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문화사 2 부. 고려시대복식 9 장. 고려시대장신구및직물 염색 3 부. 조선시대복식 10 장. 조선시대남자복식 교재 : 한국복식사개론, 교문사, 2015 저자 : 김문자 - 83 -
9 장. 고려시대장신구및직물 염색 1. 장신구의복장식품 ( 귀고리 ) 목걸이 ( 팔찌 ) -고려시대장신구는 ( 순금 ) ( 금동 ) ( 은 ) 이대종을이루었고간혹옥으로만든제품도나타남 -제작기번: ( 투조 ) 하거나새기거나밑에모형을대고두드려서겉으로모양이나오게하는무늬를만들거나거푸집에쇳물을녹여부어전체적인형태를만든뒤 ( 음각 ) 으로좀더세밀하게무늬를표현함 -형태는대개원형 사각형 꽃봉오리모양이었으며, 문양의구성은연꽃 모란같은식물과학 원앙 오리 봉황 용 거북이 물고기 벌 나비등동물을절묘하게결합한것이었고사천왕과같은불교도상도있었음 -( 금제화문장식 ) 은가는금선으로매우정교하고화려하게장식한의복장식품 -( 금제어 연화문장식 ) 은연잎위로뛰어오르는잉어와또그위로뻗어올라가피는연꽃과연잎을배치한순금제장식구 -( 금제세환식귀고리 ): 긴사슬형으로끝부분에 2개의나뭇잎을붙여만든판을달았는데양면모두표면에잎새를음각하였음 -( 열매모양 ) 을본뜬은제귀고리 : 아래구체위를꽃받침형상의은판으로살짝덮고구체를관통하여뽑아져나온은선이동그랗게구부려져마감됨 -( 금제 s자형귀고리 ): 여러가닥의금선을풀어놓은것같은장식을부착하고있음 -가운데구멍이뚫린황갈색을띠는 ( 구슬옥 ) 이출토되어이것이옥목걸이로사용되었을것으로추정함 -고려시대에는유물의양이나장식방법등으로짐작할때특히 ( 팔찌 ) 를애용하였던것으로추측됨 -은제도금타출화조문팔찌 : 타출기법으로정교하게시문한뒤전체에 ( 도금 ) 을하였음 단순히치장을목적으로착용했을것이지만제작방식으로짐작할때팔찌속에 ( 다라니경전 ) 이나 ( 부적 ) 등을넣었을가능성도있음 같은모양의정으로만개한꽃잎군을안쪽에서두드린다음. 바깥쪽에서다시두드려고부조의 ( 타출효과 ) 를나타내었기때문에안이비어있음 ( 반지 ) 2. 직물 염색 직물 -고려시대에만들어진반지중에서뛰어난것은금제에 ( 마노상보석 ) 이감장되어있는것과 ( 녹색보석 ) 이박힌것이다. -중앙에는 ( 도염서 ) ( 잡직서 ) 와같은어용의직조기관과거기에소속된계장, 금장, 편장, 능장, 나장등의공장이따로있어각종직조를전담하였음 - 84 -
염색 -가내공업에서이루어지는의류수공업은여기에그치지않고전업적으로모시, 삼베, 능라, 금등을제조하였음 -특히 ( 백저 ) 는우리나라특산물중하나로국제무역에서중요한자리를차지함 -고려시대직물은 ( 불복장품 ) 으로남아있으며이외에도탑복장물과사당, 사찰에전하는유물이일부남아있음 -고려시대의특징을꼽으면단연 ( 금사 ) 를넣어짠직물인 ( 직금 ) 과 ( 나 ) 라고할수있다. -고려후기: 중국으로부터 ( 목면 ) 의종자와 ( 면직기계 ) 가전래되어겨울철방한이어려웠던서민의의생활이보다윤택해졌다. -고려시대의염직기술은고대사회의염색술을이어받아탁월한정도는아니라하나더라도나름진전이있었던것으로보인다. - 85 -
3 부. 조선시대복식 10 장. 조선시대남자복식 1. 왕복 면류관 ( 구류면 ) -면류관에는 ( 구류면 ) 과 ( 십이류면 ) 이있었음 -( 구류면 ): 구장복에착용한왕의면류관 -( 십이류면 ): 국말고종이황위에올라착용하였던것으로, 십이장복에착용한겉이검은색, 안은붉은색이었고앞뒤로 7가지색의옥을꿴십이류가있었다. 대례복 제복 곤복 ( 구장복 ) -곤복에는 ( 구장복 ) 과 ( 십이장복 ) 이있었음 -구장복과십이장복의의, 상, 중단, 페슬, 혁대, 패옥, 대대, 수, 말 석, 규로구성되었다. 방심곡령 ( 조복 ) ( 원유관 ) ( 강사포 ) ( 원유관 ) 과 ( 강사포 ) 는초하루, 보름, 조칙을반포하거나백성접견때착용. 국말에 ( 원유관 ) 은 ( 통천관 ) 으로바뀌었음. ( 원유관 ) 은검은색 ( 라 ) 로만들어 (9량) 이였으며금비녀를꽂았고, ( 오채옥 ) 으로전후 (9옥) 씩장식. ( 강사포 ) 는곤복과제도가동일했으나, 곤복에는 ( 장문 ) 이있었고강사포에는 ( 장문 ) 이없었음. - 86 -
