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 EDITION www.biblia.co.il holinesscode@me.com 저작권없음공지본 PDF 문서에실린글, 그림, 사진등 에서는하나님께저작권료를지불하지않고기록한글과찍은사진입니다. 사전에 에동의를구하지않고임의로사용할수있습니다. 다만상업적인용도의사용은허락하지않습니다. 재배포환영본 PDF 문서는 독자및 www.biblia.co.il 회원에게아무런조건없이배포하는것이므로사용자의홈페이지또는블로그나 SNS를비롯한사회통신망에서유포할수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소박한바램이있다면, 다운로드후재배포할때에 를명기해주었으면하는것입니다. 여러분의이런작은배려가큰힘이됩니다. 대형교회참조본 는이스라엘과이스라엘의소식, 그리고학술적인소식에쉽게접근하기힘든미자립교회나소형교회의목회자들을위해서처음만들어졌습니다. 혹, 경제적인여유가있는대형교회에서이자료들을사용하기원하신다면, 알아서 에후원을요청하는바입니다. 후원에대해서는 www.biblia.co.il 에서 About 를참조해주시기바랍니다.
이스라엘의회복 I 이익상 holinesscode@me.com 교회에서사용하는말가운데에는기독교인이아니라면, 이해할수없는자기들만의암호화된말이있습니다. 모든공동체들이자기들만의말이있기는하지만, 특별히기독교공동체는예전 ( 禮典 ) 에서사용하는말을제외하고도, 기독교인들조차도생소한말들 ( 대부분소그룹들이창조적으로만들어낸말들 ) 이쏟아져나옵니다. 언어는살아움직이는유기체입니다. 그래서신조어들이만들어지는것이새로운일도, 걱정할일도아닙니다. 다만, 그렇게만들어진말들이의미하고자하는바가분명하고정확하다면말입니다. 그래서요즈음많이또때로는무분별하게사용되고있는 이스라엘의회복 이라는말이무엇인가에대해서는한번쯤정리할필요가있지않나싶습니다. 일반적인의미의 이스라엘 이스라엘 이라는말은지리적입장에서 / 민족적인입장에서넓게사용되어지는표현입니다. 지리적으 로이스라엘은지중해의서쪽에이슬람국가들에둘러쌓여있는작은나라 ( 우리나라의경상남북도를합친것보다조금큰면적 ) 를가리킵니다. 민족적인관점에서는유대인을가리키는말이기도합니다. 그러나, 이정의들이이스라엘을가감없이그대로설명하고있지는않습니다. 지리적으로말하는이스라엘이현대국가이스라엘을말하는것인지, 아니면성서에서열두지파가차지하였던땅들을가리키는것인지도분명치않으며, 인종적으로현대의유대인을과연성서의이스라엘로볼수있는가의문제는더욱복잡합니다. 잠시유대학을공부해보았던저도이문제를가지고한학기를배웠지만, 결론은늘해석자의몫이었습니다. 그러므로이스라엘을말할때에는말하는이가상정해놓은이스라엘의의미를먼저밝혀주어야듣는이가오해가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이스라엘의회복 을말하는사람들 ( 제각겪어본사람들이나인터넷에서이스라엘의회복을열정적으로전파 2014 년기준이스라엘개략정보
하는인터넷매체, 또는인터넷싸이트 ) 이구체적으로어떻게이스라엘을정의하는지는모르겠으나, 인터넷으로접한정보들을근거로추정해보자면, 나라 이면서동시에 유대인 을가리키는말로이해하는듯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회복 을전하는한국교회의공동체들이마치유대인민족주의자들처럼보여지거나, 그공동체들이주창하는 이스라엘의회복 이라는말이 21세기판기독-시오니즘운동처럼보이기도합니다. 