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례 외규장각 의궤 연구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3 凶 禮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Records of the State Rites of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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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규장 흉 례 凶 禮 각 의 궤 연 구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Records of the State Rites of the Joseon Dynasty

흉례 외규장각 의궤 연구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3 凶 禮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Records of the State Rites of the Joseon Dynasty

발간사 201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3 외규장각 의궤 연구: 유교 국가 조선에서 흉례는 가족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안정적인 질서체계의 흉례凶禮 Ⅰ 을 발간합니다. 이 학술총서는 지난 2011년 5월에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구심체 역할을 하도록 고안되었으며,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의 중요성과 그 내용을 알리고, 연구 결과 활용을 활성화하기 그리고 절차 또한 매우 복잡하고 고도로 상징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흉례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의식을 고스란히 담아, 의례의 과정과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흉례 관련 의궤 입니다. 외규장각 의궤에는 국내 다른 기관에는 소장되지 않은 의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른 의궤들은 국내의 동일한 종류의 의궤에서 대부분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던 이번 총서에서는 개별 의궤의 역사 자료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조명하였을 뿐 것과 달리, 이 의궤들은 프랑스에 있었기 때문에 그간 국내에서 내용을 자세히 아니라, 공예사 복식사 회화사 등 여러 측면에서 의궤를 활용한 연구를 시도 접하거나 연구할 수 없었습니다. 하였습니다. 보존과학에서는 의궤의 안료를 분석하여, 당시 기록된 것과 대조를 통해 종전에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도 외규장각 의궤 전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고 연구해야 하지만, 특히 그간 들이 향후 의궤와 관련된 연구를 다양화하고 연구의 지평을 확정하는 데 밑거름이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의궤에 대한 소개가 급선무입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외규장각 의궤에 대한 개별적 소개와 연구를 국내 미소장본부터 시작하고, 이번 총서에서는 조선의 국가 의례인 오례五禮 가운데 상장례喪葬禮의 의식과 절차를 이와 더불어 국립중앙박물관은 2012년 1월부터 외규장각 의궤 홈페이지 담은 흉례凶禮 관련 의궤를 집중적으로 소개합니다. (http://uigwe.museum.go.kr)에서 의궤 원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전체를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외규장각 의궤에서 흉례 관련 의궤는 89종 91건 163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국내 미소장본 가운데 흉례 관련 의궤는 12책이 있습니다. 이처럼 흉례 관련 의궤 국립중앙박물관은 앞으로도 외규장각 의궤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전문가들이 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흉례가 매우 특별한 성격과 의미를 지닌 의례이기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연구총서를 발간하고자 때문입니다. 합니다. 2015년 12월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영나

Forewor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s pleased to present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Records of the State Rites of the Joseon Dynasty), the third installment in a series of anthologies of academic essays on the Oegyujanggak Uigwe. This series is intended to foster public awareness of the content and significance of the Oegyujanggak Uigwe that has returned from France in May 2011 and promote the further research in the related fields. The Oegyujanggak Uigwe include rare Uigwe copies, which are not found in any other collection of the Uigwe in Korea. Little is known about the details of these copies, since they had been hardly accessible before their return from France. This year s anthology focuses on the rare Uigwe copies that address funerary rites, which were held for the deceased royal family members as one of the five state rites. Of the 297 volumes of the Oegyujanggak Uigwe, more than half deal with funerary rites, and about one-third of the rare copies are related to funerary rites. Funerary rites carried profound political meaning in the Joseon Dynasty which pursued to rule the nation by Confucian principles, and therefore were intended to serve as the axis for the stabile order of families and the state. This anthology spotlights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rare copies that are related to funerary rites, and includes studies in diverse fields of history, including the history of craft, the history of costume, art history and the conservation science. In January 2012,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opened a webpage (http:// uigwe.museum.go.kr) to offer online resources related to the Oegyujanggak Uigwe, including electronic images and versions of the original texts. Data uploading will be completed by December 2015, and the full content will be available from 2016.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tends to continue the annual publication of this anthology series offering multifaceted, in-depth examinations of the Oegyujanggak Uigwe in order to diffuse the value of the texts among a wider public and promote the scholarly use of the research findings. December 2015 Director, National Museum of Korea Kim Youngna

Avant-propos Le Musée National de Corée publie un troisième recueil d articles sur les Uigwe (protocoles royaux) de la bibliothèque royale de la dynastie Joseon, intitulé Études des Uigwe I : les rites funéraires. Cette publication annuelle a pour cadre le projet de faire connaître l importance et le contenu des Uigwe retournés de France en mai 2011, et de contribuer à l exploitation des résultats des recherches. Certains volumes des Uigwe ne se retrouvent dans aucune autre institution coréenne. Quand ils étaient conservés en France, ces documents n étaient pas facilement accessibles aux chercheurs coréens, et n ont guère été étudiés. Le présent recueil a pour objectif de faire connaître notamment les Uigwe relatifs aux rites funéraires rites qui forment l une des cinq sortes des rituels royaux de la dynastie Joseon. Les Uigwe sur ce sujet représentent plus de la moitié de la totalité des protocoles de la dynastie Joseon et plus d un tiers douze volumes de ceux dont il n existe qu un seul exemplaire et qui sont conservés au Musée. Sous la dynastie confucianiste, les rites funéraires étaient conçus comme des pratiques essentielles pour maintenir l ordre établi dans les communautés et les corps sociaux de la cellule familiale au pays dans son ensemble. Ils recèlent également un sens hautement politique. Le présent recueil vise à mettre en évidence l importance et la valeur des Uigwe relatifs aux rites funéraires, et à montrer la diversité des recherches qu ils peuvent nourrir en histoire de l art comme en celle du costume ou des arts et métiers. Par ailleurs, les sciences et les techniques de conservation proposent une nouvelle méthode de recherche : l analyse non destructive, qui permet d identifier les pigments réellement employés dans les images des Uigwe ; de là il est possible de confronter les résultats avec la liste des pigments enregistrés dans les protocoles. Le Musée espère que ces études contribueront à diversifier et élargir dans les années à venir les recherches sur les Uigwe et à partir d eux. En janvier 2012, le Musée National de Corée s est lancé dans une entreprise de numérisation des Uigwe, qui s achève en décembre 2015. Dans le courant de l année 2016, le public pourra commencer à consulter l ensemble des manuscrits originaux sur le site du Musée et découvrir divers services les concernant. Afin de faire connaître plus largement la valeur des Uigwe et de permettre aux spécialistes de les exploiter, le Musée continuera à publier des recueils qui exploreront ces manuscrits précieux en profondeur et sous diverses perspectives. Décembre 2015 Directeur du Musée National de Corée KIM Youngna

목 차 Contents Essays 1 014 Introduction to the Study on the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Lee Jaejeong 2 028 Queen Inseon s State Funeral and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Queen Inseon s Spirit Hall Lee Hyeon jin 3 052 State Funeral of Queen Jangnyeol and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the Royal Coffin Hall and the Spirit Hall Yu Saerom 4 090 Uigwe on Funerary Rites for Crown Princess Hyosun Hyeonbin Lee Moonhyun 5 114 Construction of the Tomb of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and the Production of Related Uigwe Chung Hai Deuk 6 150 Characteristics of the Artisans Involved in the Funerals of Crown Princess Hyosun Hyeonbin and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Chae Haejeong 1 Ⅰ 2011 2 7 3 16 7 17 182 A Study of the Seventeenth-Century Shrouds of the Female Royal Family Members through the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the Royal Coffin Hall of Queen Jangnyeol Min Bora 2 12 8 < > 212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Banchado on the Leaving of the Coffin of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Lee Sukyung 3 4 297 9 242 Analysis of Pigments Used in Banchados of Three Oegyujanggak Uigwe Related to Funerary Rites Yu Heisun Yun Eunyoung 5 6 Appendices 1 Banchados 290 2 Diagrams 294 3 Glossary 318

논 고 Essays 1.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Introduction to the Study on the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이재정 Lee Jaejeong 6. 년 효순현빈예장도감과 의소세손예장도감 공장의 성격 2.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Queen Inseon s State Funeral and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Queen Inseon s Spirit Hall 이현진 Lee Hyeon jin 3. 장렬왕후의 국장과 빈전혼전도감의궤 State Funeral of Queen Jangnyeol and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the Royal Coffin Hall and the Spirit Hall 채해정 Chae Haejeong 7. 장렬왕후 빈전도감의궤 를 통해 본 17세기 왕실 여성의 염습의 Uigwe on Funerary Rites for Crown Princess Hyosun Hyeonbin 8. <의소세손발인반차도> 성격과 의의 이문현 Lee Moonhyun 5. 의소세손 묘소의 조성과 의궤의 제작 Construction of the Tomb of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and the Production of Related Uigwe 정해득 Chung Hai Deuk A Study of the Seventeenth-Century Shrouds of the Female Royal Family Members through the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the Royal Coffin Hall of Queen Jangnyeol 민보라 Min Bora 유새롬 Yu Saerom 4. 효순현빈의 흉례와 의궤 Characteristics of the Artisans Involved in the Funerals of Crown Princess Hyosun Hyeonbin and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Characteristics and Significance of the Banchado on the Leaving of the Coffin of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이수경 Lee Sukyung 9.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반차도의 채색 안료 분석 Analysis of Pigments Used in Banchados of Three Oegyujanggak Uigwe Related to Funerary Rites 유혜선 윤은영 Yu Heisun Yun Eunyoung 영릉 금천교 정면 국립문화재연구소

Ⅰ.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흉례 유교 국가를 표방한 조선은 예禮로써 국가를 통치하고자 하였으며, 예치의 표현인 의례를 중 시하였다. 특히 국왕이 중심이 되는 국가 의례는 국가와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고 통치를 안정시키 는 기반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유교에 의한 국가 의례 정비에 주력하였으며, 1474년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01 (성종 5)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를 간행함으로써 국가 의례의 준칙을 확정하고, 이를 국가와 사 회의 질서 확립의 근간으로 삼았다. 조선의 국가 의례는 사대부와 서민들에게 적용되는 사서례士庶禮, 즉 관혼상제冠婚喪祭와 구 분되는 오례 체제 즉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에 기반을 두고 있다. 유교에 Introduction to the Study on the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서 이상 국가로 여기는 주周나라의 관제를 기록한 주례周禮 에서 길례로 나라의 귀신을 섬긴다 [以吉禮事邦國之鬼神祇] 라고 한 바와 같이, 길례는 종묘와 사직을 비롯한 여러 신령과 역대 조상신 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례이다. 주례 에서 가례로 만백성과 친화한다[以嘉禮親萬民] 라고 하였는데, 이는 국가의 경사와 관련 된 의례이다. 국왕을 비롯한 왕세자 왕세손의 혼례, 왕세자 왕세손 등의 관례冠禮, 국왕의 등극을 이재정 Lee Jaejeong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Curator, National Museum of Korea 비롯한 여러 가지 정치적 의식, 대왕대비 왕대비 대비 등에 존호尊號를 드리는 의식, 왕세자 왕세 제 왕세손 등을 책봉하는 의식, 각종 하례賀禮 및 연례宴禮 등이 가례에 해당된다. 주례 에서 빈례로 이웃 나라들과 화목하게 지낸다[以賓禮親邦國] 라 하였듯이, 빈례는 외교관 계를 맺고 있는 외국사절을 맞이하는 의례이다. 명나라는 예로써 섬기고 왜와 여진 등은 교린관 계로서 그 사절을 접대하는 의례이다. 주례 에서 군례로 방국을 동화시킨다[以軍禮同邦國] 라고 하였는데, 이는 화합하지 못하거나 참람하여 어긋난 국가를 군사의 위엄으로 다스려 동화시킨다 는 의미이다. 따라서 군례는 군사를 출정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는 것과 관련된 의례이다. 조선 의 오례에서 군례는 국왕을 위한 의전 행사, 열병 의식, 대사례大射禮 등을 포함한다. 흉례에 대해 서는 주례 에서 흉례로 나라의 슬픔을 애도한다[以凶禮哀邦國之憂] 라고 하였다. 흉례에서 애도 의 대상과 범위는 여러 종류로 구분되어 있으나, 국조오례의 에서는 국가 또는 왕실의 상장례喪 葬禮의 의식과 절차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Ⅰ.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흉례 Ⅱ.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중 국내 미소장본 Ⅲ.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3의 구성과 논고 내용 소개 조선 왕실의 오례 가운데서도 흉례는 매우 특별한 성격과 의미를 지닌 의례이다. 우선 국왕의 승하라는 흉사凶事 속에 새로운 국왕의 즉위라는 길사吉事가 혼재되어 있는 점이 흉례의 특징이 다. 흉례는 왕권의 계승과 개편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의례라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왕권과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15

