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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2007 에딘버러페스티벌 진출지원사업 열린강좌 1 녹취본 <난타> 기획에서 세계진출까지 2007년 6월 7일(목) 오후 1시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 진행 : 우연,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교류팀장 강사 : 송승환, (주)PMC 프로덕션 대표이사 개회(사회자) 한국공연예술의 해외진출을 위한 지원방식이 다각화되고 있습니다. 기존 해외진출 단체들에 대해 지원금 지급에 그쳤던 단편적, 단면적 지원방식을 벗어나 좀 더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다각적 지원모델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해외 공연예술시장의 주요 거점을 개발하 여 공략하는 지원방식이 도입되어, 에딘버러부터 시도됩니다. 오늘 열린 강좌는 2007년 에 딘버러 페스티벌 진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으로, 열린 강좌와 같은 교육프로그램 이 8월 에딘버러 행사 전까지 계속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동안 해외진출을 희망하거나 계획한 공연단체들은 준비를 위해 스스로 조사하고 연구해 야 했습니다. 이러한 단체들을 돕기 위해 에딘버러 진출지원사업은 기존 진출 성공단체들의 사례를 위주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였습니다. 덧붙여 에딘버러 진출지원사업은 지난 3월 에 지원신청을 받아 6개 단체를 선정하였으며, 선정단체들은 현재 전문가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 중입니다. 오늘은 1999년 에딘버러에 진출했던 난타의 성공사례에 대해 (주)PMC프로덕션의 송승환 대표가, 그 후 대표적 성공사례인 점프의 사례에 대해 (주)예감 의 김경훈 대표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다. 오늘 오신 분들은 실제 해외 진출계획을 추진 중이시거나 혹은 희망하시는 분들 오신 듯 합 니다. 에딘버러 진출을 위해서는 마케팅 등 에딘버러에 적합한 전략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 니다. 오늘 강좌를 들으시고,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질의응답 시간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 다. <1차: 난타 기획에서 세계 진출까지>-송승환 1999년 난타가 에딘버러 진출한 당시 한국에서는 에딘버러 프린지 존재 자체를 잘 몰랐습 니다. 난타 진출을 위하여 문광부에 지원금을 신청하였으나, 문광부에서도 프린지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난타>나 <점프> 등 성공 사례들을 통해 에딘버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아직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간인데도 격세지감이 느껴집니 다. 이제는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진출 단체들을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 1 -

먼저 <난타>를 만든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76년에 극장에서 연기자, 배우로 출 연한 뒤 소극장에서 뮤지컬 연출, 그 후 텔레비전 연기자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85 년에 신문기사로 브로드웨이의 <캐츠> 등에 관한 소식을 접하다가, 하던 일 접고 뉴욕에서 4년간 문화의 다양성 등을 느끼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89년에 귀국해서 극단을 만들 었는데, 이 극단은 당시 한국에 없었던 프로듀서 시스템을 시도하였습니다. 90년 초부터 창 작 뮤지컬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어, 95년에 <고래사냥> 작품을 각색해 예술의 전당 오페 라하우스에서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고래사냥>의 제작비가 7억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영화 의 제작비가 10억 미만이었을 때입니다. 7억의 제작비를 들여 뮤지컬을 만들어 국내 순회 공연을 한 후 국내시장의 협소함을 느꼈습니다. 2년이란 제작 기간에 비해 몇 주에 불과한 공연기간이 매우 짧아 안타까웠습니다. 작품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 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장벽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본 의 장벽이었습니다. 국내 연극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들였으나, 당시 <캐츠> 등 공연은 프 리프로덕션 제작 진행비만 100억~150억을 들였습니다. 이번에 제작한 <대장금>은 60억 들었는데, 이 제작비는 러닝 코스트까지 모두 다 합쳐서 60억인 것입니다. 프리 프로덕션은 20억뿐입니다. 브로드웨이의 제작비는 프리프로덕션 제작비만 일컫습니다. 라이온킹은 프리 프로덕션 제작비만 200억입니다. 두 번째 장벽은 언어의 문제였습니다. 한국어는 한반도만 벗어나면 아무도 이해 못합니다. 자막도 있지만, 공연을 보면서 자막을 보는 것을 매우 불 편해합니다. 미국인들은 영어권 공연도 수없이 많기 때문에, 자막 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 다. 