이글에서는 주장 이아니라, 성서가이스라엘을어떻게말하는가? ( 성서가말하는이스라엘의정의 ) 에대해서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우리가회복해야할이스라엘이무엇인지에대해서알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vs 야곱 26 그가이르되날이새려하니나로가게하라야곱이이르되당신이내게축복하지아니하면가게하지아니하겠나이다 27 그사람이그에게이르되네이름이무엇이냐그가이르되야곱이니이다 28 그가이르되네이름을다시는야곱이라부를것이아니요이스라엘이라부를것이니이는네가하나님과및사람들과겨루어이겼음이니라 ( 창 32:26-28) 9 야곱이밧단아람에서돌아오매하나님이다시야곱에게나타나사그에게복을주시고 10 하나님이그에게이르시되네이름이야곱이지마는네이름을다시는야곱이라부르지않겠고이스라엘이네이름이되리라하시고그가그의이름을이스라엘이라부르시고 11 하나님이그에게이르시되나는전능한하나님이라생육하며번성하라한백성과백성들의총회가네게서나오고왕들이네허리에서나오리라 12 내가아브라함과이삭에게준땅을네게주고내가네후손에게도그땅을주리라하시고 13 하나님이그와말씀하시던곳에서그를떠나올라가시는지라 ( 창 35:9-13) 창세기 32장과 35장에서말하듯이, 이스라엘은야곱의다른이름입니다. 야곱이이스라엘이라는이름을받게된때는삼촌라반의집에서종살이하던야곱이그집을떠나가족들과함께가나안땅에들어올때였습니다. 평생남의뒷꿈치나잡으면서 ( 야곱이라는이름의어원 ) 생존을위해서라면어떤권모술수라도다쓰리라! 며살아갔던야곱의인생이하나님을만남으로바뀝니다. 그저사람 ( 형에서 ) 에대한공포로부터살고자발버둥쳤던야곱이하나님의사람과얍복강가에서뒤엉키며자기의인생의기준점이바뀐것입니다. 정말두려워해야할분을비로서알게된것입니다. 평생절름발이로살지언정, 새로운참인생을출발하면서받은이름이 이스라엘 입니다. 성서를기록한사람들가운데에서민족공동체의 정체성 (12지파의연합공동체 ) 을중요하게생각한이들은야곱을 12지파의조상으로, 그리고이스라엘을그자손들모두를아우르는공동체를가리키는용어로사용하기도하였습니다만, 선지자이사야는성서의이야기가소개하는두이름의차이를근거로 이스라엘 과 야곱 이라는이름이동시에나올때에 이스라엘 이라는이름은긍정적으로, 야곱 이라는이름은부정적으로해석하기도했습니다. 그리고이러한해석의전통은랍비들이그대로이어받았습니다. 적어도이스라엘과야곱의차이에대해서초기의성서해석자들은매우분명한해석의기준을가지고있었다고말할수있습니다. 그러므로성서에서말하는 이스라엘 은 (1) ( 에서와의경쟁에서승리하는 ) 땅의삶에초점을두고살던인생이그지향점을하나님으로바꾸어살아가고있는사람이라는의미와더불어 (2) 인생의기준이바뀐선조를따라야곱이아닌이스라엘로살아가는그후손들을가리키는말이라할수있겠습니다. 이스라엘사람? 유대인? 그럼, 성서가말하는이스라엘사람들은현재의유대인일까요? 이질문에대답하기위해서는먼저유 이사야 에서도야곱의이야기가나온다. 사 48의기록자는야곱과에서사이의관계라는입장에서는야곱을긍정적으로기술하지만, 야곱이이룬나라의도덕성에대해서는그렇게순수하게평가하지않는다. 야곱이라는이름이이스라엘로바뀌게된것에대해서이사야는이렇게말한다 : 야곱의집이여이를들을지어다. 너희는이스라엘의이름으로일컬음을받으며, 유다의허리에서나왔으며, 여호와의이름으로맹세하며, 이스라엘의하나님을기념하면서도, 진실이없고공의가없도다. ( 사 48:1) 이이야기는사 48의기록자가창 35:10을이미알고있다는것을암시하고있다. 예언자의의도는분명하다. 이스라엘이라고불리는이들이여전히야곱처럼행동하고있다는것이다. 야곱이라는이름의어근은 인데עק ב이어근이가지는의미는 속이다 이며현재의이스라엘은야곱처럼그행위가부패했다는것이다. - 자코비치 ( 히브리대학교성서학석좌교수 )
대인이라는말에대한설명부터시작해야할것같습 니다. 많은사람들은 유대인 을민족, 또는인종을가리 키는말로이해합니다. 그럼정말성서에서유대인을 그런의미로사용하였을까요? 성서기록의역사적순서로보아서가장처음 유 대인 ( 히. 예후디 (יהודי 이라는말을사용한사람은예레미 야입니다 ( 렘 32:12; 34:19; 38:19; 40:11-12; 41:3; 43:9; 44:1; 52:28,30). 예레미야는유대인이라는말을 유다땅 ( 왕국 ) 에사는사람, 또는유다땅에살던사람 을가리킬때 에사용하였습니다. 즉, 유대인은민족이나, 인종의 개념이아니라, 영토에거주하고살아가는사람들을 가리키는말입니다. 