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하느님과 함께 함께 하는 하는 우리들의 우리들의 살아있는 살아있는 이야기 이야기 제21호 2008 /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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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담화문- 세계 이민의 날 새 세상, 새 인간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제94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이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이민들 가운데 에서도 특히 젊은이들을 생각하시며 그들에 대해 우리 신앙인 모두가 함께 생각 하고 적절히 처신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그 가운데에서도 결혼 이민자는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고,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는 자녀들도 그만큼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취학 연령에 이르러 유치 원이나 어린이집에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에서 공부하고 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이민의 날을 맞이해서 교황님께서 특별히 마음에 두 신 젊은이들이 우리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중소속>의 현실에서 옵니다. 이들은 한 편으로 부모 모두나 한 쪽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 간직해야 하고, 다른 편으로는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익혀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 마가 외국인일 경우 가정에서 한국말을 익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 가고 그 이후에도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밟을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되 지만, 많은 경우에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그렇게 해서 한국 문 화에 적응해 간다 해도, 그들에게는 자신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엄마의 전통 문 화를 익혀야 하는 과제가 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중소속의 문제는 그들에게 큰 도전입니다. 그런데 이중소속의 문제는 이른바 다문화가정 출신의 젊은이들에게만 있는 것 이 아닙니다. 연구나 공부만을 목적으로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로 가는 이 36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들, 교황님께서 이번에 함께 언급하신 유학생들에게도 있는 어려움입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는 이른바 선진국을 향해서 가장 많은 수의 유학생을 보내는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이 분야를 생각하면, 이중소속의 어려움은 바로 우리 자신의 문 제임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한 예로 미국 유학생 가운데 한국의 젊은이 수가 세계 어떤 나라 출신보다도 많은 가운데, 거기 따른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본인들의 어려움뿐 아니라 자녀 의 교육을 위해서 치르는 부모의 큰 희생, 때로는 그 과정에서 가정이 깨어지는 일까지 벌어지는 현실 등, 자기 나라를 떠나 전통과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새로 운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익히는 과정에 얼마나 큰 장애와 위험이 따르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이민뿐 아니라 유학 분야에서도 우리나라는 떠나 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나라이기도 해서, 점점 많은 외국의 젊은이 들이 공부와 연구를 위해서 우리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외국과의 교역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예외적으로만 있었던 우리나라 가 거대한 세력으로 밀려오는 세계화의 큰 흐름을 타고 밀어닥치는 이런 변화 앞 에서 때로는 당황스럽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지만, 하느님의 시선으로 멀리 보 면 이것은 창조주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향해 가는 변화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창조주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형제자매요, 온 땅은 이들이 함 께 잘 살도록 그분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인류 공동의 재산임은 우리 믿음의 중 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는 이런 믿음이 더 이상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진리가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물질과 정신의 재화를 나누어 빈부의 격차를 줄 이고, 행복과 불행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떠안을 때만, 앞으로의 세 상은 유지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갈되는 에너지, 점점 더러워지는 환경,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계기로 하는 갈등,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의 이익 과 기회의 충돌 등, 지금 인간이 대면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어느 하나도 해결할 2008년 여름호 37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수가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거기에 따른 무서운 결과는 모두가 감당하지 않 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해지고,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상 대방을 위해 진정으로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서로 사랑하라 는 주님의 지상 명령은 이제 종교적 의미를 넘어 온 인류가 자신의 생 존을 위해서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세계화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고, 이제부터의 과제는 우리가 이것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또 창조주께서 뜻하시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눈을 다시 돌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 혹은 다문화 가정 출신 젊은이들을 잘 양성하면, 이들은 온 세상 사람들을 한 형제자매로 받 아들여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세상, 참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우리 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나 젊은이 자신, 가정, 학교, 자원봉사자, 교회 등이 이 어려운 도전 앞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 간다면, 그것이 어려운 만큼 보람과 희망 도 클 것입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창조주 하느님을 모든 인류의 아버지로 믿는 우리 신앙인들이 그 믿음을 실제의 삶에서 실천하여 인종과 문화의 차이에 상관 없이 모두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대하며 적절한 도움을 준다면, 우 리는 온 세상을 작은 동네로, 모든 사람들을 한 가족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새로운 세상, 신인류의 선봉대 역할을 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 (2베드 3,13). 