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 : [제주 제주시 / 참전담] 참전용사, 입대, 훈련, 거제도 포로수용소, 포로 감시, 포로 석 방, 보급품, 비리, 26사단, 제대, 4.3사건, 5.10선거 [1] 훈련을 거쳐 포로수용소에 배치되다 그 우리 제주도가 4.3 사건 있었잖아? 그 50년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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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 헌병 시절의 기억 자 료 명 : 20120207고기원(제주) 조 사 일 : 2012년 2월 7일 조사시간 : 약 125분 구 연 자 : 고기원(남 30년생) 조 사 자 : 김경섭, 김명수, 이원영 조사장소 :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고기원 할아버지 자택 [구연자 정보] 고기원 할아버지는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책이 많은 지역 유명인사이다. 그는 1950년 10월 1일 에 입대하였고, 훈련을 거쳐 곧 바로 헌병대에 배속되었는데 그의 부대가 담당한 일은 그 유명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관리였다. 그의 증언에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실상이 낱낱이 들어 있다. 고령 임에도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가 굵어 듣기에 편했다. [이야기 개요] 6.25가 발생한 뒤 훈련소에서 한 달간 훈련을 받고, 그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하게 되었 다. 초반에는 사람이 얼마 없었지만 이후 만 명이 넘는 포로가 모였다. 많은 포로를 감시하느라 고 생스러웠지만 미군 보급품을 받고 휴가나 외출에 사용하는 등 좋은 점이 많았다. 보급품을 가져다 파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강원도에 학교를 재건하기 위한 기초를 돕는 파견을 나갔었고, '송충이 사단'이라고 불리던 26사단에서 근무했다. 햇수로 7년간 군대 생활을 한 뒤 육군본부 특명으로 제 대할 수 있었다.

* 키워드 : [제주 제주시 / 참전담] 참전용사, 입대, 훈련, 거제도 포로수용소, 포로 감시, 포로 석 방, 보급품, 비리, 26사단, 제대, 4.3사건, 5.10선거 [1] 훈련을 거쳐 포로수용소에 배치되다 그 우리 제주도가 4.3 사건 있었잖아? 그 50년도에 6.25가 터져가지고 그 나갔는디. 그때 징집 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그 대한청년단이라고 조직이 되나서 각 부락에. 그 대한청년단 명부 보면 서 그냥 나갔거든. 그때 만 20세 이상 35세꺼지는 뭐 면에서 그 영장 보내고 이게 없어. 그래서 그 명단에 준해서 각 리별로 동원됐거든 그게 그 당시. 35세까지는. 그래서 그때 그 대한 그 명단 에 없인 사람은 빠졌고. 그 명단에 있인 사람 그래 전원이 나갔거든 그래. 그래 나가가지고 훈련소도 그때 각 제주도에는 학교마다 훈련소가 됐어. 그때 국사 학교이런 학 교마다. 그에 그 살아있는 사람도 영삼공이 살아있느냐면. 그 감응사라 전방에 안간거라 이거야. 제주도 사람은. 4.3 사건에 연류되보니까 전방으로 보내면 그 북한으로나. [조사자 : 그럴까봐.] 제 주도 그 출신만은 그 일단 그 후방 근무를 시켰어. 그 후방근무면 전라도 그때 그 저 여 여수 이 런 저 반란 사건 있잖아. [조사자 : 여수 반란 예.] 거기 토벌대를 보낸거야. 지리산겉은데. [조사자 : 토벌대로? 예예.] 경험이 얻은 후에 이제 이상이 없으니까 그제야 11사단 창설하면서 그 전방에 들어간거라. 그러니까 이제 그 제주도 사람이 산 원인은, 결국 내가 그런 얘길해. 회장직 맡아 다 니면서도 4.3 사건 덕 본거는 제주도 군인이라 했거든 그게. 그때 그 저 추자. 추자는 이 산 사람 몇 안디여. 그 제주도랑 훈련받아갔는디. 추자는 제주도고, [조사자 : 추자도요?] 응. 갈라지니까 4.3에는 연류 안됐거든. 그러니까 추자도 사람은 전원이 전방에 갔어. [조사자 : 바로 전방에 보냈 구나.] 응, 바로 갔는디. 그 명단에도 보면 추자 사람은 살아있는게 몇 명 안돼요. 근디 제주도는 거의 지금 살아있는게 영산군이라 다. 그 다음에 영육짜리도 갔고 팔팔짜리도 갔고 또 구일짜리도 갔는디. 영육짜리 팔팔짜리는 거의 다 죽어버렸거든. 가면 식어가서 전방에 그 영육짜리들은 인제 게 우리가 50년도 들어갔으니까. 51년도에 넣었어. 이 해당자 가이 그때 35세까지 뽑아가부니까 그 해당자가 없었거든. 그래서 그 51년, 52년도에 나가기 시작했어 제주도 사람. 그래서 그때 나간 사람이 영육군번, 팔팔이라. 그 사람들은 가면 이제 막 한창 전투가 심한때 아니여 거기. 그니 비 행기가 실어당 전방에 가매 경험으스니까 거의 전사자랐어 다. 근디 살아있는 건 지금도 다 영삼 공밖엔 없지. 이 제주도에 살아있는 사람. [조사자 : 그 뭐 4.3있다고 해가지고 약간 얘기가 있고 해서 그나마 많이 안 돌아가셨네.] 내가 지금도 그 얘기를 허지. 제주도 사람은 영삼공은 하여튼 4.3 덕을 본거 아니냐 그래서 얘길하지. 그 원인이 있었어 그기. [조사자 : 여기가 조천읍,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함덕리. 255의 1. [조사자 : 어르신 연세가 올 해 어떻게 되십니까?] 연세? 30년생. [조사자 : 정정하시네.] 아 뭐시. [조사자 : 우리 나이로.] 팔 십이. 팔십삼 되지. [조사자 : 예, 우리나이로. 만으론 둘 되시는구나.] [조사자 : 몇 년도에 입대하 셨습니까?] 50년도. [조사자 : 50년도 몇월달에 입대하셨어요?] 우리 나는 10월 6일. [조사자 : 아, 그러면 6.25 발발하고 한 네 달정도.] 제주도가 전부가 9월 1일이라이. [조사자 : 그때 해병대에 입대하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보니까.] 해병-대는 3, 4기가 저기 8월달이라이. [조사자 : 예, 8월 31일. 어제 한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어, 8월이고, 또 우리 육군은 1차가 9월 1일. 9월 1일이고, 2차는 거기서 좀 떨어진 사람들이 그 10월 1일날. [조사자 : 10월 1일날.] 입대를 헌거지 그게. [조사자 : 50년 10월 1일날 입대하셨구나.] 전부 이 제주도에는 50년도. 다 50년도 해병대도 육군 이고. 51년도에는 없었고. 그래서 52년도 2월달부터, 3월달부턴가 있었어이. 그 우리 제주도는. 그 52년도 이전에는 입대자가 없었어. 왜 없었는가하면 그 50년대 35세꺼지. [조사자 : 한꺼번에 다.]

한꺼번에 싹 나가부니까 51년도에는 그 연령 해당자가 없었거든. 그때 18세, 18세 난 사람들도 지 원해 막 갔거든. [조사자 : 18세부터 35세까지. 그러면 엄청났겠네요. 병력이.] 18세 난 사람은 몇 사람 안되고. 그 지원해 간 사람들이니까. 그 또 제주도에는 그 학도병들이 많이 갔어, 학생들, 고등학생들. 그 다 나갔는데. 제주도는 학 도병이 없어. 명칭은. 왜냐하면 그 군번이 받아 나가부니까 전부. [조사자 : 군번있으니까 학도병은 아니구나.] 제주도는 그래서 그 각 학교별로 이제 그거 기념사업 그 그 저 표석들을 해놔가지고 게 중앙회에서 내려와나서요 나때 내려온 학교마다 다니니까. 그 오고갔던 뉴스가 많이 나갔어이. 제 주도에서. 가보니까 그 없어. 그래서 교육청에도 가니까 그때 자료가 전혀 없어분거라. 결국 그 알 아보니까 군번 전부 나가부니까 군번받아간 군인은 학도병으로. [조사자 : 학도병으로 치지 않는구 나.] 응. 인증을 아예 헐 수가 없대네. 제주도에는 학도병은 헌 사람도 없는걸로. 전부 그냥 군인으 로. [조사자 : 그럼 입대하셔서 훈련은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훈련, 그 당시에 우리는 모실포. [조사 자 : 아, 모실포에 훈련장이 있었구나. 육지 병력도 거기와서 받았다고 그러던데.] 아니아니, 그때 그 6.25 당시에는 훈련소라는 게 없었거든. 교육대라서. [조사자 : 교육대.] 걍 여기 처음 9월 1일 에 나간 사람들은. 학교-가 훈련소. 초등학교. [조사자 : 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에서 훈련을 받은 그때도 그 훈련 기간이 많이 없었어. 일주일 받아서 나가는 사람, 헌덜(한달) 받아 나가는 사람, 이 렇게 했거든. 일주일 받아서 나가는 사람은 빨리 나간 사람이고. 그 일주일 후에 떨어졌다 나가는 사람을 지금 말하면 낙오된 훈련이라서. 그 낙오된 훈련은 이제 어떤 어떤 허당. 그 개월수를 늦추 고. [조사자 : 그러면 모슬포에서 훈련 받으시고 그 저기 여순 그쪽으로 먼저 투입되신거에요?] 아 니, 나는 전방엔 안가고. [조사자 : 저기 여수 순천 그쪽으로 아까 왜 제주도병이.] 그거는 영삼공. 먼저 간 사람. 그 사람이 한달 전에 갔거든. [조사자 : 한달 전에. 9월 초에 간 사람들.] 9월 1일간 사람은 그 그쪽으로 이제 공비토벌. [조사자 : 공비토벌을 먼저 갔구나.] 공비토벌, 공비토벌. 그때 그 그쪽에 반란이 여기 제주도에는 냉중에 나가지고 그 가니까 전부 공비토벌. [조사자 : 거기 갔 다가 나중에 전방으로.] 공비토벌 하다가 이제 11사단으로 편입되면서 전방에 다 나간거야. 전방으 로. [조사자 : 그래서 아까 그나마 덜 죽었다고 말씀하신거구나.] 그래서 덜 죽은거. 전부 그러니까 경험은 된거 아냐. 그 당시에 막바로 훈련 끝난 간 사람들이 어떻게 되노면. 군대장님을 촛았거든(찾았거든) 그게. 총이 그때도 8발이라이. 훈련소에는 그 무슨 우리 훈련받을 땐 무기가 없었어 지금처럼. 개인이 하 나씩 준 게 아니고. 엠왕총, 갈비 이제 그 기관총이 그런거 가져다가 헌 그 교육 시간이 헌시간이 면 1개소대 삼십 육명이 1개 소대라이. 영 모였죠. 우리 이렇게 모여앉아 총 하나 따라 그걸 교육 을 시겨부려. [조사자 : 총 하나가지고.] 하나가지고. 그 모르거든. 그럼 이제 훈련, 이제 사격 훈련 가야 거기서 이제 그 헌, 헌대씩 놓아가지고 걍 쏘기만 하면 그냥 나오죠. 총 가지고 다니지도 않 았어. 그 딱 10발이라서. 그 연습허는기 10발 딱 쏜 다음에 그 쉬거든. 그 전방에 가면 그 실탄장 전된 8발짜리 헌번 나가불면 그게 팅 나와불면 실탄 장전을 헐 줄을 몰랐거든 그게 사병들이. 결 국 그때 이제 군대장을 불렀거든 그게. 그 총, 실탄을 장전을 못해노니까. 그랬는디 우리 제주도 군인은 이제 그 후방에서 근무해놔보니까 전부 경험을 얻은 상태에서 전 방에 들어가버렸거든. 그러니까 산거는 이제 영삼공이 최고 살아있고, 지금 명단에도 영삼공 외에 는 없어. 영육짜리가 불과 천육백 몇 명에 이 영육짜리가 한 세 사람 밲엔 없어. 그 사람들은 영육 으로 나가서 저 그 후방 헌병대 근무한사람. 전방에 못 간 사람들. 그런 사람 외에는 거의 다 영삼 공, 지금 제주도에는. [조사자 : 그러면 어르신은 군번이 시작이 어떻게 됩니까?] 영삼공. [조사자 : 똑같은 영삼공.] 하여튼 50년대에 다 영삼공.

