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_북한인권_자료집[1]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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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셩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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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3월 20~21일 호주 멜버른 그랜드하얏트호텔 회의실 주최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인권호주위원회 후원 국립민주주의기금, 조선일보, 호주 국제문제연구소, Central Equity, EG Fund Management, 머큐어 호텔 스완스톤, Pratt Foundation, 호주정부대외원조기구, 마이클 댄비 국회의원
2 The 9 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North Korean Hum an Rights & Refugees 발 행 일 2009년 3월 15일 발 행 처 사북한인권시민연합 디 자 인 김영자 발 간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주 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교북동 심지빌딩 3층 전 화 02) ,2671 팩 스 02) C (사)북한인권시민연합
3 차례 일정 4 특별 연설 우에다 히데아끼 6 제성호 8 파트Ⅰ실태를 통해 보는 북한인권 - 사회권 및 자유권 규약 당사국으로서의 북한의 의무와 이행실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체계와 파급효과 허만호 12 북한에서의 고문실태 이영환 42 북한의 아동권리 실태 요안나 호사냑 60 - 북한 난민 실태 일본 내 북한 난민: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난민 문제의 내막( 內 幕 ) 테레사 모리스 수즈키 72 더 늦기 전에: 하나 되는 캐나다 한인 사회 잭 김 81 특별연설 비팃 문타폰 84 파트 II 미술, 음악, 영화를 통해 보는 북한인권 선무 93 김철웅 102 신동혁 108
4 일정 한국어 영어 동시통역 08:30 등록 08:45 개회식 국제회의 전체 사회: 원재천, 한국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 환영사 마이클 댄비, 호주 북한인권호주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칼 거쉬만, 미국 민주주의재단(NED) 회장 기조 연설 스티븐 스미스, 호주 외교부장관 특별 연설 우에다 히데아끼, 일본 인권대사 제성호, 한국 인권대사 09:30-11:45 파트 I 북한의 인권 09:30 사회권 및 자유권 규약 당사국으로서의 북한의 의무와 이행실태 사회: 마이클 멕켈러(Michael Mackellar), 호주 국제관계연구소 의장 발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체계와 파급효과 허만호, 한국 경북대학교 교수 북한에서의 고문실태 이영환, 한국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 북한의 아동권리 실태 요안나 호사냑, 한국 (사)북한인권시민연합 국제협력팀장 질문 및 답변 10:50 휴식 11:00 북한 난민 실태 사회: 박선영, 한국 국회의원 자유선진당 대변인 발표: 일본 내 북한 난민: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난민 문제의 내막( 內 幕 ) 테레사 모리스 수즈키, 호주 국립 대학교 교수 천국의 국경을 넘다, 조선일보 더 늦기 전에: 하나 되는 캐나다 한인 사회 잭 김, 캐나다 한보이스(Hanvoice) 전무이사 질문 및 답변 12:40 특별연설 비팃 문타폰,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 4
5 13:00 점심 14:45-16:15 파트 II 미술, 음악, 영화를 통해 보는 북한인권 사회: 원재천, 한국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 교수,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 피아니스트 김철웅/화가 선무와의 대화, 그들의 작품과 북한에서의 표현의 자유, 한국에서의 생활 피아노 연주회 & 작품 설명 질문 및 답변 14:50 요덕 스토리 다큐멘터리 제작자 토스타인 그루드 (Torstein Grude)와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생 신동혁과의 대화 15:20 다큐멘터리 요덕 스토리 상영 17:00 폐회식 윤현, 한국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3월 21일(토) (특별초대자에 한함) 10:00-12:30 비공개 전략원탁회의 (국회의원, 비정부기구대표 및 전문가) 사회: 마이클 포쇼우 호주 상원의원, 양원 외교, 국방 & 무역 위원회 의장 김석우, 한국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 원장, 북한인권시민연합 고문 그렉 쉐리단, 호주 저널리스트 5
6 특별 연설 우에다 히데야끼 일본 인권대사 존경하는 스티븐 스미스 호주 외교부 장관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제가 호주 주재 일본대사직을 마친지 도 어느덧 1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다시 올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이러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 은 슬픈 주제를 놓고 말씀 드리 고 자 합니다. 저는 호주 국민들께서 인권보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가 제가 말씀드릴 문제에 진정으로 필요했던 여러분의 관심 을 높이는데 도움 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종종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위협의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왔습니다. 하 지만 인권문제는 여타의 사안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로부터의 응당한 관심이 필요한 문제 입니다. 고문, 강제수용소, 사상의 자유제한, 여성과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침해와 같은 문제들 은 북한내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하게 발생해 온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의 침해들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2004년 이래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으로 계시는 비팃 문타폰 교수께서 현재 의 상황들 을 상세 히 설명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가 특별보고관으로서의 임무를 하는 동안 북한에 방 문할 수 없었지 만, 참을성 있게 북한 인권상 황에 대한 조사를 실행해 왔습니다. 일본은 비팃 문타폰 교수 의 업적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북한 이 국제사회의 요 구를 받아들이고 특별보고 관께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수락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큰 관심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 해 알고 계신 분도 있겠지 만, 그 문제의 배경과 현재 상황에 대 하여 설명하고 싶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대부분이 부모이거나 가족의 구성원일 것이라 생각 합니다. 당신의 가 장 사랑 하는 사람 이 어떻게 지내는 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한 채 당신으 로부터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러한 충격적인 행위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 북한에 의해 자행 되어 왔습니다. 일례 로, 그런 일이 자신에 게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던 순진무구한 한 10대 소녀도 이러한 비극에 얽히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납치 문제로 알려져 있는 사례들 은 이러한 경우들입니다. 납치 문제는 일본정부에 가장중요한 문제입니다. 납치문제는 일본의 주권과 일본 국민의 삶과 안전에 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일본은 북한 의 납치 문제를 항상 제기해 왔고, 북한의 끊임없 는 부정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결 국 2002년 9월 17일 평양에 서의 일본과 북한 정상회담에서 6
7 일본인의 납치를 인정했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17명의 일본인들이 북한에 의해 납치되었고 이 중 5명이 2002년 10월 15일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 일본인들은 행방불명 상태이며, 북한 정부는 즉시 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이 무엇 때문에 그처럼 혐오스러운 일을 저질렀던 것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처럼 전례 없는 국가범죄(state sponsored crimes)를 기획했던 까닭은 북한요원들의 해외활동 에 피랍자들의 신원을 이용하고, 북한요원들로 하여금 아직 북한에 남아 있는 "요도호(일본항 공기) 공중납치사건 피랍자들"인 것처럼 위장하여 일본인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 는데 활용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정부는 북한에 의해 납치된 17명의 일본인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또한 더 많은 일본인 납치의 의혹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 문제에 대해 계속적으로 조사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일본의 한국인들 같은 재일동포의 납치와 해외 에서의 납치가 밝혀졌습니다. 납치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다른 심각한 인권 문제와 함께 납치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 사회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지원은 많은 국제포럼에서 언급되었고,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북한인권상황 결의안 채택입니다. 이 결의 안은 납치 문제와 함께 북한의 심각한 인권 상 황이 언급되면서 4년 내내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습니다. G8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표명이 있었습니다. 가장 최근 2008년 7월에 열린 홋카이도 토야코 정상회담(Hokkaido Toyako Summit)에 서 납치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일본 의 호소는 모든 참가국의 이해를 얻었으며 의장과 지도자들의 선언에서 이 메시지 가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협력과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방 법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인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고 국제 사회의 지원은 북한이 이 행동을 취할 유인책 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그리고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 과 함께 일본은 북한에 대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 록 하는 활동과 압력 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위해 시민들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개 인 차원에서의 이해와 지지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북한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 도록 설득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최 측과 멜버른 시민의 따듯한 환영에 감사드립니다. 이 국제회의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호주의 이해를 촉진할 것이라 확신하며, 모두가 친구나 가족에게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7
8 특별 연설 제 성 호 한국 인권대사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친애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전 세계 각국에서 오신 전 현직 국회의원, 학자, 전문가, NGO 활동가 여러분! 오늘 아침 이 뜻 깊은 자리에 참석해 축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번에 제9회를 맞이하는 북한인권 난민 국제회의는 두 가지 점에서 매우 뜻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남반구에 있는 나라, 호주에서 처음으로 북한인권 난민에 관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열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는 북한 인권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있어 국제적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는 이번 북한인권 난민에 관한 국제회의는 참가의 규모, 질과 내용의 면에서 이전의 회의보다 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과 아울러 일반 시민과 NGO들이 북한 인권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적 차원의 활동에 적극 지지의 뜻을 보내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 국제회의의 개최를 축하하는 동시에, 회의의 준비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신 모든 분들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정치범수용소, 탈북자 강제송환, 반문명적인 공개처형, 비인간적인 고문과 인신매매, 비자발적 실종, 성분 차별, 사상 표현 의 자유 부재, 만성적인 식량난과 영양실조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공지의 사실입이다. 유엔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7차례에 걸쳐 북한 정부에 대해 북한주민과 탈북자들의 인권 개선 을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한 바 있습니다. 특히 2008년의 경우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국별 인권규 탄 결의는 3개국에 불과했는데, 북한, 이란, 미얀마가 바로 그 나라들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북한 의 인권상황이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금년 1월 세계적인 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국가별 인권보고서와 2월 중 미 국무부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인권보고서도 비슷 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간 유엔은 북한의 인권 유린을 강력히 경고하는 한편, 북한 당국에 대해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 8
9 인권특별보고관의 활동 협조, 인도적 기구의 접근 허용, 외국인 납치문제 해결 등을 촉구했습니다. 더불어 인권 개선에 있어 남북대화 등 관련국 대화의 중요성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아직까지 이를 무시하는 태도를 고집하며, 유엔의 활동에 아무런 협조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엔에만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는 없습니다. 국제시민사회가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나 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북한인권 개선활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인권문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문제와 분리 해 인권문제 그 자체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인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권은 거론 할 때 개선이 있고, 침묵 하면 진전이 없다는 사실 입니다. 독재자가 스스로 인권을 개선할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인간적이고 반문명적인 인권유린에 침묵하는 것은 범죄라고 규정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셋째, 인권에는 부당한 선별적 접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권 개선을 추구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사람은 북한 인권문제를 인위적으로 쪼개어, 예컨대 식량권이나 생존권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정치범수용소나 공개처형문제는 나중에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경제 사회적 권리 못지 않게 시민적 정치적 권리가 똑같이 중요합니다. 두 가지 부류의 인권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습니다. 즉, 식량권 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 증진을 위한 인권 개선 보호 활동은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 핵문제나 미사일문제 등 안보문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문제를 등한시 해서는 안 됩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북한과의 양자회담이나 교류협력도 북한 인권 개선에 기여하는 방향으 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북한주민의 식량난을 다소나마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지 원을 하는 데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인도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비군사적 전용의 보장 혹은 분 배 투명성의 확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여섯째, 북한인권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협력이 각별히 중요합니다. 인권 상황이 너무나 비참 한데도 스스로 인권 개선의 의지가 거의 없는 북한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정부 차원은 물론 시민단체, 교회, 기업 등 다양한 행위주체들이 힘을 한 데 모아야 합니다. 끝으로 인권의 개선에는 수치의 힘 (Power of Shame) 혹은 부정적 이미지의 확산 (Negative Publicity)이란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이 점을 고려한 지혜로운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간 북한인권 난민국제회의가 인류의 양심을 표현하는 국제적인 토론의 장으로서 특히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인권개선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컨대, 유엔 인권 9
10 위원회와 총회에서의 북한인권 결의 채택,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임명, 탈북자의 인권 보호 등 북 한 인권 증진 및 개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들이 축적된 결과로 마침내 한국 정부는 작년에 처음으로 유엔 총회 인권결의에 공동제안국(co-sponsor)으로 참여하기에 이르 렀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북한이 유엔의 결의와 국제사회의 요 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제시민사회의 일치된 목소리와 계속되 는 북한의 문 두드리기 가 절대로 긴요합니다. 앞으로도 북한인권 난민국제회의에 그러한 노력의 중심에 서길 기대하며, 이것이 북한주민들의 간절한 바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도 북 한 인권 증진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틀간의 국제회의에서 좋은 발제와 생산적인 토론, 실효성 있는 전략들이 개진되어 향후 북한인권 개선 활동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제9회 북한인권 난민국제회의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축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10
11 파트Ⅰ실태를 통해 보는 북한인권 사회권 및 자유권 규약 당사국으로서의 북한의 의무와 이행실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체계와 파급효과 허만호 경북대학교 교수,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이사 북한에서의 고문실태 이영환 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 북한의 아동권리 실태 요안나 호사냑 북한인권시민연합 국제협력팀장 북한 난민 실태 일본 내 북한 난민: 북송 재일교포 출신 탈북난민 문제의 내막( 內 幕 ) 테레사 모리스 수즈키 호주 국립 대학교 교수 더 늦기 전에: 하나 되는 캐나다 한인 사회 잭 김 캐나다 한보이스(Hanvoice) 전무이사 11
12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체계와 파급효과 허 만 호 경북대학교 교수, 북한인권시민연합 연구이사 Ⅰ. 서론 Ⅱ. 형성과 체계 Ⅲ. 수용과정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Ⅳ. 수용소 내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Ⅴ. 파급효과: 어둠 속의 침묵 Ⅵ. 유엔의 인권제도에 의한 조치들 Ⅶ. 결론적 제안 Ⅰ. 서론 북한의 인권문제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해체는 북한정부의 인권정책의 변화뿐만 아니라 개혁 개방과 북한에서 시민적 자율 성(civic autonomy)의 신장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잣대다. 인권 억압국가의 인권정책을 변화 시키는 데 근본적인 대책은 국제인권규범에 저촉되는 구체적 사실들을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압박을 가하여 스스로의 말에 스스로 굴복하게 하는 부 메랑 효과 에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고려하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은 지속 적으로 부각 시켜야 된다. 1)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와 수용인원 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아서 의구심 을 갖는 인사와 단체들이 있다. 공개된 정보는 소수의 탈북자들이 증언한 것이 전부이고, 특별독재대상 구역 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더욱 한정되어 있어서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이다. 현재 북 한 정치범 수용소의 초기모습에 대해서는, 대규모의 정치범 교화소로 추정되는 사리원 수용소에 대한 알 리 라메다(Ali Lameda)의 증언이 유일하고, 22호 관리소 경비원 출신 최종철 씨가 극히 제한된 증언을 하고 있으며, 13, 22, 26호 관리소에서 경비대 운전병을 지냈던 안명철 씨만이 비교적 많은 증언을 하고 있다. 아울러 탈출과정에 대해 의구심을 사고 있는 김용 씨 또한 14호, 18호 관리소에 대해 많은 증언을 1) 부메랑 효과 에 대해서는 Thomas Risse, Stephen Ropp and Kathryn Sikkink (ed.), Power of Human Rights: International Norms and Domestic Chang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p 참 조. 12
13 하고 있다. 2) 그런데 필자는 베트남의 경우가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남부해방 후 북 화정책 을 실시하면서 40만 80만 명을 노동개조장 (Trai Cai Tao Lao Dong, 再 開 導 勞 動 )으로 보냈다. 물론 팜 반 동 (Pham Van Dong)은 1977년 4월에 겨우 50,000명만이 노동개조장 에 수용되어 있다고 언급했었다. 3) 김대중 노무현 2정부의 대북정책 속에서 정치범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서는 크게 주목 을 끌지 못하고, 새로운 정보 제공도 부족했던 가운데 2006년에 한국에 입국한 신동혁 씨야 말로 자신의 존재를 통해 살아 있는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4) 그는 1982년에 특별독재대상구역 인 개천 14호 관리소 에서 태어나 2005년에 탈북 할 때까지 수용소에 억류되어 있었으며, 그의 경험담과 목격담은 안명철 씨 와 김용 씨의 진술 내용을 확인시켜 준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에 대한 물증이 부족하지만 탈북자들에 대해 정교한 인터뷰 조사와 교차분석을 통해 많은 정보를 획득 검증함으로써 이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물증이 부족하다고 사 실 전반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부정하는 것은 북한의 위정자들이 인권유린에 대한 정보 유출을 철저하게 차단하기 위해 더욱 인권을 유린하는 악순환에 일조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나치정부가 자행한 만행들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알려진 것은 2장의 사진을 통해서다. 외부 세계에서는 의아해 했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사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현재까지 알려 진 정치범 집단수용소와 관련된 인권유린 실태를 정리하여 국제인권법으로 조명해 보고, 한국과 국 제사회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정치적 이유로 인간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것은 유엔헌장의 인권관련 규정들과 세계인권 선언 및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정치범 수용 소의 경우, 이런 일반규범들에 대한 일탈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적확한 규 범적 일탈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1998년 7월 17일에 체결되어 2002년 7월 1일에 발효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제7 조, 인도에 반한 죄 에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5) 그런데 북한은 로마규정 의 당사국이 아닐 뿐만 아니라 2002년 7월 이전에 자행한 정 치범 수용소 관련 인권유린들에 이 규정을 적용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 여 북한이 이미 가입한 국제인권규범들에 따라서도 조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한정부 는 여느 인권억압국가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제인권규범들의 효력이 국제관할권을 갖는 것 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북한 국내규범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보다 효과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 "Ali Lameda: A Personal Account of the Experience of a Prisoner of Conscience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 publication of Amnesty International (Amnesty International Index: ASA 24/02/79), in Haruhisa Ogawa & Benjamin H. Yoon, VOICES FROM NORTH KOREAN GULAG (Seoul: Life & Human Rights Press, 1988); 안명철, 그들이 울고있다, (서울: 천지미디어, 1995); 김용삼, 북한의 아우슈비치 14호 관리소 의 내막, 월간조선, 2000년 5월호. 3) Joël Kotek et Pierre Rigoulot, Le siècle des camps (France: JC Latts, 2000), p ) 신동혁,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 (서울: 북한인권정보센터, 2007). 5) 한국에서는 로마규정을 2000년 3월 8일에 서명하여 2002년 11월 8일에 국회동의를 얻었으며, 2002년 11월 13 일에 비준서를 유엔에 기탁함으로써 2003년 2월 1일에 발효되었다 (조약 제1619호).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이 규정에 가입하지 않아 당사국이 아니다. 13
14 Ⅱ. 형성과 체계 1990년대 후반에 식량사정 악화로 급격히 늘어난 유랑 걸식인들을 수용하는 시설 외에 북한의 집단수용소로 6개의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와 서방세계의 감옥에 해당하는 노동교양소와 교화소가 있으며, 임시 구치를 위한 집결소와 3-4개월 정도의 단기 육체노동을 통한 계도 명분의 처벌을 위한 노동단련대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가장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는 곳은 정치범 수용소다. 이를 북한 당국은 호 관리소 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고, 주민들은 특별독재대상구역, 정치범 집단수용 소, 유배소, 종파굴, 이주구역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몇 단계를 거친 후인 것으로 보인다. 1. 정치적 탄압을 위한 수용소의 탄생 북한의 강제수용소는 해방 직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 25전쟁 당시 미국 국무부가 노획 한 북한의 한 문서에 따르면 1947년 10월에 이미 17개소의 특별노무자수용소 가 있었다. 6) 그런데 이 수용소들의 수감자는 소장의 허가를 받으면 가족과 면회도 할 수 있고, 영화 관람을 위해 외출 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특별노무자수용소 는 현재의 정치범 수용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며, 서방세계의 일반 형무소 모습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강제수용소 모습으로 변해 간 과정에 대해서 다소 다른 설명들이 있지만, 공통 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은 김일성 김정일의 권력투쟁과 계급정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다. 먼저, 在 美 탈북자 김용 씨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가 운영하는 정치범 관리소는 1972 년에 前 국가보위부장 김병하의 발의와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야 한다 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는 로마규정 제7조 상의 절멸 에 해당된다. 7) 그리고 김용 씨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초기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1968년에 황해남 북도의 군사분계선 주변지역 즉, 개성, 금천, 용연, 장연, 안악, 은율, 취하, 장풍, 개풍, 판문 등지에 거주하던 월남자 가족과 6 25전쟁 당시 치안대 가담자, 한국군과 미군에 협조한 자, 지주, 친일파 본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북쪽의 주민들과 거주지역을 교환한다면서 화차에 실어서 12곳의 험준한 산악지역에 설정해 놓은 특수구역으로 대대적으로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 외부 와의 접촉은 물론 서신 거래도 못하게 하는 등, 사회와 완전히 차단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 치들은 로마규정 제7조 상의 주민의 추방 또는 강제이주 와 동일시될 수 있는 집단이나 집합체에 대한 박해 및 사람들을 체포 구금 또는 유괴한 후, 그들의 운명이나 행방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강제실종"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조치들이 1966년 4월에 실시한 주민들의 사 상조사, 즉 주민재등록사업 과 1967년 5월에 유일사상체계 를 노동당의 공식노선으로 채택한 뒤에 6) 萩 原 遼 (편), 北 朝 鮮 の 秘 密 文 書 ( 上 ) ( 東 京 : 夏 の 書 房, 1996). 7) 여기서 절멸"은, 국가나 조직의 정책에 따라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주민의 일부를 말살하기 위하여 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접근 박탈과 같이 생활조건에 고의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을 말한 다. 14
15 취해졌으므로 로마규정 제7조 상의 국가나 조직의 정책에 따라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그 공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행해진 인도에 반한 죄 를 범한 것이 된 다. 그런데 그 무렵에는 수용소의 형태를 완전히 갖춘 것은 아니었고, 수감자 관리와 시설 운영은 사회안전성 안전과가 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격리 수용된 사람들 중에서 본인에 한해 죄가 엄중 하다고 분류된 사람들은 개천교화소와 청진에 있는 수성교화소를 정치범 교화소로 개조하여 별도 로 수용한 것이 정치범 수용소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범 수용소의 시원( 始 原 )을 이보다 더 앞선 시기로 보는 증언과 주장도 있다. 탈북자 강철환 씨의 주장에 의하면, 함경남도 요덕군에는 1959년 이전에 이미 강제수용소의 일부분이 건 설되고 있었던 것 같다. 요덕군의 비옥한 지역에는 원주민( 原 住 民 )들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시기부 터 타지( 他 地 )에서 추방당해 온 사람들이 원주민들과 섞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1959년경부터 원주 민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시작되어 1964년경에는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1958년 연말에 시작되어 2년간 계속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 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전 주민의 성분과 사상을 조사하여 3계층 51개 부류로 나눈 뒤에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강제수용소 에 가두었는데 요덕수용소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은 조치들은 시점 상 로마규정 이 채택되기 이전에 취해졌지만 내용과 성격은 전술한 바와 같이 인도에 반한 죄 에 해 당된다. 그런데 김일성이 1968년에 관리소 안에서 계급의 원수들이 폭동을 번번이 일으킨다면 군대를 배치해서 다시는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고 교시를 내렸던 것으로 봐서 1968년 이후 에 각 경비소에 군대(경비대)가 배치되어 오늘날의 수용소 형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1968년 내지 1969년경을 오늘날의 정치범 수용소의 시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후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에서 김정일이 당권을 장악한 후에 권력세습 반대자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15,000여 명을 특별독재대상구역 에 수감하였으며, 중 동부 유럽에서 공산주의체제들이 붕 괴되자 1990년대에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특별독재대상구역 이 확대 개편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7년경에는 평남 개천, 함남 요덕, 함북 회령 청진 등지에 약 20만 명을 수감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집단적, 체계적, 지속적인 인권유린들에 대해 시점 상 로마규정 을 적용할 수는 없다 하여도, 이 행위들이 2002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북한은 1981년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에 각각 가입하였다. 그리고 집단살해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에 1989년에 가입하였으며,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에 1990년에 가입하였다. 아울러 2001년에는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철폐에 관한 협약 에도 가 입하였다. 따라서 이 국제인권규범들을 적용하면 좀 더 현실성 있는 논의가 가능 할 것이다. 2. 정치범 수용소의 체계와 변화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함경남도의 요덕, 단천, 덕성군, 함경북도의 온성에 2곳, 회령, 화성, 부령군, 평안남도의 개천, 북창군, 평안북도의 천마군, 자강도의 동신군. 이 집단수 용소들에는 완전통제구역 (특별독재대상구역)과 일부 수용소에 한하여 혁명화구역 (혁명화대상구역) 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 이들 중에서 알려진 바는 다음과 같다. 9) 15
16 14호 관리소: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평안남도 개천군 보봉리에 위치하며, 수용인원은 1만5천 명 정도이다. 개천 14호 관리소 내에서 태어나 자란 신동혁 씨는 이 수용소의 위치를 평안남도 개천 시 외동리로 밝히며, 1983년에 이전하기 전에는 평안남도 개천과 봉창을 포함한 지역에 위치했다 고 진술한다. 10) 1950년대 말 1960년대 말 사이에 김일성 체제에 반대했던 당, 정, 군의 고위관료 들과 그들의 가족 친지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다. 1999년 12월에 귀순한 탈북자 김용 씨의 경우를 보면, 간첩죄로 처형된 사람들의 가족도 수용 되는 것으로 보인다. 김용 씨는 아버지가 1957년에 간첩으로 몰려 처형된 뒤에, 호적을 위조하여 전쟁고아로 신분위조를 했다가 뒤늦게 발각되어 1993년 5월에 수용된 경우이다. 당시 14호 관리소 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11) 신동혁 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 수용소는 본 마을과 5개 골안(골짜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처 음 수용되면 주로 4, 5호 골안에 수용되어 독신생활을 하다가 일을 잘 하면 1, 2, 3호 골안으로 옮 겨져서 정상적인 결혼 생활은 못해도 결혼하여 아이도 낳을 수 있으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닐 수 있다고 한다. 4, 5호 골안 피수용인들은 골 밖으로 나올 수 없어서 아이들은 학교도 다닐 수 없다 고 한다. 신동혁 씨는 자신이 2005년 1월에 탈출할 때까지 골안으로 새롭게 들어온 사람은 많이 보았어도 방면되어 나가는 사람은 못 보았다고 한다. 12) 15호 관리소: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함경남도 요덕군에 위치하며, 수용인원은 2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 수용소에는 월남자 가족, 지주 및 자본가 가족, 재일교포 가족 중에서 당과 국가에 대해 불만을 표현한 사람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다. 그런데 이 수용소에는 당, 정, 군에서 혁명화 대상자 로 분류된 사람들도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이 혁명화 대상자는 공민권을 유지한 채 수용되며, 일 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석방되는 사람들로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관리소는 강철환 씨가 1977년부터 1987년까지 수감되어 있던 곳으로 1992년에 탈북 해서 한국에 온 이후 탈북자 안혁 씨와 함께 그 실상을 외부에 알려 왔다. 그리고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요덕수용소의 혁명화구역에서 출소한 탈북자들도 최근 잇달아 입국하고 있어 비교적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있 는 곳이기도 하다. 13) 16호 관리소: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함경남도 화성군 고창리에 위치하며, 1만 명 정도가 수용되 어 있다. 전 부주석 김동규의 경우처럼, 1970년대 1980년대 초 사이에 김정일 후계체제 형성과정 에서 이에 반대하여 반당, 반혁명 분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주로 수용되어 있다. 8) 통일원, 북한의 인권실태 (서울: 통일원 정보분석실, 1994년 8월), pp ) 강명도, 북한의 인권, 북한의 인권문제, 통일안보포럼 자료집, 경북대학교 평화문제연구소, 1997년 11월 21 일. 10) 신동혁(2007), 앞의 책, p ) 김용삼(2000), 앞의 취재기사 참조. 12) 신동혁(2007), 앞의 책, pp ) 요덕 수용소에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수용되어 있었던 이백룡 씨(이영국의 가명, 2001년 증언 당시 44세)는 1999년까지 대숙리 8호구역의 피수용인 15명의 명단을 제시하였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원조 (47세, 1996년 수감, 전 인도네시아 주재 북한대사, 북한의 폐쇄적 외교정책에 대해 비난한 죄), 김대성(62세, 1996년 수감, 전 리비아 주재 무역참사, 리비아 재직 시 아들이 한국으로 망명한 죄), 김희철(61세, 1997년 수감, 황해남도 무역관리소 소장, 김정일의 경제정책 실패 비난 죄), 백남칠 (42세, 1996년 수감, 전 대남 연락소 3호청 사 지도원, 웅담회사인 곰열회사 설립 실패 죄), 김형섭 (29세, 1997년 수감, 전 사회안전성 하사관, 사회안전부 하사관학교 동창생 7명과 함께 북한 당국이 자유를 짓밟고 있다 며 인민무력상, 사회안전상 등 주요 인물들에게 테러를 가하려 했던 죄), 이철 (57세, 1997년 수감, 전 함경남도 태권도연맹 위원장,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김정 일이가 백성의 시체위에 올라선다 )고 말한 죄), 김명화(일본인 여성, 1960년 8월 2일 생, 1991년 수감, 니노키 사관학교 출신이라고 간첩죄를 적용, 그녀의 일본 이름은 미쯔비시 다미코이며 1997년 9월에 용평구역으로 끌려 간 뒤 사망) 등. (검색일: 2003년 6월 18일). 16
17 21호 관리소: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함경남도 경성군 창평리에 위치한다. 박금철, 김도만, 최창 익, 김광협 등 1950년대 말 1970년대 초 사이에 김일성 체제를 반대했던 고위관료들과 그 추종세 력들 1만5천 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청진시 수성 정치범 교화소: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청진시 수남구역에 위치하며, 약 3천명이 수 용되어 있다. 여기에는 평양에서 추방된 인사들의 가족, 종교지도자 가족, 재일교포 가족 등으로 국 가 사회체제에 반항했거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다. 그 실례로 재일교포 출신 강회택 씨의 가족, 황해남도의 목사와 장로들의 가족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18호 관리소: 사회안전부 ( 現 인민보안성) 소속, 평안남도 북창군 득장리에 위치하며, 2만 5천 명 정도가 수용되어 있다. 이 수용소는 1983년에 14호 관리소가 대동강 북쪽으로 옮겨 가면서 그 자리에 생긴 것이다. 여기에는 월남자 가족, 종교인 가족, 상습범죄자 가족, 혁명화 대상자들이 수 용된다. 이들은 의사( 醫 師 ) 황순일의 경우처럼, 사회제도에 불만과 불평을 토로하다가 억류된 사람 들로서 공민권은 유지하며, 일정 기간 수용된 뒤에는 사회에 환원된다고 한다. 탈북자 강명도 씨는 이외에 17호, 19호, 22호, 23호 관리소에 수감된 인원만 30만 명에 이른다 고 주장한다. 18호 관리소와 15호 관리소의 일부 혁명화 대상구역 피수용인들을 재외 한 모든 사 람들이 공민권을 박탈당한 채,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정치범 수용소를 완전통제구역 과 혁명화구역 으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데, 종신 수감 되는 완전통제구역 은 아직 그 실상이 외부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최근의 증언자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정치범 수용소가 거의 완전통제구역 으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혁명화구역 의 규모가 줄어든 것은 가족연좌제에 의해 가족 전체가 수감됐던 과거와 달리 당사자만이 수감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철환 씨의 설명에 따르면, 1987년 이전에는 요덕수용소(15호 관리소)의 경우 요덕군 구읍리, 립석리, 대숙리를 포함해 수용소 면적 절반 정도가 혁명화구역 이었고, 벼농사가 가능한 평야지대 인 룡평리, 평전리가 완전통제구역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87년경 구읍리, 립석리 혁명화구역이 완전통제구역화 되면서 이 지역에 수감돼 있던 가족세대는 요덕수용소의 끝자락에 위치한 대숙리 로 옮겨가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수용소의 80%가 완전통제구역 으로 변하고 대숙리만이 혁명화구 역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14)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 다시 혁명화구역의 가족세대가 완전통제구역으로 옮겨가거나 대거 출 소하게 되는 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1995년에 출소한 이영희 씨(가명, 증언 당시 38세)의 진술 에 따르면 혁명화구역의 수감자들은 1987년부터 꾸준히 풀려나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 온 북송교 포 세대가 먼저 나가고 일반 세대도 점차 풀려났다고 한다. 강철환 씨도 기억하고 있는 수감자들 로, 1984년에 일본에서 남편을 만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가 아들 딸과 함께 수용소에 수감됐던 이춘옥 씨 가족은 출소해서 함남 고원군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년 이상 장 기 수용돼 관리소 고정재산 으로 불리던 북송교포 김대인 씨 가족과 박순옥(일본인 처였던 어머니 는 수용소에서 사망) 씨 가족은 다시 완전통제구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들처럼 악질반동 으로 분류된 가족세대는 완전통제구역 으로 이동시켰다는 것이다. 관리소 측은 이들을 사회로 내보낸다 고 안심시킨 후에 사람과 짐을 국가안전보위부 트럭에 싣고 이동시켜버렸다고 한다. 여기에는 在 獨 학자 송두율 교수의 권유로 가족과 함께 북한에 들어갔다가 북한 대표단의 유럽 방문 시 통역원으 14) 사회(1329/14156) 요덕수용소 에선 지금 무슨 일이? 탈북자들 살벌 기류 증언, 강철환 기자, (검색일: 2003년 9월 28일). 17
18 로 다시 유럽으로 나온 후 탈출하여 한국으로 돌아온 오길남 씨의 부인인 신숙자 씨와 두 딸 혜 원, 규원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최초의 김일성 전용기 조종사였다가 1978년에 곁가지사건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과의 권력투쟁 사건) 으로 수용됐던 김형락 씨와 그의 아들 딸, 그리고 1978년에 월남한 이영선 씨의 부모 형제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혁명화구역에 남게 된 800 1,000명가량의 독신자들은 대부분 해외파견자, 북한 내외에서 체포 된 탈북미수자들이라는 것이다. 1995년 8월에 북한군 공군사령부 제3비행전단의 황주 비행장 소속 이철웅 편대 조종사 7명이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소련제 신형전투기 수호이-23을 조종 하고 있었는데, 한 술자리에서 북한체제를 비판하다가 비행기를 몰고 주석궁을 들이받자 는 말을 주고받은 것이 보고되어 수용소에 끌려왔다고 한다. 15) 1998년에는 신의주에서 반정부사건이 일어 나 200여 명의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수감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요덕수용 소에 수용됐던 이백룡(이영국의 가명) 씨는 97년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과 관련해 인민군 장성과 군관(장교)들도 대거 숙청돼 수용소로 끌려왔다 고 말했다. 16) 이상과 같이 정치범 수용소의 종류와 성격, 수감 대상자들을 놓고 보면 재론의 여지가 없이 로 마규정 7조 상의 절멸", "박해", "사람들의 강제실종"에 해당되고, 법적용의 실효성은 차치하더라도 북한의 최고 위정들이 인도에 반한 죄 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규정 을 접어두더라도 북한정부 는 이미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과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 약, 집단살해범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의 해당 규정들을 위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식량난이 본격화되면서 요덕수용소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고 한다. 이백룡 씨 는 대숙리의 800명 독신자 가운데 1년에 200명이 영양실조와 강제노동으로 사망했다 고 증언한다. 이들은 하루 80g의 옥수수와 시래기국으로 연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죄수들이 보충되기 때문에 아무리 죽어도 사람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요덕수용소에서는 한때 국제 인권단 체에서 요덕을 방문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겨울에 집을 모두 부순 뒤에 땅을 파고 그 속에서 20일 간 기거하면서 추위에 떨기도 했다고 이백용 씨는 증언한다. 17) 피수감인들에 대한 이런 처우는 유엔의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UN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에 위배되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 있는 6곳의 대규모 정치범 수용소(14호, 15호, 16호, 18호, 22호, 25호 청진시 수성 정치범 교화소)는 파악되고 있으나, 11호 경성 가족수용소(1989년 10월 위치 변경), 12호 온성 창 평 가족수용소(1987년 5월 위치 이동), 13호 종성 가족수용소(1990년 12월 이동), 26호 평양 승호 구역 화전동 본인 수용소(1990년 1월 이동), 27호 천마 가족수용소(1990년 11월 위치 변경)는 어 떻게 되었는지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18) 그러나 앞에 소개한 증언들이나, 2000년 5월에 귀순한 북 한 정치범 출신 (1995년 4월 25일~1999년 1월 5일, 요덕수용소 수감) 탈북자 이영국 씨의 사례 15) 이백룡 씨의 증언, 16) 강철환 기자의 앞의 기사. 17) 이백룡 씨의 증언, 18)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일반인들이 아무런 실증자료를 접하지 못했던 2002년에 22호 정치범 수용소의 일 부인 행영지구와 중봉지구가 위성사진으로 언론에 공개되었다. 회령시의 중봉리, 굴산리, 행영리, 락생리, 사을리, 남석리 등에 위치한 이 수용소에는 5만 여 명이 수용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akin, John, "North Korea Exposed - Kim's Slave Camps," Far Eastern Economic Review, Dec. 12, 2002, pp
