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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8-28 계보도문통판처死조카재산문제관여손자

285 286 고유 ( 孤幼 ) 8-29 계보도 이춘오이춘육이우리 부유 가난

287 288 8-30 계보도 계정부, 하모, 유경사등 재산갈취 장씨 손모

289 290 8-31 계보도 장첨판 유아 처 조이 재산갈취 가정교사 䘏 廵

291 292 8-32 계보도 死 이문자 고아 이세이십삼 이소이십일 재산침탈

293 어 자못 어려움이 있다. 본관은 전에 이문자(李文孜)를 불러내어 그 집안 일을 물었는데, 그 응대 함에 있어서는 대체로 조리가 있었다. 비록 답변하는 방법을 누가 가르켜 주 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뜻이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았 기 때문에, 부학(府學)에 보내 학식있는 사인에게 의탁하여, 천분(天分)에 맞 게 교육시키고, 아울러 의복이나 음식도 챙겨주고 성의껏 키우도록 해야 한 다. 이문자(李文孜) 일가의 부동산은 모두 관사가 검교(檢校)하고, 매년의 조 과(租課)30), 부학(府學)의 전량(錢糧)은 관에서 이를 조달하고, 이로써 학비 나 의복의 비용으로 충당한다. 남는 것이 있다면 장부에 기입하여 관리하고, 성인이 되면 되돌려 주도록 한다. 여승분(女承分)31) 호혼문(권8-33) 고아에게 남겨진 전산(田産)을 처분하다 (處 分孤遺田産) 범서당(范西堂) 照對, 解汝霖因虜入冠, 夫婦俱亡, 全家被虜, 越及數年, 始有幼女七姑 女孫 秀娘回歸. 其桎解懃撫於其家, 主管生業, 可謂能厚睦族之義, 任恤孤之責. 余 榮祖連年入狀, 告論戶絶, 謂是解懃掩有入己, 乞行籍沒歸官. 前政已略施行, 抱納租課, 使之入錢, 數踰千緡. 繼而七姑 秀娘回歸, 乃與免行抱籍, 仍付解懃 主管. 而余榮祖至今猶未絶詞, 當元州府徒欲抱收花利, 其後解懃又欲視爲己 業, 區處失當, 不能絶詞, 展轉十年, 適滋吏姦. 旣有二女, 法當承分, 官司抱錢, 已犯不韙, 責付族人, 又因爲利, 詞訴薦至, 此實有以起之. 汝霖家業, 歲收主分 租穀大弱不下二百石, 不爲不厚, 解懃以己任之, 旣無收支簿書, 又不主盟姻議, 惟立繼絶之子一人, 曰伴哥, 以承汝霖之業. 雖云絶家尊長, 許令命繼, 異姓非 三歲以下, 亦姑勿論. 然挾一幼子, 而占據乃叔田産, 二女在室, 各無處分, 安能 免議. 解汝霖旣無親子, 合作戶絶施行. 准法, 諸已絶之家而立繼絶子孫, 謂近 親尊長命繼者. 於絶家財産, 若只有在室諸女, 卽以全戶四分之一給之, 若又有 歸宗諸女, 給五分之一. 其在室幷歸宗女卽以所得四分, 依戶絶法給之. 止有歸 30) 이 경우에는 검교한 부동산으로부터의 임대료, 소작료를 말한다. 31) 女承分은 딸의 상속분을 지칭하는 말이다. 294 宗諸女, 依戶絶法給外, 卽以其餘減半給之, 餘沒官. 止有出嫁諸女者, 卽以全 戶三分爲率, 以二分與出嫁女均給, 一分沒官. 若無在室歸宗出嫁諸女, 以全戶 三分給一, 竝至三千貫止, 卽及二萬貫, 增給二千貫. 今解汝霖只有幼女孫女, 竝係在室, 照戶絶法均分, 各不在三千貫以上. 半哥繼絶, 合給四分之一, 其餘 三分, 均與二室女爲業. 七姑雖本姓鄭, 汝霖生前自行收養, 與親女同. 今年二 十有五, 未諧親議, 儻更二十五年而後嫁, 豈無墓木已拱之歎. 乃兄撫存, 其意 安在. 況秀娘往年被擄, 遺棄九場, 襄陽將官王璋收拾歸家, 撫養如己子, 更歷 八年, 解懃始因榮祖之訟, 無可憑藉, 前往理取, 原其本意, 取之不過爲占田計 耳. 儻榮祖之訟下興, 汝霖之業可據, 秀娘必聽爲襄陽之人, 俾正丘首, 未豈暇 謀. 拖照回文, 秀娘元在王氏之家, 係存留爲次子婦, 此意本善. 解懃當官責領, 亦謂權暫取回, 承認田産, 不敢有負親盟. 今留秀娘於家, 誠可以爲占田之策, 而王氏親約, 乃不復顧. 且當時在難, 非遇王璋, 久入鬼錄, 旣得生還, 乃敢忘 義, 九原可作, 度祖父之意, 決不肯違. 昔王璋欲爲兒婦, 初非圖其厚資, 今秀娘 旣承女分, 正宜因以報德. 解懃無知, 自謀甚厚, 而薄以處人, 終訟之招, 不爲無 自. 當廳將汝霖田産照條均分, 置關三本, 一付伴哥, 聽從解懃之命, 使之繼絶, 一付七姑, 召人議姻, 一付秀娘, 收執爲業. 牒縣尉打量, 均作四分申上, 以憑抛 拈. 栘文襄陽, 喚上王璋, 聽照元約, 取回成婚. 戶絶之家, 自有專條, 官司處置, 一從條令, 非惟絶訟, 死者可尉舐犢之念, 生者可遠兼幷之嫌, 縱有健訟, 奚所 容㖨. 自度無慊, 於榮祖乎何畏, 牓示市曹. 或願議姻, 聽自入狀, 切待審度, 以 憑施行. 又據所供族圖, 解懃亦且無後, 僅有一女, 年踰六十, 此日迫崦嵫, 鍾嗚 漏盡之時也. 孶孶罔利, 不知自反, 能欺於人, 而不能欺於天, 能計於一時, 而不 能計於他日, 誠恐後之視今, 猶今之視昔, 倂書以戒之. 汝霖一分田租, 倂行樁 管, 存爲二女出適之用, 餘人並放. 申州照會施行. 8-33 계보도 해녀림 해 근 반가(후사) 재산침탈 칠 고 수 랑 조사해 보니, 해여림(解汝霖)의 경우에 있어서, 금나라 군대가 침입할 때 에(因虜入冠)32) 부부가 모두 사망하고, 가족 모두가 포로가 되어, 수 년 후에

