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안12] 영화이론(I) - 카메라와의 동일시 [학습목표] 영화가 어떻게 관객이 스크린 위의 움직임이 빛과 그림자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라 실제 대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믿도록 유혹함으로써 영화가 자기 자신이 생산되던 과정의 흔적을 매끈하게 덮어버리고, 계속해서 관객 으로부터 카메라를 경유한 등장인물과의 동일시를 이끌어내는가에 대해 알 아보자. 이와 같은 영화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개념인 봉합 과 내러티브 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 살펴본다. 1. 허구 혹은 환상으로서의 영화과 관객의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2. 영화 관람 중에, 특히 카메라의 시선과 와 관객 자신의 시선의 분리를 인지하는 순간에 관객이 느끼는 결핍감 을 봉합시키기 위한 내러티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아본다. 3. 숏/리버스 숏 과 같은 봉합체계와 30도 및 180도 법칙의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주요용어I] 움직이는 사진 (motion picture), 컷과 컷의 연쇄(연속) 혹은 이행, 숏과 숏 사이의 순간적인 어둠과 깜빡임, 장면과 장면의 전환 / 허 구 혹은 환상으로서의 영화, 실제 시간 대 영화 시간 : 공간과 시간의 연 속성의 문제, 연속 커팅(cutting to continuity) - 자연스럽게 응축하기 / 영화의 기본단위 - 쇼트, 씬, 시퀸스 [주요용어II] 카메라의 시선, 즉 응시 와 관객 자신의 시선 사이의 분리 / 부재와 결핍 / 부재의 제거(채워 넣음)으로서의 봉합(suture), 관객과 허구 속의 등장인물과의 동일시 - 1 -
[주요용어III] 봉합체계 : 숏(shot)/ 리버스 숏(reverse shot)에 의한 숏들 간의 접합 / 30도 및 180도 법칙 / 연속성(contiuity)과 고전적 커팅 (classiccal cutting) - 보이지 않게 (invisible) : 시선의 연결 (eyeline match)과 행위의 연결 (matching action) / 내러티브 [참고문헌] [자료집] 영상 의 6강 [분석 텍스트]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 <불관용>(1916)> [학습과제]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 <불관용>(1916)> 등과 같 은 2개의 작품을 비교하여 봉합 과 내러티브 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 해 보자. [참고자료]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1915), <불관용>(1916) (출전 : 다음 클라우드 공유 수업자료) [개관] [12강] 이미지의 움직임과 내러티브 이미지의 움직임과 내러티브 : 영화에서 이미지와의 동일시가 관철되는 과 정의 중심에는 카메라와의 동일시, 즉 카메라의 시점과 관객의 눈의 일치 가 있다. 그러나 영화의 이미지와의 동일시는 이것만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사진(motion picture), 즉 활동사진이 기 때문이다. 물론 카메라와의 동일시 자체도 움직이는 이미지로서의 영화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와의 동일시 논리의 일부를 해명한다. 그것은 움직 일 수 있는 카메라와의 동일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이미지의 운동 문제는 이미지의 운동이 카메라 자체가 움직일 수 있다는 데도 기인하지만 그 운동은 무엇보다 컷과 컷의 연속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 2 -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에도 영화의 이미지는 움직인다. 또 카메라와 의 동일시, 즉 시선의 일치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컷과 컷의 연쇄는 부단히 그 동일시를 깨뜨리는 작 용을 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영화는 고정된 단 하나의 사진적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 무엇보다도 컷들로 이어지는 이미지들의 단속적인 연쇄이며, 필름의 영 사가 이미지들에게 운동을 끌어들인다. 