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컨퍼런스 개요... 2 발제 1 무엇이 거리예술의 신선함을 유지하는가!... 3 발제 2 거리예술:흥미로운 시대의 변화하는 시각들... 10 발제 3 거리예술의 두 가지 유혹... 15 종합토론... 18 현장 스케치... 28 별첨 : 녹취 자료 원문... 30
2 하이서울페스티벌 2015 - 거리예술국제컨퍼런스 거리예술축제의 새로운 변화와 과제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15년 10월 1일 목요일 오후 2시 5시 (3h) 시민청 바스락홀 거리예술에 관심 있는 문화예술종사자 및 일반인 한국어, 영어 (동시통역 제공: 한-영-불) 1 사회: 조동희 서울문화재단 축제지원센터 팀장 2 데니스 라포리 알레스 국립극장 라 크라테르 예술감독 3 4 프랭크 윌슨 스톡튼 국제 리버사이드 축제 창립자 겸 전 예술감독 임수택 전 과천축제 예술감독, 현 서울문화의밤 총감독 5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양현미 서울시 문화예술기획관 데이비드 클락슨 호주 스토커 씨어터 예술감독 매기 클라크 영국 엑스트렉스 감독 6
3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선, 저를 하이서울페스티벌에 초대해주시고 맞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본 행사는 한국에서 열리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도 꽤나 관심이 높고, 영향력 있는 축제입니다. 저는 어제 많은 동료들과 연출가들을 만나는 기회들을 얻었습니다. 저는 여기를 찾아주시고 또한 이 페스티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여러분들께 서울에서와 같은 많은 반향이 유럽으로 그리고 프랑스로 퍼져나가는 것을 상상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이미지로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 이미지는 저의 프로그램 이미지입니다. 거리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가벼운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저는 여러분들께 축제들의 설립 시초로 되돌아가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축제들은 프랑스에서 갓 30 해를 넘겼으며, 원숙하면서도 마찬가지로 도전들과 변화들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거리예술을 규정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자유'일 것입니다. 실재로 프랑스에서는 현재에도 법규를 제정해서라도 이 '자유'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술 창작에 대한 자유,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의 특정 극단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극적인 상승, 가능성들과 함께 비판할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특히 프랑스에서 이러한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움직임은 현재까지도 매우 중요한 현안인데, 마찬가지로 프랑스 외부에서도 '자유'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브루키나 파소(Burkina Faso)에서 발생한 정부 전복사태에서, 예술가들은 "저항하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다. " 고 외쳤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는 이렇듯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곳 '알레스(Alès)'는 제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입니다. 인구는 4 만 3 천명이며, 오래된 공업 도시입니다. 알고 계신 바와 같이 마르세이유와 아비뇽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작은 도시 알레스, 이 작은 공업도시에서 저는 극장을 운영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극장은 900 석, 300 석, 70 석이 있는 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저에게 물어보시겠죠? 극장을 운영하고 실내 극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이 왜 거리예술에 관심을 갖고 있느냐고요. 공연장에서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저의 상황에서는 주변에 5 만명의 지역 주민들이 있지만, 실제로 극장을 방문하여 공연을 볼 사람은
4 대충 10 에서 15%정도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만약에 그 이상의 관객을 원한다면, 여기에 살고 있는 이웃들이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빗장을 열어 도시의 사람들 사이로 이동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들고 거리의 관객들을 만나길 시도했습니다. 그렇게 거리예술축제인 Cratère Surface 는 16 년째 진행되고 있습니다. 1950 년대 혹은 그 이전, TV 도, 컴퓨터도 우리의 시선을 뺏지 않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길거리에 있었고, 그들을 한곳에 모여들게 만드는 것은 공연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임은 도시 군데군데에서 생성되어 만남의 장이 되었고, 사교의 장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개인주의가 만연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예술의 실질적 행위뿐만 아니라, 이 사회는 새로운 사교의 장을 다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혹은 전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던 68 년 5 월의 운동은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어 사회, 기업, 학교를 비롯한 모든 사회계층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자기 통제" 라는 단어는 민중의 의지에 의해 새롭게 정의된 "자유"를 의미했습니다. 68 년 5 월 운동의 목적은 새로운 사회 모델을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거리'는 극장을 벗어나 새로운 표현의 장으로 개발될 수 있는 장소로 지목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중요인물은 Michel Crespin(왼쪽 사진)로, 이 사람이야 말로 70~80 년대에 프랑스에서 거리예술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어찌 보면 조금 이상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들이 프랑스에 등장했습니다. 표현 기법에서 초현실주의를 채택하여 제법 놀라운 물건들을 만들어낸 극단인 Delice DaDa. 이 극단으로부터 다다이즘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굉장한 수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던 극단 OFF 는 거대 형상이나 거대 인형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대규모의 기계를 이용한 공연 또한 유행했는데, 대표 극단인 'Générik vapeur' 는 <Bivouac>이라고 불리는 공연을 통해 개인주의를 표현하면서, 타인이 겁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거리예술의 뿌리에는 약간 정치적인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5 Délices Dada Générik Vapeur 시간이 흐르면서 비난을 받음과 동시에 사람들을 끌어 모은 축제가 있는데, 1985 년부터 시작된 오리악 축제(festival d'aurillac)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을 끌어 모아 모든 종류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지요. 5 월 운동의 정신을 받아 "금지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말하자면 누군가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표현하였습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지요. 번역하기 좀 복잡할 수도 있겠지만, <WAWASH>라는 공연이 있었는데, 오리악 축제에서는 애완견들과 산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러한 공연도 고안되었습니다. Cité des Arts de la Rue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궁극적인 표현과 그 에너지 모두가 문화부 장관 하의 정책을 따르도록 정리되었습니다. 기금을 모으고, 명칭과 소속을 정하게 되면서 30 년간 거리예술은 많은 곳에서 기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말하자면,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원조를 받는 대신 사회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국립 거리예술 협회 같은 경우에는, 극단으로 하여금 최대한의 것을 이끌어 내어 창작품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셈입니다. 프랑스에선 약 11 개의 기관이 설립되었고, 파리에는 HORS LES MURS 라는 기관이 만들어져 거리예술에 관심 있는 극단이나 모든 일반인들이 관련 자료나 영상을 찾아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리예술지구(La cite des arts de la rue) 도 결성되었으며, 여기에는 극단 및 국립기관뿐만 아니라 교육기관도 참여했습니다. 점차 프랑스에서 예술분야를 기관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경제적인 압력에 점차 노출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 몇 가지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국립센터인 Hors les murs 는 극단들을 몇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지정된 장르는 '야외 연극(le théâtre forain)'으로, 이는 직접 거리에 파고들어 군중을 이끄는 형식의 연극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도시의 시(le nouveau poème urbain)'입니다. Carabosse 라는 극단이 있는데 이 극단은 조명을 이용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상화시켰습니다. 세 번째는 사회 이슈를 주제로 하는 극단인데, 예를 들어 이민자나 난민문제를 다루는 Kumulus 가 있습니다. 이들은 작은 상자에 이민자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물건들을 담아 공연으로 승화시켰고, 관객들은 그것에 매우 흥미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합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던 Delice DaDa 극단은 상상력을 이용해 픽션과
6 현실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드는 거꾸로 여행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매우 논리적입니다. 또 다른 종류로는 관중을 직접 배우로 참여시켜 시 구절을 관객의 귀에 속삭이며 관객과 배우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시키는 방식도 있습니다. Amoros et Augustin 이라는 극단은 큰 화면에 환상적인 이미지를 나열하고 관객들은 이를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시각 예술적인 장르를 진행하였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혹은 다른 차원에서 미적인 것으로서, '공중에서의 안무, 공공 장소에서의 안무'라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Beau Geste 극단은 명백히 매우 새롭고 매우 마술적인 형태의 발레로서 비행기와 함께 춤을 추는 무용수들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분류된 장르는 대규모 행진을 진행했던 Oposito 극단입니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거리예술에 관심이 높은 스페인에서도 'TORO'라는 작품으로 거리 행진을 진행하였으며,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거대한 인형을 이용해 공연을 하는 Royal de Luxe 도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모았습니다. L Illustre Famille Buratini Compagnie Carabosse Compagnie Kumulus Délices Dada Compagnie Amoros et Augustin Compagnie Beau Geste. Compagnie Oposito Compagnie Royal de Luxe
7 프랑스에서는 약 10 년 ~ 20 사이에 거리공연이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프랑스 내에서의 시장규모는 거의 5 백억 유로에 달하며, 관련 업계 종사자 들도 67 만명이 넘고, 1 억 5 백만 유로의 경제적 가치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리예술이 경제적 문제 혹은 정치적 문제 그리고 관광상품의 차원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부분에서 거리예술의 위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시대와 국가와 도시, 혹은 지역을 대변하여 이루어지는 변화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에는 400 에서 450 여개의 거리예술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각 마을이며 도시마다 이러한 종류의 축제를 여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각각의 마을들은 자신만의 카니발을 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행사들은 거리예술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행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축제'라는 단어에 대해 묻는다면, 저는 여러분들이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좀 전에 말한 것과 같이, 거리예술은 약간 기관화 되었습니다. 기관화되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도시들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이해를 컨텐츠에 반영하고, 이를 규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을 한데 모아 통제하고, 입맛에 맞게 활용하여 대중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극단들도 차츰 덜 도전적이게 됩니다. 축제의 초대장을 받아도,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넘겨선 안되고, 도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식은 규제되는 등 예술적 표현이 제한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과도한 마케팅의 희생양으로 떨어진 거리예술은 더 이상 예술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거의 없게 됩니다. 이렇듯 상황이 변하고 많은 극단들이 매우 틀에 박힌 공연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자유로웠던 표현이 약간 상투적이고 의례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Olivier Grossetête Opéra Pagaï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대가 옵니다. 새로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차츰 거리예술로 모이고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제는 공연관련자가 아닌, 건축가, 사회학자, 시인등과 같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특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몇 명 소개하자면, 종이로 가상 도시를 만들려는 올리비에(Olivier Grossetête)는 3~4 일의 시간을 투자하여 거주민들로 하여금 새롭게 도시를 건설하고 소유하도록 하는 상징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매우 매우 인상적인 공연입니다. 오페라 파가이(L'Opéra Pagaïe)의 경우 오디오 헤드폰을 이용해 임의로 만들어진 테라스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을 개발했습니다. 사람들은 영화가 찍히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나가고, 오디오를 착용한 사람들만 연출되고 있는 상황을 이해합니다. 현실 속에서 픽션을 잡아내는 작업으로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Roger Bernat Tricyclique DOL
