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인문정보학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과 정보기술의 융합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 구, 교육 활동을 폭넓게 지칭하는 말이다. 인문정보학은 디지털 인문학을 위한 기술적 방법론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디지털 인문학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 다. 1) I-1. 디지털 인문학과 인문정보학 인문정보학은 디지털 인문학의 연구와 교육에 쓰일 수 있는 정보처리 기술 을 연구하고, 그것의 효과적인 활용 방안을 실천적으로 모색한다. 인문학 교육 의 수단으로 정보기술을 가르치지 않으면 디지털 인문학 교육 이 될 수 없듯 이,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는 디지털 인문학 은 성립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인문학의 첫 단계인 디지털 문식(Digital Literacy) 증진 의 과정에서는 인문정보학과 디지털 인문학이 동일한 것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굳이 두 가지 이름의 차이점을 이야기하자면, 디지털 인문학은 전통적인 인문학의 연구를 디지털 환경에서 계승 발전시키려 하는 노력에 대한 포괄적인 이름이고, 인문정보학은 이를 위한 기술적 방법론의 탐구에 무게중심을 두는 도구적 학문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인문학은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기술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에 발 생했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인문학과 디지털 기술 사이의 거리가 무척 멀기 때 문에 그것을 좁히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래에 디지털 기 술의 활용이 일반화 되어 그 간극이 해소되면 디지털 인문학은 그냥 그 시대 의 인문학 또는 그것에 속하는 분과 학문의 이름으로 불릴지 모른다. 굳이 디 지털 이라는 수식어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인문정보학의 향방은 이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점쳐진다. 정보기술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은 그것의 응용 범위가 넓어진다는 이야기이고, 적용 영역에 따라 그 분야의 특수한 요구를 반영하는 맞춤 기술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인문학 연구의 1) 인문학적 지식을 연구자 및 그 연구 성과의 수요자가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지식정보 자원으로 전환 하고, 그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2차적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가상의 연구 공간을 만듦으로써 인문학의 연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그 성과의 사회적 확산을 용이하게 하는 것. 이를 위한 인문학 맞춤형 정보기술 연구를 인문정보학이라고 한다. (김현, 인문정보학의 모색, 북코리아, 2012. 12. p. 363) - 1 -
디지털 기술 의존도가 높아갈수록 인문학의 고유한 요구를 반영하는, 더 나아 가 역사, 철학, 문학 등 분과 학문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특수 목적 기술이 더 욱 강도 높게 요청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인문정보학은 인문과학의 여러 분 과 영역에서, 또는 제분과 학문 사이의 융합과 소통을 추구하는 영역에서 발생 하는 정보기술적 수요에 적정한 해법을 제공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디지털 기 술의 고도화와 더불어 그것이 인문학 연구에 소용되게 하려는 인문정보학적 연구는 더욱 심화되고 전문화되어 갈 것이다. 인문학이 주인인 디지털 인문학은 디지털 기술을 충분히 소화하여 더 힘있 는 인문학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문정보학은 인문학에 대한 존중과 이해 를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의 인문적 활용을 선도함으로써 같은 목표를 향해 봉 사하고자 한다. 이러한 목표 지향적 관점에서는 디지털 인문학과 인문정보학을 구별하여 볼 필요가 없다. 디지털 인문학을 돕는 정보기술 연구를 굳이 인문 정보학 이라고 지목하여 부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인문정보학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 연구하되, 그 목적을 디지털 기술 자체에 두지 않고, 인문학 활동에 봉사 하는 데 둔다고 하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어이다. 2) 정보기술을 인문학과 무 관한 타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인문학 연구에 도움을 주는 동반자로 인정하고, 그 활용을 실천적으로 모색하는 노력이 디지털 인문학의 발전할 위해 필요함 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I-2. 인문정보학이 추구하는 것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方 舟 ) 는 세상이 대홍수로 사라질 때 옛 세상에 속했던 동물들을 그곳에 태워 새 세상으로 이주시키는 역할을 했다. SF 영화나 소설 중에는 지구가 재앙을 맞아 사라지게 되었을 때 거대한 우주 선이 인류를 싣고 은하계 건너편의 새 지구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도 있다. 