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성막을 짓는데 들어간 건축 재료는, 금이 29 달란트 730 세겔(약 1 톤 반), 은이 100 달란트 1775 세겔, 놋이 70 달란트 2400 세겔이었고(출 38:24-29), 또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는 베실, 양가죽, 염소털, 보석, 해달가죽, 조각목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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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교사용) 4-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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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성막(tabernacle) 성막의 건축에 필요한 설계, 재료와 인력 성막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신 대로 모세에게 명하여 짓게 하셨다. 출애굽기 25 장 9 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릇 내가 에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물질과 인력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조달( 調 達 )하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25 장 1 절에서 9 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하셨다. 또 출애굽기 31 장 1 절에서 11 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깍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고,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지혜를 주어 그들로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 곧 회막과 증거궤와 그 위의속죄소와 회막의 모든 기구와 상과 그 기구와 정금 등대와 그 모든 기구와 분향단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과 제사직을 행할 때에 입는 공교히 짠 의복 곧 제사장 아론의 성의와 그 아들들의 옷과 관유와 성소의 향기로운 향이라 무릇 내가 네게 명한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출 36:1)고 하셨다. 이렇게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물질과 인력을 자체 조달( 調 達 )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막을 짓는데 들어간 건축 재료는, 금이 29 달란트 730 세겔(약 1 톤 반), 은이 100 달란트 1775 세겔, 놋이 70 달란트 2400 세겔이었고(출 38:24-29), 또 청색, 자색, 홍색의 가는 베실, 양가죽, 염소털, 보석, 해달가죽, 조각목등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50 년전 미국에 자료에 의하면 500 만$(약 60 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학습문제 1.성막은 누가 설계하고 만들게 하였는가? 2.성막을 짓기 위한 재료는 어디서 조달하라고 하였는가? 3.성막을 짓기 위한 예물은 어떠한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의 것을 받으라 하였는가? 4.성막의 겉모양은 허름해 보였고 내부는 매우 호화롭게 꾸며졌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였다고 생각되는가? 각자 느껴지는 생각을 두 가지 이상 자유롭게 써보자. 성막( 聖 幕 )이 갖고 있는 의미는? 1.성막의 명칭이 가진 의미. 1)성막( 聖 幕 )

(출 26:1 너는 성막을 만들되 양장 열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출 26:15 ; 39:33) 성막( 聖 幕 )은 히브리어로 '미쉬칸'이다. 이 말은 '거주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거처', '거주지'란 의미를 뜻한다. 그러므로 성막은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천막임을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계신 곳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매우 성스럽고 거룩한 곳이다. 그래서 성막은 이스라엘백성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울타리가 쳐지고 레위지파에 의하여 24 시간 지켜졌다. 만약에 함부로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즉결처분이 될 정도로 성역화 된 곳이다. 이렇게 성막은 성스러운 천막인 것이다.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2)회막( 會 幕 ) (출 33: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다 진밖에 회막으로 나아가며) (출 39:32) 회막( 會 幕 )은 히브리어로 '오헬 모메드'이다. 이말은 '회집( 會 集 ) 하는 장소'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장막', '만나는 집', '만나는 천막' 즉 교제하는 곳이란 뜻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만물의 창조자시며 주관자이시다. 또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는 장소를 구별하셨던 것이다. 3)여호와의 장막( 帳 幕 ) (왕상 2: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에 뿔을 잡으니) 장막( 帳 幕 )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오헬'로 '천막', '처소'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장막은 하나님이 계신 처소(천막)이란 뜻을 갖고 있다. 솔로몬 왕은 성전 봉헌식때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대하 6:18)하였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장막은 꼭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곳에만 계신 곳이라기 보다는 섬기는 장소에 의미를 더 부여( 附 與 )하고 있다.

4)법막( 法 幕 ) (대하 24:6 왕이 대제사당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사람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증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법막( 法 幕 )은 히브리어'오헬 에드트'이다. 이 말은 '법의 막', '증거( 證 據 )의 천막'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법막은 하나님의 증거막( 證 據 幕 )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천막이란 뜻이다. 십계명의 돌판을 증거판이라고 하였다(출 25:6). 5)여호와의 전 (출 23:19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여호와의 전은 히브리어로 '여호와 바이트'이다. 이 말은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궁전( 宮 殿 )'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신 곳으로 말할 수 있다. *학습문제 1.성막의 명칭을 통하여 느껴진 성막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에 대하여 각자에 의견을 적어보자. 2.성막( 聖 幕 )의 구조( 構 造 )가 갖고 있는 영적 의미는? 성막은 길이가 100 규빗(45m)에 폭이 50 규빗(22.5m)인 장방형의 세마포 울타리를 친 마당 안에 지어졌다. 약 310 평 정도의 대지 위에 지어졌다. 성막의 외형의 크기는 길이가 30 규빗(13.5m), 폭이 10 규빗(4.5m),

높이가 10 규빗(4.5m)의 크기로 지어졌다. 그리고 성막 안에는 휘장으로 칸을 막아 지성소는 가로 10 규빗, 세로 10 규빗, 높이 10 규빗이 되는 것이다. 성막은 밖에서 보면 장방형으로 지어졌고, 안에는 정방형인 지성소와 장방형인 성소로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겉으로는 약 18 평 정도밖에 안되는 작은 장막이었다. 그러나 이 성막은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만나는 장막으로, 성스러운 곳이요,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막의 규격을 통하여 여러 가지의 영적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1)장방형( 長 方 形 )의 뜰 성소를 가운데 두고 주위를 가로 50 규빗, 세로 100 규빗으로 하고 높이 5 규빗되는 세마포 울타리를 두르고 세마포 울타리 안을 성막뜰이라고 하였다. 이 뜰에는 번제를 드리기 위한 놋 제단과 물두멍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폭이 20 규빗이나 되고 고가 5 규빗 되는 넓고 높은 문이 동쪽에 나 있어서, 이스라엘백성은 누구나 항상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되어있었다. 그러므로 이 뜰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이곳을 마구 밟고 다녔던 것이다. 우리는 이 성막 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주님의 생애는 무시당하고 짓밟힌 생애이시다. 그것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그들에 의해서였다. *학습문제 1.예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으로부터 많이 짓밟히고 무시당했는가? 직분을 적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었나 적어 보자. 2.성막 뜰로 들어가는 문은 20 규빗으로 넓고 높게 나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인가? 마태복음 11:28 절 말씀을 읽고 대답하여 보자. 참조: 요 3:16 ; 6:37, 롬 10:9 13 절.

2)성소( 聖 所 )(출 26:31 33) 성소( 聖 所 )는 성막안에 있는 방이다. 성막은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장이 30 규빗이고, 광이 10 규빗으로 지어졌다. 그 중에 성소는 출입문 입구로부터 장이 20 규빗이고, 광이 10 규빗 되는 방이다. 성막( 聖 幕 )에는 지성소( 至 聖 所 )와 성소( 聖 所 )로 나뉘어진 두개의 하나님을 섬기는 방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방이다.이 성소와 지성소는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짠 휘장으로 구분하였다.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아론의 지파라도 제사장들만이 출입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다. 웃시야 왕은 이곳에 들어가서 분향단( 焚 香 壇 )에 분향( 焚 香 )을 하려다가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는 징계를 받았던 곳이다.이와 같이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다. 성소의 내부의 크기는 약 12 평 정도이다. 그러나 성소의 내부에는 모든 성물이 금과 은으로 되어 있고, 가는 베실과 청색,자색, 홍색 실로 공교히 수놓아 짠 천으로 덮여져있었다. 한마디로 호화찬란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에서 제사장들은 떡상의 떡을 다시 전설하고, 분향단의 향을 피우며, 정금 등대의 불을 밝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을 섬겼다. 온전한 섬김과 봉사와 헌신이 있던 곳이다. 성막 뜰이 예수 그리스도의 외적인 모습을 상징한다면 성소는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의 내적인 모습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적으론 인간들에게 크게 흠모할만한 곳도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짓밟히고, 찢기시는 생애를 보내시며,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셨지만, 그분의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하신 분으로, 성부 하나님 앞에서도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항상 성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뜻대로 사셨으며, 성령 충만한 삶과 기도와 사람을 실천하시며 살아가신 분이시다.(요 7:16 ; 8:28, 29) 마태복음 11 장 29 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친히 말씀하셨듯이, 성자 하나님이시면서도, 항상 겸손한 모습으로 섬기는 삶을 친히 보이시고, 용서와 희생과

