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 연구용역 보고서(2006.12) 북한의 시장개방 및 농산물 가격체계 변화에 따른 식량수급 정책의 발전방향 2006. 12 세 계 농 정 연 구 원
제 출 문 농림부장관 귀하 본 보고서를 북한의 시장개방 및 농산물 가격체계 변화에 따른 식량수급 정책의 발전방향 연구 용역과제의 최종성과 물로 제출합니다. 2006년 12월 제출자 : 세계농정연구원 책임연구원 : 이 상 무 연 구 원 조 방 환 초청연구원 남 성 욱 초청연구원 박 현 선 초청연구원 송 병 준 연구보조원 허 원 석 연구보조원 정 순 원 연구보조원 조 휘 찬 연구보조원 최 경 연
요 약 문 1. 연구과제명 : 북한의 시장개방 및 농산물 가격체계 변화에 따른 식량수급 정책의 발전방향 2. 연 구 기 간 : 2006. 5 ~ 2006. 12 3. 연 구 목 적 : 지난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추진 되고 있는 북한의 시장개방 현황과 농산물 가격 체계 변화에 따른 식량생산 및 소비동향을 정확히 파악하여 북한의 식량 수급 동향을 전망하는 한편 이와 관련 효율적인 남북농업협력 방향을 수립하고자 함. 4. 연 구 자 : 세계농정연구원
< 제 목 차 례 > I. 서론 1 II. 북한의 시장개방 현황과 농산물 가격체계 변화 3 1.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시장개혁 추진동향의 함의 3 2. 2002년 7월이후 농업개혁 동향과 함의 11 3. 사회주의 체제의 가격 시스템의 변화 유형과 의의 14 4.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와 농산물 가격체계 변동 16 III. 북한의 식량수급 정책 변화 및 향후 전망 34 1. 식량사정과 배급제 부활의 의도 34 2. 국제 NGO에 개발원조 요청 42 IV. 북한 농업정책과 식량조달 실태와 평가 44 1. 북조선 농업발전의 전망에 대한 소견 44 2. 탈북자 대상 북한 농업현황 조사 57 V. 북한 당국의 식량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책 80 1. 7 1 경제관리개선조치와 농업정책 변화 80 2. 분조관리제 개선과 농민 인센티브 강화 83 3. 7 1 경제개혁과 협동농장의 자율과 책임 확대 87 Ⅵ. 북한 농업개혁 전망과 남북협력방향 89 1. 농민들의 증산의욕 고조 89 2. 7 1 조치와 농업생산과 분배체계의 변화 91 3. 식량사정과 배급제 부활의 의도 94 4. 바람직한 남북한 농업협력 방향 97 Ⅶ. 결 론 110 <참고문헌> 112
< 표 목 차 > <표 1> 농민시장 물가의 7 1 조치 이전과 이후 비교 21 <표 2> 평양 농민시장(2002.7, 2003.2)과 평양 통일거리시장 시장한도가격 (2004.5 8), 함북 청진(2004.8.26) 비교 26 <표 3> 2004년 8-9월 중순 북한 주요도시 물가동향 27 <표 4> 2004년 10월 해주의 물가 가격표 28 <표 5> 2005년 5월 11일 회령 물가 29 <표 6> 2005년 주요 도시 8~9월 시장 가격 30 <표 7> 2005년 함경북도 회령 지역의 쌀, 옥수수 가격 변화 31 <표 8> 2006년 7월 중순 북한 전국 주요도시 물가표 32 <표 9> 2006년 9월 25일 시장 가격 33 <표 10> FAO 북한의 곡물 생산량 추정: 1995-2005 37 <표 11> 북한의 식량생산량 통계: 1948-2005 38 <표 12> 북한의 곡물생산 통계 : 1961-2006 40 <표 13> 북한 신년 사설에 발표된 농업전략 1995~2005 41 <표 14> 1995-2005년 북한의 식량수급 추이 42 <표 15> 7 1 조치이후 농산물 수매 및 판매가격 변화 동향 82 <표 16> 2002년 7월 농업분야 개혁조치의 주요 내용 87 <표 17> 2002년 이후 북한의 주요 농업개혁 88 <표 18> 협동농장 수매-배급규모의 증감효과 93 < 그 림 목 차 > <그림 1> 농산물 가격인상과 생산량과 관계 14 <그림 2> Schultz의 농업조직과 생산량과 관계 15
I. 서 론 북한의 식량난은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근본적인 제도를 변경하는 방안과 또는 운용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이 있다. 근본적인 제도를 변경하는 방법은 북한 식량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 지하는 협동농장을 1978년 중국의 농업개혁과 같이 해체하는 것이다. 그러나 급진적인 개혁은 최고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 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다른 방안은 협동농장의 생산조직을 현행대로 유지하 면서 일차적으로 생산 및 운용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농업생 산물의 가격체계를 변동시킴으로써 농민들의 소득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본 연구는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북한 농정에서 핵심적인 변화 요인인 생산물 가격의 변화가 북한 농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자 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격체계 및 결정과정 분석에서는 Janos Kornai 의 The Socialist System: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1992)의 사회주의 가격결정 이론을 원용하였다. 이외에 체제전환국가에서 시장자유화 와 경제성장간에 유의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Havrylyshyn, Izvorski, and van Rooden(1999)의 이론을 북한 사례에 부분적으로 적용하 여 가격자유화와 농업생산 증가간의 유의적인 관계를 분석하였다. 또한 이론적인 분석이외에 북한 농업생산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실증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북한의 현장 접근이 곤란한 만큼 2006년 6월에서 8월간 국내에 거주하였던 탈북자 150명을 집중 조사하였다. 북한 체류당시 협동농 장에서의 근무 경험과 당시 식량을 획득하였던 방식 및 경로, 가격변화에 따 른 반응도 등을 설문조사하였다. 이중에서 설문조사에 유효한 응답을 보인 121명의 표본을 가지고 사회과학통계프로그램(SPSS)으로 분석하였다. - 1-
마지막으로 2006년 6월 중국 지역에서 북한 농업담당일꾼을 비공식으로 접촉하여 북한 당국의 농정 추진현황을 청취하고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를 기초로 그의 발언을 녹취하여 북한 농정의 현 실태와 문제점 및 정책 방향 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본 연구에 추가하였다. 한편 북한은 2006년 7월 4일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2006년 10월 9일 핵 실험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초래함으로써 식 량 원조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북한의 식량난에 심각한 영 향을 미쳐 지난 95-98년의 제1의 고난의 행군에 이어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동시에 북한의 식량 재고 부족으로 공공배 급제는 불가피하게 중단될 수밖에 없으며 주민들은 농민시장 등에서 자체적으 로 식량을 조달하거나 중국 국경을 통해 밀무역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농업 외적인 국제정치적 환경 악화에 따라 외부세계의 식량 지원 중 단은 정상적인 농업개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식량 부족량의 증가는 역설적 으로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한 식량생산 체계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국가가 경험한 가격자유화를 통한 시장기능 활성화는 당분간 유보 될 수밖에 없다. - 2-
II. 북한의 시장개방 현황과 농산물 가격체계 변화 1.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시장개혁 추진동향의 함의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발표 이후 북한 경제는 역설적으로 매년 1월 1일 발표하는 새해공동사설에 나타난 계획대로 활성화되지 않았다. 선 군정치라는 키워드에 가려져 제대로 된 경제개혁을 추진하려는 정책방향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발표이후 2003년 에는 종합시장 등 각종 후속조치가 발표됨에 따라 2004-2005년 들어 경제 의 실리를 강화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개혁조치가 기대되었다. 특히 금융개혁 등 투자재원 조달 등을 중심으로 한 재정의 효율성 강화와 함께 개인의 시장경제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허용하며 가격자유화(price liberalization) 등 가격개혁(price reform)이 급진적으로 진행되어 소유제 개혁 (ownership reform)으로 전환되기를 요망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은 북핵문제에 따른 대미항전과 체제내부의 단속 그리고 주민 들의 체제결속을 염두에 둔 나머지 개혁적인 경제정책 추진 의지를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였다. 북한 당국은 시장지향적인 개혁 조치들이 혹시 주민들의 자본주의 사상을 확산시켜 체제이완에 촉매 요인이 될 것을 우려하여 개혁 에 소극적이었다. 경제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한 경제회복이 었다. 매년 신년사설은 당의 과학기술 중시노선을 높이 받들어 빠른 기간 안 에 선진국 수준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북한 당국도 국 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로 인하여 자본조달이 어려운 실정에서 경제회복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 3-
그러나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고 성 과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첨단기술을 도입하고 외국기업들의 투자 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지 않는 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해마다 연초에 제시한 구체적인 역점사업 분야로는 중공업 분야 에서는 전력, 석탄, 금속공업과 철도운수 등이었다. 경제회복에 발목을 잡고 있는 심각한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화력발전소들의 개건 보수와 함께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과 중소형 발전소를 신속하게 건설할 것을 선언한바 있으나 재원 부족으로 중소형 발전소 건설에 그치고 말았다. 북한은 2004년 9월 17일 김일성의 노작 수력 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 설하여 전력생산을 늘이자 발표 20주년을 맞이하여 전국 각지에서 가동 중 이거나 건설 중인 수력 발전소 현황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북한은 함경남도 금야강 발전소, 평북 태천4호 발전소, 양강도의 백암 발전소 등 중 대형 발전소를 비롯하여 수 백 개의 중소형 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고 주장 하고 있으나 전력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경공업 분야에서는 현재의 생산토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기술개건을 적극 추진시켜 인민소비품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품질을 개선할 것을 제시하 였으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 식량문제 해결을 위하여 종자혁명, 두벌농사, 감자농사, 콩농사, 토지정리사업, 닭공장을 비롯한 축산기지 건설 등을 추진 하였다. 농업분야에서 특이한 점은 콩농사의 강조이다. 콩농사는 2004년 들 어 먹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감자이외에 새롭게 강조하는 작목으로서, 콩은 주민들의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특징적인 사항은 당국이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 면서 실리가 날수 있게 기업소들이 사업을 추진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 4-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발표 이후 각 기업소들이 사업 추진과정에서 실리와 사회주의 원칙의 고수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여 북한 정권이 기업들에게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것을 지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국의 복합적인 정책은 기업 현장에서 서로 모순되고 충돌됨 으로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은 7.1 조치가 발표되면서 지본주의 풍조 만연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여 이 조치가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체제전환적 조치가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내부의 효율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 을 강조하였다. 지나치게 7.1 조치의 내부적 범위를 강조하면서 경제주체에 대한 개혁적인 파급영향이 축소됨에 따라 고육지책으로 사회주의 원칙의 고 수와 실리의 동시 달성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지침을 내리고 있다. 또한 경제정책 추진과정에서 내각의 역할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경제행정 일꾼들의 비중이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 당과 행정의 일치를 강조한 것은 당책임비서ㆍ지배인ㆍ기사장의 3위 1체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경제정책에서 이념적 측면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3-2005년 북한경제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부분적인 경 제개혁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2002년 7.1 조치가 발표되었을 때만해도 이 조치가 과연 어떤 성격의 조치였는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본격적인 시장개혁 을 위한 신호탄이냐 혹은 사회주의 내부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일시적 인 과도기 조치인가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4년이 지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정책평가를 내리기에는 다소 시기상조이지만 북한의 일련의 경제정책들이 시장개혁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조치 중에서 중간 정도의 위 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잠정 평가되고 있다. - 5-
