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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학연구 56( ), pp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 1)이기대 ** 국문초록 세종시의 상황은 세종이 왕이 되면서 겪어야 했던 과정과 닮아 있다. 왕이 되리라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세종은 왕이 되었고 어려움을 극복해 갔다. 세종시도 갑작스럽게 행정도시로 계획되었고 준비의 시간 또한 짧았지만, 이 후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때를 기다리며 현재의 세종시로 성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종시의 발전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세종이 앞서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인문정신에서 많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세종이 오늘날 우리에게 기억될 수 있었던 이유로 기다릴 줄 알았고, 다른 길 을 걸었으며, 함께 가는 길을 택했던 인문정신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도 세종의 인문정신과 같이 다른 도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운 공간을 창출하고, 사람들과 지역이 통합할 수 있는 도시로 가꾸어 가는 과정에 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형적으로 보기에만 세련된 인상으로 남는 것이 아 니라, 신도심과 구도심이 함께 상생하고, 그 안에서 이전과 다른 문화를 새롭게 만 들어 가는 과정이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주제어: 세종, 세종시, 지역 정체성, 인문정신 * 이 논문은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세종시의 문화정체성 이라는 주제로 2015 년 11월 3일에 개최한 추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것입니다. 세종시의 정체성을 모색 하고 이를 지역사회와 공유한다는 학술대회의 개최 의도에 따라, 논문의 성격을 다소 일반적이며 대중적으로 구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국어국문학과 부교수(고전문학 전공)

2 34 한국학연구 서론 세종시는 서울에 집중된 정부의 행정기능을 이전시켜 국토를 균형적 으로 발전시키고자 계획된 도시이다. 처음에는 도시의 기능적 성격에 따 라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불렸지만, 이후 전국적인 공모를 통해 공식 명칭 을 정하게 되었다. 명칭의 후보로는 세종시, 한울시, 금강시, 새서울시, 행복시 등이 제안되었다. 이 가운데 세종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차 지하는 위상을 고려하여, 세종시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1) 세종시라는 명칭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도시 이름과 성격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의 도시 명칭은 역사적 근거를 토대로 명명하거나 자연 지 명을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명을 활용하여 도시의 명칭을 부 여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세종시가 처음이다. 2) 세종시라는 명칭이 선정되는 과정과 이에 따른 의미의 부여 과정으로 인해, 도시의 성격 역시 세종과의 연관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지속적 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도시의 건물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세종을 상징하여 외형을 디자인하고 있다. 건물의 이름을 짓고 지명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세종과 관련된 이름 및 한글을 활용하여 쓰고 있다. 3) 때문에 거리의 이름이나 동네의 이름, 아파트 단지의 명칭이 한글로 되어 있으 며, 이러한 이름들이 세종시라는 도시의 성격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1) 행정중심복합도시의 명칭이 세종시로 제정되기까지, 전문가 23명의 심의위원회와 국 민공모의 과정을 거쳤다. 세종은 한울 금강보다 발음이 뚜렷하고 영문표기가 쉬우며, 세종대왕을 기리는 동시에 세상( 世 )의 으뜸( 宗 )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어 최종 명칭으로 제정되었다. 박병철, 행정중심복합도시 명칭 제정의 경과와 전망, 지명 학 12, 한국지명학회, 2006, 면. 2) 외국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인명이 지명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지명이 자연지리적인 계기만을 중시해왔던 관점에서 벗어나, 세종시의 지명은 사회 역사적 측면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이름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모범도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병철, 앞의 논문, 면. 3)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세종시의 지명 등 명칭에 순우리말(고유어)를 사용하여 다 른 도시의 명칭과 차별화 시켰으며, 한글 창제자인 세종대왕과 연계되어 정신을 반 영하였고 시대의 문화나 제도, 인물, 업적 등을 반영하여 세종시의 세종시 다움을 드 러내도록 하였다.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 행정중심복합도시 마을 및 시설 명칭부 여 학술연구 용역, 한국토지주택공사 세종사업본부, 2012, 10-11면.

3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35 있다. 또한 세종시에서는 세종의 업적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한 행사도 진행 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4) 우선 지역에 소재해 있는 세종과 관련된 인물들 의 유적을 발굴하거나 정비하고 있으며, 세종의 이름을 딴 각종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5) 아울러 세종축제 및 한글 관련 공연 6) 과 같이 세종을 콘 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세종시에서 의도적으로 세종을 부각시키고 도시 의 브랜드로 만들려는 노력은 세종시에서 세종을 기억하고 떠올리는데 분명 기여할 것이라 판단된다. 7) 따라서 세종시는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세종과의 연관점을 찾아가는 도시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세종의 유적이나 상징물을 통해 세종과의 연관성을 내세우는 다른 도시들과 구별되는 세종시의 특징이 된다. 때문에 세종의 삶과 그의 인문정신이 세종시 자체에 투영되어 세 종시의 정체성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계획 했던 것처럼 세종시는 세종의 업적을 기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를 창 조적으로 계승하는 도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종의 인문정신이 세종시의 정체성과 연계되는 과정을 보 다 창의적으로 설정하고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리고 이 를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세종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다만 세종의 영향력과 방대한 업적으로 인해 그에 대한 관심도 다방면으 로 전개되어 왔던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세종이 지향하고 있던 여 러 방향 가운데 세종시와 관련하여 보다 집중적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인 4) 세종시가 한글과 과학기술, 음악 등 세종대왕이 이루신 업적을 현대적이고 창조적으 로 계승하는 방향으로 세종축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겠다. 세종시 문화체육관광 과, 세종시 보도자료, 2015년 10월 12일. 5) 세종의 이름을 따서 시행하는 세종시의 정책은 인문학 및 대중 강좌를 담당하는 집 현전 프로젝트와 세종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세종인문지리학교 등이 있다. 6) 2015년 세종시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된 '예술창작소 이음'에서는 창작공연인 '한글 꽃 내리고'를 공연하기로 하였다. 충북일보, 2015년 10월 22일 기사. 7) 세종시가 정부청사와 호수공원, 국립세종도서관 등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배 경으로 세종대왕, 한글 등과 연계된 다양한 문화, 관광행사를 발굴 개최하여 전국적 으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춘희, 세종시의 발전과 미래, 건축 59(3), 대한건축학회, 2015, 10면.

4 36 한국학연구 56 문정신이 무엇인가라는 점으로 논의를 초점화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제기하고 있는 세종의 인문정신과 세종시의 정체 성에 대한 논의는 세종의 위상과 세종시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시론적 성 격을 지닌다. 따라서 이후에 세종시와 세종을 연관지을 수 있는 보다 다 각적인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본 논문에 서의 논의가 세종과 세종시를 내적으로 연계하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향후 세종시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 한다. 2. 세종에 대한 기억과 이해의 방향 세종이 남긴 업적은 현재 우리들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 며, 그 흔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세종은 업적을 통해 기억된다.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각종 과학 기술 도구의 발명 및 음 악과 같은 예술 분야에 대한 성취를 머리에 떠올릴 수 있다. 당장 만원권 지폐만을 보더라도 그 안에는 세종의 초상뿐만 아니라 <월인천강지곡>, <측우기>와 같은 세종이 남긴 유적들이 형상화되어 있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울러 현재 세종을 기리기 위한 각종 출판물 및 기념관, 유적지도 산 재해 있다. 8) 뿐만 아니라 세종과 관련된 영상물도 활발하게 제작되어 쉽 게 접할 수 있다. 9) 그리고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세종을 도시의 콘텐 8) 세종에 기반하여 제작된 콘텐츠의 전체 규모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국립중앙도 서관에서 검색되는 세종관련 책의 종류는 2000권이 넘으며, 서울의 경우 지명과 상 징물의 명칭으로 세종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를 세종의 업적인 한글, 과학 기구로까지 확대하면 우리나라의 역사인물 가운데 가장 많이 콘텐츠화된 인물이 세 종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9) 세종은 TV방송국이 개국한 60년대에 바로 <세종대왕>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자료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지만 매우 일찍부터 세종의 영상 자료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1974년 2월부터 200회로 방송된 kbs의 일일 연속 사극 <세종대왕> 등 의 작품에 대해 정영희는 유신정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국난극복과 민족

