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w_left_history.hwp



Similar documents
keyes_sik_only_christ.hwp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 pb61۲õðÀÚÀ̳ʸ


04 Çмú_±â¼ú±â»ç

sik_lets_help_homosexuals.hwp

5 291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ad hwp

(중등용1)1~27

CR hwp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01정책백서목차(1~18)

³»Áö_10-6

(012~031)223교과(교)2-1

....pdf..

나하나로 5호

152*220

041~084 ¹®È�Çö»óÀбâ

금강인쇄-내지-세대주의재고찰


<5BB0EDB3ADB5B55D 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 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 D3135B9AEC7D72E687770>

#7단원 1(252~269)교

- 2 -

120~151역사지도서3

CT083001C

**09콘텐츠산업백서_1 2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¹é¹üȸº¸ 24È£ Ãâ·Â

2002report hwp

<C3E6B3B2B1B3C0B 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allinpdf.com

연구노트

<C7D1B1B9C7FC20B3EBBBE7B0FCB0E82DC3D6C1BE612E687770>

내지-교회에관한교리

ITFGc03ÖÁ¾š

기본소득문답2

ÃѼŁ1-ÃÖÁ¾Ãâ·Â¿ë2

핵 1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 문학과예술 역사와철학 사회와이념 선택 학점계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비고 14 (15) 13 (14) 27 (29) 2

p529~802 Á¦5Àå-¼º¸í,Ç×ÀÇ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핵 심 교 양 1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 문학과예술 역사와철학 사회와이념 선택 교양학점계 학년 2 학년 3 학년합계비고 14 (15) 13 (

- 2 -

Microsoft PowerPoint - AIHYWCRQEDFM.pptx

01¸é¼öÁ¤

2016년 신호등 10월호 내지.indd

°¨Á¤Æò°¡

È޴ϵåA4±â¼Û

(연합뉴스) 마이더스

<BFA9BCBABFACB1B8BAB8B0EDBCAD28C6EDC1FD292E687770>

CC hwp



감사회보 5월

178È£pdf

ºñ»óÀå±â¾÷ ¿ì¸®»çÁÖÁ¦µµ °³¼±¹æ¾È.hwp

¹é¼Ł sm0229-1

???德嶠짚

....(......)(1)

10월추천dvd

DocHdl2OnPREPRESStmpTarget

2ÀåÀÛ¾÷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141018_m

트렌드29호가제본용.hwp

- 4 -

문화재이야기part2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sik_snitching.hwp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ok.

¾ç¼ºÄÀ-2

<B1DDC0B6B1E2B0FCB0FAC0CEC5CDB3DDB0B3C0CEC1A4BAB82E687770>

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1220½É¹Ì¾Èâ27È£º»¹®

01Àå

2저널(11월호).ok :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¾Æµ¿ÇÐ´ë º»¹®.hwp

2015년9월도서관웹용

03

<3635B1E8C1F8C7D02E485750>

º»ÀÛ¾÷-1


Á¤Ã¥¹é¼Ł_Ç¥Áö

»êÇÐ-150È£

60

2013_1_14_GM작물실용화사업단_소식지_내지_인쇄_앙코르130.indd

레프트21

ps

1노총이 자본가의 요구를 수용하여 노사정 협상에서 연동제 폐지와 분권화된 교섭구조에 합의한 것이다. 연동제는 소득정책( 신축적 연동제 )으로 대체되 었고, 단체교섭의 구조는 전국(노총)-산업(연맹)의 집권화된 구조와 기업(대 기업노조)-지역(중소기업노조)의 분권화된 구

미술00부속(001~007)2ee

- 89 -

= " (2014), `` ,'' .." " (2011), `` ,'' (.)"

<B9CEBCBCC1F828C8AFB0E6B1B3C0B0292E687770>

Microsoft PowerPoint - soc-mov-01.ppt [호환 모드]

<B3EDB4DC28B1E8BCAEC7F6292E687770>

Jkafm093.hwp

Transcription:

Copyright c 2008 라브리선교회 L'Abri Fellowship Korea Downloaded from http://www.labri.kr 사회를 바라보는 눈 :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백성욱 1. 들어가면서 흔히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의 국제사회를 특징짓는 현상으로 탈이데올로기 와 포스트모더니즘 을 지적하곤 한다. 이러한 지적은 20세기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좌 우의 이념 대립이 종식된데 다 정치적으로는 대의 민주주의ㆍ경제적으로는 산업 자본주의ㆍ사상적으로는 이성에 근거한 계몽주 의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온 근대사회에 대한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전자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달이 가져온 자본주의의 세계화와 직접 민주주의 의 확산, 그리고 이성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감 등이 증폭되면서 탈이념 ㆍ 탈근대 담론은 그 이데올 로기적 함의와는 상관없이 사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지배적 위치를 차지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사회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는 동떨어진 아니 오히려 역행하는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 같았던 좌파적 이념과 가치들이 자유주의 에 기반한 대의 민주주의,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등 기존 한국 사회를 유지시켜오던 핵심 적 가치 체계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치열한 이념 논쟁을 촉발하고 있는 것 이다. 또한 최근의 이념 논쟁은 과거 우파들에 주도되었던 이념 논쟁과는 달리 좌파 지식인과 운동가들 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데다, 이념적 반대파를 공존 가능한 대상이 아닌 도덕적ㆍ윤리적으로 타파해 야 할 사회적 절대악 으로 규정함으로써 사회 분열과 편 가르기를 조장한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냉전 상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상황적ㆍ시대적 요인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 닌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 사회가 1960년대부터 추진해온 근대화와 산업화가 가져 온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변화에 대한 좌ㆍ우파 兩 진영의 누적된 이해 차가 최근의 이념 논쟁을 촉발시 킨 근본 요인일 것이다. 또한 보다 직접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아웃사이더에 머물고 있던 좌파 지식인과 운동가들이 김대중 정부 이후 대거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면서 기존의 사회 지배계층과 지배구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 고 있는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아울러 우리 경제가 IMF 체제로 편입된 이후 사회 불평 등과 불균형이 심화된 것과 기존 지배계층의 부패ㆍ부도덕성이 드러나면서 한국 사회구조 전반에 대 한 국민적 의구심이 확산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 문서는 라브리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것으로, 개인 및 그룹 공부를 위해서만 인쇄, 복사, 배포 등이 허가되었습니다. 그 밖의 용도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용은 라브리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This document was downloaded from L'Abri Korea. Printing and distribution are permitted only for study purposes. For all other uses, please obtain permission from L'Abri. L'Abri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is document. - 1 -

그렇다면 근래 우리 사회에 재연되고 있는 이념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 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이념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좌파 지식인 그룹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가를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의 좌파 지식인 그룹은 짧은 역사속에서도 시대 흐름에 맞추어 나 름대로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금 시점에서 제기하는 각종 이슈들은 과거 로 부터 축적되어 온 것들이다. 따라서 이들 좌파 지식인 그룹의 형성과 사상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것은 지금 현재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래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 그룹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진보적 좌파 지 식인 그룹의 계보를 살펴 보고. 이들의 사상적 배경인 맑스주의와 현재 좌파 진영의 지형에 대해 비 판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2. 시대 흐름을 통해 본 좌파 지식인의 계보 2.1 1960년대 : 현실 지향적 지식인 그룹의 분화 1950년대 이승만 독재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던 참여 지식인층은 장면 정권의 무능과 사회 적 혼란을 명분으로 발생한 1961년 5월의 군부 쿠테타와 이후 공화당 정권에 의해 추진된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 이후 급격한 분화 현상을 보인다. 먼저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 유학이나 연수 등의 경험이 있는 지식인 그룹을 중심으로 근대화 인 텔리겐챠론 이 제기된다. 이들은 제 3세계 신생국은 서구와 달리 사회 경제적 조건의 미성숙하고 전 통적 엘리트도 무능하여 근대화를 담당할 수 있는 세력이 취약하므로 군대 특히 청년 장교들이 새로 운 지식인으로 등장해 근대화 주도세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근대화를 위해서는 전문화된 기 술적 식견을 갖고 사회 현실에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지식인을 필요로 하며 사회 현실 에 대해 방관자 국외자 위치에 있던 인텔리겐챠가 기술적 참여자로 전환되어 양 집단 사이에 건설적 이고 조화로운 관계가 성립된다. 따라서 서구의 전통적 인텔리겐챠와 달리 신생국 인텔리겐챠는 근 대화를 위한 이데올로그와 근대화 실현의 지도계층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2) 이후 수많은 지 식인들이 근대화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이데올로그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공화당 정권의 강권 정치에 반대하는 지식인 그룹이 형성되면서 비판적 지식인론 이 확산된다. 이 시기 비판적 지식인론은 사르트르와 칼 만하임의 영향을 받아 지식인의 사회 비판 적ㆍ생산적 역할을 특히 강조 3)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공화당의 독재 정치에 대한 강력한 비판과 함께 권력에 대한 저항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각종 부작용들 에 대한 경고 등을 주된 내용을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기존의 지식인론이 안고 있던 엘리트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고 지식인론을 대중 론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시도된다. 송건호는 한국 지식인론 에서 한국 사회 근대화의 과제로 민주 주의와 민족 주체성 확립을 강조하는데 지식인의 현실 참여 형태로 대중성을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지적 귀족주의의 모습을 보이지만 능동적ㆍ본질적인 참여인 아카데미즘을 제시하고 양자의 종합이 진정한 지식인의 현실 참여라고 결론지음으로써 지식인과 대중의 연관을 모색한다. 4) 또한 그는 지식 인의 현실참여는 단순한 정치 관여를 넘어 역사에 동참하는 것으로 한국의 지식인은 한국이 처한 역 - 2 -

