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에게 가 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말씀은 그들에게 옷을 입히시기 위하여 짐승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이때 죽은 짐승은 양입니다. 계 13:8 창세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한 바 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구 역).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의미상으로 이미 이 때 죽임을 당하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은 아담의 허리에 있지 아니한, 즉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닌, 아담과 상관없는 한 생명이 탄생하실 것을 계시한 것임을 우 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여자의 후손 그분은 아담 곧 남자와 상관없는 생명이 여자를 통해서만 탄생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도 아담 없이는 이 세상에 탄생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아담이 없으면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 이 라는 말은 아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자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생명이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이 분명히 계시된 예언이 가르치는 방법으로 오지 아니한 자는 결코 구세주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성경은 여러 번 계시하고 있습니 다. 렘 31:22 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 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

91 이 말씀은 새로운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생명이 여자에게서 남자로 탄생한 다는 예언입니다. 아무래도 생명은 남자로부터 이어지게 창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새 생명의 창시자도 비록 여자의 후손 곧 아담과 상관없는 자신의 생명으로 처녀에게 잉태하여 탄생하시지만 그분도 남 자로 탄생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와 상관하지 아니한 여자가 남자를 안 는다고 예언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는 어떤 학자는, 말세에 여자가 타락하여 남자들을 찾아 다니며 애욕을 갈구하는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여호 와가 창조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으로 구주가 오실 일을 하나님이 창조적 사업으로 이루신다는 것 을 예언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고전 11: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 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만일 예수께서 구주가 확실하다면 그분은 처녀에게 탄생하셔야 합니다. 숫 처녀에게서 탄생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할지 라도 결코, 결단코 구주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처녀 탄생에 대하여 회의하면서 빈정거리지만, 하 나님은 바론 이것을 구세주라는 확실한 증거로 내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지 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찬송을 받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롬 11:33-36). 사람들이 왜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느냐고 따지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머무나 명백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습 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다가 죽은 어떤 사람도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생명을 회복시키는 구주가 결코 될 수 없습 니다. 예수님만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유일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92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 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 라. 이 선언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결코 독선( 獨 善 ) 이 아닙니다. 다만 확실한 진리인 것입니다. 1. 예수께서 탄생하신 방법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눅 1:26-35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 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 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 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 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 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 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 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 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으리라.

93 구세주는 남자를 전혀 경험하지 아니한 숫처녀에게, 아담을 자기 안에서 택하여 창조하신( 고전 15:45; 엡 1:4,5) 여호와라 이름하신, 생명이신 당신 자 신이* 요 1:4), 생명의 씨가 되어 잉태되고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 아는 동침한 경험이 없이 예수님을 낳았다고 성경은 분명히 계시하고 있습니 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 여자의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 을 때에 하와는 자기에게서 뱀을 이길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성급한 기대를 가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가 아이를 잉태하고 아들을 낳았을 때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하와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에게서 난 아들이 뱀의 머리를 상할 구주라고 생각하고 외친 말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 의 이름을 가인 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얻었다 는 것입니다. 즉, 구주를 얻었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성경은 가인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얻은 아들이 아 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계시하고 있습니다. 창 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가인은 아담이 하와와 동침하여 잉태한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는 아담 곧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는 그 모친 마리아가 남자와 동침한 경험이 없음을 분 명히 말씀합니다. 마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

94 수라 하니라. 동침 이라는 말이 개역한글판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나지만 신약에는 그 낱말이 오직 마태복음 1장 25 절에 한 번만 나타나는데, 동침치 아니했다는 사실을 계시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동침하다 라는 말을 성경에 이렇게 사 용한 것은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동침치 않고 탄생하실 사실을 강조하려는 계시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와의 첫 아들은 가인에 대하여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했다고 밝혀 기록하였으며, 결국 가인은 구주가 아니라 여전히 아담의 후손으로서 사망하게 된 사람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동침하다 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창세기 4 장 1절은 히브리어 야다( ע ) 를 썼고, 마태복음 1장 25절은 헬라어 기노스코(γ ινὠσκω) 를 썼습니다. 이 말들을 직역하면 안다 는 말입니다. 즉 서로를 체 험한다 는 뜻이 되겠습니다. 구약에는 동침하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가 여 러 개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침상에 눕는다 는 뜻을 가 진 샤카브 ( ב )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자와 동침한 경험이 전혀 없는 처녀인 마리아에게서 남 자로 말미암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것은 생명과 사망의 차이, 곧 죽은 것과 산 것이 다른 만큼 다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다 죽었고, 예수님은 홀로 산 자 곧 생명으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예수님 자신이 친히 밝히 셨습니다. 요 8:23,2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 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95 가운데서 죽으리라. 이처럼 분명한 말씀을 우리는 오해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 리와 꼭 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우리와 엄청나게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난 것과 아래서 난 것이 다른 것처럼 다르며, 이 세상에 속한 것과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이 다 른 것처럼 다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큰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만 일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또 어떻게 예 수님이 우리의 모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와 그렇게 다른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우리 아담의 후손인 사람들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죄 를 짓지 않고 살 수가 있었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 은 전혀 가능한 일이 아니며, 예수님이 우리의 모본이 된다는 것은 어림도 없 는 말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언뜻 보기에 그럴 듯한 말입니다. 그러 나 이것은 예수님이 이루시는 구원을 전적으로 오해한 데서 나온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모본이 되시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모본이 되시는 것이지 아담 의 후손으로만 있는 죄인에게 모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본이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중생한 사람의 모본입니다. 앞으로도 말하겠지만, 구원은 아담의 후손으로만 있는 사 람을 그 가운데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으 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원받은 사람의 상태로 세상에 오신 것이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상태로 오셔서, 자기가 열심히 선을 행함 으로 구원받은 상태에 오르고, 그렇게 된 후에 모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죄 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생명 즉 구원받은 상태, 곧 죄가 전혀 없는 상태로 오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손들의 죄를 대신 지실 자격 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나면 예수 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과 같은 상태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며,

96 이렇게 된 사람은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산 것처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본인 것입니다. 잘 이해하시 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후에 다시 한 번 하게 될 것입니다. 2. 여자- 마리아 - 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닌가? 이와 같은 이치를 듣는 사람들은 석연찮은 의문을 떠올립니다. 곧 그렇다 면, 예수님을 낳은 여자는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닌가? 여자가 아담 안에 서 죽은 자라면, 여자를 통하여 태어나는 예수도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을 수가 있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의문이요, 이 이치를 공부하면 떠올려야 하는 의문입니다.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으면 앞에 설명한 내용을 아직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아 니면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거나. 물론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여자도 아담 안 에서 죽은 자입니다. 그러면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성 경의 어떤 문제 앞에 있을 때에 항상 그 일의 시작부터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것은 창조하기 이전 상태 곧 흙으로 돌아가 는 상태라는 것을 상기 ( 想 起 )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진실이라면 아담의 모든 후손은 이미 흙일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라고 말씀하신 것을 다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현명한 독자는 이 말의 뜻을 이미 알았을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 는 남자나 여자나 다만 흙일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자에게 생명의 씨 를 잉태케 하시는 것은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사람을 만드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그 안에 생명의 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남

97 자에게서 생명의 씨를 받아서 기르는 역할이 여자의 역할입니다. 남자가 생명 의 씨를 여자에게 주고 여자가 그 씨를 키워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입 니다. 말하자면 남자의 정자( 精 子 ) 가 생기( 生 氣 ) 의 역할을 한다면 여자의 태 ( 胎 ) 는 흙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명의 씨를 여자에게 주어야 할 남자는 이미 생명의 씨가 아니라 사망의 씨 곧 썩어짐의 씨를 여자에게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에게서 생명이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신이 생명 자체이십니다. 그가 생명의 씨가 되어 흙 인 여자에게 잉태된 것이기 때문에 여자가 비록 아담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그 에게서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것이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의 영향 곧 사망 아래 있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흙이 토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박토( 薄 土 ) 에서 자라는 식물은 비록 같은 씨앗일지라도 옥토에서 자 라는 것보다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비록 생명일지라도 그 몸은 죄인들의 몸과 같은 체질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죽어서 난 아이 [ ] 와 살아서 난 아이 [ ] 의 차이라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자가 흙이라는 사실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욥 10:9-12 기옥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나를 젖 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가죽 과 살로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뭉치시고 생명과 은혜를 내 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 이 정자 ( 精 子 ) 에 대한 언급이라면, 흙 은 난자( 卵 子 ) 에 대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8 욥 33:6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 을 입었은즉. 욥 4:19 하물며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시 139: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 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 이다. 이 말씀은 모태를 땅의 깊은 곳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체 질은 아담의 후손들의 체질과 같으나, 그의 생명은 아담과 전혀 상관이 없는,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살려주는 영이 되신 당신 자신의 생명으로 아담 후 손의 체질을 취하여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인 우리와 생명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며, 체질에 있어서는 같은 것입니다. 체질을 주장 ( 主 掌 ) 하는 것이 생명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생명이 주장하는 체질은 생명으 로 생활하고, 사망이 주장하는 체질은 사망으로 생활하는데, 그것은 곧 썩어짐 의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 마리아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예 수님이 아담의 죄에 감염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체질이 같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육체와 아담 후손들의 육체의 차이는, 예수님의 체질은 살아서 태어난 아이의 육체라고 한다면, 아담 의 후손들의 육체는 죽어서 태어난 아이의 육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 므로 육체 곧 체질은 같으나, 하나는 생명이 있으므로 썩지 않을 뿐 아니라 생활을 하고, 하나는 썩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산아( 死 産 兒 ) 의 육체와 활산 아( 活 産 兒 ) 의 육체 사이에 육체 그 자체에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산 사람은 같은 육체라도 썩지 않고 죽은 사람은 같은 육체인데도 썩어 없어 지는 것이지요. 이것은 엄청난 차이가 아닙니까? 그것은 곧 사망과 생명의 차 이입니다. 사망이 주장하는 육체는 썩습니다. 이런 것을 성경은 죽은 행실이라

99 고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버린 아담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죽은 행 실 곧 썩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 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 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 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엡 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 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3. 마지막 아담 그러므로 예수님은 또 한 사람의 아담, 곧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것입니다. 고전 15:45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예수님은 태초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아담 을 산 영이 되게 하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태초에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택함을 입어 산 영이 된 것 같이 지금도 아담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살 려주시는 영이신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 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빛이요 생명이십니다요 ( 1:4). 성경에서 아담이라는 말은 인류의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태초의 아담이 이

100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시조였던 것처럼,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새로운 생 명의 시작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후손 된 누구든지 새로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에 유의해야 합니다.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아담을 산 영이 되게 하신 살려주는 영이신 그분이 당신 자신의 살려주는 생 명의 그 능력으로 흙인 여자의 태를 빌려 새로운 피조물의 사람으로 이 세상 에 오셔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엡 4:24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뒤에 중생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 다시 말하겠지만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씀은 창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 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과 성령으로 창조하신 것을 창세기 1장 2절에 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는 말씀입니다. 그처럼 예수를 믿으므로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는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것이 확실한 진리라면 성부 성자 성령께서 또 새로운 죄 있는 피조 물을 창조하시겠습니까? 죄 없는 새 피조물을 창조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은 우습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에 죄성 ( 罪 性 ) 이 있다는 말은 어불

101 성설( 語 不 成 說 ) 입니다. 다만 아담의 후손인 우리와 같은 체질을 가졌을 뿐입니 다. 그것은 창조 당시에 아담의 체질보다는 훨씬 약하여진 토박한 흙으로 지 어진 체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약해진 체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아담이 가졌던 체질보다 부서지기가 훨씬 쉬운 체질이지요. 그러나 그 체질이 죄의 체질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입 니다. 즉 생명을 잃어버린 것, 곧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져서 비생명 ( 非 生 命 ) 이 된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한 번도 비 생명이신 적이 없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비생명이 되게 하려 고 온갖 노력을 다했습니다. 사단은 아담이 그렇게 좋은 체질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단번에 비생명으로 떨어지게 했기 때문에, 약한 체질로 오신 예수님을 아주 쉽게 비생명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약해진 체질을 가지고도 결코 비생명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완전 히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생명 자체이기 때문에 단연코 아담 안에 서 죽은 사실이 없습니다. 즉 원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스스로 직접 지은 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넉넉히 아담의 죄, 곧 아담의 죽음을 대신 담당하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서 살아가신 모습은 새로운 피조물이 사는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즉 중생한 사람이 사는 생 활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구원 얻은 모든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람입니다. 이제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이 생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래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죽 은 채로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구별되었기 때문에 거룩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것입니다. 이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아니요, 예수 안에서 산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이것을 중생이라고 하고 칭의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 자손인 우리와 같은 것이 아니라, 아담의 자손인

102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므로 예수님과 같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중생한 사람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 람들의 모본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은 자요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삶의 본을 보일 수가 없 습니다.

103 제 7 장 중생( 重 生 ) 과 예수님 예수님의 탄생 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 음에는 마태복음보다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 핵심이 되는 내용은 예 수님이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마리아가 남자와 동침한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러한 처녀에게 이사야의 예언 대로 여자의 후손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였는데, 그는 거룩한 자요, 하나 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자요,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 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 ( 現 夢 ) 하여 가로되, 다윗 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 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게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 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 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104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 을 예수라 하니라. 눅 1:26-35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 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 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 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 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 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 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 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 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 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 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 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 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으리라. 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사실에 대하여 다른 표현을 쓰고 있습니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말씀이신 하나님 자신 이 친히 육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예수님은, 지 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는 창조주이신 말씀 하나님이십니다.

105 그러므로 그분이 세상에 사람으로 탄생하시는 일에 구태여 신성의 다른 위격 ( 位 格 ) 의 조력을 빌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스스로 생명의 씨가 되어 잉태되 시고 탄생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바로 이런 사실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요한의 기록과 함께 마태와 누가의 기록을 다 보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들이 거듭나는 방법을 본으로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자존자( 自 存 者 ) 이시기 때문에 사람 되어 탄생하시는 것도 스스로 하실 수가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 잉태되어 태어날 수 없습니다. 부모가 태어 나게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거듭나는 것도 마찬가지입 니다. 스스로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지 않으면 거듭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생명의 씨가 되어 처녀인 마리 아에게 스스로 잉태될 수 있었으나 성령으로 잉태되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중생( 重 生 ) 하게 하심으로 아 담 안에서 죽은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 중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신 것은, 말하자 면모태에, 잉태되시고 탄생하시는 그 자체가 바로 거듭나는 상태라는 말입니 다. 우리는 모태에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이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여주시면 동시에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가 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성령께서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 명의 씨로 주셔서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탄생하시는 것이, 우리의 처지에서 말한다면, 바 로 중생으로 탄생하신 것이고, 우리는 태어나는 것이 죽은 자로 태어났으나 예수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신 것과 같이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중생으로 탄생하 신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올리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미 말했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인 우리와 같은

106 상태로 오신 것이 아니라, 중생의 생명으로 탄생하셔서 중생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시고, 우리를 성령으로 중생하게 하셔서 예수님의 거 룩한 상태로 끌어올려 놓으심으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 있게 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중생했다면 예수님이 사신 것과 같이 능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오묘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107 제 8 장 선재( 先 在 ) 와 탄생 선재( 先 在 ) 라는 말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인격적 상태로 존재하 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인격적인 상태가 이 세상에 태 어나서도 계속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 나 이 세상에 태어난 후나 동일한 인격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 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전이나 탄생하신 후나 또 부활 승천하신 후나 그 인격과 의식에 있어서 언제나 동일 하신 예수님입니다. 라.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 만일 후생이 전생과 인격과 의식에 있어서 연속성이 없다면 이는 선재도 아니고 전생도 아닙니다. 언젠가 전도회 기간에 우리 전도 대원들이 길가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도회에 참석하도록 권하다가 불교 신자인 여고생과 토론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여고생은 전도 대원들에게 강권을 받자 괴로운 얼굴로 독백하 였습니다.

108 아이구,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오늘 이런 고통을 당하지? 나는 이 말을 받아서 그 학생에서 이렇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학생, 학생은 전생을 믿어요? 그럼요. 그러면 전생의 학생과 지금의 학생 사이에 의식의 연결이 있어요?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학생이 전생에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전생에 사람이 었다든지, 혹은 소나 개였다든지 하는 의식이 연속되어 기억이 되느냐는 말입 니다. 아니오, 전혀 모르지요. 그러면 전생은 전혀 학생의 현재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학생은 지금 학생이 태어나기 이전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존재하지도 않 았다는 말입니다. 만일 전생이 있었다고 해도 그건 전혀 학생과 상관없는 어 떤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여학생은 믿을 수 없다는 모습으로 그 자리를 피해 갔습니다. 이런 것은 결코 전생도 선재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시기 전에 계신 것을 전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 다. 그것은 선재입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 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당신 자신이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의식은 온전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 3:11-1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 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 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 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

109 요 6: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하려느냐? 요 17:5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 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처럼 선재( 先 在 ) 하셨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사람 중에서 오 직 예수님만이 당신이 사람 되어 세상에 탄생하실 것을 스스로 계획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로서 세상에 탄생하실 일에 대하 여 자세히 예언하게 하시고 예언된 대로 세상에 오시므로 예수님이 진정한 구 세주라는 사실을 세상으로 믿을 수 있는 증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예언 중에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 몇 가지를 찾아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탄생하실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십니다( 창 3:15). 처녀에게서 탄생하십니다사 ( 7:14).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십니다( 시 132:11,12; 렘 23:5). 5:2). 둘째, 탄생하실 장소에 대한 것입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십니다( 미 셋째, 탄생하실 때에 대한 것입니다. 70주일 기간 중에 69 주일 끝에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단 ( 9:25). 이밖에 생애에 대한 것과 대속하시는 사업에 대한 것들 등, 아주 많이 있 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미리 계획하시고 예언하신 것은 당신이 선재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선재하면 이런 것들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인 사람은 인격적으로 선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을 스스로 계획하여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하는 일에는 우리가 부모에 게서 태어나는 것과는 다르게 계획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생해야 하는 내가 중생하기 전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은 자가 되었으나

110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집행 유예가 되어 중생하여 영생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아담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이 무엇을 할 때 전적으로 사람 자신이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라서 나쁘지 않지만, 구원받는 일 에도 사람의 공로가 있어야 구원받는가 하여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을 바르게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돈을 버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이 말에 대하여도 동의하지 않으려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여 돈을 벌게 해 주시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하겠지요. 그런 주장에도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돈 버는 일은 사람이 하지 않습 니까? 장사를 한다든지, 회사를 경영한다든지,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닌다든 지, 하나님이 사람 대신 이런 것을 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생명과 능력과 지각( 知 覺 ) 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따 를 결정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런 일에 대하여 경고한 바 가 있습니다. 신 8: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 ( ) 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히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 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찍이 다윗이 고백한

111 대로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데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나 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 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 대상 29:14).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할 몫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사람들이 종종 합 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까?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몫 이 있습니까? 만일 인간의 몫이 있다면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온 것 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작더라도 인간이 담당한 몫이 있는데 라는 논리이지요. 이런 말에 대하여 다윗은 정확한 대답을 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 이다. 이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요. 에덴동산에 가보면 이런 것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다만 흙일뿐 입니다. 그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라 이름하신 창조주께서 그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 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했을 대, 하나님의 형상을 생명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아담은 이 모든 가능성을 행 사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가 행사한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지요. 이런 외람된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은 일찍이 한탄하셨습니다. 겔 16:17-19 네가 도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 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호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 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희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112 저가 알지 못하도다. 사람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고전4:7)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선택한다 할지라도 그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준 선택권을 관리한 것에 불과한데 그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 이다 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자기를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 결과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 려야 할 때가 오면 우리는 그 유예된 사망 집행으로 영원히 창조되기 전 상태 로 돌아가서 전혀 없던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 의 역사로 중생 하는 것은 사망 집행이 유예된 상태로 선재하는 내가 있기 때 문에 예수를 믿기로 결정하고 그래서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맡기기로 결심하 여 중생의 생명을 소유하기로 계획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은 우리의 처지에서 말한다면 중생으로 탄생 하신 것과 같다고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것은 선재하시던 말씀 하나님이신 그분이 계획하고 하신 일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예수님은 신성으로 선재 하셨지만 우리는 중생하기 전에 죄인 으로 선재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탄생하실 것을 스스로 계획하시고 그 렇게 오신 것처럼, 우리의 중생도 이와 같은 면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의식을 가진 인격체로 유예 받고 있기 때문에, 즉 죄인으로 선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 신 지각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굴복하여 중생의 생명으로 태어날 것,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선택, 결심해야 하

113 고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예수님의. 선재와 성령 으로 탄생하신 사실은 우리들의 이런 면에 대하여서도 본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내용들이 여자의 후손 이라는 계시( 啓 示 ) 에 포함된 의미인 것 입니다.

