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와인격권 루저녀 사건 - 왜곡된 사회 인식의 돌출 김 서 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인터넷을 달군 루저 발언 2009년 11월 9일 방송된 미녀들의 수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 한 사람의 발언 때문에 세상이 들썩했다. 남자들이 갖춰야 할 조건을 언급하면서 신장이 180cm 이하인 사람은 루저(인생 실패자) 아니냐고 말한 것이다. 곧 인터넷은 뜨겁 게 달구어졌고, 그 여대생은 루저녀(이하 갑)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갑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옳은지의 여부를 떠나 키가 180cm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으로 서는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시청자로서 갑 때 문에 기분 나빴던 감정을 인터넷에 표현하는 것 이상의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갑의 발언을 빗댄 패러디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키가 작았던 역사 속 인물들을 희화화 하거나, 할리우드 스타 혹은 유명 스포츠 선수들을 총 망라해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 루저 타이틀을 붙이는 일도 유행처럼 번졌다. 인터넷 쇼핑몰에선 루저들을 위한 신발 깔창을 팔고 있고, 신문기사 제목에도 루저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했 다. 갑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증폭된 것이다. 이러한 관심의 증폭은 갑에 대한 사생활 침해까지 이어졌다. 갑의 성형 전 사진이 돌아다니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갑에 대한 주변 사람들 의 언급, 갑이 남겼다는 이런 저런 글들이 인터넷을 달궜다. 인터넷에 서 논란이 되자 언론들이 이를 다루고, 파장이 커지자 갑이 사려 깊 지 못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고 사과하고, 미녀들의 수다 제작진과 진행자 남희석이 일부 시청자에게는 오해와 불쾌 감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점에 대해서 유감과 함께 사과 의뜻을전 했다. 98 2009 언론중재 _겨울
언론보도와 인격권 사후 편집이 가능한 녹화 방송인 미녀들의 수다 제작진이 발언을 편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80cm 이하면 루저 라는 자막까지 곁들여 내보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드디어는 갑의 표현에 따르면 루저에 해당하는 한 사람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손해배상 조정을 신청하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11월 17일까지 프로그램으로 입은 정신적 피해 를 이유로 총 78건, 최저 10만원에서 최고 38억2,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물론 대다수가 기각되었으나 일부는 조정 심리까지 들어갔다고 하니 참 대단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도 12월에 들어서기도 전에 인터넷을 달궜던 다른 사건들이 으레 그랬듯이 조용해졌 다. 이 사건이 소수의 군중심리에 의해 증폭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잠잠해진 것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갑 이 한 발언의 본질과 이에 대한 감성적 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들은 다시 짚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 까한다. 루저 발언 여대생과 제작진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 갑이 방송에서 루저 발언을 한 이후 누리꾼들이 갑에게 행한 일련의 행태들은 바람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갑의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설사 시청자들이 이번 사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더라도 방송이 가지는 영향력과 공적 성격을 감안하면 사석에서와 방송매체에서 말하는 것은 분명히 달라야 한 다. 사적인 대화에서 발생한 갈등은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이후의 대응이 비교적 쉽지만 방송매체는 그 렇지 못하다. 따라서 방송에서의 발언은 차후 책임을 질 수 있는 신중한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 런 점에서 갑의 발언은 물론이고, 생방송이 아니라 사후 편집이 가능한 녹화 방송인 미녀들의 수다 제 작진이 발언을 편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80cm 이하면 루저 라는 자막까지 곁들여 내보냈다는 점 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방송에서는 이후 시청자 반응을 고려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단지 이번 사안은 갑의 발언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보다는 표현 방식에 본질 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키에 대한 개인의 선호, 즉 자신의 짝이 될 남자의 키가 얼마 이상이어야 한 다든가, 이상형을 고를 때 키가 다른 변수보다 더 중요하다든가 하는 개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야 문제 될 리가 없지만, 루저 라는 표현은 차원이 다르다. 개인의 선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정한 사회적 기준이 존재할 수 없는 문제에 관한 개인의 정서를 사회적 평 99
