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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박사학위논문 한원진의심성론연구 년 월 서울대학교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 이해임
한원진의심성론연구 지도교수허남진 이논문을철학박사학위논문으로제출함 년 월 서울대학교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 이해임 이해임의박사학위논문을인준함 년 월 위원장 인 부위원장 인 위 원 인 위 원 인 위 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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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知覺論 한원진의 知覺論에서는 知覺을 四端七情뿐 아니라 意識까지도 포함하 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의식은 동물과 구별되는 虛靈知覺으로 明 德을 실현할 수 있는 바탕이다. 다만 허령지각은 기의 영역에 속하기 때 문에, 이는 동물과 사람이 다를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령지각은 리를 갖추어야만 외물의 자극에 대 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明德]이 된다. 이 장에서 필자는 지각과 명덕을 중심으로 한원진의 지각론을 살펴보 고자 한다. 1. 智와 知覺의 體用 (1) 智와 四端七情 한원진은 智와 知覺을 체용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마음의 知覺 은 七情 밖에 있지 않고, 칠정은 智의 작용 밖에 있지 않습니다. 라고 주 장하는 데서 엿볼 수 있다. 한원진)지각을 논하는 데 이르러서는 지에 부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삼가 훈고해보면 이렇지 않은 듯합니다. 예기 예운 무엇 을 인정이라고 하는가? 희 노 애 구 애 오 욕이다. 칠정은 배우 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칠정 가운데 어떤 경우는 인에서 드러나고 어떤 경우는 의에서 드러나고 어떤 경우는 예에서 드러납니 다. 지각이 희 노 애 구 애 오 욕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의 드 러남입니다. 마음의 지각은 칠정 밖에 있지 않고, 칠정은 지의 작용 밖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즉 지각이 지에 배속되어야 하는 것이 어찌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정자는 지가 지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자 는 또한 매번 지각은 지의 작용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과연 잘못 ( -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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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으로부터 드러난 선한 감정이 아니라 기로부터 나온 감정일반이 다. 다시 말해서 四端이든 七情이든 기로부터 나온 이상 동일한 영역에 있는 것이지 발원처를 理와 氣로 나눌 수 없다. 그리고 四端이든 七情이 든 리에 맞게 드러나야만 인의예지와 같은 덕목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게다가 理가 당연지칙으로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당연지칙이 본 연지성과 같이 스스로 선한 마음[四端]을 산출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원 진은 사단과 칠정을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知覺]이라고 규정하고, 이 지 각작용이 잠재적으로 지로 실현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와 지각을 체용 관계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연 (2) 情統志意의 의미 한원진은 이황과 같이 四端과 七情의 所從來를 각각 理와 氣로 설정하 는 입장을 비판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이가 四端을 純善하다고 말한 것 에 대해서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원진)어떤 사람은 사단은 리에서 드러나고, 칠정은 기에서 드러난 다. 고 여기는데, 이것은 리와 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는 말입 니다. 어류 에서 말한 것은 아마도 주자의 초년설이 아니라면, 필시 기록자의 잘못일 것입니다. 다만 율곡의 이른바 사단은 순선이어서 악이 없다. 는 말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는 듯합니다. ( 103) 여기서 四端은 理에서 드러나고, 七情은 氣에서 드러난다. 고 말한 어 떤 사람 은 바로 秋巒 鄭之雲(1509-1561)이다. 이 구절은 정지운이 權近 (1352-1409)의 天命圖說 을 보고서 개작하여 사단과 칠정을 설명한 것 이다. 이후에 정지운은 자신이 개작한 것에 대해 이황에게 의견을 구하 였고, 이황은 四端은 理가 드러내고, 七情은 氣가 드러내는 것이다. [四,, 示同志說, 或以爲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 是非達理氣之言也 語類所 云 若非 子初年之說 則必是記者之誤也 但栗谷所謂四端純善無惡者 亦恐爲不備也 103) 南塘集 卷29 朱 -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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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知覺과 明德 (1) 동물과 사람의 虛靈知覺 한원진은 마음의 여러 가지 용례를 소개함으로써 동물과 사람의 마음 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한다. 한원진) 어류, 98-43, 모든 동물은 심장을 가지고 있는데, 심장의 안은 모두 텅 비어있다. 가령 닭의 심장이나 돼지의 심장과 같은 것을 절개해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의 심장 또한 그러하다. 고 했습니다. 이 는 마음의 텅 비고 허령함이 사람과 동물 모두 동일하다는 것입니 다. ( 114) 여기서 한원진은 신체기관으로서 마음을 논한다. 마음은 곧 심장이다. 가령 닭이나 돼지의 심장을 절개해보면 공히 그 속이 텅 비어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텅 비어있는 심장은 생명활동을 관장하는 기관이다. 동물이나 사람의 심장은 마치 펌프처럼 온몸의 피를 순환시킨다. 텅 비 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신통하게 활동을 한다. 마음의 허령함이 동물과 사람의 동일성을 확보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의 허령함은 지각작용의 바탕으로서 사람과 동물이 동일하 게 품수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지각은 동물에 비해 빼어난 기를 품 수한 것이다. 한원진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해서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논한다. 한원진)혹자는 인의예지가 지각운동과 판연히 다른 두 가지라고 하 면 사람에게 있는 지각은 인의예지의 작용이 될 수 없고, 동물에게 있 는 지각은 또한 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없으니, 리를 갖고 있다고 하 ( 子言論同異考, 卷1, 心, 張子書門謨錄 曰 凡物有心而其中皆虛 如鷄心猪心之屬 切開可見 人心亦然 此言心之虛靈 人物皆同也 114) 朱 -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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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다. 지각이 생명활동과 관련된 이상, 사람들은 선뜻 목숨을 담보하 기 힘들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해결책으로 분쟁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화를 통한 합의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합의는 합리적인 판단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득과 수긍이 라는 체제가 이면에 깔려있다. 설득과 수긍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을 마음속에서 비워내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제안이 구성원간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제안이 만족 스럽다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인다. 한원진이 인간의 허령함은 동 물과 달리 통하지 않는 바가 없다. 고 말한 까닭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과 같이 욕구하는 존재이지만, 욕구를 실현하는 데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합리적 계산능력이 작용한다. 이 계산능력은 자신뿐 아니 라 다른 사람의 생명활동 또한 고려하는 것이다. 한원진이 볼 때, 이 점 이 바로 동물과 달리 인간이 갖고 있는 지각능력이다. 동물의 지각이 제 한적으로 덕목을 실현하려고도 하지만, 대부분 생존과 관련된 반응능력 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지각은 어떻게든 모든 덕목을 온전하게 실현하 려고 하는 반응능력이다. 한원진은 이 점에 주목함으로써 인간의 지각을 明德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2) 明德과 氣稟 한원진은 이간의 관점을 비판함으로써 명덕에 대한 자신의 입론을 세 워나간다. 이간은 사람만이 陰陽五行의 바르고 통하는 氣를 얻어서 寂然 感通의 묘함과 中和의 德을 갖추었다. 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이는 明 德의 本體이고 聖人과 凡人이 동일하게 얻은 것이다. 고 규정한다. 이간 은 이에 대한 근거로 孔子, 孟子, 朱子의 말을 제시한다. 