사적 현실로부터 과제를 부여받는다는 민족과 역사의 관점을 강조함으로써 1970년대 민족 지성론으 로 발전하는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1960년대를 기점으로 새로운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환경에 직면하면서 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던 지식인층은 현실 참여적 지식인과 현실 비판적 지식인층으로 분화된다. 이후 현실 참여적 지식인 그룹은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대의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를 이념적 가치로 한국 사회의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 이라고 불리우는 돌진적 근대화 의 주역으로 부상 5) 하나, 한편으로는 경제 지상주의에 함몰되어 빈부격차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정권의 폭정과 장기 집권에 기여했다는 부정 적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한편, 비판적 지식인의 활동은 정치적으로는 독재화ㆍ장기화 되고 있던 공화당 정권에 대한 신랄 한 비판과 정치적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이 두드러 졌으며, 경제ㆍ사회적으로는 근대화 추진과 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데 주력했다. 아직까지는 이들의 활동에서 구체적으로 좌파적 경향성 6) 이 보이지는 않으나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지식인론과 대중론의 연계를 주장함으로 써 이후 제기되는 민중적 지식인론의 토대를 닦은 것을 평가할 수 있다. 2.2. 1970년대 : 민족주의적ㆍ민중주의적 시각의 등장 1970년대는 정치적 측면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10월 유신과 한국 적 민주주의라는 다양한 억압 기제들이 동원되어 극도의 정치적 억압과 함께 사상ㆍ양심의 자유가 제한되던 암울한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국가 주도아래 군사 작전을 방불케 추진되었던 대기업 중심 의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 정책이 유지되면서 연평균 10%를 상회하는 급속한 경제 성장과 그에 따른 물질적 삶의 질 향상ㆍ산업구조의 고도화ㆍ국제사회에서의 비중과 위상 제고라는 일정한 성과를 거 두게 되었다. 7)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산업화는 노동자들의 산재 증가 및 노동 기본권 억압ㆍ농촌의 피폐화와 도 농간 격차 심화ㆍ대도시로의 인구 집중과 거대한 빈민촌 형성ㆍ지역간 불균형 발전ㆍ중소기업의 대 기업 종속 등의 부작용을 유발했으며, 사회 전반에 물신주의와 권력 만능주의가 만연하는 등 가치관 의 극도로 혼란해 지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 지식인들의 현실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는데 이중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맑스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민족 분단의 문제와 계급적 모순 등을 지 적하는 경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운데 박현채(조선대 경제학과)는 일본 오쓰카사학 등의 영향을 받아 민족경제론 을 주창했는 데, 이는 외국 자본과 국내 매판자본과의 상호 연계관계를 규명함으로써 한국 경제의 주체적 발전을 도모하고 민족적 생존권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향후 진보적 지식인과 학생 운동 권ㆍ노동계 등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 했다. 또한 박현채는 맑스ㆍ레닌주의 사상에 근거해 80년대 한국 진보학계ㆍ운동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시킴으로써 좌파 이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된다. 김진균(서울대 사회학과)은 보수적 근대화론에서 출발했으나 70년대의 암울한 정치상황 속에서 맑 스주의 이론으로 선회해 이에 기반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분석하는 다양한 학술활동과 사회변혁 운 - 3 -

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지속적인 학술 활동과 현실 참여 과정에서 노동자 계급과 노동 운동을 중 시하는 맑스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분단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경험적으로 분석하고 이론적으로 개념화하려는 노력을 일관되게 견지함으로써 진보학계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일단의 학자들은 맑스주의에 대한 제한적 연구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 기 아래서 맑스주의의 변형 이론이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이나 남미의 종속 이론 등을 소개하면서 우리 사회에서의 수용 가능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8) 이들 이론들은 당시 맑스주의 이론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지식인과 학생층에게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프롬이나 마르쿠제 등 관련 학자들의 저서가 왕성하게 번역ㆍ출판되기도 했다. 이처럼 1970년대는 일부 지식인들에 의해 서구의 변형된 좌파 이론이 도입되어 사회적 모순에 분 노하던 지식인과 학생층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들 이론에 근거한 사회 비판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함으로써 해직ㆍ투옥 등의 시련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 권의 정치적 압력과 핍박에 저항했던 이들의 활동은 이후 1980-90년대에 접어들어 맑스주의 사상 연구가 공식화되고 이에 기반한 사회변혁 활동이 활발히 전개될 수 있는 주춧돌을 마련했다고 평가 할 수 있다. 2.3 1980년대 : 혁명의 시대와 계급론적 인식의 확산 1980년대를 특징짓는 단어는 혁명의 시대 혹은 질풍노도의 시대 라는 말일 것이다. 그만큼 1980 년대 전체를 통털어 사회 변화와 변혁을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었으며 이를 통해 진보적 지식인들의 활동 공간과 영역이 차츰 확대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거센 변화와 변혁의 바람을 불러 일으 켰던 주요 원인은 80년 5월에 발생한 광주에서의 참사였다. 국가 권력과 시민들의 무력 충돌로 빚 어진 대규모 유혈 참사를 계기로 진보권 내부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을 더 이상 우방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다. 세계 유일의 반미 무풍지대였던 한국에서도 미국의 군부 정권에 대한 일방적 지원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던 것이다. 또다른 변화는 사회 변혁과 체제 비판을 위해 맑스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주의 사상이 본격적 으로 유입되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9) 이는 해방공간 이후 한 세대를 건너 뛰어 진보적 좌파 지식인 집단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사상의 급격한 유입과 더불어 노 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근본적인 체제 변혁만이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 또한 급진적 사회 운동의 저변에 확산되게 된다. 이를 통해 1970년대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반정부운동 의 성격을 띄던 민주화 운동이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 건국이념까지 거부하는 반체제운동 으로 전환되는 전기를 맞게 되었다. 2.3.1 진보 학계의 맑스주의 논쟁 맑스주의 사상의 본격 유입과 함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는 또한 한국 사회구조와 모순 평가와 함께 운동 주체세력의 규정ㆍ투 쟁세력의 설정 및 운동노선의 정립 등과 같은 전략ㆍ전술을 결정하기 위한 대전제이기도 했다. - 4 -

이러한 사상적인 배경하에 1985년 복간된 <창작과 비평>을 통해 한국 사회의 기본 성격을 둘러싼 사회과학자ㆍ운동가들간의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사회 구성체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곧이어 사 회과학 방법론 논쟁과 역사 법칙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80년대의 화려한 논쟁사를 장식하게 된다. 먼저 사회구성체 논쟁과 변혁론 논쟁은 1980-83년의 준비기, 1984-85년의 1단계 논쟁(CNP 논쟁), 1986-87년의 2단계 논쟁(NL-CA 논쟁), 1988-90년의 3단계 논쟁(NL-PD)으로 변화ㆍ발전된 것으로 평 가된다. 논쟁의 시발점은 초기 종속이론에 기반을 둔 주변부자본주의론 (주자론)이 제기되면서 시작되었 다. 10) 주자론은 우리사회가 미국과 일본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이 더욱 심화되어간다는 인식에서 상 당한 주목을 끌었으나 후진국 저발전이 외부세력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주변부의 자주ㆍ자립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데 한계를 보인데다, 85년 노동 운동이 사상 유례없는 고조기를 맞아 정통 맑스주의에 근거해 노동자 계급의 주도성을 전면에 내세 웠던 국가독점자본주의론 (국독자론)이 부각되면서 논쟁의 대열에서 탈락하게 된다. 2단계 논쟁은 1986년에 들어와 반외세 자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처음으로 공개적 대중투쟁 무대에 등장한 NL 노선에 의해 촉발된다. NL 노선은 한국사회 = 자본주의라는 주 자ㆍ국독자 논쟁의 합의점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현 단계 한국 사회의 식민지성과 반봉건성 을 유지하고 있다는 식민지 半 봉건사회론 (식반론)을 주장하며 反 外 勢 민족운동단계론을 내세웠다. 식 반론은 민족운동 단계론의 변혁론에서의 우위와 50년대 중반 이후 최고수준으로 고양된 86년의 민족 운동을 배경으로 사구체 논쟁에서 단시간에 기존의 국독자론을 제압하는 한편 운동권의 근간도 쉽사 리 장악하게 된다. NL 노선은 86년 중에는 반외세 자주화와 직선제 개헌이라는 두 슬로건 중 주로 전자에 역점을 두 었으나, 86년 10월 발생한 건대 사태 이후 좌편향적 오류가 지적되면서 후자로 즉 직선제 개헌으로 중점이 이동되었는데, 이 경향은 87년 6월의 시민항쟁 및 그 후 선거 국면의 개시와 함께 NL 노선 의 기본 경향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 주요 부분은 대통령 선거전에서 김대중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 지 전술로 구체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NL 노선의 직선제 개헌 슬로건으로의 중점 이동에 따라 그 우편향적 오류의 문제 가 제기되었고 CA 노선이 NL 노선에 대항하면서 독자적 정파를 형성해 나갔다. CA 노선은 6월 시 민항쟁 과정에서는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87년 7-9월간 지속되었던 노동자 대투쟁에 고무되 면서 대통령 선거전에서 민중후보 전술을 구체화시켰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의 결과(비판적 지지 전 술의 실패)는 NL 노선에 비해 CA 노선이 상대적으로 옳았던 것을 사후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보여졌 으며, 이에 따라 CA 노선이 확산되고 CA 노선의 사회성격론이라 할 수 있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 주의론 (신식국독자론)이 NL 노선의 사회성격론인 식반론과 경쟁하는 3단계 논쟁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대통령 선거 후 NL 노선은 자기 비판이 강요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식 반론도 그간의 사회 성격 논쟁의 중간 결산으로서의 한국 사회 = 자본주의라는 다수의 합의에 근거 한 비판에 견뎌내지 못하고 半 봉건 규정을 半 자본주의 규정으로 개체하여 식민지 半 자본주의론 (식자 론)으로 자기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CA 노선이 88년 4월 총선 과정에서 추진했던 민중의 당 전술이 전체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고, 아울러 그 좌편향적 오류가 지적되면서 ND 노선과 - 5 -