가로 치환했기 때문이다. 또한 노력해서 해결할 수 없는 키 라는 신체적 요인을 사 회적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생각에 신뢰성을 부여 하기 위해 여론 또는 객관적 기준을 부여하려 한다. 이런 행태는 결국 서로 다른 생 각을 교환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 기준을 놓고 벌어지는 대립 갈등을 야기 할 뿐이다. 즉 개인의 생각에 루저 라는 사회적 기준을 덧씌운 것은 애초 갈등을 야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갑이 그런 의도가 없었던 것은 명백해 보이지 만 갑의 발언은 그런 갈등을 예비하고 있는 표현이었다. 더군다나 루저 라는 사회 적 평가는 개인의 노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신체적 특성이 개인 노력의 결과가 아 님은 분명하다. 이것이 방송 당시 출연자(다른 여대생)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평소 대화에서도 이미 키가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는 현실임에도 유독 갑에게 포화가 집 중된 이유이다. 따라서 갑은 물론 방송제작진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 것과 시청자들에게 그들 이 동의할 수 없는 사회적 평가를 들이대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 어야 했다. 갑이 소신껏 말한 것을 이해 못하는 사회(다원성이 부족한 사회) 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하지만 개인의 생각과 달리 이번에는 갑 자신이 사회적 기준을 적용 하여 남을 평가하였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이점에서 갑의 경우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조직된 노동의 결과물 을 생산하고 이를 공중에게 뿌리는 일을 하고 있는 방송제작진의 경우 그 책임이 더 크다 하겠다. 루저 발언자에 대한 폭력 갑과 방송제작진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이번 사건을 야기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방송 이후 쏟아진 갑에 대한 비난과 일부 누리꾼의 사 생활 침해 행태가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루저 발언에 대한 반 대 의견,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갑에 대한 비판 모두 인정할 수 있 고 사실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소통하는 사회, 다원성을 인정하 는 사회의 특성이고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에게 욕설을 해대는(이것까지도 의견의 다른 방식이고 표현의 자유 영역 100 2009 언론중재 _겨울
언론보도와 인격권 우리는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개인의 권리에 대한 침해가 불가피 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 백번 양보해 그럴 수도 있겠다) 것을 넘어서 개인의 신상정보를 유포시키고, 학 교 게시판이나 교수 이메일을 통해 갑을 제적시키라 요구하며, 갑의 미니 홈피를 융단 폭격하고, 갑의 과 거 사진과 갑이 썼던 과거 글귀들까지 모두 뒤져서 유포하는 행위는 의견의 교환이 아닌 폭력이다. 갑의 신상정보는 사생활의 영역이고 이로 인해 갑의 신상에 혹 생길지 모르는 위해에 대한 책임은 누 가 져야 하는 것인가. 범법행위를 저지른 피의자의 사생활도 보호해야 마땅한데, 갑이 범법 행위를 한 것 도 아니다. 갑의 과거 사진이나 과거 글귀를 함부로 유포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정상적으로 등록 한 학생으로서 갑이 교육 받을 권리, 그리고 누리꾼들의 폭격으로 학교나 교수가 받은 피해는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학교에서 제적시키라는 주장에 강제성이 없으니 의견을 표출한 것에 불과 했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견의 제시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여야 한다. 이번 사 건이 개인 권리의 제한을 고려할 만한 공적 사안도 아니다. 우리는 누리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개인 권리에 대한 침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루저 발언이 개인의 문제일까? 갑의 루저 발언 이후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 누리꾼들이 갑을 공격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사실은 또 다른 문제를 고민하게끔 한다. 갑의 발언이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갑처 럼 생각하는 것이 갑뿐이었을까? 갑의 생각 또한 우리 사회 흐름의 산물은 아니었을까? 바람직하다고 보 기는 어렵지만 방송에서, 젊은이들의 일상 대화에서 외모 특히 키 는 상대에 대한 선호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키가 늘씬한 것을 부러워하고, 키 작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이제는 거의 유일한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 생긴 것은 참아도 키 작은 것은 못 참 는다는 말을 방송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갑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어 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단지 갑은 방송이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루저라는 사회적 평가 기준으로 표 현한 잘못이 있을 뿐이다. 갑의 발언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외모 지상주의라는 사회적 경향이다. 이때 이 왜곡된 인식의 최대 피 해자는 누구일까? 180cm가 안 되어 루저라는 소리를 들은 남자들일까?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이 피해자 101
