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동은 조선시대 문헌, 지도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24시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그러한 이곳에 재개발을 앞두고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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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동,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사람들이 이주헤 왔을까? 왜 하고 많은 곳 중에 아현동을 택했을까? 아현동이 가지고 있는 매력포인트 를 살펴보자. 그리고 아현동에 관한 전설, 문헌에 나타난 아현동에 대한 기록, 주민들 의 동네 소개를 통해 아현동만의 색깔을 느껴보자. human story 1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 하나 #01 행정구역으로 본 아현동 #02 역사 속에서 만나는 아현동 #03 아현동의 미래 - 재개발

아현동은 조선시대 문헌, 지도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24시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그러한 이곳에 재개발을 앞두고 변화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 행정구역으로 본 아현동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 I 0 8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 아현동은 서울의 25개구의 하나인 마포구의 동북쪽에 자리잡고 있 다. 아현2동은 동쪽에 만리동, 서쪽에 염리동, 북쪽에 북아현동, 남쪽에 공덕동과 접하고 있다. 아현동과 접한 주요도로로는 북쪽에 신촌로가 지 나고 있으며, 동쪽의 마포로가 지나고 있다. 신촌로에는 지하철 2호선이, 마포로에는 지하철 5호선이 지난다. 면적은 마포구 전체 대비 1.8%에 달하는 0.48km2이며, 사는 사람들은 총 7,953세대 17,571명(남 : 8,657명, 여 : 8,914명)이다. 아현2동은 총 27통 181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 아현동사무소 홈페이지(2006년 통계) 동연혁 아현동의 역사는 짧지 않다. 이미 조선시대에도 어엿한 행정구역으 로서 존재를 했었다. 아현동의 연혁을 살펴보면 아래 표와 같다. 시 대 행정지명 비 고 조선시대 한성부 서부 반송반 아현계( 阿 峴 契 ) 1913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아현리 1936 경성부 아현정 1943. 6. 1 서대문구 아현정 1944. 10. 23 마포구 아현정 1946. 10. 1 마포구 아현동 1955. 4. 18 아현 1, 2, 3, 4동으로 분리(서울시 조례 66호) 1970. 5. 18 아현 1, 2, 3, 4동에서 1, 2, 3동으로 변경 2007. 1. 2 아현 2, 3동이 아현 2동으로 통합 2008. 1 아현 2동과 공덕 2동 통합 출처 : 아현동사무소 홈페이지 0 9 I 이야기 하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 역사 속에서 만나는 아현동 아현동에 얽힌 갖가지 이야기들 서대문 사거리에서 종근당 빌딩을 지나 마포대로로 넘어가는 고개 를 애오개라고 한다. 새로난 길들 때문에 원래 모습은 사라졌다고 한다. 애오개를 한자로 풀면 아현( 阿 峴 ) 이 되고, 현재 행정구역명인 아현동이 되는 것이다. 애오개라는 명칭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아현동의 지명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옛날 한성부에서 서소문 을 통하여 시체를 나가게 하였는데 아이 시체는 이 고개를 지나서 묻게 하 였기 때문에 아이 시체를 매장한 언덕이라 하여 애오개라고 부르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 무덤이 많아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애오개 탈춤놀이라고 한다. 애고개 탈춤놀이는 아이들이 주요 등 장인물이며, 지금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전승되고 있다. 실제 아현동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인근에 형무소가 있었 는데, 그곳에서 나온 시체도 아현동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산7번지 로 불리는 곳이 바로 묘지자리였다. 이 산7번지는 지금도 상수도 등 공사 를 위해 땅을 파면 인골( 人 骨 )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한다. 