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5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나는 이 짧은 강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 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응어리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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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4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지상중계 - 연초 직원 특별교육 연재?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라! 염창환 염창환 의원 원장, 대한비타민연구회 회장 1. 시작하는 글 1년 전 이맘 때 쯤, KBS 채널의 강연 100도씨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에게 출연 제의를 건넸 다. 예상 못했던 출연 제의였기에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취지가 물이 끓는 온도 100도씨처럼, 인생의 끓는 지점까지 치열하게 살아 온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투박 하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있다는 데서, 앞으로의 남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출연을 결심하였다. 사전 토의를 통해 내게 주어진 강연 주제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라! 아마도 내가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봐 오면서 다른 누구보다도 사람들의 마음 속 응어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것이라는 예상에서 선정 된 주제인 것 같다. 내 나이 이제 마흔 여섯. 사람의 마지막 순간인 죽음 을 이야기하기엔, 어쩌면 너무 젊은 나이일 수도 있다. 방송이나 강연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는 어쩌면 저렇게 젊은 사람이 죽음에 대해서 뭘 알아? 라고 생각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나이에 비등하게가 아니라, 완화의학 의사로서의 지난 18년을 돌이켜 본다면, 나는 수 천 명의 암 환자를 치료하고 이천 명이 넘는 환우들의 삶의 마지막을 함께 했었다. 그 긴 시간동안 의사가 아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깨달은 것이 참 많다고 한다면 오만일까?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께는 행여 조금이라도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수많은 죽 음을 마주하면서 내가 느낀 사람들의 삶의 마지막 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강연 중간에는 먼저 떠나간 환자들과의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가 눈시울이 붉어졌고, 청중들은 그런 나의 이야기에 함께 울어주었다. 24 2014 봄호

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5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나는 이 짧은 강연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 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응어리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근 이년 동안 성당 미사를 나가지 않은 냉담자로서의 생 활도 청산할 수 있었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 사소한 일로 적이 되며, 지극히 작은 것으로 인해 소모 되어 버리는 것. 그 모든 생각과 판단의 중심에는 항상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있었으며.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나지만, 반대로 남의 탓으로 돌 려 스스로 파멸로 갈 수 있는 사람도 나인 것이다. 강연 100도씨 방영 이후, 많은 곳으로부터 강연 의 뢰가 들어왔다. 그리고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라! 라 는 이야기로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속 응어리를 풀 수 있도록 돕는 전도사가 되었다. 오늘도 내 이야기를 통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마 음 속 응어리가 녹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2. 암 환자의 동행 주치의 의대 시절, 암환자를 보며 의문을 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생일날 부모님께서 주 신 슈바이처 전기를 읽으며 의사의 꿈을 품었다. 꿈이 사람을 이끌고 가듯, 전형적인 모범생 코스를 밟아 마 침내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의과대학에 입학한 친구들이 모두 나처럼 슈 바이처와 같은 의사를 꿈꾸며 이곳으로 진학한 줄 알 았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이 부모님의 권유나 미래 에 대한 보장 때문에 온 이가 많았다. 무엇보다 더욱 더 놀랍고 나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슈바이처 박사를 제국주의의 앞잡이로 표현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었다.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고 또한 견 디기 힘든 순간이었기에 본과 2학년 때까지 혼란 속 에서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1년 뒤, 본과 3학년 채플시간에 1주일의 신앙 강조 주간이 있었다. 그 때 국내외 의료봉사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의과대학 강의에서 자신들의 여러 경험담을 이야기해 주셨고, 그 중 한 분이 성가복지병원 원장이 신 민다미안 수녀님이었다. 외국에도 불쌍한 환자들과 치료해야할 환자들이 많지만, 우리나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젊은 의사들이 그 분들 을 생각하고, 여기 계신 많은 미래의 의료인들 중 몇 분은, 그분들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해주세요. 참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성가복지병원은 미아 3거 리에 있는 병원으로, 어린 시절 내가 편도선 수술도 받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런 병원이 무료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곳으로 바뀌어서 가난한 사람들, 행려자들 만을 진료하고 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 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본과 4학년 선택실습 으로 성가복지병원을 선택하게 되었고, 의사 국가고 시가 끝난 후 인턴으로 들어가기 전 2개월을 그곳에 서 보냈다. 그곳에서 나는 말기 암환자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 는 모습을 보았다. 당시만 해도 의사라는 직분의 테두 리 안에서 암은 치료하는 병으로만 알았을 뿐, 환자가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야 하는 병인 줄 은 몰랐다. 의과대학생들이 보는 교과서나, 교수님들 계간 감사 25

