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이 본 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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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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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례 서문 l 사익 추구의 미덕 VS 공익 추구의 허구성 - 남정욱 2 1. 사익을 긍정했던 '조선의 아담 스미스' 박제가 l 조우석 5 2. HOLLYWOOD의 탄생과 성공, 그 이유를 아시나요? l 최공재 영화 장르에서의 경제적 사익 추구 l 이문원 한국 가요로 살펴본 사익 l 이근미 노키아의 몰락이 수퍼셀의 신화로 이어지다 l 윤서인 사익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고찰 l 남정욱 51
3 사익 추구의 미덕 vs 공익 추구의 허구성 인간이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는 나나 읽고 있는 당신이나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사익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 문이다. 여기에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문제까지도 포함된다. 마음에 드는 이성 을 만나고자 하는 사익 추구와 자기들의 재산을 물려줄, 자신들의 분신을 만들 어내려는 중장기형 사익 추구가 현재 우리의 존재라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사익이라는 단어는 항상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누군가 사익을 추구한 다는 이야기는 욕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의 기회나 재화를 약탈하고 있다는 느 낌으로 들린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아니다. 여기에는 전제 가 있다. 이 책에서 말하려는 사익은 공익과 연동된 사익이다. 고리대금업자가 치부를 위해 이자율을 올리는 것은 사익의 추구가 아니라 탐욕의 추구다. 그리 고 그런 추구는 지금 세상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다. 고대에도 중세에도 그런 탐욕은 있었다. 가끔 자본주의 사회가 피도 눈물도 없이 사익을 추구하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알고 그러든 모르고 그러든 새빨간 사 기다. 자본주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봉사 경제 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즐 겁게 해줘야 돈도 벌고 성공도 한다. 한림대 이인영 교수는 이렇게 깨끗하게 정리했다. 스티브 잡스가 인류애를 구현하기 위해 아이폰을 만들었는가. 그 러나 사익을 옹호하고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의 논리는 다소 어렵다. 하여 다시 여섯 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뭉쳤다. 문화 평론가인 조우석은 조선시대 실 학의 거물이었던 박제가를 부활시킨다. 일단 그는 조선조가 그렇게 거세하려고 했던 사익과 인간 욕망을 긍정하고 상공업의 가치를 일깨웠던 사람이다. 그가 29세에 집필한 <북학의>는 지금 읽어도 놀라운 책이다. 조우석은 이 책에서 몇 개의 절창 絶 唱 을 끌어낸다.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에 게 물건이 없다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우석의 말을 빌자면 가난의 경제학 을 통타한 문장이다. 조우석이 꼽은 최 고의 경구는 다음과 같다
4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 다. 비단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 안에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다. 기능공이 없으 므로 그릇이 비뚤어지든 말든 개의치 않으므로 교묘함을 일삼지 않아서 나라 에 장인과 가마와 철공소가 없고 기술도 없어졌다. 그러니 사농공상 모두가 가 난해져 서로 도울 길이 없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은 끝에 서로 다 망가졌다는 이 문장은 아담 스미스의 우리가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이유는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 다. 라는 유명한 경구와 만난다. 최공재 감독은 할리우드의 탄생과 성공 비결에서 격렬한 사익의 추구를 발견 한다. 애초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사업 수단이 없어서(즉 사익 추구 에 극성맞지 않아서) 금맥을 발견하고도 채굴을 포기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토마스 에디슨은 영화로 돈을 벌 생각에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자신의 특허에 엄청난 가치를 주장했다. 에디슨의 사익 추구로 영화는 미국에 성공적으로 안 착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에디슨의 독점에 짜증이 난 일부 영화인들이 에 디슨의 독점이 미치지 않는 서부로 이동해서 지금의 할리우드를 출범시킨다. 최공재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할리우드가 무서운 이유는 자본이 아니다. 진짜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새로운 도전 정신과 변화와 자유를 추구하며 만들어진 영화 역사일 것이다. 최공재 감독이 언급한 새로운 도전 정신 이 바로 사익의 추구였다. 역시 영 화를 통해 사익을 다루는 이문원 편집장은 현대 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의 허구를 찌르 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렇지 않은 시절이란 보통 1950~70년대에 걸쳐 나 타났던 프랑스의 누벨 바그, 영국의 앵그리 영맨, 미국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 를 말한다. 확실히 그 시기 영화들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상업적이지 않아 보 이고 현학적인 언어로 철학적으로 진행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얘기다
5 그러나 이 영화들은 절대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지 않은 영화들이 아니었다 는 게 문제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그 시절 에는 그런 영화들 이 대중의 호응을 얻어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지나치게 현학적인 영화라 여겨지 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는 1968년 북미지역 연간 통산 흥행 2위작이었 고, 400번의 구타 내 사랑 히로시마 네 멋대로 해라 등 누벨바그 영화들 도 모두 유럽시장 전역을 휩쓴 흥행성공작들이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는 관객이 어마어마하게 몰려 상영관 앞에 기마경찰들이 동원해 거리를 통제해야 했다. 이어 이문원 편집장은 메디치가의 부활이라고 떠들어댔던, 오라클 총수의 딸 인 메건 앨리슨과 그녀가 세운 안나푸르나 픽쳐스의 황당한 행보를 통해 사익 을 추구하지 않는 예술활동이 어떤 식으로 비틀리고 망가지는지를 흥미진진하 게 설명한다. 이문원 편집장은 오손 웰즈 감독의 유명한 경구인 한계의 부재 는 예술의 적 을 끌어들여 글을 마무리한다. 현실적인 한계와 싸워가며 아이디 어와 영감을 뽑아내 만드는 것이 예술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소설가 이근미는 한국 가요를 발전시킨 동력으로 사익의 추구와 미 8군 무대 의 무한 경쟁(매 분기마다 반복되는 서바이벌 오디션)을 이유로 들면서 가요사 를 흥미있게 재해석한다. 만화가 윤서인은 스마트 폰 게임 시장의 최강자인 클랜시 오브 클랜 을 통해 사익의 추구를 설명한다. 길게 소개하면 원문을 갉 아먹어 독자의 재미를 반감시키기에 이렇게 간만 살짝 보여드린다. 작업에 참 여했던 필자의 글로 끝을 대신한다. 편집자가 이 정도 권리는 있다고 본다. 조앤 롤링은 빈곤 탈출을 위해 글을 썼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은 전 세계 모 든 아이들에게 호그와트라는 마음 속 또 하나의 학교를 선물했다. 자유경제원 리버티 홀에서 남정욱 - 4 -
6 사익을 긍정했던 '조선의 아담 스미스' 박제가 -왜 21세기 한국인들은 그를 땅에 묻으려 하나- 조 우 석 문화평론가 21세기 우리의 삶은 18세기에 빚진 게 많다는 건 인류 공통의 현상이다. 각 국에 18세기학회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인데 한국에도 국문학자에서 역사학자까 지 두루 참여한 한국18세기학회가 있다. 왜 18세기일까? 대항해 시대(15~18세 기)가 포인트다. 전에 없던 문명교류가 발동이 걸린 지 200~300년, 무언가 거 대한 변화와 축적이 18세기를 전후해 등장했고, 그래서 근대초기(early modern age)라고 말하지 않던가? 근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꿈틀거림이 매혹 적인 그때를 무대로 예술에서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기인, 괴짜, 천재 등 창 조적 인재들이 속출했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고대그리스,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함께 17~18세기 계 몽주의 시대에 창의성이 높은 천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조선도 그렇다. 18세 기 조선사회에 청나라풍의 새로운 글쓰기( 小 品 文 )가 유행했던 것이 우연일 리 없다. 그건 옛 문장의 옷을 벗어던진 전혀 새로운 산문 실험이었다. 사서오경 의 거룩한(혹은 고루한) 글쓰기를 버린 채 작은 이야기와 감성을 소중하게 다 루려했던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때 이뤄졌다. 이덕무-이옥 등과 <열 하일기>의 연암 박지원 등이야말로 문체실험의 간판스타였음을 우리는 기억한 다. 그래서 조선풍( 朝 鮮 風 )으로 대변되는 자의식이 싹 텄고, 전에 없던 매니아의 세계가 출현한다. 중인 신분을 넘지 못해 좌절했던 천재 화가, 그래서 고흐처 - 5 -
7 럼 자기 눈을 찔렀던 최북( ?)을 포함해 겸재 정선, 혜원 신윤복도 이때 사람이다. 책벌레( 書 癡 ) 등 자칭타칭 바보( 癡 )의 속출, 콜렉션을 즐기는 오타쿠( 癖 )의 등장도 우연이 아니다. 전인적 교양과 균형감각을 중시하던 성리 학 체계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이 속속 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일부 담아낸 책 <미쳐야 미친다>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게 벌써 11년 전이다. 스타 국문학자 정민(한양대 교수)이 쓴 그 책은 불 광불급( 不 狂 不 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열정과 광기의 18세기 조선 천재들을 모아놓았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북학파( 北 學 派 )로 대변되는 실학의 바람까지 불었다는 걸 기억해둬야 한다. 18세기는 요즘 인터넷혁명과 비견되 는 지식정보의 혁명이 진행됐다는 것이 정민의 주장이다. (한문고전에 밝은 정 민은 감각도 좋지만, 아쉽게도 시야가 우리가 원하는만큼은 못된다. 나머지는 우리 몫이다.)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것의 전부였는데, 실학자 박제가 (1750~1805)의 저술 <북학의>를 새롭게 읽으며 시야가 조금은 더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 박제가는 무엇보다 조선의 아담 스미스다. 국내의 몇몇 경제학자들이 그의 가 치를 알아봤지만, 아직도 전체 모습이 밝혀진 건 아닌데 박제가는 무엇보다 조 선조가 그렇게 거세하려했던 사익( 私 益, 개인의 이익)과 인간 욕망을 긍정했고, 상공업의 가치를 일깨워졌던 장본인이다. 그래서 요즘 말로 뇌섹남이다. 조선 시대 저술이란 대부분 성리학적 공리공담인데, 그는 영판 달랐던 이단아라서 20세기 인간에 가까운 까닭이다. 글만해도 그러한데, 아주 구체적인 대상에 대 한 미주알 고주알의 리포트로 채워진 책이 <북학의>다. 즉 '잘 나가는 청나라 에선 요즘 무엇이?'를 다룬 매우 저널리스틱한 보고서였다. 책을 쓰는 스타일 까지 영국의 아담 스미스와 닮았다. 박제가(1750년생)와 아담 스미스(1723년생)는 같은 18세기 사람이라는 것도 우연만은 아닌데, 아담 스미스의 대표작인 <국부론>(1776)은 엄청 어렵다고 하 는 지적이 맞지만, 기본적으로 <북학의>처럼 저널리스틱한 보고서다. 이윤추구 - 6 -
8 에 충실한 경제인의 주체적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 에 이끌려 국부의 증진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밝히지만, 실은 신흥 산업도시인 글래스고를 비롯한 산 업혁명의 태동 현장을 담아낸 현장 정보로 가득하다.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계 기는 필자에게는 단행본 <사익론>(백년동안)과, 이 내용의 기초가 된 자유경제 원의 포럼의 계몽적 역할이 컸다. 시장경제는 국민들의 인식수준과 비례해서 발전하게 된다. 사익( 私 益 )을 나 쁜 것으로 보고, 억제해야 할 인간본성으로 취급하게 되면, 시장경제는 더 발 전할 수 없다. 사익의 연장선에는 기업의 이윤이 있다. 사익처럼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는 정당한 것이다. 긍정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 은 조선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익과 기업이윤을 억제하는 정책이 정의롭고 공익을 위한다고 착각한다. 사회에 열병처럼 번지는 상생,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구호들이 사익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 <사익론> 머리말에 나오는 구절인데, 사익과 기업이윤을 보는 우리 인식이 조선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 건 정확한 얘기다. 그러고 보니 박제가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보니 이유로 농본주의 사회구조에 갇혀 살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괴상했던 뇌 구조가 더 잘 들여다 보이고, 여기에 반기를 들었던 돈키호테 박제가의 특징이 확실하게 두드러졌다. 곁들여 얼마 전에 섭 렵한 역사학자 임용한(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의 훌륭한 단행본 <박제가, 욕망 을 거세한 조선을 비웃다>(2012년, 역사의아침 펴냄)도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 다. 믿어지시는가? 지적대로 조선시대는 최대한 평등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한 다는 이데올로기에 붙들려 살았다. 그래서 그 500년 동안 가난이란 떨쳐 내야 할 대상이자, 동시에 자신들이 믿었던 인간 본성에 걸맞는 최적( 最 適 )의 상태 로 떠받들어졌다. 분명 역설인데, 그 때문에 조선의 경제사상은 우리가 생각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이다. 는 임용한의 지적은 핵심을 찌른 것이 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사회가 편안하고 안정적이 되려면 극소수의 지배층 - 7 -
