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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아역사논총 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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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 례 논문 김규운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7 정순일 9세기 초 일본의 변경과 통역 쓰시마에 배치된 신라역어를 중심으로 55 김득중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군사점령 논리와 냉전 에른스트 프랑켈의 국제법적 분석을 중심으로 93 조윤수 한일회담과 문화재 반환 교섭 일본 정부의 반환 문화재 목록 작성과정을 중심으로 125 서보경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고대 한일관계 기술에 대한 분석 2015년도 검정통과본을 중심으로 167 이종국 일본 보수정치인들의 역사인식과 역사적 전개 209 설림 이종수 중국의 최근 부여사 연구현황과 동향 楊 軍, 夫 餘 史 硏 究 ( 蘭 州 大 學 出 版 社, 2012)와 范 恩 實, 夫 餘 興 亡 史 ( 社 會 科 學 文 獻 出 版 社, 2013) 239 자료 소개 이근우 해동제국기 의 유구국지도 와 오키나와현립박물관 소장 유구국도 261 동북아역사논총 규정 및 규칙 281

4 Contents Articles Kim Gyuun A Study on the emergence of the Early Stone Chamber Tomb in the Kinai area of Japan 7 Chong Soonil Borderlands of Japan and Interpretations in the Early Ninth Century: Focusing on Silla yeogeo( 新 羅 譯 語 ) Used in Tsushima 55 Kim Deugjoong The United States Military Occupation Logic and the Cold War after World War II: Focusing on an International Legal Analysis by Ernst Fraenkel 93 Cho Younsoo The Korea-Japan Talks and the Negotiation for the Return of Cultural Properties: Focusing on the List compilation Process for the Return of Korean Cultural Properties by the Government of Japan 125 Seo Bokyung An Analysis of Ancient Korean-Japanese History as Described in Japanese Middle School Textbooks: Focusing on Textbooks that Passed the 2015 Screening 167 Lee Jongguk The Historical Perceptions of Conservatives in Japan and the Development of History 209 Research Report Lee Jongsu Situation and Trends of China s recent study on Buyeo history: Yang Jun, Research History Fuyu(Ranzhou University, 2012), and Fan En Shi, The Rise and Fall Fuyu(China: Social sciences Academic Press, 2013) 239 Book Review Rhee Kunwoo The Map of Ryukyu in The Chronicle of Countries in the East of Sea and The Ryukyu Map in Okinawa Museum 261

5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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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7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김규운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전문연구원 Ⅰ. 머리말 일본열도에서 횡혈식석실이 최초로 축조되는 것은 규슈[ 九 州 ]지역이고, 그것 은 4세기 말 무렵이다. 그리고 5세기 이후, 주로 北 九 州 型 과 肥 後 型 의 두 가 지 type의 석실이 이어진다. 이후 6세기가 되면 이른바 畿 內 型 횡혈식석실이 성립되고 특히 畿 內 型 대형 횡혈식석실의 정연한 변천이 보인다. 1) 즉, 고분시 대 일본열도의 중추지역인 기나이[ 畿 內 ]지역에서는 규슈지역보다 늦은 5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횡혈식석실이 축조되고 그 이후 독자적으로 정연한 형태의 석실로서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횡혈식석실의 출현은 단순히 매장주체부의 형태가 바뀌는 것에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목관묘를 비롯해 목곽묘, 석곽묘처럼 매장주체부에 투고: 2015년 8월 3일, 심사 완료: 2015년 10월 30일, 게재 확정: 2015년 11월 23일 1) 森 下 浩 行, 1993, 横 穴 式 石 室 の 地 域 間 動 向 ( 九 州 大 和 ), 季 刊 考 古 学 第 45 号, 雄 山 閣.

8 8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주검을 안치하고 외부세계와 이어지지 않도록 위에서 완전히 폐쇄하는 방법과 는 다르게 출입이 가능하도록 시설을 마련하는 등 형태적인 차이뿐만 아니라 매장 관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고분시대의 하나의 큰 획기가 될 것이다. 횡혈식석실이 기나이지역에서 처음 출현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그 출현양상을 비롯해 배경과 역사적 의의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연구가 진행되 어 왔다. 그 결과 기본적으로는 한반도로부터, 특히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성립되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는데, 어느 지역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또 어 느 요소까지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이견이 있다. 게다가 초기의 횡혈식석실에 묻힌 피장자에 대해서는 도래인 2) 으로 보는 입장과 재지의 수장 으로 보는 입장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기나이지역에서 횡혈식석실이 출현하는 양상이 반드시 같지는 않 을 뿐더러 석실의 평면 형태 하나만 보더라도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더불어 지금까지 기원지역으로 비정되는 백제 횡혈식석실의 양상이 명확하지 않은 것 에 기인한 것인지,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어느 지역에서 받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단순히 백제와의 관련만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몇 년간 서울과 그 인근 지역에서 한성기 횡혈 식석실의 발굴 조사가 다수 이루어져 백제 횡혈식석실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 을 것으로 보이는 자료가 증가하고 있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 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먼저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의 축조 양상을 세세하게 살펴본 후 그 특징을 확실하게 밝히고, 유형을 설정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설정한 유형을 근거로 어느 정도 백제와의 관계가 있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그 의의와 배경 등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나아가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초기 횡혈식석 2) 일본에서는 한반도 혹은 대륙에서 열도로 건너온 고대 인물에 대해 도래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도래한 것이 아니라 왜로 건너간 것이기 때문에 도왜인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로 검토하는 분석 대상과 연구사가 일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기왕의 도래 인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한다.

9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9 실의 피장자가 도래인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Ⅱ. 연구사 검토 고분시대 일본열도에 분포하는 횡혈식석실은 크게 九 州 型 과 畿 內 型 으로 대별 된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는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의 경우 어느 지 역에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문제에 앞서 畿 內 型 으로 포함을 시킬 수 있는 지 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기나이지 역 횡혈식석실 자체에 대한 주요 연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 글의 중심 분 석대상인 초기 횡혈식석실에 관련된 연구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긴키[ 近 畿 ]지방에는 규슈지방, 산인[ 山 陰 ]지방과는 형태가 다른 석실이 분 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3) 그리고 일찍이 고바야 시 유키오[ 小 林 行 雄 ]는 킨기지방과 규슈지방의 횡혈식석실 출현이 시기적으 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횡혈식석실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차이를 근거 로 긴키지방이 규슈지방에 비해 반세기 정도 더 늦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당시 대륙에서 새로운 묘제로서 석실이 규슈지방에 도입되고, 그 후 긴키지방으로 전파되었다고 상정하면서, 긴키지방의 도입이 늦은 이유는 오래된 문화와 강 한 전통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라고 논하였다. 4) 한편, 규슈지역과 기나이지역 횡혈식석실의 계보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시라이시 다이치로[ 白 石 太 一 郞 ]이었다. 북부규슈와 기나이지역에서 5세 기 중엽이라고 하는 거의 같은 시기에 횡혈식석실이 성립하나, 규슈지역의 석 실은 한반도에서 전파된 것으로, 그리고 기나이지역은 중국 남조의 전실묘가 3) 喜 田 貞 吉, 1914, 古 墳 墓 年 代 の 研 究, 歴 史 地 理 ) 小 林 行 雄, 1950, 古 墳 時 代 に 於 ける 文 化 の 伝 播, 史 林 33 3.

10 10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전파된 것으로 파악한 것이다. 5) 그러나 당시 인용된 기나이지역의 5세기 대 횡 혈식석실은 모두 규슈지역에서 전파되어 축조되었던 것이 밝혀졌고, 이후 시 라이시 다이치로는 기나이지역의 횡혈식석실 출현은 한성기 백제의 영향이라 고 수정하게 되었다. 6) 쓰데 히로시[ 都 出 比 呂 志 ]는 초기의 횡혈식석실 과 발전기 횡혈식석실 로 구별하고 양자 간 성격의 차이에 대해 논하였다. 초기의 횡혈식석실의 특징으 로는 연도가 분구 측면으로 설치되지 않은 것이 있고, 추가장이 적용되지 않는 수혈식석곽 7) 과 본질적인 차이는 없지만 천정은 높고 관 이외의 공간이 넓은 점 에서 수혈식석곽과는 구축 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수혈식석 곽에서의 자발적 발전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인식을 제시하였다. 8) 이후, 기나이지역 횡혈식석실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밝히면서 畿 內 型 石 室 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것은 야마사키 신지[ 山 崎 信 二 ]와 모리시타 히로 유키[ 森 下 浩 行 ]였다. 야마사키 신지는 기나이지역 중추부의 석실과 그 전파 지역의 석실을 구조면에서 비교하여 九 州 型 畿 內 型 의 양자가 中 四 國 지방 각지에 파급, 변용되는 여러 과정에 대해 논하였는데 그 가운데 현문 입주석의 구조를 기준으로 畿 內 型 석실을 설정하였다. 현문 입주가 내측으로 튀어 나오 지 않고 연도 폭과 같으며 현문 입주를 덮는 천장석이 연도부를 덮는 천장석과 같은 레벨의 수평으로 나란한 구조를 畿 內 型 석실의 특징으로 들면서 Ⅰ~Ⅳ기 로 구분하는 변천관을 제시하였다. 9) 모리시타 히로유키는 특히 폐쇄 방식의 차이를 지표로 九 州 型 과 畿 內 型 으 5) 白 石 太 一 郎, 1965, 日 本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の 系 譜 横 穴 式 石 室 の 受 容 に 関 す る 考 察, 先 史 学 研 究 5. 6) 白 石 太 一 郎, 1995, 古 代 史 のなかの 藤 ノ 木 古 墳, 藤 ノ 木 古 墳, 読 売 新 聞 社. 7) 원문에서는 수혈식석실 로 표현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순 없지만 출입이 불가능한 수혈식의 경우 석곽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원문과 다르게 일괄적으 로 수혈식석곽 으로 표기하도록 한다. 8) 都 出 比 呂 志, 1970, 横 穴 式 石 室 と 群 集 墳 の 発 生, 古 代 の 日 本 5, 近 畿. 9) 山 崎 信 二, 1985, 横 穴 式 石 室 構 造 の 地 域 別 比 較 研 究 - 中 四 国 編.

11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11 로 설정하였다. 九 州 型 은 현문에 판석을 세워 폐쇄하는 것에 비해 畿 內 型 은 석재를 쌓아 올려서 폐쇄하는 차이이다. 또 袖 部 의 형태도 九 州 型 은 내측으로 돌출시켜 평면형태가 凸 자형을 형성하나, 畿 內 型 은 兩 袖 片 袖 와 같이 어깨 부분을 형성하는 것으로, 그리고 畿 內 型 을 장방형플랜과 평천장의 A류, 정방 형플랜과 궁륭상 천장의 B류 두 가지로 세분하였다. 또, 畿 內 型 A류의 출자를 웅진기 남산록25 26호분 등에서 구하고 畿 內 型 B류의 출자를 웅진기의 송산 리고분군에서 구하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10) 그 후 高 井 田 山 古 墳 을 畿 內 型 B류로 하여 그 출자를 한성기의 횡혈식석실에서 송산리 석실로 이어지는 계보 속에서, 이러한 평면플랜이 출현하였다고 생각하였다. 11) 와다 세이고[ 和 田 晴 吾 ]는 군집분의 동향을 검토하는 가운데 군집분을 고 식 신식 종말식 군집분 및 군집분 소멸 이후의 4단계로 파악하고, 그 변화 의 배경에 야마토 정권에 의한 지배의 진전과 장제의 개혁과의 관계를 지적하 였는데, 기나이의 횡혈식석실의 설계척이 고려척으로 통일되고 규격화되는 단 계의 석실을 畿 內 型 횡혈식석실로 칭하면서 이 석실들이 채용되는 군집분을 신식 군집분이라고 하였다. 12) 畿 內 型 석실에 관련하여 그 특징을 가장 명확하게 밝힌 것은 하부타 요시유 키[ 土 生 田 純 之 ]이다. 畿 內 型 석실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두에 성립하는 것 으로 보면서 이전의 묘제와는 상당히 다른 특징을 아래와 같이 열거하였다. 13) 1 현실은 평면이 장방형이고, 천장 종단면은 평천장으로 전벽이 있는 것. 2 현문부에는 입주석의 사용이 적고, 입주석을 세웠더라도 벽체의 가운 데 포함되고 내측으로 튀어 나오는 것은 없다. 3 현문부에 문비석을 두지 않고 양수식 혹은 편수식에 연도가 접속되며 10) 森 下 浩 行, 1986, 日 本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の 出 現 とその 系 譜 畿 内 型 と 九 州 型, 古 代 学 研 究 ) 森 下 浩 行, 1993, 앞의 글. 12) 和 田 晴 吾, 1989, 畿 内 横 口 式 石 槨 の 諸 問 題, 立 命 館 史 学 ) 土 生 田 純 之, 1991, 日 本 横 穴 式 石 室 の 系 譜, 学 生 社 ; 土 生 田 純 之, 1994, 畿 内 型 石 室 の 成 立 と 伝 播, 古 代 王 権 と 交 流 5 ヤマト 王 権 と 交 流 の 諸 相.

