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악원논문집(20).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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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성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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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편집위원 편집위원장 : 이용식(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편 집 위 원 : 김영운(한양대학교 교수) 김우진(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임미선(전북대학교 교수) 황경숙(남서울대학교 교수) 이숙희(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5 책 머리에 국립국악원은 1989년부터 한국음악학 기초연구의 활성화를 위해 국악원논문집 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국악원논문집 은 한국음악학의 학술적 연구물뿐만 아니라 무용 연희 등의 전통공연예술에 대한 폭넓은 주제에 대한 학술적 연구물과 정책 교육 산업 등과 관련된 다양한 성과물을 담아 한국음악학의 범위를 폭넓고 심도 있게 포괄하고자 합니다. 특히 2007년 제17집부터는 공개적인 공모를 통해 접수된 한국음악학 분야 연구물 중 각 분야의 전공자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엄정한 평가와 편집위원들의 심도 있는 편집회의를 통한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정선된 논문을 싣고 있습니다. 이번 제20집에는 국립국악원이 충청남도와 함께 공동으로 수행하는 백제금동 대향로의 재현공연을 위하여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는 기획주제를 비롯하여, 한국 일본 교육과정 비교, 실크로드 산악( 散 樂 )의 전래, 해외 웹사이트의 한국음악 관련 문제점 등의 국내 외의 폭넓은 관련 연구 뿐 아니라 정악 해금 곡의 특수주 법에 대한 연구, 종묘제례악 중 <총유>의 음독에 대한 고찰, 조선 후기 실학자의 양악 수용에 관한 연구 등 9편의 논고를 실었습니다. 또한 2008년 발간한 한국 음악선집 제31집 민간대풍류 의 서평과 년도 한국음악학 전공 박사 학위 수여자들의 목차와 요지, 그리고 국악기 현의 제조과정에 대한 조사를 수록 하였습니다. 국립국악원은 심도 있는 연구논문 및 각종 자료 등을 발굴 수록하여 한국음악 학의 기초를 다지고 정립하는 국악계의 종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9년 12월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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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2009/Vol.20 목 차 <논문>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권오성/1 The introduction of the Silkroad Sanak( 散 樂 ) to Korea, China and Japan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권혜근/21 The Comparison of Curriculums in Korea vs Japan (Ⅰ)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김소리 정환희/57 Production Process and Standardization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김성혜/79 Examination on Dangwan instrument on Baekjegeumdongdaehyangno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김영희/111 Examination on the websites introducing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focused on the web pages in foreign based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류정연/129 A Study on the Traditional Playing Technique for Haekum 총유( 寵 綏 )의 음독( 音 讀 )에 관하여 양명석/173 A study about pronunciation for 寵 綏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이종구/191 Right 1st. musical instruments of Baekje from the five musicians of Baekjegeumdongdaehyangno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조유회/217 Independent of acceptance of Western Music by Sil-Hak-Ja in the Late Chosun Dynasty <서평> 총보로 기록된 민간 대풍류 이보형/259 <부록> 국악 관련 박사학위 논문 목차, 요지 264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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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 최치원( 崔 致 遠 ) 향악잡영오수( 鄕 樂 雜 詠 五 首 )를 중심으로 - 권 오 성* <국문초록> 실크로드 지역은 현재 중국의 신강성에 속하는 방대한 지역이고, 수나라, 당나라 때 의 칠부기 구부기 십부기 중의 여러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즉 안국기, 구자기, 소륵 기, 강국기, 고창기 등은 현재 중국 신강성 및 우즈베키스탄 등의 지역이 포함되어 있 어 그곳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지역에서 연행되던 악 가 무가 혼합된 형태의 공연예술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 그러한 것들을 백희가무 혹은 산악이라고 하였으며 그러한 공연예술의 장르에 대한 명칭은 많은 종류가 있다. 칠부기와 구부기 십부기 중에서 강국기는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의 속독과 같은 것 으로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관련이 있다.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의 명 칭과 관련된 여러 명칭들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실크로드 명칭 호탄(khotan) 소그드(soghd) 중국 명칭 산악( 散 樂 ) 농환( 弄 丸 ) 화전( 和 田 ) 우전 ( 于 田, 于 闐 ) 산악( 散 樂 ) 대면( 大 面 ) 속특( 粟 特 ) 칠부기 중 강국기( 康 國 伎 ) 사자( 獅 子 ) 한국 명칭 금환( 金 丸 ) 월전( 月 顚 ) 향악( 鄕 樂 ) 대면( 大 面 ) 속독( 束 毒 ) 산예( 狻 猊 ) 일본 명칭 월전( 越 殿 ) 월천( 越 天 ) 흑전( 黑 田, 구로다부시) 나능왕( 羅 凌 王 ) 숙덕( 宿 德 ) 사자( 獅 子 ) 1) 이상과 같이 서역에서 성행하던 각종 산악이 중국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러한 것들이 고구려와 신라에 전승되어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에 *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1
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그 모습이 기록되었다. 그것들이 일본에 여러 형태로 남아있고 그 악보가 남아있음으 로 이들 산악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 남아있는 악보 를 통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실크로드 지역의 옛 산악을 재현하여 볼 수도 있을 것 이다. 핵심어 : 산악, 백희가무, 실크로드, 최치원, 향악잡영오수 목 차 Ⅰ. 내두리 Ⅱ.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 Ⅲ. 마무리 Ⅰ. 내 두 리 실크로드의 서쪽 지역, 즉 예전에 서역( 西 域 ) 이라고 일컫던 지역은 현재 중국의 신강 성( 新 彊 省 )과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에 걸친 방대한 지역으로서 수나라, 당나라 때 의 칠부기 구부기 십부기 중에 나오는 여러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즉 안국기( 安 國 伎 ), 구 자기( 龜 玆 伎 ), 소륵기( 疏 勒 伎 ), 강국기( 康 國 伎 ), 고창기( 高 昌 伎 ) 등은 현재 중국 신강성 및 우즈베키스탄 등의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악 가 무가 혼합된 형태의 공연예 술이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다. 이것들을 백희가무( 百 戱 歌 舞 ) 혹은 산악( 散 樂 )이라고 하였으 며 공연예술의 장르에 대한 명칭은 여러 종류가 있다. 중국 문헌 중 주례 등에는 다음과 같이 산악에 대하여 기록되어있다. 周 禮 春 官 宗 伯 에는 旄 人, 掌 敎 舞 散 樂 舞 夷 樂. 凡 四 方 之 以 舞 仕 者 屬 焉 1) 또한 通 典 ( 券 146)에는 散 樂 非 部 舞 之 聲 俳 優 歌 舞 雜 奏 1) 周 禮 春 官 宗 伯 ( 下 ) 2
11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舊 唐 書 ( 券 29)에는 散 樂 者, 歷 代 有 之 非 剖 舞 之 聲 唐 會 要 ( 券 33)에는 散 樂 歷 代 有 之 其 名 不 一 非 部 舞 之 聲, 俳 優 歌 舞 雜 奏 總 爲 之 百 戱 그리고 趙 維 平 에 의하면 주대( 周 代 )에는 산악이라고 하던 것이 후한대( 後 漢 代 )에는 백희 라고 불려지다가 수 당 때에 다시 산악이라고 불러왔다고 한다. 2) 한나라 때에도 산악이란 야인( 野 人 )이 하는 음악 중 잘하는 것을 말하였다. 우리나라의 삼국사기 에 기록된 이러한 류의 공연예술을 향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향악 수 입 이전의 외래 악을 당악과 구별하기 위하여 향악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다시 검토를 요한 다. 이 논문에서는 그 원초적 지역인 실크로드 지역 즉, 서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공연 예술인 산악 중에 일부가 실크로드 지역에서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 어떻게 전래되었 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 삼국사기 ( 三 國 史 記 ) 악지( 樂 志 )의 신라 항 맨 끝에, 최치원( 崔 致 遠 )의 시에 ʻ향악잡영 오수ʼ( 鄕 樂 雜 詠 五 首 ) 3) 가 있어서 여기에 적는다. 라고 하고, 다음의 다섯 수의 칠언절구( 七 言 絶 句 )를 기록하였다. 금환( 金 丸 ) 廻 身 掉 臂 弄 金 丸 月 轉 星 浮 滿 眼 看 從 有 宜 僚 那 勝 此 定 知 鯨 海 息 波 瀾 온 몸을 휘두르고 두 팔을 내저어 금환을 떼굴떼굴 힘차게 굴리니 명월이 굴러가고 별도 반짝반짝 고요한 바다 물결엔 고래도 춤을 춘다. 월전( 月 顚 ) 肩 高 項 縮 髮 崔 嵬 壤 臂 群 儒 鬪 酒 盃 聽 得 歌 聲 人 尽 笑 올라간 두 어깨에 목조차 들어가고 머리 위에 상투는 뾰족하게 나왔어라. 노랫소리 들리자 웃음소리 요란하며 2) 趙 維 平, 中 國 與 東 亞 諸 國 的 音 樂 文 化 流 動, 上 海 : 上 海 音 樂 學 院 出 版 社, ) 三 國 史 記, 권32. 11ab 樂 志. 3
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夜 頭 旗 幟 曉 頭 崔 저녁에 단 깃발 밤새도록 휘날린다. 대면( 大 面 ) 黃 金 面 色 是 其 人 手 抱 珠 鞭 役 鬼 神 疾 步 徐 趨 呈 雅 舞 宛 如 丹 鳳 舞 堯 春 황금색 탈 쓴 사람 누구인지 모를세라. 구슬 채찍 휘두르며 귀신을 쫓아낸다. 달아나며 춤추다가 으쓱으쓱 늦은 걸음 너울너울 춤을 추는 봉황새와 같아라. 속독( 束 毒 ) 蓬 頭 藍 面 異 人 間 押 隊 來 庭 學 舞 鸞 打 鼓 冬 冬 風 瑟 瑟 南 奔 北 躍 也 無 端 고수머리 남빛 얼굴 못 보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뜰에 와서 난( 鸞 )새 같이 춤을 춘다. 북 소리 둥당둥당 바람 소리 살랑살랑 남북으로 뛰어다니며 끝없이도 춤을 추네. 산예( 狻 猊 ) 遠 涉 流 沙 萬 里 來 서역에서 유사 건너 만 리길을 오느라고 毛 衣 破 盡 着 塵 埃 털이 모두 떨어지고 먼지까지 묻었구나 搖 頭 掉 尾 馴 仁 德 머리를 흔들며 꼬리마저 휘두르니 雄 氣 寧 同 百 獸 才 온갖 짐승 어른되는 네가 바로 사자런가. 4) (1) 최치원의 시에 대한 단편적 내용 향악잡영오수를 쓴 최치원은 신라시대 말에 가까운 858년(헌안왕( 憲 安 王 ) 2년)에 태어났 으며, 12세 때 당나라에 건너가 학문에 힘썼고 높은 관직에 오른 적도 있지만, 고국에 돌 아와서는 난세를 허무하게 여겨서 만년에 가야산의 해인사( 海 印 寺 )에 은거한 사람이다. 그 는 시문( 詩 文 )에 뛰어났고, 계원필경( 桂 苑 筆 耕 ) 최치원사륙집( 崔 致 遠 四 六 集 ) 등을 당나 라에 남겼다. 그 시는 전당시( 全 唐 詩 )에 수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최치원이 읊은 위의 칠언절구의 다섯 수는 어쩌면 당나라에서의 견문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는 설도 있지만, 하진화는 최치원이 지방관으로 강직되여 대산국과 부성군의 태수로 되어, 지방관으로 있는 기간에 그는 일부 좋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향악 잡영의 오수가 바로 그것이다 5) 라고 하였다.) 또한 최치원의 향악집영오수에 대하여 일본 4) 김재철, 조선연극사( 朝 鮮 演 劇 史 ), 서울 : 동문선, ) 하진화, 최치원과 그의 작품, 조선학, 북경 : 중앙민족대학조선학연구소,
13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학자인 기시베 시게오는 향악( 鄕 樂 )이라면 한국에 있는 음악의 세 갈래인 아악( 雅 樂 ) 당악 ( 唐 樂 ) 향악( 鄕 樂 )의 향악, 곧 한국의 속악( 俗 樂 )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 이 세 갈 래의 분류는 고려시대에서 확실한 역사서로 나온 것이고 신라시대에는 없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단순히 ʻ우리나라의 음악ʼ 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삼국사기 가 고려시대의 편저 이므로, 고려시대의 세 갈래법을 신라시대에 적용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6) 라고 하였다. 이 와 같은 설명은 향악잡영오수가 결국 신라시대의 공연예술을 표현한 것이라고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최치원은 시대를 앞서간 사람답게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려의 이규보는 동 국이상국집 에서 구당서 와 신당서 의 열전에 그에 대해서 쓰지 않은 것은 당나라 사람 들이 그를 시기했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서거정은 계원필경 에서 우 리 동방의 시문집 중 지금까지 전하는 것은 부득불 이문집을 통해서만 평가될 수 있다 고 하였다. (2) 신라시대의 악곡 근래 한국의 학자 대부분이 위 본문의 내용을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이 5수( 五 首 )로 불 려진 다섯 악곡을 신라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함은 어떠한가. 그러나 가령 이 시( 詩 )가 당나라의 악기( 樂 伎 )를 견문한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해도, 최치원은 당나라 문헌에 미치지 못한 것을 보충한 것으로서 귀중한 사료이다. 여기서는 정확하지는 않아도 이 다섯 악곡이 신라시대에 행해진 것으로 인정하며 이하 그 내용과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1 금환( 金 丸 ) : 중국에서는 농환( 弄 丸 )이라 하고, 금색을 칠한 공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 는 것이다. 한나라의 화상석( 畵 像 石 )에 자주 나타나고, 중국에 예부터 있던 산악( 散 樂 : 雜 伎 百 伎 雜 戱 )이다. 잡희를 벌이는 연기자의 공력이 상당해서, 몇 개의 구슬이 손에서 달과 별이 움직이는 듯 빙글빙글 돌며 춤추는 모습이 사람의 눈을 현란하게 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2 월전( 月 顚 ) : 월전( 月 顚 )에 대하여, 일본의 기시베 시게오( 岸 邊 成 雄 )는 일본 아악곡의 <월천악( 越 天 樂 Etenraku)>과의 관계에 대하여 관현 <월천악>은 일본제의 악곡이 6) 岸 辺 成 雄 著 송방송 역, 고대 실크로드의 음악, 서울 : 음악도서 삼호출판사, 岸 辺 成 雄 著, 古 代 シルクロドの 音 樂, 東 京 : 講 談 社,
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지만, 그 명칭은 서역계라 하는 기술은 독자를 놀라게 할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7), 그것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는 방증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이 악곡은 일본 아악 가운데 아주 친숙한 곡이다. <에텐라쿠( 越 天 樂 )>는 일본에서도 <월전악( 月 殿 樂 )>으로 쓰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갈고록 이란 책 중에 월전(Etsuden) 천보십삼제석간에는 월전(Getsuden)으로 기록되어 있다. 월전은 한자는 각기 다르지만 발음이 월전 혹은 월천으로 써 그 음은 비슷하다. 일본의 <에텐라쿠>는 헤이안( 平 安 )조에 새로 만든 관현곡이지만, 그 곡명 은 어떻게 당토( 唐 土 )의 산악에서 시작하고 있는가 라는 것은 의외인 점이 있다 라고 하였다. 월전( 月 顚 ) 월전( 月 殿 ) 월천( 越 天 ) 모두가 음통( 音 通 )이고, 외래어의 한자 음역( 音 譯 ) 일 가능성이 크다. 어원은 페르시아어 계통의 호탄(Khotan)을 한자로 차자( 借 子 )한 것이다. 시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에 가발과 가면을 쓰고 서역의 오랑캐 차 림을 한 일군의 왜소한 유생들의 모습이 펼쳐지고 그들은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고 미쳐 날뛰면서 각종 추태를 부리는 모습을 표현한 무곡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골계 가무희로서, 일정한 줄거리와 장면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새벽이 될 때까지 공연된 다. 일본 무악( 舞 樂 )인 호덕악( 胡 德 樂 )을 연상시킨다. 필자는 2006년 8월 현재 중국의 신강성에 있는 화전( 和 田 )에 현지조사를 위해서 갔던 바 현재 화전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옛 도시였던 우전( 于 田 )이란 곳이 있는데, 현재는 그곳에 탈춤 같은 것은 없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탈춤 비슷한 것이 연행됐었 다는 현지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두현의 한국의 가면극 8) 에서 탈춤의 일종으로 추정한 것은 다시 한번 현지조사와 문헌조사를 병행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본다. 호탄 지역은 예부터 불교가 성행하였던 호탄왕국(Kingdom of Khotan)이 있던 지역으로 서 타림분지 안에 있는 타크라마칸 사막의 남쪽 끝에 위치한 곳이다. 이 지방은 신강성에 서 옥( 玉 )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예로부터 많은 옥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던 곳이다. 그 러므로 ʻ우리나라의 옥저( 玉 笛 )가 어디서 왔을까ʼ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지역에서 왔으리라 고 추정할 수 있다. 현재 경주박물관과 맹사성의 고택에 있는 옥저들이 언제, 어디서 왔던 것인가를 밝혀보면 아마도 이 호탄지역에서 다른 옥기들과 함께 우리나라로 전해졌을 것이 다.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 마을에 있는 미황사( 美 黃 寺 )에 구전되고 있는 설화에 의하면, A.D. 600년경에 우전국의 왕이 이 곳에 와서 절을 지었다고 하는 얘기와도 어떤 관련성이 7) 岸 辺 成 雄 著, 古 代 シルクロドの 音 樂, 東 京 : 講 談 社, ) 이두헌 편, 한국의 가면극, 서울 : 일지사 한국가면극연구회,
15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있을지 모른다. 일본 아악 에텐라쿠의 곡은 월천악( 越 天 樂 )이라고 하는 바 삼국사기 의 향 악잡영오수 중의 월전( 月 顚 )과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 보아 한국의 월전이 실크로드의 호탄에 서 한국으로 수입되었다가 일본으로 수출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또한 일본의 후쿠오카( 福 岡 ) 지역의 민요로 알려져 있는 <구로다부시( 黑 田 節 )>와도 무슨 상관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구로다부시>의 가사와 악보는 다음과 같다. <악보1> 구로다부시 일본 학자들에 의하면 <구로다부시>는 <에텐라쿠>가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그 러한 노래로 누가 작곡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왜 하필 후쿠오카 지역의 민요로 불려지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혹시 월전이란 노래가 한국에서 불려 지다가 후쿠오카 지역으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 재 일본 아악의 가장 대표적인 곡으로 알려져 있는 <에덴라꾸( 越 天 樂 )>의 악보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악보는 古 樂 の 眞 髓 의 책에 있는 것이다. 9) <악보2> 에덴라꾸( 越 天 樂 ) 9) 出 雲 路 敬 和, 古 樂 の 眞 髓, 京 都 : 櫻 橘 書 院,
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1893년 경상도 고성 부사로 부임한 오횡묵( 吳 宖 黙 )이 쓴 고성총쇄록( 固 城 叢 瑣 錄 ) 의 고종30년 12월 기록에 월전( 月 顚 )과 대면( 大 面 ), 노고우( 老 姑 優 )와 양반창( 兩 班 倀 )의 기이 하고 괴상한 모양의 무리들이 순서대로 번갈아 가며 나와 서로 바라보며 희롱하며 혹은 미 쳐 날뛰며 소란스럽게 떠든다거나 혹은 천천히 춤을 춘다 는 기록에 의하면 월전과 대면이 조선조 고종 때까지도 고성지방에서 행하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신라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어떻게 전해 졌는지 믿기 어렵다. 3 대면( 大 面 ) : 황금의 가면을 쓰고 손에 붉은 채를 든 귀신처럼 달리고 혹은 걷고, 봉 황새가 새벽에 춤추듯이 무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통전 ( 通 典 ) 권146의 산악( 散 樂 ) 항목의 가무희( 歌 舞 戱 ) 항에 대면( 大 面 ) 발두( 撥 頭 ) 답요랑( 踏 搖 娘 ) 굴뢰자의 네 가지 기( 伎 )를 열기( 列 記 )하고, 대면에 대하여, 대면( 大 面 )은 북제( 北 齊 )에서 나왔다. 난릉왕( 蘭 陵 王 ) 장공( 長 恭 )은 재주와 용맹함이 있고, 더구나 용모가 아름답기 때문에 늘 가면을 쓰고 적군을 대하였다. 일찍이 북주( 北 周 )의 군대 를 금용성( 金 墉 城 ) 아래에서 무찌르고, 그 용맹은 전군에서 으뜸이었다. 북제 사람들은 이것 을 장하게 여겨 이 춤을 만들어서, 그 아름다운 지휘하는 몸짓과 무찌르는 모습을 나타내었 다. 이 곡을 ʻ난릉왕입진곡ʼ( 蘭 陵 王 入 陳 曲 )이라고도 한다. 라고 해설하였다. 이것은 일본의 무악 난릉왕( 蘭 陵 王 )과 닮았다. 일본 무악에서도 큰 금 색의 가면을 쓰고, 채를 들고 한 용사가 춤춘다. 당나라의 산악( 散 樂 ) 대면과 최치원의 향 악( 鄕 樂 ) 대면과는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의 난릉왕은 호복( 胡 服 )의 양당장속을 붙인 달리는 무용이고, 환성악( 還 城 樂, Genzoraku)이나 발두( 拔 頭, Bato) 등과 같이 교묘하다. <그림 1> 난릉왕 가면 8
17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소위 임읍악( 林 邑 樂, Rinnyugaku)의 계통에 속하는 서역계의 악무( 樂 舞 )이다. 이 발두 ( 撥 頭 )는 통전 ( 通 典 )의 대면에 계속해서, 발두( 撥 頭 )는 서역에서 나오지 않는다. 호인( 胡 人 )이 맹수에 먹혔기 때문에, 그 아들이 맹수 를 찾아내어 죽이는 것을 모방해서 춤으로 만들었다. 라고 설명되어 있는 발두임에 틀림없다. 하여간 서역지역에서 혹은 중국의 북제에서 수 입된 대면이 한국을 통하여 일본에 전래됐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난릉왕( 蘭 陵 王 )의 반주 음악으로 쓰이는 음악이 <나소리( 納 曾 利 )>임으로 <나소리-파( 破 )>와 <나소리-급( 急 )>의 악 보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악보3> 나소리-파( 破 ) 9
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악보4> 나소리-급( 急 ) <그림 2> 納 蘇 利 ( 納 曾 利 ) 가면 10
19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4 속독( 束 毒 ) : 속독은 일본 무악의 우무( 右 舞 )인 고려무( 高 麗 舞, Komagaku)의 퇴주독( 退 走 禿, Taishudoku) 진주독( 進 走 禿, Shinshudoku)의 ʻ주독ʼ( 走 禿 )의 ʻ음통ʼ( 音 通 )임에 틀림없다. ʻ숙덕ʼ( 宿 德 Shudoku)이라고도 쓴다. 숙독은 소련령 중앙아시아의 한 지방명의 옛 이름 속 디아나(Sogdiana 후에 Samarqand)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 국의 사서에 나타난 속특( 粟 特 )에 해당된다. 일본에서는 현재 우무( 右 舞 )인 고려무에 들어 가 있지만, 헤이안조( 平 安 朝 ) 초기에 좌우( 左 右 ) 이무제( 二 舞 制 )를 설치할 때 좌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본래 당악계의 것도 우방 고려악에 넣었을 의심이 있기 때문에, 이 서역계 의 속독도 우무에 넣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옷차림은 좌우 공통의 습장속( 襲 裝 束 )이고, 특별한 모양의 모자를 쓴 것이 특색이다. 우 무에 편입되어서 옷차림까지 변한 것일까. 최치원( 崔 致 遠 )의 시는, 머리카락이 쑥처럼 흐트 러진 얼굴에 남색의 가면을 쓴 이상한 사람이 대열을 만들어 뜰로 들어와, 난( 鸞 )새(봉황의 일종)가 춤추는 모습을 모방하였다. 태고( 太 鼓 )가 드디어 동동( 冬 冬 )하고 울리는 소리는 바람이 슬슬( 瑟 瑟 ) 부는 듯이, 무용수는 그것에 따라 남쪽으로 달리고 북쪽으로 뛰면서 그 침이 없다 라고 표현하였다. 일본 아악 중 고려악에 속하는 <숙덕> 중 <진숙덕>의 악보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악보5> 진숙덕 11
20 國樂院論文集 제20집 <악보5-1> 진숙덕 <그림 4> 진숙덕 가면 <그림 3> 퇴숙덕 가면 12
21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쑥대 머리카락에 남색 가면이라고 하면, 우무( 右 舞 )의 납소리( 納 蘇 利, Na-sori)를 연상 하지 않을 수 없다. 납소리는 서역계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속독( 束 毒 )도 서역계였음은 아 닐까. 그렇다고 해도 만약 속독이 신라시대에 있었다고 하면, 원래는 당나라의 호무( 胡 舞 ) 에도 그것이 일단 신라에 들어가, 신라에서 일본에 전해지고, 그리고 그것이 우무에 편입 되었다고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는 아프라시압 궁전의 벽화가 있고, 그 벽화 속에 고 구려의 사신으로 보이는 2명이 조우관을 쓰고 서있는 것이 보인다. 이들은 640~660년 사 이에 투르크족의 왕을 알현하기 위해 연개소문에 의해 파견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 데 경주에 있는 궤능에 서 있는 무사상의 석상도 혹시나 속디아나에서 온 사람이라고 한다 면, 이미 신라시대에 사마르칸트와 경주와의 교역과 인적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라시대 투르크 혹은 아랍 페르시아라고 추측되는 사람들 중 월전과 속독의 악무와 관련된 사람들은 무역에 뛰어난 재주를 가졌던 소그드 혹은 소그디아나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5 산예( 狻 猊 ) : 사자무( 獅 子 舞 )이다. 최치원( 崔 致 遠 )은 멀리 사막을 걸어서 만 리를 오 고, 털이 부서진 것처럼 먼지를 쓰고,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흔드는 모양은 인덕( 仁 德 )으로 길들여 따르는 듯하고, 우람한 춤모양은 백수왕( 百 獸 王 )의 힘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라고 노래하고 있다. 거기에 바로 생각해 낸 것이 신서입도등원통헌( 信 西 入 道 藤 原 通 憲 : 歿 1159)이 그렸다고 일컬어지는 신서고악도 ( 信 西 古 樂 圖 )의 사자무이다. 두 사람의 사자를 사자랑( 獅 子 郞 )이 줄을 매어 가지고, 사자아( 獅 子 兒 ) 두 사람이 마치 사자를 어르는 듯이 따라가고, 뒤에서는 나( 鑼 ) 세요고( 細 腰 鼓 ) 손뼉( 抃 拍 子 ) 대태고( 大 太 鼓 ) 횡적( 橫 笛 ) 척팔( 尺 八 ) 박판( 拍 板 )의 음악이 흥을 돋우고 있는 그림이다. 여러 책에서 일본 사자무( 獅 子 舞 )의 옛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용되고 있는 친숙한 그림이다. 그림의 옆에 문헌통고 ( 元 의 馬 端 臨 지음 : 1319년)를 인용하여 해설하고 있지 만, 그것은 이 책의 원전인 당의 통전( 通 典 ) 을 인용해야만 하였다. 통전 권146의 좌입 부기( 左 入 部 伎 ) 항목에 입부기의 제2기인 태평악( 太 平 樂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태평악( 太 平 樂 )은 또 이것을 오방사자무( 五 方 獅 子 舞 )라고 부른다. 사자는 서남이( 西 南 夷 ) 천 축( 天 竺 ) 사자( 獅 子 ) 등의 나라에서 나오지 않았다. 털을 짜서 옷을 만든다. 내려다보거나 쳐 다보면서 사람에게 친숙하게 어리광부리는 모습을 나타낸다. 다섯 필의 사자는 제각기 오방 13
2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 五 方 )의 색깔, 즉 파랑 빨강 노랑 흰색 검은색으로 되어 있다. 140명이 태평악무를 노래부 르면서, 손뼉( 抃 : 拍 手 )치면서 뒤에서 따른다. 그 복식은 모두 곤륜인( 崑 崙 人 )의 차림이다. 이 문장은 신서고악도 ( 信 西 古 樂 圖 )와 잘 부합한다. 신서( 信 西 )가 통전 을 읽고 쓴 것 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옛날 추고조( 推 古 朝 )에 들어온 기악( 伎 樂 )에도 사자가 있고, 헤이안조( 平 安 朝 ) 말기에는 없어졌지만 사자두( 獅 子 頭 )와 사자아( 獅 子 兒 )의 가면이 현존한 다. 그것도 입부기의 오방 사자무 계통이라고 생각된다. 신서고악도 의 사자무는 그것인 지도 모른다. <그림 5> 신서고악도( 信 西 古 樂 圖 )의 사자무 우리나라의 사자무는 봉산탈춤, 북청사자놀이, 수영야류 등에 있는 사자춤이 어디에서 전래되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서역의 구자( 龜 玆 )지역에서 구자악과 함께 중국을 통하여 한국으로 전해졌고, 그것이 다시 일본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3) 서역계 산악( 散 樂 ) 전래 이상의 오기( 五 伎 ) 중 금환( 金 丸 ) 대면( 大 面 )은 분명히 당( 唐 )의 산악( 散 樂 )이다. 산예( 狻 猊 )도 입부기( 入 部 伎 )에 편입되어 있지만, 원래는 산악임이 틀림없다. 남북조시대( 南 北 朝 )와 수시대( 隨 朝 )에 서역 전래의 백희( 百 戱 )가 성행하였고, 그 중에 코끼리( 象 ) 물고기( 魚 ) 용 ( 龍 ) 거북( 龜 ) 등의 짐승을 모방한 상연물이 있었다. 사자는 그 중의 백미( 白 眉 )였기 때문에 14
23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입부기에 편입한 것이다. 당대( 唐 代 )의 서역 기호( 嗜 好 )에도 어울렸을 것이다. 월전( 月 顚 )과 속독( 束 毒 )도 서역계의 산악이었음은 아니었을까. 최치원( 崔 致 遠 )의 오수( 五 首 )에 향악( 鄕 樂 )이라는 이름을 붙임은, 산악과 같은 잡기( 雜 伎 )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 鄕 樂 雜 詠 五 首 )를 통해서, 서역계의 산악이 당나라에서 신라조에 건너왔던 것인가. 적어도 그것에 관한 지식이 건너왔음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옛날 추고조 ( 推 古 朝 )에 백제의 미마지( 味 磨 之, Mimashi)가 오( 吳 )에서 배운 기악( 伎 樂 )을 일본에 가지 고 온 것을 상기하면, 한국 고대에 당나라의 산악이 전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 다. 기악( 伎 樂 )은 사자( 獅 子, ShiShi) 오공( 吳 公, Gogo) 금강( 金 剛, Kon-go) 가루라( 迦 樓 羅, Karura) 바라문( 波 羅 門, Baramon) 곤륜( 崑 崙, Kon-ron) 역사( 力 士, Rikishi) 태고 ( 太 孤, Taiko) 취호( 醉 胡, Suiko)의 9기( 九 伎 )로 되었고, 그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서역 색 채가 짙다. 미마지가 이것들을 백제에서 상연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한국 측의 사료에 사자무의 전래에 대한 기록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앞으로 잘 찾아봐야 될 것이라 고 생각한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기록과 감은사 사리함 등의 유물에서 볼 수 있듯이 주로 신라 중대 이후에 고구려가 수용한 것을 재수용 하였거나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서역악기들 중 일부는 약간의 변용을 거쳐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Ⅲ. 마무리 최치원은 860년 당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였고 당시 12세였다. 18세에 진사에 합격하였 고 그 후 선주( 宣 州 ) 율수현위( 律 水 縣 尉 )에 임용되었다. 그때에 중국의 율수현에서 무나( 巫 儺 ) 희곡을 직접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당서 예문지에 그러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율 수는 현재 중국 남경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남통과 서로 이어져 있는 곳이다. 2000년 한국에 와서 공연한 중국 강회남통의 동자희에 대하여 설명한 남통시 예술연구소장인 차오 린( 曺 林 )은 남통의 동자희중에 잡기로 구슬을 가지고 노는 희곡 골계가무와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고무( 鼓 舞 ) 사자춤 등이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의 내용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글을 발표한바 있다. 10) 또한 칠부기와 구부기 십부기 중에서 강국기는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의 10) 曺 林, 江 淮 南 通 의 童 子 戱, 동아시아의 무속음악 (서울 : 국립국악원), 제8회 동양음악 국제학 술회의 자료집,
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속독과 같은 지역을 말한다. 현재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관련이 있다. 즉 사마르 칸트 지역은 중국에서 강국( 康 國 )이라고 불렀으며 그 지역은 소그드라고도 부르고 그 지역 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소그디아나라고 부른다. 최치원의 속독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의 명칭과 관련된 여러 명칭들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와 관련된 여러 명칭 실크로드 명칭 호탄(khotan) 소그드(sogd) 중국 명칭 산악( 散 樂 ) 농환( 弄 丸 ) 화전( 和 田 ) 우전 ( 于 田, 于 闐 ) 산악( 散 樂 ) 대면( 大 面 ) 속특( 粟 特 ) 칠부기 중 강국기 ( 康 國 伎 ) 사자( 獅 子 ) 한국 명칭 금환( 金 丸 ) 월전( 月 顚 ) 향악( 鄕 樂 ) 대면( 大 面 ) 속독( 束 毒 ) 산예( 狻 猊 ) 월전( 越 殿 ) 일본 명칭 월천( 越 天 ) 흑전( 黑 田, 나능왕 ( 羅 凌 王 ) 숙덕( 宿 德 ) 주독( 走 禿 ) 사자( 獅 子 ) 구로다부시) 이상과 같이 서역지역에서 성행하던 각종 산악이 중국에서는 여러 지역에서 연행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러한 것들이 고구려와 신라에 전승되어 최치원의 향악잡영오수에 그 모 습이 기록되었다. 그것들이 어떠한 경로로 전승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 여러 형태 로 남아있고 그 악보도 남아있음으로 이들 산악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에 남아있는 악보를 통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실크로드 지역의 옛 산악을 재 현하여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6
25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참고문헌> 삼국사기. 周 禮 春 官 宗 伯 ( 下 ). 通 典. 김재철. 조선연극사( 朝 鮮 演 劇 史 ), 서울 : 동문선, 岸 辺 成 雄 著, 송방송 역. 고대 실크로드의 음악, 음악도서 삼호출판사, 이지선. 삼오요록과 인지요록의 고려악 연구. 한국음악연구 38집, 이해구. 나소리고. 한국음악서설, 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정수일. 한국속의 세계 상. 창비, 曺 林. 江 淮 南 通 의 童 子 戱. 동아시아의 무속음악, 서울 : 국립국악원, 趙 維 平, 中 國 古 代 音 樂 文 化 動 流 日 本 的 硏 究, 上 海 : 上 海 音 樂 學 院 出 版 社, 趙 維 平, 中 國 與 東 亞 諸 國 的 音 樂 文 化 流 動, 上 海 : 上 海 音 樂 學 院 出 版 社, kingdom of Khotan-Wikipedia. 17
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Abstract> The introduction of the Silkroad ʻSanak( 散 樂 )ʼ to Korea, China and Japan Kwon Oh-sung (Professor Emeritus, Hanyang University) There is a writings of Choi chi-won called ʻHyangak chabyung osu (five poems on Korean music) in Samguksagi, and the titles are like following : 1. Keumhwan( 金 丸 ) 2. Woljeon( 月 顚 ) 3. Daemyun( 大 面 ) 4. Sokdock( 束 毒 ) 5. Sanye( 狻 猊 ) 1. Keumhwan is also called ʻnonghwanʼ, means playing the round ball. The scene is carved on ʻhwasang-seok( 畵 像 石 )ʼ stone of Han dynasty and has already been existed in China, Korea and Japan from the ancient times. It is also called as ʻJabgi( 襍 伎 )ʼ, ʻbaeckki ( 白 )ʼ, ʻjabhee( 襍 )ʼ. 2. Woljeon - also ʻwoljeonʼ and ʻwolcheon( 越 天 )ʼ- was also pronounced and written as ʻhwajeon ( 和 田 )ʼ and is from Cheonnam mountain in Khotan( 于 關 ), one of the major jade producing area. There are couple farming villages such as ʻhwajeon( 化 田 )ʼ are still exist are around. Typical Japanese court music ʻEtenrakuʼ is written as ʻwoljeon-ak( 越 殿 樂 )ʼ, and has certain relation to the ʻgurodabushi( 黑 田 )ʼ, folk music of fukuoka region. 3. Daemyun is a dance that has movements such as running of the ghost who wears gold mask with red stick in his hand and the dance of fabulous bird in early morning. It also resembles Japanese court dance and music ʻnanreung-ak( 蘭 陵 樂 )ʼ. It is most likely that the ʻsanak-daemyunʼ of China and ʻhayngak-daemyunʼ of Korea are the same ones in different names. 18
27 실크로드 지역 산악( 散 樂 )의 한 중 일 전래 4. Sokdock has the same phonetic pronunciation with the ʻjudockʼ as in toeijudock (Tashudoru), one of the Japanese court music and dance, and also written as ʻsookdock ( 宿 德 )ʼ. The origin of a word roots from the area called ʻSoghdʼ or ʻSogdianaʼ, currently known as Samarquand, which also called ʻsokteuk( 粟 特 )ʼ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 5. Sanye is a lion dance. It is also found in ʻShinseo-goakwon( 信 西 古 樂 圓 )ʼ of Japan and in the book ʻTongjeonʼ of China. It has originally came from the ʻguja( 龜 玆 )ʼ region and spread out widely to the north east asia areas. Currently, it is performed as a kind of folk dance in many areas including China, Korea and Japan. As a conclusion, music and the dances from Silkroad areas are introduced to Jangan as ʻhomuak( 胡 舞 樂 )ʼ during the Tang Dynasty, and to Japan through Shilla Dynasty. There are more Sanak repertoire that is transmitted and performed currently in Japan compare to that of Korea and China including the ones that has discontinued the transmission in both countries long time ago. Keywords : Silkroad, mask dance, dance music, Korean music, Chinese music, Jaanese music, Sanak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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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전통음악의 내용을 중심으로 - 권 혜 근*1) <국문초록> 본 연구는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 초등교육의 ʻ교육과정( 敎 育 課 程 )ʼ과 일본 의 교육과정인 ʻ학습지도요령( 學 習 指 導 要 領 )ʼ을 비교 분석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음악교 육이 변천 정착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봄으로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다른 모 습으로 변천해 가는지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한국은 해방 후 미군정기를 거쳐 1955년 제1차 교육과정을 시작으로 1963년 제2 차, 1973년 제3차 교육과정의 변천이 있었다. 교육과정 중 특히 한국 전통음악의 대 한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제1차부터 제3차까지의 교육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전통음악 의 교과내용의 특징은 첫째, 서양음악에 비해 양적인 면에서 많이 미흡하지만, 전통음 악의 내용 안에서는 서서히 증가 되어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제1 2차와 달리 제3차에서는 비록 적은 양이지만 학년마다 전통음악이 연계적으로 정리되어 있 었다. 각 학년에 나온 전통음악의 내용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요구사항이 제 시되거나, 내용이 복잡해지거나, 내용의 수가 증가되거나, 또는 앞 학년의 내용에 1~2개 추가되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셋째, 전통음악은 약간의 양적증가가 있었으나, 영역별로는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창과 감상 영역에만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1차에서 제3차까지는, 기악이나 창작 영역에서 전통음악의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일본의 교육과정 분석을 위해서 1947년 제1차 학습지도요령부터 1951년 제2차, 1958년 제3차, 그리고 1968년 제4차 학습지도요령을 살펴 일본 교육과정의 처음 시 안부터 고시까지의 정착과정을 고찰하였다. 학습지도요령을 통해 일본전통음악의 상황 을 살펴본 결과 첫째, 전통음악이 각 영역별로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경 우도 한국과 같이 가창 기악 감상 창작 영역에서 골고루 전통음악이 교육되는 것 * 경인교육대학교 강사. 21
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 아니라, 가창과 감상 영역에 한정되어 서양음악의 비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는 아직까지 일본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보다는 유럽음악에 관심이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 다. 둘째, 학습지도요령 초기의 음악교육은 학년별 연계성이 없었다. 일본 전통음악의 내용이 미흡한 학년도 있었고, 다른 학년에 비해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학년도 있었다. 셋째, 학습지도요령 초기의 일본 음악교육은 유럽음악에 중심을 둔 교육이었 다. 제1차 학습지도요령에는 유럽음악을 주체로 교육하는 것을 명시해 놓았다. 그 후 에도 세계의 민요, 악기 등을 소개할 때 프랑스, 스페인을 제시하며 유럽음악에 치중 하고 있었다. 이는 현재의 일본 음악교육의 방향이 국제이해관계로 흐르고 있는 것의 초석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해방 후, 한국과 일본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서 각자 자국에 맞는 교육과정으로 변천해 왔다. 그 과정 안에서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초기 의 모습을 비교 분석하여, 정체성 혼란의 모습에서 차차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이 높아 져 그 내용이 증가되어 변천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음악과 교육목표의 비교를 통해 해방 후 처음에는 완전한 독 립은 아니었으나, 차차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교육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비교 분석을 통하여 지금의 교육과정의 모습에서 음악교육이 담당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재조명을 밝혀보는 것에 본고의 의의를 둔다. 핵심어 : 전통음악 교육, 교육과정, 일본의 음악교육, 학습지도요령, 일본의 음악교육 목 차 Ⅰ. 서 론 Ⅱ. 한국 교육과정의 전통음악 내용 Ⅲ. 일본 학습지도요령의 전통음악 내용 Ⅳ. 일본 음악교육의 영향 Ⅴ. 결 론 22
31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Ⅰ. 서 론 본 연구는 해방 후 1970년대까지 한국 초등교육의 ʻ교육과정ʼ과 일본의 교육과정인 ʻ학 습지도요령ʼ에 관해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비교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한국과 일본을 비교 연구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강압에 의한 교육정책으로 일본식 초등교육이 도 입되어 같은 시기에 같은 음악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연구에 앞 서 일제강점기 음악교육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짚어 보고, 본고에서 전통음악의 교육과정 에 주목하는 점과 해방 후 1970년대까지로 연구범위를 한정한 점에 대한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일제강점기의 교육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짚어 보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통감부 를 통하여 일본의 한국 식민지화에 유리하도록 한국의 학제 개편을 하였다. 그 후 통감부 가 폐지되고 조선총독부로 바뀌면서, 1911년 제1차 조선교육령시행기부터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시행기,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시행기 그리고 1943년 제4차 조선교육령시행 기에 일본어 교육의 강화, 충량( 忠 良 )한 신민양성, 노동력 착취를 위한 실업교육 장려, 한 국인의 일본인화 즉 황국신민화( 皇 國 臣 民 化 ) 등의 강력한 교육정책을 펼쳤다. 특히 일본은 초등교육을 통해 한국인을 어려서부터 우민화( 愚 民 化 )하려는 의도로 초등교육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면서 한국인 아동을 일본제국의 식민지 백성으로 만드는 교육에 주력하였다. 이 와 같은 일본의 강압적인 교육은 음악교육에서도 나타나는데, 1906년에 학교에서 음악의 교과목으로 ʻ창가ʼ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는 같은 해 8월 27일 칙령 제44호 1) 를 보면 교 과목에 있는 창가는 ʻ시의( 時 宜 )에 의하여ʼ 채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다시 말해서 음악교 과는 필수과목( 必 須 科 目 )이 아니라 가설과목( 假 設 科 目 )이었는데 이는 아동에 의해 선택되는 과목이 아니라 학교에 따라 선택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과목인 것이다. 음악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1922년 조선총독부 제2차 교육령시행기에 와서야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이와 같이 일본이 교과과정에 일본의 교육정책인 우민화 정책을 반영한 것은 음악과를 비 롯해서 초등교육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는 현상이었다. 일본은 이와 같이 우민화정책 외 에도 동화정책, 황국신민화정책 등을 펼쳐 교육과정을 통하여 그들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1) 1906년 8월 27일 普 通 學 校 令 칙령 제44호 제2장 제6조 : 보통학교의 敎 科 目 은 修 身, 朝 鮮 語, 國 語, 算 術, 地 理, 歷 史, 理 科, 圖 畵, 體 操 로 하고 여자에게는 手 藝 를 가함이라. 時 宜 에 의하여 唱 歌, 手 工, 農 業, 商 業 중에 1과목 혹 幾 과목을 加 함을 得 함이라. 23
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본고에서 교육과정의 내용 중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학교에서 음악교육이 일본의 창가( 唱 歌 )와 서양음악만으로 이루어져 우리의 전통음악이 사라져 버렸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1906년 일본식으로 개편된 교육제도 아래서 일본어로 된 창가를 일본인이 만든 교과서로 가르치게 하였다. 이 때 교과서의 내용은 일본음악과 서양음악만으로 구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과 한국은 각각 서양음악의 대한 수용이 다른 상황이었다. 일본은 서양음악을 수용하여 일본 의 실정에 맞게 고친 것을 ʻ창가ʼ2) 라 하고 이를 일본사회에 정착시켰고, 우리나라는 개화기 에 서양음악을 미처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상황에서 일제강점기를 맞아 일본의 창가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서양음악에 대한 수용에 있어 서로 다른 상태에서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전통음악이 사라지고 서양음악과 일본의 창가를 교육받았기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그 당시의 음악교육 내용은 각각 다른 음악적 영 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이와 같은 음악 교육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음악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상황을 주목하여, 해방 후 한국 음악교육에 어 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음 악과( 音 樂 科 ) 교육과정에서 풀어야할 문제점인 동시에 개선점이다. 그러한 이유로 같은 음 악교육의 경험이 있었던 한국과 일본의 음악교육이 해방 후 전통음악의 변천 정착 전개되 는 과정을 비교 분석하여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변천해 가는지에 대해서 고찰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본고에서 시대 범위를 1970년대까지로 한정하고자 하는 까닭은, 한국과 일본이 전쟁 후라는 혼란한 시기를 극복하고 각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맞게 음악교육이 수정되 고 변천하고 정착되어가는 과정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이다. 식민지하에서 사라진 우리 전통 음악은 해방 후 음악교과에 있어서 가장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발전하여 활 발하게 교육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음악교육에 있 어서 전통음악의 회복은 쉽지 않았다. 한국음악교육은 당연히 과거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 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상태였지만, 일제강점 기에 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들로 인해 우리의 교육은 완전하게 독립되었다고 보기에는 역 2) 日 本 唱 歌 : 일본의 창가라는 용어는 1872( 明 治 5년) 일본의 학제반포 이후부터 사용되었으며, ʻ악기에 맞추어 가곡을 바르게 부르고, 덕성의 함양과 정조의 도야를 목적으로 하는 교과목ʼ과 ʻ그 교과에 사용되는 가곡ʼ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강숙 외 2인, 우리 양악 100년 (서울 : 현암사, 2001) : 68쪽. 일본의 창가는 일본에 들어온 서양음악이 일본사람의 취향에 맞으면 그대 로 그 음악을 수용하고, 맞지 않으면 서양음악의 선율만 사용, 가사는 일본가사를 붙이는 것으로 한 일본의 독자적인 음악 형태이다. 24
33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부족인 현실이였다. 한국전쟁이 지나고 1955년의 제1차 교육과정에서 3) 특히 주목할 점으 로 전통음악의 부정적 인식과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의 집중이라는 양면성을 들 수 있다. 즉 음악교육에 있어서 그동안 우리의 음악 즉 전통음악인 국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일제강 점기의 우민화 정책에 의한 교육의 악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공교육에서 우리 음악에 대한 정체성 혼란 문제의 원인도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1970년대까지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던 우리 전통음악이 해방 후 교과에 회복되고 정립되어 가는 과정의 시 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연구범위를 1970년대까지로 한정하였고, 안정기에 들어서서 전통 음악이 발전해 가는 1980년대와 그 이후에 대한 논문은 다음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일본의 경우도 패전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공허감도 컸다. 그런 상 황 속에서 안정되고 정착되어가는 일본의 전후 교육을 구교육체제의 불식기( 拂 拭 期 ), 신교 육 성립기( 成 立 期 ), 신교육의 반성과 개정기( 改 訂 期 ), 교육체제개정의 정비기( 整 備 期 ) 4) 로 나누기도 한다. 일본의 음악교육학자들은 전쟁 후 60주년을 맞아 음악교육의 성과를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음악활동을 체험하고 전문교육 측면으로도 우수한 음악가들을 많이 배 출시켰다. 그것은 음악교육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일본 음악교육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은 학습지도요령( 學 習 指 導 要 領 )이다. 5) 라고 돌이켜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일간의 음 악교육과정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1947년( 昭 和 20년) 6) 제1차 학습지도요령부터 1951년( 昭 和 26년) 제2차 학습지도요령, 1958년( 昭 和 33년) 제3차 학습지도요령 그리고 1968년( 昭 和 43년) 제4차 학습지도요령까지 분석 비교하여 논의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다. 그동안 한 일간의 음악교육 비교연구는 여러 선행연구 7) 가 있었으나, 우선 교과서의 비 교가 대부분이었고, 교육과정의 비교일 경우 현행의 교육과정 비교가 많았으며, 전통음악 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개괄적인 연구가 많았다. 그러나 본고의 경우 한 일간의 음악 3) 한국의 교육과정의 변천 : 현재까지 한국은 1955년 제1차 교육과정, 1963년 제2차 교육과정, 1973년 제3차 교육과정, 1981년 제4차 교육과정, 1987년 제5차 교육과정, 1992년 제6차 교육 과정, 1997년 제7차 교육과정, 그리고 2007년에 제7차를 수정한 2007 개정 교육과정의 변천이 있었다. 4) 石 川 松 太 郞 외 3인, 日 本 敎 育 史 ( 東 京 : 御 茶 の 水 書 房, 1979), 267쪽. 5) 楠 瀨 敏 則, 戰 後 音 樂 敎 育 改 革 の 動 向 とこれからの 課 題 ( 東 京 : 音 樂 敎 育 史 學 會, 2006), 1쪽. 6) 소화( 昭 和 )는 서기 1926년부터 시작해 1988년까지 63년 동안 사용된 일본의 연호를 일컫는다. 7) 한 일간의 음악교육 비교논문 중 학위논문의 경우, 권현덕,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 음악교육과 정의 내용분석 및 연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 심대용, 한국과 일본 초 등학교 음악교과서 내용 비교 연구, 한국 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전영미, 한국과 일본의 5, 6학년 음악교과서 내용분석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7 등이 있다. 25
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교육 비교연구에서 전통음악에 주목하는 점이 일제강점기 음악교육에서 ʻ전통음악부재ʼ라는 특수성에 기인하여 출발하는 것이므로 앞의 선행논문과는 문제제기가 다르다고 할 수 있겠 다. 그와 같은 문제제기를 가지고 한국의 미군정기를 걸쳐 제1차부터 제3차까지의 교육과 정과 일본의 제1차부터 제4차까지의 학습지도요령을 검토해 일제강점기의 ʻ전통음악과의 단절ʼ에서부터 회복, 부정, 극복 등의 과정을 교육과정의 내용으로 비교하도록 하겠다. Ⅱ. 한국 교육과정의 전통음악 내용 1. 미군정기( ) 해방 후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이 물러갔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곧바로 독립이 주어지지 는 않았다. 미국은 1945년 8월 15일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에 이 르는 3년 동안 우리나라에 군정의 실시를 위해서 군정청( 軍 政 廳 )을 설치하였다. 한국에 대한 군정을 실시하게 된 미국의 군정청 학무국에서는 한국의 실정에 거의 무지한 상태여서 한국인들로 하여금 한국교육위원회( 韓 國 敎 育 委 員 會, The Korea Committee on Education) 8) 와 조선교육심의회( 朝 鮮 敎 育 審 議 會, The Korea Committee on Educational Planning) 9) 를 구성하도록 하여 한국의 교육개혁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특히 조선교육심의 회는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 弘 益 人 間 )을 처음으로 제시하였다. 우리나라의 교 육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에 입각하여 애국애족의 교육을 강조하였으며, 일제의 잔재를 정 신면에서나 생활면에서 시급히 제거하는 데 각별히 노력하였다 10) 그리고 조선교육심의회 는 민주적인 단선형 11) 의 교육제도를 마련하여 한국교육의 학제의 틀을 만들었다는 의의를 8) 韓 國 敎 育 委 員 會 : 한국교육위원회는 군정청 학무당국에서 한국인 교육계 인사들로부터 당면한 교 육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한 군정청 학무국 최초의 자문기구였다. 공식적으로는 자문기관이 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교육의 모든 부문에 걸쳐 중요한 당면 문제를 심의 결정하였다. 9) 朝 鮮 敎 育 審 議 會 : 조선교육심의회는 1945년 11월부터 약 4개월 동안 우리나라의 교육계와 학계 의 지도자 100여명으로 구성되어 구체제에서 벗어나 민주사회 건설에 부합한 새로운 방향을 설 정하고 그에 따르는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한국의 장래의 교육을 설계하도록 하였다. 10) 문교부, 문교개관 (서울 : 문교부, 1958), 156쪽. 11) 學 制 의 類 型 에는 複 線 型, 單 線 型, 그리고 分 岐 型 이 있다. 복선형은 두 가지 이상의 학교계통이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함께 공존한다. 학교계통간의 이동이 인정되지 않으며 계통성을 강조한 다. 단선형은 학교계통이 하나이다. 계통성보다 단계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분기형은 기초학교 단계에서는 단선형으로 그 위는 복선형이다. 이 학제들은 교육 기회균등의 실현과 관련이 깊다. 26
35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가진다. 교육과정의 민주화를 획기적으로 추진한 이 학제는 기회균등을 기본원칙으로 하 고, 제의 기본학제의 기틀이 되었다. 미군정기에 추진된 문교시책을 살펴보면, 군정청 학무국에서는 한국인의 교육문제를 한 국인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한국화 시책을 추진하였다. 학교의 교수 용어를 한국어 로 사용하도록 하였고, 민주교육 이념에 입각한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 교원을 대상으로 재 교육 강습을 널리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제의 잔재를 조속히 없애기 위해 한글 교 육을 실시, 특히 초등학교 교과서의 편찬 보급에 힘썼다. 12) 미군정기의 교과목은 <표 1> 13) 을 보면, 공민, 국어, 지리, 역사, 산술, 이과, 음악, 체 육 8과목이 있었다. 14) <표 1> 임시교육과정 교과 편제 및 시간배당( ) 공민 국어 지리 역사 산술 이과 음악 체육 당연하지만 일본어가 사라졌고, 우리 한글로 된 국어교과가 많은 시간을 배당받았다. 급 하게 만들어졌으나, 음악과 체육교과가 예능교과목의 대표로 포함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에 배제되었던 한국지리와 한국역사 시간이 임시교육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국어교과와 함께 실행되었다. 이와 같은 교과과정은 해방 직후 초등학교를 개교하기에 앞서 갑자기 정한 것이어서 어떤 일관된 철학적 입장도 세우지 못한 채, 일본의 잔재를 없애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보이며, 우 리 민족의 손으로 자주적 교육을 하려는 염원 아래 임시적으로 정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 후 1946년 1월 10일에 조선교육심의회에서 채택한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공민, 국어, 역사, 지리, 산수, 이과, 체조, 음악, 습자, 도화, 공작, 요리, 재봉(여), 실과로 몇몇 과목이 추가되 며 바뀌었다. 우선 습자, 도화, 공작, 요리, 재봉 같은 교과가 추가되었고, 체육이 체조로 미 술이 도화와 공작으로 나눠서 바뀌는 등 몇몇 과목의 명칭이 바뀌었다. 그러나 몇몇 교과의 추가로 임시 교육과정보다 교과는 증가하였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12) 김영우 피정만, 최신한국교육사연구 (서울 : 교육과학사, 1995), 쪽. 13) 문교부, 앞의 책, 130쪽. 14) 문교부, 앞의 책, 130쪽. 27
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해방을 맞은 지 3년만인 1948년 8월 15일에 미군정은 폐지되었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 립되었다. 새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정기의 민주주의 교육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우리만의 교육정책을 개발 15) 하려고 노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교육적인 측면에서 시급 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독립국가로서 갖추어야 할 특색 있는 교육체제를 마련하는 일 이었다. 즉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기회균등과 초등 무상 의무교육, 교육기관에 대한 국가 의 감독, 교육제도의 법정주의적 원칙 등에 입각한 국민교육제도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16) 1948년에 제정 선포된 대한민국의 헌법 제16조에 ʻ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 모든 교육기관은 국가의 감독을 받으며, 교육제도는 법률로서 정한다ʼ는 규정을 넣음으로써 민주주의 교육과 공교육의 원칙 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교육법을 새로 제정하여 1949년 11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교육법을 공포하였다. 새로운 교육법은 미군정기에 있었던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았으 며, 홍익인간을 우리의 민족적 이상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교육방침에서 예술 활동에 순수 한 심미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우리의 민족 고유문화에 관심 을 갖도록 하였다. 이 당시의 교육은 거의 미군정기의 교육을 받아 발전시켜서, 교육제도 나 교육실제에 있어 크게 다른 변화가 없었다. 새 교육법에 의한 교육실현은 1950년대 와서 더욱 활발해졌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 속으로 있는 ʻ국민학교 교육연구회ʼ에서 ʻ국민학교 교칙의 실천ʼ을 작성하였는데 그 중 음악 과에 대한 목표는 다음과 같다. 국민학교 교칙의 실천-각 교과의 목표 제7조 음악과는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며 창작하는 능력을 양성하여서 심미적 취미를 함양하며 국민적 정조를 순화함. 17) 그 외에 국어, 사회, 이과, 산수, 보건, 미술, 가사와 함께 음악과의 목표가 있는데, 특 히 음악과의 목표에는 음악과는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며 창작하는 능력을 양성하여서 심미적 취미를 함양하며 국민적 정조를 순화함 으로 되어있다. 여기에 ʻ음악을 연주하는ʼ 기악영역과 감상영역, 그리고 ʻ창작하는 능력을 양성ʼ하는 창작영역 등 각 영역별로 다양한 15) 초대 문교부장관이었던 안호상은 一 民 主 義 를 문교행정의 기본방향으로 삼았다. 일민주의란 인 간주의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로서 일민주의의 내용은 바른백성( 正 民 )으로서의 한 백성주의, 백성통일( 民 族 統 一 )으로서의 한 백성주의, 세계 한백성( 世 界 一 民 )으로서의 한 백성주 의, 만백성 다같이 ( 萬 民 同 一 )로서의 한 백성주의, 그리고 백성 첫째( 人 民 第 1)로서의 한 백성중 의를 주장하며 홍익인간의 이념에 입각하여 남북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민족적 염원을 일민주의 라는 기치 아래 문교행정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김영우, 피정만, 앞의 책, 509쪽. 16) 한국교육30년사편찬위원회, 한국교육30년 (서울 : 문교부, 1980), 16쪽. 17) 유봉호, 한국교육과정사 연구 (서울 : 교학연구사, 1992), 쪽 재인용. 28
37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음악이 행해지도록 제시하고 있다. 이 점은 가창영역에만 치우쳐 있던 일제강점기의 음악 교육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음악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의 확인을 위해 ʻ국민학교 교칙의 실천ʼ을 보면, 음악과의 지 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칙의 실천-음악과의 지도에 관해서 제7조 음악과 1. 평이한 단음( 單 音 )창가( 唱 歌 ) 윤창( 輪 唱 ) 및 중음( 重 音 )창가를 가( 加 )하며 또 음악 감상시 킴. 악전의 초보를 실지에 맞추어 지도함을 요함. 될 수 있는 데까지 작곡과 악기를 지도 하여야 함 2. 가사와 곡조는 국민적이고 아동의 심정을 쾌활 순미하게 하며 품성을 고상하게 할 만한 것이라야 함 3. 아동의 개성에 맞추어 음악적 소질을 계발하여서 국민 음악 창조의 기초를 만들도록 하 여야 함 4. 발음과 성음의 연습을 중시하여 자연스러운 발성으로 정확한 발음을하도록 하여야 함 5. 학교 교육 전반에 음악을 활용하여 화락한 분위기를 체인( 體 認 )하여 음악의 생활화를 기 하도록 하여야 함 18) 민주주의 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지식 주입식이 아닌 아동중심, 생활중심의 교육내용이 실생활 안에서 강조되도록 하였다. ʻ학교 교육 전반에 음악을 활용하여 화락한 분위기를 체 인( 體 認 )하여서 음악의 생활화를 기하도록 해야 한다ʼ는 것은 지식중심의 교과 내용이 생활 중심의 교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ʻ평이한 단음창가를 가르치고 적당 한 윤창( 輪 唱 )과 중음( 重 音 )창가를 가르쳐도 무방하다ʼ고 명시되어 있는 점과 일제강점기의 음악교과를 비교해보면, 일제강점기보다 가창영역에 단음, 윤창, 중음창가 등의 적극적인 자세로 지도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규정에 서 단음창가로 되어있는 이유로 화성적인 반주를 할 수 있는 교원이 적었기 때문이다. 이 와 같이 일본은 독자적인 교육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한국의 정책기구를 통하여 그대로 도 입시켰다. 19) 그러나 다양한 음악의 양상을 경험하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발성에 대해서 도 자연스런 발성과 정확한 발음이 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는 한국어 사용이 음악교과에 도 영향이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노래의 가사를 한국어로 부르는 것이 아직 서툴기 때문에 18) 유봉호, 앞의 책, 309쪽 재인용. 19) 오지선, 한국근대음악교육 (서울 : 예솔, 2003), 133쪽. 29
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가창수업이 배제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권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악전( 樂 典 )에 대 해서도 일제강점기의 ʻ평이한ʼ 가창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음악이론이 아니라, 음악의 기초를 위한 이론으로 지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악전이나 창작, 기악 영역보다 여전히 가창영역에 좀 더 치우쳐져 있음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수용어가 한국어로 되었고, 교과서도 한국어로 편찬되었는데 음악교과는 주로 한 국어로 가사가 바뀐 서양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는 점은 또 다른 식민주의 교육이 되어 완전 한 독립이 안 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시대에서 벗어나면서 민주주의 교육으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였고, 우리말 교육과 함께 한국의 국익에 반대되는 교과목 의 교수금지를 지시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의 음악교육은 일본 강점기시대의 내용을 그대 로 모방하였고, 교사들이 가창교육을 위주로 실시하였다. 이때 사용된 음악교과서는 악보 만을 제시한 노래책 수준이었으며, 교과서의 보급도 충분하지 못했다. 20) 이는 현재의 음 악교육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와 미군정기, 교수요목기의 교과과정으로 인해 문제점으로 남 아 있게 된 것인데 예를 들면, 가창 위주의 음악이 교과에 집중되어 있어서 기악 감상 창작 등의 각 영역이 불균형적인 형태로 체계적이지 못한 상태의 교과 구성이 되어 있고, 또 교 재 곡 배열식의 제재단위로 된 형식 등이 아직도 우리의 음악교육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와 같이 일본의 제국주의 세력이 물러갔다고 해서 우리나라는 완전한 독립이 되지 않았다. 2. 제1차 교육과정 : 1955년 이 시기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도 교육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때 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1차 교육과정은 1955년 8월 1일 문교부령 제44호 초등학교 교과 과정 으로 제정 반포된다. 제1차 교육과정은 우리가 만든 최초의 체계적인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이때의 교육과정은 각 학교의 교과목 및 기타 교육활동의 편제로 정의되었으며, 법령상 의 명칭이 교과과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ʻ교과중심 교육과정시기ʼ라고 부른 다. ʻ교과중심 교육과정이란 ʻ지식의 체계ʼ를 중시하는 교육과정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 우게 되는 모든 교과와 교재를 말한다. 교육의 목적은 아동들에게 지식을 많이 전달하는 것이었으며, 교과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였다. 따라서 교수-학습 과정은 교 사가 학생들에게 교과의 내용[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강요하게 되며, 아동들은 그 내 20) 권덕원 외 3인, 음악교육의 이해와 실천 (서울 : 교육과학사, 2006), 63쪽. 30
39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용을 암기하게 된다. 제1차 교육과정 음악과 의 일반목표는 음악의 체험을 통하여 아름다운 정서와 원만한 인격을 갖추어 가정인 사회인 국제인으로서의 교양과 애국 애족의 정신을 기르는 것 21) 이 다. 그리고 목표로는 기능연마 기악 감상 창작 등의 음악 생활화가 구체적으로 설정되고, 각 영역에 따른 지도 내용이 제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1학년, 2학년의 가창지도에서 될 수록 슬픈 곡조는 피하고, 명랑하고 쾌할한 가곡을 가르친다. 22) 라고 제시되어 있고, 3학 년에 와서 서정적인 곡도 가르칠 수 있다 23) 라고 가창영역에 제시되어 있는 점이다. 이는 음악성을 위한 교육이라기보다 해방 후 사회적인 분위기를 ʻ명랑하고 쾌활한ʼ 분위기로 하 려는 정치적 사회적 의도가 담겨졌다고 본다. 전통음악에 대한 내용은 <표 2>를 보면, 우선 1학년, 2학년, 3학년의 가창 기악 감상 창작 영역 즉 전 영역 어느 곳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고학년인 4학년 가창 영 역에서 단조 삼 곡 이내, 민속조( 民 俗 調 ) 이 곡 이내로 가르칠 수 있다. 24) 라고 제시되어 있는 것과 5학년 감상 영역에서 우리나라의 민요를 들려준다. 25) 또 6학년 감상 영역에 서 우리나라의 악기(가야금, 거문고, 해금, 양금, 저, 대금, 장고 등)를 더한다. 와 국악 ( 國 樂 ), 아악( 雅 樂 ), 정악( 正 樂 ), 군악( 軍 樂 ), 창극( 唱 劇 )을 들려준다. 26) 라고 제시한 것이 전통음악에 대한 내용의 전부이다. 21) 문교부, 음악과 교육과정 (서울 : 문교부, 1955), 2쪽. 22) 문교부, 앞의 책, 3, 6쪽. 23) 문교부, 앞의 책, 9쪽. 24) 문교부, 앞의 책, 12쪽. 25) 문교부, 앞의 책, 17쪽. 26) 문교부, 앞의 책, 20쪽. 31
4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표 2> 제1차 교육과정에 나타난 전통음악 내용 가창 영역 기악 영역 감상 영역 창작 영역 1학년 학년 학년 학년 단조 3곡이내, 민속조 2곡 이내로 가르칠 수 있다 학년 - - 우리나라의 민요를 들려준다. - 6학년 - - 우리나라 악기를 더한다. 국악 아악 정악 군악 창극을 들려준다. - 위의 표에서 보면, 제1차 교육과정에서는 전통음악의 4가지 영역 중 가창 영역과 감상 영역에 치우쳐서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저학년에서는 전혀 지도되지 않았고, 고 학년에서 한정된 부분만 지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후에 서양음악과 일본의 창 가 중 창가가 삭제되었는데도, 우리의 전통음악은 적은 수만 포함되고 서양음악의 내용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해방 후 미 군정기의 교육사상과 일제강점기에 사범학교를 졸업한 교 사들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제2차 교육과정 : 1963년 제2차 교육과정은 1963년 2월 15일 문교부령 제119호 초등학교 교육과정 으로 개정 되었다. 제1차 교육과정에서 아동의 개성과 흥미 및 창의성을 무시하는 교사의 일방적인 교육이 문제되었고, 아동의 기초 학력이 부족함을 지적하여 교과서의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진보주의 교육사상으로 생활중심 경험중심의 교육 사 조를 반영하여 개정하였던 것이다. 제2차 교육과정의 특징은 ʻ경험 중심 교육과정ʼ이며, 교육의 목적은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지식보다는 실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아동이 중심이 되어 직접 경험하여 배우도록 하는 것 이었다. 교육과정의 구성은 아동의 흥미와 필요를 바탕으로 구성해야 하고, 실질적인 교재 는 학습의 장에서 결정되고,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음악과 교육과정의 목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음악의 체험을 통하여, 아름다운 정서와 32
41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원만한 인격을 갖추게 함으로써 바람직한 국민으로서의 교양을 높이고, 애국 애족하는 마 음과 우리나라의 문화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 및 태도를 기른다. 27) 이다. 제2차 교육과정에서 음악교육 영역은 가창 기악 감상 창작 영역으로 나눈다. 흥미로운 점 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가창 영역에서 우리나라와 여러 나라의 노래 부르기 28) 가 전 학 년에 걸쳐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음악에 대한 언급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그리고 제2차 교육과정에서 전통음악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눈에 띠는 점이 있다. 2학년부터 6학년의 감상 영역에서 국악기 감상에 대한 점이 나오는데, 이때 국악기 감상에 대한 국악기의 종류를 학년별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 3> 제2차 교육과정 감상 영역에서 국악기 감상 내용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국악기 종류 장구 북 편종 편경 퉁소 태평소 단소 피리 징 꽹과리 가야금 양금 거문고 해금 대금 아쟁 박 생황 <표 3>을 보면, 국악기의 종류를 각각 제시한 기준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국 악기에 대한 이해 및 그 연주 감상 에서 각 학년마다 국악기의 종류를 제시한 점은 제1차 의 교육과정에 비해 많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2학년부터 6학년까지 감상 영 역에서 한국풍의 음악에 대한 감득 29) 과 전 학년에 걸쳐 고상하고 유명한 우리나라와 여러 나라의 음악 감상 30) 의 내용을 보면, 제1차 교육과정보다 다양한 전통음악의 내용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제3차 교육과정 : 1973년 1973년 2월 14일 문교부령 제310호 초등학교 교육과정으로 제3차 교육과정이 개정되 었다. 제3차 교육과정은 우리나라 교육과정 제정 상 처음으로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시안을 확정하고 2년간의 실험평가를 거쳐 확정한 것이라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교육의 방법 및 원리 측면에서는 ʻ학문중심 교육과정ʼ의 도입을 배경으로 하여 개정된 것이다. 이는 제2차 교육과정의 ʻ경험중심 교육ʼ 혹은 ʻ생활중심 교육ʼ이 아동의 흥미와 요구만을 중시하여 학문 27) 문교부, 음악과 교육과정 (서울 : 문교부, 1963), 1쪽. 28) 문교부, 앞의 책, 10, 11, 14, 17, 20, 23쪽. 29) 문교부, 앞의 책, 13, 16, 19, 22, 25쪽. 30) 문교부, 앞의 책, 11, 13, 16,19, 22, 25쪽. 33
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에 대해서 소홀했다는 점에 대한 반성에서 등장 31) 하였다. ʻ경험중심의 교육과정ʼ에서는 아 동이 어렵게 느끼는 수학이나 과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교육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반성으 로,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ʻ학문중심의 교육과정ʼ이 등장 한 것이다. 제3차 교육과정 구성방침은 국민적 자질의 함양과 인간 교육의 강화, 지식 기술 교육의 쇄신 등에 두었다. 이를 토대로 음악과 교육과정의 개정은 학습내용의 질과 양적인면에서 정선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음악과( 音 樂 科 )는 국민적 교양과 기초적인 기능 표현 및 감상 능력 그리고 민족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과 태 도에 관련된 일반 목표를 설정하고 각 영역별로 활동 내용을 제시하였다. 이때 ʻ학문 중심 의 교육ʼ 사조가 모든 교과의 기저가 되었으며, 음악과도 역시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와 음 악 행위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지식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이를 중요한 지도 내용으로 제시하였다. 음악의 본질적 문제가 학습되고 해결되어 나아갈 수 있 도록 기존 학습 내용의 체계화와 전통음악의 소재 선정 기준을 설정하였던 것이다. 제3차 음악과 교육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1학년부터 6학년의 가창 영역에서 민속적인 가락과 건설적인 가사의 노래 32) 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1970년대부터 농촌의 근대화를 위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 생활태도의 혁신과 환경개선, 그리고 소득증대를 통하여 농 촌을 발전시키려는 범국민적인 정신개혁운동 33) 의 영향에서 온 것이다. <표 4> 제3차 교육과정 감상 영역에서 전통악기의 감상 내용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북 장구 징 꽹과리 북 장구 징 꽹과리 피리 북 장구 피리 태평소 북 장구 징 꽹과리 북 장구 징 꽹과리 피리 태평소 가야금 거문고 아쟁 북 장구 징 꽹과리 피리 태평소 가야금 거문고 아쟁 단소 대금 해금 박 31) 사실 세계적으로 학문주의 교육과정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지배적인 영향을 미 쳤던 교육과정이었다. 그 등장배경은 1957년 세계적 냉전체제의 긴장 속에서 소련이 ʻ스푸트니 크ʼ 인공위성을 미국보다 먼저 발사하게 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의 냉전체제하에서 미 소 간의 군사력 경쟁은 치열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급 군사정보 수집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인공위 성을 소련이 먼저 발사하게 됨으로써 미국은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미 국 내에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일환으로 교육과정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면서 학문주의 교육과정이 등장하게 되었다. 32) 문교부, 음악과 교육과정 (서울 : 문교부, 1973), 5, 8, 11, 15, 20, 24쪽. 33) 변태섭, 한국사통론 (서울 : 삼영사, 2006), 참조. 34
43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제3차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대한 내용은 감상 영역에서 가장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전통악기의 감상은 <표 4>를 보면 제2차와 같이 전통악기의 종류가 제시되고 있 다. 그런데 제3차에서는 제2차에 비해 연계성을 가진 규칙이 보인다. 즉 앞의 학년에서 제 시된 악기에 조금씩 첨가되고 있는 형태이다. 또한 감상 영역에서 각 학년마다 감상 내용에 해당하는 곡목들의 음악 종류와 연주 형 태의 제시를 구체적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표 5>를 보면, 저학년에서는 성악곡인 민요만 다루다가 고학년에 이르러 농악과 가야금 음악 그리고 국악합주를 제시하고 있다. <표 5> 제3차 교육과정 감상영역에서 전통음악 감상곡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민요 민요 민요 민요와 농악 민요, 농악, 가야금에 의한 음악 등 민요, 농악, 가야금에 의한 음악 및 단순한 국악, 합주 등 그리고 <표 6>에서는 3학년부터 감상 영역에서 음악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한 제언을 하 기도 하였다. <표 6> 제3차 교육과정 감상영역에서 음악의 특징을 위한 전통음악 내용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우리나라 음악과 서양 음악을 비교 감상한다. 우리나라 음악과 서양 음악의 다른 점을 감별한다. 우리나라 음악과 서양 음악의 다른 점을 감별한다. 우리나라 음악과 서양 음악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이를 감별한다. 이와 같이 전통음악은 제3차 교육과정에서도 제1 2차와 같이 가창 영역과 감상 영역에 치우쳐서 다루어지고 있지만, 특히 감상 영역에서 음악의 특징별, 종류별, 그리고 악기별로 나누어 다양한 감상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있는 점이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35
4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제1차부터 제3차까지의 교육과정에서 전통음악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 수 있다. 첫째, 비록 서양음악에 비하면 적은 수이지만 전통음악의 양적인 면이 점점 증가되어 가 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차에서는 4학년의 가창 영역과 5 6학년의 감상영역에서 전통음악 의 내용이 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제2 3차에서는 전 학년 또는 중 고학년에서 전통음악 이 다루어졌다. 둘째, 각 학년에 수록된 전통음악의 내용이 전 학년과의 연계성을 가지게 되었다. 제1 2차보다 제3차로 갈수록 점점 전통음악의 비중이 증가됨에 따라 제3차에서는 각 학년마다 전통음악의 내용이 나오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요구사항이 제시되거나 내용이 복 잡해지고, 증가 추가됨을 알 수 있었다. 셋째, 전통음악은 점차 양적인 증가는 되고 있으나 영역별로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못하 고 가창과 감상 영역에만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제3차까지 살펴 볼 때, 기악이나 창 작 영역에서는 전통음악의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는 전통음악을 부르거나 연 주하기 보다는 감상영역에 많이 치우쳐 ʻ듣기교육ʼ으로만 전통음악을 교육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Ⅲ. 일본 학습지도요령의 전통음악 내용 문부과학성이 고시한 학습지도요령 안에는 교육이념의 영향에 따른 각 교과의 내용이 있다. 학습지도요령은 교육과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곳에 나와 있는 교과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일본의 교육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1947년의 제1차 학습지도령부터 제4차 학습지도요령을 통해 일본 전통음악 의 내용을 살펴서 일본의 음악과( 音 樂 科 ) 교육과정 초기 변천에 대한 것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1. 제1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 시안( 試 案 ) : 1947년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나고 34) 곧 같은 달 28일에 문부성은 문부차관의 명령으로 34) 한국에 있어서는 해방을 맞이하는 것이겠지만 일본의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여기에 서는 일본의 교육과정에 대한 내용으로 1945년 이후를 ʻ전후( 戰 後 )ʼ라고 표현하였다. 36
45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교과서 및 교재의 사용에 주의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즉 초등학교에서 사용된 교과서 중 적당하지 않은 교재의 내용은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제거하거나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게 된다.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의 의견에 벗어나지 않도록 교과서에 군국주의적 내용을 없애고, 이른바 ʻ묵도( 墨 塗 )의 교과서ʼ35) 가 나오게 되었다. 36) <그림1> ʻ묵도의 교과서ʼ-음악교과서 37) 전후의 혼란 속에서 학습지도요령의 역사는 1947년( 昭 和 22)부터 시작되었다. 학습지도 요령은 원래 교육과정 작성을 위해서 편집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지도요령 및 음악편이 작성된 것은 음악교육에 있어서 실로 획기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ʻ덕육의 함 양( 德 育 の 涵 養 )ʼ을 목표로 한 전전( 戰 前 )의 음악 교육기관으로부터 음악교육의 목표가 음 악미의 이해, 감정에 의한 미적 조작과 풍부한 인간성을 기르는 것 38) 으로 변환되어 음악 교육을 예술교육의 하나로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습지도요령 음악편의 서두에 보 면 예술로서의 음악의 본질은 음을 소재로 하는 시간적 예술이다 39) 라고 되어 있다. 이런 음악교육의 목표는 전후의 음악교육의 방향을 정하는데 큰 의미를 두게 된다. 제1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음악편의 목표에 군국주의적인 35) ʻ묵도( 墨 塗 )의 교과서ʼ란 교과서의 내용 중 전쟁적인 색채가 강한 부분을 검게 색칠하여 내용이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전후 일시 정지되었던 학교의 수업은 9월부터 개시되었지만 교과서가 개정되지 않아 종래의 교과서 내용을 일시적으로 가려서 사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림1 참조- 圖 說 敎 育 の 歷 史 ( 東 京 : 河 出 書 房 新 社 2008), 77, 78쪽 발췌.) 36) 中 山 裕 一 郞, 1947 年, 1951 年 學 習 指 導 要 領 ( 試 案 )の 史 的 意 義 ( 東 京 : 開 成 出 版, 2006), 2쪽. 37) 좌) 음악교과서 - 검게 칠해진 곳은 山 田 長 政 의 가사 우) 초등과 음악교과서 목차 - 목차에 나오는 곡명에도 쿠로누리( 墨 塗 り)하였다. 38)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 試 案 )( 東 京 : 文 部 省, 1947), 1쪽. 39) 文 部 省, 앞의 책, 1쪽. 37
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내용은 사라졌고, 교양의 요소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음악이라고 하는 교과를 통해서 높 은 미적 조작과 풍부한 인간성을 기른다 라고 하는 음악의 본질적인 내용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가창과 기악, 감상 그리고 창작의 활동을 통해서 음악의 창조력과 표현 력을 기르도록 하였고, 특히 음악의 기초적인 이론과 독보력( 讀 譜 力 )에 주의 하도록 하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一. 음악미( 音 樂 美 )의 이해 감정을 실천하여 그것에 의한 높은 미적 조작과 풍부한 인간성을 기른다. 二. 음악에 관한 지식 및 기술을 습득시킨다. 三. 음악에 의해서 창조력을 기른다. (선율과 곡을 만드는 것) 四. 음악에 의해서 표현력을 기른다. (노래를 부르는 것과 악기를 연주하는 것) 五. 악보를 읽는 힘과 쓰는 힘을 기른다. 六. 음악에 의해서 감상력을 기른다. 40) 위의 제1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 목표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덧붙어 있어서 1차의 음 악교육 목적의 이해를 돕고 있다. ʻ음악교육은 정조교육( 情 操 敎 育 )이다ʼ라고 하는 원칙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의미로서의 방법으로는 종래의 것이 꼭 바른 방향에 있었 다고는 할 수 없다. 음악교육이 ʻ정조교육이다ʼ라고 하는 의미는 목표의 하나일 뿐 음 악미의 이해, 감정에 의한 높은 미적 정조와 풍부한 인간성을 기르는 것이다. 종래의 생각으로는 음악교육을 정조교육의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 강했다. 즉 정 조를 교육하기 위해서 음악교육을 사용하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음악은 본래 예술이 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이 되었다가 수단이 되었다가 할 수는 없다. 예술을 수단으로 하는 생각은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음악교육이 정조교육이라 는 의미는 ʻ음악교육은 정조교육이다ʼ라고 하는 것으로서 음악미의 이해, 감정을 미적 정조의 양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고 질 좋은 음악교육을 행하려면 그것 이 바르고 질 좋은 미적정조의 양성이 되도록 한다. 종래의 음악교육을 수단으로 사 용할 때에는 음악교육은 예를 들면 독보력( 讀 譜 力 )이 완전하게 되지 않는 오히려 질 낮은 모양이었다. 41) 40) 文 部 省, 앞의 책, 1쪽. 41) 文 部 省, 앞의 책, 2쪽. 38