19 를 보면 가족 연좌제는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안혁 씨와 같이 단순히 중국을 다녀온 것만으로 중범죄자로 취급하여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일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는 북한 위정자들의 인권의식이 신장된 결과라고 하기보다는 경제난과 극심한 식량난으로 사회질서가 과거처럼 유지되 기 힘들어졌고, 탈북자들이 워낙 많아 이들을 모두 과거처럼 엄하게 처벌할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 라고 봐야 될 것이다. Ⅲ. 수용과정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정상국가에서는 너무도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기본적 권리들인 시민적 정치적 권리, 종교 및 신 앙의 자유, 의견 및 표현의 자유 등을 북한주민들이 향유하고자 하면 북한당국은 이를 정권안보와 체제유지를 위해 일탈( 逸 脫 ) 시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의 혐의자들 즉, 정권 혹은 체제 비판자, 종 교인, 탈북 도강자, 중국에서 체포되어 돌아온 탈북자에 대해서도 체포, 예심 및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하는 과정에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고문을 가하고 각종 비인격적 처 우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 자의적 구금 대한변협에서 2006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 수사기관이 체포를 할 때 법 적절차를 준수하는가? 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0%가 아니라고 답했으며, 구금시설 수용 시 법적 절 차를 준수하는가? 라는 질문에 71.1%의 응답자는 영장발부 없이 2개월 이상 수사를 계속 했다 고 답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용되었어야 할 북한의 1999년 형사소송법 제11조에는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는 경우나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는 사람을 체포하거나 구속할 수 없다. 사람을 체포하였을 때에는 48시간안으로 그의 가족 또는 소속단체에 체포 날자, 리유같은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검사는 비법으로 체포 구류되여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고 규 정되어 있다. 2008년 인터뷰 조사 대상자들의 경우 66%가 유엔 인권위원회가 처음 결의를 채택한 2003년 이후에 탈북 하였으므로 2006년 조사 대상자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경과된 뒤에 구금을 경험했을 터인데, 형사법 및 형사소송법 적용 실태가 개선된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는다. 이 런 사실은 2006년 12월에 탈북을 시도하다 잡혀서 회령시 보안서에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 ID012의 경험으로 증명된다. <표 Ⅰ-3-(8)> 체포, 구속될 때 구속결정서(영장)등을 제시받았습니까? 항목 빈도(명) 비율(%) 유효비율(%) 예 아니오 합계 무응답 총합계
20 <표 Ⅰ-3-(9)> 체포, 구속되었을 때 가족들에게 통지해 주었습니까? 항목 빈도(명) 비율(%) 유효비율(%) 예 아니오 합계 체포, 구속될 때 어떤 절차에 의해 구속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오 라는 질문에 대답한 내용 들은, 구금과정에서 여전히 형사소송법 등에 규정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ID038가 진술한 바와 같 이 부패가 만연하여 공권력 집행자의 임의적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ID001] 특별한 절차는 없고 분주소 담당 주재원이 진술서를 쓰라고 하고 비서에게 넘깁니다. [ID007] 그냥 검찰소에서, 영장 같은 것도 제시 하지 않고 소환해 갔습니다. 그리고 조사 받고 돌 아오다 변사체가 된 것입니다. [ID009] 절차라는 것은 모르겠지만, 국가 보위부에서 왔다 가고, 도 보위부에서도 찾아오고, 시보 위부에 오라고 해서 가기도 했습니다. [ID035] 보위부 지도원이 집안에 계신 아버지를 아무 소리 없이 그냥 체포해 갔어요. [ID040] 그냥 와서 어머니를 붙잡아갔습니다. [ID044] 2003년도에는 그냥 자전거를 팔고 있다가 갑자기 검찰소원들이 들이닥쳐서 체포해갔습니다. [ID046] 할아버지가 집에 있는데 그 보안원이 와서 신고를 받고 왔다면서 가서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하자고 하니깐 그럴 수는 없다면서 끌고 갔다고 하더라고요. [ID049] 몇 시까지 보위부로 오라고 통보를 받아서 갔었어요. [ID051] 중국에서 북송된 뒤 바로 보위부, 해산 집결소로 끌려갔습니다. [ID054] 공안들에 의해 잡혀서 회령으로 넘겨졌어요. [ID059] 수갑은 채우지 않고 그냥 안전부로 끌고 갔습니다. [ID062] 그냥 안전부에서 불러서 갔습니다. [ID071] 당시 차가 한 대 점심식사 시간에 난데없이 왔어요. 그래서 차에 실려서 납치되듯이 끌려 갔지요. [ID072] 그런 절차가 없고 그냥 끌려가게 되는 거죠. [ID076] 절차 같은 건 없었다. 새벽에 밖에 바람 쏘이러 산책을 나갔는데 그 때 차가 두 대 내 앞 에 서더라. 보위부원과 스파이가 같이 왔는데 스파이는 족쇄를 같이 차고 왔고, 보위부원이 나 를 끌고 차에 태워갔어요. [ID077] 98년도주민들의 밀고로 집 앞에서 보위부원들이 와서 잡아갔어요. 구속은 구류장에서 예 심 수사 받는 기간 (3개월)을 거쳐 구속됐어요. 2001년도 주민들의 밀고로 집 앞에서 보위부원들이 와서 잡아갔고요, 구속은 구류장에서 예심 수 사 받는 기간 1달 정도 거쳐 구속됐어요. [ID081] 1996년 4월 6일 아침 8시정도에 작업을 나가려는 데 국방색 옷을 입은 남자 세 명이 제 손에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린 후 1시간쯤 어디론가 끌고 갔어요. [ID083] 안전부에서 체포가 되어 보위부로 옮겨져서 구속수사를 받았습니다. [ID084] 중국 내몽고 만주리에서 몽골로 가려다가 중국 변방군대에게 붙잡혀서 10일 만에 온성보 20
21 위부로 넘겨져 바로 보위부 구류장에 구금되었습니다. [ID095] 하루 동안 차로 데리고 가서 안전부로 갔는데 3시간 정도 수사를 하고 바로 구류장으로 갔습니다. 2004년과 2005년에 개정된 형사소송법에서는 모두 1999년 형사소송법 제11조의 내용을 더욱 자 세히 세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제5조에 국가는 형사사건의 취급처리에서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도 록 한다 라는 규정과 제8조에 국가는 형사사건에 대한 취급과 처리를 이 법에 규정된 원칙과 절 차, 방법에 따라 하도록한다 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177조에는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법에 규정된 절차를 따르지 않고서는 사람을 체포, 구속할수 없다. 검사는 비법적으로 체포, 구속되어 있 는 자를 발견하였을 경우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 고 기술하고 있다. 제178조에 따르면, 체포, 구속처 분은 형사책임추궁결정을 한 다음에 할 수 있다. 특별히 필요한 경우 형사책임추궁결정을 하기 전 에 예심원은 검사의 승인을 받고, 체포, 구류구속처분을 할 수 있지만, 이 경우 10일 안으로 형사 책임추궁결정을 해야 되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구류구속처분을 취소해야 된다고 이 조문( 條 文 )은 규정하고 있다. 2004년 이후에 체포된 경험이 있는 조사대상 탈북자들이 충분하지 않아 형사소송법이 2차례 개 정된 이후에 구금절차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1999년 개정 형사소송법이 적용되었 을 탈북자들에 대해 체포할 때 체포사실을 당사자에게 제대로 알리고 체포영장을 제시하는 등 법 절차를 지키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제대로 알려준 경우도 거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영장 제시 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대답했다. 2006년 인터뷰 조사의 경우, 100명의 답변자 가운데 4명만이 본인 확인을 하고 체포사실을 구 두로 설명한 뒤에 수갑을 채우고 잡아 간다 고 진술했고, 나머지는 모두 설명조차 없었다고 답했다. 대부분 본인 확인 후 간단히 물어볼 것이 있으니 잠깐 가자고 하며 수갑이나 새끼줄, 신발 끈, 흰 색 밧줄(포승줄) 등으로 묶어서 데리고 가며, 심지어 족쇄를 채워서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4명이 진술했다. 2명의 답변자는 다른 용무로 지정한 날에 방문하라고 하여 체포한다 며 1980년대에 탈북자 안혁 이 경험한 것이 아직도 유효한 사실임을 확인 시켜주었다. 19) 그리고 야밤에 그 누구도 모르게 체 포하여 끌고 간다 고 진술한 응답자도 3명 있었다. 납치된 피의자들 중에 경미한 범죄나 확실한 물증이 없는 범죄에 대한 혐의자들은 국가안전보위 부의 비밀초대소로 연행된다고 한다. 20) 여기에서는 임의로 기간을 연장해 가며(안혁의 경우 1년 8 개월) 조사를 벌이는데, 그 과정에서 억지 자백을 강요하며 얼마나 심한 폭력을 가하는지 대부분의 피의자들이 간절히 자살을 원할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탈북자 김혁, 문명옥, 배OO, 이영국, 지해남 제 씨 등의 경우, 예심기간이 모두 북한의 당시 형사소송법에 기술된 최장 6개월을 넘지 않았지만, 신정애 씨의 두 아들 장경철, 장경수와 질녀 장미화는 2003년 8월 중국에서 체포되어 10월에 북한 에 이송되었지만 형 언도는 2004년 9월 초에 이루어져 실제적으로 거의 1년을 끌었다. 19) 탈북자 안혁의 설명에 따르면, 구속할 사람이 개인인 경우,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등 일반 기관에서 정식공 문이나 전화로 불러낸 뒤에 통보 받은 장소로 가는 도중에 그 사람을 납치한다. 따라서 가족은 물론 통보한 기관 에서조차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게 되어, 자연히 행방불명 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안혁, 요덕 리스 트, 앞의 책, p ) 탈북자들의 일반적인 심문과정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David Hawk, The Hidden GULAG, Exposing North Korea's Prison Camps (Washington, D.C.: U.S. Committee for Human Rights in North Korea, 2003), pp ; Good Friends, Human Rights in North Korea and the Food Crisis, pp
22 그런데 2008년 인터뷰 조사에서 체포 후 재판받기 전까지 구속되어 있은 기간은 얼마나 되었습 니까? 라는 질문에 짧게는 2 3일에서 재판 없이 2년 11개월 동안 보위부 감옥에서 구금생활을 했다 는 답변(ID076)까지 있었다. 이들이 경험한 시점이 제시되지 않아 변화의 추세를 가늠하기는 힘드나 과거에 비해 구속기간이 수 일 내지 수 주로 짧았다는 답변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다소간 의 변화는 감지된다. 재판과 수감절차에 대해 1998년 9월에 북한을 떠나 한국에 귀순한 전 국가안전보위부원 윤대일 씨는 변호인이나 방청객은 없지만 어느 정도의 요식절차는 거친다고 주장하고 21), 신정애 씨의 두 아들과 질녀는 재판을 거쳐 각 10년과 5년의 교화형을 언도 받았다. 그러나 신정애 씨 자신은 재 판절차 없이 1년간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수감되었고, 대한변협의 2006년 인터뷰 조사에 응답 한 고문피해 사례3의 경우도 재판 없이 요덕수용소에 3년 수감되었던 것으로 봐서 죄 의 경/중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안혁 씨는 중범자 로 판명 될 경우에 형기도 알려주지 않고 완전히 밀폐된 호송차에 태 워 별도로 교화소로 이송되는데, 그가 잡혀가는 것과 동시에 여러 명의 보위부원들이 그 범죄자 의 집을 급습하여 전 재산을 몰수하고 그 가족을 관리소로 이송한다고 주장한다. 2004년 및 2005년 개정 형법 제27, 28, 33조에 재산몰수형, 2000년 개정 공민등록법 제13조에 공민증 회수 를 각각 규정하고 있어서 이는 현재까지 유효한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북한에서는 대부분의 범죄자 장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도 어떤 죄목인지 어디로 가는지 영 문도 모르는 채,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수용소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국가 안전보위부에서 취급하고, 정식재판 없이 진행되어 무혐의 방면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22) 이는 로마규정 제7조 상의 국가 또는 정치조직에 의하여 또는 이들의 허가 지원 또는 묵인을 받아 사 람들을 체포 구금 또는 유괴한 후, 그들을 법의 보호로부터 장기간 배제시키려는 의도 하에 그러한 자유의 박탈을 인정하기를 거절하거나 또는 그들의 운명이나 행방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강제실종'에 해당된다. 그런데 2004년과 2005년의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개선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윤대일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위부는 모든 사건을 형사소송법에 따라 처리하는 것 을 원칙으로 하지만, 김 부자 가계의 추문에 대한 언급이나 소문을 퍼뜨린 8, 9번 사건(10호실 사 건) 은 형사소송법에 규정이 없어서 지키지 않는다 고 한다. 그래서 김 부자의 권위를 손상시킨 행 위 로 판명되면 재판도 없이 비밀리에 처형한다는 것이다. 23) 비록 형사소송법이 그 후에 개정되었 어도 관련조항이 여전히 없고, 이런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는 아무런 작용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북한에서 정치범을 체포 수감하는 과정은 죄형법정주의 를 부정하는 것이며, 가족연 좌제와 같이 전 근대적이고 비인도적인 형사제도를 아직 운영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법에 규정 되어 있지 않은 수용시설들이 많이 있다. 이미 알려져 있는 여섯 곳의 정치범 관리소 외에 군( 軍 ) 21) 윤대일, 악의 축 집행부 국가안전보위부의 내막 (서울: 월간조선사, 2000), pp ) 안혁, 요덕 리스트 (서울: 천지미디어, 1995), pp ; ID33의 증언: 안전부로 와보라고 해서 체포하는 경우,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가서 수갑을 채워 체포해가는 경우 등이 있다. 물어볼 게 있다며 따라오라... 난 그런 일에 대해 들은 것이 없다. 하면, 늙으나 젊으나 쌍 간나, 개새끼... 하 고는 차고 때리기 시작한다. 그 다음 죄과에 대해서 본인이 인정하면 처벌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구금 해놓고 조사하고, 요해를 한다. 그런 다음에도 혐의가 없으면 내보내준다. 이때에는 계속 감시를 한다. 거의 혐의 없는 사람이 없다. 사회적 배경이 좋거나, 친척이 안전부, 보위부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풀려나는 경우가 없다. 면회는 못가고, 밥 등 음식은 넣어줄 수 있다. 교화소에 있을 경우에는 한 달에 몇 번 등의 제 한이 있다고 한다." 23) 윤대일(2000), 앞의 책, p
23 내의 특수 수용시설들이 있다. 즉, 군대생활에서 과오가 있으면 체포 수감되어 영원히 못나오는 비 공개 지하 노동시설들이 있고, 뚝섬 이라고 부르는 군대 내의 반정부 군관(군 장교)들만 수용하는 비공개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들은 법외의 구금시설들이라 피수용인들이 체포 구금되는 과정에서 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다. 2차례에 걸친 대한변협의 조사로 밝혀진 북한의 체포 구금 과정은 북한의 형법, 형사소송법 등 국내법에도 저촉되고, 북한이 가입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대한 위반이다. 아울 러 현재는 이혼이라는 방법을 통해 배우자에 대해서는 그 피해가 다소 줄어들었지만 직계 가족에 게는 여전히 해당되는 연좌제나, 재산몰수형 과 공민증 회수 등은 세계인권선언의 각 해당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의적 구금과 그 과정에서의 인권유린은 제도적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강하지만 가해자들의 자의적 행위인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국내 구제절차가 작동되지 않아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2. 체포 및 예심과정에서의 고문 북한정부는 모든 공식적인 문건이나 선언에서 고문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 정부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에 대해 가장 최근에 제출한 정기보고서 (CCPR/C/PRK/2000/2, 4 May 2000), 제7조에서 북한에서는 고문과 비인간적 처우가 금지되어 있 음 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1999년에 수정 보충한 형 사소송법 제93조에 예심원은 피심자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범죄사실을 시인시키거나 진술을 유 도하지 말아야 한다. 강압적인 방법으로 받은 피심자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 고 규정하였다. 이 조항은 더욱 발전되어 2004년 5월과 2005년 7월에 각각 수정 보충한 형사소송법에서 공히 제 98조에 강압, 유도의 방법으로 받은 피심자, 피소자의 진술은 증거로 쓸 수 없다. 피심자, 피소자 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경우에는 그의 범죄를 증명하지 못 한 것으로 한다. 자수, 자백한 자료도 그와 관련있는 다른 증거를 찾아내야 인정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및 2005년 개 정 형법에서는 법일군이 비법적으로 사람을 체포, 구속, 구인 (중략)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로동 단련형에 처한다 (제252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 수사 받을 때 범죄사실에 대한 자백 을 강요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 대부분이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진술했다. [ID032] 욕하고 소리치고 누나가 중국에서 살았던 이야기에 대해서 들은 이야기를 다 토해내라고 계속 강요 했어요. [ID034] 각 방에 형제들을 따로 넌 다음 말이 똑같아 질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고 계속 때려 세 명의 말이 똑같아질 때까지 조서를 꾸미기 위해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ID035] 아버지로부터 들은 바로는 잠도 재우지 않고 욕하고 그러면서 윽박지른다고 하더라고요. [ID038] 도강죄로 걸려들었기 때문에 죄를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로 중국에서 무엇을 보았는 지, 교회같은 건 다녔는지 등을 끈질기게 캐묻습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만 말했습니다. [ID076] 도 보위부에 끌려올 때는 수용소에 갈 대상으로 거의 지명된 경우이기 때문에, 여기선 때 리진 않아요. 왜냐하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이 죽으면 미결 사건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벌을 계 속 세운다거나, 잠을 안 재우면서 벌을 세운다거나, 굶깁니다. 권총 개머리판으로 맞아서 머리가 23
24 지금 자라지 않는 곳도 있어요. 명절날에는 보위부원들이 집에도 못가고 있으니깐 죄수들을 근 무시간 끝날 때까지 두드려 패고 그랬습니다. 예심처장이 와서 어느 간수가 폭행했냐고 물어보 는데 그걸 죄인들이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ID072] 조사를 할 때는 잡아온 죄명을 말해주지 않고, 본인 스스로가 네 죄가 무엇인지를 말하라 고 하고, 그런 식으로 다 불으라는 식으로 취조하거든요. [ID075] 이미 모든 증거 자료가 있다면서 죄를 더 가중 시키고자 심하게 욕하고 때리면서 범죄 사 실을 시인하라고 강요했어요. [ID077] 수사가 연장되면서 처벌이 더욱 강해집니다. 그리고 고문 받으면서 자백을 무조건 강요받 습니다. [ID082] 구타를 하고 밥도 주지 않습니다. [ID083] 심한 구타를 하면서 수사를 진행합니다. [ID084] 재판은 받지 않았고 4개월 정도 구속 되어 있다가 정치범수용소로 갔습니다. [ID095] 몽둥이로 엄청 맞아서 강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08년 조사에서는 고문이나 구타를 받지 않았다는 증언도 일부 있었다. [ID038] 제가 2004년도 도강죄로 온성 보위부에서 열흘 정도 취조를 받았습니다. 중국에 왜 갔나, 어디에 가있었느냐 등에 대해 수사를 받았습니다. 취조는 한 번 받았고, 구류돼 있다가 풀려났 습니다. 여기서 한국행을 하다가 걸리는 사람의 경우는 그 길로 영영 단련대 등에서 썩어야 합 니다. 구타는 안 받았는데 남자들은 구타를 많이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아빠가 2000년 도에 교통사고를 냈는데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느 큰 사업소 지배인이어서 교화소를 가게 됐습니다. 집에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교화소 2년 가는 걸 보석으로 끌어 내왔습 니다. 일주일 정도 취조 받고, 맞지는 않고 사실 그대로 조사하고, 크게 심하게 다루지는 않았 다고 들었습니다. [ID030] 1998년에 어머니가 중국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안전부에서 조사만 받았습니다. 조사만 받 았고 구속 및 처벌은 받지 않았습니다. [ID009] 2004년도에 한국에 간 딸이 보내준 돈이 발각돼서 보위부에 간적이 있었습니다. 시집간 딸이기 때문에 크게 뭐라 안 했고 이미 보위부도 다는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 았습니다. 괜히 거짓말했다 잘 못되면 더 큰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사실대로 말해 하루정도 조 사받고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특히 정치범 혹은 정치적 범죄 혐의자 에게 가해지는 고문은 인간의 가학성 ( 苛 虐 性 )이 이념적 동기로 격려되고 집단목표 성취 로 포장되면 나타날 수 있는 극단적인 사례로 보인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체포 송환 된 뒤에 그들이 중국에서 남한 사람이나 종교인들과 접촉했는지 여부를 조사받으면서, 그리고 다시는 탈북을 시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북한의 국가 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 노동단련대, 구류장 등에서 엄청난 구타와 온갖 비인격적인 처우를 받았 다고 진술한다. 24) 사건의 성격에 따라 혹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는 등, 북한정부가 내부단속을 강 24) 탈북자 김혁, 문명옥, 배OO, 이영국, 지해남,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에게 제출할 고문에 대한 진술의 표준질문 24
25 화하기로 결정한 특정 시기에는 보위사령부로부터도 같은 처우를 받은 것으로 2006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25) 이와 같이 체포 및 예심 과정에서 폭행과 각종 가혹행위를 가하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제5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체포 후 무조건 죄인 시 하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11조 1)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김일성 김정일 가계 비밀을 언급하였다고 처벌하는 것은 11조 1)항과 2)항을 동시에 위반하는 것이 다. 예심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하게 한 것 자체가 큰 죄악이고 각종 북한 국내 법규들과 국제인권 규범들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피살자의 죄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그의 가족에게 해악 이 미치게 된다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11조 1)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현대사회에서 금하고 있는 연 좌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26) 도강죄로 탈북자들을 처벌하고, 특히 한국행을 시도하였다고 사형 혹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등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이동 및 거주의 자유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13조 1)항과 나라를 떠나고 돌아올 자유를 규정한 13조 2)항을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14조 1)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종교인들을 접하였다고 극형에 처하는 것은 종교탄압으로 세계인권선언 18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범 이란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인데, 북한에서 정치범을 체포하면 강제이혼 시키 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16조 3)항을 위반하는 것이고, 그들의 공민권을 박탈하는 것은 15조 2항을 위반하는 것이며,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은 17조 2)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북한이 아직까지 고문방지협약( 고문과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관한 협약 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공식적인 문건이나 선언에서 고문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으므로 앞에 소개된 사례들은 북한정부가 고문방지협약에 규정된 내용을 준수하고 있다는 공약 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가입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의 관련 규정들을 위반하는 것이다. Ⅳ. 수용소 내에서의 인권유린 실태 북한 정부당국이 북한의 민간인들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하는 목적이나, 수감하는 절차, 수감 후의 처우 등은 예외 없이 로마규정 제7조 상의 제 조항들에 해당된다. 27) 북한은 로마규정의 당사 국이 아니어서 이 규정을 적용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각종 인권유린의 범죄행위들에 대한 평가의 기준으로 로마규정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규정이 발효된 2002년 이후에도 이 런 인권유린이 대규모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 작성 인터뷰 시 증언, 2004년 2월-3월 ; 안명철(1995), 앞의 책 ; 안혁, 앞의 책 ; Good Friends, Human Rights in North Korea and the Food Crisis, A Comprehensive Report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Issues (Seoul: Good Friends, March 2004) ; Hiroshi Kanto et al.(research), Are They Telling US the Truth? -Brutality Beyond Belief- (Tokyo: LFNKR & NKDB, 2004). 25)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소위원회, 북한인권 실태조사 보고, 2006년 10월 20일. 26) 위의 보고서. 27) 이와 관련하여 David Hawk는 잔인함의 집결 에서 14가지로 집약하여 지적하고 있다. David Hawk, 잔인 함의 집결, Freedom House, May 2007, pp
26 1.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신동혁 씨가 기억하는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은 2005년 1월에 탈출할 때까지 14호 개천 정 치범 관리소에서 적용되고 있었으므로 국제 인권규범들을 적용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이 관리소 의 10대 법과 규정 에 따르면 경미한 규정위반들에 대해서도 총살형에 처해지게 되어 있다. 제1조 1항 도주시 즉시 총살한다, 2항 도주 기도시 목격하거나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 2조 1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의 승인 없이 다른 지역으로 무단 이동할 경우 즉시 총살한다, 2항 보위원 마을로 승인 없이 무단 침입하거나 시설물을 파괴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3조 1항 무 기류를 도둑질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자는 즉시 총살한다, 2항 무기류를 도둑질하거나 소지하고 있는 자를 신고하지 않거나 공모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3항 관리소내의 모든 식량을 도둑질하거 나 감추는 자는 즉시 총살한다, 4항 관리소내의 모든 기자재를 고의적으로 파손하거나 도둑질 한 자는 총살한다. 제4조 1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에게 불만을 품거나 구타를 하였을 경우 즉시 총살 한다, 2항 담당 보위원 선생님의 지시에 불성실한 자, 불복종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5조 1항 외부인을 감추어두거나 보호한 자는 즉시 총살한다, 2항 외부의 물품을 소지하거나 감추어둔 자, 공모한 자, 신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총살한다. 제7조 1항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에 태만하거나 수행하지 않을 경우 법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간주하고 즉시 총살한다. 제8조 1항 승인 없이 남 녀간에 신체접촉이 있을 경우 즉시 총살한다. 제9조 1항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죄에 대 하여 불복종하거나 의견을 갖는 자는 즉시 총살한다. 28) 이와 같은 규정들은 피수감자들을 철저하게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의견 및 표현의 자유를 철저 하게 억압하고, 최소한의 신체적 자유도 박탈하여 노예노동에 순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로마규 정 제7조 상의 살해, 절멸, 노예화 에 해당된다. 2. 과도한 노동과 영양부족 수용소에서의 하루 일과는 수용소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고, 각 수용소에서도 시기와 업무에 따라 다소간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큰 틀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새벽 5시에 기상(안혁 씨가 수용되었던 요덕 15호 관리소에서는 4시에 기상) 하여 6시까지 아 침식사를 하고, 6시 30분에 대열점검을 한 뒤에 7시에 작업장에 간다고 한다. 작업장에 도착하면 갱에 들여보내기 전에 몸수색을 하여 폭약 소지 여부를 확인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전 8시부터 12 시까지 오전 작업을 하고, 12시부터 12시 30분까지 점심식사를 한 뒤에 곧바로 20시까지 오후작업 을 하게 되는데, 요덕 15호 관리소에서는 오후에 휴식시간이 한 번 있는데 비해 14호 관리소에서 는 없다고 한다. 김용 씨의 증언으로는, 14호 관리소에서는 토 일요일 휴무( 休 務 )가 없고, 1월 1일 하루만 휴무 하는데, 관리소 규정에는 김일성, 김정일 생일이 휴무일로 되어 있으나 이날도 노동을 했다는 것이 다. 신동혁 씨는 매달 1일이 휴일인데, 이 날도 일을 안 하는 것은 아니며 작업반 정리나 산에 화 목( 火 木 ) 채취하러 가는 등 상대적으로 덜 힘든 일을 하게 된다고 진술한다. 29) 그리고 김용 씨의 경험으로는, 14호 관리소의 경우 수감자들의 생산성이 워낙 낮아 생산계획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 28)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의 전문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신동혁(2007), 앞의 책, pp ) 신동혁(2007), 위의 책, p
27 았지만, 18호 관리소에서는 생산계획이 있어 이 작업량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하루 평균 12시간 노동을 하는데, 작업계획에 따른 작업량 이 달성되지 않으면 보통 23시까지 작업을 하여 하루 평균 15시간 노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이 규약의 당사국은 특히, (d) 휴식, 여가 및 합리적 근로시간의 제한, 공휴일에 대한 보수와 정기적인 유급휴일이 확보되는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을 모든 사람이 향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 7조 제 d항에 위배된다. 김용 씨의 증언에 따르면, 14호 관리소 수감자의 한 끼 양식은 통강냉이 20 30알과 배춧잎이 둥둥 뜬 소금국이 전부라고 한다. 그 결과 수감자들이 갱도에서 100미터 이동하는데 15분 이상이 걸리고, 삽질 한 번 하는 것도 현기증이 난다는 것이다. 수감자 대부분이 펠라그라(pellagra)라는 단백질 결핍증에 걸려 있으며, 영양 결핍에서 오는 각종 전염병과, 심지어 정신병까지 앓게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실은 유엔의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UN Standard Minimum Rules for the Treatment of Prisoners)에 위배되는 것이다. 수감자들은 이런 극도의 허기를 면하기 위해 돼지사료도 훔쳐 먹고, 심지어 생선저장탱크 씻은 물에 밥을 말아먹는 일도 있으며, 쥐와 벌레도 잡아먹고, 나무껍질도 벗겨 먹고, 풀도 뜯어먹는다고 한다. 그나마 이런 일도 허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지도원에게 들키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가혹 한 징벌을 받는다고 한다. 3. 수용소 내에서의 처벌 북한의 정치범 들에게는 두 종류의 구류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용소에 최종적으로 수감 되기 전에 예심을 받으면서 수감되는 마람초대소 와 같은 구류장과 수용소 내의 구류장이 있는 것 같다. 수감자들에게 가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으로는 어느 쪽이든 비슷해 보이는데, 수 용소 내의 구류장의 경우 수감자가 일단 끌려가게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한 후에 1차로 모두 매를 때려 초죽음을 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질질 끌고 가서 두 무릎 사이에 4각 角 字 를 끼우고 24 시간 동안 꿇어앉히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거나 불손하게 행동하면 사정없이 구타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100그램의 콩밥과 시래기 소금국이 지급되는데, 그것도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움직이면 처 벌로 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일 주일 후부터는 살이 썩어 들어가도 참는다고 한다. 그 결과 3개월 후에는 폐인이 되어 들것에 실 려 나가 5개월 후에는 병사한다고 한다. 그래서 수감자들 사이에는 구류장에 들어가는 것은 곧 죽 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는 것이다. 30) 그런데 김용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구류장을 18호 관리소에서는 특수 아지트 혹은 영창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31) 김용 씨는 14호 관리소에서 2년 동안 15건의 즉결처분을 목격했고, 18호 관리소로 이송된 뒤에 는 3년 동안 30회 정도의 공개처형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14호 관리소에서는 공개처형 대신에 주로 비밀처형을 했는데, 이렇게 공개처형이 비밀처형으로 바뀐 것은 수용소 내에서 너무 자주 공 개처형을 해서 일벌백계( 一 罰 百 戒 )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수감자들을 자극하여 1990년에는 이 관 리소 내에서 폭동이 일어나 1,500명의 수감자가 사살된 적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2) 안명철 씨의 증언에 따르면, 경비대는 도주자를 잡으면 크게 표창한다는 말에 수감자들을 사살 30) 안명철(1995), 앞의 책, pp ) 김용삼(2000), 앞의 취재기사, p ) 김용삼(2000), 위의 취재기사, p
28 하는 일이 빈발하였다고 한다. 수용소의 경계철조망으로부터 50미터 이내는 통행금지구역이지만 그 안쪽은 수감자들이 다녀도 되는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987년 10월말에 13호 관리소 19반 농산분조 달구지공이 새벽에 쥐를 잡으러 산에 올라갔는데 경비원 강영철이 그를 사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피살자는 경계선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도주자로 몰렸으며, 강영철은 그 공으로 추천되어 1989년 8월에 김일성대학에 입학하였다고 한다. 33) 같은 맥락에서 1988년 함남 요덕 15호 수용소에서는 경비대원 2명이 산에서 부식토를 모으고 있던 수감원들을 강제로 철조망을 넘게 한 뒤에 사살했다고 한다. 34) 개천 14호 관리소에서는 피수용인들이 늙어도 은퇴나 노동에서 면제해 주는 일은 없어서 죽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 된다고 한다. 신동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수용소에 60세 80세 노인작업반 이 있는데, 1999년 12월경에 10리 정도 거리의 경사지 밭에 노인 4명이 거름을 지게에 가득 지고 나르다가 중간에 쉰 것이 담당 보위지도원에게 들키어 영하의 추위 속에 속옷 바람으로 오후 2시 부터 7시까지 무릎을 꿇려 벌을 새운 뒤, 다시 휴게실의 구들장에 꿇려 앉혀서는 장작불을 때서 동상과 화상을 입혀 죽게 했다고 한다. 35) 이와 같은 만행들에 대해 특정 국제인권규범의 어느 조항 위반 여부를 규명하는 것이 사치스러 운 작업일지 모른다. 2004년 유엔 인권위원회 개최 시기에 제네바에서 열렸던 비정부단체들(NGOs) 의 한 병행회의(parallel meeting)에서 북한에서의 공개처형과 인권유린을 관람 청취한 한 서양 젊 은이가 이를 중지시키기 위해 한국정부는 왜 군사행동을 하지 않는가? 라고 제기한 항의 섞인 질 문이 새롭게 느껴진다. 4. 영아 살해( 嬰 兒 殺 害 )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수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 야 한다 는 김일성의 교시가 철저하게 지켜진 결과는 영아 살해 라고 볼 수 있다. 수용소에 가족 단위로 수감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의 임신과 출산은 앞에 소개 한 관리소의 10대 법과 규정 제8조 1항에 의하면 총살형에 처해지는 중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들은 죽음에 이르는 처벌을 받게 되며, 아기는 곧 바로 살해되는데 그 방법 또한 처참하다 는 표현이 부적절할 정도로 비인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아 살해에 대한 증언은 여러 맥락에서 있어 왔다. 그 한 예로, 13호 관리소 19반 수감 원 최 양(회계원)이 경비대 부소대장 김만순과 성관계를 가져 아이를 낳자 보위1과에서 아이를 개 에게 던져주고 최 양은 성기( 性 器 )와 배에 막대기를 꽂아 살해했다고 한다. 36) 이는 상기 로마규정 제7조, 고문방지협약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입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 약 과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을 위반하는 것이다. 5.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 性 的 虐 待 )와 살해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 여성들의 경우 얼굴이 예쁘게 생길수록 수난을 많이 당하는 것으로 보 33) 안명철(1995), 앞의 책, p ) 안명철(1995), 위의 책, p ) 신동혁(2007), 앞의 책, pp ) 안명철(1995), 앞의 책, pp
29 인다. 국가보위부장이었던 김병하는 관리소에 내려오면 자기 별장에서 예쁘게 생긴 여자들을 골라 동침하고는 보위부 3국(예심국) 국장에게 넘겨 실험용으로 쓰이다가 죽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한 사례에 대해 같이 수감되어 있던 김영일을 통해 들은 김용 씨의 증언 은 다음과 같다. 14호 관리소에는 간부 초대소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은 평양에서 부부장급이 내려 오면 숙식하는 일종의 특각입니다. 평양에서 간부들이 내려오면 여성 수감자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21 25세 사이의 처녀들을 선발하여 목욕을 시킨 후 간부들에게 바친다고 합니다. 간부들은 이런 여성들을 온갖 성적( 性 的 ) 노리개로 삼은 후 비밀유지를 위해 도주분자 로 몰아 비밀리에 죽인 답니다. 37) 이는 로마규정 제7조 1항에 규정된 강간, 성적 노예화, 살해의 죄를 저지른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입한 모든 형태의 여성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을 위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병하는 보위원들과 여자 수감원들 간에 성추문(부화사건)이 자주 생기자 모든 관리소 에 얼굴이 곱게 생긴 여자들을 모두 죽여 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1970년대 말에는 250여 명의 여 수감원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38) 1989년 가을 경 종성관리소 풍계지구 17반 보위원 자살사건이 있었는데 안명철 씨는 이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17반 지도원(보위원)은 자기 담당 작업반 내의 정치범 여자들을 모두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그 중 통계원 여자 수감원이 임신을 했다가 발각되자 보위1과 계호원들이 그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밟아 죽이고, 산모의 음부에 지렛대를 박아 전기를 투입해 죽였다고 한다. 그 보위원은 정치 범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는 것이다. 39) 신동혁 씨는 이와 같이 자세한 증언은 하지 않았지만, 보위원들이 여자들을 집적거리는 것을 다 알고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나지만 아무 말도 못한다. 보위원들이 처녀를 건드려서 임신한 경우 에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처녀는 그 즉시 사라진다. 이렇게 임신한 처녀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일 어난다 고 포괄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시켜 주었다. 6. 예고된 사고들 인명을 경시하는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 각종 사고로 정치범 들이 생명을 잃는 것은 어쩌면 당 연한 일일 것이다. 안명철 씨가 11호 관리소에 경비원으로 있었던 1987년 6월 중순 어느 날 관리소 앞산 구역에 서 불이 났는데 약 2,000명의 수감자들을 동원하여 불을 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관리원들이 수 감자들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불 끄는 데에만 몰두하여 수감자들을 불 속에 몰아넣는 바람에 5 명이 질식하여 죽었고, 2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40) 안명철 씨가 22호 관리소에 있었던 1993년 10월 어느 날 초소를 허물고 다시 짓는 공사를 하 면서 무리하게 서두른 바람에 골재해체 작업에 동원되었던 남녀 수감자 20여 명이 깔려 죽은 사건 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20여 명은 락생지구 야산에 공동매장 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고 한다. 41) 37) 김용삼(2000), 앞의 취재기사, p ) 안명철(1995), 앞의 책, p ) 안명철(1995), 위의 책, pp ) 안명철(1995), 위의 책, pp ) 안명철(1995), 위의 책, pp
30 북한정부가 외화부족으로 제때에 군견( 軍 犬 )을 확보해 주지 못하자 관리소에서는 수감자 감시를 위해 잡종견으로 민견( 民 犬 )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이 민견들은 관리원(보위원이나 경비원)과 수감 자를 구분하고, 수감자들에게 사납게 굴도록 길들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89년 5월에 13호 관리소에서 이 민견들이 학교에 갔다 오던 동포지구 19반 정치범 여학생(13살) 2명을 잡아먹었다 고 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관리소 부부장은 민견 관리병들을 개를 잘 길렀다 며 칭찬하였다고 한 다. 1991년 22호 회령관리소에서도 중봉지구 29작업반 여자 정치범 2명이 산에서 도토리를 줍다 가 민견에게 잡아먹혔다고 한다. 희생자들은 조용히 암매장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42) 이와 같은 현실은 유엔의 수감자의 처우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 을 지키지 않은 것이지만, 이에 앞서 피수용인들을 계급의 적, 종파분자 로 규정하여 집단 또는 집합체와의 동일성을 이유로 기 본권을 심각하게 박탈 한 "박해"를 가한 것이 된다. Ⅴ. 파급효과: 어둠 속의 침묵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인원은 북한 전체인구의 1%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정 된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와 그들이 당하는 인권유린은 수용소 밖의 99%를 조용히 순종하게 만드 는 데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정부는 1998년 헌법( 김일성헌법 ) 제67조와 출판법 등 관련법에 의견 및 표현의 자유 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북한주민들이 구가하고 있다고 2000년에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 위원회에 제출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정기보고서 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헌법 제 10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 적통일에 의거한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제63, 81, 85조에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 혁 명적 경각성, 국가의 안전 등을 강조하고 있어 개인의 의견 및 표현의 자유 에 대한 침해는 제 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주민들의 실생활에서 헌법 보다 더 우위에 있는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 이 개인의 의견 및 표현의 자유 를 허용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 으로 따르지 않으면 정치범 이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의 의견 및 표현의 자유 를 억압하는 각종 통제장치가 발달되어 주민들의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그리고 항시적 통제장치(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국가검열위원회, 사 회주의법무생활위원회, 인민반 등과 같은 감시장치와 여섯 곳의 정치범 수용소, 노동교양소, 교화소, 노동단련대 등과 같은 처벌장치) 외에 9 27 상무위원회 처럼 상황별 통제장치도 만들어 운용할 만 큼 통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신속하다. 또한, 만 17세 이상의 전 주민 필적을 매년 갱신해 가며 보유하여 반김 반정부 낙서 전단사건 수사에 활용한다고 전 국가안전보위부원 윤대일은 증언한다. 43) <표 38> 김일성과 김정일, 조선노동당에 대해 비판하는 말을 하거나, 한국이 잘 살고 있고 한국이 좋다는 말을 해서 처벌받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항목 빈도(명) 비율(%) 유효비율(%) 예 ) 안명철(1995), 위의 책, pp ) 윤대일, 악의 축 집행부 국가안전보위부의 내막, 앞의 책, pp (단행본) 30
31 아니오 합계 <표 39> 한국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하거나, 김일성과 김정일, 조선노동당에 대해 비판하는 말을 할 때, 그 사실을 당국에 밀고하는 주민이 있습니까? 항목 빈도(명) 비율(%) 유효비율(%) 예 아니오 합계 무응답 총합계 <표 40>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발각되어 처벌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항목 빈도(명) 비율(%) 유효비율(%) 예 아니오 합계 그런데 의견 및 표현의 자유 신장 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북한의 식량위기 이후에 나 타나고 있는 것 같다. 즉, 2006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 북한인권 실태조사 보 고 )에서 생활에서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10대원칙 이 얼마나 준수되고 있습니까? 라는 질 문에 일부 응답자들은 전혀 혹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고 대답했으며, 적지 않은 응답자들은 일 부 혹은 형식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고 대답했다. 2008년에 실시한 인터뷰 조사에서는 동일한 질문 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응답자들로부터 유사한 내용의 진술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의견 및 표현의 자유가 신장 된 결과라기보다 식량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일탈현상 에 대해 국가의 통제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10대 원칙 이 공직 자들에게는 아직도 준수되고 있고, 일반주민들에게도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 낼 수는 없지만 생활 총화 등을 통해 통제의 준거 (reference)로는 아직 구속성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에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는 생활총화 가 정규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구 속성이 강하게 작용하는가를 보여주는 진술들이 많았다. [ID046] 학교는 안 가도 생활총화에는 무조건 참석해야 합니다. 아파서 학교에 못 갈 경우, 오후에 생활총화가 있으면 학교에서 애들이 집으로 옵니다. 그래서 생활총화 하러 무조건 가야 합니다. 특히 김정일의 방침에 대한 훈시가 있을 경우 무조건 꼭 가야 됩니다. 생활 총화 안가면 엄마, 아빠부터 시작해 학교에 불려나갑니다. 어린애들이 안가면 부모에게 통지서가 가고 청소시키는 정도지만, 고등학생들이 안 갈 경우 머리에 딴 생각이 있는 것으로 여겨 처벌이 심한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2006년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처럼 2008년의 인터뷰 조사에서도 초상화를 잘못 다루었거나, 31