권력 주변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례였다. 따라서 흉례는 가족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안정 지고 돌아오는 일) 이후 상기 동안 제사를 담당하는 빈전혼전도감, 국장 전반과 발인에서 반우까지 화된 질서체계의 구심체 역할을 하도록 고안되었다. 담당하는 국장도감, 무덤의 조성을 담당하는 산릉도감이 각각 설치되었다. 또 3년상 이후 신주를 왕실 의례라는 사적인 영역이 국가적 차원의 공적 영역으로 확대된다는 점도 흉례의 특징 중 종묘에 봉안할 때는 부묘도감이, 천릉 때에는 천릉도감이 설치되었다.1 하나이다. 복상服喪 기간 동안 새로운 국왕은 효도를 신장시켜 혈연간의 친애와 종족의 단결을 굳 건히 할 수 있었다. 또한 국상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새로운 국왕이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 로써 충성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정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흉례는 죽은 자가 산 자로 Ⅱ.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중 국내 미소장본 부터 분리되어가는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지위를 획득하고 산 자들의 공동체에 통합되는 과정이 었다. 흉례 관련 각 도감들은 일이 끝나면 해당 의궤를 제작하였다. 이 의궤들에는 국왕의 승하로 따라서 왕실의 흉례는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가진 의례였고, 예송논쟁禮訟論爭과 같은 정치적 부터 시작된 국장의 전체 과정이 상세히 실려 있다. 즉 국장을 치르기 위한 조정의 논의와 준비부 논쟁이 흉례를 둘러싸고 발생한 것도 이러한 흉례의 특징과 의미 때문이었다. 이처럼 흉례가 가지 터 각 의례 절차, 의례를 치르기 위해 제작하고 조달한 물건, 산릉 조성,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등 는 의미와 비중이 컸던 만큼 의례의 절차와 과정도 가장 길고 복잡하였다. 부속 건물의 건립, 각종 물품 조달과 인력 동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였다. 흉례의 기간 흉례는 기본적으로 국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가족이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3년상이 종 이 길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의궤 가운데 흉례 관련 의궤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다. 현재 남 료되어 신주神主를 종묘로 옮기는 시점까지의 의례를 의미하므로, 기본적으로 3년이라는 시간 동 아 있는 의궤 가운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에는 총 533종의 의궤 가운데 안의 의례를 포괄한다. 다만 국왕에 앞서 승하한 왕비의 경우는 국왕이 승하한 후 함께 종묘로 흉례 관련 의궤가 155종으로 30% 정도를 점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하 장서각) 소 신주를 옮겨가기 때문에 혼전魂殿에 모시는 기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장 의궤 가운데 흉례 관련 의궤는 67종으로 소장 의궤 331종 가운데 20%를 점한다.2 왕실의 흉례는 염습斂襲(시신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 입혀[襲] 관에 넣는 일[殮])하여 빈전殯殿(상 외규장각 의궤에서 흉례 관련 의궤는 186종 189건 294책 가운데 89종 91건 163책으로 절 여가 나갈 때까지 시신을 안치하던 곳)에 안치하는 일, 무덤을 조성하는 일, 발인發靷(상여가 빈소를 떠 반 이상을 차지한다.3 또한 국내 미소장본4 가운데 흉례 관련 의궤가 12책으로 1/3 이상을 차지한 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하여 장지葬地에 안장하는 일, 장지에서 돌아온 신주를 봉안하는 혼전을 조 성하는 일, 상기喪期를 마치고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부묘祔廟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산릉을 옮기는 천릉遷陵까지도 흉례에 포함되었다. 한편 유교의 의례는 신분에 따른 질서와 차등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의례의 대상자와 의례 참 가자의 신분에 따라 의례의 규모와 절차가 달랐다. 의례의 명칭 또한 달라 국왕과 왕비가 승하했 을 때의 흉례를 국장國葬이라 하고, 세자나 세자빈의 흉례를 예장禮葬이라 하였다. 국왕과 왕비의 시신과 혼을 모시는 곳을 빈전 혼전이라고 지칭한 반면, 세자나 세자빈을 모신 곳을 빈궁殯宮 혼 궁魂宮이라고 하였다. 국왕과 왕비의 능은 산릉山陵이라 칭하고, 세자나 세자빈, 세손의 경우는 묘 소墓所, 원소園所라고 하였다.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도 국왕과 왕비의 경우는 부묘, 왕세자 이 하는 부궁祔宮 또는 입묘入廟라고 하였다. 이처럼 흉례 절차가 복잡하였기 때문에 이를 관장하는 도감都監도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별도 로 마련되었다. 국장을 기준으로 할 때 사후 시신의 염습과 안치 및 반우返虞(장례식 후 신주를 가 16 1. 이상 오례 및 흉례에 대해서는 다음 논고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정종수, 조선 초기 상장의례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 학위논문, 1994); 박종천, 상제례의 한국적 전개와 유교의례의 문화적 영향, 국학연구 17(2010); 조용철, 朝鮮 世祖代 懿敬世子 喪葬禮 구성과 특징, 역사민속학 45(2014); 강제훈, 조선 世宗實錄 五禮 의 편찬 경위와 성격, 사학연구 106(2012); 강제훈, 조선 왕릉과 왕릉 의례의 특징, 한국사학보 54(2014); 임민혁, 조선 초기 국가의례와 왕권, 역사와 실학 43(2010); 임민혁, 조선초기 國朝五禮儀 흉례의 구조와 의례적 성격, 역사와 실학 50(2013); 이현진, 조선시대 종 묘의 부묘 의례와 성격, 서울학연구 43(2011); 이현진, 정조대 文孝世子의 喪葬 의례와 그 특징, 규장각 40(2012). 2. 규장각의 의궤 현황은 강문식, 규장각 소장 의궤의 현황과 특징,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1-조선왕조의궤 현황과 전망 (국립중앙박물관, 2012), 52~53쪽 [표 5] 참조. 여기에서는 흉례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국장 관련이라고 하였다. 장서각 소 장 의궤 및 흉례 관련 의궤 현황은 박용만, 장서각 소장 의궤의 현황과 특징, 위의 책(2012), 82~83쪽 [표 2] 참조. 흉례 관련 의궤의 종수는 [표 2]의 관련 의궤를 합산한 것이다. 3. 유새롬, 외규장각 의궤의 현황과 특징, 앞의 책(2012), 151~155쪽. 4.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국내에 동일종이 없는 의궤로 지금까지 파악된 것은 29책이며, 이를 유일본으로 명명해 왔다.(김문 식 외, 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외규장각 의궤 조사 연구 (외교통상부, 2002) 참조) 그런데 이번 총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일본의 개념이 불명확함을 확인하게 되었다. 즉 국내에는 소장되어 있지 않지만 외규장각 의궤에는 복수로 남아 있는 의 궤를 유일본에 포함시킨 예가 있다. 또 국내 다른 기관에는 영본零本만 남아 있는 의궤를 유일본에 포함시키는 기준도 명 확하지 않았다. 이에 본 총서에서는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유일본과 함께, 국내에 동종이 없거나 영본만 남아 있는 책을 포괄하여 국내 미소장본 으로 명명하였다. 국내 미소장본의 수는 추후 재검토가 필요하다.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17

다.([표] 참조) 이들 의궤의 주인공은 인선왕후仁宣王后(1619~1674), 장렬왕후莊烈王后(1624~1688), 이 소장되어 있으며, 장서각에도 소장되어 있다. 장렬왕후의 빈전혼전도감의궤는 분책된 어람건과 효순현빈孝純賢嬪(1715~1751), 의소세손懿昭世孫(1750~)이다. 합본된 분상건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여 [표]에서 어람건만 국내 미소장본에 포함시켰다. 국장도 감의궤의 경우 상책은 국내 미소장본이고 하책의 경우는 규장각 소장본이 영본零本이어서 외규장 [표]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중 국내 미소장본 각 의궤에 포함된 장렬왕후의 국장도감의궤 하책 역시 국내 미소장본에 속한다. 서명 유물번호 작성시기 비고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仁宣王后殯殿都監儀軌 외규 33 1674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仁宣王后魂殿都監儀軌 외규 34 1674 장렬왕후빈전도감의궤莊烈王后殯殿都監儀軌 외규 67 1689 장렬왕후혼전도감의궤莊烈王后魂殿都監儀軌 외규 68 1689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상)莊烈王后國葬都監儀軌(上) 외규 70 1689 도설/반차도 소도감의궤의 경우 규장각에도 상 하 2책이 소장되어 있지만, 외규장각 의궤와 내용이 같은 상책과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하)莊烈王后國葬都監儀軌(下) 외규 71 1689 도설 달리, 하책은 누락된 부분이 많다. 따라서 효순현빈묘소도감의궤孝純賢嬪墓所都監儀軌 하책의 전체 효순현빈묘소도감의궤(하)孝純賢嬪墓所都監儀軌(下) 외규 170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상)孝純賢嬪禮葬都監儀軌(上) 외규 173 도설/반차도 의소세손묘소도감의궤(상)懿昭世孫墓所都監儀軌(上) 외규 177 도설(흑백) 의소세손묘소도감의궤(하)懿昭世孫墓所都監儀軌(下) 외규 178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상)懿昭世孫禮葬都監儀軌(上) 외규 181 도설/반차도 宮兩都監儀軌 는 규장각에 분상건이 남아 있어, 의소세손 흉례 관련 의궤 가운데 예장도감의궤와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하)懿昭世孫禮葬都監儀軌(下) 외규 182 도설 묘소도감의궤가 국내 미소장본에 해당한다.5 효순현빈의 흉례 관련 의궤인 예장도감의궤, 빈궁혼궁도감의궤, 묘소도감의궤는 외규장각 의궤에 각각 상 하 2책으로 모두 남아 있으며 모두 어람건이다. 아울러 묘소도감의궤의 경우는 강화부에 보 도설 관되어 있던 분상건 하책도 남아 있는데, 어람건과 내용은 동일하다. 규장각에는 빈궁혼궁양도감의궤 가 전해지고, 예장도감의궤는 규장각에 하책만 남아 있어 상책은 외규장각 의궤에서만 확인된다. 묘 내용은 외규장각 의궤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표]에는 어람건만 국내 미소장본에 포함시켰다. 의소세손의 흉례 관련 의궤는 외규장각 의궤에 어람건으로 예장도감의궤와 빈궁혼궁도감의 궤, 묘소도감의궤가 각각 상 하 2책으로 남아 있다. 의소세손빈궁혼궁양도감의궤懿昭世孫殯宮魂 인선왕후의 흉례 관련 의궤로는 어람건 산릉도감의궤(2책), 국장도감의궤(3책), 빈전도감의궤(1 책), 혼전도감의궤(1책), 부묘도감의궤(1책)가 모두 외규장각 의궤에 포함되어 있다. 산릉도감의궤 Ⅲ. 외규장각 의궤 학술총서 3의 구성과 논고 내용 소개 는 장서각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어람건인 외규장각 의궤와 달리 상 하책이 1책으로 합본된 것으 로 적상산성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국장도감의궤는 규장각에 강화부본과 의정부본이 소장되어 그간 의궤는 그 중요성에 비해 연구 대상으로서 크게 주목받거나 개별 의궤에 대한 상세한 고 있고, 장서각에 소장처미상본이 소장되어 있다. 부묘도감의궤도 규장각과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 찰이 이루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이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다. 빈전도감의궤의 경우 규장각에 소장된 강화부본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仁宣王后殯殿魂殿 를 비롯한 당대의 사료들과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 정형화된 서술 방식 및 유사한 내 都監儀軌 에 혼전도감의궤가 누락되어 있어, 지금까지 혼전도감의궤만이 국내 미소장본으로 간주 용의 반복이라는 의궤의 특성이 연구 자료로서 주목받지 못한 요인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되었다. 그러나 규장각 소장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의 빈전도감의궤 부분도 결락이 많아 인 본 총서는 개별 의궤를 상세히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의궤의 사료적 가치와 다양한 시각에서의 선왕후의 빈전도감의궤 역시 사실상 국내 미소장본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연구 가능성을 제시하여 의궤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장렬왕후의 흉례 관련 외규장각 의궤에는 어람건으로 빈전도감의궤(1책), 혼전도감의궤(1책), 개별 의궤 연구를 시도하면서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흉례 관련 의 국장도감의궤(2책), 산릉도감의궤(2책), 부묘도감의궤(1책)가 있다. 또 분상건으로 빈전혼전도감의 궤에 주목하고, 이번 총서에서는 흉례 관련 의궤 가운데서도 그간 국내에서 내용을 확인할 수 없 궤를 합본한 것도 있다. 산릉도감의궤는 장서각에 상 하 2책으로 소장되어 있으며, 국장도감의궤 의 하책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부묘도감의궤의 경우 규장각에 태백산본, 오대산본, 의정부본 18 5. 이상 소장처별 의궤 현황은 국립중앙박물관 편, 앞의 책(2012),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e-kyujanggak. snu.ac.kr),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편, 장서각소장 의궤목록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을 근거로 작성하였다.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19