2008년 4월 27일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38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현장 진단 전주교구 이주사목의 현황과 전망 송년홍 타대오 신부 (이주사목 담당) 1. 이주사목 현황 전주교구 이주사목은 2002년 익산 성 요셉 노동자의 집 에서 필리핀 노동자 를 대상으로 영어미사를 봉헌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로 전주 가톨릭센터와 군 산 소룡동 성당에서 영어미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주민들을 위한 교회의 노력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특히 올해 교구장 사목교서 내가 나 그네였을 때 를 통해서 전교구민의 관심을 결혼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그리고 기타 외국인에 대한 조직적이고 다양한 사목적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전주교구 이주사목에는 전북이주사목센터와 전주다문화가정지원센터, 무지개 작은 도서관, 익산 성 요셉 노동자의 집, 군산 소룡동 성당 필리핀 공동 체, 장수 성당 필리핀 공동체가 활동하고 있다. 2008년 여름호 39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1) 전북이주사목센터 2008년 3월 27일 가톨릭센터 2층에 문을 연 전북이주사목센터(대표 송년홍 신부)는 이방인이셨던 예수님의 뜻을 따라 우리 주위에 차별과 소외의 그늘에 있 는 결혼이민자,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과 그 자녀들의 인권보호 및 지위 향 상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고, 영어미사와 피정 등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과 영성 생활을 돌보고 있다. 이주사목센터는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난 4월 27일 제94차 이민의 날 행사를 교구청 마당에서 치르고 나 서 확고하게 이주사목센터의 기능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결혼이 민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실을 수요일과 금요일에 운영하고 있으며, 결혼이 민자 상담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에 관한 상담을 해주고 있고, 매주 주일 오후 2시에 영어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전북이주사목센터는 이주사목위원회와 봉사자들과 함께 각 지역 공동체들을 하나로 엮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각 공동체들을 지원하고 후원해주는 센터 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 각국 공동체를 형성하며, 그 대표자들의 모임과 전주교구 내 이주민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2) 전주 : 다문화가정지원센터와 무지개작은도서관 다문화가정지원센터는 선너머종합사회복지관 안에 사회복지 공동 모금회의 지원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다. 전주와 완산지역에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들이 주 로 참석하고 있다. 매주일 문화프로그램, 상담프로그램, 한국어 교실, 체험 행사 등을 통해서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의 문화와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 다. 주로 필리핀 여성들이 모이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전북이주사목센터에서 주 일 미사 후에 진행되고 있다. 무지개작은도서관은 전주 동산동 성당 앞에 있는 도서관으로 출발은 결혼이민 자를 위한 한국어 교실(무지개어학당)이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7~8명의 이 40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민여성들이 모여서 한국어 교실을 시작했고, 그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이나 방과 후 학교를 연구하던 중 소외지역 사업에 선정되어 전주시 1호 작은 도서관을 개 관하게 되었다. 무지개작은도서관은 지역민뿐만 아니라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들 이 언제든지 와서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고, 자녀들에겐 독서프로그램과 문화프로 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 저녁 7시에는 작은음악회를 열어 여러 장르의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문화공연과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3) 익산 : 성 요셉 노동자의 집 이곳엔 주로 익산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결혼이민자들이 모여서 활 동하고 있다. 매주일 영어미사에 약 6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고 토요일과 주일 오후에 한국어 교실을 하고 있다. 익산 노동자의 집엔 무료진료시설인 성모클리 닉이 매주일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 운영되고 있다. 익산시 의사회, 약사회, 한의사회 그리고 익산 신자들로 구성된 루카회에서 의사와 한의사들이 돌아가면 서 진료를 해주고 있다. 매월 1 3주는 양방, 2 4주는 한방진료가 이루어지고 있고, 2 4주에는 전북대학교병원에서 치과진료를 해주고 있다. 익산 노동자의 집에선 노동자의 집 성격상 노동자들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 고 있다. 임금체불, 체류허가 문제, 산업재해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보호와 그들의 권리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익산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 중의 주목할 만한 것은 필리핀 농구대회이다. 필리핀 공동체에서 농구대회를 준비하고 주관하면서 해마다 6월 초순부터 8월 하순까지 풀리그로 진행된다. 많게는 10팀 이상이 출전을 해서 그들의 축제로 대 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올해는 6월 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주간 진행된다. 4) 군산 : 소룡동 필리핀 공동체 소룡동 성당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1시 30분에 영어미사를 드리고 있는 필리 핀 공동체는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들이 모인다. 3년 전부터 본당신부님의 2008년 여름호 41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다문화 가족 일치와 나눔 한마당 축제중 이병호 주교와 이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활짝 웃고 있다. 관심으로 미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아직은 사무실도 없고 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지만 성가대와 그들만의 농구대회를 통해서 서로의 우정을 다지고 있 다. 그리고 봉사자들이 바뀌면서 그들을 위해서 일해 줄 사람들이 없었지만 5월 부터는 본당 사회복지분과에서 그들을 위해서 일해 주고, 소룡동 성당이 신축되 면 필리핀 공동체를 위한 공간도 마련될 것이다. 또 매월 마지막 주일엔 필리핀 신부님이 오셔서 고백성사와 영성 상담을 해주고 있다. 5) 장수 성당 필리핀 공동체 장수에는 전국에서 가장 잘 된다고 하는 결혼이민자지원센터가 있다. 