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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연구 2009 봄호 제32권 제1호(통권 114호) pp. 373~401. 硏 究 論 文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김 만 태 * 1) Ⅰ. 서론 Ⅱ. 택일풍속의 기원 Ⅲ. 택일풍속의 지속과 확대, 세시풍속 Ⅳ. 택일풍속의 비판, 변화와 약화 Ⅴ. 택일풍속의 유형과 특징 Ⅵ.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I. 서론 새 사람 들어오고 3년, 새 집 짓고 3년 나기 어렵다 는 말이 있다. 이는 새롭 게 바뀐 인간적ㆍ공간적 환경에 적응하는 데 그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며 힘이 든 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집안에 사람을 새로 맞아들이고 보금자리인 집을 새로 짓는 것은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그 과정에서 선택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3년 안에 재앙을 당하기 쉽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는 말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구한말까지 국가에서 직접 택일서를 여러 차례 간행하 면서 기조문ㆍ혼인문ㆍ구사일ㆍ진인구일ㆍ납노비일ㆍ양자납서일 ( 起 造 門 ㆍ 婚 姻 門 ㆍ 求 嗣 日 ㆍ 進 人 口 日 ㆍ 納 奴 婢 日 ㆍ 養 子 納 婿 日 ) 등의 항목을 두어 중시했다. 그리고 1936년까지 국가에서 매년 발행한 책력에도 해당하는 날마다 의가취ㆍ의진인구ㆍ 의수주ㆍ의상량 ( 宜 嫁 娶 ㆍ 宜 進 人 口 ㆍ 宜 竪 柱 ㆍ 宜 上 樑 ) 등을 표기해 민간에서 널리 * 안동대학교 박사과정, 민속학 전공(ware4u@empal.com).

374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국가와 민간에서 중시하던 택일풍속은 점차 그 힘을 잃는 방향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화 되면서 택일풍속에 대한 회의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길흉일을 가리려는 인식 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건 누구나 갖는 인류의 보편적 심성이다. 그런 까닭에 다른 전통풍속들이 대거 사라지거나 크게 약화된 것에 비하면 택일풍속은 그 생명력이 강해 지금도 우리 생활 속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안동시 풍산읍의 권 심(여, 80세) 씨는 2007년에 증손자를 봤는데, 이해가 황 금돼지해 라고 해서 제보자뿐 아니라 서울의 손자 내외도 더욱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1) 제보자의 가족을 통해서 우리는 길흉일을 가리는 택일풍속이 시대 흐름에 따라 비록 그 모습은 크게 달라졌지만 길흉일에 대한 기본인식은 도농ㆍ세대를 막 론하고 여전히 존재함을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택일풍속은 단순한 개인행위 차원이 아니라 사회문화 차원에서 오래 전 부터 전승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세시풍속ㆍ민속신앙 안에서 단편적으로 논의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안혜경과 김만 태에 의해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는데, 2) 안혜경은 특별한 행사나 활동을 할 때 특정한 날이나 방위를 선택하거나 꺼리는 날가림(택일) 관행을 가정신앙의 범주로 보고 날가림 관행을 통해 가정신앙의 역사성을 살펴봤다. 김만태는 택일의 대상이 되는 행사를 장 담그기와 같은 연례행사, 혼인ㆍ이사 등과 같은 일생 중대행사로 구분하고서 택일대상에 따른 택일문화 연구모델 을 제시했다. 또한 택일문화는 역 서( 曆 書 )가 만들어낸 하위문화라는 전제 하에서 역서, 천기대요 류의 택일서, 택 일력, 백중력ㆍ천세력ㆍ만세력 등 택일관련 역서류를 통해서 택일문화의 시대적 변화양상을 고찰했다. 문화는 고정불변된 것이 아니다. 생활환경의 변화와 발견ㆍ발명 그리고 외부사 회로부터 다른 문화의 유입 등에 의해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택일풍속도 문 화의 본질상 항상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과정에서 택일풍속을 비롯한 문화는 끊임없이 생성ㆍ존속ㆍ소멸되고 재창조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지금도 우리 생 1) 권 심(여, 80세)의 제보(2007년 5월 24일, 안동시 풍산읍 서미1리 제보자 집). 2) 안혜경, 날가림 관습으로 본 가정신앙의 역사성,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 김만태, 역서( 曆 書 )류를 통해본 택일문화의 변화, 민속학연구, 20호(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75 활 가운데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택일풍속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 다양한 현장답사자료와 문헌자료를 통해 택일문화의 전승양상을 기원 지속ㆍ확 대 (비판) 변화ㆍ약화 라는 문화의 거시적 변화 틀 속에서 살펴보고 택일풍속의 유형과 특징을 규명해본다. II. 택일풍속의 기원 길일과 흉일에 대한 믿음은 매우 오래되었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것은 달의 위상과 관련된다. 보다 정교한 방법이 중 국에서 고안되었는데 그것은 십간( 十 干 )과 십이지( 十 二 支 )라고 알려진 글자들의 순 환을 포함하는 달력[ 干 支 曆 ]에 기반을 둔 운명예측이었다. 3) 길흉일에 관한 이런 인식은 로마ㆍ페르시아ㆍ인도뿐 아니라 기독교를 신봉하는 유럽에서도 등장했고, 4) 진( 秦 )나라 사람들의 혼인ㆍ가정생활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났다. 5) 남송( 南 宋 )에서는 5 월 5일[ 重 五 日 ]은 특히 흉한 날로서 이날 관리로 임용되거나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흉조로 여겼다. 6) 또한 중국 소수민족인 먼바족은 1ㆍ11ㆍ21일에는 손님초대, 2ㆍ12ㆍ 22일에는 물건교환, 4ㆍ14ㆍ24일에는 전쟁, 6ㆍ16ㆍ26일에는 건축, 7ㆍ17ㆍ27일에는 혼인, 8ㆍ18ㆍ28일에는 시체매장, 9ㆍ19ㆍ29일에는 장사( 葬 事 )ㆍ독경( 讀 經 )ㆍ외출하 는 것을 금한다. 7) 카자흐스탄에서는 수요일은 여행에 적합하며 목ㆍ금요일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등 종교적인 행사를 하는 데 좋으며, 8) 일본에서는 경신( 庚 申 )일에 임신하면 악한 아이가 태어나므로 좋지 않다고 여기는 믿음이 있다. 9) 3) 조셉 니덤(저)ㆍ콜린 로넌(축약)/김영식ㆍ김제란(역), 중국의 과학과 문명: 사상적 배경 (까치, 1998), 253쪽. 4) 움베르토 에코(외 저)/김석희(역), 시간 박물관 (푸른숲, 2000), 60쪽. 5) 김성기ㆍ이승율ㆍ최종성, 출토자료 日 書 의 연구현황과 그 사상사적 의의, 동양철학연구, 42집 (동양철학연구회, 2005), 180쪽. 6) 자크 제르네(저)/김영제(역), 傳 統 中 國 人 의 日 常 生 活 (신서원, 1995), 203쪽. 7) 孫 英 善 (저)/김인희(역), 중국 각 민족금기의 공통점과 차이점: 전통 미덕의 발양 및 민족 소질 강 화에 대하여, 국제아세아민속학, 2호(국제아세아민속학회, 1998), 521쪽. 8) 이복규, 카자흐스탄 민속신앙과 우리나라 민속신앙의 비교, 아시아 민속신앙의 비교연구 (비교 민속학회 하계학술대회, 2007), 159쪽.