었던 의궤를 주로 다루었다. 서설 외에 8편의 논고를 수록하였는데, 앞의 4편은 인선왕후, 장렬왕 장본 중에는 산릉도감의궤만 완질본이 있고 국장도감의궤는 하책의 일부만 남아 있는 영본이며 후, 효순현빈, 의소세손의 흉례 관련 의궤 각각을 역사 자료라는 측면에서 상세히 고찰한 논고이다. 빈전혼전도감의궤는 국내에 소장본이 없었기 때문에 장렬왕후의 국장 전반을 파악하기에는 자료 이어서 개별 의궤를 활용한 여러 분야, 즉 공예사, 복식사, 회화사, 과학적 분석 등의 논고를 수록하 적인 한계가 있었다. 였다. 유새롬의 장렬왕후의 국장과 빈전혼전도감의궤 는 국내 미소장본이었던 빈전혼전도감의궤 와 국장도감의궤 상책을 중심으로 장렬왕후 국장 전반의 절차와 의궤 제작 과정을 고찰하고, 특 인선왕후는 효종의 비이자 현종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효종이 봉림대군이던 시절 봉림대군과 히 빈전혼전도감의궤에 초점을 맞추어 그 체재와 주요 내용을 살펴보았다. 국장에 관한 선행 연 함께 8년 동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1645년(인조 23)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사후 봉림대군 구가 18~19세기 국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에 비해 이 논고는 17세기 왕비의 국장 전반에 대 이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왕세자빈에 책봉되었고,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즉위하며 왕비 한 조명이라는 점에서 향후 국장 관련 연구의 확대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이 논고에서는 혼 에 책봉되었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하고 아들인 현종이 즉위하며 왕대비가 되었고 1674년 승하하 전도감의 관원을 모두 빈전도감 관원의 일부가 겸직하였고, 양도감 관원의 체직 관련 문서가 모 였다. 인선왕후의 승하는 효종의 승하에 이어 2차 예송의 시발점이 되었다. 효종이 승하하자 인조 두 혼전도감의궤에만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빈전 혼전 양도감이 문서 수발을 공동으로 의 계비인 장렬왕후가 아들인 효종의 상에 어떤 복상을 입을 것인가가 1차 예송의 쟁점이었다면, 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 양도감의궤청이 함께 설치되어 의궤를 공동으로 제작한 것과 양 인선왕후의 승하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1차 예송에서는 장렬왕후가 기년복朞 도감의궤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의궤사목儀軌事目 등이 혼전도감의궤에만 있는 점, 어람건은 빈 年服을 입게 되면서 서인 정권이 공고해졌고, 2차 예송에서는 서인의 대공설大功說 대신 남인의 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 2책으로 장황되었지만 분상건은 1책으로 합본된 점 등을 근거로, 빈 기년설朞年說이 채택되어 남인 정권이 성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는 표제만 달리 하였을 뿐 서로 별개의 의궤가 아니라 두 의궤가 합쳐 이현진의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는 2차 예송논쟁의 원인을 제공한 인선왕후의 승 져야 온전한 1질이 된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장렬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는 어람건과 분상건이 하 후 혼전인 경사전敬思殿의 조성 과정과 혼전에서 치러진 각종 의례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기 각기 다른 책 수로 장황되었다는 점에서 빈전혼전도감의궤의 체재에 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 록한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서지 사항과 주요 내용을 상세히 밝혔다. 특히 이 논고에서는 규 으로 생각된다. 장각이 소장한 분상건 의궤인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와의 내용 비교를 통하여 규장각 소장본에 효순현빈은 영조의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부인으로 가례를 올린 지 1년 만에 효장 는 혼전도감의궤 부분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 빈전도감의궤 도 빈전일방殯殿一房 만 수록된 영본 세자가 10세로 요절한 후 승하할 때까지 궁중에서 지냈다. 영조가 효장세자가 승하한 후 의지한 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기존에 국내 미소장본으로 알려진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뿐만 아니 사람이 현빈이라고 하였을 만큼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는 각별하였다. 영조는 현빈의 행록行錄 라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도 완본으로서 자료적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외규장각 의궤 을 직접 지었으며, 현빈의 탄신일에는 직접 제문祭文을 지어 현빈에 대한 애도의 정을 표하였다. 에 포함된 어람건은 왕비의 빈전혼전도감의궤 중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있 이문현은 효순현빈의 흉례와 의궤 에서 흉례 관련 의궤를 다루기에 앞서 빈호嬪號를 정해준 일 을 것이다. 을 기록한 현빈옥인조성도감의궤賢嬪玉印造成都監儀軌 (1735)를 소개하면서, 이 일이 영조의 현빈 장렬왕후는 인조의 계비로,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효종이 즉위하며 대비가 된 이후 효종 에 대한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았다. 이어 빈궁혼궁도감의궤, 예장도감의궤, 묘소 현종 숙종 3대의 왕을 거치며 일생의 대부분을 대비로서 지내다 1688년(숙종 14) 승하하였다. 효 도감의궤를 분석함으로써 그동안 전모를 알 수 없었던 효순현빈의 흉례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확 종과 효종 비 인선왕후의 국장 때 그녀가 어떤 복제를 입어야 하는가가 1 2차 예송의 쟁점이 되 인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현빈의 흉례 관련 모든 의궤의 권수卷首에 영조의 전교傳敎가 실려 있 었던 것을 제외하면 장렬왕후가 특별히 정치적 사건의 전면에 기록된 바는 없으나, 대왕대비로서 는 것이 특징으로, 영조는 이후에 지켜야할 일들을 여기에 기록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목인木人의 국장을 치른 흔치 않은 사례이다. 장렬왕후의 국장을 주도한 3도감의 의궤로는 장렬왕후빈전혼 금지와 비용 절감 등을 강조한 것들인데, 이러한 태도는 의궤 곳곳에 기록된 영조의 뜻에서도 확 전도감의궤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장렬왕후휘릉산릉도감의궤 가 있다. 그런데 기존 국내 소 인된다. 영조는 세 도감에서 절감한 것을 정례로 하여 상례수교喪禮受敎 로 집성하였고 이것이 20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21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1758)의 편찬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이 의궤를 분석하여 기록되지 않아, 시신을 빈전에 모시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빈전도감의궤를 통해 확인하여야 한다. 나라의 살림을 걱정하며 국가 의례를 정비하려는 영조의 노력은 현빈의 상례를 치르면서 구체화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의 빈전도감의궤는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17세기에 제작된 장렬왕후빈전도 되어 국조상례보편 의 편찬으로 이어졌음을 확인하였다. 감의궤 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특히 이 의궤는 18세기 국조상례보편 편찬으로 변화된 의례가 국조상례보편 에는 영조의 둘째 아들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惠慶宮 홍씨의 장자長子인 의 시행되기 이전에 작성되어 국조상례보편 편찬 전후의 복식 변화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소세손의 흉례 절차도 반영되어 있다. 의소세손은 태어나자마자 원손이 되었고 곧 세손이 되었으 민보라는 이 논고에서 장렬왕후빈전도감의궤 의 의주儀注와 빈전삼방의궤殯殿三房儀軌에 기 나 태어난 지 2년만에 승하하였다. 원손으로 승하한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의소세손의 흉례와 록된 염습의와 17세기에 제작된 다른 의궤의 왕실 여성의 염습의와 비교를 시도하였고, 시기에 따 관련해서는 전례가 없었다. 따라서 영조는 흉례를 진행하면서 여러 전례들을 검토하였으며, 국조 른 염습의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또한 빈전삼방의궤를 통해 의식 절차에 기록된 것보다 실제 장 상례보편 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따라서 의소세손의 흉례 관련 의궤들은 중요한 내용을 담 례에서 훨씬 많은 양의 옷감을 사용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출토된 복식과 비교를 통해 염습 고 있지만, 지금까지 예장도감의궤와 묘소도감의궤가 모두 국내 미소장본이어서 그 내용을 자세 의의 형태 추정을 시도하였다. 히 볼 수 없었다. 정해득의 의소세손 묘소의 조성과 의궤의 제작 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하여, 의소세손묘소 도감의궤 를 중심으로 의소세손 묘소의 조성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이 논고에서는 묘소 흉례 관련 국내 미소장본 의궤 가운데 3종 즉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상) 효순현빈예장도감 의궤 (상)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상)에는 모두 발인반차도發引班次圖가 수록되어 있다. 이수경의 논고와 유혜선 윤은영의 논고는 이 반차도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도감의궤가 영조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풍부한 내용을 수록하였고, 공사에 들어간 물품 이수경은 <의소세손발인반차도> 성격과 의의 에서 의소세손의 발인반차도를 집중적으로 분 에 대해서도 규격과 출처, 용도를 밝힌 점에서 여러 학문분야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석하였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는 분상건 의궤가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세손의 신분으로 행 확인하였다. 또한 이 의궤의 글씨를 쓴 사자관寫字官은 의궤 내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규장각 소장 한 유일한 흉례 관련 의궤이다. 따라서 동 의궤에 수록된 발인반차도 역시 유일한 것으로 자료로 효순현빈빈궁혼궁양도감의궤孝純賢嬪殯宮魂宮兩都監儀軌 를 쓴 사자관 김국표金國豹의 글씨와 매 서의 가치가 높다. 이수경은 이 논고에서 <의소세손발인반차도>의 성격과 표현 양상을 주로 다루 우 흡사한 필체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었다. 먼저 의소세손의 예장 관련 기록,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효순현빈발인반차도>와 비교, 의소 세손 예장 수교가 수록된 국조상례보편 의 발인반차 편의 소상小喪 및 소내상小內喪 항목과 비 채해정의 년 효순현빈예장도감과 의소세손예장도감 공장의 성격 은 흉례와 관련된 왕실 교를 통해, 의소세손 예장이 왕세자나 왕세손의 상례인 소상과 세자빈의 상례인 소내상 규정을 장인 연구이다. 이 논고에서는 흉례 관련 의궤 중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 상책과 의소세손예장 상황에 맞게 혼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 반차도의 표현법과 관련해서는 여타의 반차도에 비해 도감의궤 상 하책에 기록된 공장에 대해 살펴보았다. 년(영조 28)에 제작된 두 의궤는 각각 완성도가 높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반차도 제작에 참여한 화원 가운데 이 반차도를 완성한 영조의 며느리였던 효순현빈과 손자였던 의소세손의 장례를 위해 설치된 예장도감에 대한 기록이 화원인 김덕성金德成(1729~1797)에 대해 그의 여타 작품과 비교를 통해 조명하고, 그가 사도세자 다. 이 의궤들은 국장보다 한 등급 낮은 예장, 국내 미소장본 어람건, 같은 해인 년 제작이라 의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畫員이었음을 밝혔다. 는 흔치 않은 공통점이 있다. 이 논고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설치되었던 두 도감에 동원된 공장을 유혜선 윤은영의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비교하여 두 도감에 모두 참여한 장인과 장색匠色의 수를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개별 의궤의 장 반차도의 채색 안료 분석 은 3종 의궤 반차도의 안료를 분석하였다. 그간 조선시대 기록에 나와 인을 세부적으로 분석한 사례가 거의 없었고, 특히 국내 미소장본 의궤의 경우 지금까지 연구 대 있는 채색 안료에 대해 연구한 예는 있었으나 의궤의 채색 안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기 상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논고의 분석은 관련 분야 연구의 심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록과 비교하여 고찰한 것은 이 논고가 처음이다. 민보라의 장렬왕후빈전도감의궤 를 통해 본 17세기 왕실 여성의 염습의 는 의궤에 기록된 왕 이 논고에서 안료를 분석한 결과 3종의 의궤 제작에 사용된 안료는 백색, 적색, 청색, 녹색, 황 실 여성의 염습의(시신에 입히고 감싸는 옷)에 대해 고찰하였다. 여성의 염습의는 예서禮書에 상세하게 색, 흑색 6가지 계통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색 안료인 연백鉛白 은 의궤의 기록에서는 22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23