장수지 역에 시집온 필리핀 여성들이 매월 네 번째 주일 오후 2시에 모여서 영어미사를 드리고, 미사 후에는 한국어 교실이나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나눈다. 장수라 는 지역이 워낙 넓어서 미사에 참석하는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자녀들이 많아 서 미사에 나오는 엄마들보다 아이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따라서 봉사자가 확보 되면 자녀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 42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2. 이주사목의 전망과 발전 방향 2008년 교구장 사목교서 내가 나그네였을 때 에 따라서 전주교구 이주사목 의 발전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주사목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크게 세 가지로 나 누어서 정리해 본다. 1) 이민들의 복음화 먼저 전북이주사목센터가 문을 열어서 이민들을 위한 사목활동의 토대가 마련 되었다. 하지만 아직 정착의 단계에 있는 이주사목센터가 더 많은 이민들을 위해 서 활동하기 위해선 각국 공동체의 형성과 그들을 위한 담당 사제가 있어야 하 고, 가능하다면 그들을 담당할 외국인 신부가 있다면 다양한 측면에서 그들에게 사목적 배려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영성생활을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되거나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영어미사뿐 아니라 성경나누 기, 고백성사, 피정 등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뒤돌아보고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각 본당에서 이들을 위한 작 은 배려, 예를 들면 예비자 교리, 가정 방문, 반모임 참석 등이 센터와 본당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 다문화의 복음화 2008년 3월 말 현재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백십만 명이다. 이 중 50 만명이 산업연수나 고용허가제 등을 통해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 자들이고, 11만명이 국제결혼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결혼이민자이 다. 전주교구 내에는 2월말 기준 4,307명의 여성결혼이민자가 살고 있다. 그리 고 그들의 국적도 매우 다양하다. 우선적으로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문화만을 강조하거나 그들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잘 조화를 이루어 다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노력을 해 2008년 여름호 43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함께 미사 안에서 다양한 전례 를 통해서 다문화 안에서 복음화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주사목의 활성화를 위해선 각 지역의 공동체 형성이다. 전주, 익산, 군산, 장 수뿐만 아니라 전주교구 내 다른 지역에도 우선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공동체를 조직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신자들이 많은 필리핀 공동체를 중심으로, 시골지역 에 많이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 캄보디아 여성들 그리고 그밖의 지역에서 온 여성들을 중심으로 각국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들 공동체간의 자조모임을 도와주 고 배려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 공동체간의 상호 관계 형성을 위해선 대표자 들의 모임이나 연석회의, 리더쉽 프로그램,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한 친교행사 등 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해 줄 봉사자와 통역 자원을 확보하고 그들을 교육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결혼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 은 인권보호를 위한 노력이다. 결혼이민자의 경우 농촌지역에 살고 있다 보니 법 률적 혜택이나 그들의 권리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 특히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작업장에서 산업재해나 임금체불, 체류문제 등과 같은 노동문제에서 많 은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인권보호시스템, 예를 들면 법 률서비스, 인권상담실 운영 등을 통해서 그들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해주어야 한 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일요일만 쉬는 관계로 의료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없 을 때가 빈번하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 지금 익산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의료서비스를 확대하여, 전주와 군산에서도 이루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토요일 오후 또는 일요일 오후에 무료진료소가 의사와 한의사, 약사와 간호사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그들에게 보다 좋은 건강과 산업재해의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44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3) 다문화가정의 복음화 결혼이민자들이 꾸린 가 정을 위한 노력은 단순히 소 위 다문화가정을 위한 노력 으로만 볼 수 없다. 한국사 회의 가정문제와 함께 접근 해야 할 것이다. 가정의 평 화와 행복을 위해선 부부 다문화 가족 일치와 나눔 한마당행사중 이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서로의 대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결혼이민자들의 한국어 교육은 필수 과정이다. 그들에게 말하는 수준 이상의 전문적인 한국어 교육을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 부의 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교회 안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그들도 참석할 수 있 도록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남편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남편이 아내 의 문화나 언어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들을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 청소년을 위한 노력과 함께 이루 어져야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 중에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이 많 다. 그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당의 주일 학교에서 그들과 함께 주일학교가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신앙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이미 진학한 자녀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학 교 공부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이나 방과 후 학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교육이다. 