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면 증면 36호 2007년 3월 24일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 지피는 www.counterfire.or.kr 국제주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다함께 의 주간신문 <맞불> / 발행인 김인식 /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사서함 1243 우)110-612 / 전화 02)2271-2395 / 팩스 02)2271-2396 / atgmail@nate.com 양극화 비정규직 확대 공공서비스 파괴 2007년 정치 전망과 진보진영의 과제 4~5면 한미FTA 중단하라 한미FTA 체결이 임박한 듯하 이 폭로되기도 했 비위반 제 미국 협상 대표인 웬디 커틀 소는 FTA 협정을 위반하지 않 러는 이달 말까지는 합의에 이 더라도 상대 국가의 정책 때문에 를 것으로 믿는다 고 말했 자국 기업이 기대하는 이익 을 차베스와 21세기 사회주의 - 왜 차베스인가? 9면 일본 맑스주의자가 말하는 위안부 문제 11면 자본주의의 대안은 있는가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 옛 소련과 사회주의 6,7,8면 그러나 한미FTA 반대 목소 얻지 못했다고 판단되면 국가가 리는 더욱 커지고 있 <문화일 나서서 일방적으로 소송을 제기 를 밟고 가야 할 것 이라고 목소 통합 신당을 만들 수 있다고 말 보>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 할 수 있는 제도 리를 높였고, 실용주의자 를 자 했는데,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 처하는 정동영마저 마이너스 FTA 필요성을 설파하고 다닌 자 FTA 라며 체결을 미뤄야 한다 와 정당을 같이하겠다는 것은 일 고 주장했 관되게 한미FTA를 반대하지는 면, 한미FTA 찬성(44.2퍼센트) 과 반대(43.7퍼센트)가 팽팽하 비위반 제소 특히 우리 나라의 입장이 충 분히 반영될 때까지는 체결해서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세계무 FTA 반대 의견을 밝힌 천정배 는 안 된다 는 의견이 74.6퍼센 역기구(WTO) 지적재산권 분야 는 [김근태 정동영과] 함께 공 따라서 한미FTA 반대 운동은 트나 됐 한미FTA가 필요하다 에서 이 조항을 도입하려다가 대 동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싶 뒤늦게 한미FTA 반대로 돌아서는 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당수도 지 다수 나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실 한 자리에 모여 이 문제를 협의 듯한 정치인들이 말로 끝나지 않 금처럼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의 패한 바 있 하고자 한다 고 말하기도 했 고 책임을 지도록 그들이 대중 동 견을 나타낸 것이 기대하는 이익 이라는 모호 한미FTA 반대 운동은 주류 정 노무현 정부 4년, 여성의 삶 - 보육 정책 평가 2면 통쾌한 정치적 승리를 거둔 3 17 반전행동 않겠다는 뜻이 3면 원 강화의 도구로 봉사하는 것을 노무현 정부가 보수 언론과 한 한 규정이 포함된 비위반 제소가 치권의 이러한 분열을 이용해 대 나라당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 FTA 조항에 반영된다면, 예를 들 중 동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 며 국민들의 눈과 귀와 입을 틀 어 뼈조각이 든 쇠고기를 반송하 그와 동시에, 민주노동당 김형 의 모순적 의식도 한미FTA 반 어막고 사활적으로 추진해 온 한 는 조처도 제소 대상이 될 수 있 탁 대변인의 말처럼 주류 정치인 대 운동에 과제를 제시하고 있 미FTA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 한미FTA의 공식 의제가 아니라 들의 그러한 발언이 대선을 앞 MBC 라디오의 여론조사를 은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고 한미 양국 정부가 밝히고 있는 둔 면피용이 아닌지 의구심을 보면, 53.7퍼센트가 한미FTA가 한미FTA의 갖가지 독소 조항들 광우병 쇠고기 등이 사후에 제소 버리지 말아야 한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 이 폭로되면서 부정적 여론은 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거부하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대중 김근태는 얼마 전까지 한미 하고, 74.9퍼센트가 양극화 등의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자 여 FTA를 앞장서 추진하는 열우당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생각 최근에는 투자자-국가 소송 권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아 의 의장이었 천정배는 한미 하면서도 이들이 모두 한미FTA 제 와 비슷하지만 더욱 해악적인 지고 있 김근태는 3월 말까 FTA에 공동 대응하자는 기자회 에 반대하지는 않았 비위반 제소 에 합의했다는 것 지 협상을 타결할 생각이라면 나 견 자리에서 손학규와 함께 대 >> 2면으로 이어짐 한미FTA 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 3월 25일(일) 오후 3시 서울시청 앞 광장 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http://nofta.or.kr 한 www counterfire or kr 욱 높아지고 있 값 800원 <맞불> 온라인 기사 3 17 국제반전행동 보고 지난 3월 17일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공동 반전 행동의 생생한 소식을 전한다 사 회 연 대 전 략 은 의 원 단 사업에서도 빼야 한다 노동자 책임론 양보론일 뿐인 사회연대전략 이 다행히 민주노동당 사 업 계 획 에 서 빠 졌 그 러 나 의원단 사업 계획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새로운 기사들이 수시로 업데이트됩니다
2 2007년 3월 24일 노무현 정부 4년,여성의 삶 인용해도 될까요? 부시는 더 이상 원칙 의 정치인 이 아니 그는 북한 핵에 사실상 굴복한 셈 작금의 미국의 태도는 무책임하게 여겨질 정도 우리를 은근히 약오르게 한다 - <조선일보> 김대중 부시 대통령은 우리들의 희망을 배신한 것이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직후 탈북자를 백악 관으로 초청하여 만난 것은 순전히 쇼였던가? -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 정창인 북한이 개방으로 나올 수 있는 기 회라면 북미수교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 평화체제 구축도 반대 하지 않는 남북 정상회담도 필요 하다고 생각한 - 한나라당 정형근의 기회주의 기회주의적이고 눈치나 보는 보수 성향의 의원들이 앞장서서 한나 라당 대북정책의 급진적 변화를 주 장하고 있 - 정형근이 못마땅한 한나라당 김용갑 정권 비판자들도 미국과 FTA를 하겠다는 노 대통령 말이 진심이었 음을 인정해 줄 때가 됐 아무 리 정권이 못마땅해도, FTA만큼은 노 대통령을 믿고 힘을 실어 줘 국 익 극대화를 도모할 국면이 됐 - <조선일보> 경제부장 박정훈 한미FTA 반대 시위를 취재하던 기자들을 경찰이 무더기로 폭행한 것은 언론의 자유를 짓밟은 야만적 폭거 - <조선일보> 기자까지 폭행당하자 분노한 한나라당 세상 어디에도 1년 만에 세금을 2 배, 3배로 올리는 정부는 없 동 학혁명의 원인을 제공했던 고부군 수 조병갑이 아마 이랬을 것이 - 보잘것없는 보유세 인상에 난리치는 <조선일보> 보육 정책 - 요람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둘째 낳으십시오. 낳기만 하 면 노무현이가 키워 드리겠습니 4년 전 노무현은 이렇게 큰소 리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저출산 고령화 가 사회적 문 제라며 호들갑을 떠는 동안 노 동자들은 끔찍한 보육 전쟁 을 치러야 했 한국여성개발원의 3월 7일 발 표를 보면, 직업이 있는 여성이 하루에 자녀 돌보기에 쓰는 시 간은 무려 8시간 40분이(전 업주부 여성은 13시간 20분) 직장 보육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5백인 이상 대규 모 사업장의 84퍼센트가 설치 보육 예산은 늘었지만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은 줄었다 의무를 외면한 데다(2006년 1 월 노동부 발표) 밤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어린이집이 없어 여성 노동자들은 퇴근 시간만 되면 발을 동동 구른 이 때문에 출 산 후 퇴직한 여성 10명 중 7명 은 퇴직 사유로 육아 어려움 을 꼽았다(2005년 노동부). 육아휴직 급여는 올해 50만 원으로 올랐지만 전체 가구의 월평균 자녀양육비 1백32만 원 (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경제적 부담(77.5퍼센트) 때문에 자녀를 더 낳아야겠다 는 생각 이 안 드는(73.1퍼센트, 2005년 한국리서치 조사) 게 당 연하 결혼 후 1년 내에 임신 해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갖 자 는 1 2 3 운동 은 40세 엔 파산한다 는 비아냥만 샀 부모가 밀린 임금 12만 원을 받으러 나간 사이에 어린 남매 가 불에 타죽고, 혼자 집을 지키 던 아이가 개에 물려 죽는 비극 은 무상 보육시설이 충분했다면 막을 수 있었 그런데도 노무현은 보육 정책 을 자화자찬하기 바쁘 여성단 체연합을 비롯한 주요 여성 단체 나 일부 지식인들도 보육 공공 성 의 기초를 마련했다며 노무 현 정부 보육 정책을 호평한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50퍼 센트를 넘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여성 노동자를 안정적으로 고용 할 필요를 느끼고, 또 저출산 고령화 로 노동력 재생산이 어려 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서 보육 예산이 증 가하고 보육료 지원 대상이 늘어 난 것은 사실이 그러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여성개발원조차 지원이 [보육] 시설 이용 아동에게 국한돼 있 어서, 시설을 이용하지 않거나 이용하지 못하는 아동은 국가 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없 다 고 지적한 베이비시터에 게 영아를 맡길 경우, 한 달 평균 55만 5천 원(2005년 여성부 보 육실태조사)을 지급해야 한 한국의 보육비 재정부담률은 24.5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 구(OECD) 평균인 70퍼센트에 한참 못 미친 2002IJ2005년 민간 보육시 설과 가정 놀이방이 5천6백98 개 늘어날 때 국공립 보육시설 은 고작 22개 늘어났다! 이 때문 에 전체 보육시설 중 국공립 비 율은 5.2퍼센트로 오히려 줄어 들었(스웨덴의 국공립 비율 은 75퍼센트, 일본은 58퍼센트 ) 그마저도 대부분 직영이 아 닌 민간 위탁이 게다가 정부는 민간 시설과의 형평성 을 명분으로 국공립 시 설 보육료를 꾸준히 인상해 왔 물론 민간 시설은 더 큰 불만 의 대상이 기본보조금 지원 이 도입됐지만 각종 특기 활동 비 등으로 걷는 비용이 추가돼 60만 원 수준에 이르고 부대 비용이 보육료 수준으로 뛰어올 라서 재정 지원이 별 효과가 없 기 때문이 (전 보건복지부 장 관 이태복) 원장이 아이들에게 음식 찌꺼기 죽을 주는 충격적 인 일도 있었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국공립 보육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지만 1년 이상 기다려야 다닐 수 있 민간 위탁 질 좋은 보육에 대한 요구가 이렇게 큰데도, 정부는 평가인 증제를 도입해 시설 개선 책임 을 민간 시설 간 경쟁에 떠넘기 고 있 하루 10시간 일하고 단 10분도 쉬지 못하던 보육교사들 은 이제 평가인증제 준비 때문에 휴일도 없이 일하고 있 아이 들이 자상하고 섬세한 보살핌을 받기는 더 어려워진 것이 노무현은 비전2030 에서 자 유무역협정(FTA) 체결, 경제자 유구역 활성화 등 제도 혁신 을 통해 보육 서비스 등을 확대하 겠다고 했 이 좌파 신자유주의 적 해법 에 따라 보육료 상한선 예외 시 설까지 허용하려 한 이는 전 반적인 보육료 인상과 귀족 보 육 을 낳을 게 뻔하(호주에서 도 보육료 자율화 이후 보육비 가 4배 이상 증가했) 이처럼 정부는 요람 을 시장 에 내맡기는 시도를 계속해 왔 2005년 한 조사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저출산 대책 1위 로 꼽힌 것은 국공립 육아 탁 아시설 증설(54퍼센트) 이었 저소득층 자녀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 실시 도 51퍼센트의 지지를 받았 따라서 우선, 민간 위탁으로 운영하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모 두 직영으로 전환해야 하고, 여 성 노동자들을 위한 야간 보육을 확대해야 한 그리고 민주노동 당이 주장하듯 모든 동네마다 구 립 어린이집을 세워 무상 보육을 실시해야한 이것은 5백조 원 에 달하는 땅을 