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 2 APRIL 2017 Ezekiel 37: 1-14 John 11: 1-45 오늘우리는많은분량의성경봉독을들었습니다. 꽤긴시간뿐만아니라큰주제들도포함하고있습니다. 하지만저는다른주제에서시작할것입니다. 지난월요일은새벽여명은밝고푸르고아름다웠습니다. 클라이브와저는발모랄 (Balmoral) 바다로갔습니다. 그곳은잔잔한파도가해변을감는멋진곳이었습니다. 클라이브는수영을했습니다. 저는바위위를걸어다녔습니다. 조수가꽤멀리까지나갔습니다, 그래서저는바위와곡선들그리고갈라진틈들의모양의놀라운패턴들을볼수있었습니다. 그러한것들은시간, 영원그리고장소에대한것이기때문에저를항상생각하게합니다. 저는파도소리를듣는것을좋아합니다. 왜냐하면파도소리는저를가족과전세계에살고있는친구들, 특히아이오나바다근처에살고있는딸 (Rona) 와저를연결시켜주기때문입니다. 바다는서로다르지만모두연결되어있다. 파도와해류들이끊임없이밀려옵니다. 그것들은바위들을부수고, 수세기, 수천년에걸쳐바위들을계속해서변형시킵니다. 인류존재의우리의역사는이행성의이야기에불과하다. 하지만우리에게있어서, 우리의특별한순간은종종존재하는유일한것처럼보입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초점은우리가아는삶입니다, 그것은우리의삶과
우리의부모님들과조부모님들이우리가알고있는것과는다른경험을 하는모든이야기들을담고있습니다. " 우리가어디로가고있는지?" 라는질문이우리의뇌리에떠나지않습니다. 그리고그것은 " 우리는우리의삶으로무엇을하고있는가?" 와같은다른질문들을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신앙의사람들로서, 우리의삶을하나님의목적에맞추어가느냐하는것입니다? 우리가던질수있는많은질문들이있습니다, 그리고많은다른질문들이생길수있습니다왜냐하면아마우리는우리가보는사물의방향을싫어할수도있기때문입니다. 사순절기간에우리는어떻게예수님의복음이우리의삶에영향을미치고이야기하는지에대해숙고해오고있습니다. 우리는예수님의말씀을어떻게들을것인지에관하여, 그가무엇을했는지듣고그리고본것인, 니고데모, 우물가에서사마리아인의여인, 눈먼자들을위해서예수님은종종놀랄만한변화들을이끌어냈습니다. 그것은모두광야에서예수와함께시작되었습니다. 자, 사순절의마지막주일이며종려주일전, 우리는삶과죽음을이야기하는이상한시점에있는듯합니다. 우리는무엇을배우고있습니까? 우리의삶에있어서, 이놀라우신하나님은우리의삶과, 영생을통해, 우리의시간과장소안에서
어떻게이야기하시는것인가요? 우리가듣고있는것이우리에게어떤 영향을미치는지요? 에스겔 (Ezekiel) 는이스라엘자손이바빌론에서사로잡혀가던시기에글을쓰고있었습니다. 그들은그들의집, 성전, 조상들의무덤을떠나야만했습니다- 모든것이그들의정체성을보여주는것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아직까지도그들이하나님의백성임을계속해서상기시켜주고있습니다. Ezekiel 은뼈의계곡이라는비범한비전을가지고있습니다. 그어떤것도이것보다더자세한죽음과절망의생생한묘사는없을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얼마나많은주일학교아이들이뼈들이다시결합된이미지와그리고삶에생기를불어넣어주는것에의해서아직까지도매료되고있지않고있습니다! 그리고우리는 뼈들, 뼈들, 마른뼈들 을불렀습니다. TV 화면에서파괴된이미지들을볼때그것이우리에게어떻게보여지나요? 고대건물들의잔해들모든도시들은파괴된것일까요? 그리고우리는생명과죽음이중요하지않은사람들의집단무덤에대해듣습니다. 이마른뼈들이살수있을까요? 어떻게사람들이평화와조화속에서살수있는미래를상상할수있을까요?
