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9ABC7FCC0AFBBEABFACB1B820C1A631B1C728BABBB9AE E687770>

Similar documents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07


#7단원 1(252~269)교

152*220

5 291



A 목차

* pb61۲õðÀÚÀ̳ʸ

041~084 ¹®È�Çö»óÀбâ

CR hwp

1362È£ 1¸é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ÃѼŁ1-ÃÖÁ¾Ãâ·Â¿ë2

82-대한신경학0201



**09콘텐츠산업백서_1 2

ad hwp

01정책백서목차(1~18)

¼øâÁö¿ª°úÇÐÀÚ¿ø

문화재이야기part2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Microsoft PowerPoint - MonthlyInsighT-2018_9월%20v1[1]

2013_1_14_GM작물실용화사업단_소식지_내지_인쇄_앙코르130.indd

<B8D3B8AEB8BB5F20B8F1C2F72E687770>

워크숍 1. ICT 기술과 청조산업의 미래 인터넷과 SNS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로 인하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뛰 어넘어 매우 긴밀히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정보로의 접근이 가능해져 이전에 는 알지 못했던 전 지구적인 문제에

쌍백합23호3

2002report hwp

나하나로 5호

제 2 차 (2013~2015) 어린이식생활안전관리종합계획

(001~010)206교과-앞부속(수정)

01¸é¼öÁ¤

(012~031)223교과(교)2-1

210 법학논고제 50 집 ( )

2013지발-가을내지1004-4


- 2 -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2003report hwp

2015년9월도서관웹용

목차 Ⅰ. 기본현황 Ⅱ 년도성과평가및시사점 Ⅲ 년도비전및전략목표 Ⅳ. 전략목표별핵심과제 1. 군정성과확산을통한지역경쟁력강화 2. 지역교육환경개선및평생학습활성화 3. 건전재정및합리적예산운용 4. 청렴한공직문화및앞서가는법무행정구현 5. 참여소통을통한섬

ÆÞ¹÷-Æîħ¸é.PDF

2011년_1분기_지역경제동향_보도자료.hwp

Untitled-1

ITFGc03ÖÁ¾š

120~151역사지도서3

<B9CEBCBCC1F828C8AFB0E6B1B3C0B0292E687770>

5권심층-양화1리-1~172

소식지수정본-1

완벽한개념정립 _ 행렬의참, 거짓 수학전문가 NAMU 선생 1. 행렬의참, 거짓개념정리 1. 교환법칙과관련한내용, 는항상성립하지만 는항상성립하지는않는다. < 참인명제 > (1),, (2) ( ) 인경우에는 가성립한다.,,, (3) 다음과같은관계식을만족하는두행렬 A,B에

MRIO (25..,..).hwp

º»ÀÛ¾÷-1

120330(00)(1~4).indd

???德嶠짚

지도학발달06-7/8/9장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pdf..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표 1-2-1> 시군별 성별 외국인 주민등록인구 ( ) (단위 : 명, %) 구분 2009년 2010년 외국인(계) 외국인(여) 외국인(남) 성비 외국인(계) 외국인(여) 외국인(남) 성비 전국 870, , , ,


UDI 이슈리포트제 20 호 울산권개발제한구역의효율적관리방안 도시계획연구실정현욱연구원 052) / < 목차 > 요약 1 Ⅰ. 서론 3 Ⅱ. 울산권개발제한구역의현황및문제점 4 Ⅲ. 외국의개발제구역대안적관리사

신규투자사업에 대한 타당성조사(최종보고서)_v10_클린아이공시.hwp

•••••1301(•••).pdf



감사회보 5월

전력기술인 7월 내지일


2002report hwp


<B9AEC8ADC0E7C3A2766F6C2E31325FBDCCB1DB2E706466>

untitled

더바이어102호 01~09

hwp

2014_조석표 변경사항.hwp

<B1B9C8B8C0D4B9FDC1B6BBE7C3B3BAB85F BB0DCBFEFC8A35B315D2E706466>

도서관문화 Vol.51 NO.9(2010.9) 가을은 독서의 계절?! 16

CT083001C


** ¿ùÈ£

±³À°È°µ¿Áö

16-27( 통권 700 호 ) 아시아분업구조의변화와시사점 - 아세안, 생산기지로서의역할확대

<3235B0AD20BCF6BFADC0C720B1D8C7D120C2FC20B0C5C1FE20322E687770>

제 1 차세계유산분과위원회회의록

일러두기 고령자의삶 은통계청및각통계작성기관에서만든통계자료를재분류 가공하여작성하였습니다 호남지방통계청은전북지역의고령자현황을파악하여향후 정책수립에활용하고자 전북지역고령자의삶 을작성하 였습니다 이용시유의사항 인구관련통계는통계청 장래인구 가구 추계시도편 자료를 시군별고령인구비

È޴ϵåA4±â¼Û

기본소득문답2

저작자표시 - 비영리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이차적저작물을작성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

성인지통계

지발홍보책_도비라목차_0125

2011국립공원표지-수정


저작자표시 - 비영리 - 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아래의조건을따르는경우에한하여자유롭게 이저작물을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및방송할수있습니다. 다음과같은조건을따라야합니다 : 저작자표시. 귀하는원저작자를표시하여야합니다. 비영리. 귀하는이저작물을영리목적으로이용할

°ÇÃà»ç¶û2¿ùÈ£-2»©´Ù

- 89 -

(중등용1)1~27

<BBE7C8B8C0FBC0C7BBE7BCD2C5EBBFACB1B820C3D6C1BEBAB8B0EDBCAD2E687770>

Transcription:

무형유산연구 제 1 권 2015. 5

목차 기고논문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이보형 7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함한희 19 연구논문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김선태 39 -전북지역을중심으로-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조세훈 71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정성미 103 - 최 식악기장의사례를중심으로 -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이정훈 139 무형문화유산을소개하는글전라좌도진안중평굿 이승철 163 현장보고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김용근 215 고창농악의역사는사람의역사다 이명훈 233 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이주영 239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오세미나 이훈 이성인 김빛나라 249 휘보 271

기고논문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이보형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함한희

무형유산연구제 1 권 7~17 쪽 2015.5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1) 이보형 * < 차례 > 1. 서론 2. 한국의중요무형문화재정책 3. 세계무형문화유산의지정과관리 4. 결론 1. 서론 문화유산, 문화재 라는용어는근대에소통되는학술용어이다. 중요한문화유산을보호하는정책을수행하기위하여그대상인문화적소재를 문화재 혹은 문화유산 이라칭한것이다. 그리고그보존정책을수행하면서문화소재에나타나는유형무형의형체차이를변별하기위한용어를통용하였던것은그뒤일이다. 즉회화, 조각, 공예품, 건축물, 역사유물과같이조형적형체가있는문화유산을 유형문화재 (Tangible Cultural Property) 유형문화유산 이라이르고, 음악, 무용, 연극, 민속놀이, 공예기술, 곡예. 의례와같이조형적인형체 * 한국고음반연구회

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가없이인간이연행하는기예로존재하는무형의문화유산을 무형문화재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무형문화유산이라이른것이다. 대한민국정부에서문화유산의소재에대한보호정책을본격적으로수행하기시작한것은 1960년대초이지만그이전에일제강점기에유형문화유산을보호하는정책을시작하였다. 한국에서무형문화유산의소재에대한보호정책을본격적으로수행하기시작한것은 1960년대초에한국문화재보호법을제정하고이를시행하면서부터이다. 그본이된것은일본문화재보호법으로보인다. 중요한유형문화유산을문화재로지정하고보호하는정책을편것은유럽에서시작하였지만, 무형문화유산을문화재로지정하고보호정책을편것은일본이선도한것으로알고있다. 무형문화재보호정책이유럽에서성행하지않고일본에서본격화된데에는전통공연문화생태적특성때문으로보인다. 유럽에서는그리스로마유물유적과같은보존하여야할유형문화재는많았지만이에견주어보존조치를해야할중요한무형문화재가두드러지지않았기때문일것이다. 왜냐하면유럽에서는그리스종합공연예술을토대로각분야로분화되어오페라, 발레, 연극으로특수화하면서전문적인창작행위로발전하였기때문에이것을따로보호조치를취하지않아도문제가없었다. 그러나한국을비롯한일본, 중국과같은국가에서는유럽과달리지역집단이민속예술이나전문예술집단에의하여전승되고있던전문예술이서구화되면서문화변동으로전통문화환경이변하여그전승이단절될위기에있는종목이많았기때문에이를보호하기위하여무형문화재정책을펴지않으면안되게되었다. 1960년대에는인도, 중동, 아프리카와같은지역에서무형문화유산보호정책을서두르지않았던이유가있다. 그지역에서도우리와같이민속예술집단이나전문예술집단이전승하고있던문화유산이많았지만, 그들이무형문화유산을보호하는정책을서두르지않았던것은서구화가진행되면서도전통문화유산의전승위기가동아시아와같이심각하지는않았기때문이다.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9 2000년대에는유네스코에서세계각국에전승되는무형문화유산을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등재하여보존하는협약을맺어보호정책을장려하고있다. 한국의문화유산가운데에는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가곡, 산조, 아리랑등여러종목이세계문형문화유산으로등재되더니현재에는 16 종목이등재되었다고한다. 한국의문화계에서는한국의문화유산을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등재에는열성이지만시후대책에는무관심하여이에대한대책이논의되어야할것이다. 본발표자는한국의무형문화재지정정책과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등재에관한시말을회상하고이들정책에나타난공과실을논하여볼까한다. 2. 한국의중요무형문화재정책 1) 한국의중요무형문화재지정과선양정책 앞에서말한바와같이음악, 무용, 연극, 민속놀이, 공예기술, 곡예, 의례와같이인간이연행하는형체가없는문화재가운데역사상, 예술상, 민속상중요한종목을한국정부에서지정하여보호조치를하는종목을 중요무형문화재 라이른다. 정부에서중요무형문화재에대한보호조치하는것은보호정책을펴지않으면문화유산의전승이끊어질위기에있기때문이며, 전승위기에있지않은종목은중요하다할지라도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하여보호조치를하지않는다. 정부에서문화재정책을수행하는데도움을받기위하여이분야의전문가들을문화재위원으로위촉하고이들로하여금문화재위원회를조직하게하였다. 그리고이들로하여금문화재를지정하고, 보유자, 전수생, 이수생의지정을인정하고, 이들의기 예능발표를평가하는사업에도움을받는다.

1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그러나역사적, 예술적, 민속적으로중요한무형문화재종목이라할지라도잘전승되고있어전승인멸의위험이없는종목은 중요무형문화재 로지정하지않는다. 예로국립국악원에전승되는조선시대연향악은역사적, 예술적, 민속적으로중요한무형문화재종목일지라도국립국악원이잘전승하고있기때문에따로 중요무형문화재 로지정하여보호조치를하지않고있다. 지금까지수많은문화재종목을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하여전승위기에서벗어나전승의길을열게한것은한국정부의문화재정책의위대한공로라할수있다. 만일한국정부가그동안이런문화재정책을펴지않았다면이미전승이단절되었을종목은부지기수로많다. 이점에서는한국정부의무형문화재보존정책이다른국가의본이되고있다고할수있다. 그러나본이된다는것은그만큼책임이따르는것인데그런의미에서한국정부의문화재정책에허점과실수가없었는지검증하는일이중요하다. 필자는그동안문화재정책에몇가지아쉬운점을거론하여장차이를개선하는데도움말을제시하고자한다. 처음문화재지정정책을시행할당시에 [ 중요무형문화재 라는것은전승인멸위기에있는종목에한하여따로지정하여보호조치를하는종목 ] 이라는무형문화재개념을강하게청명하지못한것이아쉽다. 이를선양하는데소홀하였기때문에국민들에게중요무형문화재라는것은 [ 우수한문화재종목에부여하는등급 ] 으로오해하도록방치한것은문화재정책의조그만실수라할수있다. 이실수는뒤에몇가지후유증을유발하는동인이되었다. 이에대하여서는다음에상세히기술하겠지만우선당장무형문화재로지정된종묘제례악은대단한유산이라고생각한다. 하지만다같은수준의문화유산인데도국립국악원에전승되는조선왕조연향악에대하여는그런것이있는지모르거나있어도중요무형문화유산이아니어서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되지도못한별볼일없는종목으로오해하는이들이있게한것이다. 실제로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되지못하였지만중요무형문화재종목과대등한가치를갖는종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11 목이매우있는데국민들이이런종목은문화재도못된하등의종목으로잘못인식하게한후유증이있는것이다. 그래서산조라는종목은대학교국악과에서필수과목으로정하여잘전승하고있으니중요무형문화재에서제외하자는의견이더러나오고있다. 하지만이에대하여보유자들이결사적으로반대하는이유는산조가중요무형문화재종목에서제외되면전승위기에서벗어나잘전승되는명예로운종목이라생각하지않고, 문화재가치가박탈되어별볼일없는종목으로격하되었다고인식되기때문인데이것이모두문화재개념을바르게선양하지못했기때문이다. 그래서산조는무형문화재로지정하여보호조치를취하지않아도잘전승되는위대한종목이라는생각을일반인들에게심어주기는매우어렵게된것이다. 2) 기예는보유자인정 무형문화재라는것은인간이연행하는형체가없는무형의기 예능을문화재로지정하였기때문에이를보유한인간의기 예능이소멸하면그무형문화재도소멸한다. 그래서인멸위기에있는종목을전승하기위하여서는어느종목을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함과동시에그기 예능을보유한마땅한보유자를중요무형문화재기 예능보유자로인정하여관리하는것이필요하다. 문화재위원이나지방단체나본인이신청하면문화재위원회에서심의하여조사자에서조사를위촉하고, 그조사보고서를놓고문화재위원회에서중요무형문화재진정및기 예능보유자인정을의결한다. 인정받은기 예능보유자에게보유한기 예능에전념하도록하기위하여정기적으로생계보조금을지급하는정책을쓰고있다. 그리고보유자로하여금계속수련하도록독려하여보유한기 예능의기량이위축되지않도록관리하여야한다. 그래서정부에서는정기적으로그기 예능을발표하도록주선하고기 예능발표시에보조금을지급한다. 그러나앞에서말하였듯이당초에무형문화재선양작업이미흡하고중요

1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무형문화재지정이전승인멸위기에있는종목을지정하여전승하도록하는보호정책이라는것이아니고, 국민들에게중요무형문화재를지정하는것은종목끼리기 예능의등급을평가하는것으로오해되었기때문에그기 예능보유자에대한인식도잘못인식하게한것이다. 이로말미암아기 예능보유자는중요무형문화재를전승시킨사명을부여받은무거운책임을진수임자라는인식을하게하지않고, 국가가최고기 예능명인으로인정하는것으로오해하는것이다. 더구나기 예능보유자를인간문화재 ( 人間文化財 ) 라오칭하는것이그런오해를부추기었다. 그결과보유자로하여금결사적으로중요무형문화재의기 예능보유자로인정받아최고명인으로인정을받아야한다는인식을하게하는부작용을낳고있다. 이것은일본에서는그런수임이부담스러운것으로보고이를벗어나개인의기 예능에전념하는것이명예로운것으로생각하는경향이있는것과대조를이루는것이라할수있다. 3) 전수생과이수생의인정 인간의수명이한정되어있으므로이를후대에전승하기위하여서는마땅한전수생을인정하고보유자는전수생에게소정의기간동안에그기 예능을교육하도록한다. 사회적수요가많고상업성이있는종목의경우에는전수생지망생이넘쳐이를선별하느라고애를먹고그래서보유자와좋지않은소문이나기도한다. 하지만사회에서수요가전혀없고상업성도없는종목은지망자가전혀없어전수생을구하는것이어렵게되었다. 인정된전수생에게는전수장학금을지급한다. 전수생이학습에전념하도록하기위하여전수생으로하여금정기적으로발표회에출연하도록한다. 전수생이소정의학습을마치게되면이수평가를받고이수자로인정한다. 이수생도그기 예능의학습을지속하도록하기위하여정기적으로이수자는이수발표회에출연하여그이수종목을발표하도록한다.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13 지금까지각종목에서수많은전수생을인정하고학습하도록하여수많은이수자를배출하였고, 이들로하여금지정종목을이어가도록한것은한국의중요무형문화재정책의큰성과이다. 그러나무형문화재기 예능보유자가문화재전수암무를무거운수임자라는인식대신에중요무형문화재기 예능보유자를국가에서최고의기량에대한등급을정하는것이라는착각은이수자로하여금장차기 예능보유자로인정받아최고의등급을받도록결사적으로경쟁하는부작용을낳기도하였다. 4) 전수조교와명예보유자인정, 보유자보충 중요무형문화재기 예능보유자가고령인경우에는이수생가운데마땅한이수자를전수조교로인정하고그에게기 예능보유자의전수사업을보조하도록한다. 기 예능보유자유고시나보유자가고령으로전수사업이어려울경우에는명예보유자로인정하고전수조교나마땅한보유자를당종목의기 예능보유자로보충인정하여선임보유자를계승하도록한다. 5) 소결, 한국의중요무형문화재정책의공과 앞에서살핀것을간추려그동안무형문화재지정관리에공헌한점몇가지를들고자한다. 첫째, 근대한국의문화변동으로수많은무형문화재가없어지고있었는데정부의문화재정책으로인멸직전에구제되어전승되고있는종목이많다는것은무엇에바꿀수없는큰공헌이라할것이다. 둘째, 일반국민들이문화재의가치를미처지각하지못한종목이많았는데이를문화재로지정해서그가치를일반국민들이지각하도록일깨운것도큰공헌이라할수있다. 셋째, 기 예능보유자, 전수생, 이수생으로하여금인멸직전의중요무형

1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문화재기 예능을일관되게학습하고공연하도록문화재정책을폄으로써일반에게전통문화를이해하도록하는데공헌하였다. 그리고인멸직전의무형문화재를되살려그렇게나마생존하도록하여우리전통문화를복구하는운동을유발한것도큰공헌이라는것이다. 넷째, 국가에서무형문화재정책을시행하면서전국각시도에도무형문화재보호정착을독려하여수많은종목이지방무형문화재로지정되어보호정책을폄으로써한국의문화재생태계를형성하여한국문화를풍요롭게한것도큰공이라할수있다. 그렇지만그동안무형문화재정책에몇가지미흡한점여의치못한점이몇가지가있다는것은부정할수없는일이다. 첫째, 중요무형문화재라는것이일차적으로무형의문화재기 예능자체를중요무형문화재로지정한것인지명인으로써인간을지정한것이아닌데도일반국민들에게 인간문화재 라하여중요무형문화재가마치국가에서기 예능보유자개인자격을등급지어인정한것으로일반국민들이착각하도록버려둔것이실수이다. 그래서무형문화재기 예능보유자인정이마치개인의자격을등급매겨지정한것으로일반국민들이잘못인식하여, 지정받은보유자는전수의무를부여받은무거운수임자라는것을제치고, 최고기량을갖는보유자로등급을매긴것이라는인식을하도록하여지정받지못한많은보유자는자격에미달하는보유자로착각할수있게한것이부작용을낳은것이다. 둘째, 무형문화재는전승인멸의종목을지정하여회생하도록조치하는것이지만전승인멸의위험이없이잘전승되는종목은지정하지않아도되는것이다. 그대표적인예가국립국악원에전승되는궁중연례악이다. 조선시대궁중연향에서연행하던음악과무용은대단한역사적, 예술적민속적가치를지니고있지만무형문화재로지정하지않았다. 그것은국립국악원이이를잘보존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런데무형문화재가마치문화적가치를등급지여인정하는것으로잘못인식되어마치지정되지않은종목은문화적가치가없는것으로착각하게한것이다. 우리문화유산에는무형문화재로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15 지정받지못하였지만지정받은종목못지않은종목이매우많다. 이런종목을미처전승가치가없는것으로오인되어전승단절의위험이있는데도관심의대상에서벗어나게한것이다. 셋째, 당초에문화재위원이심사하여기 예능보유자는물론전수생, 이수생의발표공연을심의하게되었으나이에대하여일부보유자들과이견이있어그동안문화재당국이문화재위원의역할을축소한것이다. 이로말미암아보유자를견제할대상이없어졌다. 보유자와전수생, 이수생간의문제가있어도이를중재할장치가하나가없어진것이다. 이를다시회복시켜상호견제하도록하는것이바람직하다고생각한다. 넷째, 문화재위원인원구성이문제이다. 유명한학자나예술가가반드시문화재전문가가아니다. 그러므로문화재에정통한학자나예술가로위원을엄선하여임명하되마땅한위원을장기간소임을다하도록하는것이좋을것이다. 그리고문화재전문학자를양성하는것이중요하다. 젊은학자나예술가에게문화재에대한식견을쌓도록유도하는것이좋을것이다. 이들로하여금문화재행사에참석하도록유도하여장차문화재전문가가되도록유도하는것이바람직할것이다. 3. 세계무형문화유산의지정과관리 세계의중요무형문화유산이급격히소멸하는것을막고그전승의길을열기위하여 2003년유네스코무형문화재협약에의하여세계무형문화유산을등재하는일을시작하였다. 안내서에는다음과같이적고있다. [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의거하여문화적다양성과창의성이유지될수있도록대표목록또는긴급목록에각국의무형유산을등재하는제도입니다. 2005년까지인류구전및무형유산걸작이라는명칭으로유네스코프로그램사업이었으나지금은세계유산과마찬가지로정부간협약으로발전되었습니다.]

1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등재되었다할지라도자국에서무형문화유산을보호하는정책을펴지않으면보호조치가실질적으로이뤄지기어렵게되었다. 왜냐하면, 세계무형문화유산에등재되어도유네스코에서보호비를지원받는경우는거의없기때문이다. 그런데도각국이자국의무형문화유산을등재하고자노력하는것은등재되면자국의문화유산을세계에선양하는효과가있기때문으로보인다.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은각국에서지정신청을하고당사국에서제출된보고서를토대로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위원회의의결로등재가결정된다고한다. 위원회위원들은대부분신청국의사정에어두운외국인들이기때문에때로는신청국의신청서만믿고결정하는수가있다. 그래서신청국에서적절치않은대상을신청하는경우에는사정을잘모르는위원들이부실한종목을지정할여지가있다. 이것은한국정부의무형문화재지정신청을문화재위원이나지방단체나본인이신청하면문화재위원회에서심의하여조사자에게조사를위촉하고, 조사자는현지조사를하고보고서를제출하고문화재위원회에서는조사보고서를놓고중요무형문화재지정및기 예능보유자인정을의결하는데도진정에더러오류가있는데외국인들로구성된유네스코위원회가당사국에서제출한조고서만보고의결하는것은부실한종목을지정할여지가더욱크다. 지금까지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등재된것은총 88개국에있는 296건의무형문화유산이있고공동등재무형유산으로등재된것도 15건이된다고한다. 그동안한국정부의열성적인노력으로여러종목이등재되었다. 등재된종목을 1) 종묘제례및종묘제례악 (2001년), 2) 판소리 (2003년), 3) 강릉단오제 (2005년), 4) 강강술래 (2009년), 5) 남사당놀이 (2009년), 6) 영산재 (2009년), 7) 제주칠머리당영등굿 (2009년), 8) 처용무 (2009년), 9) 가곡 (2010년), 10) 대목장 (2010년), 11) 매사냥 (2010년), 12) 줄타기 (2011년), 13) 택견 (2011년), 14) 한산모시짜기 (2011년), 15) 아리랑 (2012년), 16) 김장문화 (2013년) 로총 16개종목이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으로등재되었다한다.

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존정책의시말 ( 始末 ) 과성과 17 이중에서몇종목을빼고많은종목이한국의무형문화재로지정된것들이다. 그러므로이들종목은한국정부의경제적지원을받고있다고할수있다. 그래서이들종목의사후조치를문화재청에기댈가능성이많다. 그러나한국정부가지정한중요무형문화재종목이지만지정되지않는종목은전승에실수가있어도한국의문화재청실수로끝난다. 그러나한국정부가지정한중요무형문화재종목이면서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지정된종목은그전승에실수가있을경우에는한국의문화재청실수로끝나지않는다. 국가의위신에관계된문제로비약할수있다. 그러나이를점검할장치가있는것같지않다. 그렇다면한국의세계무형문화유산을바른전승을도와주고전승에대한오류를검증하고바로잡도록권하는위원회가반드시필요하다고본다. 4. 결론 한국정부는문화재정책으로수많은종목을인멸의위기에서정성의길로인도한위대한업적을쌓았다고할수있다. 그런성과에도불구하고한국의무형문화유산보호정책은수많은시행착오가있었다. 주관자나국민들이무형문화재보존정책의의의와시행방법에대한분명한인식이없이출발하는데원인이있다. 문화재에대한인식이바르지않았고또국민들에게무형문화재에대한선전을제대로하지않았기때문에무형문화재기 예능보유자를기 예능우수자로만인식시키고전승책임자라는인식이결여되었다. 한국에서는많은종목을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지정받았다. 지정에많은노력을기울였지만전승에는대책은미미하다. 그나마정부나지방의무형문화재로지정된종목은기관의보호정책을펴고있지만그렇지못한종목은방치된상태이다. 부처나국민이이에대하여심각하게고민하고지혜를모아바른정책을펴고전승보호에성과를거두도록노력해야할것이다.

무형유산연구제 1 권 19~35 쪽 2015.5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 1) 함한희 ** < 차례 > 1. 서문 2. 유네스코의활동과담론의발전 3. 한국의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4. 무형문화유산을둘러싼문제 5. 맺는말 1. 서문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은유네스코협약체제를돌려놓고이야기하기힘들다. 국제적으로무형문화유산에관한논의가무성해지고, 유네스코를중심으로오랫동안심사숙고하여공표된것이무형문화유산보호를위한협약이다. 이를계기로국내에서도무형문화유산협약체제를준비하는움직임이있기는했지만, 기존의무형문화재보전과크게다르지않을것이라는판단아래서정부에서나학계에서나크게관심을가지지않았다. 더구나무형문화유산이라는용어나개념이한국과일본에서사용하고있는무형문화재를차 * 이논문은 2013 년정부 ( 교육과학기술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 과제번호 NRF-2013S1A5B8A01072201). **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

2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용하여만들어졌고, 무형문화유산보호제도를선진적으로만든나라라는자부심도작용했던것같다. 한편유네스코를중심으로한국제사회에서는무형문화유산보호활동이자리를잡으면서영향력있는문화운동으로전개되어가기에이르렀다. 동시에무형문화유산을둘러싼담론도변화를거듭해가고있다. 이과정에서국내의무형문화재보호제도와의간극도점차더벌어지게되었다는점을숙지할필요가있다. 이점에대해서상술하려는것이본고의목적이다. 2. 유네스코의활동과담론의발전 국제사회에서무형문화유산관련담론이어떻게형성되어왔는지, 이과정에서유네스코는어떤역할을수행했고, 관련된활동은어떤것이있는지를간략히살펴보고자한다. 본고에서는 2003년무형문화유산협약이나오기까지수많은회의와논의가있었지만, 대표적으로꼽을수있는회의, 결의안, 권고안등을중심으로그과정을알아보려고한다. 이를정리하기위해서참고한자료는유네스코홈페이지및관련논문과보고서등이다. 1) 유네스코의문화보전운동은세계유산과자연경관을중심으로시작되었다. 전쟁, 산업화, 도시화로훼손되고파괴되는것을방지하기위해서 1972 년 세계문화및자연유산보호를위한유네스코협약 ( 이하세계유산협약, UNESCO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이체결되었다. 이협약은경관중심의문화와자연자원의보전에목적을두고있다. 따라서문화보전의경우주로유형적이면서 탁월한보편적가치 (outstanding universal value) 를가진유적과유물에국한시키고있다. 현재까지 1,007곳이세계유산으로등록되었고, 이가운데 1) 대표적인회의와그결과물이라고해도평가하는사람의입장이나관점에따라서달라질수있기때문에논란의여지가있을수있다. 본고에서는유네스코발행자료집을우선적으로참고했고, 관련전문가들의발표문, 논문, 기고문에등장하는주요회의및협약에주목해서선정하였다.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21 779곳이세계문화유산이다. 2) 세계유산을중심으로형성된문화유산과관련된담론은다분히소수정예주의에기초한다. 눈으로확인될수있는아름다우면서도정통성을가진건축물, 유물, 그리고유명한유적지에만관심이집중되고있다. 그렇기때문에인류가창조해낸문화유산이나자연경관및복합유산을선정하는과정에서서유럽중심의담론이지배적이라는비판이제기되고있다. 유네스코가지정한세계유산이위치해있는국가별통계를보더라도그사실이드러난다. 세계유산협약에가입한 161회원국가운데서유럽 5개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 이차지하는비율은 3% 에불과한데, 1,007곳의세계유산사이트가운데 20% 가량인 201곳이이 5개국에소속되어있다. 3) 자연경관을제외하고복합유산을포함한문화유산을놓고보면 5개국이차지하는비중이무려 25% 에다다른다. 서유럽 5개국이전체세계유산의사분의일정도를차지하고있는것으로나타나있다. 세계적인문화유산을판단하는기준이되는 탁월함, 보편적가치 그리고 정통성 인데, 이는서유럽지성계가만든담론이라는지적이실감난다. 4) 그렇다고해서유네스코에서기타지역의민속또는무형문화유산에대한관심이전혀없었다고볼수는없다. 뒤늦게나마민속에대한보호의필요성이제기되면서 1989년 전통문화와민속의보호에관한유네스코권고안 (Recommendation on the Safeguarding of Traditional Culture and Folklore) 이나오게되었다. 문제는전통문화와민속의보호를어떻게해야하는지에대한고민이대두되기시작했다. 세계유산을지정하는방식은기준이분명하다고본반면에, 민속과전통문화는그범위나기준을정하는것이쉽지않았기때문이다. 이러한고심속에서 1993년유네스코제142차집행이사회에 2) 197 곳은자연, 그리고 31 곳은복합유산으로등록되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사이트참고 (UNESCO World Heritage http://en.unesco.org/themes/world-heritage 2015.2.20. 현재 ). 3) 20 곳이상을지정받은서유럽국가들이다. 이탈리아 50(46/4), 독일 40(37/3), 스페인 44(39/3/2), 프랑스 39(35/3/1), 영국 28(23/4/1) 곳이다 ( 문화 / 자연 / 복합유산순 ). 4) Andres, C., D. et. al., Conference Report: Tangible-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 Sustainable Dichotomy? the 7th Annual Cambridge Heritage Seminar,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2, 2007, pp.124-129.

2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서한국의 인간문화재제도 (Living Human Treasure System) 가소개되었고, 이와관련한결의안을채택하게되었다. 5) 1990년대후반유네스코에서는중동지역회원국을중심으로해서 인류구전및무형문화유산걸작 (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프로그램이제안되었고, 2001년부터등재가시작되었다. 6) 첫해인 2001년에는 38국이신청해서 19종목이걸작으로선정되었다. 이때종묘제례악이인류의구전및무형문화유산걸작에오르게되었다. 2년에한번씩국가별 1종목선정원칙이지켜져서 2003년과 2005년까지 70여개국에서제출한총 90여건을걸작으로선정하였다. 2008년이후에는이걸작선정이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으로통합되었다. 7) 민속이나인간문화재등무형문화유산과관련된담론은세계유산을인식하는기준과대조를보이고있다. 무형문화유산담론은용어가지칭하는바와같이, 물질 / 유형성보다는형태가잡히지않는비물질 / 무형성이라는점, 그리고보편적가치보다는다양성의가치가더중요하다는인식이그중심에있다. 인류가창조한문화의다양성을지키는길이전인류의생존과직결해있다는판단아래서유네스코는 2001년 세계문화다양성선언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al Diversity) 을하게되었다. 이선언의제7조를보면, 모든형태의유산은인간경험과열망의기록으로서보존, 증진, 전승되어다양성속에서창의성을촉진하고문화간의진정한대화를불러일으켜야한다고되어있다. 국제사회에서소수민족의문화보호, 아프리카와아시아 태평양도서지역등에산재한개발도상국, 사라질위험에처한토착민사회의후기식민지상황의심각성을인식하고문화다양성협약을체결하기에이르렀다. 이선언이마침내 5) 임돈희교수의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주최, 2013 년도연속기획강좌의강연내용참고. 한국의인간문화재제도를유네스코에소개한사람은당시유네스코대사였던박상식이었다고한다. 인간문화재를영역해서 Living Human Treasures 제도가나오게되었다고한다. 6) 처음에는구전 (oral) 만대상으로하려다가이당시회의에참가한한국대표가무형문화유산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도제안했고, 이안이채택되었다고한다 ( 임돈희, 2013 년도연속기획강좌 ). 7) 2003 년에는판소리, 2005 년에는강릉단오제가 인류구전및무형문화유산걸작 으로선정되었다.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23 무형문화유산보호를위한협약의기초가되었다고보는사람들이많다. 2002년에는유엔이 문화유산의해 (United Nations Year for Cultural Heritage) 를발표하였다. 이때에모인회원국에서는무형문화유산정책이각나라나지역개발에미치는역할이크다는점을인식해서무형문화유산과관련된협약제정의필요성이커졌다. 이어서 9월에 110개국의대표자들이터어키이스탄불에서무형문화유산과문화다양성에관한제3차문화장관원탁회의를개최하고, 이스탄불선언 (Istanbul Declaration, 2002) 을채택하였다. 이선언에서는무형문화유산과문화다양성에관한협약채택을권고한다는것이주된내용이었다. 그이듬해인 2003년유네스코에서는 무형문화유산보호를위한협약 ( 이하무형문화유산협약,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이체결되었다. 이를위해서사전에전문가, 행정가, 활동가들을주축으로해서무형문화유산의개념, 범주, 보호활동등에관한범국제적인논의가지속해서진행된바있었다. 많은전문가들의의견수렴이있었고, 특히비서구권의전통문화, 토착문화, 민속을포괄하는문화담론이중심을이루었다. 이미유네스코에서는인간문화재, 인류구전및무형문화유산걸작선정등의사업을해오던터여서선행프로그램을범지구적인협약체제로발전시키는일이필요했던것이다. 8) 2003년도협약은총 47개국의비준을얻어서 2006년 4월 20일발효되었다. 이협약과짝을이루는 문화적표현의다양성보호와증진에대한협약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the Diversity of Cultural Expressions) 이 2005년에발표되면서무형문화유산보호에대한인식이더높아졌고, 이후회원국들의수도증가했다. 현재 (2014년 5월 15일기준 ) 협약회원국은 161개국이다. 한국은 2005년에회원국으로가입하였다. 2003년협약에서는무형문화유산의정의를다음과같이내렸다. 8) 임돈희, 기조강연비교민속학회, 2014.

2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공동체나집단때로는개인이자신들의문화유산의일부로보는관습, 표상, 표현, 지식, 기술및이와관련한도구, 사물, 공예품및문화적공간을말한다. 세대를거쳐전승되는이러한무형문화유산은공동체와집단이자신들의환경, 자연및역사와상호작용을하면서끊임없이재생산되며, 정체성과연속성의감각을부여한다. 그렇게됨으로써문화적다양성과인간의창조성이존중되어야함을널리알릴수있다. 9) 무형문화유산의정의가포괄적이라는사실을지적할수있는데, 이는새로운개념을둘러싼비판적담론을최소화시킬수있는방법이기도하다. 유네스코가채택한신용어인무형문화유산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은비 ( 非 ) 물질문화-물질문화 (non-material vs. material) 의대비에익숙해있던서구권사람들에게혼란을주고있다. 왜새로운용어를꼭사용해야하는지, 그냥비물질문화라고하면안되는지, 무형과유형의구별이가능한것인지, 범주의구별이필요한지, 보호주체와대상이누구인지등무형문화유산을둘러싼비판적담론은앞으로도지속될전망이다. 이러한과정을거치면서현재협약체제아래서만들어진무형문화유산보호제도의한계와문제점이개선 발전되어갈것이다. 9) Text of the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 General provisions, Article 2-Definition. 원문은다음과같다 :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means the practices, representations, expressions, knowledge, skills-as well as the instruments objects, artefacts and cultural spaces associated therewith-that communities groups and, in some cases, individuals recognize as part of their cultural heritage. Thi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ransmitted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s constantly recreated by communities and groups in response to their environment, their interaction with nature and their history, and provides them with a sense of identity and continuity, thus promoting respect for cultural diversity and human creativity.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25 3. 한국의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국내에서무형문화유산에대한관심은 2000년대초반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가유네스코의 인류구전및무형문화유산걸작 에선정되면서관심분야로떠올랐다. 이어서유네스코의무형문화유산보호를위한협약이발표되고, 대한민국정부도회원국으로가입하게되었다. 그러나학계나관련분야에서는여전히관심이상의본격적인담론이나연구가시작되지는않았다. 10) 무형문화재를지정해서보전 전승시키고있었기때문에새로울것이없다는반응이었다. 그래서유네스코의무형문화유산과국내의무형문화재를바라보는시각의차이를심각하게받아들이지도않았다. 오히려그즈음국내학계와관련분야에서는반세기가넘은문화재보호법과무형문화재지 인정제도의문제점에관심을모았다. 11) 기존의무형문화재보호제도가가지는문제점개선방향에담론이모아질즈음에중국은서둘러서유네스코의무형문화유산협약이권고하는보호정책을실시하기시작하였다. 자국내소수민족의전통문화를보호한다는차원에서무형문화유산국가목록을만들기시작했다. 조선족의농악, 아리랑, 회혼례등도국가목록으로등록되었다. 나아가서농악무 (Farmers dance of China s Korean ethnic group) 를 2009년에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 10) 협약이발표된후나온연구가전혀없는것은아니지만, 비교적초기에연구된논문은그리많지않다. 김용구, 한국무형문화유산정책개편방안연구, 동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6. 임돈희,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제도와그의미, 비교민속학 26, 2004. 임장혁, 아시아각국의무형문화유산정책, 비교민속학 37, 2008. 임재해, 무형문화유산의보존과전승방향의재인식, 비교민속학 39, 2009. 장장식, 무형문화유산으로서어린이놀이의보존과전승방향, 한국민속학 49, 2009. 허용호, 무형문화유산으로서민속극의보존과전승, 비교민속학 39, 2009. 11) 강정원, 무형문화재제도의문제점과개선책 : 예능종목을중심으로, 비교문화연구 8(1), 2002. 이경엽, 무형문화재와민속전승의현실, 한국민속학 40, 2004. 정수진, 무형문화재의탄생, 역사비평사, 2008a. 정수진, 민속학적원형론의기초연구, 한국민속학 47, 2008b. 한양명, 중요무형문화재예능분야의원형과전승문제에대한반성적검토, 한국민속학 44, 2006.

2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으로등재시켰다. 무형문화유산분야에서는후발주자였던중국이신속하게움직이자국내에서는긴장하지않을수없었다. 조선족의무형문화유산이중국내소수민족의것이기에중국이나서서일련의보호조치를취했던것이라고볼수있다. 그러나한국측에서볼때는여간불편한일이아닐수없다. 중국의이와같은움직임이국내에서는유네스코의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대한관심을촉발시킨계기가된것도사실이다. 용어가거의유사하다는이유로해서무형문화유산의정의가무형문화재와크게다르지않을것이라는막연한생각에문제가있음을뒤늦게알게된것이다. 이두개념사이에가로놓인차이와그에따른정책적접근에대해서정부와관련학계모두소홀히해온셈이다. 기본적인차이점가운데하나는, 국내에서는역사적 학술적 예술적가치가있다고판단된대상들을우선적으로문화재로보호해왔다. 그러다보니, 무형문화재가되기위해서는원형성 수월성 고급성의유무를가리게된다. 12) 반면, 협약에서는무형문화유산을 살아있는문화 로보기에그전승성과창조성을동시에강조한다. 공동체나집단이대대로전승해서구성원들이충분히자신들의것으로인식하고있는것이무형문화유산이지만, 끊임없이변화되고있다는사실도간과하지않는다. 협약에서는오랜세월동안자연과상호작용속에서또생활속에서부단히변화를거듭해서창조된문화의기본명제를중시하는것이다. 즉무형문화유산의원형성에대한의문을던지고있는것이다. 바로이것이우리나라의무형문화재담론과충돌하게되는지점이다. 한국은문화유산에대해나름대로의보호및전승체계를개발해왔지만지금은전환의기로에서있다. 문화재보호법은 1962년에제정되었고, 이후여러차례의개정을거쳐서오늘에이르고있다. 1962년문화재보호법이만들어질당시만해도국내의전통문화는유무형을막론하고풍전등화와같은위기에처해있었다. 일제의식민지정책으로정체성을잃어버린전통문화는 12) 국내문화재보호법에따르면, 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등무형의문화적소산으로서역사적 예술적또는학술적가치가큰것을말한다 ( 문화재보호법, 무형문화재관련조문, 제 2 조정의 에서발췌 ).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27 해방이후전쟁과복구그리고산업화와개발이부단히이어지는사이에그토대가흔들리는위기를맞고있었다. 이법은급속히소멸되거나변질될위험성이있는문화재를선별하여이를보호하고원형적형태가지속적으로유지 전승될수있도록하기위한목적으로마련되었다. 실체가있어서식별이확실한유형문화재와는달리무형문화재는소리소문도없이사라져버리는경우가허다하다. 그런가하면, 사람들이전승하는것이어서보전과관리에복잡하고까다로운문제가많다. 유형문화재중심의문화재보호법과정책이무형문화재부분에그대로적용되기어려운점이많았던것도사실이다. 그러나어려운여건속에서도무형문화재를지키고자했던민관의노력은주목받아마땅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제는새로운시대에맞는제도와법을만들어야한다는목소리도높아지고있다. 예를들면, 원형을가진보유자가있어야만문화재가되는원칙때문에, 한국을대표하는전통문화가문화재로인정될수없는모순이있다. 최근에유네스코대표목록으로등재된김장문화, 아리랑등도무형문화재제도권밖에서있어왔다. 또몇몇예능과기능항목만을집중보호한다는중점주의식지 인정제도, 원형보호주의의고수, 문화권력층의개입, 그리고부실한지원 관리제도등이개선되어야한다는목소리도높아지고있다. 이러한상황에대처하기위해서문화재청에서도현행 문화재보호법 에서무형문화재부분을분리하여독립법제정을추진했다. 2011년 무형문화유산보전및진흥에관한법률 (10장, 61조, 부칙 8조 ) 제정 ( 안 ) 을마련했고, 2년여국회에계류중이다가마침내 2015년 3월 3일에국회를통과하였다. 13) 이법의명칭도 무형문화재보전및진흥에관한법률 로바뀌었다. 무형문화유산이무형문화재로다시돌아간것이다. 문화재청에따르면, 이법안의특징이 유네스코기준에맞춘새로운무형문화재관리체계도입 에있다고한다. 가장큰변화는 원형성 대신에 전형성 원칙을도입해서무형 13) 2015 년 3 월 4 일문화재청보도자료참조. 기존과는다르게대학을통한전수교육제도의신설, 이수증심사와발급주체를보유자 ( 보유단체 ) 에서문화재청으로환원하는것등의내용을담고있다.

2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문화재의범위를확대하고, 보전과진흥책도새롭게정비한다는것이다. 그밖에도여러가지획기적인제도와방안을담고있다. 신법은문화재법에서분리되어무형문화재의특수성을반영할수있게되었다는점만으로도진일보한것이다. 그러나이법안에기초해서새로운제도를만들기위해서는앞으로더많은연구와지속적인보완이필요하다. 별도의시행령, 시행규칙등의제정을위해서라도학계에서의심층적인논의와연구가반영되어야할것이다. 새로운시대적요구에맞는신법을만든문화재청의노력은충분히인정되지만, 제도화이전에담론차원에서라도우선적으로해결해야할과제가눈에뜨인다. 무형문화재와무형문화유산의용어를어떻게정리할것인가? 이번법안통과에서드러난바로는동일한의미로쓰겠다는것이정부의잠정적인결정인것같다. 그렇다면, 무형문화재의전형적인가치란어떤것일까? 모범이될만한것을선정하여보전한다는뜻인데, 모범에대한시각차가원형성의문제만큼많으리라고본다. 여전히문화적다양성과창의성을개방적으로수용하기에는껄끄러움이있다는뜻이들어있다. 문화적다양성과창의성에대한담론은유네스코협약의전유물은아니다. 이는인류문화의보편성과특수성을동시에유지하는중요한원칙이기에원형론과정통론을넘어서서, 이가치를포용하는일이시급하다. 4. 무형문화유산을둘러싼문제 1) 무형과유형의구분이가능한가? 무형문화유산의개념적정의를문제삼고있는학자들가운데많은사람들이무형과유형의구분에대한의문을제기한다. 유형문화유산도무형적요소가있고, 무형유산속에도유형적요소가있다는점을들어서무형문화유산이라는용어자체가성립될수있는가의문제제기를하고있다. 14) 유무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29 형의혼재성을강조하기도하고또보다광범위한문화적맥락에서유산이만들어낸것을총괄적으로보아야한다는주장도있다. 15) 이새로운용어의사용을부추긴것은사라질위기에처한전통적인삶의방식, 언어, 관습, 문화에대한걱정이었고, 이걱정이두려움으로까지이어지면서 2003 무형문화유산협약은보호대책의홍보를대대적으로하기에이르렀던것이다. 그러나아직도유형으로부터분리된무형문화유산보호방책이미완의구도에서나온것이라는점에우려를표명하는담론이줄곧제기되고있다. 2) 서구의유산담론에대한비서구의유산담론인가? 기존유럽지성계의유산담론은세계유산을통해서잘드러난다. 정통성을가진유산으로탁월한보편적가치 (authorized heritage discourse: outstanding universal value) 를가진것을말한다. 위에서도지적한바와같이, 제2차세계대전이후유럽의지성계가중심이되어서이와같은공인된유산담론을만들어왔다는점을상기할필요가있다. 그러다보니세계유산의상당수가서유럽몇개국에쏠려있는현상이나타나고있다. 이러한서유럽중심의문화보전에대한대항담론이제기되었고, 이는문화의다양성의중요성이부각되는계기가되었다. 상대적으로세계적인명소, 유적과유물이적은비서구사회를돌아볼때, 무형문화유산보호의필요성이절실해졌고, 서구의유산담론에대한도전이시작된것이라고도볼수있다. 중동과아시아지역의회원국들을주축으로새로운유산즉무형의유산담론이시작된것이 2000년을전후한시기였다. 유네스코안팎에서일어나는문화보호에대한 14) 임재해, 무형문화유산의조사필요성과미래가치, 무형유산조사현황과방안. 국립무형유산원학술대회자료집, 2014, 9-51 쪽 ; Andres, et al., 2007, Conference Report: Tangible-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 Sustainable Dichotomy? the 7th Annual Cambridge Heritage Seminar,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2, pp.124-129; Kaufman, N., Putting Intangible Heritage in its Place(s): Proposals for Policy and Practice,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8, 2013, 20-34 쪽. 15) Andres, at. al., 2007, pp.125-6.

3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활동, 선언, 협약등에주목해보았을때, 무형문화유산보호의필요성주장은비서구사회가주도하고있다고볼수있다. 또한실제로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등재도이러한경향을나타내고있다. 3) 살아있는유산과복원된유산 협약에서는무형유산이지속적으로변화를거듭한다는사실때문에살아있는문화 (living culture) 를강조하고있다. 살아있는문화 란공동체나집단의구성원들이현재까지도보유하고있어야하며, 조상대대로내려온것을자신들의것으로인식하고있어야한다. 유네스코협약은무형문화의보호를통해서보유집단이나개인들이자신들이문화에대한자긍심을가질수있다는점과인류문화의창조성을높일수있다는점을중시한다. 그러나무형유산의 살아있음 을강조할경우, 문화의다양한발전을오히려저해할요소가있다. 두가지점에서그러하다. 기억하는것 은문화가소멸한것을의미하지않는다. 현재행위로서드러나지는않지만, 의식세계속에는살아있기때문이다. 의식세계속에살아있는것을기록으로남기는일은그래서중요하다. 16) 기억과기록이연합해서언제라도복원가능성이높아지며, 혹기억하는현존하는사람이없을경우, 기록이라도남아서후손들이복원하여전승될수있는가능성이높아진다. 이러한점을감안하면, 살아있는문화만을기록하기보다는단절된것도기록해두어서기억이사라질것에대비해야한다고본다. 최근에복원된전통문화를어떻게볼것인가를놓고논란이많다. 학계일각에서는사라져가는것은그대로두는것이좋다는의견도있고, 만들어진전통에대한비판도강하다. 후자의입장을좀더들어보면, 복원자체가문 16) 미국원주민문화를기록한보아즈와그의제자들이한작업이바로이들의기억을복원한것이다. 복원된기록이남긴문제도있지만, 그당시그것을기록해두지않았더라면, 원주민의문화에대해서거의알수없었을것이다. 또현재젊은이들이그기록을토대로해서자신들의역사와문화적정체성을확인하고있다.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31 제라기보다는복원의의도와과정이지나치게정치적이거나이념적이라는점을문제삼고있다. 특정한문화의복원을복고내지는구제차원으로도볼수있겠지만, 현대사회에서는문화적다양성을촉진시키고정체성을제고하게되는일이아닐까한다. 4) 보전과보호의차이 보전 (preservation) 은정부나국가의정책과관련되어서위로부터의접근이라는의미가짙다. 그러나보호 (safeguarding) 는무형문화유산보유개인, 집단, 공동체가자발적으로전승하고있을때사용하는용어이다. 다시말해서특정한마을에서동제가열린다면, 그동제는마을사람들이자발적으로보호를하고있기때문에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가치가인정된다는것이다. 이점을유네스코협약에서는강조하고있다. 17) 그러나아직도국내에서는 보호 를국가나정부또는지자체가앞장서서해야하는것으로오해하고있다. 이차이에대한자각과대처도필요하다. 한편, 무형문화유산보유집단이나공동체의자발적인보호가이루어지고있다하더라도, 언제까지지속될수있을까가더큰문제이다. 대규모의개발이시작되면서시시각각으로공동체지속의위협이도사리고있기도하고, 도시로의인구이동이두드러지면서공동체가축소되어가는곳이허다하다. 노인들만남은마을에서자발적인무형문화유산보호도점차그힘을잃어가고있다. 18) 따라서자발적인보호와외부 정부, 지자체, 또는 NGO단체 로부터의보전정책은상호유기적으로작동될수밖에없다고본다. 이문제는다음의논제와직결되어있어서다시언급하기로한다. 17) Kurin, Richard, Safeguarding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Key Factors in Implementing the 2003 conven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2, 2007, pp.10-20. 18) 이러한경우를감안해서유네스코에서는 긴급보호목록 을각국가가작성해줄것을제안하고있다.

3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5) 무형문화유산공동체의모호성 무형문화유산공동체 (community) 가주목을받기시작한것은무형문화유산담론의발전과정에서나온것이다. 특히서구식의유산담론에서공동체의존재는전혀고려의대상이되지않았던것과달리무형문화유산의경우는공동체가유산의보유주체이고또보호할책임을가진당사자이어서유산의일부로보는담론이우세해졌다. 이러한변화가 2003년협약에반영되면서공동체에대한관심이증대되고있다. 19) 협약에따르면, 공동체나집단때로는개인이자신들의문화유산의일부로보는관습, 표상, 표현, 지식, 기술및이와관련한도구, 사물, 공예품및문화적공간을말한다. 고한다. 20) 여기에서공동체, 집단, 그리고개인이주체이며이들의무형문화유산보호에있어서자발적인참여와사전동의를필수적조항으로꼽고있다. 특히유네스코대표목록으로등재를할경우에는공동체, 집단, 개인의사전동의서가반드시첨부되어야한다. 그러나공동체의개념이나범위가다소막연하여서논란의여지가많다. 대체로는마을을단위로해서일상생활을영위해가는집단을공동체의단위로떠올리게되지만, 때로는그보다더넓은범위인, 지역사회, 국가, 민족등넓은범위의공동체가무형문화유산을공유하는경우도적지않다. 국내에서는아리랑, 김장문화를유네스코에대표목록으로신청할때무형문화유산공동체를국가단위로규정하였다. 이전에는없었던개념이자범위였다. 문화재보호법상으로는보유자를인정하기어려운종목은무형문화재로지정 인정할수없었다. 그러므로아리랑, 김장문화등은문화재지정의대상이될수없었던것이다. 새로제정된무형문화재법에서는공동체를인정하고있으므로, 무형문화재의범위와보호의대상이크게확대되리라고본 19) Rudolff, B. & S. Raymond, A Community Convention? An analysis of 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given under the 2003 Conven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8, 2013, p.155. 20) 유네스코 2003 년도협약, 제 2 조 - 정의.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33 다. 21) 그러나현재공동체에대한개념자체가불분명하기에무형문화유산전승공동체를법적인차원에서보호하려면사전에많은연구가필요한것이사실이다. 예를들면, 어떤종류의문화유산을전승하고있느냐에따라서그공동체의성격이상이하기때문이다. 무형문화유산공동체를둘러싼논의는앞으로도국내외를막론하고가열될전망이다. 5. 맺는말 최근들어서국내외로무형문화유산담론이활발해지고있다는점에주목해서그형성과정을간략하게나마살펴보았다. 국제적으로는 1980 90년대학계의패러다임의변화와유네스코의세계유산담론에대한비판적성찰이나오면서무형문화유산이부각되었다는점을지적했다. 국내에서는 1960년대초부터무형문화재제도를도입해서보전과전승을꾸준히이뤄온바있다. 이제도가알려지면서우리나라는무형문화유산의보호선도국으로알려지게되었다. 그러나막상유네스코협약에서명시한무형문화유산보호의원칙과우리나라의무형문화재보전법은상이해서지금까지적지않은혼란이있어왔다. 이러한혼란을줄이고국제적움직임에발맞추기위해서문화재청에서는 무형문화유산보전및진흥에관한법률 제정안을마련했고, 2년여만에국회를통과했다. 최종적으로확정된법은무형문화유산이라는용어대신에무형문화재를택하여서최종적으로는 무형문화재보전및진흥에관한법률 로확정지었다. 새로운시대적요구에맞는신법이만들어진것은환영해마지않으나, 앞으로도이제도를정착시키기위해서는관련학계, 전문가들, 그리고보유자 / 단체들로부터폭넓은의견수렴이뒤따라야할것이다. 21) 무형문화재의범위를전통적공연 예술, 공예 미술에대한전통기술, 한의약, 농경어로에대한전통지식, 구전전통, 의식주등전통적생활관습, 민간신앙등사회적의식, 전통적놀이축제및기예 무예로확장하였다. 따라서각범주에맞는무형문화유산전승공동체에대한연구는매우시급히이루어져야할것이다.

3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본고의마지막장에서는무형문화유산을둘러싼논제들가운데중요하다고판단된다섯가지이슈를검토해보았다. 무형문화유산을보호한다지만, 막상무형과유형의구분이명확할수있는지에대한비판적입장, 서구중심의세계유산담론에대한비판적인무형문화유산담론의등장, 살아있는문화만을기록 보전하기보다는우리나라의상황에서는단절된유산도복원가능성이높기때문에소홀히할수없다는문제제기, 보전과보호의차이, 그리고마지막으로는공동체의정의와범위의모호성등의문제를짚어보았다. 유네스코가강조하는바와같이무형문화유산의보호와활용이인류문화의창조성과지속가능성을동시에담보해줄수있다는점은분명하다. 그러나유네스코가중심이되어서만든협약체제가현상태에서완벽한것은결코아니다. 앞으로도더많은논의와지속적인연구를통해서현재의무형문화유산보호활동의한계를찾아내고개선해나갈필요가있음을강조하고싶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기획연구보고서중요무형문화재전승자구술채록. 강정원, 2002, 무형문화재제도의문제점과개선책 : 예능종목을중심으로, 비교문화연구 8(1): 139-168. 김용구, 2006, 한국무형문화유산정책개편방안연구, 동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석사학위논문. 문화재청, 2009, 한국무형유산대표목록분류체계및기초자료연구. 문화재청, 2010, 무형문화유산의이해, 문화재청 아태무형유산센터. 문화재청, 2011, 문화재관계법령집. 배영동, 1996, 중요무형문화재지정시전승자선정기준과조사방법의개선방안, 중요무형문화재효율적관리방안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문화재관리국. 이경엽, 2004, 무형문화재와민속전승의현실, 한국민속학 40. 이장렬, 2005, 한국무형문화재정책-역사와진로, 관동출판. 이재필, 2011, 무형문화재보호제도의이행과정과그성과에관한검토, 문화재 44. 임돈희, 2004,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제도와그의미, 비교민속학 26. 임돈희, 2006, 무형문화유산의목록작성, 무형문화유산목록조사연구, 강릉시 강릉문화재단.

무형문화유산담론의형성과발전과정 35 임돈희 로저 L. 자넬리, 2005, 무형문화재의전승실태와개선방안, 비교민속학 28. 임장혁, 2008, 아시아각국의무형문화유산정책, 비교민속학 37. 임재해, 2007, 무형문화재의가치재인식과창조적계승, 한국민속학, 45(1). 임재해, 2009, 무형문화유산의보존과전승방향의재인식, 비교민속학 39. 임재해, 2014 무형문화유산의조사필요성과미래가치, 무형유산조사현황과방안, 국립무형유산원학술대회자료집 : 9-51. 장장식, 2009, 무형문화유산으로서어린이놀이의보존과전승방향, 한국민속학 49. 정수진, 2008a, 무형문화재의탄생, 역사비평사. 정수진, 2008b, 민속학적원형론의기초연구, 한국민속학 47. 한양명, 2006, 중요무형문화재예능분야의원형과전승문제에대한반성적검토, 한국민속학 44. 함한희, 2007, 무형문화유산의현대적의미찾기 ( 편저 ), 도서출판오감기획. 함한희, 2012, 무형문화유산의이해-전승, 보전, 그리고인벤토리 ( 편저 ), 무형문화유산총서 1,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소, 흐름. 함한희 정성미, 2013, 전라북도무형문화유산의목록화와현황분석, 실천민속학연구 22: 169-204. 허용호, 2009, 무형문화유산으로서민속극의보존과전승, 비교민속학 39. 홍건표 전진석, 2012, 우리나라의무형문화재제도개선에관한연구-중요무형문화재중심으로, 정부와정책 5(1). Andres, C., D. Viejo-Rose, B. Baillie & B. Morris, 2007, Conference Report: Tangible-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 Sustainable Dichotomy? the 7th Annual Cambridge Heritage Seminar,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2: 124-129. Kaufman Ned, 2013, Putting Intangible Heritage in its Place(s): Proposals for Policy and Practice,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8: 20-34. Kurin, Richard 2007, Safeguarding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Key Factors in Implementing the 2003 conven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2: 10-20. Rudolff, B. & S. Raymond, 2013. A Community Convention? An analysis of Free, Prior and Informed Consent given under the 2003 Conven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Intangible Heritage 8: 153-164. 문화재청 www.cha.go.kr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 www.unesco.org/culture/ich/index.php?pg=00002 유네스코 www.unesco.org 전라북도청 www.jeonbuk.go.kr ICHPEDIA,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무형문화유산지식기반, www.ichpedia.org

연구논문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전북지역을중심으로 - 김선태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조세훈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최 식악기장의사례를중심으로 - 정성미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이정훈

무형유산연구제 1 권 39~70 쪽 2015.5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 22) - 전북지역을중심으로 - 김선태 ** < 차례 > 1. 마을기문화연구의필요성 2. 마을기의존재다양성과역사적전개 3. 마을기문화전승과지역의관계 4. 마을기문화의전승과제 [ 국문초록 ] 세계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후무형문화유산에관한관심이높아지고있지만, 우리문화속에면면히전승되고있는문화유산을찾아, 주체 ( 공동체 ) 의문화전승과지역발전에관해이해하려는연구는상대적으로부족하다. 따라서이글은마을민속가운데하나인마을기의전승현황을확인하여, 마을기문화와지역발전의관계에대해연구하기위해작성되었다. 먼저마을기에관한연구가생소하여마을기문화의존재양상과역사적전개과정을살펴보았다. 마을기는농업문화가기반이된마을문화에서형성되고, 각마을공동체문화를표상하면서지역적특수성과보편성을다양하게보이고있었다. 하지만일제강점기이후근대화과정에마을기의존재가사라지게되는데, 이는근대화에따른마을공동체의해체과정이있었기때문이다. 이어서마을기문화전승과정을전북지역사례로살펴보았다. 지역과지역공동체는마을기문화의전승주체이자전승지로서의위상을가지며이었다. 그런데사회구조변화에따라마을기는방치와혹은소멸되었고, 극히일부만전승이지속되고있었다. 한편, 마을기가운데에는정부 ( 중앙혹은지방 ) 에의해선택적으로복원되어지역축제또는문화관광상품화되며전승되는것도있었다. * 이글은김선태, 공동체표상으로서마을기의형상과의미 ( 안동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3) 를토대로작성되었음을밝힌다. ** 사단법인문화연구창소장 / 원광대학교강사

4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마을기는단지물질이아닌마을공동체문화를표상하는무형문화유산의가치도가지고있다. 마을기문화의전승은마을공동체의흥망과맞닿아있어지역공동체발전의가늠자구실을한다. 마을기문화전승은주체인마을공동체와밀접한지역공동체의조력에의해유지될수있지만근본적으로구조적한계가있다. 이를위해서는전승주체인마을공동체와지역공동체가변화하는시대에맞는주체적자각과창조적대응이요구된다. [ 주제어 ] 기 ( 旗 ), 마을기, 공동체, 무형유산, 지역, 문화재보호법, 전승주체 1. 마을기문화연구의필요성 2003년세계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후인류의무형문화유산보호에관한국제적인노력이꾸준히전개돼왔다. 국내에서도우리의문화유산을세계무형유산으로등재시키려는노력이있었다. 종묘제례및종묘제례악을시작으로 2014년에는김장문화가등재되었고최근에는농악까지인류무형유산으로등재되었다. 이러한결과는한국의무형문화유산을유네스코세계무형유산으로등재시켜국가적자긍심을고취하고, 한국문화의세계화를추진하려는정부의정책적노력이밑받침되었기에가능한것이었다. 1) 세계무형유산목록을살펴보면한국에서는 강강술래, 한산모시, 제주칠머리당, 강릉단오제, 남사당, 농악 등대부분지역문화에서비롯된민속들이등재된것을확인할수있다. 따라서지역기반의무형문화유산이세계무형문화유산등재를계기로지역문화의가치와위상을높이는계기가될것으로보인다. 유네스코가무형문화유산의네가지특징가운데특히강조하고있는것은바로공동체이다. 2) 무형문화유산의인류무형문화유산등재를통해서전승지역공동체와그들의문화가인류의지식을지속 전승시키는가치기재 1) 문화재청홈페이지, http://www.cha.go.kr 2014 년주요업무계획 ( 문화재청 ) 정책비전과추진체계, 문화유산미래가치창출 ( 문화유산세계화, 국제협력강화 ). 2) 문화재청 아태무형유산센터, 2003 년무형무화유산보호협약해설집 - 무형문화유산의이해, 디자인인트로, 2010, 14-15 쪽. 네가지특징은 전통성과현대성의공존, 포괄성, 대표성, 공동체기반 이다.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41 로서조명되는긍정적인부면이분명존재하는것처럼보이지만, 초기부터쟁점이되었던부정적시선도여전히상존하고있는것이사실이다 ( 박상미 : 2004). 3) 지역에서는무형문화유산의전승력을기반으로세계무형유산등재를통해세계화를지향하며지역발전의계기를마련할것으로예측된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의등재는지역문화유산이 세계적 이라는브랜드가치를획득한것으로, 지역에서는이를발판삼아지역무형유산의문화관광산업화전략이가능해지기때문이다. 하지만지역문화유산은기존의전승환경에서의온전한전승과지속보다는, 상업적성격으로변화를수반할수밖에없기때문에공동체문화전승의성격이이전과다른방향으로진행될가능성을배제할수없는상황이다. 한편, 무형유산의지속과전승을위한것이라면기존에알려진문화에만천착할일이아니다. 오히려우리삶과주변문화에대한깊은관심과세계무형유산에관한주체적인연구를통해지역공동체기반을제대로갖출것을요구해야한다. 이를위해서는우리문화속에서면면히전승된다양한문화유산을찾아, 주체 ( 공동체 ) 의전승지속과지역발전에관한이해와연구도진행되어야한다. 이글에서는한국의문화유산가운데하나인 마을기 의전승에관한내용을새롭게제시하고, 전북지역을중심으로전승양상을살펴이후과제를제시하고자한다. 4) 마을기는마을공동체의표상으로서마을문화를옴살답게드러내는유형의상징물이며, 마을공동체의삶의문화를고스란히담고있다. 구체적으로마을기는깃대, 깃봉, 기폭의구성요소를유지하면서남한전역에고루분포하 3) 논쟁의쟁점은주로보호의정당성, 전지구적, 지역성의문제, 문화유산의진정성, 상업화, 대중화등이다. 4) 김선태, 앞의논문, 1 쪽. 마을기 는 마을 과 기 ( 깃발 ) 의합성어로서, 지연공동체를이루고있는마을이라는공간에서마을을지켜주고마을사람들의삶과함께하며, 마을을대표하는기 라고규정한다. 기 는기의구성요소를갖추고있는모든것이해당된다. 마을기의범주는지연공동체로서 같은마을 이라는인식론적의식을포괄한다. 곧한정된생업공간을넘어서마을사람들이인식하는문화지리적공간까지를의미하는것으로서. 여러마을이함께사용하고있는경우에도마을기의범주에포함된다.

