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성경공부 ----------------------------------------------- 1:1~80 누가복음 1 장 1. 예수의 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 중에 이야기를 1) 가장 싱겁게 시작한 복음서는? 2) 가장 거창하게 시 작한 것은? 3) 가장 따분하게 시작한 것은? 4) 그렇다면 누가복음의 시작은 어떠하다고 할까? 1) 마가(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요한(태초에 말씀이 계셨으니), 3) 마태(족보로 시작함), 4) 아름답게, 문학적으로(많은 시와 찬양으로 시작함) 2. 누가복음이 써지기 전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대로 기록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 중에 혹 시 아는 분이 있나요? 마태, 마가: 여러 사람들이 썼지만 이 두 편이 정경으로 채택된 것으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기록이었을 것이다. 요한복음은 누가복음보다 나중에 기록된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기록이 있었는데 정경으로 인 정받지 못하고 외경으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3. 다른 사람들이 많이 기록했는데 왜 누가는 따로 또 기록하는가? 자기 나름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차례대로, 자세히 (신약에서 가장 길다. 간발의 차이로 마태복음이 두 번째로 길다. 가장 짧은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세례부터 기록하고, 마태복음은 출생부터, 자세히 살펴 본 누가는 그 전의 세례 요한의 출생부터 기록을 시작하고 유일하게 유년시절의 이야기도 기록함) 특별한 대상이 있었다: 특별하게 돌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데오빌로(데오: 하나님, 빌로: 필레오가 친구 간 의 사랑이란 뜻으로 쓰임, 하나님의 친구)란 사람을 위해서, 아마 자유롭게 믿는 성도들과 교제할 수 없 는 위치에 있었거나 교육적 배경이 좀 달라서 기존의 복음서보다 누가가 새롭게 설명해 주어야 할 필요 를 느꼈거나. 그렇다면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4.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각각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는가? 예수님: 말씀, 그 제자들: 목격자, 일꾼 5. 엘리사벳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 아닌가? 우리 말 성경에 이렇게 음역이 된 후에 다른 곳에서는 엘리자베스라고 번역되었음. 영어권에서 왕의 이름으로 사용된 이름이 여기에서 나온 것임. 요한은? John, 야고보? James, 베드로? Peter, 바울? Paul, 시몬? Simon: 어느 발음이 더 정확한가라는 문제보다 같은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두는 것이 좋겠고, 성경에서 먼저 이렇게 음역되었으면 그 뒤의 음역도 따라주면 좋을 텐데 성경이라면 따르지 않거나, 연구대상에서 제외시키려 는 묘한 악습을 어찌할꼬? 학교에서도 고전연구반이라면 괜찮고 성경연구반이라면 반발이 생긴다. 불신 자 동료들이라도 이런 경향이 있음을 알고 피 터지게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명하게 반발을 피해가면서 우리의 할 일을 해야 할 때가 더욱 많다. 6.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아무리 주의 계명과 율례에 흠이 없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의인 이라고 할 수 있나? 그만큼 경건하게 살았다는 의미로만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므로. 7. 나이도 많은데 자식이 없었다니... 너무 경건하게 산 탓인가? 몸의 구조가 잘못된 탓인가? 아니면 하나 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간섭을 하신 탓일까? 인간적인 측면에서 답을 찾아보면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는 말도 맞다. 반면에 하나님 편에서 찾아보면 그러한 것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간섭 때문이라고 해도 옳다. 우리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렇게 묘한 이중구조가 성경에는 있다. 너무 경건해서 자식이 없었다는 것만 빼고 둘 다 맞다. 8. 한 제사장이 늘 성전을 맡아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사장이 있는데 돌아가면서 차례를 맡아 섬겼음 을 보여주는 말은? 반열의 차례대로: 아비야 반열에서 자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란 말이다. 분향하는데 제비를 뽑다니? 당시 에 제사장의 숫자가 많아서 그렇게 했나보다. 아무도 없는 엄숙한 순간에 천사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 라웠겠는가? 그래서 벙어리가 됐다? 9. 천사의 예고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1) 어떤 사람인가? 2) 무슨 일을 할 것인가? 3) 나와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는가? 1)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함, 주 앞에 큰 자,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성령이 충만한 자 2)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주 앞으로 돌아오게 할 자 = 주 앞에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 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함: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아오게 하리라(말4:6)는 말씀은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져 있는 것을 바르게 한다는 의미,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 10. 천사가 전해주는 말을 들으면서도 무조건 예 하지 않다니 나쁜 사람 아냐? 이렇게 믿음이 없어서야... - 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1~80 그렇지만 누구보다는 훨씬 낫다. 누구? 같은 말을 듣고 웃은 사람: 아브라함과 사라 11. 비록 일 년 동안이지만 벙어리가 된 것은 큰 벌을 받은 것이 아닌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천만에. 답답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을 것이다. 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 들을 주신다는 확증이요 아들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가슴 벅 찬 증거다. 진실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쥐어뜯긴 자국은 볼 때마다 아픈 게 아니라 즐겁다는 사실을 이해 하실랑가? 사랑하고 사세요. 그러면 얻어맞아서 생긴 멍도 즐겁답니다. 사랑하는데 왜 맞냐구요? 아무리 사랑해도 잘못하면 맞아야죠. 12. 손짓 발짓을 영어로 Body Language라고 한다. 성경은 뭐라고 하죠? 형용( )으로(22) 13. 목사님의 기도가 오래 계속되더니 갑자기 벙어리 흉내를 낸다면 우리는 뭐라고 생각할까? 이상을 본 줄(22)로 생각한 백성들은 상당히 하나님을 잘 아는 백성들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셨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돌았다고 생각할까? 14. 엘리사벳은 왜 다섯 달 동안이나 숨어 지내는가? 다 늙은 할매가 배가 부르다니 부끄러워서? 아니다. 절대 아니다. 자신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없게 해 주셨다고 하고 있는데... 태교의 의미(부정한 것에서 멀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지내기 위해서? 삿13:13-14) 아마 더 숨어 지냈을 텐데 마리아에게 들키는 바람에? 15.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한 말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라. 그 중에서 마리아가 가장 큰 은혜를 받은 대목은? 1) 무서워 말라, 2) 아들을 낳으리라, 3) 너의 아들이 큰 자, 4) 너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 5) 너의 아들이 영원한 나라의 왕 2): 다른 것은 모르겠고 사내를 알지 못하는 내가 아이를 낳다니요? 충격. 16. 마리아가 두려워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래서 하나님께서 취하신 조치 두 가지는?(한 가지는 다른 복 음서에서) 처녀가 아들을 가졌다. 요즈음도 남사스럽다고 야단인데 그 때야 오죽했을까? 실제로는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으니 무서운 일이다. 1) 엘리사벳을 잉태케 하여 능력을 보임: 세례 요한을 미리 보내시는 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런 일 도 하실 수 있는 분이란 것을 실제로 보여줌, 그랬거나 말거나 남편이 있으니까 임신한 것 아니냐고 우 기는 사람도 있는데 결혼한 이후 수 십 년 동안이나 지내면서 자식이 없었던 사람이 자식을 갖게 되어 도 우연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정말 완악한 사람이다. 마리아가 즉시로 달려가서 확인 하고는 마음에 얼마나 위로를 받았을까?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에 있었고 사가랴의 집은 유대 한 동리 이다. 먼 곳이다. 석 달이나 함께 있었다. 아닌가? 2) 남편 요셉을 친히 설득함 (마1:20) 17.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것은 다윗의 위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서 다윗의 위가 영원하리라고 약속을 하셨는데 약속위반 아닌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 땅에 세워진 다윗의 나라를 가리키면서 오히려 내면적으로는 훗날 이 땅에 임하 실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다윗의 위를 계속 이어가시는 분이란 뜻이다. 그림자격인 다윗의 위도 주변 다른 나라에 비하면 견고했음을 알 수 있 다. 북쪽 이스라엘이 약 250여년 사이에 9왕조였던 반면에 유다는 약 400년 가까이 왕조가 변하지 않았 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행13:22-23) 18. 천사 가브리엘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가 무엇인가? 사내를 알지(성적 관계) 못하는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므로(35:결코 요셉의 아들이 아니다): 동정녀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동화나 전설처럼 다루려는 사람이 많다. 으레 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아니냐는 거다. 무식한 사람이 이런 글을 남겼으면 무식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이 글을 쓴 사람은 이런 방면에 확실한 지식을 가진 의사였다.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지 않고서는 감히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의 고집이 어떤지 아시나요? 첼리스트가 하는 말, 자기 선생 님이 가르쳐준 대로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가 평생 찍혀버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옛날 본고사가 있던 시절에 똑같은 문제를 두고도 어느 대학에 갈 것이냐에 따라 답들 다르게 써야 했다. 이유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학자들 때문이었다. 고집을 꺾는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학 자라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배웠다는 사람이 자신의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함부로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다. 19.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는 말은 엄청난 파문이 예상되는 말이다. 1) 어느 정도의 위험이 담긴 말일까? 2) 무엇을 믿고 이렇게 간 큰 소리를 하는가? 1) 죽음을 각오한 말이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보다 못하지 않다. 정혼한 처녀가 임신했다면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뭐라 그럴까? 2)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38). 이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 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1~80 20. 마리아가 왜 산중에 갔을까? 산에 갔다는 뜻이 아니고 유대의 한 동네가 산 속의 마을이었을 뿐이다. 즉 엘리사벳의 거주지가 산골이 었는데 그리로 갔다는 뜻일 뿐이다. 이스라엘의 지역을 때로는 산지, 광야, 들로 표현하기도 한다. 21. 예수님과 요한의 첫 만남은 간접 만남인 셈이다. 엄마의 귀를 통해서 소리로만 만났으니 전화로 만 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실제로 태아는 엄마의 감각을 통해서 외부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 서 예로부터 태교라는 것이 강조되어서 보는 것 듣는 것 심지어 마음까지도 곱게 가지도록 했던 것이 다. 그러니까 요한이 복중에서 뛰어논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니다.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의 결과다. 태중에서 뛰놀았다는 것도 단순한 태동이 아니었다. 특히 내 주의 모친이라는 말이 그렇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제일 먼저 기뻐하며 뛴 사 람은 세례 요한이다. 그것도 엄마 뱃속에서. 22. 마리아의 찬양은 아주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작곡가도 이 가사로 찬양을 썼지만 서양에서는 이미 많 은 찬양 곡이 만들어졌다. 제목은 라틴역 첫 구절을 따서 Magnificat라고 한다. 1) 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보시오. 2) 더욱 압축해서 이름을 만든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셨다. 하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조상에게 함께 하셨듯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은영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주셨다. 메주(이진형의 작품) 23. 마리아의 찬가는 전체적으로 아주 큰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지금 마리아의 처지가 기뻐할 형편인 가? 현실을 잘못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어려운 현실을 제거해 버림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 가운데 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나서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 이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다. 자신의 신앙이 어린아 이인가 어른인가를 판별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렇겠는가마는. 24.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셨길래 마리아는 이렇게 기뻐하고 있는가? 능력의 하나님께서 비천한 내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난하고 비천한 자에게 영원한 긍휼을, 교 만하고 권세 있는 자, 부자를 공수로 보내실 수 있는 분 즉 모든 것의 주관자가 되시는 분 조상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자신을 통해서 이루실 것을 믿음 25. 마리아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두 가지 관점 즉 일반적인 경우의 하나님과 특별 한 경우의 하나님으로 구별해 보자. 일반적인 경우: 가난하고 비천한 자에게 영원한 긍휼을, 교만하고 권세 있는 자, 부자를 공수로 보내실 수 있는 분 즉 모든 것의 주관자가 되시는 분 - 본질에 관한 것이며 모든 사람과 관계된 것이다. 일반적 으로 좋다고 말하는 경우처럼, 사람이 아무리 좋으면 뭐 하나 내게 좋아야지. 특별한 경우: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신 분 -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이런 관 계 속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위대하신 분인들 나와 아무 관계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정주영 씨가 돈 을 많이 가졌다고 내가 기뻐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26. 엘리사벳이 해산할 때 이웃들이 기뻐한 이유가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들었기 때문이라 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유대인들에게 자식이 없는 것은 가장 큰 수치인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크게 긍휼을 베푸셨다는 뜻이다. 27. 요한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는 유대 지방에서는 유명한 이야기가 됐다. 무슨 이유로? 다 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았다. 이름의 특이성: 그 집안에 없던 이름(이름을 아무렇게나 짓는 경우라면 이게 그렇게 소문이 날 까닭이 없 지만 이스라엘은 이름을 함부로 짓는 나라가 아니다.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에서 이름을 바꾸거나, 일생 을 함축하는 의미를 담고 있거나, 성을 점령하면 통치권을 확보한 차원에서 다시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 으니 엉뚱한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쇼킹한 일이었다. 요한(헬) = 예호하난(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아이를 낳을 때까지 아버지가 벙어리로 있다가 입이 풀림(하나님께서 말을 못하게 한 방법이 무엇일까? 입 을 못 움직이게 하면 식사에 지장이 있으니 안 되고...) 28. 위의 이 세 가지 기적 같은 일들을 표현한 다른 말을 찾는다면?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라 29. Open Sesame!라는 말은 알리바바 이야기의 도둑들이 동굴 문을 열기 위해서 외치는 주문이었다. 벙어 리가 된 사가랴의 입을 여는 주문(?)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할까? 요한, 혹은 요한이라고 외친다. (아니다) 요한, 혹은 요한이라고 쓴다. (부분 점수 인정) 그 이름은 요한(=His name is John), 혹은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다. (아들의 이름을 쓰는 이 일이 하나님 께서 그에게 하신 약속하신 일의 마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가랴가 자신의 직무를 끝내고 집 - 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1~80 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맨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소중하고 귀하게 여 겨야 하는 일이다. 부부사이에서 성행위는 아주 소중하고 귀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30. 이 1장에는 성령이라는 말이 몇 번이나 나오는가? 그리고 성령 충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4번 모든 것을 앎: 마리아가 자신에게 이루어진 일을 말하기 전에 엘리사벳이 알았고 태중의 아기도 알고 기 뻐함 -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찬양함: 찬양의 연속이다. 31. 사가랴는 거의 일 년 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들이 태어나고서야 입이 열렸다. 얼마나 말이 하고 싶었을까? 그래서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사가랴의 찬양은 감사 찬송이다. 오 랜 세월동안 자식이 없었는데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는가? 벙어리에서 정상으로 돌아온 것 을 감사드렸는가? 아니다. 메시야를 주신 것, 혹은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신 것에 대하여: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뒤에 딸려 오지만 그것은 메시야에 대한 부속의 의미로 오는 것이지 자기 아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의 삶 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의미가 있는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없는 우리의 삶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32. 사가랴의 찬송(68-78)은 교차대구법이라는 문학적 표현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주제를 반복시 키되 반대 순서로, 즉 제일 앞에 나온 주제를 제일 끝에 한 번 더 반복하고 두 번째 주제는 제일 끝에 서 두 번째 반복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 다음과 같이 찾아보자. 우선, 다음 구 절들과 같거나 비슷한 구절을 역순으로, 즉 끝에서 거꾸로 올라오면서 찾아보자. 완벽하게 맞추기는 어 려운가보다? 1) 68, 그 백성 77, 주의 백성 2) 69, 구원 77, 구원 3) 70, 선지자 76, 선지자 4) 71, 원수 74, 원수의 손 5) 72, 조상 73, 조상 6) 72, 언약 73, 맹세 한글로 찾기 때문에 다소 정확해 보이지 않지만 원어로 찾아보면 아주 정확하다. (영어NIV는 한 군데만 순서로 바꾸면 완벽한데...) 33. 사가랴의 찬송(68-78) 내용을 세 주제로 나누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다(68-75). (1) 무슨 일을 하셨는가? 메시야을 주셨다, (2) 그게 무슨 일인데? 미리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는 것, (3) 왜 그런 일을 하셨는데?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아이가 할 일(76-77): 메시야의 길을 예비함 (1)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2) 주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며, (3) 구원을 알게 한다. 결과는? 우리가 대낮에 행하듯 힘 있게 걸을 것이다(78-79):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까지 당당하게 나아가게 하실 것임 34. 아브라함과 사라, 한나와 엘가나,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공통점은? 1) 자식을 낳지 못함, 2) 인내로 기다렸다가 위대한 아들을 낳음 35.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요, 문학가요,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의사로서의 특징도 많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원어를 잘 모르는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고 문학가로서의 특징은 본 장에서 어 떻게 나타나 있는가? 노래가 많다. 엘리사벳, 마리아, 사가랴: 다른 복음서에 없는 아름다운 문학적인 기록이다. 36.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의 저자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증거 중에 한 가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성 경에서 동일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성령에 대한 관심이 크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릴 만큼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이다. 누가복음 1 장에만 해도 성령이라는 표현이 4번이나 나온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17): 선지자들 중에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서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하고 위대한 업적 을 남긴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사40:1, 말3:1-5, 4:5-6) 예수: 히브리어 여호수아(여호=여호와, 야웨, 수아=구원하다)의 헬라음역 구원의 뿔: 근동지역의 뿔 가진 짐승은 뿔의 힘이 세다. 그래서 뿔은 힘을 의미한다. 힘 곧 능력 있는 구원자라는 뜻이다. - 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1~52 누가복음 2 장 1. 가이사 아구스도를 영어로 쓰면 Caesar Augustus가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다. 1) 이 이름의 뜻은 무엇이며 2) 역사책에 나오는 그의 본래 이름은? 존엄자: 신이라는 뜻이다. 시이저가 황제가 되려한다고 해서 암살까지 한 그들이 황제는커녕 신으로 섬 겼으니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겠는가! 옥타비아누스: 달력에 July란 이름을 밀어 넣은 Julius Caesar의 양아들이다. 그래서 자기도 달력에 한 달을 밀어 넣었다. August라고. (로마에서 원래 쓰던 달력은 10달로 되어 있었는데 이 두 권력자가 이렇게 두 달을 집어넣으면서 8을 의미하는 October가 10월로 밀려난 것이다) 2.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올 때 너무나 초라하게 왔다. 낮고 낮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심도 부족하 여 인간 중에서도 더욱 낮은 모습으로 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를 찾아보자. 1) 베들레헴이란 작은 동리, 2) 방이 아닌 구유(여물통) 혹은 마구간, 3) 축하사절이 초라함 3. 선지자 미가는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장소를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그러나 예수의 모친은 베들레헴에서 거의 150 나 떨어져 있는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이 예언을 제 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만삭의 여인을 먼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가 있다면? 2:1 가이사 아구스도: 당시에 Pax Romana를 구현하여 신으로 떠받들어졌던 그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조그마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안다면 얼마나 기가 찼을까? 전세계를 호령하는 살아 있는 신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별 관심도 없는 작은 소품일 뿐이다. 자기의 생각이 있어 서 호적령을 내렸고 그의 한 마디에 온 세상이 북새통을 쳤지만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 다. 온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 때 행한 호적의 기록 때문에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4. 예수님께서 꼭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기 때문에 떡집 에서 태어나도록 하시는 것이다. 베이트=집, 레헴=떡. 사람으로 말 하면 하나님은 참으로 재미있는 분이시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이시다. 작은 글 한 마디에도 유머를 잊 지 않으시는 분. 모세, 야곱, 이삭... 이들이 왜 이런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5.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나 출현을 목격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깨어 있는 사람들: 이런 답을 찾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례들을 살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동방박사들과 목 자들의 공통점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던 사람들, 그 시각에 깨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조금 차 원이 다르긴 하지만 시므온이나 안나는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던 자들 즉, 영이 깨어 있는 사람 들이었다. 6. 이왕에 표적을 주시려면 좀 그럴싸한 걸로 주시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가 어떻게 메시야 탄 생의 표적이 되는가? 참 답답한 천사네... 사람의 눈에는 복잡한 시기에 태어난 작은 아이 하나에 불과 했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먼 옛날 아담이 쫓겨날 때부터 시작한 낙원의 회복을 드디어 완성시킬 믿음직한 맏아들의 모습이다. 이스라엘의 끝없는 불순종과 인류의 모든 죄악을 말끔하게 제거하실 희망의 싹이다. 하나님의 표적은 천지가 갈라지고 굉음 이 터지게 할 수도 있지만 세미한 음성으로 자기를 나타내시던 하나님은 여기서도 작은 표적을 보여주 고 계신다. 믿으려면 믿고 말라면 말고.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사53:2) 구유에 누 인 갓난아이, 특별할 것도 없고 세상을 놀라게 할 것도 없는 이 작은 사건이 온 세상을 정복하게 될 위 대한 탄생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표적이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일이 세상 사람의 주목을 끌 지 못하는 사소한 일로 시작되지만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면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고 열심을 내자. 7. 하나님께서 위대한 공연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이 온 세상을 구원하려고 이 땅에 임하셨 고 천사들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고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동원되어 이 놀라 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은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다. 왜? 이렇게 놀라운 공연에 관중이라고 해야 목자 몇 사람밖에 없다. 그 소식을 전해 주어도 별 반응이 없다: 아무 리 많은 천사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함께 즐거워하시길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 우리라도 하나님의 이런 뜻을 알아주어야 한다.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긴긴 세월 동안 따라다니며 사랑 고백을 하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자 이래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 지 않을 것이냐? 온 세상이 이 하나님의 공연에 즐거움으로 참여하여 온 우주가 떠나가도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즐거워할 그 날의 모습을 계시록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일을 이루어가고 계신 다. 하나님을 더 이상 슬프게 하지 말자. 8. 요셉은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떻게 알 수 있나? 번제를 비둘기 한 쌍으로 드리는 것을 보아서: 아이를 낳고 결례의 기간 (남아-33일, 여아-66일)이 지나면 어 린양 한 마리로 번제를,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로 속죄제를 드렸지만 힘이 미치지 못하면 비둘기 두 마리로 한 마리는 번제로,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려도 된다(레12:1-5). 9. 우리말 표현 중에 외국말로 쉽게 옮기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 더러 있는데 이런 것을 언어학적 입장에 - 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1~52 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한이 맺힌다 는 것도 그런 한국적인 언어다. 가족을 잃어버리고 한이 맺혀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면 하는 말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것이다. 본문에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는가?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과 어떻게 다른가? 시므온: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메시야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약속 때문에 눈을 감을래야 감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차이점: 고통의 연속이 아니라 가슴 설레임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10. 바울은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 향기는 어떤 사람에게는 사망 에 이르는 것이요 또 어떤 이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받아들 이는 사람에게는 생명의 메시지가 되지만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말 씀이 이 본문에도 있는가? 시므온의 예언 속에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34) 라는 말이다. 예수님 때문에 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1. 고난주간이 되면 우리는 모든 오락을 끊고 가급적 엄숙하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예수님의 고난을 기 억하자는 뜻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나는 그게 잘 이해가 안 된다. 예수님의 그런 고난이 내게 얼 마나 큰 기쁨인 줄 아는가? 그 분의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 면서 겉으로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되 속으로는 한없이 기쁜 것이다. 이런 겉 다르고 속 다른 짓을 고난주간이 오면 늘 반복해야 한다. 주님께서 이런 고난을 당하시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것이 이런 아픔을 알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쁨을 누리라는 것도 틀림없는 일이 다. 그렇다면 차라리 고난주간을 축제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예수님도 오히려 그것을 더 좋아하실 것 같다. 시므온의 이야기를 읽다가 왜 이런 소리를 할까? 시므온에게 두 가지 감정이 나타난 까닭이다. 자신에게는 이 어린아이를 만난 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마리아에게는 앞으로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 본문에서 사용된 의미로만 보면 다음 중에서 성격이 약간 다른 것은? 주의 거룩한 자(23), 이스라엘의 위로(25), 주의 구원(30), 이방의 빛(32), 이스라엘의 영광(32), 비방을 위한 표적(34) 주의 거룩한 자: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기보다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자란 뜻이다. 예수 님도 그렇게 드려지기는 했지만 여기선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다. 13. 이 때 안나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거의 110세 정도: 결혼 생활 7년 + 과부 생활 84년 + 결혼 적령기(?): 시므온이나 안나는 오직 메시야를 만 날 일념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약속이 죽을 때가 다 돼서야 이루어진 것 같다. 하나님의 약속 도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이스라엘도. 14.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영광을 누렸다. 천사가 나타나서 축하해 주고 많은 사람들도 이 아 이의 태어남을 기뻐하는 중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는 말씀도 들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는 것이 만사형통하고 항상 즐거운 것이 아니라 이런 아픔도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거나 알게 되고서 이런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마리아에게는 언제 이런 아픔이 있게 되었을지 두 가지 경 우만 지적해 보자. 1) 아들의 가출, 2) 십자가의 죽음: 순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속한 그 곳에서 순교하는 자세 로 살자. 기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참된 위로인 것을 믿고 세상이 주는 위로를 너무 기대하지 말자. 15. 예수님의 어릴 적 이야기는 외경에는 다소 있다지만 복음서에서는 누가복음 외에는 없다. 누가가 다 른 복음서에 없는 이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를 앞에서 본 누가복음을 기록하는 이유에서 찾는다면? 자세하게 기록하느라고: 그러면 빠진 것도 있어 보이는데? 동방박사들 이야기 말이다. 누가는 인간으로 오셨지만 분명한 메시야임을 강조하려는 글을 썼고, 동방박사 이야기를 쓴 마태는 왕으로 오셨지만 이 땅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를 묘사했다. 관점의 차이에서 취사선택했을 가능성이 있다. 16. 부모에게 아이는 짐이기도 하고 고역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축복이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레크리 에이션이기도 하다. 근심의 근원이기도 하고 기쁨의 원천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아들을 성전에서 발견했 을 때 성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기 전에 그 부모가 아이에게 한 마디 했다면 무슨 말을 했 을까? 며칠 갔다가 며칠 만에 돌아왔는지를 참고해서 대답을 해보자. 하룻길을 갔다가 찾으면서 돌아오는데 사흘이 걸렸으니 욕이 나왔을 것이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안 타까움도 상상력이 좀 필요하다. 17. 아이들은 때가 되면 이유 없는 반항을 시작한다. 굳이 따지자면 그것도 사실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위한 예비조치인 셈이다. 태중의 산통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 위한 준비운 동이고 이유 없는 반항은 정신적으로 부모를 떠나기 위한 사전조치인 셈이다. 그런데 간혹 매사에 무조 건 순종을 하는 아이가 가끔 있는데 칭찬만 할 일은 결코 아니다. 대체로 조금 모자라는 경우일 가능성 - 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1~52 이 크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 해당할까? 대체로 순종함 그러나 이유 있는 반항도 함: 어차피 부모에게 절대적인 순종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순종하는 법도 배우고 노력도 해야 한다.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반항은 곤란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지면 소신껏 버텨보기도 해야 한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면 착한 사람은 되겠지만 크게 되지는 않 는다. 이유없이 반항만 하면 패가망신이 되고 이유 있는 반항은 어느 쪽으로든 유명해 질 것이다. 18. 요셉과 마리아가 행한 일들이 철저하게 율법을 따른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표현들을 다 찾아보자. 22절: 모세의 법대로, 23절: 주의 율법에 쓴 바, 24절: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27절: 율법의 전례대로 41절: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만날 핑핑 놀고 농땡이만 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서 바울처럼 사용하실 것이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럴 능력이 하나님께 있을지라도, 사람이 보기에 그렇게 보이지 라도 내면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준비되고 훈련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쓰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들 부부는 정말 경건하게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19.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가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 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들을 기이하게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즉 이 아이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 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가 특별한 아이란 것을 계 속 확인시키고 계신 것이다. 누구를 동원하고 계시는가? 목동들, (동방 박사들), 시므온, 안나, 예수님 자신: 기이히 여긴다는 말 속에는 경이롭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시려는 일은 요셉과 마리아에게조차도 쉽게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로 놀 라운 일이었다. 강보(포대기, 포대기 ): 포대기 구유: 마소의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 사관(집, 집 ): 객지에서 남의 집에 일시 숙식을 하는 일, 혹은 그 집 : 역사를 보는 눈 : 병사를 지휘하는 무관 :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 : 조사를 담당하는 관리 : 역사를 취급하는 관청 주재( ): 원어상으로 주권자, 소유자 - 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3:1~38 누가복음 3 장 1. 디베료 가이사는 흔히 우리가 쓰는 말로는 티베리우스 황제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아구스도(2:1): 왕좌를 물려받았으나 실은 양아들이라 함 2. 2장과 3장 사이에는 얼마간의 시간 간격이 있는가? 18년: 예수님의 12살(2:42) 때 얘기를 적고 공생애의 시작을 언급함. 이 18년의 기록이 없음을 두고 온갖 추측을 다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막6:3)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아버지 사후 에 가장으로 목수 일을 이어 받아서 오랫동안 일을 했던 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다. 3. 총독은 뭐고 분봉왕은 무엇인가? 애들 말마따나 이 네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빌라도 총독: 황제의 직속, 분봉왕은 일정한 권력을 이양받아서 작은 왕(군주) 노릇함, 이 세 분봉왕 중에 둘은 헤롯 대왕의 아들이다. 헤롯에게는 10명의 부인과 9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세 아들에게 영 토를 나누어 주었다. 빌립(갈릴리 동편), 안티바스(안디바: 갈릴리 지역을 물려받았으나 나중에 조카 아그 립바에게 빼앗김), 아켈라오(유다와 사마리아: 무능해서 쫓겨나고 대신 총독이 들어섬) 루사니아라는 분봉왕에 대해서는 누가가 언급한 이것 외에는 기록이 없다. 아빌레네는 다메섹 근처. 역 사에도 남아 있지 않은 기록을 누가가 남겼으니. 4. 원래 대제사장은 종신직이다. 그런데 왜 대제사장이 둘일까? 안나스가 로마에 의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가 해임되고 그 후 다소의 우여곡절 끝에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인정하는 바람에 실질적으로는 안나스가, 명목상으로는 가야바가 대제사장 노릇을 한 것이다. 5. 웬 빈들? 빈들이란 오락적인 요소나 함께 즐길 사람도 없는 곳이란 뜻이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 나서 교재를 나누는 그런 장소나 시간을 말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빈들에 잘 가지 않는다. 조용하게 하 나님을 만날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집안이 빈들이 될 수도 있는데 집안을 빈들이 되지 못하게 하 는 요소는 무엇이 있는가? 가족, TV, 오락, 컴퓨터...: 이 모든 것에서 떠나 조용하게 하나님 말씀을 만나는 기회가 필요함 6. 왕이나 지체 높은 사람의 행차에는 예비자가 있었다. 앞서 가면서 물렀거라 하는 사람을 길나장이라 했는데 요즈음 많이 쓰이는 길라잡이란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메시야의 앞에는 물렀거라가 아니고? 또 그 의미는? 평탄케 하라 = 회개하라: 길을 새로 닦아버리란다. 세례 요한이 인용한 이사야의 이 구절은 1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귀환을 말하는 것인데 바벨론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직선으로는 사막과 산악지대가 있다. 그래서 반달형으로 돌아다니는데 그 사이에 고속도로를 건설하라는 말이다. 2 차적인 의미로 메시야가 오는 길에 닦아야 하는 고속도로는 바로 회개다. 7.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관계는 요한 자신의 표현대로 하면 주인과 종이다. 누가의 표현은 왕과 길나장 인 셈이다.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이사야)을 동시에 참고하면 어떤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말씀과 소리: 요한복음을 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소개했고 이사야가 세례 요한을 소개할 때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함, 소리에 의미가 첨가된 것이 말? 격이 높음 8.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개새끼들아 하고 어느 것이 더 강한 욕일까? 왜? 후자는 사람끼리 하는 욕인데 전자는 하나님의 저주가 담긴 욕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자신을 아브 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사탄의 자손이라고 불렀으니. (욕도 그 나라의 전통에 따라 좀 다르 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God damn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그리 심한 욕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 다. 그러나 서양인에게는 가장 치욕스런 욕이란다.) 독사의 자식들 과 대조되는 표현은? 8절의 아브라함 의 자손들 9.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욕을 해도 되는가? 예수님도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욕은 욕이되 단순한 욕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하는 강렬한 메시 지를 담은 말로 사용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10. 우리가 무엇을 할까? 라고 물었을 때 요한의 대답은 다음에 인용한 구절들과는 조금 다르다. 왜 그 럴까? 행2:37-38: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행16:30-31: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X) 사실은 다르지 않다. 요한이 요구한 행위를 따르는 그것이 바로 회개를 의미한다(O): 그들 스스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으라가 아니고 회개하라고 외친 것이며 진정한 회개는 그 렇게 하나님의 뜻에 적합하게 사는 것이다. 7-14의 핵심은 여전히 회개하라는 외침이다. 11. 자신의 봉급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모자란다고 느끼는 것이 사람의 - 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3:1~38 심리인가보다.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는 말씀은 봉급인상을 요구하지 말라는 말인가? 봉급인상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부당한 수입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 많은 봉급을 받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봉급을 만족하게 여기고 감사하 는 마음이 있는 것이 더 급하고 요긴한 것이다. 사용자가 이 구절에 은혜를 받으면 그건 독사의 자식이 다. 당시의 군인들은 봉급을 충분하게 받았겠는가? 12. 예수 믿는 티를 내지 말았으면 싶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는 짓은 엉망인데 툭하면 교회 다닌다는 티는 잘 낸다. 미치겠다. 행동을 바꾸든지 티를 내지 말든지... 야, 니는 제발 교회 이야기 좀 하지 마 이런 말씀이 본문에 있는가? 우리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말하지 말라: 아브라함의 후손답게 살지 않으면서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이라 고 생각하는 헛된 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3.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뭔가 조그마한 능력이라도 보이면 메시야가 아닐까? 하 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기대에 대해서 요한은 단호하게 자신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과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설명하는가? 나는 물로 세례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 그는 주인 나는 가장 낮은 종: 종들 중에서도 급이 낮은 종이 하던 일이어서 자신은 그런 종보다도 못하다는 겸손의 말 그는 추수하는 주인 나는 (그 손의 키,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14. 사람들이 메시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세례 요한도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의 말에 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자신을 낮추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에게로 가게 하는 점(교사, 목사는 예수만 나타내고 자신은 사라 져야 한다) 15. 성경은 재미로 읽거나 교양을 쌓기 위해서 읽는 책이 아니다.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한다. 어떤 결단을 강요하는 책이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는데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수를 만나는 사람은 결단을 해야 한다. 무엇이 되도록? 알곡이 될 것이냐 쭉정이가 될 것이냐? 16. 요한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를 외치고 세례를 준 것은 자신의 임무를 잘 감당한 것으로 보이지 만 왕의 악한 일을 지적하다가 옥에 갇힌 것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것 아닌가? 현실적인 잘못에 대해서도 지적할 것은 지적해야 한다. 교회가 그런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설 땅이 없어진다. 비록 요한은 그렇게 해서 죽었을지라도 그의 사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나타낸다. 또, 십자가 에 달려 돌아가실 예수의 길을 예비하러 온 그가 그렇게 죽는 것도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17. 하나님의 일을 시작한 30세는 이른가 늦은가?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아닌가? 나이를 무시하지 말자. 젊은 목사가 나이든 장로 를 무시하는 따위의 일은 안 된다. 18. 마태복음의 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를 비교해 보면 큰 강이 흘러오다가 둘로 나누어지듯이 달라진 것이 보인다. 어디서부터 갈라졌는지 찾아보자. 다윗 다음부터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 차이는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마태의 족보는 요셉의 족보, 즉 왕위 계승권자의 족보여서 정확하게 생물학적으로 일치하는 족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태의 족보에 낯익은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도 그들이 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예수님도 생물학적으로는 요 셉과 아무 관련이 없다. 반면에 누가의 족보는 마리아의 족보라는 것이다. 24절에 나오는 헬리는 요셉의 장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들이 다 낯선 셈인데 이런 것은 학자들에게 맡겨두자. 19. 마태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에 족보가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부터 시 작되었다. 아마 다아윈이 족보를 기록했더라면 끝에 원숭이가 나왔을 것이다. 누가는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갔으며 무엇을 염두에 두었을까? 하나님: 온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 첩경(빠를 지름길 ): 지름길 늑징(억누를 거둘 ): 돈이나 물건을 강제로 징수함 무소(무고할 하소연할 ): 속이다, 거짓으로 고소하다. 요(값 ): 급료 - 9 -