5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37 츠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을 비롯하여 여주, 청주, 성주, 울산에서도 세종을 내세운 행사나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10) 이처럼 세종은 역대의 왕들 가운데 가장 큰 업적을 남겨 그 영향력이 지 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재도 세종을 좋아하고 기리기 위 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은 이처럼 뛰어난 업적을 남긴 왕이었지만, 실제로는 태어나면서 왕이 될 것이라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즉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종에게는 양녕과 효령이라는 형들이 있었고, 장자인 양녕이 어려서부터 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삼남이었던 세종은 세자가 아닌 대군의 삶을 살아가야 했고, 이로 인해 왕의 자리는 세종의 차지가 될 수 없었다. 때문에 세종의 삶과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 본적으로 그가 어떻게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가에 대한 관심이 필 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택현( 擇 賢 ) 의 논리를 따른 태종 의 결단이 계기가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11) 반면에 야사 이데올로기를 그려내는 인물 역사극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74년에 방 영된 <세종대왕>은 이후 등장하는 영화 <세종대왕>과 같은 시대적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80년대에는 극작가 신봉승( 辛 奉 承 )이 사극< 조선왕조 500년> 뿌리깊은 나무 편에서 세종대왕을 다루고 있다. 신봉승에 의한 <조선왕조500년>의 장기간 방영으 로 인해 80년대의 사극은 신봉승의 사극이었으며, 그가 추구한 사실 중심의 사극으 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이후 사극에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점 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90년대에는 정치를 통한 권력의 허무함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면, 2000년대는 강건한 지도자 혹은 정치가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이기대, 史 劇 에 나타난 세종의 왕위 계승 과정과 인식의 변화 : <용의눈물>과 <대왕세종>을 중심 으로, 한문학보 24, 우리한문학회, 2011, 31-57면. 10) 전국 도시 가운데 세종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도시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울, 여주, 청주, 울산, 성주 등이다. 이들 지역은 세종과의 유적이 뚜렷한 곳인데 서울은 당연히 세종이 나고 자라며 활동한 곳이다. 여주는 세종의 능이 있으며 이러한 능은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종과의 연계성을 활발히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 청주는 세종이 초정에 다녀오면서 행궁을 만들었기에 이의 연관성을 이야기하고 있 으며 성주에는 세종과 관련된 태실이 있어 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울산은 한글학자 인 최현배의 고향이기에 한글을 중심으로 세종과의 연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11) 최승희, 태종말 세자폐립사건의 정치사적 의의, 조선초기정치사연구, 2002, 지식 산업사, 면.

6 38 한국학연구 56 ( 野 史 )의 기록을 근거로 양녕이 세종에게 세자의 자리를 양위하려 하였 기에 세종이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견해도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다. 12) 이러한 논의는 충녕의 자질이 뛰어나기도 하였지만 양녕의 의도적인 태 도의 변화가 아니었다면 세종이 세자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 다. 13) 한편으로는 태종이 세종을 세자로 세우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양녕 이 버틸 수 없어 양위를 결심했다는 견해도 있다. 14) 즉 태종의 정치적 결심으로 인해 양녕이 물러날 이유와 명분을 마련해주었고 이로 인해 세 종이 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종이 세자의 자리에 오르고 이후 왕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관련해서 는 이처럼 여러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점은 세종의 왕위 계승 과정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만 이러한 여러 견해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세종의 왕위 계승 은 그만큼 급격하게 진행되었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과 같은 정사( 正 史 )에는 세종이 세자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는 과정이 매우 급하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15) 때문에 12) 아우 충녕대군이 나면서부터 성덕이 있어 백성이 충녕대군에게로 마음을 돌리니, 세자 가 마음속으로 알아차리고 거짓 미친 체하여 도망가서 세자 자리를 양보하였다. 弟 忠 寧 大 君 生 有 聖 德, 百 姓 歸 心, 世 子 心 知 之, 佯 狂 逃 去 以 讓 之. 許 穆, 記, 眉 叟 記 言. 13) 폐위 과정을 잘 살펴보면, 양녕대군이 의도적으로 왕위를 양보했음을 알 수 있다. 김 영수, 조선왕조의 권력 이양과 승계, 민족문화논총 58,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2014, 면. 14) 윤정은 태종 18년 태종이 개성으로 이어( 移 御 )하는데, 이 것은 서울에 남겨진 양녕을 고립시켜 폐위의 정당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세종으로 의 세자 이양이 태종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윤정, 태종 18 년 개성 이어와 한양 천도의 정치사적 의미, 서울학 연구 50, 서울시립대 서울학 연구소, 2013, 면. 15) 세종이 양녕의 뒤를 이어 세자로 책봉되는 과정의 일들에 대해서는 실록 의 내용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세종이 태자로 결정된 날은 태종 18년 6월 3일이며, 이 날 의 기록을 보면 태종비 원경왕후는 형을 폐하고 아우를 세우는 것은 화란의 근본 이라고 하고 있으며, 태종도 오전에는 옛날에는 유복자를 세워 선왕의 유업을 이어 받게 했고, 또 적실의 장자를 세우는 것은 고금의 변함없는 법식이다. 제(양녕의 이 름)는 두 아들이 있는데, 장자는 다섯 살이고 차자는 세 살이니, 나는 제의 아들로써 대신 시키고자 한다. 라고 하고 있다. 즉 원경왕후는 세종이 양녕을 대신해 세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형을 폐하는 것은 이후 화란의 근원이 된다고 하여 반대하고 있으 며, 태종도 장자계승의 원칙에 따라서 양녕이 불가하면 양녕의 아들이라도 세자로

7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39 세자가 아니었던 세종의 대군시절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다. 16) 이 로 인해 세종 자신이 어려서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공부를 하였다고 하더 라도, 17) 세종은 왕이 될 교육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하였고 개인적으로도 준비하지 못했다. 18) 또한 태종도 세종을 세자의 자리에 올리는 것을 갑 작스럽게 결정하였기에, 그 이전에는 세종에게 왕이 될 교육을 시킬 생 각이 없었다. 임금이 일찍이 충녕 대군에게 이르기를, 너는 할 일이 없으니, 평안하게 즐기기나 할 뿐이다. 하였으므로, 이때에 서화( 書 畫 ) 화석( 花 石 ) 금슬( 琴 瑟 ) 등 모든 유희 애완( 愛 玩 )의 격물( 格 物 )을 두루 갖추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 므로 충녕 대군은 예기( 藝 技 )에 정( 精 )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19) 위의 인용문은 태종이 세종에게 공부에 대하여 한 말이다. 여기서 할 일이 없다 는 태종의 말은 대군이었던 충녕으로 하여금 일체 정치에 관 여하지 말며, 왕실의 문제에 신경쓰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이다. 때문에 충녕은 실제로 서화( 書 畫 ) 화석( 花 石 ) 금슬( 琴 瑟 ) 과 같은 예술 방면을 즐겨 공부했으며, 이 분야에 매우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세자가 된 이후에도, 세종이 세자로 있었던 기간은 매우 짧았다.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날 오후에 신하들에게 효령과 충녕 가 운데 누가 양녕을 대신할 것인가를 물은 이후 신하들이 아들을 알고 신하를 아는 것은 임금만한 이가 없다. 며 선택할 것을 미루자, 태종은 비로소 충녕으로서 세자 를 정하겠다. 는 결심을 밝히게 된다. 태종실록, 18년 6월 3일. 16) 정윤재, 세종의 정치리더십 과정 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6(1), 한국동양 정치사상사학회, 2007, 7면. 17) 대군시절 세종의 학문 수양과 관련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의 스 승이 이수( 李 隨 )였고, 왕이 된 이후에 경연 과정에서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은 몇 가지 일화를 통해 알려져 있다. 정윤 재, 앞의 논문, 5-11면. 18) 이도의 경우에는 1418년 6월 갑자기 세자로 책봉되고 8월에 왕위에 올랐으니 왕세자 교육을 위한 정규 과정으로서의 서연에서 국왕 훈련을 공식적으로 받은 것은 불과 두 달도 안 되는 셈이다. 이한우,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 동방미디어, 2003, 62면. 19) 上 嘗 謂 大 君 曰 : 汝 無 所 事, 安 享 而 已. 於 是, 書 畫 花 石 琴 瑟 凡 戲 玩 之 物, 無 不 具, 故 大 君 於 藝 無 不 精. 태종실록, 13년 12월 30일.

