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5년 사업 내용 보고 1. 연길지역 재중동포 대상 근대사 특강 -일 시: 2015. 8. 23. 16:00 -장 소: 연길시 신개원호텔 -강연주제: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중일 시민사회 강 사: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 -강연주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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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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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간물은국방부산하공익재단법인한국군사문제연구원에서 매월개최되는국방 군사정책포럼에서의논의를참고로작성되었습니다. 일시 장소주관발표토론간사참관 한국군사문제연구원오창환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허남성박사 KIMA 전문연구위원, 국방대명예교수김충남박사 KIMA객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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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향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의 뜻을 밝혔고, 2010년 8월 간 총리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해 한국만을 대상으로 병합과정의 강제성을 우회적 으로 시인한 간 담화 를 발표했다. 하지만 미야자와 담화 에서 밝힌 근린제국 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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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2 월 1 1일에 모 스 크 바 에 서 서명된 북 태 평양 소하 성어족자 원보존협약 (이하 협약 이라 한다) 제8조 1항에는 북태평양소하성어류위원회 (이하 위원회 라 한다)를 설립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8조 16항에는 위원회가 을 채택해야 한다고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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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2015 한국바로알리기 민간단체지원사업 결과보고서 사 업 명 바른 역사인식 증진을 위한 한-중 민간단체 교류사업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역사NGO포럼(한국) 사업기관 연변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중국) 사업책임자 남상만 사업기간 동의서제출일로부터 ~ 2015. 12. 10 사 업 비 사업진행현황 올해는 제 2 차 세계대전 종전 70 주년, 광복 70 주년, 한일협정 50 주년이 되는 해이다. 아직까지도 한-일 간의 역사갈등의 골이 깊은 것이 현실 이다. 특히 일본 아베정권의 몰역사적인 역사인식으로 인해 한.중.일의 역사갈등해소와 상호협력을 위한 공동의 모색은 점점 더 어려워 지고 있다. 이에 한국의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 NGO 포럼 과 중국의 민간단체인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은 민간차원의 교류를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증진하는 공동대응의 방편으로 역사자료 전시회와 근대사 역사강연을 추진하였다. 역사자료 전시회는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한국)와 남경대학살 기념 관의 자료제공으로 일본군 위안부피해 현황, 남경대학살시 부녀자 성폭 행피해자료,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였다. 역사강연회는 한국의 역사전문가로서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이 중국 현지를 방문하여 재중동포와 현지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 사례와 역사갈등 극복방안과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 문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시급한 현안들을 국제사회에 올바르게 알리고 나아가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한 이 시점에 재중동포들과의 역사인식 공유와 공동의 대응 모색은 시의 적절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고 판단한다. 중국의 정치사회 체제상 시민사회단체가 자율적이고 주관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면도 있으나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 3 국의 공동과제인 역사갈등의 해소와 역사갈등의 심각성을 인식한 연변주정부관계자도 이번 강연회와 전시회를 무리 없이 승인해 주었다. 앞으로 역사현안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사안으로 한-중 시민사회 교류를 통해 한-중 민간외교 확대에도 기여를 하리라 기대한다.

. * 2015년 사업 내용 보고 1. 연길지역 재중동포 대상 근대사 특강 -일 시: 2015. 8. 23. 16:00 -장 소: 연길시 신개원호텔 -강연주제: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중일 시민사회 강 사: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 -강연주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강 사: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참가자: 재중동포 및 현지인 60명. 중국 주요참가자 이경호 연길후사모 회장 김태국 연길후사모 부회장 (연변대 역사학계 교수) 장문철 연길후사모 부회장 (통화해외여행사 대표) 최민호 연길후사모 이사 (연변대 사회학계 교수) 황유생 연길후사모 이사 (연변다원지능연구소 소장) 반창화 연변대학 철학계 박사지도교수 장동일 연변대학 공학원 부교수 허진화 연변대학과학기술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명예회장 허호윤 연변대학과학기술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회장 유림호 연변대학과학기술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상임부회장