8 또 다른 예로, 본래 사회학자였던 로저(Roger Bernat)는 벨기에 사람으로, 참가자들이 완전히 창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는 헤드폰으로 봄의 제전을 듣고 떠오른 감정을 이용하여 안무를 재창작 하였습니다. 굉장히 열정적인 극단 중 하나인 Tricyclique DOL 는 숲을 이용하여 굉장히 창의적인 행사들을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약 열흘에서 보름 동안 숲에서 작업하며 상상했던 이미지를 장소에 투영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또 <앞으로 나아가기> 라는 제목으로 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물건들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는 행사는 계속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여러 가지의 갈래의 길을 발생시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비현실적입니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만들어진 물건들로부터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발견하도록 하는 매우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AWAT 이라는 극단은 거리예술의 역사와 약간 관련이 있는데, 거리 하나를 정하여 그 거리를 막아놓고 약간의 가상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스페인에서 진행된 공연 중 하나는 거리에 모여 인생의 가치를 되새기며, 새로운 발견은 항상 기다리다 어떤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시적 표현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극단은 실내공연도 하는데, 길을 많은 물건들로 막아 세우고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들과 협업하여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Jean Blaise Dries Verhoven 낭트 출신의 장(Jean Blaise)은 지역의 차원이라는 행사를 만들어내어 낭트에서 생나자르에 이르는 가상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 약간의 휴식을 만들어준 이 여행으로 제법 큰 규모의 관객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장도 훌륭한 개발자이지만, 릴 출신의 디디에(Didier)는 릴 같은 대도시에서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행사를 기획하여 도시 중심부뿐만 아니라 각 구역 및 전체 걸쳐 진행하였습니다. 외국사례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거리예술의 전통이 깊지 않아도 유럽 내에서는 매우 놀라운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활동적인 네덜란드 같은 경우에는 제법 많은 축제에서 작품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Dries Verhoven 은 유리 벽 속에 배우와 다른 공들을 함께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조금은 불법적일 수도 있는 방법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지금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저기 설치된 유리 벽은 일종의 총체성을 형성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Electric Hotel Woest
9 런던 Electric Hotel 은 영국에서 진행된 공연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3 층짜리 호텔을 짓는 것이었는데, 호텔 건너편 또는 건물의 안 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은 길거리를 막았고, 다시 한번 특정한 행위를 통해 행인들의 발길을 막음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벨기에극단 'WOEST' 의 경우 길거리에서 특별한 동작들을 진행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막아 세워 성가시다 싶을 정도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완 브루즈와는 '안무 협회' (Centre de choregraphic)에 등록된 인물로, 알프스 정상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특별한 무대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만큼 중력을 활용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펼쳐나갔습니다. 도심을 벗어나 장소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신이라던가 하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Alerte Nick Steur 마무리하면서 제가 주관하고 있는 축제에 관련된 공연을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En alerte 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공연인데 최대한의 창작물이 한데 모여 서로 엉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있는 지역 알레스에서 운 좋게도 서 너 명의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사이렌을 이용하여 음향효과를 만들어내는 예술가와, 공중연기가 가능한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동영상의 형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젊은 예술가를 하나 언급하자면, 이 청년은 본래 공연예술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모든 물체가 균형을 이룬다는 사실에 매혹되어 '균형'이라는 개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모든 물건들의 균형을 찾으려는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균형이라는 개념은 약간 동양적인 것일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저는 다시 한번 예술가에게 자유라는 것이 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종속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우리 축제 기획자들은 그러므로 예술가들을 초대하고, 그들을 다루는 데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예술가들은 대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그러니까 형식도, 시간도, 돈에도, 그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축제에 초대하고자 한다면 가능한 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축제는 항상 고통스러워야 하고, 변화할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세상은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도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합니다. 20 년전과 지금은 같은 것도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술가들이 이러한 변화의 메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이 그 생각들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을 보다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정말 마지막으로, 저는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같은 기획자들이 예술가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변화에 준비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이러한 상황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을 함축적으로 정리한 말입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10 안녕하십니까. 하이서울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이 자리에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아시아의 거리예술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라고 생각하며, 여러분도 이 사실을 잘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4 일 동안의 페스티벌 동안 보게 될 한국 공연단체들에 대해 매우 기대가 많습니다. 통역을 위해 아주 천천히 말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너무 길게는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이 발표를 흥미로운 시대에서의 변화하는 시각들 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구절이죠. 흥미로운 시대에 살기를 이라는 표현은 서구에서는 꽤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중국의 욕이라고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시대 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어려운 시대 를 의미합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1930 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여행자들에 의해 동시에 이 표현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건 중국 욕이나 속담도 아니고 전혀 중국에서 온 표현이 아니기 때문에, 그 진정한 기원은 미스터리입니다. 어쨌든 2008 년 전지구적 경제 위기 이후 우리가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오고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세계적 경제 위기로 인한 유럽에서의 영향은 예술 전반에 대한 정부 지원 감축이며, 물론 거리예술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지구온난화와 연계되어 일어나고 있는 환경 재해들 같은 주요 이슈들과 함께, 유럽에서 우리는 2 차 대전 이후 최대규모의 이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 이 시대는 흥미로운 시대임이 틀림없죠. 따라서 예술계가 이러한 시대에 반응하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고, 물론 예술은 반응했습니다.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거리예술이 20 세기 후반의 몇 십 년 동안 정부로부터 아주 적은 인정과 금전적 지원을 받았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된 후로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모두에게 예술을, 아니면 아무에게도 없도록(Art for everybody or nobody) 그리고 좋은 예술을 모두에게(Great art for everyone) 라는 두 구절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변화를 대변합니다. 전자의 표현인 모두에게 예술을, 아니면 아무에게도 없도록 은 1990 년대 런던의 국립미술관에 있던 그래피티 작품이었는데, 그 당시는 예술 지원이 인구의 다수가 아닌 문화적 엘리트층의 이익에만 봉사한다는 것이 널리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20 년이 지난 후 좋은 예술을 모두에게 라는 슬로건은 태도를 바꾼 영국의 문화예술위원회의 표현이 되었고, 이제 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을 최대한 민주화하려 하고 예술을 가능한 한 널리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것은 국립미술관에게 이득이 되었는데 이제 입장이 무료라서 아주 잘 이용되고 있고, 새천년 초기에 처음으로 영국의 문화 제공에 있어서 인정받게 된 거리예술 또한 그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보다 30 년 정도 뒤쳐져있죠. 제 생각에 거리예술은 문화예술위원회와 도시 정부에게 있어서 공동체 화합과 도시 재생성 같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다루기에 특히 유용한 도구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물론 현대 사회에서 거리예술가들만이 공공 공간에서 연행하고 공연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예술에서의 사회적 전환과 정치적 행동주의에서의 예술적 또는 창의적 전환은 병행된다(The social turn in the arts is paralleled by an artistic or creative turn in political activism) 라는 이 표현은 스페인의 문화사가인 훌리아 라미레즈 블랑코의 말입니다. 그녀는 지난 몇 십 년간 발전한 저항 운동에 대해 저술한 바 있습니다.