자비를 베푸시며, 진실한 사랑을 친히 실천하신 분이시다. 가장 고귀한 삶에 모범을 보이셨다. 성소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人 性 )중에, 내적 속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가 처음에 주님의 부름을 받고 교회에 나오면, 속죄의 은총을 깨닫게 되고 죄를 자복하며 회개를 하게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알게 되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단계의 신앙은 성막 뜰의 신앙이다.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여지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하게된다. 사명감도 깨닫게 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생각하며 충성하게 된다. 할 수 있는 한 예수님의 뜻안에서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 신앙이 성소의 신앙이다. 또 성소에서는 지상교회의 모형을 찾아 볼 수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학습문제 1.예수님의 사역중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고 은혜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감명을 받고 은혜스럽게 느낀 것을 한가지만 말해보자. 2.지금 나 자신의 신앙의 단계는 어디에 와 있다고 느껴지는가? 묵상하고 적어보자. 3)지성소( 至 聖 所 ) (출 26:34, 히 9:3 7) 지성소( 至 聖 所 )는 사방이 각 10 규빗으로 된 정방형의 방이다. 성소와 지성소는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짠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 지성소는 별개의 출입문이 없고 성소에서 휘장을 열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지성소에 출입은 아무나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 차례 온 이스라엘백성을 대표하여 뽑힌, 대제사장만이 출입했던 곳이다. 제사장이라도 일반제사장들은 들어 갈 수가 없는 곳이다. 성막은 크게 세 곳으로 나눌 수가 있다. 성막 울타리 안에 있는 성막뜰과 성막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이다. 성막 뜰에는 이스라엘백성이나 성전을 지키고 제사를 돕는 레위인들은 누구나 출입할 수 있던 곳이고, 성소에는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리워있어서, 성소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도 감히 들여다 볼 수 없는 특별히 구별된 곳이다. 이 곳에는 순금으로 쌓인 법궤와 순금으로 만든 속죄소(시은좌)와 그 위를 덮고 있는 그룹들이 있다. 그 해 대제사장은 정해진 날에 혼자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을 위한 속죄의 피와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의 피를 뿌리며 하나님을 섬겼던 곳이다. 히브리서 9 장 7 절 말씀에서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고 기록하고 있다. 지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성교회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지성소는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를 모신 곳이며,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가장 신성시 된 곳이며, 가장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다. 성막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림자라면 이 지성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 인 양성중 신성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빌립보서 2 장 6-7 절 말씀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라고 기록하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가 되시는 분이시다. 전지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신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이 분이 친히(몸소) 이 지성소와 같은, 거룩한 하늘나라의 문을 열고, 죄많은 인류를 그 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당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흘리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십자가위에서 못박혀, 피흘리시고 찢기셔서 운명하실 때에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갈라졌던 것처럼 하늘나라에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14 장 6 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성도님들이 하나님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총 때문인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과 마주 대하며, 그 분의 영광가운데 기쁨과 찬양과 감사가 넘치는 그 날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고전 13:12, 계 21:22-24) *학습문제 1.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피를 뿌리는 대제사장은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생각대로 적어보자. 2.고린도전서 3 장 10-16 절을 읽고 우리의 자신은 누구이며, 누구를 모신 사람인가? 를 적어보고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여 보자. 성막( 聖 幕 )의 울타리 (출 27:9-19) 성막 울타리는 성막의 본체를 사방으로 둘러쳐 있는 세마포( 細 麻 布 )의 울타리였다. 이 성막 울타리는 남쪽과 북쪽이 각각 100 규빗씩, 동쪽과 서쪽이 각각 50 규빗으로 되어 있었으며, 높이는 5 규빗으로, 남쪽과 북쪽은 각각 20 개씩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10 개씩 놋으로 만든 받침 위에 세워진 놋기둥에 흰 세마포를 매달아 둘러쳐서 만들어졌다. 세마포( 細 麻 布 )를 매다는 갈고리와 기둥과 기둥사이를 연결하여 고정시켜 주는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어졌다. 성막 울타리를 경계로 안쪽은 성막뜰이고, 바깥쪽은 일반적인 지역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므로 울타리 안에는 동쪽에만 있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야만 했다. 성막 울타리는 이방인이나 짐승들이, 함부로 성막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또 성막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기 위함이었다. 성막 울타리 안은 거룩한 성역이고, 성막 울타리 밖에는 세속적인 곳이었다. 울타리 높이는 5 규빗 (약 2.25m)이었으므로,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막 울타리의 높이는 성막의 높이 반이므로, 밖에서는 성막의 윗부분에 일부는 볼 수가 있었다. 성막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동쪽으로 하나만 나 있었다. 그러나 이 문은 폭( 幅 )이 20 규빗이고, 고( 高 )가 5 규빗이나, 되는 넓고 높은 문이었다. 이 문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짠 천으로 가리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쉽게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다. 성막 울타리에 둘러친 천은, 흰 세마포로 의와 거룩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면, 넓은 울타리의 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나 들어와도 좋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성막 울타리 밖에서는 흰 세마포만 보이지만, 성막 울타리의 동쪽에 있는 문에 휘장을 열고 들어오면, 성막 울타리의 세마포를 지탱하는 놋기둥이 5 규빗 간격으로 총총히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놋은 심판을 상징하는 쇠로 놋 기둥은 심판의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에도 교회의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교회 안에 들어와야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지신, 심판의 십자가가 보여야 참된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출석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아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였다면 육신의 몸은 교회를 들락거려도 마음은 아직 주님의 몸된 교회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이다. 성전 마당만 밟는 사람인 것이다(사 1:12). *학습문제 1.성막 울타리의 기둥과 받침은 놋으로 만들었다. 민수기 21 장 8 9 절과 요한복음 3 장 14 15 절을 읽고 놋 기둥은 무엇을 상징하나 적어보자.

2.울타리 연결고리와 갈고리는 은( 銀 )으로 만들었다. 은( 銀 )은 순결과 시련을 상징하기도 한다(시 12:6, 시 66:10). 은으로 만든 연결고리와 갈고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가? 3.성막 울타리의 세마포가 밖으로 쳐지었으므로, 놋기둥과 연결고리와 갈고리는 울타리 안에서만 온전히 볼 수가 있었다.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보이는 교회와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후에, 교회와 예수님의 모습은 어떻게 다른 가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간략하게 적어보자. 4.요한복음 10 장 7 절부터 9 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성막 울타리의 문과 예수님과 연결하여 생각하여 보자. 번 제 단 (출 27:1-8) 1.번제단( 燔 祭 壇 )의 뜻 번제( 燔 祭 )란 히브리 말로 '올라'이다. 이 말은 '피워 올리다.' '올라가다' 란 뜻의 기본동사인 '알라'에서 유래된 말로, 희생의 제물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그리고 단은 히브리말로 '미쯔바하'로 '동물을 학살하다 또는 죽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뜻은 짐승을 잡아 태워서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는 단이란 말이다. 이 단( 檀 )에서는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속죄제( 贖 罪 祭 ),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리는 감사제( 感 謝 祭 ),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드리는 화목제( 和 睦 祭 )가 드려졌던 곳이다.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 祭 物 )로 선택된 동물들이 이 단에서 죽여서 가죽을 벗기고 쪼개진 후에는 태우는 냄새가 항상 있었던 곳이다. 또 번제단은 제단 전체가 놋으로 싸여졌기 때문에 놋 제단으로 불러지기도 한다.

놋은 동과 아연의 합금으로 된 부패되지 않는 견고한 쇠이다. 그래서 놋은 완악하고 교만한 사람을 (사 48:6)상징하기도 하며, 힘(단 2:29)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심판의 단이다. 신약시대에 십자가를 상징하는 단이다. 번제단에서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짐승이 대신 심판을 받아 드려져서, 피가 뿌려지고, 태워질 때, 그 짐승을 제물로 드린 사람의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속죄의 단이다.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지신 십자가는 심판의 장소이며, 희생의 장소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속죄의 장소이며,하나님과의 화해의 장소이며, 구원의 장소이다.(행 10:39-43, 고전 1:18, 고후 13:4)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절) 말씀하셨다.

2.번제단( 燔 祭 壇 )의 위치 번제단( 燔 祭 壇 )은 성막 울타리에 하나뿐인 동문( 東 門 )으로 들어가면, 성막 뜰에서 가장 먼저 대하게 되는 곳이다. 누구나 성막 뜰이나 성막 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 번제단을 만나야만 한다. 번제단은 죽음이 있는 곳이며, 희생이 있는 곳이며, 용서와 자비가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번제단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림자이다. 그래서 성막뜰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장소에 있는 것이다. 성막이 이 땅에 세워진 하늘나라의 모형이요 그림자라면, 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3.번제단( 燔 祭 壇 )의 규격 번제단( 燔 祭 壇 )은 장과 광이 각각 5 규빅(약 2.25m)으로 정사각형이며, 높이는 3 규빗(약 1.35m)이다. 번제단의 장과 광은 5 규빗이었다. 성경에서 5 라는 수는 고통의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질병의 고통을 안고 온갖 병자들이 모여드는 솔로몬의 행각의 기둥이 다섯이고,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여인이 다섯 남편과 이혼한 고통을 겪은 사람이다. 이 번제단은 고통의 장소이다. 짐승들이 죽임을 받아 불에 태워지는 고통의 장소이다. 그리고 죄를 범한 인간이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괴로워하며 용서를 구하는 곳이다. 이와 같이 번제단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이다(엡 2:13 16). 그리고 번제단의 고(높이)는 3 규빗이었다. 이 3 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수이다. 하나님은 성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겪으신 장소가 십자가위에 이었듯이,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예표하는 장소이다. *학습문제 1.번제단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를 적어 보자.

2.예수님이 가롯 유다를 통하여 은 삼십개에 대제사장에게 팔리신 후, 어떤 수모와 고난을 당하셨나 차례대로 적어보자 (참조; 마 26:41 27:56, 막 14:43 15:41, 눅 22:54 23:49, 요 18:12 19:42). 4.번제단( 燔 祭 壇 )의 재료( 材 料 )(출 27:1 2) 번제단의 재료는 조각목으로 만들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그리고 놋으로 싸라고 하셨다. 번제단은 이와 같이 조각목과 놋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조각목은 팔레스타인 광야에서 자라는 싯딤나무(아카시아나무)로 광야의 기후에 특성인, 가뭄과 강한 바람과 뜨거운 햇살을 이기고 자라는 나무이다. 모진 풍파를 이기고 자라는 나무인 것이다. 이 나무를 베어서 가시를 떼어내고 껍질을 벗기고, 잘 다듬어 조각 조각을 맞추어 번제단을 만들었다. 이 조각목을 두 가지의 견해로 해석하고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보고 있다. 이사야 53 장 2 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주 앞에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셨으며, 또 공생애의 사역시에도 많은 시달림을 받으시고,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심을 당하셨다. 싯딤나무가 광야에서 모진 풍파를 이기고 자라서, 베어지고 다듬어져 번제단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도 죄악된 인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가난과 유혹과 핍박을 이기시고, 한 마리의 어린양처럼,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셨기에, 조각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으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조각목을 죄로 인하여 버림받은 인간으로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로 뭉쳐진, 거칠고 모진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겉에는 가시가 나있고, 거칠고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모진 세파에 이겨나가며, 속을 감추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다듬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고 있다. 이런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고, 모든 겉을 놋으로 싸라고 하셨다. 놋은 십자가를 상징한다. 십자가는 심판의 장소요,죽음이 장소요, 고통의 장소이다. 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대신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이룬 은총의 장소이며, 죄를 사함 받은 속죄의 장소이며,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화목의 장소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의 장소이다.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완성시킨 장소인 것이다. 놋은 또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심판과 사랑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인성과 신성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죄많은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저주와 죄를 짊어지시고, 고난의 십자가위에서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을 완성시키신 것과 같이,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를 놋으로 쌓던 것이다. 그래서 죄인인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이 아니고는, 다른 어느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 4 장 11 절,12 절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설교하고 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학습문제