누가복음 성경공부 ----------------------------------------------- 4:1~44 누가복음 4 장 1.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한 기록은 몇 장 몇 절부터라고 해야 할까? 40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시며 시험을 받은 것은 사역 이전에 해당될까 사역 시작 이후의 일일까를 먼저 생각해 보고 답을 찾기 바란다. 3장 23절: 40일 기도는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사역의 시작이다. 기도는 바로 사역이고 예배지 준비 가 아니다. 따라서 준비기도나 준비찬양이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2.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주로 어떤 점을 건드렸는가? 우리가 시험에 빠지기 쉬운 요소 세 가지를 찾아보자. 굶주림, 명예욕(권력욕), 자존심(하나님의 아들이어든) 3. 첫 번째 시험에 빠지면 고픈 배를 채울 수가 있다. 세 번째 시험에 빠지면 즉 성전 꼭대기의 높이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하게 높았을 것이다. 거기에서 뛰어내렸는데 맨땅에 사뿐히 내려앉았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영웅적인 무용담의 주인공, 슈퍼맨, 63빌딩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린 사람 4.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유혹을 받은 요소가 다음 세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을 하와가 받았던 다음 세 가지 유혹과 관련지어 보자. 1) 먹음직= 첫 시험: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식욕) 2) 보암직= 두 번째 시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리라 3)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움= 세 번째 시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 내리라 5. 하나님께서는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신다(약 1:13)고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 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 만약에 그렇다면 왜 그럴까? 재시험: 아담이 패배해버린 것을 회복하시기 위함이니 시험에 이기는 과정을 그대로 거쳐야 한다. 재시 를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과목이 같은 것이다. 거의 흡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첫 아담이 실패해버린 것을 바르게 하러 오신 예수님의 임무 때문: 첫 아담에게 승리한 사단이 두 번째 아 담을 그냥 둘 리가 없다. 아담이 실패해버린 것을 복구하러 오셨으니 아담 대신에 시험에 승리하셔야 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출애굽 시에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며 번번이 실패해버린 이스라엘의 실패를 회복시 키는 의미도 있다고 본다. 6. 예수님께서 시험당하는 장면에서 인용된 성경 구절은 신 8:3, 신 6:13, 삼상 7:3, 시 91:11-12, 신 6:16이 다. 이 중에서 좀 특이하게 이용된 구절은? 10-11, 사탄이 성경을 인용함(시91:11-12): 때로는 사탄이나 불신자들도 성경말씀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왜 곡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경우 적용을 잘못하고 있다. 말씀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서 성경말씀을 이용하는 것이다. 크게 주의해야 한다. 7. 돌들에게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긴데 한번쯤 그렇게 하면 안 되나? 누구에게 지 장을 주는 것도 아닌데? 떡덩이가 되게 하는 행위 자체도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에서 벗어 나면 안 된다. 사탄이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시험 하다니? 교인 수가 많아지고 힘이 생기면 이 힘으로 뭔가를 해보려는 충동이 생긴다. 위험하다.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려는 자세에서 군림하려는 자세를 갖는 순간이 바로 위기이다. 왜 장로가 되고 왜 목사가 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 시험을 이기는 것도 같 은 원리 즉 예수님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탄의 위치는 하나님 을 섬기는 것이지 시험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8. 사탄은 예수님을 공격할 때도 가장 약한 부분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굶주린 자에게는 굶주림을 해결 하는 방법으로 나타나듯이... 만약 그 대상이 다윗이었으면 아름다운 여자로 나타나서 유혹을 했을 것이 다. 나를 목표로 삼는다면 어떤 것으로 시험을 할까? (개인적인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다) 9. 마귀가 천하만국을 내게 넘겨준 것 이라고 한 말은 사실일까? 일시적으로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 땅은 마귀에게 일시적이고 제한적일지라도 넘겨져 있다. 욥의 이야기 를 참고로 할 것. 10. 다음 문장의 틀린 부분을 고쳐보자.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영영 떠나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 (4:13), (:50) 11. 시험을 영어로 표시하면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temptation, trial, test. 이 중에서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시험은 어느 것인가? temptation: 유혹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12. 우리가 믿는 사람으로서 행하는 많은 일들이 교회의 법을 따르는 것이고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가르쳐 준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질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옳지만 - 10 -
누가복음 성경공부 ----------------------------------------------- 4:1~44 바뀌어야 한다. 언제나 그래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옳지만 끝까지 그래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기 때문 에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결단이 필요하다. 남이 내게 가르쳐준 남, 즉 외부의 규칙 이 아니라 스스로가 결단하고 받아들인 나의 규칙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삶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그 랬다. 증거가 있는가? 자기 규례(4:16, 행17:2):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혼자 들어가신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 렇게 했음에도 자기 규례에 따라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하나님을 섬기기로 했다는 고백 이 있어야 한다. 안식일의 회당 모임시간이나 방법도 물론 예수님께서 정한 규례는 아니다. 모든 사람이 지키고 있는 규례이다. 그럼에도 자기 규례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그 규례를 따르기로 정하고 실천하 기 때문이다. 처음에 주어진 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해도 그 의미를 이해하고 나의 인격적 동의가 주어져서 실천될 때 그것을 자기 규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말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내가 태어난 사회의 언어를 내가 빌려서 사용하고 있을 뿐이 다. 하루 속히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 전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저 친구가 저런 말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의미가 있는가? 그러면 진정한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다. 13.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것(4:18)은 언제 하는 일인지 본문에 있는 말로 대답한다면? 또 구약에서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했을까? (성령이 임하신 후에라는 말은 제외하고) 주의 은혜의 해에(19): 희년(기쁠 )을 가리키는 말이다. 땅과 사람에게 자유와 회복을 선포하고 노예나 종들이 풀려나는 구약의 희년이 바로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레위기 25:10, 11: 겔 46:17). 14.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박해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예수님께서 말을 아끼지 않은 탓이 아닐까? 고향 사람들의 반응을 차례대로 정리하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1)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speak well of) 2)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3)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훌륭한 목사가 된 뒤에도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어릴 때의 그 모습만 기억하는 경우가 더 많다. 회개하고 돌아섰음에도 여전히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사람을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 4) (의원아 너를 고치라)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면 됐지 잘 나가다가 기이히 여기는 것은 뭐야? 다윗의 자손을 보고 요셉의 아들 이라니? 다윗을 보고 이새의 아들이라고 말한 놈들하고 똑같은 놈들이다. 처음에는 그 말씀에 주목하여 좋게 말하다가 어느 사이에 말이 아닌 함께 자라난 촌놈이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도 그의 가르침이나 인격을 빼고 나면 별 것 없다. 우리도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들어야 한다. 쓸데없이 엉뚱 한 것에 관심을 두지 말고...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부함으로 복음이 온 세상으로 향한 것이 원형이라면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을 받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것이 그림자라고 할 까? 15. 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아는 위대한 조상 중에 한 분이다. 그 분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렙다 과부나 수리아 사람 나아만의 얘기도 들으면서 꽤 흐뭇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갑자기 엘 리야도 죽일 놈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버려두고 이방인에게로 향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분을 품지 않을 이스라엘 사람은 없다. 여태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16. 의원아 너를 고치라는 말은 능력이 있다면 니 몸의 병부터 고쳐보라는 말이다. 예수님에게 이런 말 을 던진 사람은 많다. 누가 그랬는지 예를 한 사람만 들어보고 왜 그러면 안 되는지 생각해 보자.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구원하라. 하나님에게 마술을 요구하는 짓거리와 비슷함?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계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헐값일까? 옷이나 책을 근으로 달아 파는 행위, 예수님의 능력을 한낱 노리개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단 한 번도 능력을 보인 적이 없다.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만 하셨다. 성악을 전공한 친구에게 뽕짝을 강요하던 군대생활, 그 친구는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23:39(강도), 35(관원), 37(군병들), 4:23(의원아...) 4:9(마귀), 3 17. 설교 말씀도 말씀 자체에 (권위)가 있어야 한다. 설교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필 요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설교자의 의견입니다라고 말해도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만큼 말씀 자체가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설교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기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 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선뜻 동의 하기도 어려운 자신의 의견만 강요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무서운 범죄행위이다. 술 취한 사람의 술주정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으면 은혜가 있는 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빙자 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를 강요하고 있지나 않은지 경계하며 살펴보아야 한다. - 1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4:1~44 18.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고백을 했을 때 그렇게도 기뻐하 신 예수님께서 귀신들의 바른 고백에 대하여 아주 다른 반응을 보여주셨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만난 이 귀신은 무슨 잘못이 있길래 쫓겨났을까? 말이 틀렸는가? 말이 맞고 틀리고가 문제가 아니라 메시야가 오면 그들은 그렇게 쫓겨나도록 예정되어 있지 메시야를 돕는 것이 그들의 일이 아니다. 귀신의 말은 틀리지 않지만 맞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그들의 증거나 도움 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귀신들은 곧 쫓겨날 운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혹시나 해서 한 마디 아부 해 보는 것이지 메시야의 사역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다. 19. 각양각색의 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모양인데 언제 얼마나 왔을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을 찾아보자. 해질녘에(40), 날이 밝으매(42): 저녁에 찾아왔으며, 밤새도록 치료해야 할 정도로 많이 왔음: 그 날이 안식 일이었기 때문에 저녁에 몰려옴. 새 날의 시작은 저녁부터였고 안식일에는 치료행위도 금지되었기 때문 이다. 20. 다음 말을 본문과 일치하도록 조금만 고치든지 아니면 조금 더 첨가해 보자. 세례 요한은 거의 전 생애를 광야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었지만 예수님은 광야학교를 40일 만에 우 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셨다. 졸업하신 후에도 자주 학교를 방문하셨다: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시는 일이 자주 있었다. 아무리 바쁜 생활 이라도 조용하게 하나님을 찾는 시간은 필수적이다. - 1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5:1~39 누가복음 5 장 1. 예수님의 설교 장면이 참 재미있다. 강단은 베드로의 배이다. 관중들은 어디에 앉았을까? 바닷가에? 그러면 말이 퍼져서 예수님이 더 고함을 질러야 하는데? 그 장면을 상상해서 그림으로 그려보자. 성지 순례를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로는 아주 효과적이라고 한다. 해안이 계단식 지형(해안단구)으로 둥글게 둘러싸여 있단다, 해수욕장처럼 퍼져 있는 게 아니고. 사람들 이 노천강당처럼 둘러앉은 셈인데 해풍을 타고 소리가 잘 전해진단다. 2. 두 배에 가득하게 고기를 잡은 시몬 베드로의 반응이 이상하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어떤 반응을 보여 주었을까? 감사합니다 하면서 엎드렸을 것: 기록되지 않은 무슨 일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아마 초면이 아니라 만난 적이 있었을 것이고 무례히 행한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3. 만약 베드로가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에, 가령 당신은 목수 출신 아니오? 우리는 어부 출신인 데라는 식으로 이의를 단다면 또 무슨 시빗거리가 있을까? 1) 성경은 잘 알겠지만 성경을 잘 안다고 고기 잡는 것까지 알겠어요? 2) 시기(밤이 맞도록의 반대): 고기는 밤에 불을 켜놓고 잡던데 3) 깊은 곳이라고 고기가 많은 것은 아니다. (적당한 곳) 4) 괜히 씻어 놓은 그물만 버리는 거 아닐까? 한 가지 일에서 권위를 인정받게 되면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에까지 권위가 생긴다. 아이들을 가 르칠 때에도 자신 있는 분야에서 일단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내 말이라면 아이들이 무조건 따를 만큼. 아마 거역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4.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린 후에 결과를 보고 베드로에게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 선생이여 주여로 호칭 변화 (4 8)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됨: 여태 몰랐던 사실인데? 자신보다 더 깨끗한 분이 없으면 자신이 더러운 상태 인 것을 모른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표준이 있다. 어떤 경우라도 성경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예수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순간에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처럼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알기 위 해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5.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마4:19)는 표현이 더 쉽다. 어느 말보다?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10): 배가 물에 잠기게 될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는데 후에는 사람을 이렇 게 잡으리라? 정말인가? 한 번 설교에 3,000 혹은 5,000명이 돌아왔으니 정말이다. 6. 두 배에 가득 실었던 고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중요하지 않은 곳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도 병이다. 선수가 사이다에 신경을 너무 쓰는 것은 옳지 않 다. 대답이 궁할 때는 이런 말로 선수의 기를 죽인다. 7. 지금은 한센씨 병이라고 해서 치료가 가능한 병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 병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병으로 알려졌다. 우선 신체의 돌출된 부분(코, 손, 발 등등)이 썩어서 문드러지기 때문에 외 모가 흉측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선뜻 함께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경상도 말에 문디이, 혹은 문둥이 가 바로 이런 환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환자들을 고치셨다는 것은 스스로 메시야임을 증명하고 도 남음이 있는 일이다. 각설하고 병 고치는 예수님의 행동 중에 존경스러운 부분이 있다. 무엇일까?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워낙 모습이 흉해서 함부로 손을 대기가 어렵다던데... 문둥병자는 다른 사람 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부정하다 라고 소리치며 다녀야 했다. 그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은 병을 고치고 못 고치기 이전에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8. 다음 문장을 성경과 대조하지 말고 고쳐보자.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니 예수 는 모든 환자들을 고치시더라(15-16)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허다한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나음을 얻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 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예수님은 가르치고 병 고치시는 것보다 기도하시는 일에 더 많은 노 력을 기울였음을 잊지 말자. 9. 실제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쉬운가? 여 러분들이 만약 사이비 교주 노릇을 한다면 둘 중에 어느 것을 애용하겠는가? 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은 능력이 있고 없음이 당장 표가 나니까. 둘 중에 어려 운 것을 실행할 수 있으면 쉬운 것은 자동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예수는 일어나 걸어가라 했으므로 당연 히 죄 사할 권리도 있음이 증명됨.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냐 딸이냐는 문제는 수학적 확률은 반반이지만 무엇이라 답하는 것이 확률이 높을까? 딸이라 했는데 딸이 태어난 경우와 아들이라 했는데 아들이 태어 난 경우와 또 아들이라 했는데 딸이 태어난 경우와 딸이라 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경우를 비교해 보라. 정말 용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는 아들이라 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경우이며 과외 소득이 생길 가능 성이 가장 많다. 욕을 가장 심하게 얻어먹을 경우는 아들이라 했는데 딸이 태어난 경우지만 변명의 여지 - 1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5:1~39 가 있을 수 있다. 미리 알았지만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라고. 그러나 딸이라고 했다가 아들이 태 어나면 변명의 여지도 없지만 크게 비난받을 일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다. 따라서 유명해질 확률은 아들 이라고 하는 것이다. 10. 웬 바리새인들인과 교법사들이 전국에서 몰려왔지? 결국에는 예수님과 대적하는 무리가 되지만 일단 은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른 무리들과 다른 점은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조건 잘못이 아니다. 이 놀라운 기적 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기이한 일을 보았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과 교법사들은 속으로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했을 것: 본인들의 말이 죄를 사하는 능력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했음으로 다른 사 람들보다 먼저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 지식은 있었지만 문제는 실천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차츰차츰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바울의 경우와 대 조해 보면 명확하다. 11. 갑자기 천장이 뚫리고 침상이 내려오면 바로 밑에 있던 사람들은 기겁을 했겠다. 실수로 그냥 떨어 지면? 더구나 피할만한 공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예수님의 눈에는 이런 것은 보이지 않나보다. 뭐 만 보이는가? 이런 실례를 무릅쓰고 애쓰게 만드는 믿음 : 방귀 뀌는 것이 그렇게 흉이 되는지 몰라도 수술하고 난 환자 가 방귀를 뀌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아는가? 아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향기로울 걸. 무 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서 먼 훗 날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걸. 하나님께서 내 형제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를 생각해 보면 절대로 얕잡아 볼 수 없을 것이다. 12. 이 사람들이 가진 믿음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죄 사함을 받을 만큼 위대한 것인가?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고침을 받을 수 있겠다는 단순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믿음이야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시려고 우리 속 에 있는 조그마한 걸 찾은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을 여러 각도에서 정말 위대한 것으로 설 명하기도 하지만 어린아이가 부모를 대하듯 하는 이런 단순한 믿음도 있음을 알아두자. 13. 교법사란 말은 성경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행5:34).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란 뜻인데 다른 말로 무 엇이라 할 수 있는지 본문에서 찾아보자. 서기관(21) 14. 예수의 부름을 받고 따라온 레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12제자 중에 레위가 있던가? 이 레위가 사실은 마태이다: 그래도 어부 출신들보다 세관에 근무한 그가 예수를 따르면서 기록을 깔끔하 게 남겼다. 그런데도 공부 안할 거야? 15. 이 자식들이 왜 따라다니면서 시비를 거는 거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말이야. 그래도 예수님이 겁나긴 나는 모양이다. 무얼 보니까? 제자들을 비방함: 16. 세리와 죄인들은 얼마나 서러움을 겪으면서 살아왔는지 모른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아왔는 데 메시야라 하는 예수님의 한 마디에 눈 녹듯이 원한이 사라져 버렸다. 어떤 말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1-32): 우리도 슬프고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이런 말을 하면서 살 아야 한다. 병들고 아픈 사람을 심방 가서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나, 식구들 중에 누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 것은 바라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하는 짓이다. 17. 예수님의 얘기는 금식을 하라는 말인가 하지 말라는 말인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때가 있다. 지금은 아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일주일이 걸렸다(창29:27). 도중에는 금 식일이 있어도 지키지 않았다.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18. 권투 시합에서도 단 한방에 KO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잽을 여러 방 먹이고 그러다가 스트레이 트 한 방에 다운을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바리새인들은 잽을 몇 방이나 먹었는가? 3방(21, 30, 33) 1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 옷과 새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문에 있는 말을 이용하여 설명해 보자. (새로운 계명=) 죄인을 구하려고 죄인들을 찾아가는 것(32): 바리새인들이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는 방법은 죄인을 더럽다고 피하는 것이었다. 20. 39절의 말씀은 앞의 말씀과 관련이 없는 별개의 말씀이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 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5:39) 고 말씀하시는 의도는? 묵은 것으로 치자면 예수님의 가르 침보다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더 오래된 것인데? 좋은 것을 택하여야 한다는 말씀: 무조건 오래 된 것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 1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5:1~39 옹위(안을, 둘레 ): 둘레를 호위함 밤이 맞도록: 밤새도록, 맞다는 마치다의 준말 참람( ): 신성모독 서기관: 율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유대인들의 지식층. 율법을 주석하는 일이 그들의 전문업이었다. 율 법의 보존, 전사(옮겨 쓰기), 주석에 전념하였다. - 1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6:1~49 누가복음 6 장 1. 제자들은 형편없는 사람들 아닌가? 남의 밭의 이삭을 함부로 비벼 먹다니? 조금 이상하긴 이상하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있는데 비난받을 짓을 하다니? 설마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 이삭을 비벼 먹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바리새인들도 그것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왜 일을 했느냐는 말이다. (신 23: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 식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현대는 고도로 법과 윤리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존중하는 법 을 만들지 못한다. 발달이라기보다는 퇴보라고 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남의 밭의 과일을 어느 정도는 훔쳐 먹어도 인정을 해 주었다. 흔히 서리라고 했지만. 붙들려 봐야 야단을 좀 맞는 정도였 지만 어느 때부턴가 과일 서리하려면 총 맞을 각오도 해야 하고, 구속도 각오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2.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하 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않 았느냐는 것이 어떻게 대답이 되는가? 겉으로만 보면 다윗의 그 행위는 중대한 율법위반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음을, 즉 예외 를 예수님께서도 인정하고 계시는 것이다. 율법의 정신은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즉 안식일의 규정도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막2:27 참조). 학칙은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어야 하고 헌 법은 국민들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의 법도 교인들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는 것이어야 한 다. 개개인을 건강한 신앙인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 근본목적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안식 일 개념을 깨뜨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예배보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란 말인가? 경우에 따라 그럴 수도 있을 것. 여기 제자들이나 다윗이 빈둥거리고 놀면서 그러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 3.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바리새인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날 예수님: 무슨 좋은 일을 해야 하는 날 바리새인들이 가진 안식일 규정만 해도 몇 백 가지가 넘었다고 한다. 아마 전부 하지마라로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9)은 안식일에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우리도 무엇을 하지 말아 야 하는가에 치중하지 말고(술, 담배, 컨닝, 도둑질)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치 중해야 한다. 같은 정원을 보고도 한 사람의 눈에는 꽃만 보이고 어떤 사람의 눈에는 풀만 보이기도 하 는 법이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사는 것이 옳다. 조그만 실수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4. 예수를 죽이려는 시도는 결국 안식일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게 그렇게 큰일이었을까? 유대인들이 유대인다움을 나타내는 것에는 안식일, 음식, 할례 들이 있다. 이것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여겼다. 먹지 말아야 하는 돼지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다. 안식일을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던 적이 있다. 지키려는 의도는 대단히 잘한 일이지만 좀 더 현명할 필요가 있었다. 안식일의 참된 정신을 살리자는 예수님의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바리새인들에게 는 하나님의 법을 모독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케 하는 이단으로 보인 셈이다. 5. 손이 마비된 환자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지? 가장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다니? 차라리 발을 들어라 그러면 손을 고쳐주마 이렇게 말씀하시면 금방 할 수 있는데. 그 사람도 웃긴다. 예수님, 저는 손을 못 움직이는데요? 이래야 정답이 아닐까? 그런데도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 되었단다. 아, 머리 아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실제로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만으로, 되지도 않는 손을 내밀어 보려고 시도해 보는 것만으로 예수님의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는 셈이다. 우리의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점도 그와 같기 때문이다. 6. 참 머리 아프겠다. 12명의 제자들 중에 동명이인이 몇 쌍인가? 이들을 부르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세쌍(시몬, 야고보, 유다, 다른 한 유다는 다대오?) 기도하신 일: 제자들을 부르신 일이 중요한 일이었으며 또 항상 기도로 준비하시고 일을 하셨음을 잊지 말자. 우리가 예수님보다 나을 순 없잖아. (동명이인이 많아서 불편하셨을 거라. 아마 기도가 약간 부족 해서 생긴 일이 아닐까?) 7.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예수님에게 몰려왔는데 이 사람들을 붙들어 교회를 세웠더라면? 왜 예수님은 이 때 교회를 세우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12명의 사도들을 세우는 일과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일에 목적을 두셨다. 본인 스스로 교회를 세 우는 일에 열중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기초를 다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곧 허물어질 것 이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큰 교회에는 구름떼같이 사람들이 몰리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희 생하려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님께서 어떤 대형 교회에 초청되어서 병고침을 받고 축복받으려고 오신 분? 하니까 교회가 떠내려가도록 아멘 하더니 예수를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하 - 1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6:1~49 실 분? 하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더란다.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8. 가난하고 주리고 미움을 받는 이유는 다 같은 것이다. 왜 가난할까? 가난하면 주린 것은 당연한데 미 움을 왜 받을까? 게으르다고 미움을 받는 걸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경우를 말한다. 27-38처럼 살 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예수님은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가난하고 어 려운 사람들을 전혀 무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게을러서 가난하고 미움을 받는 것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9. 나는 실제로 부자요, 배부른 자이며, 슬플 일이 없어서 늘 웃으며 사는 자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말씀 (20-26)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가난한 자처럼 살라. 그런 마음과 자세로 살라는 것이다. 10. 이 말씀(20-26)을 기준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 본다면? 복 있는 사람과 화 있는 사람, 주린 자와 배부른 자, 미움을 받는 자와 칭찬을 받는 자 11. 조상들이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에게 어떤 일을 했는가? 선지자에게: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악하다 하여 버렸다. 거짓 선지자에게: 모든 사람이 칭찬하였다. 그리스도인이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들을 수 없다. 과감하게 부딪히며 나갈 것은 부딪혀 나가라. 12. 비록 조상들은 실패했지만 이제 너희는 원수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원수 를 서너 가지로 정리해 보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달라는 자에게 주라 이걸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주라 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꾸 끌어안고 있으려고 하지 말고 주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축복도 기도도... 이렇게 주는 삶을 살려면 나의 삶이 풍성한 삶이어야 한다. 그리스 도의 풍성함을 먼저 누리는 삶이어야 한다. 이렇게 주는 삶을 살면 어떻게 될까? 더욱 넘치는 삶이 된 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13. (경험 나누기, 실천해 보기) 혹시 실수로라도 여기 있는 말씀을 실천해 보았거나 다른 사람의 경우를 들은 적이 있으면 말해보자. 14.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언필칭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32-34). 아버지가 자비하시기 때문이다(36):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도 못한다. 15.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 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이 말씀대로 살면 어떻게 될까? 