9 을 제외하고는 90퍼센트 이상의 국민이 평등하게 가난해야 한다 고 굳세게 믿 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란 마르크스 등장 이전 일찍이 한반도를 무대로 구현됐던 좌파 집단이었다. 그렇게 봐야 그 시대가 제대로 보인다. 유학의 이상향은 대 동사회( 大 同 社 會 )로 요약되는데, 그건 무엇보다 차별이 없는 세상이다. 그래 야 대도( 大 道 )가 이루어지는 평온한 시대라고 말한다. 구호에 불과했던 그게 현실 속에서 구현됐던 유일무이한 사례가 조선왕조 500년이었다. 그러나 속으 론 멍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임용한의 책 제목대로 인간의 욕망 자체와 사 익-기업이익 전체를 송두리째 거세했던 조선이 겉으론 모두가 가난하고 평등 했으나, 속으론 허위의식과 위선으로 가득했던 이중성으로 가득했다. 그걸 알기 위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이익을 사례로 들어야 한다. 그가 쓴 <성호사설>은 박제가와 정약용을 비롯해 18세기의 젊은 지식인들치고 읽고 나서 감동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익은 부와 재물 의 축적, 그것을 탐하는 마음이란 사회와 백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조선조의 사익-욕망 부정론을 상징하는 그의 가르침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렸 다. 이익은 그의 책 <성호사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두보의 시에서 이르기를 고귀한 것이 없으면 미천한 것도 슬프지 않고 부유한 자가 없으면 가난한 자 도 자족할 것이다 라고 했다. 천하가 모두 미천하고 가난하다면 모든 사람이 부지런하고 검소해질 것이다. 그 생각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물자가 항상 부족하게 사는 것, 낮춰사는 평등 상태야말로 인간이 가장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역설적 방법이라는 깨우침이 었다. 고귀하고 부유한 것을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의 하향평준화야말로 실 학자 이익이 겨냥했던 행복에 이르는 황당한 길이었다. 요즘 말로 무소유론인 데, 그게 몇몇 종교지도자의 설교가 아닌 국가이념으로 떠받들어지면서 조선조 의 비극이 만들어진다.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다. 모두가 그러했다. 18세기 사 람이 이렇다면, 그 이전은 어땠을까? 200년 전 뛰어난 학자이자 조정의 요직 - 8 -
10 을 두루 경험했던 율곡의 경우도 가난에 쩔어 살아야 했다. 훗날 시골에 머물던 그를 찾아온 고관대작과 함께 밥상을 받았는데, 고관은 상위에서 숟가락을 댈 곳을 찾지 못했다. 이때 머쓱해진 율곡이 그를 향해 던 진 한 마디. 해가 지고 난 뒤 느지막이 먹으면 맛이 있나니. 뭘 모르는 사 람들이라면 율곡의 청빈과 극기를 칭찬할지 몰라도 그건 이미 정상적인 사회 가 아니었다. 율곡 정도가 하루 세끼를 온전히 못 먹었다면, 나머지는 말할 것 도 없다. 박제가의 <북학의>에 그런 대목에 대한 지적이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외려 이상한 일인데,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백성은 아침저녁 먹을거리가 없이 생계를 꾸려갔다. 열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하루 두 끼를 해결하는 자가 몇 집 되지 않는다 고 그가 보고하고 있을 정도다. 이 글 앞에서 조선시대에 가난이란 떨쳐 내야할 대상이자, 동시에 자신들이 믿었던 인간 본성에 걸맞는 최적( 最 適 )의 상태로 떠받들어졌다 는 표현은 그냥 해본 게 아니었는데, 위선적인 농본정책에 따른 극빈의 삶이 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인의( 仁 義 )가 강물처럼 흐르는 요순의 시대 를 재현한다고 마냥 허장성세였다. 연암 박지원이 <호질>과 <양반전>에서 직업 없이 무기력하고 위선에 찬 양반의 행태를 노골적으로 묘사해냈던 것도 그 맥락이다. 급기야 기철학으로 유명한 훗날 19세기 선비 혜강 최한기는 안빈낙도 혹은 염빈( 廉 貧 )란 전통적 캐치프레이즈를 저주했다. 그건 하등( 下 等 ) 인간들의 자 기 위안 이라며 자기 제자들에게 상업, 의술, 수공업의 노하우를 익히라고 가 르치기에 이르렀다. 단재 신채호도 일찌감치 육경( 六 經 )을 불싸질렀어야 했 다 고 외쳤으나 이미 조선이 망국의 험한 꼴을 보이던 무렵이니 때는 늦었다. 단재가 상고사 쪽으로 지적 위안의 망명 을 하고 유교를 폐기한 뒤 아나키즘 으로 돌아선 것도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다. 비전이 없는 사회에서 그것만이 방 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18세기 실학자로 조선사회에 만연한 검약과 극빈이 인간을 춤추게 한다 는 정의를 단칼에 잘랐던 인물, 조선의 아담 스미스로 모자람이 없이 박 - 9 -
11 제가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더 돋보인다. 확실히 그는 새로운 사회이념을 창출 해낼 가능성이 있었던 위인인데, 그래서 <북학의>에서 지적했다.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 하여 스스로 단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 비수 같은 한마디 로는 수백 년 가난의 경제학을 통타했다. 드디어 유명한 우물의 비유가 등장한 다. 이 비유를 통해 그는 소비가 미덕이며,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고 주장했 다.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비단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다. 기능공이 없으므로 그릇이 삐뚤어지든 말든 개의치 않으므로 교묘함을 일삼지 않아서 나라에 장 인과 가마와 철공소가 없고, 기술도 없어졌다. 그러니 사농공상 모두가 가 난해져서 서로 도울 길이 없다. <북학의> 경탄스러운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조선조에 이런 파천황의 발언이 튀어나오다 니! 그가 걸출한 점은 인간 욕망을 긍정했다는 점이다. 박제가는 많은 사람이 사회의 악이라고 주장하는 사치품 생산도 옹호하는 급진성도 보였다. 그래서 박제가를 경제사상가라기보다는 선각자이며, 계몽사상가라서 <꿀벌의 우화>를 쓴 버나드 맨더빌(1670~1733)과 닮았다. 16세기 이후 서유럽에서 도시와 상공 업이 발달하면서 검소와 절약이 미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단아들이 등장하 기 시작했는데, 이중 제일 신랄했던 인물이 버나드 맨더빌이다. 풍자 시인이던 그는 <꿀벌의 우화> 라는 풍자시로 조선과 비슷한 서양 중세의 경제사상을 비 난했다.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 명을 먹여 살렸다 시샘과 헛바람은 산업의 역군이니 그들이 즐기는 멍청한 짓거리인 먹고 쓰고 입는 것에 부리는 변덕은
12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 하는 바로 그 바퀴였다. 어느 날 지배층이 대오각성해서 사치를 일절 중단하고, 아랫사람에게 빵과 돈 을 아낌없이 베풀고, 가난한 사람을 먹이고 재워주면 일자리는 사라지고, 실업 자는 넘쳐나며, 국가 전체가 가난에 빠질 것이라는 통찰이다. 사치의 가치를 주장하는 이유는 부자의 편에 서서 사치를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발 전, 사회발전의 동인으로서 욕망의 역할을 인정하라는 요구다. 그런 그가 풍자 한 사회가 우리가 잘 아는 조선시대 사회의 현실과 너무나 닮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리얼한지 모른다. 오만과 사치가 줄어들면서 점차 그들은 바다를 멀리했다. 이제는 상인뿐 아니라 회사들마저도 공장을 몽땅 없애버렸다. 온갖 예술 공예품은 잊힌 채 나뒹굴었고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원흉인 만족감 때문에 그들은 초라한 곳간을 좋다고 하면서 더는 찾지도 샘내지도 않게 되었다. 꿀벌의 우화 점차 그들은 바다를 멀리했다. 이 문장에 주목하자. 국제무역을 하려면 바 다가 중요하다. 육로로 운송하면 상품의 양은 적고, 시간은 오래 걸려 해상수 송보다 비용이 몇 십, 몇 백 배 든다. 해상교역은 고대부터 발달해 신라에는 해상왕 장보고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도 상선들이 상당히 오고 갔다. 그러나 철 저한 쇄국과 무역통제를 실시한 조선은 완벽하게 바다를 버린채 스스로 갇힌 사회 가 된다. 그렇게 놀던 조선반도가 중화권 대륙문명을 벗어나 해양국가로 대변신한 것은 20세기 최대의 기적인데, 모두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극적인
13 대반전이고, 박제가를 포함한 실학파의 꿈을 이룬 위대한 승리였다. 그런 박제가가 진정 놀라운 점은 잘 나가던 청나라와 이웃 일본을 우습게 보 며 소중화( 小 中 華 )를 운운하며 몽롱하게 취해 살던 자기기만과 자폐( 自 閉 )의 그 시절에 선진문명(청나라)을 배워야 한다는 자각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는 모두가 오랑케 괴담 에 빠져 청나라를 사람도 나라도 아닌 곳으로 우습게 봤 고, 왜놈 괴담 에 가려 발전하는 일본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8세기 조 선판 개혁-개방의 선구자로 썩 늠름하다. 서자 출신의 아웃사이더 기질 때문 에 시야가 좀 달랐던 것일까? 실은 서자가 어디 한두 명일까? 박제가는 자탄을 넘어 전체를 통찰할 줄 알았고, 그래서 부국강병의 방략을 동원해 가난한 나라 조선을 통째로 바꿔 부자나라로 진입시키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는 수레, 도로에서 종이, 벽돌에 이르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 利 用 ) 삶을 풍요롭게 하자( 厚 生 )는 이용후생학파였다. 윤리도덕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민생을 챙기자고 했던 실학자인 그는 동시에 군대운용에서 시장 경영 에 이르기까지 근대 이전 청나라 부국강병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자고 제안 했던 전략가였다. 자탄을 넘어 전체를 통찰할 줄 알았고, 가난한 나라 조선을 부자나라로 진입 시키자는 제안은 지금도 엄청 현대적이다. 그러나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박제 가에 대한 주목은 퇴영과 가난을 이념으로 내세웠던 기이한 시대 조선에 그 같은 이단아가 있었다는 점 때문이 아니다. 그를 통해 시장경제의 싹이 보인다 고 위로 받자는 것도 아니다. 박제가에 대한 주목이 이 누추한 땅 조선에도 그 같은 이단아가 있었다는 자뻑에 그쳐서는 안된다. 실제로 박제가의 꿈을 자생 적 근대화의 맹아로 규정하며 자화자찬에 빠지는 이들을 종종 본다. 그게 다시 '우리민족끼리'의 정서로 발전해 민족주의의 늪으로 빠져드는 건 아닐까? 그보다는 박제가라는 거울을 통해 조선조 사회가 가난에 찌든 하향평준화와 경제민주화를 일찌감치 구현했고, 동반성장 아닌 동반가난을 도그마로 삼는 바 람에 가난의 땟국물을 일상으로 구현했던 나라였다는 걸 새삼 꿰뚫어볼 필요
14 가 있다. 21세기인 지금도 열병처럼 번지는 상생,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구호 들이야말로 사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500년 전 그때서 멈춰 서있음을 증명 해준다. 아니 67년 전 대한민국을 새롭게 디자인했던 우남 이승만 등 건국의 지도자들이 내세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효화한 채 조선왕조의 옛 질 서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박제가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사익과 기업이윤을 보는 우리 21세기 평균적 한국인의 인식이 조선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통 찰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이란 게 한반도 역사에서 얼마나 새롭고 이질적인 혁명이었던가를 새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건 거꾸로 말해도 된다. 김일성 전체주의집단의 이른바 인공 체제 구축이란 한국인 심성에 너무도 딱 들어맞았는데, 실제로 저들은 한반도의 오래된 미래 인 평등한 가난을 한반도 북쪽에 또 다시 재현해냈다. 종북좌파들과 새누리-새민련의 여의도 정치권은 그걸 서울을 포함한 한반도 남쪽에 다시 구현하고 싶어 지금도 난리 굿판을 벌이는 중이다. 사익과 기업이 익을 옹호하고 경제민주화를 막는 노력은 그만큼 곱절로 힘 들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새삼 절감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자학 좌파가 내내 집권했던 조선왕조의 특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박제가를 새삼 음미해보는 지 금 우리 눈앞의 과제란 그만큼 곱절로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아야 한다
15 HOLLYWOOD의 탄생과 성공, 그 이유를 아시나요? 최 공 재 영화감독 전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Hollywood. 국내 자동차 수출의 총액보다 그들의 영화 한 편 수익이 더 많은 현실 속에서 세계 영화계는 Hollywood의 막강한 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런데, 과연 Hollywood가 처음부터 이런 막강한 문화산업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까? 답부 터 말하자면,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Hollywood의 초반 등장은 유럽의 영화인들이나 예술가들에게 싸구려 취급을 받거나 순수한 예술에 먹칠하는 곳쯤으로 치부되었었다. 하지만, 누구도 좋아
16 하지 않았던 Hollywood의 등장은 문화산업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며, 지금 현재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세계 문화산업의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국의 영화산업은 2번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지금의 Hollywood가 자리잡게 된다. 변화라고는 했지만 사실적으로 말하면 2번의 충돌이었고, 그 충돌은 개 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익과 사익, 공익과 사익간의 충돌이었다. 그리고, 그 충돌은 Hollywood라는 매 우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당사자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 았던 그런 사익의 충돌은 매 위기가 올 때마다 미국의 영화산업을 번창시 키며 Hollywood라는 막강한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빅뱅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한 것처럼 그런 사익의 충돌은 새로운 문화를 만든 것이다. Hollywood가 어떤 사익의 충돌과 변화를 통해 지금에 왔는지 한번 확인해 보 면, 우리는 결국 사익이 공익적 형태, 거창하게 말하면 더 나아가 인류의 문화 발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Hollywood의 역사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먼저 Hollywood의 탄생배경을 알기 위해선 조금은 먼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영화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답은 나와 있지 않 다. 인류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 을 만든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의 시작을
17 알리긴 했지만,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장비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이 남아있 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 를 만든 것이 지 금 최초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전구를 발명 한 것으로 유명한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 이 영상촬영장비인 키네토그래프 (kinetograph) 와 그것을 볼 수 있는 장비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 를 1892년에 먼저 발명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영화의 기술적 단어는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기계의 명칭인 Cinema 로 통용되었고, 토마스 에디슨 역시 자존심 상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뤼미에르 형제의 방식으로 영화사업을 시작해야만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현상은 바로 뤼미에르와 에디슨의 그 다음 행동에 있다. 뤼미 에르 형제는 처음으로 돈을 받고 영화를 보여준 인물들이지만 사업수완이 없 어서 중도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영화를 포기하고 사진으로 돌아가 순수 예술을 지향하면서 영화계에 더 이상의 존재의미를 부여 받지 못한다. 하지만, 사업수완이 매우 탁월했던 에디슨은 영화가 자신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1908년도에 뉴욕지역에 있는 10개의 영화사들을 묶어 영화특허회사(MPPC) 를 만들고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비록 영화의 첫 탄생은 뤼미에르에게 넘겼지만, 토마스 에디슨은 처음으로 그렇게 영화산업 의 형식을 만들게 된 것이다. (쓸데없는 것이긴 하지만) 만약, 뤼미에르 형제처럼 에디슨마저도 그런 개인적 인 사익추구가 없었다면 지금 영화라는 문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중문화, 혹은 문화산업의 시작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채 우리는 엄청나게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야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화와 산업을 결합시킴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누구나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