114 제 9 장 창조와 의( 義 ) 이제부터 함께 나눌 내용에는 앞에서 말한 내용들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앞에서 한 말을 또 한다 고 지루해 하지 마시고 자세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중복되는 것은 그만큼 중 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 창조와 의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가 종교개혁을 한 후부터 개신 교회에서는 믿 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열심히 주장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하 게 된 동기가 로마서에 기록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롬 1:17) 는 말 씀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구약 하박국 2장 4절 의 말씀을 로마서에 인용한 말입니다. 즉 구약에서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확실히 말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가톨릭교회에서는, 사람 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지금 도 그들은 그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과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고행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루터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빌라도의 계 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평안도

115 없었다고 합니다. 마침내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의인은 고행이나 율법을 스 스로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서만 구원받고 의롭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평안과 기쁨이 샘솟았다고 합니다. 이 힘이 마침내 개 혁의 횃불로 높이 쳐들렸고 개혁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알기 위하여 로마서를 부지런 히 연구합니다. 또 갈라디아서를 연구합니다. 이 두 성경은 탁월한 논리를 믿 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또한 믿음으 로 말미암는 의를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마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창세기의 기록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창세기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계시되어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과연 성경은 창세기부터 믿음 으로 말미암는 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와 관련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생각할 때에 의에 대한 개념을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의를 우리의 죄가 용서받는 것과 관련하여 생각하게 되고 또 우리의 죄는 도덕성 문제에서 찾고 그래서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은 모든 도덕적인 잘못에 대하여 용서받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기 대분입니다. 그러나 빈 마음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하면 죄, 용서, 의 등의 말씀이 인간의 어떤 상태보다 먼저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물이든지 결과에서 원인을 추리하면 어렵습니다. 더 쉬운 길은 원 인에서 결과를 보는 방법입니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불행은 결과만을 가지 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있기는 있는데 내가 있는 그 원인과 근거를 나 자신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의 원인을 자기 밖( 外 ) 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결과에서 원 인을 추리하여 찾는 일에 아주 익숙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얻 은 결론은 엄청난 엉터리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진화론

116 이 아닙니까? 결코 증명되지 못한 이야기를 다만 추리로 맞추어 사실인 것처 럼 믿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금수 ( 禽 獸 ) 와 버러지의 후손으로 만들었습니다롬 ( 1:23).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 하는 짐승 같도다 ( 시 49:20) 는 말씀은 진화론을 두고 한 말씀이 아니겠습니 까? 성경은 모든 것의 원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해 준 말씀입니다. 이 말 씀에 의하여 우리는 원인을 알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자식은 부모의 설명에 의하여 자기의 원인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 지로, 사람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설명에 의하여 원인과 결과를 아울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서도 결과를 가지고 설명하는 로마서를 연 구하는 것으로 시작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말하는 창세기에서 시작하면 더욱 분명한 개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창 15:6,7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 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가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다. 이 말씀은 믿음으로 밀미암는 의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 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117 바울의 설명을 분석하면,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창조하시 고 구원하시는(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이시며, 바로 그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 니다. (1) 지존하신 하나님을 믿음 = 여호와를 믿으니.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 =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 (3) 구속주 하나님을 믿음 =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 창세기의 기록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 엘로힘을 ] 믿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습 니다. 여호와를 믿었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거기에는 적어도 네 가지 이상의 기 념이 있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믿었다는 말은 이 네 가지 사실을 다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 네 가지 기념은 전적으로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사상이나 행위가 끼어들 자 리가 조금도 없습니다. 율법은 인간 행위 주의를 요구하고 조장합니다. 이미 말한 대로 율법과 도 덕은 사람의 행위를 요구하지만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와 구속은 전적으로 하 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믿음을 요구합니다.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 님 행위 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들로 이것을 행하게 하여 사람의 행위의 의로움을 증거하려 하 는데, 이것은 죽어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사람은 지극 히 도덕적이며, 율법적입니다. 이런 것은 이 세상에 속한 사망과 죄의 성질입 니다. 그러므로 이런 도덕주의와 율법주의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무시하게 만듭니다. 롬 10:1-3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 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 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

118 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 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의를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행 위가 율법 준수적이고 도덕스러움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그들은 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 는 도덕적 선행일까요? 종교적 계율에 충실한 것일까요?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에 기독교가 도덕적 종교로 타락했다는 심한 말을 했지요? 의와 선을 도덕 적인 것이나 종교적 계율로만 생각하면 기독교는 복음에서 도덕으로 전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라 이름하신 분은 성경에 의 와 선의 본질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율법을 준수하거나, 도덕적 행위로 이루 어지는 의는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는 사람의 행위와 상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행위입니 다. 롬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 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 믿음이 요구 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의 행위에서 나는 것이면 사람의 행위가 요구되지 믿음이 요구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의( 義 ) 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 이요, 그것을 전적으로 믿을 때에 하나님의 행위가 사람에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119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에 비록 죄인이지만 인격적 의식이 있는 자로 선 재하고 있음을 하나님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만한 일을 하나 님의 행위로 행위 하시고 사망 집행 유예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 행위를 믿도록 간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을 때 하나님의 행위가 그에게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의 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위,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행위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 로 창조와 구속입니다. 창조에는 사람의 행위가 들어갈 틈이 결코 없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어떤 피조물도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깨어 들 틈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의 단독 행위입니다. 사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 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그와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셨습니다. 창 조는 여호와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며, 그것은 그의 영광과 의를 나타내신 것입 니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 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 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 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바 그 영광을

120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여호와라 이름하신 당신 자신을 그가 창조하신 세상에 드 러내신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계신 그의 존재를 타나내신 것이 며, 그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요,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신 것입니 다성경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출 33:18,19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가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가 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출 34:5,6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 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 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는 하나님의 영광임을 계시하고 있습 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한 형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창조하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될 수가 없었을 것 아닙니 까? 그러므로 창조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전부입니다.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 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영광과 의를 그가 창조하신 세 상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전적으로 영광과 의이며, 그래서 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고, 의로 창조함을 받은 의의 나무는 의 의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적 순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열매를 맺지 않는 의의 나무는 그 내용에 있어서 이미 의의 나무가 아닙니다. 마 7:16-18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

121 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 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 라. 이 말씀은 못된 나무가 좋은 열매 맺는 나무가 되기 위하여서는 새로 창조 되어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엉겅퀴가 스스로 무화과나무가 될 수 없고, 가시나무가 스스로 포도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창조주 의 창조 행위에 의하여서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길, 곧 중생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시는 창조 행위인 것입니다. 시 51:17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의 요점은, 성경이 말하는 기본적인 의는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된 그대로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를 믿었습니다. 즉 아브라 함은 창조로 모든 것을 있게 하시는 여호와를 신뢰했다는 말입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땅에 편만한 믿음의 후 사, 곧 새 창조로 의롭게 된 백성을, 믿음으로 보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새 창조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122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 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 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 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이 말씀은 로마서 4장 17절의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과 같은 뜻이 아닙니까? 아브 라함은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는 경험을 하기 전에 믿음으로 이것 을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바울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사건은 창세기 15 장의 일인데, 이때는 아직 아브라함이 한 명의 아들도 낳기 전입니다. 그리고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과 같다 고 한 사건은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러 갔다가 수양을 대신 드리고 이 삭을 제단에서 산대로 도로 받은 사건인데, 이삭이 태어나서도 한참 후인 창 세기 22 장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상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이삭을 도로 살리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와 부 활, 곧 재창조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하나님, 곧 스스로 계신 하나님,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그분은 온전히 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다 의롭습니다. 그래서 그의 창조가 의롭고, 그의 재창조가 의롭습니다.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구속받은 존재, 즉 재창조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을 사람 스스로 손상시 키지 않고 성령의 역사로 잘 보존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된 상태를 지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

123 해 주신 사람이요,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해 가는 사람에 대한 말인 것입니 다. 2. 욥기와 의 욥기는 인간의 고난 문제를 깊이 있게 취급하고 있는 책입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절 절이 쌓여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서두에서 고난당하게 되는 욥의 순전하고 의로움을 분명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욥에게 악이 없음을 직접 증언합니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 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러한 욥이 고난을 당합니다. 욥은 자가기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모르고 있어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욥이 고난당하는 원인이 사단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읽습니다. 책 서두에 사단이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것을 기록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이 여호와 앞에 모였는데, 사단이 거기 참석했습니다. 사단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거기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 면 하나님 앞에 모여 섰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어떤 존재들입니까? 많은 주석

124 가들이 천사라고 해석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욥기 38장 7 절에도 하나님의 아들들 이란 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새벽별들과 함 께 이 말이 나타납니다. 별이 천사를 뜻한다는 것은 다 인정합니다. 요한계시 록 12장 3, 4절에 하늘의 별 3분의 1을 떨어뜨리려는 용에 대한 계시가 있습 니다. 용은 사단이고( 계 12:9) 별은 사단에게 이끌려 타락한 천사들을 가리키 는 것을 주석가들은 예외 없이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욥기의 하나님의 아들들 이 천사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천사들인 새벽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구 별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천사 중 누구에게도 너 는 내 아들이라 고 한 일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히 1:5, 6). 그러면 이 하 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입니까? 또 왜 하나님 앞에 모였습니까? 그것은 우주의 장자들의 회의에 참석한 것일 것입니다. 하늘에는 우주의 창자들의 총회가 있 습니다. 히 12:22,23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 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 들과. 이 말씀에 의하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구원받은 성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온전케 된 의인 이 라고 구별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천사도 아닙니다. 천만 천사 가 구별되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굽니까? 이것의 대답을 위하여 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욥기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체를 알고 사단 이 거기 참석한 이유를 알기 위하여서는 이야기를 해야 되겠지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을 지구에만 창 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우주를 모르는 편협한 지구 사

125 람들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오만( 傲 慢 ) 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셨 습니다. 그 우주는 얼마나 넓습니까?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 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 그것은 밀짚모 자 두 개를 마주 엎어놓은 것과 같이 생겼다고 하는데, 그 지름이 10 만 광년 이며, 한가운데 두께가 1만 5 천 광년이라고 합니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달리는 빛이 10만 년이나 달려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는 말이 아 닙니까? 이런 은하계 안에 태양과 같은 항성( 恒 星 ) 이 1천억 개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은하계가 우주 안에 1 천억 개 이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것은 1960 년대에 출판한 책에 기록된 숫자입니다. 아마도 지금은 훨씬 많은 숫자가 발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행 주재시니. 사 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 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 니라. 오늘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그런데 이 티끌 같은 지구에만 사람을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좁은 소견입니까! 사 40:15,17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 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

126 느니라. 열방, 곧 이 지구는 온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티끌같이 작은 것입니다. 하 나님 앞에는 없는 것 같고 빈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넓고 넓은 우주 에 하나님은 많은 세계를 사람이 살도록 지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살도록 지은 세상마다 첫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들이 장자들입니 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고 그의 말씀을 듣 는 일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입니다. 그 총에는 모든 세계의 장자들이 다 하나님 앞에 모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바로 그 모임에 사단이 참석한 것입니다. 사단은 결코 장자가 아닙니다. 더구나 그는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닙니다. 그 런데 장차 총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에게 물은 것입니다. 욥 1: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 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 지구 ] 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 왔나이다. 즉 사단이 땅 곧 지구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구의 대표, 즉 지 구의 장자( 長 子 ) 로 왔다는 대답입니다. 자기는 지구의 통치자라는 말입니다. 모든 지음을 받은 세계의 첫 사람들은 그 세계의 통치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아담이 지구의 통치자로 임명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창 1:28). 만일 사단이 지 구의 정당한 통치자이면 지구의 모든 거민이 순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지요.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표가 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 단 사이에, 지구의 주권 문제가 거론이 된 것입니다. 이 일에 욥이 증인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127 욥 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 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9-11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 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 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 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명하여 주를 욕하리이 다. 욥 1: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거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지니라. 결국 사단은 자기 영역 안에 있는 욥에게 하나님이 간섭하고 복을 주시므 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보호사시며 축복하 시는 손을 때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은 틀림없이 자기( 사단) 를 경 배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의 몸에 손을 대지 말고 그를 마음대로 해 보라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욥에게 고통을 가함으 로 지구의 정당한 주인이 사단 자신임을 하나님 앞에 증명하려고 한 것입니 다이렇게. 해서 욥의 긴 고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욥기의 사건은 그 의미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경배의 문제입니다. 창조 주 하나님을 경배하느냐, 아니면 사단을 경배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많은 연구가들이 빗나가서 욥기의 중심 사상이 인간의 고난 문제에 대한 해답 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부수적인 문제로 해답이 된 것일 뿐입 니다. 경배에 관한 문제가 중심 문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경배에 관한 문제는 또한 창조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단이 왜 경배를 받아야 합니까? 경배를 받을 만한 무슨 일이 있습니까?

128 사단은 자신이 지구의 통치자이기 때문에 경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눅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 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가 주리라. 이것 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을 시험하는 광야에서 마귀는 이 세상을 자기가 넘겨받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누가 넘겨줬습니까? 아담이 사단에게 유혹되어 지구의 통치권을 사단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주의 장자 총회에 지구의 장자 아담 을 대신하여 장자의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지구의 통치권은 자기에게 있는데, 왜 하나님이 욥을 간섭하느냐고 시비를 건 것입니다. 그러므 로 마땅히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사단 자기에게 경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경배 받을 이유를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에 근거를 둡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 다사단도. 원래는 하나님이 창조한 천사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두려고 획책( 劃 策 ) 하 다가 사단이 되고 하늘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명백 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 제4 장에서 이 내용을 자세히 말했습니다.) 사단은 욥에게 고통을 가함으로 자기를 경배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런 짓 은 세상의 폭군들이 즐겨 쓰는 방법인데, 사단에게 그 기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 경배하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기로 굳게 선택한 욥은 고 난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위로차 찾아온 친구들까지도, 욥의 고난은 욥이 범 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벌 받는 것이라고 몰아세웁니다. 욥이 호소할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긴 변론이 시작되었고 변론이 진행되면서 욥은 자기의 선행

129 과 도덕적인 의를 오만하도록 강하게 주장합니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종교적 으로 허물이 없다. 아마도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같이 취급하시는가 보 다고 강변합니다. 세 친구는 그들이 욥을 충고하면 할수록 욥이 더욱 강경하 여지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그칩니다. 결과는 친구들은 욥을 아주 고약한 죄 인이라고 결론을 지었고, 욥은 친구들을 사정도 모르면서 무조건 정죄하는 자 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공방 ( ) 은 다 같이 도덕적 죄어 집중되어 있 습니다. 이 도덕성이 잘못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벌을 주신 다는 논리가 세 친구의 논리인 셈입니다. 쉽게 하는 말로 권선징악 ( ) 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고난당하는 이유를 도덕적 안목에서 찾는 것곧, 자기가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자신을 고난당하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고 하소연합니다. 누군가 이것을 명백히 가르쳐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 에게서는 대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비록 엘리후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언급 을 약간 했을지라도 욥은 수긍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욥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내용이 욥기 38장부터 41 장까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뜻 읽으면 앞에 기록된 욥기의 내용과 동떨어진 내용을 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관점과 사람의 관점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은, 핵심을 아주 벗어난 완전히 사람들의 사상 중심의 논쟁이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도덕적 선행과 악행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정죄( 定 罪 ) 의 자[ 尺 ] 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것은 곧 존재와 생명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또한 창조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이야말로 경배에 대한 핵심 문제가 아닙니까? 경배는 창조와 존재와 생명에 관한 문제입니다. 창조 하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았고, 생명이 없으며, 물론 경배가 이루어질 수가

130 없습니다. 사람의 도덕적 선행이나 악행도 존재와 생명이 있고난 후의 일입니 다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질문하십니다. 욥 38:1-7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 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가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 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 ( 準 繩 ) 을 그 위에 띄웠었 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 가 놓았었느냐? 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그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 이 질문의 내용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욥이 존재 하고 있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물론 욥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아담도 존재하지 않는 때입니다. 그때는 아직 하나님이 창조를 하시는 때이기 때문입 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모든 것을 있게 하지 않았으면 욥이 존재하지 않 습니다. 우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서 아무런 행위도 나올 수 가 없습니다. 없는 데서 무엇이 나옵니까? 욥은 자기 행위가 자기의 도덕성이 기인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도덕적 선행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 친구의 논리도 같은 논리입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면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시고 악을 행하면 그 악의 보응으로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이 바로 그 논리이지요. 처음에 이야기한 대로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도덕이 가지고 있는 논리입니다. 욥도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행한 모든 선행에 대한 보답이 고난으로 다가왔을 때 그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통은 가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문제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욥의 선행이

131 나 고난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욥의 존재와 생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단이 하나님께 욥을 참소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욥의 생명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습 니다. 욥으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한 것은 욥의 생명을 보존 하심으로 그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욥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 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요 15:5) 는 말씀은 너무 나 확실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욥기 38장에서 41장까지 당신의 창조하신 것과 모든 피조물을 보존하시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선행이 의로 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욥기에서 가르치는 의는 하나님의 창조입니 다.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을 때에 그것이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님이 있게 한 자리에서 떠났습니다유 ( 6). 그것은 악이요, 죄이며, 사망입니다. 하나님이 있게 한 자리에 그대로 있지 않는 것은 곧 없어질 수밖 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사단은 마침내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창조에 대하여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 조를 거절한 자들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서도 말씀하십니다. 심판은 창조주가 당연히 하실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은 창조를 거절한 창조된 존재들을 창조되지 아니한 것처럼 처리하는 것인데, 이것도 역시 창조주의 능력으로 이 루어집니다. 욥 40:6-14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 대,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 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 ( 華 美 ) 를 스스로 입을지니라.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