12 12 동북아역사논총 51호 무수식은 원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7세기에는 퇴화 형식으로서의 무 수식이 출현한다). 4 폐쇄는 괴석을 쌓아 올리고, 종말기를 제외하면 판석을 이용하여 폐쇄 하는 것은 없다. 5 연도는 초현기의 것부터 현실에 비해 극단적으로 좁은 것은 없고, 어느 정도의 폭이 있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갖춘 것이다. 6 석재는 대형화의 경향이 강하나 벽체의 최하부에 특히 다른 것에 비해 거대한 돌을 사용하는 요석과 같은 수법은 이용하지 않는다. 7 현실의 모퉁이는 위에 이르기까지 잘 유지되고 있으며 양벽에 올린 역 석을 다용하여 상부를 둥글게 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畿 內 型 석실의 성립에 관해 도래인의 영향과 관여가 있었다고 지적 하면서도, 재지 묘제의 영향력도 있기 때문에 畿 內 型 석실의 성립에는 토착 왜 인의 주제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14) 오오타 히로아키[ 太 田 宏 明 ]는 기나이 중추부의 대형 석실에서 보이는 돌 쌓기 수법의 변천을 정리하여 기나이 중부추의 것으로, 동시기의 같은 돌쌓는 수법의 조합을 가지는 것 을 畿 內 型 석실로 재정의하였다. 15) 그리고 긴키에서 횡혈식석실이 발전 보급되어 가는 과정을 도입기 발전기 종말기의 3단계 로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도입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엽, 토기 형식으로 말하면 陶 邑 편년 TK10형식 신단계 이전이라는 인식을 제시하였다. 더욱이 이 도입기의 석실을 1군에서 5군으로 분류하고 각 군은 畿 內 型 석실의 변천 각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였다. 1군은 한반도, 특히 백제지역의 것과 유사한 한편, 개별성이 현저하며 각 자료의 상호관계는 오히려 희박하다고 보았다. 또 2군~5군은 기나이적 변용이 인정되고 단독분과 기나이지역의 군집분에 널리 채용되는 상황을 밝혔다. 그 후,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畿 內 型 석실을 도입한 주체는 후기 정권이고, 후기 정권의 조직은 기나이지역을 범위로 하는 정권과 14) 土 生 田 純 之, 1994, 앞의 글. 15) 太 田 宏 明, 1999, 畿 内 型 石 室 の 属 性 分 析 による 社 会 組 織 の 検 討, 考 古 学 研 究 46 1.

13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13 군집분 피장자층의 강한 유대를 가지는 특징이 있다고 파악하였다. 16) 그 후, 2007년에 횡혈식석실 연구회가 주최한 긴키의 횡혈식석실 의 연구 집회는 기나이지역 횡혈식석실의 연구에 관한 많은 성과가 제시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가운데 우메모토 야스히로[ 梅 本 康 広 ]는 同 形 同 大 석실에 관 해 분석하였다. 同 形 同 大 석실을 18가지의 유형으로 설정하고 같은 시기의 규 격이라는 전제로 9단계로 나눈, 단계적인 추이를 상정하였다. 그 가운데 초기 의 횡혈식석실에 대해서는 同 形 同 大 의 석실이 현상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규격 이 묘제의 질서로서 도입되었다고는 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특히 대형고분에 는 아직 횡혈식석실이 채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대왕묘로의 도입도 늦 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추정하면서 市 尾 墓 山 고분이 출현하는 MT15형식기에 횡혈식석실이 정형화되며 규격이 도입되었다고 상정하였다. 17) 그리고 토미야마 나오토[ 富 山 直 人 ]는 석실의 기술혁신이라는 점에 착목하 여 5가지 양식으로 분류하였다. 그 가운데 高 井 田 山 양식은 석실의 도입기에 해당하고 벽면은 석재를 들여 쌓아 형성하는 조임식 기법에 의한 것으로 상정 하였다. 또 古 단계에 속하는 석실은 현재 大 和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中 단계는 藤 の 森 古 墳 과 같이 평면형이 종장으로, 할석의 작은 눈 쌓기에 의한 강한 조임식에 의해 벽면을 구성하는 것과 高 井 田 山 古 墳 과 같이 평면형이 비 교적 정방형에 가깝고 강한 조임식에 의한 벽면을 구성하는 것으로 파악하였 다. 新 단계는 櫻 井 公 園 2호분과 七 ノ 坪 고분을 표지로 하는 것으로 벽면은 거 의 잔존하고 있지 않으나 여전히 연도의 발달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현 문부부터 폐쇄하는 것이 기본으로, 이 시기까지가 도입기로, 각각이 九 州 系 또는 대륙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그 원류가 되는 지역은 다양하다고 결론지 었다. 18) 16) 太 田 宏 明, 1999, 앞의 글. 17) 梅 本 康 広, 2007, 畿 内 大 型 横 穴 式 石 室 の 構 造, 研 究 集 会 近 畿 の 横 穴 式 石 室, 横 穴 式 石 室 研 究 会. 18) 富 山 直 人, 2007, 後 期 前 方 後 円 墳 の 消 長 と 横 穴 式 石 室 からみた6 世 紀 の 社 会, 研 究 集 会 近 畿 の 横 穴 式 石 室, 横 穴 式 石 室 研 究 会.

14 14 동북아역사논총 51호 긴키지방의 초기 횡혈식석실과 백제의 횡혈식석실의 비교 검토를 행한 요 시이 히데오[ 吉 井 秀 夫 ]는 백제에서 목관 구조가 긴키지방으로 전해졌을 가능 성을 지적하였다. 긴키지방의 횡혈식석실에 이용된 관못으로 고정하는 목관의 기원을 백제 횡혈식석실의 목관에서 구하는 견해는 이전부터 있었으나 당시 비교대상이 되었던 것은 웅진기 이후의 횡혈식석실에 사용하였던 환좌금구가 있는 목관이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일본 고분시대 후기의 횡혈식석실에 보이는 관못을 사용한 목관에는 기본적으로 환좌금구가 공반되지 않고 관못의 길이도 길기 때문에 한성기 백제의 토광목곽묘 수혈식석곽묘 횡혈식석실묘 에 사용된 관못과 꺾쇠를 이용한 목관이 긴키지방 횡혈식석실에 이용된 목관 의 조형이 되었을 가능성을 밝혔다. 또 긴키지방 횡혈식석실의 출현에 대해서 는 동시기의 백제 횡혈식석실의 영향이 컸다고 보면서도 긴키지방 묘제의 전 통이 초기 단계부터 보이는 것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공통점에만 주목하지 말고 상이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논하였다. 따라서 畿 內 型 석실은 횡혈식석실이 수용되어 가는 과정에서 재지의 묘제와 전통과의 절충이 행해지고 백제의 것과는 다른 새로 운 묘제가 성립되며 넓게 퍼져 나갔다고 생각하였다. 19) 초기 횡혈식석실의 공간배치를 분석한 기타야마 미네오[ 北 山 峰 生 ]는 다음 과 같이 크게 3가지의 결론을 냈다. 1 초기 횡혈식석실은 단장을 원리로 축조되었다. 이것은 관을 밀봉하여 유해를 영구히 보호하는 수혈계 매장시설의 설계 사상과 공통된다. 따 라서 횡혈식석실은 도입은 매장 행동양식의 변화가 있으나 사고 양식 은 전통적인 측면이 강하다. 2 다시 말하면 횡혈식석실의 출현이라는 것은 고분시대 중기에 존재하였 던 재래의 수혈계 매장시설에 외래의 매장양식을 접목한 결과라고 말 할 수 있다. 그 접목이 가능한 것은 고분 축조 과정 그 자체가 변화하고 축조 매장에 대한 자세가 횡혈식석실과 유사한 상황이었던 것이 하나 19) 吉 井 秀 夫, 2008, 墓 制 からみた 百 済 と 倭, 百 済 と 倭 国, 高 志 書 院.

15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15 의 이유이다. 3 Ⅱ 1단계부터는 추가장을 염두에 둔 횡혈식석실이 구축되었다. 즉, 단 장에서 복수 매장으로 변화한다. 여기에 공간 이용 원리의 변화를 파악 할 수 있다. 이상의 결론을 토대로 횡혈식석실의 역사적 의의를 고분시대 전기 이래의 전통적 사상과 新 來 의 문화요소가 융합하였던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구조물이 라는 것에서 구하였다. 20) 횡혈식석실의 의례에 주목한 모리모토 도루[ 森 本 徹 ]는 긴키지방 중앙부의 석실 내 토기 배치의 시작을 보여주는 高 井 田 山 古 墳 의 의례 양상에 대해, 석 실 구조의 조형이 백제 한성기의 것에서 구해지는 것이 명확하고 부장품의 양 상과 남녀의 피장자를 안치하는 관배치를 취한 것에서도 피장자 출신이 도래 인일 가능성을 지적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고분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에 대해서 그 기원과 계보를 정리하면 모든 요소가 한반도에 기원을 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도래계 요소로 이해되는 스에키 고배를 중 심으로 하는 석실 내 토기류의 다량 배치에 대해서도 스에키를 고분의 의례에 사용하는 것은 열도에서의 스에키 생산의 개시기부터 인정되고, 긴키지방 중 앙부의 횡혈식석실 도입 이전부터 정착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반도의 도 질토기 다량 부장의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긴키지방 중앙부에 5세기 후반 단계 에 다시 한반도 석실의 조형이 도입되는 것과 같이, 의례도 긴키지방 중앙부에 서 새롭게 재구성되고, 이를 발신지로 하여 주위에 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 였다. 그리고 긴키지방 중앙부의 횡혈식석실 채용이 북부규슈에서 전파된 것 이 아니라는 것은 매장시설의 변혁도 긴키지방 중앙부에 중심을 둔 야마토정 권에 의한 시책의 하나로 이해하고 의례의 재구성도 같은 배경을 가진다고 보 았다. 그 시책의 배경에는 대륙적 묘제의 도입이라고 하는 방향성, 게다가 광 범위한 계층에 공통적인 매장시설의 채용이라고 하는 방향성이 포함된 것이라 20) 北 山 峰 生, 2012, 初 期 横 穴 式 石 室 の 空 間 利 用 原 理, ヒストリア 第 235 号.

16 16 동북아역사논총 51호 는 인식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21) 최근의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한반도, 특히 백제에서 받은 영향보다 오 히려 재지의 전통적인 양상을 강조하면서 결론적으로 한반도에서 곧바로 횡혈 식석실이 기나이지역에 그대로 도입된 것은 아니라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이전부터 高 井 田 山 古 墳 을 중심으로 초기 횡혈식석실을 분석한 야스 무라 준지[ 安 村 俊 史 ]는 高 井 田 山 古 墳 은 백제로부터의 직접적인 영향에 의해 성립된 고분으로 파악하였다. 또 그 형태를 이어 받은 양상으로 畿 內 型 횡혈식 석실이 성립된다고 보았다. 초기의 畿 內 型 횡혈식석실은 우편재식으로 한정되 는데, 백제의 횡혈식석실에서 우편재식이 주류가 된 것은 피장자로부터 볼 때 오른쪽이 우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오른쪽에 최초의 피장자, 보통 에는 남편을 매장하고 그 후 왼쪽에 부인을 매장하였기 때문에 高 井 田 山 古 墳 에도 오른쪽은 남편, 왼쪽에 부인이라고 하는 위치관계가 도입된 것이라고 보 았다. 기나이의 초기 횡혈식석실에는 두 개의 관을 나란하게 매장하는 예가 몇 군데 보이는데 이 매장방법과 우편재의 의의를 이해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 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의 관을 매납하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이고 오른 쪽 우위라고 하는 사상이 사라지면서 이윽고 우편재식 석실의 의미를 잃어버 리게 된다고 파악하였다. 또 못으로 고정하는 목관도 보급되었고 횡혈식석실 의 채용에 의해 석실 완성 후에 목관을 안치하였기 때문에 들고 날랐을 가능성 이 크다고 보았다. 그리고 토기가 석실 내에 매납된 점에 대해서도 미니어처 취사구가 도래계 씨족과 관련되는 토기로 주목하였다. 22) 이러한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에 관해 일본에서의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몇몇 연구자가 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홍보식은 高 井 田 山 古 墳 의 경우, 현실 평면 정방형의 송산리형 석실이 무령왕릉의 영향 으로 장방형화된 송산리Ⅲ식의 석실이 高 井 田 山 古 墳 의 조형이 되었다고 보았 다. 더욱이 高 井 田 山 古 墳 에서 출토된 울두 등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유 21) 森 本 徹, 2012, 儀 礼 からみた 畿 内 横 穴 式 石 室 の 特 質, ヒストリア 第 235 号. 22) 安 村 俊 史, 2008, 高 井 田 山 古 墳 の 意 義, 群 集 墳 と 終 末 期 古 墳 の 研 究.

