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정성장* 요 약 김정은이 북한의 낙후된 경제에 대해 고민 하기 시작한 것은 스위스 유학생활 시기부터 이다. 그는 특히 2000년 북 중 정상회담 후 김정일에게서 중국의 발전된 모습을 전해 듣 고 중국을 경제발전의 모델로 고려하게 된 것 으로 보인다. 그 결과 김정은이 2009년부터 김정일의 후 계자로 활동하면서 북 중 경협이 현저하게 확 대되었다. 그리고 이후 북한 신년공동사설에 서 인민생활향상 에 대해 전례 없이 강조하는 등 경제정책 기조가 변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김정일 사후에는 경제관리방식의 개선 방 안을 연구하기 위한 소조(TF)가 구성되어 운 영되고, 무기 수출을 제외한 군부의 외화벌이 사업이 내각으로 이전되며,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가 강화되고, 내각의 위상이 높아졌다. 또 한 시범 협동농장의 분조 단위가 축소되고, 독립채산제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가 추진 되고 있다. 그리고 라선과 황금평 특구도 본 격적인 개발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다. 김정은 체제는 이처럼 김정일 시대에 비해 경제의 개혁 개방에 훨씬 적극적인 태도를 보 이고 있다. 그러나 협동농장에 더 큰 인센티 브를 제공하고 독립채산기업소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 28방 침 은 시범 실시 단계에서 농민들에 대한 통 제 강화로 불만을 초래하고 시장 환율 상승과 초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김정은 체제가 이 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경 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가족영농제의 조기 실시와 고립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수 정, 경제 부문에 대한 당의 간섭 최소화, 경제 개방의 확대를 통해 개혁 개방에 대한 지도부 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주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들과도 긴장을 완화하고 관계를 개선해 외부로부터의 공급 을 확대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가 과감하게 경제개혁 개방을 추진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도 북한의 그 같 은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개혁 개방이 성공하 면 북한 지도부에서 실용주의적인 엘리트의 입지가 강화되어 한반도 상황이 더욱 안정되 고 평화통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어: 북한, 김정은, 경제개혁, 경제개방, 중국모델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56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Ⅰ. 문제의 제기 2011년 12월 북한에서 절대 권력자 김정일이 사망한 후 그의 삼남 김정은이 동년 12월 말 군 최고사령관, 그리고 2012년 4월 중순 당 제1비서직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에 추대되어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하게 되었다. 새로 출범한 김정 은 체제가 향후 어떠한 경제정책을 추구할 것인지는 우리의 대북 정책 방향과 관 련하여 매우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만약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고립주의적이고 반개혁적 반개방적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면서 제한적인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경제난은 앞으로도 장기간 계속될 것이고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김정 은이 중국의 덩샤오핑( 鄧 小 平 )처럼 개혁 개방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비효 율적인 경제체제의 과감한 개혁과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추진한다면 북한 경제의 회복과 남북한 관계의 보다 실용주의적인 재편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2012a)은 올해 4월 6일 담화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를 조선로 동당의 지도사상으로 내세웠고, 4월 15일 김일성의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한 첫 공개연설에서 선군정치 계승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조선중앙통신 2012/04/15).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적극적인 경제개혁 추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들이 널리 확산되었다(박형중 2012/05/04, 2; 박희진 2012, 35~52 참조). 그러다가 북한이 협동농장과 기업소에 더 큰 인센티브와 자율 성을 제공하는 6 28방침 을 내부에 공표한 사실이 알려진 후에는 북한의 경제개 혁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들이 나타나고 있다(오경섭 2012, 20; 양운철 2012, 2 참조). 본고의 목적은 이처럼 김정은 체제가 경제개혁을 추진할 것인지 또는 경제개혁 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미리 전망하는데 있지 않다. 그것은 현재 북한이 추진 하고 있는 경제개혁이 아직 시범 실시 단계에 있다고 필자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6 28방침 을 발표했지만 관련 문건이 아직 입수되지 않아 이 문건의 실체 또는 내용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현재 많은 논란이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현재 경제개혁이 어느 정도 추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57 전문가들 사이에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최근 북한에서 경제개혁 개방과 관련해 어떠한 논의와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고, 어떠한 조치들이 어느 정도 범위에서 실시되고 있으며, 주민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김정은의 연설 과 북한의 보도 등 1차 자료와 한국 및 해외 언론의 보도, 김정은을 만난 일본인 요리사의 증언, 한국 정부의 발표와 기타 정보 등을 활용해 분석하고자 한다. 북한 의 경제개혁 움직임 관련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하거나 북한 방문자들과 인터뷰 한 기사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많은 공통분모 들이 발견된다. 따라서 필자는 북한 현지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각기 다른 출 처의 주장이 일치하는 경우 그 같은 주장이 충분히 근거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논의를 진행하도록 하겠다. 북한의 6 28방침 과 관련해서는 그것에 북한의 경제 개혁 방향 관련 총론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필자는 6 28방침 관련 내용들을 넘어서서 북한의 경제개혁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북한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경제개혁 개방을 추진할 것인지 전망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도 김정은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본고의 제2절에서는 과거 김정은과 장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김정일의 전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藤 本 健 二 )의 증언과 북한 내부 소식 통을 인용한 보도 등을 참고하여 이 문제를 검토하고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된 후 북한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그리고 제3절에서는 경제개 혁 사례에 대한 김정은의 검토 지시와 식량난에 대한 인식 및 농업의 제한적 탈집 단화 가능성, 군부 외화벌이사업의 이전과 내각의 역할 확대, 6 28방침 의 내용 과 그에 대한 주민의 반응 등을 고찰할 것이다. 이어서 제4절에서는 경제개방에 대한 김정은 체제의 인식과 북 중 경협 확대에 대해 분석하고, 제5절에서는 북한 경제 개혁 개방정책의 과제를 제시하도록 하겠다.
58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Ⅱ. 김정일 사망 이전 개혁 개방에 대한 김정은과 북한체제의 입장 1. 후계자 결정 전 김정은의 입장 2012년 1월 16일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AP 통신과 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이 지식기반경제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경제개혁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2012/01/17). 북한의 핵심 인사가 이 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김정은이 해외경제, 특히 중국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이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북한에 체류하면서 김정일의 요리사로서 김정은과 여 러 차례 만날 수 있었던 후지모토 겐지(2010, 142)는 그의 저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 에서 김정은이 2000년 8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후지모토, 위(김정일)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지금 중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 같아. 공업이나 상업, 호텔, 농업 등 모든 것이 잘 나가고 있다고 위에서 얘기하더 군. 우리나라 인구는 2,300만 명인데, 중국은 1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가졌는데 도 통제가 잘되고 있다는 게 대단한 것 같아. 전력 보급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13억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업의 힘도 대단하고, 식량 수출도 성공적이라고 하더군.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본보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되겠지? (강조는 필자) 2000년 8월은 김정일이 17년 만에 중국을 다시 방문해 장쩌민( 江 澤 民 ) 중국공산 당 총서기와 정상회담을 개최한 지 3개월 되는 시점이다. 