사회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 가져가고 빼앗아가는 사람만 많아지면 16.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이게 무슨 말인가?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우리말에 빌다, 빌리다 가 있는데 이 어법이 잘 쓰이지 않는다. 빌다 대신에 빌려오다 빌리다 대신에 빌려주다라고 쓰는 바람에 본래 어법이 잊혀지고 있다. 17. 부모가 자식에게, 혹은 형제가 형제에게 너무나 헌신적으로 도와주면 은혜를 제대로 갚는 경우는 거 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미리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해도 왜 배은망덕한 인간이 많이 나오는가? 물론 은혜를 고마운 것으로 보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본인의 잘못일 것이다. 은혜 를 베푼 사람에게는 잘못이 전혀 없는 걸까?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다른 번역에 아무에게 대하여 실망치 말고 ) 18. 예전에는 쌀을 사도 주인을 잘 만나면 많이 주고 짠 주인을 만나면 적게 받는다. 왜냐하면 되를 어 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고봉이라는 말은 됫박에 가득 담아서 윗부분을 깎지 않은 것을 말하는데 그 것을 되가 후하다고 한다. 우릴 보고 그렇게 주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되를 후하게 주어야 하는 이 유가 있다면? 바로 그런 되로 우리가 다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 너희가 사용한 그 되의 크기로 너희가 받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흔들어 누르면? 19. 실제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을까? 요즈음은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백색 지팡이를 잘 사용하고 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한 사람이 와서 받히는 경우가 더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틀렸나? 맞다면 어떡하란 말인가? 인도자를 바꾸란 말인가? 이 말씀의 앞뒤에 있는 말씀들과 어떤 연관을 지니고 있는가? 옛날 그 당시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당연하다. 말씀의 의미를 찾을 때도 그 당시 환경 과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나마 사람들이 흰 지팡이를 가진 사람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기 - 1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6:1~49 로 약속을 하고 주변 환경이 다소 나아져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부분적으로 가능하지만 근본 적으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빨리 한 사람이라도 눈을 뜨라. = 선생만큼 온전케 되라. = 눈 속 의 들보를 빼라. = 마음에 선을 쌓으라. 어떻게? 앞에서 말씀하신 것들을 실천하라는 도전의 말씀들이다. 20. 모든 말씀을 다 하신 후에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 는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을 듣고 끝내지 말고 행하라: 성경을 제대로 아는 방법은 행함의 여부이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머리로 이해한 것과 그렇게 살아본 사람이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말씀대로 살면서 성경을 보면 또 다르 게 보인다. 성경은 꾸준하게 매일 일정량을 읽되 다독, 정독을 병행하고 반드시 실행에 옮겨 볼 것. 그것 이 바른 성경공부다. 의수(의지할 수 )히: 정한 수에 따라 (고스란히) 외식(밖 꾸밀 ): 연기자라는 말에서 속은 악하나 겉으로는 선한 체 함 주초(기둥 주춧돌 ): 기둥 밑에 괴어 놓는 돌. 는? 들보: 두 기둥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 베드로: 헬라어로 반석이라는 뜻이다. 아람어로 고치면 게바 이다. 오른손: 의사의 직업병의 발로이다. 정확하게 기록하는 버릇. 엿보다: 성경을 보되 진리를 발견하려 함이 아니고 무언가 남을 헐뜯으려는 구실을 찾기 위해서 보는 자들의 모습 - 1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7:1~50 누가복음 7 장 1. 이 백부장이 1) 유대인이 아닌 증거와 2) 교제하기를 꺼렸던 이방인임에도 유대인 장로들이 심부름을 대신해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이스라엘 중에서도(9) 2)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이지만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준 것 2. 백부장의 태도에 다소 변화가 있었음을 유심히 관찰해 보자. 처음에는 예수님을 오시라고 했다. 그런 데 왜 못 오시게 하는가? 변화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면 빠진 곳에 알맞은 말을 넣어보라. 사랑하는 종이 병이 들었다. 종을 사랑하다니? 당시로서는 특이한 사람인 것이 틀림없다.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쓰던 차에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유대인 장로들에게 부탁을 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서 이런 부탁을 하기는 어려우니 (혹은 고급 관리인 셈인데 어떻게 직접 나서겠나?) 대 신에 좀 모셔오라. 장로들을 보내놓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분이 이런 병을 고칠 수 있다? 이 런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라면? 그렇다면 그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내 집으로 오라고 하다니? 여기는 그 분이 오실 곳이 아니다 (예수님은 속으로 괜찮은데...). 그런 분이시라면 말씀 만으로도 고칠 수 있다 3. 백부장의 믿음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극찬을 받았을까? 내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함(겸손) - 이 정도는 다른 사람도 가능(X) 말씀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음(O): 기도를 하거나 만지거나 하지 않아도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일을 아신다고 믿음), 상관의 전갈 한 마디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독특한 신앙. 어떤 삶 을 사느냐는 것이 어떤 신앙을 갖게 되느냐와 관련이 있다. 다윗의 자신의 경험에서 하나님을 목자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중요한 점은 다윗도 자신이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이 백부장도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게으른 목자였거나 때로는 명령에 불복하는 백부장이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어떻게 어떤 자세로 사느냐는 중요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더 나은 신앙을 위한 첩경이다. 4. 예수님은 좀 섭섭하지 않았을까? 병을 고쳐주었는데 집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길거리를 헤매야 되 잖아? 예수님에게는 길거리를 헤매는 것보다 이런 백부장의 믿음을 보게 된 것이 더욱 기뻤을 것이다: 아마 섭섭한 사람들도 좀 있었을 것이다. 싸가지 없는 백부장? 불러서 잔치라도 베풀어야지! 백부장으로서는 이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진심을 알아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늘 고려하는 버릇을 가지자. 누가 약속 시간에 30분이나 늦게 나 타났다.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내 입장에서는? 넌 약속시간도 하나 못 지키냐? 상대방의 입장에 선다면? 시간에 맞춰 오려고 얼마나 걱정을 했겠냐? 5. 나인 성에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죽은 아이를 왜 메고 나오는가? 메고 나온다는 표현이 장례를 말하는 것이다. 즉 장례행렬을 만난 것이다. 아이를 메고 나오는 것이 아 니라 정확하게 말하면 관을 메고(14) 가는 것이다. 6. 예수님께서 나인 성의 이 여인을 특별히 불쌍하게 여기신 이유가 있을까? 과부, 외아들의 죽음: 옛날에는 과부라는 것은 불쌍한 자의 대명사였다. 지금처럼 여자가 나서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구약에 나오는 여자에 대한 규정이 남자와 다른점 중에 상당 부 분은 그런 사회적 배경하에서 여자를 위해서 그런 것이다. 오로지 희망이 있다면 아들이었을 텐데 죽었 으니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7. 백부장의 위대한 신앙을 칭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이 있었기 때 문이다. 하나님께서 정교하게 이 우주를 만들어 두시지 않았다면 인간의 과학 발달은 있을 수 없는 것 처럼 예수 없이는 백부장의 위대함도 없다. 이 이야기는 위대한 백부장도 자랑이지만 시공을 초월하시 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이야기는? 예수님은 죽음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일이 있어야 예수님의 부활도 수긍하실 것이다. 8.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선생님보다 더 유명해지는 사람이 생겼다. 더구나 후배요 자기 선생님께 세례 받은 사람이. (마태복음을 참고하면 사실은 요한이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답이지만 누가복음 공부니까 이 정도 대답이 나오면 정답으로 인정할 수 있다): 제자들은 시기심이 있었을는지 몰라도 요한은 메시야인가라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9. 다음 말의 요지를 아주 짧은 하나의 단문으로 말한다면? (나로 인해)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내가 바로 메시야다(혹은 하나님 나라는 이런 고통 질병이 없는 곳이다): 복음은 결코 배부른 자를 위한 것 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한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도 가난한 자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 19 -
누가복음 성경공부 ----------------------------------------------- 7:1~50 10. 세례 요한은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적이 있다. 자라면서 함께 자라기는 어려웠 겠지만 친척 동생 되는 예수에 대해서 들은 바나 혹은 아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세례를 받으려고 왔을 때도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럼에도 메시야의 사역이 자신의 기대와 좀 다르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이 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요즈음 나타나는 사이비 메시야와 비교하면 어떻게 다른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줌 (능력을 실제로 보여줌으로 증명): 성경말씀 대로 사는 것이 어렵단다.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 자신을 조금만 더 희생하고 살려면 가능한 일이다. 완전하지 는 않더라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행동으로 말하자. 예수님의 하시는 일이 기대했던 메시야의 일과 좀 다르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 성령으로 이런 일들을 알 았음에도 어쩌면 메시야의 진정한 의미를 요한도 모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성령이 임하신 사람도 다른 분야에서 실수나 약함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즉 성령이 우리를 모든 일에 완벽한 슈퍼맨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11. 세례 요한도 한 때는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유대인들의 기대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자신은 분 명하게 메시야가 아니라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려고 왔음을 알고 있었다. 세례 요한은 누구인가에 대하 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자. (부정적인 표현 둘, 긍정적인 표현으로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다: 이민족의 통치를 받고 있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출세를 위하여 지조 없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은 법이다. 감히 헤롯의 비위를 지적하고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 아닌가?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도 아니다: 호의호식하는 권력자도 아니다. 선지자보다 나은 자 =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 12. 거리의 약장사는 아무리 좋은 것을 보여준다고 약속을 하고 사람을 끌어들여도 끝에는 약을 팔기 마 련이다. 학교 서무과장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한다 해도 결론은 공납금을 빨리 내라거나 책걸상이나 유리를 깨지 말라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 공부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세례 요한을 아주 칭찬했지만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으로 끝을 맺었다. 13.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림 7:30: 우리가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했는데도 이럴 수가 있을까? 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하는지를 늘 면밀히 살펴야 한 다.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라. 14. 아이들이 장터에서 놀이를 하는데 두 가지 놀이를 한 것 같다. 무슨 놀이를 했을까? 잔치 놀이(피리와 춤: 예수)와 장례식 놀이(애곡과 가슴: 요한) 15. 놀자고 피리를 불기도 하고 애곡을 해도 아이들은 장단을 맞춰주지 않아서 나쁘다. 그러나 어른들은 더 나쁘다. 요한이나 예수님이 놀자고 했을 때 어른들은 놀이터에서 어떻게 했는가? 장단을 맞춰 주기는커녕 도리어 비난을 했다. (때려 치아라!라고 비난) 16.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의 어떤 말씀과 같을까?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안다. 온갖 비난과 박해에도 결과적으로 이 지혜가 옳은 것임이 밝혀질 것이다. 17.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 중에는 시험에 안 나오는 것만 잘 아는 학생이 가끔 있다. 이 바리새인이 아는 것 중에도 그런 것이 있다면 무엇이며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는 것: 이 여인이 죄인이라는 것 모르는 것: 1)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법, 시몬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존경하고 대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2) 예수는 죄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하기 위하여 더 가까이 한다는 것. 18. 이 여자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고 발을 씻기고 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죄 많고 한 많은 여자가 온갖 비난과 눈총을 받으며 살았는데 이 모든 것을 털어버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다. 아마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는 예수님이 말씀을 알고 왔을 것이다. 19. 이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하여진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녀의 믿음(50):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 은 답이 아니다. 47절 끝부분은 사함을 많이 받았기 때문 에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라고 고칠 수 있다. 그 행위 이전에 이미 사함을 받았다는 뜻이다. 데나리온 비 유에서도 마찬가지다. 향유를 붓고 예수님에게 사랑을 나타내서 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 올 때 이미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셨다. 50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것이 증거이다. 이 여인이 조 건부로 이런 사랑을 나타내지는 않았을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20. 50데나리온 500데나리온 빚진 자의 비유의 결론은?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 사랑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 회당: 유대인들은 열 명만 모여도 회당을 중심으로 모였다. 바울이 이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해외에 있는 한국 사람들도 모이기만 하면 교회를 세운다. 아마도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한 국인들을 소중하게 사용하실 모양이다. - 20 -
누가복음 성경공부 ----------------------------------------------- 8:1~56 누가복음 8 장 1.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12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은 훨씬 더 많았다. 일시에 500여 형제에게 나타나셨다라는 사도 바울의 표현이 아니라도 그런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 본문을 보면서 한 마디 더 덧붙여 보자.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여자들도 끼여 있었다. 이 여자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을 뿐만 아 니라 죽을 때까지 따랐고, 부활도 제일 먼저 목격하게 된다. 여자들이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 당당하게 예수의 제자에 끼여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의 보편성이라고 해야 할까? 귀신이 들렸던 마리아나 귀부인 대접을 받았을 요안나가 함께 예수를 섬겼다는 점도 그런 보편성의 원 리를 잘 보여준다. 2. 전도를 아무리 해도 놀러 가야 되고, 등산도 해야 되고, 운동도 해야 되고, 공부도 해야 되는데 어떻 게 교회를 나가니? 이런 친구는 위의 비유에서 어떤 씨에 해당할까요? 길가에 떨어진 씨 3.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온상과 같아서 비교적 신앙생활을 하기 좋은 때이다. 물론 학교 선생님과 주일 문제로 고민이 많겠지만 그래도 지금이 쉬운 때이다. 어른이 되어서 취직을 하고 난 후에는 진급도 해 야 되고 봉급도 남보다 더 받아야 되고 교제도 더 많이 해야 될 때에는 자칫 잘못하면 신앙생활과 멀어 지게 되기 쉽다.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분간이 어려운 이런 신앙을 어떤 씨와 같다고 하겠는가?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 4. 나는 6박7일 혹은 심지어 7박 8일까지 하던 수련회에 중2때부터 1년에 두 번씩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쫓아다녔다. 임원으로 일하는 것까지 피해가면서 예배와 공부에만 몰두하다가 대학 4학년 때 붙들려 한 해 동안 뒤치다꺼리 하면서 그래도 감사한 마음으로 섬겼다. 그 해 수련회 임원들을 모아놓고 잔소리 비슷한 충고를 했던 적이 있었다. 여러분들이 수련회 임원으로 후배들을 섬기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대 학 들어오자마자 이런 봉사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자신의 성장에 소홀히 하면 그야말로 남에게 복음을 전한 후 자신이 버림을 받는 일이 생길지 모르니, 아무리 수련회 일이 바빠도 예배시간과 공부시간에 빠지지 말기 바랍니다. 비유의 어떤 씨가 되지 말라는 뜻인가? 바위 위에 떨어진 씨(마태복음에는 돌밭이라고 되어 있다. 즉 돌이 많고 흙이 얇게 덮인 곳): 이처럼 무슨 의 미인지도 모르고 교회 일에만 열심인 사람이 어느 순간에 허물어져 내리는 일이 있다. 5. 씨 뿌리는 비유를 정리해 봅시다. 1) 길가에 떨어진 씨 - 새들이 먹었다 - 깨닫지 못함 2) 돌밭에 떨어진 씨 - 곧 싹이 나오지만 뿌리가 없어 마름(원인이 내부) - 기쁨으로 받되 환난이나 핍박 에 넘어짐 (하나님에 대하여 깊이 알지 못한 채 열정으로 뛰어다니다가 제 풀에 넘어지는 경우) 3)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 - 가시에 막혀 제대로 자라지 못함(원인이 외부) -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에 막힘 4) 좋은 땅에 떨어진 씨 - 결실 6.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대답을 해주시진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하고 제자들이 한 번 더 물었어야 했는데... 이 비유의 제목은 여러 종류의 밭 인가 씨 뿌리 는 비유 인가? 어디에 관심을 두는 것이 옳을까? 밭에 관심을 두면 - 좋은 밭이 되어라 =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라. 씨에 관심을 두면 - 좋은 씨를 골라야 한다. 좋은 밭을 만나기만 하면 결실하리라.(이건 너무 거리가 먼 것 같다) 결실에 관심을 두면 - 비록 결실치 못하는 씨가 더러 있다 해도 반드시 결실을 거두리라.(예수님 자신에 게 적용) 씨 뿌리는 자에게 관심을 두면 - 결실치 못하는 씨가 있긴 하겠지만 열심히 뿌리자.(이미 복음을 받아들 인 제자들이 앞으로 할 일) 좋은 씨를 골라 좋은 밭에 뿌리는 이 모든 과정은 뿌리는 자에게 달려 있는 문제다. 이런 밭도 있고 저 런 밭도 있지만 천국 복음은 결국 풍성한 열매를 맺고 말 것이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이다. 좋은 땅이 되라고 가르치면 안 되나?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부차적인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주된 목적은 너희들 이 돌밭이든 자갈밭이든 씨 뿌리는 예수님은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임을 확신하고 계시면서 하시는 말 씀일 것임. 문맥상으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되라 고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는 힘 차게 뻗어나갈 것이다. 이미 뿌려졌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반포하시니라(1) 와 일치한다. 7. 열매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일까?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것 =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참고 6:29) 나의 어떤 행위(전도, 예배, 공부, 헌금, 출석)는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 일뿐이다. 너무 지엽적인 것만 강조하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한다. - 2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8:1~56 8. 비유를 사용하는 목적은? 아는 사람에게는 더 잘 알게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추는 것이 된다(10). 말씀을 따르지 않을 사람에 게는 무슨 말인지 내용도 모르면 부작용도 적을 테니까.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듣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되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원함이지만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모든 사람을 일괄적 으로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기쁜 뜻을 따라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 게 된 경우는 참으로 복되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 시고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9. 기독교의 진리이면서 어떻게 보면 참으로 공평치 못한 말씀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18).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많이 먹 는다던가? 좋은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좋은 것일수록 그 맛이나 값을 아는 사람은 더욱 몰두하게 되는 것이 정한 이치 아닌가? 진정으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 판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반복 해서 듣는 판이 몇 개냐로 따져야 한다. 10.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신 천국의 비밀은 결국 어떤 것인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며, 온 천하에 드러날 것이며, 맛을 아는 사람이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 좋은 것이다. 우리 속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으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좋은 것이다. 11.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이렇게 냉담할 수가 있을까? 인륜 혹은 천륜을 저버린 말이 아닌가? 십자가에 달려서까지 어머니를 잊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여기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설명할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진정한 형제라는 것을 강조. 혈통적인 형제보다 영적인 형제가 더 중요 하다. 12. 당하는 사람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광풍이란 말도 참 재미있는 말이다., 미친 바람이란 말인가? 배가 위태한데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들도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뭐가? 남은 죽을 판인데... 어부 출신들이 배가 위태하다고 목수출신에게 사정을 하다니? 13. 예수님의 꾸중이 좀 심하지 않은가? 그래도 위급할 때 예수님을 찾은 것은 믿음 아닌가?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는 말을 보아서 뭘 기대하고 예수님을 찾은 것은 아니었 던 모양이다. 예수님의 이적 중 제자들이 가장 놀란 것은 바람과 물결을 잔잔케 하심이다. 다른 이적 때 에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다. (죽은 자를 살림, 귀신을 쫓아냄, 병 고침) 14. 미친 바람에게서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이제는 미친 사람이다. 흔히 거라사의 광인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대단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슈퍼맨이나 마이티 마우스처럼 포효하면 안 된다. 왜? 벌거벗었으니까: 마귀에게 잡힌 사람이 아무리 힘이 강하고 아는 것이 많고 이름이 거창해도(군대: 6,000 명으로 구성된 로마의 1개 군단을 가리키는 말) 그것은 비극일 뿐이다. 하나님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높 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부러운가? 벌거벗은 채 무덤 사이에서 아아아 하는 꼴일 뿐이다. 바울이나 예수 님의 제자들에게서 배우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도 천하를 가진 사람보다 더 부유한 마음으로 살았던 제자들 말이다. 참된 기쁨과 사람의 가치는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누구에게 잡혀 살고 있느냐에 달렸다. 15. 왜 돼지떼에게 들어가도록 허락을 했을까? 아이고 머리야. 추측이지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 겠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불결한 짐승으로 여겨서 기르도록 하지도 않았다. 그 런데 웬 돼지가 이렇게 많았을까? 아마 성분이 좋지 못한 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16. 본문을 읽을 때 귀신에게 놓임 받은 사람의 기쁨이 더 크게 와 닿는가? 아니면 죽은 돼지떼가 아까 운가? 돼지: 점수 없음, 놓임 받은 자: 솔직하지 않으면 -1점, 진짜는 +1점: 마가복음에 의하면 돼지가 2,000마리였단다. 어쩌면 돼 지 2,000마리보다 한 사람이 더 귀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지도 모른다. 사람값이 개 한 마리보다 못한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부러운가! 17. 거라사 지방 사람들이 예수를 두려워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사람들이 본래 두려워한 사람은 군대 귀신들린 사람이었는데 그 귀신보다 더 세니까. 이런 경우에 유 대인들이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니까. 돼지의 죽음이 아까워 생명의 주를 쫓아내는 우 를 범함. 18. 신학교 가려는 사람을 무조건 말리는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래도 되나? 왜 말릴까? 일단은 심사숙고 하라는 뜻이며, 또 반드시 목사만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 직장에서 의 사역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저가 자기 성내에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전파하니 라(39). 19. 귀신이 나간 사람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잘 지켰는가? - 2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8:1~56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네게 행하신 일을 다 고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자기 성내에서 예수께서 자기에 게 하신 일을 전파했다(39). 그럼 답이 뭐야? 표현상의 이런 차이를 발견하고도 잘 지켰다고 대답했으면 정답이다(+2점). 이런 차이도 모른 채 Yes하면 신앙은 좋을지 몰라도 정확한 답은 아니다(+1점). No 는 (-1 점) 20.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는 사탄의 말을 무조건 책망만 하시더니 여기서는 귀신들의 부탁을 일일이 다 들어주셨다. 왜 그럴까? 아니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시험 때 사탄의 말은 예수를 굴복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여기서는 이미 항복한 상태에서 좀 봐달라는 것 이다. 더구나 아직은 때가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28). 21. 무리가 옹위하여 미는 경우라면 예수의 몸에 손을 대거나 부딪친 사람은 무수히 많았다. 무슨 경호 부대가 따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방탄차를 탄 것도 아니니. 그런데 왜 유독 이 여자만을 염두에 두고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고 물었을까? 예수님께 손을 댄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의미 있는 손은 이 여자뿐이었다는 말이다. 다른 많은 손보다 이 손의 의미를 나타내고 싶으신 것이다. 바로 곁에서 따르고 있는 베드로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만 진 모양인데, 그것도 겉옷만, 그 많은 만짐과 부딪힘보다 믿음(위험을 각오함, 고침을 받을 수 있다)이 담 긴 이 가벼운 만짐만이 예수님께 의미 있는 것이었다. 22. 혈루증을 앓는다는 것이 어떤 불행일까?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함으로 결혼생활이 불가능함, 심한 빈혈일 가능성이 많아서 정상적인 사회생활 도 불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율법에 규정에 따른 부정한 사람이어서 격리됨(레 15), 만약에 사람들 틈에 끼 였다가 발각이 되면 모든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죄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23. 예수님께서 누가 손을 대었느냐고 묻지 않고 이 여인이 그대로 돌아갔다면? 인격적인 교제가 없는 병 고침은 예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옷만 만져도 낫더라는 것은 미신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동기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인격적인 교제로 나아가야 하며 그럴 때만이 그녀가 가졌던 그 생각이 진정한 믿음으로 인정되어 진다. 동시에 이런 역사가 많은 사람 앞에서 증거되어야 한다. 24. 예수를 비웃는 무리들이 그의 집에도 많이 있었는데, 회당장이면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어른인데 그가 공식적인 자격증도 없는 젊은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려 간구하다니? 진짜 그랬을까?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면 체면도 돈도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온 세상이 다 무의미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면이 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 하고 있는지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실감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그랬다) 이 회당장이 신앙이 좋아서 예수님께 엎드린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기 딸을 살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5. 회당장의 심리 변화를 읽어보자. 1) 무남독녀인 딸이 죽을 병이 들었다: 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다. 2)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즈음에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 지푸라기도 잡는다는데 체면이고 뭐고 없다. 찾아가야겠다. 3) 예수를 모시고 오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걸음걸이가 너무 느리다: 미치겠네! 이 사람들아 좀 비켜다 오. (앰블런스가 앵앵거려도 길을 잘 비켜주지 않는 고약한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답답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따뜻함이 있어야 할 텐데) 4)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시더니 누가 만졌느냐? 면서 사방을 살핀다: 만지긴 뭘 만져요? 사람이 많으니 부딪 친 거지, 제발 좀 빨리 갑시다. 5)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고침을 받았다고 자백함: 야 진짜구나! 딸이 살 수 있겠다. 6) 집에서 사람이 뛰어와서 딸이 죽었단다: 아, 하늘이 왜 이렇게 노랗지? 조금만 빨리 갔어도... 7)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시면서 집에 가잔다: 설마? 죽었다는데? 8) 정말 간단하게 일어나라니까 일어나네?: 믿을 수가 없다. 26. 9장에서 제자들을 파송하는 것과 관련지어 본다면 8장은 파송하기 전에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이 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풍랑을 잠잠케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 리신 이 네 가지 이적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예수 자신이 확실한 구세주임을 확인시키심 반포( ): 세상에 널리 펴서 퍼뜨림 이생( ): 이 세상 일락( ): 쾌락을 즐겨 멋대로 노는 것 등경: 등잔을 얹어 놓는 기구 고랑: 쇠고랑, 두둑의 사이 무저갱( ): 밑이 없는 굴, 사탄이 일시적으로 갇혀 있을 곳(계 9:1, 20:3) 옹위( ): 옹호하여 호위함 - 2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9:1~62 누가복음 9 장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임무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과 병 고치는 것: 사도들이 행한 이 일은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일이다. 병 고 치는 일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은 신앙이 육체의 일을 깨끗이 버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말한다. 믿음을 갖도록 하는 일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고 도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심지어 적절한 휴식과 오락까지(10절 참고). 2. 복음을 위해서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님들을 이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 까?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엔 아무 것도 신경을 쓰지 말라는 의미: 초등학교 때 긴 머리를 중학교 들어가면 까까 머리로 깎아버린다. 짧게 깎는 이유는 스님이 대머리로 민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평생 그렇게 살라는 뜻은 아니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힘을 가지고 돈을 가지면 서 복음보다는 엉뚱한 일로 바쁜 경우는 반성해야 한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의 욕은 대체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내용과 관련이 많다. 가령 내 백성이 아니 라 는 말은 심한 욕이다. 그러면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도 사실은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발의 먼지를 떨듯이 하나님께서 너희를 떨어 버릴 것이다라는 의미 4. 예수께서 많은 일을 하셨지만 가장 하고 싶었고 관심이 많은 일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었 다. 본문에서만 해도 이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1, 11, 27, 61, 62: 말끝마다 하나님 나라라고 하시는 것 이다. 한 때 잊혀졌다가 비교적 근래에 와서 새로이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된 단어이다. 길게 설명하자면 끝도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란 한 마디로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 5. 제자들의 전도여행이 아주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 세 가지는? 헤롯의 반응, 백성들의 반응, 벳새다 들판에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모여든 것: 제자들이 흩어져서 놀라운 능력 으로 말씀을 전한 결과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6.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고 병자를 고치기 바쁘다. 제자들은 할 일이 없으니까 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걱정? 이 사람들 배고플 텐데: 학교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만 잘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아이만 잘 가르치면 되는 게 아니다. 오만가지 할 일이 다 있다. 장부정리, 공문처리, 학부형 면담, 문제아 상담, 진로지도, 청소지도, 자습지도, 환경정리, 각종 돈 거두기, 복장지도, 운동장에 줄 서기, 고 운말 쓰기, 예절지도... 언젠가 생활지도를 한답시고 지키고 준수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보니 당장 급한 것만 해도 20여 가지를 넘길래 인쇄해서 나누어 주고 신경을 쓰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숨이 막힌다고 했다. 정상적이라면 숨쉬기 운동밖에 안 되는 일들만 적었는데도... 학교 선생님도 공부만 가르 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 나라에만 전념할 수 있으려면 이런 잡무를 제대로 맡 아줄 수 있는 제자들이 필요하다. 공부에는 신경 안 쓰고 엉뚱한 걱정한다고 제자들을 나무라지 말자. 우리도 교회에서 이런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교역자들이 이런 데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도록... 7. 아이고 예수님 농담도... 예수님의 어느 말에 제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3):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 없는 것을 어떻게 나누어주나? 참,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있는 것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남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 이 되자. 그러기 위해서 내가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풍성 말이다. 제자들은 나누어줄 능력이 없었다. 우리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의 것을 나누어줄 수밖에. 8. 이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남은 것을 거두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식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 이번뿐이다. 근검절약 은 가난한 자만이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온 천하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예수님도 남은 것을 버리지 않고 다 거두었음을 기억하자. 9. 과학적이고 동시에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에게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보라. 이 정도 능력도 없다면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와 온 인류에게 풍성하 게 나누어지는 떡이 되겠는가? 결국 이 의 기적은 무엇을 예표한다? 온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10.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는 멋진 대답을 남겼다. 마태복음 16장에 기록된 답이 정답일 텐데, 여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그리스도 시니이다라는 말은 의미만 살린 말이어서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쉬운 말로 설명을 해 보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란 히브리어 메시야의 헬라어 의역이고 뜻은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움을 입었다 11.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무엇을 확인하고서? 제자들이 자신을 메시야로 믿고 있음을 확인하고서: 예수의 죽음은 자신이 메시야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 2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9:1~62 있다. 죽음으로써 메시야의 사역을 완수하는 것이고, 메시야가 아니면서 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 다. 우리가 고난을 받아도 믿음 때문에 받는 것은 좋으나 애매한 일로 고난을 받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그것도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자신의 욕심 과 무지로 인한 비난과 참된 신앙 때문에 받는 비난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12. 예수님은 돌아가셔서 며칠 만에 부활하셨는가? 사흘 만에? 금요일에 돌아가셔서 주일에 부활하시면 그게 사흘이 되나? 이틀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사흘이란 말이 잘 이해가 안 된다. 여기에 보면 제 삼일에 란 말이 나온다. 세 번째 날 에란 말이다. 이것이 정답이다. 실제로 이틀만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데 히브리식 표현과 관련이 있단 다. (정 목사께 질문) 13. 예수님 말씀대로라면 믿는 사람들이 가는 길은 십자가 행렬이다. 참 우습겠다. 제일 앞에 대형 십자 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고 그 뒤를 많은 사람이 형형색색의 십자가를 지고 그 뒤를 따르면 묘한 행렬이 다. 혹시 우리는 그 뒤를 자가용 타고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십자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꼭 버리고 싶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 버릴 수 없는 것, 남을 위해 내가 아픔을 참아야 하는 것, 인내와 용기 로 버텨야 하는 것 아무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는 자기 고집, 자기에게는 유익하나 타인에게 거리낌이 있는 것 등은 아니다: 특히 날마다 라는 말은 인내를 강조하고 있다. 14.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25)? 그러니까 목숨을 소중히 여 기라? 바로 앞 구절은 목숨을 버리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핵심은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라는 것이다: 온 천하보다 더 소중한 것이 목숨이니까 목숨 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처럼,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니 그 소중함 을 취하라. 헷갈리나? 가장 소중한 것(하나님 나라)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것보다 덜 소중한 것(자기 목 숨)을 버려라! 다시, 모든 것을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잃으면 목숨은 건지겠지만 알맹이를 잃은 것이다. 진짜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라. 15.