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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경성제국대학 과 재조 일본인 지식 사회 박 광 현 (동국대학교) 연구 동기 - 문학사에 등장하는 일본인은 누구인가? 조동일 문학통사의 유행, 小 倉, 高 橋 - 경성제대 출신의 조선인? 조윤제(경성대학 출신으로 은폐), 김태준(사회주의자) - 문학연구과에서 연구할 수 있는 테마로서의 한계 - 인물에 관한 연구(일본인 학자) 제도에 관한 연구(경성제대, 중추원) 장소에 관한 연구 (식민지의 학지) 인물+제도+장소에 관한 연구(재조일본인=제국적 성격+식민지적 성격) - 학문적 동일성에 관한 궁금증 1. 경성제국대학, 그리고 평등과 차별 경성제국대학(이하, 경성제대)은 1887년에 제국대학(이후 東 京 제대)의 설립을 시작으로 京 都 (1897년), 東 北 (1907년), 九 州 (1910년), 北 海 道 (1918년)에 이어 여섯 번째로 세워진 제 국대학이며, 일본이 식민지에 세운 최초의 제국대학이었다. 그 뒤 臺 北 (1928년), 大 阪 (1931 년), 名 古 屋 (1939년)가 이어 세워졌다. 이상의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경성제대는 1886년에 제정된 제국대학법 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던 것이다. 그 제국대학법 제1조를 보면, 제국대 학은 국가의 須 要 에 應 한 학술 기술을 敎 授 하고, 그 蘊 奧 를 攷 究 함을 목적 으로 한다고 되 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明 治 정부 이후 진행된 중앙권력 중심의 국가주의에 입각한 知 적 권력의 표현 규정이었다. 그러나 식민 본국의 제국대학들이 국가의 須 要 에 걸맞은 인재 양 성을 교육 목표로 하였다면, 조선에 설립되었던 경성제대는 그들의 자찬처럼 식민지 지배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한 학교제도의 완성된 형태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앞서의 제 국대학법 제1조 내용으로 본 경성제대의 존재는, 일본의 정치권력의 상식에서는 조선이 타 자성을 상실한 타자이면서도 국가주의의 동일한 범주에서 자기 동일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 것은 적어도 가상으로나마 국민의 평등이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국민의 평등이라는 이상은 국민공동체내의 평등의 공감에 의한 感 傷 적 표상이면서 그 구성들을 결합시키는 합 체의 느낌 을 산출하지만, 사회제도의 변동을 피하기 위한 구실로도 간단히 전환시키는 것 이 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경우의 평등은 사회 편제의 정당화와 비정당화의 양면을 포함하 고 있으며, 평등을 둘러싼 사회적인 저항을 분절화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경성제대의 개교에 앞서 발발했던 민립대학설립 운동은 식민지주의로부터의 知 의 구속에 대항한 學 의 독립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조선인의 생명운동과 문명운동의 핵심 골수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주체의 계급적 한계와 마찬가지로 근대주의적 知 의 조선 사 회화의 측면에서 그 필요성을 대중화하는데 실패하였다. 하지만 이 운동을 통한 知 의 소유 에 대한 자유 의 요구가 지배하는 측 과 지배당하는 측 이라는 이항대립적 존재의 차이가 가져온, 조선인만의 상상의 자기동일성 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겠 다

2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2. 좌절된 민족 이데올로기로서 식민지 조선의 대학교 1894년 6월 18일자 군국기무처( 軍 國 機 務 處 )의 의안( 議 案 )에 따르면 각아문관제 에 의해 교육사상 초유의 근대적인 교육행정 전담의 국가기관이 학무아문( 學 務 衛 門 )이라는 이름으로 발족하는데, 그 학무아문 아래는 총무국, 성균관급상교서원사무국( 成 均 館 及 庠 校 書 院 事 務 局 ), 전문학무국, 보통학무국, 편집국, 회계국을 두었다. 그 중 대학교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전 문학무국인데, 그 규정에는 중학교, 대학교, 기예학교, 외국어학교 및 전문학교를 관장한 다. 고 하고 있다. 또 그해 7월에는 학무아문의 명으로 공포된 고시( 告 示 )에서도 장차 대학 교 를 설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대학교는 실제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듬해 3월 25일에 단행된 정부 조직의 개혁에서 의정부가 내각으로 바뀌고 학무아문이 학부로 재편되면서 아예 학무국의 분장 중 에는 대학교에 관한 규정마저 사라졌다. 이렇게 대학교의 설립에 관한 법적인 규정이나 정 부의 의지가 채 1년도 지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당시 대학교 설립의 목적과 그 성격 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소학교, 사범학교를 관 장 하는 보통학무국과 구별되는 전문학무국에서 관장한 고등교육기관이었으며, 또한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과도 다른 새로운 제도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1) 일본 통치하에 들어서는 대학교 를 둘러싼 쌍방의 공방이 통치의 수단에 대해 저항의 수 단으로 인식되면서, 상호 문화적인 통제와 저항을 위한 실천된 제도이자 이념의 문제로 변 화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민립대학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 합방 이후 에는 이미 조선인 중에도 가노 마사나오( 鹿 野 政 直 )의 말대로 아카데미즘에 의해 국가를 학 문으로 무장한 체제 의 대학교(특히 제국대학)를 통해 근대화를 주도한 일본의 역사를 경험 한 사람들이 다수 존재했던 때였다. 그리고 1920년대 이후에는 식민지 본국과 총독부가 내 지연장주의 의 근거 아래 대학령 (1918)을 조선에 적용함과 함께 조선교육령의 개정 등을 통해 대학설립의 계획을 현실화해갔고, 그런 가운데 구체적으로 민립대학운동과 경성제대의 설립계획이 서로 대항적인 관계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민립대학운동을 비롯해 조선인에 의한 (민족)대학 설립의 의지는 줄곧 좌절되고 만다. 식민지주의에 의한 지( 知 ) 의 통제 시스템으로써 경성제대만이 식민지 기간 동안 존재했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의 저항사 기술에 있어서 대학교 설립운동은 그것이 개량적 문화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한 계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 민족 이데올로기를 표상하는 하나로서 존재 해 왔던 것이라 할 수 있다. 3. 植 民 者 의 욕망과 경성제대 이충우의 경성제국대학 은 민립대학운동을 주도한 월남 이상재의 일화를 소개하며 시작 한다. 1924년 6월 12일에 거행된 경성제대 예과 개교식에 초청을 받은 이상재는 오늘이 1) 일본에서는 1872년에 비로소 한학과 국학의 최고학부였던 창평학교( 昌 平 學 校 )를 배제하고, 개성학교와 동경의 학교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한 전국 유일의 최고학부로써 동경대학이 설립되었다. 이처럼, 최고학부인 동시에 중앙의 교육행정기능을 담당했던 기구였던 전대( 前 代 ) 대학(료)의 역할은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양학교 ( 洋 學 校 )였던 개성학교를 중심으로 서구 학문의 수용 기관으로서 대학이 새롭게 설립되었다.(박광현, 대학교 의 번역과 수용-한일 양국 사이의 수용과 대항의 관점에서, 한국문학연구, 쪽

