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c 2012 라브리선교회 L'Abri Fellowship Korea Downloaded from http://www.labri.kr 청년 다윗의 아둘람공동체 시절 성인경 지난 여름에 대부분의 청년 대학생들이 배낭 하나만 매고 온 세상을 뒤지며 찾아다닌 것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섹스, 돈, 재미가 그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달랐습니까? 아마 여러분도 크 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아마 공동체에서 낭만과 영성 그리고 재미를 다 찾으려고 햇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요즘 부쩍 공동체( 共 同 體, community) 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가족 공동체, 민족 공동 체, 사랑방 공동체 등은 흔하게 들어봅니다. 그리고 공동체 마을, 쌍용아파트 공동체, 서울 풍물굿 시민공동체 라는 말 도 낯설지 않고, 하물며 지식 공동체, 사이버 공동체, 법 공동체 라는 말도 듣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센델과 같은 정치 철학자들마저도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를 연구할 정도로 공동체는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 을 일 컫는 공동체( 共 同 體, community) 라는 말이 갑자기 많이 쓰이 고 있습니다. 그 만큼 공동체에 대한 갈망과 필요가 간절하다 그림 2 다윗의 아둘람 시절 도망경로 는 말입니다. 저는 청년들의 이런 갈망과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성경적 모델을 찾던 중에, 예루살렘교회나 바 울사도의 교회론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청년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아둘람(adullam) 1) 시 절을 그 대안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고 아둘람공동체 란 이름으로 그 특징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 중에 일부를 나누고 싶습니다. 2) 1) 아둘람(adullam) 이란 말은 도피처, 대피소, 피난처(shelter), 보호처(protected area) 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백성들의 정의(justice of the people) 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2) 2010년 가을 부천 예인교회(정성규 목사) 교역자들이 라브리에 와서 아둘람 공동체에 대한 성인경의 강의를 듣고 간 후 약 6개월 뒤에 아둘람 공동체와 신도시 공동체와의 만남 이란 글을 발표했다. 거기에서 아둘람 공동체 기간을 사울왕이 제 사장들을 죽이는 놉 사건에서부터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위에 오를 때까지로 잡고 사무엘상 22장부터 30장까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 바가 있다. 21:1-9 놉의 아히멜렉에게 진설병 구걸, 골리앗 칼 회수 21:10-15 시글락의 가드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 하여 목숨을 구함 22:1-5 아둘람으로 피신, 약 400명 이 문서는 라브리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것으로, 개인 및 그룹 공부를 위해서만 인쇄, 복사, 배포 등이 허가되었습니다. 그 밖의 용도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용은 라브리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This document was downloaded from L'Abri Korea. Printing and distribution are permitted only for study purposes. For all other uses, please obtain permission from L'Abri. L'Abri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is document. - 1 -
1. 아둘람은 현실적, 영적 피난처였습니다. 한 때 청년 다윗은 물매 돌 한 개로 거인 골리앗을 죽이고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으며, 모든 여자 들로부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는 칭송을 들었던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이였습니다. 그 러나 여기에 다윗이 거기를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사무엘상 22:1)란 말을 볼 때, 골리앗을 죽 이고 영웅 대접을 받으며 누렸던 인기와 박수는 어느 듯 물거품처럼 다 사라지고 언제 죽을지도 모 르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짐작해 보면, 뒤에는 범 같은 사울 왕이 쫒아오고 있었고, 앞에는 불레셋의 아기스왕과 아멜렉이 지키고 있었고, 양 옆에는 몰살 위기에 빠진 다윗의 가족들과 도망 나온 사람 들이 그를 따르고 있는, 다윗은 그야말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갈수도 없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정체절명( 絶 體 絶 命 )의 위기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필요했던 것은 목숨을 부지하고 머리를 두고 쉴 수 있는 육체적인 피난처만 아니라 긴장과 불안 속에서 마음에 평화를 얻 을 수 있는 영적 피난처였습니다. 시편 27편은 다윗이 빠진 절박한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 주며, 그 뿐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어떻게 영적 평안을 찾았는지 잘 보여 줍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 도 내 마음이 두려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라... 여호와 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27:2-5) 여기에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한다. 는 말은 사울 왕이 노리는 것은 내 목숨이라는 말이고, 군대가 나를 친다. 는 말은 한 두 사람이 잡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수 백 명 수 천 명이 되는 대 대 병력 혹은 사단 병력이 잡으러 다니고 있다는 말이며, 전쟁이 일어난다. 는 죽고 살기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갑니까?