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서영희*1) Ⅰ. 서론 Ⅱ. 미적 근대성의 실현방식과 수사학 Ⅲ. 상징적 언어와 작가의식 Ⅳ. 조화와 질서의 공간 Ⅴ. 결론 요 약 조명암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역사의식이 강한 모더니즘 시 를 발표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근대도시의 모 습을 통하여 인간성 상실의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하였다. 그 는 작품 속에서 사회의 비합리적 측면에 대해 직접적으로 폭로하 고 고발하는 양상을 보였으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 전환시키고 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시 속에 내포시켰다. 그는 1930년대 모더 니즘이 반낭만주의와 반격정주의 나아갔던 것과 달리 감탄의 수사 를 통하여 문학의 진실을 찾고자 하였다. 또한 사회현실에 첨예하 게 대립하면서도 문학의 예술성과 언어의 기교 문제까지 함께 고 민하였다. 그는 모더니즘의 외래지향적 성격에 대한 반성으로 전 * 영남대학교 강사
52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통문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갈등을 극복하고 조화와 질서의 공간 을 추구해나가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그의 모더니티는 하 나의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더니스트와 낭만주의자의 모습, 리얼리스트의 모습까지 다양한 형태가 혼재되어 있었다. 모 더니즘의 실체가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Ⅰ. 서론 모더니즘은 과학문명 발달, 자본주의 팽배, 절대적 가치의 부재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인식의 방법이자 새로운 표현양식 1) 이다. 1930년대의 모더니즘운동은 카프가 해산되고 만주가 일제에 넘어 가는 전망부재의 상황에서 새로운 문학을 모색하고자 하는 한 방 법으로 등장하였다. 조명암 2) 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철저한 현실인식 하에 역사 의식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모더니즘 작품은 식민 도시 의 부정적 사회상과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우 리 근대 시문학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부분으로 작용된다. 조명암의 모더니즘은 도시미학으로서의 모더니즘이다. 도시는 혼란과 유동성의 감각적 경험을 수용하는 미적 형식의 출처이며 욕망과 투쟁의 장소라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핵심 공간이다. 3) 그에 1) 김유중, 1930 년대 후반기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 연구, 서울대 박 사논문, 1995, 3~4 면. 2) 조명암( 본명 趙 靈 出 1913~1993) 은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모친 과 건봉사로 출가하였으며 만해를 통해 문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1934년 < 동아일보> 에 동방의 태양을 쏘라 가 당선되면서 활발한 문단활동을 전 개하였다. 해방기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에 가입 좌파문학의 길을 걸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동방의 태양을 쏴라, 칡넝넝, 마을 정거장, 단 편, 海 底 의 환상, 都 城 의 밤에 이상있다 등이 있다. 3) 황종연, 모더니즘의 망령을 찾아서, 모더니티란 무엇인가, 민음사,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27 게 경성이라는 도시는 어떤 자연이나 향토적 정서보다 애착을 갖 게 하는 하나의 대명사였다. 그는 근대성의 본질인 불합리와 불안 정이 병리적 개인을 낳으며 이러한 양상이 사회 속으로 확산된다 고 판단하였다. 이는 당대 사회구조의 모순을 파악하여야만 구조 적 병리현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조명암의 적극적이고 안목있는 역사적 진단이라 하겠다. 조명암은 모더니즘 문학의 외래 지향적 성격에 대한 반성으로 시조와 민요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그는 1930년대 모더니즘이 반낭만주의 반격정주의로 나아갔던 것과 달리 영탄과 격조사, 호 격조사 등을 빈번하게 사용하여 감탄의 수사 속에서 시적 진실 을 찾고자 하였다. 조명암의 모더니티는 일관된 방향으로 나타나 지 않고 모더니스트와 리얼리스트, 때로는 낭만주의자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그만큼 모더니즘의 실체가 광범위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조명암의 시적 모더니즘에 대하여 당시 김기림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기다( 幾 多 ) 의 시를 통하야 조영출씨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한 개 의 큰 희망이며 약속이며 야심이다. ( 중략) 우리는 조영출씨에게서 도 회시인으로서의 비범한 소질을 발견하였다. ( 중략) 조영출씨의 시 속 에서 또한 남달리 빛나는 것은 위트의 편린( 片 鱗 ) 이다. 4) 이 외에도 李 海 文 은 중견시인론 5) 에서 1930년대 대표시인으로 조영출을 꼽았으며 황석우는 전체 시단의 주목을 그을만한 소질 을 높이 인정하고 영롱한 옥괴( 玉 塊 ) 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6) 1994, 210 면. 4) 김기림, 1933 년 시단의 회고와 전망 부분, 조선일보, 1933, 12,12. 5) 李 海 文, 中 堅 詩 人 論 - 朝 鮮 의 詩 歌 는 어디로 가나, 시인춘추 第 二 輯, 詩 人 春 秋 社, 1938.