295 겨우 어린 딸 칠고(七姑)와 손녀 수낭(秀娘)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해여림의 조카 해근(解懃)은 자신의 집에서 그 아이들을 돌봐주고, 가업(家業)을 주관 한 것은 일족의 우의를 두텁게 하고 고아를 돌보는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여영조(余榮祖)는 매년 소송을 일으켜, 해여림의 집은 호절(戶絶)이라고 주장하면서 해근은 해여림의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고 하면 서, 그 재산을 몰관하기를 원했다. 전임 지현이 이미 조치를 취하면서, 소작 료를 몰수하여, 그것을 전(錢)으로 바꾸어 관청에 납입한 액수가 1000민(緡) 이 넘었다. 그 후 칠고와 수낭이 돌아오자 재산몰수를 면제하고 원래대로 해 근에게 맡겨 이를 주관하도록 했다. 그런데 여영조는 지금도 아직 소송을 멈 추지 않으면서 이르기를 이전 주부(州府)는 오로지 이익(花利)을 올리려고 만 했고, 그 후 해근도 자신의 재산으로 삼으려하고 있습니다. 처리 방법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소송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고 하면서 십 년간에 걸쳐 소송을 하게 되니, 서리의 악행만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두 명의 딸이 있는 이상, 법률상으로는 당연히 그 몫을 받아야 한다. 관청에서 돈을 취한 것은 이미 옳지 않은 일이고, 족인(族人)인 해근에게 맡 긴 것은 그 이익을 준 것으로 소송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었다. 소송이 일 어난 것은 확실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해여림 집안의 전지에서 1년에 걷을 수 있는 소작료는 대략 200석 이상이 므로 적은 액수라고는 할 수 없다. 해근은 직접 그것을 주관하면서, 출납 장 부도 만들지 않고, (칠고의) 결혼도 진행하지 않고, 그저 반가(伴哥)라는 계 절자(繼絶子)를 한 명 세워, 해여림의 재산을 승계하려 했다. 호절 집안의 존 장은 이성(異姓) 3세이하인 자를 명계(命繼)시킬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지만, 그런데 유아 한 명을 세워 그 숙부의 재산을 점거하고, 2명의 재실녀(在室 女)33)에게는 아무런 몫도 주지 않고 있으니, 어찌 문제가 없을 수 있단 말인 가? 해녀림은 친자가 없는 이상 당연히 호절가로 간주해서 (그에 적절한 법을) 시행해야 한다. 법률 규정에 의하면 이미 후사가 끊긴 집에서 그것을 계승 하는 자손--근친의 존장이 명계한 경우를 지칭한다--을 세우는 경우, 호절 32) 因虜入冠는 여진족이 건국한 금나라의 군대가 침입하여 온 것을 이르는 말이 다. 33) 在室女는 미혼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296 집안의 재산에 관해서, 만일 단지 재실녀만 있다면 가산 전체의 4분의 1을 계절자에게 주는데, 만일 그 외에 귀종녀가 있다면, (계절자에게) 5분의 1을 준다. 재실녀와 귀종녀에게는 전체의 5분의 4를 호절법 규정에 의해 분배한 다. 귀종녀만 있다면 호절법에 의해 분배하는 외에, 그 나머지의 반을 줄여 계절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관에서 몰수한다. 출가한 딸만 있는 경우, 가산 전체를 삼등분해서 3분의 2를 출가한 딸에게 균등하게 분배하고, 3분의 1은 관에서 몰수한다. 만일 재실녀와 귀종녀, 출가한 딸이 없다면, 가산 전체의 3 분의 1을 계절자에게 준다. 이 경우에 있어서는 분배받는 몫이 3천관을 상한 선으로 하고, 만약 (전 재산이) 2만관이 넘을 경우에는 2천관을 더 보태준 다34) 라고 되어 있다. 지금 해녀림에게는 어린 딸과 손녀만 있을 뿐이고, 모두 미혼이다. 호절법 에 따라 균등히 분할하면 각각 3천관이 넘지는 않는다. 반가는 계절자이므로 4분의 1을 분배해야만 하고. 나머지 4분의 3은 균등하게 2명의 재실녀에게 주어 그들의 재산으로 삼게 한다. 칠고는 원래 성은 정씨(鄭氏)이지만 해녀 림이 생전에 양녀로 삼아 키웠으므로 친딸과 다름없다. 현재 나이는 25살이 지만 아직 혼담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일 25세를 넘어 시집을 가게 된다 면 묘터에 있는 나무가 너무 성장했구나 라고 하는 탄식35)이 있을 것이다. 그 형(해근)이 (칠고를) 양육한다고 하지만, 그 의도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물며 수낭은 이전에 포로가 되어 멀고도 먼 변경(九埸)에 버려진 것을, 양 양(襄陽)의 장관 왕장(王璋)이 집에 데리고 와서 친자식처럼 정성스럽게 키 운 것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해근은 여영조가 소송해 오자 이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양양에 가서 다투고 데려온 것이다. 그의 의도를 추 측해 보면, 수랑을 데리고 온 것은 토지를 점거할 계략에 불과하다. 만일 여 영조가 소송하지 않고 (해근이) 해녀림의 재산을 차지할 수 있었다면, 수낭 은 반드시 양양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또 그곳을 고향으로 생각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해근은 계략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양양의 왕장으로부터의) 답신을 참조해 보니, 수낭은 원래 왕씨 집에 있 으면서,차남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 의도는 본래 좋은 것이었다. 해근은 34) 宋史 卷200, 刑法志에 戶令, 戶絶之家, 許給其家三千貫及二萬貫者, 取旨, 帝曰, 其家不幸而絶, 及二萬貫廼取之, 是有心利其財也 라 되어있다. 35) 墓木已拱之歎 ; 묘터에 있는 나무가 이처럼 한아름이 될 정도로 성장했구나 라고 하는 탄식이다. 출전은 左傳 僖公32년의 爾何知, 中壽, 爾墓之木拱矣 이다.