하지만, 영국을포함한유럽의도시들도파편더미로전락했을때, 여전히몇명의사람들을위한살아있는기억속에남아있다고생각해보세요. 저는거대한나무들보로지탱된건물과벽사이에빈공간이있는런던의초기기억들을가지고있습니다. 지금은아닙니다. 많은곳에서어떤사람들은무슨일이일어났는지모를것입니다. 시간이지나면서상상할수없는파괴는거의상상조차할수없는삶의터전이되었습니다. 또한테러리즘이승리하지않을것이라고말하기위해사람들이모여서있는것처럼파괴에저항하는정신이또한드러납니다, 웨스트민스트다리에서이슬람교여성들이팔에팔을낀채서있는긴줄로그들은계속해서연명할것인가, 아니면파리의사람들, 니이스, 베이루트, 런던, 카불, 이스탄불, 시드니, 그리고다른많은곳에서그들은단지삶과사랑과함께할것이라고말합니다. 이런모든것들은우리가파괴와죽음후에도삶을믿는지물을것입니다. 우리는우리가그것을믿을수있는지아닌지를물어볼수있습니다, 왜냐하면그것은때때로수세대가걸리기도하기때문입니다. 이스라엘자손은약 400 년동안망명생활을하였으나, 그들은집으로돌아가서성전을재건하였습니다. 이건조한뼈들이살수있을까요? 네, 그들은할수있습니다! 우리는그비전을지킬수있을까요?
물론, 우리는오늘부활절행사가가까이다가오고있음으로성경봉독을읽고있습니다. 요한복음에, 마침내바리새인들이예수를데려오게행동하는것에는죽은나사로가살아난그것이사람들에게끼친영향에의해유발되었습니다. 공간복음서인마태, 마가, 누가복음에는그계기가다릅니다. 예수님께서성전을깨끗하게하신것, 돈을빌려주고하는사람들을밖으로나가게하신것등입니다. 요한은예수님의사역이시작하는가까이에제 2 장에이사건을둡니다. 오늘우리는나사로를죽음에서살아나는아주감동적인이야기읽습니다. 오늘우리가이본문을성경봉독으로읽은이유가분명합니다, 우리가성스러운주일에가까이가면서, 겟세마네와골고다까지, 예수님의죽으심과죽으심의출입구인돌무덤, 그리고하나님의궁극적인놀라움말입니다. 하지만항상일어나는일은, 성경을우리가읽을때마다, 말씀에서부터더많은것들이드러나고, 다른질문들이우리에게나타납니다. 이이야기의주제는예수님이나사로를무덤에서부터살리신것처럼보입니다하지만이것은단지작은부분일뿐입니다. 우리가그것에도달하기전에훨씬더많은일들이진행됩니다. 여기에이형제들에대한매우친밀한세부사항들이있습니다 : 아픈나사로, 예수님의발에모든사람들이놀라도록기름을붓는마리아 ( 이이야기는곧나올것입니다 ),
그리고마르다. 그런데, 요한은우리에게예수님을섬기느라바빴던마르다이야기, 마리아는예수발에앉아있는것을이야기는하지않았습니다. 그것은오직누가복음에만해당이됩니다. 요한은이세명에대한예수님의사랑을우리에게말하고우리는그가나중에그들의집으로돌아온다는것을압니다. 그는자신이사랑받고지지받고있다는것을알고있었던곳이었다. 오늘성경봉독에서우리는나사로의여동생들이예수께사람을보내었다고들었습니다, 그러나예수님께서는가지않았습니다. 그는이틀을기다렸습니다. 요한은우리가무엇을보기를원할까요? 확실히예수님은예루살렘에가까운베다니로향하는것이위험하다는것을아셨습니다, 그러나그것이그를멈추게하지않았습니다. 요한은예수님께서는어떻게이야기가끝나는지를안다고우리에게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당혹스러워하는제자들을달래기위해나사로가 " 잠들었다 " 고말했습니다. 요점은예수님이그들이예수님과하나님을믿을수있도록돕기위해서그들에게무엇인가를주기를원했습니다. 그러나마르다와마리아에게큰감정적인대가가있었습니다. 그들의신앙은대단했습니다 : 주님, 만약당신이여기에있었더라면, 나의오라버니는죽지않았습니다, 그러나그들의신앙이그들을슬픔으로부터