18 었음을 안다면 당시 에디슨의 사익추구는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가치를 제공 해 주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의 특성 중 하나는 독과점 을 향한다는 것에 있다. 그것이 나쁘 냐, 좋냐의 문제는 차후로 미루기로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에디슨 역시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하자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과도한 특허권을 주장하게 된다. 그는 영상장비의 사용에도 특허에 대한 사용권과 함께 상영되는 영화의 길이 (시간)에 따라 추가 특허 사용권을 받기를 희망했다. 논란 속에서 연방법원은 에디슨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영세한 영화제작자들은 그런 에디슨의 독점에 강 하게 반발하며 연방법이 미치지 않는 서부로의 대이동을 시작한다. 그렇게 서 부로, 서부로 대이동을 하면서 안착한 시골 깡촌 마을 LOS ANGELES가 지금 의 Hollywood가 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영세한 제작사들이 에디슨의 법에 강하게 반발하며, 대이동까지 감안해야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영화계는 유럽에서 서사구조를 가진 장편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영화들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제 갓 영 화를 시작하는 미국의 영화인들은 설 자리가 별로 없었다
19 그들의 작품 수준은 단편이나 서사가 아닌 말 그대로 활동사진적인 것이었다. 그러니 미국 영화들이 장사가 될 일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배고픈 그들에게 에디슨의 요구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들도 먹고 살아야만 했고,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마음껏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곳으로의 이동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연방법이 미치지 않는 곳, 서부로의 이동은 그렇 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Hollywood라는 그들의 공간에 서 자신들의 사익을 극대화하기 시작했고,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시작 했다. 그 영화계 대이동의 선봉에 선 영화사가 바로 지금의 20세기 폭스 다. Hollywood 최고의 메이저사인 폭스 도 그렇게 초창기엔 영세 영화사였었지 만, 이 무모한 도전이 지금의 폭스 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에디슨은 그 렇게 본의 아니게 지금 전세계 영화산업의 핵심인 Hollywood를 만들게 한 아 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조그만 영세 영화제작사들이었던 20세기 폭스 나 파라마운트, 워너 브러더스 같은 회사들이 스튜디오(Studio) 시스 템으로 가는 시작점을 연 것이다. 그렇게 Hollywood의 시작은 에디슨의 사익 추구와 다른 영화사들의 사익과의 충돌에서 시작되었고, 그 충돌은 매우 발전적인 형태로 진화, 혹은 창조되었 다. 하지만, 지금의 Hollywood가 되기 위해 그들은 또 한번의 충돌을 이겨내 야만 했고, 그것 역시도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Hollywood의 사익추구에 대한 중대한 충돌이었다. 처음 그들은 뉴욕의 정 반대편에 있는 LA에서 향후 전세계 영화시장을 지배하 게 될 Hollywood의 시작을 알리는 Hollywood Land 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짜 속된 표현 말 그대로 맨 땅에 삽질 하는 매우 험난한 과정이었 다. 에디슨을 피해 왔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욱 배가 고팠다. 절실히 살아나야 만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상상하지 못했던 기회가 그들에게 찾아 오고,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 위에서 언급한대로 당시 영화시장은 유럽이 미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미국 이 간단하고 짧은 단편의 형태인 반면에, 유럽은 서사구조를 가진 정식적인 장 편영화의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운 좋게도 당시 유럽 에서는 서부영화 가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마카로니 웨스턴(macaroni western)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 이라는 이탈리아와 스페 인 영화의 태동과 흥행이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유럽의 많은 영화사들이 당시의 흐름을 타고 서부영화를 찍기에 적합 한 장소를 찾아 미국으로 로케이션을 오기 시작했고, Hollywood의 배고픈 제 작사들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Hollywood는 서부영화를 찍기엔 안성맞춤이었고, 생 각지도 못했던 수익과 함께 당시 유럽의 영화기술들을 습득하는 일거양득을 이루어낸다
21 그러면서 그들은 Hollywood studio 만의 영화적 형태를 만들기 시작하며, 미국 스타일의 서부영화로 세계시장 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국의 서부영화는 선과 악 이라는 명확한 이분법 구도로 그다지 세계적인 주목을 끌지 못했고, 급기야 는 60년대 들어 다시 유럽에 서부영 화의 흐름을 넘기게 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만든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는 이탈 리아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작을 알리며 미국 서부영화에 큰 타격을 입히면서 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라는 명배우를 탄생시켰다. 이제 Hollywood는 다시 한번 변화를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던 찰나에 1,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Hollywood는, 자신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되는지를 완전하게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힘든 시절,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과 자국의 국민들을 위로하 고, 일반인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영화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택으로 인해 Hollywood는 세계시장을 점차 석권하기 시작하며, 문화산업 이라는 새로운 산업 형식을 탄생시키게 된다. 당시, 유럽의 영화인들은 그들을 비웃었다. Hollywood를 저속하고 싸구려로 취급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들 이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전쟁에 지친 일반인(해외 이민 자 포함해서) 모두가 적은 돈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미국 극장가는
22 호황을 맞게 되고, 세계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많은 관객들을 확보하기 위 해 그들은 극장을 많이 세우고 독과점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잘나가던 Hollywood는 두 번째 감당하기 힘든 충돌을 맞이하 게 된다. 자신들이 과거 에디슨과 충돌을 일으키며 떠나왔던 것과 똑같은 일 (독과점 문제)을 겪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문제가 달랐다. Hollywood 스튜디오 영화사들에게 개인이 아닌 미국 정부가 소송을 건 것이 다. 미국 정부는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워너, 유니버설 등 Hollywood 8개 스 튜디오들에게 공정거래 독과점 방지법인 셔먼법 위반 의심 행위에 대한 금지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극장을 사들여 수직 통합을 구축했고, 대량의 영 화를 제작해 자체 배급망을 통해 전국 상영관에 배급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 을 챙겼었다. 1984년이 돼서야 미국 연방대법원은 Hollywood 스튜디오에 대한 반독점 소송 에서 스튜디오들에게 극장 매각을 명하게 되는데, 이 것은 1950년대 Hollywood 스튜디오 시스템을 변화시킨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아직도 독과점 문제에서 예시로 보여지고 있다. 어쨌든 미국 정부의 소송에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야 했던 Hollywood 는 기존 스튜디오 시스템을 넘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변화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게 바로 지금 현재의 메이저(Major) 시스템 이다. 정부의 간섭을 피하면서도 오히려 수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23 그렇게 Hollywood는 대대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감행하며 다시 진화하기 시작 했다. 각각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자신들의 색깔에 맞 지 않는 영화도 제작하면서, 마이너와 인디펜던트의 수직계열 작업을 시작했 다. 위의 도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월트 디즈니가 쿠엔틴 타란티노 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같은 감독들이 만드는 황혼에서 새벽까지 나, 그라인드하우스 같은 영화를 만드는 트러블 메이커 의 메이저 제작사라는 것은 일반관객들에 게는 깜짝 놀랄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의 결과는 탁월했고, 놀라우리만치 확실한 결과로 이어졌 다. 자생력을 가지게 된 마이너와 인디펜던트 계열사들은 향후 메이저 스튜디 오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보루를 넘어 또 다른 메이저의 등극을 만드는 중요 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워너 브러더스가 무너질 찰나에 뉴라인 시네마 에서 만든 반지의 제왕 으로 워너가 다시 소생한 일화는 이 메이저 시스템의 견고함을 잘 알려주는 사건이 다
24 또한, 이 부분은 산업적으로 독과점 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국 의 일반인들에게 독과점 은 끔찍한 대기업의 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 만, Hollywood의 독과점을 유지시키는 메이저 시스템 을 보면 한국인들이 우 려하는 독과점이 아닌 대기업의 메이저화라는 시선으로 본다면 긍정적으로 변 하게 될 것이다. 메이저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Hollywood는 충분히 그 좋은 예시를 제공하 고 있다. 이렇게 Hollywood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산업적 으로 성공할 즈음, 토마스 에디슨이 그랬듯 Hollywood도 미국 영화계에 본의 아니게 또 다 른 진화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60년대 반전운동과 함께 청년들의 저항운동이 일 어나며 영화계도 Hollywood를 거부하는 움직임 이 발생한 것이다. 그들은 Hollywood의 초기 영화인들이 그랬듯 Hollywood를 떠나 동부로 대이 동을 시작하며 뉴욕으로 향했다. 그 여정 속에 만들어진 것이 뉴 아메리칸 시 네마 였다. 에디슨처럼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Hollywood 역시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제공하는 빌미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화산업의 중심지로 불려지는 서부지역의 Hollywood와 예 술영화로 불려지는 동부의 뉴욕으로 양분되어 미국의 영화계는 튼튼한 뿌리를 형성하며, 현재 전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Hollywood이 무서운 이유는 자본이 아니다. 진짜 그들이 무서운 이유는 이렇 게 언제든지 새로운 도전정신과 변화와 자유를 추구하며 만들어진 영화 역사
25 일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Hollywood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영화를 산업으로서 인지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려 는 노력을 했다. 토마스 에디슨에게 반기를 든 것도, 미국 정부의 소송에서 지 고 변화를 시도한 것도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것은 분명 사익 에 기반 한다. 만약 그들이 공익을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에디슨이 공익적으로 미국 영화인들을 대했다면 지금은 유럽의 영화에 먹혔을 지 모를 일이고, 미국정부가 요구했던 공익적 목적에 맞췄다면 전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미국의 영화산업도 없었을 것이다. 유럽에서나 영화를 통한 사회혁명을 주장하고 그 이상의 뭔가를 제시하지만, Hollywood는 시작부터 철저히 산업적 관점에서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어 냈다. 이 공익 과 사익 의 충돌의 결과는 어떤가? 흔히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유럽의 영화들은 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존재하고 있 고, 프랑스마저 뤽 베송 이후 Hollywood의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100년전, 유럽의 영화들에게 한 수 배웠던 Hollywood가 이젠 유럽의 영화인들에게 한 수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만 보더라도 공익과 사익의 차이를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그렇 게 공익을 외치던 영화들은 지금 다 박물관에 처박혀 있고 철 지난 영화사조 안에서 텍스트로 교육되기만 할 뿐이지만, 사익으로 시작한 Hollywood는 지금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만들며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는 아직 공익을 외치며 국가의 세금이나 받아 먹으려는 영화인과
26 그런 영화들이 즐비하긴 하지만, 그들의 속내에도 역시나 일 안하고 돈은 먹겠 다는 나쁜 의식이 내재되어 있을 뿐이다. 공익이란 허울만 좋은 가면을 쓰 고 한국엔 매년 1천억원이 넘는 세금이 영화계에 투입된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J같은 대기업도,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도, 현장 영화인들도 모두 돈을 벌지 못하고 여전히 배고프다. 도대체 그 1천억이라는 세금은 어떤 공익을 위해 한국영화계에 투자되는 것일 까? 공익은 어쩌면 신기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공익은 없다. 사익만이 인간에겐 존재할 뿐이다. 사익이 있어야 그 안에서 다양한 이익집단이 형성되면서 공공적 가치도 실현 될 수 있다. 더군다나 문화가 발전하는 이유는 절대 공익적일 수 없다. 그리 고, 사익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금전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멋진 영화를 만들면 그보다 더 잘 만들고, 그보다 더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감독이 되는 것도 의식적 사익의 추구일 것이다. 더군다나 개인적 의식 세계 안에서 유영하는 속칭 예술가라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어쩌면 공익 의 개념을 갖는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 예술가는 오히 려 문화산업의 종사자들보다 더 개인적이고, 그래서 사익추구를 하는 것이 정 상이다. Hollywood만 보더라도 사익의 완성 이후, 그것이 아메리칸 시네마 나 뉴욕의 예술영화계라는 또 다른 예술적 근거를 제공하는 길을 열어줬다. 문화계, 최소한 영화계에서만큼은 공익 은 그저 루저들의 허울좋은 변명일 뿐 이다. 영화계를 잠시 떠나 한국의 대중음악계를 보자. 군사정권 시절, 그렇게 탄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K-POP을 만들어냈고 한국의 문화계에서 유일하 게 가장 탄탄한 저작권 보호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음악계는 변명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들의 사익을 챙길 뿐이다