벤야민의 지적대로 영화의 장면들 은 눈에 들어오자마자 다른 것으로 바뀜으로 하여 고정시킬 수 없으며, 따 라서 관람자가 회화를 감상할 때처럼 집중을 하고 연상의 흐름에 몸을 맡 기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그 기술적 구조상 심대한 충격 효과를 가 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컷들의 연쇄, 숏과 숏 사이의 순간적인 어둠, 깜빡 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담론 내의 항상적인 부재와 결핍을 환기시킴으 로써 자신이 보고 있는 스크린상의 세계가 환영적 이미지에 불과한 것임 을, 자신이 보고 있는 영화는 항상 허구로서 생산된 것임을 일깨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이 스크린 위의 움직임은 빛과 그림자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라 실제 대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믿도록, 즉 관객 스스로가 영 화는 환상이라는 불신을 자발적으로 유예하도록 관객을 성공적으로 유혹하 는 환상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자기 자신이 생산되던 과정의 흔적을 매 끈하게 덮어버리고, 계속해서 관객으로부터 카메라를 경유한 등장인물과의 동일시를 이끌어 낸다. 영화의 관객은 담론 안에서 단속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으로, 영화라는 담론의 발화된 언표 속의 주체, 즉 허구 속의 등장인물 과의 동일시를 통해 주체로 구성된다.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것이 봉합(suture) 이라는 개념이다. 봉합은 주체로서의 개인이 자신의 담론의 사슬과 맺는 바로 이러한 관계를 지칭하며 기표의 논리를 이르는 것이다. 기표의 논리로서의 봉합은 수 체 계에서 0의 논리와 같다. 0은 무, 부재의 기호 또는 기표이다. 이런 의미 에서 0은 결핍 그 자체이다. 무 또는 결핍으로서의 0은 숫자 0으로서 표 상되는 동시에 수의 연속과 연산의 기원으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숫자 0이 - 3 -
수의 연속을 결정하려면 이것이 결핍이 아니라 다른 숫자와 같은 것으로 계산되어야 한다. 즉, 숫자 0은 숫자 1로서 계산되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 에서 결핍으로서의 0을 표상하는 숫자 0은 이미 결핍으로서의 0과는 다르 다. 말하자면 여타 숫자와는 상이한 숫자가 나타나 여타 숫자와 동일하게 계산됨으로써 수의 연속이 이루어진다. 이 숫자가 0으로서, 수의 연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즉, 결핍이 0으로서 출현하고 이 0이 1로서 출현하 는 것이 수의 연속이 출현하도록 만든다. 이것이 논리적 봉합의 메커니즘 이다. 그러므로 숫자 0은 결핍에 대한 봉합적인 대역(the suturing stand-in for the lack)이다. 숫자들의 계열이 발생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이것에 의해 지탱된다. 즉, 결핍 0은 1로서 계산되는 숫자 0에 의해 대역되는 동시에 배제된다(또는 사라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0의 논리는 기표, 특히 기표들 의 사슬을 정박하여 의미의 그물망을 일시적으로 구축하는 주인 기표의 논 리와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주체의 논리와도 같다. 주체는 기표와 의 동일시에 의해 구성되는 동시에 주체의 존재, 무라는 진실은 기표의 사 슬 바깥으로 추방된다. 즉, 주체는 담론의 질서 속에 나타나는 동시에 배 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체의 구성 과정, 즉 주인 기표와의 동일시가 기표의 사슬을 정박하고 의미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는 기표 의 효과이고 기표는 주체의 표상체이며, 이것은 상호적이지는 않은 원환적 관계를 형성한다. 봉합은 이렇게 가려지는 가운데 깜박거림(flickering in eclipse) 으로 정의될 수 있는 주체의 구조를 표현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기표들의 사슬로서의 담론 속에서 주체는 대역의 모습으로 자신 의 상실, 결핍을 형성화한다. 따라서 봉합은 주체가 기표의 외양 속에 상 징계 속으로 자신을 삽입하면서 존재의 희생을 대가로 의미를 얻게 되는 계기로 규정된다. 봉합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발화된 언표의 1인칭 대명사 나 이다. 그것은 발화 행위의 주체와 결코 합치되지 않는다. 그러나 히스 (Heath)에 의하면 바로 이 봉합은 결핍의 계기뿐만 아니라 메꿈(채움)의 계기도 함축하는 것이다. 결국 주체는 자신이 대역되는 기표의 효과이며, 이데올로기는 이렇게 하여 상징계 속에서 주체가 생산되는 과정, 즉 기표 - 4 -