1.조각목(아카시아나무)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보자. 2.당신은 정말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그 이유를 적어 보자. 5.번제단( 燔 祭 壇 )의 뿔(출 27:2) 번제단의 네 모퉁이에 뿔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뿔은 놋으로 쌓여졌다. 이 뿔의 용도 중에 하나는, 제물로 드려진 짐승을 번제단에 매어두기 위하여서 였다. 그러므로 이 뿔은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소나 염소나 양들을 매어 두기에 충분한 견고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뿔에는 속죄의 짐승에 피를 바르기도 하였다.(출 29:12) 이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구원과 생명을 상징하는 뿔이다. 시편기자는 시편 118 편 27 절에서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뿔에 맬지어다"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샤가랴는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에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68,69)라고 찬송하였다. 또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시 18:2)라고 찬송하였다. 열왕기상 1 장 말씀에서 다윗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솔로몬이 왕이 되자, 그는 반역자로 죽을 위기를 맡게 되자, 하나님 전에 가서, 번제단의 뿔을 잡고 살려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도니야를 살려주었다. 죽어야 마땅한 반역 죄인이, 이 뿔을 잡고 구원을 요구했기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 뿔은 그러므로 생명의 뿔인 것이다. 죽을 사람을 살리는 능력의 뿔인 것이다. 죄인을 구원하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 복음에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능력이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였다. 이 뿔은 복음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뿔은 번제단 네 모틍이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어느 쪽에서든지 번제단의 뿔은 잡을 수 있었다. 이것은 십자가의 복음은 세계의 어느 민족이든지,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복음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말하여 주고 있다. 그래서 성도는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고 하였던 것이다. *학습문제 1.죄인된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될 짐승들은 번제단 뿔에 줄로 매어졌다가 희생을 당했다. 우리의 구세주인 예수님은 무슨 줄에 매여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는가? 2.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얻으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가? 3.복음의 전파는 성도의 사명이다. 당신의 전도계획을 적어보자. 6.번제단( 燔 祭 壇 )의 고리와 채( 釵 ) (출 27:4 7 절) 성막은 이동할 수 있도록 천막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을 섬기는 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동할 때에는, 성막도 함께 이동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성막의 모든 기구들도 제사장들에 의하여 메어져서 옮겨졌다. 그래서 번제단에는 이동할 때에 채를 꿸 수 있게 끔 놋으로, 번제단의 좌우에 두 개씩, 둥근 고리 네 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번제단을 메는 채는 조각목을 곧게 다듬어서, 그 위를 놋으로 싸서 만들었다. 번제단을 옮길 때는 이 네 개의 고리에, 긴 채를 꿰어서, 사방에서 제사장들이 메고 이동하였다. 우리 나라에 가마를 메듯 제사장이 메고 옮겼다. 번제단의 고리는 놋으로 둥근 원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놋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며, 둥근 원은 영원( 永 遠 )을 상징하고, 또 사랑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시다. 아침과 저녁으로 변하는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시다. 이 사랑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셨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외형적으로 아무리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참된 사랑이 없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과 무관한 교회인 것이다. 참된 교회는 사랑의 연결고리에 의하여 서로 서로가 하나 되어서, 화합하는 교회인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된다. 한 지체, 한 지체가 서로 공존하고 협력할 때,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 속한 성도는,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야 한다. 교회에서 내 주장이 강하면, 주님은 뒷전으로 물러서라는 의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체된 성도는, 자기는 주어진 십자가를 담당하며, 희생과 이해와 용서를 하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 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둥근 원형의 고리처럼, 모가 나서도 안 되고, 중단 되어서도 안 되며,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13 장) 그리고 번제단을 메는 채는 거칠고 비틀어진, 싯딤나무(아카시아)을 곧게 다듬고, 그 위를 놋으로 싸서, 번제단을 메어도 부러지지 않게 튼튼하게 만들었다. 이 두 개의 곧은 채는 진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이며,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두 채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삐뚤어진 인생이 바르게 살려면, 길이요 진리되신 그리스도안에 붙잡혀야 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이 진리의 채가 사랑의 고리에 끼워져서 십자가의 상징인 번제단을 메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진리와 긍휼이 만나는 곳이다. 골고다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진리를 사랑으로 완성시킨 장소이다. 이 십자가는 번제단이 놋고리를 꿰어진 채에 의하여 메어지듯이, 진리이시며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셔야 하셨던 것이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셔야 하셨던 것이다. 교회는 그래서 진리와 사랑이 공존하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이다(행 20:28).

*학습문제 1.번제단에 원형으로 된 놋고리와 사랑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 2.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기전의 생의 목표와 믿고 난 후의 생의 목표를 말해보자. 7)번제단( 燔 祭 壇 )의 기구( 器 具 )(출 27:3) 번제단( 燔 祭 壇 )에는 제사를 돕는 기구들이 있었다. 기구의 종류는 '재를 담는 통' '고기를 담는 대야' '부삽' '고기 갈고리' '불을 옮기는 그릇' 등이 있었다. 본 장에서는 이 기구들에 담겨있는 영적 의미를 찾아보기로 하자. 1.대야(고기를 담는 그릇) 번제단의 대야는 번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잡을 때에, 피를 받는 데 쓰이기도 하였고, 또 각을 뜬 고기를 번제단에 올리기 위하여, 옮기는 그릇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번제단의 모든 기구들이 놋으로 만들어 졌듯이, 이 대야도 놋으로 만들어 졌다. 놋으로 만든 대야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라 볼 수 있고, 그 안에 담긴 제물이 된 짐승의 고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밤새 고문과 빌라도의 채찍으로 지치고 지친 몸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다가, 쓰러지고 또 쓰러지셨습니다. 그러자 로마병정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우고, 골고다에 오르게 하였다. 주님은 갈기갈기 찢겨져서, 대야에 담겨, 불에 태워지기 위하여 옮겨지는 고기처럼,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던 것이다. 십자가는 구원받은 인간에게는 사랑의 장소이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심판과 고통의 장소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엉키는 심혈의 기도를 드리시면서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셨다.(마 26:39) 이와 같이 골고다의 십자가는 예수님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장소였다. 그리고 번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고기가 이 대야에 담겨져서 번제단의 놋 그물 위에 올려져서 태워질 때,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대야는 인간의 죄를 옮기는 그릇으로 볼 수 있다. 이 그릇에 담긴 고기가 하나님의 거룩한 불에 의해서 태워졌을 때, 온전한 속죄의 제사가 되었듯이, 인간의 모든 죄는, 인간의 모든 죄를 친히 짊어지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지시고, 피흘려 죽기까지 하신 십자가에 의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대야를 전도의 대야라고 말할 수 있다. 전도는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십자가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믿으면, 죄사함에 은총을 받아,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전도의 대야가 되어야 한다. 죄로 인하여 죽어있는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한다. 번제단에는 대야에 담겨져서 옮겨진 제물의 고기가 있어야만 제사가 올려졌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의 예배에는 성도의 심령이 제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번제단의 대야처럼 전도의 사명을 꼭 감당해야만 한다. 번제단의 대야에 가득히 고기를 채워서 옮겨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하나님이 기뻐하는 영혼을 많이 주님 앞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요한복음 4 장 24 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하셨다. 그런데 고기를 담아 옮기는 대야가 그 사명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피가 묻어야 되고 피비린내를 맡아야 하듯이 전도를 하려면 거기에 따르는 희생과 헌신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전도에 열매가 맺어 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교회가 아무리 아름답고 크게 지어졌어도 성도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천하만물보다 인간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신다. 죄인 한 심령, 한

