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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훼와 엘 김 이 곤* 차 ---------------------------------------- ---------------------------------------- 서 론 Ⅰ. 야훼와 엘의 일치 및 결합 Ⅱ. 이스라엘은 야비스틱 엘 공동체 례 Ⅲ. 엘과의 관계에서 본 야훼 결 론 ----------------------------------------------------------------------------------------------- 서 론 우리는 지금 성서의 하나님 의 그 뿌리와 본질을 성서비평학적 방 법에 의거하여 규명해 보려는 매우 중요한, 그러나 매우 위험스럽고도 힘겨운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분명, 야훼 라는 신명( 神 名 )의 의미 가, 구약학의 집요한 공략에도 불구하고, 끝내 비밀 1) 의 베일 속에 가 려져 있는 이래, 2) 그리고 이스라엘 유대 종교사 전체에 걸쳐서 야 * 신학과 교수 1) 사사기 13 : 18을 개역은 기묘 라고 번역하였고, 신 구교 공동번역과 표준새 번역은 비밀 이라고 번역하였다. NRSV는 too wonderful, J erusalem Bible은 a mystery 그리고 미국 유대인 출판사(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의 The Holy Scripture, 2nd ed. 에서는 unknowable 이 라고 번역하였다. 히브리어(MT) Pel î 는 wonderful, marvellous 또는 incomprehensible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2) Cf. D. N. Freedman, YHWH, TDOT, vol. Ⅴ, p. 500. 1

2 한신논문집 제12집 훼 와 가나안적 배경의 엘 사이에는, 야훼 와 바알 사이의 관계에 서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한번도 라이벌의 긴장관계가 형성되지 아니 하였다는 그 기이한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3) 우리의 논제는 논의의 여지없이 성서신학의 가장 본질적인 면을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히브리 종교,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문제에 감히 학문적으 로 접근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엘 4) 은 통상적으로 한국어 성서에서는 신 ( 神 ) 또는 하나님 이라 고 번역되어 왔으나, 그러나 구약성서의 이스라엘이 자기의 신( 神 )을 부를 때 통칭해 온 일반적 신명( 神 名 )인 엘로힘 과는 그 글자를 다르 게 써온 동의이음( 同 意 異 音 )의 신명( 神 名 ), 이른바, 가나안적 배경에서 온 가나안의 신 또는 가나안 만신전(pantheon)의 우두머리 신의 명칭 이다. 그러나, 이 엘 은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의 신 야훼 와 의도 적으로 구별한 비( 非 ) 이스라엘의 신( 神 ), 즉 가나안의 신( 神 )의 고유 한 이름 으로는 좀처럼 잘 사용되지 아니하였다는 것 5) 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물음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1) 가나안 종교의 위험을 강력히 경고하고 배척 해 온 이스라엘의 신 야훼 가 왜 구약에서는 바알 이나 아세라 와의 투쟁적 관계와는 달리, 엘 과는 결코 긴장관계를 갖지 않고 오히려 엘 과 일치 내지는 결합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2) 야훼 신앙의 공동 체인 이스라엘의 이름이 왜 야훼 적 이름이 아니고 엘 적 이름인가? 3) cf. O. Eissfeldt, El and Yahweh, JSS, 1. 1956. pp. 26, 30 ; Mark S. Smith, The Early History of God(San Francisco : Harper & Row, 1990). p. 8. 4) 엘 과 엘로힘 은 상관된 언어로서 엘로힘은 헤 (he)가 들어가 확장된 엘 의 복수형태로 가정되어 왔으나( 엘 의 복수형 엘림 은 드물게 나타남) 그 어근은 불확실하다. cf. J. L. McKenzie, The Appellative of El and Elohim, CBQ vol. 10(1948), pp. 170-81 ; H. Ringgren, elohim, TDOT, vol. I, pp. 267-84. 5) F. M.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Massachusetts : Havard University Press, 1973, 1976), p. 44(이하 CMHE로 약칭함) ; idem, el, TDOT, vol. I, p. 253. 2