528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그동안 조명암에 대한 연구는 윤여탁의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 으로의 선택 7) 이 첫 논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월북 이전의 일부 작품에 한정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근년에는 김 효정( 金 孝 貞 ) 8)과 김효정( 金 孝 姃 ) 9)이 조명암 가요시의 민중사적 의 의와 현대시 작품 전반에 대한 문학적 접근을 시도하였으며, 김용 직은 모더니즘 시 1편과 해방기 경향시 2편으로 짤막한 조영출 론 10) 을 발표하였다. 2003년에는 이동순이 그동안 묻혀왔던 조명암 의 현대시와 가요시 전 작품을 발굴하고 묶어 을 발간하였다. 조명암은 였으며 조명암 시전집 11) 815 해방을 기점으로 모더니즘에서 경향시로 변화하 1948 년에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월북하였다. 월북 후에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앞장선 공로로 김일성상 계관인 칭호를 받으며 북한의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하였다. 본고는 역사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온 조명암 문학에 대한 연구가 우리 근대 문학사를 규명하고 정리하는 작업에 작은 밑거 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본고는 125편에 달하 는 조명암의 현대시 작품 중 일제강점기에 발표된 모더니즘 작품 을 통해 그의 문학적 위상과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6) 황석우, 최근시단개별 ( 最 近 詩 壇 慨 瞥 ), 조선시단 8 호, 1934,9. 7) 윤여탁,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에로의 선택- 조영출론, 시의 논리와 서 정시의 역사, 태학사, 1995. 8) 김효정, 일제강점기 조명암의 대중가요 가사 연구, 영남대 석사논문, 2000. 9) 김효정, 조영출 시 연구, 영남대 석사논문, 2002. 10) 김용직, 조영출론, 한국 현대 경향시의 형성/ 전개, 국학자료원, 2002. 11) 이동순 편, 조명암시전집, 선 출판사, 2003.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29 Ⅱ. 미적 근대성의 실현방식과 수사학 1. 시적 수사를 통한 관념의 실현 화려한 수사는 조명암의 문학이념을 드러내는 하나의 기호로 작 용된다. 김동인, 양주동 등 근대문학 작가들에게 의관취미 가 예 술가의 새로운 메타포로 인식되었듯. 댄디들은 옷이라는 외관을 예술이라는 절대적 신념을 표상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12) 예술가들 에게 옷과 댄디즘의 관계처럼 패션 아티클에 대한 흥미는 화려한 수사에 다름 아니었다. 댄디즘은 자기에의 신앙이며 자신에 대한 경계와 진정한 상승을 위한 예술적 욕구였다. 마찬가지로 수사에 대한 관심은 문학을 인식하는 조명암 식의 글쓰기로 나타났으며, 그것은 언어 예술로서의 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검은 그림자의 홍수/ 軍 神 의 만찬회에 초대받은 젊은 병사의 여윈 망령들의 행렬/ 하느님의 시체 하나 노변에 뒤둥그러져 있으니/ 오오, 敗 殘 한 역사 쓰라린 환상의 끊어진 토막 토막이여 斷 片 부분 조명암의 시는 직유보다 은유를 선호하여 지적 유희성이 두드러 진다. 은유는 새로운 관념을 지니게 되는데 중복되는 은유는 이러 한 관념성을 더욱 짙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야욕의 검은 심장도 공포의 얼룩이 진 건반을 누릅니다 ( GO STOP ), 차디찬 석상의 여인을 안고 심장을 비어내는 이 바다의 젠틀맨, 마수의 광란이 굵은 리즘의 세레나드를 짓밟는 거리 ( 都 城 의 밤에 이상 있다), 군신의 만찬회에 초대된 젊은 병사의 여윈 망령들의 행렬 ( 斷 片 ) 등에 나타나듯 각각의 관형구들은 체언을 수식하고 이것은 12) 조영복, 한국 현대시와 언어의 풍경, 태학사, 1999, 34 면.
