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출 문 한국고전번역원장 귀하 본 보고서를 연구과제인 일제강점기 전통지식인의 문집 간행 양상과 그 특성에 관한 연구 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연구과제명 일제강점기 전통지식인의 문집 간행 양상과 그 특성에 관한 연구 연구기간 2012. 11. 7. ~ 201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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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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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 史 館 論 叢 第 93 輯 法 의 실시, 良 役 變 通 의 논의 등 사회 경제적 변화가 추진되는 양상도 그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2) 그렇다면 조선왕조의 체제구축과 성리학의 이기심성론은 어 떠한 관계가 있는 것이며, 그것을 둘러싼 논쟁

대해서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交 通 放 送 은 96 年 상반기도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交 通 專 門 放 送 으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자 모든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委 員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더욱더 사랑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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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주선생

나하나로 5호

98 농업사연구 제 6권 1호, 한국농업사학회, 주요어 : 농업기술, 농서집요, 농상집요, 수도, 휴한법, 연작법 1. 머리말 한국사에서 14세기는 고려왕조에서 조선왕조로 국가 지배체제가 크게 격변한 시기였다. 고려말 고려 사회 내부와 외부에서 발생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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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喜 甲 委 員 ; 金 喜 甲 委 員 입니다. 本 委 員 은 地 下 鐵 淸 掃 用 役 繼 續 締 結 要 望 에 대한 請 願 을 하 고자 합니다. 請 願 의 基 本 要 旨 는 1974 年, 즉 21年 前 부터 地 下 鐵 公 社 와 隨 意 契 約 으로 淸 掃 用 役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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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추 일기

궁궐은 국왕이 국가 업무를 처리하는 공적인 영역과 국왕 및 그의 가족들의 개인적 삶이 이루어지는 사적인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경복궁은 태조 3년(1394) 짓기 시작하여 1년 만에 완성하였다. 궁궐의 전각 배치 및 명칭 은 아무렇게나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간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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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요 행 사 일 시 임시총회 및 부회 (금), 14:00 학술세미나 5. 11(금), 10:00 學 術 院 소식 임원회 개최 11월 임원회가 11월 3일(금) 오후2시 학술 원 중회의실에서 임원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번 임원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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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언어와 상관없이 시국적 내용이다. 발표매체별 집필 수(K=조선어 N=일본어) 1939년 기사 등 K 文 章 3 三 千 里 2(좌담2포함) 女 性 1 作 品 1 東 亜 日 報 1 N 国 民 新 報 2 소설 K 文 章 년 기사 등 K 三 千 里 10(좌담4

19세기 경상도의 유교전통과 민족종교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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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년도제 2 회경상남도지방공무원임용필기시험합격인원및합격선 합격선 : 조정점수가있는직류는총점으로표시됩니다. 직렬명 임용선발예정출원응시필기합격자기관인원인원경쟁률인원응시율인원 합격선 비고 합계 1,944 18, , % 1,765 - 간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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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변동에 따른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 전문대 학의 역할 변화와 지원 정책 및 기능 변화를 살펴보고, 새로운 수요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전문대학의 기능 확충 방안을 모색하 였다. 연구의 주요 방법과 절차 첫째, 기존 선행 연구 검토


통신218-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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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2-1> 시군별 성별 외국인 주민등록인구 ( ) (단위 : 명, %) 구분 2009년 2010년 외국인(계) 외국인(여) 외국인(남) 성비 외국인(계) 외국인(여) 외국인(남) 성비 전국 870, , , ,

14 이용복 간단히 알아본다. 이어 고조선 강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적과 발굴된 당시의 청동 기 유물을 통하여 천문학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특히 청동기 유물에 나타난 문양을 통하여 천문학적 요소나 흔적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고조선의 역사 고려( 高 麗 ) 시

부여출신이라하여자신의성을부여씨 ( 扶餘氏 ) 라하였다. 신라의박 ( 朴 ) 혁거세는박처럼생긴알에서나왔다하여박의음을따성을만들었고, 김알지는금궤에서나왔다고하여성을김 ( 金 ) 이라고하였다. 그러나역사문서를보면삼국시대초기부터성을사용한것은아니다. 고구려는장수왕때 ( 재위 41


70 한국과학사학회지 제35권 제1호 (2013) 의 수준에 이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 비 롯한 국학연구 기관들과 국립과천과학관, 한국천문연구원 등에 소장되어 있 는 조선시대 역서들의 숫자들을 모두 합하더라도 불과 수백 책의 수준을 넘

Transcription:

2012년도 한국고전번역원 연구과제 최종보고서 ITKC-2012-RR-01 고전번역기본/고전번역연구/연구과제 연구책임자 : 황 위 주 2013년 3월

제 출 문 한국고전번역원장 귀하 본 보고서를 연구과제인 일제강점기 전통지식인의 문집 간행 양상과 그 특성에 관한 연구 의 최종보고서로 제출합니다. 연구과제명 일제강점기 전통지식인의 문집 간행 양상과 그 특성에 관한 연구 연구기간 2012. 11. 7. ~ 2013. 3. 7. 연구진 연구책임자 공동연구원 실무간사 황위주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김대현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김진균 (성균관대학교 RF연구교수) 이상필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이향배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이미진 (경북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제출일: 2013년 3월 7일 제출자: 황위주 서명: (인)

목 차 요약문 Ⅱ Abstract Ⅲ 1. 머리말 1 2. 조사의 목표와 일정 3 3. 지역별 문집간행 양상 4 1) 서울 경기지역의 근대문집 [김진균] 4 가. 조사방법 4 나. 문집 간행의 특징 5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8종) 5 라. 기타 주목할 만한 문집 (11종) 6 2) 호서지역의 근대문집 [이향배] 8 가. 조사방법 8 나. 문집 간행의 특징 9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12종) 10 라. 기타 주목할 만한 문집 (9종) 11 3) 호남지역의 근대문집 [김대현] 12 가. 조사방법 12 나. 문집간행의 특징 13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25종) 13 라. 기타 유의할만한 문집 (46종) 16 4) 대구 경북지역의 근대문집 [황위주] 21 가. 조사 방법 21 나. 문집 간행의 특징 21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16종) 22 라. 기타 유의할만한 문집 (24종). 24 5) 부산 경남지역의 근대문집 [이상필] 26 가. 조사방법 26 나. 문집간행의 특징 26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13종) 27 라. 기타 주목할 만한 문집 (5종) 28 4. 맺음말 : 향후 과제 29 <부록 : 지역별 근대문집 목록> 35 - I -

요약문 본 보고서는 일제강점기 전통지식인의 문집의 간행 양상과 그 특성에 관하 여 조사 연구한 결과물이다. 일제강점기는 식민지적 근대성이 제고되는 흐름 속에서 전통지식의 한문이 단절과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시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시기는 한문이 끝난 시대도 아니었고, 한글이 국문인 시대도 아니었으며, 일본어가 국어 자 리를 강탈한 왜곡된 현실 속에 한문과 한글이 모두 그 주변부에 공존했던 시 대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갑오개혁이라는 혁명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지속된 이 시기 한문 글쓰기는 일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작용했던 결과로 주목된다. 그리하여 이전에 미 처 간행하지 못한 문집을 간행하거나, 기존의 문집을 다시 간행하기도 하고, 당대의 글을 새로 간행하는 일 또한 허다하였으니, 이 시기 간행된 문집은 조선시대 전시기를 걸쳐 간행한 문집 총량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는 지금껏 단 한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전통지식인들 의 문집간행 실상 을 파악하되, 서울 경기권, 충청권, 호남권, 대구 경북권, 부산 경남권 등 5개권역으로 구분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여 각 권역별로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집에 대하여 그 판단 근거와 내용 을 간단히 소개하였다. 그 결과, 1910년 이후 사망한 근대 인물의 문집은 서울 경기지역 52종, 호 서지역 302종, 호남지역 663종, 대구 경북지역 391종, 부산 경남지역 462종 으로, 총 1800여 종으로 집계되었다. 본 조사 결과는 향후 한국고전번역원 한 국문집총간의 후속사업인 보유편( 補 遺 篇 ) 편찬의 방안을 모색하고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행되어야 할 어떤 문집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하는 판단근거로는,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국사급 인물인지의 여부와 특정 인물의 구체적 행적이나 업적, 그리고 남긴 글의 규모나 내용 등을 고려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으며, 한편 시기적으로 도 융통성있는 하한선의 기준을 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키워드 :한국고전번역원,한국문집총간 보유편,일제강점기,근대문집,문집간 행양상,근대지식인 - II -

Abstract This report is the results of research on the aspect and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intellectual's published collection of works during the Colonial era. The Colonial era can be seen as the time when the Chinese words which had been used in traditional knowledge began to disappear. However, the time was not the era in which the Chinese words disappeared and Korean language was officially used but the era that Chinese words and Korean coexisted in a distorted reality that Japanese took the position of official language. Despite the revolutionary change of the Gabo Reform, writing in Chinese was continued due to the strong resistance against Japan. Therefore, it was common to publish collections of works which had not been published before, re-publish existing collections and publish new collections of works, which is why the number of collections outnumbered that of collections that had been published through the Joseon dynasty. So this report would deal with the reality of publication of traditional intellectuals collections of works in the Colonial era -this issue has not been paid enough attention until now-, divide the nation into five parts(seoul and Kyunggi, Chungcheong, Honam, Deagu and Kyungbuk, and Busan and Kyungnam) to conduct the survey and analyze the results. Finally, the study would introduce the contents of valuable collections by the districts and why. As a result, the number of the collections of works by modern figures(died after 1910) was estimated as follows. Seoul and Kyunggi 52 volumes, Hoseo 302 vols, Honam 663 vols, Deagu and Kyungbuk 391 vols, and Busan and Kyungna 462 vols 1800 vols in total. This research is designed to be utilized as basic materials - III -

to consider the way to publish supplements which are the following business of publishing collections of Korean works by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and check the validity of them. In the process, it is needed to suggest the standards in choosing the collections and how. So what should be considered are the activities or achievements of writers, entire volumes and the contents of his or her works, and whether they are representative figures of not. On top of that, time ought to be determined in a flexible manner. - IV -

1. 머리말 한반도의 기록문화는 1894년 갑오개혁을 기점으로 하여 지난 2천여 년 동안 지속해 왔던 한문시대를 청산하고 마침내 한글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이와 같은 통설에는 물론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과거시험을 폐지하고 국문 산술 외국사정 등을 포함한 별도 시 험으로 관리를 등용함으로써 한문 학습의 가장 근본적인 추동력을 상실하 였고,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을 근본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첨부하거 나 혹 국한문을 혼용한다. 는 공문식( 公 文 式 )을 확정 반포함으로써 국가 의 공적 글쓰기에서 국문사용의 원칙을 천명하였으며, 전국에 걸쳐 소학 교(보통학교) 고등학교 고등여학교 사범학교 외국어학교 등을 설립하여 근 대식 교육을 시작함으로써 마침내 한문이 교육의 전부에서 학교 교과의 일부로 전락하는 상황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런 제도적 혁신과 상관없이 한문을 여전히 중 요한 기록 수단으로 삼아 글을 쓰고 문집을 생산한 인물이 전국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하였다. 전통 유림을 계승한 전우( 田 愚.1841-1922) 유필 영( 柳 必 永.1841-1924) 유인석( 柳 麟 錫.1842-1915) 장석영( 張 錫 英.1851-1929) 노상직( 盧 相 稷.1855-1931) 곽종석( 郭 鍾 錫.1856-1919) 송준필( 宋 浚 弼.1869-1943) 하겸진( 河 謙 鎭. 1870-1946) 조긍섭( 曺 兢 燮.1873-1933) 등과 이들의 수많은 문하생은 말할 것도 없고, 한말 변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던 김윤식( 金 允 植.1835-1922), 민족주의자의 대표적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신채호( 申 采 浩.1880-1936),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한 박 은식( 朴 殷 植.1859-1925)과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 李 相 龍.1858-1932), 중국 망명객으로 생을 마감한 이승희( 李 承 熙.1847-1916)와 김택영( 金 澤 榮.1850-1927) 등이 모두 다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이 갑오개혁이란 혁명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한문 글쓰기를 지속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있을 것이다. 국가의 어문정책과 별개로 어 린 시절부터 한문 글쓰기에 아주 익숙했던 결과이기도 할 것이고, 국문사 용 원칙의 천명이 너무나 갑작스럽고 일방적이어서 미처 여기에 대응할 준비를 하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며, 나라의 국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 1 -

개혁방안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현실을 직면하여 표기언어 선택 상 의 문제가 중심적 관심사가 되기 어려운 사정도 작용했을 법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실상 개혁 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외세, 특히 일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심각하게 작용하였다. 갑신정변(1884)때 이미 다케조 애[ 竹 添 進 一 郞 ]가 이끄는 일본공사관 병력의 공조가 있었던 것은 잘 알려 진 사실이거니와, 갑오개혁 때도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의 간섭이 집요하 게 작용하였다. 1차개혁(1894.7-1894.12)때는 일본공사 오토리[ 大 鳥 圭 ]의 내정개혁안과 7천명 일본주둔군이 개혁 배후에 있었고, 2차개혁(1984.12-1985.7) 때는 현직 내무대신 이노우애[ 井 上 馨 ]가 조선주차특명전권공사( 朝 鮮 駐 箚 特 命 全 權 公 使 )로 파견되어 대원군을 강제로 축출하고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3차 개혁(1895.8-1896.2) 때 또한 미우라[ 三 浦 梧 樓 ]가 을미사변을 야기하면서까지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개혁 배후에 도 사리고 있던 바로 이런 외세(일제)의 야욕을 이들은 심각하게 경계했으 며, 그래서 개혁 자체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적극 동참하지 못한 것이다. 갑오개혁의 결과는 결국 일본의 러일전쟁(1904) 승리와 함께 을사늑약 (1905)과 일제강점(1910)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을사늑약 이후 보통학 교 고등학교 고등여학교 사범학교 등 거의 모든 학교교육에 일본어 교과가 국어와 한문을 통합한 국어급한문( 國 語 及 漢 文 ) 교과의 수업시수 이상으 로 침투하였고, 일제강점 이후부터는 일본어가 국어인 세상이 되었으며, 국어와 한문은 일본어 수업 시수의 절반 이하만 강의하는 조선어급한문 ( 朝 鮮 語 及 漢 文 ) 이란 외국어 교과의 일종으로 전락하였다. 전통 지식인들 은 이런 현실에 분개하여 학교교육을 아예 외면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래 서 1912년 16000여개였던 서당이 1919년 23000여개로 증가하는 기현 상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도 한문 글쓰기를 지속한 데는 바 로 이런 현실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작용하였다. 그래서 전에 미처 간행하 지 못한 문집을 간행하거나 기존 문집을 중간하기도 하고, 당대의 글을 모아 문집을 신간하는 일 또한 허다하였는데, 단순 총량만 비교한다면 20 세기 이후 간행한 문집이 조선시대 전 시기에 걸쳐 간행한 것을 오히려 능가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을 주도한 일제강점 기 전통 지식인들의 문집 간행은 예외적인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주목한 적이 없다. 한문시대가 끝난 마당에 구시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 2 -