야훼와 엘(김이곤) 3 왜 이스라 야후 또는 이스라 야 가 아니고 이스라 엘 인가? 야훼 와 엘 의 일치 또는 엘 과의 동격관계에서 본 야훼 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실로, 그것이 구약의 하나님 의 실체를 밝힌다는 점에서, 성서신학의 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되며, 동시에 다원화되어 가는 새로운 시대에 즈음하여 기독교 신앙이 취할 토착화 선교에 대한 성서신학의 한 응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6) Ⅰ. 야훼와 엘의 일치 및 결합 이스라엘의 종교전승은 아주 초기부터 가나안의 신, 엘 을 야훼 와 일치시켰거나, 동등하게 연결시켰거나 하였다는 것이 학계에 널리 알 려진 구약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여 호수아 22장 22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본문의 배경은 이러하 다. 즉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므낫세 반쪽 지파가 요단강 서 쪽 강가에 세운 제단에 대한 타 지파들의 오해를 해명하기 위하여 이 스라엘이 신앙하고 있는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oath formula)할 때 7) 그 서두에서 외친 말이 우리의 본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엘 엘로힘 야훼, 엘 엘로힘 야훼! 이 말에 대한 번역은 다양하다. 우리말 개역성서는 전능하신 자, 하 나님, 여호와 라고 번역하였고 신구교 공동번역은 가장 높으신 하느님 야훼 라고 하였으며 표준 새번역은 주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라고 하 였다. NRSV는 The Lord, God of gods! 라고 번역하였고 미국 내 유 대인 출판협회(JPSA) 8) 는 God, the Lord God 라고 번역하였다. 주석 6) 김이곤, 토착화 신학의 성서적 전거 예수 민중 민족 (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논문집 ; 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92), pp. 94-114. 7) T.C. Butler, J oshua(waco : Word Books, 1983), p. 248. 3

4 한신논문집 제12집 가 T. C. Butler와 J. A. Soggin은 El, God, Yahweh 라고 번역하였고 9) R. G. Boling은 God of gods is Yahweh. 라고 번역하였다. 10) 이러한 번역들이 말해 주는 바에 의하면, 엘 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 제를 떠나서 볼 때는, 모든 번역이 모두 이 본문을 통하여 엘 과 야 훼 의 일치화 또는 동격화를 읽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만일, 엘 엘로 힘 이라는 연결관계를 신들 중의 신 (God of gods) 이라고 번역한다 면, 엘 은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이미 하나님 또는 하느님 이라는 뜻의 일반적 신명( 神 名 )으로 발전되어 갔다는 것을 이 본문은 지시하고 있고 또 이 본문은 왕 중 왕 (단 2 : 37 ; 겔 7 : 12), 노래 중의 노래 (악 1 : 1) 또는 허무 중의 허무 (전 1 : 2)와 같은 최상급 11) 을 표현하는 말 들이 의미하듯이, 야훼의 최상의 위치를 고백하는 의미로 이 맹세 구를 쓰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의 아주 초기의 시( 詩 ) 자료, 아마도 기원전 12~11세기만큼이나 고대의 시( 詩 )인 출애굽기 15장 11 절의, 12) 야훼여, 신( 神 )들 가운데서 당신과 같은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 까? 라는 표현도 또한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였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물론 우리는 종교사적 발전 과정에서 이 문제를 이해하려고 할 수도 있다. 즉 유랑 하는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가나안 정착과정에서 가나안의 신 엘과 접 촉하고 엘 종교를 수렴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 는 이보다는 좀 더 복잡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이스라엘 유 대 종교사 전체에 걸쳐서 엘 은 언제나 이스라엘 세계에서 존경을 받 아왔으나 바알이나 아세라는 야훼와의 극단적인 긴장관계 안에서 배척 8) The Jewish Publication Society of America의 The Prophets(Philadelphia : 1978) 9) T.C. Butler, J oshua, pp. 238 ; J. A. Soggin, J oshua(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72), p. 210. 10) R.G. Boling, J oshua(new York : Doubleday & Co., 1982), p. 503. 11) R.G. Boling, ibid, p. 515. 12) F.M. Cross, CMHE, p. 45. 4