32 훼손하여 처벌 받은 사람을 보거나 그런 일에 대해 들어본 적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응답자들이 자신들의 주변에서 있었던 구체적 사례들을 소개했다. [ID011] 그게 몇 년도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회령시의 누군가가 노동신문의 초상화를 장판 밑에 깔았었어요. 그니깐 장판 밑에 초지를 노동신문으로 깔았다가 구들장 수리하는 사람이 그 거 보고 신고했다고 한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그저 소문만 들은 건데 초상화 뒤에 돈을 감추었 다고 해서 처벌받은 사람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혹은 초상화 유리를 깨먹거나 그래도 처 벌당하는데, 처벌은 보통 지방이나 시골로 추방하는 그런식이죠. [ID014] 공개처형 장소에서 각종 유리 팔아먹다가 초상화 유리 팔아먹고, 대형 초상화 유리 팔아 먹다 걸린 사람들 공개처형 했어요. 제 기억으론 2000년도 즈음에 그랬거든요, 시범사례로 그랬 던 거 같아요. 그런데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것 같다. 1970년대 후반에 함경북도 샛별 군에서 김**의 시아버지가 김일성초상휘장을 술과 바꾸어 먹어서 정치범 수용소인 함북 정거리 수 용소에 끌려간 사건이나, 1986년에 청진에서 ID01의 철도전문학교 친구(무산군 **리 67년생)가 김 일성 신문사진으로 담배를 말아 피워서 4년 교화 형을 받은 사례나, ID03의 어머니가 1993년에 옆 집 아주머니와 다투다가 그 아주머니를 벽 쪽으로 밀어 목이 뒤로 젖혀지면서 김일성 초상화를 건 드려 초상화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 아주머니가 말반동 죄까지 포함하여 교화소 3년 형 을 산 것과 같은 사례는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다소 줄어든 것 같다. 북한에는 의견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표적 표현으로 말반동 이라는 죄명이 있다. 즉, 김 일성 김정일 개인이나 정책, 체제에 대한 비판적 언행과 허용되지 않는 임의적 자기표현 등을 그렇 게 지칭한다. 이에 대해 2006년, 2008년에 각각 실시한 100인의 탈북자 인터뷰 조사에서 다양한 사례들이 많은 응답자들에 의해 소개 되었다. 2006년 조사에서 ID75의 증언으로는, 1994년과 95년에는 한 달에 두 번씩, 말을 잘못했거나 살 인을 한 사람들 30여 명씩을 죽였는데, 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중단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놈의 세상 못 살겠다 고 말했다가 잡혀가 총살당했다는 것이다. ID88도 자신의 고장에서 귀국동포 세 사람이 술자리에서 못살겠다 고 말했다가 3명 다 정치범 수용소로 갔는데, 한 명도 못 나왔다 고 한다. ID04의 진술에 따르면, 리**(1949년생, 무산군 **구 **반 거주)의 남편이 1993년경 김 평일이가 머리가 많이 좋다고 한다 고 말했다가 보위부에 체포되었고, 아내와 자녀들은 서호리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ID23의 증언에 의하면, 1998년경 최**(사망, 현재60세 이상, 갱목사업소 부지 배인)이 세상이 언제까지 이렇게 될른지 라고 낙서 했다가 사망 후 이 사실이 발각되어 2000년에 보위부에서 무덤을 파갔다고 한다. ID48은 2000년경에 김** 씨(당시 나이 56세가량)가 김일성 김 정일 부자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말을 잘못하여 보위부에 끌려가서 사라졌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전 모 씨 (49세)라는 경포TV중개소를 관리하던 사람이 한국 TV를 보고 와서 술좌석에서 한국정치에 대해서 말했다가 친구들이 고발하여, 정치범 수용소로 밤에 몰래 끌려갔다고 한다. 2008년 조사에서는 말을 잘못하여 처벌받는 경우, 어떤 말을 하면 안 되는지 3가지만 말씀하여 주십시오 라는 질문에 남조선이 좋다, 잘 산다는 말도 안 되고, 중국이 개혁개방해서 잘 산다는 말도 하면 안 됩니다. 김정일 가계에 대한 것은 당연히 안 되고요, [ID009]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당에 대해 안 좋은 말, 김정일 사생활이 포함된 얘기를 하면 한 시간도 안 돼 잡혀갑니다 [ID003] 32
33 등의 답변을 하였다. 그런데 2006년 조사에서 한 응답자(ID66)는 수령의 로선이 근10년 동안 현실화 되지 못했고, 극 심한 식량난으로 탈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말반동 은 그대로 놔두고 행동반 동 만 붙들어 간다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한 주장이 2008년 조사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ID076] 내가 보위부에 잡혀봐서 알았는데 말을 단순히 해서 처벌받는 사람은 이젠 좀 덜합니다. 처벌은 좀 가볍게 받습니다. 심한 말을 했을 때는 크게 받습니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 아져서 기준이 달라졌어요. 배고프고 생활이 안 좋으면 좋은 소리 나올 수 없다고 인정하되, 그 것이 심하면 대신 무조건 김정일, 김일성에 대한 지명공격일 경우 테러행위로 간주 무조건 수 용소 행이라고 변경됐습니다. 이를 7, 9번 사건, 7번은 김일성이고 9번은 김정일입니다. 죄는 뭐 냐 하면 7번입니다, 9번이다 하면 법관이나, 당 통제원들이 알아먹습니다.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세계인권선언 제19조, 시민적 정치 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와 제20조, 인종차별철폐협약 제4조 (a), (c) 및 제5조 (d-ⅷ,) 아 동권협약 12조와 13조를 위반하는 것이다. 북한의 출판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판법, 1999년 1월 21일 수정) 제6조에는 공민은 저작 또는 창작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국가는 광범한 대중을 저작 및 창작 활동에 적극 참가시 키도록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출판법 제47조에는 출판지도기관과 해당 기관은 출판물 을 통하여 기밀이 새여 나가거나 반동적인 사상과 문화, 생활풍조가 퍼지지 않도록 하며 인쇄설비 를 등록하고 그 리용을 감독통제하여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48조에 기밀을 루설시키 거나 반동적인 사상과 문화, 생활풍조를 퍼뜨릴 수 있는 출판물은 생산, 발행, 보급과 반출입을 중 지시키고 회수한다 라는 규정과 제49조, 등록하지 않고 리용한 인쇄설비는 몰수한다 는 규정 및 제50조, 이 법을 어겨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기관 기업소, 단체의 책임있는 일군과 개별적공민에 게는 정상에 따라 행정적 또는 형사적 책임을 지운다 는 규정 등은 북한 공민들이 저작 또는 창작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도록 극도로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규들에 따라 북한에서는 Fax나 컴퓨터 프린터도 등록해야 되며, 인쇄한 종이 매수 까지도 감독하고 있어서 일반주민들이 Fax나 컴퓨터 프린터를 사용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 다. 이런 현상은 국제규범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북한의 출판법 제6조에도 배치된다. 이런 제도적 장치와 정치범 수용소는 북한 주민들의 의견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서 교호작용을 하며 어둠 속의 침묵 을 강요하고 있다. Ⅵ. 유엔의 인권제도에 의한 조치들 2005년에 유엔 인권위원회가 세 번째 대북 결의를 채택하자, 북한 외무성은 4월 20일자 성명을 통해 우리 공화국을 악랄하게 모해 중상하는 결의"라며 허위자료와 독소조항으로 일관돼 있는 결 의는 무엇보다 우리의 제도전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아울러 외무성 대변인은 이 성 명에서 우리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인권문제라는 것을 거들면서 우리를 무근거하게 헐뜯은 이번 결의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며 적대세력들의 대( 對 )조선 고립 압살 책동의 일환으로 단호히 전면 33
34 배격 한다 고 말했다. 그리고 인권문제가 반공화국( 反 北 韓 ) 적대행위의 공간으로 계속 악용된다면 우리는 그에 결정적 조치로 대응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44) 따라서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후속 조치들을 취할 수 있을 지, 그 조치들의 신빙성과 구 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평화에 대한 위협'으로서의 강제조치 가능성 유엔헌장 제7장에 의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과 인도적 문제들 에 대해서도 행동 이행을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다. 즉,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또는 침략행위의 존재를 결정하고, 아울러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 혹은 회복하기 위하여 권고를 하거나 군사적 혹은 비군사적 강제조치를 취할 수 있다(유엔헌장 제 39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0년대 이후 일련의 국제인권침해사례에서 인권침해사태가 평화에 대 한 위협 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일련의 비군사적 강제조치를 취하거나, 가맹국으로 하여금 군사적 개입을 허용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예를 들어, 1991년 이라크의 쿠르드족(Curds) 박해사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688호), 1992년 소말리아에서의 내전과 그에 수반하는 기아 등의 사태(제 794호), 1993년 구유고 내전과 그에 수반된 인권탄압 사태(제757호, 제836호)와 앙골라에 있어서 반정부세력에 의한 군사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사태(제864호), 1994년 르완다 내전과 그에 수반된 집단살해 등의 사태(제918호, 제929호) 및 아이티 군사정권에 의한 민정복귀합의의 불이행 사태(제 940호) 등이 그것이다. 이 일련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들은, 한 국가 내에서의 인권침해가 유엔헌장 제39조 상의 '평화에 대한 위협'을 구성한다는 것을 확인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성숙 된 관행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45) 이런 전례들에 따라 북한에서의 대규모 인권유린 사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제조치 를 논의 할 경우 2가지 쟁점이 대두된다. 먼저, 구유고 내전이나 르완다 사태 등과 같이 내전이나 국제적 무력충돌을 통해 대규모의 중대한 인권침해행위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북한에서의 인권침해 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무력충돌은 없이 압제에 의한 구조적 체계적 인권침해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강제조치를 취하기가 용이하지 않겠지만, 현재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상 태에서 급격한 정치변동이나 체제변동이 발생하면 무력분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시점에서는 강제조치가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권침해가 대규모적이고 중대할 경우 대부분 기존의 행정적, 준사법적 혹은 사법적 인 권보장제도는 그 실효성이 없다.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한 강제조치 혹은 군사적 개입 허용조치는 실효성도 있고 현실적인 필요성도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994년에 아이티사태에 44) 외무성 대변인은 또 미국이 핵문제와 함께 인권문제를 조선반도(한반도)에서 긴장을 격화시키며 우리 제도를 고 립ㆍ압살하기 위한 주요 공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라며 이번 결의 채택 놀음 역시 미국의 사촉 을 받고 대조선 압살 책동에 적극 편승한 영국과 일본 등 서방 나라들의 비열한 적대소동 이라고 비난했다. 대변 인은 이어 일본이 조ㆍ일 사이에 이미 다 해결된 납치문제 를 제네바에까지 들고가 결의에 집어넣고 반공화국 소동에 극성을 부린 데 대해 단단히 계산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북, 유엔 北 인권결의안 채택에 "적대소동"" (검색일: 2005년 5월 24 일). 45) 김석현, "인권보호를 위한 안보리의 개입," 국제법학회논총, 제40권 제1호, 1995년 6월, pp ; 김태천 "유엔인권보장제도의 기본구조," (검색일: 2005년 5월 24일). 34
35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아이티에서의 민주정부 수립과 국민의 인권보호를 확보 하게 된 사례가 좋은 예다. 그런데 문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평화에 대한 위협' 이라고 확인 하고 개입할 수 있는 인권침해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후 '평화에 대한 위협'의 인정 대상이 되는 분쟁 혹은 사태의 범주가 과거에 비해 매우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유념하면 북한의 인 권문제에 대한 강제조치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지만 체제변동기에 무력분규 가 동반 될 경우 충분히 있다. 그리고 유엔 헌장 제2장 6조에 따르면 유엔 회원국이 헌장에 있는 원칙들을 지속적으로 어길 경우에 유엔 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그 회원국을 추방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을 유 엔에서 추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2. 국제사법제도 서방의 인권단체 대표들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일이 지난 수 십 년 간 대량학살 (genocide) 과 인도에 반하는 죄 를 저지른 것으로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호응을 얻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가볍게 무시할 수만을 없을 정도로 비중 있는 인권단체들의 대표들이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어서 그 가능성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인권법(조약 혹은 관습법)상의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에 속한다. 그리고 집단살해 방지조약 제9조에 의하면, 만약 위 조약의 해석과 관련하여 어떤 두 나라나 혹은 여러 나라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할 경우에는 이들 국가 중 한 나라가 국제사법재판소에 그 해석을 의뢰할 수 있다. 인종차별철폐조약(제20조)과 고문방지조약(제30조 제1항))도 그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 다. 따라서 집단살해, 인종차별 및 고문에 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경우, 비록 당사국이 국제사법 재판소의 강제관할권을 수락하는 선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위 각 조약의 당사국이라면 국제사법재 판소는 위 각 조약 규정에 근거하여 강제관할권을 가질 수 있다. 그간 국제사법재판소는 쟁송적 절차와 권고적 절차에서 인권문제의 심사를 종종 요청받아 왔다. 경우에 따라 국제사법재판소는 인권조약의 해석을 직접 하기도 했고, 발생한 인권문제를 간접적으 로 다루기도 했다. 46) 따라서 북한의 인권사안들 중에 국가의 개인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 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관련 조약의 해석을 통해 북한의 억지논리를 저지 시킬 수 있고,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을 민간인 납북자 문제 등과 같이 인권침해와 관련된 국가 간의 분쟁 (dispute) 해결에는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일에 대해 대량학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것은 국제 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이 소급되지 않고, 로마규정 이 발효된 시점인 2002년 7월 1일 이후의 범죄만 46) E. Schwelb and P. Alston, "The Principal Institutions and Other Bodies Founded Under the Charter," In Karl Vasak(ed.), The International Dimensions of Human Rights (Westport, Connecticut; Greenwood Press, 1982), p.266. 전자의 예로는, 비호권 사건(1950년)과 Haya de la Torre 사건(1951년), 제노사이드조약유보 사건(1951년), 그리 고 1950년부터 1971년 사이의 Namibia 사건 및 구유고 내전에 있어서의 제노사이드조약위반 사건(1994년)60) 등을 들 수 있다. 후자의 예로는, 평화조약해석 사건(1950년), 유엔행정법원의 보상판결효력 사건(1954년), 바르셀 로나전력회사 사건(1970년), 핵실험 사건 (1974년), 테헤란미대사관원인질 사건(1979년) 등이 있다. 김태천, 위의 논문. 35
36 을 취급할 수 있으며, 자국 영토 내에서 범죄가 발생한 국가 또는 피의자의 국적국이 로마규정 의 당사국인 경우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 부정적이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사건 이 회부된 경우에는 로마규정 의 당사국이 아니더라도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어 서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Ⅶ. 결론적 제안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여러 측면이 있고, 이를 규정하는 근본원인도 강조점에 따라 다르게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문제의 근간( 根 幹 )은 공산주의 단일주체제(monolithic regime)를 건설하고 김일 성 김정일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지난 반세기 가까이 실시 운영해 온 계급차별정책과 정치범 수용소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북한 인권현안들은 전체주의적 통제와 체제의 비효율성에 그 근본 원인이 있어서 정치적 민주화와 체제변혁이 선행되지 않는 한 개선 노력에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신장 노력을 통해 정치적 민주화와 다원주의의 도입이 가능하고, 특정 인권유린 현상들은 정 치변동을 전제하지 않고도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간의 북한 인권문제는 그 성격상 남북한 간의 완강한 적대자 관계에서 비롯되는 바가 컸다. 그 리고 그 해결책 또한 이런 남북한 관계 때문에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북한의 인 권문제는 기존의 계급정책과 더불어, 체제가 극도의 비효율성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이 권력 을 유지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바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즉, 제한된 사회적 제 가치들을 핵심계층에 집중시켜 체제의 유지를 도모함으로써 소외된 일반인들과 체제 이탈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포괄적 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그 구조적 성격 때문에 자체적으로 개선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외 부의 개입(engagement)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따라서 관련 국가들과 논의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 이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북한의 인권문제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난점은 공식적인 선 언과 현실 간에 현저한 괴리가 있고, 이를 북한당국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선 방법을 강구할 수 없는 데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개입하여 개선시키는 일의 핵심은 이 간극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좁혀 갈 것인가에 있다. 유엔 회원국들 중에서 인권문제 때문에 유엔에서 추방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이런 선례의 부 재는 인권신장을 촉구하기 위한 유엔 헌장 제6조 적용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북한을 압박 하기는 힘들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그것을 규정하는 국제적 국내적 규범은 마련되어 있지만 그 규 범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을 고려하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지켜지도록 하 는 것이 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이런 현실론을 고려할 때 사건별 현안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 직 할 것이다. 이런 접근을 통해 개별적 합의 해결이 누적되어 일반적 규정력(general binding force)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불가역적 적대자(strident antagonists) 관계에서는 개입을 하려해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H. 라이화 교수(Howard Raiffa)가 가정한 협상이 가능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협력적 적대자 (cooperative antagonists) 관계가 형성이 되면 한국이나 서방세계에서 개입할 수 있는 지렛대 (leverage)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인권문제에 실제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노력들이 가능할 것이다. 36
37 현재 북한사회의 불안정성은 외부개입의 중요한 장애가 되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북한사회 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남한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외부의 개입이 비공식 영역 즉, 사회의 제2영역 을 확장시킬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의 정치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세계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이명박 정부도 지난 1년간의 대북정책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북한당국과 공식적인 대화를 계속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피하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래서 남북한 관계와 국제정치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정부차원의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부단체들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요청된다. 비정부단체들은 북한당국이 정치범 수용소를 인정하도록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도전을 해야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시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과 여론의 관 심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데 있다. 비록 비정부단체들의 활동이 당장에 어떤 가시적 결과를 가져오 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북한 당국자들에 대해, 본 사안의 사건성 성립을 위한 증거자료들을 확보하여, 국제적 압력을 행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1986년에 도이머이 정책을 채택하면서 남부해방 후에 수감되었던 정치범들을 대부분 석방시키고, 1987년과 1988에 걸쳐 노동개조대들을 해체시켰다. 통일 후 남부지역에 강제동원과 억압에 기초하여 실시한 '북화정책'의 실패에 대한 반성과 도이머이 정책 실시에 필요한 외자 유치를 위해 인권 문제에 대한 외부의 압력에 저항 할 수만은 없었던 현실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에서도 개 혁 개방과 정치범 수용소 폐쇄를 유도할 수 있도록 서방세계가 대북정책을 구사하는 데 유효한 준거가 될 것이다. 북한사회 내에 인권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가장 큰 장애 라는 사실에 유의하면, 북한 내에서의 인권에 대한 교육과 확산이 최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될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북한 내에서 실시할 인권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지 않고, 한 국에서 개발된 한글 인권교재들도 북한에 유입시킬 계획이 수립되어 있지 않으므로 한국의 정부 및 비정부 단체들은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어 이 분야에 전략적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시민사회가 사회 각 수준의 의사 결정과 집행에 참여하도록 하라 는 유엔 인권위원 회의 2005년 결의는 현실을 도외시한 성급한 주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사회적 잔차(social residual)로서 시민사회의 잠재성은 있으며, 제2 사회영역(second social sphere)도 충 분히 확장되어 있다. 북한과 같이 공산화 이전에 부르주아 시민사회의 경험이 일천했던 경우, 후기 공산주의 단계에 와서 공산주의체제가 대중 동원력을 상실한 채 극도의 비효율성을 보이면서 시민 사회는 아직 형성되지 못했지만 사회의 비공식 영역이 확장됨으로써 변화된 사회가 정치체제를 압 박 위협하게 되었다. 47) 거대한 국가기구는 공안사건이나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통제력을 철저히 행사하는 것 같으나 민 생문제에 대해서는 지배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적 불만이 팽배해 있고, 크고 작은 소요들도 일어나고 있으나 하나의 조직적인 저항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북한에서 시민사회가 조속히 형성되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 문화적 교류 를 활성화시키고, 북한 위정층 내에서 실용주의 개혁파가 목소리를 내는 데 유리하게 대북정책을 47) Man-Ho Heo, "Contrôle social et changement politique dans les sociétés communistes subsistantes : une application des cas chinois et est-allemand à la Corée du Nord." Revue Internationale de Politique Comparée 9 No.3(Hiver),
38 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적 대북지원도, 1대1의 도식적 상호주의도 모두 현실성이나 효과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와 영역교차 손익계산 방법을 기본개념으로 한 다차원순차 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압제권력에 직접 연계되지 않은 단체들이 생길 수 있으면 압제권 력을 비켜서 세계적 인권정체(Global Human Rights Polity) 즉, 인권체제 및 국제기구, 국제인권기 구, 서방세력과 직접 접촉하여 부메랑 효과 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48)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북한인권문제에 직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국가들이 현안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자적 형태를 통해 과학 교육 협 력, 경제, 통상 문제 등과 함께 논의 해결하고, 지역 차원의 대북 인권대화 구도를 개발하자고 관련 국가들을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의는 앞으로 동 북아에 인적접촉이 더욱 활발해지면 반드시 필요하게 될 지역인권보호체계를 만드는 데 좋은 시작 이 될 것이다. 48) Thomas Risse, Stephen Ropp and Kathryn Sikkink (ed.)(1999), 앞의 책, pp 참조. 38
39 39
40 제14호 개천관리소와 제18호 북창관리소 40
41 제14호 개천관리소 수감자 숙소 41
42 북한에서의 고문실태* 49) 이 영 환 한국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조사연구팀장 Ⅰ. 서론 2007년 3월,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하 시민연합)은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의 관리소, 교화 소, 집결소, 노동단련대, 꽃제비수용소 등 다양한 구금시설에 수감되었다가 2000년부터 2005년 사 이 북한을 떠난 20명(남 9명, 여 11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前 사회안 전성 또는 사회안전부), 1) 집결소 등에서의 조사과정에서 어떠한 고문피해를 입었는지를 조사하여 국제사회에 보고한 바 있다. 2) 그러나 당시 보고서는 2004년 4 5월에 취해진 북한의 형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의 실제 개선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이후 시민연합은 2001년부터 2008년 사이 북한을 떠난 50명(남 22명, 여 28명)의 탈북아동 및 성 인을 대상으로 북한아동권실태에 관한 집중조사를 실시하여 2009년 초, 새로운 보고서를 발간하였 다. 3) 이를 통해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북한아동에 대한 고문 및 처벌실태도 주요 조사항목에 포함되어 앞선 북한의 형법 개정 이후 상황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이전의 기간에 대해서도 보충 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다. 본 발표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문근절에 관한 북한 당국의 국제법상 의무와 국내법상 근 거를 설명하고자 한다. 둘째,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북한 내 고문 실태에 실제 긍정적 변화 가 있었는지 평가하고,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문제들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한다. 셋째, 고문근절 을 위해 북한당국이 취해야 할 개선노력과 유엔 관련기구 및 특별보고관 등의 적절한 활동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국제법상 북한의 고문금지 의무와 국내법상 근거 1. 국제법상 의무와 북한의 의무 불이행 * 본 원고는 북한의 기관별 지역별 고문실태와 변화양상(1993~2004), 생명과 인권, 제43호 (서울: 북한인권 시민연합, 2007), pp.8~36; 북한의 고문 의혹에 대한 평가와 권고, 생명과 인권, 제48호 (서울: 북한인권시 민연합, 2008), pp.6~31을 보완한 것이다. 1) 현재의 인민보안성은 내무성 산하 사회안전국(1948.9~1951.3) 사회안전성으로 분리(1951.3~ ) 내부성 산하 사회안전국으로 재흡수( ~ ) 사회 안전성으로 분리( ~ ) 사 회안전부로 개칭( ~ ) 인민보안성으로 개편( ~현재)되었다. 2) 이영환, 고문의 공화국, 북한 (서울: 북한인권시민연합, 2007). 3) 이영환 외, 왕이라 불리는 아이들: (사)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 아동권 실태보고서 (서울: 생명과 인권, 2009). 42
43 세계인권선언(UDHR) 제3조는 동 선언의 가장 중요한 초석으로서, 모든 다른 권리의 향유에 없어 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 권리로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특히, 고문금지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해서는 제4조부터 제11조에 걸쳐 명시되어 있다. 북 한은 1981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가입함에 따라 제6조부터 제16조에 걸 쳐 명시되어 있는 고문금지원칙을 준수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ICCPR 가입국은 동 규약 제40조에 의거, 가입 후 최초 2년 후, 그리고 매 5년마다 정기보고서를 제 출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4) 하지만, 북한은 1983년(1984년 수정 제출) 이후 오랫동안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다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점차 높아지자 16년만인 1999년 12월에 야 제2차 국가보고서를 제출하였다. 5) 이에 대한 2001년 동 규약 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의 최종견해는 대표단이 제출한 구속되거나 수감된 사람들에게 가해진 가혹행위의 사 례가 그토록 적다는 자료(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6건)는 위원회에 제공된 자료에 드러난 가혹 행위나 고문 등의 사례가 훨씬 많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 평가하고, 당사국은 국가기관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각종 가혹행위, 고문 또는 다른 학대행위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를 고려하여야 하며, 모든 수감 및 구금시설을 감독하는 독립기구를 설립하여 법집행관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방지하여야 한다 고 권고하였다. 6) 2003년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에서는 고문과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 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이 일어나고 있다는 계속되는 보고에 대해 깊은 우려 를 표명하면서 고문방 지협약(CAT)에 가입할 것 과 인도주의적 이유로 다른 국가로 이동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시 민들을 규제하고 또 그들의 탈출을 반역행위로 간주하여 고문과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처우를 하는 것을 중단할 것 을 권고하였다. 7) 이후 2004년 제60차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에서는 상기 내용 을 다시 강조하면서, 인권분야 유엔 기구와 협력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황과 관련된 인권 위원회의 주제별 절차, 특히 고문과 기타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에 관 한 특별보고관에게 제한 없이 협력할 것 을 촉구하였다. 8) 2005년 제61차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에서는 앞서의 내용을 다시 강조하면서 적법절차에 의거하지 않은 자의적 구금, 정당한 법 절차와 법치의 부재에 대해 우려 한다 는 언급을 추가하고, 제60차 결의에 의거하여 임명된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권한을 인정하고, 특별보고관이 그의 권한을 행사하 는 데 충분하고 아낌없이 협력하고 지원하며,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 든 조치를 취할 것 을 강력히 촉구하였다. 9) 4)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 채택, 발효). 5)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2차 정기보고서, CCPR/C/PRK/2000/2 ( ). 6) Concluding Observations of the Human Rights Committe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CPR/CO/72/PRK ( ). 7)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E/CN.4/2003/L.31/Rev.1 ( ). 8)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 s Republic of Korea, E/CN.4/2004/31 ( ). 9) Situation of human rights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E/CN.4/2005/32 ( ). 43
44 이와 같은 우려와 권고는 2005년 제60차 유엔 총회와 2006년 제61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북한 인권결의에서도 재차 강조되었다. 10) 2006년 6월 유럽의회 북한인권결의문 역시 고문에 관한 유엔 차원의 우려와 권고를 인용하면서, 인권침해로 인한 피해보상(remedies against human rights violations)에 필요한 구제책을 마련할 것 을 촉구하였다. 11) 아동에 대한 고문 및 학대의 개선권고는 북한이 1990년 가입한 아동권리협약(CRC)에 의거하여 유 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의해 거듭 강조되어 왔다. 12) CRC 제37조는 어떠한 아동도 불법적 또는 전 횡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하며, 아동의 체포, 억류 또는 구금은 법률에 따라 행해야 하며, 오직 최후의 수단으로서 또한 적절한 최단기간 동안만 사용되어야 한다 고 강조하고, 자유를 박탈 당한 모든 아동은 인도주의와 인간 고유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에 입각하여 그리고 그들의 연령상 의 필요를 고려하여 처우되어야 하고, 법률적, 기타 적절한 구조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법원 혹은 독립적이고 공정한 소관당국에게 자신이 당하고 있는 자유박탈의 적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이러한 소송에 대하여 신속한 결정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고 규정하고 있다. 1998년 6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1996년 북한이 제출한 CRC 이행 최초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 를 통해 특별히 가정과 기관 내에서의 태형을 예방하고 근절하기위한 조치를 취할 것 과 인종차별 철폐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과 함께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할 것을 권고하였다. 13) 하지만 북한은 2003년 제출한 제2차 국가보고서에 아동보호 관련 법률의 존재나 소년재판 등에 관한 형법조항들 만 나열하는 등 최초보고서에서 보고했던 내용을 재차 반복하였다. 이에 2004년 6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특히 구치소와 사회기관에서의 청소년에 대한 조직적 폭 력에 대한 보고에 우려를 표명하였다. 특히 동 위원회는 18세 이하의 사람들에 대한, 특별히 구류 장이나 사회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보고에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며 당 사국이 기관 내에서의 모든 폭력을 방지하고 근절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지속, 강화할 것 을 권고하였다. 14) 그러나 북한은 2007년 11월 제출하여 2009년 1월 23일, 제50차 회기에서 심의되었던 제3 4차 통 합 국가보고서에서 아동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조정위원회(NCRC) 15) 가 형법 제271조(늙은이, 어린 이보호책임 회피죄), 제272조(학대괄시죄), 제288조(폭행죄)의 맥락에서 조사기간 동안 어떠한 아동 도 고문 또는 기타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찾아 내기 위하여 포괄적 조사를 실시하였다 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보고하지 않 10) Resolution adopted by the General Assembly [on the report of the Third Committee (A/C.3/60/L.48)], A/RES/60/173 ( ); Resolution adopted by the General Assembly [on the report of the Third Committee (A/61/443/add.3)], A/RES/61/174 ( ). 11) European Parliament, North Korea: Human Rights Violations ( ). 12) 북한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발효되기도 전인 1990년 4월 10일 가입서를 기탁하고, 협약이 발효된 동년 9월 21일 어떠한 유보사항도 없이 비준을 마침으로써 당사국이 되었다. 13) Concluding observations of the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RC/C/15/Add.88 ( ). 14) Second periodic reports of States parties due in 1997: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RC/C/65/Add.24 ( ). 15) 북한은 제 2차 국가보고서에서 최초보고서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견해에 따라 1999년 4월 28일에 유엔아동권리 협약 이행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설립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앞의 보고서 제16항. 44
45 았다. 16) 그동안의 북한의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포괄적인 고문방지 및 아동학대 예방 관련 법률조항들만 내 세우고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 등 국가 조사기관 및 구금시설 등에서 행해지는 아동에 대한 고문 및 학대의 실태에 대해서는 전혀 보고하지 않고 회피해왔음 알 수 있다. 특히, 제2차 국가보 고서에 대하여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기관, 특히 구류장이나 사회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 에 관한 정보에 명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제3 4차 보고서에서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실시하였다 는 회피성 답변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아래, 2008년 2월 비팃 문타폰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개편된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 한 보고서를 통해 수감제도를 총 정비하는 일이 많이 지연되고 있으며, 형사법 체제와 관련 구금 으로 인한 가혹한 상황은 고문 또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모욕적인 처우 등과 같은 과잉 학대를 유발하고 있다 고 지적하였으나, 북한은 극렬히 반발하였다. 한편, 유엔 고문방지협약(CAT)은 전문에서 세계인권선언 제5조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7조에 따라 어느 누구도 고문 및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대 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고 명시하는 등 고문근절에 집중된 여러 가지 의무 사항들과 이행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17)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동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고문 문제의 존재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는 비상사태나 여하한 경우에도 효력이 유보 (reservations)되거나 중지(derogations), 또는 제한(permissible restrictions)될 수 없는 강행규범 (jus cogens)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고문방지협약(CAT)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고 하여 이러한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2. 고문금지에 관한 북한의 국내법상 근거 현행 북한 형사소송법 18) 은 제4조에서 국가는 형사사건의 취급처리에서 과학성과 객관성, 신중성, 공 정성을 보장하도록 한다 고 규정하고, 제5조는 국가는 형사사건의 취급처리에서 인권을 철저히 보장 하도록 한다 고 인권보장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제8조는 형사사건에 대한 취급과 처리에 있어서 이 법에 규정된 원칙과 절차, 방법에 따라 하도록 한다 고 강조하고 있다. 19) 16) The Combined 3rd and 4th Periodic Reports of State Parties due in 2007: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CRC/C/PRK/4 ( ). 17) Convention Against Torture and Other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 채택, 발효). 18) 2005년 7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225호로 수정 보충. 19) 북한의 형사소송법상 사법처리절차는 크게 수사-예심-기소-재판-집행 등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수사는 해당기 관의 수사원이나 필요한 경우 검사가 실시하고(제10조), 예심은 인민보안성, 검찰,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무력기관의 예심원이 담당하며(제11조), 기소는 검사가(제12조), 재판은 재판소가, 형벌의 적용은 재판소의 판결로 한다고 규정 되어 있다(제13조). 수사, 예심, 재판에 대한 감시는 검사가 하도록 되어 있다(제14조). 이 가운데 수사-예심-기소까 지의 단계는 모두 넓은 의미의 수사에 해당되고, 이를 담당하는 기관은 인민보안성, 검찰,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무 력부인데, 일반범죄는 인민보안성, 정치범죄는 국가안전부, 군인 및 군무원 범죄는 인민무력부, 형사사법절차의 진 행과정에서의 범죄는 검찰이 관할한다. 45
46 구체적 심문규정으로는 제163조에서 심문은 8~20시 사이에 실시하도록 하며, 특별히 필요한 경우에 는 이외의 시간에도 할 수 있으나, 이 경우 검사의 참가 밑에 한다 는 단서조항을 둠으로써 야간 불 법심문에 대한 감시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심문과정에서의 고문을 방지하기 위해 제167조에서 예심원은 피심자에게 강제의 방법으로 범죄를 인정시키거나 진술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 고 강제심문을 금지하고 있으며, 제169조는 피심자를 심문하는 예심원은 먼저 그의 신분을 확인한 다음 피심자의 권리를 알려주어야 한다 고 피심자에 대한 권리 통고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제170조에 열거된 피심자의 권리로는 첫째, 형사책임추궁결 정서에 지적된 범죄를 인정할 수 없을 경우에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둘째, 예심원이 추궁하는 범 죄를 인정할 수 없을 경우에는 직접 반증하거나 정확히 조사 해명하여 줄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셋째, 예심원을 비롯한 소송관계자를 바꾸어 줄데 대하여 제기할 수 있고, 넷째, 자기의 진술을 심문 조서에 직접 쓰거나 심문조서의 내용을 수정, 삭제, 보충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다섯째, 자기의 권리가 침해당하였다고 인정할 경우에는 검사에게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 국내법에서도 고문을 금지하고 적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피심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근거를 두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Ⅲ. 북한고문실태의 변화와 국제사회의 감시 효과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은 1993~2009년의 약 16년간의 기간 동안의 북한 내 조사기관 및 처벌기관에 서의 고문 및 처벌실태에 관한 증언을 축적, 분석해오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여러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파악되고 있는데, 각 시기별 정책 변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국제사회의 감시 및 개선요구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년 이전: 유죄추정 및 고문에의 전적인 의존 북한의 조사기관 및 수용시설에서의 고문실태는 국제사면위원회를 통해 이미 1970년대부터 외부세 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20) 이후 간헐적으로 실태보고서들이 발간되기도 하였지만, 1999년 가을 까지는 주로 유엔인권소위원회와 북한당국 간에만 다루어질 뿐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고문의 경우, 전반적으로 1999년 이전까지 북한에서는 일반범죄이든 탈북시도이든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조사에서 일상적으로 만연하였고 당연시되었다.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은 국가안전보위부나 인 민보안성 등 수사기관에서는 피의자를 심문함에 있어서 거의 전적으로 고문에 의존하였고, 조사기 간의 임의연장도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북한의 형사사법규정 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조사요원들은 죄목을 미리 정해놓고, 고문을 통해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이었다. 20) Ali Lameda, "A Personal Account of the Experience of A Prisoner of Conscience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North Korea", AI index: ASA 24/02/79 (London: Amnesty International, 1979). 46
