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목회대학원 선교신학 강좌 (2006년 1월 10일) 제1강 한국교회선교역사와 정책현황 (예장총회를 중심으로) 총회 목회대학원/2006년 1월 10일(화) 강승삼 교수 (선교신학) 한국 장로교회는 1907년 독노회 설립과 동시에 제주도 선교를 시작하여 선교가 일본식민주의 암흑 기와 6,25 동란 이전까지 역동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장로교회 초기는 세계선교를 총회의 우선과업으로 집행하였고, 총회중심의 선교정책을 펴 나가 총회 선교부가 모든 선교정책 수립과 집행을 관할하였고 개 교회 차원의 선교나 독립 선교사역을 인정하지 않았다. 총회 선교부는 선교지에서의 자립교회 설립목표를 설정하고 영적이고 우수한 교회지도자를 선교사로 파송하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다. 활발했던 초기 해외선교가 선교의 개척기(1907-1937)를 지나 선교의 침체기(1938-1963)를 맞았고, 그러다 1960 년대 이후 선교의 확장기(1964-1990)를 구가하게 되었다. 선교 확장기 동안 한국 교회에 초교파적인 선교운동이 일어나고, 학생 선교운동의 열기가 놀랍게 고 조되기 시작했다. 빌리그래함 전도집회와 엑스폴로 74등으로 이어진 초교파 대중전도운동이 한국에 일어 나 한국교회는 경제성장과 도시화 현상과 더불어 전에 없는 성장을 구가하게 되었다. 이것은 해외선교로 이어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교회성장의 한 프로그램으로 해외선교에 뛰어 들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선교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 속에서 진행되기보다 독자적으로 따 로 따로 선교를 진행하는 현상이 지배적이었다. 초교파 선교단체, 학생선교 운동, 그리고 각 지교회가 각 각 나름대로의 선교를 확장시켜 나갔다. 자연히 협력과 체계저인 정책 수립이 선행되지 않은 가운데서 진 행된 선교는 성경적 선교 비전의 부재, 신뢰성의 부재, 선교전문성의 부재, 선교협력의 부재, 그리고 선교 정책과 행정의 부재 등 선교의 5 결( ) 시대 라고 일컫기도 했다. 첫 부분에서는 1960년대부터 1990년 까지의 한국장로교회 선교의 역사와 선교정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둘째 부분에서는 1991년부 터 2003년까지의 선교역사와 선교정책을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동시에 미래 선교의 과제를 분석하고 전망 하고자 한다. I. 한국선교확장기 장로교회선교의 역사적 개관 1938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정하고 이어 평양신학교가 폐교된 후 1963년까 지 한국장로교회는 선교의 침체기를 맞았다. 이 기간동안 9명를 선교사를 파송했다. 장로교회는 1956년 최찬영 선교사, 1) 김순일 선교사를 태국에, 1957년 계화삼 선교사, 김영진 선교사를 대만에 파송함으로서 선교의 명맥을 겨우 유지했다. 1964년부터 1990년까지는 선교의 재 각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64부터 1980까지와 한국교회 선교의 확장기인 1981년부터 1990까지로 대별할 수 있다. I. 한국 선교의 재 각성기 (1964-1980)의 예장 총회 선교 1) GMS에 영입된 것은 1970년 4월이다. - 1 -
통합과 분열 후 장로교회는 분열이후 백만신도부흥운동 십개년계획 2) 결의하고, 1966년 9일 26 일 토마스 선교사 순교 10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고, 그 해 예장 총회는 채은수 목사를 부전장로교회 의 후원으로 대만선교사(1967-1971)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여 해외 선교를 재개했다. 3) 해외 선교에 대 한 관심은 신학교에서도 일어났다. 학생들이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을 다시 회복하기 시작했고, 교수 가 운데서, 특히 총신 역사신학 교수로 부임한 김의환 교수 4) 는 총신 학생들에게 해외선교열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어서 총회는 1969년 양승만을 브라질에 파송하고, 같은 해 차남진을 미주에, 1971년에 서만수 와 신홍식을 각각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1972년에 조환을 일본경유 괌에, 김형탁을 일본에, 1974년에 는 백병숙과 강정숙 부부를 일본에, 홍종만을 홍콩에 파송하였다. 1976년에는 육호기를 독일에 파송하 여 현재까지 디아스포라 선교를 잘 감당하고 있다. 5) 같은 해에 총회는 충현교회(김창인 목사) 후원으 로 이연호 김신숙 부부를 이집트에 파송했다. 파송 3년 만에 이연호선교사가 1979년 7월 무슬림지역 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순직한 후 사모 김신숙 선교사는 남편의 사역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여 1979년부터 총회선교사(대방교회 임병준 목사 후원)로 인준 받아 오늘까지 이집트에서 제자사역과 신 학교 도서관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다. 또한 장재영 선교사(성실교회 우영희목사 후원)는 독일 의 한인디아스포라 사역과, 스칸디나비아 한인 입양아 사역을 하다가 러시아가 개방되자 러시아로 옮 겨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총회는 대만출신 추발융 선교사를 대만에 파송하였으나 6년만인 1982년 5월 면직시켰다. 계속되는 해외 선교열에 힘입어 1977년 총회는 선교사 두 가정을 필리핀과 독일에 파송하였다. 김활영, 장양백 선교사는 대구 동신교회(김창렴 목사)의 재정지원을 받아 한국선교사로서는 제일 먼저 필리핀에 파송받았다. 그는 필리핀 장로회 신학교(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the Phillippins)를 설립하고, 1996년에는 필리핀장로교 총회설립의 초석을 놓는 등 필리핀에 파송받은 여 러 장로교단의 선교사들과 함께 필리핀 선교를 성공적으로 감당하였다. 김활영 선교사는 1998년부터 는 총회선교국장, 그 해 11월에는 총회세계선교회 초대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선교사적인 강직한 성 격의 소유자라는 지탄을 받으면서도 충성스럽게 임기를 마치고 현재 지병 치료 중에 있다. 한편 유기 상 강선자 부부는 1977년 독일 베르린에 파송받아 한인선교교회를 담임하면서 그곳에 찾아든 스리랑 카나 가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10년 간 선교하다 1987년 서울 서광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 후 에도 계속해서 공산권 선교와 1달에 한 차례씩 중국을 방문해 해외선교를 추진하고 있다. 1978년에도 총회는 세 가정을 해외에 파송하였다. 군목 출신인 정승회 김영숙 부부가 왕십리 교 회 후원(후에는 성현교회 이종영 목사 후원)으로 태국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이들은 태국에서 선교사 비자공유를 할 수 있는 태국복음주의 연맹 (Evangelical Church of Thailand) 소속회원선교단체 책임 자가 되어 교회개척과 제자양육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김유식 이옥선 선교사는 필리핀 선교의 팀 사역 을 위해 파송 받았다. 그러나 1993년 8월 장로교단의 분열로 GMS를 사직하였다. 김태현 조현순 선교 사 부부가 호주로 파송받아 선원선교를 성실하게 감당하다 2001년 2월 은퇴하였다. 총회의 해외 선교사 파송은 계속해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총회는 1979년에 다섯 가정을 전 세계 4개국에 파송하였다. @백성룡 목사를 아르헨티나의 한인디아스포라 사역을 위해 파송하였으나 한번의 임기만 감당하고 1983년 1월 총회선교사 사직을 하고 미국 시카고에 정착 교포들을 대상으로 성실하 2) 제49회 총회회의록 1964:120-122 3) 제51회총회회의록 1966, 58. 4) 제52회 총회회의록 1967:115 5) 후원교회인 충현교회 리더십(김성관 목사)이 바뀌면서 후원을 중단하였으나 육호기 선교사는 오늘까지 디아스포라 사역을 잘 감당 하고 있다. - 2 -
게 목회를 하였다. 윤희원 안미옥 선교사는 대구 동신교회 후원을 받아 독일에 파송 그곳 한인 디아스 포라 사역을 감당하였고, 안미옥 선교사가 독일병원에 간호사 사역을 하며 부족한 선교비를 지원하였 다. 김홍초 이강숙 선교사는 대만에 파송 되어 교회개척 사역을 하였다. 김홍초 선교사가 신병치유로 일시 귀국하여 안식년을 가지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1996년 10월 순직한 이후에도 이강숙 선교사 는 계속하여 대만교회 여전도회와 함께 수감자들을 위한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이준교 김수련 부부 선교사는 이집트의 한인 디아스포라 사역과 이집트 신학교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다. 1980년에 들어 총회가 파송한 가정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나이제리아, 리비아, 인도 벵갈 등 5 개국에 5가정이었다. 아르헨티나에 파송받은 김충일 나옥란 선교사 부부는 디아스포라 사역과 지부사역 을 22년 간 잘 감당하고 2002년 2월 선교사직을 사직하고 현재는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다. @홍희원 은 필리핀에 파송받아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질병으로 인해 1983년 1월 사직하여 회복한 후에 한국에서 목회하고 있다. @김재창 선교사는 파라과이의 한인디아스포라 사역을 하며 현 지사역을 후원하였고, 예장미주총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91년 7월 선교사직을 사임하였다. 6) 강승삼 최을선 선교사는 1979년 평양노회에서 선교목사로 임직하고 대구노회 서현교회 후원을 받 아 국제 SIM과 협정아래 서부아프리카 나이제리아에 파송되어 신학교사역을 중심으로 제자양육사역과 교회개척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다 1991년 3월 총회 선교국장으로 임명되어 총회선교의 정책과 재정 및 의료정책 그리고 파송정책을 세우고, 교단선교의 발전을 위해 해외선교위원회 초대 상임총무, 총회 선교센타 건립추진위원회 초대 상임총무직을 7년 간 섬겼다. 1998년 3월 총신대학교 선교대학원장으 로 부임하여 선교의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2001년 1월부터는 교단들과 선교단체들의 협의체인 사단법 인 한국세계선교 협의회 사무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정윤진 변미화 선교사는 대구 동부교회 후원을 받아 리비아에 파송받아 5년 간 목숨을 건 사역을 하고 결국 비자문제로 인해 인도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정윤진 변미화 선교사는 인도 벵갈에서 신학교와 초중고등학교 사역, 교회개척사역 등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고 있으며 육사 교관을 지낸바 있 는 둘째 아들 정영권도 인도선교사역에 합류하고 있으며, 현재 정선교사는 세계한인선교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7) 한국교회 선교 각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64년부터 1980까지는 선교환경이 거의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외화송금액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고 일년 짜리 일반여권 발급조차도 문공부 종무과의 허락 을 받아야 했는데 발급 절차가 9개월에서 1년 이상 소요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총회선교훈련원도 없었고, 파송 받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어떻게 선교지에 정착하며 누구의 도움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이 시대 한국선교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조동진 목사이다. 당시 후암교회 담임하였던 조동진 목사가 미국 에즈베리 신학교에서 선교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선교의 미래를 내다보며 동서 선교 연구원을 세워 여름과 겨울에 외국선교학자들을 모시고 간헐적인 선교학 강의를 열었다. 8) 그러나 이 훈련마저 받지 못하고 파송받은 선교사들이 태반이었다. 이러한 열악한 선교환경 속에서도 선교사 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파송을 받았다. 이 기간에 예장총회는 28가정의 선교사를 파송하 였고 이들 중에 은퇴 3가정, 사직 또는 면직 9가정, 순직한 선교사가 3가정이며 현재 14가정은 선교 의 베테랑이 되어 후배들과 함께 성실하게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9) 6) 대부분의 남미 디아스포라 선교사들은 지역교회의 편의상 같은 대륙권의 미주총회 이중회원으로 가입하여 사역하는 것이 통상적 으로 인식되었고 이에대한 총회적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2002년에 본 교단과 협정을 맺었다. 7) 정윤진 선교사에 대한 헌신과 사역은 정석기 저, 위대한 선교사 열전 쿰란, 2002:107-128을 참조하시라. 8) 조동진 목사는 동서선교연구원을 통해서 많은 선교의 후학들을 배출하였고, 한때 KIM 선교회를 세워 잘 운영하다가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결국 KIM은 문을 닫고 조목사는 70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러시아 선교사로 활약한바 있다. 오늘의 화성 GMS 본부가 조동진 목사가 운영하던 바울의 집이었다. - 3 -
