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사설-변강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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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강쇠가 박 동진 (소리) 중년에 맹랑한 일이 있던 것이었다. 평안도 월경촌에 한 여인이 살고 있으니, 얼골은 춘이월에 반개도화가 옥빈( 玉 鬢 )에 어리었고, 초승에 지는 달빛이 아미간에 비치었다. 세류같이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하늘하늘. 찡그리며 웃는 것과 말하며 걷는 태도는 서 시, 양귀비라도 따라갈 재간이 없던 것이었다. 그런디 사주 팔자를 어떻게 더럽게 타고 났던지, 서방을 잡아먹는듸 지긋지긋하고 징글징글하게 잡아먹는듸, 꼭 이렇게 잡아먹 던 것이었다. *중몰이 1 열 다섯 살에 얻은 서방은 첫날밤 잠자리에 상한병( 傷 寒 病 )으로 잡아먹고, 열 여섯 살 에 얻은 서방 당창병( 唐 瘡 病 )으로 잡아먹고, 열 일곱 살에 얻은 서방 문둥이 병으로 잡 아먹고, 열 여덟 살에 얻은 서방 벼락맞아 죽어버리고, 열 아홉 살에 얻은 서방 천하에 도적놈으로 포도청에 끌려가서 난장맞아 죽어버리고, 스무 살에 얻은 서방은 비상먹고 죽어버리고, 스물 한 살에 얻은 서방은 지랄병으로 죽어버리니, 서방이 퇴가 나고 송장 이 신물난다. 이삼 년씩 걸러가며 상부( 喪 夫 )를 할지라도 소문들이 흉악할 텐듸, 일년간 에 하나씩을 전례로 다 잡아먹고, 그 중에는 기둥서방, 간부, 애부, 입 한번을 쩍 맞춘 놈, 허리 한번 안어본 놈, 손목 한번 잡아 본 놈, 눈 한번 꿈쩍한 놈, 치마꼬리 한번 쥔 놈, 젖 한번 만져본 놈, 말 한번 건네본 놈, 심지어는 눈 한번을 맞춘 놈까지 그저 대고 죽어 놓으니, 한 달이면 뭇이 넘고, 일년이면 통반이요, 윤삭( 閏 朔 )이 드는 해는 두통 뭇씩 그저 대고 설거지를 하여 놓으니, 남자 볼 수가 전혀 없네. 어찌 대고 서방을 잡아먹었든 지간에, 삼십리 안팎에는 상투 올린 사내놈은 한놈도 볼 수 없고, 열댓 살 먹은 총각놈도 볼 수가 없으니, 여자들이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지 니, 평안도와 황해도 양도가 공론하되, 이 여자를 두었다가는 남자라고는 한놈도 볼 수 1 옹녀 상부( 喪 夫 )이력

2 없고 여인천하가 될 것이라. 이 여자를 다른 도로 쫓아버릴 밖에는 없다 하고 양도가 합세허여 이 여인을 쫓아내니, 저 여인이 하릴없이 쫓기어 나오는데, 파랑보찜 옆에 끼 고, 동백기름 많이 발라 낭자를 곱게 하고, 산호비녀 찔렀구나. 햇동햇동, 나오면서 혼 자 악을 쓰는구나. *진양 2 허허, 이런 인심 보소. 황평안도가 아니면은 사람 살 곳 없다더냐. 삼남 사나이는 더 좋다더라. 노정기( 路 程 記 )로 내려오는듸, 중화( 中 和 )를 지나 황주( 黃 州 )를 지내고, 봉산 서흥 평산을 지나 동설령을 얼른 넘어, 금천 떡전거리를 얼른 지나 청석골 좁은 길로 허유허유 올라를 올 제, 그때 마침 변강쇠라고 하는 놈이 있으니 이 놈이 천하에 잡놈이라. 삼남에서 빌어먹다 가 양서( 兩 西 )가 좋다는 말을 듣고 양서로 올라가는듸, 하필이면 청석골 좁은 골짜기에 서 둘이 서로 딱 만났지. 간흉스런 여자가 힐끗 보고서 지나가니, 음흉스런 강쇠놈이 말을 한번 건네는데, **중몰이 3 여보, 저 마누라님 어디로 가오. 여보, 저 마누라님 어디로 가오. 숫처녀 같었으면 핀 잔을 하고 지내가든지, 그렇지 못허면 모른 척하고 가련마는, 이 간나위 같은 여자가, 홀림목을 곱게 써서, 삼남으로 갑니다. 강쇠가 듣고 묻는 말이, 혼자서 가십니까. 예, 나 혼자 갑니다. 강쇠 듣고 좋아라고, 젊은 나이 고운 얼굴에 무섭겠구만. 내 팔자가 무 상허여 상부를 많이 허고 자식 하나 전혀 없어, 나와 같이 갈 사람은 그림자뿐이라오. 강쇠가 듣고 좋아라고, 당신은 과부요 나는 홀애비라. 우리 둘이 살면은 어떻겠오. 내 팔자가 기박하여 상부를 많이 허고, 다시는 낭군을 안 얻자고 단단 맹서허였드니, 임자 가 하도 그래 싸니 궁합이나 한번 봅시다. ***중중몰이 4 강쇠가 듣고서 좋아라고, 강쇠가 듣고서 좋아라고, 불취동성( 不 娶 同 姓 )이라고 하였으니 그대 성은 무엇이오. 나는 옹가요. 예, 나는 변서방이요. 그대 생은 무슨 생이요. 갑자 생이오. 예, 나는 임술생이오. 나는 궁합을 잘 보기로 삼남에서 유명한듸, 천간으로 보 자 하면, 갑( 甲 )은 양목( 陽 木 )이고 임( 任 )은 양수( 陽 水 )라, 수생목( 水 生 木 )이 더욱 좋고. 납음( 納 音 )으로 말을 하면, 임술( 壬 戌 ) 계해( 癸 亥 ) 대해수( 大 海 水 )라. 갑자을축( 甲 子 乙 丑 ) 해중금( 海 中 金 )허니 금생수( 金 生 水 )가 더욱이 좋다. 아주 천생배필이오. 오늘이 기유일 ( 己 酉 日 )이라. 부부짝패 좋을씨고. 당일 행례를 지냅시다. 여자 역시 좋아라고 흥겨워서 허락하니, 청석골로 처가 삼고 둘이 서로 손목 잡고 바위 위에 올라가서 대사를 치루는 2 옹녀 쫓겨남 3 홀림목(음악기법) 사용. 강쇠와 옹녀 청석골 만남 4 청석골 행례( 行 禮 )

3 데, 신랑 신부 두 년놈이 이력이 찬것이라. 이런 야단이 없더니라. 멀끔한 대낮에 남녀 가 홀딱 벗고 매사에 좋은 장난, 천생 양골 강쇠놈이, 여자 양각 반짝 들고 옥문관( 玉 門 關 )을 들여다 보고, 이상하게도 생겼다, 맹랑하게도 생겼다. 늙은 중의 입이던가 이는 없고 물만 돈다. 쏘내기를 맞었는가 언덕지게 패였구나. 콩밭 팥밭을 지냈는가 돔부꽃 이 피었구나. 도끼날을 맞었는지 금바르게 터졌구나. 생수( 生 水 )터에 온답인가 물이 항 상 괴어 있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옴질옴질하는구나. 천리행정 내려오다 주먹바우가 신통하다. 만경창파 조개든가 혀를 물게 빼어 있고. 임실 곶감을 먹었는지 곶감씨가 곡 물렸고, 만첩청산 으름인가 지가 홀로 벌어졌네. 영계백숙을 먹었던지 닭의 벼슬이 비 쳤구나. 파명당을 지냈던가 더운 김이 모락모락. 지가 무엇이 즐거운지 반만 웃어 두었 구나. 곶감 있고 으름 있고, 조개 있고 영계 있으니, 제사상은 걱정 없네. 저 여자도 좋 아라고, 강쇠 물건을 가르치며, 이상히도 생겼다. 맹랑하게도 생겼구나. 전배사령( 前 陪 使 令 )을 지냈는가 쌍걸랑을 늦게 차고, 오군문( 五 軍 門 )에 군로던가 복떠기를 붉게 쓰고, 송아지에 말뚝인가 철고삐를 둘렀구나. 감기 몸살이 들었는가 맑은 코가 웬일이며, 성 정도 혹독하다, 홰 곧 나면 눈물 난다. 어린아이 병이든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상 에 숭어든가 꼬챙이 구녁이 완연하고, 뒷 절에 중이던가 민대가리가 되었구나. 소년 인 사를 배웠던지 꼬박꼬박 절을 한다. 고초 찧던 절굿댄가 검붉기는 웬일인가. 칠팔월에 알밤인가 두 쪽한테 붙었구나. 냇물가에 물방아던가 떨구덩 떨구덩 하는구나. 절굿대와 소 고삐며 물방아가 있었으니 세간살이 걱정 없네. 강쇠놈도 좋아라고 둘이 서로 꼭 붙 들고 여차 여차 하였구나. 두 사람이 흥에 겨워 놀다가 강쇠가 박장대소하고, 둘이 서로 비겼으니 이제 등에다 업고서 놀아보자. 여인이 좋아라고, 천선호지( 天 先 呼 地 )라 하였으니 낭군이 나를 먼저 업으시오. 강쇠란 놈이 여자를 업고 가끔가끔 돌아보며 사랑가로 놀던 것이었다. *진양 *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유왕( 幽 王 ) 나자 포사( 褒 娰 ) 나고, 걸주 ( 桀 紂 ) 나자 말희달기( 妺 喜 妲 己 )나고, 오왕부차( 吳 王 夫 差 )나나자, 월서시( 越 西 施 )나고, 여 포( 呂 布 ) 나자 초선( 貂 蟬 ) 나고, 당명황( 唐 明 皇 )자 양귀비( 楊 貴 妃 )가 나 있고, 호색남아 내가 나자 절대가인 너 났구나. 니가 무엇을 가지랴느냐. 조거전후( 早 居 前 後 ) 십이승에 야과우를 가지랴느냐. 십오성( 十 五 城 )을 바꾸려던 화씨벽( 和 氏 壁 )을 가지려느냐. 천지신 지( 天 知 神 知 ) 아지자지( 我 知 子 知 ) 생금( 生 金 )덩이를 가져볼까. 부도재산( 浮 道 財 産 ) 득은 옹( 得 銀 甕 )에 은항아리를 가져볼까. 배금문( 排 禁 門 ) 입자달( 入 紫 闥 )의 상평통보( 常 平 通 寶 )를 가져볼까. 밀화불수( 密 花 佛 手 ) 산호비녀 금패지환을 가져볼까. 어허둥둥 내 사랑 이야. * * 사랑가 ** 사랑가 *** 사랑가