심령이, 성령에 불에 의하여 태워지고 거듭날 때, 주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 잘하는 교회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전도 잘하는 성도를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이다. 교회의 부흥은 주님의 뜻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다. 전도는 최고의 사랑의 실천이다. *학습문제 1.번제단의 놋대야는 무엇이 담겨졌는가? 이것들이 담겨졌을 때 놋대야는 어떻게 되었을까? 2. 성도의 사명은 전도대야를 채워서 제단에 옮기는 것이다. 당신의 전도 계획은? 2.고기 갈고리(출 27:3) 번제단에는 번제물의 짐승의 고기를 옮기는데, 쓰이는 고기 갈고리가 있었다. 이 갈고리도 놋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갈고리는, 사람의 손에 들고 사용하기 편리하게 작지만, 정교하게 만들었다. 제사장들은 이 갈고리로 번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고기를 찍어서 옮기기도 하였고, 번제단의 그물위에 고기를 고르게 펴는데도 사용하였다. 또 요제로 드리는 고기를, 하나님께 흔들어 드리는데도 사용하였다.(레 7:30) 이 갈고리는 번제단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 온전히 드려지도록 돕는 갈고리 이다. 갈고리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번제단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돕는 기구 중에 하나이다. 이것이 갈고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갈고리는 번제물의 짐승들을 직접 잡아서 드리는, 제사장들 외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갈고리는 단단한 놋으로, 끝이 뾰족하게 만들어졌고, 굽어졌기 때문에, 찍혀진 고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쉽게 달지도 않고 단단하여,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더욱 반들반들 빛났던 것이다. 이 번제단의 갈고리는 봉사의 갈고리라고 볼 수 있다. 이 갈고리는 봉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잘 말하여 주고 있다. 교회에 이 갈고리와 같은 직분자나 성도가 많으면, 교회는 든든히 서고, 자연히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는 하면 할수록 더욱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학습문제 1.봉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4 가지로 구분하여 적어보자. 1 2 3 4 2.봉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3.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나는 지체 중에 어디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4.신앙생활을 하면서 봉사를 한 다음에 어떤 생각이 들었었나 진실히 적어보자. 5.앞으로 교회생활을 하면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3. 불을 옮기는 그릇(화로) (출 27:3) 번제단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번제물을 태우는 불은 거룩하게 구별된 불이다. 같은 물건도 쓰이는 용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다르게 나타난다. 같은 질그릇을 강단에 올리고 꽃꽂이를 한다면, 그 질그릇은 예배를 위하여 구별된 성물이 된다. 그러나 같은 질그릇이라도, 김치를 담았다면 김치그릇이 된다. 성물로 쓰여지는 그릇은, 김치를 담는데 사용하는 그릇과는 같은 질그릇이라도 다르게 보이고, 또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번제단의 불도 마찬가지다. 어느 물질을 가열하여 태우는 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불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을 태우는 불이기에, 거룩하게 구별된 불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관리되어져야 한다. 번제단의 화로는 이 불을 담고 옮기는데 쓰는 그릇으로 놋으로 만들어졌다. 번제단은 제물을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단이다. 번제단에 번제물이 드려져도, 불이 없어서 태우지 못하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불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이 불을 담아 두고 옮기는 그릇은 그래서 없어서는 안되는 그릇이다. 이 그릇은 하나님의 불을 꺼지지 않게 관리하고 또 번제물을 태우는 불씨를 제공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래서 매우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이 그릇은 놋으로 만들어졌고, 불이 계속 담겨져 있었으므로, 항상 그 그릇 자체도 뜨거웠을 것이다. 특히 이 그릇에 담겨진 불은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불이다.(레 9:24) 불은 성령을 의미한다. 교회는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가 이 그릇과 같은 것이다. 교회가 전도에 불이 붙고, 열심을 내고 부흥하려면,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가 있어야 한다. 즉 불씨를 담아 옮기는 그릇과 같은 성도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불은 죄를 태우고 능력을 임하게 한다. 그래서 성령의 불붙는 교회가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다. 이 불을 옮기는 그릇이 만들어지기 위하여서는 먼저 금속들이 녹아져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했고, 다음에는 두들겨지고 다듬어져야 했을 것이다. 성도가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깨어지고, 녹아지고, 다듬어져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불을 받은 성도는 마귀의 시험도 능히 이기게 된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힘차게 되며, 핍박이나 환난이 닥쳐도 두렵지 않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확신과 영적인 힘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학습문제 1. 놋이 번제단의 불을 옮기는 그릇을 만드는 공정과 인간이 하나님이 성령의 그릇이 되기 위한 과정을 비교하여 적어보자.그리고 나 자신은 어느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2.불이 담겨진 그릇과 불이 안 담겨진 그릇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을 비교하여 글로 써보자. 3.마태복음 26 장 69 75 절과 또 사도행전 4 장 13 21 절을 읽고 두 곳의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의 차이를 세 가지로 분류하여 적어보고 또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적어보자. 4.부삽(재를 퍼담는 기구) (출 27:3) 부삽은 번제단에 드려진 제물이 타고난 재와 찌꺼기를 긁어서 재통에 담는 기구이다. 부삽은 다른 기구들과 같이 놋으로 만들었다. 부삽은 재와 찌꺼기를

긁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습은 온통 재와 찌꺼기로 더럽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부삽의 맡은 바 임무이기에 그 일을 담당해야만 했다. 부삽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럽고 추한 인생의 길을 친히 체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히브리서 4 장 15 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고 하셨다. 우리 주님은 인생의 삶에, 찌꺼기 같은 몸 속에 있는 각종 질병과 더러운 귀신 또 심령 속에 있는 악하고 추한 것들을 깨끗하게 긁어내어 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처럼 일곱 귀신들려서 괴로움 당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자 깨끗하게 치료를 받아서, 충성되고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불치의 병으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가족들로부터 외면 당하던 문둥병자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깨끗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심령과 육체 속에 붙어있는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부삽과 같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도는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서 부삽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 안에 성도님들중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명성이 잘 드러나는 일은 잘하는 반면, 드러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나 몰라'라 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러나 반면에 어떤 성도님은,남이 하기 싫어하고 지기 싫어하는 짐을 묵묵히 지는 성도님이 있다. 교회생활은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므로 찌꺼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여러 가지 시험도 생기고, 말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부삽같이 묵묵히 찌꺼기를 긁어내는 성도가 있어야 한다. 궂고 드러나지 않는 일을 담당하는 성도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 이러한 성도님들 때문에 교회의 교우들간에 화목하게 되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게 된다. *학습문제 1.성경에 인물 중에 부삽과 같은 인물은 누구인가?

2.나 자신은 부삽과 같은 일을 한 적이 있는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었나를 적어 보자. 3.부삽의 일은 번제단의 재와 찌꺼기를 긁어내고 퍼서 재통에 담는 일이다. 갈라디아서 6 장 2 절의 말씀을 읽고 자신의 신앙계획을 적어 보자. 4.다른 성도나 이웃사람이, 남에게 잘 드러나는 일은 열심히 하고, 궂은 일은 피하는 것을 볼 때에 어떤 마음이 들었었나 적어 보자. 5.재를 담는 통(출 27:3) 이 통은 번제의 제사를 드리므로 생기는 재를 담아다가 멀리 진밖에 갖다 버리는데 사용하였다. 그러니까 이 통은 번제단을 청소하는 도구중에 하나였다. 이 재 통도 놋으로 만들어졌다. 번제단의 재가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성막의 뜰과 울타리는 바람에 날리는 재로 더럽혀졌을 것이다. 그리고 성막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장막에 날리어서 불결한 환경을 가져오게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재를 진밖에 버리라고, 모세에게 명령을 하셨을 것이다. 또 한가지는 번제단의 재는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제물이 타서 남긴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일반적인 재와는 다른 재이다. 그러므로 구별된 재통에 담겨져서 버려져야했던 것이다. 재통은 재를 담아 뚜껑이 닫혀진 상태로 옮겨져서, 진밖에 가서 재를 쏟아 버렸던 것이다.

재통에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추한, 죄악과 허물을 짊어지시고,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미련하고 연약한 인간을 감싸주시고 덮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온유하신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더럽고 추하고 버림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도 예수님안에 들어오면,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주님께서 감싸주시고, 어루만져 주시고, 지켜주시는, 주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추하고 악한 인간이라도 예수님께 나오면 받아 주시는 분이시다. 또 재통은 교회의 나쁜 일이나 부정적인 요소들을 혼자 안고 있다가 멀리 가져다 버리는 귀한 성도를 생각 할 수 있다.이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을 닮은 성도이다. 교회에서 꼭 필요한 일꾼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이다. 오늘날 교회는 재통의 역할을 하는 귀한 성도가 더욱 필요한 시대이다. 개인 주의가 성행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문제나 남의 허물을 전해 듣고 나서 그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기도로 이기지 못하고, 동네방네 다니며 말하는 사람은 교회의 일꾼이 아니다. 마귀의 기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잠언 18 장 8 절 말씀에서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 같아서 뱃 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고 말씀하신다.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이 사람의 귀에 잘 들어온다. 그래서 교회의 일이나, 가정의 일이건, 나쁜 것은 담아서 멀리 버리고,좋은 말만 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며 기도해야 한다. 재통은 뚜껑을 반드시 덮어야 했다. 뚜껑이 열려있으면 담겨진 재가 바람에 날리기 때문이다. 뚜껑은 성도의 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은혜 받은 성도라면 입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마디 말을 잘못하면, 교회를 시끄럽게 되고, 복음의 길을 막히게 한다. 그래서 성도는 입에 자갈을 물려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학습문제 1.나는 교회나 가정에서 재통의 노릇을 담당하고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었지? 한가지만 적어보자.

2.우리주위에서 재통같은 사람은 누구일까? 한 사람을 지명하고 그 예를 들어보자. 3.구스 여인을 취한 모세를 향하여 비난을 하였다가 하나님께 혼쭐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징계를 받았는가? (민 12: ) 4.잠언 18 장 21 절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를 적어 보자. 번제단( 燔 祭 壇 )에서 드려지는 예물과 제사 번제단( 燔 祭 壇 )에서 번제물로 드려지는 제물에는 수소, 암소, 수 염소, 암 염소, 수양, 암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의 새끼, 곡식의 고운 가루, 구운 무교병, 볶아 찧은 첫 이삭 등이 있다. 제사의 종류와 예배자의 직분과 형편에 따라서 제물의 종류가 다르게 올려 졌다. 그러나 번제단에 드려지는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적당히 드리거나 아무렇게 드려서는 아니 되었다. 하나님 말씀인 율법의 규정대로 드려져야 하였다.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하였다. 1.온전한 것이어야만 하였다. (레 22:21-22 절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2.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였다. (출애굽기 25:2 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고린도후서 9:7 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3.믿음으로 드려야만 하였다. (히브리서 11:4 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4.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하였다. (시편 50:14-15 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라로다") 5. 가장 귀히 여기는 것으로 해야 한다. (잠언서 3:9,10 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성도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법을 바르게 알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고 축복도 빨리 받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형편과 그 마음속까지도 다 아시고, 보시고, 계신 분이시다. *학습문제 1. 누가복음 21 장 1-4 절의 말씀을 읽고 과부의 두렙 돈을 모든 사람의 것보다 많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뜻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2.이스라엘의 백성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에,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취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친 영향과 그 자신에게는? 3.성경의 말씀중에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나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것들 중에 가장 귀한 것은? 4.말라기 1 장 13,14 절을 읽고 하나님께 제물을 잘못 드렸을 경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나를 적어 보자. 1). 2). 번제단( 燔 祭 壇 )에서의 제사 (레 1: 7:) 번제단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번제의 제사를 드린 단이다. 제사란 히브리어 '자바흐'로 '희생을 드리다, 제사를 드리다'란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니까 제사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행위를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구약시대의 예배인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예배는 구약시대의 제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성막 제사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지금 이 시대에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바른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장 고귀한 일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할렐루야!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하나님께 영원히 드리자. 1).번제를 드리는 목적 번제는 구약교회에서는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드려진 제사이다. 그리고 번제로 드려진 제물로는 수소(레 1:3), 양과 염소(레 1:10),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레 1:14)들이었다. 번제를 드리는 시기는 매일 아침과 저녁, 안식일, 월삭, 유월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그리고 출산한 여인이나 문둥병자의 정결 의식 때였다. 번제는 의무제가 아니라 자원제로 생활정도에 따라 다른 제물을 드렸다. 번제는 '속죄'와 '성결'과 '헌신'을 위한 제사이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정상적인 교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드린 예배행위였다. 또 번제는 인간을 죄악된 것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만남을 가져오게 하는 제사이다. 그래서 번제를 인간의 원죄에 대한 제사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번제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 위한 제사이다. 2).번제에 사용된 제물 1 수소 (레 1:3) 번제에 사용된 제물중에 가장 크고 값이 나가는 것이다. 소는 온순하여 복종과 인내심이 강한 동물로 겸손과 헌신을, 또 근면과 봉사 정신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흠없는 수소를 번제로 드리는 것은 최고의 것으로, 적극성을 가지고 드려야 함을 상징한다.