아직은 시장개혁이라고 하기에는 소유제 개혁 등 보다 본질적인 후속적 인 조치들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내의 조치라고 하기에 는 종합상설시장의 육성 등 일부 시장개혁적인 내용들이 포함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의 전형적인(protype) 경제체 제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관리개 선조치를 발표하면서 이 조치가 1946년 토지개혁에 해당하는 사회 경제적 파장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종합시장, 인민생활공채 등 사경제를 국가의 통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조치들 이 효과를 거두게 될지, 아니면 국가통제를 벗어나 경제개혁으로 나아갈지 미지 수이나 북한이 개혁을 위한 첫발을 디디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향후 북한경제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2005-2006년도에 북한정권이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가 에 달려 있었으나 북핵 문제 등으로 기대한 만큼의 속도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2003년 인민들에게 소비재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필 요성을 절감하였다. 국정가격에 묶여 있는 국영상점은 물자유통이 원활히 이 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달리 민간의 사적시장인 농민시장은 농산물만이 아니 라 각종 공업제품도 원활하게 거래되는 현실에 맞춰 북한은 2003년 3월 농 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전환시켰다. 종합시장은 과거 10일에 한번 열던 장 마당과 달리 연중 개장되며 지붕이 있는 상설시장으로서 통일거리, 광복거 리, 문수거리, 대성거리, 평천거리 등 평양시내에 11개를 건설하고 있다. 당국은 종합시장이 북한의 전역에 조성되고 있으며 시장운영에 관한 경 험이 없게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최대한의 협조를 구할 계획이라고까지 밝혔 다. 또한 당국이 통제 운영할 종합시장 에 개인판매대를 허용함으로써 그 동 안 기관이 운영했던 유통시장에 개인이 진출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국가 몰 래 장마당에서 물자를 거래하던 관행은 평양에서 사라지고 있다. - 6-
그러나 개인이 매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합법적으로 물자를 수입하고 물품을 생산ㆍ유통해야 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사경제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영상점들이 인민들에게 물자를 공급하는데 한계 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 국영상점과 종합시장을 부분적으로 병행 운영함으 로써 사회주의 국가 내에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부분적으로 공존 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북한의 무역실적은 전 년 동기 대비 5.5%의 수출 증가와 5.9% 의 수입증가를 기록하였다. 무역규모는 전년대비 5.8% 증가한 23억9,100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수입은 전년보다 5.9% 증가한 16억 1,400만 달러를 기 록하였고, 수출은 7억7,700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2005년 북한의 무역실적 은 40억 달러를 넘어섰으나 무역 역조가 심해졌고, 전반적으로 국제수지는 개선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2006년에도 이러한 무역 적자 추세의 지속 에 따른 국제수지 개선의 부진 때문에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북핵 실험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무역규모는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월간지 금수강산 2004년 9월호에서 전반적으로 북한 경제가 활 성화의 궤도에 확고히 들어서고 있다 고 평가하였다. 북한은 이는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취해진 이후 기업관리 수준이 개선되고 생산 정상화가 적극적으 로 추진된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북한 당국은 특히 농산물 가격을 다 른 상품가격보다 높게 설정하여 농민들의 생산열의를 자극한 것도 경제 활 성화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며, 앞으로도 공업의 골간인 선행ㆍ기간 부문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고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또한 경제건설에 중요한 산업생산 부문을 치켜세우기 위한 근본열쇠는 철강재 문제를 푸는데 있다 며 철광산의 현대화를 강조하였다. 철광산의 현 대화는 실제로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외국에서 최신 장비도 도입하고 각종 - 7-
갱도시설도 교체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조달이 필수적이나 선군정치의 강조로 내부 조달에 한계가 있다. 2004년 경제주체들의 행동 양식의 변화의 징후가 포착되기 시작했으며 시장경제 메커니즘 일부가 주민들의 경제생활 속에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김정일 정권은 경제개혁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각 분야에서 최대한의 성과 달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경제의 각 부분 에 실리주의 분위기가 만연되고 있으나 성과는 희망하는 만큼 나타나지 않 고 있다. 이는 경제개발의 2대 요소인 자본과 노동 중에서 7.1 개혁으로 노 동력 동원에는 성공하였으나 자본조달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향후 북한경제의 향방은 그럭저럭 버티기(Muddle Through), 경제규모의 축소 및 쇠퇴(Decay), 및 완만한 회복 등의 세 가지로 예상된다. 북한이 금 년도 그럭저럭 버티기 전략을 벗어나 내년에 완만한 회복 시나리오를 전개하 기 위해서는 신체에 혈액에 비유되는 돈이 경제 시스템에서 활발하게 돌아가 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 및 금융개혁이 필수적이다. 노동의 효 율성이 자본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2004-2006년 북한경제의 실체이 기 때문이다. 2004년 11월 필자는 서울에서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 Mr. Baily와 비공개 세미나를 가졌다. 주제는 북한이 지난 2002년 7월 시행한 경 제관리 개선조치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었다. 평양에서 4년째 거주하고 있는 스웨덴 대사는 매일 매일 현장에서 경제개혁을 실감하고 있었다. 산속에 있 어 미시적으로 나무는 잘 관찰할 수 있으나 거시적으로 숲 전체의 조망은 어 려운 상황이라며 한국의 전문가들과 크로스 체크를 희망하였다. 대사는 7월 경제개혁은 북한경제를 바닥부터 흔들고 있으며 북한은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로 종합시장 물가가 시장 수요공급 상 황에 따라 등락하고 근로자의 임금이 성과급으로 지급되며, 개인들이 직장에 서 받는 월급이외에 부업으로 돈벌이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을 제시하였다. - 8-
2005년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경제개혁동향 보고서 는 33개월이 지난 북한 경제의 변화를 분야별로 정리하고 있다. 북한은 7월 조치이후 경제관리 면에서는 관련법령 제ㆍ개정, 경제일꾼들의 세대교체 등을 추진하였다. 거시 경제면에서는 지방예산제 강화, 환율 현실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개혁의 명암( 明 暗 )은 다음과 같다. 우선 경제개혁의 긍정적 측면 중 가장 주목할 성과는 경제주체들의 경제 마인드가 제고된 점이다. 이제 모든 경제행위는 시장의 효율성이 이데올로기 의 영역을 잠식하며 중요한 행동규범이 되고 있다. 시장을 합법적인 상품유 통 체계로 인정함으로써 시장기능과 역할을 강화하였다. 기업의 자율권 확대 와 재정운영 재량권 확대로 기업의 부실이 줄어들고 있다. 농업부문에서는 외형적으로 집단농장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작업단위인 분조( 分 組 )의 규모를 축소하여 곡물생산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고 분배의 평균주의 를 배제하였다. 이러한 인센티브 시스템은 곡물 생산량의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423만톤을 생산하여 9년만에 대풍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경제개혁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심각한 측면은 인플레이 션이다. 사회주의 개혁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은 좋은 뉴스인 동시에 나쁜 뉴스 다. 좋은 측면은 수요공급 원리에 의하여 가격이 작동하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쁜 측면은 지나친 물가인상(Hyper-inflation)으로 경제주체들의 경 제회복 의지를 무력화시켜 개혁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는 것이다. 물가인상 은 구매력을 감소시켜 위험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물자 생산이 수요에 미달하는 구조적인 수급불안 상황은 인플레이션 해 결이 간단치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시장기능이 확산되고, 중국과의 무역이 확산됨에 따라 시장과 대외무역을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간에 빈부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당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 9-
화폐교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평양에서 PDP 텔레비전이 판 매되기도 하지만 함경도에서는 제때에 식량이 공급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사회주의 개혁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 成 長 痛 )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7월 개혁은 사회주의 개혁단계에서 1단계에 해당하는 가격개혁 (Price reform)이다. 북한 당국은 7월 개혁으로 노동의 효율성은 확보하였으 나 자본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성과는 미흡했으며 경제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 사태에 따른 미ㆍ일( 美 ㆍ 日 )의 경제제 재로 해외자본 유치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점이 2004년 9월 22일 박봉주의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이유이다. 박 총리의 중국 방문은 중 국자본의 유치를 제도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향후 7월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 서는 북한당국의 추가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가격개혁 단계를 넘어서 부의 주체를 변화시키는 소유제(ownership reform) 개혁을 도입해야 한다. 동시에 외자유치를 위해서는 북핵 사태의 조기 해결도 필수적이다. - 10-
2. 2002년 7월이후 농업개혁 동향과 함의 2005-2006년 북한경제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2005-2006년 신년사를 분 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초의 계획을 토대로 금년도 경제정책과 실상을 파 악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정책 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5-2006년도 북한의 신년사 중에서 경제관련 내용은 크게 4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결정적 전환 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 조함으로써 경제건설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피력한 것이다. 특히 부강한 조국 건설의 비약에 대한 인민들의 강렬한 지향에 부응하고 경제과학 기술발전의 현실적 요구를 구현하는데 있어 일심 단결하며 혁명적 군인정신의 위력으로 이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료와 주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독려하였다. 둘째는 올해 사회주의 건설의 주공전선은 농업전선이라고 규정하고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의 모든 문제의 기본이 농업생산의 증대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올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집중, 총동원하여 필요한 노력ㆍ설 비ㆍ물자의 최우선적 보장을 촉구하였다. 셋째는 전력, 석탄 등 선행부문 및 기간산업 발전을 통한 공급능력 증대과제 를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과제로서 수력ㆍ화력발전소 설비능력 제고 및 철강생산 증대, 철도운수 등 수송부문에서의 규율강화, 수송조직체계 원활화 등 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주민생활 향상 및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는 의 지를 표명하였다. 구체적으로 경공업공장 현대화를 통한 인민소비품 증산, 실리 를 위한 경제조직사업 및 내각의 조직집행자적 기능ㆍ역할 제고, 과학적인 경영 ㆍ기업 전략, 생산의 전문화ㆍ규격화, 표준화 를 통한 품질제고 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네 가지 경제과제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문은 경제건설의 주공 ( 主 攻 )전선은 농업전선이라는 부분이다. 이례적으로 국정의 3대 목표로 농 업생산력 향상, 체제결속 강화, 남북한의 민족공조 강화를 제시하면서 - 11-