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 빠져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를 누릴 방법이 있습니 까? 22:6-19 놉의 제사장 가족 대학살, 약 200-300명 죽음 22:20-23 다윗과 아비아달의 만남 23:1-5 그일라를 구원 23:6-14 사울을 피해 그일라를 떠남: 십 광야, 약 600명 23:15-18 요나단의 격려 23:19-29 사울의 추격과 다윗의 도주: 마온 광야 아라바, 엔게디 24:1-22 사울을 살려주다: 엔게디 25:1 선지자요 후견인이었던 사무엘의 죽음 25:2-44 다윗이 아비가일을 만나다 26:1-25 사울을 두 번째 살려주다: 십 광야 앞 하길라 산 27:1-12 블레셋 땅 시글락(가드왕 아기스)에서 1년 4개월 보냄 28:1 아기스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다윗을 초청 28:2-25 사울과 신접한 여인 29:1-11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가하지 않게 되다 30:1-6 아멜렉의 시글락 공동체 습격과 위기 30:7-31 아멜렉을 공략하고 가족을 찾아 옮. 브솔 시내가에서 전리품 나눔 - 2 -
다윗은 여호와께서 초막 속 에서 지켜주시고, 장막 은밀한 곳 에 숨겨주시고, 높은 바위 위로 도망가게 하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초막, 장막, 바위 는 모두 영적으로 예수님 을 상징하기도 하고 주님이 피 흘려 사신 교회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아둘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막 속 이라는 말은 피난처(shelter) 속에 란 말인데, 아둘람 이란 말 과 같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현실적, 영적 피난처이시며, 장막이시며, 바위이시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 분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제사도 드리고, 노래도 하고, 푹 잘 수가 있었습니 다.(시편 46:1; 시편 91:2) 여러분은 하나님이 실제적, 영적 피난처이시라는 것을 믿습니까? 2. 아둘람은 상처받은 마음을 수술했던 클리닉이었습니다. 아둘람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청년 다윗을 따라 온 사람들은 다윗과 가 까운 형제들과 가족들과 친척들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만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세의 집 안 전체를 없애려고 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 학자들은 말하기를, 고대 사회에서는 역모( 逆 謀 )에 가담한 사람이 비록 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온 가족이 처벌당하는 일은 흔한 관습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사울의 보복을 피하여 다윗의 가족 전체가 이같이 도피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고 말했습니다(Keil, Smith, Clericus). 그리고 아둘람에는 다윗의 가족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누구인 지 다음과 같은 아주 짧은 보고서에서 가르쳐 줍니다. 환란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사무엘상 22:2) 여기에는 세 부류가 있는데, 1)정치적 박해와 사회 적 부조리와 환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그들이었고, 2)경제적으로 고리대금으로 빚에 시달리는 사람 들이나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그들이었으며, 3)마음이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그들 이었습니다. 정치적인 핍박을 받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예를 들어 아비아달 과 같은 사람입니다.(사무 엘상 22:20-22) 사울은 다윗이 놉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이 준 진설병을 먹고 골리앗을 칼을 얻어서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사람일까요? 정성규는 말하기 를, 다윗을 향한 그의 비난은 권력을 향한 광기가 된다. 이제 사울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죽이려 한다. 고 했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의 무죄를 변호하며 그가 자신을 찾 아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22:15a). 하지만 이미 광기에 사로잡힌 사울은 단호하게 외칩니다.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22:17a). 처음에 그의 신하들도 그의 명령을 거부합니다.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22:17b) 그래서 사울은 도엑을 시켜 아히멜렉만 아니라 85명의 제사장들과 놉 의 남녀와 아이들, 아기들 그리고 가축들을 모두 학살합니다.(22:18~19). 역사가들은 이 때 죽은 제 사장 가족이 무려 200 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봅니다. 그 난리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도망 나온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이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잃고 고아된 아이였습니다. 아둘람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런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억울한 사람들이었고, 갖가지 환난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청년 다윗이 아둘람에서 배운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사람들 - 3 -