PD 노선으로 분열되었으며 이에 편승하여, 다시 NL 노선(식자론)의 세력 만회 과정이 시작되었다. NL 노선은 88년 4월 총선 이후 남북 통일 논의의 활성화와 이에 따른 88올림픽 공동개최 투쟁 및 6ㆍ10 남북 학생회담 성취 투쟁을 계기로 다시 운동권(특히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의 주도권을 장악 하게 되었다. 사구체 논쟁이 학생 운동권 안으로 침투ㆍ확산된 경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시 운동권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81년 전학련(전국총학생회연합)이 해체된 후 다시 조직을 건설하지 못하고 투쟁위원회인 삼민투(민족ㆍ민주ㆍ민중투쟁을 의미)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85년 전학련 조 직원들이 출소하면서 고려대에서 삼민투 투쟁대회가 열렸고 이 당시 일본 서적을 번역한 맑스ㆍ레닌 원전들이 유인물 형식으로 유포ㆍ학습되면서 사상 투쟁이 시작되었고 본격적으로 사구체 논쟁에 동 참하게 되었다 이후 사구체에 대한 견해 차로 삼민투가 민민투(민족민주투쟁위원회), 자민투(자주민족투쟁위원회) 라는 두개 조직으로 분열되었다.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을 표방하던 민민투는 CA(제헌 회의파)로, 민족해방을 주장하던 자민투는 NL(Nation Liberation)로 명칭을 바꾸면서 조직을 재정비해 나갔다. NL은 IT(Identity Theory), 즉 主 思 (주체사상) 및 反 帝 反 封 建 주의를 핵심 사상으로 주장했으며. 80 년대 후반 CA는 제헌회의론을 폐기하고 민족민주주의를 제창하는 ND(Nation Democracy)를 핵심 주장으로 내세우게 된다. 아울러 주체사상에 반대하는 NL 좌파와 CA 일부가 모여 민중민주주의 계 열의 PD(People Democracy)를 조직함으로써 좌파 운동권 진영은 NLㆍNDㆍPD 진영으로 3분하게 된다. 이후 NL은 87년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ND는 사노맹(사회주의노 동자동맹)이라는 별도 조직을 구성한다. 사구체 논쟁의 흐름을 평가해 보면 2단계(86-87년) 국면에서는 NL 노선(식반론)의 압도적 우위와 CA 노선(신식국독자론)의 열세 구도를 보였으나, 3단계(88-90) 국면에서는 학계에서는 NL 노선(식자 론)에 대한 PD 노선(신식국독자론)의 우위 구도를 보였다고 볼 수 있으나 운동권에서는 NL 노선이 주류를 점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구체 논쟁의 핵심은 진보 진영이 한국사회 모순의 핵심으로 간주했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관 계를 어떻게 통일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NL진영은 한국 사회를 美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파악함으로써 민족 모순(제국주의 대 한국민중)을 기본 모순으로 계급 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설정하게 되고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론(NLPDR)의 입 장에서 反 美 운동에 앞장서게 된다. 또한 실천적 지도이념으로 북한의 주체사상 을 받아들여 사상적 통일의 기초로 삼았다. 반면 신식국독자론을 기반으로 한 CA 진영과 PD 진영은 전통적 맑스주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가 국제 자본주의 질서의 분업체계에 예속되어 있는 신식민지이지만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회이므 로 자본주의적 원리가 관철된다는 전제 아래 한국 사회는 이미 자본주의의 모순이 첨예화된 사회라 고 본다. 즉 한국 사회의 기본 모순은 계급모순이며 따라서 한국 사회가 신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특징인 독점자본화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므로 독점자본과 그 상부구조인 파시즘을 중요 한 공격대상으로 설정한다. 또한 북한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反 주체사상 ㆍ 非 주 체사상 의 입장을 띄게 된다. 11) - 6 -

이러한 사회구성체(사구체) 논쟁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규명하기 위한 일련의 지적노력으로 진보적 지식인층에서는 이를 분단 이전의 정치경제학적 전통의 복원이며 학술 운동과 실천운동간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쟁은 일반적으로 그 진전 과정에서 구체적 현실에 대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논의와 정통성 시비가 횡횡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의 중첩적 구조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물론 현실 적 대안을 제시하는데 한계를 표출한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조잡한 이론 논쟁이었다고 평가된다. 12) 한편 사회과학 방법론 논쟁 13) 은 사구체 논쟁이 진행되는 와중에 출판된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 (1986)에 의해 촉발되었다. 이진경은 여기에서 기존의 사구체 논쟁이 구체적 분석보 다는 추상적 개념 논쟁에 빠져들고 있다면서 이는 방법론과 개념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만큼 최소한 의 방법론상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논쟁은 제국주의의 규정력에 관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식민지성과 반봉건적 생 산관계ㆍ국가 성격 문제를 구체적 대상으로 하여 역사적 유물론의 개념과 이론 틀을 검증하고 있다. 이처럼 철학적 기반과 방법론에 대한 논쟁은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ㆍ추상과 구체의 문제ㆍ객관성 과 당파성의 문제 및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을 유도하게 된다. 그러나 사구체 논쟁에서 처럼 방법론 논쟁도 전개 과정에서 교조주의와 종파주의에 빠짐으로써 가시적인 성과를 도 출하는데는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지막으로 역사 법칙 논쟁은 1988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게재된 유재건의 역사법칙론과 역사학 이란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의 유물론적 해석에 있어 사회구성체는 핵심적 개념이다. 경제적 사 회구성체의 발생ㆍ발전ㆍ소멸 과정은 바로 인간의 역사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사회과정 전체를 객관 적ㆍ필연적 방법으로 파악하는 것이 사적 유물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적 유물론에 어떤 법칙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성격을 갖느냐의 문제가 역사법칙 논쟁의 관건이 된다. 유재건은 역사의 유물론적 해석의 법칙을 1 역사발전 5단계론, 2 사적유물론의 일반 법칙, 3 자본주의 발전법칙으로 나누고 역사의 법칙은 현실과정의 구조화와 운동방식의 논리이므로 시대마다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바탕으로 1과 2가 불변의 일반법칙이라는 주장을 부인하고 3의 경 우만이 역사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했다. 특히 맑스의 역사 발전 5단게에 대한 단선 론적 수용을 비판하는 유재건의 논의는 다음해까지 이어 졌는데, 앞의 두 논쟁과는 달리 진지한 논 의가 전개되어 맑스주의 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3.2. 변혁주체 논쟁의 전개 : 민중론과 중민론 70년대 안병무와 서남동으로 대표되는 민중신학 진영에서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당 하던 다양한 게층을 포괄하기 위한 개념화 노력으로 제시되었던 민중 개념이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성격론ㆍ민중론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변혁주체로서 중요한 논쟁대상으로 대두되는데, 그 가운데 서 민중론은 다양한 분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다양하게 논의된 80년대의 민중론을 크게 대별해 보 면 맑스주의적 민중론과 소외론적 민중론으로 나눌 수있다. 맑스주의적 민중론 14) 은 민중개념을 자본주의 발전에 수반되는 계급분화와 관련지어 주로 계급 동 맹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맑스주의적 관점에 선 논자들은 민중을 주로 경제적 착취관계에 의 해 규정당하는 존재로 파악한다. 이들은 노종자ㆍ농민ㆍ도시빈민 등 경제 영역에서 사회적 생산을 - 7 -