4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고있는것으로보이며, 마을구성원들의일과놀이, 제의, 의례과정에다양하게기능하고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마을기와관련한조사연구는거의이뤄지지못하고있다. 5) 필자는파편적인마을기관련자료와연구내용들을검토한이후현장조사등을통해마을기의실체와문화적성격, 기능등을두루살펴마을기가단순한유형의상징물에그치지않고마을공동체문화의다양성과지역적특수성은물론한국마을문화의독창성을드러내고있는문화유산이라는사실을밝힌바있다. 하지만민족 ( 또는국가 ) 차원에서보편적특성을드러낸반면, 전승지역현장내용이소략한아쉬움이있었다. 따라서지역 ( 전북 ) 현장의구체적사례를제시하여이전연구성과에진전시키고자한다. 이를위하여첫째, 마을기문화의존재양상을살펴본다. 우선마을기에관한기초연구가부족하다보니형태적인이해를물론문화의중심을이루는마을기의존재조차제대로확인되지못한실정이었다. 그래서현재존재하는마을기실체를확인하는것이필요하다. 또한통시적입장에서마을기문화의전승과정을확인해본다. 구체적으로역사적시간흐름에따라서마을기문화의형성과전개과정을확인하고, 여기서드러나는마을공동체와마을기문화의관계를확인할수있을것이다. 둘째, 지역내에서마을기문화와전승내용을유형별로구분하여자세히살펴본다. 비록마을기라는용어를사용하지는않았지만지역차원에서마을기문화전승을위한여러유형의시도들이있다. 전북지역에서는도지정문화재기반위에서전승여건을마련한경우도있고, 지역대표관광상품으로지역축제참여사례도발견된다. 이상의내용을종합하여현전하는마을기문화의전승과제를제시해볼것이다. 5) 마을기관련연구는 1969 년민속조사보고조사과정이후간헐적으로내용이드러나고있다. 최길성, 令旗, 중요민속자료조사보고서 제 23 호, 문화재관리국, 1970, 1-93 쪽 ; 이보형, 神대와農旗, 한국문화인류학 8, 한국문화인류학회, 1976, 59-66 쪽 ; 주강현, 農旗의례와놀이考, 한국민속학보 6, 민속학회, 1996, 94-97 쪽.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43 2. 마을기문화의존재다양성과역사적전개 1) 마을기문화의존재양상 (1) 마을기의보편적구성요소마을기는공간으로서마을을배경으로깃대, 깃봉, 기폭을기본형태로구성되어있고부수적으로버렛줄과기망이있다. 구체적으로깃대는기폭을매다는 8~10미터크기의긴장대인데, 기죽 ( 旗竹 ), 기간 ( 旗竿 ), 죽간 ( 竹竿 ) 등으로부르며주로대나무로만든다 (< 그림 1>). 또한기폭은깃대에넓은사각형의긴천을매달은것을뜻하는데, 용과같은그림형상, 문자, 색면등이매우다양하게드러나있다. 또한깃봉은깃대끝에꿩장목이나솔가지, 짚단등 < 그림 1> 마을기의구성을꽂아놓은것으로방울과함께매달기도한다. 이러한기의기본요소는지역에따라다양한명칭으로불리지만깃대, 깃봉, 깃폭의형태는보편성을가진다. 물론구체적인형상은지역별로다양한데, 하삼도 ( 경기, 충청, 전라 ) 처럼두레활동이왕성했던지역에서는기폭테두리에삼각형태의천 ( 일명, 지네발 ) 을달고있으며경상도지역에서는기폭아랫단만길게늘어뜨리고있다. 이밖에도두레기계통지역의마을기는기망과버레줄을이용하는반면, 서낭기계통에서는이러한내용을찾아보기어렵다. 기폭의내용역시상이한데, 두레기계통에서는문자와그림이주를이루고, 서낭기계통에서는색면의도형이주로나타난다. 이처럼한국의마을기는보편적인기의형태를유지하면서도지역별로다른차이들을보이고있다.

4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마을기가다양한무형의문화로서존재하는것을확인할수있는것은제작과보관, 전승집단과공간등에깊이연관되어있기때문이다. 제작과정은대체로마을공동체결정에의해서진행되면, 마을기의구성요소들은현지에서확보하지만, 간혹대형의깃대를확보하지못하는경우는원거리를이동하면서까지별도로구입한다. 마을기는마을기가사용되는시기를제외하고는깃대, 깃봉, 기폭등을분리하여별도공간에서보관하는데, 깃대는 8~10m에이를정도로대형이어서마을회관벽이나처마가긴집에매달아두기도한다. 마을기의관리는두레의형성시기부터는두레조직이나풍물집단이주도하고있었고, 현재에는마을차원으로회귀되거나, 일부활성화된마을에서는보존회와같이별도로마련된조직이도맡고있다. 마을사회가분화되기이전에는마을구성원모두가마을기관련문화의전승주체였다. 마을기는일과놀이, 제의, 의례등마을공동체의삶전반에나타나고있으며, 그가운데서도정초마을제의의시 공간에서가장강한전승력을보인다. 제의성이강한지역에서는마을기자체가마을신으로불리고있을정도이다. 두레활동이왕성한지역에서는제의현장뿐만아니라농사와놀이의현장에서도마을기문화의역동적인전승을확인할수있다. (2) 마을기의지역적분포그간마을기는두레활동의주요한상징물인 농기 로호명되는것이보통이었는데, 이는그동안의연구들이주로두레와관련되어있었기때문이다. 6) 그래서마을기와함께주로언급한지역은두레가성행했던경기, 충청, 전라도였다. 하지만김선태의조사에의하면마을기는하삼도지역뿐만아니라강원과영남지역에서도두루나타나고있으며, 이지역의기들은두레, 즉노동과관련성보다마을의동제와관련한종교적신성성이두드러지고있음을확인할수있었다. 6) 주강현, 두레연구, 경희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5.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45 마을기의전국적인분포를살펴보면크게경기, 충청, 전라도지역과서남도서해안지역, 그리고영남지역을나눠서살펴볼수있다. 경기, 충청, 전라도지역의경우는주로두레의영향을받아농사와관련한성격이강하다. 이를잘드러내는것이기폭에드러난내용으로서, 農者天下之大本, 神農遺業등의문자나, 용또는물과관련된토템적형상들이주를이루고있다. 마을기문화의전승은주로두레꾼이주도하고, 대보름과백중, 농한기등마을의축제기간에그활동이두드러진다. 물론제의과정에서재액초복과풍농을기원하는성격도나타난다. 영남지역의마을기는대형의기폭과깃대를갖춘것은경기, 충청, 전라도지역과비슷한양상이지만, 기폭의형상이색면 ( 色面 ) 을이용한도형형식이주를이루고, 정초제의기간에만모습을드러내며, 기타농사기간에는노출이극히제한되어있다. 특히이지역에서는마을신의신체로서신성성이강하여, 영험을드러내는존재로인식되고있다. 서남도서해안지역은타지역에서보이는대형기가아닌소형의 영기 가주요하게쓰이고, 대형기의경우는 사명( 司命 ) 이라고쓰여있는기가나타난다. 이지역의마을기는신성성을강하게내포하면서도군기적성격을복합적으로드러내고있다. 7) 전북지역에서는아래표에제시한바와같이 2014년 9월현재 14개시 군 56면 ( 동 ) 에서 122곳의마을기가확인되었고, 이가운데 43개가현존하고있다. 8) 이가운데무주, 진안, 정읍지역마을 3곳에서정초제의과정에깃고사 ( 제사 ) 등으로나타나고있고, 나머지지역은대체로백중무렵기세배, 기싸움과같은형태로그모습을드러낸다. 조사된마을들은조사기간이오래된까닭에마을의현존여부도달라졌지만, 최소한도시화가확장되지않은대부분의마을들은인구감소와고령화로마을기문화전승의어려움을겪고있다. 심지어전북은 2012년전북지역마 7) 김선태, 앞의논문, 48-50 쪽. 필자는이러한마을기의성격을고려하여두레기계통, 서낭기계통, 군기계통의마을기라고명명하였다. 8) 무주무풍, 장수깃절놀이, 고창칠거리용대기놀이의경우와같이전승주체와직접적연계가없는경우는마을기대상에서제외하였다.

4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을회관교체사업이완료되면서마을회관내에보관중이던마을기가소실되는경우가많아현전하는마을기를찾는데는한계가있다. 하지만여전히고로의주민들은옛마을기를고스란히기억하는경우가많다. 아래표의내용을보면첫째, 6개마을이상의대규모기놀이가전주시평화동중평, 익산시금마, 완주군봉동, 남원주천지역에서나타난다. 이곳은전통적으로하천을끼고넓게평야를이룬오랜마을들이다. 이가운데전주시평화동과삼천동일대는 20여개마을에용이그려진마을기가군락을이루며집중분포하고있다. 이곳마을들은 2 또는 3~4개마을단위로모둠살이를해오다가 1997년전주기접놀이보존회를결성, 마을기놀이를전승하고있다. 완주군봉동읍지역에서는 10개마을이연합하여기놀이를진행했다는기록이문헌에전해지고있고 ( 완주군지 1996), 인근익산금마지역은익산기세배놀이보존지역으로현재까지전승활동을전개하고있는것으로유명하다. 이지역의기세배놀이는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등을통해서일찍이잘알려졌다. 전북지역마을기의분포를살펴보면, 익산, 전주, 완주, 남원권에서는군락을이루고있다. 기폭에용이그려진기들이많이나타나고있으며익산, 전주, 임실, 남원으로이어지는선상에집중분포하고있다. 이밖의지역에서는농자천하지대본의글귀중심으로묵서된문자기가나타나는특징이있다. 마을기는정초제의기간이나두레활동을전개하는여름에집중적으로나타난다. 익산금마, 진안동향, 무주부남, 정읍옹동의마을은대보름또는영등날을기해서기고사, 기세배등으로진행되고있다. 한편정읍옹동면에는마을동제에사용하고소각하는농기와작은소형의기들이있었다는사실도확인할수있었다. 9) 이밖에나머지지역의마을에서는 7월백중을전후로한마을또는여러마을이참여하는축제형식의놀이가진행되었다. 9) 김선태, 앞의논문, 51 쪽.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47 < 표 1> 전라북도마을기전승현황 2014 년 9 월 10 일현재 ( ) 는현존하는마을기의개수 시 군 전주시 18(13) 익산시 10(4) 군산시 3 정읍시 3(1) 김제시 7(3) 남원시 7(2) 부안군 5(3) 진안군 7(9) 완주 22(1) 임실 4(3) 고창 7 장수 7 순창 7(2) 무주 4(3) 합계 조사지역 읍면동 평화동 5/ 삼천동 8/ 효자동 5 함열읍1/ 금마면4/ 웅포면1/ 삼기 / 용안 / 낭산면 / 갈산나포면 / 회현면 / 대야면 주요내용현황 ( 현존 ) 연행시기비고 두레, 술멕이龍 5(5) 7 월백중무렵 합굿龍旗놀이, 술멕이 龍 8(8) 보존회포함 중평 -12 개마을합굿원석구 :1908 제작 7 월백중무렵계룡리합굿전주기접놀이중심지역 두레싸움, 술멕이龍 4/ 白 1 7 월백중무렵호암 - 백기 ( 진사기라부름 ) 금마 - 기세배 ( 정초 ) 웅포 ( 포구 )- 용왕제, 두레싸움 龍 5(3)/ 農 4(1) 정초 ( 음 1.3) 두레싸움, 술멕이龍 2/ 農 1 7 월백중무렵 상동 / 옹동면 / 소성면내동 ( 음 1.5)- 동제龍 1/ 農 2(1) 만경읍 2/ 금구면 / 신풍동 3/ 교동 주천 / 대산 / 금지 / 보절부안 / 변산 / 동진 / 상서면 / 변산진안읍2/ 마령 / 성수 / 동향 / 백운2 봉동 / 삼례 2/ 비봉 2/ 구이 / 운주 2 상관 / 이서 2/ 화산 3/ 용진 2/ 경천 / 고산 2/ 동상 3 강진 / 지사 / 두월 / 임실읍 술멕이, 두레, 두레싸움 술멕이 / 두레감동 - 화전 / 괴양 - 삼동굿놀이 龍 2(2)/ 農 4 白 1(1) 龍 4(2)/ 農 3 함열 - 기쟁 (1930 년대 ) 익산기세배보존회활동지역 기절놀이 ( 문헌 ) 기맞이 ( 문헌 ) 정초 7 월백중무렵일회형기 7 월백중무렵 서정농기 - 백기 ( 동학연관 ) 신풍 - 용기 ( 서울문화재 ) 농업박물관소장 7 월백중무렵신대받기 ( 떨림 ), 삼동굿놀이 두레, 술멕이, 대회龍 3(2)/ 農 3(1) 7 월백중무렵장신용기 - 최대크기 상백암 - 동제 ( 깃고사 ) 원수계 - 깃고사, 합굿두레싸움 / 술멕이 龍 4(3)/ 農 3(3) - 白 /2(2)/1 등기 (1) 龍 3/ 農 19(1) 정월보름, 영등 ( 음 2.1) 원강정 - 용기 (1835) 가장오래된기 7 월백중무렵봉동읍장기리에서 12 개마을이기놀이관련문헌 술멕이, 두레龍 3(2)/ 農 1(1) 7 월백중무렵관기리 - 청룡, 연화실 - 어룡 무장 7 두레미상 7 월백중무렵재현기 ( 문화원 ) 노하리외 7 기절놀이龍 (2) 農 7 월백중무렵재현기 ( 문화원 2 개 ) 적성 / 금과 / 동계 5 부남 3/ 무풍 14 시군 56 면 ( 동 ) 122 곳마을기중현존 42 개 두레기, 술멕이, 기싸움재현 정초 ( 음 1.3) 깃고사 / 기절놀이 동제 ( 기 )-3 기우제 -2 두레 ( 술멕이 )-90 곳 龍 5(1)/ 農 2/ 白 (1) 7 월백중무렵금과들노래용기 - 제작 龍 2(2)/ 農 1(1) 정월보름무풍기절놀이재현 용기 49(28) 농기 43(8) 백기 ( 실명기 )5(4) 1 등기 3(1) 일회형 1(1) 봉동 12, 익산 12, 장수 3, 고창 5 개재현기제외

4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위의내용에서전북지역은전국적으로볼때, 한반도서쪽의두레기계통에속하는지역이면서대형기가많다. 충청지역보다는마을기를중심으로마을제의활동을전개하는경우는적고, 농번기두레활동과백중전후술멕이과정에서마을기활동이두드러진다. 또한농자천하지대본이나용등의그림과문자가많은것으로보아두레와깊은연관이있는것이확인된다. 2) 마을기문화의역사적전개과정 마을기의역사적전개과정은마을기관련문화의생성과지속의문제에맞닿아있다. 이는마을기가마을공동체의상징물인까닭에유형의문화유산과더불어무형유산으로서마을문화의전승과지속에중요한부분을차지하고있었음을의미하는것이다. 마을기가마을사람들의집합의식을투영하는것과동시에 기 ( 旗 ) 의형태적구조를이루고있는것을고려한다면, 서낭대는마을기의시원적형태일수있다. 서낭대는마른입목끝에꿩장목과방울을달고, 중간지점에는마을구성원들이염원을적어종이, 옷, 천등을매달아두는것이보통인데, 기폭부분에서만차이를보일뿐마을기의기본구조와형태적인측면에서유사성을보인다. 또한호칭의유사성도높다. 서낭대는주로경남창녕, 밀양, 대구광역시, 경북안동, 강원도등지에서광범하게나타나고있다. 이지역에서는서낭대, 처낭대, 서낭기, 천왕 ( 황 ) 기등의명칭을혼용하고있으며, 호칭상대와기를크게구분하지않는다. 끝으로서낭대나서낭기모두가신성성이강한마을수호신의신체이자마을사람들의염원을함축한상징물로여긴다는점이다. 그래서각각의형상은주술적장식으로치장하고, 각상징물을의인화하고있는데, 경북안동시원촌마을의서낭대는깃대가장윗부분에는꿩장목과 보, 방울 을매달아두고, 새끼줄에신에게바친옷과소원을적은종이들을매달았다. 10) 경북영양군발리 2리의경우에는세로형의긴기폭을서낭님치마로부르며, 경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49 남창녕일대도마을기기폭을서낭님치마나서낭님도포등으로부르고있다. 따라서마을기의형태와마을신의신체로서의성격, 호칭의유사성을미루어보면서낭대는정형화된마을기의모습을갖추기이전의시원적형태라는것을추론할수있다. 한편조지훈은서낭대와솟대의연관성을주장하기도했는데, 그의고향경북영양주실마을서낭대를솟대의후신으로보고안동하회마을서낭대에달린당방울이소도의특질임을들어서낭간의방울전설은그의잔영이라고밝히기도했다. 11) 서낭대가이동가능한마을신의신체라면, 솟대는고정된입대목으로마을공동체신으로입목에좌정하는것이어서그성격이유사하다. 이에관하여한양명 (2000: 104-105 참조 ) 은마을기는 서로다른외표를지닌신간, 소도와솟대의성격을복합적으로계승한신간으로보는것이타당할것 이라고주장하였다. 이상의내용을정리하면, 마을기는그형태와성격적인면을고려해볼때, 서낭대가시원적형태를가지는것으로보이며, 그내용은고정된솟대와도깊은연관성이있는것으로보인다. 12) 서낭대의전통은서낭기와두레기로이어진다. 서낭대에서서낭기로의변화는서낭기의기폭이서낭대의옷과천을매다는것과각각의 대 가신대의역할을하여다르지않기때문이다. 하지만 대 에서 기 로의변화가두레기계통에도적용되는문제는현재로서는단정하기어렵다. 또한서낭기로의변화는현재까지전승되고있는데옛문헌으로는확인하기어렵다. 두레기는조선후기의사회문화적조건에의해출현, 전승되었다. 문헌상으로는영조 14년부안현감이백성들로부터징 북 기치 ( 旗幟 ) 를빼앗은내용을기록한 조선왕조실록 (1738) 을통해서확인할수있다. 13) 이내용은 10) 인터뷰자료 ( 전〇춘, 조사일 : 2010.11.14); 안동지역도산면현지조사 (2011.10.9-19, 2013.4.13). 현지조사는도산면토계리일대 12개마을을조사하였다. 11) 조지훈, 서낭竿考, 新羅伽倻文化 1, 청구대, 1966, 246쪽. 12) 마을기의시원에관하여 솟대 와 소도 심화연구가요구된다. 13) 朝鮮王朝實錄, 英祖 47 卷, 14 年 11 月 17 日乙丑條 {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ua_11411017_001&tabid=k)}.

5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이시기마을풍물과함께기가존재하였고, 마을기가마을문화속에일찍이자리잡고있었다는것을보여준다. 특히, 이후의논의과정에서 이미백년이된민속, 14) 호남의풍속이쟁고 ( 錚鼓 ) 기치 ( 旗幟 ) 로농사일을감독하고권장하는것은그유래가오래되었습니다. 와같은내용이나타나는것으로보아그당시이미마을기문화가존재했음을짐작케한다. 15) 두레기의기폭에새겨진 農者天下之大本 의글귀는당시농본주의를표방했던조선사회의흐름에서크게벗어나지않는다. 곧마을기가농업현장과농민들의농업생산촉진의상징으로사용되었으며, 경제외적강제에의해역설적으로주민들의자발적조직형성이이루어지면서농민의상징으로자리매김이되었음을알수있다. 이런까닭으로두레기의전승은두레활동이활발했던한반도서쪽, 이른바두레기계통지역에서그내용들을쉽게확인할수있다. 전북의마을기문화도이러한맥락에있다. 조선후기사회에서마을기문화가성장한것은당시민중들의주체적인힘이있었기때문에가능했던것이다. 이런성장과정은이후경복궁중건과정에서마을기문화가급속히확산되고있는것을확인할수있다. 16) 또한동학농민혁명과정에서도일부마을기들이포착되어, 농민들의지배이념에대항하는변혁적성격이마을기를통해드러나는것을확인할수있다. 일제강점기에는식민지농업정책에의해농촌사회의분화가일어나면서마을기문화가쇠퇴하기시작한다. 특히기형적으로주입된자본주의영향으로인해공동체적이고상호부조적인성격에서벗어나농업노동에고용노동의비중을늘어나며두레가소멸되어갔으며, 이미두레가없어진마을도많이나타날정도였다. 17) 곧마을사회의생업조건에생긴변화에의해전승의 14) 承政院日記 第 881 冊, 英祖 14 年 11 月 17 日乙丑條. 15) 朝鮮王朝實錄, 英祖 48 卷, 15 年 2 月 28 日乙巳條 {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 { 조선왕조실록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ua_11502028_003&tabid=k)}. 16) 정형호, 경복궁중건과안성바우덕이관련성고찰, 한국민속학 53, 한국민속학회, 2011, 173-212 쪽. 17) 윤수종, 한국농업생산에서의노동조직의변화과정에관한연구,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0, 133 쪽.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51 역할을담당했던마을두레가존립하기어려운환경이조성된것이다. 결국두레조직의약화와소멸에의해마을기문화도쇠퇴일로에선다. 물론이시기에는새롭게농기대회나농악경연대회속에마을기의전승내용이나타나고있었다. 18) 하지만그조차도오래가지못했고, 해방이후쇠퇴는가속화하였다. 해방이후농지개혁이실시되었지만실질적변화는없는채, 농정수행자금은미국에의존하면서미국의잉여농산물을도입하여항상적인농업수입국으로전환, 농업생산이정체되었다. 19) 또한근대화를통한국민국가체계에서농촌마을은생산과인력기반이무너지며 1960년대이후저임금노동력의공급소로기능하면서급격한이농을가져오게되었다. 20) 따라서비록잔존된농촌마을문화를기반으로일부는전승이가능해도전반적으로근대화에따른이농현상으로마을기문화는관심밖으로밀려나게된다. 한국사회가 1970년대에자본주의경제체제로급속히전환되면서농업생산구조역시변화하였고, 이에기반을두었던마을기문화는전승기반을상실하게된다. 전북의경우도문화전승에영향이컸던두레가 1971년까지유지된곳도있었으나, 결국마을기문화는전통문화또는민속문화의하나로남게된다. 21) 마을기문화는일제강점기부터전개되어온농악경연대회등에참가한풍물패들에전승되거나, 1960년대이후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등을통해서발굴된민속에편승하여, 이후문화재보호법에근거한관련민속등을통해서일부내용을확인할수있다. 하지만전반적으로마을공동체문화를표상하던마을기는학계의관심밖 18) 일제강점기마을기관련내용은언론보도내용과현존하는마을사람들의기억속에내용을확인할수있다. 19) 김성보, 1950 년대이승만정권의농정과농업문제의성격, 인문학지 29, 충북대학교인문학연구소, 2004, 85~86 쪽. 20) 조승연, 한국농촌사회변동과농업생산구조, 서경문화사, 2000, 205 쪽. 21) 이정덕, 수도작기술변화에따른농업노동의변화 - 원평촌의사례연구,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4.

5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에있다보니이렇다할정부보호도받을수없었다. 여기에는국가주도의경제개발정책으로이촌향도가전개되어마을기전승의핵심적인주체인마을공동체가축소된것이실질적인원인이되었다. 1990년대이후지방자치제도가시행되었고, 21세기를맞이하며방송미디어와문화산업이새로운경제영역으로부각되자지역문화에대한관심도늘어나기시작하였다. 이에따라, 지역단위에서마을기문화를보존하려는자체적인노력이진행되었고, 지방정부의관심도높아지지시작했다. 이는농업위주사회와다른새로운전승맥락으로편입되고있음을의미한다. 또한이러한전승환경의변화는마을기가지역발전을위한문화상품의가치를홍보하는매체로서의기능도지니게되었음을보여준다. 마을기는지역정체성은물론, 지역축제와연관된지역발전문화상품으로주목받고있다. 이가운데기존의 익산기세배 와 전주기접놀이 는마을기와관련된민속가운데하나로재맥락화된전승기반에서모습을드러내며마을기문화의전승을전개하고있다. 22) 또한전북지자체문화관광축제의장에서마을기문화가운데일부가공연물로시연되는등전승에새로운변화가지속되고있다. 3. 마을기문화전승과지역 (local community) 의관계 마을기가전승되고있는양상은크게세가지로구분할수있는데, 현재까지마을공동체중심으로전승되고있는것과지방자치단체와연계하여지역대표민속으로전승되고있는것, 그리고무형문화재로지정된것등으로나뉠수있다. 이가운데무형문화재로지정된것과지방자치단체와연계하여 22) 한양명, 놀이민속의탈맥락화와재맥락화 : 영산줄다리기의경우,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2009, 85-119 쪽. 민속의탈맥락화가일정한목적을위해민속을유용함으로써일어난다면, 재맥락화유용의과정이자결과로서민속이전과다른맥락으로편입되어전승되는현상 으로설명하였다.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53 전승되는마을기는행정체계를통해전승된다는공통점이있다. 따라서큰틀에서보면, 마을내에서전승하고있는것과마을밖으로나가지역 ( 또는국가 ) 과연계되는유형으로나뉠수있다. 여기서는이러한구분을바탕으로전승주체와관계를중심으로마을기의전승상황을살펴본다. 1) 마을공동체에의한마을기문화전승 근대화과정에마을공동체가해체되면서마을문화도소멸되고있는데, 마을기문화도소수의마을에서어렵게전승되는정도로마을문화전반의사정과다르지않다. 이문화는정초마을제의과정에서대체로모습을드러내고있다. 필자가전국 500여곳을현지조사한결과, 전북은 1980년대까지도약 110여개의마을기가존재하고있었으나, 방치되고있는상황이다. 마을기의방치는유형의문화유산으로서마을기는남아있지만그를둘러싼무형의문화유산이제대로전승되지못한상태를말한다. 마을기가방치된곳에서는전승자들의연령대가높고그수가감소하여세대전승이어려운상황에놓여있다. 또한이러한상황이장기간지속되면서젊은세대들은마을기와관련된기억자체가없는상황이발생하고있는데, 이로인해유형의유산으로서마을기는존재하되, 이와관련한노령의전승주체들이보존한민속지식은단절되고있다. 그런데마을기문화가여전히지속전승되는곳도있다. 전북진안군능길마을과상백암마을은마을기를세우고마을동제를진행한다. 능길마을의제의는유교식으로진행되며, 마을의재액초복과풍농을기원하는내용을축문에적어고한다. 제의가끝날무렵에는축문과함께마을을대표하여흰종이를소지한다. 마을사람들이많았던시절에는위, 아랫마을사람들이같이모여풍물을치며지신밟기를했지만현재는풍물악기만마을회관에보관된채중단된상태이다. 23) 23) 전북진안군동향면능길마을현장조사 ( 조사일 : 2008.3.8).

5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마을사람들은기를가리켜서 마을신 이라고이야기하면서도 특별히영험을보지는못했다 고말한다. 24) 대체로 기를꽂아놓은기간동안바람이세게불면한해농사가잘되고, 세게불지않으면농사일이쉽지않다 고하며, 한달동안마을기의모습을보면서그해의농사를가늠하는정도 라고했다. 25) 이마을사람들은마을기의내력에관해서많은의미를두지않는다. 이는기를한달간밖에세워두면기가헤어져자주교체하기때문이다. 상백암마을도사정은크게다르지않다. 다만이마을은음력 2월 1일영등날에깃고사를지내는데, 이날은마을기의생일날로서마을사람들의생일이라고믿고있다. 깃고사의대부분은능길마을과같이이장이준비하고, 노인회와부녀회가전승을주도하고, 다른것이있다면이곳은별도의축문이없고고사상에절을하며비는고사형식을취한다는점이다. 깃고사가끝나면같이음복하고점심을겸하는데, 특별히영등날인까닭에콩을볶아나눠먹는다. 능길마을과달리상백암마을에서는젊은층들이풍물을배워마을어른들과잠시나마풍물놀이를하지만지신밟기는전승되지못하고있다. 26) 이런사례는서낭기계통지역에서도확인할수있었는데, 밀양청운마을과경북영양군발리2리의경우도정초에마을기를세워놓고제의를진행하고있다. 27) 이곳은마을기가마을신의신체, 곧서낭님의신체인까닭에신성성을가지고있으며, 이에따라마을기에관하여근신하면서제를지내고, 도가 ( 都家 ) 집에모여마을신을초청하는마을사람들이있으면, 방문하여선택적으로지신밟기를하고있다. 서남해안도서지역에서도같은양상을확인할수있었다. 전남해남금강마을의경우는영기를세우고마을동제를지낸다. 이곳은마을제의를진행할때, 외부인의출입을금한다. 마을제의는영기를세우고진행하는데, 허수아 24) 인터뷰자료 ( 전노인회장, 성〇림, 조사일 : 2011.2.5). 25) 인터뷰자료 ( 정〇하, 성〇경, 조사일 : 2011.2.5). 26) 전북진안군상백암마을현장조사 (2008.3.8). 27) 인터뷰자료 ( 박〇현, 조사일 : 2010.12.7); 경북영양군수비면발리 2 리현장조사 (2011.2.17).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55 비를만들어마을사람들의소원지를태우고, 허수아비를인근강에던져보낸후마칠때에는영기를거두는데, 이때 영을내린다. 라고한다. 이후풍물을치며뒤풀이를한다. 28) 이러한사례는다음과같은공통점이있다. 첫째, 마을제의는마을이장, 부녀회, 노인회가중심을이루고, 이밖에풍물패가함께한다. 마을조직은노인회, 부녀회밖에도청년회, 작목반, 기타식리조직은물론 위원회 등으로구성되고있다. 그렇더라도마을은기본적으로이장을중심으로활동이전개되고, 노인회와부녀회가중심축을이룬다. 이장은마을을대표하는사람으로서행정기관의말단에서마을주민과연계하는역할을한다. 노인회는마을원로들로구성되는데, 이가운데에는전직이장출신이나학식이있는사람들이마을의의견을수렴하고자문하는역할을한다. 부녀회는마을부녀자들의모임으로서마을공동의일을추진할때뒷일을도맡는다. 이들은마을의제의과정전반에참여하고있는데, 이들을포함한마을전체구성원들이제의준비를하고실행에서마무리까지도맡는다. 이처럼마을기와관련된문화는마을전체의일로서위상을가지며, 마을의중요한전통이다. 이는전통사회에서마을기문화를주도했던남성중심 ( 혹은두레 ) 에서성별의차이는있지만마을의핵심적인조직이참여한다는점에서이전의전통이현재에맞닿아운영되는것으로판단된다. 둘째, 마을제의에따른비용은마을재산으로진행한다. 마을동제가마을전체의일이기때문에이에관하여매년비용이준비되어있다. 예산과결산은마을이장이마을전체회의를통해서보고하고그내용을마을전체가공유한다. 각각의내용을일일이기록하여보고하고이에따른그내용을듣고인정하는수순을밟는다. 또한제의과정에고사비나지신밟기과정에거둬들인금액은치부책에내용과함께기록한다. 이러한운영방식은한국마을공동체문화의대동계에서지속되어온것으로현재까지도그문화가지속되고있다는것을의미한다. 셋째, 마을기와관련된행사는대체로고정된시간과장소에서진행하며, 28) 전남해남군북일면금당마을현장조사 (2012.2.5).

5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외지인의출입은유동적이다. 마을기문화는주로제의적인요소가많고, 일부지역에서는백중등의마을축제에나타나고있다. 두레기계통지역에서는정초제의기간뿐만아니라여름백중무렵의농한기를이용하여술멕이전통을전개한다. 전통사회나두레가유지되던시기의두레기계통지역의술멕이는정초제의기간못지않게마을기문화가풍성했던시기이다. 하지만현재는마을인구가적고노쇠하여마을기를일부마을이세워놓는정도에머물고있다. 넷째, 마을기문화의전승은현재조건에맞게변용되어운영되고있다. 마을기는유형의물질이어서그자체가오래보존되지못하는한계가있다. 또한오래전에만든기들은대체로무겁고커서관리도쉽지않다. 따라서무조건마을기를보존하는것을고집하지않는다. 전통사회마을기의경우도마을기를새롭게만드는것은일반적인예이다. 다만당시에는거대한기를만들때많은비용이발생하므로오랫동안보존하려는현실적인고민이있었던것이다. 이와같은전통은현재에도이어지는데 1960년대까지또는그이후에마을에서제작된마을기는더질기고가벼운기폭으로교체되고있다. 물론신성성이강한서낭기의경우도크게다르지않다. 다만교체과정에일정한의례를통해서예를갖추는정도의차이가있다. 또한제의기간에외지인의참석도예전과달리배타적이지않다. 일부지역에서는아직도마을제의를독자적으로진행하는금기가있지만, 최근에는외지인들의방문에개의치않는경우가많다. 이는사람이적어지는마을사정으로인해외지인도같이하는것에특별한거부감을느끼지않기때문이다. 또한마을사람가운데종교적신념차이에따라제의에불참하는경우도많다. 이런경우는마을마다사정에맞게참석여부를자유롭게하는경우가많다. 29) 이처럼마을기문화는전체적으로소멸의과정에존재하고있지만, 일정하 29) 전남해남금강마을의경우는종교가다른이들도소지 ( 燒紙 ) 하였고, 외부방문객의출입을제한해왔으나, 기별없이처음방문하였던필자에게도소지를올려줄정도로개방적이었다.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57 게전승이지속되고있음을확인할수있다. 또한마을기관련문화의전승은마을사람들을중심으로전개되고있으며, 이에수반되는비용또한마을자체적으로충당하고있는것이다. 2) 지역문화대표민속으로서마을기문화 마을공동체에의해마을에서전승된마을기는지역을대표하는문화로서새로운전승의맥락에포섭되기도했다. 이러한과정은마을공동체에의해스스로선택된것이아니라외부의힘, 예를들어민속예술경연대회에출연하거나학자들에노출되면서지역의고유한민속으로서새로운의미를부여받게되고, 이를인지한관계자들의후발적인노력에의한것이었다. 마을기문화가직접전승되는곳이마을이라면, 이를둘러싸고있는마을기가공유되고있는곳은지역이다. 지역은마을기문화가생성되고전개되는마을공동체밖의있는마을기문화의또하나의전승지이다. 30) 지역 ( 정부 ) 과마을기의관계는국가정책적인차원에서제도에바탕에두고예산집행과보호관리를수행하는행정처리를수반한다. 따라서마을기문화와관련한내용은문화유산또는문화재관련내용이주가되는것은당연하다. 31) 또한지방자치제도시행이후정부는지방자치단체에문화와관련한내용을권한이행하였으나, 문화재선정내용과지원예산의편차가있을뿐행정체계를통한관리운영방식은중앙정부무형문화재제도이행방식과거의다르지않다. 무형문화재제도시행에는 1958년일회적행사로시작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가 < 하회별신굿 > 과 < 봉산탈춤 > 이제 1회와 2회대통령상수상을계기로전국적으로알려지게되자, 이대회의의미나비중이새롭게평가받고대회가지속될수있는근거로작용하였다. 32) 문화재의법제화는 1960년 30) 지역에관한해서는개념은다양하지만대체로공간개념에따른상대성을전제로한다. 이글에서는문화유산이전승되고있는지연공동체와상대적이며포괄적행정단위로사용한다. 31) 지방자치법과문화재보호법참조 (http://www.law.go.kr).

5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대집권한박정희정권에의해추진되었다. 이제도는국가의정책적개입과경제적지원하에운영되는국가차원의사회제도라는것을의미한다. 33) 결국무형문화재제도가근대화를위한동원체제의민족주의적정당성을담보하는가시적인홍보의효과를지니고있었음을의미한다. 어쨌든문화재보호법에명시된구체적인지정기준가운데무형문화재와민속자료의경우, 인멸될우려가많아문화적가치가상실되기쉬운것 이라는기준이첨가되었다.( 정수진 2004: 486) 34) 현재까지마을기문화가국가중요무형또는유형문화재로지정된사례는없고, 지역단위에서지정된사례는충남홍성군원형산용대기놀이와익산기세배두곳으로한정되어있다. 두지역은민속예술경연대회에참가하면서무형문화재지정절차에편승되었다. 사례를살펴보면, 충청남도원형산용대기놀이는 1981년제22회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문공부장관상을수상을계기로, 참가마을기 ( 구수, 주교 ) 의제작년도가오래된점 (1891년혹은 1822으로추정 ) 을들어 1984년충남민속자료 4호로지정되었다. 전북익산함열기싸움은 1968년제9회민속예술경연대회에 익산함열기뺏기 로출전하였다. 이후 1976년익산기세배보존회를구성하고익산군의적극적인후원을바탕으로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익산기세배 이름으로출전하였다. 35) 그후에도세차례 (1976, 1977, 1984년 ) 나대회에출전하여 1984년대회에서는국무총리상을수상하기도하였으나끝내무형문화재로는지정되지못했다. 익산기세배 는이후민속예술경연대회에는참가하지않고, 보존회활동을전개하다가 2000년에전라북도무형문화재제25호로지정되었다. 36) 32) 김기형, 전국민속예술축제의역사와성격, 한국민속예술축제의회과와전망, 한국민속예술축제추진위원회, 2009, 14쪽. 33) 정수진, 무형문화재의탄생, 역사비평사, 2008, 43쪽. 34) 정수진, 무형문화재제도의성립, 그역사성의제고, 한국민속학 40, 한국민속학회, 2004, 486쪽. 35) 최길성, 앞의자료, 43~47쪽. 1969년민속조사보고과정에서함열기뺏기는오락성이강하며, 원형은금마의기세배라했다고하는내용이영향을미쳤던것으로보인다. 36) 익산기세배로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출전횟수는 18회 (1976), 19회 (1977), 26회 (1984), 36회 (1994) 로총 4차례로약 20여년을지속한다.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59 이상의내용에는다음과같은몇가지공통점이있다. 첫째, 참가내용이대부분미풍양속을통해통합을이룬다는설정을갖는다. 대부분의작품은민족적전통성을가진지역민속을발굴하여이속에있는민속의특징 ( 미풍양속 ) 을보여주는데, 원형산마을의작품은두마을간의용대기싸움을큰마을용대기가설득하여다툼을해소하여다함께풍물을치며어우러진다는내용으로구성되었다. 익산기세배도익산금마지역의 12마을이정초에큰마을기에예를갖춰세배를올리는풍속을재현하였다. 물론이작품에는실제마을에서벌어진, 마을의자존심을걸고살인도불사하던, 그리고그에대한보복과보복을거듭하던기싸움의내용은제외되었다. 둘째, 대회의형식은각도를대표하는민속내용을주최측이정한시간내에경연되는방식이었다. 따라서도대표들은대회형식에맞게기존의내용을새롭게구성, 연출되어출전하였다. 출전한민속은이미같은형식으로시 군단위지역별예선전을통과한단체들만출전할수있다. 이때참여자는 200여명에가깝게대규모인원이참가하였으며, 상당기간연습이진행되었다. 셋째, 대회전 대회입상후, 각보존회는지역의큰자랑으로서각시군의문화적표상이되었다. 따라서소속된시, 군은물론도 ( 道 ) 는대회출전준비과정에서부터적극적인지원을하였고, 입상후에는지역별각종행사에시연하거나, 정부차원의각종문화행사에도적극동원되었다. 37) 넷째, 문화재지정을위하여민속예술경연대회를참여하면서정부에의해마련된문화재지정절차를충실히이행하였다. 이러한절차로전승주체의활동내용이정부가지향하는방향으로전개될수밖에없다. 여기에는지식인들의참여가있기때문이다. 전라북도무형문화재지정절차는아래표와같이양식화되어있다. 이것은다른광역정부도유사할것으로보인다. 다섯째, 보존회에의해전승되면서그활동이점차미비해지고있다. 원형 37) 이러한내용은익산기세배본존회활동내역을통해서확인할수있는데, 명기한 52 개항목가운데, 익산군민의날 ( 마한민속제, 이후서동축제 ), 88 올림픽전야제, 건국 50 주년행사, 서울월드컵축하전야제, 월드컵기념공연, 새만금깃발축제등이대표적이다.

6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산용대기놀이는대회출전이후, 1982년민속자료지정과정에보존회를결성하여전승활동을전개해오다가 10여년전부터는마을인구감소와지역의무관심으로활동이거의없으며, 마을기 2점 ( 구수, 주교 ) 은마을회관에보관된채방치되어있다. 38) 익산기세배는 2000년도지정문화재지정과전수관건립시기를정점으로활동이쇠락해졌다. 무엇보다보존회를주도하던회원들이노쇠화되고, 익산기세배의놀이의원천이었던금마지역마을사람들이노령화되면서보존회활동이급속히위축되었기때문이다. 이런과정은익산시와달리금마지역의인구감소와경제활동이위축된것과도무관하지않다. 사정이이러다보니보존회원은대부분익산시주민들로구성하게되었고, 마을기놀이로표방하는금마지역의마을공동체에관한관심보다는풍물강습에집중하고있다. 현재보존회에는금마출신회원은 1명에불과하고, 기놀이전수와전수생이전무한상태이다. 마을기는마을을떠나보존회에보관되어있으며, 금마기세배는잊혀지고, 익산기세배로불리고있다. 마을풍물은익산시풍물로전화되고, 기를가지고놀수있는전수자와전수생은없는상황이다. 전승주체들은보존회원들은기세배의내용을자세히이해하지못하고, 기존기세배연행내용만을반복하고있다. 문화재지정을통한민속보존은오히려내용적으로쇠퇴하는모순이발생한것이다. 3) 지역문화관광공연물로서마을기 1990년대는세계화가우리사회의중심화두가된시기이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neoliberalism) 로서, 1800년대시장경제를강조한 ( 고전적 ) 자유주의, 1929 년대공황이후 배태된자유주의, 그리고 1981년시장중심경제정책 ( 레이거노믹스 ) 이고전적자유주의가새로이부활한측면에서부여된표현 38) 인터뷰자료 ( 박〇선, 조사일 : 2010.12.13). 이마을은풍물전승이불가능하여재현은불가능해졌고, 별도민요보존회를결성하여전승활동을전개하고있다.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61 이다. 39) 세계화는지역문화자원을지역축제등을통하여문화상품화를이끌고있다. 1995년부터문화관광부는중앙정부차원의관광축제활성화정책의일환으로관광상품으로서가치가인정되는지역축제들을지원하고있다. 40) 지방의지역축제에대한중앙정부의지원은지역적특색과역사문화적자원을최대한활용하여이를축제적인형태로재현해내어지역의대외이미지고양뿐아니라한국을대표하는지역의대표적인관광축제로의성장을목표로하고있다. 41) 2006년현재지역축제는 1,200여개로이추세는여전히진행되고있고, 지역축제활성화를위하여마을기연행도참여하고있는것을확인할수있다. 마을기를통한지역별활동내용을살펴보자. 먼저전주기접놀이의전승활동은 1970년대초까지거슬러살펴볼수있다. 당시전주시에서는전국체전을맞이하여전주시삼천동과평화동일대의마을기전승내용을확인하고, 대표민속으로진흥하고자하였다. 42) 하지만시연시기가농번기와겹치면서계획이무산되었고이후 80년대간헐적인공연을전개하다가정체되고말았다. 1997년경전주기접놀이보존회가다시결성되고본격적인전승활동을전개하였다. 이때부터는간헐적으로진행되어온 술멕이 전통을이어가고, 기의존재를적극적으로알리기위하여전주시의대표축제인풍남제에서공연을전개하였다. 이후전주문화원의지원을받아복원이전개되었다. 무주군반딧불이축제에서도무풍깃절놀이가재현되고있다. 무주군의조사연구사업이선행되어발굴 재현된이놀이는그형태나내용이소박하지만새롭게내용을구성하여현재무주반딧불이축제에고정적으로참여하고있다. 장수군장수깃절놀이의경우도 2012년깃절놀이조사를전개한이후내용 39) 이인우, 지역농업의가치와협동조합의역할, 농업경제연구소세미나 14, 농업경제연구소, 2010, 97 쪽. 40) 류정아, 한국지역축제조사평가및개선방안연구총괄보고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06, 3 쪽. 41) 류정아, 위의글, 3 쪽. 42) 인터뷰자료 ( 문〇상, 조사일 : 2008.4.18). 당시전북일보기자였던제보자는마을에서전승되고있는놀이를 기접놀이 라고명명하였다.

6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을새롭게구성하여지역축제 ( 장수사과축제 ) 의주요공연으로자리잡았다. 이사업은문화원이주도하고있으며, 지자체의예산지원으로전개되고있다. 이곳은이전부터전승해온마을기가존재하지않고관련내용도분명하지않다. 다음으로, 고창군무장칠거리용대기놀이는 1986년문화원에서조사한내용을근거로 2008년재현을구상하였다가 2011년에새롭게공연내용을구성하여지역축제에서시연하였다. 이놀이는무장읍아전들의지원으로 7개마을에서용대기놀이를전개했다는구술을토대로복원되었다. 하지만, 실제조사내용과구술내용이소략하고, 마을기의모습을제대로기억하는이가없어문화원에서별도내용을구성하여진행하고있다. 43) 이상의내용을정리하면다음과같은공통점이있음을알수있다. 첫째, 전주기접놀이를제외하고각지역마을기문화의전승주체는마을이아니다. 지역축제에참여하고있는마을기는지역 ( 고을 ) 에서마을처럼꾸민공연물이기때문이다. 등장하는마을기에는마을이없고문화적코드도없다. 제작과관리또한마을공동체가담당하지않으며, 마을문화에서형성한어떠한내용도함축되어있지못하다. 이들의연행근거는전승지역주민들의흩어진기억을재구 ( 再構 ) 한것에불과하다. 둘째, 각종행사장에서마을기연행은지역이미지제고에도움이되고있다. 마을공동체는지역축제에서마을기를공연화하여마을기의존재를보여준다. 지역은지역고유의것이라믿어지는스펙터클한공연을관람객에보여줌으로써지역상품홍보는물론지역이미지를제고할수있다고생각한다. 마을기의위용은거대하며기폭에그려진토템적형상 ( 용그림 ) 은지역축제현장에서지역정체성을손쉽게전달하는효과를가지게된다. 토템이미지를승인하는문화적부표들은국유화그리고국민정체성과관련이있다. 결론적으로사회적연대의기능을수행하고민족적자긍심을불러일으키는문화유산은사람들이공경하고순례여행을떠나는신성한토템적매력물이 43) 고창군무장면칠거리용당리놀이재현현장조사 (2014.11.5).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63 된다. 44) 이러한마을기의이미지를통해서지역축제의관광성을획득할수있다. 공연을주관한측은물론지자체에서도이를긍정적으로평가하며지속적으로지원하고있다. 45) 셋째, 마을기문화전승과지역을연결하는전문가집단의참여로전개된다는점이다. 전문가의참여는학계와정책기관의참여의지를확인할수있는대목이기도하다. 전문가들은마을기문화전승의조사와복원에자문의역할을할뿐만아니라, 정책기관의전승지원여부를판단하는데결정적인역할을한다. 한편, 지역과연계하여축제현장에마을기놀이를전개하는과정에서전문가집단의참여가두드러진다. 지역축제를준비하는측에서마을민속전체를시연토록하는것은한정적인시간에최대의성과를획득하려는목적에맞지않아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 따라서전문연출자들이개입하여전승현장전체내용가운데일부분만을극대화시키게된다. 이과정에서는대체로마을기놀이공연혹은규모있는집단겨루기 ( 혹은기세배 ) 등결과순간만을뽑아보여주기식의이벤트로전개한다. 이같은전문가집단의참여는마을기문화를전승해온주체들의의견수렴이나공유를가로막기도한다. 4. 마을기문화의전승과제 마을기문화는그개념이생소할뿐한국의마을에실제로존재하며마을공동체문화속에서전승되어온문화유산의하나이다. 마을기는무형의마을문화를기 ( 旗 ) 라고하는유형의상징물에함축하고있는것으로, 이마을기의활동여부에따라마을상황을가늠할수있다는점에매우중요한가치가있는문화유산이라할수있다. 44) 닝와 이진형 최석호옮김, 관광과근대성 - 사회학적분석, 일신사, 2004, 260 쪽. 45) 인터뷰자료 ( 사무국장, 김〇웅, 조사일 : 2014.9.11.). 지역축제때공연을하면, 지역문화정체성을알리고, 볼거리도제공하고축제이미지도좋아져제품판매성과도크다 고했다.

6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하지만앞의내용을통해서살펴보았듯이, 마을기문화에관한이론적인논의는지금까지거의없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다양한지역의현장에서마을기문화가전승되고있음을확인할수있었다. 구체적으로마을기문화전승은지역과관계하며큰틀에서두가지방향으로전개되고있다. 첫째, 문화재보호법과연계하여보존전승을꾀하고있는경우이다. 이러한전승방식에서는결국전승주체가소멸되고, 전승지또한이탈되어보전을유지하는데에는한계가있다. 둘째, 일부는지역이미지로서마을기문화를관광상품화 ( 공연화 ) 하는경우이다. 이때지방정부는전승단체를지원하며한편으로지역발전을꾀하려는쌍방의호혜적인전략을추진하고있다. 하지만마을기문화의공동체성에서가장중요한전승주체의회복은일어나지않고, 공연자중심의스펙터클화한연희가중심을이루게되면서마을문화의기반으로부터이탈되는현상이발생된다. 이른바내향적정교화가일어나고있는것으로공연화는전승주체의문화적의지표현보다는형식화에치우쳐전승이중단될수있는위험이상존한다. 신자유주의시대로접어들면서국가와지역은세계화 ( 글로벌화 ) 의이름으로지역문화자원의관광상품화를통한발전전략을전개하게된다. 구체적으로 1990년대이후정부는세계화를위한관광상품화에박차를가하게되었는데, 여기에서지역문화자원으로서마을기가선택되었고이를지역이미지상품으로변화하여마을기는마을의공동체문화를이탈하여공연화되어가는형태를띠게되었다. 이과정에서문화의내향적정교화 (cultureal invoulution) 가일어났으며, 46) 마을기문화가그정체성이희박한보존회로이동하게되면서마을기문화의지역발전전략은모순에빠지게되었다. 한편이러한정책의한가운데에이른바전문가로지칭하는지식인들이있다. 무형문화재제도는민족문화의 원형 에천착한것이고, 이러한출발은급 46) 권봉관, 내향적정교화 (Involution) 의두얼굴 : 현시대한국의농악과중국의농악무, 비교민속학, 비교민속학회, 2014, 180 쪽참조.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65 격한서구화로인해사라져가는문화를보존함으로써서구와는다른민족문화의재생을열망한지식인들이인위적으로노력해온결과물이다. 47) 지식인들은무형문화재의지정과정에서조사, 선정의독점적지위를가지며국가주의에편승하였다. 또한지역문화발전을명목으로마을기문화를상품화하는데논리적기반을마련해주는역할을하였다. 이과정에서마을기문화의전승주체들은국가가주도한자본주의와신자유주의체제에포섭되기에이른다. 결국전승주체는마을공동체로부터이탈된보존회로전락되면서, 보존보다는소멸을, 전승보다는박제화된마을기문화가되는 보존의역설 이일어난다. 따라서마을기전승을위한방향과과제를분명히해야한다. 우선마을공동체속에서마을기문화가지속되고있다는확신이필요하다. 대체로사람들은한국의마을이소멸되어가고가망이없는듯단정하기일쑤다. 하지만마을문화는이러한위기에도우리네마을에서는마을문화가전승되고있는것을확인할수있다. 그러므로마을기문화도지속될수있다는것은자명한사실이다. 이런데에는마을기문화의전승주체인마을공동체가현재에맞게창조적으로전승활동을지속하고있기때문이다. 이른바마을기문화의현재화가여전히진행되고있는것이다. 다시말해마을문화는가장현실적인것으로서마을기문화를과거에두고있는것이아닌미래를위한현재의활동에있어야한다는점이다. 다음으로는전승주체인마을공동체구성원들의주체적자각이필요하다. 한국마을기문화는전통사회처럼오롯이마을에서만보존, 전승이지속되는것은아니다. 또한국가나지역의관심밖에있다고하여우리사회에마을기문화의전승이단절된것도아니다. 그저현대사회에서마을기문화를쉽게접할수없을뿐이지자세히들여다보면마을기문화는여전히마을내에서주체적인활동을통해전승되고있다. 여기에는마을공동체가이전의전통을지켜나가는주체적인노력과함께 47) 정수진, 무형문화재의탄생, 역사비평사, 2008, 60 쪽.

6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현실에맞게창조적인대안을마련하고있기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미래를향한초월적존재이자현재를살아가는존재로서 지금이곳 을마을기를통해형상화하고있는것이다. 이것이마을기문화의무형유산적인가치이다. 마을기문화를통해서배울점은마을공동체의가치를인식하는것이다. 이러한인식이확대될때마을공동체는활성화될것이다. 마을문화가활성화되는것은마을공동체의회복을상징하는것이기도하다. 이를위해서는마을자치, 경제적인자립이형성될때가능하다는전승주체의자각이요구된다. 이것이곧문화자치와주권을발휘하는태도이다. 전지구적으로확산되고있는신자유주의체제의모순을극복하기위한여러대안가운데마을문화가대안이될수있다. 48) 현재처럼마을공동체가해체되고있는상황에서마을자체만으로마을기와관련문화를전승하기는역부족이다. 따라서생활권단위의마을간연대를꾀하거나작은공동체조직의활성화와같은창조적인대안이마련될필요가있다. 이는비단농촌마을공동체에한정되는것이아니라도시공동체에서도가능한마을기문화를구상할수있다. 마을기문화의전승을위해서는국가와정부, 지역이마을공동체기반을확충하는데우선지원해야한다. 이는현재처럼마을공동체문화의근시안적효과에만천착해서는안된다. 마을기문화는마을공동체를기반으로하기때문에마을공동체가활성화되는데지원의초점을두어야한다. 또한지식인들을이러한지원방향을제대로제시해야한다. 하지만외부의조력으로만은한계가있다. 변화하는시대에맞는마을기문화의전승과지속은마을공동체의주체적자각과창조적인대응으로만이루어질수있다. 마을기는마을공동체문화의가늠자와같다. 따라서마을기문화로지역발전을꾀하려면이러한마을공동체에중심에두고, 나머지가함께하면서마을기를바로세울때가능해질것이다. 48) 임재해, 마을문화의인문학적가치, 민속원, 2012, 50 쪽참조.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67 참고문헌 권봉관, 2014, 내향적정교화 (Involution) 의두얼굴 : 현시대한국의농악과중국의농악무, 비교민속학, 비교민속학회. 국립민속박물관, 2004, 석남송석하-한국민속의재음미 上, 국립민속박물관. 김기형, 2009, 전국민속예술축제의역사와성격, 한국민속예술축제의회고와전망, 한국민속예술축제추진위원회. 김선태, 2013, 공동체의표상으로서마을기의형상과의미, 안동대학교박사학위논문. 김성보, 2004, 1950년대이승만정권의농정과농업문제의성격, 인문학지 29, 충북대학교인문학연구소. 남근우, 2006, 민속의문화재화관광화, 한국민속학 43, 한국민속학회. 류정아, 2006a, 한국지역축제조사평가및개선방안연구총괄보고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류정아, 2006b, 전통의국제화와관광상품화과정의양면성, 한국관광정책 23. 박상미, 2004, 문화유산의인류학 : 쟁점과연구방법론의고찰, 문화인류학, 한국문화인류학회. 박흥주, 2007, 전라남도서남도서해안지방의군고연구를위한시론, 한국의민속과문화 12. 윤수종, 1990, 한국농업생산에서의노동조직의변화과정에관한연구,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이경엽, 2004, 무형문화재와민속전승의현실, 한국민속학 40, 한국민속학회. 이보형, 1976, 神대와農旗, 한국문화인류학 8, 한국문화인류학회. 이인우, 2010, 지역농업의가치와협동조합의역할, 농업경제연구소정기세미나 14, 농업경제연구소. 이정덕, 1984, 수도작기술변화에따른농업노동의변화-원평촌의사례연구,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임재해, 2004, 민속문화를읽는열쇠말, 민속원. 임재해, 2012, 마을문화의인문학적가치, 민속원. 정수진, 2004, 무형문화재제도의성립, 그역사성의재고, 한국민속학 40, 한국민속학회. 정수진, 2008, 무형문화재의탄생, 역사비평사. 정수진, 2009, 무형문화재의관광자원화와포클로리즘,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정수진, 2013, 무형문화재에서무형문화유산으로, 동아시아문화연구 53, 동아시아문화연구회. 정형호, 2011, 경복궁중건과안성바우덕이관련성고찰, 한국민속학 53, 한국민속학회. 조승연, 2000, 한국농촌사회변동과농업생산구조, 서경문화사. 조지훈, 1996, 서낭竿考, 新羅伽倻文化 1, 청구대. 주강현, 1995, 農旗의례와놀이考, 韓國民俗學報 6, 민속학회. 한양명, 1999, 문경기세배의놀이문화적위상, 문경모산굴기세배, 문경새재박물관. 한양명, 2009, 놀이민속의탈맥락화와재맥락화 : 영산줄다리기의경우,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한양명, 2009, 한국민속예술축제가민속의전승에미친영향, 한국민속학 50, 한국민속학회. 닝와 이진형 최석호옮김, 2004, 관광과근대성-사회학적분석, 일신사. 에밀뒤르케임 노치준 민혜숙옮김, 1992, 종교생활의원초적형태, 민영사. 에밀, 뒤르켐, 민문홍옮김, 2012, 사회분업론, 아카넷. 클리포드기어츠 김형준옮김, 2012, 농업의내향적정교화, 일조각.