11 여러분에게 이 이미지들이 아주 친숙하리라 생각됩니다. 저 가면은 사실 영국의 그래픽 노블 영화에 처음 나오는 것인데, 역사적 인물인 가이 포크스의 캐리커처이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저항 운동에 의해 차용되었습니다. 미국 국기가 옆에 있는 것을 보니 이건 분명 미국이군요. 이 남자는 세 가지에 대해 불만을 표하고 있고,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이건 런던이고요, 이것은 저항의 꽤나 잘 발전된 퍼포먼스적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쓰릴러 분장 같은 것을 하고 있어서, 저들은 마이클 잭슨의 쓰릴러 에 맞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은행들은 사회를 갉아먹는 좀비들 같은 존재라는 믿음과 자본주의의 무덤에서 춤추고 싶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시아 어딘가, 말레이시아 아니면 홍콩 중 한 곳에서의 더 진지한 저항입니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집단적 정체성과 익명성을 부여합니다. 세계적 미디어를 통해 우리 모두는 저항에 고유한 퍼포먼스적 행위, 상징적 제스처, 시각적 언어를 포함한 저항의 새로운 전지구적 미학을 대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꽤 많이 발전되어 있으며, 가장 유명한 예시로는 러시아의 푸시 라이엇 운동이 있겠습니다, 그들은 물론 그 저항 덕에 감옥 신세를 졌지만요. 또한 고도의 형상 작업을 보여준 플래쉬몹 이벤트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핵무기 군비 축소를 위한 캠페인입니다. 사진 찍은 사람이 어디서 찍어야 할지를 잘 알았나보군요. 약간 올림픽 행사 같은, 플래쉬몹 무리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공중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것은 홍콩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안무된 무용 작품의 형식으로 진행한 저항운동입니다. 이 역시 미리 형식적인 공고가 없었던 장소에서의 플래쉬몹이죠. 이 퍼포먼스 분야, 또는 거리에서의 퍼포먼스적 행위의 분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고 거리예술 또한 알고 있는 분야입니다. 따라서 사실 거리예술은 이런 종류의 저항운동과 공공 공간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공적인 영역에서의 퍼포먼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히 예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슬라이드들 중 몇 개는 이 점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개는 연행자와 관객 사이에서 가능한 친밀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시의 우주인>이라는 작품인데요, 저 사람은 실제 우주인이 아니라 공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12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우리는 문화라는 것에는 목적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꽤 잘 기억되는 문화의 정의는 문화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가치와 의미들이 창조되고 경쟁하는 장이라는 것입니다. 문화는 절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 은 아주 무의미한 표현입니다. 예를 들자면, 스턱튼 리버사이드 페스티벌에는 커뮤니티 카니발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는데, 그 카니발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로 이루어진 천 명 정도의 참가자가 함께 하는 행진으로, 매년 있는 이벤트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도시 정부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그것은 도시 인구의 시각적인 상징이며 공동체 화합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것은 아이들의 행렬임에도 예술 작품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우리는 맥도날드로부터 후원을 받았는데, 그들은 로날드 맥도날드 광대 캐릭터가 행진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일은 그 해의 행진에 또 다른 아이러니를 더했지요. 예술적 반응은 단순히 아지프로Agitprop일 수는 없다고 했는데, 사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지프로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발전되었던, 문화적 방식을 통한 홍보의 형식입니다. 예술이 저항의 목적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런 목적을 가질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거리예술가들에게 그들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우리는 그들이 어떤 목적의 홍보라는 개념에 대한 아주 좁은 정의에 의해 제약을 느끼기를 바라지 않고, 그들은 창조적 자유를 가져야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작품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유럽에서는 제가 여태껏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공연 단체들이 오늘날의 주요 이슈들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Fugit(Kamchatkà) Arka(Teatr Osmego Dnia) As The World Tipped(Wired Aerial Theatre) 스페인, 프랑스, 영국의 작품에서 모두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이것의 좋은 예시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아들입니다. 이 단체는 스페인에서 온 캄차카 컴퍼니이며, 그들은 아주 시적인 방식으로 이주민들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공연이고 아주 진지한 목적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이것은 다른 단체인데 지금 유럽에서 이주에 대해 다루고 있는 공연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이건 폴란드 출신의 극단으로, 비행 기계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비유적으로 비행의 꿈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올해 하이서울페스티벌의 개막작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은 영국 와이어드에어리얼씨어터의 아주 성공적인 작품인 <세상이 뒤집히던 날(As The World Tipped)>입니다. <세상이 뒤집히던 날>는 많은 층위에서 성공적이고, 아주 창의적으로 연출된 멋진 공연임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지구 온난화의 위험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실제로 행동에의 촉구 또한 포함해 사람들이 아주 강력하게 느끼고 반응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3 일간 여러분이 직접 그것을 경험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13 Dancing Graffiti (BandArt) High Street Odyssey(Inspector Sands) Electric Hotel(Requardt & Rosenberg) Pixel Mountain(Stalker Theatre) The Roof(Requardt & Rosenberg) 이제 도래하고 있는 기술의 사용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고 싶은데요, 왜냐하면 그것이 제가 짚어내고 싶은 다른 주요한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디지털 예술과 디지털 미디어는 거리예술의 언어로 다시 체화됩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하게 일어납니다. 이것은 헝가리 극단 밴다트(BandArt)의 공연인데, 기술은 대부분 손으로 들고 있는 태블릿에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솔로 공연이지만 사실은 무용수와 태블릿 조작하는 사람, 둘 사이의 듀엣입니다. 다음 공연은 <하이 스트리트 오디세이(High Street Odyssey, 국내공연명: 서촌 오디세이>라는 공연인데, 작년 하이서울페스티벌에도 왔었고 도시를 재창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해 기술을 사용하는 아주 멋진 방식입니다. 다른 예시로 <일렉트릭 호텔>이 있는데, 여기서 연관되는 지점은,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이 공연은 450 명의 관객들에 의해 관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헤드폰을 쓰고 그들 주변의 세상과 단절된 아주 강렬한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봤던 다른 공연인데, 스토커 극단과 한국 무용단의 <픽셀 마운틴>이라는 작품입니다. 저는 2 년 전 하이서울페스티벌 기간 중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것을 보기 위해 아주 짧은 방문을 했었습니다. 베이징에서 넘어와 1 박을 했는데 이 공연이 굉장했기 때문에 보람 있었고, 이 작품이 여전히 투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쁩니다. 내년의 재공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음 공연은 <일렉트릭 호텔>을 했던 극단인 레카르트 앤 로젠버그의 다른 공연인데, 그들은 안무가와 연출가가 협업하는 극단입니다. 이 공연에서는 게임 개념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유추하실 수 있겠습니다. 다음은 <지붕>이라는 공연인데 관객까지 모두 경기장 안에 들어가서 참가자들이 계속해서 실패하다가 결국에는 성공하는 게임 코스에 참여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을 모두 알겠죠.
14 이 공연은 올해 4 월에 올렸던 것인데 사실 제가 제작을 했습니다. 극심하게 빈곤한 공동체에 예술을 전달하는 단체의 초청장입니다. 제작에는 100 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있었습니다. 저임금, 실업, 미혼모 등 그 공동체들의 사람들이 가진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연의 메시지는 함께 모여 노력함으로써, 그게 이 공연이 실제로 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 정신을 찾고 그런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폭동의 비유로 시작해서 매우 낙관적인 분위기로 끝나는데, 우리는 예술을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현재 많은 문제들에 직면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리예술 분야는 특히 금전적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공동체 정신이 번성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15 안녕하십니까. 제목을 거리예술의 두 가지 유혹이라고 했는데, 이 의미는 거리예술이 무엇을 유혹한다는 것이 아니라, 거리예술에 어떠한 유혹에 빠져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거리예술이 어떤 유혹에 빠져서 혹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저의 우려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앞의 발제자 두 분은 거리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셔서 저희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었지만 저는 이번엔 비판적인 입장에서 오늘날 한국 거리예술계를 돌아보려 합니다. 우리나라 거리예술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2004 년 과천축제를 시작으로 거리예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고 소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 나라에 많은 거리예술가들이 생겨났습니다. 10 여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 거리예술 센터를 중심으로 약 40 여개 단체가 활동하고 있으며, 이 단체들은 하이서울페스티벌, 안산 국제 거리극 축제, 고양 호수 예술 축제, 수원 연극축제, 춘천 마임축제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위의 축제뿐 아니라 거리예술 축제가 아닌 기타 여러 축제들에도 참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축제라는 행사는 근본적으로 야외 문화 활동을 필요하고, 거리예술가가 야외에서 문화적인 공연을 하는 것에 거리예술 축제가 아닌 다른 축제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거리예술은 앞서 말했듯 2004 년 시작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거리예술이 지향하는 바는 다수의 대중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블랙박스로 지칭되는 극장에서 진행하는 공연예술이 아닌 비 관습적인 공연예술에 대한 시도로서 출발하였고, 이는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거리극과 비슷한 장르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당극이라는 장르입니다. 마당극은 1960 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가 행해지던 시절에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불평등을 이슈로 그 문제제기를 문화적, 예술적으로 풀어냈던 장르입니다. 그 같은 이슈를 시위를 통해 딱딱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행위를 통해서 그것을 대중에 더 가깝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마당극은 68 운동과 함께 시작된 유럽의 거리예술의 시작과 그 이념이 닮아있고 시기적으로 일치하는데, 우리나라의 거리예술은 마당극의 전통을 이어받아 발전한 것이 아니라 유럽의 거리예술의 영향을 받아 마당극과는 별개로 발전해 왔습니다. 현재도 마당극은 여전히 공연되고 있고 거리예술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하는 공연의 주제가 분열인데, 우리나라가 남북이 분열되고 세대가 분열되는 상황에서 예술계마저도 예총과 민예총으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 아직도 서로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다만, 일부 마당극 단체와 한국 거리예술센터 및 거리예술축제가 만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향후 예술계마저 둘로 나누어지는 불행은 종식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거리예술은 양과 질의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으며, 일부 국내 단체는 해외로 진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리예술의 역사가 10 년이 넘어가며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 혹은 새로운 공연예술을 개발하겠다는 의지가 종종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6 그 첫 번째 의지, 즉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의지가 종종 단순한 즐거움을 주는 공연으로 전락했다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대중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바람이 거리예술가에게 너무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즉, 즐겁게 만들어 줌으로써, 바로 오락으로써 사랑을 받게 된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관객을 웃게만 만드는데 치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 아닌 놀이공원에서 즐기는 즐거움,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익히며 누리는 즐거움, 노부부가 옛 사진첩을 열어보며 느끼는 즐거움 등 즐거움의 의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 예술을 통한 즐거움은 단순히 코미디를 보고, 놀이공원을 가서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관한 성찰을 통해서 생겨난 즐거움이기 때문에 예술을 통한 즐거움은 단순히 소비적인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상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선사하며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며 화해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생산적인 즐거움을 줍니다. 