376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사람들이 택일을 하는 동기는 좋은 날에 행해지는 일은 그 날의 좋은 기운을 받아 그 결과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0) 위 의 몇 가지 사례에서도 보듯이 길흉일에 관한 풍속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ㆍ서양의 대부분 문화권에서 널리 존재해왔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좋은 결 과는 더 크게 하고 나쁜 결과는 더 적게 하기 위한 조치로서 길흉일을 가려서 어 떤 일을 행하려는 사람들의 믿음은 인류가 지닌 보편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길흉일을 가려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풍속이 있었으 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택일풍속이 우리나라에서 언제 어 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택일과 직접 관련된 자료는 아니지만 삼국지 위서ㆍ동이전 <예전>에 새벽 에 별자리의 징후를 살펴서 그 해의 풍흉을 미리 안다 11) 는 별점[ 星 占 ]을 의미하 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을 통해볼 때 당시 우리 옛사람들이 상당한 수준의 천 문 관측기술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그 날의 길흉을 미리 점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택일과 직접 관련되는 가장 초기의 자료 로는 삼국사기 열전 에 진평왕(579~632)때 설씨녀( 薛 氏 女 )가 혼인을 앞두고 날 을 고른다[ 卜 日 ]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볼 때 6세기 말경 이미 민가에서도 혼 인을 앞두고 좋은 날을 선택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지금도 신 부측에서 혼인 날짜를 정하는 연길( 涓 吉 )ㆍ날받이 관행과 비슷하다. 설씨녀는 율리 마을 민가의 여자이다. 진평왕 때에 설씨녀가 말하기를 혼 인은 인간의 윤리라 갑작스레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허락한 이상 죽어도 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대가 변방 방위에 나갔다가 교대하여 돌 아온 후에, 날을 골라서[ 卜 日 ] 예식을 올려도 늦지 않겠습니다. 12) 9) 永 田 久 (저)/심우성(역), 曆 과 占 의 과학 (동문선, 1992), 240쪽. 10) 김만태, 앞의 논문, 8쪽. 11) 三 國 志 魏 書 ㆍ 烏 丸 鮮 卑 東 夷 傳 < 濊 傳 >, 曉 候 星 宿, 豫 知 年 歲 豊 約. 12) 三 國 史 記 列 傳 < 薛 氏 女 >, 薛 氏 女 栗 里 民 家 女 子 也 眞 平 王 時 於 是 嘉 實 退 而 請 期 薛 氏 曰 婚 姻 人 之 大 倫 不 可 以 倉 猝 妾 旣 以 心 許 有 死 無 易 願 君 赴 防 交 代 而 歸 然 後 卜 日 成 禮 未 晩 也.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77 길흉일을 가리는 풍속은 날짜를 구분하여 기록하는 책력( 冊 曆 )과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역서와 역법을 도입한 삼국시대에 길흉일을 가려서 행사하는 풍습이 널리 행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 중 백제가 가장 먼저 중국 으로부터 역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13) 고구려는 영류왕 7년(624) 2월에 당에 사신 을 보내어 역서를 구하였다 14) 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는 신라 문무왕 14년(674) 정월, 당에 들어가 숙위하던 대나마 덕복( 德 福 )이 일력( 日 曆 ) 만드는 법을 배우고 와서 신력( 新 曆 )의 법으로 고쳐 썼다 15) 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의 각국이 역서 와 역법을 도입했다는 사실은 이후 각종 행사를 함에 있어서 택일하는 풍습이 널 리 행해지는 기반이 마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일자( 日 者 )ㆍ일관( 日 官 )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들 이 길흉일을 가리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 또한 삼국사기 열전 에는 궁예(?~918)의 출생과 관련해서 다음 기록이 나온다.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일관이 아뢰기를 이 아이는 중오일( 重 午 日 )에 출생하였고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이오니 마땅히 이를 키우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왕이 궁중의 사람을 시켜 그 집에 가서 죽이게 했다. 17) 重 午 日 의 午 는 五 와 통하여 단오인 5월 5일을 말한다. 이는 남송에서도 5 월 5일을 특히 흉한 날로 여겨서 이 날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꺼렸다는 18) 앞의 13) 홍이섭, 조선과학사 (정음사, 1946), 53~54쪽;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207쪽 재인용. 14) 三 國 史 記 高 句 麗 本 紀 < 榮 留 王 >, 七 年 春 二 月, 王 遣 使 如 唐, 請 班 曆. 15) 三 國 史 記 新 羅 本 紀 < 文 武 王 ( 下 )>, 十 四 年, 春 正 月. 入 唐 宿 衛 大 奈 麻 德 福 傳, 學 曆 術 還, 改 用 新 曆 法. 16) 김만태, 앞의 논문, 9쪽. 17) 三 國 史 記 列 傳 < 弓 裔 (1)>, 弓 裔 新 羅 人 姓 金 氏,. 以 五 月 五 日, 生 於 外 家, 其 時 屋 上 有 素 光, 若 長 虹, 上 屬 天. 日 官 奏 曰, 此 兒 以 重 午 日 生, 生 而 有 齒, 且 光 焰 異 常, 恐 將 來 不 利 於 國 家, 宜 勿 養 之. 王 勅 中 使, 抵 其 家 殺 之. 18) 중국에서는 주나라 이래로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기르지 못한다는 금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금기는 단옷날은 세시풍속 중에서 흉한 달, 흉한 날이라는 이유에서 나왔다. 이날 낳 은 자녀는 품행이 좋지 못하고 오래 살지도 못하며 심지어 자라서 자살하지 않으면 부모를 해친

378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볼 때 택일풍속과 관련해서 당시 한국과 중국 사이 에는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볼 때 삼국시대 무렵 우리 선조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천문 관측기술을 바탕으로 날을 구분하고서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그 날의 길흉 을 판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한편으로는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중국의 택 일관련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나름대로 독자적인 택일풍속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III. 택일풍속의 지속과 확대, 세시풍속 1. 택일풍속의 지속과 확대 고려사 에는 택일과 관련해서 이전에 비해 보다 구체적인 기록들이 나온다. 고 려시대에는 국가나 왕실에서 건물을 새로 짓거나 능을 개장할 때, 기설제( 祈 雪 祭 ) 등 각종 제사를 지낼 때 사천대의 일관에게 명하여 택일[ 卜 日 ㆍ 諏 日 ]하는 관행이 있었으며, 그 밖에도 좋은 날과 방위를 고르는 관행이 널리 행해졌다. 왕태자의 혼 례와 관련해서 채택고기 ( 采 擇 告 期 )가 행해졌음도 기록되어 있는데, 19) 이것은 신 랑과 신부될 사람의 사주( 四 柱 )를 갖고 궁합을 보고, 신부 측에서 여러 사정을 감 안해 혼인날을 정하는 지금의 풍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점과 신라시대 설씨녀의 경우에 비춰볼 때 고려시대 민간에서도 왕실과 귀족의 택일관습 영향을 받아 각종 행사를 할 때 날과 방위를 고르는 관습이 널리 행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국가ㆍ왕실과 민간에서 날을 고르는 풍습은 지속되었으며 더욱 성행하였다. 몇 가지 사례를 시기별로 살펴보자. 변계량(1369~1430)의 문집 인 춘정집 에는 기우제 지내는 날짜를 고르는 풍습을 기록하고 있다. 20) 이문건 (1494~1567)의 묵재일기 에는 조선전기 당시 민간에서 행해지던 택일관련 풍습 다고 한다. 李 中 生 (저)/임채우(역), 언어의 禁 忌 로 읽는 중국문화 (동과서, 2003), 99쪽. 19) 高 麗 史 志 < 嘉 禮 > < 王 太 子 納 妃 儀 >. 20) 春 亭 集 開 城 大 井 德 津 祈 雨 祭 文.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79 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이를 위해 주성( 主 星 )에 제사지낼 때, 죽은 딸아 이를 위해 천도굿을 할 때, 행차할 때, 종손( 從 孫 )의 혼인날을 잡을 때, 사위 맞을 날을 고를 때 점복자에게 택일을 의뢰했다. 21) 17세기 초 경상도 현풍에 살았던 곽주(1569~1617)와 그 가족들이 쓴 한글편지 인 현풍곽씨언간 도 당시의 다양했던 택일관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손 없고 조 용한 날(손 업고 죠용 날)을 가려 말( 馬 )을 보내고, 십악대패일( 十 惡 大 敗 日 ) 22) 과 천구일( 天 狗 日 ), 23) 책력( 녁)과 날 받는 책(날 밧 ) 24) 을 이용하여 딸의 혼인날 을 받고, 잿굿하던 날은 귀혼( 鬼 魂 )날 25) 이니 사람이 아무나 불의( 不 意 )에 죽게 되어 있는 날이며, 살풀이 하는 날(살 므 날)을 가리는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26) 오월 초이튿날, 오월 열이튿날, 오월 열나흗날, 오월 스무나흗날, 오월 스무엿 샛날, 유월 초엿샛날, 유월 초여드렛날, 유월 열여드렛날, 유월 스무날, 칠월 초하룻날, 칠월 초사흗날, (이 날에는) 방문 밖에도 나가지 말고, 뒤(대소변)도 뒷간에 가서 보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보아라. 여기에 적힌 열한 날에는 매우매 우 조심조심하여라. 27) 김순복에게 가서 (그날 일진을) 물어 보고자 하네. 김순복이에게 물어서 (그날 이) 궂다(일진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 아이는 내가 함께 아니 데려갈 것이니 28) 21) 이복규, 묵재일기 에 나타난 조선전기의 민속 (민속원, 1999), 50, 67, 83쪽. 22) 十 惡 大 敗 日 : 그냥 十 惡 日 이라고도 하는데 다음과 같다. [ 甲 己 年 ] 3월 戊 戌 일, 7월 癸 亥 일, 10월 丙 申 일, 11월 丁 亥 일, [ 乙 庚 年 ] 4월 壬 申 일, 9월 乙 巳 일, [ 丙 辛 年 ] 3월 辛 巳 일, 9월 庚 辰 일, [ 丁 壬 년] 해당 없음, [ 戊 癸 年 ] 6월 丑 日. 23) 天 狗 日 : 이날에 제사나 고사를 드리면 천구(하늘 개)가 와서 다 먹어버리므로 정성의 효험이 없 다는 날로, 이날 제사와 기도ㆍ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천구일은 開 日 과 같이 드는데 다음과 같다. 정월- 子 日 2월- 丑 日 3월- 寅 日 4월- 卯 日 5월- 辰 日 6월- 巳 日 7월- 午 日 8월- 未 日 9월- 申 日 10월- 酉 日 11월- 戌 日 12월- 亥 日. 24) 곽주가 참고한 날 받는 책(택일서)은 시기적으로 볼 때 15세기 초 박흥생(1374~1446)이 찬술한 撮 要 新 書 거나 이순지(?~1465)가 펴낸 選 擇 要 略 일 것이다. 25) 歸 魂 日 : 생기복덕법 가운데 하나로, 小 凶 日 로 보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이날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고 한다. 26) 백두현, 현풍곽씨언간 주해 (태학사, 2003), 89~92, 139~144, 160~167, 480~482쪽. 27) 위의 책, 456~458쪽. 28) 위의 책, 145~149쪽.