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6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지상중계 - 연초 직원 특별교육 연재? 은 암을 치료하는 방법만 알려주었고, 치료된다고만 배웠을 뿐, 이토록 환자가 힘들게 살다가 죽어간다는 것은 아무도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기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이들 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 고, 그로 인해 국내에는 예나 지금이나 호스피스 완화 의학에 관련된 과가 없기에, 가정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가정의학과 전공의 시절, 대부분 암환자들을 지켜 보며 진료했지만, 그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정 작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하였 다. 교과서에서는 통증 조절을 위해 충분한 양의 마약 성 진통제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나는 환자들에게 소 량만을 썼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참으라고만 강요 하 였다. 이 이상을 사용하게 되면, 마약 중독자가 되기 때 문에 더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참으셔야 합 니다. 환자들은 의사인 내 말을 듣고 아파도 참았고, 고통 스러워도 견뎌야 했다. 나는 도저히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가정의학과 교수님께 부탁을 드려 호주 플린더즈 의대 완화의학 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전공의가 수련과정중에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어쩌면 전무후무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렇게 떠난 호주에서의 3개월은 나에게 충격의 연속이 었고, 또한 나를 한층 더 성장하게 하였다. 호주의 암 환자들은 마약성 진통제를 우리나라보다 최소 10배에서 100배를 사용하여도 마약중독자가 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하게 된 후, 의사의 무 지 때문에 환자를 고통스럽게 보냈다는 생각이 내 머 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의사가 몰라 서 환자를 고통스럽게 보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 게 되었다. 암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되다 군의관으로 있을 때 결정적으로 내 삶을 바꾼 환자 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의무사령부에서 근무를 하였고, 일과 후에는 간혹 환자들을 위해 가정 방문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명의 말기 난소암 환자를 만났 다. 그녀는 복수가 차는 증상이 심각했다. 더군다나 차오르는 복수 양상이 물이 아닌, 젤리 형태라 복수를 한 번 빼내려면 의사 한 명이 오로지 붙어서 하루 종 일 빼야만 했다. 일반 병원에서는 다른 환자들까지 진 료를 해야 하니 한명의 환자한테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할애하기 쉽지 않았고,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들은 이 환자에게 다른 병원으로 가라 하거나 오지 말라고 하 였다. 나는 수녀님의 부탁으로 다른 동료 의사와 교대로 이 환자의 집을 방문하여 복수를 뽑아주었다. 한번에 5리터를 주사기로 뽑고 나면 환자는 1주일동안 편안 해 하였다. 당시에 환자는 앞으로 3개월밖에 더 살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이 후 5년이나 더 살다가 평화로운 마지막을 맞았다. 5년의 시간 동안 나와 환 자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염 선생님, 암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무 엇인지 아세요? 환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치료 과정 동안 함께 해주는 의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26 2014 봄호

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7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모든 환자의 마음은 다 같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는 항암 치료를 하는 대학병원 의사도 중요하지만 치료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관리해 주는 의사도 못지않게 중요하고, 암이 완치가 되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해 주는 의사 역시 필요하다. 환자가 내게 해줬던 마지막 그 한마디, 나는 그 말 을 듣고 내가 앞으로 의료인으로서 갈 길을 정하게 되 었다. 모든 환자의 마음은 다 같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 는 항암 치료를 하는 대학병원 의사도 중요하지만 치 료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관리해 주는 의사도 못지않게 중요하고, 암이 완치가 되면 재발을 방지하 기 위해 관리해 주는 의사 역시 필요하다. 또한 만약 암 치료가 실패하게 되면 더 이상 쓸 수 있는 치료법 이 없다 한들, 환자가 죽을 때까지 통증 조절과 증상 관리를 해주는 의사가 필요하다. 즉 환자의 상태와 상 황에 맞게 통증 조절과 항암치료를 잘 받게 하기 위한 영양 관리 그리고 심리적인 안정을 위한 상담까지, 그 모든 것을 전문적으로 관리 해주는 의사가 되기로 마 음먹은 것이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18년, 수많은 암 환자들의 항 암 동행 주치의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내가 만난 이 들의 아주 특별한 마지막이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 이며, 우리들이 풀어야 할 응어리인지도 모른다. 3. 내가 만난 이들의 아주 특별한 마지막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 7년 전, 의대 제자의 아버지가 간암 말기로 입원했 다. 어느 날 아버지가 상담을 청해서 이야길 들어보 니,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아들 결혼을 미룬 것이 너 무 후회된다며 아들 결혼하는 것을 꼭 보고 눈을 감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폐에 암이 전이된 상태라 조금만 걸어도 숨을 쉬기 어려웠다. 비록 가족들과의 상의 끝에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지만, 말기 암 환자에 겐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결혼식 당일, 산소통과 응급장비 그리고 구급차까 지 만반의 준비와 대기를 시키고 결혼식을 진행했다. 아들 부부는 아버지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영상편지 를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펑펑 눈물을 흘렸고, 또한 많은 하객들이 함께 울었다. 결혼식은 무사히 끝났지 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아 직도 내게 했던 그 분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교수님, 저 잘했죠? 지금 아주 기쁘고 행복합니다.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만약 자신의 병으로 인해 자식의 혼사가 진척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환자 본인에겐 아주 큰 고통이었을 텐데, 자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떠나는 아버지의 마 지막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 보였다. 엄마, 미안해. 내가 태어나서 미안하고, 먼저 가서 미안해. 의대생 시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40대의 피부암 환자.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잘못된 길로 빠져 경찰서와 교도소를 수없이 드나들다 가족 들과도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이어진 노숙자 생활 중 피부암에 걸렸고, 이미 전신까지 퍼진 상태라 더 이상 치료조차 어려웠다. 그런 상태로 성가병원에 입원한 계간 감사 27