47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제1차에서는 음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음악 학습영역을 가창, 기악, 감상, 창작 4가 지로 나누어 지도사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창영역에 치우 쳐서 음악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1차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 학년에 걸쳐 유럽음악[서 양음악]을 중심으로 한다 42) 라고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일반목표에 음악교육 전체에 해당하는 방침으로 아동의 음감각( 音 感 覺 )을 순수한 기초에 확립하기 위해서 우선 유럽음악의 음조직을 기초로 가르치고 그것의 확립을 갖은 다음 다른 음조직을 이해시킨 다. 43) 라고 부가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저학년에서는 일본 전통음악에 대한 교육은 이루어 지고 있지 않았고 유럽음악 중심으로 음악을 교육하였던 것이다. 제1차 학습지도요령에서 일본 전통음악에 대한 내용은 고학년 가창 감상 영역에 처음 등 장한다. 가창 영역에서는 4 5 6학년에서 유럽음악을 주체로 하고, 다음 일본의 전통음악의 음조직을 가진 노래를 하도록 한다. 44) 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감상 영역에서는 유럽음 악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과 함께 일본의 전통음악 및 악기에 관한 이해도 서로 알도록 한다. 45) 일본의 전통음악 안에 단순한 것을 들려준다. 46), 때때로 악기의 특징을 살린 음악을 들려줌과 함께, 일본 전통악기에 관해서도 가르치고 유럽 악기와 상반점을 알도록 한 다. 47) 라고 전통음악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표 7>을 보면 일본 전통음악은 4 5 6학년 의 가창과 감상 영역에서 유럽음악과 함께 비교하며 배우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제1차 학습지도요령에서는 유럽음악을 중심으로 음악교육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다. 42) 文 部 省, 앞의 책, 50, 54, 57, 65, 72, 78쪽. 43) 文 部 省, 앞의 책, 42쪽. 44) 文 部 省, 앞의 책, 65, 72, 78쪽. 45) 文 部 省, 앞의 책, 69, 75, 81쪽. 46) 文 部 省, 앞의 책, 69, 76쪽. 47) 文 部 省, 앞의 책, 69, 76, 82쪽. 39
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표 7> 제1차 학습지도요령 4 5 6학년 가창 감상 영역의 전통음악 내용 4학년 5학년 6학년 가창 영역 유럽음악을 주체로 하고, 일본의 전통음악의 음조 직을 가진 노래를 다음 으로 하도록 한다. 유럽음악을 주체로 하고, 일본의 전통음악의 음조 직을 가진 노래를 다음 으로 하도록 한다. 유럽음악을 주체로 하고, 일본의 전통음악의 음조 직을 가진 노래를 다음 으로 하도록 한다. 감상 영역 유럽음악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과 함께 일본의 전통 음악 및 악기에 관한 이해도 서로 알도록 한다. 일본의 전통음악 안에 단순한 것을 들려준다. 때때로 악기의 특징을 살린 음악을 들려줌과 함께, 일본 전 통악기에 관해서도 가르치고 유럽 악기와 상반점을 알도록 한다. 유럽음악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과 함께 일본의 전통 음악 및 악기에 관한 이해도 서로 알도록 한다. 일본의 전통음악 안에 단순한 것을 들려준다. 때때로 악기의 특징을 살린 음악을 들려줌과 함께, 일본 전 통악기에 관해서도 가르치고 유럽 악기와 상반점을 알도록 한다. 유럽음악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과 함께 일본의 전통 음악 및 악기에 관한 이해도 서로 알도록 한다. 때때로 악기의 특징을 살린 음악을 들려줌과 함께, 일본 전 통악기에 관해서도 가르치고 유럽 악기와 상반점을 알도록 한다. 일본 전통음악에 관해서도 점차 종류를 증가 한다. 2. 제2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 시안 : 1951년 제2차 학습지도요령은 1951년( 昭 和 26년)에 작성되었다. 제1차 학습지도요령은 단기간 에 참고자료도 없이 급하게 작성되어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제2차 학습지도요령이 작성된 때는 전후의 혼란으로부터 점점 안정을 찾아가며 민주주의 교육이 정착해 가는 시기였다. 이때는 당연히 미국의 영향을 받았고,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된 것 으로 존 듀이 사상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제2차 학습지도요령은 교과의 계통성을 중시 하고, 기초학력과, 도덕교육의 충실이라고 하는 새로운 요청을 담아 개정되었다. 48) 제2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에는 목표, 지도내용, 지도방법, 평가, 자료 등이 상세하게 되어 있다. 제2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의 목표는 음악경험을 통해서 깊은 미적 정조와 풍 부한 인간성을 기르고 원만한 인격의 발달로 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을 높이는 것 49) 을 목표 48) 佐 川 馨, 音 樂 科 學 習 指 導 要 領 におけるʻ 日 本 の 音 樂 ʼ 變 遷, 秋 田 大 學 敎 育 文 化 學 部 硏 究 紀 要 ( 敎 育 科 學 會, 2007), 95쪽. 49)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 試 案 )(동경 : 文 部 省, 1951), 14쪽. 40
49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로 삼고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7개의 일반목표가 있다. 1. 여러 가지 음악경험으로 인해 음악을 사랑하도록 기른다. 2. 좋은 음악을 감상해 음악의 감상력을 높인다. 3. 음악의 표현기능을 기르고 음악경험을 통해서 창조적인 자기표현을 장려한다. 4. 학습경험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음악에 관한 지식을 얻는다. 5. 음악을 이해하거나 느끼는 힘은 각 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른다. 6. 음악 경험의 기쁨이나 즐거움을 가정이나 지역사회의 생활에까지 미친다. 7. 음악이라는 세계 공통어를 통해 각 국가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 50) 음악과의 학습영역으로는 5개의 영역으로 나뉘었는데 가창, 기악, 감상, 창작이 창조적 표현으로 변하였고, 거기에 새로운 리듬 반응의 영역이 추가되었다. 제1차 학습지도요령에 는 음악의 본질에 충실한 음악교육이었다면, 제2차 학습지도요령에서는 음악을 통하여 개 인과 사회 그리고 나아가서 세계를 이해하고 영향력을 미치는 목표를 가지고자 하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6학년 감상 영역에서 각 국의 민요나 민요음악의 연주 듣기, 여러 나라의 고유한 악기 사용에 관해서 배우기 51) 등이 있다. 또한 음악과 타( 他 ) 과목과의 관계를 갖는 협력교육을 추구하였다. 1학년 가창 영역에서 체육과 사회과 이과 ( 理 科 )등과 관련해서 노래하기 52), 2학년 감상 영역에서 타과목과 관련해서 음악을 듣 기 53), 6학년 감상 영역에서는 음악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민속무용 배우기 54) 등 의 특징이 전 학년에 걸쳐 나타난다. 제2차 학습지도요령에 전통음악의 내용은 제1차와 마찬가지로 가창 감상 영역에서만 나 타난다. 그러나 고학년부터 전통음악이 나타났던 제1차와 달리 제3차에서는 저학년부터 일 본 전통음악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1 2학년 가창 영역의 조성에 대한 내용 중 장음 계, 일본 음계에 의한 것 55) 이라고 포함되어 있고 4 5 6학년 가창 영역의 시창법( 視 唱 法 ) 의 교재에 관해서 일본 음계에 대한 선율 을 나타내고 있다. 50) 文 部 省, 앞의 책, 14쪽. 51) 文 部 省, 앞의 책, 82쪽. 52) 文 部 省, 앞의 책, 28쪽. 53) 文 部 省, 앞의 책, 41쪽. 54) 文 部 省, 앞의 책, 82쪽. 55) 文 部 省, 앞의 책, 28, 37쪽. 41
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표 8> 제2차 학습지도요령 가창 감상 영역의 전통음악 내용 가창영역 감상영역 1학년 2학년 일본 음계에 의한 것 일본 음계에 의한 것 3학년 4힉년 5학년 6학년 일본 음계에 대한 선율 일본 음계에 대한 선율 일본 음계에 대한 선율 일본 민요의 가창이나 연주를 듣는다. 장조 단조 일본음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식별하 거나, 비교한다. 일본악기의 독주나 합주에 관해서 알아본다. <표 8>을 보면 3학년에서는 전혀 전통음악에 관해서 언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학년별 전통음악에 대한 연계성이 없이 학습지도요령이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주 목할 만한 것은 5학년에서의 감상 영역이다. 일본 민요의 가창이나 연주를 듣는다. 56), 장조 단조 일본음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식별하거나 비교한다. 57), 일본악기의 독주나 합주에 관해서 알아본다. 58) 라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와 같이 5학년 감상 영역에 는 전통음악에 관해 많은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만, 제2차 학습지도요령 전반적으 로는 전통음악에 대한 내용이 양적으로도 적고, 질적인 면에서도 학년의 연계성이 없이 5 학년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제3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 기준( 基 準 ) : 1958년 전후의 불황에 힘들어 했던 일본은 1950년 한국전쟁에 의해 경기가 크게 호전되었다. 또 국제연합의 가맹 등과 함께 일본은 국제적 지위가 상승되고, 국민의 교육수준도 높아져 교육의 향상이 문제로 부각되었다. 1958년( 昭 和 33년) 개정된 제3차 학습지도요령은 이런 배경을 안고 출발했다. 이 시기를 ʻ교육 격동기시대ʼ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의 교육정책이 크게 전환되었기 때 문이다. 단독강화조약과 미 일 안보조약 후 일본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정부는 교육정책의 56) 文 部 省, 앞의 책, 57, 67, 77쪽. 57) 文 部 省, 앞의 책, 71쪽. 58) 文 部 省, 앞의 책, 72쪽. 42
51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변경을 추진했고 1958년에는 교육과정이 개정된 것이다. 제3차 개정 학습지도요령부터는 시안( 試 案 )에서 고시( 告 示 )가 되어 국가기준으로서 법적 구속력을 가지게 된다. 즉 종래의 학습지도요령이 현장의 교사에게 폭넓은 교육활동의 자 유를 주고 있는 것에 반해, 개정 학습지도요령에서는 국가가 꼭 가르쳐야 하는 최저한의 부분에 대해 제시를 하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사회과의 연간 시수는 감소하였고, 산수 이과 국어과의 시간 수는 증가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국가인 기미가요( 君 か 代 )를 1학년에 서부터 전 학년에 가르치도록 명시되어 있는 점이다. 제3차 학습지도요령은 전 교과의 합 본한 형식으로 정리, 해설적 문장과 구체적인 지도법에 관한 기술을 하고 그 목표 내용 지 도상의 유의사항을 추상적 표현을 배제한 간략한 문장으로 쓴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합법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 시기의 교육은 정치적인 목적의 도구로 이용 되었다고 할 수 있다. 59) 1. 음악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음악적 감각의 발달과 함께 미적 정조를 기른다. 2. 아름답고 훌륭한 많은 음악과 친해지도록 좋은 음악을 애호하는 마음을 갖고 음악 아름다움을 알도록 듣는 태도와 능력을 기른다. 3.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간단한 선율을 만드는 것 등 음악표현에 필요한 기능의 습득을 도모하고 음악에 의한 창조적 표현의 능력을 자라게 한다. 4. 음악경험을 풍부하게 하기위해서 필요한 음악에 관한 지식을 감상이나 표현의 음악 활동을 통해 이해시킨다. 5. 음악경험을 통해 일상생활에 혜택과 여유를 갖는 태도와 습관을 기른다. 60) 제3차 학습지도요령 및 음악편의 목표는 위와 같다. 61) 음악편의 목표를 보면, 음악경험을 통한 음악의 이해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영향으로 제3차 학습지도요령 및 음 악편 학습영역에는 감상영역과 표현영역의 두 영역으로 통일한 것이 특징이다. 하나의 영역 에 치우치지 않고 감상, 표현(가창 기악 또는 창작)의 모든 활동을 경험시키는 것이 필요하 다 62) 고 두 영역의 유기적인 관계를 도모하며 계통적, 발전적인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중 하나는 공통교재를 설정하여 가창교재와 감상교재가 지정 되었다는 것이다. 59) 音 樂 敎 育 史 學 會 編 著, 戰 後 音 樂 敎 育 60 年 ( 東 京 : 開 成 出 版, 2006), 42쪽. 60)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 東 京 : 文 部 省, 1958), 1쪽. 61) 文 部 省, 앞의 책, 1쪽. 62) 小 學 校 學 習 指 導 要 領 ( 東 京 : 大 藏 省 印 刷 局, 1958), 163쪽. 43
5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표 9> 제3차 개정 학습지도요령 (가창 공통교재) 학년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악 곡 명 かたつむり, 月, 日 の 丸 さくらさくら, 雪, 春 がきた 春 の 小 川, もみじ, 汽 車 子 守 歌, 村 のかじや, 赤 とんぼ こいのぼり, 海, 冬 げしき おぼろ 月 夜, われは 海 の 子, ふるさと 그 공통교재 중에 <표 9>를 참고하면 일본 전통음악의 학습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2학 년의 사쿠라사쿠라[さくらさくら]와 4학년의 자장가[ 子 守 歌 ] 2곡이 일본 전통음악, 일본 전통 동요( 日 本 古 謠 )임을 알 수 있다. <표 10> 제3차 학습지도요령 전통음악의 내용 표현 영역 감상 영역 4학년 5학년 6학년 독보( 讀 譜 )나 기보( 記 譜 )의 능력을 기른다-일본 선법 독보( 讀 譜 )나 기보( 記 譜 )의 능력을 기른다-일본 선법 악기의 특징을 이해하거나 음색의 구분을 한다 - 금( 琴 )의 음색과 친하기 악기나 소리의 특징을 이해 - 일본의 악기( 琴, 三 味 線 또는 尺 八 )의 형태를 알고 음색과 친하기 악기나 소리의 특징을 이해 - 일본의 악기( 琴, 三 味 線 또는 尺 八 )의 형태를 알고 음색과 친하기 또한 일본 전통음악의 내용은 <표 10>을 참고하면 5 6학년에 독보( 讀 譜 )나 기보( 記 譜 )의 능력을 기른다-일본선법( 日 本 旋 法 ) 63) 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일본선법 선율의 시창이나 청 음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4학년 감상 영역에서 악기의 특징을 이해하거나 음색의 구분을 한다 - 금( 琴 )의 음색과 친하기 64), 5 6학년 감상 영역에서 악기나 소리의 특징을 이해 - 일본의 악기( 琴, 三 味 線 또는 尺 八 )의 형태를 알고 음색과 친하기 65) 의 내용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제3차에서는 전통악기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63) 文 部 省, 앞의 책, 154쪽. 64) 文 部 省, 앞의 책, 147쪽. 65) 文 部 省, 앞의 책, 152, 158쪽. 44
53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4. 제4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 : 1968년 이 시기의 학습지도요령 개정의 배경으로는 일본사회의 기술혁명과 경제성장이 있었다. 1968년에 고시된 제4차 학습지도요령에서는 개선의 기본방침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1. 인간형성의 기초적인 능력신장을 도모하고 국민육성의 기초를 기르는 것을 기본이념 으로 하는 것 2. 이상으로 생각하는 인간형성위에 조화와 통일이 있는 교육과정의 실현을 도모하는 것 3. 지도내용은 의무교육 9년을 통해 소학교 단계의 유효 적절한 사항을 정선하는 것 그 경우 시대의 진전에 응하는 것과 함께 아동의 심신 발전단계에 따르는 것 4. 지역이나 학교의 실태를 고려해서 적절한 수업시간수를 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수 업 일수에 관해서는 년 간 기준시간수를 제시하는 것 66) 음악과의 목표로는 음악성을 높이는 것과 함께 풍부한 창조성을 기르는 것으로 되어있 다. 그 영역으로는 기초영역이 새롭게 추가되어 제3차의 감상영역과 표현(가창 기악 창작) 영역 2가지 영역에서 제4차에서는 기초 감상 가창 기악 창작의 5가지의 영역으로 바뀌었 다. 그리고 제3차와 같이 공통교재가 설정되어 가창교재와 감상교재가 지정되었다. <표 11> 제4차 학습지도요령 : 전통음악의 내용 기초 감상 창작 가창 기악 1학년 2학년 3학년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66)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 東 京 : 文 部 省, 1968), 1쪽. 45
5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기초 감상 창작 가창 기악 4학년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악기나 목소리의 종류와 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서양 5학년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음악의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그리고 고도( 爭 ), 사미센( 三 味 線 ),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사쿠하치( 尺 八 ) 또는 그 외 일본의 민속악기 6학년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일본의 악기 또는 세계의 민속악기의 특징을 이해한다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제4차 학습지도요령에서는 <표 11>과 같이 1학년에서 6학년까지 기초 영역에서 장조, 단조, 일본선법의 선율을 듣고 구분하기 67), 창작 영역에서 단어로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거나 선율 놀이하는 것(일본선법을 포함) 68) 이라는 적극적인 제시가 있다. 이는 지 금까지 학습지도요령을 통해서는 창작 영역에서 전통음악이 지시된 적이 없었기에 그 의의 를 두고자 한다. 제4차에서는 전통악기가 제시된 것도 있다. 5학년의 감상 영역에서 악기 나 목소리의 종류와 그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 서양음악의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 악기 그리고 고도( 爭 ), 사미센( 三 味 線 ), 사쿠하치( 尺 八 ) 또는 그 외 일본의 민속악기 69) 라 고 제시하며 악기명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같은 영역 6학년에서는 일본의 악기 또는 세 계의 민속악기의 특징을 이해한다 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다른 학년으로의 연계성은 없 어 보인다. 단순히 전통악기의 소개를 위해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악기 고도( 爭 ), 사미센( 三 味 線 ), 사쿠하치( 尺 八 )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즉 각 학년에 전통악기를 체계적으로 소개 한 것이 아닌 것이다. 제1차부터 제4차까지의 학습지도요령에서 일본 전통음악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사 항을 알 수 있다. 첫째, 전통음악이 각 영역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도 한국과 67) 文 部 省, 앞의 책, 104, 108, 112, 117, 122, 126쪽. 68) 文 部 省, 앞의 책, 106, 111, 116, 120, 125, 126쪽. 69) 文 部 省, 앞의 책, 122쪽. 46
55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같이 가창 기악 감상 창작 영역에서 골고루 전통음악이 교육되는 것이 아니라, 가창과 감 상 영역에 한정되어 서양음악과의 비교의 역할로 다루고 있었고 제4차에 와서 가창과 감상 영역 외 창작 영역의 내용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악 영역에서의 일본 전통악 기에 대한 소개는 많이 미흡하였다. 둘째, 학습지도요령 초기의 음악교육은 학년별 연계성이 없었다. 일본 전통음악이 미흡 한 학년도 있고, 다른 학년에 비해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학년도 있었다. 그리고 전 통음악의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는 학년도 있어 한국과 같이 점차적으로 증가되거나, 연결되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일본 음악교육의 학습지도요령 초기에는 유럽음악에 중심을 두었다. 제1차 학습지 도요령에는 유럽음악을 주체로 교육하는 것을 명시해 놓았다. 그 후에도 세계의 민요, 악 기 등을 소개할 때 프랑스, 스페인 등을 제시하며 유럽음악에 치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 다. 이는 현재의 일본 음악교육이 국제이해관계로 교육방향이 향해져 있는 것의 초석이 되 었다고 할 수 있다. Ⅳ. 일본 음악교육의 영향 Ⅱ Ⅲ장을 통해 각 국의 교육과정에서 전통음악의 내용을 분석하였다. 아직까지는 전통 음악이 정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혼란 속에서 전통음악에 대하여 관심이 조금씩 나오 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보인다. Ⅳ장에서는 한국의 음악과 교육과정의 목표와 일본의 학 습지도요령 음악편의 목표를 서로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1955년의 한국 제1차 음악과 교육과정 목표와 1951년의 일본 제2차 학습지도요령 음 악편의 목표가 유사한 점을 <표 12>를 보면 알 수 있다. ʻ음악을 통하여ʼ, ʻ아름다운 정서 와 원만한 인격ʼ, ʻ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을 높이고ʼ 등 목표의 내용이 서로 매우 유사하다. <표 12> 한국 제1차와 일본 제2차 음악과 목표 비교 한 국 제1차 교육과정 목표 (1955) 일 본 제2차 학습지도요령 목표 (1951) 음악의 체험을 통하여 아름다운 정서와 원만한 인격을 갖춤으로써 가정인, 사회인, 국제인으로 서의 교양을 높이고 애국애족의 정신을 기름에 있다. 음악경험을 통해서 깊은 미적 정서와 풍부한 인 간성을 기르고 원만한 인격의 발달을 꾀하여 바 람직한 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을 높인다. 47
5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한국의 제1차 교육과정이 만들어진 시기는 6.25 한국전쟁으로 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지 고 새 교육 운동이 교육과정으로 전환되어 연구되었던 시기이다. 이때 교육과정이란 용어 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사용되었고 교육과정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교육과정 연구에 영향을 준 것은 첫째, 문교부가 각 시 도에 연구학교를 지정하고 교육과정 연구를 지원한 점, 둘째, 당시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교육과정에 관한 서적의 영향, 셋째, 제1차 미국교육사절단이 1952년 9월에 내한하여 전국 교육지도자들에게 경험중심 교육과정에 대 한 강습을 실시하여 많은 자극을 준 점 등이다 70) 1955년에 제1차 교육과정이 우리나라 에 고시되었을 당시 일본의 경우 제2차 학습지도요령시안이 1951년에 먼저 발표되어 시행 되고 있었다고 본다면 한국에서 일본의 음악목표를 그 당시에 들어온 서적으로 참고하였다 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교육사절단이 내한하여 경험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강습을 실시 하였지만 그 당시 미국의 교육이 이론으로 전해졌을 뿐 실제로 그것을 적용할 만큼 연구 가 철저히 이루어지지 못했음 71) 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사범학교를 졸업 한 교사들이 아직도 현직에 남아 있는 실정도 미국의 이론보다 일본의 것을 참고하고 받아 들이기 쉬웠으리라 생각된다. <표 13>을 통해 좀 더 살펴보면, 한국의 제2차 교육과정의 음악과 목표와 일본의 제2 차 학습지도요령의 음악편의 목표도 유사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표 13> 한국 제2차와 일본 제2차 음악과 목표 비교 한국 제2차 교육과정 목표 (1963) 일본 제2차 학습지도요령 목표 (1951) 일상생활에 필요한 음악의 체험을 통하여 아름다 운 정서와 원만한 인격을 갖추게 함으로써 바람 직한 국민으로서의 교양을 높이고 애국 애족하는 마음과 우리나라 문화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 초적인 능력 및 태도를 기른다. 음악경험을 통해서 깊은 미적 정서와 풍부한 인간성을 기르고 원만한 인격의 발달을 꾀하여 바람직한 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을 높인다. 일본의 경우는 제1차와 제2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의 목표가 동일하였다.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제1차의 교육과정 목표와 동일하나, 그 외 나머지 ʻ일상생활에 필요 한 우리나라 문화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 및 태도를 기른다ʼ라는 부분은 제2차 교육과정에 추가된 부분이다. 이 부분은 사회의 필요한 과제를 반영하여 사회필요에 70) 유광찬, 교육과정의 이해 (서울 : 교육과학사, 2005), 203쪽 인용. 71) 유광찬, 앞의 책, 207쪽 인용. 48
57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연결하는 후기 진보주의의 특징과 일관성이 있다고 보인다. 그리고 제2차 교육과정이 ʻ경험 주의 교육과정ʼ에 입각하였기에 나타나는 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 만 그것과 함께 우리나라의 부흥과 재건의 필요가 교육과정의 목표에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제3차 교육과정은 ʻ학문중심 교육과정ʼ의 양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1968년의 일본의 제4차 학습지도요령의 양상도 ʻ학문주의 교육과정ʼ으로 구분하였다. 72) 그래서 음악과 목표 의 항목이 많아졌고 그 만큼 학습의 양도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표 14>를 통해 보면, 특히 한국의 나항과 일본의 2항은 그 전의 교육과정에서도 꾸준히 나타나는 학습활동이었 다. 이는 한국과 일본이 교과중심 교육과정의 영향으로 계속 기초학습에 중점을 두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표 14> 한국 제3차와 일본 제4차 음악과 목표 비교 한국 제3차 교육과정 목표 (1973) 일본 제4차 학습지도요령 목표 (1968) 가. 음악의 체험을 통하여 음악성과 창조성을 계발하고 정서를 풍부히 하여 조화된 인격 을 형성하게 하는 동시에 바람직한 국민으 로서의 교양을 높이도록 한다. 나. 음악적 감각의 발달을 도모하며, 독보와 청 음 및 기보의 기초적 능력을 길러, 모든 음 악 활동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다. 창의적인 표현 능력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상 능력을 길러, 정서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한다. 라. 우리나라의 음악과 다른 여러나라의 음악을 이해하고,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계승 하여 민족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 및 태도를 기른다. 음악성을 기르고 정서를 높여서 함께 창조성을 기른다. 1. 많은 휼륭한 음악과 친하여지도록 좋은 음악 을 애호하는 마음을 기르고 음악의 아름다 움을 느끼고 들을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기른다. 2. 음악적 감각의 발달을 도모하며, 청취, 기 보, 기억의 능력을 길러 악보에 대한 이해 를 깊게 한다. 3. 가창, 기악, 창작 등의 음악표현에 필요한 기능의 습득을 도모하고 음악에 의한 창조 적 표현 능력을 기른다. 4. 음악경험을 통해 생활을 밝고 활력이 있는 태도와 습관을 기른다. 하지만 한국의 제1 2차의 교육과정과의 비교보다 유사점이 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이 일본이나 미국의 영향에서부터 점점 우리만의 주체성 을 가진 교육과정으로 변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72) 河 口 道 朗, 音 樂 敎 育 入 門 ( 東 京 : 音 樂 之 友 社, 1995), 324쪽 참조. 49
5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Ⅴ. 결 론 본 연구는 1970년대까지 한국의 교육과정과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을 분석하였다. 일제강 점기에 같은 교육정책 안에서 교육받은 한국과 일본을 해방 후 교육과정이라는 교육정책으 로 비교 분석하여 서로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떻게 다르게 변천해 가는지에 관해서 살펴 전통음악의 내용이 변천 정착 전개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한국은 해방 후 미군정기를 거쳐 1955년 제1차 교육과정, 1963년 제2차 교육과정, 그 리고 1973년 제3차 교육과정의 변천이 있었다. 그 변천과정에서 한국전통음악의 내용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전통음악의 양적 증가가 있었다. 둘째, 제1 2차와 달리 제3차에서는 각 학년에서 전통음악의 내용이 제시되었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내용 이 점차 추가되어가는 학년별 연계성이 보였다. 셋째, 전통음악에 있어 점차 양적증가는 있었지만, 영역별로는 다양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창과 감상 영역에만 치우쳐 있었다. 제1차에서 제3차까지 살펴 볼 때, 기악이나 창작 영역에서는 전통음악의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으로 보아 한국 전통음악은 ʻ듣기ʼ에 치중된 교육으로 변천되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전통음악은 전반적으로 양적인 증가가 있었으나, 음악교육에서 아직 도 서양음악에 비해서는 적은 부분만이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의 교육과정 분석을 위해서는 1947년 제1차부터 1951년 제2차, 1958년 제3차, 그 리고 1968년 제4차 학습지도요령을 살펴봄으로 인해 일본 교육과정의 처음 시안부터 개정 까지의 정착과정을 알아보았다. 특히 학습지도요령의 정착과정 안에서 일본전통음악의 내 용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첫째, 전통음악이 각 영역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도 한국과 같이 가창과 감상 영역에 한정되어 서양음악에 비교되는 역할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일본 전통악기에 대한 소개가 많이 미흡하였다. 둘째, 학습지도요령 초기의 음악교육은 학 년별 연계성이 없었다. 일본 전통음악이 미흡한 학년도 있고, 다른 학년에 비해 많이 포함 되어 있는 학년도 있었다. 셋째, 학습지도요령 초기의 일본 음악교육은 유럽음악에 중심을 둔 교육이었다. 1970년대까지의 한국의 교육과정과 일본의 학습지도요령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대략 다 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국과 일본 모두 음악교육이 서양음악에 치중된 교육에서 출발하였다. 특히 일본 의 경우 제1차 학습지도요령에는 유럽음악을 주로 교육할 것을 명시해 놓았다. 그 후에도 세계의 민요, 악기 등을 소개할 때 프랑스, 스페인을 제시하며 유럽음악에 치중하고 있었 50
59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다. 이는 현재의 일본 음악교육의 방향이 국제이해관계로 흐르고 있는 사실에 기인하였던 것이다. 둘째, 두 나라 모두 전통음악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이 큰 공통점이다. 한국의 경 우는 점점 양적인 면에서는 증가되고 있으나 여전히 서양음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의 음 악만이 수록되어 있다. 양적인 면에서도 미흡하지만 특히, 영역별로도 비교하면, 가창과 감 상 영역에 편중된 교육이었다는 점이 다양한 전통음악의 경험을 막는 요인이었다고 본다. 셋째, 일본은 한국보다 전통악기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한국과 일본은 많은 종류의 전 통악기가 있다. 악기의 소리를 경험해 볼 수 있다면 그 음악에 큰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전통악기에 대해서 소개되어 있는 경우가 적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제2차 교육과정에는 전통악기의 종류가 제시되었고, 제3차 교육과정에서는 전통악기 가 앞의 학년에서 제시된 악기에 조금씩 첨가되어 가는 학년별 연계성을 가지고 제시되었 다. 이것은 현재의 전통음악교육에서 기악부분에 전통악기인 단소수업이 이루어지게 되는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제1차 음악과 교육과정 목표와 일본의 제2차 학습지도요령 음악편의 목표를 비 교해 본 결과 ʻ음악을 통하여ʼ, ʻ아름다운 정서와 원만한 인격ʼ, ʻ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을 높 이고ʼ 등 목표의 내용이 서로 많이 유사하였다. 이는 한국에서 일본의 음악목표를 그 당시 에 들어온 서적을 통하여 참고하였다고 보인다. 이는 미국교육사절단이 내한하여 경험중심 교육과정에 대한 강습을 실시하였지만 미국의 이론만 전해졌을 뿐 실제로 그것을 적용할 만큼 연구가 철저히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의 제2차 교육과정에서는 ʻ우리나라 문 화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 및 태도를 기른다.ʼ라는 이 부분은 사회의 필요한 과제를 반영한 모습이다. 이는 사회필요에 연결하는 진보주의의 특징에 입각하였다고 보고 제2차 교육과정이 ʻ경험주의 교육과정ʼ에 입각하였기에 나타나는 부분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과 함께 우리나라의 부흥과 재건의 필요가 교육과정의 목표에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제3차 교육과정은 한국의 제1차와 제2차의 교육과정과의 비 교 때보다 일본과의 유사점이 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교육 과정이 일본이나 미국의 영향에서부터 점점 우리만의 주체성을 가진 교육과정으로 변해가 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 1970년대까지의 한국과 일본 교육과정에서 전통음악의 내용을 살펴본 결과, 한국 과 일본이 음악교육 안에서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과 정체성의 회복을 위한 방법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교육에 관해서는 완전한 독립이 이루진 것은 아니 었으나 점점 일본 교육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자주적인 모습으로 변천해 가고 있 51
6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전통음악 내용의 발전과 체계의 성립을 위해 교육과정의 안정 기 발전기인 1980년대 이후 전통음악의 내용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비교 분석하는 후속연 구를 기대해 본다. 52
61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참고문헌> (한국) 권덕원. 미국의 음악교육이 한국의 해방 이후 음악교육사에 끼친 영향에 관한 연구. 음 악교육연구 제23집. 청원군 : 음악교육학회, 국악 교육 정책의 현황과 과제. 음악교육연구 제30집. 청원군 : 음악교육학회, 권덕원 외 3인. 음악교육의 이해와 실천. 서울 : 교육과학사, 권현덕. 한국과 일본의 초등학교 음악교육과정의 내용분석 및 연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김동구. 미군정기의 교육. 서울 : 문음사, 김선양. 현대한국교육사상사. 서울 : 양서원, 김영우. 한국초등교육사. 서울 : 한국교육사학회, 김영우. 피정만, 최신한국교육사연구. 서울 : 교육과학사, 노동은. 한국근대음악사1. 서울 : 한길사, 문교부. 음악과 교육과정. 서울 : 문교부, 문교부. 음악과 교육과정. 서울 : 문교부, 문교부. 음악과 교육과정. 서울 : 문교부, 변태섭. 한국사통론. 서울 : 삼영사, 손인수. 韓 國 近 代 以 後 의 社 會 變 動 과 敎 育. 한국교육사학 제13호. 서울 : 한국교육사학회, 심대용. 한국과 일본 초등학교 음악교과서 내용 비교 연구. 한국 교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오지선. 한국근대음악교육. 서울 : 예솔, 유광찬. 교육과정의 이해. 서울 : 교육과학사, 유봉호. 한국교육과정사 연구. 서울 : 교학연구사, 전영미. 한국과 일본의 5, 6학년 음악교과서 내용분석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한국교육30년사편찬위원회. 한국교육30년. 서울 : 문교부,
6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일본) 石 川 松 太 郞 外 3 人. 日 本 敎 育 史. 東 京 : 御 茶 の 水 書 房, 音 樂 敎 育 史 學 會 編 著. 戰 後 音 樂 敎 育 60 年. 東 京 : 開 成 出 版, 河 口 道 朗 等 著. 音 樂 敎 育 入 門. 東 京 : 音 樂 之 友 社, 權 惠 根. 民 族 音 樂 の 指 導 法 についての 硏 究. 東 京 藝 術 大 學 音 樂 敎 育 科 修 士 學 位 論 文 佐 川 馨. 音 樂 科 學 習 指 導 要 領 におけるʻ 日 本 の 音 樂 ʼ 變 遷. 秋 田 大 學 敎 育 文 化 學 部 硏 究 紀 要. 敎 育 科 學 會, 楠 瀨 敏 則. 戰 後 音 樂 敎 育 改 革 の 動 向 とこれからの 課 題. 東 京 : 音 樂 敎 育 史 學 會, 中 村 美 郁. 學 校 敎 育 における 日 本 傳 統 音 樂 の 指 導 に 關 する 一 考 察. 東 京 藝 術 大 學 音 樂 敎 育 科 修 士 學 位 論 文, 中 山 裕 一 郞 年, 1951 年 學 習 指 導 要 領 ( 試 案 )の 史 的 意 義. 東 京 : 開 成 出 版, 閔 庚 燦. 朝 鮮 における 西 洋 音 樂 の 受 容. 東 京 藝 術 大 學 樂 理 科 修 士 學 位 論 文, 駒 込 武. 植 民 地 帝 國 日 本 の 文 化 總 合. 東 京 : 岩 波 書 店 日 本 敎 育 音 樂 協 會. 本 邦 音 樂 敎 育 史. 東 京 : 第 一 書 房,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 試 案 ). 東 京 : 文 部 省,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 試 案 ). 東 京 : 文 部 省,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東 京 : 文 部 省, 文 部 省. 學 習 指 導 要 領 音 樂 編 東 京 : 文 部 省,
63 한국과 일본의 교육과정 비교 (Ⅰ) <Abstract> The Comparison of Curriculums in Korea vs Japan (Ι) : Mainly on the traditional music from post-liberation to 1970 Kwon Hye-keun (Lecturer, Gyeongin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This is a comparative and analytic study on Elementary Curriculum in Korea and Government Guidelines for Teaching as a curriculum in Japan, conducted from postliberation to By examining the music educations in Korea and Japan in its transition,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I have studied how they influenced each other and varied on their paths. In Korea, there was three stages of transition in the curriculum, with the First one in 1955, the Second in 1963, and the Third in 1973 since the post-liberation and US military government. When examined particularly, the characteristics of curriculum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re: firstly, that there had been an increase in its contents though it was not enough in its quantity. Secondly, unlike the First and the Second Curriculum, the traditional music had been organized and interconnected with every grade, not very much though. Each grade was suggested of the contents of traditional music and, the higher the grade was, the more requirements or more complicated or increased contents it came to involve. Thirdly, there wasn't a variety in each field but the traditional music education was inclined to the field of singing and appreciation, although there had been a little increase in the quantity. To analyse the curriculum in Japan, I have examined the First Government Guidelines for Teaching in 1947, the Second Guidelines in 1951, the Third Guidelines in 1958 and the Fourth Guidelines in The result is that, firstly, the traditional music was not treated diversely in each field. In Japan's case, like Korea's, the traditional music was not trained evenly among singing, instrumental music, appreciation and composing, but it was limited to 55
6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singing and appreciation, in the role of comparing to western music, which reflects the fact that the interest was rather focused on European music than Japanese traditional music. Secondly, the early music education under the First Guidelines had no connection between the grades. That is, some grades had not enough contents of Japanese traditional music, while others had more of them. Thirdly, Japan's early music education under the First Guidelines had emphasis on European music. It is clearly stated in the First Guidelines to educate children with European music main. As mentioned above, Korea and Japan have developed their curriculums accordingly to their political social economical contexts, going through the chaotic and difficult period since the post-liberation. However, I could learn by comparing the music and educational goals in Korea and Japan, that Korea has gradually become more independent in education since the post-liberation, even though it was not completely independent at first. Keywords : traditional music education, curriculum, educations in Korea, guidelines for Teaching, educations in Japan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65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73)74)김 소 리** 정 환 희*** <국문초록> 국악기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우선 과제로 국악기의 표준화를 꼽을 수 있다. 국 악기 중 현악기의 표준을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현의 표준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악기의 소리 발생과정에서 현은 음을 발생시켜주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외 부의 힘이 처음 현을 울려 브릿지를 통해 울림통이 진동하고 그 소리가 사람들에게 전 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악기에서 현은 음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 나이다. 또한 우리 음악의 대표적인 특징인 농현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의 제 작과정과 물리적 특성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제작과정에서 현을 많이 꼬면 현이 금방 끊어지게 되고, 너무 잘 늘어나 음정을 맞추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반면 현을 적게 꼬면 현의 탄력이 적고 잘 늘어나지 않아 농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악 기 현의 강도, 신도, 꼬임수 등 물리적 특성이 연주와 직결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요인은 제작과정에서 결정되며, 제작과정과 물리적 특성은 결국 국악기 현 의 품질을 결정한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국악기 현의 표준화를 위한 기초 연구인 국악 기 현의 제조 현황과 그에 따른 표준화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국악기 현의 제조과정은 130중의 명주실 원사를 준비하여 현의 굵기에 따라 합사한 다. 합사한 명주실을 온도가 높은 물에 적신 후 연사기에 걸어 하연과 상연을 하여 꼰 다. 현 제작시 중요한 점은 30~50m의 거리를 두어 적당한 장력을 주며, 회전수와 시 간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이 때 결정되는 굵기나 꼬임수 등이 결국 현의 품질을 좌우 하는데, 보통 제작자의 오랜 경험으로 쌓은 기준에 의해 육안이나 감으로 조절한다. 꼬아진 현은 나무방망이에 감은 후 삶아 연고정을 시킨다. * 본 논문은 2008년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표준기술력향상사업으로 지원된 연구임. **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 국립국악원 연구원. 57
6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렇게 제작되는 국악기 현의 표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의 물리적 특성의 조사 가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섬도, 꼬임수, 인장강도, 신도, 탄성율 등 현의 물성 값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음향적 특성을 살펴 연관성을 찾고, 연주자 평가가 뒤따른 다면 좀 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겠다. 둘째, 국악기 현의 표준화에 따라 반 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포장 및 표시 규격화일 것이다. 국악기 현의 특성을 파악 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요소를 꼽아 그것을 명시하고 판매해야 한다. 그러기 위 해서는 앞서 말한 국악기 현의 특성 연구결과에 따라 완성된 현에 대한 정확한 측정 후 그 결과를 포장에 표시해야 하겠다. 핵심어 : 국악기 현, 표준화, 현 제조현황, 현 제조과정, 현 물리적 특성, 명주실 목 차 Ⅰ. 국악기의 현 Ⅱ. 현의 제조 현황 Ⅲ. 국악기 현의 표준화 방안 Ⅰ. 서 론 국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세계적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이 시대에 국악의 대중화 와 세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악기의 표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악기의 표준화에는 우선 악기의 음고와 규격의 표준이 기초가 된다. 국립국악원은 국악기 음고의 표준화를 위해서 2007년 현행 국악기 음고 조사와 각계 전 문가 의견 수렴을 통하여 표준 음고(황종=Eb=311Hz)를 제정 발표 1) 한 바 있다. 국악기 규격에 대해서는 국립국악원의 악기 51종에 대한 국악기실측자료집 1 2) 을 발간하고, 단 1) 2007년 11월 14일 제3차 악기연구시연회 및 표준음고제정발표회 개최(장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2) 국립국악원, 국악기실측자료집 1권, 서울 : 국립국악원,
67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소, 소금, 대금, 퉁소 등 4종 74개의 관악기 음향과 물성의 표준 데이터를 구축하는 등 국 악기 표준화에 기초 자료를 마련하였다. 또한 2008년 10월부터는 현악기의 표준화를 위하여 국악기 현의 물리적 특성 시험방법 표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악기 중 현악기의 표준을 위해서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 한 현의 표준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악기 현악기의 소리 발생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진 (탄현, 찰현) 전달 (현-브릿지) 증폭, 방사 (울림통) 현악기의 소리 발생과정에서 현은 음을 발생시켜주는 근원이 된다. 물론 가진하는 힘이 있어야만 소리를 낼 수 있으나 외부적인 힘을 제외하고, 악기 내부에서는 처음 소리를 발 생하고 전달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외부의 힘이 처음 현을 울려 브릿지(안족 또는 괘)를 통해 울림통이 진동하고 그 소리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로 현악기에서 현은 음색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이다. 우리 음악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농현은 현을 흔드는 것으로, 현은 우리 음악의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이 농현의 구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현 의 제작과정과 물리적 특성이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제작과정에서 현을 많이 꼬면 현 이 금방 끊어지게 되고, 너무 잘 늘어나 음정을 맞추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반면 현을 적 게 꼬면 현의 탄력이 적고 잘 늘어나지 않아 농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악 기 현의 강도, 신도, 꼬임수 등 물리적 특성은 연주와 직결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와 같은 요인은 제작과정에서 결정되며, 결국 제작과정과 물리적 특성은 국악기 현의 품질 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국악기 현의 표준화를 위한 기초 연구인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을 살펴보고, 그에 따른 표준화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59
6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Ⅱ. 국악기 현의 재료 명주실 1. 국내 명주실의 생산 현황 및 과정 국악기 현은 예로부터 명주실로 제작한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등 전통 국악기 중 현악기에는 모두 명주실로 만든 현을 사용한다. 명주실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내는 자연 사로서 실크의 원사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의 잠업은 국가의 지원을 통해 그 명맥만 잇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는 각 지역의 농업기술원에 누에의 원종을 개발 보급하고, 각 지역 농업기술원은 농가에 누에씨를 배포하고 그 산물을 매수하는 방법으로 국내 잠업을 유지하고 있다. 전국의 농업기술원 중 가장 많은 농가가 잠업에 참여하고 대 표적으로 실을 뽑는 곳은 경북농업기술원이다. 상주에 위치한 경북농업기술원 잠사곤충사 업장은 약 900농가에 누에를 분양해 잠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900농가에서 나온 누에 중 누에고치로 수매되는 양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80%는 누에가루나 누에동충하초 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이유는 현재 누에고치로 만들어 진 후 뽑는 원사보다 누에가루나 동충하초가 상품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매한 누에고치를 건조하면 무게가 약 40%로 줄고, 이것을 원사로 생산하면 또 약 40%로 줄어든다. 따라서 수매한 누에고치 무게에 비해 원사는 약 16~18%정도 생산된 다. 결국 경북농업기술원 잠사시험장에서의 국내 원사 생산량은 년 450kg정도에 불과하 다. 여기서 생산된 원사는 중국의 원사 가격과 동일하게 kg당 42,000원 정도로 팔리고 있 어 누에고치 수매비와 인건비 등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 외 일 년에 한두 번 명주실을 뽑는 충북농업기술원의 경우는 그 규모가 상주에 비해 많이 작아 실을 뽑는 조사기 1대로 매년 3월 초나 연말에 기계를 가동하고 있다. 충북지역 에서는 보은지역을 중심으로 약 60농가를 통해 백옥잠과 골드실크잠을 일정량 키우고 있 다. 충북농업기술원 잠사시험장은 2008년 한해 800kg의 누에고치를 수매하여 약 130kg 의 원사를 생산하였다. 원사의 가격은 경북과 동일하게 kg당 42,000원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주실의 종류는 21중, 60중, 120중 정도이다. 21중 3) 은 누 에고치 7~8마리에서 실을 뽑은 것을 말하며 주로 견직류 옷감의 원료로 사용한다. 60중은 누에고치 20~25마리에서 실을 뽑은 것을 말하며, 120중은 누에고치 45마리에서 실을 뽑 3) 정식명칭은 데니어이며 450m의 원사가 0.05g일 때 1데니어라 함. 데니어 계산식은 D(데니어) =9,000 (측정무게/측정길이). 60
69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은 것으로 수의용으로 사용된다. 예전에는 옷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거의 21중을 생산했지 만 근래에는 주로 수의용으로 120중 또는 130중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이 중 현재 국악 기 현의 재료로 120~130중 원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21중이나 60중의 원사를 많이 합사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국내 원사의 생산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림 1> 국내 원사 생산과정 2. 국외(일본) 명주실의 생산 현황 및 과정 일본에서는 전통악기에 사용하는 원사의 수급을 위해 따로 방악기원사제조보존회를 두고 있다. 일본 시가현 키노모토에 위치한 방악기원사제조보존회는 1991년에 일본 문화청으로 부터 기술보존단체로 지정받았다. 보존회는 大 音, 西 山 의 두 지구로 나뉘어서 원사를 제조 및 판매를 하고 있다. 西 山 의 경우, 기후현에서 기른 누에고치를 이용하여 년간 100kg 정도의 원사를 생산하며 이곳에서 생산된 원사는 일본 전통악기 현을 제조하는 (주)마루산 하시모토에서 80~90% 정도를 구입해 간다. 일본의 명주실 생산과정은 우리나라와 거의 동일하나, 목재로 된 기기를 사용하여 전통 61
7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포장과정에서 상표를 부착하여 판매하는 차이 를 보인다. 일본의 원사 생산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림 2> 일본 원사 생산과정 Ⅲ. 현의 제조 현황 1. 국악기 현의 시장규모 국악기 시장에서 현이 차지하는 비율은 그 역할에 비해 크지 않다. 실제적으로 현재 현 악기 제작자 중 명주현을 직접 꼬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악기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전국 에서 약 10여 곳 정도 직접 현을 꼬아 악기에 얹는다고 한다. 이는 현악기 제작자가 약 50명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면 약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수이다. 명주현을 꼬는 시기는 보통 건조하지 않은 장마철에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해 매우 추운 날씨를 제외하고는 상시 현 꼬는 작업을 할 수 있어 악 기사마다 제각각 좋은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다. 야외에서 현을 꼬는 경우에는 장마철에는 62
71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나무작업을 할 수 없고 습기가 많은 7월~8월경 현을 꼰다는 제작자도 있고, 날 풀리는 3~4월에 현을 꼰다는 제작자, 추워지기 전 10~11월쯤 현을 꼰다는 제작자 등이 있으며, 비닐하우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1년 내내 필요할 때마다 꼰다는 제작자도 있었다. 현을 꼬는 양을 살펴보면 대략적으로 원사 5관(18~19kg) 정도로 가야금 현 약 100 벌~150벌 정도를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작년 기준으로 제작자들은 보통 1년에 원사를 적게는 5관(약 19kg)에서 많게는 100관(약 375kg)까지 구입하여 현을 제작하고 있다. 일 부 제작자들의 원사 구입량을 통해 국악기 현에 쓰이는 1년 원사량을 추정해보면 대략 3,000kg정도로 짐작된다. 이는 현재 국내생산량의 약 4배정도 되는 양이다. 따라서 국악 기 현을 만드는 원사나 누에고치의 수입은 불가피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국내산 원사와 수입산 원사를 비교하여 국산의 우수성이 입증된다면 국내 잠업을 좀 더 확장하여 국악기 현에 사용하는 원사만큼은 국내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악기 현의 시장 규모는 약 6~7억 정도로 추정된다. 국악기의 현의 가격은 악기사별 로 많은 차이를 가진다. 예를 들어 가야금 현의 가격은 최저 10만원부터 최고 5~60만원 까지 다양하다. 국악기 현 한 벌 중 가장 비싼 현은 정악아쟁이며, 10현 한 벌에 100만원 을 넘기도 한다. 국악기 현 중 가장 많은 수요를 가지는 악기는 단연 가야금으로 연주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교체시기도 아쟁이나 거문고에 비해 현이 얇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것으 로 보인다. 국악기 현 시장규모 중 가야금현이 전체 수요의 절반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2. 국악기 현의 제조 과정 1) 원사준비 2) 원사 적시기 3) 원사 회전축에 걸기 4) 하연하기 5) 상연하기 6) 추가로 꼬기 7) 나무방망이에 감기 8) 삶기 1) 원사준비 작년까지 대부분의 국악기 제작자들은 전주에서 원사를 구입해 현을 제작해 왔다. 전주 에서는 중국의 누에고치를 수입하여 직접 실을 뽑는다고 한다. 요즘 환율변동으로 인해 원 료인 중국의 누에고치 가격이 상승하여 작년에 비해 전주 원사가격이 약 두 배정도로 오른 상태이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에는 국악기제작자들이 경북 상주의 잠사사업장에서 원사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현재 사용되는 현은 모두 전주의 원사를 사용한 현들이지만, 올해 하 63
7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반기에는 상주의 국내산 원사를 사용한 명주현을 볼 수도 있겠다. 경북 상주에서 구입한 원사는 수의용으로 뽑는 130중이며, 이전 전주에서 구입한 원사는 정확한 종류는 알 수 없으나 이보다 굵다. 따라서 현재 국악기 현에 사용되는 원사는 130중 이상의 굵은 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금 현을 꼬기 위해서는 240중 혹은 480중 정도의 더 굵은 실 을 사용하여야 작업하기가 좋다고 한다. 따라서 국악기 현 제조를 할 때에는 원사를 합사 하는데 원사 수는 현의 굵기에 따라 그 수를 조절한다. 예를 들어 가야금에서 가장 얇은 줄은 10~15가닥 정로를 합사하여 3합을 하며, 가장 굵은 줄은 30가닥 정도를 합사하여 3 합을 한다. 원사를 구입할 때는 타래로 구입을 하기도 하고, 타래로 구입한 경우에는 해사하여 보빙 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빙된 상태로 구입을 하기도 한다. <사진 1> 원사 타래 <사진 2> 보빙된 원사 2) 원사 적시기 원사를 꼬기 전에 원사를 적시는 이유는 합사할 때 잘 꼬아져 서로 잘 붙게 하기 위함 이다. 온도가 높은 물에 원사를 통과시키면서 적시게 되면 명주실의 세리신이라는 물질이 살짝 녹아 잘 꼬아질 뿐 아니라 온도가 식으면서 꼬아진 형태로 세리신이 굳어 그 모양이 유지된다. 3) 원사 회전축에 걸기 현재 현을 꼴 때는 모터가 달려있는 연사기를 사용한다. 연사기 두 대를 이용하여 한 쪽 연사기의 회전축이 3개인 곳에 각각 원사 일정가닥을 묶고, 30~50m 정도 거리를 두 고 있는 맞은 편 이동 가능한 연사기 회전축 하나에 전체를 묶는다. 64
73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4) 하연하기 3개의 회전축을 일정시간 회전시켜 각각의 원사 묶음을 꼰다. 5) 상연하기 삼발이를 회전축이 1개인 줄에 걸고 3개 회전축으로 이동하면서 3개의 줄을 1개의 현으 로 꼰다. 이 때 굵은 줄일수록 꼬는 시간을 더 짧게 한다. <사진 3> 국악기 현을 꼬는 과정 6) 추가로 꼬기 삼발이를 이용해 꼰 줄을 적당히 꼬일 때 까지 삼발이 없이 더 꼬아준다. 줄을 꼬면 줄 의 길이가 줄어들므로 이동 가능한 연사기가 서서히 이동하면서 꼬아준다. 이 때 굵기나 꼬임수 등이 결국 현의 품질을 좌우하는데, 보통 악기제작자의 오랜 경험으로 쌓은 기준에 의해 육안이나 감으로 평가해 시간을 조절한다. 65
7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7) 나무방망이에 현 감기 현재는 감아주는 장치를 이용해 보통 소나무방망이를 회전하여 다 꼬아진 현을 감아준 다. 이 외 대나무나 알루미늄 봉을 사용하는 제작자도 있었으며, 이렇게 하나의 나무에 감 아진 현에서 대략 가야금 줄 3개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사진 4> 나무방망이에 현 감기 8) 삶기 나무방망이에 감은 현은 시루통 같은 곳에 넣고 약 20~40분 정도 삶는다. 보통 전통적 으로 소나무를 사용하는데 삶는 동안 소나무의 송진이 나와 명주 현에 들어가서 줄이 풀리 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또한 명주실의 세리신이 녹았다가 굳으면서 꼬 아진 현의 모양을 고정시켜 주기도 한다. 완성된 현은 감아서 가야금, 거문고, 아쟁에 사 용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감는다. 3. 일본 전통악기 현과의 제조방식 비교 일본에서 전통 현악기의 현을 제조하는 곳은 총 7군데 정도이다. 현 제조법에는 크게 기계를 이용하여 현을 제조하는 방법과 수공으로 제조하는 방법이 있다. 두 방법 모두 전 체적인 공정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며, 상연과 하연 시 기계를 사용하는 유무에 따라 나뉜 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두 기계를 이용하여 현을 제조하고 있다. 일본 전통악기 현 제조는 우리나라의 전통악기 현 제조방식과 비교했을 때 몇 가지 차이점이 보인다. 첫째, 악기 현을 꼬는 방향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악기 현은 Z연(시계반대방향으로 꼬임) 으로 꼬지만 일본의 전통현은 S연(시계방향으로 꼬임)으로 되어 있다. 또한 상연 시 우리 66
75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나라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3가닥으로 현을 꼬지만 일본의 경우, 4가닥으로 현을 꼬는 것 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업체에서 4가닥으로 꼬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현의 꼬임 을 더 곱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진 5> 우리나라와 일본의 현 꼬임 비교 둘째, 우리나라 현은 명주실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 전통현은 제조과정 중 노란색 염색을 한다. 우콩 4) (심황)이라는 나무의 뿌리를 가루로 갈아서 물에 푼 후 악기 현을 담가 염색한다. 노란색으로 염색하는 이유는 명주실이 햇빛에 오래 노출되어 색이 바 라는 것을 방지하거나 우콩에 방충효과가 있어 오랜 사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일본 제작자들은 말한다. 4) 울금 또는 심황이라 하며 뿌리를 갈아서 염료로 사용한다. 일본에서 울금은 단무지 착색재로 주로 사용된다. 67
7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사진 6> 일본 전통 현 염색 셋째, 현을 꼰 다음 다시 풀리지 않게 하는 방법인 연고정의 경우 차이가 있다. 우리나 라에서는 소나무 방망이에 현을 감고 찜통이나 솥에 넣고 30분 정도 찐다. 하지만 일본에 서는 찜통에 밥풀을 넣어 삶거나 현을 길게 늘어트려서 밥풀을 바르는 방법으로 연고정을 한다. 이는 이미 염색 과정에서 명주실의 세리신이 물에 녹아 자연적으로 연고정을 할 수 없어 접착효과가 있는 밥풀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진 7> 일본 전통 현 연고정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완성된 현 포장 시 악기별로 굵기 및 현 번호를 표시한다. 예를 들면 사미센 현의 13-3이라는 표시는 13이 무게를 나타내며 3은 3번째 현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무게 13은 13 匁 (もんめ, 몸메)로 읽는데 1.2m인 3번째 현 200개의 무게 를 匁 5)로 표시한 것이며 13 匁 는 48.75g을 말한다. 2번째 줄은 3번째 줄의 절반인 100개 의 무게, 1번째 줄은 50개의 무게를 匁 로 나타낸다. 고토의 경우 사미센과는 달리, 13개 현의 굵기가 같기 때문에 길이가 3.6m인 13줄 1셋트의 무게를 匁 로 나타낸다. 5) 일본에서 사용하는 무게의 단위로 1 匁 =3.75g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돈과 동일한 무게 단위이다. 68
77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사진 8> 사미센 줄의 규격 <사진 9> 일본의 전통악기 사미센 69
7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Ⅳ. 국악기 현의 표준화 방안 1. 현의 물리적 특성 표준화 국립국악원과 서울대학교가 2001~2005년까지 연구한 내용을 담은 가야금 음향 특성 연구 6) 를 살펴보면 산조가야금에 사용되는 4개 업체의 명주 현에 대해 굵기(데니어), 길이 및 장력 등을 측정한 결과가 있다. 줄의 굵기는 그림 1-a와 같이 음이 높아짐에 따라 유 사한 비율로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장력의 경우는 그림 1-b와 같이 음이 높아짐에 따 라 네 업체가 모두 달랐지만 저음에서 중간음까지는 높아지다가 중간음에서 높은 음으로 갈수록 다시 낮아지는 경향을 보임을 알 수 있다. <그림 3> 국악기 현의 업체별 주파수에 따른 굵기(1-a) 및 장력(1-b)의 변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특정 음 높이와 연주 편의성을 얻기 위해서는 명주현의 일정한 굵기와 장력이 요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의 특성을 나타낼 수 있는 시험항목을 소개하 면 다음과 같다. 1) 데니어 7) (섬도) 일반적으로 국악기 현 제작자들은 줄의 굵기를 캘리퍼스를 이용해 단면의 지름을 측정 하지만 현의 단면이 원형이 아니기 때문에 현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정확하지 않다. 일반적 6) 국립국악원, 가야금 음향 특성 연구, 서울 : 국립국악원, ) KS K0420 스트레치사의 섬도 측정 방법. 70
79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으로 생사, 합성섬유 및 필라멘트사의 굵기는 일정 표준길이에 대해 실의 표준무게를 단위 수로 나타내는 데니어로 나타내고 있다. 실의 길이 450m의 무게가 0.05g일 때 1데니어라 하며 구하는 식은 다음과 같다. 데니어(d) 즉 데니어는 일정 길이에 대한 무게의 비로서 굵은 것은 무겁고 얇은 것은 가볍다는 것을 이용하여 섬유의 굵기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악기 현의 굵기를 지름으로 측정하는 것 보다는 데니어로 표시하는 것이 줄의 굵기를 나타내는데 더욱 합리적이라 말할 수 있다. 2) 꼬임수 8) 꼬임수는 섬유의 꼬임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섬유가 평행할 때까지 한 쪽을 회전하며 풀어 단위 길이당 회전수로 표시한다. 그러나 단단히 굳은 국악기 현은 푸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측면사진촬영을 통해 일정길이에서 꼬임수를 측정하는 방법이 가능하겠다. 이런 방 법으로는 상연의 꼬임수는 측정이 가능하나 하연의 꼬임수는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할 것으 로 보인다. 3) 인장강도 및 신도 9) 인장강도는 어떤 물체가 잡아당기는 힘에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응력을 말하며 이때 늘어난 길이를 신도라 한다. 인장강도와 신도를 통해 현을 악기에 걸었을 경우의 장력과 길이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4) 신장 탄성율 10) 일정한 힘이 가해져 늘어난 물체가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힘을 신장 탄성율(%)이라 하 며 일정하중을 주었을 때의 일정한 신장률과 휴식기를 거친 후 하중을 가하여 초기하중까 지 도달할 때까지의 잔류 신장률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식을 이용하여 구할 수 있다. 8) KS K ISO 2061 섬유-실의 꼬임수 측정-직접법. 9) KS K0412 필라멘트사의 강도 및 신도 시험 방법. 10) KS K0215 합성 섬유 필라멘트사 시험방법. 71
8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신장 탄성율(%)= <그림 4> 신장 탄성율 측정법 이상의 여러 가지 특성을 통해 국악기 현의 물리적인 특성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특 성 중 어느 것이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고, 또한 그 값의 어느 정도가 좋은지에 대한 기준 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시중의 국악기 현의 물성 값을 모두 구하고, 특히 좋다고 평가받는 현의 물성 값의 특징을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현의 물성 값을 바탕으로 음향적 특성을 살펴 연관성을 찾고 이에 대한 연주자 평가가 뒤따른 다면 좀 더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겠다. 그리고 원료부터 완성품까 지 기계가 아닌 수작업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과정을 고려해보면 하나의 기준 값을 정하 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더욱이 연주자의 취향에 따라 기준 값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 어 현의 물리적 특성의 기준 값은 일정 범위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2. 현의 포장 및 표시 규격화 국악기 현의 표준화에 따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포장 및 표시 규격화일 것이 다. 국악기 현의 물리적 특성과 음향적 특성, 연주자 평가 등이 고려되어 최종적으로 좋은 국악기 현을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요인을 꼽아 그것을 명시하고 판매해야 한 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악기 현의 완성품에 대한 정확한 측정 후 그 결과를 포장에 표시해 야 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 한 회사는 현의 번호와 두께, 장력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홈페이 72
81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지에 게시해 소비자에게 선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아래의 예시는 어쿠스틱 기타의 경우이며 이외에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래식 기타, 전자 기타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5> Connolly music company의 어쿠스틱 기타 현의 두께와 장력 <그림 5-1> 1번 현의 두께와 장력, 연주자 선호에 따라 4가지로 분류 제작함 73
8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대중악기 외에도 앞서 살펴본 일본의 전통악기 현에는 현의 무게와 번호를 기재하고 있 다. 국악기 현은 이에 비해 아직 과학적인 기초 조사가 부족하다. 우선 기존 현의 과학적 인 기초조사를 진행하여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고, 물성에 따른 음향 연구를 수행한다면 향 후 국악기 현의 물성과 음향을 고려한 과학적인 제작과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또 한 이를 바탕으로 현의 품질 평가 기준도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악기가 대중화되고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국악기의 표준화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획일화된 국악기의 표준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악기의 표준화란 현재의 국 악기 중 좋은 것이 무엇이며 그 요인이 무엇인가를 밝혀 표준을 삼는 것이다. 따라서 국악 기의 표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적인 기초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74
83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참고문헌> 국립국악원. 국악기개량 종합보고서 국립국악원. 금속타악기 연구 - 징 꽹과리 국립국악원. 가야금 음향 특성 연구 국립국악원. 국악기 실측 자료집 KS K0420 스트레치사의 섬도측정 방법. KS K ISO 2061 섬유-실의 조임수 측정-직접법. KS K0421 필라멘트사의 강도 및 신도 시험방법. KS K0215 합성섬유 필라멘트사 시험방법
8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Abstract> Production Process and Standardization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Kim so-ri Jung hwan-hee (Resercher, NCKTPA) The standardiz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is taken as top priority in promoting the wide-ranging use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across the country and the globe. For the standardiz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the standardization of stringed instrument should take precedence which is the most fundamental and important. That is because the string of stringed instrument is the fundamental factor to generate the sound. The external force makes the resonance unit vibrate through the bridge and the resultant sound is perceived by human. For that reason, the string in the stringed musical instrument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that determine the tone of sound. In addition, the production process of string and its physical properties are important if the vibration which characterizes the sound of Korean music is to be realized appropriately. For example, the string will break if it is twisted excessively in the production process. If twisted too much, the string will extend very easily, making the tuning difficult. By contrast, if the sting is not twisted enough, the string will have low elasticity and extendability, making the vibration difficult. Therefore, physical properties of string, such as the strength, extendability, twist, etc, are directly linked to the performance. Those factors are determined in the production process. The production process and the aforesaid factors of string determine the quality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Thus, this study intends to examine the current production processes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and the measures for its standardization, which are basic research for the standardization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is made with 130 types of silk 76
85 국악기 현의 제조 현황 및 표준화 threads which are combined according to the thickness of string. The combined silk threads are submerged in hot water, and then, are twisted up and down by the thread and yarn twisting machine. The important thing in making the string is to apply appropriate tension by keeping the string 30m to 50m apart from one another, and adjust the rotation and time well. At this time, the thickness, number of twist, etc, determine the quality of string. They are adjusted by naked eye or five senses based on the long experience of the craftsman. The twisted strings are wrapped around wooden club and steamed before being fixed. First, the standardization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requires the investigation into the physical properties of string. The physical properties of string such as fineness, number of twist, tensile strength, extendability, elasticity, etc, need to be investigated first, on which basis, the characteristics of sound have to be examined to identify the relationship, and more objective criteria can be established if the evaluation by performer follows. Second, the standardization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requires the standardization of packing and size. Factors which are very crucial in determin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have to be specified. For that, the string produced according to the results of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should be measured accurately and the results of the measurement should be displayed on the package. Keywords : string of Korean traditional musical instrument, string, standardization, production of string, physical properties of string, silk thread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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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11)김 성 혜* <국문초록>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향로에 조각된 ʻ5악기ʼ를 집중 조 명하는 학술대회가 국립국악원에서 개최되었다. 본고는 관악기 2종 가운데 단관악기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마련한 글이다. 향로에 조각된 단관악기 연주자를 관찰하여 악기 구조를 파악하였고, 2005년에 김 복곤이 재현한 악기도 함께 검토하였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이 악기를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악기 명칭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아울러 백제와 인접한 고구려와 중국의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단관악기를 상호 비교하여 그 친연 관계를 고찰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악기를 재현하여 그 소리를 직접 들어서 악기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 에 대한 연구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단관악기의 구조는 오늘날의 퉁소보다는 굵고 긴 구조이다. 악기 의 명칭은 백제대향로의 제작시기와 근접한 시기의 기록 그리고 국내 사료인 삼국사 기 와 삼국유사 그리고 일본후기 와 일본삼대실록 을 바탕으로 고찰한 결과, 적 ( 笛 )이 가장 적합하며 가로 부는 적과 세로 부는 적의 구분을 위해서 ʻ적(종적)ʼ으로 표 기하는 것이 적합하다. 백제의 관악기 ʻ적(종적)ʼ을 인접한 고구려의 ʻ적(종적)ʼ과 관계를 고찰한 결과 고구려 적의 사용이 시기적으로 약 2세기 앞서기 때문에 고구려의 영향으 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적의 재료인 대나무의 생장조건이 고구려와 차이가 있고, 유물 에 표현된 관악기의 관이 굵기 때문에 관이 가는 고구려와 차이점으로 보았다. 중국의 ʻ적(종적)ʼ과 비교해 본 결과, 악기편성에 있어서 친연성이 높았고 악기 구조 면에 있어서는 고구려처럼 가늘고 긴 데 반해, 백제는 관이 굵은 점이 달랐다. 또한 ʻ적(종적)ʼ 관련 유물이 중국 남조보다 북조 지역에 많은 분포를 보였기 때문에 남조보 다 북조와 친연 관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백제의 ʻ적(종적)ʼ은 고구려 및 중국 * 동국대학교 강사. 79
8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북조의 ʻ적(종적)ʼ 문화와 그 친연성이 확인되지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관이 굵은 점은 백제 ʻ적(종적)ʼ의 특징이다. 악기 구조를 바탕으로 ʻ적(종적)ʼ을 재현하여 그 소리를 내본 결과, 백제금동대향로 속에 있는 백제의 관악기 ʻ적(종적)ʼ은 중 저음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고, 이러한 악기로 연주된 음악은 고요하고 중후한 맛을 자아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성격의 악기는 느린 템포의 곡을 연주하기에 적당하다. 특히 향로에 조각된 악기이므로 백제 사비시대 원찰에서 선왕을 추모하는 의례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로 보았다. 핵심어 : 백제금동대향로, 관악기, 단소, 퉁소, 적 목 차 Ⅰ. 머리말 Ⅱ. 악기의 구조 Ⅲ. 악기의 명칭 Ⅳ. 인접국 적(종적)과의 친연성 Ⅴ. 백제 악기 적(종적)의 재현 Ⅵ. 맺음말 I. 머리말 2009년 7월 21일 국립국악원에서 백제음원 및 콘텐츠 개발을 위한 학술회의 가 개최 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향로에 조각된 ʻ5악기ʼ를 집중조명한 데 의의가 크다. 향로에는 현악기 2종과 관악기 2종 그리고 타악기로 추정되는 1종 이렇게 다섯 종류의 주악상이 있는데, 필자가 요청받은 논제는 ʻ관악기 2종 의 성격ʼ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관악기는 2종으로 다관( 多 管 )악기와 단관( 單 管 )악기가 있는 80
89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데, 본고는 단관악기로 범위를 한정하고자 한다. 1) 이 향로의 제작시기에 관해서는 6세기 중엽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며, 2) 7세기 전반으로 보는 견해 3) 도 있기 때문에 넓게 보면,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으로 추정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로에 조각된 악기 역시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백제 왕실에서 사 용한 악기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향로의 제작국에 관하여 이 향로가 6~7세기 중국 박 산향로( 博 山 香 爐 )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신산도상( 神 山 圖 像 )을 따르는 점을 볼 때 출토지인 백제로 본다. 4) 아울러 백제에서 출토된 유물의 양식과 비교했을 때, 유사한 점을 예로 들어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본다. 5) 따라서 향로에 조각된 단관악기 역시 백제 에서 사용한 악기로 이해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에 조각된 단관악기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먼저 연주도상을 바탕으로 악기 구조를 파악하며, 다음으로 악기 명칭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백제 단관악기와 인접한 고구려와 중국의 악기를 상호 비교하여 그 친연 관계도 함께 파악하고자 한다. 아 울러 단관악기의 성격을 좀 더 명확히 감지하기 위해서 악기 구조를 바탕으로 백제 단관악 기를 재현하여 그 성격을 밝혀 보고자 한다. 1) 2009년 7월 21일 국립국악원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재)국악문화재단 주최로 국립국악원 우면 당에서 백제음원 및 콘텐츠 개발을 위한 학술회의 백제금동대향로 악기의 성격 이 개최되었다. 여기서 필자가 백제금동대향로 관악기 2종의 성격 고찰 을 발표했을 때 논평자 송방송 선생님께 서 학술대회 후에 이 논문의 내용을 다관악기와 단관악기 두 논문으로 나누어 각각 따로 발표해 도 좋겠다 는 의견이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수용하여 본고를 마련하였다. 2) 금동용봉봉래산향로 : 부여 능산리 건물터와 출토유물 (부여 : 국립부여박물관, 1994), 9쪽. 3) 같은 곳에서 출토된 유물이 동시에 제작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향로의 제작 시기를 567년으로 보지 않고, 이 백제 향로와 같은 형태로써 해중신산( 海 中 神 山 ) 혹은 박산( 博 山 ) 을 표현한 6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무녕왕릉( 武 寧 王 陵 ) 출토 ʻ동탁은잔ʼ( 銅 托 銀 盞 )이나 7세기 경 에 제작된 부여( 扶 餘 ) 외리( 外 里 ) 출토 백제문양전( 百 濟 文 樣 塼 ) 등과의 비교를 통하여 제작연대를 7세기 전반으로 보기도 한다. 趙 容 重, 百 濟 金 銅 大 香 爐 에 관한 硏 究 : 圖 像 解 釋 을 中 心 으로, 美 術 資 料, 第 65 號, 31 및 34쪽. 아울러 무왕대인 7세기 전반 부여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猪 熊 兼 勝, 백제 능사 출토 향로의 디자인과 성격, 백제금동대향로와 고대동아세아 (부여 : 국립부여박물관, 2003), 151쪽. 4) 趙 容 重, 百 濟 金 銅 大 香 爐 에 관한 硏 究 : 圖 像 解 釋 을 中 心 으로, 美 術 資 料 第 65 號, 3쪽. 5)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탁은잔( 銅 托 銀 盞 )에 장식된 구성요소 즉 산악도( 山 岳 圖 )와 유운문( 流 雲 文 ), 연꽃과 용이 백제대향로의 구성과 매우 흡사한 점과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산수산경문전( 山 水 山 景 文 磚 )과 산수봉황문전( 山 水 鳳 凰 文 磚 )에 있는 중첩된 삼산형( 三 山 形 )이 향로와 유사한 점, 유운 문을 경계로 공간을 구분한 방식 등을 실례로 제시하였다.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서울 : 학고 재, 2001), 16-19쪽. 81
9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Ⅱ. 악기의 구조 악기의 구조를 먼저 파악하고자 하는데, 연주자세와 더불어 관악기 취구의 구조 그리고 관의 굵기 및 관의 길이 등을 중심으로 관찰하고자 한다. 악기 구조를 면밀히 파악하기 위 해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할 것이며, 이 악기는 2005년에 김복곤이 재현한 사례가 있 기 때문에 함께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김주형 6) 에게 의뢰한 재현악기도 동시에 비 교하도록 하겠다. 먼저 유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하자. <사진 1> 향로의 단관악기 정면 <사진 1-1> 단관악기 우측면 <사진 1-2> 단관악기 좌측면 연주자는 결가부좌 자세로 단정히 앉았고, 왼발을 오른쪽 다리 위로 걸쳤다. 백제금동대 향로 5악사 가운데 관악기 소( 簫 )를 부는 연주자 7) 의 자태가 다소곳하니 여성스러운데 반해 이 연주자는 고요하고 점잖은 남성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양손으로 악기를 잡았는데, 연주 자의 오른손이 위에 놓였고 왼손이 아래에 위치한 자세이다. 이는 오늘날 단소와 퉁소 연 주의 경우 왼손이 위에 놓이고 오른 손이 아래에 놓이는 것과 반대이다. 6) 필자는 본고를 준비하면서 ʻ단관악기ʼ의 재현을 김주형씨에게 의뢰하였다. 그는 경주에서 금률대 금공방 대표이자, 금률국악실내악단 대표를 맡고 있는데 필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백제금 동대향로의 단관악기를 재현하였다.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7) 김성혜, 백제금동대향로 다관악기의 재현을 위한 연구, 음악과 문화 제21호(대구 : 세계음악학회, 2009), 쪽. 82