132 하여 낱낱이 낮추되,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 에 둘지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 하리라. 스스로 구미며 스스로 입을지니라 는 말씀은 자존( 自 存 ) 과 관계되는 말씀 이 아닙니까? 즉 욥이 자존하였느냐고 묻는 말씀입니다. 욥은 결코 자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지구의 장자권, 곧 통치권을 주장하며 하나님 앞에 나타 나서 지구 거민의 경배를 자신이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지구 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단에게 경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 에 하나님이 욥을 특별히 돌보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 서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이 욥을 특별히 돌보기 때 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아울러 사단이 심판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한 자인데,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 여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존하여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주 장하므로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고 스스로 있는 자가 되겠다는 사상을 드러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단에게도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존재와 생 명을 반납하라고 하실 날이 옵니다. 그날이 큰 날의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유 6; 벧후 2:4). 그래서 사단은 그 존재 자체가 악입니다. 물론 아담이 사단의 말에 속아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는 선택을 했기 때문에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도 그 존재 자체가 악이요, 죄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아 담의 후손들의 사망이 집행 유예되고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재창조 의 생명을 얻고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 곧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롬 ( 6:4) 되어 도덕적 선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욥의 속죄 제사는 하나님의 이 재창조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행위였습니

133 다그는. 하나님의 이 새 생명의 약속을 철저히 스스로 선택하여 여호와 하나 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경배하며 의를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 기에게 축복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당하는 재난들을 도무 지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바르게 선택하였으나 하나님의 축복이 자 기 행위의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얼마 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지요! 그 러나 하나님이 욥에게 창조에 대하여, 보존에 대하여 또한 심판에 대하 여 말씀하셨을 때에 사람의 도덕적 선행이 그 자체로써 하나님 앞에 의가 되 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의는 철저히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있게 한 자리에 머물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의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사람이 세상에서 당하는 번영 과 고난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 고,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할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이 영원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고난도 가고, 사 단도 가고, 사단이 주장하는 세상도 가고 오직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한 것이 창조된 의도대로 있을 때에만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입 니다. 이렇게 영원히 있는 것, 그것이 의요, 생명이요, 존재입니다. 욥이 드디 어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겸손히 회개의 고백을 합니다. 욥 42:1-6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 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 가 주께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 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134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은 지금까지 인간이 행하는 도덕적 선행에 의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대접 하는 줄로 생각한 허물을 회개합니다.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정 반대의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도록 해 주신 사실에 의하여 있게 되 었을 때 비로소 선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도덕적 선행은 하 나님이 존재하게 하여 생명을 주셨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법입니다. 또한 구원의 법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다음 에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위하여 바 르게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사람은 행할 수 있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때 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행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인식하지 못 할지라도 이것은 엄청나게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오해를 바로잡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으로 의로 여기시나니. 하나님께서 욥에게 창조와 보존과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을 때에 욥 은 비로소 자기의 인식( 認 識 ) 이 잘못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 하였고,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의로 회복시켰습니다. 우리도 성경 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의 실상을 바르게 알고, 욥처럼 회개하고 그 의에 거하 여야 할 것입니다.

135 죽음과 죄 이 문제는 제4 장에서 상당히 자세하게 다룬 문제입니다. 그러나 의에 대하 여 말하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말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성 경은 죄라는 말을 말하기 전에 죽음이라는 말을 먼저 했습니다. 죄라는 말은 창세기 4장 7 절에 처음 나타납니다. 창세기 4장에 나타난 것을 보면 죄는 죽 음의 본성 ( 本 性, nature) 임을 알게 됩니다.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 를 다스릴지니라. 이 말씀에 죄 라는 말이 한꺼번에 세 번 연거푸 나오면서 죄를 다스리기 를 요청합니다. 죄를 다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가 문에 엎드렸다는 말은 가인의 의미상 무( 意 味 上 無 ), 즉 죽은 것으로 여김을 받은 것이 실제적 무( 實 際 的 無 ), 즉 죽어 없어질 것으로 확정될 것을 뜻합니다. 갑자기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하십니까? 근본적인 죄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제5 장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것입 니다. 그러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여기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하여 조금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담이 선약과를 먹은 후에 정녕 죽게 되었을지라도 죽음의 모습을 아직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죽는 것이란 창조되기 이전 상태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설명을 하나님께 들었을 뿐, 그 실제적인 모습을 체험하지 못했습니 다. 어쩌면 아담은 흙을 만지면서 자신이 창조되기 전에 바로 이런 것이었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자기의 죽음

136 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의 살인 사건으로 뼈아픈 슬픔과 함께 체험하는 사건 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4:1-5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며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 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 는 자이었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 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재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재물은 열 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와는 첫 아들을 낳고 가인 곧 얻었다 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뜻은 창세기 3장 15 절에 하나님이 약속한 여자의 후손 을 얻었다는 뜻이었지요. 즉 구세주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하와는 자기들의 죽음을 회복할 구세주가 그 처럼 속히 임하기를 기대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 아 득남하였다 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 한 것이 아니라 아담과 동침하여 득남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아담 안에서 죽은 존재로 태어난 것이지, 아담의 생명과 상관없이 처녀에게 탄생한 여자의 후손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 속에 태어난 가인은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 제간의 사건을 통하여 성경은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이며, 죄로 인하여 창조 이전상태로 돌아간 것이 어떤 것이지를 계시하고 있습니다. 가인 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로 일어난 사건은 바로 존재( 存 在 ) 와 비존재 ( 非 存 在 ) 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농산물로 제사 드린 것을 하나님은 왜 받지 않으셨을까요? 아담이 선악과 를 먹은 후에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을 분명히 말

137 하셨는데, 아직도 아담은 살아 있고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아담이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자의 후손에 대하여 이야 기할 때 이미 말한 대로 여자의 후손의 약속에 의하여 유예( 猶 豫 ) 된 생명인데, 이것은 속죄를 통하여 유지되는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 손인 구세주가 와서 아담의 죽음을 처리해 주는 대속 ( 代 贖 ) 의 속죄를 믿는 믿 음을 속죄제를 드림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대속의 속죄를 믿을 때에만 유예된 생명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생명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짐승을 죽여 가죽옷 을 지어 입히시므로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아직 살아 있고 자녀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가인과 아벨, 또 그들 외에도 많은 자녀를 낳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태어났을 지라도 예외 없이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속죄제의 계시는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직접 체험한 것이며, 하나 님의 행동으로 계시된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이것을 아버지로 부터 듣고, 그 들은 것을 믿으며, 그 믿는 것을 실천해야만 하였습니다. 즉 직 접 보고 배운 시대에서, 보고 배운 사람에게 듣고 배우며 믿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말씀은 생명과 존재를 하 나님 앞에 참으로 있게 하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속죄제를 드리지 않고는 존재로 인 정되지 않습니다. 속죄제를 드리기 전에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없는 자입니 다. 즉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린 자라는 말입니다. 아벨은 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믿음을 실천하였습니다. 속죄제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없어져야 할 나를 대신하여 다른 생명이 없어져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피에 있 다( 레 17:11) 고 성 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히 9:22) 고 성 경은 선언합니다. 그래서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이 땅으로 돌아갔다는 것, 즉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138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 양이 피 흘려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지요계 ( 13:8). 그런데 가인은 이 지극히 중요한 계시의 내용을 우습게 여긴 것이 틀림없 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너무 자질구레하게 간섭하신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릅니 다. 또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제사를 드리면 되었지, 무슨 피를 꼭 흘리는 일 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피 흘림의 제사가 바로 대속의 속죄요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유일의 길인 것을 간과( 看 過 ) 해 버 렸던 것입니다. 자기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자기의 의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를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 하다는 사실을 제사로 드리면 된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가인도 분명 히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존재 하게 한 대로 존재하지 않게 된 사실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은 유예( 猶 豫 ) 된 사망( 死 亡 ) 이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들일 때에만 알게 됩니다. 가인은 아담을 통하여 주신 속죄의 계시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자기의 지성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였으나, 그 지성이라는 것은 죄로 죽은 지성일 뿐입니다. 사실 오늘날 사람들도 이것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의식이 있고 사고 ( 思 考 ) 가 있고, 행동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앞 에 비존재(( 非 存 在 ) 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심히 어려우며, 여기에 영원한 사망 의 비극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을 수가 없었을까요? 그 대답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없는 자[( 非 存 在 ] 가 드린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없는 자가 드리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속죄제를 드리기 전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없는 자 일 뿐입 니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없는 자 가 무엇 을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받으실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밖에요! 가인이 곡 식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속죄제를

139 드리지 아니한 가인인 비존재 (( ) 일 뿐이기 때문에 그가 드리는 것은 드 리는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요술 같은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계시는 실제로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 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고 싶어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의 제 사를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길을 진지하게 가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창 4:6,7). 즉 가인이 죄를 다스린 후에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는 감사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창세가 4장 7절은 성경에서 죄라는 말이 처음 기록된 곳이라고 이미 말씀드렸지요? 그러므로 죄는 죽음이 나타나는 성질이요 모양입니다. 즉 썩는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죄를 다스리라는 부탁은 죽은 자가 산 자가되라는 부탁 이요 하나님의 절실한 소원입니다. 산 자가 되는 길이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 니다. 예수님 십자가 후에는 예수님의 대속을 진정으로 믿는 것이 옛날에 속 죄제를 드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 라는 히브리말이나 속죄제 라는 히브 리말은 같은 단어 핫타트 ( את ) 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라는 말은 도덕적 으로 선을 행하라는 말이기 전에 생명을 소유하라는 권고입니다. 가인이 곡식 으로 제사를 지낸 것이 도덕적 입장에서 볼 때에 무슨 악을 행한 것이 아닙니 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악을 행한 것이라고 말하지요. 가인 같이 하지 말 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 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 요일 3:12). 성경에 기록 된 사건으로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그의 행한 악행은 오직 땅의 소산 으로 제사를 드린 것뿐이며, 아벨의 의로움은 양의 첫 새끼로 제사를 드린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

140 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 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 히 11:4) 고 증거합니다. 아벨의 제사는 사람이 창조 이전상태로 돌아갔으나, 여자의 후 손으로 약속된 구세주가 장차 오셔서, 아담 안에서 창조 이전 상태 곧 무로 돌아가 버린 모든 아담의 후손을 구원하실 것을 믿는 믿음의 제사, 곧 속죄제 를 드린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다 하더라 도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이 악한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면 지나친 것이 아닙니까? 성경의 논리는 세상의 도덕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 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게 한 상태대로 있지 아니한 것은 그자체가 죄요 죄는 죽어 썩는 것인데, 그 죄의 썩는 것이 바로 악입니다. 그래서 가인 이 하나님이 존재하게 한 방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 존재와 생명의 관점에서 악행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생명적 존재, 즉 하나님이 있게 하신 길을 좇아 있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을 행치 않 으면 죄가 너를 다스려 너의 유예 ( 猶 豫 ) 된 무( 無 ) 를 영원( 永 遠 ) 한 무( 無 ) 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타이르신 것입니다. 죄를 다스리는 것은 유예된 무 가 생명적 존재가 되는 것을 뜻하는 말씀인데, 곧 속죄제로 말미암아 구세주 안 에서 하나님이 있게 하신 대로의 존재가 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뜻하는 말 입니다. 가인은 이 제안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벨을 죽여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있는 자로 간주되는 아벨을, 그 현실적( 現 實 的 ) 존재를 죽여도 그는 과연 있는 자 인가? 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기 때문이었습니 다그가. 아벨을 죽임으로 아벨은 죽었습니다그러나.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 으로 오히려 말하느니라 ( 히 11:4). 아벨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 습니다( 골 3:3). 그러므로 그가 현실적으로는 죽었을지라도 하나

141 님 앞에서는 영원한 존재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만나는 사람이 자기의 현실적 존재를 죽일까 봐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존재하는 자로 간주된 아벨도 자기가 죽이니까 죽었는데, 하나님 앞을 떠나 영원한 무 로 확정된 자기가 현실적 존재마저 잃는다면 그것은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그래서 만나는 자가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가 살았다고 하 나 얼마나 비참한 삶입니까?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 히 2:14)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가인은 영원히 잃어버린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통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명백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울러 의가 무엇인지도 명백히 가르치셨습니다. 죄는 도덕적으로 저지르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기 전에 이미 아담 안에서 죽은 자, 곧 죽은 존재가 죄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또한 아벨의 제사가 의의 제사였다는 기록( 히 11:4) 은 의가 생명적 존재 자체를 가리키는 것임을 드러냅니다. 거듭 말합니다만, 성경은 죄라는 말을 하기 전에 죽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가 4장에 가인의 제사와 관련하여 죄라는 말이 처음 나타났습니 다그러므로. 죄는 죽음의 다른 이름입니다죽음은. 죄요 죄는 죽음입니다. 가인이나 아벨이나 우리들이나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망 집행 유예 선언이 없었다 면 아담과 하와( 여자의 후손의 약속이 없었으면 이 이름도 없었지요) 와 그의 모든 후손은 실제로 무( 無 ) 입니다. 다만 여자의 후손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유 예된 생명을 누리고 있는데, 이 유예 기간에 우리의 생명을 참된 생명으로 바 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중생이며,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 다. 이렇게 되는 것은 여자의 후손의 대속 ( 代 贖 ) 과 그것을 믿음으로 됩니다. 이것을 가르쳐 준 것이 이미 말한 대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으로 옷을 입힌 것입니다. 속죄제를 드림으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 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

142 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죽은 자로 여김을 받은 사람이 여자의 후손을 믿을 때에 그 믿음을 인하여 산 자로 여기십니다. 성경은 여긴 것 과 실제 를 동 일시하고 있습니다. 골 2: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엡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너희가 은혜로 구원 얻은 것이라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 께 하늘에 앉히시니. 히 12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 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이상의 말씀들은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이미 부활한 것으로 여겨지고, 예수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결국 하나님께 여김을 받는 것은 실제와 동일함을 보여주는 말씀들입 니다. 가인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을 거절하므로 사망으로 있기로 선택했습니다. 그것 곧 사망으로 있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죄 곧 사망인 가인은, 산 자에게 있는 특성인 아벨 곧 숨[ 呼 吸 ] 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생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생명적 존재라면, 그를 죽일 때에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를 보 려는 사망의 본성적 심리가 발동하여 동생을 죽였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속죄제를 드림으로 생명이 된 아벨은 죽지 않는가 어디 보자 라는 사망이 확 정된 사람의 실험적 행위였을 것이라는 말은 이미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유예 기간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셨으나, 그 기간은 새

143 로운 피조물이 되는 믿음으로 살 수 있는 충분한 기간입니다. 시 29:4,5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 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는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 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시 89:47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시 90:8-10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 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신속히 날아가는 것 같은 이 기간 동안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이 제정하 신 방법을 따라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이기 때문에 그 것을 사람이 만들 수 없습니다. 4.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만물 죽음은 죄의 본성(nature) 이고 도덕적 죄들은 죽음인 죄의 성품(character) 입니다. 죄가 성품이 있다는 말이 이상합니까? 사망은 썩는 성질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은, 도덕적인 죄들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에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죄 의 성품은 썩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을 합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것을 다스 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만물을 사람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모든 우양

144 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 海 路 ) 에 다니는 것들입니다 ( 시 8:5-8). 사람이 사망이 됨으로 만물이 사망 아래 놓이게 되고 세상은 죄 의 세상이 되었으므로, 죄의 세상에 사망 아래 놓은 만물이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것은 당연하게 된 것이지요.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에 관한 사상은 신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썩는 것은 사망과 죄의 성품이며 이것에 속한 것들의 모습이고, 썩지 않는 것은 생 명과 의의 성질이며 거기에 속한 모습입니다. 썩는 것과 썩지 않는 것을 대조 한 성경 말씀을 읽어봅시다.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 와 버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딤전 1: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 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롬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 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 15:52-54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 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145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 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 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 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 라. 다. 이상에서 없어질 것 으로 번역된 말이 원문은 썩어질 것 이라는 말입니 시 49:8,9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 라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이상의 말씀에 나타난 것을 보면, 썩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가 리키고, 썩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가리키는 것을 당장 알 수 있습 니다. 그러므로 세상 곧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하는데, 그것은 썩는 것이며, 그것을 좇아 행하는 것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것이기 때문입니

146 다썩는. 것은 결국 없어지는 것입니다그렇게. 때문에 없어질 것은 영원히 있 을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세상은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다만 썩는 것을 늦추기 위하여 방부제 ( 防 腐 劑 ) 를 치고 냄새를 방지하기 위하여 방취제 ( 防 臭 劑 ) 를 칠뿐이라는 것은 이미 말했습니다. 근본적인 죄는 사망입니다. 사망은 썩는 것을 본성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 에 썩습니다. 또한 썩을 때는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도덕 적, 종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썩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악들은 사망이 된 사람들의 이 썩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마침내 없어 질 것입니다( 시 37:10; 103:15,16 참고 ). 이미 원죄에 대하여 말할 때에 지적한 대로 신학자들 간에는 죄의 본성을 조상으로부터 유전 받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본성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것 이 아니고, 아담 안에서 사산( ) 된 것과 그런 사산된 사람들의 썩는 성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을 도덕성에 기초하여 정의하려고 하기 때문에 죄의 진정한 본질을 간과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 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썩은 것 이라는 말은 과거형입니다. 지금 썩고 있는 것을 가리키 는 말이 아니라 이미 썩어버린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 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147 성경에는 귀신의 왕을 바알세불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는 것을 조롱하기를,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 신을 쫓아낸다 ( 마 12:24) 고 하였습니다. 바알세불 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입 니까? 이 이름은 열왕기하 1장 2 절에 나오는 이름과 동일한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에는 바알세붑 이라고 나옵니다. 그것은 에그론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아 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이 들었을 때, 그 병이 나을 것인지 어떤지를 물어 보라고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내는 이야 기에서 나타납니다. 바알세붑 이란 파리의 왕 이라는 뜻입니다. 바알 은 주인, 왕 이라는 뜻이고, 세붑 은 파리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바알세불과 끝말이 다르지요? 그러나 불가 타 (Vulgate) 에는 열왕기하난 마태복음이 다 같이 바알세붑으로 기록하고 있 습니다.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설명이 복잡하고 깁니다. 그러나 바알세붑은 파리의 왕 이라는 말이 되고 바알세불 은 똥의 왕, 혹은 똥의 주 라는 뜻 이 됩니다. 즉 바알 은 왕, 주인 이라는 뜻이고, 세불 은 똥 이라는 말입 니다. 결국 같은 말이 아니겠습니까? 왜 귀신의 왕이 동의 왕 또는 파리의 왕이라는 이름을 가졌을까요?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이방의 신들을 경멸하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말은 옳을 듯합니다. 사단 곧 귀신 의 왕은 파리와 똥의 왕이 틀림없습니다.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세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썩는 것에는 반드시 파리가 덤빕니다. 똥은 썩은 것의 대표적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단은 세상 임금입 니다. 죄의 세상은 썩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임금의 이름이 파리의 왕 이라는 것은 너무도 적절한 이름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의 이런 표현들을 읽 으면 모든 것이 진리를 가르치는데 적합하게 사용된 것을 보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148 그러므로 썩지 않는 것에는 파리가 왕 노릇을 못합니다. 우리는 썩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썩지 않게 되는 실상이 어떤 것입니까? 대하여 알아봅시다. 그것에 5. 의 곧 거듭남. 재창조. 새로운 피조물 이상에 설명한 사실을 이해했다면, 예수를 믿고 구원 얻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이해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썩는 것이 불가불 썩지 않게 된 것을 뜻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친 히 하신 말씀은 너무 분명합니다. 요 5: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 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 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 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됩니 다지금까지. 설명한 것에 의하여 말하면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어 썩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생명이 되어 썩지 않는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썩는 냄새를 풍길 수 없지요. 더 이상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생명의 향기를 드날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한 사건을 통하여 이 교훈을 극적으로 보여 주십니다. 그것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이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내용을 가장 선명하게 그려 주는 그림 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써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고 죽은