2. 한국선교 확장기(1981-1990)의 총회 선교 한국은 이 시기에 한국교회의 부흥, 새마을운동, 경제성장, 여행자유화 시기를 맞았다. 또한 학생 선교단체들의 캠퍼스 성경공부운동, 대형 선교집회 등을 통해서 선교의 열기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 했다. 신학교에도 선교기도운동이 뜨겁게 일어나고 신학교 지원자들도 넘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초 교파적인 선교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선교운동이 놀랍게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단은 선교 정책이 없었고 선교전문가도 없었다. 그 결과 개 교회들은 부흥성장의 물결을 타면서 선교 또한 교회의 경쟁의식과 더불어 선교정책이 나 선교전략도 없이 한인선교사들이 파도처럼 밀려나갔다. 어떤 교회는 교회성장의 한 프로그램으로 해외선교에 뛰어 들었다. 개 교회들은 교단중심의 선교정신을 망각하였다. 교단 선교부를 신뢰할 수 없 었던 것이 한 큰 원인이기도 하였다. 이 때의 한국 교회 선교는 따로 따로 의 길로 질주하였다. 교단 선교부는 선교사를 공식화하는 과정만 밟게 했을 뿐 이였다. 초교파 선교단체, 학생선교 운동, 그리고 각 지교회가 각각 나름대로의 선교를 확장시켜 나갔다. - 총신부설 총회선교훈련원 설립 (손영준 박사, 1983)과 계절단기선교훈련과정 - 선교확장시기의 총회 선교의 방향: 신학교 설립과 교수사역과 교회개척사역, 디아스포라 사역, - 총회선교부는 1981년에 박기호 김선기 선교사를 비롯한 일곱 가정 13명 6개국에 파송. - 1982년 11가정의 선교사 파송. - 1983년 김승연 유현순 선교사 부부외 12가정 18명의 선교사 파송. 를 독일에 파송, 특이한 점은 김영화 고종옥 선교사는 아르헨티나 원주민교회를 개척하여 선교목회와 방송사역을 크게 헌신하고 있 다. 정석기는 그를 가리켜 남미적인 기질로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선교의 열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10) - 총회의 해외파송선교사는 계속 증가하여 1984년에는 12가정 20명의 선교사 파송했다. 11) - 1985년 총회선교사 7가정 12명 파송. 당시 특이한 점 두 가지 1이중회원권제도 도입, 2박기수 선교사 여자목사안수를 임의로 받은 관계로 1992년 3월 면직, 3선교사 재배치 시행--조국희 선교사 필리핀에서 두 텀을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하고 러시아 시베리아 지부에서 교회개척 사역, 직접적 이유 는 더위보다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체질, 간접적 이유는 필리핀에서의 재배치 - 1986년에는 총회 선교사 4가정 7명이 파송. 특이사항은 아르헨티나의 윤병무는 이단적교리를 신 봉하고 확산시킨 것이 확인되어 1995년 8월 총회선교사 면직하고 12) 노회에 선교사면직 결과와 함께 목사면직을 제청함. - 1987년~1990년 총회는 무려 101가정 16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으나 다른 어느 시기보다 많 은 21가정 34명의 선교사가 중도 탈락하였다. 9) 2002, 7월 10일자에 GMS 파송선교사 명단 (2002,3,18까지)과 선교사 사직명부를 참조하시라. 10) GMS 선교사 명단 (2002, 7월 10일자)과 정석기 2002:237-260을 참조하시라. 11) 그 중 3가정이 사직하고, 1가정은 면직되었으며, 1가정은 은퇴를 하였다. 12) 당시 아르헨티나 지부 선교사들로부터 윤병무의 이단성을 수차례 보고받은 총회선교부는 그 심각성을 고려하여 선교국장(강승 삼)을 95년 7월에 파견하여 윤병무 부부를 대면하여 성경관과 구원관을 질의한 결과 그들이 소위 UFO 이단신봉자임이 확인되었다. 그들은 성경의 무오성과 예수구원의 유일성을 과거시대적 발상이라는 견해였다. - 4 -
II. 한국 선교의 확장기의 예장총회 선교정책분석 이렇게 해서 1980년부터 1990년 10년 동안 예장총회 선교부는 총 144가정 239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이들 중에 은퇴 2가정, 소천 1명을 제외하고 사직 또는 면직된 선교사가 45가정이다. 13) 왜 이렇게 많은 선교사 가정이 중도탈락 되었을까? 좀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의 부재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시기를 선교 의 5부재 시대 라 일컫고 싶다. 즉 성경적 선교 비젼의 부재, 신뢰성의 부재, 선교전문성의 부재, 선교 협력의 부재, 선교정책과 행정의 부재이다. 이러한 경향은 예장인 본 교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먼저 이 시기의 본 교단 선교사 파송현황과 중도탈락 현황을 선교정책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다음으로 이 시대의 한국교회 전반적인 선교방향을 요약 기술하고자 한다. 1. 선교사 중도탈락현상의 분석 1938-1963로 분류되는 한국 장로교회 선교의 침체기를 지나서, 1964-1990로 분류되는 선교의 재 각성기와 확장기를 맞았다. 이 기간동안 예장총회 선교부는 172가정의 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 였다. 이들 중에 은퇴 5가정, 순직 3가정, 소천 1명, 중도탈락인 사직 또는 면직이 54가정으로 전체 31.5%나 된다. 1964년부터 1980까지 16년 간 중도탈락자가 16.5%인 9명인 반면에 1981년부터 1990까지 10년 간 중도 탈락자는 45가정으로 그 비율이 83.5%나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근본 적인 이유는 총회가 선교정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선교정책이란 선교사 선발정책, 훈련정책, 인사배 치정책, 선교재정정책, 선교협력정책, 선교사케어정책 등을 말한다. 총회가 선교정책이 없고, 선교의 전 문성이 없고, 신뢰할 수 없었으므로 더 전문성 없는 개 교회가 선교를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쉽게 보 냈으니 쉽게 중도 탈락했던 것이다. 파송 선교사 중에는 해외한인교회를 자기진출의 기회로 삼고 기회 만 되면 더 좋게 보이는 목양지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는 곧 선교사헌신 점검이나 선교훈련이 되지 않 았기 때문이다. 한인디아스포라 사역정책의 부재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디아스포라 사역이 중 요하면서도 그것이 선교사의 목양지이기 전에 원주민선교의 교두보와 뒷받침이 되도록 선교헌신도의 점검과 훈련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2. 선교확장기 선교방향 분석 선교가 지역교회 주도권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선교사 파송 정책은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선교사 재정후원정책이 없었다. 선교사역비는 소위 능력있는 선교사는 많이, 능력없는 선교사는 적게 받았다. 또한 교회개척을 중요시 하였으나 많은 경우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 토작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삼자 원칙의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완전 망각 한 채 한국교회가 전적으로 비용을 들여 예배당을 지어주고 헌당예배를 주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였다. 어떤 선교사는 선교복덕방 방식의 선교를 한다. 네비우스 삼자 원리를 단계적으로 적용하려는 계 획이나 노력도 보이지 않고 가장 손쉬운 돈으로 하는 선교를 한다. 이것은 현지교회 지도자들을 선교 13) GMS 선교사 명단 (2002, 7월). - 5 -
사 혹은 외국재정 의존지향주의자로 만들게 하거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이 무엇이며, 청기직이 무 엇이며, 성도의 헌신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착취하는 행위이다. 14) 사실상 후원받는 것보 다 주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진정한 선교사정신을 가진 자는 인식하고 있다. 가난하다고 하는 동남 아 사람들이 불교의 불당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기들 스스로 기부하고 헌신하여 세운다는 것을 그들은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식 목회나 교회개척 방법을 그 대로 이식하여 사용하였다. 선교지의 문화나 상황이 한국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여 선교지 교 회를 이국적인 인상을 주어 토착교회의 터전을 상실하게 된다. 선교본부의 선교정책이 없으니 파송정책이나 선교전략이나 방법도 모호하게 되고 인적, 물적, 자 원의 중복투자 현상이 현저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연히 협력선교도 어렵게 되는 것이다. 1988년 이 후에 한국선교사들이 대거 파송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시기에 경제성장과 88 서울 올림픽 개최 가 있었다. 이후 선교지에서는 한국선교사들을 선호하였고, 그 신분이 과거보다 한층 더 공신력을 얻게 된다. 소위 가난했던 한국, 피선교지였던 한국, 그리고 알아주지 않던 한국과 한국선교사를 이 기회에 세계선교를 세계화 하라고 하나님이 높여주신 것이다. 3. 총회 선교훈련원(1983년) 개원과 15) 국내외 및 교단 선교대회의 영향 그러나 한 가지 다행한 것은 총회선교부가 선교사후보들의 훈련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1983년 여 름 총신 부설 선교훈련원(MTI)을 설립하여 미국 정통장로교회 파송 선교사인 손영준 박사가 원장직을 맡아 수고하였다. 비록 MTI 자체건물이 없고 상설과정이 아니었지만, 신학교 방학 동안에 여름과 겨울 에 계절 훈련원 과정을 이수케 하는 정책을 썼다는 것이다. MTI의 교과과정이 잘 개발되지는 않았지 만 MTI는 총회 선교부와 의견을 같이하여 여섯 계절 동안에 과정을 마친 자들을 추천하여 파송하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총회 선교부가 때로는 정치적 힘으로 훈련받지 않은 자들도 마구 파송한 예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TI는 총회 선교정책 입안에 초석이 되었다. 한편, 장로교교단 선교부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성경적이고 시대에 걸맞는 교단 선교정책이나 선교전략, 확실한 선교규정의 필요성을 누구나가 통감하고 있었다. 1988년에 미국 일리노이주 휫턴 (Wheaton) 대학에서 처음으로 한인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한 이래 같은 해 서울에서 한인 선교대회가 개최되었고, 1990년 처음으로 예장총회 선교대회가 창신교회에서 열린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AIM, SIM, OMF 등과의 협정을 통해서 교단선교사를 파송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선교정책과 선교협력전략 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 시기에 개최되었던 크고 작은 선교대회들과 선교전략회의 등을 통해서 각성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각 교단 선교부와 선교단체들은 선교사 출신 선교전문가들 을 본부에 불러들여 선교정책과 방향을 바로 세우고 선교행정 개발의 시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실했던 재정적 공신력 회복과, 선교재정 창구일원화 정책을 시도하기 위하여 전산화시스템개발, 선교 팀웤 형성 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시도하게 된다. III. 한국 장로교회 해외선교현황 및 총회세계선교회(GMS)의 선교현황 14) 한국 징로교회의 초대 선교사들은 Nevius가 실패한 중국 산동성에서 철저한 성경공부와 성경적 청지기생활, 십일조생활, 감사 의 생활등 네비우스 선교방법에 성공 하였다. 신학지남 2002 가을호 통권 제272호에 개재된 NEVIUS 선교에 대한 박용규(57-83) 와 강승삼(7-46)의 연구논문을 참조하시라. 15) MTI는 당시 미 정통장로교회의 파송 선교사로서 총신에서 선교학 교수로 봉직하던 손영준 박사와 이영수 목사 그리고 총회 선교부의 위탁으로 총신부설로 설립되었다. - 6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가맹 교단들과 교회협의회 회원교단들의 교회수, 교인수, 목사수, 그리고 선교 사수를 조사한 결과 한국선교사 총 11,614명 중에 교단파송이 5,748명으로 전체 49%를 차지하며 선 교단체파송이 51%인 5,866명로 집계되었다. 16) 한국기독교 선교사들의 지역별 배치현황은 동아시아 2,430명(21%), 동남아시아 1,733명(15%), 서아시아 576명(5%), 중앙아시아 800명(7%), 중동 648명 (6%), 북아프리카 201명(2%), 흑아프리카 728명(6%), 중남미 734(6%), 태평양-오세아니아 453명 (4%), 유럽 1,451명(12%), 순회 94명(1%), 기타 1,766명(15%)으로 조사되었다. 