진분眞粉 으로, 적색 안료인 진사辰砂/주朱는 당주홍唐朱紅, 주홍색인 안료인 연단鉛丹은 황단黃 丹, 분홍색 염료는 연지臙脂 또는 편연지片臙脂, 청색 안료인 석청石淸 은 이청二靑 과 삼청三靑 국문초록 시하였다. 조선의 국가 의례는 사대부와 서민들에게 적용되는 사서례士庶禮, 즉 관혼상제冠婚 으로, 청색 염료는 청화靑花 로 확인되었다. 녹색 안료인 녹염동광은 당하엽唐荷葉 또는 하엽 으 로, 황색 안료인 유기 염료는 동황同黃, 흑색 안료는 탄炭 또는 먹 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분석을 통해 의궤의 제작 시기에 따른 안료의 차이도 확인하였다. 먼저 적색 안료[진사/ 유교 국가를 표방한 조선은 예禮로써 국가를 통치하고자 하였으며, 예치의 표현인 의례를 중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喪祭와 구분되는 오례 체제 즉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중에서도 국왕과 왕비, 그리고 왕실 가족들의 죽음과 관련된 의례인 흉례는 왕실 의 권위를 드러내고, 왕실과 국가의 위계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례였다. 주(당주홍)+연단(황단)]의 경우 시기가 늦어질수록 진사/주에 비하여 연단의 함유량이 높은 특징 따라서 흉례는 고도의 정치적 함의를 가진 의례였고, 예송논쟁禮訟論爭과 같은 정치적 논쟁이 을 보이며, 청색 안료에서는 17세기의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 반차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회 흉례를 둘러싸고 발생한 것도 이러한 흉례의 특징과 의미 때문이었다. 이처럼 흉례가 가지는 청 안료가 18세기에 제작된 효순현빈예장도감의궤 와 의소세손예장도감의궤 반차도에서는 확 인되었다. 이 논고에서는 의궤 제작에 실제로 사용된 물목과 그 수량을 기록한 실입질實入秩 의 의미와 비중이 컸던 만큼 의례의 절차와 과정도 가장 길고 복잡하였으며, 이를 관장하는 기관 도 각각의 절차에 따라 별도로 마련되었다. 흉례 관련 3도감 즉, 빈전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는 의례가 끝난 후 각각 의례 안료의 수량과 의궤의 다른 곳에 기록된 안료의 수량을 비교하여, 다른 안료들과 달리 삼청 안 의 절차, 준비 과정, 인력과 물력, 행사 진행 과정들을 기록한 의궤를 작성하였으므로, 조선 왕 료의 대부분은 반차도를 그리는데 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실의 의궤 가운데 흉례 관련 의궤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외규장각 의궤에서도 흉례 관 련 의궤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국내 미소장본 가운데 1/3 이상이 흉례 관련 의궤이다. 본 총서의 부록에서는 장 단위로 분리되어 있는 <발인반차도>를 연결해서 수록하여 당시 행 본 총서는 외규장각 의궤의 국내 미소장본 가운데 흉례 관련 의궤 각각을 상세히 소개하고 분 석함으로써, 의궤의 사료적 가치와 다양한 시각에서의 연구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되었 렬의 규모와 실상을 실감 있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본 총서의 고찰 대상에 포함된 의 다. 먼저 인선왕후, 장렬왕후, 효순현빈, 의소세손의 흉례 관련 의궤 각각을 역사 자료라는 측면 궤에 수록된 도설圖說들을 기물별로 함께 모으고 흉례의 진행 절차에 따라 배열하였다. 이를 통 에서 상세히 고찰한 논고를 수록하였다. 이어서 의궤를 활용한 여러 분야, 즉 공예사, 복식사, 해 흉례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총서에 수록된 논고들 회화사, 과학적 분석 등의 논고를 수록하였다. 마지막으로 부록에서 본 총서의 고찰 대상 의궤 에 사용된 중요 용어들을 모아 간단한 설명을 실었다. 의궤 연구에 공백이 많고 사용된 용어들이 매우 전문적이며, 정확한 개념 정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용어들도 더러 있어, 총서의 수록 논 고들에서 용어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때로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용어 설명 부분은 에 수록된 반차도, 도설을 수록하고, 논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요 용어에 대한 설명을 수록하 였다. 주제어 : 외규장각 의궤, 오례의, 흉례, 인선왕후, 장렬왕후, 효순현빈, 의소세손 이러한 약점을 다소나마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본 총서의 논고 가운데는 시론적인 성격의 것도 있으며, 각 논고들 간의 유기적 연관성이 부족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궤의 내용을 상세하게 분석한 연구들이 많지 않았고, 특히 국내 미소장본 의궤의 경우 제대로 살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총서에서는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중 국내 미소장본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번 총서의 발간 과정에서 그간 유일본으로 간주되었던 의궤에 대한 재검토와 비교분석이 필요함을 확인하였다. 본 총서의 발간이 향후 관련 연구를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4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25

Abstract As a Confucian state the Joseon leadership attempted to rule the nation Abstract La dynastie Joseon qui se réclamait du confucianisme voulait gouverner le pays according to Confucian order and highly valued rites that conveyed the spirit of au moyen de «rites» ; elle accordait donc une grande importance aux pratiques Introduction to the Study on the Funerary Rites of the Oegyujanggak Uigwe Confucian rule Among the five state rites ancestral worship rites gillye royal weddings and other congratulatory rites garye military rites gullye rites for the reception of foreign envoys billye and funerary rites and other matters related to the death of royal family members Étude sur les Uigwe relatifs aux rites funéraires rituelles qu elle avait précisément codifiées Parmi les cinq sortes de rites royaux de Joseon figurent ceux des funérailles qu on accomplissait suite au décès du roi de la reine ou d un autre membre de la famille royale Le rituel funéraire exhibait l autorité et la hiérarchie royales ainsi que la structure hiérarchique hyungnyefunerary rites accompanying the deaths of kings queens and royal de la société Son accomplissement avait une durée plus longue que celui family members were intended to manifest royal authority and represent the des autres rituels et son déroulement était très complexe Chaque étape était hierarchies of the state and the royal court Consequently funerary rites required organisée par un bureau spécifique ; à la fin tous ces bureaux rédigeaient des an extended period of performance compared to other rites and followed deeply Uigwe rendant compte de la procession de la préparation et des ressources complex procedures A Superintendency dogam was established for each humaines et matérielles mises en œuvre De ce fait les rites funéraires sont procedure of funerary rites and after the completion of all necessary elements l objet de la plus grande partie de l ensemble des Uigwe les protocoles royaux each Superintendency compiled its Uigwe meaning records of the state sur ce sujet représentent donc plus de la moitié de la totalité des protocoles de rites which included meticulous records of the procedures preparation la dynastie Joseon et plus d un tiers douze volumes de ceux dont il n existe processes required labor and materials for the rites as well as details of their qu un seul exemplaire et qui sont conservés au Musée National de Corée performance and featured illustrations known as Banchado literally illustration of the order of the guests Uigwe related to funerary rites make up Ce recueil d articles vise à présenter et analyser en profondeur chaque Uigwe relatif aux rites funéraires dont la bibliothèque royale de la dynastie Joseon the greatest portion among the total Uigwe of the Joseon Dynasty Among the détenait l unique exemplaire Ces travaux cherchent à mettre en évidence la 297 volumes of the Oegyujaggak Uigwe over half are related to funerary rites valeur de ces documents historiques et les possibilités de recherches qu ils and twelve volumes about one third of the copies that are not found in any other offrent sous diverses perspectives La première partie consiste en quatre articles collection of the Uigwe in Korea deal with funerary rites qui analysent en profondeur les Uigwe en tant que documents historiques Dans This current volume on the rare copies related to funerary rites is intended to la deuxième partie les recherches exploitant le contenu de ces protocoles se present the value of the Oegyujanggak Uigwe as historical resources and suggest déploient en plusieurs domaines tels que l histoire de l art celle du costume future research avenues from diverse perspectives The book begins with four celle des arts et métiers ainsi que l analyse scientifique La dernière partie articles that present in depth historical studies of the Uigwe and continues contient les images Banchado en coréen et les explications illustrées Doseol with essays in diverse fields of history including the history of craft the history en coréen des Uigwe ainsi qu un glossaire of costume art history and the conservation science The latter part of the book includes Banchado diagrams and glossary of the Uigwe that became the subject Mots clés Uigwe de la bibliothèque royale de la dynastie Joseon rites of study in this anthology funéraires rites de funérailles reine mère Inseon reine consort Jangnyeol dauphine douairière Hyosun petit dauphin Uiso petit fils du roi Yeongjo Keywords Oegyujanggak Uigwe five state rites funerary rites Queen Inseon Queen Jangnyeol Crown Princess Hyosun Hyeonbin Uiso the grandson of King Yeongjo 26 외규장각 의궤 흉례 관련 의궤 연구 서설 27