149 자를 살리시는 분이심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창조주 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요 11:39-44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 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데, 돌을 옮겨 놓으니 예 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 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내 아버지께 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는 소식 을 전해 듣고도 이틀이나 지체하신 후에 나사로의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 은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들에게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 라 ( 요 11:4)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왜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될까요? 하나님은 창조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150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 다 ( 시 19:1)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이나 된 후에 살리시는 것은 창조주의 능 력으로 하시는 일이며, 생명의 주께서 생명을 주시는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망은 사단에게서 왔습니다. 그래서 사단을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히 이하시며. 2:14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입니다. 죄와 사망은 마귀가 저질러 놓은 일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입니 다요일 ( 3:8). 그러므로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무덤에 묻힌 것은,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이 사망이 되고 세상이 무덤이 된 것을 표상합니다. 생명이신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신 것은 사망의 세상에 생명이 찾아오신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 음 5장에서 예수님의 말을 듣는 죽은 자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교 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현실적 사건을 통하여 사망에 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어서 썩고 있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나오라 고 외쳤 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사로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무덤에서 나왔습 니다. 그래서 그는 썩어 냄새가 나는 데서 생명의 향기를 풍길 수 있게 되었 습니다. 이것은 아담 안에서 주은 자들에게 예수의 복음이 이루는 일을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151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썩는 자는 죽은 자이며, 죽은 자는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없는 자에게는 아무것 도 줄 수가 없습니다. 본질적인 죄가 사망이요 썩는 것임을 깨달았다면, 의가 생명이요 썩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의는 사 망과 상관없는 생명 그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사망이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며 썩지 않는 씨로 나는 것을 뜻합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은 아담 안에서 썩어질 씨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는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 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벧전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 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 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라. 딤후 1:9,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 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신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 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 우리 구주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 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예수님은 처음부터 썩지 아니할 씨로 잉태되어 탄생하셨기 때문에 썩어짐 의 종노릇하는 자가 아닙니다.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으로 계신( 요일 1:1) 말씀 하나님요 ( 1:1) 이 생명의 씨 곧 썩지 않을 씨가 되어 순결한 처녀의 태( 胎 ) 에

152 잉태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의 행위요 창조의 행위입 니다. 그러므로 이것 자체를 사람의 과학이나 인간 생리 자체로 논의할 수 있 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인간의 과학으로 측량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이며, 하나님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스스로 피조물의 자리를 취하셨다는 것은 사람의 지각( 知 覺 ) 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 음을 요청합니다. 인간의 이해나 선행을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자가 아닙니다. 물 론 그분은 우리의 썩어질 것을 대신 지시고 우리의 사망을 당하셨기 때문에 무덤에 묻히셨지만, 그의 근본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 서 그의 육체가 썩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시 16:9-11 이러므로 내 마음도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 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 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 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니다. 사도행전에는 이 예언이 예수님께 이루어졌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 행 2:27, 28, 31, 32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

153 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 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13:34-37 또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 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 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의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 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 니하였나니. 예수님은 썩지 아니할 씨로 탄생하셔서 생명이 사는 상태를 확실히 보여주 시고,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음을 당하셨으나, 그는 썩 음을 당하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 안에서 썩어질 씨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 곧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썩어져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습니 다. 그래서 중생은 아담 안에서 죽고 썩어 없어진 자들이 예수 안에서 다시 살아서 존재하고 생활하는 자가 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안 에서 생명을 얻어 산 존재로 있는 것을 의롭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의( 義 ) 입니 다. 그러므로 중생은 하나님의 창조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위 범 주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될 자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그는 역시 죽고 없어지는 존 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중생을 재창조라고 표현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

154 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를 믿고 중생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 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니까 이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중생 은 부활의 생명을 미리 소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부활은 창조 범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와 부활을 동일 선상에 놓고 있습니다. 골 1:15-18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 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 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 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낫니 자 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이 말씀은 예수님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요 또한 죽은 자 가 운데서 먼저 나신 자 라고 소개합니다. 여기 먼저 나신 자 라는 말은 으뜸 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나신 자 라고 번역된 말은 헬라어로 프로토토코스(πρ ωτότοκος) 인데, 만물의 으뜸 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으로 존재하신 자 라는 의미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 되었으니 그는 만물의 으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심 곧 부활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모든 새로운 피조물들의 으뜸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조와 부활이 같은 창조의 능력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 씀입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부활의 생명 곧 중생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며 그래서 인간의 행위가 들어갈 자리가

155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말을 한 것은 이방 인의 구원에 대하여 말할 때입니다. 유대인이 율법의 의를 말하고 있음에 만 하여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로 말미암아서만 하 나님 앞에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행위가 전혀 가입될 수 없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에 오직 이것을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가르칩니다롬 ( 3:21-24).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아브라함에게서 구현되었다고 말합니다. 그 아브라함은 창조주와 부활의 주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합니다.( 롬 4:17). 아담과 그의 후손은 한 번 창조되었으나,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행위로 인 하여 아담 안에서 모두 다 창조 이전 상태로 돌아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들은 온전히 없어진 것과 같은데, 다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자의 후손 곧 구 주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사형 집행 유예의 기간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 므로 이 기간 동안 없는 것을 있게 해야 합니다. 없는 것이 있기 위해서는 창 조되어야 하고, 없는 사람이 있기 위해서는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창조의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여호와로서 사람 되어 오셨으며,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 과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아담의 후손을 자기 안에 품고 죽어 주심으로 아담 안에서 죽은 것을 완전히 처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심으로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이 부활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시고 부 활의 생명으로 영생할 수 있는 존재들로 재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 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 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56 이 말씀은 구원의 보편성을 계시하는 말씀입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것이 보편적이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도 보편적인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담의 모든 후손이 처한 상황이, 다만 아담 안에서 죽어서 썩는 성질 곧 썩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에덴에서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처한 상황과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 살게 되어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든 지 거절하든지 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입니다. 그렇게 할 기능과 자유를 하나 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것을 거절한다 해도 예수께서 살려주신 사 실이 무효 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예수의 생명 안에 있지 않기로 선택한 자들과 그 안에 머물기로 선택한 자들을 분별할 수밖에 없도록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분별하십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오해가 없기 위하여 태초에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에 사람에게 주신 네 가 지 기능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1) 욕망, (2) 능력, (3) 자유, (4)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할 자유도 포 함되었다는 사실을 간과 ( 看 過 )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아담이 그것을 거절하 면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는 사실을, 죽는다는 말로 가르쳐 주셨다는 것도 이미 공부하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 이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것은 아담에게 주신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와 같이 이제는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도록 예수께서 모든 조처를 다 취해 놓으셨습니다. 이 조처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 든지 거절하든지 하는 것은 사람 각자에게 달려있습니다. 이것이 태초에 아담 에게 있었던 것과 같은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사랑의 구속의 사실을 스스로 거절하였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으로 완전히 소멸된다 해도 하나님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과 부활로 말미암아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157 사람이 삶을 얻도록 해 주셨기 때문에 모든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둘째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에 기인한다는 말입니 다부활하지. 않아도 괜찮을이미, 죽어 버린 악인을하나님이, 심판으로 형벌 하기 위하여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로 아담 안에서 죽은 모 든 사람이 부활하게 되어 있으므로 부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담 의 죽음을 예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이 예수 안 에서 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 절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이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 으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얻는 사람들이 바로 아담 안에서 죽은 모 든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화되어 있지만 심판은 그리스도의 구원 곧 재창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증거 됩니다. 왜 냐하면 하나님의 재창조를 거절한 사람들이 재창조된 세계에 생존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창조의 세계에는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기로 선택한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사람들인데, 그것을 거절한 사람들은 창조 를 거절했기 때문에 창조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런 삶이 이루어 지는 곳이 고통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모든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되었 는데, 그 부활들은 각각 시간의 차이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158 고전 15:23,24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 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 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포함하여 세 번 부활이 있다는 것을 밝혀 주는 말씀이 아닙니까? 심판의 부활로 나오는 악인의 부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 하는 둘째 부활도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 주는 말씀인 것입니 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 3 절에서 무저갱에 갇힌 사단이 반드시 잠깐 놓 이리라 고 말합니다. 여기 반드시 라는 말은 헬라어로 데이 ( δεί) 인데 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 하는 것 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에는 불가불 잠깐 놓 아주리라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을 놓지 않을 수 없어서 잠깐 놓 는다는 말입니다. 왜 놓아줄 수밖에 없을까요? 그것은 악인 부활하기 때문입 니다. 악인들이 부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활합니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 죽은 것을 예수님이 친히 담당하시고 그가 사망을 풀고 생명을 드러내어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풀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 놓은 이 생명을 그들 스스로 거절하 였습니다. 마치 아담이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존재하도록 창조하신 것을 스스 로 거절한 것과 같이, 예수께서 그들을 생명으로 재창조한 것을 그들의 사형 집행 유예 기간 동안에 계속 거절하였기 때문에, 아담이 자기의 존재를 하나 님께 반납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로 그들의 존재를 반납해야 합니 다이것이. 둘째 사망곧, 창조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 다그러므로. 그들이 둘째 사망을 당하더라도 한 점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고, 원망하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하신 일이 의롭고 참되다고 고백하며 예수 님을 주로 시인하여 무릎을 꿇고 소멸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본래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게 해 주시는 것이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

159 랑이라고 간청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불로 소멸하십니다. 그 후 로 온 우주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사망은 최후에 멸망 받을 원수입니다( 고전 15:26; 계 20:14). 그리고 오직 생명만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로 소멸 하는 최후의 심판에도 드러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입니다. 하나 님의 공의는 죄인도 사랑하여 그들을 생명으로 존재하게 하시려는 것임이 드 러난 것입니다. 온 우주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탄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되돌아가서 사단이 갇혔다가 놓이는 일에 대하여 잠깐 말씀드려야 되겠습 니다. 여기서 사단이 갇히는 사건을 말할 게재가 아닙니다만, 악인의 부활을 말하게 되므로 사단이 갇히는 일에 대하여 말씀을 드려야 궁금하지 않고 또 부활의 살상에 대하여 분명히 알 것 같으므로 사단이 무저갱에 갇히는 사건을 잠깐 이야기해야 하겠습니다.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신 위의 성경절에는 세 차례의 부활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 강림하실 때 예수님께 붙은 자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첫째 부활 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기 때문입니다계 ( 20:5, 6). 이 첫째 부활은 예수께서 공중에 강림하시고 티끌 가운데 자는 모든 성도 들을 부활시키실 때에 있는 부활인데, 이때에 부활하는 사람들은 공중으로 끌 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합니다( 살전 4:16, 17). 그들은 하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합니다.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 것은 심판하는 권세를 행사하는 것임을 성경은 밝혀 놓았습니다.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 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 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

160 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부활한 성도들은 천년 동안 악한 천사와 모든 악인들을 심판합니다. 고전 6:2,3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 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그래서 그들에게 합당한 판결을 내립니다. 이 천년 왕국 기간 동안 모든 악인은 죽어서 이 지구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재 림하실 때에 모든 악인들은 그 혁혁한 영광의 광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사르는 불꽃이 되어 모든 악인들을 불살라살후 ( 1:8,9) 한 사람도 남지 못하고 다 죽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선악간에 누구든지 다 당하는 죽음인 첫 째 사망입니다. 그리고 다만 사람을 미혹하여 죄짓게 하던 사단과 그의 부하 들만이 사람 하나 없는 황폐한 지구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끈질기 게도 미혹하던 사람들은, 의인은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고, 악인 죽어서 땅 속에 다 묻혔기 때문에 사단이 미혹할 대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단 과 그의 부하들은 이 황폐한 지구에 갇히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저 갱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고, 부활한 성도들은 이 악 한 천사들 곧 사단과 그의 부하들과 예수님을 거절하여 사망에 머물기로 확정 한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천년 왕국 기간을 하늘에서 지냅니다. 그리고 천년이 찬 후에 예수님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때 그분 의 발이 동편 감람산에 닿고 감란산은 두 조각이 나서 큰 골짜기를 이루며 거 기에 하늘 새 예루살렘이 내려앉습니다( 슥 14:4; 계 21:2). 그리고 모든 악인

161 들이 부활합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활이 예수님의 구속과 부활 때문이 었다는 것을 그때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아담 안 에서 죽은 생명의 사망 집행이 유예되어 있는 동안만 부활의 생명을 회복할 유일의 기회였습니다. 이제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창조되기 이전 상태, 곧 흙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볼과 유황이 비처럼 내려 그들을 소멸합니다. 이것은 이미 위에서 말한 것과 같습 니다. 악인이나 의인이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의롭고 참되며 사랑 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계 15:3,4 주 하나님 크고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 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 구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경 배하리이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 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 니라. 욥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같이 만국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 중생하지 못한 사람 곧 예수님의 재창조하신 생명을 거절한 사람은 결국 그 존재를 거절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하게 하신 대로 있기를 원하는 자들만이 있는 곳에 그들이 있는 것은 그들에게는 영원한 고통입니다. 그래서

162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대로 그들을 창조 안 된 것과 같이 흙으로 돌려보내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중생하지 아니한 자의 마음은 역시 그러하다. 그 마음이 하나님과 융화되지 못하매 따라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하는 가운 데서 기쁨을 얻지 못한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 할 수 없고 거 룩한 자들과 같이 사귀기를 거릴 것이다. 비록 그가 천국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는 거기서 아무 기쁨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기심 없는 사 랑이 지배하는 거기서 각자의 마음이 무한하신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 의 마음과 서로 통하는 거기서, 죄인의 심금에는 아무런 공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즉 악인이 하늘에서 제외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제적 명령으로 가 아니다. 저희 자신이 하늘의 교제에 부적당하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도 그들에게는 오히려 소멸시키는 불이 될 것이 다. 저들은 저희를 구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자의 얼굴을 피하기 위하 여 차라리 멸망을 자취할 것이다 ( 엘렌 G. 화잇, 정로의 계단, 영한 대역, 33, 34).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고 재창조 받은 사람들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 65:17, 18; 계 11:15). 이 이야기를 자세히 하려고 하면 종말론과 재림론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 러나 지금은 의에 대하여 말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앞에서 말한 창조와 존재와 생명의 관점에서 볼 때, 로마서에서 말하는 의 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적 율법적 성품적 허물을 용서받은 사실을 가리 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배제된 것은 아 닙니다. 이것이 포함되는 것은 결과적인 일일 뿐이며, 근본적으로 말하는 의가

163 아니라는 말입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드러난 새로 창조된 생명적 존재 자체가 의인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으로 말미암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재창조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 입니다.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창조물이 된 생명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새로운 피조물 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실제적인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미리 심령에 체험하는 것이 중생입니다. 중생은 부활에 참여했 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이 예수님의 부활에 그 근거를 두 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 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롬 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 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 4:21-25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 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 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 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 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율법과 도덕은 행위를 오구하나, 하나님의 행위 곧 창조와 재창조( 구원) 는

164 믿음을 요구한다는 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롬 5:17,18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 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 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그 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롬 6:23 과 비교 ).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또 하나 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롬 4:24 와 같은 사상). 로마서는 사람이 믿어 의에 이르는 믿음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믿음인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로마서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친히 부 활이 의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러 나오셨을 때에 요한에게 하신 말씀으로 확인됩니다. 마 3:14,15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 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님께서 왜 침례를 받으셨는가? 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침례는 죄 사함을 받는 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침례를 죄 사함 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 ( 눅 3:3)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165 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는 침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 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대답을 사람들은 잘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 다. 그분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침례를 받는 것 이 어떻게 의를 이루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당시의 유대에서는 침례를 받아야 사회적으로 의롭다고 여겼기 때문에 사회적 규율로도 허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당 시의 사회는 사람들이 꼭 침례를 받아야 의인으로 인정되는 사회가 아니었습 니다. 침례를 받는 것은 죄가 있었음을 전제하므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상하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침례를 받 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 필요한 예식 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간 가족의 일원으로써 우리의 본이 되기 위하여 침례 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합당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치에 서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걸으시므로 예수를 믿는 모슨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친히 대답하신 말씀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침례가 의를 이루는 것입니까? 침례는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고 장 사 지내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롬 6:3-7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

166 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 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 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신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어 죄와 는 조금도 상관없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하며 부활한 것은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 생명으로 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생활이 이루어지는 자가 되 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이라고 선언한 것은, 부활의 생명을 얻은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언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더 이상 하 나님의 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들이 없어져 버 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합니다. 롬 1:3,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경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 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서 인정되었다 는 말은 호리조 ( όρίζω ) 인데, 확정되다 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것입니다. 그것에 새로운 피조물의 진정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도 부활해야 합니 다. 침례는 그 부활을 미리 확정짓는 예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침례를 받으 면 예수님의 부활에 이미 참예한 자가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167 골 2: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침례를 받으시는 것을 모든 의를 이루는 것 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과 아담 후손의 사망과 썩어지는 모든 죄 를 처리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시는 일이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 사되시고 부활하시므로 성취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성취되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의가 확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 침례를 받 으신 것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 할 것을 선포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이것은 곧 사 망에서 부활의 생명으로 일어나시는 것을 표상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 님은 하나님의 아들 로 선언되고 의가 이루어졌다고 선언되는 것입니다. 다 시 말씀드립니다만 결국 의를 이룬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의 가 이루어진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가 가르치는 의는 예수 그 리스도의 부활이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 곧 칭의는 예수를 믿음 으로 그의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성경이 말하는 의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그대로의 생명인 부활 의 생명과 그 생명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요, 죄는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여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 사망을 가리키는 것인 줄 분명하게 알게 됩니 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 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168 이 말씀은 죄는 사망인 것을 밝혀 줍니다. 그리고 사망의 반대가 영생인 것도 밝혀 줍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또한 죄의 반대 개념인 의라는 것도 알게 해 줍니다. 영생은 생명 자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있어서 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았 습니다. 더 이상 도덕적인 죄에 대하여 말하지 맙시다. 그 도덕은 세상의 도덕 가들이나, 모든 종교가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도덕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의 성질일 따 름입니다. 그 생명을 소유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하나님의 형상 으로서의 도덕이 생산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 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아직도 찔레인데 포도를 열려고 아무리 애써 보아도 찔레밖에 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재창조의 생명 곧 의가 되면 그 열매인 의는 포도 나무에 포도가 맺히듯이 스스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의 자체시요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 여 죄 자체가 되셔서 사망이 되시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의 자체 곧 생명 그 자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의요 이렇게 되는 것 이 믿음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 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의 자체이시듯이 이제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모든 사람은 예수 안에서 의 자체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큰 복음입니까!