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도 있느니라 는 이 말씀 때문에 예수님의 재 림이 곧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들리는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께서 구름 타고 우렁찬 나팔 소리와 함께 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오해일 것 이다. 죽기 전에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었을까? 성령이 임하고 초대교회의 부흥을 목격한 사람은 틀림없이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라고 믿 었을 것이다. 아마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연변에 세워진 연변과기대를 보면서 간첩의 소굴이라 고 경계하던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이 진정한 공산주의는 여기에서 실현되었다 라는 말을 했단다. 이 말에 눈물이 쏟아지지 않으면, 콧날이 시큰거리지 않으면 위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배우자. 16. 전도의 일을 마치고 신이 나서 돌아온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벳새다,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하느냐 고 물으신 곳, 베드로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가신 산은 공통점이 있다. 무엇일까? 기도하기 위한 곳(18, 28): 벳새다는 기도하기 위한 곳이라는 말은 없지만 12절에 빈들, 10절에 따로 란 말 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제자들에게 따로 조용한 곳에 데리고 가셔서 이럴 때 일수록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요시해야 한다(기도)고 가르치실려는데 이곳까지 사람들이 들이민 것이다.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 다. 예수님께서 철저히 본을 보이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일이었다. 17. 변화산 위에는 모두 몇 분이 계셨는가? 7명 (6명 + 하나님) 18.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단다. 요한복음 8장에 따르면 아마 이 장소에 가장 오고 싶어한 분은 아브라함일 것이다. 그런데 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을까? (이 때 대화의 주제 즉 예수님의 별세와 관련해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인 셈이다: 결국 구약의 대표들인 셈인데 구약이 지향하는 것이 예수니까 지극히 당연한 모임이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영광을 몸소 체험했고 이 세상을 정상적으 로 떠나지 않았다. 모세는 지도자의 힘든 사역, 엘리야는 선지자의 일과 승천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 을까? 19. 불 자는 에서 빛이 나는 형상이다. 영화로울 은 빛이 나는 두 사람이 선악과( )와 격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인류는 하나님을 닮았고 아마 몸에서 빛을 발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그 정도의 위엄은 허락하셨을 것이다. 회사의 임원도 품위유지비라는 것을 지불하는데 하물며 모든 피조물의 우두머리인 사람을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두셨을라고? 변화산의 예수님이나 모세, 엘리야의 모습이 빛이 나는 모습이었고 옷이 희어졌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이 바로 처음 창조되었던 우리의 모습이며 부활 후에 우리가 입게 될 영광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모습일지 본문을 이용해서 설명해 보시오 베드로가 놀라서 정신이 없을 정도, 제자들이 잠잠하여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을 정도: 사도 바울이 회심할 - 2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9:1~62 때도 둘러 비취는 빛 때문에 쓰러졌던 적이 있다. 단순한 빛은 아니라고 본다. 빛되신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닐까? 20. 베드로의 전공은 (nonsense quiz)? 어부라고 대답하지 말 것. 심심풀이로 묻는 것이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조는 것(90점): (졸다가 깨어나서 실수하는 것 100점) 졸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음을 나타 내는 말은? 아주 깨어 21.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여 이 책망은 누구를 보고하는 것일까? 제자들,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능력을 주셨는데 어디다 다 까먹고? 왜 까먹었을 까? 기도를 안 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17장 참고) 기도함으로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진 분들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하고 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이런 능력이 지속되지 않는다. 기도할 생각은 없으면 서 능력만 원하시는 얌체짓은 바라지도 말고 원하지도 말라. 22. 두 번에 걸쳐서 죽음을 예고해도 제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며 기적을 베풀어 수천 명을 먹이실 능력을 가진 분이 죽는다고? 사람들은 남이 말하는 대로 듣거나, 들리는 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듣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흔히 눈에 뭐가 씌었다고 한다. 그럴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23.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이다. 그러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는? 자기 욕심에 이끌려 능력 있는 큰 사람만 영접하는 사람: 어린아이는 영접을 받은 만한 자가 아니다. 나에 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을 사람을 예수님 때문에 영접한다면 큰 자라는 뜻이다. 유명한 깡패출신 목사님 이 버스간에서 깡패를 만났단다.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예수는 내가 믿고 덕은 네가 본다 라고 했단다. 예수님 때문에 참는 자가 진정으로 큰 자라는 말이다. 24. 요한이 짜증이 난 모양이다. 웬 녀석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우리도 못해서 예 수님께 야단만 맞았는데 말이야. 예수님! 우리편도 아니면서 선생님 이름 팔고 다니면 안 되죠? 이런 요 한을 우리 주변에서 찾는다면? 이웃 교회의 부흥을 기쁨으로 보지 않고 시기심으로 바라보는 것: 이웃교회도 분명히 예수의 제자요 교회의 일원이거늘 함께 기뻐해야 한다.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다른 무리에 대하여 배타적인 예수의 제자라기 보다는 똘마니 형상, 자기가 속한 그 무리만 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25. 밤길을 걸을 때 후레쉬를 발밑에 비추면 안 된다. 피아노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우 습게 보면 안 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악보를 미리 읽고 미리 넘겨주는 일이 쉽지 않다. 연 주자는 지금 당장 치는 곳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부분을 읽으며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도 멀리 보면서 하는 것이지 바로 앞만 보면 사고치기 쉽다. 예수님도 그랬다. 어떻게? 눈앞에 닥친 십자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 그 이후를 내다보시며 힘든 길을 이기고 계셨다(51 승천): 바로 눈앞의 어려움보다는 멀리 내다보며 용기를 내자. 26. 베드로만 성질이 급한 줄 알았더니 한 술 더 뜨는 형제가 있었구나. 형제는 용감했다. 언젠가 그들의 엄마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이 둘을 영의정 좌의정 삼아 달랬던 바로 그 형제들이다. 이 형제들의 이 런 성격을 보여주는 그들의 별명은? 보아너게 (우뢰의 아들, 막 3:17) 27. 다음 구절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머리 둘 곳이 없다 라는 말을 순 한국식 표현으로 고친다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9:58) 집도 절도 없다. 28. 예수와 제자들의 손발이 잘 맞지 않는 대목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자. 제자들 이 사람들을 보내서 밥이라도 사먹게 해야죠?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니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수난을 논의함 여기가 좋사오니 누가 크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금해야죠? 불로 확 싸질러 버려야죠? 예수님 너희가 주라 난 죽을 거야 제자는 졸고 내려가자 나는 죽을 것이다 그냥 두라 돌아가자 원래가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은 훌륭한 스승이었고: 시끄럽고 말 많은 아이들 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선생님이시다. 29. 예수를 따르려는 세 종류의 제자들 세상의 명예와 재물과 이생의 안락함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58), 주를 따르기로 했으면 그것이 가장 소중 - 2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9:1~62 한 일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잊지 말라.(59, 61의 먼저) 30.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예수의 정치적 혁명이 좌절된 것, 혹은 사람들의 악한 의도 때문이나 예수님 자신의 자포자기 등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1) 십자가의 길은 결코 그런 것 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다면? 2)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이었음을 보여주는 말씀은? 1) 굳게 결심하시고(51), 2) 기약이 차가매(51) - 2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0:1~42 누가복음 10 장 1. 추수할 것은 많고 일꾼은 적은 상황인데도 제자들을 둘씩 보내는 이유가 무얼까? 본문에 있는 말로 답을 찾고 그렇게 하면 문제가 다 해결될까? 가뜩이나 손이 모자라는데 둘씩 붙여놓으면 일은 더 더딜지 모른다. 그럼에도 둘씩 보내는 것은 어린 양을 이 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의지하라고: 어린 양 두 마리가 많은 이리 가운데서 서로 의지한 들 그게 무슨 힘이 된다고... 결국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겠다는 의사표현이다. 초대교회 때나 북한에서 당하는 박해를 보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죽음이 이리 가운데 있는 어린 양의 꼴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로마가 점령되었다. 북한도 이들의 순교로 인하여 정복될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내고 있는 곳이 북한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기도로, 물 질로 돕자. 그들을 보시면서 애처로워하시는 예수님의 그 아픔을 우리도 기억하자. 2. 대체로 복음이 처음 전해질 때 많은 이적들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런 때에 그런 이적을 베푸시는 이유가 본문에 있는 것 같은데?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심같이 애처로우니까(3) 3. 축복의 말은 아무리 하여도 좋다. 왜? 가든지, 돌아오든지 할 테니 4. 아마 예수님께서 사역을 마무리 하셔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다. 전도대를 보내면서 하지 말 라 는 것이 대단히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라: 우리더러 이렇게 살라는 뜻이 아니다. 복음에 대하여 어떤 마 음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예표인 셈이다. 5. 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은 이유는 무엇을 하라고 하는지를 잘 이해하면 저절로 알 수 있다. 하라 는 것은 무엇 무엇인가? 어느 집에든 들어가서 평안할지어다 하라. 길에서 문안하지 말라는 말씀은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 같다.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7): 당연하게, 당당하게 먹으라. 먹고 싶은 대로 달라고 하면 더 좋을 텐데... 어느 동리에서든지 너희 앞에 차려진 것은 먹고(8): 유대인들은 아무 것이나 주는 대로 먹는 사람이 아니 다. 부정하니 어쩌니 하지 말고 먹으라. 병자들을 고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하라. 6. 전도하려고 빈손으로 다니다가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으면? 굶어 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만 섬기면 제사장들은 굶어 죽어야 했다. 적어도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각오는 해야 한다.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 각오와 자세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평안을 맛보게 될 것이다. 7. 열심히 병자도 고치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보냄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 이 진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9, 11) 그러니까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이웃을 돕기 위한 일이나 나라를 위하는 일이나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나 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우리의 목 표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일이다. 특히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경을 펴놓고도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8.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느 정도의 죄인가? 소돔보다 더 크다. 9.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 특별히 죄가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죄가 하도 많아 하나님의 직접적인 징벌을 받은 소돔보다 정말 더 많을까? 하나님의 권능을 직접 목격하고도 거부했으니... 10. 귀신이 항복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었을까? 제자들이 기뻐서 보고를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 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더 기뻐할 일은?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우리는 본질적인 것을 잊어버리고 사소한 것에 얽매여 웃고 우는 경우가 너무 나 많다. 우리가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원망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 이 부 모로 말미암은 것이다라는 점이다. 나를 낳고 기르기까지 그 분들이 겪은 어려움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 가를 기억해야 한다. 부부가 싸움을 하다가도 무슨 일로 싸우고 있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싸 우는 이유와 저 여자(혹은 남자)가 나를 믿고 자기 호적과 부모까지 버려두고 나를 따라왔는데 내가 이 만한 일로 싸워야 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면 그만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져 버린다. 정말 중요하고 큰 본질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1. 예수님 자신은 이 땅에서 너무도 바쁘고 고달픈 삶을 사셨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여유와 평안 을 잊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고 기뻐하신 일도 거의 없다. - 2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0:1~42 1) 그런데 여기서 감격에 겨워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린 아이들과 같은 제자들이 진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것 때문에: 목사나 전도자가 진정으로 행복할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닐까? 회개할 것 없는 99명의 의인보다 1명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천국에서 잔치 가 베풀어진다던데? 2) 술에 취한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연상된다. 혹시 뭘 자셨을까? 성령에 취하셨기 때문: 성령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 어쩌면 술에 취한 모습과 닮은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도행전에 오순절 사건 때에도 제자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힐난하는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 고 한 적이 있다. 12.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무신론자, 하나님이 계시긴 계시지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는 자를 불가지론자, 모든 것에 다 하나님이 깃들어 있다고 믿음으로 진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범 신론자, 합리성을 하나님으로 대치시켜버린 이신론( )자 등등. 종류도 많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자 이며 어떻게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가? 유신론자, 유일신론자, 신자, 계시를 받음으로: 기독교의 탁월성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으로, 찾아오심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다(22).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총을 찬양하는 것이다. 숨기시고, 나타내시고 라는 말을 보면서 예정론 을 들먹이지 말라. 내게 베풀어주신 구원을 감사하는 일 외에는 예정론을 들먹이지 않는 것이 옳다. 모 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원하시지만 자신이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생각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스스로 어린아이라고 여기고 순전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하 나님의 방법이다. 복음을 받고 보니 이게 나의 공로가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만세전부 터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찬양 속에만 예정론은 존재하는 것이다. 결코 저 사람이 구원을 받았을까 안 받았을까 하는 식으로 사용하지 말라. 공부하라고 사준 책을 딱지치기하 거나 종이비행기 만드는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 배우고 나면 그래도 되지 않느냐고? 으이그, 인간아! 인간아! 제발 그런 끈기 있는 노력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선한 일과 선한 의도에 사용해라. 실제로 예정과 관련된 표현들이 어떤 경우에만 나타나는지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13. 너희는 정말 소중한 것을 보고 있다. 제자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을 보고 있었는가?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보고, 듣고자 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이 하나님의 아 들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전해준 사랑의 메시지란 사실을 잊지 말자. 14. 예수님을 찾아온 율법사의 잘못을 두 가지 지적한다면? 1) 시험하려고 함 2)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을 존경해서 이쁘게 보이려고? 아니면 나름대로 대결의식이 있어서? 15. 율법사와 예수님의 대화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결국 예수님은 이 율법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셨는가? 율법사: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 율법에 무엇이라 하느냐? 율법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예수님: 그렇게 하면 되잖아.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율법사: 누가 내 이웃입니까? 예수님: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율법사: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 그러면 그렇게 해라. 아무 것도 가르쳐 준 것은 없다: 뻔히 알고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묻기는 뭐하려고 묻느냐는 힐난이 담긴 것 같다. 16. 어떤 교장 선생님께서 아침 조회 시간에 다음과 같은 훈화를 계속한다면 아이들이 예수를 믿게 될 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벌과 같이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롭 게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개미와 같이 열심히 노력하지만 자신에게만 유익이 되지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거미와 같은 사람입니다. 으슥한 곳에 줄을 쳐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바라는 도무지 필요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 중에 벌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멋진 훈화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지는 못한다. 17. 교장 선생님께서 교회에서 위와 같은 훈화를 계속한다면 아이들이 예수를 믿게 될까? 좋은 이야기를 교회에서 성경책을 펴놓고 많이 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지는 않는다. 18. 어떤 교장 선생님께서 누가복음 10장의 사마리아인 비유를 읽고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설교를 계속 한다면 아이들이 예수를 믿게 될까?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첫째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 - 29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0:1~42 들입니다. 이 비유의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없어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강도들입 니다. 셋째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입니다. 포장만 달라졌지 내용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설교가 아니다. 핵심이 빠지고 없는 설교 흉내만 내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지 못한다. 19.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이런 유의 설교를 계속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껍데기 교인은 많이 생길지 몰라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탄생되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설교라고 하기 곤란 하다. 훈화라거나 교훈이라면 훌륭할지 몰라도 복음적인 설교는 결코 아니다. 비록 성경을 인용하고 설 교시간에 행한 것이라 해도 복음의 핵심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의 설교를 자세히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것이요 거리끼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 만을 외치지 않았던가? 시대가 변했다고? 아무리 변해도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그 인간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일을 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전달해 주어야 한 다. 단지 달라지는 것은 방법뿐이다. 현실과 상황에 맞게 방법은 항상 달라져야 하지만 성경 어디를 펴 놓아도 이 핵심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20.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교훈적이요 산뜻함이 있어서 불신자들에게까지 유명해진 것은 이해가 가 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비유에 애착을 가지는 만큼 그렇게 애착을 가지지는 않을 듯싶다. 다음과 같은 설교는 어떤가? 선한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 강도들은 어두움의 통치자, 기름은 성부의 사랑, 예 루살렘은 천상, 여리고는 이 세상,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 여관은 교회, 데나리온 둘은 성부와 성자에 대한 지식, 사마리아 사람의 귀환 약속은 예수님의 재림, 여관 주인은 사도 바울로 (참고, 예수님의 비 유 연구, 최갑종,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알레고리라고 한다.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석하느라고 머리를 썩일 필요는 없다. 단 지 문맥에서 무슨 의도로 주어졌는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21. 마르다는 동생이 얄미웠을 가능성이 많다. 동생이 미워진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면?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 탓: 부부사이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일이 너무 많으면 내지 않아도 되는 짜증이 나기도 한다.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이 들면 때로는 일을 줄여야 한다. 집안이 좀 더러워지든지 수입이 좀 줄더라도 가족관계에 흠이 가겠다 싶으면 일을 줄여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열심히 사는 사람 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다. 게으른 사람은 성도라 할 수 없으니 제외. 22. 원래 동생은 동생답고 맏이는 맏이다운 법이다. 맏이는 너그럽고 남을 생각하는데 비해서 동생은 얌 체짓을 좀 하기 때문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도 그런 모양인데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칭찬하셨는가? 왜? 얌체같은 동생 마리아: 손님을 대접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 때 문이다. 모두가 마리아가 되면 손님들은 굶어야 한다. 예수님의 생각은 굶는 한이 있더라도 말씀에 더 관심을 가지자는 것이다. 토요일 방과 후에 점심도 굶어가며 성경공부 하던 아이들에게 배가 고프지 않 으냐? 고 했더니 밥 한끼 굶는 것보다 성경공부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라고 대답하던 항도여중 아이들 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교회의 많은 일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열심을 내야 할 일이 말씀을 듣는 일이다. 23. 은근하게 책망을 받은 세 부류 즉 전도단, 율법사, 마르다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행위를 은근히 드러냄, 혹은 실제로 잘한 것이 있다: 자신의 공적이나 자랑거리를 은근슬쩍 자랑하 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은근슬쩍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이랄까 참 재미있다.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 는 예수님 앞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가 무언가 이루었다고 느끼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유혹을 받고 있음을 알고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부비(뜰 비용 ): 일에 드는 비용 - 30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1:1~54 누가복음 11 장 1.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극히 예외적 으로 그렇게 가르친 적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두렵고 떨리는 분이 아니라 친근하고 자상 한 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한 것은 예수님이시다. 아버지: 심지어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히 부르듯이 아바 아버지 라고까지 하셨다(막 14:36). 흔히 구약 을 많이 아는 사람이 생각하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할 때 두려움부터 불 러일으킨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구원을 얻은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 이 아니라 때로는 응석을 부릴 수도 있는 친근한 아버지로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우리 조상들은 아무 데나 잘 빌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과거 급제하러 간 우 리 아들... 이런 기도와 주기도문이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를 하나만 말해 보자. 나의 요구만 들어 있지 대상에 대한 경배가 없다. 다시 말하면 천지신명이라는 신이 어떤 신인지 구체적 인 인격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분을 산신령이라고 불러도 되고 햇님, 달님으로 불러도 마찬가지라 는 말이다. 더 쉬운 말로하면 가짜 신이라는 뜻이다. 어른을 만나서 인사도 하지 않고 안부도 물어보지 않고 내 부탁만 드리는 꼴이니 말만 신이지 실제로 신으로 대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들으시고 이루어주시는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3. 주기도문에서 고치거나 삭제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삭제 -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삭제시키고 싶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그런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정 - 일용할 양식을 평생 먹을 양식으로: 한꺼번에 왕창 주고 손을 털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원하 시는 바가 아니다. 우리와 꾸준하게 교제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에게 양 식을 주실 때에도 광야에서 만나를 매일 주셨지 쌓아놓지 못하게 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늘 하나 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 원하고 계신다. 4.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경이 현대적인 우리말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주기도문에 들어 있는 전형적인 옛날 말 하나만 찾아보자. 나라이: 이 는 옛날 주격조사이다. 나라가 와 똑같은 말인데 바꾸면 안 될까? 흔히 나라에 라고 잘못 발 음하기도 한다. 5. 빌리라 는 말은 표준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하는 경우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경상도 사람들이라 서 그런가?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하면 어떻게 되나요? 빌려도! 빌려다오!: 성경을 다시 번역한다면 실제로 우리가 쓰는 말로 바꾸면 좋겠다. 쓰지 않는 표준말 말고. 6. 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자세는 무엇인가(5-13)? 구하라(강청): 강청이라고 번역된 말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한다. 당시 유대사회에서는 밤에 친구가 찾아 왔는데 귀찮다고 청을 거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고집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말이 아니라 당연히 주실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라는 말이다 (최갑종 저, 예 수님의 비유연구 참조)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심을 믿으라: 아버지가 화가 나서 부탁을 못 들어주겠다고 선언해도 막무가내 로 고집을 부리는 아이가 한 마디에 포기해버리는 아이보다 더 이쁘다는 것은 사랑하는 자녀가 있는 아 버지라야 이해할 수 있다. 그 아이의 막무가내 식의 고집 속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끝내 들어 줄 수 없는 것이라서 안 들어주면 나중에 더 좋은 다른 것으로 줄 수밖 에 없는 것이 아버지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바르게 기도하려고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자세이다. 7. 혹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부모에게 생선이나 알을 달라고 열심히 조르면 우리의 부모는 우리에게 생선이나 알, 혹은 더 좋은 것을 줄 것이다. 하나님에게 열심히 조르면 하나님은 우리 에게 무얼 주실까? 그것이 우리 부모가 주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성령을 주심: 기도를 들어 주시되 우리가 구하지 아니한 영적인 축복까지 주신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이 곧 성령을 주심과 같다는 말이다. 부모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열심히 기도 하면 단순하게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해 주 시는 것(영적축복)이 구하여 받은 것보다 더 큰 복이다. 8.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었을 때 유대인들이 보인 세 종류의 반응은 무엇인가? 기이히 여긴 사람, 모함한 사람, 다른 증거를 요구한 사람 아무리 좋은 일을 해 봐라 모두가 칭찬하는가? 아무리 좋은 의견을 내놓아도 모두가 찬성하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글쎄, 타락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 아닐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선 한 일을 한다 해도 이럴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일을 하다 가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만 바라자. 9. 귀신 들렸다가 나은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으면 안 된다. 다른 귀신들이 또 오기 전에 무엇을 - 3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1:1~54 해야 하는가? 재물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참고해서. 누구보다도 강한 하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한다 = 예수를 믿으라: 노름하던 사람이 노름을 끊는 것도 어렵지 만, 끊고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또 다시 노름에 빠지거나 더 심한 나쁜 일을 하게 된다. 나쁜 귀신 하 나를 쫓아내고 청소했으면 그 다음은 새 주인을 맞아야 한다. 10. 사람의 가슴 속에는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되는 빈 공간이 있나보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이 공 간을 위인들로 채우면 좋으련만 오로지 가수나 연예인들로 가득 차 있으니 그들에게 열광하는 것이 당 연할 수밖에 없다. 예수 믿는 우리 아이들이 가수나 연예인에게 열광한다면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 다. 그것은 교회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쫓겨나간 귀신이 다시 들어올 공간을 두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그 공간을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으로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경을 배우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 바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알고 나면 연예인이라는 것이 시시해질 수 있다. 11. 우리 아들은 공부도 잘 못하는데 옆 집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미남이고, 너무도 부럽다. 어쩌면 저 렇게 복도 많을까? 멍청한 아들을 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28): 세상적인 복이 진정한 복 이 될 때는 밑바탕에 하나님의 말씀이 깔려 있을 때뿐이다. 지옥에 간 부자보다는 거지 나사로를 더 기 뻐할 수 있어야 한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장점만을 다 가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너무 과하지 않을 까? 둘 중에 하나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미리 마음을 정해 두자. 12. 이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줄 이적은 요나의 이적밖에 없다고 한다. 요나가 큰 물고 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와서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는 것과 무엇이 닮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시는 것: 이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적 같지도 않 은 이적을 말씀하시지 말고 마른 하늘에 벼락을 치게 하시든지, 아니면 땅을 뒤흔들어 버리든지 해서 아 무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런 기적을 즉석에서 보여주시면 안 되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로봇처럼 만들지 않은 것이나, 동역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나, 정말 그렇게까지 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는 탓일 것이다. 종합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인격적인 존재로 만 드셨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라면 이런 이적적인 역사가 반드시 하나님을 신앙하게 하지는 않기 때문 이다. 하나님의 이적적인 역사를 자신의 눈으로 목격하고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했던 이스라엘 사람 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나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전하는 말도 듣지 않는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성경을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13. 심판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믿지 않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할까? 우리는 어리 한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는데 너희는 요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하나님의 아들을 말을 듣지 않았으니 죽어 마땅하다. 14.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말하자면 간접적인 표현이다. 이것을 직설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보자. 그러니 까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 내 전도의 말을 듣고 회개하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 와서 지혜로운 말을 배우라 15. 독서는 마음의 등불이라 하던데, 이 말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눈은 몸의 등불이다 를 패러디한 게 아닐까? 각설하고, 눈이 밝아야 온 몸이 밝으니 볼 것을 제대로 좀 보라는 말씀이다. 도대체 무얼 보라 는 말인가? 요나보다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음을 보라: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 님을 제대로 알 때에야 가능하다.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몇 천 년간 반복하면서도 제대 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제한 상태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 이신지를 알면 금방 답이 나오는데... 16. 진짜로 깨끗한 사람은 목욕탕에 잘 가는 사람이 아니라 불의한 이를 탐하지 않는 사람이다. 뇌물 공 화국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실감나는 말이다. 막힌 수세식 화장실을 맨 손으로 뚫고 청소하다가 팔꿈치에 오물이 묻은 상태로 수업에 들어와서 이상한 냄새를 풍겼다던 전 거창고등학 교 교장선생님을 누가 더럽다고 기억할 것인가? 열심히 손을 씻고 잔과 대접을 깨끗이 하는 바리새인들 을 보고 예수님은 왜 깨끗하지 않다고 하시는가? 겉만 닦고 속은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40-41). =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는 것도 답 이 되겠지만 일단은 다음 문제의 답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겉과 속을 대비시키는 것이 좋겠다. 17. 박하와 운향은 향이 아주 강해서 식사 때에 향료로 사용된 것인데 양으로 따지든지 가격으로 따지든 지 간에 아주 작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농담삼아 말하듯이 자판기 커피 한잔을 두고는 기도하지 않아 도 된다고 말할 때의 느낌을 주는 말이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얻어먹고도 그것에 대한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좀 심하지 않을까?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십일조를 드렸으니 그게 보통 정성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십일조를 드렸는데 왜 책망을 받는가? - 3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1:1~54 공의(사람에게 행하여야 할 일)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바른 삶을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 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 물을 드리라 (마 5:23-24). 18.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그런 열심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더 소중한 것을 소중하 게 여기지 못하고 작은 일에만 집착하는 것을 나무라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대학생들이 민족 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한다거나 그런 주제를 놓고 밤을 새우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를 주제로 삼아 토론한다면 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정말 중요한 문제, 가령, 교회가 나아 가야 할 방향을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오른쪽에 놓을 것인가 왼쪽에 놓을 것인가 하는 문 제로 다투다가 갈라진 교회가 다 있단다. 컨닝, 술, 담배: 이런 사소한 일은 대범하게 혹은 간단하게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강한 크리스쳔들이 많았 으면 좋겠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19. 한 율법사가 억울하다고 항의를 했다가 되레 덤터기를 쓴 셈이 되고 말았다. 조상들이 억울하게 선 지자를 죽인 죄까지 다 뒤집어쓰고 말았다. 예수님의 말씀은 험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 하는 것이지만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맹렬히 달라붙어 힐문함: 어떻게든지 책 잡으려함 20. 유대의 역사를 보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수난을 한 두 번 당한 것이 아니다. 그 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지경이다. AD 70년 경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유대 인들은 또 한번 참혹한 시련을 겪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왜 그런 일이 생기는 걸까? 선지자의 피 값으로(50-51): 빌라도에게 사형을 요구할 때도 예수의 피 값은 자기들과 후손들에게 돌리라 고 했다. 그게 얼마나 엄청나고 끔찍한 수난을 부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인간이 너무 용감해도 탈이 야. 21. 유대인들의 구약 성경은 우리가 가진 성경의 분류와 좀 다르다. 실제 내용은 같으나 책의 권수와 순 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식으로 하면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라고 해야 할 말을 창세기에서 까 지 라고 한다. (힌트, 아벨은 창세기의 순교자다. 