그래서 런던에서 공연할 때 영어로 공연을 했더니, 반응은 더 알아듣기 힘들다 였습니 다. 발음이나 억양 등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해도 전달력이 떨어졌습니다. 뮤지컬은 서울, 대 전, 대구, 부산, 광주 정도의 지방 공연만이 최대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강구한 결과,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도 아무리 자본력이 있 다 해도 만들지 못하는 작품 있을 것이다. 그런 작품은 곧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소재의 작 품이다 라는 생각에 이르렀으며, 결국 사물놀이 공연을 생각해 냈습니다. 언어의 한계 극복하는 방법은, 90년대부터 넌버벌 공연이 세계적으로 유행했기 때문에, (넌 버벌 장르를 택함으로써) 언어의 문제도 해결 가능했습니다. <난타>의 탄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방을 배경으로 한 사물놀이 기획한 것인데, 대 본은 기본 컨셉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호암아트홀에서 있었던 97년 10월 국내초연 시 표가 팔리지 않았습니다. 공연 관람객이 주로 젊은 층인데, 사물놀이로 연극을 만들어서 고리타 분하다고 생각한 듯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권을 많이 보내고 또 휴대폰 문자를 이용해 홍 보한 끝에, 관객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2주차부터 표가 팔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공이었습 니다. <난타>의 해외진출을 위해, 98년 봄에 <난타> 하이라이트 영상물을 들고, 동경, LA, 뉴욕, 파리, 런던 등 유명한 해외 공연프로듀서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에서 만난 프로듀 서는 아일랜드 탭댄스를 발굴, 불과 5분짜리 댄스를 1시간짜리 쇼로 만들었던 사람이었습니 - 2 -

다. 이 프로듀서에게 <난타>의 넌버벌, 코메디, 한국의 전통요소, 카타르시스 등에 대해 피 력했습니다. 제 설명을 들은 영국 프로듀서의 첫 번째 질문은 한국에서도 연극을 하느냐 였습니다. 한국영화나 연극을 접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연극이나 영화 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 대부분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 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현재는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문화산업 시장에서의 한국의 위치는 아직도 빈약한 듯합니다. 이제 브로드웨이아시아와의 만남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브로드웨이아시아는 브로드웨 이의 공연을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 파는 에이전시입니다. 98년 해외출장 을 다녀온 후 저는 브로드웨이아시아에 연락해, 아시아 작품을 브로드웨이나 미국 공연시장 에 파는 데 관심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답은 이러했습니다. 편지 잘 받았다. 그러나 관심 없다. 다시 왕복항공권, 숙박비 등을 제공할 테니 <난타> 공연을 보라고 초청했습니다. 브 로드웨이아시아 사장이 와서 관람한 후 공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달 후 브로 드웨이아시아 직원 여러 명을 다시 초청해야 했습니다. 결국 브로드웨이아시아와 MOU를 맺었습니다. 두 가지 조건이 있는 가계약이었습니다. 이유는 한국 관객들이 박수하고 호응 하는 부분에 대해 자신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브로드웨이아시아는 서구 관객들 도 박수치고 호응할 수 있는 공연작품으로 수정하길 요구했습니다. 브로드웨이에는 쇼닥터 라는 부분연출자들이 있습니다. 결국 쇼닥터를 불러서 공연을 수정하였습니다. 두 번째 조 건은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호응을 얻어내야 한다면서, 에딘버러 페스 티벌을 추천했습니다. 1947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가 만들어지고, 그로부터 52년 후에 처음으로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는 에딘버러 프린지에 1,260개 단체가 참여했 습니다. 주로 유럽과 미국의 작품이 많았으며, 아시아 작품은 소수였습니다. 유럽의 극장 관 계자 등 다수가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한국의 공연은 주로 대관 공연을 하나, 유럽의 경우 극장의 프로그램 디렉터가 공연료를 주고 공연을 사갑니다. 이런 상업적인 이유로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난타>에게 중요했던 것입니다. 에딘버러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는 코메디, 특 히 스탠딩 코메디입니다. 에딘버러에서 가장 큰 극장에서 가장 비싼 공연 역시 코메디입니 다. 물론 세계에서 오는 극장 관계자들이 모두 상업적인 공연만을 찾는 것은 아닙니다. 99 년 에딘버러에서 <난타>를 본 뉴욕 42번가 브로드웨이 뉴빅토리 극장의 극장장이 시즌 개 막 공연으로 <난타>를 꼽았습니다. 세계의 극장과 공연 관계자들에게 공연을 선보일 수 있 다는 점에서 에딘버러는 매우 중요합니다. 