169 제 10 장 제기된 질문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은 자라는 말씀을 들을 때, 야기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의식이 없고 감각도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들을 수 있는가. 물을 만한 질문이지요. 죽은 지 나흘이 나 되어 무덤 속에서 썩고 있던 나사로가 어떻게 나사로야 나오라 는 예수님 이 말씀을 들었을까요? 그 진실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은 육신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식이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육신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성경의 계시를 찾아보도록 합시다. 1. 제기된 질문 성경은 이 땅에 살다 간 사람들이나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태 어나서 살 사람들이나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 단정적으로 선언합니다( 고전15:22).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 으라 ( 마8:22) 고 말씀하시고, 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

170 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 라 ( 요5:25) 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 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요5:24) 고 하셔서 예수님의 말씀 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사망이라고 하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죽은 자 로 여기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살 아 있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에 사람이 살아 있지 않다면 결국 그것은 세상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까. 성경은 이런 사상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십니다. 단4:35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 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 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사40:17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관련하여 말하면, 이 죄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요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역사적 연 대도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시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 을 뿐임이니이다.

171 죄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비하여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죽었다고 하고 없는 것과 같다고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살아 있으며, 엄청난 문화를 이루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이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 까? 라는 문제가 제기 됩니다. 그리고 또 죽은 자가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습미가? 라는 문제도 제기 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장 사망을 집행하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 을 약속하시 며 집행 유예를 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아담이 죽은 죽음 을 처리하셨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이미 예수 안에서 산 자로 여김 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지금 그들이 예수의 생 명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도 아담의 죄로 죽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영원한 죽음을 죽게 되는 것은 스스로 예수 를 믿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 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 요16:9)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제기는 아담 안에서 죽었는데 어떻게 스스로 믿을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죽었기 때문에 믿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가 믿기 위하여서는 살아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살아 있는 그 삶은 무엇입니까? 예 수 안에서 산 그 삶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아담 안에서 죽었다는 것이 진짜 죽은 것이 아닌 것입니까? 이 질문은 집요합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합당한 대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성경에는 이에 대한 대답이 확실히 있음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2. 성경이 말하는 두 생명

172 성경이 두 종류의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을 찾게 되었을 때 위의 질문의 대답은 분명해졌습니다. 그 두 종류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과 육체의 생명입니다. 1). 하나님의 생명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 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다 고 계시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성경은 밝히 가르칩니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하나님 그분이 생명이라는 것을 계시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이십 니다. 그래서 그분이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 데도 예수님은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버지께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173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생명이시지만 이 세상에 오실 때에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아담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기 때문에, 아담을 다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연결하기 위하여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은 예수의 생 명이나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 동일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단언한 것입니다. 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 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 시조가 선악과를 먹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습니다.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 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태초에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은 그를 그리스도를 떠나게 한 것이라고 가 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조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하나님 의 생명에서 떠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담 안에서 다 죽은 자들인 것입니다( 고전15:22). 그런데 이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입니까?

174 성경은 그것을 육체의 생명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생명 개역 한글판 성경에는 육체의 생명이라고 번역된 곳이 네 곳 있습니다. 레 위기에 두 번 민수기에 두 번 있다. 레17:11,14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 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 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 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 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민16:22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 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민27: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생명이라는 말이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말의 대개념 ( 對 槪 念 )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라는 이유 있는 질문이 제기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의 대개념이 아니라고 말할 수 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생명 이 있고 육체의 생명 이라는 말이 있 습니다. 이 육체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죽을 수밖에 없는 그

175 생명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하였고 피를 흘리는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은 피를 흘려 빼앗을 수 없습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 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생명은 이 세상에서 죽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이지 못하 는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죽이지 못하는 생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 나님의 생명을 뜻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육체의 생명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말의 대개념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이 말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 것으로 육체라는 말들 은 아주 많습니다. 육체의 생명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육체의 생명은 육체가 된 사람들을 잠시 살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자비입 니다. 그러면 우리는 또 육체가 되었다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 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는 말씀을 개역 난하 ( 欄 下 ) 주( 註 ) 에 육체이 므로 범과 함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역( 舊 譯 ) 난하에는 범과하므 로 육체에 속하였으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구역의 뜻을 따르면 사람이 육체

176 가 된 것은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 전체의 사상 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원어에서 이는 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 엇을 뜻하는가에 따라 이해가 다르게 됩니다. 이는 이라고 번역된 말이 브 샤감( ם ) 인데 이 단어가 이는 이라는 뜻의 감( ם ) 에서 온 말이냐, 아니 면, 범죄하다 라는 말인 샤가그( ג ) 의 3 인칭 복수 남성 부정사인 샤감( ם ) 이냐 하는데서 번역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 구역이나 개역은 본문을 감 이라는 뜻으로 번역하였고, 샤가그 의 뜻을 난하에 주로 달아 놓 은 것입니다. 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지만, 성경 전체의 사상으로 보면 샤가 그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신약성경 유다서 19절에는 창세기 6:3을 반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 령은 없는 자니라 육에 속한 자는 성령이 없는 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 다. 그런데 창세기 6:3에는 하나님의 신 곧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 으므로 그 사람들이 육체가 된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된 것은 범죄의 결과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체의 생명뿐인 사람을 육체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78:39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 하셨음이로다. 이 말씀이 당연한 것은 성령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거하시 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생명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로마서 8:2 에는 생 명의 성령의 법이 사람을 주장할 때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가 해방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는 것을 물과 성령으로 거 듭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을 회복하는 길인 것입니다.

177 이 육체의 생명은 한 번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정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생명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 은 자비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생명의 회복을 위하여 육체의 생명을 일정 기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한 번 허락된 기회일 뿐 죽지 않는 생 명이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이 자기만 생각하시고 호흡을 거두시면 모든 혈육 이 흙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욥34:14,15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신과 기운을 거두실 진대 15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 라.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렇게 죽는 사람에 대하여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표현하고( 약 4:14), 풀과 같고 ( 벧전 1:24) 잠깐 자는 것과 같다고( 시90:5) 표현합니다. 사람 은 스스로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정말 잠깐 영원한 생명을 얻 을 수 있는 기간을 은혜로 주신 기간인 것입니다. 그것을 거절하면 그는 정말 영원히 없어지고 맙니다. 즉 창조되지 않은 상태로 환원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육체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신약성경에는 그 생명을 나타내 는 상태가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생명, 곧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 명과 그 삶은 반드시 조에( ζωή ) 를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육체의 생명도 그 생 명 자체를 표현할 때 조에를 사용하였지만 세상의 삶을 표현할 때는 비오스(β ίος) 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를 설명하 면서 이생의 염려 라고 할 때에 이생 이 비오스입니다. 딤전 2:2 에는 평안

178 한 생활 에서 생활 이 비오스입니다. 딤후2:4 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 가 하나도 없고 에서 생활 이 비오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소유한 재 산을 뜻하는 말로도 비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과부의 연보에 대하여 말씀하 실 때, 생활비 라는 말이 비오스입니다. 눅8:43 에서는 12년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치료를 위하여 가산을 다 허비했다 고 할 때, 가산 이 비오스입니다. 우리 개역 한글판에는 이 말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눅15:12,30 에 탕자의 이 야기 중에 살림 이 비오스입니다. 요일3:17 에는 재물, 2:16 에는 이생 이 모두 비오스입니다. 이런 용례를 볼 때에 비오스 는 육체의 생명으로 사는 것을 뜻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생명으로 사는 것은 조에 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비오스 로 지냅니다. 그것 을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조에 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안에서만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에 있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 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생명은 지금 성령으로 우 리 안에서 역사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비오스적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재림하시고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조에만이 우리 를 주장하는 그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썩 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 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 고전15:50). 그래서 이 육체의 생명은 본질상 사망이기 때문에 썩어짐의 종노릇합니다. 성경은 이 육체의 생명에 대하여는 썩는다는 말로 자 주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썩는 양식을 구하고( 요6:27), 썩을 면류관을 구하며고전 ( 9:25), 모든 것들을 썩어질 것으로 바꿉니다( 롬1:23). 육체의 생명 은 결국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없어질 것이 없어져 가는 기간 동안, 영적으로 말하면 죽었으나 아직도 영원한 생명을 취할 수 있도록 육체의 생명이 있는

179 동안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번 다 육체의 생명만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을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셨기 때 문에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께서 나의 생명이 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고 중생 했다고 하며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 곧 사 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하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이 되어 사망을 맛보셨습니다.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 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 려 하심이라.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그는 부 활하셨습니다. 그가 원래 생명이기 때문에 사망의 권세가 그를 붙잡아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승리한 것입니다. 행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 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고전15:54-58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 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 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

180 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 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 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 엄청난 부활의 생명은 이렇게 회복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져 있는 동안 반드시 이 생명을 소유하고 이 생명 안에 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 다.

181 제 11 장 세 천사의 기별 세 천사의 기별이란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에 기록된 내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계 16: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송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 를 경배하라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 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 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 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82 기별 이라는 말은 요즘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들은 이 세 천사가 선포하는 말씀의 내용을 세 천사의 기별 이라고 곧잘 말 합니다. 아마도 1900 년대 초에 번역하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로는 Three Angels' Message 입니다. 현대 말로 번역하면 세 천사의 메시지 라고 했겠지요. 그런데 이 기별( 寄 別 혹은 奇 別 ) 이라는 말은 꽤 의미가 있습니다. 이조( 李 朝 ) 때에 승정원( 承 政 院 ) 에서 처리한 일을 매일 아침에 적어 서 반포하는 일을 기별 이라고 했습니다. 승정원은 승지들의 관청인데, 요즘 의 대통령 비서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별은 왕이 전하는 말씀을 중 요하게 취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별 이라는 말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이 기별 은 신약에 기록된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해야 할 영원한 복음 기별로서는 마지막 내용입니다. 이 기별 후에는 복음을 전하 는 천사의 이야기는 없고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오라고 초 청하는 말씀이 결론적으로 기록된 것을 끝으로 성경의 모든 자비의 호소가 끝 납니다. 이 세 천사의 기별의 내용을 간단히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천사의 외치는 내용은,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면서, 영원한 복 음을 가지고 외치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둘째 천사의 기별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는데, 그 성은 모든 나 라를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서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 에 표를 받으면 하나님의 섞인 것이 없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 다는 내용입니다.

183 이 말씀을 읽어보면, 복음( 福 音 ) 곧 복된 소식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 습니다. 심판이 나오고, 두려워하라는 경고가 있고, 진노의 포도주가 나오고, 세세토록 고난 받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영원한 복음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분명히 복음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복음의 내용을 담 고 있습니까?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이제 복음이 무엇인가를 일별( 一 瞥 ) 해 봅 시다. 1. 영원한 복음 첫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가졌습니다. 영원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성경 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계시해 줍시다. 우리말로 복음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유앙겔리온 ( εαγγέλιον ὺ ) 입니다. 직역하면 좋은 소식 이라는 말입니다. 눅 2:10,11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 에서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구주가 나셨다는 소식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여 기 좋은 소식 이라는 말이 바로 유앙겔리온입니다. 즉 복음이라는 말이지요. 구주가 누구인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여자의 후손을 공부하면서 자세히 공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시지요.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84 예수 라는 이름의 뜻이 구주 또는 구원자 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동 네에서 구주가 나셨다는 말은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말이며, 그것이 곧 복음 입니다. 롬 1:1-4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 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 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 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 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 경이 가르쳐 주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첫째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가졌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졌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천 사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 심판을 전하고 있으며, 하늘과 바다와 여러 물 샘 을 지으신 이, 곧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칩니다. 이 내용 중에 어디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롬 16:25-27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 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 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지우다. 아멘. 여기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

185 다. 그 복음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나타났는데, 모든 민족에게 전하여서 그들로 믿고 순종하는 자게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 면예수, 그리스도는 영세 전부터 감취었던 복음이었으며 이제 나타난 복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세 전부터 복음이십니다. 다만 그 복음이 나타날 필요가 없어 서 감취어 있었을 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기념 의미를 연구할 때 말하였습니다. 우주 삼라만상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천사나 사람은 말할 것 도 없고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이 우주 안에 있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예수 안에서만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골 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 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 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3:11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복음은 존재의 기별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을 때 사람은 복음을 만난 것입니다. 흙이 생명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었으니 이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 존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도 태초부터 예수 안에 서 존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엡 1:3,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 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186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 로 어느 때나 존재하는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존재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존재에게 복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태초에 선악과를 먹는 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떠나갔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 창 3:9) 고 물으신 것입 니다. 그의 위치를 확인시키는 질문이었지요. 그래서 결국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은 예수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존재를 잃어버린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께 서는 이렇게 잃어버린 존재를 다시 있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시고 복음의 실상 을 드러내셨습니다. 딤후 1:9,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 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 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딛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187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 이라. 이 모든 말씀들이 복음은 영원한 때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 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그 복음이 때가 되었을 때에 우리에 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와 재창조의 기별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시오 또한 재창조주시라는 기별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던 자 들이 예수 안에 있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비존재가 되었으나 이제 예수께서 다 시 재창조자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비존재가 된 사람들에게 다시 복음을 나타 내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외침이 첫째 천사의 영원한 복 음 기별인 것입니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도덕적 구조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는 상태에서, 창조 사실에서 하나님을 찾아 진정한 존재가 되어 창조 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이 첫째 천사의 외침입니다. 창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도덕적 차원에서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심 판으로 임하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창조되기 이 전 상태로 돌아가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공부한 내용을 상기 ( 想 起 ) 하시기 바랍 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데는 반드시 자기 행위의 도덕 성을 저울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를 믿음으 로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 행위의 의롭고 의롭지 못함을 구원의 기준으로 삼으 려고 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부활 곧 재창조를 무시하고 자기 의를 구원의 행위로 나타내려고 합니 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아 난 열심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롬 ( 10:3) 것과 같은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

188 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 이 아니요 ( 딤후 1:9) 라고 말합니다. 거듭거듭 말씀 합니다만, 율법과 도덕은 우리의 행위를 요구하지만 창조와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을 기 억해야 합니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영원한 복음을 창조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정립하라는 기별입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속죄를 도덕적, 율법적 죄에 대한 속죄로 강조해 오면서, 회개하면 용서해 주신다는 교리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기 위하 여 영혼 불멸설에 근거한 영원 형벌설, 곧 영원 지옥설을 설교해 왔습니다. 그 러나 그것은 인위적인 종교이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하신 종교는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의 종교는 창조와 부활 곧 재창조의 종교입니다. 그의 창조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 입니다. 세 천사의 기별은 속죄적 관점의 복음에서 재창조적 관점에서 복음을 이해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기별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 안에 머물러서 영 원히 존재하며 행복하라는 것입니다. 속죄의 복음은 치료의 복음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그 치료자인 구주를 은인 ( 恩 人 ) 으로 여기고 감사하면 됩니다. 그러 나 창조의 복음은 존재와 생명의 복음입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존재하도록 창 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구주를 은인으로 여길 뿐 아니라 생명의 주인으로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를 순종하게 합니다. 그분이 나를 창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인간의 윤리적 표현으로 말할 때에 아버지라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복음 이며 동시에 속죄적 복음입니다. 그러나 속죄만 강조하면 다만 은인으로 대접 하는 것으로 그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는 전적인 복종은 크게 의미가 없어집니다. 예수님을 죽을병에서 살려준 용한 의원으로 믿게 하며 은인으로 대접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는데 의미를 별로 부 여하지 않습니다.

189 사람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속아서 창조와 생명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에서 도덕적 행위의 종교로 변질시켰습니다. 그래서 무수한 종교가 생겨나게 된 것 입니다. 종교마다 그들이 믿는 신을 최고의 신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신들은 힘의 신이요, 신에게 잘 하면 상주고 신에게 잘못하면 벌주는 그런 신들입니 다. 이것은 다분히 사람의 도덕성이 만들어 놓은 신입니다. 사람들이 잘하면 상주고 잘못하면 벌주는 것을 인간을 도덕적으로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 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상필벌( 信 賞 必 罰 ) 주의는 아주 좋은 방법으 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라 이름하신 분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해 주시는 신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공 의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소개하면서 신상필벌의 하나님으로 나타내어 인간 행 위에 따라 심판하여 지옥과 천당으로 보내는 하나님으로 가르쳐 온 교회의 오 해를, 창조의 관점에서 창조와 재창조의 하나님으로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으 로 바르게 경배하는 것이 존재와 생명의 복음이 된다는 것을 깨우치는 기별인 것입니다. 재창조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속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죄를 통하여 재창조가 이루어집니다. 결국 진정한 숙죄의 기별은 재창조의 기별인 것입니다. 2. 복음과 의( ) 다. 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분의 거 룩한 인격, 공로, 인간 가족들에게 행하신 변함없는 사랑을 주목할 필 요가 있었다.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으므로 그분은 인간들에게 풍 성한 은사를 나누어주시며,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그분 자신의 의를

190 속절없는 인간 대리자들에게 나누어주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전파하도록 명하신 기별이다. 이것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며, 이 기별은 큰 소리로 전파되고, 크나큰 성령의 부어지심이 수반될 것 이다 ( 엘렌 G. 화잇,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 서울: 시조 사, 1993], 106).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셋째 천사 의 기별이냐고 물어 왔다.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하여 넓은 의미에 있 어서 셋째 천사의 기별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 이라고 하였 다 (COR, 64; Review & Herald, , 26). 셋째 천사의 기별, 더 넓게 말해서, 세 천사의 기별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기별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되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장은 하지만 설명을 하지 못하는 궁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의는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타나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 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 으니라.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복음을 선포 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된다 는 것을 아는 일은 쉬운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요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와 부활이라는 것을 이 미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의가 창조로 말미암는 것이 확실하다면 창조주 를 경배하라는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임이 분명합니다.