6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Xie, Philip Feifan, 2003, The Bamboo-Beeting Dance In Hainan, China: Authenticity and Commodification, Journal of Sustainable Tourism 11(1): 5-16. < 자료 > 朝鮮王朝實錄 承政院日記 문화재보호법, http://www.law.go.kr 문화재청홈페이지, http://www.cha.go.kr 완주군편찬위원회, 1996, 완주군지, 완주군편찬위원회. 전주시, 1986, 전주시사, 전주시, 청운출판사. 최길성, 1970, 令旗, 중요민속자료조사보고서 23,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청 아태무형유산센터, 2010, 2003년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해설집-무형문화유산의이해, 디자인인트로.

한국마을기문화전승양상과과제 69 ABSTRACT Transmission Aspects of Korea Maeulgi(Flag of Village) Culture and Problems: Focusing on the Chunbuk Province 49) Kim, Seon Tae* This paper is written for the purpose of performing the cultural study of Maeulgi(flag of village), a form of folklore in village, focused on the Chunbuk province. Maeulgi was developed in the culture of a village which was based on the agricultural society. And it showed both the regional specialty and the universality in various ways representing the culture of each village. However, the community of the village had destructed during the modernization of Korea after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culture of Maeulgi had disappeared as well. The transmission processes of the culture of Maeulgi can be divided into three parts, neglection from the change of the social structure, small-scale sustain, and selective restoration built by the government. Maeulgi was generally stated in the local festival or became the goods of the cultural tourism because of selective restoration built by the government. Maeulgi is not merely material. It is the cultural heritage representing the culture of the village community. The tr ansmission of Maeulgi culture meets * Chief of the corporate juridical person Culture Institute-Chang, Instructor of Wonkwang Univ.

7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the reconstruction of the village community. Most of all, it requires subjective self-consciousness and creative respondence according to the changing trends rather than the external assistance. Key Words : flag, maeulgi, community,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local, the Cultural Properties Protection Law, Transmission main agent

무형유산연구제 1 권 71~102 쪽 2015.5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 50) 조세훈 ** < 차례 > 1. 머리글 2. 남원지역농악의층위적변화과정 3.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 4.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예술적특징 5. 마침글 [ 국문초록 ] 본논문에서는남원지역에서전승되고있는농악소고놀음에대한민족지적고찰을했다. 과거활발했던남원지역의농악이 20여년의공백기를거쳐복원되었고, 이에대한역사와예술적특징을연구하기위함이었다. 남원지역농악의여러요소들중에소고놀음을특화하여고찰하였으며이는남원지역소고놀음에대한최초의연구라는의미를갖는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인적전승과예술적특징을살펴보았고그과정에서형성된남원농악소고놀음의기본형태와진행절차그리고특징을고찰했다. 오늘날전해지는남원농악소고놀음은정오동의기예가홍유봉을통해전승된것이었다. 그소고놀음은채상소고놀음으로서규칙박자에서상모짓이이루어지면서여러가지동작들이이루어졌다. 반면불규칙박자에서는상대적으로적었다. 개인놀음은네부분으로구성되나흐름상세개로도구분될수있었다. 반주가락도마찬가지였다. 각부분은동작과반주가락이유기적으로연결되어있었다. 이를다른지역농악소고놀음과비교함으로써여러가지특징을파악할수있었다. * 이글은 2014 년 9 월 27 일전북대학교에서열렸던 [ 무형문화유산포럼전국학술대회 ] 에서발표한 남원지역소고놀음의유래와연희적특징 : 농악소고놀음의전승과정과소고에대한음악적해석을중심으로 를수정 보완한것이다. ** 전북무형문화재 7-4 호남원농악이수자,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강사

7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주제어 ] 소고놀음, 남원농악, 채상소고, 소고놀음전승 1. 머리글 본논문은남원지역에서전승되고있는농악소고놀음에대한민족지적고찰을목적으로한다. 과거활발하게전개되었던남원지역의농악인들의활동은 20세기중반기에잠시공백기를거치다가 1990년대에다시복원되었다. 많은노력을통해복원된남원지역농악에대해그역사와예술적특징을고찰하는것은향후전승활동을위해필요하다. 더구나농악을구성하는여러요소들을개별적으로살피는것은총론을보완하는각론과같은것으로서농악에대한개괄적연구를심화시켜준다. 남원지역소고놀음에대한본연구에서는그계보와예술적특징을살핌으로써기존에이루어진남원지역농악에대한개괄적연구를심화시키고자한다. 또한복원과정에대한고찰을통해그안에서발생하는변화를짚어볼것이다. 현재남원지역을대표하는농악은남원시금지면독우물농악에서비롯되었다. 독우물은남원시금지면옹정마을의고유지명이다. 독우물지역에는특출한농악인들이많았다. 이들의활동에힘입어독우물농악은예술적층위의변화를거쳤다. 이를통해독우물농악은오늘날남원지역을대표하는 남원농악 의모태가되었다. 남원지역의농악소고놀음역시이과정에서정립되었다. 따라서본논문에서는독우물농악에서비롯된남원지역의농악이예술적인층위변화를거쳐현재의남원농악으로정립되는과정을우선짚어볼것이다. 전통적으로농악은전문적인교육기관에서교육되거나문서화된교재를통해서학습되지않았다. 가르치는스승과배우는제자가직접적인대면을통해서가르치고배워서전승되었다. 스승이제자에게말로설명하기도하고때로는그저스승의뒤를따라다니면서제자가눈치껏따라배우기도했다. 따라서농악의전승을살피는데있어서어떤스승에게누가, 어떤과정을거쳐배우게되었는지가중요하다. 농악소고놀음도농악의한요소이기에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73 이러한인적전승과정을살피는것이전승연구에서중요하다. 따라서본논문에서는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를중심으로인적전승과정을파악할것이다. 농악은악기연주, 노래, 춤, 연극, 놀이등이융합되어있는종합예술이다. 소고놀음은춤의요소가많다. 하지만다양한요소들과유기적으로결합되어있다. 특징짓자면악기를연주하면서추는춤이다. 음악적역할을담당하는바는미미하다. 그렇다고해서전적으로춤의소품으로서만볼수도없다. 꽹과리나장고또는북이치는가락에맞춰일정한가락을연주하기때문이다. 이점은소고놀음이가진예술적특징을파악하는데모호한측면이기도하지만또한착안점이기도하다. 전은자는소고놀음에대하여 소고가가지는특성인타법에따라춤을추며멋을내는농악놀음의하나 라고했다. 1) 춤으로서의동작을살피되이와함께진행되는타법또한살필필요가있는것이다. 동작뿐만아니라동작이이루어지게하는또는동작과함께병행되는타법을유기적으로분석하는것이농악소고놀음이가진예술적특징을파악하는데유효할수있다. 타법은가락으로서의타점을만든다. 본논문에서는이점에착안하여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에있는연희동작과함께그와연계된타점의구성을음악적으로분석할것이다. 2) 1) 전은자, 소고무의構造的分析에의한實體硏究, 무용학회논문집 제 23 호, 대한무용학회, 1998, 340 쪽. 2) 이상의분석을위해조사한주요제보자와조사일시, 장소는다음과같다. 홍유봉 ( 洪有峰 )(1914~2002). 남원군산서면오룡리 ( 현장수군산서면오룡리 ) 출생, 10 세때전주시우아동으로이주. 1939 년정오동에게좌도농악채상소고놀음사사. 1946 년창경원에서열린제 1 회전국농악경연대회에류한준상쇠와함께끝소고로참가. 류한준패의포장걸립활동결합. 1959 년부터 1963 년까지 금산농악단최상근일행 에소고잽이로참가. 60 년대후반부터는우도농악의전사섭패에서도소고잽이로활동. 전북여성농악단 소고지도자활동외다수여성농악단에서단원지도및사회자로참가. 1995 년부터남원류명철상쇠와재결합하여현재의남원농악단에채상소고놀음전수. 제보는 2001 년 10 월 9 일 ( 홍유봉자택 ) 류명철 (1942~ ). 전북남원시금지면상귀리 82 출생. 류한준의친자제. 16 세에강태문에게사사를받으며풍물굿에입문. 1959 년제 30 회춘향제전국농악경연대회에소년농악단을조직상쇠로출전. 이대회에서당대최고의좌도장구명인최상근에게발탁되어 최상근일행 에삼쇠로참가하여포장걸립을하며전국을순회. 1961 년최상근일행과제 1 회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출전대상수상. 최상근일행 해체후다수여성농악단지도및부들상모놀음으로찬조출연. 강태문사망후남원풍물굿상쇠를물려받음. 1970 년대초남원농악단을조직상쇠로활약. 1978 년대사습

7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농악에서소고놀음은농악을보는이들에게많은호응을받는다. 다양한놀음의멋스러움과좌반뒤집기등에서보이는기예적면모가함께있기때문이다. 역사적으로많은명인들이있었고지역적특색도다분하다. 이에대한여러연구들이있다. 지역농악소고놀음에대한민족지적조사 ( 오승희, 1983; 민경숙, 1985; 주성숙, 1997; 고전금, 1998; 김영희, 2004), 농악소고놀음에대한개괄적접근 ( 정병호, 1975; 송수남, 1990), 분석적방법론을통한고찰 ( 조원민 이정분, 1996; 전은자, 1998), 각지역농악소고놀음에대한메타분석 ( 오세란, 1986) 등이있다. 그리고교육학분야에서소고놀음교육방안에대한연구 ( 김은영, 1997) 나음악적관점의분석 ( 이효빈, 2003) 도있다. 지역농악소고놀음에대한민족지적조사는농악개괄, 소고놀음의동작과반주음악의제시, 특징분석등을하고있다. 농악의소고놀음에대한개괄적연구에서는우리나라농악에대한포괄적연구로서소고놀음의전반적분포나일반적형태를파악하고있다. 김은영의소고놀음지도에관한교육방법론연구나이효빈의소고가락에대한음악적연구는흔하지않은시도다. 전은자역시소고놀음에대한구조주의적해석을보여줌으로써소고놀음연구의영역을넓혀주었다. 하지만농악소고놀음에대한연구는농악연구전반에서아직소수에그치고있다. 본논문에서시도하는복원과정, 역사, 예술적특징에대한유기적분석은남원지역소고놀음을종합적이고포괄적으로볼수있게할것이다. 이는남원지역소고놀음의전승활동에대한체계적인기록이며농악소고놀음에대한논의확장을가져올것으로기대한다. 남원농악단상쇠출전대상수상. 1980 년서울공간사랑에서개인발표회를마지막으로활동을쉬다가 1990 년대에활동재개. 남원농악단을재조직하고지도하여전국의각종농악경연대회석권. 전북무형문화재 7-4 호남원농악상쇠예능보유자지정 (1998), 남원시립농악단장임명 (1999). 제보는 2000 년 10 월 21 일, 2003 년 4 월 5 일, 2005 년 4 월 23 일, 2007 년 3 월 4 일 ( 남원농악전수회관 ) 박대업 (1947~ ). 1947 년전남곡성군곡성읍죽동마을출생. 기창수와강순동농악사사. 12 세때부터기창수상쇠를따라끝쇠를치고다님. 2002 년전남무형문화재곡성농악예능보유자지정. 제보는 2005 년 2 월 23 일 ( 곡성농악전수회관 ). 김정헌 (1967~ ). 전북무형문화재 7-4 호남원농악상쇠전수조교. 조사는 2006 년 5 월 2 일 ( 김정헌자택 ), 2007 년 5 월 1 일 ( 남원농악전수회관 ).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75 2. 남원지역농악의층위적변화과정 현재남원지역의농악은독우물농악을모태로한다. 이는 남원농악 이라는이름으로전라북도무형문화재로지정되어있다. 상쇠류명철이예능보유자이며남원농악보존회는보유단체다. 2009년남원시립농악단창단을계기로많은동호회와남원소재읍, 면, 동농악단이창단되면서남원지역에확고히자리잡았다. 류명철은남원시금지면에서살고있는토착예인이다. 전국적인농악연행활동을해왔고그러한활동은부친인고류한준 3) 상쇠부터이어져왔다. 독우물농악은이들이활동하던농악이었고이를모태로남원지역의농악은예술적층위변화를거쳤다. 김정헌은남원지역에마을농악, 여성농악단, 토착예인집단농악이있었으며그중토착예인집단의농악이현재남원지역농악을대표하는남원농악의정체성을갖는다고했다. 토착예인집단의농악이란오랫동안남원지역을생활터전삼아거주해온토착주민들중에서뛰어난농악실력을갖춘이들이주동이되어주변지역및전국단위의순회공연을했던농악인데, 이들이갖는지역토착민으로서의성격과지역농악에대한지속적전승, 뛰어난기량그리고류한준에서강태문 4) 을거쳐현재의류명철로이어지는상쇠계보의전승을그이유로들었다. 5) 또한그는남원지역농악이예술적인층위변화를겪었다며마을농악시기, 3) 류한준 (1900~1952) 은남원금지면상귀리에서출생했다. 결혼후금지면옹정리로이사하여농악활동을하기시작했다. 남원시송동면세전리에살던전판이로부터농악의기예를전수받았다고알려지며 1946년제1회전국농악경연대회에강태문, 장두만, 최상근, 정오동등과함께상쇠로참가하여 1위인특등상을수상했다. 그부상으로흥행허가권을얻어전국을순회하며포장걸립활동을했다. 그러다가 6 25전쟁으로인해단체해산되었고 1951년전북순창군팔덕면월곡리에서밤에농악을했다는이유로경찰서에끌려가고초를당하고그후유증으로사망했다고한다. 문을당한뒤그후유증으로사망. 4) 강태문 ( 강삼쇠, 1903~1965). 전북남원시금지면옹정리출생으로류한준패의부쇠로활동했으며제1회전국농악경연대회에류한준과함께전북팀으로참가하여 1등상인특등상을수상했다. 이후류한준과포장걸립활동을했으며류한준패해산이후독우물농악단, 조산동농악단을조직하여상쇠로활동했다. 1957년류명철에게농악을처음전수했다. 5) 김정헌, 남원농악연구,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3, 5~8쪽.

7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걸립농악으로변화하는시기, 연예농악으로변모하는시기로나누어설명했다. 마을농악시기를류명철상쇠의조부인류선장 6) 이상쇠의역할을하던시기로보았으며류선장은전문농악인은아니었지만마을에서상쇠를할정도의실력은되었다고했다. 옹정리는남원에서평야지역이많아농업이성했던금지면의일부로서민속행위들이많이행해졌던곳이다. 마을농악이던독우물농악이활성화되었던것은이러한환경때문인것으로보고있다. 7) 그는독우물농악이걸립농악으로발전하는시기에대해서는전판이라는인물로부터시작된다고했다. 전판이는 20세기전반기에좌도농악의명인으로활동했다고알려진인물로서류한준이이로부터학습을했다. 이후류한준은지역과전국으로활동을넓혀갔다. 김정헌은류한준이전판이에게기량을학습하고독우물지역농악인들과남원의여러지역에서활동하던시기를독우물농악이걸립농악으로변화하는단계로보았다. 그후류한준이독우물지역뿐만아니라전라북도동부지역농악명인들과함께상쇠로서전국적인활동을벌였던때를독우물농악이포장걸립농악으로변모한시기로보았다. 포장걸립농악은흥행을목적으로일종의가설공연장인 포장 을치고입장권을받아가며공연하던농악으로서김정헌은이를연예농악으로분류했다. 포장걸립농악은남원지역토착예인집단의농악에서 < 류한준패 > 를거쳐류명철이활동하던 < 최상근일행 > 으로이어졌다. 하지만이는시대적변화에따라 1970년대를거치면서사라졌고그과정에서남원지역토착예인집단의농악활동도중단되었다. 남원지역토착예인집단의활동이재개된것은 1990년대다. 남원, 전주, 광주, 서울등에서활동하던젊은농악인들이활동을중단하고있던류명철을만나게되고여러차례요청끝에그의문하생이된다. 이를계기로류명철은다시상쇠로서활동을재개하고그를필두로남원농악단이결성되어오늘 6) 류선장 (1877~1943): 류한준의부친, 류명철의친조부. 1877년남원금지면상귀리출생. 1905년양한규, 진문겸등의지사들과함께항일운동을펼쳤다. 그와중에옥고를치러그후유증으로사망했다. 독립운동의공로를인정받아 1990년에 대한민국건국훈장애국장 을추서받았다. 7) 김정헌, 남원농악, 민속원, 2014, 32~41쪽.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77 에이른다. 8) 농악에는대부분지역이름이붙는다. 진안농악, 남원농악, 진주삼천포농악등이그예다. 판소리의경우동편소리, 동초제, 강산제등과같이지역이름보다는계보의이름이대부분붙는다. 농악은이러한특징으로인해지역적정체성형성에보다쉽게기여할수있다. 지방자치시대가되면서많은자치단체들이농악을육성하는데에는농악의이런점을활용하는맥락이있다. 남원지역에서이지역을대표하는남원농악이정립되는데도지방자치단체의적극적인후원이있었다. 본연구자가 2000년대중반에남원시운봉읍에서농악강습을하면서운봉읍농악단상쇠에게이런얘기를들었다. 그가어렸을적에운봉읍자체농악대회가있었다고한다. 백중날등일정한시기에맞춰각마을마다기를앞세우고농악패들이경연을펼쳤다는것이다. 하지만농악을했던어른들이돌아가시고마을의젊은이들이이를계승하지않으면서현재는사라졌다고했다. 사라진시기는대략 1970년대와 1980대를거치면서였으며수십년간의공백을거치다가현재의남원농악이그빈자리를채웠다고했다. 오늘날지역의대표농악이정립되는과정은다양하다. 한마을의농악또는일정계보의농악이지역내보급과정을거쳐지역의대표농악으로되기도하고, 때에따라서는여러마을농악의좋은점이취합되어재구성되기도한다. 여기에는대부분지자체의후원이따른다. 이속에는지역정체성강화를위해지자체가이를활용하는측면이있다. 농악은오랜세월동안서민들의삶속에존재해온중요한문화유산이다. 따라서단절은안타까운것이고지속은반가운일이다. 농악이왕성했던때에는그것이가능한사회적환경이존재했다. 농악이통용될수있는, 농악을필요로하는문화적정서와취향, 농경사회로대변되는사회경제적토양이존재했다. 하지만현재는그것이바뀌었다. 농경사회에서산업사회로, 그리고고도의첨단사회로변모했다. 그에따른문화적정서와취향도변했다. 농악은이에대한적응을요구받고있다. 8) 김정헌 조세훈, 남원농악의근현대사 : 복원과정을중심으로, 미발표, 2014, 9~17 쪽.

7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과거마을농악이었던독우물농악과연예농악화된현재의남원농악은예술적층위가다르다. 이는시대적변화에대한적응으로해석될수있다. 시대적적응에는 변화 가동반된다. 가락구성, 춤사위, 판째에서부터판에대한해석과의미부여에이르기까지의도하건의도하지않건변화는있어왔다. 이변화에대한가치판단은분분하다. 변질 로보는비판이있는가하면 시대적적응 으로보는시각도있다. 변화는구비전승되는농악의본질적측면이다. 농악에서변화는시대적요구에대한수용이기도하다. 이를통해많은향유층을확보, 유지할수있었다. 남원지역의농악과소고놀음을바라보는데있어서이러한변화에대한객관적시각이필요하다. 9) 3.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 남원농악으로정립된남원지역의농악은호남좌도농악으로분류된다. 오늘날농악은영동농악, 경기 충청농악, 영남농악, 호남좌 우도농악으로크게구분되고있다. 호남농악은전라도산간지방의좌도농악과평야지역의우도농악으로구분된다. 좌도농악지역은전북의남원, 임실, 곡성, 순창, 무주, 장수, 진안, 완주, 전주, 전남의구례, 곡성, 순천, 보성, 화순, 광양, 여천, 여수, 충청남도금산등이며우도농악지역은전북의익산, 김제, 부안, 옥구, 정읍, 고창, 전남의영광, 무안, 장성, 나주, 함평, 해남, 영암, 강진, 진도, 완도지역등이다. 대표적인호남좌도농악은남원농악, 임실필봉농악, 진안중평농악, 곡성죽동농악, 화순한천농악등이다. 이농악의특징은전립을쓰고연행한다는점, 웃놀음이발달되어있는점, 가락이빠르고힘차다는점등이다. 또한연 9) 독우물농악이현재의남원농악으로정립되는과정에대하여사회정치적맥락을살펴볼필요도있다. 지방자치단체의지원과육성이지역대표농악정립에미치는영향도적지않고그과정에서대표농악으로육성되지못한농악이쇠퇴하는일도발생하기때문이다. 이에따라한마을의농악이과도하게지역을대표하는현상도생길수있다. 하지만본논문에서는남원지역농악의역사와특징에대한민족지적고찰을목적으로삼기에이는차후연구과제로남겨놓는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79 행절차가다양하고체계적이라는점도꼽힌다. 남원지역의대표농악으로정립된남원농악10) 의치배구성에서소고잽이는많은수를차지한다. 보통전체치배의절반가까이되는데수행하는역할도다양하다. 기교중심의전 ( 前 ) 굿에서는앉을상, 나비상, 연풍대등다양한기예로공연에화려함과역동성을더한다. 의례나놀이, 극이많이나오는후 ( 後 ) 굿에서는이에맞춰의례진행의보조, 놀이참여, 노래의후창등을한다. 류명철은오늘날남원농악소고놀음은정오동11) 의기예를전승한것이라고했다. 12) 현재남원농악소고놀음전승자중에서정오동에게직접배운사람은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정오동의소고놀음기예가현재의전승자들에게전수될수있었던것은이를매개한홍유봉이있었기때문이다. 홍유봉은류한준패13) 와최상근패14) 에서정오동과같이활동하면서그로부터소고놀음을배웠다. 류한준패와최상근패모두전국대회입상을계기로포장걸립활동을했다. 그시절에홍유봉은정오동의기예를집중적으로학습할수있었다. 15) 류한준패는 1946~1952년까지약 7년간, 최상근패는 1959~1963년까지 5년간활동을했다. 이시기에홍유봉을비롯한많은소고잽이들이정 10) 지역의대표농악이정립되는과정에는한종류의농악이과도하게지역을대표하게되는측면이존재할수있다. 향후다양한논의가필요한부분이다. 11) 정오동 (1905~?) 좌도농악채상소고의전설적명인. 1905년 12월 9일전북익산군왕궁면은수리출생. 스승전창선에게소고기능을익혔고류한준패에서수소고로활약. 초창기여성농악단의채상소고는모두그에게서비롯된것이라고하는데연풍대와두루걸이, 좌반뒤집기에아주능하였으며열두발상모놀음에뛰어난재주를가지고있었다고한다. 좌도농악쇠퇴후에는우도와서울지역까지활동영역을넓혔으며해외공연도자주나갔던것으로알려졌다 ( 김정헌, 앞의논문, 2003, 17쪽 ). 충남무형문화재연합회김용근회장은정오동의활동모습을여러차례봤으며정오동이경상도출생이라고했다 (2014년 7월 26일, 김용근의자택 ). 그의제보는정오동의출생지에대한추가적인조사가필요함을보여준다. 출생지에대한조사는정오동의활동에대한추가적인단서를제공할수있기때문이다. 12) 2000년 10월 21일구술. 13) 1946년제1회전국농악경연대회에류한준상쇠를중심으로출전, 대상수상. 그후흥행허가를얻어류한준패라불리며전국을포장걸립으로순회. 6 25로해산. 14) 1959년좌도장구의명인최상근이 금산농악단최상근일행 이라는포장걸립단체를조직하여순회공연을하다가 1961년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출전 1위입상을계기로합법적이고본격적인순회공연을함. 1963년해산. 15) 당시의학습이란오늘과같은수업의개념이아니라하루에서너번씩몇년간의공연을통하여자연스레몸으로취득하게되는것을말한다. 류명철구술, 2003년 4월 5일.

8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오동에게배웠다. 16) 정리하면, 남원농악소고놀음은독우물의마을농악에있던소고놀음17) 이 1940~1960년대정오동을거치면서기예가다듬어졌고그것이홍유봉에의하여오늘에이른다. 이과정을계보를중심으로자세히살펴보자. 정오동의바디는류한준패에서정오동과함께활동했던남원의양국원 ( 남원금지 ), 장용덕 ( 남원금지 ), 강막동 ( 남원금지 ) 에게이어졌다. 이는그후에창단된독우물농악단 18) 의임원규 ( 남원금지옹정 ), 김산호 ( 금지옹정 ), 임창규 ( 금지옹정 ), 장현태 ( 금지옹정 ) 에게이어졌다. 이후강태문이조산동으로거주지를옮기면서조산농악단을만들었는데이때조산농악단의류상길 ( 남원조산동 ), 류상열 ( 남원조산동 ), 하봉호 ( 남원조산동 ) 에게도전수되었다. 조산농악단은강태문의사망이후천거리농악단으로재창단되었다. 이때김광수 ( 남원금지 ), 정점식 ( 남원천거동 ), 김흥수 ( 남원천거동 ) 에게도소고놀음이이어지게된다. 천거리농악단에서류명철, 김광수, 정점식, 김흥수가당대최고의좌도장구잽이로이름을날렸던최상근에게발탁된다. 이후 최상근일행 의일원으로포장걸립을하며전국을순회한다. 1960년대말에 최상근일행 이해산되고 1970년대초반에류명철을포함한 최상근일행 에서활동하던남원지역농악인들과독우물농악단, 조산농악단, 천거리농악단중남아있던농악인들이남원농악단을구성하여잠시활동한다. 하지만오래활동하지못하고해체된다. 이후공백기를갖다가 1990 년대남원농악복원과정에서홍유봉이이를전수함으로써오늘에이른다. 16) 홍유봉구술, 2001 년 10 월 9 일 ; 류명철구술, 2003 년 4 월 5 일. 17) 독우물농악의소고놀음은마을농악의소고놀음이라고는하나여타의마을농악보다기량이뛰어났다고한다. 좌도농악의특성에맞게모든치배들이전립을쓰고상모짓을했다고하며소고잽이들은외사, 일사, 사사등의기본적인사위들을할줄알았다고한다. 장현태 ( 남, 70 대, 1950 년대 ~1970 년대독우물농악단및남원농악단소고잽이 ) 구술. 18) 여기서말하는독우물농악단은류한준패이후류한준패의부쇠였던강태문에의해조직되어남원지역을중심으로걸립활동을하던농악단을말한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81 < 표 1>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전승과정 19) 류한준패 (1946~1952) 독우물농악단 (1952~1958) 조산농악단 (1958~?) 천거리농악단 (?~1959) 최상근일행 (1959~1963) 정오동 ( 익산 ) 양국원 ( 남원금지 ) 장용덕 ( 남원금지 ) 강막동 ( 남원금지 ) 한판옥 ( 장수 ) 주기환 ( 금산 ) 김방현 ( 익산 ) 홍유봉 ( 전주 ) 양국원 ( 금지옹정 ) 장용덕 ( 금지옹정 ) 강막동 ( 금지옹정 ) 임원규 ( 금지옹정 ) 김산호 ( 금지옹정 ) 임창규 ( 금지옹정 ) 장현태 ( 금지옹정 ) 임원규 ( 금지옹정 ) 김산호 ( 금지옹정 ) 임창규 ( 금지옹정 ) 류상길 ( 남원조산동 ) 류상열 ( 남원조산동 ) 하봉호 ( 남원조산동 ) 임원규 ( 금지옹정 ) 김산호 ( 금지옹정 ) 임창규 ( 금지옹정 ) 류상길 ( 남원조산동 ) 류상열 ( 남원조산동 ) 하봉호 ( 남원조산동 ) 김광수 ( 남원금지 ) 정점식 ( 남원천거동 ) 김흥수 ( 남원천거동 ) 정오동 ( 익산 ) 한판옥 ( 장수 ) 주기환 ( 금산 ) 홍유봉 ( 전주 ) 김양수 ( 금산 ) 김홍수 ( 남원 ) 정점식 ( 남원 ) 김광수 ( 남원 ) 남원농악단 현재 류한준패와최상근패의소고잽이들중에는남원출신이가장많다. 이들은이후독우물농악단이나조산농악단, 천거리농악단에서도활동했다. 천거리농악단이나최상근일행에서활동했던김광수 (1946년생), 정점식 (1943년생 ), 김흥수 (1945년생) 는각종여성농악단에소고잽이로전속출연하기도했다. 하지만 1970년대이후로모두농악을그만두었고거주지도다른지역으로옮겼다. 20) 남원지역소고놀음에대해이들에관한연구가과제로남는다. 19) 출처 : 호남좌도풍물굿연희연구 - 남원지역소고놀음을중심으로 -,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6, 13 쪽. 20) 류명철구술, 2005 년 4 월 23 일.

8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4.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예술적특징 1) 연행절차 남원지역의대표농악으로정립된남원농악21) 판굿의연행절차는전굿 ( 앞굿 ), 후굿 ( 뒷굿 ) 으로나뉜다. 후굿의마지막에는개인놀음이나온다. 여기에활용되는기본놀음들을살펴보자. (1) 기본소고치기 가장기초가되는동작으로서 4 개의동작으로이루어진다. 22) <1. 밑에서소고치기 > <2. 소고를뒤집어얼굴앞에서치기 > <3. 양팔벌리기 > <4. 소고를들어바깥면치기 > < 사진 1> 기본소고치기동작 21) 이하남원농악이라칭하기로한다. 22) 소고놀음동작은유형화된것이므로사진과설명은졸고조세훈, 호남좌도풍물굿연희연구 - 남원지역소고놀음을중심으로 - (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6) 의것을활용했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83 (2) 굿거리멋스러움을중요시하며한오금 23) 에한박자씩들어올리는디딤새를한다. 첫번째, 두번째동작은기본소고치기동작과같으나세번째, 네번째박자에는왼쪽과오른쪽어깨발림을한다. 이때팔을벌린몸의맵시를중요하게여긴다. 이동작은 < 사진 2> 와같으며가락은굿거리가락을친다. (3) 외사 기본소고치기동작과같이 4 개의소고동작 < 사진 2> 굿거리의어깨발림 24) 동작 을하되한오금에 2 개의타점을친다. 동작은 < 사진 3> 과같으며가락은휘모리를친다. (4) 사사네번의오금에왼쪽, 오른쪽으로각각두번씩상모짓을한다. 남원농악소고놀음은오른발이기준발25) 이므로왼쪽부터시작한다. 소고치는동작은기본소고치기동작과같으 며잦은삼채가락이나미지기굿의미지기가 < 사진 3> 외사 락등이나올때사사를한다. 23) 무릎을굽혔다펴는것. 농악에서는오금으로박자를잡기때문에올바른오금동작은매우중요하다. 24) 판소리용어로서는, 극적인효과를위하여창하는사람이곁들이는몸짓이나손짓을말한다. 너름새라고도하며농악에서는연희전반에수반되는손짓이나발짓, 몸짓또는그것의맵시를일컫는다. 25) 소고외의다른악기들은왼발이기준발이다.

8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왼쪽으로두번돌리기 > < 오른쪽으로두번돌리기 > < 사진 4> 사사 (5) 일사고개를왼쪽, 위, 정면, 오른쪽으로돌리며하는상모짓을말하며세번째상모짓에서상모의피지26) 가두팔을벌린사이로떨어지는모습이특징적이다. 소고치기는기본소고치기를한다. 삼채류의가락이나올때일사를한다. (6) 앉을상 < 사진 5> 일사의세번째동작방식은일사와같으며첫번째동작에앉았다두번째동작에일어서고세번째동작에왼발을들어준다. 네번째동작에들었던왼발을앞으로딛으며소고와소고채를얼굴앞에모아준다. 소고치기는기본소고치기를한다. 일채뒤에나오는잦은삼채나 26) 채상모의물채끝에다는긴종이로한지를주로사용하며남원지역농악에서는종이한쪽끝을접어서긴한줄과짧은한줄, 두줄이보이게한다. 종이의끝부분은제비초리모양으로자른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85 영산가락에앉을상을한다. (7) 나비상나비상은남원농악소고놀음의가장특징적인동작중의하나다. 한오금에한박자씩진행되며오른발을먼저딛고세번째박자에소고를오른발로차며네번째박자에왼쪽으로돌아섰다가다섯번째박자에서다시왼쪽으로 < 사진 6> 앉을상첫번째동작뛰면서돌아다시앞을보며여섯, 일곱, 여덟번째박자에어깨발림을하며앉는다. 나비상을소고개인놀음에서할때는앉은상태에서기본소고치기동작을좌, 우로한번씩한다. 이때기본소고치기동작세번째에서팔을벌리지않고소고채와소고를순서대로바닥에댄다. 채를소고에대는동작으로이어지며소고채를소고에 < 사진 7> 나비상앉는동작붙이고네박자에걸쳐일어난다. 한번더반복하고나서맺이가락 27) 에앉은상태로 물러난다. 판굿에서는땅을찍는동작은생략하고뛰어돌아서앉는동작까지를세번반복한다. 동작의진행순서는 오른발 왼발 소고차기 돌기 다시돌기 앉기1 앉기2 앉기3 이다. (8) 좌우치기 한오금에고개를좌우로흔들며 1 박씩 1 개의타점을친다. 타점수는불 27) 분박을달리한삼채의변형가락으로우도농악에도유사한가락이있다. 우도농악에서는판굿이나개인놀음등연행의단락을마무리지을때이런형태의가락을사용한다.

8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사진 8> 좌우치기 ( 서서하기 ) < 사진 9> 좌우치기 ( 앉아서하기 ) 규칙하다. 서서하는좌우치기와앉아서하는좌우치기두가지형태가있다. 어울림가락 ( 난타 ) 나개인놀음의맺음가락에나온다. (9) 연풍대소고를차면서왼쪽으로한바퀴돌아기준발을왼발로바꾸어준후시작하게된다. 소고와소고채를어깨위에나란하게올려놓고한오금에한바퀴씩휘모리한가락에두번의연풍대를돈다. (10) 두루걸이 연풍대뒤에연결되어나오는동작이다. 연풍대와비교하여왼쪽발을딛을때오금을주며28) 소고를든왼쪽손을가슴앞으로휘둘러 < 사진 10> 연풍대 28) 연구자가홍유봉에게소고를배울때왼발의오금을깊이주어소고로땅을칠수있어야한다는말을자주들었다. 홍유봉과함께활동했던남원농악의소고잽이들은 소고로땅을어찌나쳐댔던지 수시로소고가부서졌었다고했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87 주고소고채를든오른손을당겨주며소고를친다. 연풍대와마찬가지로휘모리한장단에두바퀴씩돌며한바퀴돌때마다소고를한번씩치게된다. (11) 좌반뒤집기 남원농악에서좌반뒤집기는독자적인놀음으로보기보다는연풍대와두루걸이로이어지는휘모리부분을마무리하는동작으로여긴다. 두루걸이동작에서오금을준후뛰어서돌아주는동작으로바꾸어준다. 소고를치는방법은두루걸이때와같다. < 사진 11> 두루걸이 (12) 꾸벅이이놀음역시남원농악소고놀음의가장특징적인놀음중의하나다. 구부린상태에서소고채와소고를차례로땅에찍은후셋째, 넷째 < 사진 12> 좌반뒤집기박에소고와소고채를무릎위오른편에붙인채뒤로물러난다. 판굿에서는칠채에서쓰였다고하나지금은연행되지않고있으며개인놀음에서삼채류의반주가락에맞춰연행되고있다. < 사진 13> 꾸벅이 1 번과 2 번동작 < 사진 14> 꾸벅이 3 번과 4 번동작

8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13) 기타가락이혼합박자일경우동작의규칙성을갖지못하므로채상소고놀음에서는상모짓을할수가없다. 이때는소고를가슴높이로올린상태에서가락의기본형을따라치며걷거나뛰기만한다. 열두마치, 호호굿이있다. 29) < 악보 1> 일채 < 악보 2> 열두마치 29) 농악가락과이에따른소고의가락역시유형화되어정해진것이므로그악보도졸고조세훈, 호남좌도풍물굿연희연구 - 남원지역소고놀음을중심으로 - (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6) 의것을활용하였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89 < 악보 3> 호호굿 < 악보 1> 일채의경우 10/8 박자에분박이 2-3-3-2로이루어져일정한박자가이루어지지않음을알수있다. < 악보 2> 열두마치나 < 악보 3> 호호굿도분박의구성형태는약간다르지만모두불규칙한분박구성을가지고있다. 불규칙적인분박구성은동작의불규칙성을유발하고불규칙한동작을통해서는채상모를돌릴수가없게된다. 따라서별도의소고놀음이형성되지않는다. 이상의기본놀음에대해명칭, 동작수, 타점수, 가락을정리하면다음의 < 표 2> 와같다. < 표 2> 기본놀음분석 명칭 가락 동작수 타점수 외사 휘모리 4 3 사사 잦은삼채, 채굿 4 3 일사 삼채, 채굿넘는가락, 채굿다드래기, 잦은진풀이 2, 호호굿다드래기, 잦은호호굿 4 3

9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앉을상 영산, 개인놀음반주가락 ( 삼채류 ) 4 3 나비상 영산, 개인놀음반주가락 ( 삼채류 ) 8 2 차고돌기 잦은삼채 4 3 좌우치기 맺이가락 1 불규칙 두루걸이 휘모리 2 1 좌반뒤집기 휘모리 2 1 굿거리 굿거리 4 2 꾸벅이 개인놀음반주가락 ( 삼채류 ) 4 1 연풍대 휘모리 2 0 일채 일채 0 6 호호굿 호호굿 0 18 열두마치 열두마치 0 36 남원농악의소고놀음은총 15개의기본형태가있으며규칙박자에서소고놀음이이루어지고불규칙박자에서는별도의소고놀음이형성되지않는다. 일사가가장다양하게활용되며소고놀음에쓰이는가락으로는삼채류의가락이가장많다. 동작의숫자는네가지동작으로구성된놀음이가장많다. 이때의가락은 4/4 박자또는 4/ 박자로 4개의규칙적인박자를가지고있다. 소고놀음을하기위해서는규칙적인박자의가락이필요함을알수있다. 판굿에서가장적게나오는소고놀음은꾸벅이, 일채, 호호굿, 열두마치다. 제대로된놀음이형성되지않는일채, 호호굿, 열두마치를제외하면상모짓을하는소고놀음중에서는꾸벅이의빈도수가제일적다. 구벅이는원래채굿과개인놀음에서연행되었으나채굿에서의연행은현재전승되지않고있다, 이상의기본놀음이판굿에서어떻게활용되는지를살펴보자. 전굿의경우다음과같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91 < 표 3> 전굿에서의소고놀음 판굿과정소고놀음판굿가락 굿내는가락 기본소고동작 ( 상모짓은하지않는다.) 휘모리 - 된삼채 - 넘는가락 - 휘모리 풍류굿채굿진풀이굿호호굿영산굿미지기굿노래굿춤굿등지기굿 굿거리 - 일사 - 사사 - 외사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일채굿 ( 일채연주 - 나비상과차고돌기 - 사사 ) 사채굿 ~ 육채굿 ( 사사와일사혼합 - 일사 - 사사 ) 칠채굿 ( 사사와일사혼합 - 일사 - 일사 - 외사 )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즉흥놀음 ( 기본소고동작을바탕으로즉흥으로논다.)-외사-일사-외사 열두마치연주 ( 앉아서 )- 호호굿연주 ( 걸어가며 ) - 호호굿넘는가락연주 - 기본소고동작 ( 상모짓하지않고옆으로뛰며 )+ 일사 - 일사 - 외사 ( 맺이 )- 외사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느린나비상-나비상- 빠른나비상-빠른사사후외사-외사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사사-외사-외사-외사-일사-사사-외사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상모짓없이기본가락연주하다가일채굿 ( 외사로마무리 ) 색띠를잡고춤을추다가휘모리때외사로마무리 서로등을지고등지기하다가일채굿 ( 외사로마무리 ) 풍류 - 도입가락 - 반풍류 - 도입가락 - 잦은삼채 - 맺이가락 - 휘모리 일채굿 ( 일채 - 도입가락 - 잦은삼채 - 맺이가락 - 휘모리 )- 사채굿 ( 사채 - 넘는가락 - 휘모리 )- 오채굿 ( 오채 - 넘는가락 - 휘모리 )- 육채굿 ( 육채 - 넘는가락 - 휘모리 )- 칠채굿 ( 칠채 - 채굿다드래기 - 넘는가락 - 휘모리 ) 진풀이 - 잦은진풀이 1- 잦은진풀이 2- 맺이 ( 난타 ) 열두마치 - 호호굿 - 호호굿넘는가락 - 잦은호호굿 - 호호굿다드래기 - 맺이 ( 난타 )- 미지기가락 - 휘모리 느린영산 - 보통영산 - 빠른영산 - 영산다드래기 1,2- 미지기가락 - 휘모리 느린미지기 - 빠른미지기 - 미지기진법 - 휘모리 - 삼채 - 잦은삼채 - 휘모리 열두마치 - 상쇠구령 - 난타 - 상쇠구령 - 휘모리 - 노래굿가락 - 노래굿 - 일채 - 잦은삼채 - 휘모리 굿거리 - 삼채 - 휘모리 - 수박치기 - 휘모리 일채주고받기 - 등지기 - 일채굿 전굿에는총열개의판굿과정이있다. 각과정을마무리하는판굿가락은대다수가휘모리다. 휘모리가락에따라소고잽이는주로연풍대, 두루걸이, 좌반뒤집기를한다. 이러한판굿진행으로인해연풍대, 두루걸이, 좌반뒤집기가발달하게된것으로보인다. 후굿에서는의례의재현, 춤과재담, 연기, 진법의활용이두드러진다. 소고잽이는진행을돕고참여하는역할을주로하며소고놀음을많이하지는않는다.

9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표 4> 후굿에서의소고놀음 판굿과정소고놀음판굿가락 도둑잽이탐모리문굿점호굿헤침굿 반풍류때일사, 휘모리에외사를하며그외에는상쇠의연희를보조한다. 반풍류때일사, 휘모리에외사 반풍류때일사, 휘모리에외사 굿거리 - 일사 - 사사 - 외사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외사-빠른나비상-일사-외사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반풍류 - 휘모리 ( 상쇠는발림 )- 휘모리 - 도둑잽이마당 ( 잡색연극 )- 반풍류 - 휘모리 반풍류 - 휘모리 ( 상쇠는발림 )- 미지기 - 휘모리 - 탐모리 ( 전 후 좌 우로일곱걸음씩이동 ) 반풍류 ( 상쇠를각시에게화관을얹어놀음을한다.)- 휘모리 ( 끝내며화관을던진다.) 각치배별 3 타 - 풍류굿 - 반풍류 - 잦은삼채 - 휘모리 헤침굿구음 - 헤침굿가락 - 휘모리 - 된삼채 - 넘는가락 - 휘모리 재능기개인놀음채상소고, 북, 장구, 꽹과리개인놀음 2) 개인놀음 남원농악소고개인놀음은크게네부분으로구성된다. 첫째상모짓을하지않는입장부분, 둘째발림위주의굿거리부분, 셋째상모짓을하는삼채부분, 넷째연풍대로귀결되는마무리부분이다. < 표 5> 개인놀음의구성 내용절차 놀음구성 반주가락 입장부분 나비상 - 차고돌기 - 맺이삼채 - 맺이가락 굿거리부분 삼채부분 마무리부분 굿거리발림 { 필수동작 ( 소고앞에놓기, 소고무릎놓기, 소고채어깨얹고왼쪽으로돌면서마무리하기 )+ 즉흥 일사 - 사사 - 꾸벅이 - 나비상 - 사사 - 일사 ( 좌 우로이동 ) - 좌우치기와일사 ( 좌 우로이동 )- 앉을상 (2 회 )- 앉은좌우치기 ( 한오금에한박자 ) 와앉을상 - 앉은좌우치기 ( 한오금에두박자 ) 즉흥놀음 - 연풍대 - 두루걸이 - 좌반뒤집기 - 빠른나비상 - 앉은좌우치기 굿거리 삼채 - 맺이가락 진풀이가락 - 연풍대가락 - 난타 - 된삼채 - 맺이가락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93 굿거리부분은상모짓을하지않고발림을한다. 굿거리부분과삼채부분은소고놀음이본격적으로펼쳐지는부분으로개인놀음의핵심에해당한다. 전체적인흐름은느리고차분하다가빠르고역동적으로진행된다. 기본적인동작진행은시계반대방향의원진형태로이루어진다. 인상적인동작을보여주고자할때는대체로원의안쪽을향하며하고제자리에멈춰서놀음을한다. 입장부분에서기본적인원진을구성하고굿거리와삼채부분에서발림이나상모짓을할때원의안쪽을향하는경우가많다. 그러다가마무리부분에서다시원진을구성한다. 개인놀음의맨마지막동작은원의안쪽중에서도관객쪽을향한다. < 표 6> 개인놀음의진행방향 절차 진행방향 입장, 굿거리, 삼채, 진풀이, 연풍대시계반대방향의원진 ( 기본진행방향 ) 입장부분맺이가락 굿거리부분발림, 삼채부분상모짓, 연풍대부분마지막동작 반주자정면 원진의안쪽 개인놀이의반주가락의구성은 < 삼채-맺이가락-굿거리-삼채 (1)-맺이가락-삼채 (2)-맺이가락-진풀이-연풍대가락-빠른삼채-맺이가락 > 의순서이며다양한변주를특징으로한다. 소고놀음각단락의전환에는맺이가락이나온다. 총네차례나오며소고놀음의흐름전환을매끄럽게때로는인상적으로만드는역할을한다. 맨처음에나오며역동적인동작전환을이루어내는, 입장부분의맺이가락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9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악보 4> 입장부분의맺이가락 맺이가락의첫장단 ( 위에제시된악보의두번째마디 ) 에서 (3 4) 의분박구조가 {(2+2)+(2+2)+(2+2)} 으로변화한다. 분박에변화를통해동작의역동성을더하고있음을알수있다. 반주가락은음악적흐름에따라크게세개의단락으로구분할수있다. 삼채와맺이가락은입장단락이된다. 굿거리, 삼채, 맺이가락부분은본격적인놀음이이루어지는단락이다. 진풀이는연풍대로마무리하기위한준비과정이므로진풀이, 연풍대가락, 빠른삼채, 맺이가락부분을하나의마무리단락으로볼수있다. < 표 7> 개인놀음반주가락의구성 단락입장본놀음마무리 가락삼채, 맺이가락굿거리, 삼채, 맺이가락진풀이, 연풍대가락, 빠른삼채, 맺이가락 반주가락은몇가지의음악적특징을갖는다. 첫째, 각단락은맺이가락으로마무리한다. 둘째, 입장과본놀음은 4/. 박자로구성되어있고마무리는 4/4박자로되어있다. 3분박리듬의여유롭고부드러운느낌에서 2분박리듬의역동적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95 인느낌으로진행된다. 셋째, 가락의빠르기는대체로느리게시작하여점차빨라진다. 남원농악소고놀음이가진특징에대해홍유봉, 류명철, 박대업등좌도농악명인들은다음과같이얘기한다. 첫째, 오른발채상소고놀음이다. 연풍대를제외하고동작의첫발은오른발로시작한다. 다른치배들은모두왼발을먼저딛는다. 이는상모짓의기본상과동작이왼발을기준으로삼을때와다른진행방식을갖게한다. 오른발채상소고놀음은진주삼천포12차농악에서도마찬가지다. 둘째, 연풍대가발달되어있다. 이는판굿대부분이빠른휘모리가락으로마무리되는특징과연관된다. 소고잽이들이은연풍대, 두루걸이, 좌반뒤집기를하고나머지치배들은연풍대를돈다. 30) 셋째, 발림이발달되어있다. 상모짓외에도다양한발림동작들이있으며몇가지기본동작을바탕으로하되즉흥적으로다양한동작들이행해진다. 31) 가장많은발림동작이펼쳐지는것은굿거리가락이연주될때다. 굿거리가락또한다양하다. 굿거리가락은 멋가락 또는 흥가락 이라하여 나긋나긋춤추기좋게 32) 쳐야하는가락이다. 3) 다른농악소고놀음과의비교 남원농악소고놀음은채상소고놀음이다. 그특징을다른농악채상소고놀음과가락, 동작, 타점, 개인놀음의형태를중심으로비교해본다. 먼저경상도지역소고놀음을살펴보자. 이지역의대표적인농악으로는중요무형문화재 11-가호진주삼천포 12차농악, 구미무을농악, 부산직할시 30) 류명철은제자들을가르치면서 항상소고잽이는공연장을연풍대로한바퀴, 두루걸이로한바퀴, 좌반뒤집기로한바퀴, 이렇게꼭한바퀴씩을채워야돼. 라고말하곤했다. 홍유봉은 옛날선생들은연풍대를돌면말여사람하고색띠가구분이안되고, 두루걸이를하면땅에거의붙어서돌았어. 긍게만날소고가뽀사져. 소고로땅을침서동게. 라고제자들에게연풍대에관해설명하곤했다. 31) 홍유봉은평소제자들을가르치며발림의중요성을강조했다. 굿거리를할때는발림이좋아야혀. 선생이알려준대로만하지말고채경 ( 거울-연구자주 ) 을보고자꾸자기가개발을해야하는벱이여 라고말하곤했다. 32) 홍유봉구술, 2001년 10월 9일.

9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무형문화재제6호부산아미농악, 대구광역시무형문화재제2호비산농악등이있다. 비산농악을중심으로살펴보겠다. 가락은정적궁이, 삼채, 휘모리, 허허굿, 살풀이등이대표적인가락이다. 정적궁이, 삼채, 허허굿등은 4/. 박자의가락이고, 살풀이등은 12/8 박자의가락이다. 소고놀음동작으로는기본상, 앉을상, 엎어빼기, 연풍대등이있다. 남원농악소고놀음에비하여동작의역동성이강하다. 가락의박자구조와소고의타점을살펴보자. 허허굿 은남원농악의 호호굿 과같이 허허 하는사람의말소리가들어가는가락이다. 하지만박자는남원농악과같이혼합박자가아니고삼채류의박자다. 소고놀음에서는 4개의타점을갖는동작이많으며굿거리류가락인 살풀이 가락에맞춰서는 2개의타점을치는동작을한다. 33) 역동적인가락에따른힘있는동작과발달된연풍대34) 를특징으로한다. 개인놀음에서즉흥성이강하다. 다음은경기도지역이다. 중요무형문화재제3호남사당놀이의소고놀음을중심으로살펴보겠다. 남사당놀이에나오는농악의주요가락으로는 36/ 8 박자의길군악칠채, 4/. 박자의덩덕궁이, 4/4 박자의동살풀이, 자진가락등이있다. 소고놀음동작들은외사, 양사, 양상치기, 번개상, 찍음상, 앉을상, 허궁잽이 ( 좌반뒤집기 ) 등이있다. 개인놀음은 따벅구35) 라하며덩덕궁이, 동살풀이, 자진가락에맞춰연행한다. 남사당놀이의소고놀음은상모짓의발달된기교를특징으로한다. 가락의박자구조와소고의타점을살펴보면, 길군악칠채와같은혼합박자에서는별다른동작이없고가락의마지막에소고를들어올리며한번쳐주는동작정도를한다. 규칙박자인덩덕궁이, 동살풀이, 자진가락에서는소고놀음이다양하게펼쳐지며 2개에서 4개의소고타점을갖는다. 36) 상모짓이발달했고소고놀음에서상모짓이차지하는비중이크다. 마지막으로충청도지역을살펴보자. 충청도지역은청주, 대전등충청남 북도전역에걸쳐농악이발달했다. 청주농악소고놀음을중심으로살펴 33) 김은영, 비산농악및소고춤지도에관한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97, 4-33쪽 ; 류무열, ( 이론, 실기의길잡이 ) 농악, 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6, 204~226쪽. 34) 연풍대, 두루걸이, 좌반뒤집기를포함한통칭. 35) 따로하는벅구 라는뜻. 36)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동문선, 1974, 67~80쪽 ; 류무열, 앞의논문, 132~146쪽.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97 보겠다. 가락과소고놀음동작을먼저살펴보자. 이지역역시대표적인가락으로길군악칠채를들수있다. 그외에 12/8 박자의꽃나부장단, 다드래기장단, 4/4박자의자진가락등도있다. 소고놀음동작으로는얼러벌려치기, 좌우치기, 앉은사위, 꼭두상등이있다. 개인놀음은단순명료하고투박하며반복적인형태가많다. 가락의박자구조와소고의타점을살펴보면혼합박자에서는별다른동작이없고가락의마지막에소고를들어올리며한번쳐주는정도다. 덩덕궁이등의규칙박자에서대부분 4개의소고타점을가지며굿거리류인춤장단에서는타점이없고발림동작만한다. 37) 소고놀음이명료하며반복적형태가많다. 소고놀음소고동작소고타점개인놀음가락소고놀음특징 비산농악소고놀음 남사당놀이소고놀음 청주농악소고놀음 기본상앉을상엎어빼기연풍대어깨발림 4 1 2 2 2 없음 1 외사 4 양사 3 양상치기 2 번개상 불규칙 찍음상 2 앉을상 2 허궁잽이 ( 좌반뒤집기 ) 2 즉흥연희 따벅구라고하며덩덕궁이, 동살풀이, 자진가락에맞춰진행 정적궁이삼채휘모리허허굿살풀이 길군악칠채 덩덕궁이자진가락동살풀이등 어깨발림 0 느린굿거리 없음얼러벌려치기좌우치기앉은사위꼭두상모 < 표 8> 다른지역채상소고놀음비교 1 3 4 4 0 꽃나부장단, 다드래기, 춤장단에맞춰진행 길군악칠채꽃나부장단다드래기다드래기춤장단 힘차고역동적 상모짓이섬세하고다양 반복적이며동작이명료 37) 오세란, 청주농악과정읍농악의소고춤비교연구, 청주대학교석사학위논문, 1986, 35~52 쪽 ; 류무열, 앞의논문, 176~184 쪽.

9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남원농악소고놀음은비산농악소고놀음과비교했을때연풍대가발달했다는공통점이있다. 하지만비산농악소고놀음이좀더역동적인특징이있고남원농악에서는상대적으로발림의비중이높다는것을알수있다. 개인놀음에서는남원농악소고놀음이좀더절차적이라고하겠다. 남사당놀이소고놀음과비교해보면상모짓이다양하게발달했다는점이공통적이지만발림에대한강조가남원농악에서좀더강하다고하겠다. 청주농악소고놀음과의비교에서는청주농악소고놀음이동작이명료하고반복적이라면남원농악소고놀음에서는좀더다양한동작들이서로연계되고이어진다고볼수있다. 5. 마침글 지금까지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을살펴보았다. 1940년대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독우물농악을모태로, 남원지역의농악이층위적변화를거쳐남원농악으로정립되는과정을짚어보았다. 그과정에서정립된남원농악소고놀음의기본형태와진행절차그리고특징을분석했다. 오늘날전해지는남원농악소고놀음은정오동의기예가홍유봉을통해전승된것이었다. 판굿소고놀음은전굿에서다양한상모짓과소고놀음이펼쳐지며후굿에서는상대적으로덜했다. 후굿에서소고잽이는의례보조, 노래후창, 놀이참여등의역할을수행했다. 남원농악소고놀음은채상소고놀음이기에규칙박자에서상모짓이이루어짐으로써이에따른다양한소고놀음이존재했다. 반면불규칙박자에서는상대적으로적었다. 개인놀음은네부분으로구성되나흐름상세개로도구분될수있었다. 반주가락도마찬가지였다. 각부분은동작과반주가락이유기적으로연결되어있었다.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을살피는데있어정오동은가장핵심적인인물이다. 김정헌은오늘날남원농악의정체성이남원지역에존재했던토착예인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99 집단의농악에있다고했다. 그러나정오동은남원지역의토착예인이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그의소고기예는현재남원농악의소고놀음으로확고하게자리매김되어있다. 이를매개해주었던홍유봉도남원지역의토착예인이아니다. 그렇다면정오동의소고놀음을남원농악소고놀음이라고부를수있는근거가있는지물을필요가있다. 정오동의소고놀음은 1940년대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 70여년동안남원농악의일부로서존재해왔다. 과거남원지역소고놀음의기예를상승시키는요인이었고현재는불가분의남원농악구성요소다. 동작은판굿속에융화되었고가락과긴밀하게연계되었으며소고잽이의역할은더욱다양해졌다. 형태의융화, 음악적조화, 정서적통일, 기억의공유가이루어졌다. 이러한기예적융합에대해정오동이남원지역의토착예인이아니라는사실이갖는의미는무엇인가?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 즉남원농악소고놀음의전승과정에서정오동의기예가융합된것은남원농악소고놀음의변질인가? 농악의명인들은여러지역에걸쳐다양한활동을한다. 그속에서새로운기예를배우기도하고자신의기예를지역농악인들에게가르쳐주기도한다. 이과정에서농악은크고작은변화를겪는다. 내부적원인에의해서든외부의영향때문이든농악은항상변화를겪어왔다. 이는구비전승되는농악이가진본성적측면이다. 크고작은변화를통해서전승이활발해지기도하고반대로쇠퇴하기도한다. 다만변하지않는농악은없다. 농악이가진지역적정체성이나전통성은모호한측면이많다. 관점에따라많은차이를보일수있다. 특히마을농악이아닌걸립농악이나연예농악의경우변화는더활발하며정체성이나전통성을규정하기도더욱모호해진다. 또한토착예인이가진기예가반드시지역농악에좋은영향을미치지않을수도있다. 반대로외지의예인이가진기예가지역농악에잘융합되어긍정적인변화를가져올수도있다. 오늘날남원농악은층위변화를거쳐연예농악화되었다. 또한정오동은남원의토착예인이아니었지만그의기예는남원농악소고놀음의전승에큰영향을미쳤다. 정오동이토착예인이아니라고해서그의기예가미친영향이남원농악

10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소고놀음을변질시켰다고볼수만은없다. 오히려그의기예는 70여년간의전승역사속에서긍정적인영향을미쳤다. 남원농악소고놀음이예술적으로심화될수있었고이를통해지역의농악소고놀음으로더욱튼튼히자리잡았다. 남원농악소고놀음의전승을고찰하는데있어변화와정체성또는변화와전통성사이의복합적인관계를살필필요가있다. 참고문헌 고전금, 1998, 필봉농악판굿에나타난소고춤의춤사위연구, 이화여자대학교석사학위논문. 김영희, 2004, 고창농악고깔소고춤, 작품출판사. 김은영, 1997, 비산농악및소고춤지도에관한연구, 한국교원대학교석사학위논문. 김정헌, 2003, 남원농악연구,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김정헌, 2014, 남원농악, 민속원. 김정헌 조세훈, 2014, 남원농악의근현대사 : 복원과정을중심으로, 미발표. 류무열, 1983, 한국의농악, 강원일보사. 류무열, 1986, ( 이론, 실기의길잡이 ) 농악, 민족문화문고간행회. 민경숙, 1985, 경기농악의춤사위에관한연구 : 법고춤과무동춤을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석사학위논문. 송수남, 1990, 농악에서파생된한국민속무용, 예술과비평, 서울신문사. 심우성, 1974, 남사당패연구, 동문선. 오세란, 1986, 청주농악과정읍농악의소고춤비교연구, 청주대학교석사학위논문. 오승희, 1983, 호남우도농악에대한고찰 : 법고춤을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석사학위논문. 이효빈, 2003, 호남우도농악의소고가락연구 : 정읍농악의황재기가락을중심으로, 단국대학교석사학위논문. 전은자, 1998, 소고무의構造的分析에의한實體硏究, 무용학회논문집 제23호, 대한무용학회, 337~354쪽. 정병호, 1975, 한국민속무용의유형 : 집단무용을중심으로, 한국민속학 제8권 1호, 한국민속학회, 16~ 36쪽. 조세훈, 2006, 호남좌도풍물굿연희연구 : 남원지역소고놀음을중심으로, 전북대학교석사학위논문. 조원민 이정분, 1996, 소고춤에서의자반뛰기동작분석에관한이론적고찰, 체육과학연구소논문집 제12호, 부산대학교부설체육과학연구소 6. 주성숙, 1997, 금산농악의가락과소고춤에관한연구, 원광대학교석사학위논문. 고창농악보존회, 2011, 황토빛가락쪽빛몸짓고창농악, 나무한그루.