당시 김정은은 김정일로 부터 발전된 중국의 모습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리고 김정은은 그날 저녁 11시경 부터 다음날 오전 4시경까지 후지모토 겐지와 북한의 현실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 따위를 무려 다섯 시간이나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런 김정은에 게서 후지모토는 그가 북한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중국의 방식을 본보기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았다 (후지모토 겐지 2010, 142)고 적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59 김정은이 이처럼 중국의 발전 모델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경부터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그가 북한의 낙후된 경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김정은은 1996년 여름부터 2001년 1월까지 스위스에서 유학했다(최이락 2009/06/14). 후지모토 겐 지는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1998년 6월 후지모 토, 외국의 백화점이나 상점에 가서 보니 어디를 가나 물자와 식품들로 넘쳐나서 놀랐어. 우리나라 상점은 어떨까? (후지모토 겐지 2010, 136)라고 질문해 놀랐다 고 증언하고 있다. 김정은은 2000년 8월에도 후지모토 겐지에게 우리나라는 아시 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공업기술이 한참 뒤떨어져. 우리나라에서 내세울 것이라곤 지하자원인 우라늄 광석 정도일거야. 초대소에서도 자주 정전이 되고 전력 부족이 심각해 보여 (후지모토 겐지 2010, 139)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정은이 북한경제의 낙후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은 어린 시기에 스위스에서 유학하고, 유럽 및 일본 에도 가족여행을 함으로써 북한과 외부세계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로 인해 프랑스 유학 및 장기 체류를 통해 자본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나중에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중국의 덩샤오핑과 장쩌민처럼 개혁과 개방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2. 김정일 김정은 공동통치와 북한의 경제정책 기조 변화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혈관계 이상으로 김정은은 동년 말에 북한 내부에서 은밀히 후계자로 결정되어 2009년 1월부터 북한의 대내외 정책에 점차적으로 관 여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김정일이 김정은의 보좌를 받고 김정은은 김정일의 후원 하에 국정에 관여하는 김정일 김정은 공동정권이 사실상 출범하게 되었다. 열린북한방송은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주도하는 개혁개방 전략 수립팀이 이미 2009년 8월 김정일서기실 산하에 구성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이 팀에는 김정은과 그의 형인 김정철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 으며, 팀의 주축 세력은 김정은의 측근들인 50대들이었다. 그리고 이 팀의 전략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북한의 향후 개혁개방 전략을 수립하는 것과 핵 미사일 문제의 해법 및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개혁개방 전략 수립팀은 북한의
60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개혁개방이 원활히 추진되기 위해서는 핵 미사일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 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핵 포기는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과 담판을 지을 방법을 주로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열린북한방송은 또한 2009년 10월 4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북 당시 체결되었던 북 중 경제협력 사업들도 1) 이 팀에서 기획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 혔다(장철수 2009/10/23). 열린북한방송의 보도는 2009년 여름 이후 북 중 경협의 발전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연구들은 2009년 5월의 제2차 북한 핵실험 이후 북 중 경협의 심화와 관련하여 북한의 의존의 분산 정책 잠정 포기와 중국의 대북 전략 변화를 지적해왔다. 북한의 정책 변화와 관련해 김정일은 북 중 간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자국의 경제가 중국에 일 방적으로 의존할 경우 그것이 정치적 종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중국, 남한, 일본, 기타 서방 등에 경제적 의존을 분산시키는 정책을 추구해왔으나 이명 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2차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의존의 분산 정책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는 것이다(이종석 2011, 9~10). 그리고 중국의 정책 변화와 관련해서는 2009년 여름 중국공산당이 대외정 책 최고결정기구인 외사영도소조회의를 열어 북한 문제를 두고 제재 와 전통적 우의관계 발전 이라는 두 개의 길 중 후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회의를 계기로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시각이 기존의 북한 책임론에서 미국-북한 공동책임론으 로 전환했고, 그 결과 동년 가을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해 유엔 안보리 제재 1874호 를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광범한 북 중 경협 협정들에 조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종석 2010, 6). 이 같은 평가는 2009년 이후 북 중 경협 심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의 어떠한 변화가 의존의 분산 정책을 포기 하게 했는가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 개혁 1) 당시 북한과 중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사이의 조약 정리에 관한 의정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정부사이의 경제기술 협조에 관한 협정 과 경제원조에 관한 교환 문서들을 비롯한 여러 건의 경제 분야의 합의 문건들, 두 나라 교육기관 사이의 교류 및 협조에 관한 합의서, 소프트웨어산업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조에 관한 양해문, 국가품질감독기관사이의 수출입품 공동검사에 관한 의정서, 중 국 관광단체의 조선 관광실현에 관한 양해문, 야생동물보호협조를 강화하기 위한 합의서 등 많은 협정 및 합의문들에 조인했다(조선중앙통신 2009/10/04).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61 개방 전략 수립팀 이 설치된 시점과 경제의 대중 종속을 우려했던 북한이 갑자기 북 중 경협의 심화를 선택한 시점이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은 양자 간에 일정한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2008년 8월 김정일의 건강이상 이후 한 미 군사당국이 북한 급변사태 시 북한 점령을 위한 작전계획 5029 를 구체화한 것에 반발해 대외적으로 초강경 태도를 보였던 북한이 2009년 8월부터 갑자기 대외 유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사실도 주목 을 끈다. 북한은 동년 8월 초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억류 미국인 여기자들을 석방하고, 8월 16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총비서 간의 회동 을 통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재개, 육로 통행 제한 해제, 이산가족 상봉 등에 대한 합의를 발표했다. 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김 총비서의 최측근 과 대남정책 실세들이 포함된 고위급 특사 조문단이 남한을 방문하여 8월 22일 현인택 통일부장관을 만나고,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여 김 총비서의 구두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다. 이명박 정부가 6 15와 10 4 남북정상합의 이행 입장 을 분명히 천명하지 않는 한 남북 당국 간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였던 북한이 한국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먼저 당국 간 접촉에 나서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총련 기관지 조선 신보 9월 4일자 기사를 통해 긴장완화를 지향한다면 북, 남, 미국의 엉클어진 이해관계를 풀고 서로 맞물리도록 하여야 한다 (정명진 2009/09/04)고 통미통남 ( 通 美 通 南 ) 입장을 밝혔다. 미국하고만 대화하고 남한과의 대화는 거부하는 기존 의 통미배남( 通 美 排 南 )의 입장에서도 탈피한 것이다(정성장 2009, 52~53). 2009년 하반기 북한의 이 같은 대외 유화공세는 북 중 경협 진전, 남북정상회 담 개최를 위한 비밀접촉, 북 미 대화 진전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에서 북측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2010년 1월 중순 국내 한 언론이 한국정부가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통합형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 을 <표 1> 북한 신년공동사설에서 주요 단어의 언급 회수 변화 (2009~2011) 선군( 先 軍 ) 국방공업 자력갱생 경공업 소비품 농업 2009 33 1 4 1 1 1 2010 15 1 0 9 2 11 2011 14 2 3 21 8 4