3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우리 민립대학의 개교식이 있는 날이니 제군들도 함께 가지 라고 하며, 경성제대가 민립대 학의 發 足 物 이고 우리 대학의 후신 이며 장차 우리 대학이 될꺼야 라고 했다고 한다. 2)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루지 못한 민립대학의 이상과 식민지 유일의 대학으로서 경성제대라는 史 實 =현실 사이의 길항 관계는 한국의 대학사(교육사) 연구에서 신화 처럼 굳 건히 자리해 이념화되어왔던 것이다. 倭 總 督 은 韓 人 으로 하야금 文 化 的 問 上 을 식힘이 時 勢 에 適 應 한 政 策 이라 하는 體 面 上 宣 明 에 依 하야 着 任 以 來 此 方 面 에 對 하야 宗 敎 課 의 創 設 公 立 普 通 學 校 의 增 設 韓 人 校 長 採 用 等 으로 自 稱 改 革 을 圖 하는 中 이라 眞 僞 는 疑 問 이나 更 進 하야 高 等 敎 育 方 面 에 發 展 을 劃 策 하야 現 在 京 城 醫 學 專 門 學 校, 同 工 業 專 門 學 校 及 水 原 農 林 專 門 學 校 를 各 昇 格 綜 合 하야 朝 鮮 大 學 을 設 立 할 作 定 으로 調 査 進 行 中 (강조-인용자): 독립신문 ( ) 조선에 제국대학의 설립이 결정된 후 경성법전과 경성의전을 중심으로 총독부 교육행정에 대한 다양한 요구와 진정이 분출되었다. 그 과정에서 분규가 연속되었는데, 그것은 다분히 경성제대에 대해 법전과 의전 학생들이 느꼈던 소외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애초 이들이 승격 운동을 전개했을 때는 조선에 대학을 설립함에 있어서 자신들이 수혜자가 될 것이라 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제국대학의 실현이 점차 가시화되자 그것은 오히려 폐교의 위기 감으로 뒤바뀌었다. 일찍이 법전이 특수한 사정 을 이유로 폐교 위기로부터에서 벗어난 뒤 에도 그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계속해서 저항했던 이유는 경성제대 법문학부의 시설, 혜택, 교수진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느꼈던 소외감 때문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외형적으로는 총독 부 對 경성법전/의전의 양상을 띠었지만, 그 이면에는 경성제대 對 경성법전/의전 사이에서 벌어진 제도상의 갈등이 내재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내지 로부터 이식되어온 제도 (사람)와 이미 오래전부터 조선 내에 토착화되어 있던 제도(사람) 사이의 갈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1운동의 발발로 식민통치의 실정( 失 政 )을 비난 받던 재조일본인 관료들은 내지 주도 로 진행되는 식민지 제국대학 창설과 관련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역 할을 모색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을 조직화해 갔다. 특히, 高 橋 亨 와 같은 인물은 조선인은 반도 에 위축되지 말고 나아가 일본의 관계( 官 界 )와 학술계에 진출해야 할 것이라 고 주장하면서, 1920년 4월의 시점에 아직 실체도 없고 공론화되지도 않은 조선대학총장 이라는 단어를 언급한다. 3) 그것은 高 橋 가 총독부 시학관으로서 교육정책에 깊이 관여했던 점을 고려하면 앞서 언급한 독립신문 의 기사를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글이 조선에서가 아니라 내지 의 대중정론지 太 陽 에 실린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또 같은 해 10월에는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조선에 대학을 설립할 필요 성을 다시 주장한다. 그가 구상하는 대학은 불교철학, 불교문학 등 불교문화를 비천( 丕 闡 ) 하고 교수하는 종교대학 이었지만 내선학생을 수용 하는 것이었다. 4) 2) 이충우, 왜 경성제국대학 을 쓰게 되었나, 경성제국대학, 다락원, ) 高 橋 亨, 朝 鮮 人 國 家 觀 念 の 変 遷, 太 陽, 쪽. 4) 高 橋 亨, 朝 鮮 改 造 の 根 本 問 題, 太 陽, , 58쪽. 高 橋 亨 보다 앞서 경성대학 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조선어 학자 金 澤 庄 三 郎 이다. 그는 재조일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했던 朝 鮮 及 滿 洲 ( 쪽-44 쪽)에 東 洋 の 硏 究 と 京 城 大 學 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물론 문맥적으로 8쪽의 주19)에서 언급한 文 敎 の 朝 鮮 ( )에 실린 글들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그 가장 두드러진 차이라면 역시 이 글이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에 비추어 대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조선 내 거주 일본인, 즉 재조일본인의 정치적 기득권의 입장과 맞물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4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결과적으로 보면, 그 갈등은 우선 식민지 경험이 풍부한 토착 세력 중 제국대학의 출신자 들이 초기 경성제대 교수들로 선발되어 그 완충지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잠재하는 양상을 띠었다. 이후 법전과 의전 두 학교가 경성제대와 별도로 식민지시기 내내 존속하였지만, 두 전문학교의 소외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조선사회 전반에서 知 的 제도의 합리성이나 관료주의가 증가되면서 조선인 출신자들에게 내면화되어 갔던 것이 다. 4. 식민지 제국대학 의 권위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의 초대 분관장을 지냈던 모로가 히데오( 諸 鹿 央 雄 )는 1932년에 경 주박물관의 금제( 金 製 )가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 당국의 조사과정에서 도굴범과 골동품상과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그 자리를 물러난다. 당시 민족계열 신문은 그 사건 을 두고 慶 州 를 左 右 튼 唯 一 의 權 力 家 즉 俗 稱 慶 州 王 의 末 路 5) 라고 비난했다. 학무국 산하의 고적조사과에 경주고적보존 사무촉탁 이라는 지위에서 재단법인 경주고적보존회를 주도했던 그를 비롯한 향토 토착 식민자들은 경주라는 장소와 역사에 자신들을 일체화함으 로써 내지 혹은 식민지 권력과 소통하려 했다. 이 금제 도난 사건의 발생 후 그 처리과정에서 관장직을 사임하게 되는 모로가를 대신해 부임한 인물은 약관 26세의 신진 고고학자 사이토 다다시( 斎 藤 忠 )였다. 6) 그는 교토( 京 都 )제 대 고고학교실 출신으로서 미지의 반도 에 대한 불안과 취직 결정의 기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동 속에 경주에 부임했다. 