91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그림 1> 김복곤이 재현한 5악기 연주 한편 2005년에 재현한 악기의 연주자세를 보면(그림 1), 손의 위치가 백제금동대향로의 연주자 손 위치와 다르며, 현재 단소와 퉁소의 손 위치와 같다. 이와 같이 관악기 연주에 있어서 연주자의 손 위치가 관악기 연주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가?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 라고 생각한다. 연주자가 처음에 악기를 익힐 때 어떤 자세로 익히느냐에 좌우된다고 본 다. 실제로 단소 연주에 있어서 양손의 위치를 바꿔서 연주하여도 연주상에 큰 문제는 없 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백제금동대향로의 이 악기를 재현해서 연주할 때는 유물에 나타 난 것과 같은 자세로 연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관악기의 취구( 吹 口 ) 형태를 보고자 한다. 관악기에 있어서 취구 형태는 연주자세 와 상관되기 때문에 살펴보고자 하며, 김복곤의 재현악기 취구가 경사취구인 까닭에 함께 검토하고자 한다. 먼저 향로 연주자의 자세를 관찰한 후 취구형태를 간파해 보자. 향로 관 악기 연주자의 우측면을 보면(사진 1-1), 연주자 얼굴과 악기가 거의 직선을 이루고 있다. 이 점은 취구의 형태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향로의 주물 제작상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세로 부는 관악기의 취구 형태는 대부분 수평을 이룬다. 단소와 퉁소의 취구 그리 고 김복곤이 재현한 단관악기의 취구도 함께 살펴보자. 단소의 종류는 경제단소와 향제단 소로 구별하기도 하고, 단소의 기본음에 따라 계면조단소와 평조단소로 구분하기도 하는 데, 8) 본고에서는 계면조단소를 기준으로 하였다. 8) 송혜진은 경제단소와 향제단소로 구별하기도 하고, 단소의 기본음에 따라 계면조단소와 평조단소로 83
9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사진 2> 단소취구 <사진 3> 퉁소 취구 <사진4> 김복곤재현악기의취구측면 이렇듯 <사진 2>의 단소 취구와 <사진 3>의 퉁소 취구는 수평을 이루지만, 재현악기의 취구는 약 15도의 경사를 이룬다. 단소나 퉁소처럼 취구 면이 편편하면 입술과 턱 면에 악 기를 밀착시켜야 공기가 빠지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악기를 위로 올려야 한다. 그러나 김 복곤이 재현한 관악기의 취구처럼 수평취구가 아닌 경사취구이면 악기가 연주자 몸쪽으로 더 붙을 수 있다. 실제 연주모습을 자세히 보도록 하자. <사진 5> 단소 연주 <사진 6> 퉁소 연주 <사진 7> 재현 단관악기1의 연주 구분하였다.(송혜진 글 강운구 사진, 한국악기 (서울 : 열화당, 2000), 173쪽) 이상규는 3종으로 구분했는데, 경제단소 혹은 계면조단소와, 향제단소, 평조단소이다.(이상규, 단소와 퉁소 소암 권오성박사화갑기념 음악학논총 (서울 :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 논문간행위원회, 2000), 536쪽) 그리고 박영배는 4종으로 구분했는데, 국립국악원에서 쓰는 우조계면단소, 평조계면단소와 전용 선 단소 산조음악에 쓰이는 산조단소, 지방의 향제단소로 구분하였다. (박영배, 단소의 악기적 고찰, 한국전통악기학 제9호(서울 : 한국전통음악학회, 2008), 87-89쪽. 84
93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이처럼 단소와 퉁소는 연주자 몸과 악기 사이의 각도가 약 55도이며, 경사취구로 재현 한 악기의 경우는 약 40도이다. 9) 즉 재현악기는 연주자 몸과 악기 사이의 폭이 15도 정도 좁아져서 악기가 연주자의 몸 쪽으로 기운 상태이므로 유물과 근접한 자세를 이룬다. 그러 나 유물에 나타난 <사진 1>처럼 연주자 얼굴과 직선을 이룬 형태이거나 몸 쪽으로 악기가 바짝 붙을 정도는 아니다. 향로의 단관악기를 재현함에 있어서 취구를 비스듬히 하지 않고 수평으로 하여 연주자세를 취해 보았다. 그 결과 단소와 퉁소 자세처럼 연주자 몸과 악기 사이의 각도가 약 55도를 이루었다. 그래서 취구의 차이로 인하여 연주자세가 얼마나 변하 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를 동시에 비교해 보았다. <사진 7> 재현 단관악기1 (경사취구) 연주 <사진 8> 재현 단관악기2 (평취구) 연주 <사진 8-1> 재현 단관악기2의 평취구 <사진 7>과 <사진 8>을 비교했을 때 어떤가? <사진 8>은 단소나 퉁소처럼 평취구이며, <사진 7>은 김복곤이 제작한 것처럼 경사취구이다. 두 종류의 연주자세를 비교해 봤을 때 큰 변화를 찾기는 어려운 듯하다. 그렇다면 향로의 주물 제작상의 문제 때문에 우측면처럼 얼굴과 악기가 직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화나 선각과는 달리 향로 제작은 1차로 청동으로 주물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단소나 퉁소의 연주처럼 관 악기의 각도를 세우면 세울수록 공간처리가 곤란하기 때문에 유물의 우측면처럼 몸 가까이 밀착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백제금동대향로를 직접 복제한 9) <사진 7>의 재현 관악기는 ʻ경사취구ʼ이다. 이것은 김복곤이 재현한 것을 참고하여 김주형이 약 15도의 경사취구로 제작하여 연주하는 모습이다. 85
9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김진배씨에게 문의를 해 보았다. 10) 그의 대답은 실제 연주 자세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관 악기와 연주자 몸 사이를 약 1cm 정도 뚫어야 하는데, 주물상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고 하였다. 그렇다면 2005년에 재현한 단관악기의 ʻ경사취구ʼ는 재고해 보아야 한다. 다음은 관의 굵기와 길이를 보자. 관의 굵기와 길이는 악기의 음색과 음고를 좌우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사진 1>에서 보면, 관의 굵기가 연주자 입술 길이 정도이며, 관의 길이 는 연주자 무릎까지 닿을 정도이다. 이 점을 고려하여 김복곤이 재현한 관악기의 규모를 보면, 관의 외경은 3cm이며, 길이는 63.3cm이다. 11) 이를 바탕으로 김주형으로 하여금 재 현을 요청하였는데, 외경은 3cm이며, 길이는 60.8cm이다. <사진 9> 김복곤 <사진9-1>김복곤 <사진 10> <사진 10-1> 재현 관악기의 앞 재현 관악기의 뒤 김주형 재현 김주형 재현 관악기의 앞 관악기의 뒤 10) 2009년 7월 20일에 문의하였다. 11) 김복곤이 재현한 관악기의 실측은 필자가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직접하였는데, 관의 앞면 길이는 63.3cm였고, 뒷면은 62.5cm였다. 이러한 차이는 취구부분의 경사 때문인데, 전체 길이는 앞면 을 기준으로 표기하였다. 86
95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재현한 관악기로 연주자세를 취하여 향로의 악기와 비교해 보며, 단소연주와 퉁소 연주 를 함께 비교하여 상관 관계를 타진해 보도록 하자. <사진 1> 향로의 단관악기 정면 <사진 11> 재현한 관악기 연주 <사진 12> 퉁소 연주 <사진 13> 단소 연주 <사진 1-2> 단관악기 좌측면 이상으로 연주자세에서 향로 속의 관악기와 재현한 관악기 그리고 퉁소 및 단소와 비교 해 보면, <사진 13>의 단소가 유난히 짧게 보인다. 실제 악기를 실측해 보면, 오늘날 단소 는 외경이 2cm이며, 길이는 대략 40cm이다. 퉁소는 외경이 약 2.75cm이며, 길이가 57cm이다. 재현한 악기의 외경은 3cm이며, 길이는 김복곤의 경우 63.3cm이며, 김주형의 경우 60.8cm로 했는데, 이는 모두 퉁소보다 약간 굵고 긴 구조이다. 87
9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따라서 향로의 관악기 구조는 오늘날 퉁소보다 약간 더 굵고 길다. 특히 6세기 후반~7 세기 전반 백제 영역은 오늘날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인데, 전라도는 관악기의 주 재료인 대나무의 생장 조건이 좋은 지역이다. 이와 같은 환경 조건으로 인하여 관악기 제작 재료로 굵은 관의 사용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점은 북쪽에 위치한 고구려와 차이점이기도 하다. 다음 지공( 指 孔 )에 있어서, 향로의 관악기 지공에 대해 상세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복곤의 재현 악기를 보면, 앞공을 4개로 하였고, 뒷공을 1개로 하였는데, 대체로 오늘날 단소의 구조를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공에 관해서 중국의 경우는 고대 세로 부는 강적 ( 羌 笛 )의 지공이 4공이었는데, 기원전 1세기 경 경방( 京 房, B.C. 77~B.C. 37)이 뒷공을 더하여 5개가 되었다 12) 고 하나, 백제 향로의 관악기 지공은 정확히 고증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유물에 나타난 악기 구조를 살펴본 후, 이를 바탕으로 단소 및 퉁소와 비교해 보았다. 향로 속의 관악기는 퉁소의 규모와 유사하거나 좀 더 굵고 긴 구조로 짐작하였다. 아울러 2005년에 김복곤이 재현한 악기 구조 및 규모도 함께 고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재현을 시도해 보았다. 특히 연주자세와 관련하여 취구부분을 두 가지 구조로 재현 하여 비교해 보았으나, 악기가 연주자 몸 쪽으로 밀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향로의 주 물 제작상의 편의상 악기를 몸쪽으로 붙인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면 이 악기의 명칭을 당시 백제 사람들은 뭐라고 불렀는지 의문이다. Ⅲ. 악기의 명칭 <사진 1>의 악기 명칭에 대한 기존 견해는 매우 다양하다. 지금까지 제시한 악기 명칭 을 보면, ʻ피리ʼ, ʻ퉁소ʼ, ʻ장소ʼ, ʻ적ʼ이 있으며, 최근에 ʻ척팔ʼ로 보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이 영희 및 여러 언론사에서는 ʻ피리ʼ라 하였는데, 적( 笛 )자를 자전( 字 典 )에 찾아보면 ʻ피리 적ʼ 으로 기록된 데 의거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자전에 기록된 ʻ피리ʼ란 의미는 넓은 뜻으 로 관악기를 통칭하는 것이며, 좁은 의미로 리드가 있는 관악기인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 를 뜻한다. 아울러 음악학계에서는 ʻ적ʼ이라는 악기와 ʻ피리ʼ란 악기가 별도로 존재하며, 피 리의 경우 별도로 ʻ 觱 篥 ʼ 혹은 ʻ 篳 篥 ʼ로 표기해 왔기 때문에 <사진 1>의 악기 명칭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12) 양 인리우 지음, 이창숙 옮김, 중국고대음악사, 215쪽. 악학궤범 권6의 ʻ적( 篴 )ʼ조를 보면, 적( 篴 )이 예전에는 네 구멍이었는데, 경방이 한 구멍을 추가하여 5음을 구비하게 하였으니, 지 금의 적( 笛 )이다 는 기록이 있다. 악학궤범, 卷 6.17a-b2. 88
97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다음은 ʻ퉁소( 洞 簫 )ʼ에 관한 견해를 살펴보자. 전인평( 全 仁 平 )은 종적이면서 길이가 긴 악 기로 오늘날 대표적인 악기가 퉁소이므로, 이를 퉁소로 간주하였다. 13) 최근에 중국 조선족 연주자인 신옥분( 申 玉 粉 )과 장익선( 張 翼 善 )은 전인평의 견해를 추종하였는데, 이들은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는 악기에 주목하여 퉁소라 명명하였다. 14) 그러나 이에 대하여 서정록은 중국의 퉁소는 당나라 때 서역의 종적을 개량한 악기이며, 우리나라의 퉁소는 그 뒤에 중 국의 퉁소를 우리나라 음악에 맞게 개량한 것이므로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 제대향로의 악기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15) 아울러 서정록은 중국사서의 기록에 의거하여 ʻ적( 笛 )ʼ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 다. 또한 적류는 가로로 부는 횡적( 橫 笛 )과 세로로 부는 종적( 縱 笛 )으로 나누는데, 백제대 향로의 악기는 후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ʻ적(종적)ʼ으로 표기하였다. 송방송( 宋 芳 松 )은 관악기 명칭으로 ʻ적, 퉁소, 장소ʼ 가운데, 적( 笛 )이라 했을 때 문제점 으로 두 가지를 지적했는데, 하나는 중국계 관악기의 일종일 수 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 는 적이라는 명칭만으로는 가로로 잡고 부는 횡적인지, 세로로 잡고 부는 종적인지 구분하 기 어렵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퉁소라는 명칭은 삼국시대 이후 기록인 고려사 악지에서 비로소 사용되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런 반면 종적의 관악기를 세로로 잡고 부는 단소보다 길기 때문에 그 대칭어인 장소( 長 簫 )라는 명 칭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 악기는 고구려의 안악 3호분과 장천 1호분에서도 발견되며, 계유명전씨 아미타불 삼존석상에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라 하였다. 16) 송방송의 ʻ장 소ʼ란 견해를 최근에 이종구가 추종하였다. 17) 이에 대하여 이미 서정록의 언급이 있었지만, 고대에는 세로로 부는 단관악기 명칭으로 ʻ단소ʼ나 ʻ장소ʼ라는 이름이 사용되지 않은 데 한 계가 있다. 또한 중국 진양( 陳 暘 )의 악서( 樂 書 ) 를 보면, 단소( 短 簫 )가 오늘날의 단관악기가 아니라 다관악기인데 주목된다. 이 책에 그림과 함께 기록된 ʻ단소( 短 簫 )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ʻ단소ʼ와 중국에서 사용된 ʻ단소ʼ가 명칭은 13) 전인평, 금동향로의 다섯 국악기, 객석 통권124호(6월호)(서울 : 주식회사예음, 1994), 쪽. 14) 신옥분 장익선, 5종악기와 향로의 상징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제41집(서울 : (사)한 국음악사학회, 2008), 65-67쪽. 15) 서정록, 백제대향로의 5악기, 백제금동대향로 :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 (서울 : 학고재, 2001), 82-83쪽. 16) 송방송, 백제악기의 음악사학적 조명, 한국음악사논총 (서울 : 민속원, 1999), 57-58쪽. 17) 이종구, 백제금동대향로 주악 조소상 악기 명칭에 대한 연구, 音 樂 論 壇 제21집(서울 : 한양대 학교 음악연구소, 2007), 8쪽. 89
9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같지만, 악기 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이렇듯 지리 적 차이와 시간적 차이에 따라서 악기명칭을 달 리 사용하였기 때문에 악기 명명에 대해서는 신 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ʻ단소ʼ는 바로 그 본보기가 된 데 의미가 크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ʻ단소ʼ가 결국 다관악기 ʻ소ʼ의 일종인 까닭에 한대( 漢 代 ) 고취악의 일종인 ʻ단소요가( 短 簫 鐃 歌 )ʼ의 ʻ단소ʼ가 다관악기인 ʻ소ʼ의 일종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한 나라 화상석에 고취악대로 나타난 짧은 관의 소 가 바로 단소일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단소에서 비롯된 장소는 고대 문헌에 의거한 명칭이 아니 <그림 2> 진양 악서 의 단소 기 때문에 재고가 요청된다. 이진원은 최근에 일본 정창원에 소장된 세로로 부는 관악기 ʻ척팔( 尺 八 )ʼ을 고찰한 바 있는데, 18) 여기서 백제대향로의 세로로 부는 관 악기를 ʻ척팔ʼ로 보고자 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견해이지만, 척팔이라는 명칭은 일본의 동대사헌물장 가운데 국가진보장 에 의거한 것이고, 이 기록은 8세기 일본문헌의 기 록이다. 따라서 6세기 후반~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대향로와 가장 가까운 기록은 7세기 수서 와 북사 등 중국사서이며, 우리나라 사서인 삼국사기 19) 와 삼국유 사 20) 에도 ʻ적( 笛 )ʼ이란 명칭은 문헌 기록에 있지만, ʻ척팔ʼ이란 명칭은 기록에 없기 때 문에 이 주장 역시 문제가 있다. 이상의 견해를 바탕으로 <사진 1>의 악기 명칭을 다시 고찰해 보면,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 삼국사기 에서 인용한 북사 에서 백제의 관악기로는 ʻ각( 角 ), 우( 竽 ), 지( 篪 ), 적( 笛 )ʼ 뿐이었다. 이 가운데 향로의 관악기로 가장 적합한 것은 ʻ적ʼ이다. 왜냐하면, 각은 뿔나발 종류이므로 부적당하며, 우는 다관악기로서 오늘날 생황같은 구조이므로 역시 적합하지 않다. 지의 경우 단관악기이지만, 가로 부는 구조이므로 역시 향로의 관악기와는 거리가 있다. 18) 이진원, 백제 尺 八 을 통해본 백제악에 대한 재검토, 한국음악사학보 제41집(서울 : (사)한국음 악사학회, 2008), 쪽. 19) 김성혜, 三 國 史 記 樂 歌 舞 기사, 경주문화 제6호(경주 : 경주문화원, 2000), 295쪽. 20) 삼국유사 에서 적( 笛 )에 대한 기사는 만파식적( 萬 波 息 笛 )과 월명스님( 月 明 師 )의 적( 笛 )으로 두 가 지 사례가 있다. 三 國 遺 事, 卷 2.6a8-10, 萬 波 息 笛 ; 卷 3.25a9-b2, 26a7-10; 卷 5.13a3-5, 月 明 師 兜 率 歌, 김성혜, 三 國 遺 事 의 악기 관련 기사 검토, 경주문화 제5호(경주 : 경주문 화원, 1999), 쪽. 90
99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에 있는 단관악기의 명칭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를 밝히면, 1차적 으로 ʻ적ʼ이 가장 적합하다. 그 이유로 첫 번째는 삼국사기 에서 인용한 북사 의 백제악 으로 ʻ적ʼ이라는 명칭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내 문헌인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도 백제는 아니지만 통일신라 내용에 ʻ척팔ʼ이란 명칭은 없지만, ʻ적ʼ이란 명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일본문헌인 일본후기 를 보면, 809년에 백제악사( 百 濟 樂 師 ) 4명을 정하였는데 횡적( 橫 笛 ), 군후( 篌 ), 막목( 莫 目 ), 무사( 舞 師 ) 등이다 21) 는 기록이 있고, 일본삼대실록( 日 本 三 代 實 錄 ) 을 보면, 865년 천장( 天 長, 824~833) 초에 아악( 雅 樂 ) 백 제적사( 百 濟 笛 師 )에 임명되었다가 이어 당횡적사( 唐 橫 笛 師 )로 관직을 옮겼다 22) 는 내용에 주목된다. 이 두 가지 문헌을 종합하면, 백제악기로 ʻ횡적ʼ과 ʻ적ʼ으로 대별되는데, 여기서 ʻ횡적ʼ은 673년 계유명 아미타불 삼존석상에 조각된 것일 가능성이 있고, ʻ적ʼ은 바로 백제 금동대향로의 단관악기일 가능성이 있다. 이렇듯 일본 기록에서는 적과 횡적을 구분하였는 데, 이는 횡적이 가로로 부는 적이란 뜻이므로 세로로 부는 적의 경우 ʻ적ʼ으로 명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 2차적으로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 횡적이란 명칭은 있으나, 종적이란 명칭은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ʻ종적ʼ이란 명칭을 사용하기보다 문헌에 의거하여 1차적으로 ʻ적ʼ이라 한 다음 횡적과 구분하기 위한 방편으로 ʻ적(종적)ʼ이라는 부언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필 자는 서정록의 견해를 수용하는 입장임을 밝힌다. 다음은 인접국 적(종적)과의 친연 관계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Ⅳ. 인접국 적(종적)과의 친연성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보면, 6~7세기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 그리고 중국과의 교류가 빈번하였다. 이러한 국제 교류에서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인데, 백제보다 선진문화를 이룬 고구려와 중국의 고고학자료를 바탕으로 관악기 적(종적)의 친연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21) 崔 根 泳 外 5 人 編, 日 本 六 國 史 韓 國 關 聯 記 事 (서울 : 駕 洛 國 史 蹟 開 發 硏 究 院, 1994), 310쪽. 22) 崔 根 泳 外 5 人 編, 앞의 책, 383쪽. 91
10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1. 고구려의 적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백제대향로처럼 세로 부는 적은 356년 안악 3호분 후실 벽화와 5 세기 중엽의 장천 1호분뿐이다. <그림 3> 안악 3호분 후실 벽화 안악 3호분의 경우 세로로 부는 적은 지터류의 현악기와 몸체가 둥근 비파와 더불어 춤 반주로 편성되었다. 백제 향로의 악기편성과 비교해 볼 때, 향로의 악기 5종 가운데 안악 3호분의 3종이 모두 포함된 점이 상호 관련성이 보인다. 아울러 백제 향로의 악기 편성으 로 일본 문헌에 기록된 백제춤의 반주 악기 구성도 유추할 수 있다. 23) 한편, 안악3호분에 그려진 적(종적)은 관의 길이가 연주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올 만큼 길고, 관의 굵기가 가는 점이 백제 향로의 적과 차이점이다. 연주 자세를 보면 연주자의 오른 손이 관의 위쪽에 놓 였고, 왼손이 아래에 위치하여 연주자세 역시 향로의 적 연주자세와 일치한다. 따라서 고 구려 4세기 악기편성 및 적 연주와 백제와의 관련성은 매우 밀접하다. 한편 장천 1호분에도 <그림 4>의 세로로 부는 적 연주가 있지만, 24) 전반적으로 도상 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연주자세와 주변 인물들의 성격 등을 언급하기가 어렵다. 그 러나 장천 1호분의 다른 벽면에 있는 <그림 5>의 주악상을 보면, 가로로 부는 적과 현 악기 몸체가 선명하지 않지만 류트류의 비파 그리고 지터류의 현악기로 구성되었다. 이 23) 續 日 本 記 에 765년 百 濟 王 敬 福 등이 또한 자기 나라의 춤을 추었다. 續 日 本 後 記 에 보면, 833년 百 濟 王 勝 義 가 백제의 風 俗 舞 를 추었다. 김성혜, 百 濟 ʻ 琴 ʼ의 音 樂 史 學 的 照 明, 한국학 보 제108집(서울 : 일조각, 2002), 139쪽. <표 3> 일본 육국사의 백제악 관련 기사 참고. 24) 이 연주를 ʻ피리ʼ로 판독한 사례도 있다. 송방송, 장천 1호분의 음악사적 고찰, 한국고대음악 사연구 (서울 : 일지사, 1985), 19-20쪽. 92
101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구성은 4세기 안악 3호분과 거의 유사한데, 관악기만 세로로 부는 적이 횡적으로 대체 된 점이 다르다. <그림 4> 장천 1호분 적(종적) <그림 5> 장천 1호분 횡적, 비파, 금 이렇게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세로로 부는 적이 2점 있지만, 가로로 부는 적에 비하 면, 매우 드문 사례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가로로 부는 적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408 년 덕흥리 고분이다. <그림 6> 덕흥리 고분벽화 덕흥리 고분의 주인 뒤쪽에 악공들이 연주하는데 편성을 보면, 비파와 횡적 그리고 소로 구성되었다. 그 다음으로 5세기 중엽의 장천 1호분의 <그림 4>이다. 그 이후 횡적은 6세 기 말 7세기 초의 오회분 4호묘(그림 7)와 5호묘(그림 8)에 각각 나타나며, 7세기 중엽의 강서대묘(그림 9)에도 보인다. 오회분 4호묘의 악기 편성을 보면, 거문고와 횡적, 소, 각, 93
10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요고 등이며, 25) 오회분 5호묘의 경우는 오회분 4호묘에서 원형의 비파와 춤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7세기 중엽 강서대묘를 보면, 역시 원형의 비파와 지터류 현악기, 횡적, 각(쌍각)으 로 편성되었다. <그림 7> 오회분 4호묘 횡적 <그림 8> 오회분 5호묘 횡적 <그림 9> 강서대묘 횡적 이와 같이 4세기 중엽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적과 횡적이 포함된 악기편성을 시기 순으로 정리해 보면, 고구려 관악기 편성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25) 李 殿 福 글, 김홍련 김성혜 번역, 길림 집안 오회분 4호묘, 한국음악사학보 제37집(서울 : (사)한국음악사학회, 2006), 쪽. 94
103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표 1> 4세기~7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한 악단의 악기편성 시기 고분벽화 적(종적) 횡적 비파 지터류현 소 뿔나발 요고 춤 비고 356 안악3호분 / 소가 고취에 편성 408 덕흥리고분 소가 실내악에 편성 5C 중엽 장천1호분 6C말~7C초 오회분 4호묘 거문고 지물 6C말~7C초 오회분 5호묘 거문고 7C 중엽 강서대묘 지터류현 쌍나발 6C후반~7C 전반 백제대향로 지터류현 북 <표 1>을 보면, 고구려에서는 4세기 중엽에 이미 세로의 적(종적)이 실내악으로 편성되 었고, 5세기 중엽 장천 1호분까지 도상에 등장한 점으로 보면, 4~5세기에 사용된 악기로 볼 수 있다. 한편, 횡적의 경우 덕흥리고분에서 처음 등장하면서 그 이후 장천 1호분과 오 회분 4, 5호묘 및 7세기 중엽 강서대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4~5세 기에 사용된 세로의 적(종적)은 5세기 초에 횡적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이며, 실내악에서도 기존의 종적 대신 횡적이 대체된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6세기 후 반~7세기 전반 백제 향로의 적(종적)과 비교해 볼 때 고구려의 적이 시기적으로 앞서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ʻ적(종적)ʼ을 종합해 보면, 4~5세기에 지터류 ʻ고( 琴 )ʼ 와 류터류 비파와 함께 소규모 악단으로 편성되었고 춤 반주로 연주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5세기에 횡적이 출현하면서 서서히 ʻ적(종적)ʼ은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 안악 3호분이 백제대향로보다 약 2세기 정도 앞서며, 악기 편성 역시 안악 3호분의 구성이 백제대향로 구성에 그대로 적용된 사례로 볼 때, 4세기 이후 고구려의 음악문화가 백제로 전래되거나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러나 적(종적)의 구조를 보면, 고구려는 가늘고 긴데 반해, 백제는 굵고 짧은 점이 다르다. 이것은 관악기의 제작재료인 대나무의 생장 조건이 고구려와 백제가 다른 데 원인일 수 있다. 2. 중국의 적 기원전 433년 전후 증후을묘( 曾 侯 乙 廟 )에서 출토된 악기에는 십현금, 오현금, 생, 소고, 95
10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편종, 편경, 건고, 배소, 적과 지, 슬 등이 있는데, 26) 여기서 관악기 가로의 적( 笛 )과 지 ( 篪 )는 있으나 세로의 적( 笛 )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종적의 관악기 출현은 언제부터인 가? 양 인리우가 지은 중국고대음악사 를 보면, 한나라 때 ʻ강적( 羌 笛 )ʼ이 있는데, 이것이 종적( 縱 笛 )이다. 강적은 원래 서방 변경(감숙, 사천 일대)의 소수 민족 강족( 羌 族 )의 악기로 처음에는 지공이 4개뿐 이었는데, 기원전 1세기 경에 경방( 京 房, B.C. 77~B.C. 37)이 뒷 공을 더하여 5개가 되었고, 이때부터 세로로 부는 적이 생겼다 고 한다. 27) 이를 뒷받침하 듯 한( 漢 ) 대의 흙 인형인 ʻ용( 俑 )ʼ 가운데 세로 부는 적을 연주하는 용( 俑 ) 2점이 있다. <그림 10> 漢 代 적(종적) 樂 俑 1 <그림 11> 漢 代 적(종적) 樂 俑 2 <그림 10> 28) 의 연주자는 남자 같고, <그림 11> 29) 의 연주자는 머리 모양을 볼 때 여자 같은데 모두 세로로 된 적을 불며 관악기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다. 또한 연주자의 손 자세를 보면, 모두 연주자의 오른손이 위에 있고, 왼손이 아래에 위치한 점이 동일하며, 이는 백제 향로의 적(종적) 연주자세와 일치한다. <그림 11>의 유물은 동한(25~220)시대 이며, 상해박물관 소장품이다. 이 두 가지 유물에서 주목되는 점은 연주자세이다. 악용은 26) 劉 東 升 遠 荃 猷, 修 訂 版 中 國 音 樂 史 圖 鑑 (북경 : 인민음악출판사, 2008), 33-35쪽. 27) 양 인리우 지음, 이창숙 옮김, 중국고대음악사, 215쪽. 28) 양 인리우 지음, 김창숙 역, 고대중국음악사 (서울 : 도서출판 솔, 1999), 217쪽. 강적을 부는 인형. 29) 中 國 古 代 彫 塑 館 ( 上 海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1996), 그림 6. 吹 簫 陶 俑 높이 73cm. 96
105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벽화의 회화와 달리 백제대향로처럼 입체적 효과를 지닌 점이 공통적이다. 이 두 유물의 연주자세는 모두 악기가 연주자 몸 쪽으로 밀착되어 있다. 즉 향로의 연주자세와 동일형이다. 앞에서 향로의 관악기 취구가 ʻ평취구ʼ인가 아니면 ʻ경사취구ʼ인가에 대한 의문의 실마리 를 여기서도 풀 수 있다. 이 두 점의 악 용에서 관악기가 모두 연주자 몸 쪽으로 밀착되었는데, 이 점은 유물의 제작과정 상으로 이해도를 높인다. 그래서 백제대 향로 속의 관악기가 ʻ경사취구ʼ이기 보다 ʻ평취구ʼ 구조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 아 울러 지금까지 전래된 세로 부는 관악기 가운데 ʻ경사취구ʼ의 사례가 없기 때문에 재현악기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그림 12> 동한 말기 요양( 遼 陽 ) 봉대자 고묘 이러한 적(종적)은 동한 말기에 실내 악에 편성되어 연주되었는데, 요양( 遼 陽 ) 봉대자( 棒 臺 子 ) 고묘벽화에서 30) 찾아볼 수 있다. 오른쪽부터 두 번째 사람이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적(종적)이다. 연주자의 앉은 자세는 백제 향로의 연주자의 자세와 같고, 차이점은 고구려의 안악 3호분처럼 관악기가 가늘고 긴 점이다. 이 점은 북쪽지방으로 갈수록 대나무의 생장이 어렵고, 굵기가 굵은 대나무는 환경적으로 자라기 어렵기 때문이다. 함께 편성된 악기는 지터류의 현악기와 비파류의 악 기 그리고 맨 왼쪽의 그림은 희미하지만 북 종류로 짐작된 다. 전반적으로 백제 향로의 악기편성와 유사하며, 다관악 기인 ʻ소( 簫 )ʼ가 없는 점이 다르 다. 이 자료는 동한 말기에 대 륙의 동북쪽에 위치한 요양 지 역에 적(종적)이 소규모 악단에 편성된 사례를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있는 <그림 13> 함양( 咸 陽 ) 평릉( 平 陵 ) 16국 묘 데, 함양( 咸 陽 ) 평릉( 平 陵 ) 16 30)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81쪽. 97
10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국 묘에서 출토된 여악용( 女 樂 俑 )이다. 31) 모두 4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작은 북, 원형 의 비파, 지터류 현악기 그리고 세로 부는 관악기이다. 역시 다관악기인 ʻ소ʼ가 없는 것이 요양 봉대자 고묘와 편성이 같다. 다만 세로의 관악기가 요양 봉대자 고묘보다 짧은 점이 다르다. 한편, 대륙의 남쪽인 삼국시대 오( 吳 )나라의 청자녹유 항아리 32) 에도 적(종적)이 나타난다. <그림 14> 오나라의 청자녹유 항아리 <그림 14-1> 오나라의 청자녹유 항아리 세부 이 항아리에는 ʻ영안( 永 安 ) 3년ʼ(260)이라는 명문이 있어, 시기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도 상이 선명하지 않지만, 원형의 비파와 함께 편성된 관악기가 적(종적)이 분명하기에 3세기 중엽에 대륙의 남쪽 지역에도 적(종적)의 전파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적(종적) 관련 연주도상은 신강성( 新 疆 省 ) 투루판( 吐 魯 番 ) 아스타나( 阿 斯 塔 那 ) 16 국 묘에서 출토된 악무벽화 33) 와 감숙성( 甘 肅 省 ) 주천( 酒 泉 ) 정가갑( 丁 家 閘 ) 진묘( 晋 墓 ) 벽화 악무도 34) 및 감숙성 가욕관( 嘉 峪 關 ) 위진묘( 魏 晋 墓 )의 전돌 주악도 35) 에도 나타난다. 31)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47쪽. 32)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84-85쪽. 33)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52쪽. 34)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52-53쪽. 35)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81쪽. 98
107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그림 15> 신강성 투루판 아스타나 벽화 <그림 16> 감숙성 주천 정가갑 진묘( 晋 墓 ) 벽화 신강성 투루판 아스타나 16국묘의 경우 세로의 적과 타악기 북만 있고, 앞에는 춤 추는 여인이 팔을 벌리고 있 어 춤반주를 위한 연주임이 확인된다. 감숙성 주천 정가 갑 진묘 벽화의 악기편성은 <그림 17> 감숙 가욕관 위진묘 요양 봉대자 벽화와 함양 평 릉 16국묘와 거의 같은데 타악기만 북 대신 ʻ요고ʼ로 바뀌었다. 이 역시 적(종적)은 관 이 길고 연주자세는 다른 유물과 같다. 주천 정가갑 진묘는 고대의 양주( 凉 州 ) 지역으 로, 4세기부터 5세기 초에 이곳은 전량( 前 凉 ) 후량( 後 凉 ) 북량( 北 凉 ) 서량( 西 凉 ) 등 여러 나라가 건립된 곳이다. 요컨대, 한 대에 유입된 세로의 강적( 羌 笛 )은 중국의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에 이르기까 지 전승되었는데, 유물의 분포를 보면 남조보다 북조의 분포도가 높다. 이것이 당대( 唐 代 ) 에 이르면 고창( 高 昌 )의 고대 유적지의 벽화(잔존부분) 중 5명의 기악인이 있는데, 36) 뒤에 서서 연주하는 오른 쪽 연주자가 바로 적(종적)을 연주한다. 36) 劉 東 升 遠 荃 猷, 앞의 책, 88-89쪽. 99
10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그림 18> 당 고창( 高 昌 )지역의 벽화 당나라 때 고창지역의 벽화에 편성된 악기를 보면, 앞에서 살펴본 악기편성과 약간의 변 화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공후와 생이 편성된 것과 횡적과 세로 적이 함께 구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본 중국 고고학자료에 등장한 악기편성과 백제대향로의 악기편성을 함께 표로 정리해 보도록 하자. <표 2> 중국 적(종적) 관련 고고학 자료의 악기편성 시기 유물의 종류 악기종류 적(종적) 지터류현 비파류 북 비고 동한말기 요양 봉대자묘 4종 삼국시대 吳 청자녹유항아리 2종 16국 함양 평릉묘 4종 진 감숙 주천 정가갑 4종 요고 위진 감숙 가욕관 2종 당 고창지역 벽화 5종 공후 생 횡적 6C 후반~7C 전반 백제금동대향로 5종 <표 2>를 보면, 동한 말기 요양 봉대자 고묘에서부터 감숙 가욕관 위진묘에 이르기까지 악기편성에 있어서 관악기로 대부분 적(종적)이 자리하였다. 그런데 당의 고창 벽화에 보면, 적(종적) 이외 생과 횡적이 관악기로 편성된 점이 변화이고, 이것은 백제대향로 역시 ʻ소ʼ가 편성되어 관악기가 더 추가되는 현상을 보인다. 이 점은 고구려 고분벽화 역시 4세기 안악 100
109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3호분에서는 적(종적)만 편성되었던 것이 5세기 덕흥리 벽화에서 ʻ횡적ʼ으로 대체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투루판 돈황 주천 함양 요양 안악 부여 <그림 19> 남북조~당 및 고구려 백제의 적(종적) 분포 이상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와 중국 고고학자료에 등장하는 ʻ적(종적)ʼ을 중심으로 살펴본 결과를 요약하면, ʻ적(종적)ʼ은 한대( 漢 代 )에 중국 서부지역의 강족( 羌 族 )으로부터 유입된 악 기인데, 유입된 이후 중국 남부지역인 오나라 영역에서도 나타나지만, 극히 일부이며 대체 로 중국 북부지역 유물에 분포된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신강 투루판과 감숙 주천지역 및 함양과 요양에 이르기까지 주로 중국 북부에 위치한 유물에 나타나기 때문에 남조보다 북 조와 밀접하기에 그 친연성을 파악할 수 있다. 백제 향로의 악기 구성과 비교해 봤을 때 동한 말기의 요양 봉대자 고묘와 함양 평릉 16국묘, 감숙 주천 정가갑 진묘 그리고 고구려 안악 3호분 등과 유사한 현상이 드러났다. Ⅴ. 백제 악기 적(종적)의 재현 앞서 ʻ악기의 구조ʼ 항목에서 유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하였고, 2005년 김복곤이 재 현한 관악기도 검토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의 관악기 ʻ적(종적)ʼ을 재현하였는데, 악기 제작은 김주형이 맡았다. 제작재료는 대나무를 사용하였고, 관의 길이는 60.8cm이다. 관 101
1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의 외경은 3cm이며, 내경은 2cm로 하였다. 취구형태는 평취구로 하였는데, 지금까지 전 래된 종적류의 악기 단소와 퉁소의 경우 모두 평취구이며, 일본의 척팔 역시 평취구이기 때문에 백제의 ʻ적(종적)ʼ 역시 평취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진14> 김주형 재현 적(앞) <사진 14-1> 김주형 재현 적 (뒤) <사진 14-2> 김주형 재현 적(취구) 관악기 앞면에 지공을 4공으로 하였고, 뒷공은 1공으로 하였다. 이것은 기원전 1세기 한나라 경방이 앞의 4공에서 뒷공 1을 추가하여 5공이 되도록 한데 의거하였고, 오늘날 우리나라 단소와 일본의 척팔( 尺 八, 샤쿠하치) 역시 모두 앞공 4, 뒷공 1의 구조이기 때문 에 이를 바탕으로 하였다. 이렇게 재현한 악기를 직접 연주해 본 결과, 그 모습은 아래 사진과 같다. 102
111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사진 15> 김주현 재현 적 연주(앞) <사진 15-1> 김주현 재현 적 연주(옆) 재현한 ʻ적(종적)ʼ을 불었을 때, 그 소리는 중음( 中 音 )과 저음( 低 音 )으로 구성되었다. 취법 역시 역취보다 평취( 平 吹 )와 저취( 低 吹 )가 자연스러웠다. 연주자세는 유물에 조각된 것 처 럼 오른손이 위에 놓이고, 왼손이 아래에 놓여야 바람직하다. 따라서 백제의 ʻ적ʼ은 중음과 저음의 성격을 지녔다고 하겠다. 이러한 성격의 악기는 고요하고 느린 템포의 곡을 연주하 기에 적당하다. 특히 향로에 조각된 악기이므로 백제 사비시대 원찰에서 선왕을 추모하는 의례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이다. 이와 같이 재현한 백제의 관악기 ʻ적(종적)ʼ이 일본 관악기인 사쿠하치와 유사한 점이 있 으므로 상호 비교해 보고자 한다. 4. 일본 샤쿠하치( 尺 八 )와 비교 일본의 단관악기로 샤쿠하치( 尺 八 )가 있는데, 길이가 1척 8촌( 一 尺 八 寸, 약 54.5cm)인 까닭에 악기명이 ʻ척팔(샤쿠하치)ʼ이다. 이 악기는 나라( 奈 羅 )시대에 중국 당( 唐 )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37) 백제금동대향로의 ʻ적(종적)ʼ과 관련이 있다. 37) 이지선 역주 岸 邊 成 雄 橫 道 萬 里 雄 吉 川 英 史 星 旭 小 泉 文 夫 공저, 일본음악의 역사와 이론 (서울 : 민속원, 2003), 쪽. 103
1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사진 16> 척팔 연주 <사진 17> 1척 8촌관 <사진 17-1> 척팔 취구 우선 연주 자세를 보면, 백제금동대향로의 ʻ적(종적)ʼ 연주와 거의 같다. 특히 연주자의 오른손이 위에 있고 왼손이 아래에 위치한 점은 일치한다. 관의 굵기도 향로의 규모와 유 사하여 주목을 끈다. 관의 길이는 악기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ʻ1척 3촌관ʼ(40cm 전 후)부터 ʻ3척관ʼ(91cm 전후)에 이르기까지 무려 12종이 있다. 38) 가장 표준이 되는 ʻ1척 8 촌관ʼ이 약 54.5cm이니, 이 역시 백제 ʻ적(종적)ʼ과 유사하다. 이 악기의 취구 단면을 보면, 경사취구가 아닌 평취구이니, 백제의 관악기 역시 ʻ평취구ʼ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지금까지 일본의 샤쿠하치가 나라시대 당으로부터 유입되었다고 하지만, 백제금동대향로 에 있는 백제의 ʻ적(종적)ʼ과 악기구조 뿐만 아니라 연주 자세까지 동일 형태이기 때문에 그 관련성 여부는 재검토가 요청된다. 특히 612년 백제의 미마지가 오나라에서 배운 기악( 伎 樂 )을 일본에 전한 기록이 있고, 39) 이것이 일본 탈춤의 기원이 된 사례가 있으므로 같은 시기에 백제 관악기 ʻ적(종적)ʼ도 일본으로 전래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38) 吉 川 英 史 監 修 小 道 美 子 藤 井 知 昭 宮 崎 まゆみ 編 集, 日 本 の 樂 器 ( 東 京 : 東 京 書 籍, 1992), 76-79쪽. 39) 日 本 書 紀 에 백제인 味 摩 之 가 귀화하였는데, ʻ 吳 나라에서 배워서 伎 樂 의 춤을 출 수 있다ʼ고 말하였다. 곧 櫻 井 에 안치하고, 소년을 모아 伎 樂 의 춤을 배우게 하였다. 崔 根 泳 外 5 人 編, 日 本 六 國 史 韓 國 關 聯 記 事 (서울 : 駕 洛 國 史 蹟 開 發 硏 究 院, 1994), 144쪽. 104
113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Ⅵ. 맺음말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지 16년 만에 처음으로 향로에 조각된 ʻ5악기ʼ를 집중 조명하 는 학술대회가 국립국악원에서 개최되었다. 본고는 관악기 2종 가운데 단관악기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마련한 글이다. 향로에 조각된 단관악기 연주자를 관찰하여 악기 구조를 파악하였고, 2005년에 김복곤 이 재현한 악기도 함께 검토하였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이 악기를 무엇이라고 불렀는지 악기 명칭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아울러 백제와 인접한 고구려와 중국의 고고학 자료에 나타난 단관악기를 상호 비교하여 그 친연 관계를 고찰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악기를 재현 하여 그 소리를 직접 들어서 악기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연구의 결과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단관악기의 구조는 오늘날의 퉁소보다는 굵고 긴 구조이다. 악기의 명칭은 백제대향로의 제작시기와 근접한 시기의 기록 그리고 국내 사료인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그리고 일본후기 와 일본삼대실록 을 바탕으로 고찰한 결과, 적( 笛 )이 가장 적합하며 가로 부는 적과 세로 부는 적의 구분을 위해서 ʻ적(종적)ʼ으로 표기하는 것이 적합 하다. 백제의 관악기 ʻ적(종적)ʼ을 인접한 고구려의 ʻ적(종적)ʼ과 관계를 고찰한 결과 고구려 적의 사용이 시기적으로 약 2세기 앞서기 때문에 고구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적의 재료인 대나무의 생장조건이 고구려와 차이가 있고, 유물에 표현된 관악기의 관이 굵 기 때문에 관이 가는 고구려와 차이점으로 보았다. 중국의 ʻ적(종적)ʼ과 비교해 본 결과, 악기편성에 있어서 친연성이 높았고 악기 구조면에 있어서는 고구려처럼 가늘고 긴 데 반해, 백제는 관이 굵은 점이 달랐다. 또한 ʻ적(종적)ʼ 관련 유물이 중국 남조보다 북조 지역에 많은 분포를 보였기 때문에 남조보다 북조와 친연 관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즉 백제의 ʻ적(종적)ʼ은 고구려 및 중국 북조의 ʻ적(종적)ʼ 문 화와 그 친연성이 확인되지만,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관이 굵은 점은 백제 ʻ적(종적)ʼ의 특징이다. 결론적으로 백제금동대향로 속에 있는 백제의 관악기 ʻ적(종적)ʼ은 중 저음의 성격을 지 닌 것으로 추정되고, 이러한 악기로 연주된 음악은 고요하고 중후한 맛을 자아냈을 것이 다. 아울러 이러한 성격의 악기는 느린 템포의 곡을 연주하기에 적당하다. 특히 향로에 조 각된 악기이므로 백제 사비시대 원찰에서 선왕을 추모하는 의례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로 짐작된다. 105
1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그리고 일본의 관악기 ʻ샤쿠하치( 尺 八 )ʼ와 악기구조 뿐만 아니라 연주 자세까지 동일형이 므로 그 관련성 여부는 재검토가 요청된다. 특히 612년 백제의 미마지가 오나라에서 배운 기악( 伎 樂 )을 일본에 전한 시기와 백제 관악기 ʻ적(종적)ʼ의 사용시기가 같기 때문에 일본으 로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는 과제로 남긴다. 106
115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참고문헌> 금동용봉봉래산향로 : 부여 능산리 건물터와 출토유물. 부여 : 국립부여박물관, 吉 川 英 史 監 修. 小 道 美 子 藤 井 知 昭 宮 崎 まゆみ 編 集. 日 本 の 樂 器. 東 京 : 東 京 書 籍, 김성혜. 백제금동대향로 다관악기 재현을 위한 연구. 음악과 문화 제21호. 대구 : 세계 음악학회, 三 國 史 記 樂 歌 舞 기사. 경주문화. 제6호. 경주 : 경주문화원, 三 國 遺 事 의 악기 관련 기사 검토. 경주문화 제5호. 경주 : 경주문화원, 박영배. 단소의 악기적 고찰. 한국전통악기학 제9호. 서울 : 한국전통음악학회,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 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 서울 : 학고재, 송방송. 백제악기의 음악사학적 조명. 한국음악사논총. 서울 : 민속원, 장천1호분의 음악사적 고찰. 한국고대음악사연구. 서울 : 일지사, 송혜진 글 강운구 사진. 한국악기. 서울 : 열화당, 신옥분 장익선. 5종악기와 향로의 상징에 대한 고찰. 한국음악사학보 제41집. 서울 : (사)한국음악사학회, 양 인리우 지음, 이창숙 옮김. 중국고대음악사 : 상고시대부터 송대까지. 서울 : 도서출판 솔, 劉 東 升 遠 荃 猷. 修 訂 版 中 國 音 樂 史 圖 鑑. 북경 : 인민음악출판사, 이상규. 단소와 퉁소.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 음악학논총. 서울 : 소암권오성박사화갑기념 논문간행위원회, 李 殿 福 글 김홍련 김성혜 번역. 길림 집안 오회분 4호묘. 한국음악사학보 제37집. 서울 : 한국음악사학회, 이종구. 백제금동대향로 주악 조소상 악기 명칭에 대한 연구. 音 樂 論 壇 제21집. 서울 : 한양 대학교 음악연구소, 이지선 역주. 岸 邊 成 雄 橫 道 萬 里 雄 吉 川 英 史 星 旭 小 泉 文 夫 공저. 일본음악의 역사와 이론. 서울 : 민속원, 이진원. 백제 尺 八 을 통해본 백제악에 대한 재검토. 한국음악사학보 제41집. 서울 : (사)한국음악사학회, 이혜구 역주. 악학궤범.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전인평. 금동향로의 다섯 국악기. 객석 통권 124호(6월호). 서울 : 주식회사예음,
1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趙 容 重. 百 濟 金 銅 大 香 爐 에 관한 硏 究 : 圖 像 解 釋 을 中 心 으로. 美 術 資 料 제65호. 서울 : 國 立 中 央 博 物 館, 猪 熊 兼 勝. 백제 능사 출토 향로의 디자인과 성격. 백제금동대향로와 고대동아세아. 부여 : 국립부여박물관, 崔 根 泳 外 5 人 編. 日 本 六 國 史 韓 國 關 聯 記 事. 서울 : 駕 洛 國 史 蹟 開 發 硏 究 院, 日 本 書 紀 崔 根 泳 外 5 人 編. 日 本 六 國 史 韓 國 關 聯 記 事. 서울 : 駕 洛 國 史 蹟 開 發 硏 究 院, 續 日 本 記 崔 根 泳 外 5 人 編. 日 本 六 國 史 韓 國 關 聯 記 事. 서울 : 駕 洛 國 史 蹟 開 發 硏 究 院, 續 日 本 後 記 崔 根 泳 外 5 人 編. 日 本 六 國 史 韓 國 關 聯 記 事. 서울 : 駕 洛 國 史 蹟 開 發 硏 究 院, 中 國 古 代 彫 塑 館. 上 海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三 國 遺 事. 108
117 백제금동대향로 단관악기의 성격 고찰 <Abstract> Examination on Dangwan instrument on Baekjegeumdongdaehyangno Kim Seong-hye (Lecturer, Dongguk University) For the first time in 16 years since its discovery,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held a seminar that highlighted ʻthe five instrumentsʼ on the incense burner. This study aims at examining the dangwan instrument of the two kinds of wind instruments on the incense burner. The structure of the instrument was examined through the posture of the performer carved on the incense burner and through its restored version by Kim Bokgon in 2005 and so was the original name of the instrument. The similar instruments found in the Goguryeo and Chinese documents were compared and the correlations between them were analyzed. Finally, it was attempted to characterize the instrument through the sound from the restored one.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The dangwan instrument shown in baekjegeumdongdaehyangno is thicker and longer than current tungso. Concerning its original name, the historical materials published in the years close to that of the production of the incense burner were referred to, such as Samguksagi, Samgugyusa, Ilbonhugi and Ilbonsamdaesillok. It was concluded that jeok is the most appropriate. To be more specific, it can be called jeok and jongjeok to make distinction between round-shaped and u-shaped mouthpiece. Through the examination on correlation between Baekjeʼs and Goguryeoʼs jeok(jongjeok), it turned out that Goguryeoʼs precedes Baekjeʼs by 2 century. Therefore, Baekjeʼs must have been derived from Goguryeo. However, owing to the different environmental conditions for the growth of bamboo, the material for the instrument, Baekjeʼs is thicker than Goguryeoʼs. When Chinese jeok(jongjeok) is compared with Baekjeʼs, itʼs more compatible with other instruments and thinner than Baekjeʼs. Since the relics related to jeok(jongjeok) have been found more in Bukjo(Northern Dynasties) than in Namjo(Southern Dynasties), itʼs assumed 109
1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that it was more popular in Bukjo. In short, Baekjeʼs jeok(jongjeok) were influenced by Goguryeo and Bukjo, but itʼs thicker than theirs due to the environmental condition for bamboo. Judging from the sound by the restored jeok(jongjeok), Baekjeʼs is assumed to be characterized by middle and low-pitched sound, which may have been appropriate for quiet and ceremonial music. Especially, since itʼs engraved on the burning incense, it must have been used for the ceremonial music at the sanctuary for the preceding kings in the Sabi era of Baekje. keywords : baekjegeumdongdaehyangno, wind instrument, danso, tungso, jeok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119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40)김 영 희* <국문초록> 온라인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되고 있다. 이제 온라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대부분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된다. 이제 소 통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전통음악의 저변확대라는 명제를 위해서도 온라인공간의 활용은 시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ʻ한국음악의 세계화ʼ에도 웹사이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대중의 소통방 식의 변화에 주목해 ʻ한국음악의 세계화ʼ라는 관점에서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영문웹사 이트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 안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방 안을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본고는 이를 위한 1차적인 단계로서, 한국음악을 소개 하는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조사에서 나타난 외국 사이트의 한국 전통 음악 소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대적으 로 정보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사이트가 거의 없다는 점과 최신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하지 않다는 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표기법이 표준화되 지 않거나 정보에 많은 오류가 있어 정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외국의 영향력 있는 웹사이트에서 한국음악 관 련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천 콘텐츠 강화와 위키피디아 등 유명 웹사이트 등에서 제공 하는 한국음악 관련 정보를 수정하도록 요구할 것, 그리고 최신 정보의 신속한 업데이 트, 동영상 및 시각자료 강화, 관련 사이트 운영자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절실히 필요 하다. 아울러 온라인 홍보전문가 양성과 반크(VANK) 등 국내 민간단체, 외국 사이트 운영자와의 다양한 접촉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한국음악학자 와 국립국악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핵심어 : 한국음악, 세계화, 웹사이트, 온라인, 콘텐츠 *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111
12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목 차 Ⅰ. 들어가며 Ⅱ. 한국음악 소개 해외 웹사이트 현황과 문제점 Ⅲ.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 Ⅳ. 나가며 Ⅰ. 들어가며 가 뭐야?, 인터넷에서 찾아봐! 요즘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온라인은 현대 를 사는 사람들의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되고 있다. 이제 온라인이라는 매개체 를 통해 대부분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유통 소비된다. 소통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래서 우리 전통음악의 저변확대라는 명제를 위해서도 온라인 공간은 필요불가결한 선택이 되었다.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웹사이트는 주요한 정보원의 역할을 하 고 있다. 웹 이용자들은 특정한 관심사가 생겼을 경우 일차적으로 검색엔진을 통해 그 주 제와 관련된 웹사이트를 찾아가 정보에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기업경영에도 웹사이 트가 전략적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웹사이트가 단순한 온라인 홍보매체로서가 아니라 중요한 전략적 도구가 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ʻ국악의 세계화ʼ에도 웹사이트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대중의 소통방식의 변화 에 주목해 ʻ한국음악의 세계화ʼ라는 관점에서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해외 웹사이트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 안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목 적이 있다. 본고는 이를 위한 일차적인 단계로서,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본고에서 ʻ국악ʼ이라 함은 무용을 포함한 한국의 전통음악과 전통적인 어법에 의해 새롭 게 만들어진 창작음악까지를 포함하며, 음악 무용뿐 아니라 국악기에 대한 소개 정보까지 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을 밝혀둔다. 본고에서는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웹사이트 가운데 영문 웹사이트에서 제공된 정보의 내용 112
121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만을 대상으로 검토할 것이다. 조사를 위해 구글( 야후( 애스크( 에이나인( 알타비스타( 에이 올( 라이코스( 등의 검색엔진에 한국음악과 관련한 주제 어를 입력하여 검색한 주소로 들어가 해외 자료에 접근했다. 검색엔진 별 특징에 따라 검 색방법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구글의 검색 점유율이 50% 이상인 점을 감안해 구글을 중심으로 검색을 진행했다. 웹 문서나 기사까지 포함할 경우 데이터가 워낙 방대하고, 그 유효성에도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구글 검색에서 조회수가 상위권에 포진한 웹 사이트를 중심으로 조사했음을 밝혀둔다. Ⅱ. 한국음악 소개 해외 웹사이트 현황과 문제점 조사에서 나타난 해외 웹사이트 상에서 한국 전통 음악 소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절대 적으로 정보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문사이트가 거의 없다는 점과 최신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하지 않다는 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표기법이 표준화되지 않 거나 정보에 많은 오류가 있어 정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하 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외국의 영향력 있는 웹사이트에서 한국음악 관련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웹사이트의 운영주체, 검색한 자료에서 발견된 몇 가지 문제들 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1. 절대적인 정보량과 전문사이트 부족 온라인에서 한국음악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웹자료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이다. 현재 우리음악이 소개되어 있는 해외 사이트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외국에서 운영하는 사 이트 중 국악을 소개하는 곳으로는 AKMR(한국음악연구회) 홈페이지가 대표적이다. 한국 음악학 관련 저서 목록, 회원들이 학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일부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전 문( 全 文 )을 올리고 있지 않아 저서 열람은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로는 시카고대학 동아시아 문화언어연구소 사이트가 검색 된 다. 하지만 한국 관련 비디오 자료 목록에 승무, 사물놀이 등 한국음악 관련 명칭 세 개가 뜨는 게 전부이다. 호주 모나쉬대학에는 한국문화 관련 웹페이지가 있는데 풍물에 대한 소 113
12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개가 일부 나와 있다. 이처럼 구글 검색을 통해 보여 지는 한국음악 소개는 간단한 개요에 대해 설명하는 1쪽짜리 웹페이지가 전부인 상태이다. 결론적으로 AKMR 외에는 한국음악 을 소개하는 전문 사이트가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음악 학자들의 정보교류 정도이므로 기관나 개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악 전문사이트는 전무한 현실이다. 대표적인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한국음악의 장르별 간략 소개가 있을 뿐 한국음악의 역사에 관한 자료는 없다. 반면 위키피디아의 중국음악 자료는 한국음악에 비해 내용도 충실하고 분량도 많다. 위키피디아 ʻ한국음악ʼ에는 수록되 지 않았던 음악사, 지역별 음악까지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경우 어느 정도의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웹사이트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음악 관련 자료의 양을 중국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기 위해 구글( 검색창에서 각각 ʻKorean musicʼ, ʻChinese musicʼ, ʻJapanese musicʼ을 주제어로 검색해 보았다. 검색어를 입력한 뒤 구글에 띄워진 화면 가운데 첫 10페이지를 기준으로 구글에서 제공하는 자료의 양을 헤아렸는데, 동영상을 제외한 웹 문서 자료만을 산정한 것이며, 전통음악에 기초한 창작음 악 관련 분야도 포함시켰다. 또한 사이트만 개설해 놓고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ʻ개점 휴업ʼ 사이트, 공사 중인 사이트, 그리고 북한음악 관련 사이트를 제외한, 접근 가능한 웹 문서 의 수치를 비교하였다. 음악을 논하면서 동영상 자료를 빼놓을 수 없지만 자료의 양을 확 인하고 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제외하였다. 그 결과 중국음악 관련 자료가 가장 많은 34건, 일본음악 자료는 22건인데 비해 한국음 악 자료는 6건에 불과하다. 웹자료의 수량으로 보았을 때 온라인에서 한국음악의 위상이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상당히 저조함을 알 수 있었다. 2. 정보의 오류 구글 등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는 사이트가 위키피디 아이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할 수 있는 형식의 온라인백과사전으로, 전 세계인이 참여하고 있을 만큼 인기와 영향력이 크다. 구글(goole.com)에서 ʻKorean musicʼ을 주제어로 검색을 하면 위키피디아에서 제공하 는 Music of Korea 라는 자료가 가장 상위에 뜬다. 구글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본 자료 를 앞쪽에 보여주기 때문에 위키피디아가 제공하는 자료가 가장 상위에 랭크되었다는 것은 114
123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위키피디아 자료를 가장 많이 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키피디아에서 제공하는 한국음악 관련 자료는 가장 중요하게 검토되어야 할 사항 중 하나이다. 1) 텍스트 자료의 오류 위키피디아는 목차를 설정한 후 목차별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키 피디아 ʻMusic of Koreaʼ의 목차를 보면 서두(Introduction) 아래에 민속음악, 궁중음악, 풍류방음악으로 구분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서두에서 한국음악의 유형을 궁중음악 (courtly), 풍류음악(aristocratic), 선비음악(scholarly), 종교음악(religion)으로 나누고 본 문에서는 민속음악, 궁중음악, 풍류음악만으로 구성하여 서술하고 있어 일관성이 없는 기 술을 보이고 있다. 본문 중의 선비음악을 민속음악(folk music)으로 정정해야 옳을 것이다. 2) 사진자료 오류 위키피디아에서는 한국악기에 대한 텍스트 자료를 사진과 함께 싣고 있는데, 이 사진 자 료 속에도 오류가 목격된다. ʻ피리ʼ의 사진자료로 올려진 사진이 피리가 아니라는 것을 쉽 게 알 수 있다. <사진 1> 워키피디아의 피리 사진 출처불명의 자료가 신뢰성 있는 사이트에 그대로 올라가고, 이러한 사항들이 수정되지 않는 사례는 이외에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음악에 대한 홍보를 체계적으로 한 115
1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다고 해도 그 콘텐츠의 내용을 올바르게 수정하지 않으면 잘못된 정보를 더욱 확대재생산 한다는 또 다른 문제를 나을 수 있다. 3. 통일되지 않은 표기법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영문 웹사이트 자료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한국어 표기방 식이다. 한국은 2000년 7월 새 로마자 표기법을 공포였고 이를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 다. 국립국악원이 발행 제작하는 모든 영문 책자 및 자료들도 이 로마자표기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문 자료인 만큼 외국에서 주로 통용 되고 있는 매큔-라이샤워(Mccune Reischauer)식을 따라야 한다는 견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쟁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Magazine) 의 표기는 참고할 만한 준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셔널 지오 그래픽 은 그동안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라 독도( 獨 島 )를 Tok-do 로 표기해 왔으나 2004년 11월에 발간된 8판에서는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Dokdo 로 바꾸어 표기했다. 정부가 고시한 새 로마자 표기법을 따라야 할 것인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따라야 할 것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음악을 효과적으로 해외에 알리려면 한 가지 표기법으 로 통일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 1>은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동아시아학센터(East Asian Studies Center) 웹사이트에 게시된 한국음악 소개 글이다. (이 자료는 ʻKorean musicʼ을 키워드로 검색한 자료가 빈약하여 ʻgayagumʼ 등 한국의 악기명, 혹은 한국음악의 종목을 키워드로 입력해 서 구한 것이다.) 원저자를 ʻ이보형ʼ이라고 밝힌 이 글은 한국어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탑재 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어 표기법, 철자 등에서 심각한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인용 1> 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인용 1> Traditional Korean dance and music evolved from the religious ceremonies of primitive tribes some 3,000 years ago. Dance and music were often linked to the agricultural cycle, as they are today in nongʼak, traditional farmerʼs music and were indispensable elements in festivals and ceremonies in traditional society. The Korean peopleʼs predilection for dance and music is evident in a number of ancient historical records from China and Korea as well as in murals found on the walls of Muryongshʼong the Tomb of the Dancers, dating back to the Koguryo period. ( 중략 ) 116
125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The lyrical kagok consists of a rhythmic pattern of either a 16 beat changdan (literally long-short ) or a variation based on a 16 beat changdan. The song is accompanied by an instrumental ensemble consisting of a komun-go, a six-string zither, kaya-gum, a 12-string zither, yanggum, a Korean-style dulcimer, haegum, a two-string fiddle without a fingerboard, pʼiri, a cylindrical oboe, and changgo, an hourglass drum. Unlike chontak, folk musicis fast tempoed, dynamic and exuberant. There are many different types of folk music in Koreaʼs traditional culture. Instrumental music includes : solo music, or sanh ensemble works, or sinaus farmers band music known as nongʼak, and samulnori, a four-piece percussion ensemble. There is a broad range of vocal folk music including : the operatic pʼansori, minyo, or folk songs; and chapha, secular songs performed by itinerant entertainers. ( 중략 ) The earliest evidence of Korean dance is found in historical records from China and Korea and, as mentioned above, in the murals found in Muryongshʼong, the Tomb of the Dancers, dating back to Koguryo. Among the extant written records is the Akhak Kwoebim (Canon of Musical Science), a comprehensive study of Korean music and dance compiled during the reign of Choson King Songjong (r ). This record provides explicit descriptions of dances, costumes props procedures and instruments and has helped modern artists recreate many traditional dances. Korean traditional dance is generally divided into two categories : court dance and folk dance. Court dance dates back to the Silla period and was actively promoted during the Koryo Kingdom, a period known for its love of festivals. Court dance took its present form during the strictly Confucian Choson period. In the Choson period, court dance was divided into chongxaemu, which was performed at court festivals, and ilmu, which was a ritual dance. Both chongxaemu and ilmu are characterized by extreme formality, an economy of movement, and solemn music. Each physical motion is deliberate and executed with the piety of a religious ceremony. The individuality and spontaneity found in folk dance are repressed in Choson era court dance. The chovng7aemu dancers are dressed in magnificent costumes combining the five cardinal colors - yellow, blue, hite, red and black - with flower-like gold crowns on their heads. The 117
1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costumes often have long rainbow-striped sleeves which cover the dancersʼ hands and trail along the ground. ( 후략 ) 1) 인디애나 대학교 동아시아학센터 웹사이트 상의 한국음악 소개 글 <표 1>은 위 웹 문서의 텍스트 가운데 한국어의 영문표기 사례를 발췌한 것이다. 하나 의 웹 문서 안에 매큔-라이샤워식, 로마자표기법, 그리고 기타 표기법 등이 혼재된 상태인 것을 알 수 있다. <표 1> 한국어의 영문표기 사례 표기 사례 매큔-라이샤워식 로마자표기법 pompʼae peompʼae beompae kaya-gum kayaŭm gayageum yanggum yanggŭm yanggeum pʼiri pʼiri piri pʼansori pʼansori pansori 두 번째 문제는 철자의 오류로 인해 정보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아래는 인디애나 대학교 동아시아학센터 웹사이트에 게시된 한국음악 소개 자료 가운데 수정되어야 할 오자 ( 誤 字 )들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한국명을 ( )에 넣고 매큔-라이샤워 표기법과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수정해 보았는데, 오자의 정도가 너무 심해 한국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표 2> 인디애나대학교 동아시아학센터의 한국음악관련 표기 수정 Muryongshʼong (무용총) Muyongchʼong/ Muyongchong Suyechʼon (수제천) Sujechʼŏn/ Sujecheon chontak (정악) chŏngak/ jeongak chapha (잡가) chapga/ japga taepwngso (태평소) tʼaepʼyŏngso/ taepyeongso pompʼae (범패) pŏmpʼae/ beompae Akhak Kwoebim (악학궤범) Akhak-kwoebŏm/ Akakkwebeom Songjong (성종) Sŏngjong/ Seongjong chongxaemu (정재무) chongjaemu/ chongjae chovng7aemu (처용무) chongjaemu/ chongjae chongsiaemu (정재무) chongjaemu/ chongjae nabichʼurr~ (나비춤) nabichʼum/ nabichum popeochʼum (범고춤) pŏpgochʼum/ beopgochum ralchnum (탈춤) tʼalchʼum/ talchum Ealchʼum (탈춤) tʼalchʼum/ talchum Kanggangsuuille (강강술래) Kanggangsulle/ Ganggangsulle 1) http : // 118
127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하나의 웹 자료에 통일되지 않은 표기법을 사용하고, 오자로 인해 정보의 전달력이 떨어 진다면 한국음악의 세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Ⅲ.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 1. 원천 콘텐츠 강화와 온라인백과사전에 대한 정보 수정과 신속 한 업데이트 온라인의 특성상 온라인 내에서 정보의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원천 콘텐츠 가 필수적이다. 이런 원천 콘텐츠를 정확하게 소개하는 사이트가 있어야만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웹사이트에 소개되거나 편집을 통해 응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 구글(google) 등 검 색엔진도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 영문 홈페이지의 DB를 강화하고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 등 온라인백과사전 사이트, 온라인 라이브러리 역할을 하는 디지털 도서관,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데이터베이 스화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사이트를 대상으로 정보를 집중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온라인백 과사전이나 디지털 아카이브 사이트는 신뢰와 정확성을 바탕으로 정보를 제공한다고 인정 하므로, 각종 웹사이트 운영자는 이를 다양하게 소개하거나 응용하고, 해당 정보의 신뢰성 을 높이기 위해 위키피디아 등을 자료출처로 인용하기 때문이다. 2. 동영상 및 시각자료 강화 인터넷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발전했지만 요즘은 기술 진보에 따라 속도 향상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 전용선의 속도 개선과 디지털카메라의 발전은 동영상 및 사진의 대중화, 생활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동영상 전문 사이트들이 주목 받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이트로는 유튜브(youtube)를 들 수 있다. 국내에도 무명이었던 아마추어 연주자가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스타가 되 기도 한다. 하모니카 연주자, 전자기타 연주자, 성악가 등 그 사례는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동영상 전문사이트에서 세계적인 스타가 탄생한다는 것은 음악이 언 어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음악은 인종과 국경을 넘어 누구와도 소통 119
12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할 수 있다. 난타나 비보이가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얻었던 것은 언어장벽을 뛰어넘는 무언 극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텍스트 기반의 우리음악 웹 문서는 조회수가 그리 많지 않다. 학자나 마니아가 아니면 특별히 검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사전 지식이 충분치 않다 면 용어나 역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정보 이용/활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동영상은 음악처럼 언어의 장벽을 넘어 감성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 다. 숙명가야금연주단과 비보이가 협연한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5,850,000회라는 경이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서 성공한 콘텐츠에 대한 사례를 통해, 국악도 새로운 소통방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성악보다는 악기 연주 콘 텐츠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콘텐츠의 분량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몇 분 내외의 짧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할 것이다. 국악 공연이나 전문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를 직접 동영상 전문 사이트에 올릴 수 있도록 장려할 필요도 있다. 공모전은 그 방법 의 하나가 될 수 있으며 국립국악원 또한 유튜브에 맞는 동영상 콘텐츠 확보에 관심을 기 울일 필요가 있다. 사진 자료 또한 그 중요성이 동영상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웹사이트에 떠있는 부정확한 사진자료나 저급한 사진은 한국음악의 이미지를 추락시킬 위험이 있다. 요즘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이 높아진 사진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립국악원에서 발행한 한국악기 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웹사이트에 활용할 수 있도록 사 진자료 제공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3. 전문 사이트, 관련 사이트 운영주체에 대한 지원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형식에 제한을 받을 수밖 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기관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네티즌의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할 수가 있기 때문에 호응도도 더 높을 수 있다. 양적 으로 충분하고, 질적으로 수준 높고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웹사이트 운영 주체 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만 한다. 구글에서 중국음악과 관련해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차지하는 웹사이트는 ʻwww. chinesemusic.netʼ이다. 이 사이트는 북미중국음악협회(Chinese Music Society of North America)가 1997년에 개설한 것으로, 중국음악 관련 공연 강의 출판물 등에 대해 활발하 120
129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게 소개하고 있다. 현재 외국에서 운영하는 한국 관련 음악 전문 사이트가 전무하다는 점 을 비춰볼 때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련 단체나 개인에 대한 지원은 경제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작권이 해결된 국립국악원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으며 정기적으로 운영자에게 최신자료를 제공하고 잘못된 사항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또한 민간외교사절로 불리는 반크(VANK : Voluntary Angency Network of Korea)의 웹사이트를 이용한 해외 소개에도 신경을 써야할 필요가 있다. 온라인은 다중과 다중과 소 통하는 방식이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외국에 잘못 소개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자는 취지 에서 설립된 반크는 우리나라의 어떤 외교관도 이루지 못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 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우리음악에 대한 자료제공과 우리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음악 관련 영문 웹사이트가 적은 편이다. 게다가 운영주 체도 다양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정확한 자료 제공과 더불어 운영주체들 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를 강구하고, 이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우리음악을 알려나갈 수 있는 전진기지를 세계 곳곳에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지인의 눈높이 나 정서에 맞게 우리음악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표 3> 한 중 일 전통음악 관련 웹사이트 운영주체별 현황 구 분 세부 구분 한국(6) 중국(34) 일본(22) 대학 기관 학술단체 강습/연주단체 2 1 개인 3 3 음반판매사 2 2 상업 여행사 2 2 기타 13(음악방송, 잡지, 공연에이전시 등) 6 4. 홍보방식의 온라인화 몇 년 전부터 국내외에서는 ʻ블로그 마케팅ʼ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카페나 블로그 중 영 향력이 큰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실시하는 것이다. 도서를 추천하거나 121
1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서평 관련 운영자들에게 신간을 적극 홍보하고, 그 회원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도서를 제공하는 것 등이다. 관심 마니아층에게는 신문이나 방송매체보다 블로거 운영자가 영향력 이 더 크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보다 한 분야에 대한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관 련 콘텐츠를 수집하기 때문에 오히려 종합적인 오프라인 미디어나 종합적인 웹 미디어보다 그 내용이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판사의 경우에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마케팅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제 홍보라는 것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으며, 그 중요성 이 점차 더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립국악원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영문 책자의 온라인 발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프라인 발간을 중단하고 온라인으로만 발행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제작비용과 시간, 발송비용을 절감하면서 더 많은 곳에 우리음악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 다. 그리고 콘텐츠를 온라인화하고,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Ⅳ. 나가며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 조사를 진행하면서 처음엔 걱정이 많았다. 검색엔진에 ʻKorea Traditional Musicʼ이라는 단어를 치면 너무나 많은 양의 검색결과가 나왔기 때문 이다. 이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분류하고, 어떻게 유효한 데이터를 찾아내고, 어떻게 체계 화를 시킬 까라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얼마가지 않아 또 다른 걱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방대한 자료의 대부분은 ʻKoreaʼ, ʻtraditionalʼ, ʻmusicʼ이라는 개별 단어의 검색결과와 함께 나왔기 때문 이다. 한국전통음악이라는 키워드에 걸맞는 검색결과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방대한 검색결과를 접했을 때 놀란 것 이상으로 이 빈약한 자료로 어떻게 내용을 구 성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또한 본고의 기획 단계에서는 해외 박물관 웹사이트를 통해 한국음악과 한국의 악기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도 살펴보고자 하였으나, 한국 악기나 한국 음악 관련 자료를 제공 하는 해외 박물관 웹사이트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해외 박물관에 한국 악기 기증 등을 통해 한국음악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기도 했다. 또한 해외 박물관 수장 고에서 잠자고 있는 한국 악기를 발굴하고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그 방법 122
131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위키피디아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제공하는 한국음악 관련 자료 의 오류를 수정하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주제여서 재미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해외 웹사이트 조사를 통해 온라인이라는 넓은 세상에서 외국인이 접속할 수 있는 우리음악의 체계적인 유통경로가 없다는 것에 적잖게 놀라고 당황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소통방 식에 맞는 새로운 접근방법의 모색이 절실하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표기법 통일, 최신 자료 제공 등 위에서 언급한 전략 또는 접근방식을 위해서는 국립국악원의 해외 홍보방법 에도 개선이 시급하다. 지금까지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은 결국 한국음악학자 들과 국립국악원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노력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법을 고수할 것 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유통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영문 콘텐츠 확충과 이를 통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는 양과 질을 담보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온라인 홍보 전문가를 양성하고, 반크와 같은 민간외교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방법으로 접근하면 예산과 인력부족이라는 문제와 또 다시 만 나게 될 뿐이다. 본고를 계기로 다중과 다중의 소통방식에 맞는 온라인의 특성에 맞춘 우리음악의 세계 화 전략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123
1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참고 웹사이트> 한국음악 관련 웹사이트 http: // &language=language001&category=multi enous+music&images=&c=&s=1 man-music#tab=active~checked%2citems~checked&title=east%20asian%20ar ts%20%3a%3a%20shaman%20music%20--%20britannica%20online%20encycl opedia 중국음악 관련 웹사이트 ntent.country/china_
133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SECTION=201.html
1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1017/rss04 http : // 일본음악 관련 웹사이트 nce.html le_id=8849&edition_id=
135 한국음악 관련 해외 웹사이트에 대한 검토 <Abstract> Examination on the websites introducing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 focused on the web pages in foreign based. Kim Young-hee (Researcher, NCKTPA) On-line has became the strongest communication tool for the people in this era. Many contents has become produced and consumed through this powerful communication method. The ways to communicate each other has changed. In order to expand the enthusiast bas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building the strategy for proper usage of this strong field of communication will be prerequisite to it. I have acknowledged that we also need to build a new strategy for the Globaliz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on the web. In this paper, my purpose was to studied about the change made on the communication devices among the public and its adaptation to their life. I have researched on how these changes have affected the communication paths and of what might needed for promoting the ʻglobaliz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ʼ in current fashion. Data has obtained and analyzed from the web-based informational materials on Korean Traditional Music -especially in foreign language- to suggest the problems and possible solutions within. This paper can be thought as the primary resource material on Korean Traditional Music on the web. The most urgent and significant problems on promoting the ʻglobaliz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ʼ was turned to be the amount of informational resources introduced on the web. There were few web-sites/pages that contain these information, and if any, it was fairly old and useless. I was also able to find that many of those web-based contents contains wrong information on designated subject. This two problems will be the main factor that interfere in promoting the globaliza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on the web. In order to solve these problems, we need to update informations on the well-known online informational pages/search engines such as Wikipedia and Google as well as 127
1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strengthen the quality of original contents. Fast updates on the newest information and audio/video material contents, and support on the providers of such website will be essential for it. Organizations -such as VANC- between the people and the countries need to contact and work closely, and more weight needed to be given on this subject by the professional Korean Musicologist,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nd last not least, the government. Keywords : Korean traditional music, Globalization, website, online, contents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137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1) 류 정 연1)** <국문초록> 정악해금곡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악곡은 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 취타계주, 천년만세, 웃도드리, 가곡, 경풍년으로 그 선율형은 운지법상으로 4지 2지 ( 潢 - 林, 林 - 太 ), 혹은 4지 3지( 汰 - 南, 南 - 仲, 潢 - 南 )로 진행하는 하행선율형이다. 仲 1지 운지법에서 유현 4지 2지로 진행하는 潢 - 林 의 선율형이 가장 많이 출현한다. 잉어질 선율형의 두 음은 고정적으로 일정하게 나타나며 영산회상계통 악곡에서는 출현위치도 일정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피리, 가야금, 거문고 특수주법의 선율형은 그 선율형의 첫음은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하나 선율형의 뒷음은 잉어질과 동일하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 다른 악기의 특수주법이 나 타나지 않는 경우에도 그 선율형은 동일한 유형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선 율형의 뒷음은 거의 동일하다.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의 선율형에서 서로 관련 있는 음은 선율형의 두 번째 음임을 알 수 있다. 가곡의 잉어질은 우조가곡은 피리의 서침표와 연관성이 있고, 계면조가곡은 현악기의 뜰동과 연관성이 나타난다. 잉어질은 이왕직아악부 시대의 악보에서부터 현재 출간되어 사용되고 있는 악보들 간에 특징적 인 차이점 없이 거의 동일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핵심어 : 잉어질, 운지법, 서침표, 뜰동, 특수주법 * 본 논문은 2007학년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중에서 일부(69~135쪽)를 발췌한 것임. ** 음악박사,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 해금수석. 129