4 **중몰이 니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둥굴둥굴 수박 웃꼭지를 뗏뜨리고, 씨랑은 발라서 내버리고, 강능생청을 따르르 부어 붉은 점 한 점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아기 스는데 네 먹으려느냐. 쪽 빨고 탁 뱉으면 껍질 꼭지만 남은 놈을, 건너 바람벽에 딱 부치는 반시 수시( 半 柿 水 柿 )를 네 먹으려느냐. 어주축수애산춘( 漁 舟 逐 水 愛 山 春 )에 무릉도원 복숭아 주랴. 유월 중순 익은 과일 외가지 당참외를 너를 주랴. 어허둥둥 내 사랑아. 강쇠란 놈이 여인을 내려놓고, 여필종부라고 하였으니, 자네도 나를 업고 놀게. 여인이 강쇠를 업고 노는듸, 핼끔핼끔 돌아도 보며 까불겠다. ***중중몰이 둥둥둥 내 사랑, 어허둥둥 내 사랑. 태산같이 높은 사랑, 하해같이 깊은 사랑. 남창북 창( 南 倉 北 倉 ) 노적( 露 績 )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하수에 직녀같이 올올이 맺힌 사람. 모란화 송이같이 펑퍼져 버린 사랑. 세곡선( 稅 穀 船 ) 닻줄같이 올올이 꿰인 사랑. 내가 만일 없었으면 풍류남아 우리낭군 황이 없는 봉이 되고, 님을 만일 못 보았으면 군자호 구( 君 子 好 毬 ) 이 내 몸이 원 잃은 앙이로다. 기러기가 물을 보고 나비가 꽃을 만났도다. 옹기종기 좋을씨고. 동방화촉 무엇하랴. 백일향락( 白 日 享 樂 ) 좋을씨고. 황금집도 내사 싫네, 청석골이 제격이라. 둥둥둥둥, 어허둥둥 내 사랑. 남녀가 재미있는 장난이 어찌 한두 번이랴. 일차 이차 삼사 오차를 치루더니, 살림살 이 할 걱정을 하는듸, 우리들은 안팎이 모두 오입쟁이라, 깊은 산중은 살 수 없고, 도방 으로 살아보세. 둘이 서로 손을 잡고 도방으로 찾어갈 제. *중몰이 둘이 서로 손목 잡고 도방 각처로 다니는데, 일원산( 一 元 山 ) 이강경( 二 江 景 ), 삼포주 ( 三 浦 州 ) 사법성( 四 法 聖 ), 오개주 육도듬 곳곳으로 다니면서, 여자는 애를 써서 돈양돈 관 모아놓으면 강쇠놈은 허망하여, 닷냥내기 뺨때리기, 두냥내기 갑오띄기, 갑자꼬리 여 수( 與 受 )하기, 장군멍군 장기두기, 맞춰먹기 돈치기며, 불러먹기 주먹치기, 골패떼기 윷 놀기와, 한집 두집 곤의두기, 의복잡혀 술먹기와, 남의 싸움 가로막기, 그 중에는 무슨 비위로 강짜 싸움에 계집을 때리는데, 복날 개 잡듯 날마다 두드려 피니, 사람 살 수가 전혀 없네. 하루는 여인이 강쇠를 보고서 하는 말이, 당신 성질 가지고 도방살이 하다가는 맞아 죽기 알맞겠으니,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팥밭이나 파서 먹고 시초( 柴 草 )나 비어 때면, 첫째로 노름도 못할 것이요, 강짜도 못할 테니 산중으로 들어갑시다. 강쇠 듣고 하는 * 도망살이 ** 지리산 찾아감 * 지리산 정착

5 말이, 그 말이 좋다. 십년을 굶더라도 남의 계집 보고 눈웃음 안치는 놈만 보면은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자네 말대로 하세. **잦은몰이 산중으로 가자 하면 동금강( 東 金 剛 )은 석산( 石 山 )이라, 나무가 없어서 살수 없고, 북향 산( 北 香 山 )은 찬 곳이라 눈이 많어 살 수 없고, 황해도 구월산( 九 月 山 )은 도둑 많어 살 수 없고, 지리산( 智 異 山 )이 좋다 하니 지리산으로 가잤구나. 약간 남은 살림살이를 짊어지고서 자리산중을 찾아가니, 첩첩한 골짜기에 기와집 한채 가 덜름 서 있구나. 이 집은 어떤 부자가 임진왜란 때에 난리를 피해서 산중으로 들어 왔다가, 이 집을 짓고 살다가, 난리가 평정되니 뜯어갈 수 없어 그저 두고 갔는지라. 호 랑이, 여호, 멧도야지, 다람쥐가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라. *중중몰이 강쇠놈이 좋아라고, 강쇠놈이 보고서 좋아라고, 얼씨구나 절씨구, 새사 또는 간 곳마다 선화당( 宣 化 堂 )이 있다는데, 내 팔자도 방사( 倣 似 )하다. 적막한 이 산중에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이렇게 좋은 기와집을 지어 놓고 기다렸나. 부엌에다 솥을 걸고, 방을 쓸고 멍석 깔고, 낙엽을 긁어다가 저녁밥을 지어 먹고, 터 누르기 삼삼구( 三 三 九 )를 밤새도록 한 연후에, 강쇠놈의 평생행세( 平 生 行 世 ) 일을 해보지 못한 놈이라. 낮이면은 낮잠만 자고 밤이 되면 배만 타는데, 사람 환장하게 배를 타니, 여인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하루는 강쇠 를 보고서 하는 말이, **진양 여보 낭군 듣조시오. 천생만민 필수지직( 天 生 萬 民 必 涭 之 職 ) 사람마다 직업 있어, 앙사 부모( 仰 事 父 母 ) 하육처자( 下 育 妻 子 ) 넉넉하게 산다는데, 낭군 팔자 생각하면, 어려서 못 배운 글 지금 공부할 수 없고, 손재주가 없었으니 목수 노릇 할 수 없고, 밑천 한푼 없 었으니 장사질을 할 수 없고, 다만 낭군이 할 일은 삯일밖에 할 수 있오. 이 산중에서 살자 하면, 산전( 山 田 )을 많이 파서 두태( 豆 太 ) 심고 담배 갈고, 칼퀴나무 비나무며 물 거래며 장작패기 나무를 많이 해서, 집에도 때려니와 남원장 운봉장에다가 내다 팔면, 부모 없고 자식 없어 단 두 내외 우리 부부 생계가 넉넉할 것 인듸, 건장한 저 신체에 밤낮으로 하는 일이, 낮이면은 낮잠만 자고 밤에는 나를 조르니, 굶어 죽기는 고사하고 우선 얼어서 죽을 테라. 오늘부터는 지게를 짊어지고 나무나 좀 해다 주시오. 강쇠 듣고, 허허 웃더니만, 참말로 허망하다. 호달마( 胡 達 馬 )가 늙으면은 왕십리에서 거름 싣고 다니고, 기생이 늙어 놓으면 길거리 앉아서 막걸리 장사를 한다더니만, 나 ** 옹녀 정설( 情 說 ) * 변강쇠 탄식

6 같은 오입쟁이가 나무지게 진단 말이 웬말인고. 불가사문( 不 可 使 聞 )이면 어타인( 於 他 人 ) 이라. 자네 말이 그러하니 내가 나무하여 옴세. 강쇠가 나무하러 가는데, 도복 입고 관 쓰고 갔단 말은 거짓말이라. 본시 제 집은 근본 없는 놈이라, 장판에서 빌어먹던 놈이 차린 복색 그대로 가겠다. 단중몰이 통영갓에 망근 쓰고, 한산모시 소창의와, 곤때 묻은 삼승 버선 맵시 있게 잡아매고, 낫 과 도끼 들게 갈아 지게에다 달아 매고, 지게를 번쩍 들어 왼 어깨에 둘러메고, 긴 담 뱃대 입에 물고, 나무꾼들 모인 데로 완보행가( 緩 步 行 歌 ) 걸어간다. 그래도 화방퇴물( 花 房 退 物 )이라, 목구성이 남보다 좋아서, 이놈이 소리를 한마디 하며 가것다. *중중몰이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 木 德 )으로 왕을 하시니, 오행9 五 行 ) 중에 먼저 나서 나무 덕( 德 ) 이 제일이라. 천지간에 삼황시절 일만 팔천 살을 살았으니, 내가 그때 낳았더라면 그 얼마나 좋았을까. 유왈유소( 有 曰 有 巢 ) 성인인군( 聖 人 人 君 ) 덕화( 德 化 )도 장할씨고, 구목 위소( 構 木 爲 巢 ) 식목실( 食 木 實 ) 그 아니 좋았으며, 수인씨는 화식이라 일이 점점 생겼구 나. 일출이작( 日 出 而 作 )요순( 堯 舜 )시절 어찌 편타 하겠는가. 하나라와 은나라며 주나라 한나라와 송나라며, 갈수록 풍우 일어 일이 점점 생겼으니 불쌍한 게 백성이라. 일년 사철 놀 새 없이 손톱 발톱 잦아지게 밤낮으로 벌어봐도 불승기한( 不 勝 飢 寒 )할 수 없네. 내 팔자를 생각하면 남보다는 다르구나. 좋은 의복 값진 패물 호사도 많이 하고, 고운 여자 좋은 술에 잡기들로 벗을 삼아 세월 가는 줄 모르더니, 층암절벽 높은 봉에 다리 가 아파 어이 가며, 억새 포기가시 넝쿨 손이 아퍼 어찌 비며, 나무하여 한짐 되면 어 깨 아퍼 어찌 지며, 무인지경 심심산중 심심해서 어찌 올까. 이렇닷이 자탄하며 정처 없이 가는 구나. 이때에 동구마천 백모촌에 나무하러 오는 아이들이 모여와서, 방아타령 산타령 농부가 를 부르것다. 한놈이 나서면서, 방아타령을 부르는듸 경조로다. 부르것다. **경조 중중몰이 어유하 방아요, 어유하 방아요. 산에 올라 산전방아, 들에 내려 물레방아, 여주 이천에 밀다리방아, 통천 진천 오려방아, 남북창 화약방아, 각댁하는 용정방아, 이 방아 저 바 아 다 버리고, 칠야삼경 깊은 밤에 우리님 방아가 더욱 좋다. 어유화 방아요. 이 방아를 낸 사람은 알고서 부르는가 모르고서 부르는가. 경신년 경신월 경신일 경신시 강태공의 조작이로다. 어유하 방아요. ** 초동 방아타령 * 육자배기 ** 농부가