27 그들은 정부에 대고 말한다. 그나마 잘되고 있는 거 정부가 개입해서 망치게 하지 말라! 고. 그 어디서고 공익이라는 것이 문화를 발전시킨 사례는 없다. 북한만 보더라도 그렇게 당대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해방 이후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문화가 세상에 내보여진 적은 없다. 문화의 발전에는 수많은 대중들의 니즈를 만족시켜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는 수많은 창작자들의 사익 추구에 의해 발전되었을 뿐이다. Hollywood가 정말 두려운 이유는, 그러 대중들의 니즈를 맞추고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창 작자들이 도전하는 공간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철저하게 사익을 추구하면서, 말로만 공익을 내세우는 한국영화인들 이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28 영화 장르에서의 경제적 사익 추구, - 당연한 것 을 왜곡시킬 때 일어나는 비극들 - 이 문 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사실 대중문화 장르에 있어 사익( 私 益 ) 추구의 문제란 딱히 더 거론할 만한 얘긴 아니다. 대중문화 자체가 자유시장경제 구조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에 그렇다. 그런 만큼 여타 분야에서도 충분히 제기될 수 있을 갖가지 사익 개념 들은 물론, 보다 근본적인 경제적 사익 추구란 지점에서 역시 달리 바라보기 어렵다. 물론 문화예술 분야 특성상 경제적 사익이 근본적 행동심리 동력이라 보긴 어려울 수도 있다. 모든 종류 예술 형태는 어찌됐건 발작적이며 돌출적인 예술 적 영감을 통해 동력이 형성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그러나 최소한 그 예 술적 창작행위를 일정수준 이상 유지시키고 집중시키는 역할, 즉 예술적 창작 행위를 전문직업적 차원으로 유도하는 역할 차원에서만큼은 분명 경제적 사익 추구가 절대적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그런 상황이기에, 이 글에선 반대로, 지난 100여년에 걸쳐 대중문화 장르 대 표 격인 영화 장르를 둘러싼 산업구조 내에서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던 경우를 돌아보기로 하겠다. 실제로 그런 경우들이 존재하긴 했다. 그 대표 격 두 사례를 통해 왜 이처럼 당연한 대중문화산업 내에서의 경제적 사익 추구 개념이 일시적으로나마 무너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식 역 행 발상은 쉽게 지속성을 잃거나, 본래 행동심리상 동력을 훼손시키거나, 나아 가 산업구조를 왜곡시켜 시장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됐는 지 돌아보기로 하 겠다
29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던 영화들은 더욱 변태왜곡된 방식으로 사익을 얻는다 흔히 영화 장르가 지나치게 상업성 위주로만 흐르고 있다며 비판하는 목소리 엔 대부분 그렇지 않았던 시절 이 언급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경제적 사익 추구가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로는 대부분 1950~70년대에 걸친 프랑스 누벨바 그 시절, 영국의 앵그리 영맨 시절, 미국의 아메리칸 뉴 시네마 시절 등이 언 급되곤 한다. 확실히 이 시기 영화들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딱히 상업적으로 어필할 만하 다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극히 현학적인 언어로 느릿느릿하게 진행되 는 철학적 영화들이 많고, 그 외 각종 사회파 영화, 내러티브를 파괴한 실험적 기법의 영화들도 많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절대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지 않은 영화들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그 시절 에는 그런 영화들 이 대중의 호응 을 얻어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지금은 지나치게 현학적인 영화라 여겨지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는 1968년 북미지역 연간 통산 흥행 2위작이었고, 400번의 구타 내 사랑 히로시마 네 멋대로 해라 등 누벨바그 영화들도 모 두 유럽시장 전역을 휩쓴 흥행성공작들이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는 관객 이 어마어마하게 몰려 상영관 앞에 기마경찰들이 동원해 거리를 통제해야 했 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급격히 상승한 대중의 교육수 준, 마찬가지로 상승하기 시작한 생활수준, 미디어 폭발기와 맞물린 지식인계 급 담론시장 확대, 여기에 비트세대-히피세대로 대표되는 신좌파 트렌드가 가 세한 청년세대 분위기 등등. 어찌됐건 결론은 같다. 당시엔 그런 영화들이 상 업성 높은 영화들 이었기에 쏟아져 나온 것뿐, 근본적으로 영화 장르 내에서 돈이 안 벌릴 영화들에 미쳤다고 투자자들이 돈을 쏟아 붓던 시절들은 아니었 다는 것이다
30 정작 경제적 사익 과 별 상관없이 만들어진 영화들은 따로 있었다. 이른바 제3세계 영화론에 충실한 영화들, 즉 정치적 목적성을 뚜렷이 띠고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이 같은 개념은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오 케티 노가 처음 제시한 바 있는데, 할리우드 중심의 소비적이고 오락적인 영화를 제 1영화, 나름대로 진지하게 현실을 고민하지만 주변만 맴돌고 마는 유럽을 중 심으로 한 영화를 제2영화, 그리고 이 두 영화적 흐름을 탈피해 사회의 구조 적 모순을 지적하고 역사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추구하려는 혁명적 영화를 제 3영화라 지칭했다. 이 이론은 영화가 대중을 결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서, 카메라가 영 상/무기를 끊임없이 수용하는 탄창 이라면, 영사기는 초당 24발의 프레임을 날려 보내는 기관창 이다 란 선언으로 대변된다. 여러모로 무시무시한 개념이 다. 하여간 이런 식이니 제3영화 는 절대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선 안 됐고, 오직 혁명적 정치사회 흐름을 돕기 위해서만 기획되고 만들 어지며 상영될 수 있었다. 그럼 이런 영화는 대체 어디서 돈이 나서 만들어졌던 걸까. 단순하다. 그런 정치사회적 흐름을 조장하려는 정치세력에 의해 제작비가 충당돼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정치권발( 發 ) 영화들이었던 셈이다. 한국에서도 1980~90년대 정치권 에서 자금을 흘러나와 제작되곤 했던 대학 동아리 중심 다큐멘터리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결국 넓은 의미 에서의 사익은 맞긴 하다. 다만 그게 경제적 사익 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역시도 정치권력 획책이란 큰 화두 내에서 보 면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사익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오직 더 변태적이 고 더 왜곡된 형태로서 경제적 사익이 추구됐을 뿐이다. 21세기 대중문화계에 메디치 가문의 부활? 오히려 폐해만 남긴다 이제 조금 더 특이한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 마디로, 메디치 가문의 부
31 활 과도 같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21세기 영화 장르 내에서, 그것도 영화 장르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 다. 화제의 주인공은 메건 엘리슨이란 여성제작자다. 올해 29세밖에 안 됐다. 그 런데 이 여성제작자가 영화산업의 기본과도 같은 경제적 사익 추구 원칙을 송 두리째 깨부수고 있는 중이다. 대체 29세 여성이 무슨 돈이 있어서? 사연은 단순하다. 그녀의 아버지가 바로 세계적 IT기업 오라클의 총수, 래리 엘리슨이 다. 전 재산이 410억 달러(약 4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래리 엘리슨은 딸인 메건 앨리슨의 25세 생일선물로 그중 20억 달러(약 2조 원)을 증여해줬 다. 이 돈으로 메건 앨리슨은 평소 늘 관심 있었던 영화산업에 뛰어들어 안나 푸르나 픽쳐스란 영화제작사를 세웠고, 이 회사를 통해 절대 상업적이지 않 은 영화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돈은 벌어도 그만, 잃어도 그만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행보 자체로 보면 애 초 잃고자 하는 의도 가 더 큰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어찌됐건 현재 비평 기준으로 볼 때 분명 위대한 예술작품으로서 칭송을 얻을 수 있을 법한 콘텐 츠, 소재에서부터 감독, 작가,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비평가를 위한 영화 를 만들되, 대중영화로서 가능성이 크게 떨어져 그 어떤 투자자도 선뜻 돈을 내놓지 못했던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메디치 가문의 부활 아닌가? 실제로 메건 엘리슨이 처음 안나푸르 나 픽쳐스를 론칭했을 때만 해도 미국언론들은 일제히 메디치 가문이 할리우 드에 새롭게 터를 잡았다고 떠들어댔고, 그녀의 포부와 방향성을 극찬해댔다. 그렇게 안나푸르나 픽쳐스는 2012년부터 현재까지 10편의 영화를 내놨고, 그 중 3편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딱 지난해 말부터 메건 엘리슨에 대한 평가는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 다. 새롭게 등장한 영화산업지 TheWrap부터 비판을 시작했다. 이 매체는 일 단, 메건 엘리슨이 소위 독립영화 라 불리는 영화들 제작비를 지나치게 높여
32 놨다는 데서부터 문제를 제기했다. 메디치 가문 식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될성부른 예술가에게 충분히 시간과 자금적 여유를 주고 예술작품을 한 편 만 들게 하는 게 바로 경제적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태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문제들이 속출했다. 첫째, 웬만큼 돈을 벌어들인 영화조차 상업적 성취에 비해 제작비가 너무 높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안나푸르 나 픽쳐스에서 제작한 10편의 영화들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아메리칸 허슬 단 한 편으로 분석된다. 그럼 나머지 9편은? 영화 자체의 손익이 문제가 아니라, 그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각본 등 스태프들의 흥행 트랙 레코드에 문 제가 생긴다. 어찌됐건 흥행실패작을 만들어낸 스태프에겐 여타 제작사에서 제작기회가 확 연히 줄어든다. 상업적 가능성은 둘째 치고라도, 독립영화 시장규모에 걸 맞는 규모로 전체 프로덕션 통제에 실패했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유 일한 살 길은 또 다시 안나푸르나 픽쳐스 같은 경제적 사익을 원치 않는 회 사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 외엔 남지 않게 된다. 안나푸르나에서 선택해주지 않 으면 이후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보다 타이트한 환경에서라면 충분히 활동할 수 있었던 인재들을 안나푸르나의 노예로 만들고, 또 작품 활동 을 더 이상 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 둘째, 메건 엘리슨이 이렇게 독립영화판 자체를 돈으로 키워놓다 보니 관련 업체들도 무수히 그 수와 덩치가 커져버린 상황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오라클 의 딸이라 해도 재산에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계속 흥행실패를 당연한 줄 알 고 돈을 쓰다 회사가 도산해버리면 그 후폭풍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리 란 예측이다. 간신히 연명하던 독립영화판 전체가 일순간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를 눈치 챈 듯 메건 엘리슨은 이제 돈줄 을 찾아 상업적 가능성 높은 영화 들도 찾게 됐고, 그러다보니 올 여름 개봉 예정인 터미네이터 5 를 제작하기 에 이르렀다. 최악의 수다. 그런 종류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구조의 블록버스
33 터들은 성공하면 크게 하지만, 망해도 크게 망한다. 그러면 그나마 지금 같은 1년에 3~4편 제작배급 체계도 무너질지 모른다. 그럼 독립영화판 전체가 흔들 린다. 가까스로 상업성과의 줄다리기를 통해 살아남은 저예산영화의 틀이 무너 질 우려가 높다. 셋째, 이건 일종의 속설에 가까운 부분이지만, 본래 그런 식으로 비단융단을 깔아놓고 영화를 만들라고 하면 그 영화를 만드는 작가들은 최상 의 결과를 내놓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시민 케인 의 오손 웰즈도 말한 바 있다. 한계 의 부재는 예술의 적 이라고. 결국 어느 예술작품이건 간에 직면한 현실적 한 계와 싸워가며 투쟁 속에서 갖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뽑아내 만들어낸 타협의 산물이지, 돈 놓고 네 맘대로 해라 식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오히려 나태함과 아집만 늘게 돼 작품 퀄리티 상으로도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이전까지의 미국 독립영화계는 확실히 달랐다. 적은 제작비로 살뜰하게 만들 어냈고, 상업성이 없는 게 아니라 대형 스튜디오에선 좀처럼 나오기 힘든 보다 도전적이며 창의적인 상업정신을 발휘해 신선감을 불어넣어줬다. 배급도 천천 히, 그리고 계산적으로 시도하며 전체 시장상황에 적응해내고 있었다. 로우 리 스크-로우 리턴 구조를 잘 정착시키며 영화계 전체에 새바람을 불러오고 있었 다. 그러던 것이 오히려 저 메디치 워너비 메건 엘리슨 덕택에 전체 시장질 서와 노하우가 일순간에 무너지고, 오히려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게 됐다는 비 판이다. 결국 메건 엘리슨 사태는 메디치 시절처럼 애초 대중시장 개념이 희미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확고한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대중시장이 자유 롭게 성립돼있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메디치의 존재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을 시사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언급했듯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터미네이터 5 는 올해 여 름 흥행에 실패했다. 약 1억5500만 달러를 투자해 북미지역에서 현재까지 8849만6000달러, 그 외 지역에서 2억3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상영
