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여호수아 11장 16~23절 김양재 목사 지난 주간에 책을 한 권 선물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사람이 곳곳에 있어서 한국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참 사 랑하시는구나, 이런 분들 때문에 교회가 이루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어떤 목 사님의 사모님이 오랫동안 소외된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사역했던 내용을 책으로 내 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사업이 부도나서 나중에 신학을 하고 교회를 하시는 분입니다. 가난 하고 병들었던 성도가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면 고아로 남은 아이들을 다 맡아 서 키운 이야기라든가, 남편이 천거한 신학생들을 맡아서 개척교회 방 하나를 내놓고 아주 훌륭한 신학교수로 만든 이야기, 생면부지의 암 환자를 2개월 동안 봉양해서 하나님 앞에서 선종을 하게 한 일, 9.11 사태가 났을 때 남들은 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데 그 남편 목사님은 그 때 카자흐스탄에 혼자 들어가서 2년 동안 유치원을 만들고, 교회를 만들고 상 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있다가 부흥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사역지원서를 낼 때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역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이분의 사랑의 언어는 봉사와 섬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셉처럼 전옥에게 은혜를 더하게 하시고 보디발의 아내를 물리 치고... 뭐든지 너무 잘하셔서 열등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 대단한 이야기를 읽었습니 다. 이번 주 설교 본문 말씀에 "그 땅에 모든 전쟁이 그쳤더라"가 오늘의 제목입니다. 이분이 많은 전쟁을 그치고, 그 속에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부도도 겪어보고 가난도 겪어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전쟁이 끝나 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전쟁이 끝나면 이렇게 나누어줄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될 줄 믿 습니다. 11장 15절까지, 맨발로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정복하고, 남부를 석권하고, 북부연합군을 다 석권하고 그토록 원했던 가나안과의 전쟁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창세기 13장 15절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입니다. 그 가나안 정복 약속을 신실하 게 지키신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땅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도 관영한 고로" 이스라엘이 400년을 이방에 객이 되어 섬긴 후 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온다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이루기까지 수없이 많은 원망과 불평 과 숱한 우상을 만들어낸 이스라엘 백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16절 - 여호수아가 이같이 그 온 땅 곧 산지와 온 남방과 고센 온 땅과 평지와 아라바와 이 스라엘의 산지와 그 평지를 취하였으니
수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평지 전쟁, 산지 전쟁, 경사지 전쟁... 각종 땅을 취하였습니 다. 17절 - 곧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에서부터 헤르몬산 아래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까지라 그 모든 왕을 잡아 쳐죽였으며 그리고 우리의 모든 좋아하는 세상의 왕들을 다 잡아 쳐 죽였습니다. 18절 - 여호수아가 그 모든 왕과 싸운지는 여러 날이라 그 모든 왕을 죽이느라고 "여러 날"- many days의 싸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을 하게 하실 일이지 왜 이렇게 여러 날의 싸움 을 하게 하셨을까요. 노예 생활 400년, 광야 40년을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와 여리고, 아이, 기브온 등의 싸움을 거치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드디어 정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맨 마지막 23절 말씀처럼 전쟁이 그쳤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7장 22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 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하셨습니다. "점점" 쫓아내신다고 합니다. 한꺼번 에 귀신을 쫓아내면 깨끗이 소지가 되어서 도리어 일곱 귀신이 들어온다는 말씀도 있습니 다.(마12, 눅11) 우리의 죄성을 아시고 여러 날의 전쟁을 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입니다. 여러 날, 죽을 때까지 우리는 전쟁을 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오늘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체적으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강퍅과 두려움이 끝난 것입니다. 19~20절 - 기브온 거민 히위 사람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쳐서 취한바 되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 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 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내가 전쟁을 하는데 내 옆의 사람이 죽어라고 강퍅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강퍅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강 퍅하게 하셨답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만 남았습니다. 기브온과만 화친을 했습니다. 기브온에게 속아넘어갔지만 속은 것은 속인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 기브온 거민 외에는 7년 동안 전쟁하면서 화친한 성 읍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화친할까봐 가나안 거민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 신 것입니다. 진멸할 자들은 저주 받은 자가 되어서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십니다. 강퍅한 마음은 안식과