62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작성했다고 보도한 후 북한이 이에 강하게 반발해 국방위원회 이름으로 보복성전 을 선언하고 천안함을 폭침시키면서 남북관계와 대미 관계 개선 시도는 좌절되었 다(정성장 2010, 1~8 참조). 한편 2010년과 2011년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은 전례 없이 인민생활 향상 을 강 조하면서 북한의 대내 경제정책 기조 변화를 시사했다. 몇 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2009년~2011년 신년공동사설을 분석해보면 흥미 있는 변화가 발견된다. 먼저, 김 일성 사후 북한이 그토록 강조해 온 선군( 先 軍 ) 이라는 단어가 2009년에는 33번 언급되었던 데 비해, 2010년에는 총 15번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2011년에 도 총 14회 언급되어 전년도와 비슷한 강조 수준을 보였다. 반면 경공업 이라는 단어는 2009년과 2010년, 2011년에 각기 1번, 9번, 21번 언급되어 강조의 수준이 현저하게 높아졌으며, 특히 2011년에는 선군 이라는 단어보다 7번이나 더 많이 언급되었다. 소비품 이라는 단어는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기 1번, 2번 언급되었 지만, 2011년에는 8번이나 언급되어 북한이 주민의 생활소비품 생산에 과거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북한이 인민생활 향상에 대해 전례 없이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정성장 2011, 1~2). Ⅲ.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전망 1. 경제개혁 사례에 대한 김정은의 검토 지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정일 시대에 북한은 개혁 개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김정일(2000, 458)이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떠드는 개혁, 개방 바람에 끌려들어 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개혁, 개방 은 망국의 길입 니다. 우리는 개혁, 개방 을 추호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강성대국은 자력갱생의 강성대국입니다. (강조는 필자)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일반 간부들이 개혁 과 개방 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공개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북한은 7 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실시하고 개성과 금강산 특 구를 지정하는 등 중국이 개혁 개방 초기에 취했던 것과 유사한 정책을 추진했지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63 만, 개혁 과 개방 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계속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개혁 개방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은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총비서와의 단독정상회담을 마친 후 방북대표 단과 오찬을 같이 하면서 남측은 신뢰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북은 의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불신의 벽이 있었다 고 언급한 뒤 그 중에서 예를 들면 개 혁 개방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그렇다. 어제 김영남 위원장과 면담에서도 그렇 고 오늘 정상회담도 그렇고... (강조는 필자)라고 예를 들었다(이성헌 2007/10/03). 대표단으로 함께 방북한 이상열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북한 인사들과의 간담회 후 북측이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고 개혁과 개방을 번영의 길로 나간다는 게 아니라 체제 전복의 길로 나간다고 보는 것 같았 다 (강조는 필자)고 설명했다(노효동 송수경 2007/10/05). 이처럼 김정일 시대에 북한은 개혁과 개방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파워 엘리트가 공개석상에서 개혁 개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올해 1월 16일 북한의 노동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인 양형섭이 A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김정은이 지식 기반경제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경제개혁 사례를 연구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강조는 필자). 이 같은 사실은 현재의 북한 지도부가 경제개혁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해외의 경제개혁 사례에 대한 김정은의 연구 와 관련,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는 북한 내부의 고위급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일이 사망 직전까지 김정은과 토의하 여 중국식 경제개혁정책을 면밀히 준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 소식통 에 의하면, 2011년 8월부터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기 전까지 당중앙위원회의 조직 지도부와 대외 및 경제정책 부서들, 내각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합영투자위 원회 를 혼동한 것으로 추정됨)와 국가계획위원회 그리고 재정성 등이 주도하여 이 사업을 진행했다. 이들 부서들에서 과장급, 책임부원급 담당자를 몇 명씩 선발 하여 경제개혁 관련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그 대안을 세우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1년 12월 14일까지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북한은 2012년 4월부터 모든 공장, 기업소들의 생산수단을 개인이 아닌 일정 집단, 구체적으로 공장의 행 정부서들에 임대형식으로 맡기고 연말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국가에 바치는 방식을 실행에 옮기려 했다고 한다. 예컨대 버스사업소의 버스를 장거리 운송용으로 그
64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사업소의 책임자에게 임대해주고 연말에 가서 대당 500달러를 국가에 바치게 하는 형식이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생산수단이나 편의봉사시설을 이용할 권한만 주었 는데 앞으로 임대 권한까지 부여하게 되면 개인이나 집단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 는 공간이 훨씬 확대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계획의 실행은 작년 12월 17일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함으로써 연기되었다(한성관 2012/02/23).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김정은에게는 경제 개혁과 개방보다 김정 일의 권력을 공식적으로 조기에 승계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경제개혁 추진에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난 1월 양형섭의 발언과 다른 정보들을 통해 확인된다. 2012년 4월 16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김정은 제1비서의 1월 28일자 발언록을 입수해 그가 북한 최대의 터부 가운데 하나인 자본주의적 방식의 도입을 포함한 경제 개혁 논의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동 신문에 의하면, 김정은은 경제 분야의 일꾼과 경제학자가 경제관리를 이런 방법으로 하면 어떻겠느냐 고 제안해도 색안 경을 낀 사람들에 의해 자본주의적 방법을 도입하려 한다 고 비판을 받기 때문에 경제관리에 관한 방법론에 의견을 갖고 있어도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고 지적했 다. 그는 또한 터부가 없는 논의를 통해 북한에 맞는 경제 재건책을 찾아내도록 지시했다. 북한 노동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정은 동지가 최근 당 간부들에게 중국의 방법이든 러시아나 일본의 방법이든 활용할만한 방식이 있다면 도입하도록 지시했다 (강조는 필자)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김종현 2012/04/16). 마이니치 신문이 입수한 김정은의 1월 28일자 발언록의 내용은 동월 16일 양형섭의 AP 통 신과의 인터뷰 내용과 상통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2012년 1월 28일 경제 재건책 수립 지시 직후인 2월초부터 김정은서 기실 2) 이 2019년까지 완전 개혁 개방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을 작성하기 시작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 용해 김정은서기실의 경제 담당 서기에게 김정일 사망 이전부터 연구해 온 중국식 경제개혁 개방안을 종합할 데 대한 실무과업이 하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리고 빠른 시일 내에 개혁 개방을 실현하려는 김정은의 의지는 확고하며, 이와 관련 김정은의 친필 지시와 교시에 따라 관계 부문 간부들의 중국, 인도네시아, 2) 김정일서기실 이 김정일 사후 김정은서기실 로 명칭이 바뀌었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65 태국, 베트남, 아세안 지역 등 후발국들의 개혁 개방 성공 또는 실패 사례들에 대한 연구가 거듭되고 대안도 마련되었다고 한다(이윤걸 2012, 347~348). 김정은의 특별지시에 따라 2012년 초 내각 산하에 경제관리방식 개선을 준비하 는 소조 가 꾸려졌고, 로두철 부총리가 소조의 조장을 맡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 었다(이헌진 외 2012/06/26). 3) 로두철 부총리는 2005년 10월 방북한 우이( 吳 儀 ) 중국 부총리와 북 중 정부간 경제기술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고, 동년 12월 중국을 방문해 중국과 해상에서 원유를 공동으로 개발하는 협정을 체결했으며, 2006년 1월 김정일의 방중을 수행했고, 2010년 11월과 2011년 9월 최영림 총리의 방중을 수행하는 등 북 중 경제협력을 주도해온 인물이다(최선영 2006/01/18; 조선중앙통신 2010/11/04; 조선중앙통신 2011/09/26). 로두철은 2009년부터 국 가계획위원장이라는 경제 분야의 중책을 맡고 있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 원이라는 당내 고위직도 맡고 있어 현재 북한에서 경제개혁을 주도하기에 적임자 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은은 2012년 2월 16일 김정일 생일 70돌 기념행사 직후 고위급 간부회의에 서 우리 인민들을 7년 안에 남부럽지 않은 인민으로 만들겠다 고 공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윤걸 2012, 348).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이 같은 김정은의 공언 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만약 북한이 과거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적극 적인 의지를 가지고 개혁 개방을 추진하고 주변국들이 협조한다면 7년 후에 적어 도 심각한 식량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지도부가 2012년 4월까지는 김정은의 당 제1비서직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직 추대 및 파워 엘리트 인사 등 김정은 체제의 공식적 출범을 위한 작업에 매달림으로써 당초 4월부터 추진하려고 했던 경제개혁 조치들은 연기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북한이 실시하고자 하는 경제개혁의 방향은 6월말에 내부적으 로 공표한 6 28방침 에 제시되어 있는데, 북한의 식량난과 농업문제 및 군부 외 화벌이사업의 내각으로의 이전에 대해 먼저 분석한 후 6 28방침 에 대해 고찰하 기로 하겠다. 3) 국정원은 2012년 7월 26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를 통해 북한이 김정은 제1비서 지시로 경제관리 방식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이귀원 2012/07/26).