무릇 하늘이 만물에 명하였는데, (李柬) - 97 - 오직 사람만이 음양오행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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熹竊謂人之所以爲學者 以吾之心未若聖人之心故也 - 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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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에서든 옳음은 현상에 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形勢와 일치 시킬 수도 없다. 즉, 성인의 허령지각은 현실을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안 위를 지키거나 현실의 판세를 읽어서 자신의 이익을 챙김으로써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시키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성인의 허령지각은 비록 기이 지만 손익계산이 아닌 당연지칙[理]을 적용함으로써 덕목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明德]이다. 이어서 한원진은 명덕은 마음의 허령불매함이 衆理를 갖춤으로써 萬 事에 응하는 것이다. 는 자신의 견해를 논증해나간다. (3) 虛靈不昧와 具衆理應萬事 한원진은 진순이 사람이 태어나면서 天地의 理를 얻고, 또한 天地의 氣를 얻어, 理와 氣가 합한 까닭에 虛靈한 것이다. 고 주장한 것을 비판 한다. 비판의 요지는 진순이 마치 리와 기가 허령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 처럼 주장하는 데 있다. 한원진)북계 진씨가 사람이 태어나면서 천지의 리를 얻었고, 허령 한 것이다. 고 말했습니다. 주자가 사람과 동물이 태어남에 반드시 이 리를 얻은 연후에야 건순과 인의예지의 성이 될 수 있고, 반드시 이 기를 얻은 연후에야 혼백과 오장백해가 될 수 있다. [이는]주돈이 가 무극지진과 이오지정이 묘하게 합하여 응취되었다. 고 말한 것이 다. 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개 성은 리에서 품수한 것이고 형은 기 에서 품수한 것이니 두 가지는 혼합하여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일 뿐이지 [리기의]선후이합의 뜻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북계 진씨의 말은 비록 이에 근거하고 있지만 실제로 주자의 뜻을 알지는 못했습 니다. 진순이 이미 리를 얻었고, 또한 기를 얻어서 합하여 허령을 이 ( 126) 127) 北 字義, 3-1, 大抵人得天地之理爲性 得天地之氣爲體 理與氣合 方成箇心有箇虛 靈 大 或, 經文,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 有以爲魂魄 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126) 溪 127) 學 問 五 - 104 -
루었다. 고 말한 것이 어찌 허령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는 리와 기가 합해지지 않다가 이 허령이 이루어지는 데 이르러야 리와 기가 비로 소 합해진다는 것과 유사하지 않겠습니까? 설령 실제 견해가 이와 같 은 데 이르지 않았더라도 끝내 말의 병통입니다. 128) 여기서 한원진은 진순의 주장에 대해 주자와 周敦頤(1017-1073)의 말 에 근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진순이 근거로 삼은 이 구절의 의 미를 풀어줌으로써 리와 기는 先後離合의 뜻이 없다는 것을 밝혀준다. 주자가 리를 얻은 연후에야 건순과 인의예지의 성이 될 수 있고, 반드 시 이 기를 얻은 연후에야 魂魄과 五臟百骸가 될 수 있다. 고 말한 것을 보면, 주자가 리와 기를 선후이합의 구도로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런데 주자 자신의 말이 주돈이가 無極之眞과 二五之精이 묘하게 합 하여 응취되었다. 고 주장한 것과 같은 뜻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주자는 현상세계를 넘어서 존재하는 리와 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상세계 는 리와 기의 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한원진은, 진순의 주장이 주자의 말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 본지 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또한 이 비판은 진순이 허령을 정의한 것에 대해 그대로 적용된다. 한 원진은 진순의 허령에 대한 정의가 리와 기는 허령과 별개로 존재하다 가, 허령이 이루어지는 데 이르러서야 비로소 리와 기가 합해진다. 는 식 의 논리를 갖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한원진이 진순에 대해 비판한 것을 보면, 한원진은 虛靈은 理와 氣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고 주장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어지는 논의 에서 그는 오히려 진순이 허령은 리와 기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고 정의한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經義記聞錄, 卷1, 大學, 北溪陳氏曰 人生得天地之理 (止) 所以虛靈 朱子曰 人物 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 子所謂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者也 此蓋謂性稟於理 形稟於氣 而二者混合 不可分 開云爾 非有先後離合之意也 北溪之說 雖本於此 而實不識朱子之意 其曰 旣得理 又 得氣 而合而成虛靈云者 豈不似乎虛靈未成之前 理氣不得合 而到此虛靈之成 理氣方始 合耶 雖使實見不至如此 終是爲語病 128) -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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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란 글자의 의미만을 설명한 것이니, 어찌 명덕의 뜻을 설명한 것 이 이미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133) 여기서 한원진은 주자가 허령불매 네 글자만으로 명덕의 뜻을 설명하 는 것은 이미 충분하다. 고 말한 것에 입각해보면, 황간은 허령불매를 단 지 명에 대한 풀이로만 이해한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어서 한원 진은 주자가 다시 구중리응만사를 말한 것은 그 가운데 체용을 포괄하 고 있다. 고 말한 것의 의미를 풀어낸다. 한원진은 허령불매는 명덕을 설명한 부분이고, 구중리응만사는 허령에 나아가 본체와 작용을 나누어 말한 것이다. 고 주장한다. 이는 주자의 말 에 대한 부연설명으로 특별한 의미가 없다. 한원진)대개 허령불매는 명덕을 설명한 부분이고, 구중리응만사는 허 령에 나아가 본체와 작용을 나누어 말한 것입니다. 말은 비록 상세함 을 더했지만 의미는 실제 더한 바가 없습니다. 허령불매는 마음이고, 구중리응만사는 성정입니다. 마음이라고 말하면 그 가운데 성과 정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어찌 마음은 덕이 아니고 성과 정은 명이 아니라 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주자가 허령불매를 가지고 명덕을 설명 한 뜻이 충분하다고 말한 것은 본래 성과 정을 포괄하는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만약 성과 정의 덕을 버리고 허령한 기의 부분만을 가리켜 서 명덕이라고 말하면 또한 주자의 뜻이 아닙니다. 근세 명덕을 설명 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대략 변론하면서 이를 언급했습니다. ( 134) 四 大全, 大學-經文, 小註: 只虛靈不昧四字 說明德意已足矣 更說具衆理應萬事 包體用在其中 又却實而不爲虛 其言的確渾圓 無可破綻處 133) 經義記聞錄, 卷1, 大學, 黃氏曰 虛靈不昧 明也 具衆理應萬事 德也 此說分析太 甚反成病 朱子曰 只虛靈不昧四字 說明德意已足 更說具衆理應萬事 包體用在其中 若 如黃說 則虛靈不昧四字 只說得明字意 安得言說明德意已足乎 134) 經義記聞錄, 卷1, 大學, 蓋虛靈不昧 便說明德體段 具衆理應萬事 是就虛靈上分說 體用 語雖加詳 意實無所加矣 虛靈不昧是心 具衆理應萬事 是性情 纔說心 便包性情 在其中矣 豈可曰心非德而性情非明乎 且朱子以虛靈不昧爲說明德意足者 本以包性情爲言 也 若捨性情之德 偏指虛靈底氣圈子而謂明德 則亦非朱子之指矣 近世說明德者 多如 此 故略辨及之 132) 書 - 107 -
여기서 한원진은 허령불매는 마음[심]이고, 구중리응만사는 성정이다. 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마음이라고 말하면 그 가운데 성정을 포괄하 고 있다. 고 주장한다. 한원진의 주장에 입각해보면, 기로서 마음이 성정을 포괄하고 있다면 성정 또한 기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한원진은 성과 정의 덕을 버리고 허령한 기의 부분만을 가리 켜서 명덕이라고 말하면 또한 주자의 뜻이 아니다. 고 주장한다. 이 말에 근거해보면, 한원진은 선한 반응의 가능성을 마음속의 성정에 서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정이 선한 반응의 가능성이라면, 성정은 허령한 마음과 별개로 존재하는 도덕지각의 반응체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허령한 마음은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해 기필 선한 반응을 산출할 수 없지만, 성은 이와 달리 선한 반응을 산출할 수 있는 본원으 로서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한원진 또한 이 같은 맹점을 인식한 탓인지, 自註를 통해서 자신의 입 장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는 주자가 성과 정을 포괄한다고 말하지 않고 본체와 작용을 포괄한다. 고 말한 까닭을 설명한다., 自註)주자는 성과 정을 포괄한다고 말하지 않고 본체와 작용 을 포괄한다. 고 말한 것은 만약 성과 정을 포괄한다고 말한다면 명덕 을 하나의 것으로, 성과 정을 하나의 것으로 여기는 것과 같고, 이것 을 가지고 저것을 포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체와 작용을 포괄한다고 말하면 본체는 명덕의 본체이고 작용은 명덕의 작용입니 다. 명덕과 성정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만 두 가지 것이 서로 포괄한 다는 혐의가 없어질 것입니다. 대개 마음은 기입니다. 그러므로 성정 과 대비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덕은 심통성정입니다. 그러 므로 다시 성정과 대비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다만 허령불매 를 명덕이라고 여기고 구중리응만사를 명덕이 포괄하는 바로 여기니, (이는)명덕을 허령한 기라고 아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말은 아마도 석씨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보건대, 훈고의 형식 (韓元震 - 108 -