남쪽에 만리현과 서북쪽의 대현( 大 峴 )이라는 두 큰 고개 중간에 있 는 이 고개가 작기 때문에 애고개 즉 아현( 兒 峴 )으로 부르던 것이 兒 가 阿 로 변하여 아현( 阿 峴 )이 되고 그 고개 이름 아현이 그대로 동명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풍수설과도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성(서울)의 주산( 主 山 ) 을 부아악( 負 兒 岳, 북한산)이라 불렀는데 이 아이[ 負 兒 ]가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에 있는 산을 모악( 母 岳 ), 남쪽 산을 벌아봉, 모악에서 서남 쪽 산을 병시현( 餠 市 峴 )이라 칭하게 되었다. 벌아봉은 아이를 못떠나게 하는 의미이고, 병시현은 떡으로 달랜다는 뜻인데 병시현이 바로 아이를 달래는 고개인 아현( 兒 峴 ) 이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의 고증이나 백과사전에는 충정로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고개 의 모습이 아기를 업은 엄마의 모습이라 하여 애오개 또는 애우개 라고 애오개 역 불렀다고 한다. 출처 : 아현동사무소 홈페이지, 마포구지(1992), 한국지명총람-서울편(1966) 산7번지 아현시장에서 4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으로 올라가면 산7번지가 나온다. 산7번지는 조사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아현동의 꼭지점 같은 곳이다. 현재는 다세대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아현동에 사 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할 때는 초가집, 판자집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7번지 아현동에서 태어나 50여년째 아현동에 살고 있는 통장 김철영은 과 거 산7번지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일제시대 때 대지 10평에 초가 4칸(4평)을 지어 이곳으로 사람들을 이주시켰다고 그래요. 당시 수수깡을 엮어서 진흙을 양쪽에 발라 굳혀서 벽을 만들고 지붕에 초가를 얹어 집을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 I 0 10

만들었어요. 대부분 집의 구조가 그랬어요 라고 하며, 일본인들이 산7번 지를 도둑놈 소굴 이라고 불러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더라고 요. 산7번지에는 도둑들이 많이 들어와 은신하던 곳이기도 하였지만 일본 순사들이 함부로 들어왔다가는 몰매를 맞아 나가기 때문에 들어오지 않 았다고 그래요. 라고 이 곳을 소개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공동묘지가 넓게 있었기 때문에 집을 지 으려고 땅을 파면 해골들이 즐비하게 나왔다. 그때 판잣집과 함께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빨간 양기와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80년대 말까지 현 재의 부동산 앞길은 리어카 하나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길이었다. 그리고 80년대 말에 마을 재개발이 시작되었고 그러면서 현재의 건물들과 다세 대 집들이 들어서게 된다. 현재도 고개 밑에는 예전의 빨간 양기와 집들이 몇 채 남아 있다. 70년대 이전 아현동에 들어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산7번지에는 호 박밭이 있었다고 하며, 물이 귀해 물 긷는 것도 큰일이었다고 한다. 동네 에 불량배들이 많아 인근 지역에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 심지어 경찰서에 끌려가더라도 산7번지 출신이라고 하면 뺨을 한 번 더 맞았다 라고 할 정도였다. 또한 산7번지, 산8번지 등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다보니 동 네지명만 대도 못사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정도였다. 여우고개 아주부동산 권정범에 의하면 현재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지만, 부동산이 있는 656번지에서 이대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여우 가 살았다 해서 여우고개라 했다. 예전에는 이 곳에 사람이 살지 않았고, 공동묘지가 있었다고 한다. 개바위 산7번지 꼭대기에서 염리동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예전에는 큰 바위 가 있었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 내려져 온다. 귀향 가는 주인을 기다리다 바위가 된 충성스러운 개 옛날 조선시대 때 마을의 어느 대감이 귀향을 가게 되었다. 그때 그 대감이 기르던 개가 대감이 마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귀향가는 모습을 언덕 위에 올라가 바라보았다. 마포나루에서 대감을 태운 배가 떠난 후에도 개 는 돌아가지 않았다. 충성스러운 개는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서 귀향 간 대 감을 기다렸다. 