66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2. 식량난에 대한 김정은의 인식과 농업의 제한적 탈집단화 문제 김정은이 이미 10대의 젊은 나이에 북한 경제가 서구세계에 비해 크게 낙후되어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 있 다. 그런 김정은이 김정일 사후 현지지도를 실시하면서 북한 경제의 실상을 직접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함경남도 주민 곽 모 씨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대담에서 김정은 장 군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고 지적하고, 그 이유를 김정은 장군 의 현지지도 방식이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주민들 사이에 퍼지면서 호의적인 반응과 더불어 향후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고 설명했다. 과거 김정일의 현지지도는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각본대로 행해져 완벽하게 준비된 것들만 둘러보는 형태였는데 반해 김정은은 정해진 코스 를 이탈해 파격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곽씨는 예를 들자면 황해 도의 한 부대를 시찰하는 과정에서 부대장이 인도해주는 코스를 마다하고 엉뚱한 막사에 들어갔는데 하필 그곳이 허약자들(영양실조 환자)만 모아놓은 곳이었다 고 말했다. 그리고 허약자들의 실태를 본 김정은이 대노해서 부대장을 징계하고 허약 자들을 전원 평양의 병원으로 후송토록 조치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함흥시를 시찰하러 가는 도중에 차를 세우도록 지시하고 인근의 민가를 불시에 방문했는데 마침 식구들의 저녁 식사로 차려놓은 강냉이 몇 알이 들어간 시래기 죽사발이 여 과 없이 그대로 김정은의 눈에 띠었다. 곽 씨는 그 후 그 지역 책임자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지에 대한 소식은 알려진 게 없지만 항상 거짓 보고만 올리던 간 부들이 크게 징계를 받았을 것은 분명하고 주민들은 새 장군님이 뭔가 다른 것 같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고 말했다.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에 오른 초 창기에는 나이도 어리고 호강하며 자란 사람이 백성들 어려운 사정을 어찌 알겠느 냐는 비아냥거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유학을 갔다 온 젊은 사람이라 뭔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는 분위기가 대세라고 곽 씨는 밝혔다(김준호 2012/05/29). 함경남도 주민 곽 모 씨의 이야기는 김정은이 과거에는 일반 북한 주민들의 심 각한 식량 사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으나 북한을 직접 통치하면서 그 같은 상 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 군인들 가운데에도 영양실조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67 환자들이 발생하고 있고, 강냉이 몇 알이 들어간 시래기 죽사발 로 끼니를 때우는 북한 주민들이 특히 지방에 허다하다는 것은 이미 외부세계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 다. 식량난이 해결되지 않고는 허약자들 을 숨긴 부대장이나 허위 보고를 한 지역 책임자를 징계한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올해 북한 지도부가 농업개혁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증언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는 이와 관련 2012년 2월경 김정은서기실에서 토지 의 장기임대와 같은 제한적인 토지의 사적 소유 허용 및 농작물 처분권 실시 같은 농지개혁 문제가 거론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한성관 2012/05/14). 2012년 6월 동아일보도 중국의 정통한 대북 소식통을 인용해 내각 산하의 경제관리방식 개선 을 준비하는 소조 에서 농업개혁을 심도 있게 논의했는데, 경제개혁 중 농업개혁, 특히 농지의 사적 소유를 어디까지 인정해 농민의 자발성을 이끌어낼지가 핵심 이 라고 밝혔다(이헌진 외 2012/06/26). 김정은은 2012년 2월 중순경에 열린 최고위층 핵심 간부들 회의에서 지금은 총알보다 식량이 더 중요하다 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준운 2012/05/14).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가 현재 북한의 식량 사정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3년간의 연속적인 자연재해로 인해 수백만이 아사했던 1990년대 중후반에도 식량보다 총알 을 더 중시했던 김정일과 는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김정은은 공식적 권력승계 완료 직후인 4월 15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열병식에서 한 연설을 통해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 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 (조선중앙통신 2012/04/15)이라고 밝힘으로써 주민들 의 식량 문제를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북한이 과연 중국식 경험을 수용해 궁극적으로 협동농장을 해체하고 토지를 농 가에 분할해주는 단계로까지 나아갈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중국이 초기 단계 에서 실시했던 것과 같은 제한적 탈집단화를 추진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북한 고위관료들과 자주 접촉할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조선족 대북 사업가 박 모 씨는 2012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6월 초 자유아시아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현재 대규모 집단형태의 협동농장 체제를 소규모 농장 체제로 개혁하 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나 내부의 이견으로 일단은 주춤한 상태 라고
68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전했다. 북한당국이 검토하고 있는 협동농장 개혁의 골자는 과거 중국의 농촌 토지개혁 모델을 검토는 하지만 중국식으로 토지를 완전 개인에게 분배하는 형태 는 아니고 현재 대규모 협동농장체제를 소단위로 쪼개서 그 규모를 소형화하는 것 이라고 박 씨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소유감도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면서 기존의 협동농장 체제도 유지하려는 정 책으로 보인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4월 20일 통일 교육원 특강에서 북한도 집단농장을 할 게 아니고 쪼개 바칠 것은 바치고 네가 가져라 라고 하면 쌀밥 먹는 것은 2~3년 안에 (가능할 것) 이라면서 북한은 그것 (농지개혁)을 해야 된다. 젊은 지도자(김정은)가 그것 하나 하면 되는 것 이라고 발언하고 나서 이 계획을 일단 접었다 고 한다. 4) 북한에서 이 조치를 당장 실행에 옮길 경우 남조선 대통령의 훈수대로 실시한다고 세간의 입방아에 오를 것이 뻔 하다는 이유에서 내부의 반대 목소리가 크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박 씨가 만나본 북한 관료들은 당국이 검토하고 있던 협동농장 개혁 계획이 일단 멈칫하고 있는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하는 듯 우리가 뭣 좀 해보려 궁리중인데 남조선 대통령 한마디에 주춤하고 있다 고 전하면서 남조선이 이런 때는 조용히 있는 게 호상간 에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 말했다. 중국의 또 다른 대북 소식통도 농촌 협동농장에 대한 개혁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북한 관료들로부터 들은 적은 있다 면서 그러나 어떤 식으로 개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북한당국이 농촌에 대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다 (김준호 2012/06/04). 북한 지도부가 해외의 농촌 개혁 사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2012년 6월 김영일 당중앙위원회 국제 비서를 단장으로 하는 북한 노동당 대표단이 베트남 북부 타이빙성을 방문, 현지의 농촌 개발 모델을 시찰한데서 확인 된다. 당시 타이빙성 공산당 짠 깜 뚜 서기는 6월 12일 북한 노동당 대표단과의 실무회의에서 베트남 정부의 신농촌개발계획(2010 2020년)에 따른 지역발전상 을 소개하면서 2020년이 되면 모든 지역이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신농촌의 기준을 4) 북한은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4월 2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를 통해 역도는 우리의 인민생활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험담을 줴치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농지개혁부터 해야 한다 고 주제넘게 지껄여댔는가 하면 그 무슨 인권 이니, 변화의 바 람 이니 하면서 우리에 대해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는 악담까지 내뱉으며 체제대결의 흉심 을 꺼리낌없이 드러냈다 (강조는 필자)고 비난했다(조선중앙통신 2012/04/23).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69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일 비서는 타이빙성의 농업생산 과 빈곤 해소, 고용 등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베트남 공산당의 올바른 정책으 로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북한 노동당 대표단은 베트남공산당과 의 실무협의가 끝난 뒤 타이빙성 탄 딴 등 일부 지역을 직접 둘러봤다(김권용 2012/06/13). 5) 북한 노동당 대표단은 또한 2012년 6월 중국 장쑤( 江 蘇 )성 화시( 華 西 )촌 등 대 표적인 농촌 개혁 현장도 시찰했다. 화시촌은 1978년 말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 혁 개방 정책에 따라 30여 년 만에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농촌으로 발전한 곳이 다. 현재 화시촌의 1인당 소득은 1만 달러가 넘는다. 화시촌의 72층짜리 룽시( 龍 希 )빌딩에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북한의 20대 여성 7명이 자본주의식 호텔 실무 를 익히며 6개월째 연수를 받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장세정 2012/07/20). 3. 군부 외화벌이사업의 이전과 내각의 역할 확대 북한의 전체 경제에서 군( 軍 )경제 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북한에 서 경제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이 가지고 있는 외화벌이사업을 민생과 관련 된 내각으로 이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는 군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대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그동안 북한의 경제개혁 성공 가능성과 관련해 외부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많이 나왔던 것은 바로 내각이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 4월경부터 내각을 경제사령부 로 내세우고 군부의 외화벌이 사업 중 무기 판매를 제외한 대부분을 내각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 김정은은 올해 북한 군부의 부패 실상을 파악하고 격노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은(2012a)은 2012년 4월 6일 당중앙위원회 고위간부들과 한 담화에서 인 민생활향상과 경제강국건설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하여서는 경제사업에 5) 베트남식 개혁에 대해서는 양운철(2011) 참조. 6) 국정원은 2012년 7월 2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김정은 제1비서 지시로 구성된 경제 관리 방식 개편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군과 내각으로 양분된 경제사업을 내각으로 일원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이귀원 2012/07/26).