17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17 사한 점을 근거로 高 井 田 山 古 墳 이 웅진기에 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 23) 박천수는 高 井 田 山 古 墳 과 椿 井 宮 山 고분은 백제의 횡혈식석실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상정하는 가운데, 특히 高 井 田 山 古 墳 은 긴키지역에 최초로 조영 된 횡혈식석실로 소형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희소한 한반도산 문물을 다수 부장한 점에서 인근 이주민 기술자를 통괄한 백제의 왕족급 인물로 보는 조사 자의 견해 24) 에 동의하고 있다. 25) 한편 김낙중은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 횡 혈식석실이 출현하고 수용되는 양상과 배경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가운 데 기나이지역에서 횡혈식석실이 도입되는 양상을 언급하였다. 초기 횡혈식석 실로 파악되는 6기의 고분에 대해 한성기에서 웅진기에 걸치는 백제의 횡혈식 석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하면서도 畿 內 型 석실이 완성되기 이전 에 축조된 석실은 소규모 고분에 한정되기 때문에 왜 왕권의 관여에 의해 도입 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백제와 교류를 담당하며 성장하던 기나이의 수장계열이 나 그러한 수장의 비호를 받던 도래인들이 축조하였다고 파악하였다. 나아가 기나이의 초기 횡혈식석실은 추가장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아 들여 그 구조 자체는 외래의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었지만 반드시 외래의 새로 운 사상적 배경에 준하여 구축 이용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26) 이상과 같이 기왕의 연구사를 살펴보았다. 대체적으로 정형화되는 畿 內 型 석실 이전 초현기의 횡혈식석실로,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립한 것으로 보 는 것에는 크게 이견이 없다. 다만 백제의 영향을 크게 보는 입장과 최근 재지 의 요소를 부각시키는 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백제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 는지, 어느 시기, 지역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등에 관한 검토는 거의 이루어지 23) 홍보식, 1993, 백제 횡혈식석실의 형식분류와 대외전파에 관한 연구, 박물관연 구논집 2, 부산직할시립박물관. 24) 安 村 俊 史 桑 野 一 幸, 1996, 高 井 田 山 古 墳, 柏 原 市 敎 育 委 員 會. 25) 박천수, 2007, 새로 쓰는 고대 한일교섭사, 사회평론; 박천수, 2012, 일본 속 고대 한국문화 近 畿 地 方, 동북아역사재단. 26) 김낙중, 2012,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서 횡혈식석실묘의 수용 양상과 배경, 한국고고학보 제85집, 한국고고학회.

18 18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지 않고 단순히 백제와의 관련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초기 횡혈식 석실들을 전부 하나로 인식하여 수용양상을 한 가지의 모습에서 구하려고 하 는 문제도 있다. 또한 검토대상이 되는 초기 횡혈식석실의 선정에도 연구자마 다 다양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에 착목하면서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을 세세하게 분석하여 백제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명확하 게 밝히고, 이를 통해 기나이지역에서 횡혈식석실이 출현하는 양상에 대해 언 급하고자 한다. 나아가 그 배경과 피장자 문제에 이르기까지 견해를 밝히는 것 을 목적으로 둔다. Ⅲ.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양상 1_ 초기 횡혈식석실의 개념 규정 분석대상이 되는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에 대해 개괄해 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용어 규정과 그 대상의 선정이 문제가 될 것이다. 즉, 초기의 횡혈식 석실에 이어 정형화되는 이른바 畿 內 型 石 室 이 성립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나, 결국 어디까지가 초기의 석실이고 어디부터 畿 內 型 석실인지에 대한 설정 이 문제가 된다. 먼저, 기나이 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보면 횡혈식석실이 축조되는 시기는 아직 기나이 라고 하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횡혈식석실과 결부되 는 용어로서는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7세기 이후에 기나이 로 불리게 되는 지 역의 범위가 고분시대에도 왜의 중앙으로서 상정할 수 있는 범위로 묶을 수 있 다고 보이기 때문에 기나이 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견해 27) 를 27) 安 村 俊 史, 2008, 앞의 글.

19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19 따르면 그대로 사용하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긴 키 보다 그 한정적으로 분포하는 초기 횡혈식석실의 양상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용어로 생각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기나이지역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다음,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을 畿 內 型 석실에 포함시킬 것인가, 그 렇지 않으면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사용되어 온 畿 內 型 횡혈식석실 의 개념은 주로 벽면의 단면형태와 돌을 쌓는 방법을 토 대로 기나이의 대형 횡혈식석실 및 그 영향을 받은 석실군에 대해 부여하였다. 특히, 현문의 구조가 중시되어 어깨 부분에서 동일 폭으로 구축된 연도 측벽의 모양은 기나이에 보편적으로 보이는 특징으로 주목된다. 물론, 畿 內 型 의 사 용에 대해 비판적인 지적도 있다. 니오 이즈미[ 新 納 泉 ]는 오히려 백제와의 관 계가 강한 수장계열이 기나이와 다른 지역을 무대로 채용하였던 것이 畿 內 型 석실이고 이윽고 이 계열이 권력의 중추에서 다른 지역을 압도해 간다고 상정 하였다. 28) 어느 쪽을 취한다고 해도 畿 內 型 석실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이다. 이러한 가운데 畿 內 型 의 성립 시기를 두고서는 5세기 중엽에서 후반에 출 현하여 형식 변화를 보이면서 7세기 대까지 축조되는 기나이지역의 석실의 대 부분을 畿 內 型 석실에 포함시키는 야마사키 신지 29) 와 모리시타 히로유키 30) 를 비롯해 시라이시 다이치로, 31) 히로세 카즈오[ 広 瀨 和 雄 ], 32) 오오타 히로아키 33) 등의 高 井 田 山 古 墳 부터로 생각하는 입장, 혹은 市 尾 墓 山 고분 등 대형고분에 28) 新 納 泉, 1987, 戊 辰 年 銘 大 刀 と 装 飾 付 大 刀 の 編 年, 考 古 学 研 究 三 四 巻 三 号. 29) 山 崎 信 二, 1985, 앞의 글. 30) 森 下 浩 行, 1986, 앞의 글. 31) 白 石 太 一 郞, 1995, 앞의 글. 32) 広 瀬 和 雄, 2001, 7 世 紀 の 畿 内 首 長 層 の 動 向 横 穴 式 石 室 と 横 口 式 石 槨 の 変 遷 をとおして, 東 海 の 後 期 古 墳 を 考 える, 東 海 考 古 学 フォーラム, 三 河 大 会 実 行 委 員 会. 33) 太 田 宏 明, 2003, 畿 内 地 域 における 導 入 期 の 横 穴 式 石 室, 関 西 大 学 考 古 学 研 究 室 開 設 五 拾 周 年 記 念 考 古 学 論 集.

20 20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서 채용된 것에서부터로 보는 하부타 요시유키, 34) 토미야마 나오토, 35) 와다 세이고 36) 등의 입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들 가운데 대표적인 견해를 살펴보면 먼저 하부타 요시유키는 축조 수가 적고, 아직 횡혈식석실의 구축이 정착하였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단 계 및 본래 횡혈식석실이라는 묘제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장제가 정착하기 까지의 단계에 축조된 것을 초기 석실로 칭하고 있다. 그리고 기나이지역뿐만 아니라 범일본적으로 정리하여 최대공약수로 규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5세기 대에 축조된 석실을 초기 횡혈식석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37) 한편, 畿 內 型 석실에 대해 전체적으로 세세한 분류를 시도한 오오타 히로아키의 경우, 초현기에 해당하는 그의 도입기의 1군을 畿 內 型 석실로 포함 시키는 것에 대해 1군이 이후의 석실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을 고려하여 畿 內 型 석실로 포괄하고 있다. 38) 이와 같이 분명 같은 지역에서 출현하고 이후 자체적으로 변화하면서 정 형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같은 형식의 석실로 포함시켜 분석하는 것도 가능 할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초기의 석실과 정형화된 畿 內 型 석실과는 차이가 있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에 주저되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후술하는 바와 같이 초기의 횡혈식석실과 다른 畿 內 型 과는 석실의 형태뿐만 아니라 유물과 피장자도 다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初 期 畿 內 型 石 室 이라는 개념보다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 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접 근하고자 한다. 어찌되었든 기나이형석실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예로 들고 있는 市 尾 墓 山 고분과 같이 정형성이 보이지 않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고 34) 土 生 田 純 之, 1991, 앞의 책. 35) 富 山 直 人, 1994, 畿 内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の 構 築 技 術 と 渡 来 系 氏 族, 文 化 財 学 論 集. 36) 和 田 晴 吾, 1996, 見 瀬 丸 山 古 墳 藤 ノ 木 古 墳 と 六 世 紀 のヤマト 政 権, 情 況 日 本 の 古 代 をひらく, 情 況 出 版. 37) 土 生 田 純 之, 1991, 앞의 책. 38) 太 田 宏 明, 2003, 앞의 글.

21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21 분을 그 대상으로 할 수 있다. 대략 畿 內 型 석실을 통시적으로 분석한 오오타 히로아키 39) 의 1 2군에 해당하는 고분들이다. 이 고분들 가운데 석실의 평면 형태 등을 파악할 수 있고, 비교 분석이 가능한 주요 고분을 중심으로 자세한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2_ 초기 횡혈식석실의 양상 1) 다카이다야마고분[ 高 井 田 山 古 墳 ] <그림 1>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의 분포도(번호는 본문 1)~8) 고분의 위치) 高 井 田 山 古 墳 은 오사카[ 大 阪 ]와 나라[ 奈 良 ]의 경계에 해당하는 이코마[ 生 駒 ] 산지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남으로 뻗은 능선 자락, 大 和 川 을 바라보는 작 은 구릉에 축조되었다. 직경 22m의 원분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분구 북측에 돌 39) 太 田 宏 明, 2003, 앞의 글.

22 22 동북아역사논총 51호 <그림 2> 高 井 田 山 古 墳 (석실 s=1/200, 유물 s=1/20)( 安 村 俊 史 외 1996 수정 후 인용) 출부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매장시설은 안산암의 판석을 쌓아올리고 남쪽으로 입구를 둔 우편재식의 횡혈식석실로 현실 평면은 장방형이다. 조사 전에 천장이 이미 붕괴되어 양측 벽 중앙 부근도 현실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또 우측 벽 중앙부는 도굴 또는 후대의 교란으로 인해 훼손되어 있었다. 석실은 생토면을 정지한 후 5.4m 3.5m 의 묘광을 굴착하여 축조하였다. 길이 3.73m, 후벽 너비 2.34m, 전벽 너비 2.26m, 현문 너비 1.18m로 길이와 너비의 비율은 약 1.6:1이다. 측벽과 후벽 은 바닥에서 약 1m까지는 수직으로 세웠다. 연도부의 길이는 약 2m, 높이 약 1m이고, 묘도의 길이 약 2.7m로 방향이 현실의 주축에 비해 조금 동쪽으로 꺾 여 있다. 현실 벽면이 1m 정도밖에 넘지 않아 천장의 형태는 확실하게 알 수

23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23 없으나 현실 벽면 모퉁이에 약간의 조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높이 약 2.2m의 궁륭상 천장으로 복원되고 있다. 현실 주축에 평행하여 2기의 목관이 나란하게 안치되었는데 관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2개의 목관은 두께 7~9cm의 금송 판재를 관못으로 조합한 것으로 관재를 고정하기 위해 사용된 관못의 출토 위치를 토대로 목관의 규모 가 복원되고 있다. 서쪽의 목관은 길이 250cm 전후, 너비 75cm로 추정되고, 동쪽 목관은 길이 228cm, 너비 74cm로 복원되고 있다. 동쪽 목관에서는 화상 경 1점, 청동제 울두 1점, 순금제 금환 2점, 금층유리옥을 포함한 경식 1련, 철 도 1점, 은제 도자 2점 등이 출토되었다. 부장품으로 보아 동쪽 관은 여성이 매 장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리고 금환의 출토 위치 등에서 양쪽 모두 두향은 북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관 바깥쪽의 부장품으로는 갑주와 철모, 철창, 철촉, 마구 등의 철기를 비 롯해 유개고배 등의 스에키가 있다. 이러한 관외 다수의 무기 등의 부장품과 목 관의 규모로 보아 서쪽 관의 피장자는 남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2) 후지노모리고분[ 藤 の 森 古 墳 ] 河 內 지역의 중심 고분군인 古 市 고분 군 내에 입지하는 고분으로 응신릉으 로 추정되고 있는 譽 田 御 廟 山 고분의 서측에 인접하여 축조되었다. 현재는 오사카부 水 道 部 美 陵 펌프장에 이설 되어 있다. 고분의 분구는 직경 약 22m의 원분으로, 높이는 3m이고 주 구가 돌려져 있다. 분구에는 자갈돌 <그림 3> 藤 の 森 古 墳 (석실 s=1/200) ( 柏 原 市 立 歷 史 資 料 館 1996 수정 후 인용)