결국 개는 그 언덕 위에서 죽었고, 죽은 개는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유호남씨(남자, 66세)가 40여 년 전 개 바위 근처 하꼬방집에 살 무렵 동네의 어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개바우 밑 신령스러운 구렁이를 건드려 죽은 인부 0 11 I 이야기 하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개바위가 있던 곳은 원래 대원군이 소유하고 있던 땅이라 한다. 70 년대 당시 동양극장 이사장이던, 김갑수라는 사람이 그 땅을 샀다. 땅의 새 주인은 그곳에 집을 짓기 위해 축대를 쌓고 개바우도 모두 없애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당시 부르도자(불도저:bulldozer) 운전수가 개바우를 없애는

공사를 하여는데 그 전날 밤에 꿈을 꾸었다. 꿈속에 신령스러운 목소리는 3일만 기다려 주시오. 3일만 기다려 주시오 라며 간곡이 운전수에게 부 탁하였다. 개바위 공사를 맡은 운전수는 개바위의 공사를 3일 기다려 달 라는 꿈인 것을 짐작하였으나, 지시를 받은 공사이기 때문에 본인의 마음 대로 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날 공사를 감행했다. 그런데 바위를 들추 는 순간 그 아래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몸을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러나 별다른 수가 없었기에,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다. 개바우를 없애는 작업도 모두 마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공사가 있고는 며칠 후, 운전수는 이렇다할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다. 운전수가 죽고 나서 그 운전수의 부인이 울며, 개바위가 있던 곳으로 찾아왔다. 부인은 운전 수와 그의 꿈, 그리고 구렁이에 대한 모든 얘기를 들려주었다 한다. 이 이 야기는 유호남씨가 울며 이야기 하는 운전수 부인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 기라 한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개바위를 철거할 때 큰 소동이 났었다 고 한다. 학교를 짓기 위해 이 바위를 부수게 되었는데, 포크레인으로 바 위를 들어내자 그 밑에서 큰 구렁이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차량에 의해 구렁이가 그만 반 토막이 나 죽어버렸다. 그러자 차량 운전수도 죽었 다고 한다. 놀란 주민들이 돈을 걷어 굿을 했는데, 때마침 이 개바위 근처 에 이북에서 월남한 만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5일 동안 굿을 하여 이 난리를 진정시켰다고 한다. 개바우가 있을 때 그곳에서는 굿이 끊이지를 않았다고 한다. 무당들 이 떡과 음식을 해서 항상 북과 방울소리를 내며 굿을 했다. 그곳에서 기도 를 올리는 것은 마을의 어머니들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의 일이 있거나, 소 망하는 일이 있을때 정갈히 만든 떡시루를 들고는 그곳으로가 기도를 드 렸다. 옛날에는 매년 음력 7월에 개바위에서 마을 공동 제사도 지냈다고 하는데 출처 : 한국지명총람-서울편(1966),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했다. 위의 전설들과 달리 이곳에서 마을사람들이 개를 자주 잡아먹어서 개바우라 불리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최춘원, 남자 68세 또한 그 시절 개 바우 근처는 유명한 데이트 코스여서 항상 젊은 남녀 커플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땅달보산 아현동 서부교회 일대로 옛날 키가 작은 붓장수 할아버지가 부모 묘 를 써놓고 매일 다니던 산이다. 마포나루로 향하는 길목인 이 곳에 무덤을 쓸 수 없게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비도 없거니와 달리 묘를 쓸만큼 기운도 없던 붓장수 할아버지는 밤중에 몰래 묘를 만들어 놓고 묘에 이상 이 없는지 매일 다녔다. 그러나 키가 워낙 작아 멀리서 보면 어린 아이처 럼 보이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 후 사람들은 이 일대를 땅딸 보산으로 불렀다. 출처 : 마포구지(1992)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 I 0 12