191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은 의 곧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창조와 재 창조를 통하여 이루어지며 이 하나님의 창조와 재창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의가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를 거절하는 것은 그 자체가 심판이 되 며, 창조를 거절하는 결과가 무너지는 바벨론이 되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를 거절한 종국적 결과는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아서 창조되기 이전 상태로 영원히 돌아가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며, 의는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그 의 부활로 말미암아 완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의 부활을 믿고 진정으로 고백하면 그가 의에 이른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 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 며 이 새로운 피조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실현인 것입니다. 3. 의( ) 와 안식일 태초부터 하나님은 창조로 의를 나타내셨고, 그 의를 거절한 아담과 그 후 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곧 재창조로 의를 다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 로 세 천사의 기별 곧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기별은 하나님의 창조 안에 거하 라는 기별이며, 이 창조 안에 거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 리고 이 창조와 재창조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창조해 준 생명 안에 거하고 있 다는 사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으로 드러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뜻이며, 그것 은 전에는 존재가 아니더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로 말미암아 재창조되어 생명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의 첫째 특 징은 호흡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숨을 쉽니다. 그러므 로 영생의 생명을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의의 사람들은 참 생명의 호흡 곧

192 의의 호흡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성경 말씀을 들어봅시 다. 출 23:12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종과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숨을 돌리리라 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파쉬 שׁ) ) 인데 숨쉰다 는 말입니다. 안식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에게 지키도 록 허락된 하나님의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날입니다. 하 나님의 창조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창조된 사람들은 이 날을 자신의 존재 의 근거를 확인하는 날로 지키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게 되어 있 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 조하신 대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존재 증거의 날입니다. 그 존재는 생명의 존재이기 때문에 이 날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을 호흡하는 날이라고 성경 이 말하는 것입니다. 겔 20:19-20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 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193 안식일은 율법이 아니라 중생한 참 생명의 호흡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살아 있는 자에게는 생명입니다. 중생의 생명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안식일의 호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생명과 존재를 부여받고 그를 의지하여 살며 기동하며 있는 것( 행 17:28) 을 증거하는 표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여호와를 아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절대적으로 믿음으로 그 행하신 일 안에 머무는 것 을 생활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생활은 호흡 있는 자의 자연스런 활동이 아닙 니까? 사실 안식일 계명인 제 4 계명에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참 백성의 생명으 로 주셨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 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 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 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계명은 창세기 2장 2, 3 절에서 왔습니다. 창 2:2,3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이 이 일곱째 날에 복을 주셨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복

194 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오복을 말하지 않습 니까? 그것은 수( 壽 ), 부( 富 ), 강녕( 康 寧 ), 유호덕 ( 攸 好 德 ), 고종명( 考 終 命 ) 입니 다. 또 그리스도인들은 팔복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5장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아닙니까? 그러나 복의 정의는 아닙니다. 성경이 정의하고 있는 복은 이렇습니다: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 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바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일곱째 날 에 복을 주셨다는 것은 이 날이 생명적 요소가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물론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로 말미암는 것임을 우리는 이 미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지 않았으면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아 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시므로 모든 것 이 존재하고 생명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이 창조 역사에 대 한 기념입니다. 그것은 곧 있는 것과 생명에 대한 기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을 가진 것들은 이 날에 자기를 생명으로 있게 하신 하나님께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여호와로 말미암았다는 것과 여호와로 말미암아 생 명은 유지된다는 것을 고백하는 생명 가진 자의 생명의 호흡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그와 관련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 하셨기 때문에 생명을 가진 것들 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누리며 자기의 생명이 생명의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 다는 것을 감사와 경배로 고백하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그 생명이 영속되며 더 풍성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다 하신 일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행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무

195 일도 하지 말라 ( 출 20:10, 8-11 참고고 ) 하십니다. 왜냐하면 엿새 동안 하나 님이 다 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할 일은 전혀 없고, 다만 하나님의 하신 일을 믿는 것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재창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의를 말할 때에 안식일 계명에 사용한 낱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한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 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 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바 ( 롬 4:4-6) 라고 하여 일을 아니할지라도 와 일한 것이 없이 라는 말은 아무 일 도 하지 말라 는 제 4 계명에 있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 義 ) 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드러난 것이므로 이것은 전적 으로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행할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안 식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생활로 드러내는 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적 도덕 적 행위로 자기가 일해야 할 것을 보이는 도덕적 종교와 도덕적인 세상에, 하 나님이 다 행하셨으므로 우리가 일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가 안식일 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절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복 음의 내용이 안식일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창조와 재창조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난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는 기별이 아닙니까? 그 창조가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 시초에 창조주이신 예 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요 생명이시며, 그래서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 로 안식일은 창조와 생명을 나타내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에 숨을 쉰다고

196 표현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은 쉼이 있는 날이며, 사람이 아무 일도 할 것이 없고 창조주께서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인 것을 증거하는 날인 것입니다. 요 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 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 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마 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 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에게 쉼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쉼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모 든 수고를 그치게 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다 하신 것을 감사하게 하는 날이며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경배를 드 리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은 오직 산 자들만 할 수 있는 생명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습니 다그들은. 창조주를 찬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세 천사의 기별은 이 창조의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치며, 경배를 할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창조 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라고 계시합니다. 생명이 없 는 자들은 바벨론이요, 불에 타는 마른나무들일 뿐입니다요 ( 15:6).

197 사 38:18,19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식에게 알게 하리이다. 십계명을 크게 나누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렇게 나누셨습니다. 마 22:36-40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 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 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 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런데 이것을 성경의 신론 ( 神 論 ) 과 관련시켜 생각하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성부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 1 계명부터 제 3 계명 까지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우상을 만 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 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경배와 관련된 기별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 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 마 4:10) 고 말씀하셨습 니다. 물론 예수님도 성령님도 모두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경배를 받아 야 할 분입니다. 그러나 삼위 신론으로 십계명을 분류해 보면 이 첫 부분은 성부에게 해당되는 면이라는 말입니다. 셋째 부분은 성령론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 5 계명부터 제 10 계명까지입 니다. 이것은 사람 사랑하라는 계명들인데, 사람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 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성령의 역사( 役 事 ) 를 나타

198 내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생활론인데, 성령으로 사는 자라야 사랑의 생활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넷째 계명뿐이지요? 이 넷째 계명 곧 안식일 계명은 성자론입니다. 이 안식일에는 하나님과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함 께 만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된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 날에 만나 경배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창조주와 피조물인 사 람이 만나는 시간의 경배의 전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을 시간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태초부터 사람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만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이미 공부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 리는 그 분이 한 것을 받아 감사함으로 누리면서 그에게 경배드릴 것 밖에 아 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 이 한 것을 받아 감사함으로 누리면서 그에게 경배드릴 것 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 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은 하나님과 사람이 도무지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때에 화목 제물이 되어 오셔 서 그 안에서 다시 사람이 하나님과 만날 수 있게 하시려고 친히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신마 ( 1:23)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 룩히 지키는 것은 바로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뜻하며, 이것을 믿는 믿음을 생활로 증거하는 것이며 참된 경배 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성자론 ( 聖 子 論 ) 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 일에는 제 1 계명부터 제 3 계명, 그리고 제 5 계명부터 제 10 계명이 다 들 어 있습니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안식일 계명에 명기되어 있는데, 일 은 신자들의 활동입니다. 이 활동하는 생활이 사랑의 봉사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재창조된 생명을 소

199 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재창조의 생명을 소유한 사실 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믿음의 절정 이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안식일을 거 룩히 지키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표라고 분명히 계시합니다. 겔 20: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 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또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킴으로 중생의 생명은 날로 풍성하여 지고 날로 새로워지는 경험에 이르게 됩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창조주 하나님 과 항상 연결된 생명을 호흡하기 때문입니다. 요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는 것이라.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 의 졸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 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날로 새롭다 는 것은 시간 세계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간 세계에 서 말하는 영원의 개념입니다. 시간 세계에는 날로 새로워지는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날로 낡아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겉 사람은 후패( 朽 敗 ) 한다고 말합 니다. 후패한다는 것은 낡고 사그라진다는 말입니다. 곧 시간 세계에 속한 것

200 은 낡고 사그라지지만 영생의 생명인 중생한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합 니다. 이것을 시간적인 사실로 표현한다면 날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서 창조의 동산 곧 에덴동산까지 거슬러 올라 가서 시간이 없어지는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 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날로 새롭다는 것은 시간을 정복한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정복하는 삶, 이것이 중생의 생명의 삶이요 새로운 피조물의 특성입니 다. 이것이 바로 영원입니다. 영원은 무한한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정복한 것 이라고 나는 정의합니다.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정복되었고 우리는 그 것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시간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영원성에 참예한 자들의 표 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사망의 세계의 도덕과 윤리와 아담의 후손의 종교적 원리를 주장하면서 창조주 여호 와를 아는 표를 지키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즉 안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망으로 가는 길에는 쉼이 없습니다. 세 천사의 기별은 쉼과 쉬지 못함의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쉼이 있는 자는 숨을 쉬는 자들이고, 쉼이 없는 자들은 숨을 쉬지 못하는 자들입니 다죽은. 자들에게는 숨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또. 거룩은 죽은 자에 대하여 산 자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였는데,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거룩한 자 곧 산 자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겔 20:12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거듭난 사람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나면 거룩 한 자입니다. 즉 성화된 자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성화를 더럽히지 않도록 지 켜야 합니다. 이것은 평생 사업이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켜야 할 과업입니

201 다. 살아 있는 사람은 숨을 쉽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은 숨을 쉽니다. 그것이 죽었나 살았나 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호흡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까? 호흡을 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중생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호흡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헛된 말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쉬는 숨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중생 ( 重 生 )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 있다면 생명의 호흡 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생명의 호흡을 하는 사람은 썩지 않습니다. 그 사 람은 썩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대저 ( 大 抵 ) 숨 쉬는 것은 썩지 않습니다. 숨을 쉰다는 것-그것은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202 제 12 장 성화( 聖 化 ) 우리는 지금까지 의가 무엇이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란 어떤 것인지를 연구했습니다. 설명이 복잡해서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만, 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와 재창조, 곧 구원 또는 부활의 생 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 생명을 누리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것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믿음으 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지를 알았다면 반드시 다음 단계로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가 성화입니다. 성화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많은 질문에 부딪힙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살 수 있습 니까? 예수님의 성화가 우리에게도 완전히 이루어집니까? 이런 질문은 교회 안에 아주 많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우리가 노력하면 예수와 같이 된다 는 우파와,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니까 그저 주의 자비와 긍휼 을 믿고 살면 주께서 다 해 주신다고 말하는 좌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전혀 죄가 없이 완전할 수가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고, 만일 예수님 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처럼 완전하게 살 수 있겠는 가? 라는 문제를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구원과 의에

203 대한 문제를 도덕성에서 찾기 때문에 일어나는 논란들입니다. 근본은 내어버 리고 결과를 가지고 다투는 모습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우리와 꼭 같다면 어떻게 죄 없이 완전할 수 있는가? 라 는 문제는, 여자의 후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했다면, 이미 답을 얻었을 것입 니다. 우리와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은 썩 어질 씨로 태어나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존재들이고 예수님은 썩지 않을 씨 곧 생명 자체로 사람에게 잉태하셔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결코 썩어짐의 종노 릇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썩어질 씨로 태어나서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그 상태에서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살라고 성경이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았을 것 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예수 안에서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나서 예수님 의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여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구원을 얻어 새 생명을 서유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거듭난 상태로 탄생하셔서 모든 거듭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본으로 보여주신 것이지 아담 안에서 죽은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예 수님처럼 살 수 있다고 본을 보이신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중생한 사람들의 본이지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본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본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죽어 있기 때문이며, 또 그 죽은 자들은 아무런 행동을 할 수도 없습니다. 다 만 썩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제 성화에 대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을 노력해서 성화되도록 창조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성화의 상태로 창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들은 이미 완전하고 거 룩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실 때에 불완전하고 거룩하지 않은 상태로 창조하여 창조된 아담이 노력해서 완전하고 거룩하여지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

204 다. 아담은 지음을 받던 날에 모든 일에 완전하고 거룩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 습니다( 창 1:31). 하박국 선지자는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 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 는 분( 합 1:13) 이라고 계시합니다. 그런 하나님 의 눈에 심히 좋았던 아담이 불완전하고 거룩하지 못한 상태로 지음을 받았겠 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 물로 창조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불완전하고 거룩하지 않은 상태로 재창조된 다고 어떻게 감히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터무니없는 오해요 인간이 자기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기 좋은 대로 해석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여기 에 또 사단의 속임수가 끼어들었을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 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피조물은 하나님을 따 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 엡 4:24) 입니다. 만일 하 나님이 이 새로운 피조물을 죄 있는 피조물로 창조하시거나, 거룩하지 않는 상태로 창조하신다면, 죄와 거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하나님 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완전하시고 거 룩하신 것과 같이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사람도 그렇게 재창조하 십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는 이미 완전 하고 성화된 사람, 곧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렇게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이렇게 완 전하고 거룩한 상태를, 이 불완전한 사망과 죄의 세상에서 더럽히지 않고 일 그러지지 않도록 보존하고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존하고 지키는 것 은 점점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므로 성화되어 있는 것을 더럽히지 않도록, 이 세상에서 사는 모든 날 곧 평생토록 지키는 것일 뿐입니 다. 죄의 세상, 썩어지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썩지 않는 생명으로 생활한 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신 것은 양으로 하여 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205 또한 넉넉히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 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은 근원적 인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입장에서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는 없습니다. 죽어 썩는 자에게 스스로 행하여 얻는 무슨 생명이 있겠습니까? 그 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 곧 새로운 피조물이 된 생명과 상태를 순종하는 생활로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약 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 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 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 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 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 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 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 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 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 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

206 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말씀 가운데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타납 니다(21, 24 절). 그래서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다고 착각할 가능성을 제 시합니다. 그러나 잘 읽어보면 이 행함은 믿음의 결과라는 말이지 믿음 없이 행하는 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린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아브 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신 사실은 창세가 15장 6절에 있는 말씀이요, 그 때는 아직 이삭이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그러나 이삭을 제 단에 드린 일은 창세기 22 장에 있습니다. 그 때는 이삭이 이미 장성한 사람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22 장에서 행함으로 확인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라합의 사건도 같은 일입니다. 라 합이 상천하지 ( 上 天 下 地 ) 에 여호와만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여호 와의 백성의 정탐꾼을 숨기는 행함을 담대하게 했던 것입니다. 라합이 우연히 인간적 동정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자기 나라를 배반하여 망명하고 싶은 생각 때문에 그들을 숨겨 주었다면 그 행위가 의롭다고 여기는 행위가 될 수가 없 습니다. 하나님을 확신한 믿음이 그 나라의 정권을 개의치 않고 그들을 숨겨 주는 행함을 했을 뿐입니다. 그 행함은 라합의 믿음의 결과이지 의를 얻기 위 한 행함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두 사람의 행함은 도덕적인 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 계명을 문자적으로나 혹은 정신적으로 지킨 일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 다그들의. 일은 도덕적으로 보면 부도덕한 일들입니다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일은 도덕적일 수 없습니다. 자기 나라를 적군에게 팔아넘기는 일도 도덕적일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 그것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여 세상적 가치관이나 도덕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의 섭리를 이루는 것을 유일의 행함으로 여기는 믿음의 결과를 가리키는 것일

207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가지고 근본적으로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 는 것처럼 오해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야고보는 또한 행함에 대한 것을 지적하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나타내는 자비와 동정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자에 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성품인데, 말로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필요를 공급 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정말 믿는다면 생활에 실제적 인 행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이미 얻은 새로운 피조물 이 된 그 생명의 모습이 생활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생활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믿는다고 큰소리쳐도 그것은 믿 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죽은 믿음이란 믿음이 아니라는 말이지 죽은 믿음도 믿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이미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 래서 그를 매장하거나 화장하거나 수장하지 않습니까? 생존 세계에 그는 이미 없는 자입니다. 그와 같이 새 생명의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 믿음은 이미 믿 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라이거나 인형일 뿐입니다. 결국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여진다는 야고보의 기별이 너무나 적절한 표 현이며, 이것이 야고보서가 말하는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맒의 참 뜻입니다. 앞에서 말씀 한 대로 설명하면 새 생명이 더럽혀지지 않게 보전되는 삶이며, 그 새로운 피조물이 되므로 거룩하여진 상태를 계속적으로 더럽히지 않고 깨 끗이 유지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참으로 믿음은 그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함 곧 성화를 계속 지켜나가는 상태 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된 표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때에 그 상태를 정확하 게 표현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이제 성경에서 보여준 성화의 표본들을 찾아보겠습니다.

208 성화의 표본- 성소와 성전 성경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몸을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 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 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니 너 희도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옛날 이스라엘에게 주신 성소와 성전은 성도의 성화에 대하여 이 해하는 데 가장 좋은 표상이 됩니다. 모세를 통하여 마들게 한 하나님의 거처 임 성소에 대하여 출애굽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소는 사람이 설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셨습니다. 그것을 모세에게 계시 로 보여주시고 그대로 만들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부대로 모두 만들었습니다. 출 25:8,9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가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 출 25: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39:42,4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 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성소는 사람이 설계하도록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성소에는 하나님의 구원 의 계획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재

209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사람이 계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 나님이 하신 구원의 일을 사람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습 니다. 이 사실은 앞에서 누누이 설명하였는지요. 그러므로 성소는 하나님의 구 원의 역사 ( 役 事 ) 를 계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설계 할 수가 없는 것입니 다. 그리고 그 성소는 또한 구원받은 사람의 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소는 재창조된 사람이 어떠함을 가르쳐 주는 실물 교훈인 것입니다. 성소는 구원의 역사( 役 事 ) 에 대한 계시인 동시에 구원받은 사람의 상태에 대한 계시이기도 한 것입니다. 성소가 완성되고 헌당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 이 성소에 가득하였습니다. 모세도 감히 성소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출 40:33-35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 갈 수가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 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광야의 성소가 가장 거룩한 때가 있었다면 이렇게 완성하여 헌당한 바로 그 때일 것입니다. 그 후의 성소의 역사 ( 役 事 ) 는 더럽혀지는 역사입니다. 그래 서 해마다 성소를 정결케 하여야 했고, 그런 정결 예식이 행하여진 후에 성소 는 다시 처음의 거룩함을 회복하였습니다. 레 16:16, 19, 20, 30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 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그 지성소와 회막과 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산 염소를 드 리되,...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210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속죄일에 성소를 정결케 하는 예식을 행하였는데,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 성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이 예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의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죄의 때가 묻는다는 것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정결케 해야 합니다. 성소는 이러한 사람 들의 죄를 씻어주는 일 곧 속죄를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는 실 물 교훈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결하게 된 후의 성소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소가 계시하는 동일한 진리를 솔로몬의 성전에서도 계시되고 있습니다. 성소를 친히 설계하여 모세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지을 성전도 친히 설계하여 다윗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성소나 성전이 똑같이 하나님의 구 원의 계획을 계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 구원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 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인간의 행동이 들어갈 틈은 전 혀 없습니다. 대상 28:10, 19 그런즉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 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하라!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솔로몬은 하나님이 설계해 주신 대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만든 언약궤를 성전 지성소에 들여놓음으로 성전의 모든 일이 완성되었습니 다그. 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소에 가득히 나타났습니다. 왕상 8:10,11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

211 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 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 성전도 성소에서와 같이 이때가 가장 거룩한 때였습니다. 이 후로는 성 전도 더럽혀지는 역사( 歷 史 ) 의 연속이었고, 해마다 정결케 하는 봉사를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요아스 때에는 성전이 퇴락하여 보수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황하 12:4-15). 성소가 헌당되었을 때가 가장 거룩하였던 것처럼, 사람 곧 아담의 후손, 썩어질 씨로 태어나고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 정으로 회개하여 그분의 재창조에 의하여 중생함으로 썩지 않는 씨로 태어나 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 때가 가장 거룩한 때입니다. 사람이 참으로 거듭나 면 성화로 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손에서 방금 창조된 순간과 같이 순결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 사는 세상은 아담이 처음 지음을 받아 완전한 상태로 살던 에덴동산같이 순결하고 거룩한 세계가 아닙니다. 죄로 물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요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세상입니 다. 이런 세상에 새로운 피조물이 그 순결하고 거룩함을 결코 손상시키지 않 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거룩하고 완전 한 사람으로 새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하고 깨끗 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 함을 받아야 합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 운데 계신 성령의 전일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 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12 여 벧전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피로 값을 주고 산 새로운 피조물인 사람들을 그 새 롭고 거룩한 상태에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능력으로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을 주 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그 때에 바로 거 룩한 존재, 곧 성화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화되어 야 하는 사람이거나 성화되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성화된 사람으로서 성화를 지켜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다른 예를 찾아보겠습니 다. 2. 예수님의 생애가 보여주는 성화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과 그의 생활은 성화가 어떤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아담의 후손이 거듭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세상에 탄생하기 위하여 구태여 성령의 도움을 빌려야 할 필요가 있었 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은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님이 어떻게 마리아에게 잉태되셨는지를 잘 가 르쳐 주고 있지만,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계신 말씀 하나님이 스스로 육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이 되는 일을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아담 안에서 죽 은 아담의 후손들이 어떻게 거듭나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없는 자들

213 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인 데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나신 것과 같은 상태로 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첫 피조물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아담이라는 말은 그가 새로운 아담으로서 스스로 피조물이 죄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모태에서 탄생하신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어떠하다는 것을 계시하는 일이며, 그것은 또한 예수님께서 는 모태에서부터 거듭난 상태로 탄생하셨다는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즉 우 리가 거듭난 상태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탄생하신 것과 같은 상태요 새로운 피 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중생과 예수님 의 장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갓난아이로 태어날 때부터 거룩 하셨습니다. 녹 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셨기 때문에 나실 바 거룩 한 자 이며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으로 거듭 나면 난바 거룩한 자 요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예수님의 33년 생애는 그를 33배나 거룩하여지게 하는 삶이 아니 라, 나실 때 완전히 거룩한 그것을 한 점도 더럽히지 않고 깨끗이 지 키는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결코 더럽히지 않고 지켰습니다. 요 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아무도 예수님을 죄로 책잡을 수 없었습니다.