는 거리가 멉니다. 로마서 1장 24, 26, 28절을 보면 강퍅한 마음은 "자기 마음대로, 상실한 마음대로, 정욕대로 살게 내어버려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의 날이 지나간 것을 의 미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악하게 만드시지 않았는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의인이 없나니 한 명도 없다고, 우리가 다 100% 죄인이라고 했는데 그 죄악의 속성은 주님의 보혈 의 은혜로 다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내버려두시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 고, 먹고, 착한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게 내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누구도 저주받은 자의 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 식구라고 해도 저주받은 자 가 있습니다. 은혜 아래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강퍅한 내 식구가 옆에 있을 때 우리는 세상과 화친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강퍅해 서 나와 싸우자고 덤벼들기 때문에 내가 화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브온보다는 강퍅한 배우자가 더 낫습니다. 강퍅한 자들은 다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강퍅한 제 남편은 빨리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음 좋은 기브온 같은 마음 좋은 친정아버지는 80 연세가 되시 도록 안 믿으셨습니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아무리 봐도 예수 믿는 사람보 다 백 배 나아.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강퍅한 자가 내 옆에서 대적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과 화친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사인입니다. 제 남편이 돈도 잘 벌고 의사인데다가 나에게 너무 잘해주었다면, 정말 나이스하게 스마트 하게 대하면서 주일날 어디 가자고 하면 제가 교회를 왜 왔겠습니까. 남편이 원하는 대로 다 가죠. 그런데 너무나 다행히도 강퍅해서 저를 세상과 화친하지 않도록, 그 사람과 화친 하지 않도록,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한테 강퍅하게 해준 것에 대 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강퍅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기브온은 이스라엘 사람과 화친하려고 속이고 왔습니다. 그래서 기브온은 멸절이 안 됐습니 다. 나무 패고 물 길어도 그 옆에 있습니다. 기브온 하나 있습니다. 사실 끝까지 간 사람이 기브온이지만 기브온은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퍅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통해 다 무너뜨리셨습니다. 강퍅한 자가 무너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늘 강퍅한 자의 방해를 받듯이 우리가 안식을 얻는데 방해하는 강퍅의 요소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데 방해하는 내 남편, 내 부모, 자식들을 보면서 우리는 내 속의 강퍅을 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과 화친하려고 하는 강퍅의 요소를 내 속에 서 봐야 합니다. 내 부모, 남편이 나에게 강퍅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정욕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더러운 이익을 취하는 마음, 시기, 질투... 이 것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의 강퍅이 있습니다. 얼마나 강퍅한지 모릅니다. 어느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구가 시험범위를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쟤는 엄 마, 아빠 다 잘 믿고, 집도 부자고, 착하기까지 한데 공부까지 잘하면 어떻게 해 그래서 다른 곳을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내 속의 강퍅이 착한 사람에게도 있고, 자기 수준대로 다 있습니다. 여기에서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멸의 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강퍅이 어떻게 끝났을까요. 오늘 강퍅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강퍅케 한 모든 자들을 멸절했다고 합니다. 앞에 말씀드린 사모님이 책에서 여러 사건들을 소개하는데 강퍅한 할아버지 한 분을 전도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강퍅한 할아버지는 교회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하게 하고 나이가 들 면서 점점 부인도 교회를 못나가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 집사님이 이제는 교회를 못 나 가게 하니까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돼 서 사모님이 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너무 돈이 많고, 자수성가를 했 기 때문에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유명한 목사님들을 모시고 찾아가도 나와보지도 않았습니다. 단번에 다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느냐고, 죽고 싶다고 하는 부인의 말을 듣고 사모님이 이렇게 말했습 니다. 아유~나오지 않으시면 들어가서 전하면 되잖아요~. 아니 어떻게요? 집사님 댁에 식모를 구한다고 하셨죠. 제가 한 달만 들어가서 식모를 할께요. 그렇게 그 집에 들어가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들어가보니 자수성가한 할아버지는 건강 의 노예가 돼서 뭐든지 사다놓아야 되고, 다 먹어야 되고, 마시는 물의 온도까지 재어봐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그 까다로운 시중을 들자니 한강이 내다보이는 넓은 아파트에서 밤마다 코피가 터질 정도로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우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신문 내용을 다 숙지하고 전문 용어는 사전까지 찾아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할아버지에게 신문을 읽어 드리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모님의 해박한 지식 때문에 할아버지는 무릎을 치면서 똑 똑하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또 할아버지의 구두를 반짝반짝 닦아 놓고 할아버지가 외출할 때는 구두를 가슴팍에 안고 앞치마로 구두를 닦아서 내놓았습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서 두 시간씩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은혜로 믿음을 가지 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일주일만에 녹아버렸습니다. 