297 (양양의) 관청에서 수낭을 책임진다는 뜻을 표하며 이르기를 잠깐 동안 데 리고 와서 전산(田産)의 소유권을 승인받게 되면, 결혼 약속을 어기지는 않 을 것입니다. 고 했다. 지금 수낭을 집에 데리고 있는 것은, 오로지 토지를 차지하기 위한 계략 때문이고, 왕씨와의 혼담 약속은 이제는 생각지도 않는 다. 예전에 수랑이 어려움에 처해 있었을 당시, 왕장과 우연히 만나지 않았더 라면 오래 전에 이미 사망했을 지도 모른다. 살아서 돌아왔으면서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을까? 조부가 살아 돌아와서 조부의 뜻을 물어보더라도 결코 혼인 약속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예전 왕장이 며느리로 삼으려고 한 것은 그녀가 재산이 많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현재 수낭이 손녀로서의 몫 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이것으로써 왕씨의 은덕에 보답해야 한다. 해근은 무지하고 자신의 것만 생각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박정하다. 이렇게 끊임없는 소송36)이 발생한 것도 스스로 자초하였기 때문이다. 본관은 해여림의 전산(田産)을 법률에 따라 균등히 분할하고, 가산분할서 (關書) 3통을 작성하여, 한 통은 반가에게 급부하여 해근의 명령대로 그를 후사로 삼는 것을 허락한다. 또 한 통은 칠고에게 급부하여 사람을 불러 혼 담을 의논하게 한다. 나머지 한 통은 수낭에게 급부하여 재산의 증거문서로 삼게 한다. 현위에게 공문을 보내어 재산을 조사하여 균등히 4등분하고 보고 하게 하고, 이에 추첨에 하도록 한다. 공문을 양양으로 보내고 왕장을 소환 해서 원래의 약속에 따라 수낭을 왕장의 집에 되돌려 보내 혼인하게 한다. 호절 집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해당 법률조문이 있다. 관청의 조치가 오로 지 법률조문에 합치된다면, 소송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죽은 자(해녀림)는 자기 자식에 대한 깊은 애정에 감사할 것이고, 살아있는 자는 토지 겸병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비록 소송꾼들이 있어도 이에 끼어들 지는 못할 것이다. 또 (만약 해근이) 여영조에게 잘못이 없다면 저잣거리에 (판결 에 대한) 방문을 붙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혼인을 의논하 기를 원한다면 직접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심의되기를 기다려 거기에 따라 행하는 것을 허락한다. 또 진술한 일족의 계보도에 의하면, 해근은 역시 후사가 없고 그저 딸만 한명 있을 뿐이다. 해근의 나이는 60이 넘었으며,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 36) 終訟 ; 終訟에서 終은 끝까지 가다는 의미로,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송을 의 미한다. 298 다.37) 그런데도 악착같이 이익을 구해서 반성할 줄 모르고,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늘을 속일 수는 없고, 잠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먼 앞날까지 성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미래에 현재를 보는 것 이, 현재 과거를 돌아보는 것처럼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울러 기록하여 본보기로 삼도록 한다. 해여림 몫의 전조(田租)는 일괄해서 보관하고, 칠고와 수랑이 시집갈 때의 비용으로 남겨둔다.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석방하라. 주(州)에 보고하고 조 회해서 시행하도록 하라. 유촉(遺囑) 호혼문(권8-34) 유언을 위조하여, 장례를 방해하다 (假僞遠囑 以伐喪). 채구헌(蔡久軒) 范瑜放蕩無藉, 乘范大佑神朝奉不祿, 妄起覬覦, 旣敎唆族人, 使於范朝奉垂 絶之際, 登門伐喪, 騙去錢會, 今又敢恃其破落, 自行詐賴. 鞠之囚圄, 理屈辭 窮, 卽無所謂遺囑, 特鑿空誣賴, 爲騙取錢物之地耳. 國家大臣薧, 肉未寒, 而不 肖之族已羣起, 而幷呑之, 此風俗之大惡, 人情所同惡. 不行重懲, 無以戒後. 范 瑜勘杖一百, 編管鄰州, 所有范朝奉垂絶之際騙去錢物人, 牒府第具姓名申來, 以憑追究. 院司引斷施行間, 續據國子進士范渙等連名箚狀陳告, 及范承議箚 狀, 乞從末減, 范瑜本合照已判勘杖編管, 以明堂赦恩適至, 而范族尊長及小范 佑神承議合辭有請, 姑從輕, 送州學, 決竹篦二十, 聽讀三月, 放. 餘照前判. 범유(范瑜)는 방탕무뢰한 자로서, 범대우신조봉(范大佑神朝奉)38)의 죽음 을 이용하여 망령되게 탐욕의 마음을 내어, 족인(族人)을 교사하면서 범조봉 이 임종(垂絶)할 때에, 그 집에 들어가 장례 치르는 것을 방해하고 전(錢)과 37) 日迫崦嵫, 鐘鳴漏盡之時. 태양이 진다고 불리우는 산의 이름이 崦嵫이고, 밤에 휴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뭀시계가 다 하는 것이 鐘鳴漏盡이다. 말하 자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비유하고 있다. 38) 范大는 小范과 대비되어 연령의 大小를 말한다. 佑神은 提擧佑神觀使를 말한 다. 佑神觀은 북송시대 개봉에 있던 宮觀名이지만, 남송시대가 되면 명목적인 祠祿官으로 종종 사용된다. 朝奉은 문관기록관인 조봉랑(정7품)이나 조봉대부 (6품)를 지칭한다.