남원지역농악소고놀음의계보와예술적특징 101 ABSTRACT The Genealogy and Artistic Characteristic of Sogonoreum of Farmer s Music in Namwon Region 38) Jo, Se Hoon*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hat establish academic foundation for restoration and development of Sogonoreum in the Region of Namwon. The content of this paper is constituted as follow. -First : The History of Namwon Nongak. -Second : The Genealogy of Namwon Nongak Sogonoreum. -Third : The Artistic Characteristic of Namwon Nongak Sogonoreum. The first part is a study on the History, Origin and Genealogy of Namwon Nongak. The second part is a study on the History, Origin of Namwon Nongak Sogonoreum focused on Genealogy. The third is an analysis about artistic characteristic of Namwon Nongak Sogonoreum focused on performer s motion and musical rhythm played with Sogo. A study on the History, Origin and Genealogy was accomplished by study on documents, talking with successors, general study on Namwon Nongak. The analysis of present performing play production of Sogonoreum of Namwon Nongak was enforced in two divisions of Nongak and Solo * Lecturer of Chonbuk National University

10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performing play performance from two angles, Analysis of Music and Analysis of Motion. Namwon Sogonoreum has been formed by simple Little Drum Performing Play regarded as a foundation that had been distributed widely throughout Namwon region and by the skill of professional Sogonoreum Performer, named Jung O Dong. Therefore he has been considered as a originator of Namwon Nongak Sogonoreum. Jung O Dong s technique had been succeeded to Little Drum Performers of Doc Woo Mul Nongak Band. Henceforth it reaches the present has gone through some generations. This paper is not enough but I hope that this study will be a grain of mustard seed to grow a cultural heritage, named Namwon Nongak Sogonoreum. Key Words : Sogonoreum, Namwon Nongak, History, Artistic Characteristic, Genealogy

무형유산연구제 1 권 103~137 쪽 2015.5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 39) - 최 식악기장의사례를중심으로 - 정성미 ** < 차례 > 1. 서론 2. 기존연구검토 3. 초창기악기제작환경 4.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서본전통지식과감각기술 5. 통시적흐름에따른선택적변화 6. 결론 [ 국문초록 ] 무형문화재인악기장을연구대상으로하여다양한전통지식과감각기술을조사하고분석했다. 전통지식과기술을두가지측면에서나누어살펴볼때기술은보다전문적인그룹에의해서전승될수밖에없지만전통지식의경우는다르다. 이제는특정사람들만이배우고전승해야한다는고정관념에서탈피해야한다. 전통지식에는자연환경과인간활동의관계, 그리고그로인해파생되는다양한문화의보편적인가치와지혜가담겨있기때문이다. 전통지식은쉽게드러나보이는것이아니다. 그렇기때문에해당종목을구성하고있는다양한지식을알기위해서는깊이있는조사가필요하고, 속성상끊임없이변화하기때문에변화의추이를정확하게이해하고비교할수있어야한다. 거문고역시인간이창출한문화적행위의산물로서여기에는다양성과상대성이따른다. 과거로부터전해진무형의유산은세대에서세대로전해지는것으로유물과같은유형의유산과다르다. 본연구가궁극적으로추구하는목적은악기제작방법 ( 기술 ) 을통해서끊임없이변화하고있는전통지식전승양상의원리를이해해보고자하는것이다. 악기장은아름다운소리를내는비법, 연주자를배려하는제작기술, 전통의숨결이담겨진예술적조형미를중요시하며여전히자신만의고유한감각 * 이논문은 2013 년정부 ( 교육과학기술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NRF-2013S1A5B8A01072201). **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연구원 /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강사

10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기술과장인정신을고수하고있다. 이제는치수와같이정확하게측정할수있고가늠할수있는것이외에감각적이고경험적인지식과 기술적상상력 은무엇인지까지논의를확장할수있어야한다. 그것을밝히기위해본고에서는좀더구체적으로재료의선택과건조, 울림통제작, 부품제작, 도장작업, 현제작, 문양과장식, 조립등거문고제작일련의과정에서오랜노하우가축적된장인의특수한지혜와예술감각그리고개성이특히어떤부문에담겨있고, 발현되는지살폈다. [ 주제어 ] 무형문화재, 거문고, 악기장, 전통지식, 감각기술 1. 서론 전지구적으로무형문화유산의보호와보전에매우높은관심을보이고있으며, 보다적극적인의미의제도적 정책적인대응방안까지도모색하고있다. 특히요즘들어서세계각국에서이와관련있는 NGO활동도활발하게이루어지고있는데, 예를들어브라질의아르떼솔 (Artesol) 은 1998년설립된조직으로 인간개발지수 가낮은브라질지역의공예전통보호와발전에기여하는것을목표로한다. 1) 특히지속가능한장인의전통노하우의중요성을인식하고강화시키기위한다양한방안을모색하고있다. 피지공예협회 (FCS) 역시피지예술위원회산하의공식기관으로 2010년설립되었으며다양한분야의공예기술을개발해발전시키고있는사례이다. 2) 이제는다종다양한무형유산과전통지식등의의미와범위에대한명확한개념정립과공유가필요하다. 한걸음더나아가유형과무형의통합적가치인식제고역시매우막중한과제이다. 특히본고의연구주제인전통공예와관련된전통지식과기술이일부전승자들에의해서공유되고전수되는체계 1) 안토니오아란테, 무형유산 NGO 네트워크중요성과미래방향, 2014 무형유산국제회의 - 아태지역무형유산보호를위한 NGO 의효율적역할, 아태무형유산센터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 169 쪽. 2) 투리아나시리바카야와, 무형유산 NGO 의효과적인역할 : 정부와공동체, 2014 무형유산국제회의 - 아태지역무형유산보호를위한 NGO 의효율적역할, 아태무형유산센터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 223 쪽.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05 에서벗어나일반인들에게도널리그우수성을알리고교육해야한다. 전통지식과기술의두가지측면에서나누어살펴볼때기술은보다전문적인그룹에의해서전승될수밖에없지만전통지식의경우는다르다. 이제는특정사람들만이배우고전승해야한다는고정관념에서탈피해야한다. 전통지식에는자연환경과인간활동의관계, 그리고그로인해파생되는다양한문화의보편적인가치와지혜가담겨있기때문이다. 거문고역시인간이창출한문화적행위의산물로서여기에는다양성과상대성이따른다. 과거로부터전해진무형의유산은세대에서세대로전해지는것으로유물과같은유형의유산과다르다. 생활양식, 언어, 풍습, 사상등으로현재생활하고있는사람들속에서살아움직이고있기때문에고착화된가치가아니라세상과호흡하면서변화하는생물체와같다. 3) 논문설계초기단계에서자연환경의변화, 제작도구의발달, 그리고연주환경및연주자의악기선택의취향변화등에악기장이어떻게대응하는지에관하여의문을품었다. 그리고특히제작과정에서시각, 청각, 촉각등의여러감각과전통지식이매우긴밀히연관되어있는거문고에관심을갖게되었다. 본연구가궁극적으로추구하는목적은악기제작방법 ( 기술 ) 을통해서끊임없이변화하고있는전통지식전승양상의원리를이해해보고자하는것이다. 이러한문제의식을가지고제작전과정을사진및영상, 녹음자료로담았다. 악기장최 식은전통기법과변화된현대기법을누구보다도잘이해하고, 경험해온세대의장인이기때문에매우풍부한정보를구할수있었다. 4) 3) 정준모, 오래된미래란, 월간문화재 338,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1, 4-5쪽. 4) 그러나논문의내용은한악기장개인이가지고있는전통지식을주로소개하기때문에모든악기 장에해당하는것은아니라는것을밝혀둔다.

10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 기존연구검토 우리나라전통악기중가야금과거문고제작과정에대한연구는개인연구자뿐만아니라유관기관에의해서많이이루어져왔다5)( 김복권 ; 2002, 국립전주박물관 ; 2002, 국립문화재연구소 ; 2006, 최공호 ; 2008, 김소리 ; 2009, 김영대 ; 2009, 오지혜 ; 2010, 국립중앙과학관 ; 2009, 서인석 ; 2010). 그간의연구에서는거문고보다는대중적인가야금을소재로한경우가많았고제작전과정이아닌일부과정을집중해서예를들면울림통, 현등을살펴보거나, 악기의특징인음향, 음파분석에주목한경우가대다수이다. 그리고 전통기법 위주로설명하는것에그치고있어서, 현대에와서변화된제작환경과제작공법을이해하는데한계가있다. 악기제작의옛방식을소개하는것도중요하지만현재의변화양상을솔직하게드러내고논의할필요가있다. 기계화가반드시나쁜것만은아니다. 또한전통지식은쉽게드러나보이는것이아니다. 그렇기때문에해당종목을구성하고있는다양한지식을알기위해서는깊이있는조사가필요하고, 속성상끊임없이변화하기때문에변화의추이를정확하게이해하고비교할수있어야한다. 이점에서특히 무형문화유산기록작성 의당위성이강조되는것이다. 6) 임수철 (2010) 은그의논문을통해거문고음악의특징을사상적인측면에서분석했다. 그는거문고는온화하면서도묵직한저음 ( 低音 ) 과적당한탁음 ( 濁音 ) 이있으며, 다표현하지않고절제된유음 ( 遺音 ) 은심신을안정시키고, 내면의소리를들을수있게한다고평가한다. 이러한거문고는예부터 선비의악기 라고칭하는등 사회적의미 가굉장히강하게담겨있는전통악기이다. 현재호남지역을중심으로향제줄풍류 7) 가전승되고있는데, 거문고풍류 라고도불리운다. 그이유가매우흥미로운데풍류방에서가장연장자이 5) 국립국악원은 2006년부터악기연구소를설립운영하고있다. 6) 이와관련하여요즈음조사방법론과지적재산권문제가매우강하게대두되고있으나, 본논문에서 주로다루고자하는논지와거리가있으므로이글에서는다루지않겠다. 7) 줄풍류의구성악기는거문고, 가야금, 양금, 피리, 대금, 단소, 해금, 장구이다.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07 면서존경을받는사람이주로거문고를연주하는데, 본영산시작할때독주를할수있도록배려하는의미에서그렇다고한다. 8) 이렇듯 남성, 선비, 어른 을상징하도록고안되어진다양한 장치 들은제작방식에어떤영향을미칠까. 만약그렇다면거문고를제작하는악기장은어떤부문에그것을투영하고있는지본문 4장과 5장에서살펴보겠다. 현악기제작과정을매우세밀하게소개했다는점에서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국립중앙과학관 (2009) 에서발간한단행본과오지혜 (2010) 의논문은본고의접근방법과같다. 그러나보다더발전적으로논의해야할내용은전통지식의중요성의정도즉높낮이와깊이이다. 앞으로는악기장개개인의전통지식이어떤부분에담겨있는지조사 분석해야한다. 더불어계량적분석대상인치수와같이정확하게측정할수있고가늠할수있는것이외에감각적이고경험적인지식과 기술적상상력 은무엇인지까지논의를확장할수있어야한다. 따라서본고에서는좀더구체적으로재료선택과건조, 울림통제작, 부품제작, 도장작업, 현제작, 문양과장식, 조립, 조율등거문고제작일련의과정에서오랜노하우가축적된장인의특수한지혜와예술감각그리고개성이특히어떤부문에담겨있고, 발현되는지주목하고자한다. 무형문화유산과전통지식의가치를강조하는논문들이있다 ( 박성용 ; 2010, 정성미 ; 2012, 이혜진 ; 2012). 이중박성용 (2010) 은무형문화유산의가치를크게세가지측면으로나누어설명하고있다. 중요한내용을간추려소개하면다음과같다. 우선내재적가치는유산의본질이나특성자체가주는가치로역사적, 상징적, 미학적, 통합적가치등이해당된다. 둘째파생적가치는유산의존재로부터파생되는이익이나혜택에해당하는가치로경제적, 사회문화적, 교육및학술적, 환경적, 오락적가치를들수있다. 셋째제도 정책적가치는각사회발전을위한과제해결에있어서유용한제도및정책분야에서유산이가지는가치를의미하는데, 이는민주적가치, 문화다양성및창의성기여가치, 발전가치, 정체성과지식보급가치를들수있다. 문화유 8) 인터뷰자료 ( 이리향제줄풍류회원남 숙, 조사일 : 2013.10.23)

10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산을보존하고보전해야하는논리적주장은문화유산에대한올바른가치판단이제대로이루어져야만가능하다. 어떤방식이든문화적산물에의미를탐구하고가치를부여하는활동은시대를막론하고지속되어왔지만, 시간과공간그리고상황과관점에따라특정문화유산의가치에대한해석과평가가상이할수있다. 9) WIPO에서는 전통지식 (Traditional Knowledge) 이란전통적인맥락에서지적활동으로부터생겨나는지식의본질이나내용과관계된것을의미하는것으로서, 노하우, 기술, 개량, 전통지식체계의일부형태로서의학습과관행, 그리고세대간계승되어진성문화된지식체계에내포되어있거나또는토착공동체와지역공동체의전통적인생활방식을담고있는지식을포함하는것으로서, 어떤특정기술분야로제한되지않으며농업적, 환경적, 의학적지식, 그리고유전자원과관련된지식을포함할수있다 라고규정하고있다. 10) 여기서주목할것은개량 (innovation) 이다. 전통지식역시시간이흐르면서신재료가추가되거나프로세스를효율화하는것이이에해당된다. 11) 그러나숙고해야할점은 전통의본질 이다. 현악기제작공정을소개하고있는많은관련자료에서 은전통방식을고수하고있다 고강조하고있는데, 현시점에서무엇이 전통방식 인가라는문제는심도깊게고려하지못하고있다. 거문고를제작하려면다양한나무 ( 오동나무, 밤나무, 화목나무, 대추나무등 ) 가필요한데, 이마저도이제는신품종, 개량종으로바뀌고있으며, 거문고제작도구역시빠른속도로 진화 하고있다. 즉예전에는사용하지않았던나무를가지고효율적인제작도구를활용하여악기를제작하고있다. 따라서더이상미룰수없는연구주제는악기제작과정에내재된가치, 표현되는기술등의부문중에서어떤것에서전통지식을찾을수있고, 찾아야만하는것인가의문제이다. 그리고악기연주자역시예전과다른환경 9) 박성용, 무형문화유산의보호와지적재산권에관한주요이슈, 무형문화유산보호와지적재산권동향과과제, 아태무형유산센터, 2010. 10) WIPO 정부간위원회개정된초안규정제3조2 호. 11) 양대승, 전통지식, 전통문화표현물과의비교적관점에서본무형문화유산의개념과특성, 무형문화유산보호와지적재산권동향과과제, 아태무형유산센터, 2010, 63쪽.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09 ( 무대 ) 에서변주곡, 창작곡등을연주하게되는상황인데, 악기장은이러한환경에서또어떤 창의적노하우 를발휘할수있는지여부이다. 3. 초창기악기제작환경 필자는악기장최 식장인의거문고제작과정을장기간 (2012년 1월부터 2013년 2월까지 ) 심층조사했다. 정보의생성, 가공, 보급의측면에서장기현장조사와질적조사 ( 심층인터뷰와참여관찰 ) 의중요성은아무리강조해도지나침이없다. 무형유산의활용을논하기에앞서기초조사가충실히이루어져야한다. 더불어다양한활용 ( 교육자료, 문화콘텐츠, 관광자원등 ) 을염두에둔기초조사방법론역시시급하다고생각한다. 최 식악기장의대표적인연보를간략하게소개하면 < 표 1> 과같다. < 표 1> 최 식악기장의주요연보 1940 년 ( 출생 )-1960 년대 ( 국악기제작입문, 결혼 )-1970~1980 년대 ( 가난하고힘겨운시기, 왕성한제작활동 )-1990 년대 ( 많은방송출연, 각종대회에출품작선보이기시작함 )-2000 년 ( 시도지정무형문화재거문고악기장으로인정받음 )-2014 년현재 ( 전통지식을고수하면서도현대적감각과창조성을발휘하는악기장이라는새로운정체성확립 ( 편리하고새로운도구생김, 완성품으로구입할수있는재료생김, 새로운가치추구 ) 최 식악기장은김광주, 조정환, 조정삼로이어지는전승계보를가지고, 거문고등국악기제작기법을배우기시작하여 1964년국악기제작에본격적으로입문하게된다. 김광주 ( 金廣胄, 1906~1984, 부친김명칠 : 金明七 ) 는중요무형문화재제42호로한국최초의악기장기능보유자였다. 최 식은악기의수요가매우적었던 가난하고배고픈시절 을거쳐 1970년대후반이후정책변화로현악기를대량으로생산하게되었다. 그의젊은시절에는악기공방이전국에서전주밖에없었다고회상한다. 그래서그의처삼촌이기도한조정삼과함께악기를제작할당시인 1970~80년대에는수요량이증가하

11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여나무를제대로건조시킬시간조차없었다. 이후독립하여현재까지국악사를운영하고있는데, 그이름은 궁궐속에서흘러나오는소리는그안에신하들뿐만아니라온백성을기쁘게한다 는의미를내포한다. 그는전라북도공예품경진대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전승공예대전등에서여러차례입상하였고, 2000년 7월시도지정무형문화재로인정되었다. 최근에는악기를만드는재료인나무도재래종이아닌신품종이개발되어나오고, 수작업으로해야만했던공정들이기계로대체되면서보다손쉽고빠르게제작할수있는여건이조성되고있다. 이러한변화속에서도최 식은아름다운소리를내는비법, 연주자를배려하는제작기술, 전통의숨결이담겨진예술적조형미를중요시하며여전히자신만의고유한감각기술과장인정신을고수하고있다. 악기장으로의입문은군대를제대하고할일을찾던중처삼촌이었던조정삼에게악기제작을배우기시작한것이계기가되었다. 참그때는밥을먹고살수가없을정도로그렇게가난했을때예요. 어려운시대였죠. 어려운시대라서. 군에서제대하고나와서갈곳이없잖아요. 그래서결혼을하고, 이제그처삼촌이에요. 조정삼씨란분이. 그분한테전수를하면서 ( 받으면서 ) 김광주선생님한테가서어깨너머로배우고, ( 전주 ) 태평동에살았었어요. 김광주씨가사실은그분이원래가전주분이예요. 그분이. 지금은아파트가다들어섰습니다만전매청뒤에그골목에살았었거든요. 가서배우면은이렇게배우면은 니가뭔데뭘배울라고들여보고있냐 고그러죠. 이제그것이인연이되가지고악기를만들기시작했었어요. 그러니까하면서옛날에는그악기만들면서나무가지금처럼이렇게건조를잘못했습니다. 그리고악기공장이그때만해도전국에서우리전주밖에없었어요. 전주에서두군데... 제대로나무를건조할시간이없을정도로급하게만들었던시기에는나무를장시간 자연에노출시키는 건조과정을생략했다. 대신에연탄불에나무의수분기가약간없어질정도로만건조를시켰기때문에얼마지나지않아악기가틀어지고좋은소리가잘나지못했다고한다. 그리고악기장이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11 < 사진 1> 오동나무를지붕에올리는장면 < 사진 2> 지붕에널어놓은오동나무 악기를만들고직접가져다주어야했던때에는최 식악기장역시전국을다니면서활동을했다. 빚을내면서유지해온공장생활을하루하루힘겹게유지했던시기이다. 나무를이렇게지금처럼 5년 6년말려서만들어야했는데, 그당시에는악기가딸리고나무는흔했지만.. 악기를만들때돈이없었어요. 악기를만들때연탄난로를피워가지고말리는거예요. 그러면물기만없어져버리면만들기시작을해요. 그니까그전에그악기를보면은틀어져요. 건조가안됐으니까. 또소리도잘안나죠. 생나무로만들었으니까. 지금에와서생각해보니까그래요. 그때는만들어서갔다줘야되니까. 내텃밭이대한민국에있었어요. ( 많은지역을다녔다는뜻임 ) 내텃밭이광주, 서울, 뭐대구..( 아, 전국구로..) 네전국적으로. 뭐충무? 뭐부산같은데야말할것도없고.. 이제그렇게해서그때당시는거문고를많이만든것이아니라가야금을많이만들었어요. 사실은요. 가야금을만들면서거문고는드문드문. 가야금 10대면은거문고는 1대예요. 지금내가이렇게얘기를하면은무슨소설읽는것같이그런기분이들겁니다. 그어려운시절에악기를만들어가지고돈이없으니까.. 달라돈 ( 달러 ) 을내요. 요즘말하자면일수라고하죠. 하루에얼마씩하는거. 달라돈얻어가지고.. 갔다와서돈을받으면만원이면만천원줘야한단말이예요. 그렇게해서공장을이어나간거예요. 그러니까저희가 70년대후반까지는아주고생을했어요.

11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청장년층일때에는악기를제작하기에매우열악한환경이었지만젊은나이였기에활기와의욕이넘쳤다. 악기를만들오동나무를운암지역에서구해와제재소에서 1차작업을하고, 그것을어깨에짊어지고, 또는리어카에실어서학동까지끌고걸어왔다고한다. 그때처지곤란했던어마어마한대팻밥도그의기억의한켠에자리하고있다. 생나무 에서나온것이라땔감용으로도사용할수없었기때문이다. 그때당시는오동나무를제재소가서오동나무를대주는할아버지가있었어요. 그분들이운암에서베어와서제재소가서켜줘요. 그것을리어카지금은용달차아닙니까. 그러면리어카에다실고올돈도없어요. 마자면나무를제재소에서켜와서 대빵거리 를해가지고그때는창피한줄도모르고기운이.. 25살, 26살먹을때니까힘이있지않습니까. 어깨에짊어지고서학동지금은학봉리라고하는마을까지짊어지고와서오고.. 이제참저번에도말씀을드렸듯이달러돈을내가지고리어카제재소리어카에실고왔죠. 직공들보고밀어올리라고해서가져다놓고.. 나무를짝으로찍었어요. 짝으로찍고속을대패로긁어내고.. 그것을하루에 20장 30장을찍어서긁어내버렸어요. 그것을긁어내고나면나오는짜곡밥 ( 대팻밥 ) 이엄청나왔어요. 그것을버리기도힘들었어요. 지금은뭐버리면다돈줘서버리기도하지만그때는그럴수도없고, 생나무라불을땔수도없고.. 지금처럼공정과정과시간을단축시킬만한도구와기계가나오기전이었기때문에협업이중요했다. 하루종일톱질을하다가톱날이떨어지기가일쑤였는데, 강철로된시계부품을활용하여만든톱날을하루종일동료와함께켜야했다. 안족을만들기위해적당한크기로자르는작업을 50~60개정도하는데, 2틀정도가꼬박걸렸다. 지금은괘를손수깎을수있는악기장이얼마되지않는데, 그당시만해도손수깎는작업을해야했다. 지금은전부기계로작업한다고한다. 현악기만드는과정에서안족깎는것과현을만들기위한작업인줄꼬기공정이매우까다로웠다. 그시기에는전부손으로감았다. 그런고된노동의과정을해야하는시기를지나고나니모터와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13 전기가등장하여기계화되었다. 요새젊은놈들이방망이에다가무슨줄을감아요. 기계에다다꽈서기계로다감아주죠. 그니까 70년대에는명주실도저희가회사를했어요. 옛날에베짜는데회사기가.. 마자면은비단짜는공장이있지않았습니까. 거기서회사기낡은것을빼내지않습니까. 그러면우리가그놈을사다가다시수리를해서거기서회사를해서합사를해요. 이제한가닥씩회사를하죠. 싹전부감아가지고. 이렇게타래로있는것을회사기로돌려서했는데, 물레로감았어요. ( 중략 ) 저희가할때는그줄을꼴때도전부손으로돌렸어요. 손으로양팔로돌렸어요. 물레아시죠. 물레같이생긴기계를가지고, 기계를맞춰가지고하루종일돌려서꼬면하루에 10벌꼴까요? 120개그럼그걸꼬는데얼마나팔이아픕니까. 요즘얘들그거시키면은요기술배울얘들하나도없습니다. 하나도없어요. 지금은그기계가없어져버렸습니다만은그이후로는모다 ( 모터 ) 돈이좀생기니까.. 모다로해서전기로양꼬기시작했죠. 그작업을제가 15년이상은그렇게손으로돌려서꼬았어요. 그니까얼마나힘들었겠습니까. 여름에딴사람들은전부놀러다니고, 참산행도다니고, 전부그랬었는데, 우리는뙤약볕에서.. 그때는밀대모자도없었어요. 장갑도없었고. 그냥맨손으로햇볕다쐬어가면서일을했지요. 그러다가 80년대넘어서서부터는모터전기모다가나와서이쪽에서모다돌리고저쪽에서도모다돌리고... 이제삼발이라는것을대가지고세줄이하나가되요. 하나로꼬아버리죠. 왼쪽으로돌리든지오른쪽으로돌리든지.. 하나가되어버리지않습니까. 그러던와중에정부정책에따라국악기보급에탄력을받게되었다. 1980 년대국악교육의중요성을인식하고학교에서전통악기수업이마련되기시작한것이다. 그러다보니그즈음에는서로악기제작을배우겠다고나서는사람들도많아졌다. 최 식악기장지도하에 15년동안제자로또는동료로함께동고동락을했던직원들은지금은다른지역에서꽤유명한악기장으로알려져있다고한다.

11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쭉이어나가다가.. 아, 인제그정부의시책이좀달라졌어요. 우리나라악을알아야한다해가지고중고등학교보급이되기시작했죠. 그런고생을하다가 ( 전두환정권당시 ) 초 중 고등학교, 대학교까지들어갔죠. 그후부터빛을보기시작했죠. 그래서악기를쭉만들어와서뭐그러다보니까장사가잘되고나니까그냥너도나도하는거예요. 우리같은사람한테배워서 3월, 4개월배우면요즘은나가서독립을할라고그래요. (3, 4개월만에요?) 그럼저희는이렇게해서얘기를합니다만은... ( 저희때는 ) 3년이란세월을보수안받고일을했어요. 3년이란세월을먹고만그냥. 전이제작업을하면서외교 ( 영업 ) 를받죠. 이발료만줘요. 그렇게해서쭉만들어왔는데. 그러다가세월이자꾸변화가있잖아요. 변화가있다보니까주문이많이쇄도를하고많이팔았었죠. 많이팔다가보니까이제또직원들도데리고있어야한단말입니다. 그러면그사람들다먹여줘야되지. 월급줘야지. 월급안주면다나가버리니까. 제자라면보통 7, 8명이넘었었어요. 그사람들이나한테한 15년배운사람들이한세명있는데그사람들은 ( 그때제자들 ) 지금도잘만들어요. 최 식은자신이현재대한민국에서유일하게무형문화재거문고분야로인정받은악기장이라는자부심을가지고있다. 현악기제작을주로하는악기장은물론가야금과거문고를비롯한모든현악기들을만들수있다. 그런데 도무형문화재가되기위해서특정종목으로신청하게되는데, 먼저가야금부분으로다른악기장이인정되었다. 따라서최 식은거문고로신청을하게된것이다. 처음에신청을했을때는가야금으로했었어요. 가야금을했었는데그런얘기를하다보면참이상하게됩니다만나하고더블이되서 ( 함께 ) 낸사람이있어.. 근데그사람이먼저되어버린거야. 그래서뭐랄까뼈를깎는아픔이있어요. 그수많은세월속에.. 이루말할수가없죠. 그래서저는 3년후에거문고로신청을했어요. 그래서서울대학교무슨교수님들인가해서그분들이내려오셔가지고인제 3년후에문화재로제가받았죠. 그래서거문고로... 그래서지금저희집에서나오는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15 악기가거문고, 가야금, 해금, 양금, 아쟁, 25 현, 이제관악기까지하면 27 종을만들 어요. 사실. 다른전통공예와마찬가지로거문고악기장역시후계자양성에어려움이매우많다고토로한다. 실질적으로소득이불안정하고, 이수자지원정책이없는경우더욱그렇다. 그리고무엇보다도악기제작업체가증가하여경쟁체계가강화되었기때문이다. 그의국악사는 47년이넘는역사를가지고있다. 지금의국악사자리로오기까지많은곳을전전긍긍하며다녔다. 12) 부산 구 도청삼거리의팔달로변 동서학동 전동 인후동으로옮겨다녔다. 다른국악사가많이생기고, 4명의자녀들교육비가많이들어가면서이사를자주다니게되었다고한다. 한때악기장의삶을포기하고싶기도했던그는사우디아라비아의근로자로서류를내보기도하고방황의세월을보내기도하였다. 서울과부산등지를오가며박초월선생과김창암선생을만나러다니기도하고, 기방 ( 妓房 ) 에머무르면서기생들의악기를손봐주면서지내기도하였다. 그러한시기를보내다가 악기장의길 을가기위해마음을다잡고작업을다시시작했다고한다. 광주사태 (1980년 5월 18일 ) 가일어날즈음그는부산에서악기공방을운영하고있었다. 그러나인구대비근로자수가많고국악을하는사람들수가적어서악기를판매하기에어려운조건이었다. 부산대와부산교대에국악과가생기면서조금형편이나아지기는했지만여전히재정적어려움에허덕여야했다. 그래서그는식구들과전주로다시올라왔다. 최 식악기장은무형문화재가된이후에는자신의악기에낙관을찍기시작했다. 본인의이름이새겨진거문고소리와작품완성도에자신이있기때문이다. 그리고음악학과선생님들이학생들에게새악기구입을과도하게요구하는것에대해비판적인생각을가지고있다. 왜냐하면현만바꾸어도다시 멀쩡해지는 악기를비싼돈을주고새로구업하는것은문제가있 12) 논문을수정한 2015 년 2 월최 식악기장의국악사는서서학동 ( 유기전길 ) 으로다시이사하였다.

11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물론악기를한대라도팔아야좋은입장에서쉽게할수없는말이다. 그러나악기장의자존심과양심을두고자신있게말한다. 자신의이름을걸고만든악기는 밟아깨지않는다면 아무리오랜세월이지나도변함이없다고자부한다. 시대에따라악기도변한다. 예전에는거문고의위가넓고 꼬리 쪽으로갈수록좁아졌다. 그러나지금은소리를최대한잘내기위해공명통을넓히는방식을선택하여예전보다더넓고깊게만들고있다. 가장눈에띄는변화는먼저울림통이넓어지고그와함께괘도커졌다. 또한 6현이기본인거문고역시연주자들의요청에따라 12현, 10현, 9현을만들게되었다. 그러나최 식악기장은 9현까지는만들어보았는데그이상은잘만들지않는다고한다. 왜냐하면그에게는 6현으로만든것이 진정한전통악기거문고 이기때문이다. 4.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서본전통지식과감각기술 1) 나무에담아내는소리 거문고는앞판이오동나무로되어있는데, 본래오동나무는견고하지못하기때문에악기재료나가구로는부적합한나무이다. 13) 그런데도거문고를제작할때오동나무를쓰는이유는유음을추구하는음향적조건과가장일치하기때문이다. 14) 오동나무는조직이치밀하지못하고성글기때문에음의흡수량이높아음의지속도를떨어뜨리게되고, 그결과거문고음악의저음적음향과도아주잘맞는다고한다. 15) 13) 임수철, 거문고의악도 ( 樂道 ), 인문과학연구 제 32 집, 강원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2012, 351 쪽. 14) 위의논문, 351 쪽. 15) 위의논문, 351 쪽.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17 최 식악기장은가장적합한양질의오동나무를확보하기위해서무주, 진안, 장수등에연고를두고있으며, 요즈음은주로운암지역에서재료를구한다. 추운지방에서자란오동나무로만든악기의소리가울림이좋으며, 나이테가촘촘해야무르지않다고한다. 그리고뿌리를중심으로해서위로올라간부분보다는가지로뻗어나간부분의나무를더좋게여긴다. 나무지름은약 30cm 정도되는것이좋다. 나무의성장정도가중요한데, 요즈음신품종나무는 10년만되어도매우크다. 단복합비료를많이줘서 크기만컸지좋은소리를내는재료로는적합하지않다 고한다. 왜냐하면건조과정에서재래종과달리나무의부피가 5~6cm 정도급격하게줄어들고, 육안으로봐서는깨끗하고좋지만거칠게자란나무에비해서울림소리가좋지않기때문이다. 그러나요즘연주자들은거문고의겉모양도 매끈하게잘빠진 것을선호하기때문에종종신품종이사용되기도한다. 나무의겉목을치고나면나무를건조시켜야한다. 그가기와지붕의골에나무를쭉널어놓은이유는눈, 비를다맞추기위해서이다. 장시간동안그런환경에노출된나무는그과정에서진이다빠져썩기직전에이른다. 이것을 삭힌다 라고표현한다. 삭힌다 는것은나무가건조되는과정에서진이다빠져나가썩기직전에이른상태를말한다. 이과정에서약한나무는버티지못하고썩게되며, 5년이상잘건조된나무는 써금써금하니 새까맣게색깔이변하게된다. 건조를잘시킨나무는대패질하기도편하고, 싸각싸각잘먹는다 고표현한다. 보통거문고를만들때악기장들은옹이없는나무를골라야한다고하지만, 최 식의경우는옹이있는나무를사용하기도한다. 그는옹이있는나무는단단하기때문에그부분을다른쪽보다약간얇게깎으면더좋은소리가나는악기를만들수있다고주장한다. 즉대패질을잘하는감각기술만있다면오히려단점을강점으로만들어내어음의높낮이가정확하고, 음향이풍부한소리를내는악기를만들수있다는것이다. 즉일반적으로악기는옹이가없는나무로만드는것이좋다고믿어왔다. 현재그의둘째아들과며느리가기술을전수받고있는데, 공정과정중에서특히대패질을잘할수있도록오랫동안지도하고있다고한다. 왜

11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냐하면나무의성질을제대로파악하여야하며, 힘으로만하는것이아닌전통지식이필요한 공정이기때문이다. 그리고통으로올라간것보다는옆가지로뻗어지는나무가좋은소리를낸다고믿었다. 그러나그런재료를구하기가점점어려워지고, 또지금은나무건조를장시간잘하기때문에통으로뻗어올라간나무를써도괜찮다고한다. 그러나여전히신품종보다는재래종을선호하는데, 공명통을깊고둥글게만들기위해서는나무가무르지않아야하기때문이라고설명한다. 악학궤범 과같은책에서배운지식, 스승의가르침, 새롭게바뀌고추가되고있는 경험적지식 들은모두나무의종류, 재질, 크기, 부위에따른정보를중요하게담고있다. 이모든것은소리의좋고나쁨을결정짓는요인이나무의재료에서비롯된다는공통된믿음에서나오는데, 울림혹은긴여음을낼수있는지가가장중요한기준이다. 오동나무가크게올라가서가지로뻗어나가지않습니까. 옆으로가든지위로가든지. 그나무에서나오는소리가좋다고그랬는데. 옛날선조들이악학궤범에쓰여있는이야기가그렇게쓰여있어요. 근데지금은건조를제대로하니까통째로쓴나무도좋습니다. 옛날에는그렇게해서만들었다고했는데지금이야뭐.. 오래된재래종이고모질게큰나무로쓰면신품종보다도소리가잘난다고그렇게생각을합니다. 제가만든걸보더라도오래된재래종나무가확실히소리가잘나고. 소리가잘난단것은깊은소리가난다는말입니다. 아무래도신품종으로만드는나무가물르거든요. 물르니까소리가잘안날수밖에없고. 통을깎을때두껍게깎아야하는데, 요즘은뭐얇게깎아서많이만들어요. ( 그냥 ) 빨리만들기위해서전기대패로막밀어버리죠. 전기대패로밀어버리기도하는데저는될수있으면둥글게저는공명통을깊게만드는편이고, 뭐얼렁뚱땅만들려면빨리만들수있죠. 그러나저는공명통을깊게하는것이소리가잘난다고생각을하고있습니다. 둥글게안만들어도소리가나기는나는데여음이좀짧죠. 소리의울림. 울림이짧다는말이에요.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19 악기는일반공예품과달리소리의기능을담고있다. 따라서제작의전과정이음색과긴밀히연결되어있기때문에반드시지켜야할전통지식이있다. 제작도구와재료의선택적사용은장인의경험을통해오랜세월체득된감각기술이다. 자연의재료를선택하는첫단계에서부터그재료를적절하게가공하기위한 2차작업까지모두중요하다. 2차작업이란악기의경우자연환경에그대로노출시켜장기간나무를삭히는단계라고할수있다. 거문고는산조거문고와정악거문고두가지가있다. 본래산조의울림통길이가정악의것에비해짧았었다. 그러나이제정악거문고로괘를조정하여산조연주도불가능한것은아니다. 울림통은잘건조된오동나무를고른뒤만든다. 울림통의앞판은오동나무, 뒷판의재료는주로밤나무를사용한다. 먼저재단한뒤톱으로형태를만들고대패로밀면서윗판을만든다. 대패질을할때는윗판을동그랗게잡아놓고속을판다. 윗판의두께는보통가운데가삼 사푼 (0.8cm~1.2cm), 양쪽옆부분이두푼 (6mm) 이되도록잡는다. 그러나나무의성질에따라약간씩차이가난다는것이숙련된노하우가필요한이유이다. 대개는강도가있는나무는보다얇게, 연한나무는약간두껍게나무성질에맞춰두께를잡는다. 울림통밑판에는울림통에서소리가빠져나오는구멍을뚫는데가운데구멍은동시에손잡이역할도한다. 예전에는기계를사용할수없었기때문에이구멍이매우크고네모의모양만이있었지만요즈음은좀더작고다른모양으로도만들수있게되었다. 여기서중요한것은울림통의전체형태가한쪽방향으로약간휘도록제작하는데있다. 경이로운사실은이기울기의각도는전적으로숙련된장인의전통지식과감각기술에의한것이라는점이다. 왜냐하면원재료인나무의건조상태와두께정도에따라서장인의촉각과시각적인경험이동원되어지극히주관적인판단으로정해지기때문이다. 즉기울기의정도가표준적으로정해져있는것이아니라는뜻이다. 정리하면울림통은반드시둥글게, 그것도한쪽방향으로약간기울여서깎는것을중요시여긴다. 그이유는깊은소리를내도록하며악기의수명을길게하고, 줄 ( 현 ) 의장력을높이는기능때문이다. 거문고는연주자가

12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현 ( 줄 ) 을당기면서연주하기때문에계속한방향으로미는힘이가해지게되기때문에울림통이기울어지는것을방지하는것이다. 이러한점을감안하여울림통을처음제작할때부터힘이가해지는반대방향으로기울여서제작한다. 필자가다른지역이주형 ( 가명 ) 과김정원 ( 가명 ) 을비교조사해본결과최 식악기장의상기기술을사용하지않았다. 2) 거문고를탄생하게하는도구 거문고를제작할때나무별로가지고있는장단점을잘알고, 그쓰임에맞는적절한도구를사용해야한다. 거문고자체가평면적인악기가아닌곡선의형태를띠는악기이기때문에모든공정에세심한주의가필요하다. < 사진 3> 높이가전부다른괘 예를들어현침을하나완성해서거문고에붙이기까지매우많은시간과노력이필요하다. 거문고울림통 ( 몸통 ) 에수차례대보고다시들어맞지않는부분을끌과사포로다듬고하는작업을계속해서반복해야만한다. 기계가도입되어몇몇부위의재료를재단하는일이보다쉬워졌지만, 여 < 사진 4> 거문고만들때사용되는도구 < 사진 5> 거문고만들때사용되는도구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21 전히악기장의손을여러번거쳐야하는공정이많은데현침다듬기도그중하나에속한다. 울림통과같은넓은부위는다듬는기계를이용해서할수있지만움푹파인모양을하고, 비교적작은크기의현침은직접손으로작업해야하기때문이다. 예전에는현침끝을발로고정하고다듬었는데, 최 식악기장은이제 현침받침 을직접발명제작하여사용하고있다. 뿐만아니라두개를한번에작업할수있는 운족틀, 봉미모양본 등도직접제작고안하여작업의효율성을높이고있다. 3) 괘제작과관련된지식 최 식은거문고제작과정중에서괘만들기작업을할때가장심혈을기울인다고한다. 괘를만들때는먼저제1괘와제16괘를규격에맞게만든다음나머지열네개의괘는그안에들도록높낮이와크기를조절한다. 괘를깎고양면을비스듬히둥글려완성하면거문고줄을하나걸고순서대로붙인다. 괘는음정과긴밀한관계가있기때문에괘를붙이는위치와간격을정확히배열하는것이중요하다. ( 괘높이가다른것을어떻게알수있을까요?) 우리는치수로하거든요. 센치로않아요. 요것은두치오푼으로하는데. 몇센치는모르겠어요. ( 울림통만들때요선생님, 밑판하고윗판만들잖아요. 윗판의두께가여기는너푼이라고나와있는데. 선생님도그렇게하시나요?) 그것이우리가켜올때 6푼정도켜오거든요. 두께를. 6푼정도켜와다가이제건조를하죠. 건조를하면그게한 5푼되요. 5푼되면깎아내면한 3부정도돼요. 그런데괘닿는쪽으로는한 3부조금못되게해요. (3푼못되게요?) 2푼 5리. 2푼 5리도하고 3부도하고그러니까나무를봐서단단한나무는 2부. 2푼 5리해도좋습니다. 거문고는가야금하고틀려요. 가야금은괘 ( 부분을 ) 조정을하는데거문고는붙어있거든요. 붙어있어서두꺼우면소리가안나요. 그러고물르면은 3부정도해야되고. 나무재질이. 두께를얘기를하는거에요. ( 예. 네. 그러니까거문고가가야금보다는좀얇다는말씀이죠?) 네얇습니다. 그

12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이유는붙어있는괘때문에. 괘가물론 3부로도만든것도있어요. 나무가물르면 3푼으로해야돼요. 왜냐하면얇으면은바가지물에다띄우고때리는소리 벅벅벅 소리나거든요. 인제단단한나무는역시얇아도때리면 낭글낭글낭낭낭 합니다. 대패로깎으면서벌써나무가물른가안무른가를 ( 감각으로 ) 알수가있어요. 물른나무는좀두껍게해야돼요. 단단한나무는좀얇게하고. 먼저본을대고괘를붙일위치를잘잡아야한다. 괘를붙일때는유현을기준으로먼저제1괘를붙이고차례대로제16괘까지붙인다. 제 1괘를눌렀을때제2괘가닿지않고, 제2괘를눌렀을때제3괘가닿지않는식으로붙여야연주에따르는잡음을줄일수가있다. 괘를붙인다음사포질을하여마무리한다. 괘의윗부분은흰색소뼈 ( 이외백옥, 연옥, 자개등 ) 로화려하게장식을하기도한다. 지금은괘를만들때주로단단한대추나무를사용하는데, 없을경우에는돌배나무, 장미나무를사용하기도한다. 괘를붙일때는직접줄을걸면서괘의높낮이를조절하기때문에줄거는단계와동시에진행된다. 괘는연주자가손가락으로음정을내거나줄을밀고흔들며다양한표현을할때힘이가해지는부분이므로아주강한재질의나무를써야한다. 그리고정중앙이아닌한쪽으로기울여서붙이는데, 이것은연주하기편한조건이된다. 4) 안족모양의신비안족 [ 雁足 ] 은거문고나가야금등현악기의줄을거는것을일컫는다. 단단한나무로기러기발처럼만들었다는이유에서붙여진이름이다. 거문고는안족이 3개필요하다. 안족은거문고의문현과무현, 괘하청의현을거는장치임으로단단한나무를사용해야한다. 그러나단단한나무를칼로깎으려면힘이들기때문에결을부드럽게하기위해뜨거운물에담갔다가깎는다. 모든악기장이그러한것은아니고최 식악기장의경우에는거문고는남성의악기를상징하기때문에남자성기의생김새와유사하게표현을하고있고, 이와상대적으로가야금의안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23 < 사진 6> 안족깎기 < 사진 7> 거문고 ( 좌 ), 가야금 ( 우 ) 안족 족은여성의아름다운곡선을형상화하였다. 그러나 고급악기 를보다정성스럽게제작할경우에만보다신경을쓴다. 안족의모양도연주자의취향과거문고가격에따라차이가있는것이다. 이를테면기계로대량생산하는체제에서도최 식은반드시손수거문고안족에독특한문양을표현한다. 이것은마구리문양, 귀모양, 현침두께, 투박한봉미모양과함께전체적으로남성성을상징하는하나의구조를완성시키기때문이다. 최 식은안족을손으로직접깎아서제작할수있는악기장도이제거의없다고구술한다. 5) 인두질과정 울림통이완성되면전체적으로인두질을한다. 인두질은나무에남아있는잔류진을뽑아내서그진을윗판에보존하기위한과정이다. 인두질을하면울림통의수명이오래간다. 그리고현을잘보이게하는기능을할수도있다. 아래사진과같이전통방법16) 으로인두질을하게되면표면에은은한색깔을내며, 나무의결이아름답게표현된다. 인두질을할때는경험적으로적당한온도를가늠하며까맣게타지않도록문지르며살짝태우는것이관건이다. 인두질을끝내면나무표면에탄재를쓸어준다. 댓솔을이용하는데, 대나무를잘게쪼개제작한것이다. 그리고나면헝겊으로문질러서반질반질윤이나게한다. 16) 작업을보다빠르게하기위해서는부탄가스를활용하여태우는방법도있다.

12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사진 8> 인두질 < 사진 9> 인두질후사포질 최 식악기장은울림통에인두질을하는이유를다음과같이설명한다. 우선앞서언급한것처럼울림통을오래보존하기위한것, 그리고연주자를위한것이라고한다. 연주자는어둡게변한울림통의색과대비되는현을보다잘볼수있게된다는것이다. 더불어중요한것은요즘들어다른악기장들이사용하기도하는부탄가스가아닌숯을사용하는이유이다. 17) 그것은미적인측면과관련있는데, 나무의결이최대한 자연스럽게보이도록 즉은은하고아름답게하기위함이다. 이렇듯울림통이완성되면나머지필요한부속장치들을만든다. 6) 하나의구조가완성될때까지 (1) 좌단좌단은거문고의머리부문이다. 거문고는남성의악기로상징된다. 따라서거문고가가야금에비해서좌단의크기도더크고굵다. 현침역시거문고의현 ( 줄 ) 의굵기가더굵기때문에지탱해주는힘에비례해서두께가결정된다. 좌단장식은소뼈와흑단, 화목나무등을사용하여완자문양등을장식한다. 하얗고강한소뼈와검은빛깔을띤장미목, 화류목과함께흑백의 17) 부탄가스를활용하면보다간편하지만나무가너무심하게타버린다고한다. 그리고숯을활용하여인두질할때역시 힘조절 을잘못하면안된다. 손목과팔힘의강도를적당히조절하는것역시장인의노하우이다.

거문고 제작 과정을 통해 본 전통지식의 변화 <사진 10> 좌단 장식(용의 입 문양) 125 <사진 11> 좌단 장식(소뼈) 색깔이 대비되어 장식효과가 크다. 최 은 거문고 테두리 전체를 소뼈로 장식하기도 했다. 좌단 끝(마구리)에는 용두장식을 붙인다. 그는 용의 입을 익살스럽게 장식하여 넣었는데, 나중에는 여의주를 더 넣고 싶다고 한다. (2) 현침 현침은 줄이 직접 닿는 곳이며 동시에 연주자의 손길이 계속 닿는 부분으 로 나무의 재료와 현침의 형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공정을 위해 주로 사용되는 재료는 돌배나무이다. 거문고 줄을 거는 베개 구실을 하 는 현침은 같은 악기장이 만들어도 거문고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따로 표시를 해둔다. 색깔이 진하여 보기 좋은 화목나무 보다는 돌배나무가 단단히 붙는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이 흐르면 화목나무 자체에서 기름이 서 <사진 12> 현침 붙이기 <사진 13> 나무 종류별로 다른 현침

12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서히나오기때문이다. 즉이경우에는예술적인측면과기능적인측면을비교해서최 식악기장은후자를택한다. (3) 용미용미는줄을거는부분이다. 용미의형태가완성되면줄을거는구멍을뚫는다. 이때는구멍의위치를본을대고정확히잡아좌우치우침이없도록주의를기울여야한다. 거문고용미의구멍은모두여섯개이다. 용미가완성되면아교를이용해울림통에붙인다. 용미는줄을거는부속품이기때문에틈이생기지않도록잘맞추어야한다. 붙여놓은울림통과용미, 변등이잘접착되었는지확인되면끈을풀고대패와끌로마무리작업을한다. 아교로접착한부분은자칫벌어질염려가있기때문에끈으로묶어오랜시간 (24시간이상 ) 건조시킨다. 예전에아교의접착력을높이기위해서는복어알등을섞기도하였다고한다. (4) 운족운족은거문고의울림통이직접바닥에닿지않도록봉미아래쪽에붙이는부분이다. 화류나무, 박달나무등강한재질의나무에운족의본을대고모양을내어깎는다. 울림통밑판에운족을붙여거문고를바닥에놓고연주할경우울림통의밑판이찍히거나흠집이생기고닳는것을방지하고, 공명판이바닥에닿지않게하는기능을한다. 18) 오랜과거선조들이제작할당시에는운족이없었다고전한다. 19) 아래왼쪽사진은최 식악기장이효율적으로좌우운족을한꺼번에동일한크기로제작하기위해발명한 운족틀 이다. 동일한크기로제작한운족을울림통뒷판에붙이는작업을하면기울여제작한울림통이기에수평을다시한번맞추어보고대패질을해주어야한다. 18) 오지혜, 전통현악기제작전승과제작기법연구-산조가야금을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2010, 42-43쪽. 19) 위의논문, 43쪽.

거문고 제작 과정을 통해 본 전통지식의 변화 <사진 14> 운족 만들기 127 <사진 15> 운족 다듬기 (5) 대모와 술대 대모는 술대로 타현 할 때 술대받이 역할을 하는 거문고의 목 부분이다. 대모란 원래 거북이 등껍질을 뜻하나 보통 산돼지 가죽을 쓴다. 술대는 대나 무로 깎아 만든다. 대나무 중에서도 산죽이나 신우대가 좋다고 한다. 최 식 은 특히 가느다란 산죽이나 해죽을 삶거나 쪄서 적당한 굵기로 잘라 쓴다. 재료는 주로 모악산에서 구해오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거문고를 타면서도 붓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술대를 사용했던 것으로 짐작한다.20) 대모는 연주 공간의 변화와 밀접하게 <사진 16> 술대 <사진 17> 대모 20) 임수철, 거문고의 악도(樂道), 인문과학연구 제32집,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2, 356쪽.

12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관련있다. 작은사랑방에서소수의사람을상대로한풍류음악의경우는술대가부딪치며생기는소리도하나의장단처럼여겼다고한다. 그러나한옥집의사랑방과같은좁은공간에적합했던전통악기들이대형극장과같은무대에서또는협연으로연주되면서상대적으로음량의크기도매우커져야했고, 협주에알맞게작은잡음도없어야했다. 따라서연주자에따라서내었던술대긋는소리도꺼리게되기때문에점차대모를두껍게제작하고있다. (6) 거문고의여섯현거문고줄은가공하지않은누에고치의생사로만든다. 줄은거문고의소리를좌우하는중요한재료이므로생사의선택과줄꼬기과정에세심한주의를기울여야한다. ( 줄의굵기가다달라요?) 가닥수가다다르죠. ( 그거조금만설명해주시겠어요?) 가닥수가요것이 70가닥정도되요. (70가닥. 얘이름은뭐예요?) 이현이름이뭐냐고? 가만있어봐, 이것이. 자꾸그런것도잊어버려요. 이제. ( 헤헤. 두번째는얼마가들어가요 ) 72가닥, 요것이 36가닥, 요것이약 40가닥근데요것이 102가닥들어간다고했죠. 대현을굵게쓴사람이있고가늘게쓴사람이있고그래요. ( 네그차이는뭐예요 ) 그건저음, 고음. 굵으면굵은소리가나죠. 가늘면고음이나고. 요것하고요것하고는양쪽에선똑같아요. 줄꼬기는 줄꼬는틀 을이용해먼저현의굵기에맞게합사된세줄을꼬고, 꼬아진세가닥실을한줄로단단하게꼬는식으로진행된다. 이때실에는적당하게물을적셔준다. 줄이다꼬인상태에서도물을뿌려습기를유지해준다. 꼬아놓은줄은소나무방망이에감아약 30분가량수증기로찐다. 요즈음은철로만든새로운틀을사용하고있다. 거문고줄은문현 괘하청 괘상청 대현 유현 무현등여섯줄이다. 각현에맞는줄을준비한다음부들을이용해울림통에건다. 부들은무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29 < 사진 18> 현만드는틀 ( 아래 : 예전의나무틀, 위 : 요즘철로만든틀 ) < 사진 19> 두께가다른거문고의여섯현 명실을꼬아만든끈인데학슬이라고부르는고리에명주실현을걸어울림통에연결하는구실을한다. 연주자가거문고줄의장력을조절할때도부들을이용할수있다. 전통적으로부들은보통청색이나자주색으로염색하고학슬부분은색실을이용한다. 하지만요즘은연주자들이갈색계통을선호한다. 즉거문고부속품의색깔에서도시대의유행을엿볼수있다. 부들과연결된줄은현침부분에뚫어놓은구멍과돌괘를이용해고정시켜걸어둔다. 이때부들과줄을연결한다음에는괘에줄을걸수있도록줄의굵기에맞춰홈을파야한다. 안족에올리는현도마찬가지로굵기에따라홈을파서마무리짓는다. 줄걸기를마지막으로악기만들기공정이모두끝나면음정을맞추고술대로줄을쳐서악기의소리를들어본다. 5. 통시적흐름에따른선택과변화 1960년대후반에는울림통을건조시키기위해널어두었다가밤에이슬을맞히지않고거두어들였다고한다. 그런과정을거쳐반절정도마르게되면만들었는데, 완벽하게마른오동나무로만든악기에서나는깊은소리가나지않았다.

13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60년대후반돼죠. 밤에는거둬들이고낮에는널고그랬어요. 밤에는이슬이내리니까. 그렇게말리다보니까반절말리면만들기시작했어요. 반절말르면반더덕? 이라고그러죠. 그때만해도소리가나죠나기는나는데. 지금같이완벽하게마른나무한테서나는소리가아니죠. 그때당시에는물기만없어져버리면만든거예요. 그냥. 그러니까가서보면틀어져가지고막덜거덩덜거덩삐뚤어져서덜렁덜렁놀고, 또뒤집어지기도하고. 사실은그렇게됐었어요. 아교는전통공예의상징처럼생각되고있다. 이미많은악기장들이본드를사용하고있기때문에자신들이만든작품이 전통방식을고수했다 라고강조하기위해서는아교로만든것임을주장한다. 그리고지금도대회에출품하기위한작품은꼭아교를사용하여제작한다. 어찌됐든옛방식은아교를주로사용하였는데, 장단점이있다. 아교는매우강한접착력을가지고있지만작업하는온도가일정해야하고, 완벽하게붙는데걸리는시간이길다. 최 식악기장의설명에의하면 24시간이지나야붙는다고한다. 오랜세월이가다보니까그것이폐기가. 아교붙였던것도지금은본드로붙이지만그때는아교아니면쓸수가없었어요. 사실은요. 전부아교로. 아교는 24시간이지나야솔지. 또안솔아요. 물기가있으면또더안솔죠. ( 안붙죠 ) 아교는그래도.. 노끈으로묶어두니까붙죠.. 이렇듯지금까지살펴본최 식의거문고제작과정에서주목할점을몇가지정리해보면다음과같다. 우선전통제작방식에서현대방식을도입한과정은다음과같다. 첫번째재단과정에서의기계도입이다. 예전에는톱으로하나하나잘라야하는것을기계화하였다. 이것은악기제작과정에서소요된긴시간을단축해주었다. 그리고수작업으로했던경우보다는더견고하게재단할수있는장점이있다. 두번째접착제로본드를사용하기도한다. 본래악기제작에서접착제로는아교를으뜸으로삼는다. 본드를사용하는이유는악기의가격을맞추고,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31 제작시간을단축시키기위해서라고한다. 그리고아교를사용하기위해주변온도를일정하게맞추어줘야하는수고로움도덜수있다. 하지만최 식악기장은접착력을강하게하기위해서는아교가훨씬좋다고강조한다. 세번째사포질을대신할수있는기계를도입하였다. 거문고를만드는데사용되는도구는톱, 끌, 칼, 줄, 사포, 댓솔, 대패, 유리, 망치, 못, 아교 (or 본드 ), 붓등이다. 그중에서도특히끌, 줄, 사포, 댓솔, 대패, 유리는어느정도모양을갖춘재료의표면을부드럽게다듬기위해사용된다. 그런데이제사포질을대신해줄기계가도입되어보다편하게작업을할수있게되었다. 특히면적이넓은뒷판등의사포질은기계로대신할수있다. 네번째위판과뒤판을붙일때틀어지지않고제대로건조시키기위해서흰색노끈으로묶어두었는데, 이제는검은색고무줄을사용한다. 왜냐하면고무줄은신축성이있어, 통을감아두기더욱용이하다고한다. 그리고여러차례사용해도재질의특성상강도가쉽게변하지않는다. 지금까지악기제작과정에서악기장의풍부한다면적지혜를살펴보았다. 이처럼전통공예제작과정에서전승되고있는지식과기술은과거스승에게배운것에머무르지않는다. 자연환경적 사회문화적영향과상호작용하며, 오랜기간악기장의 감각적영역 에관여하며새로운경험과전통지식을창조하는것이다. 마지막으로악기는소리만잘나면되는것이아니다. 연주자가연주하기가장편하도록고안되어져야한다. 예를들어거문고의경우울림통을한쪽으로휘게하는기술, 괘를한쪽으로휘도록붙이는기술, 대모를붙이는방법, 운족을붙이는기술, 울림통을인두질로태우는기술, 부들의색깔선택등은연주자에대한악기장의배려가가장돋보이는부분이다. 이중일부는과거부터지금까지고수해온전통지식이기도하지만일부는변화된환경에적응하며새롭게창조되고있는전통지식이기도하다.

13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6. 결론 지금까지거문고악기제작의전과정을세밀하게살피어, 악기의기능적인측면뿐만아니라상징적인측면도밝혔다. 악기장의전통지식은스승의가르침과더불어새롭게바뀌고추가되고있는 경험적지식 들을포함하고있다. 나무의종류, 재질, 크기, 부위에따른정보를중요하게담고있는데, 그것은고정된지식이아니라환경과사회문화적변화에따라끊임없이변화하고있는지식이라는것을확인할수있다. 무형문화유산은 1990년이후지속적으로국제사회의주목을받고있다. 살아있는유산 (living heritage) 으로써무형문화유산의가치는국제사회에서새롭게인식되고있다. 더불어그중요성이확대되었음을공인하는사업21) 과협약22) 들이채택되고있다. 무형문화유산의범주에있는악기제작전통지식과기술역시 살아있는유산 으로볼수있다. 거문고는 5세기이전에고구려에서만들어진현악기로고구려고분벽화에서는거문고의원형으로보이는현악기와악기의연주그림이그려져있어중요한자료를제공하고있으며, 이후고려와조선시대를거치면서궁정과민간에서크게애호되어우리나라의대표적인현악기로자리매김되었다. 23) 선비들의올바른지식과건강함양을나타내는문현 ( 文鉉 ) 과무현 ( 武鉉 ), 큰뜻을기리는대현 ( 大鉉 ), 온갖세속적가치에서벗어나자유로운삶을갈구하는유현 ( 遊鉉 ) 이라는이름을두고그줄들을울릴때꿈꾸는이상세계가펼쳐진다고생각한것이다. 24) 삼국사기 에고구려재상인왕산악이거문고를제작하여 100여곡을작곡하고연주하였더니검은학이날아와춤을추어 21) 1997 년유네스코제 29 차총회에서는 인류구전및무형유산걸작선정사업 (Proclamation of Masterpiece of the Oral and Intangible of Humanity) 을시행하기로결정함. 22) 2003 년유네스코제 32 차총회에서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을채택함. 23) 국립중앙과학관과학기술사연구실, 겨레과학기술조사연구 - 가야금과거문고, 석천문화사, 2009. 24) 주재근, 1900 년우리악기이야기파리, 그리고거문고, 월간문화재 34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3, 10-11 쪽.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33 현학금 ( 玄鶴琴 ) 이라하였으며, 후에학자를빼고현금이라하였다는재미있는설화가있다. 25) 이를통해고구려사람들또한아무나할수없는상서로운악기라고여겼음을짐작할수있는데, 이정신은후대에도계속이어져조선시대뿐만아니라지금도여전하다. 거문고에는예술성과실용성그리고상징성이두루담겨있다. 시대의흐름에따라, 그당시연주자의취향및연주공간의특징, 그리고인기있는악보의유행에반응하며제작방식은계속해서변해왔다. 그러나기본적으로변하지않고지켜져야할원칙은있다. 시대변화에따라서다양하게개량되기도하며, 도구의발달로제작공정이보다쉬워지고있지만, 무엇보다도악기제작과정에서지켜야하는것은악기장의연주자에대한배려, 악기에서가장중요한소리와관련된전통지식과감각기술, 그리고전통적으로내려온예술적인가치관이다. 악기제작과정에서그동안많은연구자료에서는악기장개개인의전통지식에대한조사내용과해석을비중있게다루지못했다. 앞으로는특히교육적인측면에서지식과지혜에좀더초점을맞추어소개할수있어야한다. 특히주제 26) 와스토리중심으로정리해두면학생부터일반인에이르기까지교과서및다양한교재로활용할수있는가능성이무궁무진하다. 근래에들어강조되는 지속가능한발전 은멀리있는것이아니라조금만관심있게지켜보면우리주변곳곳에서잠재적가능성을찾아볼수있다. 특히선조들이남긴전통지식이더욱그러하다. 2013년발리에서열린세계문화포럼은지속가능발전의 3대축인경제발전, 사회통합, 환경보전에미치는문화의영향에대해집중토론했다. 27) 또한국제문화기관들은 Post-2015 개발프레임워크를구축할때문화를지속가능발전의네번째축으로인정해야한다고 25) 위의책, 11 쪽. 26) 본문의내용을토대로몇가지사례를소개해보면 1) 낭글낭글낭낭소리가나게하는 전통지식, 2) 연주자를배려하는악기, 3) 여의주를물고싶은 거문고등을들수있다. 27) 아난야바타차리아, 지속가능한발전을위한촉매제로서무형유산 NGO 활성화, 2014 무형유산국제회의 - 아태지역무형유산보호를위한효율적역할, 아태무형유산센터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 260-262 쪽.