소유한 1퍼센트 의 부자들에게 제대로 세금 폭 탄 을 던질 수 있는 강력한 운동 건설로 가능할 것이 승주 >> 1면에서 이어짐 한미FTA 반대 운동은 한미FTA가 평 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는 것을 분 명히 주장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넘어서는 대안적 세계화 논의도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 이 점에서 한미FTA 반대 운동의 성장 에 크게 기여한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의 제안은 부분적으로 시사적이 정태인 교수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한 미FTA의 대안으로 FTA라는 프레임 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FTA를 설계해야 하고, 이 새로운 유형의 FTA는 국익 의 관점을 벗어나 계급주의적 전망 을 가져야 한다 고 주장한 정태인 교수의 지적처럼 한미FTA 반대 운동은 지금까지 큰 성과를 거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한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한미FTA는 원래 청와대의 계획 대로 작년 연말에 타결됐을 것 이고, 농 림부가 손톱만한 뼛조각 을 이유로 미국 산 수입 쇠고기를 반송하지도 않았을 것 이 여기에 노무현조차 입발림말로라도 이익이 안 되면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 을 것 이라고 말해야 했던 사실을 우리는 추가할 수 있을 것이 이런 대중 저항 때문에 <조선일보>는 찬성 진영이 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FTA가 좌초될 가능성도 있 아무리 정 권이 못마땅해도, FTA만큼은 노 대통령 을 믿고 힘을 실어 줘 야 한다며 조바심을 내고 있 따라서 한미FTA 반대 운동도 더 큰 대 중 운동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 한국 지 배자들이 사활적으로 매달린 한미FTA가 좌절된다면 한국의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 한미FTA 반대 단식 투쟁중인 민주노 동당 문성현 대표의 지적처럼 [설사] 한 미FTA 협상이 타결된다 하더라도 거대한 투쟁의 불씨가 던져지는 것 일 뿐이 강동훈
3 17 국제공동반전행동 제36호 3 반전 운동의 통쾌한 정치적 승리 3 17 반전 시위는 대성공이었 이날 한국 반전 운동은 노무현 정부의 집회 행진 불허 방침에 단호히 맞서 싸웠고, 결 국 통쾌한 정치적 승리를 쟁취했 애초 정부는 3 17 시위를 불허하려 했고, 이는 지난해부터 계속된 민주적 시민적 권리 공격의 연장선 상에 있었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미FTA 반대 총궐 기 이후 거의 모든 도심 행진을 불허했고, 특히 지난 3월 10일에는 한미FTA 반대 집회 참가자들뿐 아니라 기자들에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 각종 집회들이 연이어 불허 통보를 받 는 등 정부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불복종 선언 은, 올해 상반기 정세를 가를 주요 고비에 서 반전 운동이 전체 운동의 선두에 선다 는 뜻이었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대응이 옳았음은 곧 분명해졌 가장 광범한 지지를 받는 국제적 운동으로서 반전 운동은 정부의 공격에 맞서 전체 운동의 이익 집회와 행진의 자유 을 방어하는 데도 매우 큰 정치적 이점이 있었 정부의 막가파 식 민주주의 억압에 대 한 분노가 켜켜이 쌓인 상황에서 반전 운 동 측의 단호하고 정치적인 대응은 정부 의 공격에 맞선 저항에 초점을 제공하며 신속히 지지를 확대할 수 있었 15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위한 선 언 에 참가한 3백26명의 각계 인사들은 정부의 파병 정책을 규탄하며 3 17 집회 허가를 촉구했 주요 언론들도 정부의 시위 불허 조처를 비판하기 시작했 특히, 국제적 연대와 압력이 조직된 것 이 주효했 영국 전쟁저지연합과 리스 펙트 소속 의원 조지 갤러웨이, 캐나다 반 전연합체 평화동맹 등이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보냈고, 스웨덴 좌파당 소속 국회 의원 등 많은 해외 지식인 정치인 활 동가들이 한국 정부의 시위 불허 방침에 항의하는 국제 서명 운동에 참가했 뉴질랜드 반전단체인 주민행동운동 은 아예 한국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고 한국 영사에게 직접 항의 서한을 전달했 나중에 경찰은 국제적으로 이미 공지된 집회라는 점을 고려했다 고 밝혀, 파병반 대국민행동이 조직한 국제 연대와 압력이 정부를 물러서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3 17 집회와 행진의 성공은 올해 상반기 정세의 물꼬를 트는 구실을 했다 미쳤음을 시인했(아래 관련기사 참조) 치지 않는 사실, 이날 시위는 여러 점 정부가 국민행동이 다시 제출한 집회 에서 2003년 초 이라크 전쟁 개전을 전 신고서(전에 정부가 불허한 것과 똑같은 후해 벌어진 시위들을 연상시키는 특징 내용)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들이 눈에 띄었 처럼 국내외의 광범한 항의 때문이었 우선, 시위대의 사회적 정치적 구성 시위 당일 경찰은 2천 명의 전경과 50여 이 다양하고 광범했 다양한 정치단체, 대의 전경버스를 동원했지만 결국 광범한 지역의 기층 민중 단체, 대학과 지역의 반 지지를 받는 사기 높은 시위대의 행진 시도 전 그룹들이 집회에 참가했고, 소규모 정 를 막지 못했 반전 운동이 정부의 반민 치 서클들을 포함해 한동안 모습을 보기 주적 시도에 통쾌하게 제동을 건 것이 어려웠던 단체들도 꽤 눈에 띄었 동아 리 깃발을 들고 나온 대학생과 청소년들 행진 도 적지 않았 또, 많은 개인과 단체들이 손수 만든 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부의 탄압을 뚫고 양한 팻말과 선전물들을 들고 시위에 참 치러진 매우 활력 있고 정치적인 집회였 가했는데, 이는 집회 참가자들의 진지함 다는 점에서 이번 3 17 시위는 분명 상 과 열의를 보여 주는 징표라 할 수 있 반기 정세의 물꼬를 트는 구실을 했 예 진지함에서 비롯한 이 자발성은 2003년 컨대, 이번 집회와 시위의 성공 뒤 한미 당시 반전 운동의 주요 특징이었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도 오는 3월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참가가 두드러졌 25일 집회 강행 의지를 다지며 정치적 투 다는 점이 중요하 대학생 청년 청 쟁을 벌일 준비를 갖추고 있 반전 운동 소년 참가자들은 시위의 가장 큰 대열이 이 다른 운동에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 었을 뿐 아니라 시위대 전체에 활력을 불 고 있는 것이 어넣었 이러한 성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 성공회대에서는 성공회대반전모임이 그러나 이날 시위의 중요성은 여기서 그 조직한 1백30여 명 등 무려 1백60여 명 이 참가했는데, 이는 성공회대 학생 전체 (약 2천 명)의 거의 10분의 1에 해당한 전쟁에 반대하는 고려대 네트워크 에서 는 60여 명이 참가했 각 대학 반전모임이 성공적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활동가들의 사기가 회 복되고 있는 데다, 많은 학생들이 반전 운 동에 새로 참가할 태세가 돼 있었기 때문이 이날 시위에 참가한 대학 반전모임들의 대열 중 상당수가 신입생들이었 이러한 새로운 청년층의 가세 덕분에 지난해 열린 반전 시위들에서는 대체로 좌파 민족주의 경향 단체들과 다함께 같은 조직 좌파들이 대열의 다수를 차지 했던 반면 이번 3 17 시위는 새로이 반 전 시위에 가세한 급진적 좌파적 청년 들의 참가와 존재감이 더 두드러졌 이러한 여러 특징들은 지난해 미국 중 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 이라크 위기 심화와 미군 증파, 이란 공격 위협, 윤장 호 하사의 죽음 등이 새로운 급진화 특 히 청년들 사이에서 를 낳고 있음을 뜻 하는 것이고, 따라서 좌파가 운동을 확대 할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음을 보여 준 기회 나아가 이번 시위에서 청년들이 보여 준 열의는 반전 운동뿐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가 이들의 반전 정서를 진지하게 여 길 필요가 있음을 뜻한 오늘날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과 위기 의식은 새 로운 청년층의 급진화를 이끌고 있는 핵 심 축이 따라서, 진보진영이 주류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주류 정당(과 그 후신 및 변종)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와 더불어 이라 크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파병 정책 반대 를 주장과 실천 모두에서 더욱 분명히 할 필요가 있 이러한 교훈은 진보진영 대 선 후보 단일화 논의에도 적용돼야 한 이번 3 17 시위로 올해 한국 반전 운동 은 매우 훌륭한 첫발을 내딛었 부시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증파하고 이란 공격을 꾀하는 듯한 상황에서 3 17 반전 행동의 성공은 더욱 큰 의미가 있 이번 시위에 서 언뜻 드러난 가능성을 운동의 실제 확대 로 연결하기 위해 계속 분투해야 한 <한겨레> 보도 유감 3 17 반전 시위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모처럼 호흡 을 맞춰 평화 로운 집회를 만들어냈다 는 <한겨레> 의 보도(3월 19일자)는 터무니없는 오 보이 다른 많은 언론들이 보도했듯, 이날 경찰은 시위대가 예고한 행진을 막기 위해 2천여 명의 전경과 50여 대의 경 찰버스를 동원해 서울역 광장과 맞닿은 차도를 철저히 봉쇄했 (<프레시 안>) 서울역을 빠져 나오기 전까지 시위 대는 무려 30분 가량이나 경찰과 대치 해야 했고, 행진 막바지에도 광화문1가 에서 다시 1시간 가량 경찰과 대치하며 연좌 시위를 벌여야 했 <한겨레>는 또, [경찰이]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을 줄이려 했다 며 마치 이 번 행진이 경찰의 관용과 선심 덕분에 무사히 치러진 것처럼 묘사했지만, 이는 집회 행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주최측과 시위 참가자들의 노력을 폄 훼하는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모욕적 이기까지 하 특히, 시위대가 인도 를 주로 이용해 행진을 벌 였다는 보도 는 완전한 사실 무근이 이날 시위대 는 서울역에서 나와 광화문1가까지 줄 곧 애초 계획대로 도로를 점거한 채 당 당히 행진했 <한겨레>는 김광일 파병반대국민행 동 기획단 활동가가 이번 집회는 평화 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경찰과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지만, 김광일 동지는 결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한 실제로, 김광일 동지를 인터뷰한 <한겨레> 수습기자도 이 점을 시인하며 사과했다고 한(김광일 동지는 경찰 이 막지 않는다면 충돌은 없을 것 이라 고 말했다고 한) 김광일 동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책 임 기자인 전진식 기자는 정정 보도 요 청을 거부하며 당신이 한 말을 녹음해 둔 것이라도 있느냐 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 이번 기사는 그 전 <한겨레>의 보도 들이 대체로 반전 운동에 공감을 표시 해 왔고, 이번 3 17 행동을 앞두고도 신기섭 논설위원의 <한겨레> 칼럼이나 <한겨레21> 650호 정재권 편집장의 칼 럼처럼 시위를 지지하는 훌륭한 글들을 실어 왔다는 점에 비춰 보건대, 악의적 인 왜곡이라기보다는 담당 기자의 안일 한 취재 태도와 평화주의적 환상이 오 보의 주된 원인이었던 듯하