47 ~2002년: 국제사회의 비판여론 의식 및 은폐시도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세계 언론매체들과 국제사회의 관심증대의 중요한 계기는 1999년 12월 NGO 차원의 연례 국제회의가 개최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고문 문제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 이 없었더라면 어떠한 제약도 없이 광범위하고 무제한적으로 계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99년 12월 1~3일, (사)북한인권시민연합과 한국의 언론사인 조선일보사가 공동으로 제1회 북 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한국 서울) 를 개최하자 북한 당국은 남조선과 같은 가혹한 인권의 무 덤 위에서 떠드는 인권타령 이라며 이 회의를 "북남관계를 악화시키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해치 는 범죄행위", "광대극", "근거 없는 반공화국 모략책동"이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다. 21) 그러나 회의를 계기로 10개국 140여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프렌즈 네트워크(NKHR's Friends Network)'라는 국 제네트워크가 창설되고, 일본에서 강제수용소 실태를 고발하는 국제포럼이 개최되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급속도로 고조되기 시작하자, 북한은 이러한 분위기에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1983년 최초보 고서, 1984년 추가보고서 이래, 정기보고서를 제출을 계속 미루다가 1999년 12월 25일 마침내 2차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유엔에 협조적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22) 탈북여성 김춘애(가명, 47세, 2000년 탈북)씨는 이 시기에 함경북도 청진시 도집결소와 무 산군 노동단련대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중앙당의 검열이 막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안전원들이 직 접 구타를 자제하고 상급기관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였다 고 증언한 바 있다. 23) 그러나 북한은 한편으로는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체계를 정비하고 본격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탈북행렬이 급증하고,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하자 1999년부터 이를 체계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취해진 것이었다. 1999년 7월부터 11월 사이에 함경북도 무산군 보위부 내에 장기간 조사를 위한 구류장 시설이 갖추어졌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 한다. 중국 공안이 언제부터 탈북자 송환 시 북한 당국에 조사문건을 넘기기 시작하였는지도 주목할 사 안이다. 송환시기가 각각 다른 여러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1999년 8월 이후부터 중국공안이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문건을 북한으로 넘기는 것이 실제로 정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러 한 조직적 협조에 필요한 법적근거로 1998~1999년 사이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중국 공안부 사 이에 탈북자 송환 시 조사문건 제공에 대한 비밀협정이 체결되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보위부 중에서도 회령이 가장 세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함경북도 회령시 보 위부는 북한주민들에게 두려운 곳이다. 일반탈북자들이 수감되는 집체감방 외에 정치범이나 간첩죄 혐의자들을 고문하기 위한 지하 감방 시설도 운영하고 있는데, 경험자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얼마나 끔찍한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21) 인권의 무덤 우에 떠드는 <인권>타령, <조선중앙통신>, 1999년 12월 2일; 북 인권문제 보면 개방 길 가 늠, <조선일보 NK리포트>, 제19호, 2001년 2월 26일. 22)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2차 정기보고서, CCPR/C/PRK/2000/2 ( ). 23)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인터뷰, 2005년 2월 8일, 2006년 6월 10일. 47
48 1999년부터 2000년까지 9개월간 지하 감방에서 조사받은 정광일(남, 본명) 씨는 지상감옥은 주로 일 반탈북자들이 들어가는 곳이고, 정치범이나 간첩죄 혐의자들은 지하 감방에 넣는데 지하 감방에는 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가둬두고 살면 살고 죽으면 죽으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는 장시간 구타를 당 해 뒤통수가 깨지고, 치아가 모두 부러졌으며, 체포 당시 75kg였던 체중이 38kg으로 급감할 정도로 끔찍한 곳이라고 설명하였다. 일상적 구타 외에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악명 높은 비둘기고문 이 었다고 한다. 공중에 매달려 오랫동안 묶여 있었기 때문에 마치 가슴뼈가 피부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과 전신근육이 마비되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였다고 한다. 지하 감방에서는 아무리 고통스러 운 비명을 질러도 위에서는 들리지도 않아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끝없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결국 보위부에서 씌운 간첩죄라는 누명을 인정하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간첩죄라는 것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보위부 검사장이 최종확인을 나왔기에, 너무 맞다보니 없는 죄라도 인 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가 조사관에게 다시 구타당했다고 한다. 중앙재판소에서 내려온 검사의 역할은 죄를 확인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이지만 검사가 보위부로 내려오면 보위부 조사관들이 검사들에게 허위조사를 한 적이 없으니 잘 봐달라고 부탁을 미리 해두기 때문에 어떤 말 을 해도 통하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24) 2000년부터는 특히 여성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가 광범위하게 일상화되기 시작하였다. 옷을 모두 벗 겨놓고 알몸 상태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게 하는 뽐뿌질은 이 시기부터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전형적인 조사방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함경북도 무산군 보위부와 평안북도 신 의주 보위부 등 지리적으로 매우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동시에 이러한 조사방식이 확인되기 시작하 였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일부 증언자들은 금전갈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검사방식이 1990년대 후반에도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또한 2000년부터 집결소를 일종의 대기실 로 활용하면서, 국경지역 보위부에서 1차 조사를 받은 탈북자들을 출신지역 조사기관이나 각종 수형시설로 보내기 전까지 머무르게 한 것으로 파악되었 다. 이로 미루어 탈북자들에 대한 조사 및 처벌체계가 <국경지역 보위부 (국경지역 안전부) 각 도 집결소(또는 관리소 및 교화소) 노동단련대(또는 출신지역 조사기관)> 등과 같은 체계적 패턴 으로 갖춰진 시기는 2000년 전후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0년 6월을 전후한 시점에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 사이에 남북정 상회담이 열림으로써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무드가 조성되었던 이면에 당시 전국 각지의 장마당 등 을 떠돌던 소위 꽃제비 아동들이나 생계 문제로 범죄를 저지른 아동들은 일시적으로 더욱 가혹한 처우나 처벌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0년 7월 군부 산하의 감찰조직인 보위사령부에 체포 되었던 이광철(남, 가명) 군은 현재까지 증언이 확보된 아동들 가운데 보위사령부(평양시 대성구역 용북동 소재)에서 조사받은 유일한 증언자이며, 당시 나이는 15세였다. 당국에 체포된 시점은 2000 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후였고, 죄명은 골동품을 훔친 죄 였다. 이군에 따르면, 한국의 김대중 前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앞둔 시기부터 이전까지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성에서 해오던 일을 보위 사령부에서 맡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군은 체포 직후 평양시 대성구역 인민보안성으로 끌려가 15 일 동안 기본적인 조사를 받았고, 보위사령부 구류장으로 보내져 2개월 이상 추가조사와 고문을 당 24)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인터뷰, 2006년 6월 15일. 48
49 했다고 증언하였다.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심한 고문을 당했는데, 물구나무를 선 채로 구타당 하거나, 손가락 족쇄를 채워놓고 바닥에 엎드리게 한 채로, 또는 조사실 안의 난방관에 수갑으로 채워놓고 각목으로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주로 야간(저녁부터 자정까지) 시간에 몇 사람이 교대로 구타했으며, 주간에 조사할 때는 바닥에 엎드리게 해놓고 이불 같은 천을 덮어 때리는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도록 하고 때렸다고 한다. 창문도 없어서 햇볕이 들지 않는 독방에서 조사를 받았고, 하 루 종일 음식을 주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배설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 서 극심한 고문에 의한 조사를 2개월 동안 받다 보니 모두 자백하고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 다. 다만, 이 군은 미성년자였던 덕분에 혹독한 조사 이후 정치범수용소(관리소 또는 교화소)로 보 내지지 않고, 형제산구역에 있는 꽃제비수용소(구호소)로 보내졌다. 25)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 2006년 6월 이 증언자와 심층인터뷰를 실시하였을 때는 고문으로부터 무 려 6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쪽 팔목에는 구타로 인해 10cm 정도씩 찢어진 상 처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선연하게 남아있었고, 이 군은 당시의 구타로 인해 허리와 등 뼈가 많이 상해 지금도 3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하다고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1999년을 전후로 탈북자 전체에 대한 조사 및 처벌 체계가 확립되면서부터 아동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상당기간 지속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전까지 거의 전적으로 고문을 통한 자백에 의존하던 조사방식이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것도 2000 년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부터는 탈북동기, 중국 내 생활과 이동경로, 한국인이나 종교인 으로부터의 도움 및 한국행 시도여부 등 주요항목을 중심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강제 송환되는 탈북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변화로 볼 수 있지 만, 조사항목이 유형화됨에 따라 이전까지 무기한 이루어지던 조사기간이 평균적으로 줄어드는 부 수적인 효과도 뒤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2월, 제2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한국 서울) 가 다시 개최되어 북 중 국경지역 의 탈북난민문제와 중국 내 탈북여성들의 인권실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지자 북한은 조 중 사이 에 피난민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는 제목의 공식논평을 통해 "중국 동북지방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 친척방문 등으로 국경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여행자들을 '피 난민'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고 강조하는 등 탈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 하였다. 26) 그러나 한편으로는 회의 이후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이 다수 확보됨으로써 진실에 가까 운 정보로서 국제사회의 우려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자, 북한은 2001년 2월 27일, '여성 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에 가입하는 발 빠른 조치를 취함으로써 유엔에 다시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탈북여성들에 대한 성적 가혹행위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된 것은 2002년 2월, (사)북한인권시 민연합과 일본실행위원회의 공동주최로 개최된 제3회 북한인권 난민문제 국제회의(일본 동경) 에 서였다. 이 회의에서는 정치범수용소 내의 임신여성과 강제송환된 탈북여성들에 대한 강제낙태 및 영아살해 등 여성의 권리와 그 보호에 관한 문제가 주로 다루어졌다. 회의에 앞서 벨기에의 인권 25)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인터뷰, 2006년 6월 2일 26) 조중 사이에 <피난민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중앙통신>, 2000년 12월 23일. 49
50 NGO인 국경없는인권회(Human Right Without Frontiers) 가 이러한 내용을 언론에 먼저 발표하자 북한은 근거 없는 허위모략이며 반북모략을 위한 발작증 이라고 극렬히 반발하였다. 27) 하지만 북한 은 탈북여성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것을 차단하고자, 2002년 9월 11일 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 에 관한 최초보고서를 제출하였다. 28) 그러나 북한은 당시 보고서에서 탈북여성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최근 조사에서는 2002년 여름의 탈북아동에 대한 북한 당국의 처우실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확보되었다. 1998년 초 강제송환 되어 간단한 조사를 받고 함경북도 회령구호소로 보내졌 으나, 곧 탈출한 허은주(가명, 20세, 2003년 탈북)양은 구호소 탈출 후 재차 중국으로 넘어갔으나 2002년 여름에 붙잡혀 다시 북한으로 강제송환 되었다. 두 번째 잡혔을 때는 북한 특무(탈북자들 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을 체포 또는 납치하기 위해 탈북자로 위장하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비밀특 수요원) 에게 붙잡힌 것이었는데, 중국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성경공부 했던 것이 문건으로 작성되어 온성 보위부로 보내졌다 고 한다. 29) 허양은 10명 정도가 한꺼번에 붙잡혔는데, 어른들은 다른 곳 으로 끌려가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고, 나는 중국에서 성경공부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은 주지 않았고(진심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먹고 살려고 거짓으로 하는 척 했던 것이 지 아무것도 모른다고 버텼다 고 설명하였다. 허양은 당시 실제로는 14세가 되었으나, 여전히 키가 작아 1998년 처음 송환되었을 때처럼 10세로 나이를 속이고, 부모가 없는 고아라고 둘러대어 다행 히 미성년 고아로 인정되기는 했지만, 이 때는 고아나 꽃제비들을 수용하는 구호소가 아닌 깊은 산 속에 위치한 군부대 지하시설로 보내졌다고 한다. 허양은 무려 5개월 동안 그곳에 갇혀 있었고, 강 냉이밥(옥수수밥)만 먹었으며, 벌로 하루 종일 농사만 지어야 했는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밭일 만 해야하다 보니 너무 힘들고 배가 고파서 거기서 더 오래 있었다면, 아마 굶어 죽었을 것 이라고 증언하였다. 허양은 분명한 미성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한인교회에서 붙잡힌 것이 강도 높은 처벌의 주요이유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나이를 속여 10세 정도로 간주된 허양에게 사실상 반년에 가까운 노동교화형 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하양을 풀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허양은 5개월의 군부대 강제 노동 이후에 온성 구호소로 보내졌다. 다만, 허양은 그나마 온성 구호소는 1998년에 있었던 회령 구호소보다는 좋아서 칫솔, 치약, 비누도 있었고, 식사는 영양가루가 기본이라 배고픈 것은 마찬가 지였지만 명절 때는 떡과 튀김도 먹은 적이 있었다. 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구호소 안에서도 공부 는 배워주지 않았고, 달구지 끌고 산에 올라가 매일 땔감나무를 모으는 일만 시켰다 고 한다. 허양 은 구호소에 있으면서 옴이 돌아서 페니실린 한 번 맞은 것 말고는 치료나 약 같은 건 받아본 적 이 없었다 고 증언하였다. 5개월에 더해 1년 정도를 회령 구호소에 갇혀 있던 허양은 언제쯤 다시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2003년 말 구호소를 탈출하여 다시 탈북하였다. 30) 27) <강제수용소>에서의 <신생아살해>는 허위모략, <조선중앙통신>, 2002년 1월 18일. 28)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의 이행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초보고서, CEDAW/C/PRK/1 ( ). 29) 중국 내 북한특무들의 탈북자 색출활동에 대하여, 비팃 문타폰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2008년 2월 15일 제7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로 피난처를 찾아 떠난 망명자들은 본국의 비밀특수요원 들이 현지에서 그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다. 때때로 이러한 요원들은 본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등 이들을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협박을 가하고 있다 (33항) 고 보고하였다. 비팃 문타폰, 유엔인권이사회의 대처가 필요한 인권상황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상 황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 ). 50
51 ~2003년: 단순탈북자에 제한된 처벌완화 2002년을 기준으로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이 실제로 완화되었는지,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는지에 대 해서는 증언자들마다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악화의 징후로 2002년 5월 29일 소위 5.29 방침 이 내려져 시범케이스로 총살당한 사람들 이 많았다는 증언이나, 이 시기부터 각 지역 보위부의 조사요원들을 타지방 출신들로 교체하기 시 작하여 인정사정없이 구타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뇌물수수를 방지하려고 했음을 보여주는 증언에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2002년 말부터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의 지시로 단순탈북자들에 한하여 처벌을 완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 다수의 증언이 있었는데, 2002년 11월 단순 도강자와 한국문제(한국행 시도)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처벌하라는 지시가 내려 져 단순 도강자들은 적당히 봐주기도 했다, 2002년 말 김정일이 탈북해서 돈 벌어온 사람들의 돈 을 빼앗으면 다시 또 중국에 가게 되니 빼앗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와 다른 나라에 가서 남의 옷 을 입어도 마음만은 조국통일의 염원을 갖고 있으면 다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 다 는 등 다수의 증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2003년에는 각 지역 보위부와 안전부 등에 중앙당 성원들로 구성된 비사 그루빠(비사회주의 검열단) 에 의한 검열이 실시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금전갈취를 통한 보위원, 안전원 및 국경경비대 군인들의 부정부패를 막고 사법기관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함이 주요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만, 일시적으로 불법조사나 구타행위가 자제된 것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3년 초 1년 형을 받고 함경북도 함흥시 오로단련대로 보내진 탈북여성 강성화(가명, 58세, 2004년 탈북)씨 는 같은 해 가을에 감면이 내려와 1개월이 줄어 석방되었다고 하면서 중앙기관에서 2~3명이 검은 양복을 입고 승용차를 타고 파견을 나와서 한 그릇에 콩알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하고 제대로 하 라고 지시하기도 했다고 증언하였다. 31) 이로 미루어 북한 내 조사시설에서의 불법고문행위나 인권문제를 북한 지도부나 중앙기관에서 자 체적으로 조사하기 어렵고 국제사회와 NGO의 보고서를 통해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 다만, 그런 말을 실제로 김정일이 하지 않았더라도 당국 내에서 그런 말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다 는 증언도 있었으나, 2003년 이후의 여러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단순 도강자들에 대해서는 이전에 비해 가혹한 고문이 실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위원이나 안전원들이 가급적 직접 구타하지 않는 대신 같은 감방의 다른 죄수들에게 구타를 지시하는 또 다른 편법적 고문방식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시적 요인으로 2003년 봄 중국에서 급성호흡기성증후군(SARS)가 발생했던 기간에는 850명이 한 번에 강제 송환될 정도로 탈북자들이 많이 잡혀갔기 때문에, 10일에서 1개월 이내로 이전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조사를 마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 이후에는 다시 조사기간이 늘어나고 30)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인터뷰, 2008년 3월 12일. 31)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인터뷰, 2006년 6월 14일. 51
52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서나 서명을 위조하지는 않는 것으로 미루어 형사소송법 제174조(피심 자 심문조서의 작성)와 제175조(피심자 심문조서내용의 확인)는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 지만 일선 조사기관에서는 조서위조를 하지 않는 대신 강제자백과 직접서명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 과 구타에 의존할 수 있다는 양면적 측면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높아진 관심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인권문제의 존재 자 체를 부인하고, 뚜렷한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실제 개선여부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 이 중요한 고려요소로 작용, 2003년 4월 제59차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최초로 통 과되었다. 북한대표는 결의안 채택에 앞서 EU 주도로 상정된 결의안을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조선사회주의제도에 대한 도전"이라며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하지만 결의안이 채택됨으로써 북한인권문제가 마침내 국제적으로 중요한 인권 현안으로 인식되기 에 이르자, 북한은 제출을 4년째 지연하고 있던 아동권리협약의 이행에 관한 제2차 정기보고서를 2003년 5월 16일 제출하였다. 32) 북한은 동 보고서에서 죄의 중대함과는 상관없이 모든 소년 범죄 자들에게 공교육 조치를 실행함으로써 북한의 소년재판 시스템은 아동권리협약에 규정된 바와 같이 법을 위반한 아동들에 대한 특별처우의 원칙과 여러 국제협약들을 구현하고 있다 고 보고하였다. 이 러한 북한 당국의 보고 내용은 앞서 1996년 제출한 최초보고서와도 거의 유사한 내용의 반복이었 다 ~2007년: 형법, 형사소송법 개정 후 실질적 개선여부 판단은 유보적 2002년 말부터 취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단순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완화 방침과는 별개로 2004년 4월과 5월에 걸쳐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각각 개정하고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2005년 7월 한 차례 더 수정 보충하였으나, 이후 어떠한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 렷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04년 6월로 예정되어 있던 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제60차 유엔인권위원 회가 열리는 기간인 4월에 맞춰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위원 3명을 북한으로 초청하는 전례 없는 자 세를 취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은 고문을 포함하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 분야가 아닌 북한 이 상대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여성권과 아동권 분야에 국한되는 선택적 조치라는 한계가 있지 만 일단 유엔의 권고와 의무를 이행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변화로 평가된다. 2004년 4월,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2003년에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에 북한이 전면적 거부입 장을 유지함에 따라 다시 한 번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개별국가에 대한 조사권한상 한계를 극복하 기 위한 조치로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제도가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북한대표는 표결 직전에 "이 결의 안은 미국의 대북 적대 책에 편승한 것으로서 그 내용과 형식도 전례 없이 악랄한 내정 간섭"이라 고 반발하면서, "EU가 결의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 을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32)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의 이행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2차 정기보고서, CRC/C/65/Add.24 ( ). 52
53 하지만 북한은 "우리 제도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 입장을 대외적으로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4년 4월과 5월에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각각 개정 하였고, 2005년 7월 양 법을 다시 한 차례 수정 보충하였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정 형사소송 법에는 구금기간 단축, 기소 및 재판을 위한 구류기간과 체포영장제도 명시, 강압이나 유도에 의한 진술의 증거채택 금지 등 기존에 없었던 인권보장을 위한 규정이 도입되었다. 이외에도 중복조사 금지(제150조), 야간심문 금지(제163조), 피심자에 대한 권리통고(제169조), 증인 구인시간의 제한(제 227조), 재판정에서의 구속금지(제283조), 제1심 및 제2심 재판기간의 단축(제287조, 제366조) 등 인 권보장과 관련된 조항들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33) 북한이 이러한 제도적 변화를 모색하도록 유 도해낸 것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요구가 이루어낸 가시적인 성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문상의 변화만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보장이 확보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프롤레 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 체제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형사소송법의 본질과 기능에 변화가 없는 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34) 이러한 제도적 변화를 통해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에 대한 고문이 나 처우에 있어서 얼마나 실질적인 개선이 뒤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해야 할 문제이다. 예컨대,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 인터뷰한 경험자들 가운데 2004년 4월부터 5월까지 북한 당국에 의 해 조사를 받은 탈북여성 리민옥(가명, 23세, 2004년 탈북)씨의 경우, 35) 신의주시 보위부에서 3일간 1차 조사를 받고 출신지역인 회령시 보위부로 보내져 53일간 2차 조사를 받았으며, 다시 회령시 안 전부로 보내져 6일간 3차 조사를 받는 등 총 2개월이 넘는 장기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었다. 36) 한편, 북한은 2007년 11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한 제3 4차 통합 국가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형법 제40조에 따라 미성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형벌량정에서 가볍게 볼 수 있고, 동법 제49조에 따라 사회적 교양처분(public education)을 하게 되어 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제53조에 따라 14세에 이르지 못한 자의 행위인 경우 형사사건을 기각하며, 동법 제62조에 따라 14세 이상 17세에 이르지 못한 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사회적 교양처분을 하게 되어 있 다. 실제로 2005년 개정된 북한의 현행 형법은 제39조에서 미성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를 형벌량 정에서 가볍게 보는 조건 으로 포함하고, 제49조에서는 미성년이 범죄를 저질렀거나 성인이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의 개준성 정도, 범죄의 위험성 정도에 비추어 사회적 교양의 방법으로 고칠 수 있을 경우에는 사회적 교양처분을 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제62조에서 사회적교양처분 대상의 연령을 구체화하여 14살 이상 17살에 이르지 못한 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로 명시하고 있다. 33) 법원행정처, 북한의 형사법 (서울: 법무부, 2006), pp ) 이백규, 북한의 개정 형사소송법의 동향과 평가, 북한법연구 제8호, (서울: 2005), p )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인터뷰, 2004년 12월 20일 (태국 방콕). 36) 2004년 5월과 2005년 7월에 수정 보충된 현행 형사소송법은 제151조 1항에서 총 예심기간을 2개월 이내로 한정하고, 2항에서는 리민옥 양과 같이 로동단련형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사건의 예심은 10일안으로 끝내야 하 며, 추가예심 기간도 재판소에서 예심기관으로 다시 돌려보낸 이후 7일 안으로 끝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 법은 제152조에서 제151조 1항의 기간에 예심을 끝낼 수 없는 복잡한 범죄사건의 가운데 부득이한 사유로 로동단련형을 줄 수 있는 범죄사건의 예심을 이 법 제151조 2항에 지적된 기간에 끝낼 수 없을 경우에 는 검사의 승인을 받아 1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53
54 이른바 사회적교양처분 은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새로이 도입한 제도는 아니며, 이미 1950년 3월 3일 형법이 처음 제정되었을 때에도 사회주의 하에서 사회적으로 위험한 행위를 한 미성년자에 대 하여 재판소의 판결로 정해지는 국가적 교양대책 으로 교정처분 을 두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할 필 요가 있다. 당시 형법은 제14조에서 사회적으로 위험한 행위를 한 14세 이상 18세 미만의 자에 대 하여서는 교정처분을 적용할 수 있다 고 규정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오늘날의 14~17세보다 구체적 인 연령을 더욱 높게 적용하고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후 1987년 2차 개정 형법에서는 제 11조에서 14살 이상 17살에 이르지 못한 자가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교양처분을 적용할 수 있다 고 명시함으로써 교정 을 교양 으로 용어를 바꾸었는데, 적용연령은 오히려 이전보다 1년을 줄였다 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1995년 4차 개정 형법은 제11조에서 범인이 17살이 넘더라도 개준성, 범 죄의 위험성 등을 감안하여 교양처분으로 갱생시킬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기소나 재판의 단 계에서 동일한 처분을 적용할 수 있다 고 보완하여 성인 전체로까지 범위가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 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측 공식문헌이나 대외선전용 자료에 경도된 일단의 연구자들 가운데에는 2004년 북한 형법을 기준으로 본다면 체제도전행위를 제외하면 비교적 형량이 무겁지 않게 되어 있으며 가능한 한 사회적 교양처분 으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며, 자유권의 침해에 있어서도 탈북자들의 극단적 증 언의 사실여부와 정도 그리고 범주에 대하여 좀 더 다각도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 거나, 빈곤과 아사자문제는 북한당국이 의도적으로 주민들을 그러한 상황으로 유도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빈 곤과 아사자문제를 가지고 인권침해 운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37) 는 몰지각한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법조문과 현실 간을 간극을 외면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감상적 주장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7월 수정 보충된 제8차 개정형법은 제66조에서 사회적교양처분을 받은자는 범죄를 저지르 지 않았던 자와 같이 인정한다 고 규정하고, 제67조에서 사회적교양처분을 받은 자에 대한 교양은 그가 속한 기관, 기업소, 단체 또는 거주하고 있는 리(읍, 구, 동)에서 책임진다 고 명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동법은 제27조에서 형벌의 종류 를 사형, 무기로동교화형, 유기로동교화형, 로동단련형, 선거권박탈형, 재산몰수형, 자격박탈형으로 명시적으로 열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신설된 사 회적교양처분은 용어 그대로 형벌이 아닌 교화 목적의 교양처분 정도로 그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미성년 아동을 주요 적용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교양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해당 아동의 소속 학교에 주어지고, 아동과 관련된 단체로 주로 8~13세 아동들이 입단하는 소년단 과 14~16세 아동들이 가입하는 청년동맹 의 지도원들에게도 권한이 주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은 오랜 조사를 통해 2004년 이전까지는 미성년 아동들에게 가해졌던 처벌도 강제노동, 감금, 굶김 등 사실상 형벌에 해당되는 가혹한 수준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2004년의 형법 및 형사소송법 의 대대적 개정 이후 현재까지 확보된 증언들을 놓고 볼 때는 실제로 탈북아동에 대한 물리적 직접적 고문 행위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완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징후가 나타났다. 2005년 이후부터 2006년까지의 상황은 국경지역 보위부에서 비교적 신속하게 조 사를 마치고, 보호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거나 동반 부모에게 형을 부과함으로써 부모로부터 분리 37) 김동한, 국제 정치의 희생 메뉴, 북한 인권, 정직한 시민, 2006년 7~8월호 (서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06). 54
55 시키기로 결정할 경우 아동을 도 구호소나 출신지역 구호소로 보내고, 주소나 소속학교가 확인될 경우 귀가시켜 학교측에서 처벌하도록 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이는 1998년 초 이전까지의 비교 적 온건했던 처리방식과 유사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평가 역시 여전히 잠정적일 수밖 에 없다. 전반적 개선징후에도 불구하고, 거의 같은 시기, 동일한 조사기관에서 아동에 대한 구타 행위 또한 있었던 것으로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사기관이나 조사관의 성향 차이 등에 따라 서도 아동에 대한 가혹행위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38) 2006년 다른 지방에 있던 어머니를 찾으러 가려다가 붙잡혀 회령 안전부(인민보안성)로 끌려갔다. 대기실 같은 방에 여러 명을 함께 가둬놓고 며칠 동안 조사하면서 군홧발로 걷어차고, 중국 가려고 한 거 아니냐 며 욕하고 때렸다. (김철민, 가명, 당시 15세, 2007년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탈북). 한편, 최근 확보된 2005년과 2006년 함경북도 회령시의 상황에 대한 여러 증언들은 학교에 위임된 교양책임이 교사들에 의한 무분별한 체벌이나 구타행위로 변질됨으로써, 아동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등 여러 문제들이 여전히 병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선 교육기관 에서 좋은 일하기, 학교 꾸리기 등의 명목으로 아동들에게 과다한 잡부금을 부과함으로 인해 아 동들이 절도 또는 목숨을 걸고 전선 절취를 시도하기도 하는 등 범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2006년 6월 평안남도 덕천시에서는 이러한 죄명으로 아동들이 공개재판을 받 고, 소년교화소 등 수감시설로 보내졌다는 증언이 확보되었다. 39) 요컨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인권개선 요구에 대해서 표면 적으로는 강한 반발과 전면적인 거부입장으로 일관해왔으나, 유엔과 국제사회의 관심과 요구가 증대 됨에 따라 제출을 지연해왔던 국가보고서를 제출하고, 새로운 인권규약에 가입하였으며, 국내법을 개정하기도 하는 동시에 단순탈북자에 대해서는 처벌 완화 방침을 내리기도 하는 등 긍정적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NGO의 지속적인 감시활동과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요구는 북한의 협조와 변화를 이 끌어내는데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Ⅳ. 북한 당국에 대한 권고사항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은 북한 당국이 중대한 인권침해인 고문을 근절하기 위해 필요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고려하고, 그 이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1. 형사사법규정에 명시된 인권보호 규정의 철저한 준수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에서 산하 각 지역 보위부, 안전부 조사과정에서 자행되는 고문행위와 집결소 또는 노동단련대(노동교양소) 등에서 연장된 형태로 실시되는 불법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도 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위해 중앙검찰소 검사들을 비롯하여 사법집행과정에 대한 책임기관과 관계요원들은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에 규정된 인권보호의 원칙과 관련절차들을 38) (사)북한인권시민연합 (사)아시아인권센터 공편, 북한 아동권 실태 보고서: 북한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제3/4 차 통합 정기보고서 에 대한 NGO 대체보고서 (서울: 생명과 인권, 2008), p ) 이영환 외, 전게서. 55
56 엄정하게 준수하고 있는지 수시로 검열을 실시하고, 문제점에 대한 시정과 제도적 보완조치를 취함 으로써 형사사법규정의 변화가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한다. 2. 고문피해조사 및 수감자들로부터의 직접적 의견 청취 특히 조사과정에서 피의자들이 고문과 폭행을 겪지 않았는지 피조사자들로부터 청취하고, 그러한 행위들이 보위원이나 안전원들의 개인적 부정축재를 위해 자행되고 있지 않은지 철저히 감시하여 적절한 개선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불법행위가 확인될 경우에는 해당기관 및 인원에 대한 엄정한 사법조치를 취해 법치를 실현해나갈 것을 권고한다. 3. 심각한 고문이 자행되는 지하감방의 폐쇄 북한 당국이 2002년 말부터 단순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처벌완화 방침을 취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는 점에 대하여 매우 환영한다. 하지만 회령시 보위부 등 각 지역 보위부에 비밀리에 운영되는 지하 감방의 존재와 그곳에서 자행되는 고문과 가혹행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 실에 대하여 우리는 깊이 우려하고 있다. 형사사법규정을 전혀 따르지 않고 완전하게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지하 감방을 없애고, 가혹하고 심각한 고문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할 것을 권고한다. 4. 수감환경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 보건, 영양, 식수, 난방상태를 비롯하여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조사 시설 내 열악한 수감환경 을 개선하기 위해 유엔 관련기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권고한다. 이를 위해 최대한 빠른 시기에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초청하여 북한 당국이 취해오 고 있는 일련의 개선노력들과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필요한 사항들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건설적 인 대화의 기회를 가질 것을 권고한다. 5. 유엔 고문방지협약에의 가입 및 관련규정 준수 아울러 아직까지 가입하고 있지 않은 고문방지협약(CAT)에 조속히 가입하여 국제적 규범을 국내법 에 반영하고 동 협약에 규정된 보고 및 이행절차를 준수해나감으로써 오늘날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건강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 할 것을 권고한다. 6. 아동에 대한 고문 및 구타근절을 위한 적극적 조치 2000년대 중반 이후 조사기관에서의 아동에 대한 고문 및 구타행위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조사기관이나 조사관의 성향 차이 등에 따라 가혹행위가 여전 히 계속되고 있는 경우도 있음에 주목하여, 아동에 대한 고문 및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이 완전히 근절될 수 있도록 충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7. 아동을 범죄로 이끄는 부당한 착취 관행 철폐 아동에 대한 사회적 교양처분 이 교사나 청년동맹 지도원들에 의한 체벌이나 과도한 구타행위로 변질됨으로써, 아동들이 학업을 중단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학교에서 부과하는 각종 물품이나 과다한 잡부금 56
57 으로 인해 아동들이 절도나 범죄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목하여, 파철, 파동, 파알루미늄 등 오늘날 북한의 현실상 아동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물품을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관행을 철폐할 것을 권고한다. 더불어 아동의 심리적 정서적 발달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개재판이나 공개처형 장면을 아동들이 목격하게 되는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한다. Ⅴ. 유엔에 대한 제안사항 1. 유엔 고문방지위원회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는 비상사태나 여하한 경우에도 효력이 유보 (reservations)되거나 중지(derogations), 또는 제한(permissible restrictions)될 수 없는 강행규범 (jus cogens)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고문방지협약(CAT)에 가입하고 있지 않다고 하여 이러한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만, 위원회 차원의 직접적인 의견표명은 북한의 강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을 비롯 하여 북한의 인권실태가 탈북자들의 과장된 증언에 따른 것이라서 믿을 수 없고, 서방국가들이 정 치적으로 악용하는 것 이라고 주장하는 북한 지지자들은 북한이 유엔고문방지협약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표명이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북한이 동 협 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직권조사(협약 제20조), 국가통보의 접수 및 심의 (제21조), 개인 청원의 접수 및 심의 (제22조) 등 협약 상 규정된 이행감시절차는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와 심의위원들은 중국 등 탈북자를 강제송환하고 있는 국 가들 가운데 CAT 위반사항이 없는지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해당 국가에 개선을 권고하며, 탈북자 보호에 우호적인 국가 및 NGO들과 다양한 협력방안을 마련하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인다. 구체적으로 탈북난민들의 경우 강제송환 될 경우 고문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 주목하 여 유엔난민기구(UNHCR)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강제송환 시 북한 내에서 겪 게 되는 고문피해의 실체를 규명하고 국제사회에 보고함으로써 주변국들로 하여금 탈북자들을 강 제송환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고문피해에 대한 사후조치 이전에 예방 차원에서 탈북자 보호에 우호적인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적극적인 기부를 요청하여 탈북자보호기금 조성을 독려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2. 유엔 고문특별보고관과 자의적구금에관한실무반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북한 당국에 직접적인 의견을 표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만프레드 노박 유엔 고문특별보고관과 자의적구금에관한실무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과 협력하여 북한 조사기관에서의 고문실태와 북한의 법과 실제 간의 괴리 문제 등에 관해 조사하 고, 우려를 표명하며, 권고의견을 제시해야 하며, 나아가 북한 당국에 현지방문조사 수용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견은 비팃 문타폰 특별보고관이 유엔인권이사회 등에 제출하는 보고서를 통 해서도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57