( 통천관 ) ( 강사포 ) 국말고종황제가착용한 ( 통천관 ) 은 (12량) 에 ( 양 ) 마다 (5색구슬) 을 (12주) 씩꿰어장식한것. ( 강사포 ) 는중단깃에 ( 불문 ) 13개를 ( 금박 ) 하였음. 그외에고종의어진을보면 ( 흰동정 ) 을달고있는데, 이것은 ( 국속 ) 을따른것. 상복 ( 익선관 ) ( 곤룡포 ) 상복은 ( 시무복 ) 으로 ( 익선관 ) 과 ( 보 ) 를부착한 ( 곤룡포 ) 로구성. ( 익선관 ) 은얇은 ( 라 ) 로싸고 ( 양대각 ) 위에 ( 양소각 ) 을첨부하여향상시킨것. 왕의 ( 곤룡포 ) 는겨울에는대홍색의 ( 단 ) 여름에는 ( 사 ) 로만들어짐. 국말황제 ( 곤룡포 ) 는 ( 황색 ) 이였음. 또한, ( 곤룡포 ) 는 ( 포 ) 의전후와좌우어깨에 ( 오조룡 ) ( 보 ) 를첨부함. ( 보 ) 는용의발톱수에차이를두어왕복, 세자복, 세손복으로구별, 왕은 ( 오조룡 ) 왕세자는 ( 사조룡 ) 왕세손은 ( 삼조룡 ) 이였음. 국말황제의 ( 보 ) 는황색바탕에 ( 오조룡 ) 국말황태자의 ( 보 ) 는자주색바탕에 ( 오조룡보 ) 였고, ( 보 ) 의둘레를 ( 호형 ) 으로한것이황후용, ( 오조룡보 ) 의둘레를 ( 원형 ) 으로한것과구별하였음. 군복 왕도국난이있을때 ( 군복 ) 착용. 머리위에 ( 옥로입식 ) 과정면을 ( 옥판 ) 으로장식, 공작꼬리털을길게늘어뜨린 ( 죽전림 ) 착용 옷은갈색길에홍색소매를단 ( 협수 ) 를입고, 위에검은색 ( 전복 ) 을입었음 허리위에는수놓은 ( 광대 ) 를매고남색 ( 전대 ) 를늘어뜨렸음. 손에는 ( 동채 ) 를들었음. 일반군복과다르게 ( 보 ) 부착했었음. - 87 -
평상복 두식은 ( 망건 ) 에관을모방한 ( 상투관 ) 썼음. 저고리와바지에 ( 철릭 ) 과 ( 답호 ) 등을착용. 국말에 ( 주의 ) 착용. 2. 왕세자복 ( 면복 ) ( 면류관 ) 은 ( 팔류면 ) 이였음. ( 곤복 ) 은 ( 의 ) 와 ( 중단 ) 으로나뉨. ( 의 ) 의제도는 ( 구장복 ) 과같았는데, ( 화 ), ( 화충 ), ( 종이 ) ( 삼장문 ) 을가지고 ( 화 ) 1개는어깨, ( 화 ) 2개와 ( 화충 ), ( 종이 ) 각 3개를양소매에그렸음. ( 중단 ) 제도도 ( 군장복 ) 과같았는데, 깃에 ( 불문 ) 9개를그렸음. 그외에 ( 상 ),( 폐슬 ),( 패옥 ),( 대대 ),( 수 ),( 말 ),( 석 ),( 규 ) 는 ( 구장복 ) 과 ( 동제 ) 였음. ( 조복 ) ( 원유관 ) 성종때왕세자의 ( 원류관 ) 은 (7량), 영조때왕세자는 (8량), 왕세손은 (7량) 으로하였음. 국말에전의왕 ( 원류관 ) 은겉은자색 ( 라 ) 로, 안은홍색 ( 명주 ) 로배접되어있는둥근원통형으로 (7량관) 이며, 5채의구슬이사이에장식, 전후중앙에금장식부착, 홍색끈달려있었음. 고종이황제가된후황태자가국왕의 ( 원류관 ) 과 ( 강사포 ) 착용. ( 공복 ) ( 공복 ) 은 ( 복두 ),( 홍포 ),( 서대 ),( 상홀 ),( 흑화 ) 로구성. ( 공복제도 ) 는조선시대말까지변함이없었고조신의 1품공복과같았음. 그러나이제도는제대로시행되지않아 ( 상복 ) 의 ( 익선관 ) 과 ( 사조룡포 ) 가이를대신했었음. 상복 ( 공정책 ) ( 상복 ) 으로는 ( 익선관 ) 과 ( 사조원용보 ) 를단 ( 곤룡포 ) 착용. 국말에 ( 익선관 ) 대신 ( 공정책 ) 착용. - 88 -