인 축자역에 준해보면 황씨의 설명 또한 폐기할 수 없습니다. 135) 여기서 한원진은 明德이 性과 情을 포괄한다. 고 말하면 명덕 외에 성 정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오인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명덕 외에 성정이 따로 존재한다면, 인간의 반응체계는 두 가지로 나 뉜다. 가령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성에 근거해서 드러난다고 할 수도 있고, 명덕이 성에 근거해서 드러난 반응에 대해서 간여한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구도는 한원진의 주장처럼 명덕을 하나의 것으로 성정을 하나의 것으로 여기는 것과 같고,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포괄하는 것과 같다. 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원진은 본체는 명덕의 본체이고, 작 용은 명덕의 작용이다. 고 규정함으로써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체계를 명 덕이라는 하나의 용어로 수렴한다. 비록 한원진은 명덕이라는 단일한 반응체계를 설정했지만, 마음이 곧 장 도덕적 지각반응까지 산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기 라고 한다면 감각적 지각반응은 자연스럽게 드러나지만, 도덕적 지각반 응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때 마음은 성정과 대비된다. 선한 반응은 리를 구비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리를 구비한 마음은 명덕으로 인간의 모든 반응을 통섭하게 되는 것이다. 한원진은 분명 기로서의 마음과 리를 구비한 마음을 구별한다. 이 같 은 구도는 명덕을 허령불매와 구중리응만사로 규정하는 데서 잘 드러난 다. 한원진은, 혹자가 허령불매는 명덕이고, 구중리응만사는 명덕이 포괄 하는 것이다. 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한원진이 볼 때, 허령불매는 마음의 지각반응으로서 도덕적 반응을 기 대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적절함을 얻 經義記聞錄, 卷1, 大學, 自註: 朱子不曰包性情 而曰包體用者 若謂之包性情 則似以 明德爲一物 性情爲一物 以此包彼也 故曰包體用 則體是明德之體 用是明德之用 明德 性情方見其爲一物 而無二物相包之嫌矣 蓋心則氣也 故可與性情對言 而明德則心統性情 之名也 故不可復與性情對言矣 或者只以虛靈不昧爲明德 而以具衆理應萬事爲明德所包 則其認明德不過是靈覺之氣而已 其說殆無辨於釋氏之見矣 更按 以訓詁之體逐字釋義者例 之 則黃氏之說 亦不可廢矣 135) - 109 -
을 수 있는 기준[衆理]을 갖추어야만 한다. 마음이 허령불매하다고 해서 곧장 도덕적 지각반응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한원진은 허령불매만으로 도덕적 지각반응을 확보하려고 한다면 명덕은 기의 차원에 머물게 된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한원진은 명덕을 기의 차원으로 추락시킨 사람들에 비하면 황 간이 좀 더 명덕을 잘 정의했다고 두둔해준다. 황간은 비록 명덕을 명과 덕으로 구별해서 정의하지만, 명을 감각적 지각반응의 차원으로 설명함 으로써 도덕적 지각반응의 근거를 덕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원진은 허령불매와 구중리응만사라는 두 구절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명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원진 은 허령불매와 구중리응만사를 별개의 것으로 구별함으로써 주희와 입장 을 달리한다. 주희는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로 허령불매하여 중리를 갖추 고 있고 만사에 응한다. 고 말한다. 이 말에 의거해보면, 주희는 사람이 본래부터 갖추고 태어난 도덕지각 을 明德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도 인간은 스스로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이 능력은 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힘 으로써 명덕을 기의 차원으로 떨어뜨리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한원진은 허령불매와 구중리응만사를 감각적 지각반응으로 부터 도덕적 지각반응으로까지 실현해나가는 구도로 해석한다. 허령불매 는 도덕적 지각반응이 아니다. 그렇다면 허령불매는 감각적 차원이거나,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더라도 손익계산 정도의 차원에 머물게 된다. 애초에 한원진은 인간을 도덕적 지각반응을 산출할 만한 능력을 갖고 태 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원진이 논한 명덕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규범에 의해서 실현되는 도덕 적 지각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136) 大 章句, 經文-1章, 集註, 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 136) 學 也 - 110 -
Ⅴ. 修養論 한원진의 수양론에서는 미발이든 이발이든 禮樂으로써 경계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이는 수양법에서 未發涵養과 已發省察의 구도를 전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발이든 이발이든 마음은 언제나 깨어있는 상태[敬] 를 유지함으로써 人欲이 天理를 압도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원진의 수양론은 未發과 已發의 구분보다 天理와 人欲의 대결[克己復禮]을 중심으로 窮理-存養-力行의 이론 체계를 확립 해나간다. 1. 克己復禮의 수양 체계 (1) 未發의 戒懼와 已發의 愼獨 한원진은 戒懼 愼獨의 수양법을 靜 動의 차원으로 설명한다. 이는 주희의 구도를 차용한 것이지만, 실제 내용은 주희의 수양법과 궤를 달 리한다. 주 계신 부분은 마땅히 나누어 두 가지 일로 삼아야 합니다. 中 庸 首章 보지 않는 바에도 계신하고, 듣지 않는 바에도 공구한다. 라고 한 것은 禮記 曲禮上 소리가 없는 데서 듣고, 드러나지 않 는 데서 본다. 고 말한 것과 같다. (계신공구는)아직 그러하지 않은 것 에 대해서 방지함으로써 본체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신독은 장차 그러할 것에 대해서 살핌으로써 그 기미를 살피는 것이다. ( 희) 137) 여기서 주희는 계신공구와 신독을 두 가지 공부로 분류한다. 138) 그는 語類, 62:92, 戒愼 一節 當分爲兩事 戒愼不睹 恐懼不聞 如言 聽於無聲 視於 無 是防之於未然 以全其體 愼獨 是察之於將然 以審其幾 端蒙(50이후) 中庸, 首章,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賭 恐懼乎 137) 形 138) - 111 -
禮記 曲禮 를 인용함으로써 계신공구의 의미를 설명한다. 인용문에서 는 자식이 부모에게 마땅히 행해야만 하는 덕목과 관련된 논의를 하고 있다. 가령 소리가 없는 데서 듣다. 고 말한 것은 자식이라면 부모가 돌아가 셔서 직접 음성을 들을 수 없더라도 부모의 가르침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데서 본다. 고 말한 것은 부모가 돌아가셔 서 직접 뵙지 못하더라도 부모의 가르침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주희는 이를 인간의 도덕수양에 적용해서 다시 설명한다. 禮記 曲 禮上 에서 논의한 것처럼 부모가 돌아가셨더라도, 부모의 가르침이 삶의 지침으로서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듯이, 주희는 계신공구에 대해 본체를 온전하게 하는 수양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단서는 외부대상과 접하기 이전의 내 마음이다. 그리고 내 마음의 본체는 수양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즉, 본체가 외부대상과 접하 지 않았을 때 이미 선한 본성으로 주어져 있어야만 이를 방비할 수 있 다. 그런데 본체가 선도 악도 아니라면, 굳이 외부대상과 접하기 전에 이 를 방비해야 할 이유가 없다. 본체가 선악의 가능성이라면, 주희는 오히 려 대상과 접한 이후에 드러난 반응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논 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주희는 대상과 접한 이후의 수양법으로 신독을 제시한다. 그는 신독에 대해 기미를 살피는 수양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단서는 외부대상과 접한 이후에 드러나는 내 마음의 반응이 다. 그렇다면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한 내 마음의 반응은 기필 선한 것이 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마음의 반응이 기필 선한 것이라면 굳이 그 반응 을 살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반응이 선하다면 주희는 굳 이 그 반응이 선인지 악인지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잘 보 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139) 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 139) 禮記集解, 曲禮上, 聽於無聲 視於無形 孔註, 孔氏曰 謂雖不聞父母之聲 不見父母 之形 然想像視聽 似見形聞聲 而將有敎使已然也 - 112 -