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이 되고, 사람들의 눈물이 자기의 눈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눈물 이 자기 눈물이 되고 백성들의 슬픔이 자기 슬픔이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가 없으며, 특히 좋은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종합병원보다 마음과 생각에 병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병원입니까? 그리고 거기에서 멍들고 병든 가슴을 깨끗이 낫게 해 주고 있습니까? 3. 아둘람은 정의가 무엇인가 볼 수 있는 실험실이었습니다. 2010-11년에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은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센델의 책 [정의가 무엇인가]라 는 책이었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 책을 보았는지 공정사회 라는 화두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다윗도 정의가 무엇인가 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다윗이 포기한 것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붙잡기 위해 모든 전략을 동원했습니다. 그는 한 때 3,000명의 군대를 이 끌고 십 광야로 다윗을 생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아히멜렉과 아비새를 데리고 사울 의 군영으로 몰래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아비새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죽일 기회를 주셨다고 말하며 다윗의 허락을 기다렸지만 다윗은 아비새의 요구를 거절하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에게 손 대지 말라고 명령을 합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내손으로 해치지 않겠다. 는 말에서 내손으로 해치지 않겠다. 고 한 말은 매우 중요한 말인데,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비록 사울 왕이 나쁜 사 람이라고 하더라도 한 때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운 정통성이 있는 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때 다윗이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면, 나중에 다윗 자신이 왕이 되었을 때 왕권의 정통성을 아무나 흔들면 곤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 다. 2)청년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것은 악한 사람에 대한 심판 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입니다. 약자이거나 악한 자이거나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아 무 때나 처벌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폭력이 이기 때문입니다. 3)모든 공동체 가족들이 절차가 없이 즉결 심판을 원하더라도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 정치이며 지도자의 면모라는 보여 주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었습니다. 이 때 해결했으면 나라에 평화도 빨리 오고 다윗도 빨리 왕이 되었을 텐데, 그 후에 오랜 시간동안 방황을 더 해야 했습니다. 정성규 목사는 다시 말하기를 얼마나 빨리 이루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정의에 합당 하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각종 심판과 일처리 방 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심판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당장 은 공동체에 어려움을 가져오고, 손해를 가져오고, 지연 시킨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다윗은 이런 사건을 통해 아둘람 공동체 속에 하나님의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 도록 한 것입니다. 4. 아둘람은 기도하고 순종을 연습하는 곳이었습니다. 다윗은 가나안 사람들이 사는 그일라에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못된 짓을 한다는 소식을 듣 - 4 -
고 그일라를 구원하러 갑니다. 자기 코도 석자인데, 다른 사람을 도울 새가 어디에 있었는지, 다윗 자신도 도망자 신세인 주제에 그일라가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주러 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 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그일라로 군대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아마 사울은 다 윗의 목숨과 그일라의 멸망을 놓고 협상했을 것이라고 봅니다.(23:10a). 다윗을 내 주면 그일라를 살려주겠다. 는 요지였을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은 다른 사람을 도우려다가 큰 곤경에 빠진 것입니다. 정성규 목사와 예인교회 교역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내주지 않으면 그일라를 멸망시켜 버리겠지만, 다윗을 내주면 살려주려 했을 것이다. 그일라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다윗도 결단이 필요했다. 다윗은 자신이 긍휼을 베푼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줄 것인 지를 하나님께 묻는다. 만일 그일라 사람들이 의리를 지켜 다윗을 숨겨주려 했다면, 다윗은 사울과 의 전면전을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버리려 한다면 그는 지금 당장 도주 해야 한다. 이 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이 중요한 문제를 그일라 사람들과 의논 하지 않고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에게 넘길까요 아니면 나를 지 켜줄까요?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이 자기가 베푼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을 한다고 하더라고 빈손으로 그일라를 떠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자기가 지켜준 성을 버리고 아무런 방비도 없는 광야로 다시 나 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다시 황무지로 도망을 갑니다. 다윗이 그일라를 떠났다 는 말을 듣자말자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그일라 사람들은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교훈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다윗은 자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모르는 척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모 른 척 하거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배신하더라도 다시 한 번 더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어려 운 일이 닥쳤을 때 머리를 굴리기 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일이 있은 직후에 하나님은 그일라 사람들을 잔뜩 붙여 주셔서 아둘람 식구는 이제 약 600명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은 기도하고 순 종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고 손해 보더라도 순종한 경험이 있습니까? 5. 