2 양과 염소(레 1:10) 소의 번제로 드릴 형편이 못되는 사람은, 양과 염소를 수컷으로 드렸다. 양은 온유와 순결과 겸손과 희생의 상징이다. 염소는 양과 모양은 닮았으나, 순결성외에는 양보다 호기심도 많고, 꾀도 많고, 고집도 세고, 성급하다. 이것은 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간을 대신한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 3 산비둘기와 집비둘기의 새끼 (레 1:14) 가난한 사람들이 번제를 드릴 때에, 이것들을 드리도록 하였다. 비둘기는 온순하고 순결한 새이다. 비둘기는 겁이 많고 약하나, 서로 사랑하며 평화를 상징하는 새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잘 길들여지는 새이다. 그래서 인간을 대신으로 희생의 제물로 선택되었다. *학습문제 1.당신은 예배를 드릴 때에 어떠한 목적과 마음의 자세로 드리는가? 2.당신의 형편상 구약 번제시대로 생각한다면 무엇을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3.번제물로 드려지는 제물의 공통점을 적어 보자. 3) 제사( 祭 祀 )의 방법

제사의 방법은 번제로 드려지는 제물에 따라,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었다. 이 시간에는 제사의 방법을 연구하여 보기로 하자. 1 번제물이 소인 경우(레 1:3 9) ᄀ흠없는 수소로 드려야 함. ᄂ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드려지는 수소의 머리에 직접 안수해야 함. ᄃ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단 앞에서 제물을 죽여 제단에 바쳐야 함. ᄅ제사장들은 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번제단의 사면에 뿌려야 함. ᄆ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야 함. ᄇ제사장들은 번제단에 불을 피우고, 나무를 벌여 놓아야 함. ᄉ제사장들은 각을 뜬 번제물의 고기와 머리, 그리고 기름을 번제단 나무 불위에 벌여 놓아야함. ᄋ제사장은 번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어서 단 위에서 불살라야 함. 2 양이나 염소일 경우 (레 1:10 13) ᄀ흠없는 수컷으로 드려야 함. ᄂ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제물의 머리에 안수해야 함. ᄃ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단의 북편에 성막 뜰에서 번제물을 직접 죽여야 함. ᄅ제사장은 번제물의 피를 번제단의 사면에 뿌려야 함. ᄆ번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머리와 기름을 떼어내야 함.

ᄇ제사장은 번제단에 불을 두고 그 위에 나무를 벌여 놓아야 함. ᄉ제사장은 번제물의 각을 뜬 고기와 머리 그리고 기름을 번제단 위에 벌여 놓아야 함. ᄋ제사장은 번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어서 번제단에서 태워야 함. 3 새일 경우(레 1:14 17) ᄀ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 ᄂ번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을 안수하지 않고, 손수 죽이지도 않고, 산채로 제사장에게 드려야함. ᄃ제사장은 번제단에 불을 두고 나무를 벌여 놓아야 함. ᄅ제사장은 제물을 번제단에 가져다가 머리를 비틀어 끊고, 피를 번제단 곁에다 흘려야 함. ᄆ제사장은 새의 멱통(먹이통)과 더러운 것을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진밖에 있었음)에 던져야 함. ᄇ새의 날개 자리에서 몸까지 찢되, 완전히 찢지 말아야 함. ᄉ번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함. *학습문제 1.번제물의 머리에 제물을 바치는 자가 안수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2. 번제물을 드리는 자가 번제단의 북편에 성막 뜰에서 번제물을 직접 죽이게 한 이유를 적어 보자. 3.번제물을 드리는 자는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머리와 기름을 떼어내게 한 이유를 적어 보자. 4.제사장이 번제단 사면에 제물의 피를 왜 뿌렸다고 생각하는가? 5.제사장은 번제물의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은 후에 번제단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말하여 주고 있는가? 6.새를 번제로 드릴 시에는 멱통(먹이통)과 더러운 것(노차타흐; 깃털)을 제거한 후 불살랐다. 이렇게 한 상징적 의미는?

7.번제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엇을 의미하나? (마 26:39, 눅 22:42, 막 14:36, 엡 5:2) 그리고 예수 안에서 성도들의 무엇을 의미하는가?(롬 12:1,2) 4)번제( 燔 祭 )를 드리는 시기와 그 제물 1 상번제( 上 燔 祭 )(출 29:40 41) ᄀ드리는 시기와 방법 상번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려졌다. 상번제의 제주는 제사장이어야 했다. 제물로는 1 년된 어린양을 아침 번제에 한 마리, 저녁 번제에 한 마리씩 드렸다. ᄂ상번제를 드리게 한 이유(출 29:42 43) 여호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하여 드리라고 하였다. 2 안식일( 安 息 日 )의 번제(민 28:9 10) ᄀ안식일에는 일년된 흠없는 수양 둘을 드렸다. 그리고 왕은 여섯 마리의 어린양과 흠없는 수양 한 마리를 드렸다. ᄂ안식일에 특별 번제를 드리게 한 이유? 안식일은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안식한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은 노동을 말며 안식하라고 한 날이다. 이 날은 육체의 안식을 취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몸과 마음을 드렸던 날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날이다. 오늘날 주일과 같은 날이다. 오늘날 주일은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다. 3 월삭( 月 朔 )에 드린 번제(민 28:11) ᄀ월삭은 매월 초하루를 말한다. 이 날의 번제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수양 하나 또 일년된 수양을 번제로 드렸다. ᄂ월삭 번제를 드리게 한 이유? 매월 첫 날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모든 날을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신앙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4 절기( 節 氣 )마다 드린 번제 (민 28:16 29:16) ᄀ유월절( 踰 月 節 )에 드린 번제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이때에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를 모두 칠 때, 문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그냥 넘어가므로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 유월절은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의 민족 해방의 절기이다. 이러므로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 일년된 수양 일곱을, 번제로 날마다 칠일간 절기가 끝나는 날까지 드렸다. 그러니까 유월절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의 절기이다. ᄂ칠칠절( 七 七 節 )(오순절, 맥추절)에는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년된 수양 일곱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 절기는 유월절이 지나고, 일곱 번째 맞는 안식일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절기로,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보리의 추수를 거의 끝날 때이다.

이 절기는 보리 수확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이며 또 새로이 추수할 곡식인 밀에 감사의 표현의 절기이다 ᄃ나팔절( 喇 叭 節 ) (레 23:23 25, 민 29:1 6) 나팔절은 안식의 달인 일곱 번째 달을 맞아 봉헌하기 위한 절기로 일반 월삭보다 더 큰 규모의 희생제사를 드렸다. 이 날은 종교력으로 7 월 초하루이지만, 민간력으로는 정월 초하루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의 설날과 같은 날이다. 그래서 이날은 신년절이라고도 한다. 이 절기에는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길고 우렁차게 불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노동을 금하고, 성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날이다. 나팔절이라는 절기에 이름은 나팔을 부는 절기였기 때문이다. 이 절기의 의미는 새해의 첫날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로 시작되는 한 해를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겠다는 신앙을 나타내는 절기이다. 이 날은 월삭도 되므로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월삭때 드리는 번제와 나팔절에 드리는 특별한 번제등 세가지의 제사를 모두 드리므로, 많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날이다. 이 날의 번제물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된 흠없는 수양 일곱 마리를 드렸다. 나팔절은 영적으로 두 가지의 미로 보는데 하나는 복음의 나팔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하나는 재림의 나팔로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ᄅ속죄일( 贖 罪 日 ) (레 16:26 32, 민 29:7 11) 속죄일은 종교력으로 칠월 십일이며, 민간력으로는 정월 십일이다. 이 날은 일 년중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날이다. 이 날은 노동을 금지하고, 금식을 하며, 스스로 괴롭게 하였다. 또 두 염소의 의식이 거행되는 날이다. (레 16:6 10) 이날에는 전민족적 참회의 날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제사를 드렸다.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와 일년된 수양 일곱 마리를 드렸다. 특히 이 날은 속죄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피로, 온 백성의 죄를 대속한 날로서

온 인류를 위하여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못박혀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예표하고 있다. ᄆ초막절( 草 幕 節 ) (레 23:33 44, 민 29:12 40) 초막절( 草 幕 節 )은 장막절( 帳 幕 ) 또는 수장절( 收 藏 節 )이라고도 한다. 초막절은 종교력 7 월 15 일부터 8 일 동안 지켰다. 이 절기는 일년 동안 지켜지는 모든 절기의 마지막 절기이다. 초막절기 때는 7 일간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백성이 초막을 짓고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성회로 모였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시에, 광야 40 년의 생활을 온전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절기였고, 또 하나는 일년의 추수를 무사히 끝마치게 하시고, 축복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다. 대략 양력으로는 9,10 월이 된다. 이러한 절기이므로 이 때는 많은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다. 이 절기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축제의 절기인 것이다. *이 때에 드려진 제물을 보면 첫째날 - 수송아지 13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둘째날 - 수송아지 12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셋째날 - 수송아지 11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넷째날 - 수송아지 10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다섯째날 -수송아지 9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여섯째날 -수송아지 8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일곱째날 -수송아지 7 마리, 수양 2 마리, 일년된 수양 14 마리(흠없는 것) 여덟째날 -수송아지 1 마리, 수양 1 마리, 일년된 수양 7 마리(흠없는 것)

