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산책 신문언어, 독립신문 에길을묻다 홍성호한국경제신문기사심사부장 ( 부국장 ) 신문에서자주쓰는말중에 세금폭탄 이란게있는데, 아주위험한표현입니다. 세금 = 폭탄 이란구조화를통해세금을걷는국가는악당이고납세자는피해자라는인식을심어줍니다. 틀을바꿔야합니다. 세금은 모두의재산 이고 국가의생계비용 이란개념으로접근해야합니다. 그래야비로소세금을내지않는사람이악당이되는거죠. 지난 4월 23일저녁서울공덕오거리인근한건물에자리잡은한글문화연대강의실. 인지언어학자인나익주전남대학교영미문화연구소연구원이 생활속의은유 를주제로일상에스며든은유의사례를풀어냈다. 어렵게느껴지던은유의세계에대해이론과일상의언어를넘나들며설명하는나연구원의말에참석자들은연신고개를끄덕였다. 신문언어의우울한미래 이론은배우기가힘들어서그렇지창의력의원천이되고다양한응 용을가능하게해주는자양분이다. 특히현업에있는사람에겐더욱 그렇다. 비록짧은시간이었지만 따끈따끈한 지식을접한뒤신문을 172 새국어생활제 25 권제 2 호 (2015 년여름 )
보니평소에는흘려보냈던은유가곳곳에서눈에띈다. 명품학교. ( 이역시나연구원이소개한예이다.) 대학은기업이원하는맞춤형인재를공급하기위해 명품교육을전개. 이른바 명품학교 로불리는서울지역사립초등학교에서. 이런말들에는학생을, 교수를, 학교를, 나아가교육을상품화하는복선이깔려있다. 학생과학교는 팔려야할 대상으로전락한다. 팔려야만살아남는다 는명제를은연중에주입해교육을생존경쟁의장 ( 場 ) 으로몰아붙인다. 인성이나전인교육은후순위가된다. 신문언어에서은유가늘어나는것은어찌보면그자체로경쟁의산물이다. 신문에서조어나약어등넓게보아은유의일종인수사적표현이넘쳐나게된것은 1997년말외환위기때부터였던것같다. 건국이후최대의국난이라던외환위기를겪으면서한국은경제전반에걸쳐엄혹한구조조정을겪을수밖에없었다. 신문에는전시와같은상황을반영해전쟁이나전력 ( 戰力 ) 을염두에둔 연봉錢爭, 외국錢力 ( 각각 돈싸움, 돈의힘 을암시하는상징어 ), 외환자금이고갈된것을나타낸 弗難집 같은 요상한 표현들이연일쏟아져나왔다. 전화위복 ( 轉禍爲福 ) 을연상케하는 錢禍爲福 ( 환율이올라오히려수출이늘어나는효과를의미 ), 외화가부족해어려움에처한상황을나타내는 錢錢긍긍 같은, 동음이의어 ( 칼랑부르 ) 수법을활용한은유들이이틀이멀다하고지면을장식했다. 그러나좋게봐서 시적언어 의기발함으로독자눈길을사로잡는데는효과를봤을지모르지만대부분일회용에그친말들이다. 우리말의조어법에서벗어난, 국적불명의표현에지나지않았기때문이다. 그중에서도압권은아마도 IMF 가아닐까싶다. 그뿌리가얼마나깊었던지요즘도 1997년말 IMF 때, IMF를맞아, IMF 때문에, IMF 국어산책 173
를당해, IMF를극복하고 식으로쓰이곤한다. 물론잘못쓰는말이다. IMF는국제통화기금을가리키는영문약자이다. 외환위기를벗어나는과정에서국제통화기금의역할이워낙컸기때문에사람들의인식에서 IMF= 외환위기 인것처럼자리잡은듯하다. 일종의환유인셈이다. 하지만 IMF의도움으로우리경제가혹독한 군살빼기 과정을거쳐외환위기에서벗어났다는점을감안하면사실을호도하는잘못된표현이다. 입말에서야그럴수도있겠거니하다가도그것이막상기사의일부로쓰일때는당혹스럽다. 식물국회, 방탄국회, 총풍, 여풍, 쪽지예산, 관피아, 정피아, 불통장관, 꼭두각시정부, 짜고치는고스톱, 사오정, 오륙도, 88만원세대, 삼포세대, 오포세대. 사실을전달하는것으로신문언어의역할은충분하다. 그러나현실은은유와상징이난무한다. 