299 300 범서당(范西堂) 8-34 계보도 범유 족인 재산침탈 범조봉 死 회자(會子)를 편취했으며, 지금 또 감히 난봉꾼 기질을 발휘하여 직접 무고 를 하려고 한다. 그를 감옥에 가두어 심문해 보니, 논리가 맞지 않고 말이 궁 색하며, 이른바 유언으로 남겨진 말도 아니고 다만 억지 이유를 대어 속이려 고 기만한 것인데, 그것은 다만 재산(錢物)을 빼앗기 위함이었다. 국가의 대 신이 죽어 주검이 식지도 않았는데 불초한 족인(族人)이 떼를 지어 일어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한다. 이것은 풍속에서도 가장 사악한 짓이며, 인정(人情)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이를 엄중하게 벌하지 않으면, 후세에도 교훈으로 삼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에 범유를 장형100 대에 처하고 인근 주로 편관시키고, 범조봉이 임종할 때에 재산을 편취해 간 사람은 모두 부(府)에 공문을 보내어 성명을 보고하도록 하여, 이것을 토대 로 소환하여 추궁하도록 한다. 원사(院司)39)가 소환하여 단죄를 시행하려고 할 때, 국자감진사(國子進士) 범환(范渙)등이 연명하여 올린 서장(書狀)과 범 승의(范承議)40)의 서장(書狀)을 근거로 하여 형벌의 감면을 요청해 왔다. 범유는 본래 이미 판결된 바에 따라 장형을 실시한 후 편관시켜야 하지만, 마침 명당의 은사(赦恩)41)를 만났으며, 범씨 일가의 존장과 소범우신승의(小 范佑神承議)도 함께 요청하고 있으므로, 우선 죄는 가벼운 쪽을 따라, 주학 (州學)으로 보내어 죽비 20대에 처하고 3개월 동안 면학하게 한 후, 석방한 다. 나머지는 이전에 판결한 바에 따른다. 호혼문(권8-35) 딸도 자기의 몫을 상속받아야 한다.(女合承 分) 39) 院司는 司理院의 府獄을 지칭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0) 承議郞은 종7품이지만 朝官 최상위의 기록관이다. 41) 남송대에는 3년에 1번 궁중의 명당에서 천지신명에 대해 제사지내는 의식이 행해졌는데, 이 때에 恩赦가 내려진 것을 말한다. 鄭應辰無嗣, 親生二女, 曰孝純 孝德, 過房一子曰孝先. 家有田三千畝, 庫一 十座, 非不厚也. 應辰存日, 二女各遺囑田一百三十畝 庫一座與之, 殊不爲過. 應辰死後, 養子乃欲掩有, 觀其所供, 無非刻薄之論. 假使父母無遺囑, 亦自當 得, 若以他郡均分之例處之, 二女與養子各合受其半. 今只人與田百三十畝, 猶 且固執, 可謂不義之甚, 九原有知, 寧無憾乎. 縣丞所斷, 不計其家業之厚薄 分 受之多寡, 乃徒較其遺囑之是非, 義利之去就, 却不思身爲養子, 承受田畝三千, 而所撥不過二百六十, 遺囑之是非何必辯也. 二女乃其父之所自出, 祖業悉不 得以霑其潤, 而專以付之過房之人, 義利之去就, 何所擇也. 捨非而從是, 此爲 可以予, 可以無予者. 設捨利而從義, 此爲可以取, 可以無取者. 設今孝先之予, 未至傷惠, 二女之取, 未至傷廉, 斷然行之, 一見可決. 鄭孝先勘杖一百, 釘錮, 照元遺囑, 各撥田一百三十畝, 日下管業. 8-35 계보도 정응진 정효순 정효신 정효선(양자) 정응진 사후 재산독식 시도 정응진(鄭應辰)은 후사가 없이 두 딸을 낳았는데, 효순(孝純)과 효덕(孝德) 이고, 1명의 양자42)가 있는데 효선(孝先)이라 한다. 이 집은 3천무(畝)43)의 전(田)과 창고 10좌(座)가 있어서 매우 부유하였다. 정응진이 살아 있을 때 두 딸에게 유언으로 전(田) 130무와 창고 1좌를 주겠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많이 분배되었다고 할 수 없다. 정응진이 사망 한 후에, 양자인 효 선은 모든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하였다. 그가 진술한 바를 보면 매우 인정이 없고 각박하다. 가령 부모의 유언이 없더라도 (딸들이 재산을) 분배받는 것은 당연한 일 이고, 만약 다른 주(郡, 즉 州)에서 균분한 예로써 이 안건을 처리한다면, 두 42) 過房子 ; 同宗 중에서 소목상당한 자를 양자로 삼는 것을 말한다. 43) 畝 ; 송대의 1尺은 약 30센티미터로 사방 5척을 1步라 하고, 240步를 1畝라 하며, 100畝를 1頃이라 한다. 角은 4분의 1畝 즉 60步이다.