58 유엔 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유엔 인권위원회는 고문에 대한 조사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이미 1985년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제도를 만들었고(결의안 1985/33), 이는 1987년 고문 방지협약이 발효되기 전에 이루어진 조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0)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반 (Working Group on Arbitrary Detention) 역시 협약과는 별도로 1991년 설치되어 광범위한 활동 을 해오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고문특별보고관에게는 협약 가입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국가들에 대한 조사권한이 부여되어 있고, 북한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 보고관은 고유의 활동권 한인 긴급호소(Urgent Appeals) 41), 현지방문조사(Fact-finding Country Visits) 42), 유엔 인권이사회 및 유엔 총회로의 연례보고서 제출(Submitting Annual Reports on Activities, the Mandate and Method of Work)과 같은 세 가지 방법으로 43) 북한 아동들에 대한 고문 및 처벌, 소년재판 문제 등에 대해 개입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는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고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금지되고, 전시 및 비상사태나 여 하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할 강행규범(jus cogens) 내지 국제관습법이라는 인식공감대가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바, 협약 당사국이 아니라고 하여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강 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문 및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 여부가 단순히 신 체상에 직접적 물리적 위해를 가했는지의 문제로만 한정되지 않고, 가혹한 굶주림, 비위생적이거나 과밀한 수감환경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된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형법 및 형사소송법상의 인권보호 조항들이 아동들에 대해서도 완전히 적용될 수 있도록 법치(rule of law) 실현을 유도하 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북한인권개선을 촉구하는 유엔의 상징적 대리자로서의 존 재의의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정보들을 공정하고 균형 있게 평가하는 중재자, 정보 분석관으 로서의 중요성 또한 매우 크다. 따라서 개편된 유엔 인권이사회에서도 국가보고관제도를 유지, 강화시켜 나갈 것을 권고한다. 북한 인권시민연합은 동 보고관의 역할과 활동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며, 향후 열릴 유엔인권이사회 40) 당시 유엔 인권위원회는 협약이 빠른 시일 내에 정식 발효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동시에 보다 강화된 활동 을 희망하였고, 주제별 특별보고관들은 1982년부터 임명되어 많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Cees Flinterman and Catherine Henderson, "Special Human Rights Treaties", Raija Hanski and Markku Suksi (ed.), An Introduction to the International Protection of Human Rights: A Textbook, 2nd Edition (Turku/Åbo, Institute for Human Rights, Åbo Akademi University, 1999), p ) 긴급호소는 어떤 자가 체포되어 고문당할 우려가 있다는 믿을만한 정보를 접수할 경우, 해당국 정부에 대하여 피구금자의 신체적 정신적 완전성을 보장하라고 요청함으로써 고문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단기적 예방 조치로서, 이미 발생한 고문피해사례를 조사하여 해당국 정부에 유사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법제도 와 구금시설을 정비하도록 권고하는 사후적 예방조치와 구별된다. 42) 현지방문조사는 특별보고관이 조사 대상국 정부에 대하여 필요한 입법적 행정적 조치와 향후 계획에 대한 정보 를 요구할 수 있고, 그와 만나기를 희망하는 정부대표들과 면담하거나 임무범위 내에서 현장협의를 위한 방문 (On-site Consultation Visits)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방식은 일견 동 협약 선택의정서상에 규정 된 방문제도와 중복될 수 있으나, 특별보고관의 경우 해당국 정부의 초청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 선택 의정서에 따른 고문방지소위원회 위원들의 방문은 비준국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게 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43) (검색일: ). 58
59 와 유엔총회 등 여러 회의에서 북한의 고문실태에 대한 정보를 국제사회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보 고해주기를 요청한다. 4.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의 모든 회원국 유엔 인권이사회와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은 2009년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는 북한에 대한 제6차 보 편적 정례 인권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회의에서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북한의 고문 실 태에 대한 충분한 질의와 엄정한 평가, 개선권고를 해주기를 요청한다. 5.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와 청소년사법정의를 위한 기구간 패널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에 설립된 청소년사법정의를 위한 기구간 패널(Interagency Panel on Juvenile Justice: IPJJ)가 최근 이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주목되 는 변화이다. 2009년 1월 열렸던 북한의 제3 4차 통합 국가보고서에 대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심의도 매우 충실하게 이루어졌음에 주목하며, 이번 심의결과 및 권고사항 44) 을 바탕으로, 다음 심의에서도 그동 안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들에서 고의적으로 누락되거나 은폐되어 온 것으로 보이는 아동에 대한 고문 및 처벌실태에 관한 전반적 문제들을 계속 질의하고, 그 이행실태를 확인해주기 바란다. 44) 59
60 북한의 아동권리 실태 1) 요안나 호사냑 한국 (사)북한인권시민연합 국제협력팀장 한국의 북한인권시민연합이 2007년 10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수행한 본 조사의 목적은 아동권을 중심으로 최근 북한 내부의 인권실상과 변화추이를 살펴보고, 개선 또는 악화여부와 그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2001~2008년 사이에 북한을 떠난 50명의 탈북자 (아동청소년 40명, 성인 10명)를 대상으로2007년 10월부터 2008년 5월까지 8개월에 걸쳐 북한 아동들의 교육권, 보건권, 국제사회로부터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접근권, 아동착취 및 소년병 문제 등에 관한 심층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번 조사는 2001년 이후의 상황에 주목, 대상지역을 도 - 시 군 단위로 분류하여 자강도를 제외한 8/9개 도, 13/27개 시, 15/148개 군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시 군 기준으로 하면 총 175개 지역 중 28개 지역의 상황을 포괄하고 있다. 2007년의 상황과 관련하여 이번 조사에 반영되지 못한 지역들의 실태는 그에 앞선 시기나 다른 지역들의 상황에 비추어 대략적인 추정은 할 수 있으나, 아직 증언이 충분하게 확보되지 않은 관계로 이 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고자 할 경우 주의를 요한다. 배경사항: 아동 가족환경과 관련된 차별 정책 첫 번째 문제인 차별정책은 일반적인 현상이나 각각의 구체적인 문제에 서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증언자들은 평양, 특권 지역의 아이들과 기타 교외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심각한 차이점을 나타낸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교육분야에서 북한 당국의 차별 없는 무료의무교육제 는 모든 아동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뚜렷한 비평준화, 영재우선교육 정책을 유지하여 왔다. 그 결과 외국어학원, 예술학원, 체육학원 등 다양한 분야의 영재학교들이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이 정책들은 다른 국가에서 영재 아동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에서는 단지 아동이 재능과 적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그러한 학교는 다니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직업과 당성, 가계의 역사 등 아동의 가족 배경이 필수적인 선발요건이 된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부터는 1) 본 발표문은 2008년 2월 20일 (사)북한인권시민연합이 간행한 북한 아동권 실태보고서, 왕이라불리는 아이들 의 요약본이다. 60
61 출신성분과 함께 부모의 재력( 財 力 ) 또는 뇌물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에 따라서도 중요하게 좌우되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영재 학교에 다니는 좋은 배경을 가진 아이들은 최상의 교육 여건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교육 자료의 접근성, 인도 지원, 건강 보호에서 우선권이 부여된다. 그들은 또한 다른 지방의 아이들이 해야 하는 군복무와 재정 및 노동 책임을 면제받으며 대학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받는다. 이러한 차별 정책은 다음 세부 사항에서 다룰 것이다. 사안별 문제점 국제사회로부터 주의를 요하는 가장 긴급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교육 체계의 문제점 1) 과도한 재정 부담 북한의 아동 착취는 아주 체계적이며 북한 당국의 경제난과 맞물려 있다. 정부 당국에 의해 형성된 재정부담은 학교 당국과 교사에 의해 아동과 그들의 부모들에게 전해진다. 국가로 인한 재정부담은 다양하며 대개 북한의 부족한 외화 재고를 지원하는 다양한 원자재의 수집과 관련되어 있다. 북한은 교육체계가 무료의무교육제이며 재정적 또는 물질적 부담은 완곡한 레벨인 숙제 로 주어진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북한의 교육체계는 무료가 아니며, 물질적 또는 재정적 부과금을 내지 못하는 학생들은 차별당하고 종종 학업을 중단한다. 게다가 북한은 그 교육체계가 무료라는 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물질적재정적 요구사항을 통제할 공식 법률이 없고, 이러한 요구사항은 학교 당국이나 교사들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다. 또한 그 경계선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학교 당국이나 교사들이 국가 경제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아동을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의심을 종종 한다. 아동 착취의 첫 번째 유형은 아동들에게 외화벌이 명목으로 상당량의 도토리, 잣, 약초 등을 산에서 채집하여 내도록 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못 구하는 학생들은 그들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콩, 옥수수 같은 식량이나 돈으로라도 대신 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로, 학교 환경 개선 및 운영, 교육 등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을 학생들에게 부과하거나 구입명목으로 돈을 내도록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 번째 유형을 겨울 학교난방 명목으로 어린 아동들도 산에서 나무를 모아서 내도록 하거나, 중학생들의 경우에는 심지어 도끼와 톱을 들고 산에 올라가 트럭에 실을 만큼 상당히 큰 나무를 벌목하도록 시키는 방식이다. 아동들에게는 위험한 일인 만큼 종종 사고도 발생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겨울에 학교 건물에 충분한 난방을 하도록 권고하였기 때문에 이 문제는 61
62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네 번째 유형은 자원부족으로 인해 재활용을 한다 는 명분으로 좋은 일하기 라는 미명 아래 감당하기 힘든 양의 파철, 파동, 파고무 등을 과제물로 내도록 하는 문제이다. 할당량이나 그에 맞는 재정적 부담을 제공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교사에 의해 차별당하고 청년 단체에 가입하지 못한다. 이러한 차별 때문에 아이들은 재료를 모으기 위해 돈을 벌어 사기도 하고 훔치는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훔치는 것은 가끔 치명적인 사고를 낳는 전기선을 자르는 등의 위험한 일로 이어진다. 만약 아이들이 부족한 경제적 사정으로 모든 잡부금을 내지 못하면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최근 증가하는 과제의 부담은 아이들의 낮은 출석률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2) 학교를 매개로 한 아동 노동 착취 두 번째는 노동과 결합한 무료의무교육제 전통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교육과 학생들의 의욕 사기 문제점들이다. 북한에서 영양 결핍이 근절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아이들은 추가적인 육체적 부담으로 고통 받고 있다. 북한에서 노동 최소 연령은 16세로 정의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 대표들이 과거 유엔 아동권리 위원회에 아동 노동은 근절되었다고 확언한 것과 달리, 2) 이번 조사에서는 16세 이하 아동이 학교를 매개로1년 내내 국유 농장에서 농업 노동력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을 발견하였다. 보통 아이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11세) 일하기 시작하지만 노동 동원 시 최소 연령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 북쪽 가장 빈곤한 지역 (특히 함경북도 온성, 경원) 에서 아이들은 8-9 세부터 노동에 동원된다. 그러나 지방행정 및 감독기관들이 많이 위치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소학교 학생들의 노동력 동원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동은 어린 아이들의 풀잡기(김매기), 옥수수 키우기, 돌 걸러내기에서부터 중학교 학생의 모심기와 가을 추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의 노동은 오후에 4-5시간 이루어진다. 그러나 육체적인 노동은 특수 또는 최상의 학교에 다니는 사회정치적 특권 배경을 가진 아이들과 평양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강요되지 않는다. 노동은 1년 내내 아이들에게 토끼 기르기, 토끼굴 찾기 등 다른 숙제 가 주어지지만 그들은 또한 건축, 우물 파기, 철로 보강과 도로 포장에도 동원된다. 또 다른 주의를 요하는 문제는 아이들이 노동력에 동원되면서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농업에서 가장 바쁜 계절인 봄과 가을에는 대부분의 학교 수업은 취소되어 특권 학교와 평양 지역을 제외한 아이들이 국유 농장에서 일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노동이 집중되는 기간에는 2) 북한은 2003년 제출한 북한의 제2차 정기보고서에서도 법과 실행 모두에서 아동 노동이 오랫동안 근절되어왔다 (216항) 라고 밝혔다. 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Second periodic reports of States parties due in 1997: Democratic People s Republic of Korea (May 16, 2003), CRC/C/65/Add.24 (November 5, 2003) 현재 아동권리위원회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제3 차 통합 정기보고서에서도 로동을 할 나이에 이르지 못 한 미성인에게 로동을 시킨자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형법 191조) 고 언급하며 헌법 과 형 법 의 이 같은 조항이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239항) 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 op. cit. (CRC/C/PRK/4). 62
63 아이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단체 생활을 하면서 엄격한 명령 하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최대 20-30시간씩 일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한에서 아동 노동 착취가 보편화되고 과도한 관행으로 되면서 아이들이 제도적으로 국가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사에 의해서도 악용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식량난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학생들의 결석률 못지 않게 교사들의 결근 또는 무단이탈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증언자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도 교사들의 무단이탈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2000년 전후부터 출근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교사들에게 별도의 땅을 나눠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3) 일단은 아동들의 교육권을 개선하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이 교사의 개인 밭이나 집에서도 일해야 하는 노동 학대로 이어졌다. 교사나 학교 당국은 또한 아이들을 수업 받아야 할 시간에 개인 논밭에 노동력으로 고용하고 돈을 챙기는 사취 형태도 나타났다. 3) 높은 중퇴 및 문맹률 문제 북한 당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는 종종 학교 출석률 감소의 원인을 식량 부족으로 보아왔다. 이번 조사에서도 실제로 1990년대 말까지 아동들은 대부분 영양결핍과 재정적 고난의 문제로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했던 40명의 아동들을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인터뷰한 결과 함경도와 다른 빈곤 지역에서 중퇴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노력은 주로 아동들이 학교 가도록 유도하기 위한 영양식과 학교 자원의 제공에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2000년 초 중반부터 학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부과된 과도한 잡부금이 낮은 출석률의 또 다른 원인이 되었다. 아동들은 또한 학교교과과정의 일부로, 그리고 교사와 학교 당국의 사적인 소득으로 노동착취를 당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은 아동과 부모들이 학교 체계를 불신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학생들의 단순한 수업 중단이 아니라 많은 수의 학생들이 현재 교육 체계의 환멸을 느끼면서 교육을 계속해서 받는 것을 거부한 것이었다. 이러한 걱정스러운 현상은 많은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사회 현상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4) 그 결과 국제사회는 북한 아동을 위한 식량과 학교 자원 제공이 출석률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못한다. 북한 교육 정책과 학교 현실에 더 기본적인 구조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3) 이와 관련하여 1992년에 故 김일성 주석이 했다는 다음의 연설 내용을 읽어보면, 북한 당국이 교사들의 무단이탈 을 막기 위해 토지를 나눠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사회에서 개인주의, 리기주의 는 자본주의를 조장시키는 병균과 같습니다. 개인주의, 리기주의가 자라나면 자본주의가 되살아나게 됩니다. 지금 어떤 나라들에서는 사람들이 개인리기주의에 물젖어 돈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되여가고있으며 교원들도 수업이 끝 나면 돈벌이를 위하여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들에 가보고 온 우리 일군들은 한결같이 우 리 나라가 제일이고 우리 당 정책이 가장 정당하다고 하고있습니다. 사람이 돈에 맛을 들이면 혁명성을 발휘할수 없고 혁명적의리도 지킬수 없으며 나중에는 나라도 팔아먹게 됩니다. 김일성, 함경북도당위원회앞에 나서는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 함경북도당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한 연설(1992년 9월 4일), 김일성저작집, 제 43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4)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과다한 잡부금 요구, 학교를 매개로 한 관행적 노동착취 등으로 인한 북한 아동들의 학업 중단 및 포기실태에 관한 증언들은 함경북도(온성군, 경원군, 경흥군, 회령시, 무산군, 연사군, 청진시), 함경남도 (함흥시, 허천군), 양강도(혜산시), 평안북도(구장군), 평안남도(평원군, 남포시), 황해북도(평산군), 황해남도(신원 군), 강원도(문천시) 등 조사대상지역의 거의 모든 지역에 걸쳐 고르게 나타났다. 63
64 따라서 평양과 약간의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북한 청소년의 문맹률이 증가하고 전반적인 학업 성취율이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2000년 이후 한국에 정착한 젊은 탈북자들을 위한 사립 대안학교에서도 보고된 바 있다. 북한에서 중등 교육을 받은 많은 십대들은 심지어 어떻게 한글을 읽고 쓰는지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젊은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충분하게 교육받지 못한 점은 한국에서 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보편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과거와는 달리 학교 당국에 의해 낮은 출석률 문제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학교를 결석하면 교사들은 학우들이 그들을 방문하여 학교에 다시 나올 것을 격려하도록 하였다. 만약 교사들이 일하지 않으면 직접 결석한 학생의 가족을 찾아가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설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이 학교에 가기를 원치 않거나 그 부모들이 원치 않으면 교사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또한 북한 당국이 보여주는 거의 100%의 입학률과 졸업률 통계에 대한 출처와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이번 조사기간 동안 학교에 결석하거나 수업에 빠지는 아동들도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이 보장되고 심지어 학교에 출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졸업한다는 것을 알았다. 북한 당국은 현실과는 달리 문서상에서만 높은 입학률과 졸업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 진학 및 직업선택 자유 제한 증언자들에 따르면 특수 직업전문학교 입학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부모님의 직업에 달렸으며 당국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젊은 증언자들은 이를 재능, 능력, 학업 성취도에 상관없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심각하게 불공평한 관행으로 보았다. 5) 교과서의 차별적 분배 북한의 경제 부족은 당연히 학교 교과서의 질과 보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장 힘든 시기였던 1996년에서 1999년 동안 교과서를 아이들이 나누어 쓰도록 보급되었다. 종이와 인쇄의 질이 낮아서 종종 글씨가 안 보이고 아예 없는 과목들도 많았다. 그러나 증언자에 따르면 이러한 심각한 상황은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교육에 쓰이는 교과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국제사회는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최소 1,150 톤의 인쇄용지와 약 1천9백만 교과서를 보급하였다. 한국 단체에서도 추가로 2002년에서 2007년 사이 최소 1,795 톤의 인쇄용지를 제공하였다. 시민연합은 1999년과 2008년 사이 북한의 28 지역 출신 40명의 아동과 10명의 성인들을 인터뷰한 결과, 1999년 새 교과서가 보급된 지역은 양강도 혜산시였다. 2000년에는 함경남도, 몇 년 후에는 평안북도, 평안남도, 강원도, 함경북도에 새 교과서가 보급되었다. 특히 영어 교과서의 부족과 그에 따른 뇌물로 인한 교과서의 불공정 지급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새 교과서의 보급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증언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10년 이상의 경제 위기는 사회의 많은 불평등을 야기시켰고, 이는 사회 계층과 계급 사이의 갈등을 야기시켰다.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교사에게 뇌물을 주거나 잡부금을 제때 내는 것이 좋은 학생이 되는 것이라는 탈북자들의 계속되는 증언으로 보아 이러한 불평등과 64
65 갈등의 상황은 심각하게 학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증언자들이 묘사한 것에서 나타난다. 국제 교과서 원조가 시작된 1999년과 2000년쯤 북한 학교 당국이 그들의 무료 교과서 분배 정책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몇몇 증언자들은 1990년대 말까지만 무료로 교과서를 받았고 그 후에는 새 교과서를 사야 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는 2005년 이후 장마당에서도 많이 팔렸다. 지방 학교와 영재 학교의 차이점을 경험했던 아이들은 영재 학교 학생들은 무료로 교과서와 학용품을 받은 반면 지방 학생들은 시장에서 사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전에 언급했던 차별정책과 관련하여 주목될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의 목적은 모든 수혜자들이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심각한 지원의 불공정 지급과 다른 불법적인 잡부금 강요 관행에 대해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북한 교육 당국은 질책 받아야 한다. 6) 선물 정치 역사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선물정치는 북한에서도 오랜 관례로 자리 잡았다. 북한 정부는 김일성 생일 (4월 15일), 김정일 생일 (2월 16일) 등 각종 국경일마다 수시로 선물을 돌려 특권층이나 핵심계층, 그리고 탁아소, 유치원, 소학교 등에 다니는 아동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이를 통해 지도자의 영도력 을 과시하고 주민들로 하여금 장군님의 특별한 은혜 에 감사하도록 만듦으로써 국가와 체제에 순종하도록 하고, 오랜 경제난으로 인한 사회적 동요를 막는다. 흔히 이러한 선물은 그나마 무상으로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선물을 나눠줄 때조차 일부 지역에서는 운송비 등의 명목으로 사실상 선물값 을 받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인도적 지원 전달의 지속적인 문제점들 국제 인도 지원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는지의 효과성에 대한 의구심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많은 정부와 국제 기구 및 시민사회도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 원조가 분배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식량 원조는 아동의 적절한 발달에 필수적이고 대부분의 국제 식량 원조가 이렇게 취약한 집단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증언자들을 통해 과거의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주의 깊게 조사하였다. 우리는 식량 원조가 내려지고 원조 접근성이 좀더 쉬운 항구지역을 포함한 북한 전 지역에서 무료 곡식, 특히 쌀을 받았다고 증언한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식량 원조가 해외로부터 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어본 증언자들은 거의 없었으며, 이들 대다수가 대한민국, 유엔, 적십자 상징이 찍혀있는 곡물 자루가 장마당에서 팔리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한 소녀를 제외하고 북한 주민들 아무도 대한민국 이 남한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아이들 또한 유엔 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65
66 김영삼 정부 말기 이후부터 북한에 식량 원조를 해온 한국은 햇볕 정책 또는 참여 정책을 고수 해온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동안 2,550,000 톤의 쌀과 200,000 톤의 옥수수를 포함하여 2007년까지 약 1조원 (약 10억 달러)의 식량을 제공했다. 5) 남한의 식량 원조 분배는 실제로 감시되지 않았고 다양한 뉴스 기사와 성인들의 증언에서는 식량 원조가 북한 군대에 우선적으로 제공되며, 그 나머지는 시장에서 군대나 당원들에게 팔리거나 공공 분배 정책을 통해 적은 양이 시장 가격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분배된다고 언급했다. 북한 내 아동과 임산부들을 위한 육류 및 생선류의 경우, 이번 조사에서 2001년에서 2007년 사이 고기나 생선이 담긴 통조림 캔을 보았거나 직접 받아보았다는 증언자는 50명 중 한 명도 없었다. 비교적 관련성이 높은 증언으로는 2001년~2002년 사이에 강원도 문천시의 탁아소와 유치원을 대상으로 분배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엔 요원들이 방문하였다 는 1건의 증언이 있었다. 이를 증언한 소년은 유엔 요원들이 많은 사람들 중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통조림 캔 형태의 지원들은 장기보관과 수송이 용이하여 주로 평양과 같은 지역들이나 특권층 또는 핵심계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탁아소, 유치원, 특별병원, 전국 각지의 영재학교, 축구 등 특별한 운동재능을 가진 아동들을 양성하는 구락부, 군대 등으로 집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스위스와 독일 정부에 의해 제공된 냉동 쇠고기 형태의 육류 지원은 2001년과 2002년 사이 아동에게 실제로 전달되었는지 비교 검토한 결과, 50명의 증언자 중 2명이 냉동 쇠고기를 받았으며, 이는 독일 지원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50명 중 2 증언자는 냉동 쇠고기를 상점에서 사고 문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모든 냉동 쇠고기를 받았다는 11명 (22%) 모두 한번만 받았거나 200~700 그램의 양을 받았다. 그러나 이를 받은 성인들은 이보다 더 받았다는 허위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고 아이들은 증언했다. 대부분의 지원은 유엔의 모니터링 개시 전 뒤늦게 분배되었다. 대개 지원은 특히 함경북도에서 급하게 분배되었으며, 이를 받은 사람들은 국제 원조 요원의 인터뷰에 대비해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상점에서 원조받은 냉동 쇠고기를 사거나 특별한 국경일에 받았다고 한다. 시민연합은 또한 이번 조사에서 북한 아동들이 유엔과자 라고 불러온 영양빵, 고영양 비스킷, 콩우유 등의 영양식 지원사업도 파악해보았다. 1997년과 2005년 사이 많은 NGO들이 북한에 빵공장을 설립하였지만, 이 중 대부분이 평양시와 라선시 등과 같은 특별 구역에 집중되었다. 고영양비스킷의 경우, 분배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1990년대 말까지 북한 당국에 의한 분배와 함께 유엔 요원들에 의한 분배이다. 유엔 요원들의 통제 하에 식량이 분배될 때에는 비스킷이 학교에 적절하게 제공되었다. 식량 원조가 들어오는 항구와 가까이 있는 강원도가 이러한 경우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평안남도, 2개의 항구와 가까운 지역) 만약 유엔 요원들에 의해 비스킷이 직접 분배되지 않을 경우 오직 유치원 아이들에게만 무상으로 주어졌다고 한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은 무상 원조를 받기 위해 교사들에게 돈을 내거나 시장에서 사야 했다. 함경북도의 유치원 아이들은 원조를 받았지만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유엔비스킷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5) 북한에 1995년 이후 쌀 255만t 지원, 어떻게 분배되는지엔 사실상 까막눈, <조선일보> (2008년 2월 14일). 66
67 두 번째 단계에서, 북한 당국은 세계식량계획 (WFP)과 기타 NGO와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여 전국 각지의 북한 식료품공장들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이 공장들이 함경북도, 함경남도, 강원도, 평안북도, 양강도에 위치해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 비스킷이 아동에게 무료로 제공되지 않고 시장에서 팔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추세는 세계식량계획이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공장들에 재료와 제조법을 제공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부터 더 심각해졌다. 아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러한 유엔 비스킷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지자, 공장은 비스킷을 시장이나 국유 상점에서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패는 학교에서도 일어나, 교사나 교장들이 아이들에게 비스킷을 나누어주는 대신 시장에 팔았다고 한다. 한편, 콩우유의 분배 실태에 대해서는 영양빵, 비스킷에 비해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은 아니었으나, 관련된 증언들을 추려보면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2000년 전까지 아이들은 콩우유를 무상으로 받았지만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우유와 원료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배는 그 이후 끊겼다고 한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영양빵 및 비스킷 지원사업은 단순히 북한 아동들의 영양상태 개선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재개 및 출석률 향상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안타깝게도 북한 당국과 일부 학교들이 국제사회의 이러한 선의와 신뢰를 상당히 악용해온 측면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 같은 국경일에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선물구매에는 국가 예산의 1% 정도가 소요되는데, 국제사회로부터의 원조물품들이 이러한 일에 전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점도 언급될 필요가 있다. 6) 더욱이 국제사회로부터 종이 원조 후의 학교 새 교과서 무료 배급은 2000년 이후 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나누어 주었다. 이는 무료 국제 원조의 개념을 위반하는 것이며 이러한 문제점들은 이후 교육 체계에 더 자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3. 기초의료복지와 건강문제실태 1) 부패한 의료진에 의한 기초의료복지 접근 방해 이번 조사에서 발견한 가장 큰 문제점은, 거의 국제사회의 원조로 제공되는 의료 물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공되기보다는 장마당에서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모든 증언자들은 실제로 무상치료제 지원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로, 돈을 내고 의료 지원을 받는 문제는 평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이들은 무료로 의료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의약품이나 치료를 돈을 내고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매우 높은 사망률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사망률은 의약품의 부족뿐만 아니라 장마당이나 병원에서 물자의 부족 때문에 나타난다. 오직 결핵, 6) 김정일 명절선물, 2만 명에 2천만 달러, 남한지원 물품도 '김정일 선물'로 둔갑, 간부에게 하사, <데일리엔케이> (2005년 10월 14일). 67
68 콜레라, 장티푸스 예방 접종 부문에서는 비교적 양호하게 가동되었다. 예방접종은 대개 학교나 때때로 마을에서 나타났다. 이는 가장 높은 이주율로 인한 다양하고 높은 전염병이 있는 국경 지역인 함경북도와 태풍 후의 잦은 홍수로 콜레라, 장티푸스 같은 음료수 매개의 전염병이 많은 강원도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가동되었다. 함경북도와 평안남도 같은 항구도시가 있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에서는 예방접종이 잘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조사되었다. 그러나 결핵, 장티푸스와 같은 북한에서 흔한 질병이 있을 경우, 질병에 걸린 사람은 각자 의료품을 사거나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단 한 건의 결핵도 제대로 치료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탈북자들은 대부분의 병원에는 의료품이 없으며, 만약 있다고 해도 연줄이 있거나 의사에게 뇌물을 줄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했다고 증언했다. 간단한 수술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감기, 편도선염, 폐렴의 경우, 의사는 환자들이 시장에서 약을 사도록 처방전을 준다. 만약 주사가 필요하면 환자가 직접 약품을 가져와야 주사를 놓는다. 많은 수의 의사와 의료진들은 장마당에서 증가하는 약품 시장과 관련되어 있다. 시장에서 의약품을 파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의료진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문제는 시장의 의약품이 다양한 국제 의료 원조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중국과 다른 곳에서 온다는 것이다. 의료품은 처방전 없이도 가능해서 아동과 다른 의료적 위험이 따른다. 이 문제는 국제법적으로 취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국제 보건 관련 기구에 의해 감시되어야 한다. 2)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동들 북한은 정부가 아동과 군대 등 북한 사람들을 마약 생산 및 수출에 동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북한은 마약 근절을 위한 국제 노력에의 동참을 보임으로써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려 노력한다. 그러나 남한과 다른 국가의 정보부 보고에 의하면 북한이 상당한 분량의 마약의 생산과 확산에 책임이 있다. 1980년대 말에는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경제난 및 식량난과 1990년대 중반의 잇단 자연재해 등에 직면하게 되자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 관리처인 당중앙위원회 '39호실' 주관 하에 국가적 차원의 마약사업을 본격화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7) 199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아편농장은 백도라지 농장 이라는 이름 아래, 위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중요한 문제는 아편을 재배하고 수집하기 위하여 아동들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가, 군대조직, 학교, 교사 모두가 이 심각한 문제에 연관되어 있다. 2004년 양귀비 재배 사업이 증가하면서 중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양귀비 진액 수집에 동원되고 있다. 아이들은 외화 벌이를 위해 약초 재배를 한다고 들었다고 한다. 마약이 돈이 되는 사업이므로 어른들은 재배하는 동안 훔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아주 어린 학생들은 마약에 무지해서 훔칠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마약을 기르는 7) 마약사업의 목적은 경제난 타개 외에 김정일 위원장과 당의 비자금, 무기구매 및 해외공관 운영비 조성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였던 황장엽씨는 보안을 위해 '백 도라지 농장'이라고 불리던 양귀비재배농장은 39호실 직속의 실질적인 외화벌이 전담부서인 '5호 관리부'에서 맡았 는데, 이 부서는 각 시 군 내의 기관 기업소 당조직을 동원하여 별도의 외화벌이를 하는 '충성의 당자금' 조달기관 이라고 증언하였고, 다른 여러 명의 탈북자들도 동일한 증언을 해왔다. 北 마약장사, 매년 1천만 달러 넘는다, <데일리엔케이> (2005년 4월 6일). 68
69 과정에서 아이들을 많이 감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편 양귀비 재배에 이들을 동원한다. 마약은 북한의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쌓은 상류 계층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많이 퍼져 있다. 의료품의 부족으로 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아편과 같은 의약 대체품이라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는 마약의 보급이 주로 성인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왔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마약의 범죄 범위가 아이들에까지도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 아동 개인 권리와 자유의 침해 1) 가족 환경 1940년대 말 북한 건국 이후 반세기 동안 관행되어 온 가족 배경과 사회 출신으로 인한 차별은 정부에 의한 가장 전형적인 인권 침해로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부터 북한 정부는 계속해서 탈북하거나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남아있는 가족이나 아동을 감시하고 있으며 이는 분명한 아동 사생활의 침해이다. 북한 당국은 비밀 요원으로 하여금그들의 집을 밤낮으로 배회하거나 영장 없이 집을 뒤지거나 마을의 주민이나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의심되는 행동을 하면 보고하라고 하는 등 이들을 감시한다고 증언했다. 어떤 아이들은 그들의 가족이 탈북 했는지 아닌지 조사하는 당국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집을 떠나 먼 산에 은신하거나 다른 지역의 친척들 집에 머물러야 한다. 또 어떤 아이들은 그들의 가족이 탈북 또는 반사회주의적 행동으로 먼 산으로 추방당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자의가 아닌 부모와의 이별은 흔히 나타나는 문제이다. 북한의 심각한 경제 사정으로 부모들은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돈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혼자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부모가 없거나, 국가에 의해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분리되었거나, 주소가 불명하거나, 신상기록이 말소된 경우에 보내지는 구호소 의 경우, 보호자 없는 아동에 대한 보호 목적과는 달리 열악한 여건과 교육으로부터의 배제, 노동 착취 등으로 인해 사실상 수감시설화되고 있는 문제는 여전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 청소년사법정의와 고문 사용 북한 국가 보고서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 또는 인민보안성 또는 다양한 수용소 시설에서 국가 조사 기관에 의한 아동의 고문과 학대 상황을 전적으로 피하고 있다. 북한의 고문 상황에 초점을 맞춘 북한인권시민연합 2007년 보고서에서, 20명의 젊은 증언자들 중 5명의 아이들이 1998년과 2003년 사이 고문 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탈북한 적이 있거나 강제 송환된 사람들에 대한 고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몇몇 아이들이 한번도 정치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어도 그 죄를 고백하도록 고문 당하고 경범죄를 저질러도 잔인한 고문을 당한 사례들을 파악하였다. 8) 69
70 이번 보고서는 관련 법률이 개정 된 후인 2005년과 2007년 사이 상황에 집중하였다. 그 결과 탈북을 시도했던 아동의 신체적 또는 직접적 고문은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후 완화된 것으로 보였다. 이번 조사에서는 탈북 후 강제 송환된 아이들이 국가안전보위부 또는 인민보안성에 의해 더 짧은 기간 또는 단순화된 조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요원들은 조사를 대부분 3일 안에 끝냈으며 이때 아이들은 진술하도록 요구 받았다. 많은 경우 형법에 명시된 것처럼, 아이들은 학교나 다른 아동 보호 시설에 보내져 처벌받기 보다는 사회적 교양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2005년과 2006년 함경북도의 사회적 교양처분은 교사들이 때리거나 다른 체벌을 사용했던 것으로 두 건이 조사되었다. 사회적 교양처분을 받은 아이들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또한 함경도의 조사 요원들은 아이들을 때리고 평안남도의 한 무리의 아이들은 전기선을 훔친 죄로 체포 당하였다. 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아동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11살의 아동은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북한 당국은 청소년 범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이를 공개처형으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강제로 이를 지켜보게 했다. 이번 조사나 다른 보고서에서 이러한 아동에 대한 부당한 처벌과 관련한 법적 구제 또는 보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아동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한 결과이다. 이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제37조가 규정하고 있는 법률적, 기타 적절한 구조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 나 법원 혹은 독립적이고 공정한 소관당국에 자신이 당하고 있는 자유박탈의 적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 가 여전히 아동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군대 징집 아동을 군사조직에 동원하는 것과 아주 어린 나이에 이들을 징집하는 것은 소년병 전문가들에 의해 주의 깊게 다루어져야 한다. 북한은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한 모든 세 차례의 국가보고서에서 이와 관련하여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엔이 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개선권고를 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로 인해, 자원입대인가, 의무징집인가 하는 형식 및 절차상의 문제나 법적 최소연령에 관한 문제 수준에서만 대략적으로 거론될 뿐, 실제 입영훈련이나 교내 훈련 등에서 아동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지,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16-17세가 되면 연초에 징집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3월에 열리는 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많은 아이들은 영양 부족과 신체적심리적 학대로 군대 생활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 결과 탈영병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북한 전문가들이 동의하듯이, 많은 징집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며 아이들은 이에 대해 군대에 가고 싶은지 가고 싶지 않은지 의견을 낼 수 없다. 붉은청년근위대 는 북한의 가장 대표적인 예비전력이며 14에서 16세 (중학교 4-6학년)의 남녀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어 사실상 아동군사조직에 해당된다. 붉은 8) 이영환, 고문의 공화국, 북한 (서울: 북한인권시민연합, 2007); 동 보고서는 년 사이에 탈북한 성인 및 아동 20명을 대상으로 7개월 동안 실시한 심층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주로 탈북 후 강제송환될 경우에 겪는 고문실태에 집중하였다. 당시 조사에서 아동에 대한 고문실태를 증언한 5명의 아동들의 체험기간은 1998년 초부터 2003년 11월까지의 상황이었다. 즉, 2004년 4 5월에 취해진 북한의 형법 및 형사소송 법 개정 이후의 실제 개선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이번 조사에서는 법 개정 이후 상황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이전의 기간에 대해서도 보충조사를 실시하였다. 70