8 40 한국학연구 56 세자가 된지 52일 만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세 자의 자리에 오르고, 이후 두달도 되지 않아 왕이 된 세종이기에, 그가 왕이 된 처음부터 왕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업적을 세웠다 고 보기는 어렵다. 세종의 재위 초반기에 병권과 같은 실질적인 권한은 태종이 가지고 있 었다. 태종으로부터 모든 권력을 넘겨받은 것은 아니었기에 세종이 행사 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20) 오히려 세종은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재위 직후에 세종은 매우 참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에게 사약을 내려 제거하려 하였고 이에 심온이 죽은 것이다. 21) 상왕이 주상에게 이르기를, 만약 그렇다면, (심온에게) 마땅히 사약( 死 藥 )을 내릴 것이고 형( 刑 )은 더할 수 없다. 고 하면서 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22) 위의 내용처럼 태종은 세종에게 사약을 내려 심온을 죽일 것이라 말한 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태종은 세종이 왕으로 즉위하던 해인 12월 4일에 세종의 장모와 딸들을 모두 노비로 만들었다. 세종에게 있어 장인 심온의 죽음과 처가의 몰락은 자신이 왕이 됨으로 인해 발생한 사 건이 된다. 때문에 이에 대한 죄책감은 매우 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세 종의 처가가 몰락한 상황에서 태종은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 심씨마저 도 폐비시키려 한다. 세종에게 있어 소헌왕후는 자신이 왕이 되리라 생 20) 유재리, 세종초 양상통치기의 국정운영, 조선시대사학보 36, 조선시대사학회, 2006, 7면. 21) 심온의 제거는 바로 직전에 있었던 강산인의 옥사를 처리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강 상인은 군사의 문제를 태종이 아닌 세종에게 먼저 보고하는데, 태종은 이 일을 문제 삼아 강상인을 처벌하였다. 이후 심온이 이 일과 연관이 있다고 하여 그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국경을 넘자마자 체포하고 사약을 내린다. 유재리, 앞의 논문, 14-15면. 22) 上 王 謂 主 上 曰 : 若 然 則 宜 當 賜 死, 不 可 加 刑. 乃 賜 自 盡. 세종실록, 즉위년 12월 23일.

9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41 각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곁에 있어 주었던 부인이었다. 때문에 세종은 왕의 자리를 걸고 소헌왕후만은 간신히 지켜낼 수 있었지만, 처가의 몰 락은 끝내 막아낼 수 없었다. 더욱이 장인인 심온이 죽은 다음 날, 세종은 태종과 술을 마시면서 연 회에 함께 참석하였다. 23) 기록에 태종이 춤을 추었다고 되어 있던 것으 로 보아서, 아들인 세종도 아마 함께 춤을 추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 다. 어떤 마음으로 세종이 춤을 추며 연회를 즐겼을 것인지 짐작하기 어 렵지만, 분명 장인이 죽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떠올렸을 것이다. 24) 미약한 세종의 모습은 태종뿐만 아니라 신하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당시 조정의 신하들은 태종과 함께 나라를 개국하고 왕자의 난을 함께 겪었던 노련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왕이 되리라 생각지 않 던 세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세종의 모습은 신하들이 보기에도 원숙한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신하들의 생 각은 세종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세종이 자신의 뜻에 따라 정치를 펼치도 록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양녕에 대한 처리 문제 등과 같은 첨예 한 사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세종은 신하들과의 관계에서 번번이 패하 는 쓰라린 경험을 겪기도 하였다. 25) 이렇게 냉혹한 정치현실에서 세종은 23) 임금이 수강궁에 문안하고 상왕에게 헌수( 獻 壽 )하니, 박은 이원 최이( 崔 迤 ) 정역 ( 鄭 易 ) 맹사성 허조 조말생 조연( 趙 涓 ) 변계량 이징( 李 澄 ) 허지 이명덕 원숙들과 통사 ( 通 事 ),김을현 임밀들이 연회( 宴 會 )에 배석하였는데, 술이 취하여 여러 사람이 한 귀 씩 불러 한 편의 시( 詩 )를 지었다. 상왕이 말하기를, 주상이 나를 성심으로써 위로 하니, 내가 어찌 감히 극히 즐기지 않겠느냐. 다만 주상의 몸이 편안하지 못한 것이 염려될 뿐이다. 하니, 임금이 아뢰기를, 신이 비록 술은 마시지 못하오나, 몸은 이미 편안합니다. 고 하였다. 상왕이 일어나서 춤을 추고, 여러 신하들이 또한 춤을 추었 다. 밤이 2경( 更 )에 이르러서야 연회를 파하였다. 上 朝 壽 康 宮 獻 壽, 朴 訔 李 原 崔 迤 鄭 易 孟 思 誠 許 稠 趙 末 生 趙 涓 卞 季 良 李 澄 許 遲 李 明 德 元 肅 等 及 通 事 金 乙 玄 林 密 等 侍 宴, 酒 酣 聯 句. 上 王 曰 : 主 上 慰 我 以 誠, 予 何 敢 不 極 歡? 第 恐 主 上 未 寧 耳. 上 曰 : 臣 雖 未 能 飮 酒, 身 則 已 寧. 上 王 起 舞, 群 臣 亦 舞, 夜 至 二 鼓 乃 罷. 세종실록, 즉위년 12월 24일. 24) 정윤재, 앞의 논문, 20면. 25) 세종은 자신으로 인해 세자에서 폐위된 양녕의 처우와 처소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자 하였으나, 신하들과의 의견 대립으로 양녕의 거처와 처우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 다. 정윤재, 앞의 논문, 22-23면.

10 42 한국학연구 56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보다는 상왕인 태종을 추종하였고 이 에 따라 태종의 권위는 실제로 더욱 높아져 갔다. 26) 세종은 왕이 되었지 만 후대의 평가처럼 태종 아래의 견습왕으로 왕으로서의 초반기를 보내 야 했던 것이다. 27) 이와 같은 세종의 모습에 주목한다면, 세종이 왕으로서 업적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 지만 이러한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세종의 찬란한 업적만을 기억한다면, 역설적으로 세종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창조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의 접근을 가로막는다. 오히려 세종의 천 재성이나 근면성만을 가지고 세종을 이해하려 든다면 그의 진정한 고민 들을 포착해내기 보다는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초인적인 인간상을 만들어 내기 십상이다. 때문에 업적 중심의 인간 이해는 대상을 실제로 이해하게 만드는데 걸 림돌이 된다. 즉 그를 좋아하고 업적을 높이는 것에만 익숙해질 뿐, 현재 우리의 삶과 세종을 연계시킬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을 겪 게 된다. 따라서 세종의 삶과 그의 업적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더욱 소 중한 것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문제들을 세종이 어떻게 해결해 나아갔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세종에게도 역사에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갈등과 좌절이 그의 삶에 존재 해 있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3. 세종시의 정체성으로서 세종의 인문정신 충녕군의 자리에 있다가 뜻하지 않게 세자가 되었고 다시 갑작스럽게 26) 상왕이 주상의 효성을 칭찬하며 자주 말하기를, 왕위를 물려준 이후로 내가 더욱 높 아졌다. 고 하면서, 서로 창화( 唱 和 )하여 매우 즐거워하였다. 上 王 稱 美 主 上 之 誠 孝, 亟 曰 : 辭 位 以 後, 吾 益 尊 矣. 唱 和 極 歡. 세종실록, 즉위년 11월 8일. 27) 이한우는 이 시기 세종을 견습왕 이라 칭하고 있다. 이한우,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해냄, 2006, 34면.

