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행정이야기 : 조선의 궁궐 경복궁( 景 福 宮 )에 반영된 행정체계 역사 속 행정이야기 조선의 궁궐 경복궁( 景 福 宮 )에 반영된 행정체계 경복궁은 태조 3년(1394) 짓기 시작하여 1년 만에 완성하였다. 궁궐의 전각 배치와 명칭에는 조선의 건국 주체세력들의 국왕 정치 및 행정 체계에 대한 이상향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들어가는 말 서울은 한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거주 하는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서울은 또한 조선 왕조의 수도이기도 한 역사적 장소이다. 서울이 한국의 행정 중심지가 된 것은 조선 왕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였고, 대한민국이 이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체계를 이끌어 나가는 최고 수반은 당연 국왕 이다. 조선 국왕은 궁궐에 거주하였으며, 궁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행정 체계를 지휘하였 다. 현재 서울에는 조선 국왕이 거처하던 정궁( 正 宮 )인 경복궁을 비롯하여 여러 궁궐들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의 문화적 우수성과 더불어 왕조국가의 발자취를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조선시대로의 시간 여행, 역사 탐구를 하기 위하여 경복궁을 답사하면 보통 정문인 광화문부터 궁궐 안으로 들어간다. 궁궐을 거슬러 들어가면서 궁궐의 정취를 느낀다. 하 지만 그러면서 궁궐의 주인이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어떤 한 집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집에 거주하는 집주인의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한다. 궁궐을 제대 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궁궐의 주인인 임금의 관점에서 이해하여야만 하며, 임금을 중심으 글 박진훈 명지대 사학과 교수 로 하는 공간 배치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우리는 손님의 관점에서 밖에서부터 안으 로 탐방을 하며,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다. 56 Public Administration Focus
궁궐은 국왕이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공적인 영역과 국왕 및 그의 가족들의 개인적 삶이 이루어지는 사적인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경복궁은 태조 3년(1394) 짓기 시작하여 1년 만에 완성하였다. 궁궐의 전각 배치 및 명칭 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간 배치의 효율성과 합리성, 건물들의 웅장함이 나 예술성만이 추구된 것이 아니었다. 궁궐의 전각 배치와 명칭에는 조선의 건국 주체세력 들의 국왕 정치 및 행정 체계에 대한 이상향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경복궁의 궁궐 배치에 담겨 있는 조선 건국 주도 세력들의 이상적인 정치 이념, 행정 체계 이념에 대해 살 펴보도록 하자. 강녕전( 康 寧 殿 ) - 건강한 신체와 마음, 통치의 시작 궁궐에서는 국왕과 신하들이 모여 정책을 결정하고 민생 및 국방을 비롯하여 행정과 관련 된 중요한 업무들이 처리되었다. 또한 궁궐에는 국왕을 비롯하여 국왕의 어머니와 왕비, 왕 자와 공주 등이 거주하며, 이러한 국왕 및 그의 가족들의 삶을 보좌하는 여러 사람들이 거 주하였다. 따라서 궁궐은 국왕이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공적인 영역과 국왕 및 그의 가족 들의 개인적 삶이 이루어지는 사적인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경복궁의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만나는 경계선에 있는 건물이 강녕전( 康 寧 殿 )이다. 평소 국왕이 한가롭게 거처하는 곳, 즉 국왕이 휴식하는 곳이 강녕전이다. 그런데 사적인 개인으로의 국왕이 아니라, 국가를 통치하고 행정조직을 이끄는 국왕의 공적인 생활이 시작되는 곳도 강녕 전이다. 그러면 국왕의 공적 활동이 시작되는 첫 건물에 왜 강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강녕( 康 寧 )이라는 이름은 홍범구주( 洪 範 九 疇 )의 오복( 五 福 ) 중 하나로, 몸이 건강하고 마 음이 편안하다는 뜻이다. 공적인 업무를 시작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몸을 건강하 게 만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하지 않 다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며,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강녕전의 이름을 명명 한 정도전( 鄭 道 傳 )은 위( 衛 )나라 무공( 武 公 )이 스스로를 경계한 시( 詩 ), 네가 군자와 벗하 경복궁 전경 2016 1 + 2 57
역사 속 행정이야기 : 조선의 궁궐 경복궁( 景 福 宮 )에 반영된 행정체계 는 것을 보니 너의 얼굴을 상냥하고 부드럽게 하고, 잘못이 있을까 삼가는구나 라는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심란하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에도 그 짜증스러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최고의 지위에 있는 국왕이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신하들에 대해 상냥 하고 부드럽게 대하지 않고, 신경질적으로 대한다면 임금과 신하의 신뢰관계가 금이 갈 수밖 에 없다. 신하들은 국왕의 눈치만 살피고 직언( 直 言 )이나 올바른 정책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 다. 이는 올바른 국정운영, 사람이 하는 행정에 있어 큰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 가 운영의 첫 걸음은 국왕이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편하게 하는 것이며, 따라서 공적 활동이 시작되는 첫 건물의 명칭을 강녕전이라고 지었다. 