의 사슬 속에 위치가 정박되고 환유가 중지되는 것, 그러나 끝없이 계속되 는 과정으로서의 중지에 의존한다. 장 피에르 우다르(Oudart)는 밀레르의 봉합 개념을 영화에서의 주체 구성 에 적용한다. 우다르에 따르면, 영화 관람 과정의 첫 단계는 이미지와 관 객이 즐거운 관계를 맺는 계기이다. 그러나 프레임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 간 이 관계는 깨어지고 이미지는 그 한계 내에서 보여지며, 관객은 이미지 바깥에 존재하는 부재의 영역(프레임의 한계를 설정하는 부재하는 자(the Absent One) 의 존재)을 깨닫게 된다. 이 순간 영화는 담론이 된다. 즉, 부재의 영역을 인지하는 순간 그 숏은 부재의 영역의 기표가 되고 즐거움 은 불쾌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카메라의 시선, 즉 응시와 관객 자신의 시선 사이의 분리를 인지하는 순간이다. 이 계기에서 생기는 결핍감은 관객 내부에서 (이 결핍 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다른 무엇 을 보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는데, 여 기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 바로 부재의 제거(채워 넣음), 즉 담론의 봉합이 다. 대체로 관객은 영화 속의 허구적 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영화 속에서 부재를 재전유한다. 그 결과, 허구 속의 등장인물이 관객에 의해 설정된 부재하는 자 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우다르의 논의를 이어 받고 있는 다얀은 이것이 그림 속에 묘사된 대상이 이미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주체의 현전의 기표가 되는, 즉 그림 자체가 바라보는 주체의 시선에 종속되어 있는 고전적 재현의 체계와 동일하다고 본다. 거기에서 관람자는 그림을 바라보는 부재하는 주체의 자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는 영화의 단일 프레임은 고전회화와 등가적이며, 적어도 고전적인 내러티브 영화들은 이러한 재현 체계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의 이미지들의 연속은 이 재현 체계를 교란함으로써 자 신의 기능을 노출시킬 위험을 가져온다. 그것은 누가 이것을 보고 있는 가?, 누가 이 이미지들을 질서 지우는가? 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관객의 이 의문에 대답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생산 체계 의 코드를 숨겨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봉합의 기능이다. - 5 -
다얀은 특히 숏(shot)/리버스 숏(reverse shot) 을 봉합 체계로 보고 있다. 예컨대, 고전적인 극영화에서 첫 번째 숏은 180도의 규칙 등 표준적인 원칙들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어떤 공간을 보여 준다. 두 번째 숏은 동일한 원환의 다른 180도 이내에 있는 응시자를 보여 줌으로써, 앞에 나온 첫 번째 숏이 영화적 서사 내부의 어떤 인물의 눈을 통해 보여진 것이라 암시 한다. 그 결과 발화의 수준은 허구의 수준으로 흡수되고 발화 언표의 주체 가 발화 행위의 주체인 것처럼 된다. 결국 숏/리버스 숏 구성체는 관객의 시선을 등장인물의 그것에 연결시킨다. 이것은 관객의 상상계를 해방시키 는 동시에 의미를 생산한다는 이중의 기능을 한다. 관객의 상상계를 해방 시키는 기능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번째 숏이 등장인물과의 동일시를 통해 이미지와 관객의 즐거운 상상적 관계를 복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미 생산의 기능이 수행되는 것은 프레임을 의식한 관객에게 시각의 장은 부재 하는 자의 현전을 의미함으로써 의미 작용으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즉, 영 화적 이미지는 기표가 되며 부재하는 자가 그 기의인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숏은 첫 번째 숏의 기의가 되면서 첫 번째 숏을 소급적으로 기표로 만든다. 한편 히스(Heath)에 따르면, 숏/리버스숏에 의한 숏들 간의 접합은 봉합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단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히스 역시 부정 의 과정, 즉 영화가 부재와 상실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강조한다. 