사모님을 불러다 놓고 당신이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내가 회사에 좋은 자리 하나 마련해놓을 테니까 거기에 가서 일하라 고 했습니다. 한사코 거절을 했더니 대단한 사람이 우리 집에 왔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진심으로 사모님을 아끼게 됐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시집간 딸이 와서는 당신, 우리 집에 재산보고 왔지! 하 고 따지게 됐습니다. 외동딸인 나에게도 전혀 관심을 안 가지는 분이 왜 당신한테 일주일 만에 마음을 주겠느냐, 왜 우리 아버지 혼을 빼놓느냐 고 더러운 벌레 보듯이 사모님을 대 했습니다. 2주일 동안 하루 종일 코피가 터지도록 일하고, 신문을 읽어드리고 하면서 남편에게는 한 달 동안 전화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밤마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고, 너무 고된데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들다는 소리도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그동안 아주머니들을 부
리면서 얼마나 고마움이 없었는가를 보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강퍅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택시를 타면서도 돈 몇 푼 주면서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 거기에서 자신의 강퍅을 본 것 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강퍅을 보면서 내 강퍅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성경 구절을 책에 쓰지는 않았지만 응답이 되려면 이런 순서로 갑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위해 서 간 것이 아니고 나 때문에 여기를 보냈구나 그것을 깨닫고 두 주일을 지냈습니다. 2주째 되는 날, 할아버지가 사모님을 불러 앉히더니 당신 왜 우리 집에 왔는가 정직하게 실토하라 고 했습니다. 때가 됐다고 생각한 사모님은 하나님께서 할아버지를 너무 사랑 하셔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 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당장 나가라 고 했습니다. 그동안 좋아하더니 예수님 이야기만 나오면 다 분을 냅니다. 사모님은 5년 동안 할머니가 얼마나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했는지 그 사랑을 말씀드 렸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날 아침에 기적을 보이셨는데 꿈으로 할아버지의 초년, 장년, 노년의 일을 사모님에게 다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의 초년 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장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할아버 지는 너무 놀라면서 나는 평생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안했는데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 고, 하나님이 계시기는 계신 모양이다 라고 하면서 누구 앞에서도 울어보지 않은 할아버지 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나 같은 것 때문에 당신이 와 서 식모살이를 하다니 하면서 그 주일부터 할머니와 교회에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일에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교회에 나간지 정확히 4개월 후에 100평의 교회와 70평의 무료탁아소를 마련해놓고 목회를 하라고 하셨답니다. 처음부터 사모님이 그것을 바라고 하 셨겠습니까. 진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 할아버지가 그 교회의 1호 신자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강퍅이 이렇게 물러갔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강퍅하다고 하지만 내 속의 강퍅을 보면서 눈물로 회개를 하면 상대방의 강퍅이 물러갑니다. 여러분들 할아버지, 할머니, 남편, 부인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신발을 가슴에 안고 닦아보십시오. 옷이 더러워지면 안 되니까 미리 좀 닦아놓고 보는 앞에서 가슴 에 안고 닦아보십시오. 한 번 해보지 않겠습니까. 자기 대접은 자기가 받는 것 같습니다. 남편이 병원을 할 때 일하는 사람들을 썼는데 남편이 저를 무시하니까 일하는 사람들도 와 서 다 저를 무시했습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분들은 제가 월급을 드려야 되는데 모든 것을 남편이 주니까 제가 무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이 진사집 딸이었는데 홍콩에서 무역을 하는 부잣집 사모님으로 사시다가 이셨는데 다 망하고 저희 집에 일하러 오셨습니다. 생각이 바른 분이라 그래도 일을 하러 오셨습니다. 그분이 저를 섬기는데 사모님 밥상이 달라야 된다고 하고, 나갈 때마다 신발을 챙겨놓으시고 어찌 나 사모님 하면서 젊은 저를 섬기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제가 너무 떨렸습니다. 대접을 못 받다가 받으니까 부들부들 떨리더라구요. 그러니까 결국은 제가 어머니보다 더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대접을 자기가 받게 돼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본인이 일하는 사람들 을 부려보았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야 되겠다 생각한 것을 저한테 실천하신 것입니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저를 섬겨주시니까 끝까지 살아계셨다면 제가 모든 것을 바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학원 공부할 때였는데 그런 분을 보내주셔서 공부를