또한 즐거운 축제에 대한 대중의 오해가 있습니다. 축제를 오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운 어떤 것을 기대합니다. 축제가 즐거운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하지만 축제에서의 즐거움은, 특히 공연예술축제에서의 즐거움은 단순히 소비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예술 경험에서 생겨난 환상, 다른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거리예술축제가 이러한 축제에 관련한 오해를 받아 단순한 즐거움을 주는 행사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물론 거리라는 공간은 우는 것 보다는 웃는 것에 적합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오락만 있는 컨텐츠는 아닙니다. 더하여 축제사무국이나 축제를 지원하는 지자체의 소극적인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축제를 지원하는 단체에서는 시민들을 예술로 끌어들여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축제에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시민에게 민원은 듣지 않아야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축제에 임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띕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단순하게 웃기는 것에 치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나 지자체는 단순히 웃기는 작품을 선호하게 되는데, 그 영향을 받아 공연 단체 또한 단순한 즐거움, 오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거리에는 아동 관객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호기심도 많고 어른에 비해 웃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 단체는 더욱 단순한 이야기를 가진 공연을 택하게 됩니다. 물론 거리예술은 관객과 소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유추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는 관객에게 지루함만 안겨줄 뿐입니다. 거리의 관객에게 다가가는 길은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아닌 작품을 통해 공연을 보는 사람들까지 위로 끌어올리는 길입니다. 거리 예술은 다수의 관객을 예술을 통해 함께 위로 끌어올리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관객의 눈높이는 공연자의 예상보다 훨씬 높을 지도 모릅니다. 관객은 더 새로운 것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거리예술가가 오히려 관객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으나 관객이 예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객이나 거리의 대중을 얕잡아보거나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작품만 완성도가 높게 잘 만들어진다면, 그 작품이 조금 어려울 지라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예술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경우 그 책임은 예술가가 지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관객은 공연예술에 관해서는 어떠한 잘못도 없는 신이라고 표현합니다. 한 편으로는 단순하게 오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반대되는 경향이 보이기도 합니다. 소위 지나치게 멋진 예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거리예술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거리예술이 성공하면서 예술적인 자부심이 생겨나고, 나아가서는 경험이 생겨나면서 거리예술의 많은 기법들이 발전되었습니다. 거리예술이 발전하면서, 예술가들은 거리예술 장르에 관한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거리예술에 관한 경험들을 축적하게 되었으며, 많은 거리예술 기법들도 발전시켰다. 그러나 거리예술가들이 기존의 관습적인 공연예술과 거리예술을 견주기 시작하면서, 실내공연의 섬세함과 예술성에 뒤지지 않는 공연을 만들고자 하는
17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용에 있어서도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내용들이 시도됩니다. 거리에서의 공연은 아시다시피 굉장히 어렵습니다. 관객이 집중하기 어렵고 산만해집니다. 이러한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멋진 얘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거리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그런 경우가 없지만 외국 유명 축제를 보면, 공연 하나를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20-30 분동안 움직여, 아주 외진 곳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그렇게 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공연은 티켓을 판매하며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다뤄지는 것은 결국 실내극과 별 다를 바가 없고 집중해야 하며 공연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작품들이 가끔 공연됩니다. 그러한 현상을 볼 때, 거리예술이 예술을 위해 거리를 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다시금 실내 공연예술에서처럼 예술적인 감수성과 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거리에서 예술을 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거리에서는 예측하지 못하는 온갖 해프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예술가들은 거리에서 예술을 하고자 합니다. 거리예술의 방식은 실내 공연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 속에서 제작, 운영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거리에서 예술을 할 때, 예술을 포기할 수도 없고 또한 공연을 찾아오는 거리의 대중들을 배제해서도 안됩니다. 소란스러운 거리에서 예술을 한다는 사실, 예술에 전혀 관심 없는 관객을 상대로 한다는 사실은 우리 거리예술가들에게 커다란 과제를 남깁니다. 그렇다고 거리예술가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어느 한 쪽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거리예술이 만들어지고 관객들이 좋아할 것이고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18 사회자 :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발제에 관한, 혹은 주제에 관한 토론자 분들의 의견을 짧게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최준호 : 흥미로운 발제를 잘 들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80 년대 프랑스에서 10 년간 유학하며 거리예술축제에 많은 관심이 생겨 97 년도 과천에서 거리예술축제가 만들어졌을 때, 마당극이 거리예술로서 발전해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었습니다. 첫 번째 발제에서 프랑스 거리 축제의 창설자인 미셸 크레스팽의 정신을 유산으로 받아 우리의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만 앞서 축사에서 거리예술이 추진하는 바와 전혀 다른 바가 나와 그것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예술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많은데 거리예술과 거리예술축제는 자유로움을 주며,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하게 합니다. 다음으로 추구하는 것은 '경계 허물기'입니다. 극장에 갇혀있지 말고,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가 없어지고, 사회적 공간으로 나와서 극장과 사회, 국가와 민족의 모든 경계를 허무는 일입니다. 또한 점점 약해지는 우리의 공동 사회의 연대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19 17 년의 세월 동안 그러한 목표가 많이 변화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와 관련하여 공동 질문과 개별 질문을 각각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거리예술 축제라는 것이 관중, 그리고 행정 당국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포괄적인 이야기지만 대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거리예술축제가 생기기 전과 후의 변화에 관해 여쭙고 싶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30 년 넘게 거리예술축제가 이어지는데, 거리예술축제의 전과 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또한 프랑스 발제자께 질문을 드립니다. 극장 공연과 거리 공연을 함께 하고 계시는데, 이 둘이 상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가에 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다시 토론자들에게 공통적으로 현재 경제 위기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과 정치인에게 외면 받기 쉬운 거리예술축제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또한 거리예술 축제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관련 장르 축제 기관 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어떤 시너지가 축제에 미칠 수 있을지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총 다섯 가지의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공통 질문으로 거리예술과 행정당국 혹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에 관한 문제 하나와 거리예술축제 전과 후의 변화들, 그리고 경제 위기 상황에서 변화하는 거리예술 양상에 대해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발제자에게는 극장 예술과 거리예술에 관계 및 상호작용에 관해 질문해주셨습니다. 또한 하이서울페스티벌에 관한 질문도 있었는데, 시간이 되면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님께도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토론자들의 말씀을 모두 들은 뒤 이 내용에 관해서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동연 : 저는 특별한 질문보다는 세 발제자의 발표를 들으며 느꼈던 점을 세 가지로 추려 얘기하겠습니다. 거리예술에는 두 가지 패러다임이 있습니다. 첫 번째 패러다임은 저항으로서의 거리예술이고,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완전히 반대되는 상품으로서의 거리예술이 있습니다. 오늘 발제를 하신 세 분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저항으로서의 거리예술에 대한 이야기와 경제적 효과를 일으켜야 하고 이에 대한 강박에 시달려야 하는 거리예술에 대한 것, 그리고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선구자 역할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시 예술가들이 쫓겨나는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거리예술축제가 저항으로서의 거리예술과 상품으로서의 거리예술이라는 극단적인 성향을 띠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 오늘 발제에서 본 슬라이드 중에 몇몇을 제외하고는 그 저항 조차도, 문화적인 활력을 넣고자 하는 시도조차도 사실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시스템 내에 포섭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거리예술이라는 것에 저는 문외한이지만 특별한 정형이나 표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예술은 극장이라고 하는 근대적 예술 체제에 저항하는 기원을 갖고 있고, 오히려 근대 이전 자유로운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서로 공유하려 하는 사람들 사이의 근원적 연대를 표현하려 했던 것이 거리예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예술은 정형화될 수 없고, 표준화될 수 없고, 형식화될 수 없고, 상품화될 수 없고, 저항의 형식으로 이른바 제도화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봤던 발제 자료들은 어딘가 모르게 정형화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 그 내용 자체는 저항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매우 거대한 오브제를 사용하려고 하고, 굉장한 스펙터클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항으로서의 거리예술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생활과 장소에 깊숙한 곳에 함께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 자체가 거리예술의 중요한 저항 형식을 보여주고 있고, 유명한 가수인 싸이가 소유하고 있는 이태원 건물에 임대되어 있는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업공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 앞에서 메가폰을 들고 문제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거리예술의 중요한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형식으로 굳어져 있는 저항으로서의 거리예술보다는 거리에 이미 나와 있는, 쫓겨난, 내몰린 이들의 저항의 미학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거리예술의 두 가지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틀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거리예술은 무엇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하이서울페스티벌에 요구하고 싶고 주문하고 싶은 내용 중에 하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하고, 아티스틱해야 합니다. 앞서 임수택 선생님이 얘기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거리예술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주제 의식이 매우 결핍되어 있거나 부재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관심이 있을 뿐 거리예술이 우리 시대에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유럽의 경제 위기 문제, 난민과 이주 문제도 이야기하셨는데, 거리예술은 그런 주제 의식을 담고 그런 것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서울 시 안에서 수없이