야훼와 엘(김이곤) 5 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엘 은 에디오피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셈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에서 하나님 을 표시하는 공통된 일반적 (generic) 명칭이었다. 비록 그 말의 어원은 불확실하다고 하여도, 대체로, 강함 또는 힘 능력 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추론하는 경향이 있는 말로서, 13) 고대 아카드나 우 가릿의 문헌에 나오는 엘 은 주로, 지극히 높으신 분 (만신전의 우두 머리),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긍휼이 많은 신, 인간의 복지, 특히 자 녀 생산의 복을 관장하는 신, 흰 수염을 달고 있는 불로( 不 老 )의 영 원한 아버지 장막 성소에 거하시는 분 등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14) 주목할만한 점은, 성서의 엘 도 또한 이러한 기능을 하는 분으로서, 신( 神 )의 일반적 명칭으로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훼 와 엘 의 일치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14장 18-24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대표적 선조 중의 하나 인 아브라함이 그가 섬기는 하나님 야훼를 살렘 땅 가나안 제사장 멜기 세덱이 섬기는 가나안 신 엘 엘룐 지극히 높으신 신 과 일치시 키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창세기 주석가 베스터만도 암시하고 있듯 이, 15) 여기서는 분명 아브라함의 야훼 신앙과 멜기세덱의 엘 신앙 사이의 어떠한 종교논쟁이나 종교적 긴장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브 라함을 축복할 때 멜기세덱은 이렇게 말한다 ; 하늘과 땅을 만드신 이, 엘 엘룐(지극히 높으신 신)이시여, 아브라함을 축복하소서. 아브라함 은 이 축복을 감사히 받고 십일조로 답례한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소돔 왕의 사은을 사양할 때 아브라함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이, 엘 엘룐, 야훼께 내가 맹세하노라 라고 응답한다. 아브라함의 응답은, 분명 여 13) J. L. McKenzie, The Appellative Use of El and Elohim, CBQ, vol. 10 (1948), pp. 170-81. 14) J. J. M. Roberts, El, IDB Suppl. pp. 255-58 ; M. S. Smith, The Early History of God, pp. 9f. 15) C. Westermannn, Genesis 12-36(Minneapolis : Augsburg Pub. House, 1985), pp. 207-208 5

6 한신논문집 제12집 기서, 지극히 높으신 신, 즉 엘 엘룐을 야훼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하 겠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를 동일시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분명 히 그것은 정치적 굴복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여기서 정치 권력의 소유자인 소돔왕의 사은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문의 문맥 안에서는 엘 엘룐 의 기능을 설명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이 라는 서술만이 우리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제 시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겠다. 즉 엘 엘룐 과 야훼는 여기서 창조 의 기능 이라는 그 기능의 동질성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고 하겠다. 야 훼 는 엘 엘룐 과 마찬가지로 천지의 창조자이시라는 것이다. 야훼 와 엘 엘룐 의 동일화에 관한 더 극적인 모습은 신명기 32 장 8-9절의 모세의 노래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본문은 이 렇게 구성되어 있다. 어리석은 백성아, 이 미련한 민족아, 너희는 어찌하여 야훼께 이렇게 보 답하느냐? 그는 너희를 지으신 너희의 아버지 가 아니시냐? 아득한 옛날 을 회상하여 보아라. 엘룐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여러 나라에게 땅을 나누어주시고 인류를 갈라놓으실 때에 [아스라]엘의 자손의 16)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갈라놓으셨다. 그러나, 야훼의 몫은 그의 백성이니, 야곱 은 그가 택하신 유산이다. 이 본문은 분명 엘룐 을 가리켜, 열국 백성에게 그들의 소유지인 땅을 나누어주고, 또 영토의 경계를 정해 주시는 최고의 신 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야훼는 여기서 단지 이스라엘 / 야곱 을 그의 몫으로 배당받았을 뿐임을 말하고 있다. 이른바, 엘룐 이 야훼보다 상석에 있 다고 하겠다. 분명히 이 노래는 세상의 모든 백성들에게 그들의 신(엘) 들에 따라 땅을 분배하시는 신( 神 )을 엘룐 신 즉 엘 엘룐 으로 보 고 있다. 16) MT는 이스라엘 의 자손으로 쓰고 있으나 Septuagint, Latin Version, Symmachus에서는 엘의 자손 으로 되어 있다. 6