530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뒤에 오는 체언을 다시 수식하면서 중첩되는 수식으로 인해 시는 모호성을 띄게 된다. 조명암 작품에 나타나는 모호성은 그만의 문 학적 특성으로 나타난다. 이는 대상의 분명한 윤곽을 보여주지는 않으나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독특한 분위기를 재생해내고 있다. 관념적 태도는 정신적이며 내향적 세계를 구현한다. 조명암의 시가 식민지의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관념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을 강조하는 기능과 관계되며 내면적 성찰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관념주의가 탈현 실주의를 취하는 데 비해 그의 시편들은 식민지의 부정적 현실에 철저히 기초한 관념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조명암의 관념주의는 내적 혼란을 강조하기 위한 독백과 엄숙주의이며 모더니티에 대한 지나친 자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감탄의 수사학과 언어 미학 영탄은 저절로 울려나오는 내적 울림으로 감동의 본질을 드러내 고자 사용하는 수법이다. 조명암은 영탄과 호격조사를 사용하여 낭만주의적 비장미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는 또 색채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그의 색채어는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대별된다. 이 두 색은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는 색으로 조명암 작품의 주제를 구체 적으로 형상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동방이 얼어붙었다/ 태양의 붉은 피가 얼어붙었다// 젊은이여 이 고 장 백성의 아들이여/ 손에 든 화살을 힘주어 쏘아 보내라/ 태양의 가 슴의 붉은 피를 쏘아 흘려라/ 백성이 광명에 굶주리고/ 강산의 줄기줄 기 숨죽여 누었으니// 허물어진 옛터/ 님의 꽃잎 하나 둘// 아, 젊은이 들아/ 함정에 빠진 사자의 포효만이/ 광명 잃은 譜 表 우에 달음질칠 이 날은 아니다// 화살을 쏘라/ 동방의 태양을 뽑아내라/ 피끓는 심장에 불을 붙여/ 낡은 봉화 재 우에 높이 들고 서서/ 산과 들 곳곳에 이 날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31 의 레포를 아뢰우자 동방의 태양을 쏘라 13) 전문 동방의 태양을 쏘라 는 1934 년 < 동아일보> 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모호성과 관념성을 일거에 초탈하 고 있다. 또한 위기에 놓인 민족주체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민족 의 독립이라는 절대적 명제가 선험적으로 상정되어 있다. 시의 압 권은 백성이 광명에 굶주리고/ 강산의 줄기줄기 숨죽여 누웠으니 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식민체제의 무단적 통치와 유린에 대한 정면대응이면서 동시에 민족으로 하여금 근원적 변혁을 촉구하는 선동성을 발산한다. 14) 태양 은 신화적 차원으로 끌어올려진다. 태양은 붉고 강력한 빛 이며 영원하다는 무시간성을 지닌다. 이는 건강하고 초월적인 자 아이며, 의지의 표상이다. 따라서 태양은 광명에 굶주리고 숨죽 어 누 운 이 강산을 살려낼 역사의 동력이며 원시적인 힘이 된다. 동방의 태양을 쏘라 는 어둠과 대비시킨 태양의 이미지와 역동하 는 기상, 과도한 형용사를 줄인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보내라, 흘려라, 쏘라, 뽑아내라 와 같은 명령형문체와 젊은이여, 아 들이여 등의 호격조사를 통해 민족에 대한 선언문적 성격을 보여 준다. 또한 반복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념을 강조하고 이러한 선 언을 더욱 강하게 천명하고 있다. 3. 서구문명과 도시 모더니즘 1930 년대 모더니즘 시의 경향은 서구풍 으로 특징 지워진다. 모 13) 동방의 태양을 쏘라 는 북한에서 발행한 조령출시선집 (1957) 에서 동 방의 태양을 로 개작되었다. 14) 이동순 편저, 조명암 시전집, 선 출판사, 2003, 691 면.
532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던이라는 말은 도시 첨단 문화적 현상을 지칭하는 것으로 당대 가 장 새롭고 신선한 것들에 붙이는 접두어였다. 모던 걸, 모던보이, 모던예술, 모던연애, 모던기생 에 이르기까지 모던은 서구화를 의 미하는 것이었고 근대화의 경쾌한 경험 15) 이었다. GO STOP 그러나 그것은 균형을 잃었사외다 거리는 W E N S 한끝은 벨사이유 궁전에로 또 한끝은 시베리아 窂 獄 에로 데파트는 부질없는 허영에 고개를 힘껏 쳐들었고 하수도는 원통한 주림에 힘없이 누웠사외다 GO STOP 부분 에레베타의 젊은 꿈 마네킹의 바다 빛 스카트 아스팔트엔 많은 시체들이 구물거린다 위험신호 부분 조명암은 이질적인 외래어를 사용하여 문명 속에서 형성된 감각 과 정서를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어느 정도 심미적 반응을 남길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그는 시대의 말, 탄력과 생기에 찬 말 을 쓰는 것이 모더니스트의 의무라 생각하였으며 이국 지명이나 서양 근대문명이 가져다 준 외래어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인식하였다. 그에게 외래어는 말의 뜻보다 참신한 이미지로 작용하였다. 외래 어는 새로움을 환기시키는 당대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언어였다. 15) 한만수, 근대의 가장과 이상심리의 기저, 모더니즘문학의 병리성 연 구, 박이정, 2002, 54 면.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33 또한 당시 구미나 일본 유학을 하고 온 이들의 가치지향을 함축적 으로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GO STOP 과 위험신호 에 나타나듯 외래어는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문명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으며 진 보와 문화의 결정체처럼 보였다.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면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외래어는 신문물, 신학문 을 인지하고 있다는 차이기호로서 뿐 아니라 새 언어 에 대한 탐 닉이었다. 새것은 좋은 것이며 이를 찾는 일은 가치 있는 태도라 는 새것 콤플렉스는 당시 모더니스트들의 공통된 자세였다. 그러 나 조명암의 외래어는 맹목적 서구 추수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이러한 언어를 통해 식민지 도시의 병폐와 부정적 현상을 비판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외래어는 토속적 방 언과 다른 형태인 사회적 방언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미적 근대성이란 역사적 진행시기에 나타난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적 지향들을 포함하는 탄력적인 문제의 틀이며 담론의 공간이 라 할 수 있다. 16) 본 장에서는 조명암의 언어 예술로서의 시의식 을 살펴보았다. 식민지적 상황은 서구 모더니즘과 차별되는 한국 모더니즘의 미학적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Ⅲ. 상징적 언어와 작가의식 1. 식민 도시의 우울한 풍경 식민현실 아래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치열한 현실인식과 16) 박승희, 한국시의 미적 근대성 연구, 영남대 박사학위논문, 1999, 3 면.