11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43 왕위에 오른 세종의 모습은 연기군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되었고 이후 세종이란 이름을 쓰게 된 세종시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세종이 짧은 준 비 기간에도 이후 지속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낼 수 있었던 모습은 몇 년 만에 나라의 중심인 행정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세종시의 미래를 보여주 는 듯한 기시감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세종의 모습을 통해 세종시의 미래를 바로 가늠해보는 것은 어찌 보면 성급한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세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들을 짚어가다 보면, 이 과정에서 세종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원칙들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은 나라의 기틀을 확고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이러한 시사점이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세종의 인문정신으로 이해하고 세종시의 미래를 위한 방향성을 고민하는데 있어 서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종시에서 세종을 더 많이 떠올릴 수 있게 되며, 이후 세종 시 발전의 토대가 되어 세종시의 정체성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세종이 집권 초반기에 본인의 문제 를 극복하고 신하들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그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상황을 세종의 인문정신으로 온축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1) 공감과 실천 세종은 왕이었지만, 왕이라는 지위는 신하와 백성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자리이다. 때문에 세종의 성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종과 신하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허 조라는 신하의 실수를 대하는 세종의 태도를 통해 잘 드러난다. 임금이 곤룡포( 袞 龍 袍 )와 면류관( 冕 旒 冠 ) 차림으로 종묘( 宗 廟 )의 춘향 대제( 春 享 大 祭 )를 행하였는데, 찬작관( 瓚 爵 官 ) 이조 판서 허조( 許 稠 )가 잔을 드리고서 물러나오다가, 잘못 실족하여 계폐( 階 陛 ) 아래로 떨어졌다가

12 44 한국학연구 56 곧 다시 일어나서 계폐 위로 올라가서 빈 잔을 받게 되었다. 임금은 도로 재 전으로 들어가서, 이조 판서가 상하지나 않았느냐. 고 물으므로, 허조가 나 아가서 실례됨을 사과하니, 계단을 넓히도록 하라. 고 명하였다. 28) 위의 내용은 종묘의 춘향 대제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것이다. 여기 서 이조판서인 허조가 찬작관( 瓚 爵 官 )으로 세종에게 잔을 드리고 나오다 가 계단에서 실족하였다고 한다. 종묘제례는 왕실의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엄숙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행사이다. 따라서 허조의 실수는 엄하게 다스려야할 상황이 되지만, 세종은 오히려 허조가 다치지 않았을까 그의 상황을 묻는다. 29) 그런데 세종의 말에서 주목할 점은 허조를 염려하는 대목만이 아니다. 허조가 실족한 이유를 계단의 폭이 좁은 것에서 발견하고 계단을 넓히라 고 한 부분이다. 이는 어떤 상황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것 이 아니라, 상황을 야기한 원인에 관심을 갖는 태도이다. 때문에 허조의 실수에 대하여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을 전제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 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감을 통해 신하를 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노비를 대하는 태 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종은 노비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을 표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와 관 련하여 널리 알려진 내용은 세종이 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주었다는 사실 이다. 세종은 출산휴가를 100일이나 주었고, 남편에게도 30일 동안 쉬게 해주었다고 한다. 30) 이러한 생각은 노비라 하더라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28) 上 以 袞 冕, 行 宗 廟 春 享 大 祭 進 幣 瓚 爵 官 吏 曹 判 書 許 稠 進 爵, 退 步 誤 墜 階 下, 卽 起 上 階, 乃 受 虛 爵. 上 還 御 齋 殿, 問 吏 曹 判 書 傷 否, 稠 進 謝 失 儀, 命 廣 階 陛. 세종실록, 7년 1월 14일. 29) 이상주, 세종의 공부, 다음생각, 2013, 면. 30) 형조에 전교하기를, 경외의 여종[ 婢 子 ]이 아이를 배어 산삭( 産 朔 )에 임한 자와 산후 ( 産 後 ) 1백 일 안에 있는 자는 사역( 使 役 )을 시키지 말라 함은 일찍이 법으로 세웠으 나, 그 남편에게는 전연 휴가를 주지 아니하고 그전대로 구실을 하게 하여 산모를 구 호할 수 없게 되니, 한갓 부부( 夫 婦 )가 서로 구원( 救 援 )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혹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어 진실로 가엾다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사역인 ( 使 役 人 )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남편도 만 30일 뒤에 구실을 하게 하라. 하였

13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45 과정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허조의 상황과 유사한 점은 노비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의 구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국한시키고만 있지는 않다. 만약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 게 되면, 신하와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모습은 드러날 수 있지만 백성 이나 신하들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의 모색으로 이어지 지 않는다. 세종의 이러한 모습은 나라의 세금을 거두는 방식을 고민하고 제도를 새롭게 시행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세종은 백성들이 조정에 세금으로 공물을 받치는 제도를 바꾸고자 하였다. 당시의 세금제도는 조 사관이 나가서 수확량을 확인하고 수확의 10분의 1을 세금으로 받치는 제도였다. 이로 인해 조사관이 임의로 세금의 양을 계산하면서, 백성들이 받치는 세금과 나라로 들어오는 세금이 다르기도 하였다. 따라서 백성들 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는데, 세종은 즉위한 첫해부터 이에 대한 안타까 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탐관 오리( 貪 官 汚 吏 )들이 공부( 貢 賦 )의 상납( 上 納 )과 사객( 使 客 )의 접대 와 관부( 官 府 )의 영선( 營 繕 ) 등의 일을 핑계하여, 법을 어기고 세금을 과중 하게 징수하여, 백성에게 해를 끼쳤는데도, 감사가 사실을 조사하지 못하고 도리어 상등( 上 等 )의 열( 列 )에 둔 것은, 무능한 사람을 물리치고 유능한 사 람을 등용하는 뜻에 심히 어긋나니, 지금부터는 세밀히 살피고 단속하여 백 성의 생활을 도와줄 것이다. 31) 위의 기록에서와 같이 세종은 관리들의 부패로 인해 세금 제도에 문제 다. 敎 刑 曹 : 京 外 婢 子 孕 兒 臨 産 朔 與 産 後 百 日 內, 勿 令 役 使, 已 曾 立 法. 其 夫 全 不 給 暇, 仍 令 役 使, 不 得 救 護, 非 徒 有 乖 於 夫 婦 相 救 之 意, 因 此 或 致 隕 命, 誠 爲 可 恤. 自 今 有 役 人 之 妻 産 兒, 則 其 夫 滿 三 十 日 後 役 使. 세종실록, 16년 4월 26일. 31) 貪 汚 官 吏, 托 以 貢 賦 上 納 使 客 支 應 官 府 營 繕 等 事, 違 法 重 斂, 貽 害 生 民, 監 司 不 能 覈 實, 反 置 最 列, 甚 乖 黜 陟 之 意, 自 今 精 察 糾 理, 以 恤 民 生. 세종실록, 즉위년 11 월 3일.