평상복 ( 양관 ) 조선시대국왕의평상복이 ( 사인복 ) 과별로다르지않았음. 왕세자복역시이같은범주벗어나지않았음. ( 양관 )) 은관상부정면부터정부까지나있는 ( 종선 ) 을 ( 양 ) 이라한데서비롯된이름, 그수에따라품위와상하구별. 전체가흑색이고둘레의 ( 당초문 ) 부분과 ( 관 ) 을가로지르는비녀부분이도금되어있어 ( 금관조복 ), ( 금관 ) 이라는명칭이나오게됨. 1품은 ( 오량관 ), 2품은 ( 사량관 ), 3품은 ( 삼량관 ), 4 5 6 품은 ( 이량관 ), 7 8 9 품은 ( 일량관 ) 을착용. 3. ( 백관복 ) 조복 ( 복 ) 조선시대백관 ( 조복 ) 은 ( 의 ), ( 상 ), ( 중단 ), ( 폐슬 ), ( 대대 ), ( 혁대 ), ( 패옥 ),( 후수 ), ( 말 ), ( 혜 ), ( 홀 ) 로구성. 면복의구성과기본형태는같으나 ( 의 ), ( 상 ), ( 중단 ), ( 폐슬 ) 에 ( 장문 ) 이없음. 구성명칭은면복의 ( 석 ) 은 ( 혜 ) 로, ( 규 ) 는 ( 홀 ) 로부름. ( 관품품계 ) 에따른 ( 양관 ) 의 ( 양수 ) 구별은 ( 조복 ) 과같았음. 경건의의미로 ( 당초문 ) 의앞면과비녀구멍의둘레만도금하고나머지가흑색이었다는것이다른점. ( 양관 ) 제복 ( 복 ) 조선시대백관 ( 제복 ) 은 ( 의 ), ( 의와중단의깃 도련 수구와상의둘레 ), ( 방심곡령 ),( 대대 혁대 패옥 패옥 수 말 홀 ), ( 혜 ) 로구성. ( 조복 ) 이화려한것이었다면 ( 제복 ) 은소박해야했음. - 89 -
공복 신하가임금에게말씀을올릴때사은이나사퇴하는관계로배알할때착용. 복두에 ( 포 ),( 대 ),( 홀 ),( 화 ) 였으며, 포의색, 대의장식, 홀의재료로품계를구별. 특별한행사에착용. ( 사모 ) 는시대에따라변함. 중기의 ( 사모 ) 는모체가높아지고양각의폭이넓어지면서평직됨. 말기의 ( 사모 ) 는모체가낮아지고양각의폭은넓었으나길이가짧아지고앞으로굽어있게됨. ( 사모 ) 조선시대 ( 상복 ) ( 시복 ) 은 ( 포 ), ( 흉배 ),( 대 ),( 화 ) 로구성. 중종때 ( 포 ) 에는 ( 시복흉단령 ), ( 상복흉단령 ) 이있었는데의레용단령인 ( 흑단령 ) 을 ( 시복 ) 으로집무용단령인 ( 홍단령 ) 을 ( 상복 ) 으로구분. ( 흉배 ) 는연산군때는돼지, 사슴, 거위, 기러기흥선대원군때는기린 ( 흉배 ) 를 ( 구흉배 ) 로바꿈. ( 대 ) 조복의대와동일. ( 화 ) 징을박은화. 국말에와서는목화로대신함. 상복 ( 시복 ) ( 복 대 화 ) 시복흉단령 상복흑단령 ( 융복 ) ( 입 ) ( 융복 ) 은문, 무관이몸을민첩하게움직여야할때, 왕의행차를수행할때, 외국에사신으로파견될때, 국란을당했을때착용. ( 융복 ) 은 ( 입 ), ( 철릭 ), ( 목화 ) 로구성. 품계를 ( 입 ), ( 철릭 ) 의색으로구별. - 90 -
이외에 ( 환도 ),( 동개 ),( 등채 ) 등을착용. 조선시대백관 ( 융복 ) 중 ( 입 ) 에는 ( 자립에패영 ), ( 흑립에정영 ), ( 입식 ) 에는 ( 호수입식 ), ( 옥로장식 ) 이있음. ( 복 ) 조선시대백관 ( 융복 ) 중 ( 복 ) 에는 ( 철릭 ), ( 광다회 ), ( 병부가든주머니 ), ( 환도 ), ( 동개 ), ( 등채 ), ( 목화 ) 가있음. 군복 ( 전립 ) ( 복 ) 전립 명칭 형태 비고 펠트직으로만들어전립이라고도함. 낮은계급 겨울에는방한용이 - 사람들이착용한간단하게만든것은 ( 벙거지 ) 엄을쓰고그위에 라고도불림 전립을씀 ( 패영 ) 입에다는끈 무관은턱밑에짧게늘임 ( 상모 ) 정자에달린 술 과같은것으로주로붉은색을사용함 - ( 공작우 ) 공작깃을앞으로늘공작의꽁지깃과남빛의새털을한데묶어펼쳐어뜨리거나양편에서둥글넓적하게만듦꽂아사용함 명칭 형태 비고 소매부분이길과달라서 ( 동달 ( 협수 ) 지금의두루마기와비슷하며뒷길과무양옆이트인것과그렇지않은것이있음. 수구에팔찌를매고있었는데이는필요한때만착용함 이 ) 라는이름도이에연유한것같음. 원래동달이는주홍색길에붉은색좁은소매가달리는것이었으나풍속화등에서보이는군복으로사용된협수는길과소매 의색이같은경우도많이있음 ( 전복 ) 소매가없고양평과뒤가트인세자락의옷 - - 91 -