4 2007년 3월 24일 2007년 정치 정세 전망과 진보진영의 과제 정치적 양극화가 낳는 기회에 도전하자 올해 초부터 노무현 정부와 열우당의 붕괴 가 시작됐 열우당 창당 주역인 천정배는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선 뛰어내리는 게 사는 길 이라며 앞장서 열우당을 뛰쳐나갔 쥐떼들이 쏟아지는 난파선처럼 열우당은 1백39석의 원내 제1당에서 순식간에 1백 8석으로 거의 몰락했 탈당파들은 대중 의 강력한 반감의 파도를 피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무현 호( 號 )를 떠났 예 컨대 이계안은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겹쳐서 보이는 열린우리당이 만든 상품은 그 효능과 품질은 따져보지도 않고 외면 한다며 탈당했 이 때문에 당 잔류파들도 노무현과 선긋 기를 요구했고 마침내 3월 초 노무현 자신 도 열우당을 탈당해야 했 이제 열우당이 라는 난파선 의 완전 침몰도 머지않아 보 인 붕괴 노무현과 열우당의 붕괴는 명백히 배신 과 개악의 결과 이 자들은 진정한(천대 와 착취를 완화한다는 점에서) 개혁을 바 라는 대중의 기대를 모아서 집권하고 국회 다수 의석까지 차지했으면서도 대중의 염 원을 철저히 배신했 이들은 기득권 세 력에 타협해 진정한 개혁을 포기하는 길을 택했 노무현과 열우당은 자유주의적 자본가들 과 중간계급 지식인, 일부 사회단체와 노동 조합 지도자들까지 아우르는 다계급적 기 반을 갖고 있었 이런 다계급적 기반 때 문에 그들은 <한겨레>처럼 말하다가 <조 선일보>처럼 말하다가 하는 오락가락을 거듭했 그러나 무엇보다 지배계급 일부에 기반 을 둔 정치인들로서 그들은 <조선일보>처 럼 행동 했 그들은 세계 자본주의 속에 서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의 경쟁력과 위상 을 높인다는 목표에 충실했 게다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진정한 권력 은 선출된 자들이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자 들 군장성, 검찰 경찰 총수, 재벌 총수, 고위 관료, 법관 등 에게 있 노무현과 열우당은 이 진정한 권력자들의 압력에 너 무도 쉽게 굴복하고 그들의 요구에 순응했 그래서 이미 우리는 2004년 총선 직후 에 지금의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바뀔 것 이 왜냐하면 열우당이 추진할 개혁의 상 당수는 신자유주의적인 것일 것이고, 그나 마 괜찮은 개혁은 기성 권력 체제의 방해에 직면해 실패할 것이기 때문 (최일붕, 17대 국회의 미래와 민주노동당, 그리고 변혁가 들, <다함께> 30호)이라고 전망한 바 있 노무현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 내겠다 고 공언했지만, 지금 국가보안법은 시퍼렇게 살아서 이른바 일심회 등 마녀 사냥에 쓰이고 있 그나마 한나라당 결 재 없이 한 유일한 개혁 (임종인)이라는 사 학법 개정도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 한편, 노무현과 열우당은 이라크 파병, 노동법 개악, 한미FTA 등 신자유주의 친 제국주의 개악을 앞장서 추진했 최근 여 수외국인 보호소 참사나 아프가니스탄에 서 윤장호 하사의 죽음은 이런 정책이 낳은 끔찍한 결과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일 뿐 이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민주주의가 오 히려 후퇴하기도 했 한미FTA를 추진하 며 국가기밀 논리로 알 권리마저 억압하 고 집회 시위의 자유까지 억누르는 모습 을 보라. 이것이 바로 노무현과 열우당 몰락의 원 인이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02년 에 노무현을 지지한 사람들 중 61퍼센트가 후회 한다고 답하고, 다음 대선에서 노무 현이 미는 후보는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 이 74퍼센트나 나온 배경이 양극화 노무현과 열우당의 파산은 사회 정치 양극화의 결과이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으레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한 한편으로 보수적 반동이 일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진 개혁을 지지하는 경향이 발전한 (최일붕, 앞의 글) 양극화 속에서 노무현과 열우당의 중도 개혁 정치인들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 이미 노무현 정권의 다계급적 기반이 붕 괴하면서 열우당은 갈가리 쪼개지고 있 탈당파들도 단일하지 않 한나라당 김 무성이 한나라당과 더 어울리는 분들 이 라고 말한 강봉균 김한길 등 보수적 탈 당파 와 천정배 최재천으로 대표되는 개 혁적 탈당파 가 있 당 잔류파들도 실용 파 개혁파 친노파 정동영계 김근태 계로 사분오열해 있 물론 이들 사이의 차이는 크지 않 김 한길이 탈당한 후 새 원내대표를 맡은 장영 달은 개혁파로 알려졌지만, 그가 맨 먼저 한 일이 사학법 재개정 야합 추진이었 개혁적 탈당파로 분류되는 천정배도 노 무현과 열우당의 신자유주의 친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았 2004년에 열우당 원내대표였던 천정배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이라크 파병 연장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며 파병 연장에 앞장섰고,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해 5월에는 한미FTA를 통해 새 성장 동력을 찾고 세계 속에 다시 한 번 도약하 는 계기를 만들자 는 담화문까지 냈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와 다계급적 지지 기반의 붕괴라는 압력 때문에, 그 동안 사 이좋게 동거해 온 잡탕 들이 마구 흔들리 고 있 따라서 노무현과 열우당의 붕괴와 분열은 계속될 것이 이것을 고의부도, 위장이혼 등 음모 로 보는 해석도 많 예컨대, 한나라당은 탈당 순서와 날짜까지 짜인 각본대로 하 고 있다 고 말했 열우당 잔류파도 집단 탈당은 이강래 프로덕션의 작품이며 감독 은 정동영, 주연은 김한길 이라고 비난했 사실, 별 차이도 없는 자들이 탈당 분 당을 하는 것을 보면 돈 세탁하듯이 탈색 과정을 거친 후 다시 통합해서 재기하려는 꼼수 아니냐 는 의심이 들 법하 그러나 난파선의 쥐떼 들도 살아남으려 고 온갖 꼼수를 부리지만 꼭 성공한다는 보 장은 없 그리고 탈당파와 잔류파는 서로 친북 좌파 니 한나라당 2중대 니 비난하 며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 노무현은 내 가 돈 떨어지니까 탈당하는 것 이라며 탈당 파의 앞길을 저주했 친노파는 기초당원 제를 수용해 탈당 흐름을 막으려고 애썼 따라서 <한겨레> 정치부 기자 성한용의 짜고 치는 고스톱 [보다] 차라리 발 악 아우성 붕괴 라는 표현들이 더 어울 리는 것 같다 는 지적이 더 타당한 듯하 물론 이런 위기를 돌파하려는 꼼수는 계 속될 것이 통합신당, 제3지대 신당 등 이 그것이 정운찬 박원순 강금실 한 명숙, 심지어 손학규를 영입해 치어리더 나 불쏘시개 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 문희상은 도로민주당이라는 항간의 비 아냥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며 민주당 과의 통합을 주장한 최장집 교수가 지적한 한나라당으로 권 력이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의 동 원 도 계속될 것이 장영달은 한나라당 이 집권하면 남북전쟁이 우려된다 며 협박 하고 나섰 천정배는 4월 25일 재보선에서 열우당 과 민주당, 통합신당추진모임, 민생정치준 비모임, 미래구상과 심지어 국민중심당이 함께 반한나라당 단일 후보를 내자고 제안 했 노무현도 개헌이라는 카드를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이 노무현은 원포인트 개헌 을 이용해 배신과 개악이라는 진정한 쟁점 을 흐리고 개헌 찬반 구도로 전선을 형성해 자기 진영의 분열을 봉합하려 한 또, 이 탈 지지층을 다시 불러모으고 이 추진력으 로 레임덕 처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 려 하고 나머지 개악들을 처리하고자 한
제36호 5 그러나 두 달 만에 조건부 개헌안 발의 유보 로 한발 물러선 노무현의 태도는 위기 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보여 준 그러나 도박판에서 더는 잃을 게 없는 자가 무모하 듯 노무현은 개헌이 실패해도 임기 단축 등 또 다른 꼼수로 판을 흔들려 할 수 있 또, 안희정 리포트 를 보면 남북정상회담 이 전환의 파장을 일으킬 출구 로 거론되고 있 반사이익 한편, 정치 양극화의 오른쪽 그림은 2004년 총선 직후 사라질 정당 (노회찬) 처럼 보였던 한나라당의 원기 회복이 한 나라당 전여옥도 지적했듯이 한나라당이 제1당이 된 것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열린 우리당이 국민들을 속였기 때문에 반사적 으로 된 것 이며 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만드는 데 최고의 공을 세운 것은 바로 노 대통령 이 따라서 한나라당의 득세를 대중의 보수 화 우경화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 실 제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유권자 성 향 분석 결과 를 보면, 차기 정부의 이념 성 향이 보수적이어야 한다 는 답은 17.3퍼 탄핵 반대 때 우익에 맞서 노무현을 방어한 개혁 여망 대중이 이제 노무현과 한미FTA에 반대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센트뿐인 반면 진보적이어야 한다 는 답 은 39.8퍼센트였 심지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고소 득층 과세 와 재벌 개혁 에 대한 지지가 70~80퍼센트에 달했 또, 한나라당 지지 층 가운데 상황에 따라 지지 정당을 바꿀 수 있다 는 답이 40퍼센트였 이로부터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높은 지지율은 언제든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는 결론을 내렸 기득권 세력에 기반한 친미 보수 정당이 면서 개혁적 대중의 눈치도 봐야 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모순이 집토끼 (우익)와 산 토끼 (개혁 여망 대중)를 모두 잡아야 하는 것이 그래서 이명박은 3월 1일에 우익 집회에 갔다가 곧바로 제주 4 3 영령 추모제에 참 석하는 두길 보기 를 했 박근혜는 내 가 바로 중도 라고 말했다가 조갑제의 타 박을 받았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장 유석춘은 정통 우파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며 중간 층을 흡인하자 고 주장하고, 이명박의 브 레인 박형준은 [그것이] 부작용과 중도층 의 이탈을 가져올 것이라며 반대한 심지어 정형근이 한나라당 대북정책의 변화와 평화체제의 구축 을 주장해 김용 갑과 조갑제에게 기회주의적 행태 라고 비난받는 코미디까지 벌어지고 있 여기에 유력한 대선 주자인 이명박과 박 근혜의 치열한 경쟁과 국회의원들의 줄서 기가 보태져 분열 조짐마저 보이고 있 이미 그것은 손학규 탈당에서도 드러났 따라서 한나라당의 앞길은 순탄치 않을 것 이 더구나 그 길에는 갖가지 지뢰들이 깔려 있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인명진은 국회 의원 부인들을 모아놓고 제발 대선 끝날 때까지 남편들 술 좀 안 잡수게 해달라. 절대로 여자 있는 술집 가지 말라고 해라 고 호소했 인혁당 재심이나 긴급조치 판 사 명단 공개, 일해공원 사건처럼 그 동안 묻혀 있던 한나라당의 어두운 과거와 추악 한 본색이 다시 드러나며 역겨움을 불러일 으킬 수도 있 개악 야합 위기에 직면한 열우당과 불안정한 반사 이익에 기댄 한나라당의 신자유주의 친 제국주의적 개악을 위한 대연정 과 야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이들은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한국 자본 주의의 경쟁력과 위상을 높인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박근혜는 얼마 전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미FTA만 빼고 다 바꿀 것 이라고 말했 지만, 막상 바꿀 것이 별로 없을 듯하 한 미FTA뿐 아니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병 유지, 레바논 파병, 개악 노동법 적용, 국민연금 개악 등 수많은 공동 과제가 있기 때문이 실제로 지난 2월 9일 노무현은 한나라 당 강재섭과 만나 한미FTA 체결, 국민연 금 개악, 사학법 개정 등 추진에 적극 협 력한다 는 공동발표문 을 냈고 <조선일 보>는 노 강 합의 실천하라 며 이를 환 영했 그러나 정치 위기와 양극화가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뿐 아니라 각 당의 내부에서 조차 균열을 낳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개악 야합도 순탄치는 않을 것이 더구나 갈수 록 심각해질 레임덕 추세 속에서 노무현 정 부의 정책 추진력도 점점 더 약화할 것이 이미 2월 국회에서 추진하던 사학법 개 악과 누더기 주택법 통과라는 빅딜 이 실 패했 윤장호 하사 사망 후에는 최재천 정청 래 등이 파병 정책을 공개 비판했고, 김근 태 정동영 천정배와 한나라당 농촌 출신 의원들이 한미FTA 협상 중단 을 주장하 고 나섰 물론 이것은 믿지 못할 자들의 뒤늦은 차별화 노력이 그러나 정치 위기와 양극화에서 비롯한 지배계급의 분열과 대선을 앞둔 정책 추진 력 약화는 진정한 개혁을 염원하는 운동 진 영에 유리한 기회가 될 수 있 공백 정치 양극화라는 큰 그림의 왼쪽에서는 대중의 급진화를 계속 볼 수 있 여론의 과반수가 한미FTA를 반대하고 90퍼센트 이상이 자이툰 철군을 지지한 어느 조사 에서든 차기 정권의 성향이 진보 여야 한 다는 응답이 보수 여야 한다는 대답보다 훨씬 많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10퍼센트 안팎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서도 확인된 최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는 민주 노동당이 열우당을 제치고 정당 지지율 2 위를 차지하기도 했 물론 급진화하는 