34 극장들과의 부율과 추가로 드는 홍보비 등을 감안했을 때, 할리우드 블록버스 터들은 통상 제작비의 4배 이상을 벌어들여야 손익을 맞추게 된다. 터미네이 터 5 는 그 절반 정도 되는 수익만을 회수했고, 이후 DVD 등 2차시장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그럼 이제 안나푸르나 픽쳐스는 어디서 살 길을 찾아야 할까. 그리고 안나푸 르나 픽쳐스가 이끌다시피 했던 미국 저예산영화 시장은 또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공익 이란 단어가 예술계에서 가져온 비극 앞서 언급했듯, 대중문화 장르에는 엄밀히 말해 공익성 이란 단어를 붙인다 는 것 자체가 참 어색하다. 만약 공익을 부르짖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바로 위 두 사례를 생각해보면 그 원인과 결과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메건 엘리슨 처럼 자신의 심미적 만족을 위해 시장질서 자체를 교란시켜 남들은 그 시장에 서 살아남을 수 없도록 만든 뒤 도망쳐버릴 수 있다. 또 다른 공익성 강조 의 경우는, 어떻게든 특정 방향, 이데올로기건 무엇이건 간에 특정집단의 이익을 담보해주는 방향으로 콘텐츠를 기획한 뒤, 그 특정집 단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공적개념 등으로부터 뒤틀린 사익을 충당 받 는 식이 된다. 우리는 전자의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상당히 자주 목격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그 폐해도 충분히 봐온 상황이다. 공익 이란 단 어가 예술계에 가져온 크나큰 비극이다
35 한국 가요로 살펴 본 사익 이 근 미 소설가 자유로운 예술혼 추구 단언컨대 모든 인간은 사익을 추구하고 산다. 공익 추구를 삶의 목적으로 삼 는 인간이나 그룹은 우리 사회 어디에도 없다고 확신한다. 다만 1980년대 대 학가에서 잘못된 이념을 주입받은 이들이 공익 이라는 허황한 구호를 습관처 럼 외치고 있을 뿐이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무리들이 정치시즌마다 만들어내 는 음모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 공익은 우월하고 사익은 저열하다 는 인식을 퍼트리는 중이다. 공익 투신 이라는 강박과 허영에 시달리는 이들이 제아무리 매도해도 사익이 주도하는 도도한 역사는 발전을 거듭하며 흘러가고 있다. 사익 추구는 본성이며, 그렇기 때문에 의도를 하지 않아도 번성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개인이 발전하 고, 나아가 사회의 한 분야에 기여하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제 도적인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과정에서 특히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전인미답( 前 人 未 踏 )의 길을 개인의 기( 氣 ), 혹은 천 재성으로 확장시킨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요 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땅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듣고, 만들며 열심히 달린 이들의 사 익적 행보 속에서 한국 가요는 튼튼하게 꽃피었다. 그 사익의 힘이 아시아를 점령하고 세계로 뻗어가는 K-pop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한국 가요사는 개인들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한 단계씩 발전해 나왔고, 선배 들의 행보에 후배들이 하나둘 힘을 실으면서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사익 추구
36 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예술혼의 추구라는 걸 가요사가 극명하게 증명하는 중 이다. 혜성같이 등장한 김추자 한국 가요사는 1960년대 큰 변화를 겪었다. 1960년대 미8군 무대에 섰던 가 수들과 팝송을 받아들인 일단의 가수들에 의해서였다. 이전까지 유행했던 일본 풍의 트로트는 촌스럽고 질 낮은 노래라는 개념이 세련되고 아름다워 보이는 미국적 음악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또한 이전까지 성인문화, 기성세대 문화뿐 이었던 우리 사회에 청년문화, 신세대 문화라는 영역이 생긴 것이다. <동백아가씨><흑산도 아가씨><섬마을 선생님> 같은 이미자 노래와 남진 나훈 아의 트로트가 히트를 칠 때 전혀 새로운 감성의 노래가 치고 들어왔다.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 주오 내 마음 모두 그대 생각 넘칠 때 내 마음 모두 그대에게 드리리 그대가 늦어지면 내 마음도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1969년 김추자가 늦기 전에 를 열창하며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은 드디어 자 신들의 감성을 충족시켜줄 노래가 나왔다며 열렬히 환영했다. 긴 머리에 섹시 한 몸매, 착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에다 풍부한 성량과 허공을 찌르며 마구 춤 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센세이션이었다. 이후 <커피 한 잔><거짓말 이야><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님은 먼 곳에> 등 부르는 노래마다 인기를 끌 었다. 김추자의 하늘을 찌르는 듯한 인기에 담배는 청자, 춤은 추자 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였다. 다소곳한 동작과 단아한 모습으로 노래하던 시절, 공중파 방송에서 엉덩이를
37 흔들며 춤을 춘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오늘날 아이돌 가수들이 제아무리 짧 은 치마를 입고 섹시한 몸짓을 해도 당시 김추자가 준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 다. 김추자는 춘천여고 시절 춘천향토제에서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해 신입생 노래자랑에서 1위를 하자 당시 젊 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신중현 작곡가를 스스로 찾아갔다. 신중현은 끼 가 넘치는 김추자를 새로운 시대를 열 가수로 판단하여 바로 곡을 만들었 다. 가요음반사상 최초로 수출한 음반이 다름 아닌 김추자의 음반이다. 1971년 김추자의 음반을 영국의 세계적인 회사에서 리매스터링하고 재킷 디자인까지 제작해 외국 원판과 동일한 규격의 녹음 수준을 뽐냈다. 육감적이고, 열정적이고, 도발적인 그녀는 열심히 노래 부르는 것으로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하는 대중들을 즐겁게 하고 자신을 영원한 디바로 각인시켰다. 생존을 위해 기타를 잡은 신중현 이미자, 남진, 나훈아로 이어지는 트로트 왕국 속에서 김추자라는 색다르고 걸출한 인물을 만들어낸 작곡가 신중현. 그는 한국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면서 수많은 가수를 길러낸 미법의 손이다. 신중현은 미8군에서 실력을 쌓았는데 함께 활동한 가수들이 노래만 부르는 것을 넘어서서 그는 노래와 연주, 작곡까 지 하면서 한국 가요사를 새로 쓸 발판을 차곡차곡 마련했다. 신중현은 조실부모 하고 주경야독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삶을 보면 현 대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938년생인 그는 세 살 때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다. 이발소를 운영해 돈을 많이 번 아버지 덕에 어려서 유성기로
38 음악을 듣고 영사기로 영화를 보는 문화적인 환경을 누렸다. 하지만 가산을 정 리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던 중 아버지는 거의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서울에서 다시 이발소를 차린 아버지는 생활이 안정되자 유성기를 구입했고 신중현은 글자를 배우기 전부터 재즈를 들었다. 한국 전쟁을 피해 진천으로 피 난을 갔지만 두 번에 걸쳐 모든 것을 잃은 아버지는 끝내 화병으로 세상을 떠 났다. 6개월 만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신중현은 동생들과 함께 친척집 에 얹혀 살게 된다. 더 이상 눈칫밥을 먹기가 괴로워진 신중현은 서울로 올라와 친척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제약회사에 들어갔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동양중학교 야간에 입학했다. 도무지 낙이라고 없던 신중현은 배달을 하면서 눈여겨본 악기점에서 미제 어 쿠스틱 기타와 미국 기타교본을 구입했다. 당시 AFKN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 고 기타로 연주해보는 최대의 기쁨이었다. 신중현은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 간을 아껴 기타를 연습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배달 일로는 동생을 데려오지 못할 거라는 낙담에다 평생 배달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친척집을 나왔다. 일주일간 하루 한 끼 밖에 못 먹어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으니 학교를 다니는 건 사치였다. 신중현은 종로의 기타학원을 기웃거리며 강사자리를 구하러 다녔다. 신중현이 독학으로 익힌 기타 솜씨에 놀란 여러 학원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신중 현의 솜씨를 눈여겨본 건물 주인이 동업을 제의했고, 함께 기타학원을 운영하 게 되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수입은 한 푼도 없었다. 주인이 이것저것 제하니 남는 게 없다고 해 숙식 해결과 마음껏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39 6개월쯤 지났을 때 미8군에서 일하는 남자무용수가 기타를 배우러 왔고 신중 현의 기타솜씨를 높이 산 그의 소개로 미8군 무대에 서게 되었다. 1955년의 일이다. 미성년자였던 그는 동두천 미7사단 내 클럽 책임자의 특별 배려로 무 대에 설 수 있었다. 전기기타와 앰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그에게 제약회 사에서 사귄 친구가 선뜻 돈을 대주었다. 덩치가 작은 신중현이 큰 기타를 들 고 신들린듯 연주하자 미군들이 재키, 히키, 소코시라고 부르며 환호했다. 미8군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신중현은 동생을 데려올 수 있었다. 고달픈 생활에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열심히 기타를 쳤을 뿐인데 새로운 직장도 생기고 동생까지 책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중현은 단지 기타 연주에 머물지 않고 작곡을 배워 노래를 만들었고, 이후 작곡가로서 펄시스터즈, 이정화, 김추자, 박인수, 바니걸즈, 장현, 김정미, 임아 영에 이르는 이른바 신중현 사단 을 거느리며 가요계의 거목이 되었다. 또한 신중현과 엽전들 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가수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하는 <미 인><아름다운 강산> 등의 곡을 발표했다. 미8군 무대의 엄격한 시스템 한국 가요의 기반이 된 것은 미8군 무대이다. 1961년 노란사쓰의 사나이 가 크게 히트하면서 미8군 무대 가수들이 대거 일반무대로 진입하자 젊은이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미8군 가수들의 활약은 기존 무대에 자극제가 됨과 동시 에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가요의 주류로 부상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른바 단순히 노래 잘하는 목소리 좋은 가수들의 시대에서 개성시대로의 전환점이 마련된 것이다. 문화전파의 진원지는 미군부대였다. 미군의 휴식과 유흥을 위한 무대에 재능 있는 한국의 가수와 연주자들이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미8군 무대는 당시 뮤
40 지션들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뮤지션들은 그 무대에 서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미8군 무대에 선 가수들은 한국 가요사를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아 닌,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그들을 자극했다. 미8군쇼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미군부대에서 파견한 쇼 관계자들의 직접 심 사를 거쳐야했다. 전체 쇼의 호응과 구성, 편곡에다 영어실력까지 심사의 대상 이었다. 결과에 따라 AA, A, B, C 클래스로 등급이 매겨졌고 D는 탈락이었 다. 매 분기마다 한 번씩 엄격하게 실시된 오디션 결과에 따라 지급액은 물론 무대도 달라졌다. 최고의 실력자들은 미8군 내에서도 가장 고급스러운 클럽에 서 노래할 수 있었다. 오디션을 거치면서 점차 다양해지는 레퍼토리만큼이나 미8군 연예인들의 실 력도 향상되었다. 최신곡들을 소화할수록 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가 수들은 늘 AFKN의 아메리카 탑40 을 열심히 들었고, 미군부대 주크박스 등 을 통해 악보를 채보하고 멜로디를 익혔다. 공개오디션 현장에서 펼쳐지는 쇼의 구성이나 음악성, 테크닉 하나하나는 비 교대상이자 곧 연구대상이었다. 또한 거기서 눈에 띄면 힘 있는 단장이나 마스 터에게 캐스팅되는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엄격한 오디션 시스템, 무한 경쟁 무대가 가수들을 성장시켰다. 수많은 미8군쇼의 스타들이 대중음악의 전면에 등장하여 한국가요의 르네상 스를 이끌었다. 포클로버스, 패티김, 윤복희, 현미, 한명숙, 최희준, 유주용, 김 상희, 이금희, 신중현 등이 미8군 무대에서 익힌 실력으로 한국 가요계의 물줄 기를 바꾸어 놓았다. 미8군 출신 뮤지션들은 1960년대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자 스타로 발돋움했
41 다. 1967년 개국해 1980년 KBS에 통폐합된 동양방송(TBC)이 개최한 제3회 방송가요대상 명단을 보면 미8군 출신 가수가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기 존의 트로트 가수였다. 한국 대중문화 형성기에 미8군 출신 가수들이 끼친 영 향은 실로 막대했다. 통기타 가수들의 등장 미8군 가수들의 돌풍에 가세한 이들이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통기타 가수 들이다.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이장희, 양희은, 김민기, 한대수, 서 유석 등이 그들이다. 해방을 전후해서 태어난 이들은 서구화의 영향을 받고 자 랐다. 1960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AFKN을 통해 팝송을 듣고 자란 세대는 이 전과 다른 문화를 갈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방송국에 팝 프로그램이 처음 등 장 한 것은 1963년 4월 동아방송의 탑 튠 쇼 인데 이를 필두로 우리 방송을 통해서도 팝음악이 많이 전파되었다. 이들은 방송을 통해 접한 비틀즈, 클리프 리차드, 밥 딜런, 존 바에즈, 주디 콜린즈, 펩분, 엘비스 프레슬리, 지미 로저스, 행크 윌리암스, 리키 넬슨, 쟈니 마티스, 딘 마틴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기타와 드럼만으로 연주를 하는 비틀 즈가 인기를 끌면서 1965년경부터 국내에도 기타 붐이 일었다. 1960년대 후반, 가요계에만 변화가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미술계, 문학계, 영화계 등 우리 문화 전반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대중들이 가장 손쉽게 변 화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던 분야가 바로 가요계였다. 이른바 통기타 가수 의 출현은 새로운 문화를 갈구하는 대중들의 구미와 맞물려 새로운 문화를 형 성하였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통기타 가수들의 음악을 들으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성 인문화만 접했던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음악이 나오자 달아오른 것이다. 통기타와 청바지, 맥주가 청춘의 상징하던 시대이다