1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목 차 Ⅰ. 서 론 Ⅱ. 잉어질의 출현 양상 Ⅲ. 결 론 Ⅰ. 서 론 정악 해금곡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곡은 현악영산회상, 평조회상, 관악영산회상, 취타 계주, 웃도드리, 천년만세, 가곡, 경풍년 등이다. 기존의 논문 1) 에서 잉어질은 피리의 ʻ서침 표ʼ, 현악기의 ʻ뜰동ʼ과 출현위치에 있어서 연관이 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하여 해금 정악곡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특수주법인 잉어질의 특성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연관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연 구방법으로는 각 악곡별 잉어질의 선율형의 유형을 살펴보고 잉어질의 출현 위치, 운지법 과의 관계를 알아본다. 또한 서로 연관관계에 있는 각 악기 특수주법의 선율형을 살펴보아 각 악기 특수주법 선율형의 특성을 알아본다. 각 악곡별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형에서 다 른 악기 특수주법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 다른 악기 선율형의 변화모습을 살펴본다. 또한 아악부해금보 2) 와 현재 정악해금보로 출판되어 사용되고 있는 각각의 해금보 3) 에 나타나 는 잉어질 유형의 차이점을 알아보아 시대적으로 어떠한 차이점이 나타나는지, 각 악보간 에 어떠한 차이점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본다. 1) 조선애의 잉어질 주법연구 및 뜰동과 서침주법과의 관계비교 (서울 :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 문, 1986)에서 잉어질과 뜰동, 서침주법이 서로 관련있는 주법임을 밝히고 있다. 위 논문에서는 잉 어질의 선율형, 각 악곡별 출현횟수, 잉어질과 연관있는 다른 악기의 특수주법의 종류에 관하여 논 의하고 있다. 본 논문은 논의 전개의 필요성에 의해 위 사실을 다시 확인 할 필요성이 있었다. 따라 서 본 논문에서는 잉어질의 선율형, 출현횟수 등을 위 논문을 참고로 하여 다시 확인했음을 밝히며, 논지전개의 편의를 위해 위 논문과 본인의 조사가 차이가 나는 부분에서만 인용됨을 밝히기로 한다. 2) 아악부해금보 에 나타나는 잉어질의 표기는 그 필체가 각각의 잉어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다 른 율명이나 부호의 표기는 거의 균일하게 나타나는 것에 비해 잉어질은 그 길이나 선의 굵기가 일 정하지 않은 경우가 나타난다. 악보의 편찬과정에서 기보한 사람이나 시기가 다를 수 있다고 추정 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같은 시기에 기보된 것으로 간주한다. 3)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정악보 중에서 김기수 강사준, 해금정악 (서울 : 은하출판사, 1979) ; 윤찬 구 강사준, 정악해금보 (서울 : 은하출판사, 1989) ; 안희봉, 해금정악Ⅰ (서울 : 은하출판사, 2004) ; 강사준, 정악해금보 (서울 : 은하출판사, 2006) 등을 자료로 사용한다. 130
139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Ⅱ. 잉어질의 출현 양상 1. 현악영산회상 현악영산회상에서 나타나는 해금의 운지법은 黃 을 유현 1지로 사용하는 운지법(이하 黃 1지 운지법) 4) 과 仲 1지운지법, 太 1지운지법이 나타난다. 먼저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의 유형을 알아보고,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 다른 악기 의 선율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본다.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현악영산회상>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은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며 각 악곡의 장단별 로 일정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보례 1> 중령산 장단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위치와 횟수 ⅰ 1회 <보례 2> 세령산, 가락덜이 장단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위치와 횟수 ⅰ 8회 (세령산 3회, 가락덜이 5회) <보례 3> 상현 하현 염불도드리 장단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위치와 횟수 상현도드리 돌장 장단 ⅰ 1회 4) 같은 黃 1지 운지법에서도 출현음이 악곡에 따라 다른 경우가 있으나 본고에서는 출현음보다는 1 지의 위치가 중요하므로 1지음이 동일하면 동일한 명칭을 사용한다. 131
14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도드리 장단 ⅰ (상현 3회, 하현1회, 염불3회) 7회 (상현 8회, 하현 3회, 염불 6회) 17회 <보례 4> 타령 장단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위치와 횟수 ⅰ ⅰ 2회 12회 1회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와 대금선율 잉어질이 나타나는 곳의 피리와 대금선율을 살펴보고, 규칙성을 알아본다. 잉어질이 나 타나지 않는 곡은 연구대상에서 제외한다. (1) 중령산 피리 5) 는 해금과 동일한 선율형이다.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潢 을 퇴성한 후에 林 ㄷ으로 연결된다. 대금은 潢 - 無 - 林 의 하행선율이 나타난다. <보례 5> 현악영산회상 <중령산> 10각 17박-11각 2박 5) 현악영산회상의 피리는 세피리를 사용하는데 연주법은 피리를 한공씩 치켜잡지 않고 제대로 잡고 부는 악곡이다. 현악영산회상의 피리선율에서는 서침표가 나타나지 않는다. 132
141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2) 세령산 잉어질이 3회 나타나는데, 이때 피리는 潢 이 나타난다. 2각과 9각은 潢 을 퇴성한 이후 에 林 ㄷ을 연주하고, 6각은 다른 선율형이 나타난다. 대금은 2각과 9각에서는 잔가락들이 나타나나 潢 - 無 - 林 의 선율형으로 볼 수 있다. 6각 에서는 피리와 동일한 선율형으로 해금선율과는 다른 선율형이 나타난다. <보례 6> 현악영산회상 <세령산> 5각, 6각 (3) 가락덜이 잉어질은 5회 나타나며 피리선율형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4) 상현도드리 잉어질이 돌장에서 1회 나타나고, 도드리장단에서 11회 나타난다. 1 돌장 돌장에서의 피리, 대금선율은 해금과 다른 선율이 나타난다. 2 도드리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피리선율은 세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 133
1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과 피리의 선율형이 동일하며 피리의 林 에 ʻ나니로(ㄷ)ʼ가 나타나는 경우, 잉어질이 나타나 는 선율형의 두 번째음인 林 만 동일하게 나타나며 ʻ니레( )ʼ가 붙은 경우, 선율형이 다른 경우이다. 대금선율도 세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潢 - 無 - 林 의 하행선율이 전체 12회 중에서 6 회 나타난다. 첫 번째 음인 潢 에 잔가락이 나타나기는 하나 林 으로 하행하여 潢 - 林 의 선 율형으로 나타나는 경우와 그 선율이 다른 경우가 나타난다. <보례 7> 현악영산회상 <상현도드리> 도드리 6, 7, 8각 (5) 하현도드리 <하현도드리>에서 잉어질의 출현위치는 상현도드리 반복선율로 상현도드리와 동일하다. (6) 염불도드리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피리선율은 <상 하현 도드리>와 동일하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잉 어질이 나타나는 선율과 피리의 선율형이 동일하며 피리의 林 에 ʻ나니로(ㄷ)ʼ가 나타나는 경 우는 4회 나타난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형의 첫 번째 음은 다르게 나타나나 두 번째 음인 林 은 동일하게 나타나며 ʻ니레( )ʼ가 붙은 경우는 2회 나타난다. 그 선율이 다른 경 우가 나타난다. <염불도드리>는 <상현도드리>의 반복선율과 새로운 도드리장단의 선율로 구성되어 있는데, <염불도드리>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선율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대금선율도 세 가지의 경우로 나타난다. 첫 번째 경우는 潢 - 無 - 林 로 전체 9회중 6회 나타난다. 두 번째 경우는 林 - 無 I- 潢 의 선율형으로 2회 나타나고, 세 번째 경우는 마지막 각의 타령 1박의 林 과 이어지는 潢 - 林 의 선율형이 나타난다. 134
143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보례 8> 현악영산회상 <염불도드리> 각, 51각-<타령> 1각 1-3박 (7) 타령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피리선율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경우는 해금 의 선율형과 동일한 선율형이며 피리의 林 에 ʻ나니로(ㄷ)ʼ가 나타나는 경우인데 14회 나타 난다. 다른 하나는 선율형의 첫 번째 음이 해금의 潢 과는 다르며 두 번째 음은 林 으로 동 일하게 나타나나 아무런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전체 15회중 단 한 번만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潢 - 無 - 林 의 하행선율은 9회 나타난다. 潢 - 無 I의 선율은 5회 나타난다. 無 - 潢 - 林 의 선율은 1회만 나타난다. 135
14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보례 9> 현악영산회상 <타령> 각 3)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가야금과 거문고선율 (1) 중령산 가야금에서는 잉어질의 출현선율과 동일한 潢 - 林 의 선율이 나타나나 이 부분에 특별한 장식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뜰동은 無 에서만 나타나며 잉어질과 일치하지 않는다. 거문고에서는 잉어질의 출현선율과 동일한 黃 - 㑣 의 선율 6) 이 나타나나, 특별한 장식음 은 나타나지 않는다. 거문고의 뜰동은 8각 3박에서 林 林 의 형태로 나타나나 잉어질과는 연관성이 없다 7). (2) 세령산 잉어질이 3회 나타나는데 가야금은 제2각의 潢 - 林 선율에서 뜰동이 1회 나타난다. 이외 의 선율형은 서로 다른 선율형으로 나타나며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거문고의 뜰동은 제 2각에서 1회만 나타난다. 다른 선율에서는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 고 있지 않으며 太 - 黃 - 㒇, 黃 - 㑖 - 㑣 등의 서로 다른 선율이 나타난다. 6) 거문고 악기의 특성상 한 옥타브 낮은 음이 나타난다. 본 논문에서는 옥타브 차이가 나타나더라도 율명이 같으면 동일한 선율형으로 보겠다. 7) 본 논문에서 비교대상으로 하는 거문고의 뜰동은 가야금의 뜰동과 같이 1/6,1/3박의 짧은 시가를 가진 뜰동만을 비교대상으로 한다. 136
145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보례 10> 현악영산회상 <세령산> 2각, 6각, 9각 (3) 가락덜이 잉어질은 5회 나타난다. 가야금의 선율형은 해금과 동일한 潢 - 林 의 선율로 나타나나 뜰 동은 2각의 선율인 潢 - 林 에서 1회 나타나고 다른 장식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거문고의 뜰 동은 2각에서 1회만 나타난다. 나머지 4회는 黃 - 㑣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나 특별한 장식음 은 나타나지 않는다. (4) 상현도드리 1 돌장 돌장에서 잉어질이 나타날 때의 가야금 선율은 潢 - 無 - 林 으로 되어있고, 마지막 짧은 싯 가의 林 을 퇴성하여 연주하도록 되어있다. 거문고 선율은 가야금 선율과 동일하여 黃 - 㒇 - 㑣 으로 되어있고, 마지막 짧은 싯가의 㑣 에 자출이 나타난다. 뜰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137
1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보례 11> <현악영산회상> ʻ상현도드리ʼ 돌장 6박-초장 1각 2박 2 도드리 잉어질은 11회 나타난다. 가야금의 뜰동은 潢 - 林 의 선율로 8회 나타난다. 거문고에서는 뜰동은 3회, 뜰-살갱은 4회, 선율은 다르나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 는 경우가 3회 나타난다. 뜰동은 모두 黃 - 㑣 㑣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뜰동은 2-3각과 22각-23에서 2회 나타나며, 뜰-살갱은 각에서 나타나며 각은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8각과 34각은 가야금과 동일한 선율이며 20각 은 太 - 黃 - 㒇 의 선율로 전혀 다른 선율이다. <보례 12> 현악영산회상 <상현도드리> 도드리 6각-7각 138
147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5) 하현도드리 <하현도드리>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부분은 <상현도드리>와 동일하다. (6) 염불도드리 <염불도드리>의 잉어질은 9회 나타난다. 가야금은 이 중 4회가 동일한 부분에서 뜰동이 나타나며 각이다. 나머지 5회중에서 4회는 뜰동 이후에 잉어질이 나 타나며 각이다. 39각의 1회는 전성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은 3회 나타나고, 4회는 뜰동 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난다. 뜰동의 선율형은 黃 - 㑣 㑣 이다. 거문고의 뜰동이 잉어질과 동일하게 나타나는 각은 각 이고, 뜰동 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나는 각은 각이다. (7) 타령 잉어질은 모두 15회 나타나는데 이중 14회가 가야금의 뜰동과 일치하고, 23각은 전성 과 일치한다. 뜰동은 모두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은 7회 나타난다. 뜰동의 선율형은 모두 黃 - 㑣 㑣 이다. 잉어질과 뜰동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각은 각이다 각에서는 黃 - 㣴 의 선율이 나타나고, 12각에서는 㒇 - 㑣 의 선율로 자출이 나타난다. <보례 13> 현악영산회상 <타령> 2각 3각 12각 139
1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상으로 현악영산회상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의 연주법과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현악영산회상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8)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상령산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는다. 중령산 1회 潢 - 林 ㄷ1회 潢 - 無 - 林 (하행) 1회 潢 - 林 1회 黃 - 㑣 1회 세령산 3회 潢 - 林 ㄷ 2회 潢 1회 潢 - 無 - 林 2회 潢 - 林 マ 林 1회 黃 - 㑣 㑣 1회 가락 덜이 5회 潢 - 林 ㄷ 5회 潢 - 無 - 林 5회 潢 - 林 マ 林 1회 潢 - 林 4회 黃 - 㑣 㑣 1회 黃 - 㑣 3회 상현 도드리 하현 도드리 潢 - 林 12회 4회 潢 - 林 ㄷ 5회 (다른음) - 林 4회 潢 - 林 ㄷ 2회 林 1회 潢 - 無 - 林 (하행) 6회 潢 - 林 1회 潢 - 無 - 林 (하행) 4회 潢 - 林 マ 林 8회 潢 - 無 林 1회 潢 - 林 マ 林 3회 黃 - 㑣 㑣 3회 黃 - 㑣 㑣 4회 黃 - 㑣 㑣 1회 黃 - 㑣 㑣 2회 潢 - 林 マ 林 3회 염불 도드리 9회 潢 - 林 ㄷ 4회 林 2회 潢 - 無 - 林 6회 潢 - 無 I- 潢 2회 潢 - 林 1회 潢 林 マ 林 - 潢 4회 黃 - 㑣 㑣 3회 (뜰동이후잉어질) 黃 㑣 㑣 - 黃 4회 潢 林 - 林 1회 (뜰동이후 잉어질) (전성이후 잉어질) 타령 15회 潢 - 林 ㄷ 14회 潢 - 無 - 林 9회 潢 - 無 I 5회 潢 - 林 マ 林 14회 潢 - 林 1회(전성) 黃 - 㑣 㑣 7회, 군악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는다. 2. 평조회상 평조회상에서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의 연주법과의 관계를 알아본다. 평조회상에서 피리는 향피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제대로 잡는 주법 9) 을 사용하고 있으며 서침표가 나타난 다. 해금의 운지법은 黃 1지운지법, 仲 1지운지법, 太 1지운지법이 나타난다. 8) 잉어질의 선율형과 다른 선율형이 나타나는 경우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9) 향피리의 제대로 잡는 주법은 8공을 모두 사용하는 연주법이다. 이영, 향피리 주법연구, (서울 : 단국대학교, 1997) 3쪽 참조. 140
149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평조회상에서 잉어질은 운지법과 출현음에 따라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상령산 에서 나타나는데 仲 1지운지법에서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며, 역안한 음인 4지에서 경 안한 음인 3지로 진행되는 선율형이다. 전체 잉어질 중에서 2회만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타령>에서 1회만 나타나는 경우로 仲 1지 운지법에서 潢 - 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나 머지 하나는 <중령산> 이하의 모든 곡에서 나타나는 경우로 黃 1지운지법에서 林 - 太 의 선 율형으로 나타나며 4지를 역안한 음에서 2지를 경안한 음으로 진행되는 선율형이다. 각 악 보 간에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횟수는 아악부해금보 의 <상현도드리>에서 1회 적게 나타 나며 다른 악보들은 동일하다.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와 대금선율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피리 10) 와 대금의 선율형과 장식음의 유형을 알아본다.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는 곡은 비교대상에서 제외한다. (1) 상령산 잉어질은 2회 나타난다. 잉어질 출현위치의 피리 선율형은 해금과 동일하며 서침표가 나타난다 11). <상령산>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서침표는 林 - 南, 汰 - 南, 潢 - 南 의 세 가지의 선율형인데 해금의 잉어질과 연관 있는 서침표는 汰 - 南 의 서침표이다. 대금의 선율은 여러 잔가락이 나타나기는 하나 크게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볼 수 있다. 南 에 ʻ ʼ의 장식음이 나타난다. 10) 평조회상의 피리연주법은 향피리를 치켜잡지 않고 제대로 잡고 연주한다. 11) 해금의 잉어질과 피리의 서침표가 동일한 선율에 나타나는 경우에 그 기보위치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평조회상 <상령산>에서 해금의 잉어질이 汰 - 南 의 선율에서 나타나는데 잉어질의 기 보는 汰 의 뒷꾸밈음으로 기보되어 있다. 그러나 피리의 서침표를 보면 南 의 앞꾸밈음으로 기보 되어 있다. 기보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나 실제로 연주되는 시점은 동일하다. 141
1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보례 14> 평조회상 <상령산> 14각 15-20박 (2) 중령산 <중령산>부터 염불까지에서 나타나는 피리 서침표의 선율형은 林 - 南 이다. 잉어질의 선율형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잉어질 출현위치의 피리선율형은 林 - 仲 - 太 로 林 은 퇴성하고 太 에 ʻ나니르(ㄷ)ʼ가 붙는 하행선율이 나타난다. 대금은 淋 - 㳞 - 汰 의 하행선율이 나타나고 汰 에 ʻ ʼ가 붙어 있다. <보례 15> 평조회상 <중령산> 10각 15박-11각 2박 ʻ 142
151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3) 세령산 잉어질은 3회 나타난다. 이때 피리의 서침표가 나타나지 않으며 3회 모두 다른 선율이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피리선율과 거의 동일한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4) 가락덜이 잉어질이 5회 나타나는 동안 피리의 서침표는 나타나지 않는다. 피리의 선율형은 2가지 의 선율패턴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林 - 仲 - 太 ㄷ의 하행선율로 3회 나타나고, 다른 하나는 林 - 南 - 林 - 太 의 선율로 2회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淋 - 㳞 - 汰 나 淋 - 湳 - 㳞 - 汰 의 하행선율로 나타난다. 규칙적인 장식음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보례 16> 평조회상 <가락덜이> 5각 4-7박, 6각 4-7박 (5) 상현도드리 1 돌장 돌장에서 잉어질은 1회 나타나는데 피리는 林 - 南 - 林 - 仲 - 太 의 선율로 나타난다. 이 때 대금은 淋 - 湳 - 淋 - 汰 의 선율로 피리와 거의 동일한 선율로 나타나며,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2 도드리 <상현도드리>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서침표는 林 - 南 의 선율에서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와는 다른 위치에서 나타난다. 잉어질 출현위치의 피리 선율형은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林 - 仲 - 太 의 하행선율은 5회(2각 5박-3각 1박, 7각 5박-8각 1박, 20각 5 박-21각 1박, 28각 5박-29각 1박, 33각 5박-34각 1박) 나타나며 가장 많이 나타난다. 잉어질 선율형의 두 번째음에 해당하는 太 에 피리의 ʻ니레( )ʼ가 나타나는 유형(6각 5박-7 143
15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각 1박, 22각 2박-4박, 22각 4박-23각 1박, 32각 5박-33각 1박)으로 4회 나타난다. 아 무런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 선율형(8각 2박-4박, 34각 2박-4박)은 2회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대부분 淋 - 㳞 - 汰 의 하행선율이 나타나고, 34각에서는 여러 장식음이 나타 나나 淋 - 汰 의 하행선율로 볼 수 있다. <보례 17> 평조회상 <상현도드리> 2각-3각 1박, 6각-7각 1박, 8각 (6) 염불도드리 <상현도드리>와 마찬가지로 피리의 서침표는 林 - 南 의 선율형이며 잉어질과 다른 위치 에 나타난다. 잉어질 출현위치의 선율형은 3가지로 나타난다. 林 - 仲 - 太 의 하행선율은 4회 ( 각) 나타난다. 잉어질 선율형의 두 번째 음의 출현위치와 동일 한 위치에 피리의 ʻ니레( )ʼ가 나타나는 경우는 3회( 타령1각) 나타난다. 아 무런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는 2회(5각과 14각)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淋 - 㳞 - 汰 의 하행선율이 6회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汰 - 㳞 I- 淋 의 선율이 2 회 나타난다. (7) 타령 피리의 서침표는 타령 전체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잉어질 선율형의 두 번째음의 출현위 치에 피리의 ʻ나니르(ㄷ)ʼ 가 나타나는 林 - 太 ㄷ의 선율형이 가장 많은 12회( 각) 나타난다. 나머지 선율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淋 - 㳞 - 汰 의 하행선율이 14회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144
153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보례 18> 평조회상 <타령> 2각, 25각 3)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가야금과 거문고선율 (1) 상령산 <상령산>에서는 가야금의 뜰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汰 - 潢 - 南 의 하행선율이 2회 나타난 다.(<보례 19> 참조) 거문고는 뜰동이 2회 나타나는데 㑣 - 㑖 㑀 의 선율로 나타나나 잉어 질의 출현위치의 거문고 선율에서는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고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 율형과 동일한 선율형이 나타난다.(<보례 19> 참조) (2) 중령산 가야금은 仲 에 뜰동이 나타나기는 하나 잉어질의 위치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부분에는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고 林 - 太 로 해금과 동일한 선율형이 나타 난다.(<보례 20> 참조) 거문고의 뜰동은 나타나지 않는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부분에서의 거문고 선율은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고 해금과 동일한 선율형이 나타난다.(<보례 20> 참조) 145
15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보례 19> 평조회상 <상령산> 14각 15-20박<보례 20> 평조회상 <중령산> 10각 17박-11각 2박 (3) 세령산 가야금의 뜰동이 1회 나타나는데 잉어질의 선율형과 동일한 林 - 太 マ의 선율로 나타난 다. 이후의 나타나는 뜰동은 모두 동일한 선율형태이다. 3회의 잉어질이 나타나는 동안 가 야금의 선율은 林 - 太 マ- 太, 南 - 林 - 仲, 林 - 黃 - 太 등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데, 2각에 서 뜰동이 1회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은 㑣 - 㑀 㑀 와 㑀 - 㣮 㑀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는데 잉어질 출현위치에 서 거문고의 뜰동은 가야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며 㑣 - 㑀 㑀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 다. 다른 선율은 가야금과 동일한 선율로 나타난다. <보례 21> 평조회상 <세령산> 2각 4-7박, 6각 4-7박, 9각 4-7박 (4) 가락덜이 가야금의 선율은 모두 동일하게 林 - 太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뜰동은 2각에서 1회 나 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은 㑣 - 㑀 㑀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이후의 모든 악곡에서는 동 146
155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일한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가락덜이에서는 4회의 잉어질이 나타나는데 이 중 1회가 뜰동 과 일치한다. 다른 선율형은 㑣 - 太 이 2회, 㑣 - 㑣 이 1회 나타난다. (5) 상현도드리 1 돌장 돌장에서의 가야금 선율은 林 - 仲 - 太 - 黃 의 하행선율로 太 를 퇴성하도록 되어있다. 특별 한 장식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거문고의 선율형은 㑣 - 㑖 - 㑀 - 僙 으로 하행진행 선율이며, 㑀 에서 자출이 나타난다. 2 도드리 잉어질이 11회 나타나는 동안 가야금의 뜰동은 林 - 太 의 선율형으로 8회 나타난다. 뜰 동이 나타나지 않는 부분은 太 - 㑣, 太 - 太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며, 20각에서는 전성 이후 에 잉어질이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횟수 중에서 4회가 거문고의 뜰동과 일치한다. 4회는 뜰이 나온 후에 살 갱이 나타난다. 나머지 선율은 㑀 - 㣩, 㑲 - 㑣 - 㑖 등으로 특별한 규칙이 나타나지 않는다. <보례 22> 평조회상 <상현도드리> 도드리 2각, 7각 3박-8각 2박 (6) 염불도드리 잉어질이 9회 나타나는데 이 중 4회가 가야금의 뜰동과 일치한다. 나머지 5회중에서 4 회는 뜰동 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나며, 1회는 전성 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나게 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거문고의 뜰동이 나타나는 부분은 3회이다. 뜰동 이후에 잉어질 147
15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 나타나는 부분은 4회 나타난다. 뜰동과 잉어질이 일치하는 부분은 <상현도드리>의 반복 선율 부분이고, <염불도드리>만의 선율에서는 뜰동 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난다. <보례 23> 평조회상 <염불도드리> 41, 5각 (7) 타령 잉어질이 16회 나타나는데 이중 14회가 가야금의 뜰동과 일치하게 나타난다. 잉어질과 거문고의 뜰동이 일치한 경우는 7회이다. 뜰동이 나타나지 않는 선율 중에서 7회는 㑣 - 㣴 의 선율형이고, 㑖 - 㑀 혹은 㑖 - 㑀 - 㑣 의 선율형이 나타난다. 가야금에 비해서 거문고의 뜰동 연주법은 잉어질과 관계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평조회상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특징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148
157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표 2> 평조회상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12)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상령산 汰 - 南 2회 汰 - 南 2회 汰 - 南 汰 - 潢 - 南 2회 㑀 - 㣮 2회 중령산 1회 林 - 仲 - 太 ㄷ1회 淋 - 㳞 - 汰 林 - 太 1회 㣩 - 㑀 1회 세령산 3회 林 - 仲 - 太 ㄷ1회 淋 - 㳞 - 汰 林 - 太 マ 太 1회 南 - 林 - 仲 1회 林 - 黃 - 太 1회 㑣 - 㑀 㑀 1회 㑲 㑣 - 仲 1회, 㑣 - 僙 - 㑀 1회 가락 덜이 林 - 仲 - 太 ㄷ3회 淋 - 仲 - 太 3회 5회 林 - 南 - 林 - 太 2회 淋 - 湳 - 㳞 - 汰 2회 林 - 太 マ 太 1회 林 - 太 4회 㑣 - 㑀 㑀 1회 㑣 - 太 2회 㑣 - 㑣 1회 상현 도드리 12회 林 - 太 ( 아 11회) 林 - 仲 - 太 5회 林 - 太 4회 太 淋 - 㳞 - 汰 11회 林 - 太 マ 太 8회 㑣 - 㑀 㑀 4회 林 - 南 林 - 仲 - 太 林 - 仲 - 太 - 黃 1회 㑣 - 㑖 - 㑀 - 僙 1회 1회, 太 - 㑣 1회, 㑣 - 㑀 㑀 4회 淋 - 汰 1회 太 - 太 1회, 염불 도드리 9회 林 - 仲 - 太 4회 黃 / - 太 3회 太 2회 淋 - 㳞 - 汰 6회 汰 - 㳞 I- 淋 1회 太 1회 林 - 太 マ 太 3회 㑣 - 㑀 㑀 3회 林 太 マ- 太 - 林 4회㑣 㑀 - 㑀 - 㑣 4회 太 - 林 1회 㑲 - 㑣 - 㑖 1회 林 - 潢 1회 㑣 - 㣴 1회 淋 - 㳞 - 汰 14회 林 - 太 マ 太 14회 㑣 - 㑀 㑀 7회 타령 16회 林 - 太 ㄷ12회 南 - 南 ^1회 㳞 - 汰 1회 林 - 太 1회 南 潢 - 南 1회 㑣 - 㣴 7회 㑖 - 㑀 1회 潢 - 南 1회 㑲 - 黃 - 㑲 南 - 南 ^ 南 - 潢 - 南 㑖 - 㑀 - 㑣 군악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음 3. 관악영산회상 관악영산회상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의 연주법과의 관계를 알아본 다. 13) 피리는 향피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치켜 잡는 주법을 사용하고 있고, 서침표가 빈번 하게 나타난다. 12) 잉어질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다른 악기의 선율형은 많이 출현하거나 특징적인 선율형만을 기 록하기로 한다. 13) 안희봉보 에는 관악영산회상이 수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비교대상에서 제외한다. 149
15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관악영산회상의 잉어질은 모두 仲 1지 운지법에서 41회 나타난다. 잉어질이 기보되어 있 는 음은 潢 이며 4지를 역안한 潢 에서 2지를 경안한 林 으로 연결되는 潢 - 林 의 선율형이다. 대부분의 잉어질이 나타나는 潢 의 싯가는 2박이나 <중령산>에서는 4박인 경우가 1회, <삼 현도드리>의 돌장이나 <타령>에서 1박이나 3박인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잉어질의 선율형은 潢 - 林 으로 일정하게 나타나나 동일한 선율형에서 항상 잉어질이 나 타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잉어질의 출현 위치는 다른 영산회상계통 악곡과 동일하게 장단 에 따라 일정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나 장구점과의 연관성보다는 악구의 반복이 나 동일한 위치에 동일한 선율형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각 악보간의 잉어질의 출현횟수나 위치는 거의 유사하나, <중령산>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강사준보 에서는 17각에 1회 더 나타난다. 이것은 3각과 17각이 동일한 선율이나 17각 에는 잉어질이 나타나고 있지 않으므로 동일하게 기보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악부해금보 에서는 7각에서 1회, 10각에서 1회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선율형은 다른 악보와 동일하다.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와 대금 선율 관악영산회상의 피리연주법은 향피리를 치켜잡는 연주법을 사용한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형의 피리와 대금 선율을 살펴본다. (1) 중령산 <중령산>에서의 피리 서침표는 無 - 林, 潢 - 林, 仲 - 林, 林 - 林 등의 여러 선율 형으로 나타난다. 잉어질은 4회 나타나는데 잉어질의 모든 출현위치에서 피리의 서침표가 나타나며, 그 선율형은 潢 - 林 이다 14).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대금의 선율형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㳞 - 淋 S이 2회, 潕 - 淋 S이 1회 나타나며, 㳞 - 淋 - 潕 - 淋 S의 다소 복잡한 선율형이 나타난다. 모두 淋 S가 나타나는 것은 동일하다. 14) 잉어질은 潢 - 林 의 선율형에서 潢 의 끝부분에 기보되어 있다. 그러나 피리의 서침표는 선율형의 두 번째 음인 林 의 첫머리에 기보되어 있다. 기보되어 있는 위치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실제 연주는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동일한 위치로 간주한다. 150
159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보례 24> <관악영산회상> ʻ중령산ʼ 3각 11-16박, 6각 15-20박, 10각 17박-11각 2박 (2) 세령산 피리의 서침은 潢 - 林, 仲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잉어질은 5회 나타나는데 이 중에 4회에서 피리의 서침표가 나타나며 그 선율형은 潢 - 林 이다. 2각의 서침표가 나타 나지 않는 선율형은 林 - 林 이다. 대금선율은 모두 동일하게 나타나는데 淋 - 潕 - 淋 S으로 淋 에 ʻ떠요(S)ʼ가 나타난다. (3) 가락덜이 <가락덜이>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서침표는 세령산과 동일한다. 이 중에서 潢 - 林 의 서 침표가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일치하는 서침표이다. 잉어질은 5회 나타나는데 이때 피리는 모두 동일한 부분에서 서침표가 나타나고 동일한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대금의 선율형은 淋 - 潕 - 淋 과 淋 - 潕 - 淋 S으로 나타난다. 淋 에 ʻ떠요(S)ʼ가 나타나는 선율은 3회이고, 나타나 지 않은 선율은 2회 나타난다. (4) 삼현도드리 피리의 서침이 나타나는 선율형은 仲 - 林, 潢 - 林, 無 - 林, 林 - 林 등으로 나타 난다. 해금의 잉어질은 11회 나타나는데 이때 피리는 7회 서침표가 나타난다. 이 부분의 선율형은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형과 동일한 潢 - 林 의 선율형과 仲 - 林 의 선율형으로 나뉜다. 潢 - 林 의 선율형은 돌장, 2각, 28각에서 4회 나타난다. 仲 - 林 의 선율형은 각에서 3회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서침표의 선율형은 잉어질과 동일 151
16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한 선율형이거나 선율형이 약간 다르더라도 선율형의 두번째 음은 林 으로 동일하다. 대금선율은 6가지의 선율형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선율형은 두 번째 음이 淋 인 경우와 潕 인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淋 인 경우는 10회이고, 潕 인 경우는 2회이다. 이 6가지의 선율형 중에서 6회는 淋 에 떠요(S)가 나타난다. <보례 25> <관악영산회상> 삼현도드리 2각, 6-7각 1박 (5) 염불도드리 <염불도드리>에서는 가장 다양한 선율형의 서침이 나타나는데 夾 二 - 林, 潢 - 林, 黃 - 林, 仲 - 林, 林 - 林, 無 - 林 등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해금의 잉어질은 8회 나 타나는데 이 중에서 피리의 서침표는 5회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선율형 중에서 서침표가 나타나는 선율형은 潢 - 林 와 仲 - 林 으로 나뉘는데, 潢 - 林 의 선율형은 각에서 3회, 仲 - 林 의 선 율형은 41각에서 1회, 51각은 타령1각 1박의 林 과 연결되어 나타난다. 서침표가 나타나 지 않는 선율형은 林 - 林 의 선율형으로 각에서 나타난다. 대금의 선율형은 5가지 경우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모든 선율형의 두 번째 음은 잉 어질의 선율형의 두 번째 음과 동일한 淋 으로 나타난다. 51각의 선율형은 타령 1각의 淋 과 연결되는 선율형이다. 이러한 선율형에서 淋 S는 2회 나타난다. (6) 타령 피리의 서침은 仲 - 林, 潢 - 林, 無 - 林 등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해금의 잉어질 152
161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은 8회 나타나는데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서침표는 6회이다. 이때의 피 리의 선율형은 潢 - 林 이 4회로 가장 많고, 仲 - 林 이 1회, 無 - 林 이 1회, 無 - 林 이 1 회, 潢 이 1회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대금의 선율형은 2각과 13각의 선율형만이 같고 나머지 선율형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일정하게 나타나는 장식음은 없 고 7각에 떠요(S)가 나타난다. 이상으로 관악영산회상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피리와 대금 선율과의 관계를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3> 관악영산회상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상령산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음 4회 중령산 ( 아 2회) (14박 2회, 18박 1회, 潢 - 林 4회 㳞 - 淋 S 3회, 潕 - 淋 S 1회 20박 1회) 세령산 5회 (5박 5회) 潢 - 林 4회, 林 - 林 1회 淋 - 潕 - 淋 S 5회 가락덜이 5회 (5박 5회) 潢 - 林 5회 淋 - 潕 - 淋 S 3회, 淋 - 潕 - 淋 S 2회 삼현도드리 潢 - 林 潕 - 淋 S 5회, 㳞 - 淋 S 11회 潢 - 林 4회, 仲 - 林 3회, 1회, 㳞 - 潢 - 潕 2회, (3박 4회, 夾 - 2회, 林 - 林 1회, - 林 1회 淋 - 淋 1회, 潕 - 淋 1회, 6박 7회) 淋 1회 염불도드리 8회 (3박 3회, 6박 5회) 潢 - 林 3회, 仲 - 林 2회, 林 - 林 3회 淋 - 淋 S 2회, 㳞 - 淋 1회, 淋 - 淋 3회, 潕 - 淋 1회, 㳞 - 淋 1회 타령 8회 (5박 1회, 8박 6회, 9박 1회) 潢 - 林 4회, 仲 - 林 1회, 無 - 林 1회, 無 - 林 1회, 潢 1회 潕 - 淋 S 1회, 淋 - 㳞 1회, 淋 - 淋 S 1회, 淋 - 淋 ^ 1회, 浹 - 淋 - 潕 1회, 潢 1회, 潕 1회 군악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음 153
16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4. 취타계주 취타계주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곡은 <길군악>과 <길타령>이다. 1) 길군악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길군악> 잉어질의 선율형은 潢 - 林 이다. 각 악보간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횟수는 동일하다. <보례 26> 취타계주 <길군악> 4박 장단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위치와 출현횟수 ⅰ 1회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와 대금 선율 피리의 서침표는 姑 - 林, 林 二 - 南, 潢 - 南, 姑 - 南, 仲 - 林, 潢 - 林 의 선율형 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때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서침은 潢 - 林 이다. 대금 은 湳 - 淋 㳞 의 선율형이 나타나며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2) 길타령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길타령>의 잉어질은 <길군악>과 동일하게 仲 1지운지법에서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 난다. <보례 27> 취타계주 <길타령> 장단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위치와 출현횟수 ⅰ ⅰ 1회 3회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와 대금 선율 피리의 서침표의 선율형은 潢 - 林, 無 - 林, 夾 - 林, 仲 - 林 의 4가지 선율형으로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서침표는 潢 - 林, 無 - 林 의 선율형으 로 2회 나타난다. 서침표가 나타나는 음은 林 으로 모두 동일하게 나타난다. 대금은 潕 - 淋, 浹 - 淋 - 潕, 潢 - 林, 潕 로 나타나 모두 다른 선율형이며,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장식음은 없다. 154
163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보례 28> 취타계주 <길타령> 13, 17각 취타계주의 <길군악>과 <길타령>에서 나타나는 해금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4> 취타계주 <길군악>과 <길타령>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길군악 潢 - 林 1회 (4박 장단 중 3박) 潢 - 林 1회 湳 - 淋 㳞 1회 길타령 潢 - 林 4회 (5박 1회, 8박 3회) 潢 - 林 1회, 無 - 林 1회 ( 아 5박 1회, 8박 3회 無 - 林 1회, 潢 1회 강 윤 5박 1회, 8박 4회 ) 潕 - 淋 1회, 浹 - 林 潕 1회, 潢 - 林 1회, 潕 1회 5. 웃도드리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송구여지곡>에서는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2회 나타난다. 각 악보별 출현 위치와 횟수는 동일하다. 155
16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선율 <송구여지곡>은 향피리를 사용하며 치켜잡지 않고 제대로 잡고 연주하는 악곡이다. 피 리 서침표의 선율형은 汰 - 南, 潢 - 南, 林 - 南 으로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피리선율은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46각은 汰 - 林 의 선율형이며 서침표는 나타나지 않는다. 56각은 林 潢 - 南 의 선율형이며 南 에 서침표가 나타난다. 잉어질 출현위치의 대금선율도 46각과 56각이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46각은 汰 - 潢 - 淋 S으로 淋 에 떠요(S)가 나타난다. 56각은 湳 이 지속음으로 연주되는 선율로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피리의 서침표와 대금의 떠요(S)가 나타나는 위치는 다르다. 가야금은 <송구여지곡> 전체에서 뜰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가야금 선율형은 46각은 汰 - 潢 - 南 의 하행선율이며 특별한 장식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56각은 仲 - 林 - 汰 - 南 의 선율로 전성이 나타난 이후에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이나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 나타나는 장식음은 없다. 거문고의 뜰동은 㑣 - 㑖 㑣, 㑣 - 㑀 㑣 등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 의 거문고 선율형은 46각은 太 - 㑲 의 선율이며 특별한 장식음은 나타나지 않고 56각은 太 - 太 㑣 (뜰징)의 선율형이 나타난다. <표 5> <웃도드리>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선율형 汰 - 南 2회 (3박1회 6박1회) 林 潢 - 南 1회, 汰 - 林 1회 汰 - 潢 - 淋 S 1회 하행선율, 뜰동없음 湳 1회 汰 - 潢 - 南, 仲 - 林 - 汰 - 南 太 - 㑲, 太 - 太 㑣 6. 천년만세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의 3곡 모두 仲 1지 운지법이다. 잉 어질이 나타나는 음과 장단 안에서의 위치를 알아보고, 다른 악기의 연주법과 연관관계를 알아본다. 1) 계면가락도드리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계면가락도드리>는 仲 1지 운지법이다. 잉어질의 출현음은 潢 이며 潢 - 林 의 선율형이 나 타난다. 각 악보간 잉어질이 나타나는 위치와 횟수는 동일하다. 156
165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선율 천년만세에서는 세피리를 사용하고 있다. <계면가락도드리>에서는 서침표가 악곡전체에 서 나타나지 않는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피리선율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潢 을 퇴성 하고 林 ㄷ가 나타나는 선율로 3회 나타나고, 잉어질과 전혀 다른 선율이 나타나는 경우로 2회 나타난다. 대금선율은 두 가지로 나뉜다.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4회 나타나고, 다른 한 경우는 林 으 로만 지속되는 선율이다.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장식음은 없다. 가야금은 뜰동과 잉어질의 출현위치가 동일하며 潢 - 林 マ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과 잉어질의 출현위치가 동일하다. 뜰이 나타나는 음은 두 가지로 나타나 는데 黃 - 㒇 㑣 이 4회, 黃 - 㑣 㑣 이 1회 나타난다. 2) 양청도드리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양청도드리>는 仲 1지 운지법으로 잉어질이 2회 나타난다. 潢 - 林,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각 악보 간 잉어질이 나타나는 위치와 횟수는 동일하다. 15)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선율 <양청도드리>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서침표는 汰 - 南, 林 - 南, 潢 - 南 의 세 가지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는데, 46각에서는 잉어질의 선율과 동일한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나타 난다. 63각의 타령장단에서는 해금과 동일한 선율형이 나타나며 서침표는 나타나지 않고 潢 - 林 의 선율형에서 林 에 나니레(ㄷ)가 나타난다. 대금은 46각에서는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해금선율과 동일하게 나타나고, 63각의 타령장 단에서는 潢 - 南 I의 선율형으로 해금선율과 다르게 나타난다. 가야금에서의 뜰동은 汰, 林,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46각의 4박장단에서는 太 - 汰 - 㑣 의 선율형으로 해금의 선율형과 다르며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63각의 타령장단에서는 잉어질과 같은 潢 - 林 マ의 선율형이 나타나며 뜰동이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은 63각에서만 1회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선율형은 46각의 4박 15) 아악부해금보 의 <양청도드리>는 현재 연주되고 있는 <양청도드리>의 1-55각까지 즉 1각 4정 간의 선율만이 해당되며 현행 56-64각 즉 타령장단의 선율은 <우조가락도드리>에 포함되어 있 다. 본고에서는 비교의 편의를 위해 현재 사용되는 악보를 기준으로 하여 아악부해금보 에서 <우조가락도드리>에 포함되어 있는 선율을 양청도드리에 포함시켜 비교하기로 한다. 157
16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장단에서는 㣴 - 太 - 㣴 의 선율형으로 해금과 다른 선율형이 나타나고, 63각의 타령장단에서 는 뜰동이 나타나는데 黃 - 㑲 㑣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3) 우조가락도들이 (1) 해금선율에서의 잉어질 잉어질은 仲 1지 운지법에서 汰 - 南,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6회 나타난다. 아악부해금보 19각은 선율형은 潢 - 林 으로 동일하나 그 위치는 다른 악보와 다르게 2 박에서 나타난다. 이것은 아악부해금보 에서 나타나는 기보차이 때문인데, 9각 선율은 다 른 각과는 다르게 1각 6정간으로 되어 있다. 그 9각 선율의 위치는 다른 악보들은 12박 한 장단에서 7-12박에 위치해 있고, 아악부해금보 는 장단의 1-6박에 위치해 있기 때문 에 잉어질의 출현위치에 차이가 나타난다. 각 악보간에 잉어질의 출현횟수는 동일하다. (2)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에서의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선율 <우조가락도드리>의 피리 서침표의 선율형은 汰 - 南, 潢 - 南, 林 - 南 등으로 나타 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피리 서침표의 선율형은 해금과 동일하다 각에서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각에서 나타나는 潢 - 林 의 선율형은 林 에 나니레(ㄷ)가 나타난다. 대금의 선율형은 각에서는 汰 - 南 의 선율형이나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각에서는 潢 - 南 의 선율형으로 南 에 I가 나타난다. 가야금의 선율에서 나타나는 뜰동은 모두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횟수가 동일하다. 뜰동의 선율형은 잉어질과 동일하게 汰 - 南 マ 南, 潢 - 林 マ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의 출현위치는 잉어질과 거의 동일하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의 거문고 선율 형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1각에서 나타나는 선율형은 㑣 - 㣴 - 㑣 로 잉어질의 선율형과 다 르며 특별한 장식음이 나타나지 않는다 각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太 - 太 㑲 의 선 율로 뜰이 나타나는 음은 선율형의 첫 번째 음인 太 이다. 19각의 㑣 - 㒇 㑣 의 선율형과 35각의 黃 - 㒇 㑣 의 선율형으로 뜰동이 나타난다. 천년만세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58
167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표 6> 천년만세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계면가락도드리 潢 - 林 5회 (3박 2회, 6박 2회, 9박 1회) 潢 - 林 ㄷ 3회 黃 - 仲 1회 林 - 黃 1회 潢 - 林 4회 林 1회 黃 - 㒇 林 4회 潢 - 林 マ 林 5회 黃 - 㑣 㑣 1회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 汰 - 南 1회 (4박장단 4박 1회) 潢 - 林 1회 (타령장단 8박 1회) 汰 - 南 4회 (9박 4회) 潢 - 林 2회 (8박 2회) 汰 - 南 1회 汰 - 南 1회 太 - 汰 㑣 1회 㣴 - 太 㣴 1회 潢 - 林 ㄷ 1회 潢 - 南 I 1회 潢 - 林 マ 林 1회 黃 - 㑲 㑣 1회 汰 - 南 4회 汰 - 南 4회 太 - 太 㑲 3회 汰 - 南 マ 南 4회 㑣 - 㣴 㣩 1회 潢 - 林 ㄷ 2회 潢 - 南 I 2회 潢 - 林 マ 林 2회 㑣 - 㒇 㑣 2회 7. 가곡 가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의 선율형 및 연주법과의 연관성을 우조 가곡과 계면조 가곡으로 구분하여 알아본다. 아악부해금보 에 수록되어 있는 가곡은 그 종류가 현행악보와 차이가 있다 16). 김기수보 를 기준으로 가곡 전체에서 나타나는 잉어질 의 특징을 살펴보고 아악부해금보 는 수록된 악곡만을 동일한 비교한다. 1) 남창 우조 (1) 해금 남창 우조 가곡 중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곡은 <우조두거>와 <삼수대엽>이다. 南 - 仲, 汰 - 南 의 하행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각 악보별 잉어질의 위치와 횟수는 동일하다. 17) 16) ʻ32정간 1행( 編 은 20정간1행) 한 장단에 기보되었으며, 악곡의 배열순서가 현행과 다른 점이 있다. 남창가곡만 실려 있다.ʼ 국립국악원, 아악부 해금보, 한국음악자료총서 28권, (서울 : 국립국 악원, 1989) 9쪽. 17) 아악부해금보 의 가곡은 현행악곡과 한 장단에 나타나는 정간의 수가 다르므로 아악부해금보 의 2정간을 현행 악보의 한 정간으로 여기고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횟수를 비교한다. 159
16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2) 피리 남창 우조 가곡에서 나타나는 피리의 서침표는 다양한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피리의 서 침표가 나타나는 곡은 <초수대엽>, <이수대엽>, <중거>, <평거>, <두거>, <삼수대엽>, <소 용이>, <우락>, <언락>, <우편>, <반엽>, <편락> 등이며, 선율형도 <반엽>과 <편락>을 제 외한 모든 곡에서 潢 - 南 이다. <삼수대엽>에서는 汰 - 南, <소용이>에서는 林 - 太 汰 - 南, <우락>에서는 林 - 南, <언락>에서는 林 - 南 汰 - 南 이 더 나타나고, <반엽>에 서는 林 - 南 의 서침표만이 나타난다. <편락>의 서침표는 우조부분과 계면부분 모두에서 나타나는데 우조부분에서 나타나는 서침표는 汰 - 南, 林 - 南 이다. 이 중에서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나타나는 서침표는 <우조두거>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삼수대엽>의 汰 - 南 선율형으로 1회만이 동일하게 나타난다. (3) 대금 대금은 해금의 잉어질의 선율과 비슷한 하행선율이 나타나나 일정하게 나타나는 장식음 은 없다. (4) 가야금 남창 우조 가곡에서 뜰동이 나타나는 악곡은 반우반계의 반엽 한곡으로 계면조 부분에 서 1회 나타난다. 계면 부분에서 다시 언급한다. (5) 거문고 거문고의 뜰동은 가야금에 비해서 나타나는 횟수가 많다. 18) <이수대엽>, <중거>, <평 거>, <두거>, <삼수대엽>, <소용이>, <우롱>, <우락>, <언락>, <우편>, <반엽> 등에서 나 타난다. 선율형은 㑖 㑀, 㑲 㑀, 僙 㑀, 潢 㑀, 㑲 㑣 이다. 잉어질과 일치하는 뜰동 은 나타나지 않는다. 같다. 남창 우조 가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곡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18) 거문고는 연주법상 ʻ뜰-동ʼ이 구음으로 나타나는 연주법이 많이 나타나나 해금의 잉어질과 동일 한 짧은 싯가의 뜰동만을 비교대상으로 삼는다. 160
169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표 7> <가곡> ʻ남창 우조 가곡ʼ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특수주법 출현악곡 두거(5회) 삼수(1회) 초수, 이수, 중거, 평거, 두거, 삼수, 소용, 우락, 언락, 우편, 반엽, 편락 이수, 중거, 평거, 두거, 삼수, 소용이, 우롱, 우락, 언락, 우편, 반엽 선율형 반엽 편락을 제외한 모든 악 곡 潢 - 南, 두거 삼수(+ 汰 - 南 ), 소용(+ 林 南 - 仲 - 太, 汰 - 南 ), 우락(+ 林 하행선율 삼수 汰 - 南 - 南 ), 언락(+ 林 - 南, 汰 - 南 ), 반엽( 林 - 南 ), 편락 ( 汰 - 南, 林 - 南 ) 㑀 僙 㑣 - 㑖 㑀 : 이수, 중 거, 평거 㑣 㑀 - 㑲 㑀 : 이수, 중거, 두거, 삼수, 우락 㑖 㑀 - 僙 㑀 : 두거, 우롱, 반엽 㑲 - 㑲 㑣 : 삼수, 소용, 우락, 언락, 우편 잉어질과 관련있는 특수주법 삼수대엽의 汰 - 南 1회만이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 타남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특수주 법 없음. 2) 남창 계면조 (1) 해금 남창 계면조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악곡은 <초수대엽>, <삼수대엽>, <소용이>, <언롱> 이다. 잉어질은 潢 - 林 의 하행선율형으로 나타난다. 각 악보별 잉어질의 위치와 횟수를 비교해보면 아악부해금보 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삼수대엽>에서는 6각 5-6정간 즉 현행 6각 3정간에 해당하는 위치에 1회 더 나타나며, 이때의 선율형은 다른 잉어질과 동일한 潢 - 林 의 선율형이다. <언롱>에서는 김기수보 의 6각에 해당되는 선율이 삭제되어 다른 악보보다 2회 더 적게 나타난다. (2) 피리 남창 계면조 가곡에서는 우조 가곡보다 서침표가 나타나는 악곡이 적다. <편락>의 계면 부분에서 1회 나타나며, <편수대엽>에서 2회 나타나는데 모두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 다. 잉어질과의 연관성은 없다. (3) 대금 대금은 해금의 잉어질과 비슷한 하행 선율형으로 나타나지만 일정하게 나타나는 장식음 은 없다. 161
17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4) 가야금 가야금의 뜰동은 우조에 비해서 많은 악곡에서 나타난다. <초수대엽>, <이수대엽>, <중 거>, <평거>, <두거>, <삼수>, <소용>, <언롱>, <평롱>, <계락>, <편락>, <편수>, <태평 가>에서 뜰동이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악곡에서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고, 편락에서는 林 - 林, <편수대엽>에서는 林 - 林 과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동 일한 위치에서 뜰동이 나타나는 악곡은 <초수>, <삼수>, <소용>, <언롱>이다. <초수대엽> 에서는 3회, <삼수대엽>에서는 7회, <소용이>에서는 8회, <언롱>에서는 2회가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5) 거문고 거문고의 뜰동은 가야금에 비해서 나타나는 악곡의 수가 적다. <삼수대엽>, <소용>, <언롱>, <편수>, <태평가>에서 나타나며 모두 㒇 㑣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동일한 위치에서 뜰동이 나타나는 악곡은 <삼수대엽>, <소용>, <언롱>으로 <삼 수대엽>은 7회, <소용이>는 8회, <언롱>은 1회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남창 계면조 가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 면 다음과 같다. <표 8> 가곡 ʻ남창계면조ʼ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특수주법 출현악곡 초수(4회), 삼수(9회 아 10회), 편락(1회), 소용(14회), 언롱(3회 편수(1회) 아 1회) 특수주법 나타나지 않음 초수, 이수, 중거, 평거, 두거, 삼수, 소용, 언롱, 평롱, 계락, 편락, 편수, 태평가 삼수, 소용, 언롱, 편수, 태평가 선율형 潢 - 林 潢 - 林 하행선율 대부분 潢 - 林 マ 林, 편락 林 - 林 マ 林, 편수 林 - 林 マ 林, 潢 - 林 マ 林 黃 - 㒇 㑣 잉어질과 관련있는 특수주법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특수주법 없음. 초수(3회), 삼수(7회), 소용(8회), 언롱(2회) 潢 - 林 マ 林 삼수(7회), 소용(8회), 언롱(1회) 黃 - 㒇 㑣 162
171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3) 여창우조 (1) 해금 잉어질은 두거에서 南 - 仲 의 선율형으로 2회,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1회 나타난다. 아악 부해금보 에서는 여창 가곡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19) 다른 악보들은 잉어질의 위치와 횟 수가 동일하게 나타난다. (2) 피리 피리의 서침표는 잉어질보다 많은 악곡에서 나타난다. <이수대엽> 뒷대여음, <중거> 뒷 대여음, <평거> 뒷대여음, <두거>, <우락>에서 나타나는데 <이수> <중거> <평거> 뒷대여 음은 모두 潢 - 南 의 선율형으로 1회씩 나타난다. <두거>에서는 두 가지 선율형으로 9회 나 타나는데 潢 - 南 의 선율형으로 7회,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2회 나타난다. <우락>에서는 3가 지의 선율형으로 8회 나타난다. 林 - 南 의 선율형이 5회, 汰 - 南 의 선율형이 1회, 潢 - 南 의 선율형이 2회 나타난다.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악곡은 두거인데 중여음에서 1회 만이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며 다른 서침표는 잉어질과 연관성이 없다. (3) 대금 대금의 선율은 잉어질의 선율형과 유사한 汰 - 南 과 南 - 仲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나 특별 한 장식음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4) 가야금 여창 우조의 가곡에서 가야금의 뜰동은 나타나지 않는다. (5) 거문고 거문고의 뜰동은 가야금에 비해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수대엽>, <중거>, <평거>, <두거>, <우락>, <반엽>에서 나타나는데 <이수대엽>에서는 㑖 㑀 의 선율형이 4회, 㣮 㑀 의 선율형이 2회 나타나고 <중거>에서는 㑖 㑀 의 선율형이 3회, 㣮 㑀 의 선율형이 2 회 나타나고 <평거>에서는 僙 㑀 의 선율형이 2회, 㑖 㑀 의 선율형이 3회, 㣮 㑀 의 선 율형이 2회 나타나고, <두거>에서는 僙 㑀 의 선율형이 4회, 㑲 㑣 의 선율형이 4회 나타 나고, <우락>에서는 㣮 㑀 의 선율형이 2회 나타나고, <반엽>에서는 㣮 㑀 의 선율형이 1 회 나타난다. 잉어질과 일치하는 뜰동은 나타나지 않는다. 19) 국립국악원, 아악부 해금보, 한국음악자료총서 제28집 (서울 : 국립국악원), 9쪽. 163
17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상으로 여창 우조가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9> 가곡 ʻ여창우조ʼ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특수주법 출현악곡 두거 (3회) 이수 중거 평거뒷대여음 1 회, 두거 1회, 우락 8회 이수6회, 중거5회, 평거7회, 두거 8회, 우락2회, 반엽1회 선율형 南 - 仲 汰 - 南 이수 중거 평거뒷대여음 : 潢 - 南 각 1회씩 두거 : 潢 - 南 7회, 汰 - 南 2회 우락 : 林 - 南 5회, 汰 - 南 1회, 潢 - 南 2회 유사한 하행선율 이수 : 㑀 - 㑖 㑀 4회, 㑀 - 㣮 㑀 2회 중거 : 㑀 - 㑖 㑀 3회, 㑀 - 㣮 㑀 2회 평거 : 㑖 - 僙 㑀 2회, 㑀 - 㑖 㑀 3 회, 㑀 - 㣮 㑀 2회 두거 : 㑀 - 僙 㑀 4회, 㑲 - 㑲 㑣 4회, 우락 㑀 - 㣮 㑀 2회, 반엽 : 㑣 - 㣮 㑀 1회 잉어질과 관련있는 특수주법 두거 : 汰 - 南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특수주법 없음 4) 여창계면조 가곡 (1) 해금 잉어질은 두거에서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6회 나타난다. (2) 피리 피리의 서침이 나타나는 악곡은 <평롱>과 <환계락>이다. <평롱>에서는 仲 - 林 과 潢 - 南 의 선율형으로, <환계락>에서는 汰 - 南, 潢 - 南, 林 - 南 의 선율형으로 서침표가 나타난다. 잉어질과는 나타나는 악곡이 다르다. (3) 대금 대금은 해금의 잉어질과 동일한 潢 - 林 의 선율형이 나타나나 일정하게 나타나는 장식음 은 없다. 164
173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4) 가야금 가야금의 뜰동은 계면조의 모든 가곡에서 나타나는데 모두 潢 - 林 의 선율형이다. <이수 대엽>에서는 3회, <중거>에서는 4회, <평거>에서는 3회, <두거>에서는 9회, <평롱>에서는 4회, <계락>과 <환계락>에서는 1회, <편수대엽>에서는 3회, <태평가>에서는 4회, <반엽> 의 계면조부분에서는 3회 나타난다. 이 중에서 <두거>의 뜰동은 9회중에서 6회가 잉어질 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며 선율형도 동일하다. (5) 거문고 거문고의 뜰동은 가야금에 비해서 나타나는 악곡과 횟수가 적다. <두거>, <평롱>, <계 락>, <환계락>, <태평가>에서 㒇 㑣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는데 <두거>에서는 6회 나타나 고 나머지 악곡에서는 각각 1회씩 나타난다. 이 중에서 <두거>의 뜰동은 잉어질이 나타나 는 곳과 일치한다. 여창 계면조 가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과 다른 악기 특수 주법과의 관계를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표 10> <가곡> ʻ여창계면조ʼ의 잉어질과 다른 악기 선율형과의 관계 해금 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 계면조 전곡 특수주법 출현악곡 두거 (6회) 평롱 환계락 (이수 3회, 중거 4회, 평거 3회, 두거 두거 9회, 평롱 4회, 계락 1회, 6회 평롱 계락 환 환계락 1회, 편수3회, 태평가 계락 태평가 1회 4회, 반엽의 계면조부분 3회) 평롱( 仲 - 林, 선율형 潢 - 林 潢 - 南 ) 환계락( 汰 - 南, 동일한 선율형 潢 - 林 マ 林 㒇 - 㑣 㑣 潢 - 南, 林 - 南 ) 잉어질과 관련있는 특수주법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특수주법 없음 두거 6회 潢 - 林 マ 林 두거 6회 㒇 - 㑣 㑣 이상에서 가곡의 잉어질 유형과 다른 악곡 선율형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곡에서의 잉어질은 각각 악곡에 따라 다소 다른 유형으로 나타난다. 남창 우조 가곡에 165
17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서는 <두거>와 <삼수대엽>에서만 잉어질이 나타난다. <두거>에서는 南 - 仲 의 선율형으로 5 회 나타나고, <삼수대엽>에서는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1회 나타난다. 남창 계면조 가곡에서 는 <초수대엽>, <삼수대엽>, <소용>, <언롱>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데 潢 - 林 의 선율형으 로 나타난다. <초수대엽>에서 4회, <삼수대엽>에서 9회, <소용이>에서 14회, <언롱>에서 3회 나타난다. 여창 우조 가곡에서는 <두거>에서만 잉어질이 나타나는데, 3회 나타나며, 南 - 仲 과 汰 - 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여창 계면조에서도 <두거>에서만 잉어질이 나타나 며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6회 나타난다. 즉 우조 가곡에서의 잉어질은 南 - 仲 과 汰 - 南 의 선 율형으로 나타나고, 계면조 가곡에서는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운 지법상 4지에서 3지 혹은 2지로의 진행하는 선율이다. 각 악기간의 연주법의 관계를 보면 다른 악곡에 비해 서로 연관관계가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악기간의 연관관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남창 우조 가곡에서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서침표가 나타나는 악곡은 <삼수대엽> 한곡인데 단 1회만이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가야금은 뜰동이 나타나지 않으며, 거문 고는 뜰동이 나타나나 잉어질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대금은 잉어질이 나타나는 선율과 유 사한 선율이 나타나나 일정하게 나타나는 장식음은 없다. 여창 우조 가곡 피리에서는 잉어질이 나타나는 악곡보다 많은 종류의 악곡에서 서침표가 나타난다. 이중 잉어질과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서침표는 <두거>에서 汰 - 南 의 선율형으 로 1회만이 나타난다. 가야금의 뜰동은 여창 우조 가곡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거문고의 뜰동은 여러 악곡에서 나타나는데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뜰동은 없다. 남창계면조 가곡의 서침표의 선율형은 잉어질과 동일하나 동일한 악곡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 가야금은 많은 악곡에서 뜰동이 나타난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일치하는 악곡은 <초수대엽>, <삼수대엽>, <소용>, <언롱>이다. 거문고의 뜰동이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일치 하는 악곡은 <삼수대엽>, <소용이>, <언롱>이다. 여창 계면조 가곡의 잉어질은 <두거>에서만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피리의 서침 표는 잉어질이 나타나는 악곡과 다른 악곡에서 나타나므로 잉어질과 연관성은 없다. 가야 금은 계면조 가곡의 모든 악곡에서 뜰동이 나타난다.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나는데, <두 거>에서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거문고의 뜰동은 <두거>에서 잉 어질의 출현과 일치하게 나타난다. 166
175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표 11> <가곡>의 잉어질의 출현음과 출현위치 우조 계면조 남창 여창 남창 여창 곡명 두거 삼수 두거 초수, 삼수, 소용, 언롱 두거 출현음과 선율형 南 ( 南 - 仲 2회) 仲 ( 南 - 仲 ) 南 ( 汰 - 南 ) 汰 ( 汰 - 南 1회) 潢 ( 潢 - 林 ) 林 ( 潢 - 林 ) 초수 삼수 소용 언롱 출현 횟수와 위치 5회 1회 (3박 2회, (5박 1회) 14박 3회) 3회 (3 5 14박 1회) 9회 4회 (3박 3회, 3박 2회, 박 1회, 14 16박 14박 1회 1회, 14회 6회 (3박 6회, (3박 3회, 3회 박 1회, ( 박 14박 1회, 박 1회) 1회, 16박 1회) 8박 3회 다른악기 특수주법 과 연관성 서침표 서침표 가야금 뜰동 거문고 뜰동 가야금,거 문고 뜰동 다른 악기 연주법과의 관계를 보면 피리 서침표는 남창가곡에서는 <삼수대엽>, 여창 가 곡에서는 <두거>에서만 각각 1회만이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현악기의 엽주법과는 연 관성이 없다. 계면조 가곡에서는 남창 가곡에서 우조 가곡보다는 많은 가곡에서 잉어질이 나타난다. 선율형은 모두 潢 - 林 으로 서침표와는 관련이 없으며, 가야금과 거문고의 뜰동과 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뜰동은 우조 가곡에 비해 현저히 많이 출현한 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모든 곡에서 뜰동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즉 우조 가곡에서는 잉어질은 피리의 서침표와 연관성이 있고, 계면조 가곡에서는 현악 기의 뜰동과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8. 경풍년 경풍년에서 잉어질이 나타나는 악곡은 <우조두거>와 <변조두거>이다. 1) 우조두거 <우조두거>에서 잉어질은 김기수보 를 제외하고는 모든 악보에서 대동 소이하게 나타 167
17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난다. 김기수보 는 잉어질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위치에 추성( )표기 가 되어 있다. 아악부해금보, 윤찬구보, 강사준보 에서는 南 - 仲 의 선율형으로 4회( 아악부해금보 3회) 나타난다. 다른 악기의 특수주법이 나타나지 않으며 南 - 仲 의 유사한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2) 변조두거 <변조두거>에서 잉어질은 우조두거와 동일한 선율인 1-3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김기수보 는 <우조두거>와 동일하게 잉어질이 나타나지 않고 그 위치에 추성( )으로 표 기되어 있다. 南 - 仲 의 선율형으로 3회 나타난다. 다른 악기의 선율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Ⅲ. 결 론 잉어질은 운지법상으로 4지 2지( 潢 - 林, 林 - 太 ), 혹은 4지 3지( 汰 - 南, 南 - 仲, 潢 - 南 ) 로 진행하는 하행선율에서 나타나며 그 싯가는 대부분 2박 1박이다. 仲 1지 운지법에서 유현 4지 2지로 진행하는 潢 - 林 의 선율형이 가장 많이 출현함을 알 수 있다. <표 12>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의 유형 선율형 潢 - 林 林 - 太 汰 - 南 南 - 仲 潢 - 南 운지법 4지 2지 4지 2지 4지 3지 4지 3지 4지 3지 출현 악곡 및 횟수 총 출현 횟수 현악영산회상(중령산-타령)-49회, 가곡 평조회상(상령산)-2회, 관악영산회상(중령산-타령)-41회, (남 여 웃도드리-5회, 취타계주(길군악, 길타령)-5회, 평조회상 창우조 천년만세(양청도드리, 평조회상 천년만세(계면가락도드리, 양청 (중령산- 두거) 우조가락도드리)-5회, (타령) 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8회, 타령) 경풍년 가곡 (남창우조삼수대엽 가곡(남창계면 초수 삼수 소용 (우조두거, 여창우조두거)-2회 이 언롱, 여창계면 두거)-36회 변조두거) 139회
177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잉어질의 출현위치가 악곡 안에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영산회상 계통의 악 곡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인데 세령산 가락덜이의 10박장단에서는 5박에서 나타나며, 도드리 장단에서는 6박과 3박에서 나타나는데 주로 6박에서 나타난다. 타령장단에서는 5박 8박 11박에서 나타나는데 주로 8박에서 나타난다. <송구여지곡>과 <길타령>에서도 영산회상계 통 악곡에서의 경우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천년만세의 타령장단에서는 박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장구점과의 연관성보다는 악곡안에서 일정한 위치에 일 정한 선율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가곡에서의 잉어질은 일정한 위치에서 나타나지 않는 데 이것은 잉어질이 나타나는 악곡의 수도 많지 않고 노래반주곡으로서 다양한 선율이 전 개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잉어질의 선율형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의 선율형과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잉어질은 한 악곡 내에서 일정한 선율형으로 나타나며 선율형의 두 음도 항상 고정적이 며 일정한 위치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악기 특수주법은 각 악곡 내에서 여러 선 율형으로 다양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나 는 특수주법의 선율형은 그 선율형의 첫 음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으나 선율형의 뒷 음은 잉어질 선율형과 동일하게 항상 고정적이다. 잉어질의 출현위치에서 다른 악기의 특수주법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도 다른 악기의 선율형이 일정한 유형으로 나타나고, 일정한 장식음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악기의 선율형은 잉어질의 선율형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 선율형의 뒷음은 거의 동 일하다. 현악영산회상의 피리선율이 잉어질의 선율형과 가장 유사한 경우이며, 선율형의 뒷음에 ʻ나니레(ㄷ)ʼ나 ʻ니레( )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대금의 선율형은 다른 악기의 선 율형에 비해 다양한 선율형이 나타나나, 그 선율형 중에서 잉어질의 선율형태와 유사한 선 율형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잉어질은 악곡 내에서 다른 악기 특수주법보다 더 고정적으로 나타나며,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의 선율형에서 서로 관련있는 음은 선 율형의 두 번째 음임을 알 수 있다. 잉어질과 다른 악기의 특수주법과의 연관성은 그 연주 법이 나타나는 선율형과 그 위치에 따라 연관관계의 유무가 달라지며, 잉어질과 동일한 위 치에 나타나는 서침표와 뜰동은 그 선율형의 두 번째 음이 동일함을 알 수 있다. 가곡의 잉어질은 영산회상계통의 악곡보다 나타나는 횟수가 적으며, 계면조가곡이 우조 가곡에 비해서 더 많이 나타난다. 선율형은 우조 가곡에서는 南 - 仲, 汰 - 南 의 두 가지 선 율형으로 나타나며, 계면조는 潢 - 林 의 선율형으로 나타난다. 다른 악기 연주법과의 관계를 보면 피리 서침표는 남창 가곡에서는 <삼수대엽>, 여창 가곡에서는 <두거>에서만 각각 1 회만이 동일한 위치에서 나타난다. 현악기의 연주법과는 연관성이 없다. 남창 계면조 가곡 169
17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에서는 우조 가곡보다는 많은 곡에서 잉어질이 나타난다. 선율형은 모두 潢 - 林 으로 서침표 와는 관련이 없으며, 가야금과 거문고의 뜰동과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가야금과 거문고 의 뜰동은 우조 가곡에 비해 현저히 많이 출현한다. 잉어질이 나타나는 모든 곡에서 뜰동 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즉 우조 가곡의 잉어질은 피리의 서침표와 연관성이 있고, 계면조 가곡에서는 현악기의 뜰동과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경풍년에서도 가곡과 동 일한 유형으로 잉어질이 나타나는데 <우조두거>와 <변조두거>에서 나타난다. 김기수보 를 제외한 모든 악보에서 나타난다. 각 악보간 잉어질의 출현위치와 횟수는 아악부해금보 와 김기수보 의 <경풍년>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기보상의 문제이거나 선율이 삭제된 경우가 대부 분이다. 즉 아악부해금보, 김기수보, 윤찬구보, 안희봉보, 강사준보 의 잉어질 은 아악부해금보 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기는 하나 그것은 기보상의 문제이거나 선율 이 삭제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각 악보간 잉어질의 출현 위치와 횟수는 대동소이하다. 170
179 정악해금곡에서 나타나는 잉어질과 다른 악기 특수주법과의 관계 <Abstract> A Study on the Traditional Playing Technique for Haekum - Focused on the musical sign - Yoo Chung-yeon (Member of court music troupe, NCKTPA) I studied in this thesis how Ing-eojil(잉어질, one of the typical playing technique for heakum) appear in Jeongak( 正 樂 ) and how they are associated with the technique of other instruments. Ing-eujil is seen in musics such as Hyonak youngsan hoesang, Pyoungjo hoesang, Gwanak youngsan hoesang, Chuitageju, Chonnyon mansei( 千 年 萬 歲 ), Utdoderi( 細 還 入 ) and Gakok( 歌 曲 ). The melodies are downward tunes with the fingering going down like 4 2(Hwang-Lim( 潢 - 林 ), Lim-Tae( 林 - 太 ) or 4 3(Tea-Nam( 汰 - 南 ), Nam-Joong( 南 - 仲 ), Hwang- Nam( 潢 - 南 ). In fingering of Joong 1, melodious types of Hwang-Lim that goes from yoohyun 4 2 appears most frequently. Two sounds of Ing-eojil tune are fixed and are likely to appear at regular places in Yongsan hoesang musics. When the special technical melodies of piri( 觱 篥 ), kayagum( 伽 倻 琴 ) and geomungo( 玄 琴 ) appear at the same place of Ing-eojil, the first tones may be different, but the next tones are almost the same. When the special techniques of other instruments arenʼt found where Ing-eojil appears, the melodies are likely to be the same, especially with the next tone. We can find the second sound associated with both Ing-eojil and the special technical melodies of other instruments. With Ing-eojil of Gakok, Uhjogakok is associated with suhchimpyo of piry and Gemyonjo gakok( 界 面 調 歌 曲 ) is associated with ddeuldong(뜰동) of stringed instrument. Keywords : Ing-eojil, fingering, suhchimpyo, ddeuldong, special techniques 171
180
181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총유( 寵 綏 )의 음독( 音 讀 )에 관하여 양 명 석1)* <국문초록> 이 글은 <정대업>의 8번째 곡인 총유( 寵 綏 ) 의 음독에 관한 글이다. 寵 綏 는 세종대 에 지어진 정대업이 세조7년(1464년)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된 이후 <정대업>의 여덟 번째 곡 이름으로 그 이름은 현재에 이르기 까지 변형되거나 바뀐 적이 없이 전해 내려왔다. 寵 綏 는 한자로만 그 이름이 전해져 내려오고 1955년도 설립된 국립국악원부설국 악사양성소의 교과과정에서 종묘제례악을 교육하기 위한 <기악보>가 처음으로 총유( 寵 綏 ) 로 한글과 한자 곡명이 함께 기록되어있다. 이후 국립국악고등학교 <기악보>, 각종 학교와 대학교에서의 교과과정에 포함된 전 공별 종묘제례악 악보, 국립국악원에서 발간된 국악전집류, 한국음악선집류와 문화체육 관광부에서 발간된 여러 책자에 寵 綏 의 음독이 총유 로 기록되었는데, 1979년 발간 된 국역 악학궤범, 2001년에 발간된 신역악학궤범, 국악학회에서 발간된 한국음 악연구 제39집 등에 寵 綏 의 음독이 총수 로 바뀌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국립국악원에서 발간된 모든 국악전집과 한국음악선집, 공연프로그 램 등의 해설서에서 寵 綏 의 음독이 총수 로 이름이 뒤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문화재청에서 공동저자로 편집되어 발간된 중요무형문화재 보고서 종묘제례악 에서는 공동 저술한 저자마다 총유, 또는 총수 로 제각각으로 표기되어있어 곡명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곡명의 혼란에 대해 국립국악원의 공식적인 설명은 없었고, 매년 종묘제 례를 봉행하고 매달 수회씩 종묘제례악을 전수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보존회조차도 곡명의 혼란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은 없었다. 단지 국악학회에서 발행된 한국음악연구 제39집의 종묘제례악 악장의 음악적 변화 라는 논문에 寵 綏 는 총유 또는 총수 의 두 가지가 사용되고 있고, 그 내용은 강희 *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 지도위원. 173
18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자전 의 해석에 따라 편안 수 가 깃발 늘어질 유 보다는 그 내용에 부합되고 문화재 청의 사적 명칭에서 綏 의 음독을 유 에서 수 로 변경함에 따라서 총수 로 표기했다 는 내용만이 있을 따름이며, 곡명의 혼란 또는 병용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寵 綏 라는 곡 이름이 한자로만 기록되어 전해져서 20세기 이전에는 어떻게 읽혔는 지 알 수 없지만, 20세기에 이르러 1934년 이왕직아악부 4기생 교과철의 내용에 종묘 제례악 희문의 악장가사 중에 綏 를 편안 유 로 기록한 부분이 보여 총유 로 읽혔음 을 알 수 있었으며,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의 교과철 이후 현재까지 많은 악보와 저서 에서 寵 綏 는 총유 로 기록되고 읽혀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에서 18세기에 지어진 강희자전 만을 전적으로 따르게 된다면 寵 綏 가 총유 가 아닌 총수 로 읽혀져야 하지만 강희자전 보다 훨씬 이전 16세기에 우리나라에서 왕명에 따라 편찬된 신증유합, 석봉 천자문 그리고 광주본 천자문 등에 따르면 綏 는 편안유, 또는 안덩 유 로 읽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綏 는 16세기에 편안 유, 혹은 안덩 유 로 읽혔고, 이 음독은 1934년 이왕직아악부 <제4회 아악생 교과철>의 <보태평> 중, <희문>의 악장가 사 중에 綏 의 음독을 편안 유 로 적은 부분과 함께 寵 綏 는 총유( 寵 綏 ) 라는 곡명으 로 근대에 까지 이르렀으며 이왕직 아악부 출신의 노악사들의 전승노력에 의해 현재까 지 전해진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1765년(영조41년)에 신제악장을 <보태평>이나 <정대업>에 추가하지 않도록 결정함에 따라서 <보태평>과 <정대업>은 인조(1623년-1649년)이후 현재까지 더 변천되지 않고 전승될 수 있었다. 라는 이전의 역사적 사실과도 확실하게 부합한다. 핵심어 : 寵 緌, 총유, 총수, 신증유합, 천자문, 강희자전 목 차 Ⅰ. 서 론 Ⅱ. 綏 의 음독의 변천 Ⅲ. 결 론 174
183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Ⅰ. 서 론 이 글은 종묘제례악의 <정대업> 11곡 중 8번째 곡인 寵 綏 의 곡명을 어떻게 읽는가에 대하여 생긴 의문 때문에 쓰게 된 글이다. 현재의 종묘제례악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조선조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 때 신악으 로 창제된 <보태평>과 <정대업>을 바탕으로 세종의 아들인 세조때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종묘의례에 채택되어 현재까지 연주되는 음악이다. 15세기 중반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21세기인 현재까지 음악적 내용의 변화까지 세세하게 거론할 수는 없으나 보태평11곡과 정대업11곡이 전한다는 것은 한국전통음악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여러 학자가 저술한 이론서와 국가기관이나 개인이 출간한 악보에 보태평 11 곡은 순서에 따라 <희문( 熙 文 )>, <기명( 基 命 )>, <귀인( 歸 仁 )>, <형가( 亨 嘉 )>, <집녕( 輯 寧 )>, <융화( 隆 化 )>, <현미( 顯 美 )>, <용광정명( 龍 光 貞 明 )>, <중광( 重 光 )>, <대유( 大 猷 )>, <역성( 繹 成 )>으로 그 곡명이 알려져 있으며, <정대업> 11곡은 <소무( 昭 武 )>, <독경( 篤 慶 )>, <탁정 ( 濯 征 )>, <선위( 宣 威 )>, <신정( 神 定 )>, <분웅( 奮 雄 )>, <순응( 順 應 )>, <총유( 寵 緌 )>, <정세( 靖 世 )>, <혁정( 赫 整 )>, <영관( 永 觀 )>으로 기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06년도 국가기관인 국립국악원에서 발간된 국악전집 제18집 1) 과 한국음악 35집 2) 을 살펴보면 총유( 寵 綏 )의 곡명이 총수( 寵 綏 )로 표기가 바뀌었고 그 이후에 국립국 악원 종묘제례악의 연주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곡목이 총수( 寵 綏 )로 표기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이 곡의 악장가사의 내용 중에 여러 악보와 이론서, 국악대사전에 혜아총유( 徯 我 寵 綏 ) 라고 읽던 부분 3) 이 한문은 똑같은데 혜아총수( 徯 我 寵 綏 )로 바뀐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7년 출간된 서한범의 우리 음악이야기 - 궁궐의 음악이 들린다 에는 다 음과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4). 8) 총수( 寵 綏 ) ʻ총수ʼ는 정대업 제 8곡의 이름입니다. 현재는 ʻ총유ʼ로 전해오고 있으나, 세조실록이나 악학 궤범에는 ʻ총수ʼ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의 악장에도 <혜아총수( 徯 我 寵 1)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 국악전집 제18집, 서울 : 국립국악원, )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 한국음악 제35집, 서울 : 국립국악원, ) 장사훈, 국악대사전 (서울 : 세광음악출판사, 1984년), 739쪽. 4) 서한범, 서한범의 우리 음악이야기 - 궁궐의 음악이 들린다 (서울 : 태림출판사, 2007년), 153쪽. 175
18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綏 ) 호장용영( 壺 漿 用 迎 )이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점으로 보아 ʻ총수ʼ가 원 이름이 분명한데 이 이름이 언제부터 ʻ총유ʼ라 불러왔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여기서는 ʻ총수ʼ라는 원래 이름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하고 세 사람의 저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종묘제례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5) 을 살펴보면 ʻ총유ʼ6), 또는 ʻ총수ʼ7) 로 같은 곡명을 다른 음독으로 표기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세 명의 저술자중 두 저술자는 일관되게 ʻ총유ʼ로 곡 명을 표기했지만 ʻ총수ʼ로 표기한 집필자는 같은 곡명을 ʻ총유ʼ로도 표기하여 寵 綏 의 곡명은 과연 어떻게 읽어야 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 외에 국립국악원과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한 국악공연프 로그램 영문해설집 의 작품해설에 의하면 정대업 제8곡의 이름은 ʻ총유ʼ라고 명시되어 있다. 8) 세종대에 창제되어 600여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대한민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의 사소한 부분까지라도 앞으로의 600 년을 바라본다면 올바르게 기록되고 연주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서한범의 우리 음악이야기 - 궁궐의 음악이 들린다 과 같은 개인 의 저작물은 개인이 책의 내용을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나 국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국 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국악원에서 발간한 기록물에 사소한 것이라도 서로 다른 표기로 혼 란을 초래하는 것은 국가기관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앞의 책을 인용한 부분에서 寵 綏 의 원래 이름은 ʻ총수ʼ로 기록되었는데 현재는 ʻ총유ʼ로 전해져 내려온다.. (이하 생략) 라고 쓰여졌는데 <보태평>과 <정대업>이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되어 기록된 세조혜장대 왕실록 을 필두로 대악후보, 속악원보 仁 편, 악장요람, 속악원보 信 편 등 조선조 에 편찬된 많은 고악보와 심지어 일제강점기에 기록된 <제4회 아악생교과철> 9) 과 <아악부 5)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대전 : 국립문화재연구소, ) 앞의 책, 20쪽, 49쪽의 정대업 표참조, 104쪽, 174쪽, 224쪽 일무보의 곡명. 7) 앞의 책 61쪽, 87쪽, 103쪽, 136쪽, 137쪽, 145쪽. 8) 국악공연프로그램 영문해설집 (서울 : 문화체육관광부, 2008년), 32쪽. 9) 이왕직 아악부생 교재로 갱지에 등사한 등간본 대금정악 보유자였던 故 김성진의 학생시절 악보 복사본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 윤병천 지도위원 소장. 176