20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거리예술의 장소와 기원에 관한 것입니다. 임수택 감독님이 과천축제 예술감독님이셨는데, 이 축제가 올해 과천말축제로 바뀌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했었던 거리예술축제가 순식간에 보수정당의 집권 하에 과천이라는 장소를 대표하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결과로 과천 경마장과 연관하여 과천 말축제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거리예술의 장소성에 적합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천시가 과천 말축제를 만든 것은 과천이 갖고 있는 경마장이라는 매우 상업적인 경기장의 홍보를 위해서, 과천이 갖고 있는 근본 없는 경마장이라는 장소를 내세워서 마치 그것이 과천의 대표적 장소인 것처럼 둔갑시켜버린 것입니다. 저는 거리예술의 장소라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기원들로부터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이서울페스티벌이 거리예술축제로 전환되고자 한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대지와 장소의 원래 기원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한국에는 고유한 연희가 있죠, 마당이 있고 난장이 있습니다. 풍물이 있고 농악이 있습니다. 많은 판소리와 연주자들이 거리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원래 갖고 있는 장소의 기원에 적합한 컨텐츠들을 하이서울페스티벌이 많이 접목시켰으면 합니다. 거리예술이 가져야 할 장소와 기원에 대한 문제에 좀 더 주목해서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거리예술의 여러 표현 방식 중에 저항이나 메시지, 정치적인 의미에 주목해주신 것 같습니다. 아마 일상적 삶 속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저항의 형태들도 거리예술의 큰 스펙트럼 안에 들어와야 하지 않는가에 대해 얘기해주셨습니다. 또한 하이서울페스티벌이 전통적인 것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부탁하신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 양현미 기획관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양현미 : 거리예술이라는 분야에 관해 서울시가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금의 시장님이 재임하신 2013 년도 부터인 것 같습니다. 그 때 이전에 다른 성격이었던 하이서울페스티벌이 그와 다른 거리예술로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고, 올해 3 년째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밖에 작년에 구의취수장이라는 공간이 사용되지 않자 그것을 현재 거리예술창작센터라는 이름으로 거리예술만을 위한 창작공간을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에서는 거리예술활성화 사업이라는 이름 하에 각종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리예술시즌제라는 이름으로 하이서울페스티벌 이외에 봄과 가을에 20 여개의 거리예술단체를 뽑아서 선유도 등지에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는 거리예술가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10 여명을 뽑아 훈련하고 프랑스의 거리예술관련 기관과 연계하여 프랑스 연수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 외에 거리 곳곳에 버스킹 형태의 공연이 이뤄질 수 있게 서울 시내 100 곳 정도에 거리예술존이라고 이름 붙이고, 100 개 팀 정도를 뽑아서 이 분들이 거리에서 작은 공연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부러 공연장이나 문화시설을 찾아가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들이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고요, 예술가들에게는 전문적인 공연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거리가 무대로서 다양한 창의력이 발휘되는 여러가지 실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예술계와 시민 모두에게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분야게 거리예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거리예술 분야에 대해 늘어나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리예술축제의 경우에,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이루어지다 보니까 어디서 했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가 의 문제에서, 산만하다거나 너무 어렵다는 등의 평가들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거리예술과 축제에 대해 시에서 지원을 하는 게 좋은가 하는 의문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년도 예산을 심사하고 의회에서 통과해야 하는 시기에 임박해 있는데, 그럴 때마다 거리예술과 관련된 성과와 거리예술이 시민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의 부분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가에 따라 내년도 예산의 규모가 결정되게 됩니다.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 사실 거리예술을 지지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의회에 이런 부분을 설득할 때 거리예술의 어떤 점들을 성과로 부각시키는 게 좋은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여기 발제해주신 분들이나 해외 사례에서 펀드를 공모해서 받을 경우 어떤 점들을 부각시키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전략들이 유효했는지를 공유해주셨으면 합니다. 사회자 :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거리예술 정책과 사례를 소개해주셨고, 하이서울페스티벌과 거리예술 자체가 갖고 있는 부득이한 점으로 인해 어려운 성과 측정의 방법에 대한 질문을 주신 것 같습니다. 네 번째로 스토커 씨어터의 데이비드 클락슨 감독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21 데이비드 클락슨 : 안녕하세요, 서울에 다시 방문하게 되어 기쁘네요.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토론에 참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프랭크의 관점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거리극의 뿌리는 정치적 행위에 있습니다. 거리극은 아주 특별한 것을 하는데, 작품을 거리로 가지고 나오며 그 핵심에서는 공동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공동체를 짓는 힘과 공동체에 반대하는 힘은 거리극에서 병치되는 것 중 하나이자 거리극의 긴장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더 얘기하겠습니다. 스토커 극단은 1985 년에 뉴질랜드에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호주에 갔고, 아주 빠르게 유럽으로 갔었으며, 아시아와 남미 전역을 투어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도 두루 작업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몇 분의 시간 동안 저는 글로벌 거리 문화에 대한 저의 시각과 각각의 국가가 어떻게 특수한지, 그리고 각각의 국가가 어떻게 거리극을 잘, 또는 잘 못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거리극에 있어서 저에게 새로운 나라이자 새롭게 사랑에 빠진 나라는 한국입니다. 그래서 저는 거리극 문화와 세계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린 마음과 밖을 바라보는 성향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이 한국을 정말로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밖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어떤 점이 특별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마을 문화에서 시작했지만 국제적이라는 점입니다. 공동체 정신을 유지하면서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긴장입니다. 여러분은 OECD 의 바닥에서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제 생각에 여러분은 직관적으로 거리극에 이끌리고, 그 이유는 거리극이 그 중심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거리극을 전력을 다해 키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것과는 반대되는, 제가 잘 아는 또 다른 문화에 대해 얘기해보겠는데요, 바로 호주입니다. 호주는 많은 방식을 통해 제 커리어를 지원해주었지만, 현재로써는 호주에 거리극이 실제로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1988 년 엑스포와 함께 거리극은 수용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80 년대 후반과 90 년대 초반에는 호주에 아마 30 개 이상의 거리극단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극단과 한 두 명 정도의 개인 예술가가 거리극을 하고 있고, 극단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거리극은 강력할 수 있지만, 또한 약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 예술가들에게 축제 감독들과 친해지고, 정치적이 되어야 하고, 당신의 예술을 옹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다. 예술가로서 여러분은 자신의 예술 형식과 내용을 개발해야 합니다. 둘 다 개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호주에서의 문제들 중 하나는 우리가 우리의 형식을 옹호하는 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해외로 가서 우리의 형식을 팔아야 했습니다. 호주에서의 또 다른 실수는 어떤 면에서는 유럽에 대한 것입니다. 유럽은 제 창의력에 영감을 주었지만, 저는 유럽의 문화제국주의에 대해 잠시 말하고 싶습니다. 프랑스는 저에게 영감을 주기는 했지만, 프랑스의 많은 큰 극단들이 호주에 와서 너무 잘 하는 바람에 축제들이 그 극단들을 유치했고, 대신 호주 극단들을 지원하지 않게 되었죠. 그래서 프랑스로부터 멋지고 영감을 주는 거리극이 있었지만, 이것의 정치적 결과는 호주의 문화를 파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문화의 경우에도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화는 강하지만, 하나의 문화, 또는 두 세 개의 문화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긴장한 채 조심하고, 여러분 고유의 문화를 믿으십시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또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연극에 대한 다른 접근을 가진 다른 문화들이 있습니다. 저는 남미에서 두루 작업을 했었는데, 남미의 거리극에서 좋은 점은 다른 문화들을 초청하는 노선을 택하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고, 거리극 판이 활발하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콜롬비아, 멕시코, 몇 년 전에는 브라질에서 작업했었는데, 그 모두는 아주 활발한 공동체들이고 자신들의 작업에 대해 열정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많이 일했던 문화에 대해 또 언급을 하자면, 미국입니다. 아주 흥미롭죠. 미국은 굉장히 많은 문화를 수출하지만, 거리극은 아주 규모가 작아서, 미국에서 거리극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저는 두 세 개의 극단과 일했었는데, 그들은 아주 힘겨워했습니다. 미국에는 기업 예술이 예술풍경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목소리가 있고, 언제나 공동체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여파가 있습니다. 마무리하자면, 지금 한국의 거리극에서는 아주 소중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요약을 해보면, 한국만의 거리예술이나 거리극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기존의 제작이나 창작 방식들이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다른 문화권과의 교류도 넓혔으면
22 좋겠고 한국만의 거리예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엑스트렉스의 매기 클래크 감독님 말씀을 듣겠습니다. 매기 클라크 : 하이서울페스티벌에 오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로부터의 발표를 보면 우리가 관광산업과 재생성의 분야와 문화민주주의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우리는 도시를 위해 사용되는 이벤트와 축제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저는 그것이 아주 좋은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위험과 함께 온다는 것은 분명하지만요. 저는 공공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대하고 유의미한 이벤트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것을 지지하는 것은 기획자, 예술가, 행정가로서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한국을 방문한 입장이지만 서울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벤트들의 어마어마한 문화적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결코 이루기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도시의 시민들에게 굉장한 역사적, 문화적, 감정적 공명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해낸 서울시와 기획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압니다. 그리고 문화적 민주주의, 우리 모두가 누리는 관광산업의 이득과 더불어, 임수택씨가 축제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 축제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을 때 아주 중요한 지점을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축제를 그저 많고 다양한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매우 예술적인 표현의 수단으로 보도록 스스로에게 도전의식을 북돋는 예술가들의 중요성도요. 그리고 저는 제작자이자 기획자로서, 그리고 영국에서 프랭크와 더불어 많은 파트너들과 함께, 창의적 프로젝트의 의뢰인으로서 그것을 저 자신에게도 도전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항상 대면하는 도전은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동시에 뛰어난 예술을 창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가들이 지켜야 하는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 공간에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면, 당신의 이벤트에 참석할 관객의 민주주의를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제약이 되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즐거움을 제한하도록 두어서는 안 됩니다. 즐거움과 융합된 예술은 우리가 모두 대면할 수 있는 도전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저는 각각의 축제가 독특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 다른 문화의 축제들을 방문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축제는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한 공동체의 특정한 관객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습니다. 저는 상업에 의해, 시장에 의해 주도된 축제들에 방문해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거리예술을 위한 전지구적 시장, 그렇게 부르고자 한다면,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 대해 저는 앞으로의 며칠 동안 얘기를 나눠보고 싶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다음 주에 한국공연예술시장에 갈 예정인데요, 그렇게 부르더군요. 하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문화와 각자의 지역에 특수한 것들을 유지해야 합니다. 저는 이 패널에 예술가들, 학자들, 축제 기획자들, 그리고 행정가들을 두루 섭외한 이 컨퍼런스의 기획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거리예술이라는 예술 형식을 위한 실제 미래를 정말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거리예술을 예술 형식으로서 계속 생각해야 하며, 그저 문화적 민주주의, 관광산업, 혹은 그 어떤 것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모든 것들은 물론 모두 좋은 것이지만 거리예술은 예술 형식으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사회자 : 감사합니다. 거리예술이 참 어렵지만 거리예술이 해야 하는 과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거리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거리예술 외에 다양한 분야와 학계, 예술계, 공공기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다시 발제자 순서로 돌아가서 앞서 말씀 드린 거리 예술과 행정당국, 공공기관의 관계, 거리예술 전과 후의 변화들, 경제 위기 상황에 관한 변화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조금 더 포커싱을 해서는 데니스 라포리 감독에게는 극장과 거리의 상호작용에 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괄적인 질문으로, 거리예술의 성과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 먼저 앞서나갔던 축제와 관련하여 질문이 있었습니다. 위의 이슈에 관하여 발제자의 답변이나 의견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프랭크 윌슨 : 저는 이미 공연 쪽에서의 경향에 대해 얘기를 했으니, 양현미씨가 거리예술 축제의 기능성에 대해 제시한 질문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규모의 도시가 모두 공통의 특징을 공유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도시들에는 특정한 양의 공공 공간, 비즈니스 구역, 소매상업 구역, 여가와 요식업 구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도시들이 비슷한 문제들에 직면한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근무 시간 이후에는