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강퍅하고, 이 사람이 강퍅하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코피가 터질지언정 얼 굴의 표정 하나 안 바뀌고 그 사모님처럼 신문도 읽어드리고, 모르는 것도 공부해서 가르쳐 드리고, 생색내지 않고, 날마다 구두를 품에 안아보십시오. 그게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닙니 다. 내 속의 강퍅이 물러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강퍅을 보고 내 속의 강퍅을 보게 되니까 이것이 은혜입니다. 저주받은 자들, 진멸받을 자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강퍅을 보며 내 강퍅을 보지 못합니다. 상대방의 강퍅만 보다가 강퍅해서 죽어 버립니다. 저 인간이 강퍅해~, 내 남편은 이상한 사람이야, 내 자식은 너무 이상해~ 이 러면서 자기 자신이 회개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 땅의 전쟁이 그쳤다는 것은 나의 강퍅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퍅이 물러갑 니다. 내 속의 전쟁이 물러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강퍅하게 하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읽어보십시오. 20절 -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 게 명하신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하게 하셨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서 아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내 남편도, 내 어머니도, 내 부인도 하나님께서 그리 하게 하셨다고 하면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날의 전쟁을 거쳐서 하나님의 명대로 행 하는 것 그것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강퍅할 때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내 속의 강퍅 을 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21절 -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 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강퍅이 물러가고 이제 두려움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아낙 사람들은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을 때 우리는 메뚜기같고 그들은 장대 하다 고 이스라엘을 공포에 떨게 한 장본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마고 한 가나안은 너무 좋은데 그 속에 있는 아낙 자손에 비하면 자신들이 메뚜기 같아서 그걸 보고와서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두려워서 40년 동안이나 그것 때문에 방황을 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멸절을 했습니다. 용기를 꺾어버렸던 아낙 자손을 멸절한 것입니다. 공포와 두려움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싸움에 백전 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드디어 아낙 자손이 멸절됐습니다. 눈만 뜨면 두려운 아낙이 멸절이 됐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아낙 이야기를 들 어도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것이 두려움입니까. 돈 이야기만 나오 면 두렵습니까.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두렵습니까. 병 이야기만 나오면 두렵습니까. 그 이
야기만 나오면 부들부들 떨리십니까. 이 사모님의 목사님은 사업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사업을 잘했는데 대리점 사장이 3억을 부 도내고 잠적했습니다. 오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예수쟁이 들어와서 집안 망했다고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10만원 가지고 집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어딘가에서 부동산에 갔습니다. 돈이 얼마 있느냐고 물어서 10만원밖에 없다 고 했더니 적어도 천만원 보증금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10만원밖에 없다고 하고 할 수없이 나오려고 하는데 아주 흉한 흉가가 있는데 그 집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람이 죽어나온다. 10만원 내고 거기에 들어가 살겠는가 하는 겁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1년 동안 살았더니 그 집주인이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1년이 지나고 나올 때 천만원 보증금을 줬습니다. 흉가를 사람이 살게 해주었다고 천만원을 주었습니다. 3억원이 큰 돈 아닙니까. 그 돈을 대리점 사장이 부도를 냈습니다. 사업이 잘 되다가 그 사 람 때문에 망했습니다. 자다가도 생각하면 괘씸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착한 남편이 망하기 전까지는 예수 안 믿다가 3억의 부도 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 다. 안 믿는 집안이 장손이었는데 예수를 믿게 되었고 신학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바 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3억이 부도나지 않았으면 남편이 어떻게 신학을 하고 예수를 믿 게 됐겠습니까. 사모님이 부도를 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도 너무 미안해하는데 사람 앞에서 3억원 짜리 어음을 찢어버렸다고 합니다. 당신이 우리 남편을 예수 믿게 해주었기 때문에 이 돈 은 안 갚아도 된다. 앞으로 이 3억원은 안 갚아도 된다. 그러니까 돈이 생기거든 다른 어려 운 사람들 도와라. 이 3억원은 오늘로서 끝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사모님은 돈에 대한 자유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돈은 멸절이 됐습니 다. 우리가 눈만 뜨면 무서운 것이 돈 때문 아닙니까. 자식 결혼 시키려고 해도 돈 때문이 고, 학교를 가는 것도 앞으로 직장에 가서 돈 잘 벌어야 하니까 두려운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맘몬신입니다. 예수님을 믿었으면 무조건 감사해야 되는데 두려운 게 많습니다. 사모님은 그렇게 목회를 하면서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로 했기 때문에 장애인 사역을 하고, 카자흐스탄에 가는 사역들을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다고 합니 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이 두려움이 물러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두렵습니까. 돈도 하나님이 주시고, 자식도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무엇이 두려워서 40년 동안이나 떠돌 아 다니게 하는, 40년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나의 두려운 아낙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말해도 그 이야기만 하면 덜덜 떨리는 아낙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멸절되어야 내 속의 전쟁이 그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그러나 완전히 그치는 것은 없습니다. 이땅에서 완전한 안식은 없습니다.