세계는 넓고 공연장은 많습니다. <난타>의 홍보마케팅 전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난타> 팀은 에딘버러에 가기 전에 뉴욕에서 한 달 동안 리허설을 했습니다. 이유는 쇼닥 터의 진단을 한 번 더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쇼닥터와 마지막 작품 점검을 했습 니다. 에딘버러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한 달 동안 한 극장에서 평균 다섯 작품 정도가 올려 집니다. 어셈블리 홀 내에는 대극장(700석)과 중극장(300석), 소극장 등 극장이 셋 있습니 다. 난타는 중극장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있었고, 공연시간도 50분이었습니다. 서울 호암 아트홀에서 공연하는 것과 조건이 매우 달랐습니다. 10분동안 셋업과 철수를 해야했기 때문 에, 국내 공연의 세트, 조명, 음향 등을 에딘버러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 3 -

뉴욕에서 50분짜리 버전의 공연과 세트 등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홍보 전략을 위해서였습니다. 1,260개의 단체 중 관객들의 눈에 띄기는 쉽지 않습니다. 뉴욕에 서 리허설을 하는 동안 영국의 프레스를 뉴욕에 초청하였습니다. 영국 프레스를 한국에서 부르기엔 비용이나 시간이 더 듭니다. 에딘버러에 능통한 평론가 등을 뉴욕에 불러 공연을 보여주고, 영국 유수 매체에 프리뷰 기사 게재를 유도했습니다. 또한 어셈블리 홀 감독을 뉴욕에 불러, 셋업과 철수 등의 계획을 함께 짰습니다. 이러한 사전 준비 후 에딘버러에 진출했으나, 어셈블리 홀에 막상 도착하니 관람객 모객이 만만찮았습니다. 현지 홍보 에이전트를 고용했으나, 예산이 적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홍보 방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첫째, 한국식 홍보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포 스터 많이 붙이기입니다. 에딘버러는 중구보다 적은 도시인데, 이 에딘버러 도시 전체를 난 타 포스터로 도배했습니다. 배우가 식칼을 들고 노려보고 있는 이미지의 포스터 역시 강한 인상을 남겼고, 효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둘째, 어셈블리 홀에서 가디안, 스코츠맨, 이브닝 뉴스 등 주요 일간지와 공연전문 잡지 20~30명 기자들을 초청해 5분 길이의 시연회를 개 최했습니다. 신문들이 1999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개막 기사로 <난타> 사진을 실었습니다. 축제 생긴 후 52년 만에 첫 한국 공연작품이 소개된 것입니다. 한 달 동안 전회 공연이 매 진된 성공적인 공연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후 2~3일 후부터 각 언론에서 <난타>에 대해 별 점 5개 리뷰를 실었습니다. 리스트에서 99년 에딘버러 베스트 10으로 <난타>를 선정하였습 니다. 이제 <난타>의 프로모션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셈블리 홀에는 1층에 페스티벌에 등 록한 프로모터들이 만나는 라운지가 있습니다. 이 라운지에서 공연 프로모션 관련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영국 스태프들과 일해야 하 고, 또 에딘버러 지방의 억양은 독특합니다. 저는 스위스 대사관 직원을 컴퍼니매니저로 고 용하여 프로모션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에코씨어터를 비롯, 일본 프로방스 에이 전시를 통해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현재까지 23개국 200여개 도시에서 공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연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반가운 것입니다. 이태리 프로모터를 통해 나폴리에서 첫 공연을 가졌는데, 이태리 프로모터는 <난타> 공연 시작 당 일 극장 앞 레스토랑에서 한국 음식을 판매하게 했습니다. 후속 공연이 여덟 개 도시로 늘 어났습니다. 일본 역시 처음에는 세 도시에서 공연을 했지만, 다음 해에는 도시 수가 더 늘 어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번 해외 투어를 한 후에는 후속 투어 공연이 계속 이어졌습니 다. 난타는 아직도 투어가 계속되고 있는데, 올해 초에는 중국에서, 하반기에는 남미와 독일 등 유럽 공연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에딘버러를 통해 이런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작품제작에 관해 몇 마디 드리겠습니다. 작품 제작에 있어 중요한 점은 작품이 어떻게 보 편성을 가지면서도 독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전 세계인이 보면서 함께 웃고 감동 할 수 있는 보편성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독특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타 국가에서 제작하지 못하는 것, 즉 한국적인 것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독특함에만 전 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의 판소리가 세계에서 극찬을 받는다고 합니다만, 이는 소수 매니아들의 반응일 뿐, 상품성을 가진 즉 문화산업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장르는 아니 라고 봅니다. 