아둘람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인생 훈련소였습니다. 다윗은 평생 많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인데, 아둘람 시절에 저지른 몇 가지 대표적인 실수만 소개 하겠습니다. 첫째,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놉으로 갔을 때 사울왕이 보냈다. 고 거짓말을 하고는 진 설병을 얻어먹고 골리앗의 칼을 얻어 갔는데, 그것 때문에 약 80명의 제사장들과 약 200 여명의 제 사장 가족이 사울에 칼에 죽도록 한 것입니다.(사무엘상 21:1-9) 둘째, 갓의 아기스 왕(Achish the king of Gath)에게 미친 짓을 하며 몸을 의지한 것입니다.(사무 엘상 21:10-15) 아마 다윗이 혼자였다면 이렇게 비급한 짓을 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자기를 따르는 가족이 많이 딸려 있었기 때문인지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짓을 한 것입니다. 셋째, 아둘람 초기에 믿지 말아야 할 이방 모압 왕에게 가족을 맡긴 것입니다.(사무엘상 22:3-5). 아마 사울의 추격에 가족이 잡힐 것을 우려한 나머지 궁여지책( 窮 餘 之 策 )으로 모압 왕에게 가족을 - 5 -
부탁하고 다윗은 도망 다니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선지자 갓 의 말처럼 옳지 않았던 것 입니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도 모르는 모압 왕을 가족을 맡기기보다는 하나 님을 의지하고 유대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넷째, 아둘람 후기에 모압 왕에게 다시 도망간 것입니다.(사무엘상 27:1-28:1) 정성규 목사와 예인 교회 교역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블레셋 땅으로 도 망을 한다. 시글락은 남방 브엘세바 북쪽에 있는 도시로서 블레셋 땅의 남부 접경지였다. 이러한 다 윗의 결정으로 인해 다윗과 그의 공동체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첫째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 쟁에서 다윗은 블레셋을 위해 싸우게 된 것과, 둘째는 시글락이 아말렉 족속에 의해 약탈된다는 것 이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블레셋으로 피한 다윗의 결정은 결코 옳지 않다. 사실 역사상 어떤 유대인들이 팔레스틴 사람들과 이렇게 1년 4개월씩이나 같이 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이 때 요즘도 시도하기 힘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평화공존을 시험했 고(물론 불레셋 치하에 있었지만), 유다 사람들을 괴롭히던 아말렉 족속들을 공격해서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도 했습니다(27:8-9). 다윗은 이 사건을 통해 블레셋 왕의 마음도 얻었고 동시에 유다 백성 들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이 시글락에 간 것이 왜 실수였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7절 1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란 말이 나오는 데, 이것은 다윗이 사울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스 스로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성규 목사가 주목한 것은 바로 1절 가장 앞에 있는 다윗이 그 마 음에 생각하기를 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생각 이란 말을 원어로 보면 스스로에게 말하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그일라 를 치러 갈 때는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되 (사무엘상 23:2)과는 것과는 사뭇 대조가 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을 두고, 정성규 목사는 다윗의 변절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 먼 저 묻고 공동체와도 소통하던 평소의 태도와 자세가 바뀌어(변절해서)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끔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행동하고 후회할 때가 없습니까? 2)망명지 시글락의 이름 때문입니다. 시글락 이라는 곳은 그 명칭의 뜻이 재미있게도 구부러짐 이 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도망자의 신세 입장에서는 아둘람에 있으나 시글락에 있으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시글락에서는 오늘은 여기에서 내일은 저기에서 매일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는 전쟁을 장난처럼 하고 다녔습니다. 특히 아기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도 인자하던 다 윗이, 무자비한 살인마 로 변신합니다. 다윗과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는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 기스에게 이르매... 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다... (사무엘상 27:9-12) 다윗이 모압 왕의 배려로 시글락에 있을 때, 가장 난처했던 일은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 이 났을 때 아기스가 유대를 치는 전선에 같이 나가자고 했을 때였습니다. 다행히 아기스 신하들의 반대로 동포들을 죽여야 하는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게 되었지만, 모압 왕에게 의지한 결과로 자기 - 6 -