380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곽주가 그의 둘째 부인 하씨에게 금기일과 근신일을 적어서 보낸 편지에는 생 활의 크고 작은 일을 함에 있어서 모두 날짜를 가려 행했던 당시의 택일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길을 나설 때조차도 그 날의 일진을 뽑아보고서 출발과 동행 여부를 결정했던 것이다. 홍재전서 에는 담장과 집, 성( 城 )을 수리할 때 날을 점쳐 길일을 얻었다는 기 록이 나온다. 29)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지은 규합총서 에는 의사를 구하기 좋은 날, 꺼리는 날, 약을 못 쓰는 날 등이 적혀있다. 30) 신재효(1812~1884)가 개 작한 판소리 <박타령>의 놀부 심술을 묘사하는 대목 중에 본명방( 本 命 方 ) 31) 에 벌목하고, 잠사각( 蠶 糸 角 ) 32) 에 집짓기와 오귀방( 五 鬼 方 ) 33) 에 이사 권코, 삼재( 三 災 ) 34) 든 데 혼인하기 라는 사설이 나온다. 35) 이 사설을 미뤄 볼 때 조선후기 사 람들도 날짜와 관련되는 방위를 가려서 일을 처리하려고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장례와 관련해서도 길흉일을 가리는 풍속이 성행했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 라 장기( 葬 期 )를 정해 장사를 치르는 게 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에 따른 법 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장기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음양설과 풍수설에 따라 금기일에는 장사를 지내지 않으려는 관행 때문이었다. 태어난 시가 좋으면 팔자가 좋고, 장삿날이 좋으면 자손들이 좋다 는 믿음에 따라 길일을 택해 장사를 지내고자 너도나도 장기를 지연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길일을 잡기 위해 장기를 단축하기도 했다. 세조의 국상 때 임금은 오월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즈음에는 길한 날이 없다고 하여 장기를 앞당겨 삼월장으로 했다. 이처럼 장일 29) 弘 齋 全 書 南 關 王 廟 修 改 告 由 文 ; 禿 ( 城 山 城 修 改 後 城 隍 告 由 文. 30) 빙허각 이씨(저)/이민수(역), 규합총서 (기린원, 1988), 244쪽. 31) 本 命 方 : 자신의 출생 띠에 해당하는 방위. 子 (북) 丑 (북동) 寅 (동북) 卯 (동) 辰 (동남) 巳 (남동) 午 (남) 未 (남서) 申 (서남) 酉 (서) 戌 (서북) 亥 (북서). 32) 蠶 糸 角 : 歲 支 凶 神 方 의 하나로 蠶 室 을 포함하여 蠶 官 ㆍ 蠶 命 등이 있다. 이 방위에 집을 짓거나 수리하거나 누에치는 곳을 지으면 누에 흉년이 들어 蠶 絲 가 적게 수확된다고 한다. 33) 五 鬼 方 : 年 神 으로 五 鬼 가 닿는 방위. 이 방향으로 巨 事 와 조문, 문병을 하지 말아야 하며, 만일 이 방향을 범하면 재물의 손해가 있고 집을 망치는 괴상한 일이 생긴다고 한다. 34) 三 災 : 삼재란 3가지 재난이 아니라 3년간의 재앙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삼재가 드는 3 년간은 질병과 손재 기타의 괴변으로 크게 고생한다는 것이다. 삼재가 드는 해는 다음과 같다. 寅 午 戌 년생- 申 酉 戌 년, 申 子 辰 년생- 寅 卯 辰 년, 巳 酉 丑 년생- 亥 子 丑 년, 亥 卯 未 년생- 巳 午 未 년. 첫해는 들삼재, 둘째 해는 잘삼재, 셋째 해는 날삼재 라고 한다. 35) 신재효(저)/강한영(편), 한국 판소리 전집 (서문당, 1996), 152쪽.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81 ( 葬 日 )에 대한 의식은 국가 대사인 국장에까지 변화를 미칠 만큼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36) 날짜를 기록한 책력 [ 曆 書 ]과 날 받는 원리를 적어 놓은 날 받는 책 [ 擇 日 書 ]은 택일풍속의 지속과 확대를 위한 필수 기본요소이다. 고려 말 명나라로부터 대통력 (1370~1652)을 도입한 이후 시헌력(1653~1897), 명시력(1898~1908)까지 국가에 서 발행한 역서에는 의( 宜 )ㆍ불의( 不 宜 ) 등 택일에 관한 길흉관련 항목이 빠짐없이 기재되어 왔다. 그리하여 택일의 기본지침으로 역할 했다. 조선시대에 발간되었던 택일서를 연대순으로 대략 살펴보면, 먼저 박흥생 (1374~1446)의 촬요신서, 이순지(?~1465)의 선택요략 이 있다. 1636년(인조 14)에는 명나라의 임소주가 지은 천기대요 를 성여훈(1583~1662)이 간행했으며, 홍만선(1643~1715)은 산림경제 선택 을 펴냈다. 1795년(정조 19)에는 왕명으 로 청나라의 협기변방서 ㆍ 상길통서 를 합쳐서 협길통의 를 발간했으며, 1867 년(고종 4)에는 관상감에서 기존 택일서들의 오류를 바로 잡아 새로운 택일서인 선택기요 를 편찬했다. 특히 천기대요 는 관상감에서 1902년까지 지속적으로 증보ㆍ발간할 정도로 우리의 택일풍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홍만선(1643~1715)은 농서 겸 가정생활서로서 산림경제 를 엮으면서 당시 시 골 민가에서 택일법을 보다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선택 편을 함께 엮었는데, 서 문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 후기 시골 민가에서도 택일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 고 있어서 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 좋은 날을 받기 위해 노심초사했으며, 시골에는 일관이 없어서 좋은 날을 받기 위해 서울까지 오는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7) 고대 이후 천문역법의 발달과 길흉일의 인식 위에 형성된 우리 택일풍속은 고 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각종 행사에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그 리고 관편( 官 編 ) 역서에도 의ㆍ불의 등 길흉일 관련 항목이 빠짐없이 기재되고, 날 받는 책인 택일서도 계속 증보ㆍ발간되어 민간으로 택일풍속이 널리 보급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로써 택일풍속은 근대까지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우리 선조들의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36) 정종수, 풍수로 보는 우리 문화 이야기 (웅진닷컴, 2000), 234~236쪽 참조. 37) 山 林 經 濟 選 擇.