( 갑주 ) ( 광대 ) 전복에매는넓은대 높은계급의사람들만착용함 ( 전대 ) 전복의앞에서매어길게늘어계급이낮은군인은전대만착용뜨렸으며, 병부를차기도함함 ( 화 ) 목화 - ( 환도, 동개, 등채 ) - - 갑주 : ( 갑옷 ) 과 ( 투구 ) 를일컫는말 조선초기에는고려시대의두루마기형철제찰갑이큰변화없이사용됨 이두루마기형갑옷은전체가 1벌로구성되어있었고, 앞쪽은열려있어서이를가죽끈으로 묶었고궁시를주무기로삼았던조선의군사에게매우적합한형태의갑옷이었음 명칭형태비고두정갑, 피갑, 쇄자갑, 경번갑. 지갑. 단과철, 두석, 무명, 전, 종갑옷의종류면갑. 두석린갑이를사용함두석의미늘을연결하여만든갑옷으로합임식의포형이고양옆의갑옷배래기가완전히트였으며, 후면에는허리부분이하가트였는데, ( 두석린갑 ) 트임부분에는모두털을둘렀다. 두석린은소매의상박부분과복부까지만첨부하였고나머지부분에는두정을박았음머리가들어가는부분의발과목과등의윗부분을보호하는목가리개, 모양과색깔에따라서지위 ( 투구 ) 발위의장식부분인정개부등세부와계급이결정됨분으로구성함 ( 이서복 ) ( 녹사복 ) 녹사복 : ( 녹사 ) 가입었던복장녹사는의정부, 육조등중요관아에만있었음 << 경국대전 >> 녹사복이유각평전건, 단령, 조아로이루어진다고되었으며. << 속대전 >> 오사모에홍단령을입되대소조정의식에는검푸른색을입도록하였다고되어있음이후모든관직자들이홍색을숭상하여 ( 홍단령 ) 을착용한것으로보임 - 92 -
( 서리복 ) 서리복 : ( 서리 ) 가입었던복장서리는각사에모두있었는데 ( 무각평전건, 단령, 조아 ) 를착용했음특히사헌부의서리는직책상특별대우를받은것으로보임사헌부서리는제사감독이나조정에나아가왕에게하례를할때공복으로 ( 복두, 포, 흑각대. 목홀, 흑피화 ) 를착용하였음 ( 향리복 ) ( 향리 ): 지방호족조선시대에들어서신분에따라복식의제한이철저해짐공복으로는 ( 복두 ) 를쓰고 ( 녹포 ) 에 ( 흑각대. 목홀, 흑피혜 ) 를착용상복으로는흑죽방립을쓰고직령을입고허리에조아를매고가죽신을착용 ( 나장복 ) 나장복 : 특수직인 ( 나장 ) 이입었던복식조건에철릭을입고그위에청반비의를착용하고있음 ( 별감복 ) 별감복 : ( 별감 ) 이입었던복식교외가동시황초립에홍색철릭을착용 4. 편복 서민복머리장식 관모 ( 망건 ) 상투를틀때머리카락이흘러내려오지않도록이마에두르는것주로 ( 말총 ) 으로만듦 - 93 -
( 관자 ) ( 풍잠 ) 동곳 당줄을걸어넘기는역할을하는것관품에따라재료나새김장식을다르게하여 ( 신분 ) 을표시함 1~3품당상관은금과옥 3품이하서민뼈, 뿔, 대모, 호박, 마노등새김장식에주로사용한무늬 : ( 매화, 대나무연꽃 ) 망건앞에다는장식품으로갓을고정하는역할귀천을가려서상류층에서는대모, 호박, 마노등을사용일반에서는뼈나뿔등사용관자와같이이것을관품을표시했던것은아니었음상투를고정시키는역할을하는것기혼남자의수식물중하나풍잠과마찬가지로품계를가르는역할은하지않았음상류계급에서는금, 은, 밀화, 호박, 마노, 비취, 산호, 옥등으로만들어서꽂아서상투를장식함 ( 탕건 ) 망건의덮개이자입모의받침으로착용했지만, 본래독립괸하나의관모였을것으로추측건또는두건이라는형식이점차복두나사모등의영향을받아앞쪽이낮고뒤쪽은높아져턱이졌을것임 ( 상투관 ) 주로상류층에서사용한것으로양관이나원유관을축소시킨모양뿔, 나무, 종이, 가죽에흑칠을하여만들며머리를정돈하거나머리장식으로사용함먼저망건을쓴다음상투관을쓰며비녀를꽂아상투를고정시켰음 - 94 -
