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천안함 침몰보도 군사기밀 보도와 알권리 김민석 중앙일보 군사전문기자 고려대 경영학 박사 중앙일보 정치부문 부장 한국국방연구원 전력발전 및 군비통제센터 선임연구원 미 국가전략문제연구소(INSS) 방문연구원 비상기획위원회 비상근위원 비공개할수록 궁금증은 커져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해역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군사기밀과 알권리 간의 시 소게임이었다. 사건 자체가 군사적으로 은 밀하게 발생해 초반에 군당국 스스로도 공개 수준을 놓고 고민했고, 반대로 언론의 정보공개 요구는 거셌다. 이번 사건은 북한 해군의 연어급(130톤) 잠 수정이 야간에 바다 속에서 매복해 있다가 해상 경계활동 중인 천안함에 어 뢰를 발사해 침몰시킨 도발 사건이다. 한국군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어뢰 를 쏘아 상대국의 함정을 침몰시키는 행위는 평시가 아닌 전쟁 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은 언론이 폭발적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군대라는 존재는 태생적으로 언론에 자 신의 활동이나 군사적 상황을 공개하기를 기피하는 집단이다. 군당국 입장에선 최근 10여년 동안 군에서 비밀이 새나가면 관련부서 직 군사기밀 보도와 알권리 33
원들은 조사받고 그 과정에서 불이익까지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노무현 정부 때부터 각 부처 대변인 또는 공보관들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가 강화되 었다. 군당국자의 언론접촉은 크게 제한됐다. 이런 분위기는 아직도 남아 있 다. 이번 사건과 직접 연관되는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해군의 업무 가운데 는 군사기밀이 다수다. 언론에 대한 경계심리가 본성적으로 작용하는 곳이 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언론의 취재는 이와 같은 여건 속에 이뤄졌다. 천안함 사건은 과거의 다른 어떤 군사적 사안보다도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게 된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만큼 언론의 취재경쟁은 치열했다. 그 이 유를 보면 첫째는 사건이 야간에 남북한 접적해역에서 일어났다. 서해 북방 한계선(NLL)에 가까운 백령도 인근해역에서 깜깜한 밤시간인 오후 9시 22 분 발생한 것이다. 둘째는 규모가 제법 큰 전투함이 일순간에 가라앉았고, 승조원 46명이 한꺼번에 실종됐다. 셋째는 사건발생 직후 해군의 다른 초계 함(1,200톤)이 북한의 반잠수정으로 추정되는 물체에 사격을 가한 것이다. 나중엔 새떼로 판명 났다. 넷째는 이 사건에 등장한 무기 및 장비의 종류가 다양했다. 초계함, 잠수함, 구경 76mm 함포, 어뢰, 기뢰, 폭뢰, 레이더, 음파 탐지기 소나 등 평소 자주 듣지 못한 용어들이 튀어나왔다. 다섯 번째는 사 건의 전개가 복잡하고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았다. 사건이 침몰 상황 승조원 구조 선체 인양 전사한 승조원 장례 사건조사 및 결 과발표 대북제재 등 6단계로 진행됐는데 구조와 인양 과정에선 국민 들이 마치 숨이 막히는 경기를 보듯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군당국과 정부는 언론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군당국은 6 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군사적 상황을 맞 은 만큼 초반엔 매우 경직됐었다. 실종된 승조원을 구조할 때는 경황이 없었 다. 사실 해군장교들은 천안함 침몰 원인과 상황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 만 그렇다고 짐작만으로 함부로 자신의 생각을 대외에 공표할 수는 없는 처 지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함정이 침몰한 사건은 단순한 남북간 문제가 아니 라 국제적 사안인 만큼 더 보수적 입장에서 접근했다. 군과 정부는 국제적인 34 관훈저널 여름호
이목을 생각해 사건이 진척되는 상황보다 반 템포 정도 뒤에서 따라오는 입 장이었다. 그 차이만큼 국민의 궁금증은 컸다. 따라서 국민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필요한 정보 수준에 비해 군과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에는 자연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군과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와 국민의 궁금증 사이의 공 백은 언론의 특종보도와 전문가를 동원한 추정 및 분석 보도, 과잉보도 또는 오보, 심지어 의혹 제기로 메워졌다. 교신일지 공개하면 암호체계 노출 무엇보다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등 군당국은 이번 사건을 작전상황으 로 간주했다. 국방부 홍보훈령에 따르면 작전에 관한 보도(11조)는 합참이 국방부 대변인의 조정을 받아 보도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적의 침투 및 국지 도발, 작전상황 등이다. 또 합참은 군사분계선(MDL) 침범, 총격 또는 교전, 무력시위 등 북한군에 의한 각종 도발사건은 국방정보본부장과 국방부 대 변인의 조정을 받아 유엔군사령부(유엔사) 및 정부 관계부처와 협의한 뒤 군 사적 조치사항을 발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북한의 항공기와 함정의 침 범 상황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작전상황은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24조)하고 있다. 