534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민족에 대한 비전의 제시였다. 시인의 깨어있는 자각과 역사적 안 목은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는 잣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학 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역사와 시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달음질쳐 가는 푸른 돛/ 그러나 떠나온 항구도 없었고 떠나갈 포구 도 없나니/ 오, 타임의 속없는 항해여/ 밤/ 조그만 섬들의 무수한 등대 불/ 난파를 모르는 선부의 꿈은 아루코루에서 젖어 오늘도/ 포석 우에 미끄러져 흘러가느니/ 바다의 요부는 푸른 팔과 붉은 팔들을 내저으며 蠱 惑 의 휘파람을 치위다/ 차디찬 석고상의 여인을 안고 심장을 비어내 는 이 바다의 젠틀맨/ 마스의 奸 夫 를 둔 자칭 마리아들의 고결한 정조 / 오, 成 吉 思 汗 의 검은 피가 용솟음치는 손박만한 版 圖 여/ 都 城 의 검은 괴물은 무엇을 싣고 달음질치는가 / 아, 우리들의 님은 어느 길에서 튀 어져 나오려노/ 밤 열 두시가 넘은 거리/ 마수의 광란이 굵은 리즘의 세레나드를 짓밟는 거리 -중략- 높다란 빌딩 음전스러운 巨 軀 도 검은 그림자를 넘겨트린 채 잠들어 가느니 都 城 의 밤에 이상 있다 부분 밤은 식민지 도시 공간의 사회적 풍토를 보여주는 전형성을 지 닌다. 도시는 혼란과 모순의 장소이며 정체성을 상실한 익명의 개 체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조명암은 일제에 의해 주도되는 강제 적 근대가 파괴와 유린, 해체와 붕괴로 이어지는 위험을 안고 있 다고 판단하였다. 都 城 의 밤에 이상 있다 는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미몽의 현 실을 보여준다. 이곳은 떠나온 항구도 없 고, 떠나갈 포구도 없 는 고립된 섬이다. 도시는 단절된 공간으로 조그만 섬들 은 비인 간성과 정신적 불모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된다. 이 도시는 알콜에 젖은 선부가 차디찬 석고상 과 같은 마리아를 안고 뜨거 움을 느끼려하는 거리이다. 석고상의 여인 이란 생명성이 결핍된 불임의 여인이다. 성적 타락이 불임이라는 부정적인 기호로 나타 나는 것이다. 이것은 타락한 여성을 통해 시대상을 전달하고자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35 하는 의도이다. 유혹의 대상은 신격화될수록 치명적이며, 매음녀 들의 관능성을 강조하는 수법이 된다. 근대성의 경험이란 양가적 욕망의 재현으로, 성모와 창녀, 신성과 세속의 양가적 욕망은 근 대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17) 성적 타락은 죄의식을 가중시키 고 실낙원의식과도 맞물리게 되는데 이는 망국민 의식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죄성을 노출시키고 있는 도성의 검은 괴물, 마수의 광란, 검 은 그림자 는 식민주체인 일제이며, 타락의 상징적 인물인 요부 와 간부 는 식민지 지식인들에 다름 아니다. 都 城 의 밤 이란 힘의 우위에 의해 지배되는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이다. 식민지배란 금 고를 부수는 강도와 같이 배후에 도덕적 목적이라고는 없는 것으 로 조명암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식민지인의 절망 을 그리고 있다. 2. 지적 허무주의와 데카당티즘 허무의식은 상실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조명암의 작품에 나타나 는 상실감은 식민지라는 거대한 문맥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그의 시에는 죽음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식민지 상황은 이러 한 타나토스를 극대화시키는 기제가 된다. 천 킬로 혹은 만 킬로미터/ 깊이 모를 해저에 움직이는 전차 자동 차/ 잡혀온 포로들인 전신주의 행렬/ 유리알 같이 말간 육체 클레오파 트라의 後 裔 들 오라잇 천당/ 오라잇 지옥/ 지금 스팔타의 용사들은 이십 세기 바에 17) 조영복, 1930 년대 문학에 나타난 근대성의 담론, 서울대 박사논문, 1996, 86 면.