현재 한국선교사들의 전략적 배치의 중요성이 이슈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8,000개의 미 전도종족(약 20억)이 있음 에도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정책수립과 그 이행을 위한 협력이 잘 되지 않고 있어 선교의 효율성이 저 조함을 보기 때문이다. 17) 한국 교회 전체의 교세 및 선교사 파송 현황을 고찰하면 18) 긍정적인 점과 더불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장로교단들의 분열이다. 1951년부터 1959년까지 고신, 기장, 합동 통합의 분열이 있었고 다 시 1979년 예장 합동에서 소위 비주류가 분열해 나갔다. 비주류는 다시 사분오열되어 수많은 자생 교단들 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 분열현상의 문제는, 교회 정치적 및 지역주의 문제, 리더십 결여, 협력과 팀웍크 결여, 특히 한국 장로교회 초기의 성경적 선교열정 대신에 지 교회 확장중심주의 문제 등 여러 가 지 문제점을 낳았다. 수많은 장로교단의 난립결과 10개 장로교단을 제외하고는 39개의 장로교단 본부들 은 개 교단선교사 파송 현황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교세에 비해 장로교단 선교사 파송 비율이 저조하다. 한국 장로교 신도수의 교세가 전체 약 71.5%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전체 해외 파송 선교사 11,614 가운데 장로교 선교사는 3,701명으로 전체 선교사의 32%에 불과하다. 장로교단 중에서 신도수에 비해 선교사 파송비율이 가장 높은 교단은 고려 측으로서 신도 645명당 선교사 1명을 파송한 셈이다. 그러나 예장총회 세계선교회(GMS)는 86개 국가에 1,124명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교단 중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 신도 2,083명당 1명을 파송한 셈이다. 아직도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선교의 개선해야할 점은 본부전문사역자들의 육성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교단체본부에는 극소수의 행정선교사와 비전문인 간사들로 구성되어 있어 선교사 케어행정과 정책과 전략이 선교현장 중 심으로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분열된 장로교단들이 한국장로교회 초기의 선교열정을 잃어가고 있는데 도 원인이 있지만 선교사역이 교회의 본질적 우선권이라는 의식을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끝으로 한국선교의 장점은 직접사역의 비율이 79.6%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즉, 한국 선교사들의 40.5%가 교회개척사역, 성경번역, 제자훈련, 문서사역, 방송선교, 리서치사역 등의 전문사역 39.1%, 반면 에 직접사역을 돕는 간접사역의 비율이 20.4%로 좀 낮은 편이다. 즉, 교육사역 11.3%, 의료사역 2.3%, 복지개발사역 4.3%, 본부행정사역 1.8%로 집계되었다. 19) 1. 한국교회 중요 장로교단 및 중요교단의 교세 현황과 선교사 파송현황(2003) 16) P.Johnstone의 세계기도정보(2002)에 의하면 한국선교사 12,000명, KWMA 2003총람의 통계조사로는 11,614명, 그리고 홍인 선의 논문(2002)에 의하면 미주한인교히 파송선교사는 현재 600명으로 집계되고 있어 한인선교사 총수는 12,214명으로 조사되었다. 17) 선교사의 전략적 배치정책은 3가지로 나누는데 첫째는 전진배치--같은나라 혹은 같은 문화권의 미 전도종족지역으로 재배치 하는것; 둘째는 재배치--복음화 비율이 높은 나라임에도 선교사가 중복배치 되어 있을때 기존 선교사를 다른 나라의 미 전도종족지 역으로 재배치하는것; 셋째, 전략적 배치는 신임선교사를 처음부터 미 전도종족 지역으로 파송하는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18) 한기총의 2002년 7월 통계와 (사)한국 세계선교협의회 (KWMA)의 2003년의 통계를 묶어 재분석함. 19) 강승삼 편, 한국세계선교 총람, KWMA 2003-7 -
교단 교회수 교인수 목사수 선교사수 예장-합동 6,996 2,341,460 10,515 1,124 예장-통합 6,793 2,328,413 10,145 760 예장-고신 1,578 409,687 2,256 234 예장-합신 760 59,983 1,190 151 예장-합정 2,490 860,424 2,966 104 기장 1,831 362,000 2,354 89 예장-대신 1,458 242,011 2,290 296 예장-개혁(3개) 5,450 1,765,972 7,834 804 기타 39 장로교단 11,808 2,061,405 11,202 95 49 장로교단 소계 39,164 10,431,355 50,752 3,657 3 감리교 5,511 1,520,653 7,954 813 2 성결교 4,105 928,184 4,460 620 침례교 2,410 713,657 3,231 434 2 기하성 2,014 1,219,645 2,034 180 6기타 교단 528 41,978 634 - 타교단 소계 14,568 4,424,117 18,313 2,047 63개 교단 총계 53,732 15,483,164 69,065 5,748 51선교 단체들의 선교사수 5,866 한국 선교사 총계 11,614 2. 예장총회 세계선교회(GMS) 선교현황 20) 1996년 9월 본 교단 제81회 총회에서 날로 확장되어가는 교단선교부의 사역을 더 효과적으로 수용 하기 위하여 선교부를 확대 개편할 필요를 절감하여 연구할 것을 결의하고 1998년 9월 제83회 총회에서 교단 내 선교 기구인 선교부, 해외선교위원회, 선교훈련원 운영이사회, 선교센타 건립추진위원회를 통합하 여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세계선교회 (The Global Mission Societ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약칭 GMS)를 조직 할 것을 결의하고 이어 11월 18일 왕성교회에서 GMS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초대 총재에 총회장 길자연 목사, 초대 이사장에 조중기 목사, 초대 사무총장에 김활영 선교사가 선출되었 다. GMS 선교현황은 GMS 이사회현황 21) 외에 선교사현황, 선교본부현황, 선교지부현황으로 대별할 수 있다. 20) 위의 자료는 2002년 3월 현재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21) 제86회 총회보고서의 선교부보고서 2001:511-515. GMS 이사회는 총재(총회장), 이사장, 부이사장, 서기, 회계, 총무, 감사, 실행위원, 위촉이사 (전문위원), 그리고 9개의 전문위원회에는 400여명의 모든 이사들이 은 사와 직능에따라 배치되어 섬기고 있다. 9개전문위원회는 정책위원회, 재정위원회, 선교사심의위원회, 훈련위원회, 센터위원회, 사역개발위원회, 복지위원회, 선교사자녀위원회, 여성위원회이다. 소수이긴 하 지만 후원이사들도 있다. 그리고 GMS는 각 선교지역의 사역을 관리하는 16개의 지역위원회가 있다. 즉, 북한위원회, 중국위원회, 일본위원회, 실크로드위원회, 인도차이나 (메콩)위원회, 동남아시아위원회, 서남아시아위원회, 필리핀태평양위원회, 유럽위원회, 러시아위원회, 서북아프리카위원회, 동남아프리카 위원회, 중미위원회, 남미위원회, 국내외국인위원회, 교포위원회 등이다. 또한 GMS는 국내의 지회 및 노회선교위원회가 있다. 즉, 중부지회, 전북지회, 광주 전남지회, 대구 경북지회, 수도노회 선교위원회, 황 해노회 선교위원회, 경기노회 선교위원회, 부산 경남 지회, 수원지회, 인천지회 등이다. - 8 -
1) GMS 선교사 사역현황 2002년 7월 현재 GMS는 86개 국가에 1,073명, 594 가정의 현역선교사를 전 세계에 파송하고 있 다. 594가정 중 장기 선교사는 573가정이고 단기 선교사는 21가정이다. 이들은 14개 현지 선교부와 53 개 지부의 조직을 이루어 사역하고 있다. 총 594가정 중에 목사선교사 457가정, 전도사선교사 87가정, 그 리고 평신도선교사 50 가정이다. 이들 선교사 중에 10개 선교단체들과 선교협정을 맺은 공동 선교사회원 이 89가정 156명이다. 이들을 위한 년 간 선교재정은 약 141억원이다. GMS 선교사는 41개 장로교단 전 체선교사의 32%에 해당하며, 이는 한국이 파송한 전체 선교사의 11%에 해당한다. 이들 선교사 자녀들은 총1,063명으로 연령별로는 25세 이상이 129명, 대학생이 136명, 고등학생이 107명, 중학생이 146명, 초 등학생이 305명, 그리고 유치부 이하가 240명이다. GMS의 86개국에 파송된 1073명의 선교사들과 후원파송교회들의 중요 사역은 일곱 가지로 범주화 할 수 있다. 22) 첫째, GMS 선교사들의 현지교회사역이다. 이들이 사역하는 교회는 1,273개 교회로 유초등 부 35,464명, 원입 51,127명, 세례 23,895명, 집사 3,672명, 장로 430명, 교역자 1,092명이다. 둘째, GMS 선교사들이 설립하여 운영하고있는 신학교(성경학교)는 116개교, 학생은 5,526명이며, 현지목회자 재교육기관은 52개 처에서 년 간 17,473명을 재교육사역을 하고 있다. 셋째, 일반교육사역은 유치원 65 개교 (2,209명), 초등학교 49개교 (5,212명), 중,고등학교 21개교 (2,176명), 대학 6개교 (16,900명), 기타 13개교 (859명)등, 합계 154개교 (27,356명) 이다. 넷째, GMS 선교사들의 의료사역은 41개의 의료사역 팀으로 년 간 43,262 건의 의료 진료사역을 하였다. 다섯째, GMS 선교사들의 복지사역은 49개 시설에서 년 간 29,773명을 섬겼다. 여섯째, GMS 선교사들은 문서사역 28개 팀에서 년 간 미화 56,780 달러를 사용하였고, 캠퍼스 사역으로 년 간 21개 팀에서 438명을 전도하여 양육하였다. 일곱째, GMS의 미전도 종족입양현황은 37교회가 38개 종족을 입양하여 선교하고 있다. 2) GMS 선교본부조직, 사역, 및 센타현황 - GMS초기의 선교본부 조직현황--총재 총회장과 GMS 이사장의 지도, 감독아래 본부장 사 무총장이 본부의 조직과 사역을 총괄 지휘한다. 사무국에는 국장 아래 서무과와 관리과가 있고, 사역국에는 국장 아래 재무 후원관리과, 관리과, 복지과, MK 본국사역과, 사역 관리과 가 있으며, 정보연구실에는 실장 아래 연구과, 홍보과, 전산과가 있다. 선교훈련원에는 원장 아래, 훈련과, 후보생관리과, 보육담당이 조직되어 있다. 현재 선교본부에는 본부선교사 13 명, 선교사 후보 13명, 간사 11 명 등 총 37명이 본부사역, GMS 전체 선교사들, GMS 선교 사 후원교회들, 그리고 선교와 관련하여 6천7백여 총회소속교회들을 섬김. - GMS 초기 본부사역현황-- 문서관리 연간 4,800건, 식당관리 매일식수인원 35-45명, 숙소 관리 연간 숙박인원 8,570명, 차량관리 6대, 현장순방사역지도를 15개지부에 6회, 및 선교사 자녀 본국초청 수련회 연2회와 안식년 선교사 수련회 연3회를 실시하였다. 해외여행 보험은 연간 성인 937명, 자녀 818명에 가입비 235,778,154원, 국내 상해보험은 성인 100명에 가입 비 20,231,500원, 의료, 보상금지급은 여행자보험을 통하여 연간 286명에 209,230,323원을 지급했다. 선교사건강검진 연125명에 17,240,580원, 치료비 20명에 13,164,565원, 그리고 지 역의료비조로 연간 1,785,310원을 지급하였다. 정기 간행물은 선교사행전 10회 20만부, 미션 저널 4회 2만부, 홍보자료 도서1권 500부, 팜플렛 5부 5만부, 비디오 1점 200개를 발행하였 22) 김활영 사무총장의 GMS 임시총회(2002, 5월) 보고서임 - 9 -
다. 본부 전산화 작업을 위해 인사프로그램, 재무관리프로그램, 선교사 재정관리 프로그램 등을 완성하여 사용하고 있음. - GMS초기 선교센타현황--GMTI 선교훈련에서 연간 60여명의 선교사후보를, 15개처의 지역 LMTC 훈련원에서 연간 143명을 정히 수료시켰다. 경기도 화성에 현재의 GMS 본부에 GMS 선교센타 숙소동 건축(2,904,74평방m-약 500평)을 완공하였다. 앞으로 실버타운, 본부사무실, 교실, 세미나실, 국제회의장, 식당, 강당, 주차장 등을 포함한 종합선교센타를 계획하고 있다. - GMS 본부의 현재조직은 개편되었다. 이사장-본부장, 사무총장-선교사관리, 현지관리, 본부총무-사무, 행정, 재정, 대 교회관계, 선교연구훈련원장-선교연구와 훈련원관장. 3) GMS의 현지선교부 및 지부현황 (2002, 3월 현재) 2002, 3월 현재 GMS의 현지 사역지역은 14개 지역선교부 산하에 53개 지부로 조직되 어있으며, 12개 선교단체들과 선교협정을 맺어 사역하고 있으며 그 현황은 다음과 같다. 1 중총공사는 8개 지부 89가정 161명, 몽골 7가정 13명, 대만 5가정 8명, 2 일본지부는 관동 20가정 35명, 관서 9가정 16명, 3 메콩개발은 동부 5가정 9명, 서부 2가정 4명, 남부 7가정 12명, 북부 5가정 10명, 4 실크로드개발은 동부, 중부, 서부 32가정 62명, 5 동남아시아는 싱가폴 9가정 17명, 태국 27가정 51명, 인도네시아 12가정 24명, 6 서남아시아는 서부 4가정 7명, 인도 21가정 35명, 방글라데시 6가정 10명, 파키스탄 4가정 7명, 7 태평양은 필리핀 37가정 62명, 마이크로네시아 9가정 16명, 8 유럽은 영국 6가정 11명, 유럽 6가정, 12명, 동유럽 13가정 25명, 9 러시아는 서부 14가정 27명, 중부 8가정 13명, 동부 4가정 7명, 사할린 6가정 11명, 10 서북아프리카는 이집트 7가정 12명, 서아프리카 6가정 11명, 감비아 7가정 12명, 11 동남아프리카는 우간다 14가정 24명, 케냐 10가정 19명, 탄자니아 15가정 27명, 말라위지부 4가정 6명, 12 중미는 8가정 15명, 태평양연안 4가정 7명, 13 남미는 볼리비아 8가정 16명, 브라질 22가정 40명, 아르헨티나 9가정, 17명, 파라우르과이 6가정 12명, 14 특수지역으로 국내 외국인부 4가정 6명과 특수 6가정 11명이며, GMS가 선교협정을 맺고 이중회원권을 가지고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는 99가정 156명이며, 그 단체들은 AFC(2명), AIM(9명), GBT(8명), MET(3명), GMP(19명), GP(37명), HOPE(6명), KHE(4명), SIM(39명), OM(2명), OMF(14명) 등이다. 요약 및 정리 1964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장로교회는 놀라운 선교열기가 일어나 선교가 놀랍게 진작되었 다. 통합과의 분열 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교회가 꾸준하게 성장하고 초교파 선교단체가 활 성화되고 대중전도운동이 일어나 해외 선교가 어느 때보다도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선교정책 이 정확하게 수립되지 않아 일관된 선교정책을 총회적인 차원에서 추진할 수 없었다. 이와 같 은 어려움들이 1990년 이후 총회적인 차원에서 선교정책이 수립되면서 해결될 수 있었다. IV. 한국장로교회 해외선교의 정책적 과제와 전망 (1991-2003) 1991년부터 2002년까지는 선교협력 및 정책개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제4기를 총회선교부 (Mission Board of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시대와 총회세계선교회(Global Mission - 10 -