이에 의거해보면, 주희는 본성을 실현하는 두 가지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하나는 본체에 근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본체, 즉 본성에 근거한 수양법은 외부대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 다. 이에 반해, 마음의 반응에 근거한 수양법은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것으로, 이 반응의 선악여부를 판정할 만한 기준 을 필요로 한다. 이 기준 자체는 본성으로 이미 주어져 있다고 말할 수 도 있지만, 이는 마음의 주관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객관성을 도외시할 수 있다.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서, 주희가 미발과 이발의 수양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류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주희는 存養이 靜 공부이고, 省察이 動 공부이다. 고 정의한다. 이는 보지 않고 듣지 않는 데 삼간다[戒愼恐 懼] 고 말한 것, 그리고 기미가 드러난 데 살핀다[愼獨] 고 말한 것과 일 맥상통한다. 주 존양은 정 공부이다. 정시가 중이니, [이는]과불급이 없고 치우 치고 기욺이 없기 때문이다. 성찰은 동 공부이다. 동시가 화이니, [이 는]생각해서 하려함이 있자마자 동한 것으로 드러나서 절도에 맞아 어그러짐이 없으므로 바로 화이다. 정시에 사려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지각이 어둡지 않은 것은 바로 복괘의 이른바 천지지심을 본다. 고 말 한 것으로 정 가운데 동이다. 동시에 드러나서 모두 절도에 맞고 그 법도에 머무는 것은 바로 간괘의 그 몸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을 보 지 못한다. 고 말한 것으로 동 가운데 정이다. 궁리독서가 모두 동 가 운데 공부이다. ( 희) 140) 여기서 주희는 靜한 때는 中이므로 過不及이나 偏倚가 없다. 고 주장 한다. 이어서 그는 動한 때는 和이므로 드러나서 절도에 맞아 어그러짐 이 없다. 고 주장한다. 語類, 62:148, 存養是靜工夫. 靜時是中, 以其無過不及, 無所偏倚也. 省察是動工夫. 動 時是和. 才有思爲, 便是動. 發而中節無所乖戾, 乃和也. 其靜時, 思慮未萌, 知覺不昧, 乃復所 謂 見天地之心, 靜中之動也. 其動時, 發皆中節, 止於其則, 乃艮之 不獲其身, 不見其人, 動 中之靜也. 窮理讀書, 皆是動中工夫. 祖道(68세) 140) - 113 -
이는 정 공부가 희노애락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때에 하는 것으로 본 성을 존양하는 것을 나타내고, 동 공부가 희노애락이 드러난 때에 하는 것으로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절도에 맞게 성찰하는 것을 뜻한 다. 이어서 주희는 정한 때와 동한 때를 각각 復卦와 艮卦로 재차 설명한 다. 정한 때는 복괘로, 사려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각이 어둡지 않 은 것을 나타낸다. 동한 때는 간괘로, 사려가 드러났지만 모두 절도에 맞 는 것을 나타낸다. 정한 때의 공부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도덕지각을 잘 보존하는 것이다. 동한 때의 공부는 도덕지각이 절도에 맞게 드러날 수 있도록 살피는 것 이다. 즉, 주희는 미발과 이발의 공부를 존양과 성찰로 구별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원진은 미발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논 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원진은 미발에 관한 두 가지 정의를 비판한 다. 한원진)대개 미발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어둑히 지각이 없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면 어둑히 지각이 없는 것은 혼기가 일을 꾸미는 것 으로 미발이라고 이를 수 없다. 지각하는 바가 있는 것을 미발이라고 한다면 지각하는 바가 있는 것은 이미 사려에 들어간 것으로 또한 미 발이라고 이를 수 없다. 그렇다면 지극히 허하고 지극히 정한 가운데 지각할 수만 있고 지각하는 바의 일이 없는 것이 바로 미발이다. 지극 히 허하고 지극히 정한 것은 순수한 곤괘의 상이고,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곧 순수한 곤괘는 양이 없을 수 없는 상이다. 만약 복괘 의 일양이 이미 동하여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의 단예를 볼 수 있 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 바로 일념이 싹트는 상이 되니, 비록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미 마음에서 동한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미발의 상으로 여길 수 있겠는가? ( 141) 經義記聞錄, 中庸, 盖未發當作如何求 以冥然無覺爲未發 則冥然無覺是昏氣用事 不 可謂未發也 以有所知覺爲未發 則有所知覺已涉思慮 亦不可謂未發也 然則至虛至靜之 中 但有能知能覺者在 而無所知所覺之事 此一番時節政爲未發也 至虛至靜 乃純坤之 象 而能知能覺者在 卽純坤不爲無陽之象也 若復之一陽已動 而天地生物之心 端倪可見 141) - 114 -
여기서 한원진은 未發은 어둑히 知覺이 없는 것이다. 고 정의하는 것을 비 판한다. 이어서 그는 어둑히 지각이 없다면, 이는 昏氣가 작용하게 되는 것 으로 미발이라고 할 수 없다. 고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한원진은 미발은 지 각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고 정의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지각의 대상이 있다면, 이는 사려가 이미 작용한 것으로 미발이라고 할 수 없다. 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 논의에 입각해보면, 미발에는 지각이 존재할 뿐 아니라 혼기가 아직 외 부대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지 않은 상태로 있는 것이다. 즉, 미발은 외부대상 의 자극으로부터 반응할 수 있는 지각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외부대상 으로부터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원진은 미발의 상태를 周易 의 卦로 풀어보자면, 未發은 復卦보다 오히 려 坤卦와 더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볼 때, 곤괘는 純陰으로 구 성되어있지만, 그 속에서도 여전히 변화의 움직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원진은 一陽을 이미 갖고 있는 복괘로 미발을 설명하는 것은 이치 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복괘는 미발이 아니라 이발을 나타내는 것 이다. 분명히 한원진은 미발에 관해서 주희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가령 주희 가 말한 복괘의 天地之心은 仁을 상징한다. 그리고 인은 복괘 가운데 존재하 는 일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발의 존양은 본성에 근거한 공부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원진은 미발에는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각능력은 외부대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아야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 고 지각능력이 곧장 본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 서 미발의 지각은 본성보다 기질의 청탁수박과 짝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한원진이 미발의 존양을 주장했다고 하더라도, 그 공부가 주희와 동일한 의 미를 갖는다고 보기 힘들다.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서, 한원진이 미발과 이발의 공부를 어떻게 정의하고 者 在人心卽爲一念初萌之象 雖未著於外 盖已動於中矣 安得以是爲未發之象也 - 115 -
있는지에 관해 살펴보겠다. 그는 주희와 같이 靜 動을 未發 已發로 나눔으 로써 각각의 시점에서 해야 하는 공부를 存養과 省察로 구별한다. 한원진) 계구 일절은 마땅히 동정을 통틀어서 보아야 하고, 또한 오 로지 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장구,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외 를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고 한 것은 동정을 통틀어서 말한 것이다. 비록 장구, 보지 않고 듣지 않지만, 또한 감히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이다. 고 한 것은 오로지 정으로 말한 것이다. 동정을 통틀어서 보자면 신독은 전체 계구 가운데 나아가 핵심적인 공부를 말한 것이다. 오로 지 정으로 보자면 계구와 신독은 서로 상대로 동과 정의 공부가 된다. 그러므로 장구, 군자는 항상 계구할 뿐 아니라 이에 더욱 삼감을 더하는 것이다. 고 말한 것은 계구가 신독을 포함하는 것으로 말한 것 이다. 장구, 계구로부터 요약하고 신독으로부터 정밀하게 해서 존 양 성찰하는 것이다. 고 말한 것은 계구와 신독이 상대하는 것으로 말한 것이다. ( 142) 여기서 한원진은 계신공구에 관한 논의는 동정을 통틀어서 보아야 하 고, 또한 오로지 정으로만 보아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한원진은 중용장구 수장 집주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외를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지 않고 듣지 않지만, 또한 감히 소홀히 하 지 않는 것이다. 고 말한 것을 제시한다. 한원진이 근거로 제시한 구 절은 모두 주희의 말이다. 그렇다면 한원진은 사실 주희의 입장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 는 의문이 생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한원진이 주희의 말을 차용하 143) 144) 經義記聞錄, 中庸, 戒懼一節 當通動靜看 又當專以靜看 故章句君子之心 常存敬 畏 通動靜言 雖不見聞 亦不敢忽 專以靜言 通動靜看 則愼獨就統體戒懼中 言其切要 工夫 專以靜看 則戒懼愼獨相對爲動靜工夫 故章句君子旣常戒懼 而於此尤加謹者 以戒 懼包愼獨而言 自戒懼而約之 自愼獨而精之 存養省察云者 以戒懼愼獨相對而言也 143) 中庸, 首章, 集註, 是以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所以存天理之本 然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 144) 中庸, 首章, 集註, 幽暗之中 細微之事 跡雖未形 而幾則已動 人雖不知 而己獨知 之 則是天下之事 無有著見明顯而過於此者 是以君子旣常戒懼 而於此尤加謹焉 142) -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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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지는 것이 없게 하면 마음의 바탕이 확립되고 근본이 더욱 두 터워진다. 이른바 역행은 부자 관계에서는 마땅히 친함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군신 관계에서는 마땅히 의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고, 부부 관 계에서는 반드시 분별을 다해야 하는 것이고, 붕우 관계에서는 반드시 신의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 말을 하거나 한 가지 일을 하는 데 이르러서는 천리에 따라서 인욕을 끊어버리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 은 바름을 다하고 몸은 닦음을 다하게 되어서 성인과 교화를 함께할 수 있고 천지와 덕을 합할 수 있다. 145) 여기서 한원진은 窮理를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는 것이다. 