교토와 나라( 奈 良 )의 고적조사를 수행하던 그는 경주 부임이 결정된 직후 오사카마이니치( 大 阪 毎 日 )신문 ( 奈 良 版 )과의 인터뷰에서 경주는 조선 의 나라( 奈 良 )이며 고도( 古 都 )에 남겨진 사적( 史 跡 )이 많을 것입니다. 이 지방에 그 어떤 족 적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은 유감입니다만 조선의 고도로서 우리 나라( 奈 良 )와 닮은 사적 을 조사하는 것도 어떤 인연으로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라고 했다. 이렇듯 경주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정보에 기초한 막연한 이미지와 나라와 경주의 유사성에 매력을 품고 경주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경주왕 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미 경주에 토착화된 권력을 행사했던 전임 박물관장인 모로가와는 전혀 다른 제국대학 출신이었다. 사이토는 자신이 길을 지나가 면 경주 사람들이 박사, 박사 라고 수군거렸다고 하는 한편, 모로가는 경주에서 위세 를 부리던 인물로, 그리고 오사카 긴타로( 大 坂 金 太 郎 )는 보통학교 교장 으로 회고하면서 아카 데미즘의 세례를 받은 자신과 그들 사이의 차별성을 실제 강조하고 있다. 7) 그러한 관계는 부여박물관 의 설립을 주도했던 오사카 긴타로와 경성제대 교수 후지타 료사쿠( 藤 田 亮 策 )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부여의 고적보존회는 백제 고도 부여를 경주나 평 양에 지지 않는 역사적 유람지로 만들고저 8) 신라고적을 연구하는 사계권위자 오사카를 부여박물관의 전신 백제관의 관장으로 불러온다. 오사카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직접적으로 5) 동아일보 1933년 5월 3일자. 6) 사이토가 경주박물관에 부임할 당시의 실제 신분은 진열 주임이었다. 하지만 총책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실과 오사카 긴타로 등이 그를 박물관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실질적인 의미에서 박물관장의 역할을 수행했 던 것으로 판단된다.( 斎 藤 忠, 考 古 学 とともに 七 十 五 年, 学 生 社, 쪽) 7) 위의 책, 59쪽. 사이토는 오사카 긴타로를 전임 박물관장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억상 착오인 것으로 여겨진다. 오사카가 회고했던 것처럼 그는 모로가의 후임이었으나 그가 그렇게 기억했던 이유는 아마도 오사 카가 경주박물관과 경주고적보존회에 끼친 영향력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8) 百 濟 古 都 夫 餘 에 大 遊 覽 地 計 劃, 동아일보,

5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조선 고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회령 근무 시절인 1911년에 도리이 류조( 鳥 居 竜 蔵 )가 총독부의 위촉을 받아 고적조사차 방문했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1915년에 경주로 부 임하면서 이 지방의 식민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본격적인 고적 및 문헌 조사에 임한다. 그런 그의 활동은 취미의 경주( 趣 味 の 慶 州 ) ( 財 團 法 人 慶 州 古 蹟 保 存 會, 초판 1931)와 경주의 전설( 慶 州 の 傳 說 ) ( 田 中 東 洋 軒, 초판 1932)이라는 대표적인 성과로 집약되어 나타난다. 그렇 게 볼 때, 이 책들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곧 오사카를 부여의 박물관장으로 위촉하게 된 배경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 것일 수 있겠다. 이 책에서 필명으로 사용한 오사카 록손( 大 坂 六 村 )의 육촌 은 신라 건국신화인 육촌 천강민족( 天 降 民 族 ) 설에서 따온 것인데, 특히 그는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연유를 오랜 동안 경주에 거주한 관계상 9) 이라는 토착성을 강조하면 서 그 전설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소위 육촌( 六 村 )의 천강민족은 내부에 일어난 복 잡한 사정과 외부에 나타난 이민족의 발흥에 자극받아 지금까지 서로 간에 갈등을 빚고 있 던 일체의 이해나 감정으로부터 흔쾌히 해방된 현명한 고려( 考 慮 )나 활달한 태도로서 일로 대동단결( 一 路 大 同 團 結 )의 뜻을 가지고 평화롭게 부족연맹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윽고 도래 할 국가에의 기초가 되고 또 후세 대신라( 大 新 羅 )가 될 그 핵자( 核 子 )이기도 했다. 10) 대신 라 의 핵자 즉 신라의 기원에 자신을 동일화하는 자기규정의 차원에서 이 육촌 이라는 필명이 탄생했던 것이다. 총독부박물관장이자 경성제대 교수인 후지타는 취미의 경주 의 서문에서 여행자( 旅 人 )에게는 단지 민둥산의 이용( 異 容 )인 감을 품는데 지나지 않지만 신라 인의 생활과 밀접하여 떼려야 뗄 수 없었던 남산 일대 11) 를 언급하면서 경주에 살며 경주 를 사랑하고 생애를 그 연구에 바친 록손 선생의 정진( 精 進 )에 감격 12) 을 표하고, 昭 和 六 年 一 月 於 景 福 宮 이라고 하며 경복궁에서 =총독부박물관장이라는 자신의 위치와 비교하여 이 책의 저자 소개와 추천사를 대신하고 있다. 13) 5. 경성제대의 법문학부 <표1>(1928년 현재) 법학부 의학부 공학부 문학부 이학부 농학부 경제학부 도쿄제대 교토제대 도호쿠제대 규슈제대 홋카이도제대 경성제대 ) 大 坂 六 村, はしがき, 趣 味 の 慶 州, 財 團 法 人 慶 州 古 蹟 保 存 會, 쪽. 10) 위의 책, 24쪽-25쪽. 이러한 토착성을 강조하는 내용은 慶 州 の 傳 說 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만약 경주 를 방문했을 때 이런 전설들(유적에 담긴 전설-인용자 주)을 알지 못하고 지나쳤다면 경주는 단지 황량한 기 와돌 터로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보는 이에게나 보이는 경주에게나 유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라는 이 책의 의의를 밝히고, 이 책에 실린 40가지의 전설에 관한 배열 방법에 대해서는 소재지 순으로 경주면에 서 내남( 內 南 ) 천북( 川 北 ) 견곡( 見 谷 ) 서면( 西 面 ) 내동면( 內 東 面 ) 외동면( 外 東 面 ) 및 해안지방에 관해서 썼다. 우선 관람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라고 하여 경주인= 신라인 으로서 경주를 외부인에게 안내하는 취 지를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大 坂 六 村, 序 文, 慶 州 の 傳 說, 田 中 東 洋 軒, 쪽) 11) 藤 田 亮 策, 序 文, 위의 책, 5쪽. 12) 藤 田 亮 策, 위의 책, 7쪽. 13) 문학자 중에서는 취한 배 의 작가 다나카 히데미쓰( 田 中 英 光 )가 유진오를 회고하며 어쨌든 경성제대를 일 번으로, 그것도 기록을 깬 성적으로 졸업한 유진오 씨다. 사립대학(와세다대학-인용자)을 겨우 졸업한 나에게 는 다소 두려운 느낌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한 바 있다.( 朝 鮮 の 作 家, 新 潮, 쪽) - 5 -