그란디 그때는 이 군번이 지방별로 줬어. 딱 군번보면 어디 출신이라는거. [조사자 : 알 수 있겠 네요.] 그러면 서울은 그 영일구라서이, 서울. 이 경상도 출신은 영이, [조사자 : 영이?] 응. 영이, 제주돈 영사. 그 당시는 어느 부대가도 딱 영삼공은 보면, "아, 제주도 출신이다." 영이 봐도 "아, 이건 경상도 출신이다." 그게 그 당시에 그 지방으로 그것도 그 군번 매긴게 무슨 이유가 있어. 지방별로 준거라 그게. 그 알게크롬. 그렇게 되지. [조사자 : 그럼 어디서 근무하셨습니까, 어르신은.] 부산 쪽에서 근무했죠. 헌병대에. [조사자 : 아, 헌병대에 오래 계셨구나.] 그 헌병사령부 소속으로 해가지고이 그 거제도, 거제도 포로수용소 에도 근무했고. [조사자 : 아, 그 얘기 좀 해주십시오. 거제도 포로수용소얘기.] 근디 거제도 포로 수용소는 낸중에라이. 50년도 처음에는 부산 거제리, 거제리가 그 일공칠 헌병대라서이. 일공칠 헌 병대 그기가 원 본부. 포로 수용소 시초는 거제리. [조사자 : 거제리 일공칠 헌병대에 맨 처음 배 속되셨구나.] 거기가 우리 갈 때에는 초동이니까 포로가 멫 명 없인때. 그 훗자니까 우리가 거기 간 원인을 제주도에서도 낙오대매 훈련 헌달받았어에. 다른 사람들이 일주일 받은 1중대, 2중대 나가버렸는데. 우리 받을때는 낙오되매 헌달을 받은기라. 제주도에 그 6.25때도. [조사자 : 한달동 안 받으셨구나.] 그 이제 부산간에 초랑중학교에 가가지고 그기서도 1중대, 2중대는 일주일 교육받 으니까 또 전방으로 나가분기라이. 거기도 가니까 또 낙오된기라. 3중대 거기 1개 대대가 4개 중 대라이. 4개중대, 2개 중대가 3중대, 4개중대가 떠나버리는기라 부산에서. 게서 부산에서도 헌달을 교육받은거지 거기서. 그 6.25때도. 그 게 받아가지고 처음엔 이제 산에서 내려오래 내려오니까. 전부 그 옷 주는게 그 경비대식의 정부옷 준거라, 부대옷들이. "아게라 이것도 우리 어디 훈련받으러 안갈 수 이거." 우린 그때 막 전방으로만. [조사자 : 갈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옷주고, 구두주고, 구두도 그 주 고 하니까 이건 또 이젠 전방으로 가는 건 아니라이. 그래서 "아, 이것도 훈련소 가는 거 아니냐." 고 걱정하는데. 거기서 아니 포로 수용소에 가는 거니 완전히 경비대 식의 옷 입어 나가서 보니 까. 그 훈련소에서. 나가고 보니까. 'P'라고 썼으니 포론지 뭔지 알아? 그게 영어로만 앞뒤 쓰고 뭐 쓴거니 우리 군인 옷보다 나서이. 그때 그 겨울이니까 전부 사제옷 다니라해. 포로입은게. [조 사자 : 좋은 옷이.] 좋은 옷이죠. 사제옷에 게 우아래 입은 이름만 'P'라고하니 포로말인지 뭔지 알 게 뭐라. 군인보단 더 철저히 해노니까. 게 들어가 그때는 그 저 제네바 협정 결의되기 전에 한국군이 취급했지 그 포로를. 가니까 그때 초동 들어가니까 멫명 안됐어이. [조사자 : 인민군 포로가요?] 응. 멫명 안됐는디. 저기 이제 낸 중 에 들어오는기 그 2차 후퇴하면서 막 포로 들어온거지 그게. 군인도 무조건 미군한테 걸린건 다 포로라. 그래서 그때 군인들도 많이했고 주로 피난민이 미국놈한테 걸린거 거-의 포로로 다 실어 데리고 온가니 여자도. 여자가. 근디 여자들은 거기서 얼마 안있네 그 다 석방시키는디. [조사자 : 군인이 아니니까.] [2] 거제 포로수용소의 전반적인 운용 상황 그때 그 포로 들어오는 양 취급한 건 수돗물이어서 났지 부산에도. 전부 그 저 통물 먹을 시절 아니에요? 50년대. 산골짜기 막아가지고 그때 수도 시작한건 그 포로들이 간 산 골짜기 막는 일을 했어. 그 수돗물을 다 저 그 했는디. 그 거제리에서 있다가 그땐 이 한국군이 지금할 때니까 포로

들 꽥소리 못했어. 말을 어디해져. 한국군이 많이 포로를 죽여버렸어. 나쁜질을 하는 건 매일. [조 사자 : 매일 사형시켰구나.] 쏘아버렸지. 제네바 협정 딱 되니까 손을 못대요. 에 거기서 많하니까 하다가 거제리로 이동하게 됐어이. 그때 그 1개 수용소에 만명. 1개 수용소에 만명이고 그 군인들이 감시하는 그 작업 나가는 게 백명에 한 사람이라서이. [조사자 : 아, 한명이 백명을 담당하고.] 응. 백명이 담당해노니까. 그 산 에 강 작업시킬 때도 군인은 군인대로 모여있었으대. 무서우니까. 그 낮에 점심시간에 총 한발을 쏴. 그럼 이제 다 우 인제 점심먹으로 거기도 그 포로들도 소대장, 중대장. [조사자 : 지들끼리 다 있죠?] 분대장 다 있어 잉. 그런 놈 한테만 얘기허지. 얘기허면 식사만 시켰는디. 거제도에 간 또 만명씩을 그 포로 수용소를 만들었는디. 그때야 데모하기 시작한기라. 제네바 협 정 결의되노니까. [조사자 : 그때는 유엔군이 와가지고 관리를.] 아이, 관리는 한국군이 허는디. [조 사자 : 대장만.] 응. 그 뭐만 이제 그 제네바 협정 결의되니까 항상 관리나 뭐 하는건 저 코치했는 디. 그때는 미군 사령부에서가 주목이 되븐거죠. 이 한국군보단 그 권한이. 게노니 한국군이 말을 못해. 그자 포로 때려도 이제 때릴 적어고 일절 얘길 못해. 게서 거제도에서 폭동이 시작해노니까 벨(별) 수가 없어. 그래 이제 그때서 만명씩 모아보니까. 걍 이쪽 수용소, 이쪽 수용소 길 하나 사이지 이게. [조사 자 : 그럼 총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포로가?] 총 인원은 모르고. 우리가 그 교환한 당시 10대 1이 라 그게. [조사자 : 10대 1이요?] 응, 그때 11만명이 나가고 이 우리 군인 헌 만명쯤 온거라. 그때 그 10대 1로 교환거라. 그때 우리가 그 자기네끼리 막 폭동일으킨 죽이고 살리고 그럴 적에는. [조사자 : 예예. 책으로 봤습니다.] 그 정문에 가거내 그 말할테지 이제 심사를 했어이. [조사자 : 예예. 포로 심사.] 그 심 사해가지고 남한에 남을 사람은 남한에 남고, 북한으로 갈 사람은 북한으로 가는 심사. 그 안에선 얘기 못하니까 딱 오늘 한다면 그 입구에다가 정문에 가믄 이 저 투럭(트럭)들을 댔어. 대가지고 이남으로 남을 사람은 차에 오르고 저 북한으로 갈 사람은 이 철조망 사이로 들어가라 했거든. 그 러면 이남에 남을 놈은 무조건 차에 올라불고, 저쪽으로 갈 사람은 이제 그 쇠철조망 사이로 들어 가지고. 거기서도 막 싸워놔서 자기네끼리 돌맹이 질을 허면서. 그 이남대 나오는 놈들을 맞쳐버리 는 거죠 이북으로 갈 놈들이. 그렇게 허면서 그 하는데, 해가지고 그때부터는 5백명이 1개 수용소 에 하나씩 맡죠. 만명씩 못하고 이제 갈라가지고. 그 데모 해놘 후에 그렇게 진압한 후에는 1개 수 용소 안에가 5백명. 인원이. 그렇게 해내 이제 그 관리를 해놨거든 게. [조사자 : 그 작업같은거 나가면 한국군끼리 같이있을, 같이있어야 될 정도로 걔들끼리 거기 잘 못 들어가면 막 또 한국군이라도 맞고 그랬습니까 그러면? 걔들한테 붙잡히면?] 아니 맞고 글며는 일단 그 한국군이 진압시키고 이래갈 때 총 안가지고 들어가며는 그때 그 한국군은 그 저 철모가 쏘게 거의 헬맷되나면 그게 항-상 빈집거리게(반짝거리게) 만들어놨어. 이 저 포로 수용소에는. 그 페인트 칠도 허면 어디서 뭔 짓을 하믄 딱 밤에보면 빈치거리게고. [조사자 : 아, 빤짝거리게.] 응. 빤짝거리게. 그 다음에 그 포로 수용소 안에 진압하러 가며는 그 이렇게 사각이라서이 여기 감시 대있고, 여기, 여기 네 군데 그 감시대 있었지. 감시대 있고 여기 아래는 군인이 항상 토라이. 주 로 허는. [조사자 : 통로가 있고, 그 도는게?] 응응. 위치하지. 그하면 이 총은 이 감시대만 그. [조 사자 : 거기서 위에서만 이렇게 총을 갖고있고.] 저 기관총이 있고. 아니, 여기는 그 저 엠왕총들이 있었고. 그런데 대개 포로수용소에 엠왕총이 아니고 이 감시대는 기관통이고, 여기는 갈빙이라는. [조사자 : 아, 칼빙.] 갈빙이라는데. 처음에는 총이 없으니까 그 저기 미국에서 1차대전 때 써른게 (썼던 게) 왔어. 그거 일단 난중에 교체가 됐는데. 그 감시대에는 전부 기관총이랬거든. 그하면 폭 동이 일으키면 감시대에서 그 알아서 와서 쏴버리는거. 그하면 헤리맷또(헬맷) 빈칫거리는 디만.