식량 증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이다. 지난 98년 신년사에서 농업생산 증산을 최우선 과제로서 내세운 이래 7년 만에 농업생산력 향상을 강조함으 로써 금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농업문제 해결이라는 점을 역설하였다. 농업성 김광호 부상은 2005년 1월 4일 조선중앙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해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농사를 잘 지어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겠 다. 올해 농사를 잘 짓는 것이 긴장한(어려운) 식량문제를 풀고 인민생활을 높이기 위한 중대한 정치적 사업임을 명심하겠다. 농사에 모든 역량을 집중 하고 영농공정별로 계획을 잘 세우는 한편 연초부터 각지 협동농장에 나가 농민들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겠다 고 강조하여 농업우선 정책을 구체화하였다. 2002-2006년간 북한의 농업생산력 향상 정책의 배경은 세 가지로 구분 된다. 우선 2005년 생산량이 432만 톤, 2004년 식량 생산량이 FAO(국제식 량농업기구) 통계로 423.5만 톤, 한국정부 통계로 435만 톤에 달함으로써 곡물 생산량이 2003년에 비해 3% 증가하여 사실상 대풍( 大 豊 )을 기록하고 2001년 이래 회복세를 이어갔다는 점이 중요하다. 양호한 날씨, 낮은 병충해 발생,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기 비료지 원, 석유수출기구(OPEC)가 자금을 지원한 개천-태성호 관개시설 공사의 완 공 등의 긍정적 요인으로 소폭이나마 증산에 성공하였다. 북한이 3년 연속 곡물 증산에 성공함으로써 향후 식량문제 해결 과정에서 목표량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예산과 인력 및 제도 개선 등 모든 국가의 역량을 농업분야에 투입하겠다는 정책을 선언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국가가 먹는 문 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과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2005년 농업개혁을 통한 농업 생산량 증가에 인적, 물적 투입 극 대화는 물론 급진적인 제도 개혁 등 총력(올인)을 경주하였다. 김위원장은 2001년 10월 강성대국 건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 경제관리를 개선할 데 대하여 라는 문건에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 경제개혁을 시작 한다 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농업개혁이 사회주의 경제개혁의 필요충분조건임을 인식하 - 12-
여 농업개혁 없이 사회주의 경제개혁 없다 라는 명제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이러한 개혁적 사고는 포전담당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있고 협동농장에 분조를 더 적은 단위로 나눌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그런 속 에서 더 적은 인원으로 포전을 담당하는 포전담당제가 나왔다. 라는 북한 김 용술 무역상의 발언(2004.12.11)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향후 김위원장은 농업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일이라면 사회주의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전제하에서 어떤 정책이라도 추진하겠다는 것을 시사 하는 것으로서, 전형적인 집단생산에서 개인생산 형태로 영농 구조를 변화시 키는 데 주력하고 있어 상당 기간 집단농의 형태를 띤 혼합 개인농 형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사회주의의 특성상 개인농 구조를 전국 단위에서 선언하기는 어렵고 지방의 협동농장 차원에서 생산량 을 증가시키는 행위를 중앙에서 묵인하는 행위가 증가할 것이다. 2005년말 협동농장별 곡물 생산량을 비교하여 특정 협동농장의 생산량 부진의 원인이 2-3가구 단위의 분조관리제를 시행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면 중앙정부도 이를 제재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은 2006년에는 전국의 협동농장 들이 이러한 경향을 추종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모든 물적 인적 투입 요소를 극대화한다는 방침 하에 예산 투입을 확대하는 한편 각 기관 및 기업소 등에서 농업과 농촌 지원에 나서 는 등 도시와 농촌의 연계, 공장 기업소와 협동농장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 다. 공장 기업소의 일부를 토지세 및 비료 값 등의 명목으로 협동농장에 기 부하게 만드는 한편 일부 노동력을 농번기에 협동농장의 영농 작업에 투입 하여 농촌 노동력 부족을 완화시키려고 할 것으로 판단된다. 종전대로 종자 혁명, 이모작, 감자농사 혁명, 콩농사에 주력하여 단위(ha)당 생산성을 높이 는 데 주력하는 한편 지대별 실정에 맞는 다수확 품종을 대대적으로 심는데 주력하여 종전의 경직적인 주체농법을 더욱 적기적작 적지적작 에 맞게 탄 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 13-
3. 사회주의 체제의 가격 시스템의 변화 유형과 의의 1) 농산물 가격자유화 성과 사회주의 농업의 구조개혁은 가격정책의 개혁과 생산책임제의 도입과 같 은 농업조직의 혁신이라는 2가지 측면에서 진행된다. 농업생산함수를 일반화 시키면 Y=F(L, K: t), Y: 생산량, K: 자본량, L: 노동, t: 기술진보로 된다. 단 순화를 위해 경지면적을 일정으로 하고 생산함수를 1차동차라고 가정하면 y=f(k,t)y=y/l, k=k/l 과같이 변형이 가능하다. 농산물 가격을 p, 임금율을 w, 자본용역가격을 r로 하고 이윤극대화를 취 하면 자본용역투입의 균형조건은 pfk=r, 노동투입의 균형조건은 w=pf-k pfk 로 된다. <그림 1>에서 f1 의 기울기는 자본의 한계생산력을 나타내고 균형 점 E1 에서 fk=r/p이 된다. 농업개혁 이전의 균형점을 E1 이라고 하면 농산 물 가격의 인상과 근대적 투입재의 가격인하로 인해 일단 균형점은 E1 에서 E2 로의 이행이 가능하다. 농업개혁 이전에 E1 만큼 생산하였으나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생산에 들 어가는 농산물 투입재의 가격이 내리거나 혹은 인상되지 않는 다면 생산자 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당연히 생산량을 증가시킬 것이다. 또한 농업생산책 임제의 보급 및 협동농장 내부의 작업단위의 축소는 일종의 조직혁신에 따 른 기술진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생산함수 자체를 이동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균형점을 E2 에서 E3로 이행이 가능할 것이다. <그림 1> 농산물 가격인상과 생산량과 관계 - 14-
2) 협동농장 작업 단위 축소의 성과 사회주의 농업개혁은 가격개혁과 동시에 조직의 축소를 통해서 가능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협동농장의 최소 작업 단위는 일반적으로 수 십명에서 100 여명에 달한다. 1) 이에 따라 사회주의 농업개혁 과정에서 집단생산체제의 규 모를 축소하는 것은 개인농 체제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다. 작업 단위 규모의 축소가 생산량 증가로 연결된다는 이론적 배경은 다음 과 같다. 작업 단위가 최소인 가족영농은 협동농장이나 국영농장보다 작업의 효율성이 높은 이유는 노동의 감시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집단영농에 있어서 노동을 감시할 입장에 있는 간부는 토지의 소유자도 아닐 뿐 더러 그들의 소득이 생산고와의 연계가 약하기 때문에 감시의 유인 자체가 낮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토지의 집단소유제를 유지시키는 한 농업노동을 감시한 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누가 감독자를 감시하는 가 라는 문제 역시 발생한 다. 농업노동의 감시와 인센티브의 결여는 필연적이다. 2) <그림 2> Schultz의 농업조직과 생산량과 관계 1) 소련의 경우 6명에서 10명으로 구성된 즈베노(zveno, 작업반) 제도가 개인적 책임감의 결여 (obezlichka)를 회피하기 위하여 1950년 2월 도입되었다. 그러나 업무 및 토지가 지나치게 세분화되는 문제점을 막기 위해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작업대가 주요 작업 단위가 되었다. 특히 즈베노가 작업대 안의 한 단위로서 계속 존 재한다 하더라도 작업대의 업무와 성과급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즈베노는 작업단위로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 웠다. Alec Nove 지음, 김남섭 옭김, 소련경제사, 창작과비평사, 1998, 342쪽. 2) Schultz, T.W, The Economic Organization of Agriculture, McGraw Hill, 1953. - 15-
Schultz의 이론은 북한농업의 집단화 문제점을 설명하는 데 매우 설득력이 있다. 1958년 집단화가 완성되던 시기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경영 기술 상의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감시와 인센티브 미흡에 따른 부작용 이 심화되었다. 특히 집단영농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농업관료들의 경직적인 농업통제는 주체농법 이라는 정책으로 구체화되어 농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 을 무력화시켰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영농기술 개선과 농업 생산량간에 직접적인 연계 관계 가 미흡함에 따라 기술진보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도 대규모 영농단위의 문 제점이다. 2002년 7월 경제개혁은 Schultz의 이론대로 P5에서 P1으로 이동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협동농장에서 작업 단위가 외형적으로는 변화가 없 으나 실제 영농은 축소된 형태로 진행되면서 산출고가 증가한다. 향후 분조 관리제의 규모를 공식적으로 축소하여 신분조관리제를 시행하면 Schultz의 이론이 보다 분명하게 적용되어 생산성 증가에 뚜렷하게 기여할 것이다. 4.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와 농산물 가격체계 변동 1) 농산물 가격 인상의 목표와 내용 현재 북한이 추진 중인 경제관리개선조치의 기본 방향은 사회주의 기본 틀인 계획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실리보장의 원칙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것이 다. 농업분야의 실리보장 원칙의 적용을 위해 농산물 가격을 인상하였다. 모 든 생산물을 제 가치대로 계산 해야 실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임 금과 가격의 현실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3) 3) 쌀값의 천문학적인 인플레를 포함해 성역 없는 가격 정상화 조치를 취하면서도 여전히 국가가 가격 책정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경제개혁은 국가가 수요-공급을 직접 계산해 가격을 제시하는 계획계량형 (Planometrics) 사회주의 체제의 운영과정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정철, 계량형 사회주의와 북한의 90 년대 경제정책 변화, 북한 경제개혁연구, 후마니타스, 2002, 김연철 박순성 편. - 16-
최근 수년간 우리는 가격사업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해 경제사업 전반 에 중대한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 는 자기비판과 함께 북한 당국은 7 1 조치 를 통해 북한의 각종 농산물 물가를 원가에 맞추어 인상시켰다. 국가가격제 정국 에서 책정한 국영상점의 가격은 종전에는 가격의 일원화ㆍ세부화 원칙 에 의하여 지역이나 품질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획일적 인 가격 결정방식은 제품의 품질 확보는 물론이고 각 기업소에서 필요한 양 을 공급할 충분한 물적 자극이 부족하였다. 4) 7 1 조치 입안자들은 국정가격이 농민시장 가격보다 낮아서 개인들의 장 사행위가 성행하고, 국가에는 상품이 부족한데도 민간에는 상품이 풍부하다 고 개탄하면서 대책마련을 절감하였다. 낮게 책정된 국정가격과의 격차를 이 용하여 국가물자를 빼돌려 농민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생산 은 국가가 하고 있는데 상품과 돈의 대부분은 개인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국정가격 현실화의 불가피성을 지적한 것이다. 5) 국영상점에는 없는 쌀을 비롯하여 식료품과 공산품 등 모든 품목이 농민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사실에 당국은 문제점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절 감할 수밖에 없다. 당국에서는 농민시장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품목이 국영 물가와 농민시장 물가와의 가격차를 이용하여 국가물자가 빼돌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농민시장이 개인들이 국가 금고를 털어 내는 공간으 로 활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당국은 개인들의 호주머니 속에 2년분의 국가 예산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 결국 국가가 거의 무상으로 공급해오던 의ㆍ식ㆍ주는 국가의 재정적 보조에 의존하지 않고는 유지할 수 없는 연성 4) 종전의 가격제정 원칙은 사회적 필요노동 지출(가치)에 근거하여 가격을 정한다는 것이다. 즉 생산물의 가격과 가치를 일치시켜 생산물의 가치(C+V+M)가 곧 생산물의 가격이 된다. 여기서 C는 불변자본으로 생산과정에서 소비 된 생산수단의 이전가치를 나타나며, V는 가변가치로서 생산과정에서 소비되는 노동력의 가치를 의미하는데 그 크기는 사회적 필요노동 지출에 결정되며, M은 잉여가치로서 생산물의 가치 중에서 C+V를 초과하는 부분을 의미한 다. M은 C와 V가 결합된 생산과정에서 창출되지만 그 원천은 V에 있다. 조선경제사전, 1995, 사회과학출판사. 5) 가격과 생활비를 전반적으로 개정한 국가적 조치를 잘 알고 강성대국 건설을 힘 있게 앞당기자 조선로동당 출판사, 2002년 7월, KDI 북한경제리뷰, 2003년 1월호, pp. 39-45. 원문은 www.bekkoame.ne.jp. 6) 북한 내부자료, 7 1 경제관리개선조치에 대하여, 2002.6. - 17-