214 요 14:30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세상 임금 마귀는 죄를 발판으로 사람과 관계를 가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은 죄로 책잡힐 일이 근본적[ 생명적] 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예수님께 관계할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거 룩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예수 안에서 단번에 얻은 거룩을 지키는 것보다 훨 씬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대속자와 중보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거룩을 더럽히면 다시는 속죄할 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출생부터 거룩하고 완전하였고 생활의 매 순간마다 그 거 룩과 완전을 조금도 더럽히지 않고 잘 지켰습니다. 갓난아기 때 예수님은 100 퍼센트 거룩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성장의 모든 과정에서 여전히 100 퍼센트 거룩하셨습니다. 그가 33년을 사시는 동안 언제나 100 퍼센트 거룩함을 유지 하시며 한 점의 오점도 묻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일생은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성화가 어떠한 것 인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는 것입니다. 성화 곧 거룩은 점점 거룩하여지는 것 이 아니라, 성령으로 태어나는 순간에 완전히 거룩하게 태어나서 그 거룩을 평생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3. 성화와 죄를 짓는다는 것 예수님은 탄생하면서부터 성화되신 분이시며, 전 생애를 통하여 결코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셨는데,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도 얼마나 자주 죄를 짓습 니까? 우리는 왜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같이 승리하지 못합니까? 죄를 결코 짓 지 않는 단계에 나아가야 성화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의문은 당연히 떠 오르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 의문에 대하여 우리는 분명한 답을 가져야 합

215 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믿음은 승리에 대한 기쁨이 있는 믿음이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 자체로 탄생하여 근본적으로 전혀 아담의 생명과 상관없이 탄생하셨지마는, 우리는 근본적으로 아담의 생명 곧 사망으로 태어난 사람입 니다. 그러므로 이 육체 가운데 죄의 법이 스며 있습니다. 롬 7:22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 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 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이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아담 안에서 얻은 사망 의 생명이 죄를 경험한 몸의 유전과 그 유전이 경험하는 경험의 범입니다.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라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이것 이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지요? 담배를 오래 피운 사람은 그의 세포 속에 담배를 피운 경험이 새겨져 있습 니다. 그래서 그것은 담배를 계속 요구합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를 믿고 담배 를 피우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살아갈지라도 얼마 동안은 담배 피우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게 될 것이며, 그럴 때에 옛날 친구를 만나서 담배를 피우 면서 담배 피울 것을 권하면 그 유혹은 물리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됩니 다. 그래서 그 지체 속이 있는 담배의 법이 그 사람을 사로잡아 담배 아래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곧장 그것 을 후회하고 회개하며 다시는 그런 일에 빠져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주님의 능력의 도움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은 약한데 담배 한 대 태웠다 고 무슨 죄가 될 것인가? 라고 생각하며 태연히 담배를 피운다면 그는 거듭난 경험이 없이 아직도 아담 안에서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을 증거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중생한 거룩한 사람일지라도 이처럼

216 과거의 죄의 경험들이 우리를 사로잡아 혹시 더럽혀지는 일이 있어도 예수님 의 피가 항상 씻어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즉시 100퍼센트의 거룩함을 회복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평안이요 의요 거룩인 것입니 다. 다음 이야기가 이런 사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들이 입학하고 생활관기숙사 ( ) 에 입사를 합니다. 사감 ( 舍 監 ) 이 입사한 모든 학 생들에게 생활관 규칙을 설명하고 각 방마다 모두 100 점을 줍니다. 그리고 사 감은 날마다 방 검사가 있으며 검사 결과에 따라 감점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월말에 그 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결과에 따라 상벌이 있고, 다시 처음과 같이 한 달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똑같이 100 점을 받고 시작합니다. 이 점수는 사감이 준 것이지 학생들이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100 점짜리 방에서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모 두 만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100 점을 매일 잘 유지하여 감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 달이 되어 매일의 검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어떤 방은 70 점이었습니다. 어떤 방은 40 점, 또 어떤 방은 90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 온 대로 모두 감 점이 되었습니다. 만점을 유지한 방은 한 방도 없었습니다. 다 감점을 받았는 데많이, 감점된 방과 조금 감점된 방들이 있었습니다이제. 어떻게 할까요? 사감은 그들이 감점된 이유가 무엇인지 다 발표해서 그것을 고치라고 말합 니다. 각 방의 학생들은 지적받은 대로 모두 고쳤습니다. 사감은 그것을 다 검 사하고 다시 모두 100 점을 주었습니다. 이제 다시 100점에서 매일의 생활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면 모두 100 점자리가 됩니다. 완전하고 온전히 거 룩합니다. 즉 성화된 상태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난바 거룩한 자 입니다. 이 거룩함이 죄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더러워집니다. 성소가 매일매일 더러워지듯 이 말입니다. 그래서 정결케 하는 일이 필요하며 정결케 했을 때는 또 완전히

217 거룩합니다. 이 정결케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회 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성화를 계속 유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행위로 성화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주신 성화를 더럽혔 는데 그것을 진정으로 회개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피로 깨끗이 씻어서 완 전한 성화의 상태를 되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욕한 자라도 발은 씻 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 라 하시니. 뿐만 아니라 성도는 그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씻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완전함과 거룩함이, 세상에서 죄의 때 가 묻어 더러워졌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 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의 의요 거룩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님 안에 있으면 그는 언제나 그 두루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빠는 일 을 하는 사람이요, 두루마기를 빠는 한 그는 언제나 예수님께로부터 100 점의 완전과 성화를 얻어 누리는 것입니다.

218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 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히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 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같은 말을 자주 합니다만,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 겨서 중생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였으면 언제나 이 생명이 우리를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즉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해야 합니다. 그 렇게 하면 우리의 체질은 비록 흙이라도 거룩함, 곧 생명의 참된 모습을 생활 로 드러냅니다. 결국 거룩함이란 예수 안에서 얻은 부활의 생명 그 자체를 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생의 생명으로 나면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 생하신 예수님처럼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을 사망이 주장하도록 하면 사망의 모습이 생활로 드러납니 다그것은. 썩는 것이며 썩는 냄새를 풍기는 모습니다. 롬 6:17-23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 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

219 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 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 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 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함하여 침례를 받음으 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 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미 말한 대로 예수님은 그의 잉태와 탄생과 성장과 생활을 통하여 거듭 나는 것이 어떤 것이며 거룩이 어떤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어떻 게 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물과 성령으로 나면, 나면서부터 성화된 상태로 나기 때문 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생 동안 그 성화를 결코 더럽히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님보다는 훨씬 쉬운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 은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럽히면 속죄할 길이 없지마는 우리는 때가 묻어도 진 정으로 회개하면 언제나 전혀 더럽힌 일이 없는 것처럼 깨끗이 씻어 주실 예 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언제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씻어 주실 약속을 믿고 죄가 나를 사로잡아 가는 일을 방 치해 두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로잡아 가려는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과 또 밖에서 공격해 오는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넉넉히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싸우다가 상처를 입는 것을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게 되지요. 상처는 아픕니다. 그래서 우 리는 그 고통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가 상처를 보이고 주의 손에 의하여 치료 받고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싸우라고 권합니다. 죄의

220 유혹을 죽이라고 권합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 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소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 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담전 믿음을 지켰으니. 4:6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예수님은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들에게 죄와 더불어 싸우고 영으로 몸의 행 실을 죽이라고 말씀하시며 싸울 수 있는 장비를 주었습니다. 엡 6:11-18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 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 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 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 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 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221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 여 구하고 여기에는 일곱 가지 무장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1. 전신갑주 2. 진리의 허리띠 3. 의의 흉배 4. 평안의 복음의 신 5. 믿음의 방패 6. 구원의 투구 7. 성령의 검 그리스도인의 선한 싸움의 무장에는 공격용 무기가 없습니다. 일곱 가지 무구( 武 具 ) 를 주셨으나 공격용 무기인 활이 없습니다. 칼을 공격용 무기라고 생각하지요? 옳습니다. 그러나 칼은 멀리 있는 원수를 공격하는 데는 아무런 일도 못합니다. 가까이서 싸우는 단병접전에는 훌륭한 공격 무기이지요. 그러 나 단병접전에는 방패도 공격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의 이 말씀 에 악한 자인 사단은 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방패로 악 한 자의 화전( 火 箭 ) 을 소멸하라고 말합니다. 화전은 불화살입니다. 사단은 이 불화살로 멀리서도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의 갑옷이 튼튼할지라도 때때로 화살이 뚫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 예수님께 그 상처를 보이고 치료를 호소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방패와 의의 흉배 등으로 이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방어전입니다. 이 방어전은 공격자를 보는 대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공격자인 죄와 사단을 보면 그를 닮을 것 이기 때문입니다. 승리자 예수님만을 바라보면 승리는 이미 내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이미 이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개인적으로 패배 하는 경험이 있을지라도 진정으로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의 승리한 사실에 의 하여 내가 승리한 자라는 선언을 듣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 그

222 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놓으신 일입니다. 옛날 로마 군인은 전투에 패배하는 일이 더러 있었으나 전쟁에 패배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전 투에 패배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에는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미 벌써 승리하셨고 그 승리가 바로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의 눈이 어디에 고정되어 있는지 언제나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 12:1, 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 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 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 느니라. 여기에 바라보자 는 말은 신약에 한 번밖에 쓰이지 않은 말입니다. 그것 은 아포라오( ἀϕοράω ) 인데, 눈에 들어오는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직 하나만을 응시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야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히 하고.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 그리스도인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요청하는 말씀이 아닙니까? 죄 와 더불어 싸우는 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매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보고 나아가면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 리가 되는 것입니다. 싸움을 예수님만 보고 나아가면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싸움을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벌써 2,000 년 전

223 에 나를 위하여 이겨 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그래서 방어전입니다. 예수께서 승리하여 주신 자리 를 지키는 전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위치를 잘 지켰다고 말합니다.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 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 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 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지키는 일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기시고 살려 주시고, 승리의 성채에 거하게 하셨기 때문에 살아서 활동하는 주님의 병사들 이므로 악한 자를 대적하여 싸우며 이 승리의 성채를 넉넉히 지키는 일을 할 수가 있는 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넉넉히 이기고 지킵니다. 태초에 아담은 이 승리의 자리를 지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창 ( 3:9; 유6). 그 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넉넉히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방어전이라는 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방어란 외부에서 공격하 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죄는 자기 속에 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새 생명으로 새로 창조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속에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는 속에서 나오 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 때문에 자기 속에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즉 그는 더 이상 사망 이 아니고 생명이며 더 이상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서 사망의 모습이 나올 수 없고 썩는 상태나 썩는 냄새가 나올 수 없 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이 나올 수 없어야 합니다. 이렇게 된 삶이 죄의 세상, 사망의 골짜기,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것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기 때

224 문에, 그런 것들이 사단과 합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 도인이 짓는 죄란 도덕적, 정서적 또는 종교적인 여러 허물들인데, 이것들이 지체 가운데 죄의 법 곧 육신이 경험한 여러 감각들을 공격하여 그리스도인을 여러 도덕적, 정서적, 허물 아래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밖에서 공 격하여 들어오는 죄들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무장으로 잘 방어해야 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어전이라도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가 참으로 아픈 사람은 그 상처를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속히 치료해야 합니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상처가 악화되어 치명적인 것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상처를 치료하고 통증을 없애기 위하여 우리는 길르앗의 의사 이신 예수님 앞에 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기의 피로 치료하시고 자 기의 승리를 또 다시 우리에게 주시며 우리를 승리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앞에 서 예를 든 기숙사 학생들처럼 또 다시 100퍼센트 완전하다고 선언하시는 것 입니다. 이러한 약속과 은혜에 의하여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 일생이 완 전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앞에 사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 수님의 보혈은 지금도 하늘 보좌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선언하는 말 하는 뿌린 피 ( 히 12:24) 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자기의 더러워지고 상처받은 것을 고백하 고 고쳐 주기를 구하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데, 이것은 발을 씻는 회개입니다. 목욕하는 회개와 발을 씻는 회개에 대하여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기실 때 하신 말씀으로 넉넉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을 반복하 여 말합니다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 끗하니라 ( 요 13:10). 온 몸이 깨끗한 것은 거듭난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럴지라도 이 죄의 세상에서 우리는 발 씻는 일을 매일 해야 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더러워진 발을 예수님

225 앞에 내어놓는 일을 부끄럽고 또한 감사히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사랑의 손으로 상처를 치료하시고 발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가 온전히 깨 끗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더러워지고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냥 있으면 우리 는 그 상처와 더러움으로 인하여 종국에 멸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 다치료하지. 않는 상처는 목숨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렘 8:20-22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 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 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 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 고? 시편 38 편은 상처 입은 자의 회개의 부르짖음입니다. 시 38:1-4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 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 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시 38:5-17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 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 다.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내가 피 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머

226 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 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 오나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 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여호 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내 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대 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시 38:18-22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내 원 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 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이러한 통회의 부르짖음을 주께서 들으시고 속히 치료해 주십니다. 시 147:3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사 30:26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 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은 이렇게 통회하고 자복하는 자의 상처를 치료하시고, 그들의 지은 죄 곧 사단의 불화살에 상했던 것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다시 건강한 생명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건강을 회복하면 전에 아팠 던 때를 굳이 기억하지 않지 않습니까? 이제 그 건강을 잘 유지하면 되지요. 그러나 사단의 공격과 지체 가운데 있는 죄의 법은 결코 순간이라도 공격을

227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제나 넉넉 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상의 이야기가 성화의 상태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이 짓 는다는 죄와 그 처리에 대한 성경의 계시입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 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저를 구 속하였음이니라. 사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렘 31: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 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 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 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 로다. 이런 조건하에서 중생한 생명, 곧 새로운 창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은 항상 의롭고 항상 거룩합니다. 그들은 생명이 되었고 더 이상 사망이 아니며 더 이 상 창조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린 자가 아니라, 재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입 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부활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칭 의요 성화요 영생입니다. 이 기별은 창세기에 있는 기별이며 동시에 요한계시

228 록에 있는 세 천사의 기별입니다

229 제 13 장 어떻게 중생 ( 重 生 )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의가 무엇이며 성화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 은 다 중생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상태가 중생 에 대한 것입니다. 중생을 모르고 칭위나 성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걸음마를 시키려 하고 옷을 입히려 하며 음식을 먹이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칭의와 성화를 말하려면 중생에 대 한 성경의 가르침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하는 중에 이미 중생에 대한 말씀을 많이 했다고 생각 됩니 다만 여기서는 중생에 대한 가르침을 중심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1. 왜 중생이 필요한가? 중생이라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닙니까?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한번 태어났다는 뜻이 그 말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번 태어 난 것으로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성경은 계시합니다. 한번 태어난 것은 죄와 사망의 나라 곧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게 되는 것이지요.