보호해주지못했습니다. 아마그것을더악화시켰습니다, 그리고우리는그것이예수에게얼마나영향을미쳤는지압니다. 하나님의목적에대한그의믿음이강하다고해도, 그것역시그를보호하지못했습니다. 성경에서가장짧은구절은 " 예수님이우셨다 " 라는말씀구절입니다. 그래서우리는동굴에돌문이있는무덤으로인도됩니다. 잠시멈추어봅시다, 여기에서우리는믿음에맴도는질문에직면하게될것이고, 하나님에대한우리의이해와우리인류애속에담고있는부활절이야기때문일것입니다. 우리는하나님이죽음과부패로부터생명을이끌어낼수있다고믿습니까? 우리가바다해변옆에서서파도소리를들을때 ; 우리가회오리바람의힘이나, 숲의불이나지진이일어나는것을들을때, 또는인간의멸망의폐허를볼때, 우리는시간과공간에제한받지않는죽음과부패한것에서부터영원한생명을가져올수있는하나님을믿느냐하는것입니다? 그래서우리가무덤밖에서멈추는것처럼, 우리의불신앙을떨쳐버리고하나님의목적은생명과자유를가져온다고믿을수있을까요? 우리에겐강력한사실에근거한은유가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큰목소리는 " 나사로야나오라 " 라고부르시고, 그리고나사로는그렇게합니다. " 풀어놓고다니게하라."
거기에있었던사람들은하나님의능력을놀라울정도로잘알았고, 우리는많은사람들이그사건을통해예수님을믿었다고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대제사장들과회의를하러갔습니다. 이이야기의인간성은여러가지면에서보여집니다. 이후에, 예수님의친구들의믿음과신앙이불변할것이라고생각한다면좋을것입니다. 그렇지않았습니다. 여러분은도마라는이름의제자를알고있었습니까? 그는유대를떠나예수와죽음을맞이할준비가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부활후에, 그는예수님을직접뵙기전까지는이런일이일어났다는것을믿지않았습니다. 계속적으로요한은우리에게하나님의사랑의능력이한정될수없다는것과항상우리에게새로운삶을제안하시는것을보여주고있습니다. 우리가이것으로부터배우고있는지내내우리가질문을해오고있습니다, 만약우리가사막에서우리안에있는삶을찾을수있다면, 성령이우리에게새로운시작을어떻게제공하시는지를찾으시기바랍니다, 예수님께서우리의갈증을풀어주시고우리의일상적인한계를넘어설수있도록도와주실수있다는것을알게되었습니다. 우리는하나님을한번더믿게되는것일까요?
그것이아직까지도맴돌고있는의문점입니다우리가주변에서목격하고있는파괴적인것과맹렬함과맞서싸우고 " 하나님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말입니다?" 하며궁금해하는것입니다. 죽음은여전히삶의현실로남아있습니다. 그것은성경이야기속의모든사람들을위한것이었습니다. 그것은예수님을위한것이었습니다. 하지만그를통해하나님께서는여전히우리를새로운삶으로인도하실수있도록새로운것들로우리를놀라게하실것입니다. 언제나기다리는시간이있을것입니다. 기쁨과독창성뿐만아니라언제나상실과슬픔의시기가있을것이다. 저는에스겔과요한이하나님의새로운사랑의비전을충실히지켜주고있다고생각합니다. 우리가그것을믿나요? 우리는하나님께서충분하시다고믿습니까? 우리는우리자신이이이야기의일부라고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