그리고 각 일마다 속죄제로 수염소 1 마리를 드렸으며, 상번제는 따로 드렸다. 초막절은 은혜를 되돌아보는 절기인 동시에,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성도의 구원의 완성과 기쁨과 번영과 평화를 예표하는 절기로 보기도 한다. 초막절은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풍성한 절기였다. 5 기타 상번제, 월삭, 절기때 외에도 드려지는 번제가 있다. ᄀ제사장의 위임( 委 任 )식 때에 (레 8:18 21)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를 집례하는 귀한 직분은 맡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앞에 깨끗함을 인정받아야 한다.그리고 사욕을 버리고 헌신적이어야 한다. 제사장이 되는 레위지파는 기업이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성막을 지키며, 모든 제사를 돕고, 백성들로부터 나오는 헌물을 가지고 생활해야 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오직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했다. 이러므로 제사장이 드린 번제는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희생을 다짐하는 것이다. 이때 드려진 번제물은 수양을 드렸다. ᄂ나실인이 몸을 더럽혔을 때에 (민 6:9 11) 나실인은 '구별된 자'란 뜻이다. 나실인은 성별에 관계없이 일정기간이나 또는 평생을 하나님만 섬기기로 서원한 평신도이다.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소산을 먹을 수 없으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못하며, 서원한 기간은 머리도 깍지 못하며,죽은 사람을 가까이 하므로 자신은 더럽혀도 안되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때에 시체를 대하게 되어 부정해지면, 몸을 정결케 하는 의식으로 번제를 드렸다. 이때 번제물은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 새끼였다. ᄃ출산한 여인 (레 12:6 8)

여인이 아이를 나으면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남자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33 일을 지나고 난 후에, 여자아이를 낳으면 66 일을 지난 후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올렸다. 이때에 번제물을 일년된 어린양이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로 드릴 수 있었다. ᄅ출혈로 부정한 여인 (레 15:29 30) 비정상적인 출혈한 여인이 7 일을 지난 후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이때에 번제물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의 새끼였다. ᄆ유출병을 앓았던 자 (레 15:13 15) 유출병을 앓다가 낳은 사람은 낳은 지 8 일만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이 때의 번제물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였다. ᄇ문둥병환자가 치료를 받고 난 후 (레 14:10 20) 문둥병을 앓던 환자가 고침을 받고, 제사장으로부터 완전하다는 진찰이 나오고, 팔일 만에 정결케 하기 위하여, 번제의 제사를 드렸다. 이 때의 제물은 원래는 어린 수양이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로 드릴 수 있었다. *학습문제 1.번제의 제사와 번제물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생각이 들었나를 자신의 말로 두 가지만 적어보자. 2.나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모습으로 드려지어야 하나를 각자의 생각으로 적어 보자.

3.번제의 제사에 있어서 제물에 관계없이 공통된 것 여섯 가지를 적어보자. 1 2 3 4 5 6 물두멍(출 30:18 21) 성막 울타리안에 들어서면, 성막 뜰안에 제일 먼저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었다. 물두멍은 히브리어로'키요르'이다. 이 말은 '둥근' '도려낸' '솥' 등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물두멍의 모양에 대하여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둥근 대야의 모양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솔로몬의 성전의 놋 바다도 둥근형이었다. (왕상 7:23-39)

1.물두멍의 재료 (출 38:8)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놋은 이스라엘 여인들중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바친 거울로 만들었다. 이 여인들은 레위지파의 여인들로 추정되며 성막뜰을 청소하거나 잡다한 일들을 거드는 여인이었을 것이다.

당시 놋 거울은 여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육체를 아름답게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헌물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신앙인의 참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나의 육신을 돌보는 일보다 더 하나님의 일을 중요시하는가?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참 신앙인은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썩어질 육체의 아름다움을 위하여 쓰이던 놋 거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들의 수족을 깨끗게 하는데 꼭 필요한 성구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었던 것이다. 하늘나라를 위하여 쓰여 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 귀한 예물로 쓰여 졌던 것이다. 영혼을 축복 받게 하고, 강건하게 하는 귀한 예물로 쓰여졌던 것이다. 그리고 놋은 십자가를 상징하기도 하나 또 다른 면에서 불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물두멍은 주님의 몸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2.물두멍의 모양과 규격 물두멍의 모양과 규격은 성경에서 자세히 다룬 곳이 없다. 그러나 서론에서 다루었듯이 원어상으로 볼 때에 둥근 형의 대야 모양으로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리고 크기는 제사장들이 수족을 씻기에 족하고, 옮기기에 불편이 없을 정도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두멍은 놋으로 만든 받침대에 앉혀져 있도록 만들었다. 물두멍을 얹져 놓은 받침대를 십자가로 본다면, 물두멍은 인류의 수많은 죄악을 짊어지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위에 달리신 주님의 몸으로 생각하여 볼 수도 있다. 3.물두멍의 용도 (출 30:18 21, 출 40:30 32)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회막을 들어가기 전이나 번제단에 가까이 할 때에 손과 발을 씻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물이 담겨져 있었다.

이 물두멍에서는 제사장들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수족을 씻기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다. 거룩하게 구별된 물이며 물두멍이다. 만약에 당시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지 않고 번제단을 가까이 하거나 회막안에 들어가면 죽음을 당하였다. (출 30:21)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회막안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꼭 먼저 들려야 했던 곳이다. 물은 광야지대에 메마른 기후 때문에 뭍은 수족의 티끌과 먼저를 씻는데 사용하였다. 더러워진 손과 발이 물두멍에 물로 깨끗하게 씻겨졌다. 물두멍은 몸을 성결케 하는 곳이다. 물두멍을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듯이 물두멍의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심령의 더러운 것을 씻어 성결케 하는 능력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살아가면서 허물과 실수로 지은 자범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씻음을 받아야 한다. 번제단에서는 원죄를 씻음받고 중생의 체험을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물두멍에서는 매일 살아가면서 지은 자범죄를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씻음 받고, 성결케 되는 곳이다. (엡 5:26, 요 15:3, 시 119: ) 4.물두멍의 규격은 왜 밝히지 않았을까요? 성막의 기구들은 치수가 주어지고 그대로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물두멍은 그 치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하여 볼일이다. 몇 가지로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1물두멍에 치수가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무한하심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죄의 은총은 엄격한 조건이나 규율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함 받고, 더럽고 추한 심령이 깨끗함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무한한 은혜이다.

마태복음 18 장 21 절이하의 말씀에서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물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할지니라' 하셨다. 당시 이스라엘의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가르쳤다. 그러니 베드로의 일곱 번이란 제의는 엄청난 관용을 베푸는 제의였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그치지 말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한한 용서를 베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에게 이렇게 무한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시고 계신 분이시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더욱 크게 느꼈던 사람일수록 주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두멍이 규격이 밝혀지지 않은 것은 주님의 사죄의 은총은 무한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물두멍에서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을 적마다 깨끗하게 해 주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2물두멍의 치수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축복은 무한함을 말씀하고 있다. 마태복음 14 장 13 절 이하의 말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따라다니던 굶주린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여인과 아이의 수를 빼고도 남자만 5000 명이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고 열 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다. 어린아이의 적은 도시락이 주님께 드려지니, 이와 같이 엄청난 기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몇 만 배의 기적이다. 또 열왕기하 4 장 1 절이하의 말씀에서 선지생도의 아내였던 과부의 적은 한 병의 기름이 온 동리에서 빌려 온 큰그릇을 가득히 채우는 기적을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베풀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이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계산을 초월하는 축복인 것이다. 참된 믿음만 있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면 성도가 받은 축복은 무한한 것이다.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면 이렇게 놀라운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이시다. 이런 축복을 받아 누리고, 나누며,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다.

3물두멍의 치수가 정해지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능력의 무한함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4 장 12 절 말씀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셨다. 세상에 어느 누가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이 말씀은 주님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음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주님을 믿는 백성을 통하여, 행하실 주님의 능력과 기적등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베드로 사도는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죽은 도르가도 살리는 기적을 행하였고, 수많은 사람을 주님앞으로 인도하여 구원에 이루게 하였다. 사도 바울은 죽은 유두고를 살리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옥중에서도 기적을 일으켜서 간수의 집을 구원하고, 옥에 갇힌 몸으로도 복음을 전하여 로마의 황제의 집안 식구들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기적을 행하였다. 주님을 믿는 성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주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다. 인간들 스스로가 부인하는 것이지, 지금 이 시대에도 믿음이 있는 성도를 통하여 계속 기적을 주님은 베푸시고 계시다. 히브리서 13 장 8 절 말씀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리라' 고 말씀하신다. *학습문제 1.나 자신은 얼마만큼의 믿음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요한복음 13 장 3 11 절까지의 말씀을 읽고, 발을 씻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어떻다고 하였나? 이 말씀과 물두멍과 연관하여 느낀 점을 생각하여 보자.

3.하나님 말씀을 듣거나 읽다가 자신이 지은 몰랐던 죄가 떠올라 회개 한 적이 있었으면, 그때를 회상하여 보자. 성막의 구조 지금까지는 성막의 외부의 울타리와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물두멍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본 장에서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 성막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공부해 보도록 하자. 그러니까 성막의 재료와 구조를 연구하여 보도록 하자. 1. 성막의 뼈대인 널판 (출 26:15 30)

성막은 짓기 위하여 널판을 만들었다. 이 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었다(15 절). 그리고 널판의 규격은 장이 십 규빗(약 450 cm), 광이 일규빗 반(약 68 cm)였다(16 절). 그리고 널판마다 두 개의 촉(돌기)을 만들었다. 이 촉은 받침대에 끼워서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 널판의 수는 남편의 벽쪽용으로 20 개와 북쪽의 벽쪽용으로 20 개와 서쪽의 벽쪽용으로 6 개를 만들었고, 또 서쪽 벽과 남과 북쪽 벽과 만나는 모퉁이의 두 개의 널판을 만들었다. 특히 이 모퉁이의 널판은 다른 널판의 두 겹 두께로 하였고 ㄱ자 앵글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성막용 널판은 총 48 개이었다. 그리고 이 널판은 금으로 모두 싸서 만들었고, 널판을 서로 견고히 지탱케 하기 위하여 띠를 다섯 개를 두루었는데, 띠를 꿰기 위한 금고리를 만들었다. 이 널판은 한 개 한 개마다 은 한 달란트로 만든 두 개의 은받침의 구멍에 촉을 꽂아서 세웠고, 각 벽마다 다섯 개의 띠를 두루어, 견고하게 세우도록 만들었다. 성막의 널판의 띠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았다. 성막 널판의 은받침은 널판 한개에 두 개씩 만들었으므로, 총 96 개였다. 성막은 이렇게 금으로 쌓인 널판이 은받침위에 세워지고, 널판과 널판은 고리에 끼워진 띠에 의하여 견고하게 만들어 졌다. 그리고 그 위에 덮개를 씌웠던 것이다. 그러니까 금으로 쌓인 널판은 성소의 벽이 되는 것이다. *학습문제 1.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금으로 그 겉을 싸았다. 조각목과 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말하여 보자. 1조각목 2금