인 것 같다. 여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남자들로부터 외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되고 모욕받으며 살아 왔다고 할 수 있다. 능력보다 외모가 취업에 중요한 기준 이 되는 사회, 능력보다 외모로 직장 동료를 평가하는 남성, 인성보다 2세를 위한다 는 명분(?) 아래 외모로 배우자를 고르는 남성들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여성의 50%가 성형 수술을 하고 있고, 대부분의 여성이 저체중을 지향하게 만들며, S 라인을 강조하고 뚱뚱한 여자는 게으르다고 공격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표현하는 무슨 벅지 같은 표현들이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 고 방송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우리의 판단기준은 그렇게 사회로부터 강요받고 있 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기준을 정해 놓고 다원성을 부 정하는,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소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경쟁의 사회를 만들 어내는, 개성을 무시하고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단일성을 강조하는 그런 사회가 존재 한다. 성형을 해도 예쁘게 해주세요 가 아니라 김, 이 를 닮게 해달라는 것 이 현실이다. 사회의 책임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번에는 가해자로 둔갑하고 말았지만, 갑 또한 체중 때문에 그런 피해자였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우월감을 키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도 있다. 갑의 발언에 남성들이 분노한 것은 이제껏 가해자이다 역으로 피해자가 된 것에 대해 반발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지나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루저 발언 이후에도 방송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여성 외모의 강조 또는 비하 발언들에 문 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결론은 갑 또한 과거 외모 지상주의의 피해자였을 뿐만 아 니라, 그러한 의식을 강요하고 있는 사회의 희생자일 뿐이다. 루저 발언 이후 언론이 무엇을 다루어야 했는지는 명확하다. 누리꾼들의 비난과 패러디를 생중계하듯 전해 사회를 들끓게 하고, 갑과 방송사의 대응을 전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키를 강요하는 사회 경향을 해부하고 그 원인을 찾아 극복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인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번 사건이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신청이 되었다는 사실은 기 이한 해프닝이었다. 남성들이 그 발언으로 받은 감정적인 상처를 이 해할 수는 있으나 이 사안이 언론중재의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갑의 발 102 2009 언론중재 _겨울
언론보도와 인격권 근본적인 해법은 소원하고 이상론 같지만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줄이는 것이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언이 특정인을 겨냥해서 사실을 적시하거나 주장한 것도 아니고, 이들이 받은 피해가 얼마인지 계량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애초 심리 배정을 하지 않고, 조정부에서 심리 대상이 아님을 설명하여 설득하고 끝 냈어야 할 사항일 수도 있다. 이것이 심리대상이 되고 KBS가 어쩔 수 없이 조정안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대중의 압력에 기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전례를 남기고 말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일반인들이 정서 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갑이 오히려 자신의 받은 권리 침해를 구제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사건 이 아닐까? 더 중요한 것은 이 사안이 특정 방송사, 특정 프로그램의 잘못으로만 귀착시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다. 그 근저에는 이러한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구조가 존재한다. 따라서 대응도 개인에 대한 공격이나 개 별 방송프로그램 제작진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외모 지상주의나 이를 강요하는 사회구조 그리고 이로 인한 인권의 침해 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국 회의원이 요구한 방송제작자들에 대한 인권교육이 더 본질에 가까운 해법인 것이다. 더 근본적인 해법은 요원하고 이상론 같지만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줄이는 것이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루저녀 사건 관련하여 위원회에 접수된 신청건수는 총 264건이다(12월 11일현재). 이중 222건은 기각, 36건은 취하 되었으며, 5건은 조정이 성립되었다. 1건은 계류 중에 있다. 사건처리결과는 조정중재신청사례(p.148)참조. - 편집자 주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