Ⅰ. 머리말 일반적으로 의궤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뒤 그 행사의 준비 과정과 진행 과정, 의식 절 차, 소요 경비, 참가 인원, 행사 후의 논상論賞 및 사후 처리 내용 등 제반 사항을 정리하여 기록한 행사의 보고서이다. 종묘의궤宗廟儀軌 종묘의궤속록宗廟儀軌續錄 이나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02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처럼 종묘 사직 경모궁 관련 도설圖說과 각각의 예제禮制, 그 예제의 역사 적 변천 사실[고실故實], 각 행사의 구체적인 절차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설명한 의주儀註를 수록 한 종묘 사직 경모궁 관련 종합서의 성격을 띠는 의궤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의궤는 그와 같았다. 조선시대 국가 행사는 일반적으로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그런 만큼 의궤도 하나의 의궤로 이 Queen Inseon s State Funeral and Uigwe for the Installation of Queen Inseon s Spirit Hall 루어져 있지 않았다. 거의 모든 의궤는 여러 곳에서 각자 맡은 일을 의궤로 작성하고 그러한 의궤 를 합쳐서 한 질을 이루었다. 도청에서 편찬하는 도청의궤都廳儀軌, 일방一房 이방二房 삼방三房 의 각방의궤各房儀軌, 지석소誌石所 우주소虞主所 별공작別工作의 각소의궤各所儀軌 등 이러한 의 궤들을 묶어서 소위 말하는 도감의궤 가 제작되었다. 담당처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 한 분야의 사람들과 각종 물품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국가에서 주관하는 중요한 행사 이현진 Lee Hyeon jin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 Research Professor, The Institute of Seoul Studies, University of Seoul 를 거행할 때에는 더욱 많은 인력과 물품이 필요함은 물론이었다.1 의궤는 행사의 성격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의궤가 바로 흉례 관련 의궤이다. 국장國葬 과정을 기록한 국장도감의궤, 빈전殯殿의 설치와 운영에 관해 기록한 빈 전도감의궤, 혼전魂殿의 설치에 관해 기록한 혼전도감의궤, 시신을 묻을 왕릉의 조성 과정을 실 은 산릉도감의궤, 혼전에 봉안되어 있던 신주를 종묘宗廟로 옮겨 봉안하는 일을 적은 부묘祔廟도 감의궤 등이다. 본고에서는 까다로운 내용을 수록하면서도 분량 면에서 가장 방대하였던 흉례 의 궤 중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仁宣王后魂殿都監儀軌 를 다루고자 한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에 부묘할 때까지 신주 를 봉안하는 곳이다. 혼전의 존재 기간은 국왕과 왕후에 따라 달랐으며, 특히 왕후는 국왕보다 Ⅰ. 머리말 먼저 혹은 나중에 승하하느냐에 따라 혼전의 존재 기간이 달라졌다. 국왕과 국왕보다 나중에 승 Ⅱ. 인선왕후의 승하와 혼전 조성 및 의례 하한 왕후는 장례를 치르는 시점이 승하한 지 5개월 만에 이루어지므로 혼전은 3년(27개월) 중 Ⅲ. 혼전도감의 혁파와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편찬 경위 22개월 동안 존재하였다. Ⅳ.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서지 사항 및 내용 1. 서지 사항 2. 내용 반면, 국왕보다 먼저 승하한 왕후의 장례는 3년상이 아닌 기년상期年喪(1년상)으로 치러져서 Ⅴ. 맺음말: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편찬의 의의 1. 의궤 일반에 대한 두 단락의 설명은 이현진, 의궤 번역의 難題 - 凶禮 관련 의궤를 중심으로-, 고전번역연구 5(2014), 246쪽 참조.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29

11개월에 연제練祭를 행하고 13개월에 상제祥祭를 행하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냈다. 왕후의 신 주는 배우자인 국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부묘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담제가 끝난 후에도 왕후의 신주는 혼전에 남아 있었다. 국왕이 승하하여 3년상을 마친 후 함께 부묘하였기 때문에 이럴 경 우 혼전의 존재 기간은 왕후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2 인선왕후仁宣王后(1618~1674)는 배우자인 효종보다 나중에 승하한 왕후에 해당하였다. 따라서 3년의 상제喪制가 끝난 뒤 종묘의 제10실에 봉안되어 있는 효종의 신실神室에 부묘할 때까지 혼전 에 그녀의 신주가 봉안되어 있었다. Ⅱ. 인선왕후의 승하와 혼전 조성 및 의례 인선왕후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의 정비正妃로, 아버지는 우의정 장유張維(1587~1638)이다. 1674년(현종 15) 2월 24일 인선왕후가 경덕궁(후일 경희궁)의 회상전會祥殿에서 승하하였다.3 시신을 봉안할 빈전의 전각은 경덕궁의 융복전隆福殿에 마련하였다.4 이어서 빈청에서 대신들이 회의하여 시호를 인선 으로 정해 올리고, 혼전의 전호殿號를 경사敬思 로 정하였다.5 승하한 지 5개월 뒤인 6월 4일, 효종의 무덤인 영릉寧陵 아래 언덕은 같되 혈穴을 달리하는 곳 [同原異穴]에 재궁梓宮(시신을 넣은 관)을 내려서 장례치렀다.6 이틀 뒤 6월 6일에 반우返虞하여 미리 2. 혼전의 일반적 성격에 관해 설명한 두 단락은 이현진, 조선 왕실의 혼전, 조선시대 문화사 (상)(일지사, 2007), 146~150쪽 참조. 국왕보다 먼저 승하한 왕후의 사례는 다음과 같다. 숙종의 원비元妃 인경왕후仁敬王后는 1680년(숙종 6) 10월에 승 하하여 다음해 2월에 신주가 혼전인 영소전永昭殿에 봉안된 뒤, 숙종이 승하하고 부묘하는 시기인 1722년(경종 2) 8월까지 영소전에 봉안되어 있었다. 또 숙종의 계비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도 1701년(숙종 27) 8월에 승하하여 12월에 신주가 혼전 인 경녕전敬寧殿에 봉안된 뒤, 숙종을 부묘할 때까지 경녕전에 봉안되어 있었다. 숙종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면서 비로소 인경왕후와 인현왕후의 신주도 혼전에서 종묘로 이안移安되었다. 그렇다면 인경왕후의 혼전은 1681년 2월에서 1722년 8월 까지, 인현왕후는 1701년 12월부터 1722년 8월까지 존재한 셈이다. 이렇듯 왕후의 국상이 먼저 있게 되면 그 혼전은 오랫동 안 존재하였고 기간은 왕후마다 달랐다. 3. 현종개수실록 과 애책문哀冊文을 수록한 열성지장통기 등에는 2월 24일에 승하한 것으로 나오는데[ 현종개수실록 권 27, 현종 15년 2월 무오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정유 ; 열성지장통기 (2)(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영인본, 2003) 권18, 孝肅敬烈明獻仁宣王后張氏 哀冊文 (甲寅), 677~681쪽], 현종실록 에는 2월 23일에 돌아가신 것으로 나온다[ 현종 실록 권22, 현종 15년 2월 무오]. 4.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時日]. 同月二十八日 成殯于隆福殿 ;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2월 임술 ; 현종개수실록 권 27, 현종 15년 2월 임술. 5.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3월 병인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3월 병인. 6. 인선왕후국장도감의궤 (1), [時日]. 陵在驪州弘濟洞 孝宗大王陵下同原異穴 ;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6월 정유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정유. 30 영릉 홍살문 국립문화재연구소

에 혼전 처소는 창경궁 문정전으로 삼는 일로 이미 계하하였 다 는 기록이 있다.10 그 밖에 승정원일기 에 3월 3일 혼전으 로 적합한 전각을 창경궁 문정전으로 결정한 기사가 나온다.11 그런데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에 3월 3일 혼전을 창경궁 으로 옮겨 설치하였다 는 기록이 있다.12 이 의궤의 기록대로라 면 다른 곳으로 혼전을 정하였다가 창경궁으로 옮긴 것이 되 는데 그 이전에 어디에 혼전을 정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기록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 자료를 통해 창경궁 문정전에 도3. 인선왕후영릉산릉도감의궤 (상), 도식, <능상각> 도1. 인선왕후국장도감의궤 (2), 일방의궤-각양물종질, <영좌교의> 도2. 인선왕후국장도감의궤 (2), 일방의궤-각양물종질, <무부교의> 영좌교의는 영좌에 설치되어 신백神帛이나 혼백魂帛을 담는 상 자인 신백함神帛函이나 혼백함魂帛函을 올려놓는 작은 의자이다. 신백 혹은 혼백은 신주神主를 만들기 전에 비단을 묶어서 신神 이 의지하게 한 의물이다. 무부교의는 조선시대 국가 장례에서 사용된 다리 부분[부趺]이 없는 작은 의자이다. 신백이나 혼백을 담는 상자인 신백함이나 혼백함을 장지나 기타 다른 곳으로 운반해야 할 경우 가마 속 에 임시로 안치하는 데 사용되었다. 왕릉의 봉분을 조성할 때까지 비와 눈 등 을 피하기 위해 구덩이 위에 세우는 임시 건물이다. 혼전을 조성하고 혼전의 전호를 경사전이라 명명하였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인선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기 전까지 경 사전은 인선왕후를 가리키는 대명사로도 쓰였다. 혼전은 이처럼 혼전을 위한 별도의 전각을 건립하지 않고 기존에 있던 전각 중에서 택하였는데, 주로 편전에 마련하였다. 창경궁의 문정전 역시 편전이다. 그리고 혼전은 빈전과 달리 별도의 이름을 붙였고, 국왕과 대신들이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였는데 경사전도 그렇게 해서 정해진 혼전의 전호였다.13 마련해 둔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였다.7 이때 창경궁에 조성한 혼전이 바로 경사전이었다.도1 2 경사전에 신주가 봉안된 뒤 각종 제사를 이곳에서 지냈다. 이때의 신주를 우주虞主라 한다. 반 인선왕후의 혼전 전각명이 경사전으로 정해졌는데, 그렇다면 창경궁의 어느 전각에 경사전을 우하는 신련神輦을 현종이 흥인문興仁門 밖으로 나아가 맞이한 뒤 경사전에 우주를 봉안하고 재 조성하였을까? 창경궁에 있다는 기록은 현종실록, 현종개수실록, 열성지장列聖誌狀 에 실린 우제再虞祭를 친히 지냈다.14 영릉이 먼 곳에 있어서 혼전인 경사전에서 초우제初虞祭를 지내지 못 현종의 행장行狀에서 확인되는데, 창경궁의 어느 전각에 마련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 하고 재우제부터 지냈다. 초우제는 6월 4일 산릉에서 현궁玄宮에 재궁을 내리고 길유궁吉帷宮에서 져 있지 않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에는 경덕궁 안에 있었다고 되어 있 신주에 글을 쓰고 입주전立主奠을 거행한 후 영악전靈幄殿에서 행하였다.15 우제는 장례를 치른 뒤 다.8 증보문헌비고 의 기록은 승하한 장소를 가리켰을 가능성도 있고, 인선왕후가 일찍이 경덕궁 방황하는 혼魂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16 도3 4 에 이어移御해 있었으므로 혼전도 경덕궁에 마련한 것으로 추정했을 가능성도 있다. 혼전의 전각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은 의궤와 승정원일기 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선왕후 국장도감의궤 에 반우하여 창경궁 문정전文政殿에 신주를 봉안하였다,9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10.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都監事目. 一 魂殿處所乙良 昌慶宮文政殿爲之事 旣已啓下 應行諸事 磨鍊後錄爲白去乎 依此施 行 何如. 11.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3월 3일 정묘. 殯殿都監郞廳以摠護使意啓曰 魂殿修理 一日爲急 可合殿閣 豫爲稟定 然後方可始 役 敢此仰稟 答曰 昌慶宮文政殿爲之. 12.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禀目秩. 甲寅三月初三日 魂殿 移設於昌慶宮. 13. 강문식 이현진, 종묘와 사직 -조선을 떠받친 두 기둥- (책과함께, 2011), 46~47쪽. 7.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6월 기해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기해. 14.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6월 기해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기해. 8. 증보문헌비고 권60, 禮考7 補魂殿 敬思殿. 敬思殿在慶德宮 (註) 今慶熙宮 內 仁宣王后魂殿 肅宗二年祔太廟. 증보문 헌비고 는 18세기 영조 정조대를 거쳐 수보修補되다가 20세기 초에 완간되었다. 15. 인선왕후국장도감의궤 (1), [時日]. (康熙十三年甲寅六月初四日) 申時 下玄宮 題主於吉帷宮 行立主奠 還安於靈幄殿 行初 虞祭. 9. 인선왕후국장도감의궤 (1), [時日]. (康熙十三年甲寅六月初六日) 午時 奉安於昌慶宮文政殿. 16. 우제의 정의와 지내는 장소, 날짜, 신분에 따라 지내는 횟수 등 우제의 전반에 대해서는 이현진, 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32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33