고 정의한다. 그리고 事와 物은, 가령 내가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내가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 것은 事, 즉 구체적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태 속에서 마땅히 실현해야만 하는 信義는 理, 즉 추상적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도식에 입각해보면, 그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는 것 은 친구 사이의 신의를 실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한원진은 物에 있는 이치는 각각 그 지극한 데까 지 이르지 않는 것이 없고, 나에게 있는 知覺은 또한 그 이르는 바에 따 라서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이라고 단서를 붙인다. 이 논의에 의거해보 면, 친구 사이의 信義라는 덕목이 실현되는 데 중요한 요소는 知覺이다. 그리고 신의, 즉 추상적 덕목은 내가 갖고 있는 知覺이 도덕적 지각반응 으로까지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한원진이 知覺 자체를 도덕적 지각반응이라고 여겼다면, 이 지 146), 示同志說, 其所以治之者 不過曰 理存養力行三者而已矣 所謂竆理者 卽事 卽 至其理 使其理之在物者 無不各詣其極 而知之在我者 亦無不隨其所詣而極焉 則其於天理人慾之分 無不瞭然而知所趍舍矣 所謂存養者 戒愼恐懼乎不睹不聞 常令此心 烱然而無少昏昧 寂然而無所偏倚 則中體立而根本深厚矣 所謂力行者 在父子則當盡其 親 在君臣則當盡其義 處夫婦則必極其別 處朋友則必極其信 至於一言之發一事之爲 無 不循天理而絶人慾 則其心極其正 其身極其修 而可以與聖人同其化 與天地合其德矣 146) 示同志說 에서 한원진은 窮理를 事에 나아가고 物에 나아가 그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 는 것이다 라고 풀이한다. 그리고 궁리의 목적은 역행을 하는 데 있다. 또한 역행은 인륜 관계 속에서 드러난 지각작용을 덕목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145) 南塘集 物 竆 - 119 -
각에 대해서 그 이르는 바에 따라서 다하지 않음이 없다. 라는 식의 표 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르는 바에 따라서 는 지각이 외부대 상으로부터 자극을 받는 상황을 나타낸다. 그리고 다하지 않음이 없다 는 외부대상의 자극으로부터 드러낸 지각반응을 이치에 부합하도록 만든 다는 것을 뜻한다.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知覺은 통상 好惡의 반응으로 압축된다. 호오는 好善惡惡과 같은 도덕적 지각반응이 아니라 선악의 가능성으로서 마음의 지각작용이다. 이 때문에 마음의 지각작용은 규범과 같은 기준으 로써 적절함을 획득해야만 도덕적 반응을 산출할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논의에 의거해보자면, 窮理는 결국 知覺이 도덕적 지각반응으 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확립되면, 한원진이 말한 대로 天理와 人欲의 분별이 환해져서 지향하고 버려야 할 바를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원진은 수양법의 순서로 궁리 이후에 存養을 언급한다. 한원진은 存養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조심하고 두려워하 는 것이다. 고 정의한다. 이는 未發의 工夫로 戒愼恐懼이다. 한원진은 계 신공구에 대한 정의와 함께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즉, 그는 마음으로 하여금 항상 환희 밝게 하여서 조금도 혼매함이 없게 하고 적연하게 치 우치거나 기울어지는 것이 없게 하는 것이다. 고 부연한다. 여기서 마음 으로 하여금 항상 환희 밝게 하다. 고 말한 것은 지각작용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마음은 이미 窮理를 통해서 규범을 확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 규범이 지각반응의 준칙으로서 역할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지각이 외부대상의 자 극으로부터 반응을 산출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나와 친구가 되려고 하는데, 이 사람에 대해서 내가 제 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知覺은 아무런 반응을 산출하지 못하게 된다. 147) 經義記文錄, 篇題, 第八章, 此章之指與孟子四端章禮經樂記之說同, 而其意尤密. 親愛 哀矜惻隱之心, 仁之端也; 賤惡敖惰羞惡之心, 義之端也; 畏敬恭敬之心, 禮之端也; 好而知其 惡惡而知其美是非之心, 智之端也. 親愛哀矜畏敬知其美, 屬好; 賤惡敖惰知其惡, 屬惡. 好惡統 四端, 而好者仁之發, 惡者義之發, 則仁義所以分統人性也. 好惡又統於知, 則智之所以又專一 心之德也, 聖賢傳受灼可見矣. 147) - 120 -
또한 나 자신이 상대방에 대해서 어떤 편견이 있다면 그 사람과 信義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설령 내 마음속에 도덕규범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다. 이 때문에 한원진은 存養 공부의 출발점을 지각이 환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태로부터 인간은 도덕적 실천 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원진은 窮理, 存養 이후에 力行을 언급한다. 한원진은 力行에 대해서 父子 관계에서는 친함을 다해야만 하고, 君臣 관계에서는 의리를 다해야 만 하고, 夫婦 관계에서는 분별을 다해야만 하고, 朋友 관계에서는 신의 를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 주장한다. 이에 의거해보자면, 力行은 인륜 관계 속에서 도덕적 실천을 하는 것 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논의는 유학자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아 무런 특색이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논의를 곱씹어보면,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力行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에 대해 엿볼 수 있다. 한원진은 한 마디 말을 하거나 한 가지 일을 하는 데 이르러서는 天理에 따라서 人欲을 끊어버 려야 한다. 고 주장한다. 가령 군주와 신하는 수직적 신분 관계이다. 군주는 신하에게 높은 벼 슬을 내리거나, 아니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유배를 보낼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 이 권력은 왕족이라는 혈통적 조건 속에서 물려받은 심판권이다. 군주는 심판권을 가짐으로써 모든 권력뿐만 아니라 도덕 위 에도 군림할 수 있는 절대자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는 군주의 好 惡가 바로 是非가 될 수 있는 모순적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好惡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나타낸다. 욕망은 감각지각과 관련 된 것으로 좋아하는 것은 취하려고 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려고 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도식을 군주의 욕망에 적용해보면, 그것은 자 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존재를 제거해버리려는 폭력성으로 나타날 것 이다. 군주는 자신의 욕망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도덕과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군주는 자신의 욕망을 天理, 즉 규범으로 끊어낼 수 있는 결단을 - 121 -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결단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力行이 다. 이에 입각해보면,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도덕적 실천은 인간의 욕망 을 천리로써 끊어내는 데 달려있는 것이다. 이 같은 논의는 미발의 본성 을 함양함으로써 도덕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것과 상반된 구조를 갖고 있 다. 가령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天理, 즉 도덕규범이 갖추어져 있지 않 다면, 설령 未發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도덕적 실천을 위한 동인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한원진은 미발 공부에 앞서 궁리를 논하고 있다. 또한 이 궁리는 내 마음을 인욕으로부터 보존하는 기반을 확립하는 것으로 도 덕적 실천을 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결국 한원진의 수양론은 자신의 사욕을 극복해서 예로 돌아가는 克己復禮 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원진은 왕에게 경연을 하면서, 도덕적 실천을 天理와 人欲의 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한원진)신은, 제왕이 정치를 하는 것은 반드시 도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른바 도는 이상하고 별다른 것이 아니라 다만 천명과 인심의 본연지리이며, 일용과 사물의 당연지칙입니다. 그 원천 은 하늘로부터 나왔고, 그 본체는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며, 그 작용은 일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존하여 본성을 기르고 감정을 단 속한다면 도는 곧 자신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두 이 마음 과 본성을 가지고 있고 도가 본래 자기에게 있는데도, 이 도를 간직한 사람이 적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단지 인욕이 그 사이에 끼었기 때문 입니다. 천리와 인욕은 번갈아가면서 승부를 내게 되어있습니다. 한 푼의 인욕이 자라면 한 푼의 천리가 소멸되고, 열 푼의 인욕이 자라면 열 푼의 천리가 소멸됩니다. 그 형세는 양립될 수 없습니다. 이 때문 에 성황과 명왕이 정치를 하는 것, 성현과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반드시 모두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천리를 회복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 148),, 經筵說-上, 臣聞帝王爲治 必本於道 所謂道者 非是異常別件物事也 148) 南塘集 卷5-122 -