24 24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을 즙석하였고 하니와[ 埴 輪 ]를 수립하였다. 또 분구 전체를 성토하였고 분구의 축성과 석실의 구축이 교호로 이루어졌다. 석실은 판상할석을 쌓아 올린 우편재식 횡혈식석실로 거의 남향으로 입구 가 있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약 3.0m, 너비 약 1.5m, 높이 약 1.5m이다. 연도 높이와 거의 같은 높이까지 수직으로 벽면을 쌓고 그 위에는 조임식 기법으로 쌓아 올려 궁륭상 천장이 형성되도록 하였다. 측벽에는 전면적으로 적색 안료 가 도포되었다. 연도는 길이 약 1m, 너비 80~90cm, 천장석은 1매이다. 현실 내에는 서벽쪽에 치우쳐서 조합식 목관 1기가 안치된 것으로 추정되 고 있다. 출토 유물은 현실에서 관못, 유리제 곡옥 환옥, 금동제 삼륜옥, 철 촉, 혁철단갑편이, 분구에서 하니와와 하지키[ 土 師 器 ] 등이 확인되었다. 3) 나가하라시치노츠보고분[ 長 原 七 ノ 坪 古 墳 ] 오사카시 히라노구[ 平 野 區 ] 나가하라[ 長 原 ] 일대에 넓은 범위에 걸쳐 대규모 취락 유적과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취락과 고분군은 4세기에서 6세기에 걸 쳐서 형성되었다. <그림 4> 長 原 七 ノ 坪 古 墳 (석실 s=1/200)( 柏 原 市 立 歷 史 資 料 館 1996 수정 후 인용)

25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25 이 長 原 유적에서는 부뚜막이 부설된 수혈 주거와 대벽건물지가 확인되었 다. 또 부뚜막과 시루 등의 취사구와 조족문토기 등을 비롯한 한반도계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와 더불어 단야공방지도 다수 확인되는 등 철제품의 생산 을 담당하였으며 더욱이 유적의 전면에 걸쳐 말뼈가 확인되므로 말의 사육과 관련된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유적 가운데 長 原 고분군이 입지하고 있는데, 전방후원분 2기를 비롯해 원분 4기, 방분 195기 등의 약 200여 기의 고분이 확인되고 있다. 4세기 말에 서 6세기 중엽, 유적의 1기에서 4기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고분군이다. 고분군 의 마지막 단계인 제4기가 되면 이 고분군에서 확인된 유일한 횡혈식석실 고 분인 七 ノ 坪 고분이 축조된다. 전방부가 짧은 가리비형 전방후원분으로 분구 규모는 전체 길이 약 23.5m 이다. 횡혈식석실은 후원분에서 확인되었는데 입구가 오른쪽으로 열려 있는 우편재식이다. 석실의 윗부분이 전부 훼손되어 천장 구조 등을 명확하게 알 수 는 없으나 궁륭상천장으로 추정된다. 현실의 길이는 약 3.5m, 너비는 약 2.5m 이다. 석실 안에서 마구와 무기, 무구, 장신구를 비롯해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4) 이치스가고분군[ 一 須 賀 古 墳 群 ] Ⅰ-18호분 Ⅰ 19호분 오사카부 미나미카와치군[ 南 河 內 郡 ] 다시이쵸[ 太 子 町 ] 이치스가[ 一 須 賀 ]에 소재하는 미나미카와치[ 南 河 內 ]지역 최대의 군집분이다. 이 고분군은 오사카와 나라의 경계인 가츠라기산[ 葛 城 山 ] 서쪽에서 파생하 는 구릉 끝자락에 형성되었다. 약 280여 기가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데, 그 가운데 약 70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6세기 전반에 고분의 축조가 시작되었고, 6세기 후반에서 6세기 말에 걸쳐 가장 많이 축조되 었다. 이후 7세기 중엽 무렵에 고분 축조가 중단된다. 대부분이 지름 10~20m 의 소형 원분이고, 매장주체부는 횡혈식석실이다. 이 가운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고분은 Ⅰ지군의 고분 이다. Ⅰ지군은 좁은 계곡부의 미고지에 조영되었는데 매장시설은 소형의 할

26 26 동북아역사논총 51호 <그림 5> 一 須 賀 Ⅰ-18호분(좌) Ⅰ-19호분(우)(석실 s=1/200)( 柏 原 市 立 歷 史 資 料 館 1996 수정 후 인용) 석을 이용하고 짧은 연도가 부가된 횡혈식석실로 고분군 내에서 가장 빠른 양 상을 보이고 있다. I지군 18호분의 경우, 오른쪽으로 입구가 열려 있는 횡혈식석실로 윗부분 은 대부분 삭평을 당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현실 길이 3.3m, 너비 2.1m이 고 연도 길이 2.3m, 너비 0.8m로 현실의 길이와 너비의 비율이 약 1.57:1이 다. 석실 내에는 2개의 목관이 안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된 유물 로는 은제 반지, 금환, 유리옥, 마구 등을 비롯해 축소모형 취사도구가 있다. I 지군 19호분 역시 오른쪽에 입구가 있는 횡혈식석실이고, 현실 길이 3.1m, 너 비 1.7m, 연도 길이 1.6m, 너비 0.8m로 현실의 길이와 너비의 비율이 1.82:1 이다. 축소모형 취사구를 비롯해 은제 머리뒤꽂이가 출토된 것이 특징이다. 5) 사쿠라이고엔[ 櫻 井 公 園 ] 2호분 나라현 사쿠라이시[ 櫻 井 市 ] 남쪽의 아베산[ 安 倍 山 ]에서 파생되는 구릉 말단에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4기의 고분이 입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2호분은 발견할 때 이미 상부가 파괴되어 분구 규모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매장시

27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27 <그림 6> 櫻 井 公 園 2호분(석실 s=1/200, 유물 s=1/20)( 網 干 善 敎 1959 수정 후 인용) 설은 남측으로 입구로 열려 있는 우편재식의 횡혈식석실임이 확인되었고, 편 평한 자연석을 쌓아 올려 구축하였다. 전체 길이는 4.4m이고 현실의 길이 2.9m, 너비 1.9m, 연도 너비 0.9m의 규모이다. 미니어처 취사구를 비롯해 시 루, 옹 등의 토기와 관못, 은제 머리뒤꽂이, 은제 반지 등이 출토되었다. 6) 데라구치오시미[ 寺 口 忍 海 ] D27호분 나라현 신죠우쵸[ 新 庄 町 ] 데라구치[ 寺 口 ] 일대에 분포하는 고분군이다. 가츠 라기산록에 170여 기의 고분이 동서 1.2km, 남북 1km에 걸쳐 조영된 군집분 으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대에 축조되었다. 이 고분군 가운데 D27호분은 직경 약 16.5m의 원분으로, 서쪽으로 작은 장방형의 돌출부가 있고 분정부와 분구 자락에 하니와를 세워 돌렸다. 매장시 설은 남쪽으로 입구가 열려 있는 우편재식의 횡혈식석실이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약 3.4m, 후벽 너비 약 1.7m, 높이 약 2m이다. 연도의 규모는 길이 약 2m, 너비 0.75m, 높이 약 1m이다. 현실의 길이와 너비의 폭이 약 2배이다. 현실에서는 두 개의 목관이 나란히 안치되었다. 부장품으로서는 대도, 철 검, 철모, 녹각제 도자, 내만타원형경판비, 철부, 철겸 등의 철기와 토기가 출

28 28 동북아역사논총 51호 <그림 7> 寺 口 忍 海 D27호분(석실 s=1/200, 유물 s=1/20) ( 新 庄 町 敎 育 委 員 會 ㆍ 奈 良 縣 立 橿 原 考 古 學 硏 究 所 1988 수정 후 인용) 토되었다. 7) 쓰바이미야야마쓰카고분[ 椿 井 宮 山 塚 古 墳 ] 나라현 이코마시[ 生 駒 市 ] 쓰바이[ 椿 井 ]의 구릉 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직경 20m의 원분이다. 매장시설은 입구를 남쪽으로 부가한 우편재식 횡혈식석실이 다. 전체 길이는 약 4.15m, 현실 길이 4.1m, 너비 3m, 높이 3m이고 연도 길 이 0.5m, 너비 1m의 규모이다. 자연석과 괴석을 사용하여 축조한 현실은 거의 완전한 궁륭상으로 내경하

29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29 <그림 8> 椿 井 宮 山 塚 古 墳 (1), 新 澤 千 塚 221호분(2)(석실 s=1/200)( 安 村 俊 史 2014 수정 후 인용) 고 후벽과 좌우 측벽의 접합부는 천장에 거의 맞닿아 있다. 현실의 입구 높이 는 0.8m로 낮고 연도부에는 천장석이 존재하지 않는 짧고 좁은 구조이다. 현 실의 측벽에는 적색안료가 도포된 것이 확인되었다. 8) 니자와센쓰카[ 新 澤 千 塚 ] 221호분 나라현 가시와라시[ 橿 原 市 ] 이치죠[ 一 町 ]에 입지하는 고분군으로 나라분지 남 부의 우네비야마[ 畝 傍 山 ]의 남쪽으로 뻗어 있는 해발 150m의 구릉 위에 동서 약 2km, 남북 약 2km의 범위에 10~15m 급의 원분을 중심으로 600여 기에 달하는 고분이 분포하고 있다. 新 澤 千 塚 221호분은 직경 약 13m, 높이 약 3.3m의 원분이다. 매장시설은 남쪽으로 입구가 있는 우편재식의 횡혈식석실로 길이 약 3m, 너비 약 1.3m의 현실에 길이 약 1.4m, 너비 0.7m의 연도가 부가되었다. 석실은 두께 20cm 전 후의 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으며 연도의 상면은 현실보다 15cm정도 높게 되어

30 30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있다. 도굴에 의해 상부가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천장이 어떠한 형태이었 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할석의 작은 눈 쌓기를 한 벽면의 상황을 보면 아마도 벽면 상부를 급격하게 조이는 형태였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석실 내에서는 중세의 도굴로 인해 부장품의 대부분이 반출되어 극히 일부 가 남았지만 목심철판의 등자와 토기가 출토되었다. Ⅳ. 유형 설정 이상과 같이 살펴본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에 대해 유형을 설정하고자 한다. 기왕에는 평면형태와 천장구조를 기준으로 크게 高 井 田 山 古 墳 식과 椿 井 宮 山 塚 古 墳 식의 두 가지로 구분하는 연구 관점이 대부분을 점해 왔다. 그러 나 주지하다시피 초기의 횡혈식석실들은 대부분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형태로 구분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평면의 형태나 규격 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백제와의 비교 등을 통해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평면형태와 더불어 분구형 태, 입지, 유물의 부장 양상, 목관의 매납, 그리고 주변 유적과의 관계 등을 기 준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표 1>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초기의 석실에는 다양한 요소가 보인다. 이 요 소들 가운데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석실의 기본적인 형 태는 물론이지만, 못을 사용하는 목관, 40) 2인 매장, 백제계 유물 등이 있다. 2 인 매장의 경우, 기타야마 미네오는 기본적으로 단장이라고 보고 기왕의 수혈 40) 吉 井 秀 夫, 1993, 百 済 地 域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分 類 の 再 検 討 錦 江 下 流 域 を 中 心 として, 考 古 学 雑 誌 第 79 巻 第 2 号, 日 本 考 古 学 会.

31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31 <표 1> 초기 횡혈식석실의 속성 일람표 현실 규모 분형 길이 너비 면적 장폭 입구 목관 유물 주변 유적 (m) (m) (m2) 비 高 井 田 山 古 墳 원분 우편재 2기 병렬 울두 금층유리옥 大 県 유적 平 尾 山 고분군 藤 の 森 古 墳 원분 우편재 조합 식 관못 埴 輪 古 市 고분군 長 原 七 ノ 坪 古 墳 가리비형 마구 전방후원분 우편재 무기 長 原 유적 一 須 賀 Ⅰ 18호 분 원분 우편재 2기 병렬 미니어처취 사구 은제반지 금환 一 須 賀 고분군 一 須 賀 Ⅰ 19호 분 원분 우편재 2기 병렬 미니어처취 사구 은제뒤꽂이 一 須 賀 고분군 櫻 井 公 園 2호분 원분 우편재 관못 미니어처취 사구 은제뒤꽂이 櫻 井 公 園 고분군 寺 口 忍 海 D27호분 원분 우편재 2기 병렬 마구 단야구 寺 口 忍 海 고분군 椿 井 宮 山 塚 古 墳 원분 우편재 적색안료 新 澤 千 塚 221호분 원분 우편재 마구 토기 新 澤 千 塚 고분군 식석곽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41) 기타야마의 지 적대로 수혈식석곽과 같이 추가장 없이 단장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고, 2인이 매장된 석실들도 추가장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1) 北 山 峰 生, 2012, 앞의 글.