즉, 고전 적 영화 조직은, 허구적 등장인물을 자신에 대한 대역으로 허용함으로써 혹은 특별한 시점으로 하여금 자신이 보는 것을 규정하게 허용함으로써 스 스로 자신에 대해 부재하게 되려 하는 주체의 자발성에 의존한다. 카메라 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 주려 하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만 보여 준다. 여기서 컷은 숏들 간을 분리함으로써 선행하는 숏 과 뒤를 잇는 숏이 현재의 숏에 대해 부재를 구조화하는 기능을 하게 한 다. 이 부재가 하나의 숏을 선행하는 숏의 기의이자 뒤에 오는 숏의 기표 가 되게 함으로써 의미 작용의 총화를 가능케 한다. 따라서 영화적 응집성 과 풍부함은 다중적인 컷과 부정을 통해서 일어난다. 이렇게 하여 봉합 체 계는 주체에게 담론적 위치를 규정해주고 다른 대안적인 담론을 거부하게 - 6 -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숏과 숏의 이행, 장면과 장면의 전환에 의해 관객은 끊임없이 불연 속성, 파편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보는 주체(관객)는 봉합을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내러티브의 편안함과 폐쇄성 혹은 완결성에 대한 그의 욕망은 그럴 수록 커진다. 그리하여 영화적 공간을 드라마적 공간으로 변형하고 그럼으 로써 관객에게 주체 위치를 제공하는 내러티브는 봉합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 된다. 즉, 영화 이미지들의 영속적인 환유의 흐름을 내러티브적 완결성 에 의해 조직하고 닫음으로써 이미지들의 불연속과 파편화로 인해 야기되 는 주체/관객의 결핍은 채워지고 그/그녀의 욕망은 충족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내러티브는 영화 내에 존재하는 부재의 자리를 가로지르면서 주 체를 구성하며, 이 봉합은 계속적인 것으로서 주체의 구성-재구성 은 항상 갱신된다. 담론으로서의 영화의 실현은 주체에게 말을 거는 것, 불완전성 -완성의 유희를 특정화하는 것을 구체적인 영화를 통해 매순간마다 생산 하는 것이다. [...] 내러티브화, 내러티브로의 항상적인 전환[은] 내러티브 의 이미지 속에서, 그리고 그것[주체]의 내러티브화(narration)로서의 영화 속에서 관객을 주체로서 붙잡는 것이다. 따라서 내러티브의 중요한 역할은 무엇보다도 이미지들의 폭력적인 연속에 시간적 정합성을 부여하고 일관적인 주체의 시점을 형성함으로써 안정된 허구적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형상들의 움직임, 카메라의 운동, 숏들 간 의 전환에 의해 야기되는 영화의 가동성(mobility)은 카메라를 눈으로서 지 탱하는 데 관심을 두는 사진적 시각의 공간(이것이 이상적 공간이다)과 공 모적이면서도 그것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데, 이데올로기적 결정의 구체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영화는 연극적 영화로 접합되는 지배적 경향을 형성함 으로써 이 위협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영화의 고전적 경제학은 자신을 유 기적 통일체로서 조직화해 내는 것, 즉 내러티브화이며, 이것은 영화 자신 의 생산 과정과 그 흔적을 지워버리면서 투명성을 배태한다. 이 과정에서 행동과 공간과 주체의 통일성, 연속성을 창조하는 것은 소설적 내러티브의 모델을 따른다. 180도 규칙이나 시선의 일치(eyeline-match)등 고전적 내 러티브 영화들이 활용하는 편집과 시공간 접합의 기법들을 모두 이 목적에 - 7 -
기여하는 것이다. 히스에 따르면, 영화의 내러티브의 기능에 있어선 공간의 접합이 결정적이 고 근본적인 것이다. 공간의 구성은 주체를 내러티브로서의 영화에 결박하 는 것이고, 시선과 시점의 사용은 이 봉합 과정에 근본적 역할을 한다. 주 체 생산의 정의가 그러하듯이, 봉합은 영화에서 이미지의 움직임이 야기할 수 있는 주체성의 교란 효과를 통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의한다면, 영화에서의 봉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러티브이 다. 특히 지배적인 할리우드 영화를 특징짓는 고전적인 내러티브의 전략은 공간의 통일성을 생산함으로써 원근법적인 공간을 구축하고, 관객을 이 공 간에 결박시켜 중심적인 관찰자의 총체적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그/그녀를 이 공간의 중심이자 통일되어 있는 주체로 구성하는 것이다.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