Society,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시대로 구분하기로 한다. 이 시기에 한국세계 선교협의회, 한국 복음주의협의회, 한국기독 총 연합회, 한국 복음주의 선교 신학회, 한국 개혁신학회, 그리고 많은 선 교연구단체들이 속속 발족되어 서로 연구하고 머리를 맞대어 시대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예장 총회는 이 기간에 처음으로 선교사 출신의 서부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무슬림 지역에서 사역하던 강승 삼 선교사를 총회 선교 국장으로 임명하여 총회 선교정책 개발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강 선교사는 1991 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재직하면서 총회 선교국을 재정비하고 해외 선교사의 능율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했다. 제75회기 총회선교부(부장 이영희 목사) 실행위원회에서 총회 선교부의 지도하에 총회 해외선교위원회 설립, 총회 헌법에 선교사를 목사 선교사뿐만 아니라 평신도선교사 항목을 추가하고, 선교훈련원 (MTI)을 총신부설에서 총회 선교부 해외선교위원회 직속으로 할 것과, 총14장 74조, 19가지 의 선교행정서식, 그리고 총회 해외선교 위원회 회칙으로 구성된 총회 선교정책집을 1991년 9월 제76회 기 총회에 상정 할 것을 결의하여 허락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 장로교회 선교에는 많은 선교적 과제들을 안고 있다. 먼저, 한국장로교회 해외선교 현황과 예장총회 해외선교현황부터 알아보자. 1.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협력과 정책개발 현황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이제 우리 한국 장로교회 따로 따로 의 선교 패턴에서 벗어나 성경적 선교비전을 가지고 선교협력과 선교행정과 정책의 구조를 지향하여야 한다고 모두가 부르 짖는다. 선교 현장에서는 선교사들도 서로가 협력해야함을 인식하고 있다. 선교단체들이나 교단 선교부들 도 서로 협력해야함을 알고 있다. 현지 교회들과도 손을 맞잡아야함을 인식하고 있다. 선교정책 개발이 무 르익어가는 시대다. 각 교단 선교부마다, 선교단체들마다 선교정책과 선교규정을 제정하여 올바른 선교를 하겠다는 다짐들의 소리들이 들린다. 한국 세계선교협의회, 한국 기독교총연합회 선교위원회, 한국 복음주 의 선교위원회, 한국 복음주의 선교신학회, 한국개혁신학회 및 선교단체들이 속속 발족되어 서로 연구하고 머리를 맞대고 성경적이며 시대에 맞는 정책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마나 고무적인가! 이제 1991 년부터 1998년까지 예장총회 선교부 해외선교위원회시대와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총회세계선교회 (GMS)시대의 선교정책 개발의 진행을 알아보자. 예장 총회는 이 기간의 11년 동안에 583가정 1,036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23) 1991년부터 총회의 선 교정책개발 진행과정을 총회 각 회기별로 기술 할 것이다. 24) 1) 제75회기 총회(1990-1991) 선교부의 정책개발 제75회기 총회선교부 (부장 이영희 목사)는 18차례의 임원회의와 2차례의 실행위원회에서 많은 안건 을 결의하였는데 그중에서 당회기에 중요 선교정책 결정사항은 다음과 같다. 총회 선교부의 지도하에 총 회해외선교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총신대학 부설 선교훈련원 (MTI)을 총회 선교부 직속으로 할 것 과, 목사 선교사후보의 연령은 40세 전후로 하고 영어나 사역지 언어실력의 정도가 높이 평가되는 후보는 고려하되, 평신도 전문인(사모포함) 선교사후보 연령을 60세로 제한하고, 필리핀 현지장로교단의 신학교 운영을 선교사 파송 장로교단들의 연합으로 하기로 하였으며, 총회소속 목사가 총회선교부 파송을 받지 않고 개 교회나 다른 선교단체로 파송할 시에, 해 노회가 선교목사로 인준 또는 추천할 때는 총회선교국장 23) 같은 기간에 은퇴 6가정 10명, 순직 소천 10명, 단기사역만료 12명, 휴직 15가정 24명이며, 중도탈 락으로 분류되는 면직 12가정 22명과 사직 83가정 131명으로, 합계 95가정 153명이 탈락하였다. 24) 제75회기 총회임원회와 선교부가 당시 나이제리아에서 사역하고 있던 강승삼 선교사를 총회선교국장으로 임명 (1991, 3월 2일), 부임한 이래 총회선교부는 종합적인 총회선교정책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 11 -
의 추천이 있을 때만 하도록 총회에 헌의하여 (실행위원회 1991,7,1) 제76회기 총회 (1991 9)에서 총회헌 법 개정이 허락되었다. 선교 현지에서 총회 선교사들을 보호, 협력, 지휘, 통활 할 수 있는 선교지부를 조 직하기로 하고, 총회 선교국에 국제선교 협력부를 신설하기로 결의 하였다. 25) 이러한 선교정책결정은 총 회선교행정의 규범이 고양되는 것을 의미하며, 선교사의 질을 높이고, 총회선교활성화를 도모하고, 국제선 교협력을 통해서 총회선교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앞당기고자 하는데 의미를 둔다고 하겠다. 제75회기에 총회선교부는 여섯 가지의 중요 선교정책을 시행하였다. 총회선교부는 40가정 61명의 총회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총회선교주일 헌금을 53노회, 139 교회에서 총액20,918,520원을 성금받았다. 동부 아프리카 선교대회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행1:8)는 주제로 1991년 5월 22일-26일간 케냐 와 우간다에서 선교사 30명과 선교사 자녀들, 그리고 총회선교부원 및 후원교회 방문자들 27명이었다. 26) 평신도 선교사 제도와 총회선교사 파송 창구일원화를 실시하였으며, 총회선교국에 국제선교 협력부를 두 어 국내외 공신력 있는 선교단체들과 교류, 협력의 길을 열었다. 2) 제76회 총회(1991,9-1992,9) 선교부 선교정책개발 제76회 총회선교부 (부장 김윤배 목사)는 13차례의 임원회와 2회의 실행위원회를 통하여 일곱 가지 의 중요사업과 네 가지의 장기선교정책을 결정하였다. 첫째, 장기목표로 총회 종합선교센타 건립추진위원 회 구성청원 을 하였다. 둘째, 총회 선교사들의 총회 소속 현지 한인노회를 조직하여 이중 노회 회원권을 가질 수 없음을 재확인하고 총회에 헌의하였다. 셋째, 미션저널을 계간지로 총회해외선교위원회와 협력하 여 발간키로 하였다. 넷째, 1992년 3월 5일 이전에 총회 선교사로 파송받지 않고 노회나 개 교회 등 단체 에 의해 파송되어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 중에서 총회파송선교사로 인준할 수 있는 기준이 되 는 총회선교규정을 제정하여 그에 준하여 시행하는 자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이와 함께 총회 선교 사의 신분증을 발행하고, 기왕에 총회 선교사로 파송받은 선교사들의 사모 28명을 총회선교사로 추인하였 다. 21세기를 향한 총회 해외선교 계획을 다음과 같이 인준하였다. 27) 이로서 총회선교는 전문성 확보의 길, 선교사심의기준의 향상, 선교의 국제성, 미래를 향한 총회선교의 장기목표 등을 격상시키는 조치가 되 었다. 첫째, 총회 선교정책 실현을 극대화시켜 나가면서 다음의 기본방향을 계속 추진한다. 1. 먼저 개혁주의 신학노선 과 복음주의 신앙노선에서 타민족을 복음화 및 제자화 하고, 원주민교회 설립을 지향한다. 2 이를 위해 총체적인 선교방법론을 실현한다. 즉, 교회개척, 지도자육성, 교육, 의료, 개발, 봉사를 현지실정에 맞추어 병행할 수 있다. 3. 선교지에서 선교지부를 결성하고 그 지부체제하에 팀 선교를 지향한다. 4. 개 교회와 노회선교부를 활성화 하 고, 작은 교회도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팀 협력 선교 방향을 모색, 지도한다. 5. 개별 선교(후원)회 등을 조사, 총회 해외선교위원회에 소속시켜 협력선교정책에로 조정한다. 6. 공신력 있는 국내외 선교단체와 정보교류, 선교 사 케어 및 사역을 협력하도록 한다. 7. 한인디아스포라 교회, 성도들을 선교하도록 적극독려 지도한다. 8. 규정화 한 선교정책 실현을 1996년까지 완료한다. 둘째, 총회선교사의 자질향상을 위하여 훈련, 교육, 선발기준을 강화한다. 교회, 노회, 총신신대원 및 선교대학원에 서 우수한 총회 선교사 후보 발굴 및 계속관리 지도, 양성, 훈련 교육전략을 세우고, 총회교육부와 협의하여 교단 내의 주일학교 교과과정에 선교과목설치와 선교사선발기준을 강화하여 선교사심의위원원회에서 심의, 선발, 파송 절차를 지도, 감독한다. 셋째, 총회선교사의 연도별 파송계획과 본부의 전문요원 확보계획을 세운다. 한국교회가 21세기에 3만명의 선교사파송을 목표로할 때, 총회는 3천명(10%)의 총회선교사 파송계획을 달성키 위해 연도별 25) 제76회 총회보고서 1991:90-99 26) Ibid., 99-116 27) 제77회 총회보고서 1992, 9월:202-203 - 12 -
목표를 설정하여 1994년-2018년까지 3,030명을, 그리고 이에 걸맞는 본부의 전문요원을 연도별로 확보토록 한 다. 넷째, 선교사 증가 추세와 더불어 선교사 복지정책개발, 선교사 자녀교육 지원정책개발, 선교행정, 선교정책, 전략의 전문성 개발하고 이를 위해 해선위와 후원교회, 노회선교부를 활성화한다. 28) 또한 이 기간동안에 여섯 가지 중요한 선교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들 여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새로 인준된 총회 선교정책과 규정을 홍보하고 개교회의 선교의식고취와 현지 선교정보교류 및 선교활성 화를 촉진하기위하여 세계선교와 2000년대를 향한 전진 이란 주제로 대구, 서울, 광주, 부산 지역에 연 700여 교회지도자들이 모여서, 선교사 강사들이 1992년 5월22일-27일까지 실시하였다. 29) 둘째, 총회 파송을 받은 3가정 이상 선교지에서는 지부를 조직한다 는 정책에 의해 태국, 필리핀, 일본, 마이크로네시 아, 대만과 홍콩, 러시아,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지부를 결성하고, 앞으로 24개의 지부조직을 계획하였다. 셋째, 지금까지 없었던 신임선교사 오리엔테이션 과정을 신설하여 2회 (총85명)를 실시하였다. 30) 넷째, 총회선교주일을 지킨 교회가 192교회이며, 헌금은 총액 44,471,570원이었다. 다섯째, 당회기의 총회선교 사 파송은 81명이다. 여섯째, 극동아시아 선교대회를 일본에서 총인원 150명이 모여 1992년 2원 19일 -21일까지 세계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들 이란 주제로 개최하여 총회파송 일본주재선교사들에게 큰 격려와 협력의 장의 기초를 놓았으며, 후원파송교회 지도자들의 선교현지사역확인의 기회를 통해 교회의 선교열정을 강화하고 총회선교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 31) 총회 선교부는 총회해외선교 위원회 창립총회를 1992년 11월 8일 총회회관 7층 여전도회 강당에서 개최하여 조직하였다. 이사장 이성헌 목사, 부이사장 김성규, 배순조, 신예철, 김동권, 김도빈; 서기 노동진, 회계 전동태, 감사 최성관, 박영종, 장훈; 실행위원회 회장 이영희, 서기 석병규, 회계 천태곤; 상임총무에 총회 선교국장 강승삼을 선임하였다. 그리고 10개 실행분과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즉, 교포선교 연구 분과 위, 공산권선교 연구 분과위, 모슬렘선교 연구 분과위, 국제 협력선교 분과위, 선교훈련원 운영분과위, 선 교정보 및 교육분과위, 선교재정 분과위, 선교사자녀교육 분과위, 선교사 후생대책 분과위, 선교사 장학분 과위이다. 총회해선위는 장차 총회세계선교회(GMS)의 전초작업이었다. 총회해선위가 조직, 가동되어 1회 의 실행위원회와 10차례의 실행위 임원회를 열어 해선위 실행위원회 회원은 총회선교훈련원 (MTI) 이사 를 겸임하고, 총회선교국의 필요한 행정인력을 선임하여 해선위회비로서 인건비를 지원하고, 미션저널 창 간호 발행을 위해 해선위실행위 임원들이 예산을 갹출, 지원하여 총회선교정책 발전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3) 제77회 총회(1992,9-1993,9) 선교부의 선교정책 개발 제77회 총회 선교부(부장 길자연 목사)는 2회의 실행위원회와 13회의 임원회를 열어 열 한 가지의 정책결정을 하였다. 첫째, 70세 정년이 넘은 선교사가 건강이 확인되고 본인이 계속사역을 원할 경우에 허락하되 후원재정관계는 별도로 정하기로 하였다. 32) 둘째, 지교회 의 선교활성화와 총회산하 교회들의 선교교육의 본을 삼기위하여 모범선교 교회를 표창키로 하고, 그 기준을 12가지로 정하였다. 교회내의 선교사 후보 발굴, 선교사 훈련과 교육에 대 한 장학금 지원, 단독 및 협력선교사 후원파송, 교회의 선교교육 실시, 교회예산의 십분의 28) Ibid. 202-203 29) 이때 강사는 강승삼, 강성철, 김주경, 박기호, 박시경, 양승만, 윤희원, 이성우, 이준교, 이진희, 정윤진 등이었다. 30) 총회선교훈련원이 별도로 운영된 관계로 선교후보생들에게 선교정책과 행정전반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여 2-3주간에 실시하였다. 31) 제78회 총회보고서 1993, 119-218 32) 당시 일본의 정환구, 사이판 중국인대상의 이만열, 중국과 북한에서 사역하는 최대위 선교사 등이 해당되었다. - 13 -