신문언어가지나치게은유화할때자칫우리말어휘체계까지어지럽혀국어질서를훼손하지않을까걱정이다. 더큰문제는신문에서만들어내는 관습화된은유 가일상의사고를지배하고고착시켜당연시하도록이끄는것이다. 사실의언어와은유화한언어사이의갈등과다툼, 그것이신문언어의미래를엿볼수있는열쇠가운데하나가아닐까. 이윤기선생이걱정한 명사의사막화 신문언어뿐만아니라우리말이건강하게뻗어나가기위해서는개념어가발전해야한다는지적은시사점이많다. 작가이자신화연구자이셨던, 돌아가신이윤기선생은오래전에한월간지에 똥집일화 를소개하면서우리말명사가사라져간다고지적한적이있다. 174 새국어생활제 25 권제 2 호 (2015 년여름 )
술집에서우리는닭의모래주머니구운것을즐겨먹었지요. 똥집, 똥집 하기는싫고 모래주머니 라고하기엔너무길고해서주인과 꼬꼬집 이라고부르기로합의했습니다만그건우리마음에지나지않았지요. 주인은주방쪽으로돌아서면서이랬지요. 똥집한사라 ( 접시를뜻하는일본말- 필자주 )! 복잡한사회에서는분화된언어가필요하다. 그런데국어에서는새로운우리말창출은커녕있는말조차외래어의홍수속에사라져가는현실을꼬집은것이다. 그는이를 명사의사막화 라고비유했다. 명사가사라져간다는것은개념어가부족해진다는뜻이다. 대개는한자가사라진자리를외국어 ( 영어가태반이지만 ) 가메우게된다. 그러니외국어의위세가점점더커지는것은필연적이라할만하다. 그자리에단단한우리말이자리를잡는다면더이상바랄게없지만그렇지못한게현실이다. 우리말명사의 70% 가한자어이지만한자가뒷받침되지않은한자어는뿌리마저허약해져자칫오용되기십상이다. 정교한의미의분화는커녕본래가지고있는의미마저도무뎌지기때문이다. 그런현상은이미우리언어생활에서넘쳐나고있다. 가령 임대료 와 임차료 를구별하지않고두루통용해쓴다거나 프랑스남성이미국남성보다평균 3배낮은심근경색발생률을보였다. 에서보이는 배 ( 倍 ) 의오용같은게대표적인사례이다. 입시철만되면여전히 학생들은마감시간직전까지눈치작전을펼치다원서를접수했다. 같은표현이쓰인다. 학교에서접수하는것을학생이접수했다고한다. 그것이한자의미체계가약해진탓이라고하면지나친비약일까. 입도선매 도자의적으로비틀어쓰는사례가많다. 대기업들은인재를확보하기위해 3학년때부터장학금을주는등 입도선매 ( 立稻先 국어산책 175
賣 ) 작전을펼치고있다. 처럼쓴다. 입도선매 는예전에지주들이돈에쪼들린소작농들에게여물기도전에벼를미리 팔게 강요한데서생긴말이다. 그래서 매 ( 賣 ) 자가들어있다. 일제강점기에농민들을수탈하던수단으로쓰인, 아픈역사가담긴말이다. 그나마도이말은 팔다 는뜻의말인데, 요즘은대부분이를 사다 ( 남보다먼저확보하다 ) 라는뜻으로쓴다. 말은시대에따라변하므로이를 입도선매 ( 立稻先買 ) 로바꿔쓰는게차라리의미에맞을것이다. 우리말을이치에맞게정교하게, 논리적으로쓰려는노력이좀더필요하다. 수입산 이나 부족난 같은정체불명의말이걸러지지않고쓰이는것도우리말진화에역행한다. 일본산이나중국산은있어도 수입산 은성립하지않는말인데, 이런엉터리조어가의외로많다. 부족난 도 공급난, 식량난, 전력난, 구인난, 구직난 처럼구체적으로써야할것을어법에안맞는말을만들어쓴다. 모두비논리적인말들이다. 인사기사에서자주나오는 지명자 도우리말의모호성에한몫하는말이다. 지명자는말그대로 지명하는사람 (nominator) 으로영어에서는지명자 (nominator)-피지명자 (nominee) 가확실히구별되지만요즘우리말에선이를엄격하게적용하기어려워졌다. 접두사 피 ( 被 )- 가있지만, 한자의쓰임새가줄어들면서 지배자-피지배자 등일부말을제외하곤현실언어에서활발하게쓰이지않기때문이다. 사전에도이미 이름을지정하여가리키는자. 또는그렇게지명을받은자 로양쪽으로다쓸수있게풀이해놨다. 보험자와피보험자가나뉘고추천자 -피추천자, 포상자 -피포상자, 초청자 -피초청자등이다구별되는것이지만현실적으로는두루뭉술하게쓰인다. 신문언어, 나아가우리말에서진행되는개념어의퇴보는결국우리말의미체계를모호한상태로퇴행시키는결과를가져올수있다. 이 176 새국어생활제 25 권제 2 호 (2015 년여름 )