70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나 가는 규률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합니다 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내각은 나라의 경제를 책임진 경제사령부로서 경제발전목표와 전략을 과학적으로 현실성 있게, 전망성 있게 세우며 경제사업 전반을 통일적으로 장악하고 지도관리하기 위한 사 업을 주동적으로 밀고나가야 합니다 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또한 모든 부문, 모든 단위들에서는 경제사업과 관련한 문제들을 철저히 내각과 합의하여 풀어나가 며 당의 경제정책관철을 위한 내각의 결정, 지시를 어김없이 집행하여야 합니다 라고 지적함으로써 내각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물론 과거에 김정일도 이처럼 내각의 권위를 세워주는 발언을 하기는 했으나 내각이 정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재원까지 충당해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각의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었다. 김정 은 시대에 내각의 활동에 과거보다 확실히 힘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최영림 내각 총리가 작년보다 훨씬 활발하게 현지료해 7) 활동을 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벗들 도 2012년 5월 16일자 뉴스레터에서 김정은 제1비서 가 중요 간부 회의에서 몇 차례 당 일군들은 당이 준 권력으로 경제활동에 개입하 거나 사사로이 개인의 리익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 전했다. 당일군들 은 관리 통제를 잘하고, 경제 일군들은 자기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 는 것이 김 제1비서의 뜻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의 이 같은 지시에 대해 중앙당의 한 간부는 경제를 모르는 당 일군들이 직접 경제 건에 참여하여 경제 발전에 지장을 주는 현상을 없애고 개인들의 비리를 없애려는 목적에서 내린 결정이다. 경제 분야는 경제 일군들이 자신의 령역에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여 하루 빨리 경제를 추켜세 우게 하자는 방침 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경제 분야에 대한 당의 지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북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김정은의 이 같은 지시로 인해 경제관료들의 권위가 과거에 비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 다. 8) 김정은은 2012년 5월 14일 군대가 너무 돈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 가 만들어 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하면 된다 라고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7)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에 의하면 료해 는 사정이나 형편이 어떠한가를 알아보는 것 을 의미한다(사회과학출판사 1992, 981). 8) 주펑 북경대학 교수는 경제권력을 정부에 귀속시키는 지금의 북한 상황이 덩샤오핑이 중 국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개혁 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는 1979년과 비슷 하다고 평가했다(신은서 2012/07/27).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71 있다(이윤걸 2012, 354; 정창현 2012/07/25). 북한의 이른바 6 28방침 은 이처럼 북한 전체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군( 軍 )경제 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내각 경제 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확정되었다. 지난 7월 15일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군의 핵심 실세 중 한 명인 리영호 총참모장이 해임되는 사건이 발 생했다. 리 총참모장은 과거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사업을 내각으로 이전하는 데 반발하다가 해임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4. 6 28방침 의 시범 실시와 주민들의 반응 2012년 7월 10일 데일리NK는 북한이 6월말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 를 확립할 데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6 28방침 을 내부에 공표했다고 밝혔 다. 데일리NK가 입수한 내용에 의하면 이 방침은 북한 당국이 협동농장과 국영공 장에 시장가격이 반영된 생산비용을 선( 先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협 동농장에서는 현재 10~25명으로 구성된 작업분조( 分 組 ) 단위를 앞으로 4~6명 단 위로 축소 관리하고, 작업분조에 따라 토지와 생산비용을 할당한다는 내용도 포 함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당국이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 각급 기관들이 보유 하고 있는 유휴지( 遊 休 地 )까지 작업분조에게 맡긴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이 방침 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국가가 작업분조에게 필요한 생산비용를 선지급 한 다는 것과 생산비 책정이나 수확량에 대한 가격평가 과정에서 현실적인 시장가격 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6 28방침 내용을 전한 대북 소식통은 중요한 것은 가변 가격 제정 이다. (시장의) 현시세에 맞게 가격을 매긴다는 뜻 이라고 강조했다. 공 장기업소에도 이 같은 방식이 도입되어 기업소의 경우 최초 생산비는 국가에서 투자 하고, 그 돈으로 원자재를 사다가 생산, 판매하게 되면 판매수입을 국가와 해당 기업소가 일정비율로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해당기업소는 분배된 돈으로 기업 소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정재성 2012/07/10). 9) 데일리NK에 의하면 북한 당국은 협동농장 작업분조와 공장기업소에 선지급하 는 생산비용을 국가투자 로 표현했다고 한다. 재원 및 자재 부족 생산 감소 9) 국정원도 2012년 7월 26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경제관리 방식 개편을 위한 태스크 포스(TF)를 통해 협동농장의 분조단위 축소,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 근로자 임금인상 등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이귀원 2012/07/26).
72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수입 감소 근로의욕 약화 생산 감소 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국가투자 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이 제한 되어 있는 상황에서 모든 기업소에 생산비용을 선지급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 서 북한 당국으로서는 우선적으로 몇 개의 시범단위를 선정해 6 28방침 을 시행 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해 점차적으로 시행 범위를 확대해가는 것이 현실 적이다. 북한 소식통도 신의주화장품공장 등 각 도마다 한 두 개씩 시범 단위가 선정됐다 면서 이 시범단위에는 조만간 국가투자가 시작될 것 이라고 밝혔다(정 재성 2012/07/10 참조). 6 28방침의 내부 공표 이후 곧 북한은 양강도의 3개군을 지정해 국가 계획량을 초과한 생산물을 농장원들에게 전량 분배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2년 7월 북한 혜산의 소식통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이 양 강도 대홍단과 김형직군(구 후창군), 김정숙군(구 신파군) 내의 협동농장에 새로운 품종의 종자와 비료, 제초기 등을 제공하고 알곡 생산량의 30%를 개인에게 분배하 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라고 밝혔다. 그리고 국가가 제시한 목표 생산량 이내에서 는 국가가 70%, 농장원이 30%를 가져가도록 했지만 목표량을 초과할 경우 전량을 농장원들이 갖게 된다 면서 결국 당국이 계획량을 어느 수준으로 제시하느냐가 관건 이라고 언급했다. 최근까지 북한은 정책적으로 협동농장의 생산량에 관계없 이 농장원 개개인의 노력공수(작업일수나 강도)에 따른 차이만 반영하는 균등적 분배정책을 고수해왔다. 그러므로 농장원이 열심히 일해 농작물이 많이 생산되어 도 그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크지 않기 때문에 농장원들은 협동농장에서 일하기보 다 텃밭 운영에 더 큰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새로운 조치에 의하면 알곡 생산량 이 늘어날수록 농장원들에게 분배되는 몫도 그에 비례해 늘어나기 때문에 과거보 다는 인센티브가 확실히 커진 셈이다. 게다가 김정숙군에 김정은의 선물 명목으로 새로운 농기계가 반입되면서 도시로 나갔던 주민들도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온다 는 말이 나올 정도 로 관련 군에서는 새로운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반대로 화폐개혁 등으로 당국의 조치에 실망이 컸던 주 민들 사이에서는 당국의 개혁 의지를 그대로 믿지 않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 해졌다. 당국이 계획량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인민군 지원 등의 명목으로 30% 분배 약속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김광진 2012/07/20). 북한은 2012년 8월초부터 근로단체와 인민반, 공장 기업소를 대상으로 새 경제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73 관리체계 에 대한 강연회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자유아시아방 송(RFA)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국가가 따로 생산품목이나 계획을 정해주지 않고 공장기업소들이 독자적으로 생산하고 생산물의 가격과 판매방법도 자체로 정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해 북한이 사회주의체제의 근본인 계획경제를 포기 했다고 주장했 다. 그리고 국가기관 사무원들과 교육, 의료 부문 직원들에 한해서만 기존과 같이 국가가 배급을 주고 기타 근로자들의 배급제는 폐지됐다 (문성휘 2012/08/08)라고 까지 언급함으로써 북한의 경제개혁 추진 상황에 대한 외부세계의 인식에 큰 혼란 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북한이 점차적으로 계획 부문과 배급제를 축소하는 방향 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곧바로 이런 조치를 전면 실시하겠다는 입장 은 아니므로 이 같은 보도는 성급한 것이었다. 배급제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은 곧 국가계획을 할당받는 단위는 기존처럼 배급 제가 유지되고, 독립채산제를 보장받는 생산단위만 생활비 체계로 바뀌는 것 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그런데 군수공장이나 중앙급 공장기업소를 제외하면 실제 독립채산제로만 운영되는 생산단위는 비중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급기업소에서 일했던 한 탈북자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생산단위가 모든 공 장기업소의 생산 총액으로 따져보면 최대 10%정도, 모든 공장기업소 노동자 총 숫자로 따져볼 때는 최대 20%를 넘지 않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개혁 조치의 전면 실시로 인해 발생할 큰 혼란을 우려해 배급제 폐지 및 임금 인상을 먼저 제한된 기업소에서 시범 실시하고 점차적으로 확대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가 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2천원 받던 월급을 1만 2천원으로 올려주어 도 쌀 가격이 kg당 6,000원 정도 하는 경우 쌀 2kg 밖에 사지 못하기 때문에 매달 3~5kg 정도 식량배급을 받던 노동자 가족들은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따라서 보다 더 큰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했던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새로운 개혁이 주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및 불만을 확산시키고 그것이 곧 시 장 환율 및 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김광진 2012/08/16 참 조). 북한은 6 28방침 에 따라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는 지방 기업소(4 7급의 중 소규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각 지역 식량공급소(배급소)에서 강냉이(옥수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판매용 옥수수가 사료용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질 이 떨어져 주민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김광진 2012/08/21). 북한이 6.28 新 경제