개혁 염원 대중을 민주 노동당이 모두 포괄하고 있지는 못하 붕 괴하는 열우당에서 이탈한 더 많은 개혁 여 망 대중은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사이 어딘 가에 존재한 이들은 아마도 두 여중생 압사 항의 투쟁 과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탄핵 반대 운동 등의 분위기 속에서 개혁과 진보를 기대했 던 청년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일 것이 이들은 노무현과 열우당의 배신에 실망하고 분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개 혁적 우익인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 고 느끼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 정치 양극화와 열우당 붕괴에서 비롯한 정치적 공백이 거대하게 형성되며 정치적 역동성과 불안정성을 만들고 있 그래서 이 공백을 메우려는 다양한 노력이 있을 것 이 민주 개혁 평화 등을 내걸고 열우당 안팎에서 나오는 다양한 통합신당 론이 바 로 그런 노력의 하나 반수구와 반양극화 를 내걸고 주로 NGO 활동가들이 결집한 창조한국 미래구상 도 그런 시도의 하나이 따라서 올해 정치 정세는 이 공백을 차 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어느 쪽이 성공하는 가에 따라 많은 부분 좌우될 것이 진보진영과 민주노동당에게는 커다란 정 치적 기회가 놓여 있는 셈이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진보진영과 민주노동당은 개혁 사기꾼 들과 선명하게 구분되는 급진적 투쟁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 그 점에서, 급진적 의제와 투쟁 일변도가 문제였다 며 사회연대전략 같은 수세적 후퇴를 제시하 는 것은 잘못이 진정한 문제는 투쟁 건설에 바탕하지 않 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회적 교섭 이었 고,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자주 빠져든 열우 당과의 개혁 공조 라는 샛길이었 주류 정치권에 대한 선명한 좌파적 비 판 대안 제시와 함께 개혁 희구 대중에게 개방적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도 필요하 전쟁과 신자유주의, 주류 정치권(한나라 당, 열우당과 그 후신 변형 세력) 반대에 동의하는 진보진영의 단결과 대선후보 단 일화는 이를 위한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친제국주 의 정책에 반대해 온 광범한 세력의 단결을 추구하는 것이 여기에는 민주노동당 왼쪽의 노동 민 중운동 단체뿐 아니라 열우당 배신에 분노 해서 이반한 대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주요 NGO나 그 지도자들도 포함해야 한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도 더 광범한 대중 속 에 뿌리내리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 이 같은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 노력은 한나라당의 어부지리와 열우당(과 그 후 신 변형 세력) 차악론 을 모두 차단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수 있 유력한 좌파적 대안이 없을 때 사람들은 우파를 선택할 수도 있 따라서 지금 민주노동당 등 좌파에게 필 요한 것은 정치적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유 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진취적 도전과 모 험에 나서는 자세 전지윤
6 2007년 3월 24일 제36호 자본주의의 대안은 있는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개리스 젠킨스(영국의 맑스주의자) 어 낸 것이 아니 그것은 기업주 와 노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는 투쟁 실의 계급투쟁을 표현한 것이 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노동계급 투쟁이 완전히 성공했을 질문이 있 사회주의가 무엇입 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실현될 니까? 공산주의와 같은 것인가 것이 [편집자] 최근 대안 사회 모델을 둘러싼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 요? 오랫동안 공산주의는 재산을 따라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회 질서가 관한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변화를 영국 사회주의자 개리스 젠킨스가 진정한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 사회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공정한 미래 사회를 뜻했 추구하는 운동 자체의 성격에 대한 캐나다 사회주의자인 애비 바칸은 옛 소련이 사회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었다고 주장한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것이 혁명적 변화를 일으킬 사 노동자 운동의 목표를 공산주의로 람들에게 이런저런 사회를 건설하 정의했 나중에는 사회주의라는 라고 강요할 수는 없 말을 더 애용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 후 혁명 후, 러시아 볼셰비키당은 등장할 사회의 모습과 사회주의나 19세기 말 사회주의 정당을 뜻하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무 던 사회민주당 에서 공산당 으로 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아무 말도 을 반영하는 것이 아무도 자신 경쟁이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모 명칭을 바꾸었 할 수 없는가? 의 소득 으로 생산수단, 즉 착취 습으로 드러나는 역겨운 일들도 사 수단을 살 수 없 라질 것이 한 사람을 평생 동안 스탈린주의가 득세해 공산주의 맑스는 혁명 직후 무엇이 가능할 라는 말을 더럽히고부터 대다수 좌 지를 고민했 맑스는 계급도 국 자본주의가 약속했지만 지키기 한 가지 일만 하도록 묶어 두는 분 파들은 사회주의자로 불리길 원했 가도 없고 인간의 개성을 완전하게 못한 진정한 평등이 처음으로 구현 업과, 우리를 지리멸렬에 빠뜨리는 발전시키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협 될 것이 개인이 제공한 노동에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 사이의 분 력적인 사회로 어떻게 나아갈 수 따라 사회 생산물이 개인에게 공정 리도 종말을 고할 것이 있을지를 탐구했 하게 분배될 것이 이것은 단지 용어 문제인가? 한 편으로, 우리가 어떤 용어를 사용 할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 이런 원리를 오늘날에 맞게 적용 공산주의 사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첫째, 자본 그러나 미래 사회주의 또는 공산 진정한 평등이 이뤄지면 개인들 옛 소련과 사회주의 애비 바칸 차르 국가는 혁명 과정에서 분 이 때문에 신흥 관료 계층이 스 (캐나다 퀸스대학교 정치학 교수) 쇄됐고, 뒤따른 내전 과정에서 소 탈린 주위로 집결해 국가를 통제하 수 특권층은 마침내 패배했 기 시작했 그들은 일국사회주 의 능력과 욕구가 불균등한 사실에 오늘날, 자본주의를 대체할 혁 노동자 농민 병사 평의회가 의 건설이 필요하며 가능하다고 주의에서 생산되는 온갖 낭비(무 대처할 필요가 대두할 것이 노동자 국가도 소멸하기 시작할 명적 대안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 주도하는 대중 정부는 지주와 민 주장했 이는 국제 사회주의 운 동에서 완전히 낯선 이론이었 주의 사회는 노동자와 빈민 다수의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기 광고 경영)가 아니라 광범한 것이 과거의 모든 계급 사회에 이 있 그러나 그들은 사회주의 간 산업 자본가 계급을 철저히 타 대중 행동을 통해 아래로부터 만 은 1917년에 국가와 혁명 이라 다수 시민들의 이익을 증진할 것들 서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했고 국 하면 야만적인 스탈린주의 체제 도했 건설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 는 소책자를 썼 이 책은 혁명 후 (더 나은 주택 학교 보건)을 생 가를 통해서만 지배를 보장받을 수 를 떠올린 20세기 대부분 동안 러시아어로 소비에트 라고 부 등장할 공산주의 사회의 첫 단계와 산하는 데로 자원을 집중할 수 있 있었 옛 소련과 동유럽을 지배한 스탈 른 이 평의회는 새롭고 진정으로 을 것이 린주의 체제는 서방 자본주의보 민주적인 노동자 국가의 진수였 소련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다 결코 더 나은 것이 아니었 노동자들은 소비에트를 통해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우겼 이 맑스가 1852년에 프롤레타리 더 높은 단계의 관계를 논의했 아 독재 를 말했을 때, 그는 요시 레닌은 이것을 사회주의와 공산주 프 스탈린이 1920년대에 반혁명으 의의 차이로 보았 로 권력을 잡은 후 자행한 독재를 뜻한 게 아니었 재분배 맑스는 승리한 노동계급이 자본 주의 사회에서 물려받은 노동의 성과 를 어떻게 처리할지에서 시작 계급을 몰아내려면 자신의 국가를 했 사회의 총 생산물은 사회의 속되며, [인간의] 필요보다 이윤이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 맑스가 통제를 받을 것이 먼저 계급 자신의 행동일 것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 [혁명으로] 노동 대중의 권력이 는 나중에 국제적 모델이 돼서, 동 하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시작 유럽 중국 등지에서 모방됐 할 수 있었 스탈린주의의 유산은 여전히 현재 가 아니고 생산자들의 연합 권력이 의 논쟁에 영향을 미치고 있 스로 자라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를 대거 재분배할 수 있게 될 것이 되면서 심지어 프롤레타리아 독 사회에서 이제 막 탄생한 것이 보육 시설, 가족 수당, 연금, 질 재 도 사라질 것이 한 차원 더 높 가들이 아니라 국가가 자본을 축 요시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따라 이뤄졌 소비에트 대의원 적하고 세계시장에서 이윤을 차 맑스주의의 화신을 자처했 그 들은 그들을 선출한 사람들의 다 지하기 위해 경쟁한 사회의 총 생산물을 모두 개인에 개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보장될 것이 1917년 러시아 혁 이런 새로운 사회는 경제적 병 수당 등이 크게 증가할 것이 은 공산주의 사회가 나타날 것이 러나 온갖 미사여구에도 그것은 수가 원하면 언제든 소환될 수 있 임금을 받으며, 생산물의 아주 작 명 때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가 도덕적 지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회는 높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는 체 었 은 부분만을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 나타난 것처럼 혁명 과정에서 노 자궁인 옛 사회의 흔적을 지니고 수준의 고정된 기본 소득을 보장할 운영비용과 예비비, 복지 지출 등 할 수 있 동 대중이 자본주의 국가와는 완전 있을 것이 것이 된다는 사상인 위로부터의 사회주 에 각각 얼마나 사용할 것인가를 의 를 거부했 고민해야 할 것이 사회주의에서 개인과 생산물의 관계는 직접적일 것이 개인들 히 다른 국가를 세울 것이기 때문이 19세기 초에 공상적 사회주의자 그리고 나서 생산물 중 얼마가 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집단적으 그런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노 들은 자본주의를 탁월하게 비판했 개인 생산자들에게 분배될지를 생 로 통제할 것이 그들은 더는 임 동 대중이 사회의 모든 측면을 통 을 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재편 각해야 한 이를 위해서는 중앙 금을 위해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된 제한다는 뜻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무적인 비 집권적이면서도 민주적인 노동자 전을 발전시켰 국가가 경제적 자원의 사용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 노동자들을 무기력한 희생자로 여 이런 사회주의 사회는 자본주의 겼 따라서 소수의 선각자들이 와 비교해 한 가지 큰 장점이 있 노동자들을 대신해 행동해야 한다 개인과 그들이 생산한 생산물 사이 고 주장했 맑스와 엥겔스는 공 의 관계가 변할 것이 높은 단계 그들은 사회와 개인의 