382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2. 택일과 세시풍속 대개 1년을 주기로 계절에 따라 특정한 날을 가려서 관습적ㆍ반복적으로 행하 는 세시풍속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잘 응축되어 있다. 김명자는 다양한 개별 행사들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세시풍속에서 제액초복 ( 除 厄 招 福 )을 공 통분모로 하여 세시풍속에 담긴 다양한 생활현상들을 먹기, 제사 지내기, 놀기[놀 이], 꺼리기[금기], 생활대책 세우기, 기원하기[빌기], 옷 입기, 점치기[점복], 방법 하기[주술] 등의 9가지로 유형화했다. 38) 길흉일을 가리는 택일관습은 시간의 주기성ㆍ순환성에 바탕을 두고서 한 해의 무사안녕과 풍년ㆍ복을 기원하고 재앙과 액을 물리치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세시 풍속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리고 한 해가 새롭게 시작하는 정월에 세시풍 속이 집중되는데 택일풍속도 마찬가지로 정월에 특히 집중된다. 세시풍속에서 날 가림 관습은 경신수야( 庚 申 守 夜 )의 유속( 遺 俗 )인 수세( 守 歲 )하기, 정초 길일에 안택 고사 지내기와 홍수매기(횡수막이) 하기, 상자일( 上 子 日 )에 바느질 않기, 상사일( 上 巳 日 )에 새끼줄로 뱀 쫓기, 정월 조장( 造 醬 ) 길일에 장 담그기, 윤달에 수의 짓기, 무방수날(음력 2월 9일)에 나무심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명호(여, 80세) 씨에 따르면 경북 칠곡군 매원마을에는 옛날부터 정월 초이렛 날은 사람날 [ 人 日 ]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면서 떡을 해먹는 다. 아낙네들은 이날 바느질하면 손에 가시가 돋는다고 해서 바느질하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는 인일에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논다고 해서 인일놀음 이라고 부 른다. 또한 정월 열이렛날은 좀날 이라고 해서 곡식에 좀(벌레)이 생기지 않고 농 사가 잘 되라는 의미에서 아낙네들이 콩ㆍ보리 등 잡곡을 볶아 먹는데 지금도 콩 을 볶는 집이 있다고 한다. 39) 2월 초아흐렛날은 무방수날 로서 이날은 나무를 거꾸로 숨가도(심어도) 산다 고 해서 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해도 탈이 없는 날이라서 집안에 손댈 일이 있으면 이날 많이 했다고 한다. 40) 정월에 장을 담그지 못한 집에서는 이날 장을 담그기도 한다. 41) 38) 김명자, 한국세시풍속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1989), 35~38쪽. 39) 정명호(여, 80세)의 제보(2007년 6월 9일, 경북 칠곡 왜관 매원2리 경로당). 40) 김정환(남, 83세)의 제보(2007년 6월 9일, 경북 칠곡 왜관 매원2리 경로당).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83 제주도에는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3일까 지의 7~8일간을 가리키는 신구간 ( 新 舊 間 )이란 세시풍속이 있다. 이때는 지상에 내려와 인간사 를 관장하던 모든 신들이 한 해의 임무를 다하 고, 옥황상제에게 새해의 책임을 부여받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버린 신들의 부재기간이다. 이때 는 연운( 年 運 )이 불길하거나 길일이 없어서 미 처 하지 못했던 건축ㆍ수리ㆍ이장ㆍ이사 등 생 활에 관계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42) 제주 도에는 아직도 신구간을 지키는 풍습이 있어서 <그림 1> 신구간 이사 풍속 이때는 대거 이사철이 된다. 43) 속칭 손 없는 출처: 한라일보, 2006년 1월 23일자. 날 과 비슷한 개념의 풍속이다. 안동시 풍산읍 안교리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낼 때 날 받는 사람에게 생기복덕을 받아온 후 그 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으로 제관을 선정한다. 강원도 원 성 일론마을에서도 특별히 날을 잡아서 산기도를 갈 경우에는 먼저 만신한테 가서 3월 중으로 길일을 잡는다. 44) 이외에도 특정한 날에 특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 는 택일관습은 우리 세시풍속에 매우 널리 존재한다. 그러나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전통사회에서 산업화ㆍ정보화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삶의 주 기적 양식인 세시풍속이 크게 달라졌다. 이에 따라 세시풍속의 택일관습 중에서도 지금은 전승력이 약화되거나 사라진 것도 있고 변형되어 전승되는 것도 있다. 41) 우말순(여, 75세)의 제보(2006년 9월 22일, 경북 칠곡 왜관읍 제보자 집). 42) 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213쪽. 43) 제주는 지금 이사중 新 舊 間 (25일~2월1일) 이사 평소보다 100% 늘어, 제주일보, 2008년 1월 26일자. 44) 김명자, 한국세시풍속Ⅰ (민속원, 2005), 144, 307쪽.

384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IV. 택일풍속의 비판, 변화와 약화 1. 택일풍속의 비판 날짜의 길흉을 가리는 날가림ㆍ역기( 曆 忌 )가 그동안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했는 지를 앞 장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일상생활 가운데 거의 매사에 택 일하다 보니 길흉일을 가리는 풍속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후한의 왕충(27~97)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논형 기일 에서 장례ㆍ제사ㆍ머리 감기[ 沐 ]ㆍ옷짓기[ 裁 衣 ]ㆍ집짓기[ 起 宅 蓋 屋 ]ㆍ공부와 음악연주[ 學 書 ㆍ 擧 樂 ] 등 당시 에 성행하던 여러 역기에 관한 속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의 논거로 여러 가지를 들고 있으나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역서에 보이는 신살은 많으며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성인은 이에 대해 말하 지 않았으며, 많은 스승들도 전하지 않은 바를 볼 때 아마 그 참된 내용이 없 는 것 같다. 하늘의 도리는 알기가 어렵다. 만약 천도가 있더라도 여러 신살을 쓰는 일에 불과하니 이를 기피한들 무슨 복이 있으며, 기피하지 아니한들 무 슨 화가 있겠는가? 45) 서거정(1420~1488)은 태평한화골계전 에서 병들어 약 먹을 때, 초상나서 곡하 고 성복하는 날, 장지( 葬 地 )의 방향 등 당연한 일 조차도 역주( 曆 註 )의 길흉 여부 에 따라 행하는 당시 세태를 다음과 같이 빗대어 비판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평소 기거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한결같이 역서대로 따랐 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병이 드시자 의원은 청심원을 복용하여야 한다고 했으나 그 사람은 유화일( 遊 禍 日 )에는 약을 복용할 수 없다하여 약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여러 아들은 모두 곡했으나 그 사람 은 진일( 辰 日 )에는 곡을 할 수 없다하여 곡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복하는 날이 되자 그 사람은 또 장단성( 長 短 星 )의 날에는 옷을 지을 수 없다하여 복을 입 45) 黃 暉, 論 衡 校 釋 ( 三 ) ( 北 京 : 中 華 書 局, 1996), 996쪽; 論 衡 譏 日, 曆 上 諸 神 非 一 聖 人 不 言 諸 子 不 傳 殆 無 其 實. 天 道 難 知 假 令 有 之 諸 神 用 事 之 日 也 忌 之 何 福? 不 諱 何 禍?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85 지 않았습니다. 장례하는 날이 되자 그 사람은 또 장례는 천덕( 天 德 )과 월덕 ( 月 德 )이 있는 날에 생기복덕( 生 氣 福 德 )의 방향에 해야지 잘못하여 흉한 방향 에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마침 길한 방향에 산이 없자 마침내 강가에 부친을 매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홍수가 져 강물이 불어났으므로 사람들 이 모두 그에게 피할 것을 권했으나 그 사람은 오늘은 이사를 해서는 안 되니 옮길 수 없다하고는 마침내 물에 빠져죽고 말았습니다. 46) 정약용(1762~1836)은 경세유표 에서 역서에 기입되어 있는 소위 의제사ㆍ의 혼인ㆍ불의출행ㆍ불의침자 ( 宜 祭 祀 ㆍ 宜 婚 姻 ㆍ 不 宜 出 行 ㆍ 不 宜 針 刺 ) 등 문구들은 모 두 삭제하여 버리고 하소정( 夏 小 正 ) 47) 과 월령( 月 令 ) 가운데서 국가 사업상 좋은 참고로 될 것들을 뽑아서 절기에 맞추어 편입하는 것이 좋겠다 48) 고 했다. 구한말 에 이르러 지식인들의 국민 계몽을 위한 활동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활발했다. 그들은 미신타파ㆍ생활간소화 등을 통해 새로운 풍조를 일으키고자 노력했다. 기 독교적 입장에서 전통 마을 신앙이나 불교를 우상 숭배 로 몰아붙이는 독립신 문 의 필진뿐만 아니라 원래부터 민속 신앙을 천시하는 유림의 풍토를 그대로 이 어받은 개신 유림들도 미신 타파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49) 1960년 중앙관상대장인 이원철이 쓴 1961년도 역서 의 머리말에서도 이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무지몽매한 점장이들에게 사주나 관상 또는 궁합을 물어 화복에 대한 요행을 꿈꾸며 이사나 토역( 土 役 ) 또는 혼상( 婚 喪 )에 있어서 길흉화복을 가린다고 허 망한 요언에 맹종함은 문명인으로서 이 얼마나 수치스런 처사인가. 50) 이은성도 한국ㆍ중국ㆍ일본 등에서 역( 曆 )을 자연계의 주기가 아니라 음양오행ㆍ 납음오행ㆍ9성ㆍ12직ㆍ28수ㆍ60간지 등 인위적 주기로 나누어 복술( 卜 術 )에 이용 하는 세태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46) 서거정(저)/성백효(역주), 譯 註 四 佳 名 著 選 (이회문화사, 2001), 437~438쪽. 47) 夏 小 正 : 중국 하왕조의 曆 法 으로 大 戴 禮 記 에 실려 있다. 48) 經 世 遺 表 < 天 官 吏 曹 >, 其 曆 書 之 內, 凡 所 謂 宜 祭 祀 宜 婚 姻 不 宜 出 行 不 宜 針 刺, 諸 文 並 行 汰 削, 乃 取 夏 小 正 月 令, 選 其 王 政 之 善 者, 按 節 編 入. 49) 박노자, 국민 이라는 이름의 감옥, 탈영자들 의 기념비 (생각의 나무, 2003), 31쪽. 50)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230쪽.