185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오선보> 10) 에서조차 한자( 漢 字 )인 寵 綏 로 기록되었지 우리말인 ʻ총유ʼ로 기록한 자료는 어디 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제4회 아악생교과철>의 희문의 악장가사에 綏 를 편안 유 로 토를 달아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1979년에 찬정된 국역악학궤범 과 2001년 국립국악원에서 편찬된 신역악학궤범, 1958년에 북한에서 찬정된 북한본 악학궤범 과 장삼식이 편찬한 한자선저 에 총수 로 표기되었고, 2006년 국립국악원의 저작물에서 ʻ총수ʼ로 표기하기 전까지 이왕직 아악부출신 의 노악사들이 ʻ총유ʼ로 읽어 왔고, 노악사들에게 종묘제례악을 전수받아 현재까지 연주하 고 있는 연주자 중에 총수 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써본적도 없었다는 것이 종묘제례악보 존회의 입장이며, 대한민국 수립이후의 여러 악보나 개론서, 이론서, 국악대사전과 심지어 는 포탈사이트인 네이버(Naver)의 네이버 국어사전, 다음(Daum) 국어사전 등 인터넷의 국어사전에도 ʻ총유( 寵 綏 )ʼ로 우리말과 한자가 병기되어 수록되었고 그렇게 불려 왔는데 어 떤 이유로 ʻ총수ʼ라 기록되었는지 궁금하였다. 종묘제례악 이수자인 본 연구자가 확인한 바로 寵 綏 가 ʻ총유( 寵 綏 )ʼ로 우리말과 한문이 병 기된 표기를 보인 것은 1955년 설립된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교과과정을 위하여 등간된 교재 <기악보>가 최초인 것으로 확인하였고, 이후 국립국악원에서 발행한 정간보로 기보된 국악전집 八 11)과 오선보로 기보된 한국음악 11집 12), 1974년 국악고등학교에서 발간된 등간본 <기악보>는 국악사양성소의 <기악보> 그 필체만 다를 뿐 똑같이 기록되었 다. 그리고 국악전집 十 七 <정악소금보>에는 앞에서 예를 든 1955년도 이후에 만들어진 악보들과 마찬가지로 ʻ총유( 寵 綏 )ʼ로 우리말과 한문을 병기하여 그 제목을 표기하였다. 또 한편 국악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음악연구 39집 13) 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寵 緌 의 한글표기는 ʻ총유ʼ와 ʻ총수ʼ 두 가지가 사용되고 있다. 寵 緌 의 한글표기를 ʻ총수ʼ로 통 일한 이유는 첫째, 악장의 내용으로 보아 ʻ깃발 늘어질 유ʼ보다는 ʻ편안할 수ʼ로 해석하는 것 이 타당하고, 둘째, 문화재청에서 사적 제359호 ʻ 綏 吉 圓 ʼ의 명칭을 ʻ유길원ʼ에서 ʻ수길원ʼ으로 변경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에서 ʻ 綏 吉 圓 ʼ의 명칭을 변경한 이유는 조선왕조실록, 국조보감 등에서 수길원으로 국역했기 때문이다... 10) 국립국악원 소장 오선보 관리자 자료번호 795-3,796-4( 享 萬 年 之 樂 ). 11)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 국악전집 제8집, 서울 : 국립국악원, ) 국립국악원, 종묘제례악, 한국음악 제11집, 서울 : 국립국악원, ) 이숙희, 종묘제례악 악장의 음악적 변화, 한국음악연구 제39집(서울 : 한국국악학회, 2006년), 240쪽. 177
18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하지만 실제로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과 각 교육과정에서 학습하는 학생들은 寵 綏 를 총수 로도 읽는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며, 현재의 예능보유자후보들과 이수자, 전수 자들도 寵 緌 가 총유 와 총수 의 명칭이 혼용된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으며, 언제부터 어 떠한 이유로 그렇게 쓰이는지 어느 누구한테도 설명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 작금의 현 실이다. 이는 현행 종묘제례악을 익히는 과정의 연주자들이 기존에 이왕직 아악부를 졸업하고 국립국악원에서 수십년간 봉직한 노악사들에게 배운 여러 연주자들이 발간한 악보를 가지 고 학습하며 1979년 민족문화위원회에서 번역발간한 국역악학궤범 을 비롯하여 법제처에 서 발간한 국조오례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번역 발간한 증보문헌비고, 국립국악 원에서 발간한 증보문헌비고, 등의 번역서들을 통해 종묘제례악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이 한국음악자료총서로 발간하는 국악전집 시리즈와 한국음악 시리즈를 필두로 개인의 전통음악악보 간행이 많이 이뤄졌는데 1970년대 말부터 2007년도까지 개 인이 발간한 악보에는 寵 綏 가 ʻ총유( 寵 綏 )ʼ와 같이 우리말과 한자를 같이 표기하였으나 앞에 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국립국악원에서 발간된 국악전집 제18집과 한국음악 제35집의 악보와 2000년도 이후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는 종묘제례악의 공연 해설 속의 寵 緌 는 총 수( 寵 緌 ) 로 표기되었고, 2007년도에 간행된 국악감상을 위한 책에도 ʻ총수( 寵 緌 )ʼ로 표기되 어 이전의 음독과는 다르게 기록되었다. 寵 綏 를 총유 로 배우고 사십여년간 그렇게 읽어온 종묘제례악이수자의 입장으로 綬 를 어떻게 읽어 왔는가에 관하여 옛 문헌에서 찾아 살펴 보고 원래의 곡명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Ⅱ. 綏 음독의 변천 앞의 각주 13의 인용문에서 ʻ깃발 늘어질 유ʼ보다는 ʻ편안할 수ʼ가 악장가사의 뜻에 더 부합하다는 내용은 1716년 청나라 강희제의 명에 의하여 지어졌으며 요즘 한자 읽는 법에 많이 참조하는 康 熙 字 典 (강희자전) 을 확인한 바 그 내용이 같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모든 연주자들이 ʻ총유ʼ로 읽고 있고 2006년도 이전에 발 간된 모든 악보와 개론서나 이론서에 ʻ총유ʼ로 기록한 것을 단지 단순한 관행으로 보거나 또는 틀린 음독으로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래서 康 熙 字 典 (강희자전) 178
187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보다 더 이전의 한자를 읽는 법에 관한 문헌이 없는지 찾아본 결과 조선조 초기에 우리 나 라 학자들에 의해 간행된 東 國 正 韻 (동국정운) 과 1576년(선조9) 왕명에 의하여 미암 유희 춘( 眉 巖 柳 希 春 )이 <유합>을 증보하여 펴낸 新 增 類 合 (신증유합) 과 여러 판본의 천자 문 14)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자문 은 여러 판본이 전하는데 이 글에서는 1576년에 지어진 신증유합 과 또 비슷 한 시기인 1575년에 지어진 광주판 천자문( 光 州 板 千 字 文 ) 과 한때 명필로 조선중기를 대 표하는 석봉 한호( 石 峯 韓 濩 )가 1583년에 지은 석봉 천자문( 石 峯 千 字 文 ) 15), 1716년에 지어진 중국의 康 熙 字 典 (강희자전), 1804년에 간인된 방각본( 京 城 廣 通 坊 新 刊 )인 주해 천자문 등과 1997년에 지어진 漢 韓 大 辭 典 (한한대사전) 까지 약 500백년간의 綏 의 읽는 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동국정운( 東 國 正 韻 ) 동국정운 은 세종때 왕명으로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의 당대 석학들이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년)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우리의 한자 읽는 법이 중 국과 달라서 우리만의 읽는 법이 있어 이를 확립하고자 한 책으로 6권 6책의 활자본이며, 중국의 명나라 태조때 발간된 중국의 글 읽는 법에 관한 홍무정운 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 이란 바로 우리나라의 바른 글 읽는 법이라는 뜻이다. 간송문고본은 국보 제71호, 건국대학교소장본은 국보 제141호로 지정되어있다. 이 책이 발간될 당시도 혼란스럽던 한자음의 글 읽는 법을 바로 잡아 통일된 표준음으 로 정하려는 목적이 있었으며 후세에도 무조건 중국의 글 읽는 법을 따르는 사대주의에 대 하여 미리 경종을 울리고 있는 책으로 볼 수 있으며, 후대에 무조건 강희자전 만을 따르 는 것에 대하여 선대에 이미 경계하고 있었으며, 아울러 우리나라 최초로 한자를 우리 음 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고 있는 책이다. 14) 안미경의 조선시대 천자문 현전본에 관한 연구 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간인된 천자문은 현재까 지 총 51건이 전하며 중앙본 9건 중 6건은 16세기 한호에 의한 석봉 천자문 의 重 刊 또는 重 補 本 이며 지방관서본 8건으로 경상도, 충청도 한성 및 경기도등이며 주로 17세기에 간인되었다. 사찰본 7건은 주로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간인되었으며, 사가본 6건은 15,16,17,19세기에 간인되었으며 방각본 21건이 전한다. 방각본은 대개 19세기 이후에 간인된 것이다. 현재 전하 는 가장 오래된 천자문은 광주판 천자문 이며 석봉 천자문 이 가장 많이 중간( 重 刊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 ʻ편안 유ʼ, 石 峯 千 字 文 (1583년, 만력11년, 선조 16), 동양학총서 제3집(서울 : 단대출판부, 2002년), 181쪽. 179
18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동국정운 의 綏 의 읽는 법은 다음의 <그림1>과 같다. <그림1>에 나타난 바와 같이 동국정운 卷 五 에 나타난 綏 의 읽는 법은 다음과 같다. 89쪽 隨 又 本 韻 媿 哿 韻 綏 上 同 又 本 韻 二 媿 哿 韻 90쪽 隨 又 媿 韻 二 媿 哿 韻 綏 上 同 又 哿 韻 三 哿 韻 <그림 1> 동국정운 의 綏 16) 동국정운 은 우리의 한자 읽는 법이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 었으나 앞의 훈민정음의 음독법으로 보아 綏 는 이나 으로 읽었고 앞 글자인 수 ( 隨 ) 의 경우와 같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지만, 뜻에 따른 정확한 발음은 훈민정음이 반 포된 15세기 발음에 깊은 지식을 갖지 못한 필자로서는 <그림1>의 내용으로 우리말 음독 이 현재의 어떤 음독에 해당하는가는 알기 어려웠지만 읽는 법이 중국과는 매우 다르기에 이를 왕명으로써 동국정운 을 찬정하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세에도 무조건 중국의 글 읽는 법을 따르는 사대주의에 대하여 미리 경종을 울리고 있는 책으로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16) 동국정운, 권 쪽. 180
189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2. 광주판 천자문( 光 州 板 千 字 文 ) 광주판 천자문 은 1576년에 간행된 신증유합 보다 1년 빠른 1575년에 발간된 천자 문으로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천자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 동경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있다. 광주판 천자문 에 나타난 綏 17) 의 읽는 법은 다음과 같다. <그림 2> 광주판 천자문 의 綏 <그림 2>와 같이 광주판 천자문 에 있어서 綏 의 읽는 법은 편할 유 임을 알 수 있었다. 指 薪 修 祐 (지신슈우)하니 永 綏 吉 邵 (영유길쇼)라고 읽으며, 그 뜻은 갈고 닦기를 열심히 하면 편안함이 오래가고 길함이 힘쓰니라 가 되겠다. 3. 신증유합( 新 增 類 合 ) 新 增 類 合 (신증유합) 은 조선시대에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던 기초한문서이다.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선조 때의 문신이였던 미암 유희춘( 眉 巖 柳 希 春 : 1513년-1577년, 중종8년-선 조10년, 전남 해남출신)이 당시에 여러 가지 판본이 전하던 천자문 과 함께 초학서( 初 學 17) ʻ편할 유ʼ, 光 州 板 千 字 文 (1576년, 선조 8), 동양학총서 제3집(단대출판부, 2002년), 91쪽. 181
19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書 )로 사용되었던 1512자의 내용을 가진 유합 을 왕명으로 증보 편찬하여 1576년(선조9) 에 완성했는데, 선조에게 지어 올리면서 지은이는 편찬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서문에 기록하 였다. 신이 엎드려 아룁니다. 유합 한 편을 보니 우리 동방에서 나왔음에도 누구 손으로 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선택된 글자가 정절하므로 사람들이 많이 사랑하였습니 다. 다만 규모가 넓게 이르고 크게 이르지 못하여 긴요한 글자가 비거나 빠진 것이 오히려 많이 있습니다. 신이 헤아리지 못하고 소문에 따라 수정하고 보충하고 더하여 대략 완성하였는데 완성 된 글이 모두 3,000자에 언문 번역을 더하였고, 요즘에 옥당(홍문관)에 있으면서(20여년간 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1567년 11월 55세의 나이로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고, 1569년 12 월 홍문관 부제학에 제수되어 2년 정도 근무함), 동료인 김수(사람 이름)를 얻어 교정하였 습니다. 삼가 어린이들이 외우고 익히고 말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8) 이상과 같이 신증유합 의 편찬동기를 밝혔고, 무릇 경서와 사서(곧 모든 서적)에는 글자의 본래 뜻이 담겨져 있는데, 방점이 없다면 뜻이 달라지므로 방점은 중요합니다. 이제 도리어 상성과 거성에 있어서 본래 뜻은 반드시 권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어린이들이 쉽게 글자의 높고 낮음의 뜻을 깨닫게 하고자 평성 과 입성은 방점을 치지 않았습니다. 평성은 슬프면서도 편안하고, 입성은 곧고 빨라 자연 히 분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반드시 방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19) 사성에 있어서 상성과 거성에는 반드시 권( 圈 ) 20) 이 있어야 하며 평성과 입성에 있어서 더 이상 방 18) 신증유합, 新 增 類 合 序, 臣 伏, 睹 類 合 一 編, 出 於 我 東 方, 不 知 誰 手, 然, 選 字 精 切, 人 多 愛 之, 第 規 模 不 廣 至 大 至, 緊 之 字, 遺 漏 尙 多 臣 不 揆, 諛 聞, 修 補 增 益, 略 成, 完 書 總 三 千 字, 就 加 諺 譯, 頃 在 玉 堂, 又 得 同 僚 金 晬, 校 正, 謹 資 童 蒙 誦 習 云. 19) 신증유합, 圈 上 去 聲, 凡 經 史 子, 集 中 字 之 本 義, 則 不 圈 別 義, 則 圈 之 尙 矣, 今 却 於 上 去 聲, 本 義 必 圈 者, 只 欲 兒 童 易 曉 字 高 低 之 意 也 平 聲 入 聲 不 圈, 平 聲 哀 而 安, 入 聲 直 而 促, 自 然 易 辨, 故 今 不 必 圈. 20) ʻ 圈 ʼ은 글자의 왼쪽이나 오른쪽 위에 표시한 작은 동그라미인 圈 發, 圈 點 곧 傍 點 을 말한다. 훈 민정음에서는 이를 ʻ 點 ʼ으로 표현하여 왼쪽에 한 점을 더하면 去 聲 (가장 높은 소리), 둘을 더하면 上 聲 (처음이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 없으면 평성(가장 낮은 소리)이고, 入 聲 (빨리 끊어지는 소 리)은 점이 더해짐이 한가지라 하였다. 이러한 聲 調 의 표시는 중국의 韻 學 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근본적으로 우리말과 중국어와는 聲 調 체계가 달라 훈민정음 당시에도 입성에 성조가 있 을 수 없다하여 별도로 방점을 마련하지 아니하였다. 거성과 상성의 경우도 방점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소멸된다. 따라서 신증유합 의 방점은 과도기적인 모습을 볼 182
191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점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를 밝혔고, 이는 우리말의 변천과정에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유교가 국교인 조선에 불교를 숭상하고 유교의 성인들을 비 하하여 그를 바로 잡고자한 편찬 이유를 발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신이 지난 날 가정( 明 世 宗 21년) 때인 임인년(1542년, 조선 중종37년, 유희춘이 30 세 때)에 황송하게도 춘방( 東 宮 : 동궁) 소속의 관원이 되어 외람되이 동궁(훗날 인종)께 <유합>을 진강하는 것을 바라보건대, 그 중에 승니(중)을 높이고 유가의 성인을 줄( 黜 )하였 기에(내렸기에) 바로 수정할 뜻을 갖고서 누추한 곳을 없앴으나 결과를 맺지 못하고, 30여 년을 묻혀 있다가 비로소 이에 책을 완성하였으나 감히 스스로 이것이다...(이하생략) 21) 책의 내용으로는 권상( 卷 上 )에 數 目 (수목) 天 文 (천문) 衆 色 (중색) 地 理 (지리) 草 卉 (초훼) 樹 木 (수목) 果 實 (과실) 禾 穀 (화곡) 菜 蔬 (채소) 禽 鳥 (금조) 獸 畜 (수축) 鱗 介 (인개) 蟲 豸 (충치) 人 倫 (인륜) 都 邑 (도읍) 眷 屬 (권속) 身 體 (신체) 室 屋 (실옥) 鋪 陳 (포진) 金 帛 (금백) 資 用 (자용) 器 械 (기계) 食 饌 (식찬) 衣 服 (의복) 등 총24항목 1천자로 구성하였고, 하편은 心 術 (심술) 動 止 (동지) 事 物 (사물) 세 항목으로 2천자로 구성하여 상하권 모두 3천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신증유합 이나 <유합>이 주목되는 점은 천자문 이나 사서삼경 등이 중국에 서 지어진 것이라면 유합 과 신증유합 은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편찬되어 널리 가 르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맞아 조선왕조가 몰락하면서 과거 서당에서 가르치던 책들은 그 자취를 알아보기조차 힘들어졌다. 천자문 은 워낙 많이, 널리 알려졌기에 아무데서나 현대문으로 고쳐진 책들을 구할 수 있으나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의 부모세대가 천자문 과 함께 서당에서 공부하던 신증유 합 은 서구 교육열풍에 아득히 밀려나 구하기조차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 은 이 소중한 신증유합 이 1972년에 나손 김동욱( 羅 孫 金 東 旭 )박사의 소장본을 단국대출 판부에서 영인하여 출판한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신증유합 과 관련된 해제( 解 題 ) 및 정보는 단국대출판본을 참고하기 바란다. 수 있기에 국어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신증유합 방점 중 上 聲 은 左 上 에 去 聲 은 右 上 에 표시하였다. 21) 신증유합, 跋 文, 臣, 昔 在 嘉 靖 壬 寅, 忝 爲 春 坊 僚 屬, 竊 觀 東 宮 進 講 類 合, 其 中 尊 僧 尼 而 黜 儒 聖, 卽 有 修 正 之 志 而 以 寫 陋, 未 果, 沒 三 十 餘 年, 始 克 成 書, 未 敢 自 是, 只 欲 童 蒙 之 誨 讀, 適 承 旨 鄭 琢 見, 而 啓 達 蒙, 命 拔 進 臣, 頃 日 被 召 而 來 又 獻 改 修 之 本, 上 於 經 席 謂 臣 曰 此 書 固 好, 第 諺 釋 中 多 土 俚 爾, 臣 聞 命, 兢 省 退 而 與 玉 堂 同 僚 商 確 改 正, 又 聞 礪 城 君 宋 寅 多 識 字 訓, 因 求 指 點 差 謬, 乃 得 更 定, 恭 竢, 聖 鑑, 然, 字 義 不 一, 而 臣 謏 聞 之 解, 未 能 精 詳, 不 勝 惶 悚 之 至, 謹 拜 手 稽 首 以 聞 萬 曆 四 年 十 月 初 四 日 嘉 善 大 夫 行 僉 知 中 樞 府 事 兼 同 知 成 均 館 事 臣 柳 希 春 校 進. 183
19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6세기 후반에 지어지고 한문학계와 국어학계의 중요한 자료인 신증유합 의 卷 下 心 術 動 止 에 다음과 같이 綏 22) 의 읽는 법과 뜻이 나온다. <그림 3> 신증유합 의 綏 앞의 <그림3>에 나타난 바와 같이 어유융뎍( 馭 綏 戎 狄 )으로 읽는 법이 적혀있고, 후에 중 국에서 지어진 강희자전 의 읽는 법과는 달리 綏 의 읽는 법은 안뎡 유 라고 확실하게 적 혀있다. 그 뜻은 서쪽오랑캐와 북쪽오랑캐를 안정적으로 다스리며 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4. 석봉 천자문( 石 峯 千 字 文 ) 석봉 천자문 은 선조 16년(1583년)에 선조의 왕명으로 한석봉으로 알려진 당대의 서예 가 석봉 한호( 石 峯 韓 濩 )가 지은 천자문이고 한호의 정묘한 글 솜씨 때문에 특히 널리 알 려진 천자문으로 신증유합, 광주판 천자문 과 함께 조선중기의 중요한 자료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 박천성소장본과 일본의 나이가구문고( 內 閣 文 庫 )소장본이 원간본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석봉 천자문 의 綏 23)를 읽는 법은 다음과 같다. 22) 新 增 類 合 (1576년, 선조 9), 동양학총서 제3집(단대출판부, 2002년). 23) 편안 유, 石 峯 千 字 文 (1583년, 만력11년, 선조 16), 동양학총서 제3집(단국대출판부, 2002년), 181쪽. 184
193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그림 4> 석봉 천자문 의 綏 석봉 천자문 에 나타나는 綏 의 읽는 법은 <그림4>와 같고 역시 광주판 천자문 과 같 이 綏 를 편할 유 로 읽음을 알 수 있었다. 指 薪 修 祐 (지신수우)하니 永 綏 吉 邵 (영유길소)라 고 읽으며 그 뜻은 광주본 천자문 과 마찬가지로 갈고 닦기를 열심히 하면 편안함이 오 래하고 길함이 높으리라 가 되겠다. 5. 강희자전( 康 熙 字 典 ) 요즘 우리나라 학계에서 많이 참고하는 강희자전 은 1716년에 간행된 자전으로 그 방대함으로 유명한 자전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희자전 은 중국의 한자사전으로, 청 나라 강희제의 명에 따라 한나라의 설문해자( 說 文 解 字 : 서기 100년 경 후한의 許 愼 이 지은 한자의 음과 원리를 담은 책) 다음의 역대 자전을 모두 종합해 편찬한 책이다. 지은이는 장옥서( 張 玉 書 ), 진정경( 陳 廷 敬 ) 등 30명으로, 5년에 걸쳐 1716년(강희 55년)에 완성되었 다. 모두 42권이고, 글자 수가 49,000글자 남짓 된다. 글자 배열 순서는 먼저 나와 있던 자휘( 字 彙 ), 정자통( 正 字 通 )이 부수가 몇 획이냐에 따 라 배열한 것을 그대로 따랐지만, ʻ 강희자전 순서ʼ라는 말이 쓰이고 있듯이 나중에 부수 별 한자 사전의 본보기가 되었다. 강희자전 의 綏 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185
19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古 文 夊 廣 韻 息 遺 切 集 韻 韻 會 宣 隹 切 正 韻 蘇 回 切, 音 雖 說 文 車 中 把 也 註 徐 鍇 曰 : 禮 升 車 必 正 立 執 綏, 所 以 安 也 儀 禮 士 冠 禮 壻 御 婦 車 授 綏 註 綏, 所 以 引 車 者 禮 曲 禮 僕 人 之 禮, 必 授 人 綏 又 書 禹 貢 五 百 里 綏 服 傳 綏, 安 也 安 服 王 者 之 政 敎 詩 周 南 福 履 綏 之 傳 安 也 又 左 傳 文 十 二 年 乃 皆 出 戰 交 綏 註 古 名 退 軍 爲 綏 疏 司 馬 法 將 軍 死 綏 舊 說 綏, 却 也 又 荀 子 儒 效 篇 綏 綏 兮 其 有 文 章 註 安 泰 之 貌 或 爲 葳 蕤 之 貌 又 州 名 廣 韻 春 秋 時 白 翟 所 居, 秦 幷 天 下 爲 上 郡, 後 魏 廢 郡 置 州, 取 綏 德 縣 爲 名 又 集 韻 雙 隹 切, 音 榱 毿, 毛 長 貌 一 曰 狐 貌, 或 作 綏 詩 衛 風 有 狐 綏 綏 傳 匹 行 貌 又 集 韻 儒 佳 切, 音 蕤 緌, 或 作 綏 詩 大 雅 淑 旂 綏 章 傳 大 綏 也 疏 綏 者, 卽 交 龍 旂 竿 所 建 禮 王 制 諸 侯 殺 則 下 小 綏, 大 夫 殺 則 止 佐 車 註 綏 當 爲 緌 緌, 有 虞 氏 之 旌 旗 也 又 明 堂 位 夏 后 氏 之 綏 註 綏, 讀 爲 冠 蕤 之 蕤 又 集 韻 思 累 切, 音 瀡. 隋, 或 作 墮 亦 作 綏 尸 所 祭 肝 脊 黍 稷 之 屬 儀 禮 士 虞 禮 不 綏 祭 註 事 尸 之 禮, 始 於 綏 祭 綏, 當 爲 墮 又 集 韻 呼 恚 切, 音 毁 (훼) 義 同 又 集 韻 吐 火 切, 音 妥 禮 曲 禮 執 天 子 之 器 則 上 衡, 國 君 則 平 衡, 大 夫 則 綏 之 註 綏, 讀 曰 妥 妥 之 謂 下 於 心 又 國 君 綏 視 註 視 國 君 彌 高 妥 視, 謂 視 止 於 袷 又 集 韻 通 回 切, 音 推 妥, 或 作 綏, 安 坐 也 <그림 5> 강희자전 의 綏 앞의 <그림 5>에 따르면 廣 韻 息 遺 切 集 韻 韻 會 宣 隹 切 正 韻 蘇 回 切, 音 雖 (슈) 로 표기된 것 처럼 식( 息 )의 ㅅ과 유( 遺 )의 ㅠ를 집자하여 슈라고 읽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詩 衛 風 有 狐 綏 綏 傳 匹 行 貌 又 集 韻 儒 佳 切, 音 蕤 (유) 에서 보듯이 儒 와 佳 의 발음으로 蕤 (유)로 읽는 것을 알 수 있었다. 6. 주해 천자문( 註 解 千 字 文 ) 방각본으로 알려진 주해 천자문 은 1804년(순조 4) 남양홍씨 가문의 홍태운이 지은 것 으로 알려져 있다. 경성광통방신간( 京 城 廣 通 坊 新 刊 )으로 綏 에 관한 내용은 다음의 <그림5> 와 같다. <그림5>에 나타난 바와 같이 주해 천자문 에서 綏 의 읽는 법은 이전의 신증유 합 과 광주판 천자문, 석봉 천자문 과는 다르게 綏 의 읽는 법이 이전의 ʻ유ʼ에서 ʻ편안 수ʼ, ʻ수레줄 수ʼ, ʻ관끈 유ʼ로 변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指 薪 修 祐 (지신슈우)하니 永 綏 吉 邵 (영슈길소) 라고 읽으며 그 뜻은 앞선 광주본 천자문 과 석봉 천자문 과 마찬가지로 갈고 닦기를 열심히 하면 편함이 오래하고 길한 일이 높으리라 이다. 1575년에 발간된 광주판 천자문 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신증유합, 그리고 석봉 천 자문 과는 약 230여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뜻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 읽는 법이 바뀐 것을 186
195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알 수 있었다. <그림 5> 주해 천자문 의 綏 7. 한한대자전( 漢 韓 大 字 典 ) 한한대자전은 1997년 민중서림에서 출간된 자전으로 최근에 출간된 자전인데 綏 의 음은 끈 수, 편안할 수, 느릴 수, 기장식 유, 드리울 타.. 등으로 적고 있다. 이상과 같이 綏 의 글읽는 법을 살펴보았는데 조선 초기에는 어찌 읽었는지 동국정운 을 보고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조선중기에 신증유합, 광주판 천자 문 과 석봉 천자문 통하여 ʻ유ʼ로 읽혔으며 150여 년이 지난 이후에 강희자전 에서 ʻ수ʼ, 또는 ʻ유ʼ로 읽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희자전 이후에 지어진 주해 천자문 은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우리의 한자 읽는 법이 강희자전 과 같은 방법으로 바뀐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다. Ⅲ. 결 론 이상과 같이 寵 緌 의 綏 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관해서 조선조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 지 살펴본바 寵 綏 의 음독은 조선초기 15세기의 동국정운 에서는 우리나라 한자 읽는 법이 중국과는 다르다는 사실만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조선중기에 신증유합 과 광주판 천자문, 그리고 석봉 천자문 에서 유 로 읽혔으며, 1716년의 강희자전 에서 ʻ편안할 수ʼ로 읽힌 이 187
19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후 19세기 초반의 주해 천자문 에 이르러 편안할 슈 로 변화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寵 綏 의 음독이 한글로 처음 나타남을 볼 수 있는 악보는 <제4회 아악생교과철> 으로 악장내용중의 綏 가 - 綏 : 편안 유- 로 기록되어 16세기에 출간된 광주판 천자문 과 석봉 천자문 의 뜻과 음독이 같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4회 아악생교과철>의 綏 는 다음 <그림6>의 네모 친 부분과 같다. <그림 6> <제4회 아악생교과철>의 綏 앞의 綏 의 음독 변화에서 나타났듯이 綏 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유 에서 수 로 바뀌었지 만 처음으로 우리말 음독이 나타나는 <제4회 아악생교과철>의 綏 의 음독과 이후에 이왕 직 아악부 출신 노악사들이 출간한 여러 악보와 2000년도 이전에 국립국악원에서 출간한 악보와 서적에 기록된 寵 緌 의 음독은 최소한 강희자전 이 출간되기 훨씬 이전에 최소한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광주판 천자문 과 석봉 천자문 의 뜻과 음독이 같게 총유 로 읽히고 현재까지 그렇게 전해진 것이 확실하다. 188
197 寵 綏 의 音 讀 에 관하여 <Abstract> A study about pronunciation for 寵 綏 Yang Myung-suck (Member of court music troupe, NCKTPA) 寵 綏 is the name of the eighth chapter in Jeongdaeup for Jongmyojerye. Many musicians who have studied Jeongdaeup have pronounced 寵 綏 as Chongyu. From 1934, in lots of music books and dictionary for the Korean traditional music, the name has been pronounced as Chongyu. In some books 寵 綏 is printed as Chongsu. And some scholars also has written so by the Chinese dictionary called Ganghijajeon printed in Even in a national institute for Korean Traditional Music - NCKTPA - does not have any exact definition about the name. And a researcher has read it as Chongyu or Chongsu even in the same book. What is the proper reading for 寵 綏? Chongyu? or Chongsu? As shown above it is so confused. By the Chinese Dicitionary Ganghijajoen in 18th century, the reading is Chongsu. But many scholars of chinese classics in Korea have known the differences between Sino-Koreans and Chinese letters. By the books for learning Sino-Korean called Sinjeungyuhap, or Cheonjamun printed in 16th century 綏 in 寵 綏 was pronounced as yu for centuries. And on a music book for learning Jeongdaeup in Yiwangjikaakbu, the letter 綏 was read as yu. So 寵 綏 has been read as Chongyu in Korean. This music book was printed in 1934 for teaching Jongmyojeryeak. From 1934 till now 寵 綏 has been read as Chongyu in Sino-korean like learning books for Sino-Korean as shown above : Sinjeungyuhap and Cheonjamun printed in 16th century. 寵 綏 has been named in 1463 and has been read as Chongyu in 16th century. Till 20th century, 寵 綏 has been read as Chongyu on the traditional customs and old learning books. Also many musicians who have studied or have played for decades have pronounce it as Chongyu. 189
19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From 16th century, Chongyu is the proper name for 寵 綏 according to the Sino-Korean learning books. The name is not for the scholars who have not played any chapter in Jeongdaeup but for the musicians or students who have been playing and studying 寵 綏 for decades on the traditional custom from the beginning of the music Jongmyojeryeak. Keywords : 寵 綏, Chongyu, Chongsu, Sinjeungyuhap, Cheonjamun, Ganghijajoen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199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 주악 조소상 오른쪽1 악사의 악기에 대한 연구 - 24)이 종 구* <국문초록> 필자는 2007년에 백제금동대향로 주악 조소상 악기 명칭에 대한 연구 라는 논문을 통하여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夫 餘 陵 山 里 出 土 百 濟 金 銅 香 爐 )의 다섯 악사와 그들 이 갖고 있는 악기에 대한 선생연구를 한 바 있다. 이 본문에서 중앙악사의 악기를 백 제삼현으로, 왼쪽1악사의 악가는 장소, 왼쪽2악사의 악기는 배소, 오른쪽1악사의 악기 는 무명백제악기, 오른쪽2악사의 악기는 금( 琴 )이라 명명하였었다. 이것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해당 박물관 안내 게시물로부터 각종 교과서나 전 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자료에 나타난 악기 이름과 큰 차이를 갖고 있는 것었다. 특히 북 또는 타악기로 알려졌던 오른쪽1악사의 악기에 대한 견해는 그 근본부터 상이한 것이었다. 이 악기에 대하여 집중 연구한 것이 본 논문이다. 이름을 밝힐 수 없었던 오른쪽1 악사의 악기에 대하여, 일반적인 악기로서의 조건과 맞는지 검토하였고 이를 다각도에 서 촬영한 사진들을 종합하여 아도브-일러스트 프로그램으로서 악기 외형을 다시 한 번 정리하였다. 그 결과, 가) 악기의 윗면은 앞쪽은 반원( 半 圓 )형이고 뒤쪽은 직각의 모습이어서 마치 양변기 ( 洋 便 器 )의 윗부분 모양과 유사하고, 나) 악기는 너비가 연주자의 허리 품 정도이고, 길이가 사람의 골반에서 무릎 정도 로 길이로 추정하였으며, 다) 악기 몸체의 높이는 연주자의 손바닥 너비 보다 약간 길지만 가부좌를 튼 양 다리 사이로 더 깊이 내려갈 수도 있어 보였고, 라) 몸체 위에 달려있는 뚜껑 모양의 형태에 긴 손잡이가 한 가운데 부착되었다는 것 들이었다. *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191
20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에 대하여 연주하는 모습은 오른손으로 손잡이의 뒤쪽을 잡고 앞 방향으로 새끼손 가락이 위치하여 뚜껑을 상하로 움직이는 모습이었으며, 왼손으로 손바닥을 펴서 수도 ( 手 刀 ) 방향을 아래로 악기 몸통의 오른쪽에 대고 있다. 가부좌 자세로 무릎을 벌리고 앉아서 그 위에 악기를 얹어 놓고 있기 때문에 정강이와 발꿈치로 악기를 약간 조이듯 파지( 把 持 )를 돕고 있고, 무릎에 얹어 놓고도 고정될 수 있다면 이 악기의 재료는 중량 이 무거운 목재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항을 바탕으로 상하 운동으로 연주하는 목탁이거나 손잡이를 이용하여 풀 무질 하는 관악기의 가능성을 찾았지만, 몸체 옆 부분에 왼손을 대고 있는 점으로 미 루어 관악기 즉 기구를 이용하여 송풍하는 생황 종류의 악기라는 점에 더 무게를 두었 다.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악기이기는 하지만 이 악기가 타악기라면 공명체를 왼손으로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결론을 유도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 악기의 표준규격과 용적률을 추적하기 위하여 한국고대인의 평균 신장을 164.3cm로 유추하였다. 따라서 필자가 2007년에 무명백제악기라 하였던 이 악기의 이름을 백제생황이라 명명한 것이 본 논문의 요지이다. 핵심어 : 백제악기, 백제음악, 백제금동대향로, 국보 제287호, 백제문화 목 차 Ⅰ. 접근 계기와 방법 Ⅱ. 백제금동향로 오른쪽1악사 Ⅲ. 악기로서의 가능성 점검 Ⅳ. 맺음말 192
201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I. 접근 계기와 방법 필자가 국보 제 287호인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夫 餘 陵 山 里 出 土 百 濟 金 銅 香 爐 )의 다 섯 악사와 그 악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국보가 발견된 1996년 경 부터이 다. 그러니 어언 13년이 지났다. 백제 악기에 대해서는 그저 문연각사고전서( 文 淵 閣 四 庫 全 書 )의 문헌에 전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던 필자에게 국보 제 287호인 부여능산 리출토백제금동향로의 다섯 악기 출현은 참으로 큰 충격을 주었었다. 당시 필자는 세계악 기대백과 라는 방대한 책을 쓰고 있고 있었던 중이었고, 이 집필을 위한 자료와 정보를 수 십 년 간 모으고 정리를 이미 해놓은 상태여서 그 충격은 더욱 더 컸다. 당시 거의 우리악 기로 취급하지 않았던 백제금동향로 중앙악사의 악기, 왼쪽1악사 악기, 왼쪽2악사 악기, 오른쪽2악사 악기 그리고 이제야 이 글로써 그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오른쪽 1악사의 악 기 등 낯선 악기들이 필자를 새로운 연구의 세계로 이끌어 내게 하였다. 이러한 당면 과제의 한 부분을 2007년 12월 백제금동대향로 주악 조소상 악기 명칭에 대한 연구 라는 논문으로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음악논단 을 통하여 발표 하였다. 이 논문의 내용은, 첫째, 오른쪽 첫 번째 악사의 악기는 지금까지 타악기 또는 북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풀무 로 연주하는 생황 종류의 악기로서 관악기로 해석하였다. 다만, 이런 악기의 유례가 없기 때 문에 이름 붙이는 것을 당분간 보류하며 무명백제악기라고 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고, 둘째, 오른쪽 두 번째 악기는 이미 거문고로 발표되었지만 필자는 고대이래로 중원의 주 요 악기인 금( 琴 )으로 보았었다. 셋째, 중앙악기는 완함이나 월금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진금( 秦 琴 =진나라의 현악기로 지금도 사용하며, 진비파라 하기도 함)에 가까운 악기로 그 이름을 백제삼현이라 하였다. 넷째, 백제금동대향로 왼쪽에는 오늘날의 팬 플루트와 퉁소 종류의 악기가 있는데 팬 플 루트 계열의 악기는 북방 및 중앙아시아계열, 즉 실크로드 계열의 배소이고, 퉁소는 남방 계열의 장소( 長 蕭 )로 보았다. 이 논문에 게재되었던 악기명칭과 기능의 도표는 다음과 같다. 193
20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표 1> 백제금동대향로 악기 명칭 및 분류 배치 중앙 왼쪽 왼쪽 2 오른쪽 1 오른쪽 2 이름 백제삼현 장소 배소 무명백제악기 금 분류 줄울림악기 공기울림악기 공기울림악기 떨청울림악기 줄울림악기 지역성 동남아, 중원 동남아 중앙아시아 찾을 수 없음 중원 또한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들 악기의 종류와 음향 원리, 기능을 정리하였고, 상당한 기간 동안 국내외 학자 1) 들과 악기제작자와 협의하여 이들 악기들을 복 원하여 작곡하고 연주 2) 하여 발표 한 바 있다. 1. 백제악기와 국악기 필자는 국악이라는 용어의 지역성에 대하여 한반도는 물론 과거의 고구려 땅이었던 오 늘날의 중국 동북삼성과 백제를 비롯한 삼국시대의 문화점령지였던 오늘날의 일본 음악 등 을 항시 부분적으로 또는 선별적으로 국악에 포함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반적 으로 국악, 즉 ʻ나라의 음악ʼ이라는 말 속에는 은연중 조선시대의 국경을 전제로 제한하여 우리나라 헌법에서 말하는 한반도와 그에 복속된 지역의 음악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국경을 감안한다면 국악기를 현 상태의 국토인 한반도 악기로만 제한할 수만은 없다. 옛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의 땅은 물론 백제의 강토( 疆 土 )도 포함시켜야한다 는 생각이다. 비록 그 국가가 없어지고 국경이 바뀌어 오랜 기간 전쟁하고 원수로 지낸 시간 1) 필자는 한양대학교 전자음악연구소와 제휴체계를 갖추고 있는 아래 여러 단체를 방문하거나 전자 메일을 통하여 이 악기의 정체에 대하여 상의한 바 있다. 중국, 연변예술학원 음악계 / 중국, 후허훠터( 呼 和 活 特 ) 예술학원 음악계 / 중국, 상하이( 上 海 )음악 학원 민족악기박물관 / 중국, 난링( 南 寧 )음악학원 소수민족악기박물관 / 중국, 윈난( 雲 南 ) 민족음악 연구 기지 / 중국, 중국신장( 新 疆 ) 유이 자치구 가극원 / 우즈베키스탄, 소디나 민속악 관현악단(The Uzbek folk instruments chamber-orchestra<sogdiana>) / 카자크스탄, 쿠르만가지 국립 카자크스탄 대학교(The Kazakh Kurmangazy National Conservatory) / 리투아니아, 스툴가 민속음악 박물관 (P. Stulga Lithuanian Folk Music Museum) /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극장-박물관(Estonische Theater und Musikmuseum) / 오스트리아, 비엔나 예술역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 독일, 라이프치히 악기박물관(Museum für Musikinstrumente Leipzig) / 스위스, 바 젤 역사박물관(Historisches Museum Basel) /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작곡연맹(St.-Petersburg Composers Union) / 러시아, 야쿠트 국립예술박물관(Yakut National Art Museum <Khomus Museum>) / 미국, 아메리칸 인디안 박물관(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2) 2003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식에서 우석대학교 문정일 교수 등에 의해 초연하였다. 194
203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이 있다 하여도 그 땅에 면면히 대를 이어 살아온 후예들은 역시 같은 민족으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다. 나라의 틀을 구성하는 국경은 역사에서 항상 유동적인 것이고, 또한 한시적( 限 時 的 )이었다. 나라의 지배자가 바뀌고 국호가 바뀌었다고 해서 그 곳에서 살고 있던 백성과 그들의 음악이 따라서 반드시 바뀐다고는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땅을 공유하던 나 라끼리 여기까지는 우리악기이고 여기서 부터는 너희들의 것이라 구분을 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역사상 국경 이동이 아주 심하였던 유럽에서도 두드러지게 보인다. 유 럽 악기의 족보는 어느 나라이었다고 설명할 수 없는 두루뭉수리 한 것들이 허다하다. 이렇 게 음악 문화에서만이라도 현재의 국경을 넘어 역사적 영토를 공유하고 인정한다면 국악의 영역도 지금의 영토를 넘어 확대해야한다는 지론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문화 교류가 많았고 <그림 1> 고대 한 중 해로 3) 국토 개념의 또한 다양하였던 삼국시대의 음악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 3)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중 고대의 실크로드, 665쪽. 195
20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모두 동아시아 전체 또는 서역에 이르기 까지 거대한 지역에서 문화 교류를 하였던 나라이 기 때문이다. 또한 7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 속에 국경의 신축성 또한 다양하여 한 지 역으로 제한하여 국경을 생각할 때 여러 가지 무리가 따름을 간과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백제의 강역( 疆 域 )은 가장 신비 속에 있어 아직도 그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단재 신채호(1880~1936)와 문정창(1899~1980)등의 사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백제의 중국 진출( 進 出 )설은 그침 없이 학계에서 연구되고 논 의되면서 더욱 구체화 되고 있다. 그 핵심은 백제의 요서( 遼 西 ) 경락설과 진평( 陳 平 )군 진 출 설 4), 응신조(응 應 神 朝 ) 왜국 건설 지원설 5), 산동반도 정복설 6), 양자강 부근의 오월( 吳 越 )지방 지배설 7) 등 이며 그 외에도 해상 물길을 따른 동남아 지역의 많은 담로 설치 설 8) 등이다. 담로는 식민지라 하는 사람도 있고 교역의 흔적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 든 간에 결론적으로 백제의 국경이 얼마나 가변적이었고 거대하였나를 말하고 있는 것이 다. 따라서 백제 음악과 악기 또한 한반도에 가두어 생각할 수 없고 최소한 동아시아 전역 에 영향력이 있었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 로( 百 濟 金 銅 龍 鳳 蓬 萊 山 香 爐 )의 다섯 악사도 백제음악이나 악기가 동아시아 전역에 백제라는 영토가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다섯 악사의 악기를 중국의 것이라든지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 땅에서 출토된 국보 속의 소중한 악기 자료를 남의 것으로 버려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4) 백제가 비류왕 이후 근초고왕 대에 오늘날 중국 북경 의 만리장성 북방 땅인 하북, 하남, 산서 지방을 영토로 하였다는 중국 송서 97권 대백제전( 大 百 濟 傳 ), 통전( 通 典 )에 근거한 이론. 5) 지금의 일본 땅인 규슈 지방에 백제가 진출하여 야마대국를 만들었고 이를 근거로 오늘날의 오사카 지방에 지국( 枝 國 ) 또는 분국( 分 國 )의 위치에 있는 난파조왜국을 건설하였다는 일본의 정사( 正 史 )인 일본서기( 日 本 書 紀 )의 응신 년기( 年 記 )에 근거한 이론. 6) 중국의 산동 반도 일대인 광양( 廣 陽 ) 청하( 淸 河 ) 성양( 城 陽 ) 등의 지역을 동성왕 때부터 40여 년 간 백제가 지배하였다는 중국 정사( 正 史 )의 하나인 남제서( 南 齊 書 )와 일본서기( 日 本 書 紀 )현종3년기 기록을 근거로 한 이론. 7) 백제가 바다를 건너 오늘날 중국 상해 부근인 소주( 蘇 州 ) 소흥( 紹 興 ) 지방을 진출하였다는 이론으 로 삼국사기( 三 國 史 記 ) 최치원전 구당서( 舊 唐 書 ) 거지지( 据 地 志 ) 등의 기록에 근거함. 8) 담로가 22지역에 있었다는 주장으로 오늘날 중국의 광서자치구, 타이완(다모라국), 남베트남에서 캄보디아 지경에 있었던 부남( 扶 南 ), 필리핀 등도 이에 포함된다. 196
205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그림 2> 中 國 本 土 內 百 濟 植 民 地 9) 2. 악기의 조건 새 악기대백과 를 집필하면서 또 하나 느낀 것은 우리 인류가 얼마나 많은 악기를 만 들었고, 거기에는 얼마나 기상천외한 악기들이 있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악기가 사라졌나 하는 문제였다. 어느 시대엔가 발명되고, 개량되고, 변천되고. 긴 여과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악기는 인류에게 사랑받는 것이 되고 또 어떤 것은 변천된 악기에게 악기로서의 영광 을 물려주고 영원히 퇴장한 것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사라진 악기 중에는 무슨 악 기인지 어떠한 발음 원리를 가졌는지 어떤 연주법으로 어떤 음악을 연주 할 수 있었는지조 차 알려지지 않은 악기 또한 많다. 살아남은 악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들은 악기로서의 조건을 잘 갖추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악기로 서의 조건, 그것은 우선 작스(C. Sachs)와 호른보스텔(M. von Hornbostel)의 발음체에 의한 분류법을 따른다 해도 몸울림악기[Idiophones] 10), 막울림악기[Membranophones] 9) 문정창, 백제사, 381쪽. 10) 몸 울림 악기의 여러 형태 : 1. Struck idiophones(idiophones set in vibration by being struck, cymbals, xylophones). directly(percussion idiophones, percussion vessels, bells, sets of bells, sets of hanging bells, with internal strikers, Typically decimal points are inserted), indirectly, 2. Plucked idiophones,<lamellophones>-idiophones set in vibration 197
20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11), 줄울림악기[Chordophones], 공기울림악기[Aerophones], 전자악기[Electrophones] 등이 있다. 이 많은 악기의 서로 다른 특성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이를 일일이 논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보편적인 특성의 공통점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그림 3> 백제 교역로 12) by being plucked<jewʼs harp or thumb piano>.in frame, in board or comb form, 3.Friction idiophones - idiophones which are rubbed<example the nail violin, a bowed instrument with solid pieces of metal or wood rather than strings>, with sticks, with plaques, with vessels), 4. Blown idiophones - idiophones set in vibration by the movement of air, for example the Aeolsklavier, an instrument consisting of several pieces of wood which vibrate when air is blown onto them by a set of bellows(with sticks, with plaques) 11) 2. 막울림악기(팽팽하게 조인 얇은 막< 膜 >을 울려 내는 악기로 모든 종류의 북과 카쭈(kazoo)가 이 영역에 포함됨)의 여러 형태 : 1. Struck drums(instruments which have a struck membrane. This includes most types of drum, such as the timpani and snare drum), 2. Plucked drums-these are drums with a knotted string attached to the membrane. When the string is plucked, it passes the vibration on to the membrane, which vibrates to give the sound. Some kinds of Indian drums are like this. Some commentators believe that instruments in this class ought instead to be regarded as chordophones, 3. Friction drums (drums which are rubbed, either with the hand, a stick, or something else, rather than being struck), 4. (Singing membranes - this group includes kazoos, instruments which do not produce noise of their own, but modify other noises by way of a vibrating membrane) 12) 이도학, 백제인물사, 381쪽. 198
207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1) 발음이 선명하고 사람이 모든 음의 매개변수[parameter]를 분명히 인식 할 수 있어 야한다. 모든 소리는 매개 변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 그 중 음빛깔에 대한 매개변수와 고 른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시끄러운 소리라 하여도 음악에 유용한 것인가에 따라 좋은 악기 로서의 조건이 된다. 2) 발음된 소리는 좋은 울림과 배음( 倍 音, overtone)을 내게 하는 공명 기관을 요구하 고 있다. 공명은 충돌하는 원자구성 입자들의 순 에너지를 공명입자의 정지질량에 일치시 키는 현상이며 비연속적이다. 따라서 연속적인 음높이 매개변수에 비하여 비연속적이지만 무한 나열이 그 특성이다. 악기에서 이런 환경을 만드는 공명통[resonance box]은 모든 악기이든지 갖추어야할 조건이다. 공명통의 재질 또한 중요하다. 목재, 금속, 뼈, 도자( 陶 瓷 ), 유리 같은 물질들이 주로 악기의 공명재료가 되는데, 목재에도 대나무, 오동나무, 밤 나무, 대추나무, 박달나무, 마호가니, 가문비나무, 장미나무, 흑단, 홍단, 자단 등이 주로 사용되는 것이며 이것들은 배음과 큰 관계를 갖는다. 고른 소리를 내는 악기이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악기이든 배음이 풍부하여야 좋은 악기로 인정받는다. 가장 중요한 악기의 조 건이다. 악기 제작에 필요한 재료는 각각 음빛깔과 인장( 引 張 )값을 다르게 한다. 인장은 소 리를 공명시키는 조건 중 우위에 있으며 무게와도 관계된다. 악기의 무게는 연주형태와 연 주법에 큰 영향을 준다. 3) 인간의 신체 활동에 용이한 연주방법을 찾아간다. 소리를 내는데 인간의 보편적인 신 체활동에 어긋난다면 연주를 기피하게 된다. 연주하기에 불편한 동작을 해야만 다양한 음 악 표현을 할 수 있다면 역시 연주를 기피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조건의 악기라면 연주자 는 이를 해결하고자 악기를 변형하거나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4) 내구성이 강해야 하고 가능한 한 아름다운 모습을 추구한다. 극단적인 예로 버들피리 를 예로 들어 보자. 봄에 버드나무의 어린 가지를 잘라 만드는 버들피리는 여러 가지 악기 조건에서 사람들이 선호하여 악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인 악기 대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하루도 못되어 시들어 버리는 내구성 부족에 있다. 봄 철 나무에 물이 오르는 한 때 밖에 만들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변 형되어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되는 내구성 부재가 더 큰 원인인 것이다. 조잡한 장난 감 수준의 악기도 내구성이 부족으로 악기 대접을 못 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에 비하여 명 기( 名 器 )는 강한 내구성을 보인다. 아마티,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우스 등이 제작한 199
20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현악기는 300년 이상의 시간을 버티면서도 명기로서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공민왕의 거 문고는 이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지켜낸 세계적인 명기이다. 소모품 취급을 받는 관악기도 내구성이 강한 흑단( 黑 檀 )을 사용하면서 명기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 금속제의 경우 에도 불변의 상징인 금의 포함량이 얼마나 많으냐가 내구성을 강도( 强 度 ) 비례한다. 악기는 좋은 소리를 내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가능한 한 아름다운 외형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도 악기가 갖추고자하는 하나의 조건이다. II. 백제금동향로 오른쪽1악사 1. 연구 방법과 오른쪽1악사 관찰 필자는 이미 백제금동대향로 주악 조소상 악기 명칭에 대한 연구 13) 라는 논문을 통하 여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夫 餘 陵 山 里 出 土 百 濟 金 銅 香 爐 )의 오른쪽1 악사의 악기의 이 름을 밝힐 수 없어 백제무명악기라 발표한 일이 있다. 이것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견된 직 후부터 지금까지 해당 박물관 안내 게시물로부터 각종 교과서나 전 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자료에 북 또는 타악기로 쓰이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악기의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능과 연주, 음악표현의 내용을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 는 자료이다. 특히 옛 악기의 경우 그 악기가 존재하던 당시의 음악을 추정하는 것은 물론 문화적 상황 이해하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악기나 새 로 발견된 악기의 이름을 정하는데 전제가 되는 것은 기존악기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 다. 하지만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악사와 같이 전대미문의 악기가 나왔을 때는 1차적으로 그 악기 자체를 원점으로 두고 세밀히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른 방법일 것 이다. 그 다음 악기로서의 기능과 유사한 유물( 遺 物 )이나 인류학적 자료 검색, 관련 문헌 유무 점검을 챙겨봐야 한다. 이런 과정과 동시에 악기 이름이나 악기로서의 기능을 연구할 수 있다. 다음 과정으로 그 악기로서 생성이 가능한 음원 점검과 선택, 이를 통한 음악의 유추( 類 推 ) 순서로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13) 이종구, 백제금동대향로 주악 조소상 악기 명칭에 대한 연구, 음악논단 21집(서울 : 한양대 학교 음악연구소, 2007), 1-25쪽. 200
209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그림 4>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 <그림 4>의 상단 4종의 사진은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악사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 한 것이다. 1은 국립부여박물관 학예사로부터 직접 받은 사진이고 2, 3, 4는 백제금동 대향로 디지털재현관(http : // 내려 받은 것 14) 이다. 1의 사진은 약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것인 동시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피사체를 찍은 것이다. 2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촬영할 수 있는 최대의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더 왼쪽으로 간다면 1과 2의 사진 아래쪽에서 볼 수 있는 연속무늬가 있는 곡선의 조형물(산을 형상 화 한 조각으로 상단에 기러기가 있다)에 가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악사 전체를 촬영할 수 없다. 3은 정면의 약간 오른쪽에서 피사체를 잡은 것이고, 4의 앵글은 정면으로부터 45도 이상 오른쪽의 약간 위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이 4종의 사진은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악사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비교 관찰하기에 좋은 자료들이다. 백제 금동대향로 디지털재현관에서 내려 받은 후 필자가 형태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하여 포토 샵7.0(Adobe Photoshop 7.0)으로 Brightness -12, Contrast +41 정도와 Curves 곡선 변형을 Adjustments 도구로 Image를 바꾸었다. <그림4>의 2, 3, 4 사진이 그것이다. 한편 1-1, 2-1, 3-1, 4-1은 1, 2, 3, 4의 사진에서 악기 부분을 확대하고 주변을 삭제한 사진이다. 14) 디지털 재현관의 사진을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진품과 달라, 복각(모 조)품을 모델로 하여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201
2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2. 악기 외형( 外 形 ) <그림4>의 1-1, 2-1, 3-1, 4-1에 나타난 악기의 모양 관찰 사항을 정리하면 아 래와 같다. 가) 악기의 윗면은 앞쪽은 반원( 半 圓 )형이고 뒤쪽은 직각의 모습이어서 마치 양변기( 洋 便 器 )의 윗부분 모양과 유사하다. 나) 악기는 너비가 연주자의 허리 품 정도이고, 길이가 골반에서 무릎 즉 대퇴골 정도 이지만 반원( 半 圓 )형의 앞쪽이 더 튀어나와 길다. 목척으로 대퇴부에서 어깨선 정도 의 길이로 보인다. 다) 악기 몸체의 높이는 연주자의 손바닥 너비 보다 약간 길다. 라) 몸체 위에 달려있는 양변기의 모양의 형태에 긴 손잡이가 한 가운데 부착되었다. 손 잡이는 앞쪽 보다 뒤쪽이 약간 높다. 이 손잡이의 뒤쪽은 뚜껑의 두께와 대략 비슷 하다. 마) 뚜껑의 외곽선을 따라 안쪽으로 홈을 판 모양은 장식인 듯하다. 바) 뚜껑의 아래는 몸체는 앞쪽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흘림 모양이다. 사) 배흘림 모양의 몸체를 대략 3등분 하는 위치에 수평으로 2개의 주름이 접혀있다. 3.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의 연주 모습 한편, <그림4>의 1, 2, 3, 4에 나타난 연주자의 모습에서 관찰한 사항을 정리하겠다. 가) 오른손으로 손잡이의 뒤쪽을 잡고 있다. 손잡이 앞 방향으로 새끼손가락이 위치하여 뚜껑을 상하로 움직이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나) 왼손으로 손바닥을 펴서 수도( 手 刀 ) 방향을 아래로 악기 몸통의 오른쪽에 대고 있다. 다) 가부좌 자세로 무릎을 벌리고 앉아서 그 위에 악기를 얹어 놓고 있다. 정강이와 발 꿈치로 악기를 약간 조이듯 파지( 把 持 )를 돕고 있다(<그림4>의 2 맨 아래 연주자의 왼쪽 끝 부분에 잘려서 부분만 보이는 반짝이는 물체가 연주자의 발바닥임). 라) 무릎에 얹어 놓고도 고정될 수 있다면 이 악기의 재료는 중량이 무거운 목재이거나 금속일 가능성이 크다. 202
211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마) <그림 4>의 3, 4에서 보듯 연주자의 입이 벌려져있어 노래하며 악기연주로써 반 주할 가능성도 있다. 이상의 관찰 사항을 바탕으로 악기 모양을 필자가 Illustrator CS2에서 일러스트 디 자인으로 재현한 것이 <그림 5>이다. <그림 5> 오른쪽 1악사 악기 Ⅲ. 악기로서의 가능성 점검 한다. 이상의 관찰 사항을 바탕으로 이 악기가 무슨 악기인지에 대한 가능성을 검토해 보고자 1. 타악기로서의 가능성 막 울림악기[Membranophones]와 몸 울림악기[Idiophones] 영역의 악기를 타악기라 한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가 막 울림악기[Membranophones]와 몸 울림악기[Idiophones] 로서의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해 보겠다. 203
2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그림 6> 막 울림악기의 채를 잡은 여러 가지 모습. 한 결 같이 채가 엄지와 검지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있어 북 면을 두드리게 하고 있다. 1) 이 악기를 타악기 또는 북으로 본 기존의 주장들은 오른손에 잡고 있는 것을 채 [stick, mallet]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른손의 손가락 위치가 엄지 검지는 안 쪽으로 약지는 바깥쪽으로 잡고 있어 타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는 볼 수 없다. 인간이 오른손으로 기구를 이용할 때 그것이 북채든 칼이든 혹은 숟가락이든 모두 엄지와 검지를 주로 이용하고 또 그 방향에 무게중심을 싣고 활동을 하게 된다. 이것이 채를 잡는 모습이 라면 매우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어서 앞서 언급한 악기로서의 조건 중 ʻ인간의 신체 활동에 용이한 연주방법ʼ에 벗어난다. 우리나라 타악기 연주법 중 설장구 채를 잡을 때 엄지 검지 방향이 아닌 수도( 手 刀 )방향 으로 채의 무게중심을 놓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때에 채의 무게중심을 아래로 떨어뜨리 기에 가능한 것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제1악사처럼 수평 방향으로 타악기 채를 연주 하는 것은 설장구의 예와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이다. 2)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제1악사가 북이나 타악기를 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면, 북통의 가운데 부분을 치는 것으로 묘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 악 사는 북의 가운데도 변죽도 아닌 모서리 부분에 이어져 있다. 더욱이 이것은 윗면에 붙어 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이것이 북이라면, 이는 연주하는 모습이 아니고 북 의 가죽 면에 채가 붙여놓은 형태가 되는 것이다. 3)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제1악사는 왼손을 악기의 본체에 대고 있다. 무릎에 얹어 고 정한 타악기를 왼손 한손으로만 밀듯이 파지( 把 持 )할 수는 없다. 왼손이 타악기를 밀쳐 낼 204
213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수 있기 때문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제1악사는 악기를 무릎에 얹어 놓는 정도로 고정하고 있기 때문 에 악기가 무거울 것이다. 타악기라면 속이 비었을 때 공명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거운 중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명 공간은 그리 크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며 공명을 최대화 하 려 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공명을 방해하는 요인이 충분한 왼손으로 악기를 잡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타악기가 추구하는 보편적 방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꽹과리처럼 왼손 으로 ʻ막고 치는ʼ 즉 댐핑(Damping, 弱 音 )을 하는 모습도 역시 아니다. 만약 그것이 댐핑 이라면 당연히 울림이 많은 타악기의 앞면 즉 위 면을에서 우루어 져야하지, 백제금동대향 로 오른쪽 제1악사처럼 악기의 옆면을 막을 리는 없다. 따라서 타악기로 보기에 대단한 무 리가 따른다. 4)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 악사를 타악기로 보는데 어려운 사항을 앞의 1), 2), 3)항에 서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을 피하면서도 몸 울림악기로 하나로 추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 다. 그것은 오늘날의 그것과 연주형태가 다른 목탁( 木 鐸 )일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목탁은 대추나무나 살구나무 또는 박달나무, 은행나무, 괴목 등으로 만드는데 이 나무들의 공통점 은 단단하고 결이 고와서 공명이 잘되며 중량도 무겁다. 그래서 목탁은 악기의 본체에 비 해 공명 기관으로서의 울림통이 크지 않아도 된다. 목탁은 불교 사물( 四 物 )의 하나인 목어 ( 木 魚, 또는 魚 鼓 )를 손에 들고 다니기 편하게 변형한 법구( 法 具 )이다. 따라서 2m가 넘는 거대한 목어에서 지름이 불과 5cm에 달하는 작은 것 까지 다양하게 제작할 수 있다. 목어나 목탁의 공통점은 용두어신( 龍 頭 魚 身 )을 전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타원 모양의 입 방체가 될 수 있다. 오른쪽1 악사 악기의 전면(주름처럼 보이는) 부분이 뚜껑과 몸통을 잇 는 연결 장치의 역할을 하고, 손잡이가 있는 뚜껑 뒷부분을 상하로 움직여 내리칠 수 있게 고안된 것이라면 타악기로 볼 수 있다. 음의 강도[Intensity]를 일정하게 얻기 위하여 이런 조정 장치를 두었다는 설득력도 함께 얻을 수 있다. 뚜껑 역시 채의 기능을 하며 공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목탁은 사찰의 경내를 청정하게 하는 도량석으로 부터 중생을 미혹으로부터 깨우쳐 주 는 모든 불교 의식에 법구( 法 具 )이다. 백제가 불교국가이었기에 더욱 가능한 발상이다. 205
2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사진 2> 현재 한국과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목탁과 목어 종류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지만, 크기에 비하여 무겁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몸통에 비해 울림 통(또는 울림구멍)이 작거나 좁아도 울림이 풍부하다. <가> : 물고기 비늘만 새겨 놓은 중국 목탁의 한 면. <나> : 포단 등에 얹어 놓고 치는 한국의 목탁. 무겁기 때문에 어느 곳에 놓아도 연주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안정됨, 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가 가지고 있는 악기 정도의 크기임. <다> : 용두어신 이외에 구름 까지 새겨 넣은 중국 대형 목탁. <라> 사실적인 물고기 모양의 중국 목어. <마> : 해인사의 목어로 용두어신을 조각함. <바> : 무늬가 없는 근대의 중국목탁 15), 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 사가 가지고 있는 악기와 비슷한 크기로 추정. <사> : 건물에 매 달아 놓고 치는 한국목탁 16). 15) 이 사진 중 중국측 자료의 출처는 word=%c4%be%d3%e3&in=3200&cl=2&cm=1&sc=0&lm=-1&pn=167&rn=1&di= &ln=2000&fr= 임. 16) 이 사진 중 한국 자료의 출처는 lpp=28&color=0&size=0&shape=default&sorttype=3&cp=&page=15임. 206
215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목탁은 목어를 변형하여 소형화 한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오늘날이나 또는 백제금동 대향로 보다 천년이나 후대( 後 代 )에 만들어진 삼재도회 를 굳이 표준으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목어가 아직도 폭이 좁은 긴 타원형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것이 소형화 하면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이 생겼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 개연성은 충분할 것이다. <사진2>는, 다양한 종류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하는 목어, 목탁 중에서 몇 가지를 제시 한 것으로 삼재도회 의 목탁 도상과 또 다른 유형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왼손의 기능에 대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기에 이러 한 결론을 내리는데 보다 신중해야 하고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림 7> 필자가 Illustrator CS2에서 제작한 목어( 木 魚 )일 경우의 디자인. 중앙이 타격할 때이고 오른쪽이 타격 준비 동작 2. 관악기로서의 가능성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1 악사의 악기는 참으로 그 정체를 규명하기 어렵다. 이와 유사 한 악기가 주변 국가는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 악기의 실체를 찾기 위 해 필자는 2002년과 2009년 까지 모두 아홉 차례의 해외여행(중국, 우즈베키스탄, 몽골, 필리핀, 태국)을 하였으나 이와 유사한 악기를 찾을 수 없었다. 또한 필자가 소장으로 있 는 한양대학교 전자음악연구소와 제휴하고 있는 여러 국가의 민족 악기 관련 연구소에도 이 악기에 대한 문의를 한 바 있으나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 놓은 곳이 없다. 따라서 이 악기는 자체의 모양과 구조로서 발음원리를 추정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미 언급 한 것처럼 이 악기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관악기일 가능성을 부여 할 수 있다. 207
21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첫째, 몸체가 하나의 공기통을 이루면서 외부로부터 공기를 흡입하여 내부(보이지 않는) 의 관을 통과하는 연주하는 공기울림악기[ 氣 柱 振 動 樂 器 ]의 한가지로 보는 것이다. 공기통의 상단에 손잡이가 있고 이를 통하여 풀무질을 하는 악기로 해석한다면 백제금동대향로 오른 쪽 1악사의 모습과 흡사하다. 특히 이 주조상의 정면에 선명하게 주름이 새겨져 있어 풍구 ( 風 具 )의 주름(bellow)으로 보기에 충분하여 이런 가능성을 뒤받침 하게 한다. 따라서 이 악기는 생황의 원리를 갖는 또는 기구를 사용하는 생황( 笙 篁 )의 일종으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다. 생황이 입으로 부는 취주악기이고 관대들이 밖으로 노출된 악기라는 점에서 백제금 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의 악기와 거리감은 있지만 이 악기가 서양의 오르간(Organ)이 생 황에 유목민의 백파이프와 같은 풍구를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처럼 기구를 사용하는 생황의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근대에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기구를 사용 하여 연주하는 생황들이 생겨난 것을 본다면 더욱 그렇다. 둘째,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는 특히 왼손으로 악기의 측면을 잡고 있어 이 방향 에 지공( 指 孔 )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를 조정하여 음정을 맞춰 음악을 연주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백제금동대향로 오른쪽 1악사를 볼 때 악기의 파지( 把 持 )가 매우 안 정적이다. 그래서 단순히 악기를 지탱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왼손의 기능을 설명하기 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음악적인 기능의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림 8> 필자가 Illustrator CS2에서 관악기(생황)일 경우로 드로잉 한 디자인. 중앙이 공기를 배출할 때이고 오른쪽이 공기를 흡입할 때. 악기의 왼쪽(사진에서는 오른쪽에 최대 4개의 지공( 指 孔 )을 설정할 수 있다. 기구로 연주하는 생황계열의 악기라 생각해 보는 데에는 18세기 말, 티푸 술탄(Tippoo Sultan)이 인도에서 영국으로 가져간 티푸 타이거도 같은 종류의 동양악기였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두었다. 208
217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사진 3> 관악기로서의 가능성 실험 악기 배소와 생황은 같은 다관( 多 管 )악기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직선배열이냐 원형으로 묶었느 냐의 배치에 따른 차이가 있다. 선입관 없이 도상의 원형을 그대로 조사한다는 고고도상학 [ 圖 像 學, iconography]의 기본원칙에 따라 필자가 관악기로서의 가능성 실험을 위하여 만 들었던 이 악기는, 기존 생황이나 배소보다 오히려 제작하기가 쉬웠으며, 발음, 공명, 연주 기능도 쉬웠지만 효과는 매우 원활하고 우수하였다. 다만 제작비 문제 때문에 도상의 형태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고 원리만 실험하였던 아쉬움은 있다. 이후 엑스레이나 레이저 등을 이용한 데이터의 검증을 거쳐서 연구한 결과가 필자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목탁 계열의 타 악기나 기구를 사용한 생황계통의 악기로 판명된다면 이는 세계 유일의 백제 악기이자 고유 한 국악기가 탄생하는 동시에 차별화 된 백제음원과 캐릭터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악기들 중 전자 악기를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 악기의 역사가 고대에 이른다. 국악기도 예외가 아니어서 관 현 타 모든 악기의 기원이 금동대향로의 역 사보다 늦은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 조선 후기에 들어 왔다고 하는 양금조차도 그 역사는 오래된 것으로 아시아(페르시아)의 고대 악기가 겨우 10세기 때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와 중국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렇듯 고대인들이 악기 제작의 아이 디어가 이 시대나 또 어느 시대에 못지 않았다. 209
21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고대인이 이런 관악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무리가 있는 추측이라는 자료집-논평문의 129쪽의 주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를 해야 하는 유물자료를 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고고도상학( 考 古 圖 像 學 )의 접근 방법에서 경계해야할 일이라 하겠다. 어쨌든 우( 芋 ), 생( 笙 ), 황( 簧 ) 등 떨청을 발음체로 하는 악기들의 역사는 3000년을 뛰 어 넘는다. 그 동안 이 악기는 인도의 티푸, 서북아시아의 콘세르티나, 북유럽의 백파이프, 헬라 문화의 시링크스, 히드라우리스 등의 고대악기의 조상으로 변형하면서 세계 각 지역 의 음악문화에 영향을 준 악기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조소상 오른쪽1 악사의 악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악기 가 없다는 점에서 백제 자생악기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독자적인 악기를 대하며 악기로 서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지 말고 모든 것을 치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 아래 필자는 2005년에 관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실제로 제작해 본 일이 있다. 참고로 게재한 <사진3>이 그것으로, 그 소리 또한 훌륭했다는 결과를 부언한다. 이는 필자 가 악기의 설계는 직접 하였고, 중국 청진에서 죽편( 竹 片 )을 수입하여 발음체로 삼았었다. Ⅳ. 맺음말 백제금동대향로 5인의 악사는 상단에 마치 합주를 하듯 균형 있고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다. 그 중 정면의 중앙악기는 백제 삼현( 三 絃 )으로 줄울림악기이고, 왼쪽1 악기는 장소 ( 長 嘯 )로 공기울림악기이며, 왼쪽2 악기는 배소( 排 簫 )로 역시 공기울림악기이고 오른쪽2 악 사는 금( 琴 )으로 줄울림악기이다. 그러나 오른쪽1 악사만은 다른 악사들과 달리 오늘날 우 리 음악사나 동양음악사에서 사라진 악기로 그 이름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악기였다. <표> 백제금동대향로 악기 명칭 및 분류 17) 배치 중앙 왼쪽 1 왼쪽 2 오른쪽 1 오른쪽 2 이름 백제삼현 장소 배소 무명백제악기 금 분류 줄울림악기 공기울림악기 공기울림악기 떨청울림악기 줄울림악기 지역성 동남아, 중원 동남아 중앙아시아 찾을 수 없음 중원 17) 이종구, 앞의 논문, 19쪽. 210
219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이 논문에서는 다각적으로 포토샵과 일러스터 프로그램을 응용하여 오른쪽1 악기의 외 형을 관찰하여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목탁의 일종인 타악기로서의 가 능성과 생황계통의 관악기일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두 가능성은 모두 기구를 사용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 목탁과 생황과 차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타악기로서의 가능성 에는 왼손이 악기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따라서 가장 이 조소상의 외형에 충실한 악기는 풀무로 연주하는 생황으로 필자는 이 오른쪽1 악사의 이름 을 기존 무명백제악기 에서 백제생황 이라 바꾸어 명명하려한다. 이 조각은 지극히 작게 조각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체균형과 악기의 모양이 사실적인 비례로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어 악기연주 자세와 각각의 악기의 음향원리 등을 정확하게 추정해 볼 수 있는 믿을 만한 자료기 되고 있다. 그래서 악기를 재현( 再 現 )하는 데에도 다 음의 두 가지 사항만 선행 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하나는 레이저로 백제금동대향로 악사들과 악기를 측정하여 정밀한 각 부분의 비례와 악기의 외형을 3차원 그래프로 정보화하는 과정을 카이스트 박진호 박사팀이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이 후 제작 된 3차원 그래픽을 한국 고대인의 표준 신장에 대입시켜 악기의 크기와 용적률( 容 積 率 )을 정하는 것도 악기 제작 이전에 필요한 일이 또 남아있다. 백제인의 평균 신장은 아직 연구된 바 없다. 백제인의 신체에 대한 연구할 자료로는 중 국의 양나라 수도였던 난징의 중국남경시립박물관에 소장된 6세기 때 양직공도 18) (당나라에 서 파견된 사신들을 그린 그림)의 사신도( 史 臣 圖 ) 도상( 圖 相 )과 무령왕릉 출토의 대왕과 왕 비의 관( 棺 ) 19) 을 비롯한 팔찌, 귀거리, 관식( 冠 飾 ) 등의 부장품 등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서산 마애석불이나 백제 멸망 직후 백제 지역에서 조성한 통일신라시대의 국보 368호 미 륵보살반가석상, 백제 제작설이 우세한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半 跏 思 惟 像 )과 이를 쌍둥이 처럼 닮은 일본 국보1호의 반가사유상[역시 백제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신라 도래 18) 양직공도는 남경시립박물관 소장본 이외에도 태만의 고궁박물관소장본[당나라 화가 염립본이 그 린것]과 양원제번객입조도 등의 사본이 있다. 남경시립박물관 본에는 百 濟 舊 來 夷 馬 韓 之 屬 晉 末 駒 驪 旣 略 有 遼 東 樂 浪 亦 有 遼 西 晉 平 縣 自 晋 已 來 常 修 蕃 貢, 義 熙 中, 其 王 餘 腆, 宋 元 嘉 中 其 王 餘 毗, 齊 永 明 中 其 王 餘 太, 皆 受 中 國 官 爵, 梁 初 以 太 除 征 東 將 軍, 尋 爲 高 句 驪 所 破, 普 通 二 年, 其 王 餘 隆 遣 使 奉 表 云, 累 破 高 麗, 所 治 城 曰 固 麻, 謂 邑 檐 魯 於 中 國 郡 縣 有 二 十 二 檐 魯, 分 子 弟 宗 族 爲 之. 旁 小 國 有 叛 波, 卓, 多 羅, 前 羅, 新 羅, 止 迷, 麻 連, 上 己 文, 下 枕 羅 等 附 之. 言 語 衣 服 略 同 高 麗, 行 不 張 拱 拜 不 申 足, 以 帽 爲 冠, 襦 曰 複 袗, 袴 曰 褌. 其 言 參 諸 夏, 亦 秦 韓 之 遺 俗 라는 글이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상의 논란이 있다. 19) 무령왕릉의 관은 목관으로 왕과 왕비의 것이 섞여있는 채 발견되었으나 그 크기가 밝혀지지 않 고 있다. 다만 관재의 원목은 지름 130cm, 길이 3m, 무게가 3.6t에 달하는 3백년 이상 된 나 무로 추정된다고 박상진, 궁궐의 우리나무, (서울 : (주)눌와), 2001에 밝히고 있어 무령왕의 신 장을 추적해 볼 자료는 되지 않는다. 211
22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설도 있음] 등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백제금동 대향로의 여러 신선상( 神 仙 相 )들 처럼 절대 치수의 신장( 身 長 )을 추적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아 그 산출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백제를 떠나서면 조선시대 이전까지의 한국인 평균키에 대한 연구는 몇 가지 가 있었다. 그 첫째는 경남 김해에서 출토된 가야인 성인 유골 근거하여 산출한 남성의 신장 이 167.4cm로 밝혀졌고, 둘째 고려시대 고분군에서 출토한 유골을 근거로 한 남자 신장이 162.2cm로 알려졌으며, 임진왜란 때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1~166cm로 그 중간 치수는 163.5cm가 되고 20), 1890년대 방한한 영국 지리학자 겸 탐험가인 이사벨라 버나드 비숍 (Bishop, Isabella Bird)의 저서에는 한국인 남자의 신장을 남자164cm 21) 로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수치를 평균화 하면 한국인의 평균 신장은 164.3cm 즉 ( ) 4= =164.3로 오늘날의 평균 신장인 cm 보다 10cm 정도 작 은 것으로 이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 최성진, 한국인의 신장( 身 長 ) 변화와 생활 수준의 변동 - 식민지 시기 키 자료를 중심으로, 서울 :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 비숍 이사벨라버드 지음 이인화 옮김, 한국인과 이웃나라들 (서울 : 도서출판 살림, 2001), 19쪽. 스트리플링씨가 1897년 서울지역에서 1060명의 성인남자를 대상으로 측정한 평균치 라는 단 서가 있음. 212
221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참고문헌> 김성혜. 신라음악 연구. 서울 : 민속원, 김영태. 百 濟 佛 敎 思 想 硏 究. 서울 : 동국대학교 출판부, 김용진. 國 樂 器 解 說. 서울 : 국민음악연구회, 문정창. 百 濟 史. 서울 : 인간사, 서정록. 백제금동대향로. 서울 : 학고재, 송방송. 韓 國 音 樂 史 硏 究. 경북 : 영남대학교 출판부, 송방송. 백제악기의 음악사학적 조명. 한국음악사학보. 제14집. 서울 : 한국 음악사학회, 송혜진 박원모. 악기장. 서울 : 민속원, 2006 신형식. 百 濟 史. 서울 :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이도학. 백제인물사. 서울 : 도서출판 주류성, 이종구. 악기 백과. 서울 : Art Source, 신악기백과, 관현악 편. 서울 : 음악춘추사, 이혜구. 한국음악연구. 서울 : 국민음악회,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 사계절, 장사훈. 韓 國 樂 器 大 觀. 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조선 유물유적 도감 편찬위원회. 조선 유물 유적 도감(1) : 원시편, 평양 : 조선 유물유적 도감 편찬위원회, Sachs Curt. 음악의 기원(The Ride of Music in the Anciant World East and West). 서울 : 국민음악연구회, Isabella Bird Bishop. 이인화 옮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서울 : 도서출판 살림, Bacckus, John. The Acoustical Foundations of Music. New York : W. W. Norton & Company, Wachsmann, Klaus / Hornbostel, Erich M. / Sachs, Curt. Instruments, classification of.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9. Ed. by Stanley Sadie. London : Macmillan publishers limited. 1980, 楊 蔭 劉. 中 國 古 代 音 樂 史 稿. 북경 : 인민음악사,
22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樂 聲. 中 華 樂 器 大 典. 북경 : 민족출판사, 鐘 鳴 遠 主 編. 中 國 音 樂 聖 典. 북경 : 구주출판사, 敦 煌 硏 究 院 接 待 部. 敦 煌 石 窟. 甘 肅 文 化 出 版 社 蘭 州, 劉 東 升. 中 國 樂 器 圖 志. 輕 工 業 出 版 社 北 京, 薛 藝 兵. 中 國 樂 器 志. 北 京 人 民 音 樂 出 版 社, 吳 言 題 - 陳 川 編 著. 中 國 少 數 民 族 樂 器 大 觀. 四 川 人 民 出 版 社 成 都, 中 國 藝 術 硏 究 院 音 樂 硏 究 所 編. 中 國 樂 器 圖 鑑 山 東 出 版 社 靑 道, Köhler Richard. Instrumentationstabelle, Hug Musikverlage, Zurich, Sachs Curt. The History of Musical Instruments.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동아출판사 백과사전부.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서울 : 주식회사 동아출판사,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The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London : Maximillan Publishers Limited,
223 부여능산리출토백제금동향로 <Abstract> Right 1st. musical instruments of Baekje from the five musicians of Baekjegeumdongdaehyangno (Gilt Incense burner of Baekje period from Neungsan-ri, Buyeo) Yi Zong-gu (Professor, Hanyang University) This thesis outlines the Right 1st. musicians and their instruments that are placed on the top of a gilt incense burner called Baekjegeumdong- daehyangno excavated in 1993 at the temple site near Naseong, Baekje and Neungsan-ri, Gobun-gun with the help of the Buyeo National Museum. Even if it is a small sculpture, the shape of instruments and musicians clearly describe many details regarding a performing pose and the sound structure of each instrument. A brief summary is as follows : First, the instrument of the first musician known as percussion is wind instrument that can be assumed a kind of concertina. However, I myself couldnʼt find a proper name of this instrument therefore, I here call the instrument unnamed instrument of Baekje on my thesis. In this thesis, I inspected the external shape of the instrument, right 1, by using photo-shop and illustrator program. As the result, I tried to find the possibility of both a percussion instrument a sort of wooden gong and a wind instrument of the reed instrument system. These two possibilities all differ from the existing a wooden gong and a reed instrument in the respect that these are used with utensils. However, we concluded that the possibility as a percussion instrument is lessened in the respect that the left hand touches the instrument. Therefore, the instrument which has sculpturally most completed external shape is the reed instrument which plays with bellows. That is why I am going to call the name of right 1 musician from Unnamed instrument of Baekje to Baekje - Shon Pung Gum(Baekje - Concertina). Second, the second instrument previously known as the kômungo from the right side is 215
22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closed to the gŭm( 琴 ) which is one of the string instruments from middle China. The kômungo is originally from the Koguryŏ dynasty and the Silk Road. The fact that this instrument was found in there mains of Baekje tells us broad cultural exchanges of people of the country. Third, the instrument in the center of the burner known as the wanham or wolgŭm is closer to various kinds of the three-stringed instruments of Baekje dynasty. Last, there is a fan flute - or tŭngso - like instrument on the left side of Baekjegeumdong- daehyangno. Based on my study, these wind instruments came from the Silk Road and the southern regions. Although this sculpture is greatly tiny sculptured, it can be a reliable data by which the playing posture and the principle of sound of each instrument because the balance of human body and the shape of instrument are described in detail with realistic proportion. Thus, in the situation that the instruments are reproduced, there will be no problem if two factors are preceded. In one process, detailed proportions of each part and the shape of instruments were investigated by estimating instruments and Baekjegeumdong- daehyangno musicians for data processing in the form of 3-Dimension graphs and theses tasks were performed by Dr. Parkʼs team in KAIST. Then another required task is left before producing instruments. That is, the floor space rate and the size of instrument should be set by applying produced 3D graphic to ancient Korean peopleʼs average height. It has not been reported yet the average height of Baekje people. However, there were a few studies about the average height of Korean people until pre-chosun dynasty after Baekje period. Based on adult skull which is excavated in Kimhae, Kyung-nam, the first one was revealed that the average height of male was cm. Based on adult skull which are excavated in Gobun-gun of Koreyo dynasty, the second one was cm. In the period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Im Jin Wae Lan), the average height of male was 161~166cm and their average becomes 163.5cm and in a book of English explorer, Bishop, Isabella bird, who visited to Korea in 1890s is written that the average height of Korean man was 164cm. Therefore, if the figures mentioned above are calculated, the average height of Korean man is 164.3cm, ) 4= =164.3, and this is 10cm shorter than cm, which is the average height of the present time. Therefore, it is desirable to be utilized. Keywords : Instruments of Baekje, Baekje Incense Burner, national treasure No. 287, Culture of Baekje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225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조 유 회**1) <국문초록> 조선후기에 일어난 사회변화와 청( 淸 )을 통한 서양문물의 소개는 조선의 학자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8세기의 실학자들은 여러 차례의 연행( 燕 行 )을 통하여 노출된 청의 문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많은 서적과 다양한 기물들을 조선으로 들여오게 된다. 서양음악에 대한 지식과 서양의 악기인 양금( 洋 琴 ) 도 바로 그러한 예이다. 본 논문에서는 북학파가 청에서 새로 들여온 서양의 악기인 양금에 주목하여 한국의 양악수용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서양음악의 이론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한역( 漢 譯 ) 서학서( 西 學 書 )를 통해서이며, 서양음악의 오선보 계명창법 음자리 표 등 서양음악의 기초이론들은 홍대용( 洪 大 容 ) 이규경( 李 圭 景 ) 등에 의해 동양적 세계 관으로 재해석되었다. 홍대용과 이규경은 서악( 西 樂 )이론이나 서양 악기의 체계를, 상 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음양( 陰 陽 ) 강유( 剛 柔 ) 삼재( 三 才 ) 등의 동양적 세계관에 따라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동양, 특히 중국의 음악 이론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 거나 서양의 음악 이론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양과는 다른 체계를 지닌 서양 음악을 동양적 세계관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주체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홍대용과 이규경이 실학자로서 실사구시( 實 事 求 是 )의 학문방법으로 서양음악을 수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서양의 악기인 양금은 영조 초에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과 궁중 악사들에 의해서 수용되어, 기존의 악기와 함께 영산회상 가곡 등의 우리 음악에 연주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의 출발점을 개신교의 선교가 시작된 1880년대 초로 보 * 이 논문은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박사학위 논문 중 제2장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을 수정 보완한 글이다. 조유회, 조선후기 실학자의 음악관 연구-홍대용과 이규경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8-60쪽. **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 단원. 217