리덕봉 연변대학과학기술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총동문회 부회장 안영철 연변한국인회 회장 천국호 연변청년기업가협회 회장 황호성 연길조화새문화협회 회장 2.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자료 전시회 -전시수량: 30점 -전시장소: 연길시 진달래광장 일대 -전시일시: 2015. 9. 19~20 -전시물 자료제공: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한국) 남경대학살기념관(중국)

기타 *사업 비용 내역 정리 사용 내역 프로젝트 내용 예산 1 역사왜곡사진전시회 전시자료 편집비 전시자료 출력비 중국 왕복항공료 3 명 2 역사강연회 중국현지 행사비 (대관료, 식비, 숙박비) 자료집제작비 3 기타지출 송금수수료 총계 작성란이 부족할 경우 추가로 작성하여도 무방함 추가 자료가 있을 경우 제출 요망

2015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바로알리기사업 해외 민간단체 및 학회지원사업 바른 역사인식 증진을 위한 한-중 민간단체 교류사업 주관단체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역사NGO포럼 (한국) 연변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중국)

목 차 1. 사업개요 ------------------------------- 1 2. 일본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 4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3. 동아시아 평화와 한중일 시민사회 ------------------ 15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 4. 연변후사모 활동소개 ------------------------- 29 (이경호, 연변후사모 회장) 5. 전시회 자료 - 일본군 위안부 역사적 진실과 정의 -------- 43

1. 사업개요 사업개요 - 올해는 제 2 차 세계대전 종전 70 주년, 광복 70 주년, 한일협정 50 주년 이 되는 해이다. 아직까지도 한-일 간의 역사갈등의 골이 깊은 것이 현 실이다. 특히 일본 아베정권의 몰역사적인 역사인식으로 인해 한.중.일의 역사갈등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 한국의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역사 NGO 포럼 과 중국의 민간단체인 후 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은 민간차원의 교류를 통해 올바른 역 사인식을 증진하는 공동대응의 방편으로 역사자료 전시회와 근대사 역사 강연을 추진하였다. - 전시회는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와 남경대학살기념관의 자료제공으 로 일본군 위안부피해 현황, 남경대학살시 부녀자 성폭행피해자료,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였다. 강연회는 한국의 역사 전문 가들이 중국 현지를 방문하여 중국 현지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역사왜곡 사례, 역사갈등 사례와 극복방안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였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회복 문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시급한 현안들을 국제사회에 올바르게 알리고 나아가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한 이 시점에 중국 동포들과의 역사인식 공유와 공동의 대응은 시의 적절하고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단한다. - 1 -

사업내용 1. 연길지역 재중동포 대상 근대사 특강 일 시: 2015. 8. 23. 16:00 장 소: 연길시 신개원호텔 강연주제: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중일 시민사회 강 사: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장) 강연주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강 사: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2 -

2.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자료 전시회 -전시수량: 30 점 -전시장소: 연길시 진달래광장 일대 -전시일시: 2015. 9. 19~20 -전시물 자료제공: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한국) 남경대학살기념관(중국) - 3 -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1.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은 어떻게 변해왔나 1-1. 한일협정과 역사인식 문제 o 1945년 8월 한국이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되고 나서 6년이 지난 1951년 10월 20일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이 개최되나, 일제 35년간의 식민지 지배 에 대한 양국의 역사인식은 근본적으로 달랐고, 이로 인해 한일회담은 중 단과 재개를 반복하게 됨. - 일본은 식민지배가 병합조약에 의한 합법 통치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 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일본의 지배는 원천적으로 불법 무효라는 인식 을 갖고 있었음. - 일본의 이러한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53년 10월 일 본측 수석대표 구보다 간이치로( 久 保 田 貫 一 郎 ) 발언으로, 구보다는 법 률적 청구권을 주장하는 홍진기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일본이 36년간 벌 거숭이산을 푸르게 바꾸고 철도를 건설하고 논을 늘리는 등 많은 이익 을 주었으므로 일본 측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고 반론 - 이 발언으로 인해 한일회담은 4년 반 동안 중단됨. o 14년에 걸친 교섭 끝에 한일협정이 체결되는데, 양국 간의 과거사에 대 한 인식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음. - 한국병합 조약에 대해 한국정부는 당초부터 원천적으로 무효 라고 해 석했으나, 일본정부는 지금은 무효이나 당시에는 유효하고 합법적 이 었다고 해석 - 다만, 1965년 1월 17일 한일회담 조인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시이 나 에쓰사부로( 椎 名 悦 三 郎 ) 외무장관이 양국 간의 긴 역사 중에 불행 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며 깊이 반성한다 는 성명 - 4 -