가족이나 동포를 죽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난처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피할 길을 주신다는 것도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렇게 수많은 실수를 하는 다윗이 점차 비굴하게 타협하지 않는 법과 아무리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6. 아둘람은 최고 인재를 기르는 사관 학교였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사렛 사람을 한 번 만나보라. 고 했을 때 첫 마디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고 대꾸한 적이 있습니다. 나다나엘만 아니라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나사 렛에서 메시야(messiah) 가 나오리라고 아무도 꿈꾸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도 가장 가난한 동네였고 밑바닥 도시였고, 별 볼일 없는 촌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나사렛도 그랬거 늘, 아둘람에서 왕이 나오리라고 누가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요즘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는 것이 치맛바람의 철학입니다. 일류 유치원을 나와서 일류 중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나와야 성공한다. 는 것이 그들의 교육철학입니다. 그러나 아둘람 동굴 출신 중에 나라의 가장 중요하고 높은 사람이 된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 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목동 출신이었다가 골리앗을 죽이 고 잠시 주도세력에 편입되었지만 사울의 시기로 좌천한 사람이었다가, 아둘람에서 와신상담( 臥 薪 嘗 膽, 섶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 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오래 참는다는 말) 하다가, 사울이 죽고 난 후에 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다윗은 아둘람과 같은 밑바닥 생활을 해 보았기 때문에 왕이 된 후에도 겸손한 자세로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으며, 물론 무서운 죄도 지었으나 회개하고 하나님 의 마음에 합한 왕 이 되었으며, 결국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평생 아둘람 생활 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다윗 왕국의 국방장관이 되어 평생 그를 보좌했습니다. 아힐룻의 아들 여호 사밧은 사관이 되었습니다.(사무엘하 8:16) 여호사밧은 다윗 왕국의 사관(마즈킬) 이 되었다고 하는 데, 여기의 마즈킬 은 기억하게 하는 자 란 뜻인데, 왕의 명령만 아니라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중 요 사건들을 기록하여 문서화하고 이를 관리하는 직무자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365)를 가리키는 듯하나, 공동 번역은 이를 공보 대신 으로 번역했습니다. 비록 아둘람은 작은 공동체였지만 하나님 나라를 짊어지고 갈 최고의 인재 학교였으며, 국가경영 전략을 연구하는 최고 지도자 과정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아둘람 굴의 훈련 프로 그램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전쟁학: 대피 훈련, 칼, 활, 무기 쓰는 법, 병법 및 전략 연구 상담학: 치유, 격려, 상담, 마음이 원통한 사람 위로, 고약한 성품 길들이기 예배학: 예배, 기도, 성경 암송, 개인성경공부(PBS), 제사법, 신학 인문학: 글씨 익히기, 글짓기, 시 쓰기 관현학: 각종 악기 레슨과 노래 공부, 작곡 영농학: 농사 짓는 법, 석청 따는 법, 빗물 연구 - 7 -
놀이학: 싸우지 않고 장난치기, 우정 쌓기, 용맹 테스트... 경제학: 돈 버는 법, 빚 청산 방법, 국가경제성장방법 재왕학: 국가재건전략, 정치학, 지도자론 아둘람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다윗이었지만 이사장은 아마 사무엘이었을 것이라 상상해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도 좋은 인재는 좋은 스승 밑에서 나온다. 는 말이 있듯이, 다윗의 영적 스승은 사무엘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보통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1)어릴 때부터 엘리 제사장 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랐고, 2)사울 임금님에게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는 직언을 서슴지 않 았던 분이며, 3)사울의 눈을 피해 소년 다윗에게 안수를 하며 미래의 왕을 임명한 것들을 보면 최고 의 스승이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아둘람 학교의 이사장 감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그런데 사무엘상 25:1에는 사무엘이 죽었더라(Now Samuel died, ESV). 아주 간단한 말씀이 언 급되어 있는데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1)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줄 좋은 예언자가 없다는 것이며, 2)다윗이 의지할 스승이 없으므로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때가 되 었다는 말이며, 3)온 백성들이 그를 슬퍼하는 것을 보며 나도 저렇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며, 4)사무엘이 고향에 묻히는 축복을 보며 다윗도 평안하게 죽을 날을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둘람이 최고의 인재 학교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나 라브리도 하나님 나라 건설 의 초석이 될 일꾼들을 기르고 훈련시키다가 사라져야 할 무명의 석굴이 되어야 합니다. 7. 아둘람은 거룩한 장난과 감동이 있는 인생 도장이었습니다. 아둘람에는 긴장의 연속과 상처 치유와 전쟁 준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세상 어디에 서도 맛볼 수 없는 장난과 놀이와 모험이 넘쳤던 공동체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 용사 이야기입 니다. 아둘람에서 훈련받은 청년들 중에는 다윗을 매우 존경하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 이 고향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시름을 잠시라도 들어주기로 하고 목숨을 걸고 적 진을 뚫고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험에 다녀오기로 모의를 했습니다.(역대상 11:15-19) 그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엉뚱한 장난이며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군대와 사울 왕의 스파이들이 지키고 있는 적진 속을 뚫고 들어가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약 15km 를 왕복 8시간 이상이 걸려 물을 길어 왔습니다. 