7 야훼와 엘(김이곤) 7 그러나, 우리의 본문은, 매우 주목할 만하게도, 엘룐이 야훼에게 야 곱 / 이스라엘 을 그의 몫으로 분배해 주었다 라는 직접적인 언어로 말 하지 않고 단지 야훼의 몫은 그의 백성, 야곱은 그가 택하신 유산이 다 라고만 말함으로써 야훼의 이스라엘 선택 사실만을 확정짓고 있을 뿐이다. 아이스펠트(Eissfeldt)가 적절히 설명해 주고 있듯이 17) 엘 을 최고의 신 으로서 인정하는 그 일이, 모세의 노래 가 형성되었을 무 렵에는 이미 이스라엘 사회에서 유일하신 참 신으로서 숭배받던 야 훼 에게로 전이되어 가고 있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이 모세의 노래에서는 오히려 더욱 극적으로 엘 엘룐 과 야훼 가 동일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주장의 정당성은 맛소라 본문에서 보다는 희랍어 역 구약성서 셉튜아진트(Septuagint)에서 더욱 분명하 게 설명된다. 왜냐하면, 희랍어 역 모세의 노래는 하늘뿐만 아니라 모 든 신( 神 )들도 야훼를 찬양하도록 호출받고 있기 때문이다. 폰 라트 (G. von Rad)도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이 본문의 강조점은 이스라엘 의 선택은 신의 아들들 중 하나에게 몫으로 부여된 사건이 아니라 야 훼 자신의 특별한 독자적 결단의 사건이라는 것을 지적하는데 있다고 말하였다. 18) 그렇다면, 모세의 노래에 나타난 야훼 와 엘 의 일치는 어떤 점 때 문에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의 본문은, 분명, 엘룐의 기능에 평행시키 는 야훼의 기능을 아버지 이미지로 제시하였다. 말하자면, 가나안의 엘 이미지 중 아버지 이미지가 야훼의 이미지와 충돌없이 평행되었다 고 하겠다. 신의 본질적 특성 사이의 공통성과 동질성을 통한 야훼 와 엘 사 이의 일치는 창세기 49장 24-25절의 야곱의 유언에서(신 33 : 13-17과 평행) 좀 더 광범위하게 발견된다. 요셉지파를 향한 야곱의 유언은 주 로 하늘의 이슬, 땅의 물 을 통한 결실의 축복, 젖가슴 (사따이)과 17) O. Eissfeldt, El and Yahweh J SS vol. 1(1959), p. 29. 18) G. von Rad, Deuteronomy(London : SCM Press. 1966, 1976), p. 197

8 한신논문집 제12집 자궁 (레헴)으로부터 오는 생산의 축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축복을 주시는 전능자 (아빌, 사따이)를 이 유언은 네 아비의 엘 이 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축복 약속은, 베스터만이 적절히 지적해 주 었듯이, 19)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주신 야훼의 축복 약속의 문맥 안에 들 어 있다. 야훼는, 분명, 모세 이전의 이스라엘 족장들에게 끊임없이 후 손번성과 땅 수여의 약속을 주셨다. 이것은 창세기 12-50장에 나오는 족장설화의 현실이다. 그러나, 족장들에게 주어진 후손 번성에 관한 생산축복의 약속은 주 로 전능하신 엘, 즉 엘 사따이 의 현현과 관련되었고 이 자료는 주 로 사제문서 기자(P)에 의해서 우리에게 전수되었다. 창세기 17 : 1-8 ; 28 : 3-4 ; 35 : 11-12 ; 43 : 14 ; 48 : 4 그리고 출애굽기 6 : 2-3이 그것이 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자료들 중 제일 마지막의 것인 출애굽기 6 : 2-3에서 사제문서 기자는 생산축복의 약속을 주신 신, 엘 사따이 가 모세 이전의 족장들의 신이며 이 엘 사따이 가 바로 모세를 통해서 소개되는 야훼 그 분과 동일한 분이시라고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 다. 20) 여기서 우리는 야훼 의 기능이 출애굽 해방역사 뿐만 아니라 본래적으로는 생산축복(사따이)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듣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는 또한 출바벨론의 해방신 야 훼는 곧 창조의 신이시다(cf. 사 42 : 5 ; 43 : 1 ; 44 : 24b-28 ; 51 : 9f. 등) 21) 는 제2이사야의 증언과 동일한 증언도 아울러 듣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우리의 놀라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이스라엘 역사의 아주 초기부터 구약 전 역사에 걸쳐서 야훼 와 엘 은 그 본질적 특성의 동질성을 기초하여, 전혀 충돌없이 일치되어 왔다는 점이다. 19) C. Westermannn, Genesis 31-50(Mineapolis : Augsburg Pub. House, 1986), p. 240 20) 김이곤, 토착화 신학의 성서적 전거, pp. 100-102 참조하라. 21) 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I(New York : Harper & Row, 1962), pp. 136f 8