서 발표 1-2.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 o 1982년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일본정부에 의해 일본의 침 략 이 진출 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 문 제가 다시 한일 간의 외교문제로 등장 o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은 미야자와 기이치( 宮 澤 喜 一 ) 관방장관이 1982년 8월 26일 담화를 통해 일본 정부는 한국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 라의 국민에게 많은 고통과 손해를 끼친 점을 깊이 자각하고 반성하고 있 다 고 표명하고,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할 때는 이웃 나라들을 배려 하겠다는 근린제국조항 을 만드는 것에 의해 일단락 됨. 1-3. 1985년 나카소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식참배 o 1980년대 들어와 일본정부의 역사인식이 국제적인 문제가 되는 또 하나 의 사건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였는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동 신사가 침략전쟁의 주모자로 처벌받은 A급 전범도 신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임. - A급 전범은 1978년 10월 17일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고, 이 사실 이 1979년 4월 19일 여론에 공개됨. o A급 전범들의 합사 뒤에도 20회에 걸친 총리의 참배가 있었지만 국제적 으로 비판을 받게 된 것은 1985년 8월 15일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 曽 根 康 弘 ) 총리의 참배가 처음 - 이것은 나카소네 총리가 공식참배 임을 내세웠다는 점도 있지만, 한국 과 중국의 국제적 지위 상승 등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도 크게 작용 - 한국과 중국이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발하자 나카소네 총리는 1986 년부터는 A급 전범 합사는 침략당한 상대방 국민의 감정을 자극한다 는 이유로 참배를 중지했는데, 이것은 아시아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 - 5 -

휘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갈등 소지는 만들지 않겠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여겨짐. 1-4. 1990년대 접어들어 일본군 위안부 와 전후보상 문제 분출 o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증언한 이후 위안부 문제가 일본 과거사 문제의 핵심으 로 부각 o 또한 1990년대 접어들면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인한 피해자 들이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급증하 는데, 대부분의 소송이 패소 o 일본 정부가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 문 제로,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4일 고노 요헤이( 河 野 洋 平 ) 관방장관 담 화를 통해 위안부 동원 및 위안소 운영에 정부와 군이 개입했음을 인 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고노담화) - 그리고 1995년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상 을 한다는 목적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었으나, 한국에서는 피해자와 관련 단 체가 이 기금에 의한 보상 을 거부하고 일본정부의 법적 보상과 공식 사죄를 요구 o 일본 정부는 한일 및 한중 외교에서 일본정부의 역사인식문제가 차지하 는 비중이 높아지자, 1994년 6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村 山 富 市 ) 사회당 내각이 발족한 것을 계기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정부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총리담화를 추진 - 1995년 6월 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반성을 표명한 역사를 교훈삼아 평화 결의( 決 意 )를 새로이 하는 결의 ( 決 議 ) 가 채택되었고, 동년 8월 15일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총리담화가 발표됨. - 그러나 총리 담화는 포괄적인 반성과 사죄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모든 배상, 재산 청구권 문제는 법적으로 - 6 -