이런 장난을 두고 거룩한 장난 이니 거룩한 사고 치기 라고 이름을 붙입니다만, 구태여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이런 엉뚱한 장난도 없었다면 아둘람이 얼마나 삭막했을까요? 그 세 용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상상해 봅시다. 1)세 용사는 지도자의 외로움과 고민을 헤 아릴 줄 아는 부하들이었습니다. 아둘람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윗을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 받 기 위해 모였을 것이고, 다윗을 생각하는 사람들보다는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 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좋을 텐데 세 명이나 있었다니 다윗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2)세 용사는 지도자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이었습니다. 불레 셋 군사들에게 붙잡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을 자청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3)세 용사는 모험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 청년들이었습니다. 사무엘하 23:8에 의하면, 이 세 용사 중의 한 사람인 요셉 - 8 -
밧세벳이란 사람은 혼자서 무려 800명을 쳐 죽인 용사였습니다. 다윗은 그들이 길러온 고향 물을 한 모금 쭉 마시고 싶었지만, 용사들의 애틋한 마음과 목숨을 건 부하들의 충정에 목이 매여 차마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부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절대로 이 물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무릎 쓰고 갔다 온 사람들의 피와 같은 것인데 내가 어떻게 이 물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역대상 11:19, 현대 인의 성경) 그 부하에 그 대장 이라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하들은 대장을 위해 목숨을 걸고, 대장은 부하를 생각하여 물을 부어버리는 의리의 사나이들 이 서로 뭉친 곳이 바로 아둘람이었습니다. 아둘람은 이렇게 애틋한 사랑과 의리, 충성심, 멋진 인간미가 넘치고 낭만이 있었던 인생 도장이 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인생을 배워야 제대로 남자가 뭔지 인생이 뭔지 배우는 것이 아닐까요? 가끔 라브리에서도 물 떠오기 와 비슷한 놀이가 있습니다. 자기 키 보다 더 큰 눈사람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눈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고... 추운 겨울에 땀이 날 정도로 실컷 자연 속에서 뒹굴고 뛰고 놀다가 보면 대부분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돌아갑니다. 공차기, 물장난, 한밤에 영화보기, 생일 파 티 해 주기 등도 있는데 이 모든 장난들은 각종 마음의 상처에 치유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을 하면서 인생을 배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8. 아둘람은 우정과 사랑이 넘치는 낭만적인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여러분은 애인을 맡길만한 친구가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다윗과 요나단 과의 우정은 소문날 정도였는데, 여자들과의 사랑보다 더했다. 고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의리 있는 친구 사이, 혹은 친구다운 친구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교회 안에 아내를 맡길만한 친구가 몇이나 있습니까? 자식들을 맡길만한 친구들이 몇이나 있습니까? 지갑을 맡길만한 친구가 몇이나 있습니까? 한바탕 싸우고도 다시 일하고 놀러 다닐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됩니까? 만약 그런 친구를 몇 명이나 사귄 분이 계시다면 인생을 성공한 것이며 여러분은 다윗보다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그런 친구를 겨우 한 명 밖에 사귀지 못했거든요. 평생 동지였던 요압이나 시므 이를 솔로몬에에게 나 죽고 나거든 손 좀 보라. 고 말한 것을 보면, 요나단 외에는 진짜 친구가 없 지 않았는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여러분, 더벅머리 목동 소년과 왕자와의 사귐 을 생각이나 해 봤습 니까? 거지와 왕자가 친구가 되는 것을 생각이나 해 봤겠습니까? 루이스가 말한 거지도 고개를 들 고 왕자도 머리를 숙이는 나라 는 이미 다윗과 요나단이 시작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자기가 이어 받 을 왕위를 친구 다윗에게 넘겨준 왕자였습니다. 그런 우정은 평소에는 잘 싹트지 않지만 아둘람과 같은 특수 상황에서 평생 동지와 평생 친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둘람에서 다윗이 아비가일이라는 지혜로운 여자를 만난 것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5장 은 다윗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마온 이란 동네에 사는 나발(Nabal)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아주 지혜로운 아내랑 살고 있었고 부자였습니다. 그가 양과 염소가 수 천 마리나 있는 부자였 다. (25:1-2)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큰 부자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1)자기의 모든 재산이 다윗이 지켜주었기 때문에 유지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고, 2)아비가일이 말한 것처럼, 나발이란 이 름의 뜻이 바보(folly, fool) 이고, 성질이 더럽고 완악하고 미련한 사람이었고, 3)다윗이 먹을 것을 - 9 -