386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정밀과학이라고 알려져 있는 역학( 曆 學 )이 어느 사이에 미신으로 흘러 버렸 다. 이런 현상은 중국력도 일본력도 마찬가지이다. 더 나아가서는 고대 바빌 로니아력을 비롯하여 모든 민족이 가진 역에는 점성술이건 미신이건 모두 비 과학적인 사항이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삼살방 51) 이 동쪽에 들어 있는 해에 는 동쪽에 집을 짓거나 담을 쌓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만일 동쪽의 담이 무너 져 도둑이 들어오게 되어도 이런 미신만 믿으란 말인가? 역주에 따른다면 날마다 아무것도 못하고 집안에 들어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래서야 생활 난을 개척할 방도가 없고 생존경쟁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52) 김홍철이 1995년 10월 전북 익산시에 거주하는 20세 이상 남녀 600명을 대상 으로 설문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혼인을 할 때 택일을 해야 하느냐 의 물음에 68.3%가 부정적인 반면 긍정적인 경우는 22.2%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사할 때 택일을 해야 하느냐 의 물음에는 70.8%가 부정적인 반면 긍정적인 경우는 20.7% 에 불과했다. 53) 이 설문조사의 결과를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혼인ㆍ이 사를 할 때 택일하는 관습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걸로 판단된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미리 그 길흉일을 가려서 행하려는 택일관습은 점복의 일종으로 인간의 보편적 인식의 결과이다. 54) 하지만 근대성의 기본원리(인간 주체 의 우위, 실재의 객관적 환원, 이성 중심의 인식)가 더욱 강조되면서 신ㆍ자연ㆍ인 간 사이의 본래의 통합이 무너지고 과학적 사고가 헤게모니를 가짐에 따라 전통의 택일풍속은 신랄한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즉 택일관습은 그 근거가 합리적ㆍ과 학적이지도 않으며 지나친 금기로 일상생활을 제약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어진 현실에 순종하게끔 한다는 등의 이유로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근대 이후 자연과 인간 사이의 유기적 통합관계가 해체되고 인간의 독자적 51) 三 殺 方 : 삼살이란 劫 殺 ㆍ 災 殺 ㆍ 歲 殺 을 합칭한 말이다. 건물을 짓고 수리하고 묘를 쓰는 일 등에 이 방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巳 酉 丑 년- 寅 卯 辰 東 方, 亥 卯 未 년- 申 酉 戌 西 方, 申 子 辰 년- 巳 午 未 南 方, 寅 午 戌 년- 亥 子 丑 北 方 이다. 52) 이은성, 曆 法 의 原 理 分 析 (정음사, 1985), 390~391쪽. 53) 김홍철, 韓 國 占 卜 信 仰 에 관한 硏 究, 韓 國 宗 敎 史 硏 究, 3집(한국종교사학회, 1995), 211~212쪽. 54) 앞날을 점치고자 하는 예지욕은 인간만의 욕구이며, 점복신앙은 오랜 기원을 가진 인류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라면서 김만태는 사람을 호모 아우구란스 (homo augurans, 점치는 인간)로 규정한다. 김만태, 한국 점복의 정의와 유형 고찰, 한국민속학, 47호(한국민속학회, 2008), 204쪽.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87 주체성이 강조되면서 택일풍속은 그 힘을 더욱 잃어버리게 되었다. 2. 택일풍속의 변화와 약화 택일관습이 이처럼 비판받는 와중에서도 사회 일각에서는 택일을 믿어서가 아 니라 좋은 게 좋으니까 라는 보험심리로써 길일이라고 알려진 날에는 평소보다 훨 씬 더 많이 예식장이 붐비고 이삿짐 업체는 바쁘다. 55) 즉 택일풍속은 근대이후 전 반적으로 점차 약화되는 가운데서도 시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구체적 내용이 변형되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전승되고 있다. 56) 1908년까지는 관편 역서에 행사의 의 ( 宜 )ㆍ 불의 ( 不 宜 )가 같이 기재되어 있었 다. 그러나 1909년부터 1936년까지는 불의 가 빠지고 의 만 기재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37년부터는 의 마저 빠지고 택일에 관한 길흉관련 항목들이 모두 삭 제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57) 어떤 행사에 대해 의 는 그날에 그 행사를 하면 좋다는[ 吉 ] 뜻이며, 불의 는 그날에 그 행사를 하면 좋지 않다는[ 凶 ] 뜻으로 일종 의 금기일이다. 따라서 의일( 宜 日 )은 적극적인 행위의 의미, 불의일( 不 宜 日 )은 소 극적인 행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관편 역서의 내용변화를 통해볼 때 일종의 금기일로서 인간행위를 제약하는 소극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항목부터 먼저 청산되 어야 할 것으로 역서 편찬자들에 의해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이후 1945년부터는 민간 출판사에서 다양한 택일관력 책자들을 발행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택일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그 대표적 인 게 병술년 농력 (1945)으로 날짜별로 하면 좋은 일과 다양한 길일 등을 수록 하고 있다. 58) 지금도 민간에서 널리 행하는 택일풍속 중의 하나로 장 담그기가 있다. 장 담그 기 좋은 날[ 造 醬 吉 日 ]로 천기대요 에서는 정묘ㆍ병인ㆍ병오ㆍ천덕합ㆍ월덕합ㆍ만ㆍ 55) 오늘이 올해의 최고 길일, 예식장 이삿짐센터 북적, 조선일보, 1993년 1월 10일자. 56) 고부( 姑 婦 )간 불화가 혼인택일을 잘못하야 혼례식을 거행한 까닭이라고 5년간이나 동거해오든 부부가 또다시 길일을 택하야 혼례식을 성대히 거행하게 되었다 는 동아일보, 1933년 2월 21일자 기사로 미뤄볼 때 일제강점기에도 혼인택일 풍속이 여전히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57) 김만태, 앞의 논문(2007), 16쪽 <표 1>. 58) 김혁제, 丙 戌 年 農 曆 (명문당, 1945).

388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성ㆍ개ㆍ오일을 들고 있으며, 신일( 辛 日 )은 피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59) 규합총서 에서는 병인ㆍ정묘ㆍ제( 諸 )길신일ㆍ우수일ㆍ입동일ㆍ황도일ㆍ삼복일 등을 들고 있 으며 수흔일과 신일은 좋지 않다고 한다. 60) 그러나 지금 민간에서는 장 담그기 좋 은 날로 대개 정월 말날[ 午 日 ]이나 닭날[ 酉 日 ], 돼지날[ 亥 日 ]을 꼽고 있으며, 그 까 닭은 말날은 장이 맑으라고, 닭날은 장이 달으라고, 돼지날은 장이 꿀맛처럼 되 라 고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61) 민간에서 인식하는 장 담그기 좋은 날이 문헌에 비해 대폭 간소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말날에 장 담그는 까닭을 임동권은 첫째,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 의 원료이며, 둘째, 말의 피 빛깔처럼 장 빛깔이 진하고 맛이 달기 때문이라고 언 급한다. 62) 그러나 연구자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천기대요 나 규합총서 에 나오 는 장 담그기 좋은 날은 너무 복잡해서 일반인ㆍ주부들이 외우거나 이해하기가 결 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묘ㆍ병인ㆍ병오ㆍ오( 午 )일은 오행상 모두 화( 火 )에 속하는 날이며, 12지지 중 오( 午 )가 가장 순수한 화[ 純 火 ]를 뜻한다. 따라서 이들을 통째 로 묶어서 말날[ 午 日 ]이라고 보다 쉽게 기억하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처럼 정착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안혜경도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63) 닭날[ 酉 日 ]에 장을 담그면 좋다는 인식은 酉 란 글자의 의미 때문에 생겨난 것 으로 보인다. 酉 는 술을 빚어 담는 단지의 마개ㆍ불룩한 몸통ㆍ내용물 등을 본떠 서 만든 상형글자( )로 발효ㆍ저장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그래서 酒 (술 주), 酸 (초 산), 醬 (젓갈 장) 등의 글자에도 酉 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처럼 酉 가 발효 저장 식품과 관계되는 글자이다 보니 자연스레 민간에서도 닭날[ 酉 日 ]을 장 담그기 좋 은 날로 인식한 것으로 여겨진다. 돼지날[ 亥 日 ]이 장 담그기 좋은 날로 인식된 이 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아마도 亥 가 간직하다 ( 收 藏 萬 物 )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글 자라서 64) 장 담그는 날로 인식되었는데, 돼지가 꿀꿀거리니까 돼지날에 장을 담그 면 꿀맛처럼 된다는 뜻으로 점차 전해진 것 같다. 현재 이처럼 장 담그기 좋은 날 59) 임소주(저)/지일빈(신증)/대한역법연구소(역편), 新 增 天 機 大 要 (대지문화사, 2004), 273쪽. 60) 빙허각 이씨(저)/이민수(역), 앞의 책, 48쪽. 61) 손재순(여, 67세)의 제보(2007년 1월 12일, 안동시 풍산읍 서미1리 제보자 집). 62) 임동권, <봄>, 세시풍속, 한국민속의 세계(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69쪽. 63) 안혜경, 앞의 글, 144쪽. 64) 許 愼 ( 著 )/ 段 玉 裁 ( 注 ), 說 文 解 字 注 ( 上 海 : 上 海 古 籍 出 版 社, 2006), 752쪽.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89 을 과거 문헌에서와 달리 말날ㆍ닭날ㆍ돼지날 등으로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간소화시켜서 사용하는 것도 택일풍속의 변화된 모습이다. 주두리치(여, 81세) 씨를 통해서는 장 담그는 택일풍속의 약화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제보자의 시어머니 때만 하더라도 당연히 장 담그는 날을 가렸으며 장 담그는 날에는 장독 위에 장 한 째기(종지) 물 한 그릇 떠놓고서 서씨 대주집에 오늘 장 담구는 날입니다. 장이 달구로 해주이소 라며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하 지만 제보자는 지금 장 담그는 날을 가리지 않으며 축원도 하지 않는데, 구법인 데 왜 지켜예~그러지 안 해도 장맛만 있고 한데~ 라고 말한다. 65) 우리 음식에서 는 장이 매우 중요하므로 장 담그는 날을 가리는 풍속은 오랫동안 꾸준히 전승되 어 온 택일문화인데도 불구하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점차 약화되고 있음을 시골의 고령 제보자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요즘은 시중에서 장을 손쉽게 사 다 먹을 수 있기에 직접 장을 담가 먹는 가정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따라서 앞으로 장 담는 날을 가리는 풍속도 점차 그 전승력을 잃어버릴 것이다. 안동시 풍산읍 서미마을에서는 화( 火 )일에 초가지붕을 이면 불난다 고 해서 반 드시 이날을 피해서 지붕을 이었으며, 구들장을 뜯어서 속의 재를 후벼내고 구들 을 새로 놓는 날은 매년 음력 7월 공망일 66) 에 했다. 그런데 1970년대 새마을사업 으로 지붕개량을 하고 보일러를 설치하면서는 이런 택일풍속도 사라졌다고 한 다. 67) 여기서 우리는 주거환경이 바뀜에 따라 택일풍속이 소멸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담장을 고치고 벽에 황토를 바르고 벽에 못을 치는 것도 공망일에 손 없는 방향에 했는데 지금은 거의 가리지 않는다. 마을 안에서 이사를 할 때도 대주의 사주를 넣어서 꼭 이삿날을 받아서 했으며 이사방위도 반드시 가렸다. 그 래서 이사를 가려고 집을 샀다가도 이삿날이 나오지 않아 해를 넘겨서 이사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굳이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68) 65) 주두리치(여, 81세)의 제보(2007년 6월 9일, 경북 칠곡 왜관 매원2리 경로당). 66) 空 亡 日 : 모든 길흉신이 이 날에는 쉬므로 길흉간에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날로서, 乙 丑 ㆍ 甲 戌 ㆍ 乙 亥 ㆍ 癸 未 ㆍ 甲 申 ㆍ 乙 酉 ㆍ 壬 辰 ㆍ 癸 巳 ㆍ 甲 午 ㆍ 壬 寅 ㆍ 癸 卯 ㆍ 壬 子 일진이다. 이런 공망일에 는 주로 흙 다루는 일, 즉 건축ㆍ집수리ㆍ이장ㆍ무덤에 떼 입히기 등을 하고, 매매ㆍ계약 등 경 제성이 있는 일은 공( 空 )친다는 뜻이 있어 꺼린다. 67) 김병도(남, 70세)의 제보(2007년 5월 24일, 안동시 풍산읍 서미1리 제보자 집). 68) 황석대(남, 59세)의 제보(2007년 5월 24일, 안동시 풍산읍 서미1리 제보자 집).