( 패랭이 ) ( 평량자 ) ( 초립 ) 가늘게쪼갠 ( 댓개비 ) 로만든것민듯한방립의허리를잘룩하게꺾어 ( 대우 ) 라는머리가들어가는윗부분과챙의구별이생긴것으로흑립갓으로이행하는중간기에속함본래방립과마찬가지로일반에서통용되던것이었으나. 다른고급관모의출현과함께점차용도가국한되었음패랭이는그편리함때문에 ( 상인 ) 이먼거리를여행할때방립대용으로착용하기도하였음또한흑칠을하여역졸의제모로도사용 ( 보부상 ) 은끈을꿰어단꼭대기에주먹만한면화송이를달아위급할때지혈제로사용하였음 ( 천업인 ) 은패랭이를쓰기는하였지만노상에서양반을만났을때는이것을벗고노좌에어프리는것이습속이었음형태와재료가패랭이와비슷하지만대우와챙이더욱분명해진것패랭이의챙이아래로약간우긋한것에반해초립은도리어위로뻐드러져올라가있음양반은고운것, 상인은굵은것을써서 ( 신분 ) 을구별옛말에초립동이란단어가있는데, 이것은반인계급에서새로관례한소년이흑립을쓸때까지이초립을쓴다는데서나온말임 ( 흑립 ) 흑립, 백립 흑립은패랭이와초립등의단계를거쳐마지막에정립된조선시대입제의정제임따라서 ( 갓 ) 이라고하면바로이흑립을지칭함흑립은귀천이나상하에따라재료의차별을두어입의등급을표시함 흑립의종류 흑립을재료와색에따라구분하면마미립. 죽사립, 포립, 저모립, 백립으로나눌수있음 - 95 -
( 마미립 ) 마미립은말총으로만들어졌으며, 원래당상관이상이착용하였으나후에구분이없어졌음 ( 죽사립 ) 죽사립은대를머리카락보다가늘게쪼개서만들었으며, 왕과고관급이착용하였음 ( 포립 ) 포립은죽사립위에라, 주를입힌것임 ( 저모립 ) 저모립은돈모로만들었음 ( 백립 ) 백립은죽사로만들었는데위에베를입힌백립은국상중의제모로착용하였음 흑립의변천 흑립은조선시대중엽에가서야대체적인양식이갖추어졌는데시대의변천에따라대우의높고낮음, 챙의넓고좁음에변화가있었음처음에는대우가 ( 둥근형태 ) 였으나점차 ( 원통형 ) 에가까워졌고높이가높고낮음을반복함챙은넓었다가좁았다가하였으나후기에들어서는지름이 70~80cm 정도로넓어지기도하였음원래 ( 반인계급 ) 만쓸수있었으나후에챙넓이를제한함으로써 ( 중인계급 ) 까지착용하였던것으로보임고종조에는챙이좁은소립으로개량하였으며, 1896년단발령과함께망건의사용을폐지할때백정까지쓰는것을허용함으로써, 상하, 귀천상관없이 ( 모두 ) 가착용하게되었음그러나갑신정변이후현대식중절모자가등장하면서외세에밀려점차자취를감추게되었음 ( 옥로입식 ) 입식은비교적단조로운입자를수식하기위한것입식은입정상의수식으로계급에따라금, 은, 옥등을사용하였음 ( 갈모 ) 갈모는원래 ( 갓모 ), ( 우모 ) 등으로불리었음비가올때갓위에덮어쓰던우비의하나로펼치면위가뾰족하여고깔모양이되고접으면쥘부채모양이됨대오리로만든살위에기름을먹인갈모지를붙여만듦 - 96 -
( 삿갓 방립 ) 이엄 ( 휘항 ) 만선두리 ( 남바위 ) 삿갓과방립은모와챙의구별이없이만들어진것임삿갓은햇볕을가리기위한것과우천시쓰는것이있었다. 원래삿갓은갈대를짜개서말린 삿 을원료로하여일정한넓이로다듬어꼭지부터뾰족하게엮기시작해서끝으로갈수록점점넓게원추형으로벌어지게엮어, 얼굴을가릴만한정도에이르러마지막가장자리를육각으로도련하고, 안에미사리를넣어머리에고정시키도록한것방립은대를가늘게쪼갠댓개비를거죽으로하고왕골속을안에받쳐대개삿갓같이만들고, 챙의가장자리를사화판형으로하여삿갓보다얌전하게제작한것임방립의착용범위는시대에따라다른데원래는 ( 일반인 ) 의쓰개로쓰였다가훗날 ( 상인 ) 의쓰개가되었음휘항은목덜미까지덮어보호하는 ( 방한모 ) 겉은검은공단으로하고서피나초피로안을넣었음정수리부분은뚫려있고, 어깨까지덮을수있는크기로얼굴만내놓게되어있었으며, 앞쪽에끈을달아앞가슴에서여미게되어있음주로 ( 상류층노인 ) 이애용만선두리는무신의공복에착용하였는데, 모휘항의둘레를담비털로둘러선을하였기때문에그러한명칭이붙었음남바위는귀와머리부분은가리되위쪽이트여있음겉감은비단으로남자는주로검은색을사용하였고, 안은비단이나목면을사용하였음가장자리에는털로선을대고뒤로완전히넘어가게길게만들어서뒷덜미를덮게하였음 ( 풍차 ) 풍차는남바위와형태가거의같았으나귀를덮는 ( 볼끼 ) 가따로붙어있음 관제 ( 관 ) ( 방관 ) 방관은사각이진관으로사방이편평하였음 - 97 -