6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법문학부와 의학부로 출발한 경성제대에는 크게 두 부류의 교수가 부임해왔다. 하나는 내 지로부터 직접 부임해온 그룹이었고, 또 하나는 조선에서 현지 채용된 그룹이었다. 의학부 에는 1926년 현재 14명의 교수 중 경성의학전문학교장 志 賀 潔 (겸임)를 비롯해 10명이나 동 학교 재직 중인 교수로 충원했는데 법문학부는 그와 달랐다. 당시 법문학부란 내지 의 기존 제국대학에 있는 법학부와 문학부를 통합한 경성제대 특유의 학부 형식이었다. 더구나 그것 은 법학부와 문학부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었다. 예과의 문과A반 학생들이 주로 진학하는 법학 계열에는 법학은 물론 경제학, 정치학 등의 다른 사회과학 계열의 강좌도 속해 있었기 때문에 법문학부라는 명칭과 개념은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넓은 의미에서 문과 계열의 축소 이식된 변형태 로 만들어진 새로운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경성제대가 식민지에 서의 제국대학이라는 새로운 실험인 데다 법문학부가 내지 에서는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교수 채용문제는 복잡함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초대총장인 服 部 가 내지 의 아카데미즘을 이식하려 했던 구상에 대해 대학 내에서도 다 양한 이견이 있었다고 회고하는 高 木 市 之 助 는 그 대립 구도를 반골적 야인 혹은 제멋대 로인 귀족처럼 자란 인종 對 대학 건설 이전부터 정착해 살던 사람들 (강조-인용자)의 관 계로 파악하고 있다

7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표2> 법문학부 강좌 담당교수 조선사학 2 3 今 西 竜 / 小 田 省 吾 (이상 교수) 지나어학지나문학 1 1 児 島 獻 吉 郎 (교수) 심리학 1 2 速 水 滉 (교수)/ 黒 田 亮 (조교수) 윤리학 1 2 島 本 愛 之 助 (교수) 조선어학조선문학 2 1 高 橋 亨 / 小 倉 進 平 (이상 교수) 지나철학 1 1 藤 塚 鄰 (교수) 국어학국문학 1 2 高 木 市 之 助 (교수) 미학미술사 1 2 上 野 直 昭 (교수) 철학철학사 1 2 安 倍 能 成 (교수) 형법형사소송법 1 1 花 村 美 樹 (조교수) 외국어학외국문학 1 2 佐 藤 清 (교수) 민법민사소송법 1 3 竹 井 廉 (교수)** 藤 田 東 三 * 교육학 1 2 松 月 秀 雄 (교수) 헌법행정법 1 1 松 岡 修 太 郞 (조교수) 동양사학 1 2 玉 井 是 博 (조교수)* 사회학 1 1 秋 葉 隆 (조교수) 국사학 1 2 田 保 橋 潔 (조교수) 로마법 1 1 船 田 享 二 (조교수) 경제학 1 1 四 方 博 (조교수) 정치학정치사 1 2 奥 平 武 彦 (조교수) 통계학 0 1 종교학종교사 0 1 국제공법 0 1 상법 0 1 서양사학 0 1 합계 굵은글씨는 조선사강좌 에서 강좌를 담당한 인물임. * 藤 田 東 三 는 부임 시기가 자료에 따라 1926년 혹은 1927년으로 상이하게 나타남. ** 1927년에 민법 상법으로 담당 변경 14) - 조사 사업에서 학술 로 식민지 조사사업의 경과를 기록한 자료집 조선구관제도조사( 朝 鮮 舊 慣 制 度 調 査 ) 가 1938 년에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발행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그때까지 그 사업에는 당시 돈으 로 수십만 엥 의 거액이 투여되었는데, 이 목적은 조선을 시급( 時 急 ) 하게 법치국 체제 로 구성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15) 이 조사사업이 지닌 학술적, 분업적 인 성격은 재조일본인 지 식사회의 형성 과정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이 조사 사업 중 도서의 수집은 중요 한 사업의 하나였다. 이후 그 사업은 취조국 참사관실( 중추원)( 구관 및 제도조사위원 회) 학무과 경성제국대학으로 점차 이관되어갔다. 주로 행정 자문관이나 고문, 그리고 촉 14) 1926년 현재 在 外 硏 究 中 인 교수: 藤 田 亮 策 (조선사학-조교수) 寺 井 邦 男 (외국어학-조교수) 金 子 光 介 (서양사- 조교수) 大 内 武 次 (통계학-조교수) 大 谷 勝 眞 (동양사-교수)/ 藤 田 東 三 (민법민사소송법-조교수) 戸 沢 鉄 彦 (정치 학정치사-조교수) 田 中 豊 蔵 (미학미술사-조교수) 長 谷 川 理 衛 (국제사법-조교수) 竹 井 廉 (민법 상법-교수)** (실은 1927년 임명)/1927년에 개설된 강좌의 담당 교수: 赤 松 智 城 (종교학종교사-교수) 鳥 山 喜 一 (동양사-교 수)* 松 坂 佐 一 / 安 田 幹 太 (민법민사소송법, 이상 조교수) 泉 哲 (국제공법-교수) 白 井 成 允 (철학철학사-조교수) 宮 本 和 吉 (철학철학사-교수)/ 黒 田 亮 (심리학-교수) 15) 朝 鮮 總 督 府 中 樞 院 편, 朝 鮮 舊 慣 制 度 調 査, 1938, 2면

8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탁의 형식으로 내지 에서 파견된 사람들로 구성된 조선 내 일본인 지식사회는,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커다란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조선사강좌 (1922)를 발간했던 조선사학 회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이 학회는 조선학의 분과화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조선에 서 행해진 조사 사업을 학술 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사학회가 학회를 구성한 배경에 대해서 조선에서 (식민: 인용자)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반도의 토지민정( 土 地 民 情 )을 궁구하고, 깊이 그 유래와 연혁을 분별해야 하는데, 반도의 역사는 아직 학술적 연찬의 초정( 初 程 ) 에 있기 때문이라고 동인( 同 人 ) 의 이름으로 밝히고 있다. 16) 그러면서 자신들의 학술 에 대해 각 학과 전공의 여러 대가가 망라되어 각자의 온축( 蘊 蓄 )을 경주하였기 때문에 그 내용은 가장 권위 있는 것 이라고 자부하였다. 17) 각 분과 담당자들은 그 내용의 정확과 충실은 금후 여러 전문학자의 연구를 기다려야 한 다 고 필요 이상으로 역설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다름 아닌 제도화된 조선학 의 재 생산 체제에 대한 기대였다고 할 수 있다. 즉, 학문의 보급과 전파를 목적으로 삼는 차원을 넘어 학술적 고핵( 考 覈 ) 과 전문학자 를 완전한 구조 안에서 재생산하기 위한 학술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바로 2년 후, 즉 1924년에 예과가 개교하는 경성제대를 통해 실현되었다. 18) 결국 그들이 식민지 조선이라는 장소의 당위성에 근거해 창조 된 학과를 담당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6. 동양문화 의 기획과 경성제대 사학과 1926년 5월 1일, 식민지 조선의 경성 에 제국대학이 개교하였다. 이 대학은 국가주의를 표방과 동시에 강조점을 둔 것은 동양문화연구 의 센터로서의 경성제대의 위상이었다. 19) 특히 服 部 는 교육칙어 를 완성시킨 교육행정가이자 동양철학자였다. 그런 그가 구상했던 경 성제대는 내지 와 지나 사이의 문화의 관계 로 규정되는 조선의 지정학성, 즉 동양성 에 기초한 동양문화연구의 권위 를 지닌 특종( 特 種 )의 학부 였다. 20) 제국대학에서 첫 일본인 교수로 부임한 이노우에 데쓰지로( 井 上 哲 次 郎 )가 그의 스승인데, 이노우에는 인도철학, 지 16) 조선사학회 편, 朝 鮮 史 講 座 要 項 號, 1922, 1-2면. 17) 위의 책, 廣 告 紙 面. 18) 그뿐 아니라 경성제대는 지식사회의 전반 특히 관료나 경제계의 인적 재생산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었다. 