작품 제작 시, 소수 매니아 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대중성을 좇을 것인지 - 4 -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4월 에딘버러 진출지원 단체 심사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격세지감을 느꼈습니 다. 난타를 제작할 당시는 IMF 끝무렵이라 제작비 마련이 쉽지 않았습니다. 기업 후원도 어 려웠고, 문광부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공연 세트도 배로 운송했습니다. 여담이지 만, 은행 지점장이었던 고등학교 친구가 <난타>를 관람하고, 자기가 본 공연 중 최고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해, 친구 집을 저당 잡히고 은행에서 대출한 1억원 을 빌려 에딘버러 진출했습니다. 돈을 빌려주며 친구가 제게 한마디 했습니다. 마누라한테 는 절대 말하지 말라 고. 그러나 이젠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에딘버러는 세계진출을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곳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좋은 공연 시간 선택도 매우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저녁 8~10시 사이의 공연이 좋으나, 관객대상에 따라 공연시간을 달리 선택해야 합니다. 공연장 선택도 매우 중요하고, 홍보 마케팅 전략도 매우 중요합니다. 숙소 역시 축제 기간 동안 호텔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부동산중개소를 이용해 집을 두 채 빌렸습니다. 당시에는 에딘버러에 한국 식당도 없어서 한국에서 밥솥을 가져가 요리해 먹었습니다. 질문 1 : <난타> 해외진출 시 브로드웨이아시아를 선택한 데 있어서 무엇을 고려하셨는지 요? 송승환 : 브로드웨이아시아 선택 전에 직접 공연을 팔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그 당시 제 힘 으로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이전트 도움 없이 해외공연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고 체감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해외 공연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LA 등 지에 가서 교민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방식도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해외공연은 우리가 외국 공연의 티켓을 사 관람하듯 우리 공연도 해외에서 같은 방식으로 올리고 싶었습니다. 이를 실행하는 역량이 부족하다 생각했고, 따라서 에이전시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계약조건도 고려사항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아시아는 수익의 15%를 수수료로, 그리고 프로모션 경비로 플러스 알파를 요구했습니다. 알파에는 주차비, 식비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에딘버러 후 <난타>에 관심을 갖고 저희에게 직접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많아 졌으며, 이 플러스 알파에 해당하는 경비에 대한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아 시아는 작품을 팔 때 제값을 받아줍니다. 2년 후 재계약을 하면서 수수료를 10%로 줄이고, <난타>의 프로모션 경비는 브로드웨이아시아 측 부담 조건으로 바꾸었습니다. 에딘버러 히 트작으로서의 <난타>의 작품가격은 또 오프브로드웨이 1년 6개월 간 공연 후 <난타>의 작 품가격과 차이가 컸습니다. 따라서 브로드웨이아시아에서도 <난타>를 놓치기 싫어합니다. 브로드웨이아시아 측과 많은 분쟁이 있었고, PMC측과 브로드웨이아시아측이 변호사를 내 세워 회의를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듯 해외 공연시 많은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국 내 지방 공연 시 쓰게 되는 계약서는 약 2페이지 정도이나, 해외 공연 시 쓰는 계약서는 분 량이 50페이지 정도입니다. <난타> 계약서 쓰면서 물, 과일 종류 등 하나하나 요구하는 것 등, 에이전시를 통해 하나하나 배운 점이 많습니다. - 5 -

사회자 : <난타>의 경우는 브로드웨이아시아라는 에이전시가 있는 경우이고, 2차 강연에서 다룰 <점프>는 일본에서는 에이전시와 계약하고 북미권은 직접 진출하는 경우, 그리고 7월 5일 열린 강좌에서 다루게 될 사례인 극단 여행자 경우는 에이전시를 쓰지 않고 극단이 직 접 프로모션을 하는 등 또 다른 경우입니다. 여러 사례들을 비교해 보시고, 각 단체에게 적 합한 방향들을 잡아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 2 : 저작권 관련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난타>가 컨셉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저작 권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송승환 :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습니다. 첫 아이디어는 제가 내고, 이 후 연출, 제작감독, 배우들까지 계속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첫 공연 후 작품 을 발전시키기 위한 업그레이드를 계속해야 하는데, 중도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스탭들도 많 이 있었습니다. 