[조사자 : 안쏘고.] 안쏘아. 처음엔 이 안에서도 그 배꺁에(바깥에) 저 동초행에 그 안에 군인들을 동초도 그냥 실탄 장전해 그냥 쏴버렸거든. 하도 쏘아가니까. 이제 그 동초들을 중지시켜버렸어 못 쏘게. 실탄 항상 총에 장전해 있어도. 군인들도 총 저 수입하다 그러는게. 서로가 헌 줄 몰라 그렁 게 쏘아놨지 뭐 안했어도. 실탄 장전 핸. [조사자 : 내부반에서 총 손질하다가 오발사고가 많이 났 구나.] 응, 오발 오발. 그게 그 배꺁에서 근무 끝나며는 크게 빼 오래해도 빼지않고 왔다가. [조사 자 : 총알이 남아있다가.] 응. 그때 그 근무가 나가면 여섯시간 근무라 이게. 여섯시간 근무 딱 핸 들어주게 그 동초도. 그 항 상 돌게되는거죠. 어디 아장(앉아) 졸도 못허고. [조사자 : 그러면 많이 부족했네요. 그러니까 보초 하는 군인들이. 포로 수에 비해서.] 그래 딱 고정 돼있어. 그 근무하는 으 군인들은 전방대로 안보 내고. 그 왜 전방에 안보내는가 하며는 유술(유출)될까보래. 우리 한국군에서 관리하는게. 포로관리 하는게 만약 잡혀가며는 그 포로를 어떻게 어떻게 취급. [조사자 : 알게되니까.] 알게되니까. 안된 다 해가지고. [조사자 : 아, 딴 데 절대 안보냈구나.] 절대 일절 안보내야. 그때는 그 포로 수용소 근무하는 인원이 한국군 보급이 아니라. 유엔보급 받았어. [조사자 : 유엔보급 받았구나.] 응. 유엔 보급 받아가지고 전부 한국군 보급은 몰라. [조사자 : 그면 보급은 좀 좋게 잘받으셨겠네.] 잘 받았 지. 전부 게는 한국군이면서도 이등병땐 장교한테 다 경례받아놨지 그 부산에서. 우알로(위아래로) 사제 짝 빼이. [조사자 : 짝 빼입으니까.] 모자쓰고 계급은 안쓰고 명찰을 없어, 명찰을 못 붙이게 했거든. 그 저 이름들 발표된다고 명찰을 못붙이게 했어. [조사자 : 다 비밀로 했구나.] 안보로이 (안보이게) 2부대, 만약 2대대면 2쓰고 1중대면 1해가지고 번호 순으로 해놨지 그게. 명찰을 안붙 이고. 전방 군인들이 싸우면 바짝 차렷이나 장교로 알지, 쫄병으로 알아? 그렇게 그 부산 시내 돌 아다녔어 그 당시에. [3] 수용소 소장 납치 사건과 포로 석방 [조사자 : 그 저기 포로수용소장이 한번 잡혀간 적이 있었죠?] 토트준장. [조사자 : 이름이.] 토 트. [조사자 : 토트였나?] 응. 토트준장. 포로들한테 한번 잡힌.] 응응. [조사자 : 그때 얘기 좀 한 번.] 그게 어떻게 된 그 토트 준장 납치할때는이 그 저 포로들이 그 부두작업을 가이 부두작업도 가고 그저 이남 전체에 그 보급 창고가 있어 거제도에. 일본이든 어디서 일단 그 연대 보급창고에 와나서 거기서. [조사자 : 거기서 다시 나가는구나.] 육지래 그 유엔군에 다 나간다는거. 나가는데. 거기 그 구리스마스(크리스마스) 되가니까 미국에서 군인들한티 그저 위문품이. [조사자 : 엄청 많 이 왔겠네.] 그 보내면서 그 시계들을 다 담아 들어온 게 있어이. 군인들을 계-속 일을 댕겨가며 어디 무슨 물건이 있는가 다 알아. 그래서 그때 10명인가, 15명인가 그 시계를 끼어 나온거라. [조 사자 : 포로들이요?] 응. 포로들이. [조사자 : 손목시계를?] 정문에 나올 때 검사하고 들어갈 때 검 사하거든. 검사핸 그 시계 꼈으니까 그 시계를 다 압수한거라. 다 압수하니까 이놈들이 이젠 들어 가가지고 그 철조망 여 두 개라이. 두 줄로 쳐놨지. 안에는 이 안에 포로고. 요 가운디가 그저 콘 테나(콘테이너) 집, 그 집을 지어이. 거기는 이제 미군허고 이제 그 서로이가 근무혀. 그럼 배꺁에 정문있어라. 요 안에 들어가가지고 역시 안들어가는거지. 왜 안들어가냐니꺼 여기 시계 다 빼부니 까 사령관을 맨대해도라는거지 요놈들이. 사령관을 우리가 면회를. [조사자 : 아, 면담을 해달라 고?] 면담. 전화하니까 이제 전화하니까 사령관이 온거지. 오니까 그거는 잡아 들어가븐거 사령관 허고 저 저 사령관이 잡아들어가버리니까 그신 배꺁에가 넣던겄도 아니고 딱 면담하러 들어오니까 잡아 들어가버리거든. 그러니까 거기서 또 연락병허고 이제 그 무전기를 주면서 겉이(같이) 들어간 기라. 들어가가지고 일주일인가. 바로 우리 나 근무하는 앞에 그 수용소서 잡아, 잡혀 들어가븐기 라.

그러니까 이제 그루고제도 또 그 사령관이 또 들어왔어이. 들어와가지고 그 사령관은 포로들 요 구하는 거는 다 해줘버렸어. 식량이 없다, 또 담요가 모자라고 피복이 나쁘다하니까 막 가서 담아 노니까. 이제 미국에서는 이제 잘못했다해서 그 사람 일주일만에 교체시켜 딴 놈이 들어왔어. 그는 한 15일 걸리는디. 일절 그 사령관에 또 그 음식을 들여주고 뭐 하면서 면담만 허다가 하다 못치 니까 이젠 석방을 안시켜 주니께 막 와서 밀어불끄러(밀어버리려) 했거든. 사령관이 죽었든 뭐했든 이제 다음 사령관을 들어와가지고 이젠 안되겠다 무조건 사령관이 죽더라도 진압을 시키겠다고 해 가지고. 그 주위에 민간인도 전-부 피난시켰어. 완전히 와서 잡아 밀어부껄로. 그래서 그때가 밤 1 시까진가 할 땐 안나오며는 이제 쏴 죽이겠다 하니까 그때 1시 넘어내 포, 그 포로들이 석방을 시 킨거지. [조사자 : 한 일주일만에 나왔습니까 그러며는.] 아니라 2주? [조사자 : 아, 꽤 오래.] 한 2 주 살았어. 거기서. 그 장갱이 미군들이 많이 상허고, 그 포로 수용소가 왜 그러거든 그 저 기구들이 항상 그 배꺁 에 나와서 그 뭐 일허잖아. 땅도파고. 그 기구는 수용소 안에 있어. [조사자 : 안에 자기들이 가지 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수용소 안에 자기네가 왜 이런 내무반에 전부 토굴 파분거. 게 배꺁에서 총 쏴면 하나도 안죽어. 이놈으 대번 이렇게 했다하면 그 전차가 10대 라이. 그 수용소 도는게. 장 갑차가 있고. 그 열 전차는, 계속 돌거든. 진압못해가 장갑차가 들어가. 장갑차 들어가도 우선 우 뚜껑 안덮이면 안돼. 뚜껑 덮기 전에 포로가 올라와. [조사자 : 올라와버리니까.] 응. 그래 사격허 면 안죽어. 게 진압시킬 때 일절 전차가 들어가면 잡아 밀어야. 그렇게 했거든. [조사자 : 잡아놓고 도 마음대로 못하는 상황이겠네요.] 응. 못해야. [조사자 : 그럼 제일 높은 사람이 그때 잡힌 인민군 뭐였습니까?] 응, 토드준장? [조사자 : 아니 아니, 인민군 계급이.] 응? [조사자 : 인민군 계급이.] 인민군 계급들은 안나와. 장교다 해는 그 장 교 출신은 따루 수용을 해놨죠. 거제도 안가놨어. [조사자 : 장교는 따로 수용하는구나.] 응, 따로. 장교 출신상은 별도. [조사자 : 그럼 자기들끼리 서열은 어떻게 정했죠. 그놈들은?] 서열은 자기네 끼리 그양 거기서 되게 대대장, 중대장, 소대장이 자기들끼리 선출하는 거 그 안에서, 수용소 안에 서. 그럼 이제 그 저 중국놈들은 이. [조사자 : 중공군도 있었어요?] 응. 중공군이 한 2만명? 거제도 에 그 근무허는디. 근데 중공군들은 저 중공군으로 간 거이 없어. 거의 다 저 대만 장개석 파로 갔 죠. [조사자 : 대만쪽으로 갔습니까?] 누게가 여하면 장개석이 건이지 주게. 그래 그때 그 포로는 거의 그쪽으로 가고. [조사자 : 거의다 대만으로.] 대만으로 거의 다 가고. [조사자 : 중국 본토로 넘어간 사람은 별로 없었던가보네.] 중국으로 넘어간 아이들은 없고, 중공군은. 소련 군인이 여군 이 한 사람 있었고. [조사자 : 아, 여군이 한명 있었습니까?] 그 외엔 따른 소령은 소련군이나 이런 건 전혀 없어. 거의 다 그 우리 저 이북 출신이라. [조사자 : 그 남한 출신 저기 인민군들도 있었겠네요 좀.] 인민군도 있었고 그 남한 출신은 이 그때 그저 북한이 들어오면서 인천쪽으로 서울쪽엔 다 석방시켜 버리자 그랬어 북한에서가. 수용 소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일 여재(여자)도 있었죠. 여자 포로. [조사자 : 아. 좌익했던 사람 들 그러니까.] 그 게서 그때 그 제주도 출신이 함덕 출신도 있었어이. 우리 아는 이도. 게 그 냉중 에 가보니까 있은 어떤 때 우리가 신문도 갖다 주곤 했는데 그기 했는데 그이 했는데. 남한 출신 이 더 독해요. 데모할 때는. 그 북한, 남한 출신이 이렇게 따로 돼있죠. 게 수용소가. 남한 출신. 남한 출신만. 게 이제 이쪽 요게 남한 출신이고 이쪽에는 이북 출신인디. 처음에는 그 구별할 때는 대개 이렇게 됐어요. 난중 엔 남한 거의 부산으로 다 왔는디. 게 가지고 이게 하면. 여기서 데모해가면 여기서는 요걸 해야. "저 새끼들 북한에가 안살아보니까. 저따우 짓한다."고.