32 32 동북아역사논총 51호 그러나 기본적으로 출입구가 만들어진다는 새로운 葬 制 의 도입과 더불어 한 매장주체부에 복수의 사람을 매장한다는 개념은 재지의 전통과는 전혀 다 르다. 새로운 묘제로서 기술, 유물조합 등과 더불어 복수매장이라는 새로운 관 념이 같이 들어온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뒤에 자세 히 검토하겠지만 한성기의 석실은 2인 매장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다고 생각 되지만, 지역마다 도입되는 양상에 따라 단장에 그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단장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횡혈식석실의 새로운 매장 관념이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고 그대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초기의 횡혈식석실 가운데 복수매장이 된 경우 출토 유물의 조합으 로 보아 남녀가 매장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들이 있다. 당시 일본열도의 기본 적인 매장 방식은 부부매장 혹은 남녀매장이 아니었고 횡혈식석실 도입기까지 도 부자매장이 기본이다. 42) 그러나 유독 초기 횡혈식석실에 남녀가 매장되는 양상이 보이는 것은 역시 한반도로부터 영향이 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 된다. 또한 토기를 현실 내에 안치하는 것 역시 이견이 있다. 재지의 장제로 보기 도 하고, 백제가 아닌 가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43) 그 러나 가야의 경우, 기나이지역에 초기 횡혈식석실이 도입되는 같은 시기에 비 로소 석실이 축조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가야의 영향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 다. 현실 내의 도질토기 부장은 가야 또는 백제라는 식으로 한 지역에 국한되 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남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 서 토기 매납뿐만 아니라 공반되는 금공품 등의 다른 유물들과의 조합 양상을 보았을 때 현실 내에 토기를 매납하는 것 역시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즉, 단순히 개별 요소별로 비교하는 것보다는 <표 1>에서 보듯이 전체적인 42) 田 中 良 之, 1996, 人 骨 からみた 古 墳 時 代 親 族 関 係, 考 古 学 による 日 本 歴 史 15, 雄 山 閣. 43) 森 本 徹, 2012, 앞의 글.

33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33 조합 양상을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 초기 횡혈식석실 들이 입지하고 있는 곳의 주변 유적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도 중요하다. 이러 한 점에 착목하여 여러 요소들 가운데 백제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또 재지 의 요소는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 축조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두 가지의 유형 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먼저 高 井 田 山 古 墳 의 경우, 전방후원분이 아닌 원형의 분구가 축조되고 그 안에 횡혈식석실이 축조된다. 장방형의 평면플랜에 궁륭상 천장구조라는 점에서 백제계로 상정되고 있다. 다만 규모가 다르다. 그러나 현실의 장폭비가 1.6:1로, 이는 백제 한성기 횡혈식석실에서 흔히 보이는 비율이다. 최근 백제 한성의 중앙지역 근처에서 조사되고 있는 석실들이 대부분 장폭비 1.6:1의 비 율을 보이고 있으며, 광암동 2호와 법천리 1호의 경우, 高 井 田 山 古 墳 과 규모 면에서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규모로는 가락동 3호와 비교할 수도 있겠 으나 장폭비 등의 평면플랜으로 보았을 때 가락동고분군보다 광암동고분군과 같은 한성기 중앙 인근지역 또는 한강유역의 횡혈식석실들과 형태적으로 가까 워 보인다. 결국, 高 井 田 山 古 墳 의 연대도 5세기 후엽으로 판단된다. 논자에 따라 TK23단계로 보거나 혹은 TK47단계로 설정하기도 하나, 한성기석실로부 터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한성기 말에 해당하는 TK23단계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高 井 田 山 古 墳 의 연도가 약간 휘어져 있는데 이것 역시 한성기석 실의 요소로 파악한바 있다. 44) 결론적으로 평면형태로 보아 한성기 석실의 평면형태와 천장구조를 그대 로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입구가 우편재인 점, 연도가 휘어진 점, 관못 을 사용하는 목관 사용, 추가장은 아닌 듯하나 남녀의 복수매장, 그리고 주지 하듯이 무령왕릉 출토와 유사한 울두와 금층유리옥 등의 백제계 유물이 출토 된 점 등 거의 모든 요소가 백제와 일치한다. 더욱이 이 高 井 田 山 고분의 서쪽에는 단야( 鍛 冶 )공방과 관련된 단야로, 송 44) 김규운, 2014, 가락동 방이동고분군으로 본 백제 횡혈식석실의 성립, 선사와 고대 제40, 한국고대학회.

34 34 동북아역사논총 51호 <표 2> 광암동ㆍ판교동고분군 한성기 횡혈식석실 속성 유구 현실 규모 길이(cm) 너비(cm) 현실 비율 현실 면적 (길이:너비) ( ) 연도 위치 광암동1호 : 우편재 광암동2호 : 우편재 판교동1호 : 우편재 판교동2호 : 우편재 판교동3호 : 우편재 판교동4호 : 우편재 판교동5호 : 우편재 판교동6호 : 우편재 판교동7호 : 우편재 판교동8호 : 우편재 판교동9호 : 우편재 <그림 9> 백제 한성기 장방형 횡혈식석실(좌: 광암동2호, 중: 판교동1호, 우: 법천리1호)

35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35 풍관, 철재( 鐵 滓 ), 지석( 砥 石 ), 한반도계 토기가 출토된 大 縣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의 중심시기는 6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상정되고 있는데, 유적의 성 격, 한반도계 토기의 출토, 그리고 유적에 인접하고 있는 平 尾 山 고분군에서 이동식 부뚜막을 부장한 고분도 확인되고 있어 백제와의 관련이 주목되는 유 적들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여 볼 때 단순히 무덤의 형태를 모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장 관념, 장송의례가 전체적으로 갑자기 바뀌는 상황이 엿보인다. 스에키가 부장되는 양상을 통해 재지적 요소가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에 대해 후술하겠으나 딱히 재지적인 특징으로 볼 요소는 아니다. 따라서 高 井 田 山 古 墳 은 거의 모든 요소가 백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 藤 の 森 古 墳 의 경우, 평면형태에서 재지적 요소가 자주 지적된다. 현 실 장폭비가 2.33:1로 극히 세장한 형태로, 평면형태, 용적법 등을 통해 보았 을 때 횡혈식석실이라는 요소 외에는 재지적 기술이 바탕이 된 것 같다. 물론 한성기석실에도 용원리석실분과 같이 장폭비가 2:1이 넘는 세장한 형태가 없 는 것은 아니나, 용원리석실분 역시 횡혈식석실이라는 요소의 도입과 함께 재 지적 전통에 의해 축조된 경우이기 때문에 그 고분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 로 보기는 힘들다. 그리고 목관이 출토되고 있으나 재지적인 조합식 목관을 안 치한 점, 하니와 등을 수립한 점 등으로 보아 재지적 요소가 큰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더욱이 藤 の 森 古 墳 이 축조된 古 市 古 墳 群 은 당시 왕릉군의 묘역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아 횡혈식석실의 축조기법만 도입되어 재지적 전통에 따 라 축조된 석실로 볼 수 있다. 長 原 七 ノ 坪 古 墳 은 다른 초기 횡혈식석실들과 달리 분형이 원분이 아니라 가리비형 전방후원분이다. 이는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횡 혈식석실의 요소가 도입되면서도 일본의 전방후원분 전통에 따라 축조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대형 전방후원분과는 차이가 있지만, 전방후원분 분 형을 유지한다는 점은 의의가 크다. 한식계 토기를 비롯해 한반도계 유물이 다 수 출토되는 長 原 유적에 입지하고 있으나 못을 사용하는 목관이나, 백제계 장 신구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36 36 동북아역사논총 51호 一 須 賀 I 18호분과 I 19호분은 一 須 賀 고분군 내에서 가장 빠른 석실 가 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두 고분 모두 원형의 분구에 우편재식 횡혈식석실이 축조되고 평면형태 역시 거의 1.6:1에 가까운 장방형이다. 또 2개의 목관이 안 치되었고, 출토 유물 역시 공히 미니어처 취사구와 반지와 비녀 등의 은제 장 신구들이 출토되었다. 역시 남녀 2인의 매장으로 보인다. 이러한 양상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성기 세장방형 석실들과 거의 유사하다 특히 판교동고분 군의 석실들과는 평면형태와 규격뿐만 아니라 은제 장신구의 출토까지 그 양 상이 거의 동일하다. 一 須 賀 고분군이 이 석실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축조가 시 작되고 이후 고분군 내 다른 석실에서 한반도계 유물이 다수 출토되는 점은 시 사하는 바가 크다. 櫻 井 公 園 2호분 또한 위의 一 須 賀 고분군의 석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 형, 평면형태, 규격, 목관 사용, 미니어처 취사구, 은제비녀 등 거의 같은 양상 이다. 특히 이 고분은 판교동1호분과 너무나 유사하다. 전체적인 형태뿐만 아 니라 현실의 길이와 너비까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은제 비녀가 출토되는 양상도 그러하다. 櫻 井 公 園 고분군 내의 3호분과 4호분 역시 삭평이 심해 정 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대체적으로 2호분과 유사한 양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반해 寺 口 忍 海 D27호분은 조금 다른 양상이다. 우선 현실의 장폭비가 2:1로 극히 세장한 형태이다. 우편재식인 점, 그리고 못을 사용하는 2기의 목 관이 안치되는 점은 백제계 요소로 보이나 석실축조와 유물 구성에서 재지계 요소가 많이 보이는 듯하다. 심하게 파괴되어 전체적인 양상을 알 수 없기 때 문에 이 글의 분석 대상에서는 제외하였지만 D 27호분과 같은 단계에 축조 가 된 E 21호분 역시 초기 횡혈식석실이면서도 내부에 할죽형목관을 안치하 는 점도 도입기부터 재지의 요소를 강하게 반영하다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석실들로부터 축조가 시작되는 寺 口 忍 海 고분군에는 이후 횡 혈식석실이 다수 축조되는데 백제와 유사한 형태에서 점차 자체적으로 변화하 는 모습이 보이는 뚜렷한 것이 특징적이다. 椿 井 宮 山 塚 古 墳 은 초기 횡혈식석실 가운데 천장까지 완벽하게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고분으로 천장구조로 인해 그간 주목받아 왔다. 초기 석실가운데

37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37 <그림 10> 寺 口 忍 海 고분군 횡혈식석실의 변화 ( 新 庄 町 敎 育 委 員 會 ㆍ 奈 良 縣 立 橿 原 考 古 學 硏 究 所 1988 수정 후 인용) 에도 독특한 형식으로 설정하고 백제 송산리형 석실들과 연관 지어왔다. 그러 나 송산리고분군과는 차이가 크다. 4m가 넘는 현실의 규모가 다르고 현실 장 폭비 역시 1.37:1로 방형이라기 보다는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궁륭상의 천장구조는 송산리고분군 이전에 한성기에 이미 축조되기 시작하였다는 점 45) 을 중시하면 椿 井 宮 山 塚 古 墳 은 한성기 말의 장방형 석실로부터 영향을 받으 면서도 자체적으로 변화된 형태로 축조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연도가 바깥 쪽으로 휘어지는 형태로 복원되는 점 역시 한성기석실에 가까운 양상이다. 출 토 유물이 없어 이를 검증하기는 어려우나 현실에 적색안료가 도포가 된 점은 재지적인 요소가 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新 澤 千 塚 221호분의 경우는 寺 口 忍 海 D27호분보다 더욱 세장 45) 이남석, 2007, 한성기 백제 석실분의 재인식, 진단학보 103, 진단학회.

38 38 동북아역사논총 51호 한 형태이다. 현실 장폭비가 2.31:1로 藤 の 森 古 墳 과 거의 같은 양상이다. 못을 사용하는 목관 등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新 澤 千 塚 고분군은 주지하는 바 와 같이 한반도계 유물이 다수 출토되는 군집분인데, 이에 비해 오히려 221호 분에서는 한반도계 유물이 확인되지 않는다. 물론 도굴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 으나, 남아 있는 유물에서도 전혀 확인되지 않고, 평면플랜에서도 차이가 있다. 이상과 같이 초기 횡혈식석실별로 어떠한 요소에 의해 축조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결국 백제계 요소와 재지계 요소가 어떻게 조합되는지가 문제가 되는 데, 이 조합들을 염두에 두고 유형을 설정하고자 한다. 이전에 吉 井 秀 夫 는 일 본열도에서 출토되는 백제계 고고자료에 대해 아래와 같이 3가지로 유형을 설 정한 바 있다. 46) 1류: 백제에서 제작된 것이 일본으로 들어온 것 2류: 일본에 온 백제인이 일본에서 제작한 것 3류: 일본에 사는 사람이 1, 2류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모방해서 제작 한 것 이 유형들 가운데 횡혈식석실은 백제에서 축조하여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 하기 때문에 결국 2류와 3류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참고하면 초기 횡혈식석실 에 백제계 요소와 재지계 요소가 어떻게 조합되는지 그 양상을 토대로 2가지 의 유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1유형: 高 井 田 山 古 墳, 一 須 賀 I-18호분, 一 須 賀 I-19호분, 櫻 井 公 園 2호분 2유형: 藤 の 森 古 墳, 長 原 七 ノ 坪 古 墳, 寺 口 忍 海 D27호분, 椿 井 宮 山 塚 古 墳, 新 澤 千 塚 221호분 1유형은 전체적으로 백제계 요소가 강한 고분들이다. 횡혈식석실의 기본적 46) 吉 井 秀 夫, 2012, 일본열도속의 백제문화, 중앙문화재연구원 편, 아시아의 고 대 문물교류, 서경문화사.