53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서 유행가를 부른다/ 이곳은 열병에 죽어 넘어진 태양의 붉은 얼굴이 높다란 굴뚝 끝에 걸려있다 가 른다 해저에 침몰된 뭇 선박 빌딩의 몽롱한 해골들/ 유령의 경쾌한 노래 海 氣 의 잎잎에 무지개를 박느니/ 경이의 이 끝에도 허위가 숨어 흐 오라잇 세기말/ 오라잇 오오, 피묻은 창조의 손들이 축배를 드는 주 막/ 이렇듯 해저의 동물은 죽은 태양의 세계에서 도피를 의논한다/ 오 오, 회색빛 신경질에 신음하는 都 城 의 환상이여 海 底 의 환상 부분 海 底 의 환상 은 어두운 사회현실을 해저에 비유하고 있다. 이 시에 나타나는 죽음은 식민도시의 세기말적 상황에 대한 또 다른 우회이며 절규이다. 포로가 된 채 밀려오는 현실에 피동적으로 서 있는 전신주는 무기력한 집단적 자아를 상징한다. 전신주는 근대 의 상징이며 동시에 근대의 파괴력에 노출된 채 달아날 길 없는 고통스러운 민중이다. 또한 이러한 속내를 모르는 군상을 시인은 유리알 같이 말간 육체 클레오파트라의 후예들 이라고 표현한다. 열병에 걸려 죽어 넘어진 태양 이 높다란 굴뚝 끝에 걸려있 는 형상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해저에 침몰된 선박 과 빌딩의 몽롱한 해골들 은 죽음으로 가득 찬 도시 를 보여준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일제를 해저의 동물, 즉 짐 승으로 판단하며 그들의 죄성을 강력하게 노출시킨다. 짐승이란 공격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야만성을 드러내는 기제이다. 또 시인 은 해저의 동물은 죽은 태양의 세계에서 도피를 의논한다 라는 구절을 통해 일제의 침략 정책과 대동아공영권은 망상이라는 사실 을 예언적으로 규정한다. 18) 18) 윤여탁, 시의 논리와 서정시의 역사, 태학사, 1995, 285 면.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37 조명암의 시는 데카당스적 파괴와 몰락의 징후를 보여준다. 데 카당스는 종말과 종말 이후의 세계라는 두 지점을 중심으로 끝없 이 순환하는 역사철학적 환상이다. 데카당스에는 몰락의 다른 이 름인 재생이라는 강력한 이념소가 존재한다. 조명암의 데카당스는 식민지 조선의 근대인식과 자기의식의 문제를 모두 포함하고 있 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데카당스는 쇄락과 재생의 욕망이 혼재하 며 새 생명의 발아를 긴밀하게 함축한다. 3. 존재론적 소외와 동경 존재는 세계를 향해 꿈을 꾼다. 존재가 꿈꾸는 공간은 자신을 구속하는 좁은 구석이다. 이 구석진 곳에서 고독한 존재는 자신을 깊이 느끼고 드넓은 세계를 향해 몸을 연다. 존재를 담고 있는 공 간은 이러한 동경을 통해 우주적인 무한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하늘이 하도 높아 땅으로만 기는/ 강원도 칡넝쿨이/ 절간 종소리 숙 성히도 자라났다// 메뚜기 배짱이들이/ 처갓집 문지방처럼 자조 넘는 칡넝쿨// 넝쿨진 속에 계절이 무릎을 꿇고 있다/ 여름의 한나절 꿈이 향그럽다// 줄줄이 뻗어간 끝엔/ 뾰죽뾰죽 연한 순이 돋고// 어린 소녀 의 사랑처럼 온 칡/ 모르게 모르게 무성해 간다// 袈 裟 를 수한 젊은 여 승이/ 혼자 다니는 호젓한 길목에도/ 살금살금 기어가는 칡넝쿨이언만 // 해마두 오는 가을을 넘지 못해/ 목을 움츠리고 뒷걸음을 치는 식물// 칡넝쿨이 안보이면/ 먼뎃절엔 등불이 한 개 두 개 열린다. 칡넝넝 전문 칡넝넝 은 초기 시와 달리 객체의 내면을 통해 대상을 형상화한 다. 시인은 칡넝쿨에 다가서서 칡넝쿨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연인에 대해 갖는 심정으로 칡넝쿨과 여승의 내면을 느낀다. 불교적 인연론과 운명론적 세계가 깔려있는 이 시는 대상을 회화적
538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으로 제시하며 직접적인 감정표출은 자제한다. 다면적 속성을 지닌 칡넝쿨에 비해 여승의 모습은 여리다. 그리하여 객체는 칡넝쿨이지 만 이 뒤에 감춰진 모습들이 시인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칡넝쿨을 형상화하고 있는 어린 소녀의 사랑처럼 온, 모르게 모르게, 목을 움츠리고 뒷걸음을 치는 식물 등은 젊은 여승의 이미지와 겹치며 여운을 던져준다. 또 이들은 수줍음이라는 유사 한 속성을 지니며 여승과 유기적 결합을 이룬다. 칡넝넝 은 일찍이 금강산 봉건사로 출가한 시인의 심상에 오래 도록 자리 잡고 있던 내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생의 열망을 향 해 뻗어가는 칡넝쿨이지만 가을을 넘기지 못해 뒷걸음질 치는 모습은 함축된 의미망을 드러내며 여승과 식민지 민중의 한을 형 상화한다. 