일을 선교예산화, 전교인 선교회원가입 운동, 교회내의 선교사 및 세계선교를 위한 정기적 기도의 시행, 선교지 순방, 교회의 선교헌신예배, 선교세미나와 선교대회 개최, 선교사 자녀 교육 협조, 노회장의 추천, 선교사에게 200%-400%의 상여금지급 등이다. 33) 셋째, 후원파송교회가 선교사의 기본후원금 이외에 상여금 200%-400%를 후원하기로 하였고, 넷째, 선교사의 상벌규정, 우수선교지부 선정제도, 및 안식년 본국사역 제도를 두기로 하였으며, 다섯째, 선교지 에서의 비상사태나 위기발생을 대처하는 선교사 위기관리규정을 두기로 하였다. 34) 여섯째, 선교사 상호의 료기금 제도를 규정화 하고 시행하기로 하였다. 일곱째, SIM, WEC, Red Sea Mission, CIS 침례교회총회, 대만의 침신 선도회, 라오스 복음주의총회 등과 선교협정을 허락하였고, 여덟째, 총회 선교사들의 안식년 및 출장 등으로 년 80여명이상이 귀국하므로 쉼터인 안식관 (Guest House)을 위한 재정을 확보하여 현 재의 1동에서 더 늘리기로 하였으며, 아홉째, 총회 선교사역이 확대됨에 따라 총회선교국과 선교훈련원 총 회회관 1개층 사용을 헌의하였다. 35) 열 번째, 해외선교위원회는 1992년 10월 19일 제2차 정기총회를 열어 사임한 이성헌 이사장 후임으 로 김성규 목사를 선출하고 36) 조직과 각 분과위원회를 보선하였다. 37) MTI 운영은 MTI 종합계획대로 시 행하고, 재정은 MTI 운영이사회 (이사장 김윤배 목사) 회비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38) 열한 번째, 총회선교종합센타 건립추진위원회 창립총회를 1992년 10월 19일 총회회관 7층 여전도회 예배실에서 회칙초안과 건립추진계획안을 그대로 받아 조직을 완료하고 여섯 차례의 소위원회와 1회의 확대임원회의를 가졌고, 한차례 천마산 기도원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39) 이것이 오늘의 총회세계선교회 (GMS) 본부인 화성선교센타의 기초가 되었다. 이 기간에 10가지의 중요선교정책사업을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첫째, 당회기에 54가정 94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총63개국에 260가정 463명이 사역하게 되었다. 40) 63개국 중에 총회선교 사 10-44명 파송된 지역의 순서는 일본, 러시아, 필리핀, 태국, 케냐, 브라질, 중국, 독일, 아르헨티나, 인도, 나이지리아, 페루이며, 이는 총회선교사 파송의 중요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총회산하 55개 의 노회가 참여한 가운데 총회선교사 20-35명 파송한 노회의 순서는 서울노회, 동평양 노회, 남서울 노회, 대구중 노회, 수도노회, 경기노회, 서울남 노회 순이다. 41) 둘째, 총회선교국장은 선교부의 훈령에 따라 중국, 태국, 필리핀, 페루와 아르헨티나 등 5개 선교지역을 순 방, 관리, 지도하고 세 가지 중요현안을 처리, 보고하여 선교지순방과 선교사 케어가 얼마나 중요한 사역인 지를 재확인하였다. 첫째, 중국은 창의적 접근선교지역이지만 핵심선교지로 부각되고 있어 현장에 맞는 선교정책 개발이 필요 하고, 김인철 사건으로 인하여 현지지도자 초청교육은 지향하되 졸업 후에 목사안수 및 선교사파송은 금해야 할 교훈을 얻었으며 42) 중국의 특수선교적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둘째, 페루의 김복향 선교사가 SIM을 탈퇴하였으 33) 이 교회선교활성화 기준은 훗날 KWMA의 선교신용평가기구의 교회선교활성화의 표준안이 된다. 34) 총회 선교정책의 선교규정 1974과 1976:19-20와 2001:23을 참고하라. 35) 제78회 141 36) 초대 해선위 이사장에 선임된 이성헌 목사는 총회이후 1개월 만에 개인사정으로 사임한 이래 수석 부이사장 김성규 목사가 대행 하다가 제2차 정기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에 선임 되었다. 37) 제78회 143-4. 38) MTI 이사회는 선교국장이 제안한 운영안과 훈련교과과정 종합계획 및 오늘의 LMTC의 전신인 평신도선교사훈련원 운영방안을 그대로 시행키로 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Ibid., 121-22, 145, 176-197을 참조하라. 39) Ibid., 120-21, 203-213: 센타건립추진위 상임고문 최훈 목사, 위원장 이선택 목사, 총무 이영희, 서기 이종영, 회계 천태곤, 상 임총무 강승삼 그리고 14개 지역에 협동총무를 선임하였다. 40) Ibid., 149-160 41) 노회별, 지역별 총회선교사 파송숫자는 제78회 총회보고서 1993:161-166을 참조하라. 42) 김인철은 조선족출신으로 남서을 노회가 총신신대원 교육후원 및 목사임직후 총회선교사절차를 거쳐서 파송하였으나 그곳 공식 - 14 -
나 현지 복음주의 교단인 IEP와 협력사역 할 것과 당해 7월 중에 의료 선교 팀을 파송키로 하였다. 43) 셋째, 아르 헨티나의 총회선교 사역방향을 지부의 공동 프로젝트로 신학교를 운영하고, 서로 협력하여 현지교회나 교단을 설립할 것과, 기독교 라디오방송 사역을 지부공동 사역으로 할 것 등의 중요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지도하였다. 44) 셋째, 당회기의 국내 순회 선교세미나를 지역교회 선교활성화와 총회선교행정과 정책집행을 안내하 기 위하여 서울, 대구, 부산, 전주, 대전지역에서 김활영, 전학진, 조용성, 안재은, 심양섭, 강승삼 외 안식년 선교사들이 강사로 나서서 총회선교의 비전제시, 모범선교지부 소개, 구소련권 및 동구권 선교방향 제시, 유럽 내의 특수선교, 지교회의 선교참여계획과 운영안내, 현지 지도자육성사역의 중요성 등을 제시하여 좋 은 반응을 보였다. 45) 넷째, 총회선교부와 해선위가 공동으로 러시아 (1993, 6,23-29)와 북아프리카지역 (6,30-7,1) 순회선교세미나를 모스크바와 카이로에서 개최하여 총인원 105명이 참석하여 결 정한 세 가지 중요한 현안은 선교지의 문화와 정서에 맞추어 복음의 성경적토착화정책의 중 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무엇보다 먼저 광대한 구소련 (CIS) 지역에 맞는 지부를 결성할 것이며, 둘째, 선교사의 비자문제와 사 역을 위해서도 본 교단과 협정하고 있는 러시아 침례교단과 타선교기관의 선교사들과 원만하게 협력 사역할 것과, 셋째, CIS 지역에 알맞은 하나의 예배모범, 하나의 신앙고백, 하나의 장로교 신학교, 하나의 찬송가 및 복음성가곡집을 편찬할 것 등을 함께 결정하였다. 46) 다섯째, 안식년 선교사의 재충전과 친목도모, 선교정책과 선교전략 반영 모색을 목적으로 선교전략회 의를 가졌다. 47) 선교사는 문화충격을 극복하기위하여 현지문화와 현지어를 숙달하고, 영성함양에 노력할 것이며, 선교사자녀의 대학교육은 한국에서 실시하여 자녀 (MK)의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게 할 뿐만 아니 라 동창들을 확보하여 뿌리를 내리고, 미래사역에 근거가 되도록 함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도출된 기회 가 되었다. 여섯째, 총회 선교홍보지 미션저널 을 년4회 각 12,000부, 총 48,000부를 발행하여 송부하였 다. 48) 일곱째, 당회기의 총회선교주일 헌금은 210교회에서 총60,387,320원 49) 이였으며, 여덟째, MTI 장 소마련 특별헌금을 통해 21교회와 개인1명이 총1억250만 4천원이 모금되어 총회선교 종합센터의 기초가 되었다. 50) 4) 제78회 총회기 (1993, 9-1994, 9) 선교부 총회선교정책 개발 제78회기 총회선교부 (부장 김인태 목사)는 두 차례의 선교부 실행위원회와 14회의 선교부 임원회의 를 가졌으며, 해선위 (이사장 이영희 목사, 실행위원회 회장 예종탁 목사)는 두 차례의 정기총회와 2회의 이사회임원 및 실행위 임원 연석회의를 열어 일곱 가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였다. 교회의 정책에 수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시켜, 현지인 초청 신학교육은 가하나, 목사임직은 삼가야 할 교훈을 얻었으며, 상세한 내용은 제78회 총회보고서 p.168-9을 참조하시라. 43) Ibid., 171-2. 44) Ibid., 173 45) Ibid.,p.197-8. 46) Ibid., 198-9. 47) Ibid., 201. 1993년 7월 15일 총 28명이 총회회관 5층 제2회의실에서 모여서 선교사의 문화충격 극복방안과 선교사자녀교육의 방향을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48) Ibid., 201-3. 미션저널을 총회산하 모든교회들, 신학교, 총회기관들, 협력기관들, 선교사들에게 송부하고 있다. 49) 각 교회의 명단과 액수는 Ibid., 212-17을 참조하시라. 50) 교회명과 액수는 Ibid., 218을 참조하라. - 15 -
첫째, 총회선교사 파송창구 일원화 정책을 위하여 각 노회와 개 교회에 공문을 보내어 인식시키고, 현재 노회나 개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명단을 파악하여 일정한 훈련 및 오리엔테이션 절차를 거쳐서 총 회선교사로 영입키로 하였다. 둘째, 케냐 주재 김순태 선교사를 MTI 총무로 선임하고, 생활비는 기존후원 노회가, MTI는 주택비와 활동비만 지급키로 하였다. 셋째, 선교사 파송예배를 원칙상 주일을 삼갈것이나 교회형편상 부득이 할 경우 선교부장의 재가를 받아서 월1회 합동파송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결정하였 다. 51) 넷째,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주최로 초교파적인 선교사 자녀교육을 위한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 설립 에 적극 협력하기로 하고 초대 재단이사장에 김국일 목사를 추대하였으나 곧 사퇴하고 후임에 심재식 목 사(신창동 교회)가 추대되었다. 52) 다섯째, 일본 주재 총회선교사 4가정이 협력사역하고 있는 일본 복음자유교단에서의 초청과 선교협 정채결을 위해 총회장 (최기채 목사)과 총회선교국장 (강승삼)을 파송하고 겸하여 일본주재 본 교단선교사 전략회의를 주재케 하였다. 53) 여섯째, 본 교단목사로서 P.W.M. 선교회로 파송받은 김병선 선교사외 9가 정 16명을 적법절차를 따라 총회선교사 영입을 가결하고 1994년 3월 17일자로 영입하였다. 54) 일곱째, 노회선교부의 활성화를 위해 1994년 6월 13일 대전 유성에서 선교정책회의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총회해외선교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됨에 따라 선교재정정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당 회기에 총회선교부와 총회해외선교위원회사이에 약간의 긴장관계가 있었으나 상호간에 그 정체성이 세워졌다. 총회선교부가 총회의 정치적 라인이라면 총회해선위는 총회선교사를 후 원하고 파송한 당사자 교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그 정체성이 인지되면서 엇갈렸던 문제 들이 오히려 더 잘 해결되었다. 선교사 후원금 창구일원화를 완성하고, 선교후원금은 목적헌 금에 따라 전적으로 선교목적으로만 하고 철저하게 관리, 지도, 감사하며, 매 익월 첫 주간 에 총회장 (총회총무, 총회회계 참조)에게 보고케 했다. 선교사의 기본후원금은 각 국가별, 선교사 가정별로 금액이 규정되며, 규정금액의 80%-87% 생활비, 7% 퇴직적립금, 6% 안식 년여행 적립금이며, 공동기금으로 2.5% 선교사 관리행정비, 1.5% 선교홍보 교육비, 3% 선교 사 의료기금 등으로 보완하였다. 55) 이 같은 선교재정관리 시스템이 타 교단들과 다른 선교 단체들의 귀감과 모본이 되고 있다. 제78회기에 총회선교정책규정의 개정판을 헌의하여 1994년 9월 24일 제79회기 총회에 서 인준을 받아서 제정되었다. 이는 총회선교가 건강하게 발전하는데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총회 해외선교의 역사적 발전 개요, 총회선교정책 사업개요, 총회선교규 정, 13가지의 총회선교 행정의 양식, 총회선교 종합센터 건립추진위원회 회칙, MTI 운영이사 회 회칙, 그리고 총회 해외선교 위원회 회칙 등이다. 56) 78회기 중요선교정책 특징 제78회기의 중요선교정책사업의 특징은 현장중심의 선교전략의 도출이었다. 당회기에 50 가정 109명의 총회선교사를 파송하여 총 68개국에 316가정 567명의 총회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다. 그 중 총회 선교사 20명에서 52명이 파송된 중요국가의 순서는 필리핀, 러시아, 일본, 중국, 태국, 케냐, 51) 제79회 총회보고서, 1994:131-2. 52) 마닐라 한국 MK학교설립에 본 교단에 책임액수중 재단이사장의 성금 500만원과 나머지 1,500만원은 필리핀에 선교사파송한 교회에 할당키로하였다. Ibid., 132를 참조하라. 53) Ibid., 135. 54) Ibid., 137. 55) Ibid., 143-4. 그리고 선교사역비, 특별프로젝트비, 개인선물비는 기본후원금과 별도로 취급되며 전액 송금한다. 56) Ibid.,.229-305에 실린 전문을 참조하시라. - 16 -