엄마 가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이 역시 한국말이 서툴다. 따라서 엄마가 아이와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2008년 여름호 45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현장 체험 이주민, 너 가 아닌 우리로 전보근 안드레아 신부 (우전 성당 보좌) 우리 교구는 2000년부터 해마다 군복무를 마친 신학생들에게 6-7개월 정도 필리핀 어학연수의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2000년에 교구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습니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은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눈 뜨게 해 주었습니 다. 어학연수도 연수였지만, 다른 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도 만나 대화도 나누 고, 또 새로운 문화들을 체험할 수 있었던 매우 값진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리핀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였습니 다. 낯선 이국땅에서 거의 반벙어리, 귀머거리로 살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 필리 핀 친구들은 아버지, 어머니이자 선생님이며 소중한 친구들이었습니다. 길 안내 는 물론 버스 타는 법, 물건 사는 법, 식사 시간, 필리핀의 기본예절 등 많은 도움 을 주었고, 필리핀의 여러 명소를 차례로 안내해 주며 필리핀의 문화를 가르쳐 주었으며 각자의 시간을 쪼개어 제 영어 선생님이 되어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 46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습니다. 또 절친한 친구가 되어주어 외롭던 저의 타국 생활을 즐거움과 재미로 가득 채워 주곤 하였습니다. 언어 연수를 마치고 필리핀을 떠나오면서 많은 필리핀 친구들에게 일일이 고 맙다는 말은 못했지만,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했었습니다. 그 후 신학교에 복학하고 5년 뒤에 부제품을 받은 저는 군산 소룡동의 본당 신 부님이신 이명재 신부님께서 필리핀 이주민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계신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께 부제 복사라도 하면서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신부님께서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매 주일 필리핀 이주민 미사 때 부제 복사를 서면서 그들과의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1월에 사제서품을 받은 저는 군산 소룡동에서 필리핀 친구들과 함께 첫 미사를 봉헌하는 특별한 은혜도 받았습니다. 숲정이 성당과 평화동 성당 보좌 신부로 재임하면서 한 달에 두 번은 군산 소 룡동을 방문해 필리핀 친구들과 함께 미사 봉헌도 하고 필리핀 친구들 또래의 본 당 청년들을 데리고 군산을 방문해, 모두 다 함께 농구시합도 하면서 친교를 나 누기도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매사를 즐겁고 긍정적으로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매달 첫 번째 주일에만 필리핀 친구들을 만나고 그 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있지만, 저는 필리핀 친구들에게 도움을 준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타국 땅에서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가면서도 주일에는 기쁜 마음으로 성가대 봉사, 전례봉사 등을 하 고, 미사 후에는 다과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표정,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 으로 바라보는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 - 저 또한 그동안 쌓인 피로 를 한껏 풀고, 또 마음 속 근심을 시원하게 털어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 2008년 여름호 47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니다. 그동안 저는 성직자로서 필리핀 친구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해 왔지만, 그것 밖 에는 제가 그 친구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 들과 만나서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함께 웃고 즐기고 어울리는 것 이 전부였습니다. 처음에 봉사를 시작했을 때는 무언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 을 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동정을 받아야하는 대상(너)이 아닌,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우리 가 된 것입 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처럼, 필리핀 친구들이 자신들에 대한 제 마 음을 알아주고 있고, 또 저도 조금이나마 그 친구들을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서로 통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동정의 마음 보단 함께 한다는 자세가 중요 필리핀 이주민들을 위해서 인적 자원(언어봉사자, 의료봉사자 등), 물적 자원 등 여러 가지 조직적인 지원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적이고 인적, 물질적 지원 안에서도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을 돕겠다는 동정의 마음보다는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애정의 마음과 그들을 친구 로 여기는 마음이 우선해야 바람직한 지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조건 도와주겠다는 마음은 우리들을 자칫하면 도움을 받는 쪽 위에 군림하는 수직적 관계가 성립될 위험성이 매우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피부색은 다르고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하느님의 형제, 자매로 동등하게 만날 때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를 먼저 알아가는 것,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 사랑의 시작입니다. 48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현장속으로-군산지구 이주사목 봉사 손짓, 몸짓 속 한 형제 자매 실감 군산지구 이주사목의 구심점인 군산 소룡동 성당(주임=이명재 신부), 매주 일 요일 오후 1시경이 되면 이곳에는 외국인 근로자와 유학생, 필리핀 아가씨들, 아 기를 품에 안은 국제결혼 여성 등으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가무스름한 피부에 남 루한 복장, 어딘지 쓸쓸함이 배어있는 그들에게서 이방인의 체취가 짙게 묻어온 다. 언어도 다르고 음식과 모든 문화가 다른 먼 타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는 겪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한때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였지만 이제는 빈곤한 국가로 몰락한 필리핀의 국민들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몰려온다. 군산지구의 이주민들을 위한 영어미사가 시작된 것은 3년 전이다. 