390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현재 택일풍속의 전반적인 전승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2006년 11월에서 2007년 1월까지 대구ㆍ안동지역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로서 역학( 易 學 )을 배운 적이 있는 17명을 면담 조사했다. 이 중 다른 사람들에게 택일해준 경험이 있는 13명의 내용 (복수응답)을 살펴보면, 혼인ㆍ이사 각 13명, 개업 11명, 출산 9명, 장례ㆍ이장ㆍ 집수리 각 3명 순이었으며, 상량( 上 樑 )은 전혀 없었다. 천기대요 등 과거 택일서 에서 기조문( 起 造 門 )으로 매우 중시되던 건축 택일이 예전에는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았던 출산 택일보다도 그 비중이 현저히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 리는 아파트라는 기성ㆍ공동 주택문화의 확산, 한두 명의 자녀만 두고서 잘 키우 려는 저출산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택일풍속도 건축 택일은 점점 사라지고 출 산 택일은 보다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생의 대사 중에서도 대사인 혼인 택일은 예로부터 매우 중요시되었다. 택일에 관한 초기 기록으로 삼국사기 열전 에 설씨녀가 혼인날을 고른다[ 卜 日 ]는 내용 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혼인 택일은 신랑 신부의 사주를 갖고서 역 학 원리에 따라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1주일 주기로 생활마디가 짜이는 현대 인들은 역학상 길일보다도 하객들이 보다 많이 참석할 수 있는 공휴일을 더 선호 한다. 여기에 길일까지 겹치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김병도(남, 70세) 씨의 제 보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옛날에는 농사일이 바쁘지 않은 조용할 때 당사자의 사주를 넣어서 (혼인날 을) 잡았지만 지금은 공휴일에 나쁜 화( 禍 )만 없다면 결혼한다. 철학관하는 이 들도 그렇게 날을 잡아주더라. 그리고 예전에는 날이 나오지 않아서 결혼을 이듬해로 미루는 경우도 많았는데, 요새는 그런 경우가 잘 없더라. 69) 입춘이 일년에 두 번 겹친 쌍춘년( 雙 春 年 )에 혼인하면 잘 산다고 해서 쌍춘년으 로 알려진 2006년에는 혼인식을 올리려는 예비부부들이 급증하면서 비수기인 한 여름 평일에도 혼인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70) 이는 혼인 택일을 할 때 공휴일 을 속칭 길일 보다 반드시 먼저 선호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소 69) 김병도(남, 70세), 앞의 제보. 70) 한여름 쌍춘년 결혼전쟁, 서울신문, 2006년 7월 3일자.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91 위 길일에 맞춰 혼인식을 올리려는 세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혼인식이 몰리면서 준비과정에 경쟁이 치열해 힘들 긴 했지만 길일이라서 축복을 더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들고, 또 잘 산다고들 하 니까 왠지 마음이 뿌듯해서 오히려 좋았다 고 한다. 71) 본래 쌍춘년은 오래전 중국 한족에서 유행하던 풍속이다. 쌍춘년에 산동ㆍ하북 에는 콩이 금처럼 귀하고, 호남ㆍ하남에 는 가축이 불리하여 소가 금처럼 귀하다 는 속담이 전해온다. 다만 하남에서는 春 이 길상의 뜻도 있어서 쌍춘년에 결 혼하면 매우 좋다[ 大 吉 大 利 ]고 여겨왔다. 반대로 입춘이 들어있지 않는 무춘년( 無 <그림 2> 쌍춘년 등으로 혼인 증가 春 年 )에는 혼인하는 것을 꺼려 혼인을 앞 출처: 한국정책방송, 2008년 3월 25일자. 당기거나 늦추기도 했다. 72) 이로 볼 때 쌍춘년의 혼인 붐은 중국 하남의 풍속이 전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농번기, 두 집안의 부모가 혼인한 날, 두 집안의 불길했던 날, 제사일, 삼복이 낀 달 등을 피해서 신랑 신부의 사주를 넣어서 날을 받았다면 최근에는 속 칭 길일과 공휴일, 신랑 신부의 사주, 축의금 수입까지 감안해서 택일하는 경향으 로 바뀌었다. 2006년의 쌍춘년 혼인 붐에 이어 2007년 정해( 丁 亥 )년은 황금돼지해 로 이 해에 태어난 아기는 재물 복이 있다고 하여 2007년에는 출산ㆍ육아업계가 큰 호황을 누리고 출산율도 늘어났다. 73) 2006년에 많은 예비부부들이 혼인을 서 두른 데는 2007년 황금돼지해에 태어나는 아이는 재물 복이 있다는 속설도 크게 작용했다. 이는 지나친 상업주의와 길일에 대한 대중의 보험심리가 함께 만들어낸 새로운 길일풍속이다. 이런 길일풍속이 정부의 어떤 정책보다도 그 영향력이 막강 함을 다음 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71) 쌍춘년 커플들의 결혼 에피소드, 서울신문, 2006년 12월 20일자. 72) 任 騁, 中 國 民 俗 通 志 [ 禁 忌 志 ] ( 濟 南 : 山 東 敎 育 出 版 社, 2005), 352쪽. 73) 응애~ 유아용품 시장 급성장, 경상일보, 2007년 4월 22일자; 출산율 6년만에 반등, 대 전일보, 2007년 5월 8일자.