런사례들은우리말을잘못쓰는, 우리말진화에역행하는작은예에지 나지않는다. 한자가사라진자리엔외국어가넘쳐나고 말에도경쟁력이있는말과그렇지않은말이있다. 사람들이자유롭게쓰다보면불편하거나이치에맞지않는말은자연스레힘이약해진다. 언중의선택을받지못하는말은사라진다. 언어의자유로운시장에서말들간에경쟁으로살아남는말과도태되는말이결정되는게언어생태계의순리이다. 말을억지로틀지울필요는없다는얘기다. 하지만언어의각축현장에서일하다보면너무심하다는생각이들때가있다. 핫하다 가그중하나다. 요즘수도권주택시장에서가장 핫 한지역이경기도화성시동탄2 신도시다. 한신문에서따온이문장은대부분의신문에서오십보백보로나타난다. 좀더나아가면 핫플레이스, 핫분양 도나온다. 올들어부동산경기가나아지고아파트분양이잘된다고하니까언론에선너도나도 핫- 을애용한다. 그것도모자라기사마다아찔한 핫보디 를넘어 핫한 여배우들까지 핫! 핫! 핫! 이다. 이 핫한 것의정체는무엇인가. 우리말과외국어가뒤섞여더어리둥절하다. 우리말에서 핫 이쓰인말로는얼른떠오르는게 핫바지 이다. 핫바지 는솜을두어지은바지를말한다. 핫- 은 솜을둔 이란뜻을더하는접두사이다. 당연히투박하고모양새가영나지않는, 서민의옷이다. 안타깝게도요즘아이들이이핫바지는몰라도핫보디나핫팬츠는알것이라는우울한생각마저든다. 국어산책 177
핫 을국어사전은 짝을갖춘 의뜻을더하는접두사로도풀이하고있다. 홀어미, 홀아비에대응하는핫어미, 핫아비가대표적인예이다. 핫핫 이라하면입을한껏벌리고호탕하게웃는소리나모양을뜻한다. ( 아쉽게도 표준국어대사전 에서는이말을북한어로처리했다.) 요즘은이말도자칫 핫! 핫!(hot! hot!) 으로알아들을지모르니조심해서써야한다. 핫바지나핫어미의뜻을아는젊은이가얼마나될지의문이다. 그러다보니혹여 핫- 을우리말 핫 으로알기보다영어의 핫 (hot) 으로읽는것은아닐까싶기도하다. 핫바지 도자칫 핫 (hot) 바지 로오인하지않을지걱정스럽다. 핫팬츠가있어서그럴개연성은더하다. 결국우리말 핫 은이제죽어가는말이고, 영어의 핫 은이른바 뜨는말 인가? 이런전제가타당성이있다면신문언어의미래는밝다고할수없다. 공공언어정책부처인문화체육관광부가한국관광공사와함께시행하는 굿스테이 제도도곤혹스럽다. 중저가숙박시설을육성하기위해정부에서업소를지정해지원하는것은좋은데, 명칭이 굿스테이 (Good Stay) 다. 정부에서도 굿스테이 로홍보하니까언론에서도그냥받아쓴다. 우수숙박시설 이라하면괜찮았을말이다. 이런경우신문에서는 우수숙박시설 이란말보다 굿스테이 를먼저쓰게된다. 시중에서상업적으로이용하는명칭이고, 이미고유명사화한용어이기때문이다. 물론외국관광객을염두에두고정했을것이다. 그렇더라도 굿스테이 (Good Stay) 를부제정도로병기하면그만이었을일이다. 올들어서는국토교통부가 뉴스테이 (New Stay) 정책을내놨다. 중산층주거안정을위한제도인데, 내용은 기업형임대주택 사업이다. 또는 기업형전 월세주택 이라해도된다. 이역시대외홍보용이름 178 새국어생활제 25 권제 2 호 (2015 년여름 )