좀 달라며 부하들을 보낼 때 매우 정중하게 부탁했으나(25:6-8), 누가 다윗인데? 다윗이 나를 위해 뭘 해 줬다고 나한데 먹을 것을 달라고 그래? 라고 하며, 다윗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쫀쫀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발이 빈손으로 돌려보낸 것만 아니라 다윗을 욕했기 때문에, 다윗이 불같은 화가 내며 나발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얼른 먹을 것을 잔뜩 갖고 가서 다윗에 게 용서를 빌고 남편의 목숨을 살려 냈습니다. 아비가일은 1)자기 남편이 다윗이 지켜주었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2)자기 남편이 바보 같이 완악하고 미련하고 구두쇠라는 알았고, 3)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이 손에 무고한 피를 흘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라며 다윗을 설득했습니다. 이 런 아내가 있는 남편은 얼마나 복을 받은 남편일까요? 그 후에 나발이 잔치에서 술을 너무 마시고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이 아비가일에 게 중매쟁이를 통해 청혼을 했고, 아비가일은 다윗의 청혼을 바로 받아들여서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비가일(Abigail)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매우 지혜로운 여자였을 것 같고, 다윗에게 줄 음식을 신속하게 준비하는 것을 보면 부지런한 여자였고, 그리고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 윗의 청혼을 곧 바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사랑에 굶주린 여자 같지 않습니까? 사실 아비가일은, 어떤 사모님처럼, 부자 마님이었는데도 아파트도 없고, 신혼여행 갈 돈도 없고 신혼방이라야 달랑 허름한 천막이나 토굴이 다였을 텐데, 다윗만 보고 시집을 간 것입니다. 성경에 아비가일의 미모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매우 똑똑하고 부지런 하긴 했 으나 그다지 예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물론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서 아비가일의 외모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고요? 그것은 모르 겠습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만족하지 못한 듯,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아들였습 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주었던 자기 딸 미갈을 발티(Palti) 라는 사람의 아내로 주어 버렸기 때문입니 다. 이처럼, 아둘람은 다윗이 도망 다니던 비상 시절이었지만 사랑도 하고 친구도 사귄 낭만적인 곳 이었습니다. 전쟁 중이라도 결혼할 사람은 하고, 친구를 사귈 사람은 사귑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9. 아둘람은 공평한 분배를 통한 경제 정의 연구소였습니다. 아둘람 시절 말기에 다윗이 집을 비운 동안 아말렉이 다윗의 가족과 아둘람 식구들이 머물던 불 레셋 땅 시글락에 쳐들어 와서 거기에 머물고 있던 모든 사람들과 가축을 사로잡고 모든 물건을 훔 쳐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글락은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아내들과 자 녀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랜만에 얻은 안정과 평화가 완전히 다 깨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몇 가지 정리할 것이 있습니다. 1) 난리를 당한 아둘람 가족들은 평소의 태도와는 다르게 다윗을 죽이려 했습니다(사무엘상 30:6). 나발이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의 온갖 보호와 사랑은 잊어버리고 이번 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배은망덕( 背 恩 忘 德 )한 사람들을 보고 다윗은 얼마나 좌절과 환멸을 느겼을까요? 2)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의지하고, 블레셋을 의지했던 잘못을 뉘우치고 정신을 차리고 아 말렉을 추격할지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보면, 위기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 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10 -
3) 다윗이 아말렉을 뒤쫓지만 그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 수가 없어서 결국 브솔 시내에서 200 명이 지쳐서 더 이상 행군을 할 수 없어서 남겨두고 400명만 데리고 추격전을 하게 됩니다. 4) 가족을 구출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광야에서 우연히 거의 죽어가던 이집트 청년을 만났는 데, 그가 아멜렉의 이동경로를 알려주었습니다. 5) 이집트 청년의 말대로 가서 아멜렉을 치고 빼앗겼던 가족과 가축 그리고 모든 것을 도로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 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 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사무엘상 30:18-20) 6) 승리를 기뻐하며 돌아오는 길에 낙오되었던 200명의 사람들을 브솔시내에서 만났는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 이 그들과 싸우러 가지 않은 200명을 제외하고 전리품을 나누자고 하므로 공동체 가 족 사이에 초 긴장과 싸움이 일어날 판이었습니다. 7) 다윗이 싸우러 간자나 못 간자나 공평하게 나누자고 설득하여 성사시킵니다. 다윗이 이르되 나 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 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하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사무엘상 30:23-25) 8) 그리고 자신들의 것이 아닌 유다 백성들의 소유물들은 모두 본래대로 돌려보냈습니다(사무엘상 30:26-31). 정성규와 교역자들은 말하기를, 이렇게 함으로써 유다 백성들과 다윗의 공동체 사이에 아름다운 유대가 형성되었다. 돌이켜보면, 다윗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유다 백성과의 우정이 싹텄 다. 고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가지고 온 전리품을 전쟁에 참여한 사람이나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쟁에 참여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누는 선례를 남긴 것은 기독교 공동체의 경제정의가 무엇인가를 보여 준 멋진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했던 만나의 분배 원칙과 같은 것인데(출애굽기16:13-21), 바울 사도는 그 정신의 핵심을 찔러 말하기를,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게 하여 평균케 하는 것이라고 정리한 바가 있습니다.(고린도후서8:15) 이것은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 로, 경제학자 비엘러는 이를 차등화된 평등(a differentiated equality)'을 지향하는 것 이라고 말했습 니다. 그러기에 모든 기독인들과 교회는 월급, 구제금, 장학금 등을 통해 다윗의 전리품 공평 분배 정신 을 더 많이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10. 아둘람은 게릴라전을 하기에 가장 좋은 저지대였습니다. 아둘람이란 장소는 창세기에 처음 언급되는데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의 친구 중에 하나였던 가 나안 사람 히라의 고향 이 아둘람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창세기 38:1,2) 나중에 여호수아가 가나 안 땅을 정복할 때 가나안 31 도성 중의 하나로서 유다 지파의 소유로 분배받은 척박한 땅이었습니 - 11 -