22절 -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 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약간"은 남았다고 합니다. 큰 문제도 안 된다는 듯이 약간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오랫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하 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자라서 나중에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거 대한 강적이 되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지금 당장 순종하지 못하는 부분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는 것도 없고, 고난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천천히 자라 서 우리 자녀시대, 손자시대에 숨통을 조이는 것입니다. 이 사모님의 시누이가 임용고시를 준비했는데 주일날 본다고 하니까 안 봤습니다. 집도 찢 어지게 가난한데 임용고시가 어떤 시험인데 주일날 본다고 하니까 안 봤습니다. 세상은 다 조롱할 것입니다. 임용고시를 포기한 시누이는 교회 무료탁아소에서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다보니까 어느새 스물 여덟살이 됐습니다. 올케인 사모님은 신랑감을 구해줘야 겠다는 생각에 3일 단식을 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편 목사님에게 부탁을 하고 시누이에게 옷을 입혀서 사진을 한 장 찍고는 신대원에 가서 전도사 중에서 한 사람을 데리 고 왔습니다. 아주 남루한 옷을 입고 남루한 신발을 신은 전도사님이 한 명 왔는데 이 사모 님이 오랜 전쟁을 거쳐서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남루하기에 여 기에 왔지 돈까지 있었으면 왔겠는가 하고 꽉 붙잡았습니다. 목사님은 적어도 6개월은 교 제를 해야되지 않겠는가 했지만 그로부터 19일만에 결혼을 시켰다고 합니다. 돈도 없는데 교회 여전도회가 다 일어나서 결혼을 준비했습니다. 한 번도 데이트도 못하다가 전도사님의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결혼식 일주일 전에 첫 데이 트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신부감이 나간지 한 시간만에 토라져서 들어왔습니다. 왜 들어 왔느냐고 했더니 아니 글쎄 그 전도사님이 손을 잡자고 그러잖아요 하는 겁니다. 뒤이어 신랑감 전도사가 막 따라 들어왔습니다. 제가 건널목에서 손을 잡자고 해서... 손만 잡으니까 들어오죠. 아주 꽉 안아주지 그랬어요 했더니, 저는 토라지는 게 더 이쁘더라구요 이러더랍니다. 그렇게 결혼을 했습니다.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고, 몸매가 늘씬한 것도 아니고, 임용고시 를 포기했으니 선생님도 못 됐고, 탐나는 것 하나도 없는 시누이인데 지금은 너무나 큰 교 회의 사모님이 되어서 호강을 하고 존경을 받는다고 합니다. 서로가 보석을 볼 수 있는 눈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모님이 된 시누이는 목회자의 길에서 한 번도 이탈하지 않고 충실하게 주의 종의 길을 걸 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낡은 임대 아파트가 부교역자의 사택으로 주어졌을 때 자신들의 신 혼집이었던 아파트 보증금을 다 교회에 헌금하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주님이 집을 주셨으니 까 집 값은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일날 임용고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 니다. 그러나 믿음 때문에 포기한 것도 믿음으로 행한 더 큰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임용고시 쯤이야, 혼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한 번 하는 것쯤이야 하고 대수
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가사가 나중에 숨통을 죄는 강한 적으로 바뀌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강한 자 삼손의 눈을 뽑고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게 한 사람들이 가사 사람들 입니다. 이 때 가사를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고 남겨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삼손이 죽 을 뻔했습니다. 나중에 내 손자 시대에 내 자손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가드에서는 사울 왕 시대에 골리앗이 나왔습니다. 이 남겨둔 가드에서 이스라엘과 다윗을 괴롭히는 세력이 자라 난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 학벌, 집안을 자랑하고, 결혼식도 큰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으로 반주를 하 고,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면 적어도 자동차는 타겠지, 외식은 어느 정도 하겠지 이런 것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정작 신랑 신부가 구원의 확신이 있고, 가치관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자 랑하는 젊은 부부들이 없습니다. 결혼하고 나중에 천천히 믿으면 돼 이러면 나중에 골 리앗이 나옵니다. 자손대에 손자대에 골리앗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믿는 사람들의 첫 만남에서 서로를 소개할 때 정확한 소개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없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 주님을 못 만났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 본인이 이 정도로 소개를 한 다면 이미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장로, 권사가 자기 자식을 소개할 때 어 쩌면 교회를 다니면서도 학벌만 자랑하고, 직장만 자랑할 수 있습니까. 자식이 신앙이 없는 것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신학대학원의 원장 사모님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녀는 어떻게 두셨느냐 고 했 더니 우리 큰 아들은 정말 주님을 신실히 믿는 선교사이고, 둘째 아들도 너무 교회에서 봉사를 잘하는데 우리 셋째 아이가 주님을 못 만났어요 이렇게 소개를 했습니다. 