22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는 설보다 빠른 것이다. 그런데 악기와 악곡이 함께 들어온 여느 서양음악의 수용과는 달리 양금은 악기만을 들여와서 우리나라 음악에 맞게 조율하여 기존의 전통악기와 함 께 연주하였기 때문에 서양악기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것은 다른 동아시아권의 국가들에서는 서구세력의 아시아 진출 및 침략, 근대국가의 형성, 기독교 의 선교활동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양음악이 수용되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실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서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한국전통음악의 주체적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 주목해 볼때, 홍대용 이규경 등 조선후기 학자들의 실학적 태도는 바로 시대정신을 이끌고 노력했던 그들의 주체적인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핵심어 :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 이규경, 양금, 서양음악 목 차 Ⅰ. 머리말 Ⅱ. 조선후기의 음악상황 Ⅲ. 실학자들의 양금유입과 전파 Ⅳ. 양악 이론의 도입과 적용 Ⅴ. 맺는말 Ⅰ. 머리말 조선후기에는 낙후된 조선의 현실에 대한 구원으로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고 하는 학 자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ʻ북벌( 北 伐 )ʼ을 대신해서 ʻ북학( 北 學 )ʼ을 기치로 내걸었는데, 홍대용 ( 洪 大 容, ) 박지원( 朴 趾 源, ) 박제가( 朴 齊 家, ) 등이 이 218
227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에 해당한다. 1) 이들은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 계열의 학자들로, 노론학계의 분위기 속에 성 장하면서 자신의 성장기반을 반성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상체계인 북학사상( 北 學 思 想 )을 제 시하였다. 이들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데에는 연행( 燕 行 ) 2) 이 큰 역할을 했다. 3) 이 들은 여러 차례의 연행을 통하여 노출된 청의 문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많은 서적과 다양한 기물들을 갖고 들어오게 된다. 특히 18세기에는 서양의 존재와 서양음악이 소개되 었는데, 이것은 다른 동아시아권의 국가들이 서구세력의 아시아 진출 및 침략, 근대국가 의 형성, 기독교의 선교활동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양음악이 수용 4) 된 반면, 한 국의 경우에는 실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서 수용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실학자들이 청나라에서 서양의 악기인 양금( 洋 琴 ) 5) 을 들여와 우리나라 음악에 맞게 조율하여 기존의 전통악기와 함께 연주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의 출발점을 개신교의 선교 가 시작된 1880년대 초로 보는 설보다 빠른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조선후기의 음악적 상황을 살펴보고, 북학파가 청에서 새로 들여온 서양의 악기인 양금의 수용과 정착과정을 홍대용의 담헌서( 湛 軒 書 ) 와 이규경( 李 圭 景, )의 오주연문장전산고( 五 洲 衍 文 長 箋 散 稿 ), 그리고 양금악보인 구라철사 금자보( 歐 邏 鐵 絲 琴 字 譜 ) 를 통하여, 서양음악의 체계를 양금에 적용하여 양악의 실제를 구 체화시켰던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양악수용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신정근, 홍대용과 경험중심의 인식론적 리기관의 재생, 철학사상 제13집(서울 : 서울대학교 철 학사상연구소, 2001), 81쪽. 2) 연행이란 조선시대에 나라의 외교사절로 중국을 오가던 여행제도를 말하며, 역사적 지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던 조선과 중국 사이를 공적( 公 的 ) 또는 사적( 私 的 )으로 오가면서 문화를 전 파한 사람들을 연행사( 燕 行 使 )라 했다. 김태준, 홍대용과 그의 시대-연행의 비교문학- (서울 : 일지사, 1982), 13쪽. 명나라 때까지는 중국황제를 배알한다는 뜻으로 ʻ조천( 朝 天 )ʼ이라 했지만, 청나라 때에는 북경을 연경( 燕 京 )이라 부른 습관에서 ʻ연행( 燕 行 )ʼ이란 말로 바꾸어 대등외교의 자 신감을 나타내었다. 황원구, 연행록의 세계, 동아세아사 연구 (서울 : 일조각, 1976), 281쪽. 3) 북학론을 제시하던 이들 대부분은 연행에 수행하면서 청의 선진문물에 대하여 익히 보고 들어왔 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후기에 청으로부터 수용한 새로운 문물과 소식의 많은 부분이 연행을 통한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봉학,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 (서울 : 일지사, 1995), 79쪽. 4) 민경찬, 서양음악의 수용과 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의 초기 수용과정을 중심으로-, 낭 만음악 제69집(서울 : 낭만음악사, 2005), 100쪽. 5) 본고에서 말하는 ʻ양금ʼ은 덜시머의 총칭이 아닌 한국에 국한된 악기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219
22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Ⅱ. 조선후기의 음악상황 한 시대의 사상( 思 想 )과 음악( 音 樂 )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교에서도 예 악사상( 禮 樂 思 想 ) 6) 은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요구하고 있는 가치와 이념, 질서 등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교육이나 정치의 힘으로 풍습을 교화하는 일 을 하는 데 음악적 기능을 매우 중시하였다. 7) 본 논문에서 주목하는 조선시대는 유교를 국 교( 國 敎 )로 삼고, 유교의 이념으로 통치원리를 정립한 시대이기 때문에, 8) 궁중( 宮 中 )에서 사용되는 음악 또한 내용과 형식이 모두 철두철미하게 예악사상으로 점철된 의례적( 儀 禮 的 ) 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ʻ악( 樂 )ʼ은 이상화된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ʻ예( 禮 )ʼ의 실현 을 위한 이념적 도구일 뿐, 독자적으로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ʻ악ʼ의 개념 안에는 악기의 연주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이 함께 내포되어 있으며, 9) 그 내용과 형식이 모두 윤리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규범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10) 즉 조선시 대의 궁중음악은 의식을 중심으로 연주되는 관념적인 음악이 주류를 형성한 음악이면서, 음악을 수용하고 향유하는 계층 또한 왕실과 상류 양반사회의 구성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양반계층도 유교적 사상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ʻ악ʼ에 접근하는 관점 또한 개인의 수양적 차원에서 이해되고 향유되었으며, 11) 이러한 개인의 수양을 위해 6) 유교의 정치원리는 ʻ법( 法 )ʼ에 의한 지배, 곧 ʻ법치( 法 治 )ʼ가 아니라, ʻ예( 禮 )ʼ에 의한 교화, 곧 ʻ예 치( 禮 治 )ʼ로 인식된다는 점에 기본 특성이 있다. 그런데 예치는 ʻ예ʼ로만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ʻ예ʼ와 ʻ악( 樂 )ʼ의 균형을 통한 교화체계라는 점이 강조된다. ʻ예ʼ가 질서와 경건함을 통한 규제의 방법이라면, ʻ악ʼ은 조화와 즐거움을 통한 화합의 방법이다. 즉 ʻ예ʼ와 ʻ악ʼ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 하여 인간의 성품과 감정을 바로잡아 주고 국가의 질서와 통합을 확보해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라 하겠다. 금장태, 한국유학의 악론 (서울 : 예문서원, 2008), 5쪽. 7)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백기수 옮김, 미론 (서울 : 정음사, 1987), 187쪽 참조 및 인용. 8) 조선이 건국된 이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가의 체제를 건립하는 일과 새로운 사회를 운영해 나 갈 이념을 확립하고 보급시키는 일이었다. 이 일은 전왕조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불교를 배척하 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성리학의 이념을 제시하면서, 아울러 이에 기초한 사회체제를 확립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정대환, 성리학적 사회질서 확립을 위한 모색,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서울 : 예문서원, 2001), 쪽을 참고할 것. 9) 禮 記 樂 記 : 凡 音 之 起, 由 人 心 生 也, 人 心 之 動, 物 使 之 然 也. 感 於 物 而 動, 故 形 於 聲, 聲 相 應, 故 生 變. 變 成 方, 謂 之 音, 比 音 而 樂 之, 及 干 戚 羽 旄, 謂 之 樂. 참조. 10) 禮 記 樂 記 : 凡 音 者, 生 於 人 心 者 也, 樂 者, 通 倫 理 者 也. 是 故 知 聲 而 不 知 音 者, 禽 獸 是 也. 知 音 而 不 知 樂 者, 衆 庶 是 也. 唯 君 子 爲 能 知 樂. 참조. 11)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생활의 기본자세는 학문과 예술을 일치하려는 학예일치( 學 藝 一 致 ) 정신 에서 나왔다. 정옥자, 우리선비 (서울 : 현암사, 2002), 37쪽. 220
229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연주하는 ʻ악ʼ은 합주의 형태보다는 독주의 형태가 더 적합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궁중 음악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 음악 그 자체에 목적을 둔 심미적인 순 수음악이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즐거움을 공유하는 오락적인 개념의 음악이 아니 라, 유교의 이념에 따라 의례를 실현하거나 유교적 인간상을 완성하기 위한 이념적인 음악 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壬 辰 倭 亂, )과 병자호란( 丙 子 胡 亂, )을 계기로 주희( 朱 熹, )가 집대성한 성리학에 근본을 둔 예악 중심의 조선 성리학이 공리 공담( 空 理 空 談 ) 12) 을 일삼을 정도로 심성( 心 性 )논의에 지나치게 몰입하면서 그 한계를 드러 내 보이자 지식인들은 학문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또 양란( 兩 亂 ) 은 정치적으로는 당쟁의 논란, 사회적으로는 신분제의 변화, 경제적으로는 활발한 상공업 활동 등의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사상사에서도 조선전기를 지배하던 주자학적 이념체계에 대하여 일원론적( 一 元 論 的 ) 주기론( 主 氣 論 )이라 할 수 있는 기학( 氣 學 ) 의 반론이 전개되었으며, 때마침 청나라를 통해 고증학( 考 證 學 ) 13) 이 들어왔다. 또한 중세 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실학의 대두( 擡 頭 ) 14) 로 인해 그동안 정치적 교 화의 수단에 불과했던 음악분야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형식적이고 제한적인 궁중 음악문화와 달리 비교적 형식에 덜 구애받는 일반백성의 음악인 민속( 民 俗 )음악문화가 새로 운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음악의 수용층도 왕실과 상류 양반사회의 구성원에서 실 학파를 매개로 한 다양한 양반계층과 중인계층으로 이동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12) 공리공담의 사전적 의미는 ʻ실천이 따르지 않는 헛된 이론ʼ이라는 뜻이다. 성리학은 조선을 건국 할 당시의 사회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혁신사상으로 간주되었고,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농업중심사회가 상공업중심사회로 이동해감에 따라, 성리학은 더 이상 사 회를 이끌어갈 능력을 상실했으므로 폐단이 노정되었고, 변화된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 운 사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13) 고증학은 중국의 명말( 明 末 ) 청초( 淸 初 )에 일어난 실증적 고전연구의 학풍으로, 송명리학( 宋 明 理 學 )의 지나친 형이상학적 지향성[추상주의, 관념주의]에 반대하여 생겨난 청나라의 대표적 학풍 을 말한다. 14)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의 농업사회인 조선에 새로운 농업기술인 이앙법과 견종법 시비 법 등이 도입됨으로써 농업생산력이 증대되고, 상업적 농업기술과 상품 화폐경제를 활용하여 부 를 축적해나가는 경영적 부농이 형성되었다. 또한 대동법의 실시로 상품 화폐경제가 확산되어 자급자족적인 경제 질서 위에서 계층의 분화가 일어났으며, 이것은 신분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그리고 농촌인구의 증가와 농업경영에 따른 이농민의 도시진출 및 상업의 발달로 인한 도시인구 의 증가와 전국적인 인구증가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났다. 정치적으로는 당쟁의 격화로 영 정조대 에는 탕평정치가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고, 대외적으로는 17세기 중반에 청나라와 굴욕 적인 외교관계를 맺은 뒤로, 청과의 관계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에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실학은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학문경향으로 등장하였다. 국사편찬위원 회, 한국사 14 (서울 : 대한민국 문교부, 1990), 쪽 참조 및 인용. 221
23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이러한 계층적 이동에 따른 음악수용층의 변화는 악을 통하여 희노애락애오욕( 喜 怒 哀 樂 愛 惡 欲 )의 감정을 느끼고 발산할 수 있는 ʻ악ʼ의 직접적인 기능을 강조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음악에서도 개인적 관념적 차원에서 대중적 현실적 차원으로 확대 발전하는 양상으로 나 타났으며, 또 민속음악도 새로운 방향으로 뚜렷하게 음악예술의 한 장르로서 전개되었다. 한편, 조선후기에는 청( 淸 )나라를 왕래하던 연행사( 燕 行 使 )들에 의해 서양과 서양의 문화 가 소개되었으며, 15) 청을 통하여 서양음악에 대한 지식이 소개되었다. 1631년 정두원( 鄭 斗 源, 1581-?)은 당시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Jesuit)교단의 신부들로부터 입수한 애 유약( 艾 儒 略 : Giulio Aleni, )의 직방외기( 職 方 外 紀 ) 16) 에 담긴 내용을 통하 여 서양음악의 교육제도를 조선에 소개하면서 ʻ음악( 音 樂 )이 서양( 西 洋 ) 대학( 大 學 )의 철학 과( 哲 學 科 )에 속한다.ʼ는 사실을 전해 주었으며, 17) 천리경( 千 里 鏡 ) 서포( 西 砲 ) 자명종( 自 鳴 鐘 ) 염초화( 焰 硝 花 ; 불꽃놀이 화약) <만국지도( 萬 國 地 圖 )>와 서학범( 西 學 凡 ) 18) 서양풍속 15) 한국사에서 서양의 존재가 처음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때이다. 당시 전제왕권이 확립되고 해상을 통한 대외적인 문물교류가 왕성했던 통일신라는 도당( 渡 唐 )한 유학생 상인 관 리 등에 의해서 당에 와있던 서역의 사신들이나 그들의 교역물품에 접했다. 고려시대의 경우 중 앙귀족의 전제왕권이 확립되고 문물제도가 정비된 중기에 해상을 통해 송을 비롯한 남방의 제국 들 및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국제교역에 대한 연구결과가 밝혀져 있어, 조선 이전에도 서양에 대 한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상기, 신편 고려시대사 (서울 : 서울대출 판부, 1985), 쪽 참조 및 인용. 16) 직방외기 는 1630년(인조 8)에 부경( 赴 京 )하였던 진주사( 陳 奏 使 ) 정두원( 鄭 斗 源 )이 1631년(인 조 9)에 회환( 回 還 )하면서 가져온 한역서학서 중의 하나이다. 이원순, 서양문물 한역서학서의 전래, 조선서학사연구 (서울 : 일지사, 1986), 63쪽. 직방외기 6권은 원래 리마두( 利 瑪 竇 : Matteo Ricci, )신부가 한역 간행한 곤여만국전도( 坤 輿 萬 國 全 圖 ) 와 그 후 방적아 ( 龐 迪 我 : Juan de Pantoja, )신부가 한역 간행한 세계지도 및 도설( 圖 說 ) 등을 기 초로 하여, 서양 신래( 新 來 )의 자료를 활용하여 1623년 애유약 신부가 증역( 增 譯 )한 것으로, 서 문과 오대주총도계도해( 五 大 洲 總 度 界 圖 解 ), 아세아총설( 亞 細 亞 總 說 ) 과 아세아에 속한 여러 나라들(권1), 구라파총설( 歐 羅 巴 總 說 ) 과 구라파에 속한 여러 나라들(권2), 리미아총설( 利 未 亞 總 說 ) 과 리미아(아프리카)에 속한 여러 나라들(권3), 아묵리가총설( 亞 墨 利 加 總 說 ) 과 아묵리가 (아메리카)에 속한 여러 나라들(권4), 사해총설( 四 海 總 說 ) (권5) 등으로 구성되어 지구상의 오대 주( 五 大 洲 )와 사대해( 四 大 海 )를 3장의 지도를 곁들여 차례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원순, 직방 외기 와 신후담의 서양교육론, 조선서학사연구 (서울 : 일지사, 1986), 293쪽. 17) 신대철, 한국 중국 일본의 서양음악 수용, 한국음악연구 제38집(서울 : 한국국악학회, 2005), 145쪽. 18) 서학범 은 애유약 신부가 서양의 교육제도와 학문 활동을 소개한 한역된 서학서이다. 222
231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기( 西 洋 風 俗 記 ) 등 27종의 한역( 漢 譯 )된 서학서( 西 學 書 ) 19) 를 들여와 서양을 소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중국 이외의 다른 문명국이 존재함을 알고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정두원의 뒤를 이은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李 德 懋, ) 박제가 정 약용( 丁 若 鏞, ) 서유구( 徐 有 榘, ) 이규경 최한기( 崔 漢 綺, ) 등은 서양음악의 일부를 직접 경험하거나, 극히 단편적인 서양음악이론을 접하고 그 내용 을 그들의 문집에 담았다. 20) 그들이 언급한 서양음악에 관한 내용은 오늘날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의 수준에서 소개되고 있는 아주 기초적인 서양음악 이론이지만, 이것은 다른 동아 시아권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21) 한국의 경우에는 실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서 서양음악이 수용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서양음악 수용에는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이 중 국에서 직접 사온 서양의 악기인 양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양 금이 언제 어떻게 유입되고 수용되었는지 여러 문헌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19)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들이 명 청 사이에 편찬한 한역 서학서의 수와 종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대략 4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중 215종을 뽑아 해설한 서종 택( 徐 宗 澤 )의 명청간야소회사역저제요( 明 淸 間 耶 蘇 會 士 譯 著 提 要 ) 를 보면 천주교 성격에 대한 해 설서와 미사경문, 기도서 및 수덕서( 修 德 書 ) 종류인 성서류 천주교와 서학에 대한 비판에 변호 하고 동시에 천주교가 진교( 眞 敎 )임을 설명하는 진교변호류 서구의 신학과 철학에 관한 신철학 류 천주교사와 천주교중국전교사 및 인물행적에 관한 교사류 천문 역법 및 기하학에 관한 역산 류 서양의 과학기술과 지리학, 음악 등에 관한 과학류 서양의 명언, 명구들을 수록한 격언류 등 모두 일곱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김철범, 서학의 중세철학사상과 조선지식계의 수용, 동아 시아에서의 서학 수용과 그 대응, 동양철학회 2004년 제45차 추계학술대회, 서울대 공과대학 멀티미디어 강의동 101호, 2004년 10월 30일, 95쪽. 20) 이덕무는 청장관전서( 靑 莊 館 全 書 ) 에서 서양음악 이론의 단편을 소개하였고, 서유구는 유예지 ( 遊 藝 志 ) 에서, 이규경은 구라철사금자보 에서 서양음악의 기초이론을 소개하였다. 이외에 박지 원 정약용 최한기 등은 중국에서 활약하던 신부인 포르투갈 출신 서일승( 徐 日 昇 : Thomaz Pereira, )과 이탈리아 출신 덕격리( 德 格 里 : Theodoricus Pedrini, )의 율려정의 속편( 律 呂 正 義 續 篇 ) 을 읽고, 서양음악의 기초이론을 약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율려정의 속편 에는 서양음악의 오선보, 계명창법, 음자리표 등이 소개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 이다. 21) ʻ동아시아ʼ 또는 ʻ한자문화권ʼ이라고도 불리는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의 음악문화는 예로부터 중 국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이들 아시아의 여러 나라 는 자국의 고유한 음악문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이라는 이문화( 異 文 化 )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였고, 그 결과적으로는 양악( 洋 樂 )이라는 새로운 음악문화를 탄생시켰다. 민경찬, 서양 음악의 수용과 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의 초기 수용과정을 중심으로-, 낭만음악 제 69집(서울 : 낭만음악사, 2005), 100쪽. 223
23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Ⅲ. 실학자들의 양금유입과 전파 1. 양금의 수용 1) 양금의 개괄( 槪 括 )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는데 쓰이는 악기는 그 종류가 많고, 그들이 내는 음색도 무 척 다양하다. 이들 악기 가운데는 옛 부터 이 땅에서 만들어지고 누대를 거쳐 전승된 것도 있으나 적지 않은 악기는 다른 지역에서 전래된 것이다. 22) 이들 악기 중에서 양금( 洋 琴 ) 은 18세기에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실학자들과 궁중의 악사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수입 수 용되어, 현재까지 전승되어 온 유일한 현악기로서 금속성 줄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금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보면, 양금은 원래 아라비아 등지에서 종교의식에 사용되던 것 이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서구로 전해졌다.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는 ʻDulcimerʼ 또는 ʻ Psalteryʼ라고 불렀는데, ʻ우아한 음색ʼ이라는 뜻인 ʻDulcemelosʼ에서 온 말이다. 또 코카서 스에서는 ʻSantirʼ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사다리꼴의 판면에 18조(매 조에 4현씩 72현)의 동현( 銅 絃 )이 있고, 이것을 두 손에 해머(hammer)를 들고 치는 타악기이다. 이 악기는 회 교( 回 敎 )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로 사용되었고,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신성( 神 聖 ) 로마제국시대 십자군( 十 字 軍 )에 의하여 서구라파로 들어가게 되었다. 23) 유럽으로 전파된 양금은 중세기 이후 서양 각 국에서 가장 보편화되었으며, 영국에서는 ʻDulcimerʼ, 프랑스 에서는 ʻTympanonʼ, 독일에서는 ʻHackbrettʼ, 이탈리아에서는 ʻCembaloʼ ʻTimpanonʼ 또는 ʻSulterio tesdescaʼ, 포르투칼에서는 ʻCembaloʼ ʻHackbrettʼ 등의 이름으로 널리 사용되었 다. 이와 같이 전 유럽에서 성행하던 ʻDulcimerʼ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싼 채 또는 단단한 것으로 쳤는데, 격렬한 연주를 할 때 필요치 않은 음이 계속 울리는 것을 중지시키는 페달 (pedal)과 같은 장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거칠고 혼란스러운 여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 결 점이었다. 그러나 이 악기는 현재 헝가리와 트랜실바니아의 소동양적( 小 東 洋 的 )인 집시밴드 에 사용되고 있으며, 헝가리의 주요 민족인 마자르(Magyar) 사람들은 ʻCimbalomʼ이라고 부르고 있다. 24) 양금은 현재 덜시머(Dulcimer) 쳄발로(Cembalo) 팀파논(Tympanon) 양 22) 김영운, 한국 토속악기의 악기론적 연구, 한국음악연구 제17 18집 통합본(서울 : 한국국악 학회, 1989), 31쪽. 23) 조유회, 금보 소재의 시조음악과 현행 시조의 비교 연구-ʻ시조삼장ʼ과 ʻ말장징고ʼ를 중심으로 -,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4쪽 참조 및 인용. 24) David Kettlewell, Dulcimer,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ited, by Stanley Sadie, Vol.5(London :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 pp
233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친(Yangqin, 楊 琴, 25) 洋 琴 )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유럽, 북아프리 카,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중음악과 민속음악 그 리고 예술음악에 광범위하게 연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양금의 명칭은 ʻ서양의 현악기ʼ라는 뜻을 지닌 서양금( 西 洋 琴 ) 26) 서금( 西 琴 ) 27) 외에 ʻ구라파에서 온 현악기ʼ라는 뜻의 구라금( 歐 邏 琴 ), 28) ʻ구라파에서 들어온 철사를 얹은 현악기ʼ라 하여 악기의 연원과 특성을 결합한 이름인 구라철현금( 歐 邏 鐵 絃 琴 ) 29) 구라 철사금( 歐 邏 鐵 絲 琴 ) 30) 서양철사금( 西 洋 鐵 絲 琴 ) 31) 구라동현소금( 歐 邏 銅 絃 小 琴 ), 32) ʻ철사로 된 현악기ʼ라는 뜻의 동현금( 銅 絃 琴 ) 33) 철사금( 鐵 絲 琴 ) 34) 철현소금( 鐵 絃 小 琴 ), 35) 그 외 삼현금 ( 三 絃 琴 ), 36) 양금( 楊 琴 ) 37) 등으로도 불렀으나, 오늘날에는 통일하여 양금( 洋 琴 )이라고 한다. 양금은 명주실로 된 다른 현악기와는 달리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된 철사 줄을 사용하 고 있어 금속성의 맑고 영롱한 음색이 나오며, 대나무[ 海 竹 ]를 얇게 깎아 만든 가는 채로 줄을 가볍게 내리쳐 소리를 낸다. 양금은 악기 분류법에 따르면 사부( 絲 部 ) 또는 현명악기 ( 絃 鳴 樂 器 ) 중 타현악기( 打 絃 樂 器 )로 분류하는데, 타악기로서 유율( 有 律 ) 타악기로 분류하기 도 한다. 38) 양금의 구조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사다리꼴 모양의 오동나무 판면( 板 面 ) 위에 두 개 25) 약 16세기에 서양에서 들어왔던 중국양금의 최초의 명칭은 洋 琴 이라고 했으나, 1950년대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악기개량이 이루어진 후에 양금의 ʻ 洋 ʼ자가 서양 ʻ 洋 ʼ이 아닌 ʻ 楊 ʼ 즉, 은은하게 발양하다[ 悠 揚, 發 揚 ]의 뜻으로 명칭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胡 登 跳, 民 族 管 絃 樂 法 ( 上 海 : 上 海 出 版 社, 1999), 131쪽 참조. 26) 朴 趾 源, 熱 河 日 記 東 蘭 涉 筆 : 吾 東 謂 之 西 洋 琴 ; 朴 趾 源, 燕 巖 續 集 卷 42 : 吾 東 謂 之 西 洋 琴 中 國 人 稱 番 琴. ; 姜 世 晃, 豹 菴 遺 稿 西 洋 琴 : 西 洋 琴, 制 以 木, 作 小 函, 上 挾 而 下 廣, 以 桐 板 加 其 面, 絙 以 銅 絃 四 五 十, 以 兩 木 片, 依 函 面 廣 挾, 而 斜 拄 之. ; 柳 慶 種, 海 巖 稿 卷 7, 癸 未 年 : 人 家 偶 見 西 洋 琴, 制 度 詭 異 紙 書 曲 譜 貼 之 背, 不 可 辯. 27) 芳 山 韓 氏 琴 譜 의 표제, 西 琴 譜 ; 西 琴 歌 曲 의 표제, 西 琴 譜. 28)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一 刱 來 : 歐 邏 琴 入 于 中 華, 以 帝 京 景 物 略 攷 之. 29) 朴 趾 源, 熱 河 日 記 東 蘭 涉 筆, 歐 邏 鐵 絃 琴 西 洋 人 稱 天 琴. 30)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표제, 歐 邏 鐵 絲 琴 字 譜. 31)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九 典 攷, 楚 亭 問, 如 西 洋 鐵 絲 琴 及 天 主 堂. 32) 朴 趾 源, 熱 河 日 記 忘 羊 錄, 余 問 歐 邏 銅 絃 小 琴, 行 自 何 時. 33) 朴 趾 源, 熱 河 日 記 忘 羊 錄, 湛 軒 始 解, 調 銅 絃 琴, 能 諧 伽 倻 琴, 今 則 諸 琴 師 多 效 之, 都 能 和 合 絲 竹 諸 器. 34)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一 刱 來, 則 自 利 瑪 竇 始, 名 曰 天 琴, 卽 鐵 絲 琴 也. 35) 朴 趾 源, 燕 巖 集 卷 3, 時 或 著 書 見 意, 新 學 鐵 絃 小 琴. 36) 洋 琴 註 冊 뒷표지 앞면의 < 洋 琴 圖 > 37) 楊 琴 曲 譜 의 樂 譜 名 ; 楊 琴 與 民 樂 譜 의 樂 譜 名. 3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 (성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700쪽 참조 및 인용. 225
23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의 긴 괘를 세로로 질러 고정시키고, 양 옆에 현침을 붙이고 현침에 조율 못을 박아 중간 에 놓은 괘를 이용해 괘 위에 4줄이 1조로 된 14벌의 금속 줄을 걸게 되어 있다. 괘는 일 종의 줄 받침으로 줄을 좌우로 갈라 조율할 수 있는 장치인데, 이 때 금속현은 서로 엇갈 리게 놓이게 되므로, 줄이 지나가는 괘의 위쪽에는 홈을 파고 아래쪽에는 구멍을 뚫어 줄 을 통과시킨다. 뒤판은 연주 중에는 울림을 도와주는 장치이지만 연주를 하지 않을 때는 줄을 보호하기 위하여 덮개 구실을 한다. 앞판보다는 약간 크게 만들고, 네 귀퉁이는 앞판 을 얹어 놓을 수 있게 만들어 연주할 때에는 양금의 앞판을 그 위에 올려놓는다. 39) 우리나라의 양금은 18세기에 수용된 이래, 악기 크기는 부분적으로 달라졌지만, 구조적 으로 큰 변화 없이 한 종류의 양금이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다만 14벌을 배열하던 양금 에 18벌을 얹어 음을 확대시킨 양금이 창작음악에 사용되기도 한다. 2) 조선의 양금 수용 조선의 양금 수용은 18세기로 추정한다. 그러나 양금이 조선에 유입된 연대와 관련 인 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여러 문헌기록을 통하여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양금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로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8세기경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한국과 중국, 모두 유럽으로부터 직접 전파되었으며 중국 보다 한국에 양금이 먼저 유입되었다는 설이다. 양금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을 검토하기 위해, 먼저 양금이 중국에 유입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다. 리샹잉( 李 向 潁 )은 양금기원제설술평( 洋 琴 起 源 諸 說 述 評 ) 이라는 소논문에서 청패류초( 淸 稗 類 鈔 ) 와 양주풍토사췌( 揚 州 風 土 詞 萃 ) 의 내용을 토대로 강희제 ( 康 熙 帝, ) 기간에 이미 양금이 중국 광주( 廣 州 )와 양주( 揚 州 )에서 연주되었으 며, 반주악기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40) 한편, Th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il에서 우벤(Wu Ben)은 다음과 같 이 썼다. 39) 송혜진 글 강운구 그림, 한국 악기 (서울 : 열화당, 2001), 109쪽 참조 및 인용. 40) 淸 代 徐 珂 淸 稗 類 鈔 有 : 洋 琴 康 熙 時, 有 自 海 外 輸 入 之 樂 器, 曰 洋 琴, 盲 妹 彈 唱, 廣 州 有 之, 謂 之 盲 妹. 所 唱 爲 模 魚 歌, 佐 以 洋 琴, 悠 揚 入 聽. 的 記 載.; 揚 州 風 土 詞 萃 中 有 董 偉 葉 所 作 [ 竹 技 詞 ] 一 首 ( 約 作 于 康 熙 至 乾 隆 年 間 ), 成 群 三 五 少 年 狂, 枹 得 洋 琴 只 一 床, 但 借 月 游 尋 夜 樂, 聲 聲 調 ʻ 唱 吾 鄕 ʼ. 李 向 潁, 洋 琴 起 源 諸 說 述 評, 中 國 音 樂 第 4 期 ( 北 京 : 中 央 音 樂 學 院, 2000). 226
235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양금은 명나라( ) 후기에 중국에 도입되었다. 당시에는 동남부 해안지역에서 유행 하였는데, 이것은 양금이 12세기 터키에서 기원하였지만 유럽으로부터 바다를 통해 유입되었 음을 보여준다. 후에 양금은 점차 중국 내륙으로 전파되었다. 41) 이 글에 따르면, 양금은 12세기에 터키에서 기원하였고, 중국에는 명나라 후기에 중국 동남부 해안지역으로 들어온 것이 된다. 또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의 주장에 근거하면, 양금은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에서 발생하였으며, 중국에는 바다를 통하여 명나라 때 소개되었고, 양금의 보급은 광동지방의 남동연안에 제한되어 있 었음을 알 수 있다. 양친(중국의 양금), 이 덜시머는 명나라 때 중국에 소개되었으며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지방 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양금의 보급은 광동지방의 남동 연안으로 제한되는데 이는 양 금이 중앙아시아를 통한 육로가 아니라 바다를 통해서 소개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42) 중국 양금이 서양에서 전래되었다는 설은 당시 조선 학자들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 선의 실학자 이규경은 1817년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라철사금자보 에서 우혁정( 于 奕 正 ) 43) 의 제경경물략( 帝 京 景 物 略 ) 44) 을 인용하면서 양금의 중국 유입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41) It was introduced into China during the late Ming dynasty( ). At that time, it first became popular in the southeast coastal area; this indicates that it was introduced by sea from Europe, although the instrument was originally from twelfth-century Turkey. Later on, the yangqin was gradually transmitted into the interior of China. Wu Ben East Asia : China, Japan, and Korea, Th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il. pp 번역은 서인화, 한국 양금 수용과 전승에 대한 세기별 고찰, 제8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국제학술회의, 전주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 의실, 2003년 9월 28일-10월 3일, 181쪽에서 참조 및 인용. 42) Yang-chʼin(ʻforeignʼ chʼin). This dulcimer was introduced into China during the Ming dynasty( ), possibly from its original home in the region of Persia and Arabia : its popularity was confined to the south-eastern coastal province of Kwangtung, which suggests that it was introduced by sea and not overland through Central Asia.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ited by Stanley Sadie, Vol.4(London :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 pp 번역은 홍선숙, 이종구 작곡 西 域 香 分 析 硏 究 -양금 연주법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7쪽에서 참조 및 인용. 43) 우혁정은 명나라 순천부( 順 天 府 ) 완평( 宛 平 ; 지금의 하북성에 속함) 사람으로, 자( 字 )가 사직( 司 直 )이다. 생졸년은 자세하지 않고 숭정( 崇 禎 ) 연간( ) 전후로 활약했다. 저서로는 천 하금석지( 天 下 金 石 志 ) 외에 류동( 刘 侗 )과 함께 지은 제경경물략 등이 있다. 44) 제경경물략 은 명나라의 류동과 우혁정이 함께 편집한 책으로, 우혁정이 자료를 수집하고 류동이 문자 를 정리하였다. 8권 130항목으로 나누어 실었다. 내용은 북경성 주변의 풍토와 경물( 景 物 ), 명승고적 ( 名 勝 古 蹟 ), 인물, 고사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다. 大 韓 文 辭 典 第 2 冊 ( 北 京 : 商 務 印 書 館, 1980), 976쪽. 227
23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구라금( 歐 邏 琴 )이 중화( 中 華 )에 들어온 것은 제경경물략( 帝 京 景 物 略 ) 에 의하면, 리마두( 利 瑪 竇 ) 45) 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천금( 天 琴 )이라고 이름하니 이는 곧 철사금( 鐵 絲 琴 )이다. 46) 이 기록에 의하면 양금은 ʻ구라금ʼ, ʻ천금ʼ, ʻ철사금ʼ이라고 하며 유럽으로부터 선교사 ʻ리 마두ʼ에 의해 전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홍대용도 담헌서( 湛 軒 書 ) 악기( 樂 器 ) 에서 양금은 서양으로부터 나왔는데, 중국이 모방하여 사용하였다. 47) 고 하여 중국 양금 의 서양 전래설을 언급하고 있다. 박지원도 열하일기( 熱 河 日 記 ) 망양록( 忘 羊 錄 ) 에서 연 경에 갔을 때 형산( 亨 山 ) 윤가전( 尹 嘉 銓 )과 곡정( 鵠 汀 ) 왕민호( 王 民 皥 )와 필담한 내용을 기 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양금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나는, 구라파의 동현( 銅 鉉 ) 소금( 小 琴 )은 어느 때부터 나왔던가요? 했더니, 왕민호( 王 民 皥 ) 는,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아마 백년이 넘어서부터지요. 한다. 윤가전( 尹 嘉 銓 )은, 명( 明 )의 만력( 萬 曆 ) 연간 때 오군( 吳 郡 )에 사는 풍시가( 馮 時 可 )가 서양사람 리마두 ( 利 瑪 竇 )를 북경에서 만났을 때 그 소리를 들었고, 또 자명종( 自 鳴 鐘 )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이미 기록에 남아 있으니, 대개 만력시대에 처음으로 중국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서양 사람 들은 모두 역법( 曆 法 )에 정통하고 기하( 幾 何 )를 아는 데는 세밀하고 자세해서, 무엇이나 물건 을 제조하는 데는 모두 이 방법을 쓰고 있답니다. 중국에서 기장 낱을 포개놓고 크기를 측 량하는 일 같은 것은 도리어 추잡한 노릇입니다. 또 그들의 문자는 소리로 뜻을 삼아, 새와 짐승의 소리나 바람과 빗소리까지도 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 없이 혀로 이것을 형용해 냅 니다. 저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ʻ능히 팔방( 八 方 )의 풍속을 알고 만국 말을 능히 통한다.ʼ하는 데 이 금을 천금( 天 琴 )이라 하고 있습니다. 한다. 48) 45) 1580년 중국에 온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를 말한다. 46)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一 刱 來 : 歐 邏 琴 入 于 中 華, 以 帝 京 景 物 略 攷 之, 則 自 利 瑪 竇 始, 名 曰 天 琴, 卽 鐵 絲 琴 也. 번역은 이동복, 구라철사금자보와 유예지 중 양금자보의 비교연구, 경북대논문집 (대구 : 경북대학교, 1987), 123쪽에서 참조 및 인용. 이후 구라철사금자보 의 번역은 이동복, 구라철사금자보와 유예지 중 양금자보의 비교연구, 경북대논문집 (대구 : 경 북대학교, 1987)에서 참조 및 인용하며, 이하 서지사항은 생략하고 논문의 쪽 번호만 표시한다. 47) 洪 大 容, 湛 軒 書 外 集 卷 10, 樂 器 : 洋 琴 者, 出 自 西 洋, 中 國 效 而 用 之.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76, 국역 담헌서 Ⅳ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1974 초판; 1986 중판), 348쪽과 조선후기 문 집의 음악사료 (서울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00), 29쪽에서 참조 및 인용. 이후 담 헌서 에 대한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73-77, 국역 담헌서Ⅰ-Ⅴ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1974 초판; 1986 중판)와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서울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2000)에 서 참조 및 인용하며, 이하 서지사항은 생략하고 책 이름과 쪽 번호만 표시한다. 48) 朴 趾 源, 熱 河 日 記 忘 羊 錄 : 余 問 ʻ 歐 邏 銅 絃 小 琴, 行 自 何 時 ʼ, 鵠 汀 曰, ʻ 不 知 起 自 何 時, 而 要 之 百 年 以 外 事 也.ʼ 亨 山 曰, ʻ 明 萬 曆 時, 吳 郡 馮 時 可, 逢 西 洋 人 利 瑪 竇 於 京 師, 聞 其 琴, 又 有 所 持 自 鳴 鍾, 228
237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이것을 보면 중국의 양금은 명나라 만력( 萬 曆 ) 연간( )에 ʻ리마두ʼ라는 서양인 을 통해서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ʻ리마두ʼ는 예수교의 전도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가 중국 마카오(Macao[ 澳 門 ])에 상륙한 해가 1580년이니까 중국에 양금이 들어온 것은 1580년 이후가 된다. 이 문헌에서 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중국에서는 양금을 ʻ천금( 天 琴 )ʼ이라고 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양금이 조선에 유입된 시기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겠다. 조선의 양금 유입 및 수용에 관해서는 강세황( 姜 世 晃, )의 표암유고( 豹 菴 遺 稿 ) 팔물지( 八 物 志 ) 49) ʻ서양금( 西 洋 琴 )ʼ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50) 강세황은 1713년에 태어나서 1791년까지 살았으니, 양금의 유입 연도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규경은 구라철사금자보 제1편 창래( 刱 來 ) 에서 양금의 유입 연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양금이 우리나라에 흘러들어 온 지 겨우 60년에 지나지 않으나 마침내 악곡을 번역( 飜 譯 )한 것은 없고, 그저 문방( 文 房 )의 기기( 奇 器 )로서 어루만지고 희롱할 따름이다. 51) 이규경이 구라철사금자보 를 편찬한 연도가 1817년 이후이니 창래 에 언급한 60년 전이면 대략 1757년경에 이미 양금이 유입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문헌 모 두 양금의 연주법이나 악곡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전래한 기간에 비 해 아직까지 악기로서의 쓰임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박지원의 열하일기 망양록 에도 중국에서 양금을 사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도 양금을 연주용으로 소 개하지는 않았다. 귀국에도 이 금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원래 중국에서 사 가지고 온 已 自 有 記, 盖 萬 曆 時, 始 入 中 國 也. 西 人 皆 精 曆 法, 其 幾 何 之 術, 爭 纖 較 忽, 凡 所 製 造, 皆 用 此 法. 中 國 累 黍 反 屬 麤 莽. 且 其 文 字, 以 聲 爲 義, 鳥 獸 之 音, 風 雨 之 響, 莫 不 審 於 耳 而 形 于 舌. 自 謂 ʻ 能 識 八 方 風, 能 通 萬 國 語 ʼ, 亦 自 號 其 琴 爲 天 琴.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18, 국역 열하일기 Ⅰ (서울 : 민족 문화추진회, 1989), 쪽에서 참조 및 인용. 49) 강세황의 표암유고 팔물지 에서 ʻ팔물ʼ이란 안경( 眼 鏡 ), 서양금( 西 洋 琴 ), 필( 筆 ), 지( 紙 ), 석( 碩 ), 묵( 墨 ), 도서( 圖 書 : 印 章 ), 괴석( 怪 石 )의 여덟 가지를 말한다. 50) 강세황의 표암유고 팔물지 ʻ서양금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혹 그것을 사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연주법과 성조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였다. 고 하였다. 이 글에서 강세황은 양금의 외형과 소리에 관해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에 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한다. 번역은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19쪽에서 참조 및 인용. 51)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一 刱 來, 流 出 我 東, 則 幾 止 六 十 載, 終 無 飜 曲, 徒 作 文 房 奇 器 摩 弄 而 己.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쪽에서 참조 및 인용. 229
23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것인데 처음은 줄을 맞추지 못해서 다만 그 줄마다 나는 ʻ띵뚱ʼ 하는 소리가 소반 위에 구는 구슬 소리 같아서, 노인들의 잠 안 올 때나 어린애 울음 그치는 데 가장 좋았지요. 52) 이상은 조선의 양금이 18세기에 중국에서 유입되었다는 기록들로, 유입 시기는 18세기 중엽으로 추정할 수 있고, 이 글들에서 소개할 당시까지만 해도 양금이 아직은 악기로써 그다지 사용되지 않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쿠르트 작스(Curt Sachs)는 The History of Musical Instrument에서 조선의 양금 유입이 중국과는 별개이며, 오히려 중국보다 앞선 것으로 기록했다. 덜시머는 동쪽으로 약 1800년 무렵에 중국에 갔는데, 이곳에서는 아직도 외국금(양금)이라고 불리며, 여기에서 일본, 몽골, 부리아트로 건너갔다. 한국에서는 이 악기가 1725년에 도입되 었다고 한다. 53) 쿠르트 작스는 관련 문헌을 명시하지 않은 채 양금이 1725년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주장 하여, 양금 수용에 있어서 한국이 중국보다 앞선 것처럼 기록했다. 또한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의 ʻ덜시머ʼ항에서도 양금이 중국에 들어간 것에 대 해서는 언급이 없고, 쿠르트 작스와 같이 한국에는 1725년에 도입되었다고 하였다. 54) 여 기서도 구체적인 문헌을 명시하지 않고 다만 ʻ한국문헌ʼ이라고만 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한 ʻ한국문헌ʼ이 구체적으로 어떤 책인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사전의 양금 전파 지도에는 한국과 중국 모두 양금이 유럽으로부터 직접 전파된 것으로 그려져 있다. 55) 이상 조선에 양금이 유입된 경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중국에 52) 朴 趾 源, 熱 河 日 記 忘 羊 錄, 貴 國 亦 有 是 琴 否. 余 曰, 自 中 國 貿 歸, 初 不 識 諧 律, 但 其 絲 絲 丁 東, 聲 如 盤 珠, 最 宜 老 人 少 睡, 小 兒 止 啼.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18, 국역 열하일기 Ⅰ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1989), 쪽에서 참조 및 인용. 53) Eastward the dulcimer migrated in about 1800 to china, where it still is called the foreign zither(yang chʼin), and thence to the Japanese, Mongols and Buriats. In Korea a native tradition asserts, however, that the instrument was introduced as early as about Curt Sachs, The History of Musical Instrument(New York : W.W NORTON & Company, Inc., 1940), pp.239. 번역은 서인화, 앞의 논문, 181쪽에서 참조 및 인용. 54) According to Korean tradition the dulcimer arrived in Korea in 1725 and only subsequently reached China and Japan. David Kettlewell, Dulcimer,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ited, by Stanley Sadie, Vol.5(London :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 pp ) David Kettlewell, Dulcimer,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ited, by Stanley Sadie, Vol.5(London :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 pp
239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서 유입되었다는 설은 양금이 서양,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까지 알려진 문헌을 살펴보면, 대부분 양금의 도입과 관련하여 명나라 말기(1580)에 이탈 리아 예수회(Jesuit)교단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서금 ( 西 琴, 大 西 洋 琴 )을 중국에 소개하였고, 조선에는 영조( 英 祖 ) 초에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 자들이 북경에서 양금을 들여옴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따 라서 양금이 중국에서 유입되었다는 설은 문헌적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양금이 서양에서 조선으로 직접 유입되었다는 설은 국내에 남아 있는 문헌적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양 문헌에서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2. 양금의 연행( 演 行 ) 다음으로 양금의 연행과정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강세황의 표암유고 팔물지 에는 ʻ서양금ʼ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자료는 1762년의 기록이다. 서양금은 나무를 마름질하여 작은 상자를 만드는데, 위는 좁고 아래는 넓다. 오동나무 판자 로 그 앞면을 덮고 구리현 사 오십 개를 매어놓았고, 양목판으로 상자의 넓고 좁은 면에 붙 여 비스듬히 그것을 고인다. 넓은 면의 현은 길고 소리가 크며, 좁은 면의 현은 짧고 소리가 가늘다. 매양 4현이 합하여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데, 작은 대나무 껍질로 그것을 연주한다. 그 소리는 쟁쟁하여 들을 만한데, 혹은 크고 혹은 가늘며 또한 곡조를 따라 소리를 만든다. 다만 비파와 다른 점은 연음( 撚 音 )이나 농현( 攏 絃 )의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단지 종경( 鐘 磬 )이나 방향( 方 響 )과 비슷하다. 비록 청탁( 淸 濁 )과 고하( 高 下 )가 있지 만, 길게 펼쳐지고 소리가 꺾어 지는 운치는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혹 그것을 사오 는 사람이 있는데, 그 연주법과 성조가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였다. 56) 이 글에서 강세황은 비교적 상세하게 양금을 소개하고 있다. 양금의 생김새는 작은 오동 나무 판에 구리현 사 오십 개를 매어 놓은 것으로, 4현이 하나의 소리를 만들고 있다고 기 술하고 있다. 또한 양금의 소리는 쟁쟁하여 들을 만한데, 종경이나 방향의 소리와 비슷하 56) 姜 世 晃, 豹 菴 遺 稿 西 洋 琴, 西 洋 琴, 制 以 木, 作 小 函, 上 挾 而 下 廣, 以 桐 板 加 其 面, 絙 以 銅 絃 四 五 十, 以 兩 木 片, 依 函 面 廣 挾, 而 斜 拄 之. 廣 面 之 絃, 長 而 聲 大. 挾 而 之 絃, 短 而 聲 細. 每 四 絃 合 作 一 聲, 以 小 竹 篾 叩 之. 其 聲 錚 然 可 聽, 或 大 或 細, 亦 可 隨 曲 作 聲. 而 但 琵 琶 有 異, 不 可 作 撚 攏 之 勢, 則 其 音, 只 似 鐘 磬 與 方 響. 雖 有 淸 濁 高 下, 似 無 悠 韻 折 之 致. 東 人, 或 有 貿 至 者, 未 知 其 鼓 法 與 聲 調 之 如 何 耳. 번역은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19쪽에서 참조 및 인용. 231
24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나 연음이나 농현의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양금의 연주법과 성조는 알 수 없고 단 지 기물( 奇 物 )로서 사오는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유경종( 柳 慶 種, )의 해암고( 海 巖 稿 ) 권7 계미년( 癸 未 年 )의 기록(1763)에 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느 집에 갔다가 우연히 서양금을 보았는데 그 모양새가 괴이하다. 종이에다 곡보를 써 서 뒷등에다 붙여 놓았는데 알 수가 없다. 57) 위의 두 자료에 의하면, 1762년과 1763년에 누군가가 연행을 통해 이미 북경으로부터 양금을 사왔으나, 그 연주법은 알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규경은 앞서 소개한 구라철사금자보 제1편 창래 에서 양금 연주법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정종조( 正 宗 朝, ) 58) 모년( 某 年 )에 장악원( 掌 樂 院 )의 전악( 典 樂 )인 박보안( 朴 寶 安 ) 59) 이라고 하는 사람이 사신을 따라 연경에 가서 양금의 연주법을 처음으로 배워서 우리 나라 음악[ 東 音 ]으로 번역하니, 이로부터 전해 익혀서 손으로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악보 가 없어서 배우자마자 곧 잊어버리는 것을 괴롭게 여겼다. 정축년( 丁 丑 年, 1817) 중춘( 仲 春 ) 에 장악원 전악인 문명신( 文 命 新 )이 악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일찍이 문헌록( 文 獻 錄 )을 보 니 그 안에 어느 사람이 적은 종이에 아무 아무개가 보낸 글 가운데 <양금일보( 梁 琴 一 譜 )> 에 관해 언급했는데, 양( 梁 )자가 비록 양( 洋 )자와 다르나 음은 같으니, 아마도 이것은 양금의 57) 柳 慶 種, 海 巖 稿 卷 7, 癸 未 年 : 人 家 偶 見 西 洋 琴, 制 度 詭 異 紙 書 曲 譜 貼 之 背, 不 可 辯. 번역은 송지원, 조선중화주의의 음악적 실현과 청 문물 수용의 의의, 국악원논문집 제11집(서울 : 국립국악원, 1999), 242쪽 각주44) 에서 인용. 58) 조선조 제22대 왕인 정조( 正 祖 )의 재위기간을 말한다. 본래의 묘호( 廟 號 )는 정종( 正 宗 )이었는데, 1899년에 정조( 正 祖 )로 고쳤다. 정종문성무열성인장효대왕( 正 宗 文 成 武 烈 聖 仁 莊 孝 大 王 ). 이홍직, 국사대사전 (서울 : 대영출판사, 1976), 1368쪽. 59) 박보완은 영조 순조 때의 악인으로 본관은 밀양이다. 1774년(영조 50) 4월 27일 가전악이 되었 고, 조선 말기에 청에서 들여온 양금을 잘 쳤다고 알려져 있으며, 1804년(순조 4) 사직악기조성 청( 社 稷 樂 器 造 成 廳 ), 감조전악이 되었다. 1829년(순조 29) 진찬 때는 집사악사였다. 박보완의 한자표기는 朴 保 完 朴 輔 完 으로, 또 다른 자료에는 朴 保 安 朴 寶 安 朴 普 安 등의 박보안으로, 여러 문헌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김우진은 박보완의 이름은 한국음악사 에 朴 保 [ 輔 ] 完 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ʻ박보완ʼ이 주항목이고 ʻ박보안ʼ은 부항목으로 설정되어 있다. 고 하였 다.(김우진, 조선중화주의의 음악적 실현과 청 문물 수용의 의의 에 대한 논평, 국악원논문집 제11집(서울 : 국립국악원, 1999), 252쪽. 본 논문에서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 의 원문을 인용할 경우에는 원문 그대로 朴 寶 安 으로 기록한다. 232
241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악보가 아닌가 하는데 지금은 알 수 없다. 60) 이 글에 따르면, 양금의 도입 당시인 1757년경에는 전혀 연주법을 알 수 없었으나, 그 후 1779년에 박보안이 연경에 가서 양금의 연주법을 배워 와서 우리나라 음악으로 번역하 였으며, 그로부터 38년 후인 1817년에 문명신이 양금 악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기술하 고 있다. 그러나 문명신이 만든 양금악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박지원의 연행록인 열하일기 동란섭필( 東 蘭 涉 筆 ) 에는 양금의 적극적인 수용의 예를 알려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구라파 철현금( 鐵 絃 琴 )은 우리나라에서는 ʻ서양금( 西 洋 琴 )ʼ이라 부르고, 서양 사람들은 ʻ천금 ( 天 琴 )ʼ이라 부르고, 중국인들은 ʻ번금( 蕃 琴 )ʼ 또는 ʻ천금( 天 琴 )ʼ이라 부른다. 이 악기가 우리나 라에 나타나기는 어느 때인지는 모르나 향토 곡조를 여기에 맞추어 풀어내기는 홍대용( 洪 大 容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건륭( 乾 隆 ) 임진( 壬 辰, 1772) 6월 18일에 내가 홍대용과 마주앉아 유각( 酉 刻 : 하오 6시)에 이 금을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홍대용이 음악에 밝은 것을 보고 비 록 작은 기예( 技 藝 )이기는 하나 창시( 創 始 )의 일인 까닭으로 내가 그 날짜와 시간을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널리 전파되어 9년 동안에 금사( 琴 師 )로서 탈 줄 모르는 이가 없게 되 었다. 오군( 吳 郡 )에 사는 풍시가( 馮 時 可 )가 처음 북경에 와서 리마두( 利 瑪 竇 )로부터 이것을 얻어 가졌는데, 구리철사로 줄을 만들어 손으로 타지 않고 작은 나무쪽으로 건드리면 그 소 리가 한층 더 맑았다고 했으며, 또 자명종( 自 鳴 鐘 )은 겨우 작은 향합만한데 정밀한 쇠로 만 들어서 하루 열 두 시간에 열두 번을 치니 역시 이상하다고 운운했는데, 이 말은 모두 [풍시 가가 지은] 봉창속록( 篷 牕 續 錄 ) 에 실려 있었다. 61) 대개 이 두 가지 기계는 명( 明 )의 만력 연간에 처음으로 중국에 전했다고 한다. 내가 있는 산중의 양금( 洋 琴 )은 등에 ʻ오음서기( 五 音 舒 記 )ʼ라고 낙인( 烙 印 )이 찍혔는데, 만든 것이 매우 정밀하였으므로, 이번 중국에 온 김에 남 의 부탁을 위하여 이것을 구해 보고자 두루 돌아다니면서 살펴보았으나, 소위 ʻ오음서기ʼ는 결국 얻지 못했다. 62) 60)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一 刱 來 : 正 宗 朝 年 當 俟 考 年 掌 樂 院 典 樂 朴 寶 安 者 隨 使 入 燕 始 學 鼓 法, 飜 以 東 音 自 此 傳 習, 而 以 手 相 授 苦 無 字 譜 旋 得 隨 失. 歲 在 丁 丑 仲 春 同 典 樂 文 命 新 講 作 此 譜. 嘗 見 文 獻 錄 中 有 人 於 小 紙 列 書, 某 某 書 及 梁 琴 一 譜, 而 梁 字 雖 異 與 洋 字 異, 而 音 則 同 焉. 似 是 此 琴 之 譜, 今 不 可 攷.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쪽에서 참조 및 인용. 61) 馮 時 可, 篷 窓 續 録 : 西 人 利 瑪 竇 有 自 鳴 鐘, 僅 如 小 香 盒, 精 金 為 之, 一 日 十 二 時, 凡 十 二 次 鳴. 62) 朴 趾 源, 熱 河 日 記 東 蘭 涉 筆 : 歐 邏 鐵 絃 琴, 吾 東 謂 之 西 洋 琴, 西 洋 人 稱 天 琴, 中 國 人 稱 番 琴, 亦 稱 天 琴. 此 器 之 出 我 東, 未 知 何 時, 而 其 以 土 調 解 曲, 始 于 洪 德 保. 乾 隆 壬 辰 六 月 十 八 日, 余 坐 洪 軒, 酉 刻 立 見 其 解 此 琴 也. 槪 見 洪 之 敏 於 審 音, 而 雖 小 藝, 旣 系 刱 始, 故 余 詳 錄 其 日 時, 其 傳 遂 廣, 于 今 九 年 之 間, 諸 琴 師 無 不 會 彈. 吳 郡 憑 時 可, 始 至 京 得 之, 利 瑪 竇 以 銅 鐵 絲 爲 絃, 不 用 指 彈, 只 以 小 板 案, 233
24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박지원은 구라파에서 들어온 철현금( 鐵 絃 琴 )이 각 나라마다 다르게 불리어진다고 기술하 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ʻ서양금ʼ이라 부르고, 서양 사람들은 ʻ천금ʼ이라 부르며, 중국인 들은 ʻ번금ʼ 또는 ʻ천금ʼ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비록 양금이 들어온 해를 밝히지 는 않았지만, 자신이 처음 이 악기의 연주를 들은 것에 의의를 두어 기록해 두었다. ʻ건륭 임진( 乾 隆 壬 辰, 영조 48년) 6월 18일 유각( 酉 刻 )ʼ이라는 정확한 일시까지 기록해, 실학자 홍대용이 그 당시 중국을 통해 들어 온 악기인 양금으로 우리나라 음악을 처음 연주한 것 을 문헌상에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기록이다. 그리고 홍대용에 의해 우리나 라의 곡조로 해석된 이후에는 여러 악사들이 타지 못하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외래 악기가 수용되어 한국화 된 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아울 러 홍대용의 음악적인 면에서의 업적을 평가해 볼 만하다. 또한 박지원의 열하일기 망양록 에도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또, 귀국의 금슬( 琴 瑟 )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기에, 나는, 금과 슬이 다 있습니다. 제 친구 홍대용( 洪 大 容 )의 자는 덕보( 德 保 )요 호는 담헌( 湛 軒 )인데, 음률에 능하여 금슬을 잘 탈 줄 압니다. 우리나라 금슬은 중국과 다르고, 타는 방법도 역시 다릅니다. 옛날 신라시대에, 거문고를 만들었더니 현학( 玄 鶴 )이 와서 춤을 추었다 하여 이름을 현금( 玄 琴 )이라고도 합니 다. 또 가야금( 伽 倻 琴 )이란 것이 있어 큰 슬( 瑟 )의 반을 쪼갠 것이 되고 줄은 열둘이 되어, 그 타는 법이 중국의 금 타는 모양과 비슷합니다. 홍대용은 처음으로 동현금( 銅 玄 琴 )의 소리 를 골라서 가야금에 맞추었는데 지금은 금슬을 타는 악사들이 모두 이 본을 보고 현악이나 관악에 맞추고 있습니다. 63) 박지원의 망양록 에서는 동란섭필 의 기록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양금 을 연주한 사람이 홍대용이라고 말하면서, 또한 홍대용이 처음으로 양금의 줄을 골라 가야 금에 맞추어 타기 시작해 그 후로 양금의 본을 보고 다른 악기들이 조율했다는 것도 기록 其 聲 更 淸 越 云, 又 自 鳴 鍾, 僅 如 小 香 盒, 精 金 爲 之, 一 日 十 二 時, 凡 十 二 次 嗚, 亦 異 云 云, 幷 見 篷 牕 續 錄. 葢 此 兩 器, 皇 明 萬 曆 時, 始 入 中 國 也. 余 山 中 所 有 洋 琴, 背 烙 印 ʻ 五 音 舒 記 ʼ, 製 頗 精 好, 故 今 來 中 國, 爲 人 應 求, 遍 覽 所 謂 ʻ 五 音 舒 記 ʼ 而 竟 未 得.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19, 국역 열하일기 Ⅱ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1989), 쪽에서 참조 및 인용. 63) 朴 趾 源, 熱 河 日 記 忘 羊 錄 : 問 貴 國 琴 瑟 如 何. 余 曰, 琴 瑟 俱 有. 敝 友 洪 大 容 字 德 保 號 湛 軒, 善 音 律, 能 皷 琴 瑟. 敝 邦 琴 瑟, 制 異 中 國, 彈 弄 之 法 亦 殊. 古 新 羅 時 製 此 琴, 有 玄 鶴 來 舞, 故 號 玄 琴. 又 有 伽 倻, 剖 大 瑟 之 半, 爲 十 二 絃, 其 彈 弄 類 中 國 彈 琴 之 狀. 湛 軒 始 解, 調 銅 絃 琴, 能 諧 伽 倻 琴, 今 則 諸 琴 師 多 效 之, 都 能 和 合 絲 竹 諸 器.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18, 국역 열하일기 Ⅰ (서울 : 민족문 화추진회, 1989), 쪽에서 참조 및 인용. 234
243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하고 있다. 그러나 박지원의 아들인 박종채( 朴 宗 采, )가 자신의 아버지의 언행 과 가르침을 기록한 과정록( 過 庭 錄 )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는 음률을 잘 분별하셨고 담헌공(홍대용)은 악률( 樂 律 )에 대단히 밝으셨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홍대용의 방에 계시다가 들보 위에 양금 여러 개가 걸려 있는 걸 보셨다. 중 국에 간 사신이 귀국하면서 해마다 가지고 온 것인데, 당시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연주 할 줄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시중드는 사람에게 그것을 풀어 내려보라고 하셨다. 홍대용은 웃으며, 곡조를 모르는데 뭘 하시려오? 라고 했다. 아버지는 작은 나 뭇조각으로 쳐보면서, 거문고를 가져와보세요. 줄을 따라 대조해가며 쳐보아 음이 어울 리는지 확인해봅시다. 라고 하셨다. 몇 차례 해보자 가락이 과연 들어맞아 어긋나지 않 았다. 이로부터 양금( 洋 琴 )이 비로소 세상에 성행하게 되었다. 64) 위 글에서는 양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홍대용이 아니라 박지원으로 기록되어 있어 서 열하일기 의 내용과 상반된다. 그러나 열하일기 와 위의 인용문 모두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은 실학자들이 양금을 자발적으로 연주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점과 국내 악기 와 함께 곡조를 맞추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양금이 세상에 성행하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의 악기와 나란히 그들의 풍류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양금의 한국적인 수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명 청 교체기 이후의 중국을 지켜보면 서 청의 문물을 바라보는 시각은 당대 북학파 인물들에게서 보다 긍정적으로 드러난다. 따 라서 그들은 조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새로운 문물과 지식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 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입장이 당시 연경을 다녀오며 청의 분위기에 노출된 학인( 學 人 )들에 의해 표명되어 새로운 악기인 양금이 조선으로 유입될 수 있었고, 서양의 악기를 적극적으로 한국화하려는 움직임도 이러한 논리로 해명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자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바탕이 된 결과로 나온 것이며, 외래문물 수용에 있어서도 적극적일 수 있 는 하나의 논리로서 작용한 것이었다. 64) 朴 宗 采, 過 庭 錄 : 先 君 精 於 審 音, 而 湛 軒 公 尤 曉 樂 律. 一 日, 先 君 在 湛 軒 室, 見 樑 上 掛 歐 邏 鐵 絃 琴 數 張. 盖 因 燕 使 歲 出 吾 東, 而 時 人 無 解 彈 者. 先 君 命 侍 者, 解 下, 湛 軒 笑 曰, 不 解 腔, 何 用 爲? 先 君, 試 以 小 板, 按 之 曰, 君 第 持 伽 倻 琴 來, 逐 鉉 對 按, 驗 其 諧 否 也? 數 回 撫 弄 腔 調, 果 合 不 此. 自 是, 鐵 琴 始 盛 行 於 世. 번역은 朴 宗 采 지음/ 박희병 옮김, 나의 아버지 박지원 (서울 : 돌베개, 1998), 36-37쪽과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쪽에서 참조 및 인용. 235
24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3. 양금 풍류악보의 편찬 이규경은 중국과 조선 고금의 사물을 고증한 오주연문장전산고( 五 洲 衍 文 長 箋 散 稿 ) 60 권 외에 양금악보인 구라철사금자보( 歐 邏 鐵 絲 琴 字 譜 ) 를 편찬하였다. 악보 서두에는 열상 ( 洌 上 ), 65) 즉 조선의 이규경이 번역하고, 아우인 이규달( 李 奎 達 )이 교정한 9편의 글이 실려 있다. 정확한 편찬 년대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제1편 창래( 刱 來 ) 에 ʻ정종조년당( 正 宗 朝 年 當 )ʼ과 ʻ세재정축중춘( 歲 在 丁 丑 仲 春 )ʼ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현존하는 약 30여종의 양금 고악보 66) 중에서 연대( 年 代 )가 가장 오래 된 1817년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67) 책의 구 65) 열상( 洌 上 )은 여러 작은 지류가 모인 두 가닥의 큰 강줄기가 만나는 곳이란 뜻으로, 한강의 상 류를 의미하는데, 정약용은 경기도 남양주의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 지점을 아껴서 스스 로를 열수( 洌 水 ), 열상노인( 洌 上 老 人 )으로 자호( 字 號 )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한편 박지원의 호인 열상외사( 洌 上 外 史 )와 열하일기 중 조선 유명화가들의 작품목록이 적힌 열상화보( 洌 上 畵 譜 )의 열상은 지역명인 조선으로 해석되며, 구라철사금자보 와 임원경제지 유예지 의 열상 역시 조선으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최선아, 구라철사금자보 의 칠조, 한국음악연구 제44 집(서울 : 한국국악학회, 2008), 217쪽. 66)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양금 고악보는 다음과 같다. 1. 구라철사금자보( 歐 邏 鐵 絲 琴 字 譜 ) -영인본 한국음악학자료총서 권14(서울 : 국립국악원, 1984). 이후 영인본이 한국음악학자료 총서 인 경우 자료총서 로 표기하고, 서지사항은 생략한다. 2. 일사금보( 一 蓑 琴 譜 ) - 자료총 서 권7. 3. 서금보( 西 琴 譜 ) - 자료총서 권 장금신보( 張 琴 新 譜 ) - 자료총서 권 양금주책( 洋 琴 註 冊 ) - 자료총서 권 양금곡보( 楊 琴 曲 譜 ) - 자료총서 권 양 금보( 洋 琴 譜 ) - 자료총서 권 율보( 律 譜 ) ( 響 嵂 洋 琴 譜 )- 자료총서 권2. 9. 서금가곡 ( 西 琴 歌 曲 ) - 자료총서 권 서금( 西 琴 ) (표제 : 현금보)- 자료총서 권 양금보 ( 洋 琴 譜 ) - 자료총서 권 양금여민락보( 楊 琴 與 民 樂 譜 ) - 자료총서 권 가곡남 창양금보( 歌 曲 男 唱 洋 琴 譜 ) -국립국악원 소장. 14. 가곡여창양금보( 歌 曲 女 唱 洋 琴 譜 ) -국립국악 원 소장. 15. 성학십도 부 예악비고( 聖 學 十 圖 附 禮 樂 比 攷 ) - 자료총서 권 아양금보 ( 峨 洋 琴 譜 ) - 자료총서 권 조선음률보( 朝 鮮 音 律 譜 ) - 자료총서 권 양금보 ( 洋 琴 譜 ) -김호성( 金 虎 成 ) 소장. 19. 양금보( 洋 琴 譜 ) -성낙범( 成 樂 範 ) 소장, 자료총서 권 양금보( 洋 琴 譜 ) -권오성( 權 五 聖 ) 소장, 자료총서 권 흑홍금보( 黑 紅 琴 譜 ) 양금 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금보정선( 琴 譜 精 選 ) 양금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해산유음( 海 山 遺 音 ) 양금보 현금보- 자료총서 권 유예지( 遊 藝 志 ) 양금보 당 금보 거문고보 생황보- 자료총서 권 방산한씨금보( 芳 山 韓 氏 琴 譜 ) 양금보 가야금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아금고보( 峨 琴 古 譜 ) 양금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역양아운( 嶧 陽 雅 韻 ) 양금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영산회상( 靈 山 會 象 ) 양금보 거 문고보- 자료총서 권 원객유운( 園 客 遺 韻 ) 양금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초입문 금보( 初 入 門 琴 譜 ) 양금보 거문고보- 자료총서 권 협률대성( 協 律 大 成 ) 가집 ( 歌 集 ). 가곡보는 양금보로 수록- 자료총서 권14.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악보에 대한 심도 깊 은 연구로 김영운, 한국의 고악보 현황, 문화예술 제110집(서울 : 문예진흥원, 1987)과 이 동복, 한국 고악보의 서지학적 연구,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을 참고할 수 있다. 67) 정종조( 正 宗 朝 )는 정조조( 正 祖 朝 : )를 말하는데, 정축년 중춘이면 1817년이기 때문 이다. 236
245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9조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양금의 유래, 양금 의 수용 경로와 배경, 율명과 조율법, 68) 연주법, 양금의 특징과 구조, 모양, 제작법, 보관 법 등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박제가( 朴 齊 家 )와 당낙우( 唐 樂 宇 )가 대화한 악 론 내용과 <양금도( 洋 琴 圖 )> 등을 기록하고 있다. 뒷부분은 영산회상( 靈 山 會 相 ), 계면조조 현( 界 面 調 調 絃 ) 우조조현( 羽 調 調 絃 ), 가곡( 歌 曲, 속칭 츠 닙), 시조( 時 調 )의 악보가 타법 과 함께 율명차용보( 律 名 借 用 譜 ) 69) 로 수록되어 있다. 70) 구라철사금자보 의 구성 및 내용 은 다음과 같다. 71) 歐 邏 鐵 絲 琴 字 譜 洌 上 李 圭 景 伯 揆 氏 飜 譯 弟 圭 達 叔 璋 甫 參 校 第 一 刱 來 第 二 律 名 第 三 字 點 第 四 宜 用 彼 字 第 五 製 形 第 六 藏 棄 第 七 鼓 絃 第 八 琴 銘 第 九 典 攷 靈 山 會 相 大 一 篇, 靈 山 會 相 大 二 篇, 靈 山 會 相 大 三 篇, 靈 山 會 相 大 四 篇. 68) 구라철사금자보 에 대한 연구 성과를 통해 악보의 율명은 조율된 음이 아닌 양금의 줄 이름으 로 밝혀졌고, 당시 양금 고악보에 실제 적용된 조현 역시 현행과 동일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장 사훈, 구라철사금자보의 해독과 평시조의 제문제, 국악논고 (서울 :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324쪽 참조. 69) 대부분의 양금고악보들은 구음을 주로 한 ʻ한글육보ʼ 또는 ʻ한자육보ʼ로 기보되어 있으며, 구라 철사금자보 의 음고 표시방법은 현행과 같이 12율명의 머릿자를 쓰는 것은 같으나, 현행의 실 제 음고와는 전혀 다르다. 김영운은 이와 같은 구라철사금자보 의 기보법을 ʻ문자보ʼ 중 ʻ율명차 용보ʼ라고 하였다. 김영운, 양금 고악보의 기보법에 관한 연구- 협율대성 양금보의 시가기보 법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제15 16집 합병호(서울 : 한국국악학회, 1986), 6쪽. 70) 수록음악으로 보면 당시의 양금이 주로 민간 지식층을 중심으로 활발한 발전을 이룬 소위 ʻ정악ʼ 의 반주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송지원, 구라철사금자보 해제, 구라철사금자보 서울대규 장각 한국학연구원, http : //kyujanggak.snu.ac.kr. 71) 국립국악원, 양금신보, 한국음악학자료총서 권14(서울 : 국립국악원, 1984), 쪽. 237
24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靈 山 會 相 中 一 篇, 靈 山 會 相 中 二 篇, 靈 山 會 相 中 三 篇, 靈 山 會 相 中 四 篇. 靈 山 會 相 小 一 篇 俗 稱 殘 靈 山, 靈 山 會 相 小 二 篇, 靈 山 會 相 小 三 篇, 靈 山 會 相 小 四 篇. 除 篇 一 篇 俗 稱 篇 除 가락더리, 除 篇 二 篇, 除 篇 三 篇, 除 篇 四 篇. 還 入 一 篇, 還 入 二 篇, 還 入 三 篇, 還 入 四 篇. 下 絃 還 入 一 篇, 下 絃 還 入 二 篇, 下 絃 還 入 三 篇, 下 絃 還 入 四 篇. 界 面 調 調 絃. 羽 調 調 絃. 歌 曲 大 葉 初 章 俗 稱 츠 닙, 二 章, 三 章, 中 餘 音, 四 章, 五 章, 大 餘 音. 時 調. 제1편( 第 一 ) 창래( 刱 來 ) 는 우혁정( 于 奕 正 )의 제경경물략( 帝 京 景 物 略 ), 왕사정( 王 士 禎, ) 72) 의 지북우담( 池 北 偶 談 ) 주어고존( 奏 御 稿 存 ) 등을 참고하여, 양금의 중국 및 한국으로의 유입, 양금 연주법의 한국 전래, 전수방법, 양금의 한국적 수용과 악보화 등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73)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구라금이 중국에 들어온 것 은 리마두( 利 瑪 竇 )가 가지고 왔고, 천금( 天 琴 )이라고 불렀다. 정종조( 正 宗 朝 )에 장악원의 전 악인 박보안이 사신을 따라 연경에 가서 양금의 연주법을 처음으로 배워 와서 우리나라 음 악으로 번역하여 가르쳐주었으나, 악보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자마자 곧 잊어버렸고, 1817 년 2월에 장악원 전악인 문명신이 처음으로 악보를 만들었다. 일찍이 문헌록( 文 獻 錄 ) 74) 중 에 보니 어느 사람이 적은 종이에 아무 아무개가 보낸 글 가운데 <양금일보( 梁 琴 一 譜 )>에 관해 언급했는데, 양( 梁 )자가 비록 양( 洋 )자와 다르나 음은 같으니 아마도 양금일 것이라는 72) 왕사정은 청나라 신성( 新 城 ; 지금의 환태현) 사람으로, 원래 이름은 사진( 士 禛 )이다. 자( 字 )가 자 진( 子 眞 )이고, 호가 완정( 阮 亭 ) 어양산인( 漁 洋 山 人 )이며, 시호가 문간( 文 簡 )이다. 청초( 淸 初 ) 대표 적인 시인으로, 주이존( 朱 彛 尊 )과 함께 ʻ남주북왕( 南 朱 北 王 )ʼ이라고 일컬어졌다. 1658년(순치( 順 治 ) 15)에 진사가 되어, 관직이 형부상서에까지 이르렀다. 500여종의 저서와 4000여수의 시가 있 다. 저서로는 지북우담( 池 北 偶 談 ) 어양산인정화록( 漁 洋 山 人 精 華 錄 ) 잠미집( 蠶 尾 集 ) 향조 필기( 香 祖 筆 記 ) 거역록( 居 易 錄 ) 어양문략( 漁 洋 文 略 ) 어양시집( 漁 洋 詩 集 ) 대경당집( 帶 經 堂 集 ) 감구집( 感 舊 集 ) 오대시화( 五 代 詩 話 ) 등이 있다. 73)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一 刱 來 : 歐 邏 琴 入 于 中 華, 以 帝 京 景 物 略 攷 之, 則 自 利 瑪 竇 始, 名 曰 天 琴, 卽 鐵 絲 琴 也. 池 北 偶 談 香 山 奧 三 吧 寺, 有 風 琴 銅 絃 彈 之, 以 和 經 唄, 奏 御 稿 存 回 部, 旣 平, 得 其 樂 命 大 饗 所 陣 諸 部 末 肄 之, 其 器, 有 洋 琴 之 屬, 流 出 我 東, 則 幾 止 六 十 載, 終 無, 飜 曲, 徒 作 文 房 奇 器 摩 弄 而 己. 正 祖 朝 年 當 俟 考 年 掌 樂 院 典 樂 朴 寶 安 者 隨 使 入 燕 始 學 鼓 法, 飜 以 東 音 自 此 傳 習, 而 以 手 相 授 苦 無 字 譜 旋 得 隨 失. 歲 在 丁 丑 仲 春 同 典 樂 文 命 新 講 作 此 譜. 嘗 見 文 獻 錄 中 有 人 於 小 紙 列 書, 某 某 書 及 梁 琴 一 譜, 而 梁 字 雖 異 與 洋 字 異, 而 音 則 同 焉. 似 是 此 琴 之 譜, 今 不 可 攷.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쪽에서 참조 및 인용. 74) 여기에서 말하는 文 獻 錄 이란 어느 문헌의 기록인지 알 수 없다. 238
247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내용이다. 제2편( 第 二 ) 율명( 律 名 ) 은 율려( 律 呂 )의 상생( 相 生 )과 조화의 원리에 입각한 십이율려 ( 十 二 律 呂 )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음악의 초성( 初 聲 )을 정하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75) 즉 음악에 있어서 십이율려가 없으면 그 소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각 현( 絃 ) 아래에 율 려가 상생 상화( 相 和 )하는 것에 의하여 12율 4청성( 淸 聲 )을 차례대로 적는다고 하였다. 또 한 우리나라의 음악은 본래 협종( 夾 鐘 )을 초성( 初 聲 )으로 정했으며, 지금도 협종을 궁( 宮 )으 로 삼는다고 하였다. 제3편( 第 三 ) 자점( 字 點 ) 은 양금 14현에 율려를 배열하는 법, 12율려의 기보방법, 청성 의 제시방법, 양금의 연주법(한번 치는 것, 두 번 치는 것, 연달아 치는 것)에 대하여 설명 하고 있다. 76) 양금 14줄에 12율려를 배열하고, 남는 2줄을 변치( 變 徵 )와 변궁( 變 宮 )으로 정하고, 자호( 字 號 )는 ʻ 工 ʼ자(가장 낮은 줄에 배열)와 ʻ 上 ʼ자(가장 높은 줄에 배열)로 부르며, 12율려의 기보법은 ʻ황종( 黃 鐘 )ʼ을 예로 들어, ʻ황종ʼ음 두 글자를 모두 쓰지 않고 머릿자인 ʻ황( 黃 )ʼ만 쓰고, 청성의 표시는 ʻ청( 靑 )ʼ자는 버리고 다만 물수변( 氵 )만 율명의 머릿자 왼쪽 에 붙여서 ʻ황( 潢 ; 청황종)ʼ자처럼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율명들도 이와 같 은 방법으로 합성하여 표시하는데 오직 ʻ청유빈( 淸 蕤 賓 )ʼ만은 ʻ유( 蕤 )ʼ자가 복잡하여 뒤의 글 자인 ʻ빈( 賓 )ʼ에 합성한다. 율명 아래에 ʻ ʼ 표시를 한 것은 한번 치는 것이고, ʻ ʼ표시를 한 것은 두 번 치는 것이며, ʻ - ʼ표시를 한 것은 두 번 연달아 치는 것 77) 이라는 내용으로 되 어 있다. 제4편( 第 四 ) 의용피자( 宜 用 彼 字 ) 는 당낙우( 唐 樂 宇 )의 논율산서( 論 律 算 書 ) 에 의거하여 75)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二 律 名 : 大 扺 [ 率 ] 樂 無 十 二 律 呂, 則 縱 稱 知 音, 何 以 成 聲, 故 先 於 ( 各 ) 絃 下 依 律 呂 相 生 和, 列 書 十 二 律 四 淸 聲, 而 互 相 變 易 不 可, 以 本 ( 木 ) 律 拘 也. 東 樂 本 以 夾 鐘 ( 定 ) 爲 初 聲, 今 以 夾 鐘 爲 宮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138쪽에서 참조 및 인용. 76)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三 字 點 : 洋 琴 十 四 絃, 除 十 二 律 呂, 則 餘 二 絃. 定 爲 變 宮 變 徵 ( 絃, 而 ) 字 號 標 以 工 上 ( 二 ) 字 工 在 ( 最 ) 下 ( 絃 ), 上 在 首 [ 最 高 絃 ]. 十 二 律 ( 下 當 列 書 律 ) 宮, ( 於 各 律 各 呂 之 絃 而 ) 若 備 書 ( 某 律 某 呂, 則 ) 太 繁. 故 省 用 [ 書 律 呂 ] 首 字 ( 如 黃 鐘, 則 只 書 黃 字, 餘 皆 倣 此 ). 淸 聲 ( 則 ) 去 半 字 [ 偏 ] 止 取 在 徧 [ 傍 ] 水 旁 [ 偏 ] 附 於 下 [ 律 呂 首 ] 字 之 左, 如 ( 淸 黃, 則 作 ) 潢 之 類 也. ( 其 中 濱 字, 本 淸 淸 蕤 也, 而 若 取 蕤 字 從 水 合 成, 則 傷 於 駭 眼. 故 强 取 賓 字 合 成 焉.) ( 點 標, 則 ) ( 點 ) 者 單 擊 ( 也 ), ( 點 ) 者 兩 擊 也, - ( 點 ) 者 聯 擊 而 頓 竿 也.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쪽에서 참조 및 인용. 77) 양금연구회는 이규경의 양금악보인 구라철사금자보 의 영산회상 중 ʻ 靈 山 會 相 大 ʼ, ʻ 靈 山 會 相 中 ʼ, ʻ 靈 山 會 相 小 ʼ 부분을 역보해서 2008년 5월 14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재연하였다. 양금연구 회에서 재연한 구라철사금자보 의 부호는 율명 아래에 ʻ ʼ 표시를 한 것은 한 박 또는 반박 의 구분 없이 한번 치는 표이고, ʻ ʼ 표시를 한 것은 그 음을 한 박 또는 반박의 구분 없이 두 번 치는 표이며, ʻ - ʼ 표시를 한 것은 그 음을 반박으로 두 번 치는 표 로 해석하여 연주 하였다. 제12회 양금연주회, 국립국악원 우면당, 2008년 5월 14일 저녁 7시 30분, 공연 프로 그램, 5쪽. 239
24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서양음악의 이론에 대하여 살펴보고 있다. 특히 이 조항은 서양음악의 기초이론이 이규경 에 의해 재해석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는 서양음악의 기보법인 오선보( 五 線 譜 )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조표 또는 임시기호로 사용되는 ʻ ʼ(sharp)과 ʻ ʼ(flat),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가온음자리표의 3가지 보표와 7음, 온음과 반음 등에 대하여 적고 있다. 이규경의 서악이론에 관해서는 본 논문 제Ⅳ장 ʻ양악이론의 도입과 적용ʼ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제5편( 第 五 ) 제형( 製 形 ) 은 양금의 재료와 형태, 그리고 <구라철사금도( 歐 邏 鐵 絲 琴 圖 )> 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78) 양금의 현( 鉉 ) 조( 組 ; 4개의 가는 줄) 왼쪽의 동정( 銅 釘 ) 오른쪽의 철정( 鐵 釘 ) 등의 굵기와 모양, 양금의 재료, 모양, 복판, 줄 매는 법, 조율에 쓰 이는 곡철( 曲 鐵 )의 모양과 사용법, 양금채의 재료 길이 넓이 모양 만드는 법과 치는 방법, 양금 뚜껑의 크기 재료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양금의 줄 1현에는 4개의 가는 줄이 있는데, 좌 우에 각각 7현 등 모두 14현이 있으며, 14현에는 모두 56개의 가는 줄이 있다. 왼쪽에는 구리 못 56개가 있으며, 오른쪽 에는 쇠못 56개가 있다. 동정은 굵은 구리줄로 만들며, 철정은 뚜껑 없이 아래가 둥근 것 으로 화살촉과 같이 모가 난 것이다. 둘째, 양금의 재료는 오동나무를 쓰며, 그 모양은 위쪽은 좁고 아래쪽은 넓다. 그 끝에 나무못을 박는데 용( 榕 )나무를 쓴다. 용나무가 아니면 견고하게 되기 어렵다. 셋째, 양금의 울림통은 비어 있어 발향( 發 饗 )할 수 있다. 넷째, 양금의 줄을 거는 두 휘( 徽 )의 거리는 비례법( 比 例 法 )으로 치수를 삼는다. 양금의 긴 괘인 휘는 두 개가 있는데, 각각 8개의 구멍을 뚫지만 양쪽 머리에는 둥그런 모양이 일 그러져 있는데, 이것은 줄을 관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휘의 위쪽은 1조의 굵은 구리줄로서 78)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五 製 形 : 一 絃 四 條, 左 右 各 七 弦, 共 十 四 弦, 十 四 弦 共 五 十 六 條, 左 銅 釘 五 十 六, 右 鐵 釘 五 十 六, 銅 釘 以 大 銅 絲 爲 之, 鐵 釘 無 盖 而 圓 下, 則 如 鏃 而 方. 琴 之 質, 用 梧 桐, 其 狀 上 殺 下 廣, 其 顚 末 樹 釘 處 用 榕 木, 非 榕 木, 則 釘 難 錮, 盖 榕 性 吸 引 銅 銕 故 也. 琴 之 腹 空 空 如 也. 可 以 發 饗. 琴 之 徽 有 二, 各 鑑 圜 孔 八, 而 兩 頭 缺 圜, 將 以 貫 弦 也. 徽 上 以 一 條 大 銅 絲 與 徽 長 等 者, 當 中 橫 置, 將 以 承 弦 也. 兩 徵 相 距, 以 此 例 法 爲 度, 大 㮣 鐵 鏃 過 徽 距 鐵 鏃 二 寸 强, 則 兩 徽 中 間 相 距 五 寸, 銅 釘 邊 徽 距 銅 釘 六 寸 强. 琴 絃 用 黃 銅 細 絲, 非 燕 山 則 體 柔 易 鬆, 一 弦 合 四 條, 左 右 各 七 絃, 共 十 四 弦 總 計 五 十 六 條, 貫 于 徽 每 孔 一 上 一 下, 則 弦 瓦 交, 其 勢 如 織 帛 者 之 貫 筬 焉. 琴 左 端, 則 小 銅 釘, 右 端, 則 鐵 釘 其 大 如 箭 鏃. 入 木 處 矩 之 掛 弦 處 䂓 之, 而 弦 之 餘 緖 纒 于 此 釘, 而 掛 弦 時 弦 之 兩 緖 暫 入 于 火 中 取 出 放 冷. 然 後 作 套 圈 及 纏 釘, 則 不 絕 弦. 若 斷 絕, 則 解 此 條 改 焉. 弦 之 緊 鬆 專 在 於 此, 而 欲 緊 鬆 時 有 曲 鐵 者, 狀 如 隱 亢 鑰 匙 冒 于 釘 頭 而 捩 之, 隨 纆 絃 之 勢, 而 左 右 之. 盖 銅 鏃 兩 釘 之 數 與 絃 數 等. 欲 美 其 飾 者, 兩 徽 之 問, 黏 雕 玉 小 圜, 銅 釘 之 內 板, 亦 如 之. 鼓 絃 之 竿, 削 竹 片, 長 可 五 寸, 廣 可 一 分, 薄 其 中, 厚 其 首, 尾 把 而 鼓 之, 其 勢 裊 裊 然. 琴 匣 視 琴 之 體 隨 其 狀 而 制 之, 洋 布 爲 最, 褐 布 爲 次. 琴 體 大 小 不 拘 焉. 大 者 可 至 三 尺, 小 者 可 至 一 尺, 此 无 定 度, 然 大 則 聲 濁, 小 則 聲 淸. 번역은 이 동복, 앞의 논문, 쪽에서 참조 및 인용. 240
249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휘의 길이와 같은 것으로, 가운데 옆으로 두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잇고자 하는 것이다. 다섯째, 양금줄의 재료로는 누런 구리로 만든 가는 줄을 쓰는데, 연경( 燕 京 )에서 나는 것이 아니면 몸체가 부드러워 느슨해지기 쉽다. 여섯째, 줄을 팽팽하게 또는 느슨하게 할 때는 곡철( 曲 鐵 )을 사용한다. 곡철은 열쇠같이 생겼는데, 양금의 오른쪽 못에 끼워서 묶은 현의 형편에 따라서 좌우로 돌린다. 일곱째, 양금줄을 두드리는 채는 대나무 조각을 깎아서 만든다. 길이는 5촌( 寸 )이고 넓 이는 1푼( 分 )인데, 그 가운데를 얇게 하고, 그 머리를 두껍게 하며, 그 끝을 잡고 치면 그 모양이 바람에 나무가 간들거리는 모양처럼 하늘거린다. 여덟째, 양금을 싸는 갑( 匣 )은 양금의 몸체를 보고 거기에 따라서 그 모양을 만든다. 그 재료는 양포( 洋 布 )가 가장 좋고, 갈포( 褐 布 )가 다음이다. 아홉째, 양금의 크기는 대소( 大 小 )에 구애( 拘 礙 )되지 않는다. 큰 것은 3척( 尺 )에 이를 수 있고, 작은 것은 1척에 이를 수 있으나 정해진 치수는 없다. 그러나 크면 소리는 낮아지 고, 작으면 소리가 높아진다. 제6편( 第 六 ) 장기( 藏 棄 ) 는 양금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79) 너무 건 조하면 줄이 끊어지기 쉽고, 너무 습하면 줄이 늘어지므로, 건조하거나 습하지 않은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이다. 제7편( 第 七 ) 고법( 鼓 法 ) 은 양금을 치는 주법( 奏 法 )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80) 손을 날개처럼 놀리고, 양금채를 아래로 해서 떨리듯이 하면서 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8편( 第 八 ) 금명( 琴 銘 ) 은 아정( 雅 亭 ) 이덕무( 李 德 懋 )가 홍대용의 양금에 새긴 글과 관 제( 觀 齋 ) 서상수( 徐 常 修, )의 양금에 새긴 글, 그리고 이규경이 이덕무의 양금 에 새긴 글을 싣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정( 雅 亭 ) 이덕무( 李 德 懋 )선생이 홍대용의 양금에 명( 銘 )을 쓰기를, 금( 琴 )이라고 말하는 것 은 줄로 당기는 것이고, 사( 絲 )라고 말하는 것은 대나무로 가르기 때문이다. 쟁( 箏 )모양을 갖 춘 것으로 온화한 음이 마치 대나무가 나무와 풀을 겸하고, 물고기가 길짐승과 날짐승의 중 간인 것 같구나. 또 서상수( 徐 常 修 )의 금에 명( 銘 )을 쓰기를, 사심 없는 옥( 玉 ), 많고 많은 오동나무, 떨고 떠는 대나무, 가늘고 가는 구리 줄, 그 소리 쟁그랑 쟁그랑, 그 빛 아롱아롱, 구라금의 기술이 우리나라에 들리는구나. 내가 일찍이 금 하나가 있어 그 뒷면에 다음과 79)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六 藏 棄 : 藏 棄 最 難, 太 燥 則 弦 斷, 太 濕 則 弦 慢, 以 不 燥 不 濕 爲 法.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143쪽에서 참조 및 인용. 80)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七 鼓 法 : 鼓 琴 之 法 運 手 如 翰 下 竿 如 顫 始 乃 發 聲.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143쪽에서 참조 및 인용. 241