그러면 사가랴는?) 역대서: 유대인들은 성경을 셋으로 구분했다. 모세가 기록한 율법서 다섯권, 선지자들이 기록한 선지서 8 권(소선지서 12권은 한 권으로 취급함), 선지자가 아닌 사람이 기록한 성문서 11권이 그것이다. 열왕기와 역대서는 내용이 거의 유사함에도 열왕기는 선지자가 기록했음으로 선지서에 포함되고 역대기는 제사장 이 기록했음으로 성문서로 분류되어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래서 성경 전체를 가리킬 때 유대인들은 창 세기에서 역대서까지라고 말한다. - 3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2:1~59 누가복음 12 장 1. 이 당시의 예루살렘 인구가 4-5만 정도였다고 추정하는데 명이 모여서 서로 밟힐 지경이었으면 요즈음 여의도에서 백만 명이 모였다는 집회와 다를 바가 없다. 60-70만 명이 모여도 백만 명이 모였다 고 한단다. 여기서도 굳이 수학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늘 그러하듯이 수많은 군중들 이라는 의 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수만 2. 감추어져 있는 것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본문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다면? 바리새인들의 외식, 몰래하는 이야기 3. 새신자를 너무 중요시하다가 기존의 신자를 잃어버리는 것은 큰 잘못이다. 모두가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일반 사람들 중에 누구를 더 소중(?)하게 여겼는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들은 천하의 말썽꾸러기 취급을 하셨는데...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1), 또 제자들에게(22): 하나님 앞에서는 새신자나 헌신자나 구별이 없으나 교회 에서는 효과적으로 교회를 섬기기 위해서는 구별이 있을 수 있으며 먼저 믿은 자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 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4. 세상권세 잡은 자와 하나님과의 차이점은? 죽은 후에도 우리에게 끼치는 능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는 사람에게 삶이란 지극 히 짧은 한 순간이다. 영원한 세계를 주관하시는 분이 있음을 믿노라면 이생의 권세란 것은 너무나 초라 한 것이다. 5. 가끔 뚱딴지같은 소리로 우리를 괴롭히는 친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여기서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하나님은 있는 것이지 내가 태어나지 않았거나 내가 죽어 없어진다면 하나님을 생각해 줄 사람이 없으니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친구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죽음이 끝이 아니다(5).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공간 이동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 유는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전제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이런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너는 나고 싶어서 났니? 너를 이 땅에 보낸 분이 있다면 어떡할 거야? 네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말해도 된다.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6. 어떤 목사님께서 교통사고로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더니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라났는데 하루는 심심하 기도 해서 콧수염의 숫자를 헤아려 보았단다. 젓가락으로 한쪽으로 제쳐 놓고 하나씩 빼서 넘기는 식으 로 헤아렸다는데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 백개가 되더란다. 머리털은 얼마나 많을까? 그것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몇 십 개씩 빠져나가고, 또 새로 나는데... 이 지구상의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능력 있는 하나님이라지만 정말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셀 수 있을까? 그렇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겐 간단한 일이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시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분이다. 그러면 간단한 일이다. 컴퓨터 의 특징 중에 하나는 시간이 빠르다는 점이다. 성경책 한 권을 다 읽어내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인가? 단지 일, 이초도 걸리지 않는 것을 보면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지 짐작이 될 것 이다. 7. 우리가 세상의 권세 잡은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세 가지 찾아보자. 세상의 권세 잡은 자의 형벌은 일시적이다(4): 이 땅에서 있을 동안만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이다(7). 어려운 때에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12) 8.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죄도 사함을 받는데 도대체 사함을 받지 못하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무엇인 가? 성령이 인자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인가?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끝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다. 즉,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는 진리를 끝까지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인자를 거역하는 것은 앞으로 성령이 오시면 돌이킬 기 회가 남아 있지만 그 후에 오시는 성령의 요청마저 거절한다는 것은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음을 뜻한다. 9.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돈을 많이 번 부자가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식구 수대로 차도 사고 컴퓨터도 사고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그러면 안 되나? 돈이 남아도는데? 하나님께 부요하라는 말이다: 재물은 많되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면 그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 느냐는 말이다. 재물 많은 것을 탓하는 말이 아니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재물이 많으면 더욱 좋은 것이다. 그 재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사용하면 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돈도 많이 벌 자. 10. 오래 사는데 좋은 방법이 있다면? 염려하지 말라: 염려가 많은 사람에게는 온갖 질병이 따른다. 현대인에게 가장 무서운 암이란 병도 걱정 이 많은 내성적인 사람에게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걱정한다고 되지도 않을 일에 걱정하지 말고 (25-26) 탐심을 버리고(15)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평안한 가운데서 오래 살 것이다. - 3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2:1~59 11. 인명( )은 재천( ) 이라던데 어느 해, 교통사고와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죽이는 사고가 하도 많이 나니까 인명은 재차( )요 수명은 재처( ) 라 했다. 이건 끔찍한 이야기다. 이런 말들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비교했을 때 공통점은 무엇이며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공통점: 죽고 사는 것이 나의 의지(혹은 염려)와는 상관이 없다 다른점: 해결 방식이 다르다. 위의 속담은 체념하고 그러려니 하고 살던지 아니면 신경 쓰지 말고 살 라 는 말이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고 하신다. 즉 하나님 께 맡겨버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우실 것이다. 그거나 이거나 같은 말이 아니냐는 생각 이 드는 사람은 성경을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재천, 즉 하늘에 있다는 말이나 하나님께 맡겨버리 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교인을 가리켜 무늬만 기독교인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12. 다음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까마귀는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지만 하나님 께서 기르신다. 그런데 너희는 까마귀보다도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니 심거나 거둘 필요가 없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정답이다. 답이 되건 안 되건 한 마디라도 하면 정답으로 간주하는 것 도 좋은 방법) 까마귀는 날아다니느라고, 손발이 없어서, 원래 그렇게 지음을 받아서, 주워 먹고 사는 팔 자라서... 염려를 하지 말라는 뜻이지 일하지도 말라는 뜻은 아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되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런 것을 문맥에 따른 해석이라 한다. 반면에 위 의 주장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너무 집착한 탓에 나온 주장이라 할 수 있다. 13. 주인이 혼인집에 가 있을 동안에 집에 있는 종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 후에 주인이 와서 잘하고 있는 종을 어떻게 대우하는가? 일반적인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주인이 띠를 띠고 자리에 앉혀 수종듦: 종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몸둘 바를 몰라 안절 부절 아닐까? 예수의 재림 때에는 하나님과 우리가 이런 관계를 회복할 것이다.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친구요, 연인이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애인을 되찾는 날이 될 것이다. 14.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사이비도 참 많다. 재림을 도적이 오는 것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림의 때는 우리가 결코 생각하지 못한 때이다: 재림의 때를 알았다고 떠들면 영락없이 사이비로 알면 된 다. 예수님 자신도 모른다고 한 것에 대해서 알려고 애쓰는 사람이나 알아냈다고 말하는 자는 더 이상 볼 것 없다. 사이비가 설치지 못하도록 성경대로 믿고 사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15. 예수님께서 재림의 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니까 베드로가 염려가 되었던 모양이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자세가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아리송해서 물은 것 같은데(41) 예수님의 답변은 다음 셋 중에 어느 것일까? 베드로의 질문에 대답을 않고 다른 얘기를 하셨다. 그 종은 제자들만 가리킨다. 그 종은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한 자는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한 자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모든 불신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다. 16.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줄 알았더니 불을 던지러 왔단다. 화평을 주려 함이 아니요 분쟁을 일으키려고 오셨단다. 도대체 어느 말이 진짜일까? 사실은 둘 다 맞는 말이다. 어떻게 정반대되 는 말씀이 둘 다 맞단 말인가? 하나님과 평화하는 것은 곧 마귀와 분쟁하는 것: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평화지만, 마귀와의 관계에서 보면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하지만 때로는 분쟁의 원인도 되어야 한다. 적어도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 분쟁마저 각오한 나의 이 소중한 구원을 위하여 평소에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매사에 양보하며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17. 서쪽 하늘에서 생기는 구름이나 남풍을 보고 일기를 예보하는 것과 고소하는 사람과 화해하라는 이 야기의 공통점은 지금이 어떤 상황인 지 파악하라는 말이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58-59를 참고해서 답하면? 재판받기 직전, 재판하러 가고 있는 길: 고집스럽게 조금만 더 버티면 감옥에서 꼼짝 못하게 된다. 그래도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 버틸래? 18. 50절의 나의 받을 세례 는 예수님께서 지실 를 의미하는 것이다(막 10:38). 본인 스스로도 몹시 답답하고 괴로웠던 일이라고 하시면서 끝까지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어가신 주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표하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 있다면 그 잔이 그냥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고통을 기 억하며 현실의 어려움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임을 잊지 말자. 십자가 19. 우리가 소중한 존재임을 밝히기 위해서 사용된 재료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마저 소중히 하신 다. - 3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2:1~59 많은 참새, 머리털, 까마귀, 백합화, 들풀 20.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이제 먹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니 좋은 대학을 가기 위 해서,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 죽자 살자 공부하는데 성경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고 한다. 그러 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 공부를 포기하고 수행을 떠나야 하나?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한다는 말은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말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방법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바로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이 된 다. 또 그거나 이거나라고 말하고 싶은가?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그의 영광을 위하여 노력하자. 결국 동 기가 변하는 것이다. 사는 모습이 똑같아 보일지라도 동기가 다른 것이다. 누룩: 술이나 빵을 발효시키기 위한 재료, 이스트 외식: 원래는 배우 를 뜻하는 말에서 위선 이라는 뜻이 파생됨 앗사리온: 로마의 화폐로 하루 임금인 1데나리온의 16분의 1 이경, 삼경: 로마인들은 밤(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을 4경으로 나누었다. - 3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3:1~35 누가복음 13 장 1.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었다는 것은 모독적인 방법으로 빌라도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 다는 말이다. 그렇게 저주스러운 죽음을 당한 사람과 실로암 망대에 치여서 죽은 18사람에 대하여 일반 적인 사람들과 예수님의 생각과 태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반적인 생각: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예수님의 생각: 너희도 마찬가지 죄인이다. 일반인들의 태도: 그들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찾아보려함 (=시선을 남에게 둠) 예수님의 태도: 그런 일에 대해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함 (=시선을 자기에게로) 예수님은 그 사람들이 그런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해서 그 원인을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일들 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이웃이나 형제가 혹시 독한 병에 걸리거나 집안에 우환거리가 생기면 우리는 흔히 그가 무슨 나쁜 죄를 지은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기 일쑤다. 그런 분을 방문해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생각해 보고 회개하라 거나 하나님 이 불쌍한 형 제를 용서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옳지 못하다. 하나님께 야단맞은 욥의 친구들 이 한 짓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병든 형제를 낫게 해 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며 어려움 당 한 이웃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비는 것뿐이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면 그런 이웃의 어 려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다. 2. 무화과나무의 잘못은 열매가 없는 것이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존재 의의가 없다. 그러므로 전도 하지 않고 교회 봉사도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가 없다? 열매란 회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도나 봉사는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일 뿐이다.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예수를 영접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다라는 말씀을 기억해 두자. 3. 왜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을까? 포도원이라고 반드시 포도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도원에서 주로 딸기를 재배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4. 이 무화과나무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함으로 주인에 끼친 손해를 세 가지로 설명해 보자.(=무화과가 허 비하고 있는 것 세 가지는?) 이름(혹은 열매), 땅, 시간 5. 무화과야 제발 열매를 좀 맺어라, 그렇지 않으면 베어버릴 거야. 네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이제는 나 도 어쩔 수가 없어. 그런다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다. 할 일이 무엇인가? 두루 파고 거름 주는 일: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무슨 일을 하든지 열매가 맺힐 수 있는 필요한 노력 을 해야 한다. 할 일을 소홀히 하면서 기도만 열심히 하거나 아니면 열매만 기다리고 있으면 악한 종이 된다. 좋은 열매를 많이 맺도록 열심히 거름을 주자. 6. 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갈릴리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 와 관련 이 있다. 그렇게 볼 때 열매는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회개(3): 열매라고 하면 무언가 구체적인 결과를 살피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의 주된 메시지는 회개하라 는 것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즉 교회를 섬기는 것이나 헌금을 드리는 것도 열매가 되겠지만 우선은 회개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 바로 가장 큰 열매이다. 7. 이 과원지기가 하는 일이 곧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과 흡사하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시고 있는 일은 무슨 일인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일: 눈물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머니의 기도가 있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어떡하란 말인가? 아무도 나를 위하 여 기도하고 있지 않는다 싶어도 어머니의 기도보다 더 효과적이요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예수님 이 있음을 기억하자. 8. 예수님에게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을 허용한 것과 화가 몹시 났지만 예수님께 대들지 않고 대신에 병 고침을 받고자 하는 무리들에게 다른 날 오라고 야단을 치는 것을 보아 이 회당장은 기본은 되어 있는 셈이다. 이 회당장도 병 고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는 얼마든지 병을 고쳐도 좋다는데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에 꼭 고쳐야 되나?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식일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놓으시려는 의도가 있다: 짐승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풀어주면서 사단에게 매인 자를 풀어 주겠다는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적이 고의로 안식일에 유대인들을 공격하였음에도 대항하지 않고 몰살당한 일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중히 여겼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규정을 어기고 계시는 것이다. 안 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란 주장이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는 것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이기에 고의로 유 대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죽이 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된다. 규정이나 회칙이나 법 따지다가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은 오늘날에도 흔 - 3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3:1~35 한 일이다. 예수님에게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일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9. 이 회당장에게는 18년 동안이나 사단에게 매여서 고통당하는 여인이 고침을 받는 일보다 안식일의 규 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예가 현대에도 있을까? 규정 따지느라고 응급환자의 치료를 미루는 행위, 실제적인 일보다 서류 갖추기에 급급한 일: 학교에서 숙직 을 하다가 밤에 불이 났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이 무엇일까? 우습게도 숙직일지에 순찰 중 화재 발견 이 라고 기록하는 것이 먼저다. 불을 끄는 것이나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풍토는 그렇다. 당직일지 찾느라고 헤매다 불이 더 크게 번졌다 하더라도 일지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 면 숙직자는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별 책임이 없다. 신고하고 불을 끄느라고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솔직 히 그 와중에 어떻게 일지를 기록하나? 그러나 일지에 기록이 없으면 책임을 다 뒤집어 쓸 가능성이 아 주 높다. 학생의 익사사고나 교통사고가 났으면 빨리 학급일지에 소급하여 평소에 담임선생님이 그런 사 고에 대하여 주의하라고 훈화를 계속했다고 기록해 두어야 한다. 기록이 남아 있으면 책임이 별로 없어 지니까.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은 기억해 두어야 할 값진 교훈이다. 10. 천국을 상징하고 있는 겨자씨와 누룩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작지만 크게 자란다(성장성): 나폴레옹이 죽을 때 그랬다나? 나사렛 예수여 그대는 사랑으로 온 세상을 점 령하누나! 팔레스타인 한쪽에 던져진 이 파문이 온 세상을 덮을 줄이야. 한국에 전해진 복음도 몇 사람 에 의해서 보잘 것 없이 시작되었으나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천국은 이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속 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하나님의 뜻에 맞 다고 생각이 되면 아무리 작아 보이는 일이라도 기꺼이 시작하라. 그것이 나중에 거대한 산을 이루고 바 다를 이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씨는 채송화 씨가 아닐까 싶은데 겨자 씨는 채송 화 씨보다도 훨씬 작다. 채송화 씨는 두께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겨자씨는 두께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효자제일교회 주종근 목사님께 많이 있더라. 씨라기보다는 먼지 같다. 11. 성경에서 누룩은 죄를 상징하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무교병이 그렇고 바리새인들의 누룩이 라는 표현이 그렇다. 반면에 여기서는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영향력을 표현하고 있다. 누룩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겉으로 거창하거나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 습, 초대교회의 사람들, 특히 바울, 그 뒤를 이은 전도자의 모습들, 금으로 뒤덮어 놓은 하나님의 집은 세속적인 눈으로 혹은 겉으로 보아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를 점령하고 세상을 뒤집어 놓았 다. 겉으로 보아 아무 것도 없을 법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재하고 있다. 12. 입시 지도를 하다보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그 학교 입학 정원은 몇 명입니까? 우리 학교에서 몇 명 들어갑니까? 그럴 때 선생님들이 잘 쓰는 답변은 공부나 열심히 하라 는 것이다. 천국에 몇 명이나 들어갈까? 이게 궁금한 제자에게 그래 몇 명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사실은 입학 정원이 궁금한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제쳐두고 비본질적인 것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현명하 지 못하다. 어떤 방법으로 공부를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정작 공부는 전혀 하지 않는 학생이 얼마나 많은가? 천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을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태어나지 않고 죽 은 아이는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천국 시민답게 사는 것이다. 13.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야박하신가? 들어가기를 구하는데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니? 천국 가 기가 어렵다는 말인가? 믿기만 하면 된다던데? 구하여도 되는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문을 닫기 전에 들어가기를 구하라는 말이다. 정작 심판이 시 작되고 나면 방법도 없고 구하여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노아의 때에 비가 쏟아지자 노아의 방주로 몰 려온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 그 때에는 들어가기가 아주 쉽다. 거저다. 그러나 한번 닫히면 열기가 불가능하다. 14. 예수만 믿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데 예수 믿는 게 뭔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가? 하나님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그것이 바로 이다. 이런 곳을 그랜져 타고 갈 수 없다. 힘들게 걸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열리지도 않을 문을 붙들고 열어 달라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좁은 문 15. 유대인들은 아무나 함께 식사하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다가 도중에 일어섰 다가 바울에게 책망을 받은 것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난한 것이 좋은 증거이다. 그렇다면 주 앞에서 먹고 마셨다는 주장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교회에 열심히 다 녔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모른다고 하다니? 진정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이 형식적으로, 다른 목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말 하는 것이다. 16. 천국은 믿는 순서대로 가는 게 아닌 모양이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될 자가 있다는 것은 새치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인데? 천국 가는데 이렇게 질서가 없어서야 원? 도대체 무슨 순서로 가는 걸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믿음)의 진실 여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쓴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 - 3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3:1~35 에 스스로 힘든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그 길을 기쁨으로 걷는다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이 다. 그냥 교회를 출석하는 정도와 다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따라 인간적인 내 욕심을 버렸느냐가 중요하다. 17. 내어 쫓긴 자들이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는데(28) 이들이 이를 갈게 되는 이유를 있는 대로 찾아 보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분명히 자기 조상인데 후손을 몰라준다? 대신에 이방인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동서남북으로부터 온 사람들): 결국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 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것은 예 수를 거부한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내어쫓김을 말한다.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 친 유대인들에게 이러고도 예수님께서 무사하실 수 있었겠는가? 18. 이 바리새인이 예수님의 안전을 염려해서 비밀 정보를 미리 알려준 고마운 분인지 아니면 헤롯을 핑 계로 이 골치 아픈 선생을 멀리 쫓아버릴 심산인지 그것도 아니면 헤롯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대변한 것 인지 분명치 않지만 예수님의 답변도 머리 아프긴 마찬가지다. 오늘, 내일, 삼일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 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다만 바리새인의 충고를 그리 귀담아 듣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길을 걷고 있 음은 분명하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음이 틀림없는 이유가 있다면? 자신은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심(33): 당시에 예루살렘은 헤롯의 관할이 아니다. 헤롯은 갈릴리 지방을 다스렸고 예루살렘은 빌라도의 관할이었다. 19. 예수님께서 언제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모으려 했다고 이런 말 씀을 하시는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 예루살렘을 최소한 세 번 방문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예루살렘이라 기보다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하고 그렇다면 과거의 모든 구원사역을 총칭한 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선지자들을 보내고 마침내 자신이 나타나기까지 있었던 모든 구원 역사를 염두 에 둔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럼에도 끝내 거부한 죄는 예루살렘의 최종적인 파괴로 나타난다 (35). 안수(어루만질 손 ): 성별이나 죄의 전가를 의미하는 의식 채전( ): 채소 밭 - 39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4:1~35 누가복음 14 장 1. 안식일 문제는 이미 두 번이나 거론되었던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이 문제가 등장하는 것은 바리 새인들이 의도적으로 자꾸 걸고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못 하면서 안식일 문제를 자꾸 걸고넘어지는 것은 안식일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결코 바뀌어 질 수 없는 일임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문제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고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엿보고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 나님 앞에서 영원하고 참된 쉼이 있을 것을 보여주는 것 이지만 바리새인들이 그런 것까지 알지는 못했 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굳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간단한 이유를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보자. (5절의 아들은 어떤 사본에는 나귀라고 되어 있기도 하다) 사람이 짐승보다 더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날이다. 수없이 많은 규정으로 사람을 얽어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억지로 규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며 즐 거워하는 날이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1번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이냐고 물은 다음 대답은 하나님을 경외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이 말씀을 보면 대단히 부담스럽다고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란 말이 부담스럽다면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에 관심을 더 둘 필요가 있다. 그를 즐겁 게 하는 것 이 아니라 그를 생각만 해도 내가 즐거운 그런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 이 인생의 목적이다. 2. 안식일에 병을 고치나 안 고치나 보자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기어코 고쳐놓아야겠 다는 예수님이나 고집스럽긴 매일반이다. 예수님께서 이 환자를 고치는 것도 순수하게 병을 고치는 것 만이 목적이라면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지 않고 병을 고칠 수도 있다. 어떻게?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이나, 바리새인들이 없는 다른 장소에 불러서 고칠 수도 있다. 그런데 부득부득 이런 상황에서 고치겠다는 것은 위에서 본 대로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개념을 바꾼다는 것은 유대종교를 완전히 바꾸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돈 없는 사람이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고 사실이다. 실력 없는 사람이 모른다고 말하 는 것은 결코 겸손이 아니다. 약자가 강자 앞에서 졌다라고 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비굴이다. 겸손의 전제조건이 무엇인가? 실력이 있어야 겸손할 수 있다. 겸손이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면 낮추기 전에 높아져 있어야 한다. 겸손 하기 위해서라도 실력을 쌓자. 그렇게 실력을 쌓은 후에 자신을 낮추자. 4. 겸손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본문에서 찾는다면? 즉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어도 되는 이유가 본문 에 있다면 무엇인가? 말석에 있으면 나를 알아보는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우리를 높이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 문에 자신을 낮추는 것이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굳이 우리가 실력을 감추고 능력을 감출 필요가 없다. 5. 우리는 무엇인가를 베풀 때 은연중에 되돌려 받기를 원한다. 최소한 베푸는 것을 알아주기라도 원한 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말고 그런 능력조차 없는 사람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왜? 그들에게 받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받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매사에 이유나 원인을 하나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겸손도 그렇고 자비도 그렇고 열심도 그렇다. 하나님 때문에 겸손하고, 하나님 때문에 열심을 내고... 복 있는 사람이다. 6. 먹을 게 있더라도 친한 친구나 형제나 친척과 부유한 이웃과 나누지 않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런가? 나누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나누되 차라리 가난한 사람과 나누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7.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라는 말씀에 예수님도 그렇다 라고 하시든지, 아니면 할렐 루야! 하시면 공부하는 우리도 쉬울 텐데... 모처럼 멋있어 보이는 말에 대해서 간단하게 동의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엉뚱한 긴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청함을 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유대인들의 생각에 는 하나님 나라에는 유대인들만 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쉽게 동의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거부한 복음이 이방세계를 향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8. 예수님의 비유에서 잔치에 손님을 청하였지만 오지 않았다고 해서 주인이 노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는데... 어떻게 보면 주인이 나쁜 사람 아닌가?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를 하기 일년 전에 약혼식을 하고 그 때 혼인 잔치에 대한 초청을 한다. 일년 뒤, 약속한 사람에 맞추어 혼인 잔치를 준비하고 준비가 끝났음 을 알리는 재차초청을 하는데 이 때 이것을 거절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가 된다. 다른 잔치라면 사전에 초청할 사람에게 날짜를 정해서 통보를 하고 의사를 물어서 참석의사를 확인한 다음 그 수효에 맞추어 잔치를 준비한다. 준비가 다 되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재차초청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 40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4:1~35 경우에 따라 선전포고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인이 노를 발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9. 전도의 네 가지 원리는 나가서,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우라는 것이다. 어디든지 가서, 누구든지 끝까 지 설득하여 데려다가 교회에 앉히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게 해도 전도가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엇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디에 데려왔느냐가 중요하다. 이 잔치에는 억지로 끌려왔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로 끌려왔 지만 풍성하게 맛볼 것이 있으면 괜찮다(24). 반면에 데려다 놓고 줄 것도 없이 그냥 기념품이나 나누어 주면서 한번 데려오는 것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천국 문을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수 님의 말씀은 천국 문이 활짝 열렸고 어느 누구에게나 개방이 되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지 전도 방법 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10. 하늘나라 잔치에 세 번의 초청장이 발송되었다. 첫 번째 초청은 유대인들에게 발송된 것이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누구에게 초청장이 보내어진 셈인가? 우리는 어떤 자에 해당되는가? 두 번째: 거리와 골목에서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과 저는 자들 - 유대인들 중에 죄인이라고 멸시받 았던 자들 세 번째: 길과 산울가에 사는 사람들 - 이방인들 우리: 길과 산울가에 사는 사람들, 다시 말하면 거리와 골목의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과 저는 자들 보다 못한 사람들이다. 이런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 우리 탓이 아니요, 그저 넝쿨째 굴러온 호박일 뿐 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11. 성경이 오래 전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음 단어들을 현재에 사용하는 용어로 바꾸어 보자. 병신 장애인, 소경 시각장애인, 저는 자 지체 장애인 12. 건축을 시작하는 사람은 미리 비용을 예상하고 자기의 능력에 맞는 집을 짓는다, 전쟁을 시작하는 왕도 승산이 있는지 따져보고 시작을 하든지 말든지 하는 것이다. 그럼 제자가 되려는 자는 무슨 계산 을 해야 하는가? 처자식과 부모와 형제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26, 33): 이 말씀에 따라 처자식과 부모형제를 버리는 것은 안 된다. 26절의 미워하지 란 말은 덜 사랑해야 함 을 나타내는 말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에서 먼저 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모든 소 유를 버릴 수 있는 하나님 우선 의 자세를 갖추라는 것이다. 성경의 전체적인 문맥에서 이해하지 않고 이 표현 하나만 문자적으로 받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결코 소홀히 다루 지 않고 있으며 부부사이를 함부로 버려도 되는 그런 관계가 결코 아니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9:23에 따르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즉 자기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처자식과 부모와 형제와 가진 모든 소유를 다 버려야 하듯이 자기 자신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 렵고 힘들어 보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자기 생각대로 편해 보이는 삶을 살 것 인지를 결단하라는 말이다. 13.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 곳에도 쓸데가 없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맛을 잃은 소금인가?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자기 십자가도 지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 하나님을 모르고 교회 다니는 사람, 소유욕을 버리지 않은 예수의 제자 14. 본문에 나오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겠다. 다음 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교훈을 한 두 개의 단어로 요약해 보자. 잔치를 연 주인: 상이 있는 구제 바리새인들: 겸손 따르는 사람들: 자기 부인 고창병: 수종병(dropsy), 일부 세포조직이나 체강에 혈액이 축적되는 병으로 얼굴이나 팔, 다리가 부어올라 살갗이 물러진다. - 4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5:1~32 누가복음 15 장 1. 15장은 14장과 분위기가 대단히 다르다. 큰 원인은 말씀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14장은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그들은 엿보고 있었다. 그러면 15장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들의 자세는 어떠한가? 