런 문집을 새삼 주목할 가치가 있을까 하는 회의와 선입관이 작용한 결과 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한문이 끝난 시대도 아니었고, 한글이 국문인 시대도 아니었으며, 일본어가 국어 자리를 강탈한 왜곡된 현실 속에 한문 과 한글이 모두 그 주변부에 공존했던 시대라고 해야 마땅하다. 본 연구는 이런 사정을 직시하면서 한국고전번역원의 의뢰를 받아 일 제강점기 전통지식인들의 문집간행 실상 을 개략적이나마 파악해 보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 그러나 연구팀을 급조해서 구성한데다, 조사 대상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고, 연구 기간 또한 4개월이 채 되지 않아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었음에 양해를 구한다. 2. 조사의 목표와 일정 일제강점기 전통 지식인의 문집 간행 조사 는 고전번역원의 지정 연구 과제로, 번역원에서 제시한 조사 목표와 일정에 충실히 부응하는 방향에 서 결정되었다. 번역원에서 제시한 조사 목표와 관련 사항은 대략 다음과 같다. 1909년 이후 사망한 근대인물의 문집 간행 상황에 대하여 기초조사를 한다. 조사는 서울 경기권, 호서권(충청), 호남권(전라), 대구 경북권, 부산 경 남권 등 5개 권역으로 구분한다. 영남을 2권역으로 나눈 것은 자료 양을 고려한 조치이다. 조사 내용은 저자명(생몰년), 문집명, 판종, 권책수, 간사년 등을 중심으 로 하여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형식적 통일을 기한다. 연번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1 2 3-3 -

조사 결과를 분석하여 각 권역별로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집에 대해 그 판단 근거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조사 결과는 한국문집총간 정편과 속편(총 500책)의 후속 사업인 보유 편 편찬의 방안을 모색하고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본 조사 결과를 기초로 삼아 2013년 본격적인 재조사를 진행할 예정이 다. 위와 같이 거창한 전국에 걸친 자료조사를 3-4개월이란 짧은 기간 내 에 수행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무리한 요구이다. 그러 나 본 조사 결과를 기초로 삼아 2013년 본격적인 재조사를 진행할 예정 이라고 한 것을 보면, 연구를 의뢰한 고전번역원에서도 이 점을 충분히 감안한 듯하다. 그래서 연구팀에서는 처음부터 현장을 직접 찾아 정밀하 게 조사하는 방법을 지양하였다. 대신 각 지역별로 개인 혹은 기관이 이 미 일정하게 수행한 바 있는 기존의 조사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이를 종합함으로써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데 치중하기로 하였다. 다행히 연구에 참여한 분들이 본 연구와 상관없이 대부분 각 지역에서 근대 문집 을 일정하게 조사해 온 경험이 있어서 이렇게 작업 가닥을 잡을 수 있었 고, 일을 진행하기 위해 그 동안 2차례 회의를 갖고 구체적 일정과 방법 등을 조정하였다. 그 결과 지역별로 근대문집 간행양상과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만한, 그리고 유의해봄직한 문집에 대한 간략 해제를 정리할 수 있 었다. 3. 지역별 문집간행 양상 1) 서울 경기지역의 근대문집 [김진균] 가. 조사방법 서울 경기지역의 근대 문집 간행은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조사한 적이 없다. 그래서 먼저 근대 한문학 관련 논문을 검토하여 몇 종의 문집 목록 을 확보하고, 이렇게 확보한 문집을 검토하여 그들이 교유한 인물 가운데 - 4 -

문집을 남긴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리고 서울시와 인천시, 경기도 31개 시 군에서 발간한 지방지(읍지, 시지, 유적조사)를 있는대로 찾아 이를 보완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렇게 현재까지 확인한 문집은 52종 가량 되는데, 향후 장기 과제로 연구를 수행한다면 현재보다 는 훨씬 더 풍부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 문집 간행의 특징 서울 경기지역은 식민지와 개발주의 시대를 관통하며 근대적 변화의 발 신지 역할을 한 곳으로, 주거와 인구 변동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다. 그래 서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한문에서 벗어났고, 한문 기록이 있어도 자손들이 이를 전통 방식의 문집으로 편찬하는 분위기가 약하였으며, 문 집으로 편찬해도 이를 제자리에 간직하고 사는 경우도 드물었다. 근대 한 문학의 대표적 인물 변영만(1889-1954)의 문집 편찬에 대하여 그 제자 안붕언이 육천재문초( 育 泉 齋 文 鈔 ) 에 기록해 놓은 것이 이런 정황을 보 여준다. 안붕언이 변영만의 동생 변영태(국무총리) 변영로(영문학자 시인) 등에게 문집 간행을 권유했지만 이를 실천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이 직 접 간행에 나섰다가 중간에 자금이 부족하여 변영만의 동생들에게 호소하 였지만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기록한 것이 그런 예이다. 그래서 근 대문집의 수량이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에 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른 지역보다 시대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적극적으로 대응한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 중요한 특징이 있 다.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8종) 1 김석준( 金 奭 準. 1831-1915), 효리재일고( 孝 里 齋 逸 稿 ) 1책. : 중인( 中 人 )출신. 김정희( 金 正 喜 )의 말년 제자. 중국에 이언진( 李 彦 瑱 )을 적 극적으로 소개함. 교유 인물들을 회고한 회인시록( 懷 人 詩 錄 ) 을 통해 19 세기 여항문학의 저변을 확인 가능케 함. 2 왕성순( 王 性 淳. 1868-1923), 우아당고( 尤 雅 堂 稿 ) 1책. - 5 -

: 김택영( 金 澤 榮 ) 문인. 김택영이 선집한 여한구가문초( 麗 韓 九 家 文 鈔 ) 에 김택영의 문장을 포함시켜 여한십가문초( 麗 韓 十 家 文 鈔 ) 를 간행. 조긍섭 ( 趙 兢 燮 ) 황원( 黃 瑗 ) 왕수환( 王 粹 煥 ) 이건승( 李 建 昇 ) 정인보( 鄭 寅 普 ) 등과 교 유. 3 이건방( 李 建 芳. 1861-1939), 난곡존고( 蘭 谷 存 稿 ) 1책. : 영재( 寧 齋 ) 이건창( 李 建 昌 ) 사촌. 강화학파. 정인보( 鄭 寅 普 ) 스승. 최남선 ( 崔 南 善 ) 황현( 黃 玹 ) 등과 교유. 4 이건승( 李 建 昇. 1858-1924), 경재집( 耕 齋 集 ) 1책. : 영재( 寧 齋 ) 이건창( 李 建 昌 ) 아우. 강화학파. 을사조약 직후 자결하려 하였 으나 실패하자, 1906년 강화도 사기리( 沙 磯 里 )에 이건방과 함께 계명의숙 ( 啓 明 義 塾 )을 세워 교육구국 운동 전개. 대한자강회. 합방 후 만주 회인현 ( 懷 仁 縣 ) 망명. 5 조소앙( 趙 素 昻. 1887-1958), 소앙문집( 素 昻 文 集 ) 1책. : 조부 조성룡( 趙 成 龍 )에게서 한문 수학. 무오독립선언과 한국독립단 등의 항일투쟁. 해방후 사회당 국회의원 역임. 6 변영만( 卞 榮 晩. 1889-1954), 산강재문초( 山 康 齋 文 鈔 ) 1책. : 정인보( 鄭 寅 普 )와 함께 근대한문학의 거두. 근대 문명과 전통 문명의 회 통을 통해 새로운 한문학의 위상을 모색. 조긍섭( 曺 兢 燮 )과 교유. 7 정인보( 鄭 寅 普. 1892-1950), 담원문록( 薝 園 文 錄 ) 1책. : 난곡( 蘭 谷 ) 이건방( 李 建 芳 ) 문인. 여유당전서( 與 猶 堂 全 書 ) 간행과 소개 를 주도. 1930년대 조선학운동. 신채호 홍명희 변영만 하겸진과 교유. 8 현상윤( 玄 相 允. 1893-1950), 기당만필( 幾 堂 漫 筆 ). : 진암( 鎭 菴 ) 현상준( 玄 商 濬 ) 문인. 조선유학사 조선사상사 저술. 변영 만 정인보 홍명희 방응모 등과 교유. 라. 기타 주목할 만한 문집 (11종) 1 민영환( 閔 泳 煥, 1861-1905), 민충정공유고( 閔 忠 正 公 遺 稿 ) 5권. :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순절함. - 6 -

2 박영철( 朴 榮 喆, 1879-1939), 다산시고( 多 山 詩 稿 ) 2권. : 중추원 참의 역임. 연암집 간행. 3 박은식( 朴 殷 植, 1859-1925), 겸곡문고( 謙 谷 文 藁 ) 1책. :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교를 기반으로 한 신학과 구학의 절충을 강조. 4 박한영( 朴 漢 榮, 1870-1948), 석림문초( 石 林 文 鈔 / 石 林 隨 筆 ) 1책. : 식민지 초기 한용운( 卍 海 韓 龍 雲 )과 함께 불교의 명맥을 유지에 힘씀. 1913년에 해동불교( 海 東 佛 敎 ) 창간하여 불교의 혁신과 한일합방의 부당 함을 주장. 5 신규식( 申 圭 植, 1879-1922), 아목루( 我 目 淚 ) 1책. :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6 여규형( 呂 圭 亨, 1848-1921), 하정유고( 荷 亭 遺 稿 ) 4권. : 구한말 한문 문장가. 식민지시기 대동학교( 大 東 學 校 )와 관립한성고등학교 ( 官 立 漢 城 高 等 學 校 )의 교유( 敎 諭 )에 임명돼 친일 행적을 보임. 7 유길준( 兪 吉 濬, 1856-1914), 구당시초( 矩 堂 詩 鈔 ) 1책. : 일본과 미국 유학으로 수많은 저작물을 통해 개화사상을 정립. 흥사단( 興 士 團 )을 세워 교육활동에 매진. 한성부민회( 漢 城 府 民 會 )를 통해 지방자치제 지지. 8 윤희구( 尹 喜 求, 1867-1926), 우당시초( 于 堂 詩 抄 ) 1책. : 구한말 문장가. 국권상실 이후 중추원촉탁( 中 樞 院 囑 託 )이 되어 경학원 부 제학( 經 學 院 副 提 學 )을 겸임. 1916년 장지연 오세창과 함께 대동시선( 大 東 詩 選 ) 교열. 9 정만조( 鄭 萬 朝, 1858-1936), 무정전고( 茂 亭 全 稿 ) 1책. : 구한말 규장각 부제학 역임. 식민지시기 경학원( 經 學 院 )의 대제학, 명륜 학원( 明 倫 學 院 )의 총재 등을 지냄. 고종순종실록 을 편찬하는 등의 친일 행적을 보임. 10 정병조( 鄭 丙 朝, 1862-1945), 녹어산관집( 漉 魚 山 館 集 ) 6권. : 정만조( 鄭 萬 朝 ) 아우. 조선사 편찬에 참여. - 7 -

11 현상준( 玄 商 濬,?-1938), 진암선생문집( 鎭 菴 先 生 文 集 ) 14권. : 현상윤( 玄 相 允 )의 스승이자 의암 유인석( 毅 菴 柳 麟 錫 ) 문인. 2) 호서지역의 근대문집 [이향배] 가. 조사방법 2002년에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는 근현대 대전충남 한학가 연구단(현재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로 분리됨)을 구성하여 한국연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1860년 이후부터 근래에까지 대전 충남지역에서 활 동한 한학자들을 대상으로 문집과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연구단은 교수 6명을 포함하여 박사급 연구원 4명 총 10명으로 구성되었다. 문집 수집 대상은 1 근현대에 대전 충남 지역에서 출생한 인물, 2 타 지역에 서 출생했더라도 이 지역에서 와서 수학하여 오랜 기간 활동한 인물, 3 대전 충남 지역에 묘소나 서원의 연고가 있는 인물 등으로 제한하였다. 조사 방법은 먼저 대전시지( 大 田 市 誌 )와 구지( 區 誌 ), 그리고 각종 군지 ( 郡 誌 )를 통해 한학가들과 문집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런 자료 는 문집에 대한 기초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다음으로는 향토 사학자 또는 지역에 거주하는 한학자들을 통해 시군 단위로 고을마다 문집을 소장하고 있는 분이나 한학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 정리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초로 하여 매주 2회 이상 대전 충남 지역을 돌아다니며 문집을 조사 수집하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각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종 손가를 비롯하여 한학가의 후손집안과 문헌을 소장하고 있는 분을 찾아다 니며 문집을 샅샅이 조사하여 발굴해냈다. 때로는 문집을 소장한 후손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경우도 많아 헛걸 음을 한 경우도 있으며, 지역의 개발과 재난으로 인해 문집이 유실된 경 우도 허다하였다. 그러나 마을의 연장자들을 통해 그들에 대한 정보를 최 대한 탐문하여 서울이나 기타 지역까지도 직접 찾아가서 문헌을 조사하기 도 했다. 그 결과 1차 1년동안에는 대략 250여종의 문집을 수집 복사했 으며, 그 이듬해에는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지원을 받아 2차 2년간에 걸 쳐 100여종의 문집을 수집하여 해제하였다. 그 결과 대략 총 350여종의 - 8 -