이후 경사전에서 지낸 우제의 기록은 현종실록 과 현종개수실록 에 각기 다르다. 현종실 록 에는 삼우제三虞祭와 사우제四虞祭는 섭행攝行하고 오우제五虞祭부터 친행한 것으로 되어 있으 나17 현종개수실록 에는 삼우제만 섭행하고 사우제는 친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18 승정원일기 에 는 삼우제는 지내되 섭행하고,19 사우제는 사우제를 지낸 기록만 나오고 친행 여부는 밝혀져 있 지 않다.20 오우제는 위의 현종실록 에 기록된 것 이외에 실록에는 더 이상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승 정원일기 에는 오우제를 지낸 기록만 나오고 친행 여부는 불분명하다.21 육우제六虞祭는 실록에는 기록이 나오지 않고, 승정원일기 에는 육우제를 지낸 기록은 나오나 친행 여부는 역시 분명하지 않다.22 칠우제七虞祭 또한 실록에는 기록이 나오지 않고, 승정원일기 에 칠우제를 지낸 기록만 나 오고 친행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23 이어서 우제를 마친 뒤 곡을 끝낸다는 뜻으로 지내는 졸곡제 卒哭祭를 현종이 경사전에 나아가 친히 지냈다.24 그 밖에 경사전에서 거행한 의식은 승하한 지 1년이 되는 첫 번째 기일에 지내는 연제,25 승하 한 지 2년이 되는 두 번째 기일에 지내는 상제,26 상제를 지내고 2개월 뒤에 지내는 담제 의절을 모두 거행하였다.27 연제 때부터 우주를 대신하여 혼전에 봉안된 신주는 연주練主였다.도5 그 밖에 경사전에서 조석상식朝夕上食, 사시四時 및 납臘 제사, 속절俗節 및 삭망朔望 제사를 지 냈다. 사시는 춘 하 추 동, 납일은 동지冬至 후 세 번째 미일未日, 속절은 정조正朝 한식寒食 단오 端午 추석秋夕 동지, 삭망은 초하루와 보름을 말한다.혼전에서 거행한 의식 중에서 주목되는 것 은 중국에서 내린 제사와 시호를 받고 분황焚黃하는 의식을 행하였다는 점이다. 다만, 사시의賜諡 (글항아리, 2015), 242~248쪽 참조. 17.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6월 기해. 18.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기해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계묘. 19.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7일 경자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8일 신축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9일 임인. 20.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9일 임인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0일 계묘. 21.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1일 갑진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2일 을사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3일 병오. 22.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3일 병오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4일 정미. 23.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4일 정미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5일 무신. 24.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6일 기유 ; 승정원일기, 현종 15년 6월 17일 경술 ;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6월 경술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6월 경술. 도4. 인선왕후영릉산릉도감의궤 (상), 도식, <사수도>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를 그린 그림이다. 사수는 죽은 자의 공간을 지키는 상징성을 띠는 동물이다. 찬궁 왼쪽 면에 청룡, 오른쪽 면에 백호, 앞면에 주작, 뒷면에 현무를 그렸다. 찬궁은 재궁을 모셔두는 의물로, 빈전이나 정자각에 재궁을 그대로 봉안 하지 않고 찬궁에 넣어서 두었다. 34 25. 숙종실록 권2, 숙종 1년 2월 임자. 26. 승정원일기, 숙종 2년 2월 20일 임신 ; 승정원일기, 숙종 2년 2월 24일 병자. 27. 숙종실록 권5, 숙종 2년 4월 정사.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35

* 혼전에 봉안된 신주 : 우주와 연주 조선 왕실의 신주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우주와 연주가 그것이다. 우주는 산릉에서 임시로 가설한 길유궁에서 글 을 써서 연제 때까지 혼전에 봉안하는 신주이다. 연주는 사자死者가 죽은 지 1년이 되는 첫 번째 기일에 지내는 연제 때부터 혼전에 봉안하여 담제가 끝난 후 종묘에 봉 안되었다. 연주가 최종 종묘에 봉안된 신주이다.28 도5. 국조오례서례 권5, 흉례, <신주도설>(좌),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신주>(우) 전혜원(운현궁관리소장) 우주와 연주는 모양은 같고, 재료가 다르다. 우주는 뽕나무로 만들고, 연주는 밤나무로 만들었다. 儀 는 중국 황제가 조선의 국왕에게 시호를 내리는 절차인데 왕후에게는 시호를 내리지 않기에 인 선왕후의 국장에서도 그와 같은 절차는 없었다. 인선왕후의 국상에는 청나라에서 파견한 사신이 도6. 인선왕후부묘도감의궤, <부묘반차도> 중 신여 부분 신백 혹은 신주를 받들어 연輦에 올리고 내릴 때 사용하는 가마이다. 조칙弔勅과 제부祭賻를 가져왔다.29 단, 다른 왕후처럼 조제弔祭 를 받기 위해 다른 곳에 임시로 혼 전을 마련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이후 현종이 인선왕후의 국상을 주관하다가 승하하자 숙종이 뒤를 이어 남은 의식 절차를 모두 마쳤다.도6 7 1676년(숙종 2) 4월 9일 인선왕후의 신주를 경사전에서 옮겨 와서 태묘太廟에 부묘하였다.30 따라서 경사전은 인선왕후의 신주를 봉안하기 시작한 1674년 6월 6일부터 3년상을 마치고 종묘 에 부묘한 1676년 4월 9일까지 창경궁 문정전에 설치되어 있었다.도8 표1 혼전은 대상大喪 3년 동안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므로 신주를 부묘한 뒤에는 철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경사전의 전각인 문정전은 경사전이 혼전으로서의 생명을 다한 뒤에도 그대로 남 아, 이후의 국왕이나 왕후의 혼전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31 28. 우주와 연주에 대한 정의, 만드는 방법, 글을 쓰는 방식 등 전반적인 설명은 강문식 이현진, 앞의 책(2011), 56~61쪽 참조. 29. 통문관지通文館志 권9, 紀年 顯宗大王十五年甲寅. 30. 종묘의궤 (상)(서울대학교 규장각 영인본, 1997), 祔廟(附儀註), 303쪽[ 종묘의궤 (奎14220) 영인. 이하 같음] ; 숙종실록 권 5, 숙종 2년 4월 신유 ; 춘관통고春官通考 권5, 吉禮 宗廟 祔廟. 仁宣王后神主 肅宗二年丙辰四月九日辛酉 自敬思殿祔. 도7. 인선왕후부묘도감의궤, <부묘반차도> 중 신련 부분 31. 조선 전시기 창경궁의 문정전을 혼전으로 삼은 국왕이나 왕후는 이현진, 앞의 글(2007), 부표 참조. 발인 반우할 때 신백함神帛函과 신주궤神主匱를 싣고 가는 가마이다. 36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37

Ⅲ. 혼전도감의 혁파와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편찬 경위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경사전의 조성에 관한 제반 사항을 기록한 의궤이다. 국가전례서 에는 계령戒令조에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 세 도감의 역할에 대해서 규정할 뿐 혼전도감 의 역할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왜 혼전도감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 았을까? 혼전도감은 빈전도감이 존재하는 기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혼전 의 일을 빈전도감 도8. 인선왕후부묘도감의궤, 제기질, <보>, <궤>, <형> 보簠(중) : 조선시대 국가 왕실 제례에서 사용된 중요 제기祭器 중 하나로서, 쌀[도稻]과 찰기장[양粱]을 담는 데 사용되는 제기이다. 에서 담당한 것으로 국가 전례서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제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33 궤簋(우) : 조선시대 국가 왕실 제례에서 사용된 중요 제기 중 하나로서, 메기장[서黍]과 조[직稷]를 담는 데 사용되는 제기이다. 곧, 빈전도감에서 맡은 일이 습襲 염歛 성빈成殯 성복成服 혼전 배비排備(소용되는 물건을 갖추는 제례에서 사용되는 제기 중 하나로, 고깃국의 한 종류인 화갱和羹 을 담는 제기이다. 화갱은 규채葵菜를 넣고 오미五味를 모 형鉶(좌) : 국가 두 갖추어 끓인 진한 국이다. 것) 등이었다.34 32 세 개의 제기는 부묘도감에서 사용한 것으로 종묘서宗廟署에서 올린 견양見樣으로 주성한 것이다. 모두 뚜껑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혼전이 국장의 마지막 절차인 종묘에 신위를 봉안할 때까지 유지되어 그 존속 기간이 길고, 그러한 혼전에 필요한 내외 부속 건물을 짓고 혼전에서 거행하는 제사에 필요한 물품을 조 달하는 일을 맡기려면 도감의 설치가 필요하였다. 그 때문에 국왕이나 왕후가 승하하면 빈전도감 [표 1] 인선왕후 부묘 당시 종묘 정전의 신주 배치(11실 비어 있음) 2실 3실 4실 5실 6실 7실 8실 9실 10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원종 인조 효종 인선왕후가 승하한 뒤에도 곧바로 혼전도감을 설치하였다. 다만, 어디에 설치하였는가에 대해 1세 1세 1세 1세 서는 분명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각 의궤에는 도감의 운영 규칙을 적은 도감사목都監事目 혹은 태조 불천지주不遷之主 11실 국장도감 산릉도감과 함께 으레 혼전도감을 설치하였다.35 1실 사목事目 에 도감의 처소가 기록되어 있는데,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도감사목 에는 실려 있 조선시대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는 천자는 칠묘七廟, 지 않다.36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仁宣王后殯殿都監儀軌 사목 과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仁宣 제후는 오묘五廟 라는 예기 의 규정에서, 태조와 현 국왕의 1대조부터 4대조까지 총 다섯 명의 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 (奎13535) 사목 에는 도감 처소는 숭정전崇政殿 월랑月廊과 금군청禁軍廳에 신위를 봉안한 제후 오묘제를 채택하였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시조始祖로서, 종묘 정전 제1실 배설排設한다 라고 되어 있다. 혼전도감 역시 이곳에 설치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37 단, 혼전에 배 에 봉안하여 영원히 제사를 받도록 하였다. 그런데 후대의 국왕과 신하들이 국왕의 공덕功德을 설하는 여러 일과 검칙은 낭청郎廳 종부시 주부宗簿寺主簿 오시대吳始大와 예조좌랑 정징鄭徵이 담 평가하여 영원히 옮기지 않는 신주를 정하여 종묘에 계속 모셨고 이러한 신주는 오묘의 대수代數 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38 두 사람을 분차分差하여 담당하게 하였는데, 분차는 관원들을 여러 곳에 에 들어가지 않았다. 따라서 [표 1]은 태조와 불천지주, 현 국왕의 1대조부터 4대조까지인 고조 증조 조 부로 구성되어 있다. 33. 이현진, 앞의 책(2015), 81쪽. 34. 세종실록오례 권134, 凶禮儀式 戒令.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권7, 凶禮 戒令.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奎 3940) 권1, 戒令. 殯殿都監掌襲歛成殯成服魂殿排備等事. 35. 각 도감의 설치와 기능에 대해서는 이현진, 앞의 책(2015), 제1부 제5장 참조. 36.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都監事目. 32. 인선왕후부묘도감의궤, 祭器秩. 簠盖具二坐 合重四十八斤 簋盖具二坐 合重三十斤十二兩 鉶盖具三坐 合重十九斤五錢 以上祭器 宗廟署所上取來見樣鑄成爲乎矣. 38 37.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事目 ;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奎13535), 事目. 一 都監處所乙良 崇政殿月廊禁軍廳排設爲 白齊. 38.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都監事目. 一 魂殿排設諸事檢飭 郎廳宗簿寺主簿吳始大禮曺佐郞鄭徵分差爲白齊.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39