군산의 여 성 쉼터인 성가정의 집 을 운영하던 필리핀 출신 리따 수녀(착한 목자 수녀회) 는 군산 산북동에 있는 아메리카 타운의 접객업소에서 일하는 필리핀 아가씨들 2007년 성탄 전야제 2008년 여름호 49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20세 전후의 꽃다운 나이에 이역만리 먼 타 국에서 미군병사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혼의 위로였고, 그래서 2005년 5월에 아메리카 타운 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신자 집에서 필리핀 외방 전교회 장지천 신부 집전 으로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날 미사에는 필리핀 여성 30 여 명과 착한 목자 수녀회 수녀들, 지곡 성당 빈첸시오 회원들이 참례하여 이국 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국의 신부가 모국어 인 따갈로그어로 집전한 미사는 아가씨들을 감동시켰고, 눈물을 흘리며 숙연해 진 그들의 모습이 애처로웠다고 그 당시 참석자들이 회고한다. 필리핀 공동체미사 차량봉사로 시작 필리핀 여성들을 위한 미사를 계기로 리따 수녀는 소룡동 성당 이명재 신부에 게 이들을 위한 미사 요청을 하게 되었다. 필리핀 사목 경험이 있어 누구보다도 외국생활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알고 있는 이 신부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이 신부는 이들이 자주 모여 서로 위로하며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고 생각 하고 매주일 오후 1시 30분에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메 리카 타운 여성들을 위해 마련되었지만, 차츰 근로자들과 군산대 유학생들 그리 고 국제 결혼한 사람들로 구성원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초창기부터 매주 차량봉사를 담당해 온 지곡 빈첸시오 회원들은 이주민들에게는 너무 고마운 사 람들이다. 주일에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쉴 틈도 없이 외국인 미사를 위해 차량을 운행 하고 간식을 마련하는 봉사자들. 파티를 좋아하는 필리핀 공동체이기에 미사 후 에는 파티를 꼭 열어주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봉사에 앞장서 온 김영수(레오, 지 곡동) 형제는 일하다 보면 간식비 등 돈이 호주머니에서 막 빠져나가지요 라며 허허 웃음 짓는다.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만 그들의 외로운 모습이 공동 50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체 안에서 기쁨으로 변할 때 자신도 흐뭇해지고 보 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처 음에는 미사의 전례와 성 가도 우리 신자가 담당하 였지만, 현재는 이주민들 스스로가 전례와 성가대를 구성하여 미사의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필리 이주민들이 참여한 농구대회를 마치고 핀 성가대는 아름다운 화음과 경쾌한 기타 반주가 돋보인다. 이들을 위해 매주 영어 미사를 봉헌하느라 진땀을 흘린 이명재 신부는 작년 초 전보근 신부가 함께하고 황규진 신부와 필리핀 윌리 신부가 가세하여 네 분의 사 제가 돌아가며 매주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정이 쑥쑥 또한 올 4월부터는 교구 이주사목센터의 간식 보조도 받게 되었고 앞으로 소 룡동 성당 사회복지분과가 중심이 되어 이주민 봉사를 전담하게 되는 등 체계를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레오 형제는 지난 3년 동안 이주민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기억 들을 되새긴다. 지난 해 본당 성탄잔치에 찬조출연해서 공연을 해 준 미아 자매 는 봉사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하며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마침 지곡 성당의 성탄절 공연 요청에 그녀는 흔쾌히 응하고 그날 필리핀 그룹 사운드와 함께 열정적인 노래와 춤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필리핀 유학 생 헨리씨는 봉사자 자녀들과 주말에 영어로 대화하며 놀이와 산책을 하는 등 자 녀들이 자연스럽게 외국인을 사귀고 영어를 배울 기회를 준 고마운 형제였다. 레 2008년 여름호 51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오 형제는 필리핀 형제들과 지곡동 신자들과의 농구대회 추억도 잊을 수 없다고 들려준다. 필리핀 형제들은 농구 대회를 앞두고 매일 모여 연습을 하고 유니폼도 똑같이 맞춰 입는 등 열성을 보였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이웃이 있기에 그들은 이 렇게 신바람 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오고 가는 따뜻한 시선 속에 사랑이 자라 필리핀 공동체는 지난 3년 동안 부단히 하나 됨을 지향하며 노력해 왔다. 그리 고 이 일들은 나그네를 따뜻이 맞이하고 보살펴 온 군산지구 이주사목의 결실이 기도 하다. 지난 5월 4일(주일)에 소룡동 성당은 외국인 미사 3주년을 맞아서 자 축행사를 가졌다. 모처럼 본당 신자들과 필리핀 공동체가 함께 주일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린 것이다. 두 공동체는 지난 3년의 가파른 세월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는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필리핀 윌리 신부는 축사에서 외국인을 이웃으로 배려하고 사랑을 베풀어 준 전주교구에 감사드린다. 고 고마움을 전하였다. 미사 후 신부님들과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자르며 환하게 웃음 짓는 그들의 표정 에서 어둠이 물러가고 움터오는 희망의 빛을 발견하였다. 글 신현숙 프란체스카 오안라 안나 52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나의 적응담 열심히 배우고 일하며 공허감 향수병 몰아내 죠날린 내가 대학 공부를 중단했을 때가 열아홉 살이었다. 4년의 전 과정을 마치는 것 이 나의 꿈이었지만 단지 3년의 과정만을 마쳤을 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는 것 은 앞으로의 내 삶을 발전시키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유일한 보물이었지 만,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4년 과정을 마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나 를 외국으로 보낼 결심을 하셨다.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먼저 묻지 않고 모든 것 을 결정하셨다. 부모님께서 대학을 그만두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모에게서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모는 내 가 한국에 쉽게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이었다. 한 달을 기다린 후에야 우리 가족은 이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을 받 았을 때, 난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꿈을 위해 희생이 필요한 것일까? 다른 이들과 달리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가진 것이 행 운인가? 때때로 나는 부모님이 후회되거나 그들로 인해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 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든 좋 아하지 않든 부모님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호 53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망설여졌다. 되돌리 고 싶었고 나의 감정들을 부모님께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모든 것들이 내가 해야 할 것들이었고 동생들을 생각해야 했다. 나는 좋은 일을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모든 서류들을 제출한 후 거의 6개월을 기다려서야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비자를 받은 즉시 이모에게 연락했고 이모께서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주었다. 출발시간은 다가왔지만 나는 여전히 혼란스 러웠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부모님께 저 떠날게요. 