모두 해결되었고 정부가 개인보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함. - 무라야마 담화 발표 이후, 일본의 총리들은 무라야마 담화를 원용하거 나 계승한다고 표명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사인식을 표명 1-5. 2000년대 접어들어 역사인식 문제로 인한 갈등 증폭 o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2001년 4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가 검정을 통과하 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 泉 純 一 郎 ) 총리가 2001년 취임 이후 2006년 퇴 임 때까지 매년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함에 따라 갈등 증폭 o 그리고 2005년 3월에는 시마네현 의회가 일본이 독도를 불법으로 편입한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 로 정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일본 정부가 2008년 7월 14일 독도를 일본영토로 교육하라는 취지의 내용을 명기한 중학 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를 고시하면서 갈등 고조 o 2006년 취임한 아베 신조( 安 倍 晋 三 ) 총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하지 않음 으로써 파행된 한일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2007년 3월 아베 총리 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함. - 이를 계기로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EU, 대만, 한국 의회에서 위안부 피 해자에게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를 하고 이 문제를 올바르게 교육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됨. o 민주당의 간 나오토( 菅 直 人 ) 총리는 2010년 8월 10일 총리담화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정치 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의 뜻에 반 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을 명기하고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하여, 이에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 을 표 명 - 그러나 간 총리담화는 한국 병합은 부당하나 합법이라는 일본정부의 기 존의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조사와 이를 위한 자료공개 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라야마 담화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움. - 7 -

o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정부는 동 문제 의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에 2차례에 걸쳐 협상을 제안 -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동 문제가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며, 인도적인 차원에서의 해결방안만을 제시 o 2012년 5월 24일에는 대법원이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청 구권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일본 정부는 1965년 협정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입장 고수 o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자민당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 역사인식을 둘러 싼 갈등이 재연되고 있음. 2. 일본 정부의 식민지 지배ㆍ침략전쟁에 대한 인식과 아베 총리 담화 o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는 일본은 지난날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이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으며 총리 담화 등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표명해 왔고, 경제대국은 되어도 군사대국은 되지 않겠으며, 어떠한 문제도 평화적으 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것임 1). o 일본 정부나 담화나 성명을 통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역사인식을 표명해 왔는데, 이러한 인식을 총결산 한 것이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임. - 아베 총리도 공식적으로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표명 o 아베 총리는 2015.8.14 담화를 통해 침략으로 많은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에 반 성을 표명하고, 역대 정부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겠다고 표명하나 아래와 같은 문 1) 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http://www.kr.emb-japan.go.jp/rel/r_postwar/r_postwar_20050831.htm) - 8 -

제점 내포 -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해서는 그것이 마치 세계적 조류였다는 입장으로 과도 한 대외 위협론으로 일본을 정당화 100여년 전의 세계에는 서국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나라들의 광대한 식민지 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배경으로 식민지 지배의 물결은 19세기 아시아에도 밀려왔습니다. 그 위기감이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었 음은 틀림이 없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입헌정치를 내세우며 독립을 지켜냈습 니다.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 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 기를 주었습니다. - 일본의 침략의 주체임을 명시하지 않음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 단으로 두 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영원히 결 별하고, 모든 민족 자결의 권리가 존중되는 세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하겠다는 표현을 사용, 간접적으로 사죄와 반성 을 표명하나, 그 대상에서 식민지 지배가 제외됨.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 죄의 마음을 표명해왔습니다.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사람인 아시아인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가슴에 새기며 전후 일 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대 내각 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 9 -

<자료1> 역사문제 관련 일본 정부 담화 성명 연월일 주체 형식 사안 주요내용 1965.2.20 1972.9.29 일본정부 공동성명 <식민지 지배> 양국 외교부장관 공동성명 / 양국 간의 긴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매우 유감 한국정부 스런 일이며 깊이 반성 일본정부 공동성명 <침략전쟁> / 중 국 정 일본국이 전쟁으로 중국 국민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 것에 대 부 해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반성 1982.8.26 일본정부 담화 <교과서 왜곡> 한국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에게 많은 고통과 관방장관 손해를 끼친 점을 깊이 자각 1985.8.14 일본정부 담화 <과거사 전반>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8.15)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 관방장관 과 손해를 끼친 사실을 자각하고 깊이 반성 1992.7.6 일본정부 담화 <일본군 위안부 > 위안소 설치, 운영, 위안부 모집, 업자 감독에 정부가 관여한 사실 관방장관 인정 1993.8.4 일본정부 담화 <일분군 위안부 > 위안소 설치 운영, 위안부 모집이 정부와 군이 직 간접적으로 관방장관 관여한 사실 및 모집에 관헌이 직접 가담한 사실 인정 1995.8.15 일본정부 총리 담화 <식민지 지배 침략전쟁> 종전 50주년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음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 표명 1998.10.8 일본정부 공동성명 <식민지 지배> / 한국 국민에게 식민지 지배에 의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음 한국정부 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 표명 2001.8.13 일본정부 총리 담화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8.14)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특히 아시아 근린제국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慘 害 와 고통을 강요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 - 10 -