학벌 이 야기 하나도 안 했습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입니다. 제가 결혼할 떄 친구들에 게 남편을 소개하는데 주님을 믿는 사람이야 이런 이야기 하나도 안했습니다. 굉장히 자랑 안하는 것처럼 어느 집 아들이야, 직업은 의사라고나 할까 이랬습니다. 시아버 님이 장로님이라서 결혼식도 교회에서 하잖아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피가 터지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돼서 진짜 중요한 것을 남겨두고 가면 강자 골리앗이 되어서 감당할 길 없는 적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쟁 시대가 아닙니다. 예수 믿어서 핍박 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 렇기 때문에 자녀를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못한 부모의 결과로, 남긴 가드가 강해져서 목 사 아들이 목사가 되고, 장로 아들이 장로가 되고 저절로 직분을 가지게 됩니다. 몇 대의 믿음을 자랑하면서 공부 잘하고 모범생으로 자라다가 성경적인 가치관 하나도 갖지 못하고 직분을 이어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교파, 교권 다툼이 생기고 교회가 분열되는 것입니다. 가정을 삼키고 교계를 삼키게 됩니다. 모두가 전 세대의 잘못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 성도 가 12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전 세대의 잘못입니다. 아스돗은 어떤 곳입니까.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을 때 전세가 불리해지 니까 언약궤를 옮겨서 전쟁터에 가져갔습니다. 부적신앙, 기복신앙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전 쟁에 졌습니다. 그 때 언약궤를 빼앗겨서 아스돗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언약궤 를 빼앗겼습니다. 남겨둔 아스돗이 언약궤를 삼키는 땅이 됐습니다. 지금 물리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11장에서 물리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엘하에 가서 언약궤를 삼 키는 땅이 됐습니다. 부적신앙, 기복신앙으로 인해서 말씀이 성전을 떠났습니다. 이방 땅에 누워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전을 아주 크게 지었는데 텅텅 비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크게 지어놓고 하나 님이 얼마나 아까우시겠습니까. 성도들이 떠났으니까 하나님께서 속상하시지 않겠습니까. 세습 쯤이야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만 그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성도들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세습 자체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본질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습을 해도 목회를 잘하면 왜 떠나겠습니까. 우습게 보았던 이런 문제 때문에 지금은 골리 앗으로 자라서 공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큐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무도 안 알아줄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 임용고시 안 본 것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러나 몇 십 년 후에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분명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때문에 선택하 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말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 때문에 선택한 것은 트럭으로 갚아주십 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가 너무 중요합니다. 이것이 전쟁이 그친 자의 태도입니다. 나의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아낙 자손을 물리쳤다고 하는데도 이쯤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나 많습니다. 저에게도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100% 이행할 수는 없습니다. 단계적으로 가나안의 거민을 쫓아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불완전함과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삼손을 너무 혼나게 하셨지만 그 래도 마지막에 그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또 이방땅에 있던 언약궤도 20년 있다 찾아오게 하 셨습니다. 골리앗도 다윗의 물맷돌로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이런 것 때문에 내가 죽을 때까지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형편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로 인해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면서 정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서 나의 남겨둔 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자손들이 혼난다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자에게 내탕고를 보여준 것 때문에 자손들이 바벨론 땅 으로 잡혀가게 됩니다. 오늘 나의 적용 하나, 하나가 우리 자손들의 행불행을 좌우하는 적 용이 될 줄 믿습니다. 내 결혼도 그렇고, 망하는 적용을 하려면 하십시오. 히스기야도 내 세대에는 태평이 있으리로다 했는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세 번째는 그러므로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23절 - 이와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 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온 땅을 전쟁에서 취해야 하는 이유는 구별을 따라 기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에 게 주어진 삶의 상황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분깃이 있습니다. 