71 청년근위대 는 전시에는 인민무력부의 지휘하에 즉시동원이 가능하도록 학교 및 지역 단위에 따라 중대 및 대대급으로 편성되어 있고, 상당 시간의 군사훈련도 의무적으로 부과된다. 1970년 9월 12일 故 김 일성 주석의 지시로 창설된 붉은청년근위대를 북한 당국은 항일혁명투쟁시기의 청년의용군과 소년선봉 대의 영광스런 계승자 로 추켜 세우고 있다. 2004년 소년병금지연합 도 북한의 붉은청년근위대 규모는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아동들이 학교 및 훈련기관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 다 고 보고한 바 있다. 9) 아동들은 군수품 조달에도 동원된다. 북한 당국은 북한의 주요 매체들을 통해 군대에 대한 원호사업 의 중요성을 수시로 강조해왔다. 원호품목은 장병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 필수품에서 토끼, 염소 등 가축과 부대내 양어장용 메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동들에게 상당한 양의 파철, 파동, 파알루미늄, 파고무 등을 내도록 하는 이유는 자원을 재활용하여 군장비를 확충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아동들에게 어릴 때부터 국가와 군대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학교에 다니는 아동들에게는 좋은일하기 운동 이라는 미명 아래 장갑차, 탱크 등 군장비 생산지원의 목적으로 자재를 지원하는 일도 부과된다. 9) Coalition to Stop the Use of Child Soldiers, Child Soldier Global Report 2004 (London, November 2004), 소년 병금지연합(CSUCS) 웹사이트 (검색일 2008년 8월 1일). 71
72 일본 내 북한난민들: "탈북귀환난민" 문제의 내막( 內 幕 ) 테사 모리스 수즈키 호주 국립대학교 이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글이다. 최소한, 여러분이 공식통계를 믿는 한, 그들은 존 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통계는 1995~2007년 사이에 조선민주 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으로부터 단 2명만이 일본에 망명을 신청하였고, 모두 거부되었음을 보 여주고 있다. 1) 일본 이민국의 보고서들과 통계자료들에는 북한으로부터의 이주자나 난민, 기타 인 원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래, 거의 2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 국경을 건너 일본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받아들여져 왔다. 2) 이들은 일본으로의 어 떠한 정상적 이주민의 범주에도 들어맞지 않고, 국가적 차원이나 지방 차원에서도 이들의 재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틀은 전무하다. 북한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머지않아 늘 어날 것이 거의 확실한데, 수천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이러한 이유 에서, 이들에 대한 침묵과 명백한 정책적 진공( 眞 空 ) 상태는 문제가 되고 있다. 북송운동과 그 결과들 일본 내 북한난민들은 흔히 다포꾸 키코쿠샤(dappoku kikokusha, 대체로 탈북귀환자 를 의미, 이 하 귀환난민(returnee-refugees) )라고 불리는데, 이들의 사연은 정확히 반세기를 거슬러 오른다. 1959년 4월 13일부터 일본적십자회와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련의 회담을 갖 기 시작하였는데, 이로부터 소위 송환(repatriation), 보다 정확하게는 일본으로부터 북한으로의 조선인 대규모 이주(mass migration) 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1차 송환선박은 1959년 12월 니가타 항으로부터 북한을 향해 떠났고, 이로부터 1984년에 이르러 대규모 이주가 완료될 때까지 9만3천340명이 일본을 떠나 북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공식적 수사( 修 辭 )로는 북한으로 귀국한(returned) 것으로 미화되었지만, 이러한 송환 계획(repatriation project) 아래, 북한으로 향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한반도의 남쪽 지역 출신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식민치하에서 일 본으로 이주하거나 강제로 끌려간 경우였고, 상당한 숫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6천명의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상당수는 일본 내 조선인들과 결혼 1) UNHCR Statistical Online Population Database, 2) 어떠한 공식적 수치도 이용 불가능함. 민단 탈북난민지원센터에 따르면, 2008년 중반 약 150명이었고, 동 센터의 지원을 받는 (일본 내 탈북난민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포함되는) 사람들은 지난 3년간 매년 약 50명 정도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72
73 한 일본인 배우자들이었다. 1959년 말부터 1962년 말까지의 송환 의 첫 3년 동안에만 7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북한으로 떠났다. 본 발표자가 다른 저작들에서 상세히 논의한 바 있듯이, 이처럼 이상한 대규모 이주는 복잡하고 음울했던 냉전(Cold War)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3) 그러나 (이를 보다 간략히 설명하면) 그 근본 원인은 크게 두 가지에 있었는데, 첫째는 일본 정부가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잠재적으로 사회질서를 파괴할 것으로 간주하였던 소수민족(ethnic minority)을 줄이고자 하였던 욕구였고, 둘째는 북한 정부의 입장에서도 기대되는 여러 가지 전략적٠경제적 이익의 순환이었다.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 는 조각그림 맞추기의 한 부분(piece of the jigsaw)은 1950년대 말, 이승만 독재 하의 남한이 일 본으로부터 조선인 이주자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해제된 비밀문서들은 최소한 1955년 초에 이미 일본 외무성이 조선인들을 북한으로 대규모로 돌려보낼(return) 비밀 초안을 세워두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계획은 특히 복지예산에 부 담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난하고 실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4) 일본 정부는 이러 한 계획으로 인하여 남한으로부터의 거센 반발이 촉발되고, 아무래도 냉전이 극에 달해 있던 상황 하에서는 자유세계 로부터 공산주의 체제인 북한으로의 대규모 이주를 미국이 용납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일본 정치 지도자들과 관료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송환 문제를 두 고 상당한 내부 논의가 전개되었다. 5) 그러한 가운데, (정부 고위관료의 지원을 받아) 일본적십자회 는 국제적십자사를 대상으로 이 계획에 중개자로 나서도록 하기 위한 로비활동을 매우 왕성하게 펼쳤다. 국제적십자사로 하여금 일본을 떠나는 사람들이 정말 자발적으로 나서는 것인지를 확인하 는 형식적인 자유의사확인(confirmation of free will) 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국제인구이 동에 대한 국제적 존중의 필요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자유의사 라는 것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대규모 이주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 데 다수는 어느 정도의 선에서는 자유 선택(free choice) 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김일 3) Tessa Morris-Suzuki, Exodus to North Korea: Shadows from Japan s Cold War,Lanham, Rowman and Littlefield, 2007; see also Kim Yong-Dal and Takayanagi Toshio eds., Kita Chôsen kikoku jigyô kankei shiryô, Tokyo, Shinkansha, 1994; Takasaki Sôji and Pak Chongjin eds, Kikoku Jigyô to wa Nan data no ka: Fuin sareta Nicchô Kankeishi, Tokyo, Heibonsha, 2005; Han Sok-Gyu, Nihon kara Kita ni Kaetta Hito no Monogatari, Tokyo, Shinkansha, ) Hokusen [sic] e no Kikan Kibôsha no Sôkan Shori Hôshin [송환되기를 희망하는 자들을 북한으로 보내기 위 한 조직화 계획, 호쿠센 이란 북한을 차별적으로 축약하여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보고서는 다음 문헌에 재수록 되었다. Nikkan Kokkô Seijôka Kôshô no Kiroku Sôsetsu Vol. 6 Zainichi Chôsenjin no Kikan Mondai to Kikan Kyôtei no Teiketsu, document 126 of the third release of official material pertaining to Japan-ROK relations, released 16 November 2007, pp.44-53, nihonkokai/3ji-kokai/ / img.xdw\ (accessed 23 December 2007); see particularly pp ) 정치부서들에서의 내부적 논의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Letter from Inoue Masutarô to Léopold Boissier, 31 May 1957, in Archives of the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Geneva, (ICRC Archives), B AG , Généralités: Correspondance avec les Sociétés nationales de Japon, de la République démocratique populaire de Corée et de la République de Corée au sujet du rapatriement des Coréens du Japon et du retour des pêcheurs Japonais détenus en République de Corée,
74 성 특유의 공산주의라는 브랜드의 열광적 신봉자이기도 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은 동해 너머에 기 다리고 있을 듯한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일본을 떠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 선택 은 자이니치(Zainichi) 조선인[재일조선인]들이 법적으로 명시된 권리를 거의 보장받지 못하고 따 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일본 법률 하에서는 일본에서 출 생한 사람들도 외국인으로 남아 있었고,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영주권자들에게도 아무런 권리 가 보장되지 않았다. 그들 또한 모든 형태의 공직에의 취업이 금지되었고, 주요한 사기업들에서 직 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사실상 가질 수 없었다. 6) 그들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권리도 없었는데, 일본 외무성이 앞서 언급한 송환 계획을 입안했던 바로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에게도 (차별적 근거에 따른) 가장 기본적 형태의 생계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생성은 정부로 하여금 이러한 접근허용을 철회시키기 위한 전국적 캠페인 에 착수하였다. 7) 재일조선인들은 지극히 오도된 선전캠페인에 직면하여 심리적 압박감을 크게 느끼 게 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캠페인은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북한으로 떠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 다. 송환 계획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선전 이면의 힘은 양면으로부터 작용하였다. 1958년 중반까지 북 한정부는 일본으로부터의 조선인들의 대규모 유입을 촉진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부분적으로는 야심 찬 경제개발 계획에 노동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고, 부분적으로는 대외적 선전과 전략적 이유들 때문이었다. 8) 따라서 평양의 김일성 정권은 일본에서 오는 조선인들에게 완전한 공민권을 부여하였 을 뿐만 아니라 무상주택과 직업 교육 및 복지혜택을 제공하였다. 특히 1950년대 말 북한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는 오늘날에 비해 훨씬 더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수만 명이 이에 호응하였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도 아니었다. 사회주의 조국에서의 새로운 삶의 혜택들은 북한정부뿐만 아니라 대규모 이주를 조직하는데 있어 서 일본적십자회와 함께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던 친북적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에 의해서도 강력하게 선전되었다. 하지만, 유사한 선전은 재일본조선인귀국협력회와 같은 조직체들에 의해서도 유포되었는데, 동 협력회에는 정계에 넓게 포진해있던 일본 고위정치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협력 회장은 하토야마 이치로 鳩 山 一 郞 초대 자민당 수상이었고, 또 다른 지도적 위치의 회원은 고이즈 미 준이치로 小 泉 純 一 郞 수상의 아버지이자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고이즈미 준야 小 泉 純 也 자민당 의원이었다). 9) 6)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David Chapman, Zainichi Korean Ethnicity and Identity, London, Routledge, 2007, chapters 2 and 4; for a vivid personal account of Zainichi Korean life in postwar Japan see Kang Sangjung, "Memories of a Zainichi Korean Childhood", (trans. Robin Fletcher) Japan Focus, 2 February 2007, 7) Social Affairs Bureau,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Public Assistance for the Koreans Resident in Japan, 30 April 1956, in ICRC Archives, B AG , Problème du rapatriement des Coréens du Japon, dossier I: généralités, ) 다음을 참조. Zapis beseda s tovaishchem Kim Ir-Syenom, [Record of a conversation with Comrade Kim Il-Sung], 14 and 15 July 1958, in the official diary of V. I Pelishenko, 23 July 1958, Foreign Policy Archives of the Russian Federation, archive 0102, collection 14, file 8, folder 95. 9) 다음을 참조. "Chôsenjin Kikoku Sokushin no Dai-undô", Akahata, 15 December 1958; also Chosun Ilbo (English online edition) 19 October
75 덧붙여, 북한에 도착한 상당수의 조선인들이 막상 목도한 현실에 충격을 받고, 환상도 깨졌다는 것 을 송환 시작 6개월 만에 일본 정부와 일본적십자회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역사적 책임에 대한 문제가 더욱 강하게 제기되고 있음이 언급될 필요가 있다. 실제, 1961년까지 일본정부 는 정보기관 평가자료들에서 북한경제의 비참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북한으로 송환된 사람들 이 일본 내 친척들에게 보내온 편지들을 실지로 인용하고 있었다. 10) 그러나 일본정부는 송환계획을 중단하거나 늦추거나, 또는 북한으로 떠나려는 조선인들에게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이 어떠한 것인지 를 경고하거나 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한편, 북한측에는 한일수교가 맺어진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귀환자들에 대한 정치적 박해에 관한 한 분명한 역사적 책임이 있다. 일부는 북한에서도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귀국자 들은 점차 복잡화된 북한 신분제도의 하층에 놓이게 마련이었다. (정확한 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천 명이 강제노동수용소(처벌구역)로 보내졌고, 많은 이들이 처형되거나 혹독한 여건으로 인하여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11) 198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경 제상황과 특히 1990년대의 기아는 이러한 귀국자"들과 여타 난민들의 국외로의 탈출을 가속화하 는 주요한 요인들이었다. 귀국자들 의 귀환 귀환난민들의 일본 정착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짚어보기에 앞서 먼저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 오기까지의 경로를 따라가보자. 모든 난민들마다 다른 사연이 있지만, 몇몇 공통점들은 식별될 수 있다.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조선인과 결혼하였거나 미망인이 된 본래의 일본인 여성들이었다. 다른 이들은 일본에 가족을 둔 조선인들이었다. 북-중 국경지역 인근에 살던 일부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필사적 시도로 장사를 위해 국경을 반복적으로 넘나들기도 하였다. 이 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때때로 과거 일본에 살았던 사람들로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많은 경우, 장마당을 떠도는 장사꾼 생활을 접고 난 민이 되기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결정에는 북한에 친구들과 친척들을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고통은 물론, 엄청난 위험부담이 따르기 수반되기 때문이다. 이외의 난민들은 앞 서 일본으로 향한 부모나 가족들을 뒤따라 떠나기도 한다. 10) 다음을 참조. Information for Judgment of North Korean Situation, English translation of an intelligence by the Japanes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sent to the British Foreign Office by British Embassy, Tokyo, 2 August 1961, in British National Archives, Kew, file no. FO 일본 정부가 이러한 편지들의 사본을 어떻게 입수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1) 다음을 참조. Ahn Hyok, "I Met Korean Repatriates and their Japanese Wivesin the North Korean Concentration Camp, in Life and Human Rights (the journal of the Society to help Returnees to North Korea, English edition), no. 4, 1997, pp ; Kang Chol-Hwan and Pierre Rigoulot (trans. Yair Reiner), Aquariums of Pyongyang: Ten Years in the North Korean Gulag, New York, Basic Books, 2001; Ishimaru Jirô, Kita Chôsen Nanmin, Tokyo, Kôdansha, 2002; Ishimaru Jirô, Kita Chôsen Nanmin, Tokyo, Kôdansha, 2002"GKita Chôsen kara no Dasshutsushatachi, Tokyo, Kôdansha, 2006; Han, Nihon kara Kita ni Kaetta Hito no Monogatari, op. cit. 75
76 또한, (종종 북한사회에서 어느 정도 상류층에 속했던) 일부는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사회적 상황 때문에 자신들이 정치적 박해에 처해질 수도 있음을 인지하게 될 경우, 탈출을 결심하기도 한 다. 차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온 몇몇 귀국자들(returnees) 은 북한 체제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위에 이르기도 해왔다 (실제, 한 명은 김정일의 부인이 되기도 하였다. 12) ). 그러나 이들은 정치적 연계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 정치적 문제나 파벌갈등이 발생할 경우, 성공한 귀국자 들 이라 하더라도 특히 더 고립되거나 공격받기 쉽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난민들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월경( 越 境,)은 북한과 중국을 가로지로는 강으로부터 뻗은 폭이 좁고 독립된 지류들에서 야간에 이루어진다. 안전하게 강을 넘기 위해 국경경비대나 브로 커들에게 돈을 건네는 경우들도 종종 있지만, 난민들의 증언은 지난 몇 년간 북한 당국이 국경통제를 강화해옴으로써 이마저도 점차 어렵고, 위험해지고 있으며, 많은 비용이 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단 결심이 서서 위험한 첫 도강에 성공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일본으로의 입국수락을 얻는 일이 다. 경우에 따라 중국 내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하고, 몽골, 라오스, 태국, 또 는 베트남과 같은 제3국으로의 한층 더 위험한 여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떤 난민들은 중국에서 곧장 일본으로 도착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는 외교적으로 민감한 쟁점들이 일기도 한다. 이 과정 은 대체로 이러한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고, 종종 언론을 통해 논의되기도 함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공론화는 외교적 문제를 야기하여 난민들의 여정을 이전보다 더 어렵고 불확실하 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일본으로의 입국과정의 은밀성과 불투명성에는 좀 더 논의될 필요가 있는 원칙에 관한 문 제들(issues of principle)이 제기된다. 일본 정부는 입국을 허용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결정하고 있 을까? 일본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정책도 명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으며, (앞서 살펴본 것 처럼) 이러한 난민들은 정상적 망명절차도 거치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일본 정부는 임의재량에 근 거하여 이를 조용하게 처리해오고 있다. 상당 기간 일본에 거주한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라는 것을 입 증 가능한 사람들(또는 최소한 일부 사람들)에게, 입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특별체류허가[자 이류 토쿠베츠 쿄카] 를 내주는 것이다. 이러한 임의적 과정에는 중요한 의문점들이 있다. 난민이 되 고자 하는 사람들의 신원이 확인될 수 없을 경우, 즉 예전에 일본에 거주하였음을 증명하는 것이 불 가능할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지금까지 이와 같은 유형의 사례는 한 차례도 보고된 바가 없다. 하 지만 이러한 처리과정의 어떠한 측면에 대해서도 보고서로 간행된 것 또한 거의 전무하다. 일본 내 재정착 귀환난민으로 인정되어 일본에 재정착할 수 있는 임의적 권리가 주어진 경우, 다음 단계는 어떻게 도쿄의 나리타공항으로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비정부기구(NGO)와 협력하여 종종 이 단계에서 지원에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항공편을 마련해주기도 하며, (대부분 항공기를 타 본 경험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귀환난민들과 동행할 담당자들을 파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귀환난민 12) 오사카 출생의 고영희는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고, 그 사이에서 김정철과 김정운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 다. 76
77 들이 나리타공항에 도착하고 나면, 일본 정부에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정책적 틀이 없고, 갓 도착한 사람들은 NGO들로부터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조선인 귀환자들에게 있어서, 한 가지 뜻 깊은 지원은 남한 정부와 긴밀한 재일본대한민국 거류민단(일본어로는 자이니혼 타이칸민코쿠 민단, 또는 약칭 민단 )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민단 의 탈북난민지원센터[다포쿠샤 시엔 민단 센터] 귀환난민들이 기본생필품을 살 수 있도록 10만 엔 (1천 달러)의 지원금(1회)을 제공하고, 구직이나 (여타의 지원방법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정 부기초복지인) 생계보조를 신청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민단은 귀환난민들을 위한 환영모임 을 조직하고(organizing get-togethers), (비록 한국에 정착한 탈북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정 착한 귀환난민들도 이들의 심리적 혼란 상태에 대한 낙인을 우려하여 정신의학적 조력을 받는 것 을 종종 꺼려하기도 하지만) 정신적 외상(trauma) 상담사들을 찾기도 하는 등의 여러 형태의 정서 적 지원(psychological support)을 제공하고 있다. 13) 귀환난민 문제에 특별히 집중하고 있는 일본 NGO 두 곳으로는 1994년 설립된 북조선 귀국자 지 원회[키타 조센 키코쿠샤노 세이메이토 진켄노 마모루카이, 또는 약칭 마모루카이 ]와 최근 퇴직한 사카나카 히데노리( 坂 中 英 德 ) 전 도쿄 이민국장에 의해 2005년 설립된 일본 탈북귀국자 지원협회 [키코쿠 다포쿠샤 시엔 키코, 이하 축약 시엔 키코 ]가 있다. 14) 두 단체는 난민들에게 매우 유익한 실질적 지원을 하고 있다. 마모루카이는 특히 이들의 일본 입국을 돕는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반면, 시엔 키코는 자원교사들이 상근으로 일하는 교육센터를 통해 일본어와 문화 강좌들을 열어오고 있다. 또한 난민들에게 일자리와 주택을 알선해주고, 난민들이 자신들의 체험과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도록 귀국자 채널[키코쿠샤 차네루] 이라는 블로그도 운영해오고 있다. 15) 그러나 이 와 같은 NGO들의 협소한 지원기반은, 특히 난민들의 유입이 더욱 증대될 경우, 이어서 논의될 이 유들로 인해 몇 가지 문제점들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정부의 부족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귀환난민들이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데 대 해 매우 기뻐하고 감사해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 일본지방도시에서 대중강연을 했던 한 난민은 지옥과 같았던 북한에 견주어 일본을 천국 으로 묘사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남성은 대 학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구사능력이 그다지 유창하지 않아 일본에서는 천한 일을 해야 하는 저임금 직업밖에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자녀들은 학교생활을 꽤 잘하였으나, 가난한 살 림살이 때문에 너무 창피해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도 못하였다. 일본에서의 난민들의 상황은 1970~1980년대에 북한으로 납치된 일본인 피랍자 문제가 드러남에 따라 격앙된 북한에 대한 대중 적 적대감으로 인해서도 복잡하게 꼬여 있다. 대부분의 귀환난민들은 북한에서 살았다는 과거를 감 추기 위해 가능한 한 이웃들이나 직장동료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려 하고, 최근 남한에서 이주해 온 가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한 마당에, 일본에도 경제위기가 닥쳐 있으니, 2006년 민단이 실 시한 조사결과가 보여주듯이 일본 내 탈북귀환난민의 60%가 실업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놀 라운 일도 아닐 것이다. 16) 13) 민단 탈북난민지원센터 관계자와의 인터뷰(2008년 7월 4일). 민단 지원센터의 다음 웹사이트도 참조. 14) 두 단체의 다음 웹사이트를 참조 ) 77
78 그 수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일본 내 귀환난민들을 위한 보다 더 체계적인 지원책이 시급히 요청 되고 있다. 민단 내 일부인사들과 마모루카이에서 선호해온 것처럼 남한의 하나원과 유사한 귀환난 민 숙박교육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원은 한국 내에서도 몇 몇 비판들에 직면하여 왔고, 정치적 망명자들을 받아들여온 남한의 역사 아래 발전해온 시설인 바, 일본의 상황에 부득이 좋은 모델은 아니다. 일본 스스로도 1980년대 베트남 난민사태에 비교적 관 대하게 부응하여 난민수용체계를 발전시킨 몇몇 경험들을 갖고 있다. 숙박교육센터의 대안으로는 정부가 전국적 및 지역적 차원에서 숙박 없이 통원하는 방식으로 컴퓨터 활용교육, 운전교습, 은행 이용 및 세금납부방법 등에 대한 실용적인 일일교육 과정들을 제공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언어 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예민한 정서적(psychological) 지지 서비스도 분명히 필요하다. 귀환난민문제의 정치학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사실은 귀환난민문제 전체가 정치적으로 매우 격론화되어 있고, NGO들 과 정치인들 모두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정치적 의제들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혹자는 쉽 게 말해서 마모루카이와 시엔 키코의 지도자들 모두 일본 내 소수민족들의 미래를 폭넓게 구상함 에 있어서 탈북귀환난민들을 그 핵심이 되는 모범소수민족(model minority) 의 일종으로 보고 있 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귀환난민들은 북한에서의 비참했던 경험들로 인하여 김일성 이데올로기와 함 께 보다 일반적으로는 공산주의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북한으로 떠났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기 때문에 일본 사회로 다시 동화되기를 매우 간절히 원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17) 많은 경우들에서 귀환난민들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사실일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 일본 사회에 골고루 섞여 저마다의 자리에서 성공적인 삶을 이루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일본 내 다른 이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귀환난민들 또한 개개인들이다. 이들도 저마다 경험이 다르며, 무 엇보다도 반세기에 걸쳐 정치적 조종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큰 정치적 구상에 구애될 필요 없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귀환난민문제는 (대개 일본인 납치 피해자 문제에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일단의 정치인 그룹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왔다. 당면문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한 예는 자민당 (LDP) 소속의 히라사와 카츠에( 平 澤 勝 榮 ) 민의원 의원의 경우이다. 실제로 귀환난민들에 대한 처우 에 관하여 정부를 대상으로 로비를 하는데 있어서는 히라사와를 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히 라사와는 지방선거시 외국인들에게도 투표권을 허용해주자는 의견에 강하게 반대하는 등 일본 사 회 내 외국인들의 위치에 관한 한, 자신의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 더욱 이, 귀난난민문제에 있어서 그의 개입은 정치적 발언이나 논쟁 수준을 넘어선다. 한 가지 예를 들 자면, 갓 일본에 도착한 난민들에게는 임차, 대출 및 기타 유사문서들에 연대서명을 해 줄 수 있는 16) Mindan Dappokusha Shien Repôto, no. 7, 24 February ) 예를 들어, 다음을 참조. Miura Kotarô, "Dappoku Kikokusha no Nihon Ukeire no tame ni", Shokun, September 2006, pp ; Miura Kotarô, "Dappokusha 4-nin no Nihon Tôchaku", June 2007, 참조 Sakanaka Hidenori, Nyûkan Senki, Tokyo, Kôdansha, 2005, particularly pp ) 히라사와(Hirasawa)는 외국인들에게 지방투표권을 부여할 경우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을 참조. " Gaikokujin Sanseiken dou kangaeru", Nishi Nihon Shinbun, 18 May
79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보증인들이 필요한데, 히라사와 카츠에 의원은 귀환난민들에게 그러 한 역할을 해온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19) 이러한 상황은 귀환난민들을 정치화된 지원 출처에 의존하도록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탈북 귀환난민문제에 대한 우파 정치인들의 밀접한 연계는 이보다 더 불운한 결과를 노정해오고 있다. 많은 다른 일본 인권NGO들과 이주민 지원 NGO들은 일본과 북한간의 정치적 관계문제에 관련되 지 않기를 바래왔기 때문에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존재해왔고, 이는 귀환난민들로 하여금 앞서 설명한 소수의 단체들과 개인들에게 더욱 의존하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남북한 관계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일본인 관찰자들은 곧 북한판 쓰나미가 발생 하여 난민들(특히 귀환난민들)이 일본 해안으로 밀려들 수 있다며 사람들을 매우 불안하게 하는 전 망을 내놓고 있다. 1990년대에 사카나카 히데노리( 坂 中 英 德 )는 북한이 붕괴할 경우, 일본으로의 피 난을 위해 30만 명의 난민들이 유입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보고서를 받았던 적이 있었고, 보다 최 근에는 정부의 한 싱크탱크에서도 10~20만 명 규모로 추산한 바 있다. 본 발표자는 이러한 예측들 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보지만, 그 수는 계속 급증할 것으로 보이며, 유능한 관찰자들은 일본이 머지않아 수 천 명의 귀환난민들로부터 재정착을 위한 지원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 이라고 전망한다. 20) 본 발표자는 일본 정부가 일본적십자회와 국제적십자사와 협력하여 귀환난민들과 그 가족들, 그 외 에도 일본에 연고가 있는 탈북난민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이 문제 에 호응해야만 하는 강한 도덕적٠실제적 근거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송환운동의 역사는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이주의 생존자들에 대한 책임이 (친북단체인 조총련과 함께) 일본 정부 와 다양한 적십자운동단체들에 있고, 그러한 책임을 여전히 시인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효과적인 정부-적십자 프로그램은 이들 귀환난민들에게 교육, 훈련, 주거, 취업 지원과 정서적٠사회 적 지원을 제공하는 NGO들과의 연계 아래 추진될 필요가 있다. 또한, 과거의 송환(repatriation) 과 난민들의 탈북 및 일본으로의 유입 배경에 관한 대중인식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일본 사회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정치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범위의 NGO들이 이 사안을 다루어야 하고, 지방 정부기관들도 중앙정부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를 전개하는 동시에 난민들에 대한 자체 지원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니가타에서 첫 송환선박이 출항한 지 50년, 이러한 이주자들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고, 인도주의와 정치학은 이전보다 더 깊이 뒤얽힌 채 남아있다. 저명한 재일조선인 소설가 리회성( 李 恢 成 )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 가운데에는 또 한번 같은 길 [마타 후타타비노 미치]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21) 일본으로 돌아온 귀환난민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바다 건너 같은 길을 따르는 세 번째 여정을 19) 다음을 보라. "Dappoku Nihonjin Zuma, Naze Futatabi Kita Chôsen e", Asahi Shinbun, 29 May ) 예를 들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Ishimaru Jirô)는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유입될 것이라는 예측을 신뢰 하지 않으며,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오는 사람들은 수천 명 정도가 될 수 있다 고 언급한 바 있다. Tokyo Shinbun, July 22, ) Lee Hoesung, "Mata Futatabi no Michi", in Lee Heosung Shû, Kawade Shobô, 1972, pp
80 하고 있다. 그들 자신과, 부모 또는 조부모들은 식민치하에서는 조선으로부터 일본으로 험난한 이 주를 하였고, 자신 또는 부모들은 1960~1970년대 북한을 고향 삼아 여정에 올랐고, 지금은 다시 한번 고향 을 찾아오는 똑같이 고통스러운 여정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의 끝에서, 이번 에는 어떠한 환영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80
81 더 늦기 전에: 하나되는 캐나다 한인 사회 잭 김 캐나다 한보이스(Hanvoice) 전무이사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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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특별 연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상황에 관한 유엔북한인권특별보고관의 보고연설: 유엔인권이사회, 2009년 3월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1. 특별보고관의 임무는 2004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설정되었다. 본 특별보고관은 이 보고서를 위 해 기꺼이 정보를 제공해준 각국 정부와 시민사회 관계자, 유엔 기구, 기타 단체들에 감사를 표한 다. 그러나 특별보고관이 건설적 방법으로 해당국의 문제에 관여하고자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문제 당사국이 이를 거절했다는 것은 유감스럽다. 이 보고서는 2008년과 2009년 초 기간의 상황을 다루고 있고, 특별보고관은 이 기간 동안 대한민국과 일본을 방문하였다. 2. 최근 몇 년간,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문을 조금 열어 왔다. 예를 들어, 북한은 4개의 인권조약의 당사국인데,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관리에 관한 국제규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이 그것이다. 3. 그러나 당사국의 전반적 인권 이행실태는 끔찍하며,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남아 있다. 북 한은 일당 통치 하에 있다. 그 정점에는 개인적 생존에만 마음이 쏠린 억압적 정권이 있고, 평범한 주민들은 참을 수 없고 끝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사람들은 공포 속에 살고 있고, 서로 밀고하도록 강요된다. 수년에 걸쳐 북한 당국은 주민 일반에 큰 불안감을 주는 깊은 불신 문화와 다층적으로 형성된 분리통치 를 조장하여 왔다. 북한 정권이 군대 우선 (선군) 정책을 내세우고, 핵무기로 무 장한 것은 문제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6자 회담 (이해 당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한국) 은 원조의 대가로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한 압력에 애써왔다.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는 큰 관심을 기울일만하다. A) 식량 및 기본 생필품 4. 정권 초기부터 북한당국은 주민통제 수단으로서 배급제도(PDS)를 통해 주민에게 식량을 배급해 왔다. 이 체계는 1990년 중반 만연한 영양실조와 여러 가지 비극을 낳았던 심각한 식량부족으로 인해 급격히 실패하게 되었다. 이는 자연재해, 환경적 퇴보, 당국의 부실관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후 북한 정권은 만성적 실태를 완화하고자 해외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 84
85 였다 년 북한 당국과 세계식량계획(WFP) 간에는 6백5십만 명 정도의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협정이 맺어졌다. 2008년 6월 WFP와 식량농업기구(FAO)는 중요한 식량보장평가(food security assessment)를 실시하였다. 첫 번째 확인된 점들로는 식량 확보가능성, 식량 접근가능성, 식량 소비에 있어서 심각한 감소를 보여주는 매우 불안한 특징들이 나타났다. 특히 우려되는 문제 는 설사에 걸린 아동의 수가 2005년 북한 정부와 UN이 실시했던 영양실태조사 결과에 비해 거의 두 배에 이를 만큼 현저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아동 영양실조와 질병도 증가추세에 있 다. 6. 같은 해 말(2008년 10월)의 WFP/FAO 공동보고서는 2008년의 더 좋은 기상여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심각한 식량부족이 나타났고, 국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2008년과 2009년 식량 총생산량은 421만 톤에 이를 것이며, 50만 톤의 가능한 통상 수입에도 불구하고 83만6천 톤의 곡 식이 부족할 것이라는 평가다. 북동부의 가난한 도시와 식량이 부족한 외딴 지역들은 특히 위기에 처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다음 수확 시기인 2009년 10월까지 필요한 식량지원양은 80만 톤 가량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2008년 비교적 좋았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작황이 늘지 않고 있는 것이 비료와 연료 등의 부족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870만 명가량이 식량 불안정 상태에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 영 양 평가도 요청되고 있다. 7. WFP는 2008년 9월부터2009년 11월까지 더 광범위한 긴급구호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 고 있다. 앞서 지원이 이루어진 50개 군에서 8개 도 131 개 군 규모로 확대하고, 623만7천명을 지 원한다는 목표다. 주 수혜대상은 젖을 먹이는 여성, 소학교 아동, 노인과 장애인이며, 이들에게 식 량을 보충함으로써 (노동과 연계된) 공동체개발활동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자원 의 심각한 급감으로 인해 2009년 초에는 단지 180만 명만이 식량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8. 본 특별보고관도 접근 없이는 지원도 없다(no access, no food), 즉 목표로 한 대상들에 접근 할 수 없다면 식량지원도 없을 것이라는 원칙에 따라, 식량분배 여부에 대한 감시는 개선될 것이라 는 통지를 받았다. 그러나 주민 일반에 대한 북한 당국의 부정적 역할에 관한 몇 가지 지나친 진 전들도 존재한다. 첫째,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2005 년 배급제도를 재개하였고, 시장 활동을 금지하기 시작하였다. 배급제도는 특히 부적절한 분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에 효과적으로 부응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재개된 것이었 다. 9. 두 번째로, 북한 당국이 40세 미만 여성들의 장사를 금지한 2007~2008년 기간에, 특히 여성들 에게 상당 부분 돌려졌던 경제적 주도권이 심각하게 축소되었다. 이러한 연령제한은 이후에서야 49 세로 상향되었다. 셋째, 군인들이 농장원들에게 식량제공을 강요하여 생계에 해를 끼치고 있던 것 으로 2008년 보고되었다. 넷째, 북한 당국이 2009년 주민들의 텃밭 및 뙈기밭 농사를 금지할 것이 라는 보고도 있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부업밭 은 마땅한 식량이 부족한 일반 주민들의 식량 확보 가능성을 높이고,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생존수단이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로부 85
86 터 소토지를 박탈하려는 의도로 이러한 토지들을 등록하도록 하기 시작하였다. 다섯째, 2008년 말 북한 당국은 국영상점들에서만 공산품을 팔 수 있도록 강요함으로써, 일반 시장들이 폐쇄되도록 위 협하고 있었다. 농산품의 경우에는 농민시장에서 10일마다 한 번만 팔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 나 2009년 첫 분기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009년의 첫 상반기에는 이러한 정책을 강 행하지 않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편, 북한은 유엔과 협력하여 오랫동안 지연되었던 인구조사 (national census)를 실시하고 있었다. B) 개인의 안전 10. 당사국에서 국내규범을 국제기준에 맞추기 위한 일부 법률개정이 이루어져 오고 있다. 예를 들 어, 2004년 형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은 법률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는 기 초 하에 범죄의 유형을 보다 세분화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이행과정에서 심각한 탈선이 일어나 형법의 유익한 본질과는 큰 차이가 존재하며, 이로 인해 심각한 인권침해가 비롯되고 있다. 형법에 열거된 과도한 범죄목록들은 북한 정권을 강고히 하고, 일반 주민들에게 부과된 제약들을 지속시키는데 활용되고 있다. 가족 가운데 한 명이 당국의 규범을 어기게 되면, 다른 모든 가족들 도 박해를 받거나 수감시설로 보내지는 등 북한 주민들에게는 집단적 처벌이 가해져왔다. 공개처형 도 계속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특히 인신매매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오고 있다. 11. 고문은 법률에 의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편, 부족한 음 식, 열악한 위생, 겨울의 혹한, 강제노동, 태형 등 견딜 수 없는 수용소의 환경은 수많은 인권침해 와 박탈을 야기하고 있으며, 많은 수용소들이 수감자들에게 죽음의 덫이 되고 있음을 확신케 한다. 수감자들의 곤경을 완화하는 데에는 뇌물이 작용하기도 한다. 12. 한편, 북한 당국은 상당수의 외국인들에 대한 납치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대개 이러한 납치는 이들을 간첩양성교육에 활용하거나, 피납자들의 출신국에 간첩을 잠입시키기 위한 신원 위조의 목 적 하에 이루어져왔다. 북한에 의해 납치된 상당수의 일본 국적자들의 문제는 아직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으며,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적절한 호응이 요구되고 있다. 6자 회담은 양국 간 차원에서 이 문제에 관한 해결의 여지를 제공해주었지만, 현재 회담은 정체되어 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국외적으로 저지른 범죄는 10개국 이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C) 자유 13. 정부를 선택할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통신/정보 및 사생활의 자유, 종교의 자유 와 같이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련된 기본적 자유는 북한 정권의 본질과 습성에 의해 일상적으로 침 해되고 있다. 정치적 불만은 엄격히 처벌되고, 세대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체제에 반하는 것 으로 간주될 경우, 그 자녀나 다른 모든 가족구성원들도 교육, 의료 및 다른 생필품에 접근함에 있 어서 차별을 받게 된다. 북한 정권을 뒷받침하는 조직체들을 제외하면, 진정한 노동조합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 86
87 14. 연장선상에서, 언론매체도 심대하게 통제되고 검열되며, 거대한 선전 장치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중국과 남한의 도서는 금지되어 있다. 상류층이 아니면, 공식 허가 없이 컴퓨터를 소유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으며, 외국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 또한 금지되어 있다. 비록 2009년 평양에서는 휴대전화를 소유할 수 있도록 완화되었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일부 그룹들에 대해서는 CD와 휴대전화 소유에 대한 공식적 단속이 이루어졌고, 조사관들로 이루어진 검열팀들이 수시로 의심스러운 집들을 급습하여 (불법적으로) 외국 영화나 라디오/TV 방송을 보고 듣는지 확 인한다는 보고들도 있었다. 이러한 불시 단속들은 특히 국경과 인접한 지역들에서 집중적으로 벌어 지고 있다. 라디오와 TV는 정부가 제작하는 프로그램들에만 접근할 수 있도록 채널이 고정되어 있 다. 15. 이용가능한 다른 증거들에 따르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은 설득력 이 없어 보인다. 종교적 시설들은 평양에만 국한되어 있고, 지방의 주민들이 이러한 곳들을 이용하 는 것은 여전히 금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 또한 박해의 대상이 됨을 보여주는 사례들도 있다. D) 망명/이주 16. 건국 이래로, 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는 정책을 유지해오고 있다. 국내에서 도 다른 지역으로 여행하고자 할 경우,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국외로 여행하려면 출국 비자가 필요 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욱 복잡하다. 여행 허가 없이 은밀하게 북한을 떠나는 사람들이 당국의 박해를 받는 일들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계속되고 있는 식량난은 식량이 나 다른 생필품들을 마련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이동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로 인해, 때로는 식량마련이나 취업, 생계를 위해, 때로는 박해와 압제를 피하기 위해, 때로는 복합적인 이유 들로 인해 주민들이 인접국으로 넘어가는 흐름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년 한 해 동안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이 직면하게 되는 상황은 다음의 이유들로 인해 더욱 긴박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인접국으로의 출입국에 더욱 엄격한 제한들을 가해오고 있기 때문이 다. 몇 해 전, 북한 당국측이 이전에 비해 관대한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보이는 몇몇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탈북을 시도하거나 강제로 송환되어온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처벌이 이루어졌다는 보고들도 있다. 과거에는 벌금이 부과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징역형이 적용되고 있다. 18. 최근 주민들의 이동은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을 인신매매에 악용하는 자들로 인하여 더욱 늘어 나고 있으며, 보고된 자료들에 의하면 대부분이 여성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 다. 북한을 떠나는 배경과 이후에 벌어지는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최종 목적국인 한 국에 도착하기에 앞서 인접국이나 기타 1차 피난국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고, 어떤 이들은 아주 짧 게 머물기도 한다. 본 특별보고관의 2009년도 보고서에서도 여성과 아동을 비롯한 기타 그룹들에 대한 특별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87