23 비즈니스 구역이 텅 비게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공공 공간의 여가와 유희 구역은, 특히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말이죠, 한 부류의 사람들만으로 꽉 차있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 술을 마시며 삶을 즐기는 젊은이들이죠.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공동체 전체를 보는 것은 꽤 흔치 않은 일입니다. 심지어는 저조차도 처음에는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스턱튼 국제 리버사이드 페스티벌이 곧바로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축제가 시민들이 같은 시간에 도시 중심에 공동체 전체를 모이게 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그런 기회가 없었고, 사실 제가 처음에 그 축제를 시 정부에 제안했을 때 그들은 아주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기회가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솔직하게는 저도 못 느꼈었습니다. 저는 예술을 발표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그 축제의 성공은 도시의 대중이 아주 빠르게 소유권을 가져갔다는 것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런 종류의 이벤트를 원한다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했습니다. 단지 예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 곳에 모여 그들이 그 도시의 시민이라는 것을 즐기기 위한 기회를 위해서 말이죠. 축제의 사회적 측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시 정부의 태도가 진화한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제는 축제를 아주 중요하게 보거든요. 그 모든 이유들과 사회적 화합, 스턱튼의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부여한다는 것 등등 때문에요. 그들은 딱히 그 축제의 생명력은 거기서 일어나는 예술적 창조라는 것을 인식하지는 않아요. 또 그들은 극단, 그리고 축제 감독에게도 예술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축제 감독은 중요한 역할이고, 감독의 판단을 시 정부가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기능적인 층위에서 한 순간, 며칠 동안에 도시 전체를 모을 수 있는 기회는 그 도시의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만큼 큰 도시에서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요. 이 도시의 구역마다 다른 축제가 동시에 열리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축제를 계속해야 하는 주된 이유,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도 재원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대중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사회자 : 네, 감사합니다. 바로 이어서 데니스 라포리 감독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데니스 라포리 : 물론 이 질문들은 엄청난 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정부에 대한 질문에 먼저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거리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에서 표현되는 것은 분명 도시와 서로 닿아있고 그러므로 그것은 정치적인 것들의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명백히 정치적인 것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축제 기획자들과 도시 간에 정치적 전략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전략들은 동시에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또한 선거를 하지 않아도 정치적인 것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담한 시도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가? 저는 계약에 대한 의심 없이도, 그것들을 할 수 있는 좋은 방식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도시와 정부에 대하여 예술적 방향을 합의하는 약속, 그것은 곧 장기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최소 3, 4 편의 공연을 보장하는 것 처럼 말이지요. 조금 더 살펴보면, 만약 이러한 방침들이 단일한 자유로운 공동체와 함께 좋은 방향으로 결정된다면, 그것은 사실 상 대담한 시도를 활기찬 순간들로 되바꾸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 의해 고려되는 정책 연구를 가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저는 프랑스에서 이러한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4 년마다 갱신되는 약속을 말이지요. 그래서 매 4 년마다 우리는 현상을 분명히 했고, 무엇이 작동하는지 그리고 작동하지 않는지 보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결국, 그곳은 내가 대담한 시도를 했던 곳이며, 가장 흥미로운 예술가들의 활약을 통해 영감을 얻은 곳입니다. 따라서 이 대담한 시도들은 단기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되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간단하고 좋은 해결방안입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자금 조달의 다른 원천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단순히 자금 조달을 운용하는 정부가 있고 실질적으로 지방 및 지역 공공단체가 있으며, 각각의 공공단체는 그들만의 목표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공연의 신뢰성이 우선입니다. 지역의 차원에서는 기관의 위신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실행하는 프로젝트가 지역 주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만한 품질에 달려있습니다. 분명히 이러한 모든 점을 충족시켜야만 합니다. 저는 지금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거리 예술에 대하여 프랑스에서 허용된 확실히 유연한 해결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거리 예술이 한국에서는 매우 신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형태의 매우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것들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프랑스에서 그래왔던 것과 같이 새로운 미디어와, 새로운 형식, 새로운 합의와 새로운 도시, 그리고 새로운 장소가 최대한 현대성을 지닐 수 있도록 성장의 시간을 주어야만 합니다.
24 마찬가지로 저는 축제를 너머 거리 예술이 어떻게 살아있도록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극단들은 언제라도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연습하는 동안 연습의 장소를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시대에서 표현되었던 바와 같이 학교에서, 공장에서 그리고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습니다. 거리 예술의 증거는 명백히 비-규범적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규범적 영역에서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관계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거리에 대한 특정한 몇 가지 관념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거리의 예술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제가 강연에서 말한 것과 같이, 거리예술은 당신의 도시에, 당신의 동료들에게, 당신의 숲에 그리고 도처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토를 탐험하고자 하는 극단들이 지녀야 할 양태는 예술적 관습에 의한 탐험이 아니라, 거리 예술에 대한 감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의 도시에서 관습적 예술, 극장 예술, 그리고 거리 예술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해서 질문하신 것에 대해 대답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관객이 보증하는 하나의 선택으로서 극장에 대한 생각을 말합니다. 거리로 나가는 것은 일종의 손을 뻗는 순간입니다. 저는 사람들과 도시와의 관계를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예술의 이미지를 완전히 변화시켰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느닷없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대중의 타입을 예술가에게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대중의 앞에 예술을 가져다 놓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거리의 예술에 대한 일종의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극단 OFF 가 지녔던 예술적 재능과 그것의 표현 때문에 저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곳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극장에서, 홀에서 종종 제도적인 것에 저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거리는 여명의 표현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발의 기획자와 같이 프랑스 내에 몇몇의 좋은 기획자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Jean Paul M.이며, 그는 무용 기획을 합니다. 그는 공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리는 여명의 표현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그러나 그것은 틀렸습니다. 거리는 공간과 그것의 관계를 통해 여명을 표현하는 장소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민들과 그것의 관계를 통해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 그 내용은 달라집니다. 사회자 : 두 분 발제자들의 말씀 감사합니다. 위의 질문에 관해선 답변이 되었으나 한 가지, 경제 위기 상황에 맞춰 거리예술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에 맞춰 한 번 더 코멘트를 부탁드립니다. 데이비드 클락슨 : 몇 가지 얘기하겠습니다. 현재의 경제적 분위기에서는 기업화가 점점 일어나고 있고, 중소 극단들의 생존 투쟁이 있습니다. 작품, 또는 산물의 상업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에 반하기 위해서 생명을 수혈하는 새로운 예술가, 신선한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한 작품으로 투어를 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제가 90 년대 초반에 처음 투어를 시작했을 때는 비교적 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극단들이 더 많고, 더 경쟁적이고, 점차 세상이 인구과잉 상태가 되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탄소 발자국 때문에 더 이상 세계투어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불안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진행되고 있는 이슈들이 많습니다. 불안한 시대, 아니면 프랭크가 말했듯이 흥미로운 시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세계를 통틀어 소통과 단합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서브컬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더욱 강력해지기를 바라고 기원합니다. 사회자 : 마지막으로 한국 발제자이신 임수택 감독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임수택 : 축제 이전과 이후의 변화와 관련하여, 사실 축제 하나로 공동체가 크게 변할 수 없으며 다만 작은 역할만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적어도 관객이, 시민이 축제를 보고 기억하고 훗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과천이라는 도시의 공간에 관해 새롭게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축제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축제가 경제 효과나 기타 어떠한 상황에 대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고, 축제는 축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술 축제일 경우 예술을 추구하고, 예술의 발전에 기여를 하고 공동체의 일원에게 예술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며, 그 이상의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리예술이 신자유주의 경향을 갖게 된다는 것은