예산제약 상태에 처하게 하였다. 7) 북한 당국은 국영상점에서 판매하는 제품 의 가격을 원가와 농민시장 가격에 근거하여 인상하였다. 특히 국가는 재정원칙과 기준만 마련하고 지방공장에서 생산하는 상품 가격을 해당공장이 결정하도록 한 것은 중앙정부의 경제계획 권한 이양과 맞물려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품의 가치를 제대로 부여하고 노동자 와 농민들의 인센티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해당공장과 협동농 장이 생산관리계획을 스스로 입안하는 것이 선결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7 1 조치에 따른 가격 결정기준은 원가에 근거한 농민시장 가격이고, 결정원칙은 국가의 가격제정 원칙 고수라고 볼 수 있다. 북한 가격제정국은 앞으로 생산이 활성화되면 수요와 공급 상황을 고려 하여 가격을 다시 제정할 수 있지만 공급자가 제 멋대로 할 수는 없다. 가격 을 철저히 중앙과 지방행정 단위에서 조절하도록 하는 체계가 세워져 있다 며 시장 원리가 그대로 가격에 반영되는 일은 없다 8) 고 밝힘으로써 국가의 가격 제정원칙 고수를 언급하였다. 통상 사회주의 국가들이 체제전환을 시도 할 때 가격자유화(Price liberalization) 는 핵심적인 개혁조치였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국가 가격제정 원칙을 제한적으로 견지함으로써 초 보적인 가격개혁을 진행하고 있어 사회주의 경제개혁 초기부터 전면적인 가 격자유화를 추진한 여타 동유럽 등 체제전환 국가들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 다. 9) 물론 북한도 점차 가격자유화의 대상과 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가격자유화는 우선 농산물에서 가장 정확하게 적용되고 있다. 7) Kornai, J. The Socialist System : The Political Economy of Communism,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pp. 140-144. 8) 조선신보, 2002년 7월 26일자. 9) 박석삼, 최근 북한 경제조치의 의미와 향후 전망, 한국은행 조사국 북한경제팀, 2002.8, p. 9. - 18-
2) 농산물 가격 인상의 실태분석과 함의 국가가격제정국은 전체 공산품의 가격을 평균 25배 정도 인상하였다. 당 국은 우선 농업 생산물의 가격을 조정하였다. 7 1 조치 이전에는 북한은 주 로 석탄 가격과 전력요금 등 시초 연료의 가격을 가격제정의 출발점으로 삼 아 왔다. 그러나 7 1 조치에서는 인민들의 물질생활에서 기초를 이루는 식량 가격을 모든 가격제정의 기준으로 정하였다. 기준 물가를 위한 산정품목이 석탄에서 식량으로 전환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전체산업 중에서 번 수입 으로 재생산을 하지 못하는 모순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부분이 농업부 문이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하였다. 돼지고기는 kg당 10원에서 110원으로 110% 인상하였다. 된장은 kg당 20전에서 17원으로 85배 인상하였고, 콩기름은 kg당 4원에서 180원으로 45 배 인상하였다. 10) 2002년 7월부터 11월까지 4개월간은 물가가 소폭 올랐지만 정부의 공산 품 생산 회복과 가을 추곡생산, 부족물품으로 인한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증 가 등으로 장마당에 나가지 않더라도 거주 지역별로 마련된 직매점이나 상 점에서 장마당 가격으로 물자를 구입할 수 있었다. 물자구매의 편리성뿐 아 니라, 제품을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면서 주민들은 일단 7 1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국정가격의 인상은 장마당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이 지만 상품에 따라 인상폭에 차이가 난다. 식량은 쌀과 옥수수의 경우 수매가 는 33-50배, 판매가는 400-550배 인상하였다. 안경, 세숫비누 등 비 식료품 은 평균 25-30배, 연료는 평균 40배, 공공요금은 20-35배 각각 인상하였다. 7 1 조치이후 농민시장의 전체 평균물가는 <표 1>과 같이 182.74% 상승 하였다. 과거 무상 수준이었던 전기료와 수도료 등 공공요금 가격까지 포함 10) 공산품의 경우, 운동화는 3.5원에서 180원으로 51배 인상하였고, 세숫비누는 2원에서 20원으로 10배 인상 하였다. 최고급 남자 양복의 경우 90원에서 6,750원으로 75배 인상하였다. 연료의 경우, 석탄은 톤당 34원 에서 1,500원으로 44배, 휘발유는 리터(l)당 40원에서 2,800원으로 40배 인상하였다. 전력은 거의 무상 수 준이었던 1kwh당 3.5전에서 2.1원으로 60배 인상하였다. 공공요금은 평양-청진간 철도 운임의 경우 17원 에서 590원으로 36배, 시내버스와 지하철의 경우 10전에서 2원으로 각각 20배 인상하였다. - 19-
한다면 2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농민시장에서 쌀은 지난 2년간 kg당 40원 수준이었는데 7 1 경제조치 직후인 2002년 8월 신의주 지역 등 에서 80원까지 상승하였다. 쌀 가격 상승은 총체적인 식량부족 사태로 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초과수요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며, 북한에서 7-8월 은 햅쌀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7 1 조치가 물가를 인상시킨 근본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화폐량의 단위가 종전의 전 및 원 에서 원 으로 단일화 및 확대되면서 물가상승의 강도가 보다 높아진 것으로 체감된다. 특히 구조적인 공급부족과 수요과다로 인해 소폭의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며 7 1 조치는 물가상승과 정확한 인과관 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제한적인 가격자유화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해 구조적인 가격상승은 불가피하다. - 20-
<표 1> 농민시장 물가의 7 1 조치 이전과 이후 비교 상품 종류 품 목 단위 2002년7월 이전 평균가격 2002년 7월 평균가격 가격 변화율(%) 곡류 쌀 강냉이알 밀가루 kg kg kg 52.5 35 47.5 80 57.5 75 52.38 64.29 57.89 육류 돼지고기 닭고기 kg 1마리 165 200 290 400 75.76 100.00 유제품 계란 1개 10 15 50.00 어패류 명태 1마리 25 50 100.00 채소, 해초류 무 배추 미역 1개 포기 kg 25 27.5 200 50 55 300 100.00 100.00 75.00 과실류 사과 개 50 80 60.00 기름 조미료 식용유 콩기름 고추가루 500g 500g kg 75 100 190 150 275 290 100.00 175.00 52.63 튀김, 과자류 기름튀기 만두 개 개 20 10 45 32.5 125.00 225.00 차와 음료 차 통 165 275 66.67 외식 냉면 그릇 50 150 200.00 전기료 전기료 월 6.5 50 669.23 수도료 수도세 월 2 15 650.00 기타잡비 이 미용료 세탁비누 개 45 75 66.67 세숫비누 개 60 100 66.67 이발료 미용료 1인 1인 5 5 10 15 100.00 200.00 출처 : 2002년 7월 및 11월 북한 현지조사와 방북자 면접조사를 기초로 작성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주 : 평양지역 농민시장의 물가 - 21-
곡류는 전체적으로 7월 이전보다 66.1% 가격이 상승했다. 육류와 어패류, 채소류 역시 각각 84.7%, 98.46% 및 82%의 상승률을 보였다. 생활용품은 시장가격이 좀 오르기는 했으나 7월 1일 이전보다 크게 오른 편은 아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공산품 중 상당수가 중국 상품인데 해당 가격이 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농민시장의 가격은 지역별, 시기별로 차이가 있다. 11) 3) 농산물 수급불안과 인플레이션 만연 7 1 조치로 농산물 가격을 현실화했으나 구조적인 수급 불일치로 시간이 지나면서 농산물 물가가 계속 상승하였다. 7 1 조치 시행 이후 6개월이 지난 2003년 연초 들어 농민시장의 각종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2002년 12월 들어 북한 핵문제가 부상하면서 북한의 경제난이 심각해진 결과다. 미국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에 따라 공장의 가동률이 하락하고 동절기 물자의 이동 이 어려워짐에 따라 전 지역의 농민시장 물가가 상승하였다. 특히 2002년 10월에서 11월까지 중국에서 2억불 상당의 공산품이 수입 되어 물가가 진정되었으나 12월 들어 물자공급이 감소되면서 전국적으로 물 가가 오르기 시작하였다. 쌀은 2002년 2월의 kg당 48~55원선에서 130~ 150원선으로 2.7배 인상되었다. 옥수수는 kg당 20~32원에서 75~85원으로 3.2배 인상되었다. 돼지고기는 kg당 160~180원에서 360~380원으로 2.2배 인상되었다. 결국 전반적인 자재 공급부족과 시기적 수급 불균형 등으로 물 가가 급등하는 초( 超 )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발생하였다. 북한 당국은 상품 가격의 총액보다 생활비의 총액을 낮게 설정하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12) 11) 우선 평양과 신의주를 비교했을 때 평양 농민시장의 물가가 신의주보다 5~10% 이상 높다. 강냉이 알의 경우 kg당 평양은 60원이나 신의주는 55원이다. 감자는 kg당 평양이 25원이나 신의주는 20원이다. 밀가루도 kg 당 평양은 80원이나 신의주는 70원이다. 돼지고기는 kg당 평양은 300원이나 신의주는 280원에 거래된다. 세탁비누도 개당 평양은 80원이나 신의주는 70원이다. 평양의 농민시장 물가가 신의주보다 높은 것은 평양의 물자 공급이 신의주보다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반영 한다. 신의주는 중국과의 접경지역으로 보따리상들에 의한 중국 밀무역 등으로 물자 공급이 상대적으로 원 활하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무역회사들이 중국 상품을 단둥 세관을 통해서 대량으로 수입함으로써 신의 주의 농민시장과 국영 상점에 물자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12) 7 1 조치에 따르면 근로자들이 생산계획을 80% 수행하면 80%의 생활비만을 받고 200% 수행하면 200%의 - 22-
2003년 10월 북한을 이탈한 탈북자들에 따르면 2003년 2월 130~150원 하던 kg당 쌀 가격이 5월에는 185~195원으로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당시의 48~55원에 비해 <표 2>와 같이 4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 는 7 1 조치에 따른 특별한 부작용 이라기보다는 쌀값의 현실적 인상에 따른 증가율 상승으로 추정되며, 기본적으로 북한 곡물생산량의 절대적인 부족 때 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2002년 384만 톤에 그침으로 써 수요량에 비해 150만톤 이상이 부족하였고 2003년은 415.6만 톤으로 최 소의 식용과 종자용 등 곡물 수요량 510만 톤에 100여 만 톤이 부족하다. 또한 북핵문제로 국제사회의 지원이 미흡함에 따라 식량 수급이 원활치 못하여 곡물가격이 상승하였다. 특히 접경지역이나 교통이 불편한 동해안 지 역에서 쌀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급등하였다. 한국의 2004년도 식량지원 이 7월 21부터 1차분의 육로수송 13) 을 통해 이루어지고 감자가 출하됨에 따 라 곡물가격 급등세는 부분적으로 진정되었다. 황해남도 연안군에서는 2004 년 9월말에 쌀값이 900원까지 상승했다가 10월말에는 400원대로 하락하였 다. 쌀값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는 매년 쌀 수확 전에 가격이 최고로 올랐다가 쌀 수확철이 되면 떨어 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2003년에도 9월에는 150원까지 상승했다가 10월 에는 80원선으로 하락하였다. 이는 2004년 10월 해주항에 한국에서 지원한 베트남산 쌀이 도착하였고, 군대로 들어간 군량미 일부가 농민시장으로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14) 2004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423.5만 톤으로 전년보다 3% 증산되었지만 여전히 수요량에 비해 90여만 톤이 부족하다. 2005년의 경우 435만 톤 생산으로 상황은 유사하였다. 2006년 경우 수해와 국제사회 생활비를 받게 된다. 생활비가 오른 것만큼 나라의 물질적 부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 로는 돈만 남아돌고 물건은 없어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 현상이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평양 경제당 국자들의 주장이다. 평양 현장취재/ 7 1조치 1년, 그 365일의 기록, 토지개혁 이래 최대사변: 시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민족 21, 2003년 8월호, pp. 43-45. 13) 북한이 2004년 처음으로 육로 수송을 허용한 것은 곡물가격의 급등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경제관리개 선조치 이전에는 남측에서 곡물을 해로로 수송하여 북측 항구에 도착하여 다시 내륙으로 전달하는데 시간이 1개월 이상 소요되어도 외형상 물가를 통제할 수 있었으나 2004년 들어서는 곡물의 가격자유화로 단기간 내에 북한전역으로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14) 오늘의 북한주민 소식, 좋은 벗들, www.jungto.org, 2004.12.26. - 23-