문집을 수집하였다. 이 중 1910년 이후에 사망한 한학가들의 문집 수는 한국문집총간으로 간행된 분량을 제외하면 대략 170여종이 된다. 충북의 경우 근현대 한학가의 문헌 조사를 면밀하게 시행한 적이 없다. 단지 충북대학교를 중심으로 하여 충북지역 내 군마다 소장한 문헌 목록 을 조사하여 책으로 발간한 자료가 있었으며, 이 속에 근현대 한학가들의 문집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충북 지역을 군마다 방문 조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박사과정 대학원생에게 부탁하여 이 자료에서 1910년 이후 사망한 한학가의 문집을 정리한 결과 총 130여종이 추출되 었다. 충북 고문헌 목록의 경우 애당초 문헌을 조사할 때 각 지역마다 면 밀하게 조사한 것이 아니어서 누락된 문헌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에 대해서는 향후 좀 더 체계적이고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나. 문집 간행의 특징 대전 충남의 근현대 문집의 특성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 로 기호학맥 중 노론계열 학자들의 문집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근현대 대전 충남의 학맥의 주류는 서인 계열 중에 주로 노론에 속하는 학자들이다. 노론 중에 낙론 계열로서는 호서 산림으로서 당대에 명성을 떨친 전재( 全 齋 ) 임헌회( 任 憲 晦 )의 학맥을 비롯하여 난곡( 蘭 谷 ) 송병화( 宋 炳 華 )의 학맥이 있고, 호론 계열로는 지산( 志 山 ) 김복한( 金 福 漢 )과 복암 ( 復 菴 ) 이설( 李 偰 )의 학맥이 있으며, 화서학파로서는 면암( 勉 菴 ) 최익현( 崔 益 鉉 )의 학맥과 성재( 省 齋 ) 유중교( 柳 重 敎 )의 학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론 남인 북인의 학통을 이은 한학가들의 문집은 찾아보기 드물 정도이 다. 노론의 학맥을 이은 한학가들의 문집이 대전 충남 문집의 주류를 형 성하고 있다. 충북지역은 아직 문집조사가 개략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일 단 논의를 보류하기로 한다. 둘째, 문집 판본의 주류가 목판본에서 석인본으로, 석인본에서 영인본으 로 변화한 점이다. 일제 강점기부터는 목판본으로 간행된 문집이 현저하 게 줄어들고 1970년대까지 석인본으로 간행된 문집이 두드러지게 증가하 고 있다. 목판본의 간행은 비용이 너무 많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간행하 는 시일도 많이 걸렸다. 이에 비해 석판본은 상대적으로 문집 간행하기가 쉽다. 문집의 분량도 10책 이상 되는 거질도 있지만 주로 2책 이하의 문 - 9 -

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아직 간행되지 못한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있는 문집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셋째, 대부분 호서지역에서 활동한 한학가들의 시문이므로 그들의 문집 에는 지역적 특색이 잘 드러난다. 일제 강점기 이후에 한학가들이 향촌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문집에는 그 지역의 정서나 문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 가령 홍성 청양 제천 지역은 지산집( 志 山 集 ) 복암집 ( 復 菴 集 ) 의암집( 毅 庵 集 )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의병이나 구국활동에 관 련된 정보를 제공해주는 문집이 많으며, 공주 대전 인근 지역에는 주로 노론계열 성리학이나 예학 관련 학문 사상을 담고 있는 문집이 주류를 이 루고 있다. 넷째, 문집의 내용으로는 주로 성리설이나 예학에 관한 자료가 주를 이 룬다. 일반적으로 문집에 시부를 비롯하여 하여 다양한 내용의 자료가 포 함되어 있다. 충청지역의 근현대 문집 자료도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내 용면에서 성리설에 관한 내용이 특히 더 주종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 는 호서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호락논쟁의 전통이 근현대까지 학맥을 통 해 이어져 왔음을 말해준다. 학자들 사이에서 이기심성에 대한 견해 차이 로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절충하려는 모습이 문집에 잘 나타나 있다. 일점 강점기에도 전통지식인들이 학문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여전히 성리학을 본령으로 삼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12종) 1 김복한( 金 福 漢. 1860-1924), 지산집( 志 山 集 ) 14권. : 구한말 홍주의병을 주도. 파리장서운동 참여. 2 김영한( 金 甯 漢. 1878-1950), 급우재집( 及 愚 齋 集 ) 28권. : 문장가. 우국 시문 다수. 3 박문호( 朴 文 鎬. 1846-1918), 호산집( 壺 山 集 ) 78권. : 경학자( 經 學 者 ) 겸 문학가. 저술 방대. 4 박세화( 朴 世 和. 1834-1910), 의당집( 毅 堂 集 ) 10권. : 위정척사파로 의병활동. 경술국치 때 순국. - 10 -

5 송병관( 宋 炳 瓘. 1875-1945), 극재집( 克 齋 集 ) 19권. : 학문과 덕행이 깊고 문장이 뛰어남. 송병화 수제자. 6 송병순( 宋 秉 珣. 1839-1912), 심석재집( 心 石 齋 集 ) 35권. : 회덕( 懷 德 ) 출신.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순절. 성리학과 예학에 능통. 7 송병화( 宋 炳 華. 1852-1915), 난곡집( 蘭 谷 集 ) 31권. : 경술국치후 후학양성. 난곡학파 형성. 8 심상교( 沈 相 喬. 1837-1918), 청사유고( 晴 蓑 遺 稿 ) 6권. : 지조있는 시인. 항일시문 다수. 9 이 설( 李 偰. 1850~1906), 복암집( 復 菴 集 ) 14권. : 홍주의병 주도. 을사오적( 乙 巳 五 賊 )의 처형을 상소. 10 이철영( 李 喆 榮. 1867-1918), 성암집( 醒 菴 集 ) 4책. : 항일 시문 다수. 성리학자이며 항일운동가. 11 임한주( 林 翰 周. 1871-1954), 파변집( 芭 邊 集 ) 20권. : 충남 청양 출신. 홍주의병 참가 및 기록. 파리장서 서명. 12 최영조( 崔 永 祚. 1859-1927), 운재집( 雲 齋 集 ) 14권. : 면암 최익현의 아들. 국가가 변란이 생기자 관직을 버리고 부친을 따라 유배생활과 의병활동을 도움 라. 기타 주목할 만한 문집 (9종) 1 김조( 金 晁. 1880-1948), 청강유고( 暒 岡 遺 稿 ) 10권. : 송병화( 宋 炳 華 ) 문인. 2 김상정( 金 商 玎. 1875-1954), 한월빙설( 寒 月 氷 屑 ) 1책. : 항일투사. 친일매국노 처단 주장. 경술국치 후 항일운동. 3 나헌용( 羅 獻 容. 1851-1925), 혜전집( 蕙 田 集 ) 7권. : 아관파천 을미사변 관련자료 다수. 4 성기운( 成 璣 運. 1877-1957), 덕천집( 德 泉 集 ) 11권. - 11 -

: 전우( 田 愚 ) 문인. 성리학자 호서 학맥 자료 풍부. 5 오진영( 吳 震 泳. 1868-1944), 석농집( 石 農 集 ) 36권. : 전우( 田 愚 ) 문인. 항일운동. 6 윤긍주( 尹 兢 周. 1853-1912), 고당집( 顧 堂 集 ) 4권. : 배일( 排 日 )사상가. 갑오개혁 전후 자료 풍부. 7 윤응선( 尹 膺 善. 1845-1924), 회당집( 晦 堂 集 ) 16권. : 박세화 문인. 성리학자. 8 이철승( 李 喆 承. 1879-1951), 직암집( 直 菴 集 ) 8권. : 성균관 개공랑 역임. 도호의숙( 桃 湖 義 塾 )에서 강학. 많은 문하생 배출 9 이현규( 李 玄 圭. 1882-1949), 현산집( 玄 山 集 ) 7권. : 정인보( 鄭 寅 普 )와 교류. 강개한 지사이자 고문가. 3) 호남지역의 근대문집 [김대현] 가. 조사방법 호남지역의 근대문집조사는 2002년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 조 사한 결과를 기초로 삼았다. 3단계에 걸쳐 추진되는 조사로, 현재 2단계 까지 진행된 상태이며 이는 2007년 20세기 호남 한문문집 간명해제 (경인문화사 출간)로 출판되었다. 당시 조사 대상은 20세기, 즉 1901년 이후 사망한 호남지역 인물의 문 집이었는데, 호남지역 인물이란, 호남에서 출생 사망한 사람 중심이었고 여기에 학맥 등과 관련하여 일정 기간 호남에 거주한 사람을 일부 포함시 킨 개념이었다. 조사 방법은 1차적으로 기존에 나와 있던 문집 해제 등을 참고하여 기초 자료를 만들었고, 2차적으로 각급 자치단체에서 간행한 지 방지에 소개된 문집을 조사하여 이를 보완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이를 각 지방 문화원이나 향교 등에 보내 다시 보충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이렇게 확인한 1901년 이후 사망한 인물의 문집은 모두 1002종 가량이었다. 그 - 12 -

리고 본 연구와 관련하여 이를 다시 1910년 이후 사망자, 세고( 世 稿 )가 아닌 개인 문집, 초고가 아닌 간행본 등으로 압축한 결과 약 660종을 확 인할 수 있었다. 나. 문집간행의 특징 호남지역의 문집은 해안가나 도서지역 보다 전통적인 내륙지방의 도시 들에서 더 많은 문집이 간행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문 집을 크게 4계열 정도로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 이정직( 李 定 稷. 1841-1910)의 석정집( 石 亭 集 ) 이나 송운회( 宋 運 會. 1874-1965)의 설주 유고( 雪 舟 遺 稿 ) 등 호남지역 서화 예술가들의 문집, 고광순( 高 光 洵. 1848-1907) 의 녹천유고( 鹿 川 遺 稿 ) 나 기삼연( 奇 參 衍. 1851-1908)의 성재기선생거의 록( 省 齋 奇 先 生 擧 義 錄 ), 임병찬( 林 炳 瓚. 1851-1916)의 둔헌유고( 遯 軒 遺 稿 ) 같은 한말 호남지역 의병활동 관련 문집, 황현( 黃 玹. 1855-1910)의 문인 그룹 약 20여 명, 기타 보성 화순 등지에서 서당을 열어 강학활동에 종사 한 학자 안규용( 安 圭 容. 1860-1910)과 김문옥( 金 文 鈺. 1901-1960)의 문 집 등이 주목할 만하였다. 전체 660여 종 문집 가운데 규모가 20권 이상 인 것이 약 8종, 10권대의 것이 약 36종으로, 10권 이상 문집을 남긴 사 람은 전체의 5%에도 못 미치는 40명 정도에 불과하였으며, 나머지는 모 두 10권 미만으로 3-4권 정도를 남긴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25종) 1 고정주( 高 鼎 柱. 1863-1933), 춘강집( 春 崗 集 ) 4권. : 19세에 한장석( 韓 章 錫 ), 21세부터는 성대영( 成 大 泳 )에게 수학. 승문원부 정( 承 文 院 副 正 ) 등 여러 관직 역임. 녹천정( 綠 泉 亭 )에서 은둔 생활을 하면 서 후학양성. 2 권봉수( 權 鳳 洙. 1872-1940), 지촌유고( 芝 村 遺 稿 ) 2권. : 황현( 黃 玹 ) 문인. 매천집( 梅 泉 集 ) 간행. 3 기우만( 奇 宇 萬. 1846-1916), 송사집( 松 沙 集 ) 50권. - 13 -

: 1881년 정부의 행정개혁을 요구하는 만인소( 萬 人 疏 )를 올려 호남소수( 湖 南 疏 首 )로 불리움.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가 체포되어 복역함. 4 기재( 奇 宰. 1854-1921), 식재집( 植 齋 集 ) 6권. : 기정진( 奇 正 鎭 ) 문인. 단발령과 국모시해에 분노하여 족형 기우만( 奇 宇 萬 ) 을 도와 의병을 일으켰으나, 임금의 권유로 해산. 5 김규태( 金 奎 泰. 1902-1966), 고당유고( 顧 堂 遺 稿 ) 19권. : 20대 중반에 율계( 栗 溪 ) 정기( 鄭 琦 )를 따라 구례( 求 禮 )로 이거하여 경학 탐구. 서예에 능함. 1964년 풍영계( 風 詠 契 )를 결성함. 장성 고산서원( 高 山 書 院 )에서 성리학 강론. 6 김문옥( 金 文 鈺. 1901-1960), 효당문집( 曉 堂 文 集 ) 16권. : 정기( 鄭 琦 ) 문인. 정인보( 鄭 寅 普 ), 이현규( 李 玄 圭 )와 함께 3대 경학문장가 로 추앙받음.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호남 지방에서 많은 제자들을 양 성. 7 김봉호( 金 奉 鎬. 1889-1952), 용파유고( 龍 坡 遺 稿 ) 2권. : 나라 잃은 울분을 품고 향리에 은거하여 독서와 후진양성에 힘씀. 애국시 를 많이 많김. 8 김운덕( 金 雲 悳. 1857-1936), 추산유고( 秋 山 遺 稿 ) 4권. : 송병순( 宋 秉 珣 ) 문인. 기우만( 奇 宇 萬 )과 오계수( 吳 繼 洙 )와 교유. 1907년에 의병을 일으키려다 옥고를 치름. 9 박임상( 朴 琳 相. 1864-1944), 민재유고( 敏 齋 遺 稿 ) 8권. : 김평묵( 金 平 黙 ) 최익현( 崔 益 鉉 ) 기우만( 奇 宇 萬 ) 문인. 을미사변, 을사조약 체결 후 최익현이 일으킨 의병에 참여함. 궁리( 窮 理 )의 학문을 강조함. 10 박한영( 朴 漢 永. 1830-1948), 석전시초( 石 顚 詩 鈔 ) 2권. : 불교개혁운동. 금봉병연( 錦 峰 秉 演 )ㆍ진응혜찬( 震 應 慧 燦 )과 함께 근대 한국 불교의 3대 강백( 講 伯 )으로 추앙받음. 11 송명회( 宋 明 會. 1872-1953), 소파시문선고( 小 波 詩 文 選 稿 ) 4권. : 근세에 매천( 梅 川 ) 이후 호남시인으로 추앙받음. - 14 -