14 46 한국학연구 56 가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즉위 초기 에는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에 우선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과 관련하여 관리의 청렴함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세종은 형이 었던 효령대군의 집안에서도 세금을 불법으로 거두게 된 것이 드러나자 죄를 묻는다. 사헌부에서 효령 대군( 孝 寧 大 君 ) 이보( 李 補 )의 서리( 書 吏 ) 신유정( 申 惟 精 ) 장예생( 張 禮 生 ) 및 노예( 奴 隷 ) 등이 전조( 田 租 )를 불법하게 거둔 죄를 갖추어 아뢰니, 명하여 유정의 직첩( 職 牒 )을 회수하고, 예생은 장( 杖 ) 60대 를 치고, 그 종은 태( 笞 ) 40대를 치게 하였다. 유정은 공신( 功 臣 )의 아들이 었다. 32) 여기서 효령대군의 하인들이 거둔 세금은 쌀 10석, 콩 7석, 종이 50권 이다. 당시의 쌀 가격이 1석에 5-6냥, 콩은 2.5-3냥이고 쌀 1석의 가격은 현재 약 150,000원이다. 때문에 전체 곡식 가격이 약 81냥이라면, 부당하 게 걷은 금액의 총액은 2,025,000원이다. 효령의 위상과 비교해본다면 그 리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에 대해서 용서하지 않는다. 즉 우선 기강을 엄격하게 하여 과도하게 세금 걷는 것을 막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개인의 청렴함에 기대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 제였다. 때문에 세종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제도의 개선을 꾀하면서 변 동적인 세금을 정액으로 바꾸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세종은 이를 급격하 게 실시하는 대신에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한다. 관련된 법령을 만들고 세금을 정비하는 것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는 사항이며, 이권의 개입으 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세종은 백성들이 어떤 제도를 좋아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전국적인 여론 조사를 시행하게 하 였다. 32) 司 憲 府 具 孝 寧 大 君 補 書 題 申 惟 精 ㆍ 張 禮 生 及 奴 隷 等, 橫 斂 田 租 之 罪 以 聞, 命 收 惟 精 職 牒, 杖 禮 生 六 十, 笞 其 奴 四 十. 惟 精, 功 臣 之 子 也. 세종실록, 10년 2월 19일.

15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47 정부 육조와, 각 관사와 서울 안의 전함( 前 銜 ) 각 품관과, 각도의 감사 수 령 및 품관으로부터 여염( 閭 閻 )의 세민( 細 民 )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 可 否 )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 33) 여론조사는 세종 12년(1430년)에 시행되어 전국의 172,806명의 백성을 대상으로 6개월간 실시하였다. 당시 세종실록지리지 에 기록된 조선의 전체 인구는 692,477명이었다. 34) 그리고 여론 조사의 결과는 찬성이 98,657명이었고, 반대가 74,149명이었다고 한다. 35) 찬성이 높은 곳은 삼남과 같이 수확량이 높은 곳이었고, 강원도나 북 쪽 지역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이에 세종은 일단 제도의 실시를 잠시 미 룬다. 그리고 다시 제도를 정비한 이후에 토지에서의 생산량에 따라 차 등하여 세금을 거두는 제도를 시행하였다. 시행은 세종 21년에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시범 실시하였고 이어서 세종 24년에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다. 즉 새로운 세금 제도를 시행하자고 제안하고서 제도를 고치는데 약 15년의 기간이 지난 것이다. 세금을 거두는 방법은 토지의 질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고 다시 생산량에 따라 9가지 등급으로 나누면서 각 등급 에 따라서는 정액으로 세금을 받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 세종은 세금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공정성을 기하려 하 였다. 그리고 세종은 토지에 대한 세금을 걷기 위한 과정에서 백성들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당시 혁신적인 여론 조사를 진행하였고, 이를 완벽하게 시행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을 준비하며 기다렸다. 현대에도 어떤 정책을 마련하거나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조사의 범위가 세종대보다 넓지 않다. 시대적 한계를 33) 自 政 府 六 曹 各 司 及 京 中 前 銜 各 品, 各 道 監 司 守 令 品 官, 以 至 閭 閻 小 民, 悉 訪 可 否 以 聞. 세종실록, 12년 3월 5일. 34) 여기서 인구는 가구의 호주인 남정을 의미한다.. 때문에 가구주만을 대상으로 인구라 표현한 것이기에, 실제적인 전체 인구는 여기에 적어도 4명이나 5명의 가족원 수를 곱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시 전체 인구는 280만 명 정도이며, 이러한 방식으로 따지 면 여론 조사에는 약 68만 명이 참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35) 오기수, 세종대왕의 조세사상과 공법( 貢 法 ) 연구 - 조세법 측면에서, 세무학연구 28권1호, 한국세무학회, 2011, 380면.

16 48 한국학연구 56 고려한다면, 세종의 여론 조사가 오히려 현대보다 더욱 광범위하였고 전 체 의견을 들으려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세종은 백성들의 처지를 살피고 공감하면서 여론 듣기를 중시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종은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성이 타당하다고 믿는다면 정책이 완비되기를 기다렸고, 시행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하 면 이를 실천적으로 시행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는 사소 하게는 계단을 넓힌 것에서 세금 제도의 개혁까지 각 분야에 적용되었다. 따라서 신하 및 백성과 공감하면서 가장 알맞은 때를 기다릴 줄 알고, 또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이 세종의 업적을 이루는데 있어서 중요한 근 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다름과 창조 세종은 신하들 및 백성들과의 공감을 중시하면서 정책을 실행하고 있 다. 일방적으로 본인이 옳다는 것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와 백 성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종의 이런 모습 속에서 신하를 가혹하게 다룬 경우를 찾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 일이 일어난 시점은 세종 4년 1월 1일이었다. 새해 첫날이지만 우 연히도 개기일식이 있을 것이라 예고된 날이었다. 천문관이 중국의 역법 에 따라 계산하고 왕에게 구체적인 시각을 알렸다. 일식과 같은 천문 현 상의 변화는 왕과 관련된 현상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중시되 었었다. 따라서 세종도 개기일식이 있을 것이라는 시점에 맞추어 기다리 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예측이 틀렸고, 세종은 잘못 예측한 천문관에게 곤 장을 치라는 벌을 내렸다. 추보( 推 步,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것)하면서 1각( 刻 )을 앞당긴 이유로 술자( 術 者 ) 이천봉( 李 天 奉 )에게 곤장을 쳤다. 36) 36) 以 術 者 李 天 奉 推 步 先 一 刻, 杖 之. 세종실록, 4년 1월 1일.

17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49 그렇지만 이 문제의 원인은 천문관이 잘못 계산하였기 때문이라고 단 순하게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중국의 역법에 따른 계산이 조선의 실정 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문관의 계산은 예측시간보다 약 1각이 앞당 겨졌다고 한다. 현재 시각으로 14분 40초 정도이다. 실제로 중국과 우리 나라는 대략 동경 15-20도 정도 차이가 나기에, 역법에 따른다면 천문관 의 계산은 실제로 정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종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천문관을 엄격하게 다룬 것은 역 법의 문제가 백성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종은 우리에게 맞는 역법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세종에게 있어서도 쉽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전통 적으로 하늘을 이해한다는 것은 중국에서만 행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천자는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이 를 계산하는 것도 중국만이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의 위치를 토대로 하늘을 계산한 나라는 당시에 중국과 아라비아뿐이었다. 중국의 것은 <대명력( 大 明 曆 )>이라 하 였으며, 아라비아의 것은 <회회력( 回 回 曆 )>이라 하였다. 모두 중국과 아 라비아라는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 세종은 1423년인 세종 5년에 기존의 역법 및 당의 <선명력( 宣 明 曆 )>과 원의 <수시력( 授 時 曆 )> 을 참고하고 검토하도록 하게 하였다. 37) 그리고 이 일 역시 오랜 기간의 준비를 거친 이후에 성과를 거두게 된 다. 그래서 우리 식의 날짜 계산과 하늘에 대한 관측 기록인 칠정산 이 라는 책을 세종 24년에 완성한다. 이러한 칠정산 은 한양에서의 관측에 따라 편찬된 우리나라 최초의 역법이 된다. 이와 같이 해와 달의 움직임 을 계산하고 태양계의 별들에 대해 기록함으로서, 비로소 조선의 하늘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칠정산 을 계산하면, 1년을 365일 5시간 48분 37) 문신( 文 臣 )에 명하여 당( 唐 )의 선명력( 宣 明 曆 )과 원( 元 )의 수시력( 授 時 曆 과 보교회 보중성력요( 步 交 會 步 中 星 曆 要 ) 등의 서적의 차이점을 교정하여, 서운관( 書 雲 觀 )에 내리어 간수하게 하였다. 命 文 臣, 校 正 唐 宣 明 曆 元 授 時 曆 步 交 會 步 中 星 曆 要 等 書 差 異 處, 下 書 雲 觀 藏 之. 세종실록, 5년 2월 10일.