칡넝쿨이 안보이면/ 먼뎃절엔 등불이 한 개 두 개 열린 다 는 마지막 연에서 조명암은 자신의 숨겨둔 의지와 열망을 나타 낸다. 또한 1 연의 절간 종소리 와 마지막 연의 등불 은 매달린다 는 공통적 속성을 가진 것들로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효과를 나 타내며 시의 울림을 확장시킨다. 칡넝넝 에는 본래적 존재를 찾 아가는 사색자의 모습과 시인이 동경하는 세계가 배면에 깔려있어 시적 의미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조명암의 시작품에 나타나는 주제는 식민지라는 거대한 문맥 속 에서 얻어진 것들이었으며 시인의 살아있는 의식을 통해 발현되 었다. Ⅳ. 조화와 질서의 공간 1. 전통성과 모더니즘의 결합 조명암은 전통문학의 율격과 시형에 관심을 가지고 조선적 정조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39 와 사상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이는 서구문화에 대한 민족주의 이 념의 실천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모더니즘이란 전통과의 단절을 뜻하는 것이지만 조명암은 세계문학의 보편성 위에서 우리 개성에 충실한 문학을 산출 19) 하고자 하였다. 민요와 시조 형태를 지향하는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 소재와 율격을 나타내면서 외래어 와 한자어 사용을 피하고 순수한 우리말 사용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삽작 문 고이 열고 드시는 님에 반겨 맨발로 뜰에 나려 덤비다 꿈을 깨어 깬 꿈이 안타까운 마음에 베개 안고 울었네 思 君 부분 구만리 하늘에 은하수 구비 흘러 오작교 설운 다리가 해마다 놓입니다 엉야라 덩야라 다리가 놓입니다 칠석날 한밤이 백년만 같고 지고 구름재 열두 고개를 님 찾아 왔습니다 엉야라 덩야라 님 찾아 왔습니다 은하수 부분 思 君 과 은하수 는 시조의 정형률과 민요에 나타나는 반복과 병치구조, 4 음보의 규칙성을 보여준다. 또한 향토적 세계와 민담을 배경으로 불행한 사랑을 표현하는 여성 편향적 성격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구체적이 아닌 보편적이고 관념적인 자연과 님을 노 래한다. 또 과거의 시간과 공간적 저기 를 지향함에 따라 현재는 부정적 시간과 공간으로 인지된다. 이러한 심리적 퇴행의식은 과 거의 형식을 선택하게 되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19) 백운복, 현대시론의 형성과 전개, 한국현대시론사 연구, 계명문화사, 1993, 130 면.
540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思 君 은 시조의 정형률을 보여준다. 각 연의 끝마다 - 네 라는 語 尾 를 사용하여 압운과 리프레인 효과를 노리고 있는데 이러한 語 尾 는 음악성을 확보하며 비구체적인 세계를 그려내는 데 효과적 으로 작용한다. 은하수 는 민담을 소재로 민족 공동체적 정서를 살려내고 있 다. 엉야라 덩야라 의 후창은 흥겨움과 역동성을 더해준다. 이 후 창이 삽입됨으로써 시는 활기와 호소력을 얻는다. 또 시간성을 추 가하여 희노애락의 응어리 진 한을 고조시켜준다. 각 연의 ~ㅂ니 다 는 어미 반복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시의 리듬감 형성에 크게 기여한다. 이 시는 논리의 비약이 특징인데 작품이 평이성을 벗어나 어떤 상징성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 은하수는 현실적공간적 장애로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님을 그리워하는 심사는 식민지 대중의 공 통된 소망으로 확산된다. 님은 구체적 차원이 아니기에 시간과 공 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2. 원초적 공간성으로서 여성의 몸 조명암의 시에는 친족이나 고향과 같은 과거의 기억들이 등장하 지 않는다. 부친의 죽음으로 인한 소멸체험과 가족해체는 끈질기 게 과거 되새기기를 할 빌미로 작용될 수 있었으나 그의 시에는 이러한 의식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향과 피붙이들을 기억 속에서 제거 해 버린 조명암은 이를 대신할 대상을 여성에게서 찾고 있다. 짓 밟힌 여인, 경이의 나라에 팔려온 가여운 매춘부의 행렬, 마리 아, 마녀, 경박한 여인, 비너스, 길 잃은 캐라방의 여인 등과 같이 그가 갈망하는 여성들은 개별성을 지닌 여인들이라기보다 보 편적 선입견에 의해 일반화된 이미지의 여성들이다. 