"몰라서 한다."고. 그렇게 그래. 핸데 그 그 냉중에 그 우리가 휴전될 무렵에 남한 그 저기서 그 북한 포로도 전부 남한에 남으 겠다고 핸 심산이는 다 부산으로 나왔어. 저 거제도에는 이북으로 갈 포로만 냄기고. 이제 그 거제 도에도 그 주로 그 포로 수용소가 그 이쪽 거제도에도 두 군데가 있어 두 개. 2대대, 3대대엔 두 군데가 있었는디이. 그 거기는 다 북한으로 갈 사람. 또 부산에는 수영, 동네 네 군덴가 다섯군데 부산지구는 그건 남한에 가겠다고 해가지고. 그때 그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을 안시키는기라. 지금도 우리가 모를꺼지마는 그전꺼지도 휴전을 해도 그 우리 남한에서 꼭 그 북한엔 참석허면서 남한에 안 참석할때가 있어놔서 회의. 우 리 남한에서 반대했거든. [조사자 : 계속 해야되니까.] 그 우리는 휴전을 안한다 해가지고 반대하니 까. 할 목적엔 해가니까 이승만 박사가 뭔 명령을 내리시음, 이남에 있는 포로 수용소 있는 사람은 전부 밤내로 몇월 며칟날은 석방을 시켜불라 명령을 내리는기라. 각 일개 수용소에 대대장 한 사 람도 군인이 있으니까. 있는디 부산 지구나 어디 경남 지구에 간 사람들랑 다 보내줘라 나가거든. 게 나가면 가족이 없응까 전부 보호해줘라 핸 명령을 내렸어 그때. 내려 이제 오늘 저녁에 다 석방을 시켜븐거라. 미국 놈들이 또 그 수용소마다 2, 3명쓱 책임이 있어이. 그 외에는 이제 그 근무하던 사람 한국군이니까 허는디. 미국놈은, 미국놈은 무조건 잡아 다 그 안에 영창에서, 영창에 집어넣고 전선을 다 끊어버려놨어요 우리 한국군이. 연락을 못하게 다른 대로. 그래야 포로들을 다 석방시킬거 아니에요. 게 다 밤에 끊어낸게 그 군에 석방을 시켜놔 주게. 허룻저녁에. [조사자 : 그 보통 반공포로라 그러죠. 남한 선택한 사람들. 거기 한 90프로 정도는 어느, 비율 이 어느정도 됐습니까?] 비율이. [조사자 : 북한 선택한 사람이 별로 없죠?] 아니 그냥 북한 사람 들이라 다. 남한에 남으기로 한 사람이 북한 사람들? [조사자 : 아니, 북한을 선택한 사람들이 별 로 없죠? 북한 올라가겠다고 선택한 사람이.] 아니 그게 11만명 이상이라. [조사자 : 북한으로 올 라간 사람이요?] 응. 10대 1로 바꿨거든. 우리 한 사람이 10명을 저리 준거죠 우리가. 그 포로로 바꽌 넘어간 사람이 11만 몇 명이라. 11만 이상이. [조사자 : 북한으로 넘어간 사람이요?] 북한으 로 간거죠. 게 무슨 그 북한에서 깨끗이 보내주지 않으니까 지금도 거기 있는거죠. [조사자 : 예, 조금 남았죠.] 우리는 깨끗이 보내줬는디. 그렇게 된거. [조사자 : 그 남한하고 북한하고 양쪽 다 말고 제3국 선택한 사람도 있었죠? 인도나 뭐.] 그럴땐 그 인도 사람들은 그 지방 사람이나 아니면 없었어. [조사자 : 한국 사람 중에서 남한, 북한 다 싫 다 딴데 간다 이런 사람 있었던거 같은데.] 없었어. 우리 알기로는 그 당시엔 없었어. 교환 당시에 는. [4] 수용소 내 생활과 물자 비리 [조사자 : 기상은 똑같이 합니까? 포로나 군인이나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똑같을거 아니에요.] 비슷해요. [조사자 : 밥도 비슷하게 먹고.] 아니아니. 처음에, 처음에이 우리 훈련받을 땐 그땐 그 알량미 쌀인데 삼홉이라 났어. [조사자 : 알, 알량미? 아, 안남미. 베트남 쌀. 그렇구나.] 지금 대만 미가 아니고, 그 알량미는 막 깨논게 있었어. 그 대만미 다음에 네 번차가 빻으면 그 알량미 쌀이 가 나오는기. 깨끄께그한게이. 그게 삼홉이 왔어이. [조사자 : 일인당.] 일인당 들어가니까 삼홉인 디. 삼홉을 다줘도 배고플껀디. 이홉 정도도 안됐을거라. 우리 사람들 즉시 배당보내면 결국 그때 우리는 김치도 없고, 아무것도 이 찬이란건 없었죠. 훈련소에. 딱 국에 넌거허고(넣은거 하고) 그 밥이라이. 게나 국에 넣어야지 된장쿡(된장국)이지 그게. 된장쿡이면서도 그 너물(나물)이나 몇 개

있잖여. 그 인제 훈련받을 때니까 그 낮에는 식당도 아닌 여기 쫙까자이 1개 소대면 1개소대. 쫙 까자이. 그 일로 보더(이쪽으로 부터) 밥을 절단하라(전달하라) 한다. 쫙 저 안에가. 하다 딱 하나 가 모자라이. 그래 그 인제 둘을 먹재이 그 모재랜 톡, 득거본(더 가져간) 사람꺼다. 결국 다 일어 사. 일어산 밥이 수정대로(수량대로) 딱 그래노니까 하나 곱절이면 하나가 굶게 되니까 반가는 사 람 있잖아애. 다 일어사. 일어사면 곱저슨(곱절로 가져간) 그놈을 반을 죽지 그. [조사자 : 많이 가 져간 사람이.] 아이 한사람씩이 더 가져가니까 한사람은 모자라거든 수를 딱 세면. 게 나 밥 안먹 거리 손을 들라주게. 게 인제 다 일러선 그걸 찾아줘야지. 그 하면 그 낮이는 훈련받아 딱 오며는 그냥 이런 그 연병장에서 밥을 먹제. 쭉 가자. 게 그 국에 넌 것도 똥그렇 떠서이 그때는 그양 밥 에다 바시 먹은다게. 밥에다 그 국을 놔불면 해서할 거 아니가. 가지맨 지금겉으면 우리 먹는 사발 이 그 지금 여 납죽-한 사발 반정도 밖에는 안디야. 그 먹는기. 그 하나주게. 찬도 없고 반찬 아무것도 그거 딱 먹다 포로 수용소 딱 들어가니까 그덴가네 막 반찬이 좋은 거 줘. 그때는 초두머니 소나 되아지(돼지) 그양 들어와야. 잡다안햐. 그럼 이제 포로들 데려다 그걸 잡아이. 포로 수용소 주는걸 다리, 머리, 배설 이런것만 줘불고, 소는 다 군인이 먹어분거지. 포로 수용소 들어가는거. 그땐 그 포로들 그런기 그저 헌두번이 들어오는 거지 그게. 그 인제 포로 수용 소 들은 거이 군인이 그걸 먹어이. 군인이 먹어야 뒷날 쯔믄에 변소간이 줄을 서. [조사자 : 갑자 기 고기를 먹어서.] 갑자기 그. 굶다간 이녁을 거를 먹으라 하니까 그게 고기고 밥이고 그리 먹었 거든 그게. 그렁게 다 설사나 뒷날에. [조사자 : 그 화장실은 어떻게 했어요?] 그때 화장실 저 머 개. 지금 이런 화장실 아니고 저 도라무깡형에 있어이. 지금 거제도 가 보니까 그런거 있다고 말한. 나 작년에 한번 구경 또 가봤어이. 그래 이거 순 다 엉터리로 해놔서. 그레서 거기서 설명을 했어이. 토드준장 납치해가는 것도 그냥 그 수용소 안 에서 이렇게 데리고 들어갔는데이. 산비틀에서 뭐 공비에 잡는 식으로 만들어 놨어. 그 만들어 놨 길래 이거 도저히 이것도 그러고 장수조차 그게 아닌, 그 물어봤어. 야 여기 거제대 나온디가 어디냐 고 하니. 저 밑에 어디래요. 아 왜 거기가 본래 수용소라는데 거긴 그 그 그 시절에도 미국놈들 이 전부 3명이나 저 도로에. 거기가 도심지가 되버렸어. 이번에 가보니, 도시가 되버렸어 완전히. 저 저 도시가 그 자리가. 게 이상한데 오라를 만들어놨지. 어떻게 나 아는수가, 나 여기 근무를 해 난 사람이지 여게. 5, 6개월 나 여기 오라 대대본부에서 근무하던 또 그 뒤이를 부산으로 간 사람 인데 그걸 모르면야 죽어라. 미국 놈들은 커피가 나왔어이. 커피 무신 봐났겠나. [조사자 : 처음 보셨겠네.] 처음이나. 게 난 그 이쪽엔 물 넣고 이쪽엔 이제 커피 카멍 넣고 놓고 설탕 노놔. 어떤 사람은 커피 쓰마 설탕에 그 커피에 범벅을 해 먹고. (웃음) 아 먹어보난 적이야지. 경험 처음이났죠. [조사자 : 그래도 굉장 히 빨리 커피 맛을 보셨네요.] 밥 먹을 때. 응. 그렇게 가는기야. 미국 놈하고 똑같으나 우리 먹는 거는. 그래 먹는거. 그저 쇠로 된거이 그 가끔 있어이. 그 컵허고. 밥이고 반찬이고 놓고 컵에는 거기 인제 국을 이저 푹 끓여놨는데이. [조사자 : 코펠같은거, 이런거.] 응. 그땐 그 포로 수용소에 서 근무하는 놈은 꼭 미국 국민하고 똑같이 그 저 행동을 해부니까. [조사자 : 그러면 뭐 빵같은 나왔겠네요.] 씨레이션게. [조사자 : 아, 씨레이션이 나왔구나.] 곽으로 나와. [조사자 : 곽으로. 깡 통같은 거 따서 먹고 이런거.] 곽으로. 꼭 그거 나와. [조사자 : 식량 보급품을 시레이션이라고.] 그 게 전방같으면 그 간식으로 나오는건디. 수용소에는 그 그거 외로 나가는거지. 나간 잘 안먹거든 그런거. 그 저 군인들이 노았다가 그러고 물물교환을 해여이. 그때 그. [조사자 : 팔았다는 소리도 있던데.] 포로들한테 뭐 바꾸는 거미 이제 그 사제 옷들이. [조사자 : 아, 사제옷?] 응. [조사자 : 포로들

