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이미지 시대의 감각적이고 즉물적인 문 화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미지는 문자를 대체한 새로운 문화일까? 역설적이게도 이미지의 시대는 더욱 많은 문자의 유통과 소비를 가져왔다. 우리는 그야말로 글자의 홍수에 허우적거린다. 기존의 신문과 책은 물론이고, 거리를 걸을 때 맞닥트리는 광고와 간판, 하다못해 영상매체라는 텔레비전이 나 영화의 자막, 최첨단 매체인 휴대폰의 문자메시지, 컴퓨터 웹상의 텍스트 까지, 하루 중 눈이 문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 정도에 불 과할 것이다. 이러한 문자의 홍수는 글자 자체를 하나의 시각적 이미지로 발 전시켰다. 언어와 시각 이미지의 차이는 기표와 기의의 분리라고 볼 수 있다. 이마저 도 기호학으로 넘어가면 복잡해지지만, 가장 단순하게 생각할 때 꽃 그림은 기표와 기의가 동일하지만, 꽃이라는 글자는 기표와 꽃이라는 기의 사이에 차 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문자의 역사에서 후대에 생겨난 것이다. 글꼴 디자인의 오랜 역사 기원전 3천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나타난 인류 최초의 문자는 물체의 전형 을 간단한 선화로 나타낸 것이다.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여성의 성기를 나타 왼쪽페이지 아래 문화변혁을 주도하는 공공예술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글꼴 디자이너 이용제의 작품 KOREAN CULTURE & ARTS JOURNAL 75
76 October 2005
글꼴 디자인은 작은 의미로는 디지털 혁명과 관련한 폰트 디자인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글자 제작에 디자인의 개념이 결합된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디지털 혁명은 글꼴 디자인에도 커다란 변화를 불러왔다. (calligram)이나, 기념비를 장식하는 장식예술 등 다양한 서법과 서예문화를 낳았다. 유럽에서도 글자를 시각문화로 파악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려는 욕구가 나 타났다. 성경의 필사를 담당하던 필경사들은 자신의 작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 었다. 그들은 단순한 필사에 그치지 않고, 각 단락과 장절의 두 문자에 도금문 자를 넣는다든지 그림을 그려 넣는 등 예술적 장식을 함으로써 작품으로 승화 시켰다. 당시에도 규범적인 서체가 있어서, 책에 주로 쓰이는 서체는 언셜 이라는 필기체 대문자와 보다 작고 둥근 세미언셜, 종교적 기념비에 사용되 던 러스틱 등이 가장 널리 쓰였다. 12세기 말,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새로운 문자 수요층으로 등장했다. 새로 운 계층의 출현과 함께 책의 출간 역시 예배서나 신학서에서 벗어나, 공식문 서나 철학, 논리학, 수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저서가 나타났기 시작했 다.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서 그동안 수도사와 함께 일하던 세속 필경사들이 그들 나름대로 길드를 만들어 독립했다. 원고의 내용이 바뀌면서 즐겨 사용하는 서체도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가 KOREAN CULTURE & ARTS JOURNAL 77
78 October 2005
i n t e r v i e w KOREAN CULTURE & ARTS JOURNAL 79
80 October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