조명암의 시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41 에는 이러한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여성의 유방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 性 은 최초의 여자인 어머니를 대신할 기제로 작동된다. 모태는 조화와 질서의 상징적 공간이며, 자아정체성은 어머니의 존재와 결속되는 것으로 조명암은 결핍과 상실감을 유방에 집착하는 회귀 본능을 통해 해소충족하고 있다. 한 점 피에 젖는 날카로운 입술의 황홀한 장난이여,// 향내 담긴 어 느 하렘 속 사내냄새 풍긴 보드런 유방에 앉아 너는 몇 번이나 흥분 에 겨운 적 있늬, 네 치 양초가 두 치두 안 남아 촛농은 찌르르 흘러 애인 없는 한 간 방이 슬퍼다고 우나보다, 철 알고 허어연 목에 매달 려 동백내 코 끝에 알싸하던 그 밤엔 촛불이 대고 미웠더니// 앵 하는 심야의 交 響, 쓰러질 뻔한 촛불에 어느새 넘어진 취한 모기 하나 촛농 을 찌른 갸름한 입술은 어느 또 마담의 하이얀 젖을 토함이뇨, 죽음의 흥분이 火 熱 밑에 포들대는 육신의 날개- 이미 압상스의 도취는 싱겁 기 짝이 없다// 오오, 뉘우침에 짬 없는 形 불이여, 탈레스여, 심지에 피 는 이 파아란 불을 꺼 주시라 白 燭 의 심야- 僧 房 에서 부분 白 燭 의 심야 에서 시인은 좁은 승방에 갇혀 있다. 촛불은 혼자 타면서 혼자 꿈꾸는 인간 본래의 모습이다. 21) 촛불 아래 밤의 몽 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 점 피에 젖은 날카로운 입 20) 귀먹은 항구의 젖가슴/ 젖가슴에 부여안긴 아스팔트의 사생아들은 허영의 젖꼭지를 빱니다 - 탄식하는 가로수, 은반 우에 달리는 인어들의 흰 두 乳 房 사이를 더듬어 보라 - 은반 우에 날개를 편 젊은 인어들, 아라스카 의 처녀여 네 유방의 선과 같은 깨끗한 純 感 에로 함께 돌아가자 - 黙 禱, 기름진 유방/ 네 아름다운 蠱 惑 이 얼마나 많은 피를 졸랐더뇨 - 평원, ' 부풀어오르는 유방은 / 愛 戀 의 불꽃을 튀기고'- 북행열차, 풍랑은 인어의 유방을 얼마나 아프게 했던고 - 붉은 날개의 전설, 투명한 유방에 어린 것처럼 매어달려라 - 목련, 하마 유방 우에 찍힌 지문이여 쓰라린 뜸이어 라 - 명상하는 조약돌 등. 21) 가스통 바슐라르, 이가림 역, 촛불의 미학, 문예출판사, 1975.
542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술의 황홀한 장난이여, 날개는 도취에 파르르 떨고, 어느 하렘 속 사내 냄새 풍긴 보드런 유방에 앉아 너는 몇 번이나 흥분에 겨 운 적 있늬, 촛농은 찌르르 흘러, 동백 내 코 끝에 알싸하던, 촛농을 찌른 갸름한 입술은 어느 마담의 하이얀 젖을 토함이뇨 등의 시각적, 후각적, 촉각적 심상은 에로스를 환기시키기에 충분 하다. 모기의 침은 탐닉을 불러일으키는 날카로운 입술 이미지이 다. 시인은 모기를 매개로 여성의 몸에 대한 도취를 보여준다. 심 야의 승방과 에로티시즘은 갈등하고 대립하는 부조화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억압과 금기가 도리어 자아를 노출시키는 계기가 된다. 3 연 죽음의 흥분이 火 熱 밑에 포들대는 육신의 날개- 이미 압상 스 22) 의 도취 에 이르면 성적 흥분과 희열이 극에 달한다. 모기는 촛불에 매력을 느껴 가까이 다가가 불꽃의 황홀경 속에 타죽는다. 이 屈 光 性 은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대립되는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 23) 이다. 존재를 태운다는 것, 에로스에 의해 에로스 속에 서 죽어가는 것은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종합을 실현하는 것이 다. 24) 몽상이 교차될 때 바람에 의해 파아란 불 은 흔들리며 꺼질 수 있다. 청유형 꺼 주시라 는 그동안의 모든 에로스적 유혹을 일 소하려는 의도이다. 촛불이 타는 승방은 가치와 반가치가 투쟁하 는 방이었던 것이다. 조명암의 에로티시즘은 여성의 몸을 매개로 자아실현의 장소로 완성되고 있다. 그의 에로스는 충족욕망이며 상실에 대한 회복욕 망이다. 그의 의식 속에는 고향과 혈족에 대한 기억들이 폐기되지 않고 고스란히 결핍의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었다. 본장에서는 전통성과 모더니즘의 결합, 보편화된 여성의 이미 22) absence, 일시적인 의식의 혼탁을 나타내는 의학 용어. 23)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Empedokles, B.C.493~130) 의 이름에서 빌어 온 것으로 바슐라르가 불의 정신 분석 에서 보여준 네 개의 콤플렉스 개념 중 하나이다. 24) 가스통 바슐라르, 이가림 역, 촛불의 美 學, 문예출판사, 1975, 77 면.