13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주장한다. 28) 그러나지금까지문화는지속가능발전목표 (SDGs) 의중심영역에서배제되어왔다. 29) 제도 정책적인차원에서무형문화유산의가치증대와보전에관련된다양한역할을수행하는것에힘을실어주고탄력을받도록하기위해서는연구자들역시장인들의전통지식발굴과해석에적극적이어야한다. 본고에서밝힌거문고제작과정에서드러난전통지식은다양한분야로활용할수있는기본자료가될것이다. 그리고하나의사례를촘촘히들여다보며조사한과정과인문학적의미부여는앞으로다른무형문화유산의종목에도응용되어야할중요한시각과방법론이될수있을것으로기대한다.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악기장, 민속원, 2006. 국립중앙과학관과학기술사연구실, 겨레과학기술조사연구-가야금과거문고, 석천문화사, 2009. 국립전주박물관, 전통을잇는전북사람들공장인 ( 工匠人 ), 국립전주박물, 2002.. 김복곤, 전통현악기울림통제작에관한연구, 중앙대예술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2. 김소리, 국악기현의제조현황및표준화, 제3회국악기제작아카데미워크숍, 국립국악, 2009. 김영대, 가야금줄의제조와규격화에관한고찰, 제3회국악기제작아카데미워크숍, 국립국악원, 2009. 문화재청사업보고서, 무형문화유산온라인전수조사, 전북대학교20세기민중생활연구, 2011.. 박성용, 무형문화유산의보호와지적재산권에관한주요이슈, 무형문화유산보호와지적재산권동향과과제, 아태무형유산센터, 2010. 서인석, 장구제작기법에관한연구, 명신대학교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10. 아난야바타차리아, 지속가능한발전을위한촉매제로서무형유산 NGO 활성화, 2014 무형유산국제회의 -아태지역무형유산보호를위한효율적역할, 아태무형유산센터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 안토니오아란테, 무형유산 NGO 네트워크중요성과미래방향, 2014 무형유산국제회의-아태지역무형유산보호를위한 NGO 의효율적역할, 아태무형유산센터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 28) 위의책, 262 쪽. 29) 위와동일.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35 양대승, 전통지식, 전통문화표현물과의비교적관점에서본무형문화유산의개념과특성, 무형문화유산보호와지적재산권동향과과제, 아태무형유산센터, 2010. 이종덕, 전통방자유기제조와그개선방안에대한연구, 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석사학위논문, 2004. 오지혜, 전통현악기제작전승과제작기법연구-산조가야금을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2010. 이재필, 무형문화재기록보존의쟁점과과제, 인문콘텐츠 제19집, 2010. 이혜진, 무형문화유산의보존과활용, 전주아시아 태평양무형문화유산축제학술세미나-무형문화유산의산업융합과활용가능성, 전주시, 2012. 임수철, 거문고의악도 ( 樂道 ), 인문과학연구 제32집, 강원대학교인문과학연구소, 2012. 정성미, 전통공예의전승과변화, 실천민속학연구 제20호, 2012a, 193-233쪽. 정성미,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무형문화유산의전승양상과변화에대한고찰, 지방사와지방문화의재구성방법 : 기록과구술의이중주, 역사문화학회춘계학술대회발표자료집, 2012b. 정성미, 지속가능한풍류방문화와풍류객의정체성에관한연구, 지방사와지방문화 제17권 1호. 2014. 정성미 이민석, 유무형문화유산의조합된가치창출및활용방안연구, 제1회문화유산창의적활용학술심포지엄자료집,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3. 정준모, 오래된미래란, 월간문화재 338,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1, 4-5쪽. 주재근, 1900년우리악기이야기파리, 그리고거문고, 월간문화재 341,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3, 10-11쪽. 최공호, 국악현악기의제작과재료의변용, 국악원논문 제17집, 국립국악원, 2008. 투리아나시리바카야와, 무형유산 NGO 의효과적인역할 : 정부와공동체, 2014 무형유산국제회의-아태지역무형유산보호를위한 NGO 의효율적역할, 아태무형유산센터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4. 함한희외, 무형문화유산의현대적의미찾기,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 BK21사업단, 2007. 국립국악원의악기연구소 : www.gugak.go.kr 무형문화유산아카이브즈 : http://www.koreaich.org/main/

13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ABSTRACT Study on Change of Traditional Knowledge through Akgijang s Life History and Production Process of Geomungo 30) Jeong, Seong Mi* This paper investigated and analyzed various traditional knowledge and sense technique through researching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akgijang. When dividing and researching traditional knowledge and technique in two aspects, technique must be transmitted by more professional group, however, traditional knowledge is different. Now it s time to escape from the fixed idea that specific people must learn and transmit traditional knowledge. Because traditional knowledge includes relationship between natural environment and human activity, and universal value and wisdom of various culture derived from it. Traditional knowledge cannot easily found. Therefore, in-depth investigation is necessary to know the various knowledge which consists of the specific subject, and its progress of change should be exactly understood and compared, since it ceaselessly changes due to its attributed. Geomungo, also, is the fruit of cultural act created by human, which is followed by diversity and relativity.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transmitted from the past is delivered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which is different from tangible heritage as relics. The purpose which this research ultimately pursues is to understand the principle of transmission pattern of traditional knowledge which is ceaselessly changing * Chonbuk National University

거문고제작과정을통해본전통지식의변화 137 through instrument production method(skill). Akgijang highly regards the secret method of making beautiful sound, production technique which considers the player, and artistic formative beauty which contains traditional touch, and still sticks to his own intrinsic sense technique and craftsmanship. Now it is necessary to extend the discussion to what the sensual and empirical knowledge and technical imagination are, besides measurable and estimative thing as size. In order to investigate that point, this paper more concretely researched in which field the craftsman s special wisdom, artistic sense, and individuality, where long-time know-how is accumulated, is contained and realized, in the series of production process of geomungo, e.g. selection and drying of the material, manufacture of soundbox, part production, coating task, string manufacture, pattern and decoration, assembly, etc. Key Words : Intangible Cultural Asset, Geomungo, Akgijang, Traditional Knowledge, Technique

무형유산연구제 1 권 139~160 쪽 2015.5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 31) 이정훈 ** < 차례 > 1. 설화연구성과검토 - 현장 과 작품 사이의진자운동 2. 설화의무형문화유산적독해 3. 설화의무형문화유산적연구방법론네가지 [ 국문초록 ] 무형유산에관한관심은유네스코를중심으로전세계의문화적다양성을보호하기위한일환으로시작되었다. 설화는유네스코가선정한 7개범주중에 구전전통및표현 에속한다. 구비문학에관한일반적인정의에비해무형유산적특징에는 구전 전통이강조된다고할수있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는현장성이강조된다. 이글은이전의설화연구방법론에무형문화유산이라는새로운코드를접속한글이다. 이것을위해서먼저기존설화연구의성과를검토하였다. 설화연구는구전되는 현장 을강조하는측과 문학 이라는입장으로대별된다. 이양극의스펙트럼에는문화컨텐츠와이야기꾼발굴등의다양한분야가포함된다. 그렇지만구비문학이라는명칭에서알수있듯이, 설화연구의가장큰이슈는현장을섭렵하는것과텍스트의분석력으로귀결된다. 반면, 설화를무형문화유산적관점에서바라본다는것은첫번째는 말 의권위를회복하고구전의현장을확대하는것이다. 두번째는설화문화의약자주의적특성을부각시키는것이다. 세번째는설화의전통을계승시킬수있는방법론을개발하고이야기구연능력을전문적인기예로자리매김하는것이다. 위와같은설화의무형문화적특성을토대로, 구체적으로설화연구방법론을모색해보자. * 이논문은 2013 년정부 ( 교육과학기술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 과제번호 NRF-2013S1A5B8A01072201). **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

14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첫째는무형문화유산의공동체성과설화연구를결합하는것이다. 문화인류학적현지조사를수용하여설화채록의단위를공동체로선정하는것이다. 둘째는구술텍스트의권위를확보하는것이다. 채록된설화의원형을확정하는과정을통해누락된개별구술텍스트의문맥을살려연구텍스트로삼는것이다. 셋째는이야기의전문성을강화시킬수있는제도적기반을마련하여이야기구연능력을무형문화재차원까지연결시키는것이다. 넷째는설화채록의테마별접근이다. 무작위적설화채록은 2차연구자들의분석을거쳐야만가치를얻는다. 지금까지채록한설화를활용하여현지조사의내용을테마별로접근해야한다. 이러한제안은기존의민속학과문화인류학적방법론을설화연구방법론에적용한것으로, 문학과현장의결합을시도한것이다. 이러한제안을통해더욱활발한논의가시작되길바란다. [ 주제어 ] 설화연구방법론, 무형문화유산, 약자성, 급진성, 정태적, 인류학, 민속학, 현장, 작품 1. 설화연구성과검토 -현장(Context) 와작품 (Text) 사이의진자운동 ( 振子運動 ) 무형유산에관한관심은유네스코에서주도하고있다. 특히 2003년파리에서채택된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은사라져가는무형문화유산의보호를위한구속력있는다자간규약을위한것이었다. 이로부터인간의얼굴을한세계화를모토로문화적다양성과독자성을보호하기위한노력이진행되는데, 이러한관심이증대되면서아이러니하게도자국의무형문화유산을유네스코에등재하기위한경쟁도치열해졌다. 설화는무형문화유산의하위범주에서도 구전전통및표현물 에포함된다. 설화의전승수단이 말 이며문자이전의시대에도존재하는인류의유산이라는사실을떠올려봤을때,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적성격은쉽게가늠할수있다. 이글은이러한사실을좀더확장하여설화를무형문화유산이라는관점에서연구한다는것이무엇인지를검토하는것이다. 이전의설화연구방법론에새로운코드를접속한하면서도세계적으로무형문화유산에관한관심이높아지고있는경향을반영한것이다. 기존의설화연구는문학적영역이었다. 물론민속학적현지조사도시행되지만, 설화분석에관한것은문학적분석방법이주였던것이사실이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41 한국의근대제도와마찬가지로, 대학도서구에의한개화와식민지시대를거쳐서서서히정립된것이다. 국문학도역사적변동을고스란히겪으며시대에따라분과가나뉘기도하고통합되기도했다. 국문학에서설화연구역시이와마찬가지다. 더군다나국문학은명칭에서알수있듯이, 조선의혹은자국민의정신을담고있는위대한문학이라는민족주의적의미가배어있다. 이러한강박적태도가국문학초기에한문학을국문학으로간주할수있느냐의논쟁까지연결된다. 설화는이런점에서국문학의정수라고할수있다. 하지만아이러니컬하게민족주의적열정을배신하듯, 설화는근대적소설보다는유치하고불완전한것이라는인식도일반적이다. 글자 ( 활자 ) 의위력에의해상대적으로구어의입지가좁아진것도있고, 형식적단순함, 상투적인세계관등이문자적기준에익숙한현대인의미감을만족시키기어렵기때문이다. 설화연구의시작은국문학의기초를다졌던 1세대학자들 ( 장덕순 황패강 ) 의博學多技한영역속의한분야에서출발한다. 특히대학의전공과목으로구비문학혹은구전문학이라는영역이설강되면서본격적으로설화연구의방법론이모색되었다. 그런데재미있는사실은이들이써놓은서문에서옛이야기, 설화는할머니나어머니에게전해들은따뜻한기억과고향에대한추억이함께언급된다는사실이다. 1) 본격적인설화연구는전후본격적으로대학사회가기틀을잡는시기부터시작되었다. 이중에서조동일이나김열규는설화를연구하는방식에서새로운시각을제시한학자들이다. 현재는이들로부터설화나신화연구의중요성을배우고해석의힘을얻은연구자들이산출한연구업적이쌓여있고, 그만큼의독립된학문분야로자리잡고있다. 설화를단순한옛이야기혹은동화라는인식으로부터분리시키고문학작품으로연구할수있었던요인중에하나가구비문학대계의간행이다. 2) 특 1) 1971 년에초판으로간행된구비문학개론서문에서도장덕순은자신의학문적출발점을할머니의이야기듣기에서찾고있고, 김열규역시자신이지적호기심이할머니의무릎에앉아서듣던 이야기 로부터시작되었음밝히고있다. 2) 전국구비문학자료조사보고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80-1992 년에걸쳐간행하였다. 82 책이며부록이 3 책이다. 2009 년부터는한국학중앙연구원과안동대학교에서 3 단계 10 개년계획으로진

14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히전국적으로퍼져있는이본들을손쉽게열람할수있고, 서사의원형과구조분석을가능하게해준것도바로구비문학대계다. 구비문학대계는 80년대민중과민족문화에대한문화적각성에의한학문적산물이기도하면서, 민속학적현지조사의결과물이다. 설화는국문학과민속학의영역에두루관련을맺고있다. 하지만민속학적연구가현장과공동체중심으로진행되고있는동안에, 설화는책상에앉은연구자의상상력에의존한연구가많아졌다. 게다가현재는구비문학대계의자료를전산화하고인터넷으로열람할수있기때문에더욱현지조사없는정태적연구경향이고착화되고있다. 기존의설화연구방법론은민속학적방법론과서사학적접근방식으로나뉜다. 민속학적연구는현지조사를토대로연구를진행하는것이다. 3) 예를들면이야기꾼에관한관심도그중의하나다. 4) 설화가현장의문학이라는사실을강조하는것이며이야기구연능력을연행적속성으로접근하려는것이다. 민속학적방법론의장점은현장성과구전성을겸비한연구방법이라는것이다. 하지만이와같은방법은현장성이지니고있는시공간적제약을극복할방법이없기때문에장기적으로채록해야다수의결과물을얻을수있는입체적인연구가가능하다는단점을지니고있다. 그래서자칫민속학적연구방법론은현장보고나자료의나열로도한편의논문이완성되기도한다. 설화가서사문학의보고라는점에서전통적인문화분석방법론과긴밀히연계될수있다. 이러한문학적방법론에는크게세가지경향이있다. 첫째 행하는 한국구비문학대계개정 증보사업 을진행하고있다. 또자료의 DB 화를통해더욱편리하게자료를검색할수있다. 3) 구비문학혹은설화연구에서현지조사의결과물은 1980 년대를기점으로많은결과물이양산되었다. 대표적인연구자로서는임재해, 최래옥, 서대석등의학자들이설화현장에관한기록과연구를시도하였다. 이중에서도임재해는설화의현장론적연구라는책을통해서기존의구조주의적서사분석틀과구연의현장을접목시키려는논의를진행하였다. 현장과작품자체의분석이라는큰틀에서연구자의다양한입장이넓게포진된상황에서, 임재해의이러한통합적연구이론확립시도는의의가크다고할수있다. 4) 이러한연구경향은문학적연구방법론보다역사가길고현재에도일정한흐름을형성하고있다. 대표적인논문은 구전설화의변이양상과변이요인연구 : 익산지역이야기꾼과이야기판을중심으로 ( 강진옥 김기형 이복규, 2002), 경기전이야기꾼김달봉연구 ( 김승필, 2003), 전통이야기꾼의유형과성격연구 ( 신동흔, 2011) 이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43 는서사학적전통과언어학 / 기호학적이론으로, 서사의기본구조를규명하는방법이다. 이연구방법론에서는화소를정리하고기본형을확정한다음에변이형과의비교를통해서이야기의구조를규명하는작업이다. 설화가시대를초월하여구술자들의기억에유전자처럼기억되는이유를바로서사구조에서찾는것이다. 둘째는역사주의적접근이다. 인류학의전파론적태도를수용하여, 전세계적으로분포한이야기를대상으로, 각문화간의전파경로를추적하는것이다. 설화의초기형태가무엇이며어떤경로를거쳐파급되었는지를밝히는것이다. 셋째는동질혹은이질적문명권의이야기들을비교분석하는것이다. 설화연구의고전이라고할수있는프로프의 민담형태론 이나아르네톰슨의 설화형태론 을통해알수있듯이, 어떤유형의설화는전세계적으로구전되는구조적동일성을지닌다. 이에한국의설화와동일구조를지닌유형의이야기를비교분석하는논의들이있다. 설화의비교연구를바탕으로문화적차이점까지고찰하는경우가많다. 이외에도스토리텔링기법을기반으로설화를연구하는경우도있다. 스토리텔링은 1995년미국콜로라도에서열린 디지털스토리텔링페스티벌 을계기로알려지기시작했다. 5) 하지만김영순 (2011) 이그의책에서지적한것처럼스토리텔링자체에관한학문적인연구는사라지고, 이야기를통해서무엇인가를효과적으로얻어낼수있는일종의기법혹은화법의이칭으로통용되는경우가많다. 스토리텔링과설화의관계에서는특히이러한점이두드러진다. 이야기의상품화는자본의논리를수용한실용적논리다. 엄밀한의미에서스토리텔링은설화본연의구전성이나문화적함의에관한것이라기보다, 이야기라는매체가지니고있는효율성을극대화시켜그쓸모와활용방법을연구하는것이다. 지금까지의논의를정리해본다면, 설화연구방법은현장과문학작품이라 5) 김영순은스토리텔링이국내에소개된지 20 년도되지않아대한민국에서모든분야에사용되고있다고말하고있다. 이어많은연구자들이스토리텔링에대한분명한정의를찾아보기는쉽지않지만그개념에대해암묵적인동의를바탕으로용어를사용하며연구를진행하고있다고지적한다 ( 김영순, 스토리텔링의사회문화적확장과변용, 북토리아, 2011, 21 쪽 ).

14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는양극에서벌어지는진자운동이라고할수있다. 진자운동은물체가하나의점을중심으로흔들리는것으로, 한순간에존재할수없고움직이는시간이필요하다. 6) 그리고근대역학에서진자운동은마찰을제거할수있다면진자운동은끝없이지속할것이라고한다. 7) 설화연구방법은현장과문학텍스트사이에서움직이는끝없는진자운동이다. 설화의현장접근이나문학텍스트분석은서로동떨어져존재한다. 이중에서도스토리텔링에관한연구는현대적활용과기능적활용도를중시하기때문에진자의움직임이가장빠르게움직이는영역이다. 설화연구자는즉각적으로사라지는구연의현장을기록하기위해동분서주하거나, 작품의저층을형성하는겹겹의의미망을 논리 로풀어내기위해자신만의방에서서성이며골몰하게된다. 그리고공기의마찰과우연성으로인해어느순간진자운동이멈추게되면, 자신의연구방향성이현장과작품분석사이의어느지점인지파악하게될것이다. 2. 설화와무형문화유산적독해 설화가지니고있는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무한가치성은이미임재해에의해언급되었다. 8) 그는숭례문방화사건과서울청사파괴사건을실례로삼아유형문화재보존을가능하게하는힘이문화를소중하게여기는무형의 6) 박진, 진자운동이수직지면반력에미치는영향, 한국운동역학 10, 한국운동역학회, 2001, 47 쪽재인용. 7) 박병기, 헤겔자연철학과진자론, 철학과현상학연구, 철학과현상학회, 2008, 168 쪽재인용. 8) 디지털시대일수록무형문화가문화콘텐츠로주목받는다. 무형문화가운데도신화와전설, 민담등을포함한설화는 21 세기문화산업을이끌어갈핵심자원이다. 문화콘텐츠화방향의두길은아날로그식문화산업과디지털방식의미디어산업이다. 아날로그문화산업인관광축제출판영화연극만화디자인공예등에서도이야기를중요한자원으로삼지만, 미디어콘텐츠창작에는이야기가더결정적구실을한다. 게임이나애니메이션, 캐릭터등은으레이야기와함께가야한다. 따라서감동적인이야기를만들어내는사람이미래산업의주역으로전망된다. 그러므로문화콘텐츠가어느방향으로가든이야기를소중한자원으로안고가지않을수없게되었다. 그런데이야기꾼을적극적으로양성하기는커녕이미있는설화조차제대로수집하고정리하여이용하는초보적인작업조차하지않는다 ( 임재해, 무형문화유산의보존과전승방향의재인식, 비교민속학 제 39 집, 비교민속학회, 2009, 481-482 쪽 ).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45 정신에서나온다는점을피력하고있다. 또한설화를문학적작품으로만파악하려는편리주의적방식에서벗어나야한다는점을지적하면서무형유산으로서의가치를회복해야한다고주장한다. 임재해의주장을적극적으로수용하여설화를무형문화유산으로읽는다는것이어떤것인지를살펴보고자한다. 논의의물꼬를트기위해다소도식적인느낌을주지만, 다음과같이세측면을나누어설정했다. 논의의핵심을정리하면다음과같다. 설화의문학적분석 (F) 무형적특성 ( 가 ) 문화적특성 ( 나 ) 유산적특성 ( 다 ) 전제구전성, 전승수단말은곧문화구어의역사성 적용 1 입말의활성화 약자주의문화활성화 : 화톳불축제 9), 생활관습 구어유산적가치보존과기록 적용 2 입말의전승현장포착정보통제사회에서의대항문화傳奇叟프로그램 적용 3 공동연구듣는문화강화이야기박물관 첫번째논의는설화 (Folklore) 와무형성 ( 가 ) 의결합이다. 설화는전승수단은 구전 이다. 하지만설화가구연되는현장은점점사라져가고있다. 대중매체의문화적흡수력이막강한현대사회에서는면대면을기본으로생산되는이야기문화는위축되고있다. 이런점에서설화의무형적특성을생산적으로활용하기위해서는, 말 의권위가회복되어야한다. 이러한말의문화는인터넷시대의부정적인에너지를누를수있는방법이기도하다. 상생의원리처럼, 부정적인것을억압하지않되긍정적인에너지를세력화시키는전 9) 학술대회발표시에박흥주토론자는설화의무형문화유산의현재성을담보하기위해서인터넷공간이나현대기기의장점을적극적으로활용하는것이어떠한가를지적했다. 인문학의대중성을위해서도, 설화의장점을활용하기위해서과학기술을적극적으로활용해야한다는목소리는매력적이다. 하지만이글의견해는이러한매력과장점을의도적으로외면하고오히려다시 옛날 로돌아가구전의급진성을회복할수있는그 무엇 을위한글이다. 이에대해서는어떤식으로가능할까에대해서는현재로서는알수없다. 하지만그방향성에는장기적인화두로, 구전의舊式이활용될수있는문화의장에대해서관점을고정시킨다는점은확실하다.

14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략인셈이다. 10) 설화의구전성을확보하는것도전체적으로는이러한입말혹은구비의문화가형성되어야가능한일이다. 설화의무형성은구전성의다른표현이다. 설화의무형성을담보하고있는 말 의현장은어디에서나있다. 이것은경제논리나구조적으로소외된곳에서는더욱막강한수단이된다. 이런점에서이러한주류사회의논리에서배제된이야기를기록하는것도중요하다. IT기술이대중들을정보수집의대상으로활용하고있는세상에서오로지 말 로흩어져버리는현장을기록하고찾아가는것이다. 이것은문자가지니고있는엘리트주의혹은로고스중심의미학에서벗어나서가동되는삶의구체적현장을기록하는것이다. 설화의구비전통을부활시키는것은진공의무감각한이야기와정보화된사회속에서혁명적인결과를얻을수있다. 보이지않는정보통제를통해 투명 한독재가시도되고있는시대에유일한반란거리는개인의구체적인입말을 기록 하는것이다. 입말을활성화시키는것은중앙중심의구심력을분산시키는효과가있다. 정치적허무주의역시이것과연결된다. 누가그들을선출했는지가끔모를정도로정치에대한반감과비난을위한정치혐오주의가상투어가된듯한느낌이든다. 그것은자신이선출한결과에대해승복할수없는, 불신의세상에대한반증이다. 다른말로하자면개별적의견이사라지고언론과정보조작이대신투표를하여이루어진정치임을반증해준다. 이러한고착을해결하기위해서도설화의구전성이지니고있는 힘 에주목해야한다. 무형문화는계량할수없다는점에서막강하다. 설화의구전성은구어의파급력과도연결된다. 무형적문화는가시화시킬수없기에그영향력또한논리를초월한다. 설화의관점에서모든사람은무형유산의보고이자무형적자산이다. 대중의말을포착하고기록화하는작업은혼자의힘으로불가능하 10) 최근들어일베나웃대와같은사이트가표면으로부상하면서, 일베사이트를폐쇄해야하느냐마느냐논쟁이일기도했다. 백색의모니터속에서안전한모혐과일탈을즐기는문화를건강하게하기위해서라도육체적이고구체적인체험이강화되어야한다.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0919050203928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47 다. 기록화된문헌을통해문학적으로접근하는일은개인의능력으로가능하다. 하지만유의미한공동체의말의현장을잡아내는작업은공동의연구로동시간대에진행되어야하는경우가많다. 이런점에서설화에관한직관과분석력을겸비하고있는개별연구자들이공동의이슈를선발하고의미있는설화를채록하여성과물을산출하는작업은설화의무형성을유형의결과물로전환시킬수있는시도다. 이처럼설화를무형유산으로파악하는것은설화의현장성을강화시키는일이다. 설화가함의하고있는잠정적인 옛 이야기라는시대적한정을벗어나, 이야기가 말 해지는곳은어디든설화의장이형성된다는인식까지연결된다. 설화의 무형 적성격, 말의복원은이야기의 현재 혹은삶의 현실 까지확보하는일이다. 설화의세계관은정치적이념으로재단할수없다. 설화속에서는흑백논리로나눌수없는상황논리와각각의일리가담겨져있다. 설화가추구하는권선징악이나행복한결말은인간다운삶이무엇인가에대한소박한희망을말해준다. 설화는 문제적개인 이당대사회의구조적모순과갈등을일으키는소설과다르다. 설화속의화자는보다나은삶을희망하기보다, 있는그대로의현실속에서견디는법을말한다. 하지만그들이소유한 말 의순간성과소멸성은지식인의 글자 가지니고있는보수성과는다른개방적세계가있다. 설화문학의구전성이지니고있는적층문학적가치도이것과밀접한연관을맺고있다. 두번째단계로, 설화의문학적접근방식 (F) 에문화적특성 ( 나 ) 을결합하는것이다. 설화는문학이면서문화다. 11) 하지만앞서언급한것처럼설화는문학의영역에서적극적으로연구되었다. 물론설화가이야기라는점에서문화적접근이차단된것은아니다. 하지만설화의정체성을무형문화유산과접목시켰을때는보다적극적으로문화적해석이가능하다. 특히설화를통 11) 레이먼드윌리암스가규정한문화라는용어의범주에는예술과예술적활동으로서의문화, 삶의방식으로서의문화, 과정과발전으로서의문화가포함된다. 설화역시문학이면서문화이다. 그리고시대에따라역사적변천을겪고발전한다는점에서도온전히문화가된다 ( 일레인볼드인외, 문화코드, 어떻게읽을것인가, 한울, 2009).

14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한스토리텔링이나문화콘텐츠화혹은축제적기능을보완해나가면더욱새로운문화적시도가가능하다. 간혹요즘세대들은진지한대화를하지못하고, 연예인이나예능, 드라마에관한쓸모없는이야기만수다떤다고지적하는소리를듣는다. 그러나이와같은현상은자연스러운것이다. 그들이생각이부족해서그런것이아니라, 그들의공동체성을하나로묶어주는것이바로대중매체이기때문이다. 이뿐만아니라은밀한사생활과性적영역까지직캠이라는이름으로안전하게타자의육체적행위를, 여자의치마속을엿볼수있는 안전 한세상이된것이다. 하지만아이러니컬하게이런문화속에서더욱강조되는것이 이야기 혹은 대화 의능력이다. 전통적인이야기공동체나생산자들이사라진상태에서, 오히려공동체주의를실현시키려고노력하거나새로운대안의공동체를찾아떠나는사람들이생겨나는것이다. 이러한현상을다르게표현한다면, 그들이찾는공동체는새로운 말 과 공감 의현장을찾으려는것이다. 12) 그리고현재를적실하게표현하는현장은대중매체나자본이무의식적으로조정하고있는곳에서벗어나있다. 구체적이고개별적인문화현장에서전해지는이야기는선별된정보를자유롭게 (?) 검색하여얻은것과다르다. 이러한현장을직접찾아가기록하는작업이설화를무형문화적으로연구하는것이다. 또한설화의 말하기 기능은 듣기 와연동된다. 듣기의문화가사라지고, 보는문화속에서말하기기능은더욱축소되고있다. 설화의듣는문화를중심으로말하기의기본자산으로삼는것은의미있는일이다. 13) 설화의문화는약자의기록이기도하다. 문화는사람다움과삶의반영이다. 설화역시삶의현장을통과하여나온서사물이다. 설화의문화적가치는이러한개별적이며구체적인삶의반영이라는점에서발현된다. 역사는늘승자의입장에서기록된 사료 로존재한다. 하지만패자의삶은지워진역사 12) 올더스헉슬리가쓴 멋진신세계 에서모든고통과불쾌함을제거한표백된신세계에서 고통 받을권리를외치며순교하는야만인존의모습도이와같다. 13) 이와함께, 듣기 - 말하기협응이전에침묵과소리단계의문화도필요하다. 최근에기획된멍때리기대회도이와같은침묵과고요를견디는힘을회복하는것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5500.html?_fr=mt3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49 속에서, 기억과구술을통해서복원되어야한다. 과거로부터전해오는설화는구전을통해문자이외의삶을기록하고있다. 이런점에서설화에서전하는문화는약자들의지워진목소리가반영된것이다. 물론설화에는영원한강자도약자도없다. 약자가되어궁지에몰린상황만있을뿐이다. 호랑이도, 원님도늘강자의위치에만있지않다. 호랑이가사람보다나은효를보여주거나원님이비단을강탈당한가난한장수의곤란을해결해주기도한다. 하지만설화에는늘힘이없고곤경에빠진자들이나온다. 그들은자신의꾀로, 누군가의도움으로, 저절로어려움을극복하고살아있는것만으로도감사하며산다. 설화속에서약자들이강자들의법칙과싸우는꾀와논리는약자문화의유쾌함과연결된다. 14) 설화의무형문화적접근은다양한방식으로현실과접목되지만, 거대역사속에서배제된무명씨들의 목소리 라는점을고려했을때는약자주의적문화15) 를활성화시킬수있는자산이기도하다. 16) 이야기의욕망은늘현재적이며유동적이다. 아무나이야기할수있는자유는 생각 의범위와연결된다. 금기설정과위반, 성공의이야기가통용되고약자들의목소리가이데올로기적긴장감없이해학과함께퍼질수있다면, 설화의사회적기능이문화적인의미까지겸비한것이다. 세번째단계는설화의문학적접근 (F) 과유산적가치 ( 다 ) 가결합된것이다. 최근에세계적으로주목받고있는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지정과관련하여설화혹은구비전통유산의발굴과보존, 전수의역할을감당할수있는분과가요구되고있다. 구비전통의사회적역할을재고하고정책적으로지원하여적극적으로새로운전통을창출하고무형문화유산을보존할수있는분 14) 바흐친이제시하는중세카니발이론의다성성도이와같은맥락과연결될수있다. 15) 최근한겨레에실린기사중에공선옥의신간을두고약자주의의변주라는표현을쓰고있다. 여기서약자주의는공선옥이데뷔이래천작해온, 가난하고힘없는사람 ( 여성 ) 의삶을다룬이야기를말한다. 이글에서도이와같은뜻으로, 설화속에등장하는가난하고힘없는평민, 노비등의삶과그들의세계관등을약자주의라고말하고자한다. 16) 일명화톳불축제와같은, 문화적정체성과지향점을표방하는축제가필요하다. 바흐친이그의저서에서탁월하게지적했던것처럼축제는사회의안전망이면서사회변혁의힘으로기능하기때문이다. 단순한오락과체험위주의천편일률적인축제나이데올로기적집회와같은모임이아닌, 어떤공동체적지향성을추구하는색깔이있는축제를시도해야할때이다.

15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위기가형성된것이다. 앞서언급한것처럼 말 로전해지는구비전통이나표현물은긴박하게기록하고보존해야할분야이다. 장인이나전수자의사명의식으로전통을유지할수있는유산에비하면, 말로전해지는구비전통혹은설화는이야기가전수되는생산장이형성되어야만유지된다. 예를들어중국의만주족신화의전통은신성한이야기를전승했던가문 ( 부찰씨 ) 이있었기에가능했다. 기존의설화의문학적연구방법에서는이러한유산의발굴과보존의역할을시행하기어렵다. 학자의개인적역량에의존한연구경향때문이다. 설화와유산을접목시킨연구는두방향으로진행된다. 이전부터전해오는입말의전통을찾아내서발굴하고보호하며전수의체계를마련하는것이다. 구어는현장에서곧소멸하고기억속에재구성된다는사실을유념하면서, 망각의터널을빠져나와생존한 말 ( 이야기 ) 를기록하는작업이필요하다. 기본출발은서사구조를지닌이야기를채록하는것에서부터사라져가는민간의역사와삶을기록하는작업도포함된다. 특히식민지배와전쟁, 가난등을온몸으로겪었던세대들의기억을복원하고기록하는작업은시급히시도되어야한다. 이뿐만아니라, 최근에시도되고있는傳奇叟양성프로그램17) 이나이야기할머니등의문화가이러한전통을이어받은것이다. 두번째는이야기전통이획일화되고있는자본주의적시스템에서벗어난입말의전통을현대적으로계승하는것이다. 이전의원시사회에서모닥불을피워놓은어둠과공포의시간을견디게하던그이야기의위력을다시확인할수있는기획이필요하다. 이러한전통은일용직노동자들이대기하고있는새벽인력시장의화톳불처럼이야기와삶이밀접한환경에서발현된다. 18) 이러 17) http://www.voakorea.com/content/a-35-2009-04-10-voa12-91372249/1322995.html 전기수에대한라디오방송. http://www.seoul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17875 서울전기수 http://gjdream.com/v2/news/view.html?uid=443063&news_type=207&paper_day=20121129& code_m=2&list_type=2 전기수양성프로그램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828022001 충북무형문화재등록전기수 18) 구전전통과표현물의가장중요한역할은사회에서무형문화유산이일상적인역할을계속유지하도록하는것이다. 지식이사람들간에전해지는기회, 예를들어연장자가젊은이들과어울리고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51 한기회를체험할수있는설화의문화공간혹은이야기박물관같은시도도필요하다. 수동적이고폐쇄적인매체경험에서벗어나, 의사소통의 3단계를문화적으로경험하는것이다. 구비의전통유산이어떤환경에서비롯되었는지를느끼게하는것이다. 예를들어, 침묵, 듣기, 말하기, 대화하기, 이야기하기, 등등의다양한말의단계를체험할수있는콘텐츠를개발하는것이다. 지금까지의논의를통해서설화가지니고있는구전성이지니고있는가치를살펴보았다. 문자의분석적이며추상적세계관에비하면구전은가변적이며상황의존적이다. 19) 인터넷을통해집합된정보중심의세계인식태도는문자적논리와는또다르게감각적이고파편적이다. 설화의구전성은대중매체와인터넷문화의과도함을보완할수있는대항문화적가치를지니고있다. 이야기생산장을확보하여개인들이서사성을통해메시지를비유적으로전달하는방식은저마다의 일리 로소통되는잠재성을지닌문화라고할수있기때문이다. 또설화는당대의생활관습과지식체계, 세계관이문학적으로투영된문화이다. 설화에는기록화된역사에서누락된다수의이야기가보존되어구전으로유전된다. 물론설화는정치적이데올로기 ( 진리 ) 와무관한다양한입장들을대변한다. 그러나구전된설화의저작권을주장할수없듯이, 설화의발생은거대담론에서 지워진 약자들의음성에서비롯된다. 설화의약자주의적문화는무형문화유산을예술적혹은공연적대상으로간주하는관행과는맞지않는다. 하지만무형문화유산의약자주의적문화는유형과는차별된특성이다. 이런점에서설화문화의약자주의적성격은적극적으로강조해야한다. 설화와유산적성격은제도화나전통계승차원에서접근한것이다. 무형문화가현재적함의를지닌것이라면, 무형유산은전통적이며과거계승적성격 가정이나집에서이야기를전할기회가유지될수있도록하는것또한중요하다. 구전은흔희축제나문화적축전에중요한일부이므로이러한행사들을촉진할필요가있다. 또이야기축제와같은새로운맥락을장려하여전통적인창의성을새롭게표현하는수단을찾아야한다 ( 문화재청 아태무형유산센터, 한국어판 2003 년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해설집, 87 쪽 ). 19) 옹이정리한구술문화의특징은다음과같다. 첨가적 / 집합적 / 다변적 장황스러움 / 보수적 전통적 / 일상생활과밀착 / 논쟁적어조 / 감정이입적 참여적 / 항상성 / 상황의존적.

15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이강하다. 원형을고구하는일도이에속한다. 설화유산을전문화된영역으로인정하여그내재적속성을활성화시킬수있는제도적기반이무엇인지를살펴보는것이다. 이러한작업을위해먼저설화의전문성이무엇인지에대한논의가있어야한다. 다음장에서는앞서전개한설화의무형문화유산적독해를기반으로구체적인연구방법론을제시하고자한다. 설화연구는현장과작품분석의스펙트럼에서연구자개인의선택에의해결과물을산출하면된다. 다음장은이러한기존의성과를확장하여무형문화유산적연구방법론이무엇인지를적극적으로모색한것이다. 3. 설화의무형문화유산적연구방법론네가지 무형문화유산은모든학문적영역을포함할수있다. 유네스코에서지정하는범주20) 를참조하더라도무형문화유산은 무형 이라는포괄적인속성을공유하는삶의모든영역, 문화를설명하는개념이다. 하지만우리나라학문적경향을비추어본다면, 무형문화유산연구는민속학과문화인류학의접경지대에존재한다. 민속학은경제적역학구도를기반으로민중성에치중하여전승의현장을중시하며 유산 ( 과거 ) 을기록한다. 이에반해문화인류학은사회학적성격이강하며 문화 ( 현대 ) 를중심으로분석한다. 이런구도에서설화연구는문학과심리학, 정신분석혹은언어학적성격을지니며민속과문화인류학과도무리없이소통할수있다. 무형유산에서구전전통및표현영역은광범위하게다른범주와도유연하게작용할수있다. 설화를무형문화유산적으로연구한다는것은민속학과문화인류학적접근방식을수용하며이루어진다. 민속학은기예나공연중심의개별항목을집중 20) 1 전통적공연 예술, 2 공예, 미술등에관한전통기술, 3 한의약, 농경 어로등에관한전통지식, 4 구전전통및표현, 5 의식주등전통적생활관습, 6 민간신앙등사회적의식 ( 儀式 ), 7 전통적놀이 축제및기예 무예.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53 적으로기록한다. 민속학은 과거 로부터전승되어져내려오는 전통 을재구성하는것에강하다. 민속학적입장에서본다면, 설화는과거로부터내려온 옛이야기 이기때문에 전통 적학문이다. 그러나민속학의전문적분야의기록혹은현지조사개념에비하면설화의채록은광범위하고무작위적이며예측불가능한변수가많다. 이런점에서설화의채록은언제나가능하지만시급하지않은것처럼느껴지기싶다. 전문이야기꾼의발굴도어렵지만이야기판을구성하는것은더욱총체적인난관이기때문이다. 이와함께문화인류학적입장으로본다면, 설화혹은이야기는인류의문화중의한분야지만인류의문화를이해하기위한하나의참조항목일뿐, 그자체로인류의문명을대표할수는없다. 그러나문화와이야기는모두삶에서비롯된것이며시간을통해새롭게창조된다는것은공유할수있다. 앞서언급한것처럼, 무형문화유산연구는몸짓과말, 소리등의보이지않는매체를통해전달되는삶에관한학문이다. 그만큼모든학문적영역이다포함된다. 그러나시대적흐름에따라무형문화유산을주로담당하는분과는유동적이다. 설화를무형문화유산으로연구하기위해서과거전통유산을담당했던민속학과문화를연구하는문화인류학과의연대가필요하다. 본격적으로설화연구에서무형문화유산적성격을부각시킬수있는방법론에대해서살펴보자. 첫째는무형문화유산의 공동체성 과설화연구를결합하는것이다. 무형문화유산은공동체를구성하는사람들이스스로의유산이라고생각하는것을말한다. 기존의문학적분석에서는설화의유형과원형을분석하는것에치중하였다. 다양한변수 ( 이형 ) 를제거하면고정된서사구조가존재한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 이러한서사원형이기억에의한전승을가능하게하는요소로본것이다. 하지만무형문화유산에관한관심은문화적다양성과고유성을지키기위한것이다. 기존의설화연구에서지워지고삭제된변이성을복구하고유형적접근보다는지역적특수성을분석하는연구가필요하다. 이와같은작업은설화연구자가이야기가전승되는지역에대한다차원적학습을전제로가능해진다. 일차적문헌을통한학습과함께이야기가전승되고

15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있는현장에서실제지역민들과생활을같이하는것도필요하다. 이것은문화인류학자들이현지조사를장기간에걸쳐진행하며지역민들과의유대감 ( 라뽀 ) 을유지하며학문적결과물을산출하는것과같다. 물론이런규모의연구는소논문으로는불가능하다. 현지조사대상을선정하는과정부터문헌조사, 이야기항목을선정하여전승현장을기록하는작업은석 박사학위논문으로적성해야할정도로복잡한문제다. 하지만이러한시간을들여이야기판을파악하고얻은설화전승상황은지역의문화를이해하는데기초가되며, 동시에스토리텔링의자산으로서도손색이없을것이다. 단순하게채록된단선적인이야기를기계적으로적용한다고대중적인호응을얻기힘들고문화적영향력도확보하기어렵기때문이다. 두번째는구술텍스트의권위를확보하는것이다. 설화연구에서구비문학대계는문학적분석을위해일차적으로참조하는채록본이다. 최근들어 2차중보사업을진행하고있다는것은여간반가운일이아니다. 이외에도신동흔, 황인덕등의개인연구자들에의해서도설화는지속적으로채록되고보고되고있다. 21) 그런데기존의문학분석에사용되는이야기는기본적인서사구조만인용되거나그이야기의전국적분포, 유형별특성을간략하게제시하는정도로활용되고있다. 80년대의구술자료가 21세기초반에어떤식으로구연되고있는지를확인하지않고도문학적분석대상으로활용되는것은설화가서사적구조를간직한문학이라는입장이깔려있다. 이것이기존의문학적접근방법과연결되는지점이기도하다. 그렇지만무형문화유산으로설화를연구한다는것은 전승 의현장을포착하고기록화하는작업을요구한다. 많은이야기를하나의유형으로단순화시키는기존의연구방법론에서개별적작품의전승현장을기록하고전사하여 현재 의구술자료를철저하게분석하는작업이필요하다. 이것은구조주의가오직작품자체에있는서사구조를정밀하게확정시키려는것처럼, 구술자료를통해서분석자의주 21) 최근에는김동훈 허경진 허휘훈등의연세대연구팀에의해서료녕성 흑룡강성채록민담집과조선족이야기꾼들의채록민담집도간행되었다.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로나온것을편찬한것이다 (2007-2010 년, 연세국학총서 ).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55 관을배제하고구연자스스로말하는것에주목하는것이다. 구술자료에대한정밀분석방법은해당이야기의주제의식, 사회적의미, 철학적가치등을구연자의 육성 을통해서확인하는것이다. 이와같은시도는기존의문학적분석이지니고있는주관성 관념적모호함등을보완할수있는방법이다. 또한이야기의 전승 상태를확인하면서변종과혼용, 생성의과정도발견할수있다. 22) 이야기는서사로된구조물이다. 그러나서사구조는인체로말하자면골격 ( 體 ) 이다. 하지만삶을살아가는인간은살 ( 肉 ) 로생활한다. 이런점에서서사구조를간추려규명하는것도중요하지만, 서사성혹은서사미학이어디서비롯된것인지를해명하는작업도필요하다. 이런점에서개별구연자들의육성 ( 肉聲 ) 은서사성의원천이자미학의변주인것이다. 세번째는이야기의전문성을강화시킬수있는제도적기반을마련하는것이다. 설화의무형문화유산적가치를높이기위해서는이야기구연능력을보유자나장인의개념까지끌어올려야한다. 최근에중국에서조선족의민담을자국의구비전통및표현물로등재하고이야기꾼을양성하고있다고한다. 23) 구전혹은말하기의중요성은일상뿐만아니라학문적영역에서도매우중요하다. 서구에서는포스트모더니즘적논의를통해로고스 ( 이성 / 진리 ) 에대한이분법적강박을비판하며, 구어와미시사, 순간적진실등을학문적대상으로다루고있다. 하지만아직까지국내학계는이론과문자중심의근본적인엄숙주의를고수하고있는듯하다. 24) 하지만무형문화유산연구는 22) 필자가참여한 2014 지역무형유산목록화학술용역 (2014.10.27-2014.12.12) 에서도이와비슷한경험을한적이있다. 필자가담당해야했던업무는진주지역의설화를채록하는것이었다. 이중에서진주의역사적부침을설명해주는비봉산봉알자리이야기를채록하는과정에서흥미로운이야기를들었다. 구술자에의하면 2013 년비봉산과선학산을이어주는봉황교를개통했다고한다. 전설에의하면진주의지세를시기한어떤도사에게속아두산을끊어버리고말티고개를낸이후로진주의기세가기울었다고한다. 끊어진두산을다시잇기위해 2013 년봉황교를개통한것이다. 그런데공교롭게도개통한다음날태양의나이와같은운석이진주에만떨어져서언론에보도되었다고한다. 구술자는이러한일련의사건을두고 진주에서광이비친다 라고해석했다. 이런이야기가전승력을지니고있는지없는지는알수없다. 다만, 전승현장에서이러한예상외의이야기들이생성될수있다는것이중요하다. 23) 노영근은 2014 겨울비교민속학회발표문에서중국에서조선족이야기꾼을국가급또는성급으로지정되어보호대상으로삼고있다고말하며우리나라에서도민담이야기꾼을적극적으로발굴하여보호육성해야한다고주장하고있다 ( 노영근, 중국조선족이야기꾼지정과정의실증적검토 ).

15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기본적으로 말 의권위와특성을전제로수행된다. 던데스가지적한것처럼문자중심의이분법적사고가일반화된현대사회에서도실질적인배움과정보전달은 구어 를통해서이루어지고있다. 이러한구어의중요성을떠올려봤을때, 말을잘하는사람이나이야기를 비상 하게기억하는재주를전문적인영역으로공인하는과정이필요하다. 이것이있어야이야기판이형성되고문화적정체성이형성될기회를얻을것이다. 네번째는설화의무형유산적가치는이전기록의창의적인활용을통해서확장된다. 설화는구비문학이다. 입으로새겨서 ( 口碑 ) 기록한문학 ( 文學 ) 이라는상반된속성을동시에포함하고있다. 설화의전승이최종적으로 문서화 되는것으로귀결된다는점은시시하는바가크다. 25) 무형문화유산에속하는여러범주중에서설화만큼문자와밀접한영역도없을것이다. 무형문화로서설화연구도문서화된이야기와분리할수없다. 침묵과말, 글의세영역은일상적인영역에서서로혼합되어작용한다. 설화의구전성이담보하는 무형성 과기록물이라는 유형적 산물은동전의양면처럼상보적인관계를지니고있다. 이런점에서설화의무형유산적접근역시문서화된기존의문헌을적극적으로활용해야한다. 채록된이야기와전승되고있는이야기를종합적으로연구하기위해서는유형별접근보다는테마별접근이필요하다. 기존의문헌을참조하여특정대상의특질을보여줄수있는이야기를먼저선별하고, 그와동일한유형의설화를테마별로묶어서연구하는것이다. 그간의설화채록은무작위적이며개별항목을단순기록하는과정까지만포함하고연구자의분석은 2차적인문제로남겨두었다. 무형문화유산 24) 90 년대에진행된탈식민주의논쟁이나우리말로철학하기운동을통해서이러한이론적이고이분법적태도를벗어나구체적이고일상적인대상들의권위를회복하려는움직임이있었다. 강신주의철학적경향이나노숙인과저소득층을위한 희망의인문학 과정등은지식을포획하고있는자본의힘과사변적인철학적담론에대한반성에서비롯된것으로보인다. 25) 고양이대학살 ( 문학과지성사, 1996) 은로버트단턴이사학자의입장에서민속학과인류학의연구업적을활용하여프랑스의문화사를탁월한안목으로설명해낸역작이다. 그가시도했던밑으로부터의역사구현물중에민담은훌륭한자료가된다. 더군다나단턴이인접학문의결과물을자신의학문적결과물로활용한사례는이글에서지향하는설화와민속학 인류학적방법론의통섭과도연결된다.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57 으로설화를연구하기위해서는선행연구를검토하듯, 철저하게문헌조사를해서테마를선별하는것이필요하다. 이런과정이있어야만연구자의직관과안목이구연자의문화와섞이며새로운의미가발생하고역동적으로피드백이이루어지는 현장 이이루어지기때문이다. 지금까지는무형문화유산으로서시도할수있는네가지연구방법론을설명했다. 무형문화유산의공동체성과설화의결합, 무형문화유산에서중요한전승현장과설화의접목, 이야기의권위를회복하며전문적기예로인정받을수있는제도적보완, 문서화된이야기와현지조사를잇는테마의발굴등이다. 이글에서제시한네가지방법론은기존의연구성과를뛰어넘는것은아니다. 어쩌면네가지모두민속학이나구비문학의영역에무리없이포함될수있는것일지도모른다. 그럼에도불구하고애써무형문화유산적속성과설화를연결시켜논의를진행하는것은기존의연구성과와더불어더욱풍요롭고역동적인학제간의교류가가능하지않을까하는생각에서비롯된것이다. 이후논의를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강진옥 김기형 이복규, 2002, 구전설화의변이양상과변이요인연구 : 익산지역이야기꾼과이야기판을중심으로, 구비문학연구 14, 구비문학회. 김승필, 2003, 경기전이야기꾼김달봉연구, 남도민속연구 9, 남도민속학회. 김영순, 2011, 스토리텔링의사회문화적확장과변용, 북토리아. 노영근, 2014, 중국조선족이야기꾼지정과정의실증적검토, 비교민속학회 2014 학술대회발표집. 로버트단턴지음, 조한욱옮김, 1996, 고양이대학살, 문학과지성사. 문화재청 아태무형유산센터, 2010, 한국어판 2003년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해설집. 박병기, 2008, 헤겔자연철학과진자론, 철학과현상학연구, 철학과현상학회. 박진, 2001, 진자운동이수직지면반력에미치는영향, 한국운동역학, 한국운동역학회 10. 브라리언보이드지음, 남경태옮김, 2013, 이야기의기원, 휴매니스트. 신동흔, 2011, 전통이야기꾼의유형과성격연구, 비교민속학 46집, 비교민속학회. 이현우, 2010, 책을읽을자유-로쟈의책읽기 2000-2010, 현암사.

15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일레인볼드인외지음, 조애리옮김, 2008, 문화코드, 어떻게읽을것인가, 한울. 임재해, 2009, 무형문화유산의보존과전승방향의재인식, 비교민속학 제39집, 비교민속학회. http://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28498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r16ms1&logno=30180239238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40919050203928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5500.html?_fr=mt3) http://www.voakorea.com/content/a-35-2009-04-10-voa12-91372249/1322995.html http://www.seoultimes.net/news/articleview.html?idxno=17875 http://gjdream.com/v2/news/view.html?uid=443063&news_type=207&paper_day=20121129&code_m= 2&list_type=2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828022001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설화연구방법론검토 159 ABSTRACT A Review on Study Methodology of Tales a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6) Lee, Jung Hun* Intangible heritage or interest in tangible heritage began with UNESCO s effort to protect cultural diversity in the world. Tales belong to oral tradition and expression among 7 categories designated by UNESCO. In other words, on-the-spot nature of tales is emphasized. This study combine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with study methodology of tales. First, the study reviewed the achievement of studies on tales. Existing studies on tales are classified into the part emphasizing the sites or actual fields of the oral tradition and literature. The two ends of spectrum include various fields such as cultural contents or finding of narrators. As the name oral literature indicates, however, the biggest issue of study on tales boils down to covering the sites and analyzing power on the text. Here, seeing tales from the perspective of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s first; to restore the authority of words and expand sites of oral tradition; second, it is to vitalize the culture for the weak by giving prominence to the point that tales can be a way to memorize the facts erased from the written history; third, it is to develop methodology to succeed to the tradition of tales and position it as a professional art. Based on this, this study suggests 4 methods of studying tales as a category of * Research Associate/Ph.D, Center for Intangible Culture Studies (CICS), Chonbuk National University

16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First method is to combine communal characteristic of intangible heritage with the study on tales, which is to designate community as the unit of tale collection and recording by accommodating anthropological field research. Second one is to secure the authority of oral text, which is to turn collected texts into study texts by revitalize the missing context of individual oral texts through process of establishing original form of the collected texts. Third one is to extend narrative ability to the dimension of intangible heritage by laying the institutional ground to strengthen the expertise of the narration. Fourth one is to approach the collection of tales by themes. Random collection of tales acquires value only through the 2 nd researchers. Approach should be made to the contents of field research by utilizing collected tales. This suggestion is not anew one but an application of existing ethnology and anthropology to methodology of studying tales. Still, the study hopes that more active discussion will begin with these suggestions. Key Words : Methodology of studying tale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Nature of the weak, Radical nature, Static, Anthropology, Ethnology, Site, Works

무형문화유산을소개하는글 전라좌도진안중평굿 이승철

무형유산연구제 1 권 163~211 쪽 2015.5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7) 이승철 * < 차례 > 1. 들어가는말 2. 진안중평굿이걸어온길 3. 진안중평굿의가락 1. 들어가는말 바람이분다. 세상이꿈틀거린다. 얼씨구! 함께굿치고놀아. 바람이분다. 구름이몰려와하늘이까맣다. 천둥치니땅이울린다. 비가내리네. 물이흐르고, 생명이꿈틀거리고, 꽃이피고, 열매가익는다. 밥은하늘입니다. 밥이먹고싶다. 우리사는것이다먹고사는일아닌가. 잘먹고, 잘싸고, 잘자고, 살아있는동안서로나눠먹고, 함께어울려노는것아닐는지. 그래, 산바람불고물소리들리나니, 징 ~ 둥 ~ 깽 ~ 덩 ~ 굿소리가나를부른다. 삶과죽음, 왔다가돌아가는우리사는세상은자연의흐름에따라스스로 * 중평굿보존회장

16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그러하게변하고움직이며놀고있는것이다. 이세상모든생명의소리를가진우리악기, 곧바람물질 ( 風物 -꽹과리, 징, 장구, 북 ) 을가지고흥과맛을느끼며함께놀면얼마나좋겠는가. 무엇으로, 어떻게, 왜노는데? 끊임없이물으며, 배우고익혀벗을사귀어가면이것또한기쁘지아니한가. 삶이굿이요, 굿이삶인것을. 살아서말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손잡으니누가아니어울려놀지않으리오. 바로우리와가장친한농악놀이 ( 풍물놀이, 굿놀이 ) 이다. 삶을넉넉하게만드는것은놀이이다. 여기서문화가이루어지고예술이빛을본다. 마침농악이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에등재되었다. 세상에뜻맞는사람은그렇게많지않다. 오늘만남이소중하다. 옆에있는사람이누군지알려고할때, 비로소소통이된다. 굿은끊임없이그것을물어본다. 혼자안되는것은서로돕고믿어주고뜻을같이하면된다. 세상을좋게만드는것은그조직안에서의견을모으고, 나누고, 싸우고, 조율하며, 합의된것을진심을가지고함께해나가는것이다. 굿이그렇다. 자기가가진소리를같이맞추는것이다. 서로그자리그영역을인정하고음양의소리로어우러져합을이루어가는과정이다. 거기서생명을낳고아름다운공동체가된다. 사는것이마음대로되지는않지만공동의바람을이끌어내는것은여럿이좋으면다무난하다. 바로그단합된힘을, 바람을, 굿으로말하고싶은것이다. 결국은뜻을같이하는사람들의조직된힘이다. 지금옆에같이있다면사랑과관심을두고함께할일이다. 이세상모든생명은자기소리를내며산다. 악 ( 樂 ) 은거짓으로할수없는것이기에연주자의능력에따라느낌이다를수밖에없다. 두드리는악기는단순하기는하나빠르기, 세기, 붙임, 느낌에따라여러형태로나타난다. 똑같은가락을치더라도자기가가진느낌이가락에묻어나맛이다르다. 그다름을조화롭게어우러지게하는것도큰매력이다. 그가락의소리나흐름을보면그럴수밖에없는공통된요소들이많다. 그래서그가락하나하나에담긴뜻이나느낌을자기것으로만들어서로맞추어야어울림이좋다. 우리굿은언제어느곳이든지쓸모가많다. 사람을모으고한마당을어울려공동체를이루는것은이만한것이없다. 옛날에는마을마다굿이있었다.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65 한두가락정도칠수있으면얼마든지한마당을놀수있었다. 세월이흘러산업화와노령화로거의사라졌고, 마을굿이센곳이대표성을띠며가락을이어왔다. 그나마어렵게지켜오면서이름이알려진 진안중평굿 은좌도굿의맛을그대로간직한보물이다. 다른굿보다는흥하지는못했지만, 이참굿이회원들의열정으로굳건히살아있다. 회원들은그진한맛에굿판을떠나지못하고가락을또다듬고여럿이함께노는멋진굿판을꿈꾼다. 중평에서나고자라마을논두렁에서장구매고깽매기들던어린날이생생하다. 그귀에익은굿소리가이렇게세상의관심을받으리라곤미처몰랐다. 이러저러한마음과관계속에서굿을치다보니어느덧여기까지왔는데, 삶과굿, 모든것들도생각만큼잘되지않아속도상하고많이아쉽다. 그간의우리가락들을중평굿이야기로풀어본다. 이몸은마당판에서꽹과리치며노는것이편하고, 항상그판이그립다. 이가락은김봉열선생의녹음 (1979) 과영상 (1992) 을참고하였고, 선생님말씀과함께쳤던기억을더듬었다. 김현숙서울대논문 호남좌도농악에관한연구-임실과진안의판굿을중심으로 (1987) 와봉천놀이마당에서출간하여널리쓰이고있는 민속교육자료집 (1994) 을참고하였으며, 현재중평굿보존회원들이치고있는가락들을모았다. 먼저, 가락마다입소리를정간보에넣었다. 가락은치는사람마다느낌과맛이다를수있음을인정하며, 별도로나의가락풀이를덧붙였다. 또한, 고김봉열선생의뜻을전하고, 중평굿의자존심을세우고싶었다. 선생의가락속에삶이그대로배어나온그모습을떠올리며그굿을잇고있다. 1992년보존회가결성되고많은어려움과실망, 아픔도있었다. 1995년선생이돌아가시고제대로자리잡지못한채여기저기떠돌아다니며전수하였다. 그것도숙식공간과연습마당이열악한상황에서어렵게지켜오다, 2007년부터진안전통문화전수관에서전수활동을하고있다. 중평굿은그동안도대회와전국대회, 초청공연하며우리가락의우수함을알렸고, 더구나 2008년 전북민속예술축제 최우수상과 한국민속예술축제 에서국무총리상을받아널리인정받았다.