25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같이 썼다. 56줄이 각각 뜻[ 情 ]이 있어 구라금 기이한 악기 거듭 바다를 건너와 판머리 쇠 로 만든 촉은 뾰족하게 대순[ 箏 ] 뽑아 놓은 것 같고, 휘가 있는 울림통[ 腹 ]과 구리줄은 가늘 어 베틀의 바디 같다. 그 가락 사람 소리 화합하여 소리가 나오기 어렵지 않고, 소리는 하늘 소리[ 天 籟 ] 81) 같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다른 나라 특이한 음악 누가 이해하랴. 억지로 우 리 음악으로 번역해 악보를 만들었네. 위의 두 가지 명을 마땅히 금갑위에 새겼다. 82) 위의 내용을 보면 홍대용의 양금에는 여러 악기에 대한 특징을 묘사하였고, 서상수의 양 금과 이규경의 양금에는 양금의 형태와 소리에 관해서 묘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자신이 아끼는 악기에 글을 새겨 넣거나 그림을 그려 넣는 전통적 방법으로, 생소한 악기인 양금에 대한 자신들의 소감을 글로 써서 양금에 새겨둔 것이다. 제9편( 第 九 ) 전고( 典 攷 ) 에서는 초정( 楚 亭 ) 박제가( 朴 齊 家 )가 1778년 연경에 갔을 때 당낙우( 唐 樂 宇 )를 찾아가 83) 음악에 관하여 논한 것을 실어놓고 있는데, 박제가가 질문하고 당낙우가 그에 답하는 내용이다. 84) 첫째, 서양악기인 양금과 파이프오르간에서 시작된 음 악에 관한 몇 가지 질문과 답이고, 둘째, 양금은 탁한 소리가 없기 때문에 우조( 羽 調 )가 없 다는 설명이며, 셋째, 양금의 맑은 성조는 아악 연주 역시 가능케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81) 莊 子 齊 物 論, 子 游 曰 ʻ 地 籟 則 衆 竅 是 已, 人 籟 則 比 竹 是 已. 敢 問 天 籟.ʼ 子 綦 曰 ʻ 夫 天 籟 者, 吹 萬 不 同, 而 使 其 自 己 也, 咸 其 自 取, 怒 者 其 誰 邪!ʼ ʻ천뢰( 天 籟 )ʼ는 하늘에서 울리는 퉁소소리, 즉 자연 의 소리로 예를 들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같은 것을 말한다. 82)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八 琴 銘, 雅 亭 先 生 銘 洪 湛 軒 之 琴 曰, ʻ 謂 之 琴, 揯 以 絃, 謂 之 絲, 刜 以 蓴. 備 箏 之 體, 藉 璈 之 琴, 竹 之 兼 乎 木 艸 也, 魚 之 間 乎 獸 禽 也.ʼ 又 銘 徐 觀 齋 琴 曰, ʻ 空 空 玉, 仄 仄 桐, 顫 顫 竹, 鐵 鐵 銅, 鏗 鏗 瓏, 瓏 瓏 歐 邏 技 震 檀 聽.ʼ 李 圭 景 嘗 畜 一 琴 而 題 其 背 曰, ʻ 五 十 六 絃 各 有 情, 歐 邏 奇 器 渡 重 瀛, 版 頭 銕 鏃 尖 抽 箏, 徽 腹 銅 絲 細 貫 筬. 腔 和 人 聲 無 難 出, 響 仝 天 籟 自 然 生. 殊 方 異 樂 疇 堪 解. 强 譯 東 音 譜 己 成.ʼ 上 二 銘 宜 刻 琴 匣 之 上.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143쪽에서 참조 및 인용. 83) 李 德 懋, 靑 莊 館 全 書 제67권, 入 燕 記 下, 二 十 四 日 癸 未, 在 先 訪 唐 樂 宇 於 琉 璃 廠 畔 四 川 新 會 館. 樂 宇 字 堯 春, 號 鴛 港, 綿 州 人, 與 雨 村 童 稚 爲 友. 今 官 戶 部 員 外 郞, 通 易 理 律 曆 之 類. 初 九 日 丁 酉, 晡 微 雨. 留 館. 與 在 先, 訪 唐 鴛 港. 참조. 84)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九 典 攷, 朴 楚 亭 齊 家 戊 戌 正 宗 朝 入 燕 與 唐 鴛 港 樂 宇 論 樂. 楚 亭 問, ʻ 如 西 洋 鐵 絲 琴 及 天 主 堂 槖 籥 律 之 屬, 以 我 音 飜 之 亦 通, 是 必 有 天 地 之 間, 元 聲 之 一 定 者?ʼ ( 唐 鴛 港 ) 答, ʻ 元 聲 自 有 一 定, 而 以 人 聲 出 之, 則 不 一 定 矣. 人 之 聲 出 於 臟 腑 不 一, 靈 樞 素 問, 己 詳 言 之.ʼ ( 楚 亭 ) 問, ʻ 萬 國 之 音 合 於 一 何 也?ʼ ( 唐 鴛 港 ) 答, ʻ 不 一, 卽 中 國 之 音 亦 不 一 如 歸 川 中 人 呼 龜 淅 中 人 呼 居.ʼ ( 楚 亭 ) 問, ʻ 然 則 天 下 之 樂 不 一 耶?ʼ ( 唐 鴛 港 ) 答, ʻ 豈 獨 天 下 哉. 人 名 不 同 也.ʼ ( 楚 亭 ) 問, ʻ 先 生 以 何 歸 宿?ʼ ( 唐 鴛 港 ) 答, ʻ 我 得 聞 於 鄭 世 子 之 書, 每 人 制 樂, 以 每 人 中 指 爲 定.ʼ ( 楚 亭 ) 問, ʻ 造 樂 律, 用 何 尺?ʼ ( 唐 鴛 港 ) 答, ʻ 尺 之 爲 用 有 三 ; 有 橫 黍 此 周 尺, 竪 黍 此 虞 尺, 斜 黍 此 禹 尺.ʼ ( 楚 亭 ) 問, ʻ 俱 用 上 黨 羊 頭 山 黑 黍 否?ʼ ( 唐 鴛 港 ) 答, ʻ 山 上 有 黍 甚 疑, 此 皆 前 人 妄 說, 旱 潦 不 時 大 小 不 一, 豈 能 以 此 爲 定 耶.ʼ ( 楚 亭 ) 問, ʻ 今 不 用 黍 耶?ʼ ( 唐 鴛 港 ) 答, ʻ 太 常 所 常, 我 不 得 聞, 想 來 無 此 說 矣. 洋 琴 無 羽 調, 盖 綠 專 淸 無 濁 也. 俗 作 羽 聲, 琴 體 絕 大 可 合 此 腔. 此 琴 非 雅 樂, 聲 調 淸 越, 此 可 賞 也. 大 率 樂 以 聲 之 雅 俗 爲 邪 正. 此 琴 雖 曰 蠻 方 殊 音, 苦 被 之 以 雅 樂, 則 亦 可 以 人 神 和 諧 政 不 在 於 器 也. 卽 筍 勗 聽 牛 鐸 而 諧 樂 之 義.ʼ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144쪽에서 참조 및 인용. 242
251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이규경은 구라철사금자보 에서 이상과 같이 9부분으로 나누어 양금이 우리나라에 유입 된 과정에서부터 악보화, 악기의 제작방법에 이르기까지 양금에 관한 여러 가지 알아두어 야 할 사항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하였다. 이것은 이규경이 실학자로서 실사구시( 實 事 求 是 )의 학문방법 85) 으로 서양음악을 수용하는 한편 이용후생( 利 用 厚 生 )에 대하여 깊은 관 심을 가지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Ⅳ. 양악 이론의 도입과 적용 1. 실학자들의 양악이론의 이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양음악의 이론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정두원의 직방 외기 를 비롯한 한역 서학서를 통해서 수용되었다. 여기에 소개된 서양음악의 이론은 가장 기초적인 보표, 음자리표, 변화표, 음표 등의 종류, 명칭, 발음, 의미 등의 단편적인 소개 일 뿐이었으나, 조선 자체에서는 중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기 때문에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17세기 전반 정두원이 서양음악을 소개한 이후로 18세기 중엽에는 주로 연행( 燕 行 ) 을 통하여 조선의 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탐구하여 서양 세계를 이해함으로써, 또 다른 문명국이 세계 도처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그 이전까지 중국 중 심의 화이( 華 夷 )적 예악관에서 조선중심의 자주적 음악관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즉 조선초기에는 중국 중심의 화이( 華 夷 )관에 의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실학자들은 각 지역 마다 음악문화가 다르고, 시대마다 음악양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 이상 화이적 예악관이 조선의 표준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 중심의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달하자는 인식 을 하게 된다. 특히 홍대용과 이규경은 서악( 西 樂 )이론의 체계를 양금에 적용하여 양악의 실제를 구체화시켰으며, 양악의 이론에 조선의 삼재론( 三 才 論 ) 86) 을 대입시켜 해석했다는 85) 조선전기의 예악이 수구적 아악추구의 경향이었음에 반하여 조선후기의 예악은 바로 이 ʻ실사 구시ʼ의 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다. 또 ʻ실사구시ʼ하는 정신은 현존의 음악을 기록하는 정신 으로 이어져 수많은 고악보의 출현을 보게 하였다. 송지원, 조선후기 중인음악의 사회학적 연 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 79쪽. 86) 중국 고대의 사상에서 우주의 세 가지 근원을 뜻하는 말로, 우주와 인간 세계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면서 그 변화의 동인( 動 因 )으로 작용하는 천 지 인을 가리킨다. 이것은 주역 계사전 의 역은 넓고 큰 것을 모두 갖추었다. 천도( 天 道 )가 있고, 인도( 人 道 )가 있고, 지도( 地 道 )가 있다. 삼재를 겸하여 이것을 둘로 곱하였기 때문에 육( 六 )이다. 라는 데서 유래하는데, 여기서 천도 243
25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점에서 주목된다. 먼저 홍대용의 담헌집 황종고금이동지의( 黃 鐘 古 今 異 同 之 疑 ) 에 기록된 서양음악 이론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제 어긋나지 않는 한 기준[ 考 準 ]이 있으니, 서양( 西 洋 )의 금( 琴 )이 그것이다. 서양금의 제 도에서 악기의 현( 絃 )을 괴는 두 기둥[ 棵 ]은 음( 陰 )과 양( 陽 )을 나누는 것이요, 4개의 줄[ 絲 ] 을 한 음으로 통일[ 一 統 ]함은 사시( 四 時 )를 합하는 것이요, 12현( 絃 )은 12달을 상징하는 것이 요, 3품( 品 ) 분배( 分 排 )는 천( 天 ) 지( 地 ) 인( 人 ) 삼재( 三 才 )를 상징하는 것이다. 근래에 2현 ( 絃 ) 즉 변궁( 變 宮 ) 변치( 變 徵 )를 더하니, 12율( 律 )과 4청성( 淸 聲 )이 3품에 요연( 瞭 然 )하게 드 러나고, 또 현을 조율하는 것[ 調 絃 ]도 매우 편리하고 상생( 相 生 )이 분명하다. 비록 아주 미세 한 착오로 문득 어그러져[ 散 乖 ] 합치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장의 크기와 줄의 굵기가 균일 ( 均 一 )하기 어려운 것에는 비견되지 않는다. 지금 세상에 살며 정률( 正 律 )을 구하려 한다면 이런 금( 琴 )을 놓아두고 어떤 것으로써 하겠는가? 대개 원( 圓 )이란 것은 원주율[ 智 率 ]을 따라 서 극히 정밀해지고, 역법이란 것은 탕법( 湯 法 )으로부터 차이가 없으니, 이는 바로 원주율과 양력( 陽 曆 )의 창론( 創 論 )이 아닌가? 금의 제도 역시 그때에 있었을 것이다. 반드시 평설( 評 說 )해주는 자가 있으리니, 박아( 博 雅 )의 군자( 君 子 )에게 듣기를 희망한다. 87) 위의 인용문에서 홍대용은 서양악기인 양금의 구조를 동양의 세계관으로 풀어서 설명하 고 있다. 그는 서양음악의 기호 체계를 음양의 상대적 동시성이나 순환적 연속성, 또는 조 화적 통일성으로 해석하여, 현( 絃 )을 괴는 두 기둥[ 棵 ]은 음양( 陰 陽 )으로, 한 음이 4개의 철사줄로 되어있는 것을 사시( 四 時 )로, 12현( 絃 )은 12달로, 3품( 品 ) 분배( 分 排 )는 천( 天 ) 지 ( 地 ) 인( 人 ) 삼재( 三 才 )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홍대용의 이러한 해석은 비록 서양 의 악기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동양의 원리를 구현시켜 주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인도 지도를 합하여 삼재라고 하였다. ʻ재( 才 )ʼ는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중국사상의 특징으로서 인간은 천지자연과 대립하여 이를 정복하는 존재로 상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하는 존재, 또한 만물을 기르는 천지의 작용에 참가해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함으로 써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서울 : 박영사, 1990), 624쪽. 87) 洪 大 容, 湛 軒 書 外 集 卷 6, 黃 鐘 古 今 異 同 之 疑 : 今 有 不 差 之 考 準, 西 洋 琴 是 爾. 洋 琴 之 爲 制, 兩 棵 分 陰 陽 也, 一 統 四 絲, 合 四 時 也, 十 二 絃, 象 十 二 月 也, 三 品 分 排, 象 三 才 也. 近 加 二 絃, 卽 變 宮 變 徵, 則 十 二 律 四 淸 聲, 瞭 然 於 三 品, 且 調 絃 甚 便, 相 生 分 明. 雖 有 忽 微 之 小 錯, 輒 致 散 乖 而 不 合, 非 比 他 黍 之 小 大 絲 之 粗 細 難 於 均 一 也. 居 今 之 世, 欲 求 正 律, 捨 此 琴 而 奚 以 哉? 盖 圓 從 智 率 而 極 精, 曆 自 湯 法 而 無 差, 此 無 乃 智 率 陽 曆 之 創 論 也? 琴 制 亦 在 其 時 耶. 必 有 所 評 說 者 矣, 蘄 聞 於 博 雅 之 君 子.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75, 국역 담헌서 Ⅲ, 쪽과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52쪽 에서 참조 및 인용. 244
253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 제사( 第 四 ) 의용피자( 宜 用 彼 字 ) 에 기록된 서양음악 이론 88)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당낙우( 唐 樂 宇 )의 논율산서( 論 律 算 書 ) 를 살펴보면, 서양음악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포르투 갈 사람인 서일승( 徐 日 昇 : Thomaz Pereira, )과 이탈리아 사람 덕격리( 德 格 里 : Theodoricus Pedrini, )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들이 음악에 대하여 말한 대요( 大 要 )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관율( 管 律 )과 현도( 絃 度 )가 소리를 낼 수 있는 가운데에서 성자( 聲 字 )가 서로 맞고 안 맞는 까닭을 논한 것이고, 또 하나는 음을 살피고 법도에 맞는 규칙을 논한 것이다. 강( 剛 )에는 ʻ ʼ와 유( 柔 )에는 ʻ ʼ의 두 기호를 써서 음양의 두 음조의 다름을 분별하였다. 배장( 倍 長 )은 ʻ ʼ, 장( 長 )은 ʻ ʼ, 완( 緩 )은 ʻ ʼ, 중( 中 ) 은 ʻ ʼ, 반( 半 )은 ʻ ʼ, 소( 小 )는 ʻ ʼ, 속( 速 )은 ʻ ʼ, 최속( 最 速 )은 ʻ ʼ 등 형호( 形 號 )를 써서 성자의 구분을 조절했는데, 황종의 척도를 말하지 않고, 또한 격팔상생( 隔 八 相 生 )도 말하지 않았으나, 은근히 고악( 古 樂 )과 합치되고 있다.[ 暗 與 古 合 ] 5선( 線 )으로 성음을 구분했고 3가지 보표[ 三 品 ]를 쓰는데, 낮은 음으로부터 높은 음을 적는 ʻ ʼ은 상품( 上 品 )이고, 높은 음과 낮은 음을 적을 수 있는 ʻ ʼ는 중품( 中 品 )이며, 높은 음 으로부터 낮은 음을 적을 수 있는 ʻ ʼ은 하품( 下 品 )이다. 여섯 가지 위치를 정해서 7음( 音 )을 갖춤으로써, 우[ 烏 : ut] 레[ 勒 : re] 미[ 鳴 : mi] 화[ 乏 : fa] 솔[ 朔 : sol] 라 [ 拉 : la]라고 하는데, 우에서 레 레에서 미 화에서 솔 솔에서 라는 모두 온음[ 全 音 ] 이지만, 오직 미에서 화는 반음( 半 音 )이므로 여기에 시[ 犀 : si]자 한 자( 字 )를 새로 보충하여, 미에서 화 사이의 부족한 것을 도움으로써 7음이 비로소 온전하게 된다. 솔 화 우는 중국의 사자조( 四 字 調 )이며, 라 솔 레는 을자조( 乙 字 調 )이고, 라 미는 상 자조( 上 字 調 )이다. 화 미는 척자조( 尺 字 調 )이며, 솔 레 우는 공자조( 工 字 調 )이고, 라 미 레는 범자조( 凡 字 調 )이며, 화 미는 육자조( 六 字 調 )이다. 이상 7조는 이를 일러 7급( 級 )이라고도 하는데, 고저 상하가 서로 빌려서 쓰이게 된다. 악음( 樂 音 ) 장단의 법도에 이르러서는 또 여덟 가지 형호가 있는데 준칙( 準 則 )으로 삼는다. 전준( 全 準 ) 은 ʻ ʼ이고, 대반준( 大 半 準 )은 ʻ ʼ이고, 소반준( 小 半 準 )은 ʻ ʼ인데 평분도( 平 分 度 ) 삼 분도( 三 分 度 )의 호용( 互 用 )에 이르러서는 그 설이 각자가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그림 이 아니고는 밝힐 수 없다. 89) 88) 이규경이 구라철사금자보 제사 의용피자 와 오주연문장전산고 에서 소개한 서악이론은 당 낙우의 논율산서 를 참고하여 서술하였다. 89) 李 圭 景, 歐 邏 鐵 絲 琴 字 譜 第 四 宜 用 彼 字 : 唐 鴛 港 論 律 算 書, 則 西 樂 之 入 中 國, 始 自 波 爾 都 哈 爾 國 人 徐 日 昇, 大 里 亞 國 人 德 里 格, 其 言 樂 大 要 有 二. 一 則 論 管 律 絃 度, 生 聲 之 內 聲 字 相 合 不 相 合 之 故, 245
25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첫째, 서양음악의 올림표( )와 내림표( ) 90) 를 ʻ굳셈[ 剛 ]ʼ과 ʻ부드러움[ 柔 ]ʼ이라는 음양의 양극성으로 그 기능을 이해하고 있다. 하늘과 땅, 해와 달과 같은 양극성의 자연 현상을 ʻ음양의 일원적 상관관계ʼ라고 한다면, 그 일원적 상관관계로부터 도출한 상관관계를 ʻ음양 의 이원적 상관관계ʼ라고 할 때, ʻ굳셈과 부드러움ʼ이라는 ʻ음양의 이원적 상관관계ʼ로 ʻ ʼ과 ʻ ʼ을 이해했다. 또 해가 떠오르는 정오까지를 양( 陽 )이라고 한다면, 해가 져가는 자정까지 를 음( 陰 )이라 할 수 있는데, ʻ올라감ʼ 쪽에 ʻ ʼ, ʻ내려감ʼ 쪽에 ʻ ʼ을 두어 이해할 수 있었 던 것이다. 원래 ʻ ʼ으로서 sharp는 ʻ날카로운ʼ 뜻도 있지만 ʻ격렬하거나 모질다ʼ는 의미에 서 ʻ굳셈[ 剛 ]ʼ이며, ʻ ʼ으로서 flat은 뜻 그대로 ʻ부드럽다ʼ는 의미에서 ʻ부드러움[ 柔 ]ʼ이 된다. 둘째, 여기에 나타나는 음표의 일부는 오늘날의 음표와 거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비교적 느린 시가의 음표들은 서양에서 16세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음표에 해당한다. 또한 꼬리를 갖는 음표의 경우, 꼬리의 방향이 현재와는 반대인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서 양에서도 15세기 초엽에 꼬리의 방향이 반대로 그려진 음표가 사용되었다. 91) 셋째, 조를 밝히는 데 쓰이는 삼품이란 세 가지의 음자리표를 가리키는 것으로, ʻ높은음 자리표ʼ는 높아가는 음역 쪽 공간에 있는 자리표로 생각하였으며, ʻ낮은음자리표ʼ는 낮아가 는 음역 쪽 공간에 있는 자리표로 이해하였고, 또 ʻ가온음자리표ʼ는 그 중간에 있는 음자리 표로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원문에 그려진 음자리표의 모양이 오늘날의 모양과는 다소 차 이가 있는데, 아마도 원래는 G C F 등의 문자를 사용하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어느 한 부 분을 가지고 표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92) 세 가지 음자리표는 조선에서 각각 ʻ하늘[ 川 ]ʼ ʻ인 간[ 人 ]ʼ ʻ땅[ 地 ]ʼ이라는 ʻ삼재론( 三 才 論 )ʼ으로 설명되었다. 一 則 定 審 音 合 度 之 規. 用 剛 ʻ ʼ, 柔 ʻ ʼ 二 記, 以 辨 陰 陽 二 調 之 異. 用 倍 長 ʻ ʼ, 長 ʻ ʼ, 緩 ʻ ʼ, 中 ʻ ʼ, 半 ʻ ʼ, 小 ʻ ʼ, 速 ʻ ʼ, 最 速 ʻ ʼ 等 形 號, 以 節 聲 字 之 分, 不 言 黃 鐘 尺 度, 亦 不 言 隔 八 相 生, 而 暗 與 古 合. 以 五 線 界 聲, 三 品 明 調, 由 低 而 高 者, 上 品 ʻ ʼ 也, 可 上 可 下 者, 中 品 ʻ ʼ 也, 自 高 而 低 者, 下 品 ʻ ʼ 也. 六 者 定 位, 以 備 七 音, 曰 烏 勒 鳴 乏 朔 拉, 自 烏 至 勒, 勒 至 鳴, 乏 至 朔, 朔 至 拉, 皆 全 分, 惟 鳴 至 乏 爲 半 分, 于 是 新 法 補 一 犀 字, 以 助 鳴 乏 之 不 及, 而 七 音 始 全. 曰 朔 乏 烏, 中 法 之 四 字 調 也, 曰 拉 朔 勒, 乙 字 調 也, 曰 拉 鳴, 上 字 調 也. 曰 乏 烏, 尺 字 調 也, 曰 朔 勒 烏, 工 字 調 也, 曰 拉 鳴 勒, 凡 字 調 也, 曰 乏 鳴 六 字 調 也. 以 上 七 調, 是 謂 七 級, 高 低 上 下 相 借 爲 用. 至 于 樂 音 長 短 之 度, 又 有 八 形 號 以 爲 準 則. 有 全 準 ʻ ʼ, 有 大 半 準 ʻ ʼ, 有 小 半 準 ʻ ʼ 之 不 同, 平 分 度 三 分 度 之 互 用, 其 說 各 自 紛 繁, 非 圖 不 明. 번역은 이동복, 앞의 논문 : 쪽에서 참조 및 인용. 90) 올림표( )와 내림표( )는 오늘날 조표와 임시표 두 가지로 쓰이고 있으나, 원래는 임시표로 발생한 것인데, 10세기 초엽의 헥사코오드(Hexachord)에서 B음의 변화와 관련지어 쓰이기 시 작하였다. 김영운,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 관계 문헌 소고, 음악세계 제53집(서울 : 국민음 악연구회, 1978), 65쪽. 91) 김영운, 앞의 논문, 65쪽. 92) 김영운, 앞의 논문, 66쪽. 246
255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넷째, 서양의 ʻCʼ음을 기준으로 중국의 음명( 音 名 )인 육자( 六 字 )에 위치를 정하면 ut remi fa sol la si의 7음이 갖추어 지는데, ut-re, re-mi, fa-sol, sol-la는 모두 온음이 고, 오직 mi-fa만이 반음이다. 이에 새로운 방법으로 si 한음을 보태어 mi-fa가 반음이므 로 생기는 모자람을 충분하게 하였다. 다섯째, 솔 화 우는 중국의 사자조( 四 字 調 )이며, 라 솔 레는 을자조( 乙 字 調 )이고, 라 미 는 상자조( 上 字 調 )이다. 화 미는 척자조( 尺 字 調 )이며, 솔 레 우는 공자조( 工 字 調 )이고, 라 미 레는 범자조( 凡 字 調 )이며, 화 미는 육자조( 六 字 調 )라고 했다. 93) 중국의 음명은 원래 ʻ 합사일상구척공범육오( 合 四 一 上 勾 尺 工 凡 六 五 )ʼ의 열 개를 사용하였으나, 이 중에서 ʻ구( 勾 )ʼ 와 ʻ오( 五 )ʼ는 생략되고, 을( 乙 )은 일( 一 )의 대용으로 보인다. 94) 또한 오주연문장전산고 에서는 다음과 같이 음악을 배우는 자는 서양음악 이론을 알아 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중원( 中 原 ) 악률에 또 한 가지 이설이 있다. 즉 원오( 遠 隖 ) 서일승( 徐 日 昇 ) 덕격리( 德 格 里 )가 악의 대요( 大 要 )에 두 가지가 있음을 말했으니, 하나는 관율( 管 律 ) 현도( 絃 度 )가 소리 를 낳는 것 중에 성자( 聲 字 )가 서로 맞고 맞지 않음을 논한 것이고, 하나는 음을 살펴서 법 도에 맞게 하는 규칙을 정하여 강( 剛 ) 유( 柔 ) 두 기호를 써서 음( 陰 ) 양( 陽 ) 두 음조( 音 調 )의 다름을 분별하고, 배장( 倍 長 ) 장( 長 ) 완( 緩 ) 중( 中 ) 반( 半 ) 소( 小 ) 속( 速 ) 최속( 最 速 ) 등 8등급 93) 김영운은 구라철사금자보 에 보이는 칠조( 七 調 )에 대하여 사자조는 D Major, 을자조는 E Major, 상자조는 F Major, 척자조는 G Major, 공자조는 A Major, 범자조는 B Major, 육자 조는 C Major로 해석하였다.(김영운, 앞의 논문, 67쪽.) 그러나 최선아는 명 청 시기에는 김영 운의 연구에서 해석한 칠조의 Key와 다른 사자조(G), 을자조(A), 상자조(Bb), 척자조(C), 소공 조(D), 범자조(Eb), 육자조(F)의 일곱 가지 조가 실제로 사용되었다고 하면서 구라철사금자보 의 칠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였다.(최선아, 구라철사금 자보 의 칠조, 한국음악연구 제44집(서울 : 한국국악학회, 2008), 쪽.) 그러나 최선아 의 이론은 단지 리우짜이성의 중국음악의 역사 570쪽의 명 청 시기의 주요 악보 에 소개 한 공척보를 설명한 것을 인용한 것일 뿐(리우짜이성 지음/ 김예풍 전지영 옮김, 중국음악의 역사 (서울 : 민속원, 2004), 570쪽) 위의 일곱 가지의 조가 명 청 시기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 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이 없어 이 또한 재고의 여지가 있다. 또한 최선아는 구라철사금 자보 에 소개된 칠조의 양금 조율방법은 7음음계가 기본이 되는 일곱 가지 조에 의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좌괘의 좌현과 우현이 5도 관계이고, 우괘의 좌현이 좌괘의 우현과 옥 타브 관계인 조율방법과 다르다고 하면서, 이론적으로는 당시의 양금의 괘의 위치가 현행 양금 과 동일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고 하였다.(최선아, 앞의 논문, 222쪽.) 그러나 구라철사금 자보 에 보이는 칠조를 양금의 7음에 대입하였을 뿐 이론상으로나 악기의 구조상으로나 양금에 서는 적용할 수 없는 주장이다. 양금은 하나의 괘를 사용하여 7음 28현이 모두 걸려있기 때문 에, 하나의 괘에 걸린 7음 28현의 좌편과 우편의 비율이 모두 같다. 그러므로 좌편과 우편의 음정의 간격이 제1음 4현은 반음이 나타나고, 제2음 4현은 온음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94) 김영운, 앞의 논문, 67쪽. 247
25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의 형상을 가지고 표현하는 부호[ 形 號 ]를 써서 성자( 聲 字 )의 구분을 조절하는 것이다. 황종의 척도( 尺 度 )는 말하지 않았고 격팔 상생도 말하지 않았지만 은연 중 고악( 古 樂 )과 맞으니, 악 을 배우는 자가 그 까닭을 몰라서는 안 된다. 95) 이상의 기록으로 볼 때 중요한 점은, 서양음악을 그대로 설명한 데 있지 않고, 조선의 이해 체계, 즉 동양의 세계관에 따라 재해석하였다는 점이다. 서양음악의 조표 음표 음자 리표 음이름 박자표 등의 종류와 형태, 그리고 기능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낯설게 느껴졌 음에도 불구하고, 그 낯설음을 낯익음의 이해 체계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써 낯선 서양음악도 낯익은 조선의 악론 체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실질적이고 효용 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실학자들은 경 제 문학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시도하였듯이, 음악에서도 기존의 관념적 음악사상 에 변화를 추구하였다. 홍대용과 이규경은 서악( 西 樂 )이론이나 서양 악기의 체계를 이해하 기 위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음양( 陰 陽 ) 강유( 剛 柔 ) 삼재( 三 才 ) 등의 동양적 세계관 에 따라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동양, 특히 중국의 음악 이론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 명하거나 서양의 음악 이론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양과는 다른 체계를 지닌 서양 음악을 동양적 세계관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주체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전통 ʻ악ʼ과 서양음악은 이론과 실제가 같은 원리에서 나왔다는 해석은 중국이 아닌 서 양도 역시 문화가 발달한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와 문 화의 중심지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하게 되었다. 2. 서양음악의 국내 유입 시기 서양음악을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는지에 대한 물음은 ʻ한 국의 근 현대 음악과 한국에서의 서양음악이 무엇인가?ʼ라는 정체성의 규명과 밀접한 관계 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음악학자들의 연구주제가 되어 왔다. 한국에서 서양음악 의 출발점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어 논의되고 있다. 첫째, 개신교의 찬송가 전파로 보는 설, 96) 둘째, 가톨릭의 전래( 傳 來 )로 보는 설, 97) 셋째, 양악대의 창설로 보는 설, 98) 넷째, 95) 李 圭 景, 五 洲 衍 文 長 箋 散 稿 經 史 篇, 樂 律 候 氣 辨 證 說 : 今 中 原 樂 律, 又 有 一 種 異 說. 卽 遠 隖 徐 日 昇 德 格 里, 言 樂 大 要 有 二, 一 則 論 管 律 絃 度 生 聲 之 內, 聲 字 相 合 不 相 合 之 故, 一 則 定 審 音 合 度 之 規, 用 剛 柔 二 記, 以 辨 陰 陽 二 調 之 異, 用 倍 長 長 緩 中 半 小 速 最 速 八 等 形 號, 以 節 聲 字 之 分. 不 言 黃 鐘 尺 度, 亦 不 言 隔 八 相 生, 而 暗 與 古 合, 學 樂 者, 不 可 不 知 其 故 者 也. 번역은 고전국역총서 153, 국역 오주연문장전산고 Ⅱ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1978), 84-85쪽에서 참조 및 인용. 248
257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정두원이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Jesuit)교단의 신부들로부터 입수한 직방외기 로부터 보는 설, 99) 다섯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로부터 보는 설 100) 등이다. 서양음악의 유입에 관한 이상의 논의들에 근거하면, 수용주체 또는 수용과정이란 두 측 면에서 볼 때, 가톨릭과 개신교의 전래에 따른 서양음악의 수용은 외국인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반면 군악대 창설과 직방외기, 오주연문장전산고 에 나타난 서양음악의 수용은 한국인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직방외기 와 오주연문장전산고 를 통해 서는 서양음악의 이론이 소개되었고, 나머지 셋을 통해서는 서양음악의 실제가 수용되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음악적 실제를 통한 수용은 모두 미적 감상을 목적으로 하 96) 김성태는 서양 음악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1885년경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부터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성경과 함께 찬송가도 함께 가지고 들어와 사람 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찬송가를 가르쳤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성태, 양악 70년사, 음 악연감 (서울 : 세광출판사, 1966), 3쪽. 그리고 이유선은 한국에 있어서 찬송가, 즉 초기형태 의 서양음악은 개신교의 선교와 거의 때를 같이했다. 따라서 한국에 있어서 서양음악의 시작은 개신교의 선교를 기점으로 하는 1880년대 초부터 보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하였다. 이유선, 한국 양악 80년사 (서울 : 중앙대학교출판부, 1968), 93쪽. 97) 서우석은 1866년 병인박해에서 외국인 신부였던 순교자들이 형장으로 압송될 때 성가와 성영 ( 聖 詠 )을 부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노래를 불렀는지 안 불렀는지에 대한 확인은 대단히 어려 운 일이지만, 그 상황으로 보아서 어떤 노래든지 불렀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프랑스 신 부였던 이들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교육받았기 때문에 이들이 불렀던 성가와 성영은 찬송가 (Hymn)와 시편(Psalm)의 낭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가사는 1880년 이전에 유행했던 것 으로 보인다. 서우석, 서양음악의 수용과정, 전통문화와 서양문화 1 (서울 : 성균관대학교출 판부, 1985), 180쪽. 98) 장사훈은 미국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찬송가와 창가를 가르쳤으나, 당시의 사회실정은 지금과 달라서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인식을 얻지 못했다. 1900년 군악대 창설로 말미암아 비로소 한국에 양악이 들어와 퍼지게 되었고, 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라고 양악의 기점을 군악대, 즉 양악대의 창설로 보았다. 장사훈, 여명의 동서 음악 (서울 : 보진제, 1974), 172쪽. 99) 노동은은 우리나라에서 양악사는 적어도 36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한국인이 양악을 접촉하고 수용한 역사나 그 성격은 ʻ자주적ʼ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 지고 있다. 고 하면서, 정두원이 들여온 직방외기 를 통하여 중국 이외에도 고도로 발달한 문 명국과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도록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설은 서양음악의 음향적 실제보다는 서양음악의 이론에 대한 접촉을 근거로 하고 있다. 노동은, 한국 양악사, 100년사인가? 360년사인가?, 음악과 민족 제5집(서울 : 민족 음악연구소, 1993), 58-59쪽. 100)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로부터 한국에서 서양음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설은 나운영( 羅 運 榮, )의 미발표 원고인 양악 150년사 가 홍정수의 해제로 발표되면서 제기되었 다. 나운영의 원고에 명시된 ʻ150년ʼ이란, 오주연문장전산고 가 출판된 1810년에서 1960년까 지의 150년을 의미하는데, 이는 실학자들에 의한 서양음악이론 수용을 한국 양악사의 기점으 로 보는 것이다. 홍정수(해제), 나운영 음악자료(1)-양악 150년사 메모(1)-, 음악과 민족 제17집(서울 : 민족음악연구소, 1999), 쪽. 249
25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는 예술음악이 아니라, 기독교의 전도와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사용된 기능음악을 통한 것 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서양음악 수용에서 한 가지 간과( 看 過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실학자들과 궁중 악사들에 의해 수용된 양금의 경우이다. 본 연구에서 고찰한 결과 서양의 악기인 양금은 영조 초에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과 궁중 악사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수용되어, 기존의 악기와 함께 영산회상 가곡 가사 등의 우리 음악에 연주되었다. 101) 이것 은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의 시작을 개신교의 선교를 기점으로 하는 1880년대 초부터 보 는 설보다 빠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양악수용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이 중국에서 들 여온 한역( 漢 譯 ) 서학서( 西 學 書 )를 통해서 서양음악의 이론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 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와 구라철사금자보,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유예지, 102) 홍대용의 담헌서 등을 통해 서양음악의 이론이 동양적 세계관으로 재해석되었다. 그리고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과 궁중 악사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서양의 악기인 양금을 들여 옴으로써 서양음악의 실제가 소개되었다. 그런데 악기와 악곡이 함께 들어온 여느 서양음 악의 수용과는 달리 양금은 악기만을 들여와서 우리나라 음악에 맞게 조율하여 기존의 전 통악기와 함께 연주하였기 때문에 서양악기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것 은 다른 동아시아권의 국가들이 서구세력의 아시아 진출 및 침략, 근대국가의 형성, 기독 교의 선교활동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양음악이 수용되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실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서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Ⅴ. 맺는말 조선후기에 일어난 사회변화와 청( 淸 )을 통한 서양문물의 소개는 조선의 학자들의 사상 과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8세기에는 홍대용을 비롯한 박지원 박제가 등의 실학자들이 여러 차례의 연행( 燕 行 )을 통하여 그들이 접한 청의 문물 수용에 긍정적 101) 양금은 1772년에 홍대용이 처음으로 우리나라 음악에 맞게 연주하였고, 박보완과 문명신이 1779년과 1817년에 각각 양금 악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102)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유예지 에 소개된 서양음악 이론은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 와 내 용이 동일하나, 다만 몇몇 한자만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자세한 것은 이동복, 구라철사금 자보와 유예지 중 양금자보의 비교연구, 경북대논문집 (대구 : 경북대학교, 1987), 쪽을 참고할 것. 250
259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인 입장을 가지는데, 이들에 의해 양금과 같은 새로운 악기가 조선에 수용된다. 실질적이 고 효용 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실학자들은 경제 문학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 변화를 시도 하였듯이, 음악에서도 기존의 관념적 음악사상에 변화를 추구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북학 파가 청에서 새로 들여온 서양의 악기인 양금에 주목하여 양금의 수용과 연행과정, 이규경 이 편찬한 양금악보인 구라철사금자보, 그리고 서양음악의 체계를 양금에 적용하여 양악 의 실제를 구체화시켰던 홍대용과 이규경의 양악이론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 내용은 다 음과 같다. 첫째, 조선의 양금 수용과 관련하여, 양금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로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8세기경에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한국 과 중국 모두 유럽으로부터 직접 전파되었으며, 중국보다 한국에 양금이 먼저 유입되었다 는 설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강세황의 표암유고,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 등 현 재까지 알려진 문헌들을 살펴보면, 양금은 명나라 말기(1580)에 이탈리아 예수회(Jesuit)교 단의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서금( 西 琴, 大 西 洋 琴 )을 중국 에 소개하였고, 조선에는 영조( 英 祖 ) 초에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이 북경에서 양금을 들여옴으로써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양금이 중국에서 유 입되었다는 설은 문헌적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금이 서양에 서 조선으로 직접 유입되었다는 설은 국내에 남아 있는 문헌적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양 문헌에서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조선의 양금 연행( 演 行 )과 관련하여, 박지원의 연행록( 燕 行 錄 )인 열하일기 동란 섭필 에는 실학자 홍대용이 1772년에 양금으로 우리나라 음악을 처음으로 연주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고, 박종채의 과정록 에는 양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홍대용이 아니라 박 지원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 에는 양금의 도입 당시인 1757년경에는 전혀 연주법을 알 수 없었으나, 그 후 1779년에 장악원의 전악인 박보완이 연경에 가서 양금의 연주법을 배워 와서 우리나라 음악으로 번역하였으며, 그로부터 38년 후인 1817년에 문명신이 양금 악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문명신 이 만든 양금악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셋째, 이규경이 편찬한 양금악보인 구라철사금자보 에는 양금의 유래, 양금의 수용 경 로와 배경, 율명과 조율법, 연주법, 양금의 특징과 구조, 모양, 제작법, 보관법 등을 상세 하게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박제가( 朴 齊 家 )와 당낙우( 唐 樂 宇 )가 대화한 악론 내용과 <양 금도( 洋 琴 圖 )> 등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영산회상( 靈 山 會 相 ), 계면조조현( 界 面 調 調 絃 ) 우조 조현( 羽 調 調 絃 ), 가곡( 歌 曲, 속칭 츠 닙), 시조( 時 調 )의 악보가 타법과 함께 율명차용보 251
26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 律 名 借 用 譜 )로 수록되어 있어 양금에 관한 여러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항에 대하여 자세 하게 설명을 하였다. 이것은 이규경이 실학자로서 실사구시( 實 事 求 是 )의 학문방법으로 서양 음악을 수용하는 한편 이용후생( 利 用 厚 生 )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넷째, 홍대용과 이규경은 서악( 西 樂 ) 이론이나 서양 악기의 체계를, 상대적으로 이해하 기 쉬운 동양적 세계관인 음양( 陰 陽 ) 강유( 剛 柔 ) 삼재( 三 才 ) 등으로 재해석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동양, 특히 중국의 음악 이론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서양의 음악 이론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양과는 다른 체계를 지닌 서양 음악을 동양적 세계관을 통해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주체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홍대용과 이규경이 실학자 로서 실사구시( 實 事 求 是 )의 학문방법으로 서양음악을 수용한 것이다. 또한 전통 ʻ악ʼ과 서양 음악이 이론과 실제가 같은 원리에서 나왔다는 해석은 중국이 아닌 서양도 역시 문화가 발 달한 세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세계와 문화의 중심지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하게 되었다. 다섯째, 한국의 양악수용과 관련하여, 서양음악의 이론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조선후기의 실학자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한역( 漢 譯 ) 서학서( 西 學 書 )를 통해서이며, 서양음 악의 오선보 계명창법 음자리표 등 서양음악의 기초이론들은 홍대용( 洪 大 容 ) 이규경( 李 圭 景 ) 등에 의해 동양적 세계관으로 재해석되었다. 또한 서양의 악기인 양금은 영조 초에 청나라를 왕래하던 실학자들과 궁중 악사에 의해서 수용되어, 기존의 악기와 함께 영산회 상 가곡 등의 우리 음악에 연주되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서양음악의 출발점을 개신교 의 선교가 시작된 1880년대 초로 보는 설보다 빠른 것이다. 그런데 악기와 악곡이 함께 들어온 여느 서양음악의 수용과는 달리 양금은 악기만을 들여와서 우리나라 음악에 맞게 조율하여 기존의 전통악기와 함께 연주하였기 때문에 서양악기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것은 다른 동아시아권의 국가들에서는 서구세력의 아시아 진출 및 침략, 근대국가의 형성, 기독교의 선교활동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양음악이 수용되었지 만, 한국의 경우에는 실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에서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한국전통음악의 주체적 계승과 발전이라는 측면에 주목해 볼 때, 홍대용 이규경 등 조선후 기 학자들의 실학적 태도는 바로 시대정신을 이끌려고 노력했던 그들의 주체적인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52
261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참고문헌> 사료 예기( 禮 記 ) 악기( 樂 記 ). 장자( 莊 子 ) 제물론( 齊 物 論 ). 강세황( 姜 世 晃 ). 표암유고( 豹 菴 遺 稿 ). 박종채( 朴 宗 采 ). 과정록( 過 庭 錄 ). 박지원( 朴 趾 源 ). 연암속집( 燕 巖 續 集 ). 박지원( 朴 趾 源 ). 연암집( 燕 巖 集 ). 박지원( 朴 趾 源 ). 열하일기( 熱 河 日 記 ). 유경종( 柳 慶 種 ). 해암고( 海 巖 稿 ). 이규경( 李 圭 景 ). 구라철사금자보( 歐 邏 鐵 絲 琴 字 譜 ). 이규경( 李 圭 景 ). 오주연문장전산고( 五 洲 衍 文 長 箋 散 稿 ). 이덕무( 李 德 懋 ). 청장관전서( 靑 莊 館 全 書 ). 홍대용( 洪 大 容 ). 담헌서( 湛 軒 書 ). 고악보 가곡남창양금보( 歌 曲 男 唱 洋 琴 譜 ). 가곡여창양금보( 歌 曲 女 唱 洋 琴 譜 ). 구라철사금자보( 歐 邏 鐵 絲 琴 字 譜 ). 금보정선( 琴 譜 精 選 ). 방산한씨금보( 芳 山 韓 氏 琴 譜 ). 서금( 西 琴 ) (표제 : 현금보). 서금가곡( 西 琴 歌 曲 ). 서금보( 西 琴 譜 ). 성학십도 부 예악비고( 聖 學 十 圖 附 禮 樂 比 攷 ). 아금고보( 峨 琴 古 譜 ). 아양금보( 峨 洋 琴 譜 ). 양금곡보( 楊 琴 曲 譜 ). 양금보( 洋 琴 譜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53
26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양금보( 洋 琴 譜 ) -권오성( 權 五 聖 ) 소장. 양금보( 洋 琴 譜 ) -김호성( 金 虎 成 ) 소장. 양금보( 洋 琴 譜 ) -성낙범( 成 樂 範 ) 소장. 양금보( 洋 琴 譜 ) -이보형( 李 輔 亨 ) 소장. 양금여민락보( 楊 琴 與 民 樂 譜 ). 양금주책( 洋 琴 註 冊 ). 역양아운( 嶧 陽 雅 韻 ). 영산회상( 靈 山 會 象 ). 원객유운( 園 客 遺 韻 ). 유예지( 遊 藝 志 ). 율보( 律 譜 ) ( 響 嵂 洋 琴 譜 ). 일사금보( 一 蓑 琴 譜 ). 장금신보( 張 琴 新 譜 ). 조선음률보( 朝 鮮 音 律 譜 ). 초입문 금보( 初 入 門 琴 譜 ). 해산유음( 海 山 遺 音 ). 협률대성( 協 律 大 成 ). 흑홍금보( 黑 紅 琴 譜 ). 사전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 서울 : 박영사, 이홍직. 국사대사전. 서울 : 대영출판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4. 성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大 韓 文 辭 典 第 2 冊. 北 京 : 商 務 印 書 館,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Edited, by Stanley Sadie, Vol.4~5(London : Macmillan Publishers Ltd, 1980) 단행본 강명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서울 : 도서출판 푸른역사, 국역 오주연문장전산고 Ⅱ. 고전국역총서 153.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열하일기 Ⅰ. 고전국역총서 18.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263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국역 열하일기 Ⅱ. 고전국역총서 19.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국역 담헌서 Ⅳ. 고전국역총서 76. 서울 : 민족문화추진회, 1974 초판; 1986 중판.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4. 서울 : 대한민국 문교부, 금장태. 한국유학의 악론. 서울 : 예문서원, 김상기. 신편 고려시대사. 서울 : 서울대출판부, 김태준. 홍대용과 그의 시대-연행의 비교문학-. 서울 : 일지사, 송혜진. 한국 악기. 서울 : 열화당, 유봉학.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 서울 : 일지사, 이유선. 한국 양악 80년사. 서울 : 중앙대학교출판부, 장사훈. 여명의 동서 음악. 서울 : 보진제, 정옥자. 우리선비. 서울 : 현암사,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서울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리우짜이성 지음 김예풍 전지영 옮김. 중국음악의 역사. 서울 : 민속원,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 나의 아버지 박지원. 서울 : 돌베개,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백기수 옮김. 미론. 서울 : 정음사, 胡 登 跳. 民 族 管 絃 樂 法. 上 海 : 上 海 出 版 社, Curt Sachs. The History of Musical Instrument. New York : W.W NORTON & Company, Inc., Wu Ben. East Asia : China, Japan, and Korea, The Garland Encyclopedia of World Musicil, 논문 김성태. 양악 70년사. 음악연감. 서울 : 세광출판사, 김영운. 양금 고악보의 기보법에 관한 연구- 협율대성 양금보의 시가기보법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연구 제15 16집 합병호. 서울 : 한국국악학회, 김영운. 한국 최초의 서양음악 관계 문헌 소고. 음악세계 제53집. 서울 : 국민음악연구회, 김영운. 한국 토속악기의 악기론적 연구. 한국음악연구 제17 18집 통합본. 서울 : 한국 국악학회, 김영운. 한국의 고악보 현황. 문화예술 제110집. 서울 : 문예진흥원, 김우진. 조선중화주의의 음악적 실현과 청 문물 수용의 의의 에 대한 논평. 국악원논문집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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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조선후기 실학자의 자주적 양악수용 심으로-. 단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최선아. 구라철사금자보 의 칠조. 한국음악연구 제44집. 서울 : 한국국악학회, 홍선숙. 이종구 작곡 서역향 분석연구-양금 연주법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홍정수(해제). 나운영 음악자료(1)-양악 150년사 메모(1)-. 음악과 민족 제17집. 서울 : 민족음악연구소, 황원구. 연행록의 세계. 동아세아사 연구. 서울 : 일조각, 李 向 潁. 洋 琴 起 源 諸 說 述 評. 中 國 音 樂 第 4 期. 北 京 : 中 央 音 樂 學 院, 송지원. 구라철사금자보 해제. 구라철사금자보.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http : //kyujanggak.snu.ac.kr. 257
26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Abstract> Independent of acceptance of Western Music by Sil-Hak-Ja in the Late Chosun Dynasty Cho Yu-hoe (Member of court music troupe, NCKPTA) This paper focuses on the acceptance of the Western Music in Korea in association with yangkeum( 洋 琴 ). Social changes in the late Chosun Dynasty and an influx of the Western culture through the Qing dynasty, China served as a momentum to change the thoughts and worldviews of Chosunʼs Confucianists. Especially, in the 18th century, the Western culture including music had been introduced to Chosun by envoys(yeonhangsa 燕 行 使 ) to china. This is earlier than the missionary activities of Protestant in 1880ʼs which generally regarded as the starting point of the Western Music in Korea. The acceptance of the Western culture in other East asian countries was closely connected to the expansion policy and invasion of the Western countries, formation of modern states and missionary work of Christianity. On the other hand, in case of Chosun, it was characterized that the Western culture was adopted because of academic interest of Sil-Hak-Ja. In addition, Sil-Hak-Ja brought in the yangkeum( 洋 琴 ) from the Qing dynasty and played it with existing musical instruments in concert after tuning to make it suitable for our traditional music. This was different from general acceptance of the Western music, and it was significant in terms of Korean way of acceptance of the Western musical instruments. Keywords : Late Chosun Dynasty, Sil-Hak-Ja, Hong Dae-Yong, Lee Kyu-Kyung, yangkeum, Western music 제출일 심사기간 수정본 제출일 ~
267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서 평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국립국악원, 한국음악 제37집, 민간대풍류. 서울 : 국립국악원, 이 보 형*1) 국립국악원에서는 이번에도 귀한 음악을 담은 악보집을 출간했다. 경기 지방에 전승되던 삼현육각을 서울대학교 오용록 교수가 채보하여 국립국악원이 내는 일련의 악보집인 민간 대풍류 (한국음악 제37집) 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에 나온 것이다. 필자가 이것을 귀한 음악이라 이르는 것은 이 악보집에 담긴 음악 가운데 <민간 관악영산회상>은 거의 연주되 는 일이 없어 소멸 직전에 이른 것이 살아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영희 선생 문하에서 공부 하던 최경만, 이철주, 김무경과 같은 악사들이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어 복원 연주를 하 여 되살아난 것인데 각 지방에 전승되던 <민간 관악영산회상>이 모두 전승이 끊어지고 오 진 이것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한국음악 제37집은 제목을 ʻ민간 대풍류ʼ라 하였는데 그 내용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 이 경기지방 민간에 전승되던 삼현육각의 세 부문을 가리킨다. 이 내용을 이 악보집에는 부제목으로 ʻ대영상ʼ, ʻ취타풍류ʼ, ʻ염불풍류ʼ라 적고 있다. 아마 음악인들이 이르는 이름을 그대로 적은 것 같은데 이 부제목이 낯선 이들도 있을 것 같아서 이를 학술용어로 바꾸어 적는다면 ʻ민간 관악영산회상ʼ, ʻ민간 세악수 행악( 行 樂 )ʼ, ʻ민간 무용음악 삼현육각ʼ이라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본 서평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이 학술용어로 음악 부문을 지 시하고자 한다. 이 악보집의 삼현육각 세 부문 명칭 가운데 하나를 ʻ대영산ʼ이라 이르는 것은 <관악영산 회상>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관악영산회상> 첫 곡 ʻ대영산(상영산)ʼ이라는 말과 <관악영산회상> 전체를 일컫는 ʻ대영산ʼ이라는 말과 혼동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관례에 따 른 것이다. 서평자는 이에 대하여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장황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민간 악사들은 <영산회상>의 첫째 곡 ʻ상영산ʼ을 일명 ʻ대영산ʼ 또는 ʻ긴영산ʼ이라 이르고 이를 줄 여서 속명으로 ʻ대짜ʼ 또는 ʻ긴짜ʼ라 이르던 것이다. 한편 이것으로 <관악영산회상> 전체를 * 한국 고음반 연구회 회장. 259
26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지시하는 말로 쓰기도 한 것이다. 이는 ʻ취타풍류ʼ ʻ염불풍류ʼ에서 보이듯이 민간 악사들이 첫째 곡으로 조곡 전체를 지시하던 관례에 따른 것이다. 이 악보집에는 <관악영산회상>을 구성하는 악곡을 ʻ대영산ʼ, ʻ중영산ʼ, ʻ잦영산ʼ, ʻ삼현도드 리ʼ, ʻ염불도드리ʼ, ʻ삼현타령ʼ, ʻ별곡타령ʼ으로 적고 있다. 이들 악곡 명칭이 낯설 수 있는데 이는 지영희 피리악보 1) 에 이렇게 기록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민간 삼현육각 악사들이 이 르던 호칭을 따른 것이다. 여기에서 ʻ대영산ʼ은 앞에서 말 한 바와 같이 ʻ상영산ʼ을 가리키는 것이다. ʻ잦영산ʼ은 ʻ세영산ʼ을 일명 ʻ잔영산ʼ이라 이르는 것을 어의( 語 義 ) 대로 풀어 적은 것 이다. ʻ삼현타령ʼ은 ʻ타령ʼ을 가리킨다. 이를 그냥 ʻ타령ʼ이라 이르게 되면 어느 타령인지 구 별이 안 되므로 <관악영산회상>의 ʻ타령ʼ은 <관악영산회상>의 별칭인 삼현영산회상의 타 령 이라는 뜻으로 ʻ삼현타령ʼ이라 이르고, 무용음악에서 ʻ타령ʼ은 허튼 가락으로 연주하는 타령 이라는 뜻으로 ʻ허튼타령ʼ이라 이르고, <현악영산회상>에서 ʻ타령ʼ은 줄풍류 타령 이 라는 뜻으로 ʻ풍류타령ʼ이라 이르는 악사들의 관례를 따른 것이다. ʻ별곡타령ʼ은 ʻ군악ʼ을 가 리키는데 이는 세악수 행악에서 ʻ군악ʼ을 ʻ별곡ʼ 또는 ʻ별곡타령ʼ이라 이르는데서 나온 말이 다. 행악에서 ʻ군악ʼ을 어찌하여 ʻ별곡타령ʼ이라 이르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악보집에서 말하는 <취타풍류>라는 음악 부문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간 세악 수 행악>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서평자가 이를 그냥 행악이라 이르지 않고 <세악수 행악> 이라 이르는 것은 이를 <취고수( 吹 鼓 手 ) 행악>과 변별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취타풍류> 라 이르는 것은 첫째 악곡으로 전곡을 지시하는 관례를 따르는 것인데 이렇게 이르게 되면 ʻ취타ʼ라는 말이 취고수의 ʻ취타ʼ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의미에 혼동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취고수 ʻ취타ʼ를 <대취타>라 이르고, 취고수 ʻ굿거리ʼ를 ʻ취타 굿거리ʼ라 이르고, ʻ취고 수 염불ʼ을 ʻ취타 염불ʼ이라 이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ʻ취타ʼ라는 말은 오히려 취고수 음악 을 가리키는 것이 상례인데 세악수 음악을 <취타풍류>라 이르게 되면 혼동이 있을 수 있어 서평자가 이를 <세악수 행악>이라 이른 것이다. 이 악보집에서 <세악수 행악>의 악곡명은 ʻ취타ʼ, ʻ길군악ʼ, ʻ길군악 돌장ʼ, ʻ길타령ʼ, ʻ염불 타령ʼ, ʻ삼현타령ʼ, ʻ별곡타령ʼ으로 적혀 있다. 국립국악원에 전승되는 세악수 행악이 ʻ취타ʼ, ʻ길군악ʼ, ʻ길타령ʼ, ʻ별우조타령ʼ, ʻ군악ʼ으로 구성되는 것과 대체로 같지만 ʻ별우조타령ʼ이 빠 지고 ʻ염불타령ʼ, ʻ삼현타령ʼ이 첨가되는 것이 다르다. 여기에서 ʻ염불타령ʼ은 무용음악에서 ʻ긴염불ʼ과 같은 곡인데 행악에 이 무용음악이 끼인 것에 대하여 의아해 할 수 있다. 그러 나 장사훈 박사의 저서 국악개요 2) 에 이를 ʻ길염불ʼ이라 이른 것으로 봐서 ʻ염불타령(긴염 1) 지영희, 피리교본 서울 : 국악예술학교, ) 장사훈, 국악개요 서울 : 정연사,
269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불)ʼ이 행악에 끼여 연주된 것은 오래 된 일 같다. ʻ삼현타령ʼ이 행악에 끼이게 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여튼 민간 악사들이 그렇게 연주하였고 또 그렇게 전승되어 온 것을 따른 것 같다. 이 악보집에서 민간 무용 삼현육각을 <염불풍류>라 이르는 용어 또한 앞에서 말 한 바와 같이 이 조곡의 첫 곡 ʻ염불타령(긴염불)ʼ을 따서 전체를 이르는 것이다. 이 악보집 에서 민간 무용 삼현육각의 악곡은 ʻ긴염불ʼ, ʻ반염불ʼ, ʻ삼현타령ʼ, ʻ느린허튼타령ʼ, ʻ중허튼타 령ʼ, ʻ자진허튼타령ʼ, ʻ굿거리ʼ, ʻ자진굿거리ʼ, ʻ휘모리-당악ʼ으로 적고 있다. 이것은 근래에 연 주회용으로 민간 무용음악 삼현육각을 조곡으로 구성한 것 같다. 왜냐하면 본디 무용음악 의 악곡 구성은 무용에 따라 음악 구성이 다르게 되었기 때문에 실제 무용에서는 반드시 이와 같이 구성되는 예는 흔하지 않다. 민간의 <관악영산회상>과 <세악수 행악>은 국립국악원의 <관악영산회상>이나 <세악수 행악>과 대체로 비슷하게 구성되지만 이 국립국악원 무용음악 악곡 구성이 ʻ상영산ʼ, ʻ세영산ʼ, ʻ삼현도드리ʼ, ʻ염불도드리ʼ, ʻ타령ʼ으로 구성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르게 구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 민간 대풍류 악보집에 실린 일러두기에 의하면 <민간 세악수 행악( 行 樂 )(취타풍 류)>과 <민간 무용음악 삼현육각(영불풍류)>은 2006년에 기록을 위하여 녹음실에서 녹음한 것이고 <민간 관악영산회상(대영산)>은 2006년에 민속악단 정기공연을 녹음한 것이라 한 다. 이들 음악의 연주에는 최경만 한세현과 같은 중진들과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젊은 연주자가 많이 참여한 것을 보니 그동안 중진들이 젊은이들에게 이 음악을 가 르친 것 같다. 이는 민간 삼현육각의 전승을 위하여 매우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전통사 회에서는 지방마다 독자적인 삼현육각이 전승되어 왔지만 현재는 그 맥이 모두 끊어졌고 오직 경기 <민간 관악영산회상>이 근래까지 전승되었지만 공연하는 일어 없어 인멸 직전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아슬아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젊은이들이 이를 자주 연주 하게 되면 전승의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하니 다행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음악의 채보는 서울대학교 오용록 교수가 감당한 것이다. 난 삽한 악곡을 총보로 꾸미느라고 애를 많이 쓴 것 같다. 그의 성격대로 아주 꼼꼼하게 꾸몄 다. 일러두기에서 밝히기를 오용록 교수는 이 악보집의 선행 악보인 지영희 악보 3) 를 참고 한 것이라 하는데 이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고 참고만 한 것이라는 것은 이 두 악보의 기보법의 차이에서 드러난다. 지영희 악보는 선생이 채보하여 만든 국악예술학교 교재용 악보이다. 국악예술학교(현재의 국립전통예술학교) 학생들을 위한 실기교재로 만든 것이라 3) 지영희, 앞의 책. 261
27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각종 악기의 ʻ피스(piece)ʼ로 꾸며 실기에 유용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국립국악원 악보는 일러두기에서 밝혔듯이 총보로 꾸미고 말미에 각종 악기의 피스로 만들어 학술연 구, 합주, 실기 등 여러 가지로 유용하도록 만들었다. 여기에서 장황하지만 지영희 악보와 국립국악원 악보를 비교하고자 한다. 지영희 악보는 이른바 D황종( 黃 鐘 )으로 적은 것이지 만 국립국악원 악보는 D음 보다 약간 높게 실음으로 적고 있다. 지영희 악보는 모두 조표 가 없이 기보되었지만 국립국악원 악보는 각 음악마다 조표가 여러 가지로 다르게 기보되 었다. 이를테면 <관악영산회상(대영산)>의 ʻ상영산ʼ은 E 조, ʻ중영산ʼ부터 ʻ타령ʼ까지는 A 조, ʻ군악ʼ은 F조표로 적었다. <세악수 행악(취타풍류)>에서도 ʻ취타ʼ에서 ʻ길군악 돌장ʼ까지 는 F조, ʻ길타령ʼ에서 ʻ염불타령ʼ까지는 B 조, ʻ삼현타령ʼ은 A 조, ʻ군악ʼ은 F조로 적었다. <민간 무용 삼현육각(영불풍류)>의 경우에는 ʻ긴염불ʼ에서 ʻ삼현타령ʼ까지는 B 조, ʻ느린허 튼타령ʼ에서 ʻ자진허튼타령ʼ까지는 A 조, ʻ굿거리ʼ에서 ʻ자진굿거리ʼ까지는 B 조, ʻ휘모리- 당악ʼ은 F조로 조표를 적어 악곡마다 조표를 여러 가지로 기보한 것이다. 실음으로 적자면 이렇게 적을 수밖에 없는데 D황종에 익숙한 국악예술학교 출신들에게 는 좀 불편할 것 같다. 그리고 선법 명칭은 적지 않고 독자의 해석에 맡기고 있다. 일러두 기에 기보된 음고와 시가는 채보자의 잣대로 한 것 이라 이른 것과 같이 조표 해석은 오 용록 교수의 재량에 따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D황종으로 적은 지영희 악보와 E 황 종으로 적은 김기수가 채보한 국립국악원 <관악영산회상>의 악보와 실음을 채보한 이번 국 립국악원 악보와 차이로 나타날 것인데 이를 향후에 상호 비교 연구할 일이다. 일러두기에서는 각 음악의 장별 구분은 지영희 악보에 따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양자는 대체로 일치하는 것이지만 장별 구분이 반드시 똑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지영희 악보에서 굿거리는 7마루로 구분하지만 국립국악원 악보에서는 마루 구분이 없다. 아마 마 루로 세세히 구분하는 것이 번거롭다 여겨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양자는 박자표 기보 방법에도 차이가 보인다. 지영희 악보에서는 ʻ상영산ʼ에서 ʻ삼 현도드리ʼ까지는 소박이 2집합 하여 여느박을 이루는 2소박 여느박으로 적고 있지만 국립 국악원 악보에는 소박이 3집합 하는 3소박 여느박으로 적고 있다. 옛날에는 2소박 여느박 으로 적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것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근래에는 실제 음악에 맞게 3소박 여 느박으로 적는 대세에 따른 것이다. 지영희 악보는 전통 서양 박자 기보법대로 6/4과 같이 ʻ음표이름 박자표ʼ로 적었지만 국 립국악원 악보는 근래에 국악인들이 고안한 한 18/ 와 같이 ʻ음표 박자표ʼ로 적고 있다. 4) 4) 이보형, 산조 악보에 나타난 기보방법의 유형과 변천, 한국음악사학보 제40집(서울 : 한국음 악사학회, 2008), 쪽. 262
271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그리고 지영희 악보는 삼현타령을 6/8으로 적었듯이 대체로 강약주기 박자표로 적고 있지 만 국립국악원 악보는 12/ 와 같이 장단주기 박자표로 적고 있다. 5) 양자의 차이는 각 채 보 시대의 박자표 기보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 할 것이다. 국립국악원 악보는 대체로 장단 주기 박자표로 정확하게 기보하였지만 지영희 악보의 박자표는 대체로 강약주기 박자표에 맞게 적혔지만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과 같이 맞지 않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허튼타령을 6/8로 적을 것은 강약주기 박자표로 맞게 적혀 있지만 상영산을 6/4, 4/4로 적은 것은 강 약주기 박자표에 맞지 않는다. 이는 강약주기 박자는 장단주기 박자의 절반인 2소장단으로 적어야 하는데 지영희 악보는 4소박 장단으로 적혔다. 6) 당시에는 이런 이론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바르게 적기 어려웠을 것이다. 악기 주법 기호는 지영희 악보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일러두기에 요성, 퇴상, 추성 등의 기보에서 모든 사항을 망라하지 못하였다. 고 한 바와 같이 지영희 악보 는 악기 실기 교재이니 시김새 기호를 최대한 많이 반영하도록 짠 것이지만 국립국악원 악 보는 일러두기에서 분석용 악보 라 천명하였듯이 이것을 일일이 기보하는 것이 번거롭다 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시김새가 우리 음악에 중요한 것이라 한다면 이는 다시 고려해 볼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느 것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기보할 것인지는 어려울 것 이다. 이를 일일이 기보하게 되면 총보 해석이 복잡할 것이고 생략하자면 시김새가 제대로 지시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니 이는 악기 실기 능력을 지닌 음악학자가 아니면 판단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지영희 피리교재에는 20종의 시김새 연주기법 부호가 얹혀 있는데 이를 총보로 꾸밀 때 이 가운데 어느 것을 수용하고 어느 것을 버리는 것이 옳은가 를 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여튼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국립국악원에서 이 악보를 낸 것은 고마운 일이다. 경 기 삼현육각의 전승 위기를 두고 그동안 너무 애를 탔던 필자의 마음이 이제야 확 풀리는 것 같다. 이 악보가 경기 삼현육각의 연구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5) 이보형, 전통음악의 양악보에 나타난 장단주기박자와 강약주기박자, 한국음악연구 제45집(서 울 : 한국국악학회, 2009), 쪽. 6) 이보형, 앞의 논문, 쪽. 263
27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부 록 국악 관련 박사학위 논문 김선희.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모형 개발.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백미연. 한국의 민요 및 전래동요를 소재로 한 초 중급용 피아노 학습곡 개발 연구 -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의 국악 가창곡을 바탕으로. 한세대학교 대학원 성애순.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긴장과 이완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안승훈. 가야금산조 변주방법의 유파별 특징. 한양대학교 대학원 임경애.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 가능성과 교육적 의미. 중앙대학교 대학원 정길선. 중등학교 음악교사의 국악교육 전문성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김희정. <춘향전> 영화음악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이현주. 국악자료의 FRBR 모형 기반 서지정보시스템 구축 및 평가. 충남대학교 대학원 원영실. 국악영재 판별을 위한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개발. 연세대학교 대 학원
273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모형 개발 김 선 희*1) 목 차 Ⅰ. 서 론 Ⅱ. 이론적 배경 Ⅲ. 연구방법 Ⅳ. 연구결과 Ⅴ. 논의 및 결론 요지 본 연구는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모형을 개발하는데 목적이 있으며 연 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유아교사양성대학 음악교과 담당교수들의 교육과정 현황, 요구는 어떠한가? 1-1. 현행 유아교사양성대학 음악교과 교육과정은 어떠한가? 1-2. 유아교사양성대학 음악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요구는 어떠한가? 2. 유아교사양성대학 음악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2-1. 음악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2-2. 강의계획서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구성은 어떠한가? 3.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개발 모형은 어떠한가? *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265
27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3-1. 개발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목적 및 목표는 어떠한가? 3-2. 개발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내용은 어떠한가? 3-3. 개발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수방법은 어떠한가? 3-4. 개발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평가방법은 어떠한가? 본 연구에서는 유아교육, 음악교육, 음악교과 교육과정,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문헌을 고찰하고, 설문조사를 통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현황 및 요구 조사의 결과와 심층면담, 강의계획서, 제7차 유치원 교육과정 표현생활영역의 내용분석 결과에 기 초하여 음악교과와 지식, 기술, 태도의 교육영역과의 연계를 반영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육 교과목 통합모형과 음악실기 교과목 통합모형을 개발하였다. 본 연구에서 얻어진 주요 연구 결과를 연구문제별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유아교사양성대학 음악교과 담당교수들의 교육과정 현황, 요구는 어떠한가? 설문 조사는 임의선정 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담당교수 120명을 대상으로 현 황결과는 빈도분석과 평균과 표준편차로, 요구결과는 빈도분석으로 처리한 결과, 첫째, 교 육목적은 음악활동 체험 이해 즐기기, 기초음악개념 학습이고, 교육목표는 다양한 음악활 동의 즐거운 심미적 체험 및 전인적 인성교육, 음악개념과 기초음악이론 이해 및 적용, 음 악교육내용과 교수방법 이해 및 기술습득, 동요반주 기술습득, 모의수업계획안 작성 및 시 연이다. 둘째, 교육내용은 새 노래지도 및 노래 부르기, 악기다루기, 소리탐색 및 음악 감 상, 장단개념 및 전통음악, 리듬과 율동 및 동작, 동요 반주법, 피아노 실기, 피아노 외 실 기이다. 셋째, 교수방법은 음악활동 지도방법, 통합적 접근방법, 실기 중심 워크샵, 이론 강의, 모의수업, 개인별 수준별 실기 지도, 이론과 실기 병행방법이다. 넷째, 평가방법은 필기시험, 실기시험, 과제물이다. 2. 유아교사양성대학 음악교과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개별 심층면접은 음악교육 전문가, 음악 전문가, 유아교육 전문가, 전통음악 전문가의 9 명을 대상으로 진행하였고, 수집한 강의계획서와 함께 내용분석 한 결과, 첫째, 교육목적은 즐거운 음악체험을 통한 전인교육, 음악성 및 창의성 향상이고, 교육목표는 즐거운 음악교 과의 미적경험, 동요 부르기와 피아노 반주, 다양한 악기연주, 유아교사로서의 자질 및 능 력 함양이다. 둘째, 교육내용은 가창 기악 감상 창작 신체표현의 유아음악활동 및 유아국 악활동, 세계음악교육가와 교육론, 동요 반주법, 악보읽기, 피아노 및 다양한 악기연주, 동 266
275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요 반주하며 노래 부르기, 춤 동작의 요소개념, 유아교육과정과 음악교육 및 국악교육의 통합 이해이다. 셋째, 교수방법은 유아음악활동 및 유아국악활동의 지도방법, 음악영역의 통합, 음악과 예술영역의 통합, 음악과 타 교과의 통합, 모의수업, 시청각 매체 및 교재 교 구활용, 개인별 수준별 실기지도이다. 넷째, 평가방법은 필기시험, 실기시험, 과제물, 출석, 수업참여도이다. 3.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개발 모형은 어떠한가? 음악교과 교육과정 분석결과와 제7차 유치원교육과정과의 공통점 내용분석에 의한 예비 모형을 구성하고 전문가 자문 및 협의를 통하여 지식, 기술, 태도의 교육영역 연계 범주와 3stage의 단계 및 수준별 범주의 구성으로 음악교육 교과목 통합모형과 음악실기 교과목 통합모형을 개발하였다. 첫째, 음악교육 교과목 통합모형의 교육목적은 다양한 음악활동과 국악활동의 체험 및 이해, 기초음악이론과 음악개념 이해와 활용 및 적용, 음악교육방법론 학습과 활용 및 적 용, 유아교육과 음악교과의 통합 학습의 내용 지식들의 활용 및 적용을 통하여 즐거운 음 악활동 및 전통음악 체험, 음악의 아름다움과 중요성 경험, 음악성과 창의력 향상을 기르 는데 있다. 교육목표는 실기 워크샵을 통한 다양한 음악활동 및 국악활동의 체험 및 이해, 이론과 실기를 통한 기초음악이론과 음악개념 이해와 활용 및 적용, 유아음악 및 유아국악 의 교육내용과 교수방법 이해 및 기술습득, 모의수업계획안 작성 및 시연, 음악의 기초적 자질 및 유아음악 및 유아국악 전문인의 소양을 기르는데 있다. 둘째, 교육내용은 유아교 육현장의 이해, 음악기초이론 및 음악개념의 이해, 음악성 발달의 이해, 다양한 음악활동 및 국악활동의 이해, 세계음악교육가와 음악교육방법의 이해, 유치원교육과정 이해의 내용 지식으로 구성하였다. 셋째, 교수방법은 음악활동계획안 작성 및 시연에 활용, 피아노실기 와 기악실기에 활용, 장단 실기와 국악기 연주에 활용, 실기 워크샵을 통한 유아음악활동 및 유아국악활동에 활용, 다양한 음악교수방법에 활용, 통합적 음악교수방법에 활용, 유치 원교육과정에 활용 및 적용하도록 구성하였다. 넷째, 평가방법은 음악기초이론 및 음악교 육론과 음악교육 실기내용에 대한 필기시험, 동요반주와 장단실기 및 악기연주 실기시험, 개별 단위활동 계획안 및 모의수업계획안 작성 및 시연, 과제물로 구성하였다. 다섯째, 음 악실기 교과목 통합모형의 교육목적은 기초음악이론 이해, 악보읽기 이해, 동요 반주법 이 론 및 유형 이해, 다양한 악기에 대한 이해의 내용 지식들을 피아노 연주기술 습득, 동요 반주능력 향상, 다양한 악기 연주 기술습득을 통하여 즐거운 음악 이해, 음악의 아름다움 과 중요성 경험, 음악성과 창의력 향상을 기를 수 있다. 교육목표는 악보읽기 이해, 동요 267
27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반주를 위한 기초이론 이해, 다양한 악기의 동요 반주에 대한 이해의 내용 지식들을 기악 실기를 통한 반주능력 향상, 동요 부르기, 다양한 악기로 동요 반주하며 노래 부르기, 다 양한 악기 연주기술 향상을 통하여 즐거운 악기체험, 유아음악 및 유아국악 전문인의 소양 함양으로 구성하였다. 여섯째, 교육내용은 유아교육현장에 대한 이해, 음악기초이론 및 음 악개념 이해, 동요 반주법, 피아노 실기, 기악실기의 내용 지식으로 구성하였다. 일곱째, 교수방법은 음악활동계획안 작성 및 시연에 활용, 피아노 실기와 기악실기에 활용, 동요반 주 기술향상, 다양한 악기로 동요 반주하며 노래 부르기 능력 향상, 동요반주 만들기를 통 하여 유아교육현장, 음악기초이론의 바른 이해, 즐거운 피아노 실기와 다양한 기악실기 경 험 및 자신감 형성, 즐거운 예비교사의 역할 및 자질 준비로 구성하였다. 여덟째, 평가방 법은 음악기초이론과 반주법 이론 이해에 대한 필기시험, 동요에 적합한 반주 만들기 및 실기시험, 과제물, 매주 개별 피아노 교재 곡 실기시험, 개인별 수준별 기악실기를 통한 동요 반주 실기시험, 다양한 악기를 통한 기악 실기시험으로 구성하였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면 본 연구에서 개발된 유아교사양성대학의 음악교과 교육과정 모 형은 개선되고 합의된 음악교과 교육과정으로 예비유아음악교사를 위한 교사교육의 지침이 될 것이다. 268
277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한국의 민요 및 전래동요를 소재로 한 초 중급용 피아노 학습곡 개발 연구 -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의 국악 가창곡을 바탕으로 - 백 미 연*1) 목 차 Ⅰ. 서 론 Ⅱ. 이론적 배경 Ⅲ. 학습곡집의 학습내용 및 단계 설정 1. 학습내용2. 학습단계 Ⅳ. 학습곡집 구상 1. 제1단계 2. 제2단계 3. 제3단계 4. 제4단계 Ⅴ. 결 론 요지 본 연구는 한국 고유문화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교육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악교육이 중요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 음악교육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피아노 교육에서는 국악과 관련한 교육내용을 여전히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개선 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 고유의 음악인 국악을 오히려 서양음악보다도 더 낯설고 어렵게 여기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음악교육 환경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초 등학교 교과과정에 국악의 비율을 높여 우리의 음악문화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 한세대학교 대학원. 269
27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피아노 교육에서는 민요나 전래동요를 다룬다 하더라도 서양의 음계 및 화성체계 위주로 변 형시켜 본래 한국 고유의 음구조 및 장단에 대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피아노 교재는 바이엘 교재나 체르니 및 하농의 연습곡을 비롯하여 <알프레드 기초 피아노 교본>이나 <피아노 어드벤쳐> 등의 교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교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서양 교재들을 선호하는 현상은 한국에서 자체 적으로 개발한 교재가 한정되어 있다는 현실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피아노 교육은 그 역사가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피아노 교재 를 개발할 수 있는 전문적인 피아노 교수학자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피아노 교재만을 사용하여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은 문화 교육적 측면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피아노 교육은 학교에서의 음악교육보다도 먼저 시작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피아노 교육환경 및 피아노 학습곡이 어린 학습자 의 음악적 감수성과 취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피아노 학습 곡은 다방면의 음악적 잠재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학습자에게 문화적인 발상을 폭넓게 이해시킬 수 있는 음악을 선택해야 하 며 특히 한국의 피아노 학습자에게는 국악 관련 내용 또한 빠져서는 안 될 것으로 이를 위 한 적합한 피아노 학습곡의 연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따라서 본 연구는 국악 의 이론과 특성을 최대한 살린 피아노 학습곡을 개발하여 국악의 기초체계를 자연스럽게 학습함으로써 국악을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를 위해 본 학습곡집 구상에 앞서 조사한 국내의 국악 관련 피아노 교재 출판현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 음악교과와 관련한 피아노 교재들은 학교의 공교육과 피아노 교육을 연 계시킨다는 취지에 있어서 바람직하나, 난이도에 있어서 초급 학습자를 위한 수록곡이 매 우 한정적이다. 둘째, 국악이 수록된 초급 피아노 교본은 교수학적 설계를 바탕으로 수록곡을 편곡하고 배치하였기에 비교적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국악이론과의 구체적인 접목은 보이지 않는다. 셋째, 민요 연주곡집 형식의 피아노 악보집은 초급보다는 주로 중급 이상의 수준에 적합 한 편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넷째, 창작국악곡은 국악적 음계나 장단을 소재로 하지만 대중에게는 낯선 곡들이기에 쉽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위의 모든 교재들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아쉬움은 국악곡을 단지 수록곡의 소재로만 사 270
279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용할 뿐 국악이론적인 설명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편곡시 국악 고유의 음구조와는 전혀 상 관없는 서양음악의 화성을 토대로 반주부를 구성하여 국악 선율과 반주가 서로 전혀 어울 리지 못하며, 국악이론과 관련한 개념학습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린 학습자에게 한국 고유의 음악이 재미없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 여겨지게 하여 오히려 국악에 대한 흥 미와 학습동기가 감소될 수도 있는 것이다. 편곡 시에도 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 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현황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학습곡집 설계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첫째, 학교교육과의 연계 및 피아노 학습의 동기유발을 위해 초등학교 음악교과에 수록 된 민요와 전래동요를 소재로 하였다. 둘째, 피아노교수법적 체계에 따라 단계적으로 난이도를 설정하여 초급부터 중급 초반까 지 총 4단계 구성으로 설정하였다. 셋째, 각 수록곡 연주시 국악의 이론적 바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각 지역별 토리(음계 및 시김새)나 장단 등의 국악이론도 제시하였다. 단, 독보에 있어서는 서양음악이론을 토대 로 하였으므로 제1단계와 2단계에서는 기본적인 독보학습을 위한 서양음악이론을 중심으로 학습내용을 구성하였으며, 국악이론은 장단의 리듬형이나 시김새의 표현에 있어서 다소 까 다로울 수 있으므로 제3단계와 4단계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설정하였다. 본 연구는 위와 같은 보다 체계적인 난이도 설정을 바탕으로 하여 피아노 연주 능력을 초급 수준부터 단계적으로 길러줌과 동시에 한국 고유의 음악적 특성을 살린 악곡을 연주 하고 이와 관련한 국악개념을 함께 학습시킬 수 있는 피아노 학습곡집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총 30개의 피아노 학습곡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서양이론과 국악이론의 접목 을 통해 지금까지 출판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의 국악 피아노 학습곡집 개발을 시도하였 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단편적인 연구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업현장에서 활용하 여 수정 보완하는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본 연구는 교과서적인 피아노 교본이 아니라 국악을 소재로 한 보충 학습곡집을 개발한 것이기에, 본 연구에서 제시한 국악과 서양음악의 접목방식을 발전시켜 보다 종합적인 피아노 교본을 개발하기 위 한 연구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271
28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긴장과 이완에 관한 연구 성 애 순*1) 목 차 Ⅰ. 서 론 Ⅱ. 긴장선율과 이완선율의 구조 Ⅲ. 긴장선율과 이완선율의 배열 유형 Ⅳ. 결 론 요지 산조는 19세기 말에 한국음악의 주요 갈래로 등장한 이래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악곡 이다. 가야금산조는 현재 12유파 정도가 전승되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고유한 음악적 특 징을 가지고 있으며, 긴장과 이완의 구조로 선율이 구성되어 있다. 본 논문은 현행 가야금산조 중 긴장과 이완의 대비가 가장 뚜렷하다는 최옥삼류 가야금 산조의 전곡을 대상으로, 긴장과 이완선율의 특징 및 배열되는 다양한 유형을 도출하여 선 율구성상의 특징을 밝히는 데에 연구목적을 둔다. 본 논문에서 살펴본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의 긴장과 이완을 구성하는 요소는 선율 농현 리듬 속도 음역 주법 등 음악의 전 영역에서 폭넓게 나타나는데, 전반적으로 긴장선율이 이완선율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우조보다는 계면조에서 긴장선율이 더 많 이 출현한다. 특히 각 악장별로 긴장이 가장 고조되는 선율은 주로 계면조에서 나타난다. 다만 <중중모리>의 경우 긴장선율이 가장 고조되는 부분이 없는데, 이는 <중중모리>에 계 면조가 없기 때문이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는 긴장과 이완의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먼저 긴장선율은 <진 * 한양대학교 대학원. 272
281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양조>와 <중모리> <중중모리>의 경우 주로 상청부분에서 선율이 진행한다. 그리고 선율이 점진적으로 상행하거나 조이는 듯한 깊은 농현과 넓은 음역에서도 긴장선율이 조성된다. <늦은 자진모리> 이후의 악장에서는 동일한 선율의 반복 또는 분할리듬과 빠른 속도, 연튕 김과 앞 추성 전성 후 막는 주법에 의해서 긴장선율이 조성된다. 특히 3회 연속적으로 전 성을 사용하는 주법은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이를 통해서 긴장과 이 완의 대비가 더욱 강렬하게 표출된다. 이에 비하여 이완선율은 악장에 상관없이 주로 선율 이 하행하거나 굵고 풍부하며 안정적인 농현에 의하여, 그리고 흘러내리는 주법에 의하여 조성된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에서 긴장과 이완의 대비가 이루어지는 양상은 악장별로 다소 차이 가 있다. 이 중에서도 그 양상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늦은 자진모리> 이후의 빠른 악장이다. 이들 악장에서는 긴장과 이완 반복구조의 배열 방식과는 다른 형태 즉, 먼 저 30장단 이상의 긴 긴장선율이 출현하여 완결된 다음, 그에 후속하여 매우 긴 이완선율 이 나타난다. 이처럼 다른 유파의 가야금산조에 비해서 이완선율이 비중있게 나타나는 현 상은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특징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에서 긴장과 이완의 배열 형태에는 1내드름으로 시작으로 하는 유 형, 2긴장으로 시작으로 하는 유형, 3경과로 시작하는 유형, 4이완으로 시작하는 유형 등 네 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이들 네 가지 유형 가운데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에서는 선율 구성이 내드름 긴장예비 긴장 경과 이완 종지로 배열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특 히 이러한 배열 형태는 <진양조>나 <중모리>처럼 느린 악장보다는 <늦은 자진모리> 이후 의 빠른 악장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상과 같이 산조는 시작할 때에 내드름을 통하여 악조 및 선율적 흐름을 예시한 다음, 점차 변화를 주어 긴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진행한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는 정점을 거쳐 고조된 긴장감을 이완시켜주는 구조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이러한 긴장과 이완의 대 비는 각 악장 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동시에 크게는 <자진모리>를 정점으로 산조 전 체를 포괄하는 구조를 이룬다. 최옥삼류 가야금산조는 선율구조와 리듬의 변화, 다양한 주법의 활용을 통하여 긴장과 이완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최옥삼류 가야금산조에 내재되어 있는 독특한 멋은 긴 장이 지니는 ʻ긴박한 느낌ʼ과 이완의 ʻ여유로움ʼ이 뚜렷이 대비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73
28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가야금산조 변주방법의 유파별 특징 안 승 훈*1) 목 차 Ⅰ. 서 론 Ⅱ. 유파별 유사 선율의 비교분석 Ⅲ. 가야금산조에 활용된 변주 방법 1. 장식음을 활용한 변주 2. 리듬 변주 3. 음의 변화 4. 선율의 확대와 축소 5. 이조( 移 調 )와 변조( 變 調 ) Ⅳ. 유파별 변주 방법의 특징 1.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2.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3. 김병호류 가야금산조 4. 강태홍류 가야금산조 5.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Ⅴ. 결 론 요지 산조는 19C말 남도 지방의 시나위나 판소리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기악 독주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야금산조는 김창조( 金 昌 祖 : )가 시나위를 본 떠 만들었다 고 전한다. 가야금산조에 관해서는 전승과 연주활동이 활발하여 몇 세대를 거치면서 새로 운 유파가 파생되었고, 길이도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야금 산조 초창기의 명인 * 한양대학교 대학원. 274
283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으로는 김창조 한숙구 박팔괘 등이 있다. 그들을 사사한 제자들은 기존 산조의 가락을 변 주시키거나, 다른 장르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새로운 선율을 첨가하며 각자의 유파를 완 성하였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가야금 산조의 종류에는 김죽파( 金 竹 坡 )류 성금연( 成 錦 鳶 ) 류 김병호( 金 炳 昊 )류 강태홍( 姜 太 弘 )류 최옥삼( 崔 玉 三 )류 등 10여 종이 있다. 산조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악보 없이 즉흥적인 가락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 나 즉흥적으로 연주되었던 가락들이 대부분 악보화 되었고, 이와 더불어 산조음악은 선율 의 길이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산조 본래의 모습이었던 즉흥성은 감퇴되고 점차 정 형화되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가야금산조가 유파마다 선율이 양식화 되어 고정되고 연주기 법은 차별화되었다. 이렇듯 고정된 선율과 연주법을 가지게 된 가야금산조는 각 유파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차별성을 보이며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반복과 변주에 기초한 산조의 선율들은 필연적으 로 모방과 답습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유사성과 상이성을 동시에 내포할 수밖에 없다. 본 논문에서는 현재 활발히 연주되는 김죽파류 성금연류 김병호류 강태홍류 최옥삼류 산조를 대상으로 유사 선율을 비교하여 동일 선율에 대한 변주 방법을 살펴보고, 그러한 변주 방법의 형태를 파악하며, 각 산조에서 쓰이는 변주 방법의 특징에 대하여 고찰하였 다. 본문에서 밝혀진 가야금산조에서의 변주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식음 : 장식음에는 ʻ한 음 장식음ʼ과 ʻ여러 음 장식음ʼ이 있다. 둘째, 리듬 변주 : 리듬 변주는 ʻ리듬 분할ʼ과 ʻ시가의 변화ʼ로 구분할 수 있으며, ʻ리듬 분 할ʼ은 다시 ʻ규칙 분할ʼ과 ʻ불규칙 분할ʼ, ʻ분할 리듬의 반복ʼ으로 나눌 수 있다. ʻ시가의 변화ʼ 는 ʻ시가의 가감ʼ과 ʻ잇단음표를 이용한 시가의 변화ʼ로 구성된다. 셋째, 음의 변화 : 음의 변화에는 ʻ유사 선율의 음높이 변동ʼ과 ʻ꺾는 음의 연장ʼ, ʻ사이음 추가ʼ 등의 방법이 있으며 ʻ사이음 추가ʼ는 ʻ한음 추가ʼ와 ʻ샛가락 추가ʼ로 나누어진다. 넷째, 확대와 축소 : 선율의 확대와 축소의 방법은 여러 유파의 산조 선율에서 다양하게 쓰이는 변주방법이다. 다섯째 : 이조와 변조 : 이조는 선율의 높이를 이동시키는 것이며, 변조는 선율의 악조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이조에는 단6도 완전4도 단3도 장2도 단2도 등의 변화가 있었으며, 변조에는 우조-우조계면성 우조-계면조 평조-평조계면성 평조계면성-계면조 평조-계면 조 계면조-평계면조 계면조-진계면 돌장 등의 악조 변화가 있었다. 다음은 유파별 각 장단의 주요 변주 방법이다. 중중모리는 성금연류의 굿거리와 김병호 류의 엇모리를 포함하였고, 자진모리에는 최옥삼류의 늦은자진모리와 김죽파류, 김병호류, 강태홍류의 휘모리를 포함시켰다. 275
28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유파별 각 장단 선율에 나타난 주요 변주방법> 김죽파류 : 1) 진양조 : 농현 장식음, 변청 선율, 축소형 요성. 2) 중모리 : 기본 리듬 선율. 3) 중중모리 : 농현의 빠른 장식음, 형태의 반복, 헤미올라 리듬. 4) 자진모리 : 헤미올라 리듬, 선율의 축소. 성금연류 : 1) 진양조 : 농현의 복잡한 장식음, 변청 선율. 2) 중모리 : 농현 장식음, 연튕김 수법. 3) 중중모리 : 농현 장식음, 연튕김 수법. 4) 자진모리 : 헤미올라 리듬, 연튕김 수법. 김병호류 : 1) 진양조 : 농현의 복잡한 장식음, 깊은 농현, 두잇단음 사용,미분음 진행. 2) 중모리 : 농현 장식음, 깊은 농현, 선율의 축소와 확대. 3) 중중모리 : 농현 장식음, 깊은 농현. 4) 자진모리 : 리듬 변화, 헤미올라 리듬, 연튕김, 농현 장식, 선율의 축소, 음의 변화. 강태홍류 1) 진양조 : 농현의 빠른 장식음, 선율과 리듬의 반복, 엇박 진행. 2) 중모리 : 형태의 반복, 셋잇단음 사용. 3) 중중모리 : 농현의 빠른 장식음, 선율의 확대. 4) 자진모리 : 헤미올라, 기본 리듬 선율, 선율의 축소, 농현 장식, 변청. 최옥삼류 1) 진양조 : 농현 장식음, 샛가락 첨가, 기본 선율 진행, 축소 및 확대. 2) 중모리 : 농현 장식음, 형태의 반복, 샛가락 첨가, 기본 리듬 선율. 3) 자진모리 : 선율 축소 및 확대, 변청, 넷잇단음. 세산조시(단모리, 휘모리) 장단에서는 유파별 선율 변주 방법의 뚜렷한 특색이 나타나지 않으며 리듬의 분할과 유사 선율에서의 확대, 축소 등이 5개 유파에서 고르게 나타나고 있 다. 최옥삼류 산조는 자진모리에서 넷잇단음을 이용한 말발굽소리가 나타나는데, 타 유파 의 세산조시 선율과 진행이 유사하다. 276