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8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지상중계 - 연초 직원 특별교육 연재? 그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2, 3개월이 었다. 그런 그에게도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응어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죽기 전에 부모님 을 한번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다. 그때 까지 하염없이 아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 그의 부모님은 예전 그 집, 그 대로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고, 때문에 쉽 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부모는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 왔고, 수십 년 만에 만난 부모와 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물리적인 거 리 이전에 가슴으로 서로를 찾았다는 감사함과 기쁨 속에서 부모님이 병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아들을 돌 봤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은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그 리고 마지막 순간, 평생 가슴에 묻었던 말을 어머니께 고백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태어나서 미안하고 먼 저 가서 미안하고, 다 미안해. 이윽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마치 갓 난 아기 때의 평온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의 마지막은 환자에게도 그리고 환자의 가 족에게도 중요하다. 마지막 순간은 반드시 화해의 장 이 되어야 한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응어리 를 다 풀고, 세상을 떠난다면 그건 영원한 이별이 아 닌,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아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여보. 고마웠고, 사랑했어 우리 아기 잘 부탁해. 운명은 때론 참 가혹하다는 걸 느끼게 한 어떤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영어 학원 에서 처음 만나 2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 하였 다. 그리고 결혼 2년 만에 아내가 임신을 하였다. 유달 리 입덧이 심해, 그냥 유별난 아이인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면 곧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그 고통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 았다. 결국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그 녀에게 내려진 진단은 위암 말기. 시한부 6개월의 삶 이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온 가장 불행한 사건 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밝은 모습으로 투병생활을 했고,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아 내 곁을 지켰다. 그 애틋한 남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병세 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지만, 그런 남편이 있기에 아 내는 자신의 분신, 사랑하는 아이를 두고도 조금이나 마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의식을 잃어가는 새벽, 남편은 눈물로 밤을 지 새웠고, 아내는 남편에게 고맙다, 행복했다, 사랑한 다. 그리고 아기를 잘 부탁한다. 는 말을 반복하며 숨 을 거뒀다. 우리가 만약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떠올리게 될까. 28 2014 봄호

024-029지상중계2(염창환) 2014.5.19 5:52 PM 페이지29 mac001 Adobe PDF 2438DPI 175LPI T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 부부를 보면서 평생에 있어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이 생의 마지막 순 간을 곁에서 함께하며 지켜준다면 누구라도 행복하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게 다 당신 탓이야 그런가 하면 죽는 순간까지 남편을 원망하다 떠난 아내도 있다. 자신을 쫓아다니던 남편과 결혼한 아내, 하지만 연애 시절 모든 걸 다해주겠다던 남편은 막상 결혼 후엔 무책임한 사람으로 180도 변했다. 치열한 생활전선에서 힘들게 살던 아내는 결국 이 른 나이, 사십 대에 덜컥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내가 저 사람만 안 만났더라면 이런 병에 안 걸렸을 거야. 저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을 망쳤어. 라는 말로 죽는 순간까지 남편을 원망하다 세상을 떠났다. 분명 그 둘 사이에도 행복한 순간이 단 한번은 있었을 텐데, 그런 추억도 다 부인한 채 아내는 후회와 원망 을 품은 채 외로운 마지막을 택했다. 4. 마지막에 다 버릴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고, 많은 사람들은 암에 걸 린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어느 누구에게 언제 다가올지 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런 순간이 앞에 왔을 때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던 사람은 남은 시간을 허 둥지둥하다 결국은 다 내려놓지 못하고 힘들게 세상 을 떠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모든 사람들은 살아있 는 동안 자신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 각을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소중한 걸 모두 다 적어본 다. 그리고 그걸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언제가 될지 모 를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서 준비해 보는 것이다. 그 중 어느 것 하나에라도 어떠한 응어리가 남아있다 면 우리는 그것을 꼭 풀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마음의 응어리이 기 때문이다. 그 응어리가 어떤 이에겐 자식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겐 욕심이나 미련일 수도 있고,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대하면서 깨달은 것은, 그 응어리가 무엇이던 간에 모든 것을 다 풀고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은 참 평온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5. 마치는 글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매일 같이 죽어가는 사람들 을 보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론 힘들고 우울할 때도 많이 있다. 매일같이 인사 하고 만나던 환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그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환자와 또한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돈으로 살 수도, 얻을 수도 없는 귀한 것들을 배웠다. 바로 단 한 사람 도 제외 없이 모든 이들이 자신의 마음 속 응어리를 풀어야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채, 빈손으로 가볍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 마음 속에도 한 쪽 구석에 뭉쳐있던 무엇인가 떠오르셨나요? 혹은 가슴 속 응어리가 짚이시나요? 수년 간 묵은 자신 혹은 타 인에 대한 화 덩어리가 뭉쳐져 응어리져 있지는 않은 지요.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도록 지금 부터 하나하나 풀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정말 찰나에 찾아오는 우리들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소중한 삶이 될 테니 까요. 계간 감사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