2002.9.17 일본정부 공동성명 <식민지 지배> / 식민지 지배에 의해 조선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 북한정부 음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 표명 2005.8.13 일본정부 총리 2010.8.10 일본정부 총리 담화 <식민지 지배 침략전쟁> 종전 60주년 한국 사람들에게 식민지 지배와 침략행위에 의해 다대한 손해 와 고통을 끼쳤음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 표명 무라야마 담화의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 가 삭제 담화 <강제병합 식민지 지배> 한국 강제병합 100년 식민지 지배에 의해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음을 인정하고 사 죄와 반성 표명. 나아가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의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 를 입었음을 명기 2015.8.14 일본 부 총리 담화 <침략전쟁> 종전 70주년 정 침략, 전쟁으로 많은 손해와 고통을 끼쳤음을 인정. 그러나 그 기준은 1931년 이후로, 지난 대전에 대한 역대 정부의 역사인 식을 계승하겠다고 표명.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전시 하에서 여 성의 존엄과 명예가 훼손된 문제로 일반화 <자료2> 나카소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 이유 전후 40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불행한 역사의 상처는 아직도 특히 아시아 주변 여러 나라의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침략전쟁의 책임자인 특정 지 도자가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귀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민감정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를 피 하려고 금년은 야스쿠니신사 공식참배를 하지 않는다는 고도의 정치결단을 내렸 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결단에 직면하더라도, 자국의 국민감정과 더불어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의 국민감정에 대해서도 고려를 하는 것이 평화우호ㆍ평등호혜ㆍ - 11 -

상호신뢰ㆍ장기안정의 국가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정치가의 현명한 행동의 기 본 원칙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1986.8.15, 나카소네 총리가 중국 후야호방 공산당 총서기에게 보낸 편지) <자료3> 야스쿠니신사 역사인식 전쟁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일본의 독립을 굳건히 지키고 평화로운 나라로서 주변의 아시아 나라들과 함께 번영하기 위해서는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러한 사변과 전쟁에서 존엄한 생명을 바치신 많은 분들이 야스쿠니신사에 전몰 자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제작ㆍ배포 한국어 팸플릿) 러일전쟁의 승리는 세계, 특히 아시아 사람들에게 독립의 꿈을 안겨주었고 많은 선각자가 독립, 근대화의 모범으로서 일본을 방문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나 후에도 아시아 민족에게 독립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아시아의 독립이 실 현된 것은 대동아전쟁 초반에 일본군에 의해 식민지 권력이 타도된 뒤였다. 일 본군 점령 하에서 한 번 타오른 불길은 일본이 패배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어 독립전쟁 등을 거쳐 민족국가가 차례로 탄생했다. (유슈칸 전시실 15 (대동아전쟁) 제2차 세계대전 후 각국의 독립 설명문) <자료4> 고노 담화(1993.8.4)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왔으 나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됐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 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 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 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 12 -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 甘 言 ),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 官 憲 )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 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지( 戰 地 )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 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나라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 에 반해 행해졌다. 어쨌거나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 를 입힌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 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또 그 런 마음을 우리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 다. 덧붙여 말하면 본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국제 적인 관심도 받고 있으며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자료5> 무라야마 담화(1995.8.15) 지금 전후 50주년이라는 길목에 이르러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지나온 세월 을 되돌아보면서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미래를 바라다보며 인류사회의 평화와 번영에의 길을 그르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 13 -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그르치고 전쟁에의 길로 나아가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렸으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 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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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후사모 활동소개 이경호 (연변후대사랑협회 회장) 후사모는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의 약칭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서 최고의 가치는 바로 후대라는 이념과,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삶의 방식은 홍 익인간이므로 사회봉사를 실천해야 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중국정부 의 인정을 거친 주급사단법인입니다. 작년에 후사모에서 진행하였던 연변생태 문화절은 연변의 중국공산당의 핵심인 연변주위선전부, 그리고 정신문명판공실, 연변발전개혁위원회, 연변사회과학자연합회의 이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후사모는 중국공산당연변주위 주정부의 인정과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명으로 되겠습니다. 후사모 행사에 참여한 당정 지도자들과 사회각계 인사들 후사모는 따로 후원업체가 있는 조직이 아니라 회원들의 자원적인 회비 납부로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후사모의 지도부를 보면 회장 상공 이경호는 정부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철학석사이고, 부회장 김태국은 연변대학 역사학부 박사지 도교수이고, 부회장 장문철은 통화해외여행사 사장으로서 고구려, 발해, 항일 - 29 -