74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관리 개선 조치 시행을 앞두고 각 협동농장에서 토지정리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농민들의 소토지를 협동농장 소유로 귀속시키는 사업을 진행한 것도 주민들의 불 만을 초래했다. 관리위원회 간부는 살림집들이 산개해있기 때문에 토지를 효과적 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집이 있던 터와 소토지를 협동농장으로 귀속시키는 대신 생산량의 30%를 개인에게 나눠주니까 결과적으로 이익이다 라고 설명하지 만, 주민들은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소토지들만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은 그동안 협동농장에서 수확 후 4개월 분 정도의 배급 을 받고 나머지는 소토지(개인이 부업으로 경작하는 텃밭) 수확물로 생활비를 충 당해왔다. 따라서 협동농장 생산량의 30%를 농민에게 준다고 해도 소토지를 협동 농장에 귀속시킨 것에 비해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정재성 2012/08/17). 북한은 농업개혁을 앞두고 오히려 생계 보장 차원에서 허용했던 부업을 불허하 고 이를 어기는 농장원들을 강력히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농 장에 출근을 하지 않고 무단결근한 자에 대해서는 직장 내 처벌과 함께 노동단련 형 에 처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당국이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생활을 보장하게 해준다고 설득하고 있지만, 당장 식량을 주지 않으 면서 부업을 막으면 어떻게 살겠나 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어차피 군대 지원 명목으로 빼 갈 것이 분명한데 부업이라도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지 않나 라 고 정부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김광진 2012/08/23). 이처럼 농업개혁이 성과를 가져오기 전에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함으로써 농업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오히려 불안감만 커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북한 주민들이 새로운 경제개혁에 대해 불신을 보이는 것은 이외에도 2002년의 7 1경제관리개선조치 가 2005년에 갑작스럽게 중단되고 모든 상업시설이 강제 로 폐쇄됨으로써 받은 충격과 경제적 손실 그리고 2009년 화폐개혁으로 주민들이 그동안 축적한 현금자산의 대부분이 휴지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분노 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월 25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를 개최하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뭔가 획기적인 경제개혁 관련 입법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는 결국 희망사항 으로 끝나고 말았다.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12년제 의무교육 실시 관련 법령이 공포되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일부 인사의 보선만이 있었을 뿐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75 이었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02년의 7 1경제관리개선조치 도 최고인민회의 회의 에서 채택된 것이 아니었고, 2001년 김정일의 10 3담화 가 있고나서 약 9개월 후에 내각 지시 등을 통해 수행되었다(전현준 박형중 2012/09/28). 이 같은 전례 에 비추어보면 6 28방침 도 6개월 이상의 시범 실시와 검토 단계를 거쳐 이르면 내년에 가서 최고인민회의에서의 입법 형태가 아니라 내각 지시 형태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로운 경제개혁 실험이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자 북한은 2012 년 10월 들어와 신경제관리조치와 관련된 각 단위별 교양 및 시행 조치 하달을 일체 중단시켰다. 다만 새로운 경제조치를 적용하는 생산단위에서는 공장 기업소 별로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생산지표를 제출하고 상급단위(내각 부서)에서 이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했다(김광진 2012/10/08). 보다 신중하게 새로운 경제조치 를 실험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와 관련 김정은은 경제개 혁에 대해 실패해도 무방하다. 인민으로부터 불만이 나오면 정책을 변경하면 된 다 라는 유연한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이처럼 유연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농업개혁을 북부지역인 자강도와 함경북도 등에서 처음 실시한 후 범 위를 서서히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김종현 2012/10/14). 2012년 10월 들어 북한은 마침내 일부 국영기업에서 배급제를 폐지하고 외국인 투자기업의 자율권을 강화하는 등 시장경제적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중국의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이달부터 소수의 국영기업 에서 근로자들에게 배급을 중단하고 과거의 명목뿐인 저임이 아닌 월 200~300위 안(3만6천~5만4천원)의 실질 임금을 지급하는 일종의 실험 을 시작했다 고 밝혔 다. 북한 당국은 2012년 말까지 3개월 간 시범 운영을 거쳐 성과를 지켜본 뒤 대상 을 점차 확대하고 2013년에는 일부 기업의 임금을 최대 월 800위안(14만4천원)까 지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8월경에 막연히 예상되었던 것보다 훨씬 큰 폭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신민재 2012/10/14). 지난 10월 18일 AP통신의 영상부문 계열사 APTN은 평양 인근 택암협동농장을 방문해 개인 할당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증언한 농장 관리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택암협동농장의 정명철 농장관리인은 인터뷰에서 지난해에는 종자와 가축 먹이(사료), 개인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가에 바쳐야 했다. 그러나 올해 는 사용한 땅과 물, 국가에서 받은 농사 재료 대가만 지불하고 나머지는 모두 농장
76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원이 나눠 가져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 같은 조치가 북한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택암농장 사례는 북한이 경제개혁 조치를 현재 일부 단위 에서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Ⅳ.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방 전망 1. 경제개방에 대한 김정은 체제의 입장 김정일 사망 전에 북한이 경제개혁 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었다는 북한전략 정보서비스센터의 주장은 1984년 이후 북한이 채택한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 전부 가 2011년 11월과 12월에 최종 수정된 사실에 비추어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래의 표는 북한의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 정비 현황을 정리한 것인데,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작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 후 4일밖에 되지 않은 <표 2> 북한의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 정비 현황 외국인 투자 관련 법령 (14개) 채택일 최종 수정 보충일 합영법 1984.9.8 2011.11.29 외국인투자법 1992.10.5 2011.11.29 합작법 1992.10.5 2011.11.29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1993.1.31 2011.12.21 라선경제무역지대법 1993.1.31 2011.12.3 외국인기업법 1992.10.5 2011.11.29 토지임대법 1993.10.27 2011.11.29 외국투자은행법 1993.11.24 2011.12.21 외국인투자기업파산법 2000.4.19 2011.12.21 외국투자기업등록법 2006.1.25 2011.12.21 외국인투자기업재정관리법 2008.10.2 2011.12.21 외국인투자기업회계법 2006.10.25 2011.12.21 외국인투자기업로동법 2009.1.21 2011.12.21 황금평 위화도경제지대법 2011.12.3 자료: 박희진(2012, 45~46)과 유현정 박사 제공 북한 투자 법령 원문. 주: 강조는 필자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77 북한의 국상( 國 喪 ) 기간에도 무려 7개의 법령이 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김 정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하겠 다고 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2012년 4월까지만 해도 김정은의 개방 의지는 북한 엘리트 또는 북한 내부 소식 통을 통해서만 외부 세계에 전달되었는데, 북한은 지난 5월 9일 로동신문을 통해 김정은(2012b)의 4월 27일 담화를 공개하여 김정은이 김정일보다 개방정책에 적 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담화에서 김정은은 당 국가경제기 관 근로단체 고위 간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적함으로써 인터넷을 철저하게 통 제해왔던 과거의 정책과는 다르게 비록 특정 분야의 간부와 전문가들에게만 국한 되겠지만 인터넷의 적극적인 활용을 장려하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나라들, 국제기구들과의 과학기술교류사업도 활발히 벌려야 합니다. 국토관리와 환경보호부문에도 세계적인 발전추세와 다른 나라들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기술들을 받아 들일 것이 많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지만 인터네트(인터넷)를 통하여 세계적인 추세자료 들, 다른 나라의 선진적이고 발전된 과학기술자료들을 많이 보게 하고 대표단을 다른 나라 에 보내여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자료도 수집해오게 하여야 합니다. (강조는 필자) 김정은의 이 담화에서 흥미를 끄는 대목 하나는 인터넷 이용 권장과 관련하여 이미 전에도 말했다고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김정은은 또한 동 담화에서 국토 환경보호성과 해당 기관들에서 다른 나라의 과학연구기관들과 공동연구, 학술교 류, 정보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며 국제적으로 진행하는 회의, 토론회들에 참가하여 앞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사업을 적극 진행하여야 합니다 라고 강조함으 로써 타국과 학술교류, 정보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이 같은 김정은 의 새로운 조치는 고립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갔던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 운 것이었다. 김정일 사후 북한 지도부가 이처럼 개방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북한 관료들의 개방 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2년 5월 2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평양에 다녀온 조선족 사업 가 박 모 씨가 보름정도 평양에 머무는 동안 만나본 북한 관료들이 하나같이 우리 도 곧 개방정책을 시작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강조는 필자)고 보도했다. 그리고 개방이라는 표현은 과거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하던 말 이