42 통기타 문화는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종로와 명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 오비스 캐빈, YMCA의 청개구리가 새로운 문화의 진원지 였다. 이어서 MBC 별이 빛나는 밤에 TBC 밤을 잊은 그대에게 DBS 0시의 다 이알 CBS 꿈과 음악사이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팝송이 퍼져나갔다. 1965년에 개국한 TBC TV의 쇼쇼쇼 가 인기를 끌었는데 미 8군에서 활약하 던 가수들이 팝스타일의 노래를 선보여 큰 갈채를 받았다. 1969년에 MBC TV 가 개국하자 음악감상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통기타 학사가수들이 등장했다. 서울음대를 다녀 성악톤으로 노래를 한 조영남, 아름다운 음색과 완벽한 화음 을 구가한 트윈폴리오의 윤형주와 송창식, 포크가요의 태두라고 불리는 한대 수, 저항음악의 상징 김민기 등 포크 가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데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잘 살아보세 라는 기치아래 경제성장이 시작된 것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원인을 제 공했다. 보릿고개가 좀 남아있긴 했지만 1960년대 말은 이미 중산층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때이다. 한마디로 힘들었지만 나라 전체가 역동적인 에너지 가 넘치던 시기 였다. 사회전반에 새롭게 일고 있던 문화현상과도 연관이 있다. 1967년에 바캉스, 1968년에 레저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등장했으며 1967년에 미니스커트, 1968 년에 깔깔이 드레스가 유행했다. 같은 해에 대중잡지 <선데이서울>이 등장한 다. 1958년 종암동 고려대학교 옆에 17평형 아파트가 등장한 이래 1972년에 반 포에 아파트단지가 숲을 이루었는데 이미 1960년대 말에 아파트 프레미엄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주방설비로 대표되는 아파트 문화 는 개인 프라이버시 보장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
43 한국적 팝을 만든 싱어송 라이터 미8군 출신 가수들과 통기타 가수들은 왜색풍 일색이던 가요계를 다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8군 출신 중에서 특히 신중현은 작곡가로서 명성을 날 렸다. 신중현이 작곡한 노래들은 지금까지 꾸준히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님은 먼 곳에 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소울 뮤직과 록뮤직을 도입한 선구자라 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니는 신중현은 서구음악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적인 음악, 내 것으로 육화된 음악 을 하기 위해 애썼음을 강조했다. 통기타 가수들도 미국 음악을 그대로 번안해서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 롭게 작곡을 해 싱어송 라이터의 효시가 되었다. 1960년대 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에 미군이 주둔했는데 동남아 국가가 팝송을 그 대로 받아들이면서 식민지화 된 것과 달리 한국 가수들은 새로운 곡을 작곡해 차별화했다. 미8군 출신 가수들과 통기타 가수들에게 한국 가요계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사명감 같은 건 결코 없었다. 미8군 가수들은 오디션을 통과하기 위해 몸부림 을 치며 열심히 달렸고, 통기타 가수들은 팝송을 열심히 따라 부르며 즐겼을 뿐이다. 신중현 씨는 기타를 치지 않았으면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고, 통기타 가수들은 열심히 즐기고 나니 청년문화라는 이름이 생겼을 뿐 이라고 했다. 한국 가요사가 면면히 흘러오고 있지만 다른 시대와 달리 1960년대와 1970 년대의 미8군 출신 가수들과 통기타 가수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 의 띠를 형성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5년 일본에서 보아, 동방신기 등이 오리콘 차트 상위권을 선점한 것을 필두로 한국 가요는 K-Pop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K-Pop은 글로벌시장 에서 대중적 인기가 있는 한국의 댄스음악 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SM엔 터테인먼트의 소속 가수들의 합동공연이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전회 매진되
44 는 사례를 보이며 명실공이 K-Pop이 아시아 지역을 넘어 유럽, 중동에 이르 기까지 확산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2012년 중반, 문화콘텐츠 강국이자 최대 소비국인 미국시장에서 가수 싸이(Psy)의 <강남스타일>이 돌풍을 일으켰다. 오늘날 한류 가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그 저력에 1960년대와 1970년대 의 변혁이 바탕이 되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변혁의 주체는 다름 아닌 사익이다. 배고프던 시절, 미8군에서 노래와 연주를 열심히 하는 가운데 한국 록이 탄생했고, 경제성장의 첫 열매를 막 따기 시작한 즈음에 통기타를 치며 청춘을 만끽한 세대에 의해 한국적 가요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 어떤 공익도 가미되지 않은 생존과 청춘 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토대 위에서 한국 가요가 뿌리를 든든히 내려 K-pop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5 노키아의 몰락이 수퍼셀의 신화로 이어지다 -핀란드의 사익 이야기- 윤 서 인 만화가 1. 노키아의 흥망성쇠 150년 전 핀란드 남서부의 작은 펄프회사로 출발해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휴대폰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며 세계를 주름잡던 거대기업 노키아. 인구 540만 명의 작은 나라에 존재하던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거대기업의 역할은 어 마어마했다. 2000년엔 핀란드 전체 국내 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했고 2003년에는 핀란드 법인 소득세의 4분의 이 노키아로부터 걷혔다. 나라의 국 부가 이 한 회사의 퍼포먼스에 의해 이루어질 정도였다. 이 시절엔, 노키아와 핀란드의 관계는 전 세계 다른 어느 곳의 국가-기업 관계 보다 끈끈했다. 핀란드가 곧 노키아였고 노키아가 곧 핀란드였다. 노키아가 하는 일은 나라를 위한 일이었 고 핀란드의 인재들은 노키아에 취업 하 는 게 꿈이었으며 540만 인구 중 13만 명 이상. 계열사까지 수 십 만 명이 노키 아나 노키아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 하였 으니 그 영향력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노키아의 역할엔 공익이 강조되었다. 노키아는 더 이상 하나의 회사가 아닌 핀란드 자체였다. 노키아가 점점 커지면 커질수록 인재들 은 모두 노키아가 데려갔고 청년들은 노키아 취업이 목표이자 당연한 코스였 으며 핀란드는 다른 기업이 싹트고 자라기 점점 힘든 환경이 되었다. 노키아는
46 나라를 위해 취업을 더 늘렸고 필요 없는 조직이 많아지고 경영은 방만해졌으 며 의사결정은 느려졌다. 마치 대한민국 공기업스러운 경영이 이어지면서 세계 시장의 흐름에도 점점 뒤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년만년 갈 것 같던 이 거대회사가 2010년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들 면서 세계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미국, 한국 회사들에 밀려 비틀대기 시작하더니 2013년 거짓말처럼 쓰러져 모바일 사업부가 통째로 MS에 인수되 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던 노키아가 쓰러진 것은 핀란드에게는 가히 국가적 재난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 리 커다란 거대자본의 회사도 혁신과 노력을 하지 않으면 딱 10년 만에 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만다. 지금의 노키아는 구조조정을 거친 후 크게 작아진 채 새로운 통신회사로서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2. 핀란드의 분위기 핀란드는 원래 냉전시절 구소련의 대유럽 교역창구 역할로 안정적으로 먹고 살던 나라였다. 그러다 90년대 초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큰 경제위기를 겪었다. 이때 획기적으로 떠오르며 국부를 가져다준 회사가 바로 노키아였다. 그러나 이 회사가 무너지면서 나라엔 다시 90년대 초 수준의 경제위기가 닥쳤다. 2013년 핀란드 정부가 지급한 실업급여는 41억 5000만유로(5조6000억 원)로 90년대 이후 최대였다. 평균 실업수당 역시 2008년엔 하루 55유로에서 67유 로로 늘었다. 노키아에서 높은 연봉을 받던 고급 인력이 일자리를 잃고 시장으 로 쏟아져 나왔고 끝을 알 수 없는 경제위기가 닥쳤다. 이즈음 핀란드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이 스마트폰 게임이었다. 노키아가 무너 진 후 2009년부터 창업 생태계와 관련한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하면 서 젊은 학생들을 주축으로 스마트폰 게임 창업 열기가 일기 시작했다. 각 대 학은 관련 학과나 프로그램을 적극도입하기 시작했다. 노키아 등의 대기업으로 향하던 R&D 성과를 중소기업에 연결해주는 이노베이션 밀 프로그램이 도입 되면서 스타트업에 아이디어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2010년에는 헬싱키 공대와 미술디자인대, 경제대를 통합한 거대 학교인 알토 대 가 출범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수 많은 벤처창업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대학 로고(A!)부터 참신한 이 대학 학생들은 창업의 여름 행사와 창업의 사
47 우나 조직 등을 만들어 창업 열기를 확산시켰다. 핀란드 정부는 기술혁신투자 청(TEKES), 벤처캐피털펀드 핀베라를 통해 자금을 마련하는 일부터 경영위기 극복을 위한 네트워크 까지 지원했다. 정부의 지원은 철저하게 시장 원리에 입각하여 이루어졌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책임지는 지원이 결코 아니었다. 개개인이 자율성을 키우고 경쟁력을 갖춰야만 받을 수 있는 지원으로 스타트업에게 동기부여를 주었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는 위기의식이 노키아를 통해 온 국민에게 자리 잡았다. 방만하고 무리한 경영을 하던 대기업이 쓰러지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큰 교훈 을 남겼다. 3. 로비오의 등장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업은 학생들이 대박의 꿈을 꾸면서 각자 자신들의 이익 을 쫒기 시작했고 이쯤 떠오른 회사가 바로 로비오였다. 바로 노키아를 쓰러뜨 린 그 스마트폰에서 오히려 대박을 터뜨리며 스타트업이 바로 핀란드가 나아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증명한 회사다. 노키아의 종말이 핀란드에게는 또 다 른 기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로비오는 2003년 미카엘 헤드 등 헬싱키 기술대학 학생 3인이 창업한 스타트 업이다. 2009년까지 무려 51개의 게임을 내놓았지만 모두 실패했으나 포기하지 않았 다. 그러다 대반전, 2009년 출시된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 버드 가 쭉쭉 성공 을 거두면서 60개 국가의 앱스토어에서 1년 이상 1위를 지키는 등 세계적으로 큰 대박을 터뜨렸다
48 스마트폰의 성능에 집중하던 시대에 단순함이라는 역발상 의 힘은 컸다. 미카 엘 헤드는 휴대폰 게임은 시간 떼우기용으로 간단히 즐기는 경우가 많기 때 문에 복잡해선 안된다 며 로딩 시간도 최소로 줄여라 고 누누이 강조했다. 스 트리트 파이터 등 고용량 게임을 아이폰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화제가 되던 시기에 역주행의 코스를 택한 것. 쉽고 단순하게 라는 로비오의 전략은 적중 했다. 앵그리 버드는 도산직전의 작은 스타트업 로비오를 폭발적으로 발전시켜 기업가치를 무려 12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무엇보다 나라의 미래 먹거 리의 본보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컸다. 4. 우후죽순 각자의 이익을 쫒기 시작하다 로비오의 성공은 벤처업계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다. 2010년 이후 노키아 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창업한 신생 기업만 300개가 넘었다. 노키아 같은 대기업에 취업을 원했던 대학생들은 이제 스타트업 창업을 매우 당연하고도 쿨하게 여기게 됐다. 핀란드는 이제 대박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벤처 대 국이 되어갔다. 이 즈음인 2010년 6월 헬싱키에서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일카 파나넨등 6명 의 게임 전문가가 모였다. 그 회사가 바로 오늘 소개할 수퍼셀 이다. 이들은 1년간의 개발 끝에 2011년 가을, 앱스토어에 클래시 오브 클랜 을 내놓는다. 가히 스마트폰 게임시장의 아이콘이자 최고의 거인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49 5. 수퍼셀 이야기 2010년 창업, 2011년 첫 게임 출시, 2013년 매출 8천억, 2014년 매출 1조 8 천억 지금까지 출시한 게임 달랑 세 개. 직원은 글로벌 시장까지 모두 합쳐서 150 명. 직원 1인당 매출 1위, 매출 증가율 1위, 순익률 50%, 현질율 1위, 하루 매출 50억원 이상, 대표이사 연봉 2,000억. 이 만화와도 같은 판타지스러운 수퍼셀의 행보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시장의 최대 의 리더인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지금 이들을 연구하려 는 시도가 줄을 잇고 있다. 현재는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1조 6천억으로 51% 의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가 되었고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사의 이름 자체가 수퍼셀 이다. 아무리 회사가 커져도 작은 독립적인 셀 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 현이다. 하나 하나의 셀마다 7명~ 50명의 직원이 앉아 있다. 노키아의 몰락을 지켜본 CEO는 회사가 커진다 고 해도 셀이 하나씩 늘어나는 형식을 취할 뿐 거대 조직을 늘여나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회사가 커지면서 공동체적인 책임을 졌던 노키아의 몰락을 경험으로부터 알게 된 CEO의 의지이다. 게임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집착이 어마어마하다. 애플 앱 스토어에서 대박행진을 벌이는 게임을 안드로이드에 무려 1년 6개월간을 출시 하지 않았다. 만족할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다. 빠른 것 같지 만 느리다. 그저 한두 개의 게임을 더 이상 할 게 없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천천히 단단하게 평생을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오는 회사다. 스마트폰 게임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시장 역시 이들의 공세를 피할 수 없었다. 한국스마트폰 게임의 맹주 퍼블리셔인 카카오를 거치 지 않고 독립적으로 출시해 카카오 게임 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냈다. 한달에 수 십억의 광고를 퍼붓는 공세도 놀랍다
50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쓴 광고비만 5천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앵그리버드 이후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한 로비오는 최근 큰 어려움을 겪 으며 대대적인 감원까지 단행했다. 모바일 게임의 짧은 수명을 또 한 번 증명 한 셈이 되었다. 로비 오는 최근엔 애니메이션과 오프라인 캐릭터 시장으로 변 신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수퍼셀은 모바일 게임은 유행에 민감하고 애니팡처럼 짧게 치고 빠진 다는 통설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게임에 돈을 쓰는 걸 상상도 못하는 필자만 해도 3년째 하루에 8~9번을 꼬박꼬박 접속하며 50만원 이상을 결재한 무서운 게임이다. 잘 만든 게임 한편으로 노키아를 대체해 핀란드의 대표기업이 되었 다. 수퍼셀에 이어 두번째로 세계시장을 석권중인 회사 역시 같은 북유럽권인 스 웨덴의 킹 사다. 캔디크러쉬사가 와 캔디크러쉬소다 로 엄청난 성과를 올리 고 있다. 핀란드의 스타트업 혁신을 그대로 적용해 스웨덴 역시 최근에 많은 투자와 발전을 이루고 있다. 최근 MS에 25억달러에 인수된 모장스튜디오 역 시 스웨덴 게임사다. 핀란드와 스웨덴 북유럽 국가들의 스마트폰 게임 경쟁력 은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6. 스타트업과 사익 스타트업은 사익의 출발점이다. 작게 몇 명의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 여 우리도 한번 해보자! 라고 말하는 순간엔 이들에게 거창한 공익도 공동체 도 이타심도 없다. 컴퓨터 딱 몇대 놓고 작은 방이나 창고에서 대박의 의지와 욕망에 불타는 이들이 국제적인 대형사고를 연이어 치고 있다. 저 멀고 먼 북유럽 헬싱키의 청년들 몇몇이 대한민국에 사는 필자가 3년간 하 루 50분의 시간을 투자하게 만들었다. 잠시 켜서 할 거 한번 하고나면 할 것 도 없는 게임. 끄고 나서 두시간정도 지나면 또 생각나는 게임. 이제는 일가친 척 친구 팬들까지 다 모여서 두런두런 사는 얘기도 나누고 다른 클랜들과 전 투도 하는 게임. 이 잘 만든 게임은 너무나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리니지 나 여타 RPG 게임처럼 중독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아무리 부서진 마을도 켜자마자 회복되는 설정을 도입해 게임을 하며 생기는