선통물천( 善 通 物 川 ) 옛날 마포항에 많은 물건이 들어오면 애오개쪽에서 마포 포구로 흐 르는 개천을 먼저 거슬러 올라온 다음 장안으로 반입되었다. 즉 물건이 먼 저 통과하는 개천[ 先 通 物 川 ]이라는 뜻인데 이후에 먼저 선( 先 )자가 착할 선( 善 )자로 바뀌어 있으며, 일제시대에는 지금의 봉원천 쪽으로 터널을 뚫어 물길을 돌렸다. 개천은 북아현동에서 아현시장을 통해 선통물천을 지나 마포쪽으로 흘러 한강으로 통해있다. 현재는 그 터와 돌에 새긴 글자 만이 남아있다. 그 앞 공터는 환경미화원들의 집결소가 되었고, 각종 생활 쓰레기를 모으는 곳이 되어있다. 선통물천 위치와 표지판 선통물천 자리와 표지판 기타 지명 전설들 아현동에는 우물이 몇 개 있다. 현재는 모두 사용하지 않는다. 말똥우물이라고 있다. 이곳의 우물의 빛이 누르스름해서 말똥 같다 하 여 붙여진 것인데 위장병에 특효가 있었다고 한다. 삼태우물이라고 해서 일 명 삼태물로 불리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터가 삼태기처럼 생겨서 붙여진 명 칭이다. 또한 두개가 양 옆에 있어 쌍우물, 까치가 마시는 샘물이라 해서 까 치 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는데, 수량이 매우 적었다고 한다. 출처 : 마포구지 (1992) 그러나 오래산 아현동 주민들에 의하면 이들 우물물들은 맛이 짜고 미끌거려 식수로 사용 못하고 걸레 정도나 빠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헌에서의 아현동 승정원 일기에 보면 숙종 37년인 1711년에는 아현동에 호랑이가 출 몰하여 피해를 끼친 모양이었다. 무려 포수 80여명을 동원하여 호랑이를 쫓아내려 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禁 營 啓 曰, 因 漢 城 府 啓 辭, 阿 峴 近 處 有 虎 患, 令 三 軍 門 尋 捕 捉 事, 允 下 矣 本 營 善 放 砲 手 六 十 名, 將 校 二 員 領 率, 西 北 別 付 料 軍 官 中, 善 於 捉 虎 者 數 人, 亦 爲 出 送, 與 兩 局 軍 兵, 竝 力 尋, 期 於 捕 得 之 意, 敢 啓 傳 曰, 知 道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는 비변사 자료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의 출몰이 빈번했던 모양으로 비변사 자료에 보면 영조42년(1747년 12월) 영 의정이 아현동에 포수를 보내어 호랑이를 포획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 는 내용도 있다. 又 所 啓, 此 卽 漢 城 府 報 狀 也, 以 爲 阿 峴 人 家 前 田, 明 有 虎 行 之 跡 云, 而 且 臣 之 一 家 人, 在 於 西 部 盤 松, 而 見 其 私 書, 則 謂 其 近 處, 連 有 猪 犬 被 之 患, 且 有 吼 哮 之 聲 云, 而 京 兆 推 問 於 該 府 該 里, 則 皆 稱 無 之, 此 則 恐 其 以 不 報 被 罪 也, 從 他 聞 之, 亦 果 實 狀 云, 卽 令 該 軍 門, 發 遣 善 放 砲 手 捕 捉 何 如, 漢 城 判 尹 柳 儼 曰, 本 府 亦 有 所 聞, 査 問 西 北 部 吏 及 該 洞 任 掌, 則 阿 峴 近 處, 有 虎 跡 云, 近 來 虎 患 連 在 近 畿 云, 故 更 爲 披 問 則 東 部 亦 有 此 患, 極 可 慮 也, 今 方 連 報 備 局, 而 不 可 不 及 時 捕 捉 矣, 上 曰, 依 爲 之 0 13 I 이야기 하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아현( 阿 峴 )계 동명( 洞 名 )은 육전조례( 典 條 例 )등 고종조( 高 宗 朝 )때

많이 보이는데, 그 중 고종31년(1894년) 갑오경장 때 종래 한성5부의 부 ( 部 )로 고칠 때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한성의 동 남 중 서 북의 5서 중 서서 반송방( 西 署 盤 松 坊 )과 북서 연희방( 北 署 延 禧 坊 )으로 아현의 여 * 출처 : 국가전자도서관 검색어 : 아현 관련기사/전체기사수 : 53/79 러 동명( 洞 名 ), 계명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즉 서부 반송방( 西 部 盤 松 坊 )과 북부 연희방( 北 部 延 禧 坊 )에 있는 계 동명 중 아현명칭의 계가 5, 동이 4개소가 있는데 그것은 안산( 鞍 山 ) 의 남쪽으로 뻗어나간 줄기 즉 지금의 아현동 고개 마루를 중심으로 한 북 쪽의 대현( 大 峴 ), 남쪽의 만리현( 萬 里 峴 ) 사이의 지역을 아현으로 통칭하 던 데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여진다. 동중( 洞 中 )에는 흔히 애우개 로 불리어지는 아현의 고개마루는 물 론 굴레방다리, 오부수마을, 큰 행화동, 작은 행화동, 행화교( 杏 花 橋 ), 너 럭바위, 너럭바위샘 등의 지명( 地 名 )이 남아 전해져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견한잡록( 遣 閑 雜 錄 : 선조 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우리 지방 기로( 耆 老 )의 모임이 둘이 있다. 하나는 아이현( 兒 耳 峴 ) 의 여러 늙은이(고개 아래 거주하는 이들)들이 경진년(선조13년, 1580년) 가을부터 모임을 가지다가 임진년 여름에 와서 난리를 만나 흩어졌는데 매달 각 집으로 돌아가면서 모임을 가지며 활쏘기를 하고 혹은 바둑을 두 고 시를 지으며 즐겼다. 처음에는 20인이었는데 나중에는 9인이 되었다. 하나는 만리현의 여러 늙은이(고개 아래 거주하는 이들)들이 임진년 (선조 15년) 봄부터 모임을 갖다가 임진년 여름에 난리를 만나 흩어졌는 데 매달 돌아가며 모여 활 쏘고 바둑 두며 시 짓는 것이 아현과 같았다. 