담당하는 존재들이 경제적 기여에 걸맞는 잉여생산물의 분배에서 소외되어 버리는 점을 규명하고 자 본주의 경제법칙은 끊임없이 민중을 경제 발전의 희생자로 재생산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오늘 날에는 半 프롤레타리아트와 쁘띠 부르주아층으로 구성된 중간계층이 변혁운동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요한 동맹세력으로 부상했음을 인정하면서 이들과의 연대성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한완상은 소외론적 입장에서 맑스주의적 민중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민중 시대의 문제 의식>, <민중사회학>, <민중과 지식인> 등의 저서를 통해 민중을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지배 수단에서 소외된 존재라고 정의한다. 즉 민중은 정치지배 수단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동시에 생산 ㆍ분배 및 소비 전반에 걸친 행위로부터도 상당히 소외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정 도의 문화 수단도 갖지 못한 집단이라고 규정한다. 15) 그리고 민중의 존재양식을 스스로 민중이라는 자의식을 갖지 않는 卽 自 的 민중과 민중이라는 자의 식을 자각하고 있는 對 自 的 민중으로 나누어 고찰했다. 또한 지식인은 민중에 속하며 민중 가운데서 도 對 自 的 민중으로 卽 自 的 민중을 의식화 시켜야할 사명을 갖고 있으며 민중이 역사와 사회의 주체 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이 지향해야 할 개방사회로 통일된 민주적 복지국가를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산업화 과정에서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사회 중산계층에 대거 편입된 중간층에 대한 이해 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그동안 중간층의 보수적ㆍ친지배층적 성격을 강조했던 맑스주의 진 영은 87년 6월 시민항쟁에서 중간층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자 이들이 가진 상대적 진보성을 재 인식하게 되었고 민주화 과정에서 중간층의 역할을 강조하는 견해가 확산되었다. 16)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 전환기로 접어들면서 증가하기 시작한 중간층을 사회 변 혁의 보다 큰 기반으로 삼으려는 이론화 작업이 시도되었다. 사회학자인 한상진은 맑스주의적 민중 개념과 한완상의 민중 개념 모두를 비판하면서 변혁적 지향을 가진 중산층 17) 과 학생을 기층민중과 함께 민중의 유기적 구성부분인 중민 으로 정의하고, 중민 중심의 점진적 사회개혁을 주장했다. 중 민론은 맑스주의적 신식국독자론의 한국 사회 이해와 노동자 중심의 변혁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을 자본주의의 예속적 성격이라는 측면에 한정해 파악하는 견해는 이 데올로기적 편향을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한상진은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을 분리해 경제 적 모순은 기층 민중이 실생활에서 직접 느끼는 것이지만 정치적 모순은 오히려 중산층의 의식과 날 카롭게 충돌하기 쉽다고 역설하면서 중민 계층의 진보성과 변혁성을 주장하였다. 2.4 1990년대 : 이데올로기적 혼돈과 좌파의 분열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한국사회의 일단의 진보ㆍ좌파 이론들이 변혁운동 진영뿐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전반에 급속하게 침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6ㆍ29 선언과 정치ㆍ 사회 전반의 민주화 이후의 목표를 둘러싸고 진보ㆍ좌파 세력의 광범위한 연대가 깨지면서 사회 변 화의 주도성을 상실한데다 지배 블럭이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수동혁명)가 민주화 추진의 지배 적 경로가 되면서 급진적 사회변혁 운동은 급격하게 쇠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러한 진보 진영의 퇴조 경향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소련과 동유럽 등 현 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이다. 80년대 초반부터 독점 자본주의의 대안 체제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급 진적ㆍ진보적인 사회운동 세력들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보면서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다. - 8 -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혼란과 한국사회 전체의 보수화 경향이 맞물리면서 좌파 진영은 그 사회적 영 향력은 급속히 상실했으며, 한편으로는 새로운 대안 모색을 위한 다양한 사상적ㆍ이론적 시도들이 나타나게 된다. 2.4.1 맑스주의의 분화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현실적 좌절을 맛본 진보주의권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맑스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지적 노력을 전개한다. 18) 90년대 초에 전개된 한국 맑스주의 진영의 논의는 대체로 네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첫 번째는 맑스주의의 위기를 맑스주의 사상 자체에서 발견하고 맑스주의의 오류를 지적하는 이론 적 움직임이다. 이 주장의 대표적 논객으로 이병천(강원대 경제학과)을 들 수 있는 데 그는 사회주 의 실패는 맑스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계급대립의 존재와 계급 투쟁을 통한 계급없는 사회의 건설이라는 맑스주의의 명제 자체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신화로 바 뀌었고 맑스의 합리주의적ㆍ목적론적ㆍ결정론적 역사철학도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또한 노동자 계급 중심성을 비판하고 현실 세계의 다양한 운동주체의 승인과 함께 복합적ㆍ집합적 해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원적 민주주의인 민중주체 민주주의 를 목표로 내세운다. 즉 맑스를 넘어서는 맑스, 새로운 얼굴의 맑스, 상대적인 맑스, 非 맑스를 동반자로 하는 맑스를 추구 해야 한다는 것이다. 19) 이러한 이병천의 주장은 변혁운동의 노선과 주체의 새로운 설정을 모색한 것이며 결론적으로 사회 변혁 운동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한 각종 시민운동을 통해 새로운 노선을 찾아야 한다는 신사회운 동 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이런 입장에 선 일군의 지식인들은 한국사회에 시민계층이 형성되었다는 시민사회론을 주장함으로써 이후 시민사회론 논쟁의 한축을 담당하게 된다. 맑스주의 분화의 두 번째 흐름으로는 알튀세르의 수용을 들 수 있다. 이 주장은 80년대 PD 진영 의 대표적 논객이었던 윤소영(한신대 경제학과)에 이해 주도되었는데 맑스주의의 위기를 맑스주의적 으로 극복한다 는 문제의식 아래 알튀세르를 따라서 맑스주의 위기속에서 맑스주의를 전환시키기 위 한 노력이 전개되었다. 윤소영은 신식국독자론의 계급문제와 민족 문제의 문제설정은 기본적으로 여 전히 유효하다고 보면서도 맑스주의 위기는 맑스주의 역사 발전이 하나의 순환을 마쳤다는 것을 의 미하므로 새로운 형태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배적 형태를 전환시켜 이제까지의 순환의 중심 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순환의 중심 을 바꾼다는 것은 그때까지 공식화되었던 스탈린주의적 전위당 노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전위당은 계급투쟁을 위한 정세적 조직형태 이어야 한다면서 노동운동과 대중운동의 활성화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즉 黨 의 정치 라는 형태로 전 개되어온 지금 지의 계급투쟁ㆍ계급정치는 이미 낡은 것이라고 보고 정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정 된 黨 의 형태에 집착하는 기존 노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는 80년대 후반의 전통적인 맑스주의ㆍPD 계열의 전위당 중심의 변혁노선이 정치적 실천에서는 불충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견지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은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과 아무 연관성이 없으므로 계급투쟁이 중심성 및 최종적 지위를 강조하는 맑스주의의 근대적 표상은 해체되어야 하지만 계급 투쟁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다양한 갈등을 어떻게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접합시켜야 할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윤소영은 발리바르의 인 - 9 -

권의 정치 개념 20) 을 받아들여 인권의 구체적 대상으로 노동권과 여성권을 설정한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운동은 여성이나 사회의 모든 약자ㆍ피억압자의 보편적 시민권 및 인권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세 번째 흐름으로는 맑스주의의 재구성 움직임을 들 수 있는데 이는 구좌파로 일컬어지는 정통 맑스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21) 정통파 맑스주의자들은 90년대 한국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지구화ㆍ정보화 등으로 급변하는 세계 자본주의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되었 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비판적 무기로서의 맑스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신념은 유지 하면서도 종래의 국가 권력의 억압성이나 고용위기 같은 계급문제 뿐 아니라 환경ㆍ여성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이론적 틀속에 담아 내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22) 네 번째 흐름은 新 좌파적 맑스주의(New-left)로 이들은 구좌파의 노동자계급을 중심에 놓는 계급 중심주의는 민중의 참여와 실천을 저해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사회의 객관적인 구조분석 보다는 주체 형성 문제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또한 90년대 당시 유행하던 나아가 이들은 문화와 이데올로기, 언 어, 의식 등에 주된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 과정에서 프랑스 철학을 이론 형성의 기초로 받아들임으 로써 포스트모더니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新 좌파 맑스주의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흐름은 이진경 등 서사연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 실패와 자본주의의 모순 심화 속에서 근대성의 개념과 명암을 밝히 고 근대 계몽주의적 맑스주의를 넘어서 맑스주의가 개척해 놓은 탈근대적 사유의 공간을 열어가려는 움직임이다. 그 중심 인물인 이진경은 맑스의 인간관(노동하는 인간)을 비판하고 노동을 생활의 제 1욕구가 되는 자발적ㆍ창의적인 행동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근대 자본주의와 국민 국가의 전 형에서 탈피하기 위해 끝없는 탈주가 필요하며, 그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창조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코뮌주의 라고 주장한다. 23) 新 좌파 맑스주의의 또다른 흐름은 강내희ㆍ심광현 등이 <문화과학> 誌 를 중심으로 전개한 활동으 로 이들은 전통적인 맑스주의가 문화 개념을 경시해 온 상황에서 상부구조, 특히 문화에 커다란 관 심을 가지는 문화주의적 접근경향을 강하게 띄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사회 개념을 제시하는 강내 희는 독점자본에 의한 문화의 왜곡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문화 운동과 변혁 운동의 통일적 관계 를 인식하고 생산양식을 변혁시키기 위한 문화 운동의 전개를 주장한다. 즉 문화 운동은 문화 양식 의 변화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이 사업을 통해 사회변혁 전반과 연대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이다. 이에 반해 문화정치 를 주장하는 심광현은 정치와 문화의 관계 설정을 모색하면서 맑스주의의 한계가 근대과학 패러다임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근대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기술적 지배를 반대하고 사회시스템 전체의 재편에 필요한 새로운 합 리적 방법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新 좌파의 입장은 舊 좌파를 비판하고 극복하고자 하면서도 주관적으로 맑스주의 자체를 폐 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맑스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인정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舊 좌파와 입장 차이를 보인다 할 수 있다. 2.4.2 시민사회 논쟁 1980년대부터 변혁운동의 중심세력으로 논의되던 민중 의 개념이 1990년대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 - 10 -