301 딸과 양자는 각각 그 반을 받아야 한다. 지금 단지 한사람에게 전(田) 130무 를 주라고 했을 뿐인데도 그것조차 주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운다면 그것은 심히 불의(不義)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또 돌아가신 부친이 이것을 안다면 얼마나 유감스럽게 생각하겠는가? 현승이 판결한 것에 의하면, 그 집 재산의 많고 적음과 상속분의 많고 적 음은 계산하지 않고, 다만 그 유언의 진위여부와 의(義)와 이(利)의 거취만을 문제로 삼고 있으며, 도리어 양자인데도 전(田) 3000무를 상속받게 하려고 하고, (두 딸에게는) 불과 260무만을 떼어주면 된다는 것을 고려하지도 않는 다면, 유언의 진위여부를 가려서 무엇하겠는가? 두 딸은 아버지의 친자식임 에도 불구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재산의 은혜를 하나도 입지 못하고, 오히 려 재산을 양자로 들어온 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면, 의(義)와 이(利) 중에서 무엇을 택하겠는가? 그른 것을 버리고 옳은 것을 따른다면 그것은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다. 만약 이(利)를 버리고 의(義)에 따른다면 그것은 취 해도 좋고, 취하지 않아도 좋은 경우이다. 지금 정효선이 두 딸에게 주는 것 은 그의 이익에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며, 두 딸이 재산을 분배받는 것이 염 치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단연히 그렇게 하여 결말을 짓는 편이 좋다. 정효선 은 장형100대에 처한 후, 칼을 씌워 못으로 고정시키고(釘錮)44) 원래의 유언 에 따라 각각 130무를 분배하도록 하고, 즉시 인도하여 관리하도록 하라. 호혼문(권8-36) 조카들이 (숙부가) 유언한 전(錢)을 찾아달라 고 소송하다.(諸姪論索遺囑錢). 범서당(范西堂) 柳璟兄弟四人, 久矣分析, 各占分籍, 素無詞訴. 三兄俱亡, 有姪凡四, 璟死 之日, 家業獨厚, 生子獨幼, 遂以四姪貧乏, 各助十千, 書之於紙, 歲以爲常. 今 纔五七年, 而璟之妻子乃渝元約, 諸姪陳論, 意欲取索, 就其族長索到批貼, 係 璟親書, 律以干照, 接續支付, 似可無辭. 第探其本情, 實有深意. 昔人有子幼而 婿壯, 臨終之日, 屬其家業, 婿居其子之二, 旣而渝盟, 有詞到官. 先正乖崖以其 善保身後之子, 而遂識乃翁之智, 從而反之, 九原之志, 卒獲以伸. 柳璟之死, 子 在襁褓, 知諸姪非可任託孤之責, 而以利誘之. 觀其遺詞, 初念生事之薄, 而助 之錢, 終以孤兒寡婦之無所託, 而致其懇, 且言獲免侵欺, 暝目無憾. 執筆至此, 夫豈得已. 此與古人分付家業之事, 意實一同, 其所措慮, 可謂甚遠. 諸姪不體 44) 釘錮란 칼(枷)을 채워서 못으로 고정하는 것을 말한다. 302 厥叔之本意, 歷年旣遠, 執券索償, 若果固有. 不知璟之子受年日以多, 璟之妻 更事日以熟, 門戶之託, 旣有所恃, 則以利啗人, 無嫌諾責. 合當倣乖崖之意行 之, 元約毁抹, 自今以始, 各照受分爲業, 如有侵欺, 當行懲斷. 8-36 계보도 유 경 조 카 조 카 조 카 조 카 처 아 들 유경 사후 소송 제기 유경(柳璟)의 형제 4명은 가산을 분할하여 각자 호적을 달리한 지가 오래 되었으며, 지금까지 소송은 없었다. 3명의 형은 모두 사망하였고 (유경에게 는) 조카가 4명 있었다. 유경이 사망할 즈음에, 유경 집의 재산만이 많았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아직 어렸다. 당시 4명의 조카가 가난했기 때문에 각 각 10관을 주고 그것을 종이에다 글로 남겨 해마다 이와 같이 하도록 하였다 (歲以爲常). 이제 5-7년밖에 지니지 않았는데 유경의 처자가 원래의 약속을 어기자, 조카들이 소송을 하여 돈을 되찾으려고 하였다. 곧바로 유씨의 족 장에게 문서(批貼)를 찾아서 가지고 오게 해 보니 유경의 직접 작성한 것으 로, 이 증거문서를 토대로 판결하면 계속해서 금전을 지급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경의) 본 뜻을 헤아려 보면 거기에는 실로 깊은 의 도가 있다. 예전에 어떤 사람에게 어린 아들과 장년이 된 사위가 있었다. 그가 임종할 때 사위에게 집의 재산(家業)을 맡기면서 사위에게 아들 몫의 2배를 가지도 록 유언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소송이 관청에 접수되 기에 이르렀다. 선현 장괴애(張乖崖)45)는 그러한 조치가 자신이 죽은 후에 사위가 자식을 잘 돌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부친의 지혜로 움을 생각하여, 그 의도에 따라 분배율을 뒤집어 배분함으로써, 마침내 고인 의 의지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유경이 사망하였을 때 아들은 아직 어렸는데, 조카들이 이 어린 고아를 잘 보살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유경은 조카들에게) 이익을 주어 꾀어낸 것이 었다. 유언의 문장을 살펴보니, 처음에는 (조카들이) 생활이 궁핍한 것을 생 45) 張乖崖는 張詠(949-1015)을 지칭하며, 宋史 卷292 張詠傳 참조.