나뉘어 임명하는 인사 배정 방식이다. 혼전의 조성은 산릉에서 반우하여 신주를 혼전에 봉안하기 전에 끝냈다. 혼전도감은 혼전에 도감과 혼전도감이 빈전과 혼전의 설치라는 점에서 담당하는 일의 성격이 서로 같지 않다는 점 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신주를 봉안한 뒤 그 임무를 마치면서 혁파되었다. 인선왕후를 위해 설치한 혼전도감 역시 마찬 이와 다르게 두 의궤를 묶어서 편찬한 경우는 두 도감이 존재하는 기간이 거의 다르지 않고 가지였다. 국왕과 왕후의 장례는 일반적으로 승하한 지 5개월만에 이루어진다. 인선왕후도 2월에 국가전례서에서 규정한 것처럼 빈전도감에서 혼전의 일을 맡고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 승하하여 6월에 산릉에서 장례를 치르기까지 5개월이 걸렸으므로 기본 규정을 준수하였다. 이후 된다. 그 밖에 빈전도감과 혼전도감에서 하는 일이 전후가 서로 무관하지 않고 애초 피차의 구별 곧바로 혼전도감은 혁파되었다. 이 없기 때문에 빈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를 각각 편찬하지 않고 합해서 기록한다 는 정조빈 인선왕후의 혼전도감이 혁파되면서 혼전도감의궤의 편찬을 위한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여 의 전혼전도감의궤正祖殯殿魂殿都監儀軌 (奎13637)(1800)의 범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43 궤의 편찬에 들어갔다. 1674년 6월 6일 반우하여 혼전에 신주를 봉안하고 4일 뒤인 6월 10일 혼 인선왕후의 경우는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는 빈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가 각각 전도감의궤의 사목이 마련되었다.39 의궤청은 전의감典醫監에 배설되었고,40 의궤 편찬의 담당은 낭 있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현재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환수되었다. 그 청 종부시 주부 오시대가 맡았다.41 리고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하 규장각)에 소장된 의궤는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혼전도감의궤는 국왕이나 왕후가 승하할 때마다 작성되었기에 국장도감의궤, 빈전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많은 종류가 남아 전한다.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1책으로 총 5건을 제작하였다. 국왕이 보는 어람건御覽件은 규장각에, 나머지는 의정부 춘추관 예조 강 화부 등에 보관하였다.42 로 빈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가 묶어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두 건은 어람건 이고, 규장각에 소장된 의궤는 분상건이다. 비슷한 사례로 숙종의 첫 번째 비 인경왕후仁敬王后(1661~1680)의 의궤가 참조된다. 국립중 앙박물관 어람건 의궤는 인경왕후빈전도감의궤仁敬王后殯殿都監儀軌 (1681)와 인경왕후혼전도 감의궤仁敬王后魂殿都監儀軌 (1681)가 각각 남아 있다. 그에 비해 규장각에 소장된 분상건 의궤는 인경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仁敬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 (奎13554)(1681)로, 두 의궤가 한 책에 묶어 Ⅳ.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서지 사항 및 내용 져 있다. 좀 더 많은 의궤를 확인해보아야겠으나 어람건은 빈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를 별도 로 편찬하고, 분상건은 묶어서 편찬하는 경향임을 짐작할 수 있다. 1. 서지 사항 규장각 소장본을 좀 더 엄밀히 살펴보면, 표지에 강희십삼년계축이월 일康熙十三年癸丑二月 日 인선왕후仁宣王后 빈전혼전도감의궤殯殿魂殿都監儀軌 강화부상江華府上 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현전하는 의궤를 보면 빈전 혼전 관련 의궤를 편찬할 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남을 볼 수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강희십삼년계축 에서 강희 13년은 1674년으로 갑인년甲寅年이 있다. 빈전도감의궤와 혼전도감의궤를 각각 편찬하는 경우와 두 의궤를 묶어서 빈전혼전도감의궤 기 때문에 계축 은 필사하면서 생긴 오류로 생각된다. 둘째가 주목되는데, 표제만 본다면 분명 시 로 편찬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신을 모시는 빈전과 신주를 봉안할 혼전을 설치하고 운영하였던 일을 기재한 빈전도감의궤와 혼 두 의궤를 각각 편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 빈전 전도감의궤가 합부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도9 문제는 규장각 소장본의 본문을 보면 혼전도감의궤 부분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39.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儀軌事目. 發靷後 殯殿魂殿一應諸事排備等物 磨鍊後錄爲白去乎 依此施行 何如 康熙十三年 六月初十日 啓依所啓施行爲良如敎. 누락된 것인지 처음부터 싣지 않은 것인지 현재로서는 불분명하지만 표제를 통해 누락된 것으로 40.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儀軌事目. 一 處所乙良 典醫監良中排設爲白齊. 추정된다. 그리고 빈전도감의궤 또한 좌목座目 에 빈전일방殯殿一房, 빈전이방殯殿二房, 빈전삼방 41.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儀軌事目. 一 儀軌次知 郎廳宗簿寺主簿寺吳始大 仍爲差下察任爲白齊. 주부 와 오시대 사이에 있는 시寺 자는 잘못 들어간 것으로 필사하면서 생긴 오류로 보인다. 42.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儀軌事目. 一 儀軌五件內一件御覽 其餘四件議政府春秋館禮曺江華府等處分上爲白齊. 40 43. 이현진, 앞의 책(2015), 79쪽.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41

殯殿三房, 빈전별공작殯殿別工作에서 담당하 는 업무와 담당자들의 명단을 수록하고 있는 데 본문에는 빈전일방 만 수록되어 있다. 빈 전이방 이하가 결락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 앙박물관 소장본 인선왕후빈전도감의궤 에 는 빈전일방 빈전이방 빈전삼방 빈전별공 작을 모두 수록하고 있어서 그와 같이 추정 된다. 이를 통해 규장각 소장본 인선왕후빈 전혼전도감의궤 에서 혼전도감의궤 부분은 결락되었거나 누락된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인선왕후빈전혼 전도감의궤 에 혼전도감의궤 내용이 없기 에 외규장각 의궤의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도9.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표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가 현전하는 유일한 책이다.도10 도10.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제1 2면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전체 불분권 不分卷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에 서명 이 쓰여 있지 않다. 표지 안에 인선왕후혼전의궤仁宣王后魂殿儀軌 영릉寧陵 갑인甲寅 이라고 쓴 첨 모든 일을 맡아 다스린다고 규정되어 있다.44 그런데 인선왕후의 국장에서는 우의정 김수흥이 총 지가 3개 있다. 판심 사항을 살펴보면, 붉은 인찰선으로 된 사주쌍변四周雙邊, 행관行款은 12행行 호사를 맡았다. 이 당시 영상과 좌상 자리가 모두 공석이었고 우상만 있었기 때문에 우의정 김수 22자字, 주註는 쌍행雙行,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판심제版心題와 장차 흥을 총호사로 삼았던 것이다.45 張次는 없다. 내제는 혼전도감의궤魂殿都監儀軌 이다. 국장도감과 빈전도감, 산릉도감 담당자는 크게 제조, 도청, 낭청, 감조관으로 구성되었다. 세 도감에 대해서는 국가전례서에 어떤 사람이 어느 직책을 담당하는가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만 혼 2. 내용 전도감은 별도의 규정이 없듯이 담당자들에 대한 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 도감과 다를 바 없이 혼전도감의궤에는 국장을 총괄하는 총호사와 함께 제조와 도청, 낭청, 감조관을 좌목 에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체 목차를 수 적기하고 있다. 인선왕후의 혼전도감을 담당한 이들을 좌목 을 통해 정리하면 [표 2]와 같다. 록하고 있지 않고, 곧바로 1674년 3월 3일에 회동하여 국장을 총괄하는 총호사摠護使 우의정 김 수흥金壽興을 비롯하여 제조提調, 도청都廳, 낭청, 감조관監造官 등의 명단이 나온다. 담당자들의 명단을 적은 이 부분이 좌목 에 해당한다. 국가전례서에 총호사는 세 도감의 도제조都提調로, 좌의정을 임명하여 그가 상장喪葬에 관한 44. 국조오례의 권7, 凶禮 戒令. 三都監都提調 以左議政爲之 稱總護使 總治喪葬諸事. 45. 현종실록 권22, 현종 15년 2월 무오 ; 현종개수실록 권27, 현종 15년 2월 무오. 42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43

[표 2] 인선왕후 혼전도감 담당자와 재직 시기 및 직책 변동 상황 입접처入接處는 조작造作하지 말고 숭화문崇化門 밖 행각行閣 7칸은 조작하기로 함, 오봉산병풍五 峯山屛風이 길고 또 넓어서 기축년(1649, 효종 즉위)과 기해년(1659, 현종 즉위)의 예例에 따라 명 담당 직책 이름 관직명 총호사 김수흥金壽興 의정부 우의정 제조 3원 장선징張善瀓 의정부 좌참찬 홍처량洪處亮 예조판서 민점閔點 공조참판 류연柳㝚 장악원 정 4월 11일 죽음[身死代] 김석주金錫冑 홍문관 부응교 4월 13일 임명[啓下] 서문상徐文尙 홍문관 부응교 정징鄭徵 예조좌랑 오시대吳始大 상의원 주부 이문저李文著 내섬시 직장 3월 6일 임명 주성소 감조관 사시巳時에 곡탄소曲灘小 주정소晝停所에 도착하여 무사히 설전設奠하였다는 보고, 반우 당일 오 홍득우洪得禹 전설사 별검 3월 6일 임명 수리소 감조관 시午時에 반장리대半章里大 주정소에 도착하여 무사히 설전하였다는 보고 등을 기재하였다. 엄찬嚴纘 남별전 참봉 3월 6일 임명 조성소 감조관 도청 2원 낭청 2원 감조관 3원 재직 시기와 직책 변동 상황 비고 정전明政殿에서 화조畵造하기로 결정, 제기祭器 주성鑄成의 필역畢役과 각처 일이 끝나감에 따라 각소各所의 공장工匠과 모군募軍 등을 방송放送하기로 함, 5월 22일 혼전을 수리하는 역사가 완필 되었다는 등의 내용을 수록하였다. 다음에는 장계질狀啓秩이다. 장계질은 1674년 6월 4일부터 6월 8일까지 지방에 나가 있는 신 하가 중요한 소관 사항을 글로 써서 국왕에게 올리던 보고 문서를 모아 놓은 항목이다. 6월 4일 초우제를 무사히 설행하고, 재궁을 왕릉에 올리는 상산릉上山陵에서 신주에 글을 쓰는 제주題主 까지 종일 비가 내리지 않아서 무사히 성례成禮하여 매우 다행이라는 보고, 6월 5일 반우 당일 다음 항목은 이문질移文秩이다. 이문은 동등한 아문衙門에 보내는 공문서이다. 좀 더 엄밀하게 정의 내린다면 2품 이상 중앙관아 및 지방관찰사 등 조선시대 최고 관서 사이에 행정적으로 협조 위 [표 2]를 통해, 직책에 따라 인원이 정해져있지만 실제 일을 진행하면서 담당자들의 입출入 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사용한 공문서이다. 본 의궤에서는 1674년 3월 22일부터 6월 7일까지 혼 出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교체된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만둔 사람은 언제 어떤 이유로 그만두었 전도감에서 산릉도감 호조 병조 진휼청賑恤廳 어영청御營廳 사복시司僕寺 한성부漢城府 훈련 는지, 새로 교체된 사람은 언제 그 직을 제수 받은지에 대하여 각자의 이름 아래에 간략하게 세 도감訓鍊都監 여주驪州 등에 보낸 협조 공문을 모아 놓았다. 주細註로 정리해 놓았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혼전 담당자들의 명단 속에 이방, 삼방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는가에 대 해 간략한 정보를 세주로 소개하면서 일방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일방의궤는 본 의궤의 전체 다음은 내관질來關秩이다. 내관은 다른 기관에서 혼전도감에 보내온 관문關文이다. 1674년 3 월 5일부터 5월 26일까지 호조 예조 병조 산릉도감 진휼청 어영청 한성부 국장도감 등에서 혼 전도감에 보낸 관문을 정리하였다. 내용에서도 수록되어 있지 않고, 또 누락된 사실에 대해서도 특별한 이유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음은 1674년 3월 3일부터 5월 17일까지 낭청이 도청에 올린 문서를 정리한 품목질稟目秩이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인선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에도 혼전도감 다. 혼전을 창경궁으로 옮겨 설치함, 서리와 사령使令의 차출, 도청에 필요한 종이와 각종 물품의 의궤 부분이 누락되어 있고, 빈전도감의궤 에도 빈전일방까지만 수록되어 있어서 원래 혼전일방 조달, 혼전도감의 조성소造成所 수리소修理所 주성소 별공작에 동원되는 공장과 모군의 급가給 이 없었는지 혹은 혼전일방의궤가 누락된 것인지 의심을 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價와 역가役價의 결정 등에 관한 내용을 실었다. 혼전도감 담당자들의 명단에 이어서 도감사목 을 실었다. 인선왕후의 혼전 처소는 창경궁의 문 정전으로 정하며, 그 밖에 혼전도감과 관련하여 응당 행해야 할 여러 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다음은 감결질甘結秩이다. 감결질은 혼전도감에서 다른 관청에 실무 처리를 지시한 공문을 모 아 놓은 항목이다. 그 관청은 공조 호조 평시서平市署 선공감繕工監 장흥고長興庫 사도시司䆃寺 좌목 과 도감사목 을 이어서 나온 항목은 계사질啓辭秩이다. 계사질은 1674년 3월 3일부터 제용감濟用監 위장소衛將所 예빈시禮賓寺 군자감軍資監 광흥창廣興倉 의영고義盈庫 사재감司宰 6월 6일까지 혼전도감에서 국왕에게 올린 계사啓辭와 국왕의 전교傳敎를 날짜순으로 정리한 항 監 조성소 수리소 주성소 사섬시司贍寺 이조 홍문관弘文館 전설사典設司 일방 이방 삼방 풍 목이다. 저창豐儲倉 경사전敬思殿 참봉 교서관校書館 별공작 좌우포도청左右捕盜廳 등이다. 여기에는 도감 관원의 차출, 문정전을 수리할 역사役事가 대단히 크지는 않을 듯함, 나인[內人] 44 이문질, 내관질, 품목질, 감결질 등 각종 공문서들을 싣고 있다. 각 공문서를 통해 혼전 설치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45