의 전반적인 발전과 더불어 시민 이라는 말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기존의 민중 개념과 시민 개념의 차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차이가 무엇인지 24) 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민사회 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1990년대 초의 시민사회 논쟁은 1980년대의 사구체 논쟁만큼 규모가 컸다. 이는 첫째 1987년 6월 민주화 선언 이후 사회 운동이 전통적 노동ㆍ민족운동 이외 환경ㆍ여성ㆍ지역운동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둘째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80년대 변혁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에서 기인 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민사회 개념이 대두되었고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진보진영 내에 서 계급투쟁을 통한 사회변혁의 이상을 포기하고 다양한 사회계층간 연대를 통한 점진적 사회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이 많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요인들에서 출발한 시민사회론은 전통적인 맑스주의를 부정하고 변혁운동에서 노동자 계급 의 중심성을 부인한다. 다종 다양한 시민에 의한 시민운동의 전개야말로 변혁 운동이 나가야할 길이 며 근대의 긍정적 가치로 일컬어지는 자유ㆍ평등ㆍ연대의 구현을 과제로 삼았다. 이것은 사상적으로 보면 서구의 포스트맑스주의나 신사회운동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으나 한국의 시민운동이 노동 운동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점에서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시민사회 논쟁은 크게 자유주의적 시민사회론과 좌파적 시민사회론으로 구분 할 수 있다. 80년대말 민중사회학의 전통에 선 한상완은 시민사회를 억압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세 력 또는 저항 잠재세력으로 보고 시민운동 등에 나타나는 저항세력의 대두를 시민사회의 성장 및 활 성화와 동일시한다. 그는 노동자를 계급이 아닌 시민사회의 주체 내지 구성원으로 파악하면서 서구 선진국과 달리 한국 시민사회의 주체는 산업노동자와 중간층이므로 이들의 광범위한 연대가 사회운 동의 대안이라고 본다. 김성국(부산대 사회학과)도 한국사회에서 계급에 한정되지 않는 시민이나 중 산층이야말로 시민사회의 주체라고 평가하고 맑스주의에서의 계급과 마찬가지로 시민 역시 역사적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장에 대해 좌파적 입장의 시민사회론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주로 맑스의 이론 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던 그람시와 하버마스의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람시와 하버마 스는 모두 맑스의 토대 - 상부구조 모델에 나타나는 환원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정치ㆍ사회ㆍ문화 적 측면의 다원성을 파악하기 위해 시민사회 개념을 재구성 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중 한국사 회의 좌파 시민사회론은 주로 그람시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람시는 시민사회를 상부구조의 한 영역 으로 보고 부르주아 지배가 국가기구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ㆍ학교ㆍ조합ㆍ대중매체 등 시민사회에 뿌리내린 다양한 제도와 실천을 통해서도 유지되고 있다고 보았다. 즉 자본주의 사회 의 권력은 정치사회에 집중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합의를 기반으로 한 이데올로기(국가 헤게 모니 25) )로서 시민사회에 확산ㆍ침투되어 있으며, 국가는 시민사회 全 영역에 걸쳐있는 헤게모니의 총체로 변질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헤게모니 관계를 일상적으로 변질시키는 운동의 네트워크화(진지 전ㆍ기동전)기 중요하다는 것이다. 26) 좌파적 시민사회론의 입장에 서는 다른 인물로는 조희연(성공회대 종교사회학과)ㆍ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계급적 시각을 하나의 학문적 패러다임으로 수용하면서도 시민운동 을 중시하면서 참여연대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7) 한편 최장집(고려대 정외과)은 압축적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한국사회는 양적 성장에도 불 - 11 -

구하고 질적 측면에서는 큰 부작용을 유발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제 압축적 근대화의 성과에 기반을 두면서도 남북간 화해와 평화공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 지역감정에 기반한 비합리적 정치상 황의 극복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는데, 이는 계급투쟁보다는 시민사회의 발전을 통해 달성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분배문제와 노동문제의 해결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8) 이상에서 살펴본 시민사회론에 대해 정통 맑스주의 진영은 시민사회 라는 용어 자체에 위화감을 나타내면서 강도높은 비판을 전개한다. 즉 노동계급의 중심성을 인정하지 않는 시민사회는 계급타협 적 성격을 띠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변혁의 이상을 포기한 개량주의적 흐름을 띨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계급 중심적 사회변혁 운동은 현실에서 계속 실패를 맛보았고 90년대의 사회 운동은 시민운동이 장악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시민운동의 전개를 통해 80년대의 국가 대 민중운동의 구도가 국가와 시민사회의 다층구도로 점차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2.4.3 포스트모더니즘 1990년대 시민사회론의 흐름과 함께 한국 지식인계를 풍미했던 담론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1980년대 풍미했던 맑스주의의 한계가 드러나고 소비ㆍ문화ㆍ정보가 키워드가 되어가면서, 이론적 공백을 매우기 위한 대안으로 모색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초기 문화이론 분야를 중심으로 소 개되기 시작해 차츰 철학 및 사회학ㆍ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로 지평을 넓히게 된다. 이들은 맑스주의에 기반하면서도 계급 중심성에서 탈피, 문화ㆍ환경ㆍ여성ㆍ평화ㆍ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부류( 新 좌파)와, 푸코ㆍ데리다ㆍ들뢰즈 등 프랑스 철학을 받아들여 근대주의 의 전제인 이성에 의한 진보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인간 존재의 기본인 죽음ㆍ자유ㆍ욕망ㆍ행동 ㆍ권력 등에 대해 고찰하는 부류로 나뉘게 된다. 29) 그러나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열기는 1994-95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사그러드는데 그 원인으로 는 첫째 한국사회가 탈근대를 논의할 만큼 성숙되지 않은 점, 둘째 60년대 이후 서구의 주요 이론과 분석 방법이 충분히 소개되지 않은 점, 셋째 포스트모더니즘 논의가 최초 영문학자들에 의해 시작되 면서 철학적 뿌리인 프랑스 철학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미국화된 변형이론들이 주로 도입됨으로 써 사상적 토대가 취약했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2.5 左 派 의 결집과 정당의 결성 1990년대 내내 혼미를 거듭하던 좌파 진영은 1990년대말 두 가지 흐름으로 결집되는 양상을 보이 는데 그 첫 번째가 구좌파와 신좌파의 결합형식으로 탄생된 진보평론 의 창간이다. 1997년 여름호 를 끝으로 폐간된 이론 30) 지를 계승하는 형식을 빌린 진보평론 은 김진균ㆍ손호철ㆍ최갑수ㆍ김세균 등 신ㆍ구좌파 지식인 200여명이 모여 1999년 창간되어 3개월마다 간행되고 있다. 이론적 측면에서 진보평론 은 舊 좌파의 노동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등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프랑스 철학 등을 수용한 新 좌파의 연구 성과들을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 진영이 처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지형에 대해 신ㆍ구 좌파 양 진영이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진보진영이 보여준 또하나 흐름은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으로 대표되는 - 12 -