또한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서활인서( 西 活 人 署 )가 있었는데, 현재 아현중학교 자리가 그곳이라고 한다. 언론에서 본 아현동 신문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좋은 기사보다는 사건과 사고를 주로 싣 게 마련이다. 아현동에 관한 검색 결과 1945년까지 신문자료에 나타난 아 현동에는 그리 좋은 일이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예전에 술집 여자들이 이곳에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실수로 교 육 도시개발 도시행정 보건환경 사건사고 사회봉사 사회조직 4 4 5 5 29 2 4 아이를 가졌을 때, 아기를 낳고서는 현 산7번지 쪽 언덕에 많이 유기했다 고 한다. 신문기사에서도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아현동은 최근에도 크게 방송을 탔다. 1990년대와 2005년 아현시장 방화사건, 1994년 도시가스 폭발로 많은 사상자가 난 것이 신문지상을 장 식했다. 조사 기간에는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아현동 마님 이라는 드라 마를 방영하기도 했다. 1936년 5월 21일, 조선중앙일보. 화장실에서아이의시체가발견되었다는 기사 주민들의 입장에서 본 아현동 아현동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 이곳을 소개한다면 어떤 곳이라고 소개할지 물 어보았다.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 I 0 14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죠. 지금도 산7번지 아현동 하면 다들 못사는 사람들이 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지만 여기는 더 심했어요. 산7번지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람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깡패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깡패도 못되고 동네에 건들건들하는 양아 치들이죠. 싸움 좀 한다고 시끄럽게 하고 다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 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학교 다니고 그럴 때니까 20~30년 전에는 매일 같 이 동네에 싸움이 나고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 젊었을 때 그때도 여기는 그렇게 싸움하고 그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아무 래도 못사는 사람들 모여 살고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험한 싸움도 많이 나 고 그러는 거 같아요. 근래에 들어서 좀 조용해졌지 유명한 동네였어요. 싸움도 막 칼이나 흉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이었으니, 여기 마포에 나가 서 산7번지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안 건드리죠. 가진 거라고는 몸밖에 없 는 사람들이니 무섭죠. 먹고사는 거 다 갖추고 사는 사람들은 자기 가족들 생각하고 이것저것 지킬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가진 것 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었죠. 지금도 산7번지 아현동 하면 다 들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지만 여기는 더 심했어요. 157번지, 남자, 30대 교통이야 좋지, 정말 교통이야 최고로 좋지. 최춘원, 남자, 68세 촌처럼 인심은 좋지. 말만 서울 도시이지 촌이랑 마찬가지지. 서로 서로 이웃사촌이야. 유병학, 남자, 57세 위의 이야기들 처럼 대부분의 제보자들은 이곳은 매우 가난했고, 지 금도 가난하며,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서울 같지 않게 인심도 좋고 서로 없이 살지만 항상 나누어 먹는 시골 인심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교통이 매우 편리한데, 주변에 시내와 곧바 로 연결되는 지하철, 버스 등이 있다는 것이 나름대로 자랑거리 중 하나라 고 이야기들을 했다. 1935년 3월 7일, 매일신보. 화장실에서아이의시체가발견되었다는 기사 남성들에 비해 여성들, 특히 나이가 많은 여성들은 별로 추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대답을 많이 했다. 예전에 빨래터도 멀었고, 언덕이 높아 살기가 무척 불편했었다고 한다. 장추자, 여, 61세 등 다시 태어난다면 이곳 에는 절대 다시 오고 싶지 않겠다는 여성들이 꽤 있었다.157번지, 여, 65세 등 반 면 남성들은 그래도 인심 좋은 이곳에 정이 많이 들었으며, 이곳이 재개발 0 15 I 이야기 하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한다.