9 야훼와 엘(김이곤) 9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간에게 은혜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엘 과 야훼 의 일치이다. 출애굽기 34장 6절에서 야훼 신이 자기를 계시 하기 위하여 모세 앞을 신속하게 지나가실 때, 외치신 말, 야훼, 야훼, 엘 라훔, 엘 22) 한눈! 은 분명히 야훼와 엘의 라훔 (긍휼) 본질과 한눈 (은혜) 본질의 공유현실을 웅변적으로 증언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하여 엘 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보편적인 신의 칭호로서 사용되었으며 모세를 통하여 알려진 이스라엘의 신 야훼와도 전혀 충 돌없이 동등한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고 이스라엘 본래의 종교적 유산 에 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시편 10편의 시인은 그의 고난의 자 리에서 이렇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 일어나소서, 야훼여, 엘이여! 손을 드소서. 고난받는 자를 잊지마소서 (시 10 :12). 이상의 관찰을 통해서 볼 때, 야훼 와 엘 을 연결시키는 공유의 속 성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농경 종교의 핵심을 이루는 섹스 와 신의 죽음 이다. 23) 야훼는 결코 바알 처럼 여신의 파트너를 갖고 잊지 않았다. 야훼 종교는 생산의 축복을 산출해 내기 위하여 성 제의( 性 祭 儀 : Sex cult)를 용납하지는 않았다. 야훼는 초목신처럼 계절에 따라 죽음과 소생을 되풀이하지도 않았다. 엘 올람 (창 21 : 33), 즉 영원하신 신의 경우처럼, 야훼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셨다. 야훼의 자궁(레헴) 속성은 철저히 긍휼(라훔) 속성으로 신학화되어 있었고 24) 야훼의 젖가슴(사따이) 25) 속성은 철저히 후손 축 복의 전능성 으로 신학화되어 있었다. 26) 야훼는 레헴 (자궁)의 엘이 22) 본문에 있는 웨한눈 (그리고 은혜로운)을 리듬을 살리려고 엘 한눈 (은혜 로운 신)으로 고쳐 썼다. 23) M.S. Smith, The Early History of God, pp.12-21, 41ff. 참조. 24) P. Trible, God, Nature of, in The OT, IDB Suppl. pp. 368-69 ; Idem, God and the Rhetoric of sexuality(philadelphia : Fortress, 1978), pp. 31-59 ; D. N. Freedman, The Name of the God of Moses, JBL 79(1960), pp. 51-56. 25) W. F. Albright, The Names Shaddai and Abram, J BL 54(1935), pp. 173-204 ; F. M. Cross, CMHE, pp. 52-60.

10 한신논문집 제12집 아니라 라훔 (긍휼)의 엘이었고 젖가슴의 신이 아니라 생명창조의 전 능의 엘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즉 엘 의 총칭적인(appellative and generic) 기능이라는 맥락에서 우리는 왜 이스라 야 또는 이스라 야후 가 아니고 이스라 엘 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Ⅱ. 이스라엘은 야비스틱 엘 공동체 이스라엘의 본래의 신은 야훼 였는가? 라는 질문은 간단하게 대답 할 수 있는 물음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의 증언에 의하면, 분명히 야훼 신앙공동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의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는, 야훼 라는 신명( 神 名 )의 의미가 신비에 싸 여 있다는 점 때문에 생긴다. 구약성서는 세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 름에 대해서 물었다. 즉 창세기 32장 29절에 의하면 야곱이 브니엘의 얍복강에서 이스라엘 이라는 새 이름을 받을 때 그에게 그 새 이름을 주신 신 27) 에게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여쭈었으나, 네가 왜 내 이름 을 묻느냐? 라는 반문만을 받고 그 대답을 듣지 못하였으며, 사사기 13 장 18절에 의하면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아들 출산에 관한 약속을 주신 야훼의 사자에게 그의 이름을 물었으나 그도 역시 그 이름은 단 지 기묘 (개역) 또는 비밀 (공동 / 표준새번역)이라는 대답만을 얻었 고, 출애굽기 3장 14절에 의하면,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그를 부르신 그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여쭈었으나, 모세도 또한 단지 그 뜻을 헤 아리기 어려운 나는(스스로 있는) 나다 28) 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라 26) cf. 창 17 : 1-8 ; 28 : 3-4 ; 35 : 11-12 ; 43 : 14 ; 48 : 4 ; 출 6 : 2-3 27) 이 신을 Eissfeldt는 엘 로 본다., 그의 El and Yahweh p. 34 참조. 28) 김이곤,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89), pp. 55-83 참 조하라. 10