를 위한 관서 간 업무 협조 과정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품목질 과 감결질 사이에 제색諸色 공장들의 요포料布를 지급하는 규식인 제색공장요포차하식[諸色工匠料布上下式] 이 있다. 종 물품의 수량 및 크기 등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다음은 혼전삼방魂殿三房이다. 삼방에서는 혼전에서 사용하는 제기의 주성을 관장하였다. 담 다음 항목은 본 의궤의 편찬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정리해 놓은 의궤사목儀軌事目 이다. 총 5 당자들의 명단을 시작으로 이문질, 삼방의 낭청이 혼전도감에게 여쭙는 공문을 모은 품목질, 감 건 제작된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어람건 1건과 의정부 춘추관 예조 강화부 등 분상건 각 1 결질 등 각종 공문서, 주성한 제기의 수數, 실입實入과 환하한 각종 물품, 혼전의 각소에서 맡은 건이 제작되었다. 어람건은 초주지草注紙, 분상건은 저주지楮注紙를 사용하였다. 기명器皿을 담당한 설리薛里 및 도감 낭청의 입회[안동眼同]하에 분급한 물품, 이러한 각종 물품을 이어서 별도로 항목명을 잡지는 않았으나 세 도감의 총호사 이하부터 원역員役 공장에 이르 기까지 국장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시상한 내역을 실었다. 일반 의궤에 상전賞典 이라고 명명한 항목이다. 여기까지가 도청의궤에 해당한다. 다음부터는 각방의궤를 실었다. 먼저 혼전이방魂殿二房 이다. 이방에서는 조성소 수리소 별공작 만드는 장인들의 명단 등을 상세하게 수록하였다. 혼전 제기의 규격이나 모양에 대해 도설을 수록하고 있지 않아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삼방 에서 주성한 제기는 종묘 1실의 제기 각 1건을 견양見樣으로 삼은 것을 보아,46 종묘 제사에 사용 하는 제기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47 을 관장하였다. 조성소에서는 혼전의 정전正殿과 신문神門 안 각종 시설물의 수리와 조성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혼전별공작魂殿別工作이다. 별공작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특별히 선공감繕工監 수리소에서는 어재실御齋室 이하 각처의 수리 조성과 여러 곳의 수소修掃를 담당하였다. 별공작의 역 에 두던 임시 부서이다. 여기서는 그 밖에 필요한 기물들을 조달하고 마련하는 일을 맡았다. 담당 할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으나 그 밖의 기물인 상탁床卓이나 목물木物의 조성을 담당하였다. 자들의 명단, 전내殿內 배설 및 수라간과 각색各色에서 담당한 물품의 분배分排, 금화禁火에 필요 담당자들의 명단, 조성소 수리소의 업무, 품목 과 감결, 이문 을 차례로 제시하였다. 특히 품 한 물품들, 별감別監과 전사청典祀廳, 주색酒色, 별사옹원別司饔院, 병공색餠工色, 은기색銀器色, 반 목 과 감결 은 날짜 아래에 품목 과 감결 이라고 써 놓았고, 품목질 과 감결질 이라는 각각의 항 공색飯工色, 상배색床排色, 증색蒸色, 포장색泡匠色, 탕수색湯水色, 자색炙色 등의 소장所掌 물품, 신 목을 설정하지 않은 채 두 공문서가 섞여 있다. 품목과 감결을 이어서 이문 이 나오는데, 이문 또 탑神榻과 관련된 물품들, 재판실입질材板實入秩, 기해등록己亥謄錄에 따라 진배 실입 및 용여환하 한 이문(질) 이라고 항목을 설정하지 않았다. 갑인유월이십일호조료甲寅六月二十日戶曺了 라는 문서 用餘還下한 각양 물종의 수를 병서幷書, 전교로 인해 추후로 조작한 3층 보장寶欌 2건에 들어가는 에서 날짜 아래에 쓰인 호조료 는 호조에게 라는 뜻으로 이방에서 호조에게 보내는 문서임을 알 물종, 별공작의 감역관監役官48이 혼전도감의 제조에게 여쭙는 공문을 모은 수본질手本秩, 기물의 려준다. 수신처가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문서가 이문 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세 공문서에서 이 제작을 맡은 공장들의 명단 등을 차례로 기재하였다. 방에서 필요한 각종 물품들의 종류와 수량, 그것을 담당하는 기관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본서의 말미에는 총호사, 제조, 도청, 낭청 등 혼전도감 담당자들의 수결手決이 있다. 다음으로 조성소수본급실입질造成所手本及實入秩, 정전이하각처박배각양철물타조용하질正殿 以下各處朴排各樣鐵物打造用下秩, 각양잡물실입용하질各樣雜物實入用下秩, 용여잡물환하질用餘雜 物還下秩 등 조성소에서 실제로 들어간 각종 물품을 기록해 놓은 실입 및 물건을 쓰고 (다른 기 Ⅴ. 맺음말: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편찬의 의의 관으로) 내려 주는 용하用下, 가져다 쓴 뒤 도로 내려준 환하還下 등에서 각종 물품들을 상세하 게 기록하였다. 이어서 각종 물품의 제작을 담당하는 제색공장질諸色工匠秩 을 기재하였다. 다음으로 수리소수본급각양잡물실입환하질修理所手本及各樣雜物實入還下秩, 공사저취용질公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1674년 2월 인선왕후가 승하한 뒤 6월 장례를 치르고 혼전에 신주 를 봉안하기 전까지 혼전의 설치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다. 곧, 창경궁 문정전에 조성된 경사전의 私儲取用秩, 숭화문외행각칠간신조실입질崇化門外行閣七間新造實入秩, 수보질修補秩, 용여질用餘 秩, 철물질鐵物秩, 각사진배잡물용하질各司進排雜物用下秩, 각사진배잡물환하질各司進排雜物還下 秩, 제색공장질 등을 실었다. 이어서 정전급어재실이하각처배설등물질正殿及御齋室以下各處排設 等物秩, 등록외차비질謄錄外措備秩, 인전교가조질因傳敎加造秩 등을 차례로 싣고 있다. 모두 각 46 46.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魂殿三房 甘結秩. 甲寅三月十二日 祭器鑄成時見樣次 宗廟一室祭器各一件輸納爲旀 扶持軍士六 名架子三部定送事 兵曺奉常寺. 47. 종묘 제기는 종묘의궤 (상), 宗廟祭器圖說(五禮儀), 29~53쪽 참조. 48. 혼전 별공작의 감역관은 선공감 가감역假監役 유정주柳廷舟이다.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47

설치에 관해 정리한 보고서이다. 인선왕후는 왕후의 신분이므로 그녀의 상장례를 국장 이라 한다. 국장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 국문초록 주를 봉안하기 전까지 혼전의 설치에 관해 기록한 의궤이다. 혼전은 산릉에서 장례를 치른 뒤 후의 장례를 나라의 장례 라는 뜻으로 명명한 흉례 용어 중 하나로, 세자나 세자빈의 예장禮葬과 구별해서 일컬었다. 그에 따라 예장에 사용하는 혼궁魂宮 대신에 혼전이라 한 것이었다. 이는 유교 문화권에서는 모든 질서를 예禮 에 따라 차등적으로 구분 지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선 왕후의 국장은 그 밖에도 모든 절차를 국장에 따라 치렀다. 의궤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끝난 뒤 제반 행사 과정을 정리한 보고서이다. 그렇기에 국 왕이나 왕후가 승하할 때마다 작성한 국장도감의궤, 빈전도감의궤, 혼전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1674년 2월 인선왕후가 승하한 뒤 6월 장례를 치르고 혼전에 신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신주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와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까지 신주를 봉안하는 곳이다. 인선 왕후의 혼전은 창경궁 문정전에 마련되었고, 경사전敬思殿이라 일컬었다. 의궤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끝난 뒤 제반 행사 과정을 정리한 보고서이다. 그렇기에 국 왕이나 왕후가 승하할 때마다 작성한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 빈전도감의궤殯殿都監儀 軌, 혼전도감의궤魂殿都監儀軌, 산릉도감의궤山陵都監儀軌, 부묘도감의궤祔廟都監儀軌는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국왕이나 왕후가 승하할 때마다 이들 의궤가 작성되어 현 존하는 의궤 중 가장 많이 남게 되었다. 부묘도감의궤는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국왕이나 왕후가 승하할 때마다 이들 의궤가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본서가 현재 유일하게 전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매 작성되어 현존하는 의궤 중 가장 많이 남게 되었다. 이는 국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우 크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관찬 자료에서 확인되는 기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하다. 사실들을 수록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본서가 현재 유일하게 전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의의가 매우 크다.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관찬 자료에서 확인되는 기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주제어 :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인선왕후, 혼전, 경사전 사실들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선왕후혼전도감의궤 는 인선왕후 국장 전체를 연구하고자 할 때, 혼전을 건축적으로 접근 하고자 할 때, 제기의 조성을 알고자 할 때, 그 밖에 다른 분야에서 참고하고자 할 때 반드시 참 고해야 하는 의궤이다. 조선시대 왕실 의례 연구를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주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48 인선왕후의 국장과 혼전도감의궤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