내지 에서 상급학교의 진학이 어려워 경성제대를 선택했다는 내지 출신의 법과 졸업생 쓰보이 사치오( 坪 井 幸 夫 )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학부 졸업 후 곧바로 국제법연구실의 조수로 배치되었고 그 후에는 경찰 관료로 서 패전을 맞는 등, 46명의 졸업(1936) 동기 중 내지 와 만주에 각각 1명씩이 취직했을 뿐 그 나머지는 조선 내 각계에 취직했다고 한다.( 坪 井 幸 夫, ある 朝 鮮 総 督 府 警 察 官 僚 の 回 想, 草 思 社, 2005, 64-65면, 66면) 19) 한편으로는 지나와의 관계 또 한편으로는 내지와의 관계에서 여러 방면에 걸쳐 조선연구를 행하여 동양문 화연구의 권위를 얻는 것이 본 대학의 사명이라고 믿고 있다. 능히 이 사명을 수행하려면 일본 정신을 원동력 으로 하여 일신의 학술을 利 器 로 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위의 글, 3쪽) 조선에서 대표적인 식민통치 의 宣 伝 誌 중의 하나인 文 敎 の 朝 鮮 이 1926년 6월호를 경성제대의 개학 기념호 로 간행하였을 때, 거기에 실린 글들을 살펴보면 당시 동양문화 가 얼마나 중요한 정치선전 문구였는가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 외에도 조선총독 齋 藤 實, 최초의 조선인 학무국장 李 軫 鎬, 초대 의학부장 志 賀 潔, 초대 법문학부장 安 部 能 成, 예과부장 小 田 省 吾 등의 축사가 실렸다. 그들의 축사 안에는 동양문화, 조선 특수의 질병약물 등의 연구에 중 대한 사명 ( 齋 藤 實 ), 내지와 지나의 중간에 介 在 하여 삼자의 상관적 문화관계를 연구 = 近 時 동양문화 ( 李 軫 鎬 ), 동양연구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사명 ( 安 部 能 成 ), 동양문화에 공헌 ( 小 田 省 吾 ), 동양의 學 人 을 위한 自 救 淸 洗 ( 高 橋 亨 ) 등, 동양 또는 동양문화 를 중심 공통어로 사용하고 있다. 20) 경성제대의 개교 준비과정에서 창립위원장 을 맡았던 핫토리 우노스케는 < 朝 鮮 帝 國 大 學 の 特 色 >이라는 글에 서, 조선 그 자체의 연구를 위한 제국으로서는 진정으로 의미 있는 특종의 학부 건설 이 필요함을 역설하였 다( 朝 鮮 地 方 行 政, 1924, 4월호, 4쪽)

9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나 철학, 일본철학으로 분절된 (일본의) 동양철학을 새롭게 창안한 인물이다. 반면, 그의 제 자인 핫토리는 도쿄제국대학 안에 서양철학에 대한 대항으로서 개설된 동양철학을 전문학과 로 양성시킨 장본인이었다. 일본의 아카데미즘(특히 제국대학) 안에서 핫토리는 이노우에가 주창한 동양도덕 - 유교적 권위주의 를 진정한 정신 의 근거로 삼아 호교적( 護 教 的 ) 교학 체계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 일관된 정치력을 발휘하며, 삼민주의에서 좌익사상에 이르는 일 체의 사상과 대항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학문적 입장을 가리켜, 도가와 요시로( 戸 川 芳 郎 ) 는 절대적 천황제 옹호의 극단 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결국, 핫토리의 학문적 실천을 살 펴볼 때, 그가 주장한 동양문화연구 센터로서의 경성제대의 구상은 국가주의 확장의 범주 안에 동양 을 전제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표3> 京 城 帝 國 大 學 一 覽 (1929년부터 1942년까지)을 참조하여 사학과의 각 전공별 인적 비율, 조선인/총졸업인원) 경성제대의 법문학부에는 법학과, 철학과, 사학과, 문학과 등 네 학과가 설치되었다. 그리 고 각 학과 안에는 몇 개씩의 전공을 두었다. 그 중 사학과는 국사학 =일본사학, 조선사학, 동양사학의 세 전공을 두었다. 특이한 것은 1928년부터 가네코 고스케( 金 子 光 介 )의 서양사 학이 강좌로서 존재했지만, 전공으로 설치되지 않아 전공자가 단 한 명도 배출하지 않았다 는 사실이다. 21) 그 결과는 명실상부 제국 의 최고학부로서 경성제대가 지닌 동양문화연구 연도/전공 국사학 동양사학 조선사학 1929년 0/0 0/0 2/5 1930년 0/0 0/2 2/2 1931년 0/0 1/3 1/4 1932년 0/0 2/2 2/5 1933년 0/3 1/3 0/0 1934년 0/1 3/4 0/1 1935년 0/1 3/8 1/1 1936년 0/3 1/2 0/2 1937년 0/3 4/5 4/5 1938년 0/4 0/2 1/1 1939년 0/0 0/0 0/0 1940년 0/1 0/1 1/1 1941년 0/2 0/2 1/1 의 센터라는 특성이 다른 어느 학과보다도 사학과의 전공 구성에 철저하게 반영되었음을 의 미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위의 표에 나타난 특징은 국사학 =일본사학 전공자가 조선인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서양사학이 전공으로 개설되지 않은 사실과 함께 가장 두 드러진 특징이다. 서두수(2회)와 최성희(8회) 단 두 명에 그치긴 했으나, 문학과에는 국문 학 전공자가 있었다. 조선인 중 국사학 전공자가 전무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인 출신자들 이 주체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언어의 본질성보다 역사의 본질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그들이 (일본문학, 일본사학 등의) 국가학 을 전공으로 선택하지 않은 21) 해방 이후 서양사학회가 사립대학 출신의 趙 義 卨, 金 成 植, 金 聲 近, 金 學 燁 외에 몇 안 되는 젊은 학자들의 주 도로 1957년에 학회를 결성해 연구도 연구였지만, 서양사학의 위치를 확보하는 일에 주력하며 활동하였다.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1962년까지 서양사 전임교수가 없었다는 사실 (역사학회 편, 現 代 韓 國 歷 史 學 의 動 向 1945~1980, 일조각, 1982, 306쪽/조동걸, 現 代 韓 國 史 學 史, 나남출판, 1998, 336쪽)은 경성제 대 시절의 사학과의 편제와 무관하지 않다

10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전체적인 경원 현상은 식민지 상황에서 자기 민족에 대한 주체적 인식에 따른 결과라고 할 만하다. 자기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근대 조선사학 의 성립 단계) 에서 타자 특히 식민 지배자의 역사에 대한 탐구는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동양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국가학 으로서 국사학 과 잠재적 국 (가)사학 으로서 조선사학 사이의 갈등의 결과인 측면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 반면 특히 주목할 점은 일본인의 다수가 조선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그 수는 전체 적으로 조선인 전공자와 비슷했다는 것이다. 특히 개교 초기에 조선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일본인이 몰려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그것은 개교 당시 이 대학이 내세운 동양문화연구 라 는, 본국의 다른 제국대학과의 변별성을 강조한 정체성의 기획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것은 지나사 와 만선사 로 구획된 동양사학 전체 안에서 동양문화연구의 메카 라는 대학의 정체 성과 관련하여 조선사가 지니는 위상의 모호성을 중요한 이유로 들 수 있다. 