7 또 한놈이 나앉으며, 전라도 육자배기를 부르는듸, 간드러지게 부르것다. *진양 전당호 맑은 물에 채련하는 아이들아. 십리장강 배를 매고 물결이 곱다고 자랑을 말어 라. 그 물에 잠든 용이 깨고 보면, 풍파 일까 염려로구나 헤. 또 한놈은 농부가를 부르것다. **중몰이 어허어허 어허여루 상사디요. 어허여루 상사디요. 여보아라, 농부들아. 이내 말을 들어 봐라, 아나, 농부야 말 들어라. 선리건곤( 仙 李 乾 坤 ) 태평시에, 도덕 높은 우리 성상 강 구 노인 동요를 듣던, 요임금에 버금이로구나. 허여루 상사디요. 강쇠놈이 듣고서, 제 신체를 생각하니 어린아이들과 같이 할 수 없다. 도끼 빼어 손에 들고 이 봉 저 봉 다니면서, 큰 나무만 골라 댓 번씩 팍팍 찍고, 나무타령 한바탕을 하 던 것이었다. ***중몰이 ** 오동나무 비자 허니 순임금의 거문고요, 살구나무를 비자 허니 공자님의 강단( 講 檀 )이 요, 소나무를 비자 허니 진시황( 秦 始 皇 )의 오대부( 五 大 夫 ) 잣나무가 좋다마는 한 고조가 덮던 그늘, 어주축수( 漁 舟 逐 水 ) 애산춘( 愛 山 春 )에 홍도( 紅 桃 )나무가 좋을씨고. 위성조우 읍경진( 渭 城 朝 雨 浥 輕 塵 )에 버드나무가 좋을씨고. 밤나무는 신주 깎고 전나무는 돛대감 이라. 가사목은 단단하여 각 영문에 곤장 감이고, 참나무는 꼿꼿하여 노를 젓는 상앗대 라. 이 나무 저 나무를 생각하니 벨 나무가 전혀 없다. 산중 동천 물 좋은데 점심 구럭 풀어 놓고, 나무는 하나 않고 점심만 단단히 먹은 후 에, 부숫돌을 탁 쳐서 담배 한대 먹은 후에, 솔그늘 잔디밭에 돌베개를 높이 베고, 드러 누워 글 한수를 읊겠다 우래송수( 雨 來 松 樹 )하( 下 )에 고침석두면( 高 枕 石 頭 眠 )이라. 이를 두고 한 말이라. 어허, 잠자리 좋구나. 코를 고는데, 산천이 드릉드릉 코를 골고 자는데, 낯바닥이 선뜻 선뜻 하는지라. 눈을 뜨고 바라보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 났는지라. 게으 르게 일어나서 기지개를 불끈 쓰고 뒷꼭지를 탁탁치며 혼잣말로 하는 말이, 요새 해가 그렇게 짧던가. 빈 지게 짊어지고 가면은 계집년이 지랄할 텐데, 이 일을 어찌한담. 사 방을 둘러보니 동구마천 가는 길에 장승 하나 서 있구나. 강쇠놈이 좋아라고, 벌목정정 ( 伐 木 丁 丁 ) 할 것 없이 애 안쓰고 잘 되었다. 일모도궁( 日 暮 途 窮 ) 내 사세가 불로이득 ( 不 勞 而 得 )이로군. 지게를 찾아 지고 장승 앞을 급히 가니, 장승이 화를 내며 낯에 핏기 ** *** 나무타령 * 호령조. 변강쇠 장승호령

8 를 올리고서, 두 눈을 딱 부릅뜨고 섰는지라. *엇몰이 강쇠놈이 호령한다. 네 이놈 누구 앞에, 네 이놈 누구 앞에 눈방울을 부릅뜨느냐. 삼남 설축 변강쇠를 이름도 못 들었느냐. 파시평과 사당노름 씨름판에 내 손으로 사람 칠 제, 선취복장 후취덜미 범강 장달 같은 놈도 내 앞에 떨어지는데, 수족 없는 네깐놈이 생심 이나 바랄 소냐. 달려들어 불끈 안어 장승을 쑥 빼어내어 지게다가 짊어지고, 유대군 ( 留 待 軍 ) 노래하며 저의 집으로 들어가며, 이 집에 아무도 없나. 장작나무 하여 왔네. 뜰 가운데 턱 부리고 방문 열고 들어가며, 여보, 마누라. 장작나무 하여왔네. 장작나무 하여 왔어. 강쇠계집 반겨라고, 어찌 그리 늦으셨오. 오죽이나 시장하겠오. 밥 자시요. 불 켜놓고 밥상 차려 방에 들여 보낸 후에, 장작나무 구경차로 불 켜들고 나와 보니, 어떠한 사람 인지 뜰 가운데 누었는데, 조관( 朝 官 )을 지냈는가 사모품대( 纱 帽 品 帶 ) 점잖하고 방울눈 주먹코에 채수염이 점잖하다. 강쇠여편네가 깜짝 놀라, 뒤로 발랑 자빠지며 발광을 부 리는데, **잦은몰이 허허, 이게 웬일인가. 나무하러 간다더니 장승 빼어 왔소그려. 아무리 나무가 귀타 한 들 장승 빼어 땐단 말은 고금천지 첨 보았오. 만일 장승패 땐다면, 목신동증( 木 神 動 症 ) 조왕동증( 竈 王 動 症 ) 목숨 살기 어려우니, 어서 급히 지고 가서 그 자리에 도로 꼽고, 왼 발 굴러 진언( 眞 言 ) 치고 달음질로 달려오시오. ***중몰이 강쇠 듣고 호령한다. 에라, 요것 방정맞다. 가사( 家 事 )는 임장( 任 長 )이라. 가장 이 하는 일을 보기만 할 것이지, 계집이 방정맞게 이 소리가 웬소린가. 개자추( 介 子 推 )도 타서 죽고, 한나라의 기신( 紀 信 )이는 형양( 滎 陽 )땅에 타죽어도 아무 탈이 없었는데, 나무로 깎아 세운 장승을 패 때면은 어떠하랴. 인불언 귀부지( 人 不 言 鬼 不 知 )라 망할 말을 하지 마라. 밥상을 물려놓고 도끼를 번쩍 들고 장승에게 달려들어, 쾅쾅 패어 쪼각 내어 군 불을 많이 때고, 유정부처 홀딱 벗고 개폐문( 開 閉 門 ) 전례판( 傳 例 板 )을 멋지게 한번을 돌렸구나. 그때에 장승 목신 무죄간에 강쇠 만나, 도끼 아래 조각 나고, 아궁이 탄 재가 되어 오 죽이나 원통하랴. 허공중천 높이 떠서 울다가, 나 홀로는 이 원수를 못 갚겠네. 대방님 전 찾어가서 이 원정을 아뢰리라. 서울 노들 선창가에 장승대방 찾어가서, 문안을 드린 ** 옹녀가 깜짝 놀라 *** 호령조. 참사람이 타죽어도 * 장승 설원( 雪 原 ) ** 장승대방 대경( 大 驚 )

9 후에 원정을 아뢰는데, *중몰이 소장은 경상도 함양에서 산을 지키는 장승으로, 신기( 神 祈 ) 처리 한 일없고 불피풍우 하고 있어 우두커니 서 있는데, 변강쇠라 하는 놈이 일국의 난봉꾼으로, 산중에다 취첩 하여 무죄한 소장에게 공연히 달려들어 무수히 곤욕하고, 소장을 빼어내어 지게에다 짊 어지고 제 집으로 들어가니, 계집은 깜짝 놀라 도로 갖다 세우라 하되, 강쇠놈이 아니 듣고 도끼 들고 달려들어 쾅쾅 패어 자작 내고, 부엌에다 군불 때고 화장을 하여 놓으 니, 이놈을 두었다가 근방의 장승들이 삼동( 三 冬 )에 장작 감으로 모두다 될 것이니, 순 망치한( 脣 亡 齒 寒 ) 되었으니 깊이 통촉하옵소서. **잦은몰이 장승대방 크게 놀라 이런 변괴 처음이라, 경홀작처 할 수 없다. 지지대의 유사님과 사 그내 유사( 有 司 )님께 내 전갈을 전한 후에, 요새 적조하였으니 문안 안녕하옵시고, 함양 동관 발괄[ 白 括 ]사정 자세히 듣사오니 전고 없는 재변이라. 수고타 마옵시고 일차 왕림 하옵소서. 동의작처 한 연후에 어서 급히 모셔오라. 장승 혼령 분부 듣고 두 곳에다 전 갈하니, 공원 유사 급히 와서 수인사를 드린 후에, 함양동관 발괄[ 白 括 ] 내력 대방이 반론하니, 우리 장승 생긴 후의 처음 만난 변괴이라, 삼 소임만 가지고서 경홀작처할 수 없다. 팔도 동관 다 청하여 공론 처사 하옵시다. 대방이 좋다 허고, 입으로다 붓을 불어 통문 넉장 써 냈으니 그 통문에 하였으되 (창조) 우통유사( 右 通 喩 事 )는 토끼가 죽으면 여호가 슬퍼하고, 지초가 불에 타면 난초가 슬퍼 하나니, 유유상종은 환난상구( 患 難 相 救 )라. 떳떳한 이치로다. 지리산중 함양동관 빼어다 가 작파( 斫 破 ) 화장 하였으니 만과유경( 萬 剮 猶 輕 ) 이 놈의 죄상을 경홀작처 할 수 없어, 각도 동관에게 발통하노니, 금월 초삼일 삼경에 서울 노들 선창으로 일취하여, 함양동 관 조상하고 변강쇠놈 죽일 일을 각출의견 하옵소서. 연월일 쓰고, 방방곡곡 거리거리, 각영문, 산중 동구밖, 절 들어가는 문전까지 차차로 전할 적에, *중몰이 통문 한장 지어내어 사그내 공원이 맡어가지고, 경기도 삼십사관, 충청도 오십사관, 차 례로 전케 하고, 또 한장을 들더니만 지지대 유사가 맡어가지고, 경상도 칠십일관, 전라 도 오십육관, 차례로 전케 하고, 세째장을 들더니만, 홍제원 동관이 맡어가지고, 황해도 이십삼과, 평안도 사십이관, 차례로 전케 하고, 네째장은 양주 다락원 동관이 맡어가지 고, 강원도 이십육관, 함경도 이십사관을 차례로 전케 하라. 이렇듯이 분부하여 각처로 모두 보냈구나. 귀신의 조화여든 오죽이나 빨랐으랴. 구름같이 바람같이 경각간에 전해 놓으니, 팔도 * 장승 통문(통문) 전달 ** 장승 회의