야훼와 엘(김이곤) 11 고 되어 있다. 실로, 제2 이사야가 고백한 것처럼 야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Deus absconditus)(사 45 : 15)이실 뿐이었다. 실로 야 훼 라는 이름의 이니시얼 (initial)을 자기 이름자에 연결시키는 자들 (엘리야후 또는 이사야[후] 등등)이 거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 동체의 이름은 야훼 의 이름과 결부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족장들의 가나안 정착사는 이 물음을 가중시킨다. 창세기 33장 18절-20절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선조 야곱이 밧단아람으로부 터 편안히 가나안 땅의 세겜성에 이주해 온 후 그곳에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 이라고 불렀다고 보도하고 있다. 엘 엘로헤 이스라엘 이라는 말은 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다 라는 뜻 이다. 이 사건은 창세기 32장 23-33절에 보도되고 있는 바, 야곱이 브 니엘에서 신과 씨름을 한 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로 개명한 사건 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29)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야곱의 엘 경험은 어디까지나 가나안 토양에서 이루어졌다는 것과 그리고 그 엘 경험 은 다양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분 엘 의 여러 본질을 경험한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야곱을 조상으로 한 신앙공동체는 엘 공동체라 는 것을 가르쳐 준다. 궁켈(H. Gunkel)이나 알트(A. Alt) 30) 그리고 여 러 다른 학자들이 이 엘 의 여러 모습들로부터 지역 신령들(local numina)을 추론한 것은 이해할 만하기는 하나 그 견해는 이 엘 경험 들의 지역 접착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잘못을 범함과 아울러 이 경 험들이 하나의 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낮게 평가하는 과오를 범하 였다고 하겠다. 실제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위대한 엘 신의 제단들 이 여러개 있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이 사실이 하나의 신을 여러 신 들로 쪼갤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종교의 전통은 이 위험을 잘 극복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엘 이름의 일반적이고도 29) O. Eissfeldt, El and Yahwel p. 34 참조. 30) cf. A. Alt, Essays on Old Testament History and Religion(Oxford : Basil Blackwell, 1966), pp. 3-77) 11

12 한신논문집 제12집 포괄적인 성격(generic하고 appellative한 성격)은 이러한 극복의 한 매 체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모세 이전의 히브리인 이주그룹 중 초기의 어느 그룹들은 가나안의 엘 제의들의 엘 신과 연결되었을 것이라 는 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이주 역사와 잘 조화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러므로, 야훼 제의는 이러한 이주물결의 마지막에 가나안으로 들어가 게 되었고 이 야훼 신앙의 그룹들이, 이른바, 엘 신을 섬기는 그의 친 족그룹들과 가나안에서 만나게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여기서 후 에 들어온 야훼 제의가 주도권을 쥐기는 하였으나 엘 제의와 싸우지 는 않았고, 단지, 양 제의를 동화시키는데 열심을 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엘 제의는 야훼 제의보다 더 고대의 신앙형식이라고 생 각되었고 그것이 또 야훼의 현현 때문에 더 높은 수준으로 격상되었지 만, 그러나, 여전히 엘 제의는 참 하나님에 대한 신앙양식으로 인정 받게 되었으며 즉 이스라-야후 또는 이스라-야 가 아니라 이스라- 엘 이 되었으며, 그 이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 야훼와 일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서 볼 때, 사제법전기자(P)가 이스라엘 종교사를 신학적으로 그리고 시 대적으로 구분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매우 부합하다고 볼 수 있을 것 이다. 즉 출애굽기 6장 3절에서 이 사제법전기자는 야훼께서 자신의 이 름을 모세를 통하여 알리시기 이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는 자신을 엘 사따이 로만 알리셨다고 말할 때 그 보도도 또한 역사적 사실과 매우 부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훼 와 엘 의 만남과 일치는 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엘 이 나중에 자신의 참 이름인 야훼 를 알리시므로 이루어진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야훼 는 아주 초기부터 이미 엘 로부터 여러가지 본질적 특성들을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우가릿 문서들의 증거에 의하 면, 엘 의 특징적이고 본래적 기능은 세계의 창조자 되심과 신들의 왕 되심, 그리고 최고의 아버지 되심의 기능이다. 신명기 32장 8-9절 12

야훼와 엘(김이곤) 13 에 의하면 야훼 는 이미 이러한 엘 과 동등한 자리를 취하려는 순간 에 있음을 볼 수 있다. 31) 즉 야훼와 엘의 이러한 일치는 이미 다윗과 솔로몬에 의하여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이스라엘 초기에 이미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훼는, 이미 위에서 살펴본 대로 엘의 창 조자 되심과 신들의 왕되심, 그리고 최고의 아버지되심 뿐만 아니라, 본래의 엘의 특징이었던 것을 더 많이 보충받았다는 것을 보아 왔다. 즉 자비와 긍휼의 특징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먼저 이루어진 엘 공동체 속에 출애굽과 시내산을 경험한 야훼 신앙의 친족무리들이 들어가 신앙적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루어진 야비스틱 엘 공동체였다고 32) 할 수 있을 것이다. Ⅲ. 엘과의 관계에서 본 야훼 엘로힘 문서(E)와 사제문서(P)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야훼 는 모세 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알려진 신이었다. 엘로힘 문서와 사제문서는 공통되게 이 야훼가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과 동등한 신( 神 )이시라는 것을 말하지만, 엘로힘문서는 야훼 의 이름의 의미와 그 기원에 강조 점을 두고 있는 반면, 사제문서는 모세를 중심점으로 하여 족장종교와 야훼종교 사이를 시대구분하고 그 둘의 만남과 일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야훼 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이며 야훼와 엘의 만남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출애굽기 3 : 14의 엘로힘 문서가 말하는 바, 야훼 의 의미는 에흐 31) O. Eissfeldt, El and Yahweh, pp. 36-37 참조. 32) cf. A. H. J Gunnewey, Geschichte Israels(Stuttgart Berlin Köln : Verlag W. Kohlhammer, 1972, 1989), pp. 34-44. 13