230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 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로 나는 것 을 뜻합니다. 이미 앞장들에서 누누이 말한 대로 이 지구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담 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사망으로 태어 났다는 말이며, 그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안목에는 없는 존재들입니 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담의 생명과 상관없이 생면 자체로 태어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한번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아담 안에서 다 죽 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다 창조하기 이전 상태인 흙 으로 돌아가고 존재 자체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이 있게 한 대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자는 예수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의 필요성입니다. 2. 중생의 방법 예수님은 밤에 그를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요 노니,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 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 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

231 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 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와 나눈 이 말씀이 기록된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물과 성령으 로 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 이 참으로 어떤 것입니까? 모든 대답은 성경에서 얻어야 합니다. 인간의 추측 이나 세상적 사물로 해석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오류가 끼어 들게 됩니다. 학자들은 물이 침례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참된 중생은 침례를 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말을 바꾸어야 표현해 야 합니다. 참으로 중생한 사람이 침례로 그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전혀 중생하지 않은 사람도 형식적으로 침례를 받을 수 있으며, 그렇게 침례 받은 것은 중생과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1) 물로 난다는 말의 뜻 물이 침례를 뜻한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물이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상징하는 것도 가르쳐 줍니 다. 뿐만 아니라 물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 은 같은 사실을 뜻하는 것인데, 물은 침례를 뜻하기 때문에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엡 시고. 요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232 위의 성경들은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말씀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에베소 서는 씻는 일은 물로써 하는데, 깨끗해지는 것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이 말씀을 상징하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뜻이 됩니다. 말씀으 로 거듭난 사람은 물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시 거듭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고 가르칩니다.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 느니라. 이것은 이미 우리가 익숙하도록 들은 말씀이지요. 거듭나는 것은 썩지 아 니할 씨로 나는 것인데, 그것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러므로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것을 가르치는 표상적 말씀입니다. 사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하여서도 물이 필요합니 다태아는. 복중( 腹 中 ) 에서 양수에 떠 있지 않습니까?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는 사람도 태어나기 위하여 물이 필요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 의 자녀로 태어나는 일에도 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은 썩지 아니할 씨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물을 하나님의 부활과 또한 침례와 관련시킵니다.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 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 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또한 예수의 부활에 참예하는 것을 뜻합니

233 다예수님의. 부활이 없었으면 거듭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모든. 구원에 대 한 말씀들이 의미를 지니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 다. 그래서 구원이 가능하고 그 구원이 바로 사망에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며 중생은 그렇게 옮기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고 침례는 그렇게 옮긴 사실의 실제적인 선포를 뜻하는 예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과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은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고 말합니다. 침례는 예수님의 부활에 참예한 사실을 선포합니다. 부활에 참예한 것은 곧 구원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침례( 浸 禮 ) 를 세례( 洗 禮 ) 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예식을 할 때 머리에 물방울을 떨어뜨립니다. 의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형 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형식은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형 식주의와 형식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형식주의는 나쁩니다. 그러나 형 식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내용은 그 내용을 바르게 나타내는 형 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을 잃어버리면 내용이 담길 그릇 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내용이 빠지고 형식만 남았을 때 그것을 형식주의라 고 말합니다. 침례는 형식주의가 아니라 침례의 진정한 의미가 담겨지는 바른 형식입니 다침례는. 예수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을 뜻하는 예식입니다롬 ( 6:1-7). 그런데 죽은 자에게 죽은 사실을 확실하게 하는 것은 호흡이 없어졌을 때입니다. 아무리 뇌사( 腦 死 ) 를 해도 호흡을 하고 있는 동안 은 죽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곧 호흡을 하지 않는 것입 니다. 침례의 의미에 이 죄에 대하여 죽은 사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 로 죄에 대하여 즉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삶에 대하여 죽은 것을 물속에 잠가 호흡을 멈추는 것으로 표상합니다. 확실히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물 위로 나 와서 호흡을 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으로 호흡하게 된 것을 뜻하는 것

234 입니다. 이것이 침례의 형식에 담긴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로는 이 내용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 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 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소 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거듭남의 근거입니다. (2) 성령으로 난다는 말의 뜻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어떤 경우를 뜻하는 말입니까? 위에서 말한 대로 물 은 성령도 상징합니다. 요 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령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 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 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입니다. 성령 자신 도 생명이십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그처럼 거 듭나는 사람도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그 생명을 우리가 성령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생명의 성령입 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235 사망의 범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성령으로 나는 것은 이 예수님의 참 생명이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심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썩지 아니할 씨인 하나님의 말씀이 썩어짐의 종노릇하 는 아담의 후손에게 심어질 수가 없습니다. 결국 성령께서는 말씀을 우리에게 심어 주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거듭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진 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 리니이다. 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 16:13,14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 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 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 나게 하시리라.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과 상관없이 일하지 않으십니다. 성령께서 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이 생명이 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므 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역시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과 말씀이 일치하는 것을 친히 말씀해 주십니 다.

236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 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말씀은 곧 영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심으로 성령과 말씀을 일치시키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시고, 성령은 이 말씀 안에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일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재창조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말씀 하실 때에는 창조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창세기 1장 1,2 절입니다. 창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 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신 곧 성령께서 수면 곧 물위에 운 행하셨습니다. 얘기에 성령과 물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창조에 관한 말씀입니 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것은 곧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창조에 성령께서 일하시 고 물 위에 운행하셨던 것처럼, 재창조 곧 구원에도 성령께서 물 위에 운행하 시는 것입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물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 실 때에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때 어두운 데서 빛이 비 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 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 십니다고후 ( 4:6). 이것은 첫째 날 창조에 해당하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37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아담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창조되기 전의 혼돈하고 공허한 모양으로 다시 돌아가 버린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흙이 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 십니다. 이 생명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역사( 役 事 ) 에 사망 집행이 유예된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이 빛을 받아들이면 생명으로 나는[ 出 生 ] 것입 니다. 이것이 창조입니다.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을 출생의 측면에서 표현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께서 성령 으로 탄생하신 의미를 아담의 후손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3) 실제적으로 중생하는 길 중생이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며, 물이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침례 도 가르치는 것이며, 성령으로 나는 것도 성령께서 말씀 안에 역사하사 말씀 으로 나게 하시는 것이라고 알았으나, 이것이 우리 각 사람에게 실제적으로 어떻게 적용이 됩니까? 중생이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는 말을 오해하여 가슴이 뜨거워지고 몸이 화 끈화끈하고 방언이 터지면 그것이 성령을 받은 것이고 중생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 중생의 경험에 그런 경우도 있겠 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도 예수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기록된 말 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성경이 가르치는 중생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적 현상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나는 것의 실제적인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거듭남을 경험하는 것입니 까?

238 요 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 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 곧 거듭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이루 어진다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곧 물과 성령으 로 거듭나는 실제적인 방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 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 혈통, 육정, 사람은 다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아담의 후손으로 나는 것을 뜻하는 말입 니다. 이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난 상태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 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나님께로 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 니까? 그래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사람 이라는 말은 아네르( ἀνήρ ) 인데, 이것은 남녀를 다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러므로 이 말은 남자 곧 아담의 후손으로 난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런즉 예수를 영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절대적 으로 중요합니다. 어떻게 예수를 영접합니까? 영접하는 것은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 을 내 안에 모셔 들여야 거듭납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문 밖에 서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는 그 음성을 들어 야 하고 듣고 문을 열어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를 어떻게 영접하는

239 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방법대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거듭 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다음 말씀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요 15:4-7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 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 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 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치는 말씀입 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 곧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또한 말씀입니다요 ( 1:1; 요일 1:1; 계 19:13).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것은 전적으로 똑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 신 것을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처럼 기록된 말씀 성 경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육신이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사 람이라면 성경 말씀이 나를 통하여 육신이 되고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님께서는 이런 것을 일컬어 내 말에 거하라 고 표현하셨습니다. 요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 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40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분의 말에 거하지 않으면 그분을 죽이 려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위의 말씀을 계속하여 읽어 내려가면, 이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 8: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 희 아비의 행사를 아는도다. 요 8:43,44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 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 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예수님을 믿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지 못하면 마귀의 자식이 되 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진정으로 거듭나는 일,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즉 그의 말씀이 내 안 에 거하도록 하는 일에 정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 면 우리는 그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려고 할 것입니다. 순종하려고 하지 않 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예수 믿는 사람 이 되고 전혀 거듭나지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 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치 않는 사람들 위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 물러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죽이는 예수 믿는 사람 이기 때문입 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241 의 진노가 나타난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의 모든 경건 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의 태도가 안타까워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 눅 6:43).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말 예수님을 영접하여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영접하여 그 말씀이 전적으로 나를 주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 밖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 니다. 고전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 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 배워서 서로 대적하며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5 장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고 하셨습니 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그 말씀이 내 안에 있는 것임을 알았습 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 마르틴 루터에게 이 말씀을 물었답니다. 선생님, 어떻게 동 시에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나는 예수님 밖에 있고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은

242 내 밖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이해가 안 되 는데요. 루터의 대답은 고금( 古 今 ) 의 명답 ( 名 答 ) 입니다: 숯에 불이 벌겋게 붙었습 니다. 불이 숯 안에 있습니까, 숯이 불 안에 있습니까? 글쎄요, 숯이 불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불이 숯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 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법을 말씀하십니다. 요 15:9,1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 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 은 곧 그분의 모든 말씀이 아닙니까? 결국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모두 말씀을 영접하고 그것을 전적으로 순종 하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연결되고 보니, 이것이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베드로전서 1장 23 절의 말씀을 보증하는 말씀이지요. 예수님 자신이 말씀이시 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우리 인격을 주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도 하나님 이 하라고 주신 것만 하셨고, 행동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모든 사언행( 思 言 行 ) 은 하 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자기

243 가 없는 삶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이 어떻게 사는 지를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께서 내 안에 계셔서 사언행 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의 참된 인격 입니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 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 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 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 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 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 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을 때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빌 2:5-8). 아담은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여 결국 자기 존재와 생명 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아담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철저히 하나 님의 뜻을 수행하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구원 얻 은 모든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지음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정되어 있는 일입니다.

244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 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을 얻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예정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있 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 수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계 명을 지킴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그의 일을 하시는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하여 그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이 전적으로 우리를 주장하게 할 때 에 이렇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을 새 언약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은혜아래 있는 말은 계명을 안 지켜도 된다는 말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은혜 아래 있는 것을 아는 것은 그가 예수 님의 계명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를 보아서 알게 되어 있 습니다. 히 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 라. 히 10:16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 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 하리라.

245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정신이 ( ) 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그 정신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 말은 결국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마음은 예수님 마음이 되었고, 그의 정신도 예수님 정신이 되었으며, 그의 생각도 예수님의 생각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그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품성을 형성한다는 말은 유명한 말 이 아닙니까! 결국 생각이 그 사람의 사람됨을 이룬다는 말씀이지요. 노아 때에 세상이 패괴( 悖 壞 )- 패괴 라는 말이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이것 은 어그러질 悖 ( 패) 자와 무너질 壞 ( 괴) 자입니다 -하게 된 것은 그 마음 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악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그 생각대로 세상이 악하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악한 생각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 다. 창 6:5,11,12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 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때에 온 땅 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 이었더라. 거듭난 사람의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이요, 그 행위도 예수님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이 그들의 생각이며 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있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처럼, 우리에게 있어서 도 기록된 말씀인 성경이 우리를 통하여 육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말 씀드렸습니다. 나는 이것을 성경 화육론 ( 聖 經 化 肉 論 ) 이라고 말합니다. 성경 말 씀이 전적으로 그의 생각이 된 사람 이것이 거듭난 사람이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그의 생활을 전적으로 주장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요.

246 위대한 선교사 허든슨 테일러(Hudson Taylor )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가까이 살지 않는 죄와 그 위험성과 감사치 못하 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나는 기도도 했고, 고민도 하고, 금식도 하고, 각오도 해보았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오랫동안 묵상도 해 보았고, 열 심히 봉사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매일 거듭거듭 실패 하였고, 능력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다른 해결 방책은 없는 것일까? 이렇게 계속 실패하는 삶을 끝까지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내가 하나 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속에 아바 아버 지라고!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자녀로서 갖는 특권을 내세울 수 없을 만큼 내게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예수 안에는 내 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음을 확신했으나 그것을 얻어내지는 못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은 생겨나지 않았고, 또 그것을 활용해 보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 영혼 의 고민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한 친구로부터 온 한 글귀가 내 눈을 뜨 게 했으며, 성령께서는 내가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 습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얻으려고 노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 여 신실하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 안에서 쉼으로만 얻을 수 있다네... 이 편지를 읽고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고 순종할 때 나는 그의 몸의 한 부분이며, 그의 육신과 뼈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실은 그리 스도와 내가 한 몸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의 뜻을 이루실 수 있 으며, 그의 뜻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허드슨 테일러, 향기 있는 사람 [ 서울 : 두란노서원, 1995], 136, 강

247 주 첨가). 우리는 참으로 예수님을 내 안에 계시게 하고 내가 예수 안에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성경 말씀이 전적으로 나를 주장하고 내 생각과 생활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입니다. 잠 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3. 중생의 결과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은 말씀이 그를 전적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그들의 생 각과 말, 그리고 생활이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래서 거룩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성령으로 났기 때문에 영( 靈 ) 이라고 합니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는 사람이며 그들 자신 이 바로 영이 된 사람입니다. 영은 영의 생각을 하고 영의 말을 하며 영의 생 활을 할 수밖에 없지요. 육체에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누누 이 설명한 아담의 후손의 상태를 깨달았으면 다 이해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성령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유 자니라. 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육에 속한 자는 성령이 없는 자입니다. 노아 때의 사람들도 육체가 되었기

248 때문에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말해야 할는지도 모르겠군요. 즉 성령께서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창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 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이렇게 성령이 없는 자 곧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은 육체입니다. 그러 나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나는 것이고 생명의 말씀으로 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이 있으며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영입니다. 이와 같이 영이 된 사람들은 영이 사는 방법으로 사는 길밖에 달리 사는 길이 없게 됩니다. 영으 로 생각하고 영으로 생활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둘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 리는 첫 사람 아담에게서 난 상태에서 마지막 아담 곧 둘째 사람이신 예수께 로부터 다시 났기 때문입니다. 고전 15:45-49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 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 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 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 한 자들과 같다는 말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영은 영으로 살고 육은 육으로 산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육신대로

249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롬 8: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곧 중생한 사람은 육체대로 사는 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영이기 때문에 영으로 삽니다. 롬 8:5-8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 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 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 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 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들, 곧 영의 사람들은 생활에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영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살지 않고 예수께서 그들 안에서 예수님의 일을 하시면서 삽니다.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예 수님이 하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아버지의 하시는 바로 그것이 나타난 것과 꼭 같은 상태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 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후 5:13-16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 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

250 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우리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 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 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 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피차 육체대로 아는 데서 영으로 아는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내 안에 계셔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왜냐하면 영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다만 육신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 8:7). 그 러나 영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뿐 아니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 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이 그들의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히 ( 8:10). 롬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 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거듭난 사람은 영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는 것 이 하나님의 말을 하는 것 같고, 봉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성에 참예한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51 벧전 4:11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 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 1:13). 이 렇게 말씀으로 하나님께로 난 사람들을 예수님은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중생 한 사람은 신성에 참예했기 때문입니다. 요 10: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 을 신이라 하셨거든.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썩어질 것 곧 아담의 후손의 상태에서 썩지 않을 씨로 태어나는 중생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이 중생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신의 성품 이라고 한 말씀 중에 성품 은 품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질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품성을 캐릭터(character)라고 말하면 개념이 더 분명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의 말씀에 성품 은 캐릭터 (character)가 아니고 네이처(nature)입니다. 이 말은 본질( 本 質 ) 이라는 말씀입 니다. 헬라어로는 퓌시스( ϕύσις ) 인데, 본질 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품성 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성품 이라는 말도 베드로후서 1장 4절 외에는 신약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말 구약에는 성품 이라고 번역된 말이 17회 있 는데, 15 회는 שׁ) 네페쉬 )를 번역한 말이고, 2회는 루아흐( ר( וּ 를 번역한 말입 니다. 이 두 낱말은 이 책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네페

252 쉬는 영혼 또는 영 이라고 번역된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는 율법사에게 신명기 6장 4 절을 인용하셨다. 우리말 성 경 신명기 6장 4 절에 성품 이라고 한 것을 우리말 신약에서는 목숨 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의 헬라어는 프쉬케( Ψυχή ) 입니다. 그러므로 성품 은 곧 목숨 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에는 퓌시느를 사용 하였는데 그것은 본질 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은 신성의 본질에 참여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 神 ) 이라 고 하신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신성의 본질을 예수 안에서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포 도나무인 것처럼 가지가 된 우리도 본질에 있어서는 포도나무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사실입니까!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하시는 능력으로 우리를 신의 형상을 따라 재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으 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 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그 본질이 하나님의 의가 된 것입니다고후 ( 5:21). 우리를 이와 같은 본질로 재창조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사람이 되 어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그분에게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입니 다그래서.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며, 이것이 거룩이요 이 것이 생명입니다. 이렇게 재창조되었으니 그럼 사람이 말씀대로 사는 것은 너 무나 당연합니다. 그리스도인 곧 중생한 사람에게는 세속과 종교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에 게는 한 인격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중생한 인격뿐인 것입니다. 중생한 생 명을 소유한 사람은 중생의 생명이 나타내는 생태( 生 態 ) 가 있을 뿐입니다. 그 생태가 바로 성경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이제 중생과 칭의와 성화의 관계를 잠깐 설명하고 이 글을 끝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253 생각하면 이것은 간단한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 은 하나님의 아들눅 ( 3:38) 인 아담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모 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한 사람의 생명도 낳기 전에 선악을 아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 는 것을 선택하여, 아담 안에서 지음을 받은 그의 모든 후손이 아담 안에서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의 창조를 헛되게 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이 여자의 후손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 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로서 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서 태 어나느냐 하는 것은 그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태 어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하므로 말씀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생은 태어나는 사실의 표현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연스럽게 아들이 됩 니다. 이것은 권리를 나타내는 표현이며 또한 집안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 니다. 그리고 이 아들은 살아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집안의 귀한 자식으로 태어났어도 죽으면 더 이상 자식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칭 의( )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의는 부활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아들은 생 활을 합니다. 산 사람이 생활이 없다면 그것은 살았으나 죽은 자입니다. 모든 산 사람은 그 생명이 생태로 나타나는 생활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화 ( ) 라 고 합니다. 결국 중생, 아들, 칭의, 성화라는 말은 한 가지 사실을 여러 측면에서 표현 하는 말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중생 하였으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면 영생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이며, 그들이 영생의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그 생명이 나타내는 삶을 이루게 되는데 그 삶이 바로 거룩한 것입니다.

254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에도 사람 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대로 영생하도록 하셨으나 아담이 사단 의 꾀임에 넘어가 자기의 진정한 선택이 아닌데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를 거절하는 선택을 하였기 때문에,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여호와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을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속죄의 관점에서만 설명해 왔기 때문에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속죄의 관점이란 우리의 지은 죄를 십자가의 피로 용서하신다는 관점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 지만 성경의 복음의 핵심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여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지 않는 것은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게 한 대로 있기를 거절한 것을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창조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그 핵 심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진정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 게 됩니다. 이 경배는 생명과 존재를 주신 사실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사람들에 게 즐겁게 그 일을 하도록 안식일을 주시고 그 날에 생명의 실상을 감사하도 록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핵심에는 안식일이 있으며, 창조로 생명과 존재를 주신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께 생명의 호흡이 연결되어 생명을 더욱 풍성 하게 하는 날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경의 끝 책인 계시 록에 속죄 중심의 복음 기별에서 창조 중심의 복음 곧 영원한 복음을 전파하 게 하시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치게 하신 것입니다. 세 천사의 기 별은 이래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며 영원한 복음인 것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서 예수님의 재창조의 경험을 한 중생한 그리스도인, 곧 하 나님의 형상을 좇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그 생각과 생활을 전적으로 말씀이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한 생명, 한 인격,

255 한 생활밖에 없습니다. 그에게는 종교적 모자와 세속적 모자를 바꾸어 가며 쓰는 일이 없습니다. 중생한 사람에게는 세속과 신앙이 따로 구별되지 않습니 다. 그 한 사람이 언제나 영의 사람입니다. 사슴은 산에 있으나 들에 있으나 시장에 나오나 언제나 사슴일 뿐입니다. 그처럼 중생한 사람은 교회에서나 가 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언제나 영의 사람일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은 그 생명이 일원적 이며 그 생명이 나타내는 생태로 사는 사람이 있을 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서 우리는 예수님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그러한데( 요일 4:17),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히 13:8). 우리도 예수 안에서 그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영원한 세상까지 오직 그 한 생명 한 인격이 계속 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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