브라질이며, 10명에서 19명이 파송된 선교지 순은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독일, 인도네시아, 나이지리 아, 터키, 우간다, 인도, 페루 등이다. 57) 총회선교사 파송노회가 61개 노회 중에 20명에서 48명을 파 송한 노회는 동평양 노회, 서울노회, 남서울 노회, 대구중 노회, 경기노회, 서울남 노회, 대구노회. 수도 노회, 동서울 노회의 순서이다. 58) 총회선교부와 해선위는 선교지순방 및 선교사케어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당 회기에도 총회선교국장으 로 하여금 6개 선교지역을 순방 지도케 하였다. 즉, 인도차이나 지역인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국경의 카렌 족난민 공동체와, 필리핀에서의 총회아시아 선교사대회, 그리고 브라질, 볼리비아 등이었다. 먼저 인도차 이나 지역은 처녀개척지로서 총회 인도차이나 지역 조정관 (강대흥 선교사)과 함께 캄보디아에 가서 선교 지 개발 및 선교협력추진을 할 수 있는 한 창구를 통하되 현지의 기존 NGO를 이용하던지 아니면 직접 NGO를 세워서 사역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모색하고, 라오스는 기존 총회선교사 (정한맘)와 동역할 것 과, 버마국경의 산지 카렌난민 공동체에는 두 곳의 성경학교가 있었으나 성경교사가 필요하고, 가전제품을 필요로 하였다. 59) 다음으로 필리핀순방은 총회장 (최기채 목사), 선교부장 (김인태 목사), 총회선교국장 (강 승삼) 외 72명의 아시아 지역 총회선교사들이 모여 총회아시아 선교사대회 (1993,11,16-19) 를 개최하여 총회아시아 선교사협의회 임원 (회장 김활영)을 선임하여 현장 중심의 선교정 책과 선교전략을 지향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선교현장은 본국의 상황과 너무나 다르고 상 황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선교사들의 중요 요망사항은 선교사 재교육, MK교육에 재정지원협조요망, 총회와 총신이 협력하여 교수급의 선교지 교회지도자를 초청교육 실시요 망, 아시아지역에 맞는 선교정책과 선교전략 수립에 협조하여 줄 것 등이었다. 60) 또한 남미의 브라질 지부에서는 학습.세례문제, 성찬문제, 교회 내에 십자가부착의 문제, 지부를 현지에 법적으로 등록하는 건, 원주민 전도사들의 목사임직 건, 교회재산의 문제, 장로교단 설립과 협 력의 문제 등이 심각하게 대두되어 많은 논의 끝에 뚜렷한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는데 이것은 타 지부에도 귀감이 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세례형식의 문제는 현지형편과 중의를 모아서 결정케 하였으며, 61) 성례집례자는 반드시 장로교회 헌법정신에 따라 목사가 집행 할 것이며, 일부다 처가정의 경우 예수를 믿어 교회출석은 허락하되 세례 불허를 원칙으로 하되, 세례받기 위 해 억지 이혼도 삼갈 것이며, 그 가정이 모범적인 성도의 삶이 확인되면, 지부와 교회가 의 논하여 세례를 배풀 수 있으나 교회의 중직은 맡길 수 없다고 결정하였다. 62) 원주민 교회당 내외에 십자가 부착은 남미의 천주교의 우상숭배와 관련되며, 개신교의 타 교파에서도 허용 치 않고 있으므로 브라질지부에서도 십자가상을 두지 않기로 하였다. 선교지부를 현지법에 등록건은 이미 쌍빠울로 주정부와 연방정부에 선교부 등록을 완료하였으므로 모든 선교활동 과 선교사초청문제도 해결되었다는 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지혜로운 처사였다. 브라질 현지인 목사임직과 교회재산문제는 기존교단과 협력이냐? 장로교단 설립이냐? 의 중요정책 방향 설정을 하기에 앞서 현재 이미 김승만, 양승만, 송진윤, 강성철 선교사가 각기 57) lbld.,.145-162 58) Ibid., 163-8. 59) Ibid., 169-171. 60) Ibid., 171-2. 61) 브라질인들의 조숙현황을 감안하여 학습의 연령을 12세-15세로, 천주교식의 유아세례대신 유아헌신 (Child dedication)을, 세 례는 선교사들과 현지지도자들의 중의를 뫃아서 잠기는 의식도 가하도록 정하였다. 62) 중혼자를 쉽사리 세례를 배풀면 일부다처사회에서는 이러한 사례들이 속출하기 때문이며, 그렇다고해서 억지로 이혼하면 자녀문제로인해 더 큰 사회문제가 야기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경건생활 지속이 확인 되면 세례를 배풀 수 있으나 교회의 중직은 건덕상 맡길 수 없다. (딤전 3:1-13) 상세한 것은 lbid., 177-8을 참조하라. - 17 -
주도하는 4개의 신학교, 원주민교회 60여 곳, 2개의 교포교회가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어 4개의 신학교 철폐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현지실정에 맞는 장로교단을 설립키로 합의결정 을 하고 4개의 신학교는 한 재단하의 신학교, 분교, 성경학교 등으로 하고 교과과정을 합의 개 발키로 하고 신학교 졸업자 중에서 장로교회 헌법 정신에 따라 목사임직을 하기로 하였다. 교 회재산은 개인 명의로 등록할 수 없음을 재확인하고, 지부나 소속교회재산의 이양건은 타 선교 지와 달리 브라질은 대부분이 시민권자. 영주권자여서 브라질에서 평생사역 할 분들이므로 지 부에서 연구하여 본부에 보고토록 결정하였다. 63) 이어서 볼리비아지부가 결성되므로 총 19의 선교지부로 증가하였다. 64) 볼리비아지부의 두 가지 선교 정책방향을 결정하였다. 볼리비아에서 사역하는 총회선교사들 중에서 SIM과 협정하여 사역하는 선교사들 은 맡은 사역을 계속할 것이되, 이미 장로교회 선교부로 정부에 등록하고 신학교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지부장 이기재 선교사의 사역을 지부에 내어놓고 지부회원들이 협의하여 교단정관을 재정비하여 운영할 것이며, 세례문제, 목사임직, 교회재산 이양문제 등은 브라질의 예를 따라 볼리비아상황에 맞춰서 결정하 도록 하므로 볼리비아 주재 선교사들이 다 만족하였다. 65) 이는 바로 현장과 함께 가는 GMS 정책에 부합 하는 것이었다. 당회기에 세계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들 이라는 주제로 서부아프리카 와 동유럽 선교전략회의와 순방지도를 1994년 6월 15일-29일에 걸쳐서 실시했다. 먼저, 서부아프리카의 6개국 나이제리아, 니제르, 토고, 감비아, 세네갈, 시에라리온에서 온 선교사들 31명과 총회선교부 및 해선위의 회원 22명, 총 53명이 모여 다음과 같은 중요 선교정책과 전략을 세웠다: 첫째, 서부 아프리카에 4지부, 즉, 나이제리아 선교지부(지부장 성남용), 세네감비아지부 (지부장 이재환), 서아 영어권(나이제리아 제외) 지부(지부장 류종재), 서아 불어권 지부 (지부장 임준표)를 결성하였다. 둘째, 총회 서부 아프리카 선교사 협의회 (회장 이재환)를 재구성하여 미 전도종족 그룹 연구와 친목도모 및 선교전략개발에 서 로 협력하기로 하였다. 셋째, 총회와 총신이 협력하여 현지인 지도자 훈련 (석, 박사과정 포함)을 위한 과정개설 을 청원하였다. 넷째, 효과적인 선교방안으로서 1 서부아프리카는 이슬람의 접전지역이므로 이슬람문화의 깊은 이해와 현지 언어숙달을 강조하였으며, 2 농어촌보다 도시중심의 선교전략을 연구하고, 3 총체적인 선교방법 (병원, 학교, 청소년사역, 고아사역)을 병행하되 무분별한 구제선교를 지양한다. 유엔(UN)의 구제방식보다는 복 음전할 교량으로서의 구제사역을 하되 비공개적으로 할 것, 66) 4 교회 개척과 제자훈련에 네비우스 선교방법을 고수할 것이며, 5 현지인 지도자양성을 하여 위임과 이양을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며, 6 사랑의 실천과 예수 닮음의 삶을 보일 것 등을 강조하였다. 67) 다음으로, 서부아프리카에 연이어서 동유럽 (체코,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선교사 13명과 서울 참가 자 21명, 총 31명이 모인 결과의 중요 선교정책과 전략사항이다. 첫째, 동유럽 선교사들의 16가지 제안 중에 중요사항은, 1 선교사들을 위하여 한국의 신문과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책들을 보내줄 것, 2 신임선교사들은 본부와 선임선교사의 지도를 받는 체제를 확립할 것, 3 평신도 선교사와 여 독신 선교사들이 지부장의 지도와 관리하에 팀 사역을 하게 할 것, 4 동유럽의 카톨릭권 (헝가리, 크로아티아,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회교권 (마케도니아), 정교회권(루마니아, 세르비아)에 선교사파송하여 줄 것 등이다. 둘째, 다 함께 협의한 중요사항은, 1 최근에 소개된 총회 선교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2 동유럽의 교회부재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공산주 의로 약화된 기존교회의 지도자 양성에 협력을 다 할 것이며, 3 하나님나라 확장의 공동목표아래 성령의 역사 와 기도의 능력으로 선교사 상호간에, 현지교회와의 상호간에, 선교단체들과 협력하여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하였다. 68) 63) Ibid., 179-180. 64) Ibid., 183-5. 65) Ibid., 180-1. 66) UN은 순수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공개적으로 공식통로를 통해서 하지만 선교적 구제 또는 총체적 사역은 재원의 제한성 때문에 복음의 교량역활로서의 봉사사역을 하고, 비공개적이며 주는 자세가 아닌 나누는(Sharing) 겸손한 자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67) Ibid., 186-193. 68) Ibid., 193-4. - 18 -
또한 당회기에 러시아 극동지역 선교전략회의 (1994, 7, 26-8, 2)를 사할린, 블라디보스톡, 호트카,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에서 사역하고 있던 선교사 27명과 3명의 선교부임원과 선교국장등 총 31명이 사할린과 하브롭스크에서 모여 실시한 선교정책과 현지의 중요 선교현안들을 결정하였다: 첫째, 사할린 지부 (지부장 황판효)와 러시아 극동지부 (지부장 남일우)를 결성하였고, 선교사 전원이 총회 선교정책시행에 전적으로 지지하고 이행할 것을 선언하였다. 둘째, 선교사들의 중요 청원사항은 1 러시아어 전도지와 4영리를 인쇄하여 보내 줄 것, 2 러시아어 성 경보급에 지원해 주실 것, 3 선교사 자녀들의 방학 때 고국방문 수련회참석은 권장해 줄 것. 4 현지의 학 교들이 무상이므로 성경(신)학교 운영시 학생들의 생계문제를 지원해 줄 것 등이었다. 이 문제는 서서히 단 계적으로 네비우스 방법을 채택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셋째, 선교사들의 주 사역은 교회개척, 성경(신)학교, 주일학교, 교회지도자 양육 등의 사역이다. 의논의 결 과는 1 신(성경)학교는 지부와 다른 교단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장로교 연합신학교나 성경학교를 세워서 운 영할 것, 러시아는 현지인인들의 교육수준이 높으므로 신학교 수준이 필요 할 때는 서서히 시행할 것, 2 교 회개척은 장로교 공의회를 세워 연합신(성경)학교를 운영할 것이며 하나의 장로교단 설립을 염두에 두고 실 시할 것. 3 어린이 사역을 강조할 것. 4 정교회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기독교 복음의 접촉점을 위하여 연구 할 것. 5 본부 선교전략에서부터 현장중심의 선교전략을 지향할 것, 6 러시아의 현재 사정상 소규모의 부 동산 (교회당건립이나 부지마련, 선교사 아파트)을 구매 혹은 짓도록 허락하다. 69) 7 러시아인들의 전략적 복음화를 위하여 고려인 복음화를 소흘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70) 당회기에 총회선교부 및 해선위(6명) 주최로 지부장과 중진선교사들(47명) 중심의 21세기를 향한 총 회선교 정책 및 전략회의 를 예루살렘의 한 기독교 모샤브에서 1994년 8월 16일-23일에 개최하였다. 이 때 모두가 흡족할만한 선교현장중심의 총회선교정책 (규정)으로 의견이 집약되었다는 평이다. 71) 여기서 논의한 의제들은 북한선교전략,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선교정책과 전략, 선교협정과 협력, 평신도 선교사의 사역지침, 선교사자녀교육, 선교훈련 및 오리엔테이션, 선교사 연장교육, 의료선교 및 지역개발, 미전도 족 속 선교, 인도차이나선교, 선교정책전략연구소설치, 현지인교수요원 지도자 교육 등이었는데, 그중에서 가 장 중요한 결정은 무엇보다 선교정책과 선교행정 분야인 선교지부의 임무와 책임한계 였다: 선교지부는 규정에 의거한 임무를 수행하되 교회와 신학교 설립 및 목사안수 등의 사역면에서는 노회의 권한과 성격을 띠고 있으나 선교사의 치리문제에 관하여는 지부가 치리회 또는 재판국의 역할은 불가하고, 다만 선교사의 사역면이나 윤리 도덕면 및 팀 정신에서 극히 위배되는 행위를 계속할 때는 권면하고 그 다 음 단계는 상부와 협의하여 행정 조처를 취하고 최후 단계로는 상부에서 소환하여 치리 하도록 청원 할 것 이다. 72) 다음으로는 선교현지 신학교 교수요원 및 교단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의 결정이었다. 지금 까지 현지의 신학교 교수급 최고 지도자들을 선발하여 미국이나 영국에서 교육을 시도하였으나 신학상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교육 후에 일부는 귀국하지 않는 문제, 돌아왔다 해도 우리선교사들과의 사역에 비협 조적인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므로 영어로 교수하는 신학석사과정 (MA, Th.M.) 이상의 프로그 램을 장, 단기의 개발목표를 세워 제3국에서 추진하도록 하고 교수진은 현지 신학교육에 관계하는 선교사들 중에서 유자격자와 국내외의 저명한 개혁 신학자 및 지도자들로 구성하기로 하였다. 73) 셋째, 북한 선교 연구위원회를 두어 총회 남북위와 디아스포라 교회 지도자들과 국내외 북한문제 전문기 관들과 정보교환 및 상호협력을 도모하기로 하고, 우선사역은 러, 일, 중에 거주하는 북한주민들과 남한의 이 산가족들의 북한 방문에 협력하여 간접선교를 시도하기로 하였다. 넷째, 총회선교사(목사 선교사와 평신도 선 교사) 연장교육 실시를 결정하였다. 74) 다섯째, 총회 선교부는 미전도 종족 복음화에 우선권을 두고 본부에 69) 러시아는 정부소유의 부동산이었으나 점차 시장경제로 변경됨에 따라 당시에 비교적 값이 저렴할 때 (아파트 1동에 $1,000-$3,000, 개인농장 $1,000-$3,000 정도) 구입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70) lbld., 194-200. 71) Ibid., 201-212. 이 때 약 70가지의 사항을 심도있게 논의, 결정한 내용을 참고하시라. 72) Ibid., 201 73) Ibid., 202. 선교현지의 교수급 지도자 초청교육은 1996년 총신대 선교대학원(1992년 개원)이 교육부인가직후에 영어프로그램으 로 시작되고 있으나 장학금 후원회의 결성과 원활한 조달이 과제로 남아있다. 74) 선교사 연장교육은 비형식교육(Informal education), 안식년과 선교현장에서의 비공식교육(non-formal education)과, - 19 -