의 대북제재에 따른 식량지원 중단으로 곡물 가격의 인상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북한은 2003년 3월말부터 평양에 있는 농민시장 을 종합시장 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명칭의 변경은 시장이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공간으 로서 제대로 기능하도록 국가가 보다 적극적인 관리정책을 실시해 나가자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15) 특히 잉여농산물을 거래해온 농민시장은 다른 나라들에서 흔히 말하는 이른바 암시장 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북한 경제 관료들은 농민시장은 행정기관의 관리 아래 운영되었으며 이 곳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가격은 해당 행정단위에서 상한을 정해왔다며, 이 시장도 상품유통의 한 형태로서 사회주의를 기본으로 하지만 시장의 기능을 홀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은 시장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는 측 면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16) 4) 인플레이션의 만연 북한은 2004년 들어 7.1 조치이후 급격한 물가상승과 임금인상으로 인한 통화량 급증과 공급물자 부족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였다. 북한도 의도한 인플레이션이었건 아니면 7. 1 조치의 폐단이었던 간에 농민시장을 종합시 장으로 바꾼 이후 시장의 활성화와 인민생활공채 발행 등을 통해 인플레이 션을 억제하려고 하고 있다. 쌀의 경우 2002년 7.1 조치 발표 당시 kg당 44 원이었으나 2004년 8월에는 400원선까지 상승되었다. 평양시 시장가격 관리 국이 정한 판매할 수 있는 최고가격 인 시장한도가격을 고시하여 매일 물가 를 관리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공급 부족에 따른 수급 불안이 지속되어 물 가 상승은 불가피하였다. 15) 최홍규 국가계획위원회 국장 인터뷰, 조선신보, 2003년 4월 1일자. 16) 농민시장을 종합적인 소비품 시장으로 조선신보, 2003년 6월 16일자. - 24-
향후 북한 당국이 물자의 공급을 증가시켜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 여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다면 북한경제는 회복 국면으로 들어가는 청신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요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수십 배가 상승하는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확산되면 경제개혁 자체가 혼란에 처할 수 있다. 2006년 이후 북한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관리 할 것인가가 중요한 정책과제가 될 것이다. - 25-
<표 2> 평양 농민시장(2002.7, 2003.2)과 평양 통일거리시장 시장한도가격 (2004.5 8), 함북 청진(2004.8.26) 비교 구 분 2002년 7월(평양) 2003년 2월(평양) 2004년 5월(평양) 2004년 8월(평양) (단위: 북한원) 2004년 8.26 (함북 청진) 쌀(1kg) 48~55 130~150 240 420(수입산)* 900 감자(kg) 60 옥수수(1kg) 20~32 75~85 120 200 450-480 두부콩(1kg) 60~70 180~190 250 450 식용유(콩기름 1kg) 160~200 600~650 1,000 1,500 2,000 계란(닭알, 1알) 10~13 22~25 40 45 100 명태(1마리) 100 300~400 500 돼지고기(1kg) 160~180 360~380 750 1,000 2,700 미원(맛내기 453g) 180~190 420~430 600 850 설탕(1kg) 130~150 400~420 310 470 900 휘발유(1kg) 130~150 330~350 400-600 1,500-1,600 경유(1kg) 80~100 280~300 400-600 900 비누(450g) 60~70 165~175 100 (빨래비누) 담배류(외국산) 100~110 230~240 300 800:중국산 담배류 (국산) 45~50 70~80 100 1,000:고양이 이발비용 5~10 15~20 25 운동화 200 300~400 800 800 환율(1달러) 220 670 (비공식) 138 (공식) 1Euro:2,000 1,300 (비공식)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주 : 2004년 가격은 필자의 2004년 5월24-29일간 평양 남포 방북시 현장조사와 도교신문 보도를 근 거로 작성, 2002년, 2003년 가격은 탈북자 조사와 현지 방문 조사를 토대로 작성, 2004년 8월 가격은 일본의 환일본경제연구소(Economic Research Institute for North East Asia) 발행 ERINA REPORT, 2004 September vol 60, 2004년 8월 가격은 탈북자 신문 새동네 2004 년 9월 1일자. 2004년 8월 환율, 한국 1만원은 북한 원 1만1,815원 시장한도가격: 평양시 시장가격 관리국이 정한 판매할 수 있는 최고가격 으로 19개의 대상품목 은 매일 조금씩 변화된다고 함. * 실제 통일거리시장 상품가격은 북한산 쌀이 680원이었음. - 26-
<표 3> 2004년 8-9월 중순 북한 주요도시 물가동향 (단위 : 북한 원) 분 류 물품 단 위 8월 하순 (8.15~8.31) 황해 북도 사리원 평양 평양 9월 초 (9.1~9.8) 함경 북도 무산 량강도 혜산 함경 북도 회령 9월 중순 (9.15~9.19) 함경 남도 함흥 평안 남도 순천 곡 물 류 쌀 통옥수수 옥수수쌀 밀가루 kg kg kg kg 550~570 225 650~780 340 1,200 1,000 350 400 1,020~1,100 500~570 600 550 890 850~220 300 800~830 290 600 1,000 320 420 600 육 류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kg kg 개 1,000 80 1,500 90 1,600 1,200 100 1,500 1,500 100 1,200 1,500 100 1,400~1,500 1,500 80~90 조 미 료 콩기름 식용류 소금 고춧가루 kg kg kg kg 800 2,000 1,200 2,400 2,350 2,200 1,200 300 8,000 1,200 250 5,000~7,000 공 산 품 운동화 구두 비누(세탁용) 켤레 2,800~3,500 켤레 5,000~9,000 개 100~300 1,600 5,000~ 10,000 1,800~2,000 12,000~15,000 300 기 호 품 술 담배(고양이) 병 갑 200~350 250 250 650 220~250 700~750 220~240 220~230 700~750 700 유 류 경유 휘발유 kg kg 650~700 1,200 600 1,50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27-
<표 4> 2004년 10월 해주의 물가 가격표 품 목 가격 (단위 : 1kg, 북한 원) 식 품 쌀 옥수수 돼지고기 콩기름 콩 400 200 1,500 800 400 의 복 학용품 구두 최고급 중국산 편리화 동복 두꺼운 잠바 중국산 런닝셔츠 한국산 런닝셔츠 중국산 팬티 한국산 팬티 중국산 잠옷 한국산 잠옷 교 복 학습장 20,000 2,000 30,000 1,000 2,500 300 500 2,000~3,000 7,000~8,000 500~600 300~600 땔 감 석탄 1톤 (2003년의 경우) 25,000 (7,000) 환 율 미화 100달러 (7 1경제조치 이전) 178,000 (20,00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28-
<표 5> 2005년 5월 11일 회령 물가 (단위 : 북한 원) 품 목 단 위 가 격 곡 류 조찹쌀 기장 중국찹쌀 kg kg kg 750 900 1,300 육류 및 어류 돼지고기 임연수 청어생물 멸치 명태생물 인조고기 계란 kg 2마리 kg kg 1마리 kg 1알 2,000 900 100 1,000 1,000 650 100 부식물 감자 마늘 옥파 두부 마른미역 참미역생물 kg kg kg 1모 kg kg 160 1,000 1,200 130 500 300 과일 사과 귤 kg kg 800 2,000 음식 국수 두부밥 인조고기꺽 밀가루빵 그릇 1개 1개 3개 80~90 50 25 100 조미료 고춧가루 소금 콩기름 술병 사탕 두부콩 kg kg kg kg kg kg 4,000 300~3,50 2,300 200~300 1,200 65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29-
2006년 6월 1kg에 900원대를 유지하던 쌀값이 7월 들면서 전국적으로 700원대로 떨어지고 오히려 옥수수 가격이 올랐다. 예년 같으면 보릿고개시 기에 쌀 가격이 올라야 하지만, 쌀은 부족한데 오히려 쌀값이 내리는 기현상 이 나타났다. 그나마 쌀을 살 수 있었던 구매층이 더 이상 들어올 곳이 없다 는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이 쌀 대신 옥수수나 감자 등의 곡물로 주식을 대체 하고 있어서이다. 쌀 장사꾼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미리 확보해 둔 쌀 시장에 서둘러 풀어놓았지만, 주민들은 쌀 대신 옥수수를 구매했다. 항 목 <표 6> 2005년 주요 도시 8~9월 시장 가격 시 기 (단위 : 1kg, 북한 원) 8월 신의주 9월 청진 9월 온성 일등미쌀 750 1,100 1,050 수입쌀 850~900 800 안남미 680 590 찹쌀 1,000 1,350 1,150 현미쌀 710 750 710 밀가루 900 750~850 840 통옥수수 190~200 200~250 210 옥수수쌀 400~410 350 옥수수가루 200 245 밀 570 590 580~600 두부콩 450 콩기름 2,000 2,500 2,545~2,550 옥수수기름 1,700 1,700 유채기름 600 600 고추장 280 된장 700g 210 소금 700g 160 중국담배(장백산) 380 미국담배(힐튼) 550 고양이담배 500 영국담배(555) 75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30-
<표 7> 2005년 함경북도 회령 지역의 쌀, 옥수수 가격 변화 (단위 : kg, 북한 원) 8월 8일 9월 1일 9월 29일 10월 1일 10월 22일 한국쌀 850-900 900 900 북한쌀 800 750 750 1,000 1,000 옥수수 250-300 180 220 200 20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2006년 6월 집중호우가 있기 전에 이미 주민의 45%가 식량이 떨어진 상 태였다. 2004년 10월 배급제를 재개한다는 당국의 선전에 올해 농사를 제대 로 준비하지 못한 주민들이 보유식량을 이미 다 소비한 것이다. 2006년 5월 부터 평양시도 배급이 중단되고 양정사업소에서는 오히려 시장의 쌀을 사들 였다. 2005년 여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에 따른 대응 조처였다. 나름대로 갑작스런 식량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한 것이었는데 유엔안보리 이사회의 경제제재와 미사일 시험발사 후 한국정부의 쌀과 비료지원 중단으 로 쌀의 외부유입 통로가 완전히 차단되면서 예상보다 일찍 식량위기가 닥 치고 있다. 게다가 2006년 6월 집중호우는 결정타였다. 이에 주민들은 일찌감치 쌀을 사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했다. 전에는 쌀 가 격이 아무리 높아져도 옥수수 1kg 먹는 것보다 쌀 1kg 먹는 게 더 힘이 난다 며 옥수수 대신 쌀을 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쌀 나올 곳이 없기 때문에 쌀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급기야 다급해진 쌀 장사꾼들이 쌀 가격을 일제히 내리고 있지만 주민들의 발걸음을 돌리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반대로 옥수수 나 감자를 대용 곡물로 찾다보니 이들 가격이 소폭으로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이 큰 인명피해를 낳은 이번 수해로, 농경지 유실 역시 심 각했기 때문에 올 가을 수확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쌀 구매력은 현저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식량사정이 더욱 긴장되고 있는 지 금, 자칫 주민들의 대량 아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기에 앞으로도 수해 피해 이후의 쌀과 옥수수 가격 변화 추이가 주목된다. - 31-
지역 품목 쌀 <표 8> 2006년 7월 중순 북한 전국 주요도시 물가표 (단위 : kg/ 북한 원) 신의주 혜산 김책 함흥 해주 사리원 평양 평성 봉산 원산 고원 - 32-650- 720 900 880 750-770 550 한국쌀 670 900 830 750 550 650 750 750 670 700 옥수수 280 280 260 330-350 600-650 700 700-750 620 680-700 250 240 300 300 230 300 옥수수쌀 450 240 380 380 두부콩 600-630 밀가루 800-900 620 580 800-900 900 630-670 620 600 630 800-900 750 800-1,000 옥수수국수 300 350 550 350 300 350 350 280 350 밀국수 (600g) 찹쌀 500 800 850(kg) 550 700 600 550-600 850-880 830-850 950-1,000 1,000 670 870 감자 200 250 180 160 160 150 130 650 620-650 800-1,000 580-600 800 730 290-310 620-650 550-800 녹말가루 1,100 1,300 1,300 1,050 안남미 470 470 530 600 콩기름 2,100 2,300 2,200 2,400 2,100 2,200 2,200 달걀(1알) 180 2,100-3,000 150-160 160-190 150-160 160-180 150-180 160 160-190 돼지고기 2,800 2,900 2,500 2,800 2,900 2,800 2,900 2,800 마른낙지 (20마리) 6,500-8,000 6,200-8,500 5,000-8,000 7,000-8,000 6,000-8,000 6,500 6,500 6,000-8,000 냉동낙지 1,700 1,500 1,300 1,400 1,200 마른명태 (1마리) 인민폐 (100) 달라 (100) 유로 (100) 2,500-3,000 1,200-2,500 1,400-2,500 2,500 35,100 34,500 35,000 35,000 34,500 35,000 35,000 35,000 34,000 280,000 280,000 281,500 280,000 280,000 280,000 282,000 281,000 282,000 345,000 345,000 345,000 355,500 345,000 350,000 엔(1만) 244,900 349,000 245,000 249,500 244,900 255,000 850-900 120-200 940-970 130 2,200-2,400 180-200 6,000-8,50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낙지 : 한국의 오징어