필요를 충 족하기 위해 사회의 생산물을 어떻 게 배분할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할 것이 그러나 혁명이 빠른 속도로 일어 따라서 부분적으로 옛 관계들이 이 모든 것은 노동시간을 단축시 지속될 것이며, 특히 사회 생산물에 켜, 사람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참 대한 개인 지분 면에서 그럴 것이 가하고 문화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 기가 좀더 수월해질 것이 들이 생산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 돼야 할 것이 자본가 계급을 권 그들은 시장의 무계획성에 종 좌에서 밀어내는 것은 점진적으로 낸,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립되고 쇠약해진 상황에서 시간이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반전 운동이었 러시아 혁명은 흐르자 이 신생 계급이 노동자들 에 맞서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 사회가 전반적 생산을 규제하 그들을 평가한 스탈린주의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야만을 게 되고, 바로 이를 통해, 내가 하 마찬가지 스탈린주의는 칼 맑 대체할 진정한 대안이 가능하다 는 희망을 보여 줬 이윤 추구와 자본축적을 향한 회주의 사상가들이 염원한 사회 서는 개인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개혁 중 일부가 시행됐 경제적 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되지 않고도 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었 지도자 레닌이 죽은 후인 1920년 1920년대 말과 1930년대에 소 [노동의] 등가물을 사회에 청구할 으로 훨씬 발전한 오늘날의 선진 공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 스탈린은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대 중반부터 시작됐 혁명 운동 련 관료는 의식적으로 국가자본 수 있는 권리를 줄 것이 업국들에서는 훨씬 더 쉬울 것이 하고 저녁에는 소를 치며 저녁식사 원칙을 바탕으로 한 체제를 잔혹 이 다른 나라[특히 독일]에서 실 주의적 지배계급으로 행동했 후에는 비평하는 일이 가능하게 된 하고 체계적인 착취 억압 체제 패하자 러시아는 정치 경제적으 로 바꿔놓았 로 고립됐 를 반영할 것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똑똑한 주의에 대해 뭐라고 떠들어 대든 것 이라고 말했 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사 기간 여전히 옛 사회의 임금 관계 사람들이 사회에 적용하려고 만들 좋아하는 분야 모두에서 뛰어날 일은 저 일을 하는 것, 사냥꾼도 어 은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능력을 혁명 이후 소련이 철저하게 고 고 싶은 그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 은 그렇지 않 첫 단계에서 더 높 기르는 것은 훨씬 더 느린 과정이 대전의 동부전선에서 전쟁을 끝 러시아는 가난한 나라였지만 개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 정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완성 했 우리는 조지 부시 정부가 민주 1917년 혁명 후 러시아에서 이런 은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자본가 계급이 쫓겨났기 때문이 이 과 또, 러시아 혁명은 제1차세계 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개인은 자신의 노동을 사회에 제 형식을 보면 새로운 사회는 상당 자본주의에서 개인과 생산물의 제였 새로운 자본가 계급 구실을 하 는 국가 관료들이 반혁명을 주도 공하고 증서를 받을 것이며, 그 증 나는 일인 반면, 새로운 사회 건설 관계는 간접적이 개인들은 자신 청년 맑스는 더 고차원의 공산주 국가자본주의에서는 민간 자본 생산은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게 나눠줄 수는 없 사회주의 사 회는 설비 자재의 교체와 확대, 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 사회를 자신들에게 이롭게 운영 세대가 거리에서 투쟁을 벌이지만, 따라서 사회가 더는 계급 사회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자가 변화 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엘리트주의 전쟁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새 의 국가도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 둘째, 너무 어리거나 늙거나 아 를 가져올 수 없고, 또 그래서는 안 그러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징 중 강압이 사라지고, 어떤 형태 파서 일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 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 - 2005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 맑스의 말은 노동자들이 옛 착취 말했듯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 착취가 종식되고 다수인 계급이 사회를 통제하게 되면, 사회의 특 뻔뻔한 거짓말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 스탈린의 반혁명은 볼셰비키 사회적 개인적 욕구에 맞춰 생산 우리는 대부분 다른 일을 하고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 서방 열강의 개입과 우익 세력 그러나 이 관계의 내용은 다를 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도 인간성을 싶을 것이 사회가 일단 생산수 노동자 빈민에게 영감을 줬 들의 저항 때문에 야만적인 내전 것이 아무도 거액 연봉 을 받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 풍요 덕 단을 충분히 발달시키면 노동 자체 러시아 혁명은 주요 나라 가운데 이 벌어졌고, 러시아 혁명을 일으 맑스는 이렇게 말했 여기서 지 못할 것이 거액 연봉 은 노 분에, 생활 필수품을 둘러싼 개인 가 우리가 항상 벗어나고 싶은 기 최초로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에서 킨 노동계급은 내전 중에 상당수 우리가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는 스 동 이 아니라 착취할 수 있는 능력 간 경쟁도 사라질 것이 피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 영감을 얻어 일어난 혁명이었 가 살해됐 결정적 변화는 제1차 5개년 계 획 이 시작된 1928년에 일어났 차르 정권에 대한 혁명적 도전 을 이끈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박 해받고 수감되고 살해되거나 망 명했 농민은 자기 땅에서 쫓겨나 노 >> 8면으로 이어짐 7
8 2007년 3월 24일 >> 7면에서 이어짐 동수용소에 강제 수용됐고, 반 항하면 고문당하고 살해됐 도시 노동자들은 파업권을 박 탈당하고, 노동조합은 국가에 대 한 독립성을 잃고 국가의 자본축 적 확장에 필요한 생산 할당량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 1920년대 초에도 소련은 경 제 제재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 에서 고립됐지만 볼셰비키는 국 가와 작업장 관리자에 대한 노 동조합의 독립성을 옹호했 당시에는 당 지역 기구, 노동 자 공장위원회, 노동자 관리 하 의 기술 전문가로 구성된 3자 위 원회가 서로 협력하며 작업장 정책에 영향을 미쳤 그러나 5개년 계획과 함께 노 동자의 주도적 구실은 사라졌 오히려 관리자들 개인이 중 앙 관료들이 지정한 생산 할당 량에 따라 독단적으로 작업장을 운영했 소련에서 스탈린주의는 60년 간 지속됐 1953년 스탈린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았 그것 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종식됐 자본주의는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다른 형태로 유지되 고 있지만, 이제 그 곳의 지배계 의 위협을 받았 군비 확대는 급은 그 체제를 더는 맑스주의 노동자 착취 강화를 수반했 라고 부르지 않는 착취율을 결정한 것은 당시 소련 국가자본주의는 미국이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열강인 나 다른 서방 국가들의 자본주 미국과의 경쟁 총에는 총으 의와 똑같지 않았 소련 경제 로, 총알에는 총알로, 폭탄에는 는 특정한 방식으로 계획 됐 폭탄으로 식의 이었 그러나 5개년 계획이 거듭될 이 세계적 군비 경쟁이 냉전 때마다 생산 목표는 서방과의 의 기초가 됐 러시아 혁명이 군비 경쟁에 대응해 매번 사후 파괴되자, 사회주의가 수많은 조정됐 사람에게 보여 준 희망은 절망 모든 재산은 국유화됐 민 과 혼란으로 바뀌었 간 자본가 계급은 없었 그럼 각국 공산당은 러시아 혁명에 에도 그것은 자본주의였 연대한다는 대의로 가장 헌신적 스탈린주의적 계획에서는 군 인 활동가들과 급진적 작가들을 비 확대가 절대적으로 중요했 끌어당겼 소련은 영국과 독일 등 세계 열강 그러나 1920년대 말에 이르 1930년대 백해-발트해 운하 건설에 동원된 강제노동수용소 노동자들 1917년 혁명 당시 레닌의 참모들 - 대부분 스탈린에게 살해당했고 1938년에는 사형집행인 스탈린만 혼자 남았다 면 각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 탈린주의 러시아의 외교 정책 도구 노릇을 하거나 그렇지 않 으면 혹독한 비판을 당하고 축 출됐 중국 독일 스페인 쿠바 등지의 공산당은 노동자 권력을 향한 혁명적 전망을 비극적으로 배신했 러시아 혁명, 그 성공과 패배 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실천에서 매우 중요하 국제사회주의(IS) 경향과 영 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창시자인 토니 클리프는 1947 년에 쓴 소련 국가자본주의 에서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했 해방 소련 내부의 계급 모순을 이해 하는 것은 캄캄한 터널에서 한 줄 기 빛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 그 덕분에 서방의 극소수 사 회주의자들은 아주 어려운 시기 에도 맑스주의의 진정한 정신 노동계급 자기해방에 근거한 인 간 해방을 위한 현실적 과학 을 보존할 수 있었 오늘날 스탈린주의의 영향력 은 냉전 때보다 훨씬 미약하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유산은 여 전히 우리를 괴롭힌 좌파들은 러시아 혁명 초기에 영감을 불러일으킨 인간 해방의 이상을 많이 잃었 오늘날 사회주의에 관한 논쟁 을 하면 사람들은 인류가 자본 주의의 독재에서 해방될 가능성 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실재했던 사회주의 의 사례를 지적하기 바쁘 자본주의의 모순, 세계를 바 꾸고 새롭고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노동자와 빈민 들의 잠 재력에 주목하는 경우는 드물 사회주의적 대안에 대해 얘기 할 때 많은 사람은 흔히 피델 카 스트로의 쿠바나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모델로 든 이 들 국가는 미국 제국주의에 용 감하게 맞서고 있 그들은 반 전 운동과 반자본주의 운동에 심대한 영감을 줬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급진적 정부의 정책조차 조지 부시 정부의 끝없는 군사 위협 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완전 히 다른 것이 사회주의는 그 런 위협이 사라진 세계 사회 주의 사회에서는 미국 쿠바 베네수엘라와 전 세계의 노동계 급이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회를 집단적으로 조직할 것이 칼 맑스가 원래 제시한 사회 주의 개념은 사회 전체의 혁명 적 변혁에 기초한 자유와 해방 의 사상이 평생 협력자인 엥겔스와 함 께 맑스는 인류 해방을 위해 착 취의 종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 이는 삶의 물질적 조건을 변 화시키는 것을 뜻했 이는 단순한 부의 재분배와는 다르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은 또한 인간의 잠재력을 해방 하는 것도 목표로 삼는 것이 이는 의식적 창조적 생산 적 노동 능력을 개발하고 천대 와 소외가 없는 인간 관계를 발 전시킬 가능성을 포함한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도 전은 아래로부터 와야 한 맑 스와 엥겔스는 혁명의 결과와 혁명의 과정 자본주의의 착 취에 도전하는 의식적 집단적 저항 을 분리하지 않았 초기 볼셰비키도 같은 생각이 었 이는 스탈린주의가 혁명 을 패배시키기 전 혁명적 시기 의 역사에 기록돼 있 사회주의 운동은 스탈린주의 때문에 이런 이상 중 많은 부분을 포기했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 게는 그것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힘과 그래야 할 책임이 있 우리는 새롭고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스탈 린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주 의적 이상을 부활시킬 수 있