다.(여호수아 12:15, 15:35)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누어 진 후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변방 방 어선으로 건축한 국방성 중의 하나가 아둘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역대하 11:7) 바벨론에서 귀환 후 에는 유다 족속중에 일부가 여기에 모여 살았다고 합니다.(느헤미야 11:30) 최근에 고고학자들이 현재 텔 에쉬-세이크 마드쿨'(Tell esh-sheikh Madhkur)이라는 곳이 아둘람 으로 추정된다. (L. Wood)고 하는 한 장소를 찾았는데, 이 부근에는 석회석 벽으로 된 굴이 많으며, 산 중턱에 약 400명 정도가 살기에 적합한 동굴을 하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Conder, Robinson). 만약 이곳을 아둘람으로 본다면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는 약 15km 정도 떨어진 곳이며, 가드 남 동쪽에서 약 14km 지점이 됩니다. 여기에 내려가서( 야라드 ) (사무엘상 22:1)라는 말은 베들레헴에 비하여 아둘람 지역이 상대적으로 낮은 땅 혹은 저지대 라는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본래 고지대는 사람들이 살기 좋아하지만, 저지대 는 사람들이 살기 싫어하는 습기가 많고 물이 많고 굴이 많은 땅입니다. 그렇다면 아둘람은 해발 800m의 중앙산악지대에 있는 예루살렘보다는 낮고, 해발 100m의 해안평야지대에 있는 블레셋 땅보 다는 높은 완충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전쟁 시에는 언제나 피 비린대 가 나는 최대 접전지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둘람은 게릴라전을 하기에 적합했습니다. 땅값도 싸고 사람들도 살기 싫어하는 저지대가 한 가지 좋은 것은 게릴라전을 하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고전한 것은 늪지대 때문이고, 빈 라덴을 잡지 못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석굴 때문이라고 하는데, 다윗도 사 울의 군대 앞에 도피처로 택한 곳은 저지대였습니다. 치고 빠지고 숨고 가 게릴라전의 전술입니다. 그런 전술을 펴기 가장 좋은 곳이 황무지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런 저지대 황무지를 전략적 요충지로 선택했습니다. 저지대가 게릴라전을 하기에는 가장 최적지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처음에는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며 저지대나 황무지 혹은 산악 지대를 전전한 사람입니다. 십황무지 수풀이나(사무엘상 23:14), 마온황무지(사무엘상 23:24), 엔게디 요새(사무엘상 23:29) 등 대규모 토벌 작전을 벌이기 힘든 난공불락의 황무지, 저지대, 요새가 많았 습니다. 나중에 압살롬의 쿠데타 때에도 저지대로 도망갔습니다. 저지대는 남이 좋아 하는 땅도 아 니고 남이 탐내는 땅도 아니고 남이 쉽게 쳐들어 올 수 있는 땅이 아니기 때문에 게릴라전을 하기 에 좋습니다. 저는 한 때는 고지대론과 미답지론으로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던 방화범입니다. 그러나 지금 은 저지대 비전론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청년대학생들의 가 슴에 비전의 불을 지를 때보다 훨씬 행복합니다. 물론 부모들은 자식들을 저지대로 가라고 부추기는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요즘 청년들 중에는 다윗처럼 위험하고 험악한 저지대 황무지 로 내려가려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러나 저지대 에 가면 게릴라전을 하기가 좋습니다. 맺는 말씀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둘람 공동체 모델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다윗 시대에 잠시 있 었던 한시적 공동체로서 지금과 같은 최첨단 도시문명 속에 있는 현대 교회와는 안 맞다. 고 말했습 니다. 사실 한시적인 공동체였다. 라는 말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최첨단 전자 - 12 -
문명과 도시 생활을 하는 시대일수록 다윗 시대가 아니라 가능하면 아브라람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 라가서 가장 원시적인 공동체의 정신과 형태를 빌려오는 것이 절실하며, 그런 원시적 영성과 저지 대 야성 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발견한 청년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의 아름다움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어느 것을 배우고 적용하고 싶으십니까? 1) 아둘람은 영적 피난처였습니다. 2) 아둘람은 아픈 가슴을 안고 와서 수술했던 종합병원이었습니다. 3) 아둘람은 정의가 무엇인가 볼 수 있는 실험실이었습니다. 4) 아둘람은 다윗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도록 연습한 순종 연습실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왕이 될 때는 좋은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을 불순종한 왕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신다. 는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 중에 하나였습니다. 5) 아둘람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영성 훈련소였습니다. 6) 아둘람은 시골에 있었지만 장차 나라를 움직이는 기라성 같은 인재들을 기르는 사관 학교였습 니다. 7) 아둘람은 거룩한 모험과 장난과 감동이 있는 인생 도장이었습니다. 8) 아둘람은 우정과 사랑이 넘치는 낭만적인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9) 공평한 분배를 통한 경제 정의를 실현한 경제 공동체입니다. 10) 아둘람은 게릴라전을 하기 가장 좋은 저지대였습니다. -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