라고 말할 수 있었다. 부모 님께서 나를 안아주실 때 울고 싶었지만, 행복하고 즐겁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아직 부모님과 떨어져 살 준비가 되지 않았고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야 실컷 울 수 있었고 공허감이 느껴졌다. 한국어 교실서 말하기 쓰기 배우기 열중 한국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9시였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여기가 한국 인 것은 사실이었다. 꿈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내 뺨을 때려보고 나서야 정말 한 국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모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2주를 쉬고 나서 일을 시작했다. 그 회사는 이모 댁에서 가까운 곳에 있어 좋았다. 그러 나 한국인들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어 그곳에서는 두 달밖에 일하지 못했다. 내가 일을 그만둔 후 이모는 나를 불러 한국어 교실에 등록시켰다. 매주 토요일에 노 동자의 집에서 공부하고 주 중에는 이모 가게에서 일을 돕게 되었다. 한국어 알 파벳(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천천히 읽는 것과 쓰는 것도 시작했다. 지난 12월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한국어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어서 일하는 것이 조금 쉬워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긴 문장은 어렵다. 만약 내 직장 동료들이 말하는 것을 내가 이해할 수 없으면, 같은 직장의 다른 필리핀 사람을 부른다. 현재로서는 한국음식 먹는 것도 배우고 있다. 나는 매운 음식을 54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좋아하지 않지만 한 국 사람들은 매운 음 식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별 히 김치를, 내가 한국에서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과 잡 이주민들이 한국어 교실서 공부하고 있다. 채이다. 특별히 새로운 한국 친구들과 필리핀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과 함께 즐기 려 노력하고 있고 때때로 소주와 데킬라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또한 밤새 춤을 추기도 한다. 솔직히 이런 것들은 여기 한국에서만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필리 핀에서는 알코올을 마셔본 적이 없었으니까. 여기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있지 만 파티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공허감이 찾아오곤 한다. 나는 가족들, 친구들 그 리고 내 남자친구 등이 정말로 그리워서 거의 매일 밤을 울며 보냈다. 월급 모아 동생들 학비로 보태줘 보람 지금은 내가 가족들을 도와주고 그들에게 내 월급을 보내준다. 동생들의 학비 를 보태주고 있지만 또한 나를 위해 모으고도 있다. 필리핀으로 돌아간 후 여전 히 대학과정을 마치기를 원하고 내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 다. 이주 노동자로서의 나의 작은 경험을 즐겁게 읽어주길 바라며, 또한 다음 기회 에 더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번역 : 김호철 치릴로(익산 성요셉 노동자의 집 사무국장) 2008년 여름호 55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나의 적응담 천천히, 조금씩, 한국인이 되다! 메리사 큘라리오 저의 이름은 메리사 큘라리오입니다. 하지만 우리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친 구들은 밀렛 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1978년 10월 15일 필리핀 타쿰시에서 태어 났습니다. 한국에서의 결혼은 7년차가 되어 갑니다. 춤, 노래, 소풍 그리고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애교 많은 새색시랍니다. 지금부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저는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세 명의 남동생과 필리핀에서 살았습니다. 부모님 은 부자도, 가난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행복했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친절 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것이 제가 부모님을 존경하는 이유이 고,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저는 행복합니다. 제가 아버지와 처음으로 떨어져 있게 된 일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아버지가 마닐라에 가는 것을 계획한 때였습니다. 마닐라는 필리핀의 수도입니다. 우리 가족이 있었던 곳은 다바오인데 아버지가 계시는 마 닐라까지는 배 타고 2박 3일, 비행기로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아버지가 마닐라에 가신 후 한 달이 지나서 아버지는 편지와 선물을 보내주셨 56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습니다. 편지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내용이었고, 특별하게도 밀렛 저를 보고 싶 어 하셨습니다. 엄마는 그 편지를 너무 행복하게 읽으셨고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예전부 터 알고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엄마,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8개월 후에 엄마랑 저는 마닐라에 계시는 아버지를 보러 갔습니다. 언니는 초 등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에 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엄마와 저의 깜짝 방문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저는 마닐라에서 초등학교 3학년 중반까지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이번에는 사 우디아라비아에 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외할머니 집으로 돌아가 야 했습니다. 새로운 학교생활과 친구들과의 사귐이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 나 다행히도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고 좋아해줘서 나의 타굼에서의 학교생활은 안정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섯 명의 착하고 예쁜 친구들과 친하게 사귀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매일 매일 만나서 장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장래에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생각이 성숙해지고 이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내 미래의 남편은 키가 크고 얼굴이 잘생긴 사람이 이상형 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생긴 남자 친구를 사귀는 것을 친구들이 몹시 부러했 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고등학교 생활 중에 동생도 생겼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서로 다른 대학에서 공부했고 일 년, 사 년, 육 년 이 지나서 저는 백화점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친구들도 또 다른 일을 하고 있 었습니다. 