차베스와 21세기 사회주의 제36호 9 차베스는 어떻게 좌파의 아이콘이 됐는가? 채진원 전 민주노동당 의정정책실장은 최근 인터넷 언론 <레디앙>에 기고한 글 에서 차베스와 박정희가 너무 닮았다 고 주장했 박정희가 조국 근대화와 경 제 성장을 위해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 고,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를 무력화하고, 개헌을 통해 연임제를 폐지하고, 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한 것이 차베스의 독재 와 비슷하다는 것이 그러나 2000년 미국 대선 때 부시가 고어보다 50만 표나 적게 얻고도 대통령 직을 도둑질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양원 제가 단원제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볼 근 거는 전혀 없 또, 차베스는 박정희와 달리 의회를 무력화 하지 않았고( 포고 령 입법권 도 의회의 견제를 받게 돼 있 다), 연임제도 폐지하지 않았고, 언론과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지도 않았 채진원 실장은 차베스의 다수 독재 가 포퓰리즘의 대표적인 타입으로 소수 독재만큼 위험하다 고 강변한 또, 민 주주의는 단순히 양적인 쪽수 만을 의미 하지 않는다 며 다양성의 표출과 토 론과 공론장을 통한 질적인 숙의와 합의 가 있어야 한다 고 주장한 그러나 다수 독재, 양적인 쪽수 가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인정하지 않고 다양성과 토론을 얘기하는 것은 마치 소 수파에게 특권이라도 있는 양 떼쓰는 아 나키스트들의 태도이 그리고 <조선일 보>의 용어법과 달리, 맑스주의의 용어법 에서 포퓰리즘 은 대중 영합주의가 아니 라 계급 동맹을 뜻한 그런데 차베스가 지배계급의 일부와 동맹하는 것은 아니 지 않은가. 사실, 다양성의 표출, 토론과 공론장 을 통한 질적인 숙의와 합의 는 베네수엘 라에서 만개하고 있 베네수엘라에서 는 대중의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와 동원을 바탕으로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이 민 주주의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은 사 실이지만, 그 한계를 강요하는 것은 차베 스가 아니라 베네수엘라 지배계급과 미 국 제국주의이 국민 다수의 의사를 거스른 채 민주주 의를 억압한 박정희와 집권 이후 8년 동 안 11차례 크고 작은 선거에서 국민 다수 의 지지를 거듭거듭 확인한 차베스가 어 떻게 비슷한가? 무엇보다, 박정희는 빈곤을 퇴치한답 시고 노동자 농민 대중을 착취하고 억 압해 자본을 축적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 하는 체제를 구축했 그러나 차베스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토지 개혁, 빈민 주 거권 보장 등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의 생활조건을 향상시키는 진정한 사회 개혁 조처들을 시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빈곤을 끝장내는 방법은 빈민에게 권력 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민중 권 력과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주의 를 라틴아메리카를 순방한 부시에 맞서 아르헨티나 반부시 시위대 앞에서 연설하는 차베스 주창하고 있 차베스는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 차베스가 실시하는 조처들과 추구하는 (WSF)에서 자본주의 안에서는 자본주 목표는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의를 극복할 수 없 오직 사회주의로만 바와 다르지 않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고 주장했고, 도 박정희와 비슷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최근에는 또 이렇게 말했 지옥에 떨 이렇게 형식적 유사성만을 앞세워 내용 어지고 싶은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따라 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형식주의적 사 가면 된 우리는 여기 지상에 천국을 건 고의 전형이 설할 것이 그래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 민주노동당 물론 차베스가 주창하는 사회주의의 상( 像 )이나 시장과 국가의 관계, 민중 권 채진원 실장은 또, 차베스의 21세기 력과 기존 국가 권력의 관계 등에 모호한 사회주의 가 포퓰리즘에 기초한 자원 민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 그러나 군사 족주의와 친( 親 )시장경제에 가깝 고 반 쿠데타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자본가들 미 반자본 반세계화는 과장된 레토릭 의 경제적 사보타주로 정권이 날아갈 뻔 [미사여구] 일 뿐이라고 깎아내린 한 위험과 시련을 무릅쓰면서도 지금까 그러나 차베스는 막대한 석유 판매 수 지 차베스가 실천해 온 바를 살펴볼 때 그 입( 收 入 )을 국내 경제 개발 재원으로만 의 말을 데마고기를 위한 레토릭으로만 사용하고 있지 않 그는 베네수엘라의 보는 것은 지나친 폄훼이 석유를 쿠바와 볼리비아에 지원할 뿐 아 니라 미국 빈민들에게도 싸게 제공하고 선거 혁명 있 또, 비교우위나 국제경쟁력 같은 시장 한편,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이 논리와 이윤 지상주의에 근거한 신자유 엮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와 새 주의적 자유무역 협정이 아니라 사회적 사연 연구원들이 쓴 베네수엘라, 혁명 연대와 공공성 추구를 통해 대중의 이익 의 역사를 다시 쓰다 는 차베스나 볼리 을 도모하는 대안 무역 체제( 미주 대륙 바르 식 혁명 의 성과와 의의를 흠뻑 공 을 위한 볼리바르 식 대안, ALBA)를 추 감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하 진하고 있 ALBA가 한계가 있음에도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신자유주의가 친시장경제에 가까운 것이 아님은 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시장의 자유와 정해야 공정한 평가일 것이 기업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조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그랬듯이 차베스 리 제거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시대에 베 는 미국 지배자들과 평범한 미국인들을 구 네수엘라의 경험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분하고 후자를 지원과 연대의 대상으로 삼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몽상이 아님 는다는 점에서 소박한 반미주의자가 아니 을 웅변한 라, 완전히 일관되진 못해도 국제주의를 또, 차베스의 볼리바르 식 혁명 과 21 실천하는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 세기 사회주의 는 제국주의 신자유주 차베스는 스탈린에 맞서 혁명의 국제적 확 의 자본주의에 반대할 뿐 아니라 그 대 산을 주장한 트로츠키가 옳았고, 자신은 안으로 분명하게 사회주의를 내세운다는 트로츠키의 사상을 지지한다고 말했 점에서도 대안세계화 운동의 일보 전진 을 위한 중대한 이정표임이 틀림없 그 리고 열정적인 대중 동원과 참여를 바탕 으로 사회 변혁을 추구하며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보여 주 는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정말 고무적이 무엇보다 이 책들, 특히 차베스의 상 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이라는 부제가 붙은 새사연의 책은 베네수엘라의 사례 와 경험을 자세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 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 주는 정치적 함의 를 나름대로 찾아내고 이를 한국의 현실 에 적용하려 애쓴 노력이 돋보인 그러나 베네수엘라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정치적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에 서 다소 부정확한 교훈들을 제시하는 것 은 논쟁의 여지가 있 예컨대, 제헌의회 전술이나 선거 혁명 노선이 그렇 두 책의 저자들은, 조금 씩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차베스가 제헌 의회를 통해 사회주의의 법률적 기초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세력 관계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고 주장한 그러나 1999년 제정된 새 헌법은 노동 권과 사회 공공성 보장뿐 아니라 사유재 산과 자유시장도 옹호하는 등 모순을 내 포하고 있었 이 모순은 적대적 계급세 력 간의 불가피한 타협을 반영한 또, 새 헌법에 따라 실시된 국회의원 선 거에서 차베스 지지파가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차베스는 2001년 말 49개 개혁 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 고 포고령 입법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었 선출되지 않은 진정한 권력, 지배계 급의 권력이 국회 밖에서 강력하게 버티 며 반발했기 때문이 결국 새 헌법과 새 선거 실시에도 여전 히 바뀌지 않은 세력 관계 때문에 급기야 2002년 4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차베 스는 생명의 기로에 서기까지 했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베네수엘라의 경 험은 의회나 대통령 선거 승리만으로는 사회 변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 즉, 선거 혁명 의 한계를 보여 준 것 이 또, 이 책들은 베네수엘라에서 개혁이 냐 혁명이냐 하는 결정적 문제가 해결되 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집권 당시 차베스의 정치는 자본주의도 사회주의 도 아닌 모종의 제3의 길 개념이었다가 2005년 1월이 돼서야 분명하고 공개적 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도, 이 책들 을 보면 차베스가 처음부터 분명한 사회 주의 정치를 추구한 것처럼 느껴진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 로 해결해야 하지만 시장과 자본을 철폐 하거나 적대시하지 않고 새로운 체제 내 로 끌어들이는 방식 이어야 한다는 시장 사회주의적 주장도 이론의 여지가 많 이수현