한테 있습니까 그런게?] 포로한테는 좋은 게 들어가니까 계속. 그거 나오면 그 이게 히따구래는 것 만 새옷때매 그거는 그건 밀항도 허고 그냥 그걸 상인들이 그 산 골짜기 온다. [조사자 : 그 얘기 는 많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돈 옷이 나왔다는.] 아이 그 당시 어디서 늘어진 거 담요고 뭐시고 그 쪽에서 나온거. 거 그 여기 창고가 되며는 밤에이 영업쪽으로 허는 놈들은 한국군들도이 가매 가그네 쏠도 이제 영 동산올라가는 데 가면 가매 던져불면. 미국놈들은 이 안내서(안에서) 안해는거는 배꺁에 꺼를 일절 말을 안했어. 넘기는 것도. 그러면 사제옷이 그때 저 40만원이라서, 저게 40불 들어놨죠. 우 이(위에) 것도 마흔개 들어가고, 아랫것도 마흔개 들어가고. 화폐교환하기 전에 40만원이라서이. 허 고 뭐 담요는 저게 10장에 10만원 밲에 안가서. 한 뭉치가 10만원이라. 10자. 저건 해봐야 돈이 아무것도 아닌게 무겁기만 하죠. 그 여기 수용소만 요만치에 가야 그 사는 놈들이 주게. 사가지고 그기서 산 부산으로 다 나와. 어떤게 그. 제일 돈 많이가는 건 양말이라서. [조사자 : 아, 양말.] 양말이 90만원가. 이까지 올라오는 그 두 꺼운 양말이니까. 그게 여기 나와 풀어가지고 뭐 옷을 짜나 뭐하는 것으로 들어간게주게. 사람 신 는 걸로 들어가는게 아이고. [조사자 : 양말로 하는 게 아니고, 다시 풀어서 실로?] 그 옷을 만들던 가 뭐하는걸로 그게 귀하고 비싼거죠. 그건 한뭉치 나오면 90만원. 그렇게 가난했어. [조사자 : 그럼 포로들은 옷을 주고 뭘 사는거에요? 포로들은?] 대개 먹는거나니, 껌같은거이. 껌. [조사자 : 주전부리할거 이런거.] 껌 같은거. 이제 그 옷도 주고, 자기네 돈이 없으니까게. 이제 모포도 주면 이제 그 군인들이 가져가 팔든가 이제 휴가올 때 나와 팔든가 하는거죠. 어떤데는 이 런데 끼어 나오지 뭐. 허리에. 담요는 여기 끼어. [조사자 : 그런 얘기가 정말 재밌고 좋습니다.] 이 포로 수용소에 근무한 사람 처음에들은 돈 처음에나 나중에나 돈 번 사람들은 많이 벌었죠. [조사자 : 많이 벌었겠네요.] 그 살림 살던 사람들, 여기서 장개가거나 그 가족끼리 살림 살던 사람 은 돈을 아니까 허고. 우리정돈 가야 그 아신을 가나 나 경우도 그때 그 근무가도 그 조장님이 책 임지고 한 20명 데려가매. 그 미국놈하고 같이 놀다오주게. 그럼 그 주위에서 그런 것들을 해주맨 자기네끼리 돈을 갈라. 이쪽에서 만약 멫 둥치 나가면 그 10명이면 10명이 끝나면 갈르지. 그케하 믄 그 내무반에 와. 지갑이 어딨어? 그 관물함이 있어. 나무로 하꼬만하니. 그 속에 돈 다 내버렸

어 군인들. 게 누가 파가지도 아니고. 파가지 가지. 다 그 있어노니까. 편하게. [조사자 : 다들 많 으니까.] 돈이 다 자기 쓸만씩 있응께 그 밤근무 만약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딱 해노면 그날 뒷날은 허 루 저녁 외출보내부려. 그 전시에도. 그면 거제도에는 그때 저 지금 그 어디고. 그 포구있는디 거 기가 한군데고 부산에 있을때는 그냥 부산 천지 다 돌아다니난 그 외출나와도 돈 있는 놈은 주위 에 친구들 멫 사람 가자하는거지. 같이 근무한 놈들. 게면 저녁 다섯시꺼지 허루 점호를 헐 꺼 아 닌가. 꼭 12시간은 비번이니깐 그땐 꼭 외출을 보냈거든. 양식이나 부식비 나오는 건 거기 이제 대대장이나 소대장들 타먹는거지. [조사자 : 아.] 그 식이 라서. [조사자 :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알지? [조사자 : 식세 인원을 빼버리고.] 그 남는거 아니야 다. [조사자 : 물품을 자기들이.] 응. [조사자 : 엄청 남는 장사를 많이 했겠네.] 응응. 나도 여 나도 군인관 많이 본것이 헌병사령대 있으면서. 난 그 보급대도 맡아보고 병기계도 맡 아보고. 하관말직 선임하사로 제대했는디. 나도 공급대 맡을 때이. 근디 그때 그 공급대 맡으면 1 종, 2종, 3종, 4종, 5종까지 다 맡아. 게 하면 나가 만약 공급대 맡은 밑이 그 부하 한사람만 대령 해서이 결국 이제 그 둘이만 허는디. 그때 못빼먹을 게 있어? 다. 그 검열 놓을때는 예비로 해놨다 가 어떤데 원주까지도 차가 매진. 저거 팔아먹을라. 모재르게 되면, 모재르면 이제 원, 원주갈 때 헌거 사가니까게. 찢어진 것도 숫자만 채와놓는거. 그 식을 많이 해놨으게. 또 대대장이 지시도 내려이. "쌀 한관에 헌개매(한가마), 헌개씩만 빼라." 그러거든. 이제 그양 딱 내려. [조사자 : 자기가 먹을라고.] 응. 자기 먹재이. 게 이제, "부식대를 얼마 빼라." 이러지. 부식을 또 부식으로 많이 날라간다고 숙소에. 그럼 이제 썰(쌀)을 헌대씩 빼라면 이제 헌가마니 한 대씩 딱 빼이. 걍 빼면서 빼는 사람은 뭐 공짜로 빼 이게? 두 개를 빼불지. (웃음) 두 대를 빼며는 어떤데 가며는 이 저 우리는 소대가 있어이 소대가. 딱 저울에, "아 이거 키로(kg)가 모재르요." 대대장한테 얘기하래이. 대대엔 한 대씩 빼놓는거니까. 한 대를 뺏는지 두 대를 뺏는지 모르거 든. 대대장한테 보고하래하믄 대장한테 얘기를 해야해지. "대대장이 얼마씩 빼래고 뺀거지. 대대장한테 얘기하지 우리한테는 얘기하지 말라."고. 자기는 그걸로 끝이라. [조사자 : 주고 거래하는 포로들이랑 쫌 친한 군인들도 있었어요?] 친한 군인은 없고. 그냥 그날 가면 자꾸 교대날 그 포로들도 알거든 이제. 여기 오라게 얘기해보면. 뭐 교환할거나 가져왔느냐하 면 가져오거래 하믄 그 대개 껌을 많이 요구햐 그놈들은. 대개 껌. 다른 것 보다. [조사자 : 왜 껌 을 많이.] 심심하니까 그 씹는 맛인지. 이 하여튼 껌을 많이 찾아났어. 미군들은 이 저기 그 일본에서 근무하당 거제도에 오랑. 콧노래나 두드리며 근무핸가가 그런 놈 이 창고 안에 근무하당 한국군이라도 강 저 사저 멫 초만 매다하면 군인이 그냥 매다 줘버려 미국 놈들이. [조사자 : 그럼 포로들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그냥 놓고 먹는거. [조사자 : 작업같은거 시 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작업 헐거인 있을땐 해도 작업헐게 낸중엔 없어. 그 처음에, 처음에 포 로 수용소 만들때는 계속 작업을 시켰는디. 그러고 이제 작업 할 게 없으게 전혀. 그다 먹고자고 뒷날까지 매일 그 저 똥물, 푸니까 도라무깡 두레꺼는 거기다가 우이 나무 넓적이 허니 딱 짜그래 그 우이 앉아그래 그 대변이나 소변보게 해놨어요. 뒷날엔 그걸 이젠 둘이가 하나씩 내주게. 거제 도 저 지금 조선소 만드는데. 그 물에강 비왔거든 그게. [조사자 : 거기다 비웠구나.] 응. 그래니