예를들자면, 유대학에서논쟁적 인이슈중의하나는사마리아사람이유대인이냐아 니냐하는문제입니다. 당연히사마리아사람들은유대 인이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인 이라는말도 유대인 이라는말처럼, 사마리아지역에사는사람들 예수님당시의지역구분. 하드리안황제 (117-138 AD) 때까지이지역에대한명칭이그대로유지되었다가하드리안황제재위기간에일어난바르코흐바의반란 (132-136 AD) 이후, 유대인의정체성을희석시키기위해서속주의명칭을유대아 Judea 에서팔레스티나 Palestiana 로바꿔버렸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말도로마의땅팔레스티나에살던사람들, 또는그땅에살아오고있는사람들을가리키는말이다. 을가리키는말이기때문이지요. 그러니 사마리아유대인 이라는말은당연히모순이되는말입니다. 로마시대에도여전히유대인은인종이나민족의개념이아니라, 로마의속주유대아 (Judea) 지역에살던사람들을가리키는말이었으니, 유대인이라는말이마치민족적인개념인듯사용된것은그보다도후대입니다 (* 유대인이민족적개념으로도입된시기에대해서는논쟁의여지가있습니다 ). 유대인 ( 유다 / 유대아땅에사는사람 ) 이민족을가리키는말로유대교인안에서확고히자리매김을한때는하드리안황제가로마의속주유대아 Judea를팔레스티나 Palestina로바꾼뒤부터였습니다. 본인들이성서의블레셋을연상시키는팔레스타인사람들로불려지는것으로부터자기정체성을지키기위한것이지요. 지리적인입장에서정의하는이스라엘인 ( 이스라엘사람 ), 유대인 ( 유대사람 ) 은성서곳곳에있습니다. 북왕국이멸망한후에, 북왕국과남왕국을향한예언들 ( 주로, 예레미야와에스겔, 그리고호세아와이사야에서도 ) 에서는이스라엘은북왕국을가리키는말, 유다는남왕국을가리키는고유명사로사용되거든요. 그렇다면, 앞의 이스라엘 vs 야곱과더불어이스라엘이라는말은다음과같이세가지의미를가진다고말할수있겠습니다. ( 에서와의경쟁에서승리하는 ) 땅의삶에초점을두고살던인생이그지향점을하나님으로바꾸어살아가는사람 인생의기준이바뀐선조를따라야곱이아닌이스라엘로살아가는그후손들 북왕국이스라엘에사는사람들 처음질문으로다시돌아가볼까요? 성서가말하는 이스라엘사람들이현재의유대인이냐는문제는이미 여러분의마음속에있으실겁니다. 아브라함은유대인이다? 히브리사람이다! 이스라엘의회복을말하는사람들이굳게믿고있는것중의하나는아브라함을통해약속하신하나님의말씀 ( 창 22:16-18) 이성취되기위해서는유대인들을위해서기도해야하고, 그들을도와야한다는것입니다. 이스라엘에그런신앙을가진사람들이만든단체가
운데에서는이스라엘로돌아와정착하려는유대인들에게정착지원금을후원하는단체도있습니다. 16 여호와께서이르시기를내가나를가리켜맹세하노니네가이같이행하여네아들네독자도아끼지아니하였은즉 17 내가네게큰복을주고네씨가크게번성하여하늘의별과같고바닷가의모래와같게하리니네씨가그대적의성문을차지하리라 18 또네씨로말미암아천하만민이복을받으리니이는네가나의말을준행하였음이니라하셨다하니라 ( 창 22:16-18) 유대인이라는개념에대해서이미알고계신여러분이라면벌써눈치채셨을겁니다. 아브라함은유대인이아닙니다. 굳이아브라함을인종적으로, 또는민족적으로정의하려고한다면, 그는오늘날의이라크사람이며오히려아랍인에가깝습니다. 뿐만이아닙니다. 성서에서는출애굽한히브리공동체가모압광야에서아브라함을포함한자신들의선조들을아람사람이었다고스스로정의합니다. 너는또네하나님여호와앞에아뢰기를내조상은방랑하는아람사람으로서애굽에내려가거기에서소수로거류하였더니거기에서크고강하고번성한민족이되었는데 ( 신 26:5) 여기서놀라운사실이하나더있습니다. 아브라함은갈대아우르에서살다가가나안땅으로이주해온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아람사람이아니라, 우르사람, 또는수메르사람이어야한다는거지요. 그런데, 신명기를기록한이는자기들의가장중요한선조인아브라함의출신지를말하면서아람사람이라고이야기한다는겁니다. 결국성서를기록한이는아브라함이어디출신이고, 인종이어떻게된다는것에대해서는처음부터관심이없었다는말입니다. 그리고서는아브라함을생소하게도 히브리사람 ( 창 14:13) 이라고말합니다. 이것은성서를기록한사람이가지고있는자기정체성입니다. 아브라함의이동경로