10 2007년 3월 24일 다함께의 기본 입장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자본주의는 착취, 억압, 빈곤, 환경파괴, 전쟁 등을 낳는 이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이 사회의 부를 만드는데도 생 산과 분배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우리는 노동자들이 부를 집단적으로 통제하고, 이윤이 아닌 인 간의 필요에 따라 부의 생산과 분배를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사회 를 위해 싸운 오직 노동자들 자신의 대중 투쟁으로써만 자본주의 착취 억압 체제를 없애고 그러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 근본적 사회변혁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뤄지는 점진적 개혁들은 착취와 억압을 끝장내지 못한 자본주의는 폐지돼야 한 자본주의 국가기관들은 중립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피억 압자들의 투쟁으로부터 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 노동계급에게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국가가 필요하 국제주의 노동자들은 국제적인 계급이고 근본적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은 국제적인 투쟁이 우리는 노동자들 사이의 민족적 분리를 극복하고 국제적인 노동 계급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지지 한 우리는 한 나라의 노동자들을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 맞서게 만 드는 모든 것에 반대한 우리는 북한 난민과 이주노동자의 이주 규제에 반대한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계 지배와 그들의 전쟁에 반대하고, 제국주의 지배에 맞서는 피억압 민족의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한 근본적 사회변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고립돼서는 안 되고 국제적으로 확산돼야만 한 옛 소련과 동유럽처럼 북한과 중국과 쿠바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 이 나라들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비민주적 사 회이 우리는 그 곳 노동자들이 지배 관료에 맞서 벌이는 투쟁을 지지 한 남북한의 민중은 자신이 적합하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통일할 권 리가 있 그러나, 노동계급은 국제 변혁의 일환으로서 남북한 모 두에서 근본적 사회변혁을 이루는 데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자본주의 하에서는 여성 차별, 인종 차별, 동성애자 차별 등과 같 은 특정한 형태의 억압을 당하는 사회집단들이 있 이러한 억압 들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자 연대를 약화시키는 데 이용된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해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은 근 본적 사회변혁을 위한 투쟁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편, 근본적 사회 변혁 없이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불가능하 우리는 여성,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그밖에 영세노점상과 철거 민과 빈민 등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 을 지지한 우리는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 기 위해 투쟁한 현장조합원 운동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없 어서는 안 된 그러나 노조 지도자들의 역할은 자본주의와 협상하는 것이지,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것은 아니 우리는 노조 지도자들이 싸울 땐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노동 자들을 배신하면 그들로부터 독립한 현장조합원 대중 행동을 건설 한 변혁 정치조직 노동자들이 근본적 사회변혁을 이루려면, 가장 전투적인 노동자 들이 변혁 정치조직을 건설할 필요가 있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은 노동자들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대중조직 속에서 활동함으로써만 변혁 정치조직을 건설할 수 있다. 우리는 개량주의 지도자와 개량주의 사상이 피억압 대중의 이익 에 어긋남을 실천에서 입증해야 한 우리는 우리의 기본 입장에 동의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변혁 정 치조직을 건설하는 투쟁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 letter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다함께 는 소중한 모범을 보여 줬습니다 독자편지 3월 25일(일)까지 투쟁 소식과 독자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letter@counterfire.or.kr 이른바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돼 옥중 투쟁을 하고 있는 이정훈 손정목 동지가 다함께 에 편지를 보내 왔 편지의 전문은 <맞불>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 이번 사건에 대한 동지들의 일관된 원칙과 입장을 보면서 동지애와 함께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 나는 그들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그러나 나는 그들이 사상이 다르다 는 이유로 탄압을 받는다면 결단코 그 들의 편에 설 것이다 볼테르의 이 명언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지만 결코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단 결하고 탄압에 공동 대응하는 결단과 순수한 기풍은 우리 동지들이 함께 배 우고 지켜야 할 당 활동의 원칙적 자세 이자, 역사가 짧은 우리 당이 쌓아야 할 귀중한 전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진정한 동지는 고난의 순간에 진가가 드러나고,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돕 는 친구라고 했습니 이미 다함께 동지들이 투쟁 속에서 귀감을 보였듯 이, 저 역시 다함께 뿐 아니라 어떤 의 견을 가진 그룹이라도 저들의 탄압을 받는다면 다함께 가 이미 보인 소중한 산별노조와 비정규직 조직 편제 논의 정규직 비정규직 단결 투쟁을 위한 통합이 필요하다 금속산별노조가 출범하면서 정규 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어떤 조직 적 틀로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가가 논의되고 있 이미 금속노조 완성대대에서는 비정규직 사무직 조직 편제는 1 사 1조직을 원칙으로 한 단, 해당 단위의 판단에 따른다 는 규정을 신 설한 바 있 이것은 정규직 비정규직 사무 직을 뛰어넘는 노동자 단결의 원칙 을 확인한 것이며, 그와 동시에 해당 단위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정권을 존중한 것이 이를 바탕으로 올해 초 현대차지 부 대의원대회에서는 정규직 비정 규직 단일 조직 편제 방안이 제출됐 그러나 아쉽게도 이 방안은 다 수의 지지를 받지 못해 부결됐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이라는 산 별노조 정신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반면, 다행히 기아차지부 대의 원대회에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단 충남대 등록금 1천만 원 시대 신자유주의와 대학 교육 4월 3일(화) 오후 6시 30분 장소: 충남대 인문대 강의실 문의: 011-9097-0420 모범을 따를 것입니 다양한 견해차에도 저들 앞에서 함께 투쟁하고 이견은 진지하게 다시 논쟁하 고 설득하는 변혁적 민주주의 원칙을 함께 지켜 나갑시 이제 겨우 재판 종반이고 재판이 끝나 도 갈 길은 멀고 험합니 하지만 함께 하는 동지들의 정과 의리 가 있어 새 날 을 여는 하루하루를 힘있고 담담하게 그 리고 보람차게 보내고 있습니 다함 께 동지들의 건강과 건투를 기원합니 2007년 2월 18일 이정훈 일 편제 방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 한편, 현대차와 기아차의 비정규 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둘러 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 크게 구분 해, 선거구를 정규직 노조와 통합하 자는 주장과 부문위원회로 독자성 을 유지하자는 주장이 있 이화여대 비정규직 차별에 해법은 있는가 3월 29일(목) 오후 6시 30분 장소: 추후공지 문의: 010-6890-8796 선거구 물론 이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 또, 조 직 형식보다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의 연대라는 내용이 더 중요하 그러나, 단결을 위해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는 편이 더 낫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 긴 했지만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총 회에서도 80퍼센트 이상의 조합원 이 선거구 통합을 지지했 이런 단 결 염원을 단지 정규직 의존 심리라 고 폄훼해선 안 된 대학맑스주의포럼 지역사회포럼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일관되게 옹호하고 또 국가보안법 폐지에 누 구보다 앞장서서 완강한 투쟁을 전 개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전폭적 지 지와 참여의 뜻을 보냅니 저는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에 서 다함께 가 보여 주는 지지와 연대, 작은 차이보다 큰 공통점 을 앞세워 나가는 방침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같이 해 나가야 할 승 리의 핵심이라고 봅니 2007년 2월 18일 손정목 지난 호 <연합뉴스> 기자라고 사기친 <조선일보> 기사에 언급된 <조선일보> 사회부 수습기자의 이름은 이인묵이 그는 조명훈 동지에게 마지못해 사과할 때조차 취재원 보호 운운하며 조명훈 동지 전화번호를 알아낸 경로를 밝히지 않았고, 나에게는 지금껏 사과 전화 한 통 없는 상태 서범진 선거구 통합을 반대하는 동지들 은 그것이 정규직 노조 지도부의 관 료적 통제를 강화해 비정규직 투쟁 을 제한하고 독자성을 해칠 거라고 우려한 이것은 아래로부터 정규 직과 비정규직의 연대 가능성 확대 라는 조직 통합의 더 나은 측면을 놓 치는 것이 더구나 관료적 통제에 맞서기 위 해 필요한 것은 특정 조직 형식이 아 니라 현장의 독립적 운동이 지난 몇 년 동안 기아차의 일부 현장 활동 가들은 투쟁을 회피하는 노조 지도 부로부터 독립적인 행동을 건설하 는 모범을 보인 바 있 결국 사용자들의 공격이나 관료 적 지도부의 통제가 먹히느냐 현장 노동자들의 이익과 요구가 관철되 느냐는 현장의 세력 관계에 달려 있 따라서 조직 통합 속에서 정규 직 비정규직의 강력한 단결 투쟁 을 건설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 전지윤 서울 동부 중국 경제 기적은 끝나는가? 4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연사: 김용욱(주간 <맞불> 기자) 장소: 동부여성플라자 2층 세미나실(건대역 6번 출구) 참가비: 2천 원 문의: 018-330-4624
제36호 11 지지율 끌어올리려는 아베의 위안부 망언 김송(재일조선인 맑스주의자) 3월 초 일본 총리 아베가 일본군 위안 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 강제 성을 증명할 증거가 없었던 것은 사실 이 라고 발언해 한국을 비롯한 북한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여러 나라 정부와 민중의 커다란 반발을 샀 미국한테도 비판을 받은 아베는 한때 사과의 마음에는 변함 이 없다 며 고노 담화를 계승하는 발언을 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취했 그러나 3월 16일 일본 정부는 각의에 서 (고노 담화가 있던) 날의 조사 결과 발 표에서도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대나 관헌의 이른바 강제 연행을 직접 언급한 설명은 보이지 않았다 는 답변서를 확정 해, 3월 초 아베의 발언을 다시 확인했 각의 결정을 보더라도, 이것이 아베의 단순한 실언 이 아님을 알 수 있 그의 태도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아베는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 손자이며 확실히 그 정치적 기반을 계승 하고 있 1997년에는 새로운 역사 교 과서를 만드는 모임 을 지원한 일본의 전 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신진 의원 모 임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일본군 위안부 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을 되풀이했 경단련 또 2000년에는 여성 국제 전범법정을 보도할 예정이던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직전 NHK 간부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해 프로그램을 변경시켰 그러나 이 문제는 아베 개인의 자질로 환원할 만큼 단순하지 않 극우 정치인 으로서 북한이나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강경 발언을 반복해 온 아베는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지 말지 말하 지 않는다 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 취 임 직후에는 중국과 한국을 방문해 아시 아와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하려는 태도도 보였 왜냐하면 아시아 시장을 중시하는 일본 자본이 아베 정권에게 강 력한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 일본 경단련(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 아베 - 망언으로 위기 돌파? 