16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오래도록이어온정월대보름굿 망월이야, 술멕이굿 어서치고술먹세뚜부국에짐나네, 찾아가는공연 바람굿한마당, 찾아가는중평굿, 크고작은초청공연으로중평굿의가치를펼치고있으며, 꾸준히지역의기반을탄탄하게다지고있다. 옛날에도있었고, 지금도치고있고, 앞으로도가져갈굿, 살아있는굿을위해오늘도여유부리며두드린다. 살면서아픔과슬픔이몸과맘을상하게하여몹시힘들때, 그무엇으로도대신할수없지만, 조금이나마그고통을덜어줄우리굿이그들과함께할수있다면이또한고마운일아닌가. 중평굿은세상살아가는이야기처럼우리삶을그대로보여준다. 한가락, 한장단에인생이묻어난다. 누구나 지가락에미쳐 함께즐겁게놀면좋겠다. 또한그바람굿이한마당이되어세상의모든꿈을담아서웃음꽃으로뿜어냈으면한다. 우리굿이앞날에또더나은가락과말과글로더늠되어나아가고, 멋진어울림이되어서, 제대로자리를잡아그가치가더욱빛나기를바란다. 제 1 부진안중평굿이걸어온길 1. 중평마을이야기 중평마을에들어서면넓은들판이보이고곧게뻗은신작로끝편으로 20 여집이모여산다. 중평마을의유래는신라시대월랑현의터로써당시에중현을이루었다고하여 중평리 라불렀다. 옛부터중요한마을터로고려자기의가마터가있기도하다. 마을이거의진흙땅이어서 자기만들기 에적당한곳이었을것이다. 함창김씨들이살았다는마을앞의넓은가운데뜰이있다. 언젠가시주를청하는스님들이이마을에왔는데함창김씨들이몹시박대했다고한다. 그런어느날도사가나타나마을이잘되려면우물을파야한다고일러준뒤,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67 도사는냇가에서물고기의눈을찔러죽이고, 동네사람들은부자가된다는욕심에우물을팠는데, 그뒤마을이망하게되었고그자리를피해서산밑으로옮겼다고한다. 마을은배의모습이다. 마을앞솔정지라부르는솔밭이 돛대봉 이고, 마을뒤에는 배거리 ( 걸이 ) 봉-배걸매- 바글매 이있다. 함창김씨들이판우물은배의가운데로써그구멍으로바닷물이다빨려들어가마을이망했다고한다. 또마을의풍수와관련해서는, 마을뒷산을계봉 ( 닭날봉 ) 이라부르는데실제산의모습이닭의벼슬모양이다. 이마을을둘러싼이름은누에머리, 뒤뜰, 소리개 ( 솔개 ) 재가있다. 솔개는닭을먹고닭은누에를먹고, 뒤뜰은뽕나무모양을하고있어, 솔개가닭을먹으면안되니까, 중간고개에아주개가있는데, 아이들은꼭그곳에가서놀았다. 아이들이그곳에서놀아야솔개가오는것을쫒을수있기때문이다. 마을을가운데로흐르는작은내와그길따라광음 ( 음수동과광산 ) 으로가는큰길이나있다. 이길을중심으로음지뜸, 아래쪽을양지뜸이라고부른다. 음지뜸에는아주고개로넘어가는길목에 200여년된정자나무가있었는데죽어없어지고, 지금은그옆에서살던느티나무가대신하고있다. 여전히그자리에모정, 그리고큰샘이있다. 모정은오래전부터있었으나낡아허물어지고약 50여년전에다시지었다고한다. 굿이성할때에는열낫날정자나무에서당산제를모시곤하였으나굿패가줄어들어현재당산제는정월대보름에진안읍내월랑공원에서지내고있다. 마을에서가장중요시하는샘굿은단한해도거르지않고지내고있다. 마을에서먹고사는것은벼농사와고추농사이고, 몇집이삼농사와버섯을짓고있다. 옛날에는 55집정도되는마을이었으나지금은 20여집이살고있다. 마을성씨는함창김씨, 천안전씨, 진안이씨, 광주안씨, 경주이씨가모여살고있다. 마을주민은불교와원불교, 기독교를믿고있다. 마령면강정리에있는절 ( 북수사 ) 을다니고, 몇집이외궁의교회를다니고있다. 이마을은경읽는소리보다굿소리가성해풍물로유명한지역이다. 전라북도산간마을풍물을고스란히간직한마을상쇠김봉열선생은 1995년에

16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돌아가시고, 제자들은마을을떠나진안읍전통문화전수관에서마을굿을보존전승하고있다. 2. 중평마을두렁쇠김봉열 굿을뼈속까지아는사람들은우리굿을알아줘. 다른굿은맛이없어서못듣것다고들허지. 굿은마음을솎아내는굿이그바탕인벱여. 근디그것이잔재주가락을부린다고저깊숙이있는맴까지들춰지것어? 얼른들어재미는있겄지. 지가지가락에미치지않으면그굿은죽은굿이나진배없어지가지가락에미쳐야지. 김봉열선생은 1914년 3월 7일도통리중평에서태어났다. 마을수장구를치던김낙중의둘째아들이다. 10세때부터나막신을신고경읽는북을메고어른들의뒤를따라다니며굿을쳤다. 논에서새를보면서양철때기로어른들굿치는흉내를잘냈다고한다. 이렇게굿을좋아하자, 동네사람들이진안군백운면 술무지 에유명한상쇠어른인김인철 (1867~?) 을모셔다가본격적으로굿을배우게했다. 이때가김봉렬선생의나이열여덟살이었다. 김인철선생에게배우면서잘못한다고얻어맞기도했는데같은또래의아이들보다재량이뛰어나, 마을사람들은일찌감치중평굿을이어갈놈으로점찍어두었다고한다. 선생은 25세때부터중평마을상쇠를하시면서군내대회도참가하고진안군내의굿잽이들을이끌고도내대회에출전하여 1등도하였고, 개인상을받으며상쇠잘한다는소문을많이듣게되었다. 전국각지를돌아다니는뜬쇠는돈을벌기도하면서굿쟁이들과교류가많았고, 마을에눌러살면서마을굿을온전히갖춘김봉열선생은옹골찬두렁쇠로인정받았다. 그는중평굿가락을널리알리고그맥을잊기위해 1980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69 년충남금산농고풍물패를 40여일간가르쳐전국대회를휩쓸었으며, 1987 년 3월7일오랜만에중평마을에서진안군내굿잽이들과마당판굿을벌었다. 그뒤중평굿이널리알려지면서여름과겨울방학때각지역의대학풍물패와문화단체들이몰려들었다. 1992년 11월 29일에제자들이선생을회장으로모시고 전라좌도진안중평굿보존회 결성큰굿을벌였다. 또한크고작은공연을하며중평굿을알리는데노력하였다. 선생은중평굿의참된뜻을몸소실천하시다가무형문화재지정을앞두고 1995년 8월 15일돌아가셨다. 선생은자기가락에미쳐치던굿의철학과그아름다움이어떻게놓여야하는지를느끼게해주었다. 이제, 가락을함께할수는없지만선생의뜻을이어가는제자들이그의철학이녹아든가락을끊임없이이어가고더늠되어이어갈것이다. 김봉열선생말씀 풍물굿은한마디로 농군들의풍년회 여. 농사가한창바쁜철인칠월에는풍물굿을치며풍년을빌면서일을하였고, 농한기인겨울철에도풍물굿을치며놀았지. 정월달에선생님들이풍물굿을치며놀라고많이권장하셨던이유는겨울에는시간이많으니까젊은사람들이모여노름을즐기게되는것을방지하기위하여그렇게했던것같아. 그리고농악이라는말은일제시대일본사람들이만든말이여. 파장굿은군영에서나온것이여. 암도깨비숫도깨비아들낳고딸낳고 하는것은아들을낳아군대에보내는것을의미하고, 콩꺾자콩꺾자두렁넘어콩꺾자 는적군을꺾어내리자는의미이고, 별따자별따자하늘잡고별따자 는별달은놈을잡아내자는의미이고,

17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갈리소갈리소구경꾼들갈리소 라는것은 별단놈을잡아냈으니이제는전쟁이끝났다는것을뜻하는것이여. 걸궁은마을의공공기금을마련하기위해서하거나남사당패같은전문적인연예집단들이하는데, 마을사람들은걸궁온사람들에게문제를내지. 그것이무엇이냐하면, 걸궁온패들이마을어귀에서모여기다리면동네사람들이솔방울한그릇과싸리비 1개그리고갈퀴 1개를가지고나와. 영기를세우는데깃발이바깥쪽을향하도록나란히세우고나서걸궁온사람들에게갈퀴를보여주는것이여. 이때갈퀴자루가마을쪽을향하면들어오라는뜻이고, 걸궁온패들을향하면들어오지말라는뜻이여. 걸궁온패들이이문제를무사히풀고마을로들어오게되면또동네사람들이싸리비를보여주는데바르게놓았으면상쇠부터들어오라는뜻이고, 거꾸로놓았으면소고부터들어오라는뜻이여. 동네사람들이솔방울이담긴그릇을내다놓으면치배들은하나씩집어가게되는데이것은식사준비를위한인원파악을위해서지. 그리고걸궁을나가게되면선생님들이밥을비벼먹지못하도록돌아다니시며살피시는데비빔밥을먹게될경우에는꼭그마을사람들과싸우게된다는겨. 도둑잽이는굿이다끝나고쉬고있는동안에어정잽이 ( 잡색 ) 들이하는놀음여. 대포수, 양반, 광대가잡색인디양반은담뱃대를들고점잖게걸어다니며노래를잘부르고, 대포수는털모자를쓰고총을들고다녀.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71 광대는코를벌름거리거나눈을까뒤집거나침을탁탁뱉으면서난쟁이흉내를내기도혀. 어정잽이들은의식적으로사람을웃기는행동을하는사람들이여. 도둑잽이는말그대로도둑을잡는다는뜻여. 일광놀이를하다가쉬고있는상쇠의쇠를훔쳐간도둑을잡는다는내용인디원래는굿이아니라재담이라고도하는디그냥무언극 ( 無言劇 ) 으로도혀. 3. 진안중평굿의전승과정 진안은전라도동북산간지역이며 진안고원 으로마이산의영산이자리잡고있다. 금강과섬진강이마이산을중심으로태극을이루어뻗어나가는형세다. 이산골에너른들도곳곳에있어서논농사와밭농사를짓고사는순박한기질이그대로배어난다. 전라도동부산간지역과섬진강동편, 지리산북동부권은 전라좌도 라한다. 서울에서내려다보기에전라도의왼쪽산간지역을말한다. 지금의충남금산 ( 옛날은전라도땅 ) 과무주, 장수, 진안, 전주, 임실, 남원, 순창을 좌도 라하고, 전라도평야지역인김제, 정읍, 부안, 고창, 군산, 옥구, 익산이 우도 에속한다. 거의풍물굿은전라북도에서발달하였다. 전남지방은곡성, 구례, 순천, 광양, 여수, 화순, 고흥도좌도의맛이있다. 진안이좌도굿으로유명한것은진안이좌도굿의발상지답게좌도굿의명인들이아주많았다. 그들이전국각지에서활동하며좌도굿의멋과흥을전파했기때문이다. 진안의좌도굿은해방바로뒤온나라에명성이드높았는데, 1946년광복 1주년기념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노문길, 한귀동, 최순표, 잔두만, 김달마, 조남주, 유경학이참가하여진안출신굿패들이주축이된전북팀이 1등 ( 대통령상 ) 을했다. 또 1947년광복 2주년기념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도 1등상을거머쥔김수동, 김병화, 정철우, 최상근, 유경학, 조남주이들이대표적인예라하겠다. 그러나화려했던진안굿은그뒤를잇지못하고 6 25전쟁을거치면서명

17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인들은죽거나흩어지고, 전쟁뒤에도먹고살기에바빠풍물굿은까마득하게멀어진다. 그나마일부명인들이뜬쇠생활을하기는하나, TV와대중문화의발달로풍물굿의설자리는점점사라져갔고, 마침내상업화된여성농악단의출현과함께진안풍물굿의아성은역사의뒤안길로묻히고만다. 이런가운데서도전라좌도진안풍물의모든가락을지켜온이가중평마을김봉열 (1995년 82세로작고 ) 선생이다. 김봉열선생은스승백운술무지 ( 주천 ) 에김인철 (1867~?) 선생을모셔서 18세때부터틈틈이가락을배웠고, 20살때백운하정우 ( 하바우 ) 상쇠가이끄는상전소방서걸립때윗놀음과가락을마저익혔다고한다. 25살부터는중평굿상쇠로마을굿패를이끌어왔다. 백운은풍광과인심이좋아문화예술이번창한듯하다. 판소리동편제도이곳에서시작되었다는소리가있고굿도성했다고한다. 섬진강발원지이고산천과들이아름답게펼쳐있다. 백운 ( 白雲 ) 면과성수 ( 聖壽 ) 면은내동산을끼고고개넘어옆마을이다. 김봉열상쇠는뜬쇠들과굿을함께하지는않았지만, 그가태어난마을에서좋아하는굿을평생나름대로지키고키워낸것은커다란자산이다. 선생은농사를짓고목수일을하면서, 일과놀이가삶인마을굿을고집하였고, 이웃마을과중평마을사람들로굿패를꾸려지금의중평굿을지켜왔다. 그때마을굿을함께했던분들은전병양, 김두환, 김한술, 서성진, 김양권, 송종환, 이병열, 이쌀봉, 하정기, 이정동, 이두환, 전병화, 오원영, 이병국, 유점열이다. 또진안굿쟁이들전왕근 ( 음수 ), 전석봉 ( 마령판치 ), 김형준 ( 진안암곡 ), 이광택 ( 진안연장 ) 과어울렸다. 그가운데김봉열 ( 쇠 ), 전석봉 ( 장구 ), 이병열 ( 징 ) 이녹음한자료 (1979) 가가장오래된것으로그자료를본삼아전수되고있다. 마을에서굿을쳤던분들이산업화로도시로이사를가거나먼저돌아가시는바람에김봉열선생은오랫동안굿판을뛰지못하게된다. 그러다 1980 년도초반에김봉열선생은이마을에사는젊은대학생김형진, 김태형, 이승철을애제자로키우게되었고, 이들과함께굿을치니다시살아나기시작했다.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73 그뒤조금씩김봉열선생이유명세를타고여기저기서초청강사로활동하며금산농고를전국대회 1등에입상을시켰고, 때마침전국의대학생풍물패들이중평굿을전수받기위해중평마을로몰려들었다. 김봉열선생나이일흔넷이되던 1987년 3월에중평굿발표회를가져본격적으로세상의관심을받게되었다. 그힘으로 1990년김형진, 김태형, 이승철, 성태일이굿모임을만들었고, 1992년 진안중평굿보존회결성 하며큰굿을쳤다. 1993년마을에빈집을헐고전수관을지어겨우잠잘자리만마련했다. 그자리에서쭉전수를하다가 2007년부터전통문화전수관에둥지를틀고전수와공연하며자리를잡고있다. 1980년대활동한보존회원들은이승철, 김태형, 성태일, 최병하, 박헌경, 이응식, 한종철, 이연순, 김창선이잇고있고, 1990년대에는 2대제자들홍성철, 박현희, 박상순, 이승현, 이창복, 여현수, 정동훈, 서승욱, 이진원, 박홍섭이이어가고있다. 한편 80년대중후반부터중평마을을거쳐간전수생들은전국에수천을헤아리고있으며, 김봉열선생이남긴가락을다시금가다듬고다지면서널리퍼지길바란다. 4. 중평굿보존회활동 마을굿이오래도록내려오면서시들어가다 1980년대다시살아나고, 굿의열정이일어날무렵, 1990년에굿모임을시작하였다. 1992년 전라좌도진안중평굿보존회 를결성하여공식이름으로활동하였다. 1995년선생님이돌아가시고, 100일되는날에추모굿을하였고, 2003년고김봉열선생 8주기추모굿 지가지가락에미쳐야지, 2005년고김봉열선생 10주기추모굿 처음처럼 을하였다. 2006~2014년바람굿한마당 봄바람굿 으로마이산의기운을관광객과함께했다. 1998년 2006년서울놀이마당초청공연이있었고, 2004년전라도의춤전라도의가락초청공연, 2007년 2008년부평풍물굿대축제초청공연, 2008년무을축제초청공연을하였다. 나라밖의공연은 2006 년러시아고려인위문공연, 2009년중국심양국제관광절초청공연을다녀왔

17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다. 대회는처음나간 2007년에전북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우수상을받았고, 2008년전북민속예술경연대회최우수상, 2008년제49회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국무총리상을받아중평굿의가치를널리인정받았다. 해마다, 정월대보름굿 망월이야 와술멕이굿 어서치고술먹세뚜부국에짐나네 를하면서잘살기를빌고, 함께노는놀이마당을만들어굿의소중한가치를이어가고있다. 보존회는지역의크고작은행사에참여하여함께어울리고, 초 중 고 대학생과문화예술단체에게우리가락을꾸준히전수하고있다. 제 2 부진안중평굿의가락 1. 진안중평굿의특징 진안중평굿은좌도굿의가장기본이되는뿌리이다. 좌도굿이군영에서비롯되었다는것은전립 ( 戰笠 -상모), 굿옷, 깃발의모양새와 판굿 안에쓰는가락이호호굿, 각정굿, 영산, 파장굿이있다. 또판굿의흐름이싸움놀이처럼느슨해지면조이고, 힘들면쉬고, 놀면서풀고, 화해와희망이녹아있기때문이다. 삶또한싸움의연속이다. 싸우면서일하고일하면서노는그래서삶은굿이고, 굿은삶이다. 그마당굿판은몸과마음을녹여꿈을그리는놀이이다. 그리고 마당밟이 ( 지신밟기 ) 는집안의평안을빌고, 걸립 ( 걸궁 ) 은돈벌이나서는것이다. 우리가굿치는것은잘먹고, 잘놀고, 잘살자는바람이다. 마을굿이공동의바람을가락에실어차례대로풀어가고, 좌도굿의틀을공동체의사람살이처럼아주잘갖추었다. 중평굿은가락수가많고, 그가락의뜻에맞는소리를낸다. 가락은투박하면서도소박하다. 소리는굵고깊으며, 빠르고느린가락이잘어우러져있다. 질박한힘의가락과부드러운상모놀음의조화로박진감이넘친다. 가락의흐름은천천히차례대로쳐나가며절정에오르게한다. 머리끝에서도는상모놀음은사람의기운을하늘에수놓는또하나의꽃이다. 소리의생생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75 함과상모가도는선의어울림은황홀하게몰고가는세상의울림이다. 굵고센가락이단순한것처럼보이나여유의멋이있고, 정다운그울림소리는한층더깊고높다. 상모놀이는좌도굿의대표적인몸짓인데가락이상모따라변하기도하고, 상모도가락따라변하는것이지만, 상모와가락이몸에밸때까지는오랜시간이필요하다. 굿옷 ( 치복, 굿복, 화복 ) 은군악의영향을받아군졸옷차림과비슷하다. 흰색저고리에덧거리 ( 검정, 파랑 ) 를입기도하고쇠는검은덧거리의등에삼색드림을달아입기도했다. 요즘은흰색바지저고리에삼색띠를두른다. 삼색은왼쪽어깨에파란띠를, 오른어깨는빨간색을두르고허리는노란띠로멘다. 굿옷은고정되어있지않으며때에따라다를수있다. 거의가오방색 ( 빨강, 노랑, 파랑, 하양, 검정 ) 을갖춰입는다. 상모 ( 전립 ) 는악기치배모두쓴다. 쇠 장구 징은부들상모를쓰고, 소고는채상을쓴다. 부들상모 ( 두루미털, 칠면조털 ) 는부드러워재주부리기가좋다. 상모놀음은군영에서가락과함께암호로신호역할을했다고한다. 상모짓으로는외사, 양사, 사사, 팔사 ( 돌개상 ), 나비상, 퍼넘기기, 전조시, 산치기, 개꼬리로강함과부드러움을더욱아름답게살리고, 채상은외사, 양사, 팔사, 나비상, 쫏음상으로허공을가르며휘도는선으로판을더욱풍성하게한다. 몸짓은안대미, 연풍대, 두루걸이, 좌반뒤집기가있다. 어정잽이 ( 잡색 ) 는대포수, 양반, 각시, 중광대 ( 조리중 ) 가있다. 잡색은다른굿과비슷하나양반이입는흰색도포의등에 九代進士三代乞農 ( 구대진사삼대걸농 ) 이라쓰여있다. 앞뒤의해석에따라신분이올라가고내려갈수있음을나타내고있다. 악기편성은나발, 쇠, 징, 장구, 소고로이루어진다. 지금은선율이좋은날라리 ( 태평소 ) 를불기도하고, 북을넣어가죽소리의힘을더해풍성하게만들기도한다. 가락의진행은판굿의한마당을어름굿으로시작하여열두마당으로나눈다. 한마당을상황에따라늘이기도하고줄이기도한다. 마치굿 은거의빠르게몰고가고, 품앗이굿 뒤는춤과놀이로판을여유있게만들어, 시공간

17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적으로구경꾼들과굿패들이함께하며판이무르익어간다. 마지막은파장굿으로끝낸다. 진풀이는 마치굿 에서는원진으로돌면서치배들의기운을원 ( 圓 ) 안에한데모아충만하게만들고, 그기운으로 품앗이굿 부터원이변하여여러진법과가락으로박진감있는단체놀이와개인놀이로구경거리를만든다. 가락절차는모든가락이느린가락에서자진가락으로연결되어가장빠른두마치로끝난다. 가락의연결이나마치는절차가비슷한것들끼리묶어보면일정한틀을가지고연행한다. 첫째, 넘는가락 과 두마치 로끝내는가락은세마치, 일곱, 여덟, 아홉마치와파장굿이있다. 판굿의첫마당을넘는가락으로넘어가서쌓아가고, 끝마당 ( 파장굿 ) 을사설을외치며 넘는가락 과함께마무리하는절차를질서있게풀었다. 두번째는외마치와두마치로끝나는가락이다. 갖은열두마치, 느린삼채, 춤굿, 반잔지래기, 돌굿 ( 보통열두마치 ) 이다. 여기서또공통적인특징은판굿맨처음의열두마치와마지막부분의보통열두마치 ( 돌굿 ) 인데, 앞 열두마치 는판을열어풀어가는마당이고, 뒤의 열두마치 는판을정리하여마무리하는것이다. 판굿앞마당에열두마치, 가운데쯤에호호굿, 뒷마당에벙어리삼채 ( 돌굿 ) 에서보이는혼합박인 10박은청신의식, 정화의식의뜻이들어있어판을정돈하는것이고, 몸짓은절름거리는모양이다. 또느린삼채, 춤굿, 반잔지래기는가락의흐름이비슷하고어깨를들썩이게하는흥겨운가락들이다. 셋째는품앗이가락을치고두마치로끝나는가락이다. 품앗이굿, 각정굿, 노래굿, 영산이있다. 이가락들은짝을이루어움직이는굿으로지극히집중을요하고주고받는느낌을강조하기위해징을치지않는것이특징이다. 왼잔지래기는재능기이며영산가락의흐름과비슷하고징을친다. 그리고중평굿의꽃은영산이다. 영산은앉아서치는 홑영산 이있고, 소쩍새울음가락을넣은 접영산 은풍년을바라는마음을담았다. 쇠채는채끝의알을폭이넓고돌아갈수있게만들어가락을투박하고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77 부드럽게만들었으며, 칠때는직타 ( 바로침 ) 와원타 ( 둥근꼴 ) 의조화를이루어박혀울리는소리로마음을솎아내는듯하다. 더욱이영산은쇠의울림을길게하고, 탁하고맑은소리를더욱뚜렷하게내기위해다섯손가락으로막음을한다. 쇠를잡은팔을쭉펴서척내려놓는모습은마음을비운스스로그러한모양이다. 2. 굿패의짜임 1) 기수설명기 ( 說明旗 )-표시기는농자천하지대본옆에단체의이름을쓴다. 요즘은대표기즉단체이름만쓴다. 따로농기를만든다. 용기 ( 龍旗 )-중평의깃발은용이물속에서잉어, 붕어, 자라, 게, 거북이랑놀고있다. 하늘에막오르려하는모습이다. 그래서용의모양이완성되지않는채꿈을꾸며꿈틀거리고있다. 농기 ( 農旗 ) 는두레의상징이며농악의상징이기도하다. 1년 12달 24절기가들어있다. 農者天下之大本 ( 농자천하지대본 ) 과神農遺業 ( 신농유업 ) 두가지가있는데, 조선때부터써온 신농유업 을일본이못쓰게하고 농자천하지대본 을쓰게했다. 신농유업 을쓰는것이전통을이어가는것이라하겠다. 영기 ( 令旗 ) 는농기와마찬가지로풍물과두레의상징이다. 두레가났을때는농기옆에꽂는데왼쪽은좌령 ( 左令 ), 오른쪽은우령 ( 右令 ) 이라하였다. 흰천에 令 이라쓰고검정지내발을두른다. 또는흰천에빨강글씨, 파랑글씨를쓰고지내발은서로색깔을바꾸어서단다. 삼각형영기는관가행차때쓰였고, 민속놀이는사각형으로써왔다. 2) 앞치배 나발 1명, 쇠 3명, 징 2명, 장구 3~6명, 북 1~3명, 소고 ( 벅구 ) 6~8명많을수록좋다. 사람수는상황에맞게짠다.

17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3) 잡색 ( 어정잽이 )-뒷치배포수 ( 砲手 ) 는총칼로짐승을잡는사냥꾼이다. 조리중은진실하지못하고미덥지못한, 중답지않은중을말한다. 각시는결혼한젊은여자이며모든여자다. 양반 ( 兩班 ) 은신분이높은상류층이다. 양반옷에는 삼대걸농구대진사 라쓰여있다. 이말은 삼대를농사지었고, 구대를진사로산다. 는뜻이다. 잡색 ( 雜色 ) 은말그대로 여러사람이뒤섞여있는것 이다. 이세상에사는모든이가잡색이다. 그잡색이이시대에어떻게드러내느냐가문제다. 시대에맞는잡색이나와야되고, 옛날부터쭉있는잡색도함께하면된다. 잡색의역할은굿패와구경꾼의사이에서분위기를살리고웃기는일이다. 굿패의인원수는때에따라다르다. 제대로갖춘 33명정도가기준이된다. 이는 33 이가진숫자의상징이기도하다. 성주풀이에 서른세명역군들 이나온다. 33 은사방팔방과중앙, 이세상모두를아우르는숫자이다. 3. 진안중평굿가락짜임 1) 마당판굿 (1) 어름굿 ( 어르기 )-두마치 + 풍년질굿-문굿-넘는가락-두마치 (2) 어름굿-갖은열두마치 + 외마치 + 두마치 + 세마치 + 사오륙마치-넘는가락 -두마치 + 일곱마치- 일곱마치뒷가락 -넘는가락- 두마치 + 여덟마치- 여덟마치뒷가락- 넘는가락-두마치 + 아홉마치-아홉마치뒷가락-넘는가락-두마치 (3) 어름굿-품앗이굿 + 느린삼채굿- 외마치-두마치 (4) 어름굿-호호굿- 호호굿도드래미-각정굿내드림- 각정굿-두마치 (5) 어름굿-노래굿초다듬이-노래굿- 두마치 (6) 어름굿-홑영산- 접영산- 영산다드래기-두마치 (7) 어르기-춤굿-외마치-두마치 (8) 어르기-반잔지래기- 외마치-두마치 (9) 어르기-왼잔지래기- 영산다드래기-두마치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79 (10) 어르기 - 도둑잽이 - 반굿거리 - 왼굿거리 - 외마치 - 두마치 (11) 어르기 - 돌굿 - 벙어리삼채 - 외마치 - 두마치 (12) 어르기 - 파장굿 - 넘는가락 - 두마치 2) 마당밟이 ( 지신밟기 ) 3) 걸립굿 4) 망월굿 5) 두레굿 4. 진안중평굿가락 1) 입소리와치는법 악 ( 樂 ) 을두드릴때는정확하게채끝까지기운이다하도록한다. 꽹과리소리 쇠의한가운데와가장자리사이를칠때가장맑은소리가난다. 치는자리마다소리가다다르다. 거의한가운데에서조금벗어난자리에친다. 원타 ( 圓打 ): 팔이원을그리며정확하게박아친다. ( 갱, 미갱 ) 직타 ( 直打 ): 수평이되게친다. ( 깨, 매, 맥, 갱, 무르 ) 쇠채가끊임없이원을그리며움직이기때문에바퀴가맞물려돌아가는것처럼끊임없이살아움직이는느낌이들고, 그가락이가지고있는음을충분히살릴수있다. 굴려서내는여음과울림이앙칼지면서부드럽다. 손의피로가덜하며손의활동범위가넓고자연스럽게원을이루기때문에치는팔의선이아름답다. 활발하고통쾌하며호탕하다. 착착드랭기는 ( 들어안기는 ) 맛이일품이다. 지극히자연스런순환을이루고있어여유가있고가락이물흐르듯출렁거리며마음을울렁거리게한다. 장단의거의마지막 갱

18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을친다음은원을그린다. 원타와직타의어울림으로강함과부드러움의조화를이룬다. 꽹과리채는채의알이돌아가게만든다. 둥글게구르는소리의여음과손바닥에서느끼고채끝에서감도는떨림은색다른맛이고손맛을짜릿하게만든다. 꽹과리는금쇠, 은쇠, 막쇠가있다. 상쇠는숫쇠, 부쇠는암쇠를쓴다. 우리는흔히꽹과리를 깽매기 라고한다. 천둥소리로비유한다. 그래서그 깽매갱 의입소리는다음과같다. _ 깽 ( 갱 ): 손을떼는동시에친다. 순간막음. _ 개 ( 깨 ): 막음을하지않거나, 치고막는다. _ 매 맥 : 치고막는다. 매 가 미 와같이쓰이는경우가많다. _ 무 미 므 : 살짝막고치는데 무 미 ( 무르, 미갱 ) 는앞꾸밈이고 므 는뒷꾸밈이다. _ 무르 : 동시에막고치는데정확히 르 에서막아서 깽 에서연다. _ 음 ( 움 ): 막지않고치지않으며앞의음을그대로살린다. _ 으 ( 읏 ): 갱 이나 개 를치기바로앞에막아앞의소리를끊어는다. _ 깻, 딱, 뚝 : 완전히막고친다. _ 깻 은아래서위로쳐올리고, 딱 뚝 은바르게곧게친다. _ 깨액 : 치고약간의시간차로막는다. 그막는시간의길이에따라 깩 이나 깽앳 소리가나는데, 영산에서는다섯손가락으로쇠를감싸면서정답게잡아준다. 기본가락 : 갱미갱 여기서 갱 은직타. 미갱 은원타. 미갱 은장구의 그덩 과같다. 미갱 이제대로붙어야꽹과리맛을살릴수있다. 채로치는손은가락을만들고, 쇠를들고있는손은소리를꾸민다. 장구소리 장구는궁채편이노루가죽 ( 麞노루장 ), 열채편이개가죽 ( 狗개구 ) 으로만들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81 어장구라고한다. 요즘은개가죽, 소가죽, 양가죽, 말가죽따위를쓴다. 개가죽이소리가크고잘난다. 장구통은자기, 쇠, 미루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박통을쓰는데오동나무가가볍고소리가좋다. 장구소리는빗소리로비유한다. 장구, 정구, 덩그소리로말할수있겠다. 장구칠때는가장편하게메고, 손목은쓰지않으며, 어깨에힘을빼고, 치는순간만힘을주어정확하게친다. _ 궁 : 궁채로궁편을친다. _ 따 : 열채로채편을친다. _ 따, 딱 : 열채로변죽을친다. _ 덩 : 궁채로궁편을, 열채로채편을함께친다. _ 구 : 궁채로궁편을가볍게친다. _ 기, 그 : 열채끝으로채편을가볍게건드린다. _ 구궁 : 궁채로궁편을치는데, 처음엔가볍게, 다음에는힘있게친다. _ 따닥, 기닥 : 열채로채편을치는데, 처음엔가볍게, 다음에는힘있게친다. _ 그덩 : 궁편에궁을, 채편에기닥을함께친다. 꽹과리 미갱 의손막음과같다. 기본가락 : 덩따궁 ( 갱매깽 ) 덩그덩 ( 갱미갱 ) 2) 입소리와가락풀이모든굿을내는처음은어름굿으로한다. 굿소리를내기시작하면서풍년길굿으로길을나서, 마당판굿을벌이는차례로엮었다. 그다음은마당밟이, 걸립굿, 망월굿, 두레굿으로마무리하려한다. 먼저, 어름굿을내고길굿부터마당판굿 열두마당 으로들어간다. 원래본마당판굿은 갖은열두마치 부터이다. 가. 마당판굿 (1) 어름굿 ( 어르기 )+ 두마치 + 풍년질굿 + 문굿 + 넘는가락 + 두마치 + 인사굿 (1)-1 어름굿

18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쇠 개갱갱갱갱갱갱갱갱갱갱 미갱갱미갱갱미갱갱갱갱갱 미갱갱갱갱미갱갱갱갱미갱갱갱갱갱 징 장구 더덩덩덩덩덩덩덩덩덩덩 굿을칠때처음내는가락이다. 마음의준비와흥을돋우며얼러주는가락이다. 굿판의열림을알려사람을끌어모은다. 굿패를한데모이게한다. 신을불러신과인간과의교감을통해신명이오르도록정성으로쳐야한다. 집중의효과가있어사람의마음을묶을수있고, 다음가락에대한기대감을갖게한다. 밥도뜸이잘들러야먹음직하듯잘얼러서맛있는가락이되도록한다. 어름굿을소홀히할때가많은데굿을내는가락이기때문에다음가락에영향을미친다. 충분히판을살피고굿패들의동정을살펴야한다. (1)-2 두마치 쇠 갱 미 갱 미 갱 미 갱 미 갱 므 갱 개 깽 갱 미 갱 개 갱 갱 므 갱 개 깽 갱 미 갱 미 갱 미 갱 미 품앗이 깽 깽 음 미 갱 뚝 깽 음 미 갱 갱 미 갱 미 갱 미 갱 미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개 징 ( ) 장구 덩 덩 ( 따 ) 궁 따 궁 덩 따 따 궁 따 궁 덩 따 궁 따 궁 따 궁 덩 따 궁 따 구궁 따 궁 덩 그 덩 그 덩 따 궁 입장단 둥 그러 간 다 둥 그러 간 다 궁 따닥 궁 따 궁 따닥 궁 따 궁 따 궁 따 궁 따 궁 따 덩 따 궁 궁 따 궁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83 두마치의숫자 2는상승작용으로땅이다. 하늘은가볍고맑은기로이루어졌고, 무겁고흐린기는음으로땅이되었다. 만물이땅에서나오며만물이여기서부터펼쳐졌다. 땅에서마무리하기때문에모든가락은두마치로끝난다. 오행으로보면화 ( 火 ) 이다. 솟아오르는불길처럼힘차고빠르다. 솥단지에콩볶는것처럼톡톡튀고볶아대는맛이있다. 만물이살아꿈틀거리듯생기있게화끈하게마무리한다. (1)-3 질굿 ( 풍년질굿 ) 쇠 개 깽 갱 개 갱 미갱 갱 깨 갱 개 깽 미갱 미갱 갱 깨 갱 갱 갱 갱 무르 갱 갱 갱 본가락 갱 맹 맹 무르 깽 깽 갱 무르 깽 무르 깽 깽 무르 깽 깽 무르 깽 깽 갱 무르 깽 무르 깽 깽 갱 맹 맹 개개 개개 개개 갱 무르 깽 무르 깽 깽 징 장구 덩 덩 덩 따 덩 따다 궁 따 덩 덩 덩 더덩 더덩 덩 따 덩 덩 덩 덩 따다 닥 궁 따 입장단 김 길 산 돈 닷 돈 김 기리 산 돈 닷 돈 덩 덩 따 궁 따 궁 궁 따다 닥 궁 따 궁 덩 따기 닥 궁 기닥 따 덩 따기 닥 궁 기닥 따 덩 덩 따 덩 덩 따 덩 덩 따 덩 덩 따 덩 따다 닥 궁 궁 따 덩 따다 닥 궁 궁 따 덩 덩 따 궁 따 궁 덩 구궁 따 궁 따 궁 외장단형 + 가진형 (=70 느린 3분박 4박자 ) 길을걸어가면서치거나, 판굿하러마당으로들어가면서치는 12박의빠른굿거리가락이다. 징을머리장단에한번친다고해서 외마치질굿 이라고도한다. 굿을칠때는피로를풀거나더나은내일을위해치며, 풍년을바라는마음으로길을열었을것이다. 우리가일어나서맨먼저발을딛는것은이곳에서저곳으로가려함이니, 뭔가희망, 꿈, 바람이있기에설레며나서는

18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것일것이다. 그꿈을찾아가는첫머리에풍성하기를바라고잘살게해달라는 풍년질굿 이길을연다. 먼길을떠나는설렘과각오와부풀은가슴으로목적지를향해당당히늠름하게나가는굿이다. 매우도전적인가락이고비장함과긴장그리고풍성함과여유가담긴길굿이다. 판굿안에서는거의치지않으며첫길을나서거나판이끝난후되돌아오는굿으로친다. 길을나설때 구르는가락 ( 머리가락, 사이가락 ) 은발을내딛는힘찬소리이고, 중간에간간히칠때는전열을정비하고사기를북돋우기위해치며, 길가다가힘이들거나위험한상황 ( 다리를건너거나, 비탈길, 교차로 ) 이되었을때는환기를시켜재정비를한다. 덩따다다궁따궁 = 김길산 ( 김기리산 ) 돈닷돈 이소리는아마도金吉山 ( 금길산 )-금광산의금을캐는희망을담아넉넉한삶을바라는마음이묻어난다고볼수있다. 실제로윗마을에 광산 이라는마을이있었고, 금을거의다캔뒤모두떠나고광산의흔적만남아있다. (1)-4 문굿 입장단 쥔 주 인 문 여 소 마 당 가 운 데 불 놓 소 쇠 갱 미 갱 갱 미 갱 미 갱 미 갱 갱 미 갱 징 장구 덩 덩 궁 따 궁 덩 덩 궁 따 궁 덩 따 궁 궁 따 궁 더 덩 덩 그 궁 따 궁 (=170, 빠른 3분박 4박자 ) 문 ( 門 ) 은모든재화 ( 財貨 ) 와희로애락 ( 喜怒哀樂 ) 이드나드는곳이다. 그러기에이문을통해서모든일이이루어지는것이다. 많은재물이꾸역꾸역들어오기를바란다. 불은사람의마음을들뜨게하고액을태워없애는신성한존재이며, 불로인해문명이발달하고문화가형성되었다. 불은정열, 흥분, 에너지 ( 힘 ), 성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85 ( 性 ) 을상징한다. 굿은적극성을띤강한현실성과생동감으로현실과이상을아우르며, 여럿이어우러짐은굿의아름다움이자스스로에대해깨끗이씻는일이다. 문굿은집의대문앞에서치는데 쥔주인문열소. 마당가운데불놓소. 하는입장단이있다. 그입소리로하지않고꽹과리가락으로말한다. 입말로할때도있다. 굿판을벌이려하니마당에불을피워훤하게밝혀달라는말이다. 옛날에는전기불이없어서장작불로훤히밝혔다고한다. 불을피운마당에서하는굿은몸과맘이푸근하여흥을더욱더돋우어준다. (1)-5 넘는가락 쇠 1 갱 미 갱 갱 미 갱 2 갱 무리 깽 갱 미 갱 3 미 갱 미 갱 갱 깻 4 깽 갱 미 갱 깽 징 장구 덩 따 궁 덩 따 궁 덩 따 궁 따 덩 따 궁 더 덩 더 덩 덩 딱 덩 덩 궁 따 궁 넘는가락 을 24마치 라고한것은 24절기를뜻하는걸로보인다. 한절기한절기넘어갈때마다기후의변화를알아차리듯가락도그기미를알고마무리하라는뜻이다. 가락을 24마디로만들수도있고, 굳이그럴필요없는숫자가가진상징성이다. 자연의순리에맞게한고비두고비계절의흐름을따라우리몸이나생명체가달라지고, 고개를한구비한구비넘어가듯힘겹게간신히해냈다는뿌듯함과사태의긴박함을나타낸다. 넘는가락 은마치굿한가락을마치고또넘어가마치고쌓아간다. 넘는가락 을단순히본가락에 두마치 로잇기위한가락으로만볼것이아니라, 한굿을마무리하기위해넘기가힘들다는상징적인의미를두고있기때문에, 절대소홀히할수없는가락이다.

18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1)-6 인사굿 쇠 갱 갱 갱 갱 미갱 미갱 갱 딱 인사 징 장구 덩 덩 덩 덩 더덩 더덩 덩 딱 인사 인사굿은대게질굿으로길을나서문을열고들어가인사를한다음마당판굿을벌인다. (2) 어르기 + 갖은열두마치 + 외마치 + 두마치 + 세마치 + 사오륙마치 + 일곱마치 + 여덟마치 + 아홉마치 (2)-1 갖은열두마치 쇠 갱 갱 개 갱 갱 개 갱 갱 미갱 갱 갱 개 갱 갱 미갱 갱 미갱 깽 갱 ( 미 ) 갱 미갱 갱 미갱 깽 개 갱 깽 갱 무리 깽 깽 개 갱 깽 갱 무리 깽 깽 갱 무갱 깽 깽 징 장구 덩 덩 따 덩 덩 따 덩 덩 그덩 덩 덩 따 덩 덩 그덩 덩 따 궁 덩 덩 그덩 덩 따 궁 더 덩 덩 덩 따 궁 더 덩 덩 덩 따 궁 덩 그덩 덩 덩 (.+ =53, 5분박 2박자 ) 마당판굿의첫가락으로쇠는쇠대로, 징은징대로, 장구는장구대로, 북, 소구의각각소리가가장멀리울려퍼지는가락이다. 첫마당을쨍쨍울려구경꾼을모이게하는굿이다. 광고굿 이라고하며, 판굿마당을골고루밟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87 아부정을가시고마당을깨끗하게고른다. 혼합박 2,3.3,2(10박 ) 인 보통12 마치 가마당밟이에서길굿으로쓰이는것처럼, 갖은열두마치 는마당판굿의길을열어판을닦는굿이라할수있다. 흔히 마치 라고할때징을치는횟수로정하는데, 그렇지않는것도있다. 굳이박을쪼개어서맞출수는있지만그마치의숫자가가지는고유한영역이있다고본다. 왜 갖은열두마치 가판굿맨머리에쳐지는지와 12 라는숫자그리고박이길고짧아절름거리는느낌의 10박으로쳐야되는지를알필요가있다. 12 라는수는우리가일상생활에서흔히쓰는 12지신 이나 12달 12 시 에서찾을수있다. 그것은절차적시간의둥그런모양을지닌꽉찬완전성을뜻하기도하며, 태평성대를상징한다. 또한엇몰이형식의 10박은신비한인물이나오는대목에서치곤한다. 신을불러첫머리에내는이가락은이세상모든이를깨우고사람과신이함께교감하는가락이라고할수있다. 장단은 7장단으로되어있고, 징은열번, 일곱번이나아홉번칠수도있다. 12의일상과 10의신비 가어울려우주를울린다. 고요한울림, 그큰울림의정돈된가락으로세상을안아서외마치로얼싸안고세마치로기운차게나아간다. (2)-2 외마치 쇠 갱 미갱 갱 미갱 갱 미갱 갱 미갱 갱 깨 갱 미갱 음 미깽 갱 미갱 개 개 개 개 개 개 갱 미갱 갱 미갱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갱 미갱 징 ( ) ( ) 장구 덩 따 구 따 궁 따 구 따 덩 따 궁 따 궁 궁 따다 궁 따 궁 덩 따 궁 궁 따 궁 궁 따 궁 궁 따 궁 덩 구 궁 따 궁 궁 기닥 궁 따 궁 덩 궁 덩 궁 궁 궁 따 궁 따 궁 궁 기닥 궁 따 궁 외장단형 (.= 90 115, 보통 3분박 4박자 )

18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외마치의 1은하강작용을하며하늘이다. 원기가처음나누어질때가볍고맑은기는양 ( 陽 ) 으로하늘이되었다. 음과양의합 ( 合 ) 처럼반드시양 ( 陽 ) 의빛을받아음 ( 陰 ) 의땅에서생명이꿈틀하듯두마치 (2) 가락으로끝을맺는다. 또하나는오행 ( 五行 ) 에서 1 이물 ( 水 ) 에해당한다. 물이샘에서솟아나내를지나강을만나고거대한바다로출렁출렁흘러가듯, 큰바위에부딪쳐돌고, 때론폭포처럼시원하고거칠게, 거친물살이솟구치듯힘차게, 깊은물속처럼고요하게, 바다물결이넘실넘실, 이렇게물흐르듯경쾌하면서도가볍지않게막힘없이부드럽게출렁출렁쳐야그맛이살아난다. 물흐르듯흥겹고정답게너울너울치는중평굿의대표적인가락이다. (2)-3 세마치쇠갱매갱매갱매깽개갱갱매갱매깽징 장구덩그덩그덩따궁따더덩덩그덩따궁따 (.=155, 3분박 4박자 ) 세마치의 3은사람 ( 人 ) 에해당한다. 오행은목 ( 木 ) 이다. 뿌리에서물을빨아올려줄기, 가지잎으로전달하는상승작용, 추력 ( 推力 ) 운동이다. 나무의뿌리는땅에서줄기는세상밖에나와공기, 햇빛, 물을만나무럭무럭자란다. 이것이곧사람의모습이다. 사람이이땅에태어나서살아서움직이는생기발랄함과푸른나무처럼싱싱하게그리고젊은청춘처럼힘차게빠르게톡톡튀는맛이있어야한다. (2)-4 사오륙마치 3목 ( 木 ) 이 1수 ( 水 ) 로향하려는운동이 4금 ( 金 ) 인데, 그 3목 ( 木 ) 의상승운동을가지고 5토 ( 土 ) 가구심점이되어, 그향일성 ( 向日性 ) 을지닌 5토 ( 土 ) 가믿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89 음과주체성으로 6수 ( 水 ) 를묶어중심적역할을한다. 곧중 ( 中 ) 태극 ( 太極 ), 5황극 ( 黃極 ) 을이룬다. 5( 양 ) 가 4( 음 : 선천수, 생수生數 ) 와 6( 음 : 성수成數 ) 을묶어서조화롭게만들었는데, 만약따로 4마치, 5마치, 6마치로구분이되었다고한다면 5의효용가치가그저독립체로만만족할수밖에없다. 5의특성 ( 土 ) 을살려 1,2,3, 의뜻을잇고 7,8,9의새로운변화를꾀하려고하는것이바로 4,5,6을묶은이유라하겠다. 가락이 3마치가락에 7마치속가락이숨어있고, 456마치에서넘어가기직전에치는가락은 8마치뒷가락이다. 이것만봐도똑같은장단에비슷비슷한가락을쭉벌려서칠필요없이 5를중심으로앞뒤를묶고 7,8.9로풀려했을것이다. 7,8,9마치가비슷한것을보면마치똑같은것을치는것처럼지루한느낌이든다. 그래서비슷한 3마치와 456마치로묶어흥을돋우고 789로감정을더욱고조시키는것이라하겠다. (2)-5 일곱마치 쇠 갱 맥 깽 갱 맥 깽 갱 매 갱 매 갱 맥 깽 미 갱 갱 깽 움 매 깽 징 장구 덩 따 궁 따 덩 따 궁 따 덩 그 덩 그 덩 따 궁 따 더 덩 덩 그 덩 따 궁 ( 따 ) 가진형 (.=155 빠른 3분박 4박자 ) 일곱마치뒷가락 ( 몰이가락 ) 쇠 갱 미 갱 깽 움 매 깽 미 갱 갱 깽 음 매 깽 징 장구 덩 덩 궁 따 궁 덩 그 덩 따 궁 따 궁 더 덩 덩 따 궁 따 궁 음양대비형 (.=170 빠른 3분박 4박자 )

19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일곱마치는세마치세장단으로짜여있다. 첫번째 갱맥깽 과세번째 음매깽 을변화를주어단조로움을피하며맛을더했다. (2)-6 여덟마치 일곱마치가락에뒷가락세번째가락 니갱갱므리깽깽 을변화시켜묘한소리 ( 탁한소리 ) 로조금더팔팔하게기운을드높인다. (2)-7 아홉마치일곱마치에 갱매갱매갱매갱매 한장단을더넣어더욱달아오르는느낌을준다. 세마치네장단으로되어있다. 우리민족은 3이라는숫자를가지고, 천지인 ( 天地人 ) 의조화를꾀하여자연의순리에따르려는 3의철학을가지고있다. 우리인간은자연그대로와어우러졌을때가장아름답다고느낀다. 인간이가질수있는최대의수는 9이고인간세상은미완성의세계이며, 살아가는과정을중요하게여겨 10십 ( 十 ) 이라는완전수 ( 성인수 ) 는취하지않았다. 그리고 12마치가있고 24마치 ( 넘는가락 ) 36마치 ( 영산 ) 가있다. 마치굿이 9마치까지있고 10마치와 11마치가없는것은, 이땅에사는우리인간은미완의삶이며생자필멸 ( 生者必滅 ) 하는이세상은탐 ( 貪 ), 진 ( 嗔 ), 치 ( 癡 ) 와오욕 ( 五慾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 칠정 ( 七情 -희로애락애오욕 ) 이지배하는세계임을나타낸다. 그래서우리인간이가질수있는최대의수는 9 인데완전해지려고하는과정을중요하게보았기때문이다. 10 은우주만상을다감싸안은큰덩어리의중 ( 中 ) 이다. 중생과부처가둘로보이지않고, 자기와남을둘로보지않고, 생멸과영생을둘로보지않고깨달은사람의중용중도를이룬마음, 그래서 10 은완성을의미하는성인수여서취하지않았던것이다. 갖은열두마치부터아홉마치까지둥글게도는것은인간의도리로절차를밟아큰흐름을깨뜨리지않고, 최선을다하는소리를원안에꽉채워분산되는것을막기위함이다. 첫마당을진을풀어혼란스럽게하지않고원안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91 의뭉쳐있는힘을품앗이부터맘껏뿜어풀어내는것이다. 마치굿은굿을시작한첫마당으로서군더더기없이깔끔하게마무리하고판을다지고몰아쳐야제맛이난다. 군사적으로말하면전력을다져훈련하는모습이다. 점점쌓아가는과정을중요하게보았고인간관계를맺는치열함을보여준다. (3) 어름굿 + 품앗이굿 + 느린삼채굿 + 외마치 + 두마치 (3)-1 품앗이굿품앗이는여럿이서로힘을모아서로품을지고갚는일이다. 품앗이가락도농사지으며품을갚는것처럼도와주고밀고당기는짝놀음이다. 쇠가락을주고받아긴장감을높이고치열하게싸우며견주는느낌이다마치굿에서둥그런일상적인모습으로힘을낭비하지않고둥근상태로기운을모아, 품앗이로원을깨뜨려또다른세계로이끌고있다. 품앗이굿을전쟁놀이로비유하면치고받는불꽃튀는싸움이다. 그래서 두마치 로빨리몰아간다. 적군과의일진일퇴, 밀고당기며치열하게싸우다가화해하고사귀며상생의길을찾는지극히현실적인삶의현장을말해준다. (3)-2 느린삼채굿김을매고나서머슴을태우고가는길굿의한가지인데, 열심히일을끝내고쉬엄쉬엄쉬어가는마당으로너울너울흥겹게춤추며저절로어깨가들썩이는가락이다. 품앗이로빠르게주고받으면서막휘몰아빠르게마무리한뒤에, 나근나근하게너울거리며여유있게변하는과정은몸과마음이잘풀려한층흥을올리며구경꾼들을놀이판으로들어서게만든다. (4) 어름굿 + 호호굿 + 호호굿도드래미 + 각정굿 + 각정굿도드래미 + 두마치 호호 ( 呼呼 ) 는부르고허허 ( 許許 ) 는대답하는소리이다. 앞의풀어지는놀이판을다시정비하라는뜻으로, 점호하며전열을가다듬어사기를북돋아준

19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다. 이가락도들뜨지않는 10박으로판을다듬고, 판굿중간에정리정돈하는굿이다. 호호굿도드래미는 호호 하면서돌고 허허 하면서돈다. 호호 허허 를각다른방향으로도는곳도있는데, 굳이그러지않아도된다. 부르고대답하고서로응하여하나가된다. 호호굿에이어각개전투를한다. 쇠는쇠대로가죽은가죽대로만났다헤어졌다하며전투하듯세차게친다. 가락이느슨해지지않게정신을바짝차린다. 숫가락 ( 양 ) 을뒤로보내고, 뒷가락인암가락 ( 음 ) 을첫가락으로쳐주는데 3마치가바꿔치듯이그렇다. 그리고암가락을탁하고묘한소리를내주고, 숫가락은맑게짝을지어친다. (5) 어름굿 + 노래굿초다듬이 + 노래굿 + 두마치 (5)-1 노래굿초다듬이노래굿초다듬이는쇠가방정떠는가락이다. 노래하기전에분위기를띄우며재롱을떤다. 장구는두마치가락으로쳐도되고쇠가락에맞게쳐도된다. (5)-2 노래굿사설 어르기 + 어리씨구나어르기 + 어리씨구나골골골골골골 ( 꺽을염불 ) 어르기 + 서정강상월이요동각에설중매라어르기 + 차문주가하처재 ( 借問酒家何處在 ) 요목동요지가행화촌 ( 牧童遙指杏花村 ) 이라어르기 + 우리도하심심허니노래하나를해어나보세무슨노래를해어나볼까옥설가 ( 玉雪歌 ) 하나를해어나보세옥설가도좋거니와세황가 ( 歲況歌 ) 하나를해어나보세놀러가세놀러가세월산이방으로놀러가세월산이는어디가고거문고한쌍만걸려있네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93 돈실러가세돈실러가세영광법성으로돈실러가세 고만조만파양궁허세북두야칠성이앵토라졌네 어리싸아절써허 노래굿은경치좋은자연을벗삼아한잔술하다보니신세타령이나오도다. 오묘하게 10박으로가락삼아풀어가는디, 우리의삶을노래하는것이라니, 사람의욕심은끝이없고, 그만저만세월가니, 노래나부르고한판놀아보자. (6) 어름굿 + 홑영산 ( 靈山 )+ 접영산 + 영산다드래기 + 두마치 (6)-1 홑영산 쇠 1 깽 무갱 깨액 2 깽 무갱 깨액 3 움 무 르 깽 움 무 르 깽 4 움 무 르 깽 므 갱 무 르 깽 5 개 깽 개 깽 음 무 르 깽 개 깽 개 깽 움 무 르 깽 6 움 무 르 깽 므 갱 무 르 깽 움 무 르 깽 므 갱 무 르 깽 7 갱 무 르 깽 므 갱 무 르 깽 갱 무 르 깽 므 갱 무 르 깽 8 갱 무갱 움 무 르 깽 ( 움 ) ( 무갱 ) 움 무 르 깽 9 움 무 르 깽 움 무 르 깽 10 개 개 개 므 개 개 개 개 개 므 개 개 11 깽 깽 깽 므 갱 미갱 깽 12 깽 미갱 깨액 징장구 덩 궁 궁 따 덩 궁 궁 따 덩 따 궁 따 덩 따 궁 따 덩 따 궁 따 궁 덩 따 다 궁 따 다 덩 그 덩 그 덩 그 덩 따 다 궁 따 다 덩 덩 덩 덩 따 궁 따 덩 궁 궁 따 덩 구 궁 따 궁 궁 따닥 궁 따 궁 궁 궁 따 궁 따 궁 궁 따닥 궁 따 궁 가진형 (. =100 105 보통 3 분박 4 박자 )

19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6)-2 접영산 쇠 1 솟 쩍 쩍 깽 솥 짝 다 깽 2 솥 텡 솥 텡 3 도리 깽 도리 깽 캥 도리 깽 도리 깽 캥 소 쩍 쩍 소 쩍 솥 쩍 솥 쩍 쩍 도리 깽 깽 도리 뺑 도리 뺑 징장구 덩 따 궁 따 궁 덩 따 다 궁 따 다 가진형 (.=100 105, 보통 3분박 4박자 ) (6)-3 영산다드래기 쇠 갱 갱 미 갱 미 갱 미갱 갱 미 갱 미 갱 깽 깽 음 미 갱 뚝 깽 음 미 갱 징장구 덩 덩 궁 따 궁 덩 덩 궁 따 궁 ( 음양대비형 (.=170, 빠른 3분박 4박자 ) -영산풀이영산은좌도굿의꽃이라하니과연꽃이될까. 그꽃을피우기까지꾀나시간이걸리니이야기가길어질것같다. 영산은신령스러운산, 신불을제사지내는산, 중인도의산, 석가여래가설법하던곳, 도가-봉래산 ( 蓬萊山 ) 동해가운데신선이산다는산, 영취산 ( 靈鷲山 )-산모양이독수리같다고해서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95 독수리가많다는데서신비로운산, 그리고 영산오르다 는 신이나다 는뜻으로쓰인다. 실제로풍물굿에서 영산 이라는용어는 영산굿 과 영산가락 이라는말을다포함한개념이다. 또한영산이라는용어자체가신과굿, 신령과인간이함께있는원초적인느낌이다. 영산이좌도굿의꽃이라고했는데, 꽃을피우는것은열매를맺고살아남기위한처절한몸부림으로가장화려하게뽐내다시들어가지만또다른생명을기대하기에앞날을또꿈꾸는것이다. 이렇듯그꽃이란무언가절정에오른상태를뜻한다. 영산가락자체만으로도충분히굿의느낌을가질수있고, 판굿의흐름상앞가락들을하나하나쌓아서영산에서몸짓과가락이더욱깊이를더하고, 무언가갈망하는마음에서갈증을없애고퍼트리려는모습으로볼수있다. 또한전쟁이끝나서마음편하게놀고, 전투상황에서일상으로바꿔흐드러지게기쁨을누린다. 풍물굿에서영산이라는용어의정확한개념을정리할수는없지만, 가락이나여러가지정황으로볼때, 마음이편안하면서진중 ( 鎭重 ) 한느낌이들고, 구도자의마음으로신성한곳에서자연에따르고 ( 自然順 ) 사람일에응하며 ( 人事應 ), 무위자연 ( 無爲自然 ) 의도를실천하려는우리인간의바람이랄까. 영산굿은사람과신 ( 자연, 하늘 ) 의대화형식으로이루어지며, 사람의정성으로간절함을드러내바람과꿈을찾아일치감 ( 일체감, 깨달음, 쾌감 ) 을맛보려는큰울림이다. -영산가락의특징은영산이좌도의꽃이라고말할수있는것은다른가락과분명한차이에있다. 영산은우선몸짓과타법이다르다. 영산은손을척내려뜨리고꽹매기를탁털어놓고다섯손가락으로막음을하며치니, 가락을매기는데몸짓이자유스럽고넉넉하여울림이깊다. 셈과여림, 비움과채움이잘어울려담백하면서가볍지않다. 이어울림소리는사람과자연의소리이다. 영산가락은한장단을되풀이하는데, 자연 ( 신 ) 과사람, 사람과사람이굿

19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소리로서로응하는것이다. 깊은산속에서산울림소리를들어보면이쪽에서하는소리를저쪽에서받아주듯이그런대화 ( 화답 ) 형식인것이다. 가끔가락을반복하지않고한가락만치면서그냥나오는대로칠수있다. 이는자연과내가호흡이맞지않고뭔가일이풀리지않을때그럴수있다. 또, 스스로가락에빨려들어굳이호응이필요없고형식에구애받지않는자유스러운몸짓일수도있다. 영산에서상모짓은기본적으로가락의리듬에딱들어맞게쳐야한다. 허나영산의느낌은부조화속의조화랄까그런미묘한감정이그속에흐르고있다. 그러기에상모짓이가락과따로가는것처럼보일지라도전혀어색하지않고, 그가락과의어우러짐은가히환상적이라고할수있다. 그렇다고상모짓이가락과다르게어긋나는것이아니다. 상모짓이엇박인듯가다가도제자리로돌아올때, 또그박을찾아조화를이룬다. 어떤때는느리게또어떤경우는빠르게상모를치면서가락에맞게가장멋진예술의경지를보여준다. 영산의두드러진특징은울림과상모놀음이다. 꽹과리를풀어서밑바닥부터끌어올려뽑아낸깊고긴울림이퍼지고, 장구는열채와궁채가통통거리며다정하게맞장구치는소리는아주잘버무린비빔밥과같다. 꽹과리소리의울림과장구의다독이는소리는사랑하는짝과밀고당기는사랑스런몸짓으로하나되려는더없는어울림이다. 상모짓, 악기, 몸짓이따로가기란무척어렵다. 박자에맞게착착돌리기는쉬워도가락에맞는상모짓을나름대로연출하기란쉽지않다. 어찌보면어둔해보이기도하고흐트러져보이나스스로그러한자유의몸짓이더욱아름답게한다. 그것이마침내하나를향해일치감을맛보고, 어떤극치 ( 이상향 ) 를찾아헤매는노력일것이다. 이것이살아있다는소리이고, 기교없는기교를마음껏내보인다고할수있다. 김봉열선생님께서 영산은도수가있다 는말씀은바로, 어느하나 ( 그무엇 ) 를위해도달하는절차를말하는것으로기 승 전 결의과정을뜻한다. 인간이태어나서죽을때까지인생의희로애락을이가락에담아낼수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97 있다는것은참으로놀라울뿐이다. 천부경 ( 天符經 ) 에보면첫자와끝자가 一 이다. 첫 一 자는시작이없는 一 이요, 끝 一 자는끊임없는 一 자라하였다. 따라서두 一 자의배치나의미로미루어볼때이는삼신 ( 三神 : 天地人 ) 의끊임없음 ( 圓 ) 을상징한다. 그리고 살아서는사람이요죽어서는하늘 이라는그것이내가길이사는것이라는생사관 ( 生死觀 ) 이다. 망 ( 妄 ) 으로부터진 ( 眞 ) 을돌이킴으로써신 ( 神 ) 에게나아가면삶을얻는다. 생 ( 生 ) 이든멸 ( 滅 ) 이든원래 一 로돌아가는것은마찬가지다. 그런데이 一 은마치되마침이없는 一 인것이다. 영산의처음가락이 生 이고마지막가락이 滅 이라했을때, 위천부경과똑같고, 불교 ( 佛敎 ) 의윤회 ( 輪回 ) 사상과통한다. 동양의정신은유불선 ( 儒佛仙 ) 의철학과역학 ( 易學 ), 음양오행설 ( 陰陽五行說 ), 풍수학 ( 風水學 ) 의 3개과학이라고볼수있다. 우리영산은영락없이우리삶을이야기하는것이다. 유교로바라보면천명 ( 天命 ) 을받아입신양명 ( 立身揚名 ) 하는과정을나타냈고, 불교로보자면깨달음을향해기도하고구원하며해탈성불 ( 解脫成佛 ) 의뜻이들어있고, 도교 ( 道敎, 仙 ) 는선경 ( 仙境 ) 을향해우화등선 ( 羽化登仙 ) 하려는몸부림을나타낸다고볼수있다. 佛은마음 ( 心, 佛 ) 하나를붙잡고 ( 空 ), 道敎는몸 ( 身, 仙 ) 에의지하며 ( 無 ) 儒는이름 ( 命, 名 ) 에매달린다 ( 天 ). 영산가락을풀어보면위 3개의철학이그대로스며있다. 그밖에일상생활에서자그마한것부터이루어가는모습들. 곧가정을꾸려가는일, 연인들의달콤한사랑이야기, 밥짓고먹는일들을영산가락에맞추어보면흥미있을것이다. 시간과공간의어울림, 그가락속에서심장이멎을정도로, 그고요함속에어둠을깨고가슴을찌르면서뻥뚫리게하는가락이있으니바로, 영산의울림이다. 영산은치는사람마다맛이다르기때문에묘한맛이있다. 또치배