그때 언니는 한국 사람과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2000년 일본에서 일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나 의 꿈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언니는 저의 꿈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다른 나라에 취업하러 보내지 말고 한국 사람을 소개 받기를 강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언니는 한국생활이 외로워서 서로 의지하며 살기를 원 2008년 여름호 57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 사람과 결 혼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3개월 후에 언니는 한국 사람을 소개해 주러 우리 집에 데리고 왔 습니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었던 그 사람은 바로 지금의 제 남편이 되었습니다. 저는 남편 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나이는 많고, 너무 마른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었습니다. 3일 만에 필리핀에서 결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런 딸과 함께 혼식을 했습니다. 제 남편은 십여 일 후에 한국으로 돌아갔고, 저는 마닐라에서 한국으로 가기 위한 서류를 한 달 동안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걱정이 되었 습니다. 기후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고, 낯선 문화도 두려웠습니다. 얼굴도 모르던 남편과 만나 3일 만에 결혼 2001년 9월 20일경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 했을 때, 남편이 마중 나와 행복한 얼굴로 맞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 무나 어색했습니다. 왜냐하면 필리핀에서의 짧은 만남이 전부여서 남편이 어렵 고 서먹서먹했답니다. 저는 장수에 도착해서 남편의 가족들을 소개 받았고, 이튿날 남편 친구들 모임 에 나가 따뜻한 환대도 받았습니다. 언니도 만나 보았습니다. 보고 싶었던 친언 니 마리셀을 만나 기뻤습니다. 처음 두 달 동안 저는 매일같이 울었습니다. 필리 핀으로 돌아가고도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한국에서 내가 처음으로 만든 필리핀식 생선찌개가 생선국이 되었다고 투정부리고, 굶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남편이 일을 나간 뒤 시부모님도 계시지 않는 집에 혼자 남아 있으려니 외로웠습니다. 동네 사람들과도 말이 통하지 않아 집 밖에 나가기도 두려웠습니 다. 나에게 말을 하라고 할까봐 겁이 났습니다. 또 두 명의 언니가 있어도 다른 58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동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 볼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들이 있습니다. 2001년 1월 26일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결혼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크고 소중한 경험이었습 니다. 제 결혼식 날은 필리핀에서 보지 못한 함박눈이 내려서 손님이 많이 오지 못해 쓸쓸한 분위기일까 걱정했었는데, 예상외로 많은 축하 손님들이 오셔서 성 대한 결혼식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기쁘고 행복합니다. 필리핀에선 볼 수 없는 함박눈이 결혼식 축복 그리고 이 년 후, 2003년 3월 31일, 예쁜 첫 아이 해인이가 태어났습니다. 우 리 부부는 드디어 엄마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 남편 친구들은 우리 부부에게 축 하의 꽃다발과 축하한다고 내일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주위에 아기를 같이 키 워 줄 시부모님, 부모님도 계시지 않아서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해인이가 8개월이 되었을 때, 영어 학원에서 교사로 취직하게 되었지만 주위 에 아기를 봐 줄 사람이 없어서 항상 등에 업고 다녀야 했습니다. 처음에 남편이 반대했지만, 필리핀에 계시는 부모님을 도와 드리고 싶었고, 혼자 버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힘들었지만 기쁘게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자 차차 자부심 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년 후인, 2005년 5월 6일, 둘째 딸 지윤이를 낳았습니다. 지윤이는 저희 친정어머니를 많이 닮아서 필리핀에 계시는 부모님이 몹시 좋아하셨습니 다. 나의 학원 강사 생활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올해 3월,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그것은 장수교육청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채용되어 수남 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상하신 교장, 교감 선생님과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선생님들이 좋았고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에 발령받아, 수남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큰 딸 해인이와 같이 출퇴근 할 수 있어서 더욱더 좋습니다. 2008년 여름호 59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사실 지금도 가끔은 웁니다. 아플 때, 좋은 일 있어서 자랑하고 싶을 때, 그리 고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 또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매일매일 보여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워 눈물이 납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습니다. 지금은 온누리안 엄마들을 위한 장수군 교육청에 서 운영하는 한국어 교실 과 민들레 에서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며 남편은 가끔씩 미안해 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한국음식도 친언 니 마리셀에게 배워서 남편이 좋아하는 육개장과 김치찌개를 곧잘 끓여주면, 남 편이 맛있어 칭찬해 줍니다. 아껴주고 기다려주는 남편에 감사할 뿐 나는 이런 순간이 행복합니다. 처음에 우리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으로 인해 불 편하고 인내심을 필요로 했지만, 외국인 아내인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기다려 준 남편 덕분에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 람은 아니지만, 마음이 정말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과 예쁘고 똑똑한 딸들이 있어 서 행복하답니다. 올해 12월에는 제 고향인 필리핀에 가서 작은 가게를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 습니다. 어렸을 적 슈퍼마켓 주인이 되고 싶었던 제 꿈을 조금씩 이루어 가고 있 는 중입니다. 지금은 우리 가족과 함께한다는 설렘에 작지만 행복을 느낍니다. 앞으로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해서 아이들 뒷바라지도 해 주고 지금 이대로 변함 없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뒤늦게 사랑하게 되었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 이 있는 제2의 모국, 한국에서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습니 다. 저는 이제 필리핀도 한국도 똑같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도, 내 자 리도, 내 생각도, 이젠 한국인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겁니다. 60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이주여성 결혼 가정 이야기 한국에서 가족을 잘 살아 입니다. 