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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정책백서목차(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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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협동조합 실패사례(2) 소비자협동조합 :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다 협동조합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고 따라가는 속에서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후 대체로 쇠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스위스의 미그로, 스웨덴의 코에프와 같이 난 관을 잘 헤치며 지금까지 성장하고 있는 협동조합들도 많이 있다. 여기서는 안타깝게도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소홀히 하여 결국 파산을 면 하지 못한 독일과 프랑스의 소비자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4.08.05 이수연_새사연 연구원 soo@saesayon.org 1) 독일 소비자협동조합 도르문트카셀 (Co-op Dortmund-Kassel) 전체 소매업 시장의 경쟁은 심화되었다. 새로운 경쟁자들은 다양한 유통방 식과 매장을 도입했다.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소홀히 하여 결국 파산을 면하지 못한 독일과 프랑스의 소비자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 해외 협동조합의 실패사례를 아래와 같이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 노동자협동조합과 금융협동조합 : 사업이 번창해도 실패한다 (2) 소비자협동조합 :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다 (3) 농업협동조합 : 무리한 확장과 조합원의 무관심이 발목을 잡다 * 이 글은 서울시가 발간한 <실패와 위기 그리고 성공 사례에서 배우는 협동조합> 책 자에도 실렸습니다. 소비자협동조합(생활협동조합)의 실패사례 독일과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 시장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파산하다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이 영국의 로치데일 협동조합이기도 했던 만큼 유럽에서는 소 비자협동조합이 오래전부터 발달해왔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쟁 시기 에 부족한 물자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곳으로 협동조합이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당 연히 조합원도 증가했고, 재무 건전성도 확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안정기가 한 편으로는 독이 되어서 많은 협동조합들이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조합원들은 수 동적이었고, 경영진들은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전체 소매 업 시장의 경쟁은 심화되었다. 새로운 경쟁자들은 다양한 유통방식과 매장을 도입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으로 높은 품질의 매장과 저가의 매장으로 분화되어 갔다. 먼저 소개할 도르문트카셀 소비자협동조합은 독일의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이었 다. 약 90년의 역사를 유지해오던 도르문트카셀 협동조합은 무리한 사업 확장의 후 과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다. 도르문트카셀 소비자협동조합의 전신은 1902년 문을 연 도르문트 소비자협동조합 이다. 초기 도르문트 협동조합은 1개의 매장과 2명의 직원, 그리고 349명의 조합원 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카셀 소비자협동조합과 합병을 했고 성장을 거듭하여 1980 년대에는 350개의 슈퍼마켓과 16개의 백화점, 74개의 비즈니스 센터를 보유하며 1 만 5천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지역 소매거래의 14%를 차지하고, 매출은 25억 마르 크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당시 조합원은 50만 명에 달했다. 1989년 4500만 마르크를 매장 현대화에 투자하여 12개의 매장을 확장하고, 31개 의 새로운 매장을 개설했다. 또한 함부르크에 소재한 PRO 생협과 슐레스비히홀슈 타인 생협 등을 인수하여 영업권역을 확대하였다. 1991년에는 구동독 지역으로까지 확대하여 츠비카우 생협 매장 61개를 인수하고, 라이프치히 생협과 파트너 계약을 체결하여 투자를 확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적립금을 털어 메웠 으며, 모자라는 부분은 자산과 채권은 상향 평가하여 해결하였다. 하지만 유럽 소매업 시장의 경쟁이 강화되고, 불황이 겹치면서 상황이 좋지 않아졌 다. 여기에 더해 매장 인수, 공동구매 및 공동이용 협상 과정에서 신속한 결정이 이 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매장 인수, 공동구매 및 공동이용 협상 과정을 논의하던 슐 레스비히홀슈타인과 라이프치히 등의 다른 생협들이 손을 떼고 떠나게 되었고, 도 르문트는 1억 마르크에 달하는 손실을 고스란히 감당하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들은 하이퍼마켓이라 불리는 할인점을 선호하는 추세로 점차 바뀌고 있었는데, 도르트문 트는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대형 무인매장인 쇼핑 플라자나 슈퍼마켓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다. 결국 양쪽 분야 모두에서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은행 빚은 점점 늘어났고 1995년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면서 주채권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다른 채권단과 함께 컨 1 2