이 규정은 작전지휘관은 필요시 적의 구체적인 침투 도발 행위 내용을 일정기간 동안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고 정하고 있다. 특히 군부대의 특정 한 위치를 드러내는 정보, 첩보수집활동의 목표와 방법및그결과, 작전보 안이 노출되거나 아군의 생명을 위태롭게할수있는우방국군대의기동과 전술적 전개 및 배치에 관한 특정 정보는 공개하지 않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특히 24조는 탐색 및 구조 업무가 계획 중이거나 진행 중인 격추 항공기나 격침 함정에 관한 특정 정보는 상황 자체를 공개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또 보도금지 사항(23조)은 군사기밀에 속하는 사항이나 적을 이롭게 하는 사항, 국민의 대군 신뢰 및 군의 사기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대 군사기밀 보도와 알권리 35
외에 보도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교신일지였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을 전 후하여 천안함이 2함대사령부 등과 교신한 내용이다. 이 교신일지는 천안 함이 백령도 동남쪽 해상에서 경계작전을 벌이면서 수시로 사령부에 보고 하고 대화한 내용이다. 대개는 컴퓨터로 문자통신을 통해 교신하는데 필요 에 따라서는 유선 또는 무선으로 직접대화도 한다. 천안함이 시간대별로 어 떤 활동을 했는지, 상황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민 주당 박영선 의원 등이 국회에서 또는 국방부 청사로 찾아와 김태영 국방장 관에게 끈질기게 공개를 요구했으나 군당국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 는 교신일지를 공개하면 당시 우리 군이 현장에 배치돼 경계활동 중이었던 전력현황과 대응태세, 지휘 및 보고체계, 교신절차, 정기적인 교신시간 등이 노출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함대사령부는 교신일지 가운데 문자통신은 군 사 2급 비밀로, 유선 및 무선 통신은 대외비로 묶어놓고 있다. 군당국은 무엇보다도 교신일지를 공개할 경우 암호체계가 노출될 가능성 을 우려하고 있다. 함정과 함정 또는 함정과 사령부 간의 통신내용은 암호화 된 부호로 오가는데 그 내용이 공개되면 북한은 암호내용을 풀 수 있다는 것 이다. 마치 나폴레옹이 가져온 로제타석이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국방홍보훈령 23조의 적을 이롭게 하는 사항 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군당국은 국회에 대해서도 교신일지 공 개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5월 26일열린 천안함 특위 질의에서 보여주기 만 한다는 조건으로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에서 군당국이 처음부터 언론공개를 꺼리다가 결국 모두 공개하 게된것이TOD 영상과 천안함 절단면이다. TOD 영상을 처음부터 공개하 지 않은 것은 군당국이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당 국은 물체에서 나오는 고유한 온도인 적외선을 포착해 촬영하는 TOD의제 원이나 사진조차 일반에 보여준 적이 없었다. TOD는 전방 비무장지대를 경 계하는 초소(GP)를 비롯, 해안가 초소에 집중배치돼 있다. 따라서 TOD 영 36 관훈저널 여름호
상을 공개하면 우리 군이 감시할 수 있는 수준과 위치가 노출된다는 것이다. 군당국은 이런 인식에 따라 처음에 TOD 영상을 어떻게 공개하느냐 는 게 대체적인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언론의 TOD 영상 공개요구가 거세지자 40분 동안 촬영한 영상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시점의 1분만 처음 공개했다. 하지만 여론은 군당국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고, 군당국은 다시 40분 모두 공개하게 됐다. 이렇게 되자 군당국은 당초 존재 여부를 파악하 지 못했던 TOD 영상까지 포함해 모두 4차례에 걸쳐 공개할 수밖에 없었 다. 결국 군당국은 군사기밀 비공개 원칙을 내세웠지만 군에 대한 국민의 신 뢰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공개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군당국이 여론 에밀려TOD 영상을 축차적으로 공개하는 바람에 오히려 군의 신뢰만 잃 는 결과를 낳았다. 군의 언론에 대한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했다는 결론이다. 천안함 절단면도 마찬가지다. 군당국은 천안함이 침몰된 지 20일이 지난 4월 15일 함미를 바다 속에서 끌어올렸다. 그러나 함미 절단면은 녹색 그물 로 싸여 있다. 인양 당시 언론의 촬영도 상당히 제한됐다. 밖에서 함미 절단 면을 촬영해도 녹색 그물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군당국은 천안함 함 미를 그물로 가린 이유를 함미 절단면을 통해 파손된 파편 등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물론 군당국의 이런 설명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절 단면의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군의 위신이 추락한다는 게 속내였다. 국방홍보훈령 23조에 해당하는 보도금지 사항이다. 또 다른 속내는 민 군 합동조사단의 정밀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절단면이 공개됐을 땐 언론과 정치권 등이 마음대로 해석해 합조단의 조사에 영향을줄수있다는 점도 있었다고 본다.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가 모두 인양돼 평택2함대사령 부에 전시됐을 때도 언론은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통제됐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 공개하는 상황이 됐다. 현재로선 절단면에 대한 의혹이 거의 사라졌지 만 그 중간과정에선 절단면 비공개가 국민의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 로 작용했다. 군사기밀 보도와 알권리 37