그거 비우러 갈 때 또 군인이 나가이. 양쪽으로 이제 그 감시,감독. 그것들이 그 아이보는(안보는) 새 그 논밭에 비워버려 그양. 그땐 시원히 두드려는 타야죠. 비워버린 거. 그 그까지 가기 싫은 놈 이 중간에서 가다가 비워버리는 놈이 있어. 그 똥통을. 그럼 이제 그런 놈 있이며는 거기서 막 조 져버리는 거지. [조사자 : 그럼 그 포로들 남자 포로랑 여자 포로끼리 막 정분나고 이런건 없어요?] 없어. 별도 로 막 거리가 멀어. [조사자 : 아, 멀어요?] 수용소, 그 남자있는 포로 수용소 주위가 아니고 별도 로 이쪽에. [조사자 : 그럼 여자 포로 수용소는 여자 군인들이 저기 관리했습니까?] 아니, 관리는 남자들이. 또 여자 포로 수용소 데모하니까 그렇게 독해 남자보다. [조사자 : 어떻게 독합니까?] 도 저히 들지(듣지) 안혀. [조사자 : 뭘 안한다고요?] 남자 포로처럼 그렇게 말을 안들어. [조사자 : 아, 말을 안듣는다고요?] 데모하면서 가니까 응. 난중에 이제 그때도 이 옛날도 그 물총이 있었어 이. [조사자 : 예예, 물총.] 막 가서 뿌려 진압시켜. [조사자 : 물대포.] 여자가 더 독해나서 폭동 일 으키면. 거기서. [조사자 : 그 폭동도 자주 일어나나요?] 응. 낸중에 5백명씩 딱 걸러내믄 별로 안나와. [조사자 : 다 분산을 시켜버렸구나.] 응. 분산시켜 노니까. 아 만명씩 1개 수용소에 만명 다 올라게 군인이 뭐 껌딱해질꺼라. 그래 내 낸중에 5백명씩 딱 짤라보나 규칙적으로 해보나. 폭동에서 근디 또 보내 진않아 또. 아이고 그 보통 입던 옷에서 보낼 때 새옷 줘서 다 이. [조사자 : 아, 나중에 보낼 때 요?] 응, 보낼적이. 거기서 독한 놈들은 버선뱃겨부려. [조사자 : 그것까지 다 벗고.] 보통, 보통 우 이 "살때는 안주고 우리 가게 되아 이거 주느냐." 벗어 벳겨불며는 이제 군인들은 어거지로 입죠이. 사진만 찍어부면 되는거니까. 사진만 찍은다 그런게 우리 이렇게 해왔다 헐꺼니까 사진찍어부는데 버선 벗어 댔겼건, 신 벗어 댔겼건 말을 안 했거든 그게. 지금까지.[조사자 : 군대가 원래 그렇구나.] 그 살다 딱 나오니까 그 놈들 다 아는거지 그게. 알아 뱃겨부고 다 옷을 주고 새옷 캐켜불고. 거 이제 군인들이 들어 막 어거지로 입죠. 사진만 딱 찍어 부면 그 다음엔 니네 마음대로 하라여. [조사자 : 포로들은 삼시세끼 먹었나요?] 응. 삼시 구짝. [조사자 : 그 미군들이랑은 많이 친하셨 어요? 자주 보시니까.] 포로들? [조사자 : 아니아니요, 선생님이.] 우리는 미군들하고 같이 행동하 니까 똑같지. [조사자 : 말이 안통하는데 어떻게.] 말이 안통해도 어떤 통해가. (웃음) 난 미국말도 배았을끼고, 중국말도 배앗을 낀데 어떻게. 그런데 미국말도이 그 나 그 여기서 그 군인가기 전에, 딱 해방되니까 그 영어를 그 본문을 다 나가 써놔 그 날적에. 걔는 내가 지금도 싹 쓰며는 하루가 어떤 연결 씀시롱 허지 그때 하다가 4.3 사건 딱 일어나버리니까 나도 그걸 공부를 하는기라. 우리가 야학수업 모냥 열을 여기서 배우단 안갔어. 그카는 가믄 이제 미국놈한테 여 들 으면 이제 매 쓸고 어디고 하는걸 안하지 즈게. 통해놔서 거기가도. [5] 거제도에서 강원도 전방으로 전출 그리고 제대 [조사자 : 그럼 타지에 오래 계셨는데 그 제주에 있는 뭐 좋아하는 여자나 부모님이나 안그리우 셨어요? 편지쓰거나 그러지 않으셨어요?] 저는 편지나 무스거 쓰, 써 보내기도 계속 했지마는 그 후방에 근무해노니까 그 저는 여기서 멫메다(몇 미터)를 왔으믄 그 낸중에 제주도에도 그 우리 군 인 간 후에도 흉작이 들어놨어 내가 낸중에 휴가완 보니까. 아 그런 때라도 가족이 왔으믄 충분히 살 수 있는거 내가 히꺼인디. 냉겨온 돈을, 아 이럴때와도 연락했으면 그때 돈을 저기서는 난 가만 막 댕길때라서이. 다른 사람보다. 그런 내가 여기 오랑 우리 아씨가 이사갈 즉이 동생이 6.25때 안 가기 위해서 그때 읍, 그때 병사계가 보낼 수 있고, 안보낼수가 있어놔서 그 당시에. 게서 우리 부

모네가 내가 늙, 연세가 많은 후에 갔어 이 군인을. 가보니까 부모네 고생할까보내 동생을 아니 보 내자녀 사제옷도 그양 보내고 뭐 그 군인 있으면서 이제 멘회가면 돈도 보내고 막 냉중(나중)엔 했 는디. 냉중엔 그 그를 그 미국에서 온 시계도. 아무라도 못돼 난 떼 댕겼으이. 아 게나 중대장이 이젠 아 빌려만도래 시계. 그래 이제 빌려 줬어. 저 연구를 해야 할꺼이 한번 휴가를 오면서 이 시계 줘야 나 휴가가기 전에 띠어 놀까봐 찾아놨어. 아 또 병사계가 그 시곌 탐 나서가 시계주먼 바꿔가 한 며칠 갈 때란, 아 그걸 "아이, 나 시계 필요 없다니." 줘도 놔. 저 우리집으 어머님이 아이 그 시계하나 내 또 가면 살꺼면 내 없애. 그때 그 시계 팔 았으면 여기 밭도 한 2, 3천평 살꺼라 그게. 나 시계 팔아도 밭 사둔 생각도 지났죠. 많이 먹었죠 우리 병사계. 사제옷은 사제옷대로 보내종, 우리 동생 군인 못가게. [조사자 : 못가게 하려고.] 게 나 하여튼 제대하기 전에라 보내지 말라고. 대신 6. 25때 가게 되났죠. [조사자 : 동생도.] 응. [조사자 : 그 전쟁 중에 옛날인데, 그때는 휴가 나올 때 제주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그때도 이 전방에는 안보내고 후방에는 휴가가 있었이요. 그 당시는 휴가가 제주도에는 15일, 만약 거제도에 서 15일 줘요. 15일 주며는 만약 부산까지 나왕 파도가 쎄요. 그럼 제한에 못도잖애(도착 못할거잖 아). 3, 4일 걸려불꺼 아니가. 어떡하진 그 못와. 또 거제도 가. 또 새로 강 파. [조사자 : 무효.] 응. 새로 받으면 그게. 기왕이면 안해줘요. 부대서도 이제 지금같은 간식비. 그 당시 부식비, 쌀, 비공식 휴가가 많앴지. 그 당시에. 보내며는 그걸 다 남으니까. 대대장 이런사람, 중대장 그 수입 이 되니까 그 보내줘. 보내면 만약 제주도지? 제주도랑 또 바람이 세거나 뭐 하면 가지 못하지 배 안떠. 그때 비행기 없을때 아니가. 부두에 가면 헌병대가 확인만 받아불면 돼요. 다른게 필요없어. 확인만 받아, 아 이거 가길래 제출해, 파도 안쎄도 확인서만 끊으면 돼요. 이거 파도 쎄도 못도 안 해. 15일 받은거 어떤 놈은 한달 살아오는 놈도 있어. 파도 쎈것도. 그 당시는 그쪽이라. 비행기 없인 시절이라. [조사자 : 그럼 부산까지 배를 타고.] 응 부산가서 또 거제도 또 배 타고 가야죠. [조사자 : 그럼 만약 휴가를 가면 오고가고 할 때 시간 다 잡아먹겠어요.] 응. [조사자 : 제주까지 오면.] 비공식은 휴가비가 없어서이. 또 정식은 그 휴가비에 차비정도 줘놨죠. 그 용돈쓰게는 안주고 차비정도. [조사자 : 군대에 계실 때 결혼하신 게 아니라 제대하고 결혼하신 거에요?] 아이 난 결혼해놨고. [조사자 : 하고 가신거에요?] 어릴때 막 부모네가 늙어나 결혼 해내 그냥 나간거고. [조사자 : 그럼 되게 사모님 보고싶으셨겠어요. 결혼하고 가셔가지고. ] 그땐 그양 보고싶으만 안했지요 왜. 그 시 절에들. [조사자 : 그땐 자식은 없으셨구요?] 응. 그럼 지금처럼 무신 서로 알아가 결혼할 때가, 그땐 옛날에는 중매 결혼해내 그냥 가는거죠. [조사자 : 아, 중매로 하였어요?] [조사자 : 서먹서먹 하셨겠어요.] 그럼 면회도 안오는거죠 후방에 있어도. 부산에, 부산에 존어맹이 살아서이 그 존어 맹네 살고 해도 부산에는 안온거죠 면회. "게 이제 아 6.25라 그래 부산에 근무하고 있는디. 아 면회라도 있어줌서 허적허적하난." 면회 간거죠. 게 그때부터 면회 다니기 시작을 헌거지. 그래 이제 거제도 가난 거제도 두어번 왔 다 갔을기라. 거제도 한 5, 6개월 근무해놨응게. 부산으로 거제도로 와 보러 다 보내곤 한 3개월 놀았어. 그래 내가 이, 이남에도 많이 댕겼죠. 거제도도 댕겼고 봉암도에 거도. 경상도. [조사자 : 봉화? 어디요?] 아이. 봉암도라는 데가 있어. [조사자 : 봉암도.] 봉암도. 그 이름이라 해. 물어보니까 거 기가 그 일반민은 한 2, 3명 사는 섬이라나게. 거기가 포로가 마지막 우리가 송환시켰죠 우리가. 보니까 거기가 장교 출신. 딱 그기만. 거기 장교 출신 있는줄도 모르고. 그 선별할 때 장교 출신을 그 섬으로 와 가차운거(가둬둔 것). 다른도에 그 움먹을 못하는디로(움직이지 못하는 곳으로).