소시엄을 구성하여 영업에 관여하게 된다. 1996년과 1997년에는 매장폐쇄, 직원해고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새로운 성장 전 략을 찾기 위한 결정과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1999년 도르문트카 셀 소비자협동조합은 문을 닫게 된다. 도르문트카셀이 파산한 원인은 시장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과 무리한 투자와 지지부진한 결정 등 잘못된 경영전략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두 가 지 요인은 매우 중요하다. 협동조합이 사업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면 정확하고 신 속한 경영 판단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사실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원인일 수 있다. 잘못된 경영 판단을 하게 된 이유는 더 근본적인 지점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훗날 도르문트카셀의 파산에 대해 연구한 전문가들은 파산의 근본적 원인으로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꼽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도르문트카셀은 조합원의 증가, 강화, 참여를 통해 협동조합을 발전시키는 전략을 택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업성과와 경영 수익을 늘림으로써 발전하고자 했다. 협 동조합 운영의 중심을 조합원 강화에서 합병과 영업인수를 통한 성장으로 이전하였 다. 이를 위해 이사회는 경영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통제장치를 제거했으며, 경 영지배권 강화를 위해 위험한 선택도 서슴없이 내렸다. 이러한 경영진들의 판단에 조합원이 참여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통로들은 막혀있었다. 때문에 경영진들은 잘 못된 판단들을 계속 밀고 나갔다. 또한 경영진들은 조합원을 주인이자 이용자로 보지 않고 주식회사의 주주와 같은 투자자로 보았다. 인수 합병 등을 위해 투자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의 추가 출자가 필요했다. 경영진은 조합원들에게 추가 출자를 독려하면서 고수익의 고배당 을 약속했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참여를 촉진시키려고 한 것 이었다. 하지만 이는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의 목적과 가치에 동의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인이며, 자본출자에 대한 배당보다는 이용고배당을 중시하는 협동조합 의 기본가치들에 반하는 태도였다. 주주와 조합원은 다른 존재이다. 주주는 수익만 을 바라보고 투자하지만, 조합원은 협동조합을 직접 이용하고 참여하며 신뢰에 근 거한 협동을 한다. 도르문트카셀은 이러한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협동조 합의 핵심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협동조합이 이윤추구를 위해 돈을 중심으로 경영한다면 일반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도르문트카셀은 협동조합으로서 9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분명 협동조합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긴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을 텐데, 왜 1980년대 이후부터 경영방식이 일반기업과 다르지 않게 바뀐 것일까? 초기부터 협동조합에 참여해오며 협 동조합적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협동조합 안에서 경험을 쌓아온 임원진들이 퇴직하고, 새로운 경영진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경영진들은 영리 기업의 경영에 익숙한 전문직 관리자들로 초기 조합원들의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앞세 대와 뒷세대 사이에 조합의 미션과 비전에 대한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다. 협동조합에서는 교육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리하자면 협동조합이 진짜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잊은 채, 조합원의 위 상과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조합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있는 상태에서, 경영진들이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무리한 투자를 계 속함으로써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경영진들의 판단에 대해 조합 원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였다면, 애초부터 경영진들이 사업의 확장보다 는 조합원 강화를 우선시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2)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 유럽이 대체로 활발한 소비자협동조합을 자랑하는 가운데 프랑스의 소비자협동조합 은 유독 발전하지 못했다. 프랑스의 소비자협동조합은 1800년대 후반에 사회주의자 들과 노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크게 발전했다. 주로 공장지대에 집중적으로 설립되 었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갈 경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 로 협동조합을 중요하게 바라보았다. 한 편 가톨릭교나 중도파에서도 협동조합을 지원했는데, 이들은 노동자들이 절약하고 건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 서 협동조합을 보았다.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의 기반에 깔려있는 과도한 정치적 이념은 이후 협동을 저해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1880년도에 300개에서 1910년에는 2600개로 빠르게 늘어났다. 1912년에는 다양한 분파의 소비자협동조합들이 모여 전국소비협동조합연합회 (FNCC)를 만든다. 하지만 파리 교외 공장지대에 위치한 가장 크고 급진적인 노동 자 중심의 소비자협동조합 벨빌루아즈가 FNCC의 가입을 거부하면서 분열이 지속 되었다. 조합원 수 기준으로 55%, 공급액 기준으로 63%만이 FNCC에 가입된 상태였 다. 게다가 FNCC는 신규 협동조합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국을 48개 지역으로 3 4