39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39 인 형태, 현실의 규격, 연도 위치, 못을 사용하는 목관의 복수안치, 남녀매장, 울두와 은제 비녀 등의 백제계 장신구와 미니어처 취사구 부장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백제 한성기 석실들과 같은 양상이다. 스에키 등의 일부 유물에서 재지 생산의 모습이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백제와 거의 동일하다. 2유형은 횡혈식석실이라는 기본 틀은 유사하나 기왕의 수혈식석곽 축조의 제작 전통에 따라 훨씬 세장하게 만들거나 전방후원분 내에 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녀매장이라는 새로운 장제의 요소도 보이지 않고 유물 구성에서도 백제와 차이가 있다. 즉, 횡혈식석실이라는 매장주체부의 공통점 외에 다른 요 소들은 개별적으로 전부 다르다. Ⅴ. 횡혈식석실 출현과 도래인 1_ 출현 양상 이상과 같이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양상을 검토하여 2가지 유형으로 설정하였다. 역시 완벽하게 백제의 횡혈식석실과 같은 형태는 없다. 그러나 애 초에 완전하게 같은 석실이 축조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령왕릉의 예를 보아 도 재지의 요소가 결합될 수밖에 없다. 특히 토기의 경우 어느 묘제가 수용되거 나 혹은 모방하여 축조되더라도 재지의 토기를 생산, 매납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이 유형들은 각각 백제의 어느 지역에서, 어느 요소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교 대상이 되는 백제의 횡혈식석실 가운 데 가장 중심이 되면서도 논란이 되는 것이 가락동 방이동고분군의 횡혈식석 실들이다. 평면형태, 입지 등을 근거로 한성기의 횡혈식석실로 비정한 바 있으

40 40 동북아역사논총 51호 나, 47) 명확하게 단언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최근 조 사된 한성기 석실들과의 비교를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러 한 관점에서 두 유형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고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자 한다. 초기 횡혈식석실의 축조에 있어서 가장 먼저 지적해 두고 싶은 것은 영향 을 받은 석실의 계보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크게 백제로부터 영향 을 받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한성기 석실에 계보를 구하는 견해 48) 와 웅진기의 백제 석실에서 계보를 구하는 견해 49) 로 나누어져 있다. 앞서 석실별로 언급하였듯이 기본적으로는 한성기의 장방형 석실에서 영 향을 받은 것으로 상정된다. 기왕에는 백제 한성기 횡혈식석실을 조사한 예가 부족하였고, 특히 당시 중심지역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아 비교 검토가 어려 웠으나 최근에 서울과 그 인근지역에서 한성기석실이 다수 확인되었고, 결국 이 한성기석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판교동고분군의 경우 1유형 의 초기 횡혈식석실과 평면형태, 비율, 남녀매장, 유물 구성 등이 거의 동일하 다. 특히 櫻 井 公 園 2호분은 판교동1호분과 현실 규격까지 정확하게 같기 때문 에 결국 1유형은 한성기 백제의 장방형 석실로부터 직접 전파되어 축조된 것으 로 볼 수 있다. 그리고 2유형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장방형 평면플랜을 유지하고 있어, 1유 형과 다른 계보가 아닌 같은 계보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재지의 요소가 가미 되어 조금씩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藤 の 森 古 墳 의 경우 高 井 田 山 古 墳 과는 달 리 재지 수혈식석곽의 폭을 유지하고 구축기법 역시 수혈식석곽의 구축기법을 기본으로 새로운 석실 구축 기술을 더해 축조하였으며 석재도 수혈식석곽의 석재와 거의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보는 견해 50) 역시 같은 의미로 볼 수 47) 김규운, 2014, 앞의 글. 48) 白 石 太 一 郎, 1995, 앞의 글; 安 村 俊 史 桑 野 一 幸, 1996, 앞의 책 등. 49) 森 下 浩 行, 1986, 앞의 글; 土 生 田 純 之, 1991, 앞의 책; 柳 沢 一 男, 1993, 横 穴 式 石 室 の 導 入 と 系 譜, 季 刊 考 古 学 第 45 号, 雄 山 閣 등. 50) 富 山 直 人, 2007, 앞의 글.

41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41 있다. 그리고 송산리형 석실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상정되어 왔던 椿 井 宮 山 塚 古 墳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성기에 이미 궁륭상 천장의 석실이 성립 되어 있었고, 장방형 플랜 역시 한성기에 가깝기 때문에 한성기석실로부터 영 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은 전체적으로 백제의 동일한 형식 혹 은 계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먼저 전부 우편재식이라는 점, 그리고 평면형태가 장방형이라는 점이 그 이유이다. 대체적으로 한성기석실의 세장방형 석실과 유사한 1.6:1의 비율을 유지하고 그에 영향을 받아 조금 덜 세 장하거나 조금 더 세장한 형태가 축조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관대를 설치 하지 않는 점도 같다. 그리고 축조시기로 보아도 한성기의 석실과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기왕에 藤 の 森 古 墳 이 가장 빠르게 축조되는데 그 시기가 대략 5세기 3/4분기로 인정 되고 있고, 高 井 田 山 古 墳 이 TK23 또는 TK47형식 단계, 長 原 七 ノ 坪 古 墳 이 TK47형식 단계, 櫻 井 公 園 2호분 역시 TK47형식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寺 口 忍 海 D27호분도 보고서에서 TK47형식 단계로 설정하고 있고, 新 澤 千 塚 221호 분은 TK47 또는 MT15형식 단계로 설정되고 있다. 高 井 田 山 古 墳 의 단계를 TK23형식 단계로 인정할 경우 藤 の 森 古 墳 과 함 께 한성기 말에 축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고분은 한성기석실 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 이외의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 외 고분들도 대부 분 TK47형식 단계로 비정되고 있는데 이 시기는 한성기가 끝나고 웅진기가 시작되는 단계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웅진기석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는 보지 않는다. 송산리형과 같은 완전한 방형플랜의 횡혈식석실이 전혀 확인 되지 않고, 궁륭상천장의 경우 웅진기 이전 한성기에 이미 어느 정도 축조되었 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51) 만약 웅진기의 횡혈식석실로부터 영향을 받아 축조하였다면 조금 더 확실 한 방형플랜과 완벽한 궁륭상 천장, 관고리 장식 등이 확인되었을 것이다. 그 51) 이남석, 2007, 앞의 글.

42 42 동북아역사논총 51호 러한 양상은 전혀 확인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성기의 횡혈식석 실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畿 內 型 석실이 확실하게 성립된 것을 표지적으로 보여주는 市 尾 墓 山 古 墳 의 연대가 MT15형식 단계이므로 6세 기 전반에는 이미 畿 內 型 석실이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 시기 새로이 백제로부터 석실 축조의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를 정리해 보면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에 영향을 주는 지역은 백제 한성기 중앙 인접지역 혹은 한강유역이고, 그 시기는 한성기 말로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직접 전파되어 축조되는 경우와 영향을 받으면서도 재지적인 상 황에 맞추어 변형되어 축조되는 경우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2_ 도래인 문제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 문제는 결국 도래인 문제로 귀결된다. 재 지에서 보이지 않았던 요소가 새로이 출현하는 고고자료에 대해서는 그대로 쉽게 도래인을 상정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견해를 살펴보면 하부타 요시유키는 畿 內 型 석실 성립 이전에 구 축된 櫻 井 公 園 2호분의 출토유물에 비녀와 소형 취사구가 포함된 점, 게다가 寺 口 忍 海 고분군에서도 이 유물들이 출토된 점에서 기나이지역에서 畿 內 型 석 실 성립 이전에 횡혈식석실을 구축한 고분은 도래인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畿 內 型 석실에 대해서는 도래인의 영향과 관여가 있었 던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고 논하였다. 그러나 지역의 묘제에 대한 영향력 의 크기를 생각하였을 때 역시 畿 內 型 석실 성립에는 토착 왜인의 주체성을 중 시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52) 그리고 토미야마 나오토의 경우는 河 內 에서의 석실 도입은 대륙에서 이주 한 사람들에 의해 도입된 것과 九 州 系 의 석실, 두 계통이 도입되었다고 생각하 였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규슈에서 그 원류를 구하는 석실은 지역의 수장묘에, 52) 土 生 田 純 之, 1994, 앞의 글.

43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43 대륙에서의 이주자가 중심이 되어 관여한 석실은 군집분 등의 소형 고분을 중 심으로 각각 도입된 것으로 논하였다. 53) 야스무라 준지의 경우, 高 井 田 山 古 墳 은 백제에서 직접 영향을 토대로 성 립된 고분이고, 또한 초기 畿 內 型 석실은 우편재식으로 한정되는 점도 백제 횡 혈식석실의 영향으로 결론지었다. 백제에서 우편재식이 주류가 된 것은 피장 자에서 볼 때 오른쪽이 우위였기 때문에 오른쪽에 최초의 피장자, 기본적으로 남편을 매장하고, 그 후 왼쪽에 부인을 매장하였던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高 井 田 山 古 墳 의 피장자로 곤지 혹은 곤지를 전후하여 건너왔던 왕족에 필적한 인물로 추정하였다. 54) 한편, 요시이 히데오는 이러한 도래인 비정에 대해 주의할 필요성을 지적 하였다. 일본열도의 경우를 보면 고분의 피장자로 도래인을 상정하는 경우, 그 근거로는 묘제 자체가 가지는 새로운 요소과 함께 문헌 기록에 남아 있는 도래 인 관계와 여러 기록과의 일치 를 예로 들고 있지만 중국 남조의 전실묘와 유 사하나 묘지의 내용에서 백제 왕이 피장자인 것이 분명하게 밝혀진 무령왕릉 과 같은 경우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새로운 묘제가 도입된 분묘의 피장 자를 외래계의 인물로 연결하는 추측에는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횡혈식석실의 출현에 관련된 사람의 이동을 고고학적으로 추정하는 것 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피장자보다도 오히려 석실의 축조에 관련된 기 술자의 이동이고, 기술자의 이동의 유무를 검증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하 였다. 55) 이상과 같이 피장자를 도래인으로 상정하는 입장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 다는 입장이 있다. 이 글에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접근을 한다면, 우선 재지 의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 2유형의 경우는 피장자를 도래인으로 상정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1유형의 경우는 다르다. 53) 富 山 直 人, 2007, 앞의 글. 54) 安 村 俊 史, 2008, 앞의 글; 安 村 俊 史, 2014, 畿 内 初 期 横 穴 式 石 室 にみる 百 済 の 影 響, 百 済 文 化 50권, 公 州 大 学 校 百 済 文 化 研 究 所. 55) 吉 井 秀 夫, 2008, 앞의 글.

44 44 동북아역사논총 51호 1유형은 단순히 무덤의 형태가 같을 뿐만 아니라 재지적인 부자매장 방식 에서 부부매장으로 바뀌는 등 매장 관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며 이에 따라 시신의 안치 방법, 유물의 부장 등이 일순간에 변화하는 것이다. 즉, 무덤 축조의 거의 모든 요소가 백제와 동일한 것이므로 단순히 전파 혹은 모방만으 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피장자가 도래인이 아니라면 어째서 거의 모든 요 소를 동일하게 모방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스에키를 부장하는 점과 부장품의 공간 배치 가 백제와는 조금 다르다는 견해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고대 어느 형식의 무덤 이 전파 혹은 모방 축조되더라도 재지의 토기를 생산하고 매납하는 것은 당연 한 것이라 생각된다. 앞서 언급된 무령왕릉의 경우 중국 양나라의 공인이 관계 하여 축조된 것인데, 백제 유물을 매납하고 있다. 그 외,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서 다른 묘제가 전파되어도 재지의 토기를 매납하는 것은 같은 양상이다. 그러나 무령왕릉과 高 井 田 山 古 墳 과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무령왕릉의 경우 전으로 고분을 축조한다는 점 및 매지권과 묘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요소가 백제적 요소이다. 즉, 기존에 횡혈식석실이라는 묘제가 일반 적으로 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스타일이 접목된 것이다. 그러나 高 井 田 山 古 墳 의 경우는 새로운 묘제, 매장관념, 장송의례가 전반적으로 일시에 바 뀌는 것으로, 이는 상당히 큰 차이로 볼 수 있다. 결국 석실 축조의 기술집단이 건너오든, 또는 도래인 피장자가 건너오든 재지의 토기가 매납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스에키와 같은 도질토기 생산이 5세기를 전후하는 시점부터 한반도로부터 영향을 받아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 에, 새롭게 토기 생산 집단이 같이 건너왔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따 라서 토기 등의 제사에 이용되는 기본적인 유물은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자 연스럽기 때문에 스에키가 매납된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다르다는 지적은 그대 로 수긍하기 어렵다. 따라서 1유형의 초기 횡혈식석실들은 백제, 특히 한성기 중앙과 인접한 지 역에서 건너온 도래인에 의해 축조되었고, 그들이 그 무덤에 묻히게 되는 것이 다. 그리고 2유형은 재지의 사람이 이러한 흐름 속에 새로운 묘제를 받아들이