285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 가능성과 교육적 의미 임 경 애*1) 목 차 Ⅰ. 서 론 Ⅱ. 이론적 배경 A.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B. 마당극 Ⅲ. 연구방법 A. 연구 참여자 B. 연구현장 C. 연구과정 D. 자료 수집 및 분석 Ⅳ.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가능성 탐색 A. 마당극놀이로 확대되지 못한 생활주제 ʻ마당극ʼ B. 마당극놀이로 확대된 생활주제 C.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적용과정에서 나타난 유아마당극놀이의 특성 Ⅴ.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과정에서 유아 및 교사가 갖게 되는 경 험의 교육적 의미 A. 일상으로 우리 음악 만나기 B. 놀이와 활동으로 우리 음악 알아가기 C. 열린 마음으로 우리 음악 이해하기 D.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우리 음악 즐기기 E. 우리 음악으로 하나 되기 F. 유아의 능력 새롭게 발견하기 G. 의미로 남는 마당극놀이 Ⅵ. 논의 및 제언 * 중앙대학교 대학원. 277
28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A. 요 약 B. 논의 및 결론 C. 제 언 요지 본 연구는 활동중심 통합교륙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고,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에 기초한 유아마당극놀이 전개과정에서 유아와 교사가 갖는 경험의 의미를 알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서울에 위치한 서울국악유치원의 만5세반인 누리반에서 2006년 4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유아마당극놀이를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에 적용하여 전개하였다. 본 연구의 자료 수집을 위한 참여관찰의 방법은 주제가 전개되는 동안 주 2~3회 연구 자의 현장관찰과 1명의 보조 연구자의 비디오 촬영으로 이루어졌다. 이밖에 연구 참여 교 사와의 비형식적 면담, 학급 경영록 등 문서자료 수집, 유아의 활동결과물 수집, 현장 조 사지 등 다양한 출처로부터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연구의 타당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수집된 자료 분석을 통하여 얻어진 본 연구의 연구문제 별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연구문제 1>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을 유아마당극놀이에 적용하는 것은 가능한가?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을 유아마당극놀이에 적용하는 것은 유아중심의 생활주제 선정, 유아의 흥미에 기초한 마당극놀이 전개와 교사의 적절한 중재를 통하여 가능하였다. 연구기간 동안 6개의 생활주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총 5개의 마당극놀이가 이루어졌다. 연구기간 동안 전개된 생활주제 중 유아의 제안에 의하여 선정된 생활주제는 전래동화 속에는, 여름놀이, 즐거웠던 원내캠프 등이었으며, 교사의 제안에 의하여 선정된 생활주제 는 마당극, 월드컵과 우리, 놀이와 수 등이었다. 이와 같은 생활주제 전개과정에서 유아의 흥미가 발생하여 전개된 유아마당극놀이는 놀자! 놀자! 산 속에서 놀자, 월드컵 응원 마당 극, 뱃노래 마당극, 캠프마당 작은 이야기, 누리반 3년 고개 마당극 등 5개 였다. 또한 본 연구를 통하여 유아마당극놀이 전개의 독특한 단계를 발견하였는데, 첫째, 마당 고르기 단계는 생활주제가 선정되고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지 278
287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는 가운데, 다양한 국악 활동을 경험하는 단계이다. 둘째, 마당 다지기 단계에는 마당극을 위한 이야기 만들고 마당극의 뼈대를 구성하는 과 정이다. 유아와 교사는 마당극놀이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고, 전래동요, 놀이, 춤, 민요, 장 단 등 마당극의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뼈대를 구성한다. 셋째, 마당 벌이기 단계는 마당극을 준비하며 놀이하는 과정으로서 유아들은 두 번째 단 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 삽입된 장단, 노래, 놀이, 춤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익히 고 표현하며 놀이하고 즐기는 단계이다. 네 번째, 마당 놀기 단계는 앞 단계에서 경험한 여러 마당활동 중 가장 관심 있는 활동 을 선택하여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소품을 준비하여 역할을 표현하며 하나의 마당극으로 완성하여 놀이하는 단계이다. 다섯 번째, 마당 나누기 단계는 마당극놀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마무리하며 평가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교사와 유아들은 자신들의 마당극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것인가를 협 의하여 결정한다. 전개된 마당극놀이가 모두 위와 같은 단계를 거친 것은 아니었다. 세 번째 마당극 놀이 인 ʻ뱃노래 마당극ʼ은 마당 나누기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다섯 번째 마당극인 ʻ누리반 3년 고개 마당극ʼ은 마당 고르기 단계를 거치지 않고 마당다지기 단계로부터 시작되기도 하였다. 또한 마당극놀이 전개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교사의 관찰에 의하여 전 단계에 서의 경험이 충분히 이루어져 유아들의 흥미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확장될 수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교사의 중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연구문제 2>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과정에서 갖게 되는 경험의 교육적 의미는 무엇인가?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유아마당극놀이 적용과정에서 유아가 갖게 되는 경험의 교육적 의미를 분석한 결과 유아들은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을 적용한 유아마당극놀이를 통하여 첫째, 일상으로 우리 음악을 만났으며, 둘째, 교사가 계획한 활동과 놀이를 통하여 우리 음악을 만났으며 셋째, 열린 마음으로 우리 음악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넷째, 모두가 주인 공이 되어 우리 음악을 즐겼으며, 다섯째, 우리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여섯째, 마당극 놀이를 통하여 유아의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였으며, 일곱째, 마당극놀이는 교사와 유아에 게 의미로 남았다. 279
28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1. 일상으로 우리 음악 만나기 유아마당극놀이 전개과정에서 유아들은 첫째, 일상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우리 음악을 만 나고 있었다. 유아들이 배운 장단이나 노래를 이용하여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간단한 주 의 집중이나 모이기, 대답하기 등도 우리 장단이나 노래를 사용함으로서 유아들은 자연스 럽게 우리 음악을 만나고 있었다. 둘째, 유아들은 일상 속에서 즐겁게 우리 음악을 만나고 있었는데 마당극놀이에 사용되 는 우리 노래와 놀이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도 하고, 하기 싫은 놀이감 정리도 우리 음악 으로 즐겁고 흥겨운 ʻ놀이ʼ로 만들기도 하였다. 2. 교사가 계획한 활동과 놀이로 우리 음악 알아가기 유아마당극놀이의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적용과정에서 유아들은 교사가 계획한 활동과 놀이를 통하여 우리 장단, 노래, 놀이, 춤 등을 알아가고 있었다. 첫째, 우리 장단은 구연-구음-말놀이-신체표현-장구연주-노래와 춤의 단계로 몸으로 장단을 알아가고 있었다. 또한 교사가 들려주는 장단과 관련된 짧은 동화를 통하여, 놀이 감을 통하여, 신체표현활동을 통하여 우리 장단을 알아가고 있었다. 둘째, 유아들은 재미있는 노랫말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거나 노랫말을 개사하기도 하 며 우리의 전래동요를 알아갔으며, 민요를 감상하고 표현하며 자신들의 수준에서 우리 민 요를 배우고 있었다. 셋째, 우리의 전래놀이는 특히 친구와 함께 어우러져 하는 놀이가 많은데, 유아들은 마 당극놀이 전개과정에서 친구와 함께 하는 우리 놀이를 통하여 우리 음악을 알아가고 있었다. 넷째, 우리 춤은 장단에 맞추어 몸짓을 표현하는 등의 ʻ배우는 것ʼ이 아닌 ʻ표현하는ʼ 활 동으로 알아가고 있었다. 3. 열린 마음으로 우리 음악 이해하기 유아들은 마당극놀이의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적용과정에서 유아들은 자신들이 만든 이 야기에 어울리게 우리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고, 새롭게 재창조하여 사용하기도 하며 우리 음악을 이해해가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유아들은 우리 악기와 서양 악기, 우리 것과 우리 것이 아닌 것과 같은 편견과 선입견 없이 우리 악기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둘째, 고정된 틀과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서로를 포용하는 이야기로 마당판을 짜고 있었다. 셋째, 유 280
289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아들은 마당극놀이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용이나 상황, 맥락에 어울리는 음악을 선택하기 위하여 실험하고 평가하며 가장 어울리는 우리 음악을 찾아내고 있었다. 넷째, 유아들은 우리 음악을 응용하기도 하고 노래와 장단을 결합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여 사용하기도 하면서 우리 음악을 이해해 가고 있었다. 4.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우리 음악 즐기기 유아마당극놀이의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적용과정에서 유아들은 흥과 신명이 어우러져, 자유와 선택의 능력을 키워가며,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서 우리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첫째, 유아들은 마당극놀이 전개과정에서 흥과 신명을 역동적이고 즉흥적으로 표출하며 우리 음악을 즐겼으며, 둘째, 유아들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유아마당극놀이 전 개과정에서 선택의 힘을 키워가며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며 이러한 능력은 자신감으로 이어 지고 있었다. 또한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의 성장은 유아들이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히 고,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양한 대안을 생각하여 판단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5. 우리 음악으로 하나되기 유아마당극놀이의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적용과정에서 유아들은 서로를 존중해 가며 마 당극놀이로 하나가 되었으며, 마당극놀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첫째, 유아들은 개개인의 표현을 존중하고 격려하면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며 마당극놀 이를 진정한 ʻ놀이ʼ로 즐기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둘째, 마당극놀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을 통하여 유아들은 나눔의 기쁨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ʻ마당극놀이ʼ 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우리 음악에 대한 사랑을 느꼈으며, 우리 음악으로 다른 사람들과 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6. 유아의 능력 새롭게 발견하기 유아마당극놀이의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 적용과정에서 유아들은 자신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흥과 끼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공받음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새롭게 발견하고 자신감과 자아 존중감을 키울 수 있었다. 281
29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7. 의미로 남은 마당극놀이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을 적용한 유아마당극놀이를 통하여 교사는 반성적 사고를 통하여 교사로서의 자신감 뿐 아니라, 능동적인 학습자로서의 유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 었다. 또한 유아들과 함께 마당극놀이에 몰입해 가는 과정에서 교사로서의 행복과 즐거움 을 경험하였으며 우리 음악과 활동중심 통합교육과정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가고 있었다. 유아에게 있어서 마당극놀이는 재미있고, 계속되는 놀이며, 친구며, 누리반이 ʻ잘하는ʼ, 누리반 유아들의 자부심이기도 하였다. 282
291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중등학교 음악교사의 국악교육 전문성에 관한 연구 정 길 선*1) 목 차 Ⅰ.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2. 연구 문제 3. 연구의 제한점 Ⅱ. 이론적 배경 1. 음악교사의 전문성과 자질 2. 중등음악교사의 양성제도 3. 중등 음악교사의 임용제도 4. 중등 음악교사의 연수제도 5. 외국의 음악교사 양성제도 6. 중등 국악교육의 실태 Ⅲ. 연구 방법 1. 조사 도구 2. 조사 실시 3. 자료 처리 Ⅳ. 연구 결과 1. 음악교사의 전문성 2. 음악교사 양성제도 3. 국악교육의 실태 4. 국악교육 발전을 위한 개선방안 5. 음악교사 면담결과 6. 종합 논의 * 중앙대학교 대학원. 283
29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Ⅴ. 요약 및 결론 1. 요약 2. 결론 3. 제언 요지 이 연구는 중등학교 음악교사의 국악교육 전문성에 관한 연구를 해 보고자 현장 음악교 사들을 통하여 교원양성기관의 교육과정과 양성제도 및 현재 학교 음악교육에서 국악교육 의 현 실태와 문제점에 관해 음악교사들의 설문을 통한 인식을 조사 분석 한 후 그들의 국악교육 전문성에 대하여 도움이 되는 제안을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와 같은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음악교사의 전문성은 무엇이며 전문성을 갖춘 음악교사는 어떠한 자질을 필요로 하는가?, 둘째, 현재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중등학교 음악교사 양성제도(양성, 임용, 연수)는 국악교육의 전문성 신장에 영향을 미치는가?, 셋째, 중등학교 음악교사들은 음악교사 양성 제도 및 국악교육 전문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넷째, 중등 음악교육 실태를 분석한 결과 국악교육의 문제점과 발전방안은 무엇인가? 이 연구를 위하여 경기도 지역의 중학교 503개교에 재직 중인 음악교사 955명을 대상 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회수된 482부의 설문 응답을 통해 얻어진 연구 결과는 다음 과 같다. 1 음악교사의 전문성에서 음악교사로서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능력(기악, 성악, 국악)으로 음악교사는 실질적인 실기능력 배양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 인식하고 있었다. 2 중등 음악교사 양성제도에 대하여는 각 대학에서 음악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 로 운영하고 있는 교육과정이 연주자와 교육자를 엄격히 구별하는 제도가 정착되기를 원했 으며, 국악보다는 서양음악에 치중한 교과목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반면 국악교 육과 신설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3 현재 실시되고 있는 교사선발 및 임용고사는 지식위주의 학습형태가 만연하여 임용 고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원화의 경향으로 우수한 교원양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인식하 284
293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고 있었다. 임용고사 시 필요한 실기시험은 대학에서의 실기 교육과정과 실제 선발을 위한 시험내용의 연계성이 부족함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으나 꼭 필요한 실기 시험 과목은 피아노와 시창이 가장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설문에 응답한 교사의 대부분이 서양음악을 전공한 교사의 영향이 아닌가 싶었다. 4 연수제도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음악 교사들이 자율적인 연수로 연수기회를 대폭 확 대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가장 받고 싶은 연수로는 국악기 연수를 희망하고 있어 국악 연수가 학교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아주 높게 인식하고 있음은 물론 국악연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5 음악 수업 시 국악교육의 실태는 음악교사들이 국악내용 지도를 할 때의 자신감은 보통이나 직접적인 국악연수를 통한 국악교육의 전문성 및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응답이 많았다. 또한 이론 보다는 실기위주의 능력이 배양될 수 있는 양성정책을 추진해야함을 시사하고 있다. 국악교육의 장애요인으로는 교사의 지도 능력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으며, 교 사들의 실기 능력 부족으로 인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국악강사풀제 강사 활용은 일부 학교에서는 적극 활용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아직도 활용을 하지 않 은 학교가 더 많아 적극적인 홍보의 필요성과 좋은 강사들의 네트워크를 체계적으로 관리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상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여 다음과 같이 제언 하고자 한다. 첫째, 후속 연구에서는 음악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세분화된 영역과 문항을 통한 분석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표집 대상을 전국 중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확대하고, 각 대학의 예비교사를 포함하여 포괄적인 조사연구를 한다면 중등 음악교사 양성체제를 더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고 지역 간의 국악 교육 실태를 비교 해 볼 수 있으리라 예상 된다. 둘째, 음악교사 양성 교육기관에서는 중 등학교 음악교사를 위한 현장교육과 대학과의 연계성이 필요하며, 음악교육 및 국악교육 전담 교수의 확보, 학교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국악교육과 관련된 교수법적 전문성이 필요 하다. 셋째, 음악교사 임용고사는 교직 전문성의 조건이 갖춘 우수교사를 선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 보완되어야 하며, 국악실기의 비중을 확대하여 국악을 전공한 음악교사 비 율이 점차적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연수제도에 대하여는 현직 음악교사 들에게 지속적인 국악 연수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 해 주거나 정기적으로 교육과정에 맞게 국악실기 및 지도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는 국악연수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다섯째, 서양음악 전공 음악교사가 95%정도인 학교 현장의 국악교육 정상화는 극히 어려우리라 보고 현재 상태에서는 문광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강사풀제를 적 285
29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극 활용하거나 음악 교사 자신의 개인연수를 통한 국악교육의 내실화 및 국악교육의 전문 성이 요구된다. 새로운 문화예술현장이 창출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음악교사들이 보다 전문적 으로 국악교육을 하므로해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세계음악의 이해를 위한 다문화 음악교 육의 접근도 가능하리라 본다. 따라서 현장 음악교사 들에게 다양화되는 음악문화에 적응 하면서 국악교육 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정책방안을 마련하여 행 제정적인 지원체 제를 강화해야 한다. 286
295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춘향전> 영화음악 연구 김 희 정*1) 목 차 Ⅰ. 서 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2. 선행연구 검토 3. 연구범위 및 연구 방법 Ⅱ. <춘향전>의 영화화 양상 1. 판소리계 소설의 종류와 영화화 작업 2. <춘향전> 영화의 음악 양상 Ⅲ. <춘향전> 영화음악의 기능에 따른 분석 1. <춘향전> 영화의 시퀀스 분석 2. 음악의 기능에 따른 분석 Ⅳ. <춘향전> 영화의 총체적 음악 특징 1. 극영화 2. 애니메이션 3. 음악영화 Ⅴ. 결 론 요지 본고의 연구목적은 한국영화가 세계화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로서의 위 치를 갖추기 위해서 영화에 삽입된 음악을 집약적으로 살펴보고, 보완점 및 문제점을 지적 해 보는 것이다. 이 연구를 위해 <춘향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선택하였다. 같은 소재로 제작된 것 중에서 <춘향전> 영화가 가장 제작편수가 많기도 하고, 한국 최초의 사극영화이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287
29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기도 하고,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역사에서 도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기 때문에 연구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 Ⅱ장에서는 왜 <춘향전> 영화의 제작편수가 많은지에 대해 연구하였다. <춘향전> 의 서사구조를 그 밖의 ʻ판소리계 소설ʼ인 <심청전>, <별주부전>, <흥부전>, <삼국지연의>와 비교하였고 그 이유를 분석하였다. 아울러 14종에 이르는 <춘향전> 영화에 쓰인 음악을 문 헌자료나 신문기사, 유성기 음반자료 등을 토대로 검토하였다. 한국영화 초창기 시대의 음악 을 점검하는 것은 연구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시대와 6 25 전쟁 등 격변의 역 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문화 콘텐츠에 대한 보존이라는 개념이 미약했기 때문에 상당한 숫자 의 필름 자료들이 분실되거나 유실되었다. 분실 유실된 영화에 쓰인 음악을 알아보기 위해서 는 문헌자료나 신문기사, 유성기 음반자료 등을 통하는 연구가 최선의 방법이었다. Ⅲ장에서는 필름이 현존하는 <춘향전> 영화들을 ʻ극영화ʼ, ʻ애니메이션ʼ, ʻ음악영화ʼ로 분 류하여 <춘향전> 영화들에 쓰인 음악에 대해 알아보았다. ʻ극영화ʼ는 각각의 장면(scene)에 쓰인 음악의 곡명 및 연주된 악기를 밝히고, 음악의 형식 조성 박자 주제 테마 등의 구체 적인 요소들을 채보를 통한 악보를 토대로 살펴보았다. 그 후 주요장면에 쓰인 음악적 기 능을 분석 비교하고 장단점을 지적하였다. ʻ애니메이션ʼ, ʻ음악영화ʼ는 음악적 구성을 검토한 후 그 대략적 특징을 파악하였다. 영화 에 음악이 쓰일 때 음악은 영상과 일체하여 기능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음 악과 차이를 지니므로 이 작업은 영화음악 연구에 필수 과정이다. Ⅳ장에서는 주요장면에 쓰인 음악의 기능을 통하여 음악이 그 총체적 영화에 끼친 영향 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것을 음악의 기능, 사용된 악기, 조성 및 박자의 활용 양상을 통해 정리하면서 문제점 및 보완점을 지적했다. 이상에서 연구 검토해본 바에 의하면 영화음악의 제작은 작품의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음악을 삽입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의도하는 바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 다도 작품에서 의도하려는 바를 파악하는 작업이 1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겠다. 영화음악 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고, 이것이 작품에서 드라마적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기능으로서 작용할 때 우수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이러한 기능은 음악의 장르적 특성이라든가 악 기 조성 박자 등에 따라 다양하게 작용하였고, 이것이 전체 작품의 질을 판가름하는 중요 한 요소로서 작용을 했다. 21세기, 영화는 문화콘텐츠 산업시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음악과 영화는 서로 공생 하는 관계임이 분명하다. 한국 영화가 세계화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문화콘텐츠 산업으 로서 발전하기 위해서 더불어 음악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영화음악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288
297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국악자료의 FRBR 모형 기반 서지정보시스템 구축 및 평가 이 현 주*1) 목 차 제 1 장 서 론 1.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1.2. 연구 방법 및 범위 1.3. 용어의 정의 1.4. 선행연구 제 2 장 이론적 배경 2.1. 국악자료의 유형 및 특성 2.2. 서지적 관계의 유형 및 특성 2.3. FRBR 모형의 특성 제 3 장 국악자료 서지정보시스템 설계 및 개발 3.1. FRBR 모형 수용 3.2. 개체 간 관계유형 3.3. 데이터모형 설계 3.4. 서지레코드 기술요소 추출 3.5. FRBR 모형 기반 서지정보시스템 설계 및 개발 3.6. 검색 인터페이스 설계 및 개발 제 4 장 국악자료 서지정보시스템 구현 4.1. 표본 추출 4.2. FRBR 모형 기반 서지정보시스템 구현 제 5 장 서지정보시스템 평가 5.1. 서비스 품질 비교분석 5.2. 시스템 품질 비교분석 5.3. 이용자 만족도 비교분석 제 6 장 결 론 * 충남대학교 대학원. 289
29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요지 이 연구는 MARC의 한계 및 문제점에 대하여 해결책으로 제시된 FRBR 모형기반의 국 악자료 서지정보시스템을 구현하고 시스템의 유용성을 평가한 연구이다. 이를 위해 국가서 지레코드의 기본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우리나라 목록환경에 맞는 서지정보시스템을 구축하 기 위해 KCR 4판의 관점에서 FRBR 모형을 수용하였다. 또한 모형 적용의 유용성이 있다고 판단되고, 우리나라의 문화와 인식을 반영할 수 있는 분야인 국악자료를 대상으로 하였다. 국악자료를 대상으로 서지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먼저 국악자료의 서지적 관계유형을 정립하였다. 서지적 관계유형은 Tillett, Smiraglia, Vellucci, 인디아나대학교 Variations3 프로젝트의 서지적 관계유형을 참조하고, 국악 개론서를 통한 국악 악곡 간의 파생관계 조 사, 국악 관련 전문가의 인터뷰를 종합하여 도출했다. Tillett의 관계유형을 바탕으로 대등 관계 하위로 복제, 대체, 재구성, 파생관계 하위로 번역, 개정, 축약, 변조, 편곡, 채보, 연 주/공연, 기술관계 하위로 해제, 비평, 안내, 딸림자료 관계의 하위로 부록, 전후관계 하위 로 후속, 그리고 전체-부분 관계를 제시하였다. 도출된 서지적 관계유형을 토대로 개체 간 관계유형을 제시하여 개체 간 경계기준으로 삼았다. FRBR 모형 최종보고서의 각 개체별 속성, 아르코예술정보관의 음악자료 기술요소, 인 디아나대학의 Variations의 기술요소, 서울대학교 전자도서관 음악작품 영역의 메타데이터 스키마들을 상호 비교하고 국악의 특성을 반영하는 과정을 통하여 각 개체별 기술요소들을 추출하였다. 최하위 요소를 기준으로 저작은 2개의 기술영역에서 6개 요소, 표현형은 5개 기술영역에서 28개 요소, 구현형은 5개 기술영역에서 28개 요소, 개별자료는 3개 기술영 역에서 9개 요소를 제시하였다. 정립한 서지적 관계와 추출한 기술요소를 바탕으로 서지레코드를 설계하고, 이용자 중심 의 인터페이스를 적용하여 실험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실험시스템의 테스트컬렉션을 구축하기 위해 국악자료 중 관계유형이 많은 2개 저작을 선정하였으며, 선정된 저작의 데이터는 국립국악원 및 아르코예술정보관의 웹 검색 시스템 을 통해 추출하였다. 선정된 저작 춘향가ʼ에 대한 구현형 서지레코드 412건, 영산회상ʼ에 대한 구현형 레코드 307건을 생성하였다. 구축한 서지정보시스템은 실험집단을 대상으로 질문지에 의한 설문조사를 통해 유용성 평가를 실시하였다. 유용성 평가에 의하면 검색 효율성의 세부 평가항목 중 검색의 정확률 은 99%로 나타났고 시스템 유용성 평가의 세부 평가항목 중 시스템 이용의 용이성은 리커 드 5점 척도에서 평균 3.45, 제공정보의 적절성은 3.05, 검색결과 접근의 용이성은 3.45, 290
299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검색결과 식별ʼ의 용이성은 3.55, 검색결과 선택ʼ의 용이성은 3.55, 검색방법 이해의 용이 성은 3.25, 검색결과 제공방식의 용이성은 3.25, 검색방법 학습의 용이성은 3.20으로 나 타났다. 이용자만족도의 세부 평가 항목 중 정보요구의 해결정도는 3.85, 정보제공방식의 만족도는 3.65, 화면구성의 기능 및 배치는 2.95, 계속적인 재사용의향은 3.40으로 나타 났다. 이 연구를 통해서 1) 국악자료의 서지적 관계유형 정립, 2) 국악자료의 개체 간 경계 기준 정립, 3) 국악자료의 개체별 기술요소 제시, 4) 국악자료의 FRBR 모형 기반 서지정보시스템 구축 이 되었다. 이 연구에서 구축된 FRBR 모형 기반의 국악자료 서지정보시스템은 국악자료의 서지적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저작 간의 집중기능을 향상시켰음을 알 수 있고, 이용자 의 만족도 조사 통해 시스템의 유용성을 검증하였다. 291
30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국악영재 판별을 위한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개발 원 영 실*1) 목 차 Ⅰ. 서 론 1. 연구의 필요성 2. 연구의 목적 3. 연구의 내용 4. 용어의 정의 Ⅱ. 이론적 배경 1. 국악영재 판별의 준거 2. 국악영재의 판별시기 및 판별도구 3. 국악영재 교육기관 및 판별 현황 4.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준거 Ⅲ. 연구 방법 1. 연구 대상 2. 연구 과정 3. 자료 분석 4. 연구의 제한점 Ⅳ. 연구 결과 및 논의 1.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개발 2.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타당도 및 신뢰도 검증 3. 종합적 논의 Ⅴ. 요약, 결론 및 제언 1. 요약 2. 결론 3. 제언 * 연세대학교 대학원. 292
301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요지 2002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이후 국악영재교육은 예술영재교육원 및 영재학급, 고 등교육기관 급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수행되어 왔지만 국악영재의 개념 및 판 별, 교육과정의 개발 및 시행, 평가와 같은 영재교육 고유의 틀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지 못했던 관계로 인하여 여러 문제점을 내포한 채 지속되어 왔다. 특히 국악영재교육의 성패 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판별 및 그 도구에 관한 연구는 현재까지 없었으며, 그에 따라 외 현화된 연주기량에 전적으로 초점을 둔 주관적인 실기시험만을 판별 방법으로 채택함으로 써 결국 국악영재의 잠재적 능력을 간과했다는 판별오류의 가능성을 내재한 채 운영되어 왔다. 국악영재교육이 정책적인 지원과 사회심리적인 관심을 지속적으로 획득하기 위해서 는 현행 국악영재교육 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따른 개선방향을 논의하는 것이 필수 적이다. 특히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해 줄 수 있는 국악영재 판별도구의 개발은 영재의 잠 재력을 예측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좀 더 객관적으로 국악영재의 잠재능력을 측정해 줄 수 있는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를 개발하고, 개발된 검사도구의 타당도 및 신뢰도 검증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구개발의 이론적 토대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둘째, 그러한 논의를 기저로 하여 국악영재 판별을 위 한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를 개발하였다. 셋째, 개발된 검사도구의 타당도 및 신 뢰도를 검증하였다. 국악영재 판별을 위한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는 한국 전통음악의 속성인 12율 과 평조 및 계면조, 오음음계, 장단, 시김새를 준거로 하여 제작되었다. 특히 전통음악에 내재되어 있는 고유한 음정 도식과 시김새적 표현에 초점을 둠으로써 한국 전통음악의 특 징이 잘 반영된 진단도구의 제작에 주력하였다. 가락과 리듬은 국악의 거의 모든 부분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대한 속성이다. 또한 빠르기나 셈여림, 형식과 같은 여타 다른 국악개념들은 객관적인 문항제작의 어려움을 내포할 수 있기에 문항의 변별도 및 난이도, 타당도 및 신뢰도의 측면을 고려하여 국악적인 가락과 리듬을 준거로 삼아 하 위척도를 제작하였다. 가락 및 리듬검사의 1차 및 2차 검사문항은 최종 확정될 문항 수의 두 배 정도인 총 60문항으로 제작되었고, 문항평가를 거쳐서 최종 27문항으로 확정되었다. 293
30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타당도 검증은 구인타당도 및 공인타당도를 중심으 로, 신뢰도는 내적 일관성 법인 Cronbachʼ α 계수에 의하여 검증하였다. 구인타당도 검증 을 위한 요인분석 결과, 가락검사의 설명 분산비율은 %로, 제1요인(국악적 가락 요 인)이 총 분산의 20% 이상을 초과했기 때문에 일차원성 가정이 성립되었고, 각 문항의 요 인 적재치는 최저 0.317에서 최고 0.606까지 나타났다. 리듬검사도 가락검사와 같이 1개 요인(국악적 리듬 요인)으로 지정하여 그에 대한 분석을 실시한 결과, 리듬검사의 설명 분 산비율은 %로, 제1요인이 총 분산의 20% 이상을 초과했기 때문에 일차원성 가정이 성립되었고, 각 문항의 요인 적재치는 최저 0.391에서 최고 0.648까지 나타났다. 일차원 성 가정이 성립됨에 따라 문항반응이론(IRT)을 이용한 가락검사의 문항분석 결과를 제시하 면, 가락검사의 난이도는 ~2.608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었으며, 변별도는 0.517에 서 3.923까지 분포되어 있었다. 즉 가락검사는 문항반응이론에 근거하여 볼 때 그 문항이 어렵지는 않으나 변별력이 적절하거나 높은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리듬검사의 문항분석 결과를 보면, 문항 난이도는 에서 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었으며, 변별도는 최하 0.535에서 최고 4.006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리 듬검사 또한 그 문항이 어렵지는 않으면서 변별력이 적절하거나 높은 문항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 점수와 가락 및 리듬의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된 후천적인 환경 변인들과의 상관분석 결과, 국악의 영재성이 높을수록 국 악레슨의 시작 시기가 빨라지고 그 지속기간은 길며 국악감상의 정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 왔다. 국악에 대한 부모의 지지도 역시 국악영재일수록 높았으며, 가락검사와 리듬검사의 점수도 높았다. 부모의 지지도와 국악레슨 시작시기 및 지속기간, 국악감상의 정도, 가락 및 리듬 검사의 점수가 정적상관에 있다는 결과는 국악영재성의 외재적 조건, 즉 국악영재 성을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해당영재 부모의 지지가 필수조건이라는 선행연구 결과를 지지해주는 것이며, 이 연구의 검사도구가 국악영재의 필수조건인 후천적인 환경 변인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차이검증 결과, 가락검사와 리듬검사 모두에서 국악영재 집단과 평재 집단 간의 차이가 p<.001 수준에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즉 국악영재 집단의 검사 점수가 평재 집단의 점 수보다 높게 나왔다. 성별에 따른 차이검증 결과 대체적으로 여학생의 평균이 높았으며 가 락 및 리듬 검사 모두에서 p<.001 수준의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국악영재 집단과 평재 집단을 구분하여 집단 내에서의 성별 차이를 검증한 결과 전반적으로 여학생 의 점수가 남학생보다 높기는 했지만 p<.05 수준에서 유의미하지는 않았다. 가락검사가 294
303 총보로 기록된 ʻ민간 대풍류ʼ 가야금으로, 리듬검사가 장구로 녹음 제작됨에 따라 가야금 전공자의 경우 다른 전공자에 비하여 검사점수가 높게 나올지에 관한 검증을 위하여 일원분산분석(One-Way ANOVA) 을 실시하였다. 먼저 가락검사 점수의 경우 해금전공 학생들의 평균이 가장 높게 나왔으며 다음으로 정가, 피리, 대금, 가야금, 민요, 거문고 전공의 순으로 높았다. 하지만 유의확률 은 0.976로 결국 가락검사에서의 전공별 차이는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리듬검사 점수는 대금전공 학생들의 평균이 가장 높게 나왔으며 다음으로 가야금, 피리, 해금, 거문고, 민 요, 정가 전공의 순으로 높았다. 이 때 유의확률은 0.371로 리듬검사에서의 전공별 차이 또한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가락 및 리듬 검사의 전공별 차이가 없음은 이 검사도구가 특 정한 영역의 전공자, 특히 가야금 전공이나 타악 전공자한테 유리한 것이 아님을 지지해 주는 결과였다. 공인타당도 검증을 위한 상관분석 결과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점수와 국악 실기의 성적은 정적 상관에 있었다. 이는 정악과 산조 실기의 점수가 높을수록 가락 및 리 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점수가 높음을 말해준다. 가락검사의 경우 정악 및 산조 성적과의 상관계수가.48 혹은.40으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리듬검사의 경우를 보면 산조 성 적과의 상관계수는.43이지만 정악 성적과의 상관계수는.26으로 산조 성적에 비하여 낮은 상관으로 나타났다. 가락 및 리듬 인지능력 검사도구의 신뢰도 검증은 내적 일관성법(internal consistency) 중에서 Cronbach α 신뢰도 계수로 구하였는데, 가락검사의 경우 Cronbachʼ α=.69로 나 타났고, 리듬검사의 경우 Cronbach α =.761로 나타났다. 즉 리듬검사에 비하여 가변적인 시김새적 표현 요소를 강하게 투입한 가락검사의 신뢰도가 덜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95
30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제 1 조 (학술지명) 국립국악원(이하 국악원 )에서 발간하는 본 학술지의 명칭은 國 樂 院 論 文 集 (Journal of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이하 ʻ논문집ʼ이라 함)이라 한다. 제 2 조 (목적) 본 규정은 논문집 발간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제 3 조 (내용 및 체제) 1본 논문집의 내용은 한국 전통공연예술 관련 일반 연구 논문, 기획 논문, 보고 논문, 번역문 등으로 한다. 2제1항에 해당하는 논문 이외에 서평과 음반평 및 자료 소개 성격의 발표문도 편집회 의의 심의를 거친 후 게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3외국어 논문은 투고자가 한글로 번역하여 등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경우에 따라 외국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투고할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번역은 국립국악원에서 한다. 4공동 연구 논문일 경우 저자명은 연구 분담의 중요도에 따라 기재한다. 5필자의 소속은 본문 첫 쪽 하단에 각주로 처리한다. 연구비의 출처를 밝힐 경우에는 본문 첫 쪽 하단에 각주로 처리한다. 6논문 투고일과 심사 완료일은 각 논문의 맨 끝 쪽에 기재한다. 7각 연구 논문에는 국문초록과 영문초록(국문초록은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영문초 록은 A4 2매 내외)을 게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논문 초록에는 핵심어(key word) 다섯 개 이상을 제시해야 한다. 8투고 원고의 분량은 200자 원고지 150매 내외이며, 서평과 음반평은 원고지 15매~20 매 내외로 한다. 논문이 게재될 경우 원고료는 국악원 사례 규정을 따르되, 100매 이내 에서 해당하는 원고료를 한다. 단 여타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경우에는 원고 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296
305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제 4 조 (편집위원회의 역할, 구성 및 운영) 1편집위원회는 학술지의 심사와 편집에 관한 사항을 주관한다. 2편집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은 별도의 규정에 의한다. 제 5 조 (논문투고) 1본 논문집에 투고하는 논문은 국내 국외 미간행 논문이어야 한다. 중복 게재했을 경 우 편집위원회는 논문 게재를 취소하고 소정의 제재 조치를 가할 수 있다. 소정의 제재 조치라 함은 원고료 회수, 인터넷상 공지, 향후 3년간 투고 금지 등을 말한다. 2원고의 제출 마감은 별도의 규정을 따른다. 제 6 조 (심사위원 위촉) 1심사위원은 편집위원회에서 위촉한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로 구성한다. 2심사위원은 학술 활동이 우수한 관련 분야의 연구자여야 한다. 제 7 조 (심사 규정 및 절차) 본 논문집에 게재되는 모든 논문은 논문집 심사 규정에 관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 논문집 심사에 관한 규정을 따로 둔다. 제 8 조 (연구 윤리 위원회 운영) 표절, 중복게재 등 연구 윤리와 관련된 사항은 편집위원회의 의결로 이첩된 사항을 처리 하기 위해 별도로 구성되는 ʻ연구 윤리 위원회ʼ에서 처리한다. 이를 위해 ʻ연구 윤리 위 원회 운영ʼ에 관한 규정을 따로 둔다. 제 9 조 (원고 내용과 관련한 저작권의 보증) 1집필자는 원고의 내용(원고에 포함된 그림, 도표, 사진 등을 포함한다)이 제3자의 저 작권을 침해하지 않음을 보증한다. 2제1항과 관련하여 분쟁이 발생하는 때에는 집필자가 본인의 책임과 비용으로 이를 해 결하며, 국악원은 이에 협력한다. 3제1항의 보증이 허위일 경우 집필자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국악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297
306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제10조 (원고에 대한 저작권) 집필자는 작성한 원고에 대한 복제권, 공연권, 방송권, 전시권, 배포권, 전송권, 2차적 저작물 등의 작성권(장래 개발되는 새로운 방법이나 매체로의 이용을 포함한다) 등을 국 악원에 양도한다. 다만 국악원은 위와 같은 저작 재산권에 의한 이용 행위에 대하여 집 필자에게 사전 통보하고 그 활용 결과물을 제공해야 한다. 제11조 (저작 인격권의 존중) 국악원은 집필자의 원고를 이용함에 있어서 저작자로서 집필자의 공표권, 성명 표시권, 동일성 유지권 등 저작 인격권을 존중하여야 한다. 제12조 (예외 사항)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항은 국악원 내규 및 편집위원회의 결정을 따른다. 이 규정은 2008년 1월 일부터 시행한다. 부 칙 298
307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학술지 심사 등 여러 규정> 학술지 편집 심사에 관한 규정 1. (발간 예정일) 본 논문집은 매년 두 권 발간하며, 6월 30일과 12월 15일에 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편집위원 선정 기준과 절차) 편집위원장 및 편집위원은 국내외적으로 지명도가 있고, 국악학 및 관련 전공자 중에서 학술 활동이 우수한 연구자여야 한다. 편집위원의 선정 절차는 학술지 발간 담당 부서의 추천을 받아 국악원장이 위촉하도록 한다. 편집위원회 의 구성은 별도의 규정을 따른다. 3. (투고 논문 심사 규정과 절차) 모든 논문은 다음과 같은 평가 지표에 따라 평가하여 그 게재 여부를 결정하며, 심사 절차는 편집위원회의 규정에 따른다. 평가지표 연구의 필요성 및 문제의식(20) 연구 주제의 독창성(20) 기존성과의 검토 및 활용정도(20) 논리적 적합성(20) 용어 개념의 적절성(20) 논문 투고요령 1. (연구 범위) 본 논문집에 수록되는 논문의 연구 범위는 한국 전통공연예술 관련 분야로 한다. 2. (투고 자격) 국내외 한국 전통공연예술 및 관련 분야 전공자로 한정한다. 3. (원고의 작성) 1) 원고 체제는 대제목은 로마 숫자, 중간제목 및 소제목은 아라비아 숫자에 괄호를 한다. 예) Ⅰ. 1. 1) (1) 299
308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2) 논문의 본문과 각주는 한글로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한자나 외국어 표시가 필요한 경우 괄호 속에 넣어 병기한다. 3) 연도 표시는 서기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재위연도, 연호 등의 부가 내용이 필 요한 경우 괄호 속에 기입한다. 예) 1463년(세조 9) 4) 본문 중 각종 인명에 대한 존칭은 생략한다. 5) 논문의 부제는 ʻ-부제-ʼ의 형식으로 한다. 예) -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 를 중심으로- 6) 주석은 각주 처리를 원칙으로 한다. 각주의 작성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한자 문화권의 논저 논문 : 저자명, 논문명, 인용학술지명 권(혹은 호, 집)(출판지 :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이혜구, 현행 영산회상에 나오는 ʻ동ʼ 태주음, 국악원논문집 제11집(서울 : 국립국악원, 1999), 7-20쪽. 저서(단행본) : 저자명, 저서명 (출판지 :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서울 : 국립국악원, 2001), 35쪽. 음반 : <악곡명>, 음반명 (발매지 : 발매회사, 발매연도), 음반번호. 예) <전폐희문>, 종묘제례악 (서울 : SKC 예전미디어, 1987), SKCD-K 영인본 : 책명, 권수. 쪽수 면수 행수 예) 세조실록, 권7.14a10-14 각주에 외국의 참고문헌을 기재할 경우 서지 정보의 원문을 그대로 쓴다. 예) 예) 岸 邊 成 雄, 唐 代 十 部 伎 の 性 格, 東 洋 音 樂 硏 究 第 9 輯 ( 東 京 : 東 洋 音 樂 硏 究 會, 1951), pp 재인용할 때 논문은 ʻ앞의 논문ʼ 저서는 ʻ앞의 책ʼ으로 표기한다 300
309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2) 비한자 문화권의 논저 논문 : 저자명, 논문명, 인용학술지명(이탤릭) 권(혹은 호, 집)(출판지 : 출판사 (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Sergey B. Lupinos, Canon in the Musical Cultures of China, Korea and Japan, Asian Musicology Vol. 11(Seoul :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2007), pp. 43~59. 저서(단행본) : 저자명, 학술지명(이탤릭)(출판지 :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Robert C. Provine, Essays on Sino-Korean Musicology(Seoul : IL JI SA, 1988), p ) 논문의 말미에는 참고문헌을 달아야 한다. 참고문헌의 작성 요령은 다음과 같다. (1) 한자 문화권 논저 논문 : 저자명. 논문명. 인용학술지명 권(혹은 호, 집). 출판지 : 출판사(혹 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이혜구. 현행 영산회상에 나오는 ʻ동ʼ 태주음. 국악원논문집 제11집. 서울 : 국립국악원, 쪽. 저서(단행본) : 저자명. 학술지명, 출판지 :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1) 이혜구. 신역악학궤범. 서울 : 국립국악원, 쪽. 예2) 국립국악원. 조선시대풍속화Ⅰ 한국음악학자료총서 37. 서울 : 국립국악원, 외국의 참고문헌을 기재할 경우 서지정보의 원문을 그대로 쓴다. 예) 岸 邊 成 雄. 唐 代 十 部 伎 の 性 格. 東 洋 音 樂 硏 究 第 9 輯. 東 京 : 東 洋 音 樂 硏 究 會, pp. 115~56. 음반 : <악곡명>. 음반명. 발매지 : 발매회사, 발매연도. 음반번호. 예) <전폐희문>. 종묘제례악. 서울 : SKC 예전미디어, SKCD-K
310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2) 비한자 문화권의 논저 등 논문 : 저자명. 논문명. 인용학술지명(이탤릭) 권(혹은 호, 집)(출판지 : 출판사 (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Sergey B. Lupinos. Canon in the Musical Cultures of China, Korea and Japan. Asian Musicology Vol. 11. Seoul : Council for Asian Musicology, pp. 43~59. 저서(단행본) : 저자명. 학술지명(이탤릭). 출판지 : 출판사(혹은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예) Robert C. Provine. Essays on Sino-Korean Musicology. Seoul : IL JI SA, ) 간접 인용과 강조 표시는 ʻ ʼ로 표시하고, 직접 인용은 로 표시한다. 9) 한글의 영문 표기는 문화관광부가 고시한 로마자 표기법을 따른다. 10) 표와 보례(악보)의 번호는 표와 악보의 상단 좌측에 < >에 넣어 표시하고, 도상자료 (사진, 그림 등)의 번호는 도상 자료의 하단 좌측에 < >에 넣어 표시한다. 예) <표 1> 제목 11) 원고 형식은 다음과 같다 1 용지 크기 : A4(210mm 297mm) 2 용지 여백 : 위 아래 20, 왼쪽 오른쪽 30, 제본 0, 머리말 15, 꼬리말 15 3 줄간격 : 글자모양 : 장평 100, 자간 0, 크기 10(각주, 인용 9), 바탕 5 문단모양 : 왼쪽 오른쪽 0, 들여쓰기 2(각주 -3, 인용 3) 4. (원고의 제출) 상반기(6월 30일 발행)는 1월 1일(시작)-3월 31일(마감)까지이고, 하반 기(12월 15일 발간)는 7월 1일(시작)-9월 30일(마감)까지로 한다. 단 상황에 따라 원 고 제출 기한을 일정 기간 연장할 수 있다. 302
311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5. (투고 방법 및 투고처) 1) 원고는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제출한다. 우편 제출의 경우에는 원본 1부와 원고를 저 장한 디지털 저장 매체 1매를 제출해야 한다. 2) 원고 제출시에는 국문초록과 영문초록(국문초록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 영문초록 A4 2매 내외, 핵심어(Key word) 다섯 개 이상 제시)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3) 투고처 주소는 다음과 같다. 이메일 : 국립국악원 홈페이지(http : // 참조 우편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서초3동) 국립국악원 국악 연구실 국악원논문집 담당자 앞 편집위원회 규정 1. 편집위원회는 편집위원장 1인, 편집위원 6인, 편집 간사 1인으로 구성하되, 임기는 1년 (1월 1일-12월 31일)이며 연임할 수 있다. 편집위원장은 국악연구실장으로 하고, 편집 위원 중 한 명은 국악연구실 소속 학예연구관으로 하며, 편집 간사는 논문집 담당 학예 연구사로 한다. 2. 편집위원회는 투고 논문의 제반 심사 절차를 관리하고 심사 결과에 의거하여 논문의 게 재 여부를 결정한다. 3. 편집위원회는 투고된 논문 원고에 대하여 논문의 적합성(주제, 원고분량 등) 여부에 따 라 1차 심사를 실시하여 ʻ원고 반려ʼ 또는 ʻ2차 심사ʼ를 결정한다. 그리고 2차 심사가 결 정된 논문에 대하여 관련 전공 학자 3인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해당 논문의 심사를 의뢰한다. 심사위원에 관한 사항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심사 의뢰시 심사위원에게 필자에 관한 사항을 공개하지 않는다. 4. 심사위원은 의뢰받은 논문을 심사하여 게재, 수정 후 게재, 게재 불가 등의 판정 소견을 ʻ논문 심사 평가서ʼ의 양식에 의거, 작성하여 편집위원회에 우편 또는 이메일로 송부한다. 5. 편집위원회는 심사위원의 심사결과(논문 심사 평가서) 사본을 심사위원의 실명을 삭제 한 후 투고자에게 즉시 통보한다. 303
312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6. 논문집 논문 심사평가서 양식은 다음과 같다. 대상논문 심사위원 성 명 : 연락처(휴대전화) : 소 속 : 이메일 : 은행명 : 계좌번호 : 연구의 필요성 및 문제의식(20) 연구 주제의 독창성(20) 평가지표 기존성과의 검토 및 활용정도(20) 논리적 적합성(20) 용어 개념의 적절성(20) 총점 및 게재 여부 80 이상 이하 게재 가 ( ) 수정 후 게재 ( ) 게재 불가 ( ) 심사소견 7. 논문의 2차 심사에 의한 결과는 아래와 같이 처리한다. 심사자1 심사자2 심사자3 결과 1 게재가 게재가 게재가 게재 2 게재가 게재가 수정후 게재 게재 3 게재가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4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5 게재가 게재가 게재불가 수정후 재심 6 게재가 수정후 게재 게재 불가 수정후 재심 7 수정후 게재 수정후 게재 게재 불가 수정후 재심 8 수정후 게재 게재 불가 게재 불가 게재 불가 9 게재가 게재 불가 게재 불가 게재 불가 8. 심사결과가 위 표의 1,2에 해당하는 논문은 이를 수정없이 게재한다. 304
313 국립국악원 국악원논문집 발간 규정 9. 심사결과가 위 표의 3, 4에 해당하는 논문은 투고자에게 수정 권고 사항을 통보하여 논 문의 수정 제출 후 게재한다. 5, 6, 7에 해당하는 논문은 투고자에게 수정 권고 사항을 통보하여 논문의 수정 제출을 요구하여 수정 후 재심을 실시한다. 10. 심사결과가 위 표의 8,9에 해당하는 논문은 게재 불가로 처리한다. 11. 원칙적으로 투고자는 심사위원의 수정 지시를 따라야 한다. 단 수정할 수 없는 부득이 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사유서를 첨부하여 제출해야 하며, 편집위원의 동의 하에 수 정하지 않을 수 있다. 12. 수정 후 재심은 1회에 한하며, 재심을 맡은 심사위원은 수정 권고 사항의 이행에 대한 부분을 검토하여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연구윤리 위원회 운영 규정 1. (운영 목적) 연구윤리위원회(이하 ʻ위원회ʼ라 함)는 궁극적으로 연구 윤리적 측면의 사안 발생 예방 및 엄정한 처리 등을 목적으로 운영한다. 2. (처리 대상) 위원회는 편집위원회의 의결로 이첩된 사항만을 처리한다. 3. (위원회 구성) 위원회의 위원은 위원장(편집위원장 겸임) 1<당연직>, 사안별 외부위원 5인, 편집간사 1<당연직> 등 총 7인으로 구성한다. 위원은 국악원장이 임명한다. 4. (외부위원 구성) 외부 위원은 개별 사안별 이해 당사자 모두가 동의하는 위원으로 구성한다. 305
314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5. (위원회 의결 방법) 위원장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단일한 의견을 유도하되,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시 모든 위원의 다수결로 의결한다. 6. (위원회 사안 처리 절차) 1) 편집위원회로부터 사안을 접수받는다. 2) 사안 이해 당사자에게 사안 처리 절차를 알려주며, 위원회 최종 결정 사항에 승복함을 확인하는 증서를 미리 받는다. 3) 위원장은 사안별 이해 당사자 모두가 동의하는 위원 5인으로 외부 위원 추천 동의서를 받는다. 4) 사안 대상자(논문일 경우 필자, 심사자 등 관련자)로부터 제기 사안의 소명자료를 받 는다. 5) 위원장은 위원회를 개최하여 사안 제기서, 소명 자료, 해당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여 결론을 도출한다. 6) 위원장은 회의 최종 결과만을 사안 이해 당사자에게 통보한다. 7) 위원장은 회의 결과를 편집위원회에 알린 후, 사안 처리 종결회의를 끝으로 위원회는 자체 해산한다. 7. (위원의 의무) 위원은 사안의 처리 과정 및 결과를 외부에 누설하지 않는다. 8. (자료 공개 범위) 모든 사항은 비공개 및 익명으로 처리하며, 회의자료는 최종 결과만 공개한다. 306
315 國 樂 院 論 文 集 제20집 발 행 일 발 행 인 발 행 처 기 획 책임편집 편 집 인 쇄 : 2009년 12월 15일 : 박일훈(국립국악원장) : 국립국악원 (우)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남부순환로 2364 전화 : / 팩스 : : 이용식(국악연구실장) : 이숙희(학예연구관) : 이윤주(학예연구사) : 원화디앤피 ( ) <비매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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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2002 年 2 月 昌 原 大 學 校 大 學 院 音 樂 科 安 明 基 音 樂 學 碩 士 學 位 論 文 P. Hindemith 음악에 대한 분석 연구 - 를 중심으로 - Sonata for B-flat
緊 張 冷 戰 體 制 災 難 頻 發 包 括 安 保 復 舊 地 震 人 類 史 大 軍 雷 管 核 禁 忌 對 韓 公 約 ㆍ 大 登 壇 : : : 浮 上 動 因 大 選 前 者 : : : 軸 : : : 對 對 對 對 對 戰 戰 利 害 腹 案 恐 喝 前 述 長 波 大 産 苦 逆 說 利 害 大 選 大 戰 略 豫 斷 後 者 惡 不 在 : : 對 : 軟 崩 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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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04. 12 2004. 11 25 26 2004. 12 % 50 40 30 20 10 0 華 東 華 北 中 南 西 南 東 北 西 北 전 체 중 대 형 차 중 형 차 소 형 차 경 차 2004. 11 27 帕 28 2004. 12 2004. 11 29 30 2004. 12 2004. 11 31 32 2004. 12 2004. 11 33 34 2004.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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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2002report220-10.hwp
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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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第 6 條 ( 壹 株 의 金 額 )..
제 정 1973. 2. 28 개 정 2010. 3. 19 定 款 삼성전기주식회사 http://www.sem.samsung.com 目 次 第 1 章 總 則 第 1 條 ( 商 號 )... 1 第 2 條 ( 目 的 )... 2 第 3 條 ( 所 在 地 )... 2 第 4 條 ( 公 告 方 法 )... 2 第 2 章 株 式 第 5 條 ( 授 權 資 本 )... 2
다문화 가정 중학생의 문식성 신장 내용
교육연구 제58집 성신여대 교육문제연구소 2013년 12월 30일 2009 改 定 敎 育 課 程 에 따른 中 學 校 漢 文 敎 科 書 의 多 文 化 敎 育 에 對 한 一 見 이돈석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Ⅰ. 들어가는 말 Ⅱ. 한문 교과 교육과정 목표에 대한 검토 Ⅲ. 중학교 한문 교과서 분석 목 차 1. 재제 출전의 문제 2.. 교육 내용과 제시 방법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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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 2. 3. 4. 제2장 아동복지법의 이해 12 4).,,.,.,.. 1. 법과 아동복지.,.. (Calvert, 1978 1) ( 公 式 的 ).., 4),. 13 (, 1988 314, ). (, 1998 24, ).. (child welfare through the law) (Carrier & Kendal, 1992). 2. 사회복지법의 체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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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히 묻고 가까이 실천하는 선진 산림과학 3.0 시대를 열겠습니다! 01 03 05 05 06 07 08 08 10 10 11 임업인에게는 희망을, 국민에게는 행복을 带 NIFoS 1 중국 닝샤회족자치구() 중국 무슬림 인구 주요 분포도 중국 닝샤의 회족 자치구 3 중국 무슬림 인구 Top 11 지역 순위 지역( 省 ) 인구(만)
211 1-5.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石 村 洞 百 濟 初 期 積 石 塚 이도학, (서울의 백제고분) 석촌동 고분, 송파문화원, 2004. 서울 特 別 市, 石 村 洞 古 墳 群 發 掘 調 査 報 告, 1987. 1-6. 고창지석묘군 高 敞 支 石 墓 群 문화재관리국,
210 참고문헌 1. 능묘 1-1. 경주황남리고분군 慶 州 皇 南 里 古 墳 群 경상북도, 文 化 財 大 觀, 1-V, 慶 尙 北 道 編, 2003. 문화재관리국, 天 馬 塚 發 掘 調 査 報 告 書, 1974. 1-2. 함안도항리 말산리고분군 咸 安 道 項 里 末 山 里 古 墳 群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咸 安 道 項 里 古 墳 群 5, 2004.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152*220
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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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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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2. 9. 13. Story 1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2 STORY STORY 12 호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2 Korean Wave Story 2012 (2012년 1/4분기) 12 호 12 호 2012. 4. 9. 2 3 4 5 轩 辕 剑 之 天 之 痕 我 的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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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학년도 교육과정안내 P A R T 0 중국비즈니스 교육목적 대학의 교육목적 탁월한 실용전문인 양성 화합하는 민주시민 양성 연계전공 교육목적 학제적 연계 프로그램을 통하여 교과과정을 운영함으로써 종합적인 사고 능력과 실무능력을 구비한 유능한 인재를 양성 교육목표 대학의 교육목표 연계전공 교육목표 봉사하는 리더십 함양 건강한 육체와 정신함양 중국 사회, 문화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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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40242-000001-08 2013-927 2013 182 2013 182 Contents 02 16 08 10 12 18 53 25 32 63 Summer 2 0 1 3 68 40 51 57 65 72 81 90 97 103 109 94 116 123 130 140 144 148 118 154 158 163 1 2 3 4 5 8 SUMMER
Readings at Monitoring Post out of 20 Km Zone of Tokyo Electric Power Co., Inc. Fukushima Dai-ichi NPP(18:00 July 29, 2011)(Chinese/Korean)
碘 岛 监 结 30km 20km 10km 碘 达 碘 测 时 提 高 后 的 上 限 [250,000 微 西 弗 / 年 ] [10,000 微 西 弗 / 年 ] 巴 西 瓜 拉 帕 里 的 辐 射 (1 年 来 自 地 面 等 ) > 辐 射 量 ( 微 西 弗 ) 250,000 100,000 50,000 10,000 注 : 本 资 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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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Story 2013. 1. 30. Story 26호 STORY Korean Wave Story 2013 STORY STORY 12 2012 한류동향보고 Korean Wave Story 2013 Korean Wave Story 2013 (2012년 1/4분기) 12 12 2012. 4. 9. 2 3 4 5 6 乱 世 佳 人 花 絮 合 集 梦 回 唐
광주시향 최종22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2 PM 페이지1 VOL.7 2015. 09 9월 4일(금) Masterwork Series Vl 프랑스 기행 9월 22일(화) 가족음악회 팝스콘서트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3 PM 페이지23 20세기 이전의 유명한 작곡가가 쓴 비올라 곡은
60-Year History of the Board of Audit and Inspection of Korea 제4절 조선시대의 감사제도 1. 조선시대의 관제 고려의 문벌귀족사회는 무신란에 의하여 붕괴되고 고려 후기에는 권문세족이 지배층으 로 되었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새로이 신흥사대부가 대두하여 마침내 조선 건국에 성공 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조선양반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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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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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텔레비전의 폭력행위는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묘사되는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만화프로그램의 내용분석을 통해 각 인 물의 반사회적 행위 및 친사회적 행위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맥락요인들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를 조사하였다. 맥락요인은 반사회적 행위 뿐 아니라 친사회적
학점배분구조표(표 1-20)
1 학년 2 학년 3 학년합 1 2 1 2 1 2 학문의기초 6 6 12 3 3 15 핵문학과예술 3 3 3 심역사와철학 교 양 자연의이해 3 3 3 선택 3 3 3 3 3 3 6 12 교양학점 12 12 24 3 3 6 3 3 6 36 1 학년 2 학년 3 학년합 1 2 1 2 1 2 학문의기초 3 3 6 6 핵 문학과예술 심 역사와철학 3 3 6 6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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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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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 2 -
-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항일 봉기와 섬멸작전의 사실탐구
抗 日 蜂 起 와 殲 滅 作 戰 의 史 實 探 究 - 韓 國 中 央 山 岳 地 帶 를 中 心 으로- 이노우에 가츠오( 井 上 勝 生 ) 1) 머리말 지난 해(2015년) 10월과 11월, 日 本 軍 東 學 黨 討 伐 隊 의 進 軍 路 를 한국의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조사할 수 있었다. 後 備 第 19 大 隊 (당시 東 學 黨 討 伐 隊 라고 불리었다) 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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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1+2 + = = 1 1 1 +2 =(1+2)+& + *=+ = + 8 2 + = = =1 6 6 6 6 6 2 2 1 1 1 + =(1+)+& + *=+ =+1 = 2 6 1 21 1 + = + = = 1 1 1 + 1-1 1 1 + 6 6 0 1 + 1 + = = + 7 7 2 1 2 1 + =(+ )+& + *= + = 2-1 2 +2 9 9 2
5 291
1 2 3 4 290 5 291 1 1 336 292 340 341 293 1 342 1 294 2 3 3 343 2 295 296 297 298 05 05 10 15 10 15 20 20 25 346 347 299 1 2 1 3 348 3 2 300 301 302 05 05 10 10 15 20 25 350 355 303 304 1 3 2 4 356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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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학보 제18권 제1호 The Korean Journal of Economics Vol. 18, No. 1(Spring 2011) 일제말 電 力 國 家 管 理 體 制 의 수립* 1) 吳 鎭 錫 ** 요 약 본고는 1940년대 전반 전력국가관리의 수립을 대상으로 정책 결정의 주체 에 주목하여 정책의 원안이 등장하여 최종안에 이르는 변천과정을 면밀하 게 분석한
중국기본고적 데이타베이스 기능수첩
중국기본고적고 사용설명서 1 로그인( 進 入 ) 1.1시작을 클릭하신후 왼쪽 프로그램에서 AncientBook 을 찾으신후, AncientBookClient 를 클릭하세 요. 1.2 服 務 器 (ip), 用 戶 名 (id), 密 碼 (pw)를 입력 후 진입( 進 入 ) 클릭하세요. 1-3. 아이콘 설명 : 메인페이지 : 최소화 : 화면 닫기 2. 검색( 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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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1 前 言 現 行 考 銓 制 度 一 現 行 考 銓 制 度 對 人 事 行 政 的 重 要 性 : 強 烈 建 議 考 人 事 行 政 的 同 學 們, 一 定 要 精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熟 讀 現 行 考 銓 制 度 的 好 處, 可 以 從 以 下 幾 個 角 度 來 分 析 : 相 對 重 要 程 度 高 : 現 行 考 銓 制 度 在 人 事 行 政 三 個 主 要 等
그렇지만 여기서 朝 鮮 思 想 通 信 이 식민본국과 피식민지 사이에 놓여 있는 재조선일본인의 어떤 존재론적 위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식민본국과 피식민지의 Contact Zone 에 위치한 재조선일본인들은 조선이라는 장소를 새로운 아이덴티티의 기
식민지의 목소리 - 朝 鮮 思 想 通 信 社 刊, 朝 鮮 及 朝 鮮 民 族 (1927)을 중심으로 鄭 鍾 賢 ( 成 均 館 大 ) 1. 伊 藤 韓 堂 과 朝 鮮 思 想 通 信 伊 藤 韓 堂 이 발간한 朝 鮮 思 想 通 信 은 1925 년에 발행을 시작하여 1943 년 그가 죽은 직후에 폐간될 때까지 대략 18 년 동안 간행된 조선문을 번역한 일본어 신문이다.
01정책백서목차(1~18)
발간사 2008년 2월, 발전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출범한 새 정부는 문화정책의 목표를 품격 있는 문화국가 로 설정하고, 그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권한과 책임의 원칙에 따라 지원되고, 효율의 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문화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란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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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교육인적자원부 고시 제 2007-79호에 따른 고등학교 교육과정 해설 ❾ 음 악 목 차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 Ⅰ. 음악과 교육과정 개정의 배경 7 Ⅱ. 음악과 교육과정 개정의 중점 9 1. 음악의 역할 및 음악 교육의 효과 강조 9 2. 교육과정 내용의 적정화 9 3. 국악 교육의 질적 제고 10 4. 음악 교육의 활용도 제고 10 5. 다양한 시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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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ATIONAL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YEARBOOK 2005 Ⅰ. Ⅱ. Ⅲ. 3. 31. 가곡 계면조 한바탕 4. 15. 민속악단 정기공연 11. 24. 민속음악대제전 9. 1. 무용단 정기공연 창작무용 5. 26. 창작악단 제2
120~151역사지도서3
III 배운내용 단원내용 배울내용 120 121 1 2 122 3 4 123 5 6 124 7 8 9 125 1 헌병경찰을앞세운무단통치를실시하다 126 1. 2. 127 문화통치를내세워우리민족을분열시키다 1920 년대일제가실시한문화 통치의본질은무엇일까? ( 백개 ) ( 천명 ) 30 20 25 15 20 15 10 10 5 5 0 0 1918 1920 (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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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제국주의로서의 근대일본자유주의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28차 워크숍 2016-04-08 제국주의로서의 근대일본자유주의 -가와이 에이지로의 제국일본 인식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용철(한림대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2. 식민지 인식과 정당화논리 2.1 이상주의적 자유주의와 국민적 자유론 2.2 식민지 정당화의 논리 3. 전쟁 인식과 정당화논리 3.1 이상주의적
356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제5권 1883.01.24 釜 山 口 設 海 底 電 線 條 欵 / 海 底 電 線 設 置 ニ 關 スル 日 韓 條 約 漢 日 1883.06.22 在 朝 鮮 國 日 本 人 民 通 商 章 程 / 朝 鮮 國 ニ 於 テ 日 本 人 民 貿 易 ノ
근현대 한일간 조약 일람* 22) 1. 조선 대한제국이 일본국과 맺은 조약 주) 1. 아래 목록은 國 會 圖 書 館 立 法 調 査 局, 1964 舊 韓 末 條 約 彙 纂 (1876-1945) 上 ; 1965 舊 韓 末 條 約 彙 纂 (1876-1945) 中 ; 外 務 省 條 約 局, 1934 舊 條 約 彙 纂 第 三 巻 ( 朝 鮮 及 琉 球 之 部
08학술프로그램
www.kafle.or.kr Foreign Language Teachers Expertise 01 01 02 03 04 05 06 07 한국외국어교육학회 2008년 겨울학술대회 학술대회 관련 문의 좌장: 이강국 (대학원 309호) 13:30~14:00 명사구 내 형용사의 위치와 의미 유은정 이상현 곽재용 14:00~14:30 스페인어 문자체계의 발달과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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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vol.126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 vol.126 www.fsb.or.kr 20163 + 4 Contents 20163 + 4 vol.126 www.fsb.or.kr 26 02 08 30 SB Theme Talk 002 004 006 SB Issue 008 012 014
아이콘의 정의 본 사용자 설명서에서는 다음 아이콘을 사용합니다. 참고 참고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거나 다른 기능과 함께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제공합니다. 상표 Brother 로고는 Brother Industries, Ltd.의 등록 상
Android 용 Brother Image Viewer 설명서 버전 0 KOR 아이콘의 정의 본 사용자 설명서에서는 다음 아이콘을 사용합니다. 참고 참고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거나 다른 기능과 함께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제공합니다. 상표 Brother 로고는 Brother Industries, Ltd.의 등록 상표입니다. Android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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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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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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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중등용1)1~27
3 01 6 7 02 8 9 01 12 13 14 15 16 02 17 18 19 제헌헌법의제정과정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8년 5월 10일: UN 감시 하에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 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1948년 6월 3일: 헌법 기초 위원 선출 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 소집. 헌법 기 초위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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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赤 城 山 トレイルランニンング レース 大 会 記 録 第 10 回 赤 城 山 選 手 権 保 持 者 男 子 須 賀 暁 記 録 2:35:14 女 子 桑 原 絵 理 記 録 3:22:28 M1 ミドル 男 子 18~44 歳, 距 離 32km 総 登 高 1510m ( 注 :DNF: 棄 権 DNS: 欠 場 )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順 位 氏 名 記 録
10월추천dvd
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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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CONTENTS 03 04 06 14 21 27 34 40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17 Historical Dictionary of North Korea Auf den Spuren der Ostbarbaren Czech-Korean Dictionary 18 19 Transforming Korean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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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文 科 學 제101집 2014년 8월 漢 字 문자 그 이상의 상징 체계 Ⅰ. 서론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한자의 본격적인 개혁운동은 5.4 白 話 運 動 이 후 지식인들에 의한 표음문자화를 지향하는 漢 字 革 命 論 이다. 근대 알파 벳 문자를 이상적 원형으로 사유하는 서구학계의 깊은 인식론의 영향으로 1954년 中 國 文 字 改 革 委 員 會 성립 이후
세미나자료 전국초 중 고성교육담당교사워크숍 일시 ( 목 ) 10:00~17:00 장소 : 한국교원대학교교원문화관
세미나자료집 전국초 중 고성교육담당교사워크숍 세미나자료 전국초 중 고성교육담당교사워크숍 일시 2007.12.27( 목 ) 10:00~17:00 장소 : 한국교원대학교교원문화관 워크숍일정표 시간주제사회 10:00-10:20 등록 10:20-10:30 개회사축사 : 신인철과장 ( 교육인적자원부폭력대책팀 ) 10:30-11:10 기조강연 : 학교성교육과교사의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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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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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Group 2006 AUTUMN Volume. 02 Focus Group 2006 AUTUMN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를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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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원을 위한 교수법 특강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폐강을 피하는 몇가지 팁! 조 승 모1 영남대학교 경제금융학부 2016년 8월 23일 Copyright 2016 Cho, Seung Mo 1 영남대학교 상경대학 경제금융학부 조교수; (우) 38541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 영남대학교 상경관 224호; [email protected]; http://financialeconomics.tistory.com
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vii 요 약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며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변 동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정책은 기존의 정책 방향과 내용을 유지 변화시키면서 정책을 계승 완료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 변화 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집단과 조직,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건강증진 시범보고서 운영을 위한 기술지원 연구
짧활 康 t합샤훌 示 範 띔 健 所 運 營 응 위한 技 術 支 援 웹 JE - 示 範 保 健 所 模 型 開 發 을 中 心 으로l' 鍾 和 李 順 英 鄭 基 뽑 編 著 韓 國 띔 健 社 會 댐 究 院 머 리 말 美 國 이나 日 本 등 先 進 國 의 경우 이미 1970년대 부터 人 口 의 高 敵 化 와 生 活 樣 式 의 變 化 에 기인한 成 人 病 증가와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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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북한에대한이해를돕기위해통일교육원에서발간한교재입니다. 각급교육기관등에서널리활용하여주시기바랍니다. 차례 Ⅰ. 북한이해의관점 Ⅱ. 북한의정치 차례 Ⅲ. 북한의대외관계 Ⅳ. 북한의경제 Ⅴ. 북한의군사 Ⅵ. 북한의교육 차례 Ⅶ. 북한의문화 예술 Ⅷ. 북한의사회 Ⅸ. 북한주민의생활 차례 Ⅹ. 북한의변화전망 제 1 절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Ⅰ. 북한이해의관점
핵 심 교 양 1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 문학과예술 역사와철학 사회와이념 선택 교양학점계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비고 14 (15) 13 (
1 학년 2 학년 3 학년 합계 6 5 11 5 5 16 문학과예술 핵 심 교 역사와철학 사회와이념 3 3 3 양 3 3 3 3 3 3 선택 4 4 1 1 3 3 6 11 교양학점계 12 12 24 5 1 6 3 3 6 36 ㆍ제 2 외국어이수규정 이수규정 또는 영역에서 과목 학점 이수하고 수량적석과추론 과학적사고와실험 에서 과목 학점 이수해도됨 외국어및고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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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정부3.0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과 참여로 정책을 함께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책 개선안을 도출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각 기관별 정부3.0 과제에 적용하여 국민 관점의 서비스 설계, 정책고객 확대 등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유도하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Journal of Gεography (Jirihak Nonchong) Monography Series 45 Apr.2002 Geographical Study on the Boundary and the Administrative District of the Capita
서울대학교 국토문제연구소 논문집 별호 45 2002.4 훌규 羅 王 京 의 훌쉴 圍 와 區 城 에 대한 地 理 tjtj1i퓨갖릎 李 훌료 職 서 울대 학교 국토문제 연구소 Journal of Gεography (Jirihak Nonchong) Monography Series 45 Apr.2002 Geographical Study on the Boundary
단양군지
제 3 편 정치 행정 제1장 정치 이보환 집필 제1절 단양군의회 제1절 우리는 지방자치의 시대에 살며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주민의 복지증진을 꾀 하고 있다. 자치시대가 개막된 것은 불과 15년에 불과하고, 중앙집권적 관행이 커 서 아직 자치의 전통을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는 없으며, 앞으로의 과제 가 더 중요하다는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지역 지방자치의
40 /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신창희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 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의 생애에 관한 개략적인 소개가 있었지만, 1) 여전히 많은 부분이 확인되지 않은 실정이다. 본고 또한 여전히 짧고 소략한 내용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39-44, 2008년 6월 Yonsei J Med Hist 11(1): 39-44, 2008 일반논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 신창희( 申 昌 熙 )의 생애와 활동 박 형 우(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홍 정 완(연세대 의사학과) 40 / 延 世 醫 史 學 제11권 제1호 세브란스병원의학교 제1회 졸업생이었던 신창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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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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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문화재이야기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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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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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읽는 우리 과학 교사용 지도서 자연 6-1 초등학교 교육과정 해설(Ⅱ) STS 프로그램이 중학생 과학에 관련된 태도에 미치는 효과 관찰 분류 측정훈련이 초등학생의 과학 탐구 능력과 태도에 미치는 영향 국민학교 아동의 과학 탐구능력과 태도 향상을 위한 실 험자료의 적용 과학사 신론 중 고등학생의 과학에 대한 태도 연구 과학사를 이용한 수업이 중학생의 과학과
1. 2. 3. 4. 5.
1. 2. 3. 4. 5. 1 10 11 12 13 14 부여는 그 도장에 예왕지인( 濊 王 之 印 : 예왕의 인장)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 나라에는 오래된 성이 있는데, 이름을 예성( 濊 城 )이라 고 한다. 본래 예맥의 지역인데, 부여가 그 가운데 왕으로 있었다. 1 15 16 17 18 19 20 1 2 21 2 22 1 2 23 24 1 2 2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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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성은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되어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므로 성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성가치관은 평생의 성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사회 성문화의 토대가 된다. 그러므로 성과 건강 단원에서는 생명의 소중함과 피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성매매와 성폭력의 폐해, 인공임신 중절 수술의 부작용 등을 알아봄으로써 학생 스스로 잘못된 성문화를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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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SIGIL 완벽입문
누구나 만드는 전자책 SIGIL 을 이용해 전자책을 만들기 EPUB 전자책이 가지는 단점 EPUB이라는 포맷과 제일 많이 비교되는 포맷은 PDF라는 포맷 입니다. EPUB이 나오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전자책 포맷이고, 아직도 많이 사 용되기 때문이기도 한며, 또한 PDF는 종이책 출력을 위해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종이책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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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NORTHEAST ASIAN HISTORY FOUNDATION 39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이승일 김대호 정병욱 문영주 정태헌 허영란 김민영 지음 발간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동북아 세 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독자의 문화를 꽃피움과 동시에 여러 면에서 문화를 공유해왔습니다. 한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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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VOL.13 No.4 2011 08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CONTENTS XXXXXX XXXXXX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3 XXXXXXXXXXXXXXX XXXXXXXXXXXXXX 4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5 6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현안과과제_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_150805.hwp
15-27호 2015.08.05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 국민의 절반 동참시 1조 3,100억원의 내수 진작 효과 기대 Executive Summary 8.14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개 요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침체된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를 목적으로 오는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이에 최근
(012~031)223교과(교)2-1
0 184 9. 03 185 1 2 oneclick.law.go.kr 186 9. (172~191)223교과(교)2-9 2017.1.17 5:59 PM 페이지187 mac02 T tip_ 헌법 재판소의 기능 위헌 법률 심판: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면 그 효력을 잃게 하거 나 적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 탄핵 심판: 고위 공무원이나 특수한 직위에 있는 공무원이 맡
2. 4. 1. 업무에 활용 가능한 플러그인 QGIS의 큰 들을 찾 아서 특징 설치 마 폰 은 스 트 그 8 하 이 업무에 필요한 기능 메뉴 TM f K 플러그인 호출 와 TM f K < 림 > TM f K 종항 그 중에서 그 설치 듯 할 수 있는 플러그인이 많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 림 > 다. 에서 어플을 다운받아 S or 8, 9 의 S or ORE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