10 의 장승들이 기약한 그 날짜에 하나도 빠짐없이 새남터로 모여와서, 새남터에 박혀 서 서, 노량진 대방동 시흥읍내 안양읍내 지지대 고개까지 빽빽이 들어섰겠다. 장승들이 절 하는 법 고개를 숙일 수도 없고, 허리를 굽힐 수도 없으니, 사람으로 치면은 앞 발 뿌리만 디디고 뒤축만 달싹하던 것이었다. 문안을 일시에 드린 후에 대방이 반론 하는 데, 통문에 보았지만 변강쇠놈을 어떻게 다스릴꼬. 함경도 단천에 있는 장승이 하는 말 이, 그놈의 식구대로 새남터로 잡아다가 목을 비여 죽입시다. 대방이 하는 말이, 사단 ( 事 端 )이 하나 있으니, 계집은 말렸으니 죄를 줄 수 없는지라. 다시금 생각하오. 전라도 해남 관머리 있는 장승이 나앉으며 하는 말이, **잦은몰이 대방님의 하신 분부 절절이 옳습니다. 그렇게 흡한 놈을 쉽사리 죽여서는 설치가 안될 테니, 고생을 실컷 시키다가 죽자 한들 죽지도 못하고, 살자 한들 살 수도 없고, 칠칠이 사십구 한달 열아흐레 동안을, 밤낮으로 볶아대다 험사악사 하거드면, 장승 화장한 죄 인 줄 저도 알고 남도 알아, 쾌히 징계될 터이니, 우리 장승 수효대로, 병 하나씩 가지 고서 강쇠놈을 찾어가, 신문( 囟 門 )에서 발톱까지 오장육부 내외까지, 새 집 질 제 앙토 하듯, 각장 장판 기름 찌듯, 왜관목물 칠 칠하듯 겹겹으로 발랐으면 그 수가 어떠하오. 대방 듣고 좋아라고, 불변이요, 장히 좋소. 그대로만 하옵시다. 이렇듯이 공론하고, 조고 만한 강쇠놈에 이렇게도 많은 장승이 사정없이 달려들면, 많은 데는 틈이 없고 빠진 데 는 틈이 나니, 머리에서 두 팔까지 경상 전라 차지하고, 겨드랑이서 볼기까지 황해 평 안 차지하고, 항문에서 발등까지 강원도 함경도 차지하고, 오장육부 내복 일부는 경기 충청 차지하고, 팔만 사천 빠짐없이 잘 발라라. 팔도 장승 영을 듣고 사냥 나온 벌떼같 이 병 하나씩 등에 지고, 함양 장승 앞을 서고 강쇠놈에 달려들어, 각기 소장 맡은 대 로 병 도배를 하더니만, 구름같이 안개같이 사라지고 마는 구나. 그때에 강쇠놈은 장승 패어 덥게 때고, 그날 밤을 자고 나도 아무 탈이 없는지라. 한 이틀을 지내봐도 아무 탈이 없지. 이놈이 장담을 하는데, 그러지, 제놈이 감히 나를 어 찌한단 말인가. 이 근처에 있는 장승을 모두 다 빼다 때면 봄 나기는 걱정 없다. *중몰이 한참 곤히 자는 판에, 천만의외 장승들이 진을 치고 달려들어, 강쇠놈을 건드리고 말 이 없이 나가는구나. 강쇠가 깜짝 놀라 깨어서, 일어나려 하였지만 일어날 수 전혀 없 네. 눈을 뜨려 하였지만, 두 눈이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구나. 만신을 결박하고 각색 으로 쑤시는데 암만해도 죽겠구나. 날이 차차 밝아오니 강쇠 계집 잠을 깨어, 강쇠를 바라보니, 정녕 한 송장이라. 신음하고 앓는 소리 숨은 아주 안 그쳤다. 깜짝 놀라 옷을 입고 미음을 급히 끓여, 소금을 많이 넣고 입 벌리고 떠넣으면서 전신을 만져보니, 이 빨을 꼭 앙등물어 미음이 들어갈 수 전혀 없다. 낭자한 부스럼이 어느 새 농창하여 코 를 들 수 전혀 없다. * 변강쇠 발병

11 병 이름을 짓자고 하면 만가지도 더 되는듸 잦은몰이 풍두통( 風 頭 痛 ) 편두통( 偏 頭 痛 )에 담결통( 痰 結 通 )을 곁들였고, 쌍다랏 석서기에 청맹( 靑 盲 )을 겸하였고, 이롱증( 耳 聾 症 ) 이명증( 耳 鳴 症 )에 귀젓을 겸하였고, 순종( 脣 腫 ) 풍치 충 치에다 구와증( 口 蝸 症 )을 겸하였고, 비창 비색 주독에다 면종 협종을 겸하였고, 흑태( 黑 苔 ) 백태( 白 苔 )설축증에 낙함증( 落 頷 症 )을 겸하였고, 후비창( 喉 痺 瘡 ) 천비창( 穿 鼻 瘡 )에 항 강발제( 項 强 髮 際 )를 겸하였고, 연주( 連 珠 ) 나력에 견비통에 용절을 겸하였고, 흉결복장 부종증에 임질( 淋 疾 ) 산증( 疝 症 )을 겸하였고, 퇴산( 退 疝 ) 둔종 치질에다 탈항증( 脫 肛 症 ) 을 겸하였고, 가랫돗 발바닥 독종에다 티눈을 겸하였고, 주로( 酒 癆 ) 색로 담로에다 주체 식체를 겸하였고, 황달 흑달 고창병에 적리( 赤 痢 ) 백리( 白 痢 )를 겸하였고, 각궁반장( 角 弓 反 張 ) 광란에다 토사를 겸하였고, 해수( 咳 嗽 ) 지수 헐덕병에 괴질을 겸하였고, 하루거리 이틀거리 며누리심을 겸하였고, 올치락 날치락 사( 邪 )증에다 헛손질을 겸하였고, 단독 ( 丹 毒 ) 양독( 陽 毒 ) 온역( 溫 疫 )에다 경중 복하를 겸하였고, 내종 간옹 주마담에 염병 시 병을 겸하였고, 울화 허화 조갈병에 열광증을 겸하였고, 굽도 접도 꼼짝달싹 못하구서 빳빳이 누웠구나. 여인이 겁을 내어 점이나 한번 쳐 보리라. 경채 한 냥 품에 품고 건너 마을 송봉사집 찾어가서, 봉사님 계십니까. 봉사의 대답은 원수진 사람같이 하던 것이었다. 거 누구여. 강쇠 지어미로소이다. 그 건강한 사람이 밤새에 얻은 병이 꼭 죽게 되었으니 점이나 한 번 쳐 주시오. 봉사 듣고, 허허 그거 참말로 안됐구만. 봉사가 무릎을 단정히 꿇고 축사 를 외우는데, 엇몰이 천하( 天 何 )는 언재( 言 哉 )시며 지하언재( 地 何 言 哉 )시리요마는, 고지즉응( 叩 之 即 應 ) 하나 니 감이순통 하옵소서 부대인자( 夫 大 人 者 )는 여천지합기덕하고, 여일월합기명하고 여사 시합기서하며, 여귀신합기길융하시니, 을유갑자삭( 甲 子 朔 ), 해동조선 경상우도 지리산중 변강쇠가 우연히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하니, 복걸제 선생은 물비( 勿 秘 ) 소시( 昭 示 ), 물 비 소시. 점 대롱 마개를 빼고 고개를 기우뚱 기우뚱 하며 문자로서 말을 하는데, 사목비목( 似 木 非 木 ) 사인비인( 似 人 非 人 )이라. 나무라고 할까 사람이라고 할까. 강쇠여편네 하는 말 이, 남정네가 나무를 하러 가더니만 장승을 짊어져다 패 땠지요. 암만해도 장승 동투가 났는가 싶습니다. 봉사 듣고, 그렇지, 그려. 목신이 발동하고 잡귀가 범했으니, 살기는 트자에다 을을 했구만. 강쇠부인 하는 말이, 죽더라도 한이나 없게 경이나 좀 읽어주오. 강쇠부인 먼저 가서, 황토 깔고, 목욕하고, 빤 의복을 내어 입고, 살망떡, 과일, 채소, 삼색실과 차려놓고 기다리니, 봉사가 더듬 더듬 더듬 들어오며, 차렸는가 어쨌는가. 차

12 렸소. 그러면 경을 읽어야지. 봉사라고 하는 것이 경을 읽게 되면은 대신을 내던 것이 었다. 북통 들고 꽹과리 엎어놓고 조왕경( 竈 王 經 )을 읽는듸, 휘몰이 허허, 조왕신 조왕신 복두칠성 조왕신. 나무남방( 南 無 商 方 ) 목살귀신( 木 狀 鬼 神 ), 나무동방 목살귀신, 나무서방 목살귀신, 나무북방 목살귀신. 너도 먹고 물러가고 나도 먹고 물러가라. 사귀야 사귀야, 방에 있는 놈 죽든 살든, 부엌에 있는 년은 내 차지라. 허허 사파세- 봉사가 경을 읽고, 자네 경채( 經 債 ) 어찌 됐는가. 응. 여인이 경채 말을 하니 샐죽하여, 경채고 서울채고 여기 있오. 돈 한냥 내어주니 봉사가 받더니마는, 안개 속에 소 나가듯 나가는구나. 강쇠 여편네 생각한즉, 약과 침을 놓아보자 하고, 함양 잿바지에 용한 의원 있단 말 듣고 찾아가서 사 정하니, 이진사가 허락하고 건너오더니, 병을 볼 때, 왼팔을 걷어 부치고 병을 보는데, *잦은물이 *** 신방광맥 ( 腎 肪 胱 脈 )이 침지 ( 池 遲 )하니 장냉증이 박한 것이요, 간담맥 ( 肝 謄 脈 )이 침실하니 절륵복통 날 것이요, 심수맥 ( 心 水 脈 )이 침지하니 기촉복통 할 것이요, 폐대장 맥 ( 肺 大 腸 脈 )이 부현 ( 浮 弦 )하니 해수냉결을 할 것이요, 내관이 외격하니 암만해도. 죽 겠구나. 약으로써 써 보리라. 인삼 녹용 우황( 牛 黃 ) 주사( 朱 砂 ) 관계 ( 官 桂 ) 부자( 附 子 ) 곽향( 藿 香 ) 축사( 縮 砂 ) 적복령( 赤 茯 帶 ) 백복령과 적약자와 백약자며 강활 독활 시호( 紫 胡 ) 전호( 前 胡 ) 천궁( 川 芎 ) 백지 ( 白 芷 ) 당귀 황기 참목 백출 삼릉( 三 凌 ) 봉출( 蓬 朮 ) 방 풍( 防 風 ) 소엽( 蘇 葉 ) 박하( 薄 荷 ) 진피( 陳 皮 ) 반하( 半 更 ) 후박( 厚 朴 ) 용뇌( 龍 腦 ) 사향( 麝 香 ) 별갑( 鱉 甲 ) 귀판( 龜 板 ) 대황( 大 黃 ) 망초( 芒 硝 ) 산약( 山 藥 ) 사택( 瀉 澤 ) 건강( 乾 薑 ) 감초 생 강 대초 갖가지로 다 써본들 효험이 바이 없다. 가미육군자탕, 청서육화탕, 청풍보음탕, 갈근탕, 방풍통성산, 부익환, 팔미탕, 육미탕, 탕약으로 안되겠다. 사약으로 써 보리라. 지렁이 굼벵이 섬사주 독사탕 무가산 황금탕 오줌찌끼 월경수며 땅강아지 거머리와 메 뚜기며 가물치 올빼미 쪽제비 미꾸라지 송사리 개구리 올챙이를 다 써봐도 암만해도 죽 겠구나. 이진사 하는 말이, 약은 백 가지고 병은 만가지라. 말질( 末 疾 )일세 말질이여. 하직하고 간 연후에, 약과 침의 효력인지 목신의 조화든가 강쇠가 말을 하며, 여인 손목 덥석 잡 고, 낙루하며 하는 말이, *진양 *** * 약성가 ( 藥 性 歌 ) * 변강쇠 유언 ** 장승죽음