18 50 한국학연구 56 45초로 계산하고 있는데, 현대의 기준이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기에 1 초만 빠르게 계산하고 있어서, 그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다. 때문에 세종 대에 정리된 역법은 자주적 역법 38) 이나 민족 천문학 39) 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늘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조선이 중국과 다르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천문뿐만 아니라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로 인식이 확 장된다. 이에 음악이나 문자 등도 중국과 다르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고, 그 결과 조선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게 된다. 다르다 는 인식이 세종에게 있어 창조의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음악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세종은 우리 음악에 대한 생각을 분명 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악( 雅 樂 )은 본시 우리 나라의 성음이 아니고 실은 중국의 성음인데, 중 국 사람들은 평소에 익숙하게 들었을 것이므로 제사에 연주하여도 마땅할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살아서는 향악( 鄕 樂 )을 듣고, 죽은 뒤에는 아악 을 연주한다는 것이 과연 어떨까 한다. 40) 위의 인용문에서 세종은 조상이 생전에 즐겨 듣던 향악과 제사를 지내 면서 연주하는 아악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상이 과연 제사 중에 연주된 아악 듣기를 좋아할 것인가에 대하여 반문하고 있다. 여기서의 아악은 <종묘제례악( 宗 廟 祭 禮 樂 )>을 의미하는데, 41) 조상들이 생전에 듣 던 음악은 우리의 음악인 향악이지만, 죽어서는 중국의 음악을 듣고 있 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38) 전상운, 조선전기의 과학과 기술, 한국과학사학회지 14권 2호, 한국과학사학회, 1992, 면. 39) 박성래, 세종대의 과학기술, 그 현대적 의미, 한국과학재단, 1997, 면. 40) 雅 樂, 本 非 我 國 之 聲, 實 中 國 之 音 也. 中 國 之 人 平 日 聞 之 熟 矣, 奏 之 祭 祀 宜 矣, 我 國 之 人, 則 生 而 聞 鄕 樂, 歿 而 奏 雅 樂, 何 如? 세종실록, 12년 9월 11일. 41) 아악은 기본적으로 공자와 같은 성인과 유학자들의 신위( 神 位 )를 모신 문묘( 文 廟 )에 서 제사지내는 < 文 廟 祭 禮 樂 >과 조선의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에서 제사지 내는 <종료제례악( 宗 廟 祭 禮 樂 )>으로 나눈다.

19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51 이에 세종은 중국과 다른 우리 음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새로운 음악을 만들도록 한다. 그리고 이후 세조대에 이러한 음악이 각종 행사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즉 세종에 의해 우리식 의 음악이 만들어지고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42) 당시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는 박연이 있었으며, 창조적 음악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정 간보 이다. 정간보는 잘 알려진 것처럼 한자인 우물 정( 井 )의 모양을 토 대로 칸을 나누고 한 칸을 한 박자로 하여 칸의 수에 따라 음의 길이를 알게 한 동양 최초의 악보이면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육보( 肉 譜 )의 문제를 해결하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43) 때문에 정간보는 세종이 우리 의 노래를 음악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며, 결과적으 로 악보의 창안을 통해 음악이 중국과 다르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세종이 중국과 다른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음악이 의미하는 바가 상대와의 화합과 질서와 조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음악이 우리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면 이는 음악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조 선에서의 삶과 부합되는 음악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화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조상들도 종묘에서 제사를 받을 때에 조선의 음악을 들으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은 한글의 창제로 이루어진다. 문자의 문제는 일상 의 삶과 연계되지만 중국과 문자가 다르기에 실질적으로 백성과의 소통 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세종은 백성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윤리 적으로 교화되길 기대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지만, 어 려운 한자는 교육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한글의 창제는 이러한 문제 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 상감마마께서 우리말의 음운체계가 중국어와는 비록 다르다고 하더라도 자음과 모음, 그리고 성조 등 언어로서 갖추고 있어야 될 요소는 중국어와 42) 한흥섭, 세종의 신악 은 한국의 아악인가?, 민족문화연구 49, 고려대 민족문화연 구원, 2008, 면. 43) 한흥섭, 앞의 논문, 면.

20 52 한국학연구 56 마찬가지로 다 갖추고 있어야 된다고 하시고, 또 여러 나라들이 모두 제 나 라 언어음을 나타낼 수 있는 글자를 가지고 있어서 각각 제 나라말을 기록 하고 있으나, 오직 우리나라만이 제 글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여 언문 자로 28자를 만드셨다. 44) 위의 인용문에서와 같이 세종은 자기 나라의 말을 나타낼 수 있는 문 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언어가 다르면 문자도 달라야 한다 는 인식을 토대로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창제된 한글의 특징과 우수성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충분 히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한글은 다름에 대한 인식이 창조의 길로 나아 가는 과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세종의 천문, 음악, 한글에 대한 인식이 모든 연구에서 긍정적으로만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종의 과학적 태도는 일종의 정치적 지 향 45) 에 따른 것이며, 음악의 경우에도 완전한 독자성을 추구한 것은 아 니라 평가하기도 한다. 46) 한글에 대해서도 발음 기호의 성격을 가진 것 으로 다른 나라 문자와 유사하다는 논의도 제기되었었다. 47) 다만 이러한 인식과 평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분야에서 조선 과 중국이 다르다는 세종의 인식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다 르다는 것에서 우열의 관계를 포착하기 보다는 다른 모습에 적합한 새로 운 문화를 만들려 했다. 그리고 다름과 창조라는 세종의 인문정신은 세 종시의 방향성과 연결된다. 세종시 역시 처음부터 기존의 도시와 다르게 계획되고 있으며, 이러한 다름을 통해 세종시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 44) 신숙주, 보만재집 (정주리 시정곤, 조선언문실록, 고즈윈, 2011, 37면 재인용.) 45) 문중양,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 다시 보기, 역사학보 189, 역사학회, 2006, 39-72면. 46) <종묘제례악>도 <문묘제례악>과 같이 중국계 아악으로 보거나, 처음부터 아악과 성 격이 다른 고취악계나 향가계 음악으로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아악에 대한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인데, 본 논문에서는 기본적으로 <종묘졔례악>이 우리식의 새로운 음악이라는 관점을 취하여 논의하였다. 권오성 한민족음악론, 학문사, 1999, 101면. 장사훈, 증보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269면. 47) 정광은 한글이 한자음의 발음기호이며 파스파 문자와 관계되어 있다고 한다. 정광, 한글의 발명, 김영사, 2015, 1-508면.

21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53 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르면서 창조적 도시라는 세종시의 특징을 세종의 인문정신과 맥락적으로 연결하면서 도시의 정체성으로 축적해가는 과정 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3) 통합과 미래 세종이 업적을 남기는 동안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 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갈등이 증폭되어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한글 창제 당시 최만리와 같은 인물들의 직접적인 반대나 세금 제 도의 개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었던 북쪽지방의 백성들을 통해 확인 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정책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세종은 이에 따른 파열음을 가능한 줄여가고자 하였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세종은 반대하는 인물들을 포용하여 통합하고자 하 였다. 때문에 세종의 인문정신으로 신하들과의 통합과 이에 따른 미래지향 적 사고를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황희 정승과의 관계를 통 해 잘 드러난다. 황희는 세종 8년(1426)에 우의정이 되었고 이후 1449년 이 될 때까지 24년간 정승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황희가 70세에 영의정 으로 발탁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 늙었다 하여 여러 차례 사직하려 상소 를 올렸다. 그렇지만 세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1449년 황희가 87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물러날 수 있었다. 세종이 왕으로 있던 31년 가운데 8년을 빼고 나머지 기간 동안에는 황희가 정승으로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황희는 세종의 국정 파트너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황희는 세종과 신하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초가 된다. 파트너처럼 움직인 황희였지만, 그가 처음부터 세종의 신임을 받은 것 은 아니었다. 황희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에 태어났으며, 고려에서 계속해서 벼슬에 올랐었다. 때문에 1392년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 리고 여러 관리들과 함께 두문동에 숨어들었던 인물이다. 즉 처음부터