가난과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여러분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구별해서 남편도 주 고, 자식도 주고, 돈도 그만큼 주셨다고 합니다. 누구는 10만원을 주고, 누구는 100만원을 주는 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구별해서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분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망만 하고 있으면 안식이 없습니다. 전쟁이 그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 식을 누리는 것인데 그 모든 것을 나의 기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안식입니다. 이스라엘이 40 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면서 굶어죽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불순종해서 죽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돈 없어서 굶어죽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내 속에서 전쟁이 그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살기 원하시는 삶의 형태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내가 살기 원 하는 방식이 끊임없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내가 살기 원하는 방식으로 사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사십니까.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식으로 살려면 비 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10만원 가지고 살기 힘듭니다. 바람 피운 남편도 용납하기 힘듭니 다. 가출하는 자식,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다 용납하기 힘듭니다. 용납을 하려니까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만 전쟁이 그치게 되면 거기에 쉼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내 속에서 전쟁이 그쳐야 합니다. 전쟁은 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전쟁을 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전쟁이 끊임이 없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죄를 허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과 전쟁하는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러 나 순종하면 곧 쉼을 얻습니다. 안식은 바로 순종입니다. 돈이 생겨서 안식이 아닙니다. 오 늘 중고등부 학생이 나와서 적용을 하는데 엄마가 야단을 치는데 너무 속상하고 속이 부글 부글 끓어서 대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큐티를 꼭 쓰면서 하라고, 안 쓰는 큐티가 아니라는 하신 말이 생각나서 쓰면서 큐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하나 순종하니까 금새 안식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편안해지고 기쁨이 왔다고 합니다. 그동안에는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왜 엄마가 저런가 했는데 큐티를 하면서 순종을 하니까 쉼 을 얻게 됐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그쳤습니다. 위험한 풍파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안식입니다. 아무리 욕을 하고 악을 쓰고, TV 가 요란을 떨어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그 앞에서 공부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보 니까 온 집안 식구가 그 앞에서 TV를 봐도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공부 못하는 애들은 조용 한 방을 줘도 시끄럽다고 합니다. 밖에서 누가 물 먹지! 밖에서 누가 TV보지!! 이럽니 다. 아이들만 그렇습니까. 어떤 폭풍 속에서도 놀라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일에 말 할 수 없이 열심을 내지만 항상 내면이 정리 돼 있기 무슨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쟁이 그친 자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보여질 때 많은 다른 사람들이 또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힘든 일, 슬픈 일, 기쁜 일을 보아도 마음 이 안정돼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평안을 선사합니다. 마음의 전쟁이 내 속에서 그쳤습니다. 이 안식은 주님으로부터 용서받았다는 확신에서 시작이 됩니다. 내가 주님께 용서받았다는
확신이 없으면 절대로 전쟁은 그칠 수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죽을까봐 전전긍긍합 니다. 물의 온도를 재서 마신다고 야단을 치는 겁니다. 하루에도 얼마나 전쟁이 많은지 모 릅니다. 제 남편은 병원에 혈액이 준비 돼 있는데도 자신이 원하는 수량만큼 안 돼 있으면 피가 준비가 안 돼 있다 고 온 병원을 뒤짚어 엎었습니다. 앞으로 수술할 사람들을 위해 서 예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야단을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병원 차도 못 타고 다녔습니다. 긴급히 수혈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기사가 없으면 안 된다고 못 타고 나가게 했죠. 그런데 항상 혈액이 준비돼 있었기 때문에 5년 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날마다 걱정 근심 가운데 살면서 안식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도 새벽 2시에 온 집안 식 구가 일어나서 야단을 맞고 그랬습니다. 