392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출산율은 2007년까지 2년째 상승해 왔다. 2005년 사상 최저(1.08명) 로 떨어 진 뒤 쌍춘년ㆍ황금돼지해 등의 호재가 이어지면서 반짝 상승했으나 그 효과 가 사라지면서 지난해 꺾인 것이다. 정부가 출산 장려에 수천억 원을 쏟아 부 었지만 그 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74) 공직에서 퇴직 후 1996년부터 안동에서 지관으로 일하고 있는 이문환(남, 72세) 씨를 통해서는 장례와 관련한 택일풍속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제보자에 따르면 장사일과 이장일을 정할 때 예전에는 중상( 重 喪 ) 75) ㆍ복일( 復 日 )ㆍ중일( 重 日 )을 모 두 엄격하게 가렸지만 지금은 중상만 주로 가리는 편이라고 한다. 그것도 안동지 역에서만 주로 가리는 편이며 대도시나 다른 지역에서는 중상조차도 가리지 않고 무조건 3일장을 치른다고 한다. 76) 한상조(남, 75세) 씨에 따르면 요즘 대부분 병 원에서 장례를 치르므로 3일장을 하지만 그래도 중상이 끼거나 하면 4일장을 하 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77) 김석구(남, 69세) 씨는 1984년 모친상 때 5일장을 하려 했으나 중상이 걸려서 할 수 없이 4일장을 했다고 한다. 78) 예전에는 죽을 死 자라고 4일장은 안했는데 지금은 4일장도 해버려, 걸림(중 상)이 있으면 4일장으로도 해버려, (지관이) 일진하고 맞차(맞춰) 보고 안 맞 으면 4일장을 해버려. 79) 1990년대 이후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3일장이 보편화되면서 장례에 관한 택 일에서도 금기사항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안동 풍산지역의 사례들에서 보 듯이 지방에 따라서는 한두 가지 금기는 아직 남아있어 일부 지켜지고 있다. 그러 나 이런 금기도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여겨진다. 74) [숫자로 보는 사회] 1.2, 중앙일보, 2009년 1월 2일자. 75) 重 喪 : 초상이 거듭난다는 날로서 이 날은 葬 事 에 관한 일을 꺼린다. 정월- 甲 일, 2월- 乙 일, 3월- 己 일, 4월- 丙 일, 5월- 丁 일, 6월- 己 일, 7월- 庚 일, 8월- 辛 일, 9월- 己 일, 10월- 壬 일, 11월- 癸 일, 12월- 己 일. 예를 들어 정월에 초상이면 甲 子 ㆍ 甲 戌 ㆍ 甲 申 ㆍ 甲 午 ㆍ 甲 辰 ㆍ 甲 寅 일이 모두 중상일이다. 76) 이문환(남, 72세)의 제보(2007년 1월 22일,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세미나실). 77) 한상조(남, 75세)의 제보(2007년 1월 13일, 안동시 풍산읍 서미1리 제보자 집). 78) 김석구(남, 69세)의 제보(2008년 1월 13일, 안동시 풍산읍 수2리 제보자 집). 79) 김관일(남, 62세)의 제보(2008년 1월 12일, 안동시 풍산읍 수2리 마을회관).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93 달의 삭망( 朔 望 )으로 날을 세는 음력은 태양의 운행에 따른 1년과는 약 11일의 차이가 있다. 이를 바로 잡으려 만든 게 윤달이다. 윤달은 일상의 열두 달과는 다 른 비일상의 달이기에 신성성이 부여된다. 그래서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매달 아도 된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평소에 조심스러워 마음 놓고 하지 못하 던 일들을 해도 무방한 달로 알려져 왔다. 동국세시기 윤월 에도 풍속에 혼인 하기에 좋고 수의를 만들기에 좋으며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 ( 俗 宜 嫁 娶 又 宜 裁 壽 衣 百 事 不 忌 )고 했다. 80) 이처럼 예전에는 윤달을 혼인하기에도 좋은 달로 여겼 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윤달에 혼인을 꺼리는 풍속이 생겨났다. 81) 윤달에 혼인을 꺼리는 풍속은 근래 새롭게 변형된 택일풍속이다. 현재 민간에서 이사ㆍ혼인ㆍ집수리 등을 할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 로 손 이다. 우리 민속에서 손 은 날짜에 따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해 코지하는 귀신으로 손님 을 줄여 부른 것이다. 음력으로 1ㆍ2일은 동쪽, 3ㆍ4일은 남쪽, 5ㆍ6일은 서쪽, 7ㆍ8일은 북쪽에 있다가 나머지 이틀간(9ㆍ10일)은 하늘로 올라가서 사라진 뒤 11일에 다시 땅에 내려와 동쪽에 나타나는 등 10일 간격으로 돌아다니는데, 손 있는 날이나 방위에 이사ㆍ혼인ㆍ집수리 등을 했다가는 큰 재앙 을 당한다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김정환(남, 83세) 씨는 집에 못을 치고 담을 쌓고 집수리를 할 때도 손 없는 날에 대장군방을 피해서 하며 지붕(이엉ㆍ기와) 올리는 날도 손 없는 날에 했다고 한다. 손 없는 날에 해야만 뒤탈이 없고 집안에 재수가 좋고 가족 간에 화목하다고 한다. 82) 정명호(여, 80세) 씨는 손 없는 날에 장 뜨는 것이 좋으므로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한다. 83) 속칭 손 을 천기대요 에서는 태백살 ( 太 白 殺 )이라고 하는데 혼례 때 초례상을 차리는 방향을 피하는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84) 그러나 17세기 초 현풍 곽씨언간 에서 말[ 馬 ]을 보내는 날로 손 없고 조용한 날 을 꼽고 있는 걸로 봤을 때 85)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행사 택일할 때 손 없는 날을 두루 활용했던 것으로 80) 東 國 歲 時 記 閏 月. 81) 음력윤달에 누가 결혼하나요, 예식장 호텔업자 울상, 동아일보, 1993년 3월 15일자. 82) 김정환(남, 83세), 앞의 제보. 83) 정명호(여, 80세), 앞의 제보. 84) 임소주(저)/지일빈(신증)/대한역법연구소(역편), 앞의 책, 257쪽. 85) 백두현, 앞의 책, 89~92쪽.

394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보인다. 이런 풍속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손 없는 날에 이사ㆍ혼인ㆍ개업ㆍ집수리ㆍ 장 뜨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좋다고 86) 확장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손 없는 날은 순서대로 항상 반복되므로 누구나 책력 없이도 쉽게 알 수 있어서 민간에서 행사일을 잡는 데 널리 쓰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손 없는 날도 장 담그는 날과 비슷한 변화, 즉 단순화ㆍ규칙화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논의한 여러 내용을 정리해보면, 근대 이후 사람들의 행위를 제약하는 소극적인 흉일ㆍ금기일부터 먼저 변화를 겪으면서 약화되었고, 이어서 적극적인 길일이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이는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근대적 사고방식과 배치되는 택일풍속부터 그 힘을 잃어갔음을 의미한다. 연례행사로서 장을 담그는 길일도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게 단순화되었는데 집에서 직접 장을 담는 가정이 줄 어들면서 장 담는 날을 가리는 풍속도 크게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장 담그는 날, 손 없는 날의 경우처럼 사람들은 복잡한 택일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 를 단순화ㆍ규칙화하여 활용하기 쉽도록 바꾸는 경향이 있다. 이는 끊임없는 신랄 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택일풍속이 오랫동안 민간에서 전승될 수 있었던 크나큰 원 동력이다. 이를 미뤄볼 때 손 없는 날을 가리는 풍속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손 없는 날이 웬만한 길일을 대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새마을사업과 도시화ㆍ산업화로 인해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농경ㆍ가축ㆍ이엉ㆍ 구들ㆍ담장 등 전통 농업사회에 해당하는 택일항목과 현대에 맞지 않는 택일항목 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혼인ㆍ출산ㆍ이사ㆍ개업ㆍ계약ㆍ여행 등 현대 사회에서도 필요한 항목들 위주로 택일풍속이 변하고 있다. 최근 아파트 주거문화의 확산으로 상량ㆍ집수리 등 건축 택일은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 적게 낳고 잘 키우자는 양육 분위기로 인해 출산 택일의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일생의례의 택일과 관련 해서는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3일장이 보편화되면서 상례에 관한 금기일도 많 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쌍춘년ㆍ황금돼지해의 경우에서 보듯이 상업자본과 대 중 보험심리의 시류적인 영합에 의해 혼인ㆍ출산ㆍ재물 등에 관한 택일은 약화되 기 보다는 다양한 양상으로 끊임없이 새롭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86) 천하대길일 나라가 들썩, 어제 손 없는 날, 결혼ㆍ이사ㆍ개업식 러시, 경향신문, 1991년 10월 28일자.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95 V. 택일풍속의 유형과 특징 앞에서 살펴봤듯이 우리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매우 다양한 택일풍속이 존재해 왔다. 그리고 현재도 비록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택일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이처 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택일풍속을 어떻게 분류해야 한국 택일문화의 특징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먼저 택일대상이 연례적이며 일상적인 일이냐, 아니면 일생의례적이고 인생의 전환점(turning point)이 되는 중대한 일이냐에 따라 구분 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담그기ㆍ지붕이기ㆍ못박기ㆍ여행ㆍ세시행사ㆍ제사 등 은 전자에 속하고, 출산ㆍ혼인ㆍ상례ㆍ입양ㆍ이사ㆍ개업ㆍ건축 등은 대체로 후자 에 속한다. 연례ㆍ일상적인 행사는 대개 일상생활에서 으레 되풀이 되는 일로서 그 일의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에도 그 영향은 단기간 기껏해야 수년 이내 에 그치므 로 택일의 중대성이 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일생의례ㆍ인생의 전환점 이 되는 행사의 대부분은 일생동안 한두 번만 겪는 일로서 그 빈도가 전자에 비해 아주 낮으며, 그 일의 결과가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그 영향이 장기적 경우에 따 라서는 평생 동안 으로 미치므로 택일의 중대성이 전자에 비해 매우 높다. 따라 서 전자에 해당하는 택일을 일상( 日 常, usual) 택일, 후자에 해당하는 택일을 일 생( 一 生, lifelong) 택일 로 분류할 수 있다. 택일풍속의 주요 특징은 이런 유형 차이에서 비롯된다. 먼저 택일의 필요성에 관하여 일상택일은 사람들의 인식이 낮은 데 비해, 일생택일은 사람들의 인식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일상택일은 시대ㆍ생활환경이 바뀌면 그 전승력을 잃어버리 고 사라질 가능성이 높지만, 일생택일은 시대ㆍ생활환경이 바뀌더라도 일정부분 전승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택일원리나 택일과정도 일상택일은 단순ㆍ 규칙적이어서 최소한의 택일지식만 갖추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데 반해, 일생택일 은 복잡ㆍ응용적이어서 택일에 전문지식이나 학습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 에 택일결정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신뢰성도 일상택일은 보통이지만 일생택일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들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택일대상이 되는 일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므로 모든 택일풍속 이 <표 1>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위 분류에 의하면 장