303 각하여 전(錢)을 원조하도록 적었지만, 말미에는 고아와 과부가 어느 누구에 게도 의탁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였다. 또 재산이 부당하게 빼앗기지 않는다면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고 하고 있다. 유경이 이 렇게까지 썼다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상술한) 옛 사람이 재산을 사위에게 많이 배분한 하였던 상황에서 그 의도 는 완전히 같은 것이며, 그 배려는 매우 깊은 뜻이 있는 것이었다. 조카들은 숙부의 본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동안 그 증거 문서를 가지고 돈 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과 같이 하고 있다. 유경의 아들이 날마다 성장하고, 유경의 아내가 날마다 가사 일 에 대한 경험이 쌓여, 일가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라면 그들에게 이익을 주 어 조카를 잘 돌보도록 배분한 약속은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을 것이다.46) 이 안건은 장괴애의 뜻을 본받아 처리하고, 원해 유경이 조카에게 유언으로 한 약속은 무효로 하고(毁抹)47), 지금부터 각자 자신의 상속분에 따라 분배 된 것을 자신의 재산으로 삼도록 한다. 만약 부당하게 침탈한다면 이를 징벌 할 것이다. 별택자(別宅子)48) 호혼문(권8-37) 증거가 없다 (無證據) 범서당(范西堂) 饒操無子, 養應申以爲子, 儻果有庶出之親子, 不自撫育, 倂母逐去, 以嫁其 僕李三, 非人情也. 今李三之子李五, 謂其母懷孕而出, 以嫁李三, 自陳歸宗, 何 所據而然也. 準法, 諸別宅之子, 其父死而無證據者, 官司不許受理. 李五生於 李三之家, 年踰二十, 父未嘗以爲子, 其無證據也決矣. 李三 饒操之僕也, 二十 年間往來饒操家, 不知其幾,必嚴主僕之分, 欲爲子者果如是乎. 據李五所供, 謂 是生母之出, 母實逐之, 理固有此, 第母死十年之後, 饒操身故, 十年之久, 非一 朝夕, 饒操胡爲一倂棄逐. 初母死而不持母之喪, 今父死而欲分父之業, 夫豈可 46) 無嫌諾責 ; 출전은 禮記 表記에 是故君子與其有諾責也, 寧有已怨 이라 되 어 있다. 47) 毁抹 은 무효의 印을 찍는 것으로, 폐기처분하다는 의미이다. 48) 別宅子 ; 부친 및 가족과 호적을 달리하는 아들을 지칭한다. 304 行. 越年二十, 明居李三之家, 而陰爲饒操之子, 天下豈有無父之國哉. 夫父子, 天性也, 不可以强合. 縱是其己之所出, 而父不認, 亦無可强之理, 矧爲僞乎. 昔衛太子歸詣北闕, 公車以聞, 是否未可知也, 衆方艱於區處, 京尹雋不疑乃叱 從吏收縛, 謂太子得罪先帝, 亡不卽死, 今來自詣, 是罪人也, 詔獄而竟得其僞. 夫大義所在, 古今不易之理, 家國雖異, 其理則同, 以義斷之, 何所容喙. 綠李五 出沒於族人之家, 往往多有主之者, 若問族長, 必有出而證其實. 大㮣饒操過房 應申, 族多不平, 乘機扺巇, 令得以騁.若果崇篤族義, 其行以公, 當操存日, 何 不俾正父子之名於一時, 絶紛爭之禍於他日. 胡爲操死之後, 遽相扶持, 以圖終 訟, 族義之薄,莫甚於此. 郡縣所斷, 反覆辯證, 如見肺肝. 今之爲政, 非曰知之 艱, 必須行之果也, 及室無訟, 家已用喪, 卒墮族人之姦. 李五勘杖一百, 編管隣 州. 李三本是饒操地客, 押出縣界, 有詞決配. 8-37 계보도 요 조 처 이삼(하복) 요응신 이 오 양 자 요조 친자 주장 요조(饒操)는 아들이 없어서 응신(應申)을 양자로 삼았다. 만일 첩이 낳은 친자식이 있는데도 직접 양육하지 않고 어미와 함께 쫓아내어 노복(僕)인 이 삼(李三)에게 시집보냈다면 인정(人情)에 벗어나는 것이다. 지금 이삼의 아 들 이오(李五)는 자신의 모친은 임신한 채로 쫒겨나 이삼에게 시집갔습니 다 고 하면서, 요조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무슨 근거로 이 런 말을 하는 것인가? 법률에 의하면 무릇 별택자(別宅子)는 그 부친이 사 망하여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관사에서 그 소송을 수리하지 않는다 고 되어 있다. 이오는 이삼의 집에서 태어나 나이는 20살이 넘었다. 부친이 아직까지 아들로 삼지도 않은 것은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삼은 요조의 노복이다. 20 년 동안 그는 요조 집에 왕래하고 있었는데, 주복(主僕)의 분(分)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요조가 이오를) 아들로 삼으려 고 했다면 이와 같이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오가 진술한 바에 의하면 생모가 그 집에서 쫒겨 나온 것은 사실은 정 처(正妻)가 쫓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고 하고 있는데, 이치상으로는 당연히 이 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처가 사망한 10년 후에 요조도 사망하