88 예방, 보호, 제공, 참여: 19. 앞서 설명한 분석은 북한 당국의 심각한 인권 상황을 말해준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범 위하고, 체계적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인권침해에는 장기지속성과 잠재적으로 진행되는 잠행성이 있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함께 상황 개선을 돕고자 하는 국가적 국제 적 차원에서의 적극적 개입이 요청된다. 종종 필요한 행동들은 너무 적었고, 또한 너무 늦어져 왔 다. 따라서 바로 지금이 효과적인 예방, 보호, 제공, 참여의 측면에서 앞서 제기된 문제들을 다룰 적절한 시기이다. 20. 예방적 접근, 즉 인권침해를 예방하고자 하는 문제는 국제인권규범을 실제로 준수하는 것을 거 부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권력을 존속시키고자 하는 폐쇄적이고 독재적인 권력기반과 불가피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진정한 예방을 위해서는 군대 우선(선군) 정책이나 지금까지 실행해온 핵무장 화 및 체제 생존전략과 밀접하게 연계되어온 예산왜곡을 줄여야 하는 한편, 보다 더 주민 중심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식량 사정과 관련된 예방으로는 지금까지 제공되어 온 전통적 식량 지원 차원을 넘어 식량 안보 차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져야 한다. 21. 개인의 안전과 관련하여, 핵심적 과제가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압도적 통제와 조작을 행사함 에 따라 가해지는 침해를 예방하는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다양한 법률적 개 정들에도 불구하고, 사법 체계와 감옥 체계의 절실한 개편이 요구된다. 정부를 선택할 자유,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문호의 개방은 보다 민주화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즉 진정한 자결권 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성찰을 가져올 수 있다. 한편, 다양한 난민 및 이주 관련 문제 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국을 떠나도록 하는 환경들, 특히 당사국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들이 주민들에게 끝없는 불안을 가져다주고 있는 바, 이를 개선함으로써 더 많은 예방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22. 보호의 측면과 관련하여, 지난 기간에 걸쳐, 정확히는 북한 당국의 우선순위가 정권과 그 주변 엘리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었으므로 인권의 진정한 이행에는 거의 관심을 돌리지 못하기 때 문에, 많은 인권침해가 발생해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권의 보호에는 국제 규범을 바탕으로 한 법 률, 정책, 프로그램, 실행, 작동체계/인사, 자원, 교육, 감시 및 기타 개혁들이 요구된다. 북한이 4개 의 인권조약의 당사국이라는 사실에는 이러한 조약들에 의해 수립된 기준들과, 지역적 차원에서의 이행실태를 개선하고자 활동하는 조약기구들로부터의 권고사항들을 따르고자 하는 북한 당국의 정 치적 의지가 요구된다. 또한, 응답이 요구되는 또 다른 측면은 최고위층 및 이들과 연계된 관리들 이 매우 오랫동안 누려온 면책특권의 타당성과 책임성에 대한 문제이다. 23. 비정부기구들은 특히, 유엔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최고위급 차원에서 당사국과 권력자 들의 책임성을 명확히 하기 위한 더 많은 행동을 취해줄 것을 거듭 촉구하여왔다. 최근의 한 보고 서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당사국의 책임성을 강조하고, 유엔으로 하여금 북한에서의 악명 높은 인권침해가 보호의 책임 이라는 원칙의 위반에 해당되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전문가그룹을 설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88
89 24. 보호의 관점에서 식량과 기타 기본 생필품의 문제들까지 살펴보면, 젖을 먹이는 여성, 아동, 노 인과 같은 다양한 그룹들이 직면하고 있는 취약성이 특히 우려된다. 수입 보충이나 식량 확보에 도 움이 될 수 있는 농업활동에의 참여가 불가능한 도시지역 빈곤층들의 곤경에도 주의환기가 필요하 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경제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생명권과 노동권의 중요한 요소로서 보 호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상황은 이러한 경제적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25. 개인의 안전과 그와 관련된 자유의 문제들에 있어서는 주민동태감시, 위협적 국가안보기구, 밀 고자와 대중에 침투된 감시망 등과 같이 주민들에게 가해지는 공포의 문화로 인한 피해를 근절하 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져야 함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정보기구체계, 법집행, 사법/감옥 체계의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보호틀의 일부로, 당사국은 충분한 범위의 인권조약들에 가입할 필요가 있다. 전반적 이행 대책으로는 인권존중에 도움이 되는 지식기반, 사고방식, 기술, 행동을 고취시키기 위한 행동계획이 요구된다. 북한은 조만간 인권보호의무의 이행과 관련하여 유엔인권이 사회에서 마련된 제도인 보편적정례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UPR) 대상으로서 정해진 절 차에 따라 심의를 받을 예정이다. 이는 북한 당국이 본 특별보고관의 권고사항을 염두에 두고 위와 같은 일련의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국가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있어서 초석이 될 수 있는 동시에, 과거의 과도함을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을 독려하는 데 좋은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6. 도움과 지원의 제공에 관한 측면에서, 특히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 차원에 서 당사국이 자국민들에게 기본 생필품들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여 왔다는 점은 자명하다. 식량 문 제는 적절한 감시뿐만 아니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접근권 보장이 요구된다.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용가능하고 접근가능한 적절한 제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영양과 기타 개개 인의 복지에 관한 사항들에 대한 정기적 평가가 요구된다. 27. 해당 국가가 자국민들에게 기본 생필품을 적절하게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사국은 주 민들의 기본적 수요에 따라 생필품을 공급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단속해서는 안 된다. 국가 예산의 경우, 군비강화 우선정책으로부터 보다 더 주민 지향적인 정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산을 재분배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28. 마지막으로 참여의 관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과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 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기본적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개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상향식 및 하 향식의 정치구조에 관련된 문제이며, 민주화로의 요청과도 상호 얽혀 있다. 발전 과정에 있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명실상부한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병든 국가의 행위와 그러한 국가의 실패한 행위로 인하여 주민들은 계속해서 참을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권고사항 29. 북한은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취하여야 한다. a) 즉시 (단기조치) - 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량 및 기본 생필품의 제공과 효율적인 공급을 보 89
90 장할 것. 유엔기구 및 그 외 인도주의 행위자들과 건설적 협조할 것. 그리고 사람들 로 하여금 국가의 간섭 없이 그들의 기본 욕구를 만족시키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경제활동을 하게 할 것. - 해외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과 북한으로 송환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중단할 것. - 공개처형과 개인의 안전 및 권리와 자유에 대한 인권침해를 중단할 것. - 북한에 의해 납치된 외국인에 대한 문제해결에 효과적으로 협조할 것. - 특별보고관의 권고 사항에 관하여 최대한 협조하고 질의 사항에 관하여 효율적으로 응답하며, 특별보고관이 당사국을 방문하여 상황을 평가하고 필요한 행동을 권고할 수 있도록 할 것. b) 단계적으로 (장기조치) -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국가 체제를 개혁하고 국제인권규범을 준수하면서 체제 를 현대화할 것. - 주민우선정책 에 기반을 둔 정당한 발전 정책을 세우고 국방비를 포함한 국가 예산을 사회부문에 재할당할 것. - 건전한 농업 관례, 환경 보존, 재해 대비, 계획수립 계획진행 이익공유 과정에서의 인 민의 참여와 동원과 같이 좀 더 광범위한 식량 안보 대책을 도입할 것. - 만연하는 감시 및 정보 체계를 없애고, 사법/감옥 체계를 개혁하며, 법치(Rule of Law)를 준수함으로써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할 것. - 주요 인권조약에 가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 차별을 극복하고 태만 학대 착취 폭력에 대한 인권 보호를 강조하면서 여성, 아동, 장 애인, 노인 등 특별 집단의 취약성 문제를 해결할 것. - 난민 유출 문제를 근절하고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아닌, 인신매매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처벌할 것. - 국가적 지역적 차원에서의 효과적인 시정으로 폭력과 인권침해에 책임 있는 사 람들을 처벌할 것. - 투명성과 개혁을 보장하기 위해 보편적정례검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통합적인 인 권 개선과 보호를 위해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기술적 지원을 구할 것. - 당사국이 가입한 인권조약의 기구와 건설적으로 대화하고 권고사항의 효과적인 후속조 치와 인권조약 가입을 위해 특별절차(Special Procedures)를 포함한 모든 유엔 메커니 즘과 협력할 것. 30.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줄 것을 국제사회에 요청한다. - 인권침해의 예방과 효과적인 보호, 접근가능하고 책임있는 방식으로의 보호와 원조의 제공,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운데에서의 참여, 민주적 환경 내에서의 발전경 로 설정을 위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함을 구체적으로 강조해줄 것을 요청할 것. - 접근 없이는, 식량지원은 없다 는 정당한 원칙과 적절한 감시를 바탕으로, 현재의 선 군 정책을 지양하고, 적합한 발전과정과 식량지원 및 식량안보에 의해 충족 90
91 될 수 있는 주민우선 정책이 필요함을 강력히 주창해줄 것을 요청할 것. - 난민의 권리, 특히 강제송환금지의 원칙을 존중하고, 이주자의 인권을 준수하며, 난민 또는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이 수용시설로 보내지거나 및 강제 귀국조치 되지 않도록 국가 이민법상의 제한을 완화해주기를 요청할 것. - 인권에 관한 담론과 행동을 위한 공간을 넓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당사국 정부와의 대화를 최대한 많이 갖고, 관련 유인책들과 점진적 조치들을 취해줄 것을 요청할 것. 아울러, 특별보고관과의 협력에 대한 당사국의 거부 문제를 다가오는 보편적정례검토 시 인권기록의 주요평가지표로 활용할 것. - 문제 제기가 가능한 다양한 기회를 통해, 국가책임인지 그리고/또는 개인형사책임인지 의 여부에 있어서 처벌이 면제되어야 할 고려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언급하고, 거버넌스 와 정부활동에 북한주민들이 더 광범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정당한 취지 아래, 특히 안전보장이사회와 같은 유엔시스템의 총체성을 높임으로써 심각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들을 활성화하고, 침해의 피해자들을 보호하며, 효과적인 구제책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들을 취할 것.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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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파트 II 미술, 음악, 영화를 통해 보는 북한인권 선무 탈북 화가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 신동혁 14호 관리소(평남 개천) 경험자 93
94 북한에서의 표현의 자유 & 한국에서의 생활 선 무 탈북화가, 2001년 한국 입국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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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북한 엘리트계층의 사고변화, 예술문화교류와 그 영향을 중심으로 김 철 웅 2001년 탈북, 2003년 한국입국 前 북한 평양국립교향악단 수석 피아니스트 북한인권시민연합 혿보대사 노르웨이에서 열린 지난 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음악과 문화를 통한 인권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셨는데, 이번 회의에도 다시 귀한 기회를 주신 주최 관계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회의에 처음 참가할 때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진 않았지만, 북한주민 들의 생명과 인권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의 그동안의 노력과 진심에 감동하 였고, 저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늘 기대하고, 기다렸던 회의입 니다. 이 회의가 지향하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도 그동안 더욱 발전되고 더 나은 방법을 모 색하는 회의가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오늘 저는 일반주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당과 국가의 배려를 받는 특권층들을 중심으로 하 는 북한 계급사회와 문화예술의 특징, 고난의 행군 시기(1995년부터 1998년까지 북한이 경제적으 로 가장 어려움을 겪던 시기)부터 최근까지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와 북한주민들의 사고변 화,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하면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촉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계급차별사회, 빈부격차마저 커져 계층소외까지 흔히 북한당국은 낡은 계급적 차별을 없애고 노동계급의 사회를 건설했다고 선전하지만, 사회실상 은 철저히 계급과 권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상류특권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구분되는 경제 적 격차는 나날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상류특권층이란 집권층의 가장 측근에 속하여 혜택 을 받는 사람들이자, 동시에 북한의 권력층을 떠받들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 특권층들 앞에서 나는 평양시민 200만을 가지고, 조선혁명을 하겠다 고 말한 바 있 습니다.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방의 일반주민들은 교양하고 지도해야할 대상 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물론 평양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특권층들만 있는 것은 아니며, 도시의 운영과 노동력 동원을 위해 경제적인 면에서는 중산층, 하류민들도 있지만, 어쨌든 과거 조부모 및 가족들의 활동이나 출 102
103 신성분 등에 있어서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만 평양시에서 사는 것이 허용됩니다. 따라서 평양시민 이라는 것만으로도 북한 사회에서는 대단히 인정받는 사람들입니다. 북한의 정치는 철저한 측근 중심의 조직체계와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인적 구조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물망 속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도부를 떠받들고 있고, 수뇌자를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뇌자는 북한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지도자의 선물 로 이들의 출세와 권력 을 보장해주고, 일반주민들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물질적 배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에 대 한 보답으로서 특권층들이 자발적으로 바치는 충실성이 북한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류특권층에도 만연한 불안감, 당 국가보다 개인이 우선 그러나 그러한 권력의 측근들의 의식이 지난 10여 년 동안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려는 움직임입 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 일반주민들을 포함하여 북한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특권층들도 그렇다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시대나 어떤 사회에나 부정축재가 있기는 마련이 겠지만,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특히 특권층의 부정축재가 당연시되어 분위기라는 점에 주목할 필 요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충실성과 복종이 출세 뿐 아니라 물질적 풍요까지 보장해주었지만, 이제는 자신들 또한 어떤 상황이 닥치거나 큰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총체적 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다보니 생존을 위해 모두 자구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이나 부정적인 미래의 전망이 국가나 당보다 개 인을 위한 대책마련에 더욱 골몰하게 하는 동기유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혼란과 경제 적 위기로 수뇌자의 각별한 배려를 받는 범위가 전국에 걸쳐 있는 좋은 토대와 성분을 가진 사람 들에서, 평양시민으로, 평양시민 전체에서 평양 특권층들로, 특권층에서 다시 일부 핵심층들로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불안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챙겨서라도 아무리 준 다고 한들 예전만큼은 주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씩 불안감이 생겨나고 누적되어 전반적이 고 큰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특권층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높아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작게는 장마당 물가에 서부터 크게는 국제관계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상황이 바뀌고 있는 가운데에서 그렇게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들이기 때문입니 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의 한 대북지원단체 관계자가 북한에 대한 지원계획을 제안했더니, 북한측 에서 나온 참사라는 사람이 그 제안을 반기며 개인적으로 얼마를 더 주면 자신이 적극 힘써주겠다 고 뇌물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한국측에서 대북지원활동을 하려면 북한측 대표나 관계자들이 뇌물 이나 따로 챙겨서 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품을 더 얹어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 져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대외관계사업이나 외화벌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북한 특권층 내에서도 초일류 엘리트입니다. 그만큼 현재 수뇌자의 가장 높은 신임을 받고 있는 사 103
104 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엘리트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 북한 중앙당국에 대외사업일꾼들 의 부정적 행태 실상을 알려줄 수도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공공연히 보여주고 있음을 생각해보시면 북한내 엘리트들의 개인주의가 과연 어느 상황까지 와있는 것인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 온 제 대학 후배의 증언에 따르면, 최근 한 담당주재원(보안원)이 비사회주의 를 빌미로 길가는 사람들의 쌀배낭을 빼앗아 착복했다가 덜미가 잡혀 해임된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최고 권력기관들 중 하나인 인민보안성 일꾼들이 일반주민의, 그것도 길가는 주민의 식량을 착복했 다고 하는 것은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찾아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다른 일반사회 에서는 부정한 공무원 한 명의 비리에 관한 사소한 사례라고 무심히 넘어갈 수 있겠지만, 북한에서 는 이러한 사건 하나하나가 담긴 의미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변화들이 사회 전체적 심리를 더 욱 불안하게 만들고 엘리트들도 조급함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 의 특권층이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어떻게 보면 알고도 말하지 못하고, 듣고도 못들은 척 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들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회의를 통해서 그들이 들을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마지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눈치 보고 끌려가며 살지 말고, 내가 주인이 되고, 인민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주체사회를 건설해 볼 것 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예술문화의 힘 북한에서 예술문화의 힘은 여러분들이 이해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보통 사회주의를 표방하 는 사회에서 예술은 혁명선동의 강력한 무기로서 그리고 물질적 부족함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 고 사회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그 역할이 매우 큽니다. 북한에서도 예술은 철저히 정치에 복무하고, 수령의 위대성을 극대화하여 알리는 당의 선전도구, 사회동원의 선동적 수단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의 음악 실태에 대해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달 전, 저는 서울에서 첫 독주회를 열었습니다. 다른 음악인들도 물론 그렇겠지만, 저는 특히 첫 독주회가 가슴 벅찰 만큼 감격스러웠습니다. 제가 아직 북한에 남아있었더라면 제 나이에 독주회를 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독주회는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원로음악가 이거나 국제적 수준의 콩쿨에서 우승하여 명망이 높은 예술인이어야 하고, 그것도 지도자의 배려, 즉 허락을 받아야만 열 수 있습니다. 그런 현실이기에 아무리 재능이 넘치고 촉망받는다고 하더라 도 아직 젊은 나이의 음악가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원로음악가가 되어 겨우 독주회를 열 수 있 게 된다고 하더라도 예술인이라고 하여 자유롭게 연주할 수 없으며, 집권자에 대한 칭송곡으로 채 워지는 협연 정도가 고작입니다. 북한에서 예술인의 우수성에 대한 평가의 기본은 수령과 당에 대 한 충실성 여부이기 때문입니다. 비극적인 예로 1980대에 북한의 유명한 한 피아니스트가 작은 국제콩쿨에 나가서 1등을 해서 돌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국가의 명예를 높였으니, 당연히 국가의 영웅 대접을 받았을 것 같지 104
105 만, 그 피아니스트는 얼마 후 탄광으로 보내지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집권자가 원하는 대로 따 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나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지 만, 그는 그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명령을 거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이 세계음악의 높 은 수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다음 기회로 늦추고 싶어했던 것이나, 지도자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탄광에 보내진 것이었습니다. 탄광으 로 보내 탄을 캐도록 하는 것은 피아니스트에게 있어서 가장 가혹한 형벌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이 원래의 북한의 현실이고, 예술인들의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에서도 변화가 왔습니다. 우선, 고난의 행군 이후 각 예술단체들이 독립채산제의 실 시에 따라 유료공연을 활발히 함으로써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 했습니다. 특히, 전자음악을 통한 애정가요들이 많이 창작, 공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공연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당에 대한 충실성, 사회주의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곡들 로 채워졌으나, 지금은 대중들이 좋아하는 가요나 유행가로 대부분 짜여져 있습니다. 다만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공연의 맨 처음과 제일 마지막 곡은 사상성이 짙은 곡을 연주합 니다. 이것이야 말로 큰 변화가 아닌가라고 생각해봅니다. 또한, 남 북간의 수많은 예술교류가 북한 사람들에게 자발성을 일깨웠고 이는 북한 문화와 사람들의 문화시각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 습니다. 최근 탈북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는 록이나 랩 같은 노래도 북한에서 불리어지고 있 다고 합니다. 제가 탈북할 당시만 해도, 북한에서 유행하던 음악은 트로트가 주를 이루었는데 근래, 남북간 예술교류와 라디오 전파를 통해 새로운 문화가 북한에 유입되었고, 그로 인한 새 세대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최근에 나온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요즘 평양시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누가 가장 최근의 한국 비디오와 드라마를 보고 그 줄거리를 얘기하느냐에 그 학생의 인기도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이 한 가지만 놓고 보았을 때도 문화, 전파, 단파를 통한 인권의 접근이 얼마나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접근이 모든 것이 폐쇄된 국가에서 밖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권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는 촛불입니다. 그리고 인권의 촛불에 불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예술의 힘은 무궁무진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군사도 할 수 없는 것을 예술은 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작은 촛불이 타올라 불 을 밝히듯, 작은 숨통, 즉 예술에서 오는 작은 행복이 있을 때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습 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이 평양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참 바람직 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이 것도 있지만, 북한에서 승냥이라고 가르치던 나라가 음악을 들고 평양에 간다니, 정치적인 의도를 떠나 양국 사람들이 서로를 보는 눈과 귀와 입은 달라질 것입니 다. 왜냐하면 서로가 예술을 사랑하는 보통 사람이고, 인간임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입 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우리가 원하는 북한인권의 개선에 매우 좋은 영향 을 끼치고 더욱 더 높은 차원의 인권향상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할 것입니다. 저는 많은 나라들이 보다 실질적으로 북한과의 문화교류를 시도하길 바랍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장군님이 위대해서 다른 나라에서 오는 것이라고 선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국의 선전의 효 105
106 과보다 문화교류가 대중에게 주는 파급효과가 열배, 백배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러시아에서 온 현대공연을 본 후 받았던 깊은 감명을 떠올려봅니다. 한 번 밖에 보지 못한 그것도 외국어로 된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그 때 들었던 선율과 감동을 오 랫동안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일깨워 그들이 더 많 은 문화생활을 향유하기를 원하고 점차 그들도 노래 한곡이라도 원하는 노래를 들을 권리가 있다 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난해한 장르보다는 그들에게 친숙한 명 곡에 리듬과 화성을 바꾸고 특별한 멜로디를 삽입하여 들려주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입니다. 친 숙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음악이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자신들이 연주하거나 듣는 음악이 전부 가 아니라 다른 음악적 방법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또한 그들 스스로 왜 우리는 지금껏 이런 음악을 듣고 연주하지 못했나 하는 의문을 던지며 자신을 메어놓던 틀을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변화와 움직임이 음악에서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다른 부분으로 퍼져나갈 거라 생각합니다. 수요가 생기면 공급이 따라가듯이 대중의 욕구가 강해지면 보 다 많은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 지고 이러한 흐름이 대중의 욕구와 맞물려 더욱 힘을 얻으면 집권 층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예로, 눈물젖은 두만강, 낙화유수, 홍도야 울지마라 등과 같 은 노래는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금지곡이었으나 대중들의 욕구에 의해 2002년도부터 신민요 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허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지해남씨를 비롯한 몇몇 탈북자들이 위의 노래를 불렀다가 교화소나 감옥으로 끌려가서 모진 고생을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대단히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권층을 내포적으로 겨냥한 문화적 접근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소수의 특권층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곳입니다. 물론 그들도 암암리에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 고 있지만 그들을 겨냥한 또 다른 문화적 접근은 필요합니다. 예컨대, 그들이 보는 신문과 서적들 은 범위나 종류에 있어 일반인과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그들은 최근 뉴스를 가장 빨리 접해 볼 수 있습니다. 매일 4면으로 발행되는 참고신문 은 남한의 정치동향이나 서방의 경제현황, 특히 미국의 정치경제문화의 추이와 유엔의 움직임들을 간단하게 요약 정리해 놓은 간부용 신문입니다. 도당 부 장급부터 볼 수 있는데, 도당 부장급은 한국으로 말하면 도청의 국장 이상급에 해당되는 고위직입 니다. 이정도 고위 간부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나마 정보 조작이 적고, 실질적인 소식들을 기본토 대로 하고 있습니다. 참고신문도 A와 B가 있는데, 앞서 말한 수준의 신문은 A에 해당되고 B는 중 앙당 부장급, 한국으로 치면 차관급인 고위층이 보는 참고신문으로 더 많은 정보와 정확한 소식들 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이런 신문을 볼 수는 있지만, 제한되는 부분이 있고, 따라서 그들도 언제나 정보의 갈급함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문화에 대한 목마름도 느끼고 있습니다. 2000년 이전에 있었던 실제 일로 특권층들 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초청되었던 가수가 그 자리에 모인 고위층들의 강요로 남한노래를 불렀다가 발각이 되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처벌받았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특권층이라는 사람들도 남한의 최신가요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흥정내기를 할 정도로 많은 문화적 욕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로 북한의 최고 엘리트층들이고, 그들은 일반주민들보 다 훨씬 더 감성이 풍부하고 문화를 즐길 줄 압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장르나 채널들이 늘어난다면 제일 먼저 변화될 것은 이들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팝 오케스트라 같은 연주형식들 이 많이 늘어난다면 그들의 의식과 사고에서 많은 문화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106
107 다양한 문화의 접촉이 늘어날수록 특권층의 사람들은 다양한 문화에의 욕구에 대한 기대가 생기게 되고 당국도 묵인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문화적 자극을 주면, 사람들이 창발성이 자극되고, 가장 먼저 문화를 통해 스스로 창조하고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생긴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문화에서 시작되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다른 영역으로 넓어 지고 옮겨져서 비문화적인 영역에서도 이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생산현장, 노동,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방법, 실용적 방법, 창의적 방법들을 인민 스스로가 착안해서 만들고자 하는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결국 문화에의 욕구증대와 자극의 증대라는 것은 당장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구조, 그리고 북한사회를 바라 보는 인식 자체를 서서히 그러나 확고하게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현재 외국에서 북한과 공연계약을 할 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절차가 잘못 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긴 안목으로 볼 때, 돈을 주어서라도 이러 한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조건을 중앙방송에서 공연을 실황중계를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번 뉴욕 필 공연의 경우에는 북한당국과 아주 잘 협상한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이러한 전례가 이번에 한번 만들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요구를 북한 측에 하는 것 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주어도 줄 수 없는 영향을 공연문화를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아주 정확히 그리고 거대하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물게 주어지는 기회, 그리고 북한당국과 도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일정정도 타협하고 수용해주어야 하는 부분은 있지만, 우리는 주어진 적은 횟수의 기회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통한 효과를 최대한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더 많은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스탈린 치하에서 공상당의 충성스러운 아들 이라는 헌사를 받은 구소련 음악가인 드미트리 쇼스타 코비치는 말년의 나의 음악은 (죽어간 국민들의) 묘비 라며 회고했습니다. 북한의 문화예술인들이 쇼스타코비치와 같은 일을 겪지 않도록 우리가 도와야 하겠습니다. 107
108 나는 태어날 때부터 정치범이었다 신 동 혁 14호 관리소(평남 개천) 경험자 2005년 1월 2일 14호 관리소 탈출. 2005년 1월 22일 탈북 2006년 8월 한국 입국 나의 가족 나의 북한식 이름은 신인근 (한국 이름: 신동혁)이다. 나는 1982년 11월 19일 북한 평남 개천(14호 관리 소)에서 태어났다. 출생과 동시에 나는 정치범 수용소의 정치범이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내가 아는 아버지에 관한 것들은 아버지의 이름은 신경섭이고 평양 근처에 있는 평강 남도 문덕군 룡정리의 한 마을에서 1946년에 태어났다. 아버지의 형제는 12형제이고 그중에서 우리 아버 지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이다. 나의 아버지가 19살이었던 1965년에 그의 가문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그 해 어느 날, 아침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안전원들이 들이닥쳐 모든 가구들을 옮겨가고 가족 모두를 트 럭에 태웠다. 그리고는 우리 아버지 형제들을 모두 차에 태우고 하루 종일 달려 도착한 곳이 국가보위부 비밀특수 수용소인 14호 관리소였다. 관리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아버지는 물론 아버지 형제들을 전부 갈라놓았고 짐승취급을 했다고 한다. 이후, 같은 관리소에 있는 남동생을 아주 가끔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외에 다른 형제들은 생사조차도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공무직장에 배치 받아서 일을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로 아버지는 같은 관리소의 여성 정치 범인 나의 어머니, 장혜경과 표창결혼을 하였다. 그 후부터 그들은 남편과 아내가 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5일 정도 같이 지낼 수 있었고 5일 이후에는 다시 갈라졌다. 이 후, 특별히 일을 잘하여 가끔씩 표창휴가를 받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만날 수 없었다. 나보다 몇 년 앞서 태어난 형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형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가 처형당했던 1996년 전까지 나는 형을 3번인가 4번 정도 밖에 볼 수 없었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와 함께 같이 살았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형과 함께 살았었던 기억도 그런 기억이 있었는지조차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나는 12살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농부였는데,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저녁 11시가 돼서야 108
109 집에 돌아왔다. 항상 너무 바빠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다정스러웠던 기억이 나에게는 거의 없다. 매일저녁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염장배추 3포기와 석탄 한 초롱과 함께 그녀의 몫인 900그램 의 강냉이와 나의 몫인 400그램의 강냉이를 타가지고 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몫인 900그램에서 300그램 은 식량절약이라고 해서 600그램밖에 가지고 오지 못했다. 사실 어머니의 노동은 9시 30분 정도에 끝나 지만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1시간 30분 동안 하루 생활 사상 투쟁회의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실제로 하루 생활 사상 투쟁회의의 목적은 그날 일의 목적달성에 실패한 정치범과 규칙을 어긴 정치범 등을 처벌하기 위한 데에 있다. 이 시간 동안, 정치범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때리도록 강요받는다. 밤 11시부터는 통 행금지시간이다. 이것은 수용소 내 모든 정치범들의 기본적인 일과였다. 종종 내가 어머니가 일하는 곳으로 아장아장 걸어갔지만 어머니는 항상 너무 바빠서 어머니의 애정을 보여 줄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오늘날까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있지만 어떤 특별한 감정은 느낄 수 없다. 어느 날 나는 읽기, 쓰기, 더하기, 빼기 외엔 다른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었던 5년 과정인 초등학교에 보 내어졌다. 학교 첫날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초등학교에는 총 40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고 1 학년부터 5학년까지 한 학년 당 2~3개의 반이 있었으며 각 반당 3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던 것은 기 억난다. 그 아이들이 어디서 왔는지 나처럼 이곳에서 태어났는지 끌려왔는지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 하 지 않았다. 내가 9살이었을 때 하루는 학교에서 수업 때 항상 군복 입었던 선생님이 몸수색을 하여 한 여자아이의 주머니에서 밀 이삭 5알를 찾아내었다. 선생님은 우리 앞에 그를 무릎을 꿇어앉히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정신없이 때렸다. 이상하게도 그의 머리는 피가 나지 않고 혹이 사방에 튀어 나왔다. 우리는 그 여자아 이를 부축하고 집에 데려다 주었고 다음날 그가 그날 저녁에 끝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여자아이가 매 맞아 죽었는데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니! 군복을 입은 선생님들은 모든 권한이 그들 에게 있었다. 이것이 바로 보위부 14호 관리소의 일상적인 현상이었다. 내가 10살 때인가 한번은 어머니 농촌 지원 전투에 나도 같이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학급은 마침 부모들의 작업반으로 지원 나갔다 우리들이 할 일은 모내기 전투였다. 아침 아홉시부터 우리는 작업을 시작 하였다. 각각 자기부모들이 맡은 포전에서 모내기를 하는 것이다. 그날 계획은 그날로 넘쳐 수행하 여야 한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침부터 머리가 좀 아프다고 하였다.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나와서 일을 하여야 한다. 나는 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거들어 주었다. 그러나 우리 모자가 맡은 일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러자 담당 보위 지도 요원의 입에서는 갖은 욕설이 튀여 나왔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맡고 있는 논두 렁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점심 먹고 나올 때까지 있으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점심 먹으로 들어갔는데 어머니만 논두렁에서 볕을 받고 있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였다. 정확히 1시간 반 뒤 보위 지도원은 어머니에게 다시 일을 시작 하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이미 약할 때로 약해져 있었고 심하게 벌을 받았으며 점심조차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3시 쯤, 그녀가 쓰러질 때까지 109
110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그날 계획을 하지 못하여 그날 저녁 사상투쟁회의에서 비판무대에 올라서서 두 시간 동안을 무릎을 꿇고 무려 40명한테서 한 사람 한 사람 둘러가며 비판을 받았다. 내가 12살 나던 해,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엄마와 갈라져 살아야 했다. 그때부터 수업은 하는 것이 없고 매일 일만하였다. 김매기, 가을걷이, 거름 나르기 즉 농촌 지원 등 각종 일을 했다. 배우는 것 없이 일만 하였다. 중형 발전소 건설 작업 1998년 봄부터 1999년 가을까지 중형발전소 건설에 우리 학생들이 참가하였다. 학생들의 나이는 13살 에서 16살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많은 아이들이 사고로 죽는 것을 보았다. 그전에는 공개처형과 시체들을 보긴 했지만 사고로 인한 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끔, 4명에서 5 명의 아이들이 하루에 죽어나갔다. 한번은, 실제로 사고로 인해 8명이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미장공 3명 이 높은 콘크리트벽 위에서 일하고 있었고 옆에서 이들을 보좌하고 있던 15살짜리 여자아이 세 명과 남 자아이 두 명이 일하고 있었다. 내가 회반죽을 실고 가고 있을 때 아이들이 있던 시멘트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조심해! 콘크리트벽이 무너지고 있어! 라고 소리쳤지만 때는 너무 늦었고 아이들은 무거운 시멘트벽 아래 깔렸다. 우리는 그들의 시체를 거둘 수 가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보위부원들이 하던 일 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 라고 소리쳤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일들은 수용소 안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중 하나 일 뿐이었다. 불로 고문당하다. 1996년 4월 6일 아침 8시 경 급하게 학교로 오라는 전달을 받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따라가니 운동 장에 승용차 한 대가 서있고 누군지 모를 사람 다짜고짜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눈을 보이지 않게 가 리고 승용차 뒤에 나를 태워 어디론가 한참 데리고 갔다. 내 육감으로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어느 방 같은 곳에 들어서면서 내 눈을 풀어주었다. 눈을 뜨니 방에는 아무것도 없고 책상과 의자에 사람 한명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나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거기에는 나의 아버지의 형제들의 이름이 적혀있었 는데 첫째 큰아버지와 둘째 큰아버지가 56년 전쟁당시 치안대에 가담하였다가 월남하였다고 적혀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이 무엇 때문에 관리소에 들어왔는지 짐작되었다. 맨 아래에 내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찍었다. 그곳이 바로 그 어느 곳에도 알려지지 않은 14호 수용소의 지하 감옥이었다. 나는 7호 감방에 들어갔고 감 방은 어둡고 작았으며 천장에 달려있던 작은 전기불외에 다른 빛은 없었다. 내가 금방 도착 했을 적에 의 자에 앉아있던 사람이 우리 엄마와 형이 도주를 기도하다가 새벽에 체포되었는데 우리 식구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도주를 시도하였느냐는 것이었다. 110