2.널판에 달린 고리와 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되나? 교회가 견고히 서려면 무엇과 무엇이 필요한가? 3.널판의 은받침은 한 개당 1 달란트로 만들었다(출 38:27). 은에 성질에 대하여 말하여 보고 영적인 의미를 찾아보자. 1성질 2무게 3가치 4.은으로 만든 널판 받침은, 널판에 촉을 꽂기 위하여 구멍을 만들었다. 구멍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고 또 교회에 대하여서도 생각해 보자. 5.삼면이 금으로 싸여진 널판으로 벽을 만든 성막 안은 어떠할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앞으로 우리가 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계시록 21 장 9 절 22 장 2 절의 말씀을 읽고 대답하여 보자. 6.믿음이 아니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를 아는 대로 적어보자. 2. 성막의 덮개 (출 26:1 14)

성막의 덮개는 네 겹으로 되어있다. 겉으로부터, 첫 번째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 두 번째는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 세 번째는 염소털로 짠 앙장,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화려하게 만든 앙장으로 만들어 덮었다. 1).해달의 덮개 밖으로부터 첫째번 덮개는 회색 빛이 나는 해달의 가죽으로 되어있다(14 절). 해달의 가죽은 모양이 아름답게 보이거나 호화롭게 보이지 않는 가죽이다. 그러나 질기고 햇빛과 비바람에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가죽이다. 그러니 성막의 외모는 화려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을 것이다. 성막은 그리스도의 그림자며 하늘나라의 모형이다. 예수님도 천국도 겉만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우습고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불신자들의 눈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외모만 보이기 때문이다. 2).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 두 번째의 성막 덮개는 붉게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들었다(14 절). 수양은 죄많은 인간들이 제물로 드려지던 짐승이다. 수양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드려질 때에, 수양의 피를 뿌림으로 죄를 사함 받았다. 피뿌림이 없이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었다. 천국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주님의 피 값으로 친히 세운 지상의 교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이 넘치는 곳이다. 천국의 시민권을 얻은 성도들도 보혈의 공로를 믿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감사가 저절로 마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다. 히브리서 10 장 19 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라고 말씀하시듯이 주님의 흘리신 피가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3).염소털로 짠 앙장(막) 성막의 밖으로부터 세 번째는 염소털로 짠 앙장(막)으로 덮었다. 이 막은 규격이 광이 사 규빗, 장이 삼십 규빗의 앙장을,열한개를 만들어, 한 장은 다섯 폭을 또 한 장은 여섯 폭을 이어서 두장으로 만들었고, 앙장과 앙장을 연결하는 쪽 말폭가에,각각 고 오십 개씩을 달아서, 놋 갈고리 오십 개로 앙장과 앙장을 연합하여 만들었다. 이 규격은 성막의 천정인 네 번째의 앙장보다 앙장 한 폭이 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의 넓이는 이 규빗을 더 큰 것이다. 이것은 천정의 앙장을 완전히 감싸서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 세 번째 앙장은 염소털로 짜서 만들어, 그대로 덮었기 때문에 화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성막 안에서도, 밖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염소는 성막 제사에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드려진 짐승이다. 번제와 화목제 그리고 속죄제때 드려졌다. 특히 레위기 16 장 6 절-22 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론은 두 마리의 염소를 취하여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렸고, 한 마리는 산채로 두었다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기어 광야에 무인지경에 이르기까지 끌고 가서 놓아주었다. 이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불의를 지고 광야에 버림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소털로 짠 이 덮개는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의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양팔과 양발이 큰 대못에 의해 십자가 못박혀 돌아 가셨던, 주님의 깊으신 대속의 은총을 상징하고 있다. 주님의 이 깊으신 뜻을 당시 누가 알았을까? 제자 베드로도 모르고 주님을 세 번씩 부인하였고, 이스라엘의 장로나 제사장과 백성들은 오히려 주님을 향하여 분노하며 저주하며 희롱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깊이 감추어진 주님에 대속에 은총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다가 실족하거나 또 복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감추어진 대속의 은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주님이 오르실 때, 주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따라 오는 그들을 향하여 주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신 주님의 깊으신 마음을 그 누가 알겠는가? 이 염소털로 짜서 만든 세 번째의 앙장이, 화려하게 수놓아 짜여진 성소 천정의 앙장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성막의 사이에 덮여져서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예수의 보혈로 죄씻음 받은 인간이 대속의 은총가운데 영광의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무지한 인간은 헤아릴 수가 없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막 덮개의 두 앙장을 서로 있기 위한, 오십개의 둥근 고리들은 구약과 신약의 중심이신 사랑의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두 앙장을 연결하는 오십 개의 놋 갈고리는, 구약의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영광과 존귀를 다 버리시고 묵묵히 한

마리의 짐승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화목제물이 되시어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과의 만남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도,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골고다언덕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으시고, 무덤까지 들어 가셨던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 계신 주님이시다. 4).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앙장 성소의 천정이 되는 이 덮개는 다른 덮개와는 달리 백색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화려하게 만들어 졌다. 이 덮개는 매폭의 장이 이십 팔 규빗이고, 광이 사 규빗으로 된 앙장 열폭을 같게 만들어 다섯폭씩 이어서 두장의 큰 막을 만들고, 오십개의 고를 각각 만들어서, 금 갈고리 오십개로 두장의 큰 앙장을 하나로 연결하였다. 앙장의 직조 방법은 카페트를 짜는 방식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그룹을 수놓는 것이 천 위에다가 수놓은 것이 아니라,앙장을 직조할 때에, 실의 색깔을 배합하여 직조하였던 것이다. 지금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손으로 수 작업한 카페트가 고급품으로 인정받아 고가에 거래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 막에 네가지의 색깔로 수놓은,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 주의에 둘러싸고 있는 천사들의 일종으로 확실한 모양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에스겔서 1 장 10 절 말씀이나 계시록 4 장 6-8 절 말씀을 종합해서 보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에 날개를 가진 영적 존재로 볼 수 있다. 이 그룹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선포하고 지키는 일을 하였다. 이러한 그룹을 수놓아 만들은 것은, 성막의 성소안에 거룩성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룹을 수놓은 네가지의 실의 색깔은 각기 다른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1).청색은 희망을 의미함;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

(2).자색은 부귀와 고귀함을 의미함; 만왕의 왕되시는 예수그리스도 (3).홍색은 희생을 의미함; 인류를 위하여 고난 당하신 예수그리스도 (4).백색은 성결과 의 그리고 순결을 의미함;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렇게 성막의 덮개는 겉에 것은 볼품도 없고 화려함도 없지만, 안에 덮개는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졌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인간들이 보기에는 신통치 않게 보이셔서, 환영받지 못하시고 멸시까지 받으셨지만, 그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고, 하나님의 신성을 지니셨으며, 영생케 하는 생명력을 지니셨던 분이심을 상징하고 있다. 신앙 생활하면서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성막의 겉모습만 보고 실망하듯이, 예수님에 대하여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분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질 때, 큰 감격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학습문제 1.이사야서 53 장 1 3 절의 말씀을 읽고, 내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주님을 생각하던 것과 지금은 주님을 생각하는 것을 적어 보자. 2.성경말씀에서 예수님이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 그리고 핍박을 받은 것을 찾아서 적어 보자. 3.나 자신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핍박이나 멸시와 천대를 받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 가지씩만 적어 보자.

4.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피를 몸의 어느 부의에서 흘리셨나를 적어 보자. 5.요한복음 6 장 53 절 57 절을 읽고 다음 질문에 대답하여 보자. (1)생명이 내 안에 있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2)영생과 부활의 영광을 얻으려면? (3)예수안에 거하려면? 6.히브리서 13 장 10-13 절에 말씀을 읽고,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하셨는가? 를 적어 보자. 7.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을 때, 당시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적어 보자. (1) 제사장들과 장로들 (2) 이스라엘 백성들 (3) 로마총독 빌라도와 로마군병들 (4) 가롯 유다 (5) 제자들 8.당신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총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적어 보자.

9.성경에서 오십이란 수와 관계가 있는 년(해)을 찾아보고 거기에 대하여 적어 보자.(레 25:8-17) 10.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들은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때였나를 적어 보자. 11.성막의 덮개와 예수님과 연관하여 생각하여 보고 느낀 것을 적어 보자. 성소의 출입문(출 26:36,37 절) 바깥에서 성막 뜰안으로 들어오려면, 성막 울타리 동쪽에 나있는, 한개의 문으로만 들어 올 수가 있었다. 그리고 성막 뜰에서 성소 안으로 들어가려면, 성막 동쪽으로 나있는 한 개의 문을 통하여 들어 갈 수가 있었다. 울타리의 문은, 집으로 말하면 대문과 같은 것이고, 성소에 들어가는 문은 현관문과 같은 것이다. 울타리에 나있는 성막의 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오는 첫 관문이라고 한다면,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번제단과 물두멍의 과정을 통하여 회개와 성결로 거룩함을 얻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관문인 것이다. 이문은 울타리의 문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문이었다. 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호화찬란하게 꾸며진, 거룩한 성소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안에 들어가려면 제사장들이라도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들어가야만 되었다. 만약에 그냥 성소안에 들어가서, 성소를 더럽히는 과실을 범하면 죽음을 당하는, 무서운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거룩한 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소의 문은, 죄많은 인간들이