품목 지역 <표 9> 2006년 9월 25일 시장 가격 (단위 : kg/북한 원) 청진 김책 함흥 사리원 해주 원산 평양 입쌀 1,150 1,100 1,100 730 750 900 900 찹쌀 1,500 1,300 1,300 1,000 900 1,000 900 옥수수 450 400 380 290 500 430 390 옥수수쌀 500 450 430 350 510 470 440 옥수수국수 470 420 400 330 510 450 330 밀가루 900 900 900 900 1,000 950 850 녹말 900 900 950 950 950 900 900 소금 250 250 250 280 250 250 250 된장 500 500 500 500 500 500 250 간장 200 200 200 200 200 200 200 기름 2,300 2,400 2,400 2,400 2,400 2,300 2,200 맛내기 4,200 4,200 4,300 4,300 4,400 4,300 4,200 사탕가루 3,600 3,600 3,700 3,800 3,800 3,600 3,600 안남미 600 700 700 700 600 600 600 고춧가루 5,000 4,500 5,100 5,200 5,200 5,000 5,100 고추 600 400 600 600 600 550 600 미나리 400 400 380 350 350 360 360 가지 200 200 210 200 200 220 200 오이 200 200 210 150 150 180 150 사과 1,500 1,500 1,500 1,400 1,400 1,500 1,400 감자 200 200 200 200 230 210 200 토마토 700 800 800 700 700 700 700 마늘 3,000 3,000 2,500 2,000 2,000 2,300 2,200 배추 150 150 150 150 150 150 150 출처 : 오늘의 북한소식,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11. 오늘의 북한, 북한의 내일, (사)좋은벗들 북한연구소, 2006.5. - 33-
III. 북한의 식량수급 정책 변화 및 향후 전망 1. 식량사정과 배급제 부활의 의도 북한은 2005년 10월 1일부터 종합시장에서 곡물판매를 금지하고 공공배 급제(Public Distribution System)를 통해 식량을 공급하고 있다. 또한 농민 들이 시장에서 곡물을 공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평양시내 곡물을 거래 하던 곡물 매대는 다른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는 지난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서 식량의 시장 유통 및 배급제 공급을 중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급제 부활의 핵심은 시장에서 곡물판매를 중단하고 정부가 주민들의 수요를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당국이 분배한 할당량을 국정가격으로 식량공급소에서 구 입하고 있다.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일반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식량을 구매하였다. 군인 및 고급당원, 관료 등 시장에서 구매가 용이하지 않은 계층 은 식량배급표를 받아 국정가격으로 공공배급제를 통해 식량을 조달하였다. 북한 당국이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식량가격을 현실화하고 시장 에서 식량을 공급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양곡의 농민시장가격과 국정 가격간의 격차가 커짐에 따라 정부의 양곡적자 부담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서 곡물의 국정가격을 1kg당 8전에서 44원으 로 현실화하였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둘째, 소요량이 공급량보다 30% 이상을 초과하는 등 식량의 절대 공급량 이 부족함에 따라 정부가 양곡의 공급을 책임진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주민들이 시장가격의 오르고 내림에 따라 곡물을 구매함으로써 정부 가 식량 부족의 주범이라는 주민들의 불만을 피하고자 하였다. - 34-
그러나 시장을 통한 식량공급은 공급 불일치에 따라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주민들의 불만이 증가하였다. 쌀의 국정가 격이 종전보다 인상되었지만 공급량이 수요량을 맞추지 못함에 따라 쌀의 시장가격은 춘궁기인 3-5월에는 국정가격의 10-20배인 kg당 500-1000원 선까지 인상되었다. 화폐소득이 미흡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 과거 의 배급제를 선호하는 복고 성향도 노출되었다. 치솟는 물가를 잡는 일이 당국의 큰 과제가 되었다. 주민들에게 곡물가격 의 지속적인 인상은 의식주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사회주의 기본정신에 부합 하지 않고, 당국은 자칫하면 김정일 통치체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 다는 판단을 하게 됨에 따라 공공배급제의 부활을 검토하였다. 북한 당국에게 식량의 사적인 거래와 시장을 통한 유통은 사회주의 국가 경제의 기본정신에 부합하지 않고 이를 통해 주민들 간에 자본주의 성향이 확산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치적 고려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 으로 보인다. 사실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자본주의 경제의 확산보 다는 효율성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의도였던 만큼 공급능력이 구비되면서 배급제로 복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2005년 10월 26일에서 29일간 평양을 방문한 필자에게 북한 당국자들은 풍작으로 배급할만한 쌀이 양곡창고에 있는 데 시장에서 쌀을 거래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대답하였다. 최소한의 식량 공급 능력만 있다면 배급제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이후 빈부격차 발생과 일부 도시빈민 들의 식량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과거보다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불만이 대두 되는 점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 사회적 고려도 있다. 특히 금년도 연초 신년 사설에서 경제건설의 주공전선을 농업 증산으로 내세운 만큼 공공배급제를 통해 식량 증산의 실적을 주민들에게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 35-
또한 일부 남한의 대북 지원 식량이 시장에서 부정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한편 북한은 배급제 재개에 따라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배급제에서 제외되어 있던 개인들에게 허용되던 개인경작지에서 생산 되는 곡물도 국가가 회수해가는 등 식량의 국가의 완전독점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식량의 공급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식량 생산 및 유통 부분 의 시장경제 움직임은 오히려 퇴조하고 있다. 우선 국가가 공공배급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식량 공급에 여유가 있어 야 한다. 북한의 식량 공급량과 배급량의 격차가 10% 이상 되면 배급제 시 행이 곤란하나 남한과 중국의 식량지원으로 부족량이 전체 소요량의 5% 미 만으로 축소되었다. 2004년 11월 1일 부터 2005년 10월 31일 까지 양곡회 계년도 기간 동안 북한은 423.5 만 톤의 곡물을 생산하였다. 최소 소요량은 510만 톤 이었고 부족량은 90만 톤 규모다. 한국이 50만 톤, 중국이 20만 톤의 식량을 지원하였다. 국제사회에서 상업적으로 10만 톤을 구입하였다. WFP 등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량은 5만 톤 수준이다. 이 에 따라 절대 부족량은 10만 톤 미만 수준이다. 물론 최소 소요량을 550만 -600만 톤 수준으로 확대하면 부족량은 늘어나지만 가공용 및 사료용을 크 게 고려하지 않는 북한의 평균적인 식량 소비 수준에서 일부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적용한 물량이다. - 36-
<표 10> FAO 북한의 곡물 생산량 추정: 1995-2004 작물 구 분 95 96 97 98 99 00 01 02 03 04 벼 옥수 수 밀 보리 감자 재배면적 (천 ha) 수량 (kg/10a) 생산량 (만 톤) 재배면적 (천 ha) 수량 (kg/10a) 생산량 (만 톤) 재배면적 (천 ha) 수량 (kg/10a) 생산량 만 톤) 재배면적 (천 ha) 수량 (kg/10) 생산량 (만 톤) 재배면적 (천 ha) 수량 (kg/10a) 생산량 (만 톤) 582 580 611 580 580 535 572 583 583 583 3.46 2.46 2.5 3.98 4.04 3.16 3.60 3.76 3.84 4.06 202 143 153 231 234 169 206 219 228 237 670 589 602 629 575 496 496 496 495 495 2.04 1.4 1.68 2.81 2.15 2.10 2.99 3.33 3.48 3.49 137 83 101 177 124 104 148 165 173 173 90 75 75 70 48 50 57 63 69 70 1.39 1.33 1.33 2.36 2.02 1.00 2.05 2.06 2.13 2.39 13 10 10 17 10 5 12 13 15 17 75 72 70 50 41 43 36 39 34 32 2.4 2.22 2.00 1.8 1.3 0.9 2.0 1.8 2.01 2.04 18 16 14 9 5.5 2.9 7.0 6.9 6.9 6.4 45 48 80 120 187 188 188 198 187 189 9.7 10.6 10 10.6 7.9 9.9 12.1 9.5 10.7 10.9 44 51 80 127 147 187 227 188 200 205 결국 식량의 공급 능력 여부가 배급제 유지에 관건이 될 것이다. 일단 북 한 당국은 그동안 하루 250g씩 공급하던 식량을 600-700g까지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공급이 향후 적기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암시장 가격은 폭 등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의 경우 수해 피해와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중 단으로 부족량이 증가하면서 배급제는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 37-
<표 11> 북한의 식량생산량 통계: 1948-2005 연도 FAO 한국 통계청 재배면적(만ha) 생산성(생산량/면적) 생산량(만톤_) 생산량(만톤) 1948 - - - 197 1949 - - - 178 1950 - - - 124 1951 - - - 124 1952 - - - 124 1953 - - - 156 1954 - - - 163 1955 - - - 169 1956 - - - 201 1957 - - - 224 1958 - - - 226 1959 - - - 228 1960 - - - 267 1961 1,432 2.50 358 349 1962 1,436 2.59 373 335 1963 1,476 2.75 405 335 1964 1,479 2.85 421 344 1965 1,460 2.54 371 355 1966 1,484 2.75 407 366 1967 1,490 2.54 379 376 1968 1,483 2.47 366 387 1969 1,508 2.90 438 392 1970 1,510 2.89 437 399 1971 1,514 2.97 450 404 1972 1,523 2.83 431 415 1973 1,558 3.09 482 419 1974 1,592 3.18 507 428 1975 1,616 3.25 525 436 1976 1,618 3.39 550 443 1977 1,635 3.55 580 449 1978 1,638 3.54 580 438 1979 1,635 3.67 600 470 1980 1,611 3.57 575 371-38-
연도 FAO 한국 통계청 재배면적(만ha) 생산성(생산량/면적) 생산량(만톤_) 생산량(만톤) 1981 1,630 3.84 626 425 1982 1,588 3.36 533 455 1983 1,592 3.44 548 433 1984 1,580 3.69 583 467 1985 1,578 3.70 584 419 1986 1,573 3.96 623 402 1987 1,648 3.79 624 413 1988 1,635 3.82 625 435 1989 1,651 3.92 647 457 1990 1,605 3.93 630 401 1991 1,556 5.68 884 443 1992 1,546 5.62 868 427 1993 1,493 6.12 914 388 1994 1,527 4.73 722 413 1995 1,503 2.52 379 345 1996 1,390 1.87 260 369 1997 1,432 2.00 287 349 1998 1,403 3.15 442 387 1999 1,341 2.87 385 422 2000 1,247 2.37 300 359 2001 1,284 3.02 388 395 2002 1,304 3.21 418 413 2003 1,237 2.97 416 425 2004 1,227 2.89 424 435 2005 3.00 432 440 주: 1. FAO 자료는 곡물(미곡, 옥수수, 맥류, 잡곡) 총계임. 2. 통계청 자료는 식량작물(미곡, 옥수수, 맥류, 기타잡곡, 두류, 서류) 총계임. 자료: http://apps.fao.org(fao Statistical Databases) 통계청, 통계로 본 대한민국 50년의 경제사회상 변화, 1998. (단위: 천ha, 톤/ha, 만 톤) - 39-
- 40- <표 12> 북한의 곡물생산 통계 : 1961-2006 Year North Korea1 South Korea FAO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7 1968 1969 1970 1971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78 1979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4.830 5.000 5.000 5.000 4.526 4.405 5.110 5.672 - - 3.500 3.903 5.344 7.000 7.700 8.000 8.500 7.800 9.000 9.000-9.500-10.000 - - 10.000-8.860 9.000 8.900 8.800 9.000 7.080 3.490 2.500 2.680 2.830 4.280 - - - - - - - - - - - 3.548 - - - - 4.664 - - - - 4.953 5.032 5.029 4.988 5.177 3.982 5.639 5.996 5.785 6.267 - - - - - 4.810 4.430 4.270 3.880 4.130 3.450 3.690 3.670 3.930 4.220 3.580 3.950 4.130 4.250 4.320 4.450 4.400 3.583 3.725 4.054 4.212 3.707 4.073 3.788 3.662 4.378 4.365 4.499 4.309 4.815 5.068 5.232 5.351 5.708 5.578 5.766 5.042 5.799 6.033 6.184 6.560 6.332 7.114 6.628 6.371 6.594 5.866 5.405 4.973 4.593 4.951 4.245 4.480 2.660 3.470 3.480 2.920 3.540 3.870 4.156 4.235 4.359 4.300