25 오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리예술이 산만한 것은 거리예술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여 익숙하지 않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거리예술이 난해하다면 그것은 예술가의 잘못일 것입니다. 최준호 : 저의 의견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한국에 거리예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춘천 마임축제에서 많은 거리예술을 했고, 인형극 같은 경우도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맞이했고, 서울연극제 같은 경우도 많은 작품이 거리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거리예술이 필요하고 축제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면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지만 거리예술은 모순 속에 빠져있습니다. 돈은 많이 드는데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축제가 발전하려면 예술가가 발전하고 작품이 발전해야 하므로, 돈을 못 버는 곳에 다시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성과는 상당히 추상적으로 밖에 얘기할 수 없는 돈을 주는 당국이나 기업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거리예술축제를 할까요? 앞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정치적이라고 하는 데는 정치 이념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마당극을 더욱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대예술을 그대로 옮겨와 예술적 발전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무대예술을 더 했겠지요. 하지만 무대의 것을 옮겨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거리예술을 하려고 할까요. 여기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답을 드리면 길어지므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굉장한 모순 속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어려운데, 아까 성과 말씀하셨는데, 5 만명 사는 작은 마을에서 나흘간 500 개 이상의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는 몇 개를 하지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시에서 생각할 때, 시에서는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하지만 거리예술은 자유롭고 경계를 넘나들고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자 하기 때문에 정체성만을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묘한 모순 속에 있는데, 아까의 질문은 이에 대해 함께 고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자 : 이제는 객석 쪽에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1 분 내에 코멘트를 하고자 하시는 토론자분이 계실까요? 데니스 라포리 : 저는 거리의 예술을 활용하는데 신속하게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자신을 나타내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마련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거리에서 그러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야외나 다른 곳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그러한 것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리 예술은 그것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열려있어야만 합니다. 저는 모든 방식이 효과적이며 그것이 기획자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대중들이 그것을 듣고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하며,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해서는 안됩니다. 영구적인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있는 시가 있다면, 그것은 예술가들에 의해 도시가 어떤 부분 변화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상업적이며, 비지니스의 장소가 될 것이며. 그 자체로 예술적인 장소가 될 것입니다. 이 도시는 예술적인 장소이어야 합니다. 즉, 그 관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서울 예술적인 도시가 된다면, 서울은 전 세계에 다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미 서울은 그러합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문제는 한 사람 혹은 일부의 대중, 작은 무리의 대중들의 편에 서서 호소하는 예술가들을 소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의 가치는 역시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많은 관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획자의 전략은 다소간의 대중들이 종종 그들의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어떤 발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며 까다로운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심지어 이 지역의 어떤 사람도 만족시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토론도, 대면하는 것도 역시 무언가를 진보시키는 것으로서 거리 예술입니다. 이동연 : 오늘 토론에 참여하며 느꼈던 점은 확실히 거리예술을 바라보는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거리예술을 직접 제작하고 아티스트로 참여하는 이가 바라보는 거리예술과 문화정책, 행정을 진행하고 있는 이의 시선이 다릅니다. 저는 서울 시에 다양한 문화적 자문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문화운동을 오랫동안 했던 사람으로서, 예술행동이나 문화행동으로서의 거리예술이 갖고 있는 의미가 거리예술이라고 하는 표준화되고 정형화되어 있는 틀 속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선전선동의 대상으로 낙인 찍히는 것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기타를 오랫동안 만들었던 노동자들이고, 팬더라는 유명한 일렉트로닉 기타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만들었던 노동자들인데, 이들이 정리해고에 시달려서 8 년간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폐쇄된 공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으로.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거리예술이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거리예술이라고 칭해지는 것들에 의해
26 거리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되는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 없이는 수없이 나눠왔던 거리예술의 상업화에 관한 이야기가 거짓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기 클라크 : 한 마디만 더 할게요. 우리가 멋진 거리예술 축제를 계속해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멋진 거리예술을 공공 공간에서 상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한국, 서울에는 여러분에게 창작센터가 있다는 점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센터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기획자, 축제 감독 그리고 행정가의 가장 어려운 역할 중 하나는 예술가들이 정말 총체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최대한 많은 논평과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그리고 예술가들의 창작과정 동안 공간을 지원함으로써 할 수 있습니다. 관객으로서는 보고서 저건 별로야, 저건 안 돼, 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쉽지만, 와, 이 예술가는 몇 가지 변화를 고려해준다면, 혹은 다른 지원을 제공받는다면 정말 잘 되겠는걸, 이라고 말하는 것은 훨씬,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창작과정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프랭크 윌슨: 사실 임수택씨 말을 듣고 나서, 저는 오늘 저녁에 관객들을 볼 텐데 많은 사람들이 소음을 싫어하고 이해를 못하거나 가버리는 것은 아닐지 매우 걱정이 됩니다. 저는 우리가 작품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작품을 이해 하지 못했다면 28 년 동안이나 스톡튼 페스티벌에 꾸준히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 매년 똑같이 안전하고 유치한 작품이 있었다면, 이건 시 정부에게 중요한 지점일 테지요.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창의성, 예술가가 축제에 불러오는 지속적인 놀라움입니다. 매년 다르고 각각의 에디션이 다른데, 다른 이유는 예술이 다르기 때문이죠.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자 : 여러 가지 논점이 완벽히 정리되긴 어려울 것 같고, 이 논점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됐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므로,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변화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모시고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김종석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 : 거리예술 축제는 변화해 왔고 변화해 갈 것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어떠한 변화의 폭이 있었는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동연 교수의 말씀처럼 저도 대학 시절 문화 운동을 했고, 데니스 라포리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실내 극장에서 연극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임수택 선생님이 저를 이 세계에 불러들이셨는데, 처음에는 다소간 거부했으나, 하이서울페스티벌을 만난 후로 이 분야의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앞서 의견 나눈 여러 주제들에 동의하고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서 한 번도 정부의 간섭 없이 주체적으로 축제를 진행해 왔습니다.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관객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저는 3 년 동안 축제를 하며 관객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저는 엘리트 예술가라고 생각을 해서 관객이 이것을 모를 것이고 난해해서 잘 모를 것이라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나 호주에서 온 공연을 소개했을 때, 놀라운 점은 일반 전문가보다 일반 관객들이 더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저희가 거리예술축제를 하는 이유는 극장에 가지 못 했던, 혹은 가지 않는 관객들에게 그들도 충분히 여러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가 파업을 하며 현장에 와서 '룩 아모로스' 의 예술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들로 통해 공연 프로그램을 넣는데 많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올해 개막작 같은 경우 변하는 기후에 관한 인간의 태도를 다뤘고, 사회적인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노인문제에 관해 프랑스 단체의 노인 일곱 명과 한국의 은퇴한 노인 일곱 명과 휴전선에서 오신 노인 열두 명이 함께 공연합니다. 또한 작년 개막작에서는 서울시에서는 잘 몰랐을 수 있지만 세월호 유족을 위한 내용이 있었고, 올해 <바리, 돌아오다>라는 공연에서는 희생자를 어루만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전면으로 홍보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축제는 우리가 집단적으로 공유할 문제를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자는 의미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올해 임수택 선생님이 연출을 하신 폐막작 <영자의 칠순잔치>의 경우, 아까 이동연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한국 근대사의 모순이 마당극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저는 앞으로도 축제는 다양한 형태의 시도를 하되 관객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온 힘을 다해 거리에서 관객을 만날 때 그들이 오히려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리에서 관객을 만날 때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앞으로 관객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 현장에서 보고 느끼도록 할 것입니다. 개막작을 시청 광장에서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4 년 전에
27 봤을 때 이 작품의 최적의 장소가 시청 광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을 초대할 메트로폴리탄 시티가 없습니다. 뉴욕이 초대할 수 없고, 파리가 초대할 수 없으나 서울의 시청 광장에서 기후환경 문제를 서울 시민들과 고민해보자는 의미로 작품을 초대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이러한 공연을 축제를 위해서 발전시켜 갈 생각입니다. 사회자 : 마지막으로 본 컨퍼런스에서 논의된 주제에 관해 객석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중 : 말씀 잘 들었습니다. 거리예술축제의 새로운 변화와 과제는 커다란 주제입니다. 프랑스와 유럽의 거리예술축제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고, 저희가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은 한국의 새로운 변화와 과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예술의 출발점이 마당극으로부터 출발된 거리예술이건, 아니면 민예총이 시작했던 과천 한마당 축제이건, 임수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2003 년을 기점으로 잡는 유럽식의 거리예술이건 간에 중요한 포인트이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것은 2003 년을 기점으로 잡은 10 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이 시대 거리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담론에 관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거리예술은 축제와 정부에서 시작이 되었고, 우리의 전통적인 저항의 예술이나 민주주의에서 시작한 부분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12 년여가 지난 이 시점에서 이동연 교수님의 말씀대로 거리예술이 표준화되고 정형화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과연 동시대의 거리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출발점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양현이 기획관님이 평가와 성과 측정에 관한 부분을 말씀해주셨는데, 물론 저는 거기에 정치적 간섭이 없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실질적인 간섭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서울 광장이나 청계천 광장은 굉장히 정치적인 장소입니다. 축제가 동시대의 거울이라고 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도시는 무엇이고, 광장이 어떤 의미인가가 이미 세팅이 되어 있기에 어떤 바꿀 수 없는 간섭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거리예술축제가 자기 색깔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축제가 자기의 색깔을 가져야 하는데 정치가들이 원하는 축제의 방향, 예술가들이 원하는 방향, 시민이 원하는 방향, 과연 대중이란 누굴까에 대한 질문 등을 갖게 된다. 축제의 평가와 성과는 축제의 미션과 비전에 따른 성과와 평가가 내려져야 하는데, 다양한 층위에서 원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쫓아가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그리하여 10 여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거리예술에 대한 동시대의 철학적 담론, 즉 우리의 거리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와 축제가 자기 색깔을 갖기 위해 어떠한 미션과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에 관한 정치권, 예술가의 합일 점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사회자 : 2 시부터 <거리예술축제의 새로운 변화와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한 컨퍼런스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리고,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이 오늘부터 시작하는 축제 공연들을 많이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8
29