( 정자관 ) 정자관은중국의정자에서비롯되었다고하며산자형을 2단또는 3단으로만들어착용하였음 ( 동파관 ) 동파관은송의문인소식이만들어썼다하여그의아호인동파를쫓아불린것임모서리를앞중심에두고사각이진관의좌우에위로약간펴져나간관식을붙인 ( 이중관 ) 이었음 ( 유건 ) 유건은흑색의베. 모시. 무명등으로만들었는데 ( 두건 ) 의형태와비슷하였으며, 양측으로귀가나있고끈을달아갓끈처럼매기도하였음 ( 유생 ) 은유건을관중에서썼으며거리에서는착립을했던것으로추측됨 ( 복건 ) 의복포의류 ( 답호 ) 복건은검은헝겊으로위는둥글고뾰족하게하고뒤에는넓고긴자락을늘어지게대었으며양옆에끈이있어뒤로잡아매게한것으로, 그모습이괴상하여극소수의유학자외에는착용하는이가없었는데, 미혼남자들은이를통상예복에착용하였음오늘날 ( 어린이 ) 가입는복건이바로이것임답호는 ( 소매 ) 가짧거나없는남자의복으로, 조선초기부터반비. 전복과혼용되어사용되기도하였음조선시대에왕과귀족계층에서즐겨사용하였으나중기이후일반선비들에게까지사용이확대되었고, 국말에는관료들이주의위에답호를입어통상예복으로삼기도했음 - 98 -
( 액주름포 ) ( 철릭 ) 답호는조선시대포중에서가장많은변화를거친의복중하나전기에는반소매에양옆의 ( 무 ) 가넓고트였으며직령이었으나중. 후기를거치면서소매가없어지다가, 후기에는깃과소매가없어져서모양이변하여 ( 전복 ) 이라고하였음색은아청초록, 다갈등이나타났으나 ( 초록색 ) 이주를이루었음액주름포는양쪽겨드랑이밑에주름이잡혀있는곧은깃의 ( 직령교임식 ) 포임액과주름을합하여겨드랑이주름이되는것으로양겨드랑이밑에주름이잡혀있는옷이라는의미임길과섶이의와상으로분리되지않고옆에달린무만따로주름잡아겨드랑이밑에서연결하였음소매형태나트임유무와길이, 고름의색상과크기도다채로움솜을두거나누비로구성한사례가많으나 ( 계절 ) 에따라홑, 겹, 솜, 누비의구성방법을달리하여착용했던평상복임을알수있으며소매길이와총길이가다른포들에비해짧고, 형태와구성이일정하지않으며다양한양식이나타나는점등으로보아방한등실용적인목적으로속에입었을것으로추측됨허리에주름을잡아상의하상식으로연결한 ( 직령교임식이 ) 포임. 색에규제가있었다고하나조선후기에는잡색이나타나며일정하지않았음기본형에는변함이없으나시대에따라상, 하의길이나깃, 소매. 옷고름, 주름등이변함소매는통으로된것과한쪽또는양쪽소매에단추로떼었다붙였다할수있게한것이있음. 의와상의비율은조선전기에는 (1;1) 이었고후기에는 (1:3) 으로의가짧아지고상이길어졌음깃은 ( 이중깃 ) 에서일반 ( 둥근깃 ) 으로변함. 소매는착수에서광수로변하였고, 고름은 2개의짧고좁은것에서 1개의길고넓은고름으로변함주름나비는잔주름에서젋게변하였음 ( 광다회 ) 는품위에따라색을달리하여신분이나품계를구별하는역할을하기도하였음품위가높을수록홍색을사용하고낮은직급에서는청색을사용하였다고하지만정확한구분이있었던것은아님 - 99 -