나누고 각 지역마다 협동조합 발전 계획을 세웠지만, 이는 이미 FNCC에 가입되어서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협동조합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FNCC에 가입하지 못 한 협동조합들은 연합회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소규모의 독자적인 매장으로 남 을 수밖에 없었다. 1920년대에는 FNCC 내부의 경영진 간 갈등과 파업 등으로 인해 손 실이 발생했고, 산하의 협동조합들이 FNCC가 제공하는 도매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당연히 FNCC의 힘은 더 약화되었고, 개별 협동조합들은 더욱 더 독자적이고 소규모화되었다. 프랑스의 소비자협동조합은 조합원 1인당 공급액과 출자금은 스웨덴의 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매시장의 경쟁은 강화되고, 새로운 흐름에 도입되었지만 협동조합들은 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1950년대에 들어오면서 프 랑스 소비자협동조합은 서서히 쇠퇴한다. 1970년대 들어서 협동조합들이 합병을 하 여 규모를 키우려는 노력을 했지만, 큰 반등을 보이지는 못했다. 결국 1980년대에 들어오면 많은 협동조합들이 문을 닫게 된다. 당시 전체 소비자협동조합의 연 손실 이 4백만 프랑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소비자협동조합들도 있다. 알사스 소비자협 동조합과 생뜨 광역소비자협동조합이다. 생뜨 광역소비자협동조합은 1992년에 아틀 란티끄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하여,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합이기도 하다. 2010년 기준 조합원이 39만 명, 직원이 42000명이다. 알사스와 생뜨는 일찍 부터 유통시장의 변화에 맞춰 소매점 네트워크와 매장 근대화에 투자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두 소비자협동조합의 경영진들은 전통적인 소비자조합 운동가와는 달리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기업 경영자들이었 다.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많은 수가 문을 닫아야 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새로운 경영 혁신을 추구하지 못했고, 개별 협동조합을 지원하고 협동조합 전체의 전략을 제시해야 할 연합회인 FNCC가 제구 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이 가진 이념적 경직성을 문제 로 지적한다. 프랑스는 초기부터 강한 노동조합 전통 하에서 소비자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전통 적인 소비자협동조합 운동가들이 중앙조직의 지도부를 장악해왔다. 그들은 과도하게 노 동자 중심, 비영리, 평등에 집착했다. 셀프서비스 시스템이나 광고 등과 같은 유통업에 서의 변화를 거부했고, 유능한 기술관료나 경영자, 지식인들의 유입을 반대했다.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미국식이고, 노동현장 출신들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식 변화를 받아들이고, 노동자 출신 이외의 사람들이 경영을 맡 게 되면 협동조합이 가진 사회주의적이고 노동자 중심의 이념이 퇴색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협동조합은 원가에 입각한 경영을 하는 비영리 조 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수익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하고 모두 조합 원에게 분배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이들은 FNCC 산하의 규모가 다른 협동조합에 대해서 평등주의적 동일 가 격 정책을 고집했다. 이는 결국 대규모 협동조합이 손해를 보면서 소규모 협동조합 들에게 가격보조를 해주는 것이었다. 소규모 협동조합의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보조 해주어야 할 비용은 늘어만 갔다. 이에 FNCC 내부에서 이러한 가격정책에 조금 수 정을 가해 대규모 협동조합에게도 연합회에 참여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기각되었다. 결국 과도하게 평등을 고집하는 가격정책은 FNCC 내부 의 연대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앞서 잠깐 보았듯이 FNCC는 신규 협동조합의 진입을 막고, 연합회로서 회원 협동조합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실현해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가격정책으로 인해 더욱 약화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동 안 FNCC가 프랑스 비시정부에 협조했다는 점도 소비자협동조합 전체의 단결에 저 해가 되었다. 