30 Bien bonjour à tous. D'abord exprimer mon plaisir d'être ici un invitation de HiSeoul comme festival et je souhaiterais également saluer toute personnalité qui m'ont accueilli et qui m ont permis ce festival. Ce festival n'est parvient, cefestival existe bien sur en Corée sachez-le il a des échos également extrêmement forts en France, en Europe. Beaucoup de compagnies et beaucoup dedirecteurs que j'ai pu rencontrer hier, trouver que j avais beaucoup de chances. Je veux dire ici vous trouver et qu'ils étaient intéressés beaucoup àce festival donc voyez vous avez beaucoup d'échos également le Séoul en Europeet en France. On va pas effectivement, je vais passer première image. Voilà la première image donc c'est l'image de ma programmation. Voilà je voudrais vous dire pour commencer ce léger discours c'est que pour comprendre un peu les arts de la rue, il va falloir faire un retour sur les bases de la création de ces festivals, qui sont arrivés en France après une trentaine d'années à maturité, également qui sont sur le point également de connaître des défis et des changements. Donc d'abord je voudrais m'arrêter sur un mot pour définir un peu ce festival, c'est le mot 'LIBERTE'. Il se trouve qu'en France à l'heure actuelle, nous retrouvons de la loi parallèlement sur la liberté artistique qui dit, la création artistique est libre, besoin de réaffirmer dans ce pays et liberté que effectivement les artistes sont libres d'exprimer ceux qu'ils souhaitent. Et on l'a vu en France avec la montée des extrêmes, des possibilités également, descensures qui étaient de réflection de certaines compagnies. Donc défendre laliberté nous sommes maintenant aussi en France importants. Également un petitmot sur la chose se passe à l'extérieur de la France en Afrique, Burkina Faso. Évidemment un artiste qui était directeur de festival, en avant les événementsque vous avez peut être appris par la presse, il y a le renversement de gouvernement, un jeune militaire s'est apprêté à prendre le pouvoir, que les artistes disent "nous devons résister sinon, nous sommes morts. Nous devons résister sinon nous sommes morts." en Afrique. Voilà ce mot, liberté, reste important. Voilà pour situer un petit peu où j'habite, vous le voyez ici c'est "Alès" petite ville moyenne en France 43 milles habitants, ancienne ville industrielle, à peu près une heure et demie de Marseille et Avignon comme vous le connaissez peut-être se trouve ici, et voilà Montpellier qui est la capitale dema région se trouve là. Voilà Donc petite ville allais, une petite ville industrielle, et j'ai la chance de diriger un théâtre qui est celui-ci, qui remporte 3 salles ; une salle de 900 places, une salle de 300 places, une sallede 70 places. Alors pourquoi un théâtre qui a une programmation artistique en salle souhait passer aux arts de la rue et souhait s'exprimer à l'extérieur, c'est une question vous m'allez poser et que je vous réponds. Donc lorsqu'on fait programmation artistique en salle, on s'adresse environ, comme c'est le cas sur moi, dans ma programmation 50 milles habitants. mais je trouve que les publiques concernés reste petit part simplement d en ville de 10 à 15% des gens. si on veut aller au-delà, et si on veut concerner l'ensemble vivre population, alors on tranches le barre et on va vers la population vers les habitants de sa ville, donc on essaie de porter l'art, les spectacles dans la rue. Voilà pourquoi il y a maintenant 16 ans j'ai fondé ce festival, Cratère Surface, qui est le festival des arts de la rue. Pour revenir un peu au fondement des festivals en France, je crois qu'il faut retourner aux années 50' ou même avant, parce que la télévision n'existait pas encore, et que l'ensemble de la population n'était pas, quand on n'est fixé sur les écrans de télévision ou de l'ordinateur. La fête populaire les lieux de rassemblement étaient comme vous voyez ici, les fêtes foraines, des grands rassemblement autours de certain très prestation de fois, comme il y a ici également naturellement dans la société, des lieux de rencontre, des lieux delien sociable. Et je trouve que c'est celui-là, on trouve disparu avec de l'individualisation, des pratiques culturelles et artistiques et que donc qu il y eut certainementla société a besoin de recréer le lien sociable. Un événement important en France et je pense en Europe et au-delà dans le monde, ça été l'événement de mai 68 notamment à Paris, en toute la France, et qui ont voulu casser les cartons quelques peu rugis, les cartons un peu militaires, il y avait dans la société, dans les entreprise, dans les écoles également à toutles niveaux sociables. Ce mot, "AUTO-GESTION" a été vraiment prononcéet que il y a un nouveau goût de la liberté qui s'est inscrit dans la volonté de la population. L idée dans ces évenements mai 68 était de réinvinter également un nouveau modèle social. La conséquance a été vraiement de nouvelles idées qui sont venues dans le milieu artistique et que la convention des théâtres a été mise à mal pourpouvoir inventer de nouvelle forme d expression notamment, parmi les arts de larue. Un homme important à cet époque a été, Michel Crespin, qui est donc on peut dire un des inventeurs des arts de la rue en France dans les années 70 et 80.
31 A partir de là, de nouveaux spectacles, un peu étranges, sont apparus en France, comme par exemple cette compagnie, il s appelle Délice dada, qui a créé des choses assez incroyables, notamment onallait chercher du côté surréaliste de certains expressions. Délice Dada, Dadaïsme bien sur. Egalement certaines compagnies ont pu rassemble rénormemment foules comme cette compagnie OFF, avec Girafes gérants on a retrouvé un goût qui peut-être exister, c est à dire, continuait exister en Asie de goût des figurines géantes ou des marionette géantes qui rassemblaient évidemment enormmement de monde. En fait une des tendances de ces années-là était également d avoir été grands shows mécaniques, d été grand prestations mécaniques avec cette compagnie, il s applle, Générik vapeur, rare qu il s agit d un spectacle qui s appelle Bivouac et qui va voir une trentaine d individus traverser une ville entrant embêtant exgégète leur individualitéle fait que l autrui est là pas forcémment pour faire peur, mais également, qui peut également provoquer la surprise et leur enchantement. Donc vous voyez unfondement quand même tout ça est assez politique. Au cours des années, et alors une des choses qui a stigmatisé, qui a rassemblé un peu tout le monde, ça été ce festival d Aurillac créé en 1985, y a maintenant30 ans, qui a rassemblé toute cas concentrée, tout sort d expression. Aurillac, souvent la formule de mai 68, il était interdit d interdire. Ça vaut dire comme avant tous les gens qui voulaient s exprimer, qui voulaient exprimer leur art autre chose que l on fait. Donc qu il y avait un ressemblement très très étonnant en même temps d habitudede pressoir à vie de curiosité, et en même temps de ce qu on appellait traine cabat, de ce qu on appllait les sans-abri qu on appelle, je sais pas si la traduction va être compliqué, qu on appelle en France les WAWASH qui vaut dire en peu ti peu cesgens là se promenent comme on voit ici avec leur chien, WAWA, c était une invention d Aurillac. Au fur et à mesure du temps, toutes ces expressions ultimes, tout cet énergie, c est un peu canalisé et tous ces artistes ont reclamé d être entendus par le ministere de la culture qui est très important en France, ça doit featurer dons des fonds, également dons des labels et s est créé au tours des arts de la rue au bout de 30 ans beaucoup de lieux, beaucoup de lieux institutionalisés. C est à dire qu ils reçoivent de l argent, et qui ont des fonctions extrêment précises dans la société. Comme par exmple, les centres nationaux des arts de la rue qui sont des lieux très fabrique, qui sont des lieux également qui peuvent accueillir descréations, qui permet aux compagnies d aller au bout de leurs travails. Y en aonze en France qui avaient été créés. Egalement c est créé un lieu au source à Paris, qui s appelle HORS LES MURS et qui permet à toutes les compagnies, à tous les gens qui s intéressent à ça, de pouvoir trouver ce qu ils cherchent à travers le document, à travers la vidéo, ou bien l internet. Et également c est créé, au fur et à mesure, un syndicat, c est celui-là, la fédération nationale des arts de la rue, tous les gens, tous les artists, ou tous les directeurs se sont opés sur ce syndicat-là, et défendre leurs intérêts grâce à ce syndicat. Egalement c est créé dans ce lieu-là, LA CITE DES ARTS DE LA RUE, à Marseille, c est ça où concentre en même temps des compagnies, en même temps des centres nationales des arts de la rue qui s appelle lieu public, également un centrede formation universitaire, qui s appelle la FEA. On voyait petit à petit en France c est focalisé institutionnalisation de l ensemble d un secteur artistique des quelques nus à poilue économique également. Au fur et à mesure du temps également, certains nombres de direction esthétique sesont affirmés. Et après quelques années, le centre national Hors les murs, a réperé à certains nombres des directions artistiques avec des prise de compagnie. Et donc la première direction artistique, c est ce qu on appelle le théâtre forain, donc qui suit la foire et ici vous avez une compagnie, qui s appelle BURATINI, c est à dire, lui, Buratini, ancien anarchiste italien, et qui continue cette tradition-là, qui s addresse directement un foule pour aller voir, en attente qu il y a ici, je ne sais quelle prestation étonnante. Donc voilà le théâtre de foire, premier genre qui s est affirmé. Le deuxieme, c est ce qu on appelle, le nouveau poème urbain. Et ça c est une compagnie, une compagnie c était une installation d une compagnie qui s appelle Carabosse, l illustration des feux, voyait absolument magique, et c est un genre qui s est affirmé dans un domain bien particulier. Le troisième genre, on peut citer, ce sont des actions decontestation, de reflexion par rapport à société. Là, c est une compagnie Kumulus et qui traite du problème des réfugiés, et qui traite du problème de l immigration. Comment ils sont pays avec juste une petite boîte, ici qui contient l ensemble de ce qu on veut garder. Des photos, les trois souvenirs, voilà, le reste est abandonné au pays, et donc ils ont créé un spectacle trèstrès intéressant là-dessus. Alors d ailleurs on utilise un engage imaginaire. Autre direction opéré, la ville de tournée, c est une compagnie qui s appelle Délice dada, que j ai déjà citéet là ils présentent des contres visites imaginaires dans une ville en rayon chantant tous les lie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