진보 정당의 창당이다. 2000년 1월 30일 민주노총 우파와 국민승리 21 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민주 노동당은 계급연합적 성격을 띠고 의회정치ㆍ선거를 통한 정치 참여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현실주 의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정당 결성 이후 빠른 속도로 대중적 지명도를 획득해 2004년 4월의 17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2명ㆍ비례대표 8명 등 총 10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 형성의 가능성을 시험받고 있다. 2.6 2002년, 이후 2002년은 좌파 진영에 있어 하나의 전기를 마련한 해일 것이다. 2002년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무명의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 사회의 비주류가 일순간 역사의 무대 한복판에 주연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당시 노 무현 후보의 선거 참모 상당수가 80년대 학생운동 경험이 있던 소위 386세대 인데다, 막후에서 정책 브레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들중 다수가 진보적ㆍ비판적 성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마침내 진보 진 영이 국가 핵심 포스트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31)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몇가지로 설명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원인은 IMF 의 구제 금융을 받게된 1997년 이후 우리 사회에도 20 : 80의 구도가 나타나면서 빈부 격차가 확대 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저변층의 불만과 갈등이 급속하게 확산된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사회 지배구조 및 지배층 전반에 대한 개혁과 교체 요구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 위기가 참신한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요인은 그동안 한국 사회를 이끌어 왔던 주류세력의 무능과 부패이다. 60년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 과정을 이끌어 온 것은 이른바 산업화 또는 근대화 세력으로 불리웠던 현실 참여 지식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권위주의 정권에 봉사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40여년간의 산업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물적ㆍ정신적 토대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20세기말로 접어들 면서 냉전의 종식에 따른 국제관계의 변화와 자본주의 경제의 세계화 등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상황 을 인식하지 못해 IMF 체제 편입이라는 국가위기 사태를 초래했으며, 국내적으로는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사회의 다양화ㆍ다변화ㆍ분권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구시대적 가치체계를 고수함으로써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된다. 더불어 이들에 의해 저질러진 각종 부정부패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그동안 한국 사회를 주도해왔던 그룹 전체가 부패집단으로 규정됨으 로써 이들에 대한 교체 열망이 점차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한국 사회에 급격하게 확산된 반미감정이다. 80년대 이후 좌파 지식인들에 의해 제기되 어 온 한미관계의 불평등 구조와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향에 대한 주장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폭넓 게 받아들여지면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기존 집권층의 대미 종속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2002년 6월에 의정부에서 발생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2명의 압사사건이다. 사고에 관련되었던 미군들이 무죄판결을 받을 것을 기화로 시작된 항의 시위는 이후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등 한미관계 전반에 대한 개선 요구로 이어지면서, 한미관계 의 대등화와 자주외교 노선을 내세운 노무현 후보측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을 바탕으로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지난 2년간 기존의 사회 질서를 변화시 키려는 의도를 노출시켰는데 정치적으로는 인터넷 언론 등의 활성화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를 - 13 -

추진하고, 경제적으로는 분배를 강조하는 평등주의적 정책에 치중했으며, 사회적으로는 기존 기득권 층의 지배구조를 타파 32) 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했다. 아울러 진보적ㆍ비판적 지식인 그룹은 이러한 정책들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이데올로그로서 활약하거나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등 다양 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33) 3. 좌파 지식인의 사상 흐름 평가 이상의 논의를 통해 한국 사회의 격동기였던 1960-2000년대까지 한국 사회가 급격한 변동을 겪 어온 과정에서 비판적ㆍ진보적 좌파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이론적ㆍ실천적 활동들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한국사회가 압축 근대화를 통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사회 諸 분야에서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변화가 심했으며 특히 군부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하던 격동기에 한편으로는 학문적ㆍ이 론적 접근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현장에서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시대를 고민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경주하였다. 그 결과 80년대 후반에는 국민들의 전폭적 지 지 아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민간 정부가 탄생하였으며 90년대 후반에는 해방 이후 최초의 수 평적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된 각종 부작용 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피지배층ㆍ소외계층의 경제적ㆍ사회적 여건을 향상시키 는데도 공헌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1980년대 후반,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거둔 진보 진영이 본연의 계급지향적 성향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하자 이들은 현실에 대한 설명 력은 물론 대중의 지지도 급속히 상실하게 된다. 나아가 기존의 주류세력과 마찬가지로 고도 산업화 국면에 접어든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역동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 새롭게 대두되고 있 던 사회 문제들에 대해서도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1997년 금융위기를 맞아 IMF 체제에 편입 되었을때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예측과 대안 제시에 실패했다는 면에서 진보적 지식 인 그룹도 주류 지식인들과 함께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34) 여기서 몇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좌파 진영이 자신들의 이론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을 적용 시키기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설명력과 예측력을 상실한 것은 우연인가? 만약 우연이 아니 라면 좌파 이론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인가? 정통 좌파 이론 자체에 별다른 결함이 없다면 한국 의 좌파 진영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좌파진영이 기반으로 삼고 있 는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평가이고, 다음으로는 한국의 좌파 지식인 진영에 대한 논의이다. 필자는 이 두가지 접근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시각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기존의 맑스주의 및 한국 좌파들에 대한 비판이 이데올로기적 논쟁의 성격을 띈 것들이 많고 이미 그런 시 각에서의 평가는 충분히 이루어졌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또 한가지 이유는 더욱 근본적인 것인데 좌 파 사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논쟁보다는 기독교적 시각을 갖고 접근하는 것이 이들 이론의 근본적 인 토대를 평가하는데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보자. 3.1 맑스 神 이여... 이 땅에 유토피아를... - 14 -

맑스주의는 그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인식론과 존재론 두가지 측면 모두에서 모두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우선 인식론적 측면에서 맑스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이성을 절대시하는 계몽주의적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맑스는 19세기 유럽 지성계를 지배하던 3대 사상 조류인 독일의 고전적 관념 론과 영국의 고전 경제학 그리고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이어받아 이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이중 독일의 고전적 관념론은 칸트ㆍ피히테ㆍ헤겔로 이어지며 이성적 관념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에 의해 창시된 영국의 고전 경제학도 합리적ㆍ이기적 인간 을 가정하고 있으며, 생시몽과 푸리에 등에 의해 제창되었던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도 인간의 이 성을 통해 사회를 평화로운 유토피아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들 사상들은 모두 계몽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들이다. 이러한 사상들을 흡수ㆍ종합해 탄생한 맑스주의도 인간의 이성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며 초인적 인 이성의 노력으로 이땅에 사회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맑스 자신 역시 초인적인 열 정과 불굴의 투지로 당대에 사회주의 혁명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불발로 끝났으며 그의 사 후 지금까지도 전 세계의 사회주의화는 실현되지 않은 꿈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성의 절대성을 신뢰하면서 사회발전의 법칙을 내세워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주장 했던 맑스주의가 파산한 작금의 현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있어 인간 이성의 노력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세상 만사가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 라는 간단하고 평범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이성은 근대 계몽주의가 전 제했던 것처럼 절대적이지도 완전무결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는데 있어서도 인 간의 인식 능력은 제한되어 있고, 따라서 문제해결 능력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 야 한다. 35) 더불어 절대적 이성관에 근거한 맑스주의가 그 이론 자체를 절대화함으로써 여타 이론이나 주의주 장을 개량주의나 수정주의 혹은 변절로 매도함으로써 불필요한 노선 투쟁을 유발하거나 갈등을 유발 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다. 둘째 존재론적 측면에서 맑스주의는 인간을 창의적이며 노동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는 긍정적 존재 로 간주하며 인간 본성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주고 있다. 긍정적이고 자발적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 경제적 모순이 존재하는 것은 잘못된 사회 구조인 자본주의로 인한 것이며, 따라서 사회적 모순을 유발시키는 자본주의만 타파하면 진정한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 해방을 이룰 수 있다 고 보았다. 즉 억눌리고 소외된 프롤레타리아들의 혁명에 의해 자본주의가 타파되고 인간의 이기심 을 유지시키는 사적소유제만 철폐된다면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유토피아적 사회주 의 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인간은 맑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긍정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욕망과 이기심으로 가득찬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이기적이고 탐 욕에 가득찬 인간의 본성이 단순히 사회 제도를 고치고 사적소유제를 철폐한다고 해서 선한 본성으 로 변화된다고 기대하는 것은 큰 오산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과거 73년 동안의 사회주의 실 험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인류 역사 이래 최고ㆍ최대의 실험이었다는 사회주의 실험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생산관계를 공산화하거나 사적소유를 없앤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 15 -