14 한신논문집 제12집 예 아쉘 에흐예 나는 나다 또는 나는 나일 것이다. I am who I am, 또는 I will be who I will be 라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 속에 암시되어 있다. 이 말에 대한 지금까지의 재해석은 다음 몇 가지 로 정리할 수 있다. 33) 첫째는 희랍어 역본이 시도한 것으로서, 나는 존재하는 자다 (에고 에이미 호 온)라는 매우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설명이 있다. 우리말 개역성서의 번역,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는 번역은 이 희랍어 역에 가깝다. 그러나, 야훼의 본질이 철학적 존재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 은 구약성서의 일반적 문맥과는 다소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cf. R. de Vaux). 둘째는 마소라 본의 축자적 번역으로서 나는 나다 라는 의미로 설명 된 경우다. 이 설명은 같은 말 반복법(tautology)의 구조 안에 들어있다 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는 한신이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 한신은 한신이다 라고 대답할 때의 의미처럼, 더 이상 논의나 설명이 필요 없다는 단호한 천명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cf. S. R. Driver). 셋째는 본문의 문맥과 관련시켜서, 즉 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출 3 : 12)라는 앞에 나오는 말과 관련해서 미래적 약속(에소마이 호스 에소마이 ; cf. Aquila, Theodotion)의 의미로 읽는 경우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야훼의 의미를 모세 소명기사의 문맥과 너무 결부시킴으로, 야 훼 (출 3 : 15)라는 말의 의미와는 별로 결부되지 않는 약점이 있다(cf. G. von Rad). 넷째는 출 3 : 14의 문맥과는 별도로 야훼 라는 말을 야후 의 확대 로 보고 이 야후 를 아랍어적으로 해석하여, 오 그 분 이라는 감탄사 에서 야훼 가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경우다. 물론, 이 경우는 구약적 전 거가 빈약하다는 약점이 있다(cf. S. Mowinckel). 다섯째로는 야훼 라는 말을 동사적 문장으로 보고 야 모음으로 33) 김이곤, 구약성서의 고난신학, pp. 55-83 참조하라 14

야훼와 엘(김이곤) 15 시작하는 경우, 이 말은, 히브리어 문법상, 단순동사가 아니라 사역동사 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cf. Haupt & Albright). 그리하여 야훼 라는 말을 존재하게 하는 자 즉 창조하는 자 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기 3장 14절도 나는 창조하는 자다 라고 구두점을 고쳐 찍어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은 야후 또는 야 로 끝 나는 이름을 가진 자들, 예컨대 엘리야후, 이사야 등과 같은 이름 들의 신앙관습과 할렐루 야 의 야 의 예배적 기능과 관련시켜 볼 때, 가장 그럴듯한 해석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경우도, 히브리어 하 야 를 사역형으로 쓰는 전통을 구약이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전 히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크로스(Cross), 프리드만 (Freedman) 등의 올브라이트 학파의 계속적 연구는 34) 경외의 자료들 로부터 그 근거를 많이 제시하고는 있다. 이상의 관찰들을 통하여 볼 때, 야훼 라는 이름의 의미는 아직도 확 실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단지 우리는 야훼 라는 말이 동사적 문장식 이름이라는 점, 그러므로 고유명사화하기는 어려운 말 이라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즉 야훼 제의가 수립되고 야훼가 고유 명사적 제의명( 祭 儀 名 )이 되기 전 에는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야훼 신 의 기능을 설명하는 말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맥에서 본다면, 야훼 를, 엘 을 설명하는 말 또는 엘 의 별칭으로, 즉 고고학적 문서자료에서 발견하는 엘[일] 두 야휘 (창조하시는 신)와 같은 것으로 보려는 크로스의 견해 35) 는 다소 주목할 가치가 있 다고 생각된다. 실로, 야훼 라는 이름은 불가해하고도 신비에 싸여 있 는 말이라고 하겠으며, 그리고 거룩한 네 개의 자음으로 고정(YHWH) 시킨 저 거룩한 Tetragrammaton이 유대인 사회 전통에서 아도나 이 (주여)라는 말로만 대신 읽혀지고 그 본명은 결코 읽혀지지 못하게 34) cf. F.M. Cross, CMHE, pp. 60-75 ; D. N. Freedman, YHWH, TDOT, vol. 5, pp. 500-521. 35) cf. F.M. Cross, CMHE, pp. 62-71, 특히 pp. 67, 69, 70-71. 15