조선사가 과연 국사인가, 동양사인가 하는 논쟁의 여지가 아직 남겨져 있던 상황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사 를 자기화된 타자(의 역사), 즉 새로운 국사 로서 인식했고, 그 때문에 타자의 역사, 즉 조 선사에 대한 적극적인 전공 선택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안에서 조선인들은 제도가 제어하는 상상력의 결여를 경험해야 했을 가능 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7. 경성제대와 문학과 구성 법문학부에는 1926년 당시 23개의 강좌가 개설되었는데, 그 중 문학과에는 조선어학조 선문학 (이하, 조선문학 ) 제1강좌, 제2강좌를 비롯해, 국어학국문학 (이하, 국문학 ), 지나 어학지나문학 (이하, 지나문학 ), 외국어학외국문학 (이하, 외국문학 )이 각각 한 강좌씩 총 5강좌가 속했다. 조선문학 강좌는 다카하시 도오루( 高 橋 亨 )와 오구라 신페이( 小 倉 進 平 )가 각각 담당하였 다. 이 두 사람은 조선사학 제2강좌를 담당한 오다 쇼고( 小 田 省 吾 )와 더불어 경성제대 교수 들 중에서 식민 관료 출신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이들 강좌는 식민지 통치 이후 조 선에 관한 知 의 축적 결과를 담지한 학과라고 하겠다. 한편, 국어학국문학 (이하, 국문학 ) 강좌는 일본의 국문학사 가 최초로 외지 로의 진출 을 실험한 학과였다. 그로써 중등교육 의 교육과목으로서 국어=일본어 가 아닌 학문(연구)으로서 국문학 이라는 제도가 조선에 성립한 것이다. 국문학 강좌는 처음에는 도쿄제대 국문학과 출신 다카기 이치노스케( 高 木 市 之 助 )가 담당한 한 강좌만이 개설되어 조선문학 강좌에 비해 비교적 왜소하게 출발하였 다. 그러나 국사학 강좌와 함께 국민의식과 국민확장 이라는 내지연장주의 이념을 대표 하는 국가학 답게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해 갔다. 다카기는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어학 은 국문학 과 전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별 개로 개설되어야 한다고 교수회의에서 제안하였다.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당시 도쿄제 대 국어학 담당 교수 하시모토 신키치( 橋 本 進 吉 )의 추천으로 1928년에 제2강좌의 담당교수 로 도키에다 모토키( 時 枝 誠 記 )가 부임하였다. 그리고 1930년에는 오카야마( 岡 山 ) 6교에 재 직 중이던 아소 이소지( 麻 生 磯 次 )가 부임하여 실질상 제3강좌나 다름없는 국문학 강좌 를 담당하는데, 그는 경성제대의 부임 이전에 1921년부터 2년 간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편집과 에서 편수서기를 지낸 바 있는 인물이다. 다카기가 퇴임하는 1939년에는 아소가 제1강좌로 옮기고, 그 자리에 오기와라 아사오( 荻 原 淺 男 )가 새롭게 부임하는 등 줄곧 3강좌 체제가 거

11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의 패전까지 유지되었다. 이 식민지 대학이 1886년 개교한 제국대학(1897년 교토제대가 개교할 때까지 유일한 대 학의 명칭이기도 했다)이라는 최고학부의 형식으로 개교되었을 뿐만 아니라, 개교 이후 식 민자들의 입학률이 70% 내외를 줄곧 유지했었던 점을 생각하면 국사학 과 더불어 국문학 강좌의 개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성제대가 여섯 번째로 세워 진 제국대학이었지만, 법문학부의 형식 자체가 말해주듯이 동서의 두 제국대학 즉 도쿄제대 와 교토제대 이외에는 법학부나 문학부 등이 없었던 점을 생각할 때 그런 단순한 이유로만 설명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경성제대가 식민지 제국대학이라는 맥락과 국가학 의 지위를 지닌 국문학 이라는 성격의 차원에서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경성제대 국문학 강좌는 최초로 외지 로 진출 한 국문학 이라는 의미에서 제국일본 내의 다른 어떤 아카데미즘(제국대학)의 국문학 강좌와도 변별되는 새로운 것이었다고 하겠다. 그에 비해 조선어학조선문학 강좌를 보면 제1강좌와 제2강좌가 개설되었다. 그 중 제1강 좌는 高 橋 享 가 담당했는데, 그는 李 朝 佛 敎 를 통해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조선사상사는 새롭게 우리 일본의 학도에게 전하는 일대 연구대상 22) 이라고 주장하며 내지 의 아카데미 즘을 향해 발화하는 조선사상사가의 대표의 자리에 자기를 위치시킨 바 있다. 그는 그에 앞 서 일찍이 1912년에 발표한 朝 鮮 儒 學 大 觀 부터 유학=연구= 지나철학 =지나의 philosophy ( 對 )유교=신앙=유교신자라는 구도를 통해 학지로서의 유학과 종교로서의 유교를 구분하고 있다. 조선에 관한 학지의 구성이라는 측면에서 경성제대를 볼 때, 조선사강좌 는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 동인 들의 말대로 이 저널은 식민지 조선의 학술, 특히 각 분과를 대표하는 강사들로 구성되었다. 그러한 전제하에서 다카하시가 사회사 라는 강좌를 애초 담 당하려 했던 것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다카하시 자신이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에서 그를 광의의 문학 연구자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오히려 조선인의 사상 과 신앙 에 대한 연구를 근간으로 조선 사회를 운영해온 다양한 동력 혹은 사회활동의 핵 심 을 사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과제로서 사회사 를 그 스스로가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주위 로부터도 그 분과의 담당을 의뢰받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후 그가 문학적 연구 를 언급했을 때도 그 자신이 그것과 문학연구와의 차이를 인식하 였으며, 자신의 문학적 연구 는 분화의 가능성 이 실현될 때 비로소 문학연구로서 성립한다 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문학 전공의 출신자들 즉 조윤제(1회), 김재철, 이재욱(이 상 3회) 등에 의해 실천되었던 조선문학연구는 분화의 가능성 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지적 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졸업논문으로 朝 鮮 小 說 의 硏 究, 朝 鮮 古 代 演 劇 의 槪 觀, 嶺 南 民 謠 의 硏 究 를 제출하였으며, 이후 조선 최초의 어문학 전공 학술조직인 조선어문학회의 주 요 멤버들이다. 조선어문학회의 회보 에서는 시가, 소설, 민요, 연극 등 조선문학의 다양한 장르연구가 이미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 조직 안에는 국문학=일본문학 전공의 서두수(2회) 와 지나문학 전공의 김태준(3회) 등도 참가하였다. 이 학회에서는 조선문학의 장르연구= 분화 를 실천하여 김재철의 조선연극사,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 와 조선소설사 등을 단행본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렇듯 경성제대는 내선공학( 內 鮮 共 學 ) 을 표방한 식민지 조선의 유일한 종합대학 (University)이었다. 교수를 핵으로 한 강좌제 중심으로 운영된 이 대학은 내지 의 어느 제 22) 高 橋 亨, 1929, 李 朝 佛 敎, 寶 文 館, 3면