13 자네는 양서 사람 이 몸은 삼남 사람, 하늘이 지시하고 귀신이 중매하여, 가다 오다 맺은 연분 죽자 살자 깊은 맹세, 단산의 봉황이요 녹수에 원앙이라. 잠시 이별 마자 하 고 백년 살자 하였드니, 한밤중에 얻은 병이 백약도 효력 없어, 청춘 목숨 이 내 몸이 하릴없이 죽게 되니, 생기사귀( 生 寄 死 鬼 ) 성인 말씀 나는 섧지 않지마는, 생리사별 자네 정경 차마 어찌 보자는가. 불같이 붙던 정이 구름같이 흩어지며, 눈과 같이 녹는 간장 안개같이 이는 수심, 도리화 피는 봄과 오동잎 지는 가을, 두견새는 슬피 울고 기러기 가 높이 날 제, 독수공방 저 신세가 어찌 아니 불쌍하랴. 자네 정경 생각하여 아무리 살자 한들, 내 병세가 지독하여 기어이 죽을 테니, 이 몸이 죽거들랑 염습하고 입관할 제, 자네 손수 하여 주고, 출상할 제상부배행, 시묘살이 조석상식 삼년상을 지낸 후로, 비단수건 목을 졸라 황천으로 들어오면, 이생에 미진한을 단현복속( 斷 弦 復 續 ) 되련마는, 내가 지금 죽은 후에 서방이라 명색하고 자네 몸에 손 대거나 이 집 근처 얼른 하면, 직각 급살할 것이니 부디부디 명심하소. **중몰이 속곳 밑에 손을 넣고 여인 것을 콱 쥐더니, 우두두둑 힘을 주니, 불끈 일어나 우뚝 설 제, 건장한 두 다리는 유엽전( 柳 葉 箭 )을 쏘려는 듯 비정비팔( 非 正 非 八 ) 빗디디고, 바위 같은 두 주먹은 십왕전( 十 王 殿 )의 문지긴지 눈위에 높이 들고, 경쇠덩이 같은 눈은 홍 문연( 鴻 門 宴 )에 번쾌( 樊 噲 )인지 찢어지게 부릅뜨고, 머리 풀어 산발하고 혀를 빼어 길게 물고, 집동같이 부은 몸이 피고름이 낭자하고, 주장군( 朱 將 軍 )은 뻣뻣 스고 목구녁에 숨 소리만 깔딱깔딱, 코구녁에 찬 바람만 쏴쏴, 생문방( 生 門 方 ) 안을 하고 장승죽엄을 하였 구나. 여인이 겁이 나서 울 생각도 없지마는, 저 놈의 성미를 생각하고 임종시에 유언이 있 어 전례곡( 奠 禮 哭 )을 드리는데, 건성으로 울던 것이었다. 비녀 빼어 낭자 풀어 헛뜨리고 땅을 치며 우는데, 잦은몰이 허허, 이게 웬일인가. 허허, 이게 웬일인가. 아이고 여보 변서방아, 날버리고 어데 갔 나. 나도 가세 나도 가세. 님을 따라 나도 가세. 청석골서 만날 적에 백년 살자 하였드 니, 황천길을 혼자 가니 일장춘몽 허망하네. 적막산중 텅빈 집에 강근지친( 强 近 之 親 ) 고 사하고 동리 사람 없었으니 낭군치상 어이 하며, 이내 팔자 어찌할까. 무슨 년의 팔자 로서 상부복을 그리 타서, 송장을 많이 보았으나 보던 중에 처음일세. 아이고, 아이고, 서른지고. 나를 만약 못 잊어서 눈을 감지 못했으면, 날 잡아 가소. 날 잡아가소. 아이 고, 아이고, 어쩔거나. 한참 이리 슬피 울다, 사자밥을 지어 놓고, 옷깃 잡아 초혼( 招 魂 )하고, 혼잣말로 우는 말이, 무인지경 이 산중에 나 혼자 울어봐도 낭군 치상할 수 없네. 시충출호( 尸 蟲 出 戶 ) 될 것이니, 대로변에 앉어 울어 호협남자 만나면은 치상을 할 것이다. 이렇듯이 생각하

14 고, 상부에 이력이 많아 소복은 많었겠다. 소복을 한 연후로, 외씨 같은 고운 발씨 삼승 버선 신은 후에, 구름같이 풀은 머리 헛뜨러지게 잡아매고, 도화색 두 뺨에는 눈물 흔 적 더 이쁘다. 아장아장 대로변에 나와 앉어, 시냇가에서 보일 듯 말 듯하게 단정히 앉 어 구슬픈 울음을 우는듸, 이것은 묵은 서방 생각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햇서방 부르 는 울음이라, 오즉이나 슬프랴. 중몰이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내 신세를 어찌 할까. 일신이 고단하여 이십이 넘은 후로 삼남으로 찾어오니 사고무친 객지로다. 오행궁합( 五 行 宮 合 ) 좋다기로 육례( 六 禮 )없이 얻 은 낭군, 칠차상부 또 당하니 팔자도 험상궂다. 구곡간장 맺힌 한을 시왕전( 十 王 前 )에 아뢰리라. 유상( 柳 上 )에 우는 꾀꼬리 벗을 찾아 운다마는, 황천 가신 우리 낭군 언제 다 시 오단 말가. 동원도리편시춘( 東 園 桃 李 片 時 春 )에 내 신세를 어이하며, 춘초년년( 春 草 年 年 ) 푸르른데 낭군 어이 귀불귄고. 염라국이 어데 있어 그리 쉽게 가셨는가. 이 원한 이 울음이 화주성이 무너질 듯 시냇물도 목이 멘다. 한참 이리 슬피 울 제, 그때에 산나비 한 마리가 나오는데, 매우 덤벙대것다. *엇몰이 붉은 칠 실 갓에, 주황사 나비수염, 은귀영자( 銀 귀 纓 子 ) 공단 끈을 두 귀에다 펼쳐 매 고, 총감투 소년 당상( 堂 上 ), 꽃 같은 금관자를 양편에다 딱 붙이고, 서양포( 西 洋 布 ) 대 쪽누비 상하통 같이 입고, 한산모시 먹물장삼 진홍분합 눌러 띠고, 흰총백이 세날짚신, 고운 새김 버선목을 행전 우에 덮어 신고, 용두( 龍 頭 ) 새긴 육환장( 六 環 杖 )을, 이리 철 철 저리 철철, 청산석경( 靑 山 石 逕 ) 굽은 길로 흐늘거려 내려온다. 울음소리 잠시 듣고 사면을 둘러본다. 무한히 주저하다, 여인을 얼른 보고 가만가만 들어오니, 재치있는 저 여인이 중 오는 줄 미리 알고, 온갖 자태를 다 부린다. 중몰이 얼골도 번쩍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치마자락 끌어다가 눈물도 씻어 보고, 옥수를 번 쩍 들어 아래턱도 받쳐 보고, 설움이 북받쳐서 머리도 뜯어보고, 갈수록 슬피 운다. 신 세를 생각하면 해당화 저 가지에 결항치사( 結 項 致 死 ) 하련마는, 설부화용( 雪 膚 花 容 ) 이 내 나이 아즉 청춘 멀었구나. 적막공산 무주고혼 그 아니 원통한가. 넓고 넓은 이 세상 에 풍류남자 많지마는, 내 속에 먹은 마음 그 뉘라서 알어주리. 아이고 아이고, 슬피 운 다. 저 중이 한참 들으며 바라보니, 그 얼굴 그 맵시 보던 중 제일이라. 중놈이 정신을 반 만 잃고, 가만가만 들어가서, 자세히 들어본즉, 무슨 사정인지 꼭 죽을 모양이라. 참다 가 못견디어 쑥 들어서며, 소승 문안이오. 여인이 흘끗 보더니만, 더 슬프게 우는데, * 중 내려온다

15 중몰이 오동에 봉 없으니 까마귀가 지저울고, 녹수에 원( 鴛 ) 없으니 오리가 떠서 논다. 저 중 이 들어보즉 저를 업신여기는구나. 불고사생 달려들며, 소승 문안이오, 소승 문안이오. 여인이 돌아보며 점잖하게 꾸짖는데, 중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이라. 계행이 다 를 텐데, 적막산중 수풀 속에 전후불견 여인에게 체면없이 달려드니, 버릇이 괘씸하다. 문안은 그만두고 어서 급히 물러가라. 저 중이 하는 말이, 부처님의 제자이라 자비심이 많삽더니, 시주님 저 청춘에 애련히 우는 소리 뼈저리게 사모쳐서, 차마 발길 안 떨어 져 문안을 드리오니, 무슨 사정인지 좀 들려주옵소서. 여인이 대답한다. 중몰이 단 두 부부 산중살이 강근지친 바이 없고, 가군 초상 만났는데, 송장조차 험상궂어 치 상할 수 없삽시로, 여기 와서 우는 뜻은, 담력 있는 남자 만나 가군 출상한 연후로, 청 춘 수절 할 수 없어 그 사람과 부부되어 백년해로 하자 하니, 대사님의 말씀대로 자비 심이 많삽거든, 근처로 다니면서 협기있는 남자 만나 지시하여 주옵소서. 저 중이 대답한다. 우리 절 중들 가운데에 자원할 사람 있으면 지시하여 드리리다. 치 상만 한 연후에 그 사람과 살 터이니 속( 俗 )과 중을 가리리까. 저 중이 듣고 좋아라고, 그러면은 좋은 수가 있습니다. 그 송장을 내가 치우고 나와 살면 어떠하오. 여인이 하 는 말이, 아까 내가 말했으니 두번 말이 부당하오. 중중몰이 저 중이 듣고 좋아라고, 저 중이 듣고 좋아라고, 양갓 감투 벗어 찢고 공단 갓끈 금관 자는 주머니에 떼어 넣고, 먹장삼은 벗어내어 띠로 묶어 들어메고, 여인은 앞을 스고 대사는 뒤를 따라 강쇠집을 들어갈 제, 저 중이 좋아라고 장난이 비상하다. 여인 등에 손도 넣고, 가슴 한번 만져보고, 허리도 안아보고, 손목 한번 만져보고, 얼굴도 한번 비 벼보고, 암만해도 못참것네. 여인이 보고 책망한다. 바삐 먹으면 목 메이고 급히 더우면 쉬 식느니. 여러 해를 주린 정이 아무리 그렇지만 죽은 낭군 방에 두고 차마 그노릇 어 찌할까. 다 되어 가는 일을 조금만 좀 참으소서. 저 중 듣고 미안하여, 하기는 그러하고. 송장 방이 어디있오. 송장 치러 들어갈라요. 수박 같은 대가리를 가웃가웃 흔들면서, 십년 공부 아미타불, 참 부처는 못될망정 삼생 가약 우리 미인 부부나 되어보자. 잦은몰이 송장 방이 어데 있오. 여인이 대답한다. 저 방에 있소마는, 송장이 험상궂어 우뚝 서서 형용이 고약하니, 단단히 맘을 먹고 놀래지를 마사이다. 저 중이 여인에게 협기를 보이 노라, 우리는 겁이 없어 사천왕각서 혼자 자니, 그까짓 서서 있는 송장쯤은 조금도 겁 안나오. 속으로 진언 외며 방문 열고 들어스더니, 송장 얼골 바라보고 두손 합장 낯을