51 마음의 분노조차 편안히 다스려지는 매력적인 게임이다. 전세계 수억의 인구가 지금도 꼬박꼬박 하루에도 10번씩 이 게임을 켜고 있다. 개인들의 사익추구가 인류의 재미로 이어진 최고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52 사익에 대한 문화 인류학적 고찰 남 정 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 어찌 보면 사익을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사익을 추구하는 이유나 사익 이 가져오는 이익을 말하느니 적당한 운동은 건강에 좋다는 명제가 오히려 참 신하다. 개인의 동기 유발 중 사익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외를 찾으 라면 종교의 창시자들 정도다. 훑어보면 예수와 석가는 특별히 이익을 추구한 게 없어 보인다. 마호메트는 어떨까. 좀 다르다. 그의 이슬람 창시는 개인적인 이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마호메트 당시의 아라비아반도로 가 보자. 도시를 이룬 메카는 새로운 질서와 충돌하고 있었다. 부유한 상인들은 마호메트의 세 력이 발흥하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경제의 문제였다. 마호메트는 유일신을 주장했다. 이는 곧 메카에 있는 수많은 우상들을 참관하러 오는 순례자들에 대한 거절을 의미했다. 순례 자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메카를 찾았지만 참관을 받는 입장에서는 관광수입을 뜻했다. 메카의 지배계층은 마호메트를 옥죄었고 그걸 피해 달아난 것이 이른 바 헤지라다. 망명지였던 메디나를 강력한 근거지로 만든 마호메트는 10년 후 돌아와 메카를 정복했고 순식간에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했다. 그런데 이슬람의 핵심은 알라만이 유일하다는 유일신 사상만이 아니다. 알라의 대행자인 라술이 라는 존재는 알라만큼이나 중요하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AD 300년 무렵의 로마의 상황을 보자.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사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당시 또 하나의 중요한 의제 설정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바로 황제가 325년 개최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격돌한 아타 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이다. 아리우스는 신과 그리스도가 같지 않다고 주 장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신이 보낸 대행자였다. 세계 를 구할 도구로 창조한 그 시대의 특별한 인물이었다는 아리우스의 논리를 반 박한 것이 아타나시우스였다. 그는 현재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를
53 내세웠다. 아버지인 성부와 아들인 성자와 성령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콘스탄 티누스에게 교리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의 아들이든 대리인이건 그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가 우려한 것은 자신이 막 공인한 신흥종교가 둘로 갈 라지는 것이었다. 둘은 금방 넷이 될 것이고 넷은 열여섯으로 쪼개질 것이었 다. 그래서 양대 진영을 불러들여 한 판 승부를 붙인 게 니케아 공의회의 본질 이다. 황제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철저히 진행만 맡았다. 승리는 아타나시우 스에게 돌아갔고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몰렸다. 로마제국에서 추방당한 아리우스파는 게르만족에게 두루 퍼졌고 일부는 아라 비아반도로 흘러들어갔다. 마호메트가 접한 것이 이 아리우스파 기독교였다. 그는 교리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예수의 역할을 대리인으로 한정하지 않으 면 마호메트 자신의 입지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마호메트는 그리스도를 신 이 아니라 라술(신이 보낸 사자)로 해석했으며 그 다음이 자기라고 설명했다. 신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복잡한 교리도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라술의 명 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호메트는 자신에게 유리한 아리우스 버전 기독교를 선택했다. 이것은 명백히 사익의 영역이다. 마호메트 사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은 더욱 사익적이다. 시이파와 수니파라는 익숙한 명칭이 이때 등장한다. 칼리프(후계자, 대행자라는 뜻)의 승계를 놓고 문제가 벌어진다. 3대 칼리프와 4대 칼리프가 연달아 암살된 뒤 시리아의 총독이었던 무아위야는 자 신의 가문에서 칼리프가 승계되는 것이 권력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 다. 당연히 반발자들이 생긴다. 반대자들은 마호메트의 혈통 중에서만 후계자 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4대 칼리프 알리는 마호메트의 사위였다. 이들은 무아위야 가문인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 각을 세웠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알리 시아 다. 알리를 따르는 무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세는 이들의 편이 아 니었다. 마호메트의 혈통이 아닌 사람도 칼리프가 될 수 있어야 더 많은 사람 들에게 기회가 열린다. 그래서 이들은 시아파를 반대해 다수인 수니파를 이룬 다. 수니파는 범례 凡 例 라는 뜻으로 예언자와 그 전통을 따르는 무리를 말한다. 칼리프의 승계는 이렇게 개인이나 집단의 사익에 기초한 싸움 끝에 확정된 것 이다. 종교도 심지어 이렇다
54 2. 예술의 분야에서도 사정은 같다. 문학부터 보자면 사익을 노리지 않고 작품을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연한 일이다. 물론 생계 걱정 없는 사람이 예 술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작품을 쓰는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명예욕 혹은 대중에 대한 영향력의 강화 욕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결국 무형의 이익을 추구한 셈이다. 가령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왜 썼 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 믿으라고 썼소. 라고 대답했다. 한편 도스토예 프스키는 도박 빚을 갚으려고 소설을 썼다. 일종의 강요된 사익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사익은 그런 사익은 아니다. 사익은 사익이되 중심이 이 타적 동기에 놓이지 않아야 하며 두 번째로는 개인적인 이익 추구로 출발했 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의 삶에 윤택과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이 기준으 로 보면 현대의 신화인 조앤 롤링 롤링이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그녀는 빈곤 탈출을 이유로 글을 썼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은 전 세계 모든 아이들에 게 호그와트라는 마음 속 또 하나의 학교를 선물했다. 조앤 롤링의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어떤 책의 저자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는 그 책 못지않게 흥미로울 수 있는 데, J. K. 롤링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녀의 인생 이야기는 행복과 사랑, 그 보다 많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는가 하면, 누구 못지않은 용기와 결단, 숨 막 힐 것 같은 난관을 딛고 일어서는 통쾌한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 한 마디로 해 피엔딩이다. J. K. 롤링의 삶은 그녀 자신이 쓴 이야기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실재로 현실화된 한 편의 동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크 샤피로- 아메리칸 드림의 잉글랜드 버전 쯤 되는 마크 샤피로의 이 평가는 매우 적절 하다. 그녀의 삶과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공집합이 많다. 조앤 롤링은 1965년 7월 31일 잉글랜드의 브리스톨 인근 소도시 예이트에서 태어났다. 어 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취미가 있었으며 여섯 살 때는 동물을 소재로 한 동화까지 지었다. 나이가 들
55 어서는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와 제인 오스틴의 <에마Emma>를 탐독 했으며 대학 시절에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대 학에서 불문학과 고전학을 공부한 조앤 롤링은 졸업 직후 몇 년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서 일했지만 직장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업무보다 각 종 이야기들이 들끓고 있었으니 업무가 되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결국 해고 통지서를 받은 조앤 롤링은 맨체스터 상공회의소에서 다시 사무직으로 근무하게 된다.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기차 통근을 하던 시절, 고장으로 기차가 몇 시간 지체된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던 조앤 롤링의 머릿속 에 비상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법학교에 입학하라는 통지서를 받을 때까지 만 해도 자신이 마법사인지 몰랐던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 바로 해리포터 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기차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리 포터> 1권의 기본 구상은 끝난 상태 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녀는 이 주인공의 열한 살부터 열일곱까지 학교생활을 각 학년별로 한 권씩 모두 일곱 권을 쓰기로 했다.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그녀의 주변에서 가져 왔다. 포터는 어릴 적 친구의 이름이고 덤블도어와 스네이프는 그녀의 학창시절에 만난 교사들이 다. 이즈음 그녀 문학의 정신적 후원자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다. 겨우 45 세의 나이였다. 상실감은 컸다. 방황하던 그녀는 포르투갈의 한 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고 바로 비행기를 탄다. 얼마간은 좋았다.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맞았고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 었다. 인연도 만난다. 조앤 롤링은 그곳에서 방송사 기자였던 세 살 연하의 조 르즈 아란테스와 결혼, 딸 제시카를 낳지만 곧 파경을 맞는다. 조앤 롤링은 2 년 만에 어린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돌아왔고 이 시기는 그녀가 회상하는 그 녀 인생의 최악이었다. 그녀는 아기를 위해 정부 보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 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교사 자격 인증 석사 학위과정을 밟았다. 남는 시간에 는 해리 포터 창작에 몰두했는데 보통은 유모차를 끌고 나와 집 근처의 카페 에서 원고를 썼다. 그녀가 자주 방문했던 카페 가운데 하나인 엘리펀트 하우 스 의 입구에는 해리 포터의 탄생지(Birthplace of Harry Potter) 라는 팻말 이 걸려있다. 마침내 소설 완성. 그러나 작품을 끝내고도 출판 에이전시에게
56 보낼 복사비가 없어 그녀는 낡은 타자기로 원고 하나를 더 타이핑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 중의 한 곳인 크리스토퍼 리틀에게서 독점 계약을 원하는 답장 이 왔다. 크리스토퍼 리틀은 열 두 번의 거절을 당한 뒤 블룸스베리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게 된다. 1997년 6월 26일, 첫 권 <해리 포터와 현자의 돌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이 출간된다. 블룸스베리는 이 책에 기대를 하지 않았다. 책은 하드커버와 문고판으로 동시에 출간되었는 데 하드커버는 겨우 500부를 찍었을 뿐이다. 여기서부터 기적이 일어난다. 미 국의 한 출판사인 스콜라스틱(Scholastic)에서 10만 달러를 지불하고 책의 판 권을 사간 것이다. 1쇄만 무려 5만 부였다. 스콜라스틱은 책의 제목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로 바꿨다. Philosopher 라는 단어가 아이들에게 어렵다는 판단이었고 덕분에 우리나라 에서도 현자의 돌 대신에 미국식으로 된 마법사의 돌 로 번역되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처음부터 돌풍을 일으킨 건 아니다. 처음 책이 출간된 직후 런던의 한 서점에서 조앤 롤링이 낭송회를 열었을 때 앞에 앉아있던 사 람은 겨우 둘이었다. 그러나 마법의 실이 전 세계를 옭아매는 데는 오랜 시간 이 걸리지 않았다. 2007년 모두 일곱 권으로 완간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지금까지 67개 언어 로 번역되었고 4억 5천만 부 이상을 팔아치웠다. 워너브라더스가 2001년 처음 제작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주연을 맡은 아이들의 코 밑에 수염이 나고 2 차 성징이 나타나는 등 소년이 아닌 청년이 주인공이 되는 기이한 상황을 연 출하면서도 2011년 7월 마지막 8편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을 개봉하 면서 10년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10년 간 64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마지막 작 품까지 계산하면 대략 74억 달러(약 7조 8,000억 원)의 수입을 거둘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올린 전체 매출 액(소설, 영화, 관련 캐릭터 판매액 포함)은 우리 돈으로 308조 원으로 같은 기간 한국의 반도체 수출 총액 231조 원의 1.3배 이상이다. 국내에 해리 포터 를 처음 소개한 사람은 민음사 주간을 지냈던(기업가 시리 즈 민음사 박맹호 편에 나오는 그 이영준) 이영준이다. 그는 1999년 8월 한