⑫ 송운회(宋運會. 1874-1965), 설주유고(雪舟遺稿) 1책. : 이건창(李建昌) 문인. 학문과 글씨에 전념했으며 명산대천을 두루 편력하 여 많은 시문을 남김. ⑬ 안규용(安圭容. 1873-1959), 회봉유고(晦峯遺稿) 10권. : 송병선(宋秉璿) 문인. 죽곡정사(竹谷精舍)를 지어 후학양성. ⑭ 양회갑(梁會甲. 1884-1961), 정재집(正齋集) 16권. : 6세부터 조부 호묵(虎黙)에게 글을 배우고, 이후 정일신(鄭日新), 정월파 (鄭月坡) 등에게서 수학. ⑮ 오계수(吳繼洙. 1843-1939), 난와유고(難窩遺稿) 17권. : 기정진(奇正鎭) 문인. 1906년 기우만(奇宇萬)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의 병 김준(金準)과 김화용(金華鏞)을 도와 항일 투쟁. ⑯ 오재영(吳在永. 1865-1919), 소재집(小齋集) 1책. : 갑오경장 이후 의원(議員) 제도 채용에 동복(同福) 대표로 촉망이 높았음. 보성군수 역임. ⑰ 오준선(吳駿善. 1851-1931), 후석유고(後石遺稿) 25권. : 기정진(奇正鎭) 문인. 유종(儒宗)으로 존경을 받음. 경술국치를 당한 후 두문불출하다 만년에 농진정사(聾珍精舍)를 짓고 후진양성에 힘씀. ⑱ 윤종균(尹鍾均. 1861-1941), 유당시집(酉堂詩集) 3권. : 과거를 포기하고 시학(詩學)을 전공함. 매천시파(梅泉詩派)의 대표적 시 인. ⑲ 이병수(李炳壽. 1855-1941), 겸산유고(謙山遺稿) 20권. : 1894년 동학혁명 이후 10여 년간 호남지방에서 일어난 의병활동의 실태 파악하여 금성정의록(錦城正義錄) 편찬. ⑳ 이정직(李定稷.1841-1910), 석정집(石亭集) 7권. : 여러 저술을 남김. 시문(詩文)에 능했으며 글씨와 그림이 뛰어남. ㉑ 임병찬(林炳瓚. 1851-1916), 둔헌유고(遯軒遺稿) 8궈. : 한말의 의병장. 독립의군부 전라남도순무대장으로 항일구국투쟁을 전개하 다 순국함. - 15 -

22 전우( 田 愚. 1841-1922), 간재집( 艮 齋 集 ) 50권. : 수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안자편( 顔 子 篇 ) ㆍ 정현수언( 五 賢 粹 言 ) ㆍ 연원정종( 淵 源 正 宗 ) 등 60여 책의 저서를 남김. 23 정기( 鄭 琦. 1879-1950), 율계집( 栗 溪 集 ) 22권. : 정재규( 鄭 載 圭 ) 문인. 을사조약 때 최익현과 항소( 抗 疏 ). 24 최병심( 崔 秉 心. 1874-1957), 금재문집( 欽 齋 文 集 ) 29권. : 이병우( 李 炳 宇 ) 전우( 田 愚 ) 문인. 한일합방 후 독립밀맹단을 조직, 지하조 직 및 투쟁. 간재학술 계승. 전주 옥류동( 玉 流 洞 )의 염수당( 念 修 堂 )에서 많 은 영재를 배출함. 25 황현( 黃 玹. 1855-1910), 매천집( 梅 泉 集 ) 9권. : 구례에서 신식학교인 호양학교( 壺 陽 學 校 )를 세워 후학양성. 한일합방이 되자 자결. 라. 기타 유의할만한 문집 (46종) 1 고광선( 高 光 善. 1855-1934), 현와유고( 弦 窩 遺 稿 ) 8권. : 나도규( 羅 燾 圭 ) 기정진( 奇 正 鎭 ) 문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광산( 光 山 ) 서 창( 西 倉 ) 봉산( 鳳 山 )에 은거하여 그곳에 엄이재( 掩 耳 齋 )를 세워 후학양성. 2 김노수( 金 魯 洙. 1878-1956), 경암집( 敬 菴 集 ) 13권. : 송병선( 宋 秉 璿 ) 문인.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에서 한국사 연구. 3 김수하( 金 洙 夏. 1861-1931), 금계집( 金 溪 集 ) 4권. : 송병선( 宋 秉 璿 ) 최익현( 崔 益 鉉 ) 문인. 4 김용기( 金 容 琪. 1867-1946), 경재유고( 敬 齋 遺 稿 ) 5권. : 전우( 田 愚 ) 문인. 간재 학술 계승. 5 김진호( 金 鎭 祜. 1847-1924), 금초집( 錦 樵 集 ) 2권. :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홍문관부수찬 등 역임. 1884년 복식제도 변개 시 동렬과 항소를 올림. 6 노재규( 盧 在 奎. 1836-1920), 농암집( 聾 巖 集 ) 3권. - 16 -

: 평생 주자를 흠모. 최익현( 崔 益 鉉 ) 송병선( 宋 秉 璿 ) 기우만( 奇 宇 萬 ) 등과 교 유. 7 문달환( 文 達 煥. 1852-1938), 둔재집( 遯 齋 集 ) 8권. : 최익현( 崔 益 鉉 ) 문인. 8 문창규( 文 昌 圭. 1869-1961), 율산집( 栗 山 集 ) 8권. : 송병선( 宋 秉 璿 ) 문인. 나병집( 羅 秉 集 ), 이계인( 李 啓 仁 ) 등과 교유. 9 박기영( 朴 基 永. 1846-1912), 남파집( 南 坡 集 ) 2권. : 국망 후 과거를 단념하고 전국을 유람. 동료 문인 백여 명과 함께 성리학 을 연구. 10 박동찬( 朴 東 贊. 1885-1955), 남당유고( 南 塘 遺 稿 ) 5권. : 이종택( 李 鍾 宅 ) 문인. 향내( 鄕 內 )의 사람들과 위성계( 衛 聖 契 )를 조직, 향교 보수 및 교지( 校 誌 ) 간행. 풍영계( 風 詠 契 )를 조직하여 명산을 소요하였고 향리의 두터운 신망을 받음. 11 박민순( 朴 敏 淳. 1869-1939), 구계유고( 九 溪 遺 稿 ) 2권. : 윤두파( 尹 杜 坡 ) 문인. 문생들과 구계정사계( 九 溪 精 舍 契 )를 만들어 강학. 12 박병하( 朴 炳 夏. 1847-1910), 가헌유고( 可 軒 遺 稿 ) 3권. : 전우( 田 愚 ) 송병선( 宋 秉 璿 ) 문인. 한일합방 때 순국. 13 박형득( 朴 炯 得. 1876-1947), 남파유고( 南 坡 遺 稿 ) 3권. : 겸산( 謙 山 ) 문인. 경술국치 후 두문불출하였고, 만년에 지역 내의 유생들 과 계를 조직하여 집을 짓고 강학함. 14 배석면( 裵 錫 冕. 1885-1978), 노암집( 魯 菴 集 ) 16권. : 능성( 綾 城 ) 향강( 鄕 講 ) 여수( 汝 水 ) 향강( 鄕 講 ) 등에서 1등을 하였으며 문 으로 칭송받음. 15 백홍인( 白 弘 寅. 1874-1952), 세심선생문집( 洗 心 先 生 文 集 ) 3책. : 기우만( 奇 宇 萬 ), 최익현( 崔 益 鉉 ) 문인. 29세에 부춘동에 장춘재( 長 春 齋 )를 건립하고 50여년간 후진양성에 전력. 의병을 일으키려다 두 차례 감옥에 갇혔고, 1907년에 석방되어 의병소를 설치함. 16 서인남( 徐 仁 楠. 1907-1987), 독창헌사고( 獨 蒼 軒 私 稿 ) 6권. - 17 -

: 전우( 田 愚 ) 문인. 17 선정규( 宣 貞 珪. 1877-1960), 귀계사고( 龜 溪 私 稿 ) 2권. : 국망 후 세상에 뜻을 버리고 향리에 수도재( 修 道 齋 )를 지어 학문연구에 전념하며 제자를 가르침. 18 송은헌( 宋 殷 憲. 1876-1946), 강와집( 剛 窩 集 ) 6권. : 송병선( 宋 秉 璿 ) 김수하( 金 洙 夏 )와 교유. 19 송주학( 宋 柱 學. 1876-1942), 귀래정유고( 歸 來 亭 遺 稿 ) 1권. : 요직을 두루 거치고, 많은 업적을 남김. 20 안병탁( 安 秉 柝. 1904-1994), 겸산유고( 兼 山 遺 稿 ) 12권. : 정기( 鄭 琦 ) 문인. 초동서사( 草 洞 書 舍 )를 지어 후학양성. 구례의 마지막 시 사 반천시사( 磻 川 詩 社 )를 이끔. 21 양기주( 梁 基 柱. 1861-1937), 구일유고( 九 逸 遺 稿 ) 1책. : 황현( 黃 玹 )과 교유. 세상을 개탄하고 비분한 뜻이 담긴 글을 많이 남김. 22 양우승( 梁 佑 承. 1906-1931), 국오사고( 菊 塢 私 稿 ) 3권. : 학포( 學 圃 ) 양팽손( 梁 彭 孫 )의 후손. 주자대전( 朱 子 大 全 ), 성리학( 性 理 學 ) 관련 서적 등을 행동으로 실천함. 23 양회락( 梁 會 洛. 1862-1935), 동계당유고( 東 溪 堂 遺 稿 ) 9권. : 정의림( 鄭 義 林 ) 문인. 형 양회일( 梁 會 一 )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지도( 智 島 ) 에 유배되었을 때 비분강개하여 두문불출함. 24 위계룡( 魏 啓 龍. 1870-1948), 오헌유고( 梧 軒 遺 稿 ) 7권. : 송병선( 宋 秉 璿 ) 최익현( 崔 益 鉉 ) 기우만( 奇 宇 萬 ) 문인. 한말의 여러 학자들 과 폭넓은 교유를 가졌고, 선대의 유고를 정리하여 세고( 世 稿 ) 간행. 25 유구현( 庾 九 鉉. 1858-1922), 낙사유고( 洛 史 遺 稿 ) 4권. : 종숙 수졸재( 守 拙 齋 ) 희정( 喜 幀 )의 문하에서 수학. 26 유영선( 柳 永 善. 1893-1961), 현곡집( 玄 谷 集 ) 32권. : 전우( 田 愚 ) 문인. 오진영( 吳 震 泳 )과 교유. 27 유준철( 柳 浚 喆. 1857-1918), 금서유고( 錦 西 遺 稿 ) 6권. - 18 -

: 안중섭( 安 重 燮 ) 문인. 28 이광수( 李 光 秀. 1873-1953), 옥산집( 玉 山 集 ) 2권. : 성균관박사( 成 均 館 博 士 ), 고종 및 순종의 인산( 因 山 ) 때에 차비관( 差 備 官 ) 을 거쳤고, 당하관( 堂 下 官 ) 정삼품에 이름. 을사오적( 乙 巳 五 賊 )을 죽이려다 체포되어, 진도로 귀양 갔다가 9년 만에 사면됨. 29 이교천( 李 敎 川. 1882-1948), 낙천유고( 樂 川 遺 稿 ) 6권. : 정시림( 鄭 時 林 ) 전우( 田 愚 ) 문인. 간재문집( 艮 齋 文 集 ) 간행. 고향에 덕산 정사( 德 山 精 舍 )를 지어 후학을 지도함. 30 이기완( 李 起 完. 1891-1964), 강재집( 剛 齋 集 ) 4권. : 전우( 田 愚 ) 문인. 31 이명교( 李 明 敎. 1852-1933), 국전유고( 菊 田 遺 稿 ) 3권. : 과업( 課 業 )에 뜻을 두었으나 궁달유명( 窮 達 有 命 )을 깨닫고 후진 양성에 힘을 씀. 신선중인 비류속배( 神 仙 中 人 非 流 俗 輩 ) 라는 칭송을 받음. 32 이승엽( 李 承 燁. 1883-1952), 경양재문집( 景 陽 齋 文 集 ) 5권. : 기우만( 奇 宇 萬 ) 문인. 경양강사( 景 陽 講 舍 )를 지어 평생 자양( 紫 陽 ) 화양( 華 陽 )를 경모. 33 이용우( 李 用 雨. 1875-1963), 경산유고( 耕 山 遺 稿 ) 10권. : 송병선( 宋 秉 璿 ) 문인. 평생 덕유산( 德 裕 山 ) 자락에서 학문을 배우고 가르 침. 사람들이 덕유산의 돈학군자( 敦 學 君 子 )로 칭송함. 34 이창신( 李 昌 新. 1852-1919), 괴정집( 槐 亭 集 ) 6권. : 과업( 科 業 )에 뜻을 두었으나 부친상을 당한 뒤 학문에 전념함. 35 이창환( 李 昌 煥. 1896-1964), 오재집( 寤 齋 集 ) 6권. : 우제필( 禹 濟 弼 ) 전우( 田 愚 )의 문인. 선현의 가르침을 고수하여 후학을 가 르치는 학행으로 이름이 알려짐. 36 임태주( 任 泰 柱. 1881-1944), 성재선생문집( 誠 齋 先 生 文 集 ) 5권. : 정의림( 鄭 義 林 ) 문인. 능주( 綾 州 ) 가천( 佳 川 )에서 양동계( 梁 東 溪 ) 황중헌 ( 黃 重 軒 ) 문심포( 文 心 圃 )와 교유. 37 정관석( 鄭 瓘 錫. 1901-1982), 겸재유고( 謙 齋 遺 稿 ) 8권. - 19 -