아베 망언에 분노한 위안부 할머니들 - 일본 운동은 아시아 민중과 연대해 진정한 전후 보상을 쟁취할 과제가 있다 올해 제출한 장래 비전 희망의 나라, 일 본 에서 거듭거듭 언급하듯이, 일본 재계 는 아시아 경제권의 일체화를 촉진하며 아 시아 경제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려 한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아시아 태평양 전 쟁이나 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배상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아시아 외교 에서 [일본의] 정치적 신용은 매우 낮 이 때문에 일본 재계는 기본적으로, 아시 아에서 경제적 권익을 확보하기 위해 일 정한 범위 내에서 전후 보상 문제를 처리 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 그런 의미에 서 고노 담화는 일본 자본이나 국가에 유 리하 지난해 8월 15일 전 총리 고이즈미(자 민당)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뒤, 일본과 아시아 나라들의 정치적 관계는 최악이 었 이 때문에, 아시아에서 경제협력협 정(EPA)을 촉진하고 싶은 재계는 차기 정권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과의 관계 회복을 크게 기대하고 있었 이번 아베 정권의 태도는 그 지지율과 관계가 있 아베 정권은 전 고이즈미 정 권과 달리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사 회 통합이 철저히 파괴된 뒤에 출범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임 정권의 정책으로 요동친 사회를 다시 봉합해야 하는 커다 란 과제를 안고 있었 그래서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 정권처 럼 강경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 아베 정권은 관료나 공무원, 지 방 농촌과 중소기업 등 자민당의 이익 유도 정치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이익을 서로 주고받는 정 관 재계의 유착 관 계]의 혜택을 누려 온 기득권층을 강력히 공격해 지지율을 높인 고이즈미 정권의 퍼포먼스 정치를 흉내낼 수 없었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 개혁으로 잘려 나간 지방 보수층에 기반을 둔 자민당 내 저항 세력 을 당에 복귀시켜 지지율을 크게 떨어뜨렸 노동시간 규제 철폐 등 의 노동정책으로 더한층 인기를 잃었 그 결과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집권 초 기 63퍼센트였던 아베 정권 지지율이 그 후 계속 떨어져 올해 2월 중순에는 지지 하지 않는다 (40퍼센트)가 지지한다 (37 퍼센트)를 넘어섰 총련 이런 상황에서 아베 정권이 지지율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이 납치 문제였 같은 조사에서 납치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일본은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하지 않는 다 는 아베의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 는 대답이 81퍼센트였 아베 정권은 아시 아에서의 권익을 중시하는 일본 자본의 압력에 따라 중국 한국에 대해서는 외 교 관계를 신경쓰며 발언을 자제해 왔지 만 그만큼 대북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으 로 지지율을 높이려 했던 것이 이 때문 에 북한의 납치 문제를 빌미로 강경 자세 를 취하며 지난해 말부터는 경찰을 동원 해 전국 규모의 총련 탄압을 자행했 그럼에도 지지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 아베의 일련의 태도는 지금 궁지에 몰 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여론의 지지를 얻으 려고 고심한 결과일 것이 아베는 강경 한 언동이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 한편, 일본군 위안부 를 부정하는 아베 의 발언에 대한 [일본] 좌파의 대응은 거의 볼 수 없 이것은 일본의 평화 운동이 힘 이 없기 때문이 이는 일본인은 전쟁의 피해자다 라는 관점에서만 형성돼 온 전 후 평화 운동의 역사에서 비롯한 학생을 전장에 보내지 말라 는 교사들 의 슬로건이 일본 평화 운동의 성격을 상 징한 [일본 내에서 일본의] 가해 사실 에 대한 언급은 1991년 한국의 김학순 씨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고백한 할머니]가 입을 열기 전까지 전무했 이는 오랜 기간 냉전 구조 속에서 아무도 일본인에게 가해자의 책임을 묻지 않았 고, 일본이 고발도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 이상하리만치 [일본의] 가해에 둔감한 구래의 평화 운동은 전후 경제 성장의 배 후에 있는 아시아 경제 침략에도 둔감해 서 필연적으로 자국민 중심주의 운동으 로 변해 갔 한편, 일부 시민운동에서는 김학순 씨 이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해 그들 의 재판을 지원하는 운동이나 일본 군인 에게 직접 들은 내용을 토대로 가해 사실 을 폭로하는 운동도 있으나 아직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 어떻게 하면 재계가 주도하는 전략적 전후 보상의 길이 아닌, 아시아 민중과 일 본 민중이 연대해 진정한 전후 보상을 쟁 취할 것인가. [이것이] 일본 운동의 커다 란 과제
서울시청이 3월 15일 퇴출 대상 공무원 명단을 확정했 근무태도 불성실자 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 이라는 명분 으로 공무원 노동자를 해고하려는 것이 퇴출자 명단은 이렇다 할 기준도 없이 자 의적으로 작성됐 무조건 몇 명씩 퇴출자 를 선정하라는 지시가 내려가자, 과장이 자 기한테 밉보인 직원 위주로 명단을 작성하 는가 하면 심지어 전체 직원들을 모아놓고 투표로 대상자를 뽑는 살풍경도 벌어졌 공무원 퇴출제는 서울시청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지자체가 시도하고 있 구로구청은 삼진아웃제, 마포구에서는 공직 적응력 향상 프로젝트, 전주시는 무 능 태만 공무원 퇴출제, 성남시는 직무 수행 능력 향상제 라는 이름으로 추진중이 그밖에도 제주도, 전남 고흥, 인천, 대 전, 강원, 충남, 경남, 마산 등 확인된 곳만 도 수십 곳에 달한 정부와 지자체는 하위 기능직 공무원과 나이든 공무원을 우선 대상으로 삼고, 공무 원들을 이간질하고 있 이간질 이와 유사한 KT(옛 한국통신)의 구조조 정 사례는 의미심장하 한국통신은 공무 원 퇴출제와 유사한 자기 개발 프로그램 으로 맨 먼저 민주파 노조 활동가들을 공격 하고, 계약직 직원들을 대량 해고했 그 다음 정규직 노동자 1만여 명을 해고했 현재 강북구청도 명령에 불복종하고 상 시적으로 직원들을 선동하는 자 를 퇴출 대 상으로 지목하는 등 공무원노조 활동가들을 겨냥하고 있 활동가들 다음은 전체 공무 원들로 그 대상이 확대될 것이 따라서 공무원 노동자들은 정부의 이간 질에 속지 말고, 퇴출제를 초기에 무력화하 는 투쟁에 나서야 한 한편, 최근 구조조정 관련 투쟁 사례는 특 별법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투쟁하는 것 이 대안임을 보여 준 특별법 거부 입장으 로 투쟁한 공무원노조 마포구지부의 경우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적극 나서서 초기에 공무원 퇴출제 시행을 막아냈 반면, 화순군에서는 특별법을 받아들이 고 합법 노조 설립을 주도한 간부들이 대부 분 구조조정으로 희생됐 따라서 구조조정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 서라도 특별법을 거부하며 투쟁하는 것이 효과적이 공노총 소속 서울시청노조도 퇴출제에 맞서 촛불집회를 연 상황에서 전 국공무원노조 지도부는 더 적극적으로 구 조조정 저지에 나서야 한 물론 지금은 특별법에 대한 입장을 떠나서 구조조정에 맞선 단결 투쟁이 필요하 그 점에서 전 국공무원노조 지도부의 공동 투쟁 제안을 공노총 지도부가 거절하고 있는 것은 납득 할 수 없 공무원 퇴출제는 단지 공무원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 공무원 인원 감축은 공직 사회의 줄서기와 관료화를 부추길 것이고 공공서비스 약화로 이어질 것이 실제로 서울시는 소방관 퇴출도 추진하고 있 무엇보다 IMF 때도 그랬듯이, 공무원 노동자의 임금 고용에 대한 공격은 다른 부문과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에 대 한 공격의 신호탄 구실을 할 것이 따라 서 공무원 퇴출제에 맞서는 공무원 노동자 들의 투쟁에 전국적인 지지와 연대가 필요 하 이재열(전국공무원노조 활동가) 민주노총 이석행 지도부는 대화 복원보다 투쟁 건설을 우선해야 한다 민주노총 신임 지도부가 3월 15일 첫 중앙위원회를 열어 올해 사업 목표를 제 시했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보장, 산별 교섭 법제화와 공무원 교수 교사 노동 기본권 보장, 한미FTA 협상 저지, 반전 평화와 한반도 평화 실현, 무상의료 무 상교육 쟁취 등이 그것이 그런데 아쉽게도 이석행 지도부는 이런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투쟁 건설보다 정 부와 대화 채널 복원 에 치중하고 있 이석행 지도부는 노동부 장관 이상수 와의 면담에 이어서 건교부 기획예산처 등 각 부처 장관들과 릴레이 면담을 하고 있 3월 14일에는 산별연맹 위원장들 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부 장관과 간담회 를 열기도 했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정부는 적 이 아니다 며 이석행 위원장은 정부 정 책에 민주노총이 무조건 반대하는 구조를 타파하겠다 는 의지가 강하다 고 말했 3월 19일 사업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 석행 위원장은 파업을 자제 하고 5대 재 벌 총수와 면담을 추진하겠다 고도 했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지난 연말 노동 법 개악을 강행한 데 이어서 올해도 강경 탄압 일변도의 노동정책을 지속하고 있 정부의 탄압은 전방위적이 공무원 노조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과 구조조정 이 계속되고 있 그리고 오는 7월 비정규 악법의 시행을 앞두고 비정규직이 대거 해고되고 있 이에 맞서 울산과학대와 광주시청 청소 여 성노동자들의 처절한 알몸 시위도 있었 간담회에서도 노동부 장관 이상수는 의례적이고 공허한 말치레를 늘어놓았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요구에 노 사정 실무 대책반을 구성하자면서도 노 동기본권은 인정할 수 없다 고 버텼 공무원노조 탄압에 대해서도 오히려 특 별법을 수용하라 고 답했 금속노조가 요구한 산별교섭 제도화 역시 노사 자 율 결정을 위해 노사정 대책반을 구성하 자 고 했을 뿐이 노사간 자율적 해결 을 위한 노력 이라는 얘기는 장기 투쟁 사업장 문제에서도 반복됐 뒤통수 더구나 간담회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내놓은 몇 가지 제안은 우려스럽 공 무원의 파업권에 일정한 제한을 부여하 는 방식을 통해 공무원 노동3권을 인정하 라 고 제안하는가 하면, 한국노총에 편중 된 국고 지원 사업을 민주노총에 늘려 달 라고 요구하기도 했 국고보조금은 민 주노조의 자주성을 해칠 텐데도 말이 반면, 노동부 장관 이상수는 민주노총 의 노사정위 참여를 요청하며 한미FTA 체결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될 것 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았 따라서 악법 통과 이후에도 탄압 고삐 를 죄고 있는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보 다, 얻을 것도 없는 대화 테이블에 연연 하는 것은 옳지 않 노사정 교섭에 연 연하다가 뒤통수 얻어맞고 노동법 개악 안만 통과된 게 바로 엊그제 아닌가. 한국노총 지도부의 배신에 항의한 전 해투 동지들이 아직 감옥에 있는데도 이 석행 지도부가 남북 노동자 교류 를 고 리로 한국노총 지도부와 관계 복원을 추 진하는 것도 우려스럽 부패한 한국노 총 지도부가 정부와 경총에게 무려 2천5 백억 원을 지원받아 구성하려는 노사발 전재단 공동 이사장에 이수호 전 민주노 총 위원장이 임명된 것도 부당하 이석행 지도부는 고립된 투쟁을 방치한 채, 탄압을 강화하는 정부와 공허한 대화에 치중해서는 안 된 한미FTA 저지 투쟁, 개악 노동법 저지 투쟁, 장기 투쟁 사업장 연대 투쟁 등을 건설하는 게 더 시급하 정종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