간호원부터 전부 일렬횡대로 서서 사람 죽일 일 있느냐 면서 야단을 맞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너무 화를 내서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당하다보니까 저에게 전쟁이 그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놀라지 않는 날이 왔습니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 있습니다. 전쟁이 그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전쟁을 하고 있으 니까 계속 부딪히는 것입니다. 자신도 남도 정죄하지 않으며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이 말씀을 믿는 자들이 전쟁이 그친 자들입니다. 이 사모님이 너무 좋은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친구들의 아버지는 다 병원장에 군장생인데 자기 아버지는 국졸이라 그 이야기가 너무 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커서도 그런 것이 창피하고 나는 부모님이 잘못해서 이렇게 됐어 하면서 정죄를 합니다. 전쟁이 그친 사람은 과거로부터 자유하고 현재를 기쁘게 살며, 그래서 미래를 준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힘든 사람은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에 오늘을 빵점으로 사는 사람 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정리를 하겠습니다. 참으로 전쟁이 그쳤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전쟁이 그쳤다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강퍅이 물러간 것입니다. 두려움이 물러간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강퍅이 무엇입니까. 내 남편이 아니고, 내 부인이 아니고 내 속의 강퍅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강퍅 가운데 물러가지 않는 두려운 아낙, 자식, 돈, 눈만 뜨면 두려운 아낙에 대 해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의 남겨운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진멸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전쟁이 그쳤다고 해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할아버 지가 교회에 나갔다고 해서 강퍅이 하루아침에 물러갔겠습니까. 겸손하게 깨어있어야 합니 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뽑고, 뽑고, 또 뽑아서 나에게 주셨구나, 이 남편을 주 셨구나, 이 며느리를 주셨구나, 이 부인을 주셨구나, 이만큼 돈을 주셨구나, 질병을 주셨구
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으로 인정할 때 그 생각 자체가 구별된 것이고 남에게 나 누어주는 기업이 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내 고난과 가난과 환난으로 남을 살리는 기업이 되는 것이 전쟁이 그치는 것임을 믿 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각자의 전쟁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이제 그 땅에 전쟁이 그쳤다고 합니다. 전쟁이 그치는 것은 나의 강퍅이 물러가고 내 식구의 강퍅이 물러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식구를 강퍅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 신 것이라고 하오니 강퍅한 내 식구들을 보면서 나의 강퍅을 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것을 맡기기 원합니다. 내 강퍅이 물러가며 나의 아낙 자손을 멸절시키기 원한다고 하셨는데 눈만 뜨면 두려운 돈, 자식, 질병, 두려운 아낙이 있 습니다. 이제 정말 자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을 만났지만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 약간 남겨둔 인생임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정 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것쯤이야 하면서 남겨두는 것이 제 속에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 님, 정말 남겨두고 싶지 않은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소원대로 살고 싶은데 남 겨둔 것이 있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리앗 때문에 다윗의 물맷돌을 허락해주시 고, 삼손의 머리카락을 다시 자라게 하시고, 빼앗겼던 말씀을 다시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못 선택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시고 회복하게 하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연약하고 유한한 것을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그래도 이 자리에 서 듣고 돌이킬 때에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주님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서 나에게 주신 환경이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의 경제적인 분깃, 모든 가난과 고난과 어려운 것들을 하나님께서 구 별해서, 생각해서 주신 것이라고 하오니 이것을 남에게 나누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기업이 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안식과 쉼이 될 수 있도록 그런 구별된 생각, 안 식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이제는 남에게 나누어줄 것만 있는 인생 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환경을 써주시옵소서. 주님 함께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가운 데 전쟁이 그치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 속에 전쟁이 그치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 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