전통적 소비자협동조합 운동가은 이념적 경직성을 고수하며 혁신을 기피하는 용도 로 협동조합의 가치와 조합원의 헌신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전이 일어나기 는 쉽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협동조합은 일반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념에 갇혀 발 빠른 유통 서비스 혁신도 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낯선 이념만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동조합이 위기에 처하고, 매장들이 문을 닫 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어도 그것이 시민들의 관심사가 되거나 사회적 문제가 되 지 못했다. 프랑스 소비자협동조합은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는 시장 변화에 대 응하지 못해서 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도르문트카셀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사업적 성장에 치중하여 실패했다면, 프랑스의 경우는 상 대적으로 협동조합의 정체성만을 강조하며 사업적 혁신을 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 패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프랑스 협동조합들이 추구한 협동조합의 정체성 자체는 왜곡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독일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5 6

영국 소비자협동조합,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기를 넘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비자협동조합이 설립된 영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번성 했다가, 1960년대에 들어 유럽의 많은 소비자협동조합이 겪었던 위기를 맞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구조개혁 등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소비 자협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950만 명에 이르고, 매출액은 163억 파운드에 달한다고 한다. 영국 소비자협동조합에는 두 개의 큰 연합회가 있다. 협동조합도매연합회 (CWS)와 협동조합소매연합회(CRS)이다. 이 두 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회원인 소비 자협동조합들의 도매와 소매 부문을 지원하고, 개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사업에 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는 CWS가 겪었던 극적인 위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차 세계대전 당 시 자회사 공장 155개를 거느리면서 세계 최대의 기업이기도 했던 CWS는 1997년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당시 CWS는 식품 부문뿐만 아니라 안경, 약국, 장례업, 백 화점 점포 등 비식품 부문에서도 시장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다. CWS가 가진 시장 성을 알아본 이가 있었으니 31세의 젊은 기업인수합병가 앤드류 레간이었다. 그는 CWS의 비식품 부문을 사들여서 이를 경쟁업체에 판매하면 큰 이익이 남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는 CWS에 매입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CWS는 이 제안을 딱 잘라 거 절했다. 결국 레간은 통상적인 교섭 절차를 거쳐서는 매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CWS를 적대적으로 매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노무라 증권의 영국 현지법인 노무 라 인터내셔널로부터 융자를 받아 12억 파운드에 달하는 매수자금을 준비하였다. 150년에 달하는 영국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이 붕괴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기상황이 었다. CWS는 전력을 다해 조직 보호에 나섰다. 그리고는 소비자협동조합의 한 간 부가 레간의 스파이가 되어 내부 서류와 자료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를 고등법원에 제출하여 위법적 수단으로 확보한 서류를 이용해서 공장을 매수하는 레 간의 행위를 제지하도록 하는 판결을 받아낸다. 이후 법원은 레간에게 CWS가 소송 을 내느라 치룬 비용까지 보상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한 젊은 기업인수합병 가에게 넘어갈 뻔한 영국 소비자협동조합의 역사가 지켜졌다. 그런데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CWS도 협동조합인데, 일반기업이 아닌 협동조합을 매입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생협을 통째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수의 조합원 들이 주인이며, 조합원들의 출자금은 주식처럼 사고 팔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간이 선택한 방법은 CWS를 협동조합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할 것을 총회에서 결 의하도록 50만 명의 조합원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주식회사가 되면 현재 출자금 1 파운드 당 1000파운드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제안이다. 출자한 돈 을 1000배로 불려서 돌려주겠다는 것 아닌가! 만약 CWS의 일반 조합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실제로 이런 제안을 한 후 투표를 진행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당신이 CWS의 조합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협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만 원이 천 만 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 자신이 있는가? 