78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라고 덧붙였다. 가끔 평양을 방문한다는 일본의 한 언론사 베이징 주재 기자도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은 북한이 개방정책을 실시한다는 구체 적인 변화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과거에 개혁개방이라는 말 자체가 범죄시되던 분위기가 최근 달라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 이라고 말했다(김준호 2012/05/29). 2012년 여름에는 북 중 교역을 하는 화교들로부터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선 뒤 교역 허가가 이전보다 빨리 처리되고 능력과 실적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일하기가 더 좋아졌다 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신민재 2012/06/13). 2. 북한의 경제개방과 북 중 경협의 확대 김정은 체제는 경제회복을 위해 경제의 개방이 필요하지만, 2009년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2차 핵실험 그리고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한국 및 미국과의 관계가 냉각되어 있어 결국 중국과 공동으로 라선 및 황금평 특구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경제개방을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현재 자국의 동북 지방 경제발전을 위해 북한과의 협력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양국이 북한의 경제개방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동북지역을 북한 및 러시아 연해주와 연계하여 개발하려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첫째, 출해구( 出 海 口 )가 없는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으로부터 중국 남부 지역으로 석탄이나 곡물을 운송하거나 태평양으로 직접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미 포화상태인 다롄항보다 북한의 라진 청진항이나 러시아의 자루비노 포시에트 항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것이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둘째, 동북지역의 급속한 개발로 인해 부족한 석탄이나 광물자원 등 원자재를 북한 북부나 극동 러시아로부터 쉽게 조달 받을 수 있다. 셋째, 동북3성에는 180만 여명 에 달하는 조선족이 살고 있어 북한과의 언어 소통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이옥희 2011, 253-255).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는 바로 이 같은 구상을 가지고 2009년 10월 북 중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평양을 방문해 신압록강대교 건설 및 라진항 개발을 골자로 하는 투자협정을 비롯한 다양한 합의문과 양해각서에 서명했다(김성남 2011, 104). 이후 동년 12월 김정일이 라선시를 직접 현지지도했고, 2010년 1월 라선시 는 특별시로 승격되어 중앙정부가 직접 관리하게 되었으며, 라선경제무역지대법도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79 개정되었다(이옥희 2011, 261; 유현정 2010 참조). 2012년 8월에는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라선경제무 역지대와 황금평 위화도경제지대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를 위한 조중공동지도위 원회 제3차 회의 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라선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경제구 개 발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합의되고 실천단계에 들어섬에 따라 두 경제지대 관리위원회 설립이 선포되었다. 황금평경제구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특구 건설 공 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아 북 중 간에 개발을 둘러싸고 심각한 이견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억측이 자주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정통한 중국 전문가에 의하면, 북 중 간에 황금평 특구 건설과 관련해 약간의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구 건설을 위한 협의가 중단된 적은 없었다. 결국 황금평 특구 개발을 위한 세부계획이 마련되고, 조중공동지도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특구 기초시설 건설공정 설계에 관한 양해문 등이 조인되어 황금평 특구는 실질적인 개발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 같은 진전을 토대로 북 중은 향후 위화도지구 개발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조선중앙통신 2012/08/14). 황금평 특구 개발에 관여하고 있는 중국 전문가에 의하면, 앞으로 위화도특구 개발도 궤도에 오르면 북한은 그 다음에 신의주를 특구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북한의 경제개방은 황금평 특구와 라선 특구 이외의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는 경 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북한은 기존의 외국인 투자 방식인 합작 합영기업 이외 에 외국인 독립경영 기업의 설립을 라선특구 밖의 지역에서도 허용하고 있는 것 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특히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 평양시내 토지공급가(50년 사 용권)를 m 2 당 90유로(한화로 약 13만원)가량으로 제시하면서 호텔, 대형 음식점 등 서비스업 위주의 부동산 개발을 적극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신민재 2012/10/14). 2009년 가을부터 북 중 간 경협이 활성화되면서 양국 간의 무역규모는 <표 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2010년을 기점으로 크게 점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0년 북 중 무역 규모는 35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2009년에 비해 약 29% 증가한 수치이다. 2011년에는 양국 무역규모가 56억 달러를 기록함 으로써 전년도에 비해 무려 63%나 증가했다. 5 24 대북 제재 조치가 발표되기 전인 2005~2009년의 경우 연평균 북 중 무역 증가율은 15%에 불과했는데, 2010 년 이후 양국 무역 증가율이 최대 63%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5 24 조치를 계기로
80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북 중 무역규모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증가했음을 의미하 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북 중 무역의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의 대중 수출이라는 점이다. 그 결과 200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적 으로 확대되었던 북한의 대중 무역 적자 규모가 2010년 5 24 조치를 전후하여 완연한 감소세로 전환하고 있다. 2010년의 경우 북한의 대중 수출 증대는 무연탄 과 철광석, 또는 비합금선철이라는 2~3개의 품목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 품목의 수출 증가액은 2010년 북한의 대중 수출 증가액의 무려 62%를 차지한다. 그리고 2011년의 경우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이들 세 개 품목의 수출 증가액이 전체 수출 증가액의 71%에 달한다.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 는 그간 북한의 수출지역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중국의 산동성, 하북성, 강소성 등에 대한 수출이 급증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의 경우 이들 3성에 대한 북한의 수출은 모두 합쳐도 전체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채 24%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2011년의 경우 이들 3성에 대한 북한의 수출은 6배 가까이 증가함으로써 전체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 려 4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북3성에 대한 수출액과 수출 점유율을 능가 할 정도로 확대된 것이다(이석 이재호 2012, 11-19). <표 3> 북한의 대중 무역 추이, 2001~2011 (단위: 백만 달러) 연 도 수 출 수 입 총 액 무역수지 2001 166.8 570.7 737.5-403.9 2002 270.9 467.3 738.2-196.4 2003 395.5 628.0 1,023.5-232.4 2004 582.2 794.5 1,376.7-212.3 2005 496.5 1,084.7 1,581.2-588.2 2006 467.7 1,231.9 1,699.6-764.2 2007 581.5 1,392.5 1,974.0-810.9 2008 754.0 2,033.2 2,787.3-1,279.2 2009 793.0 1,887.7 2,680.8-1,094.7 2010 1,187.9 2,277.8 3,465.7-1,090.0 2011 2,464.2 3,165.0 5,629.2-700.8 자료: 이석 이재호(2012, 12).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81 Ⅴ. 북한 경제 개혁 개방정책의 과제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과 경제침체로부터 벗어나고 주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도부가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경제 개혁 개 방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지도부 는 개혁 개방에 대한 확고한 정책적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측 불능의 사태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78년부터 1985년까지 이루어진 개방 정책 은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중국의 무역총액은 1978년과 1984년 사이 미화 약 2백억 달러에서 5백억 달러로 성장했는데, 이러한 집중적인 성장은 중국의 대외 무역에서 전대미문의 일이었다(베르제르 2009, 273). 덩샤오핑의 지도하에 중국이 경제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당시 중국과 소련 의 분열을 원했던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현재 북한은 G2로 부상 한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이 특히 2002년부터 동북진흥계획 을 추진하면서 랴오닝성과 지린성의 발전을 위해 북한과의 협력 확대를 필요로 하고 있으므로 북한의 개방정책 추진 환경은 비교적 양호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개혁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존 사회주의체제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처방을 내놓을 수 있고, 현실적인 대안에 기초해 기존의 정책을 수정하며 개혁 개방을 전략적으로 추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례를 보면 농업 부문에서의 개혁이 초기에 특히 중요한데, 당조직에 의한 정치적 통제와 각급 행정기관에 의한 행정명령적 통제 대신 농민들의 적극성과 자발성을 고무할 수 있는 조치들이 실시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농가를 경영단위로 하는 농업생산책임제 를 도입하기 어렵 다면 농업의 탈집단화를 단계적으로라도 추진해나가야 한다(양순창 1999, 155-157 참조). 그리고 가급적 단기간 내에 덩샤오핑 시대 중국이 추진했던 것처 럼 농업의 완전한 탈집단화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은 덩샤오핑이 권력 을 장악한 다음해인 1979년부터 점진적으로 농업의 탈집단화를 추진해 이론상 집 단 소유로 남아 있는 토지를 농가에 분할해 주었다. 그리고 1982~1983년에는 농 가가 국가에 농업세와 정부가 정한 가격에 따라 공출을 납부하고 다양한 사회 기