미전도 종족선교 전담부서를 두어 입양 및 이에 관한 제반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였다. 75) 당 회기의 총회선교사들의 강력한 청원에 의해 제1회 선교사자녀초청 하계수련회를 1994년 7월 4일 -23일에 실시하였다. 선교사 자녀 24명, 교사 6명이 우리는 한 가족 (We are one family)이란 주제로 개최하였다. 당시에 55개의 교회가 600여 만원의 후원헌금을, 6교회가 민박을, 10교회가 대형차량지원을, 11교회가 식사지원을 하여 주었다. 76) 당 회기에 선교사 임시숙소(Guest House) 3동(임대총액 1억 6천 만원)을 마련하여 운영하였고, 총 회선교종합센타 건립위원회에서는 23교회와 5명의 독지가에게서 2300만원의 후원금이 답지했고, 1994 년 5월 17일 동도교회의 천마산 기도원 부지 2000평을 기증받았다. 77) 당 회기에 한국세계선교협의회와 초교파적으로 협력하여 필리핀 마닐라 한국아카데미 (이사장 심재식 목사, 교장 김활영 선교사)를 설립하 였다. 당시 심재식 이사장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다. 78) 한 해동안 총회선교주일 헌금이 176교회에서 총 49,008,930원이 답지되므로 총회선교사업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79) 5 제79회기 (1994, 9-1995, 9) 총회선교부 총회선교정책 개발 총회 제79회기 총회 선교부(부장 김도빈 목사)는 4회의 선교부 전체회의와 12회의 임원회의, 그리고 총회해외선교위원회 (이사장 이영희목사)는 5회의 임원회와 제5차 정기총회를, 총회 선교종합센타추진위 원회는 2회의 회의를 가졌다. 80) 당 회기에 여섯 가지 중요 선교정책을 결정하였다. 첫째, 총회선교부원들의 지역책임제를 만들어 선교사파송예배주관, 지역선교헌신예배인도 및 지역에서의 선교주일(1995년 1월 4째 주일) 성수 책임 등을 목적으로 서울권, 경인권, 충청,호남권, 영남권 등 4지역 으로 나누어 실시하기로 하였다. 81) 둘째, 총회선교훈련원과 연계하여 청년, 학생 선교 헌신자 관리 운영 및 훈련과정 (Youth Missionary Training Course=YMTC)을 설치, 운영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훈련과정 은 지교회의 청년, 대학생 선교헌신자들과 직장생활을 하는 평신도 전문인들을 위하여 총회선교훈련원 부 설로 세워 운영하였다. 82) 오늘날은 이 과정이 확대되어 지역선교 훈련원(LMTC)으로 개칭되어 운영되고 있다. 셋째, 선교전문화 정책개발의 기초단계로 총회선교사들 중에서 특정종교권역의 연구, 선교훈련에 대 한 연구, 선교행정 및 정책연구, 선교사자녀교육 연구 등의 장학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넷째, 개 교회나 노회가 파송한 선교사로서 선교현지에서 사역한 충분한 경험이 있고, 총회선교정책 기준에 해당하 는 자를 총회선교사로 추천할 경우 총회선교훈련과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선교사 심의를 거쳐 총회선교사 로 영입, 파송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83) 공식교육(formal education)의 방법으로 하되, 공식교육은 국내외 선교교육 전문기관에 위탁하여 실시하기로 결정하여, 1991년 총회와 총신대의 양 이사화의 허락으로 총신대 선교대학원이 설립되자, 1997년(당시 김의환 총장)에 김활영 교수에 의해 시작되었다. 75) Ibid., 210. 그 때부터 총회가 500미전도 종족입양을 천명하고 실시하여 1994-1997에 36개, 그 이후 9개의 종족을 입양하였다. GMS 선교 2001 제4회 이사회총회 보고서 p.27을 참조하시라. 76)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Ibid., 213-217을 참고하시라. 77) Ibid., 217. 그러나 현재는 GMS 화성센타 구매이후에 천마산기도원 부지는 계류된 상태이다. 78) Ibid., 222-227에서 후원금 내역을 참조하시라. 79) Ibid., 225-227. 80) 제80회 총회보고서 총회선교부편 pp.116-188를 참조하시라. 81) 각 지역에 선정된 선교부의 명단은 Ibid.,p.117을 보시라. 82) Ibid., 118. 당시의 YMTC가 LMTC (Lay Men's Training Course)로, 그리고 지역선교훈련원(Local Missionary Training Course)로 확대,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20 -
다섯째, 총회선교사의 이중 교적 즉, 타 한인장로교단에 이중으로 소속되거나 본 총회 소속이라 할지라도 이중노회 소속은 불가하며 이에 해당하는 선교사는 본국의 노회나 현지의 교단산하 노회 중 선택하게하고 선교사로서의 총회 총대권은 인정하지 않기로 하고 선교비는 계속 후원하기로 결의하였다. 84) 여섯째, 총 회 해선위의 재정관리는 총회의 경상예산이 아니고 선교사후원금이므로 특별회계처리 하되 전표 결재란에 해선위회장과 회계의 란을 두고, 회계감사는 항상 투명성이 나타나도록 하여 총회감사와 해선위 감사 둘 다 받기로 하였다. 85) 제79회기 중요선교정책 사업시행 당 회기의 중요 선교정책사업은 선교사 훈련과 신임선교사 오리엔테이션, 인준, 파송, 선교 센타부지 마련, 선교지 순방지도, 지부의 사역지도 및 재정 감사, 지부결성, 선교대회 및 선교전략회의, 안식년선교 사 전략회의 및 수련회, 미 전도종족 입양세미나, 선교사자녀 초청 하계수련회, 선교주일 헌금실시 등이다. 첫째, 선교사 훈련과 신임선교사 오리엔테이션: 총회선교부와 해선위는 총회선교 훈련원 (MTI)을 발전시 킬 목적으로 운영이사회를 조직 (이사장 김윤배 목사, 총무 하대성 목사, 서기 김경원 목사, 회계 이재영 목사, 상임이사 선교국장과 MTI원장)하여 1회의 정기총회와 3회의 임원회를 가졌다. 중요결정사항은 첫 째, 과거에 영어와 강의중심의 MTI 교과과정을 전면 개편하여 국내훈련 5개월, 선교현장훈련 1개월 총 6개월간의 훈련과정을 이수키로 하고, 강사 총117명이 참여하여 총 110명이 이수하였다. 86) 당 회기에 4 회의 신임선교사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여 134명이 수료하였다. 87) 둘째, 선교사 인준 및 파송: 당 회기에 12회의 신임선교사심의와 인준을 위한 선교부 임원회를 열어 총회선교사 52가정, 91명을 인준하고 파송하여 88) 1996년 9월 현재 총회 선교사가 70개국에 363가정, 653명을 파송하였다. 이 중에 목사선교사 276가정, 남전도사 5가정, 연전도사 59가정, 남평신도 선교사 17가정, 여평신도 선교사 26가정이다. 셋째, 총회선교종합센타 부지기증 및 센타헌금: 총회 선교센타 대지 기증식을 1995년 4월 11일(화) 12시, 총회회관 임원실에서 총회장 (김덕신 목사), 총회서기 (김선호 목사), 총회선교부장 (김도빈 목사), 선교부임원, 선교센타추진 위원장 (최 훈 목사), 서기, 해선위 실행회장단, 동도교회 당회장 (홍성개 목사), 해선위 및 선교센타 추진위 상임총무 겸 총회선교국장 (강승삼 목사)이 참석한 가운데 천마산 기도원 부지 2,000평 기증식을 가지고 헌납동의서를 총회장에게 헌정 하였다. 89) 1995년 7월 10일 현재 총회선교종합 센타 후원금 총액은 선교사 임시숙소 전세금 4동외에 63,77,018원이었다. 90) 넷째, 선교지 순방지도: 당 회기에 선교부 임원들, 후원파송교회 대표들과 총회선교국장 등 16명이 1995년 4월26일-5월 5일간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즈스탄과 카작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던 총회선교사들의 83) Ibid., 121. 84) Ibid., 129. 이 조처는 총회선교사중에 한인교회를 주 사역으로 하는 자 중에 본 교단노회소속과 미주의 타교단 노회소속의 이중 으로 되어있는 자들과 또한 본 교단 해외노회의 총대로 파송받는 사례들 때문이었다. 85) Ibid., 131. 당시에 일각에서는 선교사재정도 총회재정부의 통제와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지론으로 인하여 선교사들과 후원 교회들이 크게 우려하여, 선교부와 해선위가 전체회의에서 선교사재정은 특별계정으로 하되 해선위 감사부와 총회감사부의 감독 하 에 두기로 하였던 것이다. 86) Ibid.,pp.182-188. 이전에는 MTI 원장이었던 손영준 박사(미 OPC소속선교사)가 책임을 맡아 많은 수고를 하였으나 단독으로 운영하여 총회선교정책시행에 차질을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87) Ibid.,pp173-174. 신임선교사 오리엔테이션은 MTI 과정 이수자로서 파송직전에 제반 총회선교정책과 팀 사역 및 협력사역과 총회의 선교철학과 방향을 지도하는 과정이다. 88) Ibid., 116-128, 135-137에 선교사들의 명단과 선교지역, 파송일자, 노회 및 후원교회의 정보를 참조하시라. 89) Ibid., 125. 90) Ibid., 181. 이것이 화성GMS선교센타 매입에 시초가되었으며, 상세한 후원금액은 회의록을 참조하시라. - 21 -
사역지를 순방 지도하고 지부를 조직하였다. 구 소련체제의 해체이후 종교 활동이 대체로 자유로운 분위 기어서 모슬렘의 영향이 아직 미치기 전에 선교인력의 집중투입과 대형 전도 집회 등을 통한 신속한 선교 활동의 전개를 요하고, 선교사 자녀교육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보고한바 있다. 91) 다섯째, 선교지부의 사역지도 및 재정감사: 총회선교부와 해선위 공동으로 필리핀지부 선교사역의 행 정지도와 재정 감사를 1995년 7월 5일-6일간 실시하였다: 첫째, 선교사 및 지부의 재정분야 감사를 천태곤, 정성희, 박영종 세분의 장로들이 2일간 실시한 결과를 요약 한다. 1 총회선교국 송금액과 개별후원금까지 입금되어 사역비가 매우 타당하고 정확하게 집행되었고, 2 대부 분의 선교사들이 사역비의 부족으로 생활비와 자녀교육비까지 전용하여 사역비로 사용하였고, 3 분기별 지부모 임에서 사역에 따른 재정보고를 받아 제도적 관리로 장부 기장과 세목별 증빙서가 잘 처리되었으며, 4 지적사 항은 개인별로 통지하거나 지시하였고, 5 기본선교비가 부족하여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한분 선교사에게 감사 위원이 도와주었으며, 6 사역비 회계장부는 3년간 보관토록 하고, 사생활비 장부는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지도 하였다. 92) 둘째, 지부의 행정지도(김도빈, 예종탁, 강승삼) 분야는 총회선교규정과 그에 따른 필리핀 지부운영 규칙과 세칙 중에서 4가지 세칙을 수정하도록 지도하였다. 즉, 먼저, 선교사 징계위원회 운영세칙을 선교사권징위원회 운영세칙으로 수정하고, 권징사항이 있을 경우 비밀문서화 하여 기록보관하고, 본부에도 국장친전으로 비밀문건 으로 송부하여 국장선에서 비밀을 보장하기로 하였다. 다음은, 견습선교사 언어훈련운영세칙은 파송받은 신임선 교사가 일정기간 언어학습을 가친후 언어시험에 합격하고 사역에 임할 수 있고 이를 타 지부에도 홍보하여 적용 하기로 하였다. 또한, 필리핀지부의 선교사임용세칙중에 지부지원절차가 본부와 상치 또는 중복되는 부분을 본 부에 맞추어 수정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평신도 선교사 또는 전도사선교사가 교회사역 할 때는 필히 지부가 정 해주는 목사선교사의 지도하에 사역하도록 할 것이다. 93) 여섯째, 선교지부 결성: 당 회기에 6개 지부를 결성하여 총 25개 지부가 결성되어 운용되고 있어 지 부중심의 협력과 팀 사역이 강화될 것이며, 본부와의 긴밀한 행정체제를 유지하고 선교지 정보와 선교사 관리 및 케어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을 기대한다. 앞으로 19개 지역에 미조직으로 남아있다. 94) 일곱째, 중남미 선교대회 및 선교전략회의를 1995년 7월 31일-8월 12일까지 브라질의 쌍파울로에 서 개최하였다. 대회장(선교부장) 김도빈 목사, 김의환 총장, 증경총회장 최기체 목사, 김동권 목사를 비롯 하여 해선위와 선교부원 23명, 선교사 47명, 95) 자녀 3명, 총 73명이 세계에서 함께 사역하는 선교사들 이라는 주제로 회집하여 주요현안들을 논의하였다. 주강사 김의환 박사 (한국 선교의 역사적 개관과 남미 선교전략), 김도빈 목사 (선교사역과 이상적인 휴식), 서성수 목사 (계속 승리하는 선교사)에 이어 11명의 선교사들이 일곱가지 주제를 발표하였다. 선교지 지도자 양성의 과제(송진윤), 지부의 과제 및 사업방향 계 획(김승만), 협력선교의 과제(김충일, 임한곤), 남미 선교의 미래지향적 과제(박동실), 남미 지역의 문서 및 방송선교(김영화, 임훈철), 교육기술선교(강두호, 임훈철), 최근 남미지역 종교의 조명(이기제, 하제식)이다. 이어서 강승삼 선교국장의 사회로 전체 주제들과 선교지역 상황에서 부각되고 있는 이슈들, 즉, 미전도 종 족 선교전략, 케톨릭 지역에 대한 선교전략, 중남미권 선교사 연합 친목 회의, 각 지역 신학교 운영전략, 선교사의 이중노회소속 문제, 신교지에서 부딪히는 신학적, 행정적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선언문을 채택하였는데 다음은 그 내용의 요약이다: 첫째, 브라질의 220여 종족 중에 130여 미전도종족에 대한 정보를 조속히 확보, 정리하여 그 곳에 알맞은 선교전략을 세울 것을 다짐하였고, 둘재, 주남미의 카톨릭은 한국에서 알고있는 카톨릭과 크게 다르므로 우선 연 구위원 (포어권의 김활수, 스페인어권의 임훈철)을 선정하여 연구보조비를 지원하고 96년 10월 선교사 년차 모 91) Ibid., 156.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중앙아시아 선교지역은 모슬렘 지향적이며 비자문제도 어려워지고 있다. 92) Ibid., 156-159. 지부 재정감사는 첫 번째였으며 당시 감사위원들에 의하면 대체로 양호하다는 평을 받았다. 93) Ibid., 158-159. 94) Ibid., 160-163. 95) 43명의 선교사는 브라질 17명, 파라과이 9명, 우루과이 1명, 볼리비아 6명, 페루 4명, 아르헨티나 6명 등이다 - 22 -