명백히 보여주었다. 36) 결국 맑스주의는 절대적 이성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인간이라는 원래부터 불가능한 두가지 전제 아래 성립된 신화나 종교에 불과한 것이다. 맑스주의가 여타 사회과학의 이론들과 달리 한세기 가까 운 세월에 걸친 실험에서 철저하게 실패했음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절대적인 신봉자들을 확보한 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신화성과 종교성 때문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 닐 것이다. 37) 3.2 Already... yet 그렇다면 한국의 좌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선 중요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좌파의 무능과 도덕적 부패이다. 현재 한국의 좌파는 사회 구조 전반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개선책을 제시할 만한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과거 아웃사이더로서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는가 하면, 공허한 이론 논쟁으로 정책 타이밍을 잃어버림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38) 또한 한국 사회가 엄청나게 변화했음에도 아직도 80년대 사구체 논쟁의 분석 틀을 가지고 우리 사 회를 재단하려는 시도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업화 주도세력의 쇠퇴와 함께 기존의 국가 주도의 성장 패러다임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좌파 진영에서 아직 이를 대체할 국가 발전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발전 모델은 국가의 운영 방향과 전략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국내외 환 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예측능력 그리고 국가의 현 실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전제로 한다. 따라 서 좌파 진영에서 아직도 구체적 발전 모델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 운영을 책임질 만큼 이론적ㆍ실천적 측면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단순 비판자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라 볼 수 있다. 아울러 지적할 것은 좌파 진영의 도덕 불감증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 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이중 잣대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않는다 는 점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이라는 의식이 진보 진영내에 팽 배하다는 의미이다. 진보진영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도덕 불감증은 바로 이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과거 기득권층이 보여주었던 행태와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지적해야 할 것은 사회적 편가르기를 통해 사회 구성원간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 이다. 이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는데 최근 다양한 이념 논쟁 전개과정에서 반대편을 사회적 절대악이며 척결대상으로 규정하고, 일반 국민들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줄서기를 조장하는 것은 분 파주의적이며 분열주의적 행동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처한 입장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한 사회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 은 그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시키며 성숙한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차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나 집단을 도덕적 파탄자나 사회악으로 규정 하며 척결대상으로 매도하는 것은 자신들만이 옳고 선하다는 독선과 아집에 다름아닌 것이다. 이러 한 편가르기와 분열주의적 행동은 결국 한 사회 공동체의 화합과 성숙을 위한 역량 결집보다는 혼란 과 냉소주의 등을 불러옴으로써 서로간에 생채기만을 남기게 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 16 -

정체성과 생존마저도 흔들리게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1) 본 글에서는 비판적, 진보적, 급진적, 좌파 등의 용어들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보다는 포괄적으로 한국 사회의 변혁 운동에 참여했거나 변혁 이론을 주로 연구한 지식인 그룹들을 지칭하는데 혼용했음을 밝혀 둔다. 2) 임방현은 혁명과 지식인 ( 정경연구, 1968), 발전 국가에 있어서의 지식인 (1969) 등의 글에서 기능론자 E.SHils의 이 론을 바탕으로 신생국 근대화와 인텔리겐챠 또는 지식인 사이의 관계를 규명했으며, 공화당 정권에 의해 주도되어 공업화 가 어느정도 진전된 1960년대 말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비판적 지식인 그룹을 반대주의자 로 비 판하면서 지식인들의 정권 참여를 정당화하고 있다. 3) 칼 만하임은 지식인의 탈계급성 내지는 보편계급적 역할의 가능성을 강조하는데, 그는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갖는 지식인을 교육이라는 공통의 요소에 의해 특정 계급의 이해로부터 벗어나 사회적으로 자유부동 할 수 있는 존재(die sozial freischwebende Intelligenz)로 규장한다. 그리하여 지식인은 서로 배타적인 계급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해명하여 그것 들이 지니는 부분적인 진리를 하나의 종합적 진리로 합명제(dynamic synthesis)한다고 설명한다. K. 만하임, 이데올로기 와 유토피아, 청아출판사, p 216-229 4) 송 욱 한국 지식인과 역사적 현실 (사상계 영인본 16권, 1965년), 김영모 지식인은 대중을 어떻게 보는가 (사상계 영인본 17권, 1966), 한흥수 대중 세력 형성과 지식인의 역할 (사상계 영인본 17권, 1966) 등에서 보여준 대중론과 지식인론의 결합에 대한 문제 의식은 1970년대 민중론에 상당히 근접한 것이다. 5) 한국사회의 근대화를 주도했던 학자들의 경우 정치학은 방법론으로 행태주의와 구조기능주의, 이론은 근대화론ㆍ정치문화 론ㆍ정치발전론ㆍ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등을 사상적 기반으로 했으며 경제학은 사무엘슨의 신고전파 종합이론, 사회학은 탈코트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 역사학은 실증주의에 기초한 주체적 민족사관, 교육학은 행동주의 등이 지배적인 패러다임 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했다. 6) 이는 반공주의가 지배적이던 사회의 현실과 학문적 토향과 여건의 미성숙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7) 1인당 국민소득이 1961년 82달러에서 1979년 1,647달러로 늘어났으며, 1962-1978간 연평균 GNP 증가율은 19.4%에 달했 다. 8) 현대 기술문명 비판 -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철학 (독서생활, 1976년 3월호)에 차인석ㆍ김종호ㆍ유준수ㆍ이규호 등이 호르크하이머ㆍ아도르노ㆍ마르쿠제ㆍ하버마스를 소개하는 글을 게재했으며, 이 외에도 정문길 프롬의 정신분석과 소외 연 구 (소외론 연구, 1978), 김호진 종속 이론의 비판적 고찰 (제 3세계의 정치경제학, 1984) 등이 있다 9) 80년대 맑스주의의 용은 두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는데, 하나는 종래 금서로 지정되었던 이념 서적의 일부가 해금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공식적 승인없이 사회운동과의 연계아래 소련과 동구권의 맑스ㆍ레닌주의 교과서가 유입되어 번역ㆍ유포ㆍ학습됨으로써 진행되었다. 10) 박현채 현대 한국 사회의 성격과 발전 단계에 관한 연구 -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둘러싼 종속이론 비판 (창작과 비평 부정기 간행물 1호, 1985) pp. 301-45, 이대근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에 관하여 -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관하여 (같은책) pp. 346-73 11) 식반자론과 신식국독자론의 변혁론에서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전자는 현재 군사통치 성격에 있어 제국주의의 하수인적 성격을 중시하는 데 반해, 후자는 독점자본의 계급적 도구라 는 측면을 중시한다. 2 전자는 통일전선(이하 통전)의 성격을 反 帝 反 봉건 통전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反 帝 反 독점 통전이라고 본다. 3 전자는 민족자본을 동맹 내지 제휴대상으로 간주하며 후자는 非 독점자본을 제휴 내지 무력화, 중립화 대상으로 간주 한다. 이 때 민족자본과 非 독점자본의 외연은 일치하지 않는다. 4 자유주의 정파(보수야당)에 대해 전자는 강력하게 견인할 대상으로 보나 후자는 자유주의 정파가 궁극적으로 민중을 부르조아 헤게모니에 포섭할 뿐이므로, 그 개량적 성격을 부단히 폭로하여 민중의 의식적 급진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본 다. 5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평가에 있어, 전자는 민족 모순의 독자성, 선차성을 주장하면서 민족 모순의 우선 해결을 주장하는 반면, 후자는 민족 모순과 계급 모순의 결합, 그 중에서 계급 모순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민족 모순의 해결( 反 帝 ) 보다, 反 파쇼 혹은 反 독점을 우선시킨다. 다시 말하여 전자는 주요 모순을 민족 모순, 외세와 민중 간의 대립으로 설정하 는 반면, 후자는 그것을 계급 모순, 독점자본과 민중 간의 대립으로 설정한다. 6 결국 현 단계 한국 사회 변혁의 기본 성격에 대해, 전자는 그것을 " 反 帝 反 봉건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으로 규정하는 반면, 후자는 " 反 帝 反 파쇼민중민주주의혁명"(AIAFPDR)으로 규정한다. 12) 김수행은 한국 사회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사회비평 9호, 1993)에서 사구체 논쟁이 1) 현실의 역동성을 부정ㆍ외면하 고 역사과정엥 대한 목적론적이고 고정적인 관점만을 강조했으며, 2)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종착점에 대한 구체적ㆍ과학적 분석이 결여되었고, 3) 사회 변동을 경제주의적 관점에서 예단함으로써 계급갈등의 성격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13) 사회과학방법론 논쟁과 역사법칙 논쟁에 관한 부분은 정문길 한국 마르크스학의 지평 (2004)에 의존했다. - 17 -