: 전우( 田 愚 ) 문인. 전통학문을 지키고 전하고자 노력함. 후학들에게 체험 자득설( 體 驗 自 得 說 )을 강조. 38 정시림( 鄭 時 林. 1839-1912), 월파집( 月 波 集 ) 15권. : 최익현( 崔 益 鉉 ) 김평묵( 金 平 黙 ) 기우만( 奇 宇 萬 ) 최영조( 崔 永 祚 ) 정의림( 鄭 義 林 ) 등과 교유하였고, 문하로는 염재업( 廉 在 業 ) 송기만( 宋 棋 萬 ) 김인규( 金 仁 圭 ) 등이 있음. 39 정영하( 丁 永 夏. 1878-1957), 기헌시집( 杞 軒 詩 集 ) 3권. : 황현( 黃 玹 ) 기우만( 奇 宇 萬 ) 문인. 양우산( 陽 牛 山 ) 밑에 기헌( 杞 軒 )을 지어 40여 년을 시와 교육, 학문 그리고 전국을 유람하면서 보냄. 율봉서원( 栗 峯 書 院 )도 건립함. 40 정의림( 鄭 義 林. 1845-1910), 일신재집( 日 新 齋 集 ) 21권. : 기정진( 奇 正 鎭 ) 문인. 김석구( 金 錫 龜 ) 정재규( 鄭 載 圭 )와 더불어 기정진의 3대 제자. 을미사변과 을사조약 후 의병을 일으킴. 41 정일원( 鄭 一 源. 1870-1935), 국재유고( 菊 齋 遺 稿 ) 2권. : 기우만( 奇 宇 萬 ) 문인. 최익현과 함께 항일활동. 42 정재건( 鄭 在 健. 1843-1910), 소송유고( 小 松 遺 稿 ) 2권. : 통훈대부( 通 訓 大 夫 ), 사헌부지평( 司 憲 府 持 平 ) 등 관직에 있다가 그만두고 향리로 돌아와 제자들을 교육함. 1910년 망국을 당하자 자살함. 43 정희면( 鄭 熙 冕. 1867-1944), 국사유고( 菊 史 遺 稿 ) 4권. : 을사조약으로 국권이 넘어가자 1907년에 영광( 靈 光 )에서 의거( 義 擧 )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어 반년 여 동안 감옥에 갇힘. 44 조석일( 曺 錫 日. 1886-1969), 강재유고( 强 齋 遺 稿 ) 3권. : 오암( 梧 巖 ) 흠재( 欽 齋 ) 문인. 45 최기성( 崔 基 性. 1863-1930), 낭은유고( 朗 隱 遺 稿 ) 7권. : 최익현( 崔 益 鉉 ) 기우만( 奇 宇 萬 ) 문인. 1906년 면암( 勉 菴 )이 순의( 殉 義 )하 자 산에 은거하여 후진양성. 46 황병중( 黃 炳 中. 1871-1935), 고암집( 鼓 巖 集 ) 4권. : 송병선( 宋 秉 璿 ) 문인. - 20 -

4) 대구 경북지역의 근대문집 [황위주] 가. 조사 방법 대구 경북지역 인물의 문집 간행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 다.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의 영남문집해제 (1988)에 948종, 안동대학 퇴계학연구소의 퇴계학자료총서 에 176종, 장인진의 영남 문집의 문헌 적 연구 (영남대 박사논문. 2005) 부록에 1012종을 정리해서 제시한 바 있고, 송희준이 영남지역 문집의 번역 현황과 과제 (2009)에서 이를 종 합하여 영남지역 문집이 약 2180종에 달함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존 연구는 모두 1910년 이전에 사망한 인물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1910년 이후 사망한 근대 인물에 대해서는 한 차례도 조사한 바가 없었 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 조사를 하게 된 셈인데, 조사 방법은 경상북도에 서 간행한 경북유학인물지( 慶 北 儒 學 人 物 誌 ) (2008)를 기초 자료로 삼았 다. 이 책은 관찬사서, 사찬사서, 교남지( 嶠 南 誌 ), 각 읍지와 군지, 독립 운동 관련 기록 등을 두루 조사하여 1910년 이전 출생한 대구 경북 유학 계 인물 약 18900명의 인적 사항과 주요 업적을 간단히 제시하였는데, 그 중 약 2400명이 1910년 이후 사망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한국국학진 흥원의 영남문집해제 전자 자료를 통해 300여 명을 추가로 찾았으며, 이 렇게 파악한 인물 약 2700여명을 검증하여 그 중 900명 가량이 문집을 남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별 문집의 구체적 소장처와 서 지사항까지 모두 확인한 것은 현재 약 391종이며, 추후 시간을 갖고 계 속 추적한다면 현재 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많은 문집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 문집 간행의 특징 대구 경북지역 근대 문집은 안동 지역 인물이 67명, 영주 33명, 봉화 32명, 영덕 21명, 군위 20명, 예천 19명 등으로 북부지역 인물의 문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대상 인물은 1910년대 사망한 사람이 70명, 20년대 사망 인물이 71명, 30년대 80명, 40년대 64명으로 일제강점기 전후에 생존한 인물이 275명으로 절대 다수였고, 이후에는 50년대(47명) - 21 -

60년대(31명) 70년대(14명) 80년대(8명)로 내려오면서 급격하게 감소하 는 현상을 나타내었다. 문집 간행 연도는 1960년대 간행본이 84종, 1970년대 76종, 1980년대 41종 등 1960년에서 80년대에 걸친 개발독재 시대에 간행한 것이 절반 이상이었고, 판종은 석인본이 257종으로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문집 규모가 10권 이상인 것이 약 40여종이고, 특히 약 15-6종은 학문적으로는 물론 국내외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 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16종) 1 권상규( 權 相 圭. 1874-1961), 인암집( 忍 菴 集 ) 24권. : 의병장 권세연( 權 世 淵 ) 아들. 한일합방 이후 속세와 연을 끊고 동서양의 역사서적을 읽으며 당시의 국제 정세를 파악. 개인문집 외 동국사략( 東 國 史 略 ) 경제사의( 經 濟 私 議 ) 등의 저술이 있음. 2 김도화( 金 道 和. 1825-1912), 척암집( 拓 菴 集 ) 36권. : 유치명( 柳 致 明 ) 문인. 한말 의병의 대표적 인물. 안동부 의병대장으로서 일본 수비대에 대항하여 여러 차례 공방전을 펼침. 3 김사진( 金 思 鎭. 1878-1954), 서주문집( 西 洲 文 集 ) 12권. : 정돈섭( 丁 敦 燮 ) 이승희( 李 承 熙 ) 등과 함께 서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펼침. 심즉리고( 心 卽 理 攷 ) 심리구원( 心 理 究 源 ) 증운도서범( 證 雲 陶 書 範 ) 소학 문답( 小 學 問 答 ) 독사비유( 讀 史 備 遺 ) 수지록( 遂 志 錄 ) 요행일기( 遼 行 日 記 ) 시문잡저( 詩 文 雜 著 ) 등 다수의 저술이 있음. 4 김성규( 金 星 圭. 1863-1936), 초정집( 草 亭 集 ) 12권. : 주차영덕아의법전권공사( 駐 箚 英 德 俄 義 法 全 權 公 使 ) 서기관 역임. 파직 후 목포와 장성 등지에서 교육사업에 전념. 5 김창숙( 金 昌 淑. 1879-1962), 심산유고( 心 山 遺 稿 ) 1권. : 이승희( 李 承 熙 ) 곽종석( 郭 鐘 錫 ) 문인. 파리장서 추동책. 중국 망명 후 이 상룡( 李 相 龍 ) 등과 서로군정서( 西 路 軍 政 署 ) 조직군사선전위원장으로 무력항 쟁에 참여. 부산정치파동에 이시영( 李 始 榮 ) 등과 반독재호헌구국( 反 獨 裁 護 憲 救 國 ) 선언. - 22 -

6 박승진( 朴 勝 振. 1853-1930), 청하집( 聽 荷 集 ) 17권. : 1912년 만주 망명생활. 춘추대사교의( 春 秋 大 事 巧 疑 ) 강목일차( 綱 目 日 箚 ) 송명충의록( 宋 明 忠 義 錄 ) 국조총론( 國 朝 總 論 ) 구야록( 求 野 錄 ) 유 학수지( 幼 學 須 知 ) 등 다수의 저술이 있음. 7 서재승( 徐 在 承. 1876-1915), 죽림집( 竹 林 集 ) 21권. : 탁지부주사( 度 支 部 主 事 ) 역임. 을사의병에 참여. 1915년에 순국. 8 손후익( 孫 厚 翼. 1888-1953), 문암집( 文 巖 集 ) 22권. : 2차 유림단사건 핵심 인물. 9 송기식( 宋 基 植. 1878-1949), 해창집( 海 窓 集 ) 9권. : 유교유신론( 儒 敎 維 新 論 ) 주창. 안동 봉양서숙( 鳳 陽 書 塾 )의 교사로 지내면 서 구국운동 참여. 개인문집 외 국문사서( 國 文 四 書 ) 한문훈몽( 漢 文 訓 蒙 ) 홍범시의( 洪 範 時 義 ) 등 다수의 저술이 있음. 10 송준필( 宋 浚 弼. 1869-1944), 공산집( 恭 山 集 ) 32권. : 한말 학자. 파리장서 서명. 11 유필영( 柳 必 永. 1841-1924), 서파집( 西 坡 集 ) 26권. : 유치명( 柳 致 明 ) 문인. 파리장서 서명. 유인식( 柳 寅 植 )의 아들. 12 이능호( 李 能 灝. 1854-1919), 상경헌집( 常 敬 軒 集 ) 10권. : 한일합방 후 만주로 망명하여 정산서재( 頂 山 書 齋 )를 세워 교육사업을 펼 침. 지록( 志 錄 ) 강의록( 講 義 錄 ) 삼정록( 三 正 錄 ) 비망록( 備 忘 錄 ) 일건 록( 日 乾 錄 ) 강목법의( 鋼 目 法 義 ) 등 다수의 저술이 있음. 13 이상룡( 李 商 龍. 1858-1932), 석주유고( 石 洲 遺 稿 ) 6권. : 만주에서 경학사 조직과 신흥강습소 설치.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역임. 14 이승희( 李 承 熙. 1847-1916), 대계집( 大 溪 集 ) 42권. : 이진상( 李 震 相 ) 문인. 블라디보스톡 독립운동. 길림성에 한민학교 설립하 여 민족운동 실시. 봉천에서 순국. 15 장석영( 張 錫 英. 1851-1929), 회당집( 晦 堂 集 ) 43권. :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 乙 巳 五 賊 )의 처형을 요청. 파리장서 초안 작 성. 제2차 유림단운동시 영남대표로 활동. - 23 -

16 정태진( 丁 泰 鎭. 1876-1960), 외재집( 畏 齋 集 ) 14권. : 파리장서 서명 후 중국 망명. 라. 기타 유의할만한 문집 (24종). 1 강용( 姜 鎔. 1846-1934), 정와문고( 靖 窩 文 稿 ) 10권. : 봉화인. 도산서원장( 陶 山 書 院 長 )을 지내고, 을사조약 체결 이후 향리에 은둔. 2 권병섭( 權 秉 燮. 1854-1939), 용강유고( 龍 岡 遺 稿 ) 10권. : 김흥락( 金 興 洛 ) 문인. 3 권상익( 權 相 翊. 1863-1934), 성재집( 省 齋 集 ) 16권. : 김흥락( 金 興 洛 ) 문인. 파리장서 서명. 4 김동진( 金 東 鎭. 1867-1952), 정산집( 貞 山 集 ) 13권. : 김흥락( 金 興 洛 ) 문인. 파리장서 서명. 5 김제흥( 金 濟 興. 1865-1956), 송계집( 松 溪 集 ) 11권. : 김도화( 金 道 和 ) 문인. 6 김헌주( 金 獻 周. 1866-1937), 기암집( 箕 庵 集 ) 14권. : 김도화( 金 道 和 ) 손자. 척암집( 拓 菴 集 ) 간행. 7 남 건( 南 健. 1850-1943), 노헌집( 魯 軒 集 ) 13권. : 학부통편( 學 蔀 通 編 ) 가학연원( 家 學 淵 源 ) 저술. 8 박재헌( 朴 載 憲. 1875-1926), 도산집( 道 山 集 ) 12권. : 김흥락( 金 興 洛 ) 문인. 경사백가( 經 史 百 家 ) 복서( 卜 筮 ) 병농( 兵 農 ) 산수( 算 數 ) 풍수( 風 水 ) 등에 능함. 9 서석화( 徐 錫 華. 1860-1924), 청석집( 淸 石 集 ) 14권. : 김흥락( 金 興 洛 ) 문인. 부강서당( 鳧 江 書 堂 )에서 후학양성. 이승희( 李 承 熙 ) 곽종석( 郭 鍾 錫 ) 장석영( 張 錫 英 ) 등과 교유. 10 서수석( 徐 壽 錫. 1841-1925), 영수전집( 潁 水 全 集 ) 35권. : 한말 학자. 유치명( 柳 致 明 ) 문인. - 24 -

11 송홍눌( 宋 鴻 訥. 1874-1944), 앙산집( 仰 山 集 ) 10권. : 한말 학자. 장복추( 張 福 樞 ) 문인. 12 유연즙( 柳 淵 楫. 1853-1933), 범암집( 汎 庵 集 ) 10권. : 한말 학자. 유기호( 柳 基 鎬 ) 문인. 13 유응목( 柳 膺 睦. 1841-1921), 학산집( 鶴 山 集 ) 12권. : 한말 학자. 유주목( 柳 疇 睦 ) 문인. 14 유인식( 柳 寅 植. 1865-1928), 동산문고( 東 山 文 稿 ) 2권. : 김도화( 金 道 和 ) 문인. 신채호( 申 采 浩 )와 교유. 대한협회 발기와 안동에 협 동학교 설립하여 교육구국운동에 종사함. 신간회( 新 幹 會 ) 안동지회장 역임. 대동사( 大 東 史 ) 대동시사( 大 東 詩 史 ) 등이 전함. 15 이기형( 李 基 馨. 1868-1946), 성와집( 惺 窩 集 ) 16권. : 장복추( 張 福 樞 ) 문인. 파리장서 서명. 16 이두훈( 李 斗 勳. 1856-1918). 홍와집( 弘 窩 集 ) 12권. : 한말 학자. 이진상( 李 震 相 ) 문인. 내산서당을 지어 후학양성. 동화세기 ( 東 華 世 紀 ) 저술. 17 이석균( 李 錫 均. 1855-1927), 소암집( 小 庵 集 ) 10권. : 장복추( 張 福 樞 ) 문인. 파리장서 서명. 주자정전류설참고략( 朱 子 井 田 類 設 參 攷 略 ) 가향이례참고략( 家 鄕 二 禮 參 攷 略 ) 저술. 18 이정기( 李 貞 基. 1872-1945), 제서집( 濟 西 集 ) 18권. : 한말 학자. 장복추( 張 福 樞 ) 문인. 을사조약에 분개하여 양이설( 攘 夷 說 ) 저술하여 영남유림에 경각심 고취. 성리휘편( 性 理 彙 編 ) 저술. 19 이중균( 李 中 均. 1861-1933), 동전유고( 東 田 遺 稿 ) 15권. : 한말 학자. 도산급문제현록( 陶 山 及 門 諸 賢 錄 ) 교정. 20 이중철( 李 中 輟. 1848-1937), 효암집( 曉 庵 集 ) 18권. : 도산급문제현록( 陶 山 及 門 諸 賢 錄 ) 편찬. 21 장석신( 張 錫 藎. 1841-1923), 과재집( 果 齋 集 ) 11권. : 한말 학자. 장복추( 張 福 樞 ) 문인. - 25 -