세리와 죄인들, 말씀을 들으려함 14장의 바리새인들이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가 아니라 엿보고 흠을 잡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니 겸손 해라, 자비를 제대로 베풀어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라고 가르치셨지만 15장의 세리와 바리 새인들은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잃은 자를 찾으려고 애쓰는 분, 잃은 자를 찾았 을 때의 기쁨 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님 말씀이지만 들으려는 자에게는 풍성한 은혜 가 있었고 듣지 않으려는 자에게는 전혀 은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엉뚱한 불평(2)만 늘어놓는 것이다. 2. 바리새인들은 의롭고 깨끗한 삶을 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던 사람들이다. 문제는 방법에 있다. 2절 말씀으로만 본다면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려고 한 것 같은가? 죄인에게 가까이 아니함으로: 부정한 것과 죄인들을 피해감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려고 함, 예수님은 그들을 깨끗하게 만들기를 원하심. 우리도 어릴 때 믿지 않는 친구들과 사귀지 말라고 배웠다. 물이 든 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을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키우자. 어느 곳에 던져놓아도 물이 드는 것 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 예수 물을 들이는 아이들이 되게 하자. 나 자신부터 어떤 환경, 어떤 형편에 처하더라도 예수의 삶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신앙인이 되자. 수세식 화장실이 막혀서 그것을 손으로 치우 고는 팔꿈치에 오물이 묻은 채 수업에 들어와서 온 아이들이 코를 막게 했다는 어느 고등학교 교장선생 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깨끗함과 거룩함을 보게 된다. 3. 세 비유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잃었다, 열심히 찾는다, 찾아서 함께 즐긴다. 4. (잃은 양 비유에서) 100마리의 양 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경제논리로 따지면 99마리를 들에 버 려두고 1마리를 찾아나서면 안 된다. 잘못되면 더 많은 양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 면 하나님의 사랑은 비경제적인 것이 틀림없다. 그 외에도 이 비유에서 비경제적인 요소를 찾는다면? 양을 찾았다고 즐기면 또 경비가 든다: 길 잃어버린 어리한 양 한 마리 때문에 찾느라고 고생하고, 찾아서 기쁘다고 한 잔 먹고, 이건 정말 손해 막심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 님은 단순하게 계산적인 분이 아니라 인심 좋은 아버지와 같다. 기분만 잘 맞춰주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줘버리는 후한 아버지 말이다. 하나님과 너무 계산하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복을 누리는 비결 중에 하나 다. 좋은 아버지나 좋은 선생님이 수고했다고 작은 선물을 주거든 한번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 다 하고 거절을 해보라. 심부름 값 안줘요? 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생기는 게 많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드리자. 5. (잃은 양 비유에서) 죄인 하나를 그렇게 기뻐하시면 의인 99이 얼마나 질투를 할까? 질투를 하지 않는 다면 왜 그럴까? 이유를 설명하든지 아니면 그와 유사한 경우를 성경에서 찾아내든지. 의인이기 때문에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설명부실이어서 오답으로 간주함) 아버지의 마음과 한 마음이기 때문에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일치할 때뿐이다. 아버지의 기쁨이 바로 나의 기 쁨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도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에게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을 보고 기쁨이 충만하다고 말한 세례 요한의 기쁨이 바로 그런 것이다(요3:26-30). 하늘 나라에서는 우리에게도 그런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6. (드라크마 비유에서) 드라크마는 동그란 은전이다.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데나리온하고 같은 가치를 지녔다고 한다. 한 개를 잃어도 9개나 있는데 뭐 그렇게 애써 찾을까? 더구나 찾았다고 벗과 이 웃을 불러 함께 즐기면 그보다 돈이 더 들 수도 있을 텐데...(힌트, 사실은 돈은 틀림없는 돈이지만 다른 의미가 있다. 위의 설명을 참고로 해서 어떤 용도로 이 은전 열개가 사용되었을지 짐작해 보라) 이 은전 열 개는 신랑이 신부에게 지참금조로 주는 것인데 신부는 이것으로 머리띠를 만들어 사랑의 증 표로 매고 다녔단다. 심지어 잠잘 때도 매고 잤단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증표 라는 것이 꼭 찾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회개를 기뻐하는 것도 우리에게 무슨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랑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못나도 관계없으니 자신이 못 난 놈이라고 자책하지 말며, 죄지은 것을 너무 아파하지 말자. 오직 감사할 뿐이다. 이런 못난 놈을 사랑 해 주시다니... 7. (탕자의 비유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말이 되지 않는 일 두 가지는 무엇인가? 1)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데 재산을 달라는 것 2) 달라고 주는 것 8. 둘째 아들에 대하여, 1) 왜 집을 떠나려고 했을까? (떠난 뒤의 생활에서 근거를 찾는다면? 아버지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었을 것: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가진 꿈이요 이상이던가? 아이들도 - 4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5:1~32 어른들도 다 반성의 여지가 있다. 가장 머무르고 싶은 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어른들이. 2) 재산을 챙겨서 떠날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유를 얻어서 길을 떠나는 기분, 감옥을 탈출한 빠삐용? 탈출에 성공한 귀순용사? 3) 허랑방탕하며 사는 기분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 껍데기에 설탕을 바른 당의 정에 불과함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마약이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 음란에 탐닉하는 것,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들... 결코 만족함이 없고, 끝 이 없으며 결국에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파괴시켜 버린다. 4) 물려받은 재산을 잘 관리하면서 계속 즐기며 사는 것은 불가능할까? 일시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영원히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 안 믿는다고 당장 무슨 일이 생 기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흉년이 닥칠 때가 있다.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5) 신분이 어디까지 낮아졌는가? 돼지보다 못함(16), 돼지를 치다?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것: 자신이 추구했던 그릇된 자유의 결말은 이렇게 되는 것이 필연이다. 잘 살아보 겠다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만큼 높아져보겠다고 발버둥을 친 인간의 결과는 언제나 이 모양이 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고함친 어느 철학자는 끝내 정신 이상이 되고 말았다. 6) 그에게 있어서 희망의 시작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집을 생각한 것: 예전에는 부자유의 대명사가 아니었던가? 참된 평안과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학생시절, 젊을 때 교회 안에서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남겨두는 것은 위기의 때 에 아주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선생님들은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이런 기억을 남기도록 해 주어야 한다. 7) 돌아오는 그에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일까? 아버지에게 무엇이라고 하지?: 집 근처를 멀리서 배회하거나 대문 주변을 서성거릴 가능성이 많다. 오천석 씨의 노란 손수건 을 읽어보라. 아버지에게 죄를 짓고 떠난 어느 아들이 만약 나를 다시 용서해 주신다 면 집 앞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한 장 매어 두라는 편지를 보내고 찾아갔더니 나무 한 그루가 온통 노 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8) 돌아왔을 때 그의 기대와 다른 것은? 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준 것 - 우리 아버지가 이런 분이었던가? 신분을 회복함 ( 품꾼의 하나로) 9) 재산을 나눠달라고 했을 때 왜 아버지는 내게 재산을 나눠주어서 이렇게 고생하게 하는가? 이런 원망 을 하지는 않았을까? 일반적인 사람의 심성으로는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학교 다니기 싫다고 도망치는 아이들을 학교에 붙들 어 두기란 때로는 너무나 어렵다. 애를 애를 써도 끝내 학교를 그만두었음에도 철이 들고나면 그 때 억 지로라도 잡아놓지 않고... 이러면서 부모와 선생님을 원망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꼭 원망은 아니 고 아쉬움이겠지만.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복이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지만 아이들은 일단 잘 들으려하지 않는 것이 정상인가보다. 10) 그 후에는 아버지와, 이웃사람에게 대하여 어떤 자세로 살았을까? 아버지에 대하여: 결코 자신은 아들의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재산을 물려준다고 해도 결 코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백할 것이다. 이웃사람에 대하여: 이웃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하기도 할 것이다. 네가 무슨 낯으로 다시 들어왔느냐고. 그럴지라도 이 아들은 당당하게 아들임을 주장해야 한다. 자신을 용서해준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결코 이 말에 기가 죽어 집을 다시 나가서는 안 된다. 이것이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적인 마음가짐이다. 하나님 앞에 자격이 있어서 당당한 것이 아니라 나를 용서하고 구원하신 그 하나님 때문에, 그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는 당당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것이 그분이 원하시는 바 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9. 그 아버지에 대하여, 1) 유산을 미리 달라는 아들에게 왜 재산을 나누어 주었을까? 아버지에게 마음이 없는 아들을 억지로 붙들어 두어도 소용이 없을 것, 진정한 부자관계를 이루기 위해 서 어쩌면 재산 잃고 아들을 잃을지 모르는 모험을 감행함. 2) 재산을 미리 나누어주면 어떻게 될지 그 결과를 예측했을까? 집을 떠나는 아들을 굳이 붙잡지 않은 점과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먼저 알아본 점에서 결과를 예측하고 있 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보기는 쉽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는 계신 곳이나 그 모습이 별로 변화가 없지만 아들은 어느 때에 올지, 어떤 모습으로 올지 예측하기 어렵 다. 죄책감 때문에 집에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버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기다리고 있었 던 것 같다. - 4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5:1~32 3) 이웃사람들은 둘째가 집을 떠날 때, 그 이후 몇 년 만에 돌아왔을 때 이 아버지에게 무엇이라고 비난 을 했을까? 바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바보같은 자식이 달라고 그걸 다 줘? 재산 다 까먹고 돌아온 걸 그걸 아들이 라고 또 받아들여? 아버지는 온갖 비난을 다 감수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바보라고 비난을 듣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사랑이 크면 클수록. 4)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언제 용서하셨나? 집나가기 전부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아들에게 재산을 미리 나누어 준다는 것 자체가 이 모 든 일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10. 이 이야기는 아들의 이야기인가? 아버지의 이야기인가?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용서하는 아버지,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버지 이야기이다. 그래서 제목을 [탕자를 용서하는 아버지]로 하면 타당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악과 ]라 고 하고 싶다. 왜 그런지 이해가지 않는 분은 홈페이지의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을 읽어보시기 바란 다. 조만간에 [사랑에 눈먼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다시 올릴 예정임. 11. 예수님께서 왜 이이야기를 하셨는가? 이야기 끝에 붙은 큰 아들은 그 당시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죄인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비난의 대답으로. 그렇다면 여기의 큰 아들은 바로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인 셈이다.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위하지 않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집 안에 있는 탕자, 큰아들 노릇을 하고 있을 때가 많으므로 주의하자. - 4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6:1~31 누가복음 16 장 1. 네 보던 일을 셈하라 는 말을 뜻이 조금 명확하도록 고쳐보자. 네 보던 일을 정리해라: 계산을 정확하게 해서 인수인계 하라는 말이다. 2. 정리해고, 명퇴란 이름으로 조기에 퇴직하는 사람이 인용하면 좋은 말은?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3): 실제로 그런 분이 계시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계기가 되어 빛나는 제 2의 인생을 사시길 빕니다. 3.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해석이 대단히 어렵다. 우선 이 비유의 끝은 정확하게 어디일까? 8절의 하였으니: 4. 이 청지기는 분명히 불의한 청지기였으며 해고통지를 받고 한 일도 주인이 보기에는 큰 잘못이다. 다 만 채무자들과 일을 처리한 것이 자신이었으니 밀 백말 빚진 것도 사실은 원금이 80말이고 이자가 20말 이거나 아니면 주인에게 빚진 것은 80말이지만 거기에 자신의 몫이 첨가되어 100말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가운데 자신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 해도 쫓겨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쫓겨나기 전에 이 렇게 선심을 베푸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틀림없다. 다만 주인이 보기에 칭찬할 만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점에서 칭찬을 했는가? 지혜로움: 청지기가 재산을 이런 식으로 허비를 했다면 당장 감옥에 보내는 것이 정상인데 주인이 청지 기를 대하는 태도가 대단히 부드럽다. 아마 대단히 너그러운 주인이었거나 이 청지기를 특별히 아꼈던 것 같고 이 청지기는 그걸 믿고 마지막으로 또 한판 벌인 것 같다. 대도라고 불렸던 조세형이나 신창원 이는 결코 윤리적으로 칭찬 받을 사람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감탄하기도 하고 젊은이들 사이에 영 웅처럼 비치기도 한 것은 마치 의적인 것처럼 다른 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주인이 자기 재산을 함부로 허비하는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것도 윤리적인 면을 보고 칭찬한 것이 아니라 생의 최대 위기를 맞아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그 지혜로움을 칭찬한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을 듣고 있는 바리새인 들이나 제자들 모두에게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니 지혜로운 결단을 내리라는 촉구의 말씀으로 이해하 면 될 것이다. 5. 우리는 불신자들과 겨루어 모든 일에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도사지 만 세상에서 출세하는 일에는 그리 뛰어나지 못한 우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기의 때에는 그런 사람이 더 성공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컨닝의 귀재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이기려 면 나도 컨닝을 해버려? 빽이 필요하고 뇌물이 필요하면 나도 팍팍 써버려? 본문에서, 이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다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 돈, 공부, 취직, 승진을 위 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그러다가 공정하지 못한 동료들을 보면서 원망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 라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이걸 잊어버리면 세상 과, 동료와 제도를 비난하면서 뛰쳐나갈 가능성과 자포자기하고 자신도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 소속이 다른 그들과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빛의 자녀인 내가 어둠의 자식인 너희들과 함께 갈려니 힘은 든다마는 그래도 내가 사랑을 베풀리라 이러면 서. 6.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 는 우리 속담과 비슷해 보이는 말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돈을 버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 다. 불의의 재물이라는 말에 너무 관심을 두기보다는 비록 불의의 재물일지라도 (여기에 너무 예민하게 관심을 두어서 잘 쓰기만 하면 불의한 재물도 괜찮다는 식으로 이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재물을 버는 태 도에 대해서는 그것을 강조하는 본문을 참고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잘 쓰라는 것이다. 그러 니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웃을 수밖에 7. 예수님의 얘기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건데 그게 위의 이야기들과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 1) 한 가지는 돈을 잘 쓰는 것이다. 잘 쓴다면 그것은 돈이 주인이 아니라 종이 되는 것이다. 2)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도 이 말씀과 관련이 좀 있을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돈을 포기하는 것이다. 탕 감해준 빚이 아마 자신의 몫이었을 것이다. 8. 불의한 청지기와 바리새인과 비교해 보면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는? 미래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함 9.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이 있는가? 율법과 선지자: 율법은 모세오경을 가리키고 선지자는 나머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10. 청지기에게 주인이 셈하라 는 말은 엄청난 삶의 변화를 몰고오는 중대 사건이다. 그런 중대한 사건 이 바리새인들에게도 왔다. 도대체 어떤 사건인가? 자신들의 전문 분야인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가 끝나고 복음의 시대가 도래했다. 자기들만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사람마다 하나님 나라로 침입하고 있다. 1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져서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지만 그렇다고 율법이 폐하여지거나 변하는 - 4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6:1~31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그런데 한 획이 떨어지는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 바로 뒤이어서 이혼 문제를 언급하신 이유와 관련지어 보자. 우리말에서 한 획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얼마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서 의미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 지만 히브리 글자는 점 하나, 획 하나가 달라지면 엄청난 의미의 변화를 가져온다. 단순한 글자를 말하 는 것이 아니고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혼 문제에 관해서 바리새인들이 율법의 정 신을 왜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12. 성경은 이런 부자보다는 거지를 더 소중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1) 거지는 천국, 부자는 지옥에 갔다.(1점) 2) 부자는 이름이 없지만 거지는 이름이 나타나 있다. (2점, 더 좋은 답) 13. 부자는 재물이 많아서 지옥에 갔다? 결코 아니다. 재물이 많은 것을 자꾸 부정적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선하게 사 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야 한다. 재물이 문제가 아니 고 그렇게 많은 재물의 복을 받았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자가 하나님을 알고 잘 섬 겼더라면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겠는가? 마찬가지로 나사로는 거지였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이 아니 다. 거지였지만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더 나은 내세의 복을 누릴 수 있었다. 14. 잘 먹고 잘 살던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더욱 고통스럽다. 이 부자가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어떤 점인가? 하필이면 사람 취급도 안 했던 나사로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는 것 15. 죽은 자가 살아나서 천국을 보고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천국을 믿을까? 굉장한 바람을 일으킬 것이 다. 그러나 그 효과는 얼마가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영향력이 사라질 것이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병을 고치거나 예언을 하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의 입을 통해 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모세와 선지자들: 성경을 바르게 풀어서 전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병을 고치는 이적적인 능력보다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능력이 더 위대한 사역이다. 그런 이적적인 능력이 사람을 모으는 동기로 작용할 수는 있으나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은 여전히 말씀이다.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못 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다. 16. 주일학교 교재에 이 비유는 흔히 등장한다. 다만 결론 부분에 다소 생각해야 할 여지가 있음을 보았 다. 우리는 모두 나사로와 같은 사람이 됩시다 라고 결론을 맺은 것을 보았는데 어떤 위험이 있을까? 예수 믿는 사람이 전부 거지처럼 살자는 것으로 인식되거나 부자라면 무조건 지옥 가는 사람처럼 여겨 질 가능성이 있다. 나사로의 삶이 거지같아서 훌륭한 것이 아니라 거지였지만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위대했고 부자였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이었으므로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처럼 살면서도 나사로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면 더욱 좋은 것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 복음에 도 적극적이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도 적극적인 신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직장과 세상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17. 결국 이 비유에서 불의한 청지기와 부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래에 대해 대비한 것과 하지 않은 것 연락( ): 잔치를 벌여서 즐김 - 4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7:1~37 누가복음 17 장 1. 나도 저녁예배 때에 잘 자부[조]는 경향이 있다. 아주아주 옛날에 교회에 잘 오지 않는 아이가 있어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교회에 다니지 않기로 했단다. 이유는 선생님을 보면서 교회 다니는 것은 참 고달픈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피곤한데도 예배에 꼭 나와야 하다니... 눈에 불이 튀는 것 같았다. 아, 나 때문에 이렇게 실족하는 수가 있구나! 자 이제 나는 연자맷돌을 매고 죽어야 하나? 누가 나를 위 로할 수 없을까? 그 애는 작은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고등학생이었는데...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1): 우리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주님은 알고 계신다.(1점) 전혀 고의성이 없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이런 경우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2점) = 용서함으로 실족 케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용서하지 않음으로 실족케 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다(3-4): 어떠한 죄라 도 우리는 주님께 솔직하게 고백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질러진 잘못에 대해서 과도하게 자신을 질책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 관없이 일어나는 음욕의 경우가 그러하고, 특히 위의 경우에 예배시간에 조는 행위도 잘못은 잘못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 자체로 죽어야 할 만한 범죄행위는 아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애는 쓰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친구가 혹은 새 신자가 실족케 되는 경우는 이렇게 무 서운 문제가 될 수 있음으로 특히 새 신자나 어린 신자 앞에서 실족케 할 가능성이 있는 짓을 하지 않 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니라 이 말이 수동 으로 번역이 되어서 좀 헷갈리는 경향이 있다. 누구 목에 맷돌을 달아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게 쉽게 번역을 해보자. 연자 맷돌을 자기 목에 매고 바다에 빠져죽는 것이 낫다: 혹자는 아이가 실족케 되기 전에 그렇게 죽여버 리면 아이에게 유리하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길래 하는 말이다. 영어는 수동태를 많이 사용하지만 우리 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가능하면 능동태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말답다. 3. 하루에 일곱 번 용서하라는 말씀은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이다. 내일이면 14번, 모레면 21번... 이런 식 으로 쓸데없이 계산하지 말고. 용서해 주고 싶지 않지만 예수님의 공갈(?) 때문에 할 수 없이 용서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피곤해진다. 어떻게 하면 끝없이 용서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 이상의 비결은 없다. 내 자존심, 내 돈보다 한 영혼이 진정 소중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이것이 가능해진다. 종의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다(7-10): 형제를 대할 때, 나름대로 뭔가 봉사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길 때 우리 자신의 신분이 이러함을 잊지 말자. 이것이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예수 믿고 누리 는 진정한 기쁨은 이런 토대 위에서 가능하다. 4. 믿음을 더하소서 라는 말은 자기들에게 믿음이 있긴 있는데 좀 부족한 것 같으니 보완을 해달라는 것 처럼 들린다. 이에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제자들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다는 것이다. 겨자씨의 크기는 채송화씨보다 훨씬 작다. 채송화씨가 두께가 있다면 겨자씨는 두께가 없다. 채송화씨가 무게가 있다면 겨자씨는 무게가 없는 셈이다. 겨자씨 를 본 나의 느낌이다. 조금 굵은 먼지라고 할까? 그런 믿음도 없다는 것이다. 5.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종이 주인을 보고 배가 고프니까 밥을 주시오 한다면 말이 안 된단다. 지금처 럼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보편화되었으니 이상하게 들리지, 머슴도 아닌 종이 있던 시절에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종도 나라마다 대우하는 것이 달랐지만 자신보다 주인을 더 소중하게 섬겨야 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였다. 이 돼먹지 않은 종은 누구인가? 주인보다 자기를 먼저 챙기는 종 (1점)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제자들(2점): 주인 앞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점 6. 열 명의 문둥병자(요즈음 용어로는 한센씨 병) 중에 감사하러 돌아온 한 사람 그가 받은 보너스는? 영혼구원: 기본이 된 사람보다 안된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그 비율이 9대 1이나 될까? 사람들과 어 울려 살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본적인 태도조차 안된 사람이 그렇게 많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표현할 줄 아는 우리가 되자. 그래서 손해볼 것 하나도 없다. 감사를 표현하면서 살면 오히려 자다가 떡이 생길 것 이다. 7. 문둥병자를 고치신 사건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개취급을 받던 사마리아인이 유대인보다 더 부각되는 것: 누가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 대한 기록을 남 긴 사람이다.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향하는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어서 이런 것이 더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8. 문둥병자들이 깨끗함을 받는 데에도 믿음의 행위는 있었다. 만약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깨끗해져야 제사장에게 몸을 보일 수 있지: 문둥병이 다 나으면 제사장에게 보이고 완치 판정을 받아야 정 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고치시지도 않은 채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것이다. 고쳐줘 - 4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7:1~37 야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 아닙니까 하고 반문할 수도 있는데 본문은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 고 기록하 고 있다. 순종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과 유사한 행위 는 성경 곳곳에 널려 있다. 기적보다는 순종이 먼저다. 9.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1) 는 이 구절도 다소 헷갈리게 하는 말씀이다. 영어로 하면 쉽 게 이해가 되는 말이다. 너희 안에 라는 말이 in you 일까 혹은 among you 일까? among you: 여기서는 너희들 가운데(in the midst of you)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마음에 있다 는 말이 아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서 이미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10. 우리나라에만 해도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예수는 수백 명이 넘는다. 광고까지 하는 재림 예수도 있는데 재림 예수라고 선전하는 것은 거짓이다. 왜? 재림 예수는 선전할 시간도, 자신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번개가 번쩍이듯이 모든 장소에 동시에 임할 것이 기 때문에 선전할 필요가 없다. 선전하거나 설명하고 있으면 무조건 가짜다. 11.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이 동시에 있다. 볼 수 없는 현재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과 동시 에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이고(20-21) 재림과 동시에 임하는 미래의 하나님 나라는 온 세상 사람들이 동시에 볼 수 있게 임한다(23-24) 12.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 팔고, 집을 짓고, 이건 다 나쁜 짓인가? 하나 빠진 것이 있는 데? 이 행위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행한 모든 일이 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장 가들고, 시집가는 일은 상 받을 일이다. 이런 예수를 왜 안 믿어? 빠진 것 하나: 심고 13.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노아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재앙에 대해서 많이 경고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 었다. 막상 비가 쏟아지자 사람들이 방주로 달려왔지만 문이 굳게 닫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하나님 께서 문을 닫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이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다. 그 때는 왜 사람들이 꼼짝하지 못할까? 사람들의 동작보다 예수님의 동작이 더 빠르기 때문에(24): 아, 예수님이 오시는구나 회개하자 할 틈이 없 다는 것이다. 번쩍하는 순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마는 것이다. 천국갈 사람과 지옥갈 사람에 대한 판정이 순식간에 완료되고 남은 일은 찬송하느냐 이빨을 가느냐밖에 없을 것이다. 14.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지던 때에 뒤를 돌아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는데 롯의 처는 왜 돌아보 았을까? 이것은 오늘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은 멸망할 자에게는 소 돔 고모라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일 것이며, 노아의 홍수보다 더 무서운 날이 될 것이다. 아마 뒤돌아볼 겨를도 없을 것이다. 그 날 뒤돌아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가? 평소에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않은 것을 잘 구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 하지 않으며, 마치 모래성을 쌓던 아이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다 버려두고 떠나듯이... 15. 누구 말마따나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본문 끄트머리에 있단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고 재미 삼아 찾아보자. 잠자는 두 남자가 있는데(밤) 매를 가는 두 여자가 있다(낮)는 점: 예수님의 재림이 전 지구에 걸쳐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므로 한 쪽에는 낮이지만 한 쪽에는 밤이다. 재림은 지구의 어느 한 쪽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사건이 될 것이다. 16. 본문에 나오는 질문과 대답은 거의가 동문서답 같아 보인다. 그것은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 의 생각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할 것인지 때 를 물었지만 때에 관한 이야기 는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 으로 임하는지에 대해서만 두 가지로 설명을 하셨다. 비슷한 현 상인데 37절에서 제자들이 물은 것은 무엇이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 제자들이 물은 것: 장소 - 앞에서 데려감을 당한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대답: 장소에 신경 쓰지 말고 말세의 징조가 무엇인지 생각이나 해 보아라. 17.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때를 물은 데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 셈이다. 너희 가 세상의 낙에 파묻혀 살고 있을 어느 날 소돔 고모라에 유황불이 쏟아지듯이 재앙이 오리라. 이 답변 에서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이 가장 놀란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날이 재앙이라는 것 18. 다음 ( )에 알맞은 단어는? 주남선 목사님은 일제시대 때 일제에 항거하며 신사참배를 거절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고려 신학교를 세우고 귀한 일을 하신 분이시다. 거창지방에서 초대 국회의원에 출마하겠다는 말만 하시면 - 4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7:1~37 나머지 일은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주변에서 강권하다시피 하였지만 나는 그리스도의 ( )이지 국회의 원에 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야 라는 말로 뿌리쳤다고 한다. 얼마 후 일제에 항거한 공로를 인정하여 정부에서 건국훈장을 주겠다고 했을 때 국민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을 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거절하였다. 본문의 어느 구절을 실천한 셈인가? 종, 10절: 아이들이 밥을 다 먹었으니 상을 달라는 것이나 학생이 공부를 잘 했으니 상을 달라는 것, 회 사의 근속상 등은 따지고 보면 좀 우스운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지녀야 할 자세이다. 우 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 49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8:1~43 누가복음 18 장 1.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준 것은 자꾸 찾아와서 번거롭게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러면 우리가 이 과부처럼 밤낮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까? 귀찮아서? 주기 싫은데 하도 고집이 세니?: 말도 안 된다. 사도 바울에게 은혜가 족하니 그 문제로 더 이 상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 역시 기도의 응답이다. 비록 재판관은 귀찮아서 들어주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귀찮아서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오직 자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비록 원한에 사무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최선의 응답을 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 리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2. 들어줄 수 없는 기도를 자꾸 조른다고 들어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 아버지는 한 번 안 된다면 안돼요 라는 말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안될 것을 되게 해 주신다? 자꾸 조르면? 우리가 아무리 졸라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법이다. 다만 어떤 방식이었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응답하실 것이 확실함으로 비록 고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꾸준하게,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3. 항상 기도하라 는 말과 비슷한 표현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다. 그러면 언제 쉬고, 언제 밥먹고, 직 장은 언제 가지?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하는 삶이어야 한다: 즉 밥 먹고, 직장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기도 의 삶이어야 한다. 4. 비유로 설명한다는 것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판관과 하나님에게 어떤 점이 같은가? 원한을 풀어주는 것: 불의한 재판관도 소원을 들어준다면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뜻이다. 단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떼를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 했다는 점이다. 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들어준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비유는 항상 일부만 진리이다. 불의한 재판관과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는 한 단어를 찾아보 자. 하물며: 하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재판관도 이러한 데 하물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느냐? 6.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은 이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어떤 사람이 없 을 것이란 말인가? 세계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않는 사람: 우리가 보기에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의 정하신 최선의 때에 최선의 방법으로 들어주시는 것을 낙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논리적으로 주장할 때 제대로 대답도 못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고고학의 발달이라는 통쾌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셨다. (고등비평에 대한 고고학의 발달)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다시 나오게 될 것이라는 약속도 어쩌면 모두가 다 잊어버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불러내어 새로운 민 족으로 이끌어 가셨다.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이 다. 7. 바리새인이 말하는 것, 즉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않고 세리와 같지 않다는 말은 사실일까? 거짓일 까? 틀림없이 사실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은 거의 맞는 것 같다. 문제는 그것을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남을 멸시하는 방편으로 삼았다는 것이 잘못이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 것까지 잘못은 아니 다.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의롭게 여긴 것도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다소 잘못이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자 신만 의롭게 살면 좋을 텐데 자기처럼 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정죄한 것이다. 선하게 살려는 사람이 옆의 사람을 돌아보면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나므로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악함에 신경 쓰지 말고... 8. 또 한 주간을 세상 속에서 죄만 짓다가 오늘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가끔 나오는 대목 이다. 정말 하나님을 깨끗이 잊어버리고 한 주간을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온통 죄만 지으며 살았단 말인 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열심히 살았다는 고백을 하면 안 되나?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부족 함이 많았다면 또 몰라도... 우리의 기도가 어떤 유형인지 살펴보자. 우리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닮 았는가 아니면 세리의 기도를 닮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기도인가? 