히브리 עברי 라는말은 건너다 라는어근을가진말인데, 지리적으로따지자면, 유프라테스강 을건넌사람이라는말이고, 신앙적으로말하자면, 과거를결연하게끊어버린사람 을가리키는말입니다. 덧붙여아브라함을아람사람이라부른것에대해서이해하자면, 유프라테스강을건너기이전에아브라함이거주하던땅, 하란이아람지역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가족이갈대아우르에서떠난것은장한일이지만, 아브라함의가족은가나안에이르지않고, 하란에주저앉았습니다. 하란에살고있었던아브라함은아직히브리인이아니었습니다. 그저아람지역에살고있는사람 ( 아람사람 ) 일뿐이었던것이지요. 그러다가그가비로서히브리인이됩니다. 아람인으로살았던과거를버리고유프라테스강을건넌것이지요. 그러므로, 아브라함이라는사람의인종이나, 출신지역이아브라함과그의자손의정체성을결정하는것이아니라는말입니다. 그가어떤민족이든, 그가어떤인종이든, 하나님없이살아간과거를끊어버리고오직하나님과함께새롭게살아가겠노라고새길을걸어가는사람 이아브라함의자손이고, 히브리사람인것이지요. 성서에서는아브라함의자손을 히브리사람 이라고, 마치민족처럼말하기는하지만, 히브리사람이라는말의원래가그렇다는겁니다. 눈치가빠른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이라는말과히브리라는말의공통점을이미찾으셨을겁니다. 이두말, 모두가땅의삶에초점을두고하나님없이살아갔던과거를버리고오직여호와하나님과함께살기로작정한사람과그사람과더불어그처럼살아가고자했던그후손들을가리키는말이기때문입니다. 아브라함 ( 히브리사람 ) 과그의자손 ( 히브리사람들 ) 에게준약속은현대의유대인에게준것이라고말할수없습니다. 아브라함과이스라엘에게준하나님의약속은아브라함처럼히브리사람으로살아가겠다고다짐하고그길을걷는이들 ( 히브리사람의정체성을가지고살아가는사람들 ), 이스라엘처럼인생의목표와삶의지향점이바뀐사람들 ( 이스라엘의정체성을가지고살아가는사람들 ) 에게주어진것입니다. 누가참이스라엘인가? ( 신약성경 ) 바울도아람사람이었던아브라함이히브리인이되 었던역사를위와같이이해했던것같습니다. 6 아브라함이하나님을믿으매, 그것을그에게의로정하셨다함과같으니라. 7 그런즉믿음으로말미암은자들은아브라함의자손인줄알지어다. 8 도하나님이이방을믿음으로말미암아의로정하실것을성경이미리알고먼저아브라함에게복음을전하되, 모든이방인이너로말미암아복을받으리라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믿음으로말미암은자는믿음이있는아브라함과함께복을받느니라 ( 갈 3:6-9) 6 이스라엘에게서난그들이다이스라엘이아니요 7 또한아브라함의씨가다그의자녀가아니라오직이삭으로부터난자라야네씨라불리리라하셨으니 8 곧육신의자녀가하나님의자녀가아니요오직약속의자녀가씨로여기심을받느니라 ( 롬 9:6-8) 29 너희가그리스도의것이며, 곧아브라함의자손이요약속대로유업을이을자니라 ( 갈 3:29) 아브라함의자손이요, 이스라엘로불리는것은민족, 혈통을기준으로삼아서가아닙니다. 아브라함이그랬듯, 안락한하란의삶의버리고, 또과거를결연히끊어버리고, 오직하나님만이새삶의유일한나침반이라는믿음을가진이들 ( 히브리인 ) 이진정한아브라함의자손이고, 아브라함에게준하나님의복을공유할수있습니다. 혈통으로따진다면이야, 이스마엘도아브라함의자손이고, 아브라함의복을공유할수있을것같지만, 하나님의생각은다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아브라함의자손으로, 그리고하나님의복을받아마땅한이로지목한이는온전한믿음, 내모든것을포기할수있는믿음을가진이삭이었고, 그래서이삭이아브라함의복을받은것입니다. 