# 아현동의 미래 - 재개발 이번에 조사한 아현동 일대는 서울시의 뉴타운 건설계획에 따라 기 존의 건물들이 다 철거되고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재개발이 된다. 특히 이 지역은 인간,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미래를 담는 복합생활 문화타운 을 지향한다. 사업개요 위치 총개발면적 마포구 아현동 633번지 일대 1,088,000 평방미터(329,000평) 건립 규모 18,500가구 45,000명 사업기간 2005~2013년 개발 방식 개발 방향 주택 재개발사업, 주택 재건축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 등 구릉지의 지역성을 반영한 하늘마당 공원과 전체 타운을 연결하는 생활가로 보행위주의 자연친화적 뉴타운 건설 위치도 추진경위 2003. 11. 18 아현뉴타운지구 지정 2004. 10. 29 주민 설명회 개최 및 주민의견 수렴 2004. 12. 15 서울시 지역균형발전위원회 심의 2004. 12. 30 아현뉴타운개발기본계획 승인(서울시공고제1431호) 2005. 12. 29 아현3주택재개발구역 결정 2006. 09. 01 아현3주택재개발 조합 설립 인가 2006. 12. 28 공덕5주택 재개발구역 결정 2007. 05. 15 공덕5주택 재개발구역 조합설립인가 2007. 06. 14 염리2, 3 주택재개발 구역지정을 위한 공람공고 2007. 8. 27 아현3주택재개발 사업시행인가 2007. 9. 06 공덕5주택재개발 사업시행인가 2007.12. 6 2008.1.10 2008.1.17 2008.3.6 염리3 주택재개발 구역지정 염리2주택재개발 구역지정 공덕5주택재개발 관리처분계획인가 마포6 도시환경정비구역지정 출처 : 서울시홈페이지 주민들 반응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뜨거운 편이다. 재개발을 뜨 겁게 환영한다는 말이 아니라 재개발을 하는 것에 대한 분노로 머리와 가 슴속이 뜨겁다는 말이다. 산7번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서울시의 정책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르지만, 도대체 이러한 재개발 사업들은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지 어디 힘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을 위한 것이냐며 맹비난을 가했다. 또한 최춘원 같은 이북 출신의 실향민들은 남한에서의 고향이 속절없이 개발된다는 사실에 착잡함을 감추지 않았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훨씬 더 걱정이 많다. 92세 이 할머니와 그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 I 0 16

녀의 친구들은 혼자 사는 노인은 아무리 돈이 있어도 새로운 곳에서 방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집주인 입장에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노인들 에게 방을 내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사를 하면서 재개발이라는 단어 만 나와도 주민들은 한숨을 쉬고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서슴없이 내비쳤 다. 특히 수 십 년 동안 고생고생하다가 이제서 겨우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서울생활에서 아현동을 벗어난다면, 현재 가진 재산으로는 도저히 서울 시내에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점점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며, 교통 교육 등의 불편함으로 가난이 대물림할 것이라고 주민 들은 한탄했다. 많은 수의 제보자들이 자신들 소유의 집이 아닌 세입자 신 세이며, 온통 투기꾼들이 아현동을 점령한 것에 분노하고 있고, 결국 원주 민들이 서울에서 벗어나 또 다른 도시빈민으로 거듭나는 것을 두려워하 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지방에서 올라와 아현동에서 젊은 시절을 다 보낸 노년층들은 아현동을 고향이라고 살고 있었는데, 정든 이곳과 인심 좋았 던 이웃들과 헤어지게 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진제공_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0 17 I 이야기 하나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