임에서 발표하기로 하였다. 셋째, 중남미권 선교사 연합과 친목을 위하여 96년 년차 모임의 장소, 일시, 방법 등 을 지부장 김충일 선교사에게 위임하였다. 넷째, 신학교는 1개 지부에 한 신하교운영 원칙을 합의하고 함께 연 합, 협력하기로 하였다. 다섯째, 선교사의 이중노회소속 문제는 총회결의에 따라 95년 5월까지 본인이 정리할 것이다. 여섯째, 카톨릭에서 개종한 새신자들에 대한 세례문제는 장로교의 헌법에 따라 준수하되 본인이 원할 경 우 잠기는 세례도 가하도록 결정하였다. 96) 일곱째, 중남미 상황에 아울리는 성경적이고 개혁주의 신학노선에 입 각한 교회헌법, 교회정치조례 및 교회행정 현안을 제정하기위한 선교사연구위원을 발족하기로 하였다. 97) 이 같은 선교전략회의에서 도출된 합의사항은 중남미 지역뿐만 아니라 지구촌 여러 선교 지역에서도 귀감이 될만한 것들이며, 총회선교정책들이 현장중심으로 건전하게 개발되고 있음을 동감 할 수 있다. 여덟째, 안식년 선교사 전략회의 및 수련회를 설악산 삼성콘도에서 67명이 1995년 6월 26일-29일까지 선교사의 영적, 지적 재충전, 문화적응 및 사역전략의 나눔, 선교정책의 바른 이해의 목적으로 모여서 13 가지의 중요현안들과 정책을 협의하고, 11가지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던바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98) : 첫째, 선교사의 자질향상을 위한 선교훈련 커리큘럼의계속적인 개발과 선교사선발기준을 강화한다. 둘째, 신 임선교사는 자신의 영성함양을 위한 경건의 훈련은 물론 현지인들과 효율적인 영적교제를 나누고 삶의 동화를 위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1-2년간은 현지언어, 문화, 역사, 관습 등 세계관연구와 지역연구에 우선적 과업으로 삼아야한다. 셋째, 선교사의 스트레스 해소와 영적치유를 위하여 성경적인 가치관 확립과 삶의 표현, 감정처리방 법,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제와 삶, 기도, 상호위로와 격려, 일정한 휴식을 도모하여야한다. 넷째, 선교사자녀들 의 바른 정체성도모와 믿음성장 및 교육을 위하여 본부에 선교사자녀과를 신설하고, 국내진학의 기회를 공관원 과 해외상사 주재원에 준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다섯째, 독신여성선교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며, 각자의 은사에 따라 같은 팀 사역자로서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여섯째, 선교사 연장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선교현장에서 혹은 안식년 때 영적, 지적, 사역기술적 재충전을 위하여 공식, 비 공식, 비형식적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한다. 일곱째, 현지교회 지도자들과 평신도들의 계속선장과 지도력개 발을 위하여 현지실정에 맞는 문서 및 방송사역 개발이 필요하다. 여덟째, 지상명령의 총체적 수행이 가능하도록 전교인의 선교동력화가 필요하며 기도기업인들의 선교적 헌신과 삶이 요구되며, 선교사역의 총체적 방법이 절실 히 요구된다. 99) 아홉째, 미전도종족 복음화를 위하여 본부에 미 전도종족선교 전문위원을 두어 지 교회에 입양 운동을 전개하고 미 전도종족전문선교사를 발굴하고 선교사의 중복배치가 있는 곳은 재배치전략을 펴게 할 것이 며, 각 지부에 미 전도종족분과위원을 두어 자료수집, 제공, 홍보하여 지역교회들이 기도할 수 있게 한다. 열 번 째, 선교를 원활히 수행하기위하여 팀 사역과 협력체제 원칙으로 하여 현지 교회, 교단, 타 선교사들과 협력토록 한다. 개척지역에는 가능하면 하나의 교단(회)를 세우도록 하되, 불가능할 경우 하나의 장로교단을 세우도록 노 력한다. 열한 번째, 본부와 각 지부들과의 원활한 정보교류를 위하여 각국 입국절차, 쟁활정보교환(???), 요리방 법 혹은 요리책자교환, 지부회의록 혹은 지부회보 교환 등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열두 번째, 본부에 안식년선 교사들을 위한 안내가이드, 죽, 안식관,자녀교육, 계속교육, 의료검진, 선교장비 다루는 기술습득 등의 종합안내서 를 만들어 줄 것 등이다. 이와 같이 안식년선교사들을 위한 회의와 수련회를 통해서 본부와 현장간의 정서적 간격이 좁혀 졌 으며 선교정책의 이해는 물론, 많은 현실적 선교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홉 번째, 미 전도종족 입양세미나를 1995년 6월 19일 서울대방교회, 20일 부산수영로 교회와 대구동신 교회, 21일 광주 서문교회 등 4개 지역에서 총 130명의 등록인원과 6명의 강사진들이 동원되었다. 100) 지 96) 중남미의 케톨릭 신자가 개종할 때 본인들에게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는 잠기는 세례를 원하므로 세례는 성부, 성 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세례의 형태보다 더 중요하므로 장로교 헌법을 원칙으로 하되 두가지 방법을 다 허락하였다. 97) 선언문은 전략회의 합의내용과 중복되므로 생략한다. 상세한 내용은 80회총회 보고서 pp.166-7을 참고하라. 98) 당시 발제한 선교사들은 김순태, 최희춘, 김화수, 김미옥, 최명희,정영수, 김신자, 배영선, 조국희, 강승삼, 안동기 등이다. Ibid., 167-172. 99) 총체적 선교방법이란 예수님의 Preaching, Teaching, Serving--Healing and Feeding 의 선교방법을 도입한 것으로서 대부 분의 2 3세계선교지는 이러한 총체적인 선교방법이 요구되나 유의할 것은 복음과 함께 그리고 상대방존중을 고려하여야 할것이다. 100) 미전도종족 입양세미나 주제와 강사는 노봉린: 미전도종족 입양개론, 한정국, 한남운: 미전도종족 입양절차 및 방법, 강대흥, - 23 -
역별 미 전도종족 입양세미나를 통해서 지 교회들이 이해하고 입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12종족이 입양되었다. 열 번째, 제2회 선교사 자녀 초청 하계수련회를 1995년 7월 10일-28일에 서울, 부산, 울산, 목포 등 지에서 연인원99명이 참여하였다. 101) 선교사자녀들이 민박과 군부대방문, 교회방문, 울산산업단지 방문, 한국의 명소 등을 방문하여 한국인 됨과 선교사부모에 대한 긍지를 심으며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선교사로서의 헌신에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열한 번째, 총회선교주일 성수 및 선교헌금 40노회 220교회에서 57,168,840원이 헌금되어 총회선교부 예산에 큰 도움이 되었다. 102) 6) 제80회기 (1995, 9-1996, 9) 총회선교부의 총회선교정책 개발 제80회기 총회선교부(부장 김국일 목사, 서기 김춘환 목사)는 1회의 전체회의, 2회의 실행위원회, 12 회의 임원회의를 가졌으며 80회 회기동안 신임선교사 52가정 89명을 인준 파송하여 총 409가정 740명 의 총회선교사가 75개국에서 복음선교를 하고 있다. 또한 MTI (이사장 김도빈 목사, 원장 강승삼 목사)는 1년간 제27회기 47명, 제28회기 72명의 이수자를 훈련시켜 배출하였다. 103) 총회해외선교위원회 이사회는 3회의 임원회의와 1회의 전체회의를 열어 선교사들과 본부의 여러 현 안들, 즉 선교사의 목회적 배려와 관리를 위하여 순회선교사제도, 선교사노후문제를 연구하기로 하였고, 선교사자녀담당 간사(김신자 선교사)와 선교연구원(이종도 박사)을 두고, MTI 공동숙소 마련을 위하여 1 천만원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선교센타추진위원회는 아파트 6동 104) 을 선교사 안식관으로 운영한 것은 또 한차원의 선교정책 개발의 전환점이 되었다. 제80회기 중요선교정책 사업시행 첫째, 제13회 총회선교부 서남아시아 선교대회 및 전략회의를 인도, 방글라데쉬, 파키스탄, 스리랑카 지역 선교사 22명과 선교부원 및 해선위원 22명 총 42명이 인도의 뱅갈에서 1996년 2월 14일-15일간 선교사들의 영적 재충전, 서남아시아 종교권 선교전략모색, 서남아시아에 선교사들이 설립한 교회들의 정 치행정적 구조의 통일모색, 협력선교의 방법강화, 선교지 정보교환과 친목도모, 선교현장 지도감사 및 선 교사재정 감사지도 등 다양한 목적수행을 위하여 개최하였다.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연구방법 (강승삼 선교국장)의 특강과 14분의 선교사들이 14가지의 주제를 105) 각각 발표하고 부각되는 선교현안들을 토론 한 결과를 합의된 선언문으로 요약한다: 첫째, 우리는 총회파송 선교사들의 지부운영에 서로 협력되지 못한 것을 스스로 주님앞에 회개하면서 앞으로 지부 중심으로 서로가 존경하고 협력하여 선교할 것을 재 다짐한다. 둘째, 우리는 한 지부 또는 한 국가간의 교 회제도를 하나로 할 것을 결의하고 이의 실현을 위하여 선교부의 지도아래 지부중심으로 조속히 추진한다. 셋째, 조용백: 미전도종족 입양사례 연구, 강승삼: 우리교회의 미전도종족 입양(선교) 어떻게 할 것인가? 101) 선교사자녀 수련회를 위하여 40교회이상이 민박, 차량, 식사, 항공료등의 후원을 하였다. 그 상세한 내역은 Ibid., 175-177을 참고하라. 102) 총회적 차원의 총회선교주일헌금은 금회기로 끝나고, 일괄적으로 총회주일 지키기로 총회가 결의 하였다. 103) 제81회 총회보고서 (1996, 9, 17 청주중앙교회당)의 선교부보고서 121-187. MTI는 실무책임자 김순태, 신갑철 원감의 관리하 에 국내훈련 18주간, 해외훈련 3주간을 공동체생활(Communal Living) 훈련으로 실시하였다. 104) Ibid., 182-3. 105) 주제발표한 선교사들은 정윤진, 이기섭, 서반석, 국병두, 로수길, 이득수, 최재영, 이웅재, 차수열, 권오덕, 이재국, 최명희, 이은 옥, 선우형식 등이였다. Ibid., 155. - 24 -
우리는 한국문화와 한국교회의 우월감을 버리고 현지문화와 현지교회를 존중하면서 말씀에 입각하여 건전한 교 회와 기독교문화를 창출하도록 노력한다. 넷째, 우리는 선교사윤리를 잘 지켜서 물질을 앞세운 선교를 배제하고 현지인을 위한 현지인에 의한 현지에 소속된 교회를 세우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다섯째, 우리는 현지에서 개혁주의 신앙노선에 입각한 초교파선교협력을 추구하되 현지인 교회지도자 육성에 있어서 총회와 지부가 인준 하는 현지신학교 출신들을 통하여 교회를 설립 목회하면서 하나의 교회체제를 공고히 한다. 여섯째, 우리는 21 세기의 범세계적인 선교운동인 미전도종족 선교중심의 방향으로 나아가며 그 지역의 지도자 육성을 위하여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일곱째, 우리는 서남아시아의 종교권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시크교)을 계속 연구분석하 여 전략적 선교를 하도록 상호정보교환을 독려한다. 여덟째, 우리는 신임선교사들의 언어훈련(2년정도)을 충실히 할 것을 독려하며, 최소한 매주 1회이상 각지역마다 기도회 를 통하여 상호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우며, 지부소속 선교사들이 지부중심으로 하나가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106) 둘째, 독립국가연합(CIS) 선교사협의회(회장 신윤섭 선교사) 선교대회가 우즈베키스탄공화국 타쉬켄 트시립 봉황수양관에서 117명의 선교사들과 6명의 초교파 강사진들이 후원하여 하나가되어 나아가자 (엡 4:13)는 주제로 모여 영적 재충전과 협력선교를 협의하였다. 이대회의 특징은 지역선교사들의 초교파 적 연합회의 성격과 강사들의 재정후원, 선교사들의 현안문제 토의 등이었다. 이때에 선교사들의 각 공화 국별 사역보고와 CIS 선교사연합회 총회가 있었는데 당시에 중요결정사항을 요약한다. 107) : 첫째, 예장총회선교국이 136쪽에 달하는 CIS 미전도종족 입양선교론을 제작 분배하고, 선교사들에게 지역리 서치방법론과 종족프로파일 만드는 방법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러시아정교회와의 정면충돌을 피하 고 비 성경적이지 않는 한 교회절기, 예배의식 등을 현지실천에 맞추어 실행함이 바람직함을 동감하였다. 셋째, 우즈베키스탄의 50여 가정의 선교사들이 금식하며 대회를 준비하였고, 단일 교단과 단일 연합신학교 설립운영 결의 하였다. 넷째, 선교사의 안전문제와 관련하여 위기관리대책이 구소련권 어디에서나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 섯째, 구소련권의 선교사 비자문제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계속연구하기로 하였다. 셋째, 세계복음주의협의회선교위원회(WEF MC) 주최로 영국 All Nations College에서 세계선교지도 자들 115명이 1996년 4월 5일-13일에 선교사 중도탈락 감소회의 를 가졌다. 선교사 첫 텀이내에 떠나 는 9가지 공통의 중요이유는 1정년은퇴 11% 2자녀문제 11% 3사역변경 9% 4건강문제 9% 5선교사 간의 마찰 6% 6후원재정부족 8% 7소명감결여 8% 8선교헌신도의 결여 7% 9선교정책의 부재 6%였 다. 한편 예장총회 선교사들의 지난 4년간 중도탈락 71명중에서10가지 중도탈락사유의 순위는 사역변경 28%, 선교부에 의한 면직(타 교단으로 이탈 5명포함) 14%, 정상은퇴 9.8%, 소명결여 7%, 사역중 소천 5.6%, 결혼이나 가정사정 4.2%, 개인의 내적문제 4.2%, 선교사간의 갈등 4.2%, 문화적응 부족 4.2%, 기 타원인 불명 11.2%로 집계 보고 되었으며, 중도탈락 감소 방지책이 5가지로 제안되었다. 첫째, 단기사역자들에 대한 장기사역에로의 전환을 격려함이 좋겠다. 둘째, 소명과 헌신도를 높이고 선교사 선 발기준을 더 높이기로 하였다. 셋째, 선임선교사들 중에서 선교사들을 위한 목회적 배려 차원에서 선교목사제도 를 조속히 시행한다. 넷째, 선교사의 가정생활과 결혼문제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다 다섯째, 선교지에서의 선교사 관리 지도와 계속교육 프로그램을 신속히 이행하여야한다. 108) 넷째, 1996년 7월 22일-26일에 미주 휘튼(Wheaton) 대학의 빌리그레함센타(Billy Graham Center)에서 제3차 세계한인선교대회가 109) 한인세계선교사 823명, 국내외 선교지도자 및 평신도지도자 106) Ibid., 155-7. 107) CIS지역에 720명 선교사중에 117명이 참석한 이대회를 위하여 총회선교부임원회에서 US$2,010 후원과 소련선교회, LA한인 등대교회,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 뉴욕장로교회 등이 재정지원을 하였다. Ibid., 162. 108) 선교사 중도탈락방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제81회총회보고서 159-161을 참고하시라. 109) 한인세계선교대회는 미주의 한인세계선교협의회(Korean World Missions Council, 초대사무총장 최일식 목사, 2대 사무총장 고석희 목사) 주최로 Wheaton College의 Billi Graham Center에서 1988년 제1차 1988년 8월에 시작하여 매 4년마다 개최되었는 -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