여기서 한원진은 제왕이 정치를 하는 것은 반드시 道에 근본을 두어 야 한다. 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道는 천명과 인심의 本然之理이고, 일용과 사물의 當然之則이다. 고 역설한다. 또한 그는 道는 하늘로부터 나와서 마음에 갖추어져 있으며, 그 작용은 일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고 주장한다. 한원진의 논의에 의거해보면, 군주가 올바른 정치를 하려면 도에 근본 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는 하늘로부터 군주에게 주어진 本然 之理이다. 또한 이 本然之理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일들의 當然之 則이다. 따라서 군주가 도덕적 존재가 되려고 한다면 道, 즉 當然之則에 입각해서 통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道가 當然之則이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의 법칙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다. 다만 법칙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강요하지 않는다. 법칙은 아무런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설령 道가 마음속에 존재한다고 하더 라도 道가 과연 인간을 도덕적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 와 같은 의 문이 발생한다. 가령 누구나 거짓말 하지 말라 와 같은 當然之則을 알고 있다. 그렇지 만 누구나 이 법칙을 준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道가 일상과 관련된 사태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 지신의 마음속에 있는 본성 에 집중함으로써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道의 실현은 외부대상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외부대상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내 가 마땅히 실현해야만 하는 규범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만 道의 실현 이 가능하다. 한원진은 이 같은 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道가 본래 자기에게 있는데도, 이 도를 간직한 사람이 적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한원진 자신 只是天命人心本然之理 日用事物當然之則 其源出於天 而其體具於心 其用著於事 存其 心以養其性約其情 則道可得於己矣 人皆有是心是性 道本在我 而能有是道者寡焉何哉 只以人欲間之故也 天理人欲 迭爲勝負 一分人欲長 則一分天理消 十分人欲長 則十分 天理消 其勢不容兩立 是以聖帝明王之爲治 聖賢君子之爲學 必皆以克去己私 復其天理 爲宗 - 123 -
또한 규범 자체가 인간의 본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 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마음속에 도덕규범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人欲 이 그 사이에 끼어들게 되면 마음속에 존재하는 규범이 사라진다고 말한 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한원진은 天理와 人欲의 싸움으로 표현한다. 가령 그가 한 푼의 人欲이 자라면 한 푼의 天理가 소멸된다. 고 말한 것 이 天理와 人欲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도덕적 선택의 갈등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덕적 선택의 갈등을 겪고 있다면, 이는 그 사람이 최소한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물 론 어떤 사람은 도덕적 갈등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자신 의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마주친 상 황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만 하는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할 수 없다. 도덕적 선택의 갈등 상황이든 욕망에만 충실한 경우이든 모 두 私欲을 극복함으로써 天理[當然之則]을 회복해야만 한다.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서 보면, 한원진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 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窮理와 致知를 하지 못한다면 天理와 人 欲의 분간을 변별하지 못하게 된다. 고 주장한다. 또한 한원진은 뜻을 독 실하게 하지 못하고 힘써 행하지 못하면 人欲을 제거하여 天理를 회복할 수 없다. 고 역설한다. 이 같은 주장을 통해서 볼 때, 한원진은 결국 窮 理와 力行이 克己復禮의 大法이다. 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한 것이다. 한원진)그렇지만 궁리와 치지를 하지 못한다면 천리와 인욕의 분간을 변별하지 못하게 되어 도적을 자식으로 착각하고 철을 금으로 착각하 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고, 뜻을 독실하게 하지 못하고 힘써 행하지 못 한다면 또한 진정으로 인욕을 제거하여 천리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궁리와 역행이 극기복례의 대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경 을 간직하지 못하면 사려가 전도되고 지기가 어둡고 나태하여져서, 또 한 궁리와 역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옛사람이 경이라는 한 글 ( - 124 -
자를 가지고 성학의 시종의 요체로 삼은 까닭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 과 우임금이 서로 도통을 전하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미하 니, 오로지 정밀히 하고 오로지 전일하게 하여 진실로 중을 잡는다고 하셨고, 공자는 안연에게 하루라도 극기복례하여 인을 하면 천하가 인 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대순의 인심과 공자의 기는 곧 인욕이 며, 대순의 도심과 공자의 예는 곧 천리이며, 유정과 예이고 예 아닌 줄을 아는 것은 궁리의 일이며, 유일과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 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은 역행의 일이며, 윤집궐중과 천하귀인 은 곧 사욕이 모두 사라지고 천리가 유행하여, 일마다 이치에 합당하 며 사람마다 함께 하지 아니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이 곧 학문 의 지극한 공효요, 성인의 능사입니다. 149) 여기서 한원진은 窮理와 致知를 하지 못한다면 도적을 자식으로 착각 하고 철을 금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고 주장한다. 이 비유 에 의거해서 궁리와 치지의 의미를 따져보면, 한원진이 논한 궁리는 판 단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지는 이 기준에 의거해서 외부 대상으로부터 발생한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도적과 자식을 분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누군가는 코 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식이 범죄를 저지른 상황을 가정해보 면, 부모가 도적과 자식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 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적인 감정이 天理[규범]를 소멸시키지 않 으려면, 사람은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한 반응을 언제나 살펴야 한다. 또한 이 반응이 도덕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지려고 한다면, 사적 감정을 따라 가지 않고 天理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독실하게 해야만 한다. 만,, 經筵說-上, 然不能窮理致知 則無以辨天理人欲之分 認賊爲子 認鐵爲 金者多矣 能篤志力行 則又無以眞能克去人欲而復其天理矣 此窮理力行 所以爲克己復 禮之大法也 能持敬 則思慮顚倒 志氣昏惰 又無以窮理力行矣 此古人所以以敬之一 字 爲 始終之要者也 堯舜禹之相授曰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孔 子之告顔淵曰 一日克己復禮爲仁 天下歸仁 大舜所謂人心 孔子所謂己 卽人欲也 大舜 所謂道心 孔子所謂禮 卽天理也 所謂惟精與其知禮與非禮者 窮理之事也 所謂惟一與其 非禮而勿視聽言動者 力行之事也 至於所謂允執厥中與天下歸仁 乃是私欲克盡 天理流 行 事事合理 人莫不與之也 此則學問之極功 聖人之能事也 149) 南塘集 卷5 不 然不 聖學 - 125 -