실제로 이런 총회를 개최했다면 아마 CWS는 레간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당시 레간이 CWS에 이러한 제안을 했다는 소문이 돌자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CWS의 개인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었 다. 그러나 CWS 이사들은 레간의 매입 제안을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이를 논의하는 총 회를 여는 것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그런데 또 한 번 궁금증이 생긴다. 앞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레간의 제안에 대해 실 제 일반조합원들은 찬성했을 수도 있는데, 이를 임원진들이 임의로 판단하고 거절 한 것이다. 임원진들이 조합원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것일 까? 사소한 문제도 아니고 조직의 존폐와 향방이 걸린 문제인데 총회를 거치지 않 아도 되는 것일까? 협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인데, 조합원이 어떤 결정을 하든 존 중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임원진의 행동이 옳았다면 어떤 면에서 그러할까?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이익만 고려한다면 그것은 주주나 투자자의 이익만을 고려하 는 일반기업과 다를 바가 없다. 협동조합의 이해관계자는 조합원만이 아니다. 협동 조합에서 일하는 직원들,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고객들, 협동조합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주민들이다. 그리고 앞서서 협동조합을 만들어온 윗세대 조합원들 역시 중요한 이해관계자이다. 왜냐하면 직원들, 고객들, 지역주민들, 윗세대 조합원들의 도움 덕 분에 현재의 협동조합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혜택을 현재의 조합원들도 누리고 있 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가치를 잘 보전하고 계승하는 것이 현재 조합원들의 의무이다. 즉, 현재 조합원들이라고 협동조합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처 분할 절대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 주인의식이나 협동조 합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CWS의 임원진 들은 매우 현명한 판단을 내려, 위기를 극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 이즈미 생활협동조합, 어처구니없는 전횡으로 망하다 일본은 생활협동조합이 매우 발전한 나라이다. 600여개의 생협과 2천 5백만 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존재한다. 일본 인구가 1억 2천 만 명을 넘으니 전체 인구에서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생협 조합원인 것이다. 일본에서 생협이 발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1945년 패전이었다. 패전 직후, 쌀을 비롯한 생필품 부족과 실업난 등으로 어려운 상황 에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생협을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지진과 같은 재해 속에서 생협을 찾는 이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7 8

이러한 일본 생협의 역사에서 이즈미 시민생협 사건은 큰 충격이었다. 이즈미 시민 생협 사건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은 1997년 5월이었다. 총회를 앞두고 이즈미 시민생협 직원 3명이 그간 생협 내에서 일어났던 이사장의 전횡을 고발하였다. 그 들의 고발에 의하면 생협은 온전히 이사장의 사유물이었다. 조합원들의 연수를 위 한 기숙사라는 명목으로 3억 엔의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이를 이사장의 개인 저택 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그 건물은 이사장 소유의 토지에 지어서 이사장에게 매월 40만 엔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었다. 직원들을 위한 것이라며 연간 500만 엔을 내고 초고급 요양시설을 빌려놓고 오로지 이사장 혼자서 이용했다. 이사장의 친척 이 필요 없는 토지를 처분하고 싶어하자 생협이 그 땅을 사주기도 했다. 또한 이사 장은 골프에 빠져있었는데 1억 3천만 엔에 달하는 골프 회원권을 생협 돈으로 샀으 며, 1억 엔의 콘도를 역시 생협 돈으로 구입하여 이사장의 골프용 숙소로 사용했다. 국외 출장 명목으로 생협 경비를 이용해 해외여행도 자주 다녔다. 물론 공무를 위 한 출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들이었다. 이 같은 공금 횡령은 당연히 생협 경영 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왔고, 이는 직원 감축으로 이어졌다. 사건이 밝혀지기 2년 전 인 1995년부터는 연간 150명이 구조조정을 당했다. 당시 생협의 정직원은 800명이 었고, 여기에 아르바이트 직원 등 임시 직원까지 합하면 약 1500명 정도였다. 이 뿐 아니다. 이사장이 직원을 상대로 한 성희롱 사건도 있었으며, 직원승진시험에서 는 이사장의 강연 내용이 문제로 나왔고,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음해하기 위한 정보 조작도 자행되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재판을 통해 밝혀진 것들이고, 내부고발자들 이 털어놓은 횡령과 부패는 훨씬 더 심각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부패와 횡령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도 이 즈미 생협 내부에서는 전혀 자정작용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훨씬 더 심 각한 문제였다. 