에딘버러 가기 직전까지 작품을 계속 수정해 나가는 과정에 여러 사람의 의 견을 들었지만, 본인이 구성안을 정리했고, 제 이름으로, PMC이름으로 저작권을 등록했습 니다. 현재 구성작가는 송승환으로,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법인인 PMC프로덕션으로 되어있 습니다. PMC는 법인이기 때문에 제가 퇴사하고 다른 사람이 대표로 오더라도 제게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PMC프로덕션이 권한을 갖습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경우에 는 제작자의 권리보다 창작자의 권리를 더 인정한 것 같은데, 저희 경우에는 제작자와 창작 자가 같이 PMC프로덕션입니다. PMC 이사회에서 초기창작자 송승환에게 퇴사한 후 PMC 프로덕션이 <난타> 매년 매출액의 1%를 로열티로 평생 지급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질문 3 :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브로드웨이아시아와의 현재 관계는 어떠한 지, 그리고 포스터 홍보 외 또 다른 차별적인 홍보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송승환 : 우선 브로드웨이아시아는 98년에 계약을 맺고 2년 후 재계약 통해 수수료를 15% 에서 10%로 줄이는 등 계속 수정 재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유럽 지역 에이전시이며, 그 외 지역은 PMC가 직접 프로모션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미주와 유럽 지역에 대해서는 거리상의 문제도 있고 또 브로드웨이아시아의 장악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장금>을 만들면서 언론으로부터 혹평 받고 있는데, 초연 공연의 완성도가 높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MBC와 계약을 한 것도 6년 계약입니다. 즉, 6년 내로 좋은 작 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초연의 완성도는 그만큼 떨어지겠습니다. 언론의 혹평에도 불구 하고 <대장금>은 계속해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시아 지역에서 팔 수 있는, 브 랜드 가치를 가진 작품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대장금> 제작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브로드웨이아시아 측에서는 제작비 투자를 제안했습니다. 왜냐하면 브로드웨이아시아의 현 재 최대 관심은 중국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재작년부터 상해와 북경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상해 경우 미국의 브로드웨이 같은 구역을 조성하고 있는 등, 중국의 시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 브로드웨이의 의상은 중국에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장 금> 의상 중 일부도 디자인은 한국에서 하고 제작은 중국에서 하고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아 시아에서 <대장금>을 세계시장에 판매하고 싶다고 밝혀 왔으나, 대장금은 에이전시를 통 하지 않고 진출할 자신이 있어서 브로드웨이아시아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굳이 에이전트를 - 6 -

통하지 않고도 진출할 자신이 있다면 꼭 에이전트를 고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자면, <난타>의 성공에서 홍보비결은 포스터 외에도 기자들 앞에서의 시 연회와 이 시연회의 기사화였다고 봅니다. 그 외에는 돈이 부족해 마케팅 여건이 안됐습니 다. 다만 공연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것인데, 한편으로는 저희가 공연을 50분으로 압축하면 서 오히려 공연의 임팩트가 강해지고 관객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더 강해지지 않았나 싶 습니다. 또 현지 기술감독을 뉴욕으로 불러 손발을 맞추었기 때문에, 첫날 첫 공연부터 큰 에러 없이 공연을 했던 것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질문 4 : 회계 관련 질문인데 에딘버러 후 정산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에딘버러 기 간 중 몇 명의 마케터를 만날 수 있었는지요? 송승환 : 에딘버러 진출에 30만불 이상 든 이유는 뉴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에딘 버러에서 얻은 입장료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전회 매진에 4회 추가공연을 했기 때문에, 입 장료를 통해 30만불 중 많은 부분을 회수했습니다. 그리고, 행사 기간 중에는 최소한 40~50명 정도의 마케터와 만났던 것 같습니다. <난타>가 국내 전용관을 만들게 된 데도 에딘버러에서 거둔 수익의 힘이 컸습니다. 에딘버러 진출 당시, 국내 기자를 초청하고 싶었 지만 예산이 부족해 영국문화원에 한국 기자 초청을 요청했습니다. 영국문화원에서 조선일 보 기자 한 명을 행사 끝날 무렵에 에딘버러에 초청해, <난타>를 취재하였습니다. 저는 행 사 개막하고 보름 정도 후에 귀국했는데, 그 때는 금메달 딴 기분이었습니다. <난타>의 성 공을 빨리 국내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 보도자료도 직접 작성해서 연합통신에 제공하여 국내에서 기사화 되었습니다.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