57 신문에 해외출판통신/보스턴에서 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해리 포터를 처음 국 내 독자들에게 알렸다. 국내에서 해리 포터 판권을 확보한 곳은 문학수첩이다. 문학수첩의 편집자는 다섯 번이나 사장을 설득해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그 편 집자는 문학수첩 대표의 딸이었는데 혼수는 필요 없으니 제발 이 책의 판권을 사라고 아빠를 졸랐다고 한다. 1998년 <퇴마록>과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 한국형 판타지가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미루어 마법이나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문학수첩은 1999년 11월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 1만 질을 발행했고 이후 분책하여 모두 23권 으로 나와 2천만 부 이상을 팔았다. 문학 수첩은 어린이 책을 펴낸 경험이 없 던 출판사다. 당시 문학수첩의 신문 광고는 컴퓨터 게임에 빠진 아이를 책벌 레로 만든 그 책! 어른들마저 밤잠 설치게 한 바로 그 책! 이었다. 해리 포터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해 보자. 조앤 롤링은 대학 시절 <반지의 대왕>을 열심히 읽었다고 하는데 <반지의 제왕>을 읽고 해리 포터 를 썼다고 하면 명백한 퇴보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관이라든지 캐릭터의 깊이 같은 건 아예 비교할 수준도 되지 않는다. 내러티브도 헐렁하다. 솔직히 말해 해리 포터는 시시한 판타지에 불과하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평범함, 부모의 죽음 과 복수라는 빤한 궤적 그리고 평범한 소년이 위대한 마법사가 되는 이야기는 모르긴 해도 세계 각국에 널렸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후줄근한 소설이 그토 록 돌풍을 일으켰을까(조앤 롤링 자신도 해리 포터 시리즈가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다 답한 바 있다). 글의 초반에 마크 사피로의 서평을 인용한 것은 이유가 있다. 해리 포터가 성공한 이유는 그녀의 절박함, 사회보장국으로부터 주거 및 수입 보조금으로 주당 140달러를 받던 한 가난한 싱글 맘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 절실한 바람이 만만찮 게 불우한 주인공인 해리 포터에게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장정일은 어 느 소설에서인가 너무 너무 도시에 가고 싶은 한 시골 소년 앞에 어느 날 갑 자기 기차가 다가와 서는 것이 바로 소설의 시작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이 말은 해리 포터가 나오기 전에 한 말이다). 작가의 그 어떤 절박함, 간절한 소 망이 작품 속으로 녹아 들어가 극 중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들었으며 그것 이 역시 같은 바람을 마음속 어딘가에 지니고 있는 독자들과 화학반응을 일으
58 킨 것이 해리 포터 신화의 비밀인 것이다. 빈곤 탈출 = 해리 포터 라는 신화 의 공식을 명백한 사익의 추구 외에 그 어떤 다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익은 다수의 행복을 증진하는 기관차의 동력이다 년 초 영화 타이타닉 이 개봉했을 때다. IMF 사태로 찬바람이 쌩쌩 불 던 시기였고 가뜩이나 외환 보유고도 바닥이라는데 밖으로 달러 내보내는 그 영화를 굳이 봐야겠냐며 직원들은 나무란 뒤 혼자 몰래 극장에 앉아 있었다. 잘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래봐야 영화가 거기서 거기지 하면서. 아니 었다. 신파조의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나는 초반부터 기가 팍 죽고 말았다. 제작비 2억 달러라는 게 이런 의미구나. 돈을 쏟아 부으면 이런 그림이 나오는구나. 드라마도 만만치 않았다. 신파라고 얕볼 게 아니었다.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조연들까지 줄을 지어가면 나를 울렸 다. 허물어져가는 갑판위에서 악단이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을 연주할 때 나는 미려한 선율과 아비규환의 상황이 충돌하는 언밸런스한 영상 앞에서 속 수무책으로 울었다. 남자 주인공인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로즈(케이트 윈슬렛)의 손을 놓고 어두운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나는 앞으로는 사랑 을 믿을래요 다짐하며 펑펑 울었다. 옆에 앉은 아줌마도 우는 타이밍이 비슷했 다. 어떤 장면에서인가 나는 울고 아줌마는 울지 않았다. 코를 훌쩍이는 나를 보며 아줌마는 이 자식은 대체 이 대목에서 왜 우는 거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이유가 있었다. 겨우 몇 초에 불과한,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장면에서 한국 영화 서너 편의 제작비가 훌쩍 날아가고 있었다. 당시 영화 마케팅에 종사하고 있을 때였다. 누구는 저런 영화를 만드는데 나는 변방 에서 모텔 방과 사무실만 등장하는 시시한 영화의 홍보나 하다 끝나겠구나 하 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 시기심과 부러움에 눈물이 났던 것이지만 비애야 내 사정이고 그 아줌마에게 나는 참 이상한 놈이었을 것이다. 영화만큼이나 관객 동원도 엄청났다. 서울 관객 200여 만 명에 전국 관객 추산 450만 명(당시에는 정확한 집계 시스템이 없을 때다). 8년 전 사랑과
59 영혼 이 썼던 흥행기록을 순식간에 뛰어넘은, 말 그대로 꿈의 숫자였다. 영원 할 것 같았던 그 기록을 넘어선 게 바로 쉬리 다. 그것도 타이타닉 개봉 후 불과 1년 만에. 이전까지 한국 영화 신기록은 서편제 의 116만이었다. 그것도 봄부터 가을까지 초장기 상영한 끝에 억지로 얻은. 타이타닉 을 침몰시킨 쉬 리 가 500만 명의 고지를 향해 질주할 즈음엔 공중파의 9시 뉴스까지 그 감동 의 순간을 생중계 했다. 당시 쉬리 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자 거대한 국민적 이벤트였다. 서울 시민의 30%가 관람 했으며 초등학생까지 감독이 이름을 알 고 있었던 쉬리 의 연출자는 강제규. 요새 말로 하면 영화 한 편으로 국민 감 독 의 지위에 오른 그는 당시 데뷔작 한편을 성공적으로 마친 신인 감독이었 다. 타이타닉 을 3D 영화로 알고 있고(타이타닉은 2012년 3D로 재개봉했다) 쉬리 는 송강호의 데뷔작 정도로 기억하는 요즘 관객들 앞에서 웬 고색창연한 이야기? 하실 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 영화 산업에서 쉬리 는 결코 가볍게 처리하고 넘어갈 빛바랜 기록이 아니다. 얌전하게 말하면 쉬리 한 편 으로 한국 영화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쉬 리 가 없었다면 한국 영화 산업의 현재는 지금의 이 자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시사회 보고 나온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한국 영화 같지 않네. 였 다. 총격전 장면은 정말 대단했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는 총격전에 가짜 총이 등장했다. 강제규 감독은 처음으로 미국의 깁슨 사에서 대규모로 총기를 대여 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총기 대여 업체 중 하나인데 한국 영화 제작사 社 에 대한 신뢰가 없던 시절이라 보험까지 들어야 했다. M16 10정 등 30정 가까이 들여온 건 처음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전체 제작비다. 멜로 영화는 5억 원대, 사이즈가 좀 있는 영화는 10억에서 12억 정도 했다. 쉬리 는 그 세 배 인 30억 원이었다(줄이고 줄여 최종적으로는 23억 원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투자사인 삼성의 이런 저런 지원을 따져보면 실은 그 이상이다. 첩보 본부 촬 영 장소로 사용했던 곳은 삼성 SDS였는데 그걸 세트로 지으려면 돈으로는 환산불가다). 단순계산으로 하면 세 배지만 그걸 그렇게 단순하게 계산하면 곤 란하다. 가령 10억이 제작비라면 그 이후부터 초과되는 1억은 초반에 투자한 1억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부담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다섯 배 이상이란 얘기 다. 강제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60 사이즈를 키워야 질적인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파이를 늘려야 한 다고 생각했다. 한국 영화를 보는 관객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 당시 정서였다. 나는 아니라고 봤다. 영화가 좋아지면 한국 영화를 외면하는 관객도 극장을 찾을 것이고 그러면 파이 자체가 커진다고 믿었다. 증명했다. 영화의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나라 영화는 망한다. 프랑스가 그랬고 일본이, 대만이 그랬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 질적인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영화가 가능해진다. 머릿속에 있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제작비 때문에 접는 다면 얼마나 억울해. - 강제규 - 당시 충무로의 제작 방식은 부산, 대구, 경기 등 배급 5개 권역에서 얼마 씩 모아주면 그걸로 영화를 만들어 그들에게 배급권을 주는 일종의 유통 자본 생 산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쉬리는 상업 자본이 산업 자본으로 바뀐 획기적인 사 건이다. 영화의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나라 영화는 끝이라는 게 강제 규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간 게 태극기 휘날리며 다. 시나리오를 토대로 뽑은 예산은 140억 원이었다. 한국에서 100억대 영화 가 기획된다는 사실은 영화의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영화의 출발은 이랬다. 조감독이 가져온 다큐 한 편에 강제규는 완전히 필이 꽂혔다(본인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쿵~ 하고 뭔가가 울리는). 전사자의 유품을 확인하러 간 할머니 가 삼각자를 보고 자기 남편이라고 끄덕이는 내용이었는데 강제규 감독이 생 각했던 6.25전쟁의 모든 상징이 그 한 편의 다큐에 담겨있었다. 그렇게 영감을 받아 출발한 게 태극기 의 시작이다. 정말이지 지극히 사적인 욕구다. 영화는 제작비의 40%는 확보해야 출발이 가능하다. 손이 닿을 수 있는 돈은 다 끌어 모았다. 60억까지는 맞췄는데 나머지 80억에 대한 투자는 불확실했다. 게다가 그 시기는 2월이었다. 겨울 장면부터 촬영해야 중공군이 퇴각하는 장면을 찍 을 수 있었다. 놓치면 1년 기다리거나 아니면 접어야 한다. 모두가 말릴 때 강 제규 감독은 무조건 밀어붙였다. 촬영에 들어갔고 트레일러(짧은 예고편)를 만 들어 칸에서 틀었다. 칸에서 소식이 왔다. 태극기 상영하는 부스에서 외국 사 람이고 한국 사람이고 다 난리인데 박수 치는 사람까지 있었다. 당시 칸의 모
152*220
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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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Global 한국 팝음악, 즉 K-POP이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선봉에 나섰다. 인기 걸그룹 카라가 도쿄 아카사카의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데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_ 이태문 통신원 또다시 열도 뒤흔드는 한류 이번엔 K-POP 인베이전 아이돌 그룹 대활약 일본인의 일상에 뿌리내린 실세 한류 일 본에서 한류 열풍이 다시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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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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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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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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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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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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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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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neuro.or.kr 2010 1 Vol. 82 www.neuro.or.kr 01 5 January 2010 2007 Newsletter of THE KOREAN NEUROLOGICAL ASSOCIATION 2010 NO.82 2010.JANUARY C o n t e n t s 04 05 06 10 13 17 18 20 22 25 28 32 33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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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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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More information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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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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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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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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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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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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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방송 콘텐츠는 TV라는 대중매체가 지닌 즉각적 파급효과에도 불구하고 다 양한 수익 창출이라는 부분에서 영화에 비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 이 엄청난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해 내 면서 방송 콘텐츠의 수익 구조에도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드라마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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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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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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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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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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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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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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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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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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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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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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