( 직령 ) 깃이곧은옷으로곧은깃이달린포류를지칭한다. ( 직령포 ), ( 직령의 ) 라고도불리며, 단령의받침옷을겸하기도한다. 형태는깃을제외하고 ( 단령 ) 과같았다. 조선시대초기에는좁은소매에옷깃은 ( 목판깃 ) 이였고좁은사각형의무가달려있었다. 중기에는소매가넓고옷깃은 ( 칼깃 ) 이며무가넓고무의위쪽을뾰족하게접어서뒤로젖혀입었다. 후기에들어서소매는 ( 두리소매 ) 가되었으며깃궁둥이가완만해졌고무를완전히뒤로젖혀서길에무의위쪽을실로동여매어고정시켰다. ( 도포 ) ( 도포 ) 는조선시대전기인명종 22년에이미착용되었다. 조선시대후기에는왕과사대부의편복이되었다. 고종의갑신의제개혁때소매가넓은다른옷과함께폐지되었지만, 오늘날제사를지낼때제복으로입기도한다. ( 도포 ) 는곧은깃에무를달았으나, 소매가넓고, 뒷길은허리부터아래까지뒷중심을트고, 그위에뒷자락을 1겹더달아말을탈때나앉을때품위를유지할수있게하였다. ( 홑도포 ) 가일반적이었지만 ( 겹도포 ) 도흔하게사용되었으며색상도다양하였다. ( 세조대 ) 는술이달린실띠, 즉 ( 도포 ) 에매는띠로서당상관은붉은색또는자색, 당하관은청색또는녹색, 서민은흑색, 상제는백색세조대를띠었다. 영조가입던 ( 도포 ) 는넓은두리소매에네모나게각이진당코깃이다. 일반인의도포가곧은깃인데반하여반목판깃이면서당코깃의형태를띠어광해군의직령에있는당코깃과함께당시남자복에사용되지않았던깃을사용했다는점에서독특한궁중양식의하나가아닐까한다. 소창의 ( 창의 ) 깃은직령이며무가없이옆이트여있어 3폭으로갈라져있고소매통이좁다. 신분이낮은계층이입었으며사대부들은다른포를입을때받침옷으로착용한다. 중치막 깃은직령이고, 무가없고양겨드랑이밑으로트여있으며, 세자락으로되어있는옷으로소매통이넓고세조대를매었다. 사대부가에서는관복을입을때안에받쳐입었고, 일반인 - 100 -
들은외출복으로사용하였다. 대창의 깃은직령이고옆에무가있으며뒤가트인포이다. 4자락으로되어있으며넓은소매에세조대를맨다. 앞에서보면도포와같아도포대용으로착용하기도하였다. 학창의 ( 대창의 ) 에검은천으로가장자리를돌아가며선을두른것으로마치심의와같으나그제도에차이가있었다. 세조대나광대로묶어서여몄으며, 흔히복건을쓰기도하였고정좌관, 동파관등도착용하였다. 주로덕망이높은도사나학자가입었다. 심의 사대부의 ( 연거복 ) 으로유학자들의숭상이대단하였다. ( 심의 ) 는백색의홑겹포로흰색이며깃모양은네모난것, 둥근것, 맞여민것등이있다. 소매는둥글고깃, 소맷부리, 옷단가장자리에검은선이둘러져있다. 각부분에는철학적의미가내포되어있었는데의와상을따로마름질하는것은각각 ( 하늘 ) 과 ( 땅 ) 을상징하였다. 또한상을 (12폭) 으로마름질한것은 1년사계절열두달을상징한것이며, 선을두른것은부모에대한효도와공경을뜻하였다. 난삼 ( 앵삼, 사규삼 ) ( 앵삼 ) 은과거에급제하면진사가입었던것으로옥색 ( 앵삼 ) 도 ( 난삼 ) 의일종이라고볼수있다. 어린이들이상복으로착용하는 ( 사규삼 ) 도 ( 난삼 ) 의일종이라고볼수있다. ( 사규삼 ) 이라는명칭은옷자락이 4폭으로갈라져있다는데서나왔다. < 사례편람 > 과 < 관례조 > 를보면 남색의견또는주로만든다. 옷깃은여미게되어있고소매는둥글고갓을트고뒤를쪼개었다. 금으로써깃및소매끝과, 옷자락양갓과밑에연을둘렀다. 라는내용이나온다. - 101 -
주의 ( 두루마기 ) 남자저고리 ( 두루마기 ) 의한자어로소매가좁고옆에트임이없이두루막힌옷이다. 국말의복간소화에따라 ( 도포 ), ( 직령 ), ( 창의 ) 등소매가넓은것을없애고소창의에무를달고양쪽겨드랑이밑터진곳을막으면주의가된다. 문무백관은이것을통상예복으로, 선비나사인들은사복으로착용하면서일반인들도널리입게되었다. 목판깃이나칼깃형태를유지하였으며홑겹인적삼과주로비단으로만드는겹저고리나솜저고리류등이있었다. 형태로는겨드랑이부분에당이나무를대는경우와옆트임이있는경우도있었다. 상의류 배자 ( 배자 ) 는소매가없는상의즉, 소매와섶, 고름이없고좌우모양이같으며겹쳐서여미는것이아니라마주닿게입는옷이었다. 보통겨드랑이아래에서긴끈을달아여미거나매듭단추등으로여밈을하였다. 대부분어깨가연결되어있으나겨드랑이아래는트인것이많은데겨드랑이아래를옷고름을낄수있는고리로연결하거나, 겨드랑이에는연결이되어있지만그아래가트인것이많았다. 하의류바지계절에따라 ( 홑바지 ), ( 겹바지 ), ( 솜바지 ), ( 누비바지 ) 를입었다. 구성방법에따라분류하면 - 102 -