45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45 면서도 전통적인 축조 방법을 접목하면서 횡혈식석실을 축조하게 되고, 이후 기나이형석실이라고 하는 자체적인 형식으로 변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문헌으로도 뒷받침이 된다. 당시 5세기 후반이라는 시기는 백제와 왜의 관계가 어느 시기보다 밀접하였다는 점 56) 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5세기 후반에 백제에서 일본열도로 도래하였다고 하는 니시키베씨[ 錦 部 氏 ]의 씨족 묘를 一 須 賀 고분군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그러한 비정이 맞는지 어떠한지를 문헌적으로 검토할 능력은 없으나 적어도 一 須 賀 고분군이 시작되 는 단계에 축조되는 I 18호분과 I 19호분은 초기 횡혈식석실로, 백제에서 도 래한 인물이 매장되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크다. 그리고 초기 횡혈식석실이 다 수 축조되는 TK47형식 단계는 백제 한성 함락 직후가 되는데 이 시기에 일시 적으로 백제에서 왜로 도래한 사람이 증가하였다는 견해 57) 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 백제와 왜의 관계에 대해 곤지의 파견을 필두로 왕족외교 라고 하는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58) 특히 왕족뿐만 아니라 왕녀를 파견하여 결혼동맹과 같은 관계를 맺었다고 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 다. 59) 이러한 당시 외교관계는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바로 백제와 왜의 관계에 있어 중심이 되는 지역은 중앙과 중앙의 관계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초기 횡혈식석실들이 대부분 수장묘인 대형 전방후원분이 아닌 소형 원분에 구축되고, 백제의 중앙지역에서도 비교대상이 되는 횡혈식석실이 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수장들이 개별적으로 교류하고 도입 56) 山 尾 幸 久, 1999, 筑 紫 君 磐 井 の 戦 争, 新 日 本 出 版 社. 57) 白 井 克 也, 2003, 土 器 からみた 地 域 間 交 流, 森 浩 一 編, 検 証 古 代 日 本 と 百 済 ( 枚 方 歴 史 フォーラム), 大 巧 社. 58) 연민수, 1998, 백제의 대왜외교와 왕족,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59) 김현구, 2009, 백제와 일본사이의 왕실외교, 고대한일교섭사의 제문제, 일지 사; 이재석, 2013, 5~6세기 백제 대왜외교의 추이와 유형, 5~6세기 동아시아 속의 백제와 왜, 백제 역사유적 세계문화유산 공주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회 의,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46 46 동북아역사논총 51호 한 것으로 생각해 온 경향이 있다. 60) 그러나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은 분명 중앙과 중앙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인다. 그 이유는 우선 가장 먼저 축조되는 藤 の 森 古 墳 의 경우 분명 古 市 고분군 내에 입지하고 있다. 당시 오진 료[ 應 神 陵 ]와 같은 왕릉묘역 내에 축조되는 것으로 그 규모가 작다고 하여 이 를 중앙권력과 별개의 문제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경우 전방후원분에 언제 횡혈식석실이 채용되었는지에 관련된 문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될 것인데, 高 井 田 山 古 墳 의 축조부터 각지의 전방후원분 매장시설로서 횡혈식석실이 채용되기까지의 시기차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61) 비록 가리비형 전방후원분이긴 하나 長 原 七 ノ 坪 古 墳 의 경우로 보아 TK47 형식 단계에 이미 전방후원분에 채용이 되었고, 더욱이 게이타이료[ 繼 體 陵 ]로 추정되고 있는 今 城 塚 古 墳 을 볼 때 횡혈식석실의 도입 이후 최초의 대왕릉에 횡혈식석실이 채용되고 있다. 藤 の 森 古 墳 과 묶어서 생각한다면 게이타이기 [ 繼 體 期 ] 이전의 대왕릉에 이미 횡혈식석실이 채용되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 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각 수장별로 도입하였다고 한다면 같은 시기에 여러 곳에서 같은 형식의 석실이 도입되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보 인다. 그처럼 개별적으로 도입하였다면 훨씬 다양한 형식의 석실들이 도입되 거나, 유물 구성 등도 달라졌을 것이 분명할 것이다. 백제의 경우 역시 중앙지역의 석실들이 잘 발견되지 않아서 지방과 연결시 키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한성기 백제 호이혈식석실의 도입 단계부터 중앙 지역의 관련이 있었고, 한성기에 이미 상당한 정형성이 확인된다. 특히 5세기 전반의 왕묘인 석촌동4호분을 횡혈식석실로 인정한다면 5세기 전반 이후의 백 제 중앙의 묘제 역시 횡혈식석실로 볼 수 있다. 62) 분명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 석실들은 백제 중앙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확인되는 석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60) 김낙중, 2012, 앞의 글 등. 61) 吉 井 秀 夫, 2008, 앞의 글. 62) 김규운, 2014, 앞의 글.

47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47 따라서 이러한 양상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왕족을 통한 특수한 외교로 인 해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백제와 왜 사이에서, 백제로부터 건너온 도래인에 의 해 횡혈식석실이 출현하고 그에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형식의 횡혈식석실을 축조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한성기 백제의 왕릉군에 축조되었던 적석총이 전파되어야 하는 것 이 자연스럽지 않을까라고 하는 지적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5세기 전반으 로 비정되는 석촌동4호분 이후 왕릉으로서 적석총이 계속 이어졌는지 확실하 지 않고, 석촌동4호분에 이미 횡혈식석실이 도입되었으며, 웅진기에 송산리 형 석실이 처음부터 축조되는 양상으로 보아 한성기 말에 이미 원형봉토분의 횡혈식석실이 왕릉묘로 채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중앙과 의 관계라고 하여도 애초에 5세기 후반에 일본열도로 백제 적석총이 전해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 횡혈식석실에 묻혔던 도래인은 왕족이 아닌 그보다는 랭크가 조금 낮았던 인물로 생각된다. 당시 파견되었던 왕족은 거의 백제로 귀국하였 고, 초기 횡혈식석실의 규격과 유물 구성이 왕족급이 아닌 중앙 인근지역과 유 사한 점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Ⅵ. 맺음말 이상과 같이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에 대해 검토하였다. 석실의 형태 뿐만 아니라 규격, 그리고 매장 방식, 유물 구성, 주변 유적과의 관계 등을 토 대로 유형화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1유형은 거의 모든 요소에서 백제와 동일하기 때문에 백제로부터 직접 전 파되었고, 이에 반해 2유형은 재지의 전통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횡혈식석실이라는 새로운 장제를 재지의 기반 위에 주체적으로 도입하

48 48 동북아역사논총 51호 여 모방 축조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기왕의 견해에서는 이러한 초기 횡혈식석실에 대해 백제로부터의 영향을 지적하면서도 어느 지역 혹은 어느 고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명시하 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장자로 도래인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최근 조사된 자료를 근거로 한성기 말에 백제 중앙지역의 석실 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특히 1유형의 경우 거의 모든 요 소가 동일하기 때문에 피장자를 도래인으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도래 와 묘제의 전파는 단순히 개별적인 교류가 아닌 당시 왕족외교 등을 통한 중앙 과 중앙의 교류관계 속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많지 않은 분석자료를 근거로 비약적인 결론을 내린 감이 없지는 않으나 이는 최근의 자료 증가 추세에 따라 추후 보완하고자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묘제의 전파와 도래인 문제에 대해서는 단순히 같은 것이 있다고 바로 연결하 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또한 비교대상이 되는 양 지역에 대해서는 각각 그 변 화양상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올바른 검토가 가능한 것임을 최종 적으로 지적해 두고 싶다.

49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49 참고문헌 吉 井 秀 夫, 2012, 일본열도속의 백제문화, 중앙문화재연구원 편, 아시아의 고대 문 물교류, 서경문화사. 김규운, 2014, 가락동 방이동고분군으로 본 백제 횡혈식석실의 성립, 선사와 고 대 제40, 한국고대학회. 김낙중, 2012,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서 횡혈식석실묘의 수용 양상과 배경, 한국 고고학보 제85집, 한국고고학회. 김현구, 2009, 백제와 일본사이의 왕실외교, 고대한일교섭사의 제문제, 일지사. 박천수, 2007, 새로 쓰는 고대 한일교섭사, 사회평론. 박천수, 2012, 일본 속 고대 한국문화 近 畿 地 方, 동북아역사재단. 연민수, 1998, 백제의 대왜외교와 왕족, 고대한일관계사, 혜안. 이남석, 2007, 한성기 백제 석실분의 재인식, 진단학보 103, 진단학회. 이재석, 2013, 5~6세기 백제 대왜외교의 추이와 유형, 5~6세기 동아시아속의 백제 와 왜, 백제 역사유적 세계문화유산 공주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 공주대 학교 백제문화연구소. 홍보식, 1993, 백제 횡혈식석실의 형식분류와 대외전파에 관한 연구, 박물관연구논 집 2, 부산직할시립박물관. 広 瀬 和 雄, 2001, 7 世 紀 の 畿 内 首 長 層 の 動 向 横 穴 式 石 室 と 横 口 式 石 槨 の 変 遷 を とおして, 東 海 の 後 期 古 墳 を 考 える, 東 海 考 古 学 フォーラム, 三 河 大 会 実 行 委 員 会. 吉 井 秀 夫, 1993, 百 済 地 域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分 類 の 再 検 討 錦 江 下 流 域 を 中 心 と して, 考 古 学 雑 誌 第 79 巻 第 2 号, 日 本 考 古 学 会. 吉 井 秀 夫, 2008, 墓 制 からみた 百 済 と 倭, 百 済 と 倭 国, 高 志 書 院. 都 出 比 呂 志, 1970, 横 穴 式 石 室 と 群 集 墳 の 発 生, 古 代 の 日 本 5, 近 畿. 柳 沢 一 男, 1993, 横 穴 式 石 室 の 導 入 と 系 譜, 季 刊 考 古 学 第 45 号, 雄 山 閣. 網 干 善 教, 1959, 桜 井 児 童 公 園 の 古 墳, 奈 良 県 史 跡 名 勝 天 然 記 念 物 調 査 抄 報 11, 奈 良 県 教 育 委 員 会. 梅 本 康 広, 2007, 畿 内 大 型 横 穴 式 石 室 の 構 造, 研 究 集 会 近 畿 の 横 穴 式 石 室, 横 穴 式 石 室 研 究 会. 白 石 太 一 郎, 1965, 日 本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の 系 譜 横 穴 式 石 室 の 受 容 に 関 する 考

50 50 동북아역사논총 51호 察, 先 史 学 研 究 5. 白 石 太 一 郎, 1995, 古 代 史 のなかの 藤 ノ 木 古 墳, 藤 ノ 木 古 墳, 読 売 新 聞 社. 柏 原 市 立 歴 史 資 料 館, 1996, 高 井 田 山 古 墳 をめぐって 近 畿 地 方 の 横 穴 式 石 室 のは じまりは. 白 井 克 也, 2003, 土 器 からみた 地 域 間 交 流, 森 浩 一 編, 検 証 古 代 日 本 と 百 済 ( 枚 方 歴 史 フォーラム), 大 巧 社. 富 山 直 人, 1994, 畿 内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の 構 築 技 術 と 渡 来 系 氏 族, 文 化 財 学 論 集. 富 山 直 人, 2007, 後 期 前 方 後 円 墳 の 消 長 と 横 穴 式 石 室 からみた6 世 紀 の 社 会, 研 究 集 会 近 畿 の 横 穴 式 石 室, 横 穴 式 石 室 研 究 会. 北 山 峰 生, 2012, 初 期 横 穴 式 石 室 の 空 間 利 用 原 理, ヒストリア 第 235 号. 山 崎 信 二, 1985, 横 穴 式 石 室 構 造 の 地 域 別 比 較 研 究 中 四 国 編. 山 尾 幸 久, 1999, 筑 紫 君 磐 井 の 戦 争, 新 日 本 出 版 社. 森 本 徹, 2012, 儀 礼 からみた 畿 内 横 穴 式 石 室 の 特 質, ヒストリア 第 235 号. 森 下 浩 行, 1986, 日 本 における 横 穴 式 石 室 の 出 現 とその 系 譜 畿 内 型 と 九 州 型, 古 代 学 研 究 111. 森 下 浩 行, 1993, 横 穴 式 石 室 の 地 域 間 動 向 ( 九 州 大 和 ), 季 刊 考 古 学 第 45 号, 雄 山 閣. 小 林 行 雄, 1950, 古 墳 時 代 に 於 ける 文 化 の 伝 播, 史 林 新 納 泉, 1987, 戊 辰 年 銘 大 刀 と 装 飾 付 大 刀 の 編 年, 考 古 学 研 究 三 四 巻 三 号. 新 庄 町 教 育 委 員 会 奈 良 県 立 橿 原 考 古 学 研 究 所, 1988, 寺 口 忍 海 古 墳 群. 安 村 俊 史, 2008, 高 井 田 山 古 墳 の 意 義, 群 集 墳 と 終 末 期 古 墳 の 研 究. 安 村 俊 史, 2014, 畿 内 初 期 横 穴 式 石 室 にみる 百 済 の 影 響, 百 済 文 化 50권, 公 州 大 学 校 百 済 文 化 研 究 所. 安 村 俊 史 桑 野 一 幸, 1996, 高 井 田 山 古 墳, 柏 原 市 敎 育 委 員 會. 田 中 良 之, 1996, 人 骨 からみた 古 墳 時 代 親 族 関 係, 考 古 学 による 日 本 歴 史 15, 雄 山 閣. 太 田 宏 明, 1999, 畿 内 型 石 室 の 属 性 分 析 による 社 会 組 織 の 検 討, 考 古 学 研 究 太 田 宏 明, 2003, 畿 内 地 域 における 導 入 期 の 横 穴 式 石 室, 関 西 大 学 考 古 学 研 究 室 開 設 五 拾 周 年 記 念 考 古 学 論 集.