함부로 성소에 접근하여 불상사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은혜적인 기능을 가진 문이기도 하다. 1.성소 출입문의 구조(출 26:37) 성소의 출입문은 다섯 개의 기둥이 세워졌고, 기둥에 성소 문 역할을 하는 장(막)을 걸 수 있는, 금 갈고리를 만들었다. 성막 문에 세워진 기둥은, 조각목으로 만들고, 그 위를 금으로 싸서 만들었다. 그리고 기둥의 받침을 각 기둥마다 한 개씩 다섯 개를 놋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놋 받침위에 세워진, 금으로 싸인 다섯 개의 기둥에다, 금 갈로리에 의해 성소의 문의 역할을 하는 장(막)이 치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놋 받침위에 세워진 다섯 개의 조각목을 금으로 싼 기둥은 인간을 위하여, 죄악의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승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 갈고리는 영원히 불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아가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2.성소 출입문의 장[막](출 26:36) 이 막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를 놓아서 짜서 만들었다. 그런데 성소와 지성소를 가르는 휘장과는 다른 것은, 이 막은 그룹을 수놓지 않고 다른 문양을 수놓아 짜여졌던 것이다. 이미 지난 시간에, 성막 덮개의 시간에 색깔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다른 면으로 보는 분도 있다. 청색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요한복음을 상징하며, 자색은, 이스라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마태복음을 상징하며, 홍색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은헤의 복음인 마가복음을 상징하며, 하얀색은, 죄가 없으시며 완전하시며 거룩하신 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성결의 복음인 누가복음을 상징한다고 보고 있다.(성막론; 황 대근목사저 44p)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려면 말씀으로 다져진 신앙만이 가능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리고 천국을 상징하는 성소에 들어가려면 꼭 이 문을 통과해야 하듯이, 이 땅에 인간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말하여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7)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 10:9)말씀하셨다.

3.성소의 출입문의 규격 성막의 규격은 길이가 30 규빗이고, 폭이 10 규빗이다. 성소의 출입문은 성막의 동편에 폭면의 전체이다. 성막의 크기에 비하여 넓은 문이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제사장들 외에는, 넓지만 함부로 들어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항상 넓게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내 안에 모셔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 길은 좁은 길이다.주님은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그러나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다.(벧전 2:9) 이들에게는 천국을 들어가는 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넓은 문이 마련되어 있다. 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호화찬란한 성소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될 천국은 참으로 영광과 환희가 넘치는 곳이다. *학습문제 1.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의 모습과 부활하신 후에 모습이 당시 제자들에 눈에 어떻게 보이셨나를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적어 보자. 1).막달라 마리아 2).엠마오로 가는 두제자 3).열 제자들 4).도마 5).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

2.당신은 좁은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있다면 한 가지씩 말하여 보자. 3.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당신은 이 자격을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성 소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와 지성소에 대하여 히브리서 9 장 1 절에서 5 절까지 말씀에서 기록하기를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고 하였다. 성막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호화 찬란한 성소안에 들어서게 된다. 생각하여 보자 성소의 입구의 막을 열고 들어서면, 남쪽 벽과 북쪽 벽은 온통 황금빛 나는 금으로 싸여져 있고, 바로 앞에 보이는 서쪽에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흰색 베실을 섞어서 그룹을 수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별하는 막이 쳐있고, 천정에는 역시 사색으로 그룹을 수놓은 앙장으로 덮여져 있었다. 그리고 왼편에는 황금으로 만든 정금 등대에서 밝히는 일곱 개의 불이 켜져 있고, 또 지성소의 휘장 바로 앞에 있는 황금으로 싸여진 분향단에서 피우는 향으로 성소안이 가득 차 있었다. 또 오른편에는 황금으로 싸여진 떡상위에 떡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 성소이다. 정말 바깥 황막한 광야와는 비교도 안 되는 호화로운 곳이다.

성소에 들어오려면, 먼저 성소 뜰에 있는 번제단에서 피뿌림의 제사를 드리고,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은 제사장만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이다. 성소는 지극히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도 성소를 함부로 범하였다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임을 당하게 된 곳이다. 성소와 지성소는 이렇게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었다. 지성소에 대하여는 다음 장에서 공부하도록 하고 이 시간에는 성소안에 있는 성구( 聖 具 )들을 고찰( 考 察 )하여 보고 공부하여 보자. 성소와 지성소 1. 떡 상(출 25:23-30,레 24:5-90) 1).떡상의 규격과 모양과 그 의미 떡상은 다른 성구와 마찬가지로 조각목(싯딤나무])로 깍아서 맞추어 모양을 만들고, 그 위를 정금으로 싸고, 그 주위를 금테를 둘렀다. 그리고 크기는 장이 이 규빗이고, 광이 일 규빗이고,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만들었다. 떡상은 우리 나라 가정집의 밥상크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가로가 약 90 센치, 세로가 약 45 센치, 높이가

약 68 센치이다) 모양은 우리 나라의 교자상과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상의 사면가에 손바닥 넓이 만한 턱을 만들었다. 이 턱은 떡이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은 것이다. 그리고 상의 네발위쪽 턱 곁에 둥근 금고리를 만들어 달았다. 이 금고리는 상을 메어서 이동할 때에, 채를 꿰어서 메도록 만들은 것이다. 이 상을 메는 채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이것도 금으로 전체를 싸서 만들었다. 떡상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6 장 32 절이하 35 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자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6 장 48 절에서도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하셨고, 51 절에서도 "나는 하늘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살이로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전설병(떡)을 전설하는 떡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번제단과는 다르게, 떡상의 규격이, 장이 길고, 광이 짧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생애는 짧은 생애였지만,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생애는 영원하신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 떡상의 재료에서 조각목은, 이 땅에 연약하신 모습으로 오셔서, 질고와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여 주는 것이며, 정금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우신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정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떡상의 용도는 떡을 전설하는 상이다. 이 상에는 떡이 전설되지 않으면 떡상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생명의 떡인 말씀을 날마다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생명을 잃은 교회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는 특히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이야기로 철학으로 많은 지식을 가르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생명력이 없는 교회이다. 아모스 8 장 11 절 말씀에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고 하셨다. 요즈음이 그런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교회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이고 웅성거려도 말씀이 없는 교회는 세상의 모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 세상의 것들이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온 지구상의 교회들을 눈동자처럼 지켜보시고 계신 분이시다. 특히 목회자들은, 주님 앞에서는 날 말씀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교회에 말씀이 없게 하였다면, 변명할 수 없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떡상에 달린 금으로 만든 네개의 둥근 고리와 그 고리에 꿰어 메는 채는, 교회는 주님의 영원히 변치 않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움직이는 곳임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십자가의 도가 사라지고 예수님의 사랑이 없다면 주님과는 먼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말씀이 있어야 하고, 기도가 있어야 하며, 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이 있어야 하며, 주님이 주신 사랑을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전도에 힘써야 한다. 요한복음 15 장 12 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학습문제 1.성소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어떠한 마음으로 하였을까? 적어 보자. 2.성소안에 들어간 신앙은 성숙한 신앙이다. 골로새서 3 장 12-17 절까지를 읽고 자신의 신앙을 하나하나 점검하여 보자. 1).지킨다고 생각하는 것- 2).못 지킨다고 생각하는 것- 3.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이 자라게 된 동기와 어려움이나 시험이 올 때에, 시험을 어떻게 이기고, 믿음을 지켜 나갔나를 적어 보자. 4.떡상과 떡을 교회와 말씀으로 비유하여 보았다. 당신은 언제 말씀에 갈증을 느낀 적이 있는가. 5.교회에 꼭 있어야 하고 교회가 꼭 하여야 할 일에 무엇인가?.

2).떡상의 기구들 떡상에는 네가지의 정금으로 만든 기구들이 있었다. 이 기구들은 떡상에 떡을 전설하는데 꼭 있어야할 기구들이었다. 떡상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생각한다면, 이 기구들은 교회의 기관과 같은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려면 교회의 각 기관들의 활동이 활발해야 하는 것이다. 떡상을 기구를 만든 정금은 값진 귀금속이며, 불변하며, 아름다운 광채를 내는 금속중의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리고 금은 성경 말씀에서 믿음을 상징하기도 하며 영광을 상징하기도 하는 금속인 것이다. 욥기 23 장 10 절 말씀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말씀하고 있고, 계시록 21 장 18 절 말씀에서는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기관은 순결하고 거룩하고 귀한 기관이다. 세상의 모임과는 다른 기관이다. 그래서 교회의 각 기관은 믿음안에서 세워져서, 믿음으로 활동하는 기관이 되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당회, 남 선교회,여선교회, 권사회, 주일학교, 구역등 모든 기관들은, 성소의 떡상의 기구들처럼, 없어서 안 되는 귀한 기관들이다. 그리고 각 기관이 귀한 것과 같이, 그 안에 속한 성도들도 귀한 그릇들이다. 그래서 정금같은 믿음의 그릇이 될 때에, 주님께 귀히 쓰임을 받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2 장 20 21 절에서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1).대접

떡상의 대접은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대접은 히브리어로 케아라 인데, 떡상에 놓을 떡을 나르거나 떡을 전설하는 그릇으로 사용되었다. 떡상에 전설하는 떡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다면, 이 그릇은 말씀을 담는 귀한 그릇이다. 교회에서 성도들은 말씀을 담는 귀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 그릇이 될 때에 말씀을 나르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말씀을 나르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전도하는 성도를 주님은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2).숟가락 떡상의 숟가락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숟가락은 히브리어로 '카프'이다. 이 말은 원래 바닥이 굽은 대접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러므로 바닥이 굽게 파인, 작은 대접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 숟가락의 용도는, 떡상에 전설된 떡에 붓는, 유황을 담아서 부는데 사용된 기구이다. 이 기구에는 항상 향의 냄새가 가득했을 것이다. 여기에 담겨지는 향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만든 거룩한 향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예수님을 모시는 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의 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기관들이 세상의 냄새가 난다면 주님은 슬퍼하실 것이다. 어느 교회의 남 선교회에서는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해서 주위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다고 한다. 주님의 향기를 세상에 퍼트리는 행동인 것이다. (3).잔 떡상의 잔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이 잔은 떡상에 전제로 붓는 포도주를 담았던 것 같다. 이 잔에는 하나님 앞에 올린 전설병과 함께 떡상위에 올려져 포도주가 가득히 부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