22 장화식( 蔣 華 植. 1871-1947), 복암집( 復 庵 集 ) 10권. : 한말 학자. 김흥락( 金 興 洛 ) 이종기( 李 種 杞 ) 문인. 한성판윤( 漢 城 判 尹 )을 지 내며 일본의 경제적 침략에 항거하다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 23 조인석( 趙 寅 錫. 1863-1931), 석정집( 石 汀 集 ) 10권. : 주곡( 注 谷 ) 월록서당( 月 麓 書 堂 )에 영진의숙( 英 進 義 塾 )을 세워 신학문을 접 하며 개화운동에 주력. 24 허채( 許 埰. 1859-1935), 금주집( 錦 洲 集 ) 15권. : 허전( 許 傳 ) 이종기( 李 種 杞 ) 문인. 5) 부산 경남지역의 근대문집 [이상필] 가. 조사방법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에서는 2003년 12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3년에 걸쳐 진주와 의령을 제외한 서부경남 전역의 고문헌을 조사한 결 과를 기초로 삼았다. 이 때 1차년도에서는 산청 하동 고성 사천을 조사하여 1285종, 2차연도에는 거창 합천 남해를 조사하여 1161종, 3차 연도에는 함양 함안 통영 거제를 조사하여 836종, 도합 11개 시군에서 3282종(중복 포함) 가량의 문집과 실기를 정리하였고, 2003년 진주지역을 따로 조사 하여 문집류 2009종을 정리하기도 하였다. 이 가운데 서부 경남지역 11 개 시군에 대한 조사 결과를 재검토하여 1910년 이후 사망한 근대인물의 문집 약 470종을 확인하였다. 나. 문집간행의 특징 서부경남지역 고문헌 조사 경험을 통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 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1차 조사에서 진주를 중심으로 하여 내륙에 위치한 산청 지역이 바다를 끼고 있는 하동 고성 사천 등지에 비해 학자 수도 많고 소장하고 있는 문집 종류도 풍부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 26 -

규남(1870-1944)의 남호집( 南 湖 集 ) 10책과 송준하(1880-1950)의 노 암집( 魯 菴 集 ) 20책을 초고 상태로 발굴한 것, 이정의 귀암집( 龜 巖 集 ) 초간본을 발견한 것 등이 큰 성과였다. 둘째, 2차 조사의 대상이었던 거 창 합천 등지는 남명학파가 형성된 이후 북인의 핵심지역이라 할 수 있는 데, 이 지역에서 다수의 문헌이 발굴되어 인조반정 이후에도 이곳을 중심 으로 하여 남명학파와 북인 계열의 학통이 일정하게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1910년 이후 사망한 근대 인물 문집 가운데는 여타 지 역과 마찬가지로 10권 이상의 비교적 규모가 큰 문집을 남김 사람이 매 우 적은 편이었다. 문집 4책 이상을 남긴 인물이 34인, 5책 이상을 남긴 인물이 19인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몇 권에 불과한 소규모 문집들이었 다. 다. 특히 주목할 만한 문집 (13종) 1 곽종석( 郭 鍾 錫, 1846-1919), 면우집( 俛 宇 集 ) 165권. : 이진상( 李 震 相 )의 수문인. 2 권도용( 權 道 溶, 1877-1963), 추범문원( 秋 帆 文 苑 ) 20권. : 경남일보 주필 역임. 3 권용현( 權 龍 鉉, 1899-1987), 추연집( 秋 淵 集 ) 44권. : 전우( 田 愚 ) 문인. 노론 학맥을 현대까지 이어옴. 4 권재규( 權 載 奎, 1870-1952), 이당집( 而 堂 集 ) 46권. : 정재규( 鄭 載 圭 )의 수문인. 5 김황( 金 榥, 1896-1978), 중재집( 重 齋 集 ) 12책. : 곽종석( 郭 鍾 錫 ) 문인. 현대까지 명성을 떨쳤음. 6 남정우( 南 廷 瑀, 1869-1947), 입암집( 立 巖 集 ) 21권. : 의령 지역의 대표적 당대 지식인. 7 노상익( 盧 相 益, 1849-1941) 대눌집( 大 訥 集 ) 9책. : 허전( 許 傳 ) 문인. 독립운동에 깊이 참여하였음. - 27 -

8 노상직( 盧 相 稷, 1855-1931), 소눌집( 小 訥 集 ) 48권. : 허전( 許 傳 ) 문인. 김해 창녕 밀양 지역의 대표적 지식인. 9 이상규( 李 祥 奎, 1846-1922), 혜산집( 惠 山 集 ) 15권. : 허전( 許 傳 ) 문인. 새로운 천자문 등 독특한 저술을 많이 남겼음. 10 정재규( 鄭 載 圭, 1843-1911), 노백헌집( 老 栢 軒 集 ) 49권. : 기정진( 奇 正 鎭 )의 수문인. 11 조긍섭( 曺 兢 燮, 1873-1933), 암서집( 巖 棲 集 ) 31권. : 창녕 지역 대표적 당대 지식인. 12 조병규( 趙 昺 奎, 1849-1930), 일산집( 一 山 集 ) 16권. : 허전( 許 傳 ) 문인. 사의( 士 儀 ) 등의 간행을 주도함. 13 하겸진( 河 謙 鎭, 1870-1946), 회봉집( 晦 峰 集 ) 26책. : 곽종석( 郭 鍾 錫 )의 수문인. 라. 기타 주목할 만한 문집 (5종) 1 권명희( 權 命 熙. 1865-1923), 삼외재집( 三 畏 齋 集 ) 21권. : 단성 지역 대표적 노론 지식인. 2 권운환( 權 雲 煥. 1853-1918), 명호집( 明 湖 集 ) 19권. : 단성 지역 대표적 노론 지식인. 3 남창희( 南 昌 熙. 1870-1945), 이천집( 夷 川 集 ) 19권. : 의령 지역의 대표적 노론 지식인. 4 문봉호( 文 鳳 鎬. 1878-1950), 일암집( 一 菴 集 ) 18권. : 함안 지역의 대표적 남인 지식인. 5 이교우( 李 敎 宇. 1881-1950), 과재집( 果 齋 集 ) 30권. : 단성 지역 대표적 노론 지식인. - 28 -

4. 맺음말 : 향후 과제 본 연구는 짧은 기간의 거친 조사에도 불구하고 1910년 이후 사망한 근대 인물의 문집 약 1870여 종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문집 또한 적지 않음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었다. 박문호( 朴 文 鎬 )의 호산집( 壺 山 集 ) (78권), 김황( 金 榥 )의 중재집 ( 重 齋 集 ) (14책) 등은 문집 규모만으로도 유의할 가치가 있었고, 임시정 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李 商 龍 )을 비롯하여 이승희( 李 承 熙 ) 김사진( 金 思 鎭 ) 노상익( 盧 相 益 ) 이능호( 李 能 灝 ) 정태진( 丁 泰 鎭 ) 등의 문집은 독립운동 과 중국 망명생활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데 대단히 요긴할 것으로 판 단되었으며, 파리장서운동의 중심적 추동책이었던 김창숙( 金 昌 淑 )과 초안 작성자 장석영( 張 錫 英 ) 및 여기에 서명한 유필영( 柳 必 永 ) 이기형( 李 基 馨 ) 등의 문집 또한 국내에서 활동한 전통 지식인의 현실대응 문제를 파악하 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건창의 동생 이건승 ( 李 建 昇 )과 강화학파 최후의 인물 이건방( 李 建 芳 ), 무오독립선언의 핵심 인물 조소앙( 趙 素 昻 ), 기타 여러 인물들도 이들이 대부분 각 지역의 여론 을 주도한 중심인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문집 자체의 규모와 상관없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본 연구는 제한된 시간에 급하게 조사를 진행하여 지역별 근대 문집 간행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하기 어렵다. 조사 방법상 현장 실사를 거의 하지 못하였고, 기존에 나와 있는 여러 형태의 고문헌목록도 정밀하게 찾아 검증하지 못하였으며, 각 시군에서 간행한 시지나 군지에 수많은 인물과 문헌 정보가 있지만 이마저도 아직 제대로 다 검토하지 못 한 형편이다. 다만 각 지역에서 이미 수행한 바 있는 조사 성과를 최대한 종합하고 이를 보완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 조사를 진행한 대구 경북의 경우, 약 900여명이 문집을 남긴 사실을 확 인할 수 있었지만, 실재 문집 소장처와 관련 서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 던 것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390여명에 불과하였고, 충청도의 경우에도 기존에 조사한 바 있는 충청남도는 170여종을 찾아내었지만 그렇지 못한 충청북도는 130여종을 정리하는데 그쳤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전통지식 인의 문집간행 양상과 특징을 보다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본 연구 결 - 29 -

과를 근거로 삼아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정밀한 재조사를 해야 마땅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문집총간 보유편을 간행할 경우 이처럼 많은 근대 문집 가운데 어떤 문집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았다. 일제강 점기 이전의 경우, 문집을 남긴 인물이 정치적으로나 학문적 문학적으로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국사급( 國 士 級 )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문집을 편 찬할 때 수록 대상으로 삼은 글보다 제외한 글이 오히려 더 많을 정도로 선정 기준이 엄격하여 분량이 문제가 될 이유가 없었고, 특히 저술은 문 집과 따로 간행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마저도 중간에 일실된 것이 허다하였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문집이건 대개는 그 소재를 확인하고 이를 수집하여 총간( 叢 刊 )에 포함시키기만 하면 큰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는 사정이 판이하다. 우선 이전과 달리 한 시대 를 대표할만한 국사급 인물 가운데 전통 방식의 문집을 편찬하지 않은 사 람이 너무 많았다. 이런 현상은 개화기와 애국계몽기를 거치며 이미 시작 되었다. 한말의 선각적 지식인이었던 오경석( 吳 慶 錫.1831-1879) 유홍기 ( 劉 鴻 基.1831-?) 이동인( 李 東 仁.?-1881) 등이 모두 문집이 없고, 개화파 의 핵심 인물 김홍집( 金 弘 集.1842-1896) 어윤중( 魚 允 中.1848-1896) 김 옥균( 金 玉 均.1851-1894) 홍영식( 洪 英 植.1855-1884) 유길준( 兪 吉 濬.1856-1914) 서광범( 徐 光 範.1859-1897) 박영효( 朴 泳 孝.1861-1939)와 애국지사 이준( 李 儁.1859-1907) 민영환( 閔 泳 煥.1861-1905) 등도 제대로 된 문집이 없다. 이런 현상은 일제강점기 때 더욱 심화되었다. 이상재( 李 商 在.1850-1927) 서 상돈( 徐 相 敦.1851-1913) 민영익( 閔 泳 翊.1860-1914) 서재필( 徐 載 弼.1864-1951) 장지연( 張 志 淵.1864-1921) 윤치호( 尹 致 昊.1865-1945) 이 회영( 李 會 榮.1867-1932) 이동녕( 李 東 寧.1869-1940) 이시영( 李 始 榮.1869-1953) 이상설( 李 相 卨.1870-1917) 양기탁( 梁 起 鐸.1871-1938) 이 동 휘 ( 李 東 輝. 1 8 7 2-1 9 3 5 ) 이 승 만 ( 李 承 萬. 1 8 7 5-1 9 6 5 ) 김 구 ( 金 九.1876-1949) 안창호( 安 昌 浩.1878-1938) 김동삼( 金 東 三.1878-1937) 김 규식( 金 奎 植.1881-1950) 정인보( 鄭 寅 普.1893-1950) 등 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학문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국사급 인물 들이 대부분 문집을 남기지 않았고, 어윤중 유길준 장지연 신채호 최남선 - 30 -

등 일부는 문집이 아닌 전집( 全 集 ) 형태로 시문과 저술을 출간했으며, 홍 명희( 洪 命 熹.1888-?) 최남선( 崔 南 善.1890-1957) 이광수( 李 光 洙.1892-?) 이병도( 李 丙 燾.1896-1989) 김동인( 金 東 仁.1900-1951) 현진건( 玄 鎭 健.1900-1943) 나도향( 羅 稻 香.1902-1927) 김태준( 金 台 俊.1905-1950) 이 효석( 李 孝 石.1907-1942) 등은 이미 한문 보다 한글 문필활동에 더 치중 하였다. 반면 전통 방식의 문집이 편찬된 인물들을 검토해보면 이전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허다하다. 대구 경북의 경우, 필자의 지식수준에서 그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인물은 문집이 확인된 전체 390여명 가 운데 김도화( 金 道 和 ) 김창숙( 金 昌 淑 ) 손후익( 孫 厚 翼 ) 송준필( 宋 浚 弼 ) 유필영 ( 柳 必 永 ) 유인식( 柳 寅 植 ) 이상룡( 李 相 龍 ) 이승희( 李 承 熙 ) 이중철( 李 中 輟 ) 장 석영( 張 錫 英 ) 등 20명 남짓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10권 이상 문집을 남긴 인물 또한 40명을 넘지 않았으며, 10권 미만의 문집에 국가 대사와 별 상관없는 혈연 지연 학연 중심의 서간( 書 簡 ) 묘갈( 墓 碣 ) 행장( 行 狀 ) 만사( 輓 詞 ) 등을 주로 수록한 것도 무수하였는데, 이런 사정은 여타 지역의 경우 도 대동소이한 듯하다. 따라서 문집총간 보유편을 간행한다면 우선 이런 실상을 깊이 고려하여 특정 인물의 구체적 행적이나 업적, 남긴 글의 규모나 내용 등이 문집을 남기지 않은 여타 국사급 인물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지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문집을 남겼다는 이유로, 혹은 남긴 문집의 규 모가 방대하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수록한다면, 문집총간 편찬의 근본적 의의 자체를 퇴색시킬 위험성이 높다.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국사급 인물 은 전통 방식의 문집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외면하면서, 또 지금이라도 그 글을 찾아 문집 혹은 전집 형태로 총합해낼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서, 오히려 이들 수준에 현저히 못 미치는 인물을 거꾸로 주목하여 국가 적 차원에서 부각시킨다면, 이런 행위 자체가 자칫 우리의 건전한 지성사 를 왜곡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일제강점기 때는 공문식( 公 文 式 )을 발표하 기 전에 출생하여 한문을 국문처럼 사용해 온 구세대가 광범위하게 존재 하였고, 일본어가 국어 자리를 강탈한 왜곡된 현실에 반발하여 전통적 한 문 글쓰기를 그대로 지속한 속사정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광복 이 후에도 한문 글쓰기를 지속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일제 - 31 -