82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금을 충당하기 위한 납입금을 생산대에 지불한 뒤 나머지 생산물을 자유로이 처분 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이 같은 농촌 탈집단화는 생산의 괄목할 만한 증가로 나타났다. 곡물 생산량은 1978년에서 1983년까지 연간 4.2퍼센트 성장했고, 생산 과 농민 소득의 눈부신 성장(1979~1985년 3배 성장)을 불러왔다(베르제르 2009, 268~280). 공업 부문에서도 1 투입물 선택의 자주권 확대, 2 산출물 선택의 자주권 확대, 3 투자결정의 자주권 확대, 4 인사관리상의 자주권 확대 등 기업의 자주권을 확대하고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해 공업 생산성을 높이는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유기업 외에 보다 시장지향적인 경제주체, 즉 개인기업, 합자기업, 합작 기업, 주식회사 등의 창설 및 운영을 용이하게 하고 장려해야 할 것이다(양순창 1999, 198-200 참조). 이 같은 조치들로 공업생산이 증가하면 국가의 재정수입이 확대되어 국가가 경제발전을 위해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부문에 대한 당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당의 역할을 재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1982년 9월 1일 후야오방(( 胡 耀 邦 )이 중국공산당 12전대회에서 강조한 것처럼 당의 지도는 정부 기관의 행정 업무와 동일시되거나 그것을 대체해 서는 안 되며 기업의 생산과정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베르제르 2009, 262-263). 북한에서도 과거 당의 행정대행 현상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행정대행뿐만 아니 라 행정에 대한 간섭 자체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기술 관련 부문은 당원이 아니라고 해도 기술 전문가들이 책임자를 맡게 하고, 기업의 지배인과 노동 자들이 현재처럼 수많은 정치 회의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업과 공업 부문에서 생산책임제 를 실시하고 경제주체들의 자율성을 확대하 면서 계획경제의 영역을 축소하고, 시장의 법칙을 대거 도입함으로서 궁극적으로 는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상품경제 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북한이 계획경제와 상품경제를 대립적으로 보는 전통적인 개념 에 집착하는 한 농업과 공업 부문에서 개혁이 진전되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10) 김 정일 시대 실시된 7 1경제관리개선조치 같은 소개혁들이 더 큰 개혁으로 연결되 지 못한 것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적 정책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적으로도 개 10) 중국공산당은 1984년 10월 12기 3중전회에서 계획경제와 상품경제를 대립적으로 보는 전 통적인 개념 을 버리고 유능한 사람들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을 호소했다(베르제르 2009, 259-269 참조).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83 혁을 뒷받침하고 진전시키는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적인 조정들과 새로운 논리의 제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제강국 건설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강성대국론이 개혁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도 있지만, 강성대국론에서는 실리 뿐만 아니라 고립주의적인 자력갱생 원칙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 개방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주의초급단계 론 과 농업, 공업, 국방 및 과학기술 분야의 4개 현대화 노선 을 제시했는데, 북한 도 이와 유사한 구체적인 개혁 이데올로기와 노선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2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에서 개정된 북한 헌법에는 여전히 국가는 농민들의 사상의식과 기술문화수준을 높이고 협동적 소유에 대한 전인민적 소유의 지도적 역할을 높이는 방향에서 두 소유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 며 협동경리에 대한 지도와 관리를 개선하여 사회주의적 협동경리제도를 공고발전 시키며 협동단체에 들어있는 전체 성원들의 자원적 의사에 따라 협동단체소유를 점차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시킨다 (제23조)는 반개혁적인 국유화 정당화 논리( 협 동단체소유를 점차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 )가 남아있다. 그리고 국가는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건설로선을 틀어쥐고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다그 쳐 인민경제를 고도로 발전된 주체적인 경제로 만들며 완전한 사회주의사회에 맞 는 물질기술적 토대를 쌓기 위하여 투쟁한다 (제26조)(강조는 필자)는 고립주의적 이고 반개방적인 조항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개정 헌법은 여전히 경제의 초중 앙집권화를 정당화해온 논리인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원칙 을 강조하고 있다(제 34조). 이처럼 헌법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반개혁적이고 반개방적인 조항들로 구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국가는 우리나라 기관, 기업소, 단체와 다른 나라 법인 또는 개인들 과의 기업합영과 합작, 특수경제지대에서의 여러 가지 기업창설운영을 장려한다 (제37조)는 조항이 하나 들어가 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따라서 김정 은 시대에 경제 개혁 개방은 이데올로기의 수정과 헌법 등 법률 전반에 대한 대 대적인 정비를 수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2011년 11월과 12월 투자 관련 법령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는데, 이 같은 보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 미 일 등 주변국들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 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 개방이 성공한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바로 1970년대에 중 일, 중 미 간의 관계 정상화를 실현함으로써 개혁 개방에 유리한 국제환경
84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을 조성한 데에 있다. 반면 2000년대 들어 북한이 나름대로 경제개방 조치를 취했 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의 대북 경제제재, 양호한 기업경영 환경의 결핍, 남북한 간 군사적 갈등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따라서 북한이 대외개방을 확대하고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경제제재가 해제되게 하고, 양호한 투자환경을 제공하며,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과 같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과감하게 경제개혁을 추진하며, 현재의 공격적인 안보전략을 방어적인 안보전략으로 전환해 야 한다(김성남 2011, 117 참조). Ⅵ. 맺음말 김정일 사후 채 1개월도 되지 않은 2012년 1월 16일 북한의 양형섭 최고인민회 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은이 해외의 경제개혁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고 공 개적으로 밝혔다. 이후 북한이 경제관리 방식 개선을 위한 소조를 구성해 운영하 고, 무기 수출을 제외한 군부의 외화벌이사업을 내각으로 이전하며, 군대에 대한 당의 통제가 강화되고, 내각의 위상이 높아지며, 시범 협동농장의 분조 단위가 축 소되고, 독립채산제 기업의 경영자율권 확대와 관련 근로자의 임금 인상이 추진되 었다. 그리고 2012년 8월 중순 장성택 당중앙위원회 행정부장의 방중을 계기로 라선과 황금평 특구 관리위원회 설립이 선포되고 양 특구가 실질적인 개발 단계로 이행하게 되었다. 북한과 중국은 향후 위화도 특구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는데, 위화도 특구 개발이 진전되면 이후에는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해 개발 할 구상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2012년 들어 북한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이 청소년 시절 약 4년 반 동안의 스위스 유학을 통해 서구 선진 국의 발전된 자본주의경제를 직접 목도하고 고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과거 김정은과 여러 차례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김정일의 전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북한은 지난 6월말에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 라는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 전망과 과제 85 제목으로 이른바 6 28방침 을 내부에 공표했다. 이 방침에는 시범 협동농장에서 10~25명으로 구성된 작업분조( 分 組 ) 단위를 4~6명 단위로 축소 관리하고, 작업 분조에 따라 토지와 생산비용을 할당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국가가 제시한 목표 생산량 이내에서는 국가가 70%, 농장원이 30%를 가져가지만 목표량 을 초과할 경우 전량을 농장원들이 가지게 하는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공장 기업소의 경우 최초 생산비는 국가에서 투자 하고, 그 돈으로 원자재를 사다가 생산, 판매하게 되면 판매수입을 국가와 해당 기업소가 일정비율로 나누게 된다. 그리고 해당 기업소는 분배된 돈으로 기업소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배급제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은 국가계획을 할당받는 단위는 기존처럼 배급제가 유지되고, 독립채산제를 보장받는 생산단위만 생활비 체계로 바뀌는 것 으로 구체화되어 나 타났다. 그런데 새로운 경제개혁은 주민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그것이 곧 시장 환율의 상승 및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각 협동 농장에서 토지정리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농민들의 소토지를 협동농장 소유로 귀 속시키는 사업을 진행한 것과 과거에 생계 보장 차원에서 허용했던 부업을 불허하 고 이를 어기는 농장원들을 강력히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주민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새로운 경제개혁 실험은 긍정적인 성과보다 오히려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가 경제 개혁을 성공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과 제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북한 주민들이 정권의 경제개혁 의지에 대해 신뢰할 수 있도록 개혁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보다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 다. 특히 현재의 협동농장을 해체하고 가족영농제로 가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 함으로써 개혁의 후퇴 가능성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야 한다. 둘째는 적극적인 경제 개혁 개방 추진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이론의 제시와 고립주의적 인 기존 이데올로기의 전반적인 수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반개혁 반개방적인 조항들로 채워져 있는 헌법도 수정함으로써 개혁 개방이 흔들림 없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대내외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는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주변국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한국과의 관계개선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의 기회들을 제공해줄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 개혁 개방이 성공한다면 북한 지도부 내에서 실용주의적
86 국가전략 2012년 제18권 4호 이고 개방적인 인사들의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상황 이 더욱 안정되고 평화통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지도부 에서 군부 강경파가 득세하는 한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김정 은 체제가 경제 개혁 개방을 추진하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남북경협을 발전시켜 북한경제의 대중 의존도를 완화시키며 북한경제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을 보다 확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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