사정전( 思 政 殿 ) - 올바른 정책의 구상 임금을 달리 일러 남면( 南 面 )이라고 한다. 임금은 항상 남쪽을 바라보며 앉고, 거둥도 남쪽 방 향으로 한다. 따라서 남쪽에 있는 광화문이 경복궁의 정문이며, 남쪽에 있는 숭례문이 도성 한양의 정문이 된다. 전각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쭉 이어져 차례대로 배치된다. 강녕전을 나와 남쪽에 있는 첫 전각은 사정전( 思 政 殿 )이다. 임금의 공적인 활동의 두 번째 단계는 사정전에 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정이란 정책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즉 국정 운영의 두 번째 단계는 정책을 생각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충분히 수양한 상태에서 정책을 생각하여야만 올바른 정책 구상이 가능하기 때 문에 강녕전 다음에 사정전을 두었다. 사정전이 두 번째인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일을 실행하기 이전에 생각이 먼저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도자가 생각 없이 먼저 움직여 잘못된 일을 수행하면, 국가 정책은 잘못된 길을 가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이 떠 안게 된다. 두 번째로, 시행하여야 할 정책을 결정하더라도 그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판 별하여야만 한다. 이에 정책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세 번째로, 국가의 행정 집행을 하기 전 에 이 일을 맡아 책임질 적임자를 미리 생각하여야만 그 일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다. 적재적 소에 올바른 인재를 배치하여야 훌륭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중 요하였다. 정도전은 사정전의 명칭을 지으면서 흉악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좋지 않은 계획을 세워 화를 입어 패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진실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정책의 최종 결정은 국왕이 내렸다. 따라서 국왕이 올바른 식견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 였다. 국왕은 경연( 經 筵 ) 제도를 실시하여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문을 들었다. 국왕이 정책을 논의하고 구상하는 데에는 주로 고위관료들이 배석하였다. 고위관료들은 풍부한 경험과 학식 을 갖춘 존재들로서, 이들의 이러한 능력은 정책 구상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일반적으로 진취적인 생각, 창의적인 생각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세종은 사정전의 서 쪽 편에 집현전( 集 賢 殿 )을 만들고 재행연소자( 才 行 年 少 者 )들을 결집시켰다. 집현전의 학사 58 Public Administration Focus
근정전 내부모습 세종대왕 동상 들에게 역사를 비롯한 학문의 연구, 정치 현안에 대한 과제들 을 연구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전문적인 지식과 창의성 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였다. 즉 세종은 원로들의 경험과 신 진들의 창의성, 보수적인 원로들의 생각과 진보적인 신진들의 생각을 모두 국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하였다. 근정전( 勤 政 殿 ) - 최선을 다한 정책 실현과 행정 집행 근정전은 정책의 실현, 행정의 집행을 부지런하게 한다는 뜻 이다. 즉 사정전에서 시행해야 될 정책이 결정되면, 다음 단계 는 최선을 다해 이를 실행하는 것이다. 정도전은 부지런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세상의 일은 부지런히 하면 다스려지고, 부지런히 하지 않으 면 망가지는 것이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오히려 그러 하거늘 하물며 정치라는 큰 것은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이 단지 부지런한 것만을 알고 부지런해야 하 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그 부지런함이 어지럽고 좀스러우며 가혹하게 살피는 데로 흘러 볼 만한 것이 못 될 것입니다. 옛 선비가 말하기를 아침에 국정을 처리하고, 낮에는 사람들을 방문하며, 저녁에는 법령을 정비하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한 다 고 했는데,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입니다. 또 말하기를 어 진 사람을 구하는 데 부지런히 함으로써 어진 사람을 임명한 후에 편안하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일을 하는 데 부지런해야지만 그 일이 이루어진다. 국가를 다 스리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국가를 다스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부지런하 게 정책을 집행하는 데 반드시 주의하여야 할 일이 있다. 우 선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로, 먼저 생각한 후 부지 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엉뚱하고 잘못된 일에 부지런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게 된다. 두 번째로, 임금이 할 일 과 신하들이 할 일을 구분하여 임금은 임금의 일에 부지런해 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을 뿐더러, 임금 이 9품의 미관말직이 해야 할 일을 부지런하게 하면 지휘체계 를 무너뜨리고, 담당자가 해야 할 일을 빼앗게 되며, 윗사람이 밑의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국정운영 체계 자체 를 무너뜨릴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은 어진 사람을 구하는 데 부지런해야 하고, 그 사람 을 신뢰하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 하여 노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에 근정전 앞에 문반과 무반 의 품계석을 설치하였다. 문반과 무반의 직책에 따라, 그리고 정1 2016 1 + 2 59