화 혜 이 목화 수화자 태사혜 ( 개당고형 ) 과 ( 합당고형 ), ( 사폭형바지 ), ( 세가닥바지 ) 로나눌수있다. ( 개당고형 ) 은바지밑부분이터진것이고, ( 합당고형 ) 은밑이막혀있고허리옆을약간터서입는것이다. 임진왜란후남자는중앙에사폭, 옆에마루폭을댄 ( 사폭형바지 ) 를착용하였다. ( 가닥바지세 ) 는바짓가랑이한쪽이이중으로된구조의보온성이좋고용변을보기에효과적인구조였다. 행전은바짓가랑이를좁혀보행과행동을간편하게하기위해옷감을마치소매통처럼만들고끈 2개를달아정강이에끼고위쪽에있는끈으로무릎아래를둘러매게치는것이보통이었다. 겨울에는흰무명, 여름에는모시, 상제는배, 승려는먹물을들인행전을찼다. ( 목화 ) 는왕이하문무관리들이관복에신던것으로신복이길고반장화같이생겼다. 겉은주로녹피나검은색공단, 융등으로만들었고안감은융, 베와같은직물을많이가용하였으며바닥은나무나가죽으로만들었다. 목화는조선초 중기에는신울이무릎밑까지길고바닥이신코쪽으로둥글게말려올라갔으나말기로가면서신울이낮아지고바닥이평평하게변하였다. ( 수화자 ) 는무관이신었던복이긴신발로물이스며들지않도록바닥에기름을먹인면이나가죽또는종이를깔아만든것으로형태가목화와비슷하였다. 비가올때나전쟁터, 진영에나갈때융복이나갑옷과함께신었다. 남자용마른신의일종으로사대부나양반계급의나이든사람이 ( 평상복 ) 을입을때신었다. 국말에는왕도평상복을착용하였는데신울은형겊이나가죽으로하고코와뒤축에 ( 흰선문 ) 을새겨넣었다. 발막신 마른신의하나로주로상류계급의노인들이신어서 ( 발막 ) 이라고도하였다. 재료로는사슴가죽, 양가죽등이많이쓰였다. 뒤축과코에꿰멘솔기가없고코끝이뾰족하지않고넓적하며표면에는경분을칠하였다. 진신 들기름에절여만든것으로진땅에신었다. 신창에징을총총히박아서 징신 이라고도하였다. 초리짚신, ( 짚신 ) 에는짚을엮어만든 ( 짚신 ), 왕골또는부들을가늘게꼬아촘촘히삼은 ( 왕골짚신 ), - 103 -
미투리 ( 부들짚신 ) 이있다. ( 미투리 ) 는삼으로삼은신으로, 짚신에비하여고급품이며신바닥이나총이조밀하고결이매우고왔다. 미투리의종류에는 ( 삼신 ), ( 절치 ), ( 탑골치 ), ( 무리바닥 ), ( 지총미투리 ) 등이있다. 평극 나막신 ( 평극 ) 은일본의게다와같은모양으로도마와같고, 앞발가락이닿는곳에끈으로갈고리를만들었다. ( 나막신 ) 은 ( 평극 ) 과달리운두가있게나무를파서만들었으며밑에앞뒤로높은굽을달아남녀구별없이착용하였다. 나무가말라터지지않도록밀을녹여겉에칠하여사용하였다. 서민복 승복 일반서민복 승복 ( 서민복 ) 을기본으로이루는것은 ( 저고리 ) 와 ( 바지 ) 였다. 남자들의 ( 저고리 ) 는여자복식과함께단소화되는경향을보였으나국말에이르러서는어느정도다시길어지고커지는경향이나타났다. 일반서민들의 ( 바지 ) 는삼국시대궁고의형태를변형한사폭을댄형태가주를이루었으나, 발목주위를잡아매는것이원칙이었다. 이렇게하기위해서는대님이필요했는데, 근래어린이용바지에서볼수있는대님이붙박이로달려있었던것으로추측되나언제부터인가따로치게되었다. ( 승관 ) 과 ( 의복 ) 으로구성되었다. ( 승관 ) 에는원정관, 굴갓, 송낙, 고깔등이있었다. 원정관은감투형관으로오늘날승려들이착용한다. 굴갓은대우위를둥글게만든 ( 흑죽립형관 ) 으로불립이변음하여굴립이되었으며, 승려들이공복으로이를썼다. 송낙과고깔은상고시대변형모형태의고속을지니고있었다. 이같은형태를소나무겨우살이로결어송낙이되었고, 저마포제로하여 고깔 이된것이다. 가사는 ( 승복 ) 의제식이되며, 괘자나장삼은그형태가일반의것과통하였다. 안에입는유 고는국속그대로였다. 여기에평복으로 동방 이라는상의가있었는데, 이것은아래가둔부까지내려오는것으로오늘날 ( 승복 ) 에서볼수있다. - 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