51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51 土 生 田 純 之, 1991, 日 本 横 穴 式 石 室 の 系 譜, 学 生 社. 土 生 田 純 之, 1994, 畿 内 型 石 室 の 成 立 と 伝 播, 古 代 王 権 と 交 流 5 ヤマト 王 権 と 交 流 の 諸 相. 和 田 晴 吾, 1989, 畿 内 横 口 式 石 槨 の 諸 問 題, 立 命 館 史 学 10. 和 田 晴 吾, 1996, 見 瀬 丸 山 古 墳 藤 ノ 木 古 墳 と 六 世 紀 のヤマト 政 権, 情 況 日 本 の 古 代 をひらく, 情 況 出 版. 喜 田 貞 吉, 1914, 古 墳 墓 年 代 の 研 究, 歴 史 地 理 24 3.

52 52 동북아역사논총 51호 [국문 초록]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김규운 기나이지역의 초기 횡혈식석실에 대해 검토하였다. 석실의 형태뿐만 아니라 규격, 그리고 매장 방식, 유물 구성, 주변 유적과의 관계 등을 토대로 유형화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1유형은 거의 모든 요소에서 백제와 동일하기 때문에 백제로부터 직접 전 파되었고, 이에 반해 2유형은 재지의 전통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횡혈식석실이라는 새로운 장제를 재지의 기반 위에 주체적으로 도입하 여 모방 축조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기왕의 견해에서는 이러한 초기 횡혈식석실에 대해 백제로부터의 영향을 지적하면서도 어느 지역 혹은 어느 고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명시하 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장자로 도래인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최근 조사된 자료를 근거로 한성기 말에 백제 중앙지역의 석실 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특히 1유형의 경우 거의 모든 요 소가 동일하기 때문에 피장자를 도래인으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도래 와 묘제의 전파는 단순히 개별적인 교류가 아닌 당시 왕족외교 등을 통한 중앙 과 중앙의 교류관계 속에서 출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주제어 기나이지역, 횡혈식석실, 백제, 왜, 도래인

53 일본 기나이지역 초기 횡혈식석실의 출현과 도래인 문제 53 [ABSTRACT] A Study on the emergence of the Early Stone Chamber Tomb in the Kinai area of Japan Kim Gyuun Kinai local about the Stone Chamber Tomb of the initial review. Done by CPRI's form of burial, artifacts and specifications, as well as organizing around, including relations with the site based on the classification of sociality, but the result of two Types. Type 1 in almost every element in Baekje and spread directly from Baekje, and in the same because this is from two types of local traditional element is strongly reflected Ancient Tomb because of a new form of autonomous on the basis of the graves of local imitative, which was built by introducing it as we tried to figure. In view of the previous earliest Stone Chamber Tomb about a stone chamber. noting impact, no region or any tombs from Baekje were affected in exactly I did not specify, for example. Nevertheless, tomb's occupant to Baekje people tended to refer it. This most recent in a survey based on data from the central area of the Baekje Kingdom in the late hanseong period being influenced by a stone chamber. are and clearly identify, particularly for type 1, almost The Baekje Kingdom the tomb's occupant in the same because all the elements as envisioned. And spreading this tomb is not merely individual exchanges are a royal diplomacy at the time, including through the central and central in the trade relations with emerging as we tried to figure.

54 54 동북아역사논총 51호 Keywords Kinai area, stone chamber tomb, Baekje, Wa, immigration to Japan

55 9세기 초 일본의 변경과 통역 쓰시마에 배치된 신라역어를 중심으로 55 9세기 초 일본의 변경과 통역 쓰시마에 배치된 신라역어를 중심으로 정순일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조교수 Ⅰ. 머리말 이 글은 고대 일본열도의 변경에서 전개된 이( 異 )문화 간 접촉 교류 양상에 주목하여, 그 최전선에서 기능한 통역의 실태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불특정 다수의 신라인이 열도사회를 빈번하게 왕래하기 시작하는 9세기 초에 초점을 맞추어, 이질문화의 충돌과 융합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통역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9세기 초 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 중핵은 사람들의 활발한 국제이동 특히, 해상이동 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람이 국경을 넘는 행위 자체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확인되며, 전혀 새로운 일이라 말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다만 왕권 이외의 세력 집단 개인이 주변 제국을 매우 빈번하게 왕래한 사례는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신국 투고: 2015년 11월 12일, 심사 완료: 2016년 2월 22일, 게재 확정: 2016년 2월 24일

56 56 동북아역사논총 51호 면( 新 局 面 )임에 틀림없고, 이 점이야말로 9세기 초 의 획기성을 보여주는 요소 이다. 9세기에 들어 활발해진 사람들의 해상왕래는 필연적으로 이문화 간 이민 족 간 이질언어 사용자 간의 조우( 遭 遇 )를 촉진하였는데, 고대 일본열도에서 는 연해제국( 緣 海 諸 國 ) 및 이도사회( 離 島 社 會 )가 바로 그러한 교류와 접촉이 이루어지는 장( 場 )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현재의 큐슈지역에 해당하는 서해도 ( 西 海 道 )는 중국대륙이나 한반도로 대표되는 이국세계와 연결되기 쉬운 지리 상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다양한 형태의 문화접촉이 나타나는 공간이었다. 延 喜 式 民 部 上 (927년 성립)에서 무쓰[ 陸 奥 ], 데와[ 出 羽 ], 사도[ 佐 渡 ], 오키[ 隠 岐 ]와 함께 이키[ 壱 岐 ], 쓰시마[ 對 馬 ]를 변요( 邊 要 ) 로 규정하고 있으 며, 1) 貞 觀 儀 式 (875년 성립)과 延 喜 式 陰 陽 寮 조의 追 儺 祭 文 ( 儺 祭 詞, 역 귀를 쫓는 제문)에서 일본의 서쪽 경계( 西 方 之 堺 ) 가 오치카( 遠 値 嘉, 현재의 고토열도) 2) 라고 나오듯 서해도의 주요 섬들이 외부세계와 맞닿아 있는 변경으 로 인식되었던 것도 우연이라 볼 수 없다. 이 글에서 특별히 서해도의 이도사 회에 유의하고자 하는 이유 또한 바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문화 간 접촉의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 이상과 같은 시공간에서 고대 일본이 운용하였던 통역 3) 의 실태를 알아보 1) 延 喜 式 民 部 上 國 郡 條 에 陸 奥 國, 出 羽 國, 佐 渡 國, 隠 岐 國, 壱 岐 嶋, 對 馬 嶋, 右 四 國 二 嶋 爲 邊 要 라고 나온다. 2) 가령 延 喜 式 陰 陽 寮 條 에는 四 方 之 堺, 東 方 陸 奥, 西 方 遠 値 嘉, 南 方 土 佐, 北 方 佐 渡 라고 나온다. 3) 고대 일본 측 사료에 보이는 통역 에 대해 직 간접적으로 논급한 연구로는 酒 寄 雅 志, 2009, 渤 海 通 事 の 研 究, 栃 木 史 学 2; 遠 山 美 都 男, 1991, 日 本 古 代 國 家 における 民 族 と 言 語, 学 習 院 大 学 文 学 部 研 究 年 報 38; 遠 山 美 都 男, 1998, 日 本 古 代 の 訳 語 と 通 事, 歴 史 評 論 574; 荒 野 泰 典, 1993, 通 訳 論 序 説, アジ アのなかの 日 本 史 ( 五 ) 自 意 識 と 相 互 理 解, 東 京 大 学 出 版 会 ; 東 野 治 之, 1993, 平 安 時 代 の 語 学 教 育, 新 潮 45 7 月 号 ; 横 山 伊 勢 雄, 1995, 北 東 アジア 世 界 の 漢 詩 と 外 交, 環 日 本 海 論 叢 8; 森 公 章, 1998, 大 唐 通 事 張 友 信 をめぐって, 古 代 日 本 の 対 外 意 識 と 通 交, 吉 川 弘 文 館 ; 森 公 章, 2008, 遣 唐 使 と 唐 文 化 の 移 入, 遣 唐 使 と 古 代 日 本 の 対 外 政 策, 吉 川 弘 文 館 ; 馬 一 虹, 1999, 古 代 東 アジ アのなかの 通 事 と 訳 語 唐 と 日 本 を 中 心 として, アジア 遊 学 3; 湯 沢 質 幸,

57 9세기 초 일본의 변경과 통역 쓰시마에 배치된 신라역어를 중심으로 57 기 위해 먼저, 9세기 초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으로서의 非 사절신라인 의 내항 현황을 검토해보고, 다음으로는 그러한 가운데 왜 복수의 언어를 매개할 필요 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810년대에 쓰시마에 신라 역어가 배치된 배경을 동시기에 이루어진 박사 배치와의 비교를 통해서 고찰 하려고 한다. Ⅱ. 전사( 前 史 )로서의 신라사절 내항 검토 9세기 초에 일본으로 내항한 신라인들이 지닌 가장 큰 특징으로는 그들 대부 분이 사절( 使 節 )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왕권으로부터 외교권한을 위 임받은 사신이 아닌, 非 사절신라인 들이 해상이동을 통해 일본 연안에 출현하 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성격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 우선 전사( 前 史 )로서 신라사절의 내항 실태와 일본 측의 대응방식에 대해 검토해 보도록 하자. <표 1>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 사절단의 내항은 寶 龜 10년(779)의 김난손 사절(<표 1>의 No.12)을 끝으로 종언을 고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위로 신라사절의 일본 방문이 끊어지게 된 것일까? 天 平 年 間 (729~749년)부터의 1999, 古 代 日 本 新 羅 間 における 使 用 言 語, 日 本 学 報 43, 韓 國 日 本 学 会 ; 湯 沢 質 幸, 2010, ( 改 訂 増 補 ) 古 代 日 本 人 と 外 國 語 東 アジア 異 文 化 交 流 の 言 語 世 界, 勉 誠 出 版 ; 石 井 正 敏, 2003, 遣 唐 使 と 語 学, 歴 史 と 地 理 565; 榎 本 淳 一, 2008, 遣 唐 使 と 通 訳, 唐 王 朝 と 古 代 日 本, 吉 川 弘 文 館 ( 初 出 2005); 장종진, 2011, 圓 仁 의 入 唐 求 法 巡 禮 行 記 를 통하여 본 新 羅 譯 語, 한국고대사탐구 7; 山 内 晋 次, 2012, 9~12 世 紀 の 日 本 とアジア 海 域 を 往 來 するヒトの 視 点 から, 専 修 大 学 東 アジア 世 界 史 研 究 センター 年 報 6; 鄭 淳 一, 2013c, 延 暦 弘 仁 天 長 年 間 の 新 羅 人 來 航 者, 早 稲 田 大 学 大 学 院 文 学 研 究 科 紀 要 58-4 등이 있어 참 고가 된다. 통역의 명칭, 지위와 신분, 양성체제, 역할과 임무 등에 대해서는 별고에 서 다룰 예정이다.

58 58 동북아역사논총 51호 <표 1> 신라사절의 내항과 일본 측의 대응( 天 平 年 間 ~ 寶 龜 年 間 ) 연번 (NO) 1 2 도착 연도 天 平 4 年 (732) 天 平 6 年 (734) 관련 내용 1.22 신라사( 新 羅 使 ) 김장손( 金 長 孫 ) 등 내일( 來 日 ). 3.5 신라사 김장손 등을 다자이후 [ 大 宰 府 ]로 부르다 신라사 김장손 등 40인, 입 경( 入 京 ) 5.19 재물( 財 物 ) 및 각종 동물( 動 物 )을 진상. 또 내조( 來 朝 ) 의 연 기( 年 期 )를 주청( 奏 請 ) 향연( 饗 宴 )을 조당( 朝 堂 )에 서 배풀고, 조( 詔 )를 내려 내조 의 연기를 3년에 1회(3 年 1 度 )로 하다 귀국 다자이후가 신라사의 내착 ( 來 着 )을 보고하다. 2.17( 天 平 7 年 735 ) 신라사 김상 정( 金 相 貞 ) 등이 입경( 入 京 ). 2.27( 天 平 7 年 735 ) 다지히노 아 카타모리[ 多 治 比 県 守 ]를 병부( 兵 部 )의 조사( 曹 司 )로 보내어서, 신 라사에게 내조 의 이유를 심문하 게 하다. 신라국이 국호를 고쳐 왕성국( 王 城 國 )을 칭하였기 때문 에, 사자를 귀국시키다. 특기사항 天 平 7 年 (735) 4.26 키비노 마키비[ 吉 備 眞 備 ] 등에 의해 당례( 唐 禮 ) (130권) 등이 들어오다. 이 당례 는 권수로 보아 고종( 高 宗 ) 현경( 顕 慶 ) 3년(658)에 편찬 된 현경례( 顕 慶 禮 )(영휘례[ 永 徽 禮 ]) 130권이라 보여진다. 본격 적으로 예 체계로서 빈례( 賓 禮 ) 가 도입된 것은 天 平 7 年 의 현 경례 수용에 의한 것이라 생각 된다. 외교형식 외교의례를 보다 엄 중하게 지키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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