19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들이나름의소리를내고, 가죽부드러움과쇠의강함을서로채워주며밀고당기는가운데가장좋은어울림을이루어내는것이영산의맛이고멋이라할수있다. 천부경에 一 은묘하게펼쳐나가만 ( 萬 ) 가지로가고만 ( 萬 ) 가지로와도쓰임은변하나본 ( 本 ) 은움직이지않는다. 하였듯이말이다. 영산가락의느낌이사람따라다르지만 가장단순한것이깊이가있고극과극은통한다. 고한다. 꾸밈이없는모습에서대자연 ( 大自然 ) 속의삶 ( 生 ) 과죽음 ( 死 ) 을넘나드는가락에새희망이솟고원초적인생명력을지닌기 ( 氣 ) 가넘쳐흐른다. 곧, 영산은가락하나하나에우리의삶이그대로배어있으며, 삶의길그자체이다. 영산가락소리를들으면 물동이를이고가는아낙내도엉덩이를실룩거리고, 앉은뱅이도벌떡일어나서춤춘다. 하였다. 영산소리를들으면저밑바닥부터끌어오르는가슴이쇠가락의깊이와명쾌함에마음이밝아진다. 이처럼굿판에서의영산은그마당의꽃이며, 울림소리와상모놀음은푸근히안아풀어지는가장아름다운몸짓이다. 가락을보면그사람을짐작할수있다. 같은가락일지라도품어나오는소리는다름의멋이다. 그사람의생각, 성격, 철학, 인생관, 태도, 굿을대하는느낌에따라가락의맛이다르게나타난다. 이런맛을가장잘드러내는것이바로영산가락이다. -영산의가락짜임은영산은홑영산, 접영산, 영산다드래기, 품앗이가락으로짜여있다. 남원은늦은영산, 잦은영산, 임실의가진영산, 전주는졸음영산이라고말한다. 가락의맛이좀다르다. 가락의흐름은비슷할지언정그안에담은뜻과명칭은좀다른특징을가지고있다. 다른곳은빠르기로이름을짓는데, 중평굿은 홑 과 접 으로나누어소쩍새소리를넣어접영산을친다. 홑영산은지극히혼자앉아서헤쳐나가는모습이고, 접영산은고요한밤에애처롭게울어대는소쩍새가우리의바람을하늘가까이전해주는가락이다. 홑영산부터조금씩달아올라, 접영산에서서로느낌이맞아들어가며절정

전라좌도진안중평굿 199 으로이끌면서, 영산다드래기로몰아더욱올리고, 품앗이가락으로주고받아아주빠르게몰아꽃을퍼트리고, 하나됨을뿌듯하게맛보게된다. -영산진행절차는어르기를하면서상쇠 ( 쇠잽이와징수 ) 가수장구앞으로간다. 서로짝을마주하여어루기를하다가앉음과동시에어르기를끝낸다. 어름굿을하면서자기가할수있는상모놀음을맘껏해보인다. 상쇠가한바탕을치고나면부쇠, 삼쇠도한번씩치고, 한바탕친쇠잽이들은원안에서쇠발림과상모짓을하며놀고나머지가죽치배들은원진상태에서돌지않고원을크게벗어나지않은상태에서자유스럽게친다. 홑영산은홀로앉아서그무엇인가를찾아해매이며해쳐나가는모습을볼것이다. 쇠잽이가홑영산을한바탕씩치고나면상쇠가다시접영산을치며가락에맞는상모놀음을멋지게연출한다. 이때도진의형태를원진그대로인상태에서칠수도있고, 모든치배가조금씩알게모르게앞으로이동하면서쇠잽이의몸짓을따라할수있으며, 그가락따라일체감을맛보며점점기분이올라가락이절정에오르게된다. 한바탕씩다치고나면이때영산다드래기의빠른가락으로더욱흥을돋우고, 쇠를잠깐멈춰쇠발림하고, 품앗이가락으로주고받는느낌으로최고의기쁨을맛보게된다. 그순간모든시름잊고혼이나간듯무아지경이따로없다. 영산은자유와절제가하나되어풀어지는가락이다. - 홑영산치는순서 홑영산 : 앉아서치는모습의속뜻은삶과밀접한관계가있다. 생명을키우는땅에가장가까이서자기혼자이세상을헤쳐나가는몸부림으로보고, 홀로마음에있는한 ( 恨 ) 이나흥 ( 興 ) 을푸는뭔가고민하는모습, 비유하면아이가세상에나와걸음마를하면서어기적저기적거리다가엉거주춤흔들거리며가까스로두발

20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로번쩍일어섰을때의그환희, 해냈다는뿌듯함, 그런느낌이아닐까. 그순진무구 함의기적같은느낌이있다. 단락을묶어서 12는내는가락곧, 起에해당하고, 3~8 까지는承이며다는가락이다. 9~10 은轉, 11~12 는結이며맺는가락이라할수있다. 더자세하게보면 1234의순서는변해서는안되고 5678은순서에관계없이흥이나는대로섞어치되두세번치고난다음, 9에서한번이나세번정도치고 10으로넘어가 2장단 ~6장단쳐주고 11~12 로맺는다. 그러면바로부쇠가받아치는데 1과 12가같은가락이기때문에반복을피하기위해 1번한번만쳐서자연스럽게연결짓고, 1~2 를다치고넘어가기도한다. 여기서꼭절차가필요한가락이있다. 넘기기위한가락이고부드럽게연결하기위한가락인데 3번과 9번이다. 이가락을치지않으면넘어가는느낌이없고, 9번을필요이상으로많이치면가락이늘어지거나긴장미가없어져맛이덜하다. 곧, 9번은뭔가치닫기위한앞놀이이다. 10번은서로느끼며쾌감에다다를수있도록감정을최대한끌어올리는가락이다. - 접영산치는순서 접영산 : 소쩍새를전달자로해서하늘에접하다. 인간이부러워하고최고이상 ( 理想 ) 의하나가새가되어하늘을자유스럽게날고싶은것일것이다. 삶과죽음을초월한처량하고구성진소쩍새울음소리를깊은밤에들어보았는가? 소짝짝, 소쩍, 접동, 솥텡 하고우는소리를... 소쩍새의울음소리로한해의농사를점쳤다고한다. 접영산은소쩍새를매개로해서인간의바람을하늘에구원하는 ( 하소연 ) 하는가락이다. 풍년을기원하는마음으로이가락을쳤을것이다. 소짝짝 ( 솥작다 ) 은풍년이들어솥이작다는뜻이고, 솥텡 은흉년이들어솥이텅비어있다는것이며, 도리깽도리깽캥 은도리깨질하며추수하는모습인데, 콩깍지를마당에널어놓고도리깨로내려치면탱탱여문알맹이가터지는소리가 캥 하는소리이다. 탱탱익은곡식이그껍질을벗는소리요, 곡식을터는소리요, 씨앗이끊임없이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01 껍질벗고터져나오는소리요, 농사일터에서열심히일하는쇳소리이다. 홑영산의 1234는그대로치고 5678 을한번정도치고소쩍새가락을넣는다. 접영산가락 123 을순서대로두어번반복하고 9101112로마무리한다. 이상영산의가락의구분을크게는 4개 ( 기, 승, 전, 결 ) 로나누고, 자세히는 7개로묶어본다. 12, 3, 45678, 9, 10, 11, 12 이렇게정리된다. 가락을줄여서치고두마치로가서일단쇠를멈추고쇠발림하다가품앗이가락으로넘어가두마치로마무리한다. 영산가락은장단을단위로두장단이한짝이되고, 제 3 4 박이각부분별로같은흐름을갖고있으며강약의장단에따라연주되고있다. 이러한음악적특징을갖게한요인으로상모놀음을들수있다. 특히영산에서는쇠잽이들의쇠가락, 쇠발림, 상모놀음이중요하고자기의모든솜씨를보여야한다. 상모놀음은가락안에서는자유롭게하나어느정도큰틀에맞아야하고, 가락흐름의각요소나속도와도깊은관련이있다. 다시말하면몸의움직임, 상모짓이가락의뜻을전하는데어색함이없이어울려야한다는것이다. 여기에영산의묘미가있다. 처음부터나비상과외사만을친다고한다면영산에담긴참다운멋을느끼지못한채그저가락만을치는수준에머물고말것이다. 그러므로가락과몸짓과상모짓이자연스럽게어울릴수있도록끊임없이갈고닦아외사, 나비상, 양사, 사사, 전조시, 세려얹기, 개꼬리등을적절히비벼서자기를나타낼수있도록생각하고연마하여새롭게변해야한다. (7) 어름굿-춤굿-잦은춤굿- 외마치-두마치엉덩이를흔들며춤추기좋은가락이며, 몸짓이나가락이여유가있어서몸동작을충분히자유스럽게살릴수있다. 느리게시작하여점점빠르게흥을고조시킨다.

20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8) 어름굿-반잔지래기- 외마치-두마치용이꿈틀꿈틀하며용트림하듯 乙 자진으로가는굿이다. 길을갈때는용기를앞세우고위아래로들썩들썩하며좌우로비틀비틀거리니저절로사람의마음을사로잡는다. 가락자체가저밑바닥을들여다보듯깊이있고흥과한이흠뻑젖은멋진가락이다. (9) 어름굿 + 왼잔지래기-영산다드래기- 두마치이가락은개인놀이가락인데 재능가락 이라고도한다. 소구부터자기기량을맘껏뽐내면서놀게하고장구놀음, 징놀음, 깃발놀음, 열두발상모놀음을하게된다. 장구놀음은자기가가진가락을뽐내는것인데요즘은틀에박힌설장구가락을연주하고있어개인놀음의다양한맛이떨어진다. 가락은영산의흐름이나소리가비슷하나좀더자유스럽고, 가락또한다양하게변주가능하며상황에맞게가락을내놓기때문에즉흥적이며가락의폭이넓다. 개인의기량을뽐내는자리이기때문에굿쟁이로서자기모습을드러내는데최적인데지금은이것도치배별로단체놀이에치중하여개인의가락맛이떨어진다. (10) 어르기 + 반굿거리 + 왼굿거리 + 외마치 + 두마치 + 도둑잽이 + 탈머리 + 두마치굿거리가락을치며자연스럽게놀다가, 상쇠가쇠를놓고쉬고있는사이에 ( 일광놀이 ) 잡색이상쇠의꽹과리를훔쳐가지고, 쇠를팔아노름 ( 투전놀이 ) 을하면서, 재담도하고관객을웃긴다. 이때나발을불면깜짝놀라노름판을옮겨서하고, 이리저리서너번그렇게하다가결국잡히고만다. 판한가운데에영기를세워죽음의문앞에꿇어앉히고, 상쇠가벌을내리면서하는소리가 상쇠 : 네이놈들! 노름꾼 : ( 무릎을꿇고머리를조아린다 )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03 상쇠 : 네이놈! 상쇠의쇠를훔쳐가노름을하다니네놈의모가지를끊어도원통치말아라. 노름꾼 : ( 놀라서도망가려한다.) 상쇠 : 여봐라! 저놈의목을베도록하여라. 잡색 ( 조리중 ) 의탈과집모자를벗겨 ( 죽음상징-탈머리 ) 영기에꽂는다. 용서하고그들과함께굿가락에맞춰함께어우러져춤추며논다. 11) 어름굿 + 돌굿 + 벙어리삼채 ( 보통열두마치 ) + 외마치 + 두마치 (11)-1 돌굿 쇠 1 갱 갱 갱 갱 갱 갱 갱 갱 2 갱 갱 갱 갱 개 개 개 개 갱 깽 3 갱 갱 갱 갱 개 개 개 개 개 개 깽 4 깽깽갱갱 난타 징장구 덩 덩 덩 덩 덩 덩 덩 덩 덩덩덩덩 난타 쇠 깽 깽 점점빠르게 징 장구 덩 덩 점점빠르게 쇠 미갱 미갱 미갱 미갱 점점빠르게 징 장구 덩 덩 덩 덩 점점빠르게 (11)-2 벙어리삼채 ( 보통열두마치 ) 돌굿은어르면서모든치배가제자리에서빙글빙글돌고, 어르기를끝내면멈춘다. 상쇠가한명씩 ( 혹은치배별 ) 옭아서엮어가는데, 1을길게치면서낚는다고알리는신호로 2번이나 3번을치면서낚는다. 다낚아서엮어지면빠르게난타4 를치며덕석몰이를한다. 덕석몰이로원진이풀릴때까지

20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쇠 갱 갱 무갱 갱 무갱 깽 갱 갱 무갱 갱 매 깽 갱 므 갱 므 갱 갱 무갱 갱 므갱 므갱 미갱 갱 무갱 갱 므갱 므갱 미갱 개 개 개 깽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개 갱 갱 무갱 갱 매 깽 읏 갱 무갱 갱 매 깽 징 장구 덩 덩 그덩 덩 따 궁 덩 그 덩 그덩 덩 따 궁 덩 덩 따 궁 덩 따 궁 덩 따 궁 따 궁 덩 따 궁 덩 덩 그덩 덩 따다 궁 (.+ = 57 63, 5분박 2박자 ) 빠르게몰아치고원이완성되는순간상쇠가 깽 하면일제히앉는다. 좀쉬었다가상쇠가또 깽 하면모두일어서서걷는다. 그러다가상쇠가 깽 하면나머지치배가받아서 덩 하며한바퀴돈다. 상쇠의 깽 소리가점점잦아질수록연풍대에가깝게돌며연풍이들어가면상쇠가 미갱 을주고 덩 으로받아연속으로치다가벙어리삼채가락이나오면연풍을멈춘다. 보통12마치가락안에벙어리처럼어둔하게얼버무리는가락 ( 개개개개개개개개개개-10박 ) 이있는데, 벙어리가락을강조하기위해 벙어리삼채 라고불린다. 돌굿안에 10박의정돈된가락을넣고모든이들이굿판을말없이정리하고, 마지막흥을외마치와두마치로마무리하고돌아가는굿이다. 갖은12마치 가앞마당을정돈하면서판을열고, 보통12마치 ( 벙어리삼채 ) 는판굿의뒷마당을정리한다고볼수있다. 보통12마치는마당밟이에서는길굿으로쓰인다.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05 (12) 어름굿 + 파장굿 + 넘는가락 + 두마치 + 인사굿 암도깨비숫도깨비아들낳고딸낳고 아들딸많이낳아군대보내자. 콩꺽자콩걱자두렁넘어콩꺽자 두렁넘어쳐들어오는수많은적들을물리치자. 별따자별따자하늘잡고별따자 적의대장별단놈을잡아내자. 갈리소갈리소구경꾼들갈리소 전쟁이끝났으니모두들돌아가자. 나. 마당밟이 ( 지신밟기 ) 굿 1) 당산굿당산은토지나마을의수호신을제사지내던곳을말한다. 마을의수호신은거의느티나무이고당산의터를지켜주고있다. 정자나무라고도하는데모든마을이그나무밑에정자를짓는다. 거기서그그늘이한여름더위를식히고, 쉬고, 놀고, 편하게보듬어주며마을공동체의마당을만든다. 당산굿은정월대보름날, 백중날, 호미씻이또다른마을로걸립을가거나돌아와서가장먼저당산나무에인사를하는굿이다. 마을의안녕과풍요를지켜주는마을의수호신으로서당산나무에대한첫번째예를지내는굿이다. 당산나무에금줄 ( 왼새끼줄 ) 을쳐놓고고사상을차려놓은뒤당산나무주위를돌면서굿을치고, 제사상앞에가지런히서서어름굿을치면서모두절을한다. 상쇠가쇠를잡고두손을가슴앞에모으고고사문을한다. 그런다음개인적으로인사를드리기도하며, 다끝나면두마치로가락을맺고마지막인사를한다. 2) 시암굿 ( 샘굿 ) 샘굿은맑은물이콸콸잘나오도록용왕님께빌고, 아들딸잘낳아몸조

20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리잘하라는굿이다. 물은우리가살아가는데아주중요한생명수이다. 마을을만들어머물러살게하는것도샘물에서비롯된다. 물길따라풍습도다르고인심이다르다. 그래서마을마다큰샘을파서그물로마을사람을하나로묶었던것이다. 거기서아낙네들이떠들며소통의자리가되고, 함께먹는물 로마을공동체를이루었던것이다. 지금은상수도가들어와서집집마다물이넘쳐나지만옛날에는집집마다물지게와물동이를지고이고물을길어날랐다. 또한여름에는냉장고가없어서이집저집의김치단지가샘물에옹기종기매달려떠있다. 그시원한김치맛은지금의냉장고김치맛과는견줄수없다. 그래서큰샘에서샘굿을쳤으며, 집에서는샘이따로있는집에서만쳤는데요즘은수도꼭지틀어놓고주방에서성주굿, 조왕굿, 샘굿이다이루어진다. 동해바다용왕님네남해바다용왕님네서해바다용왕님네북해바다용왕님네맹강수청강수철철아따그물좋다 아들낳고딸낳고미역국에밥말세 3) 성주굿집안에서하는굿으로마당밟는첫순서이다. 성주굿과조왕굿을같이할때가많고, 성주굿은마루앞이나부엌에서하는데, 성주는집을지키는신이기때문에방을드나드는마루에다정화수와쌀을차려놓고고사풀이와성주풀이를한다. 고사풀이를하지않을때는부엌에서성주굿과조왕굿을친다. 그리고조왕 ( 竈王 ) 은부엌을맡아서다루는신으로밥솥뚜껑을엎어놓고쌀과물을올려놓고촛불을밝혀재담도하고액막이굿을한다. 상쇠 : 화동. 화동 : 어이. 상쇠 : 내말을잘들어야제. 내말을잘못들으면말여엎어놓고볼기를친다그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07 말여. 화동 : 어이. 상쇠 : 다름이아니라정월대보름날이댁에와서배아지가찢어지게먹었네. 화동 : 암먼그렇지. 상쇠 : 폐런 ( 蔽一言 ) 허고배꼭지가요강꼭지맹키로늘어나버렸네. 화동 : 어이. 상쇠 : 성주굿을한번치는디어떻게치냐면말여. 먼먼들어지게농농가라지게 ( 멋지고녹아나게 ) 친다그말여. 화동 : 그렇지. 상쇠 : 그러면일등명창광대를불러다가성주풀이를허고, 성주로다성주본이어디메뇨경상도안동땅제비원의솔씨받아공동산에던졌더니그솔이점점자라나서낮으로는광선쐬고밤으로는이슬맞아서부동 ( 小不等 ) 이되었구나대부동 ( 大不等 ) 이되었구나황장목 ( 黃腸木 ) 이되었구나두리지둥 ( 둥근기둥 ) 으로다나가네에라만수에라대신이야그재목을내랴허고서른세명역군들옥도끼를들쳐메고소평대평들어가서소산에올라소목내고대산에올라대목내야원근산천에칡을끊어조만한떼배를묶어술렁술렁배띄우세에라만수에라대신이야 앞뒤귀신뒷뒤귀신성주뒷전에조왕신 상쇠 : 화동 화동 : 어이

20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상쇠 : 그런디말이지화동 : 어이상쇠 : 주년 ( 周年 ) 이면열두달이고과년 ( 夥年 -윤달) 이면열석달인디화동 : 그렇고말고상쇠 : 날이면날마동명과복만져들인다그말여화동 : 그렇지상쇠재수로말허면물묻은바가지깨드랭기듯헌다그말여화동 : 그렇고말고상쇠 : 삼재팔난 ( 三災八難 ) 관재구설 ( 官災口舌 ) 냉매재액 ( 冷罵災厄 ) 우환질병 ( 憂患疾病 ) 그런것은저대동강물에다휘몰아버리고오방신장합다리국에잡귀잡신물러내세 그급여울령 ( 急急如律令 ) 사파세 ( 娑婆阿 ) 4) 장광굿 ( 장독굿, 철룡굿 ) 장독대에저장해놓은된장, 고추장, 간장따위가맛이잘들고, 병균이들지않도록하는굿이다. 쥐가이리저리옮겨다니며더러운것을쳐바르고좀도둑처럼식량을축내기에나쁜놈으로알고있으며, 집에서사는가장미운놈이된것이다. 쥐들어간다쥐들어간다장독밑에쥐들어간다. 5) 노적굿 ( 露積굿-광굿 ) 노적 은마당한쪽바깥에쌀이나벼를쌓아놓는창고인데곡간에식량이아래위좌우가득가득쟁여들이라는뜻으로굿을친다. 아랫노적웃노적좌우노적웃노적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09 6) 술굿굿판하면빠질수없는것이술이라, 술은모든약중에으뜸이라했는데알맞게하면보약이요, 지나치면해가되니잘즐길일이다. 굿치면술과먹을음식이나오고, 나누는정에마음이따뜻하다. 그한잔술로가락도더욱신명이올라, 취한맛에가락이푸지고한데어우러져흐드러지게놀수있는것이다. 결국은우리가굿을치는것은맺힌것을풀고, 복을짓고빌어주며함께제대로놀수있게하는일일것이다. 거기에기운나게하는술로판을더욱부드럽게하여화합을이끌어내는어울림마당이되는것이다. 주인이술상을들고나오면다음소리를하고한바탕친다. 어서치고술먹세두부국에짐나네 상쇠먼저한잔마시고한잔씩마신다. 이가락은쇠가락이정해진틀이없어칠때마다나오는대로쳐도된다. 이와비슷한가락은샘굿의 아들낳고딸낳고미역국에밥말세 이다. 다. 걸립굿 ( 걸궁굿 ) 1) 들당산풍물패가이웃마을로걸립을가서마을어귀에다다르면긴나발을불고굿을쳐서풍물패가왔음을알린다. 그러면그마을에서는좌상과몇사람이영기 2개갈퀴, 싸리비 ( 빗자루 ), 솔방울, 대바구니를들고나와서, 영기 2개를세워문을만들고나서, 풍물패의능력을시험하기위해문제를낸다. 걸립상쇠 좌상어른, 중평굿패입니다. 이마을에서하룻밤놀고갈까합니다. 마을좌상 자! 여기갈퀴와빗자루를보고풀어보시오 갈퀴의손잡이가마을쪽으로되어있으면안쪽으로긁어들인다는뜻으로들어와도좋다는것이고, 그반대면못들어간다. 싸리비 ( 빗자루 ) 의손잡이가

21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하늘쪽으로하고있으면기수부터순서대로들어오고, 거꾸로서있으면소구부터들어오라는뜻이다. 그리고풍물패가들어가면서솔방울을집어서바구니에넣게되는데그마을에서는솔방울수를세어서그양에맞게술과음식을준비한다. 이처럼들어오라는시험이끝나면불림을한다. 해동조선전라북도전주시한옥마을유람차라! 전주시한옥마을에걸립하며놀러왔음을알린다. 당산굿을맨먼저치는데, 당산나무에금줄 ( 왼새끼줄 ) 을쳐놓고간단한제사상을차려놓고소지를태우며당산께소원을빈다. 축문은그때에맞게빌면된다. 한장소지라도만장소지로받으시오. 동서남북사해팔방만사형통하게하옵 소서. 당산나무주위를돌면서굿을치다가다마친다음절을하고, 샘으로간다. 샘굿은마을의큰샘에서한다. 어르며절을네번하고 동해바다용왕님네, 남해바다용왕님네, 서해바다용왕님네, 북해바다용왕님네, 맹강수청강수철 ~ 철, 아따그물좋다아들낳고딸낳고미역국에밥말세 사설을읊고굿을친다. 그런다음집집마다잡귀잡신과액을물리치는굿을한다. 간간히마당판굿도하고, 마을의넓은마당에서큰판굿을벌여신명나게가락을뽐낸다. 2) 날당산굿패가마을을떠나며당산나무에서치는굿이다. 절을두번하고상모를돌리며힘껏뜀박질하며마을을빠져나온다. 이것은마을의잡귀가붙지못하게하는것이고, 또그마을의쌀과돈을거두어가기때문에마을사람들과

전라좌도진안중평굿 211 안좋은일이생길까봐빨리달아나는것이다. 라. 망월굿 ( 망우리굿, 望月 ) 정초부터정월대보름날까지마을곳곳집집마다액을물리치고명과복을비는굿을친다. 대보름전날인열나흘에꼭샘굿을먼저친다. 이는마을의생명수인큰샘과수원지에서한다. 그이유는물은생명을살리는가장중요한물질이기에샘을중심으로마을이만들어졌으며, 우물가에서아낙네들이맘껏얘기하며노는소통의자리였기때문이다. 그리고보름날은망우리불로지난날의액을모두불태워버리고희망을지펴, 달의기운을받아풍년을기원하고명과복을져들이도록소원을빌었다. 샘굿과망월굿은물과불의어울림을굿을치며빌고마을공동체를만들었다. 달집을쌓을때는기둥을세우고짚, 잡나무, 헌물건따위를넣고바깥을생소나무로둘러만든다. 망월굿은달이떠오르는시간에맞춰불을지른다. 동쪽에달을바라보며절을네번한다음, 망우리야 ( 망월이야 ) 두손을위로힘껏올리면서서너번소리친다. 망우리불에연과헌물건을태워지난해의쌓인액을태워날려보내는것이다. 판굿가락을치며한판어우러져논다. 마. 두레굿논에난풀을매면서재밌게일하도록흥겨운가락으로기운을북돋아준다. 좌상이긴대나무를가지고앞에나가서이슬을털어주고, 치배들이굿을치며뒤따르고일꾼들이맨뒤에서지심을맨다. 논을맬때어울리는가락으로반잔지래기, 춤굿, 늦은삼채를치고, 노래 ( 방게소리 ) 를부르며일을한다.

현장보고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김용근고창농악의역사는사람의역사다 이명훈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이주영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전을위한노력들 오세미나 이훈 이성인 김빛나라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15~232 쪽 2015.5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1) 김용근 * < 차례 > 1. 서론 2. 논하고자하는말 3. 결론 1. 서론 가장한국적인문화를말하는사람들중에는김치와더불어판소리를말하는사람이많고공감도크다. 한명의소리꾼과북을치는고수가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와같은장단에, 아니리와발림으로장면의효과를덧붙여행하는판소리는전라도사람들의우월적인 문화유전자 속에서진화되어왔다. 그판소리가 1964년 12월 24 일중요무형문화재제5호로지정된후, 2003년 11월 7일유네스코 인류구전및세계무형유산걸작 으로선정되어세계무형유산으로지정되었다. 위와같은판소리는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와같이지금도잘불리어지는것이있는가하면, 변강쇠타령과같이그렇지못한것들도있다. * 남원시청

21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필자는어릴때부터판소리에관심이많았다. 아마도판소리의소비자나생산자가이웃으로함께살고있는남원이고향인이유일것이다. 그리고그영향으로지금까지판소리에대한관심의끈을놓지못하고있는지도모른다. 필자는판소리연구가나연행자는아니다. 다만필자의마음깊숙하게자리한판소리에대한관심으로선대소리꾼들의삶을추적조사하게되었고, 판소리속에화석되어버린이야기도듣게되었다. 그래서지난 30여년동안소리꾼들의삶속에서찾아낸이야기를모아분류하는과정에서몇가지새로운사실을발견하게되었다. 그것은소리꾼들의삶, 생활문화였다. 필자는전문연구자가아니기때문에민속또는관광학을연구하는사람들이요청하는자료를제공해주거나대학교수의공동논문작업에참여해본경험이있을뿐이다. 따라서이번무형유산포럼발표논고도논문형태가아닌필자가그동안조사해왔던소리꾼들의생활문화를지역의관광상품으로어떻게개발하고활용할수있을것인가하는고민을현장보고형식으로풀어내어보고자한다. 2. 논하고자하는말 1) 소리꾼들의생활문화를조사하게된동기 필자가지리산동편제소리꾼들의생활문화를조사하게된동기는작고한소리꾼들을조사하기위해그의후손들을면담하면서부터다. 그과정에서후손들은거의모두건강하다는것을발견하게되었고, 혹시그러한이유가선대소리꾼들의 생활문화 에서연유된것은아닐까하는생각을했다. 지리산에살던소리꾼들은동편제소리를했던사람들이다. 그들의삶은일상의생활인범주를벗어난소리꾼들만이가졌던특이한관습이있다. 지리산의소리꾼들이가졌던외형적인삶의방식이나행태는상당이먼이웃이었던사람들과별반달라보이지않았지만, 그들의깊숙한내면은특이한생활방식이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17 존재했다. 많은소리꾼들의생활문화를조사하는과정에서평생동안판소리와함께한그들의생활방식은건강하고장수한소리꾼의문화를내게된공통점이발견되었다. 즉지리산의동편제소리꾼들은당대일반인들의평균수명보다도 6년이상을더살게되었고, 잔병치레도일반인들보다삼분의일정도로건강하게살았다. 2) 소리꾼들의생활방식사례 필자가그동안소리꾼들의생활문화를조사한것은크게세가지의방법으로진행되었다. 첫째는작고한소리꾼들의생활문화를조사하기위해후손들의면담을통해서였고, 둘째는현재생존한소리꾼들을본인이직접면담조사하였으며, 그리고마지막으로는후손이없는소리꾼들은연고지역의촌로들로부터채록조사한것이다. 그결과지리산소리꾼들의대표적인생활문화는크게몇가지로나뉘어살펴볼수있었고, 그대표적인것은음식이었으며, 다음은일상의생활이었다. 이번발표에서는그중에서몇가지사례를들고살펴보고자한다. (1) 음식분야 소리꾼은먹는대로자라서, 노는대로만들어진다. 지리산에는오랜세월동안 이웃사촌하며 살아가는마을들이있다. 그마을들에는자기만의독특한색깔을가지고대물림하며, 오래된미래의자원적인가치를간직한사람들이있다. 그사람들은대부분지리산이있었기에, 세상을향한자기의색깔을만들수가있었다. 지리산남원운봉고을비전마을에는소리꾼의북을쳐주며살아가는사람이있었다. 그는오래전부터이고을에서이름이났던권삼득명창을따라다니면서, 판소리장단을쳐주는고수생활을하던송첨지라고불리는사람이었다. 송첨지는송흥록이라는이름을가진한아이를두었는데이아이는소리판에서자랐고, 훗날한국판

21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소리문화의중심에있는동편제를창시한가왕이되었다. 그가이루어놓은동편제종가에는 노는대로만들어지고, 먹는대로자라야소리꾼이된다 라고하는말이전해온다. 판소리가단순히장단의가락을가진입맛을내는이야기노래가아니라, 세상만물의이치를보는통섭의눈맛을내는이야기노래야한다는것이다. 그러자니온갖풍파를견뎌내고숙성될세월이필요했다. 평생을득음의길을따라육십고개줄에다다라서야, 명창의칭호를얻게된다는것이다. 지리산소리꾼들은명창이되기위하여먹는것도, 노는것도남달라야했다. 1 김치와지리산소리꾼은천생연분김치를가장한국적인문화라고이야기하는사람들이많다. 한국을말하라고하면, 우리나라사람은물론외국인까지도김치와판소리, 한복은단연단골손님이다. 이처럼김치와판소리가한국의상징적인문화의한부류로자리매김되어가고있는것의중심에는오랜시간을기다려야발효되는농익은맛과멋이있다. 이두가지는공통점을가졌다. 그것은시간을인내해야만얻어진다는것과그런후에야세상에내어준다는것이다. 지리산소리꾼들의속담에 김치는소리를만들고, 소리는명창을내며, 명창은잔병없이장수한다 라는말이있다. 김치는사람이받아서건강을만들고, 판소리는온몸으로파장을내여생체활력을갖게했다고후손은말한다. 김치를하루라도먹지않으면안되는것과판소리에빠지면만석꾼재산도탕진한다는선조들의경험담은모두건강과연관되어있다는것을생각해볼수있다. 지리산의판소리는김치의출현과비슷한시기에지리산에서보인다. 임진왜란과정유재란을통해서들어온고추와무, 배추는진화된김치를출현시켰다. 비슷한시기에소리꾼들의조상들은지리산에모여들기시작했던것으로보인다. 그러다가 1800년대초가왕의칭호를가진송흥록이라는명창에의해서, 동편제판소리가생겨났다. 그리고그소리는오늘날가장한국적인판소리의 시조소리 가되었다. 수많은소리꾼들이지리산에서득음을하고명인명창이되었던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19 것과함께있었던것중에는소리꾼들이김치를애용했다는것이다. 가왕송흥록집안에전해오던소리꾼과김치의이야기는조선중엽에서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대략이백오십여년전이었다. 동편제판소리를창시한가왕송흥록이지리산에나타났다. 그는자신의방식으로소리수업과연습을하였다. 그러나좀처럼기량이향상되지못했다고한다. 판소리의사설내용이워낙길다보니, 이를다소화하여노래로부르기에는체력이많이소모되었다. 그리고무엇보다도소리를내는목이오랜시간동안풀려야했다. 그러려면뱃심이있어야했다. 소리꾼송흥록은뱃심을기르기위해허리에끈을묶어나무에매어놓고소리를질러냈다. 그것도모자라배에다물동이나돌을올려놓고누워서소리를지르며연습을하기도했다. 그렇게해서뱃심의기초가다져지면본격적인소리수업과연습을시작했고, 오랜시간동안피나는노력을경주했다. 그러한노력의결과로송흥록은상당한실력을갖게되었고, 인근고을까지소문난고을명창이되었다. 그러나그의소리는안방을울리는소리는되었지만, 대청마당을울리는소리는되지못했다. 사람들은대청에서, 정자에서, 마당에서그의소리를듣기를원했다. 그러나안방에서와는다르게송명창소리는마당을울리지못했다. 그를보고사람들이또랑광대라고놀려댔고, 그를사랑했던맹렬이라는기생까지도조롱했다. 송명창은자신의소리가마당을넘어산을울리지못하는것은, 진정한소리꾼이아니라는것을깨달았다. 그리고그원인은뱃심을기르는일을게을리했기때문이며, 단전훈련이나기존의방식으로는한계가있음을깨달았다. 뱃심은장에서나온다는옛성현의말씀을놓친것이었다. 송명창은대장을튼튼하게하여뱃심을길러야한다고생각했다. 그리고는천둥과같은소리를질러낼수있는뱃심을만들기위해서는김치를먹어야한다고생각했다. 지금까지한두시간정도밖에하지못했던또랑광대가아닌, 조선팔도를울리는 나라광대 가되기위한노력이시작되었다. 산과강을울려대는천둥같은소리를내는뱃심은외부적인단련의과정을기초로했다. 그러나사람의대장에서식하는각종발효균들이활성화되어야뱃심이길러지는것

22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이라는생각으로김치를상시적으로복용하면서부터득음의길이열렸고, 조선팔도최고의명창이되었다고한다. 지리산의소리꾼들이주로쓰는목성음은오십여가지나된다. 귀신의울음소리를흉내낼수있는귀곡성은두말할것도없고, 목청을좌우로재껴가면서힘차게내리지르는아귀성, 쉰목소리와같이걸걸하게내는수리성, 발발성, 비성, 세성, 천구성, 통성, 목에서구부려나오는항성은기본이된다. 이에더하여감는목, 겉목, 군목, 노랑목, 눅은목, 방울목, 짜는목같은것도자유자재로해야한다. 소리꾼은이러한목을얻기위해평생동안자신을소리에붙들어매고살아야했다. 그러기위해서는목을풀어내는뱃심을가져야했다. 그런다음에야소리꾼으로서명성을지켜갈수있었다. 그길이평생동안뱃심을길러소리목을열어내는단전운동과, 하루도거르지않고통항아리김치를먹어야하는것이었다. 지리산운봉고원은여름철에김치를먹을수있었던조선팔도의유일한김치고랭지였다. 지리산소리꾼들은그곳에서일년내내김치를먹으며득음의길을열었다. 통항아리김치는, 지리산소리꾼들의전용김치였다. 큰항아리의절반정도를땅에묻고, 그항아리속에작은항아리를넣는다. 그러면큰항아리와작은항아리사이에공간이생겼다. 소리꾼들은그공간사이에모래를넣은후, 물을부어놓았다. 그러면통항아리는여름내내일정한온도를가지며, 숙성시킨김치를내어주었다. 이렇게만들어진통항아리속의김치는위에서부터바닥까지발효균의양이똑같아지게되었다. 소리꾼들은날마다똑같은수준의발효균을가진김치로인해, 대장의활동이균일하고왕성해지게되었다고한다. 그렇게해서대장을활성화하고, 단전을다스려뱃심을길러서, 여덟시간이상판소리를해낼수있게되었다고전해온다. 지리산소리광대들만이사용하던통항아리김치독은가운데가배부른곳이먼저발효되기시작하는원리를가졌다. 그기운이항아리속을돌고돌아김치발효가위아래구분없이골고루잘되었다. 그것을소리꾼들이먹고장이튼튼해져서, 조선팔도를울리는통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21 성을가진동편제를탄생시켰다한다. 지리산의소리꾼이많이살던곳에서는잔병치례가많고단명하는집안에내려오는속담이있다. 그것은 건강하게오래살려면, 고생스러워도소리꾼을시켜야한다 는말이었다. 이또한소리꾼들의김치문화와관련된이야기이다. 소리꾼은기운으로소리를한다고했다. 나이많은소리꾼이더기운찬소리를낸다 는속담에서소리꾼은평생을잔병없이건강한기운으로오래살았음을알수있다. 실제로조선시대의명인명창들의수명이나일화를조사해보면, 평균수명보다오래살았던것을알수있다. 그힘은무엇이었을까? 김치와소리꾼이만나 신의소리 라는판소리를탄생시켰고, 그소리를지키며살아온소리꾼들을잔병없이오래살게했을지도모를일이다. 김치는소리를만들고, 소리는명창을내며, 명창은잔병없이장수한다 는속담에서보듯이, 김치없이는못살았던광대들이세계문화유산이된판소리를탄생시킨것은너무나도당연한일이었는지도모를일이다. 2 지리산소리꾼들의청국장지리산에는청국장논이있었다. 지리산에살던소리꾼은논농사를지었다. 그들이짓던논농사중에는, 청국장을만드는데필요한볏짚을생산하던논이있었다. 소리꾼들은그논을청국장논이라고불렀다. 지리산의소리꾼들은 먹는대로소리꾼이된다 는말처럼살았다. 소리광대들이즐겨먹었던음식중에서청국장이있다. 지리산소리꾼들이상시적으로먹었던청국장은일반인들의것과는제조방법이달랐다. 농촌사람들은콩을삶은다음, 볏짚을꽂아따뜻한아랫목에이불을뒤집어씌워두었다가며칠뒤에꺼내어절구통에찧어서청국장을만들었다. 반면소리광대들은청국장을만들기위해서청국장논을경작했다. 삶은콩을띄우는발효균을가지고있는볏짚을생산하기위해서였다. 볏짚속에들어있는발효균이착해야, 청국장이 착한감성적음식 이된다는생각에서였다. 그래서소리꾼들은가장착한사람이농사를짓도록하여그논에서나온착한발효균을가진볏짚으로청국장을발효시키게했다. 그청국장은소리

22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꾼들의감성적자원이되어소리를만들어내는힘의원천이되었다. 소리광대들은청국장을띄우는날을반드시보름으로택했다. 청국장의발효균이보름달을보고자란다 는전통적관습에따른것이다. 보름날이되어청국장을띄우는날에는반드시빨래다듬이질을했다. 안방에서는청국장이발효되고있고, 마루에서는다듬이질을하면, 다듬이소리가맥놀음파장을내어청국장의발효균을춤추게하여활성화되도록했다. 이렇게만들어진청국장은소리꾼들의몸속으로들어가 감성의판소리 를내었다. 3 지리산소리꾼들의음식상비약능이버섯 고기는먹어본사람이잘먹는다 라는말이있다. 고기를자주먹은사람은몸속에고기소화효소가많아서자주많이먹어도설사를하거나체하는법이드물다는이야기이다. 우리선조들은어려운살림형편때문에일년이다지나도록고기를먹을수있는기회가거의없었다. 추석이나설날, 그리고집안의대소사가있는날이고기를먹는날이었다. 평민들은그만큼고기를먹을수있는기회가적었는데, 그러다보니모처럼고기를먹고나면설사를하거나체하기일쑤였다. 천민의신분으로살았던사람들은가난한형편때문에일년내내배고픔을달고살아야했다. 그러나소리광대들은고기를먹을수있는기회가많았다. 잔치집이나양반댁에초대되어노래를해야했기에잔치음식을어렵지않게먹을수있었던것이다. 그러다보니일반평민들보다고기에대한소화력이월등히좋았지만, 소리광대들도고기를먹고체하거나설사로고생하는일이있었다. 그래서소리광대들은고기를먹고체하거나설사에대비한그들만의처방을가지고있었다. 지리산소리광대들은능이버섯가루봉지를상비약으로가지고있다. 그들은지리산의참나무밑에서자라는능이버섯을말려가루를내어가지고다녔다. 그러다가고기를먹고난후에는반드시물에타서먹었다. 그러면고기를먹고체하거나설사를하지않았다.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23 (2) 생활분야 1 지리산에살던소리꾼들의건강오행기 ( 氣 ) 단식법지리산에살던소리꾼들은건강하게오래살았다. 평균수명이육십대였으니일반인들보다육년에서십년이상은더살았다. 그리고잔병치레도덜했다. 소리꾼들은그들만이했던기 ( 氣 ) 단식의생활화로건강을유지했던것으로보인다. 오행단가는지리산소리꾼들의건강유전자였다. 남원이판소리의고장이라고는하나, 농촌에살았던나는판소리를접해볼기회가없었다. 그러다가고등학교졸업무렵, 친구들과지리산천왕봉을등반하던도중에, 칠선계곡에서소리연습을하던사람을보게되었다. 나는그때까지도판소리가무엇인지몰랐다. 그러나호기심이생겼다. 나는그사람이부르는소리를들어보았다. 도무지무슨말인지잘모르는노래를부르고있었다. 판소리에대한관심은그렇게시작되었다. 그러나오랜세월동안찾아헤매던판소리의궁금증은풀리지않았다. 그저소리꾼과, 소리만이다가왔을뿐이었다. 그러다가십여년전, 조선시대명창으로활동을했던어느소리꾼의후손과면담조사를할기회가생겼다. 그후손은선조의이야기를하던중, 소리꾼들이처음으로소리를시작할때반드시불러야했다는단가하나가있었다는이야기를들려주었다. 그리고그단가의기록물을볼수있게되었다. 그러나그기록물에는도형으로만표시되어있어그것을풀어내는데, 또많은시간이필요했다. 이후내가풀어본소리꾼들의오행단가는지리산의소리꾼들이가졌던수많은문화를이해하는필자만의지침서가되었다. 그것은소리꾼들의 판소리유전자 였기때문이었다.

22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소리꾼의건강지침서오행단가 가. 아니리태초에우주가생겨날때점하나가생겼는데그점은점점진화하여흙을가진지구가되었다. 지구는나무에잎이돋는봄과, 불같은기운으로만물이무성해지는여름, 그리고세상의모든것들이쇠처럼단단해지고낙엽이지는가을, 또한물이얼고눈이내리는겨울을내었으니춘, 하, 추, 동사계절과목, 화, 토, 금, 수라는오행속에담긴자연의이치가그것이었다. 지구는사계절과오행이품은만물소생, 생로병사를가진자연의순리를안고살아갈한생명을내었으니인간이었다. 숨쉬기를시작한인간은자신이스스로살아갈기운이필요했고, 그기운을얻기위해음식을먹어위에저장한후, 담즙을내어소화를시켜서소장과대장을지나양분을흡수케하고, 찌꺼기는몸밖으로내보낸후, 오폐수는방광에모아배설하였다. 그러나담, 소장, 위, 대장, 방광은각자가홀로되어기 ( 氣 ) 를통해서로의사정을알고자삼초 ( 三焦 ) 를두었으니, 인간은따뜻한양의기운이넘치는육부를가져제노릇을하게되었다.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25 나. 중모리사람이육부를모두다가지니혼자서도잘살수있노라고호언장담을하였으나, 얼마가지못해기운은소멸되고죽을지경이되었다. 죽어가는육부를살릴친구를두었으니간장, 심장, 비장, 폐장신장의찬기운가진, 몸속에오장이그것이다. 담은간을친구삼고, 소장은심장을친구하며, 위는비장으로친구를삼고, 대장은폐를친구하고, 방광은신장을친구로삼은후에야, 오장과육부는서로돕고도와서사람이살아가는데필요한기운을만들어내게되었으니, 간담 ( 肝膽 ) 은목 ( 木 ) 이요, 심소장 ( 心小臟 ) 은화 ( 火 ) 이다. 비위 ( 脾胃 ) 는토 ( 土 ) 이며, 폐대장 ( 肺大腸 ) 은금 ( 金 ) 이고, 신방광 ( 腎膀胱 ) 이수 ( 水 ) 이다. 이렇게생겨난오장과육부는, 서로돕고견제하는, 상생 ( 相生 ) 과상극 ( 相剋 ) 의이치를가지게되었는데, 목생화 ( 木生火 ), 화생토 ( 火生土 ), 토생금 ( 土生金 ), 금생수 ( 金生水 ), 수생목 ( 水生木 ) 이상생이요. 목극토 ( 木克土 ), 화극금 ( 火克金 ), 토극수 ( 土克水 ), 금극목 ( 金克木 ), 수극화 ( 水克火 ) 가상극이로다. 이러한이치를제대로가진인간은, 비로소눈을뜨고숨을쉬게되었다. 다. 아니리그러나오장과육부는몸속에갇혀있어밖의세상을볼수가없으니, 천지만물의이치가궁금했다. 그래서간담은눈으로세상을보게했고, 심소장은혀로세상의맛을알게했으며, 비위는입으로, 그리고폐대장은코로세상의냄새를알게했고, 신방광은귀로세상을듣게되었다. 그리하여간담 ( 肝膽 ) 은눈목 ( 目 ) 이요, 심소장 ( 心小臟 ) 은혀설 ( 舌 ) 이며, 비위 ( 脾胃 ) 는입구 ( 口 ) 요, 폐대장 ( 肺大腸 ) 은코비 ( 鼻 ) 이고, 신방광 ( 腎膀胱 ) 이귀이 ( 耳 ) 라는것이다. 라. 중중모리얼씨구나절씨구, 얼씨구나절씨구. 옷을입고놀아보자, 얼씨구나절씨구. 간담은푸른옷입고, 심소장은붉은색입고, 비위는황색을입고, 폐대장은흰색을입고, 신방광은검은옷입어, 오방색으로놀아를보자. 얼씨구나절

22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시구. 간담 ( 肝膽 ) 은푸를청 ( 靑 ) 이요, 심소장 ( 心小臟 ) 은붉을적 ( 赤 ) 이며, 비위 ( 脾胃 ) 는누루황 ( 黃 ) 이요, 폐대장 ( 肺大腸 ) 은흰백 ( 白 ) 이고, 신방광 ( 腎膀胱 ) 이검을흑 ( 黑 ) 이네. 얼씨구나절시구. 마. 아니리이제는사람노릇제대로할수있게다싶었더니, 세상이온통맛을가지게됨에따라, 그맛을알아내야했겠다. 그래서신맛은간담이맡고, 쓴맛은심소장이맡으며, 단맛은비위가맡고, 매운맛은폐대장이맡고, 짠맛은신방광이맡으니, 간담 ( 肝膽 ) 은초산 ( 酸 ) 이요, 심소장 ( 心小臟 ) 은쓸고 ( 苦 ) 이며, 비위 ( 脾胃 ) 는달감 ( 甘 ) 이요, 폐대장 ( 肺大腸 ) 은매울신 ( 辛 ) 이며, 신방광 ( 腎膀胱 ) 이짤함 ( 鹹 ) 이라는것이로다. 이렇게여러가지를구비해놓으니, 비로소인간은만물의영장이되었도다. 그러나인간은너무오만할까두렵기도하여, 아픔을가지게되었다. 바. 엇모리화를너무많이내면간이놀래아프고, 너무나너무나기쁘면심장이뛰고아프며, 생각이너무깊으면비장이힘들어하고, 너무많이슬프면폐가많이아프고, 두렵고떨리고무서우면신장이힘들어하니, 간담 ( 肝膽 ) 은성낼노 ( 怒 ) 요, 심소장 ( 心小臟 ) 은기쁠희 ( 喜 ) 이며, 비위 ( 脾胃 ) 는생각사 ( 思 ) 요, 폐대장 ( 肺大腸 ) 은슬플비 ( 悲 ) 고, 신방광 ( 腎膀胱 ) 이두려울공 ( 恐 ), 나하아 ~ 사. 아니리이제사계절과음양오행의이치를알게된인간은해는동쪽에서떠서남쪽을지나서쪽으로져서, 북쪽에서잠을잔다는것을보고하루의이치도깨닫게되었다. 이제완벽하다싶은인간은, 숨쉬기와춤을몸에달게됨으로서지구의온전한주인이되었는데, 인간이숨쉬기와노래에맞춰서하는호흡은먼옛날소리광대의몸으로전해져서오늘그소리를전할수있게된것이다. 소리광대에게전해오던사람이사는호흡과노래장단의이야기는이렇다.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27 아. 자진모리간, 담이힘들때는, 휴 ~ 하는숨을쉬고, 우 ~ 하는소리를내며, 자진모리소리를들어야하니, 자진모리북장단은, 음이라간이좋아하고, 자진모리소리는, 양이라담이좋아하니, 휴우자간이그것이라. 얼 ~ 쑤하는추임새로간, ~ 담이 ~ 화답을 ~ 하고, 심, 소장이힘들때는, 하 ~ 하는숨쉬기와, 이 ~ 하는소리를낸후, 중중모리소리를들어야하니, 중중모리북장단은, 음이라심장이좋아하고, 중중모리소리는, 양이라소장이좋아하니, 하이중중심이그것이라. 그렇지 ~ 하는추임새로심,~ 소장이 ~ 화답을 ~ 하며, 비, 위가힘들때는, 후 ~ 하는숨쉬기와, 음 ~ 하는소리를낸후, 엇모리소리를들어야하니, 엇모리북장단은, 음이라비장이좋아하고, 엇모리소리는, 양이라위가좋아하니, 후음엇비가그것이라. 음하는추임새로비,~ 위가 ~ 화답을 ~ 하고, 폐, 대장이힘들때는, 사 ~ 하는숨쉬기와, 아 ~ 하는소리를낸후, 중모리소리를들어야하니, 중모리북장단은, 음이라폐가좋아하고, 중모리소리는, 양이라대장이좋아하니, 사아중폐가그것이라. 잘한다하는추임새로폐 ~, 대장이 ~ 화답을 ~ 하며, 신, 방광이힘들때는, 취 ~ 하는숨쉬기와, 오 ~ 하는소리를낸후, 진양조소리를들어야하니, 진양조북장단은, 음이라신장이좋아하고, 진양의소리는, 양이라방광이좋아하니, 취오진신이그것이라. 옳치 ~ 하는추임새로신,~ 방광이 ~ 화답을하고, 마지막으로삼초는, 히 ~ 하는숨쉬기와, 에 ~ 하는소리를내며, 아니리소리를들어야하니, 아니리소리는, 오장육부가좋아하니, 히에삼초 ( 三焦 ) 가

22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그것이라. ~ 이것들이소리 ~ 판의 ~ 음양 ~ 오행기 ~ 다스름건강 ~ 놀음이라 ~ 차. 아니리이처럼사람이몸속에숨겨놓은이치와춤추고노래를부르게된이후, 매일밥을먹고기운과힘을내서살아가게되었는디, 밥상은눈맛을내어손맛으로올려진음식으로사람을살리는약이렸다. 밥상에올려진음식이약이라하는것은, 자연의기운이세차고맛이있는것은음식이요, 자연의기운이세차고맛이없는것은약초라하는것을이름이라. 그러하니자고로음식은조상을모시는제사음식과같이정성이근본이라. 정성으로밥상에올려진음식이또한사람을살리는약과같도다. 이러한이치를가진밥상에올려진음식을먹을때에는, 밥은봄같이따뜻하게먹어야하고, 국은여름같이뜨겁게먹어야하며, 장은가을같이서늘하게먹어야하고, 술은겨울같이차게먹어야하니, 이또한밥상의규범이로다. 밥상에올릴음식의재료는집주변십리근방의것이제일이요, 음식재료를구하러나간후하루에돌아올거리의것이그다음인데, 이렇게자연에서얻어온밥상의음식재료는구월이전에는양건을하고, 시월이후에는음건을해야하는것이, 음양의이치로다. 밥상의음식은날것으로먹으면세사람이살고, 익혀먹으면다섯사람이살며, 발효해서먹으면일곱사람이사는이치도내었도다. 이와같은이치로올려진밥상은, 영양과기운을내어사람이사는것이니, 삶거나끓여서는영양을내고, 데치거나말리거나생채로는기운을내어놓으니, 이러한오행밥상에서사람이살아가는것이로다. 소리광대가그오행밥상가를한번불러보는디이렇것다. 카. 진양간담의기운은봄나물에서얻고, 심소장의기운은보리에서얻으며, 비위장의기운은비빔밥에서얻고, 폐대장의기운은뿌리로얻으며, 신방광의기운은쌀에서나오니, 이모두는춘하추동사계절의기운을가져서, 이것들을밥상의기운이라하고, 삼초는반주에서얻으니이러한밥상거리로사시사철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29 날마다매일먹고살면, 건강하고병치례없이무병장수한다는것이소리꾼들의밥상오행단가로소이다. 2 지리산의소리판은, 건강놀음이었다우리들에게친근한말들이있다. 좌청룡 ( 左靑龍 ), 우백호 ( 右白虎 ), 음양오행 ( 陰陽五行 ), 궁합 ( 宮合 ) 같은것들이다. 이와같은말들은, 지금까지도생활친화적이다. 요즈음은이런것들이가진깊은맛을내는사람들을전문가라고한다. 그런데오래된옛날에는모두가일상생활이었을때가있었다. 그래서우리들의조상들중에는좌청룡, 우백호를가진조상묘하나쯤없는집안이없었고, 자녀결혼을위해사주궁합을보지않은집안이없었다. 이뿐만이아니었다. 음식, 주거, 의학등그야말로생활의모든것들에서일상이되었던음양오행사상은, 판소리에도깊고농후하게녹아들었다. 그런데지금의판소리는왜무대로올라갔을까? 다양한핑계들이있겠지만가장우선한것은판소리가자신의집을무대삼아예술적신분상승을따라진화를했기때문일것이다. 그러면판소리에내재된전통지식은무엇이있을까. 몇가지를소개하면다음과같다. 음양오행 ( 陰陽五行 ) 의말에위장은단맛을좋아하고, 간은신맛을가지며, 심장은쓴맛을쫓아다니고, 폐는매운맛을즐겨하며, 신장은짠맛을관리한다고했다. 그리고이오장 ( 五臟 ) 을서로연결하고기운을소통해주는것이, 삼초 ( 三焦 ) 라고했다. 소리꾼들은이러한음양오행의원리에, 오장이좋아하는장단을알아냈던것같다. 그래서단맛을좋아하는위장은엇모리장단에춤을추고, 간은신맛을가져자진모리장단을좋아한다는것을오랜생활의경험을통해알게되었다. 그리고쓴맛을쫓아다니는심장은중중모리장단에흥이나고, 폐는중모리장단으로매운맛을다스리며, 신장은진양조장단에짠맛을덜어내고, 오장육부의기운을서로이어주고소통해주는삼초는, 소리의아니리와같은일을한다는것을알게되었던것같다. 소리꾼들은그판소리장단을자기들만의소리말로불렀던것으로보인다. 그것은단소리, 신소리, 쓴소리, 매운소리, 짠소리, 잔소리같은것이었다.