걱정 없습니다. 다 가족을 나쁜것 아닙니다. 남편하고 참 사랑 받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입니다. 우리 남편 좋은 사람 참 사랑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쁜 딸 나왔습니다! 행복 합니다!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저는 에벨린 씨페입니다. 28살입니다. 필리핀에서 왔습니다. 결혼한 사람입 니다. 한국 사람이 결혼 했습니다. 이름은 박청목 입니다. 38살입니다. 딸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박 섬희 입니다. 3살입니다. 신랑은 직업은 GM 대우 군산 공장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4년 됐습니다. 제 직업은 군산 종 합 사외 복지관 영어 강사 입니다. 제 직업은 어려 워요, 학생들 집에로 수업 한 시간씩 한다고요. 저 에벨린 씨페 가족 는 집에로 항상 늦게 와요. 집에서 왔습면 우리 가 족 다 같이 밥 먹어하고 우리 딸도 좀 같이 놀다. 한국에서 너무 좋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어 너무 어려워요. 한국 말 못하면 한국에서 못 살아요 그래서 목요 일 마다 가건무에서 한글 배우하고 있습니다. 그래고 저는 필리핀 엄마께서 보고 이 글은 문맥, 맞춤법등이 안맞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있으나 이주 결혼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표현이 보다 정감 어려 문장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2008년 여름호 61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싶으면 전화 한다고요 아니면 필리핀 언니들 만나고하요. 저는 4년 결혼 했어요 그러지만 남편은 한 번도 때려고 아닙니다. 우리 신랑은 진자 좋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남편한테 사랑했습니다. 좋은 남편 그리고 좋은 아빠입니다. 2004년 5월14일 필리핀에서 결혼 했어요.저는 2004년07월17일 한국에서 왔 어요. 하지만 제가 3개월 동안 왔어요 필리핀 엄마 전화 왔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아빠 때문에 돌아갔셔습니다!!! 저는 필리핀 집에 가고 싶습니다 근대 못가십니 다.2005년04월17일 한국에서 우리 다시 결혼했습니다. 한국 왔어 너무 고맙다 고요 시가족을 때문에 마음은 좋아습니다. 미룡동 성당 다녀 있어 행복 했어요 하지만 미사 한국말 못 아랬어요. 리타 소녀님 만났어. 그리고 리타 소녀님 소룡 성당 베니딕신부님 한태 이야 어 외국인 많이 있어요 영어 미사 있으면 좋아요. 그래서 일요일 마다 영어 미사 있어요...필리핀, 한국, 미국 community. 2008 년05월04일 영어 미사 3년축하 기념일입니다. 3년 전에 시어머님 간암 병 있어요. 병원에서 누구 보라건 사람 없습니다. 그 래서 저 보고 했습니다. 한국 말 잘 못했습니다 의사님 뭣은 이야기 있으면 그냥 몰라 합니다. 너무 속상해요 시어머님 돌아갔어요! 지금은 시아버님 우리 집에 같이 살았어요. 우리 시아버님 마음이 참 좋아해요. 저는 필리핀 가고 싶으 면 아버님께서 저는 필리핀에서 보내주요. 필리핀에서 다 가족을 만나고 하고 엄 마는 너무 보고 싶었어 만나고 우리 딸 도 만나고 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1년 1번 간다고 했습니다.한국에서 가족을 잘 살아 입니다. 걱정 없습니다. 다 가족 을 나쁜고 아닙니다. 남편하고 참 사랑 받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족이입니 다. 우리 남편 좋은 사람 참 사랑 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쁜 딸 나왔습 니다! 행복 합니다! 우리는 돈이 없지만 괜찮습니다! 필요한은 만 우리들 건강한 합니 다... 하나님 께서 우리 가족 축복 받았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가족을 오래 오래 같이 살 아요 바랍니다. 한국 사람들 도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들 반갑습니다 62 쌍백합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도내 결혼이민자가족 지원 유관기관 기관명 전주출입국관리사무소 대한법률구조공단 전주지부 한국가정법률 상담소 전주지부 전주종합고용지원센터 전라북도 교육청 전북지방 경찰청 주 소 전주시 덕진구 호성동1가 산 27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1276-24 한경빌딩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1가 727-59 전주시 덕진구 태평로 79 전주시 덕진구 진북로 11 전주시 완산구 서진로 101 전화번호 245-6161~4 251-4034 244-2930 270-9100 270-8212 280-8276 도내 결혼 이민자가족 지원센터 단체명 전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정읍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김제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장수군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연락처 243-0333 530-7355 545-8506 352-3362 단체명 익산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남원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완주군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연락처 850-6046 625-5610 278-3631 도내 지역 보건소 시군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 정읍시 남원시 김제시 완주군 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임실군 순창군 고창군 부안군 주 소 완산구 고사동 1가 431-1 나운동 153-8 신동 142-8 수성동 958-2 조산동 455 신풍동 88-2 삼례읍 신금리 416-6 진안읍 군상리 90-15 무주읍 당산리 701 장수읍 장수리 425 임실읍 갈마리 278 순창읍 가남리 541-1 고창읍 덕산리 209-1 부안읍 봉덕리 551-2 전화번호 281-2725 463-1364 850-4611 533-8581 620-6802 547-4000 291-2408 433-2583 322-2202 351-8000 640-3114 650-1550 564-2227 584-1261 2008년 여름호 63
특집-이주사목의 현황과 향후 방향 도내 결혼이민자가족 지원 행정기관 기관명 전라북도 군산시 정읍시 김제시 진안군 장수군 순창군 부안군 부서명 전화번호 국제협력과 280-2815 여성정책과 450-4342 사회여성과 530-7355 복지사업과 540-3442 주민생활지원과 430-2342 민원복지과 350-2341 주민생활지원과 650-1443 사회복지과 580-4408 기관명 부서명 전주시 시민협력과 익산시 가정복지팀 남원시 복지과 완주군 주민생활지원과 무주군 주민복지과 임실군 주민복지과 고창군 사회복지과 전화번호 281-5032 859-5335 620-6212 240-4194 320-2346 640-2342 560-2341 긴급 전화번호 구분 여성긴급전화 화재/구급/구조신고 범죄신고 응급질병 병원안내 보건복지콜센터 전화번호 1366, 1577-1366 119 112 1339 129 구분 법률구조상담 성폭력상담 성매매/학교폭력 아동학대 인권침해신고센터 전화번호 132 02-3515-0113 117 1391 031-478-5100 일상생활에 필요한 전화번호 구분 전화번호 안내 전화번호 114 수신자부담 시외전화 1541 전화고장신고 110 통역서비스 1644-0644 시 도 민원신고센터 120 64 쌍백합 구분 국민건강보험상담 국민건강보험상담 (외국인 전용) 수도고장신고 전기고장신고 전화번호 1577-1000 02-3270-9161 02-3270-9338 121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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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 공소 이야기 진안 어은동 공소 숨어서 지핀 신앙의 불씨 곳곳으로 활활 타올라 98 쌍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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