조명암의 모더니즘 시 연구 543 지를 통해 조화와 질서의 원형적 공간성을 지향해 나가는 조명 암 특유의 모더니즘을 살펴보았다. Ⅴ. 결론 본고는 이동순의 조명암 시전집 에 실린 125편의 현대시를 텍 스트로 하여 그중 해방 이전까지 발표된 모더니즘 작품을 연구하 였다. 본고는 64편에 달하는 조명암의 모더니즘 작품을 분류하고 수사학적 경향과 상징적 언어로 표현된 작가의식을 밝혔으며 조화 와 질서의 공간성을 지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조명암의 시적 태도 와 성취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 는 작품을 분석하여 이 작품들이 가지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찾아보았다. 조명암은 식민지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철저한 역사적 인식 하 에 사회성 짙은 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모더니스트로서 식민근대 의 비인간성, 정신적 불모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의 작품들 은 식민지 상황의 본질을 뚫고 있었으며 전 시대의 문학적 유산인 리얼리즘의 요소들을 받아들여 일제에 의한 파행적 근대화의 과정 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조명암은 문학의 예술성과 형식, 언어의 기교 문제까지도 함께 고민하였다. 또한 그의 모더니즘 시 작품은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적 요소 등 다양한 시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조명암에 대한 연구는 우리 근대문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 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명암의 시적 변화는 일제강점기의 모더니즘과 일제말의 친일, 해방기의 경향시와 월북 후의 수령형상화 시기로 나누어지게 된 다. 그는 매 시기마다 급변하는 역사현실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생
544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동하는 인식자로서 당대를 점령한 경향이나 이데올로기에 투신하 였다. 현재도 우리는 모던이라는 화두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본 고의 미진한 부분과 모더니즘 이후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후속 연 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가고자 한다. 주제어 : 조명암, 일제강점기, 모더니즘, 사회 현실, 역사 의식 참고문헌 1. 기본자료 이동순 편, 조명암 시전집, 선출판사, 2003. 조선일보, 시인춘추, 조선시단 2. 논문 김유중, 1930 년대 후반기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 연구, 서 울대 박사논문, 1995. 김효정, 일제강점기 조명암의 대중가요 가사 연구, 영남대 석사논 문, 2000. 김효정, 조영출 시 연구, 영남대 석사논문, 2002. 박승희, 한국시의 미적 근대성 연구, 영남대 박사논문, 1999. 조영복, 1930 년대 문학에 나타난 근대성의 담론, 서울대 박사논 문, 1996. 3. 단행본 고명수, 한국 모더니즘 시인론, 문학아카데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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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 韓 民 族 語 文 學 ( 第 51 輯 ) A study on Cho Myung-Am's Modernism Poetry Seo, Young-Hee Cho Myung-Ahm had modernism poetry published, containing reality recognition and historical consciousness in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etting. His works critically deal with social images of loss of humanity through the scenes of modern cities created by Japanese imperialism. Cho's works may directly reveal unreasonable aspects of society, including his intense purpose of improving and changing these situations. Though modernism of the 1930s was led against romanticism or emotionalism, Cho tried to grab the truth of literature in the phenomenon of senses, using an exclamational vocative case postposition, etc. Keenly confronting social realities, the poet also paid attention to the question of artist교 of literature and techniques of language. Cho turned to traditional literature, reconsidering external-oriented aspect of modernism, and he came to make the literary achievement of pursuing the space of harmony and order. His modernity is not oriented in one direction, but is diversely mixed with images of a modernist, romantist, and realist. Cho's poetry may prove that the substance of modernism is wide-ranging as much. Key words : Cho Myung-Ahm, Japanese Colonial Period, Modernism, Social reality, historical consciousness 서영희 영남대학교 강사 주소: 경북 경산시 대동 214번지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 전화번호: (053) 810-2110( 학교) 011-823-8007 전자우편: munji64@hanmail.net 이 논문은 2007 년 10월 30일 투고하여 2007 년 12월 15일까지 심사완료하여 2007 년 12월 30일 간행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