12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국대학에도 없는 식민지 조선 특유의 학과=강좌를 두고 있었다. 그를 통해 아카데미즘으로 서의 조선학 의 성립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그 대표적인 학과가 바로 조선어학조선문학 (이하, 조선문학 )과 조선사학 이었으며, 이는 경성제대에만 존재하는 제국 (대학) 유일의 강 좌였다. 특히, 조선문학 강좌에서는 조윤제(1회), 이희승(2회), 김재철, 이재욱(3회), 이숭녕 (4회), 방종현(5회) 등 한국에서 1세대라고 불리는 국문학자들이 수학하였다. 23) 그들은 재학 중에 혹은 졸업과 동시에 조선어문학회 를 조직하는 등 경성제대 출신의 조선문학 전공자 로서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학술운동을 전개하였다. 年 前 京 城 帝 大 朝 鮮 文 學 科 에서는 朝 鮮 文 學 演 習 用 敎 科 書 로 擊 蒙 要 訣 을 使 用 하엿다고 한다. 이는 그 大 學 朝 鮮 文 學 科 의 主 任 되는 某 敎 授 의 選 擇 이니 가장 權 威 잇는 選 擇 이라야 할것이다. 그러나 不 幸 히 淺 見 寡 聞 한 나로는 擊 蒙 要 訣 이 朝 鮮 文 學 이란 말은 奇 想 天 外 로밖에는 아니들린다. 24) 이 글뿐만 아니라 조윤제 등에 의해서도 조선문학 의 교재에 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따 라서 이들의 학술운동은 경성제대를 넘어 조선 학술 사회 전반에서 진행된 조선에 관한 학 지 를 둘러싼 내지인과 조선인 사이의 경합의 장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할 만하다. 8. 국문학 과 조선문학 이라는 제도의 사이에서 만주사변 이후의 신질서와 문학 을 권두언으로 내건 1940년 6월호의 인문평론 은 동양 문학의 재반성 이라는 특집을 꾸린다. 藝 術 엔 國 境 이없다 는 표어로 문학이 민족협화의 계 기 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두언의 내용처럼, 그 기획 의도는 軍 事 的, 政 治 的, 經 濟 的 으로 東 洋 이 우리앞에 登 場 한 이때 어찌 東 洋 文 學 에 對 한 反 省 이없을소냐? 라는 것 이었다. 이 때 동양문학은 국문학, 지나문학, 조선문학이라는 3분류법에 따르고, 각 部 門 을 擔 當 執 筆 하신 徐 斗 銖, 裵 澔, 金 台 俊 의 諸 氏 가 斯 界 의 ** 者 인것은 다시 紹 介 할 必 要 도 없을터 라고 필자진 소개를 덧붙였다. 25) 서두수와 김태준은 물론 배호(지나문학, 9회 졸업)도 제국 의 아카데미즘의 학문적 세례를 받은 경성제대 출신자이다. 이화여전 국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서두수는 일본문학의 특질 을 통해 자발적(?)으로 자기 학문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 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조선문화(아니, 서두수 자신의 의식상 균열)가 말로 표현되기 이전의 言 靈 (ことだま)= 日 本 心 의 세계로 동일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일본문화에 대해 정의하면서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일본이 城 砦 (State) 的 이 아니었고 全 國 (Nation) 的 이기 때문이며 異 質 의 同 時 存 在 를 寬 容 하는 품성 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 자기네, 그 들, 이 민족, 일본 민족 즉 타자의 문화로 일본문화를 상대화하는 태도와 동시에 이렇게 인식의 전환을 보이는 것은 이것이 1940년 6월이라는 동양문학의 재반성 이 필요한 시점 에서 이뤄진 발언이라는 점과 분리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는 이 글의 말미에서 城 砦 (State) 와 이질 의 조선문화, 그리고 전국(Nation) 과 동시존재의 관용 의 일본문화를 상대 23) 그 외에도 윤응선, 정학모(6회), 김형규, 구자균, 신원우, 손낙범, 정형용, 李 釻 洙 (7회), 崔 時 翯, 吉 川 万 寿 雄 ( 奈 良 )(8회), 김사엽, 오영진, 이재수(9회), 若 松 寛 ( 岐 阜 ), 고정옥(10회), 신구현(11회) 등이 졸업했는데 흥미로운 것 은 두 일본인의 존재이다. 조선문학 강좌 출신자의 숫자를 연도별로 보면 이렇다.(괄호 안은 일본인의 수) 1929년 1명/ 1930년 1명/ 1931년 2명/ 1932년 0명/ 1933년 1명/ 1934년 1명/ 1935년 2명/ 1936년 6명/ 1937년 2명(1명)/ 1938년 3명/ 1939년 2명(1명)/ 1940년 1명/ 1941년 0명. 24) 李 春 園, 1935, 朝 鮮 文 學 의 槪 念, 四 海 公 論 (제1권 제1호) 5월호, 30면. 25) 편집후기, 인문평론 쪽

13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제 5회 전문가초청간담회 화하고 서로의 대소( 大 小 )를 가르는 동시에 그 사이의 일방적인 일치(포섭)의 가능성을 인정 함으로써 자신에게 존재했던 인식과 태도상의 균열을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서두수는 1942년 8월 이후 春 秋 에 메이지문학에 관한 평론을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國 文 學, 紙 と 講 座 (국문학, 종이와 강좌) 라는 연재에 수록된 이 글들은 국어=일본어로 작성되었다. 이미 1940년부터 국어와 조선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 주기 시작했던 서두수였기에, 이 글들이 국어로 씌어졌다는 사실만은 그다지 생경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인용했던 日 本 의 生 活 美 ( )와 妄 錄 第 一 課 ( )가 이 글 과 동시기에 발표된 글들이지만 半 島 の 光 나 新 時 代 와 같이 국어와 조선어의 혼용으로 발간되던 잡지에 실렸으면서도 조선어로 쓰여졌던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당시 춘추 가 半 島 の 光 과 新 時 代 처럼 국어와 조선어의 혼용으로 편집된 이중언어로 공간되 던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 국어 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국문학 이 라는 이미 규정된 사전 제약(요컨대 편집자의 요구 등)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6) 이 글 에서 그는 메이지 유신에 따른 天 皇 親 政 의 복고 가 진실로의 회귀 라고 규정하면서 메이 지문학에 담겨진 피의 계보 27) 에 대해서 소설, 시, 희곡 등 각 장르에 대한 (소개 수준의) 분석을 통해 주장한다. 28) 그리고 우리나라(わが 国 ) 라는 발화의 위치에서 국문학자 로서 자 기를 동일화하고, 문학에의 길과 조국에의 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여겼다 는 메이지 문학자들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방식으로 국어 와 국문학 의 이념을 실천하려 한다. 서두수는 식민지 대학(아카데미즘) 출신의 첫 국문학도 로서 국문학자 라는 자기동일성을 획득하면서 그 같은 실천을 수행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그의 실천이 좌절을 겪게 되는 것 은 해방으로 인해서였다. 