305 였는데, 10년이라는 기간은 하루 아침이나 하루 저녁과 같은 짧은 시간이 아 니다. 요조는 왜 이 기간 동안 어미와 아들을 내쫒은 것일까? 처음에 요조의 정처가 사망했을 때에는 그녀의 장례도 행하지 않았으며, 지금 부친이 사망 하자 부친의 재산을 취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단 말인 가? 20년이 넘게 이삼의 집에 거주하였으면서도 몰래 요조의 아들이 되려고 하고 있다. 천하에 어찌 아버지가 없는 나라가 있을 수 있는가? 무릇 아버지 와 아들은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지49) 강제로 맺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자기의 아들이라도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으면 역시 강요해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허위라고 한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옛날 한(漢)나라의 위태자(衛太子)가 북궐(北闕)에 들어오자, 공거(公車)가 이를 보고했지만, 진위(眞僞)를 알수 없어 사람들이 이를 처리하는데 고심하 고 있을 때, 경윤(京尹) 준불의(雋不疑)가 이에 부하들을 꾸짖으며 포박하며 이르기를 위태자가 선제(先帝)50)에게 죄를 짓고 도망갔으나 곧바로 죽지 않 고, 지금에 와서 스스로 관청에 출두하더라도 이것은 죄인인 것이다. 라고 했다. 감옥에서 심문한 결과51) 결국 그것이 허위임을 밝혀냈다. 무릇 대의 (大義)가 존재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이치이고, 가정과 국 가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같으니 대의로써 판단하면 어찌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겠는가? 이오가 족인의 집에 드나들기 때문에 어쩌면 (이오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을 터이지만, 만약 족장에게 물어 본다면 반드시 출두하여 그 사실을 증명 해 줄 것이다. 대개 요조가 응신을 양자로 삼은 것에 대해 족인들에게 불만 스러운 것이 많아서 기회가 있으면 이를 발설하려고 한다. 만약 정말로 종족 의 대의를 두텁게 하고 그 행위를 공정하게 하려 한다면, 요조가 살아 있을 때 부자의 관계를 명확하게 해 두지 않고 나중에 분쟁이 일어날 화근을 끊어 놓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요조가 사망한 후에 갑자기 서로 도우며 끝나지 않는 소송을 행하는가? 일족의 대의(大義)가 이처럼 얕은 것이 있단 말인까? 주현(郡縣 즉 州縣)이 판단한 바로는 거듭하여 논증하면서 그 깊은 곳까 지 꿰뚫어 보고 있다. 지금 정치의 요체는 알기가 어렵다는 것에 있지 않 49) 孝經 聖治章에 父子之道, 天性也 라 되어 있다. 50) 여기서의 先帝는 漢 武帝를 지칭한다. 51) 漢書 卷71, 雋不疑傳. 위태자 출현사건 에 관한 시대적 배경이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 최덕경 임대희 옮김, 중국의 역 사 진한사 혜안, 참조. 306 고52)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 소송이 끝났을 때에 가산이 이 미 없어지게 된다면 이는 결국 족인들의 간계에 빠진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오는 장형100대에 처하고 인근 주(州)로 편관시킨다. 이삼은 본래 요조의 소작인(地客)53)이므로, 현 밖으로 추방하고 소송을 걸면 배형(配刑)에 처할 것이다. 의자(義子) 호혼문(권8-38) 모친을 배반하고 무례하게 행동하다 (背母無 狀). 채구헌(蔡久軒) 詳王氏所供, 初事張顯之爲妻, 顯之旣死, 只有男張大謙. 王氏以夫亡子幼, 始招許文進爲接脚夫. 許萬三者, 乃許文進之義子, 帶至王氏之家者也. 許文進 用王氏前夫之財, 營運致當. 其許萬三長成, 王氏又爲娶婦, 悉以家計附之, 雖 前夫親生之子已死, 不復爲之立繼, 所以撫育許萬三之恩, 可謂厚矣. 今年四月, 許文進病重, 口令許萬三寫下遺囑, 分付家事, 正欲杜許萬三背母之心. 許萬三 從而竊之, 固已無狀, 且縱其妻何戴 悖慢其姑, 又將鹽筴席捲而去, 有是理哉. 王氏有詞, 夫豈得已, 本州委林都監究實, 不能正其母子之名分, 乃只問其財貨 之着落, 舍本求末, 棄義言利, 知有貨利, 而不知有母子之天. 鄙哉, 武夫何足識 此. 尤可怪者, 王氏方訴于本司之庭, 忽有許文通者, 突然執狀而出, 曳王氏而 前, 若擒捕一賊之狀, 押下供對, 乃知許文通者, 乃許萬三所生之父. 所供之狀 與所執之狀, 字畫已出兩手, 無故而欲干預孀婦家事, 一不可也., 又爲出繼男入 詞, 率子攻母, 二不可也. 違背公理, 入脚行私, 孀婦在公庭, 猶且爲其擒紐欺 撼, 則其在私家可知矣, 則其助所生之子, 以悖所養之母, 又可之矣. 當職親覩 其無狀, 心甚惡之, 誰無父母,誰無養子, 天理人倫, 何至於是. 許文通勘杖八十, 封案, 如敢更干預王氏家事, 卽行拆斷, 牒州差人管押. 許萬三夫妻及財本, 與 王氏同居侍奉, 如再咆哱不孝, 致王氏不安跡, 定將子婦一例正其不孝之罪. 仍 門示. 52) 書經 說命中에 說拜稽首曰, 非知之艱, 行之惟艱 라 되어 있다. 53) 地客은 신분적으로 예속성이 강한 소작인을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로서는 소 작인 일반을 지칭하기도 한다.