<표 13> 북한 신년 사설에 발표된 농업전략 1995~2005 연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주 요 농 정 협동적 소유의 전 인민적 소유구조로의 전환 지속 알곡생산의 극대화 - 복합 미생물 비료 도입 등 알곡증산을 위한 농법 강조 - 주인의식, 과학기술적 영농 적지적작 추진 - 지역실정 및 농민의견 반영 이모작 면적 확대 및 기후에 적합한 품종 개발 초식동물사육의 대대적인 확대 적지적작 적기적작의 원칙아래 농업구조 개선 감자 증산정책 이모작의 대대적 전개와 종자혁명의 지속적 추진 강원도를 시작으로 토지정리사업의 전개 감자농사 혁명 이모작 면적 확대 복합미생물 비료 확대 초식동물 및 양어사업 확대 토지정리사업의 지속적 추진 2001 신년사 대홍단 정신으로 21세기 첫 농사에서 풍작을 이룩하자고 강조 2002 2003 2004 2005 2006 평양시, 남포시, 평남도 등 토지정리사업 착수 분조관리제, 협동농장 간부 선출권, 농장원의 작목 선택권 부여 벼, 강냉이, 감자 다수확 품종 도입 우량종자에 의한 우리식 감자농사방법과 지역별 특성에 맞는 두벌농사 제2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03-'08)은 종자 혁명 등을 통해 연간 알곡 감자 농사 혁명 지속적 추진 이모작 농사 확대 실시 종자혁명, 두벌농사, 감자농사혁명의 계속 추진 다수확 품종의 공급확대, 비료/농약/농기계의 원활한 공급 선진영농기법의 적극 수용 종자혁명, 감자농사혁명의 계속 추진 물길공사 및 토지정리사업 계속 추진 두벌농사방침, 콩농사방침 관철 농업의 기계화, 화학화 추진 - 41-
<표 14> 1995-2005년 북한의 식량수급 추이 (단위 : 천톤) 95/96 96/97 97/99 98/99 99/00 00/01 01/02 02/03 03/04 04/05 05/06 국내공급량 4,077 2,995 2,663 3,481 3,420 2,920 3,656 3,840 4,156 4,235 435.9 생산량 4,077 2,837 2,663 3,481 3,420 2,920 3,656 3,840 4,156 4,235 435.9 이월량 n.a 158 n.a n.a n.a n.a n.a n.a n.a n.a n.a 소요량 5,998 5,359 4,614 4,835 4,751 4,785 4,957 4,921 5,100 5,132 5,130 식용 3,668 3,798 3,874 3,925 3,814 3,871 3,855 3,893 3,944 3,959 3,959 사료량 1,400 600 300 300 300 300 300 178 178 181 181 기타 900 961 440 610 637 614 802 851 748 992 992 부족량 1,911 2,364 1,951 1,354 1,331 1,865 1,301 1,084 944 897 780 상업적수입량 700 500 700 300 210 200 100 100 100 100 100 원조량(계획) 630 660 760 840 586 1,100 819 300 440 470 200 절대부족량 581 1,204 491 214 535 565 382 684 404 327 480 2. 국제 NGO에 개발원조 요청 북한은 평양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WFP, Concern (아일랜드 국제기구) 등 국제 NGO들에게 2005년 12월말까지 단순 구호활동을 중지하 고 개발 원조를 시행할 것으로 요청하였다. 이에 동조하지 않는 NGO는 평 양을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북한 입장에서는 2005년 기준으로 국제기구들 의 식량 지원량이 전체 소요량의 5%가 채 안되는 상황에서 불시 가가 호호 방문 및 북한 전체 213개 군( 郡 )에 대한 수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국제기 구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내부사정을 외부에 알리는 통로가 되었다는 문 제점을 인식하였다. 또한 국제기구의 구호 활동이 주민들이 당국의 무능력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됨에 따라 이들의 활동을 중지시킬 때가 되 었다고 판단하였다. - 42-
그러나 국제기구들은 개발원조 방식이 중장기적으로 타당하지만 2,250만 의 인구 중에서 7%의 주민이 하루 2끼 분량만을 공급받고 37%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개발원조 지원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 다. 또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대북지원 방식이 인도적 지원에서 개발지 원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북핵 문제와 인권문제의 만족스러운 해결이다. 유럽연합의 대외 원조정책에서 인 도적 지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한 원칙으로 상정하고 있지만 개발협력의 경우에는 안보정책과의 연관성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2002년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의해 채택된 <유럽연합 대북 국가전략보고서 2001-2004>(DPRK Country Strategy Paper for 2001-2004) 가 인도적 지원에서 개발협력 지원 17) 으로 전환을 예고했음에도 실현되지 않 았던 것은 정치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북 한은 향후 식량사정이 다시 악화되면 국제기구의 지원을 요청할 것이나 최 소한 2005-2006년간에는 이들에게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다. 17) 경제개발을 위한 제도적 지원과 역량 강화,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접근,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사용, 교통 및 농촌 분야를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 실시를 개발협력사업의 전략적 목표로 제시하고 후속적 추진 조치로 기관 역량 강화와 교육 프로그램(700만 유로), 에너지 부문의 효율적 관리(300만 유로), 농업 부문 복구 지원을 위한 지속 가능한 농촌개발(500만 유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 43-
IV. 북한 농업정책과 식량조달 실태와 평가 1. 북조선 농업발전의 전망에 대한 소견 다음은 북한의 농업담당자가 북한 농업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글이다. 이글 은 2006년 3월경에 작성된 것으로 북한 농업을 담당하는 실무자가 현장에서 농 장원을 지도하는 자신의 영농 경험과 중앙의 지침 등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기술한 글로서 북한 농업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문서로 평가된다. 필자는 이 문서를 2006년 3월 중국에서 북한 농업을 이해하는 연구자료로서 비공개 조 건으로 입수하였다. 이 자그마한 글에서 북조선 농업을 원만히 리해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북조선 농업발전의 전망을 리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를 찾아낸다면 그것으로 만족 이다. 북조선 농업은 공화국의 건립 이래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주요 경제부 문으로 되어왔으며 현재 북조선 정책에서 선군정치를 담보하는 가장 중요한 인민 경제부문으로 되고 있다. 1945년 8.15. 해방 이래 북조선은 식민지농업의 락후성을 퇴치하자는 로 선을 제기하고 토지는 밭갈이 하는 농민들에게! 라는 구호 밑에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지주, 중농들의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무상분배 하였 다. 이 개혁은 북조선 농업발전의 개화를 열어 놓았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에 끝난 조선전쟁 기간에 농촌은 여지없이 파괴되어 인력, 축력 등 당시 농업생산의 기본수단들이 부 족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공산주의 건설을 지향하는 북조선정부에 있어 서 농업협동화의 객관적 조건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때부터 농촌의 사회주의 적 개조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협동적소유제가 수립되었다. 이렇게 수립된 국영농장, 협동농장을 기본 계획단위로, 농업생산 단위로 하는 사회주의방식 이 북조선의 농촌관리방식으로 오늘까지 존재를 굳건히 하고 있다. - 44-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50여년기간 이러한 틀거리는 변함없이 존재해 왔으 나 농업부문에 대한 정책적 요소들은 농사방법상 측면에서 여러 차례 흔들 임을 거쳐 왔다. 그러면 그러한 정책적 요소들의 변화가 북조선 농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가? 결과 농업발전을 추동하는 변수는 무엇으로 얻어지는가? 현재의 농업정책으로 볼 때 북조선 농업의 전망은 어떠한가? 를 탐구하 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1) 북조선 농업정책에서 주요 변화요소들 농업정책에서 변화요소들이라는 말 뜻을 잠깐 설명하기로 한다. 북조선 농업정책은 김일성주석의 사회주의농촌테제 가 발표된 후 주체농법 으로 변화되면서 불변의 진리로 절대화 되었다. 그러나 농업생산의 지속적인 감퇴는 무엇인가의 변화를 야기시키는 객관 적 조건으로 되었고 이로 인하여 주체농법 의 틀거리 안에서 어떤 것은 더 강조되고 어떤 것은 덜 강조되는가에 따라 차별되는 시책이 있었다. 이것이 본서에서 말하는 변화요소이다. 그러한 변화요소들이 주체농법 의 전반 내용을 개선하는 데로 이어졌다 면 앞에서 말한 흔들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시기 시기 변화되는 정책요소들을 살펴보면 그것은 주체농법 이라는 링그안에서 부분 적으로 왕복 운동하는 피스톤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농촌테제를 구성하는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주의적 생산 관계에 의한 농촌의 개조인데 이를 위하여 농촌에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다그쳐 농민들을 로동계급화시키고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일과 문화 - 45-
적 락후성에서 해방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도시가 농촌을, 로동계급이 농민을 돕는다는 것이 테제의 핵심이다. 이 테제는 바라보는 리념은 누구에게나 납득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리념을 어떤 방법으로 실현하는 가인데 그것이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한 계획경제관리 방법을 주체사상의 언어로 설명하는 주체농법 인 것이다. 즉, 단일한 소유권의 확립(협동적 소유인 토지에 대한 국가적소유권의 확립), 농 사방법의 전일적인 확립(토지, 종자, 물, 비료, 농촌기계설비, 경영방법, 재배 방법, 등 모든 것을 규제하고 있음)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농사방법을 의미 한다. 그런데 그 이름이 주체농법으로 되어있어서 그것이 주체사상을 창시하신 김일성주석의 리념과 결부되고 나아가서 김일성주석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 으로 법제화 되여 있으므로 북조선 정책에서 주체농법 의 수정은 절대불가 능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그 수정이란 곧 정치적 전향이라는 사고에 못 밖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배경에 의해 어떠한 정책적 요소들이 변화되어 왔는가를 보기로 한다. 1978년 8월 18일 사건이후 군량미 저축이 심각한 문제로 되어 매인에게 공급되는 배급표(15일간 식량을 담보하는 날자 별로 되어 있는 표) 에서 2일간 배급표를 바치자는 호소가 당적으로 제기되였다. 이것은 사실상 배급량을 줄인다는 법적수정이 아니고 량심의 호소이지만 현재까지 의무적 으로 지켜지고 있다. 결국 하루 700그람의 식량을 공급받게 된 쌀표로 실제 는 하루 600그람정도 공급받는 것으로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대다수 사람 들이 자기에게 하루 몇 그람의 쌀이 공급되는지 모른다. - 46-
실례로 국가가 배급을 주는 경우에 한하여 하루 700그람을 받는 사람들 은 보름에 9키로그람 정도의 쌀을 배급소에서 국정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 다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지금은 례사로워 누구도 이것을 불평하지 않지 만 당시에는 큰 경제적 타격으로 되어 많은 주민들이 식당에서 밥을 사다가 부족을 메꾸는 현상이 나타나 식당에 매표구에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 람들의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량표가 상품의 대상을 되어 팔고 사고하게 되었다. 한편 농촌 으로부터의 비법적인 쌀 구입이 주민들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당시 로임에만 의거한 도시 주민들에게는 돈이 부족하였고 농촌 주민들에게는 상 품도 돈도 다 부족하였다. 결과 물건과 쌀을 바꾸는 물물 교환이 시작되여 이것이 량강도와 함경북도에서 쌀 배급까지 못주게 되기 시작한 1980년대 말까지 지속되였다. 물물교환에서 농민들이 항상 손해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도시주민들은 물물교환을 통하여 그럭저럭 굶지는 않았지만 농민 들은 한해 농사로 최소한도의 필수품을 구입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러 한 상황이 10년 이상 오래 지속되어 농민들은 분배 몫으로는 생활을 유지하 기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협동생산 의욕은 점차로 떨어지고 부정축재와 개인텃밭 농사와 개인축산에 관심이 돌려졌다. 이러한 사태를 농업정책 변화의 계기로 받아들여 일부 농업경영연구 학 자들이 중국의 가족도급제를 모방한 분조도급제를 도입하자고 국가적 토의 에 제기하였으나 비당적, 비사회주의방법으로 몰리여 타격을 받았다. 이것은 많은 연구자들에게 건설적인 의견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 감을 다시 한번 안겨주었다. - 47-