그리고한발더나아가, 우리가예수그리스도의것이되었을때에, 비록로마사람일지라도, 또갈라디아지방의사람일지라도, 이스라엘이되고, 아브라함의자손이되는것입니다. 마치면서-우리가회복해야할이스라엘오늘날유튜브와인터넷에 이스라엘의회복 을검색하면, 정말많은정보와설교, 심지어는영화까지나옵니다. 그러나인터넷에서검색하는많은정보들가운데에는예언-성취라는틀에서, 이스라엘의역사가운데에이미성취된유다와이스라엘에대한예언들을굳이끄집어내어서, 이미성취된예언들이아직이루어지지않았으며, 이루어질것이고, 그것을위해서유대인선교의중요성와당위성을강조하는것들이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이런설교나, 정보, 영화들은이스
라엘을좀안다고자칭하는사람들이많고, 수차례방문한것을강조하며이부분에대해서매우전문적인식견을가진것처럼이야기하거나, 이스라엘의회복에대한예언자들의예언에대해서권위있는풀이를내어놓는것같아성서의이스라엘과 아브라함 ( 히브리사람 ) 에게준복 을잘모르는교인들을유혹합니다. 유대인선교라는입장에서 이스라엘의회복 을말하는것은이스라엘에서유대인을대상으로선교를하시는선교사님들의입장에서매우소중한주제입니다. 그러나한국교회의일부에서종말론적으로 이스라엘의회복 을이야기하는사람들은 유대인들 이곧 이스라엘 이라는틀을만들어가르치려고합니다. 이런편협한정보는 아브라함에게준하나님의약속 이마치혈통, 인종, 민족적으로유대인이라고불리는현재이스라엘에살고있는유대인에게준것이라는심각한오류를범하기도합니다. 성서가말하는원래의미의이스라엘과아브라함 ( 히브리인 ) 의자녀들을잘못이해해서지나치게단순화한나머지자칫방향을알수없는유대인선교에빠지게되는것이지요. 유대인선교를위해서파송받은선교사님들이유대인중심으로역사하실하나님을오히려한국기독교인들에게가르치는거지요. 이방인선교와그들의구원에대해서반대했던초대교회의유대인기독교인들처럼, 인종과민족을구별하고 다름 을말하던초대교회의유대인들처럼, 구원의중심에유대인들을세우고, 유대인들을중심으로모이라고, 그들을통해서하나님의구원이온전해진다고가르치는겁니다. 2,000년전으로다시돌아가려는시도입니다. 성서가말하는 이스라엘 로돌아간다면, 그리고아브라함에게주어진약속을기억한다면, 유대인이선민이아니라, 하나님이없이살았던과거를버리고, 하나님과더불어오직주님과함께살고있는내가선택받은사람입니다. 그리고회복해야할이스라엘은유대인이아니라, 바로 나 입니다. 과거에는삶의지향점이땅이었습니다. 과거에는추구하는목표가물질적인성공이었습니다. 과거에는내삶에서가장중요한관계는친구와동료와의관계였습니다. 과거에는쉼이어딘가로훌쩍떠나는여행이나, 잠이었습니다. 공부하고, 배우고, 돈을벌어서내가너와다르다는것, 내가더뛰어나다는것을보여주려고하였습니다. 하 지만, 성령께서나와동행하시고, 예수그리스도가내삶의모범이되시고, 하나님의말씀이삶의기준이된후에는삶의지향점이하늘이되고, 추구하는목표가더불어만들어가는하나님의세상이되었고, 가장우선하는관계가하나님과의관계가되었습니다. 유프라테스강을건넌것입니다 ( 히브리인이된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지나서 사회 에적응 (?) 하다보니, 바뀌어진하나님중심의삶을살아서는즐겁게, 평안하게, 안락하게살수없다는것을알았습니다. 나는그들과다른, 더나은대우를받아마땅한사람인데, 나를알아주지않는것같습니다. 그리고서는다시하란을, 다시이집트를힐끗힐끗쳐다보기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다시말하건대, 우리가회복해야할이스라엘은 그들 이아니라, 나 입니다. 이글은특정교회와선교단체를비방할목적이없으며, 한국교회의이스라엘선교문화를조금이라도뒤돌아볼수있는계기가되길바라는마음으로쓴것입니다. 저와다르게생각하는이들도이글을반박하면서본인들의선교와신학의틀을좀더든든히세울수있으리라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