게 그디가 마지막 석방켜두고 이젠 본대로 학전에 3개월동안 놀, 놀다가 그때 이제 전방으로 간 거지. 강원도로. 강원도로간 26사단 창설을 하는데 내가 간. [조사자 : 전방엔 또 가셨어요?] 응 간. 전방에 간. 그래도 돌아다니긴 전방에 가가지고 거기서도 1개 대대가 그 어떤 시기에 나왔으면 26사단에 편입되가지고 1개 대대는 이 강원도 지부에 그저 6.25 당시에 그 초등학교, 중학교 불타 고니까. 거기에 지원 사업들을 나와서이. 중학교엔 1개소대. 초등학교에는 그 한 2개 분대씩 각 초 등학교에 배치해놨지요게. [조사자 : 건물 다시 지어주라고?] 응. 지어주는디 이제 그 가거래 이제 뒤에서 기초 허는데 심부름 하게끔 파견을 나온거라. 나오는데 내가 나왔는디. 그기는 그 원주, 원 주서부터 해서 원주, 신림, 평택. 한 여섯군데 같아요. 1개대대 그 주위가. 그기는 일주일에 보, 보 급이 헌번 씩이라. 그 원주랑 실컷 각 학교 이제 보급을 해놨지. 하다가 3개월동안. 그 학교 간 음 식을. 아무거 아니헌 상태에 와보만 헐일을 없이게. 기초만 파는 척해도 3개월 동안 노는거라. 3개 월동안 놀다가 또 이제 강원도 원주로 간거죠. 내가 간 강원도에도 가도 제일 처음엔 그 그 원주 안에 가보니까이 군이 그 6.25때 해논거 1개 분대 막사라. 우리가 간 낸중에 1개 소대 막사로 만든거라. 크게. 처음에 가면 분대막사라 왔는디 조그만조그만하게. 일개 소대 막사를 난중에 간 만들었는데. 거기서 26사단에 헌디 그 당시에 우리 사단장이 우리 26사단가는데 송충이 사단이 있어. 왜냐면 그 사단장이 그때 서울이고 어디 전부 나무땔때 아니가. 이 다른건 전혀 없인께. 그저 숯, 장작 땔 때라. 게 그 사단장이 후방 근무하면서 그 산이 있는 소나물 그 군인들을 저 파견보내서 전부 짜 르면 그냥 서울로 장사를 해본거지. 그때 26사단은 어딜가도 '송충이 사단'이지. 송충이 사단. 나무 다 비어부니까. 민첩하게. [조사자 : 오면 나무가 없어지니까.] 응. 나무가 다 없어부니까. 숲먹는 부대, 그 나무하는 부대. 여 보며는 그 강원도에서 서울에 싣고 오는거라 그게. 나무 숯이요. 서울 에 오랑 여 어디 도매 허는 데 다 퍼도 나가보는거죠 사단으로. 그때 그 사단장은 그 벌이를 헌거 죠. 군인들은 또 그런데 가는게 편안해요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조사자 : 그런데를 주로 많이 다 니시는. (웃음)] 파견 근무를 나가보니까. 그런데 막 지원해여. 자기를 멋대로 하는게. [조사자 : 그 건 전쟁 끝나고 난 다음에요?] 휴전 후에. [조사자 : 그러면 몇 년도에 제대하셨습니까? 정확하게.] 56년도에. [조사자 : 야, 그러면 한 7년 하셨네요. 군 생활을.] 햇수로 7년. [조사자 : 7년 했네요.] 만 5년 6개월인가? 그런데 왜 우리가 늦었는고 하니. 낸중에는 그 사특으로 제대했죠. 사단장 명의로다가. 초, 초등 은 육군본부 명령으로 제일 처음에는 제대를 시키다가 낸중에는 사단에서 사단장이 알아서 제대를 시키게끔 되나서이. 우리 26사단은 이 하사관급들을 제대를 안시켜분거라. 그 창설이 늦어냈고 그 선임하사고 뭐고 전부 그 하사관 출신이니깐 하사관들을 제대를 안시켜분거라. 우리 나올때는 육 군본부에서 특명을 내려분거죠. 무조건 제대하게끔. 우리 나올때는 사특으로 나오는데, 우린 육특 으로 나온거지. 육군본부 특명으로. 사단장이 벨 수 없어지게. 우리 나올때가 삼백 구십명인가 헌 꺼번에. 지금 계급으로는 중사죠. 그 당시에 이등상사이. 이등상사로부터 일등상사까지. 헌꺼번에 나와버렸지마. 그때 막 사단장이 울었죠. 선임하사고 뭐고 싹 제대시켜버링게. 육군본부에서. 우리 나올 땐 제대복 줘도 제대복 안입어나왔죠. 그냥 군복들 입고 그냥 모자에도 계급장 붙어 나와났죠. 부대에서 어디서 말을 못했어 나한테. [조사자 : 제대하실 때는 나이가.] [조사자 : 스무 여덟?] 응? [조사자 : 스무 일곱, 여덟에 제대 하셨겠네?] 응? [조사자 : 스무 일곱, 여덟에 제대하셨겠네요 나이 상으로.] [조사자 : 그 쫌 나무를 좀 더 하라고 안내보낸거에요?] 아니아니. 그 하사관들이 있어야게 대대 장도 믿음 허잖아. 그 부하 다루는 것들이. [조사자 : 편하고.] 응. 편하고. 새 사람 들어간것보다 묵은 사람들 그래도 계급 높은 사람들이니까게. 그 하사관 출신 싹 제대시켜부니 그땐 병급들이니

까게. [조사자 : 같이 해먹을 사람이 없으니까.] [조사자 : 외출 나가셔서 어떤 거 하고 노셨어요? 재밌는 일 없었어요? 외출 나가시면.] 외출은 나가면 그냥 돌아도 다니고 그냥 뭐하는 거지 게. 그냥 그저. 결국 거제도에는 낸중에 가보니까이 그 피난민들이 그 미군들이 거제도에 많이 있으니까. 부산에는 그 여재들이 되게 수영, 거제 그 근 방에 여재들이 많았었어. 이북 여재들이. 미국놈들 상대하는 여재들이 거제도 가매 주로 그런 여자 들이 많았지게. 그 수용소 부근에. 게 여기가 딱 수용소면 그 이 부근에 그 민간인들을 철거시키거 나 뭐 할 적에. 바로 그 수용소 철조망 붙어도 민간인들은 그냥 이케 고마했어. 그 의레 철거시키 질 안해. 그럼 이제 그런데 다 이북 여자들이 걍 그 밤에나 낮에나 미국놈들이 대개 그런데 나가 지매. 여재들. 그 막 옆에 있어보매 어떤지는 아이. 아니 들을 소리 막 나고. 여자들 못잤는 게. 아 -이 우는 소리들. 그 하기는 살자니까 헐 수 없이 어떨때는 여재들만. 그 지금같으면 노래방 닮은 데 조게. 그땐 노래방은 아니조게. 땐스홀이 뭐이 허멍 우리들은 돌아대닐때나. 1, 20대 여자들은 많이 싹 모여기 노는 데가 있어. 저기 조금 늦은 시기가. 미국놈들은 그런데 가고 데려가고. 또 밤 에 딴짓하고. 그래 미군들도 그 저 근무 시간이 고게 빈 시간이 있이면 그 빈 시간대를 나가 그렇 게 허는거지. 주로 허는건 또 농촌 사람들은 이 엿, 엿만들어. 또 우리한테 나가는 건 엿도 잘 싸가이. 게 밤 에 담그면 그 엿 만드는 데 많이 구경했죠 우리도. 그 집에서들 헐 건 없으면 그런것도 만들어야 지. 주위에 사람들은 엿을 돌리고. [조사자 : 엿을 만들어서 부대에 파는거에요?] 응. 포로. [조사자 : 포로들한테 많이 팔았다고.] 그때는 작업할 땐 포로들이 막 산에 올라가잖애. 그 장사하는 여재 들이 그 가 있다? 포로한테 파는 거야 그게. 포로들은 그왕 대니는 것도 다 요령하라. 그 바꿀 물 건들을 숨켜자나가. [조사자 : 갖고 다니는구나.] 옷이나 이런 양말들 같은거이. [조사자 : 팔라고.] 응. 팔라고 이제. 만약 꼬시. 헌해 벗겨져서 옷을 포(포개서) 입거든 그게. 그거 그양 뭉쳐 가는 것 이 아니고 포 입언 강 벗어 파는거지. 그기가. 그런 식이라죠. 싸전(싸가지고) 가는 식은 없고. 아 래고, 위고, 담요 이런데 감아정 가고(감아서 가고) 고서 포 입어 가는거죠. 들아정(들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조사자 : 혹시 제대하고 사회나오셔가지고 예전에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로 있던 사람 만난 적 있 으세요?] 에이. [조사자 : 그런건 없겠네.] 여기 제주도에서는 간 사람도 귀해. 또 육지에서 그 여 즉 포로 수용소 한 사람은 그때 이북으로 다 가보니까 어떻게 된가 모르고. 또 그때 내가 기억만 도 북한에서 넘어온 아이가, 그 아이가 반공출신으로 제대를 했어이. 게 그 어떤 해 그 여재라도 젊은 여자 사우왔으면 좋을건디. 아니 늙, 좀 여재 많은 여재를 사우완. 전방 들어갈 때 아 그걸 데려가기할래 데려가지 말라니 저. 아 가족을 꼭 하나 데려걸랭. 데려가면 내가 책임지고 맥여먹까 지 해줘야 할꺼야 내가 선임하사때라. 데려갈랭. 아 갔는데 안해도 이상해. 짐짝 싣고 곱적으로써 곱적. 딱 검문소 가니까 헌병이 탁 올라와. "무사와난?" "아 여기 신고가 들어왔잖아 거저. 군인차에 여자싣고 전방대로 들어가는 차가 감서니께 감시하 러 올라왔수다." 그러길래. "찾아보래." "아이 나가 있고 헌디 여자 싣글리가 있느냐."고. 계집 데려가고 나는 내려가고. 전방에 갈때도 데려가게 했지 내가. 데려가게 하면 거기서 이제 저 그 추사장(취사장)에 거 식당을리. [조사자 : 취사장.] 추사장에서 밥을 해요. 여 소대에 날라다 먹으니까 거기서 밥을. 추사장에 가서 쌀도 주고 저 양식도 주대. 그 부탁을 했나보지. 거기서 인

제 멕여놨는데. 나가 제대해놔도 그런 놈들은 다시 전화로도 한번. 찾으면 다 찾을 수가 있어이. 분명히 험직 할만한 놈을. 아이 일평생, 거의 매년 먹여줬이마는. 근데 제대는 양구에 제대했지. [조사자 : 아, 양구에서 제대하셨구나.] 전방에 있다 이제 양구에 있다 양구에서 제대했어. 그런 아이들 반공출신이 가면이. 행정기관에 저 전방엔 안보내. 놀려도 이런 그 본부에. 이리 와서도 본부쪽에 배치시키주고. 이 전방엔 안보내. [조사자 : 고향이 북쪽 출 신이니까.] 응. 북쪽에서 그. 그때 그 반공 출신이라고 그게 딱 찍혀져 나와. [조사자 : 반공포로 들.] 응. 포로했었는데 석방해노란 군인 나온 아이들 많이 있었죠. 나 제대하기 전에도. [조사자 : 그럼 어르신은 전방 가셨을 때도 직접 총들고 전쟁에 참여하신 적은 없으시고.] 나 56 년 군대생활해도이. 여기서 저 훈련소에서 10발 쏴간다이. [조사자 : 훈련소만 두달.] 훈련소서 열 발 쏴난 게 총 쏴난거. 그런데서만 행정 기관에 많이 다녀 여기 오라믄 농협에도 이사역으로 근무하면. 처음에 올 땐 단위농협에도 가면 난리 부려놨죠. 강 보면 행정허는게 이상망 상황에 허고나서, "너네 이치로 밥 먹어음서 되나망." 막 서류 덮어버려놨죠. 그래 낸중에 들어보면 우리 처남들보고, "너네 매형 어떤 경험하신 분." "우리 매형 군대가서 행정반 하신." 그땐 군인 행정이 앞서나신. [조사자 : 앞섰으니까.] 앞섰으니까. [조사자 : 행정 전문으로 6년동 안 하셨구나.] [6] 4.3에 대한 기억 [조사자 : 군대 가셨을 때는 4.3 모르셨어요?] 4.3? 군에 가기 전에 4.3 일어났지. [조사자 : 48 년도니까.] 응. [조사자 : 군대가기 전에.] 4.3도 나 잘 알아. [조사자 : 그때는 몇 살 이셨어요?] 4.3 때가. [조사자 : 열여덜정도.] 열여덟. 열여덟. [조사자 : 여기 옆에 김녕쪽에서 많이 저기 상했 다고 얘기 들었는데.] 아니아니. 사람 많이 죽은 건 김녕이 아이고. 동북과 북촌사이. [조사자 : 북 촌이 북촌리말하는.] 응, 북촌. 그게 그때 그게 되는건 그게 그 4.3에 만약 지금 같으면 뭐 인민, 인민군이 허까이. 헌 게 마지 막이라서 그게 이. 그때 그 군인들이 여기 함덕 초등학교 이 2대대? 거의 끝날 무렵이라게. 끝날 무렵인데 저 서귀포 쪽에 이제 간에 그 진압시켰던 이 함덕들이 본대 오는 군인을 그 사이에서 1 개 저게 그 트럭이니까 1개 소대쯤 탄거라이. 타 노믄 그 사이에서 양쪽에서 포위한 거기서 전부 죽여버렸거든. 그게 뭐 헌 사람도 산 사람 없이 죽이다가 딱 한 사람이 산거라 거기서. 그날 이제 죽은채로 하니께 다 옷은 뱃겨가불고. 빤쓰만 냄겼어이. 빤쓰만 냄겨두고 총이고 뭐고 싹 압수해 가분거죠 산에서. 그 한사람이 살은 그 사람이 이제 이 바닷가로 완 여기 와 신고를 헌거죠. 다 몰 살됐다 하니까 이젠 여기서 나가매 전부 그냥 나오래허면서 사람은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놓고. 그 집을 다 불붙여들 거기서 이젠 그 또 심사를 한거라이. 긍께 경찰 가족들 둘이 서 있으니까 그런 사람허고 4.3에 연류 안된 사람만 이제 이 함덕으로 데려오고. 나머진 거기서 총살시키면서 불이 고 뭐이고 어이 불태워 버렸죠. 동북하고 북초. 그 몰살당한디는. [조사자 : 요 마을엔 많이 피해가 없었구요?] 이런 부락이고 그때 그 4.3에 연류된 사람 몇 명씩 은 안죽은 데가 없지유. [조사자 : 다 그렇죠.] 다. 이 동네에서도 그때 한 십여명이 죽었죠 그때. 그럴때는 그 무조건 안죽여요. 딱 집합을 시킨다게. 딱 여기도 요 서쪽에서 딱 집합 시켜가지고. 그때 그 집합시키고 이런데 죽일때는 그 연류된 사람은 집담소라고 해가지고. 회관이면 회관에 그 저 합숙시켜 버렸어. 모이아 다. 그 집담소라고 해가지고. 만약 자식이 산에 올라갔거나 또 산에