강점기를 거치며 한글 운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았 고, 한글이 자연스럽게 언문일치를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분명 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더이상 외부적 강압을 빌미로 한문 사용을 고집할 이유도 사라졌다.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문 교육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한글시대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시대 에 한문 글쓰기를 그대로 지속하여 생산된 일련의 문집은 하한선을 정하 여 제외시킬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국가적 편찬사업이 구시대의 글쓰기 가치에 함몰되어 시대정신을 망각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한선의 기준은 여러가지 있을 수 있다. 당초 문집 조사를 시작할 때 1909년 이후 사망한 인물이란 기준을 내세웠던 것처럼 1 1945년 이전 사망한 인물 로 분명하게 정할 수도 있고, 2 광복 이후까지 생존하였으 나 주요 활동 시기가 일제강점기에 치중된 인물, 혹은 사망 시기와 무관 하게 3 1894년 국가에서 공문식을 발표하기 전에 출생하여 한문을 국문 처럼 교육받고 사용한 구지식인 정도로 융통성 있게 정할 수도 있다. 1 과 같이 할 경우 기준은 분명하지만 파리장서의 핵심 추동책이었던 김창 숙(1879-1962)과 방대한 문집을 남긴 김황(1896-1978) 등을 모두 제외 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2 3과 같이 할 경우 기준에는 융통성이 있지만 이들과 유사한 처지의 인물, 즉 제2차 유림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문암 집( 文 巖 集 ) 22권을 남긴 손후익( 孫 厚 翼. 1888-1953), 파리장서에 서명 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동삼성( 東 三 省 )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외 재집( 畏 齋 集 ) 14권을 남긴 정태진( 丁 泰 鎭. 1876-1960) 같은 인물의 처 리 문제가 생기는데, 이런 문제는 보유편의 전체 규모를 고려하여 추후 새롭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문집총간 수록 대상에서 제외하자고 해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 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대사에 대한 글은 아닐지라도 각 지역마다의 다채 로운 경험을 담고 있고, 광복 이후까지 지속된 전통적 생활문화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핵심 자료이며, 이를 통해 전수된 한문 지식이 현재 우리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런 문집은 문집총간보다 지방사나 생활문화자료로 따로 구분해서 정리할 필 요가 있으며, 이렇게 이원화시키는 것이 문집총간편찬의 품격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각 지역별 문집을 아우르는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 32 -

부록 : 지역별 근대문집목록

1. 서울 경기지역 (총 52종) 서울 경기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1 姜 鎔 靖 窩 集 1846 1934 木 版 本 10 1956 2 權 鳳 壽 芝 村 遺 稿 1872 1940 筆 寫 本 3 1956 3 權 相 老 退 耕 堂 集 1879 1965 4 金 星 圭 草 亭 集 1863? 活 字 本 12 1932 5 金 寧 漢 及 愚 齋 集 1878 1950 1961 6 金 昌 淑 心 山 遺 稿 1879 1962 活 字 本 7 金 喆 熙 天 海 亭 三 續 稿?? 2009 8 金 奭 準 孝 里 齋 逸 稿 1831 1915 筆 寫 本 1 9 劉 秉 憲 晩 松 遺 稿 1842 1919 筆 寫 本 4 1949 10 李 昭 應 習 齋 集 1852 1930 11 朴 榮 喆 多 山 詩 稿 1879 1939 12 朴 殷 植 謙 谷 文 藁 1859 1925 13 朴 必 遠 晩 悔 遺 稿 1889 1963 14 朴 漢 榮 石 顚 詩 鈔 / 石 林 文 鈔 1870 1948 15 卞 榮 晩 山 康 齋 文 鈔 1889 1954 石 印 本 1 1957 16 申 圭 植 我 目 淚 1879 1922 17 愼 宗 默 愚 山 集 / 愚 山 詩 稿 1856 1949 18 安 鍾 斗 兢 庵 文 集 1881 1954 筆 寫 本 6 1967 19 呂 圭 亨 荷 亭 遺 稿 1848 1921 20 芮 漢 基 恒 齋 集 1872 1939 筆 寫 本 4 1977 21 吳 震 泳 石 農 齋 私 稿 1868 1944 4 22 王 性 淳 尤 雅 堂 稿 1868 1923 鉛 活 字 本 1 1923 23 兪 吉 濬 矩 堂 詩 鈔 1856 1914 24 尹 喜 求 于 堂 詩 抄 / 于 堂 文 抄 1867 1926 25 李 建 芳 蘭 谷 存 稿 1861 1939 筆 寫 影 印 本 1 1971 26 李 建 昇 耕 齋 集 ( 海 耕 堂 收 草 ) 1858 1924 筆 寫 本 1 27 李 根 宇 鏡 農 遺 稿?? 28 李 根 元 錦 溪 集 1840 1918 29 李 範 世 恥 齋 集 1874 1940 30 李 商 在 月 南 李 商 在 1850 1927 3 1-35 -