바리새인의 기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랑하고 싶은 게 있다. 세리의 기도: 자신이 늘 죄인처럼 살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보다는 낫다. 우리의 기도: 바리새인처럼 열심히 살자.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아님을 알아서 겸손하 게 엎드리자. 감사의 기도: 기도의 최고봉은 감사와 찬양이다. 하나님께 요구할 것도 없고, 오직 감사함으로 찬양만이 넘치는 것이 최고의 기도다.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자는 질문이다. 정답이 따로 없 음: 세리가 칭찬을 받았다고 세리처럼 살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 자세가 그래야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은 바리새인에게 배워야 할 점이다. 마음 자세는 세리에게 배우고, 바르게 살려 - 50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8:1~43 는 노력은 바리새인에게 배워야 한다) 9. 어린이라는 말은 방정환 선생님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만들어진지 150년정도 된 말이다. 하 는 이 라는 말 속에는 하나의 인격으로 대우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예수님 당시에도 여자나 어린아이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예수님의 이 답변은 얼마 나 파격적인 것인지 모른다. 방정환 선생님보다 2000년정도 일찍 이런 가르침을 베풀었으니 말이다. 우리 나라 방 선생님도 어린아이를 어른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주장을 함으로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시는가? 천국의 주인: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지닌 자 10. 17절은 세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다음 중 어느 것이 옳으며 그렇다면 우리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무엇인가? 1)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 돌보듯이 받들어야 한다. 2)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함께 받들어야 한다. 3)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가 받드는 것 같이 받들어야 한다. 3번: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진무구함(=단순한 믿음) 11. 예수님께 찾아온 이 관원은 실제로 율법을 다 지키면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음이 틀림없다. 그가 내 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의 첫 답변을 듣고는 매우 기뻤을 것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바로 그 대답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뒤이은 다음 대답이 그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그 가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산이 많기 때문이다(1점), 영생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늘의 보화에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이 땅에서의 재 산이 하늘의 보화보다 더 중요하였다(2점): 마치 양다리 걸치듯이 처음부터 질문이 잘못됐다(3점): 영생은 내가 무엇을 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일 이다. 차라리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누가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어야 했다. 예수 님께서 하시고 싶은 대답은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이 관원은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실망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12. 이 부자 관원이 실망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고 제자들도 걱정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말에 베드로는 쾌재를 불렀다. 왜? 자신들의 것을 다 버리고 예수를 좇았으니 하나님 나라는 따 놓은 당상 이라고 생각했다. 22절의 하늘 에서 보화 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13.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의미를 찬찬히 새겨야 할 때가 더욱 많다. 가령, 29-30을 문자적으로 잘못 이해하면 우리는 가정을 다 버려야 한다. 부모도 버려야 한다면 부 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어떻게 하나? 아내도 버리면 금세에 여러 배를 받는다고? 한 번 버려봐? 재산도 많아봐야 다 나누어주어야 하는 것(22)이라면 굳이 많이 벌려고 애쓸 필요도 없잖아? 그러면 어떡하란 말인가? 가족을 버리면 안 된다. 재산도 함부로 허비하면 안 되고 많이 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위에 둔 사람들에게 있다. 생의 최종 목표가 이런 것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버 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단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선하게 사용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도 따지고 보면 영적인 복이지 육신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집도 가족도 없이 사신 분이며, 이 땅에서의 영화를 바란 분이 아니 지 않은가? 제자들 중에 이런 복을 받아누리며 이 땅에서 호화롭게 살다가 간 사람이 있는가? 물론 그 렇게 사는 것보다 더 큰 행복과 평안을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누림의 질에 관한 문제이지 양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위장이 탈이 나서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진수성찬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14.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수님에 관한 글(31): 구약의 기록은 여러 가지 상황과 관련된 수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메 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된 것이다. 예수님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구약을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이다. 15.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실 것을 말씀하시는데도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말씀이 감추어졌기(34) 때문이다. 말해주어도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를 그 앞의 베드로의 말을 근거로 해서 답을 찾아보자. 28절의 말은 무엇인가 큰 것을 노리고 있는 느낌을 준다: 세속적 야욕이 우리를 지배하는 한 하나님의 말 씀은 공허할 뿐이다. 16.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능력이 있는 분이 무엇 때문에 이방인의 손에 넘겨져서 그런 수난을 겪는가?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에 대해서 반복해서 말해도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단지 우리 대신 죽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능력과 상관 없이 어떻게든 죽으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셨다. 아담에게 선고되었던 그 죽음의 값을 대신 치르시 는 것이다. - 5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8:1~43 17. 여리고에 있던 이 소경은 고침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의 꾸짖음에 굴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1점).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 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소 얕잡아 보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말을 듣고 대뜸 다 윗의 자손 예수 라고 부른 점이다(2점).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사 11:1) 18. 이 소경들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눈을 떴다. 막차에 간신히 올라탄 사람의 행복이나 안도감이 느껴진 다. 왜? 바로 며칠 뒤에 예수님이 돌아가실 것이므로: 이 때 기회를 잘 잡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소경으로 지냈을 텐데. 19.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미 주시기로 작정한 것이라도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간절하게 기도해서 주어진 것(개인적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은 것)과 저절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 (우리에게 저절로 주어져 있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 비교해 보면 자명해진다. 이런 뻔한 질문을 본문에서 찾는다면? 소경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신 것: 너무나 뻔한 질문을 하시는 이유는 그런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자지간에도 필요한 학비, 하숙비... 알아서 주시겠지 하고 그냥 있는 것보 다는 적당한 때에 적당하게 말씀도 드리고 감사도 표하는 것이 부자관계를 더 원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 5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9:1~48 누가복음 19 장 1.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재산, 지위, 외모, 성격, 평판) 부자, 세리장(여리고는 목이 좋아서 세리장 중에도 요직임), 흠은 키가 작은 것(마음먹기에 따라 결코 흠이 될 수 없음),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코스를 미리 예상하고 나무에 올라감. 소위 잘나가는 어른께서?), 죄인: 돈의 힘과 권력의 힘을 함께 가진 자, 키가 작은 사람이 다부지다고 한다. 따라서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나폴 레옹, 강감찬, 박정희처럼... 2. 죄인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서 회개하고 사람이 변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삭개오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부자고 세리장이니까 세리 노릇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착취를 했겠느냐는 짐작일 뿐이다: 본문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죄인이란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과 민족적인 감정까지 겹쳐서 세리를 보고 으레 그렇게 말한 것 이지 삭개오 개인이 특별하게 죄를 많이 지었다고 단정할 만한 요소는 없는 것 같다. 토색한 것이 있으 면 4배로 갚겠다고 하는 말도 그가 꼭 토색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의 재산이 전부 그렇게 모아진 것이 라면 4배로 갚을 게 어디 있나? 3. 삭개오가 복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심(1점): 이것도 소중한 것이며 복이다. 예수님이 잃은 자를 찾으려고 다니시기 때문(2점): 삭개오가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해도 예수님이 찾지 않으 면 그 열심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의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기 원하는 하 나님의 열심이 더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말자(10). 4.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관원(18:18-23)에 비하면 삭개오는 정말 대단하다. 죄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를 만나서 삭개오가 이렇게 변했다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 많은 사람이 운집한 가운데 키가 작고 지위가 높은 그가 뽕나무에 올라가서까지 예수를 보겠다고 하는 것과 즐거워하며 예수를 영접하는 모 습,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라는 말에서 삭개오는 어 떤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좋을까? 죄인이라고 불리는 세리 일을 하면서도 바르게 살려고 애를 많이 썼던 사람: 주일을 제대로 지키고, 교회를 섬길려면 이 짓을 때려 치워야 하는데... 라면서 고민하는 성도. 그런 가슴 아픈 자에게 예수님은 찾아오 셔서 놀라운 복으로 채우시는 것이다. 바울이 아주 흉악한 악질이었는데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지를 잘 모른 채 열심만 앞선 그를 찾아오셔서 방향만 제대로 잡 아 주셨다. 즉 바울에게 변한 것은 방향이지만 그 이전부터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었 다. 삭개오에게도 비슷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무리는 아닌 것 같다. 5. 삭개오가 예수님께 접근하는데 두 가지 장애 요소가 있었다. 하나는 키가 작다는 것으로 대표될 수 있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문제인데 대부분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꼭 한번 만나 봐야겠다라고 마음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 외에 또 다른 장애 요소는 무엇인가? 많은 군중이라는 외부적 요인이다: 이건 삭개오가 해결할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문제이다. 예수님께 접근 하려는 사람을 우리가 막고 있지 않은지 조심해야 한다. 6. 삭개오가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며,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하는 말에서 우리 가 헌금을 드릴 때 본받아야 할 점이 있다면? 자원하는 마음, 혹은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것: 헌금은 의무라기보다는 감사의 예물이어야 한다. 하나님 께 받은 것의 극히 적은 일부를 감사함으로 되돌려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7. 삭개오는 평생 사람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살아왔을 것이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고 살았는데 그 모든 원한이 한꺼번에 풀리는 말은 무엇일까? 이 사람(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이다. 따라서 이 말은 삭개오를 당당한 유대인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발언이니 삭개오로써는 얼마나 감격했을 것인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8. 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나라가 당장 에 나타날 줄 로 알았기 때문인데 그와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 는 것 이다. 1) 이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하는 것과 대조가 되는가? 그렇다면 2) 이 비유의 핵심 은 무엇인가? 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뜻 2) 내가 좀 다녀 올 터인데 충성하고 있으라. 9. 그 당시 유대의 통치자들은 로마에서 임명하거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비록 왕자로서 왕위를 물려받 았다 해도 로마의 인준을 받아야 했으므로 왕위를 받으러 로마로 가야 했다(12). 왕위를 받으러 갔다가 도로 빼앗겨버린 왕도 있었고 때로는 백성의 대표들이 로마로 가서(14) 왕을 바꾸어 주든지 로마 원로원 에서 직접 다스려 달라고 해서 왕이 귀양을 가기도 하고 총독이 부임하기도 했다. 자, 본문으로 돌아와 서 이렇게 왕위를 얻어서 돌아오는 기간이 짧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 5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9:1~48 장사해서 5배, 10배 이익을 남겼다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 예수님의 부활이후 재림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을 암시하고 있다. 10. 제자들은 당장에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는 것을 기대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기 다리면서 충성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재림 때에 이 모든 일에 대해서 공과( )를 따라 상벌이 있을 것 이다. 누가 가장 곤란할까? 나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던 자: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럼 모양이 될 수밖에 없다. 11. 가장 충성한 종의 축복은? 열 고을을 차지했다 (1점) 남의 밑에 있는 종이 아니라 권세를 누리는 자가 된 점(2점): 우리가 누리는, 앞으로 누리게 될 가장 큰 복은 우리에게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2. 악한 종의 잘못이 무엇인가?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것도 당시에 돈 을 보관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묻어두고 누군가가 훔쳐갈까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성공적 으로 지킨 것만도 수고를 많이 한 것이다. 주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두려워한 것: 주인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택했을 뿐이 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다. 13. 예수 믿으면 됐지 굳이 또 그렇게 열심히 성경공부를 해야 되고 예배에 시간마다 쫓아다녀야 하는 가? 그래야 할 이유는 많지만 본문에 근거해서 대답을 한다면? 천국은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재물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하나님 을 아는 지식의 제곱에 비례한다. 게으른 종의 말로가 비참해진 것은 그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이다(22). 14. 왕위를 받으러 간 귀인과 예수님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다시 온다는 것, 다시 올 때는 더욱 강력한 권세를 가짐, 여러 종류의 종들이 있다는 점, 맡긴 것이 있다 는 점, 엄한 점도 있다(공의). 15. 나귀를 구해오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미리 알고 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몰래 미리 부탁을 해두신 것일까? 예지적인 능력: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성경을 하나님께서 쓰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몰래 시킨 일: 예수님께서 무언가 신비로움을 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몰래 준비했다고 대답하고 싶은 사 람은 아무래도 성경을 사람의 글로 보는 사람이다. 16. 예수님이 왜 하필이면 나귀새끼를 타셨는가? 좀 튼튼하고 위엄도 있는 말이 더 어울린 텐데?(참고 슥 9:9-10) 평화의 왕, 겸손한 왕: 말이나, 노새는 전쟁용으로 사용되었지만 나귀, 더구나 새끼는... 어쩌면 우스꽝스러 웠을지도 모른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슥 9:9-10) 17. 겉옷을 까는 행위는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그렇게 환영하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며칠 뒤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을까? 엉뚱한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되어서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어 긋났을 때 사랑은 갑자기 미움으로 변한다. 18. 나귀새끼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 나귀새끼가 난생 처음 겪는 일은 무엇인가? 여태 아무도 태워보지 않았음: 아이고, 무거워라. 이렇게 많은 사람의 환호를 본 적이 없음 19. 소리지르는 돌들 이라는 책이 있다. 사람이 입을 다물면 돌이 소리를 지르리라는 본문과는 내용상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자들이 대답할 능력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 었더니 땅 속에 있는 돌들이 소리를 질러 무식하게 용감한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는 내용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의 책일까? 비평학자들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오류가 많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비평하며 득세를 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고고학이 발달하기 시작 하면서 그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해석되기 시작했다. 바로 비문, 비석, 토 판에 써진 글들이 성경의 역사성을 증명해 주었다. 즉 성서고고학에 관한 책이다. 20. 예수님이 우셨다는 기록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나사로의 죽음 앞이고 또 한 번은 예루살렘의 멸망 - 5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19:1~48 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다. 그게 환호하는 무리들을 뒤로한 채 메시야가 울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 슬픈 일일까? 슬픈 일이다(1점) 에덴을 잃어버리고 이런 비참함을 겪어야 하는 인류의 불쌍함을 보시고 우시는 것이다(2점). 자신은 그 일을 위하여 오셨고 이제 막 완수하시려는 순간이다. 21. AD 70년에 로마 장군 디도(Titus)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토성을 쌓아올려 마침내 예루살렘을 파괴하 고 만다. 오랫동안 포위되어 버티는 동안 온갖 참혹한 일이 다 일어났다. 물론 성전도 철저하게 파괴된 다.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은 평화에 관한 일이 숨기웠고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다(42, 44). 예수님의 이 말씀을 쉬운 말로 설명해 보자. 이 땅에 온 하나님 아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배척함 22. 어떤 두꺼비는 알을 품고 독사의 약을 올린단다. 독사는 두꺼비를 잡아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 지만 결국은 약이 올라 이 두꺼비를 잡아먹고 만단다. 그러면 독사의 몸에서 두꺼비가 부화되어 결국은 독사가 죽고 두꺼비들이 태어난단다.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꼭 두 꺼비처럼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무엇이? 죽기 위해서 약을 올리는 것 같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그 앞에 서 날마다 백성들을 가르치시니. - 5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0:1~47 누가복음 20 장 1.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를 책잡기 위해 도전하는 무리들이 곱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시각 에서 보면 진리수호이며 검증받지 않은 문외한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뿐이었다.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을 하셨나 안 하셨나? 왜? 안 하셨다: 진실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서는 어떤 대답도 의미가 없다. 대답하셨다: 이미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은 유대 사회에 공인된 것이다. 그렇 다면 예수도 하늘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자명한 일 아니냐는 것이다. 2. 도대체 저 젊은 친구가 하는 짓이 눈꼴이 시어서 못 보겠다. 지가 무슨 자격증이 있나? 학교를 제대 로 나왔나? 누가 함부로 백성을 가르쳐도 좋다고 했단 말인가?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 밥줄이 끊어질 지도 모른다 아마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께 따지러들었을 것이다. 결국은 찍소리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따져보아야 이길 수 없는 이유를 5-7절을 근거로 설명해 보자. 그들의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혹은 올바른 진리를 찾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두려워 소신대로 답하지 못하는 판이니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와 다투어 이길 수 있겠는가? 결국은 비정상적인 비열한 수법을 쓸 수밖에. 3. 주인이 왜 타국에 가서 오래 있었을까? 당시의 형편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유 대의 귀족이나 왕족도 로마의 귀족들에게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아무 힘도 없었으니 로마에 가서 살기도 하고 억류되어 있기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보면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잘하면 포도원이 자기들 소유가 되는 수가 없잖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이다. 더구 나 그 주인이 로마인이거나 혹은 부재지주에 대한 반항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는 수도 있었을 것 이다. 각설하고, 예수께서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이 포도원 비유가 가장 쉬웠던 모양이다. 사람들이 비유의 내용을 잘 알아들었다(16,19). 포도원 주인이 보낸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가리 킨다. 그러면 1) 그 앞서 세 번이나 보낸 종은 누구를 가리키며 2)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 은 무슨 의미길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라고 했을까? 1)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 2) 이스라엘은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방인들에게 주어지는 것 4. 이 포도원은 이상한 사람들 투성이다. 우선 세를 내야 하는 농부들부터 이상한 사람들인데 이상하다 기보다는 악하다고 해야겠다. 이런 농부들에게 계속해서 종을 보내는 주인도 이상하다. 한 번 세를 내지 않겠다고 반항하면 끝내면 될 텐데 계속 다른 종을 보내는 것도 그렇고 고민하면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 내는 것도 그렇다. 누구나 쉽게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비유지만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할까? 하나님이 악한 사람들을 이상한 방법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단칼에 날려버리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 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에서 건축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 말하자면 건축의 전문가인 셈이다. 전문가가 쓸모없다고 버린 것이 머릿돌이 된다 면 건축가가 잘못인가? 건축가로서는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은 하나님 때문이다. 원래 하나님은 세 상의 약한 것들을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겸손하게 하나님을 찾는 자 를 들어서 강한 자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건축의 전문가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치 못한 자세가 잘못 이라면 잘못이다. 6. 모퉁이의 머릿돌은 원래 건물의 가장 요긴한 받침대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가리키는 이 모퉁이의 머 릿돌은 한 가지 역할이 더 있다. 그래서 함부로 던지지 말고, 함부로 덤비지도 말아야 한다. 무슨 역할? 심판하는 역할: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든든한 구원자이며 유일한 구원의 수단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동시에 심판자이시다. 7.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이끄는 임무를 맡고 있음에도 악한 일에 앞 장서고 있는 이유를 본문에 있는 말로 대답하면 무엇인가? 백성들을 두려워함으로(6, 19): 교회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 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면, 아니, 사람을 두려워하면 이미 그는 교회의 지도자가 아니다. 8.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말씀에 근거해서 이기지 못하면 깨끗이 굴복을 해야지 다른 권위로 제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인 죄목으로 예수를 얽어 맬 수 없어서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고 하 다니 이제 무슨 죄목으로 잡으려 하는가? 정치적인 죄목, 즉 국가 반역죄: 로마에 저항한다고 고소를 할 셈인데 집안싸움을 이기기 위해 외부 사람 을 끌어들이는 경우와 같다. 9. 책잡기 위해서 말을 걸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르며 참되다(21) 고 마음에도 없는 아부성 발언을 하 - 5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0:1~47 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하느라고: 사람은 항상 자기 수준대로 이해하는 버릇이 있다. 자기들이 사 람이 두려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니 예수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덫을 놓는 것이다. 가소롭기 는... 특별한 이유 없이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10. 세금문제는 지금도 미묘한 문제인데 식민지배를 받는 당시에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었다. 자칫 잘못 대답했다가는 양쪽에서 버림을 받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 다 고 하면 민심이 떠날 것이며 바치지 말라 하면 국가의 반역자라고 얽어맬 수 있으니 정말 절묘한 질문이다. 함정을 피해가는 예수님의 대답은 더욱 절묘하다. 많은 유대인들은 이만한 능력을 가진 예수 께서 로마에 대항하여 일어선다면 당장에라도 나라를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으나 예수님 은 그런 일에 전혀 흥미가 없으신 듯하다. 데나리온은 당시에 꽤 고액의 돈이어서 일반인들은 잘 가지 지 못하는 것이며 더군다나 가이사의 이 그려져 있어서 유대인들은 십계명의 제 2계명 위배라고 생각하고 소지하지 않았다. 그것을 주머니에서 끄집어내는 순간 질문자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그 다음 대답은 더욱 절묘하지만... 화상( ) 11. 다음 타자도 역시 절묘한 질문을 들고 나왔다. 7형제가 한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부활 때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는 의도가 무엇인가? 부활이 없다: 부활이 있다면 이럴 경우에는 얼마나 곤란하겠느냐는 의도이다. 사두개인들은 소수의 부유 한 귀족층이다. 이들에게는 천국보다 현실이 훨씬 더 좋은 곳이었다. 12. 아마 이 사두개인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지금도 많이 있을 것 같다. 재혼한 사람은 천국에서 부인을 둘 데리고 살까? 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이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으나 결혼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천 국의 삶이 현재 삶의 연장이나 확장이 아닌 질적 변화가 있음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둘이 하나가 되는 관계를 넘어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인 관계일 것이다. 천사와 같다는 말은 육체 의 모든 소욕에서 벗어나는 것과 영원한 생명을 지닌 새로운 질서 속에 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범죄하 기 전, 처음 창조되었던 몸보다 더 차원이 높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과 비교 해 보는 것이 이해하기 좋을 것) 13. 우리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다. OO의 아버지, 의 아들, 회사 과장... 천국에서는 어떻게 불릴 까? 하나님의 자녀(36): 모두가 하나되어 구별이나 차별이 전혀 없는 유일한 이름일 것이다. 이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가능한 스마트카드일 것이다. 14.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영도 천사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위대한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다 죽어서 사라진 조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충격적인 발언을 하셨다. 하나님의 칭호로 사용되었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의 의미를 이라고 새 롭게 해석한 것이다. 본래 이 표현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인데 예수님의 이 해석은 사두개인들의 기초를 흔드는 충격이었다. 산 자의 하나님: 나는 너희 할아버지의 친구란다는 말과 나는 너희 할아버지의 친구였단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시제에 따라 살아 있다는 느낌과 죽었다는 느낌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15. 사두개인이 질문하고 말이 막히자 쾌재를 부른 사람은? 서기관 중에 어떤 자: 자기들이 예수님께 따지고 들었다가 실패했는데 만약 사두개인들이 이기면 자기들 의 위신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데 사두개인들도 찍소리 못하자 예수님을 보고 선생이여 말씀이 옳으 니이다 라고 했다. 예수도 싫지만 경쟁자에게 지는 것은 더욱 싫다. 아! 정말 고약한 인생이여! 사두개인 들이 이 질문을 바리새인들에게 했을지도 모른다. 바리새인들도 정말 대답하지 못하는 곤란한 질문이었 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멋지게 대답을 하셨다. 잠시 본분을 잊은 채 예수님께 찬사를 돌렸다. 16. 예수께서 모처럼 공격을 시도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마태복음에는 감히 더 이상 묻는 자가 없더라고 했고 마가복음에는 백성들이 즐겁게 듣더라고 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대답해 보자. 1)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 2) 그러면 다윗이 왜 자기의 자손을 주라 칭하였는가? 1) 그렇다: 그리스도는 인성을 지닌 사람이다(롬 1:3).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나 다윗의 영광을 되찾을 분이 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롬1:4): 자기의 후손이라는 사람의 모습으로 올지라도 본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 이다. 우리에게는 밝히 계시되었기 때문에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닌 예수를 쉽게 이해하지만 당시의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에게는 극히 어려운 질문이었음에 틀림없다. 17. 서기관들을 주의하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서기관들의 잘못을 간단하게 말하면 무 엇인가? - 5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0:1~47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는 것: 긴 옷이란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는 예복이다. 18. 길게 기도하는 것은 나쁘다. 예수님도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니 기도를 짧게 하자?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길게 하는 것이 문제다. 가이사: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말로 시이저 혹은 케사르 라고 읽히기도 함, 쥴리어스 시이저의 family name이었다가 황제를 칭하는 말로 사용됨. 예수님 당시의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음 - 5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1:1~38 누가복음 21 장 1.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시는 것은 헌금액수가 많고 적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율(%)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O, X?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O: (1점, 액수가 적음에도 가장 많이 했다고 하시므로) 일단 정답으로 간주한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으 나 예수님이 헌금 액수에 관심이 없다면 생활비 전부 라는 말을 꼭 비율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색하다. 비율 역시 액수를 결정짓는 변수로서 액수와 다소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X: (헌금하는 자의 마음 상태-2점, 이유가 없거나 다른 이유는 0점)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대 답하는 이유가 더 중요하다. 비율이 아니라 마음 상태 라 해야 옳다. 만약 비율로만 따진다면 부자는 대 단히 불리하다. 가난한 자가 생활비 전부를 바치는 것은 오히려 부자보다 쉽다. 부족한 생활비를 회복하 는 것도 더 쉽다. 단순한 비율만 따진다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섬기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성경은 가 난한 자의 마음은 소중하게 여기지만 가난을 결코 복으로 여기지 않는다. 2. 아무리 가난한 과부지만 적은 물질이라도 드리지 않았느냐? 그것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빈손으로 나오면 안 된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다 이런 해석에 대한 소감은? 이 본문은 헌금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드리는 그 마음 을 크게 보시 는 것이다. 적어도 이 본문은 헌금을 하라, 말아라 의 문제가 아니다. 액수나 비율이 아니라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는 자세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얼마를 드려야 하느냐 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3. 한문 관주 성경(90.7.30, 71판)의 난외주에 보면 렙돈이 은전의 명칭 이라고 나와 있다. 가난한 여인이 은전을 바쳤을 리가 없다 싶어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동전 이란다. 막 12:42의 난외주에는 헬라 동전 의 명칭 이라고 적혀 있으니 누가복음 본문의 난외주 인쇄가 잘못된 모양이다. 아! 성경공부 하다가 옥 에 티를 발견하는 이 기쁨! 사람의 심리가 어째 이 모양일까? 렙돈(=눅 12:59의 호리)은 당시 화폐의 가장 작은 단위란다. 왜 두 렙돈을 헌금했을까? 그게 생활비의 전부라면 한 렙돈 정도는 남겨두지 않고? 상상 력을 동원해 보기 바란다. 렙돈이 하도 작은 돈이어서 한 렙돈을 헌금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두 렙돈 은 헌금할 수 있는 최소금액이었다. 4. 이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고 불리던 것인데 헤롯이 속셈이 있어서 지은 건물이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 니라 에돔사람이었는데 출신에 대한 약점도 가릴 겸, 통치권을 공고히 하려는 다목적 계산으로 로마의 뛰어난 건축술을 반영한 거대한 성전을 건축하였다. 주후 70년 경,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 로마군인들 사이에는 성전을 이루고 있는 돌과 돌 사이에는 금이 들어있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그래서 어떻게 되 었을까? 본문에 있는 표현으로 대답해 보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져 버렸다. 5. 헤롯 성전은 거대한 대리석 기둥과 황금색 지붕으로 장엄함과 화려함이 극치를 이루었다고 한다. 내 부에는 여러 왕들과 부자들이 바친 보물들이 장식으로 사용되어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으며 예수의 제자 들도 예수님께 자랑을 했다(막13:1). 사람들의 눈에는 성전이 미석( )과 헌물( )로 꾸며진 것이 보였 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눈에 무엇이 보여야 옳은가? 예수님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 완전하게 무너진 모습: 성전이 성전다운 것은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건물만 멋지게 서 있다고 성전이 아니다. 교회당도 마찬가지다. 6. 성전이 깨끗하게 무너질 것이란 얘기는 엄청나게 충격적이다. 이건 무고죄로 고발이 될 수도 있다. 예 수님을 고발하는 사람들이 성전을 헐겠다 고 말했다고 거짓 증거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전혀 놀라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5절에 나온 어떤 사람들도 예수의 제자들이다. 12절을 보면 닥쳐오는 핍박을 이겨내야 하는 성도들임을 알 수 있다. 이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은 유대종교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 성전을 중심 으로 자신의 권위와 부를 유지했던 제사장, 사두개인들, 지도자들이 몰락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7. 13절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는 말씀은 난외주에 있는 대로 증거의 기회가 되리라 는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한다. 대적자들의 핍박이 오히려 복음을 증거하는 좋은 기회가 된 예는 아주 많다. 로마 교 회가 박해를 받을 때 박해자들이 오히려 회개하고 돌아서는 역사가 그 좋은 예이다. 이 본문을 그렇게 번역을 해도 좋은 이유는 그 다음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증거의 기회 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단어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변명, 구재( :유창한 말솜씨), 지혜 8.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14절). 그러면 평소에 성경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 가 없는 것 아닌가? - 59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1:1~38 잡혀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받아들이려고 묻는 것이 아니 라 협박과 회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기란 애초에 무리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실 것임을 의미한다(출14:14). 평소에 성경공부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이 본문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소홀히 하란 뜻이 아니다. 9. 오래 살려면 신문이나 TV의 뉴스를 보지 말란다. 이 지구는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다. 그야말로 난리 와 소란 그 자체이다. 의약분업에 따른 시위, 국회의 정쟁, 세금 도둑, 다리붕괴, 지진, 가스폭발, 자식 죽 인 부모...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두려워 말라. 있어야 할 일이니까.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이 희망의 토대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할 일에 충실해야 한다. 망할 놈의 세상! 이래서 손 을 터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10. 예수님의 말씀은 자체에 모순이 있는 것 같다(10-19). 너희 중 몇을 죽일 것이라고 하시면서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할 것이라니? 어떻게 조화가 되는가? 예수님은 육체의 보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보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육체는 죽일 수 있으나 영혼은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는 것은 영혼에 전혀 손상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육체의 목숨은 영혼의 머리털 하나보다 가벼운 것이다. 11. 20-28은 예루살렘의 종말을 말하면서 동시에 세상의 종말도 언급하고 있다. 어디에서 구분을 지으면 될까? 25절 다음 12. 예수님께서 때 를 가르쳐 준 경우가 거의 없다. 