내부고발자들의 고발이 있은 후 이사장과 경영진들은 이들의 고발 을 경영권 침탈을 위한 음모라고 몰아붙였다. 오히려 이들 중 2명을 해고하고, 1명 은 자택 대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우리의 이즈미를 지키자, 사유 화 운운은 외부의 중상모략이다 며 눈물로 호소하고 나섰다. 이런 내용이 담긴 녹 화 비디오테이프를 전국 생협에 배포했다. 문제가 불거진지 4개월 후인 1997년 9 월 이 문제를 놓고 임시총회가 열렸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문제를 일으킨 이사장과 이사들을 모두 유임시켰고, 사건을 조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 다. 일부 조합원들이 오사카이즈미시민생협의 민주적인 운영을 회복하고자 하는 조 합원 연락회 라는 이름으로 이사진들의 전횡을 알리는 증거를 공개하며 진실을 알 리고자 노력했고, 총회에 새로운 이사 후보로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 문제를 규탄하는 이즈미 생협 외부의 집회가 전국 각지에서 몇 번이나 열렸지만 생협 내부 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오히려 내부고발자들이 외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음해성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부패와 횡령이 있어도 그건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괜찮다고 하면 아무 상관없지 않냐 는 반론이 나올 정도였다. 1998년 총회에 서도, 1999년 총회에서도 조합원들은 모두 손을 들어 1인 1표를 행세하며, 부패한 이 사진을 옹호해주었다. 1999년 내부고발자들의 고발을 받아들인 법원에서 이사진의 횡령 사실을 인정한 후에야 이사장은 사임하고 내부고발자들이 복직될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전국민이 모두 인정한 이즈미 생협의 부패와 전횡을 정작 이즈미 생협 조합원들만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민주적인 조합원 총회를 통해 진실을 외면하고 있 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즈미 생협이 사회운동에 가장 열심인 협동조합의 하나로 인정받 아 왔다는 사실이다. 이즈미 생협은 단순히 조합원 이기주의나 영리주의를 추구했 던 생협이 아니었다. 생협 관계자들과 시민들로부터 평화운동이나 먹거리안전운동 의 선두에 나서는 생협으로 인식되어 왔던 터이다. 그런 생협 조합원들이 자신들 내부에서 발생한 횡령과 전횡, 부패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오히려 진 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굉장히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조합원들의 결정이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일까? 이 경우에도 영국 CWS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협의 이해관계자는 단순히 조합원 만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즈미 생협의 경우 이전까지 일본 생협 운동 전체가 쌓아올린 신뢰와 원칙 속에 탄생했으며, 이즈미 생협의 부패 역시 전체 일 본 생협에 손실을 가져오는 문제인 것이다. 협동조합은 현재, 과거, 미래의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조직들과 다양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존재하고 있 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고려해야 할 목소리는 조합원의 목소리만은 아닌 것이다. 이 런 인식이 근본에 깔린 상태에서 끊임없이 조합원 교육을 진행하고, 소수의 목소리 도 존중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이즈미 생협이 범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 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일본 홋카이도 생활협동조합, 고도성장 속에서 길을 잃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협동조합의 섬 이라고 불릴 만큼 지역 내에서 협동조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홋카이도 농협, 수협, 생협 등의 조합원조직율, 사업점 유율 등은 일본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매우 높게 나타난다. 홋카이도 생협 운동의 역사는 일본 생협이 크게 확대되기 시작한 2차대전 이전부터 시 작되었다. 꾸준히 발전해오던 생협은 1964년 홋카이도 생협연합회의 임시총회에서 1 9 10

도시 1생협 운동을 선언한다. 당시 일본은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가속화되면서 다양한 도시 문제들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생협은 도시에서의 생활 물자 공동구입을 통해 물가를 낮춤으로서 도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홋카이도 생협은 이에 발맞춰 1도시 1생협 이라는 시민형 지역 생협으로 방향을 정하였고, 이 후 홋카이도의 중소도시에도 생협들이 만들어진다. 특히 홋카이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물가가 높아 홋카이도 가격 이라 불리는 특수 한 지역 물가가 존재하였다. 혼슈우 의존의 상품공급구조와 후진적 상거래 관습이 만들어낸 기형적이 가격구조이다. 이런 상황에 고통을 당하던 시민들은 각 도시로 생협이 확산되고, 생협이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사이에 분명하게 가격 차 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생협에 더욱 많은 호응을 보내주었다. 홋카이도 생협이 주도하여 물가를 낮춘 대표적인 사례가 등유와 프로판 가스 공동구입이다. 홋카이도는 겨울이 추운 곳이다. 그래서 난방과 연료로 등유와 프로판 가스가 많이 사용된다. 