군사기밀보호법과 보도 사이에서 고민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매우 컸는데도 군당국이 중요한 사안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대부분 내용이 국방부 홍보훈령의 대외공개 금지조항 인 11조, 23조, 24조에 해당돼서다. 마음대로 공개했을 경우 반드시 책임 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합참은 사건발생 초반에 이런 책 임문제를 놓고 크게 고심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국방부 홍보훈령에서 공개 를 금지 또는 제한하고 있는 사안들을 국방부 대변인이 마음대로 책임지고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국방부와 합참, 해군과 협조해야 하고 정 부 차원에서도 청와대 외교부 통일부 등과 조율을 거쳐야만 했다. 정보를 공개하기 위한 과정은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부처끼리 의 입장차이도 존재했다. 게다가 사건현장이 국방부와 실종자 가족이 머물 고있던평택2함대사령부,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등으로 분산돼 있어 효 과적인 정보 통제와 공개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누구도 과감하게 나서서 정 보를 공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방부 스스로 작전 등과 관련된 군사상황을 공개하는 규정을 강화해놓은 상태에서 매듭을 풀기에 경황이 없었고 문턱이 높았다는 판단이다. 그렇다 보니 사건발생 이틀이 지 나서야 국방부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언론보도를 총괄지휘하고 나섰다. 하지만 국방부와 정부부처 내의 입장엔 여전히 간극이 존재했다. 군당국 은 반 템포 정도 뒤처져서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정부와 정보공개를 요구하 는 언론 사이에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군당국은 사안을 왜곡보도하는 일 부 언론에 해명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군당국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해명 하지 않으면 언론이 잘못 보도한 기사는 그대로 의혹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 에 따라 합동조사단을 포함한 군당국은 기밀공개와 국민에 대한 군의 신뢰 추락이라는 2가지 양극단의 가치를 놓고 고민해야만 했다. 그 결과 국민의 궁금증을 더하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언론에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언론 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열심히 뛰었던 장교들은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감사원 38 관훈저널 여름호
감사에서 기밀누설이라는 의심을 받고 또 다른 해명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권력에 대한 견제다. 그러 기 위해 언론은 정부 또는 군당국이 하는 일을 시시콜콜 보도해야 한다. 문 제는 이 과정에서 군관련 기사에 기밀이 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군은 항상 언론을 경계하고 통제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 제도가 발달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미국은 이라크전쟁이나 걸프전 에서 언론보도를 통제해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그래서 국방부 출입기자는 항상 군사기밀보호법과 특종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군과 관련된 사안의 언론취재는 결과적으로는 군을 건강하게 만들 고 군을 돕는 역할을 한다. 군의 비효율성과 문제점을 견제도 하지만 군사와 안보의 중요성을 국민에게 인식시켜 군의 전투력을 강화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건 강한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론에 대한 과감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 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언론도 한국의 안보상황을 감안해 국가에 직접적으 로 해가 되는 보도는 자제하고, 불필요한 왜곡 및 오보는 특히 주의할 필요 가있다. 관 훈 저 널 군사기밀 보도와 알권리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