22 54 한국학연구 56 조선에서 벼슬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이었고, 조선의 왕들에게 충 성을 맹세하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두문동에 사람을 보 내어 벼슬할 것을 종용하였고, 이에 황희는 마지못하여 벼슬에 올랐다고 한다. 벼슬한 이후에 황희는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능력을 발휘하였기에 태 종의 신임을 굳게 받았다고 한다. 특히 태종의 지신사가 되었는데, 지신 사는 왕과 비밀을 공유하고 조언하는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는 자리였다. 그런 황희가 양녕이 폐위될 당시에 조정의 대신들 가운데 누구보다 양녕 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태종은 양녕을 양위시키는 문제 를 황희와 직접 상의하였는데, 황희는 양녕이 아직 어려서 잘못한 것이 기 때문이라며 양녕을 두둔한 것이다. 따라서 양녕이 폐세자가 되자 황희도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로 인해 황희가 새로운 세자인 세종에게 죄를 지었다 하 여, 서인이 되어 서울 밖으로 나가야 했다. 조정에서도 황희가 양녕을 두 둔한 것에 대한 죄를 묻는다고 하면서 형조와 대간들이 황희를 벌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에 황희는 남원으로까지 내려가 지내면서 사람들과 일체 만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세종은 조선을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거부하였던 전례도 있 었고 또한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반대하기도 했었던 황희를 조정으로 불 러들인다. 1422년에 세종은 왕위에 오른지 4년이 되지 않아 황희에게 벼 슬을 주었고 후하게 대접하였으며 그의 직첩과 과전도 돌려주었다. 세종 은 그가 조선과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와는 별도로 나라의 백 성을 위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48) 세종이 황희를 불르며 내린 벼슬은 정2품 의정부 참찬이었다. 이 직위 는 정책 결정에 도움을 받기 위한 자리이다. 황희는 이 자리에 7개월 정 도 있다가 1423년 5월에 예조판서가 되었고, 이후 계속해서 우리가 알고 48) 세종은 황희와 같이 양녕대군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내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끌어 들여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양녕대군의 보도( 輔 導 )를 맡았던 변계량도 등용하여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23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55 있는 것처럼 세종을 보좌한 가장 중요한 정승이 되었다. 이러한 점은 세 종이 신하를 등용하는 방식이 통합을 지향하면서도 능력에 따른 인사를 중시하였음을 보여준다. 세종이 신하를 활용하는 방식은 김종서를 등용하는 과정에서도 잘 나 타난다. 본래 김종서는 태종대에 그리 주목받지 못하던 관리였다. 심지어 태종은 김종서가 상서원이라고 하는 군사 관련 물품을 보관하던 관리로 있을 때에 병부의 관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신분 증명서를 내주었다 하여 40대의 태형을 때리기도 하였다. 또한 김종서는 죽산현감으로 있을 때에 제방을 제대로 쌓지 못했다 해서 50대의 태형을 받기도 하였다. 즉 김종서는 세종이 즉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중요한 관직에 오르리라 그 다지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김종서는 세종이 즉위하였을 때에 낮은 벼슬인 행대의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김종서는 행대로 있으면서 강원도와 충청도의 백성들을 위해 조 세를 감해달라는 장계를 올리고 백성이 굶주리기 때문에 국가의 사업을 잠시 멈추어달라는 대담한 상소를 하였다. 백성을 위한 행보로 인해 세 종은 김종서가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펼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눈여겨 보게 되었고, 이후 직언을 직접 하거나 관리들의 인사를 담당하 거나 공적을 확인하는 직책을 담당하게 하였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미래마저 불투명하였던 관리였지만, 세 종은 그를 주목하였고 이후 계속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김종서 또한 세 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북방지역의 6진 개척에 올라 두만강 유역을 국경으로 확정지었다. 그리고 이후 남쪽 각 지역에서 백성을 이주시키면 서 국경을 안정시켰다. 이와 같이 세종은 정치적 견해의 차이나 이전의 평판에 구애되지 않고 관리를 등용하고 있다. 더욱이 황희나 김종서는 모두 이전부터 등용되었 던 인물이었다. 즉 세종은 자신이 발탁한 인물이 아님에도 그들을 소외 시키기 보다는 적절하게 활용하여, 자신의 치세를 정치적으로 성공시키 는데 기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49) 한편 세종이 발탁한 신하들은 이른바 집현적 학사로 알려진 인물들이

24 56 한국학연구 56 다. 여기서 집현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경연( 經 筵 )이었다. 세종의 공부 를 도와주고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집현전의 학 사들은 세종이 자신과 후대를 위해 키워나갔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길러진 세종의 신하들은 실용적 성격을 중시하면서 군사, 지리, 의약, 언어, 농업, 천문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50) 때문에 세종은 이들을 키우는데 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리 가 잘 알고 있는 사가독서( 賜 暇 讀 書 ) 제도를 시행하기도 하였는데, 이 제 도는 일정 기간 근무하지 않고 집에서 독서하면서 새롭게 책을 읽고 공 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운영은 세종이 지금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미래를 이끌 어갈 인재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세종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한다. 따라서 세종은 의정부를 통해 노성 한 대신들의 경륜과 지혜를 모았다면, 승정원과 집현전을 통해서는 미래 의 국가를 짊어진 젊은 학자들을 양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51) 이와 같이 인재를 등용하면서 세종은 작은 허물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믿고 썼으 며, 52) 장영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각 관리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협력 을 통하여 적극적인 성과를 올리고자 하였다. 53) 따라서 이들이 세종을 도와 세종의 업적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9) 박병련, 세종조의 정치엘리트 양성과 인사운용의 특성,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61(1), 한국동양정시사상사학회, 2007, 29면. 50) 강문식, 세종의 인재경영와 집현전, 선비문화 13, 남명학회, 2008, 18-24면. 51) 박병련, 앞의 논문, 34면. 52) 대간( 臺 諫 )의 법을 봉행하는 뜻인즉 옳은 것이다. 그러나 작은 과실로 하여 갑자기 대신을 죄주는 것은 불가하다. 臺 諫 奉 法 之 意 則 是 矣. 然 以 小 失 而 遽 罪 大 臣, 不 可 也. 세종실록, 23년 6월 12일. 53) 금후로는 함길도 의 사변( 事 變 )과 방어( 防 禦 )하는 등의 일은 반드시 형조 판서김종서 ( 金 宗 瑞 )와 같이 의논하게 하라. 今 後 咸 吉 道 事 變 及 防 禦 等 事, 必 與 刑 曹 判 書 金 宗 瑞 同 議. 세종실록, 23년 1월 19일.

25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세종의 인문정신과 세종시의 정체성 지역의 정체성은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기반을 통해 오랜 기간 축적되 어 나온 결과이다. 즉 어떤 존재의 시작과 함께 정체성이 바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시간의 흐름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 서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오랜 기간 축적되어 왔던 역사와 문화를 통해 형성된다. 그 과정에서 백제의 흔적이 남아 있 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그리고 근대 이후 나타난 새로운 지역 적 변화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떠올릴 수 있 다. 그런데 세종시는 이러한 역사와 문화적 토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어 다른 지역과 상황이 같지 않다. 세종시의 설립과정에서부터 도시의 명칭을 정하기까지 국가적인 계획과 국민의 참여가 전제되어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에서 내재적으로 축적되어 전해진 정체성만으 로 세종시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때문에 세종 시의 명칭이 세종에서 따온 이상,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세종시의 문화 적 토대와 세종과의 연관성 속에서 세종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모색해가 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 때문에 그 정체성의 모색은 세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세종에 관 심을 갖는다면, 그의 업적만을 기억하기보다는 왕이 되리라 생각지 못했 던 세종이 이후 어떻게 업적을 성취해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세종 시의 정체성과 연관지을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요소가 된다. 아울러 세 종이 갈등과 좌절을 겪으면서 극복해가는 과정도 현재 세종시의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 가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세종도 모든 정책을 순탄하게 성공시켰던 것만은 아니었다. 앞 서 살펴보았던 세금 제도의 변경이나 역법의 제정과 관련해서는 성공하 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실패했던 경우도 있는데 화폐제 도를 개혁하고자 시도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세종은 종이 지폐와 동전을 사용하고자 하였으나 백성들의 거센 반대로 인해 끝내 그의 생애 동안