약 천리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세우지 못하면, 인욕으로 마음이 가득차 서 천리를 회복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한원진은 이 같은 수양법이 바 로 克己復禮 와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원진은 窮理로부터 力行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언제나 敬을 간 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敬을 간직하지 못하면 思慮가 전도되고 志氣가 어둡고 나태해져서, 窮理와 力行을 할 수 없다. 고 역설한다. 이 주장에 의거해보면, 窮理는 도덕적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리고 敬을 유지해야만 窮理할 수 있다. 여기서 敬은 마음자세와 관련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敬은 규범을 학습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한원진은 경전의 구절들을 인용함으로써 궁리와 역행의 수양법이 성학 의 종지임을 재차 밝힌다. 그는 尙書, 大禹謨, 人心惟危 道心惟 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과 論語, 顔淵,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 復禮 天下歸仁焉 으로써 자신의 수양법을 설명한다. 첫째, 人心 과 己 는 人欲이고, 道心 과 禮 는 天理이다. 둘째, 惟精 과 知禮與非禮 는 窮理이다. 셋째, 惟一 과 非禮而勿視聽言動 은 力行이다. 넷째, 允執厥中 과 天下歸仁 은 功效이다. 한원진의 수양법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欲求와 동일한 것으로 치부한다. 人心이나 氣는 기본적으로 欲求이다. 그리고 이 欲求는 天理와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이 대결에서 天理가 승리하면 人心은 道心으로 人 欲은 禮로 승화되는 것이다. 天理가 人欲과 싸워서 이기려고 한다면, 사 람은 天理[禮]를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 天理[禮]의 학습이 바로 窮理이 다. 예법이 마음속에 갖추어지면, 이를 바탕으로 내 마음의 반응을 살펴 야 한다. 그리고 예법에 맞추어 실천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力行이다. 결 국 한원진의 수양법은 天理에 입각해서 人欲을 극복함으로써 도덕적 존 재가 되는 데 요체를 갖고 있다. 이상의 논의에 의거해보면, 한원진의 수양법은 도덕적 본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규범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성인 을 제외한 범인이 스스로 도덕적 존재가 되는 데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이 다. 그렇다고 해서 한원진이 도덕적 회의론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한 - 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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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고의 덕목인 謙恭 1. 聰明과 謙恭 한원진은 사람의 타고난 바탕은 聰明함을 으뜸으로 여기고, 德行은 謙 恭을 근본으로 삼는다. 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心法은 敬을 핵심으로 삼고, 道體는 直을 종주로 삼는다. 고 역설한다. 한원진)사람의 타고난 바탕은 총명을 으뜸으로 여기고, 덕행은 겸공 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심법은 경을 핵심으로 삼고, 도체는 직을 종주 로 여깁니다. 옛 사람들의 말을 살펴보면 속일 수 없습니다. 상서, 중훼지고, 하늘이 내신 백성들이 욕심이 있으니, 군주가 없으면 혼 란해진다. 하늘이 내신 총명한 자는 이를 다스린다. 상서, 태서 (상), 하늘은 만물의 부모이고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니, 진정 총명한 사람이 원후가 된다. 주역, 계사(상), 옛날에 총명하고 예지하고 신무하고 죽이지 않는 자이다. 중용, 총명예지가 임할 수 있다. 대학, 총명하고 예지하여 성을 다할 수 있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그 사이에서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의 군주와 스승으 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 150) 이에 의거해보면, 한원진은 총명과 경을 짝으로 삼았고, 겸공과 직을 대로 만들었다. 총명은 감각기관의 특성과 관련된 표현이고, 경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겸공은 덕목이고, 직은 도[예악형정]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선 한원진은 尙書, 周易, 中庸, 大學 등의 구절을 인용함으,, 辭乘馹仍陳戒䟽, 盖人之生質以聦明爲先 德行以謙恭爲本 心法以敬爲 要 道體以直爲宗 考之前言 有不可誣矣 書曰 惟天生民有欲 無主乃亂 惟天生聦明 時乂 又曰 惟天萬 父母 惟人萬物之靈 亶聦明作元后 易大傳曰 古之聦明睿智 神武 而 殺者 中庸曰 聦明睿智 足以有臨 大學序曰 一有聦明睿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間 則天必命之 以爲億兆之君師 150) 南塘集 卷3 物 不 - 128 -
로써 총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각각의 인용문에서 언급한 총명은 모두 사람의 지각과 관련된 것이다. 또한 그 가운데 빼어난 사람의 지각작용 을 총명이라는 용어로 대신한다. 그런데 지각은 감각기관의 작용으로부터 드러난 호오와 같은 욕구를 나타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각은 삿된 이익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이 자신의 생명과 사회적 정의를 선택해야 하는 상 황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정의보다 자신의 생명을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각이 통상 욕구와 관련된 것이고, 이 지각이 도덕보다 이익을 추구 하는 것이라면, 빼어난 사람의 지각은 과연 무엇에 근거해서 도덕적 결 단으로 이어지는가? 와 같은 의문이 발생한다. 尙書, 仲虺之誥 에 의거해보면, 빼어난 사람의 지각은 지혜[智]나 용기[勇]와 같은 덕으로, 도덕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 덕은 통상 좋 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힘을 나타낸다. 중훼지고 의 탕왕이 덕, 즉 빼어난 지각을 보여주는 모범이다. 탕왕의 덕은 바로 도탄에 빠진 백성 을 구해낼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이다. 지혜와 용기는 일을 계획하고 추진 하는 힘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지혜와 용기는 바로 빼어난 사람의 지각 작용으로 총명과 짝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총명이 비록 감각기관과 관 련된 지각작용이지만, 그 총명이 덕과 관련된 것으로 좋은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논의를 통해서,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聰明으로부터 謙恭 이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리고 敬 直이 聰明 謙恭과 어떤 관계에 있는 지를 살펴보겠다. 151) 한원진)천하의 만사는 지를 우선하지 않는 적이 없었으므로 지각했으 면서도 행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지각하지 못하면서 행할 수 있는 적은 없었습니다. 이는 옛 사람들이 타고난 바탕의 아름다움을 논하면 (, 虺之誥, 成湯放桀于南巢 惟有慙德 曰 予恐來世以台爲口實 仲虺乃作誥 曰 嗚呼 惟天生民有欲 無主乃亂 惟天生聰明時乂 有夏昏德 民墜塗炭 天乃錫王勇 智 表 萬邦 纘禹舊服 玆率厥典 奉若天命 151) 尙書 仲 正 - 129 -
반드시 총명을 우선으로 여기는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타고난 바탕의 아름다움을 하늘로부터 얻었다는 것은 인력으로 간여할 수 있는 바도 아니고 인력으로 또한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에 나 아가 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알고 마음을 다하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 고 하더라도 [덕을]밝힐 수 있고 타고난 바탕이 본래 아름다운 자와 그 총명을 나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총명은 덕 있는 말 을 듣는 데 귀 밝은 것이고 멀리 보는 데 눈 밝은 것이고 자신을 버 리고 여러 가지를 돌아보아서 천하의 의리를 다하는 것이지 사사로운 지혜나 작은 술수로 억측해서 종종 적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종 종 적중하더라도, 오히려 대덕을 해치게 됩니다. 게다가 적중함을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152) 한원진은 天下의 萬事는 智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다. 고 주장한다. 이 어서 그는 萬事가 행해지는 것은 우선 知覺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 역설 한다. 이에 의거해보면, 智 는 일의 실행과 관련된 것으로, 지각작용으로부터 실현되는 덕목이다. 또한 한원진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바탕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총명이다. 고 주장한다. 여기서 아름다움 은 도덕실천과 관련된 지각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지각은 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 리고 하늘로부터 타고남 은 후천적 노력이나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바뀔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각능력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으로, 성인 과 범인이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을 함의한다. 가령 탕왕의 지각능력은 아름다운 것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기서 더 나아가 백성들로 하여금 그 고통으,, 辭乘馹仍陳戒䟽, 盖天下萬事 莫不以智爲先 故知而不行者 有之矣 知而能行者 之有也 此古人論生質之美者 必以聦明爲先者也 然生質之美 得於天禀 者 固非人力所能 而人力亦有可以奪造化者 苟能格物窮理 以知性盡心 則雖愚必明 可 天質之 美者 其聦明矣 然所謂聦明者 乃謂聦於聽德 明於視遠 舍己稽衆 以盡 天下之義理者也 非謂私智小慧 億則屢中者也 是雖屢中 猶傷大德 况其不可盡中者耶 152) 南塘集 卷3 不 未 與 與 本 齊 - 130 -