16 들고, 아무말도 못하구서, 요만하고 죽는구나. 강쇠여편네 백지를 챙겨 들고 뒤 따라서 들어가니, 허망한 저 중놈이 서서 그대로 죽 었구나. 여인이 깜짝 놀라 통곡한다. 잦은몰이 허허, 이게 웬말인가. 송장 하나를 치려다가 송장 하나 또 생겼네. 방문닫고 나오면서, 뜰 가운데 주저앉어 송장보고 정설한다. 여보시오 변서방아, 어이 그리 무정한가. 청석 골서 만난 후로 각 포구로 다니면서, 간신히도 모은 전량 잡기로다 다 없애고, 산중살 이 하잤더니, 장승 비여 패 때고서, 목신동투 소년죽엄 모두다 자취로다. 사십구일 구병 할 제 내 간장이 다 녹았네. 험상스런 저 송장을 감당 할 수 없었기로, 가는 중을 간신 히 호려 허신( 許 身 )도 한 일 없이, 강짜를 하노라고 송장 치러 간 사람을 저 죽엄을 시 켰으니, 이 소문만 나거드면 송장 칠 놈 있겠는가. 송장만 치러 놓으면 임자의 유언대 로 수절을 하게쑤다. 다시는 강짜 마소. 아이고 아이고, 어쩔거나. 슬피 앉어 우노라니, 천만 뜻밖에 쇳땜쟁이 친구가 들어오는데, 예, 하고 들어왔오. 구 름 같은 집에 신선 같은 나그네가 왔소. 옥 같은 입에서 구슬 같은 말이 솔솔 나오네. 강아지가 짖고 나오니, *잦은몰이 이 개야 짖지 말라. 나를 보고서 짖느니보다, 네 할애비 보고만 짖어라. 이런 야단이 없더니라. 여인이 살펴보니, 구슬상모 덤벙거지 되게 맨 통장고에, 동정 없는 누비 저고 리, 때가 묻은 붉은 전대 제멋대로 들어 메고, 조개장단 주머니에, 주황사 벌매듭, 청삼 승 허리띠며, 버선코를 길게 빼어 오산장 짚신 신고, 푸른 헝겊 둘러메고, 오십살 늘어 진 부채 송화색으로 수건 달아 덜미에다 엇게 꽂고, 앞뒤꼭지 쑥 내민 놈, 앞 살 터진 헌망건에, 자개관자 굵게 달아 당줄에다 눌러메고, 굵은 무명 벌통 한삼 무릎 아래 축 쳐지고, 몸통은 집동 같고 뱃통은 물항아리라. 두리두리 두 눈구멍은 고리눈에 테두르 고, 납짝한 코잔등에 주석 대갈 총총 박고, 꼿꼿이 슨 양수염은 양편으로 팔랑팔랑, 반 백이 넘은 놈이 목소리가 새된 것이 비지땀을 씻어가며 헛침을 탁탁 뱉고, 예, 오라가 라 하노라면, 우리집 마누라가 문안을 드리라고 하오. 여인, 보고 기가막혀, 초라니를 나무란다. 아무리 초라니라도 어찌 그리도 방정맞소. 낭군 초상을 당하여 치상도 못했는데, 장구소리 당치 않소. 어서 급히 물러가오. 잦은몰이 초라니 듣더니 신명낸다. 초라니 듣더니 신명낸다. 초상이 났사오면 중복맥이 오귀물 림 잡귀 잡신을 몰아내자. 정월 이월 드는 액은 삼월 삼짇날 막아내고, 사월 오월 드는 액은 유월 유두로 막아내고, 칠팔월에 드는 액은 구월 구일에 막아내고, 시월 동지 드 * 초라니 등장

17 는 액은 납월 납일에 막아내고, 매월 매일 드는 액은 초라니 장구로 막아내자. 패동개, 패동개, 똥딱구. 통영칠판 제목판에 쌀이나 많이 좀 내 놓으시오. 가가호호를 다니어도 오라는 데가 어디 있오. 뒤꼭지를 꾹꾹 찌르며, 핀잔 악담 하는 것을 꿀로 알고 다니오 니, 난장쳐도 안가겠오. 박살해도 못가겠오. 여인이 듣고 기가맥혀, 오구물림 동복맥이 호강하는 말이로다. 서서 죽은 송장이라 쳐 낼 사람 없는지라, 시각이 민망하오. 초라니 듣고 좋아라고, 방정을 한참 떠는구나. 사망일세, 사망일세. 발뿌리가 사망일세. 불었구 나. 불었구나. 좋은 바람이 불었구나. 어제 저녁 꿈 좋더니, 이 대문 전 찾아와서 송장 사망 터졌구나. 신사년 괴질통에 험악하게 죽은 송장 내 손으로 쳐 냈으니, 그까짓 서 서 죽은 송장은 왼손으로 쳐 낼 테니, 삯을 먼저 정합시다. 패동개, 패동개, 똥딱구, 똥 딱구. 여인이 보니, 게으른 강쇠를 데리고 사느라고 간장이 녹았는데, 초라니를 바라보니, 점 대 끝에 앉었어도 굶어 죽지 않겠구나. 애근 사정하는 말이, 가난한 내 형세에 곡식 없 고 돈 없으니, 치상만 한 연후로 부부되어 살랍니다. 중몰이 초라니 듣고서 좋아라고, 초라니 듣고 좋아라고, 멋속있는 오입쟁이 일색 미인 만났구 나. 시체 방문 어서 여시오. 송장 치러 들어가오. 여인이 방문 여니, 초라니 거동 봐라. 시체 방문 당도하여 몸 단속을 하는 구나. 장구 끈을 졸라매고, 제 몸에다 힘을 주고, 험악한 그 송장을 다리 감고 넘기려 할 제, *휘몰이 여보시오. 저 송장아. 이내 고사 들어보소. 오행 정기 생긴 사람 노소간에 죽어지면, 혼령은 귀신 되고 시체는 송장이지, 무슨 원한 속 있다고 혼령은 안 헤치고 송장은 뻣 뻣 섰오. 패동개, 패동개, 똥딱구. 이내 고사 들어보면, 원통한 것 다 물리지. 살았을 제 이승이요, 죽어지면 저승이라. 만년부운 되었으니 처자 어찌 따라가랴. 회파 은수 바라 보니 옛 사람의 탄식이라. 패동개, 패동개, 똥딱구. 부드럽던 장구채가 뒤마치만 쿵쿵하 며, 풀잎같이 새된 목이 고비 넘길 수가 없고, 날쌔게도 놀던 몸짓 삼동이 뒤틀린다. 한 출첨배( 汗 出 添 背 ) 가뿐 숨이 어깨춤이 턱에 찬다. 한 다리는 오금 죽고, 턱 밑에는 장구 메고 망종 쓰는 한마디 목, 하염없이 구성지다. 장구 한번 쿵 치더니, 고사 죽엄을 하는 구나. 엇몰이 여인이 깜짝 놀라, 또 죽었네, 또 죽었네. 방정맞은 저 초라니 자발없이 덤비다가, 허 망하게 또 죽었네. 고단한 내 신세가 세 송장을 어쩔거나. 담배 피워 입에 물고, 먼 산 만 바라보며 슬피 앉어 울음 울 제, 대목 미처 파장인가. 어농( 漁 農 ) 풍년 시평( 市 坪 )인가. 오색 발가리 친구들이 뒤끌어서 들어오는데, 풍각쟁이 한패가 들어오던 것이었다.

18 *중몰이 **** 그 중에도 앞슨 놈이, 다 떨어진 통양갓에 버레줄 달아 쓰고, 소매 없는 베중추막 권 생원께 얻어 입고, 세목퉁 옷 때 묻은 놈 모동지께 얻어 입고, 앞만 남은 누비 저고리 신선달께 얻어 입고, 다 떨어진 동저고리 송선달께 얻어 입고, 부채를 부치는데 뒤엣 놈만 시원하게 부치면서 들어온다. 경조 원터도 못 가고서 금강 이쪽 경조였다. 여보시오, 마누라님. 댁에 송장이 연거푸 죽어서 쳐 낼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가 왔소. 송장을 쳐 낼 테니 나와 둘이 살것소. 여 인이 하는 말이, 무슨 재조로 쳐 내겠소. 나는 소리 명창 가객이오. 그러면서 송선달 흥 록씨를 아시겠소. 예, 그는 내 제자이요. 신선달 만엽씨를 아시오. 그 분은 내 둘째 제 자요. 세상에서 말을 하되, 모란은 화중왕( 花 中 王 )이요, 송선달은 가중왕( 歌 中 王 )이라 하 니, 당신이 그 분 선생이면은 가중천자( 歌 中 天 子 )는 되겠소그려. 사람들이 그렇다고 수 군수군 합디다그려. 중중몰이 그 중에 퉁수쟁이 빡빡 얽은 전벽소경, 퉁소대를 손에 쥐고 강경장에 넝마 큰 옷, 뻣 뻣하게 풀을 먹여 초록실로 띠 두르고, 지팽막대 잡은 아이 송화색 동정 달아, 쇠털같 이 노랑 머리 밀기름 많이 발라 공단 댕기 드렸구나. 검무칼 가졌는데 그 뒤를 바라보 니, 가야금 노는 사람 빳빳 말른 중늙은이 피골이 상접한데, 토질( 土 疾 ) 먹은 기침소리 광쇠 치는 소리 같고, 긴 손톱 검은 때와 빈대코 콧수염이 입술마저 덮었구나. 떡메모 자 대갓끈에 가야금을 미였는데, 경상도 경주 도읍 그 시절에 난 것이라. 복판은 좀이 먹고, 토막토막 열 두 줄은 망건 당줄로 있어 매고, 쥐똥나무 괘를 고여 주석고리 끈을 달아, 왼 어깨에 드러메고, 꺼벅꺼벅 들어오고. 북치는 놈 맵시 보소. 여드름과 개기름 이 문둥병 터 잡은 듯 짧은 머리 길게 따고, 왼손잡이 늙은 놈이 체바퀴 열 두 도막 줏 어 이어, 끈을 달아 들어오며 장담한다. 송장이 어데 있오. 송장 치러 왔소이다. 여인이 대답한다. 그렇게 장담하다가 죽은 사람 수도 없소. 그는, 조금도 염려 마소. 내 소리 한 마디에 귀신도 울었으니, 금시 죽은 송장이야 염려 없소. 염려 없어. 가야금 을 노는 놈이 썩 나스며 하는 말이, 내 가야금으로 말하면, 진나라 미인 허청금 형장사 잡아 있고, 왕소군 출새곡( 出 塞 曲 )은 호인( 胡 人 )들도 울어 있고, 옹문금( 雍 門 琴 )의 슬픈 소리 맹상군도 울었으니, 내 또한 상심곡을 처량하게 타고 보면 멋있는 송장이라 나를 괄시 못할 테요. 중몰이 퉁수쟁이 썩 나스며, 내 퉁수를 부는 법이 여읍여소( 如 泣 如 訴 ) 슬픈 소리, 계명산 추야 월에 장자방의 곡조로다. 팔천 제자 흩어질 제, 우미인은 목 찌르고 항우장사도 울었거 든, 제까진 송장이야 동지 섣달 불강아지라. 그는 염려 마옵소서. 북 치는 놈 내다르며, * 풍각쟁이 등장