26 58 한국학연구 56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종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혹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신하들과 공감하고 통합을 꾀하면서 중국과 다른 문화를 창조하려 하였 다. 즉 즉 세종은 기다릴 줄 알았고, 다른 길을 걸었으며, 함께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종의 인문정신이 현재 그를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종의 모습은 세종시의 미래를 그려가는데 있어서 시사하는 바 가 크다. 국토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근대 전환기 교통의 요지라는 가능성 이 부각되었지만 그동안 크게 주목되지 않았던 곳이 세종시였다. 그러나 세종시 역시 세종과 같이 갑작스럽게 나라의 행정중심도시로 계획되었고 많은 어려움과 다른 도시들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 발전해 오고 있다. 이처럼 세종시가 세종을 닮아 있다는 점에서 세종의 인문정신 역시 세 종시의 정체성으로 투영시킬 수 있다. 더욱이 세종이 이미 앞서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세종시 역시 다른 도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사람들과 지역이 통합할 수 있는 도시로 성장해 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신도 심과 구도심의 화해로운 조화나 새롭게 이주한 주민들과의 관계 역시 쉽 게 풀어가기 어려운 점들이다. 다만 세종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공감에서 시작하여 통합의 길로 나아간다면 이러한 문제 역시 해결될 것이고 이후 이러한 사례는 세종시의 정체성으로 축적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세종의 인문정신이 세종시의 정체성으로 축적되어갈 때, 세종이 그의 업적을 통 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것처럼 세종시 역시 미래에 세종처럼 기억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5. 결론 세종을 그의 업적만을 통해 기억한다면 이러한 인식은 역설적으로 세

27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59 종이 자신의 삶을 견인해 갈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한 다. 아울러 세종의 업적을 회고하고 높이는 것에만 익숙해질 뿐, 현재 우리 의 삶과 세종을 연계시킬 수 있는 통로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때문에 왕으로서의 본격적인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종이 왕위에 올랐던 과정과 이러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종의 재위 초기에는 상왕인 태종이 실권을 잡고 있었다. 때문에 세 종은 장인과 처가가 몰살당하는 경험을 하면서도 기다려야 했다. 또한 노련한 신하들의 반대에 막혀 왕으로서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경우 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종은 신하 및 백성들과 공감하면서 제도 를 개선하고 만들어갔다. 또한 중국과 다른 문화적 기반을 이해하고 새 로운 조선의 문화를 창조하려 하고 있었다. 아울러 자신을 반대하거나 평판이 좋지 않던 신하도 포용하여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였고 새로운 인물들을 발탁하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현재의 문 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며, 이를 아울러 세종의 인 문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세종의 이러한 모습은 출발의 단계에서부터 험난한 길을 겪어온 세종 시의 계획 및 발전과정과 비슷하다. 때문에 세종이 그랬던 것처럼 다르 면서도 창조적인 도시를 만들고 기존의 주민과 이주해온 주민들이 공감 하고 통합되면서 도시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때 문에 세종의 인문정신은 현재의 세종시를 이해하고 미래를 그려나가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세종의 인문정신이 세종시에 투영되는 과 정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리라 판단된다. 따라서 세종시 의 정체성은 지금부터 새롭게 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 을 기억하게 만든 업적이 그의 인문정신을 토대로 성취되었다면, 세종시 역시 세종시의 정체성을 통해 성공한 도시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8 60 한국학연구 56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 충북일보, 2015년 10월 22일 기사. 세종시 문화체육관광과, 세종시 보도자료, 2015년 10월 12일. 신숙주, 보만재집 (정주리 시정곤, 조선언문실록, 고즈윈, 2011, 37면 재인용.) 허목, 기, 미수기언. 강문식, 세종의 인재경영와 집현전, 선비문화 13, 남명학회, 2008, 18-24면. 권오성 한민족음악론, 학문사, 1999, 101면. 김영수, 조선왕조의 권력 이양과 승계, 민족문화논총 58, 영남대 민족문화연 구소, 2014, 면. 문중양, 세종대 과학기술의 자주성, 다시 보기, 역사학보 189, 역사학회, 2006, 39-72면. 박병련, 세종조의 정치엘리트 양성과 인사운용의 특성,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 구 61(1), 한국동양정시사상사학회, 2007, 29면. 박병철, 행정중심복합도시 명칭 제정의 경과와 전망, 지명학 12, 한국지명학 회, 2006, 면. 박성래, 세종대의 과학기술, 그 현대적 의미, 한국과학재단, 1997, 면. 오기수, 세종대왕의 조세사상과 공법( 貢 法 ) 연구 - 조세법 측면에서, 세무학연 구 28권1호, 한국세무학회, 2011, 380면. 유재리, 세종초 양상통치기의 국정운영, 조선시대사학보 36, 조선시대사학회, 2006, 7면. 윤정, 태종 18년 개성 이어와 한양 천도의 정치사적 의미, 서울학 연구 50,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2013, 면. 이기대, 史 劇 에 나타난 세종의 왕위 계승 과정과 인식의 변화 : <용의눈물>과 <대왕세종>을 중심으로, 한문학보 24, 우리한문학회, 2011, 31-57면. 이기대, 양녕대군 관련 기록의 형성과 변이 양상, 우리문학연구 36, 우리문학 회, 2012, 39-69면. 이상주, 세종의 공부, 다음생각, 2013, 면. 이춘희, 세종시의 발전과 미래, 건축 59(3), 대한건축학회, 2015, 10면. 이한우,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 동방미디어, 2003, 62면. 이한우,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 해냄, 2006, 34면. 장사훈, 증보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269면. 전상운, 조선전기의 과학과 기술, 한국과학사학회지 14권 2호, 한국과학사학

29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61 회, 1992, 면. 정광, 한글의 발명, 김영사, 2015, 1-508면. 정윤재, 세종의 정치리더십 과정 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6(1), 한국동 양정치사상사학회, 2007, 7면. 최승희, 태종말 세자폐립사건의 정치사적 의의, 조선초기정치사연구, 지식산 업사, 2002, 면. 충남대학교 산학협력단, 행정중심복합도시 마을 및 시설 명칭부여 학술연구 용 역, 한국토지주택공사 세종사업본부, 2012, 10-11면. 한흥섭, 세종의 신악 은 한국의 아악인가?, 민족문화연구 49, 고려대 민족문 화연구원, 2008, 면.

30 62 한국학연구 56 Abstract The Local Identity in Sejong City and the Humanistic Spirit in Sejong Lee, Gi-dae(Korea University) A situation of Sejong city has resemblance to the process that Sejong had needed to suffer with becoming a king. In a situation of having been unable to be expected to be likely a king, Sejong became a king and proceeded with overcoming a difficulty. Even Sejong city was planned abruptly as an administrative city and had short time in preparation, too, but is proceeding with growing as Sejong city of the present while waiting for time after going through the rough process following this. Accordingly, to expect the development in Sejong city, many implications can be found in the humanistic spirit that Sejong had shown to us in the above. A reason that Sejong could be remembered to us today can be pointed out the humanistic spirit that had known how to wait, that had walked a different path, and that had chosen a way of being gone together. Accordingly, like Sejong's humanistic spirit, even the local identity in Sejong city requires a pursuit in the process of decorating as a city available for creating new space and integrating people and region, not for imitating other city. The process of newly making different culture from before inside it with being coexisted both new downtown and old downtown, not of being left as a sophisticated impression just ostensibly and seemingly, is what has an important significance as the local identity in Sejong city. Key word: Sejong City, King Sejong, Humanistic Spirit, Local Identity,

31 세종시의 지역 정체성과 세종의 인문정신 이기대 63 이기대 소 속 :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전자우편 : 2gide@korea.ac.kr 논문투고일 / 심사완료일 / 게재결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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