유적지를 전문 안내하는 여행사사장이고, 상무이사 최민호는 연변대학 사회학 부교수이고 민속전문가로 중국에서 인정하는(중국국가 TV에 수차 출연) 학자 이고 상무이사 이철권은 심리상당전문가, 상무이사 김장일은 정부부서에서 일 하고, 상무이사 조광수는 한국분으로서 한국의 시민단체에서 사무국장을 수년 간 맡아서 한국의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분입니다. 후사모는 지금 연변지역외에도 중국내에 상해분회, 길림분회가 있는가 하면 한 국에도 분회가 있습니다. 그중 상해분회는 규모가 크고 활동을 광범위하게 전 개하여 후사모를 상해의 동포사회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상해에서 바자회를 열고 있는 상해분회 회원들 후사모는 매달 세번째 일요일이면 정기모임을 가지고 특강을 듣곤 합니다. 참 가회비는 인민페로 50원을 받는데, 그중의 30원은 장학생을 키우는 장학기금 으로 쓰입니다. 후사모가 진행해온 활동 후사모는 다년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는데 주로 두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 - 30 -

다. 즉 후대사랑과 사회봉사입니다. 후대사랑을 위한 활동 청소년 캠프 후사모는 캠프로부터 시작된 조직입니다. 후사모의 첫시작은 바로 고향을 바로 알기입니다. 후사모가 연변대학불사조의 일부 학생들과 회원들의 자녀를 위주 로 한 청소년들을 조직하여 연변에서 풍경이 뛰어난 해란강발원지를 찾았습니 다. 이 유적지탐방은 후사모부회장인 연변대학 김태국교수가 맡았습니다. 도중 에 용정, 서전벌, 발해엿터, 서성, 사과배의 고향, 대종교삼종사, 청산리전투 등 유적지를 거치면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사상교육은 한국철학을 전공한 이경호회장이 맡았습니다. 이러한 청소년캠프는 지금도 후사모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학생캠프 5차례, 청소년캠프 2차례를 조직하였습니 다. -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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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캠프 사진 장학생선발과 양성 후사모에서는 소망이 있고 또 소망이 간절한 청소년을 뽑아서 후사모 장학생으 로 선정합니다. 지금 50여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었거나 지금 주고 있습니 다. 그중 7명이 이미 대학에 진학하였고, 2명이 올해 진학하게 되고, 지금 장학 금을 주는 학생 수는 31명입니다. 후사모장학생은 많은 특혜가 있습니다. 예하면 청소년캠프에 무료로 참가하고 학부모는 무료로 부모교육에 참가하고 다른 부모교육학습반에 참가하였을 경우 학비는 후사모에서 지불하는 등입니다. 연길시아리랑 방송국의 행복과 나눔코너는 후사모의 후원으로 꾸려지는 전 연 변을 상대로 한 방송입니다. 행운스럽게 이 방송에 출연하면 해당 학생은 후사 모의 장학생으로 됩니다. - 33 -