19 내 솜씨로 북을 치면, 전단( 田 單 )이 뙤놈 칠 제, 시석지소( 矢 石 之 所 ) 우뚝 서서, 원포고 지( 湲 抱 鼓 之 )하던 소리라. 장비가 고성에서 관운장의 용맹 보자, 삼동고( 三 㲇 鼓 )를 치던 소리라. 제 아무리 험한 송장 안 쓰러지고 어찌하랴. 검무 추는 아이놈이 양손에다 칼 을 쥐고, 연풍대( 燕 風 臺 ) 좌우사위 번뜻번뜻 들어메고, 여보시오, 기탄마오. 소년 십오 이십시에 일검증당백만사( 一 劍 曾 當 百 萬 死 )라. 홍문연의 큰 잔치에 항장의 날랜 칼이 나 를 어찌 당할손가. 각기 장담하면서 들어오니, 여인이 생각한즉, 식구가 여럿이라. 요번은 설마 하고, 여 러분들 말씀이 그러하니, 방안에 송장이 셋이나 있으니, 뒷마루에 늘어앉어 각색 풍류 하거드면, 멋있는 송장이라 감동되어 쓰러지면 묶어내는 것이 어떠하오. 그 말이 좋다 하고, 굿하는 고인( 鼓 人 ) 모양 뒷마루에 늘어앉어, 검무 칼춤 추는 놈과 여민락 신방곡 을 재미나게 한참 할 제, 방안에서 찬 바람이 스르르르 일어나고, 쌍창문이 제절로 화 닥딱 열리는듸, 온몸이 오싹하고 독한 냄새가 코를 콱 찔러 죽으니, 눈을 뜬 놈들은 송 장을 만져보고 제멋대로 다 죽는데, 꼭 요렇게 죽던 것이었다. *중몰이 소리하는 가객 보소. 초한가를 부를 적에, 만고 영웅 호걸들아, 초한 승부 들어보소. 절인지력( 絶 人 之 力 ) 부질없고 순민심( 順 民 心 )이 으뜸이라. 한패공의 백만 대병 구리산하, 십면 매복 대진을 둘러치고 초패왕을 잡으렬제, 부채를 짝 피더니 그 자리에서 서서 죽 고, 가야금을 놀던 놈은 짝타령을 하느라고 황성허조벽산월( 荒 城 虛 照 碧 山 月 )이요, 고목 진입창오운( 古 木 盡 入 蒼 梧 雲 )을, 사르렁 둥당 하더니만, 뒷 손을 들은 채로 바른 손을 들 고 죽고, 북 치던 늙은 총각, 다시는 소리없이 북채 들고 요만하고 앉어 죽고, 칼춤 추 던 어린아이 오도가도 못하구서 슨 자리에 그대로 죽고, 퉁수 불던 늙은 봉사 송장 낯 을 못 보는 고로, 먼 눈을 번쩍이며 봉장취를 한참 하다, 무서운 생각 왈칵 들어, 독한 냄새 코를 콱콱 쑤시는 고로, 내밀 힘이 점점 줄어 그만 앚어 뒤어진다. 여인이 기가막혀, 울음도 울 수 없고 사지가 느른하여, 아이고, 이 일을 어쩔거나. 이 것들을 앉은 대로 두었다가는 누가 와서 보든간에 도망하고 말겠구나. 방안에다 감추어 두자. 한 놈씩 곱게 안어 방안에다 앉혀 놓으니 명부전에 시왕 같구나. 방문을 닫어 놓 고 대문간에 비켜서서 먼 산만 바라보는듸, 어떤 사내가 제비가를 부르며 들어오는데, 경조로다 부르것다. *중중몰이 이 때 춘절 생각하니 하사월 초팔일, 연자나비는 훨훨, 수양버들 앉은 꾀꼬리 제빈가 의심하고, 남비오작 까치만 봐도 제빈가 의심하고, 칭암절벽 비둘기 봐도 제빈가 의심. 떴다 저 제비야 네가 어디로 향하느냐. 이편은 우두봉 저 편은 좌두봉, 건넌봉 맞은봉 * 풍각쟁이 연쇄죽음 * 제비가

20 방장산으로 올라가 검불을 툭차, 후여, 허죽 떴다 저 제비야. 니가 어디로 향하느냐. 천 지로다 집을 삼고 일월로는 등불 삼고, 남의 집을 내 집 삼고, 가는 길을 노자 삼어 멍 석자리 장판 삼고, 두루두루 다닐 적에 이 신세가 가련하다. 여인이 바라본즉 키는 장승만 하고, 낯짝은 징짝만 하고, 눈은 화등잔같고, 코는 메주 덩이 같고, 입은 싸전 마당에 큰 되만 하고, 발은 동작선 나룻배만 한데, 초란이 탈을 안 쓰고도 천상 말뚝이 뽄이로다. 여보시오. 마누라님이 낭군 초상 치뤄 주면 같이 산 다는 마누라요. 여인이 사정한다. 그러하옵니다. 그놈의 송장이 어떻게 죽었단 말씀이오. 벌떡 이러나 두 주먹글 불끈 쥐고, 눈 딱 부릅뜨고, 두 다리 뻣뻣 서서 죽었소. 저 놈 듣고, 허허 웃고, 마누라님 댁에 갈퀴 있소. 그 놈의 눈구녁을 북북 긁어 안 볼라요. 그 러시오. 갈퀴를 갖다 주니, 저 놈이 갈퀴 들고 시체방을 들어가서 눈을 딱 감더니만, 강 쇠 송장 낯바닥을 북북 긁어 놓으니, 두 눈깔이 쑥 빠져서 덜렁덜렁하는 구나. 저 놈이 겁을 먹고 갈퀴를 집어 던지고 도망을 하는데, 여인이 따라가며, 여보시오, 손님. 여보 시오, 손님. 말씀이나 하고 가시오. 나는 갈라요, 위방불입( 危 邦 不 入 )이요. 송장치라 안 할 테니, 내가 이리 적적하니 딴 방에서 주무시고 말벗이나 되어 주오. 저 놈 듣고 흐 뭇하여, 그렇게 합시다. 여인의 손을 잡고 들어오며, 여인이 묻는 말이, 어디로 가시다 가 내 집을 들리셨소. 예, 나는 한양 사는 사람인데, 경상도에 좋은 말이 있다고 하여 말 사러 가다 소문을 듣자 하니, 마누라님이 일색인듸, 송장만 치러 주면 같이 산단 말 을 듣고 왔더니만, 송장이 험상궂어 그만두고 갈랍니다. 여인이 하는 말이, 한양서 살으 시고 신수 저리 건장한듸, 그까짓 서서 죽은 송장이 그리도 겁나시오. 저 놈이 여인의 등을 어루만지며, 중몰이 당신을 보니 정이 가득하나, 송장 엄지 장가락 가운데 마디, 빙 벌어지고 비끄마리 진 데 보면 정 떨어져도, 마누라님 보면 헛침 생키네. 여인이 그말 듣고, 저러한 허풍선이 송장 보고 겁을 내니 어이 행세할 수 있나. 불쌍한 내 신세 버리고 가시오면 후회막급 할 것이니, 날 살리오. 날 살리오. 한양 낭군 날 살리오. 저 놈 듣고 장담한다. 우지 마 오. 우지 마오. 내가 죽지, 그대 죽게 하겠는가. 우지 말라면 우지 말게. 저 놈이 한 꾀를 생각하고, 자네 집에 떡메 있는가. 떡메 들고 들어가며, 송장 있는 뒷 벽을 사정없이 꽝꽝 치니, 벽이 울려 송장 여덟 개가 벌렁벌렁 자빠진다. 저 놈이 땀을 씻고, 그러면 그렇지. 제깐 놈이 어디라고. 여인이 부채질하며 송장을 치랴 할 제, 아무 리 장사라도 송장 여덟개를 칠 수 있나. 동네로 내려가서 삯군을 사려 하는데, 그때 마 침, 경상도 각설이 패가 들어스며 장타령을 시작한다. *잦은몰이 허허리고서 들어왔오. 각설이라 동서리, 죽지 않고서 또 왔오. 경상도라 경주장, 쇠북 * 각설이패 장타령

21 입은 상주장, 이 술 잡수 진주장, 관민분의 성주장, 재쳐먹기 마산장, 펄펄 뒤는 노루꼴 장, 명태 옆에 대구장. 또 한 놈은 옆에 서서 허리 짚고 고갯짓, 잘한다, 잘한다, 초단 짓고 배웠는가, 실수 없이 잘한다. 동삼 먹고 배웠는가, 뱃심좋게 잘한다. 기름동이나 먹었는가, 미끈미끈 잘한다. 목구녁에 불 켰는가, 훤하게도 잘 한다. 목 쉴라, 목 쉴라, 대목장에 목 쉴라. 가만가만 섬기어라. 네 선생이 누구냐, 네 선생이 내로구나. 네 선생 이 나련마는 날보다도 잘한다. 품바 품바 잘한다. 품바 품바 잘한다. 여인이 듣더니만, 목소리는 명창이나 우리 집에 송장이 많어, 지금 묶어내는 판인데, 저 분하고 같이 묶어내면 삯을 많이 줄 터이니, 같이 묶어 내시지요. 저 놈들 듣고 하 는 말이, 송장만 치러내면 당신하고 산다 하여 짚신짝 드러메고 불원천리 왔더니만, 그 것도 남에게 뺏겼구만. 그러면 송장이나 같이 칠 테니 품삯이나 많이 주오. 송장 하나 에 닷냥씩, 술밥 주고요. 여인 듣고 허락하니 송장을 묶는데, 변강쇠하고 중놈 송장을 같이 묶고, 초라니 송장과 봉사 송장, 소리하는 놈 송장하고 북치는 놈, 가야금을 노는 놈과 칼춤 추는 송장을 한테 묶어 짊어지고 나가면서 상여소리를 하는데

22 *중몰이 21 너너너너,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넘. 연반꾼은 어디 가고 두견새만 슬피울며, 명정공포 어디 가고 작대기만 짚었는가. 앙장휘장은 어디 가고 꺼적 때기가 웬말이며, 장강틀은 어디 가고 지게송장이 웬말인가. 너어너, 상제복은 어디 가고 미인 하나 따랐느냐. 진시 황은 여산에 묻고 초패왕은 곡성에 묻네. 네가 죽어도 이 길이요, 내가 죽어도 이 길이 라. 너너너너, 어이 가리 넘차 너화넘. 한참 지고 가다가 언덕에서 좀 쉬는데, 네 놈들이 송장 짐은 받쳐놓고, 지게에서 몸을 빼어 쉬려고 하는 참에, 땅바닥에 사람하고 송장하고 삼물조합 되어버려, 땅바닥에 딸 싹 붙어 빈틈없이 되었구나. 이놈들이 기가막혀, 통곡하여 슬피 울 제, 중중몰이 허허 이게 웬일인가. 천지 개벽한 연후에 이런 재변 또 보았나. 한번을 앉은 후에 일 어날 수 없게 되니, 그림자에 사람인가 법당 안의 부처인가. 아이고 아이고 어쩔거나. 뎁득이 자네 사정, 고향 천리 어이 가며, 각설이패 우리 사정, 대목 장날 어찌할까. 여 보시오. 저 여인네. 이게 모두 뉘 탓이오. 죄는 네가 지었으니 벼락일랑 네가 맞어라. 굿만 보고 앉었으니, 그런 인사 어데 있오. 주인 송장, 손님 송장, 안쥔 말을 들을 테니, 빌기나 좀 하여 보오. 아이고 아이고 어쩔거나. 진양 여인이 하릴없이 애근 사정 비는 구나. 여보시오. 변서방. 이게 모두 웬일인가. 험악하 게 죽은 송장 집에서 썩을 것을, 네 사람의 공덕으로 염습부담( 負 擔 ) 나왔으니, 가만히 두었으면 명당을 깊이 파고 장례를 지낼 텐데, 아기 밸 때 덧 굳으면 나올 때도 덧 굳 다고, 갈수록 변괴이니 사람 어찌 살 수 있오. 집에서 하던 버릇 우리끼리 보았더니, 이 러한 대로변에 우세를 어찌하리. 날이 점점 밝아지니 어서 급히 떨어지오. 안장을 한 연후로 수절을 하겠수다. 어서 어서 떼 주시오. 뎁득이가 맹세를 하는데, 여인네 치마꼬리만 잡아도 변강쇠 아들이오. 아무리 사정한 들 꼼짝 달싹 안 하는구나. 날이 훤히 밝아오니, 뎁득이가 하는 말이, 배고파서 살 수 없네. 여인은 박적 들고 동네로 내려가서, 밥 좀 얻어다가 우리들을 떠먹여요. 그리고 짚 한 동 얻어 오시오. 짚은 뭣 헐라고요. 비가 오면 주절 틀어 상투 덮게요. 여인을 보 낸 후로 네 놈들이 탄식 하는데, 이것들이 앉은 데가 참외밭 머린지라. 밭 임자 옹생원 이 집에서 잠을 자고 밭 보려고 나오는데, 밭머리 사람들을 보고 된 목으로 악을 쓰는 데, 거 웬놈들인고. 뎁득이가 대답하는 말이, 담배 장수요. 그 담배 맛좋으냐. 십상 좋 은 상관초요. 한 대 떼어 먹어 보자. 어서 와서 잡수시오. 맘씨 고운 옹생원이라, 담배 욕심 잔뜩 나서 송장 짐에다 손을 쑥 집어느니, 독한 냄새가 코를 꽉 쑥셔 노니, 손을 얼른 빼려 한즉, 손이 딱 들어붙어 꼼짝도 않는구나. 옹생원이 호령한다. 너 이놈, 이것 21 상두소리