특별히 예루살렘의 멸망은 정확한 징조와 취해야 할 행동요령 즉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가르쳐 주셨음에도 실제 로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유대인들은 거꾸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인육을 먹는 처참한 고통을 겪 으며 저항했으나 끝내 무너지고 나라 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다(AD 70). 예루살렘과 성전이 완전히 폐허 가 된 것이다. 이 때 살해된 유대인이 110만 명에 이르렀고 로마의 디도(Titus) 장군은 사람이 사는 흔적 조차 없애버리라고 했단다.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까? 엘리 시대에도 법 궤를 가지고 이런 비슷한 짓을 한 적이 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거룩한 성전이 결코 무너질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법궤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 다고 믿었던 엘리 시대의 이스라엘과 똑같은 짓이었다. 하나님이 떠나버린 법궤가 무슨 효력이 있으며 하나님께 버림받은 성전이 무슨 희망이 있다고... 13. 1999년 지구 최후의 날 이라는 책이 80년대 초에 발간되어 우리나라를 술렁이게 한 적이 있었다. 책 을 읽은 사람마다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26절). 앞으로도 최후의 날을 예언하는 사람과 책은 계속 나올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21:28, 일어나 머리를 들라. 드디어 우리의 구속의 날이 오는구나!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는 말씀이다. 14.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가사의한 민족이다.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진 민족이 다시 나라 를 세우고 언어를 복원해 내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이다. 2000년 전이면 우리나라의 삼 국 시대쯤 될 텐데 그 때 만주에 있던 조그마한 나라가 멸망했다가 지금 그 후예들이 모여서 나라를 다 시 세울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더구나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고 떼죽음을 당 하기도 하면서 버티어온 것만도 불가사의일 텐데, 다시 그 자리에 모여서 사라진 언어까지 복원해 내었 으니... 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동시에 예언한 구절은? 21:24, 때가 차기까지: 회복될 것임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다. 15. 지금도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가장 장수를 누리고 있는 재림 예수는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다. 이들이 가짜인 것을 밝힐 수 있는 증거로 본문의 세 구절로 찾는다면? 27: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권능으로 오신다는 말씀은 모든 사람이 재림 예수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 는 모습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통일교에서는 이 구름을 물이라고 해석하고 우리의 육체는 90% 이상이 물로 되어 있으니 육체를 입고 오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래서 문 교주를 이 땅에 오신 예수라고 설명 하는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그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 겠다. 34: 짐승이 덫에 치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임하여 있을 것이다. 오시는 것을 보고 우왕좌왕할 겨를도 없 다는 말이다. 이미 임하였음을 알 수는 있어도 아, 오시는 구나 할 틈도 없다는 말씀이다. 35: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보게 될 것이다. 지구가 둥근 것을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고? 지구가 둥 근 것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은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정도는 왜 상상을 못하 나? 16. 본 장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면서 동시에 종말의 때를 말씀하고 계신다. 재림이 가까워질 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인내(19), 깨어 있음(8:주의하라, 28:머리를 들라, 31:알라, 36:깨어 있으라) - 60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1:1~38 17. 우리나라의 버들강아지는 봄을 알리고 유대의 무화과나무는 여름을 알린다. 문제는 이 무화과나무가 말썽을 많이 피웠다. 가령, 근래에 수많은 종말론자들이 나타난 이유는 바로 다음과 같은 해석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 이스라엘이 1945년에 독립한 것은 바로 싹이 난 것이다. 32절의 이 세대는 바로 독립을 목격한 세대이다. 한 세대를 40년으로 잡으면 1980년경에 재림이 있을 것이다 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식의 해석이나 관심이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재림의 시기는 하나님만 아시는 비밀이다: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재림의 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시지 않았 다. 알려고 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도적같이, 덧에 치이듯이 올 것이기 때문에 경성하여 깨어 있으라고만 말씀하셨다. 자신도 모른다고까지 말씀하셨는데 왜 그렇게 때에 관심이 많은가? 종말을 기억하는 성도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지 에 관심을 가지면 종말에 대한 가르침이 전혀 문제가 없지만 때 에 관심 을 두고 살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자꾸 나오게 된다. 예수님은 결코 때를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었 다. - 61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2:1~71 누가복음 22 장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1) 이면 유월절과 무교절은 같은 명절인가? 유월절은 애굽의 장자가 다 죽는 그날 밤에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피 덕택에 죽음의 천사가 그냥 넘어갔음을 기념하는 절기이다(출 12:1-12). 무교절은 그날 저녁부터 일주일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무교병을 먹는 절기였다(출 12:15-20). 말하자면 무교절의 첫날이 유월절인 셈인데 연속되기는 하지만 분명하게 구분이 되었던 절기인 데 누가는 같은 절기처럼 말하고 있다. 굳이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참고 출 12:8) 유월절에 무교병을 먹었기 때문에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 라(22:2) 이상하다? 백성을 두려워하는데 왜 죽일 것을 연구하나? 연구하는 것은 죽일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죽일 방책이다: 죽이기로 결심은 이미 한 것이지만 백성이 두려우니 어떻게 백성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느냐 하는 방법을 연구했을 뿐이다. 유다를 앞세워 한 밤중에 예수를 잡으러 온 것도 무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옳은 일이라면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지 않으면 우리도 이런 일에 동참하게 된다. 3. 예수님은 죽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더구나 가룟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기 전에 이미 예수님은 자신이 죽을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유다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 루기 위한 소중한 도구가 아니었는가?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본문에 근거해서 답을 찾아 보자. 사단의 사주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3): 유다는 자기 나름대로 욕심이나 생각이 있어서 예수를 팔았겠지 만(마태복음, 마가복음) 그것이 그로 하여금 사단의 하수인이 되게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 가신 것이다. 결코 유다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예수를 판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은 하나님 자신일 뿐이다. 뱀을 잡는데 사용한 지팡이는 결코 감사의 대상이 아니다. 뱀의 피가 묻은 지팡이를 고맙다 며 방에 둘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버려져 불태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4. 유월절 식사를 위한 장소를 예비하는 것과 관련된 예수님의 대답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써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의 대답일까? 아니면 비밀리에 장소를 예비해 두셨다가 접선을 위해서 사전에 해둔 약속에 따 른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런 질문에 머리를 썩이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확실한 답은 알 수 없 다: 유월절 양이 되시는 예수님이 양 잡을 때가 되어서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것이 안타 깝고 궁금해야 정상이 아닐까? 더구나 지금 예수님은 만감이 교차하고 할 말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의 관심이 좀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에 더 쏠렸으면 좋겠다. 추가로 다른 복음서를 참고하면 아무래도 마 가의 다락방에서 이 유월절 만찬을 잡수셨던 것 같고 그렇다면 마가에게 미리 준비시켰을 수도 있을 것 이다. 5.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기 전에 제자들과 유월절 먹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바란 이유가 무엇일까? 최후의 만찬이며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별, 유언... 바로 자신의 죽음을 상징하는 식사여서 감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6.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16)? 이 말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려울지 모르겠다. 의미가 같 은 다른 말이 있는 지를 찾아보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18): 유월절의 본래 의미는 맏이를 전부 죽이는 형벌에서 양의 피 아래 있는 자들은 살아남았음을 기념하는 것(출12) 이다. 그러니까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되찾는 것이 바로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다. 진정한 유월절은 예수님의 재 림 때에 가능한 것이다. 7.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겠다 고 하니까 천국에도 주식이 포도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독해력에 문제가 있다.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고 말하려는 핵심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지 않겠다는 것은 거의 모든 음식을 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간식 거리나 대체 음식이 많지 않던 과거에 쌀로 된 음식을 끊겠다는 것과 비교하면 될 것이다. 우리의 구원 이 완성되기까지 예수님께서 그렇게 편안하게 계시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시다. 그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엇을 하고 계실까?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위하여 기도하고 계심 8. 제자들에게 준 떡과 포도주는 곧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이다. 우 리는 어떻게 예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실 수 있는가? 즉 어떻게 새 언약에 동참할 수 있는가? 성찬식에 참여함으로(1점: 완전한 답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찬식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 셨다는 기념의식이기 때문이다.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믿음으로(2점): 진정한 성찬식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우리를 위하여 문자 그대로 살과 피를 주셨고 그것을 먹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이 - 62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2:1~71 있음을 믿는 것이다. 9. 예수님의 죽음은 그 당시 제사장이나 유대인들이 악하였기 때문도 아니요, 가룟 유다의 물욕 때문도 아니요, 본디오 빌라도의 우유부단 때문도 아니다. 고전 2:8에서처럼 그 세대의 관원들이 몰랐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지 못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작정(22): 예정 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본문을 펴놓고 공부할 때는 틀렸다고 말할 수 있다. 평소 실력을 묻는 경우에는 당연히 맞지만. 10. 한심한 제자들: 예수님은 지금 온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있는 판에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따 지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빼앗아 먹을 것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 법 이다. 교회가 어려울 때는 서로의 재산을 내놓으면서 섬기지만 재정적으로 넉넉해지면 싸움이 일기 시 작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이 곧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자는 어떤 자인가?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26): 스스로 생각하기에 교회 다닌지 오래 되었다 싶으면 무조건 초신자를 섬겨야 한다. 이만하면 믿음이 좀 있다고 여겨지면 저것도 믿는 거냐 싶은 어설픈 신자를 섬겨야 한다. 무엇이 든지 있다 싶으면 없는 자를 섬길 생각부터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다. 11. 우리가 보기에는 정말 철딱서니 없는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어떤 제자라고 하시는가?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28): 예수님의 뜻을 잘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피땀 흘리며 기 도하실 때에도 잠에 빠져 있었던 제자들이었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인정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부 족함을 보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믿음 하나로 모든 것을 이쁘게만 보시는 주님이 계심을 잊지 말자. 이런 제자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맡기 겠다고 말씀하셨다(29-30). 12. 예수님은 제자들을 섬기는 자로 제자들 중에 있다(27)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 를 맡으실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들 중에서 가장 큰 자인 것으로 인정하신 셈이다. 증거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32):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으니 돌이키게 될 것이다. 그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 는 말은 약한 형제를 섬기라 는 말과 같은 것이다.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 다. 13. 33절에 있는 베드로의 이 고백은 진심일까 아닐까? 진심이라면 왜 그대로 행하지 않았으며 진심이 아니라면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진심: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심은 거짓이 아니지만 능력 부족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돈 문제, 시간 문제,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을 기억하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겠노라고 다짐을 해도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살 수 있는 능력이 본인에게 있지 않으니 처음부터 거짓말 을 하고 있는 셈이다. 능력도 없이 호언장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런 베드로가 더 많은 복을 받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14. 전에는 필요 없던 전대, 주머니, 신, 검이 이제는 왜 필요한가? 12사람이 예수를 체포하러 오는 무리 들과 싸우는데 검 둘이 족하다고? 나중에 보면 그나마 그것도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필요 하다고 하는 것일까? 상황이 달라질 것이므로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의미: 이 검이 적과 싸우기 위함도 아니요, 호신용 검도 아니란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예전에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실수해도 괜찮은 실습기간이었지만 이제는 실전이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 식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그러나 그 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 할 것이니라(눅 5:34-35) 고 하셨다. 15. 예수 믿는 일도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을 통해서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 도 하고 요긴한 일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계시는가? 기도하는 습관: 장소를 정해두고 기도했음(21:38, 요 18:2).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것이 힘든 사람도 많지만 전혀 힘이 들지 않는 사람도 많다. 차이점은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습관이 되지 않으면 평생 힘 들다. 좋은 습관이 몸에 배도록 스스로 노력하자. 16. 예수님의 이 기도는 인간적인 고뇌가 깊이 담긴 기도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는 아니다. 그러면 무슨 기도라고 할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힘을 얻는 기도: 대부분의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 뜻에 순 종할 수 있기를 비는 기도였다. 즉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도가 아니라 자신이 변화하는 기도인 셈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기도 하지만 자신이 변하기도 한다. 성숙한 기도로 나아 갈수록 자신이 변하는 기도가 많아지고 간구보다는 감사의 내용이 많아진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예수 - 63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2:1~71 님의 이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나요? 17. 이 글을 쓴 누가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다.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과 비교해 보면 제자들 의 부끄러운 모습을 그리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누가는 예수를 판 자를 누구라고 하는가? 유다라 하는 자: 굳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말함으로써 거리감을 두려 는 것이다. 18. 49절의 좌우가 그 될 일을 보고 이 표현을 좀 쉬운 말로 고쳐보자. 좌우에 선 제자들이 예수님이 잡히실 것을 알고 19. 스승을 파는 제자, 졸다가 일어나 그래도 칼을 휘두른 박력 넘치는 제자, 이것마저 참으라면서 기적 적인 능력으로 떨어진 귀를 다시 붙여주신 예수님, 저항 한번 해보지 않고 순순히 잡혀가는 예수님. 어 딘지 모르게 무력해 보이고 인간이 싫어지는 듯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주원인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온 분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 때에도 잘 빠져나가 시던 분이 지금은 이렇게 되는 것을 알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 며 순순히 응하고 계시는 것이다. 피땀 흘려가며 기도한 것이 바로 이 잔을 기꺼이 마시기 위함이었다. 우리 위해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나! 20. 신앙생활에서 남과 부딪히는 일은 피할 수 없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안 믿는 척 하는 방법이 있고 반대로 확실하게 예수 믿는 티를 내버리는 방법이 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언하고 부딪혀 나가는 방법이 아마 가장 쉬운 길일 것이다. 적당하게 끌려가는 것은 평생을 괴롭게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엄청난 실수를 하게 된 원인도 바로 이런 어정쩡한 태도에 있는 셈이다. 그것을 잘 표현하는 말을 찾아보자. 멀찍이 따라가니라(54): 차라리 도망을 치던지, 아니면 같이 잡혀갔더라면 주를 부인하는 부끄러움을 당하 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중간한 태도로 예수를 따르는 것이 가장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길이다. 21. 지금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길을 걷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에게까지 버림을 받는 상황이 닥치고 있다. 가장 믿었던 제자가 세 번이나 자신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판에 그를 왜 돌아보았을까? 무 슨 생각을 하시면서 바라보았을까? 그거 봐라 내가 머라하더노?(X) 그럴 줄 알았다.(X) 아이고 인간아!(X) 네가 지금은 그렇게 연약하지만 앞으로 기꺼이 이런 고난의 길을 걸을 것이다.(O) 22. 네가 선지자라고? 그런 능력이 있다면 어디 한번 맞춰봐라 이러면서 예수님을 희롱하는 자들이 하 는 짓을 보면 우리 아이들의 어떤 장난이 생각나는가? 쿡 찔려 놓고 어느 손가락이게? 23. 예수님에 대한 재판은 불법투성이다. 누가는 그것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은 셈이다. 그렇지만 불법인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가? 야밤에 사람들 몰래 체포한 것 - 64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3:1~56 누가복음 23 장 1. 반고소파 라는 교단이 있다. 교회의 문제를 법원에서 해결하는 것에 반발하여 갈라져 나갔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교회의 문제를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다스릴 자들이 그 세상의 손에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본문에 그렇게 창피한 꼴이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빌라도가 죄가 없다고 하는데도 하나님의 아들에 게 죄가 있다고 마구잡이로 우기는 것 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실제 이유와 빌라도에게 고소하는 죄목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실제 이유: 종교적인 이유 즉,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 온 백성들이 따를 정도로 파격적이고 놀 라운 가르침에 반발함. 표면적인 이유: 정치적인 이유, 즉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것이라고 고소함. 3. 유대인들이 세 가지 죄목으로 고소를 했지만 뒤집어 보면 가이사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만 하는 것이다. 네 말이 옳도다(원문상, 네가 말하였도 다) 라고 대답하셨지만 빌라도가 보기에는 그게 왜 죄가 되지 않을까? 무능력범이란 것이 있다. 아무리 봐도 그래가지고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정신병자를 상대로 싸워봤자 내가 손해지! 유대인에 대한 멸시, 그래 네가 왕 해라. 현재 유대인에게는 왕이 없다. 있다면 갈릴리 지역을 관할하는 헤롯이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헤롯이 신 경 쓸 문제지 자신과는 관계없다 등등. 한 마디로 말해서 무시하는 것이다. 4. 빌라도는 총독으로 부임하여 자기의 소신대로 통치하느라고 전례를 무시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다. 가령, 예루살렘에 로마 황제의 흉상을 설치하는 일 따위는 어떤 총독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유대인들의 관습을 존중하면서 통치했기 때문이다. 빌라도가 밤에 몰래 황제의 흉상을 예루살렘에 들여 왔을 때 유대인들이 십계명 위배라고 목숨을 걸고 항거하여 총독이 굴복하기도 하였다. 전임 총독이 결 코 시도하지 않았던 강압적인 통치를 시도했던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한 것은 로 마의 정치적인 상황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본문에 있는 표현으로 답하시오. 백성의 소동(민란): 자기를 총독으로 임명한 자신의 상관이 사실은 황제에게 처형당하고 말았기 때문에 몸을 사려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5. 촌놈 이라는 표현은 없지만 유대인들이 그와 흡사한 느낌으로 사용된 말이 무엇일까? 갈릴리 사람(6) 6.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더니 왜 금새 업신여기며 희롱하는가? 빛난 옷은 왜 입혔는가? 기대에 어긋남: 좋아서 기뻐하였다기보다는 고양이가 쥐를 보고 기뻐하는 꼴이 아니었을까? 뭔가 이적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데 자신의 말에 대꾸도 않으니 왕으로서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희롱의 방법이다: 자신을 왕이라 하니 왕의 옷을 입힌 채 희롱함 7. 예수가 자신의 죄로 죽은 것이 아님을 빌라도가 역설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그가 비록 예수를 죽인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있지만 예수를 석방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노력을 했는가? (예수가 죄없음을 확신한 행동까지 포함해서) (6번) 4, 14, 15, 16, 20, 22 8.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분명히 확신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하면서까지 소신대 로 밀고나가야 할 만큼 예수를 가치 있는 인물로 여기지는 않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옛날에도 있었 구나. 자기 멋대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판결을 굽게 하는 잘못은 지금 우리도 흔히 저지르는 일이 다. 소신대로 재판을 하지 못한 빌라도는 결과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았는가? 사도신경에 올라가서 악명을 영원히 날리고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았 는데 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했을까? 아마 지옥에서도 편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하루 도 쉼없이 그 이름이 들먹여지고 있을 테니까. 9. 예수의 죽음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죽음이다. 그 예수의 죽음으로 제일 먼저 혜택을 본 사람은 바나바이다? (O, X) X: 바나바의 구원은 유대인의 악함 때문이지 예수의 죽음 때문은 아니다. 10.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그 날은 억세게 재수 없는 날이었다. 촌놈이 머 구경할끼라고 얼쩡거리다가... 더 이상 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정말 재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과 그 아내에 대한 말이 막 15:21, 롬 16:13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을 것 이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즉 예수를 믿고 초대교회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말이 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서 복을 많이 받는 경우를 가리키는 이 말 - 65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3:1~56 은? 억지로 진 십자가: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노력해서 얻은 것보다 억지로 하다가 배우고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은 법이다. 일할 수밖에 없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절을 오히려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 이 훨씬 더 많다. 11.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고난을 슬퍼하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또 다른 슬픔이 보인다. 산들아 무너져서 우리를 가려다오 하면서 울부짖을 날은 언제인가? 작게는 예루살렘의 멸망이겠지만 길게는 최후 심판의 날일 것이다. 12. 어떤 종류의 고난이 닥치기에 산들이 자기를 덮어주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 예수님의 말씀은 고난 의 종류에 관한 말씀이라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보다 너희와 너희 자녀가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 고통의 크기를 말하는 다른 표현을 또 찾아서 설명해 보자. 자식이 없는 것을 최대의 수치로 여겼던 그들에게 자식 없는 것이 복으로 보일 정도: 자식을 굶겨 죽이는 고 통이나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북한의 굶주림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 그 부모가 당한 고통이 이런 것이 아닐까? 13. 31절의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도 문맥에 따르면 역시 고통의 강도에 관한 내용이라고 여겨진다. 가 령 예수를 ( ) 나무에 비긴다면 죄없는 예수님이 이런 고통을 겪는다면 ( ) 나무 즉 죄인들의 고 통은 얼마만 하겠느냐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푸른, 마른 14.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두 행악자를 좌우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도 이와 같은 유의 인간임을 강조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잔꾀일 것. 15.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기에 예수님도 피해가고 싶었을까(22:42)? 그러나 그런 마음이 언제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예수님은 오히려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바로 이것을 위해서 피땀 흘려가며 기도하셨다: 이런 고통을 기꺼이 이길 힘을 위하여 미리 기도하신 것이 다. 예수님도 기도를 통하여 이런 고통을 이길 힘을 하나님께 받으셨다. 16. 예수님의 모든 행적이 그러하지만 특히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는 일(34)이나 사람들이 희롱하는 모습 (35-37)은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언되었던 일이다. 구약 어디에서 이런 사실을 언급하고 있는지 찾아보 자. 참고로, 관주 성경을 이용하면 찾기가 아주 쉽다. 시편 22:18, 6-8: 예수님의 모든 일생은 하나님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셨고 거의 모든 내용이 사전에 공개되어 있었다. 성경공부란 이것을 얼마나 많이 정확하게 찾아내느냐는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17. 신포도주는 마취의 효과가 있어서 사형수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사용했다고 설명하기도 하는 데 이 본문에서는 결코 사형수를 생각해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조롱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목 말라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먹지도 못할 것으로 목을 축이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희롱이다.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도 역시 조롱의 의미이다. 보라 이게 유대인의 왕이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정말 부끄러운 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자랑스런 말로 바뀌게 되었는가? 능력으로: 부활하셔서 능력으로써 친히 증명함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처음에는 그렇게 좋은 의미 로 붙여진 것이 아니었지만 깨끗한 삶을 삶으로써 영광스런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예수쟁이? 우리가 어 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서 이 말은 영광스런 단어가 될 수도 있고 치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 18.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예수를 어떻 게 인식하느냐의 이 차이가 문자 그대로 천국과 지옥의 차이가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강도가 구원받은 조건이 무엇인가? 어떤 의미에서 아무 조건도 없다. 오직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고 그에게 구한 것밖에. 19.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단다. 제 6시라면 우리 시각으로 몇 시쯤 될까? 정오: 유대 시간에 6시간을 더하면 우리 시간이 된다. 대낮인데도 어두움이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의 고난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셨음을 뜻한다. 그런다고 하나님의 눈에 안 보이 나? 하나님의 마음이 그러함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 20.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잘 보여주는 사건이 성전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진 것이다. 이 성전 휘장의 역할이 무엇이었을까?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것으로 아무나 함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막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우 리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지성소는 일년에 단 한 차례, 성결의 예를 다 갖춘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방이었다. 이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21. 다음 인용구절에서 밑줄 친 부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 66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3:1~56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 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9) 탄생시에는 말구유에 초라하게 누웠지만 무덤은 공회의원(국회의원 정도?) 아리마대 요셉이 마련해둔 바 위에 판 새것이었으니 부자의 고급 무덤에 안치되었다. 여기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니고데모도 몰 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이나 가져왔으니(요 19:39-40) 예수를 죽이지 못해 그렇게도 안달하던 공의회 의 원 두 사람이 장례를 치룬 셈이다. - 67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4:1~53 누가복음 24 장 1. 여자들이 무덤을 찾아갔던 안식후 첫날 을 나중에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주일: 주의 날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그 안식일이 예수의 부활사건으로 말미암아 주일 로 바뀌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안식일이 주일로 대치된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예수님께 서 깨뜨리고 새롭게 해석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도 안식일을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 하는 무리들이 안식교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2. 대단한 여자들이었다. 베드로처럼 멀찍이 따라갔지만 부인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의 그 고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차마 나서서 시체를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무덤까지 따라가서 확인하고 향품과 향유를 준비 하고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는 열성이 제자들보다 더하다. 간도 크다. 새벽에 무덤에까지 들어가다니... 예 수님께서 차라리 이런 여자들을 제자로 삼았으면 어땠을까? 사실은 기독교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 런 열성들에 힘입어 성장한 면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열심을 예수님을 어떻게 갚아주시는가? 부활의 첫 증인으로 삼음: 지금도 대형 사고의 첫 증인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물며 예수 부활 사건의 첫 목격자라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더구나 여자는 증인으로 삼지 않았던 당시 유대의 풍토를 생각해 보 면 더더욱 영광스러운 일이다. 3. 천사들은 주로 흰 옷을 입던데 이 천사들은 왜 찬란했다고 하는가? (참고, 마 28:3, 마 16:5, 행 1:10) 찬란( )하다는 말은 영롱하고 현란함, 광채가 번쩍번쩍하고 환함을 뜻한다. 즉 강조점이 색깔에 있는 것이 아니고 빛나는 것에 있다. 찬란한 옷 을 눈부신 흰 옷 으로 번역하기도 함 4. 새벽에 무덤을 찾아갈 정도로 열성적인 여자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 책망을 하자는 뜻이 아니라 안 타까움이다. 그들의 최대 관심은 ( )에 있었다. 정작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는데 말 이다. 시체: 본질적인 요소보다 사소한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지나 않은지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교회가 진정으로 아파하고 머리를 싸매야 할 부분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기껏 절차상의 문제나 붙들고 온갖 정열을 다 불사르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말씀을 연구하기보다는 다른 잡무에 쫓기는 교역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책망이라기보다는 안타까움이다. 5.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 나야 하리라 고 미리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믿은 제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천사들의 말을 듣고 부활의 소식을 전해 주어도 허탄(정신착란으로 횡설수설)한 듯이 보였다는 그런 제자들이 결국은 어떻게 해서 모두가 복음의 증인이 되었는가? (좁게 보면):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확인시키고 격려하심으로 (15, 34, 36): 우리의 믿음이 결코 우리 자 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를 섬기자. (넓게 보면): 성령을 주심으로(49):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다시 기억하고 제대로 된 제자로서 사명을 감당 한 것은 추후에 주어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했다. 사명을 제대로 감당키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 이 필수적이다. 6. 글로바의 말은 이렇다. 아니, 당신이 예루살렘에 거하면서도 그 유명한 사건을 당신 혼자만 모른단 말이요? 그래서 열심히 나사렛 예수의 일을 예수님께 설명하고 있는 이 글로바에게 무슨 말이든지 한 마디만 해주자. 니 지금 누구보고 그 따위 소리하고 있는지 아나? 7. 내가 예수라면 에라, 이 놈아 하면서 글로바의 뒤통수를 한 대 탁 때려주고 싶다. 어느 말 다음이 가 장 좋을까? 23절이나 24절 뒤에: 우리 예수님은 속도 좋다. 어째 이렇게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어도 시치미 뚝 떼고 듣고 계시는가? 8. 예수님이 동행하고 있어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성경말씀을 풀어주어도 못 알아보았다. 결국은 기도 하고 난 후에야 알아보았다.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노력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성경공 부? 기도? 둘 다 필요하다: 성경 말씀을 기억하라고 하신다(6-7, 26-27, 44).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도록 간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면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주변 에는 예수님이 동행하고 있음에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내가 알기 전에 이미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찬양할지로다! 9. 재미삼아서 생각해 보자. 함께 길을 가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도, 심지어 구약을 풀어서 자신 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도 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인간적인 경 우만 따져 보자. 살아났다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선입관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어쩌면 복음을 전하느라고 고생하며 찌들은 모습이 아니라 훤한 모습으로 변 - 68 -
누가복음 성경공부 ----------------------------------------------- 24:1~53 하지 않았을까? 10. 그래도 예수님인 것을 확인하고는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무엇을 보아서 정신이 든 것을 알 수 있는가? 날이 저물어 자려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확인하고는 즉시 (33, 그 시로) 밤길을 더듬어 예루살렘으로 돌 아간 점. 11. 성경에서 좋은 교훈을 얻으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성경의 핵심은 인간적인 교훈이 아니다. 무엇 을 위하여 모세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이 글을 기록하였는가? 심지어 시편까지. 예수의 고난과 영광(26, 27, 44, 46-47): 제발 성경을 읽고 사람의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누가 얼마나 위 대했으며 누가 위대한 일을 하였으며... 성경의 핵심은 예수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이 일을 하신 대상이 바로 사람이다. 달리 표현하면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이다. 12. 십자가에 달려서 피와 물을 다 쏟으셨고 무덤에서 사흘을 지내셨으니 예수님도 무척 시장하셨던 모 양이다. 제자들이 부활하심을 오히려 기이하게 여기고 있는 판에 먹을 것을 찾으시니 말이다. 생선 한 토막으로 허기가 메워졌을까? 허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귀신으로 여기는 제자들에게 육체가 있음을 확인 시키기 위함이다(39). 만져보고도 긴가민가 하는 제자들에게 음식을 먹는 모습으로 육체를 확인시키는 것 이다. 분명하게 육체를 가졌음에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31)은 나중에 우리가 입을 육 체가 어떠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13. 유대인들은 구약을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 세 종류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본문에서는 어떻게 표현 하고 있는지 찾아보자. 율법서: 모세의 글 예언서: 선지자의 글 성문서: 시편 (=모든 성경) 14. 부활하심을 확인시키시고 난 다음 무슨 부탁을 하시는가?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15. 아무리 예수님의 당부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절은? 모든 족속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사25:7),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창12:3)이라고 하지만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의 강권적인 역사하심(행10)이 있은 후에야 이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 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