307 8-38 계보도 장현지死 왕 씨 장대겸死 허문진(접각부) 허만삼(의자) 재산 침탈 시도 왕씨(王氏)가 진술한 바를 살펴보면 처음에 장현지(張顯之)를 섬겨 처(妻) 가 되었지만, 장현지가 사망한 후 그의 아들 장대겸(張大謙)만 있었다. 왕씨 는 남편은 죽고 아들은 어려서 처음에는 허문진(許文進)을 접각부(接脚夫)54) 로 삼았다. 허만삼(許萬三)은 허문진의 의자(義子)55)로서 왕씨의 집으로 올 때 데리고 온 자식이다. 허문진은 왕씨의 재산을 운영해서 부유하게 되었다. 허만삼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자 왕씨는 또 며느리를 맞이하고 가계를 모두 그녀에게 맡겼다. 비록 전남편의 친아들이 죽었지만 다시 후자를 세우지도 않았으니 허만삼을 양육해 준 은혜가 상당히 깊다고 할 수 있다. 올해 4월에 허문진의 병이 중해지자, 허만삼에게 유언을 받아 적게하고 집안 일을 나누 어 주었는데 (이로써) 허만삼이 어머니를 배반하려는 마음을 막으려고 한 것 이 확실하다. (그러나) 허만삼은 유언을 베껴적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이것을 숨겨버렸으니, 그 행위자체가 비도(非道)이다.56) 또한 처인 대씨(阿 戴)가 시어머니께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며 업신여기는 것도 내버려두고 염의 장부57)도 모조리 빼앗아 가버렸는데 이런 도리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 로 왕씨가 소송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당 주는 임도감(林都監)에게 사실을 규명할 것을 위임하였는데, 모자(母 54) 接脚夫는 과부가 재혼할 때에 맞아들이는 後夫를 말한다. 접각부에 관해서는 滋賀秀三 中國家族法の原理 創文社, 1967 참조. 55) 義子 는 養子의 일종으로, 繼承를 위한 양자를 嗣子, 혹은 過房子라 하고, 恩 養的인 양자를 義子 혹은 義男이라 했다. 56) 都監은 주로 城內에 주둔하는 군대를 관할하는 軍政官이다. 관위가 낮은 자 가 임명이 되면 監押이라 했다. 路, 州에 각각 설치되었는데 남송에서는 安撫 使가 겸직을 하면서, 兵馬都監이라 했다. 57) 鹽筴은 塩策(염책)이라고도 했는데, 塩은 먹는 사람들을 기록한 대장을 말한 다. 管子 海王, 齊桓公問管仲, 何以爲國, 管仲曰, 海王之國, 謹正塩策 이라 되 어 있다. 308 子)간의 명분을 바로잡지는 않고 다만 재산의 행방만을 물어볼 뿐이다. 이는 근본(本)을 버리고 말단(末)만 추구하는 것이고, 의(義)를 버리고 이(利)만 따지는 것이며, 금전문제만 알고 모자지간에 천륜(天倫)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비천하구나! 무관이 어찌 이것을 알겠는가?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왕씨가 본 관청에 소송했을 당시에, 갑자기 허문통(許文通)이라는 자가 나타 나서 뜬금없이 소송장을 들고 출두해서는 왕씨를 끌어 당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한 명의 도적을 사로잡은 것 같다. 붙잡아 와서 대조하여 진술해 보니, 허문통이라는 자는 바로 허만삼의 생부였다. 진술서와 손에 들고온 소송장은 글씨체가 서로 다른 사람의 것으로, 정당한 이유없이 과부의 집안일에 개입 하고자 한 것이 용서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이다. 그리고 출계(出繼)한 아들 을 위해 소송을 하거나 아들을 부추겨 모친을 공격하게 한 것이 용서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이다. 공리(公理)에 위배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하여 사적인 의도를 행하려 하고, 과부가 법정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에게 압도 당해 입도 제대로 열지 못하는데 자기 집(私家)에서는 오죽했겠는가? (허문 통이) 친아들을 도와서 길러준 양어머니에게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만 든 것도 또한 알 만하다. 본관이 직접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게 되니 참으로 증오감이 든다. 부 모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자식을 부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단 말인 가?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도리가 어떻게 여기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허 문통은 장형80대에 처해야 하지만, 집행은 유예시킨다(封案)58). 만약 이후로 재차 왕씨의 집안일에 간여한다면 즉시 형을 집행하도록 하라. 주(州)에 공 문을 보내고 사람을 파견하여 허만삼 부부와 재산을 감독하거나 차압하고왕 씨와 함께 거주하면서 봉양하도록 하라. 만약 다시 불효를 하여 왕씨를 불안 하게 한다면 반드시 아들과 며느리를 불효의 죄를 논죄할 것이다. 이 판결문 을 관청 문에 게시하라. 주제어: 청명집, 송대, 재판, 關鍵詞: 淸明集, 宋代, 裁判, Key Word: Qingmingji, Sung Dynasty, jury (2009년 9월 10일 원고접수, 9월 12일 심사완료, 10월 24일 게재 확정) 58) 封案은 형의 집행정지 내지는 집행유예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