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걸 왕의 지각능력은 악한 것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고 한다. 이는 각자 타고난 것으로 노력을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또한 누군가의 도움으로 벗어 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한원진이 하늘로부터 얻었다는 것은 인력으로 간여할 수 있는 바도 아니고 인력으로 또한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애초에 성인의 지각능력을 제외한 범인의 지각능력으로 도덕실천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凡人이 도덕실천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 는가? 와 같은 의문이 발생한다. 더욱이 걸왕이 폭군이 된 것에 대해 어 떤 문제 제기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걸왕은 애초에 폭군이 될 수밖에 없는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원진 또한 이 같은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일에 나 아가 이치를 궁구하고 성을 알고 마음을 다하면 비록 어리석은 자라고 하더라고 덕을 밝힐 수 있다. 고 주장한다. 여기서 일은 좋은 관계를 실현할 만한 하나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군주가 백성의 욕구를 지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들은 통 상 감각적 욕구에 충실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생활이 안정되면 교육을 통해서 도덕실천을 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성군의 총명은 백성들의 생리를 통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군은 백 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이들이 도덕적 존재 가 될 수 있는 禮樂刑政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조건이 갖추어지면, 백성들의 지각능력이 도덕적 반응에 어둡 다고 하더라도 성군이 만들어놓은 예악형정에 입각해서 도덕실천으로 나 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백성이 도덕적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는 결 과적으로 타고난 바탕이 아름다운 사람과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凡人이 결과적으로 총명을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범인의 지각 - 131 -
은 여전히 선을 추구하기보다 이익에 골몰할 가능성이 크다. 한원진 또 한 범인의 총명에 대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원진은 총명에 대해 덕 있는 말을 듣는 데 귀 밝은 것이고, 멀리 보 는 데 눈이 밝은 것이다. 고 재차 정의한다. 그리고 그는 총명에 대해 자 신을 버리고 여러 가지를 돌아보아서 천하의 의리를 다하는 것이다. 고 부연해서 설명한다. 여기서 덕 있는 말 은 도덕적 반응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를 듣는 데 귀 밝은 것 은 우선 자신의 마음을 덕 있는 말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버리고 는 또한 삿된 말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깨어 있는 의식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천하의 의리를 다하는 것 은 깨어있는 마음속에 규범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 속 에서 마음은 항상 깨어있는 상태, 즉 敬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한원진의 이론 체계에서 총명은 마음이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해 현혹되 지 않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마음이 항상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더라도, 마음은 본질적으 로 텅 비어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의리뿐 아니라 삿된 이 론도 끼어들 수 있다. 또한 삿된 이론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심지 어 이 기준에 입각하더라도, 사람들은 종종 적절한 반응을 할 수도 있다. 가령 임기응변과 같은 것을 실례로 제시할 수 있다. 한원진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사사로운 지혜나 술수로 적중할 수 있지만, 이는 의리를 다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대덕을 해치는 것이다. 고 역설한다. 이에 의거해보면, 한원진은 성인의 총명으로 구현한 義理, 즉 禮樂刑政 으로 외부대상의 자극에 대한 반응을 해야만, 그 반응이 비로소 적중하 게 되고 大德을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논하는 것이다. 또한 한원진은 삿된 지혜나 술수로 가끔 적중하는 것을 총명이라고 한다면, 당 덕종과 같이 나라를 잃게 하는 화를 초래하게 된다. 고 주장 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그는 당 덕종과 같은 자만하고 교만한 태도에 대 해서 경계해야만 한다. 고 역설한다. 이 같은 논의에 입각해보면, 한원진이 총명과 겸공을 함께 논한 까닭 - 132 -
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원진)만약 이를 총명이라 여기고서 자만하고 교만하다면, 이는 당 덕종의 총명하고 과감함이 나라를 잃게 하는 화를 초래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상서, 요전, 진정 공손하고 겸양하시다. 라고 요를 칭송하였습니다. 상서, 순전, 온 화하고 공손하고 성실하고 독실하시다 라고 순을 칭송하였습니다. 상 서, 무일, 아름답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공손하시다 라고 문왕을 칭 송하였습니다. 논어, 학이, 온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겸양하여 이것을 얻으셨다 라고 자공이 공자를 칭송하였습니다. 무릇 요 순 문왕 공자는 위대한 성인입니다. 덕의 성대함을 칭송한 것은 모두 온 순하고 부드럽고 공손하고 겸양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 153), 語 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모두 恭遜과 謙讓을 최고의 덕목 으로 꼽고 있다. 여기서 堯 舜 文王 孔子와 같은 성인들이 칭송을 받 는 까닭이 모두 공손과 겸양에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도덕적으로 완벽 한 존재이다. 더욱이 공자를 제외한 요 순 문왕은 권력의 측면에서 보 면 지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이들에게 공손하거나 겸양해야 하는 것이지, 이들이 굳이 다른 이들에게 공손하거나 겸양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마음을 텅 비우고서 규범을 그 속에 가득채운 것이다. 그리고 규범 앞에 자신을 낮춘 것이다. 尙書, 論語 에서는 왕 혹은 유세가의 신분으로서 마땅히 따라야만 하는 준칙을 따름으로써 이에 상 응하는 반응이 도출되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공손이나 겸양은 신분이 나 권력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규범 앞에 자신의 인욕을 낮추 고 없애는 것이다. 한원진은 聖人의 德이 謙恭을 근본으로 삼고 있으니, 凡人은 응당 어 尙書 論,, 辭乘馹仍陳戒䟽, 若以此爲聦明而自恃驕人 則此唐德宗之聦察剛果 所 以卒召喪邦之禍也 豈非可戒者哉 書稱堯曰允恭克讓 稱舜曰溫恭允塞 稱文王曰徽柔懿 恭 子貢稱孔子曰 溫良恭儉讓而得之 夫堯舜文王孔子大聖也 而其稱德之盛者 皆以溫柔 恭讓爲言 153) 南塘集 卷3-133 -
떻게 해야만 하겠는가? 라고 반문한다. 대한 성인의 덕은 오히려 이를 근본으로 삼으니, 하물며 성인보다 너무도 못한 범인들은 어떻겠습니까? 겸공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하고 텅 비워서 받아들임으로써 만선을 다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는 목을 세우고 교만하고 인색함으로써 만선을 다 폐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강과 바다는 아래를 차지하여 모든 지류를 다 모아들이지만 높은 봉우리의 우뚝함은 초목을 자라나게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겸공이 덕을 실천하는 근본이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위 154) 여기서 한원진은 謙恭 에 관한 의미를 풀이함으로써 聖人을 포함한 모 든 인간의 근본덕목이 겸공임을 밝힌다. 한원진은 겸공 을 자신을 낮추 고 순종하고 텅 비워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 설명한다. 자신을 낮추다. 는 표현은 목을 세우다. 와 대조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낮추다 는 겸손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나보 다 나은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사람을 본으로 삼겠다는 태도를 뜻 한다. 그리고 순종하다. 는 나보다 나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자신의 지 침으로 삼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사람이 공자와 같은 聖人이라면, 성인이 만들어놓은 禮樂刑 政은 凡人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이 규범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우선 내 마음속에 존재하던 잘못된 준칙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텅 비어있어야만 그 속에 올바른 준칙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받아 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가 바로 교만하고 인색한 것이다. 교만하고 인색한 사람은 자신의 아집으로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사람은 자신의 아집 외에 다른 것이 마음속에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된다.,, 辭乘馹仍陳戒䟽, 大聖之德 猶且以此爲本 則况於下聖人萬萬者乎 盖 謙恭則卑順虛受而萬善咸歸 反是則高亢驕吝而萬善皆廢 譬如河海居下 衆流咸集 高峯突 兀 草木不生矣 此則謙恭之所以爲德之本 而不可不勉者也 154) 南塘集 卷3-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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