이에 생협은 공동구입의 힘을 통해 지역의 등유와 프로판 가스 업계의 관계자들과 교섭을 진행했고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이것들을 구입하여 시민들에게 공급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으며 발전해오던 홋카이 도 생협에 위기가 닥친다. 1990년대 지역의 주요 생협 3곳이 부실 경영으로 심각한 적 자 상태에 빠지면서 홋카이도 생협 연합회에 도움을 청해온 것이다. 3개 생협은 구시로 시민생협, 도오시민생협, 코프삿포로이다. 이렇게 1996년 한 해에 홋카이도 지역 내에서 3개의 생협이 동시에 파산할 상황에 빠 진 것이다. 만약 3개 생협이 파산한다면 100만 명의 조합원, 1만 명의 직원, 2천억 엔 의 사업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는 홋카이도 전체 생협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였다. 이에 홋카이도 생협 연합회는 3개 생협의 경영 재건을 위해 긴급자금 50억 엔을 투입 하고, 재건지원책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3개 생협은 파산은 면할 수 있었다. 연합회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3개 생협은 많은 손 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구시로시민생협의 경우 조합원들이 출자금의 50%, 채권의 25% 를 포기해야만 했다. 약 20억 엔에 달하는 조합원들의 돈이 날아간 것이며, 이를 조합 원 1인당 평균 손실 금액으로 계산하면 4만 엔에 달했다. 도오시민생협과 코프삿포로는 직원의 급여를 15%씩 삭감했다. 코프삿포로의 경우 1400여 명의 직원들이 퇴사해야만 했다. 이렇게 많은 노력 끝에 3개 생협은 대체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상화되었 다. 그렇다면 당시 3개 생협은 왜 경영 악화에 처한 것일까? 3개 생협의 위기에 작용한 공통된 요인들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홋카이도뿐 아니 라 일본 생협 전체에서 경영위기가 대두된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버블경 제 붕괴와 장기불황이라는 경제 사정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더불어 당시 일본의 많 은 생협들이 사업확대에 치중했고 이는 경영 악화와 조직 악화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홋카이도의 3개 생협도 마찬가지였다. 구시로시민생협은 1995년 12월 연합회에 지원요청을 해왔다. 당시 구시로시민생협 은 조합원 5만 5천 명에, 연간 공급액 186억 엔에 달했던 작지 않은 규모였다. 그 런데 실태조사 결과 누적적자가 67억 엔에 달했으며, 이미 7년 동안 적자를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특히 자금조달 구조에 있어서 61억 엔의 외부 대출과 함께, 조합원 출자금 10억 엔, 그리고 조합원으로부터 빌린 자금 인 조합원채권이 53억 엔이나 되었다. 만약 파산한다면 조합원들이 입는 손실이 매 우 커서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도오시민생협의 상황도 구시로시민생협의 상황과 똑같았다. 외부 대출과 조합원 대출을 많이 받은 상태였 으며, 분식회계를 진행하여 50억 엔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숨겨왔다. 당시 도오시민 생협의 조합원은 5만 4천 명, 연간 공급액은 162억 엔이었다. 1996년 이런 상황이 공개되면서 역시 홋카이도 생협 연합회에 지원을 요청했다. 코프삿포로는 1996년 총회에서 경영 악화가 보고되면서 최고경영자와 임원들이 교체되고, 긴급하게 대책 마련이 요구되었다. 구시로시민생협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적자 경영을 하 고 있었다. 사업 잉여가 20억 엔 손실을 기록하면서 자금압박의 정도가 점차 심해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1990년대에 표출된 경영 위기는 이미 1970년대 생협들이 확장되던 시기부터 내재 되어 있었다. 당시 생협들은 소매업계에 불고 있었던 최첨단 유통혁명론에 따라서 체인 형태의 슈퍼마켓을 확대하고 있었다. 일정 정도는 생협의 점포들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점포 확대를 중심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대형 유통업들이 홋카이도로 진입해왔고, 이들과 생협 간의 점포 경쟁이 시작되었 다. 한마디로 먹느냐, 먹히느냐 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생협은 한 층 더 점 포 확대에 가속도를 가하게 된다. 하지만 점포 확대에 치중한 과도한 고속성장은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오고 말았다. 한마디로 말해, 고속성장의 과정에서 본래 생협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우 선 조합원들이 생협에 대해 가지는 신뢰와 애정이 약화되었다. 점포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조합원이 생협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협은 조합 원들에게 일반 슈퍼마켓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 는 가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생협이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가치, 소비자 권리 등에 공감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생협을 함게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이 급속 하게 줄어든 것이다. 11 12