하지만 그 좌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단조롭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졸업 후 한국문학연구 1세대라고 불리우는 조윤제, 이희승, 김재철, 이재 욱, 이숭녕, 김태준 등과 함께 조선어문학회회보 나 신흥 등을 통해 조선어문학의 영역 을 개척하는 데 동참하던 것의 의미, 그리고 당시 경성제대라는 아카데미즘의 정치적 세례 를 받았다는 자부심이 만들어낸 자기동일성의 바탕 위에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획득하기 까지의 그만의 갈등 등, 단순화할 수 없는 그의 학문적 궤적은 이렇듯 국문학 과 조선문학 사이에서의 방황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방황은 단순히 서두수 개인의 차원에서 연유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의 스승 다카기 이치노스케가 조선 이라는 식민지 상황에서 국문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면서 어려운 문제인지를 보 여주었듯이, 자기 학문의 場 을 얻기 쉽지 않았던 식민지 상황과 언어본질주의적 피해의식의 강요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식민지민으로서 처한 환경 속에서 살았던 서두수를 생각해볼 때, 그 많은 한계 상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조선문학과 국문학 이라는 제도의 사이 를 오가며 자신의 학문적 동일성을 탐색했다. 따라서 그는 식민지시기 조선문학이라는 범주 26) 이와 같은 경향은 잡지 대동아 에 실은 글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대동아 에 時 調 のまこと 心 (1) ( ) 를 일본어로 발표한다. 삼천리 가 반도인의 손에 의한 국어종합잡지 의 출간을 기획하며 1942년 5월호부터 제호를 바꾸고 조선어와 일본어의 이중언어로 발간한 이 잡지는 조선 내는 물론 만주, 내지, 중화민국 각지 에 지사와 판매소를 설치할 것을 계획했는데, 그런 점에서 그의 글은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그 각 지역의 국 어 독자를 대상으로 국어=일본어로 작성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 글이 시조의 진심 이라는 주제와 달 리 조선 시가사의 전반을 다룬 (번역 수준의) 개괄적 내용(이 글은 시조 발생 전 단계에서 끝난다)의 글이라 는 점도 조선인이면서 국문학자라는 그의 자기동일성에 비춰 자신의 역능을 어디에서 발휘해야 하는지를 편 집자와 합의해서 쓴 글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27) 서두수, 序 說 明 治 文 學 が 生 れる 頃, 春 秋, 쪽. 28) 그 외 연재된 글들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明 治 の 小 說 (1942.9), 明 治 の 詩 歌 ( ), 明 治 の 劇 文 学 ( )

14 학술진흥재단 2008 중점연구소 사업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 학지( 學 知 )와 문화매체 와 정치성에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었으며, 또 제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던 의식 때문 에 국문학 이라는 정치적 자장에 누구보다 깊이 감염된 실천을 행할 수밖에 없었다. 9. 마무리하며 해방 직후 국문학=한국문학 연구에 종사한 이들에게 과거의 국어=일본어 와 국문학=일 본문학 은 내면 깊숙한 곳에 지배자로 기억되고 있었다. 당시 경성제대의 조선문학 전공자 들을 중심이 되어 민족문학사가 새롭게 기술될 때도 그것을 국문학사 라고 명명하지 못할 정도로 국문학사=일본문학사 라는 과거의 기억은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 다. 여기에 당시 기술된 문학사를 열거해 보면 이렇다. 우리문학회의 国 文 学 史 (1948), 이 명선의 朝 鮮 文 学 史 (1948), 김사엽의 朝 鮮 文 学 史 (1948), 조윤제의 国 文 学 史 (1949)가 있다. 특히 우리문학회는 방종현(6회), 정학모(7회), 구자균, 김형규, 손낙범, 정형용(이상, 8 회), 고정옥(11회) 등 경성제대 출신자들이 1948년에 6월에 대학교재의 제작을 위해 조직 한 모임이다. 그들처럼 경성제대 출신자들이 선구적으로 국문학사 를 집필하였다는 점과, 그것이 대학교재를 위해 기술된 것이라는 점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신들이 수학한 경성제대 국문학 강좌의 영향으로 대학에 국문학과 가 제도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 다 이른 시기에 주장하였던 그들은 그 때문에 국문학사 라 명명하고 그것을 집필할 수 있 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외 다른 저서의 필자들도, 즉 조윤제(1회)는 물론 김사엽(10회)과 이명선( 지나문학 강좌, 12회)도 경성제대의 졸업생이었다. 그들 중 김사엽과 이명선이 국 문학사 라 하지 못하고 조선문학사 라 했던 것은 바로 과거 국문학사=일본문학사 의 기억 때문이었다. 김사엽는 朝 鮮 文 学 史 를 1954년에 개고할 때 비로소 개고 국문학사 ( 正 音 社, 1954)라고 명명하였다. 국문학 강좌 자체의 권력성은 모든 차이 마저 인정하는 공허한 중심 과 같기 때문에, 결국 식민지의 문학사는 물론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마저를 융합하고 동화하는 자기장의 역 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전후 高 木 의 참회 (= 국문학 의 재구축 과정)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해방 후 한국에서도 대학 제도나 제도로서 국문학사 (=한국문학사)의 형성과정에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깊게 작용했던 역사가 확인시켜주고 있다. 민족문학사로서 국문학 사 (=한국문학사)는 기억 속의 국문학=일본문학 을 배제하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거기에 작용했던 배제의 정치학은 과거 (역사와 기억 속) 국문학=일본문학 의 공 허한 중심 과 같은 권력을 모방하고 있었다. 그를 통한 의미상의 전도( 顚 倒 )로써 새로운 국 문학 을 탄생시켰다. 물론 그것은 국민국가의 건설과정과 불가분의 관계 위에서 이뤄졌다. 또, 1963년 한국의 대학에 일본어학과가 개설되기 이전까지 대학제도에서 일본어나 일본 문학은 철저하게 소외되어야만 했다. 현재는 한국의 4년제 대학의 대부분에 일본어 나 일 본문학 과 관련된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일본학 과 관련한 여러 학회가 존 재하며 또한 그 학회들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해방 후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일본과 관련한 학과나 학회를 제도적으로 조직하는 것 자체가 정치권력의 정치적 판단에 맡 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본사 전공자의 부재 -조윤제의 경성제대와 관련한 기억의 이중성: 학위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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