서울 경기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31 李 瑢 秀 完 山 逸 稿 1875 1943 32 李 寅 植 月 村 稿 1850 1931 33 李 績 雨 學 山 遺 稿 1876 1940 活 字 本 3 1956 34 李 鼎 夏 心 齋 遺 稿 1874? 筆 寫 本 5 1941 35 李 鍾 鳳 拙 軒 遺 稿 1836 1918 石 印 本 5 36 李 鍾 雅 耒 山 遺 稿 1885 1963 筆 寫 本 3 1967 37 李 重 夏 二 雅 堂 集 1846 1919 1 38 鄭 基 雨 雲 齋 遺 稿?? 39 鄭 萬 朝 茂 亭 全 稿 1858 1936 40 鄭 丙 朝 漉 魚 山 館 集 1862 1945 41 鄭 寅 普 薝 園 文 錄 1892 1950 筆 寫 本 1 1983 42 鄭 寅 杓 春 耕 臺 集 1855 1935 43 鄭 憲 謨 竹 坡 遺 集 1852 1914 筆 寫 本 2 1947 44 曺 圭 喆 夙 夜 齋 叢 稿?? 1982 45 趙 素 昻 素 昻 文 集 1887 1958 活 字 本 1 1970 46 崔 敏 烈 宗 陽 遺 稿 1896 1980 活 字 本 2 1983 47 崔 鉉 弼 脩 軒 文 集 1860 1937 筆 寫 本 1 1987 48 河 性 在 臨 堂 集?? 筆 寫 本 1 1976 49 許 信 雷 山 遺 稿 1876 1946 木 版 本 6 1966 50 許 嶪 夢 晦 集 1883 1922 活 字 本 4 51 玄 相 允 幾 堂 漫 筆 1893 1950 活 字 本 1 2008 52 玄 商 濬 鎭 菴 先 生 文 集? 1938 1940 2. 호서지역 (총 302종)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1 姜 達 熙 菊 史 散 錄 1875 1934 筆 寫 本 3 2 姜 順 熙 恥 齋 集 1868 1929 筆 寫 本 4 4 3 高 濟 學 儉 庵 遺 稿 1838 1915 筆 寫 本 2 1 4 郭 漢 紹 敬 菴 全 集 1882 1927 影 印 本 92 10 1996-36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5 具 璟 會 心 齋 草 稿 1904 1984 筆 寫 本 2 1 6 具 然 紹 錦 汀 遺 稿 1888 1959 筆 寫 本 7 具 永 會 亦 堂 遺 稿 1911 1984 1992 8 具 殷 書 松 磵 詩 集 1871 1949 筆 寫 本 1 1974 9 權 善 淵 樂 汕 集 1897 1963 1 1998 10 權 寧 周 晩 松 遺 稿 1887 1974 石 板 本 8 2 1977 11 權 永 頀 怡 雲 遺 稿 1839 1922 筆 寫 本 17 8 12 權 鐘 華 德 村 集 1850 1926 20 7 1938 13 權 赫 洙 菊 農 遺 稿 1861 1928 2 1 1937 14 金 甯 漢 及 愚 齋 集 1878 1950 石 印 本 28 14 1961 15 金 晁 暒 岡 遺 稿 1880 1948 石 印 本 10 5 1968 16 金 澤 蒼 遠 遺 稿 1898 1954 影 印 本 4 2 17 金 建 周 下 根 齋 遺 稿 1861 1928 油 印 本 2 1 1957 跋 18 金 寬 濟 栗 齋 集 1864 1930 影 印 本 19 金 寬 濟 栗 齋 雜 稿 1864 1930 筆 寫 本 20 金 觀 會 華 山 集 1890 1973 筆 寫 本 1 21 金 光 濟 石 藍 詩 稿 / 石 藍 稿 1866 1920 筆 寫 本 1977 22 金 光 鎬 竹 菴 集 1890 1963 4 1 1986 23 金 魯 東 杏 海 集 1899 1958 鉛 活 字 本 4 2 1962 24 金 萬 榮 漱 石 集 1915? 1 1991 25 金 冕 澤 克 復 齋 私 稿 1862 1934 鉛 活 字 本 4 2 1940 26 金 鳴 九 鶴 山 集 1882 1959 27 金 炳 文 錦 崗 集 1882 1965 筆 寫 本 1 1 1991 28 金 秉 兌 慕 川 文 稿 1893 1980 筆 寫 本 2 1 1987 29 金 秉 鎬 勇 菴 集 1899 1966 6 2 1989 30 金 炳 垕 竹 坡 詩 集 1874 1966 筆 寫 本 1 1 31 金 福 漢 志 山 集 1860 1924 木 活 字 本 14 7 1947 32 金 商 玎 寒 月 氷 屑 1875 1954 印 刷 本 1 1 1964 33 金 商 鶴 醒 雲 自 錄?? 石 板 本 2 1 1959 34 金 舜 東 蒼 厓 遺 稿 1898 1972 油 印 本 3 1 1989 35 金 永 善 海 石 散 稿 1849 1932 筆 寫 本 8-37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36 金 永 植 重 齋 遺 稿 1849 1924 影 印 本 6 2 1981 37 金 永 轍 經 齋 遺 稿 1853 1931 印 刷 本 2 1 1968 38 金 容 肅 重 窩 私 稿 1920 2002 筆 寫 影 印 本 13 4 1983 39 金 元 中 秋 潭 集 1890 1967 2 40 金 允 洙 鵬 齋 集 1867 1944 筆 寫 本 1 41 金 麟 洙 致 齋 集 1892 1962 石 印 本 3 1 1976 42 金 在 淳 芝 雲 金 在 淳 詩 集 1908 1985 1994 43 金 在 乙 珠 圃 詩 集 1925 2000 1 1 2000 44 金 鼎 洙 五 汕 遺 稿?? 影 印 本 3 1 1938 45 金 正 淳 華 石 齋 遺 稿?? 影 印 本 3 3 1983 46 金 濟 煥 素 堂 文 集 1867 1916 木 活 字 本 9 5 1950 47 金 琮 鉉 蘭 汀 集 1881 1953 印 刷 本 3 1 1993 48 金 志 洙 心 巖 遺 稿 1845 1911 影 印 本 10 3 1995 49 金 澈 顯 又 松 文 集 1928 1990 1 1 2000 50 金 宅 洙 醒 岩 集 1875 1957 2 51 金 亨 植 醒 齊 漫 稿 1843 1932 影 印 本 1987 52 金 熙 鎭 瑞 巖 遺 稿 1919 1999 3 3 53 羅 獻 容 蕙 田 集 1851 1925 石 印 本 7 7 1937 54 南 相 赫 克 齋 遺 稿 1859 1969 2004 55 南 準 植 可 雲 先 生 文 集 1854 1932 影 印 本 1994 56 孟 仁 遠 紫 華 先 生 文 集 1841 1925 筆 寫 本 1982 57 文 錫 鳳 義 山 遺 稿 1851 1896 石 板 本 4 2 1934 58 文 元 模 誠 菴 集 1909? 2 1 1969 59 文 鍾 龜 睡 隱 集 1853 1897 石 板 本 1 1929 60 文 重 大 延 岡 詩 抄 1919 1993 印 刷 本 1 1980 61 閔 庚 台 四 友 亭 遺 稿 1887 1960 石 板 本 1 1962 62 閔 泳 瓚 石 年 遺 稿 1883 1957 鉛 活 字 本 2 1 1934 63 閔 泰 稷 絅 庵 集 1868 1935 6 2 1969 64 朴 光 錫 晩 松 公 遺 稿 1826 1872 筆 寫 本 1 1959 65 朴 起 淳 晩 湖 遺 稿 1876 1942 筆 寫 本 3 1 1970 66 朴 魯 重 滄 菴 集 1863 1945 石 板 本 7 7 1962-38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67 朴 大 淳 偉 堂 遺 稿 1870 1950 石 板 本 2 1 1969 68 朴 大 鉉 敬 性 堂 私 稿?? 石 板 本 1 1937 69 朴 文 鎬 壺 山 集 1846 1918 木 活 字 本 78 13 1919 70 朴 炳 夏 桃 隱 詩 集 1888 1963 1988 71 朴 象 圭 誠 堂 集?? 石 板 本 1 1969 72 朴 世 和 毅 堂 集 1834 1910 石 印 本 10 5 1960 73 朴 洵 行 肫 庵 集 1866 1916 木 活 字 本 4 1922 74 朴 永 俊 愚 堂 私 稿 1894 1977 活 版 本 4 2 75 朴 永 熹 小 軒 私 稿 1903 1965 1 1 76 朴 用 霖 錦 川 集 抄 1873 1954 筆 寫 本 1 77 朴 龍 熙 菊 史 私 稿?? 筆 寫 本 1 1930 78 朴 鍾 九 愚 堂 集 1901 1980 79 朴 宗 和 离 齋 集 稿?? 6 2 80 朴 冑 淳 惺 菴 集 1858 1929 石 板 本 20 6 1952 81 朴 柱 哲 省 菴 集 1913? 1992 82 朴 重 勳 義 石 文 稿?? 筆 寫 本 3 1 1992 83 白 彰 均 藏 玉 亂 稿 1912 1991 4 1 2005 84 卞 榮 寅 絅 菴 集 1883 1967 1 85 卞 豊 鎭 謙 謙 齋 先 生 遺 集?? 鉛 活 字 本 1 1959 86 徐 丙 周 三 隱 遺 稿?? 石 板 本 2 1 1959 87 徐 鏞 箕 石 堂 秀 才 遺 珠 集 1925 1939 2 1 1996 88 徐 廷 世 達 齋 文 集 1887 1955 印 刷 本 2 1 2003 89 徐 亨 善 華 園 遺 稿 1907 1966 2 1 1973 90 成 九 鏞 毅 齋 集 1906 1976 8 4 1977 91 成 璣 運 德 泉 先 生 文 集 1877 1956 石 印 本 2 1 1958 92 成 周 斌 龍 山 遺 稿 1862 1942 鉛 活 字 本 2 1 1966 93 孫 濟 英 水 雲 居 士 文 集 1899 1966 3 1 1968 94 宋 貢 鎬 彩 雲 文 選 1926 1995 3 1 95 宋 敎 淳 澹 軒 隨 錄 1852 1936 筆 寫 本 1 1 96 宋 達 用 定 窩 集 1878 1934 筆 寫 本 2 2 2008 97 宋 炳 瓘 克 齋 集 1875 1945 影 印 本 19 6 1981-39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98 宋 炳 瓘 克 齋 續 集 1875 1945 石 印 本 4 2 1981 99 宋 秉 濂 吟 弄 齋 遺 稿 1863 1944 石 板 本 2 1 1960 100 宋 秉 珣 心 石 齋 文 集 1839 1912 木 活 字 本 35 15 1900 101 宋 秉 學 從 好 齋 遺 稿 1853 1928 3 1 1984 102 宋 炳 華 蘭 谷 集 1852 1915 木 活 字 本 31 15 1923 103 宋 錫 星 靜 庵 集 1898 1973 筆 寫 影 印 本 5 5 1979 104 宋 炤 用 淸 潭 集 1864 1946 石 印 本 13 5 1961 105 宋 壽 鉉 蘇 顚 雜 記 1831 1896 筆 寫 本 10 106 宋 榮 龜 愼 菴 實 記 1886? 石 板 本 3 1 1939 107 宋 鏞 大 性 山 私 稿 1869 1960 4 4 108 宋 龍 在 龍 巖 集 1864 1935 木 版 本 12 6 1939 109 宋 殷 憲 剛 窩 集 1876 1919 活 字 本 12 1 1960 110 宋 毅 燮 春 溪 集 1865 1944 石 印 本 12 5 1969 111 宋 在 晟 述 菴 集 1902 1972 石 印 本 20 7 1972 112 宋 廷 憲 石 雲 文 集 1913 1995 9 6 1999 113 宋 廷 憲 石 雲 後 稿 1913 1995 影 印 本 5 1 1992 114 宋 悌 永 後 石 集 1917 1986 石 印 本 12 6 1984 115 宋 朝 彬 耕 南 文 稿 1892 1987 影 印 本 3 1 1976 116 宋 鍾 徽 春 雲 堂 隨 錄 1842 1918 1 1 117 宋 柱 鳳 梧 軒 遺 稿 1907 1977 印 刷 本 6 2006 118 宋 曾 憲 後 菴 文 集 1878 1947 石 印 本 12 5 1958 119 宋 哲 圭 隱 堂 古 詩 集 1919? 筆 寫 本 1 1 120 宋 喆 在 裕 軒 遺 稿 1889 1965 1 1 121 宋 哲 憲 止 齋 集 1870 1939 石 印 本 13 3 1960 122 宋 鶴 憲 華 軒 詩 集 1900? 石 板 本 1 1 1976 123 宋 晦 在 敬 庵 遺 稿 1890 1939 石 印 本 1 1 1968 124 申 經 植 藝 史 集 1874 1963 5 125 辛 光 默 學 習 齋 集 1872 1949 石 印 本 5 1 1978 126 申 德 休 晩 坡 集 1844 1931 3 127 申 冕 休 晦 堂 集 1845 1933 2 128 申 伯 雨 耕 夫 集 1886 1962 1-40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129 申 鳳 植 竹 圃 集 1882 1958 1 130 申 相 雨 磬 隱 集 1879 1947 筆 寫 本 1 131 申 世 均 三 樵 遺 稿 1884 1957 石 印 本 1 1981 132 申 昇 求 石 軒 集 1850 1932 2 133 申 永 植 醒 楚 集 1857 1957 筆 寫 本 1 134 申 益 均 果 庵 先 生 文 集 1879 1939 鉛 活 字 本 12 5 1966 135 申 在 英 松 雲 集 1892 1965 1 136 申 廷 植 三 堂 集 1868 1948 1 137 申 稷 休 小 霞 集 1873 1941 1 138 申 昌 模 楠 溪 集 1876 1956 139 申 轍 雨 蘇 眉 遺 稿 1868 1948 石 板 本 1 2 1961 140 申 泰 求 覺 齋 文 集 1886 1953 石 印 本 12 6 1960 141 申 學 錫 退 雲 集?? 石 板 本 6 2 1951 142 申 翰 模 凱 塵 集 1868 1944 1 143 申 海 澈 友 石 稿 1900 1941 新 鉛 活 字 本 2 1 1988 144 申 鴻 祿 蘆 汀 集 1873 1948 2 145 申 興 雨 湖 雲 集 1860 1952 筆 寫 本 2 146 沈 相 喬 晴 蓑 遺 稿 1837 1918 石 印 本 6 3 1967 147 沈 載 瓚 桐 山 遺 稿 1886 1949 筆 寫 本 2 148 安 奭 烈 文 塘 集 1862 1926 筆 寫 本 2 149 安 寅 植 嵋 山 文 稿 1883 1969 1 1973 150 安 長 兪 育 泉 齋 文 鈔 1904 1976 9 1 1985 151 安 鍾 珣 石 汀 詩 集 1882 1954 2 1 152 安 徹 中 茶 田 遺 稿 1869? 153 安 泰 國 暘 谷 先 生 文 集 1843 1913 2 4 154 梁 嘉 錫 晩 松 私 稿 1891 1973 3 1989 155 梁 基 德 秋 圃 集 1920 1999 3 1 2000 156 梁 承 烈 性 菴 私 稿 1916? 筆 寫 本 2 1 157 梁 在 明 海 山 齋 遺 稿 1883 1951 1 1 1985 158 梁 柱 承 金 華 集? 1910 影 印 本 2 1989 159 梁 柱 學 百 條 牖 蒙 1850 1923 古 活 字 本 1923-41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160 楊 致 成 晩 成 集?? 1 1994 161 魚 寗 愚 省 庵 遺 稿 1870 1943 162 吳 白 秀 滄 鳴 集 1876 1957 10 163 吳 相 奎 槐 庭 集?? 木 活 字 本 3 3 1924 164 吳 浣 根 敏 齋 存 稿 1912 1992 影 印 本 1 1983 165 吳 震 泳 石 農 集 1868 1944 活 字 本 36 14 1950 166 柳 秉 蔚 耕 芸 集 1870 1919 筆 寫 本 2 1930 167 柳 寅 澤 愚 齋 集 1890 1973 6 1999 168 柳 濟 恒 克 窩 私 稿 1892 1973 筆 寫 本 1 1999 169 柳 芝 赫 陽 庵 集 1886 1954 石 印 本 4 4 1965 170 兪 昌 煥 愚 堂 先 生 遺 稿 1870 1935 影 印 本 2 2 1980 171 兪 致 雄 一 滄 散 稿 1901? 影 印 本 3 1 1980 172 兪 致 鉉 興 感 自 集 1889 1949 影 印 本 3 1995 173 柳 浩 根 四 可 集 1853 1925 新 鉛 活 字 本 6 3 1958 174 尹 競 周 顧 堂 集 1853 1912 4 2 1971 175 尹 履 炳 省 齋 先 生 遺 稿 1855 1921 3 1 1960 176 尹 錫 鳳 三 希 堂 先 生 集 1842 1910 影 印 本 3 177 尹 榮 敎 澗 松 遺 稿 1863 1945 石 印 本 1 1 1983 178 尹 禹 炳 勤 齋 遺 稿 1853 1920 石 板 本 5 2 1971 179 尹 膺 善 晦 堂 先 生 集 1845 1924 鉛 活 字 本 16 8 1960 180 尹 在 赫 東 谷 集 1888 1966 石 印 本 1 1 1983 181 尹 正 學 一 窩 散 筆 1867 1929 筆 寫 本 3 3 182 李 達 也 山 先 生 文 集 1889 1958 2 2 1972 183 李 燮 德 巖 集 1862 1920 石 印 本 4 2 1949 184 李 燁 香 山 稿 1890 1962 筆 寫 複 寫 本 2 185 李 侙 愼 懼 堂 集 1873 1936 筆 寫 本 1 1 186 李 謙 薰 不 憂 齋 遺 稿 1892 1944 石 板 本 1 1 1970 187 李 敎 憲 寬 溫 齋 集 1862 1935 石 板 本 4 2 1979 188 李 圭 龍 草 堂 私 草 1905 1972 1 1959 189 李 珪 相 菊 史 詩 稿 1874 1943 筆 寫 本 2 1 190 李 圭 憲 肯 堂 集 1896 1976 石 印 本 13 7 1982-42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191 李 奎 顯 就 正 錄 1874 1951 筆 寫 本 25 192 李 根 厚 浩 亭 集 1868 1950 1 193 李 大 宰 栗 齋 詩 稿 1909 1979 石 板 本 1 1972 194 李 範 植 立 齋 集 1880 1958 石 印 本 10 4 1972 195 李 秉 延 松 石 遺 槁 1894 1977 印 刷 本 4 2 2009 196 李 思 彧 珠 溪 先 生 詩 集 1830 1919 2 1 1954 197 李 相 求 好 古 齋 文 集 1834 1910 木 活 字 本 4 2 1912 198 李 相 麟 晩 悟 遺 稿 1857 1946 印 刷 本 1 2001 199 李 商 在 月 南 李 商 在 1850 1927 3 1 1926 200 李 錫 晉 梅 庭 稿 1864 1948 筆 寫 本 3 201 李 錫 泰 小 梅 遺 稿 1885 1967 影 印 本 3 1 1997 202 李 承 龜 恥 堂 遺 稿 1865 1931 石 印 本 6 2 1969 203 李 時 然 白 愚 齋 集 1841 1918 石 印 本 4 2 1921 204 李 心 緯 道 南 藁 1868 1914 筆 寫 本 1 205 李 永 壽 白 蓮 詩 稿 1865 1932 鉛 活 字 本 2 1 206 李 用 斌 鍾 石 遺 稿 1866 1928 207 李 容 兌 檀 菴 李 容 兌 先 生 文 稿 1890 1966 1997 208 李 元 雨 九 曲 散 稿 1880 1962 筆 寫 本 7 8 209 李 裕 白 石 田 先 生 詩 集 1846 1934 1999 210 李 裕 興 誠 菴 遺 稿 1859 1923 7 3 1937 211 李 應 復 敦 庵 先 生 文 集 1880 1955 印 刷 本 1 1 2003 212 李 翊 浩 潭 齋 遺 稿 1872 1951 石 印 本 1 1979 213 李 一 善 履 道 齋 遺 稿 1877? 石 板 本 1 1995 214 李 正 奎 恒 齋 集 1865 1945 石 印 本 16 4 1974 215 李 貞 烈 退 湖 遺 稿 1868 1954 石 印 本 6 3 1963 216 李 正 載 阜 南 詩 集 1915? 印 刷 本 1 1995 217 李 存 洙 痴 堂 遺 稿 1841 1918 1 1 1962 218 李 鍾 國 石 浦 遺 稿 1860 1939 筆 寫 本 1 1948 219 李 種 範 夢 華 集 1878 1922 木 板 本 5 2 1938 220 李 鍾 醇 剛 軒 集 1932 2000 影 印 本 1 2000 221 李 宗 殷 省 吾 齋 詩 集 1904 1995 印 刷 本 1 1994-43 -

호서 저자명 문집명 생년 몰년 판종 권 책 간사년 222 李 冑 承 徽 菴 集 1870 1946 影 印 本 2004 223 李 喆 承 直 菴 集 1879 1951 石 印 本 8 4 1961 224 李 喆 榮 醒 菴 集 1867 1919 4 1961 225 李 致 和 夢 老 遺 稿 1885 1958 石 印 本 2 1 1987 226 李 弼 雨 確 庵 集 1881 1948 石 印 本 3 1 1980 227 李 鶴 珪 湖 隱 集 1868 1951 謄 寫 本 2 1 1952 228 李 學 禧 遯 齋 遺 稿 1845 1931 印 刷 本 3 1 2003 229 李 玄 圭 玄 山 集 1882 1949 石 印 本 7 3 1968 230 李 羲 悅 湖 雲 遺 稿 1872 1945 石 印 本 2 1 1966 231 任 公 烈 欽 齋 集 1869 1933 7 3 1975 232 林 基 貞 貞 窩 集 1877 1929 石 印 本 4 2 1976 233 任 悳 淳 豊 南 遺 稿 1871 1936 石 印 本 2 1 1972 234 林 炳 錄 錦 雲 集 1893 1978 印 刷 本 8 1 235 林 章 佑 砥 松 遺 稿?? 筆 寫 本 8 6 236 任 泰 奭 錦 巖 遺 稿 1857 1944 新 鉛 活 字 本 3 1 1947 237 任 學 準 老 隱 任 先 生 集 1850 1930 筆 寫 本 1 238 林 翰 周 芭 邊 集 1871 1954 筆 寫 本 20 18 239 任 憲 瓚 敬 石 集 1877 1958 印 刷 本 8 4 1960 240 任 興 準 認 齋 集 1851 1920 鉛 活 字 本 8 4 1916 241 張 斗 南 蕉 史 詩 集 1859 1942 242 張 錫 文 晦 山 集?? 243 張 益 煥 中 齋 集 1866 1937 影 印 本 2010 244 全 規 漢 晩 悔 齋 遺 稿?? 木 活 字 本 3 2 1919 245 全 基 成 愼 菴 遺 稿 1862 1927 鉛 印 本 3 1 1930 246 全 大 榮 希 顔 齋 集 1876 1952 2 1 247 鄭 龜 錫 石 塘 集 1859 1927 4 2 1970 248 鄭 圭 永 一 玉 遺 稿 1857 1932 石 印 本 5 2 1972 249 鄭 糺 海 明 窩 集 1890 1970 石 板 本 4 2 1973 250 鄭 達 泳 寧 菴 集 1828 1891 2 1 1958 251 鄭 東 義 栢 菴 遺 稿?? 1 1 1983 252 鄭 東 煥 白 洛 遺 稿?? 石 板 本 5 5 1938-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