이같은 조합원 밀착도의 약화는 경영 문제로도 이어졌다. 생협이 자본주의 기업과 경쟁하면서도 생협으로서의 가치를 지켜가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참여가 필수적이 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생협을 슈퍼마켓 정도로 생각하게 되면서, 경영에 참여하려 는 의지나 인식이 줄어들게 되었다. 경영진들도 조합원의 참여를 독려하기 보다는 독자적 운영과 상의하달식 구조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렇다보니 이미 1970년대에 일본의 일부 생협들 내에서 과도한 사업확장에 대한 우려와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 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개선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문제가 악화되어 표 출될 때까지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업 확장에 필요한 많은 자금을 조합 원 출자금이 아니라 부채에 의존하게 되었다. 조합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 기 때문이다. 한편 대형 유통업과의 경쟁에 치중한 나머지 지역의 중소규모 기업이나 상점들과 연대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형 유통업의 진출 속에서 생협뿐 아니라 지역의 작은 기업과 상점들도 위기에 처해있었다. 생협이 이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 하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생협 독자적으로 대형 유통업과 경쟁하여 이기고, 그래서 점포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고 애쓰지 말고 말이다. 오히려 지역 경제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면서 시민들 속으로 더 뿌리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생협도 무리한 몸집 키우기나 사업 확장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테고 말이다. 생협은 대기업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최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생협의 원래 가치대로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지가 최대 목표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김성오 외, 2013,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 겨울나무 농협대학교 협동조합경영연구소, 2013, 협동조합학원론, 청목출판사 박성포, 2004, 일본생협의 발전과 위기 - 삿포로시민생협을 중심으로, 한국 생협연합회 제4차 심포지엄 장종익, 2011, 세계 협동조합의 최근 현황과 주요 특징, 협동조합연구회 장종익, 2012, 유럽 주요 국가 소비자협동조합의 성패요인 분석에 관한 연구, 제24회 생협연구소 포럼,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전형수 외, 2012, 독일 Co-op Dortmund-Kassel의 실패 사례에서 본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의 한계와 대안, 산업혁신연구 28, 경성대학교 산업개발연구소 Battilani, P. 외, 2012, The Cooperative Business Movement, 1950 to the Pres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Fulton, M. E. 외, 2009, Cooperative conversions, failures and restructurings: An overview, Journal of Cooperatives 23 Greg Macleod, 2012, 지역을 살리는 협동조합 만들기 7단계, 이인우 옮김, 한 살림 기업이라면 고속성장, 사업확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협동조합이 존재해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그런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조합원들의 건강한 증가와 발전이 없는 상태에서의 고속성장이라면 분명 부 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3 14

2014년 새사연 발간 보고서 2014년 8월 5일 현재 아젠다 발간일 제목 작성자 세계경제 1/15 지뢰밭 속 순항? 정태인 한국경제1 1/16 스스로 지뢰밭을 만들고 있는 박근혜 정부 정태인 한국경제2 1/17 747에서 474로 갈아탄 근혜노믹스 여경훈 복지1 1/20 박근혜 정부 式 보건의료, 민영화 폭탄 이은경 돌봄 1/21 진정한 국가 책임 보육 이 되려면 최정은 주거 1/24 주택시장 죽이기에 골몰하는 정부, 어찌 하오리까 강세진 노동 1/28 사라진 공약, 반복되는 노동시장 문제들 김수현 복지2 1/29 노인, 대학생, 취약계층 복지 정책 실종 이은경 노동 4/14 청년일자리정책, 새 방향에 답 있다. 김수현,강세진,최정은 노동 4/17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 는 무엇인가? 김수현,강세진,최정은 노동 4/21 서울 청년일자리정책 새 방향 제안 김수현,강세진.최정은 주거 5/12 노인복지의 주요 이슈, 주거 강세진 경제 5/19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그리고 한국 경제 1 정태인 정치 5/22 민주주의의 수호자는 누구인가 이은경 경제 5/26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그리고 한국 경제 2 정태인 노동 6/2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은경 경제 6/5 도시가계의 지출구조 진단 1 강세진 경제 6/16 도시가계의 지출구조 진단 2 강세진 복지 6/17 박근혜 2기 개각, 복지축소와 민영화의 신호탄? 이은경 경제 6/19 대기업 지원정책으로 전락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이상호 의료 6/23 박근혜 정부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이은경 의료 6/26 이제 그런 핑계 대지마 이은경 복지 7/10 돌봄서비스의 현주소와 발전방향 제언 최정은 노동 7/14 여성 노동시장에 대한 질적 개선 정책도 추진되어야 김수현 경제 7/29 소득 불평등 지표 개선, 앞으로도 계속 될까? 김수현 사회적경제 8/4 해외협동조합실패사례(1) : 사업이 번창해도 실패한다 이수연 사회적경제 8/5 해외협동조합실패사례(2):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다 이수연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