16 한신논문집 제12집 거룩한 베일로 감추어지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하겠다. 신의 이름을 지어내거나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 데네 시민을 향한 사도바울의 아레오바고 설교는 창조주 하나님은 결 코 인간이 만든 성전에 가두어 둘 수 없는 아그노스도 데오 즉 알 지 못하는 신에게 속하는 것임을 천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야 훼 는 알지 못하는 신(아그노스도스 데오스)은 아니다. 단지 인간이 개념정의를 할 수 없는 분일 뿐이다. 그는 역사적 창조 행위를 통해서 만 우리에게 알려지시는 포착되지 않는 실재(elusive presence)이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사제문서 신학자가 출애굽기 6 : 3에서 조상 의 신 엘 사따이 와 야훼 를 일치시키는 그 일은, 좀 더 넓은 의미 로 말해서 엘 과 야훼 를 일치시키는 그 일은 야훼 의 기능이 엘 의 기능과 동질적이라는 점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결코 가나안 종교와 야훼 종교의 종교혼합의 작업으로는 읽을 수 없다 고 하겠다. 사제문서 신학자는 조상의 신 엘 의 여러 별칭들, 엘룐, 올람, 로이 등 중에서 사따이 를 유독 족장의 신을 대변하는 것으 로 보고 앨 사따이 를 야훼 와 일치시켰다는 것은 사따이 의 기능 과 야훼 의 기능의 신학적 접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엘 사 따이 는 엘 야훼 와 평행 또는 일치될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하겠다. 특히, 사제문서 신학자는 창세기의 족장설화에서 유독 엘 사따이를 언급하고 이 엘 사따이 가 족장들에게 나타날 때는 오직 단지 아들 출산 의 축복만을 동반하는 것으로 보도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 출애굽기 6 : 3에서 야훼와 엘의 결합을 사따이 와만 관련시키는 것은 생산축복의 기능과 야훼의 기능을 연결시키는, 즉 족장에게 준 후손약 속의 주제와 출애굽 해방의 주제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생산기능도 창조기능이요 해방기능도 또한 제2이사야가 강력히 주장하 였듯이 또한 창조기능이다. 실로 창조자 엘 과 창조자 야훼 가 만난 것이며 족장전승(족장종교)과 출애굽전승(모세종교)이 만난 것이다. 16

야훼와 엘(김이곤) 17 결 론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야훼 종교가 엘 공동체 (엘 암픽티오니)에 서 아주 일찍부터 주도권을 장악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야훼와 엘의 관계에 대한 최선의 설명이란, 분명, 야훼는 엘의 본질이며 엘의 특성 이었다 라는 것이 될 것이다. 모세의 설교를 신학화하는 36) 신명기 기 자가 잔혹한 심판의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은총 의 가능성을 야훼와 엘 의 일치, 특히 야훼와 긍휼의 엘(엘 라훔) 의 일치 안에서 찾았다는 것은 경이롭고도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 야훼, 너희의 하나님은 긍휼의 신(엘 라훔)이시기 때문 에(ki)! 그분은 너희를 버리시거나 멸하시거나 맹세로 너희 조상과 맺 으신 계약을 결코 잊지 아니하실 것이다 (신 4 : 31). 이와같이, 야훼 와 엘 의 일치가 이스라엘 제의( 祭 儀 )에서 그 오랜 전승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확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괄목할 만한 증거는, 분명, 고대의 짧은 역사신조(ancient short historical credo : 신 26 : 5 b -9)에서 그 골격이 유래된, 이른바, 포로후기 제의 공 동체의 유월절 축제전승 37) 에 속한 한 교창식 찬양시(hymnal litany : 시 136편)의 서언(1절)과 결언(26절) 사이의 엄격한 평행관계를 통하여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선하신 야훼 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시 136 :1.) 하늘의 엘 에게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시 136 : 26). 36) G. von Rad, Deuteronomy(London : SCM Press. 1966, 1976), pp. 46-52 37) H. J. Kraus, Psalms 60-150(Minneapolis : Augsburg, 1989), pp. 497-9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