결과 사태는 수습되지 않고 농업생산은 심히 감퇴되고 생산된 쌀의 부정 적 류실이 커지고 1990년에 들어서서는 량강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부터 배급표는 주었으나 쌀이 없어 배급을 주지 못하는 상태에 도달하였다. 한편 린방인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국경으로부터의 상품구입이 가능하게 되였으며 대다수 주민들은 점차로 소상인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과 관련한 국가적 시책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이 수령에 대한 충성심에 호소하여 위기를 극복하려는 방법이 반복되었다. 이상하게도 이러한 실태가 한평생 농사에 관심을 가지시고 친히 저택의 밭에 작물들을 심으시고 관찰하시고 경험을 쌓으시고 농사를 연구하신 김일성 주석에게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가 1994년(그이께서 서거하신 해)에야 보고 되었고 주석께서는 사실을 아시고 너무 놀라워, 차마 믿을 수가 없으시여 잠못 이루시고 가슴 아파하셨다는 설도 있다. 결국 이 나라 농촌은 자기를 키우신 분, 농사군의 집에서 태여나시여 나 라를 세우고 이 나라 백성들에게 기와집을 지어 주고 이밥에 고기국을 먹이 시겠다고 한평생 터전길을 걸으신 분에게 기쁨을 안겨주시지 못하고 아픔을 주신 채 그 위대하신 분, 실농군을 제일 사랑하신 따스하고 자애로운 아버지 와 작별한 것이다. 이후 누가 실제로 이 나라의 농촌문제에 항상 관심을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속적인 쌀 생산의 감퇴로 1995년부터 평양시내에서도 배급을 정상 적으로 줄 수가 없게 되었고 이로 부터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 이 시작되었 다고 선포하게 되였다. 고난의 행군 때부터 도시주민들의 쌀 구입은 주로 농 민시장에서 이루어졌고 쌀가격은 시장에서 모든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주 요변수로 되어버렸다. - 48-
한편 사회주의를 버린 나라들에서 자본주의가 복귀되여 국민들의 생활은 완전히 령락하였다고 선전하면서 항상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사회주 의를 지켜야 이러한 나라들처럼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시장을 주도하는 쌀 공급을 사회주의적으로 환원시키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은 없었다. 일련의 시도들이 있었으나 그 모든 것은 본질적이고 원리적인 대책이 아니였다고 보아진다. 농업생산이 오르지 않는 원인이 간부들의 사업방법과 부정부패에 있다고 보고 되여 작업반장 분조장, 리당비서를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 자신 이 선출하는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그것이 형식에 불과하고 실제는 임명제였 음으로 농업발전에 변화를 주지 못하였다.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농사문제에 대하여 강 조하시면서 종자혁명방침, 두벌농사방침, 토지정리방침, 감자농사방침, 콩농사 방침 등 농업생산을 높이기 위한 방침들을 제시하시면서 농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다시 높아지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글린턴 정부가 부쉬 정부로 바뀌 고 북조선 고립이 대북조선 정책으로 전환되면서 국제적 원조에 더는 기대를 걸기 힘들어 지면서 쌀을 자금자족하기 위해 취해진 일련의 대책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들이 실제로 관철되고 있는 것은 자금과 기술이 들지 않고 인력의 동원에 의거하여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례하면 토지정리를 들 수 있다. 감자농사방침을 관철한다고 감자가공공장도 몇 개 들여왔으나 감자가공음식이 식량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특히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분야의 일련의 경제적 조치들이 취해진 가운데 쌀 가격의 조정과 함께 아래 생산단위에 일정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조치들이 취해지기도 했으나 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 49-
이번에는 쌀 생산량이 적어서가 아니라 국가의 통제 밖을 벗어나 개인들 에 의해 류실되고 있다고 판단되여 군대를 동원하여 농장의 쌀을 지키는 실 태에 도달하였다. 그러한 조치로 군량미 보장은 가능하게 되었으나 그것이 쌀 생산을 늘이기 위한 대책은 아닌 것이다. 농민들의 쌀 생산 의욕을 높이는 것이 농업생산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된다는 것을 북조선정부가 모르지 않으므로 쌀 생산 계획량을 낮추어 주고 초과한량의 처리는 농민들 자신의 권한에 맡긴다고 하였지만 실제로 그 약 속이 지켜질 수가 없었다. 언제나 군량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농사에 총집중하는 것을 하나의 국사로 정하고 있으며 농업 생산에 대한 국가적 관심은 경제 분야에서 제1의 지표가 되었다. 그리하여 노력자는 누구나 일년에 100일은 농촌을 지원하게 조치가 취해졌다. 그리하여 2005년 말에는 농사가 잘되였다고 보고 되여 쌀 전매제를 실시 하고 12월부터는 배급을 무조건 준다고 전국에 선포하였지만 일부지역에서는 첫달분의 배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였으며 올해는(2006년, 필자주) 평양시에 서도 3개월분의 식량은 기관별로 자체로 배급량을 확보하라는 지시가 내렸다. 이상을 볼 때 북조선에서 취해지는 거의 대다수 정책적 대책들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농업분야의 대책들도 현실적인 것은 되지 못하였다. 그 주되는 요인은 생산자대중의 리해 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철저한 국 가적 안정에만 초점을 두고 모든 정책들이 수립되며 그 대다수는 생산의욕 을 높이는 것과는 무관계하거나 상반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생산의욕을 높 이려고 실시한 대책들은 얼마 못가서 국가적 리익 의 명분으로 유효성을 지킬 수가 없어지고 다른 대책에 의해 법적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 50-
2) 현재 북조선의 농업발전을 추동하는 변수는 과연 무엇인가? 이를 위해 북조선농업의 기본조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작면적은 개인 텃밭까지 합쳐 약 180만정보로 보고되고 있다.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수 있다. 개인 텃밭은 30평 이상 가질 수 없다는 제한이 있 어 보고 되지 않고 있는 경작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영, 협동적소유로 등록되고 있는 경작지는 약 160만보정보에 달한다. 실제로 장악되는 알곡생산량은 이 160만보정보에서 생산되는 량이다. 북조선이 최단 기간 안에 도달하려고 하는 농업생산의 목표는 800만톤의 알곡생산이다. 그러자면 정보당 5톤의 알곡을 생산하면 된다. 2005년 총동 원하여 생산한 알곡량이 400만톤 정도로 추정된다. 북조선의 실지 알곡생산 량을 추적하는 것을 힘들다. 2006년 예상수확고는 거의 600만톤으로 추정되 였으나 실지 수확고는 400만톤도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2004년 약 300만톤 정도의 수확고에 비해볼 때 크게 늘어난 것 이다. 알곡이 수확기에 많이 류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량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농민들과 농촌관계자들을 통하여 국가 창고에 들어가기 전에 비법 절취하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북조선이 최소한 500만톤 정도는 있어야 최 저생계라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800만톤의 알곡을 생산하면 공업용 알곡도 일부 해결할 수 있다. 이 800만톤이 쉬워 보이지만 북조선 토지의 질은 평균적으로 농사에 적합한 것이 못 되여 심어만 놓으면 풍년이 들 수 있는 땅이 아니다. 게다가 기후조 건도 맞아야 한다. 종자개선, 물 원천 확보, 보충적인 비료, 농약의 투하, 농기계보장, 재배 방법의 개선, 부지런한 관리가 없이는 도달불가능한 지표이다. - 51-
그러나 생산량을 늘일 수 있는 우의 모든 증산요소들을 현재는 결정할 수가 없는 변수들이다. 자체로 우량종을 연구해내는 것은 우수한 연구 력량이 있어도 1년에 1번 의 수확을 한다는 농사라는 특성으로부터 몇 년은 걸려야 한다. 그러나 종자 연구 분야에서 권위인 연구자들이 개인감정을 주체농법에 맞는가 맞지 않는 가 하는 정치적 론거로 탈바꿈하여 벌리는 리론 다툼, 고난의 행군시기 연구 조건, 생활조건의 결여 등의 후과로 우수한 연구 력량은 심히 약화되였고 다 시 키우기에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 종자는 다른 나라에서 구입하는 방법이 최적이지만 여기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금의 부족, 토질과 지리적 차이를 극복하는 문제이다. 북조선의 수리화는 비교적 잘되여 있으나 고난의 행군시기 적지 않은 산 림이 파괴되여 물을 붙잡아 두는 지리적 환경이 적지 않게 파괴되였다. 때문 에 저수지들의 물원천의 확보는 하늘에 맡기는 방법밖에 없다. 설사 물이 부 족하면 수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큰 벌들이나 밭들에는 이 방법이 불가능하다. 비료, 농약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자금 이 있어야 한다. 농기계는 북조선식으로 인력과 축력으로 대처할 수 있다. 재배방법의 개선은 창조성이 발휘되여야 할 기본 요소인데 이것은 주체농법 에 의거하여 농업성으로부터 어떻게 하라는 지시가 매번 떨어지고 있으므로 그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지런한 관리만이 기대할 수 있는 지표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민들에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들은 이미 농업생산을 통하여 자기살림을 지킬 수 없 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거의 모두가 상인화되였다. 농촌주민들이 농사철에 농 - 52-
사를 안짓고 장마당에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은 강한 통제 없이는 안되는 형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의 약 50%가 농사철에도 장사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것을 막으면 그들이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형편이여서 용 서를 받고 있다. 그러면 농민들이 농사에서 멀어지는 원인은 무엇인가? 북조선 협동경리는 알곡생산계획을 국가로부터 받아서 계획수행률에 따 라 분배를 받는데 한해 식량분만 겉곡으로 주고 나머지는 국가가 규정한 쌀 수매가격에 따르는 현금을 받게 되여 있다. 그런데 국가가 규정한 쌀 수매가 격과 시장가격은 심히 배리되여 있고 시장의 상품은 국제시장의 쌀 가격보 다도 높은 가격의 쌀값에 상응한 가격이므로 한해 농사로 받은 현금으로는 도저히 필수품도 구입하기 힘든 형편이다. 때문에 받게 되어 있는 현금의 량 은 적고 그나마 은행에 현금이 부족하여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량미를 무조건 보장하여야 하므로 1년 생계를 유지할 쌀을 저축하기도 힘든 형편이라고 한다. 사실 봄철에 농촌지원을 나간 도시 주민 들이 오히려 농촌 주민들에게 쌀을 가져다주는 형편이다. 그러나 장마당에는 언제나 쌀이 있다. 이것은 일부 농민들이나 관리들이 쌀을 비법적으로 상업 적인 처분을 하고 있는 증거이다. 결국 농민들이 이미 자기가 땅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80년대 이후로부터 땅의 주인의 지위를 느낄수 있는 권리적 인 요소들을 상실하였다. 그들에게 알곡을 생산할 의무만 있을 뿐 그것을 처 분할 수 있는 실제적 권리는 리론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상으로 볼 때 북조선 농업을 추켜세울 수 있는 가장 명백한 변수는 농 민들이 농업생산의 실제적인 주인으로 되게 하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생산 - 53-
의 기반을 맡기고 생산의 권리와 생산물의 처분권리도 함께 주는 것이다. 그 러면 나머지 모든 문제도 점차로 다 해결되어 갈 것이다. 의무만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보수를 준다고 할 때 성실성은 기 대할 수 있으나 창발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보수가 적거나 없을 때는 성실성도 곧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특히 생존의 초보적인 조건도 갖추 기 힘들다면 그때에는 의무마저 버리고 마는 것이다. 3) 현재의 농업정책으로 볼 때 북조선 농업의 전망은? 농민들에게 땅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 주 간단한 대책이 있겠다고 보이지만 현 북조선 정책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대책이다. 1946년 3월 1일에 실시한 토지개혁때 처럼 또다시 땅을 농민들에 게 나누어 주면 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을 수가 있다. 그것 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면 북조선이 이미 세상에 폐지한다고 선포한 세금제도를 다시 환원하는 것, 보다 공산주의적인 집단경리의 우월성을 부정 하는 것, 나아가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김일성주석의 주체농법을 포기하는 정치적 전향인 것이다. 기대되는 방법은 현존 농촌경리제도를 유지하면서 쌀 생산을 늘이는 방 법이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가능할수 도 있다. 그것은 다른 경제분야에서 나 오는 리득금으로 농업에 해마다 지원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지원은 불가능하다. 지금 현재 북조선에서 다른 경제분야 역시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불 투명하다. 다만 먹는 문제가 인간에게 있어서 제일 심각한 문제여서 농업에 제1의 관심이 모아질 뿐이다. 경제상황으로 본다면 다른 문제들, 실례로 에 네르기 문제는 더 심각하다. -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