396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담그기는 일상택일에 속하지만 우리 식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그 필요성 이 높고 전승력이 강해서 오랫동안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꾸준 히 전승되는 택일풍속은 대개 일생택일에 속하는 것이 많다. 혼인ㆍ이사ㆍ개업ㆍ 출산ㆍ이장 택일 등이 그것이다. 일생택일은 그 대상은 적지만 굵직한 일들이며 중대해서 일상택일에 비해 변화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전승력도 강해 오랫동안 전 승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일상택일은 비록 그 대상은 많지만 사소한 일들이 많아서 시대변화에 따라 그 부침이 심한 편으로 이미 사라져버린 경우가 많다. 유 형 日 常 택일 一 生 택일 사 례 <표 1> 택일주기에 따른 택일풍속의 유형과 특징 장 담기ㆍ지붕이기 못 박기ㆍ구들 놓기 약 먹기ㆍ세시행위 등 출산ㆍ혼인ㆍ상례 이사ㆍ개업ㆍ건축 등 주 기 연례성ㆍ일상성 일생의례성ㆍ인생전환기 빈 도 高 (순환반복성) 低 (평생 1~2회) 택일대상의 수 多 (사소ㆍ다양) 少 (굵직) 택일결정에 대한 신뢰성 平 高 택일 필요성에 관한 인식 低 高 택일영향의 기간 단기적(수년 이내) 장기적(수년~평생) 택일원리ㆍ과정 단순ㆍ규칙ㆍ고정적 복잡ㆍ응용ㆍ유동적 택일 용이성 쉽다(최소한의 지식) 어렵다(전문적인 지식) 傳 授 者 선조ㆍ친지ㆍ이웃 전문학습자ㆍ전문서적 택일자 대다수 일반인 소수 전문인 중대성 低 高 변화성 高 低 전승력 弱 强 택일이 지시하는 행위의 성격이 적극적(positive)이냐 소극적(negative)이냐에 따 라서도 택일풍속을 분류할 수 있다. 이는 그 지시하는 바가 某 날에 某 행사를 하 면 좋다 는 식으로 의 ( 宜 ㆍ 吉 )의 의미를 나타내는지, 某 날에 某 행사를 하면 좋지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97 않다 는 불의 ( 不 宜 ㆍ 凶 ), 즉 금기의 의미를 나타내는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전자는 그날에 하면 재수있고 운이 좋으니 그 일을 하라 는 권유형으로 표현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행위를 지시하는 것이며, 후자는 그날에 하면 재수 없 고 운이 나쁘니 그 일을 하지 말라 는 금지형으로 표현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어 떤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이른바 소극적인 행위를 지시하는 것이다. 따 라서 전자는 적극적 택일, 후자는 소극적 택일 이라고 부를 수 있다. 프레이저(J. G. Frazer)는 금기(taboo)를 종교적 금지의 체계 라고 하면서 행위 금기ㆍ인물금기ㆍ사물금기ㆍ언어금기 등 네 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87) 소극적 택 일은 일종의 날짜금기 라고 할 수 있으며 프레이저의 금기 분류에는 포함되지 않 았지만 금기의 새로운 유형으로 추가할 수 있다. 즉 소극적 택일은 금기로서의 특 징도 함께 지닌다. 다만 소극적 택일은 그 인과관계의 합리성 여부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음양오행ㆍ납음오행ㆍ9성ㆍ12직ㆍ28수ㆍ60간지 등 천문ㆍ역술에 의한 정교한 이론체계와 논리적 설명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신령ㆍ자연에 대한 막 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대부분의 다른 금기와 구별된다. 적극적 택일과 소극적 택일에 관한 이런 내용들을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표 2> 지시행위의 성격에 따른 택일풍속의 유형과 특징 유 형 적극적 택일 소극적 택일 사 례 宜 會 親 友 ㆍ 宜 交 易 ㆍ 宜 結 婚 姻 不 宜 動 土 ㆍ 不 宜 出 行 ㆍ 不 宜 移 徙 표현방식 근대성과 어긋나는 정도 宜 ~ ~날에 하라(권유형) ~날에 하면 좋다(긍정형) 小 不 宜 ~ ~날에 하지마라(금지형) ~날에 하면 나쁘다(부정형) 大 현재 전승력 强 弱 비 고 길흉판단의 근거 날짜금기 음양오행ㆍ납음오행ㆍ9성ㆍ12직ㆍ28수ㆍ60간지 등 천문역술 87)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저)/박규태(역주), 황금가지(1) (을유문화사, 2005), 483~620쪽 참조.

398 정신문화연구 제32권 제1호(2009) 택일은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사람의 행위를 제약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 서 인간의 자율적 주체성을 강조하는 근대적 사고방식과 서로 어긋난다. 그 중에 서도 소극적 택일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한데, 이 때문에 소극적 택일은 적극적 택 일관행에 비해 근대에 와서 생활환경이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면서 가장 먼 저 전승력을 잃으면서 약화되어 갔다. 그러고 나서 적극적 택일이 변화를 겪기 시 작했다. Ⅳ. 2. 택일풍속의 변화와 약화 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근대 역서의 길흉 관련 역주( 曆 註 )에서 소극적이며 일종의 날짜금기인 불의 항목이 먼저 삭제되고, 이후 적극적인 의 항목이 빠진 것도 지시행위의 성격에 따른 택일풍속의 이런 특 징과 깊은 관련이 있다. VI. 결론 택일풍속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속에서 중요한 요소로 정착하여 지금까지 우리 의 삶과 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은 지금까지 학술적 연구가 거의 없었던 한국의 택일풍속을 주제로 다루며,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 한국 택 일풍속의 전승양상을 각종 문헌자료와 현장답사자료 등을 통해 통시대적으로 살펴 봤다. 그리고 택일주기와 지시행위의 성격에 따라 한국 택일풍속의 유형을 일상택 일과 일생택일, 적극적 택일과 소극적 택일(날짜금기)로 나누고서 그 특징들을 살 펴봤다. 이를 통해 우리 택일풍속의 성격을 규명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장 담그는 날, 손 없는 날의 경우처럼 사람들은 복잡한 택일원리를 그대로 받아 들이기보다는 이를 단순화ㆍ규칙화하여 활용하기 쉽도록 바꾸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택일풍속이 오랫동안 민간에서 전승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또한 택일관 습은 시간의 주기성ㆍ순환성에 바탕을 두고서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세시 풍속과도 관련이 깊다. 세시풍속 가운데서 길흉일을 가리는 날가림 관습을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천문역법의 발달과 길흉일에 관한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한국의 택일풍속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각종 행사에 보다 세세하게 나타났으며 관편 역서에도 의ㆍ 불의 등 길흉일 관련 항목이 기재되고 택일서도 계속 발간되어 민간에서 택일법을

한국 택일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399 활용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물론 택일의 근거가 합리적ㆍ과학적이지도 않으 며 일상생활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게끔 한 다는 등의 이유로 택일풍속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우리의 전통적 사고는 자연과 인간은 모두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으며 서로 침 범하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존을 상정하고 자연과 인간을 유기적 상호작용으로 묶는 전통풍속들이 크게 약화되었고 전통적 가치, 특히 신앙적 사고는 청산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졌 다. 택일풍속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택일풍속을 저급한 미신으로 치부할 것 만은 결코 아니다. 택일풍속에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 를 가르치기 위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항상 삼가고 조심하는 것은 당시 생존을 위 한 방편이었다. 88) 길흉과 화복을 나타내는 점복ㆍ주술ㆍ금기ㆍ무속이야말로 어찌 보면 인간의 감 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문화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길흉화복에 가장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의 길흉을 가리 는 택일도 전통사회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택일풍속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존재하는 보편문화이면서도 한국인 고유의 신앙심과 인식구조가 솔직하게 함축되어있는 우리의 민속문화라 말 할 수 있다. 이 글이 앞으로 우리의 택일풍속을 연구하는 데 있어 작으나마 밑거 름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문헌 經 世 遺 表 ; 高 麗 史 ; 東 國 歲 時 記 ; 論 衡 ; 山 林 經 濟 ; 三 國 史 記 ; 三 國 志 ; 春 亭 集 ; 弘 齋 全 書. 경상일보 ; 경향신문 ; 대전일보 ; 동아일보 ; 서울신문 ; 제주일보 ; 조선일보 ; 중앙일보 ; 한국정책방송 ; 한라일보. 易 學 大 辭 典. 서울: 명문당, 1994. 88) 백두현, 앞의 책, 4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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