아니 올라간사람 가족들은 집단을 시킨거라. 거기서 이제 집담시킨 가족들은 밥을 날라다 주면서 그 친족들이 먹여주게. 거기서 총살 시킬 땐 이제 그런데서 몇 사람은 받아오는거라. 와다가 각 시 공을 시키는거죠. 그럴땐 그 사람만 죽이지 안혀. 이 부락이믄 부락 사람 전부 나오라닝가 그 높은 디는 이런 부락 사람을 앉히고 죽이는 사람 저런 밑에 함진데 세워가지고 총살시켰거든 그게. 그 래서 그 깨게끔. 그러니까 지금 같으면 선전하는 식으로 이렇게 쏘니까 당신네들 정신차려라 하는 식으로 그런 식으로 그 당시엔 그게 죽였죠 사람들이 무조건 다 쏘진안햐. 그땐 연류된 사람도 많 이 살았지유. 이 저 산이 저거 선우봉인데. 초동은 매일 저녁 '전두환 인민군 만세' 붙여놔 저게 밤에. '김일성 만세' 저기 그 홰를 만들어 밤에 불을 붙여 저기 오면. 딱 보면 여기 보면 '김일성 만세' 글이 나 와. 저 저 산에도. 그 당시에는 여기 순경이고 뭐고 나다니지 못해놨죠. 헌 그 오다보니 저 일로 왔으믄 하나로마트 큰데 있었지? 바로 그 동쪽 이쪽에가이. 완전히 그때 집단 살아났었거든 산에 사람들이. 그 근방이 완전히 집 지어. [조사자 : 얼마나 무리가.] 거기는 오래 있지 안혀요. 말해도 서부청년 오니까 다 우로 올라가불고 떼어졌는데. 거기도 한 한 두어달 더 있었어 거기들. 민간인 다. 그 당시엔 거기가 많이 고발서왔어. 나도 가입을 다녀놨는디. 왜 그런 일이 생겼느냐면 우리 제 주도에 4.3 사건 더 많이 생기기는 서북청년이 만든거라. 나도 그때 그 모이는 데 나가니까 그때 여름이니까. 그 여기는 그때 저런 수건들이 있었으게. 그 '광복'이라는 글시가 있는 땀수건이 있는 데. 보건계에서 그걸 가져갔이난 신호하는 게 아니냐고 심허게 때리니까. 자 여기 있으면 그놈들 한티 맞고 없으면 조지고. 경하는 바람에 그 고하는게 많았어. 난 우이 많이 올라가도 이 근방에서 숨어놨지. 그 저기 그 산간에서 먼 절에 불을 붙이기 시작해서이 붙이고 냉중에 일주도로에 전주 들 세우면, 나무 전주니까 매일 짤라버려놨지. 그 500매터 주위를 제거하게끔 됐어. 아 이때 나가 야 됐게. 이 부락민들이. 아 이때 나가야되게. 그 전에 나와보믄 얼굴들이 희어부니까. 항상 굴에 서 그 숨어부니까. 우리 친구들은 아 난 죽어도 나가 죽어야지. 숨지 않아서 바다에서 숨어놔서. 바다에 굴이 있었는데. 게 굴 숨다가 나와버렸는디. 나도 4.3 사건에도 연류되놨어. 그래 4.3 사건 처음 될 때는 이 도장을, 반장들이 도장을 찍으라는디 4.3 사건인지 몰라. 그때 그 20세, 15세 이상 20세 까지는 민회청이라서이. 민회청이고 20세 이상은 남로당이라 저 게. 그때 연류되 산에가 내가 민회청이다, 남로당이라 얘기허면. 민회청도 있었느냐고 그래. 게 집 집마다 도장을 받아갔어. 민회청이라 남로당이다 얘길 안하고. 쓸 일 있으니 도장 받아간다고 뭔 도장을 받아가버린 거지 게. 그게 낸중에 보니까 가입서라 다. 헌 장에 헌 사람이 아니고 쫙 명단 쓰니 받아간게. 이래도 못붙고, 저래도 못붙어 죽는 사람이 많았죠 그때. [조사자 : 인민위원회라고 이런 이름은 없었습니까?] 응? [조사자 : 인민위원회라고 이름은 없었 습니까?] 그런건 없었고. [조사자 : 그리고 여기 부산쪽에서 대거 이렇게 내려가서 산 사람들 없었 습니까, 제주도에?] 부산. [조사자 : 소문이 있던데. 6.25때. 피난민들 대거 이쪽으로 왔다는 소리 가.] 그때는 우리가 군인 가느라 몰라. 군인 가느라 몰라. 전에 여기 제주도에 피난이 온 거는 우 리 가본 후에 와보니까 전혀 몰라. [조사자 : 그렇겠네요.] 그 군인가기 전에 일은 아는디. [조사자 : 굴에서는 얼마나 숨어사신거에요?] 응? [조사자 : 굴에서, 굴 여기 숨어사실 때 굴에서 얼마나 계신거에요? 오랫동안.] 오랫동안 있었죠. 안해도 한 3, 4개월 있었을껄. [조사자 : 밥은 어 머니가 갖다가.] 아니야. 거기서 해먹고. 썰(쌀)만 가져다. 썰, 숯. 숯으로 해먹어야 하니까, 밥은. 장작으로 못해먹으니까. [조사자 : 연기나니까.] [조사자 : 친구들이 좀 있었어요?] 여러이. 물은 저 산에 꼭대기 가면 물이 있어. 물이 있으면 물은 밤에 홀랑 길어가는 거죠. [조사자 : 원래 고향이 여기십니까?] 응. [조사자 : 집터도 원래.] 응.

4.3 사건 얘기하면 난 모르는 줄 알아요. 원래 저 4.3 사건이 저번에 뉴스에 한번 나오니까 저 사람은 아는 사람이려니. 2.7 사건부터 다루거지 왜. 4.3, 4.3허죠. 2.7에 하면 다 몰라. [조사자 : 그 말씀을 해주십시오.] 2.7 사건부터 난 2.7이 원칙이지 4.3이 원칙이아니다. 게면 몰라 책임자라 는 사람도 2.7사건을 모른다니까. 2.7에는 피라운동부터 시작한거지. 피라. [조사자 : 삐라.] 삐라 응. 이런 어디 지서나 이런데 아이고. 이런 어디 지서나 이런데 아니고 2.7에는 3뭐.1절 뭐 해가 지고 관득청, 제주도 관득청에 제일 큰덴디 그런데 모이는 사건이 아니냐 하는디 난 아니라고 그 것하고 틀리데. 2.7 사건부터 4.3은 개입되가지고 삐라 사건이 그때부터 생긴거다. 아 저 사람은 뉴스에 그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조사자 : 2.7 사건이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삐라사건. 그 사람이다 뭐다 공산당이다 뭐다 이 북이다 뭐다 그게 없이. 주모자들이 삐라만 부락에다 가끔 뿌려놨거든. [조사자 : 좌익활동 했던 사람들이.] 응. 좌익활동 하는 사람들이 원래. 부락에 누구누구도 없고. 그 책임진 사람들이 려논거 는. 그때 뿌리는 사람은 어떤 계통에서 와 뿌리는 것도 모르고. [조사자 : 육지에서 왔는지, 어디에 서 왔는지.] 그게 인자 그 2.7 사건부터 많은 사람들은 그게 맞다곤 해요. 그 당시에 뭐 한사람은. [조사자 : 삐라를 보고 누가 신고를 해서 그렇게 된건가요?] 아니 가을에 누가 뿌려노니까. [조사자 : 아, 2월 7일날 뿌려서.]응. [조사자 : 그걸 보고 경찰이나 그 서북청년단 사람들이.] 그 2.7 사건 때는 서북청년단이 없인때라. [조사자 : 그땐 없었을 땝니까?] 응. 그땐 자유자재. 그 뿌리는 사람 들이. 뭐 경찰에서도 뭐 나와 그래 잡거나 능력이 없었거든요. 아 우리 5.10선거 봐라. 제주도에 5.10 선거 있어? 한 사람도 없어든. 그 이승만 대통령 5.10 선거라 했거든. 그때 제주도 사람은 선거에 참여한 사람 한 사람도 없어. 전부 그냥 우에서 지시대로. 피난시켜 버렸거든. [조사자 : 그러면 제일 윗 자제분은 제대하고 난 다음에 보셨겠네요. 아까 이름이 종군어멈 그러 시던데.] 응? [조사자 : 아들, 아들 보셨어요 첫째로?] 딸. [조사자 : 그럼 자제분은 어떻게 두셨어 요?] 서울에 네 사람이가? [조사자 : 서울에, 서울에 네 사람이? [조사자 : 서울에만 네 명이요?] 일본에 둘. 여긴 하나. [조사자 : 그럼 총 칠남매 두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