지선당의 운영 지선당은 후사모 장학생 숙소입니다. 후사모 회원들과 사회의 애심인사들의 모 금으로 이루어진 이 숙사는 지금 5명의 학생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외에 생 활과 식사를 돌보는 관리원 한분, 학생들의 공부와 교류를 맡은 지도자 한 명 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선당에 주숙하는 학생을 보면 대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부모가 안계시거나 크게 앓는 학생들입니다. - 34 -

사회봉사를 위한 활동 생태문화절 연변생태문화절은 연변주위, 연변정신문명판공실, 연변발전개혁위원회, 연변주 사회과학계연합회 등에서 조직하는 행사입니다. 그러나 이 행사를 기획부터 진 행까지는 모두 후사모에서 하는 것입니다. 상기부문에서는 명분을 주고, 자금을 조달합니다. 이 행사는 작년에 두번 조직하였는데 두차례 모두 만명이상을 돌 - 35 -

파한 연변에서는 규모가 비교적 큰 행사입니다. 이 행사에는 아나바다운동, 장 끼자랑, 강물정화하기, 사진전, 그림전, 여러가지 유희 등으로 펼쳐지곤 합니다. 자기가 판 돈의 10%를 기부하여 공익사업에 쓰게 하는 활동입니다. 이 행사를 통하여 모금한 돈은 7000원이 넘습니다. 이 활동을 통하여 어려서부터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절약하고 이웃을 돕는 등 마음을 키웁니다. 환경보호활동 이엠은 환경과 인체에 좋은 효소들만 모아서 배양한 효소균입니다. 이 이엠효 소로 강물을 정화시키고 이엠효소로 비누를 만드는 활동인데 학교에 신입하여 학생들에게 자기 손으로 비누를 만들어 쓰고 또 효소원액을 집에 가서 쌀뜨물 - 36 -

을 넣어 발효시킨 후 강에 부어 넣어 강을 정화시키는 활동입니다. 학생들의 환영을 받는 활동입니다. 고아원과 양로원 봉사 후사모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하고 매주 화요일마다 호스 피스병원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목욕시켜주거나 청소를 하는 등입니다. 지금까지 연변에는 양로원이라 고아원에 정기적으로 봉사다니는 문 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을 후사모가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 37 -

자매학교와 교류 후사모에는 아송2소, 아송2중 두 자매학교가 있습니다. 이 두 학교에 후사모 는 장학생 명액을 주어 장학생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장학금을 주고 또 교원들 에게는 교원들의 적극성을 동원하기 위하여 교원장려기금을 설치하고 장려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편벽한 곳에 있는 이 학교에는 심리상담교원이 배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 서 후사모 심리지원센터에서는 심리상담사들을 조직하여 교원과 학생들에게 심 리과를 강의하여 주고 있습니다. -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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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사모의 역사찾기 활동 한국의 기관 및 단체와 연계한 역사문화 유적지 답사 - 40 -

결말 후사모는 비록 그 설립시간이 얼마 안되지만, 사회적인 영향력은 이미 많이 확 대되어 연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담론하는 사단법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또 후 사모는 후대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문화, 홍익인간의 마인드로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등 선진적인 문화로 정부와 기업과 사회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특 히 역사유적지 탐방을 비롯한 인성교육방면에서 후사모는 특히 다른 사회단체 와 구별되는 특수한 공능을 감담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많은 사회단체들이 후 사모를 즐겨찾는 것도 후사모의 이같은 면에서의 우세를 보아낸것이라 생각합 니다. 앞으로도 후사모는 이전에 진행하던 한국국학운동시민연합, 한국국학원, 한국독립기념관, 한국 동북아역사재단 등과의 교류를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후 - 41 -

사모 자체로 조직하는 연변의 조선족을 교육하는 역사유적지 답사를 많이 조직 하려 합니다. 현재 조선족으로서 또는 한국인으로서 청산리를 모르고 삼종사묘를 모르고 라 철, 서일, 김좌진 등 민족영웅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의 이 후손들을 위해 가족을 희생하고, 목숨마저 바친 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지 아닐 수 없습니다. - 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