14) 맑스주의적 민중론을 주도한 그룹은 주로 강단의 학자군 보다는 운동권 학생이나 노동현장에서 경제거 약자의 현실을 날 마다 체험하고 있던 운동가들이었다. 15) 이러한 한완상의 민중 개념은 한편으로 <파워엘리트> 등의 저자인 미국의 라이트 밀즈 등 서구 비판사회학(radical socialogy)의 영향을 받으면서 또 한편으로 군부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70년대 민주화 운동 진영 특히 민중 신학 진영의 민중 개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정통 맑스주의에서는 생산수단에서 소외되었지만 생산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 계급만을 민중으로 규정하지만 민중신학에서는 생산력의 소유여부와 상관없이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을 민중이라고 정의함 으로써 훨씬 광범위한 계층을 포함하고 있다. 16) 맑스주의 진영은 중간층의 이해 및 위상과 관련하여 신반론과 신식국독자론 사이에 적지않은 견해 차이가 있었다. 변혁 운동의 본질은 민족해방에 있다고 보는 식반론에서는 민족 해방을 기본적으로 각 계급과 계층을 뛰어넘는 민족 전체의 과 제로 설정하고 관념적으로는 중간층도 변혁 운동의 중요한 세력의 하나라고 본다. 이에 비해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을 독 점의 강화와 종속의 심화로 정리하고 있는 신식국독자론에서는 기본 모순은 계급 모순이고 주요 모순은 제국주의 및 파시 즘과 민중간의 모순이라고 설정하고 쁘띠 부르주아층인 중간층은 변혁 운동의 기본 세력이 아니라 동맹 세력이라고 보고 있다. 17) 이른바 넥타이부대로 대변되는 중산층은 87년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상당한 응집력을 보여주었으나, 87년 여름 노동자 대 투쟁과 88년 통일투쟁을 겪으면서 급속하게 운동권 진영에서 이탈하게 된다. 18) 현실 사회주의 붕괴라는 외적 충격에 직면해 한국의 진보학계가 보인 희화적 반응에 대해 김동춘은 다음과 같은 3가지 현상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1 80년대 중반 경쟁하듯 정통주의 노선이 등장하다가 현존 사회주의 붕괴에 맞물려서는 정 통주의를 버리고 탈맑스주의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 2 맑스ㆍ레닌적 관점을 더욱 순수하게 견지하려던 PD이론이 어째서 사변적 알튀세리안적 맑스주의에 더 집착하는가 하는 점, 3 겉으로는 이질적일 것 같은 80년대 중반의 정통주의 와 알튀세르적인 구조주의적 맑스주의가 갖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김동춘,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맑스주 의 이론의 성격 변화와 한국 사회과학, pp. 302-03) 19) 이는 자본주의 비판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를 고수하면서도 맑스주의 이론에 철학, 국가와 정치이론 경제이론, 여성해방이 론, 에콜로지 등 非 맑스주의적 진보 이론의 유산을 흡수하고 사회변혁 운동에서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부정하는 포스트 맑스주의와 유사하며 실제로 이병천이 포스트 맑스주의 제창자인 라클라우ㆍ무페의 이론에 기대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 었다. (김동춘, 앞의 글) 20) 발리바르는 인권의 정치 의 핵심은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평등과 자유의 동일성이라고 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주체화 양식의 접합이라는 새로운 문제 설정을 제시하였다. 즉 인권의 정치 에서 인권은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타자에게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으로서의 시민권을 의미한다. 21) 90년대 맑스주의적 입장의 글들은 주로 <이론> 紙 (92-97)를 통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전통적맑스주의 입장에서 문제해 결을 시도한 글들 이외에도 신좌파적 입장의 글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22) 이러한 노력속에 다양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김성구(한신대 경제학과)는 전통적인 신식국독자론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가 여전히 미국의 강한 지배속에 독점과 예속 이 유지되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정성진(경상대 경제학과)은 트로츠키 주의를 수용한 국제사회주의(IS)적 입장에서 舊 소련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자본주의의 역할을 담당한 국가 자본주의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현실 사회주의 붕괴는 진정한 사회주의의 실패로 볼 수 없으며 당연히 현재 진행 되고 있는 각종 개량주의는 일시적인 추억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있는 것이다. 또한 類 似 사회주의가 실패한 만큼 세계 는 이제부터 진정한 사회주의의 혁명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런 점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체제의 주변부적 위치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것은 확실할지라도 그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그외 김진균(서울대 사회학과), 김수행(서울대 경 제학과), 최갑수(서울대 서양사학과),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김세균(서울대 정치학과)등이 舊 좌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23) 서사연의 또다른 인물인 윤수종(전남대 사회학과)은 국가권련과 구별되는 구성적 권력, 즉 폭력을 내재한 자본주의 사회 의 억압성을 전복하기 위해 그 주체이어야 하는 민중의 혁명 가능성 등을 전망하는 A.네그리의 관점을 받아들여 소수자 운동 과 대안운동 을 중시한다. 소수자운동을 중시하는 윤수종은 이른바 신사회운동 에 입각한 시민운동은 물론 전통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견지한다. 24) 군부 권위주의 정권 퇴진을 목표로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1970-80년대의 민중운동과 구별되는 새로운 운동 형태들을 통상 시민운동이라 지칭한다. 조희연은 시민운동은 계급적 라인(class-line)을 따라서 조직화되는 전통적인 사회운동과는 달 리 非 계급적 라인을 따라 조직화되고 전개된 80년대 후반 이후의 다양한 운동형태들이라고 규정한다.(조희연, 한국의 민 주주의와 사회운동, 당대, pp 221) 25) 헤게모니는 시민사회에서 지배 계급이 지적ㆍ도덕적인 행사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피지배 집단의 자발적 동의를 말한다 26) 그람시 이론을 중심으로 시민사회론을 주장한 인물로는 유팔무(한림대 사회학과),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등이 있는데 유팔무는 한국 시민사회의 전개과정을 식민지와 분단상황 하에서의 바깥에서 안으로 ㆍ 위로부터 아래로 의 시기와 1960년 대 이후 급속한 자본주의화를 통한 아래로부터 위로 발전한 시기로 나누며, 김호기는 87년 이후 시민사회가 국가 대 시 민사회의 단일구조 에서 국가와 시민사회의 다층구도 로 변화했다고 강조한다. 27) 김동춘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또한 노동자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계급분석과 자본주의비판으로서의 맑스의 패 러다임음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28) 최장집은 초기 그람시 이론을 국내에 소개했으나 이후 학문적 탐구를 통해 그람시를 넘어서고 있으며 시장의 기능을 인 - 18 -

정하는 한편 부의 재분배와 노동문제의 병행해결을 주장하는 점에서 맑스주의나 자유주의 어느 한편으로의 획일적인 분류 가 곤란하다. 29) 이정우는 사회주의권 붕괴후 한국 지성인은 관념체계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받았고 그것이 90년대 들어와 세가지 흐 름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즉 첫째 맑스주의 내부에 머물면서 알튀세르나 그람시로 기운 흐름, 둘째 자신을 포함해 맑스 주의 시대부터 이미 맑스주의 외부에서 사고하기를 갈망했던 사람들이 현대의 맑스 즉 푸코로 기운 흐름, 셋째 진보진영 과 결별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기운 흐름이 그것이다. 또한 한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철학이 아니라 비평이며 프랑 스 철학자들을 짬뽕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이정우, 90년대 한국의 사유와 변환 (현대사상, 1999년 통권 7 호) 30) 이론 지는 진보진영이 위기를 맞고 있던 1992년 여름호부터 노동 해방과 인간 해방을 위한 이론과 실천의 전통을 계승 해 해방을 위한 역사의 새로운 순환을 준비하고 이를 위한 이론적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었으나, 재정 압 박을 견디지 못해 1997년 여름호(17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31) 2004년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또다른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데,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현안이 최대 이슈로 부각되면서 이를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패배하고,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초과하는 의 석과 민주노동당이 10석의 의석을 차지했다는 사실 이외 과거 운동권 출신과 진보진영 인사가 다수 원내로 진입하게 되어 좌파 진영이 명실공히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을 장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32) 사회분야에서 기득권층의 지배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정책은 다양하게 추진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언론관계법 개정 ㆍ과거사법 제정ㆍ국보법 폐지ㆍ사학법 개정 등 이른바 4대 입법과 신행정수도 이전 등 국가 균형발전 전략 등이 있다. 33) 비판적 지식인 그룹중 정권에 참여한 대표적 인물로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ㆍ김대환 노동부 장관 등이 있으며, 대표 적 이데올로그로는 임혁백 고려대 교수ㆍ김형기 경북대 교수 등이 있다. 34) 진보 지식인들 스스로 국가에 대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사회 과학자는...비판을 통해 사회의 자기정정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 임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90년대 우리의 사회과학은 그 임무를 포기 하고 말았다 (손호철, 앞의 글, p158), 80년대 말이후 경제 현상의 정확한 분석에 실패한 주류경제학ㆍ맑스주의 경제학 ㆍ정치학자ㆍ사회학자들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어떤 사회과학자도... 지적인 성실성과 국가에 대한 책임성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김동춘, 앞의 글, p162) 35) 심리학자이나 행정학자인 H. 사이먼은 인간 인지력과 합리성의 한계를 규정하는 용어로 제한적 합리성이라는 용어를 사 용하고 있으며, 현대 정치학ㆍ경제학 등 주요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인간이 제한적인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기본 전제로 받아 들인다. 36) 이는 현실 맑스주의자들의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소련 붕괴후 공산당 간부 출신의 대통령들이 공산당을 불 법화하고 재산을 몰수하는가 하면...사회주의 중국에서는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생산관계는 바뀌었는데 왜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 것일까...결국 생산관계를 사회주의로 바꾸는 것이 공산주의적 인간을 창 출하지 못했다고 결론지었다 이진경, 현대 프랑스 사상의 한국적 이해와 수용, 당대, pp. 180-183 37) 피터 버거도 사회주의는 신화적 요소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신화 그 자체이며 그리하여 사회주의는 일군의 정치 강령 이자 사회과학적 해석의 원친일 뿐 아니라 현대의 가장 강력한 신화중 하나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경험적 증거에 의해 그 실패가 증명되더라도 이러한 신화적 성격을 계속 유지하는 한 추종자들의 마음을 바뀌놓지는 못한다 고 지적하고 있 다. 38) 최근 경기 침체를 둘러싸고 진행된 경기 부양 우선이냐 경제개혁 우선이냐의 논쟁, 경제정책 기조와 관련해 분배 우선이 냐 성장 우선이냐의 논쟁 등 -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