은 뉴스테이 (New Stay) 정책이다. 공공기관에서여전히 영어를써야먹힌다 는인식을버리지못하는한언론보도현장에서자체적으로외국어를걸러내는데는한계가있을수밖에없다. 독립신문정신 으로돌아가야 뉴스언어는과학의언어와시적언어의중간에놓인 모호한 실체이다. 말의사용이너무엄격해서도안되고그렇다고자의적이어선더더욱안된다. 지나치게어려운것도조심해야하지만속되거나품위를잃어서는안된다. 그래서신문기자들은언어사용에서언제나규범과일탈이라는보이지않는경계선에서줄타기를한다. 신문언어가외국어에물드는것을경계하고, 정교하고논리적이며분화된말의사용이줄어드는것을걱정하는까닭은독자와의소통을최우선가치로두기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읽기쉽고, 알기쉽게 쓴기사는그자체로경쟁력이다. 읽기쉽고, 알기쉽게 쓴다는것은곧 우리말답게 쓴다는뜻이다. 모국어화자라면특별히훈련받지않아도누구나 자연스럽게 나오는표현법, 즉말하듯이풀어내는게 우리말다움 의요체이다. 몸에익은말을쓸때신문과독자가가장효율적으로, 정확하게의미를주고받을수있다. 그런점에서글쓰기가업인기자들에게 우리말답게 글을쓴다는것은평생의숙제이다. 120여년전 독립신문 창간호에 읽기쉽고, 알기쉽게 란아이디어가담겨있다. 국어산책 179
우리신문이한문은아니쓰고다만국문으로만쓰 거슨샹하귀쳔이다보게홈이라 국문을이러케귀졀을 여쓴즉아모라도이신문보기가쉽고신문속에잇 말을자세이알어보게 이라 ( 중략 ) 죠션국문 고한문 고비교 여보면죠션국문이한문보다얼마가나흔거시무어신고 니첫 호기가쉬흔이됴흔글이요둘 이글이죠션글이니죠션인민들이알어셔 을한문 신국문으로써야샹하귀쳔이모도보고알어보기가쉬흘터이라 독립신문 은 1896년 4월 7일첫호를냈으니꼭 119년전글이다. 창간호에서창간사격인 1면 론셜 ( 지금의사설 ) 을 2개면에걸쳐실었는데, 그중절반을할애해한글전용과띄어쓰기방침등우리말의중요성에대해자세히밝혔다. 한문대신국문으로만쓰고, 그까닭은상하귀천이다보게하기위한것이란점을밝혔다. 또띄어쓰기를하는것은누구나보기쉽고말을이해하기쉽게하기위함이란점을분명히했다. 우리글자가한문보다배우기가쉬워좋은글이고, 한문대신국문으로써야상하귀천다같이알아보기쉽다는점도분명히했다. 한국언론의태동기인당시에 독립신문 이이같은혁신적인기사쓰기를할수있었던것은당시창간회원들이우리말의중요성을명확히인식하고있었기때문이라고할수있다. 특히 어문기자 주시경이참여하지않았다면불가능했을일이다. 신문이지향해야할기사작성법을 알기쉽고, 읽기쉽게 로제시한점은선구적이다. 한글전용과띄어쓰기를실시하는까닭을 샹하귀쳔이다보게홈이라 아모라도이신문보기가쉽고신문속에잇 말을자세이알어보게 이라 고했다. 이미당시에불특정다수인 180 새국어생활제 25 권제 2 호 (2015 년여름 )
독자와의 소통의중요성 을인식하고있었다는증거이다. 신문언어가가야할방향도마찬가지이다. 알기쉽고읽기쉽게 란다른말로하면독자눈높이에맞춘, 독자친화적글쓰기 이다. 우리가제대로된맞춤법을갖게된것은 1988년에현행 < 한글맞춤법 > 을고시하고, 1989년에시행하면서부터다. 맞춤법의역사야 1933 년조선어학회의 < 한글마춤법통일안 > 에서시작하지만일제때의굴곡과광복뒤수십년간의혼란을감안하면언어, 문자생활에서안정된모습을찾아간것은불과 30년에지나지않는다. 공공언어로서의신문언어는지금한글기반의체제가자리를잡았지만로마자나일본의가나도수시로한글과함께섞인다. 더구나인터넷을넘어모바일, 누리소통망 (SNS) 등다변화된, 통제되지않는미디어언어와도싸워야한다. 신문언어는말그대로 날것 들이넘쳐나는속에서 도전과응전 을강요받는환경에처해있다. 상하귀천이모두읽기쉽고, 알기쉬운 글을쓰는것, 그것이신문언어가가야할길이다. 독립신문 의창간호정신을되새겨야할때다. 국어산책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