이 것은 신화나 소설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수십 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사이버 공간이라는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옛 세계에 속했던 많은 것이 그곳으로 옮겨 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책을 판매하는 서점도, 세계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백화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백과사전도 예전에 그것들이 있었던 실재 세계에 더 이상 2) 10여 년 전부터 나는 내가 수행하는 일과 그것을 위한 일련의 연구 개발을 인문정보학 이라는 이름 으로 불러왔다. 인문지식의 정보화 기술에 대한 연구라는 뜻이지만, 그 내면에는 인문학과 정보기술, 두 세계가 만나는 교차로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상호 교섭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 는 소망을 담아 지어낸 말이다. - 2 -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으로 이주해 간 것이다. 현재로서는 현실 세계의 일부분이, 그러나 미래에는 좀 더 많은 부분이 그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인류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만들고 쌓아온 유산들을 인류 문명의 새로운 거주 공간으로 이주시키기 위해 수많은 방주들이 건조되고, 짐 을 싣고, 닻을 올리고 있다. 인문정보학은 인문지식의 사이버 이주를 위한 방 주를 띄우는 일이다. 컴퓨터의 대중화가 시작된 20년 전부터 오늘까지 인문지식의 디지털화는 종 이에 적힌 글자를 디지털 코드로 전환하는, 문자의 디지털화 위주로 진행되었 다.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문자 검색이 가능해 진 것은 그 이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변화는 사이버 환경의 특성 에 충분히 적응한 모습으로 볼 수 없다. 앞으로 탐구해야 할 인문정보학의 과 제는 인문지식의 내용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더욱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되게 하는 요건들이다. 인문지식을 디지털 환경에 적응시키는 방법의 많은 부분은 정보과학이나 컴 퓨터공학 분야에서 이루어낸 기술적 성과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 술 요소들을 특정 분야의 인문지식에 적용하여 인문지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 분야 지식에 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그 일은 단순히 확정된 기술을 인문 분야에 도입하기만 하면 되 는 것이 아니라 인문지식의 내용과 특성에 따라 적용할 기술을 변경하고 발전 시키는 노력을 수반해야 하는 일이다. 3) 그렇다면, 인문지식을 배경으로 하는 연구자가 정보기술을 이해하고 응용하 는 것은 용이한 일인가? 중요한 사실은 정보기술 이 결코 정보기술 전문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문학 이 인문학 교수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같은 논리이다. 정보기술 분야의 전문 연 구자들은 현재 기술의 한계에 도전하여 더욱 발전된 새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한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진 기술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 운용의 주체가 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휴대폰 하나를 새로 장만해도 그 사용법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고, 카메라 하나 를 새로 사도 그것을 잘 쓰기 위한 공부가 필요한데, 인문지식을 디지털 콘텐 츠로 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것을 이루어내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학습 과 연구를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문정보학의 교육 프로그램은 인문지 식을 디지털 세계에 소통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선별하고, 인문 지식의 전문가가 그것들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하는 과정을 3) 김현, 인문콘텐츠를 위한 정보학 연구 추진 방향, 2003. 6. 인문콘텐츠 1-3 -
포함한다. 인문정보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21세기의 디지털 문명 속 에서 인문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문정보학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인문정보학이 가르치는 디지털 텍스트와 하이퍼미디어는 아날로 그 시대의 글쓰기와 책 출판을 대체할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문정보학을 독립된 전공이나 분과 학문으로 보기보다는 인문학의 학습과 연 구를 위한 기초 소양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한편 인문학 연구 분야 중에서도 방대한 사료 속 데이터의 분석이라든가 언 어 자원 처리, 지리 정보의 수집 분석 등 데이터 처리를 수반하는 연구에 관심 을 두는 사람은 학제 간 연구 또는 디지털 인문학 연구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좀 더 심화된 수준의 인문정보학 교육을 이수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한 국에서 이 분야의 연구 수준은 매우 취약하며, 연구 효율 제고를 위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인문학 연구 성과를 이용한 다양한 응용 연구, 디지털 환경에서 인문지식을 사회화 하는 지식 콘텐츠의 개발에 관심을 둔 사람은 문화콘텐츠학의 일환으 로, 또는 직접적으로 인문정보학을 전공으로 삼아 인문지식의 디지털 정보화 기술과 그것의 이론적 배경을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다. 이들은 사회에 진출 해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획 개발자, 공공 영역에서 지식 자원 의 사회적 수집 공유 활용을 촉진하는 정보 관리자, 디지털 인문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는 인문정보학 전문 연구자로서 활동하 게 될 것이다. 