23 이 무슨짓인고. 바른 대로 말하여라. 송장 짐이요. 요놈들아, 송장 짐을 남의 참외막 근 처에 놓는단 말가. 뎁득이 박장대소하며, 새벽 길가는 놈들이 콩밭인지 참외밭인지 누 가 알겠소. 우리들도 송장 지고 가는 길에 땅바닥에 붙어서 떨어지들 않소이다. 그래 송장이 웬 송장인데 이리 많이 짊어지고 어데로 팔러 가는고. 그리고 송장한테 붙는단 말 고금 천지 못 들었다. 그 내력을 말하여라. 중몰이 뎁득이가 하는 말이, 지리산중 미인 하나, 변강쇠가 변사하여 출상만하여 주면, 함께 산다 하옵기로 그 집을 찾어가니 송장이 여덟 개라. 간신히 치상하여 각설이 패 세 사 람과 둘씩 지고 예 왔더니, 나도 붙고 게도 붙어 오도 가도 못하오니, 그 내력을 모르 겠오. 옹생원 듣고 기가막혀, 한참 생각하더니만, 그러면은 좋은 수가 하나 있다. 사람들을 많이 불러 모두 다 붙였으면 소일도 되려니와, 뗄 꾀도 생길 것이다. 한참 공론하는 판 에, 그때 마침 사당과 거사들이 지내간다. 옹생원이 부르는 말이, 여봐라 사당들아, 너 희들 장기대로 한 마디씩 잘 부르면, 상관 담배 두 구부씩 줄 터이다. 사당거사는 담배 라면 밥보다 더 좋아하는데, 그렇게 하옵시다. 판놀음 치듯기 차례로 늘어앉어, 거사들 은 소고 들고 여사당들 나오더니 발림을 곱게 하고, 한마디씩 부르는데 연계사당 나스 드니, *중몰이 야야, 계집아야. 말 들어라, 야야, 총각아이야 말들어 보아라. 너의 누님이 날 마다고 머리 깎고 송낙 쓰고 금강산으로 중 노릇을 갔단다. 이차저차 삼모 창차, 어허 어허 어 리 얼싸 네로구나. 고산심풍수 부러져 어리렁 출렁 지둥그러졌네. 춘추는 낙낙, 기러기 새끼는 훨훨, 낙낙 장송이 와자직끈 부러져, 이 구비 저 구비 한테로 합수쳐, 얼씨구나 야아, 지화자 좋네. 절씨구나 야아, 지화자 좋네. 어허 어허 어기열사 네로구나. 옹생원이 추는데, 잘한다 잘한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초선이로소이다. 요리 내 옆으 로 앉어라. 사당 다섯, 거사 다섯, 열 명을 앉혀 놓고서 한참 농창이는데, 그때 마침 신 임 좌수가 말을 타고 지내간다. 옹생원이 부르는데, 여보게 좌수. 자네는 아관( 亞 官 )으 로 출패( 出 牌 )나 무서워하지. 날 같은 빈천지교( 貧 賤 之 交 ) 시약불견( 視 若 不 見 ) 지내가니, 부귀자교인( 富 貴 者 驕 人 )이란 말을 자네 두고 한 말일세. 좌수가 할 수 없어 말에서 내 려오더니만, 옹생원 곁으로 앉으며, 노형의 평생 행세 이러한 대로변에 협창행악( 挾 娼 行 樂 ) 웬일인고. 옹생원이 허허 웃고, 꿈 같은 우리 인생 남은 날이 몇 해인고. 파탈하 고 놀아보세. 옥천집아, 좌수 영감께 시조나 한장 빼 올려라. 한참 놀다 좌수가 일어나 려 하였으나, 궁둥이가 땅에 딱 붙어 버렸구나. 옹생원이 좋아라고 박장대소하는 말이, 송장한테 붙는단 말이 자네 혹시 들었는가. 좌수가 깜짝 놀라, 그렇다면 이게 모두 송 사당놀이(경기창조)

24 장이요. 글쎄 송장이 붙는단 말 들었는가 말이여. 옆에 있던 사당거사 일어나려 하였지 만 땅에 딱 붙었구나. 아이고 아이고 우는 사람, 더럭 더럭 욕하는 놈, 한참 이리 분주 할 제, 좌수가 하는 말이, 이게 모두 죽은 원혼이라. 삼현 육각 길게 불고 넋두리를 했 으면은 귀신들이 감동하여 응당 떨어질 것이다. 목 좋은 저 댁네들 춤을 추고 설교하여 빌기나 한번 빌어 봅시다. 사당거사 앉은 대로 성주풀이를 하던 것이었다. *중중몰이 예라 만수, 예라 대신 넋이야. 넋이로다 백양청산( 白 楊 靑 山 ) 넋이로다. 옛 사람은 누구 누구 만고 원혼 되었는가. 공산야월 두견이는 촉망제의 넋일는가. 무관( 武 關 ) 춘풍 우는 새는 초패왕에 넋이로다. 청청 향초( 向 楚 ) 나군색( 羅 裙 色 )은 우미인의 넋이든가. 환패공 귀( 環 珮 空 歸 ) 월야혼( 月 夜 魂 )은 왕소군의 넋일는가. 넋일랑은 넉반에 담고, 신체랑은 화 단에 모셔, 밥전떡전 인물전과, 온필 무명 오색번에 넋을 불러 청좌( 請 座 )하자. 예라 만 수, 예라 대신. 대활양으로 설설리 나리라. 지장보살 장한 공덕 보도중생( 普 度 衆 生 )하려 하고, 지옥문을 닫어 놓고 석양길을 가라칠 제, 불쌍한 여덟 목숨 어느 사자 따라가며, 지하에 맨 데 없고 인간에게 주인 없어, 원통하게 죽은 혼이 시체 지켜 있는 것을, 무 지한 인간들이 경대할 줄 모르구서, 손으로다 만져보고 걸터앉기 괘씸하다. 예라 만수, 예라 대신. 비나이다, 비나이다. 여덟 혼령께 비옵니다. 무지한 저희들을 허물치 마옵시 고, 갖은 배반 진사면의 제대춤으로 놀아보세. 떨어지오. 떨어지오. 제발 덕분 떨어지오. 예라 만수, 예라 대신. 대활양으로 설서리 나리소서. 한참 이리 빌어 노니, 뎁득이와 각설이 패 네 놈만 남겨 놓고, 옹생원과 좌수 사당거 사들이 모두 다 떨어진다. 이것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다, 모도 도망가니, 네 놈만 붙 어 있어 심심해서 못살겠네. 뎁득이는 서울 손이라, 정신차려 송장에게 지성으로 빌던 것이었다. **중몰이 22 천고에 의기 남아 원통하게 죽은 혼이, 지기지우( 知 己 之 友 ) 못 만나면 위로할 이 뉘 있을까. 역수상( 易 水 上 ) 찬 바람에 연태자를 이별하고, 함양에서 죽었으니 협객 형경( 刑 卿 ) 불쌍하고, 계명산 밝은 달에 우미인을 이별하고, 오강자문( 烏 江 自 刎 ) 하였으니 패왕 항적( 項 籍 ) 가련한다. 이 세상에 변서방은 협기있는 남자로서 술 잘 먹기 일등이요, 간 곳마다 이름있어 사람마다 무서워한다. 꽃 같은 저 부인과 백년 살자 하였드니, 이슬같 이 그 목숨이 일조에 돌아가니, 원통하고 분한 마음 눈 감을 수 전혀 없어. 뻣뻣 슨 장 승 송장, 자네 신세 불쌍하고, 대사님 자네 신세 부처님의 제자로서 선공부 선문 외워 계행을 닦았으면, 흰구름 푸른 뫼에 잔디마다 도방이요, 비단 가사 연화탑에 열반하여 부처될 걸, 잠시 음욕 못 참구서 비명횡사 꺼적 송장, 자네 신세 불쌍하고, 촐첨지 자네 정경 낯바닥에 탈을 쓰고 목에다는 장구 걸고, 푼돈 몇 푼 벌자 하고 이집 저집 다닐 * 성주풀이 * 여덟 송장 조사(조 辭 )

25 적에 짖는 것은 강아지라, 탄 분복이 그러한데 가량없는 미인 생각, 제 명대로 못 다 살고 남의 집에 뭇테 죽엄, 근들 아니 불쌍하며, 풍각쟁이 다섯 분들 가객이 앞을 스고, 가야금 신방곡과 퉁소 소리 봉장취에 연풍대 칼춤이며, 서서 치는 북 장단에 주막 거리 장관이고, 온 동리로 다니면서 풍류로 먹고 사니 눈치들이 환할 텐데, 송장을 치더라도 여자는 한 명이라 혼자 좋은 꼴 못 볼 텐데, 달려들다 한날 한시 뭇테 죽엄 당했으니 근들아니 불쌍하오. 여덟 송장 각기, 설움 원통한 송장이라. 살았을 제 집이 없고, 살았 을 제 자식 없어, 높은 묘 깊은 구렁 이리저리 굴러대도, 뼈를 묻을 사람 없어. 아이고 아이고, 우는 혼령 조사 할 이 뉘 있으리. 생각 하면 허사로다, 심술 부려 무엇하리. 후 생에나 복을 타서 부귀가에 다시 생겨 평생 한을 풀으소서. 이리 앉어 빌어 놓으니, 귀신들이 감동하여 뎁득이며 각설이 패 모두 다 떨어진다. 엇몰이 북망산을 당도하여 송장 짐 바쳐 놓고, 땅을 깊이 파더니만 여덟 송장을 묻을 적에, 그 때에 강쇠 부인 밥을 지어 손을 들고, 강쇠 송장 바라보고, 그 자리에 뻣뻣 서서 장 승죽엄 하는 구나. 뎁득이와 각설이가 서로 보고 공론하고, 변강쇠와 옹여인은 합장으 로 뫼를 쓰고, 일곱 송장 묻은 후에 활개치고 도망하니, 그 뒤야 뉘 알소냐. 이 모든 사 설이 웃자고서 한일이라. 더질 더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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