역사 속 행정이야기 : 조선의 궁궐 경복궁( 景 福 宮 )에 반영된 행정체계 광화문 경회루 품부터 종9품까지의 관원들이 직위에 따라 근정전 앞에 도열하 였다. 정부가 구성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직책과 직위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정책을 실현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것이다. 임금은 이러한 인재들을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찾아야 하는 것이다. 홍례문( 弘 禮 門 ) - 정책 행정 업적의 실현과 축적 근정전 앞에 있는 문이 홍례문이다[지금은 흥례문( 興 禮 門 )으 로 이름이 바뀌었다]. 예( 禮 )를 넓히는 문이라는 뜻이다. 성리 학을 공부한 조선전기 사대부들은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적 을 인륜과 도덕의 실현으로 보았다. 국가가 정책을 구상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목적은 부국강병을 넘어서 도덕적 사회를 완성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홍례문은 정책 및 행정을 부지 런히 실행하여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의미이다. 광화문( 光 化 門 ) - 전 국민에게로 업적의 확대 홍례문 앞에 있는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이다. 세종이 이름 을 지었다. 광화의 뜻은 빛으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즉 임 금의 빛, 정부의 빛을 온 국민에게 비추어서 국민들을 올바른 인간, 도덕적 인간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교화( 敎 化 )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선을 유교적인 도덕적 이상 국가로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정부의 목적, 행정의 목적이라 고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국민들은 임금이 거주하고 정부가 있는 수도 한양으로 들어오면서 예( 禮 )를 숭상하며 정 부의 업적을 숭배하며 숭례문( 崇 禮 門 )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 이다. 경회루( 慶 會 樓 ) - 업적의 확인과 소통의 확대 강녕전의 서쪽 편에 세워진 건물이 경회루이다. 경사스럽게 모여서 축하하는 누각이란 뜻이다. 정책을 세워 최선을 다해 행정을 집행하여 업적이 이루어지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연회 를 베풀며 업적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장소이다. 또한 연회를 통하여 업적의 실현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임금과 신하 또는 신하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인간적 이해 및 소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소통의 장소, 연회의 장소를 궁궐 안에 마련한 것은 연회를 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함이었 다. 임금과 신하의 사적인 연회는 측근정치의 폐해를 가져와 다른 신하들을 배제함으로써 공적인 관계를 편향시키고 파괴 할 위험성이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궁궐 안의 공적인 장소에 모든 관료들이 누구나 지켜볼 수 있는 장소에, 경회루 를 설치한 것이다. 60 Public Administration Focus
자선당( 資 善 堂 )과 비현각( 丕 顯 閣 ) : 후계자의 양성과 업적의 발전적 계승 자선당과 비현각은 동궁( 東 宮 )에 딸린 건물이다. 세자는 사적으로는 임금의 아들이지만, 공적으로 는 다음 대에 왕이 되어 국가를 운영해 나가야 하는 인물이다. 따라서 세자는 국가를 운영할 만한 자질을 갖추어야 함과 더불어 정책의 실현 과정, 행정의 집행 과정을 배워야만 왕이 된 다음에 국 가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다. 따라서 세자가 거주하는 건물을 사정전과 근정전의 동쪽 편에 두었다. 궁궐의 동쪽 편이므로, 동쪽 궁궐인 동궁이 되고, 이는 세자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다. 자선당은 착함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선당의 정문이 진화문( 震 化 門 )인데, 진화란 세자가 변 화된다는 의미이다. 세자는 어렸을 때부터 서연을 통하여 학문을 배우고 변화하여, 국민을 위한 임 금이 되는 데 필수적인 도덕적 자질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비현각의 비현은 크게 드러내 다란 뜻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도덕성과 능력을 크게 드러내는 존재가 되라는 의미이다. 비현 각의 정문은 이모문( 貽 謨 門 )인데, 이는 선대 국왕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즉 세자는 아버지인 부 왕( 父 王 )의 정책 실현 과정을 직접 옆에서 살펴봄으로써 이를 직접 보고 배우고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국민을 위한 행정을 집행하라는 뜻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학문적 가르침과 선대 국왕의 국정 운영의 방법을 직접 배움으로써, 국가 운영 체 계가 끊이지 않고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조선 왕조가 이와 같은 국정운영체계, 행정운영체계를 제대로 이룩할 때, 조선의 백성들은 커다란 복[ 景 福 ]을 받게 된다. 즉 태평성대 속에서 살게 되는 커다란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 한 행정체계를 갖춘 조선왕조는 만년( 萬 年 )을 이어가게 되는 커다란 복[ 景 福 ]을 누리게 되는 것이 다. 그러므로 궁궐 이름이 경복궁이다. KIPA 승정원일기 2016 1 + 2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