23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소리꾼들만이사용했던그러한말들은, 우리조상들이장터난장공연을구경할때그대로나타났다. 우리조상들은소리꾼이아니리를많이하면, 잔소리는그만하고노래나하시오 라고했다. 바로요즈음판소리에서쓰이는아니리가, 소리꾼들이쓰던잔소리라는말이었던것이다. 판소리장단은음양오행의원리에따라, 간이좋아하는소리라해서자진모리를신소리, 심장이좋아하는소리라해서중중모리를쓴소리, 위장이좋아하는소리라해서엇모리를단소리, 폐가좋아하는소리라해서중중모리를매운소리, 그리고신장이좋아하는소리라해서진양조를짠소리라고불렀고, 각장단을이어주는아니리를잔소리라고불렀던것은아니었을까? 소리판에는오행의오방색을가졌다. 소리판의오방색은, 음양오행문화의실천이었다. 소리판의오방색은, 고수가치는북의삼태극과소리꾼과고수의음양이그것이었다. 즉음양오행의오방색은청 ( 靑 ), 적 ( 赤 ), 황 ( 黃 ), 백 ( 白 ), 흑 ( 黑 ) 이그것인데소리판에서청, 적, 황색은북에담아졌다. 북에삼태극을그려넣은것이그것이었다. 북에그려낳은삼태극의청색은땅의기운을말함이고, 적색은하늘의기운이며, 그두가지의기운을합하여융합해내는사람의기운은황색으로표시한것이다. 그리고소리꾼은백이며, 고수는흑이라는개념을가졌다. 그것들이합해져소리판의오방색이되었던것이다. 이러한음양오행을가졌던소리판은, 평민들의건강놀이였던사물놀이와함께, 마당에서함께했던공동체힐링생활놀이였다. (3)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힐링의시대가도래되었다. 국민소득의향상은문화레저의소비를촉진시키고, 그중심에는다양한역사문화콘텐츠들이존재한다. 상품이소비되는과정에서최초개발된상품이두배이상의매출을가지려면당초의상품보다기능과디자인이좋아져야한다. 그리고 20배이상의매출을가지려면수입의 60% 이상을홍보비에투자해야한다. 만약 200배로매출을올리고자하면그상품의정체성을가질만한문화가접목되어야한다고한다. 판소리는분명문화상품이다. 그것이소설장르를가졌든, 영화나, 창극이

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 231 나, 연극같은방식을가지든간에그렇다. 그런데이제는어제와는다른방식의판소리상품을원하는소비자가증가하고있다. 그래서광한루의수중무대에서야간에공연하는것들이많은소비자를부르고있는것이다. 판소리속에는무한한콘텐츠가존재한다. 음식에서부터생활속에서활용할만한그콘텐츠들은융복합의형태로존재한다. 그렇기때문에개별적인상품으로는전략적이고확장성을쉽게가지지못하는특성이있다. 예를들면춘향가에나오는남원부사잔칫상에등장하는음식을상품으로개발한다고해도소비자들은음식소비상품만으로는별반만족해하지못하는것이그러한사례다. 조사자가조사한판소리속의문화콘텐츠중에는위에서살펴보았던현장성을가진체험상품으로의가능성이무궁무진하다. 그러나개발과활용을누가어떻게할것인가라는과제를안고있다. 그동안판소리문화연구소에서시험운영해본결과소비자의만족도는여타한일반적인관광상품보다도세배이상의만족도를나타냈다. 그것은 힐링의시대 에부합되는요소가다양하고, 건강, 자연생태, 문화예슬, 농업같은트렌드에걸맞는요소들이갖추어져있기때문일것이다. 회복중에있던환자들에게필요한화풀어내기명상, 마음다스리기기체조같은것들이판소리를활용한기다스름놀이상품으로매우호감되고높은만족을나타나고있다. 그동안의조사결과가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개발전략의중요한단초가되었으면한다. 3. 결론 지역의구심적자원은지역사람들의문화에있는소통의매개이다. 그것들의형체는사람들의오감속에서존재한다. 지역은그러한오래된과거에서온문화자원을관광상품화한다는명분으로자본을투자하여개발한다. 그런데그방식은대부분축제의형식이거나체험형식이다. 이러한상품들은제

23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대로활용되지못하는곳이많다. 이제는 무형의자원 을활용할시기이다. 우리조상들이즐겨했던판소리는과연공연행태의모습이전부였을까? 판소리가조상들에게는 건강놀음 이었다고생각했다면, 오늘날단순히공연이아닌많은관광상품들이개발되지않았을까싶다. 판소리를제대로 해부하고다시조립하여 그속에서찾아낸무형의콘텐츠를사람들이가지고놀고체험하는 꺼리 로창조해내는것으로판소리문화의관광상품이개발되어야할것이다. 글을마치며, 지금까지논했던과정에서기재하지못했던항목별세세한논거자료들은필자의별도자료집에있어세세하게항목별로게재하지않았음을밝힌다.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33~238 쪽 2015.5 고창농악의역사는사람의역사다 1) 이명훈 * < 차례 > 1. 고창농악과의만남 2. 고창농악단의성립과역사 3. 고창농악의전수활동과현재 4. 고창농악보존회와고창농악의미래 1. 고창농악과의만남 무형의문화유산의역사는사람들의역사이다. 그것을행하는사람들이없으면어느순간우리곁에서사라지기때문이다. 고창농악보존회의역사또한고창농악을전해주고전해받고, 현재살아움직이게하는사람들의역사라고생각하며글을시작하고자한다. 1988년서울에서장구를배우고전국을돌아다니면서전수를받던대학시절, 고향인고창의굿은어떤모습으로남아있을까궁금하여 1990년처음고창의굿을찾아내려왔다. 30여명의 60~70 대할아버지들이치는굿을보고굿의신천지를만난것같은충격은지금도생생하다. 지역마다옛날굿이사라지고있었을시기였으며한때이름을날렸던풍물명인들은대부분 * 전라북도무형문화재제 7-6 호고창농악보존회장

23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작고하셔서전설로만얘기되어지고있었으며지역마다생존해계시던명인들은무형문화재로지정이되어서다행히몇몇지역에서그명맥을이어가고계시던시기였다. 이러한때에고창에서할아버지들이농악단을구성하여활동하고계셨던것이다. 악기별로수준또한상당히높은수준의실력을보여주고계시던이들을보고반하지아니할수가없었다. 어쩜그리도멋들어지게굿을치시는지. 한순간에그들의팬이되어버렸다. 2. 고창농악단의성립과역사 20대초반그들의가락과몸짓에반해장구를메고할아버지들을따라다니면서참으로많은것들을직접배웠으며많은옛날굿들을들을수있었다. 그들은현장에서살아움직이고있는고창농악의보고였다. 당시가까운과거부터거슬러올라가보니, 1985년도에고창문화원이기화1) 원장이정월대보름에고창읍내에서행해지는고창오거리당산제 2) 때굿을칠수있는굿패로 고창농악단 을조직하게된다. 고창의각읍, 면마을에서굿을치는사람들을불러모았는데 500여명이모였다고한다. 실로어마어마한사람들이모인것이다. 각악기별로심사를해서 30 여명을조직하게되었는데이들은 1940년대 10대에서 30대때가장왕성하게마을에서굿을쳤던사람들이었으며상당한실력을가진사람들이었다. 그중심에는 1940~ 1950년대가장이름을날렸던상쇠전국농악경연대회수상박성근 3) 과설장고김만식 4) 으로부터사사 ( 박성근개인상 /1947 년 ) 1) 이기화 (1935 년생 ): 고창문화원장을하면서 1985 년고창농악단창설을주도했으며고창농악을정립시키는데큰역할을하였다. 2) 고창오거리당산제는고창문화원주관하에고창읍내상거리, 중거리, 하거리, 중앙, 교촌당산, 다섯군데의거리에있는당산에제를지낸다. 3) 박성근 (1902 년생 ): 고창군고수면장두리양인출신으로영무장농악의대표적인쇠명인이다.

고창농악의역사는사람의역사다 235 받은황규언5) 상쇠가있었으며쇠에노명상, 노상덕, 징에김영태, 이양규, 설장고에정기환, 황치용, 김동윤, 통북에노균상, 조동석, 고깔소고춤에정창환, 유만종, 강대홍, 박용하, 이승규, 새납과나발에이노일, 잡색에표현종, 강주철, 최용근, 이종환, 이중섭등의각치배의수준이상당하였다. 그야말로고창에서몸짓, 가락으로행해지던모습을통으로전해줄수있는보물같은사람들이었다. 고창농악의주역들 1985년조직된고창문화원산하고창농 ( 황규언, 강대홍, 유만종 / 1960 년 ) 악단은오거리당산제를비롯하여동백연, 수산물축제, 모양성제등고창의축제에참가하게되고고창을대표하여 1992년전북시 군농악경연대회, 1994년전국농악경연대회, 1998년전주대사습농악부문, 2006년한국민속예술축제등에서대상과장원을차지하는성적을거두게된다. 이를계기로고창농악보존회가결성되었으며상쇠황규언, 고깔소고춤정창환, 설장고정기환명인이잇달아전라북도무형문화재제7-6호로인정되었다. 1985년도에고창농악단이조직되지않았다면오늘날고창농악은존재하지못했을것이라는생각을하니아찔하다. 그들은끊임없이마을에서행해지던굿들과박성근, 김만식, 이모질, 김양술등윗대명인들에대해서이야기를해주셨다. 그들이얼마나뛰어난사람들이었는지, 고창의굿이얼마나멋진굿이었는지등. 이야기를듣고 1947 년창경궁에서열린전국농악경연대회에전라북도대표팀의상쇠로출전해개인상을받았다. 4) 김만식 (1915 년생 ): 고창군상하면당골출신의영무장농악의대표적인장구명인이다. 1946 년창경궁에서열린전국농악경연대회에전라남도팀의설장고로출전해개인상을받았으며상품으로백금반지를받았다고한다. 5) 황규언 (1920 년생 ): 고창군대산면덕천리출생으로 20 대부터박성근, 김만식패에서쇠와장구를익혔으며 1985 년고창농악단이발족되면서상쇠를하게되었다. 1999 년에전북무형문화재제 7-8 호고창농악상쇠보유자로지정되었다.

23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흘리면이또한없어지겠구나싶어서각마을을돌아다니면서인터뷰를통해자료를수집하게되었으며실제로옛날에현장에서행해졌던문굿, 풍장굿, 도둑잽이굿, 매굿등의재현을통해오늘날사람들을통해살아움직이게하는굿으로되살려놓는작업들을하였다. 그대표적인작업이 1996년과 1999년대산면성남과성송면양사동에서문굿재현과 2000년신림면세곡마을에서의풍장굿재현이었다. 이러한굿들은단순재현으로만끝난것이아니라이후고창농악문화재발표회와무대공연작품을통해서끊임없이살아움직이는굿으로연행되고있다. 그리고 2010년고창농악단행본 고창농악, 고창의마을굿, 고창농악을지켜온사람들의삶과예술세계 등지난 15년동안의결과물을책으로발간하게되었다. 이또한고창의농악과이야기를전수해주신할아버지들이계셨기에가능한일이었다. 지금은대부분작고하시고 80대어르신몇분만생존해계신다. 이또한지금생각해보면할아버지들이살아계시던그때조사하고재현하지않았다면역사속으로소리없이사라졌을일이다. 3. 고창농악의전수활동과현재 굿은전수받는사람들이없으면또사라지는것이다. 1993년부터황규언선생님의마을에서고창농악전수를시작하게되었다. 처음으로고창에서전국의대학풍물패와사회풍물패사람들을대상으로전수를시작하였으며 2000년고창농악전수관개관을시점으로대규모전수가가능하게되었다. 지금까지 22년동안끊이지않고전수생을배출하여그동안배출된전수생들만해도전국에 10,000여명에이른다. 또한고창동리국악당과고창농악전수관에서, 그리고고창관내초중고학생들을대상으로전수교육을하여고창관내에서도고창농악을이어가고있는사람들이 1,000여명이넘는다. 1998년부터고창군읍 면농악단이한두군데조직되기시작하였으며 2001년고창군에서열린전북도민체전개막공연 ( 고창의소리-풍물패 500

고창농악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다 237 2014년 고창농악경연대회 명 공연)을 계기로 고창군 14개 읍 면 전부에 농악단이 조직되었다.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고창농악경연대회를 통해 그동안 면 농악단의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으며 자생적으로 활동이 가능한 단체로 성장한 상태다. 이제 고창농악은 고창농악 보유단체인 (사)고창농악보존회, 고창군 14개 읍 면 농악단, 고창농악 전수생, 고창군 초중고 풍물패 학생들이 이어가고 있다. 이는 고창농악 전승 보급 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이며 자랑이다. 과 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이 고창농악 1세대 할아버지 들이었다면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10 여 명의 고창농악 이수자들이다. 고창농악 이수자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고 창농악을 올곧게 이어받으면서 수많은 일들을 해 온 사람들이다. 어느덧 대 부분 불혹을 훌쩍 넘겼거나 40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창에서 고창농악과 함께 삶을 살아 온 고창농악 2세대들이다. 그동안 고창농악의 전 수를 통해 배출된 이명훈, 구재연, 임성준, 임승환, 이성수, 이광휴, 신수정, 문현주, 윤경아, 전새론 등은 해외공연, 무대공연, 개인발표회, 전수, 체험 사 업 등을 하면서 고창농악의 중심에서 일하고 있다.

23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4. 고창농악보존회와고창농악의미래 고창농악이지난 30여년동안사람들에의해전해져왔듯이앞으로도사람들에의해서후대에까지전해져야한다. 그중심에는그동안지난 30년동안탄탄하고알차게성장한고창농악보존회가있다. 고창농악보존회의주요사업은고창농악전수관운영, 고창농악문화재발표회, 고창농악경연대회, 고창굿한마당, 공연, 전수, 교육, 체험, 학술사업이다. 고창농악보존회의활동이없어지지않는한고창농악은영원히후대로까지전해질수있을것이다. 2015년고창농악은새로운전환기를맞이한다. 지난 15년동안폐교를활용하여운영되어온고창농악전수관이풍물소리테마파크로새롭게조성된다. 풍물소리테마파크에는현재고창농악전수생쉼터인숙소동을기본으로하고농악교육실과실내공연장, 야외공연장, 자료전시실등의조성을시작한다. 2016년완공되면고창의전통문화 1번지로써의역할을하게될것이다. 고창농악은 1940년대당대최고의명인들에의해가장활발한활동을하였으며 6 25전쟁과새마을운동시기를거치면서단절의시기를걷다가 1985년고창농악단창설을계기로되살아나현재제2의전성기를맞고있다. 이는사람들에의해이어져온역사이며또사람들에의해서살아움직일역사이다. 그러한역사가지난 30여년의역사였다면앞으로는 100년을넘어그이후까지가락과몸짓으로이어질고창농악의역사가될것이다.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39~247 쪽 2015.5 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6) 이주영 * < 차례 > 1. 머리말 2. 음악적특징 3. 전승현황 4. 맺음말 1. 머리말 구례에는풍류의도가일러주는중요한가르침을음악으로표현하고이를따르고자하는사람들이모인풍류방이있다. 예부터풍류객들은풍류방에서는시서화 ( 詩書畵 ) 와음악으로그들의정신수양을높이고, 학문과삶을일치시키며자신을정돈하였다. 이러한선조들의수준높은문화유산가운데하나가바로풍류음악, 영산회상이다. 이글에서는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현황을소개해보겠다. * 국립무형유산원

24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 음악적특징 풍류방에서연주하는주요연주곡은현악영산회상이다. 현악영산회상은조곡 ( 組曲 ) 과같은형태의음악으로총 15곡의모음곡이다. 구례향제줄풍류는다스름을시작으로상영산, 중영산, 세령산, 가락더리, 상현도드리, 도드리, 하현도드리, 염불, 타령, 군악,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 굿거리로이루어진다. 현악영상회상은불교의식과관련된 영산회상불보살 이라는가사로부르는성악곡에기원을둔다. 이후시간이흐를수록곡에살을붙이고변조하고, 구성악기의변화등유연성을갖게되었다. 그러다가조선후기에이르러오늘날과같은방대한조곡이완성된다. 영상회상은음악사의변화와흐름을공부할때그중심에서다뤄지는중요한곡이기도하다. 구례향제줄풍류에서영상회상을연주할때다스름을연주하며시작한다. 이다스름이란음을 다스려본다 는의미로, 연주자들이 21박을연주하며본곡에들어갈준비를하는것이다. 향제줄풍류의청 ( 淸 ) 과악기를통해주요음악적특징을살펴본다. 1) 향제줄풍류의청 ( 淸 ) 서양오케스트라에서연주에앞서오보에가첫음을불면나머지악기가튜닝 (tuning) 하는모습을국악에서는청을맞춘다고표현한다. 경제줄풍류를비롯한국악에서는대개대금이먼저첫음 임종 을내는데, 이음에맞춰나머지악기들이조율에들어간다. 그런데, 구례향제줄풍류는관악기인단소 대금이 중려 음을내고, 나머지악기들이이음에맞춰조율을시작한다. 이를중려청이라고한다. 단소에서중려는평으로내는안정된음이며, 중려는단소가연주음으로사용하는음중의최저음이다. 연주자들은악기별로서로다른음을연주하다가도중려에서다시만난다는느낌을받는다. 이렇듯, 구례향제줄풍류가 중려 청을쓰는이유는풍류음악의선법적주

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241 음인청을 중려 로보고, 줄풍류조현에서도관악기가청을댈때중려청으로대야한다는남도악의음악관념이이러한특징을가져오게한이유로보인다. 1) 2) 향제줄풍류의악기 줄풍류의주요악기는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단소, 양금, 해금, 장구의편성으로이루어지며, 구례향제줄풍류의황종음고는경제줄풍류의음고보다높다. 단소의음역으로음고를살펴보면, 구례향제줄풍류의 황종 이 E로경제줄풍류의 황종 이 E 으로연주되는음보다반음이높은음역을보인다. (1) 단소구례향제줄풍류의단소는백경김무규를비롯한이철호보유자에이르기까지본인의단소를손수제작하였다. 단소재료는오죽이나황죽중에서납작한암대를선호하는데, 이는일종의돌연변이종으로거친땅에서천천히자라보다단단하다. 구례향제줄풍류의향제단소는그형태와구조가경제줄풍류단소와차이를나타내며, 이뿐만아니라악기잡는법, 운지법및연주법또한다르다. 향제단소는경제단소에비해길이가 2cm정도짧다. 단소제작시전개음 ( 구멍을모두뗀상태에서나오는음 ) 과전폐음 ( 구멍을모두막은상태에서나오는음 ) 의음높이를맞추며하는데, 이러한제작방식은음역의차이를발생시키고, 다시음역의차이는안공법에도영향을미친다. 1) 이보형, 청의개념유형과구례줄풍류중려청의생성원리에대한고찰, 한국음악연구 제 42 집, 2007.12.

24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 표 1> 구례줄풍류단소안공법 仲林 南無潢汰浹㳞淋湳 潕㶂㳲 㴺㴢 < 표 2> 경제줄풍류단소안공법 ( 불용 ) 仲林南無潢汰浹㳞淋湳潕㶂㳲㴺㴢 현재구례향제줄풍류의단소전승계보는추산전용선, 김무규와이철호로이어진다. (2) 거문고거문고는예부터선비들에게가장인기있는악기였다. 문예에능통한선비라면당연히거문고를연주할줄알았으며, 금보 라하여개인악보를만들어소장하였다. 오늘날가장많은종류의금보가전해오는이유도바로이러한이유에서다. 구례향제줄풍류역시김무규가직접정리해놓은거문고악보가전해진다. 구례향제줄풍류의거문고조현법의특징은단소 대금연주자가 중려 를불어주면왼손으로현을짚지않고개방한상태에서유현을 중려 로맞춘다. 그리고구례거문고는 남려 를 10괘에서잡는데, 이는경제의 9괘를잡는법과다르다. 이는구례줄풍류의음고가높아지는이유이기도하다. 구례향제줄풍류의거문고는조선말거문고삼절중의한분인우당김윤덕의가락을

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243 잇고있다. 김무규는추산의단소선율뿐만아니라거문고에있어서도큰계보를잇고있는것이다. (3) 대금구례향제줄풍류대금은정악과산조대금의중간정도에해당한다. 구례줄풍류가경제줄풍류보다음고가높기때문에구례대금은취구에서부터마지막 6공까지의길이가짧다. 구례대금운지법의특이한점은저취와평취의남려, 무역에있다. 대금도 6공을열고불었을때나는소리가남려가아닌무역으로이것은거문고의괘법과가야금의조현법에도영향을미치게된다. 대금은저취와평취의무역을내고자제6공을열었을때약간젖혀불고, 남려는제6공의반을막는반규법을사용하여약간숙여낸다. 이대금의반규법은구례향제풍류에서찾아볼수있는음악특징이다. 현재구례향제줄풍류의대금전승계보는추산전용선, 이순조로이어진다. (4) 가야금가야금은두가지종류로구분된다. 정악가야금 ( 법금 ) 과산조가야금이그것인데, 이는연주곡의종류에따라악기를달리사용한다. 일반적으로궁중음악과정악이라일컫는곡목들을연주할때정악가야금을연주하는데, 줄풍류에서연주되는곡은바로정악곡에해당한다. 경제줄풍류는정악가야금을사용하는반면, 구례향제줄풍류에서는산조가야금을사용하는데, 이점에서차이가난다. 산조가야금을사용하는향제줄풍류가야금의조율은정악가야금과유사하지만, 구음과연주법에있어서는정악과산조의요소가섞여있는특색을보인다. 구례향제줄풍류가야금연주법의주요한특징은연주할때가야금줄을당겼다가소리가튀는순간에손을다시편다. 손가락이다음에연주할음의위치에미리가있어야한다는것이다. 이렇게하면손가락이붙어다니는것처럼안정적이고움직임이흐트러지지않는데, 동작의절제와움직임의일

24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치를강조한연주법이다. 이연주법은대금보유자이순조가추산전용선에서가야금을사사할때추산선생이강조한연주법이다. 추산전용선은이수법을낙향한궁정악사에게배웠다고전한다. 현재구례향제줄풍류의가야금전승계보는추산전용선, 조계순으로이어진다. (5) 양금양금은 구라철사금 이라불리며서양에서건너온현악기를뜻한다. 18세기조선영조때청나라를거쳐우리나라에전해지게되었으며, 그음색이맑고화려하여풍류음악에서감초역할을하고있는악기다. 실학자홍대용에의해처음으로이악기가우리나라에전해졌으며, 그의친구연암박지원과함께가야금을연주하며그선율을터득해나갔다고한다. 홍대용은유춘오라는풍류방에서풍류연주를즐겼는데, 이때부터양금은중요한풍류악기로자리잡았다. 구례향제줄풍류양금연주는선율의주요골격음을양금채를이용하여치며, 채를굴리는트레몰로등의기법을사용하지않고있다. 3. 전승사 1) 향제줄풍류의형성 2) 구례향제줄풍류는추산전용선 3) 선생과구례향제줄풍류보유자인김무규 2) 국립문화재연구소, 중요무형문화재 83- 가호구례향제줄풍류, 민속원, 2007. 3) -1888 년정읍군입암면천원리 474 번지에서아버지전희조, 어머니조성녀의장남으로출생. -1928-1931 년남원에서조계순을처음만남. -1936-1945 년남원대복사등지에서김무규지도. -1954-1959 년전남구례에서이철호단소지도. -1959-1964 년경남진주에서이순조지도. -1961 년조계순에게가야금지도. -1961 년예용해의 인간문화재 에소개, 전주에서활동. -1963 년 12 월 28 일국립국악원국악진흥회주관제 2 회국악상수상. -1965 년 11 월 3 일전주시태평동 36 번지에서사망.

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245 와이철호의선친들과의풍류활동으로시작되었다. 추산은정읍에서출생하였지만평생을일정한거처를마련하지않고자신의음악을알아주고풍류를즐기고연주할수있는곳을 자신의자리라 여기며나그네와같은삶을살았다. 이러한추산의성정과음악을아끼는구례의백경김무규의선친연계김형석과인재이철호의선친백당이현구가그를구례에머물게하며함께풍류를즐겼다. 이로인해그들의자제들에게추산의가락을자연스럽게잇게하는계기가되었다. 추산은단소 가야금 대금 퉁소 양금 피리 해금등의악기에있어모두능했다. 그중추산의단소제자로는故김무규와이철호가있으며, 故조계순이추산의가야금선율을사사했다. 대금으로는故이순조가있다. 추산전용선은구례향제줄풍류에절대적인영향을끼친인물이다. 전라북도고창군흥덕면출신으로전문적인국악인집안에서태어났으며정읍으로이사한후정읍군태안면에살던전계문에게갖가지국악기를배웠다. 단소산조로는전무후무하다는평을받았고젓대, 양금, 피리, 해적 ( 해금 ) 과가야금풍류에능하였다. 후에전주에살며활동하다가구례절골풍류방에기거하며풍류활동을하였고 1936년무렵에김형석의아들김무규에게단소를가르쳤다. 이후 1954년무렵에절골풍류방을구례읍내이현구한약방으로옮기자전용선도이곳으로옮기어살았고이무렵에이현구의아들이철호 ( 현중요무형문화재제83-1호보유자 ) 에게단소를가르쳤다. 구례풍류방이어렵게되자다시진주로가서풍류활동을하였는데여기에서조계순에게가야금풍류를, 이순조에게대금풍류를가르쳤다. 이후추산의제자들이모여다시구례풍류방을결성하게되고, 1985년중요무형문화재 83-1호구례향제줄풍류로지정받게되었다. 2) 율객의교유 풍류방의성격에도여러가지가있으나그중, 구례절골의김씨풍류방,

24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경주에있는최씨풍류방, 동복오씨풍류방, 담양국씨풍류방, 정읍김씨풍류방 과같이경제적으로능력이있는율객이자기개인사랑방을풍류방으로꾸미고율객을모아연주하는유형이주를이루었다. 뒤에정읍 초산율계, 흥덕 아양율계, 부안 부풍율계, 이리율계 와같이율객들이율계를조직하여계모임으로연주활동하는풍류방도많이있었다. 무형문화재지정당시에구례향제줄풍류는전자유형으로, 이리향제줄풍류는후자유형에근거를두고있다. 구례향제줄풍류는 1985년중요무형문화재 83호로지정되고다음해에 1986 년에구례향제줄풍류보존회가인정된다. 보존회는 1994년전라남도구례군구례읍봉동리 291-2번지보존회관을신축했다. 매월 4째주토요일에정기모임을통해연주모임을갖고있으며모임후저녁회식을하는것이상례로전해지고있다. 매년개최되는정기적인공개행사는구례지역의이름난곳을빌러풍류공연을벌리며올해 10월에운조루4) 에서풍류공연이연행되었다. 4. 맺음말 구례향제줄풍류는다른지역의풍류와달리중려청을기준으로하는점이특이하다. 황종의음고는경제에비해높으며단소의구조및잡는법, 운지법, 연주법이다르며대금의악기도구조및운지법, 연주법에서차이를보인다. 가야금은산조가야금을사용하며구음과연주법은정악과산조적인요소가섞인것이특징이다. 구례향제줄풍류는구례절골풍류방때부터비전문연주자들의활동으로인해형성된풍류방이다. 음악의완성도와옳고그름의기준을잡을수없지 4) 중요민속자료제 8 호 ( 구례군토지면소재지 ). 조선영조때건축된것으로당시귀족주택의전형을보여주는고택이다.

구례향제줄풍류의음악적특징과전승사 247 만, 구례향제줄풍류의모임은처음구례풍류방이만들어졌을그선배풍류인들의마음가짐과자세를지켜나가고자하는것이궁극적인바람이다. 경제줄풍류와향제줄풍류간의음악적정체성이모호해지고, 각자다른색깔을지켜나가는것이힘들어진요즘다시한번고상했던선현들의여유와품격있던그들의삶의자세를되돌아본다. 실제악기를내몸에붙여풍류방에합류했을때비로소풍류가이해되고, 그진정한흥취를맛볼수있기에모두가악기하나씩배워풍류인이되어보는것은어떨까. 참고문헌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구례향제줄풍류, 민속원. 김미진, 1999, 구례향제줄풍류와국립국악원줄풍류의비교연구-양금보중심으로, 조선대학교석사학위논문. 남상숙, 2005, 호남풍류의전승사및음악적특징, 국립민속국악원논문집 제5집, 국립민속국악원. 이보형, 2007, 청의개념유형과구례줄풍류중려청의생성원리에대한고찰, 한국음악연구 제42집. 이주영, 2006, 구례줄풍류와국악원줄풍류의 < 군악 > 선율비교-단소와양금을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6. 전승희, 2002, 현악영산회상과구례향제줄풍류비교연구-계면, 양청, 우조환입가야금선율에기하여, 동국대학교속사학위논문. < 악보 > 김무규편, 거문고보, 단소보, 양금보 < 음반 > 구례향제줄풍류, 1996( 구례향제줄풍류보존회 ) 음반번호 : Z-KDY-96031.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49~270 쪽 2015.5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 5) 오세미나 ** 이훈 *** 이성인 **** 김빛나라 ***** < 차례 > 1. 들어가며 2. 현지조사과정 3. 해녀문화와해녀공동체 4. 해녀문화전승을위한활동 : 해녀의집, 물질시연, 해녀학교, 박물관 5. 나가며 1. 들어가며 제주도해녀는바다속에들어가해삼, 전복, 미역따위를따는것을직업으로하는여성을말한다. 1) 이들은잠녀라고도불리며, 산소공급장치없이무호흡으로잠수하여수심 5-10m 정도의바다속에들어가전복, 소라, 우뭇가사리, 미역등해산물을채취하는일을한다 ( 함한희, 2012). 이렇게생업으로하는전문적인무호흡잠수자는한국과일본에만있다고알려져있다. * 이논문은 2013년정부 ( 교육과학기술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 과제번호 NRF-2013S1A5B8A01072201). **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박사과정,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연구원 ***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석사수료,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연구원 ****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석사과정,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연구원 ***** 전북대학교고고문화인류학과석사과정, 전북대학교무형문화연구소연구원 1) 국립국어원표준대사전참고하였다.

25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해녀는어릴때부터자연스럽게물질기술을배운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자신에이르기까지삶의과정속에서기술을익혀간다. 어려서부터집앞바다에서놀이삼아수영을익히고, 15살쯤되면어른들과동행해서본격적으로해녀의일을배우기시작한다. 호흡조절, 수심이깊은바다의수압을견디는힘, 찬수온을이기는훈련, 바다속에서만날수있는위험한순간에대한대처능력, 날씨와파도를가늠할수있는전통지식등해녀만이가진특수한기술뿐만아니라전문가못지않게바다생태지식을풍부하게가지게된다. 해녀는해녀로서필요한지식들을물질현장인바닷가뿐만아니라해안가에자리잡은 불턱 에서도습득한다. 불턱은 불자리 라는뜻으로불이있는공간을말한다. 이곳은물질도구를준비하고잠수복을탈의하는공간이다. 해녀들은바다깊은곳에서물질을하고돌아오면추위와의싸움이시작된다. 이들은불턱으로모여따뜻한불을쬐며몸을녹이고젖은옷은말린다. 이때해녀들은물질에대한정보를나누며, 경험이풍부한해녀는어린해녀들이물질하는모습을눈여겨봐두었다가잘못된점을바로잡아준다. 또한육아, 가사등여성의장에서이루어지는다양한정보를주고받는다. 이러한과정에서해녀들은자연스럽게예절, 미덕, 배려, 이해와같은공동체적가치와윤리를터득하게된다. 해녀공동체에서는 우리바다 라는관념이존재하고있어 ( 안미정, 2007), 오래전부터지켜내려오는작업과정에서의윤리를중요하게생각하고있다.( 함한희, 2012) 이들은조직을구성해서자체적으로운영하고있는데, 이를잠수회또는해녀회라고부르고있다. 2) 해녀회는마을에근거를둔여성들의자발적결사체로, 규칙을정해운영하고있다 ( 고창훈, 2005). 그내용에는공동어장의관리, 공동작업과공공사업, 해산물금체기간과해체기간에대한규칙, 경조사에대한규약, 물질시간에대한규약등이있다. 이러한 2) 제주에서는이들의조직을잠수회또는해녀회로부르고있는데, 본고에서는현재해녀들사이에서통용되고있는해녀회로부르고자한다.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51 규칙을통해서이들은바다자원을지속적으로관리하며, 바다와인간이공존하는삶을살아가고있는것이다. 이들에게있어해녀공동체안에서더불어사는지혜는매우중요하다. 회원이어려운일에처하게되면솔선하여상부상조하고, 공동기금은가장절실한사람, 가장급한마을일에우선사용한다. 노인해녀와미숙한해녀들은 할망바당 이라는수심이낮은곳에서작업을할수있도록배려한다. 할망바당은나이가들어물질이힘든해녀들을위해제공되는얕은바다를말한다. 젊은해녀들은물질을할때위험부담이적은곳을고령의해녀들에게양보하는것이다. 이처럼해녀공동체안에작동하는공동체의식의원리가해녀와해녀문화를지속가능하게만드는것임에도불구하고해녀공동체의역할과의미의중요성에대한인식은부재하다. 따라서본고에서는지금까지이러한공동체의식의원리가다소소홀히다루어지지않았는가라는문제의식에서출발한다. 최근유네스코를중심으로무형문화유산에대한보호의중요성이대두되면서, 무형문화유산의보호와활용이세계적인화두로떠오르고있다. 이러한상황에서정부에서는제주도해녀가지닌무형문화유산의가치에주목하고, 이들의문화를널리알리고자활발하게움직이고있다. 제주도내에서는해녀박물관을건립하고, 매년해녀축제를성대히열고있다 ( 함한희 ; 2013). 또한해녀물질시연, 해녀학교, 불턱유산의보존등해녀와해녀문화의중요성을인식하고보전하기위해해녀문화를활용한다양한활동들이이루어지고있다. 하지만해녀문화를알리기위해행해지는여러가지활동들은해녀문화내부에서작동하는원리를간과하는경향이있다고판단된다. 따라서본고에서는현재제주도안에서해녀와해녀문화의전승과지속을위해서여러측면의노력이나타나고있는바, 이에대한성찰을바탕으로해녀문화의내부에작동하는공동체적원리에주목하는방향과해녀문화를통합적이고총체적으로이해해볼것을제안해보고자한다.

25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 현지조사과정 제주해녀의수는매년마다감소하는경향을보인다. 1970 년대까지는 14,000 여명에가까웠던해녀인구가 2012 년통계에따르면고작 4,574 명 3) 이다. 과거에비해해녀수는눈에띄게감소하고있으며, 해녀공동체의고령화가심각하다. 이러한상황을인식해서제주지자체에서는해녀문화의지속과보전을위해다양한활동들을펼치고있다. 이러한현상황을점검하고, 다양한주체의활동을살펴보기위해 2014년 7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동안무형문화연구소연구원들은제주지역에서현지조사를수행하였다. 현지조사에앞서현재제주도에서해녀문화가어떠한형식으로활용되고있는지사전조사도수행하였다. 사전조사당시여러주체들에의해활용이적극적으로이루어지고있음을알수있었고, 대표적인사례는다음과같다. 각마을어촌계에서운영하는해녀의집, 마을특화사업으로운영되고있는해녀학교, 비영리단체인제주해녀문화보존회가운영하고있는물질시연, 도차원에서운영하고있는제주해녀박물관등네곳의사례를살펴본다. 이처럼해녀문화를알리고보호하기위해지역과공동체속에있는다양한집단들이중심이되어움직이고있었다. 연구팀은현지에서의조사기간이한정되어있어크게민, 관, 해녀와해녀공동체등세집단을중심으로다양한주체들에의해행해지고있는활동들을활용사례를조사하였다. 해녀의살펴보기위해 2014년 7월 7일부터 10일까지 4일동안제주지역에서현지조사를수행하였다. 집, 해녀학교, 제주해녀문화보존 3) 2012 년제주해녀수는 4,574 명으로집계되었다. 그중 30 세 -49 세는 87 명, 50 세이상은 4,487 명이다 ( 수산정책과 064-710-3233 전화인터뷰자료 2014.9.4).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53 회, 제주해녀박물관을방문하여현황을알아보고, 관계자들과인터뷰를진행하였다. 해녀활동이활발한성산읍온평리4) 를중심으로한림읍귀덕리5), 구좌읍하도리 6) 등에거주하는해녀들을만나면담을진행했다. 이들을통해해녀와해녀문화가지니는특징에대해서이해를구하고자했고, 해녀학교, 보존회, 박물관을통해서는해녀문화를알리기위해현재진행되고있는활용사례를구체적으로알아보는데시간을할애하였다. 이조사는짧은시간동안진행되었다는점이큰한계임을밝히는바이다. 각기관및집단의활동및해녀공동체의운영에대해서보다심층적인조사와분석은다음기회에보충해보고자한다. 3. 해녀문화와해녀공동체 본장에서는제주해녀문화와관련한논의에앞서제주해녀의현황에대해살펴보고자한다. 현재제주해녀의수는가장최근자료인 2012년의통계를보았을때 4,574명7) 정도로추정한다. 아래표는제주해녀가 50년도채되지않은시기동안급격히감소하고있음을보여준다. 4) 학교바당 ( 학교바다 ) 가있다. 이어장은과거온평리초등학교의신축과건립을도왔다. 당시해녀의공로를인정하여세워진해녀공로비도있다. 구좌읍근처마을로, 화요일일정인구좌읍해녀마을의추가조사가필요하면진행해도된다. 5) 자율관리공동체이다. 어장관리가철저한지역중하나이다. 엄격한자원관리와어장환경정화를위한일들을하고있다. 해녀학교가자리하고있다. 6) 어촌계에등록된해녀수와물질작업을하는해녀의수의차는크지만제주도에서해녀수가가장많다. 이곳은과거에해녀항일운동이일어났던역사적인장소이기도하다. 7) 2012 년제주해녀수는 4,574 명으로집계되었다. 그중 30 세 -49 세는 87 명, 50 세이상은 4,487 명이다 ( 수산정책과 064-710-3233 전화인터뷰자료 2014.9.4).

25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20000 제주해녀수 ( 단위 : 명 ) 15000 14143 10000 5000 7804 6470 5406 5244 4995 4574 0 1970 년대 1980 년대 1990 년대 2007 년 2008 년 2011 년 2012 년 제주해녀의물질은집안또는동네여성으로부터대대로자연스럽게전승되어왔다. 해산물의채취를위해해녀가기본적으로사용하는물질도구로는물안경, 테왁망사리, 빗창, 까꾸리등이있다. 이들은물질도구를들고바다에잠수해각종해산물을채취한다. 물안경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보급되어시기별형태적변화를보인다. 초기물안경의형태는소형의알이두개로분리된 쌍눈 ( 족은눈, 족쇄눈 ) 이었다. 이후 1960년대제주해녀는황동판테두리를재료로하여만든 외눈 ( 큰눈, 왕눈 ) 을착용하였는데, 1970년대부터고무잠수복이보급되면서고무재질의테두리를한 고무눈 을사용하고있다. 테왁은부력을이용한작업도구로망사리가부착되어채취한수산물을넣어두는용도로쓰인다. 빗창은전복을캐는도구이며, 까꾸리는물속에서돌멩이나바위를헤집고다니면서바위틈의해산물을채취할때쓰는주요도구이다. 도구이외에알아야할것이있는데바로물질작업복이다. 전통잠수복은면으로제작되어상의는물적삼, 하의는물소중이라하여통칭물옷이라불렀다. 물옷은옆트임이있어옷을갈아입기편할뿐만아니라물속에서활동이편안하게만들어진전통잠수복이었으나, 1970년대초부터등장한고무잠수복의영향으로차츰볼수없게되었다. 고무잠수복은해녀들이물속에서보다오랜시간작업이가능하게해주고, 체온을보호해주기때문에급속도로퍼지기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55 시작했다. 현재대부분의해녀들은고무잠수복을착용하고물질을한다. 해녀들은이러한물질도구를준비하고잠수복을탈의하는공간이필요했다. 이들은둥글게돌담을쌓아불턱을만들었다. 불턱에서해녀들은바다속에들어갈준비를하고, 물질이끝나면몸을말리고일상복으로갈아입었다. 특히물질을마치고돌아오면추위와의싸움이시작되는데, 불턱가운데에불을피워따뜻한불을쬐며몸을녹였다. 그래서인지해녀들은몸을따뜻하게해주는어머니의품과같은장소라고말하곤했다. 8) 한가지흥미로운점은해녀들이불턱을단순히탈의실로만이용했던것이아니라는점이다. 이곳에서해녀들은물질에대한지식이나요령, 물질할곳의위치를파악하는등작업에관한정보를나누었다. 경험이풍부한해녀는어린해녀들이위험에대처해나갈수있도록교육을시키기도했다. 여성의영역이었던가사, 육아등일상적인이야기를나누기도했다. 이러한과정에서해녀들은자연스럽게예절, 미덕, 배려, 이해등과같은더불어살아가는공동체적가치와윤리를터득하게되었다. 과거제주도해안에는마을마다불턱이 3~4개씩존재했으나, 1985년을전후로각마을에현대식탈의장이설치되면서불턱의기능이점차약화되었고지금은 70여개의불턱만이남아있다. 제주해녀가바다에들어가채취하는해산물의종류는다음과같다. 그종류는패류 해초 극피동물 그외의것으로나뉜다. 패류는전복, 오분자기, 구젱기 ( 소라 ), 수두리보말 ( 팽이고둥 ) 이며, 해초류는메역 ( 미역 ), 메역새 ( 작은미역일종 ), 톧 ( 톳 ), 정각 ( 청각 ), 우미 ( 우뭇가사리 ), 독고달 ( 갈래곰보 ) 이다. 극피동물류는구살 ( 성게 ) 와말똥성게, 그외에는미 ( 해삼 ), 물꾸럭 ( 문어 ) 9) 가있다. 제주해녀는바다속지형과시간에따른해양생물의생육과정과채취시기를숙지해야만한다. 이것은바로제주해녀만이가지는자연에대한전통지 8) 이태희 (63세, 한림읍귀덕리거주, 2014.7.8. 구술자료 ). 9) 한수풀해녀학교자료 http://haenyeoschool.co.kr

25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식이기도하다. 이들이예로부터습득하고전승한해산물의채취시기를살펴보면다음과같다. 1월 1일부터는전복을채취한다. 2월부터 4월까지는해삼, 4월은톳, 5월은우뭇가사리, 6월은성게와보말, 10월부터는소라와문어를채취한다. 10) 10월 1일부터는전복을채취할수없는데, 이기간을금채기간이라부른다. 금채기간을두는이유는지속적인물질을위해생태계가회복될수있는시간을주기위함이다. 너무나어린생물을채취하지않으며, 산란기에접어든생물은일정기간을두어채취를금하여이를보호한다. 이렇게해녀들은바다속생태계가파괴되지않도록각별히주의한다. 채취작업과금채기간을준수해야한다는규칙은해녀회 ( 잠수회 ) 에의해지켜져온해녀회칙의일부조항이다. 해녀회는국내외를막론하고희귀한여성노동공동체로써해녀공동체안에서준수해야할엄격한규율을관리한다. 해녀회칙은해녀회마다약간의차이는있지만일반적으로위와같은내용을담고있는해녀들의자치적인공동약속이다. 해녀회칙에는해녀공동체를위한것과동시에바다공동체의섭리를해치지않기위한내용등이담겨있다. 이러한내용은제주해녀들의공동체문화를보여주는것이라할수있다. 해녀들은본인을위해서, 같은마을해녀를위해서, 바다의자원관리를위해서자율적인관리규율을만들어전승하고있다. 해녀회칙은대략적으로회원자격, 강령, 및의결권등의자율관리규약으로구성되어있다. 먼저가장기본적인회원가입자격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회원가입자격에는마을에거주해야한다는조건이우선시된다. 다른마을에서시집을오거나외지에서온경우, 다른지방에나가살다가귀향한경우해녀회에서정해놓은일정한절차를거쳐야만회원으로가입할수있다. 그러나해녀회원으로서의의무나잠수회칙을지키지않았을경우회원자격이상실된다. 가령해녀회원으로서바다를돌보는일이나해녀회가결의한공공사업에소홀히하고상부상조조항을지키지않았을때, 다른마을로출가하거나거주지를옮겼을때도회원자격을잃게된다. 10) 이태희 (63 세, 한림읍귀덕리거주, 2014.7.8 구술자료 ).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57 다음으로바다의보존과관련된해녀회칙강령이있다. 해녀들에게바다를돌보는일은매우중요하기때문에해녀회에서는금채기간을준수한다. 앞서설명했듯이특정생물에한해산란기를맞이했거나어린생물들이무분별하게채취되는것을금하기위해정해놓는다. 이것은해녀들이바다라는 밭 을단순히채취대상으로여기지않는것에서비롯된다. 밭은해녀들이함께공존해야할대상으로보는자연 우주에대한세계관과그실천양상을보여주는규약이다. 따라서마을별어촌계와해녀들은각각채취기간과금채기간을정하여물질을전승하고바다를보호해왔다. 마지막으로상부상조에대한회칙이있다. 이규약에는할망바당, 학교바당의운영과관련된것이포함된다. 우선경조사가있을경우해녀회에서는 우리일 이라여겨누구보다도먼저발벗고나선다. 경제적, 육체적으로경조사를지원할뿐만아니라 3~4명씩조를이루어하는공동작업도경조사를잘치를수있도록편의를봐준다. 예를들어경조사를전후로삼일에서혹은일주일을쉬게해주고, 이에따른인력을재배치하여공동작업도원활하게이루어지도록한다. 더불어학교에다니는자녀를둔해녀를위한 학교바당, 고령의해녀를위한 할망바당 을운영한다. 바당은바다를일컫는말이다. 학교바당은과거해녀공동체의움직임과관련이있다. 과거경제적인사정으로학교운영이어렵게된때가있었다. 이소식을들은해녀들은힘을모아미역을채취했고, 여기서얻은수익금전액을지원하여학교가정상적으로운영될수있도록했다. 이를계기로해녀들은학교바당을두고그곳에서얻은수익을학교운영과학교에다니는자녀들에게지원했다. 할망바당은고령의해녀를위한곳이다. 고령의이들은몸이쇠약해져깊은곳에서의작업이어려웠다. 깊은곳에서물질을하다자칫잘못하면위험에빠질수도있었다. 해녀회에서는얕은바다를할망바당이라고정한후이들이작업할수있도록도왔다. 이는오랜세월동안바다와함께한이들에게마땅히해야하는예우였다. 이처럼힘든형편에있는해녀와고령의해녀를배려하기위해학교바당이나할망바당을마련하여해녀들의공동체가끈끈하게유지될수있도

258 무형유산연구제 1 권 록노력하고있다. 이외에도해녀회에서는공동작업과공동분배에대한규약, 물질시간에대한규약으로하루에할수있는물질시간을정한다. 대개 4시간정도작업을원칙으로한다. 이는해녀들이위험에노출되는것을사전에막기위한것이다. 또한해녀의지위에따라엄격한위계질서를가지고있는반면해녀회의의결권에는회의안건에대한발언권과만장일치에따른결정등의민주적인원리가작동하여조화를이루고있다. 이처럼제주해녀는해녀회와해녀회칙을실천하며바다를개인이아닌공동의소유로간주하며해녀공동체11) 를지켜가고있음을알수있다. 4. 해녀문화전승을위한활동 : 해녀의집, 물질시연, 해녀학교, 박물관 현재제주도안에서는해녀문화의전승과지속을위해서다양한활동을펼치고있다. 4장에서는해녀문화를알리기위해행해지고있는여러가지활동중 1) 어촌계에서운영하는해녀의집 2) 해녀보존회의물질시연 3) 해녀학교 4) 해녀박물관등네가지사례를살펴본다. 그리고이에대한성찰을바탕으로해녀문화가가진공동체적가치에주목하여앞으로나아가야할방향을제안하고자한다. 1) 해녀의집 해녀의집은마을어촌계소속해녀들이직접채취한신선한해산물을조리하여판매하는음식점이다. 전복죽이나게죽, 보말죽처럼조리한음식도있고, 회로만들어서날것을판매하기도한다. 11) 이태희 (63 세, 한림읍귀덕리거주, 2014.7.8 구술자료 ).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59 과거어촌계는마을어민들이자주적으로계를조직하여어장을공동관리하였고여기서얻은수익을공동으로분배하였다. 반면지금은공동어장뿐만아니라해녀의집을운영하여수익을올리고있다. 이는 1962년수산업협동조합법의시행에따른변화이다. 수산업협동조합법이시행되면서자체적으로운영되었던어촌계에서법인어촌계로변화하기시작했다. 이에 22곳의법인어촌계가등록되었는데, 점차증가하면서 2006년에는 56곳, 2010년에는 100곳12) 이되었다. 법인어촌계가되면서좀더체계적인형태를갖추었고, 보다나은수익을창출하기위해각어촌계마다노력하고있다. 해녀의집은어촌계계원들이조를짠뒤, 일주일을단위로판매장에나와서일을하며수익금에서일당을받는방식으로이루어진다. 어촌계회원수가많은곳, 판매장의위치가좋은곳, 입소문이난해녀의집은한조당 10 명으로구성된 6개조가나누어교대근무를하는곳도있다. 그러나회원의수가적고손님들이많지않은곳은한조를 2명으로구성하여 6개조가돌아가면서판매장에나와일을한다. 해녀의집은어촌계에서공동으로운영하여마을과해녀들의수익을올리는데일조하고있다. 해녀의집을운영하기시작하고나타난가장큰변화는해녀회원개개인의소득이증가한것이다. 젊은해녀의경우물질을해서잡은해산물을직접판매할수있다는점에서보다더수익을올릴수있고, 연로해서물질을그만둔고령의회원들은해녀의집에서일을할수있다는점에서개인소득이증가했다고볼수있다. 최근해녀의집은인터넷과 SNS를통해빠르게알려지고있고, 제주를방문하는전세계의관광객들에게각광받는관광필수코스로자리하고있다. 많은관광객들은특별한잠수기술을가진제주해녀가공동으로직접운영해서해녀들을만날수도있고, 그들이채취한싱싱한해산물을맛볼수있다는점에매력을느낀다. 그러나앞으로해녀의집이지속적으로운영되기위해서는성찰이필요하 12) 좌혜경 권미선, 제주해녀의생업과문화, 제주학회, 2009.

260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서귀포중문해수욕장근처의해녀의집전경이다. 해녀의집에서는해녀들이손수잡은신선한해산물을즉석에서손질해서먹을수있다. 다. 우선고령화되어가는해녀공동체가직면할수있는문제들을고민해야할것이다. 해녀들은물질을마친후판매장에나와서직접조리하고판매까지병행하고있다. 그런까닭으로노동의피로감이다른직업에비해상대적으로높다는점이다. 물질을하지않는고령의해녀들이적극적으로힘을보태지만, 이들도관광객을상대로판매하기에는육체적 정신적으로부담이큰것이현실이다. 해녀의수가감소하고고령화되어가기때문에해녀의집운영이얼마나지속될수있을지는의문이다. 따라서이러한문제점을해결할수있는새로운운영방법이모색되어야할것이다. 두번째, 살아있는해녀문화를체험할수있는공간을마련하는것이다. 현재해녀의집은단순히음식을파는곳으로운영되지만, 사실이곳을방문하는관광객들이나외지인들은해녀문화를경험해보고싶다는기대를가지고가는경우도대부분이다. 따라서해녀들이직접운영한다는점에착안하여살아있는해녀문화를만나볼수있는문화공간으로조성하는것이다. 상업공간으로만이용할것이아니라문화공간으로만들어두면, 해녀문화를이해하는데중요한역할을할것으로기대한다. 2) 해녀문화보존회와물질시연 해녀문화보존회는현회장인이 이중심이되어 2008 년에설립된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61 NGO 단체이다. 이회장은해녀의물질기술에관심을가지고해녀학교제 1기생이되었다가해녀문화의중요성을느끼고, 해녀문화보존회를설립하게되었다. 해녀문화를보존하기위해서는일단해녀의독특한물질기술을널리알려야한다는생각에서물질시연의아이디어를가지고실천하게되었다. 마침제주도에아쿠아플라넷 13) 이개장하게되자, 그는내부의대형수족관에서다른공연들과함께물질시연을기획하게되었다. 물질시연은현직해녀들이직접물질하는모습을재연하며하루 4차례정도로진행되고있다. 해녀문화보존회가기획한물질시연은두가지의해녀이미지를만들어서전달하고있다. 하나는 제주의어머니 로서의해녀이다. 제주의해녀들은강인한체력과정신력을바탕으로집안의생계를책임지는가장의역할을해왔다. 제주해녀는출산을하고삼일이면다시물질을시작하기도하고, 가족을먹여살리기위하여남해안, 동해안은물론일본의대마도, 북해도나러시아연방블라디보스토크연안까지원정을나가기도했다. 이들의고된삶은 여자로나느니쉐로나주 라는제주의속담으로표현된다. 여자로태어나느니소로태어나는것이낫다는뜻으로제주해녀들이얼마나많은일을하며고달픈삶을살았는지짐작케한다. 해녀들은척박한환경에서도꿋꿋하게개척해나갔고, 그런까닭에이들은제주도를일으켜세운 제주의어머니 라는이미지를얻게되었다. 다른하나는최고의잠수기술자라는이미지이다. 세계에서유일하게맨손과맨몸으로깊은바다에뛰어들어서일을하는모습을보여주고자했다. 물질 이라는제주해녀만의특수한전통기술을보여주고싶다는생각에서나온기획이다. 해녀문화보존회에서는일반인들이해녀에대해가지는제일큰관심이어떻게깊은바다속에서채취작업을하는가에쏠려있다고보았다. 이러한호기심을충족시키기위한방법가운데하나로물질을직접보여주는장면을연출해낸것이다. 그러나보존회의이러한기획은몇가지한계점을가지고있다. 물질시연 13) 제주도성산일출봉섭지코지인근의대형수족관.

262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을하는곳은다양한어류를넣어두는수족관이라점, 그리고실제물질시연시간은 2~3분정도남짓밖에안된다는점이다. 물질시연이라기보다는잠깐동안행해지는일회성의공연으로해녀들의전통기술을보여준다는점에서본래의의도와는거리가있다. 이는지나치게외부관광객을의식한발상에서나온것으로보인다. 멀리서온관광객들이제주해녀의물속광경을직접볼수있다는점과흥미를유발할수있는장면을연출했다는점을제외하고는 제주의어머니, 세계유일의잠수채취기술을지닌제주해녀 의이미지가제대로발현되었다고보기힘들다. 해녀문화보존회가추진하는일가운데하나가해녀문화를유네스코의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에등재시키는일이다. 보존회가말하는해녀문화가문화유산으로서인정받기위한핵심은현재성으로보인다. 제주해녀들의고령화와젊은해녀들이부족하여해녀들이사라질위험에처해있다. 이러한현상황에서해녀문화를지키기위해가장중요한것은해녀들의작업현장을유지하는것이다. 해녀문화보존회의이 회장은 해녀들이자신들의생업을유지할수있게끔하는것이정말문화다 라고말한다. 즉해녀문화를지키려면박물관에과거의해녀문화를전시하는일이외에도현재그들이물질을계속할수있도록만들어야한다는점을주장한다. 이에대한구체적방안으로 이분들이돈을벌어야한다. 해녀들이채취한노동의값어치를쳐줘야한다 ( 이, 해녀문화보존회회장 ) 고힘주어말하고있다. 해녀들이고령화되고, 젊은여성들이물질을기피하는현상이지속되는상황아래서만일해녀의일이경제적으로보상을충분히받는것이라고알려지면, 젊은해녀들이늘어날것으로예상하기때문이다. 그러나해녀들의생업을보존하는데는또다른문제가있다. 최근자연환경의변화로제주근해바다생물들이점점줄어들어현재해녀들이채취할수있는것에한계가있기때문이다. 이외에도해녀문화보존회는해녀문화해설사양성을통해해녀문화에대한정립과홍보를담당하고있다. 해녀이냐잠녀이냐, 태왁이냐테왁이냐 등해녀관련용어들을정리하고교육하기위해시작한해녀문화해설사양성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63 과정은현재 80명정도의해설사를배출하였다. 그런데이들이실제현장에서해설활동을할수있는기회는그리많지않다고한다. 해녀문화보존을위한다양한전승노력들중민간단체의활동범위는아직까지는넓지않은편이아쿠아플라넷대형수족관에서펼쳐지고있는해녀물질시연의모습이다. 다. 해녀문화보존회는관에의지해서문화유산보존회를유지하는다른 NGO단체에비해서는지속성과열의가보인다. 그러나위에서지적한바와같이해녀문화에대한보다폭넓은이해가바탕이되어야하며, 해녀공동체와공조체제를다져나가야하는숙제를안고있다. 3) 해녀학교 제주도의유일한해녀학교인한수풀해녀학교는제주도제주시한림읍귀덕2리에위치하고있다. 한수풀해녀학교는한림읍주민자치위원회의주도로해녀문화를보존 계승하기위해 2007년에설립되었다. 해녀학교는 해녀로서의소양과기술을습득연마하여직업으로서뿐만아니라사라져가는제주만의독특한해녀문화를이해함으로써해녀문화를계정하고발전시켜나가기위한교육과정을운영하고있다. 14) 이를위해, 잠수전문강사및현직해녀들이해녀의물질기술뿐만아니라해녀문화에대해전반적으로교육하고있다. 해녀학교는해녀문화에관심이있거나해녀가되고자하는사람들을모집하여매년 5월에서 9월사이 16주정도의교육을진행하고있다. 해녀학교는마을에서공동으로운영하고있으며귀덕2리의어촌계장이학교장을겸임하 14) 한수풀해녀학교홈페이지 http://haenyeoschool.co.kr

264 무형유산연구제 1 권 게된다. 해녀학교는이익을창출하기위한사업이아니라해녀문화보존의차원으로운영되고있기때문에교육비용이많이들지않는다. 최근에는해녀학교에대한관심이늘어입학경쟁률이높아지고있다. 현재까지 7기수의학생들을배출했다. 해녀학교는쉽게배울수없는물질기술을정규과정을통해가르침으로서물질기술의전승을실천하고있다. 과거에는물질기술이마을내에서자연스럽게전수되어왔다. 열서너살때부터어머니를따라바다로나가자연스레물질을배워해산물을채취하였다. 가족의생계를책임져야한다는의무감에서바다에들어갔다. 제주도에서태어난여자라면당연히그렇게살아왔다. 하지만요즘의젊은세대는다르다. 어쩔수없이물질을하는사람은드물다. 그리고차가운바다속에서긴시간숨을참으며채취작업을해야하는위험을감수할여성들도크게줄었다. 이러한상황에해녀학교의교육과정은일반대중에게물질기술을쉽고안전하게교육함으로써전통기술과전통지식을현시대에맞게전승 보전하고있다. 해녀학교를졸업한사람은개인역량에따라차이는있지만대부분기초적인물질을할수있는정도의기술을습득하게된다. 해녀학교를졸업한후실제해녀활동을하는사람들도있다. 이러한점에서볼때해녀학교는해녀문화보존의모범적사례라고볼수있다. 다음기사는해녀학교의이러한긍정적역할을보여주고있다. < 신문기사 > 15) 해녀학교 77 명졸업 다섯은진짜해녀된다. 중앙일보 / 2014.09.02 / 최충일기자 해녀학교는지난달 30 일올해졸업생 77 명을배출했다. 이가운데 5 명은실제 해녀가되기로결심했다. 베트남에서시집온김지선 (28 여 ) 씨도포함돼있다. 김 15)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705480&cloc=olink article default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65 씨는 해산물을듬뿍채취해친정부모에게대접하고싶다 고말했다. 지금까지 해녀학교출신자중 10 여명이해녀로활동중이다. 그러나해녀학교를졸업한해녀가각마을어촌계에서실제어업활동을할수있느냐의문제에대해생각해봐야할것이다. 현재제주해녀의어업활동은마을단위의어촌계를중심으로이뤄지고있다. 마을마다정해진채취구역이있고각마을어촌계가채취권을가지고있으며자율적으로규약을정하고관리하고있다. 이러한채취구역의명확한구분은때로는민감한문제가되기도한다. 물질기술을배우고해녀가됐다하더라도마을어촌계에소속이되어야만채취활동을할수있다. 그런데마을어촌계에들어간다는것이말처럼쉽지않다. 혹자는제주마을의어촌계들이폐쇄적이라말하기도한다. 물질기술이전승되지못하는것은새로운해녀를뽑지않기때문이라고말한다. 제주도의어촌계들이모두그렇다고말할수는없지만새로운해녀가유입되는것은생업과관련된일이기때문에부담일수있다. 그런까닭으로해녀학교를졸업하더라도실제해녀가되는것은한계가있다. 한편해녀학교가해녀문화에관심있는사람들에게해녀문화를소개하고홍보하는정도의역할만을수행한다면, 나중에는해녀문화의 전승 이라는말이유명무실해지고말것이다. 결국해녀학교도해녀문화를생동적인측면을형식화시킬위험이있다. 따라서실제활동할수있는해녀들을배출하는것이해녀학교의진정한역할일것이다. 해녀문화를전승하면서현직해녀들 한수풀해녀학교사무실이있는한림읍주민자치위원회건물이다.

266 무형유산연구제 1 권 의생업을보장할수있는각마을어촌계와의협력방안이모색되어야할것이다. 4) 제주해녀박물관 제주도의해녀들이지니는무형유산의가치가대두됨에따라이를널리알리고해녀문화의유네스코등재를위해도차원의다양한활동들이진행되고있다. 대표적으로매년열리는해녀축제와 2006년에개관한제주해녀박물관 ( 이하박물관 ) 을들수있다. 특히박물관은해녀문화의소개, 기록, 교육에있어중요한역할을하고있다. 박물관의전시를중심으로해녀문화의보전, 교육그리고홍보실태를알아보고자한다. 제주해녀박물관이해녀를주제로한박물관이라는점에서해녀와관련된종합적인정보를얻을수있는곳이다. 과거부터현재에이르는해녀들의삶, 일, 그리고바다즉이들의일터로나누어서전시를하고있다. 제1전시관에는해녀의삶을주제로어촌의생활상을보여주고있다. 해녀의집을그대로재현하고있으며, 살림살이도함께전시하고있다. 어촌마을의풍경, 영등할망신화, 제주의세시풍속, 의식주생활, 반농반어의생활재현등해녀생활의전반을알수있다. 제2전시관은해녀들의일과관련된장소, 도구, 의복등을전시하고있다. 특히이들의쉼터였던불턱을재현해놓고, 과거해녀들이이곳을어떻게이용했는지를설명하고있다. 바닷가바로곁에돌로바람을막을수있는작은공간을마련하고, 모닥불을가운데두고옹기종기모여서몸을녹이는곳이바로불턱이었다. 바다에들어가기전그리고나와서젖은옷을갈아입을수있도록담을쌓아외부로부터의시선을차단한곳이다. 뿐만아니라, 상군을모시고, 중군과하군에해당하는나머지해녀들은바다와물질에대한정보를듣는곳이기도했다. 16) 물질에필요한 16) 해녀들은연량, 물질기량및인품에따라서상군, 중군, 하군으로나누는관습이전해져온다. 상군에해당하는해녀들은노련한기술과인품에따른권위를가지고해녀공동체의어른으로서주요한역할을담당했다고한다 ( 해녀박물관전시설명참조 ).

제주해녀문화의전승과보존을위한노력들 267 각종도구들과뱃물질모형을통해해녀들의물질과정을전시하고있다. 17) 이어서해녀의역사를보여주고있는데이는전시중가장중점이되는부분이다. 조선시대해녀에관한기록및고서화에서물질모습을담은그림도흥미롭게전시되어있다. 또한일제강점기시절, 해녀들의항일운동을집중조명해본코너도있다. 1932년해녀들은일제를상대로생존권수호를위한투쟁을시작했고, 당시야학운동을하던젊은청년들과의교류사도정리해두고있다. 제3전시실은제주도의어업을고대부터근대에이르기까지관련도구및어법, 염전등의변천을전시하는곳이다. 박물관야외전시장에는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을세워두었고, 불턱, 해신당등도재현해놓고있다. 박물관에서는주로물증을중심으로해녀의역사와문화를설명하고있다. 특히해녀들의항일투쟁과해녀의강인한생활력을주목하여해녀를제주도의상징적인존재로높이기리고자했다. 지금까지해녀에대한평 해녀박물관에서열린 1 주년개관기념공연의모습이다. < 해녀영원하라 > ( 출처 : 해녀박물관포토갤러리 ) 제주해녀항일투쟁기념탑의모습이다. ( 출처 : 해녀박물관포토갤러리 ) 불턱으로모인해녀들의모습이다. ( 출처 : 해녀박물관포토갤러리 ) 17) 뱃물질은해안선에서멀리떨어져있는조업장소나섬주변의어장까지배를타고나가서물질을하는것을말한다 ( 해녀박물관전시설명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