사이버 세계는 단순히 아날로그 신호가 디지털 신호로 전환된 세계가 아니 다.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했던 일이 그곳에서 가능해지기도 하고, 현실 세계에 서 지배적이었던 논리가 그곳에서는 아예 의미 없게 되기도 한다. 이주하려는 곳의 환경이 기존에 살던 곳과 전혀 다르다면, 그 다른 점을 수용하고, 새로운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문지식을 사이버 세계로 이주시 키는 인문정보학의 과업은 인문지식이 그곳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하는 일이 다. I-3. 인문정보학의 연구 주제 인문정보학은 인문지식의 정보화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탐구 주제로 삼 는다. 정보처리 기술 수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낮은 단계의 데이터 입출력 - 4 -
문제에서부터 정보과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구현에 이 르기까지, 거기에 인문지식이 결부되는 과제들은 모두 인문정보학의 과제일 수 있다. 따라서 인문정보학의 주제를 몇 가지로 한정하여 설명하기는 어렵겠지 만, 디지털 인문학의 도구라는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강구되어야 하는 주제들을 제한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디지털 인문학의 첫 단계는 디지털 문식(Digital Literacy), 즉 인문학 연구 자와 인문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증 진시키는 것이다. 월드와이드웹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의 보편적 인 이용으로 인해, 디지털로 표현되는 지식을 읽는 능력은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일반화 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디지털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 현하는 쓰기 (writing) 능력은 기성세대뿐 아니라 디지털 원어민이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도 읽기 (reading) 능력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 이 사실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쓰기 능력이란 곧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 능력을 말한다. 디지털 인문학을 위한 인문정보학의 과제는 인문학적 지식을 디지털 콘텐츠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 방법을 운용할 수 있는 능 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지식과 디지털 시대의 지식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고 하더라도 그것을 기술하고 표현하는 형태에 차이가 있다. 책, 논문 등의 저 작물에 담겨서 독자에게 제공되는 전통적인 인문학 지식은 그 미디어 내에서 독립적인 완결성을 추구한다. 저자는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지식을 모두 자신 의 저작물 안에 담으려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욕심을 부려서가 아니라 종이 책이라는 미디어 상에서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 권의 책에서 충분 한 지식을 얻지 못할 때, 다른 자원을 찾아서 보충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었다. - 5 -
전통 시대의 지식: 독립적이고 자기 완결적인 지식 디지털 시대의 지식 유통은 이와는 다른 형태를 추구한다. 인터넷상에서 유 통되는 디지털 저작물은 그 자체로 지식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지 식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는 있는 소통의 교점이기도 하다. 디지털 미디어 상 의 콘텐츠라도 아날로그 저작물을 그대로 복제한 경우에는 그와 같은 특성을 발견하기 힘들겠지만, 위키피디아의 기사처럼 처음부터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 어진 저작물은 그 텍스트를 읽다가 즉각적으로 다른 기사를 참조할 수 있게 하는 수많은 하이퍼링크 노드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관한 지식의 연계가 위키 백과와 같은 특정 콘텐츠 안에 국한되지 않고, 디지털 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있는 것이 우리가 미래의 지식 세계에 대해 거는 기대이 다. - 6 -
디지털 시대의 지식: 다른 지식으로 가는 길을 담고 있는 소통의 교점( 交 點, node) 인문정보학이 일차적으로 관심을 두는 과제는 인문학 연구자들로 하여금 자 신의 인문학 지식을 디지털 콘텐츠로 표현하고, 그것이 사이버 공간상에 펼쳐 지는 광대한 지식 세계에서 소통의 노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관심사를 가지고 탐구되는 인문정보학의 연구 주 제 몇 가지를 소개고자 한다. 첫째는 인문학적 지식을 디지털 미디어에 탑재하 여 사이버 공간에서 읽히고,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텍스트 편찬 기술, 두 번째는 읽고 이해하는 대상이었던 인문지식 콘텐츠를 보고 느끼는 감성 적 체험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인문지식의 시각화 기술, 세 번째는 월드와이드 웹 세계에 산재하는 인문지식 데이터가 단편적인 정보의 조각에 머물지 않고 맥락과 체계를 이루게 하는 시맨틱 웹 응용 기술, 그리고 네 번째는 백과사전 속의 인문지식과 아카이브의 실물 정보가 사이버 공간에서 하나의 지식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백과사전적 아카이브 구현 전략이다.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