111 그것은 나에게 끔직하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고 그 소식에 나는 놀라 펄쩍뛰었다. 다음날 나를 다른 방 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는 각종 고문도구들이 있었다. 두발 목에 수갑을 채우고 양손에는 밧줄을 메 고는 내 옷을 전부 벗기고 난 후 천장에 손과 발을 매달았다. 그리고는 누군가 누가 도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는지 자백하라고 강요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상하게도 그 당시 나는 겁이 없어졌다. 그것이 지금도 나에게는 의문이다. 그들은 숯불을 피우기 시작 하였고 그 숯불을 내 등에 가져다 대기 시작하였다. 내 허리 부위가 따가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너무 참지 못하여 몸을 요동치었다. 그러자 그들은 끝이 뾰족한 갈고리로 내 사타구니를 찍고는 관통시켜 몸 이 요동을 치지 못하게 하였고 끝내 나는 기절하였다. 얼마 만에 정신을 차렸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눈을 뜨자 격한 냄새가 요동하였다. 내가 기절해서 오줌과 대변을 보았던 것이다. 겨우 무릎을 꿇고 일어나서 보니 허리가 쓰리고 아팠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만져지 고 상처가 느껴졌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운신하다가 힘들어지고 썩어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 때문에 간수들도 내방으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건넌방으로 옮기었다. 그곳에는 나이 많은 남자가 있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짐작으로 그 방에 있은 지 20년이 훨씬 넘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몸에 살이 하나도 없이 진짜 뼈에 가죽만 씌워져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용 히 나를 돌봐주었다. 한번은, 그가 나에게 식량 절반을 덜어주면서 너는 어리니깐 살려면 더 먹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분 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어서 일까? 아니면 하느님이 있어서일까? 나는 먹기 시작했고 내 건강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와 한 방을 같이 쓴지 여러 달이 지났을 쯤 어느 날 나를 불러내는 것이다. 그때 해골처럼 앙상했던 모습이 나에게 너무나 큰 친절을 베풀던 그분의 마지막 모습이다. 나는 지금도 그분을 잊지 못 한다. 나는 나를 낳아준 부모보다도 그분을 더 사랑한다. 그분은 나의 부모들도 주지 못했던 강한 의지를 나에게 심어주었다. 나는 방으로 옮겨졌다. 방안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그때서야 내가 잡혀들 어 올 때 아버지도 잡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와 아버지에게 감옥 안에서의 모든 상황을 노 출시키지 말라며 서약서를 쓰게 하고 손도장을 찍게 했다. 그날이 11월 29일이었다. 공개처형당한 어머니와 형 서약서 절차가 끝난 다음 눈이 가려진채로 밖으로 나왔는데 그날은 나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나는 무려 7개월 동안을 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지하 감방에서 생활하였다. 그들은 우리 부자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바로 사형 터였다. 그 사형 터는 1년에 2~3번 정도의 공개 처형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수갑을 풀어주며 우리를 맨 앞자리에 앉히었다. 우리는 멀리서 2명의 남 녀를 끌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거의 가까이에 다가 왔을 때 뜻밖에도 그 두 사람은 나의 어머니와 형이 었다. 111
112 형은 몸이 너무 허약해 보였다. 얼굴에 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는 몸 전체가 퉁퉁 부은 듯하였 다. 공개처형할 때 사회자가 크게 읽은 것의 정확한 내용은 기억 못하고 있지만 민중 반역자 장혜경과 신 희근을 총살하시오 라는 마지막 말은 들을 수 있었다. 형은 미리 세워놓은 나무말뚝에 묶어 놓았는데 머리 에 한곳, 가슴에 한곳, 허리에 한곳, 허벅지에 한곳을 묶었고 어머니는 기역자 형식의 말뚝에 밧줄을 매달 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먼저 어머니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머니는 팔을 뒤로 묶이고 나무상자위에 올라서게 하였다. 이 광경을 차마 지켜 볼 수가 없었다. 세상에 자기 엄마와 형이 교수형과 총살을 당하는데 그것을 지켜볼 아들과 아버지가 어디 있으랴. 아버지 쪽을 보자 머리를 푹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공개처형 후 아버지와 나는 다시 갈라져서 아버지는 관리소 편의사업소 건설작업반으로 가고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그 후 나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선생들은 나를 반역자의 아들이라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거나 벌을 주었다. 내가 너무도 소변을 보고파 선생한테 소변을 보겠다고 하여도 그냥 바지에다 싸 라고만 하였다.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한번은 너무 배가고파 땅을 보면서 걸을 때 소똥에서 강냉이 알 세알이 보이는 것이다. 소가 강냉이 이삭을 주어먹고 소화시키지 못하여 나온 배설물이다. 나는 그것이라 도 주울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프니깐 그 강냉이 알 3알을 옷소매에 닦아가지고 먹었다. 끔찍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날은 운 좋은 날이었다. 강간당한 나의 사촌누이 하루는 사촌누나가 다른 정치범들과 함께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올라갔다 경비대의 눈에 들켰다. 그들은 숙모와 누나를 물러놓고 경계선까지 올라왔다고 하면서 말을 시켰다. 나의 사촌누나는 당시 21~22살이었는데 대단히 곱게 생겼다. 경비대 두 명중 상관인 놈이 누나에게 다가 가 희롱하기 시작하였고 숙모가 반대를 하자 숙모를 뒤로 묶어놓고 눈을 가리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낮 에 사촌누나를 성폭행했다. 숙모가 기절했다가 눈을 떠보니 누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이 없었다는 것 이었다. 경비대는 어디 갔는지 없었다고 한다. 누나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때 숙모는 정신이 돌아가지고 그 다음날 새벽부터 길바닥에 앉아 놈새끼들이 내 딸을 죽였다며 통곡을 하다가 어디론가 잡 혀 갔다. 그리고는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우리 집의 가족이나 친척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어 쩌면 우리아버지 대가 완전히 끊길지도 몰랐다. 비단 우리가족 뿐만 아니라 수용소의 전체 5~6만 명의 수용 수들이 이런 죽음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피복 공장에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피복 공장에 배치되었다. 나는 여기서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였다. 피복 공장에서 약 2500여명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2000여명은 여자였다. 여자들의 나이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는 데, 유별나게 수용소의 10대 20대 30~40대 여자들 조차도 사회에 있는 일반인들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곱게 생겼다. 112
113 문제는 단체복을 입고 있는 그들이기에 그들은 속내의조차도 변변히 입고 다니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보위지도원들의 탐욕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피복 공장에 약 7명의 여자들이 보위지도원의 사무실 청소를 교대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순번제 청소를 하 는데 일반 여자들은 그 청소 당번에 뽑히려고 무던히 애쓰던 기억이 난다. 그래야 보위지도원은 물론 총 반장의 폭행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같은 학급 동창생 중에 박춘영이라는 고운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지금 살아있으면 24살이 다. 그 아이도 보위지도원의 사무실 청소담당에 뽑혔다. 4 달 후 내 친구의 입에서 박춘영이가 임신한 사 실을 알게 되었다. 박춘영이가 임신한 사실을 나를 포함하여 같은 학급 동창생들이 4명 정도가 알고 있 었다. 우리는 그의 임신 사실을 비밀로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배가 점점 불러 오면서 더 숨기려야 숨 길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끝내 임신 사실을 들켰고 하룻밤 사이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 도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다. 이일은 단지 박춘영 뿐만이 아닌 그의 사무실에서 청소를 하는 여자들도 언제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재봉기 받침대를 등에 지고 2층으로 가지고 올라가다가 손에 힘이 빠지면서 떨어뜨려 재봉기 받침 대가 부셔졌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나는 보위지도원에게 불려가 네놈은 재봉기 받침대도 못 가져온다고 하면서 네놈의 손이 문제이니 총 작업반장에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하였다. 총 작업반장은 식칼로 내손을 책상위에 올리고 칼을 번쩍 들어 내손을 내리쳤다. 순간 오른손 중지가 잘라져나갔고 이렇게 나는 손가락 하나를 잃었다. 2004년 중반 밤 11시 사상투쟁회의가 끝난 뒤 그때는 웬일인지 4명의 보위원들이 같이 참가하였다. 보위 지도원이 우리에게 어느 호실에 이가 많은가를 물은 것이었다. 그러자 남자호실 여자호실 반장들이 일어 나 자기네 호실이 이가 많다고 하였다. 그러자 지도원은 약을 주겠으니 그것으로 목욕을 하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각각 한 호실에 20kg짜리 물통을 두통씩 주었다. 여자호실 5명과 남자호실 7명이 목욕을 하였 다. 그때는 아무 일이 없었다. 그때 그들이 준 약은 쌀뜬물 같은 뿌연 물이였는데 냄새는 밭에 농약으로 쓰던 우아독수라고 하는 농약의 냄새가 났다. 그들이 목욕을 한 후 1주일이 자나면서부터 그들의 목에서 는 붉은 반점이 생기면서 곪아 터지기 시작하더니 거의 한달 뒤에서는 살이 문더러 떨어지기 시작하였 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고역에 시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조차 못하였다. 그들이 거의 죽어간다고 생각할 즈음에 트럭한대가 오더니 그들 모두를 치워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무소식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끔찍한 광경이다. 혹시라도 내가 그때 그물로 목욕을 했었더라면 나는 지금 대한민국 이 자리에 없 었을 것이다. 2004년의 어느 하루, 나는 박 씨라는 성을 가진(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치범이 피복 공장에서 내 가 일하던 곳으로 왔다. 나는 그에게 기계 수리하는 법을 가르쳐주도록 전달받았다. 여러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처음으로 내게 수용소 밖 세상을 알려주었 다. 이 젊은 친구는 아시아들의 몇몇 나라를 여행해봤고 나에게 그가 경험했던 바깥 세상에 대한 많은 것들을 얘기해줬다. 그는 기회가 나는 대로 수용소를 탈출해서 수용소 밖의 세상을 경험해 보라고 다독 여주었다. 113
114 수용소로부터의 탈출 그러던 2005년 1월 1일 나는 하루 휴식하면서 아버지를 만나러 갔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특별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 2일 피복 공장에서는 화목을 한다고 하면서 약 25명의 남 자, 여자들이 산으로 올라갔다. 여기 책임자는 총반장이였다. 우리는 화목을 하면서 산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철조망이 눈에 띠었다. 순간 다른 사람들이 보나 하고 보니 화목을 하고 있었다. 이때 내 머릿속에 떠 오른 것이 어머니와 형의 처형장면과 감방에서 고문 받을 때 그 악몽이 머릿속에서 스치어지나갔다. 그때 나 에게 떠오른 것이 저 철조망을 넘어가자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더 다른 생각이 할 필요조차 없었다. 다른 사 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경계선이 가까이로 접근하니 눈에 확 안겨 왔다. 그때 눈이 거의 무릎가까이 까지 쌓여 있었는데 나는 살금살금 다가갔다. 경계선 바로 옆은 경비대들이 순찰로가 있어 눈이 다 치워져 있었고 그 너 머 약 1미터 정도 아무것도 없는 흔적선 그리고 전기 철조망이다. 나는 이 철조망을 넘다가 총에 맞아 죽거 나 전기에 붙어죽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가 오직 하나 저 철조망 밖으로 나가자 하는 것 밖에는... 철조망을 살펴보니 첫선과 두 번째 선사이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나는 더 생각할 새 없이 경계선 쪽으 로 달리기 시작하여 철선과 두 번째 선사이로 몸을 들이미는 순간 밑바닥에 무엇에 찔리는 느낌과 순간 두 다리 하체부분이 전기에 붙으면서 정신이 아찔하였다. 그래도 나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기어 나왔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내가 수용소의 철조망을 탈출할 때 전기에 붙은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철조망은 내 등 뒤에 있었다. 순간 내 마음은 그 무엇에도 바꿀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 그때의 내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정신없이 산골짜기 아래로 내리 뛰었다. 한 참을 내리 뛰다가 바짓가랑이가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 가랑이를 올려 보니 두 다리에서 피가 흘러 나 왔다. 그때야 나는 내가 철조망 사이로 넘어 올 때 전기에 붙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그 상처를 돌 볼 경황이 없었다. 나는 상처를 그냥 놔두고 골짜기로 뛰어 내려갔다. 마을로 들어가니 불 꺼진 집이 한 채 있었다. 다짜고짜 집에 들어가 밥을 먹고 쌀을 훔쳐가지고 다시 나왔다. 훔친 쌀을 장마당에 팔고 그 돈으로 경비대에게 뇌물을 먹여 검문소를 안전히 통과할 수 있었다. 자유를 향한 길 정치범으로 태어나서 수용소 밖으로 탈출하여 처음으로 북한사회를 보았다. 불과 20일 밖에 되지 않았지 만 그 기간에 나는 북한사회가 새롭게 느껴지었다. 기적적으로 두만강을 건너 2005년 1월 중국에 도착하 였다. 국경근처 한 산골마을의 중국인의 집에서 소 방목을 하며 1년간 일했다. 일 년을 일하고 떠난다고 하자 나에게 중국 돈 600원을 주었다. 1년 일하고 600원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장춘으로 간 다음 거기서 기차를 타고 북경에 내리었다. 북경에서 다시 청도로 오는 버스를 타고 청도에 도착하였다. 청도에 도착하여 한 한국식당에 들어가 한국남자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나 를 상해로 데려가서 영사관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상해의 영사관에서 6개월을 보낸 후 한국 으로 올 수 있었다. 114
115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Citizens' Alliance for North Korean Human Rights(NKHR) 서울종로구 교북동 심지빌딩 301 Tel: , 2671/FAX : [email protected] 인간 사랑을 행동으로 옮겨주십시오. 근래 많은 인권 NGO의 활동으로 북한의 인권상황과 북한난민들의 실상이 밝혀지고 있고 또 이들을 위한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15만 명 이상의 북한 사람들이 정치범수용 소라는 비인간적 제도 하에서 신음하면서 죽음의 공포 속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어 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굶주림과 감시를 피해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국 경을 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들은 소수 에 불과하며, 그들 역시 사회적응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어느 때보다 더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난민문제는 우리 겨레의 문제이자 전 인류의 문제이기도 합 니다. 여러분의 인간 사랑이 NGO활동에의 참가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회원이 되시면 1본회 정기간행물을 받아보시고, 2학술토론회에 참석해 북한인권문제에 관해 토론할 수 있으며, 3북한 인권문제 계간지 '생명과 인권'(한,일,영)의 발행을 도와 전 세계에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는데 기여하게 되며, 4재외 탈북동포 및 국내거주 탈북동포를 돕는 활동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회비 단체회원 연 500,000원 일반회원 연 240,000원(월 20,000원) 학생회원 연 120,000(월 10,000원) 계좌이름: 북한인권시민연합 지로번호: 은행 및 계좌번호 국민 농협 외환 우리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2 목차 편집자의 말 ------------------------------------------------------------------------------------- 3 한국의 * 상1 개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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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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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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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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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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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4 06 08 10 12 13 14 16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현이가 이 곳 태화해뜨는샘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해샘에 처음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남을 의식해 힘들어하고, 사무실내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신경 쓰여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소현이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41호-소비자문제연구(최종추가수정0507).hwp
소비자문제연구 제41호 2012년 4월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용약관의 약관규제법에 의한19)내용통제 가능성* : Facebook 게시물이용약관의 유효성을 중심으로 이병준 업 요약 업 규 규 논 업 쟁 때 셜 네트워 F b k 물 규 았 7 계 건 됨 규 규 업 객 계 규 므 받 객 드 객 규 7 말 계 률 업 두 않 트 접속 록 트 른징 볼 규 업 내
(중등용1)1~27
3 01 6 7 02 8 9 01 12 13 14 15 16 02 17 18 19 제헌헌법의제정과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5월 10일: UN 감시 하에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1948년 6월 3일: 헌법 기초 위원 선출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소집. 헌법 기 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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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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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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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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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2. 3. 4. 제2장 아동복지법의 이해 12 4).,,.,.,.. 1. 법과 아동복지.,.. (Calvert, 1978 1) ( 公 式 的 ).., 4),. 13 (, 1988 314, ). (, 1998 24, ).. (child welfare through the law) (Carrier & Kendal, 1992). 2. 사회복지법의 체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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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 캠퍼스 문화 조성을 위하여... 고려대학교 양성평등센터 는 2001년 6월에 제정된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 에 의거하여 같은 해 7월에 설치된 성희롱및성폭력상담소 를 2006년 10월 개칭한 것입니다. 양성평등 센터 로의 개칭은 교내에서 발생하는 성피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과 상담 제공뿐만 아니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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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oad.or.kr E-book 10 2016. Vol. 434 62 C o n t e n t s 50 58 46 24 04 20 46 06 08, 3 3 10 12,! 16 18 24, 28, 30 34 234 38? 40 2017 LPG 44 Car? 50 KoROAD(1) 2016 54 KoROAD(2), 58, 60, 62 KoROAD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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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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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0 http://www.homeplus.co.kr 11 http://www.homeplus.co.kr 12 http://www.homeplus.co.kr 13 http://www.homeplus.co.kr Interview 14 http://www.homeplus.co.kr Interview 15 http://www.home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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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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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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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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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Winter 02 08 10 News 14 Article Report 42 NARS Report 60 NARS Report Review 68 World Report 84 Column 94 Serial 116 2011 Winter 11 www.nars.go.kr 01 02 w w w. n a r s. g o. k r 03 04 01 02 03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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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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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방지법 제정과정에 영향을 미친 요인에 관한 연구 - 거버넌스 관점과 여성단체의 역할을 중심으로 오 혜 란 * 1) 초 록 주요용어:성매매방지법, 성매매, 여성관련 법률, 여성단체, 여성정책, 입법과정, 젠더, 거버넌스, 젠더 거버넌스, NGO I. 들어가는 말 II. 이론적 배경 여성정책과 거버넌스 거버넌스의 의미 거버넌스의 유형 1) 국가(정부)주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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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보호수사준칙개정안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0조 제1항에 따른 법무부의 인권보호 수사준칙개정안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요청에 대하여 검토한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법 제19조 제1호에 의하여 아래와 같이 의견을 표명한다. 1. 개정안 제12조의 체포 등에 대한 신속한 통지조항에서 지체없이 라는 용어는 명확성의 원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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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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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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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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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2005.6.9 5: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개 지역지식재산센터 를 통해 발명가와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선진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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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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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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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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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북한에대한이해를돕기위해통일교육원에서발간한교재입니다. 각급교육기관등에서널리활용하여주시기바랍니다. 차례 Ⅰ. 북한이해의관점 Ⅱ. 북한의정치 차례 Ⅲ. 북한의대외관계 Ⅳ. 북한의경제 Ⅴ. 북한의군사 Ⅵ. 북한의교육 차례 Ⅶ. 북한의문화 예술 Ⅷ. 북한의사회 Ⅸ. 북한주민의생활 차례 Ⅹ. 북한의변화전망 제 1 절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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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1 9 9 2년 2 월 1 1일에 모 스 크 바 에 서 서명된 북 태 평양 소하 성어족자 원보존협약 (이하 협약 이라 한다) 제8조 1항에는 북태평양소하성어류위원회 (이하 위원회 라 한다)를 설립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8조 16항에는 위원회가 을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
1993년 2월 24일 발효 1994년 1월 11일 개정 1998년 11월 6일 개정 2001년 11월 2일 개정 2003년 10월 31일 개정 2013년 11월 15일 개정 2014년 5월 16일 개정 제목 규칙 페이지 적용 1 110 회계연도 2 110 예산 3-9 110-111 분담금 10-11 111 계상예산의 지출대상 12-13 111 전용 14 111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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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매매를 위한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 연구 여 성 부 목 차 Ⅰ. 서론 Ⅱ.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결과 정리 Ⅲ. 여성복지상담소 실태조사 결과 Ⅳ. 선도보호시설의 운영 및 프로그램 현황 조사 결과 Ⅴ. 결론 참고문헌 부 록 표 목 차 그 림 목 차 부 표 목 차 Ⅰ. 서 론 . 서론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탈성매매를 위한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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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프로그램 선택은 다단계적인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본 연 구는 TV시청을 일상 여가행위의 연장선상에 놓고, 여러 다양한 여가행위의 대안으로서 TV시청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TV를 시청하기로 결정할 경우 프로그램 선택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지 밝히고자 했다. 27) 연구 결과, TV시청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1. 상고이유 제1점에 대하여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2009. 2. 6. 법률 제944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구 도시정비법 이라 한다) 제4조 제1항, 제3항은 시 도지사 또는 대도시의 시장이 정비구 역을 지정하거나 대통령령이 정하는 경미한 사항을 제외한
대 법 원 제 1 부 판 결 사 건 2012두6605 사업시행계획무효확인등 원고, 상고인 원고 1 외 1인 원고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유한) 태평양 담당변호사 이인재 외 2인 피고, 피상고인 서울특별시 종로구청장 외 1인 소송대리인 정부법무공단 외 3인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12. 2. 2. 선고 2011누16133 판결 판 결 선 고 2015. 4.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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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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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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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10월추천dvd
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24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 등을 수행하여 인니전력 이다. 공사(PLN)를 비롯한 인니
피해자식별PDF용 0502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IOM 인신매매 방지 교육 지침서 시리즈는 인신매매 피해자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 에 대한 지원 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개발 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인신매매 방지 되었다. IOM의 풍부한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실무자에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비정부기구, 정 게 도움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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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TY MAGAZINE Imagine 2 AMNESTY MAGAZINE contents 06 Imagine Good news 02 04 Cover story Interview Amnesty news 06 14 18 14 Opinion 24 21 Act now Member zone 26 28 Welcome 29 Accounting report 30 23
현안과과제_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_150805.hwp
15-27호 2015.08.05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 국민의 절반 동참시 1조 3,100억원의 내수 진작 효과 기대 Executive Summary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개 요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침체된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오는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에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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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60년기념전 시련과 전진 주 최 : 광복6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 관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중앙일보 후 원 : SK Telecom, (주)부영, 다음 일 정 : 2005.8.14(일) ~ 8.23(일) 장 소 : 대한민국 국회 1. 내용의 일부 혹은 전체를 인용, 발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저자와 출처를 밝혀 주셔야 합니다. 2. 본 자료는 http://www.kdemocracy.or.kr/kdfom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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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이달의 주요 글로벌 IT 트렌드 IDG World Tech Update May C o n t e n t s Cover Story 아이패드, 태블릿 컴퓨팅 시대를 열다 Monthly News Brief 이달의 주요 글로벌 IT 뉴스 IDG Insight 개발자 관점에서 본 윈도우 폰 7 vs. 아이폰 클라우드 컴퓨팅, 불만 검증 단계 돌입 기업의
감사회보 5월
contents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동정 및 안내 상장회사감사회 제173차 조찬강연 개최 상장회사감사회 제174차 조찬강연 개최 및 참가 안내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조직의 역 량과 경영리더의 역할의 중요성 등 장수기업의 변화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윤정구 이화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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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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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성은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므로 성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성가치관은 평생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성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성과 건강 단원에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피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성매매와 성폭력의 폐해, 인공임신 중절 수술의 부작용 등을 알아봄으로써 학생 스스로 잘못된 성문화를
[NO_11] 의과대학 소식지_OK(P)
진 의학 지식과 매칭이 되어, 인류의 의학지식의 수준을 높 여가는 것이다. 하지만 딥러닝은 블랙박스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단지 결과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의학지 식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실제로 의학에서는 인공지능을 사용하게 될 때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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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사 1952년 7월, 법치주의 확립과 인권옹호의 기치 아래 창립한 우리 대한 변호사협회는 올해로 창립 54주년을 맞이하였다. 그간 우리 대한변호사 협회는 국내의 대표적인 인권단체로서 정부 정책에 대한 고언과 지향점 을 제시하고,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노력 해 왔다. 지난해부터는 인권위원회 내에 북한인권소위원회를 구성하여 법률가단체로서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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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Group 2006 AUTUMN Volume. 02 Focus Group 2006 AUTUMN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를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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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JEONNAM DRAGONS FOOTBALL CLUB MATCH MAGAZINE VOL.136 / 2014.10.16 Preview Review News Poster PREVIEW K LEAGUE CLASSIC 32R JEONNAM VS SEOUL / 14.10.18 / 14:00 / 광양축구전용구장 서울과 뜨거운 한판 승부! 전남드래곤즈가 오는
단양군지
제 3 편 정치 행정 제1장 정치 이보환 집필 제1절 단양군의회 제1절 우리는 지방자치의 시대에 살며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주민의 복지증진을 꾀 하고 있다. 자치시대가 개막된 것은 불과 15년에 불과하고, 중앙집권적 관행이 커 서 아직 자치의 전통을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의 과제 가 더 중요하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지역 지방자치의
가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쌍해서이다 가해하고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 같아서이다 보복이 두려워서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화가 나고 나쁜 아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 따돌리는 친구들을 경계해야겠다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p529~802 Á¦5Àå-¼º¸í,Ç×ÀÇ
제5장 >>> 성명서 선언문 항의 - 건의서 및 각종 공한 取材妨害 正 副統領 選擧 取材기자 暴行사건(서울)에 대한 聲明 1960년 2월 14일 / 聲明書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13일 영등포구청 앞 노상에서 한국일보 趙鏞勳기자와 미국 CBS서울주재 韓永道기자가 취재임무 수행중 수명의 폭력한들에게 피습된 불상사의 진상을 검토한 끝에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 사상에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1960 년대 1960 년 35 1960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36 37 1960 년 [ è ] 1851 1 [ ] 1 é é é 1851 É 1960 년 2 1 2 11 1952 22 38 1961년 1961년 39 1961 년 3 월 14 일, 한국일보 4 면, 2 3 2 3 40 1962년 1962년 41 1962 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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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1. 보고서의 목적과 개요 (1) 연구 목적 1) 남광호(2004), 대통령의 사면권에 관한연구, 성균관대 법학과 박사논문, p.1 2) 경제개혁연대 2008.7.23. 보도자료, 경제개혁연대,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정보공개청구 -2-
8.15 :. 서울 종로구 운니동 65-1 오피스텔월드 606호 02-763-5052 www.ser.or.kr -1- 1. 보고서의 목적과 개요 (1) 연구 목적 1) 남광호(2004), 대통령의 사면권에 관한연구, 성균관대 법학과 박사논문, p.1 2) 경제개혁연대 2008.7.23. 보도자료, 경제개혁연대,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정보공개청구 -2- (2)
Vision Mission 15 174 121881 T 0269004400 F 0269004499 170 5 121140 T 0221264091 F 0221264044 4 112 203 425807 T 0314020442 F 0314020140 899 402061 T
2014 Vol.130 Zoom In People Vision Mission 15 174 121881 T 0269004400 F 0269004499 170 5 121140 T 0221264091 F 0221264044 4 112 203 425807 T 0314020442 F 0314020140 899 402061 T 0324341391 F 032439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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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희망캠페인 쪽방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기름 값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내 몸 하 나 간신히 누일 전기장판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합니다. 한 달에 열흘정도 겨우 나가는 일용직도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 한 달 방값을 마련하 기 어렵고, 일을 나가지 못하면 밖으로 쫓겨 날
2016년 신호등 3월호 내지A.indd
www.koroad.or.kr E-book 03 2016. Vol. 427 54 C o n t e n t s 40 50 24 46 04 20 46? 06,! 24 50 3, 08! BMW,? 28 54 12,! KoROAD 2 30 58 16, 34 60 18? 38 62? 40 64 KoROAD (IBA) 4!,, 2016 CEO!. 427 201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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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과 남녀유권자의 정치의식 및 투표행태에 관한 연구 - 여성후보 출마 선거구 조사를 중심으로 - 2004. 7 여 성 부 제17대 총선과 남녀유권자의 정치의식 및 투표행태에 관한 연구 - 여성후보 출마 선거구 조사를 중심으로 - 2004. 7 여 성 부 연구요약 표 주제 및 연도별 여성유권자 연구 현황 표 출마한 여성후보 인지시기 투표후보여성
병원이왜내지최종본1
아토피 건선 습진 무좀 탈모 등 피부병은 물론 비만 당뇨 변비 고혈압 생리통 관절염 류머티즘 설사 등 속병도 스스로 간단히 치료하는 비법 100평 아파트도 건강을 잃으면 월세방만 못하다. 자녀를 사랑하면 이책을 반드시 읽게 하라 지은사람 99세까지 88하게 살기운동본부 펴낸곳 청 인 저자 회춘 모습 병원검진 생체나이 40대 초반 Contents 4 5 6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전문용어의국어화 강현화 1. 들어가기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 사용의 전형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전문 용어의 사용자가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포 될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출발점을 시작으로 과연 전문 함 용어의 국어화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전문 용어 연구의 쟁점 2.1. 전문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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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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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S 7 13 35 44 44 62 65 76 92 121 131 138 151 163 174 180 185 193 199 204 206 209 228 256 287 296 318 321 322 344 348 354 357 359 364 367 399 410 428 446 투명한 법, 공정사회로! 2010 부패영향평가 사례집 부패영향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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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당판 21권 7호 2015년 2월 15일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 보고는 토요일 오전까지 마쳐주십시오. 보고자 : 김연호 목사 010-9251-5245 보고 : 각 교구 조장님께서 교구 사역자에게 보고해 주세요. 분당판 21권 7호 2015년 2월 15일 생명순활동상황 전도실적은 전도 한 분이 소속한 교구의 생명순에 전도한 인원수를 추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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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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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056-094 2013.1.9 7:22 PM 페이지67 MDPREP_RipControl 2007 개정 5학년 검정 지도서 각론 알짜 정리 67 영양소 힘을 내는 일(탄수화물/지방/단백질) 몸의 조직 구성(지방/단백질/무기질/물) 몸의 기능 조절(단백질/무기질/비타민/물) 식품 구성 자전거의 식품과 영양소 식품군 곡류 탄수화물 우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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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PowerPoint 프레젠테이션
Translation Song 1 Finger Family 한글 해석 p.3 아빠 손가락, 아빠 손가락. p.4 p.5 엄마 손가락, 엄마 손가락. p.6 p.7 오빠 손가락, 오빠 손가락. p.8 p.9 언니 손가락, 언니 손가락. p.10 p.11 아기 손가락, 아기 손가락. p.12 p.13 p.14-15 재미있게 부르기 (Sing and Play Time)
2. 4. 1. 업무에 활용 가능한 플러그인 QGIS의 큰 들을 찾 아서 특징 설치 마 폰 은 스 트 그 8 하 이 업무에 필요한 기능 메뉴 TM f K 플러그인 호출 와 TM f K < 림 > TM f K 종항 그 중에서 그 설치 듯 할 수 있는 플러그인이 많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 림 > 다. 에서 어플을 다운받아 S or 8, 9 의 S or OREA
*표지-결혼과가정 2012.10.23 3:59 PM 페이지1 태산아이인쇄그룹(국) 2261-2488 2540DPI 175LPI James W. Knox 시리즈 성령의 열매 James W. Knox 지음 김영균 옮김 도서출판 킹제임스 신국판 352쪽 값 12,000원 성경적 종말론 James W. Knox 지음 김영균 옮김 도서출판 킹제임스 신국판 220쪽 값
1, 항소이유의 요지 가. 사실오인 및 법리오해 피고인이 피해자와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할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공사대금을 지 급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으므로 피고인에게 사기죄의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에는 사 실을 오인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어 부당하다. 나. 양
사 건 2013노246 사기 피 고 인 주거 등록기준지 항 소 인 피고인 검 사 이종민( 기소), 김동율( 공판) 변 호 인 법무법인 등대 담당 변호사 원 심 판 결 청주지방법원 2013. 1. 9. 선고 2011고단2709 판결 판 결 선 고 2013. 6. 27.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피고인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 1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